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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선후보 이사람이 좋다/ 정몽준-권영길 후보

    ■정몽준 후보는 - ‘깨끗한 정치' 전도사 이번에 나온 정몽준(鄭夢準·MJ) 의원의 책 ‘꿈은 이루어진다’를 읽다가 뜻밖의 구절을 발견하고 어,이런 걸 왜? 하고 조금은 당혹스러웠다.“아내는 아이들이 성장하자,뜻있는 분들과 함께 우리나라의 ‘옛’것을 ‘올’바로 알리자는 ‘예올회’를 만들어 문화재 보존사업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예올회라는 이름은 같은 동네에 살고 있는 소설가 윤후명 씨가 지어주었다).”이렇게 내 이름이 소개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그의 아내의 일로 그와 연결되어 있음이 분명히 드러난 셈이 된다.내가 ‘예올’의 이름을 지은 것은 틀린 말은 아니다.‘같은 동네에 살고 있는’ 것도 틀린 말은 아니다.그러나 나는 ‘예올’에 대해서도,MJ에 대해서도 그리 소상하게 알고 있는 편은 아니다.나는 그와 불과 몇 번밖에 만난 적이 없다. 언젠가 MJ가 어느 모임에서 일부러 내게 다가와 “이제 뵙는군요.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하고 내 술잔을 채운 적이 있었다.자유스러운 모임이어서 이 테이블 저 테이블을 오가며덕담을 나누는 자리였다.나는 “아,예.” 하고 뭐 별달리 할 말이 없었다.그의 키가 보통보다 큰 데다 나는 보통보다 작아서 유난히 비교되는 게 좀 거북했을까.그러자 그는 “언제 한잔하지요.” 하고 말했다.그런데 그 호의에 대해서도 나는 “전 막걸리만 마십니다.” 하고 퉁명스럽게 받았다.이 무슨 매너인가.더군다나 나는 맥주를 주로 마시지 않는가.하기야 평생 백면서생 야인으로 살아온 나는 그런 자리에서는 말 그대로 ‘꿔다 놓은 보릿자루’였다.내 대답에 그는 머쓱한 표정으로 돌아가고 말았다.남들에게는 대단치 않은 일이겠지만,그 첫 만남은 내게 ‘꿔다 놓은 보릿자루’로서의 매너를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고,또 그에게 뭔가 부담감을 갖는 계기가 되었다. 내가 그에게 부담감을 갖는다는 건,그 무렵 그가 대선에 나오려는 눈치인것 같아 은근히 내 마음이 마뜩찮아 한 데서도 찾을 수 있을 것이다.내 생각으로는 모든 정치인들은,대선 주자들은 ‘정쟁’만 일삼고 ‘정권 야욕’에만 물불 못 가리는 사람들 같아 보였다.그 심정이 애꿎게 MJ에게 그대로 향했던 것이다.그의 말마따나 “다른 이들보다 더 많은 기회를 가질 수 있었던” 사람이 정치까지? 나는 비관적이었다.정치가 왜 그렇게 국민이 외면하고 질타하는 대표적인 장(場)이 되었는가.다른 사람의 말은 차치하고라도 그의 표현을 직접 빌려본다. “정치의 중요한 기능 가운데 하나는 여러 집단 사이의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일이다.싸움을 말리고 얽힌 사태를 푸는 것이 정치의 본디 역할이다.그런데 한국 정치인들은 싸움을 말리기는커녕 자기들끼리 싸움판을 벌이는 데 주력하는 형국이다.” 그가 말하고 있어서가 아니라 이 정도는 누구나 아는 이야기일 뿐이다.그런데도 지켜지지 않고,하루도 빠짐없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나는 그가 대통령직에 연연한 사람이기보다 우리나라 문화를 위해 무엇인가 큰 역할을 하는 사람이기를 진정 바랐다.현재 우리 주변에 널려 있는 이 부박하고 실망스러운 삶의 형태는 경제가 문화를 도외시한 채 저 혼자 질주하는 ‘돈이 최고’의 슬로건에 근거한다고 보았던 것이다.그러므로 우리 경제를 이끈 당사자의 한 사람으로서 마땅히 문화적 소명의식을 가질 때가 되었다고 보았던 것이다.정치고 경제고,무엇이고 간에 그것이 지향하는 것은 결국 우리들 삶의 질을 높이자는 게 아니던가.그래서 그의 아내가 그런 일을 한다고 했을 때,나는 쌍수를 들어 공감을 표시했었다. 그런데 그는 월드컵의 성공과 함께 얼마 뒤 자연스럽게 대통령 출마를 선언했다.여기서 또 지난 6월의 월드컵을 다시 들먹일 필요가 있을까.그의 표현대로 “내 이름자 ‘몽’은 한자로 꿈 몽(夢)자이고 ‘준’은 영어로 6월(june)이니까,꿈 같은 6월을 보낸” 것이었다.그는 지금도 월드컵의 성공적인 개최와 우리의 ‘4강 신화’를 매우 자랑스러워하지만,그 과정을 통해 전달받은 여론의 향배 또한 거절할 수 없게 된 것이었다.“내가 이번 대선에 나가는 것을 포기한다면,그 많은 요구들을 외면한다면,나는 나 자신에 대해 이기적이고 비겁했다는 생각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는 당당하게 출마했다.그리고 대통령 후보로서 언론매체에 등장한 그는 다른 후보들과는 달리,웅변조로 목청을 높이지 않고 차분하게 ‘국민 통합’을 주장하고 있다.“저의 꿈은 깨끗한 정부,국민 통합,그리고 평화적인 통일을 이뤄내는 것입니다.이것은 모든 국민들의 염원이라고 믿습니다.이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대통령이 되고자 합니다.” 그의 말에서 그의 ‘깨끗한’ 이미지가 떠올랐다.내가 보기에 그는 상당히 다양한 캐릭터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기업경영자이자 정치가요,또한 스포츠맨이어서가 아니다.그는 활달하면서도 세심하고,외향적이면서도 내성적이다.불같이 달려들면서도 물같이 흐른다.상반된 성향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사람이다.특히 다른 사람의 말을 겸허하게 들어줄 줄도 알고 그의 말을 조리있게 들려줄 줄도 안다는 건 여간한 장점이 아니다.그런 가운데 그는 어려서부터 ‘부잣집 아들’ 티를 내지 않은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중학교 때 학우가 “너희 집 뭐하니?” 하고 물으면 “잘 모른다.”고 했다든가,대학교 때 학우에게 “MIT로 옮기기 위해 인터뷰를 해야 하는데 양복이 없다.”고그제서야 백화점에 같이 가자고 했다든가 하는 이야기는 그 점을 나타낸다고 하겠다. “나를 가리켜 재벌 2세,또는 아버지의 후광으로 부족함이 없이 자란 아들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하지만 이는 편견에 불과하다.나는 스스로 부자라고 느낀 적이 없다.그리고 나는 부 자체가 사회적 질시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문제는 부의 편중과 부의 과시와 부의 남용일 것이다.” 그의 말을 믿는다.그는 여행을 가면 팬티,양말을 직접 빨아 입는다고 한다.나도 그렇다.그러니 나 같은 백면서생은 동류항으로서의 위안을 받는다.그리고 식당에 가서도 냅킨은 꼭 한 장만 쓰고,음식을 남기는 건 질색이라는 점도 나와 같으며,어렸을 때 수레에서 파는 해삼을 이쑤시개로 찍어 먹길 좋아했고 지금도 여차하면 청진동 해장국집으로 달려가곤 한다는 점도 마찬가지다.그래서,그를 향한 친화력은 더욱 공고해지는지도 모른다. 한번은 어느 모임에서 그를 만났는데,헤어질 무렵 그가 장인어른의 뒤를 따르면서 “저 때문에 마음 고생 많으시죠.” 하고 머리를 조아리고 있는 장면이 또렷하게 남아 있다.무엇을두고 그러는지는 내가 알 바가 아니었다.다만 그의 태도가 너무도 성심스러워서 나를 감탄시키기에 충분했던 것이다.그가 매사에 철두철미하다고 듣고 있었던 나는 그 모습에서 오히려 지극히 인간적이라는 인상을 받았다.그의 가정주의와 가족 사랑은 잘 알려져 있는바,그것에 바탕을 두고 정치를 향하고 있는 자세는 우선 보기부터가 좋다.이것이‘삶을 위한 정치’의 기본이 아니고 무엇일까. “우리나라의 정치는 ‘닫힌’ 공간의 대표적인 상징처럼 보인다.정치를 하는 사람들은 일반인이 아닌 어떤 특수한 사람처럼 느껴지는 것이다.그러나정치는 공동의 삶을 향상시키기 위한 우리 모두의 즐거운 정신행위여야 한다.사람과 삶을 위한 정치가 실종된 지금,국민들은 투명하고 깨끗한 정치의 장을 간절하게 원하고 있다.그리고 당면한 현안에 대한 해결책의 제시는 물론 미래의 청사진을 제시하는 리더를 필요로 하고 있다.” 이것이 그가 제시하는 ‘정직하고 능력 있는 젊은 정치’의 비전이자 버전이다.그렇다면 그 내용은 무엇이 알맹이가 되어야 할까.나는그것이 문화라고 생각한다.이것이야말로 이 새로운 세기의 ‘사람과 삶을 위한’ 소프트웨어인 것이다. 그는 ‘같은 동네에 살고 있는’ 내 집 옆길로 해서 북한산에 가끔 오른다고 한다.어느날 나도 그와 함께 산행을 해보리라 마음먹는다.그리고 나로서는 그가 무엇보다도 문화주의 대통령,환경주의 대통령에 더 애착을 가져볼 것을 권하고 싶다.