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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멀쩡한 듯한 도시인의 삶 속, 실직·이혼…도처에 상실감

    멀쩡한 듯한 도시인의 삶 속, 실직·이혼…도처에 상실감

    추락하는 비행기를 몰며 마이크에 대고 절망적으로 구조요청을 하는 환청, 흰 벽지에서 푸르스름한 얼룩을 발견하고 하루 종일 걸레로 닦아내야 하는 환각, 외계에서 이악스러운 지구인을 멸망시키기 위해 ‘분노의 폭풍’ 작전을 펼친다는 망상까지. 소설가 박성원(43)의 다섯 번째 소설집 ‘하루’(문학과지성사 펴냄)는 잿빛 하늘 아래 오갈 곳이라고는 집과 사무실밖에 없는 답답한 도시인들의 삶 7편을 널어놓았다. 빨래집게도 없이. 그래서 겉으로는 멀쩡하고 화려해 보이는 도시인의 삶에 가족 상실이라는 스트레스나 이혼, 해고, 실직이라는 예상치 못한 태풍이 불어닥치면 ‘그의 하루’가 어떤 수렁에 빠지게 되는지를 보여준다. 도시적 삶의 동력이라는 것이 그저 관성에 불과했던 것임을 깨닫는 순간이고, 한순간도 고려하지 않은 불시착이다. 불시착은 실패하는 게 다반사다. ‘묻지마 범죄’가 기승을 부리는 한국의 현실 같다. 염세적이고 비극적인 소재에 쭉 빨려 들어간 소설가의 그럴 듯한 ‘구라’라고 하기에는 그의 소설은 현실적이다. 그러니 분노와 복종 속에서 갈등하지만 결국 분노를 억누르고 복종해 밥벌이하는 구차한 도시인의 삶에 환청이나 환각, 망상을 기본 옵션으로 장착하게 된다. 도시에서의 삶은 “벗어나면 죽음이고 진보하지 않으면 멸종이다.”(43쪽) 그래서 도시인들은 타인과의 인과를 고려하지 않은 채 자신의 궤도를 지키고자 안간힘을 쓴다. 과연 무(無)인과는 가능할까. ●잠시 세워둔 차는 아이와 함께 견인되고… 표제작 ‘하루’는 인과의 무서움을 연말의 어떤 하루로 고정해 도미노처럼 전개한다. 인터넷 뱅킹을 할 줄 모르는 여자는 한겨울에 열이 나고 아픈 아이를 차에 태워 은행으로 간다. 연말 도로 정체를 간신히 뚫고 은행 영업시간 안에 간신히 도착했지만, 여자는 도로에 차를 불법주차해야 했다. 그 차 안에 아이가 있다. 여자의 차는 검게 코팅돼 내부가 보이지 않는다. 한참을 걸려 은행업무를 다 보고 나온 여자는 자신의 차가 실종됐음 알게 된다. 아이도 사라졌다. 그러나 여자의 차는 실종된 것이 아니었다. 견인됐지만, 견인 장면을 목격하고 견인고지서를 무심히 가져간 어떤 소년 탓에 알 수 없었을 뿐이다. 그 소년은 여자의 남편이 이날 점심 때 해고를 통보한 친한 후배의 아들이다. 여자의 남편은 후배에게 해고를 통보하면서 “나를 원망하지 말게. 나는 맡은 일을 했을 뿐이니.”라고 말했고, 아픈 아이가 있는 줄 모르고 차를 견인했던 기사는 “저는 그저 제가 맡은 일을 했을 뿐입니다.”라고 한다. 그렇다. “그저 우리의 일을 할 뿐”이라고 변명하기에는 서로 너무 많은 인과적 관계 안에 놓여 있다고 박성원은 말한다. “누군가의 하루를 이해한다면 그것은 세상을 모두 아는 것이다.”(10쪽)라고 서술하는 이유다. 남의 실직이나 이혼, 상실은 나의 실직이거나 이혼, 상실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아이 잃은 날을 남편 생일로 착각하기도” 어느 도시에서 시위대를 진압한 뒤 화가 나면 송전탑에 올라가는 군인출신 아버지를 둔 내가 도청 앞에서 있었던 시위에서 죽은 아버지를 둔 유빈을 만나 불륜에 빠지는 단편 ‘분노와 복종 사이에서 그녀를 찾아줘’나, 아이를 잃은 날을 남편 생일로 착각하고 남편의 직장동료를 불러다 생일파티를 연, 마흔이 되도록 밥벌이를 해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는 여자가 어느 낯선 도시로 흘러들어가 일자리를 찾는 단편 ‘얼룩’ 등은 우리가 삶에서 실족해 ‘더 이상 과거처럼 잘살아지지 않는’ 어느 하루를 그렸다. ●“도시의 극단적 풍경은 신기루 같아” 박성원은 “대구에서 나고 자라 영남대 행정학과를 마치고 25살(1994년)에 등단했다. 동국대 대학원에서 문학을 전공하면서 서울에서 20여년째 살고 있는데, 도시의 극단적인 풍경은 화려하지만, 고립과 쓸쓸함이 가득한 사람들이 모여서 만든 신기루 같은 것으로 생각했다.”면서 “불야성을 이루며 흥청거리는 홍대 앞에서 상대적 박탈감과 고독을 느끼기에 이런 소설을 쓰고 있다.”고 했다. 자연을 품은 농촌은 고즈넉하지만, 도시와 달리 고립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세련된 도시의 언어와 감성으로 소설을 쓰는 그이지만 대구 사투리가 여전하다. 올 가을학기부터 대구 계명대 문창과 교수로 자리를 옮기는 그의 소설은 앞으로 어떻게 변할까?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9남매 나이 합산 818년…기네스 오른 장수가문 화제

    이탈리아에 사는 9남매가 세계에서 가장 많은 합산 나이를 가진 최고령 남매로 기네스에 등재됐다. 이탈리아 사르디니아에 살고 있는 멜리스가 남매의 나이를 합산하면 무려 818년. 현지 언론은 “기네스가 7년에 걸친 조사 끝에 멜리스가를 세계에서 가장 많은 합산 나이를 가진 남매로 공인하고 기록을 등재했다.”고 보도했다. 기네스에 따르면 2012년 6월1일 현재 멜리스가 남매의 나이를 합산하면 정확히 818년 205일이었다. 페르다스데포구 출신인 멜리스가는 장수집안이다. 자식 9명, 손자 24명, 증손자 25명, 현손 3명 등 대가족을 이룬 최고어른이자 큰언니 콘솔라타는 22일로 105번째 생일을 맞았다. 둘째 클라우디아도 올해 99세지만 혼자서 성당 미사에 참석할 정도로 건강하다. 셋째 마리아(97), 넷째이자 장남인 안토니오(93), 다섯째 콘세타(91), 여섯째 아돌포(89), 일곱째 비탈리오(86), 여덟째 비탈리아(81), 막내(78) 등이 장수계보를 잇고 있다. 일곱째 비탈리오는 고향 페르다스데포구의 한 식당에서 현역으로 일하며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다. 흥미로운 건 사르디니아에 사는 노인 중 유난히 장수가 많다는 점. 현지 언론은 “사르디니아에 사는 노인 중 100세 이상이 인구 10만 명당 22명으로 이탈리아 평균 8명을 훨씬 웃돈다.”며 장수의 도시가 또 다시 새로운 기록을 낳았다고 보도했다. 손영식 해외통신원 voniss@naver.com
  • 생일날 케이크 없다고 다리위서 투신한 男

    ”생일날인데 케이크가 왜 없어!” 자신의 생일날 축하 케이크가 없다는 이유로 자살을 시도한 한 남자의 황당한 사연이 전해졌다. 지난 16일 저녁 타이완 가오슝시에 사는 한 남성(27)이 머리 끝까지 화가 난 채 집을 뛰쳐나와 다리 위에 올라가 투신했다. 이같은 상황을 목격한 동네 주민들이 급히 소방 구조대에 신고했으며 곧바로 수색이 시작됐다. 샅샅이 수색하던 구조팀은 다행히 강기슭에서 진흙 투성이가 된 남자를 발견해 응급처치를 한 후 병원으로 후송했다. 적절한 치료 덕에 남성은 무사히 목숨을 건졌으나 투신 사유를 조사한 현지 경찰은 황당함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경찰은 “남성은 이날 가족들과 생일 잔치를 하던 중 케이크가 없는 것을 알고 어머니와 말다툼을 했다.” 면서 “화가 난 남성은 참지못하고 자택 부근 다리에 올라가 투신 자살하려고 했다.”고 밝혔다. 연락을 받고 병원을 찾은 어머니는 그러나 “아이가 정신적으로 장애가 있다. 평소에도 정서가 매우 불안정하다.”고 말했다.   인터넷뉴스팀 
  • 피해자 ‘마음’ 챙긴 美 사법부 판결 2제

