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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1 길섶에서/ 벼슬

    “인간은 지위로 평가받는다”고 한 사람은 나폴레옹이다.그의 잣대로 보면 조선시대 대학자인 남명(南冥) 조식(曺植)이나 반계(磻溪) 유형원(柳馨遠)은 존경받지 못할 인물임에 분명하다.이들은 살아생전 벼슬이라고는 해본 적이없기 때문이다.반면에 한말 총리대신을 역임한 이완용(李完用)이나 자유당시절 민의원 의장을 지낸 이기붕(李起鵬)이 추앙을 받아야 한다. 환득환실(患得患失)은 무엇을 얻기 위해 걱정하고, 얻은뒤에는 그것을 잃지 않으려고 근심하는 경우를 이른다.“대개 훌륭한 선비는 벼슬에 나아가기를 어렵게 하고 물러나기를 쉽게 한다.보통의 선비는 쉽게 나아가고 쉽게 물러난다.하등(下等)의 선비는 벼슬에 나아가기를 쉽게 하고물러나는 것을 어렵게 한다.” 중국 춘추시대 제나라 명재상이던 안자(晏子)의 말이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얼마전에 새로 입각한 장관들은 “지위가 높은 사람은 나라의종이요,명성의 종이요,일의 종이다”라는 프란시스 베이컨의 가르침을 되새겨야 한다. 박건승 논설위원
  • [씨줄날줄] ‘쌀 맛’

    “흰 쌀밥에 고깃국을 먹게 해주겠다.” 생전에 북한 김일성(金日成)주석은 북한사람들에게 약속했다.몇십년 전까지 남쪽 서민들의 희망도 그랬다.쌀이 귀하던 시절 어쩌다먹는 쌀밥은 풍요의 상징이었으며 최상의 뿌듯한, 심리적포만감을 주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먹는 일본형(자포니카) 쌀은 인도형보다 길이가 짧고 끈기가 많다.밥을 지으면 기름기가 자르르흘러 군침을 돌게 한다. 푸석푸석한 보리밥보다 쌀밥은 맛이 좋다.밥 맛을 결정짓는 것은 우선 볍씨다.과거 쌀 부족시대에 증산용으로 심었던 통일벼는 굶주림 해소용이었지맛은 별로였다.요즘은 ‘일품’,‘일미’와 ‘남평’ 등고품질에 수확량이 좋은 품종이 다수 등장했다.이 품종들은 전국 쌀 생산량 가운데 24% 정도를 차지한다. 같은 품종이라도 심는 곳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 개화도등 간척지 쌀이 으뜸으로 꼽힌다.경기도 쌀과 이천쌀은 우선 선호대상이 되고 다른 지역 쌀보다 값도 비싸다.그러나경기미는 총생산량중 11.6% 정도에 불과해 속아 사기 십상이다.질소비료를 적게 주면 쌀의 단백질 비중이 줄어 밥맛이 더 좋아진다.일조량이 많거나 홍수로 벼가 쓰러지지 않았을 경우 밥 맛이 더 낫다.또 오래 묵은 쌀보다 갓 수확한 햅쌀이 맛있는 것은 당연하다. 쌀 증산정책이 요즘 자연스레 맛 위주 정책으로 선회하는모양이다. 무엇보다 풍작으로 재고량이 급증,올 연말에는1,000만석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이 물량을 1년간 창고에서 보관하려면 820억원이 든다.80㎏가마당 4,450원꼴이다. 막대한 재고관리비용에다 고기와 빵에 밀려 줄어드는 쌀소비도 증산정책을 퇴색시키고 있다.소비자들은 이제 맛이좋으면 더 비싸도 산다. 가공된 쑥쌀과 까만 쌀(흑미)이멥쌀보다 아주 비싸지만 팔리는 세태다. ‘양보다 맛 위주’ 생산으로 농민들은 발빠르게 전환하고 있다.‘진천 일품쌀’ 등 브랜드까지 띄우려고 한다.생산지역과 함께 품종까지 쌀 포장용기에 표시하는 것이다. 정부는 아직 어정쩡한 입장이다.당국자들은 “흉년이 몇년간 지속되면 쌀이 부족해질 수 있다”며 “증산정책을 포기하는 것은 때이르다”고 밝히지만 여론의 눈치를 보는듯하다.국내 쌀값은 국제시세보다 5∼6배 비싸다.품질마저떨어지면 그야말로 소비자에게 ‘밥맛없는 일’이 될지 모른다.이제 정부도 고품질 위주의 쌀 정책을 소신있게 펴야할 때다. 이상일 논설위원 bruce@
  • 북한 대표 정회장 조문 이후/ 답보 남북관계 극적 돌파구 열리나

    북한의 정주영(鄭周永) 전 현대명예회장에 대한 조문단 파견을 계기로 주춤한 상태이던 남북관계에 돌파구가 마련될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적자 누적으로 난관에 빠져있는 금강산관광사업의 대가 인하 등 현대측과 북한측의 협상이 진전될 전망이다.정부 당국자는 25일 “북측이 금강산관광사업 대가의 인하를묵시적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라고 밝혔다. 지난 13일 장관급회담 연기로 서먹서먹한 상태였던 남북관계가 분단후 첫 조문단 파견으로 분위기 일신 계기를 얻었다는 평가다.또 조문단의 체류기간동안 현대 관계자 등과의의견교환 내용은 앞으로 남북 현안풀이에 긍정적인 역할을할 것으로 기대된다. 당국간 접촉 여부에 대해 정부 당국자들은 “송호경(宋虎景) 아태평화위 부위원장 등 조문단과 정부 당국자 사이에접촉은 없었다”고 부인했다. 그러나 조문단의 서울 체류 때 일부 당국자들과 자연스러운 접근이 있었고 금강산관광사업을 비롯한 남북관계에 대해 의견 교환이 이뤄진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현대 관계자들을 통해 정부의 입장도 충분히 전달됐다는 후문이다. 송 부위원장의 발언도 금강산관광사업과 경협 지속에 대해긍정적인 입장으로 해석된다.송 부위원장은 조문을 마친 뒤정몽구 회장 등 가족들에게 “고인의 뜻을 받들어 생전에이룩하신 사업을 이뤄나가기를 바란다”는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의 말을 전했다. 또 “금강산관광사업이 어떻게될 것 같으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모든 것이 잘될 것”이라고 답했다.그는 “(정주영 회장이) 평양에 오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친히 접견하는가 하면 금강산관광사업도통째로 맡기는 배려를 해주고 개성공업지구도 배려해 줬다”고 분위기를 띄웠다. 정부 당국자들은 최고인민회의,김일성(金日成) 전 주석의생일,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의 러시아 방문 등 4월중산적한 북한의 내부행사가 남북관계 행사 진행에 걸림돌이지만 큰 틀에서 진전엔 차질은 없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한편 현대 관계자들은 다음달 5일 북한의 10기 4차 최고인민회의에서 북측이 금강산 및 개성관광사업의 특별법을 제정할 가능성이 높다고 기대하고 있다. 이석우 주병철기자 swlee@
  • 타계한 경제거목 王회장 정주영씨/ 서산농장에 기념관 건립

