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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남경의 예술마을 기행] 광주 학운동 예술마을

    [김남경의 예술마을 기행] 광주 학운동 예술마을

    3월 중순, 햇살부터 서울과 다른 이곳은 벌써 봄기운이 완연하다. 성질 급한 꽃들은 벌써 폭죽을 터트리며 봄을 축복한다. 광주 무등산 아래 학운동으로 가는 길은 그렇게 봄을 느끼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학운동은 무등산 서쪽 아래 위치한 학동과 운림동을 아우르는 행정명이다. 행정구역상으로는 광주시 동구에 속한다. 학운동 예술마을은 증심사 아래 의재미술관에서 시작해 학동의 홍림교에 이르는 3㎞ 정도의 의재로를 중심으로 한 주변 지역을 일컫는다. 의재미술관 외에도 현대미술의 무등 현대, 추상 설치미술의 우제길, 지역 예술의 중심인 국윤미술관과 문화예술공간, 예술가 레지던시, 교육원 등이 이 일대에 있다. 맛집과 카페 등도 늘고 있어 등산객뿐만 아니라 젊은 층 사이에서도 뜨는 명소로 꼽힌다. 학운동 예술마을을 이야기할 때 의재미술관의 주인공 의재 허백련(1891~1977) 화백을 빼놓을 수 없다. 학운동 예술마을의 중심을 이루는 행정상의 거리 이름 또한 ‘의재로’로 칭할 만큼 의재는 광주는 물론 남도를 상징하는 예술가다. 전남 진도에서 태어나 운림산방에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해남의 고산 윤선도, 공재 윤두서, 강진의 다산 정약용, 진도의 소치 허련 등의 영향을 받아 남종화의 꽃을 피웠다. 최근 국립광주박물관에서 열린 의재 허백련 특별전에서는 ‘전통회화 최후의 거장’이라는 수식어가 그의 이름 앞에 붙었다. 광주에서는 광주 미술의 오늘을 이야기할 때 꼽는 두 거장 중의 한 명으로 의재를 지목한다. 의재미술관이 문을 연 것은 그가 무등산 자락에 묻히고도 20여년이 지난 2001년이었지만 무등산 자락에서의 그의 삶은 중년 이후 30여년에 이른다. 아이러니하게도 의재가 무등산 자락에 자리잡게 된 동기는 미술에 있지 않다. 한국 전쟁 후 ‘사람들이 잘살아야만 예술도 있다’는 생각으로 선진 농업을 가르치는 농업기술학교를 증심사 옆에 세우면서였다. 이후 산업화의 영향으로 농업기술학교는 문을 닫았지만 의재는 계속 이곳에 머무르며 다른 사회 운동을 펼쳤다. 그에게 그림은 일상이었다. 그가 농업학교 건너 계곡 너머 작은 집 춘설헌에 거주하면서 자연스레 작업실도 겸하게 됐다. 의재의 손자이자 동양화가인 허달재 의재미술관 관장은 “기술이 아닌 스스로 갈고닦음으로써 그림이 완성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살아생전 그림으로 내세운 것은 별로 없다”고 말했다. 그냥 그렸을 뿐이다. 미술관을 열라는 주위의 성화에도 잘 살면 후대 누군가가 알아서 세워 줄 것이라며 연연해하지 않았다. 오로지 무등산을 오르내리며 농업에 이어 차 문화 운동 등 사회 운동에 더 적극적이었다. 의재의 가장 한국적이면서 호남적인 그림은 그렇게 탄생했다. 스스로 그림을 내세우지 않았지만 사람들과 남도를 사랑하며 그의 그림을 완성해 갔다. 후학들은 알아서 모여들었다. 홍림교 못 미쳐 의재로 길가에 세워진 또 하나의 역사적인 명소인 연진미술원은 그렇게 모여든 후학들을 위해 만들어진 공간이다. 의재가 세운 농업기술학교 자리에 세워진 의재미술관은 산속에 있는 현대적인 건물임에도 튀지 않고 주변 환경과 어우러진다. 그러면서도 그만의 개성을 잃지 않는다. 자연과 더불어 살면서 자기 세계를 열고 실천하며 인간을 사랑한 의재와 닮아 있다.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의 작은 건물 안에는 등산로처럼 비스듬히 경사진 통로를 설치하고 8폭 병풍처럼 큰 통유리로 창을 만들어 무등산의 풍경을 담았다. 전시실 이동 경로 또한 의재가 농업학교와 춘설헌 등을 오갔던 무등산 계곡 길을 재현하려 했다. 이 건축물은 ‘소규모 다기능 건축의 백미’라는 평가를 받으며 ‘2001년 한국건축문화대상’을 받았다. 미술관에는 동양화를 중심으로 한 기획 전시와 의재의 작품을 보여 주는 상설 전시가 계속 열린다. 미술관 로비에서 큰 창을 통해 풍경을 바라보고 있으니 8폭 병풍이 생생히 살아 움직이는 것만 같다. 미술관 맞은편 계곡 너머에는 춘설헌과 함께 의재의 무덤이 있으며 의재가 만든 무등산 차밭에서 만든 차를 맛볼 수 있는 쉼터가 있다. 증심사 너머 의재가 키우던 차밭을 구경할 수도 있다. 4~5월이면 여린 찻잎을 따는 풍경이 장관이다. 미술관 안뿐만 아니라 밖에서도 보고 느끼는 것이 더 많은 관람, 바로 의재미술관의 특별한 감상법이다. 의재 이후 이 예술마을에 자리잡은 예술가들은 장르를 넘나든다. 현대, 추상 등 저마다 개성이 강하다. 그러한 개성이 그들의 공간마다 담겨 있다. 다른 장르의 매력을 찾아보고 작가의 작업실까지 엿볼 수 있는 것도 이 마을을 돌아보는 방법이다. 사실 무등산은 오래전부터 예술가들을 보듬어온 산이다. 무등산 동쪽에 위치한 담양, 화순은 예부터 가사문학과 누정문화가 발달해 왔다. 정치에 실망하거나 내쳐져 낙향한 문인들을 아끼고 보듬어 당대 최고의 문화와 예술을 꽃피우게 했다. 의재와 함께 광주의 대표 미술가로 꼽히는 서양화가 오지호도 또 다른 무등산 자락인 지산동에 거처를 두고 말년을 보냈다. 이 밖에도 무궁무진한 이야기가 숨어 있다. 예술마을의 중심인 의재로는 국립아시아문화의전당까지 이어진다. 앞으로 이곳을 더욱 주목해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글 사진 여행작가 enkaykim@naver.com ■ 여행수첩(지역번호 062) →가는 길:광주 지하철1호선 학동증심사입구역 하차. 1번 출구 9번 마을버스 종점 하차. →축제:지난해 무등산 학동 운림동 예술의 거리는 국윤, 무등현대, 우제길미술관, 무등산국립공원사무소, 전통문화관(광주문화재단), 한국제다 등 6개 업체가 협의회를 구성해 무등산문화예술축제를 시범적으로 열었다. 올해는 의재미술관, 증심사, 주변 마을 등의 참여를 도모해 10월 한 달 동안 정식 축제를 개최할 예정이다. →함께 가볼 만한 곳:의재미술관 바로 위의 증심사를 빼놓을 수 없다. 1200년의 역사를 가진 통일신라시대 사찰로 보물인 철조비로자나불 좌상 등을 품고 있는 무등산 대표 사찰이다. 크지는 않지만 무등산의 둥근 산등성이와 어우러져 아름답다. 점차 모습을 갖춰 가고 있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과 광주 근대화의 역사가 남아 있는 양림동도 함께 돌아보기 좋다. 증심사 등산로 입구에서 버스나 차로 10여분이면 도착한다. →맛집:증심사 아래 운림동 부근은 닭볶음탕이 유명하다. 중앙식당(222-1834)에서는 철판 위에 빨갛게 양념된 닭볶음이 나온다. 나비야 청산가자(263-4477)는 돼지불고기, 바비큐 등이 인기다.
  • [현장 행정] 동네 곳곳 북 콘서트 ‘책 읽는 관악’

    [현장 행정] 동네 곳곳 북 콘서트 ‘책 읽는 관악’

    “4월에는 황순원의 소설 ‘소나기’를 주제로 한 양평 소나기마을에 가 보면 어떨까요?”(독서 동아리 회장) “소녀가 이사 간 마을이 양평읍으로 나와서 양평에 만들어진 소나기마을에 가면 소설에 등장하는 오두막, 냇가 등의 배경이 그대로 살아 있어요. 황순원 선생은 생전에 양평에서 자주 낚시를 하며 작품 구상을 했다고 합니다.(유종필 구청장)” ‘걸어서 10분 거리 도서관 도시’ 관악구에는 모두 214개의 독서 동아리가 있다. 29일 유종필 구청장은 은천동 한울작은도서관에 있는 한울독서동아리를 찾았다. 은천동에 사는 주부 14명이 주로 자녀가 학교에 있는 오후 1시쯤에 모여 읽은 책에 대해 토론하는 모임이다. 도서관에 함께 온 초등학생들은 책에 대해 이야기하는 엄마를 지켜보며 학습만화를 읽었다. 구는 5명 이상의 주민이 월 1회 이상 정기 모임을 갖는 독서 동아리에 연간 30만~50만원의 활동비를 지원한다. 이 활동비로 동아리에서는 책도 사고 함께 나눠 먹을 간식도 마련한다. 2013년에는 구의 지원을 받는 독서 동아리가 45개에 불과했지만 3년 새 5배 가까이 늘었다. 유 구청장은 “멀리 갈 필요 없이 우리 관악구에도 가볼 만한 곳이 많다”며 “남현동 예술인 마을에 있는 미당 서정주의 집에는 선생이 마시다 남긴 맥주 캔, 안경, 파이프담배까지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다”고 소개했다. 독서 동아리 회원들은 2000년 서정주가 타계하기 전까지 매년 노벨문학상 발표 날이면 문학 기자들이 진을 쳤던 대시인의 집이 가까이에 있는 줄 몰랐다며 ‘등잔 밑이 어둡다’고 탄식했다. 유 구청장은 봄맞이 추천도서로 스웨덴 작가 요나스 요나손의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과 ‘셈을 할 줄 아는 까막눈이 여자’를 들었다. 기자로 일하다 800만부 이상 팔린 소설을 쓴 요나손처럼 유 구청장의 소설 쓰기도 현재 진행형이다. 그는 “실용서보다 소설을 지금도 많이 읽는다”며 “소설은 상상력을 길러 주고 영혼을 자유롭게 한다. 현실에 천착한다고 문제가 풀리진 않는다”고 말했다. 구는 활발한 독서 동아리 활동을 위해 동아리를 꾸리는 방법과 독서 토론 요령 등을 주제로 ‘독서 동아리 이끎이 연수’도 한다. 지난해는 23명이 이끎이 교육을 받고 114개 동아리에 자문했다. 한울작은도서관은 예전에 동사무소로 쓰였던 곳이다. 폐관 시간도 오후 6시에서 오후 8시로 최근 연장했다. 동주민센터 내의 새마을문고를 확대한 20개의 작은도서관도 일본 시민단체와 세타가야구에서 찾을 정도로 생활 속의 도서관 모범 사례로 인정받았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잊혀질 권리’ 첫 가이드라인… 본인·사망자 게시물로 한정