    미국 사법부는 피해자의 신체적·물질적 피해 못지않게 ‘정신적 피해’를 중시하는 경향이 짙다. ‘정신적 피해’에 대한 천문학적 규모의 손해배상 판결이 종종 나와 화제가 되곤 한다. 15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는 최근의 두 사례를 보도했다. 직장 성희롱 40억원 #2006년 4월 카르멘 진뱁타이스트(43·여)는 워싱턴DC의 시립 수영장 ‘타코마 아쿠아틱 센터’에 시급 13.5달러의 안전요원으로 채용됐다. 일을 시작한 직후부터 직장상사인 로드니 위버의 성희롱이 시작됐다. 로드니는 그녀에게 “남자친구가 있느냐.”며 데이트를 신청했고, 카르멘이 거부하자 그녀의 머리카락을 만지는 한편 여성 성기를 언급하면서 “내 생일에 그것을 원한다.”고 오히려 성희롱 강도를 높였다. 카르멘은 견디다 못해 서면으로 윗선에 성희롱 사실을 보고했다가 되레 해고를 당했다. ●시립 수영장, 보고하니 되레 해고… “워싱턴DC가 배상하라” 평결 연방지방법원 배심원단은 지난 10일 카르멘의 정신적 피해를 인정해 워싱턴DC 당국이 350만달러(약 40억원)를 배상하라고 평결했다. 특히 배심원단은 이례적으로 시 당국에 성희롱 예방 교육을 제도화하고 성희롱 고발 접수 및 조사 시스템을 강화할 것을 권고했다. 카르멘은 현재 사립 수영장의 안전요원으로 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에이즈 오진 200억원 #2001년 워싱턴DC에 거주하던 테리 헤저페스(52)는 에이즈(AIDS) 검사를 위해 ‘위트먼 워커 클리닉’에 갔다. 여자친구가 에이즈에 감염된 사실을 알고 자신의 감염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검사 결과 음성 반응이 나왔지만 병원 직원이 실수로 ‘양성 반응’이라고 적고 말았다. 의사는 진단 차트를 주의깊게 재점검해보지도 않고 에이즈 환자로서의 주의사항만 설명했다. 그후 4년 간 테리는 우울증으로 직장도 그만두고 술과 마약에 의지하며 살았다. ●우울증·마약중독 정신피해… 대법 선고 합의 2005년 6월 테리는 다른 병원에서 에이즈 치료를 받을 결심을 했고, 해당 병원은 ‘당연한 절차’에 따라 혈액검사를 했다. 감염된 적이 없으니 당연히 음성반응이 나왔다. 2개월 뒤 그는 위트먼 워커 클리닉을 상대로 2000만달러(약 230억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이듬해 워싱턴DC 지방법원은 “오진으로 인해 육체적 피해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소송을 기각했다. 테리는 2009년 항소했고, 지난해 항소심은 “정신적 피해가 인정된다.”며 원고 일부승소 판결을 내렸다. 대법원 심리를 1주일 앞둔 지난 7일 테리와 병원 측은 극적으로 ‘합의’했다. 합의금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소송가액인 2000만 달러에 근접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워싱턴 김상연특파원 carlos@seoul.co.kr
  • [지금 대전청사에선…] 기관장들의 이색 소통법

    정부대전청사 기관장들이 내부 소통에 적극적이다. 권위를 뺀 소탈한 스킨십이 특징이다. 기관장과 직원 간의 간격이 좁아지면서 청장의 생일에 여성 공무원들이 꽃다발을 선물하고, 케이크를 함께 자르는 등 훈훈한 장면이 연출되고 있다. 김호원 특허청장은 지난달부터 사무관 이하 직원들과 ‘달달한 런치 타임’을 갖고 있다. 내부 인트라넷을 통해 신청하면 비서관이 대상자를 선정한다. 지난달 20, 23일 두차례 진행된 달달한 점심에는 각각 12명이 참여했다. 이 자리에서는 정책과 관련한 제언에서 가정과 일의 조화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 등 개인의 신변잡기까지 다양한 주제가 올랐다. 김 청장은 9월부터 대상을 과장으로 확대하고, 참석자는 줄여 내실화할 계획이다. 이돈구 산림청장은 현장 직원들에게 민원 해결사로 통한다. 학자 출신으로 직원들과 대화에 적극 나서면서 인기가 높다. 외국어 능통자의 본청 진입, 생이별 중이던 부부 공무원의 합방 등이 직원과의 대화를 통해 해결되기도 했다. 특히 책을 보내달라는 민원이 많다는 후문이다. 강호인 조달청장과 우기종 통계청장은 현장 스킨십에 적극 나서고 있다. 강 청장은 직급별 연찬회를 따로 갖는가 하면 직원들과의 오찬이나 티 타임에는 간부들을 배석시키지 않는 등 격의 없는 대화의 장을 조성한다. 취임 99일이던 지난 14일 직장협의회 대표단과 점심을 하는 자리에서는 직협 대표들이 준비한 케이크가 등장하기도 했다. 우 청장은 통계청의 40여개 지방사무소를 섭렵한 첫 기관장이다. 직원들과 격의 없이 대화하고 동호회 활동에도 적극 참여한다. 대전청사공무원연합(대공연) 관계자는 “기관장들이 벽을 스스로 무너트리고 직원들과 소통을 강화하려는 변화는 매우 고무적”이라며 “대화 주제는 주로 구성원의 사기진작을 위한 내부 사안”이라고 말했다. 정부대전청사 박승기기자 skpark@seoul.co.kr
  • [부고] ‘초라한 더블보다 화려한 싱글’ 작가 헬렌 걸리 브라운

    에세이 ‘나는 초라한 더블보다 화려한 싱글이 좋다’의 작가로 유명한 여성 잡지 코스모폴리탄의 전설적인 편집장 헬렌 걸리 브라운이 13일(현지시간) 뉴욕의 한 병원에서 사망했다. 90세. 대학 졸업 후 광고 회사에서 카피라이터로 일하던 브라운은 1962년 독신 여성들도 섹스가 필요하다는 내용을 담은 ‘섹스와 독신 여성’이라는 책을 발간해 일약 명사로 떠올랐다. 1965년 코스모폴리탄의 편집장을 맡은 이후 32년간 잡지를 통해 젊은 여성들의 성(性), 인간 관계, 돈과 성공에 대해 솔직하고 거침없이 전달하며 여성을 위한 ‘성의 혁명’을 주도해 왔다. 잡지는 1983년 절정기 때 300만부 이상 팔리기도 했다. 현재 코스모폴리탄은 세계 100여개국에서 35개의 언어로 출간되고 있다. 생전에 성형수술을 옹호하고 자신의 코 성형 사실에 대해 솔직하게 고백했던 브라운은 60세 생일에 “뚱뚱하면 60세에 절대 섹시할 수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브라운은 37세에 코스모폴리탄 편집장 출신의 데이비드 브라운과 결혼했다. 데이비드는 이후 영화제작자로 변신해 ‘조스’, ‘스팅’ 등을 만들었다. 조희선기자 hsncho@seoul.co.kr
  • 김장훈 3일간 헤엄쳐 독도 바로 앞에서…

