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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민체육진흥공단, 국립암센터와 암 생존자 체력향상 및 건강증진 위한 업무협약 체결

    국민체육진흥공단, 국립암센터와 암 생존자 체력향상 및 건강증진 위한 업무협약 체결

    국민체육진흥공단은 19일 국립암센터와 암 생존자 체력 향상 및 건강 증진을 위한 업무협약을 지난 18일 체결했다고 밝혔다. 양 기관은 이번 협약을 통해 암 생존자의 신체 활동 증진 및 건강관리 강화를 위한 공동 연구 및 사업을 추진하고 이를 위한 맞춤형 운동 프로그램 개발, 체계적 건강관리 서비스 제공, 관련 연구 및 정책 지원 등 다양한 협력을 이어간다. 하형주 이사장은 “국립암센터와 함께 암 생존자에게 체계적인 체력 및 건강 증진의 기회를 얻게 되어 뜻깊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양한광 원장은 “암 생존자들이 경험하고 있는 신체적 어려움을 지지하고 체력 증진을 통해 건강한 삶을 견인하길 기대한다”고 화답했다.
  • 100일 된 아기 천장으로 ‘훅’ 던졌다 못 받아 숨지게 한 아빠…2심서 실형

    100일 된 아기 천장으로 ‘훅’ 던졌다 못 받아 숨지게 한 아빠…2심서 실형

    생후 100일 된 아기를 달랜다며 공중으로 던졌다 받지 못해 사망에 이르게 한 30대 친부에게 항소심에서 실형이 선고됐다. 13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전지법 형사항소4부(부장 구창모)는 과실치사 혐의로 기소된 A(35)씨에게 금고형 집행유예를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금고 1년 9개월을 선고했다. 1심보다 2심에서 더 무거운 형이 선고된 것이다. A씨는 2018년 11월 16일 오후 6시쯤 대전 대덕구 자택에서 생후 100일 된 아들 B군이 울자 달랜다며 위로 던졌다 받지 못했다. 바닥에 머리를 부딪힌 B군은 두개골 골절과 뇌진탕 등으로 이틀 뒤 숨졌다. 지난해 1심은 “A씨는 피해자를 보호하고 양육할 책임이 있었음에도 태어난 지 수개월밖에 되지 않은 피해자를 상대로 위험하고 비상식적인 행동을 해 사망에 이르게 하는 등 과실 정도가 무겁다”면서도 “범행을 인정하고 반성하는 점과 다른 범죄로 형이 확정된 부분과 형평을 고려해야 한다”며 금고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당시 A씨는 2021년 9월 대구지법 경주지원에서 도로교통법 위반(음주운전) 혐의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아 형이 확정된 바 있다. 1심 판결에 불복한 검찰은 “원심의 형이 너무 가벼워서 부당하다”며 법원에 항소했다. 2심 재판부는 이 사건이 일어나기 불과 몇 달 전 유사한 사고가 있었음에도 또다시 피고인의 부주의로 인해 아이가 숨졌다며 꾸짖었다. A씨는 B군이 생후 한 달 정도 됐을 무렵에도 목욕시키다 떨어트렸고, 이 일로 B군은 입원 치료를 받기도 한 것으로 조사됐다. 2심 재판부는 “피고인은 피해자의 아버지로서 피해자가 건강하고 행복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양육해야 할 의무가 있다”며 “비상식적인 행동을 하던 중 과실로 사망에 이르게 해 죄책이 매우 무겁고, 아이가 울고 보채서 귀찮다는 이유로 아동의 몸을 밟거나 세게 때리고 꼬집는 등 학대했던 것으로 보여 검찰의 항소는 이유가 있다”고 판단했다. 2세 이하 아기는 흔드는 것도 위험한편 만 2세 이하 아기를 심하게 흔들면 ‘흔들린 아이 증후군’ 질환이 나타날 수 있다. 흔들린 아이 증후군은 뇌출혈(경막하 출혈)과 망막출혈 등을 유발한다. 아이가 울 때 달래려고 너무 흔들거나, 던졌다가 받는 경우 발생할 수 있다. 근육의 힘으로 어느 정도 버틸 수 있는 성인과 달리 아직 근육이 발달하지 않은 신생아는 머리 흔들기의 충격이 골격에 그대로 전달될 수 있다. 고려대학교 안암병원 소아청소년과 변정혜 교수는 “아기를 어르거나 달랠 때 너무 흔들지 않도록 하는 것이 좋다”며 “이 질환이 발생했을 때 약 30%가 사망하고 생존자의 약 60%는 영구적인 후유증을 겪는데 그 후유증으로는 실명과 사지마비, 정신박약, 성장장애, 뇌전증 등이 있다”고 말했다.
  • 쾰른대성당, 결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이유 [한ZOOM]

    쾰른대성당, 결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이유 [한ZOOM]

    요셉과 마리아는 나사렛에서 베들레헴으로 가던 중 마구간에서 아기 예수를 낳았다. 별의 움직임으로 유대인 왕이 탄생했다는 걸 안 동방 박사들은 예루살렘에서 유대의 왕 헤롯에게 새로 태어난 아기를 만나게 해달라고 했다. 헤롯은 제사장들에게 베들레헴에서 메시아가 태어날 것이라는 예언이 있다는 말을 듣고는 불안감에 휩싸였지면, 동방 박사들에게 아기를 만나게 되면 자신도 경배를 하겠다며 어디에 있는지 꼭 알려달라고 부탁했다. 별을 따라 베들레헴으로 간 동방 박사들은 아기 예수를 만났고 축복과 함께 황금, 유향, 몰약을 선물했다. 그리고 꿈속에서 헤롯에게 가지 말라는 계시를 받고 다른 길로 돌아갔다. 예수의 탄생과 에굽(이집트)으로 피신, 나사렛 귀환을 이야기한 마태복음 2장 내용이다. 동방박사 유골 품은 쾰른 대성당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열차를 타고 약 230㎞를 달려 독일 쾰른(Köln) 중앙역에 내렸다.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 관련 미팅까지 여유가 있어 쾰른에 잠시 머물렀을 때 호텔에서 멀지 않은 곳에 웅장한 성당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홀린 듯이 성당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중앙역 바로 뒤에 있는 쾰른 대성당(Kölner Dom)은 높이가 157.4m로, 유럽에서는 독일 슈투트가르트 올름 대성당(161.5m)에 이어 두 번째로 높다. 전 세계로 확장하면 서아프리카 코트디부아르 야무수크로에 있는 평화의성모 대성당(158m)에 이어 세 번째다. 이 성당이 유명한 것은 규모뿐만 아니라 아기 예수의 탄생을 축복한 동방 박사들의 유골이 있기 때문이다. 1164년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프리드리히 1세(1122~1190)가 밀라노 원정을 떠났다. 반란군을 진압한 황제는 밀라노에 있던 동방 박사 유골을 쾰른에 가져왔다. 동방 박사 유골이 왔다는 소식을 들은 수많은 사람이 쾰른을 찾았다. 황제는 유골을 보관할 새로운 성당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당대 최고의 건축가인 게르하르트 폰 릴레에게 쾰른 대성당 건축을 명령했다. 1248년 쾰른 대성당 공사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여러 가지 사정 때문에 600년이 넘은 1880년에서야 성당이 완공됐다. 매년 수백만 명이 다녀갈 정도로 유명한 성당은 예술적으로는 중세 후기 고딕 양식 건축물의 완성으로 평가받고 있다. 20세기 초까지 쾰른은 독일의 대표적인 산업도시였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쾰른에서 군수물자를 생산하자 당시 연합군은 이곳을 파괴해 독일 나치의 숨통을 끊으려고 했다. 1942년 5월 말 아서 해리스가 이끈 영국 폭격기 1000여대가 쾰른의 밤하늘을 메웠고, 도시를 뒤덮을 정도로 미사일을 투하했다. ‘밀레니엄 작전’이라고 불린 이 폭격으로 쾰른의 90% 이상이 사라졌다. 전쟁의 생존자, 역사를 말하다문화유산은 폭격하지 말라는 명령 때문에 쾰른 대성당은 다행히 소실되지 않았지만 몇 발의 미사일이 떨어지면서 상당한 피해를 입었다. 당시 사진을 보면 도시는 대부분 파괴되고 성당 내부도 참혹하게 망가져 있다. 다행히 스테인드글라스는 폭격 전에 다른 곳으로 옮겨 놓았던 덕분에 타격을 입지 않았다고 한다. 유럽 여행은 성당으로 시작해 성당으로 끝난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유럽의 성당에는 역사와 그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모습이 담겨있다. 그래서 유럽 땅을 밟을 때마다 아쉬움이 남는다. 조선 때 유고를 숭상하고 불교를 억압하는 ‘숭유억불’(崇儒抑佛) 정책 없이 불교와 유교가 자유롭게 공존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그랬다면 더욱 많은 사찰이 남아 있을 것이고, 더 다양하게 우리 역사를 들려주고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역사에 가정은 없는 것이고 숭유억불도 시대정신이 반영된 것이며 고려말 불교의 타락에도 이유가 있었으니 유교를 탓할 수만도 없겠지만 그래도 남는 아쉬움은 어쩔 수가 없다.
  • 인권유린 덕성원 피해자, 수십 년 만에 운영자 일가 고소

