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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대중 전 대통령 일기 일부 공개

     지난 18일 서거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생전 일기 일부가 공개됐다.  김 전 대통령의 유족측은 21일 오전 공식 추모 홈페이지에 김 전 대통령의 일기 일부를 게재했다.  이번에 공개된 일기는 김 전 대통령이 올해 1월1일부터 입원하기 1달전인 6월4일까지 쓴 내용 가운데 일부분이다.  다음은 김 전 대통령의 일기 전문.     2009년 1월 1일  새해를 축하하는 세배객이 많았다. 수백 명. 10시간 동안 세배 받았다. 몹시 피곤했다. 새해에는 무엇보다 건강관리에 주력해야겠다. ‘찬미예수 건강백세’를 빌겠다.    2009년 1월 6일  오늘은 나의 85회 생일이다. 돌아보면 파란만장의 일생이었다. 그러나 민주주의를 위해 목숨을 바치고 투쟁한 일생이었고, 경제를 살리고 남북 화해의 길을 여는 혼신의 노력을 기울인 일생이었다. 내가 살아온 길에 미흡한 점은 있으나 후회는 없다.    2009년 1월 7일  인생은 생각할수록 아름답고 역사는 앞으로 발전한다.    2009년 1월 11일  오늘은 날씨가 몹시 춥다. 그러나 일기는 화창하다. 점심 먹고 아내와 같이 한강변을 드라이브했다. 요즘 아내와의 사이는 우리 결혼 이래 최상이다. 나는 아내를 사랑하고 존경한다. 아내 없이는 지금 내가 있기 어려웠지만 현재도 살기 힘들 것 같다. 둘이 건강하게 오래 살도록  매일 매일 하느님께 같이 기도한다.    2009년 1월 14일  인생은 얼마만큼 오래 살았느냐가 문제가 아니다. 얼마만큼 의미 있고 가치 있게 살았느냐가 문제다. 그것은 얼마만큼 이웃을 위해서 그것도 고통 받고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위해 살았느냐가 문제다.    2009년 1월 15일  긴 인생이었다. 나는 일생을 예수님의 눌린 자들을 위해 헌신하라는 교훈을 받들고 살아왔다. 납치, 사형 언도, 투옥, 감시, 도청 등 수없는 박해 속에서도 역사와 국민을 믿고 살아왔다. 앞으로도 생이 있는 한 길을 갈 것이다.    2009년 1월 16일  역사상 모든 독재자들은 자기만은 잘 대비해서 전철을 밟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결국 전철을 밟거나 역사의 가혹한 심판을 받는다.    2009년 1월 17일  그저께 외신기자 클럽의 연설과 질의응답은 신문, 방송에서도 잘 보도되고 네티즌들의 반응도 크다. 여러 네티즌들의 ‘다시 한 번 대통령 해 달라’ ‘상식이 통하는 세상을 다시 보고 싶다, 답답하다, 슬프다’는 댓글을 볼 때 국민이 불쌍해서 눈물이 난다. 몸은 늙고 병들었지만 힘닿는 데까지 헌신, 노력하겠다.    2009년 1월 20일  용산구의 건물 철거 과정에서 단속 경찰의 난폭진압으로 5인이 죽고 10여 인이 부상 입원했다. 참으로 야만적인 처사다. 이 추운 겨울에 쫓겨나는 빈민들의 처지가 너무 눈물겹다.    2009년 1월 26일  오늘은 설날이다. 수백만의 시민들이 귀성길을 오고가고 있다. 날씨가 매우 추워 고생이 크고  사고도 자주 일어날 것 같다. 가난한 사람들, 임금을 못 받은 사람들, 주지 못한 사람들, 그들에게는 설날이 큰 고통이다    2009년 2월 4일  비서관회의 주재. 박지원 실장 보고에 의하면 나에 대해서 허위사실을 공표한 한나라당 의원에 대해서(100억 CD) 대검에서 조사한 결과 나는 아무런 관계없다고 발표. 너무도 긴 세월동안 ‘용공’이니 ‘비자금 은닉’이니 한 것, 이번은 법적 심판 받을 것. 그 의원은 아내가 6조 원을 은행에 가지고 있다고도 발표, 이것도 법의 심판 받을 것.    2009년 2월 7일  하루 종일 아내와 같이 집에서 지냈다.  둘이 있는 것이 기쁘다.    2009년 2월 17일  명동성당에 안치된 김수환 추기경의 시신 앞에서 감사를 드리고 천국영생을 빌었다. 평소 얼굴 모습보다 더 맑은 얼굴 모습이었다. 역시 위대한 성직자의 사후 모습이구나 하는 감동을 받았다.    2009년 2월 20일  방한 중인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으로부터 출국 중 전용기 안에서 전화가 왔다. 그는 전화로 1. 클린턴 대통령의 안부 2. 과거 자기 내외와 같이 있을 때의 좋았던 기억 3. 나의 재임시의 외환위기 수습과 북한 방문시 보여준 리더십 4. 다음 왔을 때는 꼭 직접 만나고 싶다 5. 남편 클린턴 대통령도 나를 만나기를 바라고 있다고 했다. 힐러리 여사가 뜻밖에 전화한 것은 나의 햇볕정책에 대한 지지 표명으로 한국 정부와 북한 당국에 대한 메시지의 의미가 담겨 있는 것 같다. 아무튼 클린턴 내외분의 배려와 우정에는 감사할 뿐이다.    2009년 3월 10일  미국의 북한 핵문제 특사인 보스워스 씨가 방한했다가 떠나기 직전 인천공항에서 전화를 했다. 개인적 친분도 있지만 한국 정부에 내가 추진하던 햇볕정책에의 관심의 메시지를 보낸 거라고 외신들은 전한다.    2009년 3월 18일  투석치료. 혈액검사, X레이검사 결과 모두 양호. 신장을 안전하게 치료하는 발명이 나왔으면 좋겠다. 다리 힘이 약해져 조금 먼 거리도 걷기 힘들다. 인류의 역사는 맑스의 이론 같이 경제형태가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지식인이 헤게모니를 쥔 역사 같다.  1. 봉건시대는 농민은 무식하고 소수의 왕과 귀족 그리고 관료만이 지식을 가지고 국가 운영을 담당했다.  2. 자본주의 시대는 지식과 돈을 겸해서 가진 부르주아지가 패권을 장악하고 절대 다수의 노동자 농민은 피지배층이었다.  3. 산업사회의 성장과 더불어 노동자도 교육을 받고 또한 교육을 받은 지식인이 노동자와 합류해서 정권을 장악하게 되었다.  4. 21세기 들어 전 국민이 지식을 갖게 되자 직접적으로 국정에 참가하기 시작하고 있다.  2008년의 촛불시위가 그 조짐을 말해주고 있다.    2009년 4월 14일  북한이 예상대로 유엔 안보리의 의장성명에 반발해 6자회담 불참, 핵개발 재추진 등 발표. 예상했던 일이다. 6자회담 복구하되 그 사이에 미국과 1 대 1 결판으로 실질적인 합의를 보지 않겠는가 싶다.   인터넷서울신문 event@seoul.co.kr
  • [김대중 前대통령 국장] 영결식 어떻게 진행되나