    김장훈 3일간 헤엄쳐 독도 바로 앞에서…

    가수 김장훈 일행이 광복절 아침 독도를 수영으로 횡단하는 데 성공했다. 김장훈과 배우 송일국, 밴드 피아(옥요한, 헐랭), 한국체육대 수영부 학생 40여 명은 경북 울진군 죽변-독도 간 직선거리 220㎞를 릴레이로 수영해 15일 오전 7시30분 마지막 주자가 독도에 입도했다. 지난 13일 죽변항에서 출정식을 갖고 오전 7시부터 수영에 나선 지 48시간 30분 만으로 당초 예상한 총 55시간보다 앞당겨 완주에 성공했다. 앞서 ‘아시아의 물개’ 고(故) 조오련이 2005년 두 아들과 함께 울릉도-독도를 횡단했고 2008년 독도를 33바퀴 헤엄쳐 돈 적은 있지만 유명인이 육지에서 독도로 횡단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당초 김장훈 횡단 팀을 실은 모선(母船)인 한국해양대 실습선 한나라호는 15일 오전 5시께 독도 인근 해역에 도착했다. 그러나 독도수비대가 2-3m 높이의 거센 파도를 이유로 선박 접안을 불허하자 김장훈 등은 고심 끝에 수영 실력이 뛰어난 한체대 학생 2명(정찬혁.체육과 3학년, 이세훈.체육과 4학년)만 헤엄쳐 독도에 입도하기로 결정했다. 이들은 안전망도 없이 바다에 뛰어들어 극적인 성공을 이뤄냈다. 한나라호에서는 김장훈과 일행이 부르는 ‘독립군 애국가’가 울려 퍼졌다. 일행은 마지막 주자가 독도 땅을 밟는 순간을 지켜보며 서로를 부둥켜안고 기뻐했다. 당초 전원이 독도 선착장에 오른 뒤 김장훈과 피아가 자축 공연을 열 예정이었지만 정박이 불가능해 취소되면서 선상 자축으로 대신했다. 김장훈은 “함께 독도에 들어가지 못한 건 아쉽지만 한체대 학생들이 대견하다”며 “우리 젊은이들이 독도에 관심이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는 데 의미를 두고 싶다. 3일간의 여정은 충분히 성과가 있었고 보람을 느낀다”고 전했다. 3일간의 대장정에는 난관도 많았다. 폭우와 거센 파도 등으로 선수들은 구토를 했고 일부는 저체온증으로 탈진 증세를 보이기도 했다. 또 안전망에 그물이 쳐 있었지만 틈새로 들어오는 해파리로 고충을 겪었다. 수영 대기자를 안전 펜스까지 실어나르던 보트가 파손돼 횡단을 중단할 위기에도 처했다. 수영 릴레이 첫 주자로 나선 김장훈도 공황장애가 재발했지만 링거를 맞으며 버텼고 한 차례 더 입수하는 강한 정신력을 보여줬다. 그는 지난 14일 배에서 생일을 맞기도 했다. 이번 횡단은 지난 10일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과 런던올림픽 축구대표팀 박종우의 ‘독도 세리머니’로 독도에 대한 관심이 고조된 터라 국내외 언론의 관심을 모았다. 미국 CNN은 지난 14일 “한국의 유명 록 가수가 동해(the East Sea), 또는 일본해(Sea of Japan)에 있는 바위섬으로 헤엄쳐 외교적 분쟁(diplomatic row)으로 들어갔다”고 보도했다. 또 영국 일간지 텔레그라프 인터넷판도 “독도에 도착하면 ‘우리땅’이라고 말하지 않겠다. 명백히 우리의 영토이기 때문이다”라는 김장훈의 출정식 발언을 전했다. 임무를 완수한 김장훈은 동해해경 3천t급 경비함을 타고 울릉도로 건너와 횡단 성과에 대해 브리핑할 예정이었으나 공황장애 재발로 병원 치료를 받기 위해 강원도 동해 묵호항으로 배를 돌렸다. 김장훈 소속사 관계자는 “묵호항에 도착하면 강릉아산병원으로 이송해 진단을 받을 예정”이라며 “김장훈 씨 일행이 탄 배가 울릉도 인근까지 왔으나 선박 접안이 어려울 정도의 파도로 뱃멀미까지 겹쳐 공황장애 증세가 심해진 것 같다”고 설명했다. 독도 횡단 성공 소식에 네티즌의 응원도 이어졌다. 인터넷에는 ‘김장훈 씨가 진정 애국자네요. 빠른 완쾌를 바란다’ ‘기부에서 시작해 이번 고행으로 보여준 김장훈의 나라 사랑은 이시대 귀감’ 등의 댓글이 이어졌다. 연합뉴스
  • 장수 어르신 생신잔치상 강동구 직접 차려드려요

    장수 어르신 생신잔치상 강동구 직접 차려드려요

    “생일이면 집에서 미역국 끓여 먹는 게 전부였지. 오늘이 평생 제일 기억에 남는 생일이 될 거 같어.” 13일 강동구 고덕동. 올해로 105세를 맞는 이덕순 할머니는 100여년 인생에서 가장 특별한 생일상을 받았다. 슬하에 있는 딸 하나와 사위, 하나씩 있는 외손자·손녀뿐 아니라, 올해 생일에는 이해식 강동구청장을 비롯한 구청 직원, 지역 라이온스클럽 회원 등이 대거 참여해 할머니의 생신을 축하했다. 강동구가 영성라이온스클럽과 손잡고 진행하는 ‘찾아가는 생신축하 서비스’ 덕분이다. 구는 효 실천 문화를 확산시키기 위한 ‘효행도시 강동만들기 사업’의 하나로 이달부터 찾아가는 생신축하 서비스를 실시하고 있다. 기존에 홀몸 노인이나 저소득층 가정에 집중됐던 지원을 사회 전반적인 어른 공경 문화 확산을 위해 장수 노인으로까지 확대한 것이다. 이 사업은 민간 협력에 힘입어 예산 한푼 들이지 않고 진행된다. 이를 위해 구는 지난 6일 영성라이온스클럽과 효행 실천 협약식을 체결했다. 이에 따라 클럽 측은 구에 사업 비용을 지원하고 자체적으로 효행문화 확산을 위한 다양한 활동도 이어갈 예정이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열린세상] ‘지공거사’를 뵙고 나서/김관기 김&박 법률사무소 변호사

    [열린세상] ‘지공거사’를 뵙고 나서/김관기 김&박 법률사무소 변호사

    지난 주말 대학 동창들과 등산을 다녀왔다. 한 선배가 만 65세가 되면서 받은 시니어 패스(서울시 발행 교통카드)를 보여 준다. ‘지공(지하철 공짜)거사’가 되어 ‘전공노(전철 공짜 노인)’에 가입하였단다. 그 선배에게서는 결코 노인의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 퇴직 후 하모니카를 배우기도 하고 동창들과 등산을 하며 보낸다는 말에서 현업에 대한 아쉬움이 느껴진다. 어찌 이 선배뿐이랴. 그나마 친목 모임에 나가 과거를 되돌아보고 후배들과 어울릴 수 있는 사람들은 그래도 낫다. 모아 둔 것이 없이 퇴직해 하염없이 집에 머무르는 사람들, 그것을 견뎌야 하는 가족들은 어떨까. 요즘 문상을 가 보면 웬만하면 향년 90세 이상이다. 환갑, 칠순, 팔순도 가족끼리만 기념하는 통상의 생일이다. 그것도 젊은이들과 마찬가지의 체력이 유지되는 건강한 상태에서 오래 산다. 심지어 70대 어부가 젊은 남녀들을 연쇄살인한 사례도 있듯이, 나이로는 결코 사람의 체력과 건강을 단정할 수 없다. 최근 서울시가 ‘노인’이라는 말이 부정적 인상을 준다는 이유로 ‘어르신’이라는 말로 바꾸기로 했다. 나이 든 사람이 신체적으로 약하고 의존적이라는 편견을 시정하고자 하는 노력이 가상하지만, 나이를 차별의 요소로 삼지 않아야 해결할 수 있는 일이다. 호박에 줄 친다고 수박이 될 수 없듯이, 무임승차를 비롯한 특권이든 직업에서의 배제라는 차별이든 고령자를 구별하여 취급하는 제도 운영이 계속된다면, 고령자에 대한 편견이 사라질 수 있겠는가. 일할 능력과 의사가 있는 사람을 일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사회적 낭비이다. 그가 일하지 않는 부분을 다른 사람이 보충해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강제적인 여가를 위한 교통비를 공적 부담으로 하는 것은 낭비를 추가한다. 오죽하면 지하철 무임승차 때문에 발생하는 한해 2000억원의 손실을 서울시가 부담하고 있으니 중앙정부가 부담하라고 서울시장이 대통령에게 이야기했겠는가. 사실 고령자 무임승차는 역진적인 분배효과를 가진다. 여가를 누릴 수 있는 소득과 체력이 있는 사람에게 혜택이 미친다. 차별을 감수하고 조금이라도 벌어야 하는 가난하고 힘든 사람과 병 들어 다니기 힘든 이들에게 무임승차는 그림의 떡이다. 노년 빈곤은 현실적 문제이다. 효도는 이제 과거의 역사이다. 부모를 부양하면서 과외비 등 자녀들의 교육에 아낌없이 투자했던 베이비붐 세대는 자신들이 부모들에게 했던 것을 자식들에게 기대할 수 없다. 대부분 그들에게 남은 자산은 집 한 채뿐이다. 그러나 세계적인 경제위기로 인한 거품 붕괴로 집의 자산가치가 하락하고, 젊은 세대마저 주택 구입을 포기하면서 집값은 더 떨어질 상황이다. 그나마 삶의 터전인 주택을 짊어지고 가기 위해서 그들은 계속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30대에 은퇴해 40대에 돈 벌고 50대에 베푼 뒤 60대에 놀 수 있는 사람은 그 말을 했다는 장미란 선수 정도나 되어야 가능한 일이다. 그렇다고 기초노령연금, 국민연금을 확대하는 것은 자라나는 젊은 세대에 부담을 주는 일이니 지속가능성 여부를 떠나 정당하지 못하다. 많은 고령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무상복지가 아니라 일자리이다. 우리는 가난하고 병든 노인을 도와야 한다. 그들이 늙었기 때문이 아니라 가난하고 병들었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 모두 인생을 늘려 살 필요가 있다. 해고라는 차별도 무임승차의 특권도 없애지는 못하겠지만 천천히 적용하자. 지금의 제도는 남자나 여자나 학교를 졸업하면 바로 취업하고 20대 말이면 노총각, 노처녀라는 말을 들었던 시절 평균수명이 60대이던 시기에 정한 것이다. 젊은이들이 대학을 7, 8년 걸려 졸업하고 좋은 취업 자리를 위하여 스펙을 쌓느라 사회생활의 시작도 늦고 결혼도 대략 30대 중반 이후가 되는 이 시대의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 고령자가 연금이나 복지에 의존하여 세월을 보내는 대신에 일을 계속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지하철도 웬만하면 돈 내고 타게 하자. 젊은 세대의 납세 부담을 줄여주자. 지금 정년을 연장하는 혜택은 앞으로 그들도 나이 들어갈 젊은이들에게도 돌아간다.
  • ‘美억만장자’ 82살 조지 소로스 42살 연하 사업가와 내년 결혼