    인권유린 덕성원 피해자, 수십 년 만에 운영자 일가 고소

    1960~1980년대에 인권유린이 자행된 덕성원 피해자가 운영자 일가에 대한 처벌을 요구하는 고소장을 수사기관에 제출했다. 10일 부산경찰청 등에 따르면 안종환 덕성원 피해생존자협의회 대표가 수사기관에 폭행, 강요, 감금, 성폭력 처벌법 위반 등 혐의로 해운대구 A 요양병원 운영자 일가를 수사해달라는 내용으로 수사기관에 고소장을 제출했다. 고소장은 지난달 부산지검 동부지검에 제출했으며, 이달 초 부산 해운대경찰서로 사건이 이송됐다. 고소장에는 안 대표가 덕성원에서 인권침해를 당했으며, 덕성원에서 나온 뒤에도 운영자 일가에게 금전을 갈취당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A 요양병원은 덕성원 설립자의 자녀들이 운영하는 곳이다. 덕성원은 1960~80년대에 형제복지원에서 전원 됐거나, 부랑인 선도를 명분으로 한 경찰의 과잉 단속으로 입소한 아동들을 상대로 강제노역 동원, 구타와 성폭행 등을 저지른 곳이다. 1953년 설립한 아동보호시설로 1996년 사회복지법인으로 목적을 바꿔 운영하다가 2000년 폐업했다. 지난해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 조사 결과를 보면 피해자들은 이곳에서 씨앗 파종, 거름주기, 깻잎 1000장 따기 등 작업에 동원됐으며,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면 구타당했다. 또 원장 자택과 개인 사업체에서 청소와 식사 준비 등에 동원됐으며, 상습적으로 성폭행 당한 피해자도 다수였다. 다만, 덕성원이 폐쇄된 지 20년이 더 지난 상황이라 공소시효 등을 이유로 수사가 실제로 진행될지는 알 수 없는 상황이다. 경찰은 공소시효 경과 여부를 포함해 A 요양병원과 덕성원의 관련성, 구체적 피해 등을 확인할 계획이다.
  • “기다리다 지쳐 체념했지만… 죽기 전 日사과 좀 받아다 주이소” [월요인터뷰]

    “기다리다 지쳐 체념했지만… 죽기 전 日사과 좀 받아다 주이소” [월요인터뷰]