    [김대중 前대통령 국장] 영결식 어떻게 진행되나

    김대중 전 대통령의 영결식은 국장으로 엄수되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 때의 국민장과 큰 차이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국장과 국민장은 장의 기간과 국고 지원 규모, 영결식 날 관공서 휴무 여부 등에서 일부 차이가 날 뿐 장례행사 절차와 내용은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노 전 대통령 때와 달리 빈소와 영결식장이 같은 장소(국회광장)이고, 장지도 국립서울현충원이기 때문에 전체적인 영결식 시간은 훨씬 짧을 것으로 전망된다. 김 전 대통령의 영결식은 23일 오전 발인제를 거행하는 것부터 시작된다. 행정안전부는 아직 구체적인 영결식 식순을 마련하지 않았지만, 소장하고 있는 ‘국장·국민장 장의 행사 매뉴얼’에 따라 진행할 것으로 보인다. 매뉴얼에 따르면 김 전 대통령의 영구는 호위병 2명이 앞장서고 영정(가로 2m·세로 2.5m)→훈장→운구병(10명)→영구→호위병(2명)→유족 순의 행렬로 빈소에서 영결식장으로 운구된다. 영결식은 이날 오후 2시 장의위원 2300여명과 시민 1만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엄수될 예정이다. 영구가 군악대의 조곡에 맞춰 도열병을 통과한 뒤 자리를 잡으면 개식선언과 함께 국민의례가 시작된다. 이어 고인에 대한 묵념, 약력보고, 한승수 장의위원장의 조사, 종교의식 등이 진행된다. 또 고인의 생전 영상이 방영되고 헌화와 조가가 뒤를 잇는다. 마지막으로 삼군의장대의 조총이 21발 발사되고 영결식 폐회가 선언된다. 영결식이 끝나면 김 전 대통령의 운구는 곧바로 국립서울현충원으로 이동해 안장식이 거행된다. 김 전 대통령 유족 측은 노 전 대통령 때와 달리 노제(路祭)는 치르지 않겠다고 밝혔다. 영결식장에서 안장지로 이동할 때는 선도차와 대형태극기(가로 3.6m·세로 5.4m)가 영구를 인도한다. 영구 양옆과 앞뒤는 총 22대의 경찰 순찰차가 호위한다. 행안부 관계자는 “김 전 대통령의 장례는 국장인 만큼 박정희 전 대통령 때의 선례도 최대한 찾아 참조할 것”이라며 “구체적인 안은 22일쯤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행안부는 김 전 대통령의 서거를 애도하기 위해 공공기관은 24일 0시까지 조기를 게양하고, 민간도 23일 오후 6시까지는 조기를 달아 달라고 요청했다. 또 가로기와 차량기는 경사 때만 달기 때문에 국장 기간에는 게양을 자제해 줄 것을 당부했다. 임주형기자 hermes@seoul.co.kr
  • [사설] 김 전 대통령 국장 南南·이념 갈등 없도록

    김대중 전 대통령 장례를 국장으로 치르기로 한 정부 결정을 놓고 일부에서 마뜩잖은 기색이다. 극보수 단체와 일부 정치권 등에서는 국민장으로 치러진 최규하·노무현 전 대통령의 장례와 형평성이 맞지 않는다면서 이의를 제기한다. 극보수 단체들은 심지어 국장 거부운동을 거론하고 있다고 한다. 정부는 김 전 대통령의 생전 업적을 기리고 사회통합의 대승적 의의를 위해 국장을 결정했다고 설명한다. 민주화와 인권 발전, 남북과 동서의 화해와 협력을 이뤄낸 고인의 업적을 감안하면 잘한 결정이라고 우리는 본다. 김 전 대통령 장례는 전국민적인 애도 속에서 최고의 예우로 치러져야 한다. 김 전 대통령 서거를 이념과 계층, 지역갈등이 해소되는 사회통합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진보와 보수, 정파 가릴 것 없이 모두 여기에 힘을 쏟아야 할 때다. 국장이 옳으냐를 놓고 이념갈등이나 벌이고 있어서야 되겠는가. 형평성 논란을 해소하기 위해 차제에 국장·국민장에 관한 법률의 손질이 필요하다. 앞으로 다른 전직 대통령이 서거할 경우 김 전 대통령 국장 전례를 들어 국장을 요구하면 사회적 논란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현직 대통령은 국장, 전직 대통령은 국민장이라는 식으로 분명히 정리하는 게 바람직스러울 것이다. 북한은 조문단 파견과 관련한 접촉 창구를 계속 김대중 평화재단으로 삼고 있다. 조문단 파견 의사 전달과 조문단 명단 통보도 마찬가지다. 북한이 정부를 배제시키는 통민봉관으로 남남갈등을 노린다는 의구심이 차츰 커지고 있다. 북한은 김 전 대통령 조문으로 남남갈등을 부추기려 해서는 안 된다. 북한이 그런 의도를 갖고 있다면 남북 화해·협력을 이끈 고인의 생전 업적과 뜻을 훼손하는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지적해 둔다.
  • [김대중 前대통령 국장] 100일간의 ‘메모’… 인생소회 - 현정부 인식 등 꼼꼼히

    [김대중 前대통령 국장] 100일간의 ‘메모’… 인생소회 - 현정부 인식 등 꼼꼼히

    ‘행동하는 양심’은 마지막까지 무엇을 기록하고 싶었을까.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생애 마지막으로 기록한 100일간의 일기 가운데 일부가 21일 공개된다. 김 전 대통령 쪽의 최경환 비서관은 20일 “고인이 입원하기 한 달 전까지 쓴 일기 가운데 일부를 40쪽 분량의 소책자로 만들어 언론에 공개하고 전국 분향소에 보내겠다.”고 밝혔다. 책자의 제목은 ‘김대중의 마지막 일기-인생은 아름답고, 역사는 발전한다’이다. 일기는 지난 1월1일부터 6월4일까지 고인의 하루하루에 대한 소회와 단상을 다이어리에 메모 형식으로 기록한 것이다. 최 비서관은 “일기를 쓰신 날이 100일 정도 된다. 그 가운데 30일치를 소개하겠다.”고 전했다. 일기의 상당부분이 한자로 돼 있어 김 전 대통령 쪽은 이를 한글로 풀기로 했다. ●100일 가운데 30일치 소개 일기에는 지난 인생에 대한 소회와 부인 이희호 여사에 대한 애틋함,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 등 저명 인사들과의 만남 등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에 대한 심경과 현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인식도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고인은 생전에 ‘메모광’으로 불릴 정도로 꼼꼼히 기록하는 습관을 가졌던 만큼 한반도 상황과 국내 정치 등 민감한 현안에 대한 심경이 상세히 담겼을 것으로 보인다. 때문에 고인에 대한 추모열기에 더해 여권이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최 비서관은 “상당히 중요한 내용이 들어 있다. 책을 열어본 순간 전율을 느꼈다.”고 말했다. ●DJ가 직접 구술한 동영상도 공개 이와 함께 고인이 생전에 자신의 인생역정을 직접 구술한 방대한 분량의 동영상도 공개된다. 고인은 지난 2006∼07년 김대중 도서관이 진행한 구술사(Oral History) 프로젝트에 참여, 41회에 걸쳐 총 46시간 분량의 방대한 영상물을 녹화했다. 동영상에는 하의도에 태어나 성장한 과정과 정치역정을 이기고 집권한 것을 비롯해 IMF 외환위기 극복, 남북정상회담 개최, 한반도 평화교류시대 개막 등의 성과에 대한 자전적 목소리가 담겨진 것으로 알려졌다. 곧 출간될 예정인 고인의 자서전과 미공개 옥중서신도 관심을 끈다. 옥중서신에는 고인이 이 여사와 주고 받은 ‘우유팩 편지’ 사연이 실린 것으로 전해졌다. 사연은 고인이 1976년 3·1 명동 구국선언사건으로 진주교도소에 수감돼 있다가 서울대병원으로 이송된 뒤 1년 남짓 감금에 가까운 생활을 하던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유신체제를 비판하며 선언문에 서명했다가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구속된 인사들이 77년 석방됐지만, 고인은 마지막 석방기회를 앞둔 그해 12월18일 서울대병원으로 이송돼 강제치료를 받았다. 군사정권은 고인이 입원한 9층 병실 주변에 보초를 세우고 창문까지 막았다. 서신 왕래는 물론 면회도 통제됐다. 고인은 병실에서 우유를 먹고 난 뒤 우유팩을 모아 뒀다가 못으로 글을 써서 유일한 면회객인 이 여사에게 전했다. ●옥중서신중 우유팩 편지 내용도 관심 ‘우유팩 편지’에는 ‘나의 감금생활과 처지를 바깥 사람들에게 알리고 상의하라. 외신에게 알려라.’는 내용이 주로 담겼다. 이 여사는 이를 면회갈 때 가져간 반찬통에 담아 몰래 밖으로 날랐다. 자서전 출간 관계자는 “편지 내용이 희미해 해독이 어려웠지만 엄혹했던 시절에도 민주화에 대한 의지를 꺾지 않았던 고인의 발자취가 느껴졌다.”고 전했다. 김지훈 이재연기자 kjh@seoul.co.kr
  • 장례 ‘6일 國葬’으로

