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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략가·파티 중독자… 조금 특별한 공주들

    전략가·파티 중독자… 조금 특별한 공주들

    무서운 공주들/린다 로드리게스 맥로비 지음/노지양 옮김/이봄/484쪽/2만 2000원 공주 하면 떠오르는 것이 동화와 왕자님이다. 백마 탄 왕자님을 만난 착하고 아리따운 공주의 삶은 “그 후로도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로 언제나 해피엔딩이다. 예쁜 그림이 있는 동화책이 심어 준 공주에 대한 판타지는 디즈니사의 만화영화로 더욱 공고해진다. 현실 속의 공주도 그런 삶을 살았을까. 적어도 ‘무서운 공주들’에 등장하는 공주들은 아니다. 특이한 이야기를 찾아내는 데 특출한 감각을 지닌 저널리스트 겸 작가인 린다 로드리게스 맥로비는 실제 역사 속의 공주들 중에서 지나칠 정도로 비범한 삶을 살았던 동서고금의 공주 혹은 왕비가 된 여인 서른 명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저자는 전 세계적으로 퍼진 여자아이들의 공주 열병에 대한 우려가 자신이 책을 쓴 동기라고 밝히고 있다. 공주들이 여성의 미에 대한 비현실적인 기대 수준을 형성하고 소녀들의 개성을 제한하며 자존감마저 해칠 수 있다는 페미니즘적 관점을 수용해 동화는 현실이 될 수 없음을 강조한다. 제목부터 과격한 책에서 저자가 소환한 공주들은 전사, 왕위 찬탈자, 전략가, 생존자, 파티 중독자, 난잡한 여인들, 미친 여인 등으로 기존에 우리가 상상하던 공주와는 딴판의 삶을 살았다. 남편의 원수를 갚기 위해 교묘한 술수로 수천 명을 학살했던 키예프의 올가, 눈에 거슬리는 사람은 모두 제거하고 여제가 된 측천무후, 단아한 미모와 유혹하는 기술로 귀족 사회에 진입한 뒤 놀라운 생존술로 나치의 앞잡이까지 했던 스테파니 폰 호엔로헤, 섹스 파티를 열고 참석자들을 협박하는 등 나쁜 여자의 전형으로 악명 높았던 프로이센의 샤를로테, 로마노프왕조의 마지막 공주 아나스타샤 등이 소개된다. 책은 딱딱한 역사가 아니라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이야기책에 가깝다. 이런 책의 성격을 더 강조하기 위해 한국어판에는 각 인물의 캐릭터를 드러내는 컬러일러스트가 추가됐다.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월드피플+] 94세 아우슈비츠 회계사 ‘정의의 단죄’(斷罪) 받다

    [월드피플+] 94세 아우슈비츠 회계사 ‘정의의 단죄’(斷罪) 받다

    독일의 ‘과거청산’은 정말 어느 나라에게는 큰 가르침이 되는 것 같다. 지난 7일(현지시간) 독일 뤼네부르크 법정에 보행기 없이는 걷지도 못하는 백발의 노인이 출석했다. 이 노인의 이름은 올해 94세인 오스카 그로닝으로 그는 30만명의 유대인 학살을 방조한 혐의로 '정의의 심판대' 위에 섰다. 이에 그로닝의 죄목을 조목조목 읽어가던 검찰은 오늘 당장 세상을 떠나더라도 이상하지 않은 그에게 3년 6개월의 징역을 구형했다. 무려 94세 나이에 단죄(斷罪)될 위기에 놓인 그로닝은 과거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경비원 혹은 회계사로 통했던 인물이다. 검찰이 공개한 그의 혐의는 지난 1944년 5월 16일부터 7월까지 단 2개월이 대상이다. 그는 이 기간 중 아우슈비츠의 경비원으로 일하면서 이곳으로 끌려온 유태인의 학살을 방조한 것과 이들이 소유한 돈과 물품을 가로챈 후 장부를 작성해 나치 정권에게 경제적으로 도움을 준 혐의를 받고있다. 직접적으로 유대인 학살에 관여하지는 않은 사람이지만 70년이 지나서도 끝나지 않는 독일 당국의 과거청산 의지가 얼마나 강력한 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로닝은 이날 재판에서 나치에 부역한 과거를 순순히 인정했다. 그로닝은 "당시 내 나이 21살로 당국의 명령에 따라 아우슈비츠로 간 것 뿐" 이라면서 "그곳에서의 내 임무는 유대인이 가져온 짐과 귀중품을 모아 정리하는 것이었다"고 털어놨다. 이어 "유대인을 죽이는 잔악한 행위는 하지 않았지만 도덕적으로는 잘못을 느낀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이날 그로닝은 '시대 탓'을 할 뿐 법적인 죄는 인정하지 않았으며 재판을 지켜보기 위해 참석한 아우슈비츠 생존자들에게도 사과하지 않았다. 아우슈비츠 생존자인 헤디 봄은 "그로닝이 사과 한마디 하지 않아 매우 실망스럽다" 면서 "판결은 의미없다. 어찌되었건 너무 늦었기 때문" 이라고 밝혔다. 그로닝의 건강 문제로 여러차례 재판이 연기된 이번 사건에 대한 판결은 다음주 중 이루어질 전망이다. 한편 독일 검찰은 2년 전 부터 그로닝을 포함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근무한 경비원 30명을 추적해 왔으며 확인된 몇몇은 노환, 수사 중 사망, 증거 부족 등으로 기소를 포기했다. 이중 그로닝의 경우 건강 상태가 양호하고 당시 아우슈비츠 생존자 8명의 증언이 목격자 증거로 채택해 법정에 서게됐다.   2차 세계대전 중 폴란드 남부 오슈비엥침(독일어명 아우슈비츠)에 설치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는 헝가리 출신 유대인 42만 5000명이 수용됐으며 이중 30만명 이상이 가스실에서 운명을 달리했다. 사진=게티이미지/멀티비츠 이미지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또 꽃이 졌다… 위안부 피해자 최금선 할머니 별세