    ‘잊혀질 권리’ 첫 가이드라인… 본인·사망자 게시물로 한정

    방송통신위원회가 잊혀질 권리의 대상을 ‘자기 게시물’과 ‘사망자의 게시물’로 한정한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잊혀질 권리란 인터넷에서 검색되는 자신의 정보를 검색되지 않도록 요청할 수 있는 권리로 유럽에서는 자신뿐 아니라 타인이 작성한 게시물까지 포함되지만, 이번 방통위 가이드라인은 ‘자기가 작성한 게시글’로 범주를 최소화했다. 방통위는 25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 더케이호텔서울에서 ‘인터넷 자기 게시물 접근 배제 요청권 가이드라인’ 세미나를 열어 이런 내용을 발표했다. 이용자 본인이 과거에 작성한 게시물(글, 사진, 동영상 등)을 권리권 상실 등으로 삭제하기 어려운 경우 발생하는 피해를 최소화하겠다는 취지다. 예컨대 자기 게시물에 댓글이 달려 인터넷에서 삭제가 어렵거나 회원 탈퇴 이후 회원 정보가 파기돼 본인이 삭제하기 어려운 경우 등이다. 단 사망자의 게시물은 사자가 생전에 지정인을 위임한 때로만 한정했다. 기존에 논의됐던 타인의 게시글에 사생활 침해나 명예훼손 소지가 있을 때는 ‘정보통신망 이용 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을 통해 해결하도록 했다. 언론 기사에 대한 분쟁은 언론중재법을 통해 해결한다. 가이드라인에 포함된 절차는 1차로 이용자 본인이 게시판 관리자에게 게시글을 삭제해 달라고 요청한 뒤 2차로 네이버와 다음 등 검색 서비스 사업자에게 검색 목록에서 보이지 않도록 요청하면 된다. 단 자신이 작성한 글이라는 소명 자료를 제출해야 한다. 관리자는 신청자의 소명 자료가 타당하다고 판단되면 블라인드 등의 방법으로 조치를 해야 한다. 학계와 법조계는 최소화된 가이드라인에 우려를 제기했다. 이상직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는 “아동과 청소년,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의 경우 제3자의 게시물이 적법하다고 하더라도 인권 문제를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윤수경 기자 yoon@seoul.co.kr
  • 출시 한달 앞둔 ‘내집연금 3종세트’ 오해와 진실

    출시 한달 앞둔 ‘내집연금 3종세트’ 오해와 진실

    대출 많아 가입 어렵던 고령자 연금액 70% 받아 빚 갚을 수도 가입 후 이사 가거나 재건축해도 연금액 재산정 후 계속 이용 가능 다음달 25일 출시되는 ‘내집연금 3종세트’는 가입 문턱을 낮추고 혜택을 더 얹어 준 게 특징이다. 그동안 주택담보대출을 너무 많이 받아 주택연금에 가입하기 어려웠던 만 60세 이상은 연금을 최대 70%까지 한 번에 받아 대출금을 갚고 매달 노후자금을 받을 수 있다. 45~59세는 보금자리대출을 신청할 때 훗날 주택연금에 가입하겠다고 약정하면 대출금리를 깎아 준다. 저소득 고령자는 기존 주택연금보다 연금을 더 받는다. 2007년 도입된 주택연금에는 지난달까지 총 3만 628명이 가입했다. 최근 관심이 높아지면서 잘못 알려진 내용도 적지 않다. 내집연금 3종 세트를 둘러싼 ‘오해와 진실’을 문답으로 짚어 봤다. →노후대비용이라면 주택연금을 받는 것보다 집 크기를 줄여 다른 집으로 이사 가는 게 이득 아닐까. -어느 쪽이 더 합리적인지 비교는 쉽지 않다. 집값이 싼 곳으로 이사하면 그 차액만큼 목돈을 마련할 수 있고 상속이 가능하다는 이점이 있다. 하지만 노후에 그간 정들었던 동네를 떠나 외곽이나 작은 집으로 옮겨야 하는 불편함이 따른다. 이사에 따른 제반 비용(주택취득세, 이사·청소비용)도 든다. 대신 주택연금은 지금 살고 있는 집에서 평생 살면서 매달 연금도 받기 때문에 은퇴 후 생활을 유지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개인의 가치관과 선호도에 따라 선택하면 된다. →9억원 넘는 집과 주거용 오피스텔은 언제부터 주택연금 가입이 가능한가. -올 하반기 중 주택공사법을 고쳐 혜택을 주겠다는 게 금융위원회 계획이다. →국민연금은 물가가 오르면 연금액이 오른다. 하지만 주택연금은 그렇지 않아 물가가 오를수록 불리하다던데. -맞다. 물가에 따라 연금액이 조정되지 않는다. 주택연금은 가입 시점의 ‘주택가격 상승률’이 가입 기간 중 일정하게 계속될 것으로 가정한다. 이에 따라 월 지급금을 산정할 때 주택가격 상승률에 물가 상승에 따른 자산 가치가 이미 반영돼 있다고 보고 별도로 물가상승률을 계산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주택연금 가입 뒤 집값이 오르면 손해 아닌가. -주택연금은 가입 이후에 집값이 오르거나 내려도 동일하게 지급된다. 이미 집값 상승률이 반영돼 있기 때문이다. 다만, 실제 상승률이 더 높을 경우 월 지급액이 더 높게 산출될 수 있는데 덜 받는 손해는 생길 수 있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사망 시점에 집값이 더 남아 있다면 남은 가치를 자식 등에게 상속해 주면 되기 때문에 꼭 손해라고 볼 수는 없다. →자식에게 물려주기보다는 살아생전에 연금을 더 받고 싶은데 중간에 실제 집값 상승분을 반영해 주택연금을 다시 산출할 수 없나. -그건 안 된다. 연금은 가입 시점에 한번 결정하면 그 금액을 해마다 동일하게 받는다. 그러지 않으면 반대로 중간에 집값이 떨어질 경우 연금이 줄어들 수 있다. →가입 뒤에 집값이 크게 떨어져도 월 지급금은 그대로라는 얘긴가. -그렇다. 그 차이에 따른 손해는 정부(주택금융공사)가 진다. →같은 나이라도 언제 가입했느냐에 따라 연금액이 다를 수 있다던데. -주택금융공사가 집값 상승률, 연금산정 이자율, 기대수명 등을 따져 해마다 연금액을 재산정한다. 2016년 기준으로 보면 5억원 상당의 집을 소유한 만 60세의 경우 매달 113만원을 사망할 때까지 받을 수 있다. →가입 뒤에는 이사 가면 안 되나. -아니다. 다른 집으로 이사를 가거나 주거 중인 집이 재건축되는 경우에도 주택연금을 계속 이용할 수 있다. 다만, 이사 간 집이 기존 집보다 더 비싸다면 연금액이 더 늘고, 더 싸다면 연금이 줄어든다. 초기보증료(집값 차액】1.5%)는 한 번 더 내야 한다. →‘우대형’ 주택연금 기준은 왜 강화되는가. -당초 금융위는 연소득 2350만원 이하이면서 집값이 2억 5000만원 이하이면 저소득층으로 보고 배려가 필요하다고 봤으나 일각에서 “그 정도면 부자”라고 반대하는 바람에 우대 문턱을 더 높이기로 했다고 한다. 구체적인 기준은 아직 부처 간 협의 중이다. 백민경 기자 white@seoul.co.kr
  • 인체조직 기증하고 지원금까지 전액 기부 ‘아름다운 선행’

    인체조직 기증하고 지원금까지 전액 기부 ‘아름다운 선행’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난 아버지의 유지를 받들어 부친의 인체조직을 기증하고, 받은 정부지원금마저 전액 기부해 훈훈한 미담이 되고 있다.  경기 광명시 자치행정과에 근무하는 박성미(41)씨의 아버지(74)는 지난해 11월 심장마비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박씨는 느닷없이 닥친 일이라 경황이 없는데도 부친이 생전에 장기기증 서약자임을 기억하고 사후 인체조직기증을 결정해 아버지의 마지막 가는길을 ‘아름다운 선행’으로 이끌었다. 인체조직 기증을 결정하면 장제비, 위로금, 진료비 등 정부로부터 540만원을 받는다. 박씨는 받은돈 전액을 한국인체조직기증지원본부에 기부했다.  이러한 사실이 알려지자 이웃주민들은 “인체조직을 기증하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인데 받은 지원금까지 모두 기부했다니 가족들 모두 마음씨가 너무 좋은 분들”이라고 치켜세웠다.  이번 기부는 2008년 한국인체조직기증지원본부 설립 후 유가족들이 정부지원금을 최초로 기부했다는 점에서 남다른 의미가 있다.  박씨는 “인체조직기증과 기부로 아버지를 더욱 의미있게 보내드린 것 같아 오히려 감사하다”며 “기부금은 더욱 많은 이들에게 인체조직기증을 알리고 도움이 필요한 환자들을 돕는 데 사용해 달라”고 소감을 밝혔다. 인체조직기증은 사후에 뼈, 연골, 인대, 피부, 양막, 심장판막, 혈관 등의 조직을 이식을 필요로 하는 환자들에게 기증하는 생명나눔으로, 한 사람의 기증을 통해 100명의 생명을 연장시키거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다.   이명선 기자 mslee@seoul.co.kr  
  • 중국, 비싼 땅값에 죽어서도 ‘죽을 맛’…‘별별 묘지’ 등장

    중국, 비싼 땅값에 죽어서도 ‘죽을 맛’…‘별별 묘지’ 등장

    중국의 1선 도시만큼이나 가격 광풍을 일으키는 곳이 있다. 다름아닌 죽은 자를 묻는 ‘묘지’다. 중국인들은 “생전에는 집값 걱정, 죽어서는 묘지값 걱정”이라고 말한다. 심지어는 "돈 없으면 죽지도 말아야 한다"고까지 한다. 중국 당국은 집값 폭등 뿐 아니라 묘지값 폭등 해결에도 골머리를 앓고 있다. 상하이 지역의 묘지가격은 보통 5만~10만 위안(약 900만~1800만원)이다. 베이징은 저가형 4만 위안, 일반형 7만 위안, 고가형 수십만 위안에 이른다. 게다가 중국의 노령화로 인한 묘지의 공급부족이 가격인상을 부추기고 있다. 최근 프랑스의 한 인구문제 전문가는 “중국은 급격한 노령화로 매년 파리 면적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묘지가 생겨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중국 각 지에서는 ‘묘지절약’, ‘묘지값 안정화’를 위한 다양한 묘책들을 쏟아 붓고 있다. 난징(南京)에서는 최근 ‘3D 생태운장(生态云葬)’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묘지가 등장했다. 묘지가 차지하는 토지 면적을 최소화하기 위해 유골을 보관한 원통함을 수평, 수직으로 쌓아 올렸다. 40평방미터에 460개의 납골을 안장할 수 있다. 유골함 뚜껑에는 고유의 QR 코드를 찍어두어 이를 입력하면 인터넷 상의 기념관으로 로그인된다. 고인의 사진, 약력, 가족들의 추모 메시지 등을 올릴 수 있다. 관계자는 "‘3D생태운장’의 ‘3D’란 제한된 공간을 전방위적이고 다차원적으로 이용함을 의미하며, ‘생태’란 생태 화강암 대리석 자재를 사용함을 의미한다"고 전했다. 또한 ‘운(云)’은 묘지 뚜껑에 찍힌 QR코드를 의미한다. 최저 묘지 가격은 1만 위안(약 180만원) 미만으로 일반 묘지에 비해 저렴하다. 청두(成都)에서는 4인 및 6인 ‘가족합장묘’를 5월부터 시행할 예정이다. 1인당 차지하는 묘지 면적이 0.2평방미터 미만으로 국가에서 규정한 1인당 묘지 면적 1평방미터 미만을 크게 밑돈다. 또한 8인 및 12인 합장묘와 지하와 옥상에 다층구조로 이루어진 ‘별장식 묘지’도 구상 중이다. 가족합장묘의 1인당 묘지가격은 일반 공동묘지 가격에 비해 낮출 계획이다. 이 밖에도 중국 11개 성(省)에서는 토지를 절약하는 ‘생태장(生态葬)’을 추진 중이다. 생태장이란 화장한 유골을 산골에 뿌리는 ‘수목장(树葬)', 잔디에 뿌리는 '잔디장(草坪葬)', 물에 뿌리는 ‘수장(水葬) 등의 방식으로 친환경적 유골 처리 방식이다. 중국 정부는 2020년까지 전국의 화장율(火化率)을 100%까지 이룬다는 목표를 내세웠지만, 뿌리깊은 유교문화와 풍수지리 사상으로 여전히 매장 풍습은 줄지 않는 실정이다. 사진=南京晨报 이종실 상하이(중국) 통신원 jongsil74@naver.com
  • 제프 버클리 미공개 음원 23년 만에 공개