    장례 ‘6일 國葬’으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장례가 건국 이후 전직 대통령으로는 처음 ‘국장(國葬)’으로 엄수된다. 장례 기간은 김 전 대통령이 서거한 18일부터 23일까지 6일간, 장지는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으로 결정됐다. 영결식은 23일 오후 2시 국회광장에서 열리고, 안장식은 영결식 직후 거행될 예정이다. 장의위원장은 한승수 국무총리가 맡는다. 정부는 이날 오후 세종로 중앙청사에서 한승수 국무총리 주재로 임시 국무회의를 열어 이 같은 내용을 담은 ‘고 김대중 전 대통령 국장 계획안’을 심의, 의결했다. 김 전 대통령의 국장은 1979년 10월26일 재임 중에 서거한 박정희 전 대통령의 국장 이후 30년 만이다. 퇴임 이후 서거한 최규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장례는 국민장으로 치러졌다. 정부는 지난 5월에 7일 간 국민장을 치른 노 전 대통령 장례와의 형평성, 향후 서거하는 전직 대통령 장례에 미치는 영향 등을 이유로 고심했으나 유족 측의 입장도 고려해 국장을 치르기로 결정했다. 유족 측도 국가 경제의 어려움을 감안해 9일장이 아닌 6일장을 받아들였다. 한편 김 전 대통령의 입관식은 20일 정오 천주교 의식으로 열린다고 최경환 비서관이 밝혔다. 입관식은 유족만 참석하며 서교동성당의 윤일선 주임신부가 주관할 예정이다. 김 전 대통령의 수의는 이희호 여사가 생전에 준비한 것을 쓰기로 했으며, 대통령 상징 문양인 봉황무늬가 새겨진 목관에 안치될 예정이다. 입관식이 끝나면 김 전 대통령의 시신이 안치된 관은 운구절차에 따라 국회 빈소로 옮겨진다. 강주리 오달란기자 jurik@seoul.co.kr [다른 기사 보러가기] ☞프랑스 교도소 자살방지책은 ‘종이잠옷’ ☞익명으로 블로그에 ‘추녀’라고 함부로 썼다간… ☞“얘야 공무원보다 대기업 가라” ☞비위판사는 사표 맘대로 못낸다 ☞“뚜껑 나이트클럽 안된다” ☞장자연사건 유력인사 10명 모두 무혐의 ☞“프라다 나와!”
  • DJ ‘3김 퀴즈’ 정답 7년4개월 만에 맞히다

    DJ ‘3김 퀴즈’ 정답 7년4개월 만에 맞히다

    ’딩동댕’ 2002년 4월부터 MBC 라디오 ‘최양락의 재미있는 라디오’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려온 코너 ‘3김 퀴즈’가 7년 4개월 만에 처음으로 딩동댕을 울렸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18일 서거하면서 이 코너가 중단되고 있는 가운데 19일 이 코너 진행을 맡고 있는 최양락은 “그동안 문제를 일부러 틀리느라고 고생하셨는데 여러분이 양해주신다면 처음으로 정답을 맞히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다.생전의 김 전 대통령이 자신은 물론 김영삼 전 대통령,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 등 3김을 풍자하는 이 코너를 잘 알고 있었으며 본인이 희화화되는 것을 크게 개의치 않았다고 소개한 최양락은 고인에 대한 고마움을 표시했다. 그러면서 문제를 제대로 내지도 않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애칭인 DJ을 거론하며 “정답 아시겠습니까?”를 외쳤고 이에 평소 DJ의 성대모사를 맡아온 배칠수가 “민주주의”라고 답한 뒤 딩동댕이 울려퍼진 것.지금까지 3김 퀴즈에서 정답을 맞힌 것은 7년 4개월 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최양락은 이어 ‘3김 퀴즈’는 당분간 쉬고 있다고 분명히 밝혀 일부에서 알려진 대로 폐지가 결정된 것은 아니라는 여운을 남겼다. 최근 김대중 전 대통령이 중환자실에 입원했을 무렵부터 ‘3김 퀴즈’는 고인을 제외하고 두 김씨의 성대모사 만으로 진행되어왔다. 인터넷서울신문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관가 포커스]전직 대통령 잇단 서거에 술렁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 다음날인 19일 오전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는 검은색 양복을 입고 출근하는 공무원들이 유독 많았다. 연일 계속되는 무더위 때문에 평소 회색이나 밝은색 계열의 정장을 입었던 것과는 대조되는 모습. 공무원들은 특히 행정부 최고 수반이었던 전직 대통령이 3개월도 되지 않아 연달아 서거하자 술렁이는 모습을 보였다. 한 계장급 공무원은 “위독하다는 소식이 들리기는 했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 때와는 또 다른 충격”이라며 “김 전 대통령이 우리 역사에서 이룩했던 일을 생각하면 비통한 심정”이라고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공무원들은 그러나 서울광장 등에 마련된 김 전 대통령의 분향소를 찾는 것에 대해서는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한 사무관은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의무도 있고, 정권이 바뀐 지금 전직 대통령의 분향소를 찾기가 쉽지 않다.”고 털어놨다. 일부 공무원들은 동료와 무리를 지어 분향소를 찾기보다는 민간에 근무하는 다른 지인들과 조용히 다녀오겠다는 속내를 드러내기도 했다. 비교적 자유롭게 정치적 의사표현을 할 수 있는 공무원노조의 애도성명도 잇따랐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은 이날 성명을 통해 ‘김 전 대통령은 평생을 민주화 투쟁과 인권신장에 헌신했고, 냉전의 한반도에 화해의 전기를 마련했다. 고인이 생전에 이루지 못했던 한반도의 평화정착과 민주주의 수호에 앞장서겠다.’고 밝혔다. 전국민주공무원노동조합 목포지부는 사무실 건물에 김 전 대통령의 명복을 비는 대형 현수막을 내걸었다. 임주형기자 hermes@seoul.co.kr
  • [사설]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를 애도하며

