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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故이지수, 생전 ‘터키즈’ 출연 모습 ‘눈물’

    故이지수, 생전 ‘터키즈’ 출연 모습 ‘눈물’

    개그우먼 고(故) 이지수가 30세의 이른 나이로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가운데, 생전 예능에 출연한 고인의 모습이 재조명되고 있다. 고 이지수는 최근 유튜브 채널 ‘스튜디오 와플’을 통해 공개된 웹예능 ‘터키즈 온 더 블럭’에 게스트로 출연했다. 갓 데뷔한 신인이었던 그는 나보람, 연예림 등 선배 개그우먼들과 함께 출연해 예능감을 뽐냈다. “‘코미디빅리그’ 떠오르는 샛별”이라고 자기소개를 한 이지수는 “아직 (데뷔한 지) 1년이 안 됐다”고 밝혔다. 또 그는 “어떻게 하다가 개그우먼을 꿈꾸게 됐는냐‘는 MC 이용진의 물음에 ”장난기가 많은 편이었다“며 ”내가 막 똥꼬킥을 하면 친구들이 좋아하더라“고 말했다. 이지수는 자신의 개인기로 ’국밥 먹는 김구라‘를 연기해 웃음을 선사하기도 했다. 개그우먼들의 연애 스타일을 묻자, 그는 어리둥절해하며 ”글로 배운 스타일“이라고 답해 웃음을 안겼다. 개그우먼으로서 힘든 점에 대해선 ”이 자리가 제일 힘들다“며 ”여기(촬영 장소)가 4층이라는 것부터 꼬였다. 힘들어서 진을 다 뺐다. 열이 계속 안 빠져 나간다“고 입담을 뽐내기도 했다. 끝으로 그는 ”너무 영광이었다“며 ”다음에는 솔직히 잔바리 둘 없이 나 혼자 나오고 싶다“고 재치 있게 ’터키즈 온 더 블럭‘ 출연 소감을 전했다. 한편 유족에 따르면 고인은 지난 9일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고인은 최근 고열로 병원을 찾았고, 신우신염 진단을 받고 병원에 입원했다. 지난 4일 퇴원 이후 모친과 대화를 끝으로 연락이 두절됐다. 유족은 정확한 사인을 밝히기 위해 부검을 의뢰했다고 밝혔다. 고인의 빈소는 서울 영등포동 신화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발인은 오는 13일이며, 장지는 서울시립승화원이다.
  • ‘참을 수 없는…’과 ‘농담’의 밀란 쿤데라 94세에 타계 [메멘토 모리]

    ‘참을 수 없는…’과 ‘농담’의 밀란 쿤데라 94세에 타계 [메멘토 모리]

    체코 출신의 세계적인 작가 밀란 쿤데라가 9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물품들을 소장하고 있는 체코 모라비안 도서관(MZK) 대변인은 “고인이 오랜 투병 끝에 어제 파리에서 사망했다”고 12일(현지시간) 밝혔다. 고인은 1948년 브르노의 트리다 김나지움에서 중등 교육을 수료했다. 이 무렵 체코슬로바키아 공산당에 가입했다. 프라하 공연예술대학교 영화학부에서 영화 연출과 시나리오를 공부했다. 교수 등으로 활동하면서 소설 ‘농담’과 희곡 ‘열쇠의 주인들’ 등을 통해 국제적으로 알려졌다. 개혁적인 마르크스주의자였으나 1950년 당에 반(反)하는 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축출됐고 1956년 재입당했으나 1970년 또 당에서 쫓겨났다. 1968년 프라하의 봄에 참여한 경험을 바탕으로 대표작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1984)을 집필했다가 저서를 압수당하고 집필과 강연에 제한을 받는 등 고초를 겪었다. “역사란 개인의 삶만큼이나 가벼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가벼운, 깃털처럼 가벼운, 바람에 날리는 먼지처럼 가벼운, 내일이면 사라질 그 무엇처럼 가벼운 것이다.” 어려운 시대 상황과 각각의 상처를 짊어진 네 남녀의 각기 다른 사랑 방식에 생의 무거움과 가벼움을 오가는 현대인의 모습을 투영시켜 인기를 끌었다. 작가는 네 주인공을 통해 진지함과 가벼움, 책임과 자유, 영원과 찰나 등 사랑의 서로 모순되는 본질을 짚어 인간 존재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냈다. 소설의 주제의식에는 니체의 영원회귀 사상이 녹아들어 있었고, 교묘히 짝을 이루는 시간 파괴적 서술은 포스트 모더니즘의 선구적인 작품으로 이 작품을 평가받게 만들었다.결국 1975년 프랑스로 망명, 1981년 시민권을 취득했다. 1979년 체코슬로바키아 국적을 박탈당했다가 지난 2019년에야 국적을 회복했다. 1993년부터 프랑스어로 글을 썼고, 이전에 썼던 체코어 작품도 1985년과 1987년 사이에 본인이 손수 프랑스어로 옮겼다. 현재 한글로 번역된 그의 작품도 프랑스어 번역본이다. 심지어 쿤데라 본인도 자신의 소설은 프랑스 소설로 분류돼야 한다고 말했을 정도다. 국적 박탈 40년이 지나서야 체코 국적을 복귀했는데 2018년 안드레이 바비시 총리가 직접 찾아 설득한 끝에 이뤄진 것으로도 유명하다. “불멸을 향한 인간의 헛된 욕망과 그로 인해 더욱 심화되는 고독에 천착”한 ‘불멸’(1990), ‘배신당한 유언들’, ‘느림’(이상 1993), ‘정체성’(1994), ‘향수’(2000), 에세이집 ‘커튼’(2005), 에세이집 ‘만남’(2009)을 펴냈다. 2104년 ‘무의미의 축제’를 출간한 것이 고인의 마지막 소설이 됐다. 작가는 작품으로만 말해야 한다는 신념을 지켜 생전에 언론과 인터뷰를 거의 하지 않았던 것으로도 유명하다. 쿤데라의 작품들은 전반적으로 역사의 무게에 짓눌리지 않으려는 개인의 자유와 사랑, 에로스적 욕망을 풍부한 아이러니로 형상화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1981년 크리스천사이언스모닝포스트 인터뷰를 통해 “공산이든 반공이든 문학과 예술이 프로파간다가 되면 그 생명력을 잃는다”고 갈파했다. 노벨 문학상 후보로 꾸준히 거론됐지만 끝내 수상하지 못했다. 페트로 파벨 체코 대통령은 트위터에 글을 올려 ‘전 세대에 영향을 끼친 세계적 작가였다”고 돌아본 뒤 “그의 운명 자체로 20세기 우리나라의 다사다난한 역사를 상징했다. 그의 유산은 작품 속에서 이어질 것”이라고 했다. 브르노 동향인 페트르 피알라 체코 총리도 트위터에 “쿤데라는 그의 작품으로 모든 대륙의 전 세대 독자들에게 어필할 수 있었다”며 “그는 놀랍도록 소설적이면서도 뛰어나게 수필적인 작품들을 남겼다”고 평가했다. 밀란 쿤데라 도서관의 토마스 쿠비첵 관장은 공영 체코 TV와의 인터뷰에서 “체코 문학뿐 아니라 세계 문학도 가장 위대한 현대 작가 중 한 명을 잃었다”고 애도했다고 AFP 통신이 보도했다. 고인이 숨을 거둔 파리의 안 이달고 시장은 트위터에 “밀란 쿤데라가 우리 곁을 떠났다”고 슬퍼하며 “의심할 여지 없이 가장 유럽적인 작가였던 그는 우리 세계의 미묘한 대조를 구현해냈다”고 적었다. 이어 “그의 뛰어난 작품들은 인간의 조건에 대한 지성과 성찰을 담고 있어 우리를 끊임없이 고민하게 했다”고 높이 평가했다.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의 유럽 의원들은 1분 동안 추모 묵념을 했다.
  • “밤늦게 남친과 친오빠집에?” 할머니 신고한 최준희, CCTV 공개

    “밤늦게 남친과 친오빠집에?” 할머니 신고한 최준희, CCTV 공개

    배우 고(故) 최진실씨의 딸 최준희(20)씨가 늦은 밤 남자친구와 함께 오빠 최환희씨의 집을 찾았다는 외할머니 정옥숙(78)씨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최씨는 11일 인스타그램에 할머니 정씨와 갈등이 있었던 지난 8일 밤~9일 새벽 사이 서울 서초동 G아파트 내부 엘리베이터 폐쇄회로(CC)TV 화면과, 경찰 출동 당시 직접 촬영한 동영상을 공개했다. 최씨는 “오빠 없는 집에 남자친구랑 놀러 갔다는 건 거짓”이라며 “혼자 들어가서 할머니의 폭언을 감당할 자신이 없어 경찰과 남자친구를 불렀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혼자 집에 들어갔다 나오는 모습, 얼마 후 경찰과 남자친구가 함께 집을 방문한 모습 등이 담긴 CCTV 화면을 시간대별로 공개했다. 최씨는 또 경찰 출동 당시 할머니 정씨가 욕설하는 동영상을 첨부하며 “앞과 뒤가 다르다는 게 이 말이다. 나는 이걸 19년 동안 너무 익숙하게 듣고 자랐다”고 했다. 최씨는 앞서 또 다른 게시물에서는 “미성년자일 때 할머니에게 지속적인 욕설과 폭행을 당한 것은 여전히 씻지 못할 상처로 남아있다”며 “할머니와 말다툼이 일어날 때마다 태어난 자체가 문제라는 말들과 입에 담기도 어려운 폭언들과 함께 거짓된 증언들로 떳떳하지 못한 보호자와 살았다”고 주장했다. 자신이 미성년자였던 2017년 학대 혐의로 할머니 정씨를 경찰에 신고했을 당시 정씨가 자신의 외손자이자 최씨의 오빠인 최환희씨에게 보낸 것으로 추정되는 문자메시지도 공개했다. 이어 “최진실 딸이기 전에 그저 대한민국에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 미성년자 때 할머니가 벌인 모든 일에 법적 책임을 물을 것”이라며 “나를 향해 비난하는 사람들이 무서운 게 아니라 앞뒤가 다른 할머니가 더 소름 끼치고 무서울 뿐”이라고 덧붙였다.경찰에 따르면 서울 서초경찰서는 지난 9일 자정쯤 서초동 G아파트에 최씨의 신고를 받고 출동, 정씨를 주거침입 혐의로 현행범 체포해 조사했다. 정씨는 서울 서초구에 있는 최씨 명의로 된 아파트에서 동의를 받지 않고 지난 7일부터 이틀간 머무른 혐의를 받는다. 해당 아파트는 최진실씨가 생전 구입해 가족과 함께 살던 곳으로, 그가 사망한 후 최환희·최준희 남매에게 공동명의로 상속됐다. 정씨는 두 남매의 보호자이자 후견인으로서 작년까지 함께 거주하다 최씨가 성인이 된 후 따로 나와 살고 있다. 최씨 역시 독립해 오피스텔에서 생활하고 있으며, 해당 아파트에는 오빠 최씨가 홀로 거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씨는 외손자 최환희(22)씨의 부탁을 받아 집안일을 하고 쉬던 중 남자친구와 밤늦게 들어오는 최씨와 마주쳤고, 수차례 실랑이를 벌이다 최씨가 경찰에 신고했다고 주장한다. 정씨는 여러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7일 손자 최환희가 3박 4일 집을 비우면서 반려묘를 돌봐달라고 부탁해 집에 갔다. 밤늦게까지 집안일을 했고, 8일까지 반찬 준비와 빨래를 하고 거실에서 쉬고 있었다”고 했다. 그런데 남자친구와 집에 온 손녀 최씨가 ‘할머니가 왜 여기 있느냐. 이 집은 할머니와 상관없는 내 집이니 나가달라’고 했다고 정씨는 전했다. 정씨는 이어 “경찰이 ‘집주인인 외손자가 부탁해서 집에 와 있었다고 해도 집을 공동소유하고 있는 또 다른 집주인이 허락하지 않으면 법적으로 주거침입이 된다’고 하면서 퇴거를 요구했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정씨는 “15년 동안 내 인생을 포기하고 해달라는 걸 다 해주면서 키웠는데 비참하다”며 “(최준희가) 무슨 일만 있으면 나를 고소하겠다고 했다“고 눈물을 흘렸다.이후 정씨와 최씨의 진실공방은 계속되고 있다. 앞서 언급하대로 최씨는 남자친구 등 동행인 없이 홀로 오빠집을 찾았으며, 그곳에서 할머니 폭언을 듣고 견디다 못해 경찰에 신고했다는 입장이다. 또 정씨가 체포된 것은 현장에 출동한 여경을 밀치고 욕한 것이 원인이라고 주장한다. 최씨는 정씨의 ‘횡령’ 의혹도 거론하고 있다. 그는 ”외할머니와의 갈등은 내가 미성년자일 때 할머니가 내 몫의 재산을 건드리면서 시작됐다. 돈이 중요해서가 아니다. 횡령을 하니까 신뢰가 무너진 것“이라고 했다. 최씨는 ”내가 미성년자일 때부터 외할머니는 내 몫의 재산으로 오빠 학비를 냈다. 오빠는 국제고에 다녔고 학비는 1억원에 가까웠다. 이외에도 자잘자잘하게 돈을 빼 자신의 계좌로 넣고 다시 그 돈을 오빠의 계좌로 송금하기도 했다“고 호소했다. 이어 ”나는 어릴 때부터 대중들에게 미친 사람처럼 보이고 있다. 근데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다. 할머니는 내 재산을 계속해서 빼돌렸고 오빠만 더 챙겨주려고 했다“며 ”엄마 지인들도 내가 루푸스병에 걸린 게 다 할머니 때문에 스트레스 받아서라고 한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오빠는 왕자처럼 자랐고 재산도 많다. 다들 나도 부모에게 물려받은 돈이 많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10평짜리 원룸에서 살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번 사건과 관련해 오빠 최씨의 소속사 로스차일드 측은 해당 거주지의 실거주자는 최환희이며, 외할머니는 최환희가 성년이 된 후 모든 자산을 공개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외할머니는 부모의 역할에 최선을 다했으며, 최환희도 할머님의 사랑과 보살핌 아래 지내고 있다“고 전했다.
  • [포토] 빈소에 놓인 고 이지수의 영정

