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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머니속의 양서/“문고본 인기 되찾자” 안간힘

    ◎대부분 세로짜기… 젊은 독자들 외면/「가로세대」에 맞게 가로짜기·판형 확대/을유·문예출판사등서 앞장… 명예회복 노력 국내에서 출간되는 도서들은 70년대말까지만 해도 세로조판이 대부분이었다.그러나 80년대 접어들면서 가로조판이 점점 늘어나기 시작하더니 지금에 와서는 거의 모든 책이 가로조판으로 나오고 있다.이는 활판인쇄의 시대에서 전산사식의 시대로 넘어가면서 빚어진 결과로 분명 출판형태의 발전된 모습이긴 하지만 이로인한 문제점 또한 적지않다.그중에서도 가장 큰 문제점은 바로 구식판형의 책들이 서서히 사장되어간다는 것이다. 이미 가로조판에 길들여진 독자들이 세로조판의 책을 꺼려하게 됐기 때문이다.특히 대학생 등 젊은 독자층의 세로조판 기피현상은 심각하기까지 할 정도로 알려지고 있다.따라서 과거 아무리 이름을 날렸던 양서라도 지금에 와서는 대부분 독자들의 외면을 받아 재판은 커녕 하나 둘씩 창고에서 썩어가고 있는 실정이다.이같은 현상은 당연히 우리의 독서의 폭을 좁히고 질을 떨어뜨리는 것으로 많은 사람들은 안타까워하고 있다.뿐만 아니라 과거 명성을 날리던 30∼40년 된 출판사들이 많은 종수의 양서를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근래에 와서 하나같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라고 출판관계자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이같은 현실에서 양서의 사장을 염려한 노포출판사들이 새로운 독자층을 대상으로 몇몇 구판의 도서를 새롭게 조판하여 펴내고 있는 것은 크게 고무적인 일로 받아들여진다.특히 을유문화사는 을유문고중의 일부를 골라 보통 크기의 일반 단행본으로 잇따라 출간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지난해 초 「국화와 칼」을 시작으로 최근까지 「격몽요결」「문학개론」「예술이란 무엇인가」「부생육기」등 모두 5권의 문고본을 새 판형으로 펴낸 것이다.이어 곧 「택리지」「양화산록」「술몽쇄언」「용비어천가」등 30여종을 더 펴낼 예정이다.이 책들은 모두 세로조판에서 가로조판으로 바뀌었을 뿐 아니라 판형의 확대와 함께 전산사식으로 글자도 커져 젊은 독자들의 취향에 들어맞는다.그러나 과거 문고본 시대의 영예를 만회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이와같은 작업은 최근 몇 년 동안 이따금씩 있어왔으나 문예출판사등 극히 일부 출판사에서 체계적인 작업을 해오고 있으며 특히 을유문화사의 경우와 같이 문고본에 대한 체계적인 작업은 아직 없었다.사장되어가는 양서의 명맥을 잇는다는 좋은 취지에 반해 신간을 펴내는 것 이상의 경비가 들어 출판사로서는 재정적으로 큰 모험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나온 을유문화사의 다섯권은 을유문고 가운데서도 첫손꼽히는 명저들로서 문고본으로 20쇄이상의 출간기록을 갖고 있다.특히 가장 최근 선보인 「부생육기」는 지난 69년에 첫판이 나온 이래 20여년동안 다양한 독자층에 고루 사랑을 받아오던 책으로 유명하다.또한 이 책은 내용도 내용이려니와 자연스럽고 빈틈없는 우리말을 구사한 명번역으로 더욱 널리 사랑받아 왔다. 때문에 청나라 심복이 죽은 아내를 그리워 하며 생전의 일화들을 담담하게 그린 필기소설형태의 이 책은 지금에 와서는 중국보다도 오히려 우리나라에서 더 잘 알려진 책이 되어버렸다.을유문화사의 고정기주간은 『아무리 위험부담이 따르는 일이지만 이런 양서들을 판형때문에 사장시킨다는 것은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었다』면서 앞으로 독자들의 반응을 보아 작업의 범위를 넓혀나가겠다고 밝혔다. 「부생육기」의 번역자인 지영재교수(단국대)는 『언제부터인가 학생들이 세로조판의 책은 아예 들쳐보려고조차 하지 않는다』면서 이같은 움직임이 계속 확대되어 가길 기대했다.
  • 두륜산/천년고목·운무 어우러진 선경

    ◎해남서 12㎞… 정상까진 4시간/대흥사 둘러싼 동백군락 “장관”/전통다도 명맥잇는 일기암도 가볼만 끝없이 펼쳐지는 망망대해엔 올망졸망한 섬들이 표주박처럼 떠있고 아스라이 이어지는 수평선 너머로 제주 한나산이 희미하게 보여 한 폭의 명화를 감상하는 듯하다.구름이 끼어 바람이라도 부는 날이면 계곡마다 모락모락 피어나는 안개구름이 산세와 어우러져 선경을 연출해 낸다. 오우가와 어부사시사로 유명한 고산 윤선도와 임진왜란 때 승병대장으로 호국에 앞장섰던 서산대사의 발자취가 서린 전남 해남 두륜산 정상(7백3m)­. 산정으로 오르는 길목마다 천년을 넘는 고목과 5m도 넘어보이는 해묵은 동백나무 군락이 산행을 반긴다.그중에서도 금방이라도 화사함을 드러내 보일 듯이 꽃망울을 한껏 부풀리고 있는 동백꽃은 보는 이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전남 해남읍에서 12㎞ 떨어진 곳에 자리한 전남도립공원 두륜산은 대흥사를 품에 안고 있어 더욱 각광을 받고 있다.해남읍에서 남동쪽으로 자동차로 20분가량 달리다보면 대흥사입구인 장춘리에 닿고 이어 대흥사 경내로 들어서게 된다.제일장춘교에서 대흥사앞에 이르는 2·5㎞는 대낮에도 컴컴할 정도로 온통 거목의 긴 터널을 이루어 그야말로 장관이다.고목으로 우거진 사잇길을 따라 해탈문을 들어서면 고색창연한 기와지붕이 천년풍상을 견디어 온 고찰의 풍모를 대변한다. 두륜산 정상까지는 두 길이 나 있다.하나는 진불암을 거치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북암을 먼저 거치는 코스다.어느 길을 택하더라도 4시간 가량이면 정상까지 갔다올 수 있다.오르막길에는 천연바위로 이뤄진 구름다리가 가로질러 하늘에 오르는 즐거움도 만끽할 수 있다. 하산은 노승봉,가련봉을 거쳐 북암쪽을 택할 수도 있으나 길이 험해 만일암터길로 내려오는 것이 보통이다.만일암터에는 천년 묵은 거목이 빈 터를 지키며 그날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하산길에 천연기념물 173호인 왕벌나무와 동백나무로 둘러싸인 대흥사를 관람하는 것은 두륜산 산행의 하이라이트로 꼽힌다.신라 진흥왕 5년(서기 544년) 아도화상이 창건한 대흥사 경내에 들어서면 대웅보전·보련각·천신암·일주문 등 34개 건물과 보물 4점 등이 보는 이를 압도하며 가람의 풍채를 자랑하고 있다. 또 이웃 표충사에는 서산대사가 생전에 입었던 금란가사를 비롯,밥그릇으로 사용했던 옥발 3점,칠보염주 1점,신발 2켤레,서산대사 친필인 정선사가록,임금이 내린 교지,도끼,창,승군단표지물,신호용 나팔 등이 전시되어 대사의 큰 뜻을 일러준다. 이와 함께 조선조말 초의스님이 기거하며 전통다도의 명맥을 이어온 일기암도 꼭 가볼 만한 곳이다.귀로에는 조선시대 유명한 화가 공재 윤두서 자화상과 고산 윤선도의 오우가등 유물 2천5백여점을 보관 전시중인 고산유적지도 돌아볼 수 있다.특히 이 유물관 뒷산은 천연기념물 241호인 비자나무숲으로 덮여있다.시간적 여유가 있으면 우리 나라 육지 땅끝인 토말과 명량대첩지 우수영을 돌아보고 해남읍 천일식당(전화 0634­536­4001)에서 한식을 맛보는 것도 다른 곳에서 찾을 수 없는 즐거움이다. 서울에서 대흥사를 가려면 호남고속도로 비아 인터체인지에서 송정∼나주∼영암∼성전∼옥천∼해남∼장춘등을 잇는 코스가 지름길이다.
  • 예지본능/안태혁 보험감독원장(굄돌)

