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생전
    2026-08-14
    검색기록 지우기
  • 소환
    2026-08-14
    검색기록 지우기
  • 상영
    2026-08-14
    검색기록 지우기
  • 식사비
    2026-08-14
    검색기록 지우기
  • 우세
    2026-08-14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8,619
  • 시민禪房 차린 광복 도선사 주지

    서울 도선사 청운당에 일반인을 위한 상설 시민선방이 마련됐다.선방 이름은 ‘차별없는 선방’이란 뜻을 담은 무차선원(無遮禪院).서울시내에서 전통사찰로는 유일하게 상설 시민선방을 열게된 광복 주지스님은 30년전 입적한청담 큰스님의 상좌(수제자)다.도선사에서 청담 스님을 은사로 사미계를 받았고 11∼12대 중앙종회의원을 지낸뒤 지난해 5월부터 도선사 주지를 맡아오고 있다.스님은 기자를 만난 자리에서 생전 ‘열린 도량’ 불사(佛事)를 강조하던 청담 스님의 큰 뜻을 시민선방(무차선원)으로 받들 수 있게돼 조금이나마 마음이 놓인다고 선방 개원의 소감을 밝혔다. ■상설 시민선방을 열게 된 이유는. 청담스님이 도선사 주지시절 법문을 하실때 늘상 신분과 지위를 떠나 누구나스스럼없이 찾을 수 있는 도량이 돼야 한다고 강조하시곤 했다. 청담스님이입적한 뒤 항상 그 뜻을 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져오다가 지난해 주지를 맡고나서 우선적으로 추진한 불사다. ■청담스님과 도선사의 관계는 무엇인가. 청담스님은 자그마한 암자(도선암)를 30만 세대가 찾아드는 전국적인 사찰(도선사)로 일으켜 세운 중흥조다.청운당 앞에 있는 참회원은 청담스님의 큰뜻이 담긴 건물이다.스님은 참회원 완공을 못보고 입적했지만 이 건물을 민족과 국가 종교를 초월한 세계 석학들의 연구소로 만들 계획을 세우셨었다. ■‘무차선원’은 어디에서 유래하는가. 신라시대부터 출가승과 재가불자들이 함께 참여하는 무차법회가 열렸었다.지금은 전남 백양사에서 유일하게 그 맥을 찾아볼 수 있지만 평등과 공유의 개념인 무차는 불교사상중 큰 부분을 갖고 있다고 봐야 한다.사찰이 불자뿐만아니라 불심을 가진 모든 이들이 모이는 곳이라는 생각에서 지은 이름이다. ■시민 선방 운영으로 1,000년 역사를 가진 전통사찰의 이미지를 흐릴 염려는 없는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도선사를 찾아 불공을 드리고 염불하는 신도들은 기존 방식대로 사찰을 찾으면 된다.그런 신도들도 무차선원에 대한 관심이 크다.무차선원 개원소식을 들은 서울 명동성당 수녀 14명도 찾아와 참선을 배워 직접 좌선도 하고 돌아갔다. ■최근 불교에 대한관심이 높아지면서 각 사찰 선원이나 수련회에 일반인들이 몰리고 있는데 이것은 포교활동의 성과로 봐야 하나. 물론 포교의 영향이 없진 않다.그러나 각박한 세상 속에서 나를 찾으려는 마음의 회향이 참선이나 법회 참가로 나타나는 자발적인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참선에 참가하는 사람들은 그런 마음의 여유를 찾기위해 선(禪)을 배우려 한다는 말을 자주 한다. ■일반인들이 과연 시민선방에서 얼마만큼 참선의 본뜻에 접근할 수 있을까. 참선의 궁극적인 목적은 자아완성과 인격완성이라고 할 수 있다.일반인들은대부분 출가승과는 다르게 성급하게 접근한다.참선은 고도의 정신집중을 필요로 한다.조급하게 뜻을 이루기보다는 꾸준히 실행하는 자세가 필요하다.생활이 바로 참선이고 참선이 생활이란 생각을 갖고 노력해야 할 것이다. 김성호기자 kimus@
  • 이산가족 애틋한 사연들

    “팔순 언니·오빠가 살아 있다니 꿈만 같습니다” 고향방문단의 북한가족의 생사가 확인된 27일 정명희씨(72·강원도 동해시천곡동)는 고향에 언니 덕화씨(85)와 오빠 기화(80),여동생 기선(71),남동생기명씨(66)가 살아 있다는 소식이 믿기지 않는듯 했다. 1·4후퇴 때 남편 박동석씨(75)와 남한으로 내려온 정씨는 “오빠를 만나면 부모님의 생전 얘기부터 자세히 물어 봐야겠다”면서 “산소의 흙이라도 한줌 쥐어보는 것이 소원”이라고 말했다. 정씨는 6·25전쟁이 터지기 직전인 50년 6월19일 신의주에서 오빠와 헤어졌으며,다리가 아파 고생하던 아버지의 약을 가지러 고향 원산으로 갔다가 전쟁이 일어나는 바람에 국군이었던 남편과 함께 곧바로 남하해야 했다. 정씨는 “막내 남동생은 헤어질 무렵 평양공대 합격증을 받아 가족들에게기쁨을 안겨줬었다”고 말했다. ●어머니와 남동생은 이미 세상을 떠났고 여동생 정열씨(62)만 생존해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채성신씨(72·경기도 하남시 덕풍동)는 “지난 48년 공부를 하기 위해 남한으로 내려왔는데 38선이 고향 가는 길을 영영 가로막을줄은 미처 몰랐다”며 눈물을 훔쳤다. ●부모님은 돌아가시고 형제·자매들만 살아있다는 소식을 들은 윤대호씨(71·서울 관악구 봉천6동)도 “그리움으로 이젠 눈물조차 말랐다”면서 “이번에 북한에 가서 부모님 묘소를 찾아 제사라도 지낼 것”이라고 말했다. 송한수기자 onekor@
  • 그림보다 재미있는 ‘그림이야기’

    ‘그림이 책으로 읽힌다?’최근 출판가에서 최고로 잘 나가는 아이템을 꼽으라면 단연 대중미술서다.멀리갈 것도 없다.본격 출판 성수기를 맞은 여름 서점가의 신간목록이 그걸 그대로 입증해준다. ‘그림보다 아름다운 그림이야기’(혜윰),‘천국을 훔친 화가들’(사계절),‘야만인의 절규’(창해),‘폴 고갱,슬픈 열대’(예담),‘모나리자는 원래목욕탕에 걸려있었다’(동아일보사),‘루브르 계단에서 관음,미소짓다’(서해문집),‘평양미술기행’(옛오늘)….일일이 꼽기가 숨이 찰 정도인데,소설까지 가세했다.단 프랑크가 쓴 ‘보엠’시리즈(전3권·이끌리오)는 출판사가아예 ‘예술소설’이라고 이름붙여 내놨다.기다렸다는듯 한길사도 시스티나천장화의 비밀을 소재로 한 소설 ‘미켈란젤로의 복수’(한길사)를 출간했다. 시중 인문학 서가쪽에서 굵직한 흐름을 주도하고 있는 교양예술서들에는 공통점이 잡힌다.특정 독자층을 겨냥했던 딱딱하고 권위적인 종래의 예술서들과는 달리 화려한 천연색 외장에 술술 책장이 넘어가게 한 평이한 내용전개가 이들 책의매력포인트.너나없이 대중의 눈높이에 맞추느라 바짝 몸을 낮추고 있는 추세다. 지난해 6월 ‘반 고흐,영혼의 편지’로 대중예술서를 내기 시작한 예담출판사의 오연조 주간은 “유명화가를 모티프로 한 기획 자체는 별반 새삼스러울게 없었다. 그러나 화가의 생전 편지글들을 평론을 거치지 않고 생생하게 전달한 점이 일반독자들의 구미를 끌었던 것같다”고 설명했다.이 책으로 출판사는 뜻밖의 재미를 봤다.초판 당시 6,000∼7,000부 판매를 예상했던 것이지금까지 3만부가 넘게 팔려나갔다.예술서로는 상당한 판매고다. 출판계에 이처럼 새 시장이 형성되고 있는 데는 그만한 배경이 있다는 게 관계자들의 해석이다.무엇보다 독자들의 예술적 소양이 전반적으로 업그레이드됐다는 점을 꼽는다.시중 갤러리들의 문턱이 낮아지고 있는 분위기와도 무관하지 않다는 풀이들이다. 이런 흐름을 일찌거니 읽어낸 창해출판사는 올초부터 아예 ‘위대한 예술가들의 초상’ 시리즈로 벤치마킹에 들어갔다.시리즈를 기획한 민점호 차장은“한국인들이 좋아하는 인상주의화가들로 시작해 서서히 음악가나 문인쪽으로까지 범주를 넓혀나갈 것”이라고 밝혔다.최근 고갱의 편지들과 그림들을엮은 ‘야만인의 절규’를 펴낸 출판사는 이달안에 다시 마네를 선보이고 이후 드가 들라크루아 르누아르 세잔 모네 르동 등 인상파들을 잇따라 소개한다. 현대 예술가들의 삶을 소설형식으로 소개해(‘보엠’시리즈) 호응을 확인한이끌리오 출판사도 스테디셀러를 노린 미술대중서들을 전략상품으로 기획했다.피카소와 파리생활을 함께 한 유명 사진작가 브라사이의 ‘피카소와의 대화’를 11월쯤 출간하고,올해안에 국내 처음으로 모네 전기도 내놓는다. 특히 서간문 형식의 예술대중서는 근년들어 유럽에서도 크게 유행중인 출판아이템.이끌리오 박재환 대표 같은 이는 “획일적 디지털문화에 대한 반감이회화 등 순수창작을 향수하려는 책읽기 경향을 부추기고 있는 것”이라고 풀이했다.충분히 설득력 있는 얘기다. 황수정기자 sjh@
  • 대한매일을 읽고/ 인천·경기 시내버스카드 서울서 이용 가능