지금 이 정권도 문화를 앞세웠지만,한낱 허사(虛辭)에 지나지 않았다. 그의 말을 귀담아 듣는다.“저는 국민 모두가 밝은 미래를 꿈꿀 수 있는 나라를 만들겠습니다.” 꿈(夢),그대는 우리에게 정녕 그러할 것이오.한 소설가는 믿고 있소이다.왜냐하면 꿈은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윤후명 소설가 ■권영길 후보는 - ‘진보의 꽃' 피울 밀알 ◆진보의 이름으로 나는 권영길을 잘 모른다.몇 차례 파리와 서울에서 만나 대화를 나눠보았지만 난 아직 그를 잘 모른다.나에게 그는 자기 의견을 주장하기보단 남의 의견을 주로 듣는 사람이었다.적어도 내가 아는 부분에서 그는 먼저 행하고자하는 일을 행한 후에 말을하는 사람이다.산골소년으로 태어나 어려운 청소년기를 거쳐 노동자들의 대표가 된 사람,내가 아는 대목에서 그는 분단과 전쟁의 소용돌이가 할퀴고 간 가족의 고통을 성숙으로 승화시킨 몇 안 되는 사람중의 하나다. 왜 내가 잘 알지도 못하는 권영길을 오늘 말하려 하는가? 지금부터 30년 전,20대 청년이었던 나는 이렇게 자문하며 처연해 한 적이 있었다.“과연 살아 생전에 합법적 진보정당에 참여하여 활동할 날이 올 수 있을까.”라고. 내가 오늘 권영길을 말하려 함은 무엇보다 진보의 이름으로 그를 예우하기 위함이다.특히 기존정당의 후보들은 여러 매체들을 통해 마음껏 홍보할 수 있는 현실에 비해,그는 군소정당의 후보에 불과하다는 이유로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그것은 그의 잘못이 아니라 한국 언론의 잘못이다.가령 프랑스의 ‘르몽드’는 96∼97년 겨울의 노동자 대파업 당시 권영길과 가진 인터뷰 기사를 크게 실었다.내가 아는 한 ‘르몽드’에 그만한 비중의 인터뷰 기사가 실렸던 한국인은 김대중 대통령뿐이다. 그리하여,진보의이름으로 권영길을 말한다.그것은 곧 ‘단 한 사람이라도 불행한 사회는 불행한 사회라고 믿는’ 사람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말 없이 말하는 그 파리에서 처음 만난 때부터 그는 별로 말이 없는 사람이었다.한국노동운동의 기관차를 몰던 때에도 그는 예상외로 수줍음 많고,과묵한 사람이었다.상대방에 대한 따스한 시선을 놓지 않는 그를 보면서 나는 ‘말많은 조직’을 이끄는 자가 가져야 하는 덕목을 보았다.96∼97년 노동법·안기부법 날치기통과에 항의하여 총파업을 주도한 강철의 노동운동가는 도무지 찾을 수 없고,앞자리에는 한 신중한 사내가 앉아 있었다.말의 향연을 방불케 할 정도로 달변인 사람들이 넘쳐나는 오늘날,권영길의 과묵은 더욱 이채로웠다. 술자리에서 몇 순배의 술이 돌아가도 그는 말이 많아지지 않았다.다만,노동현안에 대해선 분명하게 자신의 입장을 피력했다.이를테면 그의 말없음은 해야 할 말은 꼭 하고 마는,단호함을 위한 것이었다. 97년 대선에 관해 누군가 입을 열었을 때 그는 몹시도 죄스러운 표정을 역력히 지었다.민주노총이라는 거대조직의 선거참여에도 불구하고 저조한 결과를 낳았다는 자책이 그를 부끄럽게 하는 것 같았다.그날 그는 말이 없었으되 무표정하지는 않았다.그와 거의 비슷한 시기에 유년기와 청년기를 거친 사람이 느낄 수 있는 정서의 공유였을까.백마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느낌을 한 가지 표정으로 나타낼 수 있는 그는,말 없이 말하는 사람이었다. ◆상처를 치유하는 것이 정치 그의 아버지는 빨치산이다.아버지에 대한 몇 가지 기억만을 간직하고 있는 그는 아버지의 삶과 생애에 대해 이웃과 친지들의 증언으로 대략 유추할 수 있을 뿐이다.그러나 헤어진 아버지를 몇 년만에 주검으로 마주한 일은 어린 그에게 지울 수 없는 충격으로 각인되어 있다.‘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고 주위의 칭송이 자자하던 아버지가 ‘무시무시한 빨갱이’였다니…. 농민문제에 관심을 가지며 사회의식을 키우던 고등학생 때에서야 비로소 아버지를 온전히 이해했다고 그는 말한다.광신적인 반공주의국가에서 좌익의 지아비를 둔 어머니는 행여 자식들의 앞길에 먹구름이낄까 아직도 입을 닫는다며 말을 흐렸다.어느새 그의 눈에 물기가 어렸다. 그가 정치는 상처받은 사람들을 치유하는 것이라 생각하게 된 것은 이런 가족사뿐만 아니라 어려웠던 학창시절에 힘입은 바 크다.돈이 없어 며칠을 굶기도 하고,잘 곳이 없이 노숙을 하기도 했던 어린 권영길에게 세상은 한번도 적의를 거두지 않았다.세상의 비참을 몸소 체험한 그가 다른 사람들의 비참을 묵과할 수 없었으리라. 정치는 ‘인격적 권리의 창출’이라고 믿는 그가 이미 많은 것을 가진 사람들만을 위한 정치 속에서 자신의 뜻을 펼칠 날이 올까.아마 그건 그리 중요하지 않을지 모른다.본디 약한 이웃들을 위한 정치를 꿈꾸는 자에게 세상의 강고한 벽은 이미 벽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 많은 사람 그가 고등학교 때 이미 야학을 결성하여 나름의 사회참여를 시작했다는 사실에서,언론노련 시절 절대 술을 먹지 말라는 의사의 경고를 뿌리치고 괴로워하는 동료들을 위해 함께 밤새 술자리를 지킨 일에서,어려운 사람을 보면가슴 아파하고 어떻게든 도와주려고 애쓰는 면에서 그는 분명 정이 많은 사람이다.그의 다정(多情)이 이 사회에서 슬픔과 분노를 잉태시켰음을 여기서다시 재론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가 45살이라는 나이에 늦깎이 노동운동가가 된 것도,언론노련과 민주노총을 거쳐 마침내 민주노동당의 대선후보가 된 이유도 결국은 서러운 사람들에 대한 그의 안쓰러움 때문이었을 것이다. 본디 사회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노력은 인간에 대한 연민에서 비롯된다.그연민 위에서만 이념과 사상이 제대로 꽃필 수 있다.그동안 우리는 인간에 대한 애정이 전제되어 있지 않은 이념과 사상을 너무도 많이 봐왔다.그의 맘씀씀이가 더욱 소중하게 느껴지는 까닭이다. ◆미련한 사람 권영길은 미련하다.97년 대선에서 고배를 마신 그가 또다시 대선 출마를 하고 나선 것이다.오늘의 상황은 97년과 많이 다르지만 또한 어떤 점에선 같다. 6·13 지방선거에서 일약 제3당으로 부상한 민주노동당의 약진이 다른 점이라면,한나라당과 특정 유력신문으로 대표되는 극우세력이 헤게모니를 쥔 채 엄존하고 있다는 사실은 여전하다.비단 서구사회를 비교대상으로 삼지 않더라도 한국사회의 사회적 진보는 매우 더디다. 후발 자본주의 국가로서 한국과 유사한 역사적 발전과정을 거친 브라질에서 좌파후보 룰라의 당선은 우리 진보정당운동이 헤쳐나가야 할 일이 산적해있음을 보여준다. 사실 올 대선에서 권영길이 대통령으로 당선되리라고 예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승부가 예견된 싸움을 굳이 하려드는 그는 미련한 사람이다.그러나 그의 미련함은 비단 그만의 것이 아니다.마침내 세상을 변화시키고야 마는 사람들은 모두 승산이 없다고 믿었던 대상과 지난하게 투쟁해온 ‘미련한 사람들’이 아니던가.병든 시대를 온몸으로 아파하며 맞서 싸우는 권영길,그는 올해도 싸움에 사활을 걸고 있다.그러나 분명 그 싸움은 하나의 밀알이 되어 이 땅에 진보의 꽃을 피울 것이다. ◆보론-우리는 모두 노동자다 자본주의 사회는 자본가와 노동자로 나뉜 계급사회다.이것은 시민적 상식이다.자본가의 이익을 대변하고자 하는 정당이 존재한다면 노동자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당도 존재해야 한다.그것이 공화국이요,민주주의다.그러나 지금까지 한국사회에선 노동자의 정당이 없었다.유권자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노동자와 농민,그리고 서민 대중의 이익을 대변하고자 하는 정당은 없었던 것이다.한국사회를 지배한 레드 콤플렉스가 ‘노동자’가 ‘빨갱이 예비군’이나 되는 양 기피하도록 한 탓이 크다.그러나 살기 위해 일하는 사람은 누구나 노동자다. 민주노동당은 땀흘려 일하는 사람들이 대접받는 세계를 꿈꾼다.또한 민주노동당은 차이가 차별을 낳는 세상을 반대한다.민주노동당은 돈이 없어서 병원에 갈 수 없는 사회를,돈이 없어서 대학에 갈 수 없는 사회를 반대한다. 당신은 노동자인가.그럼 당신은 민주노동당의 당원이 될 수 있다.당신은 농민이고 서민인가.당신은 민주노동당의 당원이 될 수 있다.당신은 당신이 사회경제적 처지에 걸맞은 정치의식을 가져야 한다.사회구성원들 각자가 자신의 사회경제적 정체성을 제대로 인식하고 그에 따라 정당을 선택할 수 있을때 한국사회는 비로소 하나의 ‘사회’로 불릴 수 있을 것이다. 홍세화 자유기고가
  • 총기강도 공범용의 동료 군인 3명 검거