    인간은 누구나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이것을 우리는 예지본능이라 한다.이와 같은 본능을 가지고 있는 것은 날짐승이나 미물들의 세계에서도 마찬가지다.까치가 집을 지을 때 남쪽으로 문을 내면 겨울에 북풍이 강하게 불고,개미가 높은 곳으로 올라가면 장마가 온다는 이치도 일종의 예지본능적인 행위라고 할수 있다.그래서 인간의 감성은 그것을 어떻게 개발하느냐에 따라 무한한 능력을 발휘할 수도 있는 것이다. 우리는 잘 아는 세계적인 석학 토인비 교수나 미래학자 엘빈 토플러,2000년대를 예언하고 있는 「유러퀘이크」의 저자 대니얼 버스타인 등은 앞으로 우리 앞에 닥쳐올 일들을 논리적으로 예시하는데 뛰어난 통찰력을 가졌다고 본다. 우리나라에도 일찍이 미래를 정확하게 감지했던 선지자들중에 이조시대 성리학의 대가였던 율곡 이이 같은 분은 십만양병설을 주장하여 임진왜란을 예언하지 않았던가.특히 근세에 들어 신화엄경을 완역하고 열반에 드신 탄허스님은 유·불·선 삼교를 통달하여 생전에 놀라운 예지력을 보여주신분으로 유명하다. 그분은 6·25동란과 울진·삼척지역의 무장공비 침투사건을 미리 알고 있었을 뿐 아니라 월남전의 패망을 미국이 철수하기 15년 전에 예언한 바 있다.또한 우리나라의 통일과 국가번영,일본의 몰락,지축의 변경,지구영토의 확장 등 앞으로 일어날 엄청난 세계의 변화를 오래전에 예고해 주기도 했다.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은 한 마디로 불확실성의 연속이라 할 수 있다.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것이 급변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그야말로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변화의 물결속에서 어떻게 대처해 나갈 것인지 분간하기조차 어렵다.그러나 이런 때일수록 미래를 예측하고 사전에 대비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인간에게 부여된 예지본능을 일깨워 앞을 내다볼 수 있는 통찰력과 지혜를 갖도록 해야겠다.요즘처럼 어렵고 힘든 시대를 살아가려면 누구나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잠재력을 개발하는 것도 소중한 일이 아닌가 생각한다.
  • 고 이창희씨 상속세/유족,2백54억 신고

    새한미디어의 고 이창희회장 유족들이 20일 상속세 2백54억원을 국세청에 신고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는 지난해 대한유화 고 이정림회장 유가족들이 신고·납부한 2백78억원에 이어 역대 상속세 랭킹 2위에 해당하는 액수이다. 고 이회장은 부친(고 이병철삼성그룹 창업주)으로부터 물려받은 제일합섬주식 1백23만5천2백주(2백억4천3백59만원)와 자신이 세운 새한미디어의 주식 86만8천3백주(2백19억8천4백82만원)등 4백20억2천8백41만원을 미망인인 이영자씨(55)와 장남 재관씨(29)등 4명의 가족에게 남겼다. 여기에 생전에 부친으로부터 물려받은 이태원동 주택(대지 3백21평,건평 1백50평)과 골프회원권 2개,충북 중원군의 임야 10만평 등 42억원어치의 재산을 남겼으며 유가족들은 상속세율 55%를 적용,상속세액을 이같이 신고했다. 고 이회장의 상속인들은 이날 4백만원만 납부하고 나머지는 연부연납을 신청했다.
  • 부산토박이의 소박한 자연관/우신출유작 18일 첫 서울전시

    생전에 한번도 서울화단에 소개되지 않았던 부산태생의 서양화가 고 단광 우신출화백이 사후에야 서울에서 재평가를 받게 됐다. 인사동 예맥화랑(732 ­ 13 20)이 그의 유작전을 마련,18일 개막한다. 오는 24일까지 계속될 유작전에는 「파도」 「강변갈대」 「을숙도 설경」 등 우화백의 30년대부터 90년대까지의 작품 총 40여점이 전시된다.서울에서 처음으로 전시되는 그의 작품들은 거의 대부분이 자연을 소재로 한 향토색 짙은 사실적인 풍경화들이다.우화백은 부산지역에서만 화가활동과 작품발표를 했던 관계로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지진 못했지만 소박한 향토적 자연미를 진실하고 애정있게 표현했다는 평가를 얻고 있다. 지난 해 10월 세상을 떠난 우화백은 19 11년 부산에서 태어나 생전에 단 한번도 부산을 떠나지 않았다는 부산 토박이.독학으로 교사자격을 얻어 화력 63년에 교직생활 52년이라는,화가의 꿈과 후진양성이라는 뜻을 함께 펼쳐나간 의지의 소유자이기도 하다.우화백은 일제시대때 선전에 출품,여러 차례 입선했으며 6·25때 종군화가로전선에 참가하기도 했다.
  • “국제예절 모르는 관광객 많아요”(여사장)

    ◎이스턴관광회사 양정숙사장 『우리문화와 외국 문화가 다르지만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예절이 있습니다.우리도 해외여행이 자유로워진 만큼 이제 국제 예절을 따라가야지요』 「이스턴」관광회사(753­5293)의 변정숙사장(55)은 최근 여행알선업체를 통해 단체로 해외여행을 즐기는 사람들이 외국인들로부터 「예절도 모르는 국민」이라는 소리를 듣는 것이 못내 안타깝다고 한다. 『물론 여행 경험도 적고 짧은 일정에 많은 나라를 구경하다보면 피곤하지요.그러나 국제공항 같은데서 남의 의자에 다리를 올리거나 길거리에서 주저앉는 행동은 삼가야지요』 지난 82년 남편을 여의고 회사를 몰려받은 변사장은 9년만에 관광업계에서는 「알아주는」경영인이 됐다. 결혼후 27년간 가정일에만 몰두했기 때문에 처음에는 회사경영을 꿈도 꿀수 없는 처지였다.경험이라고는 상가를 빌려 민속공예품 장사를 1년간 해 본것이 전부.그러나 장사로 돈을 벌어야겠다는 뜻은 없었고 그저 취미삼아 자신이 좋아하는 장식품만 사들이다보니 점포관리는 엉망이 됐고 결국 엄청난 세금만 믈고 가게문을 닫았다. 『정말 어리석고 세상물정 모르던 「과거」였습니다.주위 친지들에게 장사에 자신있다고 큰소리까지 쳐놨는데 그만두기가 쉬웠겠어요』 남편과 사별후 선박회사등 다른 계열사는 모두 전문경영인들에게 물려주고 이회사만 직원들의 간청에 못이겨 맡았다. 그가 이 회사에 각별한 애착을 가진것은 51년에 설립,40년 전통을 가진데다 54년 국내 「제1호」로 IATA(세계항공기구)에 가입하는등 남편이 생전에 심혈을 기울였다는 이유도 있다. 『어음을 제때에 메우려고 맨발로 뛰다시피 했어요.처음일을 생각하면 악몽같지만 이제는 값이 적정하고 질좋은 관광상품을 개발하기 위해 해외를 직접 답사할 정도로 여유를 찾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표현대로 「소수정예」로 짜여진 30여명의 직원들에게 늘 「돈벌이」보다는 「성실함」을 강조한다.「1년 매출액이 얼마냐」 「관광객을 어떻게 하면 많이 유치할까」하는 문제는 그의 안중엔 없다. 그는 『우리 회사를 한번 이용한 고객이 믿고 다시 찾아주는 것이 가장 확실한 광고』라고 자신있게 말할만큼 회사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이 대단하다.
  • 서울대합격 84%가 300점 이상/어제 합격자 발표

