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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韓연구진, 자폐의 유전적 다양성 2개로 분류한 분자지도 만들었다

    韓연구진, 자폐의 유전적 다양성 2개로 분류한 분자지도 만들었다

    지난 5일 27년 동안 중증 자폐스펙트럼장애(ASD) 아들을 헌신적 사랑으로 돌봐 많은 사람의 눈시울을 붉히게 만든 ‘피터팬 아빠’ 전경철 작가가 세상을 떠났다. 전 작가의 생전 활동이 여러 방송 프로그램에 의해 알려지면서 자폐에 대한 우리 사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자폐는 사회적 의사소통과 상호작용에 어려움을 겪고 제한적이고 반복적인 행동을 특징으로 하는 대표적인 신경 발달 장애다. 다양한 유전적 원인이 보고됐지만 어떤 공통적인 생물학적 원리 때문에 질환이 발생하는지에 대해서는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국내 연구진이 원인 유전자만 1200개가 넘는 자폐 스팩트럼 장애의 공통된 분자적 특징을 밝혀내고 복잡한 유전적 다양성을 하나의 분자 지도 위에서 이해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기초과학연구원(IBS) 시냅스 뇌질환 연구단,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디지털바이오컴퓨팅연구단 공동 연구팀은 자폐 스펙트럼 장애 위험 유전자 돌연변이를 가진 세계 최대 규모의 생쥐 모델을 분석한 결과, 다양한 유전자 변이를 두 가지 유전자 활성 상태(전사체)로 설명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 연구 결과는 과학 저널 ‘사이언스’ 9월 18일 자에 실렸다. 연구팀은 시냅스 기능, 유전자 발현 조절, 세포 내 신호 전달 등 서로 다른 생물학적 기능에 관여하는 자폐 위험 유전자 17종을 선정해 각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있는 생쥐 모델을 구축했다. 그 다음 총 1008개의 뇌 전전두엽 RNA 시퀀싱 데이터를 분석해 뇌 전체 유전자 발현 양상을 종합적으로 비교했다. 분석 결과 서로 다른 유전자 변이를 가진 생쥐들은 변이 유전자 종류에 관계없이 두 가지 공통된 전사체 상태로 수렴됐다. 그룹1 모델은 신경세포 간 신호 전달을 담당하는 시냅스 유전자 발현은 감소했지만 유전자 발현 조절 유전자와 RNA 가공 유전자 발현은 늘어났다. 반대로 그룹2 모델은 시냅스 유전자 발현이 증가하고 유전자 발현 조절과 RNA 가공 관련 유전자 발현은 줄었다. 연구팀에 따르면 발병 원인이 되는 유전자는 다르지만 분자 수준에서는 유전자 발현이 두 가지 일정한 패턴으로 나타났다. 두 그룹은 약물 반응성에서도 차이를 보였는데 항우울제인 플루옥세틴과 기분안정제인 리튬을 각각 투여한 결과 그룹1은 약물 투여 후 여러 유전자의 분자적 이상이 일관되게 회복됐다. 그러나 그룹2는 유전자마다 반응이 달라 같은 약물에도 회복성 반응이 나타나지 않았다. 환자의 유전자 분자 상태에 따라 같은 치료제를 투여해도 반응이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환자 맞춤형 정밀 치료 연구의 기반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연구팀은 단일핵 RNA 시퀀싱 기술과 유전자 상호 연관성 분석을 통해 추가 검증했다. 그 결과 동일한 분자 패턴이 일관되게 확인됐고 자폐 생쥐모델과 실제 자폐인의 뇌 전사체 데이터에서도 유사한 분자패턴이 관찰됐다. 