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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자의 대사(외언내언)

    유령이 출몰하는 곳은 어디나 음산하다.흐트러진 기왓장 사이로 잡초가 무성한 패가나 오랜 풍상에 퇴락한 고성같은 곳이 유령의 집이다. 유령이 엮어 내는 이야기는 언제나 비극적이다.영국의 여류작가 에밀리 브론티가 그린 「폭풍의 언덕」에는 분명히 오래 오래 히스클리프의 유령이 맴돌았을 것이다.어렸을적 받은 학대에 대한 처절했던 생전의 복수로도 모자라 히스클리프의 유령은 「폭풍의 언덕」을 차마 떠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북한에서 만들어 내고 있는 유령이야기는 비극적이라기보다 차라리 희극적이다.권오기 통일원 부총리가 10일 전국의 기초단체장들을 대상으로 한 국정설명회에서 전한 북한 이야기는 참으로 해괴하다. 북한은 김일성이 세상을 떠난지 3년이 지난 지금도 외국에 내보내는 대사들의 신임장을 김일성이름으로 발부하고 있다는 것이다.이런 기이한 일에 당황한 나라들이 잇따라 항의하자 이제는 김일성이름 밑에 이종옥,박성철같은 부주석의 이름을 부서해 신임장을 내고 있다.그러나 부서후에도 아프리카의 한 나라에서는 신임장 제정을 거절하는 사례까지 발생했다고. 대사들의 신임장을 김일성이름으로 내는 사연이 또한 재미있다.김일성은 죽지않고 영생 불멸함을 보여주려는 의도에서라고.김일성은 지금도 살아있으며 실제로 북한을 통치하고 있음을 실증적으로 입증해주려는 것이라고 한다.따라서 그의 아들 김정일의 권력승계는 정당하다는 것이다.김일성이 죽은후에도 계속 김일성배지를 북한 주민들에게 달도록 하고 있는것과 같은 맥락. 10일자 신문들은 북한 혜산시 민둥산의 다락밭 풍경도 보여주고 있다.나무 한그루 없는 산에 누더기처럼 다닥다닥 만들어놓은 다락밭에서 무엇이 자랄수 있을것인지 알수가 없다. 이런 일들은 폐쇄사회의 병폐가 얼마나 무서운지,1인 지배체제의 종말이 어디까지 가는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들이다.
  • 동경성의 대종교(송화강 5천리:27)

    ◎발해 도읍지서 꽃핀 민족종교/1930년대 본거지 구축… 동북3성서 독립운동/발해농장·이상촌 건립… 조선족에 살길 열어/단군섬이던 교인들은 일제탄압에 뿔불이/자금난 본떠 만든 궁궐터엔 깨진 기왓장만 흑룡강성 영안시 발해진은 해동성국으로 일컬었던 발해국에서 따온 지명이다.발해역사 229년동안 두 번이나 도읍지가 되었던 상경용천부는 바로 발해진에 있다.동경성이라고도 불리는 상경용천부의 도성은 당나라 장안성을 본떠서 조영했다는 것이다.장방형을 이룬 도성은 외성과 내성,궁성을 갖추었다. ○궁궐터를 밭으로 개간 오늘날 남아있는 외성에는 버드나무가 길길이 자라 숲이 되었다.북쪽 외성의 길이는 5.5㎞,남쪽 길이는 5㎞,동서 길이 3.5㎞에 달했다.외성안에는 마차가 다니는 80m의 거리가 질서정연하게 구획되어 당나라 장안을 방불케했다는 것이 학자들의 이야기다.그리고 내성 역시 장방형으로 그 둘레가 4.5㎞에 이르고 있다.당시 삼성육부가 자리잡았던 내성에는 성터와 금원자리가 그런대로 남았다.이른바 어화원이라고도 하는 2만㎡의금원 자리에는 인공못과 조산흔적이 아직도 보인다. 궁성의 성벽은 비교적 잘 남아있다.궁성의 남문인 오문은 그 흔적이 뚜렷하다.오봉루로 더 널리 알려진 오문은 누각만이 없을뿐 높이 6m,너비 20m 규모로 잘 복원되었다.오문 북쪽 5개의 궁전터에는 크나큰 주춧돌만이 잡초속에 묻혔다.16부 130개 현을 호령했던 왕실의 권력이 오간데가 없는 이 황성을 누가 자금성이라 했던가.가장 큰 궁전터 동쪽에는 팔보 유리정이 있다.왕이 마신 어수가 솟아올랐다는 이 샘의 석축에는 이끼가 창연하다. 용천부를 두루 밟노라면 허무한 생각이 가슴에 쌓인다.세월과 함께 모든 영화가 사라진 궁궐 옛 터전에는 깨어진 기왓장만 나뒹군다.그래도 누군가가 궁궐터를 밭으로 부쳐서 여름이면 옥수수가 검푸르게 자랐다.이 땅은 발해 이전에는 고구려 강토였고,더 올라가면 고조선의 영토였다.청나라때인 강희16년(1677년)에는 청조의 발상지라는 이유로 봉금구가 되어 인적이 끊기기도 했다. 그러나 조선의 변경민들이 사선을 넘나들었다.새벽에 강을 건너 농사를 짓다가 저녁에 돌아가는 조선인들을 더이상 막을수 없게 된 청조는 이른바 「혼춘영고탑초간장정」을 반포했다.이는 조선족을 달래기 위한 조치였는데,영고탑은 오늘날 행정구역상으로는 혼춘이 아니라 발해진에서 15㎞에 불과한 영안시에 있다.그래서 1889년께 이 일대에 조선개간민촌 고려영을 형성하기에 이르렀다.고려영은 주로 영고탑성향으로 형성되었다. ○1889년에 고려영 형성 그 당시 조선인은 1천200∼1천400명이었다.이후 조선민은 더 늘어나 1930년에는 3천88명,1932년에는 1만2천767명을 기록했다.이들은 바로 중국 동북3성에서 독립운동을 거의 주도한 대종교의 기반이 되었다.그러다 대종교는 1911년 길림성 화룡시 용성향 청호촌을 거쳐 1920년에는 흑룡강성 밀산시 당백진 등으로 본거지를 옮겨다녔다.1928년에 다시 흑룡강성 영안시 남관으로 들어온 대종교 본부는 1934년 발해의 옛 읍지인 영안시 발해진 동경성으로 와서 자리를 잡았다. 대종교는 총본사를 동경성으로 옮기면서 조직과 기구를 정비했다.3·1학원을 세우고 발해왕궁터 바로 남쪽에 천진전을지었다.교주는 윤단애 선생이었다.그 무렵에 조만춘이라는 사람이 대종교 활동에 참여했다.그런데 조만춘이 만주국 사법과 밀정이라는 사실은 아무도 몰랐다.그의 밀고로 대종교 요원들이 모두 체포되었다.이를 대종교에서는 임오교변이라 하는데,영안시 삼량향 남향촌의 이인희옹(70)은 당시 상황을 기억했다.그는 대종교 주요 멤버였던 이수원의 손자다. 『우리집은 대종교 총본사와 200m 밖에 떨어지지 않았디요.아침에 깨어보니 할아버지께서 본사에 다녀오신 모양입데다.그리고 나서 밖을 내다보았더니 일제가 동원한 경찰들이 떼로 몰려와 있었디요.할아버지께서는 옷을 챙겨 입으시고 밖으로 나가려는데 식구들이 울면서 만류했디 않았겠습네까.다 잡혀갔으니끼리 뒤에 수습을 하셔야 된다고….그래서 피신을 하셨디요.식구들은 대종교 서적과 서류를 마대에 넣어 한족집에 맡기는 것도 보았디요』 단군을 섬긴 대종교인들은 거의가 나라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초개와 같이 여겼다.영안시 동신촌 이병조(72)의 부친 이련건도 그런 분이었다.일제의 주구 조만춘의 유혹도 뿌리친 그는 옥중에서 동지들한테 보낸 한시에서 이런 구절을 남겼다.「발해성터에서/무엇을 해야 할꼬/나라일 걱정에/하룻밤이 일년 같구나」.나라를 잃고 독립을 위해 망명지에서 어렵사리 살았던 우국지사들의 고뇌가 엿보였다. 백산 안희제선생은 1933년 동경성에 정착한 대종교 요인이다.동만농장 토지를 사서 발해농장을 꾸리기도 했다.당시 논을 개간하며 쌓은 둑은 지금의 아보저수지에 묻혀버렸지만,그가 「발해농장」간판을 걸었던 건물의 잔영은 남아있다.발해진 상경로 17호 발해진청사에 절반쯤 남은 건물이 그것이다. ○격변의 세월 한족촌 탈바꿈 안희제 선생은 임오교변으로 체포되었다가 이듬해 8월3일 병보석을 받았다.그러나 감옥문을 나선뒤 세상을 떴다.그는 동경성일대의 조선족들에게 살길을 열어주어 생전에 많은 추앙을 받았다.그와 더불어 추앙을 받았던 인물을 더 꼽으라면 김소래 선생이 있다.반일투사이자 교육가인 선생은 1928년 오늘의 영안시 와룡향 홍기임장에 이상촌을 건설했다. 그러나 지금은 사람들이 모두 바뀌어 한족들이 그 자리에 살고있다.김소래 선생을 아는 사람도 없거니와,본래가 조선족 이상촌이었다는 사실을 까맣게 모를만큼 변해버렸다.지금 임장사무실로 쓰는 건물 뒤쪽으로 흐르는 실개천 건너의 언덕이 선생의 집자리였다고 한다.물론 흔적조차 찾을 길이 없었다.그보다 더 애석한 일은 선생의 유해가 묻힌 묘지가 어디 있는지 모른다는 사실이다.아마도 묵묘로 남았다가 세상이 바뀌어 자취없이 사라졌을 것이다. 김소래 선생은 1933년에 피살되었다.선생은 피살전에 죽음을 예견했는지 몰라도 책과 서류를 산속 동굴에 감추었다고 한다.그런데 광복후 사냥꾼 이기송이 집으로 가져왔으나,마을 사람들이 담배를 말아 피우는 종이로 사용했다는 것이다.어처구니 없는 이야기다.발해 도읍지의 독립운동사는 그렇게 역사 뒤안으로 사라졌다.
  • 근대 국내미술 유화·수묵화 개성파/박수근­변관식 “이색 만남전”