    타계한 정주영(鄭周永) 전 현대 명예회장의 추모사업이본격화된다. 우선 ‘정주영 사이버박물관’(www.chungjuyung.pe.kr)이 지난해 11월 오픈한 데 이어 오프라인 박물관인 가족기념관이 세워진다.지난해 정몽구(鄭夢九) 현대·기아차 총괄회장과 정몽헌(鄭夢憲) 현대아산이사회 회장 간의 만남에서 처음 언급됐다.정 전 회장이 생전에 고향처럼 여기던서산농장에 들어선다. 기념관에는 사이버 공간상에 아산관,역사관,자료관,전시관 등 5개 주제별로 전시된 내용이 그대로 구현된다.15년간 사용한 TV와 구두 세 켤레,박정희(朴正熙) 전 대통령의휘호를 비롯, 고인의 개인 소장품 400여점 등 수천 점의자료가 전시될 전망이다. 또 어록집과 영상집을 펴내는 작업이 진행 중인 것으로전해졌다.고인의 파란만장한 일대기를 다룬 영화제작도 검토 중이다. 정 전 회장의 출생과 성장,현대를 만든 과정,대북사업 등을 500여장의 사진으로 엮은 중국어판 화보집 ‘현대지로(現代之路)’,한글판 ‘세기의 가교’,영문판 ‘THE ROAD TO HYUNDAI’에 이어 일본어판 출간도준비하고 있다. 현대는 정 전 명예회장이 생전에 기거했던 방의 생활용품도 기념관에 전시할 것으로 알려졌다.이 방의 책장에는 박경리의 ‘토지’를 비롯한 수백권의 책과 MBC 사극 ‘조선왕조 5백년’,영화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다큐멘터리 ‘북한산은 살아있다’ 등과 대선 당시 연설 장면이담긴 테이프 등이 있다. 주병철기자 bcjoo@
  • 성철스님 생가 복원 “의지 굳으면 영원한 깨달음”

    흔히 성철(性徹)스님과 해인사는 바늘과 실처럼 연상되지만 정작 성철스님의 생가에 대해선 잘 알려지지 않았다.경남 산청군 단성면 묵곡리,엄혜산을 뒤로 하고 앞에 진주남강 지류인 경호천이 내려다보이는 분지에서 성철스님은태어났다. 해인사 성철스님문도회와 산청군은 지난 98년 스님 열반5주기를 맞아 시작한 성철스님 생가 복원공사를 최근 마치고 오는 30일 현지에서 ‘성철대종사 생가복원 및 겁외사(劫外寺·주지 원구스님)창건 회향법회’를 갖는다.올해는스님 탄생 90주년,열반 8주기가 되는 해. 국고보조 16억원과 신도 모금 등 52억을 들여 복원한 생가와 겁외사의 규모는 3,789평.생가는 안채,사랑채,기념관으로 이뤄졌으며 그 옆에 대웅전,선원 쌍검당(雙劒堂),요사채 정오당(正悟堂),누각 벽해루(壁海樓)로 구성된 겁외사가 들어섰다. 성철스님은 1936년 동산(東山)스님을 은사로 출가하기 전까지 이곳에서 24년을 살았다.부친 이상언은 대지주였는데 장남이 출가한 뒤 곧바로 집을 헐고 앞 대나무 숲에 집을 다시 지었다고 한다.이후 스님의 생가터는 논밭으로 남아 있었다. 복원된 생가에는 스님이 30여년간 주석한 해인사 백련암염화실을 재현해놓았다.새벽예불 때마다 바라보던 석굴암부처님 사진과 평소 사용하던 낡은 책상,삿갓 등 일상적인 물건들에서 스님의 체취를 느낄 수 있다.그 옆 오른쪽 방은 모친의 거실,안채 오른편 사랑채는 부친의 방으로 꾸몄다. 기념관에는 스님이 40년동안 입어 누더기가 된 두루마리와 지팡이,덧버선,검정 고무신 등 30여점의 유품이 전시됐다.‘마삼근(馬三斤)’이란 친필 화두와 단성초등학교 시절의 학적부,젊은 시절 읽은 책 목록과 메모도 보인다. 겁외사는 스님이 말년 겨울철에 요양하던 부산의 작은 암자에서 따온 이름.‘시간과 공간 밖에 있는 절’이란 뜻으로,세속을 초월한 영원한 삶을 화두로 평생을 정진한 스님다운 면모가 물씬 풍긴다. 김호석 화백이 그린 성철스님 진영과 불상을 모신 대웅전오른쪽에는 이달 말 조각가 강대철씨가 만든 6m 크기의 청동입상이 들어서게 된다. ‘자기를 바로 봅시다’란 주제로 열리는 30일 법회에선하객들에게 화환대신 20㎏들이 쌀1포씩을 보시받아 산청군내 어려운 주민에게 전달한다. 겁외사는 앞으로 인근 폐교를 임대해 ‘퇴옹수련원’을세워 청소년과 청년 불자들을 위한 선(禪)프로그램을 진행할 계획이다. 스님의 맏상좌 원택(圓澤)스님(조계종 총무원 총무부장)은 “영원한 깨달음을 추구한 스님의 생전 모습을 보여주면서 누구나 의지와 실천이 굳으면 성철스님처럼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는 표본으로 삼고자 생가를 복원했다”고 말했다. 산청 김성호기자 kimus@
  • MBC “’허준’의 저력을 보여주마”

