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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정남 피살…말레이시아서 누구와 뭐 하고 있었나

    김정남 피살…말레이시아서 누구와 뭐 하고 있었나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장남이자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이복형인 김정남(46)이 현지시간 13일 오전 말레이시아에서 피살됐다고 정부 소식통이 14일 밝혔다. 이날 TV조선에 따르면 복수의 정부 관계자가 “김정남이 말레이시아에서 북한 여간첩에게 독살당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김정남은 전날 오전 9시 쿠알라룸푸르 공항에서 2명의 여성에게 독침을 맞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남이 말레이시아에서 누구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에 관심이 쏠린다. 2014년 1월 김정남이 말레시이아에 머무를 때 일본 정부와 언론에 포착된 장소는 쿠알라룸푸르의 한국 식당이었다. 장성택 숙청 뒤 신변위협설이 나도는 시기였던 만큼, 나름 안전한 장소를 택했던 것으로 보인다. 김정남은 4개월 뒤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목격됐고, 같은해 10월엔 프랑스 파리에서 한국 언론과 즉석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정통한 대북소식통은 “김정일 생전엔 김정남이 매달 수백만 달러의 체제비를 지원 받은 것으로 안다”고 TV조선을 통해 밝혔다. 김정일 사망 뒤 김정은이 권력을 장악하자 김정남에 대한 지원이 사실상 끊긴 것으로 전해졌다. 김정남이 무기거래나 IT 분야 등 여러 사업을 시도했지만 제대로 수익을 내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남은 주로 말레이시아에 체류하면서 내연녀가 있는 싱가폴을 오간 것으로 전해졌다. 첫째 부인 신정희나 둘째 부인 이혜경, 아들 한솔과 딸 솔희와는 따로 살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장은석 기자 esjang@seoul.co.kr
  • 물고기 사냥 중 ‘얼음 박제’ 된 물총새의 비극

    새가 물 속에서 그대로 얼어버려 마치 박제가 된 듯한 모습이 사진으로 공개됐다. 최근 영국 데일리미러 등 유럽언론은 살기 위해 사냥에 나섰다가 영원한 죽음에 이른 새 2마리를 소개했다. 이 새들이 발견된 것은 독일 북부 바이에른주에 위치한 한 연못. 사진에서처럼 새들은 생전 그대로의 모습으로 얼음 속에 갇혀 죽음을 맞이했다. 누군가 일부러 얼음으로 박제를 만든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는 자연이 내린 형벌 아닌 형벌이었다. 얼음 속에 봉인된 이 새들은 긴 부리로 물고기를 잡아먹고 사는 물총새다. 여느 때처럼 연못 속 물고기를 사냥하기 위해 잠수했다가 죽음을 맞이한 것. 현지 삼림관리원인 페터 프루브스틀은 "아마도 물총새가 물 속에 들어왔다가 출구를 찾지 못했거나 순식 간에 얼어버린 것"이라면서 "새의 이같은 모습을 한번도 본 적이 없다"며 놀라워했다. 이어 "물총새에게는 비극적인 일이지만 정말로 기괴하면서도 아름다운 모습"이라고 덧붙였다.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초인종 의인’ 안치범 父 문재인 지지…“아들처럼 발로 뛰는 대통령 되어달라”

    ‘초인종 의인’ 안치범 父 문재인 지지…“아들처럼 발로 뛰는 대통령 되어달라”

    지난해 서울 서교동 화재 현장에서 이웃들을 구하고 숨진 ‘서교동 화재 의인’ 고 안치범씨의 부친이 야권 유력 대권주자인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 지지 의사를 밝혔다. 문 전 대표는 9일 서울 광진구 서울시민안전체험관에서 열린 싱크탱크 국민성장 주최 ‘안전한 대한민국’ 포럼에서 “국민의 안전이 위태로울 때 대통령과 정부는 보이지 않았지만 목숨이 위험한 상황에서도 남을 위해 몸을 던지는 의로운 사람이 많다”며 고인의 아버지인 안광명(63)씨를 소개했다. 안 씨는 “아들 뜻을 대신한다는 심정으로 이 자리에 섰다. 저는 정치에 큰 관심을 안 뒀고, 문 전 대표도 한국 정치인 중 한 분이라는 생각으로 자세히 알아본 적이 없다”며 “그런 제 생각을 바꾼 게 아들”이라고 말했다. 안 씨는 “아들은 생전에 ‘소극적이고 무관심한 태도가 공동체를 병들게 한다’고 했고, 누가 지도자인지 면밀히 살피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을 아들의 깨우침을 통해 알았다”며 “일찍이 유권자로서 문 전 대표를 성원했던 치범이가 세상을 떠난 뒤 그 말뜻을 실감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는 아들 부재로 생긴 문재인 지지자의 공백을 채울 의무가 있다”며 “아들 뜻을 이어받아 문 전 대표를 성심으로 지지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수많은 조문객이 다녀갔지만 문 전 대표만큼 진정한 애도를 표한 분이 없었다”며 “문 전 대표는 사람이 느끼는 고통의 깊이를 아는 분”이라고 했다. 이에 문 전 대표는 “이런 분들을 보면서 국가가 국민 안전 만큼은 책임져야겠다고 새삼 다짐한다”며 “공동체를 위해 한목숨 바친 분들은 국방을 위해 목숨을 바친 군인, 독재권력에 맞서 민주화운동을 하다 목숨을 바친 민주 유공자, 항일 독립운동에 목숨을 바친 애국선열처럼 국가가 제대로 예우하고 기려야 한다”고 말했다. 문 전 대표는 “이런 의사자들을 국민이 함께 기리는 ‘의사자의 날’ 지정도 검토해볼 만하다”며 “반드시 정권 교체해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어내겠다”고 했다. 특히 “안전은 국민의 기본권 중 기본권으로 개헌하면 헌법에 명시하겠다”며 “안전에 대한 국가의 무능·무책임을 이제 끝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 전 대표 측은 “방송사 성우시험 준비를 하던 고인이 평소 문 전 대표를 굉장히 좋아했다는 얘기를 듣고 문 전 대표가 그 가족을 찾아가 위로하기도 했는데 최근 자원봉사를 통해서라도 문 전 대표를 돕고 싶다는 의사를 밝혀왔다”고 전했다. 안 씨는 또 고인이 사망 직전 사놓고 한 번도 신지 않았다는 운동화를 문 전 대표에게 전달했다. 안 씨의 부인은 “꼭 당선되어 우리 아들처럼 국민을 위해 발로 뛰는 대통령이 되어달라”고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말빛 발견] ‘간추리다’의 발견 그리고 확장/이경우 어문팀장

    1950년대 초 피란지였던 대구의 한 출판사. 중학생용 학습참고서를 만들고 있었다. 각 과목에 붙을 제목을 놓고 고심하다 사내 공모를 하게 됐다. ‘최신’, ‘표준’, ‘모범’ 같은 한자어 단어들이 대부분이었다. 그중에 ‘간추린’이란 낯선 단어가 하나 끼여 있었다. 지금은 널리 쓰이지만, 당시엔 생소한 말이었다. 뜻도 잘 모르는 단어 앞에서 출판사 직원들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추천된 말들을 놓고 투표가 이뤄졌다. 의외의 결과가 나왔다. ‘간추린’이 압도적인 표차로 채택된 것이다. 이 출판사의 ‘간추린’ 시리즈는 이후 한껏 기세를 올리며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출판사의 기반을 굳게 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거래처에서는 ‘간추리다’가 무슨 뜻이냐고 물어 왔다. 당시 ‘간추리다’는 국어사전에도 올라 있지 않았다. 경상도 일부 지역에서만 쓰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인문학 서적 출판에 평생을 바친 일지사의 고 김성재 대표가 그때 이 출판사에서 일하고 있었다. 김 대표는 얼마 후 출판사에서 나와 일지사를 설립하기 전 서울신문 교열부 기자로 일하기도 했다. 그는 출판과 우리말을 다듬는 일이 좋다고 생전에 밝히기도 했다. 그는 출판사를 차렸지만, 처음에는 일거리가 없어 다른 출판사의 국어사전 교열 일을 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그는 국어사전에 없던 ‘간추리다’를 집어넣는다. ‘간추리다’가 되살아나 더 널리 쓰이게 된 계기가 된 것이다. 김 대표는 이 국어사전이 1958년 출간됐다고 했다. 이경우 어문팀장 wlee@seoul.co.kr
  • [정준모의 영화속 그림 이야기] 인류의 문화적 재화, 전쟁에서 구해라

