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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린이사망 등 잇단 백신사고 충격파/뇌염 예방접종 기피 확산

    ◎병원마다 접종 20∼50% 격감/보사부/“백신 일제점검… 안전성 확보 노력” 『예방주사를 맞혀야 하나요 말아야 하나요』 뇌염백신 부작용으로 6세 여자어린이가 나흘만에 숨지고 제주도에서는 장티푸스 예방약을 일본뇌염 백신으로 착각,유치원 어린이들에게 주사하는등 예방접종사고가 잇따르면서 일본뇌염 예방접종은 물론 다른 예방접종까지 기피하는 현상이 전국적으로 번져 국민건강확보에 비상이 걸렸다. 보사부등 방역당국은 28일 문제가 된 백신을 모두 수거하고 백신의 보관·운송및 사용지침을 긴급 시달했다.또 예년처럼 1백% 접종이 이뤄지도록 오는 31일 하절기전염병 예방접종 자문회의를 긴급소집,종합대책을 마련키로 하는등 진화에 전력을 쏟고 있다. 그러나 6월말까지 예방접종기피현상이 이어질 경우 올 여름철에는 면역기능이 약한 어린이들의 전염병 발병률이 크게 높아질 것으로 전문가들은 걱정하고 있다. 뇌염백신의 경우 올해 8백69만건의 접종을 실시할 계획이나 28일 현재 46%인 4백만건만 접종이 이루어진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보사부에 따르면 일본뇌염 예방백신을 맞은 어린이 3명이 부작용을 일으킨 23일을 전후해 병원의 접종건수가 사고 발생전보다 20∼50% 감소한 것으로 조사됐다. 더욱이 이같은 뇌염백신 기피현상이 확산되면 BCG(결핵)·DPT(백일해등)·장티푸스·B형간염·렙토스피라·유행성출혈열등 다른 전염병의 예방접종기피현상까지 일어날 가능성이 커 문제의 심각성을 더해 주고 있다. 서울 노원구 상계동 유호성소아과의원의 경우 지난 23일까지 하루평균 20∼30여명에 이르던 접종인원이 10명 미만으로 크게 줄어든 대신 『백신을 맞았는데 괜찮겠느냐』등 부모들의 문의전화가 빗발치고 있다. 경기도 광명시 소화동 한기철소아과에서는 뇌염백신 접종자들이 하루평균 30여명에서 10여명으로 뚝 떨어졌으며 BCG와 DPT의 접종도 회피하고 있고 충북 청주 내덕동 김모소아과의 경우에도 각종 접종을 맞기 위해 하루 40여명정도 찾아오던 어린이들이 5명 미만으로 감소했다는 것이다. 서울 용산구 서계동 소아아동병원 의사 김소영(32)씨는 『뇌염백신부작용 사고의 여파로 병원을 찾는 부모들이 평소보다 줄어들어 하루평균 10여명에 이르던 것이 3∼4명에 불과하다』며 『특히 뇌염백신의 제품을 물어 보는가 하면 뇌염백신접종 전에 의사의 철저한 진찰을 요구하는등 예민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주부 김혜영씨(34·강남구 개포동)는 『접종을 하기는 해야겠는데 겁이나 병원을 찾지도 못하겠고 그렇다고 접종을 안하자니 아이들이 뇌염에 걸리기 쉬운 나이라 여간 고민이 아니다』면서 『빨리 정확한 사고 원인을 밝혀 안심하고 예방주사를 맞을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보사부 이동모보건국장은 『뇌염의 항체가 7∼8월에 집중 형성되므로 늦어도 6월말까지는 접종을 마쳐야 한다』면서 『뇌염은 전염성과 치사율이 높지만 예방접종으로 발병을 막을 수 있기 때문에 3∼15세의 어린이에게는 반드시 주사를 맞힐 것』을 당부했다.
  • 「무공해 인간」의 영안/이목희 정치부기자(오늘의 눈)

    심명보의원이 타계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를 아는 많은 사람들은 묘한 감정에 빠졌다.단지 「아깝다」거나 「아쉽다」는 정도가 아니었다. 삶과 죽음에 대한 되새김,심의원이 벌써 하늘나라로 가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그것은 차라리 「분노」에 가까운 것인지도 모른다.92년 초여름 건강진단이나 받아본다고 서울대병원에 입원했던게 이렇게까지 이어질 줄이야…. 고 심의원을 향한 감정이 이렇듯 흐르는 것은 그가 너무 인간적이었기 때문이다.「발로 뛰는 기자」를 자처하며 언론인으로 20년,이어 가까운 친구의 권유로 나라일에 나서 정치인으로 15년.참으로 열심히 산 그였다.하지만 언론인,정치인이기에 앞서 「인간」이 훨씬 돋보인 일생이었다. 남의 어려움을 보면 아무리 힘들어도 발벗고 나서곤 했다.언론숙정이 한창이던 지난 80년 한국일보 편집국장 때 한명의 후배라도 「더 살리려고」 이른바 「실세」앞에 무릎까지 꿇었던 일.곧 이어 집권당 대변인 총재비서실장 사무총장을 지내면서 여야 정치권은 물론,각계의 길흉사를 앞장서 챙긴 일등.그의 인간적인 일화는 일일이 열거할수 없을 만큼 많다.그리고 그의 사무실 칠판에는 늘 「적덕지가 필유경」이란 글이 씌어있었다. 그는 생전에 틈만나면 고향 얘기를 했다.강원도 두메산골(영월군 주천면)에서 태어나 주천농고를 나왔다.거기서 서울대 법대를 들어갔으니 입지전적이라 부를만 하다.어려웠던 과거와 단종애사를 간직한 아름다운 고향이 그를 「무공해 인간」 「의리의 사나이」로 만든 것 같다. 남에게는 그리 관대해도 스스로에게는 엄청나게 엄격했다.한창 때이던 86년 큰며느리를 맞으면서 가까운 친척에게도 알리지 않은 것은 지금도 유명한 이야기로 전해 내려 온다. 그의 장례는 26일 국회장으로 엄수됐다.고인은 타계직전 『여러 사람 번거롭게 하지말고 가족장을 지내라』고 유언했다 한다.마지막 가는 길까지 나보다 남을 생각한 것이다.그를 너무나 아끼던 동료의원들의 간절한 뜻으로 무산되기는 했지만…. 이만섭국회의장은 이날 영결사에서 『자신에 대해 가혹하리만치 엄격하던 고인의 발자취는 후배 언론인과 정치인의 마음속에 영원히남을 것』이라고 했다.김종필민자당대표도 『생전에 희망했듯 이제 고인의 이름과 수많은 업적은 고향의 품에서 모든 이들에 의해 오래 오래 기억될 것』이라고 애도했다.
  • 남북연합 문제 국민투표 촉구/김대중씨