    지난해 50%가 넘는 사극사상 최고 시청률을 기록한 ‘허준’으로 재미를 본 MBC가 후속 사극에 승부를 건다. 26일부터 SBS 대하사극 ‘여인천하’(월·화 오후9시55분)와 같은 시간대에 조선조 풍운아의 일대기를 그린 ‘홍국영’을 맞편성하는 데 이어 오는 9월부터는 조선후기 거상 임상옥의 삶을 다룬 ‘상도’를 선보인다.특히 ‘상도’는 ‘허준’에서 찰떡궁합을 과시했던 이병훈 PD,최완규 작가와유의태역의 탤런트 이순재가 다시 만나 또한번의 인기신화를재현할 수 있을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홍국영은 몰락한 양반의 아들에서 세상을 호령하는 세도가가되는 풍운아 홍국영의 일대기. 영조 말기 세손(정조)의 등극을 둘러싼 암투를 배경으로 왕권 찬탈을 꿈꾸는 야심가 정후겸과의 대결을 50부작으로 그린다. 요즘 급부상중인 탤런트 김상경이 홍국영역을,시트콤 ‘세친구’에서 코믹한 연기로 사랑받은 정웅인이 정후겸역을 맡고이태란은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위해 검술을 배운 뒤 막후에서 홍국영을 돕는 ‘수절녀 서씨’로 출연해 연기변신을 시도한다. ‘야망’이후 7년만에 작가 임충과 손을 잡은 이재갑 PD는“정통극 성격이 짙은 ‘왕건’,여인들의 암투를 그린 ‘여인천하’와 차별화하기 위해 선이 굵으면서도 현대적인 느낌이 물씬한 사극을 만들겠다”는 각오다. 한편 상도는 최인호의 5권짜리 대하소설 ‘상도’(商道)를 40부작으로 영상화한다.밑바닥부터 출발해 조선후기 무역왕으로 이름을 높인 임상옥을 둘러싼 욕망과 사랑이 줄거리. 임상옥은 생전에 엄청난 돈을 벌었지만 죽음을 앞두고는 전재산을 사회에 환원한 실존인물.금전만능주의가 판치는 이시대에 돈의 의미와 진정한 상도를 깨닫게 하겠다는 게 제작진의 기획의도다. 극본을 맡은 작가 최완규는 “‘허준’의 색깔을 탈피하는게 무엇보다 급하다”고 어려움을 털어놓았고 이 PD 역시 “‘허준’ 아류작이라는 소리는 듣기 싫다.일부러라도 ‘허준’과 비슷한 것은 다 빼겠다”는 반응. 하지만 캐스팅 작업부터 ‘허준’의 그림자에서 자유롭지 못한 인상이다.임상옥과 맞서는 개성 상술의 달인 역에 허준의스승으로 나왔던 이순재가 결정됐다.전광렬이 임상옥역에 캐스팅됐다는 보도는 헛소문으로 드러났지만 이도 결국 제작진의 고충을 반증한 셈.어쨌든 ‘전작보다 나은 속편없다’는속설을 뒤집을 수 있을지 관심거리다. 허윤주기자 rara@
  • 위안부할머니 中서 ‘유골 귀환’

    일본군 위안부 출신으로 50여년간 중국땅에서 고향을 그리며 한많은 삶을 살다 숨진 조윤옥(趙允玉·76) 할머니가 생전에 그리워했던 고국땅을 살아서 밟지 못한 채 유골로 돌아오게 된다. ‘대구 정신대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은 중국 지린성 훈춘시의 한 양로원에서 지난달 6일 쓸쓸히 생을 마감한 조 할머니의 유골을 할머니의 조카 조두천씨(43)와 함께 오는9일 국내로 봉환한다고 1일 밝혔다.유골은 조 할머니의 고향인 대구시립 납골당에 안장될 예정이다. 조 할머니는 대구시 남구 대명동에서 살다 가정형편 때문에 8살때 함북 북청의 한 가정집에 입양된 뒤 15살때 일본군위안부로 끌려가 만주와 훈춘 등지로 옮겨 다녀야만 했다. 한국정신대연구소는 98년 현지 조사활동을 통해 조 할머니를 처음 확인했다. 조 할머니는 당시 위안소 관리인이던 일본군인이 임신 방지를 위해 수은이 든 알약을 복용케 하거나 수은을 컵에 담아끓여 그 기체를 몸에 쐬게 했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고발했었다. 대구 황경근기자 kkhwang@
  • ‘義人’이수현씨 유학 日학교 성금 1억8,000여만원 모금

    일본인 취객을 구하려다 목숨을 잃은 이수현(李秀賢)씨의일본어학교 ‘아카몬카이(赤門會)’는 고인의 고귀한 뜻을기리기 위해 1,700만엔(1억8,000여만원)의 성금을 모았다고21일 밝혔다. 생전에 이씨가 유학했던 이 학교는 이씨의 용기를 기리기위해 성금을 모았으며 한국에 있는 이씨의 부모에게 모금한돈과 학교로 배달된 위로의 편지들을 전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수현씨는 지난달 26일 도쿄 신주쿠(新宿) 야마노테센(山手線) 신오쿠보(新大久保)역에서 철로에 떨어진 사카모토 세이코(坂本成晃)씨를 구출하려다 전차에 부딪혀 숨졌다. 도쿄 DPA 연합
  • “살아있다니 이제 여한없어”

    “분명히 살아 있을 거라 믿었습니다.” 15일 밤 대한적십자사 직원으로부터 아내(79)와 두 아들(63,58),두 딸(56,53)이 살아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이제배(李悌培·93) 할아버지는 뜬눈으로 밤을 지새며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함경남도 강천군 용전리가 고향인 이 할아버지는 1·4후퇴때 단신월남했다.미처 가족을 챙길 틈도 없이 급박한 상황에서 밤길을 달려 남행(南行)했던 지난날이 후회스럽고 죄스럽기도 했다.부산에 뿌리내려 살면서 자갈치시장에서 막노동과장사로 고단한 50년을 지내온 이 할아버지이건만 생전에 아내와 4남매를 만나 꼭 “미안하다”는 말을 해주고 싶었다. 월남 후 지금의 아내(72)를 만나 2남1녀를 둔 이 할아버지는 “이제 여한이 없다”고 기뻐했다. “아쉽다면 아버지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건데,이제 생사를 확인했으니 오히려 마음이 편하다”는 이 할아버지는 오는 26일 평양에 가는 100명의 3차 이산가족 방문단에 끼었으면 한다고 마지막 소망을 얘기했다. 황성기기자 marry01@
  • [1950년대 지구촌 신익희선생 여행기](2)