    [정준모의 영화속 그림 이야기] 인류의 문화적 재화, 전쟁에서 구해라

    전쟁은 끝나도 끝난 것이 아닌 모양이다. 1945년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도 배상과 약탈 문화재 반환 문제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우리나라도 일본군 위안부 문제나 약탈당한 문화재와 예술품 반환 문제도 그렇고. 최근 법원 판결로 난감한 지경에 빠진 충남 서산 부석사 불상도 고려시대에 빼앗기고 그것을 다시 훔치는 방식으로 되찾아와 소유권을 두고 일본과 분쟁이 불가피한 상황이다.전후 독일로부터 약탈 문화재를 반환받은 프랑스는 여전히 자신들이 약탈해 온 아프리카나 아시아의 문화재, 일테면 한국의 직지나 외규장각 의궤는 반환하지 않고 있다. 이는 미국도 독일도 영국도 일본도 모두 자유롭지 못하다.2차 세계대전 당시 히틀러(1889~1945)는 유럽의 문화재와 미술품들을 모아 린츠에 총통박물관을 세울 욕심으로 닥치는 대로 새로운 도시를 점령할 때마다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약탈에 열을 올렸다. 또 실험적이고 표현주의적인 그림을 그리는 112명의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이들의 그림을 퇴폐미술이라 낙인 찍어 압수해 팔아서 전쟁 비용으로 충당하거나 불에 태우기도 했다. 전쟁은 인명을 살상하는 것뿐만 아니라 인류의 역사, 삶의 흔적인 문화재를 파괴한다는 점에서 폭력적이다. 하지만 이런 비인간적이며 처참한 전쟁 중에도 인류의 보편적 가치이자 삶의 기록인 문화재, 미술품을 지키려는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바로 1943년 출범한 모뉴먼츠 맨(MFAA)이 그것이다. 문화예술계 전문가로 구성된 13개국에서 모인 350~400명의 인원은 총탄이 빗발치는 전장에서 문화재와 미술품을 보호하기 위해 군대와 협력하는 한편 그 스스로가 전장에 나가 문화재들을 지키고 회수하는 일에 나섰다. 이 부대는 유럽에서 전쟁이 한창이던 1941년 겨울 하버드대 포그미술관의 폴 색스 부관장이 “박물관과 미술관은 평화 시에도 지역사회에서 매우 중요한 존재이다. 또한 전쟁 시에는 그 존재가 두 배로 중요해진다. 전쟁이 일어나면 하찮고 사소한 것은 떨어져 나가고 궁극적이며 지속적인 가치만 남게 되기 때문이다”라고 주장하며 인류의 예술사, 미술의 역사를 지켜 나갈 ‘특수 기술자’들을 선발해 군에 보내자는 의견을 제시하면서 출범했다. 이들은 약 500만점의 약탈 예술품을 되찾아 전후에 되돌려 주었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벨기에 브루게의 노트르담 성당에 있는 미켈란젤로작 ‘성모자상’과 겐트의 성바보성당의 반에이크 형제가 그린 ‘겐트 제단화’ 등이 있다. 히틀러는 약탈해 온 문화재들을 1000여곳의 장소에 숨겨 놓았었다. 그리고 패전이 임박하면서 소위 네로 명령을 내려 모든 것을 없애버리라는 명령을 내렸다.영화 ‘모뉴먼츠 맨: 세기의 작전’(2014)은 바로 이런 위기상황에서 MFAA의 활약상 중 특히 알타우제 광산과 노이슈반슈타인성에서 이들 작품을 찾아 탈출(?)시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영화는 멋지고 바른 말 잘하는 개념배우 조지 클루니가 감독과 제작, 각본에 주연까지 맡은 영화다. 실존하는 모뉴먼츠 맨 8명이 등장하는 영화의 출연진은 실로 호화판이다. 조지 클루니는 미술사학자인 지휘자로 분해 전직 미술관장인 그레인저(맷 데이먼), 건축가 캠벨(빌 머리), 화상인 클레르몽(장 뒤자르댕)을 이끈다. 여기에 히틀러가 약탈한 예술품들이 숨겨진 장소에 대한 결정적 열쇠를 쥐고 있는 클레어 시몬 역을 ‘엘레강스의 교과서’ 케이트 블란쳇이 맡아 그 매력을 최대한 발산한다. 또한 조각가 윌터 가필드로 존 굿맨이 등장하고, 예술품 감정가 프레스톤 셰비츠역에 밥 발라반, 예술 애호가인 도널드 제프리스 중위에 휴 보네빌 등 쟁쟁한 스타들이 출연해 영화의 재미를 더한다. 영화는 로버트 M 에드셀(1956~ )이 쓴 같은 이름의 논픽션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영화에서 구출되는 조각 ‘성모자상’이 이탈리아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작품이라면 ‘겐트의 제단화’는 북유럽 르네상스를 대표한다. 인류의 고귀한 문화적 자산인 르네상스 시대의 걸작들이 전쟁으로 파손됐을 것을 생각하면 아찔하다. 영화의 처음과 끝을 장식하는 이 그림은 물감에 최초로 기름을 타 사용한 플랑드르의 화가 반에이크 형제의 대표작인 ‘겐트의 제단화’다. 현재 성바보성당에 걸려 있는 작품으로 구원의 신비라는 주제를 다룬 15세기 플랑드르 회화의 대표작이다. 제단화는 예배 때는 열어 놓고 평소에는 닫아 두는 접이식 그림으로 2단으로 구성돼 있다. 특히 그림의 일부인 ‘어린 양에 대한 경배’ 속 인물 하나하나가 매우 세밀하게 묘사돼 있고 화면의 중심에 양이 배치돼 글을 모르는 당시 사람들에게 성경의 교훈을 전달하고 있다. ‘성모자상’은 미켈란젤로의 작품으로 그의 생전에 유일하게 이탈리아 밖으로 나온 작품으로도 유명하다. 당시 브루게의 부유한 상인이 약 4000플로핀에 구입해서 1506년 교회에 기증한 작품으로, 마리아가 예수를 붙잡거나 그를 보지 않고 아래를 응시하는 도상이다. 이는 제단용으로 제작된 것임을 암시한다. 마돈나와 예수는 그의 피에타상과 매우 유사하다. 또한 옷 주름은 매우 자연스럽게 흐르고 있어 성모의 인자함과 그윽한 사랑을 느끼게 한다. 이 성모자상은 나폴레옹과 나치에 약탈당했으나 모뉴먼츠 맨들의 활약으로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이후 1972년 작품을 해치려는 시도가 있은 뒤 방탄유리에 싸여 약 4.5m 밖에서만 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 외에도 이들이 구해낸 예술품 중에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담비를 안고 있는 여인’, 렘브란트의 ‘자화상’, 베르메르의 ‘천문학자’ 등 수없이 많다. 이렇게 전쟁 중에 문화유산, 예술품을 보존한 모뉴먼츠 맨들은 한국에도 있었다. 6·25전쟁 당시 팔만대장경이 보관돼 있던 해인사를 폭격하라는 명령을 거부한 김영환이나 덕수궁에서 인민군들이 빠져나오길 기다렸다가 공격을 해서 덕수궁을 지킨 제임스 헤밀턴 딜 등이 그들이다. 최근 영국에서 시리아 등지의 문화재가 전쟁의 혼란 속에서 파괴되고 반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 다시 모뉴먼츠 맨 부대가 창설됐다고 한다. 전쟁도 인간이 벌이고, 그 희생을 줄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것도 인간이라는 점에서 인간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동물이다.
  • 오영수 문학, 클래식 선율 타고 부활