    ◎관훈동 노화랑서 한국적 정서를 친근하고 인간미 있는 화면으로 완성시킨 작가 박수근과 변관식의 작품이 지난 8일부터 서울 종로구 관훈동 노화랑(732­3558)에서 만나고 있다. 「박수근 VS 변관식」이란 타이틀아래 열리고 있는 이 전시회는 우리 근대미술계에서 각각 개성있는 유화와 수묵화를 통해 「한국성」을 구축한 두 거장을 한자리에 대비시켜 놓은 흥미있는 자리다. 생전 화강암 표면을 연상시키는 질감에 절제된 선으로 주제를 응축시킨 작품으로 일관한 박수근은 주로 전쟁 이후의 궁핍한 사회상을 주변의 썰렁한 형태의 나목이나 촌부·아낙의 모습으로 드러내 대중적인 친근감을 드리우는 작품에 치중했던 작가.변관식은 한국의 산천을 묘사하면서도 이전 산수화의 주류를 이루었던 심산유곡을 떠나 논두렁과 초가가 있는 농촌과 시골풍경를 등장시켜 훈훈한 인간미를 강조한 인물이다. 이번 전시는 결국 현실과 동떨어진 예술이 아닌 삶의 생명력을 강하게 드러내기에 노력했던 대표적인 서양·한국화가 두 사람을 한자리에 모은 자리란 점에서색다른 의미를 갖는다. 두 사람 모두 50∼60년대 위주의 대표적 작품을 선보이고 있는데 박수근의 작품은 11점,변관식의 것은 14점이 나와있다.15일까지.
  • “「설공찬전」 최고 한글소설 아니다”

    ◎한국고소설학회 연구발표회서 잠정 결론/한문본 국역… 한글표기 소설로는 최고/이번 발견본은 구전된 것 일부 옮겨쓴듯 「설공찬전」은 한글로 표기된 최고의 소설이다.하지만 창작소설이 아니고 한문소설을 한글로 번역,표기한 것이기에 지금까지 가장 오래된 한글소설로 공인되고 있는 「홍길동전」보다 앞선 최고의 한글소설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국문학계는 지난 10일 대전 한남대에서 열린 한국고소설학회 37차 연구발표회를 거치면서 「설공찬전」에 대해 대체로 이러한 잠정적 결론을 내리는 것 같다. 최근 발견된 「설공찬전」 한글본은 이문건의 묵제일기(1535∼1567년)에 기록된 조선 중종때 채수의 작품으로 「홍길동전」(1618년)보다 100여년 앞선 것으로 밝혀져 「최고의 한글소설」이냐의 여부를 놓고 국문학계의 지대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설공찬전」 한글본을 독점적으로 연구해온 서경대 이복규 교수는 이날 발표회에서 「설공찬전:국문본 발견 경위와 의의」라는 주제 발표문을 통해 『「설공찬전」은 한글로 표기된 최고의 소설로서 이후 본격적인 국문소설을 등장케하는 길잡이 역할을 한 것으로 국문학사에 자리매김해야 한다』고 밝혔다. 한문소설의 번역이긴 하지만 같은 시기에 한글로 번역돼 유통된 것이 조선실록에도 나오는 만큼 현재까지 발견된 가장 오래된 한글표기 소설이라는 점은 분명하다는 것이다. 이교수는 『「설공찬전」과 같은 류의 국역소설이 있었기 때문에 「홍길동전」과 같은 완벽한 형태의 한글 창작소설이 등장할 수 있었다』고 분석했다. 그동안 학계에서는 최고의 한글소설인 「홍길동전」이 너무나 완벽한 소설의 형태를 지니고 있어 혹시 한문원본을 국역한 것이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었다. 이 교수는 이러한 의혹을 불식시키는 훌륭한 증거로 「설공찬전」이외에도 이번에 묵제일기에서 함께 발견된 권필의 「주생전」 그리고 「왕시봉전」 등 저자를 알 수 없는 3개의 한글표기 소설을 들고 있다. 토론자로 나선 고려대 강사 소인호 박사는 『유일한 역사기록인 중종실록에 「설공찬전이 한문으로 베끼거나 국문으로 번역하여 전파됨으로써…」라고 되어있어 한문본을 국역했음이 분명하다』면서 『한글소설로 분류하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한글소설은 처음부터 한글로 창작된 것을 지칭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이교수도 이에 동의해 『「설공찬전」의 한글본 제목이 「셜공찬이」라고 되어있는 것은 한문원본의 제목으로 추정되는 「설공찬이」를 번역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한문원본 「설공찬전」은 우리나라 최초의 소설이자 한문소설인 김시습의 「금오신화」(1465∼1470)의 바로 뒤를 잇는 전기소설로 초기 고소설사의 80여년 공백을 메우는 중요한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충남대 사재동교수(국문학)는 『이번에 발견된 한글본은 내용이 너무 부분적이고 허술해 한글번역원본이라기보다는 구전되던 것을 일부 옮겨적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 북의 전쟁준비와 선거의 해(사설)

    권영해 국방장관이 국회 정보위에서 밝힌 황장엽 전 북한노동당 국제담당비서에 대한 조사보고 내용은 몇가지 점에서 우리에게 새로운 경각심을 불러 일으키게 한다.우선 이 조사내용은 황씨의 망명이후줄곧 우리의 관심을 모아온 세칭 「황장엽정보」의 제1보다.황씨가 밝힌 내용이 전체적으로 보아 그동안 우리가 알고있는 것과 크게 다를것은 없지만 북한내 최고위층 인사가 확인한 정보라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북한이 꾸준히 전쟁준비를 해오고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일이다.그러나 무엇보다 북한이 92년에 전면 남침계획을 세웠다가 실행 직전에 취소했다는 것은 놀라운 정보다.92년이면 대통령선거가 한창이던 때다.그런데 과문인지 몰라도 92년 당시에나 대선 이후에도 북한의 그런 계획에 대해 들은 일이 없다. 올해가 대선의 해가 돼 우리에게 새삼 경종을 울리는 일이 아닐 수 없다.때마침 미국의 유력 일간지인 워싱턴 포스트도 북한에 6∼7월 남침설이 파다하다는 보도를 하고 있어 더욱 주의를 요하는 대목이다.전쟁지휘체계가 단순화돼 있다는 것이나 예상되는 「전격전」의 내용도 사뭇 위협적이다. 한국에서의 미군 개입을 막기 위해 김일성이 생전에 『미군이 철수만 한다면 제주도를 떼어 주어도 좋다』고 말했다는 부분은 우리를 참으로 경악케 한다.북한 지도부의 반민족성을 여실히 보여준 사례라 아니할 수 없다. 권부장은 이날 국회에서 이와 관련,『북한이 당장 공격준비를 하고있다는 증거는 없고 핵문제에 대한 황씨의 발언은 추측』이라고 답변했다고 한다.그나마 천만 다행이다.그러나 황씨의 정보에 다소 맹랑한 대목이 없는 것은 아니나 모든 사태에 대비하는 것이 국방이고 그것이 국방의 어려움이다.「황장엽 정보」가 우리에게 북한의 위험성을 다시 한번 일깨워주는 계기가 된다면 전화위복이 될 것이다.
  • 청문회 끝났어도 「대가성」말은 남아(박갑천 칼럼)

