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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靑 “JP에 ‘무궁화장’ 추서…문 대통령 조문 안 가기로”

    靑 “JP에 ‘무궁화장’ 추서…문 대통령 조문 안 가기로”

    청와대는 지난 23일 별세한 김종필 전 국무총리에게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추서하기로 했다고 25일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의 조문은 하지 않기로 했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김 전 총리 추서 문제는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이 준비되는 대로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추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문 대통령은 “유족에게 예우를 갖춰 애도를 표하라”고 김 행안부 장관에게 지시했다고 김 대변인은 전했다. 김 대변인은 “대통령의 조문은 이것으로 갈음한다”며 문 대통령이 직접 조문하지는 않는다고 설명했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기자들을 만나 ‘문 대통령이 조문을 하지 않기로 한 이유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문 대통령께서는 취임하고 나서 조문을 간 적이 없다”고 대답했다. 핵심관계자는 훈장 추서에 대해서도 “최근 돌아가신 전직 총리 네 분 가운데 이영덕 남덕우 두 분의 전직 총리는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추서 받았고, 박태준 전 총리는 청조근정훈장을 추서 받았다. 강영훈 전 총리는 훈장을 추서 받지 않았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이 전 총리와 남 전 총리는 일반인이 받을 수 있는 최고 훈장인 무궁화장을 받은 것이고, 박 전 총리는 생전에 무궁화장을 받았기 때문에 공직자가 받는 청조근정훈장을 준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강 전 총리는 생전에 무궁화장을 받아, 돌아가신 뒤에는 훈장을 추서하지 않은 것”이라며 “그 밖에 노무현 정부 이후 현재까지 총리를 지낸 10분은 모두 살아계신다”라고 덧붙였다. ‘김 전 총리에 대한 훈장추서를 두고 논란이 벌어지는 것에 대해, 과거 사례를 들어 청와대의 입장을 설명한 것인가’라는 물음에는 “참고하라고 말씀을 드린 것이다. (해석은) 언론인의 몫으로 남기겠다”고 답했다. 이 관계자는 ‘정의당에서는 훈장 추서를 재고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훈장을 줘서는 안 된다는 국민청원도 올라오고 있다’는 질문이 재차 나오자 “여러 의견이 있는데, 그 의견을 다 고려해 결정을 내린 것으로 이해해 달라”라고 밝혔다. ‘훈장 추서의 근거가 되는 김 전 총리의 공적이 뭐라고 보느냐’라는 물음도 나왔지만, 이 관계자는 “지금까지 드린 말씀 정도로 받아들여 달라”라고만 답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아베 “한·일 관계 기초 구축”…외신 “쿠데타 일으킨 군인”

    아베 “한·일 관계 기초 구축”…외신 “쿠데타 일으킨 군인”

    日 언론들 속보·1면 기사 전해 나카소네 “오랜 친구를 잃었다” 中 참고소식망 ‘독도 어록’ 소개 美선 ‘정보기관 창설자’ 등 표현한국 정치·외교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긴 김종필 전 국무총리의 별세 소식을 해외 언론들도 신속하고 비중 있게 보도했다. 고인이 한·일 국교 정상화 협상의 주역으로서 특히 깊은 관계를 맺었던 일본의 경우 아베 신조 총리를 비롯한 많은 인사들의 조의가 전해졌으며, 언론들도 높은 관심을 보였다.아베 총리는 지난 23일 김 전 총리의 타계 소식을 접한 뒤 “한·일 국교 정상화 협상으로 한·일 관계의 기초를 구축했다”며 신속하게 조의를 표했다. 아베 총리는 이날 문재인 대통령을 수신인으로 하는 메시지를 통해 “깊은 슬픔을 금할 수 없으며, 일본 정부와 일본 국민을 대표해 충심으로 명복을 빈다”고 했다. 고인의 오랜 친구로 지난달 100세 생일을 맞았던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총리도 “김 전 총리는 한·일 양국의 우호와 발전을 위해 크나큰 노력을 했다”며 “지난해 김종필 증언록(일본어판)이 출간됐는데, 그로부터 얼마 되지 않아 오랜 친구를 잃어버려 진심으로 슬프다”고 발표했다. 누카가 후쿠시로 일·한의원연맹 회장은 “오늘날 한·일 관계의 토대를 만든, 정말로 아까운 사람을 잃었다”며 “한·일 관계가 곤란한 과제에 직면했을 때 경험을 살려서 스스로 땀을 흘려 주었던 고인의 정열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일본 언론들은 김 전 총리의 별세 소식을 속보로까지 전했으며 아사히, 요미우리 등 주요 신문들은 24일자 조간에서 1면 기사로 다뤘다. 대부분 김 전 총리를 ‘지일파’라고 표현하면서 그가 대일 청구권 협상을 주도했으며 김대중 전 대통령 납치사건 당시에는 일본 정부의 수사를 무마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는 점에 주목했다.마이니치신문은 김 전 총리에 대해 “1976년 한·일의원연맹의 초대 회장에 취임하고 나카소네 전 총리 등 일본 정계에 지인이 많다”며 “한·일 관계의 통로로서 큰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교도통신은 “일본 보수 정계와의 인맥을 살려서 대일 정책을 추진했다”고 소개했다. 중국 주요 매체들도 김 전 총리의 별세 소식을 비중 있게 전했다. 중국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 해외판인 해외망은 김 전 총리를 ‘박정희 전 대통령의 조카사위로 두 차례 국무총리를 역임했으며 1961년 중앙정보부 초대부장을 맡은 인물’이라고 소개했다. 중국 최대 발행부수를 보이는 참고소식망은 김 전 총리가 생전에 많은 어록을 남겼는데, 특히 1962년 오히라 마사요시 일본 외무상과의 회담에서 독도 영유권 분쟁과 관련, “독도를 폭파하는 한이 있더라도 일본에 넘겨주지 않겠다”는 강경 발언을 했다고 전했다. 인민일보 자매지인 환구시보는 “김 전 총리는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삼김’(三金)으로 불리며 한국 정치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썼다. AP, AFP, dpa통신 등은 구미계 언론들도 김 전 총리를 ‘한국 정보기관 창설자’, ‘쿠데타를 일으킨 군인’ 등으로 표현하며 별세 소식을 비중 있게 전했다. AP통신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5·16쿠데타에서 중심 인물이었다”며 “대권에 도전한 적은 없지만 ‘킹메이커’ 역할을 했으며 ‘영원한 2인자’로도 불렸다”고 소개했다. AFP통신은 “1980~1990년대 한국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정치인으로 여겨진다”고 썼다. 도쿄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워싱턴 한준규 특파원 hihi@seoul.co.kr베이징 윤창수 특파원 geo@seoul.co.kr
  • ‘무궁화장’ 논란…“역사의 범죄자” “정치 한 획 예우”

    ‘무궁화장’ 논란…“역사의 범죄자” “정치 한 획 예우”

    행안부 보고받은 靑 조만간 추서 靑청원 게시판에 반대글 수십건정부가 지난 23일 별세한 김종필(JP) 전 국무총리에게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수여하기로 한 것을 놓고 찬반이 엇갈리고 있다.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은 24일 김 전 총리의 빈소를 방문한 뒤 훈장 추서에 대해 “국민훈장 무궁화장으로 결정될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무궁화장은 민간인이 받을 수 있는 최고 등급의 훈장이다. 행안부의 보고를 받은 청와대는 훈장 추서 시점을 고려 중이다. 행안부 관계자는 “보통은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훈장을 추서하지만 유명인 서거 등 필요시에는 훈장을 먼저 추서하고 국무회의 등 절차를 나중에 밟는 ‘선(先)추서’ 제도를 활용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날 빈소를 찾은 정의당 심상정 의원은 “국민들 사이에서 고인의 공과 논란이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만큼 정부가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민중당 이은혜 대변인은 “그(JP)는 박정희와 함께 4·19혁명을 쿠데타로 짓밟은 역사의 범죄자”라고 주장했다. 국방부 적폐청산위원회 위원인 고상만 인권운동가도 “김종필은 쿠데타를 성공시킨 공적으로 생애 온갖 부와 영광을 독차지한 독재자의 하수인이자 제2의 쿠데타 주역”이라면서 “그런 자에게 훈장을 수여한다는 것은 사실상 쿠데타를 부추기는 행위”라고 했다.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에도 훈장 추서에 반대하는 수십 건의 글이 게시됐다. 그러나 더불어민주당 홍영표 원내대표는 “일생 한국 사회에 남기신 족적에 명암이 있다고 생각한다”며 “국가가 충분히 예우하는 차원에서 (추서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 전 총리는 충남 부여군 외산면 반교리에 있는 선산 가족묘에 안장될 예정이다. 정부가 현충원 안장을 제의했으나, 2015년 작고한 부인 박영옥씨와 나란히 묻히기를 원한 김 전 총리의 생전 뜻에 따라 부인과 합장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국무총리는 원칙적으로 국가장 대상이 아니다. 유족들은 가족장으로 치르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주원 기자 starjuwon@seoul.co.kr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DJP연합으로 정권교체 이뤄” “명암 엇갈리지만 큰 족적”