    대한민국 제15대 대통령을 지낸 김대중 전 대통령이 어제 영면에 들었다. 한국의 민주화를 대변하는 큰 정치인의 서거를 국민들과 함께 애도한다. 고인이 편안히 하늘나라에 들 것을 기원하면서 유족들에게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 고인이 남긴 정치적 족적은 우리 헌정사에서 뚜렷이 기록될 것이다. 남은 이들은 고인이 생전에 강조했던 민주·평화의 열망을 이어가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김 전 대통령의 일생은 한국의 민주주의 역사를 그대로 담고 있다. 권위주의 군사정권에 항거해 수차례 죽을 고비를 넘겼다. 투옥, 가택연금, 망명생활 등 온갖 어려움을 겪었으나 결코 독재정권과 타협하지 않았다.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한국이 오늘날 민주국가로 발전하게 된 데는 고인과 김영삼 전 대통령 등 이른바 ‘양김(兩金)’의 정치투쟁에 힘입은 바 크다. 고인은 대통령선거에 4차례 출마, 3전4기 끝에 당선되는 집념을 보여줬다. 헌정사상 처음으로 민주선거를 통한 여야 정권교체를 이룸으로써 한국의 민주주의를 한 단계 성숙시켰다. 대통령 재임 중 생산적 복지를 내세워 서민과 소외계층 등을 위한 사회안전망 확충에 힘썼다. 특히 고인이 일생을 통해 추진한 것은 한반도 평화공존이었다. 근래 퍼주기 논란을 빚고 있지만 햇볕정책으로 불리는 대북정책은 고인이 심혈을 기울였던 작품이었다. 평양 정권을 대화의 장으로 이끌어 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을 성사시켰다. 남북 경협사업도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하게 진행시켰다. 김 전 대통령은 한국인으로서는 유일하게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고인이 추진했던 한반도 평화정책이 국제사회에서 인정받았던 셈이다. 南南갈등 증폭시키지 말기를 몇년 사이에 북한이 핵실험과 미사일 도발을 거듭함으로써 햇볕정책의 효용성이 의심받고 있다. 하지만 대화로써 북한 정권을 설득해 핵무기를 포기케 하고, 공동번영을 누리자는 데 이견이 있을 수 없다. 남남(南南)갈등을 증폭시키기보다 고인의 유지가 긍정적인 방향으로 계승되도록 하는 게 바람직하다. 고인이 궁극적으로 바랐던 것은 남북 화해와 한반도 평화정착이었던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완강하던 북한이 최근 남북관계 개선에 응할 분위기로 돌아서고, 미국과의 관계 개선에도 나설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점은 다행스럽다. 고인의 정치일생에서 그늘도 있었다. 영남에 비해 상대적으로 인구가 적은 호남 출신으로서 특정 지역을 기반으로 한 정치를 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스스로는 지역감정 해소를 위한 노력을 했다고 밝혔으나 고인으로 인해 지역주의가 강화됐다는 지적을 비켜가지 못하고 있다. 집권 당시의 DJP연합 등을 비롯해 정치권의 잦은 이합집산을 주도했다는 평도 듣는다. 재임시 아들들과 측근들이 비리 의혹에 휩싸인 점은 고인에게 뼈아픈 대목이다. 물론 민주화와 평화공존과 관련한 김 전 대통령의 업적이 커서 이러한 문제들은 지엽적으로 비친다. 병상서도 화해분위기 확산시켜 특히 고인이 병상에 누워 있는 동안 국내외의 많은 인사들이 병문안을 다녀갔다. 마지막 가는 길에 통합과 화해의 기운을 확산시킨 셈이다. 고인의 정치적 라이벌 김영삼 전 대통령이 병문안을 한 뒤 ‘화해’를 선언했다. 비록 고인의 육성은 없었으나 깨어 있었다면 분명히 화답했을 것이다. 양김의 불화와 대결은 한국 지역주의가 심화된 주요 요인 중의 하나였다. 양김 화해를 계기로 정치권은 행정구역 개편과 선거구제 개선으로 지역감정 타파를 위한 제도정비에 나서야 할 것이다. 김 전 대통령을 문병한 인사 가운데는 전두환 전 대통령도 있었다. 김 전 대통령을 정치적으로 박해하고, 광주항쟁을 무력으로 진압했던 장본인까지 문병객으로 맞이함으로써 화해·용서를 한 단계 끌어올렸다고 본다. 이러한 화해 무드가 전 사회로 확산되길 바란다. 김 전 대통령은 근래 현실정치에 개입하는 발언을 자주 했다. 현 이명박 대통령 정부를 매섭게 비판하기도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검찰 수사를 받다가 자살이라는 충격적인 방법으로 서거한 뒤 현 정부를 향한 비난의 강도가 더욱 높아졌다. 전직 대통령으로서 현실정치에 너무 간여한다는 힐난의 목소리가 나왔지만 우리 정치를 걱정하는 고인의 충정이 깔려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제 김 전 대통령이 이승을 하직함으로써 고인의 정치적 영향력 확대 논란은 수그러들게 되었다. 수십년간 한국 정치를 눌러 왔던 양김 정치시대는 끝났다. 김 전 대통령의 진심은 민주화의 진전과 국정안정을 바랐다고 보며 여야 정치권은 고인의 유지를 함부로 훼손해서는 안 될 것이다. 김 전 대통령의 서거를 맞아 현 정부와 여야 정치권 모두 옷깃을 여며야 한다. 정부·여당은 혹시 권위주의 시대로 역행하는 일은 없는지 정책과 언행을 다시 살펴야 할 것이다. 민주당 등 야당은 고인의 영향력에 기대어 표를 모으려는 생각에서 벗어날 때가 되었음을 알아야 한다. 이제부터는 야당 스스로의 비전과 정책을 제시해 국민들로부터 평가받아야 한다. 김 전 대통령의 카리스마에 업히려 해서는 안 되고, 또 그것이 가능하지도 않다. 삼가 김 전 대통령의 명복을 다시 빌면서, 국가적인 경건함 속에 장의절차가 차질없이 진행되길 바란다.
  • [김대중 前대통령 서거] “큰 인물 가셨다” 하의도 눈물바다