김은준 IBS 연구단장은 “자폐는 원인 유전자가 매우 다양해 개별 유전자 연구만으로는 공통의 발병 원리를 이해하는 데 한계가 있었는데 이번 연구는 다양한 유전적 원인을 공통된 분자적 특징으로 해석하는 새로운 연구 틀이 제시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며 “자폐 치료 후보 물질에 대한 비교 및 평가 연구가 보다 체계화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 평생 살과 싸운 의사의 처방… “덜 먹고 운동하면 빠진다고? 이 편견부터 빼야 병 고친다”[박상숙의 호모픽투스]

    평생 살과 싸운 의사의 처방… “덜 먹고 운동하면 빠진다고? 이 편견부터 빼야 병 고친다”[박상숙의 호모픽투스]

    한때 118㎏, 78㎏됐지만 과체중부정맥까지 오니 죽겠다 싶더라위를 잘라내도 되돌아오는 체중약 맞고 쉽게 빠지니 배신감 들어격앙된 심정으로 쓴 책이 ‘비만록’비만은 만성질환, 의지 밖의 문제부작용보다 약효 없을까 걱정해야당뇨·고혈압처럼 건보 적용 필요합병증 위험 덜어 장기적 재정 도움살을 빼려면 덜 먹고 더 움직이면 된다고 흔히 말한다. 비만을 의지 부족이나 자기관리 실패의 결과로 보는 시선도 여전하다. 이런 통념에 반기를 든 의사가 장형우 분당서울대병원 교수다. 한때 118㎏의 고도비만 환자였던 그는 직접 겪은 다이어트와 치료 경험에 의학적 근거를 더해 “비만은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치료가 필요한 질환”이라고 말한다. ‘비만록’ 출간 뒤 방송과 유튜브에서 비만인의 대변자로 떠오른 그를 만나 비만치료제와 다이어트를 둘러싼 오해에 대해 들어봤다. -‘비만록’ 출간 이후 유튜브와 방송에 자주 출연하고 있습니다. 직접 나서게 된 이유가 있습니까. “제가 너무 힘들어 봤잖아요. 아직 그 고통을 겪는 사람들에게 빠져나올 방법이 있다고 알려 주고 싶었습니다. 다이어트로 대중들을 현혹해 돈 버는 사람들에게 경고도 하고 싶고요. 저도 가끔 ‘제약회사에서 돈 한 푼 받은 것도 없는데 내가 왜 부탁도 안 받은 회사 매출을 이렇게 열심히 올려주고 있나’ 싶습니다(웃음). 그래도 정말 복음을 전파하는 심정으로 나가고 있습니다.” -비만 전문의도 아닌데 책은 어떻게 쓰게 됐습니까. “비만 환자를 진료해 온 전문가는 아니지만 평생 비만 환자로 살았습니다. 그런데 비만치료제를 써 보고 충격을 받았어요. 그렇게 노력해도 안 빠지던 살이 너무 쉽게 빠지는 겁니다. ‘나는 평생 무슨 짓을 한 거지?’ 하는 배신감까지 들었어요. 그러고 나니 다이어트 광고가 꼴 보기 싫어졌습니다. 이건 알려야겠다 싶어 격앙된 심정으로 원고를 써 출판사에 보냈고, 그게 ‘비만록’이 됐습니다.” -어릴 때부터 비만이었습니까. “소아비만이었습니다. 체육 시간이 정말 싫었어요. 움직이는 게 힘들어 벤치에 앉아 있고 싶었죠. 최고 체중은 118㎏까지 갔습니다. 가족 가운데 고도비만은 저뿐이었지만 어머니가 살이 찔 소지가 있는 먹성을 갖고 계셨어요. 저는 그걸 ‘돼지끼’라고 부릅니다(웃음). 어머니는 아이스크림을 한 번에 4~5개, 저도 한때 6~7개는 기본이었습니다.” -체중이 가장 많이 나갔을 때 몸 상태는 어땠습니까. “수면무호흡증이 심해 자다가 숨이 막혀 깨서 앉아 있기도 했습니다. 결정적인 건 부정맥이었어요. 수면무호흡증은 양압기라도 쓸 수 있지만 부정맥이 생기니 ‘이러다 제명에 못 살겠구나’ 싶었습니다.” -살을 빼기 위해 정말 많은 방법을 해봤다고요. “셀 수도 없습니다. 덴마크 다이어트도, 케토 다이어트도 했고 결국 2020년에는 위소매절제술까지 받았습니다. 당시 116㎏에서 90㎏까지 내려갔어요. 그런데 4년쯤 지나니 다시 102㎏이 됐습니다. 