    *佛·獨등 서유럽 9개국 순방. UN군 우방국을 찾아 사의를 표하는 제2의 임무를 위해 낙위(諾威·노르웨이)의 오슬로와 서전(瑞典·스웨덴)을 거쳐 6월12일 정말(丁抹·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에 도착했다. 뻬이콘(베이컨)을 만드는데 가서 보니까 낳은지 8개월쯤 되는 어린 ‘도야지’를 잡아서 만들었다.목장 주인은 비밀을알려주겠다며 “새끼가 태어난지 2∼3일만에 다른 곳으로 데려가 인공으로 젖을 먹여 기르면 1년에 2번밖에 새끼를 낳지못하는 어미 도야지가 새끼를 3번 낳을 수 있다”고 말했다. 15일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와서 비행기를 바꿔 타고 화란(和蘭·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으로 향했다. 헤이그에서는 애국열사 이준(李儁) 선생의 묘소를 찾았다. 묘지 이름이 ‘힐 오브 뉴오크’라고 하니 신상릉(新橡陵)인셈이다. 마침 이역(異域)의 향수를 자아내는 궂은 비가 부슬부슬 내렸다.묘 앞에 서서 눈을 감으니 47년 전 선생이 순국하시던 때가 떠올랐다.일본 제국주의의 흉도(凶濤)는 일거에우리나라를 병탄하려 하였다.1905년 소위 을사보호조약으로우리나라는 이미 망한 것이다. 선생의 비문은 영문으로 ‘이준 선생은 1858년 한국 함경남도 북청에서 출생하여 1907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서거하다’라고 쓰여 있었다.중간에 한자로 ‘李儁’이라고 표기돼있는데 필적으로 보아 선생의 생전 동지이던 이상설(李相卨)선생의 친필인 것이 분명하다.한시가 떠오른다. 壯志未酬一身輕 宇宙長留萬古名 我來今讀墓前碑 後人不禁追慕情 ‘큰 뜻을 품었으나 이루지 못하고 몸을 던졌으니,그 이름이 우주에 오래토록 머물 것이다.내가 지금 와서 묘앞의 비를 읽으니 후세 사람들은 추모의 정을 금하지 못하겠구나.’ 선생의 유골을 파서 본국으로 가져 가자는 의견도 있었으나이준 선생의 묘가 여기 있는 이유가 알려져야 하기에 말렸다. 20일 룩셈부르크를 떠나서 백이의(白耳義·벨기에)를 거쳐불란서(佛蘭西·프랑스)에 왔다.파리공항에서 전규홍(全奎弘)공사가 맞았다. 개스톤 몬너빌 상원의장은 불란서 식민지인 남미 혼혈에 흑인 계통 신사로 언변과 풍채가 상당한 장년 정치가였다.에드워드 해리오 하원의장은 내가 한국의 사정을 말할 때마다 “트레비용”을 연발하니 그것은 우리말로 “옳거니 과연 그렇지요”라는 말이다. 내 나라 일에 바쁜 나로서 남의 나라 이야기를 장황하게 하고 싶지 않으나 이 나라는 나라 일에 성실한 책임자가 적고정부 인사라는 이들은 무슨 일이 있으면 국외로 도피할 준비를 하고 있다 하니 이 나라의 전도(前途)가 어렵다는 생각이들었다. 파리의 밤은 주록등홍(酒綠燈紅).술은 푸르고 등불은 붉으며 미려한 부인들이 곱게 단장하고 밤을 낮 삼아 삼삼오오떼를 지어 몰려 다니니 파리는 과연 향락의 도시인 동시에불란서를 좀먹는 죄악의 도시다.경계의 거울로 삼지 않을 수없다. 이즈음 본국에서는 이승만 대통령께서 통일없는 휴전을 반대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과감한 영단으로 반공포로를 석방했다. 이태리(伊太利·이탈리아) 로마에는 7월2일 도착했다.가톨릭 법황(法皇·교황)의 나라인 바티칸이라는 독립국이 특이하다.인구 1,000여명의 독립국 형태로 있으면서 법황이 황제노릇을 한다. 피우스 법황은 우리나라에 대해 많은관심을갖고 있었고 친절하게 대해 주었다.법황은 “한국에 대하여많은 도움을 못 주어 대단히 미안하다.힘 닿는 데까지 노력하겠다.고난 많이 받은 한국은 응당 원조해야 할 것이다”라면서 친절하고 정다운 말을 하였다.히틀러나 무솔리니가 전쟁 전에 법황의 평화 권고에 좀더 귀를 기울이고 이성적으로처리했다면 수백만 인류를 전화의 불구덩이에 몰아넣지 아니하였을 것이요,좀더 조기강화(早期講和)를 하였어도 그 화를 감소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종교를 믿지 아니하고 독재의폭군이던 무솔리니도 법황에게만은 경의를 표한 흔적이 있다. 그것은 전 세계에 널려있는 가톨릭 교도의 여론을 계산해넣은 정치적 고려가 아닌가 한다. 정리 안동환기자sunstory@
  • [씨줄날줄] 尹東柱 문학상

    고 문익환(文益煥) 목사는 생전에 윤동주(尹東柱) 추모의글에서 그를 저항시인이라고 하는 데 저항을 느낀다고 했다. ‘서시’(序詩) ‘별 헤는 밤’ 등 그의 절창들 어디에도 미움이나 오기가 보이지 않을 뿐더러 무엇보다 그의 천성이 고요하고 내면적인 사람이었다는 것이다.만주 북간도에서 소학교 6년을 같이 다니면서 문학,민족의식,기독교 신앙에 서로깊은 영감을 나눈 문 목사는 “그는 친구들 사이에 말이 없는 사람으로 통했지만 아무도 그를 건방지다거나 교만한 사람이라고 보지 않았다”고 했다.“그의 눈은 항상 순수를 찾아 하늘을 더듬는 것 같았고 모든 대립은 그에게 와서는 해소됐다”는 것이 문 목사가 기억하는 윤동주다.그럼에도 불구하고 후학들이 “그의 저항정신은 불멸의 전형”이라고 하는 것은 그의 절창에서 조선민중의 아픔이 절절이 묻어나기때문인 것으로 본다. 윤동주는 1943년 7월,일본 경찰에 친구 송몽규와 함께 독립운동 죄목으로 체포됐다.이듬해 6월,2년형을 언도받고 일본후쿠오카 형무소에 수감돼 1945년 2월 16일 28살의나이로감옥 안에서 숨졌다.일제가 항일과 관련,어떤 결사체에도 가담한 일이 없는 그를 가두고 끝내는 옥사하게 만든 것도 그의 인품처럼 담담한 문체 속에 민중의 화산맥과 맞닿은 어떤힘이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 윤동주의 고결한 인품과 시는 일본인들도 흠모하는 사람이많다.1998년 광복절을 앞두고 나온 ‘일본 지성인들이 사랑하는 윤동주’에는 이우가이 미쓰히로(犬養光博) 목사 등 일본 지식인들이 윤동주를 향한 사모의 마음과 일본의 과거사를 반성하는 글을 실었다.“조선어 사용을 금하는 상황에서조선어로 시를 쓰고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바랐고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하면서’ 살아가고자 했던 윤동주를 죽인것은 일본인과 일본 정부였다”고. 윤동주의 모교인 연세대학교가 오는 8월 원주 캠퍼스에서‘윤동주 백일장’을 열고 ‘윤동주 문학상’을 제정하겠다고 한다.윤 시인이 1년 정도 다닌 일본 도시사(同志社)대학에서도 윤동주 시비를 세운다는 소식이다.연세대학교에 ‘윤동주시비’가 있고 문단에 윤동주 문학상도 있지만 아름다운 사람을 기리는 행사는 더욱 많아야겠다. 김재성 논설위원 jskim@
  • 월북 의열단장 김원봉 여동생 이산가족 상봉신청