    ‘독자의 소리’에 게재된 ‘교통카드 판매 제한 시민불편’이란 내용의 글(대한매일 7월7일 7면)을 읽었다. 수도권에서 사용되는 교통카드는 선불카드인 버스카드와 후불카드인 지하철카드로 구분되는데,버스카드는 버스조합이,지하철카드는 국민카드사가 각각교통카드 발행주체가 돼 버스카드 및 지하철카드를 보급하고 있다.물론 수도권의 경우 발행지역에 관계없이 하나의 버스카드를 가지고 있으면 수도권의모든 버스를 이용할 수 있다.즉 경기도의 버스카드나 인천의 버스카드를 갖고 서울의 시내버스를 이용할 수 있으며,서울의 시내버스 이용시에는 8%의할인혜택도 받을 수 있다.학생전용 교통카드는 한빛은행의 서울시내 전 지점에서 발급하고 있으며 학생 본인인 경우에는 학생증과 도장을,부모인 경우에는 주민등록등본이나 의료보험증 등 가족관계를 입증할 수 있는 자료와 함께 자녀의 학생증과 도장을 가지고 가면 발급받을 수 있다.또한 학교에서 이웃에 있는 한빛은행 지점에 요청하면 은행 직원이 학교를 방문하여 발급하기도 한다. 윤준병[서울시대중교통과]
  • 구국의 뜻 되새기자/ 독립유공 이젠 이념의 굴레 벗어야

    일제하 항일독립운동을 벌인 애국지사 가운데는 명백한 독립운동 공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서훈을 받지못한 경우가 상당수 있다.그 이유는대개 두 가지로 압축된다.첫째,조선공산당 등에 가입해 좌익활동을 했거나또는 해방후 월북한 자 둘째,건국후 간첩죄 등의 죄명으로 실정법상 처벌을받은 자 등이 이에 속한다. 그러나 이들에 대한 당국의 미포상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시각도 적지 않다. 우선 독립유공자 포상은 일제하 독립운동 공적에 대한 포상인만큼 해방 이후의 행적을 이유로 포상에서 배제한 것은 온당치 못하다는 것이다.또 사회주의 계열의 독립운동가인 경우 좌익활동이 독립운동의 방편이었을 경우 이를이념에 구애없이 포괄적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최근 남북한 관계개선을 계기로 ‘이념의 굴레’에 묶인 독립유공자에 대해 적극적인 포상정책으로 전환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3·1의거 10년 뒤인 1929년 11월 발생한 ‘광주학생의거’의 주역으로 의거 과정에서 주도적 역할을 해 그로 인해 최종선고에서 징역 4년의 최고형을받은 인물로 장재성(張載性)이란 인물이 있다.4·19후 민주당정부는 그의 독립운동 공적을 높이 평가하여 그에게 건국훈장을 주기로 결정했다.그러나 5·16후인 1962년 3월 1일 당시 독립유공자 공적심사 주무부처였던 내각사무처는 돌연 장씨에 대한 국민장(3등급·현 독립장)서훈를 취소한다고 발표했다.내각사무처는 서훈취소 이유로 신원조회 결과 장씨가 “해방후 조선공산당에 가입,활약하다가 1948년 2월 월북,공산당 대표자회의에 참석했다가 남파된 후 체포돼 7년형을 받고 복역중 6·25 후퇴시 피살된 사실이 밝혀졌다”고 발표했다.동일한 사안에 대해 정권마다 독립유공자 포상에 대한 잣대가달랐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라 하겠다. 장재성이 반공이데올로기의 희생자라면 죽산 조봉암(曺奉岩)은 정치적 희생자라고 할 수 있다.일제 당시 3·1의거 참가 등으로 3차례에 걸쳐 8년여동안 옥살이를 했고,해방후 초대 농림부장관과 국회 부의장을 지낸 조봉암은 독립유공 공적은 물론 대한민국 정부수립에도 공이 적지않은 인물이다.그러나그에 대한 독립유공 포상은 지금까지 이뤄지지 않고 있다.그는 사회주의 계열의 독립유공자가 달고 있는 ‘빨갱이’ 꼬리표와는 또 다르다.죽산에게는‘간첩죄’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니고 있다.이승만정권 시절 진보당을 창당,급진적 정치노선을 표방했고 대통령선거에 출마해 이승만을 위협하기도 했던 죽산은 ‘국가변란’을 기도한 간첩혐의로 59년 재판에서 사형선고를 받고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그러나 그가 이승만의 정적으로 몰려 ‘정치재판’에서 억울하게 희생됐다는 사실은 여러가지 정황·증거를 통해 확인되고 있다. 한편 죽산 사후 그의 동지 및 유족들은 그의 명예회복을 위해 백방으로 노력해왔으나 아직까지 그에 대한 사면·복권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그에 대한독립유공 포상 역시 한 발자국도 진전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보훈당국은 ‘국가안전에 관한 죄를 범한 자로서 형을 받은 자는 그 서훈을 취소한다’는상훈법에 의거,그에 대한 포상을 거부하고 있다. 보훈당국으로선 실정법에 의해 사형집행을 받은 자가 사면·복권이 안된 상태에서 포상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일리가 있다.그러나 문제는 독립유공자 포상제도가 공적 자체보다는 이념의 굴레와 정치적 잣대에 휘둘려 왔다는 사실이다.현행 독립유공자 포상제도가 적잖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는 점은 보훈처 관계자들 역시 일부 수긍하고 있다.통일시대를 맞아 독립유공자포상과 관련,일대 정책전환이 요구되고 있는 시점이라고 하겠다.지난 95년광복 50주년을 맞아 그동안 이데올로기 문제로 포상에서 제외됐던 이동휘(李東輝)선생 등 사회주의계열 독립운동가에 대한 포상이 실시된 것이 그 첫걸음이었다고 할 수 있다. 지난달 분단후 첫 남북정상회담 개최를 계기로 남북관계가 급속도로 호전되면서 해방후 월북,북한정권에 참여한 독립운동가 출신 인사들에 대한 포상문제도 검토할 필요가 있는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임꺽정’의 저자이자 1927년 결성된 민족 단일조직인 신간회(新幹會) 부회장을 지낸 벽초 홍명희(洪命熹·내각 부수상 역임),국어학자 출신으로 1942년 ‘조선어학회사건’에 연루돼 징역 6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른 이극로(李克魯·조국전선 의장 역임)선생 등이 대표적 인물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한 정치학자는 “통일시대를 앞두고 민족사 차원에서 이들에 대한 독립유공포상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하고 “이는 남북간 역사적 동질성을 모색하는 단초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운현기자 jwh59@. *23년 黃鈺사건 주도 金始顯의사. 생전에 무려 일곱 차례에 걸쳐 24년간 감옥살이를 한 초인적인 애국지사가있다.감옥생활 가운데 16년은 일제하에서 였으니 독립유공 공적이 결코 적지 않다.의열단원 출신으로 1923년 소위 ‘황옥(黃鈺)경부사건’의 주모자로체포된 김시현(金始顯)의사가 그 주인공이다. 김 의사는 거듭된 거사-투옥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변절하지 않고 해방을 맞은,몇 안되는 지사형 애국지사다.그러나 김 의사에 대한 독립유공 포상이 아직까지 이뤄지지 않고 있다.유족측은 “보훈처가 지나치게 신중을 기한 나머지 서훈이 지연되고 있다”며 보훈당국에 대해 아쉬움을 토로하고 있다. 김 의사에 대한 포상이 아직까지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은 김 의사의 공적에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다.해방후 김 의사와 관련된 정치사건의 ‘전과딱지’가 김 의사의 독립유공 포상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김 의사는 1954년 1월 이승만 대통령 암살미수사건에 연루돼 사형선고(나중에 무기로 감형됨)를 받고 복역중 4·19혁명으로 풀려났다.평소 의협심이 강했던 김 의사는 이승만 대통령이 헌정질서를 짓밟고 독재정치를 펴자 동지유시태(柳時泰)와 함께 그를 처단하려다 미수에 그쳤다.이 일로 구속된 김의사는 4·19의거로 이승만 정권이 무너진 후 석방되었으며,특별사면(1960.6.25)까지 받았다. 김 의사의 아들 김봉년(金峯年·78)씨는 “부친이 당국으로부터 특별사면을받은 만큼 그 사건과 관련해서는 원인무효가 됐다고 본다”고 말했다. 정운현기자
  • 北 후보자 명단…학자·예술인 다수 포함