    제프 버클리 미공개 음원 23년 만에 공개

    단 하나의 정규 앨범을 남기고 요절한 비운의 천재 뮤지션 제프 버클리(1966~1997)의 미공개 음원이 23년 만에 공개됐다. 소니뮤직은 버클리의 두 번째 유작 ‘유 앤드 아이’를 발매했다. ‘유 앤드 아이’는 버클리의 첫 번째 스튜디오 세션 레코딩으로 녹음 시점은 1993년 2월이다. 1994년 정규 1집 ‘그레이스’를 발표하기 1년 6개월 전이다. 밥 딜런의 ‘저스트 라이크 어 우먼’, 레드 제플린의 ‘나이트 플라이트’ 등의 커버곡과 자작곡 ‘그레이스’ ‘드림 오브 유 앤드 아이’의 데모 버전 등 10곡이 수록됐다. 앨범의 밑그림을 그리기 위한 스케치성 녹음이기 때문에 완성된 풀밴드 편곡은 아니지만 기타 한 대에 얹은 버클리의 목소리는 소극장 라이브와 같은 느낌을 준다. 자신을 키워 주지 않은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사랑을 음악으로 승화시켰다. 유명 싱어송라이터 팀 버클리가 친부다. 제프 버클리는 생전 선배 가수들에게 극찬을 받았다. 밥 딜런과 레드 제플린이 그의 팬이며 데이비드 보위의 경우 버클리의 1집을 무인도에 가져가고 싶은 앨범으로 꼽기도 했다. 라디오헤드와 뮤즈 등 후배 가수에게도 큰 영향을 줬다. 유명 음악잡지 ‘롤링스톤’은 그를 역대 최고 보컬리스트 100명 중 한 명으로, 1집을 역대 최고 앨범 500개 중 하나로 선정했다. 그는 2집 ‘마이 스위트하트 더 드렁크’를 녹음하던 중 익사 사고로 세상을 떴다. 미완성 2집과 라이브 앨범 등 사후에만 10개의 앨범이 쏟아졌다. 최근 전기 영화 ‘굿바이 버클리’가 국내에서도 개봉돼 그의 삶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생명나눔, 고귀한 가치·배려 종교계 뜻 합쳐 확산시켜야”

    “생명나눔, 고귀한 가치·배려 종교계 뜻 합쳐 확산시켜야”

    장기기증 등록자 120만명 성과…등록받는 기관 380곳 달해 위험 “생명 나눔에 어떻게 종교의 구분이 있을 수 있나요. 생명존중을 으뜸의 가치로 여기고 실천해야 하는 종교계라면 응당 배려와 나눔 운동에 앞장서는 게 당연하지요. 장기기증 운동도 그 차원에서 종교계가 지금보다 더 뜻을 합쳐 확산시켜야 한다고 봅니다.” 1991년 설립돼 국내에서 가장 먼저 장기기증 운동을 벌여 온 재단법인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이하 운동본부) 이사장 박진탁(80) 목사. 운동본부 설립 25주년을 맞아 최근 서울 아현성결교회에서 조촐한 기념행사를 가진 박 목사는 16일 서대문구 서소문로 본부 사무실에서 기자를 만나 “고귀한 생명 나눔의 차원에서 장기기증 운동의 뜻이 종교계를 중심으로 더 알차게 결집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거듭 밝혔다. 운동본부를 만든 박 목사는 정부에 앞서 1969년 한국헌혈협회를 창립해 헌혈운동 확산에 앞장섰는가 하면 1991년 국내 최초로 타인에게 신장을 기증한 인물. 반평생을 장기기증운동 확산에 치중해 살았던 만큼 종교계 안팎에서 ‘생명나눔 운동의 대부’로 널리 알려져 있다. 한신대를 졸업하고 목사 안수를 받아 우석대병원 원목실에서 사목하던 무렵 혈액이 없어 수술을 받지 못하는 환자를 보고 문득 하나의 생각이 뻗쳤다고 한다. “예수님은 나와 우리를 위해 모든 피와 목숨까지 주셨는데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그래서 ‘헌혈전도사’가 됐고 1988년 미국으로 이민 간 지 얼마 안 돼 한 교민의 뇌사 장기기증을 목격한 후 감동을 받아 귀국해 1991년 만든 게 운동본부였다. 그가 운동본부를 만들 무렵은 장기 매매가 극성을 부리던 시절. 장기 기증의 개념조차 없었던 때 한양대병원을 직접 찾아가 환자를 소개받고 신장을 기증했다고 한다. “1991년부터 최근까지 958명의 기증자가 운동본부를 통해 타인에게 신장을 기증했고 2015년 가족 간 생존 시 장기기증이 1934건에 이르렀는가 하면 지난해에는 국내 장기기증 운동 사상 처음으로 한 해 뇌사 장기기증자 수가 500명을 돌파했어요. 장기기증 등록자도 꾸준히 증가해 현재 120만명을 넘어섰지요.” 이런 성과의 과정에서 범법자로 몰리고 생명을 상업화한다는 비아냥 등 굴곡과 시련이 많았다고 한다. “장기기증 개념과 시스템에 대한 일반과 정부기관의 오해가 컸던 탓이지요. 지금도 여전히 어려움이 많아요. 장기기증 등록을 받는 기관이 민간 17개를 포함해 380개나 돼요. 사고와 행정 오류의 위험성이 있어요. 타인 간 장기기증이 사실상 금지돼 있고 기증 연령이 너무 높게 규정돼 있는 등 행정의 경직성도 장기기증 확산을 막는 주요인입니다.” 그래서 생명존중을 큰 가치로 여기는 종교가 장기기증과 관련한 격식과 영역을 허물고 보편적인 뜻을 모을 때 기증운동이 훨씬 더 활성화될 것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비록 생전엔 나누고 살지 못해도 사후에라도 남에게 준다면 아름다운 죽음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장기기증 운동을 하면서 우연히 ‘남이 화급한 일을 당했을 때 돕지 않거나 조치를 취하지 않는 자는 곤장 100대를 치라’는 1905년 형법대전 속 ‘견급불규율’ 규정을 알게 됐다는 박 목사. “100년 전에도 일상 속 생명존중의 실천이 그토록 엄하게 지켜졌는데 지금 사람들은 남의 어려움에 너무 몰인정한 것 같아요.” 목사 안수를 받은 이후 한 주도 거르지 않고 각 교단에 소속된 운동본부 목사들과 함께 전국의 교회를 돌며 장기기증 서약을 받아 왔다는 박 목사는 이번 주말에도 전남의 한 교회를 찾아간다며 기자에게 장기기증 희망등록 서약서를 내밀었다. 글 사진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기쁜 날 더 그리운 코치님… 울어버린 봅슬레이 콤비

    기쁜 날 더 그리운 코치님… 울어버린 봅슬레이 콤비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 코치님 영전에 바치겠다.” 16일 서울 중구의 더플라자호텔. 웃음으로 가득해야 할 시상식 자리가 순식간에 울음바다로 바뀌었다. 봅슬레이 대표팀의 원윤종(31·강원도청)-서영우(25·경기도BS경기연맹)가 제21회 코카콜라 체육대상 시상식에서 고(故) 맬컴 로이드 봅슬레이 코치를 대신해 우수 지도자상을 수상하는 도중 왈칵 눈물을 쏟아낸 것이다. 수상자로 로이드 코치가 호명되고 화면에 생전 영상이 등장하자 자리에 앉아 있던 원윤종-서영우는 이미 눈시울을 붉히기 시작했다. 원윤종은 대리 수상을 위해 단상에 올라 로이드 코치를 기리는 편지를 읽으려 했지만 흐르는 눈물을 참지 못한 채 한참을 흐느껴 주위를 숙연하게 만들었다. 그는 로이드 코치가 별세하기 전 자신에게 건네준 특별 제작 메달을 한 손으로 매만지며 마음을 진정시켜보려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결국 옆에 있던 동료인 서영우가 편지를 건네받아 겨우 읽어냈다. “로이드 코치님은 저희에게 훌륭한 지도자였을 뿐만 아니라 아버지 같은 존재였습니다. 두려움이 많았지만 항상 자신을 믿으라는 가르침 덕분에 훈련 과정이 힘들어도 견딜 수 있었습니다. 그 결과 봅슬레이 첫 금메달, 세계 1위에 올랐습니다. 비록 이곳에서 함께하진 못하지만 언제나 저희 가슴 속에선 함께할 것입니다. 코치님을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영국 웨일스 태생의 로이드 코치는 현역 시절 영국 대표팀에서 활약했고, 2013년부터는 한국 봅슬레이 주행코치로 합류해 단기간에 선수들의 기량을 끌어올렸다. 특히 원윤종-서영우는 2015~2016 시즌 국제봅슬레이스켈레톤경기연맹(IBSF) 1~8차 대회에서 금메달 2개와 동메달 3개를 수확하며 세계랭킹 1위에 올랐다. 그러나 로이드 코치는 지난 1월 캐나다 자택에서 암으로 사망해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함께 시상식에 자리한 이용(38) 봅슬레이팀 감독은 “처음엔 로이드 코치를 영입할 때 많은 분들이 반대했지만, 그분이 있으면 빠른 성장을 할 수 있을 거라고 확신했다. 가장 좋은 순간에 함께했으면 좋았을 텐데 아쉽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원윤종-서영우는 최우수선수상(MVP)을 수상했으며, 우수선수상은 남자 태권도의 간판 이대훈(24·한국가스공사)과 여자 양궁 신성 최미선(22·광주여대)에게 돌아갔다. 한재희 기자 jh@seoul.co.kr
  • [新국토기행] 강원도 양구군