    “DJP연합으로 정권교체 이뤄” “명암 엇갈리지만 큰 족적”

    JP 영정 좌우 文대통령·MB 조화 2007년 틀어진 박근혜 조화는 없어 靑 “文대통령 조문 여부 안 정해져” 충청 출신 반기문·이회창 등 찾아 與도 “선배 정치인 떠나는 길 지원” 27일 발인… 자택서 노제 뒤 화장김종필(JP) 전 국무총리의 빈소가 차려진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는 24일에도 각계각층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빈소를 정면으로 가장 왼쪽에 문재인 대통령이 보낸 조화를 시작으로 정세균 전 국회의장, 황교안·정운찬 전 국무총리의 조화가 줄지어 놓였다. 오른쪽에는 이명박·노태우 전 대통령의 조화가 있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는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 명의로 조화를 보냈다. 병상에 있는 이건희 삼성 회장의 조화도 눈길을 끌었다. 전두환 전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통령의 조화는 보이지 않았다. 김 전 총리의 부인 고 박영옥씨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친형 박상희씨의 장녀다. 김 전 총리는 박 전 대통령의 사촌 형부다. 두 사람은 2007년 자유한국당의 전신인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사이가 틀어졌다. 빈소에는 박 전 대통령의 동생 박지만 EG 회장 부부가 발걸음했다.여권 인사들은 공과에 관계없이 ‘선배 정치인’인 김 전 총리가 평안히 떠날 수 있도록 장례를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전날 빈소를 찾은 이낙연 국무총리는 “(고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수록 후대에 도저히 흉내 내기 어려울 만큼 거인이시라는 것을 확인하곤 한다”고 말했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김 전 총리는 김대중(DJ) 전 대통령과 (DJP 연합으로) 정권교체라는 큰 시대적 책무를 다한 어르신”이라고 했다. DJP 연합 당시 정치적 동지였던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은 “명암이 엇갈리지만 족적이 크다”고 평가했다. 문희상 의원, 한병도 청와대 정무수석,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 등도 빈소를 찾아 조문했다. 이날 낮 러시아에서 귀국한 문 대통령이 발인(27일) 전에 빈소를 찾을지는 아직 결정하지 않았다고 청와대는 밝혔다. 정의당 심상정 전 대표는 “고인의 명복을 빌면서 동시에 우리 현대사에 짙은 그늘과도 작별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조문했다”고 말했다. 자유한국당 의원들의 조문 행렬도 이어졌다. 김성태 대표 권한대행을 비롯해 홍준표 전 대표와 정우택·이명수·홍문표·성일종 의원 등 충청권 의원들, 김무성·나경원 의원 등 중진 의원들이 고인의 영정 앞에 고개를 숙였다. 이한동 전 총리도 빈소를 지켰다. 김 권한대행은 “대한민국 경제가 선진국 반열에 오를 수 있도록 토대를 세운 업적을 기려 저희가 환골탈태하는 계기로 삼겠다”고 했다. 바른미래당 박주선·유승민 전 공동대표, 손학규 지방선거 상임선거대책위원장, 김동철 비대위원장 등도 일제히 고인의 넋을 기렸다. 한승수 전 총리, 이철우 경북지사 당선자, 남경필 경기지사, 김문수 전 경기지사, 김용채 전 국회의원, 한갑수 전 농수산부 장관, 이용만 전 재무부 장관, 이태섭 전 과기부 장관, 이긍규·김종학 전 국회의원,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 등도 조문했다. 충청 대망론을 업고 지난 대선에 도전했다가 포기한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은 이날 빈소를 찾아 “우리 민주 정치의 발전과 산업화 과정에서 참 큰 공적을 이뤘다”고 했다. 생전 고인과 정치적으로 불편한 관계였던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는 ‘JP가 현역으로 있을 때 서운한 점도 있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과거의 일이고 상가에 와서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라고 말을 아꼈다. JP와 함께 3김 시대를 이끌었던 김대중 전 대통령,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차남들도 조문했다. DJ의 차남 김홍업 전 의원은 “찾아뵙는 게 도리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YS의 차남 김현철 국민대 특임교수는 “아버지와 김 전 총리는 오랜 정치생활 동안 정치적 견해가 많이 다를 때도 있었지만 인간적으로 두 분이 정말 각별한 사이라 애석하다”고 했다. 마크 내퍼 주한 미국대사 대리, 방송인 송해, 가수 하춘화·김추자씨, 배우 정혜선, 성우 고은정씨도 빈소를 찾아 애도했다. 준상주 역할을 맡은 정진석 한국당 의원은 장례 일정에 대해 “27일 오전 6시 30분에 빈소에서 발인제를 간단하게 지내고 영결식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27일 오전 9시 김 전 총리의 자택이었던 청구동에서 노제를 지내고서 오전 11시 서초동 서울추모공원에서 화장할 예정이다. 이후 고향인 부여의 가족 묘원으로 가는 길에 고인이 다녔던 공주고 교정을 잠시 들를 계획이다. 장례위원장은 이한동 전 국무총리와 강창희 전 국회의장이, 부위원장은 정우택·정진석 의원과 심대평 전 충남지사 등이 맡았다. 김진아 기자 jin@seoul.co.kr김정화 기자 clean@seoul.co.kr신형철 기자 hsdori@seoul.co.kr
  • 김종필, 국립묘지 묻히기 싫다며 생전에 써 놓은 자신의 묘비명

    김종필, 국립묘지 묻히기 싫다며 생전에 써 놓은 자신의 묘비명

    23일 92세 일기로 별세한 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생전에 자신의 묘비에 새길 글을 미리 써 둔 것으로 알려지면서 관심을 모으고 있다. 김광덕 전 한국일보 정치부장은 이날 YTN과의 인터뷰에서 김종필 전 총리의 생전 묘비명(墓碑銘)과 관련된 일화를 전했다. 김광덕 전 부장은 민주자유당(민자당), 자유민주연합(자민련) 시절 김종필 전 총리를 취재했다. 김광덕 전 부장은 “(김종필 전 총리의) 부인 박영옥 여사가 2015년에 돌아가셨다. 그때 돌아가신 이후에 (김 전 총리는 자신의) 묘비명을 미리 썼다”며 “원래 전 국무총리 같은 경우에는 대부분 국립묘지에 안장되는데 본인은 국립묘지에 가지 않고 마누라와 같은 자리에 누워야겠다. 이런 표현을 썼다”고 말했다. 앞서 동아일보는 2015년 3월 “JP가 미리 써놓은 자기 묘비명”이라는 제목으로 김종필 전 총리의 묘비명 내용을 보도했다. JP는 김종필 전 국무총리의 이름 영어 이니셜로 애칭이기도 하다. 그의 묘비명 대부분은 한자어와 고사성어로 구성돼 있다.이를 한글로 풀면 다음과 같다 “한 점 허물없는 생각을 평생 삶의 지표로 삼았으며, 나라 다스림 그 마음의 뿌리를 ‘무항산이며 무항심’에 박고 몸 바쳤거늘, 나이 90에 이르러 되돌아보니 제대로 이룬 것 없음에 절로 한숨 짓는데, 숱은 질문에 그저 웃음으로 대답하던 사람, 한 평생 반려자인 고마운 아내와 이곳에 누웠노라”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풍운아 JP의 말말말… ‘춘래불사춘부터 몽니까지’

    풍운아 JP의 말말말… ‘춘래불사춘부터 몽니까지’