    오영수 문학, 클래식 선율 타고 부활

    11일 울산 문학관서 시 낭송도 소설 ‘아찌야’ 라디오극으로 변신울산 오영수문학관이 울산 출신 소설가 난계 오영수(1909~1979) 선생 탄생 108주년을 맞아 기념행사를 처음 연다. 오영수문학관은 오는 11일 문학관 난계홀과 문화사랑방에서 ‘포성이 멎은 자리, 꽃들은 피고 지고’를 주제로 클래식 연주와 시 낭송이 어우러진 기념행사를 개최한다고 8일 발혔다. 행사는 울주필하모닉오케스트라와 울산재능시낭송협회, 난계사랑문학회의 재능기부로 꾸민다. 울주필하모닉오케스트라는 김종규의 지휘로 파헬벨의 ‘캐논변주곡’에 이어 비발디 ‘사계’ 가운데 겨울 2, 3악장을 연주한다. 그사이 난계사랑문학회 이수정 총무가 오영수 선생의 소설 ‘아찌야’를 라디오극으로 옮긴다. 또 울산재능시낭송협회 우진숙 회장이 유치환 시인의 시 ‘출생기’를 낭송하고 조윤숙 직전 회장이 1948년 염주용 시인이 부산에서 발행한 문예신문 신춘문예 당선작인 오영수 선생의 시 ‘호마’(胡馬)를 낭송한다. 울주필 단원들이 차이콥스키의 ‘현을 위한 세레나데’를 들려주는 사이 재능시낭송협회 회원들이 유치환 선생의 시 ‘깃발’, ‘바위’, ‘세월’, ‘뜨거운 노래는 땅에 묻는다’ 등을 낭송한다. 기념행사는 생전에 ‘내게 종교나 신이 있다면 고향과 자연일 것’이라고 한 오영수 선생이 즐겨 부른 고복수의 ‘타향살이’를 오케스트라 선율로 함께 감상하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이연옥 오영수문학관 관장은 “11일은 오영수 선생이 탄생한 지 108주년이 되는 날이며 이틀 뒤인 13일은 유치환 선생 50주기”라며 “조선 청년문학가협회 경남지부 회원으로 함께 활동했을 뿐 아니라 6·25전쟁이 치열하던 때 동부전선을 함께 종군하면서 생사를 함께한 사이이기도 해 두 분의 문학 혼을 기리는 자리를 마련했다”고 말했다. 울산 박정훈 기자 jhp@seoul.co.kr
  • “미인도는 위작” 천경자 친필 공증 남겨

    “미인도는 위작” 천경자 친필 공증 남겨

    고(故) 천경자 화백이 위작 논란이 인 작품 ‘미인도’는 가짜라고 생전에 밝힌 자필 공증 확인서의 사본이 유족에 의해 공개됐다.미인도 사건 고소인·공동변호인단이 7일 공개한 확인서 사본에는 천 화백이 “1991년 4월 1일 과천 현대미술관 이동 전람회 담당자로부터 확인한 바 과천 현대미술관 소유의(별첨 1991.4.4자 조선일보 11면에 표시된) ‘미인도’는 천경자 작(作)으로 되어 있으나 이 그림은 위작이고 가짜임을 분명히 밝혀 둔다”고 직접 쓴 글귀가 적혀 있다. 그 밑에는 1991년 12월 26일이라는 공증 날짜와 천 화백의 자택 주소, 서명이 있다. 변호인단은 “공증 원본은 천 화백이 보관했고, 사본은 제자인 동양화가 이승은씨가 보관하던 것을 천 화백의 둘째 딸 김정희씨가 최근 입수했다”고 밝혔다. 변호인단은 “당시 국립현대미술관과 화랑협회의 거대한 힘에 도저히 항변할 수 없었던 천 화백이 얼마나 비통하고 절망스러웠으면 먼 훗날을 대비해 확인서를 작성하고 공증까지 해 유서처럼 남겨 뒀겠느냐”고 지적했다.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미인도는 위작” 천경자 친필 공증 남겨

    “미인도는 위작” 천경자 친필 공증 남겨

    고(故) 천경자 화백이 위작 논란이 인 작품 ‘미인도’는 가짜라고 생전에 밝힌 자필 공증 확인서의 사본이 유족에 의해 공개됐다.미인도 사건 고소인·공동변호인단이 7일 공개한 확인서 사본에는 천 화백이 “1991년 4월 1일 과천 현대미술관 이동 전람회 담당자로부터 확인한 바 과천 현대미술관 소유의(별첨 1991.4.4자 조선일보 11면에 표시된) ‘미인도’는 천경자 작(作)으로 되어 있으나 이 그림은 위작이고 가짜임을 분명히 밝혀 둔다”고 직접 쓴 글귀가 적혀 있다. 그 밑에는 1991년 12월 26일이라는 공증 날짜와 천 화백의 자택 주소, 서명이 있다. 변호인단은 “공증 원본은 천 화백이 보관했고, 사본은 제자인 동양화가 이승은씨가 보관하던 것을 천 화백의 둘째 딸 김정희씨가 최근 입수했다”고 밝혔다. 변호인단은 “당시 국립현대미술관과 화랑협회의 거대한 힘에 도저히 항변할 수 없었던 천 화백이 얼마나 비통하고 절망스러웠으면 먼 훗날을 대비해 확인서를 작성하고 공증까지 해 유서처럼 남겨 뒀겠느냐”고 지적했다.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희귀 식이장애 겪던 모델, 영양실조로 결국 숨져

    희귀 식이장애 겪던 모델, 영양실조로 결국 숨져

    심각한 식이장애를 겪던 모델이 결국 숨졌다. 많은 이들이 안타까움을 보냈다. 워싱턴포스트 등 현지언론은 미국 위스콘신주의 브룩필드 출신의 모델 리사 브라운은 지난 4일(현지시간)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숨을 거뒀다고 보도했다. 34세를 일기로 숨진 그는 2년 동안 심각한 식이장애질환을 겪어왔다. 건강하게 모델 활동을 하던 시절 178cm에 63kg의 건강한 몸매를 뽐내던 리사는 숨지기 직전 34kg이 됐다. 리사에게 심상치않은 변화가 나타난 것은 28세 때였다. 그전까지는 승마, 서바이벌게임 등 친구들과 야외 활동을 즐겼고 몸매관리에 대해 신경쓸 이유가 전혀 없었다. 모델 활동을 꿈꾸는 이들에게 직업으로서 모델의 장단점에 대해 교육하는 일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몸무게는 50kg 아래로 떨어졌고, 늘상 입어오던 옷이 헐거워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계속해서 복통과 구토를 겪었고, 여러 병원을 전전하며 의사들을 만났음에도 정확한 진단을 받지 못했다. 그동안 주변 사람들이 그에게 보내는 말은 "햄버거와 같은 음식도 먹어야 한다. 네 스스로 기아를 자초하고 있다"고 힐난조의 얘기였다. 보통의 거식증으로 여겼을 뿐이었다. 이에 대해 생전의 리사는 "그것들은 참 곤혹스러운 얘기들이었지만 나는 진실을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를 서서히 아사(餓死)에 이르게 한 병은 상장간막동맥증후군(SMAS)이었다. 십이지장 폐색증상으로서 식후에 팽만감과 구토 증상이 나타나며 점점 몸을 마르게 만드는 병이었다. 리사의 남편 패트릭과 어머니 노이호이저는 리사의 병을 알고난 뒤 SMAS에 대해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노이호이저는 "리사는 자신의 병을 감추지 않고, 친절하면서도 차분하게 자신이 SMAS라는 병을 앓고 있음을 말했다"면서 "결국 사람들은 자신이 선입견을 가진 것에 대해 사과하곤 했다"고 딸의 지난 삶을 돌이켰다.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 히틀러가 마지막까지 쓴 ‘죽음의 전화기’ 경매

    히틀러가 마지막까지 쓴 ‘죽음의 전화기’ 경매

    인류 역사상 가장 파괴적이고 죽음을 담은 물건 하나가 경매에 나온다. 지난 1일(현지시간) 미국 CNN은 세계 2차대전 때 사용된 적색 전화기 한 대가 조만간 경매에 나올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평범한 전화기에 무시무시한 수식어가 붙어있는 이유는 바로 나치의 독재자 아돌프 히틀러가 마지막까지 사용한 것이기 때문이다. 전화기에 얽힌 끔찍한 사연은 지난 1945년 4월 30일 독일 베를린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히틀러는 총통의 벙커(Fuhrerbunker)라 불리는 비밀 지하벙커에서 역사적인 총성과 함께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이후 벙커로 소련군이 조사에 들어갔고 당시 현장에서 발견된 것이 바로 이 전화기다. 히틀러의 이름과 나치의 휘장이 새겨진 이 전화기를 통해 히틀러는 수백 만명의 유태인 학살과 각종 전투를 지시했다. 이 전화기가 세상에 나오게 된 사연도 흥미롭다. 종전 후 소련군이 비밀벙커를 조사하던 당시 서방에서는 영국군 준장인 랄프 레이너가 연락책으로 투입됐다. 조사가 끝난 후 레이너 준장은 소련군으로부터 이 전화기를 선물받았고 그는 이 사실을 비밀에 부친 채 개인적으로 보관해 왔다.   이후 레이너 준장은 1977년 사망했고 전화기는 그의 아들인 라눌프가 물려받았다. 라눌프(82)는 "생전의 아버지는 히틀러의 영광과 패배가 담긴 사악한 이 전화기를 보려 하지 않았다"면서 "언젠가는 역사적인 중요한 물건이 될 것이라고도 생각치 않았다"고 밝혔다. 이어 "경매 낙찰자가 이 전화기를 일반에 전시하기 바란다"면서 "결코 잊어서는 안될 역사적인 교훈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경매는 이달 18일~19일 미국 메릴랜드에서 진행되며 예상 낙찰가는 우리 돈으로 6억원에 달할 전망이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히틀러가 마지막 쓴 ‘죽음의 전화기’ 경매 나온다

