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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궁금증 더해가는 김정일승계시기/「9·9절」행사서 왜「대관식」없었나

    ◎“김일성추모 끝난뒤”는 확실/장지추정 단군릉공사와 연관/김정일은 명목상 구심점… 「당지배」 가능성 김정일의 권력승계 공식화 시점이 10월 이후로 연기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이는 북한당국이 북한정권 창건 기념일인 9일에도 이와 관련한 아무런 움직임을 보이지 않음으로써 분명해지고 있다.이날 정권창건 46돌을 맞아 열린 중앙보고대회에서도 김의 당총비서 및 국가주석 취임 시점에 관한 언급이 전혀 없었고,이를 짐작할 만한 단서도 표출되지 않았다. 김정일이 불참한 가운데 진행된 이날 행사에는 강성산총리와 이종옥·김병식부주석 및 정치국위원 등 고위 인사들이 참석했으나 권력서열 변화 등 특이 동향도 발견되지 않았다. 주석단이나 정치국위원 등 권력핵심의 자리 변동이 없다는 사실은 김의 권력승계가 공식화될 때까지 현재의 진용이 유지될 것임을 시사한다.동시에 김이 아직 인사권 등 전권을 휘두르지는 못하고 있음을 반증한다는 분석도 있다. 이 때문에 향후 북한체제가 이른바 「당적 지배체제」로 귀결될 공산이 짙어지고 있다는 게 통일원 등 정부일각의 관측이다.즉 당총비서나 국가주석에 취임하더라도 명목상의 구심점 역할에 그치고 실제 중요 의사결정은 당정치국 원로들에 의해 이뤄질 가능성이 유력시된다는 얘기다. 이같은 분석을 뒷받침하듯 이날 보고대회에서도 김정일시대를 감지하게 할 만한 대내외 정책 비전 제시보다는 생전의 김일성노선 관철이 강조됐다.특히홍성남부총리가 보고문에서 『김정일을 중심으로 하는 「당의 두리(주위)」에 뭉치자』고 말한 대목도 무소불위의 전권을 휘두르던 김일성체제에선 사용하지 않던 표현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어쨌든 이번 대회에서도 김의 1인자 승계가 이뤄지지 않음으로써 그의 「대관식」은 김일성 시신처리가 끝난 이후 시점으로 미뤄질 것이라는 관측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이와 관련,『김정일의 공식 권력승계가 늦어지는 것은 김일성의 장지로 선정한 이른바 단군릉 옆 묘지 공사가 끝나지 않았다는 단순한 이유일 지도 모른다』며 『현재로선 그 시기를 점칠 수는 없지만 공사가 마무리된 직후가될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이같은 분석은 현재로선 하나의 가설일 뿐이다.다만 북한체제의 핵심 기득권 세력들이 공멸을 막는다는 차원에서 김정일 옹립에 합의했든, 김이 완전한 권력장악에 성공했든 아직 북한내부에 심각한 권력암투 기미는 보이지 않는 것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정일체제의 공식화가 지연되고 있는 까닭은 김일성 묘지마련이 늦어지는 등의 사유일 수도 있다는 관측이다.
  • 윤이상과 음악과 조국/임영숙 논설위원(서울광장)

    신문기자 생활을 시작하면서 처음 만난 세계적 한국인이 윤이상씨였다.아직 「수습」딱지도 떼지 않은 햇병아리 기자로 그에 관한 박스 기사를 썼는데 71년 서독 킬시에서 초연된 그의 오페라 「요정의 사랑」을 다룬 외지의 평을 소개한 것이었다. 「요정의 사랑」은 72년 뮌헨 올림픽 개막작품으로 공연된 오페라 「심청」에 앞서 작곡가 윤이상씨의 명성을 확고히 해주었던 작품이었던 것같다.어느 인터뷰에선가 그는 「요정의 사랑」이 초연당시 무려 서른여섯번의 커튼 콜을 받았다고 회고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그의 작품을 직접 만난것은 음악회를 통해서도 아니고 음반을 통해서도 아니고 몇몇 문인과 기자들이 함께 자리한 어느 모임에서였다.흥겨운 모임의 뒷자리가 으레 그렇듯 그 모임도 노래부르기로 끝나게 됐는데 한 사람이 윤이상씨가 작곡한 노래를 부른 것이다. 물론 처음엔 아무도 그 노래가 윤이상씨의 작품인줄 몰랐다.그 노래를 부른 사람은 평소 전혀 노래를 부르지 않아 노래 실력이 빵점인 나의 마지노선 역할을 하곤 했었다.그런 그가노래를 한다는 사실과 생전 처음 듣는 노래에 일동은 숨을 죽였는데 노래를 마친 그가 자신의 고등학교 시절 교가라고 밝혀 폭소가 터져나왔다. 윤이상씨는 56년 파리 유학을 떠나기전 부산고등학교에서 잠시 음악교사로 재직했고 당시 부산고 교가를 작곡했다.유치환 작사의 그 교가를 노래와는 인연이 먼 졸업생은 참으로 독특하게 불러서 두고두고 화제가 됐다.유쾌하지만 음악적이지는 못했던 그 만남이후 최근까지 윤이상씨의 음악을 들을 기회는 없었다. 그만큼 윤이상씨는 우리에게 「실체」가 아닌 「풍문」이었다.그의 정치적 행보와 관련된 음악외적인 이유로 그와 그의 음악이 금기시된 탓이긴 하지만 음악분야를 오랫동안 취재했던 기자로서는 불행한 일이었다. 그래서 윤이상의 음악세계를 본격적으로 조명하는 국내 첫 시도인 「윤이상음악제」(8∼17일·서울 광주 부산)에 달려갔다. 서울 예술의 전당 음악당에서 열린 첫날의 관현악연주회 청중은 여느 음악회 청중들과 달랐다.S석,A석등 이른바 비싼 좌석은 빈 자리가 많았지만 무대 뒤 좌석같은값싼 좌석은 촘촘히 메워졌다.그런 객석엔 숙연한 긴장감마저 감돌았다. 윤이상의 음악은 의외로 감동적이었다.서양인들에겐 난해하고 신비스럽게 비쳐지는 그의 음악이 우리에겐 낯설지도 난해하지도 않았으며 오히려 친숙하게 느껴졌다.그의 음악어법은 서양 현대음악이지만 그 속에 담긴 정서는 한국적이었던 탓일까.교향시「광주여 영원히」에서는 국악기인 박이 등장하기도 했다. 특히 강동석씨가 협연한 「바이올린 협주곡 1번」은 아름다웠다.산사의 목탁소리를 연상시키는 타악기와 어둡고 감미로운 바이올린의 대화부분이 압권인 2악장 아다지오는 눈물이 나올만큼 아름다웠다. 연주가 끝난후 청중들은 바이올리니스트 강동석씨를 다섯차례나 불러낼 정도로 박수갈채를 보냈고 지휘자 임원식씨는 악보를 가슴에 안고 객석의 환호에 답하며 작곡자 윤이상씨에게 경의를 표했다. 그러나 윤이상 없는 「윤이상음악제」에서 돌아오는 길은 씁쓸했다.풍문의 그를 만난지 20여년만에 그의 음악의 실체를 접하기는 했지만 인간 윤이상은 여전히 풍문에 머물러있어야 한다는 것이 서글펐다. 77세의 병든 노구로 고향땅을 밟고자 하는 그의 염원을 가로막아야 했던 것은 가슴아픈 일이다.이번 귀국이 좌절된후 병원에 입원하면서도 그는 안숙선씨의 남도민요CD를 가져갔다고 한다.남도창을 국제화하고 싶다는것이 작곡가로서 그의 마지막 희망이라는 것.그런 그가 귀국후 정치적 활동을 하지 않을까 염려하는것은 기우일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들 마음속에 깊이 스며있는 그의 친북한 행적에 대한 섭섭한 마음이 아직도 완전히 가신 것은 아니다.하지만 그의 귀국이 북한을 이롭게 하기보다는 우리를 이롭게 하는 일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맴도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음악과 정치와 조국을 생각하게 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 익산의 유적들(백제를 다시본다:27)