    경기도 포천 영북농협 총기강도 사건이 육군 상사 4명의 공모로 저질러졌을 가능성이 제기돼 충격을 주고 있다.이번 사건은 군 기강 해이가 심각한 수준을 넘어 참담한 상황임을 보여주는 것이어서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여론이 높다. 이 사건을 수사해온 군·경 합동수사본부는 29일 구속된 전모(31) 상사와 동료인 이모(37) 상사 등 부사관 3명을 유력한 공범 용의자로 검거,범행 가담 여부를 집중 추궁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이번 사건의 범인은 당초 알려진 3명이 아닌 4명일 가능성이 높고 사건의 전모도 금명간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전 상사와 같은 사단에 근무하는 용의자 3명은 전 상사와 같은 특수부대 출신자로 평소 전 상사와 잦은 접촉을 해왔고,사건 당일 행적이 명확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상사는 사건 발생전 전 상사로부터 은행강도 제의를 받은 적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용의선상에 있었다.이 사건 공범 몽타주를 작성한 목격자 조모상사는 사진 대조에서 용의자 가운데 1명을 범행차량 운전자로 지목했다. 수사본부는 또 전 상사가종이번호판 글씨 제작을 의뢰한 포천군 영북면 운천리 모 광고물제작사 관계자를 소환,제작 의뢰 경위와 전 상사의 동행자 여부 등에 대해 조사하고 있다. 군·경은 이날부터 경찰이 보유하고 있던 전 상사의 사건 당일 이동전화 통화내역,범인 목격자 진술,전 상사 부인 진술 등을 공유하며 공범자 수사를 벌이고 있다. 한편 군 검찰은 이날 오후 전 상사에 대해 강도살인미수,군용물절도 등 혐의로 군 법원으로부터 구속영장을 발부받아 구속 수감했다고 발표했다. 군 검찰은 전 상사가 살해 의사는 부인하지만 몸통을 향해 총기를 발사한점은 살인의 미필적 고의가 인정돼 특수강도죄보다 법정형이 무거운 강도살인죄를 적용했다고 밝혔다. 한편 합동수사본부 공동 본부장인 신정배 포천경찰서장은 이날 오후 이 상사 등 3명을 “‘유력한 용의자’로 보고 수사중”이라고 밝혔으나 부본부장인 5군단 헌병대 김광식 수사과장은 밤늦게 “조사를 계속중이나 아직 용의점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고 발표했다. 포천 한만교기자 mghann@
  • 이런책 어때요 300자 서평/ 사람의 길 배움의 길-학기유편(學記類編), 남명 조식의 학문적성찰 기록

    조선 중기의 대학자 남명 조식의 학문적 결의를 담은 독서록.16세기 성리학을 화려하게 꽃피운 남명은 퇴계와는 대조적으로 살아 생전 저작을 남기지 않았다.평소 “성인의 뜻은 선유들이 다 이야기했다.” “주자와 정자 이후로는 꼭 저술을 해야 할 필요가 없다.”며 실천과 수양을 극단적일 정도로 강조했다.그 탓에 오늘날 전하는 저서는 후학들이 펴낸 시문집 ‘남명집’과 선현들의 글을 뽑아 엮은 ‘학기유편’뿐이다. 이 책은 남명이 평소 독서를 하면서 절실하게 와닿는 말들을 적어 책상머리에 두고 읽으며 성찰의 근거로 삼은 기록이다.2만 2000원. ▶ 조식 엮음 / 경상대 남명학연구소 역주 / 한길사 펴냄
  • [기고] 백범정신 되새겨 민족화합 실천을

    “현실이냐 비 현실이냐가 아니라 정도(正道)냐 사도(邪道)냐가 관건이다” 동학의 2대 교주로부터 직접 임명된 ‘동학혁명군 청년장교'(1894),명성황후를 살해한 일본인들에 대한 복수 차원에서 결행한 ‘치하포 사건'의 주인공(1896),교육 및 계몽운동가(1903∼1918),역사적인 ‘3·1 민족저항’으로 성립한 대한민국임시정부 초대 경무국장(1919)·내무총장(1922)·국무령(1926),그리고 국가주석(1940.10.9∼1948.7.16),환국후에는 ‘남북회담'을 성사시킨 분단조국 최초의 통일운동가(1945.11.23∼1949.6.26)로서의 한 생애를 때로는 미풍처럼,때로는 질풍노도처럼 살다 간 백범 선생이 ‘인생의 나침반'처럼 간직했다는 글귀이다. 그가 떠난 지 반세기가 넘어 선 오늘 친필 ‘백범일지'가 베스트셀러로 자리잡고,각종 여론조사에서 남녀노소 모두로부터 ‘20세기 가장 존경받는 한국인'으로 거듭나고 있는 가운데 22일 ‘백범기념관’이 개관하게 되었다. 백범기념관은 백범 선생에 대한 역사와 민족이 드리는 선물임과 동시에 ‘백범정신 실천' 도장의 개설을 의미하기에 참으로 축하할 일이다. 다만 백범 선생이 ‘민족적 공인'이듯 백범기념관 또한 ‘민족적 공기'임은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소천 직전 암살제보를 받을 때마다 백범 선생은 “내가 만일 어떤 자의 총에 맞아 죽는다면 이 이상 기쁜 일이 없겠다.밀 한 알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 것 같이 내가 죽은 후 나 이상의 애국자들이 많이 나오겠는 까닭이다.”는 유언을 남기며,분단조국의 ‘밀알'로서의 ‘자신의 길'을 떠날 채비를 한 바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백범 선생을 존경하는 사람들,즉 관념적 ‘백범맨'은 많음에도 정작 ‘백범정신 실천'을 위해 나서는 인사들,다시말해 실천적 ‘백범맨'은 적었던 것이 사실이다.백범 선생의 유언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백범'이라는 호는 ‘105인 사건'으로 수감 생활을 하면서 옥중에서 자신이 직접 지은 것으로 ‘백정범부(白丁凡夫)'의 약칭이다.‘백범'이라는 말속에는 치자(治者)가 아니라 피치자(被治者)를,특권층이 아니라 보통사람들을,군림이 아니라 봉사의 길을 지향하였던 ‘백범사상'이 농축되어 있다.‘백범'의 뜻이 이러하거늘 혈통적으로나 인간적으로 백범 선생과 ‘불가분적 관계'에 있었던 인사들 중 일부가 적극적으로 독재정권에 기생하거나 심지어는 대법원과 헌법재판소로부터 ‘집단학살범' 및 ‘헌정질서 파괴범'으로 단죄되기에 이른 자들과 공생을 꾀하는,적극적 반백범 행태를 보인 경우 마저 있었다. 또한 백범은 생전에 ‘일제의 한반도 양분책략→미·소 분점→이질적 이념 및 체제 구축→동족상잔→일본의 전쟁특수→분단의 고착화→한반도 약소국화’를 꿰뚫어 보며 “이같은 일제의 책략을 저지하는 길은 ‘남북통일'이며,남북통일이 되지 않은 한 독립된 나라가 아니기에 통일운동은 ‘새로운 독립운동'이다.”고 역설한 바 있다.분단시대 백범정신은 ‘민족화합정신'임을 분명히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백범을 존경한다는 사람들이 ‘지역감정'이나 ‘남북화합' 문제에 관한 한 방관자적 자세로 취하는(소극적 반백범 행태) 경우가 비일비재할 뿐만 아니라,심지어는 ‘동서갈등'과 ‘남북분열'을 부추기는 일을 공공연히 자행해온 인사들마저 있었다. 역사적인 백범기념관의 개관을 계기로 백범정신을 사랑하는 이들이 ‘실천적 백범맨'으로 거듭나서,백범 선생의 유언은 물론 그의 소원인 ‘민족화합과 자주독립의 아름다운 문화국가'를 앞당겨 이룰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 실로 간절하다. 홍원식 백범정신실천겨레연합 사무처장
  • [기고] 노벨평화상 로비설