    【로스앤젤레스 연합】 김대중 아시아·태평양평화재단이사장은 23일 김일성만이 북한의 대외문제에서 실질적 양보를 할 수 있는 만큼 김일성 생전에 북한문제를 해결해야 하며 남북한 완전통일의 첫단계인 남북연합문제를 국민투표에 붙여야 한다고 촉구했다. 미국을 방문중인 김대중이사장은 이날 USC대 주최로 로스앤젤레스의 빌트모어호텔에서 가진 오찬연설을 통해 북한은 지난 91년이래 생존을 위해 남북한 유엔동시가입및 교차승인,남북한 상호간 합법정부인정등 그들로서는 중대양보를 했으며 이같은 양보는 오직 김일성만이 할 수 있다고 지적,김일성이 죽기 전에 핵문제 등 북한문제를 타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재키,케네디묘옆에 묻힐듯/“아메리카연인” 죽어서도 화제

    ◎“생전에 알링턴묘지 희망 했었다”/“첫시댁” 보스턴시 조기게양 애도 지난 19일 타계한 재클린 오나시스 여사의 유해는 첫 남편인 고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묻혀있는 워싱턴 알링턴 국립묘지의 케네디 대통령 묘역에 안장될 것이라고 그녀의 대변인인 낸시 터커맨 여사가 20일 밝혔다. 터커맨 여사는 이날 이같이 밝히면서 장례식은 오는 23일 뉴욕 맨해턴의 성 이그나티우스 로욜라 성당에서 고인의 뜻에 따라 조용한 가운데 엄수될 것이라고 말했다. 재클린 여사는 지난 53년 미래의 대통령과 결혼했으며 케네디 대통령이 지난 63년 댈라스에서 암살된 후 30년만에 사후 재결합하게 된다. 재클린 타계후 4송이의 붉은 카네이션이 고 케네디 대통령 묘비에 놓여졌는데 지난 63년 조산후 사망한 아들 패트릭과 앞서 56년 사산한 딸이 아버지 곁에 묻혀있다. 알링턴 국립묘지의 그레그 스미스 대변인은 생전의 재클린 여사도 그곳에 묻힐 것을 시사했다고 말하고 재클린여사 가족들과 수차례 협의를 가진 바 있다면서 가족들이 아직 결정을 내리지 않고 있으나 묘지에 묻힐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한편 고 케네디 대통령의 출신지인 매사추세츠주 보스턴시는 재클린여사의 죽음을 맞아 반기를 게양하는등 애도를 표시했다. 보스턴의 존 F 케네디 도서관도 조기를 게양하고 당분간 모든 공식행사를 중지키로 결정했다. 케네디 대통령 일가를 낳은 보스턴과 매사추세츠주에는 재클린여사의 시동생인 에드워드 케네디가 상원의원으로 있으며 조카인 조셉 케네디2세가 보스턴지구의 연방하원의원으로 있다. 재클린여사는 로드아일랜드주 사우샘프턴 출신으로 그리스 선박왕 아리스토텔레스 오나시스와 결혼후에는 주로 뉴욕에서 살았으나 보스턴시는 항상 그녀를 그곳 출신으로 간주해왔다. 재클린 여사의 두번째 남편이었던 아리스토텔레스 오나시스의 조국 그리스는 미국과는 대조적으로 그녀의 죽음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오나시스 재단의 한 대변인은 20일 『우리는 전혀 할 말이 없다』고 말했다. 그리스의 신문과 텔레비전 방송들은 재클린 여사의 죽음을 보도하면서 그녀가 사랑보다는 돈과 권위를위해 오나시스와 결혼했었음을 「시사」했다. 재클린 여사가 오나시스와 결혼할 당시 그리스는 군부독재하에 있었으며 오나시스는 군사 정권과 가까웠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오나시스는 그리스에서 아직도 인기가 있으나 재클린여사는 별 인기를 얻지 못했다.
  • 국악 지도해준 은사/송혜진(굄돌)

    어떻게 국악을 전공하게 되었느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집안 내력이라든가,우연히 본 국악공연에 마음을 빼앗겼노라는 좀 더 그럴듯한 배경을 갖지 못한 탓에 그런 질문이 때론 당혹스러울 때도 있다. 나의 국악입문기를 얘기하자면 고등학교때 음악선생님이셨던 이지형 선생님을 빼 놓을수 없다.이 선생님은 내가 고등학교에 입학하던 해에 다른 학교로부터 부임하셔서 음악반 활동을 아주 적극적으로 이끄셨다.당시 30대 중반이셨던 이선생님은 수려한 외모와 재치있는 언변으로 전교 학생들의 인기를 독차지 하시던터라 음악반은 어느 특활반보다 인기가 높았다.나도 그전의 음악경험을 살린다는 명분과,인기 있는 선생님께 공식적(?)으로라도 가까이 가고 싶은 속마음에 주저없이 합창반에 지원하였다.그랬는데 선생님께서는 학교행사를 준비하시면서 음악실 한쪽에 방치되다시피한 가야금을 활용하자는 안을 내셨다.나는 생전처음 보는 가야금이었지만 새로운 것을 좋아하는 호기심에다,이 기회에 선생님의 관심을 더 끌어보려는 생각에서 선뜻 자원하였다. 이것이 내가 가야금과 맺은 첫인연이었다.처음엔 「조금 하다 말겠지」라는 생각도 없지 않았다.그런데 웬일인지 함께 가야금을 시작한 친구들은 이 선생님의 은근한 격려에 힘입어 대단한 열성을 보였다.나 역시 남에게 질세라 더 열을 올렸고 워낙 국악인구가 적었던 탓에 1년쯤 배우고 나니 지방의 경연대회 나가 상도 탈 수 있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선생님께서는 국악전공도 아니었지만 내게 아주 조금있던 가능성을 보시고는 특별한 방법으로 국악의 세계로 안내해주셨던 것 같다.선생님께서는 꼭 무엇을 해야한다는 강요가 아니라 자신감을 주는 방법과 은근한 권유로 내가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국악의 세계에 편안히 발을 딛게 도와주셨다. 물론 가야금이 국악의 전부인 줄 알고 국악과에 들어간 나는 어럴때부터 국악의 세계에서 살아온 친구들에게 턱도 없이 뒤진다는 것을 알고 「내가 어쩌다 이 어려운 국악을 하게되었나」하는 고민에 빠진적도 있었다.그러나 그때마다 은근한 가르침으로 부족한 제자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시던 선생님을 생각하며 그 모자람을 보충할 수 있는 용기를 갖게 되었다.웬만해선 눈에 띄지도 못했을 미미한 「싹쑤」를 큰 격려로 키워주신 선생님께 스승의 날을 앞두고 감사의 마음을 기린다.
  • 고 김호길씨 빈소/추모인파 줄이어