    [新국토기행] 강원도 양구군

    첩첩산골 강원 양구군이 관광 자원과 스포츠 마케팅으로 부를 일구고 있다. 휴전선과 인접한 지역이고 인구도 2만 4100여명에 불과한 작은 내륙의 섬 같은 고장이지만 일찌감치 제4땅굴 등 안보관광과 두타연 등 청정 자연 자원을 활용하고 스포츠 마케팅을 접목해 잘사는 고장으로 자리잡고 있다. 소양호와 파로호 호수를 따라 이어지는 일명 ‘꼬부랑길’도 오토바이와 자전거 동호인들이 찾는 유명한 코스가 됐다. 연간 80~90건에 이르는 도 단위, 전국 단위 스포츠 대회를 유치해 140억원 안팎의 소득을 올리고 있다. 작은 마을이지만 음식·숙박업소들이 연중 성업하는 이유다. 뱃길로 이어지던 춘천~양구가 터널로 30분 거리에 놓이고 강원외국어고등학교가 있어 교육도시로 자리잡으며 덩달아 수도권에서 귀농, 귀촌하려는 인구도 늘고 있다. 작지만 알찬 양구로 봄 여행을 떠나 보자. ■볼거리 ●가칠봉·도솔산 등 산에 둘러싸인 분지 ‘펀치볼’ 6·25전쟁 때 격전지인 해안면에 있는 분지가 ‘펀치볼’로 잘 알려졌다. 전쟁 당시 외국 종군기자가 가칠봉에서 내려다본 모습이 마치 화채 그릇(펀치볼)처럼 생겼다 해서 붙인 이름이다. 펀치볼은 가칠봉, 도솔산, 대암산 등 해발 1100m 이상 산에 둘러싸인 분지로 남북 11.95㎞, 동서 6.6㎞, 면적은 44.7㎢로 여의도의 5배가 넘는다. 펀치볼에는 제4땅굴 등 안보관광지가 자리한다. 제4땅굴과 을지전망대로 이어지는 초입의 통일관에는 북한 실상을 알 수 있는 생활용품, 수출품, 사진 등이 상설 전시된다. 을지전망대와 제4땅굴을 관광하려면 통일관에서 출입 신청을 해야 한다. 날씨 좋은 날 해발 1049m 높이의 을지전망대에 오르면 북쪽 비로봉을 비롯해 차일봉, 월출봉, 미륵봉, 일출봉 등 5개의 금강산 봉우리를 볼 수 있다. 통일관과 가까운 곳에 있는 전쟁기념관에서는 6·25전쟁 때 양구 지역에서 있었던 도솔산·대우산·피의 능선·백석산·펀치볼·가칠봉·단장의 능선·949고지·크리스마스고지 전투 등 치열했던 9개 전투를 엿볼 수 있다. 전시실마다 치열했던 전투 장면을 묘사한 디오라마와 동영상, 슬라이드 영상 등이 있다. 1990년 발견된 제4땅굴은 지하 145m에 높이와 폭이 각각 1.7m로, 북한이 남침용으로 파 놓은 길이 2052m의 굴이다. 땅굴 내부에서는 투명 유리 덮개로 덮인 15인승 전동차가 운행된다. ●멸종 위기 열목어의 국내 최대 서식지 ‘두타연’ 방산면 건솔리 수입천 지류에서부터 동면 비아리와 사태리 하류에 이르는 청정수 폭포와 계곡으로 1000년 전 두타사라는 절이 있었다는 데서 연유한 이름이다. 예부터 금강산 북쪽 장안사로 이어지는 길목으로 잘 알려졌다. 두타연은 민간인 출입 통제선 북쪽에 있어 오염원이 없고 주변의 풍광이 뛰어나 힐링하려는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연간 10만명 이상이 찾는다. 멸종 위기 열목어의 국내 최대 서식지다. 높이 10m, 폭 60여m의 계곡물이 한곳에 모여 떨어지는 두타폭포는 굉음이 천지를 진동하고 한낮에도 안개가 자욱해 신선의 경지를 연출한다. 폭포 바로 아래에 있는 두타연은 20m의 바위가 병풍을 두른 듯하고 동쪽 암벽에는 3평 정도의 보덕굴이 있다. 민통선 내 북쪽에 있지만 입구에서 신청서와 신분증을 제출하면 즉시 출입할 수 있다. ●박수근이 쓰던 연적·편지…‘박수근미술관’ ‘국민 화가’로 불리는 박수근 화백은 우리 민족의 일상적인 삶의 모습을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낸 서민 화가이면서 20세기의 가장 한국적인 화가로 평가받는다. 2002년 박수근 선생의 생가인 양구읍 정림리에 건립된 박수근미술관은 작가의 작품 세계와 예술혼을 기리는 양구 지역의 대표 문화 공간으로 자리잡았다. 미술관에서는 박 화백이 생전에 사용하던 안경·연적·편지·책 등의 유품과 미공개 스케치·유화·수채화·드로잉·판화·삽화 등 여러 미술 작품, 박 화백이 직접 글을 쓰고 그린 동화책 ‘호동 왕자와 낙랑 공주’, 엽서 모음과 스크랩북 등을 선별해 상설 전시한다. 또 같은 시대에 활동했던 근현대 한국 화단 주요 작가들의 다양한 작품들도 소장하며 기획 전시하고 있다. 역량 있는 작가들이 창작 활동에 몰두할 수 있도록 창작 스튜디오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관람객들이 산책을 즐길 수 있는 동산도 조성돼 있다. 미술관 뒷산에는 박 화백의 묘가 있다. ●국내 최대 습지 한가운데 조성한 ‘한반도섬’ 파로호 상류에 163만㎡의 국내 최대 습지를 조성하고 호수 한가운데에 한반도섬(4만 5000㎡)을 만들어 놨다. 길에서 섬까지 곧장 나무 데크 다리로 연결돼 강바람을 맞으며 걷기에 좋다. 한반도섬에는 각 지역이 지닌 특징을 표현한 조형물이 있다. 가장 북단에는 백두산이 자리하고 목조 데크로 연결된 제주도에는 한라산과 돌하르방, 돌담이 놓여 있다. 동쪽에 있는 독도에는 태극기가 펄럭이고, 강원도에는 상징물인 반달곰 조형물이 설치돼 있다. 한반도섬은 해가 질 때와 이른 아침 물안개가 피어 오를 때가 가장 인상적이다. 또 65m 높이의 타워에서 출발해 와이어를 타고 물 위를 날아 750m 거리의 한반도섬에 도달하는 집라인도 즐길 수 있다. 빠른 속도감과 함께 파로호와 한반도섬을 아우르는 양구의 수려한 경관을 즐길 수 있어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높다. ●국토 정중앙 점·국토정중앙천문대 우리나라 동서남북 끝단인 독도, 평안북도 마안도, 제주도 마라도, 함경북도 유포면을 기준으로 국토 정중앙 지점이 양구군 남면 도촌리 산48이다. 이곳에는 정중앙을 알리는 ‘휘모리’라는 이름이 붙은 상징물이 만들어져 있다. 찾는 관광객들이 즉석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국토 정중앙 방문 기념품 코너도 마련돼 있다. 이곳에는 또 국내 최대 규모의 반사망원경 등을 갖춘 국토정중앙천문대가 있다. 천문대 내의 체험·전시 공간에서는 국내 어느 과학관에서도 볼 수 없는 최신 천문학 내용을 접할 수 있고, 56석 규모의 천체투영실에서는 디지털 천체투영기를 이용해 환상적인 과학 영상물을 보거나 가상의 밤하늘을 보며 별자리를 공부할 수 있다. ■먹거리 해발 1100m서 건조한 시래기… 웰빙 산채 곰취… 전국 으뜸 사과 시래기 큰 일교차와 적절한 바람이 부는 양구 펀치볼 지역은 해발 1100m의 산으로 둘러싸여 전통 방식으로 시래기를 건조하는 데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펀치볼 시래기는 해발 600m 고랭지에서 키운 시래기 전용 무로 만들어 잎이 많고 뿌리가 작으며 추운 날씨에 두 달간 자연 건조해 맛이 좋다. 그래서 소비자들에게 최고로 인정받는다. 펀치볼 시래기는 겨울철에 모자라기 쉬운 비타민과 미네랄, 식이 섬유소가 골고루 들어 있어 건강에 좋은 식품이다. 또 철분이 많아 빈혈에 좋고, 칼슘 및 식이 섬유소가 함유돼 있어 혈중 콜레스테롤을 떨어뜨려 동맥경화 억제 효과가 있다. 소비자들이 집에서 바로 끓여 먹을 수 있도록 삶은 시래기를 진공 포장한 제품과 시래기를 넣은 고등어조림 진공팩 제품도 개발했다. 곰취 향미가 좋은 곰취는 식탁을 건강하고 풍성하게 만드는 웰빙 산채다. 살짝 데쳐서 무침을 해도 맛과 향이 뛰어나고, 데친 후 볶아서 먹어도 좋다. 장아찌와 겉절이, 된장국, 부침개 등 다양한 요리에 재료로 사용해도 원재료의 맛을 방해하지 않고 잘 어울린다. 특히 삼겹살 등 육류를 곰취와 함께 쌈을 싸서 먹으면 느끼함이 사라지고, 입 안 가득 곰취 특유의 향이 퍼져 식감이 매우 좋다. 곰취는 섬유질이 풍부하고 열량이 낮아 다이어트에 좋고 암 예방에도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베타카로틴과 비타민C 등을 많이 함유하고 있어 혈액 순환 개선과 기침, 천식에 대한 치료에도 좋아 옛날부터 민간요법에 사용돼 왔다. 멜론 양구 멜론은 2011년과 2012년 전국 톱 과채 품질평가회에서 2년 연속 대상을 받는 등 전국 최고의 맛을 자랑하는 과수 작물이다. 멜론은 비타민A, 비타민C, 베타카로틴, 항산화제인 플라보노이드 등의 성분이 많은 과일로, 시력 감소 예방과 피로 해소, 콜레스테롤 감소 등 면역력 증가에 도움을 주는 식품으로 알려져 영양학적 가치가 높다. 사과 ‘2015 대한민국 과일산업대전’의 대표 과일 선발대회에서 양구 사과가 최우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2014년에도 ‘2014년도 톱 프로젝트 과수 품질평가’에서 사과(홍로, 부사) 부문 우수상을 받았다. 양구 지역은 지형적인 영향으로 밤낮의 기온차가 크고 풍수해가 적어 안정된 과수 생산이 가능하고, 토양의 배수가 좋아 사과나무 재배의 최적지로 평가받는다. 수박 양구 수박은 매년 첫 출하 경매에서 전국 최고가를 기록하며 명품 수박으로 자리잡았다. 양구 수박은 양구 지역의 일교차가 커서 당도가 높고 아삭아삭하며 육질이 단단해 저장 기간이 긴 장점이 있어 과일 상인들에게 최고의 품질로 인정받는다. 타 지역 수박에 비해 가격이 항상 30~60%가량 높게 형성된다. 수박은 노화 방지와 암 예방에 효과가 있고 이뇨작용을 촉진해 몸속 노폐물을 배출하는 데 도움을 준다. 양구 조한종 기자 bell21@seoul.co.kr
  • ‘聖人’ 테레사 수녀

    ‘聖人’ 테레사 수녀

    ‘가난한 이들의 어머니’로 불리는 테레사 수녀(1910∼1997)가 성인(聖人)의 반열에 오른다. 테레사 수녀의 성인 추대를 승인하기 위한 교황청 시성위원회가 15일(현지시간) 열린다고 AFP 등 외신들이 보도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회의에서 테레사 수녀를 성인으로 추대하고 시성식 날짜와 장소를 정할 예정이다. 시성식 날짜는 그가 선종한 하루 전날인 9월 4일이 유력하다. 장소도 인도 가톨릭 교단의 청원을 받아들여 테레사 수녀가 생전 활동하던 인도 콜카타가 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반면 교계에선 바티칸에서의 시성식 진행에 무게를 두고 있다고 AFP는 전했다. 2003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바티칸에서 테레사 수녀의 시복식을 집전했을 때는 30만명 이상의 가톨릭 신자가 몰렸다. 시복식은 가톨릭에서 성덕이 높은 이가 선종하면 일정 기간 심사를 거쳐 복자로 추대하는 예식이다. 이후 최종적으로 성인의 반열에 올린다. 외신들은 테레사 수녀의 시성식이 바티칸에서 열리면 프란치스코 교황이 선포한 자비의 대희년(2015년 12월 8일∼2016년 11월 20일)이 절정을 맞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오스만제국 스코페(지금의 마케도니아 수도 스코페)에서 태어난 테레사 수녀는 인도 국적을 취득해 1950년 인도 콜카타에 사랑의 선교회를 세운 뒤 평생을 콜카타 빈민가에서 가난한 이들과 함께했다. 1979년 노벨평화상을 받았고, 1997년 87세로 선종했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국내여행 | 남쪽바다가 건네는 말②통영이 진하다