    히틀러가 마지막 쓴 ‘죽음의 전화기’ 경매 나온다

    인류 역사상 가장 파괴적이고 죽음을 담은 물건 하나가 경매에 나온다. 지난 1일(현지시간) 미국 CNN은 세계 2차대전 때 사용된 적색 전화기 한 대가 조만간 경매에 나올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평범한 전화기에 무시무시한 수식어가 붙어있는 이유는 바로 나치의 독재자 아돌프 히틀러가 마지막까지 사용한 것이기 때문이다. 전화기에 얽힌 끔찍한 사연은 지난 1945년 4월 30일 독일 베를린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히틀러는 총통의 벙커(Fuhrerbunker)라 불리는 비밀 지하벙커에서 역사적인 총성과 함께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이후 벙커로 소련군이 조사에 들어갔고 당시 현장에서 발견된 것이 바로 이 전화기다. 히틀러의 이름과 나치의 휘장이 새겨진 이 전화기를 통해 히틀러는 수백 만명의 유태인 학살과 각종 전투를 지시했다. 이 전화기가 세상에 나오게 된 사연도 흥미롭다. 종전 후 소련군이 비밀벙커를 조사하던 당시 서방에서는 영국군 준장인 랄프 레이너가 연락책으로 투입됐다. 조사가 끝난 후 레이너 준장은 소련군으로부터 이 전화기를 선물받았고 그는 이 사실을 비밀에 부친 채 개인적으로 보관해 왔다.   이후 레이너 준장은 1977년 사망했고 전화기는 그의 아들인 라눌프가 물려받았다. 라눌프(82)는 "생전의 아버지는 히틀러의 영광과 패배가 담긴 사악한 이 전화기를 보려 하지 않았다"면서 "언젠가는 역사적인 중요한 물건이 될 것이라고도 생각치 않았다"고 밝혔다. 이어 "경매 낙찰자가 이 전화기를 일반에 전시하기 바란다"면서 "결코 잊어서는 안될 역사적인 교훈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경매는 이달 18일~19일 미국 메릴랜드에서 진행되며 예상 낙찰가는 우리 돈으로 6억원에 달할 전망이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문학과 삶이 일치했던 시인, 그를 잊지 못합니다

    문학과 삶이 일치했던 시인, 그를 잊지 못합니다

    “선생님은 시에 관해서만큼은 엄격하셨지만 제자들이 각자 자기 길을 갈 수 있게 길을 놓아주셨어요. 모더니스트 시인이지만 장석남, 함민복 같은 서정 시인들을 길러내신 것도 엄격함 안에 자유로움과 자애로움이 있었기 때문이죠.”(시인 박형준) “대학 시절 학교 신문사 문학상을 받게 됐는데 선생님께서 당선작을 읽으시고 ‘인물들이 땅에 닿아 있지 않다’는 쓰디쓴 코멘트를 해주셨어요. 그 말씀을 이해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지만 지금은 자연스레 와닿아요. 늘 그 말을 새기며 소설을 씁니다.”(소설가 하성란)후배, 제자 문인들에게 문학과 삶, 말과 행동이 일치했던 스승으로 기억되는 오규원(1941~2007) 시인. 2일은 그가 세상을 뜬 지 꼭 10년이 되는 날이다. “끝없이 투명해지고자 하는 어떤 욕망으로 여기까지 왔다”는 생전의 말처럼 그는 사물을 극도의 정밀성과 객관성으로 투영하는 ‘날이미지 시’를 주창한 작품과 이론으로 현대시 역사에 또렷한 인장을 남겼다.그의 10주기를 맞아 동료 문인들과 서울예대 문예창작과 제자들이 함께 모여 전시, 시 낭독회, 추모시집집 출간, 심포지엄 등 다양한 추모 행사를 연다. 기일인 2일에는 강화도 전등사에서 시목 참배(오후 1시 30~5시 30분), 오규원 시 낭독회(오후 6시 30~8시 30분)가 열린다. 서울 종로구 청운동 류가헌에서는 시인이 직접 찍은 사진과 에세이, 영상, 육필 시, 유품 등을 한데 모은 특별전 ‘봄은 자유다 마음대로 뛰어라’가 오는 26일까지 이어진다. 전시에서는 시인이 찍은 사진들이 세상에 처음 공개된다. 1000여컷의 작품 가운데 엄선한 20점의 사진들은 일견 단순한 풍경 사진 같지만 그만의 쨍한 예술적 극점을 체험할 수 있다. 그가 월간 책과 인생에 1994년 2월호부터 1995년 9월호까지 연재했던 미출간 포토에세이 19점도 내걸려 ‘지독한 언어의 탐구자’로 불렸던 시인의 정련된 사유를 함께 만날 수 있다.이 밖에 그가 병상에 누워 새를 바라보던 망원경, 마지막까지 신었던 신발, 늘 떠날 준비가 되어 있었던 가방, 전시된 사진을 찍었던 카메라, 육필 시, 28종의 저서 등 손때 묻은 유품들도 전시장 한편을 지키고 있다. 전시 기간 매주 토·일요일 오후 1~5시에는 황인숙·조용미·이원·서정학·최하연 시인, 하성란·김미월·윤성희 소설가 등 시인의 제자들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이수명, 김행숙, 김언, 오은, 최규승, 백은선, 김종연 등 48명의 후배 시인들은 10주기 기념 한정판 시집 ‘노점의 빈 의자를 시라고 하면 안 되나’로 고인의 시 세계를 되짚어 본다. 오규원의 시 ‘버스정거장에서’, ‘대방동 조흥은행과 주택은행 사이’, ‘토마토와 나이프’, ‘한 잎의 여자’ 가운데 한 편을 골라 제목, 시어, 소재 등을 다양하게 변주한다.1971년 출간된 시인의 첫 시집 ‘분명한 사건’은 문학과지성사 R시리즈로 다시 복간돼 나온다. 오 시인은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이청준 ‘우리들의 천국’의 책 디자인을 만들었을 뿐 아니라 현재 문지 시인선 표지의 기틀을 잡은 뛰어난 편집자이기도 했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슈퍼밴드 ´아시아´ 베이시스트 존 웨튼 저세상으로

    슈퍼밴드 ´아시아´ 베이시스트 존 웨튼 저세상으로

     영국 프로그레시브록 그룹 ´킹크림슨´과 슈퍼밴드 ´아시아´의 멤버였던 존 웨튼이 67세라는 비교적 이른 나이에 저세상으로 떠났다.   아시아 시절 동료이자 ´에머슨 레이크 앤드 파머´의 일원이었던 칼 파머(66)는 짤막한 성명을 내고 대장암을 앓아온 고인이 31일 아침(이하 현지시간) 잠을 자다 영면했다고 전했다. 파머는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통해 “좋은 친구이자 음악 동료인 존 웨튼이 떠남으로써 세계는 또 하나의 음악 거인을 잃었다”고 애도했다. 고인의 유족으로는 미망인 리사와 아들 딜런이 있다.   웨튼은 생전에 ‘킹 크림슨’과 ´유라이어 힙´, ´록시 뮤직´에서 베이스를 연주하며 노래를 부르기도 했으며 나중에 슈퍼그룹 ´아시아´ 결성을 주도했다. 고인과 함께 1982년 아시아의 데뷔 히트작 ´히트 오브 더 모멘트´ 와 ´온리 타임 윌 텔´ 등을 작곡하고 연주했던 파머는 고인이“신사다운 사람”이었다고 돌아봤다. 이어 “뮤지션으로서 그는 용감하고도 혁신적이었다. 목소리 하나만으로 ´아시아´의 음악을 전세계 차트 맨 위에 올려놓았다”고 덧붙였다. ´아시아´는 파머와 웨튼 외에 ´예스´ 출신 스티브 하우와 ´버글스´의 제프리 다운스 등 당대를 대표하는 록그룹 멤버들이 의기투합해 큰 화제와 인기를 끌었다.   파머는 또 “고인이 알코올중독과 싸워 이긴 것은 같은 싸움을 벌이는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줬고 그를 알고 함께 일해온 이들에게는 그가 암과 벌인 용감한 투쟁은 더 많은 영감을 안겼다“며 최근 고인의 건강이 아주 안 좋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빨리 떠날 줄은 몰라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고 털어놓았다. 지난해 3월 키스 에머슨이, 지난달 그렉 레이크가 떠나면서 파머는 외로웠던 차에 ´아시아´에서 호흡했던 웨튼마저 잃었다.    고인은 최근에 록그룹 ´저니´의 서포트 밴드로 미국 투어를 계획하다 화학요법 때문에 빠지게 됐고, 그 전에도 여러 투어에 참여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가 철회했다. 파머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듣지 못했다. 존은 긍정적인 면을 유지하려고 노력했고 더 나아지게 하려고 애쓰길 원했다“고 안타까워했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열린세상] ‘시간여행’조차 아무 소용없는 인간들/이대현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겸임교수