    북한이 통보해온 이산가족방문단 후보 명단에는 북한에서 이름난 유명 학자와 연예인들이 다수 끼여 있다.‘비날론’을 개발한 화학자 이승기박사(96년사망)의 부인 황의분씨(84)도 포함돼 눈길을 끌었다.이들의 신상과 활동상을알아본다. ■학계. [류렬] 일제 때 중학교만 졸업한 후 독학으로 공부해 고려대학교 강사로 근무하던 중 6·25전쟁이 발발하면서 의용군에 참가,북한으로 넘어갔다.경남산청군이 고향으로 현재 평양시 경림동에 거주하고 있으며 사회과학원언어학연구소에 근무하고 있다. 지난 83년 북한 국어학계의 ‘기념비’라고 일컬어지는 ‘세 나라 시기 리두에 대한 연구’(과학백과사전출판사)를 집필했다. [조주경] 김일성종합대학 교수이자 북한에서 최고의 과학자에게 주어지는 ‘인민과학자’ 칭호를 받은 유명 과학자이다.경북 영양군이 고향으로 서울대문리대를 중퇴한 뒤 지난 50년 6·25전쟁 당시 의용군으로 영천 전투에 참전,왼팔을 잃었다. 김일성종합대학을 졸업하고 23세부터 교단에 섰다.40여년간 8명의 박사,33명의 학사(석사),12명의 후보학사를 비롯해 수많은 과학자를 양성했다.지난91년 남한의 어머니로부터 사진과 편지를 받았다고 노동신문을 통해 밝히기도 했다. [김영황] 북한 어문학 계열에서 손꼽히는 권위자 중 한명이다.입북 경위는자세히 알려지지 않고 있지만 6·25전쟁이 계기가 된 것으로 추측된다.입북전 동국대학 문학부에 재학했던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북한에서도 어문학에꾸준히 매진했으며 지난 60년대 초반 언어학 학사로 되면서 김일성종합대학교원으로 근무했다. [조용관] 북한 방직부문 기술의 대가이자 공훈과학자이다.전북 장수군 출신으로 지난해 7월 21일 평양방송을 통해 근황을 전하기도 했다.경공업방직분원 방직연구소 소장을 역임했다.북한에서 교수,박사,공훈과학자의 칭호를 받았으며,‘조선지식인대회’를 비롯해 각종 과학부문 대회에 대표로 참석하는등 북한당국으로부터 과학적 업적을 인정받고 있다. [하재경] 평양시 김책종합공업대학에서 강좌장으로 있다.서울 중앙중학교에입학했다가 금전적인 이유로 학업을 포기해야만 하는 가슴아픈 경험을 갖고있다.충북 괴산군에 거주하다 6·25전쟁이 발발하면서 의용군에 입대해 참전,북한으로 넘어갔다.30여년동안 교편을 잡았으며,지난 3월 평양에서 열린 전국과학자·기술자대회에 참석하기도 했다. [김봉회] 한덕수 평양경공업대학 강좌장으로 일하고 있다.전북 고창군 고창면 도산리가 고향으로 고창중학교를 졸업한 뒤 고려대학교 입학을 기다리다의용군으로 소집돼 참전한 것으로 전해진다. ■예술계. [정창모] 만수대창작사 조선화창작단 화가로 일한다.인물화,풍경화,화조화,정물화 등 조선화의 각 장르에 걸쳐 자타가 공인하는 가장 뛰어난 화가이다. 6·25전쟁 때 의용군으로 입대해 월북했으며,평양미술대학 전문부와 조선화학부에서 공부했다.지난 76년 김일성 주석이 생전에 집무실로 사용했던 금수산의사당(현재 금수산기념궁전) 기념촬영대에 비치될 ‘비봉폭포의 가을’을성공적으로 완성해 김 주석과 김정일 노동당 총비서의 높은 평가를 받았다. 지난 77년 공훈예술가,88년 인민예술가 칭호를 받았다. [오영재] 조선작가동맹 중앙위원회 시분과위원회 소속으로 자타가 공인하는북한 최고의 시인이다.김 총비서의 각별한 신임을 받고 있다.지난 50년 의용군으로 월북,김형직사범대학 조선어문학부를 졸업했다.20대 중반부터 개성있고 형상성이 뛰어난 시를 창작해 두각을 나타냈다. 수백편의 시와 수십권의 시집을 출간했으며 대표작으로 시집 ‘대동강’과‘영원히 당과 함께’,노랫말 ‘인민은 우리 당에 영광 드리네’,서사시 ‘인민의 태양’등이 있다.평양에 있는 주체사상탑의 비문에 새겨진 시 ‘오,주체사상탑이여’를 짓기도 했다.89년 ‘김일성상’을 수상했다.지난 89년 3월 남북작가회담 예비회담 대표로 참가했다. [박 섭] 서울에서 극단 ‘신향’의 배우로 활동하다 월북,현재 북한 최고의영화더빙 전문 성우이자 인민배우로 활약하고 있다.외국영화를 전문적으로번역하는 조선번역영화제작소 소장직을 맡고 있다.‘우리에게도 조국이 있다’‘처녀리발사’ 등에 주역으로 출연했다.김 총비서에게 올라가는 외국영화치고 그가 출연하지 않은 작품이 거의 없을 정도로 북한 성우계의 거봉으로자리잡고 있다.[김점순] 북한의 국립민족예술단 성악지도원이자 고음독창가수로 활동하고있다.6살 때 가족을 따라 만주 땅으로 건너갔으며 8·15 광복 후 서울로 귀국했다.6·25전쟁이 발발하자 아버지와 함께 의용군에 편입됐다. 6·25 이후북한의 첫 가극인 ‘콩쥐팥쥐’를 비롯해 ‘온달과 공주’‘밝은 태양 아래서’ 등 수많은 가극에서 주인공 역을 훌륭히 소화,김일성 주석으로부터 신임을 얻었다.60년 ‘공훈배우’칭호를 받았다. 서울연합
  • [新 김정일 연구](12)신상 이모저모