    [포토] 빈소에 놓인 고 이지수의 영정

    ‘코미디 빅리그’가 세상을 떠난 코미디언 이지수(30)의 사망에 애도의 뜻을 전했다. tvN 예능 프로그램 ‘코미디 빅리그’(이하 ‘코빅’)는 12일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을 통해 “누구보다 웃음에 진심이었던 코미디언 이지수님을 코미디 빅리그는 기억합니다”라며 “당신의 웃음에 대한 열정을 잊지 않겠습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고 애도했다. 함께 공개된 사진에는 흑백 필터가 더해진 이지수의 생전 셀카와 함께 ‘하늘의 별이 된 코미디언 이지수님을 추모합니다’라는 문구가 담겼다. 이지수는 지난 11일 30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갑작스러운 비보에 가족, 동료들은 큰 슬픔에 잠긴 것으로 알려졌다. 고인의 빈소는 서울 영등포구 영중로 신화장례식장에 마련됐다. 발인은 오는 13일 오전 6시40분이며, 장지는 서울시립승화원이다. 한편 이지수는 1993년생으로 윤형빈 소극장 출신의 코미디언이다. 지난 2021년 tvN ‘코빅’을 통해 정식으로 데뷔했다. 이지수는 ‘코빅’에서 ‘오동나무엔터’ ‘코빅엔터’ ‘취향저격수’ ‘주마등’ ‘나의 장사일지’ 등의 코너에 출연했으며, 특히 ‘수틀린 우먼 파이터’의 피낫 역으로 인지도를 높였다.
  • 최준희, 외할머니 112 신고…“횡령·폭행” 주장 점입가경

    최준희, 외할머니 112 신고…“횡령·폭행” 주장 점입가경

    고(故) 최진실의 딸 최준희(20)가 외할머니 정옥숙(78)씨를 주거침입죄로 신고한 가운데, 양측이 반박에 반박을 거듭하며 갈등이 점입가경으로 치닫고 있다. 11일 경찰에 따르면 서울 서초경찰서는 지난 9일 오전 1시쯤 최준희는 정씨를 주거침입으로 112 신고했다. 정씨는 지난 7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에 있는 최준희 명의로 된 아파트에 찾아가 그의 동의를 받지 않고 이틀간 머무른 혐의를 받는다. 이 아파트는 최진실이 생전에 구입해 가족과 함께 살았고, 사망 후 최환희·최준희 남매에게 공동명의로 상속됐다. 정씨는 두 남매의 보호자이자 후견인으로서 지난해까지 함께 거주했지만, 최준희가 성인이 된 현재는 따로 나와 살고 있었다. 최준희 역시 따로 오피스텔을 얻어 생활하고 있고, 해당 아파트에는 최환희 홀로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씨는 외손자 최환희의 부탁을 받아 집안일을 하고 쉬던 중 남자친구와 밤늦게 들어오는 최준희씨와 마주쳤고, 수차례 실랑이를 벌이다 최준희가 경찰에 신고했다고 한다. 할머니 정씨 “최환희 부탁으로 갔다”최환희 “할머니 부모 역할 최선” 정씨는 더팩트와의 인터뷰에서 “7일 손자 최환희가 3박 4일 집을 비우면서 반려묘를 돌봐달라고 부탁해 집에 갔다”며 “밤늦게까지 집안일을 했고, 다음날인 8일까지 반찬 준비와 빨래를 하고 거실에서 쉬고 있었다”고 했다. 그런데 남자친구와 집에 온 최준희는 “할머니가 왜 여기 있냐. 이 집은 할머니와 상관없는 내 집이니 나가달라”고 했다고 정씨는 전했다. 정씨는 “경찰이 ‘집주인인 외손자가 부탁해서 집에 와 있었다고 해도 집을 공동소유하고 있는 또 다른 집 주인이 허락하지 않으면 법적으로 주거침입이 된다’고 하면서 퇴거를 요구했다”고 주장했다. 퇴거 요구에 불응하던 정씨는 경찰에 의해 관할 반포지구대로 긴급체포 연행됐다. 그는 지구대에서 1시간가량 대기하다 9일 오전 1시쯤 서초경찰서로 이송돼 피의자 진술을 하고 오전 6시쯤 귀가했다. 경찰 관계자는 “구체적인 정황과 혐의 여부는 양쪽 진술을 들어본 뒤 밝힐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다시 한 번 최준희와 정씨의 갈등이 불거진 것에 대해 최준희의 오빠인 최환희의 소속사 로스차일드 측은 해당 거주지의 실거주자는 최환희이며, 외할머니가 최환희가 성년이 된 후 모든 자산을 공개했다고 밝혔다. 이어 “외할머니는 부모의 역할에 최선을 다했으며, 최환희도 할머님의 사랑과 보살핌 아래 지내고 있다”고 전했다. 이후 할머니 정씨는 스포티비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재차 비참함을 드러냈다. 정씨는 취재진과의 통화에서 “15년 동안 내 인생을 포기하고 해달라는 걸 다 해주면서 키웠는데 비참하다”며 “(최준희가) 무슨 일만 있으면 나를 고소하겠다고 했다”고 눈물을 흘렸다. 경찰을 밀고 욕해 현장에서 체포당했다는 최준희의 주장에 대해서는 “몸도 아프고 기운도 없는데 내가 어떻게 경찰을 밀겠나. 내가 밀려서 밀릴 사람들이 아니었다. 양 옆에서 경찰들이 나를 붙잡고 있어서 아프다고 몸부림을 친 것뿐이다”라며 “옷도 제대로 안 입고 있었다. 흰색 런닝같은 거 하나 입고, 슬리퍼를 신고 6층부터 1층까지 그대로 끌려갔다. 그리고 아침 6시까지 조사를 받았고, 아침에 경찰서에 나와서 택시를 잡으러 가는 내내 눈물이 났다”고 토로했다. 최준희 “할머니 폭언·폭행 일삼아” “횡령을 해서 신뢰가 무너져” 논란이 심화하자 최준희는 할머니 정씨가 어릴 때부터 자신을 폭행하고 폭언을 일삼았다며 법적 대응하겠다는 뜻을 재확인했다. 최준희는 인스타그램에 올린 글에서 “미성년자일 때 할머니에게 지속적인 욕설과 폭행을 당한 것은 여전히 씻지 못할 상처로 남아있다. 늘 할머니에게 말을 안듣는 아이로 낙인 찍혀 있지만 말다툼이 일어날 때마다 ‘태어난 자체가 문제’라는 말들과 입에 담기도 어려운 폭언들과 함께 거짓된 증언들로 떳떳하지 못한 보호자와 살아왔다”고 주장했다. 이어 “루프스를 심하게 앓던 도중 할머니의 폭언과 폭행이 있었고 피부 발진으로 몸이 너무 아프고 힘들던 나머지 뿌리치고 발버둥을 치며 할머니를 밀치는 상황이 왔다”라며 “이후 할머니가 경찰을 부르셨고 어린 나이에 조사를 받았지만 어른들은 저의 말을 들어 주지 않았다”라고 호소했다. 이와 함께 정씨가 과거 최환희와 주고받은 것으로 보이는 문자메시지를 사진으로 첨부했다. 최준희는 “오빠의 입장은 아직 직접 만나서 들어보지 못했지만 오빠의 소속사는 가정사가 어떻게 되고 있는지 사실확인 하지 않고 모든 재산이 누구한테 오픈됐다는거죠? 가정법원 가서 직접 사건번호 신청하고 일일이 확인한 사람은 바보인가요”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저는 이제 15세의 최준희도 아니고 할머니에게 말 대답을 하는 그런 철없는 중학생이 아니”라며 외할머니 정씨에 대한 법적대응을 예고했다.최준희는 앞서 이날 위키트리에 정씨의 횡령을 주장하기도 했다. 최준희는 “외할머니와 갈등은 미성년자일 때 내 몫의 재산을 건드리면서 시작됐다. 돈이 중요해서가 아니다. 횡령을 하니까 신뢰가 무너진 거다. 긴급체포된 것도 경찰의 명령에 불응해서가 아닌 여경에게 욕을 하고 밀쳐서 그런 것”이라고 했다. 이어 “내가 미성년자일 때부터 외할머니는 내 몫의 재산으로 오빠 학비를 냈다. 오빠는 국제고에 다녔고 학비는 1억원에 가깝다. 이외에도 자잘자잘하게 돈을 빼 자신의 계좌로 넣고 다시 그 돈을 오빠의 계좌로 송금하기도 했다”라고 말했다. 그는 “나는 어릴 때부터 대중들에게 미친 사람처럼 보이고 있다. 근데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다. 할머니는 내 재산을 계속해서 빼돌렸고 오빠만 더 챙겨주려고 했다”며 “엄마 지인들도 내가 루푸스병에 걸린 게 다 할머니 때문에 스트레스 받아서라고 한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오빠는 왕자처럼 자랐고 재산도 많다. 다들 나도 부모에게 물려받은 돈이 많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10평짜리 원룸에서 살고 있다”고 호소했다.
  • ‘신당역 스토킹 살인’ 전주환 항소심 무기징역…“평생 속죄하며 살아야”

    ‘신당역 스토킹 살인’ 전주환 항소심 무기징역…“평생 속죄하며 살아야”