    일제때 중국에서 광복운동을 하다 해방후 월북한 약산(若山) 김원봉(金元鳳)의 여동생 학봉(學鳳·69·경남 밀양시 삼문동 140의 10)씨가 북한 거주 이산가족 상봉신청을 낸 것으로 8일 뒤늦게 확인됐다. 고향인 밀양에서 ‘월북자 가족’이라는 이유로 50여년을숨죽여 살아오던 학봉씨는 지난해 이산가족 상봉 장면을 보고 올케 최동선씨와 조카 중건(56)·철건(47)형제를 만나기위해 삼문동사무소에 신청서를 냈다. 김원봉은 1898년 밀양에서 태어나 일찌기 중국으로 건너가의열단 단장과 조선의용대장,광복군부사령 등을 지낸 항일무장투쟁의 거물.해방후 월북,노동상을 거쳐 57년 최고인민회의 상임위 부위원장까지 올랐으나 다음해 숙청됐다. 지난 32년 아버지 김주익(金周益)·어머니 이경념(李京念)씨의 11남매(9남2녀)중 막내로 태어난 학봉씨는 큰 오빠의얼굴도 모른 채 자랐다.그녀가 초등학교 6학년이던 46년 2월 이국땅을 떠돌던 오빠가 광복을 맞아 고향을 찾았을때 처음 얼굴을 보았다.다음해 설날 다시 와 제사를 모시고 가면서학용품을 사주고 간것이 남매의 마지막 만남이었다. 학봉씨는 “오빠가 ‘씩씩하게 자라서 나라를 위해 큰 일을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며 “서울로 가면서 영어사전과지우개 달린 연필을 사줬다”고 회고했다. 학봉씨는 큰 오빠의 월북과 6·25전쟁을 거치면서 숱한 고초를 겪다 결혼,3남2녀를 두었으나 32살때인 64년 남편과도사별,생활고를 이기지 못해 세아들을 고아원에 맡기고 딸 둘만 데리고 어렵게 살아왔다. 이후 독립운동을 했던 교육계 인사의 보증으로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하면서 생활의 안정을 찾았다. 학봉씨는 “오빠가 무장투쟁을 이끈 독립투사였지만 월북했다는 이유로 고향에 남은 가족들은 서럽고 한 많은 생을 살았다”며 “생전에 조카들이라도 만난다면 여한이 없겠다”고 말했다. 밀양 이정규기자 jeong@
  • [굄돌] 이름

    누구에게나,그 어느 것에나 이름이 있다.밤하늘의 작은 별들에도,야산에 널린 ‘이름 모를’ 들풀들에도 이름이 있다.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이름을 통해 제 존재를 증명한다.구체적인 이름으로 호명되기 전에는 제대로 존재 값을 알지 못한다.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다.그러니 사람과 사람,사람과 사물 사이의 관계 역시 서로 이름 부르기로부터 비롯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일찍이 김춘수 시인이 노래하지 않았던가.“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그는 다만/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중략)//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것처럼/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이름이 곧 그 사람이다.이름이 그 존재를 만든다.이름을 지어 출생신고를 했을 때,비로소 그 존재는 사회적으로 인정된다.이름의 출생신고에서 시작해 사망신고로 끝나는 게 인생이다.그러니 우리네 삶을 곧 이름을 위한 삶이라고 해도 좋다.좋은 이름으로 불리고,썩 괜찮은 이름을 남기기 위한 노력이 삶의 진실과 통한다. 그러나 그게 쉽지 않다.살아서 좋은 이름으로 불리기도 어렵거니와,죽어서 아름다운 이름을 남기기는 더 어렵다. 작년 이맘 때 나는 좋은 이름으로 살고 아름다운 방식으로이름을 남긴 영혼을 만난 적이 있다.캐나다의 벤쿠버 여행중 어느 바닷가 공원 벤치에서였다.바다를 내려보다 문득 벤치의 등받이를 보니 동판에 새겨진 글귀가 있었다.아마도 그 지역의 관리였나 보다.이름과 생몰 연도가 적혀 있고,작은글씨로 그가 생전에 이 지역 사람들을 위해 했던 훌륭한 봉사의 내용들이 기록되어 있었다.죽은 그의 이름을 기리는 일종의 송덕(頌德) 의자였던 것이다. 신선한 충격이었다.얼마나 진실하고 아름답고 또 선한가.멋진 방식의 이름 남기기였다.살아서 남을 위해 봉사하던 그의 이름은 죽어서,지친 다리를 편히 쉬게 하는 의자가 되었다. 가장 낮지만 가장 높게 이름을 칭송하고 나누는 방식이 아닌가.저간에 우리가 흔히 봐왔던 송덕비는 한결같이 높은 방식이었다.보는 이들로 하여금 높이 우러러보게 강요한 측면마저 없지 않았다.송덕비에 비해 송덕 의자는 차원 높은 이름남기기의 역설을보여준다. 그것은 죽어서 살고,낮춤으로써 높아지고,남을 위함으로써나를 위하는,삶의 근원적인 역설과도 통한다. 우찬제 서강대교수 문학비평가
  • 장기기증 등록 10년새 18배 증가