    얼마전 노벨평화상 로비설이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까지 파문을 일으켰다. 국내에서 로비설이 불거지자 가이르 룬데슈타트 노벨위원회 사무총장 겸 노벨연구소장은 지난 14일 한 인터넷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김대중 대통령이 노벨평화상을 비합법적인 방법으로 받았음을 암시하는 어떤 주장에 대해서도 동의할 수 없다.”면서 “노벨상 위원회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알고 있는 사람들은 노벨상 수상을 위해 로비를 했다 해도 그것이 아무런 효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고 로비설을 일축했다. 그의 말을 빌릴 것도 없이 노벨상 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로비설이 얼마나 근거없는가를 쉽게 느낄 수 있다. 지난해 노벨상 100주년 기념식이 전 세계의 축하 속에서 행해졌거니와 6개부문 가운데 평화상만은 스웨덴이 아닌 노르웨이에서 주관하며 노르웨이 의회에서 선출되는 노벨위원회가 최종 선정 권한을 갖고 있다.살아 생전 노벨은 국제적 분쟁해결에 능숙한 노르웨이(당시 스웨덴과 연합국가 1905년 9월독립) 의회에 늘 호감을 갖고 있었으며 문학을 좋아한 그에게 노르웨이 평화작가 뵤르숀이 큰 영향을 줘 노르웨이가 평화상을 주관토록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노벨상은 1·2차 대전중에도 중단없이 수여될 수 있었다.중립국인 스웨덴과 노르웨이가 상을 주관하는데다 심사 과정과 결과에서 엄격한 객관성과 투명성을 유지해 상의 권위를 인정받았기 때문이다.그러기에 로비라는 단어는 노벨평화상과 전혀 어울리지 않음을 세계가 인정하고 있는 실정이다. 평화상 수상자는 1901년 국제적십자사를 창시한 앙리 뒤낭,1952년 알베르트 슈바이처 박사,1964년 마틴 루터 킹,1971년 빌리 브란트,,아시아인으로는 1989년 달라이 라마,1991년 아웅 산 수지,1996년 동티모르의 주제 라모스 오르타와 벨루 주교 등 이름만 들어도 그 공로를 알 만한 분들이다. 원래 평화란 갈등의 상황,분쟁의 해결에서 쟁취되는 것이어서 수상자에 대한 찬반양론이 있게 마련이나 일단 수상자가 선정되면 전 세계는 열광적으로 환영하고 수상자가 소속된 종족,민족,국가는 더없는 명예와 영원한 국가적 긍지로 삼는다.이것이 세계 모든 국가의 100년동안의 관례이다.아웅 산 수지 여사와 약15년간 극렬하게 대치중인 미얀마의 군부도 그녀의 수상을 환영했다. 그런데 왜 우리는 그러지 못할까.그것도 이 명예를 더욱 빛나게 해야 할 일부 언론과 일부 선량들이 폄하하고 난도질을 했으니 세계 어디에 이런 나라가 있을까.슬픈 일이다.노벨상 로비설은 김대중 대통령 개인에 그치는 문제가 아니라 나라의 체면과 위신이 걸린 문제다. 1987년의 노벨평화상은 코스타리카의 오스카르 아리아스 산체스 대통령이 수상했다.당시에 제네바에 근무하고 있던 나는 수상자 결정 후 김대중씨와 필리핀의 양심수가족협의회가 최후까지 경합했으며 가장 가능성이 높았던 김대중씨는 대통령 출마 가능성 때문에 제외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김대중 대통령은 1987년부터 1999년까지 12년동안 계속해서 노벨평화상의 유력한 후보자였다. 국내의 가치없는 논쟁이 국제적으로 망신이 된다는 점을 깊이 생각해야 한다.할 말과 해선 안될 말을 구분할 줄 아는 성숙함이 필요하다.노벨평화상 로비의혹설이 다시 난무한다면 월드컵에서 보여준 대한민국의 선진국 이미지는 해외에서 무너져 내릴 것이다.이같은 국력낭비는 더이상 없어야 한다. 박경서 대한민국 인권대사
  • 인물화가 김호석 전시회-가족들 표정에 담긴 삶의 진실

    한국화가 김호석(45)은 인물화가로 잘 알려져 있다. 수염 한 올,주름 한 가닥까지 화면에 잡아내는 극사실적인 필치로 전봉준·신채호 등 역사의 인물을 눈에 본 듯 재현해 냈고,생전의 성철 스님과 문익환 목사,김근태 국회의원 등을 통해 ‘현재’를 그렸다.그러나 그가 진짜 즐겨 그리는 인물은 그의 가족이다.이제 75세인의 아버지와 40대 초반의 아내,중학생 딸,개구쟁이 초등학생 아들 등이다.특히 아버지는 5년 전부터 그의 부탁으로 수염을 기르는 등 화가 아들을 둔 덕에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남이 입고 쓰던 물건을 기피하는 성향에 견주어 볼 때 가족을 대상으로 한그의 그림은 시장성이 없을 것 같았다.그러나 그는 20대 이래로 전업작가 대오에서 이탈한 적이 없다.즉 그는 잘 팔리는 작가다. “겸재 정선은 ‘인왕제색도’에서 인왕산을 그린 것이 아니라,비 갠 뒤의 생생한 세계를 보여주려던 것입니다.마찬가지로 저 역시 혈연적인 가족을 그린 것이 아니라 삶 속에서 사람들의 진실한 표정을 포착해 보여주려는 것입니다.” 정말 그랬다.그가 치중하는 그림에는 사람이 살아가면서 보여주는 순간순간의 진실이 담겨 있다.예를 들어보자.‘칼에 묻은 꿀’은 한 노인이 칼 끝에 꿀을 묻혀 맛을 보고 있다.꿀의 달콤함에 비수의 위험함을 잊어버린 노인의 눈은 눈동자가 풀어져(눈동자를 안그렸다.) 표정이 한껏 나른하다.‘절정’은 뒷산에서 진달래를 꺾어온 딸이 새침한 표정을 짓는 그림.그녀는 벌 한마리가 자신의 왼쪽 가슴팍으로 파고 든다는 것을 알아도 여전히 새침할 수있을까. 허를 찌르는 풍자와 해학의 인물화 19점이 ‘열아홉 번의 농담’이란 제목으로 18일까지 동산방에서 전시된다. 18세기 이후 100여년간 단절된 전통 인물화 기법인 배채(背彩)기법,즉 윤곽선·머리카락 등을 제외하고 화선지 뒷면에 채색해 우러나오게 하는 기법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다.(02)733-5877. 문소영기자
  • 영락교회, 한경직목사 탄생 100주년 맞아 “신의주에 교회 재건 추진”