    ◎작년보다 4.2배 늘어/3백점 이상 탈락 3천8백명/합격선 16∼31점 상승… 법대 3백19점 최고/동점낙방 2백80명 학력고사성적이 3백점 이상이면 고득점이던 시대는 지나갔다. 서울대는 29일 92학년도 신입생전형시험 합격자를 발표,4천6백85명의 합격자 가운데 대입학력고사성적이 3백점이상인 합격자가 모두 3천9백24명으로 83·75%를 차지했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해의 9백34명보다 무려 4·2배나 늘어난 것이다. 학력고사가 이처럼 쉽게 출제됨에 따라 학과별 합격선도 지난해보다 10∼31점이나 치솟아 예·체능계와 일부 비인기 학과를 제외한 대부분의 학과에서 합격선이 3백점을 넘었다. 합격자의 평균점수는 인문계가 3백17점,자연계는 3백11점이었다. 비공식 집계된 학과별 합격선은 법대가 3백19점으로 가장 높았으며 의예과와 물리학과가 3백18점,경제학과 3백17점,국제경제·금속공학과 3백16점,원자핵공·토목·경영·정치·외교학과 3백15점,치의예·컴퓨터공·전자전기제어계측·화공·신문학과 3백14점,영문·사회학과 3백13점,인류학과 3백10점 등으로 나타났다. 서울대의 한 관계자는 이날 『학력고사성적 3백점이상 탈락자가 모두 3천8백명선으로 추정된다』고 밝히고 『이번 입시로 3백점이상을 고득점으로 보던 기존관념이 무너졌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이번 전기대 입시에서 합격자와 불합격자를 막론하고 3백점이상 고득점자가 전체응시자 62만6천여명 가운데 2·4%가량인 1만5천여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됐다. 서울대 합격자의 학력고사점수분포를 보면 3백20점이상이 인문계열에서 5백48명,자연계열에서 5백90명등 모두 1천1백38명으로 24·29%를 차지했으며 3백15점이상 합격자는 인문계열 1천1백42명,자연계열 1천2백92명 등 모두 2천4백36명으로 51·99%나 됐다. 인문계열의 3백점이하 합격자는 2백95∼2백99점대의 11명에 지나지 않았다. 자연계열 3백점이하 합격자는 3백17명이었으며 2백65점이 최하 합격선이었다. 서울대 교무처장 백충현교수는 『올 입시에서는 3백점이상 고득점자가 대거 탈락하고 동점자 처리를 위해 생년월일까지 따져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고밝히고 『입시의 난이도가 지나치게 낮아 서울대의 경우 우수한 학생을 뽑는데 문제가 있었다』고 말했다. 학력고사 동점자로서 낙방한 수험생은 2백80명선인 것으로 알려졌다. 재학행과 재수생의 합격자 분포는 재학생이 57·9%인 2천7백11명이었고 재수생은 41·7%인 1천9백51명,검정고시 출신이 0·4%인 23명으로 나타나 재수생의 합격자가 90학년도 45·8%,91학년도 44·4%,올해 41·7%로 해마다 줄어들었다. 지망별로 보면 법대가 모두 1지망자로 채워졌으나 전체적으로 지난해보다 2백82명 늘어난 4천2백49명이 제1지망자로 채워지고 2지망합격자는 4백36명이었다. 성별로는 지난해와 똑같이 남학생이 78·9%(3천6백98명),여학생은 21·1%(9백87명)였다. 출신지역별로는 서울시내 고교출신이 2천20명으로 지난해보다 4·7% 늘어난 46·1%를 차지했고,부산 4백87명,경남 3백52명,광주 2백84명,대구 2백66명,전북 2백16명,경기 2백2명,대전 1백59명 순으로 도시지역출신 학생들이 강세를 보였다. 1명이상 합격자를 배출한 학교는 모두 5백52개교로 이가운데51명이상 합격자를 낸 학교는 대원외국어고등 3개교,41명∼50명 합격학교는 8개교,31명∼40명 합격학교는 5개교였다. 한편 전체수석합격은 자연과학대 물리학과를 지원한 이학호군(18·서울 양정고3년)으로 학력고사성적이 3백36점이었다. 인문계열 수석은 법학과에 지원한 이륜조양(16·경기여고3년)으로 3백32점을 받아 여학생 전체수석의 영광도 함께 안았다. 자연계열 여학생수석은 전기·전자·제어공학과군에 지원한 김은수양(17·서울과학고3년)으로 학력고사 3백28점이었다. 최고령합격자는 사범대 영어교육과에 지원한 박필환씨(34)였으며 최연소합격자는 박승희군(15·목포 홍일고3년)이었다.
  • 서울대 전체수석 차지한 이학호군

    ◎전화국 맞벌이부부 아들 “면학만세”/“114안내원 19년 어머니에 감사”/“상대성이론 감명… 물리학 선택/TV과외로 국·영·수 기초닦아”/25평 전세집엔 할머니등 6식구 단란 서울대 신입생전형에서 전체수석합격의 영광은 맞벌이 전화국직원의 맏아들 이학호군(18·양정고 3년)이 차지했다. 『뜻하지 않은 결과라 좀 얼떨떨하지만 뒷바라지 하시느라 고생하신 부모님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이군은 수석합격의 소식을 듣는 순간 쑥스러운듯 고개를 숙이며 아버지 이용귀씨(45·서울구로전화국 시흥분국 전자실장)와 어머니 성모단씨(41·서울번호 안내국직원)의 손을 덥석 잡았다. 지난10일 20년 근속상을 받은 아버지 이씨에게는 학호의 수석합격 소식이 「생애최고의 선물」이었다. 이군은 과외나 학원보다는 학교수업에 충실한 지능지수 1백56의 「공부벌레」. 고교1년때부터 국어·영어 등 9개 시험과목별로 참고노트를 만들어 새롭고 어려운 문제등을 적어가며 시험준비를 했다. 이 노트는 이군에게 유일한 「참고서」이며 「개인교사」였다. 날마다 상오6시면 어김없이 일어나 아버지가 모는 프라이드 승용차로 학교에 가 수업과 자습을 마치고 하오8시30분쯤 집에 와 다음날 상오2시까지 공부하고야 잠자리에 드는 하루4시간 밖에 잠을 못자는 꽤나 힘든 규칙생활을 했다. 공부에 유일하게 도움을 받았다면 TV과외로 특히 국어 영어 수학의 기초를 닦는데 힘이 됐다. 『공부를 하다 지루하거나 틈이 나면 「삼국지」등의 소설을 읽거나 브람스의 교향곡을 들으며 마음의 여유를 가졌다』는 것이 이군의 긴장해소책이었다. 물리학과를 지원하기로 마음먹은 것은 지난87년 신도림 중2학년때 선생님의 물리공식 증명과정을 보며 과학의 깊이에 호기심이 생겨서였다고 했다. 그뒤 쉽게풀어 쓴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과 「물리학기초」「과학의 역사」등 과학도서들을 도서관 등에서 빌려 읽으며 물리학자의 꿈을 키웠다. 아인슈타인등 물리학자가운데에서도 특히 불구의 몸으로 물리학의 대가가된 스티븐 호킹박사를 존경한다고 했다. 지난달 말 지원학과를 정할때는 가까운 친구들이 『왜 배고픈 학문을하려고 고집하느냐』라고 말리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물리학을 한층 높이고자하려는 그의 포부는 결코 흔들리지 않았다. 『앞으로 대학원과 유학등을 통해 깊이있게 물리학을 공부할 계획』이라면서 『특히 원자세계를 다룬 「쿼크이론」을 연구하고 싶다』고 했다. 몸무게가 80㎏이 넘어 친구들로부터 「공포의 삼겹살」등으로 불리는 이군은 성격이 쾌활하고 낙천적이어서 친구들도 많다. 『입학하기전까지 테니스와 합기도를 배우면서 체중조절을 해 날씬한 몸매를 가꿀 계획』이라고 가족들을 웃길정도였다. 이군의 아버지는 『부모가 모두 직장생활을 하느라 뒷바라지도 변변히 못했는데 이렇게 기쁜 선물을 안겨주었다』고 대견해했다. 이씨는 『학호덕분에 상오9시의 출근시간이 상오7시30분으로 당겨져 직장에서 제일 일찍 출근하는 직원이 됐다』고 그동안의 에피소드를 털어놓기도 했다. 어머니 성씨는 지난 72년 남편 이씨가 근무하던 서울 영등포전화국에 들어가 19년째 시민들의 전화번호안내를 해오고 있다.신도림동의 25평짜리 2층전세집에는 이군의 할머니 이양순씨(65),동생 광호군(17·구로고2년)과 연희양(13·신도림여중1년)등 6식구가 함께 살고있다.
  • “어머니 꼭 만날것”/한필성씨