    국내여행 | 남쪽바다가 건네는 말②통영이 진하다

    통영은 진하다. 색이 진하고, 향이 진하고, 맛이 진하다.역사가 그러하고, 문화가 그러하고, 사람이 그러하다.좁은 골목에도 음악가와 화가의 삶이 얽혀 있고, 낡은 가옥에도 소설가와 시인의 인생이 묻어 있다. 얽히고 묻은 것들은 하나같이 묵직하다. 참 농밀하기도 하다. 그래서 통영의 여운은 오래도록 맴돈다.강구안. 멀리 동피랑과 나폴리 모텔이 보인다세병관의 서쪽 망루인 서포루동피랑의 상징인 벽화세병관 마루에 앉아 회상하다 통영 앞에는 어김없이 비경, 예향, 미항이라는 수식어가 달라붙는다. 수식어 대신 ‘동양의 나폴리’만으로도 불린다. 그러나 통영이 나폴리가 되기 이전에 통영은 이순신의 고장이다. 임진왜란 이후 왜군에 치가 떨린 조정은 전라도, 경상도, 충청도의 5개 수영을 아우르는 삼도수군통제영을 마련한다. 뼈아픈 치욕은 무너진 궁궐의 재건보다 먼저 삼도수군통제영을 설치하도록 했다.1604년에 설치된 삼도수군통제영은 300여 년간 경상, 전라, 충청의 삼도 수군을 지휘하던 본영이었다. 초대 통제사는 임진왜란 당시 초대 통제사인 이순신. 그의 한산도 진영이 최초의 통제영이었다. 이후 6대 통제사가 지금의 통영으로 통제영을 옮겼다.삼도수군통제영을 거닐어 본다. 차곡차곡 쌓인 시간이 발끝에서 단단하게 전해진다. 400년 넘게 닳은 돌층계 위로 겨울비가 흩날린다. 층계 끝의 문에는 지과문止戈問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그칠 지止, 창 과戈, 즉 창을 거둔다는 뜻이다. 그런데 그칠 ‘지’자를 창 ‘과’자 밑으로 가져와 두 글자를 합치면 싸울 무武 가 된다. 이것은 평상시에는 창을 거두지만, 유사시에는 싸우기를 주저하지 않겠다는 무장의 기상이다.무장의 다짐은 지과문을 지나 세병관에도 고스란하다. 세병관이라는 이름은 두보의 시구 ‘만하세병挽河洗兵’에서 가져왔다. ‘하늘의 은하수로 피 묻은 병기를 씻는다挽河洗兵挽河洗兵挽河洗兵挽河洗兵挽河洗兵.’ 즉, 전쟁이 그치고 평화를 갈망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씻을 세洗의 삼수변을 제거하면 먼저 선先이 된다. 평상시에는 세병이나, 유사시에는 선병. 평화를 바라는 마음 중에도 전투를 유념한다. 세병관의 현판은 우리나라에서 제일 크단다. 목이 아프도록 현판을 올려다보다가 문득 깨달았다. 세병과 선병 모두 결국은 백성과 조국을 지극히 아끼는 마음인 것을.삼도수군통제영과 어우러진 통영 시내의 모습이 통영의 역사를 한눈에 보여 주는 듯하다 국보 305호 세병관은 정면 9칸, 측켠 5칸의 단층 팔작지붕으로 된 목조건물이다. 이는 우리나라 단일 면적의 목조건물로서는 가장 큰 규모이다. 세병관은 삼도수군통제영의 의전과 연회를 행했던 객사건물이었으나 일제시대에는 기둥 사이에 벽을 세우고 초등학교로 사용됐다. 긴 세월 동안 몇 차례의 보수는 있었을지언정 삼도수군통제영의 다른 건물들이 소실될 때에도 세병관은 당당하게 세월을 견뎌냈다.세병관의 마루로 올라선다. 동쪽 망루인 동포루와 서쪽 망루인 서포루, 북쪽 망루인 북포루가 좌청룡과 우백호, 북현무로서 세병관을 감싼다. 정면으로는 멀리 미륵산 자락이 너울대고, 세병관 뒤로는 여황산이다. 마루가 맑고 서늘하다. 세병관 마루에서 바라보는 통영시내는 겨울비로 흠뻑 젖었다. 삼도수군통제영의 기와 너머로 통영의 땅과 바다가 들어온다.통영이 다양한 분야의 예술인을 숱하게 잉태한 이유를 파헤치다 보니 삼도수군통제영이라는 답이 나온다. 무슨 말인고 하니, 삼도수군통제영으로부터 파생된 것들로 인해 통영의 문화가 풍부해졌기 때문이란 말이다. 통제영의 12공방은 임진왜란 당시 군수품을 자체 조달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조선시대 한양을 제외한 지방에서는 통영 12공방 장인의 수가 가장 많아서 1895년 폐영 당시 250명에 달했다고 한다. 숫자만 많은 것이 아니라 생산품 역시 최상품이었다. 그래서 조선시대에는 통영소반 위에 안주를 차리는 것으로 부를 과시했다고 한다. 통영에서는 버선 한 켤레, 빗 하나, 갓 끈 하나조차 허술하지 않으니 그 안목들이 오죽했을까.한편, 통제영 300년이라 함은, 통제사가 300년 동안 부임했다는 이야기다. 통제사는 조선시대 정2품의 벼슬이었다. 정2품의 양반이 통제사로 부임하면 통영으로 홀로 오는 것이 아니라 식솔들과 노비들을 모두 끌고 온다. 일년 반마다 새롭게 부임하는 통제사는 한양의 최신식 유행을 퍼트렸고, 이는 통영의 복색을 세련되게 만들었다.뿐만 아니라, 세병관에서 의전과 연회 때마다 연주되는 예악을 들음으로써 통영의 음악도 풍부해졌다. 예악은 궁궐이 있는 한양이 아니고서는 듣기 힘든 고급 음악이었다. ‘전라도 가서는 소리하지 말고, 경상도 가서는 춤추지 말라’고 했다. ‘통영 가서는 춤도 소리도 하지 말라’가 되겠다. 충청, 경상, 전라 수군이 모여 저마다 춤 한 사위, 노래 한 가락 읊조리는 곳이 삼도수군통제영이었기 때문이다. 춤과 소리를 잘할 수밖에 없다. 이 모든 것들은 오랜 시간을 들여 축적되고 융합되었고, 순간마다 땅은 비옥해졌다. 이후 이 땅은 윤이상, 박경리, 유치환, 김춘수, 전혁림 등과 같은 근사한 꽃들을 피워냈다.서호시장은 이른 아침부터 분주하다강구안 골목의 대표적인 조형물 ‘이중섭 물고기’강구안 골목의 오래된 가게 사이로 세련된 감각의 가게들이 함께 공존한다히히히 강구안, 정겨운 서호시장‘어, 나폴리 모텔이다.’ 통영의 강구안 해안가를 거닐다 중얼거렸다. 나폴리 모텔은 2009년 개봉한 홍상수 감독의 영화 <하하하>에서 남여 주인공이 우연히 만나는 장소다. <하하하>는 63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주목할 만한 시선’상을 받은 영화로, 영화의 배경인 통영의 매력이 가득 담긴 영화다. 강구안에서 나폴리 모텔을 보니 ‘하하하’가 아니라 ‘히히히’ 하는 웃음이 새어 나온다.이제 강구안은 늘상 웃음소리로 소란하다. 물론 영화 때문은 아니다. 오래된 강구안 골목에 사람이 몰리기 시작한 것이다. 원래 강구안은 바다가 육지로 들어온 항구를 일컫는다. 통영에서는 중앙동, 항남동 등의 일부 해안을 옛날부터 강구안이라고 불렀다.통영의 명동으로 불릴 정도로 번화했던 강구안이 통영여객선터미널의 이전으로 쇠락하는 것을 안타깝게 여긴 사람들은 골목재생사업을 시작했다. 덕분에 지금 강구안 골목에는 통영에서 가장 오래된 여관, 70년간 이어 온 돼지국밥집, 55년 동안 풀무소리 끊긴 적 없는 대장간, 30년 넘은 목욕탕들이 여전히 소곤댄다. 그 사이로 게스트하우스와 작은 카페들도 함께 살 비비며 공존한다. 골목 어딘가에는 화가 이중섭과 유치환 시인이 술잔을 기울이던 곳이 있을 것이다. 지금 강구안은 새벽 1시에 후루룩 먹는 우짜우동과 짜장을 섞은 요리 맛처럼 달큰하고 뜨뜻하다, 히히히.서호시장은 통영항 여객선터미널 건너편에 위치한다. 예전 서호만 터를 매립해 만든 새 땅에 자리한 시장이라 새터시장으로도 불린다. 이른 아침부터 서호시장은 활기가 넘친다. 굴이 좋은 계절이라 그런지 통통하고 뽀얀 굴이 곳곳에서 보인다. 볼락과 학꽁치가 지천이다. 시장 한 켠 방앗간에서는 아침부터 고소한 기름 짜는 냄새가 번지고, 과일이며 나물이며 바구니마다 수북하다. 부지런한 상인들은 새벽부터 좌판을 벌였을 것이다. 알뜰한 사람들은 조금 더 싱싱하고 조금 더 저렴한 물건을 찾아 시장 골목 여기저기를 누빈다. 새벽 조업을 마친 어부들은 뜨끈한 해장국으로 거친 속을 푼다.서호시장에는 시래기를 뭉근하게 끓인 시락국, 국물이 시원하고 맑은 물메기탕, 해장에 최고라는 졸복국 등 다양한 해장국 가게가 많다. 시장의 활기가 궁금하다면 아침에 갈 것. 오후가 되면 비교적 한산해진다.▶travel info 욕지도·통영FERRY욕지도 여행의 출발은 통영이다. 통영의 통영여객선터미널과 삼덕여객선터미널에서 여객선과 카페리가 운항한다. 소요시간은 통영여객선터미널에서 출발할 경우, 1시간 30분, 삼덕여객선터미널에서 출발할 경우 45분이다. 삼덕여객선터미널의 경우 통영 시내에서 차로 15분 거리 떨어져 있으므로 교통편에 따라서 터미널을 선택하는 것이 좋겠다.통영→연화도→욕지도 하루 5회 왕복운항 여객운임 편도 9,700원, 승용차 차량운임 편도 1만5,000~2만6,000원 삼덕→욕지도 하루 8회 왕복운항 여객운임 편도 7,600원, 승용차 차량운임 편도 1만8,000~2만4,000원FESTIVAL 욕지섬문화축제 욕지섬문화축제는 욕지도의 대표적인 축제다. 1992년부터 10월 중순경에 개최되는 이 축제는 120여 년 전 처음으로 사람들이 욕지도에 살기 시작한 것을 기념하는 축제다. 욕지도 특산물인 고구마와 고등어를 주제로 한 ‘GO(구마)GO(등어)페스티벌’과, 과거 어민들의 어선인 전마선을 체험할 수 있는 ‘전마선노젓기대회’와 같이 다채로운 프로그램이 마련된다.STAY욕지도 옵타티오펜션 전 객실이 바다 전망이다. 일반형 객실 외에도 가족단위 여행객이 머물면 좋을 복층형 객실이 마련되어 있다. 복층형 객실의 2층 천장의 창을 통해 욕지도의 밤하늘을 감상할 수 있다. www.optatio.co.krrestaurant욕지도 늘푸른횟집 욕지도의 싱싱한 고등어 요리를 맛볼 수 있는 곳. 고등어회를 주문하면 어떻게 먹어야 맛있는지 친절히 설명해 준다. 고등어회뿐만 아니라 욕지도 고등어로 만든 고등어조림도 일품이다. 칼칼한 양념이 밥도둑이 따로 없다. 055 642 6777통영 통굴가 제철 굴을 코스로 즐길 수 있다. 가격에 따라 코스에 나오는 메뉴가 조금씩 다르다. 통통하고 맛이 진한 굴을 다양한 요리로 즐겨 보자. 055 645 2088통영 분소식당 겨울이면 제철 물메기탕이, 봄이면 도다리쑥국을 맛볼 수 있다. 시원한 국물과 씹을 필요가 없을 정도로 보드라운 물메기살을 호로록 맛보다 보면 어느새 속이 뻥 뚫린다. 졸복으로 만든 졸복해장국도 인기. 055 644 0495MUSEUM박경리 기념관 한국 현대문학의 거장. 박경리 선생은 통영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기념관 내부에는 선생의 친필 원고를 비롯하여 유품, 사진 자료를 전시하고 있다. 기념관 뒤쪽으로는 선생의 묘소가 자리한다. 경상남도 통영시 산양읍 산양중앙로 173 09:00~18:00, 매주 월요일, 법정공휴일 다음날 휴관 무료 055 650 2541~3 pkn.tongyeong.go.kr윤이상 기념공원 세계적인 음악가 윤이상을 기리기 위한 공원. 전시실과 카페 및 기념품숍, 각종 공연과 세미나와 같은 실내행사를 위한 메모리홀, 야외행사장인 경사광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전시실에는 윤이상의 생애와 함께 생전 사용하던 악기 및 친필 악보를 비롯하여 생전의 유품을 전시하고 있다. 경상남도 통영시 중앙로 27 도천테마공원 09:00~ 18:00 1월1일, 설날 및 추석연휴, 매주 목요일, 공휴일 다음날 휴관 무료(단, 공연 및 세미나는 별도) 055 644 1210 www.isangyunmemorial.com통영옻칠미술관 옻칠과 회화를 접목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옻나무에서 채취한 수액을 정제하고 안료를 배합하여 옻칠을 한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각도에 따라 다르게 빛나는 광채가 신비롭다.경상남도 통영시 용남면 용남해안로 36 10:00~18:00, 매주 월요일(월요일이 공휴일인 경우 다음날), 설날, 추석 휴관 어른 3,000원, 어린이 1,000원 055 649 5257 www.otchil.org에디터 천소현 기자 글·사진 Travie writer 이윤정 취재협조 한국해양소년단 경남남부연맹 www.hanbada.or.kr,통영시 www.tongyeong.go.kr
  • 김주열 열사 시신 차로 옮겼던 운전기사 56년 만에 속죄