    한국 장로교의 장자(長子) 교회격인 영락교회가 한경직(韓景職·1902∼2000)목사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한 목사의 첫 담임지인 북한 신의주에 교회 재건을 추진한다. 13일 영락교회 측에 따르면 최근 당회에서 생전 신의주교회의 재건을 원한한 목사의 뜻을 받들어 교회재건을 추진하기로 결정했다.이는 북한이 신의주를 특구로 지정하고 종교의 자유를 인정한다는 소식과 맞물려 추진되는 것으로,향후 다른 교회들의 북한 지역 교회 재건 움직임이 한층 빨라질 전망이다. 교회 관계자는 “한경직 목사는 사석에서나 설교를 통해 신의주 교회의 재건 필요성을 늘 강조해 왔다.”며 “1992년 한 목사가 템플턴상과 함께 받은 상금(100만달러)을 교회에 기탁해 놓은 것과 기독미술작가초대전 수익금,기금 예치 등을 통해 재원을 충당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한 목사는 미국 프린스턴 신학교를 졸업하고 목사 안수를 받은 뒤 1933년 신의주 제2교회 담임목사로 목회를 시작했다.해방후 월남해 1945년 영락교회를 세운 만큼 영락교회는 한 목사의 두번째 담임지인 셈이다. 교회재건 대상지역은 현재 영화관으로 쓰는 것으로 알려진 신의주 제2교회 건물터 등이 우선 검토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한국기독교총연합회는 지난 4일 영락교회와 여의도순복음교회 등 17개 교회의 대표들이 ‘신의주지역 북한교회 재건담당교회 특별기도회'를 열고 신의주 특구 지정에 따른 상황파악과 향후 대책을 토의,한기총 재건본부를 단일 창구로 북한교회 재건을 추진키로 다짐했다. 또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도 지난 11일 ‘신의주 특구 지정과 북한의 전반적 변화에 대한 이해’란 주제로 긴급토론회를 마련,신의주 특구 지정에 따른 대응책을 모색했다. 한기총 북한교회 재건운동 본부에 따르면 해방 전 북한에는 신의주 지역 20개를 포함해 약 3040개의 교회가 있었다. 김성호기자 kimus@
  • 유관순열사 손수 뜬 모자 첫 공개, 1918년쯤 조카 첫돌 선물

    유관순 열사가 생전에 5촌조카의 첫돌을 맞아 코바늘로 손수 떠주었던 모자(면사·둘레 53.5㎝)가 11일 천안대 유관순연구소 주최로 열린 유관순열사 탄신 100주년 기념 국제학술세미나장에서 처음으로 공개됐다. 뜨개 모자를 보관해 오다 이날 유관순연구소에 기증한 유제경(柳濟敬·85)전 공주사범대 교수는 “어린 시절 어머니께서 유관순 열사가 손수 떠서 자신에게 씌워주라며 첫돌을 맞은 1918년쯤 선물한 귀중한 물건이니 잘 보관하라고 말씀하셨다.”고 말했다. 천안 연합
  • 26일 잠실서 ‘2002 ETPFEST’ - 한·미·일 스타 록페스티벌

    서태지가 기획하고 30억이 투입된다는 등,대규모 록페스티벌로 관심을 모아온 ‘2002 ETPFEST(Eerie Taiji People Festival·기괴한 태지 사람들의 축제)’(이하 이티피페스트)가 오는 26일 잠실주경기장에서 열린다. 이 공연에는 한국·미국·일본 3국의 밴드가 출연해 7시간 동안 진행된다. 총 10팀으로 구성된 출연진에는 일본밴드 히데·라이즈·도프해즈와 미국밴드 스크레이프,그리고 한국밴드인 YG패밀리·디아블로·피아·리쌍이 들어있다.여기에 서태지와 공연 당일 깜짝공개하겠다는 한 팀도 포함된다. 이 중 지난 98년 극적인 죽음으로 일본열도에 자살소동을 불러일으킨 일본‘X-Japan’의 기타리스트 히데(사진·본명 마쓰모토 히데토·松本秀人)가 단연 눈길을 끈다. 히데가 죽은 뒤 발매된 앨범 ‘Spirits’는 추모앨범으로는 일본 최초로 100만장을 돌파했는가 하면 2000년 7월 요코스카에 설립된 히데기념관에는 지금까지 10만명이 넘는 관광객이 방문하는 등 넓은 팬층을 유지하고 있다. 주최 측은 “죽은 뮤지션이 라이브 공연을 하는 것은 국내 최초”라면서 “팬들이 있는 이승과,히데가 있는 저승을 연결하는 데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공연에서는 히데의 생전 음성·영상에,히데와 함께 음악활동을 한 멤버들의 라이브 연주를 연결해 히데가 살아돌아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예정이다. 주최 측은 또 “히데와 도프해즈 등이 출연함에 따라 일본 등 아시아 팬들이 대거 국내로 들어와 부가적인 관광 수입도 기대된다.”고 밝혔다. 지난 1일 메인공연 출연진이 발표된 이티피페스트 홍보 웹사이트(www.etpfest.com)에는 하루동안 1000건이 넘는 게시물이 올랐으며 접속폭주로 서버가 다운되기도 했다.1588-1555(7890) 채수범기자
  • 한국대표시인 101인 詩선집

    문학사상사(대표 임홍빈)는 창사 30주년을 기념해 우리 시단을 이끈 ‘한국 대표시인 101인 시선집’을 펴내기로 하고 1차로 미당 서정주 편을 비롯,구상·조병화·김남조·고은 편 등 5권의 선집을 최근 출간했다. 문학사상사는 엄정한 시인 및 작품 선정을 위해 김남조·김재홍·오세영·이승훈·임영조·최동호씨 등으로 편찬위원회를 구성했으며,선집에는 대표시와 함께 사진 자료,연보와 친필 원고,시인이 직접 녹음하거나 선·후배 및 지인들이 녹음한 ‘육성 시낭송CD’를 함께 묶어 책 한권에 시인의 모든 것을 담아 냈다. 시선집 1권으로 출간된 미당 서정주 편의 경우 화보와 작품·작가론,연보와 ‘화사집’‘귀촉도’‘신라초’‘동천’‘질마재 신화’‘떠돌이의 시’‘서으로 가는 달처럼’‘안잊히는 일들’등 고인이 생전에 출간한 시집에 실린 대표작과 산문 등을 함께 묶었다. 2권 구상 편에도 ‘내 마음의 울 속에는’‘조화 속에서’‘인류의 맹점에서’‘연작시초’등의 시집에 실린 대표작과 산문,29편의 자작시를 육성으로 녹음한 CD등이 포함돼 있다. 문학사상측은 “이번의 시선집 출간이 우리 시문학사에 큰 발자취를 남긴 거장들의 업적을 기리는 중요한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고 말했다.각권 1만4000∼1만6000원. 심재억기자
  • 美 언론출판재벌 월터 애넌버그 사망

    미국의 전직 출판재벌이자 자선사업가인 월터 애넌버그가 2일 9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펜실베이니아대 애넌버그 커뮤니케이션 학과의 캐슬린 홀 제이미슨 학장은 이날 “애넌버그가 폐렴 합병증으로 필라델피아 윈우드 교외의 자택에서 숨졌다.”고 밝혔다. 출판업자인 아버지로부터 출판사 2개 등을 상속받은 애넌버그는 트라이앵글 출판사를 설립,‘TV 가이드’와 ‘세븐틴’ 등을 창간해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애넌버그는 생전에 수십억 달러의 재산을 자선사업과 대학 언론학과에 기부했으며 자신이 소장하고 있던 10억 달러 상당의 예술품도 박물관에 기증했다.특히 그는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전 대통령 이래 미 대통령들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해 왔으며 1969년에는 외교 경력이 일천하다는 논란 속에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에 의해 영국 주재 미 대사로 임명되기도 했다. 필라델피아 AP연합
  • “부모 증여의사 추정땐 유언없어도 상속 가능”

    부모가 별다른 유언없이 사망했다면 생전의 증여의사를 추정해 유산을 상속할 수 있다는 판결이 나왔다. 서울지법 동부지원 민사2부(부장 朴基東)는 30일 서모(52·여)씨가 유산을 돌려달라며 동생(48)과 모 은행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서씨에게 3억 6000만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승소를 판결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아버지가 생전에 서씨 명의로 정기예금통장을 만든 것은 증여할 의사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에 이는 서씨 몫의 유산에 속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동생이 아버지의 대리인 자격으로 예금을 해약하고 인출한 행위는 정당하지만 이를 통해 이득을 본 것은 부당하다.”면서 “누나 서씨에게 예금액과 이자 및 지연손해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덧붙였다. 황장석기자 surono@
  • 한국불교 거목 청담스님 탄생 100주년 본격 조명