    우리나라 장기기증 등록자는 91년 3,692명에서 2000년 6만6,180명으로 18배나 증가했다.생전에 신장을 기증한 사람은 한창 일할 나이인30,40대가 가장 많은 것으로 집계됐다. 91년 창립돼 장기기증 운동의 물꼬를 튼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본부장 朴鎭卓)는 4일 창립 10주년을 맞아 이같은 내용의 우리나라 장기기증 및 이식 실태를 밝혔다.장기기증운동본부는 8일 오후 6시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크리스탈볼룸에서 역대 장기기증자 등이 참석한가운데 10주년 기념식을 갖는다. ◆장기기증 등록자수 추이=사후에 기증해야 하는 각막 기증 희망 등록자는 91년 1,430명에서 98년 8,134명,지난해 2만3,502명으로 비약적인 증가세를 보였다.뇌사시 장기기증 약속자도 91년 1,360명에서 98년 6,278명,지난해 1만8,638명으로 늘어났다(표 참조).전체적으로는 91년에 비해 17.9배가 늘었다.98년 이후 등록자 수가 크게 증가한것은 뇌사 인정 등으로 장기 기증에 대한 거부감이 줄어든 데다 16살 이상의 장기 이식을 허용하는 법안이 통과되는 등 사회환경이 변화됐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됐다.그러나 생전에 신장을 기증하기로 약속한 6,877명중 실제 기증을 한 사람은 575명으로 기증률이 8.3%에 머무는 것으로 나타났다(표의 신장 이식인 현황은 뇌사자 신장 이식 건수 포함). 운동본부 박진탁 본부장은 “기증인과 이식인 사이에 거부 반응이없으려면 조직형이 맞아야 하는 등 조건이 까다로운 데다 기증 절차가 복잡해 마음을 바꾸는 경우가 많은 탓”이라고 말했다. ◆신장 기증인 실태=생전에 신장을 기증한 575건을 분석한 결과 연령별로 30,40대가 가장 많은 것으로 집계돼 자신의 일을 스스로 결정하고 삶을 뒤돌아보는 나이인 중년층이 장기이식에 대해 더 능동적이고 개방적인 것으로 나타났다.40대가 35.3%,30대가 34.6%였으나 20대는 12.5%에 불과했다. 직업별로는 가정주부가 전체의 21.6%인 124명으로 가장 많았다.회사원이 19.5%,목사 등 종교인이 14%였으며,공무원과 전문직은 각각 2.6%,2.9%로 낮았다.여성은 가정주부가 대부분이었다. 거주 지역별로는 서울이 170명으로 29.6%,경기가 17.2%,인천이 10.6%로 전체의 57.4%를 차지해 수도권 지역에 몰려 있었다.운동본부측은 이식을 할 수 있는 대형종합병원들이 수도권 지역에 몰려 있고 지방일수록 장기기증에 대해 더 보수적인 성향을 나타내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했다. ◆이식인 실태=이식 전 환자들의 투석기간은 1∼2년이 53%로 가장 많아 이때 환자들이 이식에 대해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는 것으로 분석됐다. 혈액형은 기증인과 이식인 모두 A형이 많아 눈길을 끌었다.기증인가운데 A형이 33.9%였고 이식인도 A형이 36.3%에 달했다. 운동본부는 매년 골수이식이 필요한 3,000여명의 환자들이 새롭게나타나고 현재 신장 이식이 필요한 환자만 2만여명에 이르는 것으로추산하고 있다. 안동환기자
  • 조국품에 돌아온 義人 이수현

    용기 있는 행동으로 한·일 양국 국민을 감동시킨 고 이수현(李秀賢·27·고려대 무역학과 4년 휴학)씨의 유해가 30일 오후 고향인 부산에 도착,시민과 지인 100여명의 슬픔 속에 연제구 연산9동 정수사(주지 金圓光스님)에 안치됐다. 유해 봉안식에는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비서관을 보내 애도의 뜻을 전했으며 임우영(林雨榮)고려대 부총장,고려대 학생,100여명의 시민들이 이씨의 명복을 빌었다. ◆이씨의 영정과 유골은 아버지 이성대(李盛大·64·부산 연제구 연산9동),어머니 신윤찬(辛潤贊·54)씨의 품에 안겨 이날 오후 1시55분 일본 나리타공항에서 대한항공 KE714편으로 출발,오후 3시55분쯤 김해공항에 안착했다. 보자기로 싼 유해는 아버지 이성대씨가,영정은 외삼촌 신명교씨(44)가 안고 나와 공항 입국장에서 사촌동생 이수민씨(21)가 넘겨받아 안은 채 공항을 빠져 나왔다.입국장을 나서는 동안 이씨의 어머니 신씨는 이웃 주민을 만나자 “에이 이눔아,에미 애비 어쩌고 니가 먼저간다고.에이 이눔아”라며 울음을 터뜨려 주위를 숙연케 했다. 공항 주차장에 마련된 임시 분향소에서 고려대 학생대표 박형선씨(26·무역학과 4년)는 “죽음보다 욕된 삶이 있는가 하면 삶보다 영광스러운 죽음도 있다”면서 “학형의 삶은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라고 추도했다.10여분간 추도식이 진행된 뒤 이씨 유해는 곧바로 자택으로 향했다. ◆이날 오후 5시22분쯤 이씨 유해는 부산 연제구 연산9동 동서그린아파트 자택에 도착하자 이웃주민 50여명이 달려나와 위로의 말을 전했다.유해는 다시 아버지 이씨 품에 안겨 생전에 자신의 공부방이었던작은방 책상으로 옮겨졌다가 “수현이 신을 신어라,이제 가자”는 정수사 주지 원광스님의 안내로 10여분 만에 집을 나섰다. 이어 이씨 유해가 집에서 200여m 가량 떨어진 정수사 2층 법당으로곧장 도착,영가입제에 들어갔다. 영가입제는 조문객 300여명이 참여한 가운데 유해인도에 이어 천수경과 아미타경 봉독,영가안치 등의 순으로 1시간 가량 진행됐다. ◆정부는 30일 이씨를 의사자로 선정하고 국민훈장을 추서했다.이 조치로 이씨 유가족에게는 일시 보상금 1억2,840만원과 의료·교육·장례보상금,취업 가산점 등의 혜택이 주어지게 된다.이에 앞서 김대중대통령은 오전 열린 국무회의에서 “이씨에 대해서는 정부가 할 수있는 최대한의 보상을 하라고 지시했다.이씨 모교인 부산 내성고(교장 韓景東·58)는 30일 고귀한 희생정신을 기리고 후배들의 산교육장으로 활용하기 위해 추모비 건립과 장학재단 설립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씨의 유해를 떠나보낸 일본에서는 이날도 이씨의 의로운 행동에대한 상찬과 애도가 끊이지 않았다. 일본 열도 남단인 오키나와의 류큐신보는 “목숨을 건 2명의 정의감,행동에 많은 사람들이 감동하고 있다”면서 “당신들의 용기는 결코 잊을 수 없습니다”라고 추도했다. 한편 모리 요시로(森喜朗)일본총리는 이날 이씨의 의로운 죽음을 기린 메시지를 김대중 대통령에게 보내는 한편 이씨의 의로운 행동을기리기 위해 일본정부 차원에서 감사의 뜻을 담은 목배(木杯·나무잔)를 수여하기로 했다. 부산 이기철 오풍연기자 chuli@
  • 2월의 호국인물 권영도 경위