    ◎무왕 익산에 새도읍 건설 추진한듯/미륵사와 왕릉 추정의 쌍릉 이웃에/왕궁리 4∼5㎞ 주변 토성·산성 산재/중국문헌에 “무광왕 천도” 기록… 출토유물도 문헌과 일치 삼국시대의 문화유적은 주로 도읍지와 그 도성 밖 가까운 지역에 밀집되어 있다.요즘 개념으로 말하면 수도와 수도권에 해당하는 지역에 몰려 있었던 것이다.고구려와 백제는 몇 차례에 걸쳐 수도를 옮기면서 그 이웃에 귀족문화흔적을 펼쳐놓았다.수도를 단 한번도 바꾸지 않은 신라 역시 경주를 중심으로 수많은 유형의 문화를 영조했다. 고대국가가 수도를 경영하는 과정에는 대개 몇가지의 공통적 특징이 나타난다.그 하나가 화려한 왕궁을 건설하는 일이다.전제왕권이 강화되면서 필연적으로 일어난 문화현상인 것이다.이어 거대한 사찰을 창건하게 되는데,사찰은 국가가 관장하는 국립사찰형태로 창건했다.불교는 사회문화발전에도 기여했을 뿐 아니라 전제왕국의 호국이념으로도 받아들여졌다. 그리고 도성을 지척에 둔 자리에는 반드시 왕릉이 축조되었다.삼국시대의 왕릉은 규모도 물론 컸거니와 묘제를 적용한 방법이나 껴묻거리(부장품)가 호화롭기 그지없었다.이들 왕릉을 통해 당대의 문화상이 어떠했는가는 백제의 경우 공주 무령왕릉과 부여 능산리 고분군이 증거하고 있다.이렇듯 수도로서의 도읍을 경영하는데 왕릉이 수반된다는 사실 이외에 왕도의 면모를 갖추기 위한 도성의 경영도 필수적으로 나타난다. ○우리기록엔 없어 이들 삼국의 도읍지는 모두 역사기록에 나오는 수도들이다.그런데 역사가 기록하지 않은 왕도의 모습이 보인다.고대국가가 수도를 경영하는데 필수적으로 수반하는 모든 조건을 다 갖추어 어렴풋이나마 왕도로 떠오르는 땅은 바로 오늘날 전북 익산군 금마면과 왕궁면일대다.그래서 일찍부터 이른바 「백제 익산천도설」이 제기되었다.익산을 왕도로 볼 수 있는 정황은 고고학적 발굴이나 현존하는 유적을 통해 여러군데서 발견된다. 이 지역 금마면 기양리에는 우선 백제 최대의 가람규모를 자랑하는 그 유명한 미륵사터가 남아 있다.5층석탑의 잔영을 겨우 전하고 있지만,미륵사터에 대한 장기적인 고고학발굴에서 찬란한 백제불교문화상을 속속 파헤쳐냈다.그리고 미륵에서 2㎞ 떨어진 금마면 연동리에는 백제불상광배가 갖는 독특한 특징을 보여주는 석불이 남아 이 지역에 융성했던 불교의 실상을 가늠케 해주고 있다. 우리가 「백제 익산천도설」을 어느정도 수용하고 익산지역을 들여다보면 흥미로운 부분이 많다.이를테면 왕궁면 왕궁리 왕궁평도 그러한 지역의 하나다.여기에는 왕궁이 있었다는 구전의 전설이 전해내려오고,실제 백제의 문화유산이 곳곳에 흩어져 있다.현재 5층석탑 1기가 남아 있고,그 이웃에서 제석사라는 새김글씨가 든 백제기와가 출토되었다.제석사가 세워졌던 자리로 추정되는 절터에서는 목탑의 주춧돌이 발굴되기도 했다. ○「궁려사」 기와 출토 이 왕궁리에서는 고고학발굴결과 사구석유구와 함께 관궁사라고 새긴 기와를 발견함으로써 익산천도설에 더 가까이 접근한 바도 있다.어떻든 왕궁리유적은 백제의 왕궁이 자리한 가운데 왕실의 원찰로서의 제석사가 창건되었으리라는 추론을 뒷받침한다.이 왕궁리와 더불어 생각할 수 있는 유적은미륵사다.왕궁평에서 3㎞에 불과한 미륵사는 도성 이웃의 대가람으로 창건되어 미륵하생의 이상향적 불국토를 염원하는 불심을 담았을 것이다. 왕궁리를 중심축으로 한 반경 4∼5㎞ 안에는 백제시대의 여러 성곽이 있다.미륵산성을 비롯,왕궁리토성,익산토성 등이 그것이다.왕궁평을 왕궁이 세워졌던 자리로 본다면,북쪽으로 국립사찰격의 미륵사와 주변 성곽은 의도적으로 배치한 것이 아닌가 한다.그래서 8·15이전에 이미 익산일대의 유적배치상을 통해 중국 낙양의 수도경영형식과 근사하다는 견해를 제시한 바 있다. 그뿐이 아니라 익산지역에는 백제왕릉으로 추정되는 쌍릉이 존재함으로써 고대국가 수도 경영형식과 꼭 맞아떨어진다.이에 따라 「백제 익산천도설」은 끊임없이 제기되어왔다.다만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와 같은 우리 사서에 기록이 나타나지 않아 이를 전적으로 뒷받침하지 못했다.문헌사학과 현존 유적및 고고학발굴성과 사이에 괴리가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익산천도설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자료가 얼마전에 소개되었다.일본인학자 목전체량이 중국문헌에서 백제천도 사실을 적은 기사를 발견한 것이다.9세기경에 찬술된 이 자료는 「백제무광왕천도 지모밀지 신영정사 이정관십삼년… 천대뢰우 수재제석정사」라고 기술하고 있다.여기서 우선 정관13연은 AD639년으로 백제 무왕40년에 해당한다.그리고 무광왕으로 표기한 왕은 무왕을 가리킨 것이 틀림없다. 이 중국문헌에 나오는 지모밀지가 어딘지는 확실치 않다.그러나 지모밀지로 도읍을 옮겨 새로 지은 절이 제석정사라고 기술함으로써 「제석사」라는 새김글씨가 들어 있는 익산 왕궁리 출토 명문기와의 절이름과 일치한다.또 제석사가 벼락을 맞아 불에 탄 이후 목탑에서 꺼낸 유물들을 일일이 예로 든 대목도 눈길을 끈다.왜냐하면 현존하는 왕궁리 5층석탑을 해체복원할 때 발견한 김판금강반약경·사리함·사리병 등이 목탑속에서 꺼냈다는 불구유물기록과 똑같기 때문이다. ○사비와 별군 추정도 그렇다면 중국 문헌자료에 나오는 제석정사와 오늘날 절터만이 남아 있는 제석사는 같은 절이라는 등식이 성립한다. 또 제석사 목탑에서 꺼냈다는 불구들과 왕궁리 5층석탑에서 나온 불구유물 역시 서로 상관관계를 갖는다.이로 미루어 지모밀지는 오늘날 익산 왕궁면 왕궁리일대라는 사실이 분명해지는 것이다.특히 정관13년은 백제 무왕의 재위 연간이고,익산 미륵사를 무왕때 창건했다는 「삼국유사」기록을 신빙성을 가지고 다시 떠올려볼 수도 있다. 이들 문헌자료나 고고학자료들은 무왕이 익산으로 천도한 사실을 후세에 전하고 있는 중요한 자료인지 모른다.그러나 학계는 대체로 사비도성의 별도로 익산지역을 수도로 경영했을 것이라는 쪽과 천도를 준비한 단계로 보는 쪽도 있다.백제 익산천도의 꿈이 실현되었는지 아니면 끝내 실현을 못보았는지에 대한 수수께끼는 앞으로 풀릴 수 있는 여지를 남긴다.정부가 현재 이 지역을 대상으로 대규모 국책발굴사업을 진행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마지막으로 무왕이 왜 익산으로의 천도계획을 구체화했는가를 짚어볼 차례다.거기에는 광활한 호남지방으로 진출하는데 필요한 거점확보정책이 깔려 있을 것이다.또 한편으로는 무왕 때까지도금마일대에 활거한 마한의 세력집단을 융합 내지 통합하려는 의도도 다분히 내포되었다고 할 수 있다. ◎석왕동 쌍릉/능산리고분과 같은 굴식돌방무덤/“무강왕릉” 구전… 무왕부부묘 가능성 무왕(?∼641년)은 사비시대 백제의 지위를 한껏 격상시킨 정복군주다.불교문화를 꽃피우면서 신라를 위협,낙동강유역까지 진출하는 등 영토를 확장하는데도 크게 공헌했다.특히 익산천도의 꿈을 키운 군주로도 유명하다. 무왕의 익산천도가 실현되었는지의 여부는 떠나 그가 묻힌 지역도 익산지방이라는 설이 제기되어왔다.오늘날 행정구역상으로 전북 이리시 석황동에 있는 쌍릉을 무왕의 능묘로 지목하고 있는 것이다.무강왕릉이라는 전설을 지닌 이 쌍릉은 북쪽의 것을 대왕묘,남쪽의 것을 소왕묘로 부르고 있다.1915년 일본인 다니이(곡정제일)에 의해 백제말기인 7세기경 굴식돌방무덤(횡혈식석실분)으로 밝혀졌다. 대왕묘는 지름 30m,높이 5m 정도이고 소왕묘는 지름 24m,높이 3.5m정도인데 모두가 원분이다.내부는 서로 차이가 있지만 부여 능산리고분 돌방과 같은 형식의 널돌(판석)을 사용했다.대왕묘의 경우 널방(현실)을 남북 장축의 장방형 편면을 이루었다.남벽 중안에 널길(선도)이 나 있고 널길은 널돌로 막았다.4면의 벽과 바닥·천장은 다듬은 널돌로 조립한 형태다. 그리고 바닥 중앙에는 한 단이 높은 석재 한장을 가지고 널받침을 마련해 놓았다.조사당시 유물은 이미 도굴되었으나 널만은 그냥 남아 있었다.이 나무널은 복원되어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이 널에는 관못과 관고리가 달렸다.관고리에는 여덟 잎사귀의 연꽃형 밑동쇠(좌금구)가 달려 호사스럽다.널의 크기는 길이 2.4m,너비 0.76m,높이 0.7m로 되어 있다. 이 능묘는 무왕이 창건한 미륵사 등의 유적이 이웃에 산재한 사실을 감안하면 무왕과 왕비의 무덤일 가능성도 엿보인다.특히 무왕의 익산천도의지와 연관해볼 때 그 가능성은 더욱 짙다.설령 익산천도가 이루어지지 않았더라도 장차 꿈을 실현시킬 염원을 가지고 무왕 스스로가 생전에 이 지역에 묻히길 자처했는지도 모른다.
  • 태 총각들/「잠자다 죽는 병」 번져/원인불명 야면돌발사 증후군

    ◎90년이후 4년간 1천여명 희생/“처녀귀신 탓” 액땜 여장까지 성행 「잠자다 죽는 병」이 혈기왕성한 젊은 태국 남성들 사이에 자주 발생하고 있다.의학자들에 의해 원인불명야면돌발사망증후군(SUNDS)」으로 불리는 이 해괴한 병은 건강한 남자가 밤에 잠자다 까닭없이 죽는 병인데 여자에게서 발생한 사례는 없었다. 이 병이 90년 처음 공식 보고된 이후 4년여간 태국에서 발생한 희생자만도 1천명이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태국 정부는 특히 이 병으로 해외에서 죽은 태국 근로자가 지난 90∼93년 3년동안 싱가포르 80명,사우디 아라비아 57명을 합쳐 약 2백명이라고 밝혔다.태국보사부는 이 기간중 싱가포르에서 사망한 다른 태국 근로자 1백37명의 대부분도 사인이 불분명하다면서 이 병으로 죽었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태국정부는 노동자들이 많이 나가 있는 싱가포르나 사우디아라비아,브루나이,대만에 보건관을 파견해 이들의 보건문제를 적극적으로 다루는 문제를 검토하고 있다. 태국정부는 원인규명을 위해 국내 의학자들을 동원하고 미국,유럽,싱가포르 의사들에게 의뢰까지 했지만 소득이 없었다. 멀쩡한 젊은이들이 이처럼 죽어나가자 태국 일부지역에서는 생전에 남자와 짝을 짓지 못한 처녀귀신들의 소행때문이라는 미신이 널리 퍼지고 마을입구마다 남성 상징물이 세워지기도 했다. 특히 태국 북부 우본 라차타니주 일부 마을에서는 3년전 이 병으로 죽어나가는 청년들이 늘어나자 남자들이 처녀귀신을 쫓는다며 가발을 쓰고 손톱에 매니큐어를 바르는 등 여장을 하거나 병원을 찾아와 성전환 수술까지 요구하는 사례도 있었다. 실제로 남성 상징물 설치덕택에 효과를 봤다는 주장을 한 사람도 있는데 반퉁 냥 오아크 마을의 푸수리라는 50대 농부는 처녀귀신들이 나타나 자신의 남근을 절취해가는 꿈을 꾼후 집앞에 2m의 모조 남근상을 세운 후부터는 꿈에 귀신들이 나타나지 않더라는 것이다.
  • 김정일 승계/중,공식지지/전기침외교부장

    【내외】 전기침 중국부총리겸 외교부장은 김일성 사후 중국 고위관료로는 처음으로 김정일 권력승계에 대한 지지입장을 공식표명했다. 전외교부장은 지난 1일 북한 정부특사 자격으로 중국을 방문중인 외교부 부부장 송호경과 만난 자리에서 『중국인민은 조선인민이 김정일을 수반으로 하는 노동당의 두리에 굳게 뭉쳐 김일성주석의 생전의 뜻을 실현해 나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고 북한 중앙방송이 3일 보도했다.
  • “김정일 주석 승계 지연은 후계문제 완료됐기 때문”/북 중앙방송

    【내외】 북한은 2일 김정일의 국가주석직 승계가 지연되고 있는 것은 후계문제가 김정일 생전에 이미 완결되어 김정일이 『수령의 위업을 계승·구현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북한의 중앙방송은 이날 우크라이나 키예프종합대학 교수의 글을 인용,『수령의 위업계승에서 결정적인 것은 권력이양이 아니라 후계자의 출현과 추대에 있다』면서 북한에서는 김일성 생존시에 후계문제가 완전무결하게 해결됐다고 강조했다.
  • 북의 미사일·화생무기 개발 실태/안보세미나 논문 요지

    ◎북 미사일 「대포동 1호」/홍콩·비·사할린까지 사정권/6년내 노동 1호에 핵탄장착 가능/세균 실험·연구시설 6곳… 사찰 필요 1일 국방대학원에서 열린 국제안보학술 세미나에서 「제인스 인텔리전스 리뷰」의 상담역 조제프 버뮤데즈씨와 영국 애버딘대학 마이클 시한 교수가 발표한 북한의 미사일 개발및 화학무기관련 논문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북한군의 미사일 개발(조제프 버뮤데즈씨)=북한은 70년대 중반 탄도 미사일 분야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탄도미사일을 설계할 인력과 기술이 없던 북한은 이집트로부터 소련제 스커드 B형 미사일 및 발사대 몇기를 넘겨받아 이를 분해함으로써 설계의 핵심을 탐지하는 역설계공법을 채택했다. 북한은 몇차례 실패 끝에 84년 스커드 B형을 그대로 모방한 것으로 추정되는 개량형 스커드 A미사일 시제품을 소량 생산했다. 85년들어 북한은 이란의 재정지원에 힘입어 개량형 스커드B 시제품을 생산해 냈으며 86년부터 양산체제에 돌입,87년7월부터 88년 2월까지 개량형 스커드 B 1백여기를 이란에 수출한 것으로 추정된다. 80년대 후반 미사일 개발계획을 2개 방식으로 나눈 북한은 89년 개량형 스커드 B를 수정하는 방법으로 사정거리 5백㎞의 스커드 C 개량형 제작에 성공했다. 북한은 또 스커드 B를 완전 재설계하는 또다른 방식으로 사정거리 1천3백㎞의 노동 1호를 개발,올해말부터 생산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노동 1호는 한반도와 일본은 물론 러시아의 하바로프스크,대만의 타이베이,중국의 북경과 상해까지 사정거리 안에 두고 있다. 현재 미국등 국제사회가 우려하는 것은 북한이 90년부터 개발하기 시작한 대포동 1호와 2호이다. 미정보기관은 처음에는 사정거리 1천5백∼2천㎞의 대포동 1호와 2천∼3천5백㎞의 대포동 2호가 2000년 이전까지는 실전배치되지 못할 것으로 추정했으나 최근 들어 대포동 1호는 96년,2호는 2000년에 각각 실전화될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북한은 2000년까지 노동 1호에 핵탄두를 장착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 북한의 탄도미사일 개발계획은 동아시아 지역은 물론 국제안보에 심각한 위협요인이 되고 있다. ▲북한의 화학·생물학 및 독소전 능력(마이클 시한 박사)=북한의 화학전(CW)능력은 80년대 이전에는 미국의 화학전에 맞서 전방에 배치된 북한군을 보호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북한은 그러나 80년대 들어 신경가스등 화학작용제를 대규모 생산하면서 대포나 항공기에 실을 수 있는 화학탄을 개발했다. 현재 북한이 개발중인 미사일에 화학탄두를 얹을 수 있는 지는 아직 미지수다. 또 북한은 생물학전을 위해 세균연구 실험소 2곳과 연구시설 4곳을 갖추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같은 북한의 화생전위협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지난해 발효된 화학무기협정(CWC)에 북한을 가입시킨뒤 강압적으로 사찰하는 방법이 요구된다. 만일 북한이 CWC 가입을 거부할 경우 화학물질등에 관한 강도 높은 무역제한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다. 북한의 화학전 위협에는 다양한 대응노력이 검토돼야 하나 우선 화학무기 사용기도를 억제하기 위해 재래전 대응능력의 배양이 필요하다. 즉 북한이 화학무기를 사용할 경우 즉각 북한의 전산업기반을 초토화할 수 있는 군사적 대응능력을 갖추는 방안이 검토될 수 있다. 정치 및 군사 측면에서 화학전 위협은 재래전은 물론 핵문제와 연관될 수밖에 없으므로 북한핵문제의 해결이 북한의 화생전 위협을 해결하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 “일 동대사의 「진보」는 신라유물”