    아물지 않는 그날의 상처열여섯에 끌려가 악몽 같던 세월변소 수챗구멍으로 필사의 탈출재일동포 도움으로 다시 고향에귀향 후에도 끝나지 않는 고통일곱 자녀 중에 다섯을 일찍 잃어남편 없이 홀로 남은 두 자녀 양육온갖 고생에 손 마디마디 다 휘어그래도 내려놓지 못하는 희망가끔 찾아오던 정부 발길도 뜸해남은 생존자들 나날이 쇠약해져생전 진심 어린 사죄 받을 수 있나을사년은 우리 근대사에서 아픈 손가락이다. 120년 전인 1905년 을사년에는 ‘을사늑약’이 맺어졌다. 보호국화를 명분으로 맺은 을사조약으로 일본에 외교권이 넘어가면서 대한제국의 식민화가 시작됐다. 그 후 일제의 폭압적이고 무단적인 식민정책 속에 수백만 명의 우리 국민은 끌려가고 버려지고 죽임을 당해야 했다. 60년 만에 돌아온 을사년(1965년)은 엉킨 과거사 문제를 바로잡을 기회였지만 기회를 살리지 못했다. 일본과의 국교 정상화와 전후 보상 문제 해결이 지상과제였던 정부는 일본과 굴욕적인 ‘한일청구권협정’을 맺었다. 무상 보상금 3억 달러와 차관 2억 달러를 제공받는 대신 일본의 식민 지배와 강제 노역에 대한 모든 배상청구권을 포기하기로 합의했다. 일본군 위안부, 강제 징용자, 독도 문제 등은 ‘모든 배상’이라는 애매모호한 괄호 속에 숨어 버렸다. 해방 이후에도 피해 여성들에게는 해방이 오지 않았다. 어느덧 최고령 위안부 피해 생존자가 돼 버린 박필근(97) 할머니가 그랬다. 열여섯 꽃다운 나이에 영문도 모른 채 일본에 위안부로 끌려가 갖은 고초를 겪은 뒤 목숨을 걸고 탈출했다. 정부에 등록된 위안부 피해자 240명 중 대부분은 마음속 응어리를 풀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지난달 16일 길원옥 할머니의 별세로 생존자는 박 할머니와 대구 이용수 할머니 등 총 7명이 전부다. 남은 생존자의 평균 연령은 95.7세다. 굴욕의 역사 앞에 끌려갔고 버려졌던 할머니들의 목소리를 살아생전 조금이라도 담아야 한다는 생각에 경북도에서 유일한 위안부 피해 생존자 박 할머니를 만났다. 고령임을 고려해 인터뷰는 지난 2월 8일과 22일 두 차례에 걸쳐 아들 남명식(62)씨의 도움을 받아 진행했다. ● 아직도 생생한 16세 소녀의 기억 “부모님 모두 밭에 일하러 간 사이에 일본 놈이 들이닥쳐 나를 차에 태우고는 가 버렸어. 그때 열여섯이었는데 어디로 가는지,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도 모르는 채 그냥 붙들려 가게 됐지….” 월평리가 전부인 줄 알고 살았던 시골소녀는 82년 전 일이지만 아직도 그날이 어제 일처럼 선하다고 했다. 1928년생인 박 할머니는 당시 경북 영일군(현재 포항시 통합) 죽장면 월평리에서 9남매 중 여덟째로 태어났다. 그리 넉넉지는 않았지만 행복했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그날이 오기 전까지 말이다. 할머니는 당시 같은 마을에서 또래 한 명이 더 잡혀갔는데 나중에 도망칠 때도 같이 도망쳤다고 했다. 일본으로 끌려갈 당시 어느 지역을 거쳐 갔는지에 대해 박 할머니는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한다. 다만 부산에서 배를 타고 일본으로 건너갔고 다시 배를 타고 부산으로 들어왔다는 정도만 기억할 뿐이다. 당시 부관(釜關·부산~시모노세키)연락선이 우리나라와 외국을 연결하는 유일한 연락선이었다는 점으로 미뤄 볼 때 박 할머니는 부산을 통해 시모노세키 야마구치현 부근으로 끌려갔던 것으로 보인다. 일본으로 넘어간 박 할머니는 삼엄한 경비들이 지키는 건물에서 생활했다고 했다. “늘 군복을 입고 하시(젓가락)를 허리춤에 찬 채로 생활했어. 숙소 문을 열고 나오면 도망 못 가게 여기저기 게이비(경비)들이 돌아다니고 있었지. 함께 숙소를 쓰던 이들이 여럿 있었지만 그다지 많은 대화는 나누지 않았어. 달력도 없고 매일 험한 꼴을 당하다 보니 어떻게 시간이 흐르는지, 그곳에서 얼마나 지냈는지도 모르겠더군.” 박 할머니를 비롯해 함께 끌려간 소녀들도 군인처럼 통제된 일상을 보냈다. 새벽에 일본인이 깨우면 점호하고, 군가를 부르며 훈련했다. 그러다 밤이 오면 교대로 창고 같은 방으로 끌려가 몹쓸 짓을 당했다고 한다. 십대의 소녀에겐 참을 수 없는 악몽 같은 시간이었다. 얼굴을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어두컴컴한 창고였다. 저항해도, 반항해도 몽둥이로 맞아야만 했다. 박 할머니는 인터뷰 내내 당시 상황이 떠오르면 입을 꾹 다물고 깊은 생각에 잠겼다. 일 년쯤 지났을 때 할머니는 탈출을 결심했다. 여기가 어딘지, 나가면 어디로 가야 할지 계획조차 없었지만 더이상 이렇게 살 순 없었다. 함께 지내던 소녀 두 명도 탈출에 동참했다. 변소 아래를 보니 작은 수챗구멍이 있었는데 잘하면 작은 여자는 통과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 번째는 시도조차 못 하고 걸렸다. 우물쭈물하는 사이 경비가 들이닥쳤다. “한밤중에 왜 모여 있냐”며 죽도록 때렸다. “두 번째 시도 땐 무조건 수챗구멍에 기어들어 갔어. 한참을 기어가다 그대로 개울 바닥에 떨어지면서 온몸이 부러지는 듯 아팠지만 살기 위해 무조건 또 뛰었어. 정말 어두워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어.” 박 할머니가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건 한 재일동포의 도움이 컸다. 칠흑 같은 어둠 속을 달리던 소녀들은 멀리서 탈탈거리는 소음을 들었다. 경운기였다. 박 할머니는 “경운기 주인이 재일동포였는데 일면식도 없는 우리를 많이 도와줬어. 우선 집으로 데려가 먹여 주고, 옷을 갈아입혔고, 주변 수색이 잠잠해질 때까지 며칠간 집에 숨겨 줬지. 바로 돌아다녔다면 바로 다시 잡혀갔을 거야.” 그 재일교포는 도망 나온 소녀들이 군복을 입고 돌아다닐 경우 신고가 들어갈 수 있다는 생각에 깨끗한 새 옷까지 내주고 고국으로 돌아가는 연락선 표까지 끊어 줬다. 우여곡절 끝에 배를 타고 부산으로 들어와 마침내 한국 땅을 밟았지만 가진 것도 없고 기억하는 거라곤 집 주소뿐이었다. 사람들에게 주소를 알려 주면서 같은 방향이면 태워 달라고 빌면서 하소연했다. 그렇게 다시 몇 날 며칠에 걸쳐서 소녀들은 집으로 돌아왔다. ●‘죄인아닌 죄인’… 아들·딸 보며 견뎠다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기쁨은 잠시였다. 고향에 돌아와서도 박 할머니는 ‘죄인 아닌 죄인’으로 숨죽이며 살아야 했다. 박 할머니와 가족들은 피해 사실을 외부에 알리지 않았다. 그게 최선이라고 믿었다. 박 할머니는 “하루아침에 딸을 잃어버린 어머니 마음은 어땠겠나. 일본에서 돌아와 처음 어머니 얼굴을 봤을 때 비쩍 말라 있어 나 때문이란 생각이 들어 마음이 너무 아팠다”고 말했다. 그때 얻은 병인지 어머니는 딸이 돌아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돌아가셨다. 19살이 되던 해 박 할머니는 결혼했다. 일곱 명의 자녀를 얻었지만 다섯을 일찍 잃고 겨우 셋째 딸과 일곱째 아들만 남았다. 남편마저 일찍이 세상을 등져 잃은 자식 생각에 마음 아파할 겨를도 없었다. 남겨진 두 자녀를 홀로 책임져야 했다. 남은 두 자녀만큼은 어떻게든 먹여 살리겠다는 절박함이 가득했다. 자식을 키우기 위해 안 해 본 일이 없었다. “내 손 좀 보라. 나물 캐고 남의 집 농사짓고 산에 나무하러 다니면서 이렇게 다 휘었다.” 가난 탓에 아들 남씨는 중학교를 졸업하고는 일자리를 구하러 대구로 떠났다. 박 할머니는 “돈이 없어서 아들에게 좋은 옷도 못 사주고 먹는 것도 제대로 챙겨 줄 수 없었다. 그중에서 가장 마음이 아팠던 건 고등학교 진학마저 포기하고 아들이 돈을 벌러 외지로 나가야만 했던 것”이라며 아쉬움을 내비쳤다. ● 박 할머니의 마지막 소원 그저 잊고 살려고 노력했다. 그러다 1991년 김학순 할머니가 위안부 피해 사실을 최초로 증언하고 나선 뒤 차츰 고민이 생기기 시작했다. 2년 후인 1993년 가족들의 지지와 사회적 분위기로 용기를 얻은 박 할머니는 위안부 피해자 신청을 했고 조사를 거쳐 1994년 3월 위안부 피해자로 등록됐다. 당시엔 죽기 전 일본의 진심 어린 사과와 배상을 받을 수 있겠다는 기대가 있었다. 뭔가 변할 것이라 믿었지만 이제는 그런 기대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고 말했다. 인터뷰 도중 갑자기 할머니가 질문을 던졌다. “지금까지 일본이 사과를 안 했는데 (기자분은) 인제 와서 일본이 사과할 거라고 생각해?”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일본의 사과를 받아 내야겠다고 생각할 때도 있었지만 이제 나를 포함한 생존자들 모두 너무 늙어 버렸어”라고 말했다. 아픈 역사를 잊어 가는 후손들에 대한 아쉬움을 표하기도 했다. “예전에는 정부에서도 사람들이 찾아오곤 했는데 어느새 많이 뜸해졌어….” 박 할머니는 그래도 한결같이 지켜 주는 이들이 있어 고맙다고 했다. “활동가들이 엊그제도 전화하고, 서울에서 여기까지 매달 찾아와. 오면 같이 식당 가서 고디(다슬기)탕이라도 한 그릇하고 돌아와. 고맙지 뭐.” 또 할머니는 “경북도와 포항시, 지역 시민단체도 자주 찾아와 말동무해 준다. 그 덕에 지금까지 건강하게 지낸다”고 했다. 지난달 10일 박 할머니는 독감과 함께 폐렴 증세를 보여 대구의 한 병원에 입원했다. 정신을 제대로 차릴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상태였다. 또 다른 피해 생존자인 이 할머니가 병원에 다녀갔지만 기억하지 못할 정도였다. 지금은 집으로 돌아와 간병인과 함께 지내고 있다. 일본으로부터 어떠한 것도 기대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할머니가 끝내 내려놓지 못하는 무언가가 남아 있는 듯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집을 나서려는 기자에게 박 할머니는 “기자 양반, 다음에 올 때는 꼭 일본 놈들 사과랑 배상 좀 받아가 오이소”라고 했다. 안타깝게도 할머니의 바람을 들어드릴 시간이 많아 보이지 않는다.
  • “불 꺼지면 내가 죽어” 남친 살해… “‘생존자’의 정당방위” 여성단체 주장