    또 꽃이 졌다… 위안부 피해자 최금선 할머니 별세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최금선 할머니가 지난 5일 오후 11시 20분쯤 경기 용인의 한 노인요양병원에서 별세했다. 90세. 1925년생인 최 할머니는 16세 때인 1941년 친구 집에 가다 붙잡힌 뒤 중국 하얼빈으로 보내져 위안부 생활을 강요당했다. 여러 차례 탈출을 시도하다 붙잡혀 고초를 겪기도 했던 최 할머니는 1942년 마침내 도망치는 데 성공, 고향으로 돌아왔다. 2007년부터 노인전문병원에서 노환으로 치료를 받다 2012년 말 이후 중환자실에서 패혈증, 폐렴 등과 투병해 왔다. 빈소는 서울 영등포 신화병원 장례식장이며 발인은 7일 오전 11시다. 유족 측은 “화장 후 충남 천안 국립묘원인 ‘망향의 동산’에 안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최 할머니는 슬하에 양녀를 뒀다. 최 할머니의 별세로 정부에 등록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238명 가운데 생존자는 국내 43명, 해외 5명 등 48명으로 줄었다. 지난달 김외한·김달선·김연희 할머니가 잇따라 생을 마감하는 등 6월 이후에만 4명이 세상을 떠났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필리핀판 세월호 선장에 살인 혐의 적용할 듯

    지난 2일 필리핀에서 60명 가까운 사망자를 낸 선박 전복 사고와 관련, 현지 경찰이 선주와 선장·선원 등 총 19명에게 살인 혐의를 적용할 계획이라고 AFP·AP통신 등이 4일 전했다. 경찰은 이들이 안전 운항 의무를 소홀히 해 대형 인명 피해를 일으킨 것으로 판단했다. 선장과 선원들은 사고 직후 모두 구조됐다. 사고 선박의 승선 가능 인원은 194명인데 이를 초과해 태우고 150여 포대의 시멘트와 쌀 등 많은 짐을 실은 것도 사고 원인의 하나로 제기되고 있다. 출항 직전 구명조끼를 받지 못했다는 생존자들의 증언도 나왔다. 사고 당시 탑승자와 사망자, 구조자 수는 아직 정확히 집계되지 않았다. AP통신은 최소 59명이 숨지고 145명이 구조됐다고 보도했으나, AFP통신은 지금까지 56명이 사망하고 142명이 목숨을 건졌다고 전했다. 사고 선박은 2일 필리핀 중부 오르모크항을 떠나 세부 카모테스 섬으로 가다가 전복됐다.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 위안부 피해자 최금선 할머니 별세…위안부 피해 생존자 현재 몇 명 남았나?

    위안부 피해자 최금선 할머니 별세…위안부 피해 생존자 현재 몇 명 남았나?

    ‘위안부 피해자 최금선 할머니 별세’ 위안부 피해자 최금선 할머니가 별세했다. 90세.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는 최금선 할머니가 11시 20분쯤 별세했다고 공식 페이스북을 통해 6일 밝혔다. 정대협에 따르면 1925년 11월생인 김 할머니는 노환으로 2007년부터 노인전문병원에 입원치료를 받아왔다. 이로써 정부에 등록된 군 위안부 피해자 238명 가운데 생존자는 48명으로 줄었다. 지난달에는 11일 김외한·김달선 할머니가, 24일에는 김연희 할머니가 생을 마감하는 등 6월 이후에만 피해자 4명이 세상을 떠났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튀니지 테러 공범 있었다”…목격자들 증언