    전쟁기념관은 2월의 호국인물로 권영도(權永道·1926∼1952) 경위를 선정했다. 1926년 7월 경남 산청군에서 출생한 권 경위는 1941년 금서초등학교를 졸업한후 서당에서 한학을 배웠다.6.25전쟁이 발발하자 경남경찰청 관내 서하특공대에 입대했다. 1952년 7월 산청군 웅석봉 일대의 게릴라 소탕을 위해 1개 중대 규모의 전투경찰대를 투입했으나,적의 완강한 저항으로 실패하자 그는 5명의 특공대를 조직해 요새를 공격,적을 섬멸하고 26세의 나이로 전사했다.정부는 게릴라 소탕작전에 공을 세운 공적을 기려 경위로 추서했으며,생전에 화랑무공훈장을 수여했다.헌양행사는 2월2일 오전 10시30분 호국추모실에서 거행된다.노주석기자 joo@
  • [웰컴 투 코리아](2)타이완 관광객들

    상하(常夏)의 나라에서 온 그녀들은 영하 15도의 냉혹한 수은주에도마냥 들떠있는 게 꼭 어린아이들 같았다. 16일 오전 서울 잠실의 한 놀이공원 입구.타이완 여행객 린메이핑(林美萍·30)과 처우리핑(邱麗萍·31)은 놀이공원을 찾은 사람 중 가장두터운 겨울파카를 입고 있었다.이들은 놀이기구들을 여러가지 타려는 마음에 쉴새없이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의료기기 벤처기업인 메디슨의 타이완 현지판매법인에 근무하는 동료인 두 사람은 지난 12일 서울에 난생 처음 왔다. 이번 여행은 포상휴가를 얻어 사장과 직장동료 15명과 함께 왔다.호텔에 여장을 풀자마자 이들은 동대문 의류타운으로 내달렸다. 타이완 의류 중에 동대문 쪽에서 들여온 것들이 많아서인지,옷 품질은 비슷비슷하더란다.상인이 6만5,000원을 불렀는데 이를 ‘후려쳐’4만원에 샀다고 린메이핑은 자랑이 대단하다.“한국인도 그렇게 깎기 힘들다”고 추켜세웠더니 대답이 걸작이다.“그렇게 깎았지만 그마저도 바가지당한 것인 지 모르잖아요.”이들은 어떻게 물건값을 흥정했을까.상인 중에 간단한 중국어를 할줄 아는 분이 있었고 도저히 안될 때는 계산기를 두드려가며 의사소통을 했단다. 13일에는 강원도 철원 제2땅굴과 월정리역,백마고지 등을 돌아보았다.“남북한이 갈라진 것처럼 타이완도 중국과 분단된 상태잖아요.같은처지의 애통함같은 것을 느꼈어요.”돌아오는 길에는 온천에 들러 ‘때밀이’를 서비스받았다.타이완에도사우나, 헬스클럽 같은 것은 많지만 인심좋고 ‘힘센’ 아주머니에게온 몸을 맡긴 채 ‘세탁당한’ 기분은 아주 특이하고도 산뜻한 경험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다음날은 강원도 홍천의 한 스키장에서 하루 종일 스키를 탔다.처우리핑은 “생전 처음으로 눈이란 것을 보았는데 그것도 아주 많이,실컷 보았습니다.아마 제 평생 볼 눈을 다 본 것 같아요.너무 좋아요. 돌아가면 친구나 친척들에게 마음놓고 자랑할 거에요”라고 말한다. 린메이핑은 “나중엔 힘이 부쳐 스키장비를 반납할 정도였다”고 거든다.사람이 너무 많아,신고온 신발을 넣어두는 상자를 찾느라 한참애를 먹었고 날씨가 워낙 추워서인지 국제공중전화가 잘작동하지 않은 게 이들의 불만사항. 그녀는 스키장의 콘도 규모가 엄청나게 크고 화려한 데 놀랐고 버스전용차선제 덕분에 교통난을 겪지 않았다며 “한국 정부가 관광객들에 대해 많이 배려하고 있는 것 같다”고 흡족해했다. 15일에는 경복궁과 청와대 분수대앞,쇼핑,워커힐 쇼와 카지노 구경으로 하루를 보냈다. 한국 음식은 어땠을까.철원에서 맛본 닭도리탕의 매콤한 맛은 평생못 잊을 것 같다고 처우리핑은 입맛을 다셨다.삼계탕,불고기,라면,김치 맛 또한 일품이었다고.다음 기회에 온다면 제주도와 부산을 꼭 방문하고 싶다고 했다.돌아가면 친구들에게 꼭 한국을 가보라고 권할것이라고 했는데 단순히 기분좋으라고 하는 말은 아니었다.타이완 여행객들은 까다로운 편이다.여행사를 운영하는 화교출신 왕덕신 사장은 “홍콩인은 자유분방하고 싱가포르 사람은 권리를 따지지만 기본적인 것만 충족되면 이런저런 말이 없다.중국인은 적당히만 해주면만족하고 타이완인들은 요구가 아주 많다”고 동남아 여행객들을 총평했다. 왕 사장의 걱정은 눈과 스키를 즐기기위해 겨울에 우리나라를 찾는동남아여행객들을 스키리조트나 콘도 등에서 재울 수 없다는 것.회원들을 우대하다보니 아무래도 여행객들의 몫은 작아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해를 넘길수록 관광객들은 늘어나는데 숙박시설은 따라잡지 못해 장급 여관을 전전하는 사례도 생겨나고 있다.역시 화교출신 가이드 공헌흥씨는 “몇년전만 해도 콘도 식당 등의 메뉴판에 한자가 표기돼 있지 않아 불편을 제기하는 이들이 많았다”면서 “하지만 요즘나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임병선기자 bsnim@
  • 네티즌 75% “한국에 다시 태어나고 싶지 않다”