    23일 별세한 JP는 화려한 정치이력 만큼이나 수많은 명언을 남겼다. 답답한 심경과 정치 현실을 은유적이고 시적인 용어로 표현하면서 사람들을 감탄시켰다. 그의 말 중에 원색적이고 직설적인 공격은 드물었다. 혹자는 그의 말에 산이 있고 바람이 있고 물이 있다고도 했다.1980년의 ‘서울의 봄’을 두고 JP는 ‘춘래불사춘’이라고 했다. 1979년 10·26 사건 이후 상당수 국민들은 어둡고 긴 유신의 터널이 끝났다고 믿었다. JP는 박 전 대통령을 이을 2인자로 주목받았고 이윽고 3김씨가 정치의 전면에 다시 나서면서 민주주의 시대가 온 듯 했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신군부는 3김씨의 정치 활동을 금지시켰다. JP는 부정축재 혐의로 연행됐다. DJ도 소요 조종 혐의로 잡혀 갔다. YS는 공직을 박탈당하고 가택연금됐다. 당시 연행에 앞서 이미 시대현실을 직시하고 표현한 JP의 ‘춘래불사춘’은 그의 수많의 명언 중에서도 백미로 꼽힌다. 1990년 3당 합당 뒤 당시 김영삼 민자당 대표가 이른바 ‘마산파동’을 일으키자 JP는 이를 “틀물레짓”이라고 빗대어 비난했다. 행동이 어린애같이 서투르고 유치하다는 충청도 사투리다. 그러나 YS는 그냥 넘어갔다. 비난의 말임에도 불구하고 워낙 생소하고 왠지 구수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1995년 설움을 딛고 민자당에서 탈당해 거대 야당인 자민련으로 재기한 뒤 국회 원내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내놓은 “사랑에는 후회가 없습니다.” 발언도 대히트였다. 대권을 거머쥔 뒤 자신을 팽했던 김영삼 당시 대통령에 대한 절절한 질책과 충고 뒤에 나온 연설로 상대인 민자당 의원들의 박수 갈채를 받기도 했다. JP는 중학 3,4학년 때 독서의 절정기를 맞았다고 한다. 1야1권 독파주의라는 목표로 매일밤 하루 한 권씩 책을 읽었다. 자신의 독서 버릇을 가리켜 난독(亂讀)의 시대였다고 회상했다. 닥치는대로 읽은 것이다. 주로 읽은 책은 역사와 전기류였다고 한다. 그러나 이후에도 수시로 사전을 뒤적이면서 신중하게 말을 고르고 그 뜻을 검토하는 세심한 준비 과정을 거친 것으로 유명하다. JP의 말 중 압권으로는 ‘몽니’가 꼽힌다. 1998년 12월 15일 당시 박준규 국회의장이 ‘내각제 개헌연기론’을 제기하고 국민회의 측이 ‘내각제 개헌 유보’ 움직임을 보이자 그는 “참을 때 까지 참는 게 지성이지만 그래도 안 되면 몽니를 부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현장 기자들은 ‘음흉하고 심술궂게 욕심을 부리는 성질’이라는 몽니의 뜻을 몰라 해석을 부탁하는 해프닝이 일기도 했다. 이후 JP에게 ‘몽니 정치’는 수식어처럼 따라다녔다. 다음은 생전에 고인이 남긴 주요 어록. ▲ 제2의 이완용이 되더라도 한일 국교를 정상화시키겠다(1963년. 일본과 비밀협상이 국민적 반발에 직면하자) ▲ 자의 반 타의 반(1963년 2월. 증권파동 등 4대 의혹 사건과 관련한 외유에 나서면서) ▲ 파국 직전의 조국을 구하고 조국 근대화를 이루기 위해 5·16 혁명과 1963년 공화당 창당이라는 역사적 전기가 마련됐다(1987년. 저서 ‘새 역사의 고동’) ▲ 5·16이 형님이고 5·17이 아우라고 한다면 나는 고약한 아우를 둔 셈이다(1987년 11월 3일. 관훈토론회) ▲ 나는 대통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1990년 10월. 노태우를 대통령 후보로 추대하며) ▲ 있는 복이나 빼앗아가지 마시라(1995년 1월 1일. 민자당 대표시절 민주계의 대표퇴진론을 거론하는 세배객이 ‘새해 복 많이 받으시라’ 덕담하자) ▲ 경상도 사람들이 충청도를 핫바지라고 부르는데 이것은 아무렇게나 취급해도 아무말 없는 사람, 소견이나 오기조차도 없는 사람들이라는 의미다(1995년 6년 13일. 지방선거 천안역 지원유세) ▲ 역사는 끄집어 낼 수도, 자빠트릴 수도, 다시 세울 수도 없는 것이다. 역사는 그냥 거기서 배우는 것이다(1996년. 김영삼 대통령의 역사 바로세우기에 대해) ▲ 줄탁동기(1997년 자신의 대선 후원조직인 민족중흥회 회보에 사용한 신년휘호. 중국 송나라 선종의 대표적 전적인 벽암록 글귀. 병아리가 건강하게 부화하고자 알 속에서 두드려 나갈 때가 됐음을 알리고 어미닭도 이때를 놓치지 않고 밖에서 알을 쪼아 껍데기를 깨줘야 하는 것처럼 모든 일은 시기가 적절히 맞아야 한다는 뜻. 당시 대선 정국에서 적절한 시기의 결단이 필요함을 간접적으로 나타냈다는 해석) ▲ 내가 제일 보기 싫은 것은 타다 남은 장작이다. 나는 완전히 연소해 재가 되고 싶다(1997년 5월 29일. 자민련 중앙위원회 운영위) ▲ 이인제 후보가 우리를 늙었다고 하는데 나와 함께 씨름 한 번 했으면 좋겠다. 내가 결코 이 후보에게 뒤지지 않을 것이다. 나는 아직도 젊다(1997년 12월 3일. 충북 괴산 정당연설회에서) ▲ 서리는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슬금슬금 녹아 없어지는 것이다(1998년 6월 27일. 총리 서리 당시 ‘서리’ 꼬리가 언제 덜어질 것 같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 시인 프로스트가 ‘잠들기 전 가야 할 몇 마일이 있다’고 한 것처럼 저도 앞으로 가야 할 몇 마일을 위해 발걸음을 재촉하겠다(1998년 10월 16일. 동의대 명예박사학위 수여식 특강) ▲ 미리 왕성한 상상력과 편협한 시각을 가지고 스스로의 행보를 좁히거나 의지를 약화시키는 일을 자초해서는 안 된다. 때를 맞춰야 하고 그러고도 안 될 때 몽니를 부리는 것이다(1998년 12월 15일. 자민련 중앙위원회 연수에서 김대중 대통령의 내각제 약속 불이행을 우려하면서 발언) ▲ 백날을 물어봐, 내가 대답하나(2000년 5월 2일. 일주일만에 당사에 출근하면서 김대중 대통령과의 회동 가능성을 묻자) ▲ 나이 70이 넘은 사람이 저물어 가는 사람이지 떠오르는 사람이냐. 다만 마무리할 때 서쪽 하늘이 황혼으로 벌겋게 물들어갔으면 하는 과욕이 남았을 뿐이다(2001년 1월 9일. 민주당 이인제 최고위원이 4·13 총선 때 자신을 ‘서산에 지는 해’로 표현한 것을 두고)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 막 내린 ‘3金 시대’…김종필 별세