    북한의 김정일국방위원장은 한마디로 ‘보통’이 아닌 ‘연구대상’인물이다.그동안 신비스럽게 가려져있던 그의 여러 측면이 지난번 남북정상회담을통해 많이 드러나긴 했지만 아직도 알려지지 않은 면들이 적지 않다. 김위원장은 기억력이 비상하고 여러 분야에 걸쳐 워낙 아는 게 많아 그에게 서류를 비준(결제)받으러 가는 북한의 고위 간부들은 극도로 긴장한다고 한다.그가 다방면에 해박한 것은 고등중학교에 다니던 15세 때부터 아버지인김일성주석의 현지지도에 가끔씩 따라나서 현장에서 보고 들은 것이 많은데다 여러분야의 책을 많이 읽었기 때문이다.그는 대학시절엔 1년에 1만페이지 읽기운동을 벌이는 등 많은 책을 섭렵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또 다른 사람이 대필해준 것이 포함돼있긴 하지만 그가 쓴 논문만 400여편에 이른다고북한 언론들은 선전한다. 김위원장은 이념 정립,통치술 등 여러 면에서 응용력이 뛰어난 사람이다.과거 미국기업들이 만들어낸 신기술을 일본기업들이 응용 발전시켜 상용화에성공한 것처럼 김주석이나 레닌·모택동으로부터 배운 것들을 자기 것으로발전시켜 권력기반강화와 통치에 유용하게 활용해왔다. 김위원장은 선전선동에도 탁월한 재능을 갖고 있다.‘속도전’,‘우리식대로 살아나가자’ 등 사회정치적 용어와 구호는 그가 만든 것이다.이와 함께광폭정치,인덕정치,선군(先軍)정치 등 정치구호를 이용해 인민들을 추스르고 있다.올들어서는 우리에게 생소한 ‘음악정치’를 들고나온 데 이어 정상회담 이후엔 ‘과학중시정치’를 부르짖으며 첨단과학진흥을 독려하고 있다. 그의 업무스타일과 관련해 유명한 것은 야행성이다.지난 5월21일자 노동신문은 ‘장군님은 새벽 1시를 초저녁으로 여기며 사업하고 있다’고 보도하고 있다.그는 또 네댓가지 일을 한꺼번에 처리하는 집무방식을 즐기는 것으로알려졌다.그가 색안경을 쓰는 이유는 김주석이 생전에 ‘혁명을 하루 이틀하나,잠은 자야지’라고 걱정할 정도로 밤늦게까지 일을 하다보면 눈이 충혈되니까 이를 다른 사람에게 보이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김위원장이 좋아하는 색깔은 혁명의 색인 붉은 색,가장좋아하는 꽃은 북한의 국화인 목란꽃,좋아하는 계절은 겨울이라고 북한방송은 전하고 있다.또차 안에서 잠깐식 조는 ‘쪽잠’을 즐기며 줴기밥(주먹밥)을 맛있게 먹는다는 것이다.김위원장이 즐겨쓰는 습관적인 어투는 ‘인민들이 뭐라고 하겠소’이며 호칭으로는 총비서,국방위원장,최고사령관이라는 직책보단 ‘장군님’으로 불리워지길 더 좋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단한 영화광이기도 한 그의 취미는 다양해 사냥,사격,드라이브를 즐기는것으로 전해지고 있다.또 술은 즐겨하나 예전에 비해 폭음은 하지 않고 포도주로 주량을 줄였고 담배도 던힐을 애호했으나 지금은 끊은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현재 북한에선 ‘장군님처럼 담배 끊어 강성대국 만들자’는 구호가나돌고 있다.북한에서 절세출의 지도자로 받들여지고 있는 김위원장의 인생관은 ‘오늘을 위한 오늘을 살지 말고 내일을 위한 오늘에 살라’는 것이라고 북한방송은 소개하고 있다. 그러나 김위원장의 개인적 평가는 자료의 대부분이 미화 가능성이 많은 북한매체들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데다 우리쪽의 시각에서 보면 다소 비정상적인 측면도 없지않은 만큼 이를 감안한 실체적 접근이 필요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유은걸기자 eky73002@
  • 인터넷 추모사이트 붐빈다

    ‘나보다 조금 더 높은 곳에 네가 있을 뿐…’ 인터넷을 통해 고인(故人)의 생전 모습과 목소리를 직접 보고 들을 수 있는‘사이버 추모의 집’(www.memorial-zone.or.kr)에 애뜻한 추모의 글들이 잇따라 올라오는 등 ‘사이버 추모’가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서울시 시설관리공단이 지난 2월 1일부터 서비스에 들어간 ‘사이버 추모의집’을 찾은 유가족은 지난 9일 현재 2만4,200여명. 하루 평균 150여회가 넘는 것이다. 특히 ‘고인에게 쓰는 편지’라는 서비스가 제공되는 ‘하늘나라 우체국’에는 유가족들의 접속이 폭주하고 있다. 추모의 글도 각기 애절하고 안타까운 사연을 담고 있어 보는 이들의 눈시울을 적시게 한다. 먼저 세상을 떠난 사랑하는 남자를 그리워하는 ‘나보다 조금 더 높은 곳에네가 있을 뿐’이라는 한 여성의 글과 어린 손자들이 돌아가신 할머니를 그리워하며 띄운 ‘천사가 된 할머니’라는 그림 등은 뭉클한 감동을 안겨준다. 이밖에도 졸지에 형부를 저세상으로 떠나 보낸 어느 처제가 올린 글은 최다접속 건수 354회를 기록하고 있다. ‘외로운 세상이 싫어 떠나갔나요? 무정한 형부,부디 저 세상에서만이라도언니와 지연이를 지켜주세요.…’ 이 사이트에 올라와 있는 여러 글중 특히 지난달 15일 세상을 떠난 인기댄스그룹 ‘NRG’의 고(故) 김환성군을 추모하는 팬 레터는 하루 평균 40건씩올라오고 있다. 사이버 추모의 집은 ▲고인에 대한 추모 ▲하늘나라 우체국외에도 ▲장묘사업소를 이용하는 방법과 ▲선진 장묘문화를 소개하는 자료실 등으로 짜여져있다. 시설관리공단은 사이버 추모의 집이 이처럼 인기가 높음에 따라 지난해 12월 추모의 글을 모아 발간한 ‘눈물의 편지’라는 책에 이어 다음달중에 1만4,500여건의 글을 엮어 ‘새가 되소서 하늘을 나소서’라는 제목으로 두번째책을 펴내기로 했다. 또 추모 편지를 CD롬으로도 제작할 계획이다. 문창동기자 moon@
  • 국제 화학올림피아드 대회 주영석군 금상 수상

    한국국제과학올림피아드위원회(위원장 金定德 한국과학재단 사무총장)는 지난 2일부터 11일까지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린 제32회 국제화학올림피아드대회에서 주영석(朱煐碩·서울과학고 3)군이 개인성적 7위로 금상을 수상했다고 밝혔다.전세계 53개국 208명의 대표 학생들이 참가한 가운데 열린 이번 대회에서 한국대표단은 금상 1명을 비롯,은상 1명,동상 2명으로 참가 학생전원이 입상,종합성적 12위를 기록했다. 김미경기자
  • [新 김정일 연구](9)먹는 문제 풀기