    [열린세상] ‘시간여행’조차 아무 소용없는 인간들/이대현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겸임교수

    누구도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다. 그것이 가능하다면 삶을 바꾸고 역사를 새롭게 쓸 수도 있으니 무슨 걱정과 후회가 있으랴. 그러나 누구도 그렇게 할 수는 없다. 해서도 안 된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한 번뿐이다. 과거는 과거의 현재이고, 현재는 미래의 과거이며, 삶은 그 과거와 현재로 이어지는 시간 위에서의 순간순간 선택의 결과다. 시간여행은 그 선택한 것과 선택하지 않은 것에 대한 후회와 미련 때문에 가지는 욕망과 상상이다. ‘당신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은 현실이 된다’는 피카소의 말에서 시간여행만은 그 ‘모든 것’에 포함되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과 영화는 이따금 우리를 시간여행에 초대한다. 프랑스의 기욤 뮈소도 소설 ‘당신, 거기 있어 줄래요’에서 “누구나 한 번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인생을 어떻게 바꿀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 보았을 것”이라면서 애틋하고 간절한 여행 보따리를 푼다. 그는 우리에게 묻는다. 인생을 다시 쓸 수 있다면 어떤 실수를 바로잡고 싶은지, 인생에서 어떤 고통과 어떤 회한, 어떤 후회를 지워 버리고 싶은지, 진정 무엇으로 존재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할 것인지를. 그 여행이 자연의 섭리를 거슬러도 상관없다. 시간을 마구 되돌리고, 과거를 멋대로 바꾸고, 그 결과로 세상을 뒤죽박죽으로 만들어도 좋다. 어차피 모든 것이 허구이고 상상에 불과하니까. 그 여행 수단이 그럴듯한 과학이든, 주술이든 중요하지 않다. 여행의 거리나 시간, 횟수도 자유다. 영화 ‘어바웃 타임’의 주인공 팀(도널 글리슨)은 어두운 곳에서 눈을 감고 주먹만 쥐면 유전적 초능력으로 몇 번이고 돌아가고 싶은 시간으로 이동한다. 시간과 인연의 일본 감독인 신카이 마코토의 감성 애니메이션 ‘너의, 이름은’의 소년 다키와 소녀 미쓰하는 꿈속에서 서로 몸을 뒤바꾸어 3년의 시간을 오간다. ‘당신, 거기 있어 줄래요’의 엘리엇(한국영화에서는 한수현)을 아홉 번이나 30년 전으로 돌아가게 만드는 것은 캄보디아 노인이 준 특별한 성분이 없는 알약이다. 이런 ‘기적’으로 과거를 다시 살고, 현재와는 다른 선택을 하고, 그것으로 미래(현재)를 바꾼다고 인생에서 후회가 없어질까. 지금보다 행복한 삶과 세상을 만들 수 있을까. “그렇다”고 말해 주는 소설과 영화도 있지만, 누구도 자신할 수 없다. 아무도 현실에서 그렇게 해 보지 못했으니 알 수도 없다. 분명한 것은 아무리 새로운 선택과 시간이라도 거기에 후회와 미련은 남을 것이다. 누구도 두 개의 시간과 인생을 동시에 가질 수는 없기 때문에. ‘어바웃 타임’의 팀이 수없이 반복해도 끝내 한 여자의 마음을 얻지 못하는 것처럼 아무리 시간을 돌려 반복해도 안 되는 일도 있기 때문에. 그래서 설령 신이 허락한다 해도 과거로 돌아가 다시 살지 않고, 간다 해도 다른 인생을 선택하지 않겠다는 사람들도 있다. 소설가 박경리와 박완서씨도 생전에 “다시 젊어지고 싶지 않다”고 했다. 모진 세월 다시 만나고 싶지 않고, 한번 본 것 두번 보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어떻게 흘러가든 삶은 한 번으로 끝나야 한다고 생각했는지 모른다. 지금의 ‘나’는 내가 선택한 시간이 쌓인 것이다. 이를 부정하고 버리고 것은 자신의 존재와 의미를 지우는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소설과 영화들도 늘 시간여행의 선물로 ‘행복한 다른 인생’이란 달콤한 환상만 주지 않는다. 이미 지난 삶을 되돌리거나 바꾸려 하지 말고, 이 순간부터라도 미래에 과거가 될 지금의 자신에게 최선을 다하고, 소중한 것을 놓치지 말라고 충고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또 시간여행을 해야 하니까. 누구도 인생에서 최고의 선택을 알 수 없다. 신은 우리에게 그런 능력은 주지 않았다. 그래서 인간은 살면서 매 순간 조금이라도 더 소중하고 행복한 선택을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뿐이다. 누군가를 위해 최선을 다한 행복한 순간에 대한 기억 하나쯤만 갖고 있다면 아름다운 인생이다. 인생에서 후회는 최고가 아니라, 최선의 선택을 다하지 못한 데서 온다. 그런데 지금 대한민국에는 최선은 고사하고 최악의 선택을 해 놓고도 후회조차 않는 인간들로 넘쳐나고 있으니. 그들에게는 ‘시간여행’조차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이다.
  • 아내 130명, 자녀 203명 둔 90대 男 근황

    아내 130명, 자녀 203명 둔 90대 男 근황

    무려 100명이 넘는 여성들과 결혼해 화제를 모았던 나이지리아 남성의 근황이 전해졌다. 영국 BBC 등 해외언론의 30일자 보도에 따르면, 나이지리아에 나이저 주에 살던 모하메드 벨로 아부바카르가 지난 28일(현지시간) 9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무슬림인 이 남성은 생전 130명에 달하는 여성과 결혼했으며, 이 아내들과의 사이에서 203명의 자녀를 낳았다. 심지어 사망하는 당시에도 그와 결혼해 임신 중인 아내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가 화제의 인물로 떠오른 것은 지난 2008년이었다. 당시 아부바카르에게는 86명의 아내가 있었는데, 이슬람 율법에 의해 82명의 아내와 이혼하라는 요구를 받았다. 이슬람에서는 한 남성이 최대 4명의 아내까지만 허용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부바카르는 “내가 가진 힘은 모두 알라신으로부터 받은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86명의 아내 모두를 통제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결혼생활을 이어왔고, 그로부터 9년 동안 40명이 넘는 아내를 또 맞이했다. 20년 여년 전, 10대 초반의 나이에 어머니의 손에 끌려 그와 결혼하게 된 아내 중 한 명은 “당시 나는 어머니에게 ‘나이 든 남자와 결혼할 수는 없다’고 말했지만 어머니와 그의 뜻을 거역할 수는 없었다”면서 “그 결혼은 신의 명령이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그가 이슬람 경전의 뜻을 어기고 지나치게 많은 아내를 둔 탓에 논란이 지속될 때에도, 아내들은 한결같이 “그는 매우 좋은 남편이자 좋은 아버지”라고 두둔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부바카르는 생전 특별한 직업을 가지고 있지 않았으나 수십 명에 달하는 아내와 200명이 넘는 자녀들을 건사하는데에 큰 어려움이 없었다. BBC는 “일을 하지 않는 그가 어떻게 그 큰 가족을 이끄는지는 여전히 미스터리”라면서 “인터뷰 당시 그는 ‘모든 재물은 신으로부터 온다’고만 밝혔다”고 전했다. 한편 아부바카르는 평소 앓던 지병으로 사망했다고 알려졌지만 정확한 병명은 공개되지 않았다. 일부 아내들은 그가 자신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더 많은 여성들과 결혼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무형문화재 명장 4명 기념우표 발행