    ◎고대 최재석명예교수,논문통해 주장/유물 담은 궤짝의 일식명칭 분석… 제작국 유추/일본서기에도 신라서 사들인 기록 남아 일본 나라(나양)의 동대사 정창원은 엄청난 명품을 소장한 고대문화유물의 보고.AD 756년 천왕 쇼무(성무)가 세상을 뜬 뒤 49재일에 왕후 고메이(광명)가 이 절에 바친 이른바 진보로 불리는 유물들이 특히 유명하다.일본 학계는 그동안 이들 유물의 출처를 당이나 일본 자체생산품으로 해석해왔다.그러나 정창원 소장의 진보는 거의가 신라에서 제작되었다는 반론이 나와 주목을 끌고 있다. 이같은 반론을 제기한 학자는 최재석박사(고려대 명예교수).그는 최근 발표한 「일본 정창원 소장품의 제작국」이라는 논문에서 동대사 노사나불 불전에 바친 유물목록 헌물장을 통해 유물의 성격을 규명했다.발원내용과 연관시켜 「국가진보장」으로도 호칭되는 이 헌물장 안에는 7백여점의 값진 유물목록이 들어 있다.헌물장에 나타난 유물은 쇼무가 생전에 즐겨 입었던 가사를 비롯,악기·무기·무구·거울·병풍 등으로 정창원 소장품의 주류를이루었다는 것이다. 그는 먼저 이들 유물을 넣은 궤짝을 가지고 진보를 만든 나라가 어딘가를 밝히는데 초점을 맞추었다.헌물 당시(AD 756년)의 시기를 약간 비켜 진보내용을 적은 「폭량장」에 의하면 유물을 담은 궤짝을 한궤로 기록했음을 밝혀냈다.더러 신궤라고도 적었는데,일본에서는 한과 신은 모두 가라(Kara)로 호칭되기 때문에 신라의 궤짝으로 풀이했다.그리고 정창원의 각종 궤짝과 상자를 잠근 자물쇠가 통일신라의 유물인 경주 안압지 출토품과 형태가 똑 같다는데도 눈길을 주었다. 이와 더불어 각종 진보들이 궤짝에 담기 전에 자루에 먼저 넣었기 때문에 자루의 천을 여러 기록들을 통해 면밀히 살폈다.최박사는 그동안 일본인 학자 구로가와(흑천진뢰)등이 내놓은 고구려비단(고구려금)이라는 견해와 일본 여러 절의 헌물장 내용을 종합,진보를 넣은 자루는 고구려에서 직조한 비단으로 결론을 내렸다.그러면서 고구려가 생산한 비단은 중국에까지 널리 알려진 명품(삼국지,후한서,구당서)이었다는 사실을 상기시켰다.단지 신라가 통일을 실현한이후에도 비단 생산지는 고구려 옛땅이었던 탓에 계속 고려금(고구려비단)으로 불렸다는 것이다. 최박사는 여기서 가장 중요한 대목인 정창원소장의 진보가 당시 신라 물품이라는 당위성을 일본사서 「일본서기」와 「속일본서기」에서 찾았다.그 이유는 천왕 쇼무가 죽기 이전시기에 해당하는 AD 671∼706년까지 신라사신이 7차례에 걸쳐 일본에 온 것으로 기록한 이들 사서는 그때마다 사들인 금은보화와 무기류,미술공예품의 명세를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박사는 당시 왕실을 주축으로 사들인 이들 신라물품의 일부가 정창원소장 진보라는 주장을 폈다. 그럼에도 정창원 진보를 당이나 자국(일본)의 것으로 해석하는 일본학계의 시각은 오류라는 것이 최박사의 견해.신라사신편이 아니고는 진보를 구입할수 없다는 사실은 당시 보잘것 없는 일본 조선술및 항해술에서도 나타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황해의 해상권을 장악한 통일신라의 위치를 보면 더 명백해진다는 것이다.그리고 당에 파견한 일본조공사들은 실제 당으로부터 하대를 받아 진귀한 물품을 사올수 없는 처지였다는 것을 역사기록과 연관시켰다.
  • 김정일의 권력승계 북방송 당위성 선전

    【내외】 북한은 23일 김정일의 권력승계를 지지하는 해외친북인사들의 언급을 장황하게 소개하면서 김일성의 사망에 따르는 김정일 권력승계의 당위성을 부각,선전했다. 북한의 중앙방송은 이남 전체코공산당위원장,벨기에 노동당위원장,프랑스의 한 대학교수 등 해외친북인물들의 말을 인용,『김일성이 공산주의운동역사에 남긴 업적 가운데 가장 위대한 것은 생전에 혁명위업계승문제를 해결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방송은 『여러나라들에서 수령의 위업계승문제를 원만히 해결하지 못해 사회주의가 좌절되었다』고 주장하면서 『김정일이 사회주의위업을 계승한 것은 세계 사회주의자들에게 있어 실로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고 강조했다.
  • 주한 외교관들이 본는 「김정일타도」 전단

    ◎“전단은 일과성… 권력승계 영향못줘”/소수 지식층 “존재알리기 저항” 추정/군이 김정일 강력지시… 건강이 변수 북한의 평양시내 외교단지에 「김정일 타도」 전단이 대량으로 살포된 사실이 외부에 알려지게 된 것은 이 외교단지에 있는 한 서방공관이 이를 수집,본국정부에 전문으로 보고하면서였다.전단은 19일 밤부터 20일 새벽 사이에 살포됐고,김정일의 세습은 사회주의 건설에 어긋난다고 비난하는 내용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같은 전단 살포 사실이 오래 지난 뒤면 몰라도 북한 주민들에게 곧바로 알려지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평양외교단지 거주 경험이 있는 한 주한외교관은 관측했다.익명을 요구한 이 외교관은 『외교단지가 평양의 변두리에 자리잡고 있는데다 북한 주민들의 접근이 쉽지 않다』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때문에 전단 살포를 「찻잔 속의 태풍」쯤으로 여기는 눈치였다. 정확한 집계는 없지만 북한에서 근무한 적이 있는 주한 외국공관 외교관은 평양에 공관을 두고있는 러시아와 동구권 국가,중국등 모두 15명 안팎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주한외국공관 업무를 맡고있는 외무부의 한 관계자는 『평양에서는 일반인의 외교단지에 대한 접근이 봉쇄되어 있다고 들었다』면서 『접근이 가능한 아주 소수의 지식인들이 국제사회에 자기들의 존재를 확인시키기 위해 계획적으로 저지른 것 같다는 게 이들의 생각』이라고 말했다.다시말해 조직적인 권력투쟁으로 보는 것 같지는 않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북한에서 간혹 이러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 같다는 얘기를 전해듣고 있다고 이 관계자는 전했다.주한 외교관들과 얘기를 나누다보면 북한에서 전해들은 조직적인 저항에 대한 소문등을 털어놓을 때가 있다는 것이다.지난해 초 원산의 대학가에 나붙은 김정일 비난 대자보와 10여명 정도의 지식인으로 구성된 김정일 비난 모임이 낙서·토론등을 하고 있다는 얘기를 전해들은 적이 있다고 소개했다. 동아시아지역 출신의 한 외교관은 『어느 체제건 반대 세력이 있는 것은 당연하지 않으냐』고 반문하면서 『북한의 권력승계엔 이상이 없을 것』이라고 말해 비난 전단의 살포와 승계이상설을 연계하길 거부했다. 이처럼 북한에 근무한 적이 있는 외교관들은 전단살포를 일과성의 사건으로 바라봤다. 최근 중국의 북한전문가를 만나고 온 한 인사는 『중국 지도층이 김정일의 건강 상태를 매우 우려하고 있었다』고 전하고 『그러나 리더십 경력등으로 볼때 김정일을 대신할 사람이 없다는 게 중국의 판단이었다』고 말했다.이 인사는 또 북한군부의 동향에 대해 『혁명1세대인 오진우가 후견인인 만큼 쿠데타의 가능성은 거의 없는 것으로 분석했다』면서 『중국은 김정일의 건강문제와 김일성의 사체처리만 끝나면 권력승계가 이뤄질 것으로 보고 있었다』고 전했다. 그러나 현재와 같은 체제를 유지하려는 혁명1세대와 보다 개방 폭을 넓히려는 혁명3세대 사이의 갈등과정에서 이러한 반대세력의 움직임이 변수가 될수도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누구도 부인하지 않았다.한 서방외교관은 『비록 간헐적이지만 북한 내부의 저항은 결국 북한을 변화시킬 것』이라면서 지식인들의 저항이 개방의 확대와 연결될 수도 있음을 시사했다.◎「김정일 타도」 전단… 정·관가 시각/「김정일세습」 이상징후 추측도/정부/채널 총동원,후속정보 수집에 주력/여야/“일단 사태추이 지켜보자” 신중 반응 정부는 물론 여야 정치권은 평양 시내 외국공관 단지에 「김정일 타도」 전단이 살포된 것에 대해 북한 권력체계의 이상조짐이 본격화하는 신호탄일 수도 있다고 보면서 추가 움직임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정부◁ ○…정부는 이번 사태를 일단 김정일후계체제 구축에 이상이 있다는 징후로 분석하고 다각적인 대비책 마련에 나섰다.외교및 정보채널을 총동원,후속정보 수집에 주력하는 한편 북한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청와대는 현재 반금정일전단이 뿌려졌다는 사실밖에는 다른 후속정보가 없어 북한 내부사정을 정확히 진단하기 어렵다는 분위기.그러나 특수계층만 들어갈 수 있는 외국공관단지에 권력세습을 반대하는 내용의 전단이 뿌려진 것만으로도 김정일후계체제에 이상이 있다는 징후로 보고 있다. 통일원은 전단사건에 상당한 의미를 부여하면서 이날 아침 일찍부터 북한방송을 청취하며 북한내부동향을 예의주시.이번 사건을 점진적인 개방을 유도하는 김정일과 혁신적인 개방정책을 요구하는 일부 엘리트계층간의 노선싸움이라고 보는 분석이 나오는가 하면 이런 움직임이 오히려 김정일의 입지를 강화시켜 권력승계를 재촉할 가능성도 있다는 전망도 나오는 실정. 외무부는 이번 사건에 너무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다는 신중한 생각이며 해외공관에 긴급전문을 보내 북한관련 정보수집에 전력을 다하라고 지시. ▷정치권◁ ○…「김정일타도」전단이 아직 북한의 권력관계에 어떤 변화를 의미하는지 단정하기 어렵다고 보고 신중한 반응. 민자당의 박범진대변인은 이날 당무회의가 끝난 뒤 『한국은 김일성사망후 새로운 남북관계등을 고려,북한의 정세변화를 예민하게 지켜보고 있는 상태』라면서 『조용히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는 것이 상책』이라고만 언급. 이날 당무회의 토론에서도 이 문제는 공식적으로 다루어지지 않았으며 회의에 참석했던 일부 당무위원들도 『김정일타도 전단은 과거에도 이따금 있었으며 보다 중요한 것은 군부와 당에 반금정일 분위기를 조직화할 구심이 있느냐하는 문제』라고 조심스런 반응. 민주당은 미국 국무부가 이 문제에 대해 회의적인 반응을 보인 것을 예로 들며 정부의 정확한 정보수집과 신중한 발표를 주문. 박지원대변인은 『이는 김정일 건강이상설과 함께 주목할 만한 사실이지만 정부가 이미 밝혔듯 대화로써 북한정권의 안정과 평화적인 핵문제 해결등 통일을 추구하는 것이 보다 중요하므로 조용히 북한의 변화를 주시할 것』이라고 논평. 외교통인 조순승의원은 『북한내 반체제 세력은 김일성생전에도 있었으며 문제는 반체제세력의 존재보다 김정일의 건강이상유무』라고 피력.
  • 반란가담 농민병사도 총들고 “한표”/멕시코 4대선거 이모저모