    “불 꺼지면 내가 죽어” 남친 살해… “‘생존자’의 정당방위” 여성단체 주장

    술 취해 잠들자 이불 불 붙여 살해징역 12년 선고 후 항소심 진행 중1심 “유족에 용서 구하지도 않아” 주택에 불을 질러 남자친구를 사망케 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40대 여성에게 정당방위를 적용해야 한다는 여성단체의 주장이 나왔다. 전국 34개 여성단체로 구성된 ‘군산 교제폭력 정당방위 사건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는 지난 6일 전북 전주시 덕진구 전주지법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재판부는 사건 당일까지 일방적 교제폭력을 당했던 방화치사 피고인이자 교제폭력 피해자의 행위에 대해 정당방위를 인정하라”고 밝혔다. 이 사건 피고인 A(43)씨는 현주건조물방화치사 혐의로 1심에서 징역 12년을 선고받은 뒤 현재 항소심 재판을 받고 있다. A씨는 지난해 5월 11일 전북 군산시 임피면의 한 단독주택에 불을 질러 당시 주택 내에 있던 남자친구 B씨를 숨지게 한 혐의로 기소됐다. 경찰은 불이 난 주택 야외 화장실 인근에 만취 상태로 앉아있던 A씨를 현행범으로 체포했다. A씨는 수사기관 조사에서 범행 당시 B씨와 함께 술을 마시던 중 폭행당했고 주장했다. A씨는 B씨가 술에 취해 잠이 들자 이불에 불을 붙였다. A씨는 자신이 지른 불이 주택 전체로 번진 후에도 119에 신고하지 않고 그 모습을 지켜봤다. A씨는 이같이 행동한 이유에 대해 “불이 꺼지면 안 되니까. 만약 그 불이 꺼졌다면 내가 죽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A씨는 B씨와 5년간 사귀면서 셀 수 없는 폭력에 시달렸다고도 했다. 실제로 B씨는 2023년 특수상해 등 혐의로 기소돼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받은 것으로 파악됐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B씨는 A씨에게 주먹을 휘두른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판결문에 따르면 B씨는 ‘너 때문에 감옥 갔다’며 A씨의 목을 조르거나 발로 걷어차기도 했다. 심지어 흉기를 A씨의 목에 갖다 대거나 몸을 담뱃불로 지져 화상을 남게 히기도 했다. 공대위는 “현재 재판을 받고 있는 피고인은 연인이었던 이로부터 심각한 신체적, 정신적 피해를 가했다”며 “그의 지속적인 폭력으로 인해 피고인은 5년 간의 교제기간 중 23차례나 경찰 신고를 했지만 경찰은 오히려 피해자 탓을 하고 피해 지원기관에 연결하지 않았다고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겨우 2023년 교제폭력을 저지른 가해자는 상해 등 혐의로 재판에 섰지만, 재판부는 우발적 폭행이라는 이유로 징역 1년만을 선고했다”며 “피고인의 방화치사 범죄는 지속·반복적으로 교제폭력에 노출된 여성을 제대로 보호하지 않은 수사기관, 상습 교제폭력을 우발 범행으로 축소한 사법부, 교제폭력을 안일하게 대처한 국가가 만들어낸 참사”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재판을 받고 있는 그를 방화치사 범죄의 피고인이 아닌 교제폭력 피해 속 자구책을 마련할 수 밖에 없던 ‘생존자’이자 ‘피해자’로 인식할 것”이라며 “사법부에 그의 선택을 정당방위로 인정할 것을 촉구한다”고 덧붙였다. 앞서 전주지법 군산지원 형사1부(부장 정성민)는 A씨에게 징역 12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인간의 생명과 존엄성은 누구도 함부로 처분할 수 없는 절대성을 지녔으므로 이를 침해하는 행위는 용서할 수 없다”며 “피고인은 피해자가 술에 취해 잠든 사실을 알면서도 집에 불을 질렀으므로 죄질이 매우 나쁘다”고 지적했다. 이어 “피고인의 범행으로 피해자는 고귀한 생명을 빼앗겼고, 그 유족 또한 평생 치유하기 어려운 큰 상처를 입었다”며 “피고인이 유족에게 용서받기 위해 어떠한 노력도 기울이지 않은 점 등을 고려할 때 엄벌이 불가피하다”고 판시했다.
  • 공화, 트럼프 등장하자 “USA!”… 민주 “그럴 권한 없어” 야유

    트럼프 “통치권 부여받아” 자화자찬공화, 발언이 끝날 때마다 기립박수민주는 ‘거짓’ 팻말… 강퇴당하기도펠로시 핑크정장 입고 시각적 항의트럼프, 클린턴 넘어 최장시간 연설‘지정 생존자’는 콜린스 보훈부 장관4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의회 연방의사당에서 열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상하원 합동 연설은 양극화된 정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 줬다. 공화당 의원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등장하자 마치 경기장에서 관중이 외치듯 박수를 치며 “USA! USA!”를 연호했다. 대통령 의회 연설에서 의원들이 경기장 응원을 하듯 일사불란하게 구호를 외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은 연설 도입부에서 지난해 11월 대선 승리를 자랑하더니 자신이 “수십년간 본 적이 없는 (통치) 권한을 부여받았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연설을 듣던 민주당 의원 다수가 야유하기 시작했다. 특히 텍사스를 지역구로 둔 민주당 앨 그린 하원의원은 갖고 있던 지팡이를 흔들며 “당신에게는 그럴 권한이 없다”고 소리쳤다. 시작한 지 5분도 안 돼 일어난 일이었다. 공화당 소속 마이크 존슨 하원의장이 “소란을 피우는 사람은 퇴장시키겠다”고 경고했지만 그린 의원이 말을 듣지 않자 국회 경위들이 그를 데리고 나갔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모습을 지켜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이 끝날 때마다 공화당 의원들은 쉴 새 없이 기립박수를 쳤다. 반면 민주당 의원들은 자리에 앉아 미동도 하지 않았다. 대신 ‘거짓’, ‘노 킹’(no king) 등의 팻말을 들어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방청석에 있던 민주당 당원들은 ‘저항’이라고 쓰인 티셔츠를 입은 채 트럼프 대통령을 향해 등을 돌렸다. 미 상하원은 공화당이 모두 장악하고 있지만 상원은 격차가 6석, 하원은 2석에 불과해 대립 양상이 격화한 것이다. 낸시 펠로시 전 하원의장 등 민주당 일부 여성 의원들은 핑크색 정장을 입고 자리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이들은 미국 여성과 가족에게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트럼프의 정책에 대해 시각적 항의 신호를 보냈다”고 보도했다. 다른 민주당 여성 의원들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연대의 표시로 파란색과 노란색 스카프를 착용했다. 반면 ‘하이힐을 신은 트럼프’로 불리는 마저리 테일러 그린 공화당 상원의원은 빨간색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모자를 쓰고 등장했다. 그는 지난달 28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향해 “왜 정장을 입지 않았는가”라고 질문해 논란을 일으킨 브라이언 글렌 리얼아메리카보이스 진행자의 연인이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은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을 제치고 미 대통령 역사상 가장 긴 연설 기록을 세웠다. 미 대통령 연구소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의 연설은 1시간 39분 31초를 기록해 2000년 클린턴 전 대통령(1시간 28분 49초)의 연설 기록을 넘어섰다. 역대 미국 대통령들은 보통 50~70분 정도 연설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연설이 길어진 이유는 자신의 업적 홍보에 대부분 시간을 할애했기 때문이다. 한편 폴리티코 등은 더그 콜린스 국가보훈부 장관이 이날의 ‘지정 생존자’로 정해졌다고 보도했다. 지정 생존자는 대통령 취임식이나 의회 연설 등 중요 행사가 열릴 때 행사에 참석하지 않고 군부대 등 비공개 장소에 머무는 인사를 말한다. 재난이 발생해 정부 인사들이 모두 숨지면 대통령 권한을 대행한다. 이런 관행은 냉전 시대에 시작됐는데 2016년 넷플릭스가 동명의 정치 드라마를 제작해 유명해졌다.
  • 가자지구 휴전 깨지나… 이스라엘, 구호품 막고 전력 차단 ‘협박’