    【의정부=김동준기자】 지난해 3월 일본 삿포로에서 북쪽의 여동생 한필화씨와 40년만에 상봉한뒤,고향의 어머니를 방문하려다 뜻을 이루지 못했던 한필성씨(57·목축업·파주군 교하면 동태리)는 『어머니 연세가 올해 85세』라면서 『이번 합의를 바탕으로 어머니 생전에 고향을 방문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눈물지었다.
  • “「망향의 한」 생전에 풀리려나”/이산 노령자 1백4명 판문점에

    ◎“지척이 고향…” 눈시울 붉히고/“북녘에도 평화가” 손모아 기도/94세 할아버지,“부모 묘소 누가 돌보나”/자유의 집·군사회담장 돌아볼땐 깊은 감회에 『죽기 전에 가보지도 못할 내 고향을 한발치라도 더 가까이에서 보고싶어 왔디요』 북녘땅에 고향을 두고온 70세이상 노인 1백4명이 18일 판문점을 찾아 눈앞의 보일듯 말듯 가물거리는 고향을 그리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들의 판문점 방문은 1천만 이산가족재회추진위원회(위원장 조영식경희대총장)의 주선으로 이날 처음 이뤄졌으며 위원회는 70세이상 고령 이산가족 7백50명을 대상으로 19일과 오는 12월1일등 모두 3차례에 걸쳐 이같은 행사를 가질 예정이다. 이날 행사에는 94세부터 75세까지 할아버지 87명과 할머니 17명이 참가했다. 이들은 경비병들의 안내를 받으며 판문점안의 자유의 집과 남북군사회담장등을 돌아보며 남다른 감회에 젖었다. 강원도 평강군이 고향이라는 최고령 장종운할아버지(94·경기도 부천시 고강동)는 두루마기차림에 『한탄강만 넘으면 고향인데도 40년동안 단 한번 고향땅을 보지못해 판문점에서나마 고향을 보고싶어 왔다』면서 『돌아가셨을 부모님의 묘소는 누가 돌볼지 가슴아프다』며 눈물을 흘렸다. 아들 송명섭씨(71)의 부축을 받으며 멀리 개성 송악산을 응시하던 강용택할머니(93)는 짚고 있던 지팡이를 들어 『저 산밑이 내 고향』이라고 가리킨 뒤 『죽기 전 이렇게 가까이에서 고향산천을 보게돼서 정말 기쁘다』고 말했다. 함북 경성군이 고향인 이금순할머니(83·서울 중구 필동)는 남북군사회담장 안을 돌아보다 군사분계선을 넘었다가 『지금 할머지는 북한땅에 서 있다』는 안내원의 설명을 듣자 움칫 놀란 표정을 짓다가 곧 고향을 밟아보았다는 기쁨에 수건을 꺼내 얼굴을 감싸기도 했다. 이들은 돌아오지않는 다리와 멀리 북쪽의 선전마을인 기정동 평화촌등이 내려다보이는 초소에 이르자 5분동안 북쪽을 향해 간절한 기도를 올리기도 했다. 『통일이 언제 올지 난 모릅니다.고향에 있는 내자식 내부모님의 소식을 알고싶을 뿐입니다.빨리 통일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라고.
  • 「유언신탁」 국내 첫 서비스/유언장 보관·재산상속등 처리

    ◎제일은 18일부터 제일은행은 국내 처음으로 생전에 유언장을 보관관리하고 사후 이를 집행해주는 유언신탁 서비스를 18일부터 실시한다. 서비스내용은 개개인의 사정에 맞게 유언서를 자필·공증·비밀증서·녹음등에 의해 작성하도록 도와주며 이를 금고에 보관했다가 안전하게 상속인에게 전달해 준다. 또 유산은 유언서에 따라 신속히 분배·집행해준다. 유언신탁은 만17세 이상이면 누구나 가입이 가능하며 국내의 여행및 출장,자가운전자들에게 인기를 끌 것으로 보인다. 가입비용은 보관수수료 3만원에 매년 1만원씩이다. 유언집행시에는 기본수수료 30만원에 재산액에 따라 ▲상속재산액이 1억원미만이면 이의 1천분의 5 ▲1억∼2억원은 1천분의 4 ▲2억원초과시는 1천분의 3을 추가부담한다.
  • 고르비/섭섭한 사람은 어머니냐·미테랑이냐

    ◎「쿠데타」 영·불판 내용 달라 화제/“정치적 이유로 어휘 바꿨다” 풀이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은 최근 그의 저서 「쿠데타」에서 그가 크림에 있을 때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이 전화를 해주지 않은 것을 섭섭해 했으나 지난달 31일 미테랑을 만나서는 그런일이 없었다고 부인했다. 여기서 고르바초프는 자신의 책에 기술된 내용을 부인함으로써 미테랑이 둘러쓰고 있던 「불분명한 태도」의 불명예를 벗겨주었으나 이 책의 불·영 두 번역판의 차이가 왜 생겼는가 하는 새로운 의문을 낳았다. 『포로스에서 나는 조지 부시와 통화했다.미테랑이 전화해주도록 돼 있었으나 그는 그러지 않았고 나는 오늘날까지 이를 섭섭히 여기고 있다』는 것이 문제부분이다. 반면 하퍼스 앤드 콜린스사에서 나온 영어판에는 「미테랑」이 「어머니」로 돼있다. 러시아어판 교정을 본 모스크바의 노보스티 출판사의 한 간부는 그 교정쇄에는 분명히 「미테랑」이 아닌 「어머니」로 돼 있었다면서 『불·영 두 나라에 서로 다른 텍스트가 간 것같다』고 말했다. 시테출판사의 책임자는 고르바초프의 법적 대리인인 영국 출판업자가 넘겨준 원고를 충실히 번역해 출판했다고 밝히고 있다.그런데 왜 이런 일이 생겼는가에 대해 이 출판사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인쇄에 들어가기 조금전에 고르바초프의 외교 자문역 한 사람이 문제의 부분을 「어머니」로 바꾸기 위해 런던에 갔었으나 영어판 출판사가 우리에게 이를 알리는 것을 잊었거나 알릴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결국 고르바초프가 정치적 이유로 자신의 저서내용 일부를 사후에 고쳤을 것이라는 해석이 나오게 된다. 저자의 생전에 나오는 자서전,특히 정치인의 그것은 솔직할 수 없다는 것을 보인 한 예가 될 것이다.
  • “효행실천” 권장비 세우기 10년