    ◎투표용지 바닥나 곳곳서 항의소동/마야원주민 16시간 산길걸어 참여 ○…멕시코 유권자들은 21일 아침일찍부터 대통령및 의회선거에 투표권을 행사하기 위해 대거 투표소로 몰려들어 투표소에서는 시작 직후부터 투표용지가 바닥나는 사태를 빚었다. 투표를 하지 못한 멕시코시티의 유권자들은 시내 중심가의 한 거리를 가로막고 항의를 하기도 했으며,일부 시민들은 투표용지 배부를 요구하며 선거관리기구인 연방선거연구소(IFE) 정문을 발로 차고 두드리기도 했다. IFE측은 투표용지 부족사태는 주소지를 떠나 있으면서 투표를 원하는 유권자들을 위해 설치된 특별투표소에 3백장씩의 투표용지만을 할당했기 때문에 일어난 것이라고 설명했다. ○주류판매 금지령 ○…수십년동안 정치문제와 고립된채 남부 치아파스주 외딴 지역에 살고 있는 가난한 마야 인디안 원주민들은 생전처음으로 투표권을 행사하기 위해 무려 16시간동안 산길을 걸어 투표소에 도착하는 열의를 보였다. 농부의 아내인 한 35세 여인은 아기를 데리고 하루전부터 걸어서 투표소에 도착했다고 말했다. 마야 인디안 전통복장차림의 치아파스원주민들과 올해초 반란을 일으켰던 사파티스타 반군은 나란히 줄을 서서 투표차례를 기다리는 모습이었으며 일부 반군병사들은 사진을 찍기 위해 잠시 총을 내려놓기도 했다. 치아파스주의 가난과 문맹률은 멕시코에서도 가장 높은 수준으로 이는 올해초 일어난 사파티스타 폭동의 주요인이 되기도 했다.사파티스타반군은 선거부정이 밝혀진다면 즉각 정부군에 공격을 가할 것이라고 말해왔다. ○“폭동홍역 씻었다” ○…멕시코에서는 선거일인 21일 자정까지 주류판매를 금지했으나 선거결과를 기다리는 멕시코 국민들은 축제 분위기를 연출했다. 유권자들은 올초 치아파스주의 폭동과 유력한 대통령후보인 도날도 콜로시오의 암살로 홍역을 치르기도 했지만 마침내 투표소에서 긴줄을 이루며 평화적으로 투표를 하게 됐다며 기뻐했다. ○…멕시코 대통령·의회선거를 감시하기 위해 파견된 외국 선거참관인들은 일부지역에서 사소한 불법행위가 보고됐으나 선거초반까지는 큰 문제가 없이 진행되고 있다고평가했다. ○암살 전후보 애도 ○…집권 제도혁명당의 당초 대통령후보이던 도날도 콜로시오가 암살당한 티후아나에서는 많은 지지자들이 투표와 함께 그의 죽음을 애도해 투표일인 21일은 동시에 순례일로 변모. 에밀리아 아란구르씨(여)는 이날 찌는 듯한 더위에도 검은 옷을 입고 그의 성소를 방문해 기도를 올리고 눈물을 흘렸는데 『절대 죽어서는 안되는 그에게 투표하기 위해 이곳에 왔다』고 토로.
  • 슈브니코프(전 평양주재 구소련대사)가 말하는 김정일 부자와 북정권