    “튀니지 테러 공범 있었다”…목격자들 증언

    지난달 26일 벌어진 튀니지 휴양지 테러 사건 당시, 경찰에 의해 사살된 세이페딘 레즈귀 이외에도 총격을 가한 인물이 더 있었다는 목격자 진술이 나와 이목을 끌고 있다. 스코틀랜드 출신으로 아내, 아들, 장모와 함께 튀니지 관광에 나섰던 짐 스티븐슨은 레즈귀가 아닌 또 다른 남성이 임페리얼 마하바 호텔 수영장 근처에서 여성 한 명을 사살하는 것을 봤다고 주장했다. 그는 “사건 후 뉴스 보도를 확인했지만 나와 아들이 함께 목격한 사실과 일치하지 않았다. 뉴스에 나온 범인은 검은색 복장을 하고 있었지만 우리가 본 남성은 밝은 회색 상의에 위장용 무늬가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는 어두운 색상 바지를 입고 있었다”며 “그가 수영장 인근에서 계단을 내려오고 있던 노년 여성에게 총격을 가했고 여성은 쓰러져 사망했다”고 증언했다. 그는 또한 이 남자가 수염이 없는 흑발이었으며 칼라쉬니코프 소총을 들고 있었다고 말했다. 스티븐슨은 이어 제3의 범인이 존재할 가능성도 제기했다. 그는 “당시 수류탄을 투척하는 남성을 봤다는 사람들을 만났는데, 이들은 해당 남성이 빨간 바지를 입었다고 말했다. 모든 정황으로 미루어 범인은 총 세 명이었던 것으로 생각 된다”고 진술했다. 빨간 바지를 착용한 남성에 대한 목격담은 또 있다. 지난주에도 총 세 명의 목격자가 호텔 수영장 근처에서 빨간색 수영바지를 입은 남성을 봤다는 증언을 했다. 특히 이들 중 스티브 존슨과 마이클 페리는 전직 경찰관으로, 호텔 3층에 숨어 목격한 남성의 모습을 상세히 설명했다. 페리는 “창밖으로 아래쪽 수영장을 확인하니 시신 세 구가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상체에 아무것도 입지 않은 채 빨간 바지를 착용한 남성이 움직이는 모습이 보였다”고 말했다. 그는 “이 남성은 소총을 든 채 상체를 굽히고 사방을 경계하며 모든 방향으로 총을 겨누면서 이동했다”며 “그 남성이 총을 발사하는 모습을 보진 못했으므로 그가 우연히 죽은 경찰관의 총을 주운 일반인 내지는 호텔 직원이었을 가능성이 없진 않지만 그렇게 여기기엔 행동 방식이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약혼자와 함께 휴양지를 찾았다가 수류탄 파편에 맞고 양쪽 다리를 권총으로 피격당한 커스티 머레이 또한 자신을 저격한 범인이 레즈귀가 아니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커스티의 아버지 닐은 “딸은 자신이 (레즈귀가 사용했던 것으로 알려진 칼라쉬니코프 소총이 아닌) 권총에 맞은 만큼 범인이 최소한 두 명 이상이었다고 말했다. 그녀의 약혼자 역시 레즈귀가 아닌 다른 테러범을 보았다고 했다”고 전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부상자들을 치료했던 의사 압델마지드 므셀미 또한 총상 유형이 두 종류 이상이었다고 말해 공범이 있었다는 주장에 힘을 실었다. 현재 영국 경찰은 테러 현장서 사살된 레즈귀를 원조한 것으로 추정되는 모하메드 빈 아브달라(24)와 라피케 타야리(28)의 사진을 인터넷에 공개하고 추적 중이다. 이외에도 영국 경찰은 레즈귀에 협력한 것으로 추정되는 몇몇 인물을 용의선상에 올린 상태다. 튀니지에서도 이미 사건에 직접적으로 연루된 것으로 보이는 8명의 인물이 경찰에 검거됐으며 간접적 연루 의혹이 있는 인물 4명도 마찬가지로 구금된 상태다. 영국과 튀니지 경찰은 협력 하에 생존자들을 조사, 총격을 가한 인물이 두 명 이상일 가능성을 확인 중이다. 사진=데일리메일 캡쳐 방승언 기자 earny@seoul.co.kr
  • 위안부 피해자 최금선 할머니 별세…6월 이후에만 벌써 4명째

    위안부 피해자 최금선 할머니 별세…6월 이후에만 벌써 4명째

    ‘위안부 피해자 최금선 할머니 별세’ 위안부 피해자 최금선 할머니가 별세했다. 90세.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는 최금선 할머니가 11시 20분쯤 별세했다고 공식 페이스북을 통해 6일 밝혔다. 정대협에 따르면 1925년 11월생인 김 할머니는 노환으로 2007년부터 노인전문병원에 입원치료를 받아왔다. 이로써 정부에 등록된 군 위안부 피해자 238명 가운데 생존자는 48명으로 줄었다. 지난달에는 11일 김외한·김달선 할머니가, 24일에는 김연희 할머니가 생을 마감하는 등 6월 이후에만 피해자 4명이 세상을 떠났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위안부 피해자 최금선 할머니 별세 “남은 생존자는 이제 48명”