    ‘美억만장자’ 82살 조지 소로스 42살 연하 사업가와 내년 결혼

    억만장자 투자자인 미국 소로스펀드의 조지 소로스(오른쪽·82) 회장이 42살 연하 여성 타미코 볼턴(왼쪽·40)과 내년 여름 결혼한다. 11일(현지시간) 열린 자신의 생일 파티에서 소로스 회장이 가족과 친구들에게 볼턴과의 약혼 사실 및 내년 여름 뉴욕주 사우스햄프턴에서 결혼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고 로이터통신이 보도했다. 소로스 회장과 볼턴은 2008년 뉴욕에서 처음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계 미국인 간호사와 퇴역 해군 사령관 사이에서 태어난 볼턴은 캘리포니아주에서 성장했다. 마이애미대학에서 경영학석사(MBA) 학위를 받은 뒤 인터넷 기반의 다이어트 관련 사업을 시작해 현재는 인터넷 요가 교육 업체를 운영하고 있다. 이번 결혼은 소로스 회장에게는 세 번째, 볼턴에게는 두 번째다. 소로스 회장은 전처 두 명과의 사이에 다섯 명의 자녀가 있다. 1983년 이혼한 뒤 25살 연하 수전 웨버와 재혼했으나 2005년 다시 이혼했다. 조희선기자 hsncho@seoul.co.kr
  • “南北 사이 쌓인 지뢰도 빨리 제거됐으면”

    “南北 사이 쌓인 지뢰도 빨리 제거됐으면”

    ‘2012 만해상 평화부문 수상자’로 선정된 캄보디아의 지뢰제거 전문가 아키 라(39)가 방한했다. 2010년 CNN이 뽑은 ‘올해의 영웅 10’에 선정되기도 한 그는 크메르루주군에 강제징집돼 캄보디아 곳곳에서 수많은 지뢰를 매설한 소년병 출신이다. 아키 라의 부모는 그가 2~3살 무렵 크메르루주군에 의해 피살됐다. 정확한 출생일도 몰라 1973년생으로 추정할 뿐이다. 이름도 없었던 그는 20대에 일본인 친구를 만나 비로소 ‘영리한’이란 뜻을 가진 아키 라라는 이름을 얻게 됐다. 소년병으로 자란 그는 열 살 때부터 자신의 키만 한 소총을 들고 전쟁터를 누비며 지뢰를 매설했다. 그는 전쟁이 끝나자 자신이 매설한 지뢰를 찾아 나섰다. 그는 “내가 묻은 지뢰가 내 친구와 친척들을 죽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 일이 나쁜 짓이었다는 걸 비로소 깨닫게 된 것”이라고 돌이켰다. 처음에는 유엔 소속으로 지뢰 제거 사업에 참여하다 1993년부터 독자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후 CSHD(Cambodian Self Help Demining)라는 단체를 만들어 30여명의 동료들과 함께 지뢰 제거 사업을 펴고 있다. 그는 13일 강원도 양구의 전쟁기념관과 비무장지대를 찾는다. 그는 “한국의 아픈 역사를 잘 알고 있다. 남북 사이에 놓인 지뢰도 빨리 제거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백민경기자 white@seoul.co.kr
  • [선택! 역사를 갈랐다] (23) 노론 명문 가문 박지원 vs 남인 몰락 가문 정약용