    김일성이 사망한지 40여일이 넘었으나 북한은 김정일체제 공식출범을 미룬채 핵관련 미­북대화만을 진전시켜나가고 있다.그들은 남북대화등 대남정책에 있어서는 아직까지 이렇다할 긍정적 변화조짐을 보이지 않고있다.김일성사후 김정일의 위상과 그가 그리고 있을 남북관계 청사진등 북한의 향후 진로와 내부동향등에 대한 궁금증만 커가고 있다.또 김정일의 자질과 성격등에 관해서도 여러 엇갈리는 견해가 제시되고 있는 실정이다.본지 이기동 모스크바특파원은 최근 북한사정에 정통한 미하일 슈브니코프 전평양주재 구소련대사(70)를 만나 김부자의 행적,향후 북한정권의 장래에 관한 그의 견해등을 들었다.통산 13년간 평양대사관에서 근무한 북한통인 슈브니코프 전대사는 특히 소­북한관계가 원만한 82∼87년 평양주재대사로 근무,김일성부자와는 매우 가까운 사이였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1924년 러시아 툴라시에서 출생한 그는 소련군사외국어학교를 졸업했고 소련공산당 중앙위 국제부 한국(남북한)과장을 역임했으며 외교관으로선 주로 북한관련 업무를 담당했었다.슈브니코프 전대사는 인터뷰에서 김일성의 모스크바 비밀방문,김정일의 사생활과 주변인물등 그간 잘 알려지지 않았던 얘기들을 털어놓았다.그러나 특별한 개인적 유대 때문인듯 그의 김부자 평가는 비교적 후하다는 인상을 주었다.이런 점을 감안하더라도 북한사정에 밝고 특히 김부자를 가까이서 지켜보았던 전직 구소련고급외교관의 북한평가와 분석은 향후 「김정일 평양」의 향방을 가늠하는데 도움이 될 귀기울여 볼만 한 것들이었다. ◎평양식사회주의 미래가 없다/김일성 추모기간 끝나면 권력승계 무난/핵탄제조 능력… 플루토늄 보유량 적어 ­북한주재 대사로 근무했던 80년대는 소련과 북한관계가 밀월과도 같은 순탄한 시기였던 것으로 아는데 평양근무는 얼마나 했는지. ▲60년부터 3년간 첫번째로 평양대사관에서 근무했다.그리고는 본국으로 돌아와 당중앙위 국제국 한국과에서 일했고 69년부터 73년까지 다시 평양근무를 했다.모스크바로 돌아와 당중앙위 국제국 한국과장으로 일하다 82년 12월 북한주재 대사로 발령받았다.87년 12월까지 대사로 근무했으니 평양대사관에서만 13년을 일한 셈이다. ○13년간 평양에서 근무 나의 북한대사 재임기간이 소련­북한 양국관계가 가장 우호적인 시기였다는 점에 동의한다.이 기간중에 김일성주석이 모스크바를 두번 방문했다.나는 그중 한번은 김주석을 직접 수행,1개월에 걸친 기차여행을 함께 했다.60년 이후 그는 모스크바를 방문한 일이 없다.주재국 대사인 나 개인으로서는 좋은 기회였던 셈이다. ­김주석의 모스크바방문의 구체적 시기는 언제였는가. ▲첫번째는 체르넨코 서기장 재임시인 84년이었고 두번째는 고르바초프 서기장 때인 86년이었다.이중 84년 방문때 내가 모스크바까지 김주석과 동행했었다.1개월간 기차로 시베리아를 거쳐 모스크바로 왔다가 귀국 때는 벨로루시,우크라이나,몰도바,루마니아를 돌아 평양으로 갔다.모스크바는 공식방문이었지만 나머지는 비공식방문이었다.86년 방문 때는 비행기편을 이용했는데 나는 동행치 않았다. ­김주석은 고소공포증으로 비행기여행을 극히 꺼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고소공포증은 아니다” ▲그가 비행기여행을 피한 것은 사실이다.하지만 그것은 척추에 문제가 있으니 비행기여행은 피하라는 의사들의 권유 때문이었다.비행기 착륙시의 충격이 허리에 무리를 줄수 있다는 것이었다.그가 서 있는 모습을 보면 알수 있겠지만 그는 항상 허리를 똑바로 펴고 꽂꽂이 서 있었다.그것은 조금이라도 굽히는 자세가 되면 척추에 통증이 왔기 때문이다. ­김주석은 말년에는 심장질환을 앓은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사망원인도 심근경색으로 발표되었다.평소 그의 심장병 병세는 어느 정도였는가. ▲나이가 들면서 심장에 이상이 생긴 것은 사실이다.80년대 중반에 심장발작을 한차례 겪었다.내가 대사로 있을 때였는데 소련의사를 보내달라는 부탁도 자주 있었다.대부분 김정일이 직접 찾아왔고 외교부장을 보낼 때도 있었는데 그때마다 나는 본국에 요청해 의사를 보내주었다.하지만 당시 러시아의사들의 최종진단은 『심장질환의 증세는 있으나 집무에는 지장이 없고 나이에 비해 건강하다』는 것이었다. ○북서 모반 있을수 없다 ­김주석 사망과 관련,한때 자연사가 아니고 정치적 변고와 연관이 있을 것이라는 추측이 나돌기도 했다. ▲1백% 불가능한 이야기다.자연사가 분명하다.김일성 주변을 보면 모반은 불가능하다.절대 불가능하다.김일성 주변의 인물은 김정일이 모두 통제하고 있다.그리고 김일성·정일 부자의 관계는 어떻게 보면 부자지간 이상이었다.김정일은 정실 소생의 장자다.김일성은 그를 끔찍이 아꼈다.김일성이 김정일을 못마땅하게 여긴 때가 많았다는 얘기가 있지만 내가 아는한 그렇지 않다.텔레비전을 통해서 보니 김주석 사망후 김정일의 얼굴이 아주 못쓰게 됐던데 무엇보다 부친의 죽음에 대한 슬픔이 컸기 때문이었을 것이다.물론 김주석 사망으로 받는 정치적 중압감도 큰 짐으로 느껴졌을 것이다. ○추모기간 지나면 승계 ­김일성 사망 1개월이 훨씬 지났는데 아직 김정일이 주석과 당총서기직을 승계했다는 발표가 없다.다소 이상한 일 아닌가.후계구도에 진통이 있는게 아니냐는 추측도 나오고 있는데. ▲김정일은 70년대 중반 공식 후계자로 확정되면서부터 실제로 국가경영 실습을 해왔다.70년대 당중앙위원으로 들어간 뒤 이후 정치국원,그리고 4∼6인으로 구성되는 정치국 상임위원이 됐고 김주석 사망당시는 군최고사령관이었다.그리고 요로에 자신의 심복들을 배치해놓고 있다.부친과 같은 세대인 원로들로부터 한결같은 지지를 받고있다.그래서 그의 권력승계는 별 문제 없이 이뤄질 것으로 보는 것이 옳다.김일성 추모기간만 끝나면 주석직 승계와 함께 국가지도자로서의 일을 시작할 것이다.당총서기는 정치국에서 이미 선출해놓고 발표만 미루고 있을수도 있다.당대회소집 등의 절차를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다시 말해 김정일은 이미 「경애하는 지도자」였고 군통수권자였다.부친 사망과 함께 자연스럽게 제1인자가 되도록 미리 치밀한 장치가 돼있었던 셈이다. ○김일성 음주 극히 자세 ­김정일이 아버지와 같은 카리스마도 없고 세습승계에 대해 일반주민은 물론 권력층 내부에도 반발이 있을 것으로 추측해볼 수 있지 않겠는가.김정일은 과연 북한 최고지도자가 될만한 인물인가. ▲대사로 근무할 당시 김정일을 비교적 자주 만나 가깝게 지냈다.그는 수시로 나를 불러 식사도 하고 술도 함께 마셨다.당시 그는 술을 아주 조금 마셨다.김일성도 술은 극히 자제했다.이점에 대해 외부에서는 잘못 알고있는 것 같다. ○카레이스·영화 큰 관심 내가 겪은바로는 김정일은 말이 적은편이다.지나치게 자기 생활을 드러내지 않으려 하는 점이 특징이다.북한 같은 사회에서 2명의 지도자가 존재할 수는 없다.그래서 그는 의식적으로 부친의 그늘에 숨어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려 했던 것으로 생각한다.때때로 『이 사람은 진짜로 권력 정상에 오를 생각이 없는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김정일은 부친과 사진을 함께 찍는 것에 대해서도 신경을 많이 쓸 정도로 몸조심을 했다.소련대표단이 그렇게 북한에 자주 갔는데도 김부자와 함께 사진을 찍은 것은 단 한번 뿐이었다. 젊었을 때 김정일은 여러 스포츠를 즐겼다.특히 카 레이스를 좋아했고 영화·음악등에 관심이 많았다.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차츰 성격이 조용하고 신중한 쪽으로 바뀌었다.부친의 영향 때문으로 볼수도 있지만 어떻게 보면 보통사람들이 겪는 인격성장 과정과 같다고 할수 있다.김일성대학 철학부에 다닐때 성적은 좋은편이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고 외국에서 공부한 일은 없는 것으로 안다. ○손혜림,손성필의 친척 알콜중독자라느니 성격적으로 문제가 있다느니 하는 말을 나로서는 이해할수 없다.그와 자주 낚시도 다녔는데 나라문제에 대해 비교적 잘 알고있고 또 나름대로 정치에 대한 철학도 가지고 있는 교육받은 사람이란 인상을 받았다.그의 사생활등을 무조건 비난하는 것보다 그가 어떤 인물인지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그의 경력은 물론 부친이 만들어 준것이 사실이다.그러나 김일성이 5자녀중 그를 후계자로 택한 것은 장남이기 때문만은 아니지 않겠는가.나름대로 그의 능력을 평가하지 않았겠는가. ­김정일의 가족관계는 잘 알려져있지 않은데.몇차례 이혼했다는 얘기도 있고. ▲가까이 지내면서도 그의 집에는 한번도 가본적이 없다.부인이 있고 자녀가 2명 있다는 사실만 안다.내가 평양에 대사로 있을 당시 그의부인 이름은 손혜림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모스크바주재 대사 손성필과 친척인 것으로 안다.김정일은 자신의 사생활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고 북한에서는 이것이 비밀사항으로 돼있다.그는 60년대초 부친을 따라 모스크바를 방문한 적이 있고 80년대 중반 북경에 간적이 있으나 그외 외국이라고는 나간 적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한때 동독 방문설이 있었으나 루머임이 확인됐다. ­아웅산 폭파사건,대한항공기 폭파사건,그리고 여러차례의 한국인 납치사건의 배후에 김정일이 있었다는 것이 정설로 돼있다.대사가 그의 성격등에 대해 잘못 알고있는 것 아닌가. ○소·동구 붕괴에 위기감 ▲솔직히 말해 그 사건들의 배후에 대해 나는 들은 것이 없다.한국에 적대적인 세력이 저지른 사건임은 분명하지만 당시 소련정보기관들은 추가정보를 전혀 얻지 못했었다.북한 정보기관의 소행이었더라도 그들의 속성상 비밀사항이 외부에 새나오지는 않는다. ­앞으로 김정일이 어떤 정책을 취할 것으로 예상하는지. ▲국내정책과 대외정책을 포함,모든 정책방향이 김일성생존시와 동일할 것으로 보면 된다.다소의 변화가 있더라도 표면적인 것에 불과하고 본질적으로 동일할 것이다.지금 북한에서 정책을 바꾼다면 체제변화가 불가피하다.김정일은 소련,동구의 예를 지켜보았다.체제변화를 쉽게 용납지 않을 것이다. ­경제난 때문에 결국 정책변화가 불가피한 시기가 올것이라는 견해에 대해서는. ○김영주도 정일을 아껴 ▲북한은 폐쇄경제체제를 유지하고 있다.경제적으로 어려운 처지라는 것은 사실이다.북한경제는 소련에 의존한 체제였는데 지금은 그 관계가 단절됐다.지금 러시아지도자들은 북한에 대해 강경한 정책을 취하고 있다.그러나 북한은 외부세계가 그들을 고립시킬수록 더 주체체제를 강화하는 특성이 있다.경제적으로 어려워도 그들은 살아간다.북한은 지금도 철저한 분배사회다.그래서 사회안정면에서 본다면 어쩌면 러시아보다 낫다고도 할수 있다. 예를들어 현재 러시아에서는 소비재가 상점에 넘쳐나지만 주민 90%가 이를 살 능력이 없어 불만이다.북한은 그렇지 않다.그들은 아예 가난하지만 주민 모두가 이를 참고 사는데 익숙해있다. 다시 말해 북한을 고립시키는 정책은 좋은 결과를 낳기 힘들다는 것이다.한국을 비롯한 서방세계는 북한의 개방을 유도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물론 김정일은 한국과의 협력이 북한사회의 내부붕괴를 초래할 것이라는 점을 알기 때문에 신중하게 대응하겠지만 그들을 고립시키는 것보다는 이 개방을 유도하는 정책이 더 효과적일 것이다. ◎북,내부붕괴 우려 개방 신중/“주석,정일 매우 아껴… 부자관계 이상”/후처소생 평일은 대권 넘볼수 없다/김정일 나이들며 술적게 마시고 신중/김일성 항공여행 기피,척추통증 때문/80년대 중반에도 심장발작… 자연사 확실 ­삼촌인 김영주,이복동생 김평일은 개인적 야심이 없겠는가. ▲그들은 김정일과 같은 라인이라고 생각한다.나는 김영주와 아주 가까운 친구로 지냈다.그는 모스크바대학을 나왔는데 김정일을 매우 아끼는 것으로 느껴졌다.김평일은 후처소생이어서 어차피 북한사회에서 김정일과는 격이 다르다.김일성은 생전에 김정일내외,그리고 거기서 난손자들을 특히 귀여워하며 아꼈다. ○불만있어도 표현 못해 ­북한에 반정부,반체제세력이 있는가.김정일에 대한 군부의 충성은. ▲심각한 반대세력은 없다.인텔리겐차,교육받은 계층가운데 다소 불만이 있을 것이라는 점은 상식적으로 짐작할수 있는것 아닌가.그러나 어떤 사람이고 그런 생각을 드러냈다가는 엄청난 불이익을 당한다.조심해야 한다.따라서 사회전반에 질서가 유지되고 있다. 군부의 김정일 지지는 확고하다.오진우는 김정일의 젊은 시절 스승이었고 그를 아주 좋아한다.오진우가 언젠가 심한 교통사고를 당했을때 김정일이 직접 내게 찾아와 모스크바로 보내 치료를 받게 해달라고 부탁해 그렇게 해준일이 있다.후일 오진우와 술자리를 함께 했는데 그는 김정일과 내게 진심으로 감사했다.오극렬도 김정일을 매우 아끼는 사람이다. ­반정부 시위,주민들의 봉기가 일부 있었다는 얘기도 간혹 들리는데. ▲북한은 그런 일이 가능한 사회가 아니다. ­김정일의 여성편력이 널리 알려져 있는데 대사의 견해는. ▲물론 내가 그의 사생활을 다 안다고는 할수 없지만 그런 유의 얘기는 잘못된 정보에서 기인하는 경우가 많다.사회주의국가 간부들은 끝없이 밀려드는 일거리들로 숨돌릴 틈도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김정일이 오래전부터 실질적 국가경영을 맡아왔다고 볼때 방탕한 생활에 할애할 시간이 많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한다. ­북한은 핵무기를 만들 능력과 의사가 있다고 보는가. ▲영변의 핵단지는 연구·훈련용으로 규모도 매우 작다.물론 핵폭탄을 제조할수 있는 인력과 기술은 갖고 있고 운반수단도 가지고 있다.그러나 핵폭탄제조에 필요한 플루토늄을 북한은 갖고있지 못한 것으로 알고있다.그들을 밀어붙이기 보다는 협력의 장으로 이끌어내기 위한 화해의 정책이 바람직하다고 본다.북한은 이론적으로는 핵무기를 만들 능력이 있지만 실제로 이를 현실화할 능력은 없다고 본다. ○핵탄 현실화 어려울것 ­대사의 평양근무 기간은 소련이 한국과의 관계개선을 모색하던 시기였는데 북한당국의 항의나 섭섭함의 표시는 없었는가. ▲공식적인 항의는 없었다.당시 소련지도부는 한반도의 평화를 원했다.그러나 그 방법에 있어서 북한정부와 차이가 있었다.우리는 국제사회가 모두 문을 활짝 열고 살아야 한다는 입장이었으나 북한은 주체사상을 고수했다.소련지도자들은 주체에 대해 반대했고 이것이 양국관계에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그러나 북한당국이 주체사상을 굳이 고집하는 데는 우리로서도 별다른 대책이 없었다. ­가까이서 본 김일성은 어떤 사람이었는가. ○66년에 조·소 정상회담 ▲ 그가 취한 정책의 옳고 그름은 일단 논외로 하자.우선 분단,남북대치등의 어려운 상황에서 50년 가까이 집권한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블라디보스토크에서 있었던 브레즈네프와 김일성간 양자회담을 4시간 가량 지켜본 적이 있는데 그는 참모의 도움없이 회담을 잘 이끌어나갔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그런 회담이 있었다는 것은 금시 초문인데. ▲외교비밀인데 실수로 발설한 것 같다.66년 그런 회담이 열렸었다.당시 소원했던 양국관계 정상화를 위해 두 지도자가 비밀리에 만났고 그후 양국관계는 급속히 좋아졌다.양국관계사에 매우 중요한 회담이었다.이 자리에서 공식 협정체결 같은 것은 없었으나 주로 경제분야에서 많은 원조약속이 이루어 졌고 군사원조를 포함한 군사협력,기술지원 약속도 이뤄졌었다. ­공산주의,특히 북한 공산주의체제의 장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러시아에서는 70년이나 되는 실험이 실패로 돌아갔다.여기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나는 사회주의가 지향하는 인간의 삶에 대해 지금도 신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그러나 북한이 하고있는 사회주의는 미래가 없다고 본다.전혀 없다.남한을 방문한 적은 없지만 체제경쟁에서 북한이 졌다.그러나 그들이 굳이 그렇게 살겠다면 그렇게 놓아두고 그들이 스스로 변화를 택할 때까지 도와줄수 밖에 없지 않은가.
  • 피카소작 「통곡하는 여인들」/“연인 7명이 모델” 화제