    위안부 피해자 최금선 할머니 별세 “남은 생존자는 이제 48명”

    ‘위안부 피해자 최금선 할머니 별세’ 위안부 피해자 최금선 할머니가 별세했다. 90세.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는 최금선 할머니가 11시 20분쯤 별세했다고 공식 페이스북을 통해 6일 밝혔다. 정대협에 따르면 1925년 11월생인 김 할머니는 노환으로 2007년부터 노인전문병원에 입원치료를 받아왔다. 이로써 정부에 등록된 군 위안부 피해자 238명 가운데 생존자는 48명으로 줄었다. 지난달에는 11일 김외한·김달선 할머니가, 24일에는 김연희 할머니가 생을 마감하는 등 6월 이후에만 피해자 4명이 세상을 떠났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위안부 피해자 최금선 할머니 별세…위안부 피해자 생존자 48명뿐

    위안부 피해자 최금선 할머니 별세…위안부 피해자 생존자 48명뿐

    ‘위안부 피해자 최금선 할머니 별세’ 위안부 피해자 최금선 할머니가 별세했다. 90세.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는 최금선 할머니가 11시 20분쯤 별세했다고 공식 페이스북을 통해 6일 밝혔다. 정대협에 따르면 1925년 11월생인 김 할머니는 노환으로 2007년부터 노인전문병원에 입원치료를 받아왔다. 이로써 정부에 등록된 군 위안부 피해자 238명 가운데 생존자는 48명으로 줄었다. 지난달에는 11일 김외한·김달선 할머니가, 24일에는 김연희 할머니가 생을 마감하는 등 6월 이후에만 피해자 4명이 세상을 떠났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위안부 피해자 최금선 할머니 별세…위안부 피해자 생존자 48명

    위안부 피해자 최금선 할머니 별세…위안부 피해자 생존자 48명

    ‘위안부 피해자 최금선 할머니 별세’ 위안부 피해자 최금선 할머니가 별세했다. 90세.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는 최금선 할머니가 11시 20분쯤 별세했다고 공식 페이스북을 통해 6일 밝혔다. 정대협에 따르면 1925년 11월생인 김 할머니는 노환으로 2007년부터 노인전문병원에 입원치료를 받아왔다. 이로써 정부에 등록된 군 위안부 피해자 238명 가운데 생존자는 48명으로 줄었다. 지난달에는 11일 김외한·김달선 할머니가, 24일에는 김연희 할머니가 생을 마감하는 등 6월 이후에만 피해자 4명이 세상을 떠났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위안부 피해자 최금선 할머니 별세 “생존자 현재 48명”

    위안부 피해자 최금선 할머니 별세 “생존자 현재 48명”

    ‘위안부 피해자 최금선 할머니 별세’ 위안부 피해자 최금선 할머니가 별세했다. 90세.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는 최금선 할머니가 11시 20분쯤 별세했다고 공식 페이스북을 통해 6일 밝혔다. 정대협에 따르면 1925년 11월생인 김 할머니는 노환으로 2007년부터 노인전문병원에 입원치료를 받아왔다. 이로써 정부에 등록된 군 위안부 피해자 238명 가운데 생존자는 48명으로 줄었다. 지난달에는 11일 김외한·김달선 할머니가, 24일에는 김연희 할머니가 생을 마감하는 등 6월 이후에만 피해자 4명이 세상을 떠났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위안부 피해자 최금선 할머니 별세 “생존자 48명”

    위안부 피해자 최금선 할머니 별세 “생존자 48명”

    ‘위안부 피해자 최금선 할머니 별세’ 위안부 피해자 최금선 할머니가 별세했다. 90세.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는 최금선 할머니가 11시 20분쯤 별세했다고 공식 페이스북을 통해 6일 밝혔다. 정대협에 따르면 1925년 11월생인 김 할머니는 노환으로 2007년부터 노인전문병원에 입원치료를 받아왔다. 이로써 정부에 등록된 군 위안부 피해자 238명 가운데 생존자는 48명으로 줄었다. 지난달에는 11일 김외한·김달선 할머니가, 24일에는 김연희 할머니가 생을 마감하는 등 6월 이후에만 피해자 4명이 세상을 떠났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위안부 피해자 최금선 할머니 별세 “남은 생존자는 이제 48명뿐”

    위안부 피해자 최금선 할머니 별세 “남은 생존자는 이제 48명뿐”

    ‘위안부 피해자 최금선 할머니 별세’ 위안부 피해자 최금선 할머니가 별세했다. 90세.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는 최금선 할머니가 11시 20분쯤 별세했다고 공식 페이스북을 통해 6일 밝혔다. 정대협에 따르면 1925년 11월생인 김 할머니는 노환으로 2007년부터 노인전문병원에 입원치료를 받아왔다. 이로써 정부에 등록된 군 위안부 피해자 238명 가운데 생존자는 48명으로 줄었다. 지난달에는 11일 김외한·김달선 할머니가, 24일에는 김연희 할머니가 생을 마감하는 등 6월 이후에만 피해자 4명이 세상을 떠났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위안부 피해자 최금선 할머니 별세 “남은 생존자는 48명”