    되받을 생각하지 않는 베풂이 세상에 없는건 아니다.이를테면 연암 박지원의 「허생전」에 나오는 「한양 제일부자」 변씨 같은 사람이다. 책만읽던 허생이 아내의 성화에 못견뎌 그를 찾아가서는 다짜고짜 돈 만냥만 꾸어달라고 하자 「두말없이」 내준다.그걸 되받을 생각이 없었음은 허생이 그밑천으로 크게 벌어가지고 와서 10만금으로 갚았을때 되돌려주려 한데서 나타난다.허생이 풍기는 인품에 빠져들었던 때문일까.이 비슷한 내용을 쓴 옛전적들은 많다.「계서야담」 「청구야담」 「동야휘집」 「청야담수」 등등.돈버는데 대한 서민들의 동경심이 꾸며낸 얘기 아니었을는지. 이건 역시 얘기일뿐 실제로 조건없이 남에게 베푼다는게 사람으로서는 쉬운일이 아니다.하다못해 거지에게 적선하면서도 훗날의 복락으로 이어지기를 바라는것이 사람마음.그같은 마음가닥을 상영부란 사람에게서도 본다.그는 조선명종때 영의정을 지내는 상진의 증조부였다.그가 임천에 살면서 돈놀이로 부자가 되었는데 말년에 그증서들을 모조리 불태우면서 말한다.『혹 후손에게 복이 올지몰라』.그뜻대로 상정승이 나왔다는게 「연려실기술」의 기술이다. 이런 사람마음은 예나이제나 다를게없다.해서 수재의연금 같은것도 신문·방송이 나서서 거둬야 성과가 높아진다.내선행을 남에게 알리고싶은 마음과 맞아 떨어지기 때문이다.사람의 빤드러운 심성이 그러하기에 성경은 참다운 베풂이란 보이지않게 하는 것이라야 한다고 가르친다.『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앞에서 너희 의를 행치않도록 주의하라.그렇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얻지 못하느니라』(마태복음6∼1).또 「전국책」(위)에도 그런뜻의 말이 보인다.『남이 내게 베푼걸 잊어선 안됩니다.그러나 내가 남에게 베푼건 잊지 않으면 안됩니다』.그렇게 하기가 어렵기에 나오는 말들이다. 한보청문회는 끝났다.그러나 있네없네했던 「대가성」이란 말은 남아서 귓전을 맴돈다.어허,이 괴상한 말장난.늙은 어버이도 돈 가져오는 자식을 더 사랑한다는 세상 아니던가.그런터에 되받을 기대없이 외곬으로 베푸는 장삿속의 장사꾼도 세상에 있다던가.장사꾼한테서 적잖은 액수의 「공돈」 받았다고 굴침스레 우겨대는 사람이라면 머리가 좀 이상한거지.어떤 세상이라고.〈칼럼니스트〉
  • 현대 파크·대우 타워·벽산 복합/눈여겨 볼 주상복합 3곳

    ◎현대 파크­신도림 역세권 지상36층 규모/대우 타워­청주 복문위치 방범기능 높여/벽산 복합­상가분양 최고 40% 은행융자 ▷현대파크 프라자◁ 현대건설이 지하철 환승역인 신도림역 주변에 짓고 있다. 지하 7층,지상 36층 규모의 주상복합건물이다. 지하 1층∼지상 8층에는 판매시설,전자월드,아동 및 학생전문점, 패밀리형푸드코드,전문식당가 및 업무.근린시설이 들어선다.지상 10∼36층에는 6개타입의 68평형 고급아파트로 구성된다.98년 12월쯤 입주할 예정이다. 6개 타입 104가구가 공급되는 아파트는 나무질감의 신발장,나무무늬 도어,안방 부부욕실에 전화기가 설치된다.욕실에는 거품마사지 욕조와 샤워부스도 설치된다.평당 분양가는 부가세를 포함해 6백48만원이다. 9층에는 입주자 전용 골프퍼팅장(18홀,300여평),독서실(가구당 1실) 등 입주자 공동 편의시설이 마련된다.5층에는 멀티비젼,이벤트 스테이지,놀이동산 등이 있어 가족끼리 식사와 오락을 즐길수 있다. 상가는 지하 1층이 평당(부가세 포함) 8백만원,지상 1층이 1천5백만원,지상 7층이 5백만원 등이다.(02)766­9721. ▷대우타워◁ 대우건설이 청주 북문로 3가에 건설중인 다기능 복합빌딩이다.지하 4층,지상 14층의 철골.철근콘크리트 구조이다.분양중인 아파트는 37평 17가구,61평 9가구,85평형 9가구 등 총35가구이다. 지하 1층은 근린시설(평당 분양가 4백50만원,이하 평당 분양가), 지상 1층은 은행.업무시설(1천만원),2층은 업무시설(5백만원),3∼5층은 업무시설(4백만원),6∼14층은 아파트(3백60만원)이다. 출입구와 엘리베이터, 주차공간 등의 동선을 분리해 아파트 거주자와 이용자들의 불편을 없앴다. 아파트는 방범기능을 높여 프라이버시 보호에 역점을 두었다.오는 10월 입주예정.(0431)223­9516∼7. ▷벽산 옥수동 주상복합◁ 벽산건설이 서울 옥수동에 건립 중이다. 지하 3층,지상 14층 규모이다.4층부터인 아파트는 이미 분양이 끝났다. 지하 1층∼지상 3층의 상가를 분양중이다.지하 1층은 대중 사우나,지상 1층은 은행.구매시설,2층은 커피숍.식당 등 편의시설,3층은 의료시설 및 학원 등이 들어선다. 평당분양가는 지하1층이 4백50만원,1층이 1천2백만∼1천3백만원, 2층은 5백50만∼6백만원,3층은 4백50만∼5백만원이다.임대 수요자들도 30∼40%의 은행융자를 받을수 있다.투자자들을 위한 임대분양도 알선해 준다.(02)767­5262.
  • 한보청문회 증인의 자살(사설)

    국회 한보특위 청문회에 불려나갔던 한 은행임원의 자살은 우리에게 개인적 비극 이상의 충격으로 다가온다.우리 사회의 구조적 부패의 탁류에 목졸린 나약한 한 개인의 희생으로 비쳐지기 때문이다. 어떤 경우든 자살은 미화될 수 없다.그러나 스스로 목숨을 끊은 박석태 전제일은행상무는 생전의 행적이나 주위의 평을 보건대 양심적으로 살려 애쓴 고지식한 은행간부였던 것으로 파악돼 안쓰럽다.그가 한보비리의 비밀을 감추려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그의 죽음은 중인환시리에 수모를 당한 셈인 청문회 증인출석과 무관하달 수는 없다.그러나 이를 오직 「청문회 살인」으로 치부하는 것은 옳지 않다.국회라는 거대한 공조직앞에 심약한 개인은 무력감에 빠질수 있다.증거에 입각한 합리적 사실규명보다 일부 감정적 발언에 치우쳤던 문제점들이 지적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그의 죽음에 대한 근본 해답이 나오지 않는다.과거 상사들에 불리한 증언을 할 수 밖에 없는 등 청문회 출석이 자괴심과 생에 대한 회의를 촉발한 하나의계기가 됐을수 있다.그러나 근본적 문제는 평소 죄의식없이 해온 일이 어느날 돌연 부정으로 판명되는 부패의 일상화현상,기업·공직사회,일반시민 가릴것 없이 오랜 세월 몸에 배어 온 부패불감증 등 사회적 병리현상이 아닐수 없다.그 치유가 근본해답이자 처방이다.나름대로 직장과 상사를 위해 성실히 일하며 살아온 그가 어느날 엄청난 국가적 죄인으로 비쳐지자 그 수모를 견뎌내지 못해 자기파괴의 길을 택한 것이다. 태연히 부정과 타협하는 자가 부와 명예를 누리고,양심껏 살려 애쓰는 사람들이 오히려 상처받는 사회가 아닌지 각자 깊이 성찰하고 사회기풍을 바로잡아 나가는 계기로 삼아야 하리라고 믿는다.
  • “윤봉길 의사 동상 고쳐달라”