    고 김호길 포항공대총장의 빈소가 마련된 포항성모병원과 분양소인 포항공대 강당에는 2일에도 고인의 명복을 비는 인파로 붐볐다. 빈소인 포항성모병원에는 친구이자 한시동우회 「난사」회원인 조순 전부총리,정범모 한림대총장등 생전에 고인과 친밀했던 정계·교육계등 각계 인사들이 빈소를 찾아 유족들을 위로하고 애도의 뜻을 표시했다. 또한 분향소가 마련된 포항공대 강당에는 신임 이영덕총리를 비롯,김숙희 교육부장관,김시중 과기처장관등 각계에서 보낸 조화 3백여개가 놓여 있었고 1천5백여 포항공대 학생들은 가슴에 검은 리본을 달고 분향소를 찾아 스승의 큰 뜻을 기리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 성철 큰스님 만장 776개 보관/국립민속발물관·문화유산으로 활용

    ◎신자등이 영전에 바친 만시 등 모아 국립민속박물관은 지난해 11월10일 열반한 성철 큰 스님의 다비식에 썼던 만장을 수거,정리해 연구자료로 활용하는 등 귀중한 문화유산으로 보관하기로 했다. 만장은 생전에 친하게 지내던 벗이나 제자들이 돌아가신 분의 덕과 학식을 기리기 위해 지은 만가·만시·만사·만사 등으로 일컬어지는 문체를 종이 또는 비단 등의 천에 써서 영전에 바치는 것.성철 큰 스님의 만장은 모두 1천개였으나 2백여개는 다비식 현장에서 신도와 스님들이 기념신표로 간직하기 위해 가져가고 나머지 7백76개를 수거해 4개월동안 정리했다.예부터 만장으로 아이들 속옷을 지어 입히면 오래 살고 허리띠로 사용하면 허리병이 낫는다는 민간 신앙이 전해내려와 신도등이 일부를 가져갔다. 유가의 장례식에서는 출상때 상여행렬을 화려하게 장식하였다가 상을 마치면 상청에 바치거나 수거해 일체의 내용을 채득,정리해 문집으로 만들어 후세에 전하기도 하지만 불가에서는 다비식이 끝나면 유해와 함께 태우는 것이 관례.성철스님의 만장도 불가의 의식대로 다비식 현장에서 태워질뻔 했으나 현장에 있던 해인사 선원장 원융스님의 배려와 국립민속박물관 정종수 연구사의 순간적인 기지로 빛을 보게됐다.
  • 월하스님(조계종 개혁회의장)의 종풍혁신 설법

    ◎“청규실천의 불교로 환골탈태해야”/종단분규 오랜 권력독점이 빚은 결과/불타의 이상은 무애… 첨예대립 피해야/절에선 중아닌 부처님 찾도록… 사부대중도 개혁 동참을 경남 양산군 하북면 신평리 영취산.석존이 법화경을 설했다는 산 이름이다.만법을 통달하여 일제중생을 제도한다는 뜻의 통도사가 그 산자락에 있고,절 안쪽 깊숙한 정편전에는 월하스님(81)이 주석한다.불교 조계종 소용돌이 속에서 개혁회의를 이끌고 나온 노장이다.평상시 대로 대중들과 더불어 아침공양(식사)을 마친 참이니까,노장을 만난 시간은 상오6시반을 좀 비켜섰다. 『어디 세상일에 관심을 가질 나이인가요.개혁을 하겠다고 앞장선 새 사람들이 명분을 앞세워 내 이름을 써 넣고 불러낸 것이지요.그래서 이 늙은이 얼굴 한번 내 비추고 오자,하는 생각에서 서울을 다녀왔습니다.산중에만 산 사람이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이틀을 묵는데도 퍽이나 혼이 났어요』 노장이 털어놓는 개혁회의 의장식 수락 동기속에는 스스럼이 없다.표정이나 말솜씨가 여느시골 할아버지다.원로종교인에게 카리스마적 권위는 물론 베일에 가린 신비가 어느정도는 배어있어야 할텐데,그런 구석이 도무지 찾아지지 않는다. ○평범한 촌로의 모습 『괜찮습니다.사시사철 문을 열어 놓고 사는걸요.별 사람들이 다 찾아옵니다.문을 열어놓고 살다보니 거북한 일도 있지요.젊은 여신도들이 내왕할 때 남보기가 안 좋더라구요.그렇다고 오지말라는 말은 못하겠고….절집에서는 연세가 높은 모친도 같이 못 사는걸 법도로 여기니까요』 본래 시자도 없이 사는 노장앞에 불쑥 나타난 점을 사과드렸더니 농담 반에 진담 반을 곁들여 정편전만큼은 대문에 빗장을 걸지 않는 거처임을 애써 강조했다.노장을 가리켜 「열려진 고승」이라고 하는 까닭이 이제사 들여다 보였다. 『이번 시비는 한 사람이 오래 종단의 권력을 거머쥔데서 나온 당연한 소리로 들어야 합니다.지금까지 종단풍토는 총무원장한테 손을 번쩍 안들어주면 다 적이 되었지요.그 장본인은 하지말라고 말려도 들어줄 사람도 아니었습니다.이제 그 사람이 종단을 자진 탈퇴했다니까 파행의 세월이 끝난 것으로보아주시오.새 사람들이 더 이상 지탄받지 않게 노력할 겁니다.그런 일을 생전에 보는 것이 기실 소원이기도 했어요』 이번 개혁이 종단의 종풍을 바로잡는 파사현정의 기회라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서의현 전총무원장을 「그 사람」으로 지칭하는 가운데 개혁세력인 「새 사람들」에게 큰 기대를 걸었다.그리고 대화내용을 곱씹으면 노장은 「새 사람들」이 불러서 업힌 것이 아니고,스스로 앞장을 섰다는 결론이 나온다. ○파야현정의 기회삼아 『정치적 독재자들은 국가 존립과 통치의 근간을 이루는 헌법조차 떡 주무르듯 하지않습니까? 총무원을 장기적으로 차고앉았던 그 사람도 예외로 볼 수는 없어요.종헌·종법을 맘대로 고쳤지만 종당에는 치욕적 말로를 자초하는 꼴이 되고 말았지요.권불십년이라고나 할까요.탐욕이 승했던 탓이 아닌가 합니다.운거선사가 남긴 선문답의 참뜻을 일찍 새겨들어두었다면 그런 일이 없었을테지만….그 사람 종단을 떠났더라도 마음 고쳐먹길 바라요』 ○종단떠나 거듭나길 노장은 중국 운거선사(?∼902년)의 선답구절을상기시켰다.평소 솥하나에 떡을 쪄서 세 사람이 먹어도 모자라는데 천 사람이 먹으면 남는 까닭,그것은 「다투면 부족하고 사양하면 남는다」는 해답으로 귀결된다.탐욕과 다툼은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는 노장은 「사람은 열번 된다」는 우리 속담을 빌려 전서원장이 거듭 태어나는 것도 희망사항이라고 했다. 『누가 중 보러 절에 오랬나요.부처님 뵈러 오시오.그러다 보면 중도 그럴싸하게 보이고 절도 절로 좋아질 겁니다.이번 사태로 불심이 시들해졌다면 신도님들 다시 힘내셔야 합니다.불교는 이타종교이고 또 스스로 깨우침을 가르치는 자아의 종교여서 바로 여러분의 종교입니다』 조계종사태로 불자들의 불심이 떨어지고 특히 초발심자들이 불교를 외면하고 있다는 말에 대해 비관론 보다는 낙관론 쪽에 비중을 실었다.「승려가 아니라 부처님 뵈러 절에 오라」는 노장의 표현이 오히려 해학적일 뿐이다. ○자기정진 진력 촉구 『승풍의 진작은 정진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공부를 하든 일을 하든 정진을 수행의 방편으로 삼아야 된다는 것이지요.이번 사태를 몰고온 종단 파행운영도 정진보다는 잿밥에 눈이 먼 탐욕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헛된 망념에 빠져서는 안된다는 생각에서 농사도 자경을 하고 있습니다.돈이 되는 것은 아니나,일일불작일일불식의 청규를 실천해보고자 농사일을 시작했습니다.이번에 우리 불교가 생산종교로 환골탈태하는 모습도 보여주어야겠다는 욕심도 부려봅니다.그것이 다 개혁이 아니겠습니까…』 통도사 스님들이 직접 짓는 농사는 논만도 2만평에 이른다.스님 모두가 트랙터나 경운기를 몰고 나서면,노장은 감농이다.그러는 동안 통도사의 영취총림 학인 60여명은 학풍을 일으키는데 전념한다.그 총림의 방장이기도 한 노장은 아직도 행자시절 처럼 웬만한 옷가지는 손수 빨아입는 지극히 검소한 생활을 하고 있다. 『둥글둥글하게 한데 어울리는 것이 좋아요.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첨예한 대립은 아무쪼록 피해야 됩니다.그래야 막히는데가 없는 법(무애)입니다.우리 불교가 바라보는 이상의 한가지도 거기 있고…』 불교를 평화의 종교로 해석한 노장은 더불어사는 사회상 정립도 원융무애정신에 기초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 말씀을 더 드리자면 이번 개혁을 제2정화 불사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따라서 사부대중이 개혁작업에 함께 참여할 때 개혁이 실현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앞으로 불교가 할 일은 참으로 많아요』 노장은 비구와 대처승을 가리는 지난 54년 시작된 불교정화 당시 대표 다섯비구 가운데 마지막 남은 인물이다.동산,김오,청담,소봉은 이미 입적했다.지난 70년대 나는 새도 떨어뜨릴 수 있었다는 이후락씨가 권력형 전국신도회장으로 있을무렵 노장과 얽힌 일화 하나.그가 종단 일에 사사건건 뛰어들자 『그러려면 머리를 깎고 오라』는 유명한 이야기를 남기고 있다.어떻든 노장은 덕과 지혜,용기를 겸비한 이 시대의 큰 스님임에는 틀림이 없다. 법랍 61세.충남 부여에서 보낸 소년시절 청정비구가 우러러 보여 18세에 출가,금강산 유점사에서 사미계를 받았다.그이후 통도사 주지,조계종 감찰원장,동국학원이사장,총무원장 등을 역임한 바 있다.
  • 동서양 넘나든 화풍 고암 유작전