    ‘신당역 스토킹 살인범’ 전주환(32)이 11일 항소심에서 원심보다 높은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아무런 잘못도 없는 피해자를 상대로 오로지 ‘보복’의 목적으로 직장까지 찾아가 살해한 행위는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무참히 짓밟은 범행”이라고 일갈했다. 서울고법 형사12-2부(부장 김길량·진현민·김형배)는 이날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보복살인), 성폭력범죄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촬영물 등 이용강요)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전씨에게 무기징역형을 선고했다. 전씨는 1심에서 스토킹 범죄 등 혐의에 대해 징역 9년을, 보복살인 등 혐의로는 징역 40년을 각각 선고받아 총 징역 49년이 선고된 바 있다. 항소심에서는 두 사건을 병합해 심리했고, 이날 재판부는 1심보다 형이 늘어난 무기징역을 선고한 것이다. 전씨는 직장 동료 A씨를 스토킹하고 불법 촬영물을 이용해 협박 및 피해를 강요한 혐의로 지난해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받았다. 전씨는 연락을 원치 않던 피해자 A씨의 의사를 무시하고 2년여에 걸쳐 300회 넘게 연락을 취하면서 일방적으로 연락을 요구했다. 이에 피해자가 전씨를 신고하자 이전에 자신이 피해자를 불법으로 촬영한 영상 등을 빌미로 피해자를 협박하기도 했다. 결국 전씨의 스토킹 범죄 등의 재판에서 검찰이 징역 9년을 구형하자 선고를 하루 앞둔 날 피해자의 근무지인 신당역에 찾아가 화장실에서 살인을 저질렀다. 그는 이 과정에서 피해자의 직장 내부 전산망에 침투해 피해자 인적사항을 파악하고 수차례 주거지에서 기다리는 등 살인 범행을 치밀하고 집요하게 시도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피해자가 생전 직장 동료였던 전씨의 각 범행들로 주변인에 대한 경계심과 우울감을 느끼는 등 극심한 정신적 고통을 받았다”면서 “살인 범행 당시 범행 도구와 피해자의 저항 능력 등을 종합해보면 형언할 수 없는 공포심 속에서 끔찍한 육체·정신적 고통을 받으며 생을 마감한 것으로 보인다”고 짚었다. 이어 “전씨의 범행 종류와 수, 각 경위와 수단 및 방법에 비춰볼 때 죄질이 극히 불량하고 특히 피해자의 신고에 대한 ‘보복’으로 공권력 개입 이후 재판 절차에서 추가 범죄를 저질렀기에 참작이 가능한 사정이 없다”고 덧붙였다. 또 양형 이유와 관련해서도 “무고한 사람의 생명을 부당한 목적과 의도를 가지고 침해한 사람은 반드시 그에 따른 대가를 치르게 된다는 원칙을 천명함으로써 이와 같은 범행이 재발하지 않도록 할 필요성이 매우 크다”고 설명했다. 피해자 유족 대리인 민고은 변호사는 선고 직후 기자회견을 열고 “오늘 법원의 판결은 고소를 이유로 피해자를 살해하는 범죄에 대한 법원의 태도를 보여주는 판결이 될 것”이라며 “더 이상 비슷한 사건이 발생하거나 피해자가 사망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 ‘신당역 살인’ 전주환 2심 무기징역…법원 “치밀하고 집요”

    ‘신당역 살인’ 전주환 2심 무기징역…법원 “치밀하고 집요”

    ‘신당역 스토킹 살인’으로 1심에서 징역 40년을 선고받았던 전주환(32)이 11일 항소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서울고법 형사12-2부(부장 진현민 김형배 김길량)는 이날 오후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보복살인, 성폭력처벌법상 촬영물 등 이용강요, 스토킹처벌법, 주거침입 혐의 등으로 기소된 전주환의 항소심 판결에서 이같이 선고했다. 전주환은 동료 여성 역무원 A(28)씨를 스토킹·불법촬영한 혐의로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받던 지난해 9월 14일 오후 9시쯤 서울 신당역 여자화장실에서 A씨를 흉기로 살해한 혐의로 기소됐다. 1심 선고를 하루 앞둔 날이었다. 전주환은 스토킹 혐의 1심 재판에서 검찰로부터 징역 9년을 구형받자 이같이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조사됐다.2심 재판부는 “보복범죄는 형사사법체계를 무력화하는 범죄로 엄정한 처벌이 필요하다”면서 “(전주환의) 살인 범행은 대단히 계획적이고 치밀하며 집요하게 이뤄졌다”고 밝혔다. 또 “범행 수단과 방법에 비춰 죄질이 극히 불량하며 특히 피해자의 신고로 공권력의 개입 이후 재판 진행 과정에서 극악한 추가 범죄를 저질러 동기에서도 참작할 사정이 없다”고 판시했다. 피해자와 서울교통공사 입사 동기였던 전주환은 불법촬영과 스토킹 범행으로 직위해제된 상태였지만, 서울교통공사 통합정보시스템(SM ERP)에 무단 접속해 피해자의 주소지와 근무 정보를 확인하고 범행 도구를 준비하는 등 치밀하게 범행을 계획한 것으로 조사됐다. 그는 살인 범행 전 여러 차례 피해자가 살던 주소지 건물에 몰래 들어가 기다린 적도 있었다. 그러나 피해자가 이미 이사한 상황이어서 미수에 그쳤다. 그런데도 전주환은 집요하게 피해자를 추적했고, 결국 피해자의 근무지를 알아내 잔혹한 범행을 저질렀다. 재판부는 “무고한 사람의 생명을 부당한 의도와 목적을 가지고 침해한 사람은 대가를 치르게 된다는 점을 천명함으로써 이와 같은 범행이 일어나지 않도록 할 필요성 매우 크다”고 지적했다. 이어 “무기징역형을 부과해 우리 사회 구성원의 안전을 지키는 것은 물론 사회로부터 격리된 상태에서 수감생활 통해 잘못을 참회하고 피해자 유족에게 속죄하면서 살아가게 하는 게 필요하다고 판단했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전주환은 살인 범행 전인 2021년 10월 초 같은 피해자에게 불법촬영물을 전송하면서 협박하고 메시지를 보내는 등 351회에 걸쳐 스토킹한 혐의로도 기소됐다. 1심은 스토킹 범행과 살인 범행이 각각 다른 법원에서 심리했는데, 스토킹 혐의는 징역 9년이 선고됐다. 살인 범행을 심리한 1심은 지난 2월 전주환에게 징역 40년을 선고하고 위치추적 전자장치(전자발찌) 15년 부착 명령을 내렸다. 2심 재판부는 두 사건을 병합해 심리했다. 검찰은 보복살인 혐의로 전주환을 추가 기소해 지난 4월 27일 결심공판에서 법정최고형인 사형을 구형했다. 재판부는 사형에 대해선 “범행 책임 정도와 형벌 목적에 비춰 정당화될 수 있는 특별하고 객관적인 사정이 있는 경우에만 허용돼야 한다는 것이 대법원의 판단”이라며 “피고인은 범행을 모두 인정하면서 자기 잘못을 반성하는 태도를 보여 개전의 여지가 전혀 없다고 보기는 어려운 점 등을 보면 사형을 정당화할 사정이 있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이유를 밝혔다.피해자 유족 대리인 민고은 변호사는 선고 직후 법원 밖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피해자는 생전 ‘부디 죗값에 합당한 엄벌이 내려지기를 바란다’고 재판부에 탄원하는 등 엄벌은 그의 생전의 뜻이기도 했다”며 “2만 7447명의 시민도 피고인의 엄벌을 탄원해 오늘과 같은 판결이 선고됐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오늘 법원의 판결은 지금까지 수차례 발생한 고소를 이유로 피해자를 살해하는 범죄에 대한 법원의 태도를 보여주는 판결”이라며 “유사한 피해를 겪는 피해자가 더는 사망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 최준희, 외할머니 ‘횡령’ 주장…최환희 “부모 역할” 반박

    최준희, 외할머니 ‘횡령’ 주장…최환희 “부모 역할” 반박

    고 최진실 딸 최준희(20)가 외할머니 정옥숙(78)을 주거침입으로 경찰에 신고했다. 정옥숙씨는 외손녀를 훈육 차원에서 혼을 내다 갈등의 골이 깊어졌다는 입장이지만 최준희는 “내 몫의 재산을 건드렸다”라며 횡령을 주장하고 있다. 11일 경찰에 따르면 최준희는 지난 9일 오전 1시쯤 외할머니 정씨를 주거침입으로 112 신고했다. 정씨는 지난 7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에 있는 최준희 명의로 된 아파트에 찾아가 그의 동의를 받지 않고 이틀간 머무른 혐의를 받는다. 이 아파트는 최진실이 생전에 구입해 가족과 함께 살았고, 사망 후 최환희·최준희 남매에게 공동명의로 상속됐다. 정씨는 두 남매의 보호자이자 후견인으로서 지난해까지 함께 거주했지만, 최준희가 성인이 된 현재는 따로 나와 살고 있었다. 최준희 역시 따로 오피스텔을 얻어 생활하고 있고, 해당 아파트에는 최환희 홀로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씨는 외손자 최환희의 부탁을 받아 집안일을 하고 쉬던 중 남자친구와 밤늦게 들어오는 최준희씨와 마주쳤고, 수차례 실랑이를 벌였다는 것이다.정씨는 더팩트와의 인터뷰에서 “7일 손자 최환희가 3박 4일 집을 비우면서 반려묘를 돌봐달라고 부탁해 집에 갔다”며 “밤늦게까지 집안일을 했고, 다음날인 8일까지 반찬 준비와 빨래를 하고 거실에서 쉬고 있었다”고 했다. 그런데 남자친구와 집에 온 최준희는 “할머니가 왜 여기 있냐. 이 집은 할머니와 상관없는 내 집이니 나가달라”고 했다고 정씨는 전했다. 정씨는 “경찰이 ‘집주인인 외손자가 부탁해서 집에 와 있었다고 해도 집을 공동소유하고 있는 또 다른 집 주인이 허락하지 않으면 법적으로 주거침입이 된다’고 하면서 퇴거를 요구했다”고 주장했다. 퇴거 요구에 불응하던 정씨는 경찰에 의해 관할 반포지구대로 긴급체포 연행됐다. 그는 지구대에서 1시간가량 대기하다 9일 오전 1시쯤 서초경찰서로 이송돼 피의자 진술을 하고 오전 6시쯤 귀가했다. 경찰 관계자는 “구체적인 정황과 혐의 여부는 양쪽 진술을 들어본 뒤 밝힐 예정”이라고 말했다. 최준희 “횡령을 해서 신뢰가 무너져”최환희 “부모 역할에 최선을 다했다” 최준희는 이날 위키트리에 “외할머니와 갈등은 미성년자일 때 내 몫의 재산을 건드리면서 시작됐다. 돈이 중요해서가 아니다. 횡령을 하니까 신뢰가 무너진 거다. 긴급체포된 것도 경찰의 명령에 불응해서가 아닌 여경에게 욕을 하고 밀쳐서 그런 것”이라고 주장했다. 최준희는 “내가 미성년자일 때부터 외할머니는 내 몫의 재산으로 오빠 학비를 냈다. 오빠는 국제고에 다녔고 학비는 1억원에 가깝다. 이외에도 자잘자잘하게 돈을 빼 자신의 계좌로 넣고 다시 그 돈을 오빠의 계좌로 송금하기도 했다”라고 말했다. 그는 “나는 어릴 때부터 대중들에게 미친 사람처럼 보이고 있다. 근데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다. 할머니는 내 재산을 계속해서 빼돌렸고 오빠만 더 챙겨주려고 했다”며 “엄마 지인들도 내가 루푸스병에 걸린 게 다 할머니 때문에 스트레스 받아서라고 한다”고 덧붙였다.최준희는 “오빠는 왕자처럼 자랐고 재산도 많다. 다들 나도 부모에게 물려받은 돈이 많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10평짜리 원룸에서 살고 있다”고 호소했다. 반면 최환희(래퍼 지플랫)측은 스포츠조선에 “최환희는 해당 거주지의 실거주자이며 동생 최준희는 따로 독립해 출가한 지 수년째로, 리모델링 이전에는 할머니와 함께 지내오다 리모델링 이후 최환희가 혼자 독립해 거주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소속사가 3년간 아티스트와 함께하며 곁에서 지켜본 바로는 할머님은 최환희에게 부모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셨으며 최환희 또한 크고 작은 도움을 받기도 하며 할머님의 사랑과 보살핌 아래에서 지내고 있다. 또 성년이 된 후에는 모든 재산 내용을 오픈하시고 금전 관리 교육에 대한 신경도 많이 기울이신 것으로 알고 있다. 기존의 기사 내용으로 오해가 생길까 염려스러운 마음 뿐”이라고 전했다.
  • ‘故최진실 딸’ 최준희, 외할머니 주거침입 신고… 경찰 긴급체포