    ◎유족들 “양재동 것 생전모습과 다르다” 29일 윤봉길 의사의 상해의거 65주년을 맞아 윤의사의 유족과 친지들이 윤의사의 동상이 고쳐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어 파문이 일고있다. 현재 윤의사의 동상은 대전 충무체육관 앞,충남 예산의 윤의사 기념관,독립기념관,서울 서초구 양재동 등에 4기가 세워져 있다. 이 가운데 개작 주장이 제기되고 있는 것은 지난 92년에 세워진 서울 양재동의 동상이다. 윤의사는 갸름하고 귀가 크며 광대뼈가 튀어나온 선비형의 얼굴이나 동상의 모습은 지나치게 살찐 모습으로 친지들이 기억과는 딴판인 데다가 체격도 너무 뚱뚱해 외견상으로 윤의사의 실제 모습을 전혀 느낄수 없다는 것이 친지들의 주장이다. 생전에 윤의사가 전혀 입은 바가 없는 바바리코트 차림이라는 점도 문제제기의 이유 가운데 하나이다. 친지들은 동상이 잘못된 것은 12척 높이의 대형 동상임에도 불구하고 지난 92년 동상 제작당시 제작기간이 2개월 10일이라는 너무 짧은 기간이었고 제작자에게 강력한 이의를 제기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건립이후에도 유족들은 동상 전체를 다시 제작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얼굴부분만이라도 원형에 가깝게 고쳐달라고 주장해 공론화되었으나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윤의사의 6촌 동생이며 생전에 12년동안 같이 생활한 윤봉길 의사 기념사업회 지도위원 윤명의씨(86·대홍기획 회장)는 『독립유공세대와 유족들의 염원이 담긴 사업이라는 점에서 관련기관과 정부가 적극 개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 일 의회,뇌사 인정법 통과/중의원/의료기관 판정땐 장기적출 가능

    뇌사를 인간의 죽음으로 인정할 것인가를 둘러싸고 논란을 벌여온 일본에서 24일 뇌사를 인간의 죽음으로 인정하는 법안이 중의원에서 가결됐다. 이날 일본 중의원 본회의는 공산당을 제외한 각 당이 의원들의 「크로스 보우팅(교차투표)」을 인정한 가운데 자민당의 나카야마 타로 의원이 제출한 뇌사를 인정하는 장기이식법안을 기명투표를 실시해 찬성 320표,반대 148표로 통과시켰다. 가결된 법안은 뇌사를 죽음으로 인정해 뇌사로 판정된 사람이 생전에 장기제공 의사를 서명으로 표시하고 유족도 이를 거부하지 않으면 의사가 장기이식을 위해 뇌사한 사람으로부터 장기를 적출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 우주장 시대 개막/우주애호가 24명 유해실은 로켓 발사

    【마드리드 AP 연합】 인기높은 「스타 트렉」 영화 시리즈의 구상자 진 로덴베리 등 우주애호가 24명의 유해캡슐을 실은 로켓이 21일 지구궤도로 발사돼 우주장시대의 첫문이 열렸다. 이날 북아프리카 해안의 카나리아 제도 상공에는 페가수스 로켓을 실은 백색 록히드 L1011기가 날아올랐다.록히드기는 3만피트(9천1백50m)상공에서 로켓을 분리시켰다. 지구상공 480㎞ 궤도에 쏘아올려진 이 로켓에는 스페인이 처음으로 자체 설계하고 제작한 과학위성이 탑재됐지만 한편에는 립스틱 크기의 알루미늄 캡슐 24개도 실려 있었다. 우주와 관련깊은 삶을 살아왔거나 우주를 동경해온 사람들의 유해로 채워진 캡슐들은 푸른 지구와 광활한 우주를 바라보며 궤도를 선회,고인들의 생전의 꿈을 완성시키게 된다. 우주장 희망자들을 모집,로켓을 알선한 업체는 미국 휴스턴에 있는 세레스티스.5.7g의 유해가루를 캡슐에 담아 우주공간에 쏘아올리는데 드는 비용은 4천8백달러다.캡슐에는 이름과 간단한 문구가 새겨진다. 회사측은 21일 처녀발사에 성공한데다 수천건에이르는 우주장 희망자들의 문의가 잇따르고 있어 사업을 확장할 계획이다.
  • 북 금수산궁전 호화판 단장/안기부 공개

    ◎식량난 불구 1천7백억 들여 3단계공사 북한은 극심한 식량난과 수해농지의 미복구에도 불구하고 김일성의 시신이 안치된 금수산기념궁전 치장공사에 1천7백여원에 이르는 막대한 비용을 투입하고 있다고 15일 안기부가 공개했다. 북한은 김일성 생전에 집무실 겸 숙소로 사용된 이 궁전을 김의 사후 3단계로 나누어 단장공사를 벌이고 있는데 안치소 설치와 광장조성,조문객수송용 궤도전차 부설 등 342억원을 들인 1단계공사는 95년 7월 완료됐다. 2단계는 325억을 투입해 광장의 화강석 포장,김일성노작관 신설,외곽도로 확장공사를 이듬해 7월 완료했다. 현재는 3단계로 궁전과 순안·평성간 연결외곽도로 14㎞를 확장하는 것을 비롯해 김일성생일기념탑 건립,중앙로 신설,수목원 55만평 조성 등의 공사를 진행중인데 오는 7월 김의 3년상 추모대회까지는 완공될 전망이며 안기부는 공사비가 1천55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했다.
  • 죽은 김일성 생일행사로 떠들썩

    ◎“15일은 85회 기념일” 「4월 축전」 등 개최/김부자 위대성­현채제 안정 과시목적/주민 아사사태속 외국인 관광객 유치 안간힘 극심한 식량난으로 수천명의 아사자가 발생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는 가운데서도 북한이 김일성의 85회생일(4·15)행사를 요란하게 치를 모양이다. 평양 중앙방송은 최근 북한이 김일성의 85회생일을 맞아 「제15차 4월의 봄 친선예술축전」을 개최할 예정이라고 보도,전 주민이 하루 1백g 미만의 식량으로 허기를 메우고 있는 최악의 상황에도 불구하고 김일성생일잔치판을 벌일 것임을 시사했다. 북한은 지난해 김일성 84회생일을 맞아 대내적으로 「제14차 4월의 봄 친선예술축전」 「만경대상 체육경기대회」 등 15개 행사를 진행했으며 대외적으로는 친북단체를 동원,25개국에서 도서·사진전람회,영화감상회 등을 개최한 바 있다. 북한 전문가들은 95년 21건에서 15개로 생일기념행사가 축소됐던 지난해와 달리 김일성 3년상에 의미를 부여,올해는 기념행사가 더 늘어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행사내용도 김일성의 생전 업적을 찬양·부각시키는데 초점이 맞춰질 것으로 보이며 김정일의 영도를 충성으로 받들 것과 김정일 중심의 일심단결을 촉구하는데 많은 비중을 둘 것으로 관측된다. 지난해 북한은 『김일성은 절세의 위인이며 민족의 어버이이고 온 세계가 공인하는 인류의 위대한 태양』이라고 추켜세웠는데 올해도 이같은 추모는 반복될 게 분명하다.그러나 그 비중에 있어 김일성 추모 보다는 김정일의 위대성 선전에 무게가 실릴 것으로 전망된다.북한이 김일성생일을 앞두고 평양에서 등화관제훈련을 실시하는 등 전쟁분위기를 고조시키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게 북한 전문가들의 시각이다.즉 올 하반기로 예정돼 있는 김정일의 공식 권력승계를 앞두고 김정일에 대한 충성결집과 함께 체제결속을 강화,김정일의 권력기반을 튼튼히 다져나가기 위한 행보라는 것이다. 이미 대기근이 시작된 가운데서도 북한이 김일성 생일행사를 생전과 다름없이 개최하는 것은 두가지 목적에서다.하나는 생일행사를 통해 김일성의 위대성과 영생성을 대내외에 선전하려는 것이고 두번째는 김일성의 유훈에 의해 승계되는 김정일체제의 정통성을 부각시키는 한편 현 북한체제의 안정성을 과시하기 위해서다. 한편 북한은 김일성생일에 맞춰 대규모 서방 관광단을 모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외신은 최근 북경 소재 북한관광 전문회사 고려 투어즈가 북경 거주 외국인들을 겨냥,매스게임·평양시내 관광과 판문점을 돌아보는 4월12­16일 및 12일­19일 두가지 일정의 북한관광상품 판매에 나서고 있다고 전했다.북한은 또 조총련계 동포 및 일본인 관광객을 끌어 들이기 위해 종전 일본교통공사와 조총련계 중외여행사의 독점구조를 깨고 민간 관광회사 6개사에 관광객 유치 문호를 개방했다.비용 역시 대폭 할인,종전 1주일 코스 30만엔을 18만엔으로 크게 낮췄다. 이같은 북한의 올해 관광개방의 특색은 당·정·군이 함께 나서고 있는데 있다.공식 창구는 정무원 관광총국 산하 조선국제여행사로 돼있지만 외화벌이 차원에서 당과 군도 적극 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특히 군은 나진·선봉을 중심으로 공식 비공식 여행상품을 개발·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이같은 현상은 한마디로 현재 북한이 당면하고 있는 외화난이 그만큼 심하다는 것을 웅변하는 것이기도 하다. 『지상 최대의 파티.김일성 85회생일 잔치.4월15일.이 놀랄 기회를 놓치지 마시라』.북한을 대신해 관광상품을 팔고 있는 국제여행사들이 내걸고 있는 요란한 캐치 프레이스다.그러나 정작 얼마나 많은 외국 관광객들이 「지상 최대의 쇼」로 알려진 김일성 생일잔치 구경을 위해 배곯는 북한을 찾게 될지는 의문이다.
  • 이태백의 당도시(중국문학의 고향을 찾아:1)