    10명중 7명 이상의 네티즌은 “한국에서 다시 태어나고 싶어 하지 않는 것”으로 조사됐다. 대한매일 뉴스넷(www.kdaily.com)이 지난 4일부터 일주일간 네티즌을 상대로 “만약 당신이 다시 태어난다면 한국사람으로 태어나고 싶습니까?”라는 여론조사를 실시한 바에 따르면총 응답자 6,098명 가운데 4,525명(75%)이 ‘아니오’라고 답했다. 다시 태어나도 한국에서라고 답한 사람은 10명중 3명도 안되는 전체의 25%(1,573명)에 불과했다. ID가 kim6998인 네티즌은 “이기주의와 무질서,문화환경의 빈곤함 속에서 다시 살고싶지 않다”고 말했다.또 ‘돌계단’은 “장애인도 마음편히 다닐 수 있는 나라라면 어디든 좋다”고 꼬집었다.특히 많은네티즌들이 열악한 교육 환경을 한국이 싫은 이유로 꼽았다.교육환경에 대한 불만은 세대를 불문하고 다양한 연령층에서 쏟아져 나왔다. 또 이전투구의 정치현실과 나빠진 경제사정도 한국에서 다시 태어나기 싫어하는 이유로 비중있게 지목됐다. 반면 ‘다시 태어나도 한국이 좋다.’는 네티즌들도 게시판에서 활발하게 자기 주장을 폈다.한 네티즌(kktkeks)은 “조금 어렵더라도 정많고 서로 도우면서 살아갈 수 있는 한국이 좋다”고 말했고,‘백의인’은 “내 생전에 통일이 안된다면 다음에도 다시 한국에 태어나서,한국인으로서 통일을 맞이하고 싶다”며 통일에 대한 간절한 염원을전했다. 또 한 독자(haseoul)는 “된장과 김치의 그 맛을 어찌 포기하리”라며 한국에 다시 태어나고 싶은 이색 이유를 대기도 했다. 이번 설문은 네티즌들에게 큰 호응을 불러 모았는데,신년 벽두부터우리 사회가 맞닥뜨린 어려운 상황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즉 그만큼‘우리나라’에 대해 할 말이 많다는 것을 반증하는 대목이다.무엇보다 “돈과 권력만 있으면 끝없이 다시 태어나고 싶은 나라가 한국이다”라는 네티즌들의 토로는 가슴 깊게 와닿는 말일 법하다. 김세진 기자 torquey@
  • 루스벨트 ‘휠체어 동상’6년 투쟁끝 내일 제막

    ‘뉴딜정책’으로 미국을 경제공황에서 이끌어낸 프랭클린 D 루스벨트 32대 미 대통령.1921년 39살 때 앓은 소아마비 장애를 극복,더 높이 평가받는 루즈벨트 대통령의 실물 크기 ‘휠체어 동상’이 10일워싱턴 DC 루스벨트 기념관에서 제막된다고 워싱턴포스트가 7일 보도했다. 어쩌면 당연해 보이는 ‘휠체어 동상’의 제막은 미 장애인 단체들이 지난 6년간 투쟁 끝에 얻어낸 결실.95년 피터 코플러라는 한 주식투자가가 장애를 극복한 루스벨트의 인간적 모습을 묘사하는 동상 건립에 100만달러를 기부하고 장애인 단체들이 적극 동조하고 나섰다. 그러나 루스벨트의 손자인 데이비드 루스벨트 등이 포함된 추모위원회측은 “생전에 장애가 공개되는 것을 원치 않은 고인의 뜻애 어긋나는 행위”라며 반대,논쟁을 거듭해왔다. 월남전에서 어깨와 팔에 장애를 입은 밥 돌 전 상원의원과 지미 카터·조지 부시 등 전 대통령,그리고 많은 의회 지도자들이 루스벨트의 지도력은 “장애에도 불구하고가 아니라 ‘장애 때문에 더 개발된것”이라고 힘을 실어주면서 휠체어 동상 쪽으로 대세가 굳어졌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재임기간(1933∼45년) 자신의 장애 노출을 극도로 꺼렸다.현재 국립문서보관서에 남아 있는 1만여장의 사진중 4장만이 휠체어를 탄 모습이다.97년 개관된 기념관의 3m 높이 동상 역시어깨 위에 걸친 외투로 휠체어를 가리고 있다. 전미장애인기구의 앨런 라이히 총재는 7일 “동상 제막은 장애를 가리는 부끄러움의 외투를 벗어던지는 것”이라며 의의를 강조했다.그는 “초대형 링컨 대통령상이나 제퍼슨 동상에 비해 턱없이 작게 보이는 실물 크기 동상을 만든 것도 그의 인간적인 왜소함과 신체적인장애를 돋보이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10일 루스벨트 동상의 제막식에는 빌 클린턴 대통령이 참석,직접 제막한다.동상 옆에는 루스벨트의 수족 역할을 한 부인 엘리너 여사의어록 비석도 함께 공개된다.“프랭클린의 질병은 그에게 전에는 갖지못했던 힘과 용기를 가져다줬다. 삶의 근원을 숙고하게 했고 무한한인내와 신념이라는 가장 위대한 교훈을 얻게 만들었다.”김수정기자 crystal@
  • 北신년사 ‘깜짝내용’ 있을까

    새해 첫날인 1일 북한의 신년사는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이 직접발표할까. 남북 정상회담을 계기로 전면에 나서고 있는 김 위원장의등장이 주목거리다.그가 직접 나선다면 경제개발계획 등 대대적인 정책 변화 등이 발표될 가능성이 높다.김일성(金日成)전 주석도 생전주요 정책변화의 경우 직접 발표했다. 최근 들어 김 위원장을 ‘21세기 수령’으로 부르는 등 내년부터 ‘유훈통치’ 대신 ‘김정일식 통치’를 전면에 내세울 것을 예고하고있다.이에 대해 통일부 당국자는 “일단 등장하면 앞으로도 계속 그와 같은 형식이 적용돼 신비주의가 사라질 수 있다”며 “나올 가능성이 낮다”고 신중한 자세다. 신년사 내용도 관심거리.남북 정상회담 이후 남북관계가 급변하고있고 북한이 이탈리아·영국 등 서방 국가와 수교하는 등 한반도를둘러싼 분위기에 커다란 변화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일단 신년사에는 남북 공동선언 이행에 관한 내용에 많은 부분이 할애될 것으로 전망된다.지난 27일 평양방송이 공동선언을 ‘조국 통일의 이정표’라 부른 점에서 더욱 그렇다.남북 정상회담 이후 남북이상호 비난을 자제하고 있다는 점에서 올해 신년사에 등장한 ‘외세와야합한 사대매국 세력의 반민족적, 반통일적 행위를 절대로 용납하지말아야 한다’ 등의 강경한 표현도 사라질 것으로 예측된다. 그러나북한의 통일 기조인 ‘조국 통일 3대헌장에 의한 조국 통일’은 계속강조될 전망이다. 전경하기자 lark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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