    닭공장,돼지공장,열대메기공장….북한에는 우리에겐 생소한 말들이 많다.그러나 열대메기공장 같은 말은 정작 북한사람들조차도 들은 지 얼마 안되는말이다. “닭공장 가봤습니까”지난달 15일 백화원영빈관 환송오찬장에서 이기호 청와대 경제수석에게 시찰소감을 묻는 김정일국방위원장의 얼굴에는 어딘지 자부심이 역력해 보였다.남한경제 콤플렉스에 걸려 있는 그가 그럴만도 한 것은 이 수석이 가본 만경대닭공장은 부화에서 양계,도계,가공에 이르기까지일괄처리되는 독일의 최신설비를 갖춘 대규모 ‘공장’이기 때문이다. 최근 북한 언론매체에선 감자와 양어장에 관련된 내용들이 눈에 띄게 많이등장하고 있다.이는 북한 농수산업의 틀이 크게 바뀌어가고 있음을 반영한것이다. 김위원장이 실용주의자답게 변모한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것은 농수산부문의 정책전환이다.김위원장이 금과옥조처럼 받들어오던 김일성주석의 교시와는 다소 배치되는 점이 있기 때문이다. 경제챙기기에 나선 김위원장은 농업부문에선 쌀을 주식으로 하되 그동안 큰 비중을 두어오던 옥수수 대신 감자증산에,수산업에선 잡는 어업에서 기르는 어업으로 바꿔 감자와 물고기 증산에 역점을 두고 있다.감자농사 치중은 옥수수농사의 중요성을 강조한 지난 56년도의 김주석 유훈과 배치된다.또 물고기 양식 역시 생전에 ‘이밥(쌀밥)에 고깃국을 먹게해주겠다’고 한 김주석의 약속과도 거리가 있다. 이처럼 김위원장이 김주석 유훈과 배치됨에도 불구하고 농수산업의 틀을 바꾸고 있는 것은 소출이 많은 쪽으로 바꿔 먹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이다. 주부식(主副食)을 같이 해결할 현실적인 처방을 찾다보니 이렇게 된 것이다. 북한이 옥수수 중심에서 벗어나 감자농사에 더 큰 비중을 두기 시작한 것은98년 10월 김위원장이 양강도 대홍단군을 현지지도하면서부터이다. 그후 ‘감자는 흰쌀과 같다”고 선전하면서 감자농사에 역점을 두어왔다.김위원장의감자중시 지침에 따라 옥수수 재배면적은 98년 60만ha에서 올해 40만ha이하로 급감한 반면 감자 경작지는 98년 4만ha에서 올핸 25만ha이상으로 증가한것으로 알려졌다.북한은 감자농사에 대한 지도를 강화하기 위해 최근 농업성에 감자생산국을 설치하고 도 농촌경리위에 감자관련부서를 설치했다. 양어사업에 대한 김위원장의 의욕과 기대도 대단한 것으로 알려졌다.양어장에 대한 잦은 현지지도를 강화하고 전국 각지에 양어장 건설을 지시해 현재북한 전역에선 양어붐이 일고 있다. 특히 열대메기 양어에 깊은 관심을 보여온천수를 이용한 양어사업의 확대를 독려하고 있다. 그는 또 북한주민들에게부족한 육류섭취량을 늘려주기 위해 염소키우기에 이어 최근엔 토끼를 많이키우도록 장려하면서 닭공장과 돼지공장을 곳곳에 세우고 있다. 그의 이러한 노력은 적지않은 성과를 거둬 식량난 해소에 상당한 기여를 한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가 이번 남북정상회담에서 시종 여유있는 자세를보인 것도 이러한 점이 많이 작용했으라는 게 북한문제전문가들의 시각이다. 김위원장의 이같은 농수산업 구조전환은 이번 남북정상회담에 따른 농어업부문 경제협력으로 상당한 성과를 거둘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그러나 영농구조를 근본적으로 개혁하지 않고 이정도의 틀 바꾸기만으로 김위원장이 먹는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 더 두고 보아야 할 것 같다. 유은걸기자 eky73002@
  • 離散 근본해법에 ‘남북 공감대’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이 지난 남북정상회담에서 ‘남북 이산가족의 재결합’이란 대명제에 의견을 접근시켰다는 4일 박재규(朴在圭)통일부장관의 전언은 상당한 의미를 지니는 희소식이다. 물론 생사확인→서신교환→상봉→상호방문→재결합이란 절차는 우리 정부가줄곧 견지해온 이산가족 문제의 해법으로 새삼스러운 얘기는 아니다. 중요한 사실은 이같은 우리의 구상에 북한,특히 최고 통치권자인 김 국방위원장이 처음으로 동조의 뜻을 표시했다는 것이다.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남북 양측이 같은 방향을 향해 간다는 것을 확인한 것만 해도대단한 성과라는 얘기다. 또 한가지 중요한 의미는 북한 수뇌부의 이산가족 문제 해결 의지가 확인됨으로써 당장 코앞에 예정돼 있는 절차들이 가속도를 받을 공산이 커졌다는것이다.오는 8·15 이산가족 교환방문은 물론 9월에 논의될 상시 면회소 설치 문제도 쉽게 해결되리란 기대가 커졌다. 면회소가 성공적으로 설치돼 매월 수백명씩의 상봉이 지속적으로 이뤄질 경우1,000만 이산가족 전체가 생전에 가족의 얼굴만이라도 볼 가능성은 그만큼 커지게 된다. 실제 일각에서는 남북 양측이 올 연말까지 이산가족 1,000여명의 상봉을 계획하고 있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물론 이산가족들이 남쪽이나 북쪽으로 완전히 이주,재결합하는 최종 단계의실현은 앞으로도 상당기간이 흘러야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박 장관도 “면회소가 설치돼 이산가족 교류가 활발해지면 10년이나 20년쯤후 상호 자유의사에 따라 정착이 가능할 것”이라며 ‘먼 훗날’의 얘기임을시인했다. 남북 양측의 첨예한 체제대립,특히 북측의 폐쇄적인 사회분위기가 완전히바뀌지 않는 한 재결합은 상당한 시일이 걸릴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경협 등 다각적인 교류 활성화로 남북 양측의 연결고리가 굵어지고,통일논의가 병행돼 정부가 구상하는 남북 연합단계에 이르면 재결합의 꿈이의외로 빨리 실현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김상연기자 carlos@. *金위원장 답방 9월 중·하순이 가장 유력. ‘꿈 속의 일’처럼 여겨지던 김정일(金正日)북한 국방위원장의 서울 방문이 점차 실체화되는 느낌이다. 박재규(朴在圭)통일부장관이 4일 전한 김 국방위원장의 서울 답방 관련 발언은 상당히 구체적이다. 김 위원장이 지난 남북정상회담에서 “고위급회담차 다른 사람을 한두번 먼저 보내고 세번째쯤 내가 (서울에) 가겠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박 장관은 또 김 위원장이 서울 답방 등을 명기한 합의서에 서명을 한 뒤 “서명했으니 반드시 지키겠다”고 10번 이상 반복했다는 뒷얘기도 밝혔다. 일각에서는 합의서에는 답방 시기가 명기되지 않았지만,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치밀한 성격상 구두로는 구체적인 시기를 두 정상이 합의했을 것이란추측이 나오는 게 사실이다. 그렇다면 김 위원장의 답방 시기는 언제가 될까. 일단 4일 박 장관의 발언내용에서 어렴풋이 추론해 볼 수 있다.박 장관은“우리가 평양방문을 준비하다 보니 2개월이 굉장히 짧았다고 판단,지금부터 김 위원장 답방을 준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이 말을 뒤집어 보면 이르면 2개월 이후에 답방 일정이 잡혀있다는 분석도 가능하다.통일부 주변에서는 정황상 9월 중순∼하순이 유력하다는 얘기가 조심스럽게 나온다.오는 10월은 북한에 노동당대회가 있는 달이고,서울에서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도 열린다. 8·15 이산가족 교환방문과 9월초 비전향장기수 송환이 실현되고 이산가족면회소 설치까지 합의되면 9월 중순쯤 가서는 남북 양측의 화해 무드가 최고조에 달해 답방시기로 적절하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북한측이 김 위원장의 경호문제 등을 우려,연말-연초로 방문시기를조절할 가능성도 있다. 김상연기자
  • [대한포럼] 북으로 가는 사람들

    지난 달 30일 금강산 남북 적십자회담에서 비전향 장기수 전원을 9월초에송환할 수 있도록 추진하자는 데 남북이 합의했던 바로 그날,이들의 송환을추진해 오던 한 민간단체가 ‘북송희망 장기수 59명’의 명단을 발표했다.명단을 읽어본 독자들이라면 그들 대부분이 70대 이상의 고령자라는 사실에 새삼 놀랐을 것이다.80대가 13명,90대도 두사람이나 있었다.30년 넘게 감옥살이를 하면서도 끝까지 전향을 거부했다니 “사상과 이념이 도대체 뭔가?”,독자들은 잠시나마 깊이 생각해 보았을 것이다. * 장기수 송환과 국군포로 문제 비전향 장기수 송환 문제는 그동안 북한에 억류중인 국군포로와 납북어부등의 송환 문제와 연계돼 있던 게 사실이다.이른바 ‘남북한 상호주의’가그 논리적 근거다.그러나 이제는 ‘장기수들을 먼저 보내주고,국군포로 등의 소환을 주장하자’는 쪽으로 여론이 바뀌고 있는 것 같다.한나라당의 의원연찬회에서 젊은 의원들이 ‘비전향장기수의 조건없는 북송’을 주장하는 상황이다.‘6·15남북 공동선언’의 위력이라고 할까? 이 문제에 관한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분단상황을 살고 있는 국민이라면 이렇게 느낄 것이다.“살아생전 고향에 가서 가족·친척들을 만나고 싶다”는남한 이산가족들의 염원이 절절하다면,“죽기전에 고향에 돌아가서 가족과친척들을 만나고 싶다”는 장기수들의 염원 또한 똑같이 절절한 것이라고.비전향 장기수 송환도 ‘이산가족 재결합’차원에서 받아들이면 된다. 정작 9월초 송환 추진 보도를 접한 당사자들은 “고향에 돌아갈 수 있게 됐다니,꿈만 같다”면서도 말을 아낀다고 한다.어찌 그러지 않겠는가.72년 ‘7·4공동성명’이래 ‘꿈이 꿈으로 끝난 일’이 한 두번이 아니었기 때문일것이다. 언론은 또한 ‘남과 북 모두에 혈육을 두고 있는 남한 출신 비전향 장기수들’의 고통에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상봉의 기쁨’과 ‘헤어짐의 아픔’을겪고 있다는 것이다.“왜 북으로 가려느냐”는 형제자매들의 애절한 호소에,“멀지 않아 남북 자유왕래가 실현될 것’이라거나,“북으로 가는 것이 분단의 장벽을 허무는 데 도움이 된다”고 남한에 두고 가는 가족들을 설득한다고 한다. *‘이산’강요하는 ‘분단’은 범죄다 남한 출신 비전향 장기수 얘기가 나올 때면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정순택(80)노인이 그분이다.필자는 그분과는 일면식도 없고 다만 그분의 책 ‘보안관찰자의 꿈’을 읽었을 따름이다. 충북 진천이 고향으로 6·25 전에 월북한 정노인은 58년 남파될 당시 부인과 코흘리개 두 아들을 남겨 두었다.정노인은 남파 즉시 체포돼 31년 4개월의감옥살이 끝에 89년 12월 가석방됐다.정노인의 인생역정을 말하자는 게 아니다.그분이 쓴 책속에 공개한 ‘가족들에게 보낸 편지’를 읽고 느꼈던 그 절망감을 말하기 위해서다.북으로 보내는 편지는 각각 이렇게 끝을 맺고 있다. 지금쯤은 70이 넘었을 부인에게는 ‘내 사랑 두고 오고 당신 사랑 가지고 온 남편이…’.40대가 됐을 아들들에게는 ‘코 흘리고 오줌똥 싸던 너희들 밖에 기억하지 못하는 아비가…’.이보다 더 진한 가족들에 대한 사랑의 말이있을 수 있는가.사상과 이념을 떠나 이산은 비극이고 그같은 이산을 강요한분단은 그 본질에 있어 범죄다. ‘북으로 가는 사람들’의 뒤를 이어 북에 억류돼 있는 국군포로들과 납북인사들도 가족들 품으로 하루 빨리 돌아올 수 있기를 기원한다. [張潤煥 논설고문]yhc@
  • 이정섭 6년만에 록발라드풍 2집