    ◎29일부터 호암갤러리… “이응로화백 5주기맞아 동백림사건 사실상 해금”/58∼89년 파리체류때 작품 104점 골라/수묵∼문자추상∼군상 기법변천 한눈에 사군자와 수묵추상,콜라주 그리고 문자추상등 동양화와 서양화의 독특한 접목을 시도한 고암 이응로화백이 타계한지도 벌써 5년째다. 고 이화백은 서구에서 동양화에 대한 관심을 유발시킨 장본인으로 작품속에서 꾸준히 새로움을 갈구했던 실험성 짙은 작가. 그러나 예술세계가 다양했던만큼이나 개인생활도 순탄치만은 않아 동백림사건으로 인한 2년간의 옥살이와 국내 화랑들로부터의 배척,그리고 입국거부등 예술가로서의 명암을 함께 보여준 인물이기도 하다. 호암갤러리가 고암 5주기를 맞아 오는 29일부터 6월19일까지 마련하는 추모전시회는 이화백의 파란만장한 생애와 다양한 작품세계를 연결하는 보기드문 자리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화백의 실질적인 해금」의 의미로도 간주되는 이번 전시회는 소개되는 작품이 그의 프랑스체류 전기간을 함축해 보여준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58년 도불에서부터 89년 타계할때까지 30년간 남긴 작품중 미발표작 1백4점만을 골라 선보이는데 대부분 이화백이 생전에 공개하지 말 것을 당부했던 것들이다. 작품들은 현재 파리근교에 설립중인 이화백기념관 소유로 등록된만큼 판매가 불가능해 이번 자리는 오직 국내 관람객을 위한 「전시」차원에서 열리게 된다. 파리시대 결산전이라고 불러도 무방할만큼 전시작품들은 파리시절 그가 집착한 모든 기법과 화풍을 파노라마처럼 형상화하고 있다. 이화백의 화풍은 기법에선 동서양화를 넘나드는 자유로움을 잃지않으면서도 끈질기게 동양화의 기본 분위기를 잃지 않는게 특징이다. 사군자로 시작한 고암은 수묵추상쪽에 관심을 보이다가 58년 도불직후부터 동양의 회화관을 서양 현대미술에 접목하기 시작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이같은 경향은 우선 수묵추상에서 종이를 이용한 콜라주로 변화한 것으로 처음 나타나는데 이후 화면이 평면화되면서 기호가 독립돼 나타나는 문자추상 시리즈에 이어 붓과 수묵을 이용한 「군상」연작,그리고 초기의 동양화에 가까워진말기작품으로 옮겨가는 흐름이다. 전시 작품들은 이 가운데 전통수묵에서 수묵추상으로 전환한후 시도했던 부조적인 형상의 콜라주에서 중국의 갑골문자를 연상시키는 초기 문자추상과 여기서 더욱 도식화된 후기 문자추상,그리고 그후의 군상시리즈로 발전돼가는 그의 작품궤적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 문학박물관(외언내언)