    위안부 피해자 최금선 할머니 별세 “남은 생존자는 48명”

    ‘위안부 피해자 최금선 할머니 별세’ 위안부 피해자 최금선 할머니가 별세했다. 90세.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는 최금선 할머니가 11시 20분쯤 별세했다고 공식 페이스북을 통해 6일 밝혔다. 정대협에 따르면 1925년 11월생인 김 할머니는 노환으로 2007년부터 노인전문병원에 입원치료를 받아왔다. 이로써 정부에 등록된 군 위안부 피해자 238명 가운데 생존자는 48명으로 줄었다. 지난달에는 11일 김외한·김달선 할머니가, 24일에는 김연희 할머니가 생을 마감하는 등 6월 이후에만 피해자 4명이 세상을 떠났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위안부 피해자 최금선 할머니 별세…위안부 피해자 생존자 몇 명 남았나?

    위안부 피해자 최금선 할머니 별세…위안부 피해자 생존자 몇 명 남았나?

    ‘위안부 피해자 최금선 할머니 별세’ 위안부 피해자 최금선 할머니가 별세했다. 90세.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는 최금선 할머니가 11시 20분쯤 별세했다고 공식 페이스북을 통해 6일 밝혔다. 정대협에 따르면 1925년 11월생인 김 할머니는 노환으로 2007년부터 노인전문병원에 입원치료를 받아왔다. 이로써 정부에 등록된 군 위안부 피해자 238명 가운데 생존자는 48명으로 줄었다. 지난달에는 11일 김외한·김달선 할머니가, 24일에는 김연희 할머니가 생을 마감하는 등 6월 이후에만 피해자 4명이 세상을 떠났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위안부 피해자 최금선 할머니 별세 “남은 생존자 현재 48명”

    위안부 피해자 최금선 할머니 별세 “남은 생존자 현재 48명”

    ‘위안부 피해자 최금선 할머니 별세’ 위안부 피해자 최금선 할머니가 별세했다. 90세.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는 최금선 할머니가 11시 20분쯤 별세했다고 공식 페이스북을 통해 6일 밝혔다. 정대협에 따르면 1925년 11월생인 김 할머니는 노환으로 2007년부터 노인전문병원에 입원치료를 받아왔다. 이로써 정부에 등록된 군 위안부 피해자 238명 가운데 생존자는 48명으로 줄었다. 지난달에는 11일 김외한·김달선 할머니가, 24일에는 김연희 할머니가 생을 마감하는 등 6월 이후에만 피해자 4명이 세상을 떠났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필리핀 선박 전복, 189명 탑승 ‘36명 사망’ 한국인 탑승여부 미확인… 사고 상황보니

    필리핀 선박 전복, 189명 탑승 ‘36명 사망’ 한국인 탑승여부 미확인… 사고 상황보니

    필리핀 선박 전복, 189명 탑승 ‘36명 사망’ 한국인 탑승여부 미확인… 사고 상황보니 ‘필리핀 선박 전복’ 필리핀 중부에서 2일(현지시간) 승객과 승무원 등 총 189명이 탄 선박이 뒤집혀 36명이 사망하고 26명이 실종됐다. 필리핀 GMA 뉴스에 따르면, 이날 낮 12시50분께 선박 킴니르바나가 필리핀 중부의 오르모크에서 세부 카모테스 섬으로 가던 중 전복돼 36명이 숨졌다. 사고 선박에는 승객 173명과 승무원 16명이 타고 있었으며 이중 127명은 급파된 구조선 덕분에 목숨을 건졌다. AP 통신은 미국인 3명과 캐나다인 1명 등 최소 4명의 외국인이 타고 있었으나 모두 구조됐다고 전했다. 필리핀 주재 한국대사관의 한 관계자는 “현재까지는 한국인 관광객이나 교민은 사고 선박에 타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며 “주로 현지 주민들이 타는 선박이지만 승선자 명단 관리가 부실한 점을 고려해 추가로 확인 중”이라고 말했다. 이날 사고는 오르모크항에서 약 200m 떨어진 곳에서 발생했다. 사고 선박이 출항 몇 분 만에 큰 풍랑에 전복된 것으로 알려졌지만, 수백 포대의 시멘트와 쌀이 실려있었다는 생존자들의 증언이 나오면서 과적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한편 오르모크가 위치한 레이테 섬과 카모테스 섬은 휴양 리조트가 있어 외국인 관광객이 많이 찾는 곳이다. 사진=연합뉴스TV 뉴스팀 seoulen@seoul.co.kr
  • 튀니지 테러범 마약 취해있었다…“웃으며 사진 찍기도”

    튀니지 테러범 마약 취해있었다…“웃으며 사진 찍기도”