    ‘故최진실 딸’ 최준희, 외할머니 주거침입 신고… 경찰 긴급체포

    고(故) 최진실의 딸 최준희(20)가 외할머니 정옥숙(78)씨를 주거침입으로 신고했다. 11일 경찰에 따르면 서울 서초경찰서는 지난 9일 오전 1시쯤 최준희가 정씨를 주거침입으로 112 신고해 수사 중이다. 정씨는 지난 7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에 있는 최준희 명의로 된 아파트에 찾아가 그의 동의를 받지 않고 이틀간 머무른 혐의를 받는다. 이 아파트는 최진실이 생전에 구입해 가족과 함께 살았고, 사망 후 최환희·최준희 남매에게 공동명의로 상속됐다. 정씨는 두 남매의 보호자이자 후견인으로서 지난해까지 함께 거주했지만, 최준희가 성인이 된 현재는 따로 나와 살고 있었다. 최준희 역시 따로 오피스텔을 얻어 생활하고 있고, 해당 아파트에는 최환희 홀로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씨는 외손자 최환희의 부탁을 받아 집안일을 하고 쉬던 중 남자친구와 밤늦게 들어오는 최준희씨와 마주쳤고, 수차례 실랑이를 벌이다 최준희가 경찰에 신고했다고 한다. 정씨는 더팩트와의 인터뷰에서 “7일 손자 최환희가 3박 4일 집을 비우면서 반려묘를 돌봐달라고 부탁해 집에 갔다”며 “밤늦게까지 집안일을 했고, 다음날인 8일까지 반찬 준비와 빨래를 하고 거실에서 쉬고 있었다”고 했다. 그런데 남자친구와 집에 온 최준희는 “할머니가 왜 여기 있냐. 이 집은 할머니와 상관없는 내 집이니 나가달라”고 했다고 정씨는 전했다. 정씨는 “경찰이 ‘집주인인 외손자가 부탁해서 집에 와 있었다고 해도 집을 공동소유하고 있는 또 다른 집 주인이 허락하지 않으면 법적으로 주거침입이 된다’고 하면서 퇴거를 요구했다”고 주장했다. 퇴거 요구에 불응하던 정씨는 경찰에 의해 관할 반포지구대로 긴급체포 연행됐다. 그는 지구대에서 1시간가량 대기하다 9일 오전 1시쯤 서초경찰서로 이송돼 피의자 진술을 하고 오전 6시쯤 귀가했다. 경찰 관계자는 “구체적인 정황과 혐의 여부는 양쪽 진술을 들어본 뒤 밝힐 예정”이라고 말했다. 한편 최준희와 정씨의 갈등이 알려진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최준희는 2017년 8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정씨로부터 그동안 폭행·폭언을 당했고 이로 인해 우울증에 시달리며 극단적인 선택에 대한 충동도 느꼈다는 글을 게재했다. 또 오디션 프로그램 출연을 정씨가 반대했다면서 “‘스님이 내가 연예인을 하면 (최진실과) 똑같은 선택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는 이유에서였다”며 원망을 드러낸 바 있다. 그러나 경찰 조사 결과 정씨는 혐의가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 [서울광장] 홍준표의 ‘난쏘공’/이동구 논설위원

    [서울광장] 홍준표의 ‘난쏘공’/이동구 논설위원

    서울 도심을 걷노라면 김동길 전 연세대 교수가 생전에 사회 전반을 비판할 때 사용했던 “이게 뭡니까”라는 말이 자주 떠오른다. 민주노총 총파업 집회를 비롯해 거의 매일 열리는 집회·시위로 시민들은 교통체증과 소음에 시달리고 있을 뿐 아니라 걷기조차 힘들 때가 많다. 지난 주말엔 환경운동연합 등 오염수저지공동행동 회원 1500여명이 종로 3개 차로에서 범국민대회를 개최하는 등 시내 곳곳에서 집회와 시위가 이어졌다. 일주일 전에는 서울 중구 을지로에서 퀴어축제와 행진이 있었고, 서울광장과 대학로에서는 이들의 행사를 반대하는 종교단체의 집회가 있었다. 남대문과 서울역 일대에서 민주당의 대규모 집회와 행진이 펼쳐졌다. 세종로에서는 보수 진영의 맞불 집회도 열렸다. 집회·시위는 으레 도로 점거로 이어지고 이에 따른 교통통제와 극심한 체증, 소음 등으로 서울 도심은 그야말로 북새통이다. 특히 최근 3년간 무려 1883건(하루 평균 1.7건)의 집회·시위를 마주하는 서울 광화문 일대의 소상공인들은 불만이 가득했다. 광화문에서 요식업을 하는 권모(67)씨는 “매일같이 집회와 시위가 이어지니 장사가 잘될 리 없다”며 “이대로는 상인들 다 망하기 십상이다”고 했다. 앞서 대구에서 퀴어축제 참가자들의 도로 점거를 행정대집행으로 저지하려던 홍준표 시장과 행정공무원들이 이를 가로막는 경찰과 몸싸움을 벌였다. 현장의 시민뿐 아니라 국민 상당수는 “이게 뭔 일이냐”고 묻지 않을 수 없었다. 홍 시장이나 경찰들이 관련 법 규정을 모를 리 없을 텐데 왜 이런 충돌이 벌어졌을까. 퀴어축제에 대한 일부 시민과 홍 시장의 불편한 심기가 반영된 것일까. 아니면 경찰이 전 정부 때처럼 여전히 집회·시위 참가자들의 눈치를 보며 편의를 봐준 것일까 궁금해할 수밖에 없다.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12조는 교통 등을 이유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주요 도시의 ‘주요 도로’에서 집회를 금지, 제한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또 국토부의 ‘2020 도로점용 질의 회신 사례집’에는 “집회·시위 시 도로를 점용하는 공작물 등이 있다면 도로관리청의 허가를 받아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고 돼 있다. 홍 시장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반면 대법원은 최근 “시위 도중 도로를 점거했어도 적법한 집회 신고에 따른 것이라면 교통방해로 인정되지 않는다”며 2019년 11월 국회의사당 정문 앞 8차선 도로를 점거한 채 조합원 1만여명과 행진한 전국노동자대회 주최측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퀴어축제 참가자들의 도로 점용을 막을 수 없다는 경찰의 주장도 틀리지 않은 것이다. 법 적용이 이러니 집회·시위 때면 도로 점거가 반복될 수밖에 없다. 집회·시위로 발생한 경제적 손실에 대한 손해배상을 제한하는 일명 ‘노란봉투법’이 조만간 국회 통과를 앞두고 있어 도로를 점거하는 일은 한층 더 빈번해질 게 뻔하다. 홍 시장을 비롯해 집회·시위로 불편을 감내해야만 하는 시민들은 누가 피해자이고 가해자인지도 모른 채 살아가는 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등장인물처럼 씁쓸할 뿐이다. 그나마 현행 집시법의 시행령을 개정해 도로 점거와 소음 규제를 강화하려는 정부의 방침에 일말의 기대를 걸어 본다. 일부 시민단체에서는 여전히 집시법 시행령 개정에 반대하고 있으나 국민참여토론에서 확인된 민의를 생각한다면 하루빨리 바뀌는 게 순리일 것이다. 집회·시위는 헌법이 보장하는 권리임을 모르는 국민은 없다. 하지만 반복되는 집회·시위로 경제적ㆍ정신적 피해를 호소하는 소상공인들의 고충을 외면해선 안 된다. 시민권익이 보호받지 못한다면 시위대가 어떤 구호를 외쳐 대도 공감을 얻기 어렵다. 집회·시위도 국민의 상식적인 눈높이에 맞춰야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도로 점거라도 최소화돼야 한다.
  • 소프라노 이상은, 공연장 화장실서 숨진 채 발견 ‘부검 예정’

    소프라노 이상은, 공연장 화장실서 숨진 채 발견 ‘부검 예정’

    경북 김천의 한 공연장 화장실에서 소프라노 이상은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10일 경북소방본부에 따르면 지난 6일 오후 8시 23분쯤 김천시 문화예술회관 3층 여자 화장실에서 소프라노 이상은(46)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이씨는 발견 즉시 소방 당국에 의해 인근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이미 숨을 거둔 상태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씨는 당시 영·호남 교류 목포시립합창단이 초청한 김천시립합창단 제33회 정기연주회에서 공연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대기실에서 사라진 뒤 공연 시간 전까지 보이지 않았고, 화장실에서 쓰러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이씨가 숨진 것이 범죄와 연관됐을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보고 정확한 사망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특별한 외상은 발견되지 않았다. 정확한 사인 규명을 위해 부검을 실시할 예정”이라고 했다. 한편 이씨는 생전에 서울예술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음대를 졸업하고 미국 뉴욕 매네스 음악대학에서 석사 학위를 받은 소프라노였다. 더불어 매네스 음악대학과 맨해튼 음악대학에서 전문연주자 과정을 이수한 이씨는 국내외 각종 오페라 공연에서 주연을 맡기도 했다.
  • [단독] 오래 앓는 것은 삶을 갉아 먹는 일… “내 의지대로 작별하고 싶어” [금기된 죽음, 안락사①]

    [단독] 오래 앓는 것은 삶을 갉아 먹는 일… “내 의지대로 작별하고 싶어” [금기된 죽음, 안락사①]