    ◎취라산 강변공원 곳곳에 시선기린 유적이…/달 잡으러 몸던진 채석강물에 태백의 환상 어리고/청산아래 외로운 무덤 묘포엔 「시인」아닌 「명현」으로 새 기획연재물 허세욱 교수(고려대 중국문학)의 「중국문학의 고향을 찾아」가 오늘부터 매주 수요일 서울신문을 통해 독자들을 만난다.이 시리즈는 당나라의 시인 이태백이 만년을 보내고 「홍루몽」의 저자 조설근,송나라 문호 소동파,「수호전」의 저자 시내암,송나라 시인 백낙천,중국현대문학의 비조 노신 등이 태어나고 작품활동을 벌인 위대한 중국문학의 산실인 양자강 하류의 어제와 오늘을 필자의 깊이있는 시각으로 새롭게 조명해나게 된다. 「달아 달아 밝은 달아! 이태백이 놀던 달아!」의 동요처럼 당나라 시선 이태백은 살아서 달에 놀았지만 죽어서 땅에 묻혔다.그 묻힌 땅을 찾아서 가는 길이다. 그는 천재시인으로 세상에 이름을 남겼다.심지어 한국의 어린이조차 남의 나라 시인으로 여기지 않을 만큼 친숙했던 시인이건만 낳아서 묻힐 때까지 기구한 구름나그네였다. 이태백은 기원 701년,무역상이던 아버지를 따라 서역의 쇄엽,그러니까 지금의 키르기스공화국 토크마크부근에서 출생,다섯살때 고향인 사천성 강유현 청련향으로 귀국했다.고향에서 청소년기를 보낸 뒤 출향관,중국의 강남·강북 많은 땅을 떠돌다가 예순한살되던 761년 섣달,당도의 현령으로 있던 족숙 이양빙 집에 기식하다가 이듬해 11월,끝내 늑막염으로 병사했다.당도의 동북교외에 위치한 용산 동록에 매장됐다 다시 58년 뒤인 기원 820년,역시 용산 건너편 청산의 서쪽 산자락에 이장,오늘에 이른 것이다. 혈통에 대한 이설도 분분했다.부조의 오랜 외유때문에 혼혈일 가능성 외에도,심지어 이족으로 보는 호인설도 있지만 그의 자작시나 행장·묘비의 기록에 따라 한족,그것도 장상의 후예로 보인다. 이백과 당도의 인연은 깊었다.중·만년에 방랑점으로 삼은 선성·금릉(지금의 남경)·광릉(지금의 양주)등지를 연결하는 중간점인 데다 그가 숭모하던 남조의 시인 사조(464∼499)가 태수를 지낸 곳,그래서 한동안 선성서 살면서도 일곱번이나 당도를 출입했다.지금 태백이 영구지지로 묻힌 곳도 사조의 고택이 있던 청산 그 산자락이었다. 당도시에서 북쪽으로 10㎞도 안되는 마안산시,서남쪽에 양자강 강줄기를 치마처럼 휘감고 우뚝 선 해발 130m의 취라산은 전체가 이태백기념관이랄 만큼 그를 기리는 유적으로 널려 있다. 평생 벼슬을 마다하고 시주화월에 미쳐서 강호를 떠돌던 이태백은 인생이 몽땅 저물어버린 기원 756년,나이 56세에 당나라 현종의 열여섯째 아들인 영왕이 형인 숙종과 벌인 친위쿠데타에 연루,심양에서의 옥고과와 야랑으로의 유배를 겪다가 나이 59세에 석방된다.그러니까 그의 만년 6년은 반란에 옥고,가난에 병고,끝없는 시련에 꺾이고 만 것이다.그가 친위쿠데타에 끼어든 것은 당시 장안을 협공한 안록산의 반군,그 무도한 발굽에 무력해진 정부군을 돕겠다는 비분강개 때문이었다. 과연 그의 절필로 알려진 「임종의 노래(임종가)」엔 뜻을 이루지 못한 한이 서려 있다. 「대붕이 난다,사방을 떨치며, 중천서 날개를 꺾이자 건널 힘이 없어라. 바람에 사무치고,저 해솟는 나무에 노닐었지만 옷소매가 걸렸어라. 뒷날 누가 알랴! 공자가 가버린 뒤라 슬퍼할 이 없거늘」 대붕비혜진팔예 중천추혜력부제 여풍격혜만세 유결상혜괘좌결 중니망혜수위출체 필자는 이 절필이 씌어진 현장에서 이를 암송하면서 이태백 최후의 땅을 밟았다.그의 문학을 사랑한 지 40여년,그가 객사한지 1천2백34년만에. 남경에서 서남쪽으로 한시간남짓,마안산 시계에 접어들자 하늘을 뚫는 굴뚝에 까만 연기.마안산 속스러운 거리를 뚫고 계속 남하했다.이윽고 오른편에 신록의 작은 산이 보였다.그 모양이 파란 고동 같다 하여 「취라산」.하지만 우리에겐 「채석산」이 다정하여라.작은 돌다리를 지나 「채석진」이란 방문을 지나자 채석산 강변공원의 경내에 들어섰다.신록이 옹알대는 오솔길을 걷자 뜻밖에 누런 기와의 대웅전이 육중하게 버티고 섰다. 바로 「태백루」다.그 지붕,그 기둥,그 처마.과연 건물의 웅장함에 표일한 이태백의 기상이 넘쳐 흘렀다.당나라 원화연간에 창건했지만 여러번 병화에 소진,지금 이 3층누각은 청나라 광서연간에 세운 것이다. 문간 양쪽에 웅크리고 있는 돌사자로부터 정루앞의 굽이굽이 병풍,정루 2∼3층마다 바람인 듯 표표하게 유랑하는 이태백의 유람도에 쇠탈한 조각상,거기다 그를 기리는 비명들.과연 「태백루」는 저 동정호의 「악양루」,무창의 「황학루」와 함께 중국 3대누각으로 칠 만했다. 하지만 필자는 어서 이 엄숙한 전당을 벗어나고 싶었다.저 산꼭지에는 비록 전설이지만 이태백의 최후를 증언하는 현장이 지금도 채석강 맞바람에 천리장강을 굽어보고 있으리라는 생각 때문이었다.거기서 엉망진창으로 취한채 저 채석강의 달을 잡으려 풍덩 투신해버리는 그 미치광이의 환상을 잡고 싶어서였다. 채석산 정상은 과연 가슴이 후련했다.장강이 아찔하게 굽어뵈는 벼랑위로 넓은 반석위에 「연벽대」란 큼직한 글씨.그러니까 옥을 꿰어놓은 관망대라는 뜻이지만 어디 천년전부터 전설로 불리던 「착월대」만큼 친숙하랴! 착월대서 조망하는 장강의 도도함이나 착월대서 굽어보는 천인단애의 「채석기」는 분명 절경이었다.그래서 이태백은 여기서 「우저에 배를 매고 (야박우저회고)」란 명시를 썼고,송나라 시인 매요신은 이태백의 투강설화를 시에 옮겼다.그뿐만 아니었다.현대의 요절시인 주상(1904∼1933)은 이태백이 투신했다는 채석기 밑에서 1933년12월5일 새벽,상해서 남경으로 가는 연락선에서 투신자살했다.지금은 착월대옆에 붕조처럼 두팔을 활짝 벌리고 훨훨 비상하는 이태백조상을 세웠고,그 위로는 이태백의 투강자살을 기념하는 의관총이 있다. 채석산을 내려와 당도시 동남쪽 청산 아래 당도현 하동향 태백촌에 있는 이태백의 무덤으로 발을 옮겼다.말하자면 전설의 현장에서 사실의 현장으로. 청산은 해발 200m에 가까운 낮은 산.하지만 평지에 있는 이태백의 묘는 초행자가 인가로 알고 지나치기 일쑤다. 건너편 용산에서 이장한 이 묘는 그의 고향 사천 강유로부턴 만리타관이었다.이태백 생전의 친구이던 범작의 아들 범전정이 이 지방 관찰사로 있을때 이태백의 두 손녀 청에 따라 이장을 결정한 것이다. 묘역은 상당히 넓었다.공원을 방불케 다양한 관상수,초입엔 장중한 「태백사」,당나라 헌종때 세웠다지만 여러 차례 중건한 듯새로웠고,열몇개의 비,그중에 「임종의 노래」가 새겨져 가슴을 뭉클케 했다. 무덤은 묘각안에 있었다.다섯겹의 두레석에 둘러싸인 무덤,2m높이의 운석 묘표엔 「당명현이태백지묘」가 이국나그네를 어리둥절케 했다.그의 호방한 일생에 비추어 한낱 시인으로 묘비를 달지 않고,하필이면 그가 혐오하던 도덕군자인 명현으로 받들었을까. 이태백 스스로는 어이없게 찡그리고 있을지 몰랐다.그를 따르는 많은 사람이 「시인 이태백」을 찾고 있는데 말이다.당나라의 명시인 가도는 여기 이백묘를 참배타가 객사하지 않았던가?
  • 실험극장 대표지낸 고 김동훈씨 1주기/에쿠우스등 명작시리즈 공연