    [선택! 역사를 갈랐다] (23) 노론 명문 가문 박지원 vs 남인 몰락 가문 정약용

    연암은 아무런 관직도 없이 중국에 갔다. 집안 덕이었다. 건륭제의 칠순 생일을 축하하는 사신단 책임자(정사)로 금성도위 박명원이 임명되었는데 그가 연암의 삼종형(팔촌)이어서 따라갈 수 있었던 것이다. 다산은 중국에 한 번도 가지 못했다. 연암(1737~1805)과 다산(1762~1836)은 모두 영조 시대에 태어났다. 다만 연암이 다산보다 25세 위다. 연암의 집안은 반남 박씨로 노론 명문가로 꼽혔다. 다산의 집안은 압해 정씨로 정치적으로 실세한 남인 몰락 가문이었다. 연암 박지원과 다산 정약용. 두 사람은 대표적인 실학자로 나란히 거론된다. 그런데 두 사람은 같다고 보면 문득 다르고 다르다고 보면 문득 같다. 연암은 당대의 주류 다수파에 속했으면서도 비주류 소수파의 모습이 보인다. 다산은 당대의 비주류 소수파에 속했으면서도 주류 다수파의 모습이 보인다. 연암은 16세에 결혼해 장인의 지도를 받으면서 본격적으로 학업에 임했다. 공부가 늦은 감이 있다. 다산은 어린 시절부터 잘나갔다.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아버지의 지도를 받으면서 일찌감치 학업에 정진했다. 7세에 시를 쓰기 시작하고 10세에 시집을 만들 정도였다. 연암은 몇 차례 과거를 봤지만 이내 단념하고 말았다. 다산은 과거 공부를 열심히 했다. 과거에 합격해 22세에 성균관에 들어갔고 28세에 벼슬길에 나갔다. 과거를 통과하지 않았던 연암은 50세가 넘어서야 정조의 배려와 친구의 천거로 벼슬에 나아갔다. 55세에 첫 지방수령직으로 안의현감에 임명되었다. 지방관 경력을 잠시 비교해보자. 다산은 36세의 나이에 곡산부사로 나갔다. 같은 해에 연암은 61세에 면천군수로, 그 후 64세에 양양부사로 승진되었다. 다산은 30대 부사, 연암은 60대 부사였다. 아무튼 문과에 급제하지 않고도 양양부사에 임명된 사람은 연암이 처음이었다고 한다. ●과거 단념·서얼들과 교류… 연암의 ‘강남 스타일’ 과거를 단념한 연암은 30대였던 1760년대 후반부터 탑골공원 근처에 살면서 홍대용, 이덕무, 유득공, 박제가 등과 교유했다. 주로 노론 출신이라는 점과 이덕무 등이 신분상 천대받은 서얼이라는 점이 주목된다. 이들은 이른바 ‘북학파’ ‘연암그룹’ 또는 ‘백탑시사’ 등으로 불린다. 10대의 다산은 줄곧 둘째 형 정약전과 함께 다녔고 성호 이익의 가르침을 받은 권철신, 이가환 등을 만나고 한국 천주교를 스스로 일으킨 이벽, 이승훈과 어울렸다. 이들은 ‘성호학파’ 또는 ‘기호남인’으로 불린다. 다산은 15세에 결혼한 후 서울 남촌에서 살았다. 연암은 고관대작들이 많이 사는 서울 북촌에 살았으니 요즘으로 치면 연암은 강남, 다산은 강북에 산 셈이다. 두 사람은 문장가, 학자로서 스타일이 사뭇 다르다. 사마천의 ‘사기’를 읽을 때 연암은 사마천의 마음을 읽으라 했다. 다산은 연표를 꼼꼼히 챙기라 했다. 연암은 사물을 제대로 보기 위해 마음을 비우라 했다. 다산은 글을 쓰려면 속을 꽉 채우라 했다. 연암은 시를 별로 남기지 않았는데 다산은 마치 일기 쓰듯 많은 시를 남겼다. 연암은 글쓰기엔 요령이 있다고 가르치는데 다산은 문장학이야말로 유학의 큰 해악이라고 내쳤다. 연암은 문장가, 다산은 학자로서의 면모가 두드러진다. 글쓰기에는 두 방법이 있다고 하는데 은밀하게 감추는 방법과 들춰내 드러내는 방법이 그것이다. 연암의 글은 감추는 방법을 잘 활용했다. 다 읽고 나서도 그의 뜻을 제대로 포착했는지 돌아보게 한다. 다산의 글은 명징하게 드러내는 방법을 주로 했다. 읽노라면 곡진한 느낌을 준다. 연암은 인상파 화가인 듯하고, 다산은 사실주의 작가인 듯하다. 연암은 정조에 의해 당시의 자유분방한 문체를 주도한 죄인으로 지목되었다. 다산은 정조의 우등생이요 모범생이었다. 다산은 정조의 순정한 문체 주장에 적극 동조했다. 다산은 당시 사교라 불린 천주교에 감화돼 적극 동조했다가 나중에 태도를 바꾸어 거리를 두었다. 반성문도 썼다. 연암은 천주교에 대해 부정적이었지만 폭력적 탄압에는 반대했다. 이렇듯 다르다 보니 동시대 인물인데도 두 사람이 만났는지조차 의문스럽다. 나이도 차이나고 사는 동네도 달랐지 않은가. 두 사람을 연결하는 인물로 박제가(1750~1805)를 생각할 수 있다. 그는 규장각 검서관으로 낮에는 규장각에서 다산과 함께 근무했고 저녁에 퇴근하면 연암그룹과 어울렸을 것이다. 박제가를 통해, 또 베스트셀러 작가 연암의 이름이 이미 높았기에 다산은 연암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혹 길 가다 우연히 마주치면 다산이 손위인 연암에게 먼저 인사를 했을 것이다. 인사를 받은 연암은 어떻게 대꾸했을까? 젊은 친구가 누군지 몰라 심드렁하게 인사만 받았을까, 자신보다 품계가 높은 관리라 공손하게 인사를 받았을까. 다산이 18년 유배 기간이 끝날 무렵에 마무리한 ‘경세유표’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실려 있다. “규장각 검서관 박제가가 지은 ‘북학의’ 6권을 보았으며 유신(儒臣) 박지원이 저술한 ‘열하일기’ 20권을 보았다. 그런데 거기에 실린 중국의 기구 이용 제도는 보통 사람이 헤아리기 힘든 것이 많았다.” 다산의 ‘경세유표’는 유가적 이상에 입각한 국정 전반의 제도 개혁안이다. 여기서 다산은 청나라 문물을 배우자는 북학(北學)의 의견에 적극 동조하여 오로지 그것을 직무로 하는 관청을 별도로 설치하자고 제안했다. 이른바 ‘이용감’이었다. 다산은 ‘경세유표’에서 제안한 제도 중 꼭 그대로 시행되길 바라는 열다섯 가지를 꼽았는데 이용감 설치는 그중 하나다. ●저자와 독자 그 이상의 연결고리 ‘열하일기’ 이로 볼 때 두 사람은 ‘열하일기’로 연결되고 있었다. 물론 저자와 독자의 관계였지만. ‘열하일기’는 연암이 중국에 다녀와서 쓴 책이다. 하룻밤에 아홉 번 강을 건너며 깨달음을 얻었다는 ‘일야구도하기’ 또는 유명한 소설 ‘허생전’을 교과서에서 읽었을 텐데 모두 ‘열하일기’에 실려 있다. 그래서 ‘열하일기’를 여행기 또는 문학작품으로만 생각할지 모른다. 그 해 여름, 44세 연암은 붓 두 자루, 먹 하나, 작은 공책 네 권 등 간단한 행장으로 중국을 향했다. 압록강을 눈앞에 두고 자객 형가를 생각했다. 진시황을 죽이러 적국이며 강대국인 진나라로 강을 건너가기 직전의 형가가 하필 떠올랐을까! 연암은 국경을 넘어 살림살이가 넉넉해 보이는 여염집을 보고서는 질투심이 끓어올랐다. 변방의 촌마을이 이 정도라니. 연암은 중국에서 정말 볼 만한 것은 큰 누각이나 성곽이 아니라 깨진 기왓장과 똥거름이라고 했다. 민간의 이용후생을 잘 보여주기 때문이었다. 연암은 도중에 목격한 수레, 벽돌, 목축, 선박 등 여러 제도들을 소개했다. 허구적이고 자폐적인 북벌론의 미몽에서 깨어나 북학을 해야만 북벌도 가능할 터. 대내용 북벌만 강경하게 외칠 뿐 민생은 나아지지 않는 조선 현실에 대한 분노였다. ‘열하일기’를 통해 연암은 여정의 진행에 따라 보고 들은 것들을 전하면서 갖가지 주제를 넘나들었다. 형식 또한 일기 형식으로 시작해 다양한 산문 형식을 시도했다. 이러한 다양한 주제와 형식에도 불구하고 ‘열하일기’ 전체에 흐르는 주제의 하나는 ‘천하의 정세를 살피는 것’이었다. 연암은 사신의 일행이면서 공식 임무가 없었다. 새벽이면 일행보다 먼저 출발해 여기저기 많은 곳을 둘러보려고 했고 저녁이면 몰래 숙소를 벗어나 중국 지식인들과 만나 필담을 나누다 새벽에 들어오곤 했다. 청 황실의 대내외 통제 술책을 간파하면서 지금 태평연월을 누리고 있는 천하가 장차 어찌 될지 변역의 기미를 살폈다. ‘열하일기’는 현실적 존재인 청 왕조를 오랑캐라 외면하고 무시하는 자폐에 대한 질타였다. 다양한 주제를 통해 조선의 식자층 내지 지배층에 고정관념과 좁은 소견에서 벗어나 열린 마음을 갖도록 촉구하는 것이었다. 내 눈으로만 보는 자폐와 남의 눈으로만 보는 자아 상실의 극단은 늘 경계할 병통이다. 또한 천하대세를 전망하고 변역의 기미를 놓치지 않는 예민함은 지금도 절실하다. 아, 아깝다. 또 다른 위대한 저술가 다산은 해외 여행 갈 기회가 한 번도 없었다. 그도 외국에 다녀왔다면 필시 굉장한 저서를 낳았을 터이다. 다산이 유배 18년 동안에 육경사서와 정치·경제·행정·역사·지리·언어·국방·의학 등 다방면에 걸쳐 이룬 저서가 모두 500권이 넘었다는 사실을 상기해보라. 그는 다만 ‘열하일기’를 비롯하여 중국과 일본에 관한 책을 부지런히 찾아 읽었을 뿐이다. 그러나 당대에 큰 반향을 일으킨 연암의 역저 ‘열하일기’는 점차 위축되었다. 그릇된 문체의 본산으로 지목되고 오랑캐 연호를 사용한 원고라는 비난을 들으면서 후손조차 문집 간행을 보류했을 정도다. 나라를 잃은 1911년에 와서야 활자로 간행되었다. 다산의 역저 ‘경세유표’ 등도 빛을 보지 못하다가 조선왕조가 망할 때에 가서야 주목을 받았다. 연암은 문체 문제로, 다산은 천주교 문제로 각각 정조의 지적을 받았지만 두 사람 다 정조에게 능력을 인정받았다. 정조가 죽자 다산은 유배를 가고 연암은 몇 년 후 세상을 떴다. 조선왕조는 망하기 직전인 1910년 다산과 연암에게 시호를 내렸는데 둘 다 ‘문도공’(文度公)이었다. 만시지탄. 그들은 글로써 세상을 바꾸고자 필생의 역저를 남겼다. 그 진가는 뜻있는 독자들에게 달렸다. 김태희(다산연구소 기획실장)
  • [문화마당] 순환의 ‘회(回)’와 단절의 ‘기(期)’/계승범 서강대 사학과 교수