    ■ 고향 신안군 후광리 표정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고향인 전남 신안군 하의도는 18일 온통 슬픔과 안타까움에 젖어들었다. 김 전 대통령이 영면의 길로 접어들었다는 소식을 접하자마자 하의도 주민들은 농사일을 중단한 채 마을회관 앞으로 속속 모여들었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가 상제인 듯 비통한 분위기에 휩싸였다. 주민들은 “참말로 큰 인물이 가셨다.”며 소매로 눈물을 훔치곤 했다. ●온 마을이 喪家… 농사 접고 탄식 면사무소 앞에서 만난 주민 김경선(50·웅곡리)씨는 “지난 4월 14년 만에 김 전 대통령께서 하의도를 찾으셨을 때만 해도 건강해 보였는데 이렇게 가시다니 정말 안타깝다.”고 말했다. 농협 하나로마트 직원 이미영(30·여)씨는 “손님들마다 김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묻는 등 모두가 안타까운 심정을 말하고 있다.”고 전했다. 김 전 대통령의 조카이자, 큰형님인 대봉(1972년 작고)씨의 아들인 홍선(48)씨는 “집념이 워낙 강한 분이셔서 이번에도 금세 일어서실 것으로 믿었는데 가슴이 멘다.”고 울먹였다. 생가가 있는 후광리와 친척들 대부분이 모여 사는 대리1구 주민들의 슬픔은 남달랐다. 8촌 동생인 도미(58)씨는 “대통령이 우리 고향은 물론 대한민국이 자랑할 만한 분으로 좀 더 오래 사셨으면 하는 바람이었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후광리 이장 이형렬(61)씨는 “김 전 대통령의 지난 4월 고향 방문이 생전 마지막 길이었다는 게 믿을 수 없다.”고 말했다. 고 김 전 대통령의 모교인 목포북교초등학교와 전남제일고(옛 목포상고) 정문에는 ‘삼가 김대중 전 대통령님의 명복을 빕니다’라는 플래카드가 내걸렸다. ●생가·관공서 분향소 조문객 줄이어 신안군청 직원들은 관공선 2척을 타고 하의도로 들어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생가(후광리)에 분향소를 마련했다. 하의도 주민들은 인근 지역에서 조문객들이 몰려올 것에 대비, 음료와 음식을 마련하는 등 조문객 맞이에 매달렸다. 정연순(46) 하의도 부녀회장은 “마을과 면사무소 등에서 정수기를 가져다 조문객들이 마실 물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의도에 들어온 취재진도 슬퍼하는 마을 사람들의 모습을 실시간으로 전했다. 목포여객선터미널과 목포역에는 촌로와 시민들이 텔레비전 앞에 모여들어 눈물을 글썽거리거나 줄담배를 피워가며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하의도 14개 섬마다 추모 플래카드 하의면사무소와 우체국·신안군청·목포시청·전남도청 등 전남지역 주요 관공서에는 일제히 조기가 내걸렸고, 분향소도 마련됐다. 하의도 14개 섬마다 면사무소와 중심가에 김 전 대통령의 서거를 추모하는 글귀를 적은 플래카드가 2개씩 내걸렸다. 김 전 대통령의 최측근인 박지원 의원의 목포 사무실과 민주당 전남도지부·광주시지부 등에 분향소가 마련돼 조문객들의 발길이 줄을 잇고 있다. 박종원(50) 하의면장은 “면사무소 회의실에 분향소를 마련해 인근 지역 주민들이 분향토록 했고 주민자치센터에도 기자실을 만들어 취재에 불편함이 없도록 조치했다.”고 밝혔다. 신안 남기창기자 kcnam@seoul.co.kr ■정치적 고향 광주 표정 “할 일 태산같은데…” 시민들 눈시울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인 광주는 서거 소식이 전해진 직후 ‘결국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는 체념으로 일순간 적막감에 휩싸인 듯했다. TV 속보를 지켜보던 시민들은 ‘영원히 떠나가는 임’의 명복을 빌었다. 사무치는 슬픔을 가슴에 묻었다. 버스터미널에 나온 김영준(65)씨는 “민주화의 거목이 쓰러졌다.”며 “우리는 그분의 민주주의와 평화에 대한 신념을 큰 덕목으로 삼아야 한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광주는 김 전 대통령의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김 전 대통령 자신도 그동안 “광주는 나를 키워주고 밀어주고 한없는 사랑을 줬다. 항상 빚을 짊어지고 있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1980년 5·18민주화운동으로 상처받은 시민들에겐 김 전 대통령이 ‘지역의 한’을 풀어줄 유일한 대안이었다. ‘김대중’은 ‘희망’이었다. 5·18유족회원 임근단(78)씨는 “그분이 1980년대 후반 처음으로 5·18묘지를 방문해 ‘내가 죽었어야 하는데, 여러분들이 죽었다.’며 어찌나 서럽게 눈물을 흘리시던지,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코끝이 찡하다.”며 기억을 더듬었다. 고 명노근 전남대 교수의 부인 안성례(70·오월 어머니집 관장)씨는 “그분의 회생을 빌며 새벽마다 기도했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시민 문현석(48)씨는 “남북통일과 국민화합 등 아직도 할 일이 태산처럼 많으신데…. 너무 안타깝다.”며 말끝을 흐렸다. 광주시청사와 민주당 광주시지부 사무실 등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님의 명복을 빕니다’란 대형 현수막이 내걸렸다. 광주시청에 차려질 예정이던 분향소는 접근이 쉬운 광산동 옛 전남도청 건물에 마련됐다. ‘광주시민합동분향소’로 이름 붙여진 분향소는 시와 민주당 광주시당, 시민단체가 공동으로 운영한다. 광주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길섶에서] 왕릉/박정현 논설위원

    늦더위를 피할 겸 경기도 고양의 서오릉을 찾았다. 중학교 2학년 때 소풍을 갔던 곳이다. 서울에서 지척이건만 35년만의 방문이다. 이곳저곳을 둘러보면서 김밥을 먹던 장소와 친구들을 떠올려 보지만 기억이 없다. 당시에는 엄청나게 느껴졌던 왕릉들이 줄어든 듯한 느낌은 세월의 반영일 게다. 학생들의 소풍 장소였던 서오릉은 유네스코가 정한 세계문화유산이 됐다. 그래서인지 안내 표지판들이 새롭다. 경릉·창릉·익릉·명릉·홍릉 가운데 경릉이 눈길을 끈다. 성종의 아버지 의경세자의 무덤인 경릉은 여느 왕릉과는 다르다. 왕이 오른쪽에, 왕비가 왼쪽에 모셔지던 관행과 달리 왕비가 오른쪽에 위치한 유일한 여성 상위 왕릉이다. 의경세자는 덕종으로 추존됐지만 인수대비인 부인의 생전 지위가 높았기 때문이란다. 이오장의 시집 ‘왕릉’을 펼쳐본다. 시인은 “망주석 한 없는 무덤일지라도 / 나에겐 넘치는 자리…높낮이 따져 무엇하리”라고 전한다. 왕릉과 함께 우리의 역사도 함께 보전해야 할 것 같다. 박정현 논설위원 jhpark@seoul.co.kr
  • [김대중 前대통령 서거] 李대통령 “큰 정치 지도자 잃었다”