    튀니지 총격 사건의 범인 세이페딘 레즈귀가 범행 당시 마약에 취해 있던 것으로 밝혀졌다. 영국 일간 데일리메일은 30일(현지시간) 현지 전문가들이 발표한 부검결과와 생존자들의 증언을 인용, 레즈귀가 강력한 마약에 취한 상태로 총격을 가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보도했다. 현지 관계자는 “부검결과 그가 범행 직전 마약을 복용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 마약은 이슬람국가(IS)가 테러공격 전에 IS대원들에게 지급하는 것과 동일한 종류다. 이 마약을 복용하면 상황을 제대로 인식할 수 없게 된다”고 밝혔다. IS의 대원들은 공포심을 없애기 위해 전투 전에 코카인을 흡입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범인의 기괴한 행동에 대한 생존자들의 증언과도 일치하고 있다. 지난 29일(현지시간) 발표된 생존자 증언에 따르면 레즈귀는 총격 도중 소리내 웃거나 미소짓는 모습을 보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생존자인 호텔 직원 후셈은 “그는 총격을 가하는 동안 소리내어 웃었다. 사람들을 죽인 뒤에도 한가로운 태도였다. 도망치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는 내내 미소를 짓고 있었고 즐거워 보였다”고 전했다. 그는 더 엽기적이고 무도한 행각도 서슴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또 다른 생존자 폴 쇼트는 “한 순간 범인은 총을 등 뒤로 매더니 휴대폰을 꺼내 웃으며 시신들의 사진을 촬영했다”고 증언했다. 더불어 튀니지 경찰은 시신에서 사용되지 않은 폭발물을 발견했으며 이 점으로 미루어 범인이 더 많은 사상자를 발생시킬 의도였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전했다. 방승언 기자 earny@seoul.co.kr
  • “이젠 잊고 살고 싶다… 人災 때마다 거론 ‘삼풍’에 갇힌 일상”

    “이젠 잊고 살고 싶다… 人災 때마다 거론 ‘삼풍’에 갇힌 일상”

    정확히 20년 전인 1995년 6월 29일 오후 5시 57분. 서울 서초구 서초동에 거대한 먼지구름이 피어올랐다. 진원지는 당시 전국 2위 매출을 자랑했던 삼풍백화점이었다. 강남 부촌에 자리잡은 삼풍백화점은 고속 성장을 이룬 한국 사회 부실의 축소판이었다. 1400여명이 백화점 잔해에 매몰되고 502명이 목숨을 잃은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는 온 국민을 충격과 절망에 빠트리면서 후진국형 인재(人災)의 오명으로 남았다. ‘삼풍 참사’ 20주년을 하루 앞둔 28일 붕괴 현장으로부터 5㎞ 거리인 양재 시민의숲에 마련된 희생자 위령탑에는 인적조차 드물었다. 위령탑 주변에는 ‘사랑하는 아들 ○○아, 너의 생일이다. 너무너무 보고 싶다. 아빠 엄마가’, ‘○○이에게. 보고 싶고 잊지 않을게’ 등 유족들이 희생자를 그리워하며 남긴 꽃바구니 속 문구만 있었다. 매년 열렸던 추모식도 올해는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로 취소됐다. 메르스 때문에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행사는 자제했으면 좋겠다는 당국 의견을 삼풍유족회가 받아들였다. 유족들은 서울신문의 취재에 한결같이 “20년이나 지난 일 아니냐. 그만 말하고 싶다”고 밝혔다. ‘삼풍’이라는 두 글자만 들어도 참혹했던 그 기억이 떠오르며 여전히 힘든 깊은 상처 때문이었다. 당시 사고로 백화점에서 의류 업체를운영하던 딸 이숙희(당시 35세)씨를 잃은 이순자(76·여) 전 삼풍유족회 부회장은 “유가족들이 지난 20년간 외부에 당시와 관련한 많은 얘기를 해 왔지만 바뀐 게 없다”며 “이제 더이상 기억을 들춰내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삼풍 참사로 세 딸을 모두 잃고 삼윤장학재단을 설립한 정광진 변호사도 세상에 자신을 드러내기를 강하게 거부했다. 최후의 생존자 3명 중 한 명인 최명석(40)씨는 “20년 동안 세상의 관심을 받으면서 부담스러웠다”며 “이제는 평범한 일상을 누리며 소박하지만 행복하게 살고 싶다”고 말했다. 붕괴 사고의 기억은 트라우마가 돼 아직도 유가족을 괴롭히지만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삼풍이라는 두 글자는 많이 희미해졌다. 거의 해마다 되풀이되는 인재형 사고가 이를 방증한다. 당시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장으로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를 수사했던 이경재(66) 법무법인 동북아 대표 변호사는 “성수대교 붕괴(1994년 10월), 아현동 도시가스 폭발(1994년 12월), 씨랜드 화재 참사(1999년 6월), 대구 지하철 방화 참사(2003년 2월) 등 초대형 인명 피해가 반복돼 왔다”고 지적했다. 그는 “사고 때마다 초고속 산업화 때문이라고 원인을 돌렸지만, 사실 근본적인 문제는 인간과 생명에 대한 존중보다는 금전적 이득에만 몰두하는 사회 풍조”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지난해 4월 세월호 참사도 막지 못한 것이라고 밝혔다. 삼풍 참사의 핵심 원인으로 안전을 무시한 무단 증축과 무량판 공법(대들보 없이 기둥으로만 지붕판을 받치는 공법) 등이 지목됐다. 당시 사전에 위험성이 경고되고 이를 잘 알고도 건축을 추진한 이준 삼풍백화점 회장과 아들인 이한상 사장, 불법 설계 변경을 승인해 준 이충우 전 서초구청장 등 25명이 유죄 선고를 받았다. 이 변호사는 “수사를 하면서 ‘과연 내 가족이 살 집이라고 생각했다면 그렇게 지었을까’ 싶었다. 근본적인 원인은 돈에 집착하는 우리 사회의식이고, 의식 개선 없이는 반복되는 인재의 고리를 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새로운 50년을 열자] 되풀이되는 과거사 불화… 적극 외교로 日 우경화 저지 절실