    <1> 스위스행을 택한 어느 할아버지의 죽음 여든 넷, 마지막 해방 병든 할아버지는 안락사를 선택했다. 자식이 수없이 뜯어말려도 소용없었다. 그리고 결국 스위스로 마지막 여행을 떠났다. 지금부터 할 이야기는 스위스에서 조력사망한 열 번째 한국인 이야기다. 서울신문은 할아버지의 생전 인터뷰를 바탕으로 국내 언론에서는 한 번도 드러나지 않았던 조력사망을 택한 당사자의 목소리를 전한다. 2019년 스위스에서 안락사를 선택한 한국인의 이야기를 최초 보도한 서울신문은 4년 만에 취재팀을 다시 꾸렸다. 지난 8개월간 스위스에서 조력사망한 한국인의 지인과 가족, 조력사망을 준비하는 당사자를 만났고 의료인·법조인 등 전문가와 시민단체, 정치인 등을 두루 취재했다. 그 과정에서 84세 남태순(가명)씨를 만났다. 지난해 11월 처음 만난 그는 이미 조력사망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는 사진과 실명이 나가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써도 좋다고 허락했다. 그렇게 해서 그가 스위스에서 사망하기 전까지 두 번의 만남과 여덟 번의 전화 인터뷰가 이뤄졌다.‘코끼리 발’ 노인 해방되다말기 신부전에 퉁퉁 부은 다리하루 8시간 투석 말곤 할 게 없어고통 없이 잘 죽는 게 소원이야 “사진은 찍지 맙시다. 동네방네 자랑할 일도 아니고….” 할아버지를 처음 만난 건 지난해 11월 초 경기도 그의 집에서였다. 할아버지의 소원은 잘 죽는 거였다. 첫인상은 병상에 누운 말기 환자의 이미지와 사뭇 달랐다. 숱이 많은 백발과 또렷한 눈빛은 곱게 늙었다는 표현이 어울렸다. 다만 코끼리 발처럼 퉁퉁 부은 노인의 두 발이 그가 말기 신부전 환자라는 것을 상기시켰다. “투석하는데 뭐가 완전히 안 빠져나가는 것 같아. 다리에 수분이 내려오는 것 같고. 어떨 땐 잘 빠져나가는데…. ” 그는 여든셋(올해 여든넷)이었다. 원래도 신장이 안 좋았는데 나이가 들면서 자꾸만 나빠졌다. 말기 신부전 진단을 받은 2년 전부터는 복막 투석을 해야 했다. 하루 8시간을 꼼짝없이 기계에 매여 있는 게 지루하고 견딜 수가 없어 일주일에 세 번은 기계 대신 자신이 직접 하는 손 투석으로 바꿨다. 이날은 손 투석을 하는 날이었다. “살기 위해 투석을 하지만 정작 투석 말고는 할 일이 없어요. 후유증으로 온몸이 가렵고 잠도 못 자고. 이런 고통을 받아 가며 왜 사느냐, 병이 치유된다는 희망이 있으면 살아 보지만 이건 죽을 때까지 (투석을) 해야 하거든…. 여기서 해방되는 게 제일 큰 바람이에요.”삶의 손익분기점 무너진다연금·건보 등 月200만원 보조받아스위스 가는 게 내 인생엔 플러스 “이제껏 살아온 괜찮은 날들 까먹는 일밖에 없는 거예요. 주위에 폐 안 끼치고, 내 의지대로 갈 수 있는 편안한 방법 있으면 그게 좋겠다, 그게 평소 신념이었어요.” 그는 말수가 적었다. 길게 이야기하는 법이 없었다. 허투루 이야기하기가 싫었는지 말과 단어 선택을 신중히 했다. 입을 떼기까지는 항상 몇 초간 침묵이 흘렀다. 대화 중엔 흐트러짐 없이 곧은 자세를 유지했다. 성격이 몸에 밴 듯했다. “등산도 좋아했는데 이제 걷는 속도가 일반 사람의 3분의1도 못 따라가요. 숨이 차서 찬찬히 걸어야 해. 몸은 편한 데가 없고, 먹고 배설하는 것 외에는 할 일이 없어요. 이런 경우엔 스스로 판단해야지. 나는 스위스로 가는 게 내 인생에 플러스다, 그렇게 생각했어요.” 첫 만남 당시 그는 조력사망 신청서에 대한 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지난해 8월 스위스 조력사망 단체인 디그니타스에 가입했고 10월 말 조력사망 신청서를 메일로 보냈다. 영문 신청서는 구글 번역기를 돌려 가며 스스로 작성했고 디그니타스 홈페이지와 메일 주소를 찾을 때 아들의 도움을 조금 받았다고 했다. 그는 안락사를 선택한 배경에 경제적 이유는 없다고 했다. “공무원연금을 받으니까 사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어요. 가만히 보면 내가 산다는 게 국가적으로도 보통 손해가 아녀요. 건강 보험이나 약품 이런 걸 합치면 한 달에 200만원 정도를 국가에서 보조받는 셈인데, 그런 쓸데없는 짓을 왜 하느냐 이거야.” 고통은 한꺼번에 찾아왔다갑작스런 사고로 아내는 요양원신부전 환자인 난 투석기에 의지 할아버지의 인생은, 그의 말을 빌리면 “잘 살아왔다”. 1939년 경남 김해에서 7남매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모두가 힘든 시기였지만 부모의 뒷바라지 덕분에 그 시절 대학까지 나왔다. 대학 졸업 후엔 기술직 공무원이 됐다. 젊어서부터 “늘 고집대로 살았다”는 그는 중매결혼을 마다하고 같은 직장에 다니던 여성을 만나 가정을 꾸렸다. 2남 1녀를 낳고 70년대 중반 직장을 서울로 옮기며 가족이 모두 이사했다. 휴가 땐 아내와 가끔 외국으로 여행도 했다. 남들보다 일찍 은퇴를 준비한 그는 2000년대 중반 아내와 필리핀으로 이민을 떠났다. “거기(필리핀)는 항상 봄이에요. 여름도 없고, 겨울도 없고, 옷 한 가지만 있으면 되고, 생활비도 적게 드니까 그런 천국이 없더라고요.”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까지 필리핀에서 등산도 하고 골프도 치며 그의 인생에서 가장 여유로운 10여 년을 보냈다. 영원한 건 없었다. 행복도 그랬다. 아내가 갑작스러운 사고로 뇌를 다치면서 거동이 어려워졌고 할아버지도 병원 갈 일이 점점 늘어났다. 상황이 더 나빠지기 전에 뭔가 결심해야 했다. 긴 휴가와도 같던 필리핀 생활을 끝낸 건 2020년 가을이다. 귀국 후 상황은 빠르게 악화했다. 혼자 화장실조차 갈 수 없게 된 아내는 요양원에, 할아버지는 투석기에 의지해 삶을 이어 가야 했다. 이때부터 마음 한편으로 죽음을 준비했다고 했다. 아내도 친구도 모두 떠났다이젠 나도 아무 미련 없이 홀가분스스로 통제 못하는 상황 두려워 “2022년 봄에 고맙게도 아내가 떠났어. 저 사람(아내)이 살아있을 때까진 모든 걸 내가 담당해 줘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나도 홀가분해요. 미련 없이 갈 수 있겠다…. 사람이 희로애락이 없는데, 숨만 쉬고 있으면 뭐 해요. ” 최근에는 매일 카톡으로 연락을 주고받던 친구마저 세상을 떠났다. “얼마 전 고향에 가 연락을 하니까 친구 딸이 전화를 받더라고. 아버지가 쓰러져서 중환자실에 있대. 그러더니 사흘 뒤 돌아가셨다고 해요. 내가 그 친구 복도 많다고 그랬어요. 그 정도만 보장돼도 나, 스위스 가는 거 포기하겠어요.” 할아버지의 가장 큰 두려움은 어느 날 갑자기 쓰러져 스스로 움직일 수도, 결정을 할 수도 없는 상황에 놓이는 것이었다. 투석만 하면 계속 살 수 있을 것처럼 보여도 말기 신부전 환자 중엔 심혈관 질환으로 쓰러지는 경우도 많았다. “노인이라는 게 그런 질병이 갑자기 오거든. 그때 되면 내가 지시도 판단도 못 하고, 얼마나 끔찍한 일이야…. 암만 다시 생각해 봐도 전혀 미련 없어. 이 결정을 번복하겠다, 이런 생각이 전혀 없어요.”고대하던 그린라이트 받다존엄사 날짜 확정받고 희망 생겨반대하던 딸이 결국 같이 가기로 그는 올해 1월 디그니타스로부터 ‘그린라이트’(조력자살 승인)를 받았다. 그동안 아버지 얘기를 잠자코 들어 오던 자식들은 “아무도 따라가지 않겠다”고 함으로써 아버지의 스위스행에 반대 의사를 표시했다. 그도 누군가와 동행하는 게 부담스럽다며 기어이 “혼자 가겠다”고 했지만, 그의 말에선 못내 서운함이 느껴졌다. “달리 생각하면 부모 임종 지키러 가는 셈 치면 될 거 아뇨. 임종한다고 하면 이민 간 자식들도 웬만하면 오잖아요. 거리가 멀고, 경비가 더 나갈 뿐이지. 나는 못 갈 이유가 전혀 없다고 생각하는데, 자식들은 절대 못 간다는 거예요.” 봄이 찾아오고 날씨가 풀리자 할아버지는 본격적으로 마지막 여행을 준비했다. 차마 아버지를 이런 식으로 보낼 수 없는 자식들의 마음과는 달리 그는 “고통에서 해방될 수 있다는 희망 때문에 요즘 사는 게 괜찮아졌다”고 말했다. “딱 한 달 치만 달라고 했어요.” 결심은 결단으로 변했다. 3월 초, 정기 진료일에 맞춰서 가는 서울의 병원에서 통상 3개월 치 받아 오던 투석액을 한 달 치만 받아 왔다. 끝내 아버지의 고집을 꺾지 못한 아들들은 말이 없었고, 마지못한 딸이 스위스까지 따라나서기로 했다. “딸이 네덜란드에 사는 친구와 전화했대요. 그랬더니 현지에서는 (조력사망을) 그냥 보편적으로 생각하더래. 주변에 할머니도 아주 웃으면서 떠났다고. 그 얘기를 듣고는 딸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아요.” 순리 거부하는 건 욕심일까배설물 수발 전에 해방되고 싶어우리나라 안락사 도입 논의해야 할아버지는 ‘존엄사’라는 말에 큰 의미를 두진 않았다. 기어코 스위스행을 택한 것은 자신의 ‘욕심’이라고도 했다. “어찌 보면 편안하게 가겠다는 건 순리를 거부하는 나의 욕심이지. 내가 곤욕을 치르고 거동도 못 하고 배설물 수발을 받고 휠체어를 타야 하는 상황까진 안 가겠다는…. 그래도 여기서 해방되는 게 제일 큰 바람이에요.” 그러면서도 안락사 도입은 필요하다고 했다. “우리나라도 할 때가 됐어요. 우리나라가 처음도 아니고, 엄격하게 심사해서 본인 의사가 틀림없느냐만 확인하면 될 것 아뇨. 이러나저러나 내 생애엔 될 가능성이 없어 보여요. 그게 된다면 여기서 기다리겠지만, 희망이 없더라고요.” “잘 사세요!” 마지막 인사3월 말 스위스로 떠난 할아버지한 달 뒤, 그의 생활반응은 없다 벚꽃이 막 피기 시작한 3월 말 할아버지는 프랑스 파리를 거쳐 스위스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는 동행이나 가족 인터뷰 등 추가 취재는 거절한다고 했다. “(자식들에겐) 따로 연락하지 않았으면 해요. 그렇게 해 줘.” 자신의 욕심이라던 마지막 결정이 혹시라도 자식들에게 누가 될까 걱정하는 듯했다. 약속은 지키겠다고 말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머뭇거리는 기자에게 그는 “잘 사세요!”라고 인사했다. 마지막 통화를 한 뒤 다시 한 달이 지났다. 생사를 확인해야 했지만 불편한 감정이 머릿속을 헤집었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딸의 설득에 결국 포기하고 돌아왔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할아버지가 살던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여러 번 벨을 눌렀지만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 “지금 거신 번호는 없는 번호입니다. 다시 확인하고 걸어 주시기 바랍니다.” 꺼져 있던 휴대전화는 ‘없는 번호’가 됐다. 한국은 물론 스위스에서도 노인의 생활반응(Vital Reaction·살아 있는 인간이 남기는 반응과 흔적)은 모두 사라졌다. 그 후 노인과의 모든 연락은 끊겼다. 내 의지대로 가고 싶다던 고집쟁이 여든넷 할아버지는 그렇게 마지막 소원을 이뤘다. 여든넷 고집쟁이의 소원아무것도 모를 때 답답하더라고그래서 난 알려주고 가고 싶었어 지난해 기자에게 먼저 전화한 건 할아버지였다. 유서도 남길 생각이 없다며 미련 따윈 없어 보이던 할아버지가 인터뷰에 응한 건 주변에 엇비슷한 고민을 하는 이들이 많다는 생각에서였다. “아무것도 모를 때 무척 답답했거든. 이제는 내가 아는 만큼 정보를 주고 싶어요. 내가 느꼈던 그 답답함을 다른 사람들이 느끼지 않도록 풀어 주는 것도 하나의 미덕이다, 그리 생각했어요.” 서울신문의 ‘금기된 죽음, 안락사’ 기획기사는 [인터랙티브형 기사]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QR 코드를 찍거나 아래 링크를 복사한 후 인터넷 주소창에 붙이는 방법으로 콘텐츠를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www.seoul.co.kr/SpecialEdition/euthanasia/
  • “천국에서 만나 또 걸어요” 차인표 부친 차수웅 우성해운 창업주 별세

    “천국에서 만나 또 걸어요” 차인표 부친 차수웅 우성해운 창업주 별세

    차수웅 우성해운 전 회장이 8일 별세했다. 83세. 차 전 회장은 차인혁 CJ올리브네트웍스 대표이사와 배우 차인표의 부친이다. 차인표는 9일 인스타그램에 생전 부친과 함께 산책했던 영상을 올리며 “ 아버지, 안녕히 가세요. 천국에서 만나서 또 걸어요”라며 부친을 추모했다. 차인표의 아내 신애라도 인스타그램에 빈소 사진과 함께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다시 만날 그날을 기다리며 기도합니다”라고 고인을 기렸다.차 전 회장은 1940년 충남 태안에서 태어나 인천고, 연세대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한 뒤 인천제철에 입사했다. 1974년 우성해운을 창업하며 경영인의 길을 걸었다. 2006년 차 전 회장이 퇴임할 당시 우성해운은 한진해운, 현대상선, 머스크라인에 이어 국내 해운업계 4위까지 올랐다. 고인은 한국 해운산업 발전에 이바지한 공로를 인정받아 1997년 산업포장을 받은 바 있다. 차 전 회장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면서도 자식들에게 경영권을 승계하지 않고, 전문 경영인에게 넘겨 화제가 됐다. 차인표는 과거 인터뷰에서 “아버지와 함께 회사를 창업해서 40년간 온몸을 바친 분들이 회사에 여러 분이 있다”며 “회사에 근무도 하지 않고 해운업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아들이 나타나 경영권을 물려받는 것은 말이 안 된다”라고 밝힌 바 있다. 차 전 회장의 빈소는 서울 서초구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발인은 오는 11일이다.
  • [단독]열 번째 한국인 조력사망자와의 인터뷰…“내 의지대로 죽고 싶다”[금기된 죽음, 안락사]

    [단독]열 번째 한국인 조력사망자와의 인터뷰…“내 의지대로 죽고 싶다”[금기된 죽음, 안락사]