    무형문화재 명장 4명 기념우표 발행

    우정사업본부는 생전에 한국 문화유산의 명맥을 잇는 데 기여했던 국가무형문화재 기능 보유자 4명의 기념우표 4종 총 56만장을 25일 발행한다. 고 김봉룡 나전장(匠), 고 김점순 곡성 돌실나이 보유자, 고 이치호 단청장, 고 천상원 소목장이 우표 도안으로 되살아났다. 우정사업본부 제공
  • 일왕 ‘생전 퇴위 로드맵’ 23일 나온다

    일왕 ‘생전 퇴위 로드맵’ 23일 나온다

    새해부터 일본이 새 국왕을 맞을 준비로 들썩거리고 있다. 지난해 8월 스스로 “물러나겠다”고 밝힌 아키히토(83) 일왕의 ‘생전 퇴위’ 문제를 처리하기 위한 정치권과 일본 정부 안팎의 움직임이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중의원과 참의원 등 상·하 양원의 국회의장단은 지난 19일 “여야 합의를 통해 20일 개원해 오는 6월 30일까지 열리는 이번 정기국회 회기 안에 이에 대한 법제화를 목표로 하겠다”는 입장을 내걸었다. 오시마 다다모리 중의원 의장 등 국회의장단은 이날 자민당과 제1야당 민진당 등 각당 및 교섭단체 대표들을 만나 퇴위 관련 입장을 듣는 등 중지를 모았다. ●아베정부 “특별법 만들어 퇴위 수용” 일단 찬성 오시마 의장은 “국회가 자체적으로 이 문제의 총의를 찾기 위해 나섰다”면서 “여야 합의를 통해 해법을 마련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왕위 계승과 왕족 신분 등을 규정한 법률인 ‘황실전범’(皇室典範)에 따르면 일왕은 종신제다. 왕위 계승은 일왕이 사망했을 경우에만 가능하다. 일왕의 생전 양위를 규정한 절차가 따로 없어 왕이 살아 있는 상황에서 자리에서 물러나는 ‘생전 퇴위’ 및 승계를 위해서는 황실전범을 고치거나 별도 입법이 필요하다. 퇴위에 대한 아베 신조 정부의 처리 방안은 가닥이 잡혀 있다. “생전 퇴위를 받아들이고, 특별법을 만들어 아키히토 일왕에 한해서만 퇴위를 인정한다”는 것이다. 생전 퇴위를 상례화하는 황실전범의 개정이 아니라 이번만으로 한정시킨 특별법을 염두에 뒀다. 그러나 아베 정부 주도로 아키히토의 생전 퇴위 문제를 추진할 경우 정치권의 왕실 개입 논란 등 모양새도 좋지 않고, 절차 및 방법 등에 이견이 있는 야당 및 일부 국민들의 반발과 함께 정치 쟁점화 가능성도 높다. 아베 정부는 이 때문에 국회 지도부의 등을 떠밀어 “여야 합의를 통한 해법 마련”이란 수순에 들어가도록 하면서 여론을 살피고 있다. 국회의장단은 지난해 8월 퇴위 문제가 불거진 뒤 처음으로 지난 16일 의장단 회의를 열고 향후 처리 방안을 논의하는 등 국회에서 이 문제에 대한 정식 논의의 빗장을 열었다. 이런 가운데 오는 23일 자문회의인 유식자회의의 ‘논점 정리’ 발표가 중요한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정부가 지난해 10월 출범시킨 전문가 모임인 유식자회의는 23일 9차 회의에서 논점 정리 형식으로 퇴위 여부 및 형식, 방법 등 여러 안을 정리해 내놓는다. 여러 안들의 장단점과 유식자회의 과정에서 수렴된 입장들을 정리하고 비교해 공개하는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정치권과 정부, 국민들이 앞으로 보다 광범위한 여론 수렴과 논의를 진행해 합의를 만들어 내자는 뜻이다. 주요 논점은 생전 퇴위를 받아들일 것인지 여부, 퇴위를 받아들인다면 어떤 형식으로 퇴위를 인정할 것인지 등이다. ●日 국민들 “83세 고령에 격무”… 퇴위에 동감 여야 각 정당 등 정치권과 아베 신조 정부는 유식자회의가 내놓는 입장을 바탕으로 논의를 가속화해 나가기로 했다. 중·참 양원 의장단은 “유식자회의 논점을 바탕으로 다음달 여야 각 교섭 단체로부터 각각의 정리된 입장과 의견을 듣고, 국회의 중지를 모아 정부 측에 입장을 전달하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8월 아키히토 일왕이 ‘생전 퇴위’ 문제를 대국민 담화란 형식을 통해 전격 제기한 뒤, 전문가 논의 등 물밑에서 조용하게 진행돼 오던 퇴위 문제가 본격적으로 공론화되면서 속도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아키히토 일왕의 생전 퇴위 요청에 대해 국민들은 대부분 동정적이다. 격무를 처리하기에는 너무 고령이라는 데에 동감했다. 지방 시찰 등 각종 국내외 행사 참석, 외교사절 접견 등 만 83살로서는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버겁다는 지적이다. 퇴위 방법과 관련, 민진당 등은 황실전범을 고쳐 이를 상례화하자는 입장이고, 아베 총리 등 집권 자민당은 헌법 저촉과 왕실의 안정성을 이유로 이번에 한해서만 특례법을 제정하자는 자세다. ●‘일왕-총리’ 불화설 휩싸여… 정쟁화 우려도 아베 정부는 퇴위 문제를 다루는 데 조심스럽다. 아키히토 일왕과 아베 총리의 불화설이 영향을 주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평화헌법을 고쳐 전쟁할 수 있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아베의 행보에 평화주의적인 신념이 강한 아키히토 일왕은 기회 있을 때마다 전쟁의 비참함과 국민들의 고통을 지적하면서 제동을 걸어 왔다. “아키히토 일왕이 아베에게는 눈엣가시”란 말까지 나돌 정도였다. 지난해 8월 8일 아키히토 일왕의 생전 퇴위 의향을 담은 대국민 메시지도 아베에게는 충격이었다. 참의원 선거에서 막 대승을 거두고, 헌법 개정 절차를 본격화하려던 아베에게 생전 퇴위란 사회적 관심이 높고, 국민 의견 수렴이 필요한 새 현안을 던져 놓은 셈이었다. “아키히토가 아베에게 일격을 가했다”는 말도 나왔다. 아베 총리는 그 직후 왕실의 비서실격인 궁내청 책임자를 바꿔 버렸다. 일부 보수층은 아베가 밀어붙이는 헌법 개정의 추진력이 자칫 왕위 계승 및 관련법 개정 이슈에 말려들어 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지난해 8월 국민 담화에서 아키히토 일왕은 “상징 일왕의 임무가 끊임없이 안정적으로 이어 가지길 바란다”고 말을 맺었다. 집권 자민당이 일왕의 지위를 ‘국가상징’에서 ‘국가원수’로 격상시키려는 시도를 견제했다는 지적이다. ●마지막 신년인사 가능성에 올해 10만명 운집 생전에 물러난 일왕은 에도시대 후반기인 1817년 고가쿠(재위 1780∼1817)가 마지막이었다. 200년 만의 생전 퇴위 화두를 던져 정국의 쟁점으로 만든 셈이다. 아베 총리가 지난 4일 기자회견에서 “매우 중요한 과제다. 결코 정쟁의 도구가 돼서는 안 된다”면서 “조용한 환경에서 깊게 논의해야 한다”고 조심스러워한 것도 이런 배경이 있다. 아키히토 일왕은 지난 2일 도쿄 왕궁 베란다에 올라 발표한 신년 인사에서 “올해가 편안하고 풍성한 한 해가 되길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왕궁 베란다에 올라 인사말을 하는 일왕과 그 가족들을 보기 위해 9만 6700여명이 몰려들어 인산인해를 이뤘다. 참석자들은 “올해가 신년 인사를 발표하는 아키히토 왕을 보는 마지막해가 될지 몰라서…”라고 반응했다. 일본의 조용한 상징으로서 옛 제국주의 일본이 불러온 비극의 역사를 국민에게 상기시키는 일을 주저하지 않았던 평화주의자 아키히토 일왕의 28년 재위가 마무리 단계로 접어들면서 퇴위와 계승을 둘러싼 일본 사회와 정국에 보이지 않는 휘오리바람이 일고 있다. 도쿄 이석우 특파원 jun88@seoul.co.kr 차세대 일왕·양위 시기는 장남 나루히토 계승 1순위… 늦어도 2019년엔 ‘새 시대’ 아키히토 일왕이 물러나면 왕위는 계승 1순위인 장남 나루히토(57) 왕세자가 잇는다. 그는 마사코 왕세자비와 딸 아이코(16)를 두고 있지만 아들은 없다. 일본 왕실법은 여성의 계승을 인정하지 않는다. 따라서 나루히토에 이은 계승 순서는 차남 아키시노노미야(후미히토) 왕자, 아키시노노미야 왕자의 아들인 히사히토(11) 순으로 이어진다. 나루히토 왕세자는 아키히토 일왕을 대신해 왕실 외교 업무도 맡아 와 외교 업무 경험이 많고 업무 전반에 밝다. 조용하고 소탈하지만 평화주의에 대한 신념이 강하다. 여러 계기에 소감 발표를 통해 태평양전쟁 반성이나 전쟁의 비참함을 강조해 왔다. 국수 세력들은 나루히토의 부인인 마사코 왕세자비가 우울 증세로 오래 공식 활동을 하지 못하자 이를 빌미로 은근히 나루히토 일가를 헐뜯기도 했다. 아키히토 일왕이 생전 퇴위를 시도한 것도 나루히토에게 안정적으로 왕위를 물려주기 위해서란 지적도 있다. 일왕의 사망과 계승 절차 등이 겹치는 노고를 덜어 주기 위해서란 해석도 있다. 나루히토가 즉위하면 아키시노노미야 왕자는 왕세자로 추대된다. 국수 세력들은 차남 아키시노노미야를 선호하고 있다고 한다. 물러나는 아키히토 일왕의 명칭은 상왕(上皇·上皇天皇)이나 전왕(前天皇) 등이 고려되고 있다. 새해 들어 일본 언론들은 2019년 새해 첫날 새 왕이 즉위하는 방안을 정부에서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다는 보도를 쏟아냈다. 그러나 궁내청의 니시무라 야스히코 차장은 20일 “새해 첫날은 축하 의식 등 왕실에 소중한 의식과 행사가 열리는 중요한 날로 양위 및 즉위에 관한 행사를 설정하기 어렵다”고 반대 입장을 확실히 했다. 일본에서 새 회계연도가 시작되고, 각급 학교 등이 개학하는 4월 1일이 될 가능성도 높다. 교도통신은 지난 18일 일본 정부가 퇴위 시기를 일왕이 85세 생일을 맞는 2018년 12월 23일로 검토하고 있고, 나루히토 왕세자의 즉위는 당일이나 다음날로 고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여하튼 2019년에는 일본에 새로운 왕이 즉위하고, 이에 따른 새로운 연호가 쓰이게 된다. 대정과 쇼화에 이어 아키히토 일왕의 즉위로 1989년부터 쓰여 왔던 헤세이란 연호도 새로운 연호로 바뀌게 된다. 도쿄 이석우 특파원 jun88@seoul.co.kr
  • ‘아이스맨’ 외치, 죽기 전 마지막 식사는 ‘말린 고기’