    가자지구 휴전 깨지나… 이스라엘, 구호품 막고 전력 차단 ‘협박’

    美·이, 유월절까지 7주 연장 제안에하마스 “2단계 시행 보장 없다” 거절가자 드론 공습 재개… 팔서 2명 사망네타냐후, 모든 물자 반입 중단 선언식품값 2배 폭등해 주민 고통 가중 이스라엘이 2일(현지시간)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로 들어가는 구호품 반입을 중단한 데 이어 전력 차단과 전쟁 재개까지 언급하며 하마스 압박에 나섰다. 지난 1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휴전협정 1단계가 끝났지만 휴전 연장에 합의하지 못해 일시적인 중동 평화가 흔들리고 있다. 양측은 공식적으로 휴전이 끝났다고 선언하진 않았으나 이날 가자지구 북부 베이트하눈에 이스라엘의 드론 공습이 재개돼 2명의 팔레스타인 사망자가 발생했다. 베냐민 네타냐후(사진) 이스라엘 총리는 “인질 협상 1단계가 종료되고 하마스가 미국이 제시한 협상안을 수락하지 않아 가자지구로의 모든 물자 유입을 중단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네타냐후 총리는 하마스가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추가 조치가 있을 것이라고 위협했다. 그는 또 가자지구로 가는 인도적 물품이 테러리스트의 손에 들어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스라엘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중동 특사인 스티브 위트코프가 제안한 임시 휴전 연장안은 4월 19일 유월절이 끝날 때까지 7주간 휴전을 연장하고, 생존 인질과 시신의 절반은 2단계 휴전 첫날 풀려난다는 것이다. 영구적 휴전이 이뤄지면 남은 인질 모두 풀려난다는 조건이다. 하마스는 지원 중단에 강하게 반발했으며 국제사회도 구호품 중단 조치를 비판했다. 하마스는 “인도적 지원을 중단하는 것은 싸구려 협박이자 전쟁범죄”라며 즉시 영구적 휴전을 보장하는 2단계 협상에 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마스는 영구 휴전, 남은 모든 생존 인질 석방, 이스라엘군 가자지구 철수 등의 내용이 담긴 휴전협정 2단계가 시행되지 않는다면 위트코프 특사의 휴전 연장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스라엘이 구호품 반입을 중단하자 가자지구의 식료품값은 2배 이상 폭등했다. 가자 주민 무함마드 알다이리는 아랍권 알자지라 방송에 “아침에 설탕값이 5셰켈(약 2000원)이었는데 이스라엘의 지원 중단 조치 발표 이후 10셰켈(4000원)이 됐다”고 호소했다. 이집트, 카타르, 요르단 등 아랍권은 이스라엘의 조치가 정전협정 위반이라고 했지만 기드온 사르 이스라엘 외무장관은 “휴전협정 1단계는 끝났고 공짜 음식은 없다는 원칙을 지킬 뿐”이라고 반박했다. 사르 장관은 구호품 중단은 미국과 전적으로 합의된 사항이라고 강조했다. 이스라엘은 하마스의 해체 없이는 영구 휴전에 이르는 휴전협정 2단계를 시행하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다. 익명의 이스라엘 정부 관리는 뉴욕타임스(NYT)에 “하마스는 전쟁 종식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소수의 인질만 내줄 것”이라고 말했다. 이스라엘 정부는 현재 하마스가 붙잡고 있는 인질이 생존자 24명과 사망자 35명 등 59명이라고 보고 있다. 지난 1월 19일 시작된 휴전협정 1단계에서는 25명의 이스라엘 인질과 8구의 시신이 돌아왔으며 2000여명의 팔레스타인 수감자가 풀려났다.
  • ‘쿵’ 하더니 휩쓸려가…‘4명 사망’ 인도 히말라야 눈사태 생존자 증언

    ‘쿵’ 하더니 휩쓸려가…‘4명 사망’ 인도 히말라야 눈사태 생존자 증언

    2일(현지시간) AP·AFP 통신은 지난달 28일 중국 티베트 자치구 국경과 맞닿은 우타라칸드주(州) 차몰리 지역에서 발생한 눈사태로 고속도로 건설 현장에서 일하던 건설 노동자 55명이 매몰됐다고 보도했다. 사건 당일부터 인도군은 국가 재난 대응군과 주 재난 대응군과 함께 약 150여명의 군인을 투입해 구조 작업을 벌였다. 구조대가 50명을 발견했고, 이 중 4명이 심한 부상으로 끝내 숨졌다. 여전히 노동자 5명은 실종 상태다. 구조대는 구조견, 위치추적 카메라, 열화상 카메라, 지상 투과 레이더 등 특수 도구를 도입해 실종자를 수색하고 있다고 전했다. 도로가 막혀 현재 헬기 6대를 투입해 수색에 투입했다고 덧붙였다. 인도-티베트 국경 경찰의 카믈레시 카말 대변인은 “폭설로 구조 작업이 느렸고, 해당 지역에는 여전히 접근이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피해자들은 대부분 인도 측 마지막 마을인 마나 마을에서 중국과 국경을 접한 마나 고개까지 50㎞ 구간을 확장하고 아스팔트를 포장하던 이주 노동자들었다. 이 지역 의회에서 일했던 가우라브 쿤와르는 영국 BBC방송에 “(해당 지역은) 거주민이 없고, 겨울에는 국경 도로 노동자만 머무르는 곳”이라며 “눈사태가 닥쳤을 때는 노동자들이 숙소에 있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눈사태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은 마노지 반다리는 “숙소 안에 있었는데 갑자기 눈사태가 덮쳤다”며 “휴대전화, 가방 등 기타 소지품이 컨테이너와 함께 휩쓸려갔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반다리는 “컨테이너 문과 지붕이 부서지고 창문이 산산조각 났다. 나와 동료 두 명은 (밖으로) 튕겨져 눈 위로 던져졌다”며 아찔했던 사고 순간을 전했다. 또 다른 생존자 비판 쿠마르는 “갑자기 천둥 같은 큰 소리가 들렸다”며 “내 몸이 반응하기도 전에 사방이 어두워졌다”고 말했다. 히말라야 고지대에서는 눈사태·산사태가 자주 발생한다. 2022년에는 우타라칸드주에서 눈사태로 산악인 27명이 숨졌으며, 2021년에는 히말라야 산맥 빙하가 한꺼번에 쏟아지며 수력 발전소 건설 현장 두 곳을 덮치며 최소 200명이 실종됐다. 전문가들은 기후변화 등으로 인해 얼어붙은 토양이 녹아내려 이런 사고가 더 자주 발생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또한 수력 발전 댐이나 고속도로 건설 등 개발 사업 등으로 그 위험성이 증가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 “숙소 밖으로 튕겨나왔다”…인도 히말라야 눈사태 46명 구조