    병든 할아버지는 안락사를 선택했다. 자식이 수없이 뜯어말려도 소용없었다. 그리고 결국 스위스로 마지막 여행을 떠났다. 지금부터 할 이야기는 스위스에서 조력사망한 10번째 한국인 이야기다. 서울신문은 할아버지의 생전 인터뷰를 바탕으로 국내 언론에서는 한 번도 드러나지 않았던 조력사망을 택한 당사자의 목소리를 전한다.2019년 스위스에서 안락사를 선택한 한국인의 이야기를 최초 보도한 서울신문은 4년 만에 취재팀을 다시 꾸렸다. 지난 8개월간 스위스에서 조력사망한 한국인의 지인과 가족, 조력사망을 준비하는 당사자를 만났고 의료인·법조인 등 전문가와 시민단체, 정치인 등을 두루 취재했다. 그 과정에서 84세 남태순(가명)씨를 만났다. 지난해 11월 처음 만난 그는 이미 조력사망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는 사진과 실명이 나가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써도 좋다고 허락했다. 그렇게 해서 그가 스위스에서 사망하기 전까지 두 번의 만남과 여덟 번의 전화 인터뷰가 이뤄졌다.‘코끼리 발’ 노인의 해방 “사진은 찍지 맙시다. 동네방네 자랑할 일도 아니고….” 할아버지를 처음 만난 건 지난해 11월 초 경기도 그의 집에서였다. 할아버지의 소원은 잘 죽는 거였다. 첫인상은 병상에 누운 말기 환자의 이미지와 사뭇 달랐다. 숱이 많은 백발과 또렷한 눈빛은 곱게 늙었다는 표현이 어울렸다. 다만 코끼리 발처럼 퉁퉁 부은 노인의 두 발이 그가 말기 신부전 환자라는 것을 상기시켰다. “투석하는데 뭐가 완전히 안 빠져나가는 것 같아. 다리에 수분이 내려오는 것 같고. 어떨 땐 잘 빠져나가는데….” 그는 여든셋(올해 여든넷)이었다. 원래도 신장이 안 좋았는데 나이가 들면서 자꾸만 나빠졌다. 말기 신부전 진단을 받은 2년 전부터는 복막 투석을 해야 했다. 하루 8시간을 꼼짝없이 기계에 매여 있는 게 지루하고 견딜 수가 없어 일주일에 세 번은 기계 대신 자신이 직접 하는 손 투석으로 바꿨다. 이날은 손 투석을 하는 날이었다. “살기 위해 투석을 하지만 정작 투석 말고는 할 일이 없어요. 후유증으로 온몸이 가렵고 잠도 못 자고. 이런 고통을 받아 가며 왜 사느냐, 병이 치유된다는 희망이 있으면 살아 보지만 이건 죽을 때까지 (투석을) 해야 하거든…. 여기서 해방되는 게 제일 큰 바람이에요.” 인생의 손익분기점 “이제껏 살아온 괜찮은 날들 까먹는 일밖에 없는 거예요. 주위에 폐 안 끼치고, 내 의지대로 갈 수 있는 편안한 방법 있으면 그게 좋겠다, 그게 평소 신념이었어요.” 그는 말수가 적었다. 길게 이야기하는 법이 없었다. 허투루 이야기하기가 싫었는지 말과 단어 선택을 신중히 했다. 입을 떼기까지는 항상 몇 초간 침묵이 흘렀다. 대화 중엔 흐트러짐 없이 곧은 자세를 유지했다. 성격이 몸에 밴 듯했다. “등산도 좋아했는데 이제 걷는 속도가 일반 사람의 3분의1도 못 따라가요. 숨이 차서 찬찬히 걸어야 해. 몸은 편한 데가 없고, 먹고 배설하는 것 외에는 할 일이 없어요. 이런 경우엔 스스로 판단해야지. 나는 스위스로 가는 게 내 인생에 플러스다, 그렇게 생각했어요.” 첫 만남 당시 그는 조력사망 신청서에 대한 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지난해 8월 스위스 조력사망 단체인 디그니타스에 가입했고 10월 말 조력사망 신청서를 메일로 보냈다. 영문 신청서는 구글 번역기를 돌려 가며 스스로 작성했고 디그니타스 홈페이지와 메일 주소를 찾을 때 아들의 도움을 조금 받았다고 했다. 그는 안락사를 선택한 배경에 경제적 이유는 없다고 했다. “공무원연금을 받으니까 사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어요. 가만히 보면 내가 산다는 게 국가적으로도 보통 손해가 아녀요. 건강 보험이나 약품 이런 걸 합치면 한 달에 200만원 정도를 국가에서 보조받는 셈인데, 그런 쓸데없는 짓을 왜 하느냐 이거야.”고통은 한꺼번에 찾아왔다 할아버지의 인생은, 그의 말을 빌리면 “잘 살아왔다”. 1939년 경남 김해에서 7남매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모두가 힘든 시기였지만 부모의 뒷바라지 덕분에 그 시절 대학까지 나왔다. 대학 졸업 후엔 기술직 공무원이 됐다. 젊어서부터 “늘 고집대로 살았다”는 그는 중매결혼을 마다하고 같은 직장에 다니던 여성을 만나 가정을 꾸렸다. 2남 1녀를 낳고 70년대 중반 직장을 서울로 옮기며 가족이 모두 이사했다. 휴가 땐 아내와 가끔 외국으로 여행도 했다. 남들보다 일찍 은퇴를 준비한 그는 2000년대 중반 아내와 필리핀으로 이민을 떠났다. “거기(필리핀)는 항상 봄이에요. 여름도 없고, 겨울도 없고, 옷 한 가지만 있으면 되고, 생활비도 적게 드니까 그런 천국이 없더라고요.”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까지 필리핀에서 등산도 하고 골프도 치며 그의 인생에서 가장 여유로운 10여 년을 보냈다. 영원한 건 없었다. 행복도 그랬다. 아내가 갑작스러운 사고로 뇌를 다치면서 거동이 어려워졌고 할아버지도 병원 갈 일이 점점 늘어났다. 상황이 더 나빠지기 전에 뭔가 결심해야 했다. 긴 휴가와도 같던 필리핀 생활을 끝낸 건 2020년 가을이다. 귀국 후 상황은 빠르게 악화했다. 혼자 화장실조차 갈 수 없게 된 아내는 요양원에, 할아버지는 투석기에 의지해 삶을 이어 가야 했다. 이때부터 마음 한편으로 죽음을 준비했다고 했다. 아내도 친구도 떠났다 “2022년 봄에 고맙게도 아내가 떠났어. 저 사람(아내)이 살아있을 때까진 모든 걸 내가 담당해 줘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나도 홀가분해요. 미련 없이 갈 수 있겠다…. 사람이 희로애락이 없는데, 숨만 쉬고 있으면 뭐 해요. ” 최근에는 매일 카톡으로 연락을 주고받던 친구마저 세상을 떠났다. “얼마 전 고향에 가 연락을 하니까 친구 딸이 전화를 받더라고. 아버지가 쓰러져서 중환자실에 있대. 그러더니 사흘 뒤 돌아가셨다고 해요. 내가 그 친구 복도 많다고 그랬어요. 그 정도만 보장돼도 나, 스위스 가는 거 포기하겠어요.” 할아버지의 가장 큰 두려움은 어느 날 갑자기 쓰러져 스스로 움직일 수도, 결정을 할 수도 없는 상황에 놓이는 것이었다. 투석만 하면 계속 살 수 있을 것처럼 보여도 말기 신부전 환자 중엔 심혈관 질환으로 쓰러지는 경우도 많았다. “노인이라는 게 그런 질병이 갑자기 오거든. 그때 되면 내가 지시도 판단도 못 하고, 얼마나 끔찍한 일이야…. 암만 다시 생각해 봐도 전혀 미련 없어. 이 결정을 번복하겠다, 이런 생각이 전혀 없어요.”그린라이트를 받다 그는 올해 1월 디그니타스로부터 ‘그린라이트’(조력자살 승인)를 받았다. 그동안 아버지 얘기를 잠자코 들어 오던 자식들은 “아무도 따라가지 않겠다”고 함으로써 아버지의 스위스행에 반대 의사를 표시했다. 그도 누군가와 동행하는 게 부담스럽다며 기어이 “혼자 가겠다”고 했지만, 그의 말에선 못내 서운함이 느껴졌다. “달리 생각하면 부모 임종 지키러 가는 셈 치면 될 거 아뇨. 임종한다고 하면 이민 간 자식들도 웬만하면 오잖아요. 거리가 멀고, 경비가 더 나갈 뿐이지. 나는 못 갈 이유가 전혀 없다고 생각하는데, 자식들은 절대 못 간다는 거예요.” 봄이 찾아오고 날씨가 풀리자 할아버지는 본격적으로 마지막 여행을 준비했다. 차마 아버지를 이런 식으로 보낼 수 없는 자식들의 마음과는 달리 그는 “고통에서 해방될 수 있다는 희망 때문에 요즘 사는 게 괜찮아졌다”고 말했다. “딱 한 달 치만 달라고 했어요.” 결심은 결단으로 변했다. 3월 초, 정기 진료일에 맞춰서 가는 서울의 병원에서 통상 3개월 치 받아 오던 투석액을 한 달 치만 받아 왔다. 끝내 아버지의 고집을 꺾지 못한 아들들은 말이 없었고, 마지못한 딸이 스위스까지 따라나서기로 했다. “딸이 네덜란드에 사는 친구와 전화했대요. 그랬더니 현지에서는 (조력사망을) 그냥 보편적으로 생각하더래. 주변에 할머니도 아주 웃으면서 떠났다고. 그 얘기를 듣고는 딸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아요.”할아버지는 ‘존엄사’라는 말에 큰 의미를 두진 않았다. 기어코 스위스행을 택한 것은 자신의 ‘욕심’이라고도 했다. “어찌 보면 편안하게 가겠다는 건 순리를 거부하는 나의 욕심이지. 내가 곤욕을 치르고 거동도 못 하고 배설물 수발을 받고 휠체어를 타야 하는 상황까진 안 가겠다는…. 그래도 여기서 해방되는 게 제일 큰 바람이에요.” 그러면서도 안락사 도입은 필요하다고 했다. “우리나라도 할 때가 됐어요. 우리나라가 처음도 아니고, 엄격하게 심사해서 본인 의사가 틀림없느냐만 확인하면 될 것 아뇨. 이러나저러나 내 생애엔 될 가능성이 없어 보여요. 그게 된다면 여기서 기다리지만, 희망이 없더라고요.” “잘 사세요!” 마지막 인사 벚꽃이 막 피기 시작한 3월 말 할아버지는 프랑스 파리를 거쳐 스위스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는 동행이나 가족 인터뷰 등 추가 취재는 거절한다고 했다. “(자식들에겐) 따로 연락하지 않았으면 해요. 그렇게 해 줘.” 자신의 욕심이라던 마지막 결정이 혹시라도 자식들에게 누가 될까 걱정하는 듯했다. 약속은 지키겠다고 말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머뭇거리는 기자에게 그는 “잘 사세요!”라고 인사했다. 마지막 통화를 한 뒤 다시 한 달이 지났다. 생사를 확인해야 했지만 불편한 감정이 머릿속을 헤집었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딸의 설득에 결국 포기하고 돌아왔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할아버지가 살던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여러 번 벨을 눌렀지만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 “지금 거신 번호는 없는 번호입니다. 다시 확인하고 걸어 주시기 바랍니다.” 꺼졌던 휴대전화는 ‘없는 번호’가 됐다. 한국은 물론 스위스에서도 노인의 생활반응(Vital Reaction·살아 있는 인간이 남기는 반응과 흔적)은 모두 사라졌다. 그 후 노인과의 모든 연락은 끊겼다. 내 의지대로 가고 싶다던 고집쟁이 여든넷 할아버지는 그렇게 마지막 소원을 이뤘다.지난해 기자에게 먼저 전화한 건 할아버지였다. 유서도 남길 생각이 없다며 미련 따윈 없어 보이던 할아버지가 인터뷰에 응한 건 주변에 엇비슷한 고민을 하는 이들이 많다는 생각에서였다. “아무것도 모를 때 무척 답답했거든. 이제는 내가 아는 만큼 정보를 주고 싶어요. 내가 느꼈던 그 답답함을 다른 사람들이 느끼지 않도록 풀어 주는 것도 하나의 미덕이다, 그리 생각했어요.”
  • 차인표 부친상…신애라도 “편히 쉬셔요” 애도