    18일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에 청와대와 전직 대통령, 각 정당은 일제히 충격 속에 애도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큰 정치 지도자를 잃었다.”면서 “민주화와 민족 화해를 향한 고인의 열망과 업적은 국민들에게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청와대는 밝혔다. 이 대통령은 “김 전 대통령 생전의 뜻이 남북 화해와 국민 통합으로 이어지기를 기원한다.”면서 “고인의 명복을 빌며 유족들에게 깊은 애도의 뜻을 표한다.”고 말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아쉽고도 안타깝다. 나라의 큰 거목이 쓰러졌다.”며 유족들에게 조의를 전했다. 그는 서울 상도동 자택에서 보고를 받고 무거운 표정을 지었다고 측근들이 전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침통한 표정으로 “지난 수십년간 파란 많은 정치역정을 걸어왔는데, 이제 천주님의 품에 안겨 영원한 안식을 누리기를 바란다.”고 말했다.기관지 수술로 말하기가 어려운 노태우 전 대통령은 TV 방송을 통해 소식을 접하고 충격적이고 애통한 표정을 지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나라당 윤상현 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대한민국의 위대한 지도자 한 분을 잃었다.”면서 “생전에 이루고자 하셨던 숭고한 뜻이 국민 화합과 남북간 평화로 이어지길 바란다.”고 밝혔다. 한나라당은 이날 오후 긴급 최고위원회의를 갖고 조문단 구성 등 대책을 논의했다. 민주당 우상호 대변인은 “어버이를 잃은 것처럼 황망하고 허전하다.”면서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와 더불어 민주당의 뿌리와 정신인 두 전직 대통령을 잃었다. 국민의 참담한 심정을 무슨 말로 표현할 수 있겠는가.”라고 논평했다. 정세균 대표를 비롯해 당 지도부는 당초 이날 경북 포항에서 예정됐던 장외투쟁 등 외부 일정을 전면 취소하고 긴급 최고위원회를 열어 장례 대책 등을 논의했다. 자유선진당 박선영 대변인은 논평에서 “순탄치 않았던 정치역정을 불굴의 의지로 극복하셨던 김 전 대통령은 끝까지 왕성한 노익장을 보여주셨다.”면서 “고인이 남긴 많은 족적과 업적은 후대의 역사가 바르게 평가하고 기억할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노동당 우위영 대변인은 “시대의 큰 별이 졌다.”면서 “행동하는 양심이 되라는 유훈을 잊지 않겠다.”고 밝혔다. 김지훈 허백윤기자 kjh@seoul.co.kr
  • [김대중 前대통령 서거] 박지원 “김 前대통령 입원 전까지 일기 써”

    김대중 전 대통령은 입원 전까지 동교동 자택에서 일기를 썼던 것으로 밝혀졌다. 박지원 의원은 이날 “이 여사는 (김 전 대통령이) 유서를 남기지 않으셨다고 한다.”면서도 “혹시 일기에 (유언이 될 만한) 얘기를 남겼는지 여사께서 챙겨 보실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어 “김 전 대통령이 이 여사에게 얘기하지 않고 유서를 작성해 생전에 쓰던 책상, 서랍 등에 보관했는지는 아직 확인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감옥에서 여사님과 몰래 주고받은 편지를 토대로 ‘제2의’ 옥중서신을 집대성해 곧 출간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이재연 오달란기자 oscal@seoul.co.kr
  • 서태지 “김 前대통령 대중문화와 음악 사랑하신 분”

    서태지 “김 前대통령 대중문화와 음악 사랑하신 분”

    가수 서태지(37)가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에 애도의 뜻을 표했다. 서태지는 18일 소속사를 통해 “(김 전 대통령은)대한민국의 민주주의와 인권신장, 그리고 평화를 위해 평생을 헌신하신 분. 특히 대한민국 젊은 세대의 ‘대중문화’와 ‘음악’을 사랑해주신 분으로 ‘존경’과 함께 안타까운 마음으로 ‘조의’를 표합니다.”라는 추모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서태지는 대중 문화를 사랑한 김대중 전 대통령이 아꼈던 대표적인 대중 예술인. 김 전 대통령은 생전 서태지를 ‘가요계의 대통령’으로 부르며 그에게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사진제공 = 서태지 컴퍼니 서울신문NTN 우혜영 기자 woo@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쇠망치질 16차례… 사라진 ‘최진실 유골함’

    “누가, 왜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을 저질렀을까.”지난해 10월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고 탤런트 최진실씨의 유골함이 광복절인 15일 새벽 묘지에서 도난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도대체 누가, 어떤 이유에서 범행을 저질렀는지 추정만 난무할 뿐 사건의 실체는 오리무중이다. 경찰은 열혈팬에 의한 계획적 범죄에 무게를 두고 16일 유골이 안치돼 있던 경기 양평군 양수리 갑산공원으로 통하는 국도변 폐쇄회로(CC)TV를 판독하는 동시에 납골분묘 등에서 지문을 채취, 신원확인 작업을 벌이고 있다.●계획적 범행 vs 우발적 소행경찰이 최씨의 유골함 도난 신고를 받은 것은 15일 오전 8시10분쯤. 공원 관계자는 “오늘 오전 7시50분쯤 직원이 묘원을 순찰하던 중 최씨 납골분묘 주변에 꽃바구니가 어지럽게 흩어져 있는 것을 보고 이를 정리하다 최씨의 분묘가 깨져 있고, 유골함이 없어진 것을 확인했다.”고 경찰에 밝혔다. 발견 당시 최씨 분묘는 대리석으로 된 남쪽 벽면이 깨진 상태였고, 누군가 쇠망치 같은 도구로 10여차례 내리친 흔적이 남아 있었다.경찰은 절도범이 쇠망치로 추정되는 도구까지 동원한 것으로 미뤄 일단 계획적인 범행에 무게를 두고 수사를 하고 있다.공원 전병기 관리소장은 “깨진 벽면은 화강암 재질로 두께가 7㎝나 돼 쇠망치와 같은 대형 공구 외에는 부수기 어렵다.”며 “누군가 둔기를 준비해 15~16차례 정도 내려친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고인의 지인과 누리꾼들은 이번 사건을 놓고 열혈팬이나 무속인의 소행이 아니겠느냐고 추측하고 있다. 고인의 전 소속사 관계자는 “생전에도 통제할 수 없는 열혈 팬들이 있었는데, 그들 중 한 명이 벌인 일이거나 잘못된 생각을 가진 무속인의 소행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묘지 옆에 소주병이 놓여 있었던 것을 보면 고인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사람의 소행 같지는 않고, 누군가 와서 고인을 애도하다가 잘못된 행동을 한 게 아닌가 싶다.”며 “한편으로는 뭔가 잘못된 믿음에서 일을 벌인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고 덧붙였다.경찰도 빈 소주병 2개가 발견된 것으로 미뤄 고 최씨의 열혈팬이 무덤 곁에서 술을 마신 뒤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경찰은 “면식범의 소행이거나 공범이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고 덧붙였다. 돈을 노린 절도 가능성과 함께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광팬이 범행을 저질렀거나 잘못된 신념에 사로잡힌 무속인의 범행일 가능성도 열어 두고 있다.경찰은 현장에서 채취한 지문과 CCTV 분석에 집중하고 있다. 현장에서 발견된 빈 소주병 2개와 최씨의 납골분묘 등에서 지문을 채취, 경찰청으로 보내 신원확인 작업을 벌이고 있다.경찰은 또 사건현장에 있던 소주병과 깨진 대리석 조각 등에 범인의 DNA가 남아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국립과학수사연구소로 증거물을 보내 정밀 감식을 의뢰할 계획이다.그러나 묘원 2구역에 설치돼 고인의 묘소를 비추던 CCTV는 지난 12일 낙뢰를 맞아 작동하지 않았고, 1구역 CCTV도 비슷한 상황인 것으로 알려져 경찰 수사에 어려움이 예상된다.경찰은 이에 따라 갑산공원으로 통하는 국도상의 CCTV 2대에 녹화된 화면을 확보, 사건발생 추정시간인 14일 오후 6시~15일 오전 8시를 전후해 공원 주위를 드나들던 차량을 정밀분석하는 등 단서를 찾고 있다. 현장에 있던 방명록을 입수해 지난 14일 최씨 묘소를 찾은 사람에 대한 탐문조사도 병행하고 있다.갑산공원 측은 “공원에는 직원 1명이 상주하며 24시간 묘원을 관리하고 있으며 14일 오후 6시 마지막으로 묘원을 순찰할 때에는 이상한 점이 없었다.”고 밝혔다.●“고인 두 번 죽이는 일”네티즌들은 “충격이다. 어처구니가 없다. 죽어서도 편히 쉬지 못하나?”라는 반응을 보이면서도 “빨리 유골함을 찾아서 편히 쉴 수 있게 했으면 좋겠다.”며 안타까워했다. 다음 게시판의 아이디 ‘뽀돌이님’은 “어떤 잘못된 믿음에서 유골을 빼냈건 망자의 영면을 방해하는 것은 절대 득이 될 일이 없으니 다시 갖다 놓으시길”이라고 적었다.또 다른 네티즌은 “너무 황당하다. 죽어서까지 편안히 쉬지 못하고 이런 수난을 겪는 것을 보니 참담하다.”고 말했다.최씨 어머니는 이날 취재진들에게 “유골함을 제자리에 돌려만 준다면 어떤 책임도 묻지 않겠다.”며 “진실이가 편히 쉴 수 있도록 힘들어하는 가족들에게 제발 돌려 달라.”고 호소했다.김병철기자 kbchul@seoul.co.kr
  • 사진 찍는데 ‘불쑥’ 나타난 야생 다람쥐