    막 내린 ‘3金 시대’…김종필 별세

    김종필(JP) 전 국무총리가 23일 오전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2세. 김 전 총리 측 관계자는 “김 전 총리가 오늘 오전 8시 15분쯤 별세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김 전 총리는 이날 오전 중구 청구동 자택에서 순천향병원으로 옮겨진 것으로 전해졌다. 병원 측에 따르면 김 전 총리의 가족들은 이날 오전 119를 통해 김 전 총리를 인근 순천향병원으로 옮겼으며, 김 전 총리는 병원 도착 당시 이미 사망한 상태였다. 김 전 총리의 측근은 “한 달 전쯤부터 기력이 떨어졌지만 특별한 병환은 없었다”면서 “빈소가 차려지면 가족장으로 조촐하게 하고 조화나 조의금도 받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측근은 또 “생전에 국립묘지에 가지 않고 검소하게 부인 고 박영옥 여사가 묻혀 있는 고향의 가족묘원에 묻어달라는 말씀이 있었다”면서 “이미 언론 보도가 나왔으니 부고도 따로 보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측근은 “제가 마지막으로 본 게 지난 21일인데 기력이 다하는 순간까지 기억력 하나는 그대로였다”면서 “과거에 있었던 일을 말씀드리면 오히려 저희보다 기억하는 연도나 순서가 정확했다”고 전했다. 빈소는 평소 진료를 받았던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졌다. 이로써 김대중·김영삼·김종필 트로이카가 이끌어왔던 ‘3김(金) 시대’가 종언을 고했다.지난 1926년 충남 부여에서 태어난 김 전 총리는 공주중·고등학교와 서울대 사범대,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했으며, 지난 1963년 공화당 창당을 주도하고 그해 치러진 6대 총선에서 당선된 뒤 7·8·9·10·13·14·15·16대를 거치며 9선 국회의원을 지냈다. ‘3김 시대’의 한 축인 김 전 총리는 1961년 처삼촌인 박정희 전 대통령의 5·16 쿠데타에 가담하면서 현대 정치사의 전면에 등장했으며, 같은 해 중앙정보부를 창설해 초대부장에 취임한 것을 시작으로 줄곧 영원한 ‘제2인자의 길’을 걸어왔다. 공화당 창당과정에서 증권파동을 비롯한 이른바 ‘4대 의혹사건’에 휘말리면서 63년 2월 ‘자의반 타의반’ 첫 외유를 떠난 데 이어 한일 국교정상화 회담의 주역으로서 핵심쟁점이던 대일 청구권 문제와 관련된 ‘김종필·오히라 메모’ 파동으로 6·3사태가 일어나자 1964년 또다시 2차 외유길에 올랐다.이후 1971년부터 1975년까지 4년 6개월 간 국무총리를 지내며 승승장구했으나, 1980년 신군부의 등장과 함께 ‘권력형 부정축재자 1호’로 몰려 영어의 몸이 되기도 했다. 김 전 총리는 1984년 미국으로 건너가 유랑생활을 하다 1986년 귀국한 뒤 신민주공화당을 창당하고 1987년 13대 대선에 출마해다가 낙선했다. 그러나 1988년 치러진 13대 총선에서 충청권을 기반으로 35석의 국회의원을 확보하는 데 성공, 오뚝이처럼 정치 일선에 복귀했다. 그는 이어 평생의 꿈인 내각제를 고리로 1992년 대선에서 3당 합당과 함께 김영삼(YS) 당시 대선 후보를 지원했으며, 1997년 대선에선 자신이 창당한 자유민주연합 후보로 다시 대권에 도전했으나 선거 막바지 ‘DJP(김대중·김종필) 연합’을 성사시키며 김대중(DJ) 당시 대선 후보에 대한 지지를 선언함으로써 첫 수평적 정권교체와 함께 국민회의·자민련 공동정권을 탄생시켰다.그러나 내각제 파동과 16대 총선 과정에서 쌓인 공동정권 수장 사이의 앙금은 결국 2001년 9월 임동원 당시 통일부 장관 해임안 가결 및 공조파기로 이어졌다. 김 전 총리는 2004년 17대 총선을 통해 재기를 시도했으나, 자신의 10선 도전 실패와 함께 고작 4명의 의원만 배출하는 참패를 당한 뒤 정계은퇴를 선언했다. 김 전 총리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이다. 쿠데타 원조에서부터 중앙정보부 창설자, 풍운의 정치인, 영원한 2인자, 경륜의 정치인, 처세의 달인, 로맨티스트 정치인 등 그에 따라붙는 여러 별칭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영욕과 부침을 거듭해왔다. 김 전 총리의 서거로 1960년대부터 우리 정치권을 풍미해 온 ‘3김 시대’는 실질적 종언을 고하게 됐다. 유족으로는 아들 진씨, 딸 예리씨 1남1녀가 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질 예정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와우! 과학] 2300년 전 진시황 할머니 무덤서 멸종 원숭이 발견

    [와우! 과학] 2300년 전 진시황 할머니 무덤서 멸종 원숭이 발견

    약 2300년 전 것으로 추정되는 중국의 한 무덤에서 지금은 멸종된 유인원(원숭이)의 두개골 화석이 발견돼 학계가 연구에 나섰다고 영국 인디펜던트 등 해외 언론이 21일 보도했다. 영국 런던동물학회는 중국 산시성에서 발견된 2300년 전 분실(무덤이 있는 방)안에서 현재는 찾아볼 수 없는 신종 긴팔원숭이 친척뻘의 유인원 두개골 조각을 찾았다고 밝혔다. 해당 무덤은 진시황의 할머니의 것으로, 여기에 함께 묻힌 원숭이는 진시황의 할머니가 생전 키우던 애완동물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추정된다. 연구진이 ‘쥔즈 임페리얼리스’(Junzi imperialis)라고 명명한 이 원숭이의 두개골을 분석한 결과 이는 현존하는 긴팔원숭이의 친척뻘에 해당하며 현존하지 않는 멸종된 동물로 밝혀졌다. 또 지금까지 한 번도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속(屬, 생물 분류의 단위로 과(科)와 종(種)사이)이라는 사실도 밝혀졌다. 특히 해당 두개골과 턱 부위는 현존하는 긴팔원숭이 20종과는 전혀 다른 생김새를 가지고 있으며, 연구진은 이를 토대로 발견된 적이 없었던 신종 긴팔원숭이라는 분석 결과를 내놓았다. 한편 신종 긴팔원숭이의 멸종 원인은 현존하는 유인원의 멸종 위기 원인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는 추측이 나왔다. 연구진은 “고대 중국에서는 긴팔원숭이와 같은 동물을 매우 고귀하게 여겨 종종 이를 잡아 애완동물처럼 키웠다”면서 “신종 긴팔원숭이 두개골이 발견된 무덤에서는 표범과 곰, 스라소니 등의 동물 뼈도 함께 발견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당시 역사적 환경으로 살펴봤을 때, 애완동물로 키우기 위한 무분별한 사냥이나 숲이 무너지고 농업이 확장되는 등 서식지 파괴의 영향으로 멸종됐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면서 “현존하는 긴팔원숭이의 개체수가 눈에 띄게 적은 것도 이 같은 역사와 관계가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연구에 참여하지 않은 스위스 취리히대학의 긴팔원숭이 전문가 토마스 가이스만 박사는 “이 두개골의 발견은 매우 놀랍다. 이번 연구는 고대 중국에 우리가 알지 못하는 긴팔원숭이가 다수 서식했다는 증거가 됐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고대 중국인들이 영장류에 대한 경외심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인간의 영역을 광대한 산림에까지 확장하면서 긴팔원숭이의 멸종을 이끌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자세한 연구결과는 세계적 과학저널인 ‘사이언스‘(Science) 21일자에 실렸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SSEN이슈] ‘밥블레스유’ 이영자에게 전하는 말, ‘갓 블레스 유!’

    [SSEN이슈] ‘밥블레스유’ 이영자에게 전하는 말, ‘갓 블레스 유!’

    ‘밥블레스유’로 이영자가 다시 돌아왔다. 21일 올리브 새 예능 ‘밥블레스유’가 베일을 벗었다. 맏언니 최화정을 필두로, 이영자, 송은이, 김숙 등 네 사람은 등장만으로도 어떤 ‘아우라’를 자아내며 시선을 단숨에 빼앗았다. ‘고민을 들어주며 음식을 먹는’ 조금은 요상한 프로그램 같지만, 크게 ‘치유’라는 큰 틀 안에서 프로그램은 흘러간다. 누군가에게 고민을 털어놓는 것도,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도 ‘치유’ 범주 안에 있기 때문이다. 올 초 MBC ‘전지적 참견 시점’을 통해 ‘영자의 전성시대’ 길을 다시 연 이영자는 프로그램이 별안간 논란의 중심에 서며 자취를 감췄다. 하지만 그는 다시 가장 자신 있는 ‘음식’ 카드를 들고 온 국민 마음을 치유하겠다며 대중 앞에 섰다. 지난 18일 열린 ‘밥블레스유’ 제작발표회에서 이영자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마음의 치유는 ‘음식’으로 했다”고 밝혔다. 과거 한 방송에서도 털어놓았듯, 그는 아버지 사랑이 결핍된 채 유년을 보냈다. 이영자는 “우리는 슬플 때도 맛있는 걸 먹고 기운을 낸다. 사실 저는 아버지가 저희(가족)를 사랑하지 않았다고 여겼다”며 그로 인한 마음의 상처를 ‘음식’으로 스스로 치유했다고 했다. 그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알았다. 아버지가 보내주신 것들을 먹고 힘든 일을 버텨냈던 것 같다. 아버지는 생전 통통배를 타고 바다에 나가 5월이 되면 꽃게, 소라 등을 잡아 집으로 보내셨다”라며 “아버지가 바지락 같은 걸 캐서 보내면 최화정과 반씩 나눠 먹기도 했다. 청양고추 송송 넣고, 바지락 푹 끓여서 국물 한 번 탁 먹으면 (힘든 마음이) 그냥 풀렸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그래서 제가 험한 일이 있어도, 부끄러운 일을 당해도 버틸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이영자에게 음식은 그런 거였다. 부족했던 사랑 대신 스스로 찾은 위로이기도 했고, 원망했던 아버지의 진심이기도 했다. 그런 그가 이제 ‘맛 전도사’로 활약하겠다고 야심 차게 선언했다. “맛있는 음식을 권해주고 싶다. 제가 많이 먹어봤으니까.” 대중은 이미 ‘전지적 참견 시점’을 통해 이영자의 추천 맛집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 알고 있다. ‘검증된 맛’만을 소개하는 그의 믿음직한 모습에 벌써부터 신이 난다. 이제 자신이 아닌 다른 이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전하고 싶다는 이영자에게 음식은 곧 치유이다. 나는 이영자가 더 많이 먹고 더 많이 치유받길 바란다. 그가 행복할수록 대중 역시 행복하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가 앞으로 나눌 ‘치유’가 무척이나 기대된다. 김혜민 기자 khm@seoul.co.kr
  • “마왕의 음악 함께해요” 분당 신해철 거리서 작은 콘서트