    조계종 2대 종정을 지낸 선승 청담(1902∼1971)스님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제자와 문도 등을 중심으로 스님에 대한 본격적인 재평가 작업이 활발하게 진행된다. 청담문도회와,스님이 생전에 주지로 주석한 서울 우이동 도선사(주지 혜자스님) 등은 새달 10∼20일 학술세미나와 전집·논총 간행,유물전시관 개관,기념법회와 음악회 등을 열어 스님의 업적과 수행을 집중 조명한다. 새달 10일 오후 2시 한국언론재단에서 열리는 ‘청담대종사 생애와 사상연구’ 세미나에서는 스님의 수행과 정화운동을 재조명하게 된다. 송월주 전 조계종 총무원장이 ‘청담의 구세관과 한국불교의 비구승단 재건’을 주제로 기조연설을 하는 데 이어 정성본(동국대 선학과) 교수가 ‘청담선사의 선사상 연구’,허혜정 문수암 주지가 ‘청담의 구세사상과 원행’,목정배 전 동국대 교수가 ‘청담의 참회정신과 정화불교’를 각각 발표한다. 이어 15일 도선사에서 열리는 기념법회에서는 스님 생전 한국종교협의회에서 함께 활동한 김수환 추기경이 축사를 한다.이날 법회에서는 ‘청담 대종사와 현대 한국불교의 전개’라는 제목의 논총과,총 11권으로 구성된 전집중 6권이 봉헌된다. 논총은 ‘청담대종사의 불교사상과 정화운동’‘청담 대종사의 생애와 예술’등을 담았다.문도회는 전집중 ‘금강경 강의’‘반야심경 강의’ 등 나머지 5권도 내년까지 마무리할 예정이다. 또 15일 개관하는 도선사 경내의 청담기념관에서는 스님의 유품과 글씨·사진 등 유물을 상설전시한다.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산사음악회도 20일 오후 6시 도선사 경내에서 있다. 청담 스님은 왜곡된 한국불교를 바로잡고 종단을 비구승단으로 만들겠다는 기치 아래 1947년 성철 스님 등과 함께 경북 문경 봉암사 결사를 출범시킨 근·현대 한국불교사의 거목.1924년 일본 송운사에서 출가한 뒤 귀국,26년 경남 고성군 옥천사에서 재출가했다. 만주,설악산 봉정암,금강산 마하연,묘향산 설령대 등지에서 오랫동안 수행에 전념한 선승이면서도 조계종 종정,총무원장,동국학원 이사장,불교신문 사장을 역임하는 등 활발한 대외활동도 벌였다. 선승으로 이름을 날리던시절 오래전 버린 부인을 찾아가 하룻밤 파계로 딸을 낳았으며 그 딸도 성철스님 아래서 출가했는데 비구니계의 고승인 묘엄(수원 봉녕사 주지)스님이 그다. 김성호기자 kimus@
  • [인터넷 스코프] 나이지리아에서 온 편지

    아내에게 뜬금없이 나이지리아 남자한테서 편지가 온 것은 1999년이었다.우표가 나이지리아 것이고 소인에 수도의 이름 ‘LAGOS’가 있는 것으로 보아 그 나라에서 온 것이 분명한 편지에는 어마어마한 액수의 돈을 주겠다는 꿈같은 제안이 담겨 있었다. 발신인은 자신이 나이지리아 현직 고위 공무원인데 전에 석유회사를 운영할 때 생긴 미수금을 현 정권의 고위직 신분으로는 받을 수 없으니,당신 은행계좌를 빌려주기만 하면 입금된 액수의 25%를 대가로 떼어 주겠다고 했다.대가가 무려 500만 달러였다.아내와 나는 사기라고 바로 판단했다.그리고 그먼 아프리카에서 아내 주소를 알아내고 편지 보낸 것을 더 재미있어했다.“당신이 국제적 인사가 되었구먼.” 하면서 나는 웃었다. 아내의 홈페이지에서 주소를 보았으리라고 짐작됐다.나는 이 사기행각이 되풀이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편지를 보관했다. 그런데 며칠 전 나이지리아 여성이 보낸 것으로 된 이메일이 내게 왔다.“음,이 사기꾼들이 이젠 이메일을 이용하는군.”하면서 열어 보았다.발신인은 자신이 반정부 인사의 미망인이라면서 남편이 생전에 숨긴 재산을 국외로 빼돌리는 데에 당신의 은행 계좌를 빌리고 싶다고 했다. 3년 전 받은 편지를 찾아내 이번 이메일 내용과 대조했다.가사만 조금 바뀐 똑같은 곡이었다.3년 전 이 편지를 사기라고 본 것은 제안이 너무 달콤해서였다.감언(甘言)은 항상 위험하다.이제 다시 두 편지를 읽어보니 사기 냄새를 뚜렷하게 풍기는 데가 있다.이런 저런 절차를 밟으면서 들게 될 비용을 분담하자면서 돈을 보내라고 한 구절이다. 세상에 어떤 바보가 생면부지의 사람에게 돈을 보내고 예금 계좌 번호까지 일러 주겠는가. 그러나 그 편지의 유혹은 너무도 강해서 뉴욕의 유명한 어느 법률사무소조차도 당하고 나서 쉬쉬한다는 소문이 있을 정도다.피해자가 미국과 유럽,아시아 등에 널려 있다고 한다. 알고 보니,나이지리아를 근거지로 한 이 사기 사업은 20년의 역사가 있으며,종사하는 사람 숫자도 꽤 많고,나이지리아 산업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만큼 경제 규모가 크다고 한다. 이메일이 이들의 사업수행을 훨씬쉽게 해 주고 더 많은 돈을 벌게 해 주었다.이메일을 이용하여 사기행각을 벌이는 조직을 국제 사회에서는 ‘나이지리아 커넥션’이라고 부르며 그들의 사기 행위를 나이지리아 형법의 사기 조항을 따라 ‘419’라고 부른다. 미국에서는 어떤 박사가 40만 달러를 사기당했다.이 사람은 미국 정부의 노력으로 돌려 받았다.그러나 일확천금의 꼬임에 빠졌다는 것이 우선 수치스럽고,송금이 외환 관리 법규에 걸릴 수 있어,벙어리 냉가슴 앓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미국은 이 사기 사건 문제로 이 달 17일에 뉴욕에서 국제회의를 열었다.회의장에는 나이지리아 대통령과 나이지리아 중앙은행장이 참석해 범행 방지와 피해액 반환에 힘쓰겠다고 약속했다.돌아가는 형세를 보면 미국에서는 정부기관과 많은 민간인이 들고 일어나니까 그나마 돈을 돌려받는 듯하다.연방수사국은 피해자를 범법자로 간주하지 않는다고 공표했다. 우리나라에도 사기 피해자가 있을 수 있다.걸려들었다 하면 피해는 거액이므로,우리 정부에서도 위법 여부를 묻지 않는다고 약속하고 신고를받아,돈을 회수하는 길을 강구하는 것이 좋겠다.피해자가 직접 돈 되찾겠다고 나이지리아 사기꾼 집단한테 갔다가는 가진 것 다 빼앗기고 두들겨 맞기가 일쑤며 살해되기도 한다니 행여 생념조차 말 일이다. 박강문 칼럼니스트
  • 北·日 수교협상 새 쟁점/ 피랍8人 타살의혹… 파문 확산