    미국의 대표적 현대작가중 한사람인 존 스타인벡(1902∼1968)은 무명작가시절 캘리포니아의 해변도시 퍼시픽 그로브에서 살았다.그가 살던 집은 침실 한개짜리 오두막으로 바닷가 돌을 주워다 손수 지은 것이었다. 그가 이곳에서 산 기간은 몇년에 불과했으나 스타인벡이 죽기도 전에 그의 문학애호가에게 팔려 「스타인벡의 오두막」으로 명명됐다.「스타인벡의 오두막」 주인은 스타인벡연구회를 결성하고 시당국과 스탠더드 오일 및 아메리카은행의 지원을 받아 3층짜리 스타인벡기념관까지 마련했다. 스타인벡과 비슷한 시기를 살다 간 우리 시인 청마 유치환(1908∼1967)전집에는 「…어부의 겁인가」란 독해불가능한 대목이 있었다.어떤 연구자는 이 구절을 「…어부의 업보인가」로 해석하기도 했다.그러나 유족이 보관하고 있던 초고를 확인한 다른 부지런한 연구자에 의해 「어부의 집인가」로 정정됐다.청마기념관을 우리는 아직도 갖고 있지 못하다. 많은 나라들이 그들의 문학사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작가의 생가는 물론 그가 묵던 곳이나 작품의 무대가 된 곳까지 기념물로 보존하고 있다.작가의 육필원고를 비롯,생전에 쓰던 온갖 생활용품들이 고스란히 전시된 그곳은 문학연구의 산실이 되기도 하고 책속에 갇힌 문학사를 생생히 재현하는 문학관광의 명소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 문인들의 생가는 보존된 경우가 드물며 육필원고도 무관심속에 사라지고 있다.육필원고가 남은 청마의 경우는 오히려 다행한 편에 속한다. 신라시대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유명문학작품과 문인의 유품을 보관·전시하는 문학박물관이 빠르면 오는 11월 문을 열리라는 소식은 참으로 반갑다.서대문구청이 옛 서울여상 팔각정건물을 개수하여 황순구교수(동국대)와 문인협회 제공자료를 전시한다니 실현가능성이 높을 듯싶다.문학박물간 건립은 지난 70년대부터 논의돼온 우리문단의 꿈이다.
  • 퇴임후에 더 빛난 닉슨/이경형 워싱턴 특파원(오늘의 눈)

    리처드 닉슨 미전대통령의 장례는 오는 27일 거행된다.클린턴미대통령은 닉슨이 지난 22일밤 운명하자 다음날 그의 장례일을 「국가애도일」로 선포했다. 장례일 하룻동안 백악관을 비롯한 전연방기관은 그를 애도하기 위해 휴무하며 휴일인 토요일에도 쉬지 않는 우편배달도 이날만은 휴무키로 했다.그뿐만 아니라 미국내 모든 공공기관은 물론 해외에 있는 미국의 외교공관이나 미군기관도 한달동안 조기를 달도록 했다. 우리나라로 치면 「국장」에 해당되는 최고의 장례의전이라고 할 수 있다.그러나 그의 장례식은 워싱턴이 아닌 캘리포니아의 요바 린다에서 거행된다. 그는 출생지인 그 곳에 이미 건립된 「리처드 닉슨 도서관」의 뒤뜰에 묻힌다. 과거 케네디·아이젠하워·존슨 등 많은 대통령들이 미의사당에서 「국장」의식을 가졌지만 닉슨대통령의 가족들은 그같은 워싱턴에서의 「번거러운」 의전절차를 생략토록 했다.닉슨이 생전에 자신의 장례는 워싱턴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고향에서 간소하게 치러질 것을 희망했기 때문이라고 한다.그의 과거참모들은 닉슨이 그같이 결정한 것은 아마도 「퇴임당시」(74년 워터게이트사건으로 하야)를 염두에 두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미국역사상 스캔들로 임기중에 물러난 첫 대통령으로 기록된 자신의 부끄러움을 자책한 탓일 것이다. 클린턴대통령은 닉슨이 운명하자 중국과 외교관계수립등 재임시 치적을 소개하며 『미국민을 다음 세기까지 안전하게 이끌기위해 그가 발휘한 지혜를 높이 평가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흔히들 닉슨을 「워터게이트추문의 장본인」으로 치부하고 있지만 분명 그는 「외교의 귀재」로 평가되는가 하면 국내적으로도 많은 「정치문화」를 확립한 「능력있는 정치인」으로 꼽힌다.예를 들어 지난 60년 케네디후보와 미국역사상 첫 TV토론을 가진이래 대통령선거전의 TV토론문화를 정착시켰다. 또 60년대 격렬했던 민권운동등 진보주의와 공화당의 극우보수주의가 타협할 수 있도록 정치적 교량역을 발휘하기도 했다. 닉슨은 백악관에서 하야한뒤 20여년동안 개인적인 녕일을 추구하기보다는 미국민의 안전과 세계의 평화를 위해 헌신했다.회고록을 비롯해 6권의 책을 저술했고 수많은 강연을 위해 국내외로 여행했다.어쩌면 대통령을 퇴임한뒤 「닉슨의 진면목」이 더 잘 나타났는지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나라에서도 「퇴임후의 대통령문화」가 형성되었으면 한다.
  • 도량인가 난장인가/이재근(서울광장)