    ◎19일부터 서울두레서… 5월중순엔 「신의 아그네스」/관람료 기금으로 조성… 고인기린 연극상 제정키로 지난 60∼70년대 소극장 연극운동의 산실이었던 실험극장이 왕년의 인기작 「에쿠우스」를 시작으로 「불후의 명작시리즈」를 공연한다. 「명작시리즈」 1편이 될 피터 셰퍼 원작의 「에쿠우스」는 오는 19일부터 4월20일까지 대학로 문화예술관 서울두레에서 공연될 예정이며 오는 5월중순부터는 작품성이나 관객동원면에서 또하나의 연극계 화제작으로 꼽히는 「신의 아그네스」를 공연한다.이어 실험극장의 인기공연작 「피가로의 결혼」「햄릿」「그린 줄리아」「사의 찬미」 가운데서 다음 작품을 선정한다. 실험극장의 이같은 기획은 지난 73년부터 지난해 3월21일 세상을 뜨기 전까지 23년간 실험극장의 대표를 지냈던 고 김동훈씨의 1주기를 맞아 실험극장 단원들이 생전에 그가 아꼈던 작품들을 선정해 공연키로 한 것.아울러 「명작시리즈」의 관람료는 기금으로 조성,「김동훈 연극상」을 제정할 계획이다. 시리즈의 첫편 「에쿠우스」는 지난 75년 실험극장이 서울 종로구 운니동에 전용극장을 마련한 뒤 기념작으로 초연,4개월동안 1만5천여명의 관객을 동원한 70년대의 대표작이다.정신과 의사 다이사트가 말 여섯마리의 눈을 찌른 소년 알런을 치료하면서 말을 신으로 모시고 그 아래서 본능을 마음대로 펴보였던 알런을 통해 평범하고 안정적인 일상에 대해 회의를 갖는다는 내용의 심리극이다. 지난 90년에도 「에쿠우스」를 연출했던 김아라씨가 다시 연출을 맡아 알런의 「행동」보다 다이사트의 「성격」에 촛점을 맞출 계획이다.그동안 강태기(75년),송승환(80년),최재성(85년),최민식·조재현(90년) 등 청춘스타를 탄생시킨 알런역은 탤런트 정유석과 연극배우 지춘성이 번갈아 연기한다.정신과 의사 다이사트역에 정동환·조명남(더블 캐스팅),질역에 이혜근 등이 출연한다. 또 이번 공연에서는 「에쿠우스」를 공연한 이래 처음으로 한회마다 40파운드(6만원상당)의 저작권료를 지불한다.
  • 고 이상범 화백 「탄생 100돌」 대규모 기념전

    ◎「한국의 자연」 고집한 근대 산수화의 대가/「춘경산수」·유작 등 70여점 일반에 첫 공개 근대 한국화단의 대표적 산수화가인 청전 이상범(1897∼1972)화백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대규모 전시회가 열린다.오는 14일부터 4월20일까지 서울 호암갤러리에서 열리는 「청전 이상범」전이 그것으로 그동안 부분적으로 소개됐던 청전의 작품세계가 본격적으로 일반에 공개되는 자리다. 청전은 한국의 수수한 자연모습을 꾸밈없이 담아내 예술언어로 승화시킨 작가.이번 전시에서는 전국에 산재해 있는 고인의 대표작 70여점을 망라해 시대별로 꾸며 보여준다.출품작은 청전의 초기작품부터 회화양식을 확립한 1950년대 이후의 전성기 작품 등을 연대기적으로 전시,그만의 독자적인 양식이 설정되는 과정을 일목요연하게 살필수 있도록 한다.이중에는 「춘경산수」「추경산수」등 3m가 넘는 대작이 10여점 들어있고 공개되지 않은 작품들도 다수 소개될 것으로 보여 그동안 일반인에게 쉽게 드러나지 않았던 청전 작품들을 한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는 기회로 기대되고 있다. 청전은 당시 중국화풍의 관념적인 산수화를 탈피,평범한 우리 자연을 회화로 승화시켜 한국 산수화의 새로운 양식을 일으켜 세운 근대 한국화단의 대가다.전통적인 동양화가 천편일률적으로 담아내는 심산유곡·기암절벽의 절경을 떠나 그야말로 어디에서나 쉽게 볼 수 있는 평범한 야산이나 허술한 초가·기와집,잔잔히 흐르는 실개천 등에 소박하고 정겨운 모습의 시골사람들을 즐겨 담고 있다.한국만이 갖고있는 정감어린 풍치와 인물들을 튀지않는 담담한 색채와 분방한 붓질로 처리해 정겨운 화면을 만들어낸다. 청전은 18세의 나이로 서화에 입문,75세에 작고하기까지 험한 시대상황과 경제적 어려움속에서도 평생을 오직 그림에만 몰두해 유작은 5천여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그러나 생전에 남앞에 나서거나 과시하기를 꺼리는 성격탓으로 단 한차례의 개인전도 갖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번 전시에 선보이는 작품들은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 호암미술관 홍익대박물관 연세대박물관 등 기관이나 개인이 소장하고 있던 것들을빌어와 보여주는 자리.그동안 기록으로만 전해지던 충무공영정도 경남 통영 충렬사의 협조로 나오게 되며 신문이나 잡지에 그린 삽화,초년기에 그렸던 인물 스케치,유품들로 함께 전시돼 청전의 예술세계와 흔적들을 만나볼 수 있는 기회다.
  • 「등」이후 중국­동북아­세계:Ⅰ(지구촌 칼럼)