    “마왕의 음악 함께해요” 분당 신해철 거리서 작은 콘서트

    ‘영원한 마왕’ 가수 신해철의 음악과 함께하는 콘서트가 경기 성남시 분당구 수내동 신해철거리에서 열린다. 성남시는 오는 23일, 30일, 다음달 7일 오후 3시부터 6시까지 세 차례에 걸쳐 ‘그대에게’를 주제로 작은 콘서트를 연다고 20일 밝혔다. 23일은 신해철거리 입구에 특설무대를 마련해 헌정 콘서트로 꾸민다. ‘재즈카페’ 등 신해철의 노래를 리부트 아워셀프, 렉스트, 프로젝트S 밴드가 부른다. 관중들이 신해철의 노래를 부르는 ‘15초 노래자랑’, ‘마왕 퀴즈대회’ 등 이벤트도 마련했다. 30일과 다음달 7일은 신해철거리 곳곳에서 각종 이벤트와 버스킹 공연을 펼치는 방식으로 콘서트가 열린다. 히든식스 등 2개 밴드가 ‘날아라 병아리’ 등 신해철의 발라드곡 20곡을 기타로 연주한다. 팬 모임의 재능 기부로 페이스 페인팅, 마왕 그래픽, 솜사탕·팝콘 나눔 행사가 진행된다. 시는 지난 2월 8일 신해철의 마지막 음악작업실이 있던 수내동 일대 160m 구간을 신해철거리로 조성했다. 생전 음악작업실은 유품과 함께 시민에게 개방했다. 신동원 기자 asadal@seoul.co.kr
  • [여기는 중국] “‘시신’은 엘리베이터 타지 마”…아파트 주민들 논란

    [여기는 중국] “‘시신’은 엘리베이터 타지 마”…아파트 주민들 논란

    오랫동안 얼굴을 마주치며 살던 이웃사촌이 사망하자, 아파트 주민들이 시신을 운반하려는 유가족에게 엘리베이터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한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일고 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의 18일 보도에 따르면 현지시간으로 지난 9일, 중국 장쑤성 우시에 사는 한 여성이 향년 95세로 사망했다. 유가족은 생전 고인이 살던 아파트로 모여 장례식장으로 시신을 옮기기 위한 준비를 하던 중,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붙은 공고문을 보고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해당 공고문에는 “우리 아파트에서는 엘리베이터로 시신을 옮기는 것을 금지한다. 시신을 운반할 때에는 계단을 이용해야 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사람들이 평소 많이 이용하는 엘리베이터로 시신을 옮기는 것이 불길하다고 여긴 까닭으로 추측된다. 고인이 살던 집은 해당 아파트의 17층에 있었고, 유가족은 장례식을 앞두고 사람들과 다투는 것을 원치 않는다며 계단을 이용해 1층까지 시신을 운반했다. 아파트 주민들이 고인의 사망소식을 알고 해당 공고문을 붙인 것인지, 고인이 사망하기 이전에 미리 방침을 정해 둔 것인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고인의 딸은 현지 언론과 한 인터뷰에서 “오랫동안 한 아파트에서 이웃으로 지낸 노인이 사망했는데, 엘리베이터로 시신을 옮기는 것조차 불허한다는 이웃 주민들에게 매우 화가 났다”면서 “엘리베이터가 작지도 않은데 왜 사망한 사람은 이를 이용하지 못하는 것이냐”고 반문했다. 이에 대해 해당 아파트 대표는 “아파트 주민 모두가 동의한 일”이라고 해명했지만, 이 사실이 알려지자 네티즌 사이에서는 비난이 쏟아졌다. 한 네티즌은 “누구나 어느 날 세상을 떠날 수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많은 빌딩에는 노인들도 함께 살고 있다. 이 노인들이 사망한 뒤 모두 엘리베이터를 이용할 수 없도록 한다면 이는 고인에게 매우 무례한 일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일부는 “해당 건물에 사는 아이와 여성들은 두려워할 수도 있을 것 같다”고 말했지만, 아파트 주민들이 고인과 유가족을 배려하는 차원에서 엘리베이터 사용을 금지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이 주를 이뤘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文대통령 “지역주의·색깔론, 분열의 정치는 끝났다”

    文대통령 “지역주의·색깔론, 분열의 정치는 끝났다”

    지방선거 이후 文정부 2기 시작 “‘대통령 개인기 때문’ 온당치 못해 靑 비서실·내각이 잘해준 덕분”“이번 선거를 통해서 지역으로 국민을 나누는 지역주의 정치, 그리고 색깔론으로 국민을 편 가르는 그런 분열의 정치는 이제 끝나게 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18일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국민이 선거로 지역주의와 색깔론을 종식한 것을 6·13 지방선거의 역사적 의미로 규정했다. 문 대통령에게 지역주의와 색깔론 타파는 자신의 꿈이자 노무현 전 대통령의 못다 이룬 꿈이었다. 노 전 대통령도 생전에 정치지형도를 1990년 3당 합당 이전으로 되돌려야 한다고 말해 왔다. 지난해 3월 부산체육관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영남권역 선출대회에서 문 대통령은 “빨갱이 종북 소리 들어가며 김대중·노무현을 지켰던 27년 인고의 세월, 저는 기억한다. 저뿐 아니라 영남 땅에서 민주당 깃발 지켜온 동지라면 누구라도 그 설움과 아픔, 가족들의 고통까지 생생히 기억한다”며 “이번에 우리가 정권을 교체하면, 영남은 1990년 3당 합당 이전으로 되돌아갈 것이다. 그 자랑스럽고 가슴 벅찼던 민주주의의 성지로 거듭날 것”이라고 연설했다.1990년 당시 집권당이던 민주정의당과 야당이던 통일민주당, 신민주공화당이 합당해 보수대연합인 민주자유당을 출범시킨 이후 부산·경남(PK)은 줄곧 야당의 ‘무덤’이었다. 노 전 대통령이 ‘지역주의 벽을 넘겠다’며 부산에 네 번 출마했지만 모두 낙선했다. 문 대통령도 2012년 19대 총선에서 부산 사상에 출마해 55.04%로 당선됐지만, 그해 12월 대선에서 부산 득표율 39.87%란 초라한 성적표를 쥐었다. 지역구도가 눈에 띄게 깨지기 시작한 건 2016년 20대 총선부터다. 민주당은 PK에서 8명(부산 5명·경남 3명)의 당선자를 냈고 2017년 19대 대선에서 문 대통령은 부산·울산 득표율 1위를 차지했다. 그 바탕에는 지역주의의 높은 벽에 도전했던 노 전 대통령의 눈물이 있었다. 문 대통령이 이날 각별히 노 전 대통령을 언급한 것도 그런 이유로 볼 수 있다. 청와대는 회의에서 이번 지방선거를 기점으로 문재인 정부 2기가 시작됐음을 선언했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지방선거 전이 문재인 정부 1기였다면 지금은 2기이고, 2020년 총선 이후는 3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선거로 나타난 민심의 요구를 국정운영 탈바꿈의 계기로 삼겠다는 것이다. 조국 민정수석은 더 나은 삶에 대한 국민의 기대가 높고 정부와 여당의 오만한 심리가 작동할 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크다고 지적하며 2기 문재인 정부의 과제로 ‘겸허한 정부, 민생에서 성과를 내는 정부, 혁신하는 정부’를 꼽아 문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또 집권세력 내부의 분열과 독선, 국민을 ‘계몽’의 대상으로 본 정책 추진, 측근 비리와 친·인척 비리, 민생 성과 미흡, 소모적 정치 논쟁 등으로 기대를 잃은 점을 역대 정부가 준 교훈으로 꼽았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문재인 정부를 탄생시킨 촛불혁명과 그 초심을 지속적으로 확인해야 하며, 국민의 삶을 변화시키지 못하는 정부는 버림받는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왔다”고 전했다. 문 대통령은 “일부에서는 대통령의 지지율이 높기 때문이다. 또는 대통령의 개인기가 그런 결과를 낳았다고 말씀하는 분들도 있지만 그건 정말 온당치 못한 이야기”라며 “대통령이 무언가 잘했다면, 또 잘한 것으로 평가받았다면 함께한 청와대 비서실이 아주 잘했다는 것이고, 문재인 정부 내각이 잘했다는 뜻”이라고 강조했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일본 기자가 맞춰 본 ‘김정은’이라는 퍼즐