    차인표 부친상…신애라도 “편히 쉬셔요” 애도

    배우 차인표가 부친상을 당했다. 차인표는 9일 인스타그램에 “아버지, 안녕히 가세요. 천국에서 만나서 또 같이 걸어요.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라고 적으며 함께 산책하며 찍었던 아버지 생전의 뒷모습 영상을 공개했다. 차인표의 아내이자 배우 신애라도 같은 날 인스타그램에 “아버님, 고통 없는 그곳에서 저희 엄마와 도련님과 편히 쉬셔요.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다시 만날 그날을 기다리며 기도합니다”라고 애도했다. 지난 8일 별세한 고인의 빈소는 서울성모장례식장에 마련됐다. 발인은 11일이다.
  • 19살 브라질 축구 유망주의 비극…머리 없는 시신으로 발견 [여기는 남미]

    19살 브라질 축구 유망주의 비극…머리 없는 시신으로 발견 [여기는 남미]

    기대주로 주목받던 10대 브라질 축구선수가 머리 없는 시신으로 발견돼 현지 사회가 큰 충격에 빠졌다. 경찰은 사망한 축구선수의 옛 여자친구를 유력한 용의자로 보고 체포해 수사 중이다. 5일(이하 현지시간) 현지 언론에 따르면 브라질 경찰은 마투그로수주(州) 이과테미 강에서 실종됐던 축구선수 우고 페드로사(19)의 시신을 발견했다. 시신은 머리와 사지가 절단돼 신원을 확인하기 어려운 상태였다. 경찰은 “처음엔 신원을 확인할 길이 없었지만 타투 덕분에 페드로사의 몸뚱이인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페드로사는 교통사고로 사망한 부친을 기리기 위해 부친의 이름을 타투로 몸에 새겨 넣고 있었다. 페드로사의 생전 행적이 마지막으로 확인된 건 지난달 25일이다. 국경을 넘어 파라과이로 건너간 페드로사는 친구의 집에서 열린 파티에 참석했다고 한다. 페드로사는 국경으로부터 약 7km 떨어진 브라질 세테 케다스에 살고 있어 파라과이 왕래가 잦았다고 한다. 그러나 이날 이후 그의 행방은 묘연해졌다. 페드로사와 함께 살고 있는 72세 할머니는 이튿날 손자의 실종신고를 냈다. 축구 유망주의 실종에 사회는 깜짝 놀랐다. 팔로워 880만 명을 거느린 브라질의 유명 가수 아나 카스텔라는 자신의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 페드로사의 실종 사실을 알리고 소재 파악에 협력을 부탁했다. 브라질 경찰은 처음부터 살인사건을 의심했다고 한다. 관계자는 “국경을 넘을 때 봉변을 당했을 가능성을 유력하게 검토했다”면서 “소방대와 함께 이과테미 강을 수색한 것도 신빙성 있는 정보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페드로사는 총을 맞고 사망했다. 강에서 발견된 그의 몸통에선 치명적 총상 3곳이 발견됐다. 경찰은 발견되지 않은 페드로사의 머리 등 신체 부위를 발견하기 위해 수색을 계속하는 한편 페드로사의 옛 여자친구를 체포해 수사 중이다. 경찰은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는 데 핵심이 될 인물”이라고 했지만 의심되는 혐의점에 대해선 말을 아꼈다. 한편 사망한 페드로사는 기대를 모으던 브라질 축구의 유망주였다. 브라질 주(州) 대항 대회에선 마투그로수의 대표선수로 활약했고 2021년 상파울루 이투에서 열린 청소년대회에서 우승컵을 들어 올린 아나스타시우 팀에선 최고 선수라는 평가를 받았다. 현지 언론은 “페드로사의 SNS에는 대회에서 상과 트로피를 받은 사진, 축구를 하는 사진으로만 가득하다”면서 페드로사가 가장 잘하고 사랑하는 건 축구뿐이었다고 보도했다. 
  • “죽기 전날도 수급 탈락 아쉬워해”… 가난은 죽음까지 가뒀다 [비수급 빈곤 리포트-3회]

    “죽기 전날도 수급 탈락 아쉬워해”… 가난은 죽음까지 가뒀다 [비수급 빈곤 리포트-3회]

    누구도 찾지 않는 쓸쓸한 죽음고시원 전전하던 60대 극단선택기초수급 탈락·구직난에 생활고 가족도 영정사진도 없는 장례식복지망 밖 죽음 뒤에 홀로 남겨져 지난해 11월 서울에서 고시원을 전전하던 60대 최순오(가명)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가족과 연락이 끊긴 채 홀로 살았던 최씨는 기초생활보장 수급을 신청했지만 대상자로 선정되지 못했다. 고립된 삶을 살았던 터라 최씨를 기억하는 이는 생전 마지막으로 생활했던 고시원 원장뿐이었다. 원장은 “죽기 전날에도 수급에서 탈락했다고 아쉬워했다. 일자리 구하기도 쉽지 않았던 때라 많이 힘들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고 전했다. 기초생활보장 수급을 받지 못해 어려운 상황에 있다 죽음을 맞는 이들 중에는 유독 고독사와 무연고 사망자가 많다. 삶을 이어갈 때도 복지망에 편입되지 못한 채 자신의 힘만으로 버텨냈던 이들은 생을 마감할 때도, 그리고 죽은 이후에도 홀로 남겨진다는 얘기다. 고립과 빈곤이 뒤엉켜 빚어낸 비극적인 죽음은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주위에 아무도 없는 상태에서 홀로 생을 마감하는 ‘고독사’는 2017년 2412명에서 2021년 3378명으로 증가했다. 이와 별개로, 시신을 수습하고 장례를 치를 이가 아무도 없어 지방자치단체가 직권으로 사망신고를 해야 하는 ‘무연고 사망자’도 같은 기간 2008명에서 3603명으로 늘었다. 박승희 성균관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공동체 와해와 인간관계의 단절이 사회적 고립을 불러오고, 빈곤 문제와 맞물리면서 고독사와 무연고 사망이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작년 서울에서만 1101명 공영 장례 지난달 2일 찾은 서울시립승화원 화장장 한쪽에 마련된 빈소에는 무연고 사망자인 김인철(가명)씨와 이상길(가명)씨의 위패가 각각 놓여 있었다. 장례 절차도 없이 바로 화장터로 인계되는 것을 안타깝게 여긴 시민단체와 서울시는 2018년부터 약 6.6㎡(2평) 남짓한 이곳에서 마지막 애도를 담아 고인을 떠나보내는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서울시의 공영 장례 서비스 ‘그리다’ 빈소에도 무연고 사망자 3000여명의 위패가 있다. 서울에서만 지난해 1101명이 공영 장례를 치렀다. 같이 일하던 동료나 지인들이 찾아와 고인의 마지막을 기억하는 경우가 간혹 있지만, 대부분 영정사진 하나 없이 위패만 놓여 있다. 매주 금요일마다 이곳에서 자원봉사를 하는 김소진씨는 “세상에서 가장 쓸쓸한 죽음을 애도하는 장례식”이라고 말했다. 이날 진행된 장례에도 김씨와 이씨의 영정사진은 없었다. 시민단체 ‘나눔과나눔’ 관계자 2명, 자원봉사자 1명, 천주교 신부와 수녀, 장례업체 직원 2명 등 모두 7명이 두 사람의 마지막 가는 길을 애도했다. 두 사람의 유해는 무연고자 ‘추모의 집’으로 옮겨져 5년간 보관된다.●한 장 기록도 못 채우는 무연고 죽음 무연고 사망자들은 장례 이후 단 한 장의 기록으로 남는다. 지자체는 시신 처리 절차를 마친 후 보건복지부 e하늘장사정보 시스템에 고인의 정보 16개 항목을 기입한다. 이름과 주민등록번호, 사망 원인, 일시 및 장소 등 인적 사항, 사망 정보, 무연고 시신 처리과정 등이다. 그나마 고인의 생전 모습을 가늠해볼 수 있는 항목은 ‘시신의 발생 상황 및 특징’이지만 빈칸일 때가 많다. 이 업무를 담당하는 한 공무원은 “고인이 생전 어떻게 생활했는지를 남긴다면 좋겠지만, 대부분 구체적 내용을 알 수 없어 주로 빈칸으로 남는다”고 전했다. ‘1946년생, 김명식(가명), 병사, 화장 후 봉안.’●전입신고 못 해 아사 직전 발견도 지난해 코로나19로 생을 마감한 김명식(당시 76세)씨의 마지막 기록도 이렇게 남았다. 김씨는 2년 전인 2021년 5월 아사 직전에 발견됐다. 김씨를 찾아냈던 황미화 사회복지사는 “같은 건물에 사는 다른 사례자를 지원하러 갔더니 집주인이 ‘어르신 모습이 안 보이고, 문을 두드려도 기척이 없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집 앞에는 건강보험료 연체 고지서, 가스와 수도요금 미납 고지서와 함께 며칠 뒤면 가스와 물이 끓긴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황 복지사와 동주민센터 복지담당 공무원이 경찰과 소방을 불러 현관문을 열었고, 침대에 누워 있는 김씨를 발견했다. 문을 두드려도 대답할 힘도, 현관까지 걸어 나올 수도 없었던 상태였다. 사람 사는 곳이라고 보기가 어려울 정도로 집 안 상태는 심각했다. 전입신고를 하지 않아 복지망에 편입되지 못했던 김씨는 같은 해 8월에야 뒤늦게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로 선정됐다. 하지만 제도권 지원을 받은 지 1년도 채 안 돼 세상을 떠났다. 김씨의 사망 이후 시신을 인도해 가는 친인척은 없었고, 김씨는 결국 무연고 사망자로 처리됐다. ●쓸쓸한 죽음 맞는 비수급 빈곤 많아 김씨는 사망 직전에라도 수급 대상이 됐지만 홀로 사는 비(非)수급 빈곤층 가운데 일부는 외롭게 생을 마감한다. 고시원 단칸방에서 혼자 쓸쓸히 죽음을 맞이하는 경우가 많고, 이들의 죽음은 길게는 몇 달간 드러나지 않기도 한다는 게 복지 담당자들의 말이다. 나충열 천주교 서울대교구 신부는 “경제적으로 궁핍한 1인 가구는 살아 있는 동안에도 무관심과 경제적 고통 속에서 홀로 지내는 경우가 많은데다 사망할 때도, 장례를 치를 때도 혼자인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서울신문의 ‘2023 비수급 빈곤리포트’ 기획 시리즈 기사는 아래 QR코드를 찍거나 링크를 복사해 인터넷 주소창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s://www.seoul.co.kr/news/newsList.php?section=poor1
  • [단독]장판에 눌어붙은 삶의 무게… “구더기·빈병 속 외로움 느껴져” [비수급 빈곤 리포트-3회] 영상포함