    이정섭의 목소리는 야릇하다.명쾌하면서도 탁한 소리가 나는데 박상민과 김정민의 가운데 어디 쯤일 것 같다. 지난 94년 데뷔앨범에서 ‘널 보낸 후에’(부제 굿바이 레이디)로 폭발적인가창력을 인정받았던 그가 6년만에 2집 ‘더 드림 오브 라이프’를 세상에내놓는다.예의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거친 포효와 따뜻한 자제력의 겸비가이번 앨범에도 녹아있다. 방송활동을 전혀 하지 않았는데도 1집은 5만장이 팔렸다.그러나 이후 신촌블루스 객원 보컬과 댄스그룹 OPPA의 2집과 3집에 보컬 레슨과 코러스로 참여한 것이 전부일 정도로 무명에 가까운 시절을 보냈다. 그러나 적지 않은 이들이 그를 미완의 대기로 꼽는다.그의 가창력을 높이 산덕이다. 고 김현식이 생전에 자주 불렀던 ‘환상’을 부르는 모습을 보고 신촌블루스는 새 앨범에 그의 노래를 넣기로 했다. 이번 앨범의 타깃은 록발라드.거친 듯 내지르는 그의 허스키 보이스를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요즘 유행하는 현악세션 대신 기타음을 강조하는 쪽으로방향을 잡았다. 들국화 출신의 손진태가 예의 튀지 않으면서도 차분하게 분위기를 이끌어가는 기타 연주를 맡고 역시 ‘세션계의 터줏대감’ 함춘호와 스패니쉬 기타에일가견을 보이는 샘 리와 이근형 등이 활달한 기타연주를 보탰다. 다섯손가락의 박강영,더 클래식의 박용준,롤러코스터의 지누 등이 곡을 선사한 것도주목받을 만하다.특히 프로듀서를 맡은 정유석은 그룹 OPPA의 앨범을 가다듬은 실력파로서 그와는 오랜 음악적 교분을 쌓아온 베테랑. 5년 넘게 제작에 매달린 만큼 전곡이 고른 수준을 유지한다.그의 작곡능력도관심거리. 타이틀곡 ‘더 엔드’는 원래 발라드로 작곡됐으나 자신이 요청해경쾌한 라틴 퓨전재즈 스타일로 가다듬었다.샘 리의 발랄한 기타연주가 분위기를 살린 것은 물론.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순수하게 실연으로 연주하고 김현아의 맑고 투명한 코러스가 돋보이는 ‘그대 동네’도 모니터링에서 높은 점수를 받아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면 라디오 전파를 탈 것으로 보인다. ‘제발’과 ‘유 앤 아이’는 같은 멜로디에 각기 다른 가사를 입혀 박강영과 정유석이편곡해 골라 듣는 재미를 안겨준다.‘제발’에선 김현아가,‘유앤 아이’는 손지예가 백보컬을 맡았는데 둘의 맑고 투명한 목소리를 비교해듣는 재미도 쏠쏠하다. 음악인에게 더 사랑받는 가수 이정섭이 대중의 사랑을 받을 수 있을 지 궁금하다. 임병선기자
  • 운보 김기창 화백 米壽전

    운보 김기창 화백(88)이 은거 4년만에 작품으로 모습을 드러낸다.갤러리 현대는 ‘바보예술 88년-운보 김기창 미수기념 특별전’을 7월 5일부터 8월 15일까지 서울 사간동 갤러리 현대와 조선일보 미술관에서 분산 개최한다.한국현대미술사에 큰 획을 그은 운보의 극적인 삶과 자유분방한 예술세계를 총정리하는 자리다. 1913년 서울 운니동에서 태어난 운보는 1920년 장티푸스로 청력을 잃었고 1976년에는 아내인 우향 박래현과 사별했다.그러나 운보는 그런 절망을 오히려 희망의 언덕으로 삼으며 빛나는 작품을 토해냈다.그러나 이제 그림을 그릴 수 없다.96년 스승인 이당 김은호 화백의 후학모임인 후소회 창립 60주년기념전에 참석했다가 뇌졸중으로 쓰러진 것이다.그는 현재 충북 청원 ‘운보의 집’에서 병마와 싸우고 있다.100㎏이 넘던 당당하던 체구가 60㎏대로 줄었다.생사의 고비를 수차례 넘긴 그는 요즘 깊은 상념에 빠져 있다.그중하나가 월북한 막내동생 기만과 여동생 기옥을 생전에 과연 만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한국전쟁 당시 월북한 기만은현재 공훈화가로 활동중이며,기옥은 의사로 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의 피카소’라 불리는 운보.그가 남긴 작품은 1만점이 훨씬 넘는다. 표현의 진폭 또한 어느 작가도 따를 수 없다.인물과 화조에 대한 사실적인묘사에서부터 조선시대 민화의 정취와 익살을 대담하고 해학적으로 표현한‘바보산수’,한국 산하의 정기를 수묵의 농담과 단순한 색상으로 힘차게 그려낸 ‘청록산수’,그리고 인생의 비의를 함축적으로 표현한 추상작품에 이르기까지 광대무변하다. 이번 미수전은 운보 생전의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뜻깊은 전시다.그런 만큼 작품 선정에 각별한 정성을 기울였다.운보 전작도록에 실린 4,000여점의작품중 초기에서 현대까지 장르별로 88점을 가려 뽑았다.특히 일본에 있는제13회 선전 입선작 ‘정청(靜聽)’(1934년)과 개인소장의 ‘군마도’(1969년,1986년)는 일반에 처음 공개되는 것이어서 주목된다.한편 이번 전시엔 가로 1m,세로 75㎝ 크기로 확대된 1만원권 한화 지폐 한 장이 작품으로 내걸린다.그 이유는 뭘까.1만원권 지폐에등장하는 세종대왕을 그린 영정작가가 바로 운보란 점에 착안한 아이디어다.운보는 세종대왕 외에 을지문덕·김정호·무열왕 등의 표준영정을 남겼다. 운보의 개인전이 열리는 것은 8년만이다.지난 93년 1,200여 작품이 선보인예술의전당 ‘팔순기념 대회고전’이 양적으로 압도한 전시였다면,이번 미수전은 운보의 걸작만을 엄선한 알짜배기전시란 점에서 관심을 끌 만하다.입장료는 일반 5,000원,초·중·고생 3,000원,학생단체할인 2,000원.(02)734-6111. 김종면기자 jmkim@
  • 北주민 애용‘동의학치료’근거 처방 제시