    일본 기자가 맞춰 본 ‘김정은’이라는 퍼즐

    김정은/고미 요지 지음/배성인 옮김/지식의숲/296쪽/1만 5000원“현명한 조선인민 국군 육해공군 및 전략로켓군 장병 여러분….” 2012년 4월 15일 오전 10시 15분 평양 김일성광장. 김일성 주석 100회 생일을 맞아 열린 인민군 열병식에 수만 명의 시민이 운집한 가운데, 검은 인민복 차림의 한 젊은이가 낮은 목소리로 연설을 시작했다. 이런 자리가 익숙지 않은 듯 그는 시종일관 고개를 숙인 채 연설 중 몸을 흔들어댔다. 100㎏에 이르는 체구에 옆으로 바짝 치켜 깎은 머리는 과거 김일성 주석을 연상케 했지만, 몇 가닥 내려온 머리카락이 그의 앳된 모습을 그대로 보여 줬다. 김정일의 뒤를 이은 북한의 새로운 지도자 김정은이 공식 석상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 순간이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금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인물이다. 지난해 미사일 개발과 핵실험으로 한반도를 초긴장 상태로 몰아가더니, 돌연 올해 1월 평창동계올림픽에 참석하겠다고 해 우리를 놀라게 했다. 지난달 문재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 이어 지난 12일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도 만났다. 그야말로 ‘롤러코스터’와 같은 행보다. 도쿄신문 편집위원인 고미 요지가 ‘김정은’(지식의숲)으로 그를 분석했다. 고미 요지는 김정은에게 독살된 것으로 알려진 이복형 김정남과 생전에 인터뷰하고 2012년 ‘안녕하세요. 김정남입니다.’(중앙M&B)를 낸 이 분야 전문가다. 저자는 이번 책에서 김정은을 잘 아는 여러 사람을 만나고, 각종 보고서와 단독 입수한 자료를 더했다. 베일에 가려진 김정은의 어린 시절부터 권력 장악, 그리고 갑작스러운 북한의 최근 변화에 이르기까지 김정은을 비롯해 그의 주변과 북한 정세를 심도 있게 다뤘다.저자가 보여 주는 권력 승계 과정의 일화는 김정은의 성격을 그대로 보여 준다. 김정일은 “더는 세습에 의한 권력 승계는 없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2008년 뇌출혈로 쓰러졌다 일어난 뒤 생각이 바뀌었다. 김정일의 후계자 후보로 김정은의 형인 김정철과 김정남이 있었지만, 둘 다 부적합했다고 고미 요지는 설명했다. 김정철은 부끄럼을 많이 타는 성격이었다. 자유롭게 살기 원하는 김정남 역시 후계자감은 아니었다. 반면 셋째였던 김정은은 10대 때부터 사회에 관심이 많았다. 특히 야심이 넘쳤다. 김정일이 가족회의에서 “후계자는 정은이가 좋다고 생각한다”고 밝히자, 그의 고모인 김경희가 “분별도 없는 아이에게 어떻게 이 나라의 운명을 맡기느냐”고 반박했다. 그러자 김정은은 그 자리에서 크게 화를 내며 손에 들고 있던 젓가락을 내던지고 밖으로 나가버렸다. 스위스에서 공부하던 시절, 한 번은 여동생 김여정이 김정은을 “작은오빠”라고 부르자 화를 내기도 했다. 김여정은 그때부터 김정은을 “큰 대장 동지”라 부르게 됐다. 김정은이 제멋대로의 행보를 보이는 이유도 여러 사례로 분석했다. 저자는 이와 관련, “20년 동안 천천히 지도자로서 착실히 바닥을 다져 온 김정일과 달리 몇 년 만에 승계한 점, 생모인 고용희가 일본에서 태어난 귀국자라는 사실을 비롯해 후계자로서 여러 콤플렉스가 있었다”고 설명한다. 집권 초반 고모부 장성택, 현영철 인민무력상(국방장관) 숙청의 이유도 밝혀지지 않았던 일화로 설명한다. 예컨대 장성택이 쓰러질 정도로 술을 마시고 “이대로 두면 나라 망한다”는 말을 잠꼬대처럼 중얼거린 일, 현영철이 집에 도청장치가 설치된 것도 모른 채 “젊은 지도자를 모시는 게 힘들다”고 투덜거렸다가 김정은의 미움을 샀던 일 등이다.핵무기와 운반용으로 사용하는 탄도미사일 개발과 관련한 분석도 흥미롭다. 김정일과 김정은 부자가 등장하는 실록소설 ‘야전열차’를 비롯해 북한의 핵연료봉 추출 시기를 다룬 ‘영생’과 같은 소설, 그리고 한국에서 경호를 받는 주요 탈북자들과의 인터뷰 내용 등을 함께 수록했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기까지 핵무기를 카드로 사용할 것이라는 사실에 관해 저자는 이미 예고된 것이었다고 설명한다. 저자는 김정은이 펼치는 ‘핵과 미사일 정책’, ‘경제 정책’, ‘대외 관계 정책’ 등이 어떤 과정을 거쳐서 지금에 이르렀는지 면밀하게 파헤친다. 일본인 시각으로 서술한 부분들이 다소 불편하지만, 현재까지 파편으로만 알려졌던 김정은의 과거부터 현재까지를 가장 구체적으로 구성한 책으로 꼽을 만하다. 김정은의 행보 덕분에 그에 관한 경계가 잠시 무뎌졌지만, 저자는 여전히 김정은이 불안한 독재자라고 강조한다. “한반도에서 살얼음판 위를 신중히 걷는 듯한 위험한 날들이 이어질 것”이라는 저자의 경고도 새삼 다가온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월드피플+] 호주 20대 남성, 중국인 5명에게 장기 기증한 사연

    [월드피플+] 호주 20대 남성, 중국인 5명에게 장기 기증한 사연

    호주의 20대 청년이 고국이 아닌 지구 반대편에 떨어진 중국에서 장기기증을 통해 5명에게 새 삶을 선사한 사연이 알려져 감동을 주고 있다. 베이징청년보 등 현지 언론의 12일 보도에 따르면 장기를 기증한 주인공은 올해 27살인 호주 출신의 필립 핸콕은 지난 몇 년간 중국 남서부 쓰촨성 시난대학에서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쳐 왔다. 누구보다도 중국과 중국 문화, 중국인을 사랑했던 이 청년은 고국과 떨어진 곳에서도 씩씩하게 생활해왔지만, 제1형 당뇨병으로 인한 합병증 때문에 정신을 잃고 혼수상태에 빠지고 말았다. 핸콕은 혼수상태에 빠진 지 일주일 째 되는 날인 지난 달 9일 결국 세상을 떠났고, 그의 아버지는 아들의 생전 뜻에 따라 장기 기증을 결정했다. 의료진은 핸콕의 각막 2개와 간, 신장 2개, 심장과 폐 등의 장기 등을 이식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재빨리 수혜자를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머나 먼 타국 땅에서 호주인의 장기와 조직이 맞는 중국인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결국 그의 심장과 폐는 적합한 수혜자를 찾지 못했고, 그가 사망한 당일 다른 장기의 이식 수술이 이뤄졌다. 중국 내에서 외국인이 현지인에게 장기를 기증한 사례는 많지 않다. 쓰촨성 내에서는 최초이고, 중국을 통틀어서도 7번째에 불과하다. 핸콕의 신장을 받은 이는 올해 30세의 여성 환자와 40세의 남성 환자였다. 두 사람 모두 무사히 수술을 마치고 현재 회복중이다. 각막을 이식받은 환자들은 이미 병원을 떠나 집에서 건강을 회복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에게 영어 수업을 받았던 한 현지 학생은 “핸콕은 좋은 친구이자 음악적 재능을 가진 사람이었다”면서 “헤비메탈을 매우 좋아했으며 언제나 중국 전통문화에 큰 흥미를 보였다. 당뇨병을 앓고 있어서 여행을 다닐 때에도 먹는 것을 항상 조심해야 했지만, 그럼에도 건강을 유지했었다”고 회상했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여기는 일본] 사망확인 후 장례까지 치른 남편, 1년 만에 돌아온 사연