    [문화마당] 순환의 ‘회(回)’와 단절의 ‘기(期)’/계승범 서강대 사학과 교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연락이 닿은 고등학교 제자 몇 명을 2주 전에 만나 새벽까지 이야기꽃을 피웠다. 20대 철없던 교사 때 만난 학생들이라 나이 차가 10년도 채 안 되니, 이제는 중년티를 제법 풍기는 어엿한 엄마·아빠이자 이 땅의 책임감 있는 시민들이다. 그런데도 서로들 마냥 즐거워 4반 세기 전으로 시간여행을 함께했다. 새벽 4시가 거의 다 돼 집에 들어가고도 아내의 웃는 얼굴을 본 것은 아마도 이번이 처음일 게다. 그런데 SNS를 통해 처음 대면할 때 좀 이상한 점을 하나 느꼈다. “저는 2기(期) 아무개입니다.”라는 식의 소개 일색이었기 때문이다. “저는 3회(回) 졸업생 아무개입니다.”라고 소개한 이는 한 명도 없었다. SNS로 친구를 신청해 온 70여명 모두 자기를 몇 회가 아니라 몇 기 졸업생으로 소개했다. 이는 한국사회에서 몇 ‘회’ 졸업이라는 표현이 이미 거의 소멸해 몇 ‘기’로 대체되었음을 잘 보여준다. 1980년대 전반 내가 대학생일 때였다. 동문회 신입생 환영회 때 한 신입생이 자기를 “저는 21기 아무개입니다.”라고 소개하는 걸 듣고, 내가 “야. 우리가 군인이냐?”고 품평을 한 적이 있다. 그때 함께 있던 선배들도 다들 내 말에 고개를 끄덕였고, 그 후배는 멋쩍어하면서 “저는 21회 아무개입니다.”라고 다시 소개하고, 다들 함께 웃으며 건배한 기억이 난다. 그렇다. 1980년대만 해도 대개 동문회에서는 다들 몇 회 졸업이라고 말했지, 몇 기 졸업이라는 말을 듣기는 쉽지 않았다. 그런데 4반 세기가 지난 지금은 기가 거의 평정을 해버렸는지, 오히려 회라는 말을 듣기가 무척이나 어렵다. 국어사전의 풀이만으로는 졸업이나 연차와 관련해 회와 기를 명쾌하게 구분하기 어려운 듯하다. 둘 다 문법과 표현상으로는 문제가 없어 보인다. 다만, 1980년대까지만 해도 기는 주로 군대나 사관학교에서 썼다. 또는 내부 조직이 매우 강한 특정 그룹에서만 썼다. 반면에, 일반 교육 기관인 학교에서는 거의 모두 회를 썼다. 이게 바로 자기를 21기라고 소개한 후배에게 내가 “우리가 군인이냐.”고 뼈 있는 농을 할 수 있었던 까닭이자, 실제로 그 자리에 있던 선후배들이 하나같이 수긍했던 이유이다. 실제로, 회와 기는 그 쓰임에서 차이가 있다. 어느 시인의 설명에 따르면, 회(回)는 돈다는 개념으로 단절의 의미가 약한 데 비해, 기(期)는 말 그대로 단절의 의미가 강하다. 따라서 몇 회 졸업생이라고 하면, 졸업 연도에 따른 위계질서를 거의 강조하지 않는, 그래서 나이를 초월해서도 서로 동등하게 어울리기가 상대적으로 용이하다는 의미를 함축한다. 반면에, 몇 기 졸업이라고 하면, 졸업 연도에 따른 단절과 서열을 강조하는 의미가 있다. 1970~80년대를 살아온 어떤 학자에 따르면, 1년마다 배출되는 학교 졸업생이면 주로 회를, 수시로 배출되는 직업훈련소 수료생이나 여타 특수한 기관이나 조직의 연수생이면 기를 선호했다고 한다. 듣고 보니 그런 것 같다. 실제로, 1980년대에 내가 경험한 대학생활에서도 오직 기만 고집하고 강제하던 조직은 ROTC뿐이었던 것 같다. 주변 동료에게 물어보니, 몇 회 졸업이라는 표현을 쓴 적이 언제 있었느냐는 식의 의아한 표정을 짓는 분도 있고, 이미 오래전에 회에서 기로 바뀌었다는 분도 있다. 아마도 냉전 종식 무렵, 즉 1990년을 전후해 큰 전환이 있었던 것 같다. 사회의 하드웨어가 민주화되던 시기에, 소프트웨어에서는 왜 이런 역행이 일어났을까? 그러고 보니 ‘왕따’ 같은 말도 1990년대부터 부쩍 늘어난 것 같다. 지금은 북극곰만이 아니라 회(回)도 멸종위기에 처해 있다. 위계질서에 깊이 물든 사람들이 과연 민주시민사회를 제대로 건설하고 가꿀 수 있을까? ‘백마 타고 오는 초인’만 기다리는 것은 ‘시민’이 할 일이 아니다.
  • [부자의 상상력을 기부하라] (3부) 한국형 공익재단의 도전 (9) 천안 풀뿌리희망재단

    [부자의 상상력을 기부하라] (3부) 한국형 공익재단의 도전 (9) 천안 풀뿌리희망재단

    가족의 학대로 공동생활 가정에서 자란 연우(가명·10)는 외톨이였다. 사람들과 눈도 마주치지 못했고, 말을 걸어도 묵묵부답이었다. 그런 연우가 달라졌다. 고사리손에 바이올린을 쥐게 되면서부터다. 함께 사는 형의 생일날 “축하곡을 연주해주겠다.”고 먼저 나섰다. 음악 선생님이 되겠다는 꿈도 생겼다. 연우에게 이런 꿈을 지펴준 곳은 지난 1월 출범한 ‘클로버청소년오케스트라’이다. 국내 첫 지역재단인 충남 천안의 풀뿌리희망재단이 ‘한국판 엘 시스테마’를 만들겠다며 내놓은 세 번째 인큐베이팅 사업이다. 엘 시스테마는 1975년 빈곤, 폭력, 마약에 무방비로 노출된 베네수엘라 빈민 어린이들을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끌어들인 무상 음악 프로그램이다. 전쟁터 같던 빈민촌의 범죄는 급격히 줄어들었고 무기력했던 아이들은 미래를 말하기 시작했다. 세계적인 마에스트로 구스타보 두다멜(로스앤젤레스필하모닉 상임지휘자)도 여기서 배출됐다. 이를 본뜬 클로버청소년오케스트라는 저소득, 다문화 가정, 보육시설에서 생활하는 아이들 40명으로 꾸려졌다. 오케스트라 출범을 처음 제안한 사람은 풀뿌리희망재단의 창립 멤버인 박성호(53) 상임이사. ●복지·환경등 지역문제 품는 ‘인큐베이터’ 8일 천안시 성정1동 재단 사무실에서 만난 박 이사는 “영화 ‘엘 시스테마’를 보고 음악을 통해 아이들이 ‘내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존재’라는 걸 깨닫고 세상과 소통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며 사업지원 배경을 밝혔다. “엄마, 아빠에게서까지 학대당한 아이들이 있어요. 자칫하면 소외감, 폭력에 빠질 위험이 있는 이 친구들이 화음을 이뤄가는 공동체 생활을 경험하면서 ‘함께하는 삶’의 기쁨을 어른이 되어서도 누리길 바랍니다.” 재단의 뜻을 전해들은 천안시립교향악단 연주자 등 지역 음악가 30여명도 흔쾌히 재능기부에 나섰다. 숨이 턱턱 막히는 무더위 속에서도 요즘 아이들은 내년 1월 첫 연주회를 앞두고 맹연습하고 있다. 오케스트라는 ‘지역사회의 문제를 품고 해결하는 인큐베이터가 되겠다’는 풀뿌리희망재단의 설립 목표를 그대로 구현한 결과물이다. “지역사회에서 부족한 공익 인프라를 발굴하고 재정적으로 지원하는 동시에 거기서 일할 수 있는 사람도 키우자. 이렇게 새로운 분야의 비영리 단체가 만들어지면 처음엔 우리가 품고 돌보지만 자립할 수 있다고 판단이 됐을 때 독립시키자는 아이디어였죠.” 각 분야의 전문 비영리단체와 활동가들을 지원할 지역재단이 절실하다는 문제의식은 1990년대 초부터 천안 지역 시민운동가들 사이에서 공유됐다. 계기가 마련된 것은 2005년이었다. 윤혜란 고문이 천안 YMCA와 ‘복지세상을 열어가는 시민모임’ 등에서 키워낸 인큐베이팅 사업의 성과로 ‘아시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막사이사이상을 수상한 것. 상금 5만 달러(약 5600만원)가 재단을 세울 종잣돈이 됐다. 여기에 시민 143명이 힘을 보태 만든 3억 4500만원을 토대로 2006년 풀뿌리희망재단이 뿌리를 내렸다. ●나눔문화 활성화… 지역재단 확산 기여 박 이사는 “지역재단이라는 도전에 나서기 전에는 돈이란 건 우리와 거리가 먼 것, 우리는 늘 힘들게 몸으로 때워야 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고 회고했다. 느리지만 꾸준하게 시민, 기업들의 기부가 이어져 국내 첫 지역재단의 무모한 실험을 성공으로 이끌었다. 설립 이듬해 1억원이었던 기부금은 지난해 4억 8000만원까지 불어났다. 기부방식도 다양하다. 천안의 산부인과 의사 3명은 새 생명이 태어날 때마다 5000원씩 모아 5년째 한달에 50만원씩을 꾸준히 재단에 보내오고 있다. 이 같은 ‘연쇄 나눔’은 마침내 ‘지역재단이 대체 뭐냐’며 갸우뚱하던 시민들의 기부의식을 깨웠다. 박 이사는 그 비결로 첫 손에 “지역사회의 요구와 딱 맞아떨어진 인큐베이팅 사업 덕분”이라고 꼽았다. 저소득가정 청소년들의 방과 후 쉼터인 ‘해누림청소년센터’, 학대·빈곤·유기된 아이들을 키워내는 공동생활가정 ‘꿈찬그룹홈’ 등 절실하면서도 밥벌이 때문에 엄두를 못냈던 사업들을 2년간 지원해 안착시켰다. 박 이사는 기부·활동 내역을 낱낱이 알리는 투명성과 이사들의 활발한 기부 네트워킹 능력, 경상비 최소화 등을 또 다른 성공 비결로 꼽았다. 재단의 나눔은 지구촌으로도 뻗기 시작했다. 천안에서 10년째 일해온 방글라데시 이주노동자 무하마드 자키룰 이슬람의 고향 마을 바길핫에 2010년 이후 우물 30여개를 파주고, 화장실도 만들어 줬다. 정부에 손을 벌리는 대신, 시민들의 기부문화를 활성화하고 지역사회 문제를 스스로 풀어나가겠다는 풀뿌리희망재단의 도전이 빛을 발하면서 최근 전국적으로 지역재단 설립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지난해 3월 부천희망재단에 이어 지난 3월에는 성남이로운재단이 설립됐고 안산에서도 최근 재단 준비 작업이 한창이다. 풀뿌리희망재단이 첫 지역재단으로 터를 닦은 지난 6년에 대해 박 이사는 “청소년, 환경, 복지 등 지역 사회문제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태세를 갖추게 된 시간이었다.”고 자평했다. 천안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김민희 기자의 런던 eye] 軍 징병제 폐지한다고 올림픽 향한 열정은 사라지지 않는다