    [새로운 50년을 열자] 되풀이되는 과거사 불화… 적극 외교로 日 우경화 저지 절실

    김외한, 김달선, 김연희 할머니.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3명이 일본의 사과를 받지 못한 채 이달 들어 별세했다. ‘독도를 한국이 불법 점거 중’이라고 표기한 일본 중학교 교과서는 2011년 4종에서 올해 4월 13종으로 늘었다. 일제강점기 일본이 약탈해 간 우리 문화재는 일부만 반환됐을뿐더러 국내에서 문화재 반환 운동이 시작된 이후에는 전시대에서 사라졌다. 한·일 수교 반세기. 50주년이란 숫자를 딛고 미래를 기약하기에 양국의 과거사 화해 성적은 초라하다. 오히려 국내 사정에 밀려 양국 간 화해 노력이 무위로 끝나고 많은 일이 반복, 재연됐다. 일본 총리가 전범을 합사한 야스쿠니신사 참배에 나서는 행보는 1985년 나카소네 야스히로 총리, 2000년대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로 이어졌다. 아베 신조 내각에서 “위안부는 전시 중 합법”이라는 취지의 발언은 아베 총리뿐 아니라 내각 장관들의 입을 거치며 반복됐다. 미래를 향한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제자리걸음을 하는 양국이 한·일 수교 반세기를 계기로 관계 개선을 위한 외교적 전환을 모색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침략 전쟁을 금지한 일본 평화헌법 9조에 대해 한·일 시민단체가 공동으로 노벨평화상 수상을 추진하는 행보처럼 일본의 우경화를 저지할 여론 환기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얘기다. 위안부 문제는 양국이 제자리걸음을 멈춰야 할 명분을 주는 상징적 이슈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는 28일 김연희 할머니의 별세 소식을 거론하며 “이제 위안부 생존자는 49명”이라고 전했다. 정대협이 전한 김연희 할머니의 삶은 해방, 한·일 국교 정상화, 한국의 경제 발전, 민주화와 같은 집단적 성취가 이미 망가져 버린 개인의 삶에 대리 만족을 줄 수 없는 현실에 대한 은유였다. 1932년생인 할머니는 국민학교 5학년이던 열두 살에 일본인 교장의 차출에 따라 일본으로 끌려갔고, 일본 도야마현의 비행기 부속 공장에서 9개월 동안 근무하다 아오모리현 위안소로 끌려가 7개월 동안 위안부 생활을 했다. 해방 뒤 귀향한 할머니는 결혼하지 않고 가정부로 일했으며, 정신병원 치료를 받아야 했다. 1965년 한·일 수교는 위안부 할머니들이 개인적으로 보상받을 길을 차단하는 제약으로 작용했다. 일본 정부는 시종일관 성노예 피해자의 손해배상청구권이 수교에 맞춰 체결된 한·일청구권협정으로 종결됐다고 주장했고, 이 문제가 국제적 이슈가 된 최근에도 아베 총리 등이 “위안부 문제는 정치·외교 문제로 삼아서는 안 된다”(2013년 의회 답변)거나 “위안부는 인신매매 희생자”(올해 언론 인터뷰)라는 식으로 일본 정부 차원의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위안부 피해자 단체는 최근 적극적인 대응 행보를 보여 주고 있다. 위안부 할머니들은 일본 정부가 7월까지 사과하지 않으면 미국 법원에 2000만 달러(약 220억원)의 집단 손해배상 청구를 낼 계획이다. 이미 2000년 미국 워싱턴 법정에서 패소한 전례가 있지만, 이후 르완다와 유고 내전 중 성폭력 피해자들에 대한 국가의 배상 책임이 인정된 국제 판례가 나왔기 때문에 승소 기대감이 생기고 있다. 최근 방한한 자이드 라아드 알 후세인 유엔 인권최고대표는 유엔의 위안부 문제 해결 의지를 밝히며 “위안부 피해자가 원하는 것은 그들의 고통을 인정하는 우리의 모습과 진정 어린 참회”라며 피해자인 개인을 향한 직접 사죄만이 고통을 치유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국제사회의 진일보한 인식을 드러냈다. 할머니들의 죽음이 위안부 문제 해결의 시급함을 더했다면, 독도 영유권 문제에서는 일본의 속도가 한국의 고민을 키우고 있다. 독도 자체가 하루아침에 사라질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멋대로 독도 주변에 영유권 선을 그어 국제분쟁화하는 일은 하루아침에 단행될 가능성이 있는 시나리오다. 