    [여기는 일본] 사망확인 후 장례까지 치른 남편, 1년 만에 돌아온 사연

    일본의 한 여성이 남편의 장례를 치른 지 1년 만에 멀쩡하게 살아 돌아온 남편과 조우했다. 무슨 사연일까? 뉴욕포스트 등 해외 언론의 13일 보도에 따르면 일본 도쿄에 사는 여성 A씨는 지난해 6월경 도쿄 동부의 한 강에서 발견된 시신이, 실종신고를 냈던 자신의 남편일 가능성이 있다는 경찰의 연락을 받았다. 당시 경찰은 해당 시신의 사망 추정시간이 남편의 실종 시기와 매우 유사했고, 40대 초반으로 추정되는 고인의 생전 나이 역시 실종자와 비슷하다는 점에서 곧바로 A씨에게 연락을 취했다. 현장에 도착한 실종자의 아내 A씨와 실종자의 형제는 육안으로 시신을 확인한 뒤 실종자라고 믿었고, 이 시신을 두고 장례식을 치르고 화장까지 마쳤다. 하지만 1년이 지난 5월, A씨는 도쿄 경찰서로부터 믿기 힘든 소식을 접했다. 실종-사망을 거쳐 화장까지 한 남편이 버젓이 살아있다는 내용이었다. 현지 경찰은 해당 남성이 어디에서 어떻게 거주하고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공개하지 않았으며, A씨의 남편은 지난 5월 무사히 집으로 돌아와 가족과 함께 생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에 따르면 A씨 가족이 장례를 치른 시신은 30대 후반의 남성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경찰은 발견된 시신이 외관상 30대 후반~40대 초반으로 보인데다, A씨 남편과 키가 똑같다는 이유로 A씨에게 연락을 취했다고 밝혔다. 또 시신으로 발견된 실종자가 범죄 전과가 없고 범죄를 저지를 위험이 낮다고 평가될 경우, 부검 등 추가적인 절차 없이 가족에게 인계돼 곧바로 화장하는 일본의 일반적인 절차에 따라 경찰은 곧바로 A씨에게 연락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도쿄 경찰은 “이러한 실수가 발생해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하며,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사진=123rf.com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6·12 북미 정상회담] “원수가 외나무다리서 만나 껴안아”… 두 정상의 악수에 환호

    [6·12 북미 정상회담] “원수가 외나무다리서 만나 껴안아”… 두 정상의 악수에 환호

    “한 편의 영화 보는 것같이 신기 죽기 전 통일 오지 않을까 기대” “남의 잔치 안 되게 냉정해져야” “트럼프 ‘여유’·金 ‘인간적’” 평가도북·미 정상회담이 열린 12일 대한민국 국민의 시선이 온통 싱가포르로 향했다. 시민들은 양국 정상의 첫 만남이 갖는 상징적 의미를 높게 평가했고, 탈북민들은 “감회가 새롭다”며 회담 결과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역사적인 만남을 갖기 30분 전인 오전 9시 30분쯤 서울역 1층 대합실 TV 앞에는 시민들이 삼삼오오 모여 뉴스특보를 지켜보고 있었다. 10시가 다가올수록 사람들은 점점 불어났다. 적어도 50여명은 돼 보였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양국의 국기를 배경으로 한 레드카펫 위에서 악수를 하고 기념사진을 찍자 시민들은 손뼉을 치며 환호했다. 80대로 보이는 한 노인은 “잘한다 잘해”라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TV 모니터로 전해지는 역사적인 광경을 스마트폰으로 찍어 남기는 사람도 많았다. 서울 용산역 대합실의 분위기도 비슷했다. 김완수(49)씨는 “미국과 북한이 만나는 모습을 생전에 보게 돼 마음이 뿌듯하다”면서 “아직도 실감이 안 난다.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같이 신기하다”고 말했다. 이어 “다만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하지 못한 점이 아쉽다”면서 “죽기 전에 통일의 그날이 오지 않을까 기대된다”고 전했다. 박모(53)씨는 “두 사람이 서로 원하는 것을 잘 아니까 협상에서도 서로 잘 주고받을 것 같다. 두 사람이 ‘평화’라는 세계인의 열망을 잘 풀어낼 것으로 기대된다”면서 “저 자리를 조율한 것이 문 대통령이라는 점도 자랑스럽다”며 뿌듯해했다. 최인언(30)씨는 “이날 만남이 ‘불신과 대결’의 역사가 ‘신뢰와 평화’의 역사로 대전환하는 계기가 되길 소망한다”고 바랐다. 전문가 못지않은 관전평을 내놓는 시민도 있었다. 김효찬(61)씨는 “트럼프가 감정 기복이 심한 줄 알았는데 아주 여유 있고 유연한 모습을 보여 줬고, 김정은도 자존심이 센 줄 알았는데 국익을 위해 자존심도 내려놓을 줄 아는 인간적인 리더십을 보여 줬다”고 평가했다. 용산역에서 만난 이정우(33)씨는 “감격스러운 측면은 있지만 냉정하게 생각하면 남의 잔치에 불과할 수도 있다”면서 “우리의 국익을 위해 향후 북한과 미국, 그리고 중국과의 관계를 어떻게 구축해 나가야 할지 냉정하게 짚고 가야 한다”고 말했다. 황모(61)씨는 “원수가 외나무다리 위에서 만나 껴안는 상황”이라면서 “남북이 분단된 이후 가장 감동적인 이벤트”라고 표현했다. 개성공단에 입주했다가 공단이 폐쇄돼 되돌아온 기업인들의 마음속에는 다시 ‘희망’이 싹트기 시작했다. 개성공단기업 비상대책위원회 소속 기업 대표 15명은 이날 오전 9시 30분쯤부터 서울 여의도 개성공단기업협회 사무실에 모여 북·미 두 정상이 만나는 장면을 함께 시청했다. 이종덕 영이너폼 대표는 “북한이 처음으로 세상 밖으로 나왔다. 그래서 저희는 다시 개성 안으로 들어가고 싶다”면서 “오늘 회담 결과에 따라 북한과의 경제협력 흐름이 크게 달라질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이어 “김 위원장이 ‘여기까지 오는 게 쉽지 않았다’고 했는데, 우리도 개성공단이 폐쇄된 이후 2년 4개월을 버텨 오기가 쉽지 않았다”면서 “이번 회담을 계기로 한반도에 진정한 평화가 찾아와 남북이 하나의 공동체 시장을 형성했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이상협 협진카바링 대표는 “2016년 개성공단이 문을 닫았을 때 깜깜했던 시야에 이제야 한 줄기 빛이 들어온 느낌”이라면서 “북한이 핵을 포기해야 공단이 다시 열린다고 했는데, ‘비핵화’에 합의했으니 올해 안에 개성공단이 재개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탈북민들은 우려 섞인 기대감을 내비쳤다. 2000년 탈북한 서재평 탈북자동지회 사무국장은 “북·미 회담에 대한 탈북민들의 기대는 남다르다”면서 “김 위원장이 비핵화를 철저히 지키는 부분도 중요하지만 북한의 인권문제, 특히 북한 주민들의 자유와 인권을 보장하고 개혁·개방을 통해 그들의 삶이 나아질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 추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탈북민들 사이에는 아직 김 위원장이 변하지 않았다고 보는 시선이 많다”면서 “김 위원장이 체제의 안전을 보장받는 조건으로 개혁·개방의 길을 가겠다는 뜻을 밝히길 바란다”고 기대했다. 사건팀 dream@seoul.co.kr
  • BMW 승용차에 아버지 묻어 장례식 치른 아들

    BMW 승용차에 아버지 묻어 장례식 치른 아들

    한 남성이 고인이 된 아버지를 관 대신 차에 묻는 독특한 장례식을 치뤄 소셜미디어에서 화제가 됐다. 11일(이하 현지시간) 영국 데일리메일 등 외신에 따르면, 아주부이케라는 이름으로만 알려진 부유한 남성은 최근 나이지리아 이힐알라의 외딴 마을에 사는 아버지를 노령으로 잃었다. 아주부이케는 늘 아버지에게 ‘언젠가 눈이 부실 만큼 멋진 승용차 한대를 사주겠다’고 약속해왔다. 그러나 약속을 지키기도 전에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그는 마지막 여정을 제대로 배웅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그 길로 지역 BMW 매장으로 가서 6만 6000파운드(약 9500만원)라는 큰 돈을 쏟아부어 새 차를 구매했다. 늦었지만 생전에 약속했던 고급 자동차 안에 아버지를 태운 뒤 죽음을 기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장례식에 모인 마을 사람들과 상여꾼들은 통나무를 이용해 손으로 직접 1.8m 깊이의 움푹 파인 묏자리에 고인의 시신을 태운 차를 내려놓았다. 이 같은 장례식에 대해 일부 주민들은 “위성 네비게이션이 장착된 자동차가 고인이 천국으로 가는 길을 찾게끔 도와줄 것”이라고 비꼬았다. 페이스북에서 해당 장례식을 접한 대부분의 사람들도 “살아 계실때 자동차를 사드려야지, 이는 어리석은 행동이자 자기과시에 불과하다”거나 “돈 낭비다. 더 좋은 용도로 사용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사진=더선 안정은 기자 netineri@seoul.co.kr
  • 故 조민기 딸, “일각의 보도 무책임... 도넘은 글에는 대처”