    ‘고려인삼가루 100g과 오미자가루 25g,약용효모가루 50g,사탕가루 25g을 고르게 섞고 60% 알콜을 습윤제로 하여 알약만드는 법에 따라 전량 1,000알을 만들고 당의를 입히면…’.북한 최고의 한의학 전문가로 꼽히던 허창걸씨가 최근 펴낸 ‘북한 동의보감’에 소개된 보약 고려인삼오미자알약을 만드는 법이다. 허씨는 묘향산요양소에서 김일성 주석과 가족들의 보약 연구·제조를 전담하다 지난 96년 10월 제3국을 거쳐 귀순한 인물.김 주석이 생전 건강식으로애용하던 전록탕과 전록삼 등 일명 ‘김일성탕’을 만든 장본인이다. 북한에선 동의보감을 고려약으로 부르는데 주민들은 집집마다 이를 응용한처방전을 마련,병에 맞춰 스스로 처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북한 동의보감’은 허씨가 김부자의 장수식품을 제조할때의 경험과 북한에서애용되는 ‘동의학치료’에 근거해 처방을 제시한 책.고려약재 1,500여종과고려약 처방전 280종,민간요법 17가지를 실어 고려약재와 북한 한의학 연구수준을 엿볼 수 있게한다. 주민들을 위한 처방편을 보면재미있는 요법이 수두룩하다.‘기침엔 삶은돼지비계를 얇게 썰어 꿀에 일주일동안 재웠다가 식사전에 3∼5점씩 먹는다’‘급성간염에는 볏짚 150g을 물 1ℓ에 넣고 센 불에서 200㎖가 되게 졸여하루 2번에 나누어 먹는다’.이밖에 폐농양엔 단너삼(황기)과 감초를 4:1 비율로 보드랍게 가루내어 한번에 4g씩 하루3번 식후에 먹을 것을 처방하고 있으며 늑막염엔 옥수수수염을 하루 1㎏씩 물에 달여 여러번 나누어 먹고 그 찌꺼기를 아픈쪽 옆구리에 대고 찜찔하면 효과가 있다고 적고 있다. 또 고혈압 치료 요법으로 땅콩잎을 물에달여 찌꺼기를 짜버리고 다시 걸쭉해질 정도로 졸인다음 땅콩 잎가루를 넣고 고루 섞어 알약을 만들어 4∼5g씩하루 3번 빈속에 먹을 것과,간질에 나팔꽃를 보드랍게 가루내어 졸인 꿀로알약을 만들어 한번에 1g씩 하루 2∼3번 먹을 것을 권한 것도 흥미롭다.창조문화 펴냄 값 10,000원.
  • [발언대] 이산가족 상봉 많이 이뤄졌으면

    온 국민들의 관심속에서 진행된 남북정상회담의 결과로 ‘6·15공동선언’이 발표됐다.이후 그에 따른 후속조치가 각 부문에서 활발하게 추진되고 있다.남북 이산가족들의 상봉문제 역시 그 하나다.요즘 통일부에는 기족상봉신청을 하려는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루고 있는데 하루 평균 300∼400명이 넘어서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최근 8·15를 전후하여 100여명 가량 이산가족의 상봉을 추진한다는언론의 보도를 접했다.우리가족도 이산가족이다.살아있다면 일흔쯤 됐을 외삼촌과 상봉하기 위해 신청해놓은 터이지만 이런 상태로 올해 일흔 넷인 어머니께서 생전에 동생을 만날 수 있을지 안타깝기 짝이 없다.현재 통일부나대한적십자사 등 관계기관에서는 이산가족 상봉신청을 한 가족들 가운데 고령자,부모형제 등 순으로 상봉인원을 확정할 것이라고 한다.이렇게 된다면일반 이산가족들의 만남이란 사실상 불가능하다.한달에 이 정도 규모로 한번정도 상봉이 이루어진다고 가정하면 상봉신청 접수된 이산가족들의 만남이이루어지려면 십수년이 걸려도 어렵다고 생각한다.1,000만 이산가족의 상봉욕구를 풀어주기에는 너무나 멀다. 따라서 보다 많은 이산가족들의 궁금증과 회한을 풀어주기 위해서는 먼저모든 이산가족에 대한 생사여부부터 확인하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그리고 확인된 가족 가운데 경조사가 있는 사람들을 우선적으로 상봉하도록 주선했으면 한다.남과 북의 흩어진 가족들이 결혼식에 참석하고 장례식에도 참석하여 한민족 한핏줄임을 확인한다면 그 상봉효과는 더욱 진하고클 것이다. 다음으로 생사가 확인된 이산가족들은 먼저 서신부터 교환한 후 판문점 등일정한 장소에서 상봉을 추진했으면 한다.마지막으로 서로 사는 곳을 방문하여 이산의 회한을 풀어줄 수 있는 방법으로 이산가족 상봉문제를 추진해 나간다면 보다 많은 이산가족이 고루 혜택을 입을 수 있음은 물론 통일에의 분위기도 확산시켜나갈 수 있을 것이다. 김동균[부산시 해운대
  • 원로 신도환씨 10단 등극

    유도원로 신도환(辛道煥·78)씨가 살아있는 유도인 가운데 유일하게 ‘신의경지’인 10단에 등극했다. 국내 유도인 가운데 90년과 96년 각각 타계한 석진경 이경석 원로가 생전유도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10단에 올랐지만 살아있는 유도인의 10단 승단은이번이 처음이다. 신씨는 대구 달성초등학교 5학년때 유도와 인연을 맺어 14세때 일본 강도관에서 초단을 받았고 44년 한국과 일본을 통틀어 최연소(22) 5단에 오르는 등유도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또 신씨는 58년 정계에 입문, 88년 은퇴할때까지 4대 민의원과 8∼10대·12대 국회의원을 지냈으며 대한체육회장(서리)과 대한유도회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승단 축하식은 오는 29일 오후 6시30분 올림픽파크텔에서 열린다. 곽영완기자 kwyoung@
  • [데스크 시각] ‘기분파’면 어때!

    ‘폐쇄적이며 오만하고 충동적인 은둔자’,‘변덕스럽고 충동적이며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상태’,‘만성신부전증 확인’,‘당뇨병’,‘결석증’,‘심장병’ 등 ‘건강에 이상’. 이상은 지난 시절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에 대해 우리 언론이 보도한 내용의 일부이다.그러나 이번 남북정상회담을 지켜본 국민들은 그동안 우리 언론의 보도가 얼마나 잘못되었는지 알게 되었을 것이다.김대통령을 맞기 위해평양 순안공항에 모습을 드러낸 김위원장은 그 동안의 궁금증을 한꺼번에 풀어주기라도 하려는 듯 당당하면서도 자신감에 넘쳤으며 또 건강해 보였다. 이번 2박3일의 남북정상회담 기간동안 옆에서 김위원장을 지켜본 사람들은김위원장에 대해 ▲형식보다는 실리를 중시하고 ▲풍부한 유머감각과 격의없는 대화로 좌중을 압도했으며 ▲동양적 예의가 몸에 배어 있고 ▲빠른 판단력과 다방면에 걸친 식견을 갖춘 지도자로 평가하고 있다. “우리 조직비서(김정일)는 통이 크고 사나이답거든” 김일성 주석이 생전에 재미언론인 문명자여사와 ‘김정일화’를 화제로 얘기를 나누던중 했다는 말답게 TV에 비친 김정일 위원장의 사나이다운 호방한 모습은 독자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그리고 그것으로 그에 대한 우리의 편견을 일거에 씻어주었다. 그런데 이제 정상회담이 끝나고 시간이 좀 흐르자 김위원장의 그같은 모습에 대해 부정적 시각이 서서히 고개를 들고 있다.정상회담에 대해 어떻게든흠집을 내려는 사람들이 있다는 말이다,그러니까 그동안 북한과 김위원장에대해 국민들에게 부정적인 이미지를 심기 위해 분주했던,정권안보를 위해 북한을 이용했던 사람들이다. 대표적인 것이 “평양사람들은 즉흥적인 ‘기분파'가 많다”는 것이다.들뜨거나 너무 감정에 치우치지 말고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얘기다.말인즉슨 옳다.그러나 그 말에는 속내가 담겨 있다.“너무 믿어서는 안된다”는 말이겠다.그도 옳다.그러나 그동안 우리는 그들을 믿게만 했던가.국가간에 있어상호신뢰는 결코 일방적인 것이 아니다.우리가 그들을 믿지 못하였듯 그들역시 우리를 믿을 수 없는 부분들이 많았을 것이다.우리에게는아무 잘못이없는데…라고 생각하는 것은 순전히 우리 식의 생각일 뿐이다. 다시 ‘기분파’로 돌아가보자.‘기분파’가 어디 평양사람들 뿐인가.기분파는 전라도 경상도 경기도 충청도 어디에든 많이 있다.기분파란 지역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의 성정 탓이다.기분이란 낼만 하니 내는 것이다.그럴 형편도 못되는데 기분만 낸다면 그건 허풍이고 사기이다.‘평양사람’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기분파’ 기질을 생각해보자.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본 김위원장은 북한을 완벽하게 장악한 통치자로서의 모습이었다.당당하고 호방한 모습이 ‘기분파’로 비쳐질 수도 있다. 그러나 지난 15일 오찬에서 김대통령을 환영하기 위해 공항에 나온 것과 관련,“내가 공항환영 나가는 것을 용순비서가 말렸는데 나갔다.내가 하고자하는 일은 주변에서 빨간불을 켠다.내가 새총으로 빨간불을 모두 깨뜨리며나가겠다”고 말한 것이나 “국방위원회를 소집해 6·25가 10일 남았는데 휴전선에서 절대 비방하지 말라고 했다.군 수뇌부가 남쪽에서 안하면 안하겠다고 하길래 내가 화를내며 그런 식으로 하지 말라고 했다.서로 상대가 하면나도 하겠다는 자세를 갖게 되면 적대감을 갖게 되고 결국 비방하게 된다.그러니 아예 하지 말라고 했다.그러니 남측에서도 이렇게 해달라”고 했다는말 등 정상회담에서 보여준 그의 말이나 행동을 단지 ‘기분파’ 기질로만볼 것인가. 꼭 그렇게 보겠다면 그것은 보는 사람의 자유이다.다만 김위원장의 ‘기분파’는 충분히 부릴 만한 ‘기분파’이고 그에 대해서도 책임질 수 있는 위치에 있다.그의 뜻을 순수하게 받아들였으면 좋겠다.‘신중’도 도가 지나치면 옹졸해지는 법이다.‘신중’을 빙자해 제발 ‘딴지’거는 일은 없으면 좋겠다. 박 찬 특집기획팀장
  • [新 김정일 연구](2)’먹는 문제’ 해결사