    “숙소 밖으로 튕겨나왔다”…인도 히말라야 눈사태 46명 구조

    2일(현지시간) AP·AFP 통신은 지난달 28일 중국 티베트 자치구 국경과 맞닿은 우타라칸드주(州) 차몰리 지역에서 발생한 눈사태로 고속도로 건설 현장에서 일하던 건설 노동자 55명이 매몰됐다고 보도했다. 사건 당일부터 인도군은 국가 재난 대응군과 주 재난 대응군과 함께 약 150여명의 군인을 투입해 구조 작업을 벌였다. 구조대가 50명을 발견했고, 이 중 4명이 심한 부상으로 끝내 숨졌다. 여전히 노동자 5명은 실종 상태다. 구조대는 구조견, 위치추적 카메라, 열화상 카메라, 지상 투과 레이더 등 특수 도구를 도입해 실종자를 수색하고 있다고 전했다. 도로가 막혀 현재 헬기 6대를 투입해 수색에 투입했다고 덧붙였다. 인도-티베트 국경 경찰의 카믈레시 카말 대변인은 “폭설로 구조 작업이 느렸고, 해당 지역에는 여전히 접근이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피해자들은 대부분 인도 측 마지막 마을인 마나 마을에서 중국과 국경을 접한 마나 고개까지 50㎞ 구간을 확장하고 아스팔트를 포장하던 이주 노동자들었다. 이 지역 의회에서 일했던 가우라브 쿤와르는 영국 BBC방송에 “(해당 지역은) 거주민이 없고, 겨울에는 국경 도로 노동자만 머무르는 곳”이라며 “눈사태가 닥쳤을 때는 노동자들이 숙소에 있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눈사태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은 마노지 반다리는 “숙소 안에 있었는데 갑자기 눈사태가 덮쳤다”며 “휴대전화, 가방 등 기타 소지품이 컨테이너와 함께 휩쓸려갔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반다리는 “컨테이너 문과 지붕이 부서지고 창문이 산산조각 났다. 나와 동료 두 명은 (밖으로) 튕겨져 눈 위로 던져졌다”며 아찔했던 사고 순간을 전했다. 또 다른 생존자 비판 쿠마르는 “갑자기 천둥 같은 큰 소리가 들렸다”며 “내 몸이 반응하기도 전에 사방이 어두워졌다”고 말했다. 히말라야 고지대에서는 눈사태·산사태가 자주 발생한다. 2022년에는 우타라칸드주에서 눈사태로 산악인 27명이 숨졌으며, 2021년에는 히말라야 산맥 빙하가 한꺼번에 쏟아지며 수력 발전소 건설 현장 두 곳을 덮치며 최소 200명이 실종됐다. 전문가들은 기후변화 등으로 인해 얼어붙은 토양이 녹아내려 이런 사고가 더 자주 발생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또한 수력 발전 댐이나 고속도로 건설 등 개발 사업 등으로 그 위험성이 증가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 갈고리에 소총들고…팔다리 잃고도 전선 복귀한 우크라 군인들 [월드피플+]

    갈고리에 소총들고…팔다리 잃고도 전선 복귀한 우크라 군인들 [월드피플+]

    러시아군과의 치열한 전투에서 팔과 다리를 잃은 우크라이나 군인들이 다시 전장으로 향하는 사례가 늘고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3일(현지시간) AP통신 등 외신은 심각한 부상을 입고도 재활 후 다시 전선으로 향한 우크라이나 군인들의 사연을 보도했다. 먼저 개전 초기 폭발물에 의해 중상을 입은 안드리 루블류크(38)는 처음에는 의학적으로 사실상 사망선고를 받았다. 그는 두 팔과 왼쪽 다리를 잃었으나 눈물겨운 재활을 통해 부대에 복귀해 신병들을 훈련시키고 러시아 드론을 감시하는 역할을 하고있다. 손가락 대신 갈고리가 달린 보철물을 착용하고 소총을 든 그는 “내가 겪은 경험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주면 같은 상황을 겪지 않을 것”이라면서 “장애를 극복해야만 진정으로 살아남을 수 있다”고 밝혔다. 2023년 지뢰를 밟아 왼쪽 다리를 잃었지만 다시 전선으로 돌아간 막심 비소츠키(42)도 마찬가지다. 현재 그는 폭발물을 장착한 드론으로 러시아군을 공격하고 에너지 시설을 폭파하는 팀의 리더로 활동 중이다. 우크라이나군의 대피 경로를 찾는 임무를 수행 중인 올렉산드르 잘린스키(34)도 같은 사례다. 그는 2023년 가을 러시아의 로켓 공격 공격을 받아 오른팔을 잃었다. 특히 잘린스키는 그가 속한 보병 중대의 유일한 생존자로 피를 흘리며 수㎞를 대피지점까지 홀로 걸어가 살아남았다. 그는 “사고 당시 반드시 가족을 만나겠다는 결심으로 정신을 잃지 않으며 걸었다”면서 “전쟁이 끝나면 고향에 작은 술집을 내는 것이 꿈”이라고 밝혔다. 보도에 따르면 만 3년 간의 전쟁동안 우크라이나군 부상자는 약 38만명으로 추산된다. 다만 이들 중 신체 일부를 절단한 부상자가 몇 명인지, 이후 복귀한 이들이 몇 명인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이처럼 중상을 입은 부상자들이 애국심과 동료를 위해 전선에 복귀하고 있지만 우크라이나의 앞날은 밝아보이지 않는다. 개전 이후 러시아는 2014년 크림반도에 이어 우크라이나 영토 약 20%를 점령한 것으로 추정된다. 여기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 이후 종전 협상이 급물살을 타고 있지만 정작 당사자인 우크라이나는 그 자리조차 끼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 체육공단, 화순전남대 병원 암생존자 통합지지센터 업무협약 체결

    체육공단, 화순전남대 병원 암생존자 통합지지센터 업무협약 체결

    국민체육진흥공단은 25일 광주·전남권역 암생존자 건강증진을 위해 화순전남대병원 암생존자통합지지센터와 업무협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화순전남대병원에서 열린 업무협약식에서 양 기관은 암생존자의 건강관리를 위한 다양한 사업을 추진키로 했다. 이번 협약으로 ‘국민체력100’의 체력측정·운동처방 및 체력 증진 교실과 암 생존자 통합지지센터의 암 생존자 표준화 프로그램·찾아가는 교육 지원 등 양 기관의 프로그램 협업을 통해 스포츠로 암 생존자의 건강 증진 및 사회복귀를 돕기 위한 상호 협력을 이어가기로 했다.
  • ‘위안부 피해자’ 길원옥 할머니 유족, 성폭력상담소에 1000만원 기부

    ‘위안부 피해자’ 길원옥 할머니 유족, 성폭력상담소에 1000만원 기부

    지난 16일 세상을 떠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고(故) 길원옥 할머니의 유가족이 평생 성폭력 피해자의 인권 회복을 위해 헌신한 길 할머니의 뜻을 기리기 위해 여성권익시설에 1000만원을 기부했다. 인천시는 길 할머니 유가족이 24일 인천성폭력상담소에 기부금 1000만원을 전달했다고 밝혔다. 인천성폭력상담소는 기부금을 성폭력 피해자들이 보다 안전하고 편안한 환경에서 치유받을 수 있도록 하는 심신 회복 프로그램실 조성에 사용할 계획이다. 프로그램실 명칭은 고인의 헌신과 뜻을 기리기 위해 ‘길’로 명명하기로 했다. 1928년 평안북도 희천에서 태어난 길 할머니는 1940년 공장에 취직시켜 준다는 말에 속아 중국 하얼빈에 있는 일본군 위안소에서 고초를 겪었다. 끔찍한 경험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채 살다가 1998년 용기를 내 위안부 피해자로 신고한 뒤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활동을 시작했다. 2003년 서울 소재 ‘평화의 우리집’에서 생활하며 매주 빠지지 않고 수요 시위에 참여했다. 유엔 인권이사회와 국제노동기구(ILO) 총회에도 참석해 위안부 피해를 증언했다. 그뿐만 아니라 호주, 캐나다, 미국, 프랑스 등 세계 각지를 돌며 일본군 성노예제를 알리고 전시 성폭력 피해자들을 위한 인권 활동에 앞장섰다. 2017년에는 ‘길원옥의 평화’라는 음반도 발표하며 어릴 적 꾸었던 가수의 꿈을 이뤘다. 길 할머니는 일본의 공식 사죄와 배상을 요구했으나 결국 바람을 이루지 못한 채 97세 나이로 지난 16일 별세했다. 길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면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 생존자는 7명으로 줄었다. 이들의 평균 연령은 95.7세다.
  • 운동이 암 환자 장기 생존율 높인다 [달콤한 사이언스]