    김주열 열사 시신 차로 옮겼던 운전기사 56년 만에 속죄

    “용서하시고 천당에서 행복하게 지내시길 빕니다.” 1960년 3월 15일, 최루탄이 눈에 박혀 숨진 김주열 열사 시신을 경찰이 유기할 당시 시신을 차로 옮겼던 운전기사가 56년 만에 김 열사 묘를 찾아 눈물을 흘리며 속죄했다. 3·15 56주년을 앞둔 지난 13일 김덕모(77·창원시)씨가 창원시 마산회원구 3·15 민주묘지를 찾아 김 열사 묘에 헌화한 뒤 묘비를 어루만졌다. 김씨는 김주열 열사 시신 유기 당시 동원된 차량 운전기사였다. 당시 20대 건장한 청년이었던 김씨는 지팡이가 없이는 거동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70대 노인이 됐다. “이렇게라도 속죄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돼 다행입니다” 중증 치매 증세로 치료를 받는 김씨는 더듬거리는 말투로 그날 기억을 떠올렸다. 그는 당시 마산에 살던 한 사업가의 운전기사였다. 그날 새벽 김씨는 “경찰을 도와주라”는 지시에 따라 경찰 세 명과 민간인 한 명을 차에 태우고 마산세무서에 도착한 뒤 최루탄이 눈에 박힌 상태로 누워 있던 김주열 열사 시신을 봤다. 경찰은 시신을 차 뒷좌석으로 옮긴 뒤 그에게 확장 공사를 하고 있던 마산항 1부두로 가자고 지시했다. 김씨는 겁에 질려 뒷좌석을 한번도 돌아보지 못한 채 차를 몰고 마산항에 도착했다. 마산항에 도착한 경찰은 공사장에 있던 큰 돌 하나를 김주열 열사 가슴 위에 올린 다음 철사로 칭칭 묶은 뒤 바다로 던졌다. 이후 죄책감에 시달리던 그는 “40년 전부터 매일 성당에 나가 김주열 열사를 위해 기도했다”고 말했다. 김씨는 지난해 10월 9일 우연히 라디오에서 김주열열사기념사업회가 기획한 ‘민주성지 일일 역사 탐방 프로그램’ 관련 방송을 듣고 사흘 뒤 기념사업회 사무실로 찾아가 김영만 전 김주열열사기념사업회 회장에게 55년 넘게 담아뒀던 그날 기억을 털어놓았다. 김 열사 묘 참배를 한 그는 “살아생전에 한번은 꼭 묘에 와보고 싶었다. 이제 짐을 덜게 돼 마음이 홀가분하다”고 말했다. 김씨와 함께 3·15 민주묘지를 방문한 김영만 전 회장은 “김덕모씨가 용기를 내 김 열사 시신 유기 당시 과정을 증언해줘 고맙다”고 말했다. 김주열 열사는 이승만 정권의 3·15부정선거를 규탄하는 시위에 참가했다가 행방불명된 뒤 실종 27일 만인 4월 11일 마산 중앙부두 앞바다에서 최루탄이 눈에 박힌 상태로 발견됐다. 이 사건으로 마산 시위가 확산돼 전국으로 번져 4·19 혁명의 도화선이 됐다. 창원 강원식 기자 kws@seoul.co.kr
  • 살아있을 때 모습 그대로…이색 장례식 눈길

    살아있을 때 모습 그대로…이색 장례식 눈길

    사랑하는 사람이 우리 곁을 갑자기 떠나게 된다면, 주변인들은 그의 생전 모습을 그대로 기억하고 싶다는 염원을 갖게 된다. 이러한 유족들의 바람에 맞춰 생소한 방식으로 장례를 치르게 된 한 남성의 모습이 화제다. 12일(이하 현지시간) 영국 매체 메트로는 관 속에 눕는 대신 의자에 앉아 마지막 길을 떠난 푸에르토리코 남성 페르난도 데 헤수스 디아스 베아토(26)의 사연을 소개했다. 베아토는 지난 3일 푸에르토리코 수도 산후안 시에 위치한 자택 앞에서 15발의 총격을 받은 끝에 사망했다. 가족들은 슬픔 속에서 그를 위해 특별한 장례식을 열기로 결정했다. 베아토의 시신을 관 속에 안치하는 대신, 즐겨 입던 옷을 입힌 채 의자에 앉아 손가락에 담배 한 개비를 들고 있는 모습을 연출한 것. 가족들이 이런 전례 없는 장례식을 준비한 가장 큰 이유는 그의 살아있을 때 모습을 그대로 기억하기 위해서다. 베아토의 누나 이이스 디아스 베아토는 “우리가 동생의 장례를 이렇게 치르기로 한 것은, 그가 생전에 매우 밝고 활동적인 사람이었기 때문이다”며 “우리는 그를 그 모습 그대로 기억하고 싶다”고 말했다. 장례 준비를 주관한 장례식장 대표 다마리스 마린은 가족들과 밀접하게 협조하여 그들의 요구사항을 충실히 들어주기 위해 노력했다고 전했다. 베아토의 생전 모습을 생생히 재현하고 싶다는 가족들의 요청에 마린이 고안해낸 아이디어 중 가장 독특한 부분은 바로 베아토의 눈을 감기지 않도록 한 것이다. 과거 9번에 걸쳐 독특한 장례식을 기획한 경력이 있는 마린은 “의자에 다리를 꼬고 앉도록 한 것도 특이하지만, 눈을 뜬 채 장례식을 치른 사람은 베아토가 역사상 처음일 것”이라며 이번 장례식의 특별함을 강조했다. 전에 본 적 없는 독특한 장례식에 조문객들 또한 놀랍다는 반응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마린은 “우리가 그동안 봤던 것 중 (조문객들의) 반응이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례식이었다”고 밝혔다. 베아토의 또 다른 누나 또한 “장례를 찾아온 모든 사람들은 그가 생전의 모습 그대로인 것을 보며 크게 놀랐다”고 전했다. 한편 푸에르토리코 경찰은 아직까지 페르난도를 사살한 범인에 대한 단서를 잡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메트로 웹사이트 캡처 방승언 기자 earny@seoul.co.kr
  • 계모 학대로 숨진 원영이 추모관에 추모편지, 핫팩, 간식쌓여

     계모로부터 학대받다 숨진 신원영(7)군의 유골이 안치된 경기도 평택시 청북면 평택시립추모관에 핫팩과 편지, 간식 등 어린 생명을 지켜주지 못해 미안한 어른들의 마음이 쌓이고 있다.  자전거를 타며 천진난만하게 웃고 있는 원영이 사진 위로 새하얀 색깔의 핫팩이 놓여졌다. 누군가 살아 생전 욕실에서 찬물과 락스를 뒤집어쓰며 추위에 떨어야 했던 원영이를 위해 붙여 놓은 것이다.  7살 짧은 삶을 마감한 원영이는 만 4살도 안돼 계모를 만난 뒤부터 한겨울에도 얇은 옷을 입은 채 동네를 방황했고 숨지기 전 석달간 추운 겨울에 ‘욕실 감옥’에 갇혀 찬물과 락스세례를 견뎌야 했다. 끔찍한 학대 끝에 원영이가 숨졌다는 소식을 접한 주민들은 하나둘씩 추모관을 찾아 미안해하며 추모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한 추모객은 “원영아,하늘나라에서 따뜻한 사랑 받으렴. 이승에서 있었던 일을 모두 잊고 행복하길 바랄게”라는 메시지를 남겨뒀다. 또 다른 추모객은 하루 한끼도 제대로 먹지 못하며 하루하루를 버틴 원영이를 위해 초코바와 과자를 가져다 놓기도 했다.  ‘원영이 사건’의 피의자인 계모 김모(38)씨와 친부 신모(38)씨에 대한 현장검증이 끝난 뒤에는 평택 안중·포승지역 맘카페인 안포맘 회원 10여명이 모여 추모식을 열었다. 류정화 안포맘 대표는 “원영이에게 500명의 엄마들이 댓글로 쓴 편지를 전달했다”며 “하늘나라에서는 따뜻하기를 바란다. 어른으로서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고개를 떨궜다.  유족은 “원영이의 유골함을 조금 더 밝은 곳으로 옮겨다 놓을 생각이다. 캄캄한 욕실에서만 지냈으니 이제라도 빛을 볼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한상봉 기자 hsb@seoul.co.kr
  • 정치 혼돈의 시대 다시 떠올린 DJ의 말