    故 조민기 딸, “일각의 보도 무책임... 도넘은 글에는 대처”

    배우 고(故) 조민기의 딸 윤경씨가 10일 SNS를 재개하면서 앞으로의 활동 계획과 악성 댓글에 대한 대처 의지 등을 밝혔다. 윤경 씨는 이날 인스타그램에 올린 글에서 “(그동안) 저로 인해 다시금 좋지 못한 기억이 떠오르거나, 다시 부정적으로 회자될 피해자들을 위해 제 계정을 비공개로 돌렸다. 그리고 원래 하던 학업에 집중하고 내년에 가게 될 대학원 박사 과정을 위해 성실히 준비해가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 “그런데 오늘 하루아침에 (한 언론 보도로 인해) 연예인 지망생이 되어 있었다”며 “제 꿈은 화장품을 만드는 사람이다. 그러나 출처 불분명한 이야기를 통해 전 하루아침에 TV에 나오고 싶어했지만 무산된 사람이 돼 있었다”고 관련 보도를 반박했다. 한 언론 매체는 이날 윤경씨가 연예계 데뷔를 계획했지만 조민기의 성 추문이 터지면서 무산됐다고 보도했다. 윤경씨는 이에 대해 “대학원 생활 및 공부 과정을 공유하기 위해 ‘브이로그’를 시작하고 싶어 관련 기획사와 몇 번의 접촉이 있었지만 제 콘텐츠는 제가 시작하고 저만의 색을 갖춘 후에 계약하는 것이 맞다고 판단해 생각을 바꿨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저를 향한, 또 저희 가족을 향한 쓴소리들 모두 읽어보고, 저 또한 이를 통해 많은 것들을 다시 생각해봤다”며 “그러나 사실이 아닌 도 넘은 댓글과 글들에 대해서는 이제 대처를 하려고 한다”고 강조했다. 조민기는 미투 운동 여파에 지난 3월, 성 추문 의혹으로 경찰 조사를 앞두고 세상을 떠났다. 그는 생전 딸과 함께 가족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딸 역시 화제의 인물이 된 바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알쏭달쏭+] 우주인이 로켓 탑승 전 ‘버스 바퀴’에 소변보는 이유

    [알쏭달쏭+] 우주인이 로켓 탑승 전 ‘버스 바퀴’에 소변보는 이유

    현지시간으로 지난 6일 카자흐스탄의 마이코누르 우주선 발사기지에서 러시아의 소유즈 MS-09호 로켓이 우주비행사 3명을 태우고 국제우주정거장(ISS)로 향한 가운데, 우주비행사 중 한명인 러시아의 세르게이 프로코프에프의 독특한 ‘의식’이 또 한번 세간의 관심을 사로잡았다. 라이브사이언스와 스페이스닷컴 등 과학전문매체의 7일 보도에 따르면 가족들과 인사를 나눌 수 있는 장소에서 로켓 탑승장으로 출발하는 버스에 탔던 세르게이 프로코프에프는 갑자기 버스에서 내려 자신이 탄 버스의 오른쪽 뒤 타이어 앞에서 소변을 본 뒤 다시 버스에 탑승했다. 라이브사이언스는 우주비행사의 이 같은 행동이 인류 최초로 우주비행에 성공한 러시아의 우주비행사인 유리 가가린을 기리기 위한 행동이라고 설명했다. 유리 가가린은 1961년 4월 12일, 인류역사상 최초로 우주선 보스토크 1호를 타고 우주로 나갔다. 러시아 우주비행사와 동료들 사이에서는 유리 가가린을 기리는 의미에서 치르는 다양한 의식이 존재한다. ISS로 향하는 로켓에 몸을 싣기 전 그가 묻힌 무덤을 찾는 우주비행사도 있고, 생전 그가 자주 찾았던 연구실에 들르는 우주비행사도 있다. 러시아우주국 관계자들은 동전을 레일 위에 올려놓고 이번 비행이 성공적일 수 있을지를 점치기도 한다. 로켓을 실은 기차가 지나간 뒤 동전이 납작해져 있으면 비행이 성공적일 것이라고 믿는다. 물론, 100t을 훌쩍 넘는 기차를 견딜만한 동전은 없었고, 이 때문인지 러시아의 우주선 발사는 줄곧 성공가도를 달려왔다. 이번 발사 현장에서 세르게이 프로코프에프가 행했던 의식은 유리 가가린이 1961년 당시 발사장으로 향하던 도중 버스에서 내려 바퀴에 소변을 본 뒤 생긴 것이다. 당시 사람들이 그에게 그런 행동을 한 이유를 묻자 ‘자연의 부름’(Call of nature)라고 답한 일화는 러시아 우주비행사 사이에서 전설처럼 여겨진다. 이 같은 전통은 러시아뿐만 아니라 독일이나 미국 출신의 우주비행사에게도 전해져 내려온다. 단 여성 우주비행사라면 이 전통을 따르지 않아도 되고, 본인이 원한다면 미리 준비한 자신의 소변을 뒷바퀴에 뿌리는 의식으로 대체한다. 캘리포니아주립대학의 역사학자인 앤드류 젠크스는 “유리 가가린은 그의 성취보다 훨씬 더 신화적인 존재”라면서 “가가린은 다른 우주비행사와 비교하기 어려운 국가적인 영웅이었고, 이는 일반인들의 삶에 훨씬 더 광범위한 영향을 미쳤다”고 전했다. 사진=연합뉴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와우! 과학] 우주인이 로켓 탑승 전 ‘버스 바퀴’에 소변보는 이유

    [와우! 과학] 우주인이 로켓 탑승 전 ‘버스 바퀴’에 소변보는 이유

    현지시간으로 지난 6일 카자흐스탄의 마이코누르 우주선 발사기지에서 러시아의 소유즈 MS-09호 로켓이 우주비행사 3명을 태우고 국제우주정거장(ISS)로 향한 가운데, 우주비행사 중 한명인 러시아의 세르게이 프로코프에프의 독특한 ‘의식’이 또 한번 세간의 관심을 사로잡았다. 라이브사이언스와 스페이스닷컴 등 과학전문매체의 7일 보도에 따르면 가족들과 인사를 나눌 수 있는 장소에서 로켓 탑승장으로 출발하는 버스에 탔던 세르게이 프로코프에프는 갑자기 버스에서 내려 자신이 탄 버스의 오른쪽 뒤 타이어 앞에서 소변을 본 뒤 다시 버스에 탑승했다. 라이브사이언스는 우주비행사의 이 같은 행동이 인류 최초로 우주비행에 성공한 러시아의 우주비행사인 유리 가가린을 기리기 위한 행동이라고 설명했다. 유리 가가린은 1961년 4월 12일, 인류역사상 최초로 우주선 보스토크 1호를 타고 우주로 나갔다. 러시아 우주비행사와 동료들 사이에서는 유리 가가린을 기리는 의미에서 치르는 다양한 의식이 존재한다. ISS로 향하는 로켓에 몸을 싣기 전 그가 묻힌 무덤을 찾는 우주비행사도 있고, 생전 그가 자주 찾았던 연구실에 들르는 우주비행사도 있다. 러시아우주국 관계자들은 동전을 레일 위에 올려놓고 이번 비행이 성공적일 수 있을지를 점치기도 한다. 로켓을 실은 기차가 지나간 뒤 동전이 납작해져 있으면 비행이 성공적일 것이라고 믿는다. 물론, 100t을 훌쩍 넘는 기차를 견딜만한 동전은 없었고, 이 때문인지 러시아의 우주선 발사는 줄곧 성공가도를 달려왔다. 이번 발사 현장에서 세르게이 프로코프에프가 행했던 의식은 유리 가가린이 1961년 당시 발사장으로 향하던 도중 버스에서 내려 바퀴에 소변을 본 뒤 생긴 것이다. 당시 사람들이 그에게 그런 행동을 한 이유를 묻자 ‘자연의 부름’(Call of nature)라고 답한 일화는 러시아 우주비행사 사이에서 전설처럼 여겨진다. 이 같은 전통은 러시아뿐만 아니라 독일이나 미국 출신의 우주비행사에게도 전해져 내려온다. 단 여성 우주비행사라면 이 전통을 따르지 않아도 되고, 본인이 원한다면 미리 준비한 자신의 소변을 뒷바퀴에 뿌리는 의식으로 대체한다. 캘리포니아주립대학의 역사학자인 앤드류 젠크스는 “유리 가가린은 그의 성취보다 훨씬 더 신화적인 존재”라면서 “가가린은 다른 우주비행사와 비교하기 어려운 국가적인 영웅이었고, 이는 일반인들의 삶에 훨씬 더 광범위한 영향을 미쳤다”고 전했다. 사진=연합뉴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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