    찬바람이 밖에서 매섭게 몰아치던 지난 96년12월27일.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김정일 인민군 최고사령관은 집회 비밀연설을 통해 당간부들을 호되게 꾸짖고 있었다.식량난으로 굶주림사태가 벌어지고 있는데 당 일꾼들이 앉아서 회의만 하고 있고 뭣들하고 있느냐는 것이었다.그러면서 “지금처럼 정세가 복잡한 때에 내가 경제실무사업까지 맡아보면서 걸린 문제들을 풀어줄 수 없다.수령님은 생전에 나에게 절대로 경제사업에 말려들어가서는 안된다고 말했다”고 전하며 질책의 강도를 높여갔다. 그로부터 약 1년1개월이 지난 98년1월16일.김정일은 두꺼운 방한복을 입고연형묵 전 총리가 당 책임비서로 있는 자강도의 인민경제 여러 부문의 현지지도에 나섰다.김일성 사망이후 위기타개와 권력기반 구축을 위해 군부 다스리기에만 매달려오던 그가 이례적으로 직접 민생과 경제 챙기기에 나선 것이다. 이를 시발점으로 김정일은 종전처럼 군부대를 잇따라 방문,군부 추스리기에 나서는 한편 그해 3월9일 성진제강기업소를 시찰하는 등 경제부문에 대한현지지도의횟수를 점차 늘려갔다.과학기술발전을 독려하기 위해 지난해 1월11일엔 연초 첫 나들이로 평성에 있는 과학원을 시찰했다. 다시 1년이 지난 올해 1월24일.두툼한 방한복에 털모자를 쓴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찬바람이 쌩쌩 몰아치는 평북 태천군 들판에 나타났다.그가 엄명을내려 추진하고 있는 토지정리사업이 제대로 진행되고 있는지 점검하기 위해서였다. 올들어 김정일은 무려 8차례에 걸쳐 토지정리사업장을 비롯해 발전소,양어장,기계공장 등을 시찰하면서 독려의 고삐를 죄어가고 있다.이처럼 그가 경제살리기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것은 식량난 해결과 경제를 살리지 않고는 체제안정을 이룩할 수 없음을 절감한데다 당과 군부를 완전히 장악해 권력기반을 구축했기 때문에 이젠 경제부문에 눈을 돌릴 수 있는 여력이 생긴 데 따른 것이다. 이같은 김정일의 독려로 지난해 북한의 경제성장률은 9년만에 플러스로 돌아서면서 식량사정 역시 눈에 띄게 나아졌다.이에 힘입어 북한측은 경제회복에 상당한 자신감을 갖기 시작했다.또 김정일이 이번 김대중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시종 여유를 보인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그러나 아직도 북한에서 식량은 크게 부족한 상태이다.더욱 공장을 돌리려 해도 전기가 부족해 산업면에서 큰 타격을 받고 있다. 북한은 올해 신년공동사설을 통해 ‘먹는 문제’의 해결을 강조하면서 종자혁명,감자농사혁명,두벌농사(이모작)및 양어사업의 전군중적 운동을 다그치고 있다.이와함께 증산과 농사의 기계화작업을 촉진하기 위해 토지정리사업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특히 김정일은 ‘토지정리는 나라의 부강발전을 위한 대자연개조사업이며 만년대계의 애국위업’이라며 토지정리사업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감자농사혁명에 쏟고 있는 그의 관심과 독려도 대단하다. 김성진.그는 감자가 많이 나는 백두산 인근 산골짜기인 양강도 대홍단군 당 책임비서에 지나지 않는다.그렇지만 북한에서 그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거의 없다.지난 98년 10월 그곳을 현지지도한 김정일이 ‘동무야말로 진짜배기 혁명가,참된 당일꾼’이라고 극찬하고 그를 따라 배울 것을 촉구했기 때문이다.이 때 김정일은 ‘감자는 흰 쌀과 같다’며 감자증산을 독려하고 나섰다.이처럼 김정일은 토지정리사업과 감자농사를 통해 식량난 타개를 추구하면서 정보산업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또 지난해 하반기부터 계획경제의근간인 연합기업소제도를 대폭 손질하는 등 구조조정에도 힘쓰고 있다. 이제 김정일은 경제사령관으로 전환기 북한경제의 한 중심에 서 있다.그러나 농업구조와 군수중심의 산업구조의 과감한 개혁과 개방,시장경제의 도입없이는 곧바로 한계에 부닥치고 말 것이다. 유은걸기자 eky73002@
  • 한국 현대조각 주지주의 창시 전국광 추모전

    ‘한국 현대조각의 주지주의적 경향을 창시한 사람’‘자연에 대한 그리움을 논리적 미술어법으로 풀어낸 작가’ 그가 바로 45세의 나이로 요절한 조각가 전국광이다.올해는 그가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난지 10년이 되는 해. 이에 맞춰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선 ‘돌에 핀 석화(石花)’란 이름의추모전이 열리고 있다. 전시작은 ‘적(積)’‘매스(mass)의 내면’ 시리즈 등 90여점.청동과 석조각이 대부분이다.조각전으로선 드물게 드로잉 연작도 30여점 나와 있어 눈길을 끈다.‘적’이 겹겹의 지층들이 무겁게 짓눌러 일궈내는 오브제의 율동을 보여준다면,‘매스의 내면’은 자연의 내재율을 기하학적 구조의 실공간과허공간을 통해 구체화한 작품이다.작가는 자연을 원자적 요소로 분해한 뒤예술적 해석을 가미해 재결합하는 이른바 ‘분석적 환원’ 방식을 취한다.그렇기에 그의 작품은 숙명적으로 난해하고 주지주의적인 경향을 띨 수밖에 없다.작가는 생전에 “출렁거리는 수면,완만한 곡면을 이루며 한없이 펼쳐진광야,하늘을 가르듯 지나는 천둥,피부에 와 닿는 기류운동 등의 체험을 녹여 매스에 주입시키는 것이 나의 역할이다”라고 말하곤 했다.이같은 관점은 71년 ‘입방체의 분할’을 시작으로 81년 ‘입체분할’‘평면분할’로 이어졌다.80년대를 관통한 ‘매스의 내면’ 시리즈는 이런 작업흐름의 결정판이다. 한편 이번 추모전에 때맞춰 전국광의 삶과 작품세계를 조명한 일대기 ‘씩웃고 술 한잔-전국광의 조각과 생애’(가나아트)도 나왔다.지은이는 전국광의 아내이자 조각가인 양화선.양씨는 “젊은 시절 남편은 넥타이만 달랑 매고 작가들 앞에서 스트리킹을 하는 등 기인적 행동도 서슴지 않았지만 예술의식만큼은 누구보다 건강했고 시대를 앞서 나갔다”고 회고한다.전시는 7월 9일까지 (02)720-1020. 김종면기자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