    사진 찍는데 ‘불쑥’ 나타난 야생 다람쥐

    야생 다람쥐 한 마리가 불쑥 카메오로 출연한 익살스러운 사진이 인터넷에서 화제를 모으고 있다. 과학잡지 내셔널 지오그래픽 최신판에 실려 인기를 모은 이 사진은 지난달 미국인 부부가 캐나다 밴프 국립공원에 있는 미네완카 호수(Lake Minnewanka)를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하려다가 포착한 모습을 담았다. 브란타 부부가 평화로운 자연을 배경 삼아 사진을 찍으려고 셀프 타이머를 맞춘 카메라를 바위에 얹자, 작은 다람쥐 한 마리가 갑자기 나타났다. 다람쥐가 생전 처음 봤을 법한 카메라에 호기심을 보이는 순간 카메라가 이 흥미로운 장면을 잡은 것. 게다가 카메라의 초점이 다람쥐에 맞아 더욱 재밌는 모습으로 나타났다. 우연히 찍은 사진으로 색다른 추억을 얻게 된 브란트 부부는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잡지와 한 인터뷰에서 부부는 “하이킹을 하다가 이렇게 재밌는 사진을 얻게 될 줄 몰랐다.”면서 “다람쥐는 곧 사라졌지만 이 사진은 평생 추억으로 남을 것”이라며 즐거워했다. 다람쥐의 깜찍한 모습이 담긴 사진은 가디언 등 여러 언론매체에 실렸다. 일부 독자들은 “이 장소에 가면 앙증맞은 다람쥐를 다시 볼 수 있는 것이냐.”고 문의하기도 했다.   강경윤기자 newsluv@seoul.co.kr
  • 玄회장, 김정일 못 만난 듯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의 면담을 위해 방북 일정을 하루 연장했지만 12일에도 만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당초 현 회장의 방북으로 기대했던 성과가 제대로 있을 것인지 걱정하는 목소리도 없지 않다. 현 회장은 이날 평양에 머물렀던 것으로 알려졌다. 현 회장은 방북 첫날부터 계속 평양에 체류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새벽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김 위원장이 함경남도 함흥에 있는 김정숙 해군대학을 시찰했다고 보도했다. 통상적으로 북한 언론이 김 위원장의 현지지도가 종료된 다음날 알린다는 점에서 김 위원장은 11일 김정숙 해군대학을 시찰했을 가능성이 높다. 태풍 모라꼿의 영향으로 북한에도 11일 많은 비가 내렸다는 점에서 김 위원장이 해군대학을 시찰한 이후 평양으로 복귀하지 않고 함흥시나 동해안 지역에 머물고 있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현 회장이 13일 귀환하기 직전 김 위원장을 전격 만날 가능성도 있지만 면담이 불발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과거 현 회장은 3차례 김 위원장을 만나 굵직한 성과물을 도출해 냈다. 때문에 이번 방북 기간 중 현 회장이 김 위원장에게 136일째 억류 중인 현대아산 직원 유모씨 석방이라는 성과를 얻어낼 것이라는 기대가 컸다. 하지만 현 회장이 이날까지는 김 위원장을 면담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13일 유씨와 함께 귀환할 가능성도 낮아진 게 아닌가 하는 우려도 나온다. 현 회장과 김 위원장의 만남이 불발될 경우 남북관계는 더 어려운 고비를 맞을 가능성도 있다. 현 회장은 2005년 7월16일 북측 원산초대소에서 김 위원장을 만나 백두산 및 개성 시범 관광 실시라는 성과를 얻어냈다. 2007년 11월2일의 면담에선 금강산 최고봉인 비로봉 관광, 서울~백두산 직항로를 이용한 백두산 관광, 선죽교, 고려왕릉, 박연폭포 등 개성 관광 합의, 7대 경협 분야 독점권 재확인 등을 이끌어 냈다. 당시 현 회장은 김 위원장과의 면담을 통해 금강산에 이어 개성과 백두산 등 대북 관광 ‘3대 사업’을 모두 성사시켜 시아버지인 정주영 명예회장과 남편인 정몽헌 회장이 생전에 하지 못한 대북 관광사업을 이뤄냈다는 평가도 받았다.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 [길섶에서] 마음의 악보/김종면 논설위원

    신성일·엄앵란 주연의 영화 ‘동백아가씨’는 1964년 개봉 당시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가수 이미자가 동명의 주제곡을 부르면서 매진 사태를 빚었다. 그 노래를 만든 이가 백영호다. ‘동백아가씨’를 비롯해 ‘황포돛대’ ‘해운대 엘레지’ ‘동숙의 노래’ 등 무려 4000여곡을 작곡한 서정가요의 일인자다. 며칠전 진주에서 내과의사로 일하는 선생의 맏아들 백경권 교수가 자신이 펴낸 부친의 노래모음집 ‘백영호 음악과 인생’을 보내왔다. 이 뜻밖의 선물로 두 가지를 알게 됐다. 자신의 병원 한쪽에 백영호기념관을 운영하는 백 교수가 ‘동백아가씨’를 피아노로 연주하며 환자들의 상처를 어루만져 주는 게 부친의 생전 뜻이라는 것, 그리고 ‘동백아가씨’가 노랫말을 넘겨받은 뒤 기타 몇 차례 튕겨 보고 두 시간만에 완성된 ‘영감의 산물’이라는 것. 그 달란트가 놀랍다. 약자에 대한 배려의 마음씨는 또 얼마나 아름다운가. 일필휘지로 폐부를 파고드는 글을 쓸 재주는 없지만 마음의 붓끝만이라도 늘 낮은 곳으로 향하도록 해야지…. 스스로 다짐해 본다. 김종면 논설위원 jmkim@seoul.co.kr
  • 1년도 안돼 또다시 복권 당첨된 47세 노총각