    정치 혼돈의 시대 다시 떠올린 DJ의 말

    기적은 기적처럼 오지 않는다/김택근 지음/메디치/216쪽/1만 3800원 최근 정치판에서 가장 주목을 끈 단어는 ‘필리버스터’다. 발언대에 선 소수파 의원이 정치적 목적을 위해 합법적인 범위에서 자신의 의사진행 발언을 길게 이어 가는 것을 뜻하는 단어다. 우리 국회사에서 이 단어의 ‘원조’를 꼽으라면 김대중 전 대통령이 아닐까 싶다. 김 전 대통령은 1964년 4월 불법 정치자금을 폭로한 동료 의원의 구속동의안 통과를 저지하기 위해 무려 5시간 19분 동안이나 의사진행 발언을 했다. 이 전설적인 ‘기록’은 지난 2월 김광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5시간 33분의 새 기록을 세우기 전까지 반세기 이상 깨지지 않고 이어져 왔다. 김 전 대통령의 치열한 삶을 말해 주는 여러 일화 중 하나다. 새 책 ‘기적은 기적처럼 오지 않는다’는 이처럼 김 전 대통령이 신산한 삶을 ‘살아내는’ 동안 남긴 여러 말들을 정리한 책이다. 김 전 대통령의 어록 가운데 정수로 꼽히는 것들을 먼저 적고, 그 안에 담긴 함의를 저자가 풀어내는 식으로 이어진다. 저자는 2003년부터 8년간 ‘김대중 자서전’ 편집위원으로 일했다. 저자가 선정한 김 전 대통령의 어록은 생전 그의 정신과 삶을 집약해 보여준다. 책은 용기, 도전, 지혜, 성찰, 인내, 평화, 감사 등 모두 7개 장으로 나뉜다. 각 장에는 표제어에 걸맞은 어록이 담겨 있다. 40대 초선 의원 김대중이 필리버스터를 이어 가는 장면은 52쪽에 나온다. 당시로선 대단한 파격이었을 터다. 결국 당시 국회의장은 의사진행을 포기하고 산회를 선포했다. 김 전 대통령의 말들은 거침이 없다. 전방부대를 시찰하며 “군은 서울을 보지 말고 북을 보라”고 꼬집었고, 서울대 강연에선 “전쟁은 전부 사십대 이상의 사람만 가라. 자기들은 전쟁에 안 가니까 쉽게 결정해서 젊은 사람들을 죽게 한다”고 일갈하기도 했다. 곡절 많았던 자기 인생의 한 부분과 화해하는 대목도 인상적이다. 2004년 8월 12일. ‘아버지’ 박정희가 사망한 지 25년 만에 ‘딸’ 박근혜가 한나라당 대표 자격으로 자신을 찾아왔다. 아버지의 일을 사과하는 딸의 모습에 그는 “아버지 시대 맺혔던 원한을 딸이 와서 풀었다. 내 속의 응어리가 풀렸다. 내가 구원을 받는 것 같았다”며 감동했다. 책은 그의 인간적인 면모도 들춰낸다. 눈물 많고 정도 많았던 그의 이면이 오롯이 드러난다. 책 제목은 1998년 10월 일본 국회에서 한 연설 가운데 “기적은 기적적으로 이뤄지지 않습니다”라는 대목에서 따온 것이다.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 역사상 최고의 ‘명장’은 과연 누구일까?

    역사상 최고의 ‘명장’은 과연 누구일까?

    한니발, 대군 끌고 알프스 넘은 장군 한니발 전쟁은 3막으로 이루어진 포에니 전쟁 중 제2막이다. 포에니 전쟁이란 로마와 페니키아의 아프리카 식민시 카르타고와의 전쟁으로, 고대 지중해 세계의 패권을 둘러싸고 기원전 3세기 중엽에서 기원전 2세기 중엽까지 3차에 걸쳐 있었던 고대판 세계대전이다. 1차전에서 신흥 로마에게 충격적인 패배를 당한 강대국 카르타고는 그야말로 23년의 와신상담 끝에 기원전 218년, 한니발을 앞세워 설욕전에 나섰다. 29살의 한니발은 코끼리 부대까지 포함, 2만 6000의 대군을 이끌고 눈보라치는 알프스 산맥을 넘어 로마를 요격했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공격로였다. 게다가 한니발은 전술의 귀재였다. 눈병을 치료하지 못해 한쪽 눈을 잃었음에도 불구하고 불굴의 의지와 상상을 초월하는 전법으로 적의 의표를 찔러가며 연전연승을 거두어 로마를 공황 속에 빠뜨렸다. 특히 기원전 216년 8월 남이탈리아의 칸나에 전투에서 기발한 용병술로 우월한 병력의 로마군을 포위·섬멸하는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이 칸나에 전투는 포위-섬멸전의 전범으로 각국 사관학교 교범에 올라 있을 정도다. 뒤에 한니발을 패퇴시킨 스키피오는 이때 17살로, 칸나에 전투에서 카르타고 군 중앙을 뚫고 몇 km 떨어진 카누시움까지 살아 돌아간 운좋은 무리에 섞여 있었다. 이 전투를 전후로 한니발은 16년에 걸쳐 이탈리아 반도를 종횡으로 유린하며 연전연승, 로마를 괴롭혔으나 끝내 로마의 항서를 받아내는 데는 실패했다. 반도에 있는 로마의 동맹시들이 로마에서 이반하지 않고 굳건히 로마를 지원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16년의 전쟁 중 한니발은 자신도 모르게 적진 속에서 한 수제자를 키우고 있었다. 바로 16년 후인 기원전 202년 자마 전투에서 한니발의 전술로 한니발을 쓰러뜨린 스키피오였다. 스키피오, 한니발에게 배워 한니발을 꺾다 청년 스키피오는 여러 차례 한니발 군과의 전투에서 목숨을 잃어버릴 뻔한 위기들을 겪었지만, 그때마다 운좋게 살아남아 마침내는 한니발을 꺾어버린 명장으로 자라났던 것이다. 여러 차례 패배를 거듭하면서 한니발에게 배운 전술과 용병술에 힘입은 바가 컸다. 스키피오가 이끄는 로마 원정군과 맞부딪친 자마 전투에서 한니발은 참담하게 완패했고, 이로써 카르타고는 소도시로 몰락하고, 한니발은 도망자 신세로 전락했다. 생전에 한니발은 스키피오를 만난 적이 있었다. 플루타르코스에 따르면, 자마 전투 후 몇 년이 지났을 때 우연히 로도스 섬에서 만나 대화를 나누었다고 한다. 스승과 제자의 만남이라고 할 만하다.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에서 나오는 부분을 인용해 이 장면을 재현해보기로 하자. 한니발보다 12살 아래인 스키피오가 50줄에 접어든 노장에게 공손히 물었다. “장군, 역사상 최고의 명장은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마케도니아의 왕 알렉산드로스를 능가할 사람은 없소. 페르시아 대군을 소규모 군대로 무찔렀을 뿐만 아니라,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경계를 훨씬 넘어선 곳까지 정복한 업적은 실로 위대하다고 할밖에 없소." “그러면 두 번째로 뛰어난 명장은요?” 한니발은 이번에도 거침없이 말했다. “에페이로스의 왕 피로스요. 그는 병법의 대가일 뿐만 아니라, 숙영지의 중요성을 처음으로 인식한 사람이기도 하오.” “그렇다면 세 번째는?” 역시 대답이 바로 튀어나왔다. “바로 나, 한니발이오.” 자마 전투에서 한니발을 꺾은 공으로 아프리카누스라는 존칭까지 받은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는 미소짓는 얼굴로 물었다. “만약 장군께서 자마에서 나한테 이겼다면요?" “그랬다면 나는 알렉산드로스와 피로스를 뛰어넘어 역사상 최고의 명장이 되었을 거요.” 이에 대한 평가는 독자 몫이겠지만, 한니발의 마지막 운명에 대해 간략히 말한다면, 자마 패전 후 조국 카르타고에서도 버림받은 한니발은 동방 시리아의 안티오코스 3세에게로 망명했다. 얼마 후엔 다시 비티니아 왕에게 의탁하여 재기를 꾀했으나 모두 허사로 돌아간 후, 기원전 183년 자신을 체포하려는 로마 병사들이 문 밖에 도착하자 몸에 지니고 다니던 독을 마시고 자결했다. 향년 64세. 조국 로마의 배신으로 버림받은 스키피오도 그해에 세상을 등졌다. 둘은 저승길에서 만나 인생사 무상함을 같이 회고했을까? 그로부터 약 50년이 지난 후인 기원전 146년, 제3차 포에니 전쟁의 종결에서 로마의 잔혹한 소탕전으로 카르타고는 지도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이광식 통신원 joand999@naver.com
  • [이광식의 문화유랑기] 역사상 최고의 명장은 누구일까?

    [이광식의 문화유랑기] 역사상 최고의 명장은 누구일까?