    (도쿄 황성기특파원) 북한이 시인한 일본인 납치피해 사망자 8명 가운데 2명이 같은 날 사망한 것으로 나타나 타살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지난 1983년 유럽에서 납치된 아리모토 게이코(有本惠子·여·당시 23세)와 1980년 유럽에서 실종된 이시오카 도오루(石岡亨·당시 22세)가 1988년 11월4일 같은 날 사망했다고 19일 가족들에게 통보했다. 이시오카는 생전에 일본의 가족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아리모토와 평양에서 함께 살고 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져 왔다.아리모토의 부모는 지난 17일 북한이 딸의 사망사실을 인정한 직후 기자회견에서 “이시오카로부터 온 평양발 편지가 일본에 도착한 뒤 딸이 공개총살된 것 아니냐.”고 ‘살해설’을 제기했다.이시오카의 편지에는 그녀의 사진과 함께 그녀와의 사이에 낳은 여자 어린이의 사진이 동봉됐다. 아리모토에 대한 살해설은 어느 정도 설득력을 갖는다.이시오카의 편지가 그의 삿포로(札幌) 고향 집에 온 것이 1988년 9월6일이었다.편지를 보낸 사실이 드러나면서 그와 아리모토,그리고그의 편지에 이름이 언급된 마쓰키도오루(松木薰·1980년 유럽여행중 실종)가 함께 처형됐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북측이 일본에 비공식으로 통보한 명단(공식명단과는 별도)에 따르면 이들3명 외에 다른 5명도 거의 20대 때 사망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이들의 공통점은 이들이 북한에 있다는 사실이 일본에 드러난 사람이라는 점이다. 일본 언론들은 “이들의 사망원인이 병사나 재해사가 아니라면 납치사실이 천하에 밝혀지는 것을 두려워한 북한 당국이 ‘증거인멸’ 차원에서 이들을 죽였거나 외부로 소식을 전한 납치 피해자에 대한 본보기로 처형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도 이같은 사실을 정상회담 직전에 다나카 국장으로부터 전해 듣고 충격을 받았으며,“아무래도 사망한 나이가 너무 젊다.”며 의구심을 표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사망이 확인된 요코타 메구미의 부모 등은 19일에도 TV에 출연,“여러 가지 정황상 납치 목격자 등이 있는 등 잘 알려진 납치 피해자들을 살해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한편 모리야마 마유미(森山眞弓) 일본 법무상은 18일 일본인을 납치한 북한 요원들에 대해 국내법을 적용,일본 법정에서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모리야마 법무상은 이날 내각 각료들과 비공식 회동에서 “납치행위는 일본법을 위반했으며 우리는 이 문제의 진실을 규명하고 해당자들을 처벌해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marry01@
  • 천재 건축가 가우디 탄생 150주년/가우디-“난 집짓기에도 시간이 모자란다”

    ▲'인간 가우디'조명한 평정 출간 ‘20세기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로 추앙받는 스페인 출신의 천재 건축가 안토니 가우디(1852∼1926).자연친화적 건축 디자인으로 유명한 그는 오늘날 가장 사랑받는 대중 건축가 가운데 한 명이다.스페인 바르셀로나에는 매년‘가우디’를 보기 위해 200만명의 관광객이 몰려든다.이 도시는 가우디 탄생 150주년인 올해를 ‘국제 가우디의 해’로 정하고 100개가 넘는 행사를 기획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삶과 예술관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그것은 무엇보다 가우디 자신이 이렇다 할 저작을 남기지 않았기 때문이다.가우디는 생전에 “나는 행동으로 실천하는 인간이다.작업만으로도 시간이 모자란다.”고 말한 바 있다.또 다른 이유는 그에 대한 공적·사적 자료가 스페인 내란 초기에 파손됐기 때문이다.1936년 그가 남긴 걸작인 성가족 대성당(사그라다파밀리아)의 지하납골당이 더럽혀지고 가우디의 설계도,서류철,모형 등이 불타 없어졌다.성가족 대성당의 주임신부이자 가우디의 친구였던 힐 파레스도 이때 살해됐다.건축학자 하이스 반 헨스베르헌이 쓴 ‘어머니 품을 설계한 건축가 가우디’(양성혜 옮김,현암사 펴냄)는 가우디와 관련된 풍부한 자료와 건축에 대한 전문지식이 동원된 가우디 평전이다.가우디가(家)의 세 아이 중 막내로 태어난 그가 스페인 근대사의 중대 고비였던 스페인제국 패망(1898년)과 수도원과 성당을 잿더미로 만든 ‘비극의 주(週)’(1909년) 시기를 관통하며 불후의 대작에 잇따라 착수하고 전차사고 후유증으로 사망하기까지의 행로를 추적한다. 저자는 “가우디의 건축세계는 열린 책이지만,인간 가우디는 닫힌 책”이라고 밝힌다.예술가로서의 가우디는 잘 알려져 있지만,인간으로서의 가우디는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가우디를 ‘미를 숭배한 고독한 사제’라고 평하는 저자는 “무덤 속에 있는 지금도 가우디는 쉬지 않고 건물을 짓고 있다.”고 말한다.건축중인 성가족 대성당을 염두에 둔 것으로,1880년대 초반에 착공된 이 건물은 앞으로 150년은 더 걸려야 완성된다. 가우디의 삶은 모순 덩어리였다.그의 건축물에서 느껴지는 관능미는 일부 건축가들로부터 저속한 키치(Kitsch)라는 평가를 받았다.그러나 가우디는 엄격한 가톨릭 신자였으며,성 프란체스코처럼 누더기를 걸친 성자의 모습으로 세상을 떠났다.또한 무정부주의와 무신론에 가까웠던 달리나 많은 초현실주의자들이 보수세력과 가까웠던 가우디를 높이 평가하고 그로부터 영감을 얻은 것도 아이러니다.세계적인 명성을 얻었지만 외국여행 한번 제대로 해보지 못한 지독한 카탈루냐 지역주의자였으며,연인들의 산책장소인 구엘공원을 만들었지만 자신은 변변한 연애 한번 못해 보고 독신으로 산 것도 놀랍다. 그래서인지 가우디에 대한 평가는 극단으로 갈린다.바스크 철학자 미겔 데우나무노는 그의 건축을 ‘술 취한 예술’이라고 폄하했고,피카소 등 다른 비방자들도 가우디가 튀려고 일부러 저급한 건축물을 짓는다고 꼬집었다.반면 독일의 건축가이자 화가인 허만 핀스테를린은 “성가족 대성당은 세계 불가사의 중 하나다.타지마할 묘당처럼 이 성당은 남신을 위한 집이 아니라 여신을 위한 집”이라고 추앙했다. 이 책의 미덕은 무엇보다 낯선 스페인의 문화와 역사가 가우디라는 프리즘을 통해 한눈에 들어오도록 씌어졌다는 점이다.가우디 ‘인물 탐구서’이자 가우디를 통한 ‘스페인 문화기행서’인 셈이다.1만 5000원. 김종면기자 jmkim@
  • [굄돌] 혼백과 귀신

    우리 조상들은 가뭄이나 홍수, 역병 등 해로운 일이 생기면 곧 귀신이 조화를 부려 일어난 것으로 여겼다.그렇다면 정말 귀신이 있는 것일까? 있다면 귀신의 실체는 무엇인가? 예부터 “사람은 죽으면 귀신이 된다.”고 했다.조선시대 예조판서를 지낸 성현(1439∼1504)은 귀신을 이렇게 설명했다.“천지간 만물에 기(氣)가 있다.기란 정령(精靈)을 말하는데,양의 정령을 혼(魂)이라 하고 음의 정령을 백(魄)이라 한다.사람이 죽으면 백은 땅으로 돌아가고,양기는 다시 둘로 나뉜다.원 없이 잘 살다 죽으면 혼이 승천하여 신명(神明,神)이 된다.하지만 생전의 원한이나 미련이 있으면 승천하지 못하고 공중에 떠돌다가 음기가 되어 땅으로 내려와 귀신이 된다.” 귀신은 곧 음기가 모여 생겨난 것인 만큼 낮보다는 밤에,남자보다는 여자에게 잘 붙는다.무당에 여자가 많은 것도 이런 까닭이다. 또 우리나라 사람은 신명이 많다는 말도 여기서 비롯됐다.혼백을 우리 몸에 비유하면 정신은 혼이요,육체는 백이라 할 수 있다.과연 혼백의 분리를 증명할 수 있을까? 물론 죽어 보면 알 수 있다. 삼봉 정도전은 혼백을 나무가 불에 타는 것에 비유하여,“연기는 혼으로 하늘로 올라가고,재는 백으로 떨어져 땅으로 돌아가게 된다.”고 했다.또 송나라 때 주자는 “향은 혼이요,타고난 재는 백”이라며 혼백을 향불에 비유했다.이 얼마나 기막힌 비유인가.이런 논리라면 죽은 사람도 살릴 수 있다.거꾸로 연기와 재를 합쳐 다시 나무를 만들 수만 있다면 말이다. 사람이 혼백으로 이루어졌음은 은연중에 쓰는 말에서도 나타난다.갑자기 멍한 사람을 보고 “저 친구 혼 나갔어.”하지 “백 나갔다.”고 하지 않는다.또 갑자기 놀랐을 때 “혼이 날고 백이 흩어졌다.(魂飛魄散·혼비백산)”라고 한다.또 꾸짖을 때 무심코 “혼내준다.”고 한다. 이 말은 혼을 빼내 죽인다는 뜻이다.얼마나 무서운 말인가.아무리 뜻을 모르고 쓰는 말이라도 ‘혼을 내’귀한 자식을 죽여서야 되겠는가? 정종수 국립민속박물관 민속연구과장
  • “부모님 유골 어디서 찾나…”