    지난해 9얼 7만 5000달러(약 9187만원)의 복권 당첨금을 손에 쥐었던 미국의 47세 노총각이 1년도 안돼 90만달러(약 11억 250만원) 복권에 당첨되는 행운을 누렸다.  화제의 주인공은 캔자스주 위치타의 한 회사에 17년째 다니고 있는 에드워드 윌리엄스.1년여 전에 당첨금을 그에게 안겼던 복권은 20달러짜리 즉석복권이었는데 이번에는 5달러밖에 되지 않는 슈퍼 캔자스 캐시 복권을 구입했다가 5일(이하 현지시간) 또다시 ‘돈벼락’을 맞았다고 AP 통신이 8일 전했다.  윌리엄스는 캔자스 복권위원회가 이날 대신 배포한 성명을 통해 “처음에 7만 5000달러 돈벼락을 맞았을 때에는 다시는 이런 행운이 되풀이되지 않을 것 같았는데 한방 얻어맞은 것 같다.”고 감격했다.  7일 복권 당첨금을 일시 수령하기 위해 토피카를 찾은 그는 세금을 빼고 62만 7541달러를 찾아왔다.첫 번째 당첨금으로는 그는 새 자동차를 뽑고 나머지는 양도성예금증서(CD) 한 장으로 예치했는데 이번에는 55세쯤 될 것으로 보이는 은퇴 이후를 대비해 역시 저축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슈퍼 캔자스 캐시 뿐만아니라 파워볼 등 온갖 복권들을 구입해왔다며 “계속 복권을 사라고 말하는 것이 대박을 희망하는 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최상의 조언”이라고 말했다.  물론 그가 복수의 복권에 당첨된 첫 행운의 주인공은 아니다.2006년에 아이오와주 워털루에 사는 키스 셀릭스란 남성은 세 차례 복권에 잇따라 당첨돼 모두 8만 1000달러를 손에 넣은 적이 있다.당시 그는 부인이 죽은 뒤 행운이 계속 따라온다고 털어놓은 바 있는데 생전의 부인은 돈을 엉뚱한 데 낭비한다고 걸핏하면 구박했다고. 인터넷서울신문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내 책을 말한다] 절대군주 이미지 속 숨은 전략

    프랑스의 루이 14세(1638~1715)는 흔히 절대군주의 전형으로 손꼽힌다. 5세에 즉위한 그는 72년이라는 유례없이 긴 기간 동안 왕위를 지켰다. 조선 왕 중 재위기간이 가장 긴 영조보다 20년이나 더 정치적 지속성을 유지한 셈이다. 이 기나긴 치세에 그는 봉건귀족 세력을 제압함으로써 왕권을 강화하고 65만명의 상비군을 갖춘 거대한 중앙집권 체제를 기반으로 유럽의 패권 장악에 성공했다. 살아 생전에 그는 ‘대왕’이라는 칭호를 부여받았다. 우리에게 알려진 루이 14세는 오만한 독재자이기는 하지만 정치적 신념과 탁월한 통치력을 겸비한 인물이었다. 그와 측근이 남긴 수많은 회고록과 공문서, 법령집은 오랫동안 그 증거 역할을 했다. 전 세계에서 관람객들이 몰려드는 베르사유는 지금도 절대군주 루이 14세의 존재를 웅변해주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그와 정반대되는 증거도 많다. 베르사유에 거주하며 루이 14세와 그의 치세를 목격하고 경험한 궁정귀족, 외교사절의 회고록과 편지는 그가 보여주고 남기고 싶어 한 것과는 다른 이야기를 전한다. 그들의 기록에 의하면 루이 14세는 새로운 국가 건설의 이상에 불타오른 인물이 아니었다. 백성의 고통을 배려하는 자상한 군주도 아니었다. 그의 궁극적인 목표는 절대군주로서의 영광을 과시하는 데 있었다. 치세 내내 전쟁을 계속한 것도, 궁전 건축에 집착한 것도 그 때문이다. 백성의 대다수인 농민들은 잔혹한 전쟁과 무거운 세금에 짓눌린 희생양이었을 뿐이다. 수취 구조와 재정 제도의 모순은 여전하고, 귀족의 횡포와 비리도 근절되지 않았다. 한 마디로 루이 14세의 치적으로 일컬어지는 중앙집권화는 불완전한 것이었으며, 절반의 성공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절대군주의 모델이 된 이유는 무엇일까. 루이 14세는 중앙집권화의 한계와 귀족의 위험성을 누구보다 정확하게 꿰뚫고 있었다. 그런 그가 전력을 기울인 것은 정치선전 문화이다. 파리의 광장에 설치된 무대 위에서 춤을 추고 베르사유를 건설하고 엄격한 궁정예절을 체계화한 것은 군주권을 강변하기 위한 정치적 전략에서였다. 왕과 궁정을 사회 지배의 모델로 선전하는 이 대규모 프로젝트에 당대 최고의 예술가들이 동원되고 귀족들도 적극 동참했다. 대신 그들에게는 사회적 지위와 특권, 막대한 부가 보장되었다. 루이 14세의 신화는 거대한 사회적 타협과 치밀한 정치선전 문화의 결과였던 것이다. 이런 점에서 지금까지 우리의 머릿속에 고정관념처럼 굳어져온 절대군주 ‘루이 14세는 없다’(푸른 역사 펴냄). 루이 14세의 신화를 바로잡기 위해 이 책은 다양하고 상반된 증언과 증거를 길잡이 삼아 베르사유 깊숙이 들어간다. 그곳에서 벌어진 왕과 주변 인물들 사이의 복잡한 역학관계를 엿보고, 궁전의 공간 배치와 실내장식 뒤에 숨은 의도를 분석한다. 루이 14세 시대의 관료제와 상비군 조직, 수치보다는 그 제도를 만들어내고 운영한 인간의 권력 다툼에, 화려한 궁전의 겉모습과 근엄한 군주의 이미지 자체보다 그 이미지를 만든 사람들과 그들의 전략에 더 관심을 기울이며 책을 썼다. 이영림 수원대 사학과 교수
  • “당신의 도전정신을 잊지 않겠습니다”

    ‘아시아의 물개’ 조오련(57)씨가 영원히 잠들었다. 6일 오전 전남 해남읍 국제장례식장에서 열린 조씨의 영결식에는 유가족과 주민, 체육계 인사 등 200여명이 참석해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지켜보며 슬픔에 젖었다. 교회·가족장으로 조촐하게 치러진 이날 영결식은 발인 예배를 시작으로 묵념, 조사, 헌화 순으로 진행됐다. 큰아들 성웅씨의 부대 대대장으로 근무했던 해군 특수전여단 문석준 중령은 조사에서 “고인과 마지막으로 이별해야 하다니 애석하고 비통한 마음을 가눌 길 없다.”며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도전정신을 잃지 않았던 고인에게 애도를 표한다.”고 말했다. 큰아들 성웅씨가 아버지의 영정을 들고 장지를 향해 떠날 때 부인 이성란(44)씨가 “나도 따라갈래.”라며 오열하며 발을 동동 굴러 주위를 숙연케 했다. 조씨가 타계한 4일 오후 그 충격으로 음독까지 시도했던 이씨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친지들의 부축을 받아 힘겹게 차에 올랐다. 발인을 마친 운구차는 조씨의 고향인 해남군 학동리 생가 주변에 도착해 노제를 지낸 뒤 계곡면 법곡리 자택 주변에 마련된 장지로 이동했다. 조씨는 생전 그의 유언에 따라 ‘재기’를 위해 지은 자택 옆에 묻혔다. 해남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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