    ◎“사재 털어 150개”… 정병선옹/“물질만능에 젖은 세태보고 결심”/가족도 모르게 준비… 3백개 목표 『효(효)는 모든 행동의 근본입니다.요즘 사람들은 서양의 물질문명속에서 효도의 의미를 잊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요즈음같은 물질만능주의 세태속에서 효도를 권장하는데 온몸을 다 바치고 있는 사람이 있다. 지난 10년동안 전국 방방곡곡으로 돌아다니며 효도권장비를 세워온 평천 정병선옹(75).정옹이 그동안 세운 효도권장비는 자그마치 1백50여개에 이르고 있다. 그는 지난 81년 경주 정씨종친회 회장직을 맡고 부터 이 일을 시작했다. 『고희(고희)를 눈앞에 두고 지나간 셰월을 되돌아보니 세상의 물질은 날로 풍성해지는데 올바른 정신은 날로 시들어 가는게 여간 안타깝지가 않더군요』 그는 결심이 서자 서울에 가지고 있던 조그만 점포 4곳과 고향 충남 서산에 있는 염전등을 처분했다. 그리고 그동안 모아두었던 30여개의 예금통장도 헐었다.큰일은 혼자하는 것이란 생각에 이 일은 가족들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그는 성균관전의로 있으면서 사귄 대전대 명예교수 정주영박사(당시 성균관부관장)에게 부탁해 비문을 받았다.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다.효도하여 본을 세우자.본을 세우지 아니하면 인간의 도(도)가 서지못함이 역사의 증언이다.…효성으로 하늘의 뜻을 성실하게 수행하는 참된 모습에 축복이 있을 것이다』 비문이 완성되고 비석을 만들기까지 꼭 10년의 세월이 걸렸다. 마침내 지난 3월13일 서울 성동구 군자동 한국청년회의소 본관앞뜰에 첫 효도권장비를 세웠다. 전국적으로 모두 3백개를 세울 계획아래 충남 홍성,강원도 설악산관광안내소앞,울릉도등 주로 사람들의 눈에 잘 띄는 곳을 찾아 계속 비를 세워나갔다. 비를 세우기 어려운 곳에는 가로 40㎝·세로 30㎝쯤 되는 축소된 비를 만들어 기증했다. 이 작은 비만도 2백여개나 됐다. 『처음에는 각 도·군등에서 비를 세울 땅조차 주려고 하지 않았다』면서 『그러나 요즘에는 너도나도 비석을 세워달라고 전화를 걸어온다』고 더 없이 흐뭇해했다. 정옹은 『이제 할일이 있다면 경기도 동두천에 매입해 놓은 땅 8천여평에유교학관을 세워 후학들에게 효를 가르치는 일과 살아 생전 통일이 이뤄져 북에도 효도권장비를 세우는 것』이라고 했다.
  • 부의 세습/외국은 어떻게 하고 있는가