    ◎본사 지구촌칼럼 필진4명 국내전문가 1명 공동진단 중국 현대사의 「작은 거인」 등소평옹이 타계했다.등의 개혁·개방정책 덕분에 중국은 세계적인 공산체제 붕괴에도 아랑곳없이 경이적인 경제발전을 거듭,21세기 아시아태평양시대의 주도세력으로 떠오르고 있다.하지만 등의 사거는 중국대륙에 어느 정도의 불확실성을 가져다줄 것이며 주변국들과 국제사회에도 영향을 미칠게 분명하다.서울신문사의 지구촌 칼럼니스트들과 유세희 한양대 아·태 지역학대학원장의 진단을 통해 「등사후의 중국·동북아,그리고 세계」를 조망해본다.◎한·중 관계/유세희 한양대 아태지역학대학원장/한반도정책 변화엇을듯/남북한­주변국 관계따라 유동적 중국의 개혁 개방 정책의 설계사이며 오늘의 중국에 있어서 실질적 구심점이었던 등소평이 사망함으로써 세계의 관심은 그가 없는 중국의 향방에 쏠리고 있다.즉,그의 사망이 중국의 국내정치와 대외정책에 미칠 영향에 대하여 갖가지 추측이 일고 있다.특히 우리와는 사귄지 얼마 안되고 북한과는 오랫동안 친구인 중국이 그의 사망으로 인해 우리와 북한에 대한 태도에 있어 어떠한 변화를 일으키게 될 것인가에 대해 우리가 관심을 갖게됨은 당연한 것이다.결론부터 말하자면 등의 사망으로 인해 중국의 국내 정치와 한반도 정책이 입을 영향은 거의 없을 것으로 보인다.그 주요 이유는 우선 중국의 국내정치 측면부터 보자면 강택민을 중심으로한 현재의 권력구조는 등의 사후에 대비하여 이미 오래전부터 만들어져 가동되어온 체제라는 것이다.즉 89년의 천안문사태 이후 강택민은 중국의 최고의 실무자였으며 특히 1994년이후 건강이 악화되어 등이 실무에서 거의 완전히 손을 뗌으로써 강택민은 명실 공히 국가 운영의 최고 실력자가 되었다.일각에서는 강이 등소평과 같은 카리스마가 없기 때문에 이제부터 홀로서기를 하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말하고 있지만,실제는 그 반대일 수도 있다.즉,집단지도제를 종용해온 등이 사라짐으로써 이제부터 권력은 오히려 강택민에게 점차로 집중될 수 있으며,이는 사회주의체제 권력의 속성상 더욱 그러하다. 한편 강택민은 앞으로 개혁개방정책의 부작용으로 나타나고 있는 지역간,계층간의 소득격차,당정 간부들의 부패문제,지방에 대한 중앙의 통제력 약호 등의 문제로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그러나 이러한 문제는 등소평이 살아있더라도 어차피 겪을 수 있는 문제들이다.다시 말해서 앞으로 중국이 중국식 사회주의의 길을 걸어감에 있어서 장기적으로 볼 때 정치적 기복은 있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그러한 문제들은 등소평의 사망으로 야기되는 문제는 아닌 것이다. 다음,우리와의 관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등의 사망이 중국의 한반도 정책에 별로 영향을 못 미칠 것으로 보는 첫째 이유는 한국에 대한 중국의 정책은 실용주의에 의한 개혁개방정책의 일환으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개혁개방정책이 지속되는 한 중국의 한국정책 기조는 변동이 없을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중국의 개혁개방정책은 그들의 국가목표인 경제발전을 위해서 앞으로도 계속해서 추진하지 않을수 없다.중국이 한국과 관계개선을 하지 않을수 없었던 가장 큰 이유는 관계개선을 통해 경제적 실리를 비롯해서 여러가지 이익을 얻을수 있다는 점에 있었다.그리고 이러한 요소는 앞으로도 마찬가지이다. 중국의 우리에 대한 정책기조에 변동이 없을 것으로 보는 두번째 이유는 설령 등소평의 사망으로 내부적인 권력구조에 커다란 변동이 생긴다 하더라도 국가간의 관계는 국가 이익의 추구라는 현실주의가 대체로 그 바탕을 이루기 때문에 누가 권력을 장악하든 대외정책의 변화는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하물며 앞에서 지적하였다시피 등소평의 후계체제인 강택민을 중심으로한 현재의 체제가 지속할 가능성이 큰 이상 중국의 한반도 정책의 기조는 지금의 그것에서 별 변동이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이러한 전망은 등소평의 사망이 지금까지의 중국의 한반도 정책에 별로 영향을 안줄 것이라는 말이지 중국의 우리에 대한 태도에 있어 앞으로 전혀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의미는 아니다.왜냐하면 우리와 중국과의 관계는 중국의 한반도 정책의 기조가 변하지 않는다고만 해서 안변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다시말해서 한중 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은 무척이나 많다.북한의 내부상황,북한과 미국관계,북한과 일본관계,남북한 관계,그리고 중국의 미국과의 관계 등에 의해 영향을 받게 되어있다. 실제로 북한이 개혁개방을 늦추고 남한관계의 개선을 기피하고 정전체제의 일방적인 파기와 잠수함사건에서 보여주듯이 한반도의 긴장을 조성하는 현재와 같은 경직된 태도를 지속하는 한편,남한은 모든 주변국가들과 평화와 선린의 관계를 추구하고 북한에 대해서도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는 합리적인 정책을 계속 추구해 나아갈때,중국은 앞으로 더욱 북한과의 관계에 있어 보다 소원해질 것으로 보인다.여기에는 남한이 앞으로도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더욱 내실을 이루어갈수 있음이 전제됨을 물론이다. ◎중국의 미래/여신 중 사회과학원 부원장/“정치안정”… 개방개혁 가속/올 홍콩 인수·전당대회 “분수령” 등소평의 서거는 중국사회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까.등의 서거에 대해 세계 각국에선 깊은 애도와 함께 그의 공백이 중국에 미칠 영향과 변화방향에 대해 주목하고 있다.그의 죽음은 다시 한번 중국의 최고지도층으로부터 일반국민들에까지 그의 유지를 계승하자는 국가적 결의를 다지는 계기가 되고 있다.국내외 중국전문가들이 확인했듯 그의 죽음에도 모든 국가업무가 정상적으로 진행되고 있고 정치도 안정돼 있다.그가 시작한 현대화 건설사업도 차질없이 진행중이다. 이같은 흔들림없는 안정은 어디서 오는 것인가.그것은 이미 8년여전 권력승계문제를 매끄럽게 처리한 덕택이다.차기지도자의 선택 및 권력승계의 조기해결은 등소평의 심원한 탁견에서 이뤄진 것이었다.그는 국가운명이 한 두사람 개인의 권위에 의지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생각했다.그래서 그는 종신집권제를 폐지하고 새로운 지도체제를 확립했다.89년 11월 그는 모든 직무에서 사임하고 자신이 핵심이던 「노인집단지도체제」에서 강택민을 핵심으로 한 새로운 집단지도체제를 출범시켰다.권력을 이어받은 강택민은 등소평의 지도방향에 따라 국가사업을 순조롭게 처리하고 국민의 신뢰와 권위를 쌓아왔다.그는 등소평 퇴직이후에 단단한 기반을 쌓아왔다.이는 등의 서거가 「권력진공」으로 이어지지 않는 가장 중요한 이유다.이는 또 앞으로 중국이 안정속에 순조로운 발전을 이룩할 것이란 점을 보여준다.시기를 앞당겨 권력교체를 이룩한 것은 등소평의 마지막 대업이다. 소위 「권력진공」으로 표현되는 정치혼란 우려와 함께 등 사후 대두되는 또하나의 관심사는 중국이 등소평 생전에 확립한 노선과 정책을 변화시키지 않고 그대로 유지할까 하는 점이다. 그러나 지난 18년동안 개혁개방 실천과정을 이해한다면 중국이 앞으로도 등소평의 노선과 이론을 변함없이 밀고 나갈 것이라는데 이견을 달지 않을 것이다.만약 어떤 변화가 온다면 그것은 개혁개방을 심화시키는 방향으로의 변화일 것이다. 등소평은 문화대혁명의 재난으로부터 중국을 개혁개방으로,현대화 건설로 매진시켰다.경제가 성장하고 국민생활이 나아지고 중국의 국제지위가 올라가고….개혁개방 성과를 중국인들은 몸과 마음으로 느낀다.이같은 경험은 개혁개방정책이 대다수 국민들로부터 지지를 얻고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어떤 힘도,어떤세력도 이같은 흐름의 방향을 막을 수 없음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등소평의 추도사 등 이미 여러차례 기회를 통해 강택민도 등소평노선과 개혁개방정책이 계승,추진될 것임을 강조했다.이는 중국국민의 바람이며 굳건한 의지다. 이같은 입장에서 안으로 법치주의 확립,사회주의 민주제도 정착,부정부패일소,정치제도 개혁 등 정치분야의 개혁도 계속 진행될 것이다.시장경제에 맞게 경제구조를 조정하는 시장개혁,경제체제개혁 심화도 계속될 것이다.밖으로는 주변국가와의 우호관계 등 「독립자주,평화외교정책」에도 변함이 없을 것이다.중국은 세계평화유지 노력과 함께 국제정치·경제의 신질서 확립을 추구해왔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이같은 정책방향은 등소평이 창안한 중국특색의 사회주의이론의 실천방향이며 등소평 이후 정책기조이기도 하다. 국내적으로 중국은 올해 두가지 대사를 앞두고 있다.그 하나는 7월1일 홍콩에 대한 주권 회복이다.국가적 치욕을 씻는 역사적 의미와 더불어 「평화통일,일국양제」라는 등소평의 통일구상을 실현하는 계기다.특히 대만을 포괄하는 중국의 통일정책을 실천하는 첫걸음이란 점에서 무게를 더한다.다른 하나는 하반기(9월말로 예정)로 예정된 중국공산당 15차 전당대회다.이 대회는 21세기 중국의 정책방향결정과 지도부 선발이란 점에서 의의를 갖는다.이 대회에선 등소평이 창시한 중국특색의 사회주의 이론의 기치를 높이 들고 그의 이론과 노선의 더욱 확고한 집행을 결의할 것이다. 등소평은 세상을 떠났다.그러나 이 두가지 대사는 그의 사상,이론의 지도 아래 진행될 것이다.등소평은 없지만 그의 사상과 이론은 중국의 미래를 이끄는
  • 등소평 추도대회 엄수/1만여명 참석