일본 내에서 체계적으로 진행돼 온 ‘한국의 독도 불법점거’ 주장은 이를 위한 사전 단계로 볼 수 있다. 2000년 이후 독도 문제는 양국 불화의 ‘뇌관’이 돼 왔다. 2005년 3월 일본 시마네현 의회가 2월 22일을 ‘다케시마(일본이 독도를 부르는 말)의 날’로 제정하는 조례안을 가결하자,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날 침략을 정당화하는 행위”라고 반발했다. 2012년 8월 이명박 전 대통령이 한국 대통령으로선 처음으로 독도를 방문하자 주한 일본대사가 본국으로 소환됐다. 한·일 네티즌끼리 독도 지명 표기를 놓고 여러 사이트에서 인터넷 청원 전쟁을 벌이는가 하면 독도 관련 공연을 한 한국 가수가 일본 입국을 거부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국제사법의 영역에서 한국은 독도 문제에 대해 ‘조용한 외교’로 일관하는 중이다. 이 전 대통령의 독도 방문 뒤 일본이 1954년, 1962년에 이어 세 번째로 독도 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에 회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선 것과 대비되는 전략이다. 한국이 실효적으로 지배하는 독도는 영토 분쟁 지역이 아니어서 국제사법재판소에 회부하면 긁어 부스럼이란 게 ‘조용한 외교’의 근간이 되고 있다. 문제는 한국이 차분하게 대응하는 동안 일본은 자국의 독도 편입 논리를 강단 있게 전파해 왔다는 데 있다. ‘1905년 무주지인 독도를 일본이 자국 영토로 편입시켰는데, 한국 정부가 1952년 1월 독도를 포함하는 이승만 라인을 일방적으로 설정해 불법 점거하고 있다’는 일본의 주장이 굳어지면, 한국 외교는 조용하게 있다 힘을 잃을 가능성이 있다. 독도연구소장을 지낸 김현수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적극적 외교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김 교수는 “독도는 이미 국제사회에서 분쟁도서로 인식된다”며 “독도 문제 언급을 피할 게 아니라 분쟁의 해결을 위한 한·일 간 진지한 교섭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위안부, 독도, 교과서를 둘러싼 갈등 국면에서 적극 대응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졌다면 일제강점기 약탈 문화재 반환 이슈에서는 다소 다른 분위기가 감지된다. 문화재 반환이 성사되려면 현재 국면에서 받는 입장인 한국 못지않게 주는 쪽인 일본의 태도 변화가 중요한 변수가 되기 때문에 면밀한 대응이 요구된다. 한·일 수교 당시 박정희 정권이 반환을 요구한 문화재는 4479점으로 조선총독부가 일본으로 가져간 고분 출토품, 개인이 약탈한 문화재가 망라됐다. 수교 이듬해인 1966년 5월까지 한국으로 돌아온 약탈 문화재는 거북 모양 청자 주전자(보물 452호) 등 1432점에 불과했다. 개인 소유 문화재가 제외된 탓이다. 대표적으로 일본인 사업가 오구라 다케노스케가 1910~50년대 한반도에서 수집한 1100여점의 문화재, 이른바 ‘오구라 컬렉션’이 돌아오지 못했다. 한·일 협정 당시 개인 소장품이었지만 1982년 도쿄국립박물관에 기증된 유물들이다. 국내 시민단체인 문화재제자리찾기는 국제박물관협의회에 오구라 컬렉션 반환 청원서를 전달하고 도쿄 법원에 소송을 제기하는 등 환수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소송이 제기된 직후 도쿄국립박물관에 전시됐던 한국 문화재들이 수장고 안으로 자취를 감추는 등 부작용도 적지 않다. 일본 법원도 한·일 협정으로 타결된 문제인 만큼 일본에 반환 의무가 없다는 입장이다. 문화재 약탈이 이뤄지고 이들 문화재가 어떻게 불법 경로를 통해 유출돼 일본으로 흘러들어 갔는지를 일본 정부에 소상하게 밝힐 수 있는 입증 자료 구비 등 한국 측의 빈틈없는 준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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