    복싱 국가대표 한순철(28·서울시청)에게 ‘호환마마’보다 더 무서운 것은 군대였다. 링에서 사투를 벌이는 동안 그의 머릿속을 맴돈 것은 “군대에 가면 안 된다.”는 생각이었다. 런던올림픽에서 메달을 따지 못하면 자신만 바라보고 있는 어린 아내와 딸의 먹고살 길이 막막했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올림픽축구 대표팀의 수문장 이범영(23·부산)에게 군대는 일생일대의 승부를 승리로 이끌어준 최고의 자극제였다. 영국과의 8강전 승부차기에서 선방을 펼쳤던 그는 “경기 전 라커룸에서 ‘이등병의 편지’가 흘러나왔다. 아마 병역 혜택을 생각하면서 힘을 내자는 퍼포먼스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고 했다. 외신들은 “병역 혜택을 받으려는 한국선수들의 집중력이 영국을 꺾었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런던올림픽에 참가한 한국선수단의 화두 하나는 군대다. 한국 남자라면 누구나 짊어지는 병역 의무이지만, 몸이 재산인 운동선수들에겐 더욱 높다란 장벽이다. 군대에 가기 싫어서 운동을 열심히 했다는 선수들의 솔직한 목소리들이 나오는 걸 보면 시대가 많이 바뀌긴 했다. 그동안 군 면제는 남자 선수들에게 큰 동기 부여가 되긴 했지만 대놓고 공론화하기에 버겁고 껄끄러운 주제였다. 황금 같은 선수생활의 나날을 군생활에 빼앗기지 않겠다는 선수들의 절절한 바람을 이해하는 국민도 적지않다. 이는 군대에 대한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는 방증일 터다. “모든 남자는 군대를 가야 한다.”는 당위에서 “왜 꼭 군대를 가야 하나.”는 의문이 더해지고 있는 게 요즘 분위기다. 외국처럼 다양한 대체복무의 선택지도 없는 한국의 징병제는 어쩌면 이미 낡은 틀인지 모른다. 남과 북의 대치 상태는 이미 반세기를 지나 ‘변수’가 아닌 ‘상수’가 됐다. 방위산업이 최첨단을 달리는 요즘에 20대 청년들을 일제히 모아 훈련시키는 것은 사회적 비용을 감안하면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많다고 생각한다. 누구는 양심적 병역 거부로 ‘빨간줄’이 그어지기도 하고, 누구는 평생의 업으로 삼은 운동을 포기해야 하며, 또 누구는 사랑하는 이들과 생이별을 하고…. 징병제를 폐지한다고 해서 올림픽에 나서는 우리 선수들의 결의가 엷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병역혜택 말고도 선수들이 올림픽이란 축제를 제대로 즐길 이유는 차고 넘친다. 한순철과 이범영의 환한 미소를 보며 기자는 열심히 군 복무를 하고 있을 수많은 청년들을 떠올렸다. haru@seoul.co.kr
  • 北 해군사령관 정명도 퇴진

    북한 해군의 총괄 책임자인 해군사령관이 정명도에서 박원식으로 교체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지난달 리영호 총참모장 해임 이후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의 군 수뇌부 교체 가속화 움직임과 맞물려 주목된다. 한 대북 소식통은 5일 “북한의 해군사령관 정명도 대장이 동해함대사령관인 박원식으로 교체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이는 지난달 27일 북한 조선중앙TV가 전승절(6·25전쟁 정전협정 체결일) 59주년을 맞아 열린 중앙보고대회를 녹화중계한 화면에서 해군사령관 자리에 정명도가 아닌 다른 인물이 앉아 있던 사실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실제로 정명도와 관련된 북한 매체의 보도는 지난 3월 26일 제4차 노동자대표자회 선거를 위한 당 인민군대회 참석이 마지막이다. 신임 해군사령관으로 추정되는 박원식은 2004년 4월 중장(우리 군의 소장에 해당)으로 진급했고, 지난 2월 김정일 생일을 앞두고 김정일 훈장을 받았다. 사령관 교체 시기는 아직 불명확하나 김 제1위원장이 최근 군부 장악력을 높이기 위해 수뇌부를 물갈이하려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힘을 얻고 있다. 통일부 관계자는 “정명도 해군사령관이 2010년 김정은을 후계자로 옹립할 때 리영호와 함께 부상한 인물이었다는 점에서 군 수뇌부 재편과 관련됐을 개연성이 있다.”고 밝혔다. 하종훈기자 artg@seoul.co.kr
  • 펠프스, 男수영 개인종목 첫 3연패