    현대그룹 정주영명예회장 일가의 주식 변칙증여·상속 사실을 계기로 재벌그룹을 중심으로 한 「부의 변칙세습」이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현행 세법에 규정된 상속·증여세를 제대로 물고는 재벌그룹이 2세에게 그대로 세습되기가 어려운데도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모든 재벌기업의 세습이 어떻게 이루어져 왔으며 미국·일본·독일등 외국의 경우는 어떤지 알아본다. ◎미국/기업 경영권등 이사회전속 제도화/상속세 기초공제 초과땐 최고 55% 누진과세 미국에서는 부의 대물림이란 상상하기조차 어렵다. 회사경영 형태를 살펴보면 실질적 경영권이나 의사결정권은 전적으로 이사회에 속하기 때문이다. 세계 최대의 석유 부호였던 록펠러 2세의 경우 1934년 부인과 자녀 6명의 장래를 위해 총1억달러를 신탁하면서 3천5백여만 달러의 증여세를 물었다.부인을 위한 신탁금이 1천8백30만달러로 가장 많았는데 석유회사 주식으로 납입했다. 그는 또 록펠러 센터등 소유재산을 처분했던 1952년 후손들에게 6천3백30만달러의 재산을 나눠주면서 3천2백20만달러의 증여세를 냈다.그의 재산 양여는 이때도 대부분 신탁으로 이뤄졌다. 록펠러가의 이같은 재산상속및 관리방식은 미국부호들의 세계에선 「전형」으로 통한다. 록펠러 2세는 「1934년 신탁기금」에 대한 통제권을 자신의 보좌관들로 구성한 피신탁인 위원회가 행사하도록 했으며,위원들에겐 후임자 임명권이 주어졌다.기금관리는 체이스 내셔널 뱅크 신탁부가 맡았다. 그는 자녀들에게 기금에서 생기는 수익은 갖게했지만 기금 자체를 소유케하지는 않았다. 미부호들에게 가장 큰 관심사의 하나는 재산관리및 상속과 관련하여 어떻게 하면 면세혜택을 많이 받고 절세를 극대화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때문에 뉴욕의 부촌에서 이같은 세무를 담당하고 있는 변호사들은 미국에서도 가장 수입이 좋은 직종으로 꼽힌다. 미국의 상속세 기초 공제액은 60만달러이며 이를 초과할 경우 최저 18%에서 최고 55%(3백만달러 이상부터)의 누질세율이 적용된다. 재산세를 배우자에게 상속하거나 자선단체에 기증하는 경우 상속세와 증여세가 면제된다.미국에서 많은 부자들이 생전에사재를 털어 문화재단을 세우거나 유산을 자선단체에 상속시키는 것은 사회적 관행이기도 하지만 이같은 세제와 무관하지 않다. 현재 미10대 재벌기업들의 계열사에 대한 지분율은 10%정도에 불과하다.록펠러가의 엑슨이 8%,US스틸 11.8%,제너럴 모터스 9.9%,제너럴 일렉트릭 9.4%등이다. 이들 재벌의 가족 지분율은 엑슨이 0.8%,US스틸 1.2%,제너럴 모터스 0.75%,제너럴 일렉트릭 0.4%등으로 나타났다. ◎일본/기업경영·소유 분리… 직계승계 없어/도요타사등 창업주 주식지분 1%도 안돼 일본 도요타자동차의 창업자인 도요타 에이지(풍전영이)는 평생을 바쳐 도요타를 세계적인 대기업으로 성장시켰다.그러나 그가 현재 가지고 있는 주식은 전체주식의 0.18%에 불과하다.도요타는 자신의 기업이 아닌 것이다. 창업자의 아들인 도요타 쇼이치로가 소유하고 있는 주식비율도 0.86%에 지나지 않는다.창업자와 그의 가족이 가지고 있는 모든 주식을 합쳐도 전체주식의 겨우 1%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비단 도요타자동차만이 그런 것은 아니다.일본의 대표적인 위스키회사 산토리의 창업자 도리씨와 그의 가족의 주식 지분역시 1%미만이다. 마쓰시타(송하)전기의 신화를 창조한 마쓰시타가 생전에 가지고 있었던 주식 지분도 2.8%에 불과했다.일본의 기업들은 이같이 창업자와 그 가족들이 소유하고 있는 주식지분율이 매우 낮다.일본기업들은 족벌경영과 부의 세습을 위해 각종 비리를 일삼는 많은 한국의 대기업들과는 다르다. 일본 대기업의 주인은 창업자나 그의 가족이 아니다.한국의 대기업은 가족중심적이지만 일본의 대기업은 금융기관등 법인소유가 일반화되어 있다. 일본통계에 의하면 지난 89년3월 현재 일본기업의 개인지주 비율은 22.4%에 불과한 반면 법인지주비율은 73%에 이르고 있다.특히 법인인 은행,보험회사등의 투자재원이 국민으로 부터 나온다는 점에서 일본의 대기업은 「국민기업」이라는 측면이 강하다. 일본 대기업에 있어서 자본가의 영향력은 갈수록 약화되어 가고 있다.이같은 현상의 역사적 배경은 제2차대전후 맥아더사령부에 의한 재벌해체작업으로 거슬러 올라간다.맥아더사령부는 기업을 독점하고 있던 재벌가족의 기업지배를 배제하고 주식소유를 분산시켰다. 미국에 의해 해체된 재벌들은 개별기업들의 연합체적 성격을 띤 거대한 기업집단으로 변신했다.미쓰비시,미쓰이,스미모토등이 대표적인 기업집단들이다.그러나 이들의 경영과 소유는 분리되어 있다.이들 뿐만이 아니다 거의 모든 상장기업들도 마찬가지다. 일본의 대기업들은 이같이 자본과 경영이 분리되어 있기 때문에 기업의 세습승계란 거의 없다.혼다의 창업자인 혼다 소이치로(본전종일낭)는 직계가족을 자신의 회사에 입사조차 시키지 않았다.그는 스스로 젊고 유능한 후계자에게 경영권을 넘겨주기까지 했다.그러나 한국의 기업풍토는 창업자의 직계라는 이름만으로 후계자로 선택된다.한국과 일본의 기업가정신은 한일간의 기술수준 만큼이나 큰 격차를 보이고 있다. ◎독일/주식 2세 이전땐 증여세 80% 중과/「국민기업화」 정착… 부의 대물림 제도적 봉쇄 독일은 자본과 노동의 갈등을 오랫동안 경험해온 만큼 2차세계대전이후 기업운영의기본방향을 사회보장에 바탕을 두어왔다.또 기업 뿐만 아니라 사회분위기가 전체적으로 공개되어 있어 탈세나 주식의 위장공개등으로 한 기업의 부가 후계세대에게 불법적으로 이전될 수 없다. 모든 경제활동이 은행이나 공증인을 통해 이루어지도록 제도화되어 있어 불로소득이란 있을 수 없으며 기업의 주식이 은밀하게 다음세대로 인계될 수 있는 소지가 막혀있어 재벌총수의 세습은 불가능하다. 더욱이 자본과 경영이 완전히 분리되어 있어 아무리 대주주라도 경영에는 참여할 수 없으며 회사의 운영은 전문경영인들과 종업원들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 독일대기업의 2대 지주는 사원지주제와 사원경영참여권으로 기업이 국민기업으로 뿌리내리는데 모태가 됐다.사원지주제는 75년 법제화돼 한 기업의 주식 30%이상을 사원들에게 배당하도록 되어있다. 사원경영참여제도의 정착으로 인해 근로자들도 일정기간 근속하게 되면 회사경영에 책임을 지게되며 기업의 추가이윤을 배당받기 때문에 기업경영의 감시자로 독일 기업이 국민기업으로 정착하게 되는데 큰역할을 담당해왔다. 창업주가 생존시 기업의 주식을 2세에게 넘겨줄 경우에는 상속세·증여세가 80%이상 부과되며 사후에 인계될 경우에는 소득세가 따라붙기 때문에 한 기업의 부가 후계세대에 이전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더욱이 독일의 주식회사들은 완전히 공개되어 있기 때문에 부의 위장이전이 이루어질 수 없어 창업주는 자신의 부를 자식에게 물려주기보다는 기업에 돌려주는 것이 일반화되어 있어 기업의 부는 기업에 그대로 남아있게 된다. 이 때문에 독일의 대기업인 지멘스·메르세데스 벤츠·보쉬등의 계열기업의 경영진중에서는 창업주의 성인 지멘스·벤츠·보쉬의 성을 찾아볼 수 없으며 단지 많은 주주중의 한사람으로 남아있을 뿐이다. 몇년전 독일의 신문재벌인 악셀 스프링거가 사망하고 그의 부인이 이 재벌을 인계했으나 신문사 경영문제로 베르리너 모르겐포스트지등 독일 유수의 신문사종업원들과의 마찰로 주식의 대부분을 회사에 반납하고 일개 주주로 남아있는 것은 그 한 예라고 할 수 있다. ◎우리의 경우는어떤가/기업합병·물타기 증자… 변칙상속 일쑤/작년 상속세,국세의 1.5%… 일과 큰 격차/세제개선·금융실명제등 보완이 과제로 우리나라 재벌기업의 역사가 40여년에 이르면서 많은 기업들이 2세들에게 물려졌다.그러나 지금까지 세습에 의해 규모가 줄었거나 전문경영인에게 맡겨진 사례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오히려 2세에게 물려지면서 더욱 비대해진 경우가 많다.그만큼 재벌들이 부의 세습을 어렵게 하고 있는 현행 세법을 거의 제대로 지키지 않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현행 우리나라의 상속과 증여에 관한 세법에는 상속의 경우 10억원이상일때 55%,증여의 경우는 5억원이상일때 60%의 세율의 상속·증여세를 물도록 규정하고 있다.법을 제대로 지킨다면 기업을 세습할 경우 규모가 절반으로 줄어야 하며 3대 4대에 가면 아무것도 남지 않아야한다. 그러나 80년이후 우리나라에서 재벌기업들의 실질적 기업경영권이 2세 또는 3세에게 넘어간 경우는 모두 27개 그룹이지만 이들이 낸 상속및 증여세는 최고 2백77억원에서 최저 1억여원 정도에 지나지 않은 것은 이들이 그동안 얼마나 많은 세금을 탈루해 왔는지를 쉽게 짐작케 해주고 있다.물론 이들이 탈법적 수단을 동원할 수 있었던 데는 세제의 미비와 금융실명제의 허실이 「합법」을 가장한 수법을 도왔다는 지적도 없지는 않다. 80년 이후 국내 재벌그룹중 상속·증여세를 가장 많이 낸 사람은 한국화약그룹의 김승연회장.그는 지난 81년 7월 부친 김종희씨로부터 물려받은 재산 가운데 증여세 2백8억1천2백만원,상속세 69억2천만원등 모두 2백77억4천만원의 세금을 냈다. 또 삼성그룹의 경우는 이병철회장 사망후 이건희회장이 상속세 1백76억2천9백만원,증여세 4억7천8백만원을 물었다. 또 한진그룹의 조중훈회장으로부터 경영권을 물려받은 아들 양호·정호·수호씨도 증여받은 재산에 대해 각각 33억4천만원,32억6천만원,20억4천만원의 세금을 냈다. 이밖에 그룹별 상속·증여세액을 보면 ▲범양상선(박승주)1백37억5천만원 ▲동아그룹(최원석)80억3천만원 ▲삼미그룹(김현철)70억6천만원 ▲현대그룹(정주영)54억7천만원 ▲한일합섬(김중원)51억3천만원 ▲럭키금성(구자경)16억5천만원 ▲금호그룹(박성용)14억3천만원 ▲쌍용그룹(김석원)12억6천만원등이다. 그러나 이같은 세액 규모는 창업주들의 유산 규모와 비교해 볼 때 턱없이 낮거나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액수에 불과하다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이다. 국세청 집계에 따르면 상속·증여세는 81년이후 매년 0.1%정도씩 꾸준히 증가,90년 현재 국세의 1.5%에 이르고 있다.그러나 일본의 4.1%에 비하면 크게 낮은 수준이다. 선진국의 상속·증여세의 납부 수준이 높은 데는 일본의 경우 상속및 피상속인들이 상속세및 증여세의 탈세는 가장 큰 불명예라는 인식이 기업인들 사이에 뿌리박혀 있고 과세 체제가 치밀한데도 원인이 있다. 일본 최대의 재벌인 마쓰시타(송하)전기그룹의 창업주 마쓰시타가 지난 89년 사망했을 때 보유재산 규모가 1조엔(한화 5조원)을 넘은 것과 우리나라 제1의 갑부였던 삼성그룹의 고 이병철회장의 사망시 재산이 3백억원이었다는 점은 우리나라재벌들의 부의 세습과 관련,많은 것을 시사해주고 있다. 우리나라 창업주들이 세금을 피해 2세들에게 재산을 상속하는 수단으로는 현대그룹의 예에서 보듯이 ▲주식을 상장전에 증여대상자에게 념겨주고 상장후 차익을 챙겨주는 「물타기증자」 ▲기업의 흡수·합병과정에서의 대주주(창업주)의 실권을 위장한 합법적 변칙 증여 ▲기업합병시 감자를 통한 변칙상속등이 주로 동원되고 있다.
  • “재벌의 비정상적 돈벌이 왜 방관하나”(국감중계)