    [단독]장판에 눌어붙은 삶의 무게… “구더기·빈병 속 외로움 느껴져” [비수급 빈곤 리포트-3회] 영상포함

    반지하·옥탑방 등 단출한 살림마지막까지 가족사진 품고 떠나 “일주일 내로 모든 것을 정리하고 혼자 떠날 것 같습니다. 장례 비용과 청소 비용은 섭섭지 않게 남기겠습니다. 뒷정리를 부탁 드리겠습니다.” 지난 1월 고독사 청소용역업체 결벽우렁각시의 구찬모 대표는 한 50대 남성에게 이러한 연락을 받았다. 당시 구 대표는 한참을 다독이며 설득했다고 한다. 그러나 몇 주 뒤 이 남성이 극단적 선택으로 고독사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경기 용인시 외곽의 16㎡(5평) 남짓한 원룸. 구 대표가 현관문을 열자 시신이 부패하며 나는 냄새가 코를 찔렀다. 시신이 누워 있던 자리 밑 장판엔 체액이 스며들어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그 주변으로 구더기 같은 벌레들이 기어다녔다고 한다. 눈에 띄도록 탁자 위에 가지런히 놓인 흰 봉투 안에는 간단한 메모와 함께 장례와 청소 비용으로 400만원이 들어 있었다. 이 남성은 일용직 노동자의 삶을 전전하던 비(非)수급 빈곤층으로 가족과 연락을 끊고 살았지만 부양의무자(가족)가 존재한다는 이유로 기초생활보장 수급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구 대표는 “현장을 보면서 참혹하다 못해 외로움이 느껴졌다”며 “유족들이 인수하기를 거부하면서 시신을 알아서 처분해 달라는 얘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길해용 스위퍼스 대표 역시 “이 일을 하면서 부양의무자가 있다는 이유로 복지 혜택을 받지 못하고 고독사한 분들을 많이 본다”며 “대부분 반지하 단칸방, 옥탑방 등에서 술에 의존하며 근근이 벌어 사는 분들이었다”고 전했다. 고독사한 이들 중 상당수는 죽기 직전까지도 가족을 그리워했지만 개인 사정으로 가족 간 불화를 겪으며 외로움 속에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상 부양의무자에게 부양할 수 없다는 사실을 생전에 입증했다면 수급 대상이 될 수도 있었지만, 가족에게 연락조차 하기 어려운 이들에게는 가족을 찾아 ‘관계 단절’을 증명하는 것도 쉽지 않은 게 현실이라고 했다. 가족의 외면과는 상반되게 고독사한 그들이 마지막까지 품고 있던 것 중 상당수는 가족사진이었다. 이들은 30~40년 전 찍은 딸아이 모습부터 아들의 결혼식 장면까지 이미 빛바랜 사진을 마지막까지 소중하게 여겼다고 한다. 지난 2월 충북 청주시의 4평 남짓한 원룸에서 고독사한 40대 남성의 시신 주변에도 오랫동안 연락이 끊긴 딸의 사진 수십 장이 흐트러져 있었다. 그 주변으로 술병과 담뱃갑, 약봉지, 각종 고지서가 정리되지 않은 채 널브러져 있었다. 현장을 청소한 업체 대표는 “이혼한 뒤 병이 생겼고 오랜 기간 혼자 지내셨던 것으로 안다”며 “어릴 적부터 커 가는 과정이 담긴 딸 사진이 시신 주변에 놓여 있었는데, 마지막까지 가족을 그리워했을 모습을 떠올리며 마음이 안 좋았다”고 돌아봤다. 청소용역업체 관계자들이 본 그들의 마지막은 극심한 빈곤 상태를 그대로 드러냈다고 한다. 단칸방과 반지하 등을 전전하며 산 이들이 많아 살림이 단출하고 음식을 해 먹은 흔적이 없는 게 공통점이다. 일용직 근로자들이 상당수인데 큰 배낭과 현장 장비가 집 곳곳에 놓여 있고 냉장고에는 김치나 단무지, 생수병만 덩그러니 들어 있다. 외로움을 알코올에 의존하거나 지병이 있어 술병이나 약봉지가 많은 현장이 대부분이라고 했다. 김현섭 에버그린 대표는 “유족들이 시신 인수를 거부하는 경우가 많은데 현장을 가보면 가장 눈에 잘 띄는 곳에 가족사진이 놓여 있다”며 “결국 경제적 문제가 가족 갈등 원인인 경우가 많아 안타깝다”고 말했다.서울신문의 ‘2023 비수급 빈곤리포트’ 기획 시리즈 기사는 아래 QR코드를 찍거나 링크를 복사해 인터넷 주소창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s://www.seoul.co.kr/news/newsList.php?section=poor1
  • 박민식 “백선엽 장군, 친일파 아니라는 데 장관직 건다”

    박민식 “백선엽 장군, 친일파 아니라는 데 장관직 건다”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이 백선엽 장군과 관련해 “내 직을 걸고 ‘친일파’가 아니라고 얘기할 자신이 있다”고 했다. 박 장관은 6일 CBS라디오에 출연해 “백 장군은 최대의 국난을 극복한 최고의 영웅”이라며 “가당치도 않은 친일파 프레임으로 공격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백선엽 장군이 친일파가 아니라는 것은 직을 걸고 이야기할 자신이 있다”고 강조했다. 백 장군이 독립군 토벌 활동을 한 전력이 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백 장군이 간도특설대에 복무할 당시 나이가 22살이었다”며 “그 당시 만주에는 독립군이 없었고 거기 있던 사람들은 항일하던 중국인 내지는 비적들”이라고 반박했다.박 장관은 전날 백 장군의 국립현충원 안장 기록에서 ‘친일반민족행위자’라는 문구를 삭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도 밝힌 바 있다. ‘친일반민족행위자’라는 문구는 2019년 3월 당시 보훈처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반민규명위)가 정한 명단을 기준으로 보훈처와 현충원 홈페이지의 안장자 기록에 적은 것이다. 1920년생인 백 장관은 1943년 4월 만주국군 소위로 임관하고, 조선인 독립군 토벌대로 악명 높은 간도특설대에서 근무했다. 백 장군은 생전 간도특설대에 근무한 적은 있지만, 독립군과 직접 전투를 한 적은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백 장군의 복무 시절인 1944년 7월, 9월, 11월 간도특설대가 무고한 조선인 등을 살해하거나 식량을 강탈했다는 등의 기록이 당시 상황을 기록한 ‘중국조선민족발자취 총서’에 담겨있다. 백 장군이 1983년 일본에서 출간한 ‘대 게릴라전-미국은 왜 졌는가’라는 책에는 “한국인이 독립을 위해 싸우고 있었던 한국인을 토벌한 것이기 때문에 이이제이(以夷制夷)를 내세운 일본의 책략에 완전히 빠져든 형국이었다”고 쓴 대목도 있다.한편 박민식 장관은 지난 4일 야당 단독으로 국회 정무위 소위를 통과한 ‘민주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안’(민주유공자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할 경우 윤석열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건의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박 장관은 “민주유공자법안은 주무 장관인 보훈부 장관도 그 내용을 알 수 없는 깜깜이 법안”이라며 “지금 상태라면 제가 장관을 그만두더라도 거부권을 건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유공자법안은 이미 관련 법령이 있는 4·19, 5·18 이외의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사망·부상·유죄 판결 등 피해를 본 이들을 예우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법안의 혜택을 보는 대상자는 820여명으로 알려졌으며, 보훈부는 대상자에 대한 세부 내용을 국가기록원에 요청했으나 개인정보라는 이유로 거부당한 바 있다.
  • [단독]살아있을 때도 죽어서도 ‘혼자’인 그들…누구도 찾지 않는 쓸쓸한 죽음[비수급 빈곤 리포트-3회] 영상포함

    [단독]살아있을 때도 죽어서도 ‘혼자’인 그들…누구도 찾지 않는 쓸쓸한 죽음[비수급 빈곤 리포트-3회] 영상포함

    지난해 11월 서울에서 고시원을 전전하던 60대 최순오(가명)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가족과 연락이 끊긴 채 홀로 살았던 최씨는 기초생활보장 수급을 신청했지만 대상자로 선정되지 못했다. 고립된 삶을 살았던 터라 최씨를 기억하는 이는 생전 마지막으로 생활했던 고시원 원장뿐이었다. 원장은 “죽기 전날에도 수급에서 탈락했다고 아쉬워했다. 일자리 구하기도 쉽지 않았던 때라 많이 힘들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고 전했다. 기초생활보장 수급을 받지 못해 어려운 상황에 있다 죽음을 맞는 이들 중에는 유독 고독사와 무연고 사망자가 많다. 삶을 이어갈 때도 복지망에 편입되지 못한 채 자신의 힘만으로 버텨냈던 이들은 생을 마감할 때도, 그리고 죽은 이후에도 홀로 남겨진다는 얘기다. 고립과 빈곤이 뒤엉켜 빚어낸 비극적인 죽음은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주위에 아무도 없는 상태에서 홀로 생을 마감하는 ‘고독사’는 2017년 2412명에서 2021년 3378명으로 증가했다. 이와 별개로, 시신을 수습하고 장례를 치를 이가 아무도 없어 지방자치단체가 직권으로 사망신고를 해야 하는 ‘무연고 사망자’도 같은 기간 2008명에서 3603명으로 늘었다. 박승희 성균관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공동체 와해와 인간관계의 단절이 사회적 고립을 불러오고, 빈곤 문제와 맞물리면서 고독사와 무연고 사망이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달 2일 찾은 서울시립승화원 화장장 한쪽에 마련된 빈소에는 무연고 사망자인 김인철(가명)씨와 이상길(가명)씨의 위패가 각각 놓여 있었다. 장례 절차도 없이 바로 화장터로 인계되는 것을 안타깝게 여긴 시민단체와 서울시는 2018년부터 약 6.6㎡(2평) 남짓한 이곳에서 마지막 애도를 담아 고인을 떠나보내는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서울시의 공영 장례 서비스 ‘그리다’ 빈소에도 무연고 사망자 3000여명의 위패가 있다. 서울에서만 지난해 1101명이 공영 장례를 치렀다. 같이 일하던 동료나 지인들이 찾아와 고인의 마지막을 기억하는 경우가 간혹 있지만, 대부분 영정사진 하나 없이 위패만 놓여 있다. 매주 금요일마다 이곳에서 자원봉사를 하는 김소진씨는 “세상에서 가장 쓸쓸한 죽음을 애도하는 장례식”이라고 말했다. 이날 진행된 장례에도 김씨와 이씨의 영정사진은 없었다. 시민단체 ‘나눔과나눔’ 관계자 2명, 자원봉사자 1명, 천주교 신부와 수녀, 장례업체 직원 2명 등 모두 7명이 두 사람의 마지막 가는 길을 애도했다. 두 사람의 유해는 무연고자 ‘추모의 집’으로 옮겨져 5년간 보관된다. 무연고 사망자들은 장례 이후 단 한 장의 기록으로 남는다. 지자체는 시신 처리 절차를 마친 후 보건복지부 e하늘장사정보 시스템에 고인의 정보 16개 항목을 기입한다. 이름과 주민등록번호, 사망 원인, 일시 및 장소 등 인적 사항, 사망 정보, 무연고 시신 처리과정 등이다. 그나마 고인의 생전 모습을 가늠해볼 수 있는 항목은 ‘시신의 발생 상황 및 특징’이지만 빈칸일 때가 많다. 이 업무를 담당하는 한 공무원은 “고인이 생전 어떻게 생활했는지를 기록에 남긴다면 좋겠지만, 대부분 구체적 내용을 알 수 없어 주로 빈칸으로 남는다”고 전했다. ‘1946년생, 김명식(가명), 병사, 화장 후 봉안.’ 지난해 코로나19로 생을 마감한 김명식(당시 76세)씨의 마지막 기록도 이렇게 남았다. 김씨는 2년 전인 2021년 5월 아사 직전에 발견됐다. 김씨를 찾아냈던 황미화 사회복지사는 “같은 건물에 사는 다른 사례자를 지원하러 갔더니 집주인이 ‘어르신 모습이 안 보이고, 문을 두드려도 기척이 없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집 앞에는 건강보험료 연체 고지서, 가스와 수도요금 미납 고지서와 함께 며칠 뒤면 가스와 물이 끊긴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황 복지사와 동주민센터 복지담당 공무원이 경찰과 소방을 불러 현관문을 열었고, 침대에 누워 있는 김씨를 발견했다. 문을 두드려도 대답할 힘도, 현관까지 걸어 나올 수도 없었던 상태였다. 사람 사는 곳이라고 보기가 어려울 정도로 집 안 상태는 심각했다. 전입신고를 하지 않아 복지망에 편입되지 못했던 김씨는 같은 해 8월에야 뒤늦게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로 선정됐다. 하지만 제도권 지원을 받은 지 1년도 채 안 돼 세상을 떠났다. 김씨의 사망 이후 시신을 인도해 가는 친인척은 없었고, 김씨는 결국 무연고 사망자로 처리됐다. 김씨는 사망 직전에라도 수급 대상이 됐지만 홀로 사는 비(非)수급 빈곤층 가운데 일부는 외롭게 생을 마감한다. 고시원 단칸방에서 혼자 쓸쓸히 죽음을 맞이하는 경우가 많고, 이들의 죽음은 길게는 몇 달간 드러나지 않기도 한다는 게 복지 담당자들의 말이다. 나충열 천주교 서울대교구 신부는 “경제적으로 궁핍한 1인 가구는 살아 있는 동안에도 무관심과 경제적 고통 속에서 홀로 지내는 경우가 많은데다 사망할 때도, 장례를 치를 때도 혼자인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서울신문의 ‘2023 비수급 빈곤리포트’ 기획 시리즈 기사는 아래 QR코드를 찍거나 링크를 복사해 인터넷 주소창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s://www.seoul.co.kr/news/newsList.php?section=poor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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