    운동이 암 환자 장기 생존율 높인다 [달콤한 사이언스]

    3월이 시작되는 이번 주말부터는 언제 그랬냐는 듯, 추운 겨울 날씨가 가고 봄 날씨가 찾아온다는 예보가 발표됐다. 날씨가 풀리면 그동안 집 안에만 머물던 사람들도 운동을 위해 바깥 활동을 본격적으로 할 것이다. 운동은 근력 강화, 유연성 강화를 비롯해 체중 조절, 정신적 안정감, 삶의 질 향상 등의 다양한 효과가 있는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여기에 운동이 암 환자의 생존율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와 눈길을 끌고 있다. 미국 루이지애나 주립대, 페닝턴 생의학 연구센터 공동 연구팀은 신체 활동이 대장암 생존자의 장기 생존율을 일반인과 비슷한 수준으로 유지하도록 돕는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번 연구 결과는 의학 분야 국제 학술지 ‘암’ 2월 24일 자에 실렸다. 대장암 환자는 나이와 성별 등 특성이 일치하는 일반 인구보다 조기 사망률이 더 높다. 연구팀은 운동이 이런 격차를 줄일 수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암 수술 및 화학 요법을 받은 대장암 3기 환자 2875명을 대상으로 운동 여부를 조사했다. 연구팀은 조사 대상 암 환자들과 비슷한 연령대의 미국 국립보건통계센터 일반인들의 데이터도 비교했다. 연구팀은 모든 참가자의 신체 활동은 주당 기초대사량(MET) 시간을 기준으로 조사했다. 건강 지침에 따르면 주당 150분, 중간 강도 운동을 권하고 있는데, 주당 약 8MET로 환산된다. 암 치료 후 3년이 지난 시점에서 생존한 환자는 주당 3.0MET 시간 미만인 환자의 3년 전체 생존율은 일치하는 일반인보다 17.1% 낮았지만, 주당 18MET 시간 이상인 환자의 3년 전체 생존율은 일반인보다 3.5% 정도만 낮게 나타났다. 3년 시점에 생존한 환자 중 주당 MET가 3.0 미만과 18.0 이상인 환자의 3년 생존율이 각각 10.8%, 4.4%로 일반인에 비해 낮았다. 두 임상시험의 통합 분석 결과, 3년 차까지 생존하고 암이 재발하지 않은 1908명의 환자 중 주당 MET 3.0 미만 및 18.0 이상인 환자의 3년 전체 생존율은 일반인보다 각각 3.1%, 2.9% 더 낮았다. 3년째까지 종양이 없고 규칙적으로 운동한 암 생존자들은 대조군인 더 나은 후속 생존율을 보였다. 저스틴 브라운 루이지애나 주립대 의대 교수는 “이번 연구는 대장암 환자가 조절할 수 있는 요인인 신체 활동 수준이 장기 예후에 어떤 의미 있는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 ‘생후 9개월’ 최연소 인질, 결국 주검으로…하마스, 시신 송환한다 [핫이슈]

    ‘생후 9개월’ 최연소 인질, 결국 주검으로…하마스, 시신 송환한다 [핫이슈]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가 20일(현지시간) 석방할 이스라엘 인질 4명의 명단을 전달했다. 여기에 생존자는 없으며, 최연소 인질의 명단이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AP통신은 19일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실이 20일 귀환 예정인 사망 인질 4명의 명단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시신 송환 명단에는 2023년 10월 7일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공격 당시 납치됐던 시리 비바스(납치 당시 32세)와 두 아들 아리엘‧크피르 비바스(납치 당시 각각 생후 9개월, 4세)가 포함돼 있다. 납치 당시 83세였던 전직 언론인 오데르 리프시츠의 시신도 이스라엘로 돌아갈 예정이다. 납치 당시 생후 9개월 된 갓난아기였던 크피르는 하마스가 억류하던 최연소 인질이었다. 앞서 하마스는 이들 세 모자(母子)가 이스라엘군의 공습으로 사망했다고 주장했으나, 이스라엘은 비바스 가족의 생사 여부에 대해 꾸준히 우려를 표명해 왔다. 오랜 기다림 끝에 크피르와 그의 형, 그리고 어머니인 시리가 시신으로 돌아온다는 소식이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함께 납치됐던 시리의 남편이자 두 아이의 아버지인 야르덴 비바스는 이달 초 휴전안에 따라 석방됐다. 이들의 가족은 19일 공식 성명에서 “사랑하는 이들을 추모하기 이전에 (하마스가 송환할) 유해의 법의학적 식별을 기다려 달라”고 요청했다. 총리실 역시 “필요에 따라 신뢰 가능한 업데이트를 계속 제공할 것이며, 루머나 비공식적 정보 유포는 자제해 달라”고 밝혔다. 시신 4구는 적십자사에 인도된 뒤 가자지구 내 인스라엘 방위군(IDF)에게 전달될 예정이다. 이스라엘군은 인도 즉시 가자지구에서 랍비 참석 아래 정중한 예식을 거행할 계획이다. 이후 차량으로 운구한 뒤 법의학 연구소로 옮겨 신원 확인을 거친다. 한편, 하마스는 오는 22일에도 인질 6명을 석방한다. 이스라엘은 휴전 1단계 합의에 따라 인질 6명 석방의 대가로 팔레스타인 수감자 수백 명을 풀어줄 예정이다.
  • “소년·소녀 최소 70여명 성학대” 소아성애 신부, 90세로 호주 감옥서 사망

    “소년·소녀 최소 70여명 성학대” 소아성애 신부, 90세로 호주 감옥서 사망

    호주 역사상 가장 악명높은 소아성애 성직자로 꼽히는 전직 신부 제럴드 리즈데일이 수감 중 90세의 나이로 사망했다고 18일(현지시간) 호주 ABC 등 현지 매체가 전했다. 리즈데일은 호주 빅토리아주 중부와 남서부 등에서 지금까지 밝혀진 것만 70명 이상의 어린이를 성적으로 학대했다는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고 감옥에 갇혀 있었다. 리즈데일이 처음 수감된 건 1994년이었다. 당시 그는 9명의 소년을 성적 학대한 혐의로 12개월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수십명의 추가 피해자가 나타나면서 2006년까지 4건의 별도 사건에서 54명의 아동을 학대했다는 혐의가 유죄로 인정됐고 형량이 늘어났다. 여기에는 6세 여자 아이에 대한 강간 및 음란 폭행 혐의도 포함됐다. 피해자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1987~1988년 당시 13세였던 72번째 피해자가 또 나왔고 리즈데일은 아동 성범죄 혐의로 8번째 형을 선고받고, 이로써 총 형기는 2034년 9월까지로 늘었다. 지난해에는 62건의 새로운 혐의가 또 제기됐다. 생존자 단체는 피해자가 최대 수백명에 이를 수 있다고 보고 있다. 1934년생인 리즈데일은 빅토리아주 서부 위메라 지역에서 태어났다. 미성년자를 상대로 한 그의 범행은 1961년 빅토리아주 밸러랫 교구에서 가톨릭 사제로 서품된 직후부터 시작된 것으로 파악됐다. 아동 성학대에 대한 제도적 대응을 위한 왕립위원회의 보고서에 따르면 밸러랫 교구는 리즈데일이 1960년대부터 위법 행위를 해왔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다. 그는 사제라는 특권적 지위를 이용해 피해자 가족의 신뢰를 얻기도 하면서 범행을 자행했다. 리즈데일은 생애 마지막 몇 년간 건강이 급속히 악화했다고 ABC는 전했다. 2022년 11월 교도소 감방에서 넘어져 몇 시간 동안 바닥에 쓰러져 있던 상태로 발견됐으며 이후 만성 통증, 근육 위측, 사지 약화에 시달렸다.
  • (영상) ‘추락 후 뒤집힌 비행기’에서 걸어 나오는 생존자들…美 여객기 또 항공 사고 [포착]