    ◎「현대」 영업외 수익,영업 수익보다 7백억 많아/위장상속 철저히 조사… 국민에 진상 밝혀라 ▷재무위◁ 재무부에 대한 감사에서 현대그룹의 위장상속문제를 비롯,재벌기업의 영업외 수익과다및 대주주들의 주식과다소유,재벌들의 문화재단설립을 통한 변칙상속가능성여부,재벌들에 대한 상업차관재개 허용의 타당성문제등을 추궁. 서청원의원(민자)은 『30대 재벌이 수입이자와 할인료,유가증권처분및 이자등을 통해 거둬들인 영업외 수익이 89년말 기준 전체영업이익의 65%를 차지하는등 전체기업의 평균치를 훨씬 상회,재벌들이 부동산투기와 증권투자등 재테크에 열을 올리고 있음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면서 『특히 현대의 경우 88년에는 영업이익이 4천8백96억원이었던데 비해 영업외수익은 1.5배나 많은 7천2백60억원이었고 89년에는 영업이익이 5천5억원에 영업외수익은 5천7백82억원으로 여전히 영업외수익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지적하고 정책당국이 이같은 비정상적 수익올리기를 방관하고 금융·세제상의 지원을 한 이유를 추궁. 김덕용의원(민자)은 『국내재벌들이 소유하고 있는 문화재단등 공익법인이 모두 60여개에 이르고 있으며 기업주가 생전에 면세혜택을 받으며 대량의 개인지분을 출연,사망후에는 상속세를 내지않고 2세들에게 자동적으로 상속케하는 재산의 변칙상속이 이뤄지고 있다』면서 외국의 경우처럼 문화재단을 공공화할 용의가 있는지를 질의. 김의원은 대표적 공익재단으로 ▲현대의 아산복지재단(출연금 1천5백50억원) ▲삼성문화재단(〃 2백25억원) ▲대우재단(〃 1천억원) ▲럭키금성의 연암문화재단(〃 1백억원)등을 열거하고 이들 비영리법인들이 작년 한햇동안 부동산매매를 통해 거둔 양도차익이 9백28억원에 이르고 있다고 주장. 김의원은 또 『지난 87년부터 상업차관도입이 규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현대·삼성등 18개 재벌기업들이 지난해까지 모두 34억3천6백만달러의 각종 상업차관을 새로 인가받아 도입한 것으로 집계됐다』면서 『상업차관의 도입허가자체가 막대한 이권이라는 점에서 특혜의혹을 불러일으키고 있고 외국자본의 유입에 따른 통화증발및 수입확대를 유발할 가능성이 우려되고 있다』면서 억제책마련을 촉구. 그는 이어 『산업은행 장기신용은행 외환은행및 시중은행들이 신디케이트를 구성,법인을 설립한 후 누적결손이 1천억원이 넘는 금호그룹의 아시아나항공에 7백70억원의 불법특혜금융을 제공하려하고 있다』면서 경위설명을 요구. 이날 감사에서 최운지의원(민자)등은 『현대그룹의 위장상속문제는 국민들의 지대한 관심사인 만큰 의심이 가는 부분을 철저히 조사해 그 결과를 소상히 밝히라』고 촉구. ▷국방위◁ 국방위의 안기부감사에서는 서동권안기부장의 인사말에 이어 북한의 최근 정세등에 대한 브리핑과 현황보고,질의와 답변등을 비공개로 진행. 서부장은 인사말을 통해 『새로운 유엔시대의 개막과 더불어 국제적 위상을 더욱 높이고 통일을 성큼 앞당길 수 있는 결정적 기회를 맞이했으나 우리가 극복해야 할 내외의 도전은 여전히 만만치 않다』면서 『북한은 대남기본노선에 조금도 실질적인 변화를 보이지 않고 개방이 곧 체제붕괴라는 강압감에서 오히려 내부의 사상통제를 더욱 강화하고 있다』고 설명. 서부장은 『국내적으로도 아직 낡은 이념에 사로잡혀 체제전복을 획책하는 친북세력이 잔존하고 있으며 내년에는 연이은 정치일정에 편승한 이들의 불순책동이 더욱 가열될 것으로 전망된다』고 분석. ▷노동위◁ 노동부는 주부인력의 적극 활용을 위해 내년도 예산안중 공무원임금조정으로 절감된 2천여억원에서 1천억원을 공단밀집지대의 탁아소 증설비로 책정되도록 노력했으나 경제기획원의 반대에 부딪쳐 사실상 무산됐다고. 최병렬노동부장관은 4일 노동부 국정감사에서 『주부인력들이 마음놓고 일할 수 있도록 공무원임금부문에서 절약된 예산중 1천억원을 탁아소건립에 쓸 것을 기획원과 협의했으나 1백억원만 탁아소증설비로 책정되고 나머지는 수해예비비로 돌아갔다』며 불편한 심기를 토로. 이 문제를 질의했던 민자당 권달수의원은 『산업인력 수급문제는 국가정책적 차원의 문제인만큼 노동부가 샅바를 움켜쥐고 힘차게 밀어부쳤어야 했지 않느냐』며 『노동부가 낚시밥에 걸린 물고기를 다 잡았다 놓친 것은 결국 게임에서 패한것이나 다름없다』고 위로성 힐책.
  • 사할린 해상에 한맺힌 절규만…/KAL기 피격 8주기

    ◎유족들 소 영해서 첫 추모제/진상규명·사과·배상 촉구/유족대표/“억울한 넋들에 용서 빌뿐”/사할린 주지사 【유지노사할리스크=외무부공동취재단】 83년 9월 소련전투기에 의해 격추돼 숨진KAL기 희생자 2백69명을 위한 추모제가 1일낮 12시20분(한국시각 상오 10시20분) 소련 사할린의 모네론섬 앞바다에서 열렸다. 유족들은 이날 소여객선 유리트리노프호 선상에서 8년전 사할린 상공에서 영문도 모른채 사라져간 가족들의 이름을 부르며 또한번 오열했다. 홍현모유족회장은 추도사를 통해 『이 바다속에서 채 눈감지 못하고 있을 어린자식들의 눈이라도 감겨주고,동강난 육신이라도 찾아주고 싶어서 이곳에 왔다』고말하고 『생전에 사랑하던 고향산천과 정든 가정으로 이제 넋이라도 우리와 함께 돌아가자』며 흐느꼈다. 표도로프 사할린주지사도 『우리는 슬픔을 함께 나누고 용서를 빌기 위해 이곳에 왔다』며 『가신 님들에 대한 추억이 영원히 간직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며 고개를 숙였다. 이날 추모제는 국민의례와 묵념,추도사에 이어 「고르바초프대통령께 드리는 글」「생명을 사랑하는 세계민들께 드리는 글」의 낭독,결의문 채택,헌시,고별사,분향및 헌화 순으로 1시간 20분동안 계속됐으며 유가족 94명외에 공로명주소대사,키레예프 소외무부본부대사등 양국 정부및 국회관계자 40여명도 함께 참석했다. 유족들은 이날 시종 눈물을 감추지 못했는데 특히 김수지양(22·피격당시 교체기장 김희철씨의 딸)이 고별사를 통해 『아버지,허전해질때 마다 그리워지는 아버지….그해 중학 2학년이던 철부지는 이제 대학 4학년의 어엿한 숙녀가 되었습니다』하며 울먹일 때에는 끝내 울음을 터뜨렸고 준비해간 꽃들을 바다에 던질 때에는 갑판의 난간을 붙잡고 몸부림쳤다. 유족들은 또 유가족회 부회장인 유인학의원(신민)의 선창에 따라 소련정부와 국제민간항공기구(ICAO)에 대해 진상규명및 배상과 블랙박스의 내용 공개를 촉구하는 결의문도 채택했다. 유족들은 결의문에서 항로이탈을 알고서도 추적노력과 인도적 조치를 취하지 않은 미국과 일본에 대해서도 반성과 배상을 요구했으며 이윤만을 추구하는비인간적 기업행위로 사고야기에 책임이 있는 대한항공측의 반성과 성의있는 유족돕기도 촉구했다.
  • 모친장례식 참석/북 동포,미 첫 입국