    말없이 정진수행만으로 속세를 향해 말해야 할 승니들의 세계에 말이 너무 많아서 탈이다.말로 하다 안되니 폭력으로 나오고 폭력으로 안되니까 고발 고소로 이어져 난장을 이룬다.공권력을 빌리다가는 「청부폭력」혐의로 확대된다.위통을 벗고 발길질을 하며 돌팔매 몽둥이질로 아수라장을 이룬 끝의 업보일시 분명하다. 『소림사도 아니고….무슨 스님들이 그래』 불교조계종 총무원장 선출을 놓고 서울 조계사에서 빚어진 폭력사태를 접한 시민들이 한마디씩 내뱉은 말이다.분노와 증오 격정의 땀으로 일그러져 살기마저 서린 얼굴의 그들은 모두들 누구인가. 지난 겨울 열반에 드신 성철큰스님으로 하여 한껏 높아진 불교의 위상이 한꺼번에 무너진듯한데 대한 아쉬움도 여간 큰것이 아니다.성철스님은 생전에 『종단의 분규는,공부는 않고 섣부른 의욕만을 앞세운 자들의 「나 아니면 안된다」는 아집때문』이라고 질책하면서 수도자는 모름지기 명리를 떠나야 함을 늘상 강조했다.일제때 총독부의 우리 불교계 분열책동에 놀아나 이합집산 난맥상을 보였던 당시 승가계를 꼬집어 『벼룩 서말을 몰고가는 일보다 중 셋을 몰고가는 일이 더 어렵다』고 설파한 사람은 불교유신론을 제창한 만해 한용운이었다.오늘의 스님네들이 그와 다르지 않다.그러니 「한 불당에서 내사당 네사당」찾는 스님들의 행태가 속인들의 눈에 어떻게 비칠 것인가. 그 모두가 「집」과 「자리」다툼이다.흔히들 우리나라 사람들만큼 집과 자리에 대한 집착이 강한 경우도 없다고 한다.집있는 사람은 더 크고 쾌적한 집을 갖고자 하고 집없는 사람은 언제고 집없는 설움을 벗어나려 애쓴다.자리있는 사람은 더 큰자리를,자리없는 사람은 한자리 차지해 아래를 내려다보며 살고자 한다. 집과 자리는 다 필요한 것이다.집은 좋을수록 좋고 자리는 높을수록 나쁘지 않다.집과 자리는 안정·평화·행복의 외형이다.그러나 한편으로는 집착·탐욕·번뇌·무명의 내용이다.속인들은 그래도 할수 없다.그러나 스님들은 다르다. 불교는,모든것이 자기로부터 시작하지만 자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님을 가르친다.부처님의 말씀과 모든 경전은 자기를 무한히 확대하여 온누리 시방(십방)속으로 자기를 흩어지게 해야함을 교시한다.그것이 무아이며 무심이 아닌가 한다.자기를 시방속으로 흩어버리는 것은 온누리 모든 중생들에게 자기를 나누어주라는 말씀일 듯하다.이를 가르치고 실천하여 중생을 제도해야 할 스님들이 왜 걸핏하면 사생결단으로 피를 흘리며 싸운단 말인가. 출신 문중간에 반목 갈등이 쌓였고 재산다툼에다 종단개혁방법에 이견이 있다지만 그것은 그들의 문제이다.말로하다 안되면 어디 커다란 도량(도장)하나 빌려 그속에서 문닫아 걸고 사흘 석달 삼년을 싸워 해결하고 나올 일이지 왜 서울 한복판에서 대중들 불러놓고 피나게 싸우는가.세상의 모든 악다구니 싸움을 한사코 말려야 할 스님들이 오히려 싸움판을 벌여 말려도 말려도 듣지 않는다. 「10·27법란」을 비롯,역대 정권에 의해 어느 종교보다 자율과 자존을 침해받았다고 불교계는 주장한다.그리고 항상 전통종교의 자부심과 종단운영의 자율성을 강조한다.하나 그날 폐허로 변한 조계사안팎의 사진 그림들을 보며 사부대중들은 얼마나 황량감을 느꼈는지 스님들은 아마 모를 것이다. 「자비의 실천」을 으뜸으로 하는 불교에서는 폭력을 「무명업식」의 소산인 것으로 설명한다.인간이면 누구나 잠재적으로 갖고있는 하나의 「어두운 힘」인 것이다.아상·번뇌·교만·회의·집착과 재물·지위·쾌락·명예를 위한 한없는 욕망이나 분노등 마음속에 내재돼 있던 이 어두운 힘이 표면화된 것이 다름아닌 폭력이다.그래서 염의의 스님들 세계에서는 물론 모든 인간사에서 가장 경계되고 증오돼야 할 이 폭력행위가 도심의 대도량에서 파괴적으로 나타나고 있음을 보는 일은 우리 시대의 크나큰 서글픔이다. 폭력은 폭력을 낳는다.그리고 분명한 것은 어떠한 개혁이나 현실의 혁파도 폭력이나 다중의 위력에 의지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우리 사회의 약속이자 공통된 가치라는 점이다.대중들의 대가람 조계사 경내가 북새판을 이룬 시간에 천주교 김수환추기경은 부활절 메시지를 통해 『모두가 열린 마음으로 이웃사랑을 실천하면 세계화 국제화에서 반드시 이길 것』이라고 말했다.개방화 국제화를 향한 개혁시대의 조계종단과 그 스님들이 하루빨리 아집과 미망에서 벗어나 참되고 투명한,그리고 우리사회의 앞길을 밝히는 새모습의 승가·승가로 거듭나길 바란다. 이제 스님들 모두 모여 상처를 씻고 용맹정진에 들어가시라.사부대중 모두가 지켜볼 것이다.나무 관세음보살.
  • 사모곡 부르기도 부끄러운 자식이(박갑천 칼럼)

    어머니. 여든다섯해를 산 이승을 하직하신지 벌써 열흘이 지났습니다.눈감으신 날부터 황해를 쓸고 오는 바람결은 왜그리 세차던 것인가요.불효했던 자식을 나무라는 하늘 뜻이었다고 생각합니다.삼우제를 지내고는 마침내 눈까지 내려 어머니 유택도 하얗게 덮여 있었습니다. 불효했던 자식일수록 어버이를 여의고 나서 더 서러워 한다고 했습니다.생전에 제대로 그늘러보지 못한 죄가 가슴을 후비고 들기 때문이라 할 것입니다.어머니의 못난 자식이 그짝났습니다.어머니를 묻은 다음 어머니께서 지팡이에 의지하여 나들이하시던 사립을 나서면서 쏟아지던 눈물이 그것입니다.그것은 부끄러운 눈물이었습니다.어머니 여읜 슬픔의 눈물이라기 보다 지은죄를 우는 눈물이었다고 하겠기 때문입니다. 저 여조의 문호 백운거사(백운거사·이규보)는 『죽고 삶이 꿈 하나라 무엇을 근심하리』(사생일몽아하우)하고 노래했습니다.섭리의 영위에서 볼때 수유(수궤)에 지나지 않은 인생을 달관하는 초연함이었다 하겠습니다.하지만 어머니.범인은 그 경지에 이르기가 역시어렵나 봅니다.어머니 잃은 생채기 위로는 18년전 아버지 여의었을 때의 슬픔까지가 포개어져 따끔거립니다.모래바람 자욱한 광야에 선 양과도 같이 외로워지는 마음입니다. 어머니. 어린날 아버지께서 들려주신 얘기가 생각납니다.조선 선조때의 상신인재 홍섬에 관한 것이었습니다.어버이가 돌아가면 여막 짓고 3년 시묘하면서 죽으로 연명하던 시절입니다.홍인재는 그의 어머니가 아흔이 되자 사후에 대비한다는 뜻으로 그때부터 죽으로 끼니를 이어나갔습니다.그러다가 그 어머니가 돌아가자 종상하고서 그 또한 얼마잖아 숨을 거둔다는 내용이었습니다.나중에 보니 「어우야담」에도 기록되어 있는 얘기였습니다.그런 얘기를 듣고 자랐건만 어머니의 아들은 바쁘다는 핑계 아래 삼우제 지내기가 무섭게 탈복하고서 떠나와 버렸습니다.그 야멸친 자식의 뒷모습을 맞갖잖으나마 자애로운 눈길로 지켜보셨던 것이겠지요. 어머니.아버지와는 지금 어떤 대화를 나누고 계신지요.두분의 이승살이는 가난으로 가시밭길이었습니다.그곳에서는 부디 복락을 누리시옵소서.불효했던 이승의 자식은 부모은중경의 한대목을 되뇌어 봅니다.『가령 어떤 사람이 있어 그 왼쪽 어깨에 아버지를 메고 그 오른쪽 어깨에 어머니를 메고서 살갗이 닳아 뼈에 이르고 뼈가 패어 골수에 이르도록 수미산을 돌고 백천번을 돌더라도 부모의 은혜는 능히 다갚지 못하리라』
  • 동학농민구 자료 한자리에/농민전쟁 1백돌 기념 민속전