    (영상) ‘추락 후 뒤집힌 비행기’에서 걸어 나오는 생존자들…美 여객기 또 항공 사고 [포착]

    80명이 탑승한 여객기가 착륙하던 중 뒤집히는 대형 사고가 발생했으나, 탑승자들이 극적으로 사고기에서 걸어 나오는 모습이 카메라에 포착됐다. 미국 CNN 등 외신은 17일(현지시간) “오후 2시 45분경 미국 미니애폴리스에서 출발한 델타항공 자회사 엔데버에어 여객기(4819편)가 캐나다 토론토 피어슨 국제공항 활주로에 착륙하는 과정에서 사고가 발생했다”고 보도했다. 승객 76명과 승무원 4명 등 탑승객 80명은 전원 대피했으나, 최소 15명이 부상했다. 이중 3명은 위중한 상태로 알려졌다. 현장에서 공개된 영상은 거꾸로 뒤집힌 동체에서 탑승객들이 서로를 도와가며 사고기에서 걸어 나오는 모습을 담고 있다. 사고기에서는 착륙 직후 작은 화재가 발생했지만 이내 불길이 잡혔고, 공항 긴급 대응팀이 추가 화재를 예방하기 위한 긴급조치를 취하는 동안, 사고기에 탑승해 있던 사람들이 비상구를 통해 모두 밖으로 탈출하는데 성공했다. 피어슨 공항 측은 엑스에 “비상 대응팀을 가동 중”이라며 “모든 승객과 승무원의 상태가 확인됐다”고 적었다. 현재까지 사고 원인은 밝혀지지 않은 가운데, CNN은 “사고 당시 풍속은 시속 32~60㎞에 달했고, 사고 현장에는 눈발이 흩날리고 있었다”면서 “가시거리는 약 10㎞, 기온은 영하 8도 정도였다”고 전했다. 이 사고로 피어슨 공항의 모든 활주로가 폐쇄됐으며, 항공기 이·착륙이 전면 중단됐다. 한편 최근 북미 지역에서는 항공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 1월 말에는 미국 공군 알래스카주 아일슨 공군기지에서 F-35A 전투기가 훈련중 오작동이 발생해 추락했다. 다행히 조종사는 오작동 전 탈출했지만 전투기는 현장에서 추락해 폭발했다. 같은 달 29일에는 워싱턴DC 인근에서 승객 60명과 승무원 4명을 태운 아메리칸항공 여객기가 군인 3명을 태운 미 육군 블랙호크 헬기와 공중 충돌해 탑승자 전원이 사망하는 참사가 발생했다. 이틀 후인 지난달 31일에는 필라델피아 노스이스트 공항에서 이륙한 소형 제트기가 추락해 탑승자 7명이 모두 사망했으며, 지난 6일에는 미국 알래스카주에서 10명이 탑승한 여객기가 실종됐다가 사고 발생 이틀 만에 해안에서 20㎞ 가량 떨어진 곳에서 발견됐다. 사고기에 탑승한 승객과 기장 등 10명은 모두 목숨을 잃었다. 지난 12일에는 미 해군 소속 EA-18G 그라울러 항공기가 샌디에이고 코로나도섬과 항구 사이의 바다에 추락했으나, 조종사는 현장에서 무사히 탈출했다.
  • ‘위안부 피해’ 길원옥 할머니 별세… 생존자 7명뿐

    ‘위안부 피해’ 길원옥 할머니 별세… 생존자 7명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길원옥 할머니가 16일 별세했다. 97세. 여성가족부는 길 할머니가 이날 오후 6시 인천 자택에서 건강 악화로 별세했다고 밝혔다. 1928년 평안북도 희천에서 태어난 길 할머니는 1940년 공장에 취직시켜 준다는 말에 속아 중국 하얼빈에 있는 일본군 위안소에서 고초를 겪었다. 끔찍한 경험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채 살다가 1998년 용기를 내 위안부 피해자로 신고한 뒤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활동을 시작했다. 2003년 서울 소재 ‘평화의 우리집’에서 생활하며 매주 빠지지 않고 수요 시위에 참여했다. 유엔 인권이사회와 국제노동기구(ILO) 총회에도 참석해 위안부 피해를 증언했다. 그뿐만 아니라 호주, 캐나다, 미국, 프랑스 등 세계 각지를 돌며 일본군 성노예제를 알리고 전시 성폭력 피해자들을 위한 인권 활동에 앞장섰다. 2017년에는 ‘길원옥의 평화’라는 음반도 발표하며 어릴 적 꾸었던 가수의 꿈을 이뤘다. 길 할머니는 일본의 공식 사죄와 배상을 요구했으나 결국 바람을 이루지 못한 채 눈을 감았다. 길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면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 생존자는 7명으로 줄었다. 이들의 평균 연령은 95.7세다. 신영숙 여가부 차관은 “위안부 피해자들이 편안한 여생을 보낼 수 있도록 면밀히 살펴 지원하는 한편 피해자들의 명예와 존엄 회복을 위해 지속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길 할머니의 빈소는 인천 연수구 인천적십자병원에 차려졌다. 발인은 18일 오전 9시 30분이다.
  • 日 위안부 피해자 영면…‘평균 연령 95.7세’ 생존자 이제 7명

    日 위안부 피해자 영면…‘평균 연령 95.7세’ 생존자 이제 7명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중 한 명인 길원옥 할머니가 16일 향년 97세로 별세했다. 이로써 정부에 등록된 위안부 피해 생존자는 7명만이 남게 됐다. 신영숙 여성가족부 장관 직무대행은 이날 길 할머니의 별세 소식을 전하며 “일본군 위안부 피해 사실을 국내외적으로 알리기 위해 적극적으로 활동하셨다”며 애도를 표했다. 아울러 신 직무대행은 “또 한 분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떠나보내게 되어 매우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면서 “생전에 많은 풍파를 겪으셨던 만큼 평안을 찾으시길 바란다”고 밝혔다. 여성가족부에 따르면 정부에 등록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는 총 240명이다. 그러나 길 할머니의 별세로 이제 7명만이 생존해 있는 상황이다. 생존자들의 평균 연령은 95.7세에 달하며, 이 중 96세 이상이 5명, 90~95세가 2명이다. 지역별로는 경기도에 3명이 거주하고 있으며, 서울과 대구, 경북, 경남에 각각 1명씩 거주하고 있다. 신 직무대행은 “여성가족부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께서 편안한 여생을 보내실 수 있도록 면밀히 살펴 지원하는 한편 피해자분들의 명예와 존엄 회복을 위해 지속해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 전북 부안군 왕등도 인근 해상서 선박에 불..12명 중 5명 구조

    전북 부안군 왕등도 인근 해상서 선박에 불..12명 중 5명 구조

    13일 오전 8시 37분쯤 전북 부안군 왕등도 인근 해상에서 조업 중이던 34t급 어선에 불이 나 해경이 구조에 나섰다. 이 어선에는 선장과 선원 등 12명이 타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부안해경은 경비함정을 화재 현장에 급파하고 인근 어선에 구조를 요청했다. 현재 탑승자 12명 중 내국인 2명, 외국인 3명 등 5명의 선원이 구조됐다. 생존자들은 불이 난 선박에서 나와 바다로 뛰어든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이 배의 승선원 명부에는 11명이 탑승했다고 적혀 있었으나 화재 선박에서구조된 한 선원이 “한 명이 더 탔다”고 말해 해경은 총 탑승 인원을 12명으로 보고 있다. 소방당국은 격포항에 지휘차 1대와 구급차 5대 등을 보내 환자를 이송하고 있다. 해경 관계자는 “현재 남아 있는 선원 등이 있는지 확인 중으로 인명 구조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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