    ◎“여자 버린뒤 자책감 표현” 평가/뉴욕서 소묘등 30년대작품 75점 전시 작품만큼이나 여성편력과 추문으로도 유명하던 스페인 태생의 화가 파블로 피카소의 통곡하는 여인들을 소재로 한 작품전이 최근 비상한 대중적인 반향과 함께 뉴욕의 미술가를 강타하고 있다. 「마리아 테레즈 발테즈와 도라 마르와의 나날들」이란 부제로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지난 6월중순부터 석달 예정으로 열리고 있는 이 전시회에는 지난 30년대 작품들을 중심으로 피카소가 통곡하고 고뇌하는 여인들을 소재로 그렸던 75점의 그림과 소묘·조각 등이 선보이고 있다. 이번 작품전은 그 대중적인 관심과 피카소의 작품에 대한 새로운 조명과 함께 이로 인한 논쟁마저 부르고 있다. 미술비평가 주디 프리만여사는 역사적 고뇌와 개인적 갈등이라는 피카소 작품의 바탕을 이루는 두 모티브중에서 지금까지의 역사적 배경에 지나치게 편중된 해석에서 개인적 갈등과 슬픔을 고려하는 입장으로 전환이 필요하다는 비판이 이 작품전을 계기로 새롭게 일고 있다고 말한다. 이번작품전에서 선보인 대표적 작품들은 37년10월 작품인 통곡하는 여인을 비롯,피카소에게 버림받은 도라 마르를 생각하고 그렸다는 37년작 통곡하는 여인 시리즈. 이 작품들의 모델들은 피카소의 잔인할 정도로 변덕스럽고 화려한 여성편력의 대상이었던 7명의 연인들이다. 피카소연구가들은 그가 여성편력을 통해 그의 연인들에게 상처와 파멸을 가져다 주었으며 피카소 자신도 이로 인한 자책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사실 피카소에게 큰 정치적 영향을 끼쳤던 진보주의자 도라 마르의 경우 신경쇠약과 정신병에 시달려야 했고 그에 헌신적인 사랑을 바쳤던 마리아 테레즈 발테즈는 목매 죽었으며 마지막 연인 자클린 로크는 권총자살로 일생을 마쳤다.또 러시아출신의 무용수였고 첫 부인이기도 했던 올가 코홀로바는 이혼을 요구하는 피카소와 갈등끝에 결국 그에게 버림받고 신경쇠약으로 정신병원 신세를 져야했다. 비평가들은 기존의 통곡하는 여인들이란 일련의 작품중에는 파시스트파들에 의해 유린당하던 자신의 조국 스페인 민중들의 고통을 표출한 작품보다는 개인적인 상흔을 드러내 보여주는 작품이 더 많다고 말한다. 즉 피카소 자신이 버린 연인들에게 느꼈던 괴로움과 불편함,그리고 죄스러움이 녹아 있는 극히 개인적인 그림들이 통곡하는 여인들의 배경이라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자서전을 쓰는 것처럼 나는 그렇게 그림을 그린다.그리고 이 그림들은 나의 인생역정의 한 부분들을 기록한 것이라』는 피카소의 생전의 말처럼 비평가들은 그가 분방한 여성편력을 통해 그의 연인들에게 큰 괴로움을 주었고 그 괴로움에 대한 죄책감을 평생 짊어지고 살았다고 말한다. 이번 전시회로 일고 있는 가장 큰 공감대 역시 여성에 대한 피카소의 학대성향과 그의 파괴적이고 비관적인 관점에 대한 시각이다.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20세기 미술담당 큐레이터인 윌리엄 리버만씨는 『이 작품전을 계기로 새디스트,호색한 여자들에게 고통만을 가한 부도덕한 파렴치한이란 그에 대한 비판이 일고 있지만 그의 개인적인 삶과 생활에 대한 이해를 통해 그의 작품세계를 더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고말한다. 이번 작품전이 성황리에 진행됨에 따라 주최측인 로스앤젤레스미술관은 오는 10월8일부터 내년 1월8일까지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에서 같은 이름의 작품전을 다시 열기로 했다.
  • 김일성사망 한달… 해외서 본 북 정세/특파원보고

    ◎워싱턴/“김정일 승계 아직은 이상징후 없다”/「핵약속」 유효… 경제난 심각 판단 클린턴미행정부는 북한 김일성사망후 김정일의 권력승계에 특별히 이상기류가 있다는 조짐을 발견할 수 없다고 말한다.미국의 대북한 관심은 부자세습체제가 과연 권력기반을 공고히 하느냐는 것보다 김정일체제가 김일성이 사망직전 약속했던 핵동결을 계속 유지할 것인지, 3단계 고위회담을 통해 핵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인지에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다. 클린턴미대통령은 2일 『북한의 운명은 그들의 손에 달려 있다』며 『북한은 미래에 관해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말했다.이는 북한이 핵투명성을 분명히 보장할 경우 정치·경제적으로 상응한 보상책을 받을 뿐아니라 북한이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발돋움하는데 적극 지원해줄 수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미국은 김정일체제가 핵문제에 관한한 김일성이 카터 전미대통령에게 다짐했던 『대화가 계속되는 한 핵동결 약속은 지킨다』는 언질이 유효할 것으로 보고 있다.마이크 매커리 국무부대변인은 북한의 정세변화를 묻는 질문에 북한의 권력승계과정에 있어 어떤 돌출상황은 없으며 북한군의 움직임에도 통상적인 상황 이상을 넘는 것은 없다고 말했다. 미행정부가 공개적으로 김정일체제의 취약점을 지적하거나 그의 정치적 운명에 관해 추측하는 것은 없으나 학계·연구소 등에서는 이에 관한 논의가 없지 않다.북한연구전문가들은 김정일체제가 3년을 지탱하기는 매우 힘들 것으로 보고 있다.북한의 경제사정이 90년 이래로 매년 5%씩 마이너스성장을 한데다 극심한 에너지난으로 인해 생필품공장도 제대로 가동하지 못하고 있고 김일성 부자세습제와 권력상층부의 족벌주의에 대한 반감,군부내 세대간 갈등 등 불안요인이 많다는 것이다. 미국은 미북회담이 남북대화보다 앞서가는 것을 바라지 않으며 『한반도의 장래는 결국 한국과 북한에 의해 결정된다』(로드 국무부동아태차관보)는 인식이다.따라서 북한이 한미간의 이간질이나 핵협상과정에서 한국을 빼돌리려 해도 성공할 수 없음을 인식시키려 하고 있다. ◎북경/“승계 무난”… 대화유지에 안도김정일이 아직도 당총서기나 국가주석에 오르지 않고 있는 데 대해서는 중국당국자들도 대단히 궁금한 모양이다.국가주석승계 지연이유를 알기 위해 평양대사관 직원들을 들볶고 있으나 그들도 모르기는 마찬가지고 주중한국대사관 관계자들에게 한국의 상제관습을 물어 오기까지 한다. 그런나 중국은 김정일체제가 흔들린다거나 권력이양에 문제가 발생한 것으로 의심하지는 않는 것같다.그동안 20여년이나 후계체제를 다져온데다 지난 수년간은 김정일이 사실상 전권 통치해온 이상 김정일체제확립에는 별다른 의문이 없다는 것이다. 중국당국자들은 그보다는 앞으로 중국과 북한간의 관계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바람직한 가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중국은 김정일체제가 하루빨리 자리를 잡아 안정되는게 중국의 국가이익과 합치되는 것으로 보고 있다.북한이 안정되지 못한 채 들썩거리면 북경정부가 마음을 놓을 수 없다.북경의 한 서방외교소식통은 『중국은 얼마 안되는 공산형제국중 하나가 또다시 동구마냥 무너지는걸 보고 싶어 하지 않지만그렇다고 그 형제국이 경제원조나 바라며 손을 벌리는 등 짐이 되는 것도 원치 않고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 중국은 북한의 체제붕괴라는 위기가 닥쳐올 경우 적극 도와줄 용의가 있으나 그 이외에는 개혁·개방을 통해 스스로 살 길을 찾도록 권고하는 정도에 그칠 것이라는게 이곳 관측통들의 분석이다.앞으로 중·북한관계는 김일성생존시와 같이 혁명원로들간의 끈질긴 정분이나 전우애따윈 사라진채 국가이익에 따라 행동하는 평범한 국가관계로 변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중국은 특히 김일성사망 이후 북한이 대화노선을 견지해 가는데 대해 안도하는 모습이다.김정일을 비롯한 북한의 새 지도층이 미국과의 대화를 통해 핵문제를 풀어나가려 하고 남북한간에도 정상회담을 그대로 추진해가려는데 대해 중국지도층이 긍정적인 평가를 하고 있다고 서방외교소식통들은 전하고 있다. ◎모스크바/“남북한 긴장해소 시일 걸릴것” 김일성 사후 1개월을 보는 러시아외무성 당국자들의 평가는 한마디로 『김정일의 권력승계작업이 순조롭게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그리고 이는 러시아 외무성측이 당초 가장 가능성이 높다고 상정했던 시나리오이기도 하다. 김정일의 권력승계가 순조롭게 이루어지고 있는 이유는 김일성이 생전에 그에 대한 권력승계작업을 착실히 해왔기 때문이라는 것이다.북한체제내부의 사정도 김일성 생전과 본질적으로 달라질게 없다는 지적들이다.평양주재 러시아대사관을 통해 보고 되는 평양시내 분위기도 일상의 모습으로 되돌아갔고 언론들은 김정일을 새 지도자로 부각시키기 위해 그의 일대기같은 보도를 중점적으로 싣고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대외관계 전반도 일단은 김정일이 상당기간 권력을 유지할 것이란 전제하에 이루어지고 있다.제네바에서 재개된 미국과의 공식회담도 김일성이 생전에 시작한 것이니까 계속하는게 당연하다는 분석이고 일본과의 관계도 같은 맥락에서 점쳐지고 있다.다만 남북한대화는 일단 표면적인 대화는 가질 수 있겠지만 본질적인 면에서 양자관계가 가까워지는데는 상당기간이 걸릴 것이라는 전망들이다.이를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북한체제의 변화가 선행돼야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북한의 경제난도 이들 체제의 운명에 연결짓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는 분석들이다.북한사회는 한마디로 「병영식사회주의」이기 때문에 이를 유지하는 데 고도의 경제수준이 요구되는게 아니라는 설명이다. 단적으로 말해 연간 2백만t의 원유공급만 중국으로부터 확보된다면 경제적으로 큰 문제는 없을 것 이란 전망이다. 아울러 최근 북한으로부터 탈출자들이 다수 생기는 것도 이를 체제와해의 조기징후로 연결짓기는 아직 이르다는 분석이다. 김정일의 당총서기,주석직 공식승계작업이 늦어지는 것도 다른 후보가 없는 상황에서는 큰 문제가 아니라는 설명이다. 문제는 김정일이 초기 권력장악기를 넘긴 뒤 불가피하게 변화를 수용하기까지의 과도기간이 과연 얼마나 걸릴까 하는 것인데 이를 점치기에 1개월은 너무 짧은 기간이라고 이들은 말하고 있다. ◎도쿄/불안요인 불구 체제안정 전망 일본은 김정일이 고금일성주석의 후계자로 사실상 결정됐다고 보고 있다.그러나 김일성이죽은지 한달이 됐어도 총서기·국가주석에의 승격이 정식발표되지 않은데 대해 권력계승의 혼란이나 김정일 건강악화설 등 여러 추측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일본정부와 언론들은 대부분 김정일체제가 기본적으로 순조롭게 구축되고 있다고 보고 있다.일본외무성의 북한담당자는 『김정일체제로의 권력계승은 큰 문제없이 진행되고 있다』고 말한다.그러나 그는 『북한내부에는 불투명한 부분이 많이 있으며 김정일체제의 전망도 불투명하다』고 지적한다. 한반도전문가인 오코노기 마사오 게이오대교수는 김정일의 총서기와 국가주석 취임이 늦어지는 것과 관련,『김정일후계체제에 내부저항이 있다기 보다는 오히려 후계체제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분석한다.그는 『김정일를 최고지도자로 옹립하는 움직임이 8월15일 「해방기념일」이나 9월9일 「건국기념일」을 시발로 지방조직으로부터 차즘 고조될 것』이라고 내다본다. 조총련관계자도 『20년 이상 권력계승작업을 벌여 왔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도 없다』고 말한다.김영주부주석을 중심으로 하는 세력과의 알력 등 권력내부의 「이변설」을 주장하는 전문가도 없지 않으나 소수의견에 불과하다.그러나 김정일의 건강문제에 대해서는 많은 전문가가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북한의 대외정책과 관련,일본정부와 전문가들은 미·북한회담이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고 말하며 주시하고 있다.하지만 대부분은 김일성의 대화노선을 답습할 것으로 전망한다.다케사다 히데시 방위청방위연구실장은 『김정일은 과거 7∼8년전부터 실질적으로 외교를 지휘했다』고 지적하고 『자신의 첫 외교업적으로 미국과의 회담을 성공시키려 할 것』이라고 예상한다.일본은 북한이 미·북한회담을 성공시킬 경우 김정일체제가 보다 안정될 것으로 보고 있다.그러나 김정일체제는 핵문제,경제난 등 어려운 과제와 많은 불안요인을 안고 있다고 진단한다.
  • 서울대/기혼 대학원생 기숙사 세운다