    “추석이 며칠 안 남았는데 사라진 부모님 유골을 못찾아 죄스럽기만 합니다.” 민족 최대 명절인 추석을 앞두고 폭우로 700여기의 묘지가 유실된 강원도 강릉시 사천면 석교1리 강릉공원묘원에는 주말과 휴일을 맞아 수천명의 유족들이 찾아 북새통을 이뤘다. 조상의 묘지 유실 소식을 듣고 설마하는 마음으로 공원묘원을 찾았지만 흔적도 없이 사라진 묘를 보고 넋을 놓고 통곡하는가 하면 1주일째 유골을 찾느라 탈진한 유족들의 모습도 보였다. 강릉의 친지로부터 어머니의 묘가 유실됐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온 최모(57·부산시 영도구 청학1동)씨는 발굴된 시신들 속을 몇번씩 헤집고 다니며 확인했지만 찾을 수 없자 땅바닥에 주저앉아 버렸다.최씨는 “발굴해 놓은 시신들 가운데 어머님의 유골이 포함됐더라도 지문감식이나 유전자 감식이 어렵다니 안타깝기만 하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강릉경찰서는 최근 유족들을 돕기 위해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지문감식이나 유전자 감식 가능성을 문의했으나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답변만 듣고 있는 실정이다.유전자 감식 등에 한가닥 희망을 걸었던 유족들은 답답함을 호소하며 할말을 잊었다. 발굴된 시신 150여구 가운데 현재 50여구만 가족들 품에 안겨 이장 또는 화장된 상태다.일부 유족들 사이에서는 합동 위령탑을 세운 다른 곳의 선례를 들어 발굴된 유골을 모두 모아 합장한 뒤 위령탑을 세우자는 의견도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아직 많은 유족들은 포기하지 않고 무릎까지 빠지는 진흙탕 속을 뒤지며 유골 찾기에 나서고 있다. 지난 90년과 97년 돌아가신 부모를 각각 이곳에 모셨다가 유골을 모두 잃어버린 정모(65·강릉시 포남동)씨는 끼니도 제대로 잇지 못하고 1주일째 2㎞하류인 석교2리 마을까지 하루에도 서너 차례씩 오르내리며 부모의 유골을 찾느라 탈진상태에 빠졌다. 다행히 묘지가 토사에 매몰된 유족들은 그나마 안도하며 정성스레 삽과 중장비로 흙을 퍼내고 새로 단장하기도 했다. 서울에서 달려온 박모(64·송파구)씨는 “봉분만 사라지고 관은 무사히 찾을 수 있어 다행”이라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한편 묘지 유실 이후 공원묘원관리소에는 유족들만 북적일 뿐 관리소 직원은 단 한 명도 찾아볼 수 없어 유족들의 분통을 사기도 했다. 유족들은 한결같이 “살아 생전에 효도 한 번 못했는데 돌아가신 뒤에도 제대로 모시지 못한 불효가 가슴을 저미게 한다.”면서 눈시울을 붉혔다. 강릉 조한종기자 bell21@
  • 남북축구 실향민 초청 ‘화제’, 서울체육고 주대하교사 입장권 80여장 구입

    “고향을 지척에 둔 실향민의 한을 조금이나마 달래주고 싶습니다.” 강원도 속초 청호동 ‘아바이마을’의 실향민 80여명이 생면부지(生面不知)인 한 고교 교사의 초청으로 7일 서울 상암동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리는 남북통일축구대회를 관람한다. 서울체육고 교사 주대하(朱大河·36·경기 성남시)씨는 봉급과 용돈등 230여만원을 털어 구입한 입장권을 경기 당일 서울에 도착하는 실향민들에게 전달할 예정이다.주 교사는 5일 “고향을 그리워했던 부모님을 생각하며 어르신들을 모시고 싶었다.”고 말했다. 고인이 된 주 교사의 양친도 함경남도와 평안도 출신으로 1·4후퇴때 남한으로 내려와 속초에 정착해 살았다. 속초에서 명태와 오징어를 말리는 덕장을 운영하다 2년 전 작고한 주 교사의 선친은 생전에 “고향 잃은 사람끼리 마음이라도 나누면서 살아야 한다.”며 어려운 실향민들을 도왔다고 했다. 주 교사는 태풍 루사의 영향으로 청호동 주민 2100여가구 가운데 110가구가 침수피해를 입었다는 소식에 애를 태우고 있다. 주 교사는 “남북간 축구대회를 계기로 실향민에게 좋은 일이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주 교사의 소식을 전해 들은 속초시청과 이북5도민회 속초지구연합회측은 실향민들에게 차량과 식사를 제공하는 등 적극 돕기로 했다. 황장석기자 surono@
  • 移通 차기서비스로 경쟁

    KT와 SK텔레콤 등 유·무선 통신사업자들이 차기 서비스시장 선점을 위한 마케팅 전쟁에 돌입했다. 핵심 네트워크를 통합하거나 부가서비스를 한단계 높인 각종 서비스를 내세워 시장을 먼저 파고들겠다는 것이다.주력 사업자가 주도하지만 후발 사업자의 생존권 몸부림도 만만찮다. ◆유·무선 인터넷 포털시장- ‘대첩(大捷)’을 위한 KT와 SK텔레콤간의 선전 포고일이 코앞에 다가왔다.KT는 다음달 유·무선 포털사이트인 ‘렛츠KT닷컴’ 서비스를 시작한다.계열사는 물론 제휴 인터넷기업의 콘텐츠도 이용할수 있는 게 장점이다.KT는 향후 이 사업에 294억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SK텔레콤은 이를 의식,자회사인 SK넷츠고의 유선 사이트인 ‘NATE닷컴’과 지난해 인수한 라이코스 코리아를 합해 유·무선 포털서비스로 10월 새 출발한다.대대적인 ‘그랜드 오픈’ 행사도 준비하고 있다.SK텔레콤은 ‘NATE닷컴’을 야후 코리아 등과 같은 국내 굴지의 포털사이트로 끌어 올리겠다는방침이다. 업체들은 앞으로 이들 닷컴을 개인휴대단말기(PDA),차량장착용단말기(VMT)와 연계한 유·무선 인터넷서비스로 완성한다는 복안을 갖고 있다. ◆무선랜 시장- KT는 무선랜 서비스인 ‘네스팟’을 차세대 전략사업 모델로 내세운다.최근 ‘네스팟’과 삼성전자의 노트북 ‘센스’를 결합한 패키지상품을 출시했다. KT는 향후 ‘네스팟’과 이동전화간의 로밍서비스를 통해 서로의 강점을 극대화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관계자는 “최근 한달새 기존 10배의 신규고객을 끌어 들여 시장을 빠르게 넓히고 있다.”고 말했다. 하나로통신도 LGIBM과 손잡고 ‘하나포스 애니웨이’ 고객을 올 연말까지 2만 5000명이상으로 끌어 올릴 방침이다.서울 코엑스 등 370여곳에 핫스팟을 설치했고,대학가 등에도 시설을 확충하고 있다. 시장선점을 위한 무선랜용 PDA도 앞다퉈 선보이고 있다.SK텔레콤은 자사의‘NATE’ 전용 PDA인 ‘포즈’를 지난달 30일 판매에 나섰다. ◆인터넷 전화인 VoIP- KT는 네트워크 통합이란 큰 틀에서 서비스에 나서고 있다.자사 국제전화인 ’00727’로 시작해 최근에는 KT메신저폰을 내놓았다.하나로통신도공격적이다.11월 무선랜 인터넷 전화인 ‘애니웨이 VoIP’를 상용화한다. 유선인터넷 가입자에게 시내전화번호인 6000번대를,초고속인터넷 가입자에게는 ‘0506’ 평생전화번호를 VoIP 착신번호로 제공한다.후발 업체인 데이콤과 온세통신은 기업용 서비스에 무게를 두고 있다.데이콤은 6월에 서비스를 시작했고,온세통신은 다음 달 서비스에 나선다. ◆카드사업 시장- 지난 4월 가장 먼저 적외선 휴대폰 결제를 상용화한 LG텔레콤에 맞서 SK텔레콤이 비슷한 휴대폰 결제 시스템인 ‘1-Chip’ 사업을 10월에 서비스할 예정이다. 정기홍기자 h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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