    ◎강 주석,개혁·개방 고수 천명 중국을 개혁·개방과 사회주의 시장경제건설의 길로 인도한 최고지도자 등소평에 대한 추도대회가 사망 6일만인 25일 상오10시(한국시간 상오11시)부터 1시간동안 북경 인민대회당에서 거행됐다.〈관련기사 8면〉 강택민 중국공산당 총서기겸 국가주석은 이날 추도사를 통해 『등소평동지가 주창한 마르크스·레닌주의와 실용주의를 결합시킨 중국식 사회주의 이론을 계승·발전시키자』고 강조함으로써 앞으로도 개혁개방정책기조가 변치 않을 것임을 대내외에 천명했다. 한편 전날 화장된 등소평의 유해는 곧 홍콩앞바다와 대만인근 해역에 뿌려질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중국공산당기에 덮인 초록색 고회함이 연단 위해 안치되고 그 위에 초대형 컬러영정이 걸린 가운데 거행된 이날 추도대회에는 미망인 탁림을 비롯한 자녀 등 유족과 장의위원회 주임인 강택민 국가주석,이붕 총리,교석 전인대상무위원장 등 장의위원 459명을 비롯해 당·정·군·군중단체의 각 부문 및 북경의 각계 대표,생전의 친우,고향대표 등 1만여명이참석했다.
  • 대만 통합문제(등 이후 중국대륙:6)

    ◎등 노선 일국양제 당분간 고수/홍콩·마카오 반환후 자본주의체제 존속/대만도 같은정책 적용… 독립추진땐 “저지” 「포스트 등소평시대」의 중국지도층은 대만과의 양안관계를 어떻게 풀어나갈까.지난해 대만에 군사적 위협을 가했지만 양안관계에 결정적인 돌파구를 찾지 못한데다 대만과 통일을 위한 연구도 그다지 깊지 못한 실정임을 고려하면 일단 등소평의 노선인 「일국양제」의 기본틀을 유지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다시말해 오는 7월 홍콩을 인수하고 99년에 마카오를 반환받은후 이들 두곳의 자본주의체제와 생활방식을 그대로 유지시켜 주민들이 아무런 불평불만없이 살아가도록 시범을 보여줌으로써 대만도 별 저항없이 이같은 통일에 합류시킨다는 것이다. 강택민 주석도 25일 등의 추도사를 통해 홍콩,마카오 그리고 대만에 대해 등이 추구해온 일국양제 원칙하의 통일을 재천명했다.이에 앞서 강주석은 지난 95년 1월 대만과의 일국양제평화통일을 위한 8개항(강팔점)을 제시한바 있다.그 내용은 ▲하나의 중국 원칙 ▲대만과 제3국간 비정부적 경제문화교류 불반대 ▲평화통일협상 개최 ▲평화통일 노력 계속견지 ▲경제협력의 확대강화 ▲문화전통의 동질성 유지 ▲대만동포의 합법적 권리 이익 생활방식 유지 ▲상호교환방문등이다. 그러나 대만과 통일을 이루는 것이 지난하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그래서 등소평은 생전에 『조국이 통일된 뒤 대만은 자신들의 군대를 가질수 있고 대륙에서는 군대를 파견하지 않는 것은 물론 행정인원도 파견하지 않을 것』이라고까지 양보안을 내놓기도 했었다. 반면 대만의 대중국정책의 최고 목표는 중국대륙의 광복으로 요약된다.하지만 국력 등을 감안하면 사실상 불가능한 탓에 이 목표는 「사문화」 되다시피한 상태.따라서 대만 일각에서는 차선책으로 최근들어 독립문제를 끈질기게 들고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이같은 입장 차이로 중국이 대만과의 양안관계를 풀어나가는 것은 그리 간단하지가 않다.여기에다 중국민족 내부의 문제라기보다 중국­미국,대만­미국 등 주변국들과 국제 정치·경제·외교적인 측면에서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서로 얽히고 설켜있다는 점도 걸림돌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서방측이 크게 우려하고 있는 것들중 하나는 군사·정치적으로 취약한 현 최고지도부가 대만을 인질로 모험을 감행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이다.정치적으로 궁지에 몰릴때 혹은 군부를 장악하기 위한 시도로 지난해와 같이 대만에 대한 무력시위를 자주 하다보면 충돌의 위기가 발생할 수도 있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는 것이다. 어쨌든 당분간 양측은 지금까지와 같이 국제무대에서 우위선점을 위해 활발한 외교전을 펼칠 것으로 보인다.중국으로서는 대만의 독립 움직임을 어떻게 저지하느냐가 급선무이다.반면 대만은 외교적인 돌출행동을 자제하는 대신 경제력을 바탕으로 한 외교를 통해 국제적 위상 제고에 안간힘을 쓸 전망이다.세계무역기구(WTO)가입,아·태경제협력체(APEC) 참여 등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 중 대홍콩정책 유지해야(해외사설)

    등소평 동지의 사망이 중국 전역의 인민들을 비통함으로 몰아넣고 있다.그러나 중국의 밝은 전도에 대한 믿음을 갖고 있는 인민들은 평온하다.강택민 국가주석을 중심으로 한 중국 제3세대 지도자들이 등이 생전에 입안한 중국의 특색을 지닌 사회주의 이론과 개혁개방정책,정치·외교·군사·문화·교육 등 각 방면에 대한 방침을 반드시 견지할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공산당 11기 3중전회가 열린 이후의 18년동안의 세월은 중국이 거대한 변화의 물결을 체험한 시기였다.이 시기에 추진된 개혁·개방정책과 현대화건설사업은 매년 10%대의 고도 경제성장을 이룬 데다 외국자본의 유입이 급증하며 아·태경제 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다.이같은 경제성장의 혜택을 인민들에게 골고루 분배됨으로써 중국의 모습을 완전히 뒤바꿔놓았다.때문에 등사망이후에도 등의 이같은 사업은 더욱 번성할 전망이다. 등이 건설한 중국의 특색을 지닌 사회주의의 주요 내용은 일국양제의 구상에 따라 중국을 통일하는 것이다.등은 비록 오는 7월1일 홍콩의 중국반환을 보지 못했지만 홍콩이 등의 구상에 따라 반환준비 작업을 착착 진행하고 있어 별어려움없이 중국의 영토로 회복될 수 있다.특히 강택민 등 중국 지도자들의 동건화 홍콩 행정장관에 대한 특별한 신임과 지지는 중국 3세대 지도자들이 홍콩에 대한 방침과 정책의 집행에 있어서 변화가 없음을 반영하고 있는 셈이다. 따라서 홍콩인들은 중국정부가 지난 13년동안 등이 건설한 홍콩에 대한 방침과 정책을 견지해오고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봐 왔다.등은 사망했지만 중국의 홍콩에 대한 방침과 정책에는 어떤 변화도 있을수 없다.홍콩이 일국양제를 솔선수범하는 현대화건설를 위해 자금을 조달하고 과학기술을 끌어들이며 국제시장 개척을 위해 수출을 증가시키는 특별한 작용을 해야 하는 탓이다. 이는 중국의 개혁개방과 현대화 건설부문에 모두 유리하다.등의 홍콩에 대한 방침과 정책을 견지하는 것은 중국을 발전시키는데 유리할 뿐 아니라 홍콩인들에게도 복이 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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