    ◎3개동 어제 기공… 내년 10월 준공/집안서 통신망이용 학술정보 검색/나산서 기증… 백20가구 입주예정 서울대에 국내 최초로 방안에 앉아서 국내외 학술정보를 이용할 수 있는 첨단 기혼 대학원생기숙사가 세워진다. 서울대와 나산그룹(회장 안병균)은 8일 상오 11시 관악캠퍼스에서 김종운총장과 안회장등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나산그룹이 기증키로 한 기혼대학원생전용 기숙사 기공식을 가졌다. 나산그룹이 내년 10월까지 총공사비 50억원을 들여 건립한 후 서울대에 기증할 이 기숙사에는 도서관이나 연구실에 가지 않고도 개인용 컴퓨터를 이용해 각종 학술정보나 생활정보를 검색,활용할 수 있는 근거리통신망(LAN)시설이 갖춰지게 된다. 낙성대 뒤쪽 총장공관 건너편 2천4백50여평의 대지에 5층짜리 3개동으로 건립될 이 기숙사에는 총 1백20세대가 입주할 수 있다. 기숙사가 완공되면 입주자들은 집안에 설치돼있는 컴퓨터를 근거리 통신망에 연결,서울대 중앙전산망의 프로그램을 자유로이 연구에 활용할 수 있게 됨은 물론 도서관이나 연구실에직접 가지않고도 학술정보나 각종통계·대형서점의 도서문헌정보등도 검색할 수 있다. 또한 한국과학기술원(KAIST)이나 포항공대등 국내연구기관과 미국의 하버드나 프린스턴대등 외국유수의 연구기관 전산망과도 직접 연결이 가능하다. 나산그룹 안회장은 『고급연구과정인 석사·박사과정이상의 학생들이 24시간 학교에 머물면서 학업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국내 학문의 질을 높이기 위해 기증을 결심했다』고 밝혔다.
  • 김일성사망 한달… 평양은 지금/권력승계 왜 늦나

    ◎“김정일옹립 합의 불구 요직배분 난기류”/충성경쟁 형태 친위세력 암투설/「화려한 대관」 분위기조성 분석도 김일성이 사망한지 한달이 다 되도록 후계자인 김정일이 최고 권력직인 당총비서와 국가원수에 해당하는 국가주석직을 승계했다는 발표가 나오지 않아 구구한 추측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의 권력승계 마무리가 지연되고 있는 데 대한 전문가들의 분석이나 최근 북한을 다녀온 외국인사들의 전언도 상당한 편차를 보이고 있다.그의 권력세습에 결정적 이상이 생기고 있다는 추측이 있는가 하면 이미 1백% 권력을 장악했다는 첩보도 있는 탓이다. 그러나 현단계에서 분명한 것은 다음 3가지 사실이다.첫째 김일성 사후 북한의 공식매체들이 김정일의 후계체제를 당연시하는 선전을 계속하고 있다는 점이다.둘째 반김정일세력이 표면화됐다는 징후가 아직 외부로 표출되지는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셋째 그러면서도 그의 이름 뒤에 주석이나 당총비서라는 호칭이 따라붙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 3가지 사실을 바탕으로 일부 관측통들은 김의 1인자 옹립엔 북한 권력층 내부의 이견이 없으나 당·정·군 요직 배분에 「난기류」가 조성되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즉 공동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김의 권력승계에는 아무도 이의를 달지 않고 있으나 북한권력의 핵심인 당정치국 및 비서국,당중앙군사위 등을 충원 또는 물갈이하는 과정에서 모종의 암투가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더욱이 아직 확고한 장악력이 없는 김이 이를 효과적으로 교통정리하지 못해 혼미를 거듭하고 있다는 얘기다.다만 이같은 갈등이 지금까지의 도식적 예상처럼 「빨치산 1세대」 대 「혁명2세대」,보수파 대 개방파라는 식으로 전개되는 게 아니라 친위세력 내부의 충성경쟁의 형태이므로 밖으로 드러나지 않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이를테면 당조직지도부장 자리를 놓고 김의 매제인 당조직지도부 제1부부장 장성택과 당공안담당비서 계응태가 힘겨루기를 하고 있다는 설이 있다.또 같은 「혁명2세대」인 당작전부장 오극렬과 군정치국 부총국장 이봉원의 암투로 김의 군부장악에 혼선이 초래되고 있다는 첩보도 있다. 이 때문에 김이 전권을 장악하는 「1인지배체제」가 아닌 다른 형태로 김일성 사후 북한체제가 정돈될 것이라는 추론도 나오고 있다.즉 김을 당총비서에 추대하되 당정치국원들이 중요 정책을 결정하는 이른바 「당적 지배체제」로 결판이 날 것이라는 분석이다.북한방송들이 김일성추도대회나 「전승기념일」 등 주요행사 때마다 「당의 두리(주변)」 또는 「당중앙위」 중심으로 뭉치자는 표현을 자주 쓰고 있는 것도 그 징후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이복동생으로 잠재적 경쟁자인 김평일이 최근 핀란드대사로 귀임하는 등 이와는 정반대의 징후도 있다.특히 북한권력의 풍향계인 노동신문이 2일자 사설에서 「당의 위업을 완성할 영도의 계승문제가 해결됐다」고 밝힌 대목도 주목할 만하다. 때문에 수령의 유일지도체제가 주된 특징인 북한체제에서 이미 20여년간 「미래의 수령」으로 북한주민들을 세뇌시켜온 마당에 당총비서 등의 승계는 요식 절차에 지나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즉 김이 이미 실권을 장악했으나 북한전역의 추대분위기를 고조시켜 화려한 「대관식」을 치르려는 각본에 따라 승계절차가 지연되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이같은 시나리오가 사실이라면 그의 공식 1인자 등극시점은 북한정권 창건일(9월9일)이나 노동당 창당일(10월10일)이 될 것으로 보인다. ◎대외정책 변했나/대남긴장 조성·핵줄다리기 불변/체제 안정까진 부분개방도 곤란 김일성 사후에도 북한의 대외 정책은 당분간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이 설득력을 더해 가고 있다. 김일성이 죽은지 한달이 다되고 있으나 북한의 대남 및 대외 노선의 변화 조짐이 감지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김정일의 권력승계라는 내부변화에도 불구하고 남북대화나 통일문제에 접근하는 자세 및 「핵전술」등에서 생전의 김일성노선과의 차별성이 아직 엿보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특히 남북관계보다는 핵카드를 이용해 미국과의 관계개선에 주력하고,체제동요를 우려해 극히 제한된 범위내의 개방노선을 견지하고 있는 것 등은 김일성노선의 복사판에 다름 아니다. 북한은 5일부터 재개된 제네바 미북 3단계회담에서 현재와 미래의 핵동결을 미끼로 미국과의줄다리기에 들어갔다.이처럼 대미협상에선 김일성이 죽기 직전의 적극적 자세를 고수하고 있는 반면 남북관계에서는 정상회담 연기통보 이후 계속 적대적 태도를 취하고 있다.김영삼대통령에 대한 극렬한 비방 등 대남 비난 공세의 수위를 높여가고 있는 것이 단적인 사례다.더욱이 6일엔 북측이 전화통지문 접수를 거부해 심상치않은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남한측 조문단의 방북을 환영한다는 식으로 우리측 당국과 비당국을 이간시키는 통일전선전술을 본격화하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 맥락이다. 이같은 북측의 반응들은 종래 주적으로 설정했던 미국에 대한 직접적 비방을 자제하고 있는 것과는 극명하게 대비된다.이는 끊임없는 긴장조성을 통해 체제유지를 도모해온 구태의연한 행태를 당분간 적어도 대남 관계에서는 고수하겠다는 신호로 해석된다. 북한이 자주·평화·민족대단결 등 통일 3원칙과 이른바 「전민족대단결 10대강령」을 계속 강조하고 있는 것도 김일성의 대남 정책을 고스란히 답습하는 행태다.이는 결국 일단 국력의 열세를 감안해 흡수통일을 피하기 위한 시간을 벌면서 장기적으로 통일전선전술에 의한 대남 혁명전략은 포기하지 않겠다는 시사로 볼 수 있다. 북한이 주장하는 자주의 개념이란 외세추방,곧 주한미군철수를 뜻하고 민족대단결도 우리측 민간과의 「통일전선」 형성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같은 맥락에서 본다면 북한은 김정일체제가 확고한 궤도에 오르는 시점까진 남한과의 합작을 통한 본격적인 대외개방노선을 추구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등소평이 선도한 중국식 부분개방노선을 김정일체제가 곧바로 답습하기란 어렵다는 얘기다. 최근 북한은 러시아와 나진·선봉 경제특구안에 소규모 합작 무역회사를 설립했으나 본격적인 대외개방에는 여전히 소극적이다.나진·선봉이라는 제한된 울타리 안에 안주할 뿐 남포나 신의주 등 사회간접자본 등 상대적으로 투자여건이 좋은 지역으로 개방을 확대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최근 중국을 방문해 그곳의 대북전문가들을 만나고 온 외교안보연구원의 한 관계자는 북측은 남한사정 등 외부정보 유입과 자본주의 바람의상륙으로 인한 체제동요를 우려해 단기적으로는 중국식 또는 베트남식 개방노선을 채택하기 어려울 것으로 관측했다. 그러나 중장기적으로 북한도 어쩔 수없이 개방노선을 채택하는 게 불가피할 것으로 보이며 그 성공여부도 확실치않아 김정일체제가 3년을 넘기지 못해 중대한 위기를 맞을 것이라는 게 중국측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북당국 뭘하고 있나/“후계 확립” 선전 안간힘/생산차질 극복도 총력 북한 당국은 김일성사망이후 김일성의 뒤를 잇는 김정일에 대한 충성맹세에 총력을 기울이면서 생산차질을 극복하기 위한 산업활동 독려에 안간힘을 다하고 있다.특히 김정일에 대한 충성다짐은 갈수록 더해지고 있다.후계체제 공식출범을 앞두고 분위기를 더욱 고조시키기 위해서이다. 요즈음 북한 방송이나 신문들은 김일성의 혁명유업계승을 내세워 김정일을 후계자로 떠받드는 일에 온통 매달려있다. 김정일이 지난 30년 동안 사상·이론활동을 비롯,정치·경제·군사·문화등 모든 분야에서의 과제들을 「빛나게 해결」했으며 그 과정에서 이룩한 업적은이루 헤아릴 수 없다고 선전하고 있는 것이다. 「사상과 이론, 영도예술의 걸출한 영재」,「신념과 의지의 최고의 화신」,「인덕과 사랑을 베푸는 위대한 은인」등으로 표현하면서 「김정일 없는 세상은 태양이 없는 암혹」이라고 추켜세우고 있다.더욱이 지금까지 김일성에 의해 창시되고 김정일에 의해 계승·발전됐다고 주장해온 주체사상마저 김정일이 발전·완성시켰다고 주장해 관심을 모으고 있다.이는 김정일시대를 맞아 「주체사상=김일성주의」에서 「주체사상=김정일주의」로의 전환을 위한 사상이론적 정지작업의 일환이다. 북한 당국은 김정일의 업적 부각과 함께 김정일의 「유일적 영도」 확립을 부르짖고 있다.지난 20년 동안 후계구축작업이 진행되어 왔음에도 김일성사후의 불안정한 분위기를 틈타 일어날 지도 모를 반김정일 세력이 발을 붙일 수 없도록 차단하기 위해서이다.김정일에 대한 호칭도 「수령」,「운명의 수호자」,「민족의 태양」,「인민의 위대한 어버이」등으로 갈수록 격이 높아지는등 우상화작업이 극에 달하고 있다. 북한은이와함께 김일성의 사망에 따른 주민들의 사기저하를 극복하고 생산손실을 만회하는데 안간힘을 쓰고 있다.북한 언론들은 『당과 수령에 대한 충성과 효성은 눈물이나 격조높은 맹세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당이 준 혁명과업을 수행하기 위한 헌신적 투쟁에 있다』면서 북한 주민들이 애도분위기에서 벗어나 현실적인 생산활동에 주력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모든 당원과 근로자들이 생산과 건설에서 혁신적 성과를 이룩하는 것만이 김일성의 유지를 받들고 김정일을 잘 모시는 길』인만큼 『슬픔을 힘과 용기로 바꾸어 건설투쟁에 떨쳐나서야한다』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는 것이다.
  • 핵봉처리/「김정일 핵정책」 가늠자/미­북회담의 주요 쟁점