    ‘아이스맨’ 외치, 죽기 전 마지막 식사는 ‘말린 고기’

    ‘유럽 최초의 피살자’ 외치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먹었던 음식은 육포같은 말린 염소고기로 확인됐다. 최근 이탈리아 볼자노에 위치한 ‘유럽아카데미 미라 및 아이스맨 연구소’(EURAC) 측은 외치의 위 속 내용물을 분석한 결과 베이컨처럼 매우 기름지고 말린 고기인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국내에도 잘 알려진 외치(Ötzi)는 ‘아이스맨’이라는 별칭으로 더 유명하다. 외치는 지난 1991년 9월 알프스 빙하지대에서 온몸이 꽁꽁 언 사체로 발견됐다. 당시 이탈리아 경찰이 수사에 나섰으나 범인은 찾을 수 없었다. 그 이유는 5300여 년 전인 석기시대에 사망한 것으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이에 외치는 학계의 큰 관심을 끌었고 이후 본격적인 연구가 시작됐다. 외치는 150cm 키에 45세 전후 남자로 왼쪽 어깨 부근에 화살을 맞고 피를 많이 흘려 죽은 것으로 추정돼왔다. 그러나 지난 2013년 EURAC 측이 외치의 뇌 조직에서 추출된 단백질과 혈액 세포를 현미경으로 조사한 결과, 외치가 죽기 직전 머리에 타박상을 입어 사망했다는 결론를 내렸다. 외치가 유럽 최초의 피살자가 된 순간.  특히 외치는 학자들에게 ‘과거’를 볼 수 있는 큰 연구자료가 됐다. 뼈와 피부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어 선사시대 인류에 대한 연구 뿐 아니라 유전자 구조, 식생활, 병 등 당시의 모든 정보를 담고있는 타임캡슐과 같았기 때문. 또한 입고있는 의복과 활 등 무기도 함께 발견돼 당시의 문화적인 수준까지 알려주는 자료가 됐다. 이번에 연구결과 추가로 드러난 사실은 외치의 식생활이다. 연구를 이끈 알버트 진크 박사는 "외치가 마지막으로 먹는 음식은 가공된 고기가 아닌 날고기가 말려진 것"이라면서 "그 음식은 이탈리아 남부 티롤의 야생염소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어 "생전 외치는 복통을 앓았으며 치아와 인대 상태가 좋지 못했으나 외관상으로는 괜찮았다"고 덧붙였다. 한편 지난해 10월에도 이탈리아 볼자노에 위치한 산 마우리치오 병원 연구팀이 외치의 음성을 디지털 복원해 관심을 끈 바 있다. 외치 발견 25주년을 맞아 외치 목소리 복원에 나선 연구팀은 성대와 성도(聲道·성대에서 입술 또는 콧구멍에 이르는 통로)의 길이와 구조를 바탕으로 그가 낼 수 있는 근사치의 모음을 구현해냈다. 공개된 음성은 ‘아에이오우’의 모음으로, 외치는 마치 골초가 말하는 듯 걸걸한 남자 목소리를 낸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꽃길과 흙길 사이… 재벌 세대교체 ‘도련님 리스크’

    꽃길과 흙길 사이… 재벌 세대교체 ‘도련님 리스크’