    한니발, 대군 끌고 알프스 넘은 장군 한니발 전쟁은 3막으로 이루어진 포에니 전쟁 중 제2막이다. 포에니 전쟁이란 로마와 페니키아의 아프리카 식민시 카르타고와의 전쟁으로, 고대 지중해 세계의 패권을 둘러싸고 기원전 3세기 중엽에서 기원전 2세기 중엽까지 3차에 걸쳐 있었던 고대판 세계대전이다. 1차전에서 신흥 로마에게 충격적인 패배를 당한 강대국 카르타고는 그야말로 23년의 와신상담 끝에 기원전 218년, 한니발을 앞세워 설욕전에 나섰다. 29살의 한니발은 코끼리 부대까지 포함, 2만 6000의 대군을 이끌고 눈보라치는 알프스 산맥을 넘어 로마를 요격했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공격로였다. ​게다가 한니발은 전술의 귀재였다. 눈병을 치료하지 못해 한쪽 눈을 잃었음에도 불구하고 불굴의 의지와 상상을 초월하는 전법으로 적의 의표를 찔러가며 연전연승을 거두어 로마를 공황 속에 빠뜨렸다. 특히 기원전 216년 8월 남이탈리아의 칸나에 전투에서 기발한 용병술로 우월한 병력의 로마군을 포위·섬멸하는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이 칸나에 전투는 포위-섬멸전의 전범으로 각국 사관학교 교범에 올라 있을 정도다. ​뒤에 한니발을 패퇴시킨 스키피오는 이때 17살로, 칸나에 전투에서 카르타고 군 중앙을 뚫고 몇 km 떨어진 카누시움까지 살아 돌아간 운좋은 무리에 섞여 있었다. 이 전투를 전후로 한니발은 16년에 걸쳐 이탈리아 반도를 종횡으로 유린하며 연전연승, 로마를 괴롭혔으나 끝내 로마의 항서를 받아내는 데는 실패했다. 반도에 있는 로마의 동맹시들이 로마에서 이반하지 않고 굳건히 로마를 지원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16년의 전쟁 중 한니발은 자신도 모르게 적진 속에서 한 수제자를 키우고 있었다. 바로 16년 후인 기원전 202년 자마 전투에서 한니발의 전술로 한니발을 쓰러뜨린 스키피오였다. 스키피오, 한니발에게 배워 한니발을 꺾다​ 청년 스키피오는 여러 차례 한니발 군과의 전투에서 목숨을 잃어버릴 뻔한 위기들을 겪었지만, ​그때마다 운좋게 살아남아 마침내는 한니발을 꺾어버린 명장으로 자라났던 것이다. 여러 차례 패배를 거듭하면서 한니발에게 배운 전술과 용병술에 힘입은 바가 컸다. 스키피오가 이끄는 로마 원정군과 맞부딪친 자마 전투에서 한니발은 참담하게 완패했고, 이로써 카르타고는 소도시로 몰락하고, 한니발은 도망자 신세로 전락했다. ​ 생전에 한니발은 스키피오를 만난 적이 있었다. 플루타르코스에 따르면, 자마 전투 후 몇 년이 지났을 때 우연히 로도스 섬에서 만나 대화를 나누었다고 한다. 스승과 제자의 만남이라고 할 만하다.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에서 나오는 부분을 인용해 이 장면을 재현해보기로 하자. 한니발보다 12살 아래인 스키피오가 50줄에 접어든 노장에게 공손히 물었다. “장군, 역사상 최고의 명장은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마케도니아의 왕 알렉산드로스를 능가할 사람은 없소. 페르시아 대군을 소규모 군대로 무찔렀을 뿐만 아니라,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경계를 훨씬 넘어선 곳까지 정복한 업적은 실로 위대하다고 할밖에 없소." “그러면 두 번째로 뛰어난 명장은요?” 한니발은 이번에도 거침없이 말했다. ​ “에페이로스의 왕 피로스요. 그는 병법의 대가일 뿐만 아니라, 숙영지의 중요성을 처음으로 인식한 사람이기도 하오.” “그렇다면 세 번째는?” 역시 대답이 바로 튀어나왔다. “바로 나, 한니발이오.” 자마 전투에서 한니발을 꺾은 공으로 아프리카누스라는 존칭까지 받은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는 미소짓는 얼굴로 물었다. ​ “만약 장군께서 자마에서 나한테 이겼다면요?" “그랬다면 나는 알렉산드로스와 피로스를 뛰어넘어 역사상 최고의 명장이 되었을 거요.” ​ 이에 대한 평가는 독자 몫이겠지만, 한니발의 마지막 운명에 대해 간략히 말한다면, 자마 패전 후 조국 카르타고에서도 버림받은 한니발은 동방 시리아의 안티오코스 3세에게로 망명했다. 얼마 후엔 다시 비티니아 왕에게 의탁하여 재기를 꾀했으나 모두 허사로 돌아간 후, 기원전 183년 자신을 체포하려는 로마 병사들이 문 밖에 도착하자 몸에 지니고 다니던 독을 마시고 자결했다. 향년 64세. 조국 로마의 배신으로 버림받은 스키피오도 그해에 세상을 등졌다. 둘은 저승길에서 만나 인생사 무상함을 같이 회고했을까? 그로부터 약 50년이 지난 후인 기원전 146년, ​제3차 포에니 전쟁의 종결에서 로마의 잔혹한 소탕전으로 카르타고는 지도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이광식 통신원 joand999@naver.com
  • [열린세상] ‘판다’가 왔다/황재호 한국외대 국제학부 교수

    [열린세상] ‘판다’가 왔다/황재호 한국외대 국제학부 교수

    전 세계적으로 1600여 마리밖에 남지 않은 멸종 위기 판다(熊猫)가 지난 3일 한국에 왔다. 2014년 7월 한·중 정상회담에서 시진핑 국가주석이 선물하기로 약속했었다. 암컷 ‘아이바오’(愛寶), 수컷 ‘러바오’(寶) 한 쌍이다. 각각 ‘사랑스러운 보물’, ‘기쁨을 주는 보물’이라는 의미다. 작년에만 왔어도 더 큰 환영을 받았을 것이다. 비록 올해 들어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로 인해 양국관계가 다소 침체되었지만 판다로 인해 오히려 회복의 전환점이 될 수도 있다. 판다는 중국 외교의 홍보대사다. 판다는 국가의 이미지를 제고하는 공공외교에 기여한다. 강압적 외교와 군사적 압박의 하드파워보다 더 큰 힘을 발휘한다. ‘판다 외교’라는 용어가 있을 정도다. 판다의 매력은 치명적이다. 매력을 발산해 상대에게 끌리게 하는 소프트파워 기능을 가진다. 외모가 귀여워 특히 아이들이 좋아한다. 아이들이 보채면 부모들은 판다를 보러 가야 한다. 판다를 좋아하면 판다의 고향 나라에도 호감을 느끼게 된다. 판다는 중국의 개혁·개방에도 기여했다. 미·중 간 국교수립에 핑퐁외교와 함께 판다외교도 있었다. 1972년 리처드 닉슨 미 대통령의 중국 방문을 기념하기 위해 판다를 미국에 선물했다. 중국이 개혁·개방하기 이전 시기를 은유적으로 표현할 때 ‘대나무(竹)의 장막’이라 한다. 그 대나무를 좋아하는 것이 판다다. 개혁의 설계사 덩샤오핑이 생전에 즐겨 피웠던 담배가 판다다. 죽의 장막을 거둬낸 덩샤오핑에게 영감을 준 것이 판다였나 보다. 애니메이션 ‘쿵푸팬더3’가 중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었다. 제3편은 주인공 판다 ‘포’가 악당 ‘카이’에 맞서 마을을 지키는 내용이다. 영화는 철학적인 질문 ‘나는 누구인가’를 묻고 있는데 사실상 ‘중국은 누구인가’를 묻는 듯했다. 중국은 강대국이 될 준비가 되었는지 스스로 묻고, 미국엔 신형대국관계를 같이할지를 묻는 듯했다. 영화에서 누구를 가르쳐 본 적이 없는 주인공 ‘포’는 쿵후를 제대로 가르치기 위해 여러 노력을 기울인다. 시 주석이 지도자로 등장한 이후 중국은 새로운 전략을 선보이고 있다. 일대일로에서부터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까지 중국이 이전에 가보지 않은 길이다. 시진핑 주석의 외모는 판다를 닮았다. 얼굴이 둥글고 체구도 푸근하다. 그러나 눈매의 검은 부위를 지우면 부드러움 속에 강인함과 날카로움이 숨어 있다. 지금 베이징에서 열리고 있는 양회에서 중국 정부가 정책적 문제점을 숨기기보다 인정하는 모습은 이전에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일이다. 자신감의 발로다. 시 주석은 반부패 캠페인으로 무소불위 권력자들을 추풍낙엽처럼 날려버렸다. 지난 수십 년간 하지 못했던 인민해방군 개혁을 불과 3년 만에 일사천리로 처리했다. 판다는 일반적으로 느리다. 평상시 조용하다. ‘만만디’(느리게)의 대명사다. 그러나 어떤 때는 전혀 느리지 않다. 덩치가 크고 힘도 세 결코 만만치 않다. 대나무를 주로 먹지만 어떤 때는 육식도 한다. 여전히 야생동물이다. 맹수인 ‘곰’의 DNA가 있다. 필요할 땐 쿵후도 한다. 공격성을 보일 때도 있다. 귀를 건드리면 화를 낸다. 귀는 ‘핵심이익’이다. 동중국해부터 남중국해까지 국익을 위해서는 거침이 없다. 중국은 판다를 아무한테나 안 준다. 키울 능력이 있어야 준다. 비용도 비싸지만 줄 필요성이 있는 국가에만 준다. 한국은 미국, 일본, 영국 등에 이어 14번째 보유국이 되었다. 중국의 주변 외교 정책인 친성혜용(親誠惠容·친밀, 성실, 혜택, 포용)의 가장 성공적인 사례인 한국과의 관계는 매우 중요하다. 중국에 한국은 ‘아이바오’, ‘러바오’인 것이다. 3월 말 미국에서 열리는 핵 정상회의에서 박 대통령과 시 주석의 만남에 벌써 관심이 간다. 지난 3년 최상의 한·중 관계였고 최고의 파트너였던 두 지도자가 올해 초 북한발 위기 해소법과 관련하여 관계가 다소 소원해진 듯하다. 만나면 어떻게 어색함을 풀어야 할까? 판다로 시작해도 좋겠다. 경남 하동 청정지역의 최상급 대나무를 먹이면서 잘 키우겠노라고. 판다로 인해 사랑스럽고 기쁨을 나누는 한·중 관계로 거듭났으면 한다.
  • 지자체 예산 된 금니 화장장서 순금 추출

    추출 어려워 금니 반환 요청 적어 고인을 떠나보내는 화장장에서 적지 않은 순금이 발생해 자치단체 수입에 편입된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고인이 생전에 신체에 지녔던 금니 등 금속성 물질은 1000도가 넘는 화장로에서도 그대로 남아 순금을 추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9일 서울시에 따르면 승화원과 서울추모공원 등 시립화장장 두 곳에서 1년여간 모은 순금은 약 700g이다. 승화원에서 2014년 5월부터 지난해 9월까지 모인 치금과 추모공원에서 2014년 7월부터 지난해 8월까지 모인 치금을 합해 정제한 결과 총 693.7g의 순금이 나왔다. 서울시설공단은 지난 1월 25일 이 순금을 시세에 따라 판매했고, 2896만원의 수익금을 서울시 수입으로 추가했다. 순금 이외에도 인체 보철물, 못 등도 수거해서 판매해 시 예산으로 활용했다. 화장 이후 금니가 녹아 생기는 치금 등 화장 잔류물은 민법상 유족이 권리를 갖는다. 그러나 유족이 수령하지 않을 경우 공매 등으로 판매해 시 수입에 편입한다. 대전시립화장장인 정수원도 지난해 나온 순금 850g을 3750만원에 팔았다. 전액 대전시 예산에 편입했다. 이 화장장은 지난해 모두 6866구의 시신을 화장했다. 김현식 정수원 대리는 “화장을 하면 관에 박힌 못과 함께 시신의 금니에서 치금이 나오는데 금 반환을 요청하는 유족은 연간 몇 건밖에 안 된다”고 말했다. 금니로 나오는 금은 매우 적고 바로 순금 형태로 추출되는 것도 아니므로 돌려 달라는 유족이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울산하늘공원은 2013년 3월 문을 연 후 화장 과정에서 발생한 치금과 인체 보철물을 모아서 6개월 단위로 공매 처분하고 있다. 하늘공원은 화장 접수 데스크에 ‘화장 잔류물 처리 안내서’를 비치해 유족들의 반환 의사를 먼저 확인하고 반환을 요구하지 않는 잔류물을 모아 공매 처분한다고 밝혔다. 대부분 잔류물 반환을 요청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늘공원 관계자는 “지난해 화장 잔류물에 대한 2차례 공매로 260만원의 수익이 생겨 울산시 수입으로 편입했다”고 말했다. 부산영락공원도 지난해 3월부터 12월까지 나온 잔류물을 1100㎏ 정도 보관하고 있는데, 치금을 따로 분류하지 않고 화장 잔류물로 묶어 공매할 계획이다. 인천가족공원은 지난해 치금 수거량은 없지만 보철물 720㎏을 매각해 14만 4000원의 수익을 올렸고 가족공원 자체 세입으로 처리했다고 밝혔다. 수원 김병철 기자 kbchul@seoul.co.kr 대전 이천열 기자 sky@seoul.co.kr 울산 박정훈 기자 jhp@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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