    마이클 펠프스(27·미국)의 신기록 행진은 끝나지 않았다. 펠프스는 3일 런던 올림픽파크 아쿠아틱센터에서 열린 대회 수영 남자 개인혼영 200m 결승에서 1분54초27의 기록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날 28번째 생일을 맞은 맞수 라이언 록티(미국)는 0.63초 늦은 1분54초90으로 은메달을 따는 데 그쳤다. 이번 대회에서 새로운 영웅이 될 것으로 관심을 끌었던 록티는 금 2, 은 2, 동메달 1개로 기대에 다소 못 미쳤다. 개인혼영 200m 동메달은 라슬로 체흐(헝가리·1분56초22)에게 돌아갔다. 펠프스로선 올림픽 사상 첫 남자 수영 개인종목 3연패의 위업이었다. 이는 남녀를 통틀어 1956년부터 1964년 대회까지 여자 자유형 100m에서 우승을 놓치지 않은 돈 프레이저(호주)와 1988년부터 1996년 대회까지 여자 배영 200m에서 금메달을 딴 크리스티나 에게르세기(헝가리)에 이어 세 번째다. 펠프스는 이로써 금메달 2개와 은메달 2개(계영 400m·접영 200m)를 획득, 2004년 아테네 대회 6관왕과 동메달 2개, 2008년 베이징 대회 8관왕 등을 합쳐 개인 통산 올림픽 메달 수를 20개(금 16, 은 2, 동 2)로 늘렸다. 지난달 31일 남자 계영 800m 결승에서 미국 대표팀의 금메달을 합작하고 통산 19번째 올림픽 메달을 땄을 때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트위터를 통해 “당신은 조국을 자랑스럽게 만들었다.”고 축하했다. 이번 대회를 끝으로 은퇴를 선언한 펠프스는 4일 오전 3시 38분 접영 100m와 5일 오전 4시 27분 혼계영 400m 결선에서 대회의 화려한 피날레를 장식하게 된다. 강동삼기자 kangtong@seoul.co.kr
  • [런던올림픽] 가끔 탁구 치던 빌 게이츠 아저씨 저를 응원하러 런던까지 왔어요

    빌 게이츠(57)가 미국 탁구 소녀 에리얼 싱(17)과의 우정을 지켰다.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주인 게이츠가 29일 오후 9시(현지시간) 런던올림픽 탁구경기가 열리는 런던 엑셀 노스 아레나 경기장을 찾았다. 여자 단식 32강전에 나선 친구 싱의 경기를 지켜보기 위해서다. ‘오마하의 현인’ 워런 버핏도 TV 앞에 앉아 싱의 경기를 지켜봤다. 셋의 특별한 인연은 싱이 10살 때인 2005년에 시작됐다. 75번째 생일을 맞은 ‘탁구 애호가’ 버핏의 파티에 지인이 소녀 탁구선수를 초청한 것. 그 주인공이 당시 10세 이하 주니어 탁구 챔피언이었던 싱이었다. 열살내기 싱을 상대로 단 한 점도 올리지 못했던 버핏은 그에게 홀딱 반했다. 게이츠 역시 집에 서브를 넣는 기계를 갖춰 놓을 정도의 탁구광. 그는 1년 뒤 버핏이 마련한 자선모금 행사에서 싱을 만났다. 싱을 이기는 사람에게 큰 상을 주겠다는 버핏의 제안에 탁구라면 한가락 한다는 게이츠가 팔을 걷고 나섰지만 역시 점수를 올리지 못했다. 중국, 타이완에서 이민 온 부모에게 탁구를 배운 싱은 현재 18세 이하 세계 랭킹 2위로 미국 탁구의 기대주로 꼽힌다. 이날 강호 리샤오샤(중국)를 만나 대등한 실력을 보였으나 2-4로 아쉽게 졌다. 명희진기자 mhj46@seoul.co.kr
  • “암흑같은 시간 속에서도 자녀를 믿고 응원”

    경기도에 사는 주부 이명희(가명)씨는 지난 3년간 정학과 자퇴의 위기 속에서 힘든 시간을 보낸 아들을 생각하며 펜을 들었다. 방황과 아픔을 서서히 극복해 가는 아들의 모습을 보면서 ‘어떤 삶을 살더라도 엄마는 무조건 너를 믿고 응원한다.’는 자녀와의 소통법을 다른 학부모들에게도 알리고 싶어서였다. ●무조건적 믿음과 지지에 마음 연 아들 이씨는 지난해 중학교 3학년이던 아들이 “제발 학교만 나가지 않게 해 주세요.”라며 울며 애원했을 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아려 온다. 2학년에 올라가면서 자주 결석을 하던 아들은 가끔씩 집에도 들어오지 않았다. 3학년 때는 아예 학교를 그만두고 싶어 했다. 청소년 상담도 해 보고 신경과 검사도 받아 보았다. 소용없었다. 결석일이 60일을 넘기면서 쫓겨나듯 시골의 학교로 전학할 수밖에 없었다. “고등학교엔 가지 않아도 좋으니 중학교만 졸업하자.”고 애원했다. 자신의 눈물에 고개를 끄덕이는 아들이 야속하기는커녕 고마울 때도 있었다. 회초리를 들고 닦달하고 어르고 달래도 돌아서지 않던 아들의 마음은 이씨의 전폭적인 믿음과 지지에 변하기 시작했다. 학교를 가기 싫다는 아들의 말에 “네 맘이 그러면 푹 쉬렴. 오늘은 에너지 충전하고 내일 나가면 되지 뭐.” 하고 웃어 보였다. 아들은 서서히 달라졌다. 공부를 다시 시작해 보겠다며 문제집도 샀다. 아들은 비로소 얼마 전에야 마음속에 담아 뒀던 아픔을 털어놨다. 중2 때 폭력서클에 가입했던 사실, 서클을 빠져나오면서 당했던 협박과 폭행…. 학교를 싫어했던 이유를 뒤늦게 알 수 있었다. 이씨는 “암흑 같은 시간 속에서도 아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잃지 않았던 것은 내가 유일하게 잘한 일”이라고 말했다. ●아들 괴롭히는 친구 초대 ‘밥상머리 교육’ 대전에서 아들 셋을 키우는 주부 임은아씨는 큰아들이 초등학교 3학년 때 한 아파트에 살던 친한 친구 A군으로부터 괴롭힘을 당했던 경험을 소개했다. 당황했지만 A군을 혼내는 대신 이혼가정에서 아버지와 살고 있는 A군의 상처를 이해하기로 했다. 아들의 생일에 A군과 다른 친구들을 초대해 맛있는 음식을 해 준 뒤 진심을 담아 ‘사이좋게 지내라.’고 당부했다. 임씨의 진심이 통했는지 아들과 A군은 10여년이 지난 지금도 연락을 주고받을 정도로 친하다. 임씨는 “부모들이 내 아이를 잘 키우겠다는 생각과 함께 주변의 아이도 돌아보는 마음을 가진다면 폭력 해결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씨의 ‘나만의 자녀소통법’과 임씨의 ‘밥상머리 교육’은 교육과학기술부와 ㈜김정문알로에가 실시한 ‘학교폭력예방 학부모수기 공모전’에서 대상작으로 뽑혔다. 교과부는 30일 대상 2명 이외에 최우수상 4명, 우수상 6명 등 총 12명의 공모전 수상자를 발표했다. 수상작은 전국학부모지원센터 홈페이지 ‘학부모온누리’(www.parents.go.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윤샘이나기자 sam@seoul.co.kr
  • 北 김정일 부인,100일만에 나오더니 모습이…

    北 김정일 부인,100일만에 나오더니 모습이…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마지막 부인인 김옥이 북한 매체에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지난 4월 제4차 노동당 대표자회 참석 이후 100여일 만이다. 29일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김옥의 모습은 조선중앙통신이 지난 26일 보도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능라인민유원지 준공식 참석 사진에서 발견할 수 있다. 김옥은 김영춘 국방위 부위원장과 김정각 인민무력부장 사이에서 포착됐다. 연합뉴스는 북한의 주요 인물에 정통한 대북소식통의 말을 빌어 “사진 속 여인은 김정일의 네 번째 부인 김옥이 맞다.”고 보도했다. 사진 속에서 김옥은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최영림 내각총리, 최룡해 군 총정치국장,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 등 북한 지도부와 일정하게 거리를 둔 채 걷고 있다. 그는 4차 당대표자회에 앞서 김 위원장 생일(2월 16일)을 맞아 지난 2월 금수산태양궁전을 찾아 시신을 참배하고 은하수 광명성절음악회에 참석하기도 했다. 김 위원장 사후에도 김옥이 주요 행사에 잇따라 참석하는 것을 근거로 그가 여전히 북한 권부에 일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옥은 김 1위원장의 생모인 고영희가 사망한 2004년까지 김 위원장 서기실(비서실) 과장 직함으로 김 위원장을 특별보좌했고 2010년 김 위원장의 두 차례 중국방문을 수행했다. 2011년에도 김 위원장의 5월 방중에 이어 8월 방중과 러시아 방문을 잇따라 수행하는 등 사실상 김정일 시대 북한의 ‘퍼스트레이디’로서 활발하게 활동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장성택, 김경희 당비서 등과 함께 지난 2월 김 위원장 70회 생일을 기념해 제정된 ‘김정일훈장’을 받아 아직 북한 권부의 핵심에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대내외에 과시하기도 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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