    ◎군임명장·노비 매매문서 전시/짚둥우리·쇠가죽솥등도 재현 동학혁명 당시의 농민군의 생활상과 활동상을 한자리에 모은 민속학 전시회가 눈길을 끌고 있다. 「짚·풀생활사박물관」은 「1백주년기념 동학농민전쟁 민속전」을 오는 6월15일까지 열 예정.전시회장은 지난 10일 개막이후 동학혁명을 낳고 진전시킨 당시의 생활사를 한 눈으로 이해하려는 관람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출품된 자료는 역사학자와 민속학자들의 고증을 거쳐 재현한 당시의 짚둥우리·쇠가죽솥등의 민속자료를 비롯,규장각과 개인소장자들로부터 입수한 동학군 임명장과 나주동학군명록,노비매매문서등의 각종자료 1백50여점.25평 남짓한 전시공간에 오밀조밀하게 배치 돼 있어 관람객들의 시선을 모은다. 전시는 전봉준과 김개남·손화중등의 사진과 일본군의 서울침입 화보,농민군에게 주저리를 씌워 불태워 죽이는 장면을 재현한 사진을 순서대로 나열함으로써 보는이로 하여금 상상적 체험을 불러일으키도록 한 것이 특징.또 동학2대 교주인 최시형의 사진과 생전에 그가즐겨 소일거리로 삼았다는 짚신 만드는 과정도 전시실 한편에 마련해 발길을 잡아둔다. 박물관장 인병선씨는 일제시대 민족사학자 인정식씨의 딸이자,시인 신동엽씨의 미망인.그는 『우리 농촌은 아직도 농민전쟁의 아우성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상황』이라면서 『우리 민속학도 이제 유리장에서 나와 역사의 현장에 당당히 설 때가 됐다고 생각해 이번 전시회를 기획했다』고 말했다.「짚·풀생활사박물관」은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 있다.문의는 516­5585
  • 독 판화거장 에른스트전/새달 19일까지 국립미술관

    ◎초현실주의 2백점 선보여 콜라주와 프로타주등의 미술기법들을 창안해낸 독일의 대표적 초현실주의 작가 막스 에른스트(Max Ernest) 판화및 도서전시회가 오는 4월19일까지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원형전시실에서 열리고있다. 국립현대미술관과 주한독일문화원 공동주최로 마련되는 이번 행사는 독일 국영항공사 루프트한자 문화재단이 소장한 막스 에른스트의 유작중 1919년부터 74년 사이 제작된 판화 2백점과 그의 삽화가 삽입된 도서와 화보 30여점이 선을 보인다. 1891년 독일 브륄지방에서 출생한 막스 에른스트는 독일 프랑스 미국을 중심으로 활동했으며 1976년 사망때까지 전통적인 판화기법에 변화를 시도한 작업으로 일관,현대 판화기법의 대부분이 그의 손에 의해 창안된 것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이미 1920년대에 사진기법에 의한 판화를 발명했고 다다와 초현실주의를 잇는 콜라주작업과 프로타주기법을 시작한데 이어 포토그래픽 개념을 도입하기도 했다. 그의 실험성 짙은 예술인생은 영화화되기도 했는데 「나의 방랑벽」「나의 불안」등이 그의생전 모습과 작품세계를 담은 대표적 영화로 「봄의 교향곡」의 독일감독 페터 샤모니는 이 영화들로 인해 지난 92년 독일 바이에른 영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번 전시되는 유작들은 1920년대 제작된 다양한 기법의 판화나 1930년대의 콜라주소설들,프로타주기법을 망라해 그의 예술활동 전반을 보여주는 자료들로 초현실주의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과감한 인식전환과 함께 노력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한편 전시기간 동안 전시장내에서 「나의 방랑벽」「나의 불안」비디오 상영도 곁들이고 있다.
  • 「월간 현대종교」 사장 취임/고 탁명환씨 아들 지원씨

    ◎“선친 뜻이어 사이비종교 기필코 척결”/모든 활동 교계대표들과 협의해 처리 고 탁명환씨의 아들 지원씨(25)가 최근 아버지가 맡아하던 종교평론지 「월간 현대종교」사의 사장겸 발행인으로 취임했다. 『선친의 뜻을 이어 종교문제연구와 사이비종교척결을 위해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지난달 성결교신학대를 졸업한 그는 『아버지는 평생을 종교계 개혁을 위해 헌신해오신 분』이라고 회고하고 『생전에 못다하신 유업을 이어 이 땅에 진정한 종교가 뿌리내리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앞으로의 계획을 밝혔다. 그는 『중학교때부터 부친을 따라 사이비종교의 현장을 보아온 때문에 누구보다도 그 실상을 잘 알고 있다』며 「월간 현대종교」는 그동안 해온 것처럼 『학술적인 내용과 교회개혁및 사이비종교척결등의 문제를 중점적으로 다루게 될것』이라고 말했다. 『앞으로의 모든 활동은 교계대표들과 협의해 처리해 나가겠다』면서 고인이 생전에 관심을 쏟았던 「국제종교문제연구소」도 이런점에서 종교계 대표들이 참여하는 범교단차원에서 운영될것』이라고 했다. 그는 지난달 구성된 「탁명환소장 피살사건 대책위원회」는 수사가 마무리 되는대로 「국제종교문제연구소후원회」로 탈바꿈해 연구소운영을 지원하게 될 것이라며 연구소장은 선친의 은사인 문상희연세대명예교수를 모실 계획이라고. 후원회에는 10여명의 원로 목사와 장로등 교계대표들이 이사로 참여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 요절시인 기형도 재평가작업 활발