    【로스앤젤레스=홍윤기특파원】 북한에 살고 있는 고 이행옥할머니의 장남 강대용씨(61)가 12일 하오3시25분 JAL편으로 LA공항에 도착,어머니 이씨의 시신이 안치돼 있는 「한국장의사」로 직행,생전에 올 수 없었던 한맺힘에 오열했다. 강씨는 북경까지 마중나간 조카 강형원씨(28·LA타임스기자)와 북한해외동포원호회 로철수참사(51)등과 같이 이날 하오 북경발 JAL 064편으로 LA공항에 도착했다.
  • 「주체사상」「김일성주의」로/북한,내년부터

    ◎재미 친척 방문허용도 검토 북한은 오는 92년 김일성의 80회 생일을 기해 이른바 「주체사상」의 명칭을 「김일성주의」로 바꿀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관계당국은 6일 최근 중국의 북한문제 전문가및 방북 재미동포들과 접촉해 입수한 정보에 근거,이같이 밝히고 김일성이 자기 생전에 서해갑문등 대규모 시설물 10개를 세우겠다고 발언한 점등에 비춰 김일성의 권력일선에서의 조기은퇴는 기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북한은 또 다시 돌아온다는 보장만 있다면 북한주민들의 재미 친척방문을 허용할수 있을 것이라고 방북 재미동포들에게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김일성은 『인민들이 잘먹는 정책을 실시해야 되지 않겠느냐』는 등소평의 지적에 『이 밥에 고기국을 먹으면 됐지 어떻게 더 잘 먹일 수 있느냐』라고 반문하는 등 「인의 장막」에 싸여 북한주민들의 어려운 생활형편에 대해 잘모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북한은 92년부터 대외무역이 경화결제방식으로 전환됨에 따라 이의 타개책의 일환으로 재일교포와 합작운영하고 있는 평남운산광산(금광)의 금채굴량을 확대하고 있으며 외화벌이를 위해 도·이까지 외화상점을 설치,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 건대 유 이사장등 6명 구속/서울지검

    ◎권 전총장·부총장 2명 포함/4년간 1백3명 부정입학/도서관 건설기부금 명목,35억 받아/해외도주 3명은 귀국하는대로 구속 건국대 입시부정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서울지검특수1부(이명재부장검사·문세영검사)는 5일 이 학교 유승윤재단이사장(41)과 권령찬전총장(63)등 모두 6명을 업무방해혐의로 구속,서울구치소에 수감했다. 검찰은 이와함께 해외에 머물고 있는 김용한전총장(61)과 김광진전총장비서실장(42),황령선전산주임(35)등 3명을 귀국하는대로 구속하기로 하는 한편 정길생전교무처장(50)과 김용곤전재단재무차장(51),김영권전자계산소장(55)등 3명은 불구속으로 입건했다. 유이사장 등과 함께 구속된 사람은 윤효직전서울캠퍼스부총장(56),한성균전충주캠퍼스부총장(60),김삼봉전재단관리이사(63·현상무이사),김선용전충주캠퍼스교무주임(43)등이다. 유이사장 등은 지난 88년부터 지난해까지 4년동안 1백3명의 학부모로부터 모두 35억여원의 기부금을 받고 그 자녀들의 성적을 조작하는 등으로 부정입학시킨 혐의를 받고있다. 유이사장은 지난 87년5월 착공한 학교도서관의 건립비용 1백억원 등으로 재정압박을 받게 되자 같은해 12월 권당시 총장과 윤·한부총장및 김이사등 4명에게 『도서관 건립자금난이 심각한 만큼 타개책을 마련해야 한다』면서 기부금입학방안을 제시해 도서관 건립비용 30억원을 조달케 했다는 것이다. 유이사장의 지시에 따라 김차장은 서울 강남구 청담동 C호텔 객실에 부정입학창구를 차려놓고 소개나 소문을 듣고 찾아온 학부모 41명으로부터 1억5천만원에서 3천만원씩을 받고 등록을 하지 않은 합격자 대신 이들 자녀의 입학성적을 높여 합격처리했다. 검찰은 또다른 부정입학자 54명 가운데 52명은 미등록자 결원보충때 성적을 무시하고 돈을 낸 학생들을 우선 합격시켰으며 의예과의 경우는 당시 충주캠퍼스 교무주임 김선용씨가 답안지를 직접 조작해 성적을 높여 합격시켜주었다고 밝혔다. 검찰은 이번 입시부정이 유이사장의 주도아래 총장등 6명이 계획적으로 꾸며온 점으로 미루어 관련자가 더 있을 것으로 보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검찰은 그러나 지난 89년부터 91년사이의 입시부정에 관련이 있는 당시 총장 김용한씨가 미국에 가있어 정확한 입시부정경위는 김씨가 소환돼야 풀릴 것으로 보고 김씨의 귀국을 종용하고 있다.
  • 외언내언

    일제때도 우리민족에겐 애국가가 있었다.국내에서야 숨어서 몰래 부를 수밖에 없었지만 어쩔 수 없이 조국을 떠나 미국으로 갔던 교포들은 일요일마다 한인교회에 모여 소리높이 애국가를 부르면서 눈물을 흘리곤 했다.그러나 그때의 애국가는 오늘의 애국가가 아니었다.가사는 지금것과 같지만 곡은 스코틀랜드의 민요 「올드 랭 사인」으로 남의 것이었다.◆일본에서 음악공부를 하던 20살의 청년 안익태가 커다란 첼로 하나만 달랑 들고 샌프란시스코에 나타난 것은 1930년.당시 샌프란시스코에서 살던 교포30여명이 이 청년음악도를 환영하는 모임을 갖고 슬프디 슬픈 남의 곡조에 맞춰 애국가를 합창했는데 이때부터 이 청년은 웅장하면서도 힘찬 우리의 애국가를 작곡하기로 결심했다.◆오늘의 애국가가 악보로 나타난것은 그로부터 6년뒤인 1936년이었고 이것이 대한민국의 공식애국가로 지정된 것은 정부가 수립되던 해인 1948년.그러나 스페인에서 살고 있던 안익태선생이 이 사실을 안 것은 1950년 6·25전쟁이 일어난 직후였다.한국에서 전쟁이 터졌다는 라디오 뉴스와 함께 울려퍼진 애국가가 바로 자신의 곡임을 알고는 하염없이 울었다고 한다.◆세계 각국의 2백여 교향악단을 지휘하면서 극동의 숨겨진 나라 코리아를 빛냈던 그는 1944년 스페인 귀족의 딸 롤리타 부인과 결혼하면서 이 나라에 정착했고 1965년 9월16일 한많은 일생을 마감했다.생전에 고국에 돌아가기를 그렇게도 열망했던 안익태선생은 그가 죽은지 12년만인 77년6월15일 이땅에 안장됐다.그가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에 묻히던날 시인 모윤숙은 이렇게 읊었다.「넋이여! 들으소서/민족의 한목소리를/정든땅에 울려 퍼지는/영원한 애국가를」◆문화부는 안익태선생을 8월의 문화인물로 지정하고 애국가탑 건립 등 다채로운 추모사업을 펼친다고 한다.반가운 마음과 함께 그의 유족(부인과 세딸)들은 지금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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