    오너가(家) 3세인 이태성 세아홀딩스 전무는 2013년 아버지인 이운형 세아그룹 회장이 갑작스럽게 별세하면서 경영 전면에 나섰다. 서른다섯 살의 젊은 나이였다. 이 전무는 승계 과정에서 세금을 모두 납부하는 등 철저하게 원칙을 지킨 것으로 알려져 화제가 됐다. 지금까지 1000억원의 상속세를 납부했다. 철강 경기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쉽지 않았을 결정이었다. 이 전무는 지난해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운칠기삼’을 ‘운삼기칠’로 극복해야 한다”면서 “일찍 경영을 맡게 되면서 좀더 조심스럽고 책임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GS그룹 허창수 회장의 장남인 허윤홍 GS건설 전무는 재벌 4세로, 꽃길이 아닌 험지를 다닌다는 말을 듣는다. ‘회장님 아들’이 GS칼텍스에 입사한 뒤 2개월간 주유소에서 근무했을 때만 해도 결국 ‘보여 주기’ 아니냐는 뒷말을 듣곤 했다. 하지만 GS건설이 해외건설 부실로 고난의 행군을 하던 시절 재무와 플랜트 사업부에 투입되면서 경력 쌓기가 아닌 ‘진짜 일을 배운다’는 것이 주변의 평가다. GS건설의 한 직원은 “회식도 같이 하고 소맥도 잘 만든다”면서 “직원들 사이에서 소탈하다는 소리를 듣는다”고 전했다. 대표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재벌 3·4세들이다. 재벌가의 세대교체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재벌 2·3세들이 나이가 들어가면서 이들의 자녀인 3·4세가 경영 일선에 속속 나서고 있다. 이미 알려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정의선 현대차그룹 부회장뿐만이 아니다. 지난해 매 분기 사상 최대 실적을 갈아치운 효성도 올해 3세인 조현준 회장 체제가 시작됐다. 한진그룹도 조원태 대한항공 부사장을 사장으로 승진시키며 3세 경영에 속도를 내고 있다. ‘박카스’로 유명한 동아쏘시오그룹도 지주사인 동아쏘시오홀딩스 회장에 강정석 부회장을 승진시켰다. 재계 관계자는 “2세 경영인들의 나이를 생각했을 때 5~10년 안에 많은 대기업의 오너가 3세로 바뀌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제 이건희(74) 회장과 정몽구(78) 회장, 조석래(81) 전 효성 회장, 강신호(88) 동아쏘시오홀딩스 명예회장 등은 이미 일흔을 훌쩍 넘겼다. 이 때문에 대기업 오너가의 세대교체는 점점 빨라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재벌 3·4세를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만은 않은 게 사실이다. “불안하지 않다면 거짓말이죠. 사실 꽃길만 걸었잖아요. 오너가 어떻게 하느냐에 회사 직원들의 밥줄이 달렸는데, 잘하기를 바라면서도 걱정도 됩니다.”(A그룹사 직원 최모씨) 잊을 만하면 터지는 일탈행위도 큰 이유다. 지난해 말 동국제강 장선익 이사가 술집 난동으로 물의를 일으킨 데 이어 올 초에는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의 셋째 아들인 김동선씨가 폭행 혐의로 검찰에 송치됐다. 직장인 정모(38)씨는 “연말에 직원들이 나가 사회봉사활동을 아무리 열심히 해도 재벌 3세가 사고를 한 번 치면 기업 이미지가 완전히 망가진다”면서 “3세 경영이 불안한 이유”라고 설명했다. 유종일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3세들은 창업주 세대나 2세들에 비해 특권 의식이 강한 것 같다”면서 “창업주 세대가 보여 준 사회적 책임감이나 기업가 정신은 보이지 않으면서 자식들을 요직에 자꾸 꽂아 넣다 보니 사람들의 시선이 좋을 수 없다”고 말했다. 물론 오너가 3·4세 중에는 몸을 낮추고 경영 수업을 착실히 받는 이들도 적지 않다. 하지만 왕좌에 오르기 위해선 ‘열심히 하는 것’ 이상의 결과물을 내야 한다. 창업주인 아버지와 함께 사업 현장을 뛴 2세들은 회장직에 오르기 전 히트작 하나씩은 다 가지고 있었다. 이건희 회장은 1982년 시작된 반도체 사업을 꽃피웠다. 정몽구 회장은 갤로퍼 신화를 통해 현대자동차를 차지할 수 있었다. 아직 초기 단계지만 실적으로 인정받은 대표적인 이들도 있다. 조현준 효성 회장의 동생 조현상 사장도 2006년 세계적 타이어 업체인 미국 굿이어사에 대한 타이어코드 장기 공급과 공장 인수 등을 주도하는 등 해외 진출과 투자 등을 성공적으로 성사시켜 능력을 인정받고 있다.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도 ‘디자인 경영’을 선언하며 세계적 자동차 디자이너 피터 슈라이어를 영입해 적자에 허덕이던 기아차를 흑자로 돌아서게 만들었다. 정 부회장은 “3세들 가운데 소통하려는 자세를 가진 몇 안 되는 인물”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LG 오너가 4세인 구광모 상무도 LG전자 재경부문 금융팀과 홈엔터테인먼트(HE)사업본부, 홈어플라이언스(HA)사업본부 등에서 착실히 실무 경험을 쌓았다. 풍파가 잦은 한화그룹의 큰아들인 김동관 한화큐셀 영업실장(전무)도 8년째 태양광산업 분야에서 능력을 인정받고 있다. 2015년 미국 넥스트에라사와 세계 최대 규모인 1.5GW 규모의 태양광 모듈 계약을 주도하면서 업계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허영인 SPC그룹 회장의 아들들도 나름의 분야에서 착실히 실적을 쌓고 있다는 평가다. 차남인 허희수 부사장은 지난해 ‘쉐이크쉑’을 국내에 성공적으로 도입하며 ‘수제버거’ 흥행에 성공했다. 장남 허진수 부사장은 제과제빵 연구개발(R&D) 분야에 집중하며 해외에 파리바게뜨 매장을 240개나 열었다. 반면 아직까지 이렇다 할 실적을 내지 못해 고민하는 후계자들도 적지 않다. 아직 큰 공을 세웠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하는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은 향후 가시적인 성과를 내는 것이 숙제로 남아 있다. 금호아시아나그룹 후계자로 지목되는 박세창 전략경영실 사장은 그룹이 워크아웃에 들어가게 되는 계기가 됐던 대한통운 인수전에 관여해 책임이 있지 않으냐는 지적도 나온다. 대기업의 한 부장은 “성과가 뚜렷하지 않은데도 2년에 한 번씩 승진해 입사 10년 만에 사장이 되는 것을 보고, 직원들이 느끼는 감정은 ‘불공평하다’는 불만보다는 ‘이러다가 회사가 큰일 나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이 더 크다”면서 “사례는 조금 다르지만 지난해 한진해운 사태도 결국 경영 능력이 검증되지 않은 오너가의 승계 때문에 발생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사실 열심히 뛴다고는 하지만 재벌 3·4세의 경영 승계를 바라보는 시선은 여전히 불안하다. 재벌 신화가 깨진 것도 하나의 원인이다.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시민들이 재벌 중심의 경제가 자신들의 삶에 도움이 안 된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면서 “단지 핏줄만으로 수천명, 수만명의 밥줄이 달린 직장을 이어받아 경영한다는 것이 문제라는 인식이 많아졌다”고 분석했다. 골목 상권까지 파고든 대기업의 지나친 이윤 추구도 서민들의 시선을 바꾸게 한 원인이다. 재계 관계자는 “삼성의 창업주 이병철 회장은 생전에 ‘기업가는 하고 싶지 않은 사업도 국가를 위해 해야 할 때가 있고, 이익이 나는 사업도 결코 해서는 안 될 때가 있다’고 했는데, 요즘은 이런 생각을 하는 기업인들을 찾아 보기 힘든 것 같다”면서 “빵집에 슈퍼마켓, 아이스크림 가게까지 차리는 대기업을 보면서 서민들이 좋은 감정을 갖기는 힘들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재벌 3·4세들이 법과 원칙을 존중하면서 창업주의 경영 철학을 되새겨야 한다고 조언했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는 “창업주에게서 멀어질수록 기업 승계의 당위성이 줄어들게 된다”면서 “기업이 재벌 개인의 소유라는 생각을 가져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한 재계 관계자는 “기업과 개인의 이익도 중요하지만, 나라 전체를 생각했던 1세대 창업주들이 남긴 이야기만 잘 지켜도 존경받는 경영인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동현 기자 moses@seoul.co.kr 김헌주 기자 dream@seoul.co.kr
  • 명상 한 걸음 사색 한 걸음… 구로구에 ‘더불어 숲길’

    명상 한 걸음 사색 한 걸음… 구로구에 ‘더불어 숲길’

    지난해 1월 15일 신영복 전 성공회대 석좌교수가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무기징역형을 선고받고 20년 동안 수감 생활을 했다. 당시 느낀 소회와 고뇌를 편지 형식으로 적어 내놓은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스테디셀러다. 신영복은 ‘변방을 찾아서’, ‘담론-신영복의 마지막 강의’ 등 많은 저서를 출간하며 시대의 지성으로 자리매김했다. 소주 ‘처음처럼’도 그의 글씨체로 친숙하다. 서울 구로구가 신 전 교수의 1주기를 맞아 ‘더불어 숲길’을 조성해 주민들에게 개방했다고 18일 밝혔다. 그의 올곧은 정신을 기리고 주민들에게 사색의 공간을 제공하기 위함이다. ‘더불어 숲길’은 신 전 교수가 재직했던 성공회대 뒷산에 길이 480m, 폭 2m로 조성된 산책로다. 이름 또한 세계 22개국을 여행한 기록과 함께 더불어 사는 ‘연대’의 가치를 담은 신 전 교수의 대표적 저서 ‘더불어 숲’에서 착안해 명명했다. 숲길 전 구간에는 주민들이 편안하게 걸으며 명상과 사색을 즐길 수 있도록 매트를 깔았다. 산책 도중 쉴 수 있는 등의자도 설치했다. 특히 ‘더불어 숲길’의 주인공인 신영복 교수가 생전에 직접 쓴 서화작품 31점을 안내판 형식으로 해놔 주민들의 눈길을 끈다. ‘더불어 숲길’은 인근 푸른수목원, 구로올레길 3코스와도 연결돼 올레길 최고의 코스로 평가받는다. 앞으로 구로구는 푸른수목원을 확장하고 이 일대를 ‘더불어 숲’으로 이름 붙일 예정이다. 이성 구로구청장은 “‘더불어 숲길’이 사색과 명상의 길, 신영복 교수의 참된 뜻을 함께 느껴 보는 길이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이범수 기자 bulse46@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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