    ◎북 “독자처리” 한미 “영구폐기” 맞서/경수로전환 지원·북핵 과거규명도 관심사 우리나라와 미국 두나라는 5일 재개된 미국과 북한의 제네바회담을 북한의 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마지막 회담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이 회담 결과 미국과 북한의 수교교섭을 위해 대표의 위상이 한단계 올라간 차관급회담이 뒤이어 열린다 해도 이는 핵문제와는 별개의 회담이라는 생각이다. 한승주외무부장관도 『핵문제를 위한 4단계 회담은 생각하고 있지 않다』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그만큼 이번 회담에 비중을 두고 있다. 그러나 회담상대가 북한이고 미묘한 회담의 쟁점등을 감안할 때 이번 회담의 장래는 물론 추가회담의 가능성등은 여전히 불투명한 상황이다.특히 이번 회담의 의제는 그 성격으로 보아 단번에 모두 합의하기가 어려운 것들이다.단계적이고 점진적으로 추진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서도 영변 5메가와트급 원자로에서 꺼낸 폐연료봉의 처리문제가 가장 까다롭다.이 문제는 김일성이 생전에 약속한 「핵동결」의 핵심부분이다. 냉각저수조에 저장돼 있는 8천10개의 폐연료봉은 이제 부식상태에 들어가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아직 방사능에 오염될 단계는 아니지만 연료봉을 싸고 있는 마그네슘 피복이 갈라지는 징후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북한은 늦어도 이달말이나 9월초에는 재처리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재처리는 국제감시 아래 자기네들이 직접 하려 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우리와 미국 두나라의 처리방향은 전혀 다르다.영구 폐기,또는 중국등 제3국으로 옮기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만일 그것도 여의치 않으면 첨단 화학기술을 제공,폐연료봉의 보관기간을 연장하는 방안을 구상하고 있다. 많은 전문가들은 이 문제가 회담 전체의 진로를 결정할 뿐더러 김정일체제의 핵정책을 가늠할 수 있는 시금석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두번째는 흑연감속로의 경수로 전환 지원 문제이다.이 부분의 가장 큰 쟁점은 어느 나라 형으로 하느냐이다.우리는 한국형 경수로의 채택을 바라고 있지만,북한은 미국측에 러시아형을 주문하고 있다.이 부분에 대해 미국은 중립적 자세를 지니고 있다.회담의 진행 과정을 지켜보면서 그때 상황에 맞춰 결정짓자는 태도여서 「어느나라 것이냐」 보다는 회담의 진전에 역점을 두고 있다.따라서 회담을 좀더 두고봐야 하겠지만 자칫하면 우리는 자금을 대고 원자로는 러시아형이 될 가능성이 높다. 마지막은 북한의 핵과거 규명문제이다.미국은 「북한의 1∼2개 핵무기 보유」라는 과거의 규명보다 앞으로 4∼5개를 더 만들수도 있는 폐연료봉의 재처리 금지에 우선 순위를 두고 있다.그러나 우리와 일본은 이번 회담에서 북한의 핵과거에 대해,다시말해 특별사찰 문제에 대해 어떤 형태로든 북한의 약속이 이뤄져야 한다는 자세이다. 나머지 핵 불사용 문서보장,핵확산금지조약(NPT) 완전복귀등의 문제는 미국의 대북무역제재 해소와 상호 연락사무소 설치등과 연계해 포괄적으로 해결될 수 있을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 더위를 잊는 지혜/신원영(굄돌)

    여름은 더워야 여름 맛이 난다고 하지만 금년 여름은 내 생전 처음 겪어보는 살인적인 더위가 연일 계속되었다.기상관측을 시작한 이래 매일 매일 새로운 기록을 경신하는 기온,밤에는 열대야현상이 지속돼 밤잠을 설쳐야 하는등 너나 할 것없이 힘들고 짜증스럽기만 하다. 지난주말은 최대인파가 피서지로 향하는 바람에 차량행렬이 고속도로를 꽉메우고 명절때 귀성차량 행렬을 연상케 하듯 고속도로가 마치 움직일줄 모르는 거대한 주차장화되어 버렸다고 한다.그러나 꼭 산과 바다로 피서를 가야만 더위를 잊고 여름휴가를 잘보내고 추억에 남는 휴가가 되리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그중 가장 보람되고 여름을 잊을수 있는 나의 피서 독서담을 이야기할까 한다. 내가 살고 있는 동네는 아파트단지가 꽤 넓어 아름드리 큰나무들이 많은 조용하고 조경이 잘된 쾌적한 곳이다.나무그늘 아래 돗자리를 깔고 독서 삼매경에 빠지다 보면 더위를 잊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고 세상 모든 잡념들이 사라진다. 연전에 문인 한분이 선현들의 여름을 보내는 지혜와 독서에 관해 말하기를 옛날 서당에서는 학동들에게 그동안 읽던 딱딱한 경서는 잠시 접어두고 고문진보중에서 좋은 문장만을 뽑아 여름글이라 하여 피서겸 읽도록 했다고 한다. 무더위가 연일 계속되는 요즘은 평소에 읽고싶었던 가벼운 내용의 책이면 더욱 좋을 것이다.국민학생의 경우 미지의 세계체험을 주제로 하는 탐험소설이나 창작동화가,중학생의 경우에는 청소년의 기상을 키우고 시야를 넓혀줄 수 있는 위인전기가 무난할 것이다. 고교생들의 경우 입시경향에 맞춰 꼭 알아야할 국내외 명작소설류 또는 유명 칼럼니스트들의 칼럼을 읽음으로써 문장력과 논리적 사고력을 기르는데 매우 유익하리라 생각한다. 나는 요즘 뛰어난 문장만을 골라모은 고문진보를 읽고있다.이책의 유려한 문장이 주는 청량감을 깊이 음미하다보면 더위는 까맣게 잊게된다.
  • “김정일 핵개발포기 않을것”/미 윌리엄테일러(전략연부소장)일지회견

    ◎군부압력 거세… 미­북회담은 시간벌기 작전 그동안 4차례나 북한을 방문하는 등 김일성과 친교가 있었던 윌리엄 테일러 미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부소장은 25일 워싱턴에서 일본마이니치(매일)신문과 회견을 갖고 『북한은 앞으로도 핵개발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견해를 제시하고 『김일성은 김정일의 이야기가 나오면 매우 입술이 굳어졌다』는 등 흥미로운 사실을 밝혔다. 다음은 테일러 부소장의 회견 요지. ­생전에 김일성과 김정일에 관해 이야기 한일이 있나. ▲92년6월경 나는 김일성에게 『당신은 김정일에 권한을 이양했으니 멧돼지 사냥이나 낚시 등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이 어떠냐』고 말한 적이 있다.수프를 마시고 있던 김일성은 스푼을 놓고 나를 향해 『테일러 박사,분명히 말해 두지만 나는 지금도 국가 운영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4월 방문 때는 어떤 화제가 나왔었나. ▲그 때는 내가 아니라 동석자중 한사람이 『당신(김일성)의 친구인 우리들도 아들 김정일을 옹호하는 것은 어렵게 됐다』고 말했다.김일성은 언제나처럼 미소를 머금으며 이렇게 말했다.『내가 자식의 일을 옹호할 필요는 없다.자식은 자신의 다리로 틀림없이 서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당신이 그리고 있는 김정일 상은. ▲그는 부친이 신으로 숭배받는 시스템속에서 철저히 자라난 52세의 남자다.아무리 장시간 후계자가 될 준비를 거듭했더라도 아버지와 같이 되지 않는다는 것,군이나 관료가 그를 아버지 정도로 존경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틀림없이 잘알고 있다.이것은 엄청난 부담일 것이다.그리고 그는 자신이 없다고 생각한다.추도대회에서 연설을 하지 않은 것도 자신이 없다는 것을 표현한 것이 아니겠는가. ­앞으로의 미·북한 관계는. ▲한·미·일은 지금부터 김일성이 없는 불확실한 북한과 관계를 갖지 않으면 안된다.고위회담은 재개되더라도 내용없는 공론으로 끝날 것이다.나는 연료봉의 냉각이 끝나는 8월말부터 9월말까지 핵문제는 위기의 벼랑으로 거꾸로 돌아갈 것으로 생각한다. ­김정일은 강경 노선으로 달릴 것인가. ▲그렇다.그는 핵개발을 결코 포기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왜냐하면 그는 지도자로서의 기양과 명성을 필요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핵문제를 애매한 상태로 놔두는 의미를 잘 이해하고 있으며 군부로부터도 핵계획 추진을 틀림없이 요구받게 될 것이다.이제부터 8월말까지는 대화와 낙관적인 관측으로 가득찬 분위기가 계속될 것이나 미·북한 교섭은 시간 벌기에 지나지 않는다.
  • “추모열기 식을때 기다려” 해석 유력/김정일 권력승계 왜 늦어지나

    ◎“건강·리더십 문제로 난기류” 관측도 북한 김정일의 당총비서 및 국가주석 취임 등 권력승계 절차가 마무리되는 시점은 과연 언제쯤일까. 김일성 사망 이후 북한 선전매체들의 지속적 김정일 미화작업으로 따놓은 당상처럼 비쳤던 그의 공식 1인자 등극 시점이 지연되고 있다. 22일 상오까지 북한방송들에 나타난 김의 호칭은 여전히 최고사령관과 국방위원장 정도에 머무르고 있다.이를테면 북한중앙방송은 21일 저녁 김정일을 「인민의 자애로운 어버이」로 찬양했으나 그에 대한 호칭은 「장군」에 그쳤다. 20일 김일성 추도대회에서 사실상 김이 후계자로 추대됐음에도 불구하고 김광진 인민무력부부부장 등 각계 인사의 충성다짐만 계속 선전할 뿐 그의 당총비서 및 주석 승계발표를 서두를 낌새는 보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북한이 「다된 밥」처럼 여겨졌던 김의 1인자 공식화에 뜸을 들이고 있는 까닭에 대해 현재로선 누구도 자신있게 정답을 제시할 수 없는 형편이다.불리한 정보의 외부유출을 철저히 차단하는 북한체제의 속성상 몇가지추론만 가능할 뿐이다. 우선 2년 동안의 후계체제 구축작업으로 그의 승계가 기정사실화된 만큼 굳이 절차적 문제를 서두를 이유가 없다는 추론이 가능하다.북한권력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 수령의 유일지도체제인 데다 김일성 생전에 이미 김을 「미래의 수령」으로 북한주민들에게 세뇌시켜온 만큼 당총비서 등 구체적 직책의 승계는 부차적 문제라는 얘기다. 요컨대 다른 「대안」이 없도록 상황조성을 해놓은 마당에 현재 「상주」의 지위에 있는 김이 아버지의 카리스마를 훼손해가면서까지 승계절차를 앞당겨 강행할 까닭이 없다는 것이다. 이같은 논거에 따르면 당중앙위 전원회의와 최고인민회의를 열어 당총비서·국가주석 등 핵심요직에 대한 승계절차를 밟을 시점이 임박했다고 볼 수 있다.김일성에 대한 「추모열기」가 가라앉기만 기다려온 형국이기 때문이다. 이와는 정반대의 해석도 있다.김정일의 건강이나 지도력에 문제가 생겨 완전한 1인 지배체제에 난기류가 조성되고 있다는 관측이 그것이다. 이는 미­북 3단계회담 등 북한정권이 운명을 걸고 대비해야할 대내외적 현안이 산적한 마당에 국가주석 등 요직의 장기공백을 방치할 상황이 아니라는 점에 근거하고 있다.즉 김이 명목상 1인자 자리에 오르는 데는 합의가 이뤄졌으나 실질적인 권력장악에는 문제가 생겼다는 분석이다. 정부내 북한전문가들은 김정일을 외형상의 대표로 내세우되 실제 정책결정과 집행은 당정치국을 핵심으로한 당중앙위가 영향력을 행사하는 방향으로 북한체제가 변모할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이른바 「당적 지배체제」로 불리는 유사 집단지도체제가 그것이다. 이같은 관점에서 김에 대한 공식 후계선언이 늦춰지고 있는 것도 단순히 선출절차나 시기에 대한 이견이 아니라 「당적 지배체제」에 참여할 핵심인사들간의 「파워게임」이 끝나지 않은 탓이라는 추측이 제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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