    ◎5주기 맞아 선후배문인 추모문집 「사랑을 잃고…」 발간/미 발표시 16편·기씨에 관한 소설·평론 수록/“자신의 고통을 시로 승화하는데 성공”평/허무주의 천착한 시세계,사후 젊은시인에 큰 영향 지난 89년 3월 스물아홉의 나이로 세상을 등진 시인 기형도. 그의 죽음은 「요절시인」이란 명제말고도 허무주의 천착으로 집약되는 시세계로 말미암아 수많은 뒷이야기를 남기며 세인의 입에 오르내렸다. 특히 사후 출간된 유고시집 「입속의 검은 잎」은 젊은 시인들에게 적지않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평가되고 있고 평단에서도 그에 대한 평가가 계속되고 있다. 그가 세상을 떠난지 5주기를 맞아 선후배 문인들이 또다시 추모문집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를 솔출판사에서 펴낸 것은 이같은 평가작업의 일환.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종이들아 잘있거라,더 이상 내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빈 집에 갇혔네』(빈집) 그의 유작 「빈집」의 첫 구절에서 따 이름을 붙인 문집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는 그의 미발표시 16편과 함께 선후배 문인들이 그에 관해 쓴 시 소설 평론들을 담고 있다. 황동규 오규원 이문재외 김영승 임동확 이상희 조병준 나덕희시인이 그를 떠올리며 시를 실었고 원재길 신경숙이 그를 소재로 지은 소설을 담았다. 이외에도 남진우 장정일 이광호 이경호 성석제등이 시인 기형도와 그의 시세계를 되짚는 추모의 글로 동참하고 있다. 사실상 생전보다는 사후에 유작시집이 나오면서 새삼스레 주목받는 시인으로 부각됐던 기형도는 죽음에의 경도와 시 전반에 짙게 배어있는 허무주의가 독특한 여운을 남기며 관심을 모았었다. 이 문집에 실린 16편의 시들은 대부분 대학시절 남긴 것들로 이같은 경향을 그대로 드러내는 흐름들이다. 『가라,어느덧 황혼이다 살아있음도 살아 있지 않음도 이제는 용서할때 구름이여,지우다 만 어느 창백한 생애여 서럽지 않구나 어차피 우린 잠시 늦게 타다 푸시시 꺼질 몇점 노을이었다』(쓸쓸하고 장엄한 노래여중) 『두렵지 않은가.밤이면 그림자를 빼앗겨 누구나 아득한 혼자였다.문득 거리를 빠르게 스쳐가는 일상의 공포 보여다오.지금까지 무엇을 했는가 살아있는 그대여』(노을중) 이 추모문집은 그의 시경향을 파고듦과 함께 이같은 시작뒤에 서려있는 비밀에 접근하려 하고 있다. 살아온 그대로의 고통스런 기록으로 평가되는 그의 시를 놓고 평론가 남진우씨는 『기형도의 시세계를 삶의 비극성과 죽음에 대한 천착이라는 시각에서 단선적으로 평가하거나 신비화하는 것은 바람직한 태도라 할 수 없다』면서 『그는 아름다운 이미지의 힘을 빌려 자신의 고통을 띄워 승화시키기 위해 시를 썼고 또 그것에 성공했다』고 평가한다. 그런가하면 문학평론가 이경호씨는 『그는 앞선 세대,혹은 동시대 시인들이 보여준 시적 특징과 다른 세계에서 시쓰기의 방법론을 보여주었다』며 『80년대 전반기의 시 쓰기와 후반기,혹은 90년대의 시쓰기가 갖는 차별성을 기형도 시인의 작품세계와 연관시켜 논하는 작업은 앞으로의 과제로 남아있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 탁씨 시신·장기 기증/생전 「운동본부」에 등록

    ◎각막 2명에 이식수술 마쳐/시신 연대병원 해부용으로 숨진 탁명환씨는 생전에 시신과 모든 장기를 기증하기로 등록을 해놓은 것으로 밝혀졌다. 탁씨의 시신은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에 기증돼 의학연구용으로 쓰일 예정이다. 탁씨의 각막도 유가족의 동의를 얻어 사망직후인 19일 상오4시쯤 당직검사의 입회아래 적출수술을 거쳐 이날 하오 세브란스병원 각막이식팀에 의해 김모씨(35·여)와 이모씨(27·여)에게 이식됐다. 탁씨는 91년 2월 『고통받는 이웃과 의학발전을 위해 각막과 장기및 시신을 기증하겠다』는 뜻을 밝히고 사랑의 장기기증운동본부(본부장 박진탁목사)에 기증등록을 해놓았었다. 또 탁씨의 아버지와 부인,세 아들도 사후 시신을 기증하기로 등록을 해 놓았다고 운동본부측은 밝혔다. 탁씨의 시신은 21일 영결예배를 가진뒤 연세대 의대 해부학교실로 옮겨져 1∼2년동안 의학연구에 쓰여진 뒤 생전 모습대로 골격을 맞춰 해부학교실에 영구보존된다.
  • 끝없이 그리운평화/요절아내 유고시집 공무원 남편이 펴내

    ◎정문경시인의 유작시 67편 묶어/“시집출간 갈망” 생전의 소원 풀어 남편이 먼저 세상을 떠난 시인아내의 유작시들을 모은 시집을 발간해 화제다. 지난 92년1월 아들을 출산한직후 35세으 젊은 나이로 요절한 정문경시인(본명 정금자)의 유고시집 「끝없이 그리운 평화」가 그의 사망 만2년만에 남편 임익문씨(37)에 의해 세상에 나온 것. 고정문경시인은 87년 등단,요절할 때까지 짧은 기간이지만 왕성한 작품활동을 벌였던 문인으로 다정다감한 서정과 날카로운 풍자,치열한 의식의 표출등으로 시단에서 주목받으며 활동중 첫 시집도 내지 못하고 갑작스런 죽음을 맞이해 주위 사람들을 안타깝게 했다. 이번 시집은 공무원으로 재직하며 아마추어 시인이기도한 남편 임씨가 부인의 생전 염원을 뒤늦게나마 풀어주기 위해 고인의 유작시 67편을 묶은 것. 『살아 생전에 시집 한권을 내기위해 그토옥 갈망했었는데 뜻도 이루지 못한채 먼저간 아내에게 항상 마음의 빛으로 남아있었습니다.이렇게나마 시집을 내고 보니 조금은 홀가분해진 것 같습니다』 시집가운데 표제시 「끝없이 그리운 평화」와 「미사리 강변」은 대표작으로 순수성에의 의지와 슬픔을 짙게 내재한 흐름들이다. 『강 건너 풀숲에는 지울 수 없는 울림이 라르고로 흐르고/마주하면 염려되는 눈물/강 건너 마을엔 열릴 듯한 문고리가 흔들리고/그리운 평화/서툰 그리움일지라도/애잔한 꽃다발처럼/끝없이/그리운 평화』중에서) 『미사리 강변에/바람꽃 불어/강물속에 모두다 미류나무만/긴 강둑 향해 목이 메인다/숨죽이는 축축한 바위/모여 앉은 모래알/낮게 엎드려도 더 낮게 울음하는 바람꽃만 차오르고/노을빛 부끄러움으로/싯달타도 없이 연꽃을 그린다』(「미사리 강변」중에서)
  • 합격 백93명 불합격처리/전산착오 창원전문대

    【창원=강원식기자】 94년도 신입생전형과정에서 내신성적에 대한 전산입력착오로 물의를 빚고 있는 창원전문대(학장 이문우)는 15일 전산입력이 잘못된 14등급 합격자 2백30명 가운데 1백93명을 불합격 처리하고 1천6백65명의 합격자명단을 새로 발표했다. 학교측은 등록을 마친 상태에서 불합격처리된 학생들에 대해서는 교육부에 유권해석을 의뢰,처리할 방침이나 해당학생들의 심한 반발등 진통이 뒤따를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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