위까지 잘라냈는데 몸이 돌아가는 겁니다. 정말 좌절했죠. 덴마크 다이어트도 2주에 16㎏ 가까이 빠졌지만 요요가 제일 빨랐어요.” -그렇게 다시 찌는 이유가 ‘체중 세트포인트’ 때문입니까. “쉽게 말하면 몸이 자기 체중을 기억하고 그쪽으로 돌아가려는 힘입니다. 고도비만 환자는 살을 못 빼는 게 아니라 빼고 유지하는 난이도가 다른 거예요. ‘원래 찌는 체질이니 포기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의지만으로 상대하기 어려운 생물학적 힘이 있으니 치료하자는 겁니다.” -‘덜 먹고 운동하면 된다’는 말에는 왜 그렇게 비판적입니까. “일반인이 건강을 위해 운동하고 식습관을 관리하는 건 좋죠. 그런데 일반인에게 좋은 생활습관을 고도비만 환자의 치료법처럼 말하면 안 됩니다. 그런 논쟁을 보면 이제 속으로 그래요. ‘알았어. 너희들끼리 싸워라. 잘들 있어. 나는 내 갈 길 간다(웃음).’ 운동은 근력과 체력을 키우고 기분도 좋게 합니다. 저도 살을 빼고 나니 운동하는 즐거움을 알게 됐어요. 다만 큰 폭의 체중 감량을 운동만으로 설명하면 안 된다는 겁니다.” -위고비는 언제 시작했습니까. “2024년 10월입니다. 미국에 나왔을 때부터 한국 출시를 손꼽아 기다렸고 관련 논문도 계속 찾아봤어요. 당시 102㎏에서 제힘으로 97㎏까지는 빼놓은 상태였는데 위고비를 시작하고 10개월 동안 16㎏ 정도 더 빠졌습니다.” -지금은 어느 정도입니까. “지금은 마운자로를 쓰고 있고 78㎏ 정도입니다. 제 키에서 체질량지수(BMI) 23을 기준으로 하면 정상체중이 약 74㎏이니 아직 과체중이죠. 지금 체중은 마운자로가 끌어내리는 힘과 제 몸이 다시 비만으로 돌아가려는 힘이 균형을 이룬 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약을 처음 맞고 가장 놀란 점은 무엇입니까. “배고픔이 사라지는 경험이었습니다. 예전에는 늘 먹을 것을 생각했는데 음식 생각 자체가 줄었어요. ‘마른 사람들은 원래 이런 세상에서 살았던 건가’ 싶었습니다. 예전에는 한 끼에 1.5인분 정도 먹었는데 지금은 김밥 한 줄도 다 못 먹을 때가 있어요. 저는 샐러드 정말 싫어합니다(웃음). 좋아하는 걸 먹으면서도 양 자체가 줄어드니 먹는 문제에서 해방된 느낌입니다. 샤워하다 쇄골이 보이면 아직도 신기하고요.” -비만치료제 부작용에 대한 우려는 어떻게 봅니까. “저는 부작용보다 약효가 없을까 봐 걱정했습니다. ‘혹시 내가 약이 안 듣는 소수에 들어가면 어떡하지’ 그게 더 무서웠어요. 구역이나 구토, 소화불량 같은 부작용은 있을 수 있고 저도 급격히 살이 빠지면서 이석증을 겪었습니다. 다만 약을 맞은 5000명 가운데 몇 명에게 문제가 생겼다면 안 맞은 사람에게는 얼마나 생겼는지도 같이 봐야죠. 약의 위험만 떼어놓을 게 아니라 비만으로 계속 살아갈 위험과 비교해야 합니다. ‘내 생각에는’보다 증거가 먼저예요. 어떤 현상을 보고 자기 생각을 바꾸는 게 과학입니다.” -정상체중인 사람이 미용 목적으로 맞는 건 어떻게 봅니까. “몇 ㎏ 빼겠다고 맞았다가 부작용이 생겼다고 하면 제가 ‘아구통을 돌리고 싶다’고 농담한 적이 있습니다(웃음). 비만 환자는 질환을 치료하기 위해 약의 위험을 감수하는 겁니다. 정상체중자는 출발점이 다르죠. 다만 위험성을 충분히 설명받고 알고도 선택한다면 국가가 일률적으로 못 맞게 해야 하느냐는 건 또 다른 문제라고 봅니다.” -약을 시작하면 평생 맞아야 합니까. “비만은 만성질환에 가깝습니다. 고혈압약을 먹어 혈압이 내려갔다고 끊으면 다시 오르잖아요. 비만치료제도 끊으면 몸이 예전 체중으로 돌아가려는 힘이 다시 커질 수 있습니다. 저도 지금 약으로 체중을 유지하고 있는 셈입니다.” -좋은 약이 계속 나오면 비만 수술은 사라질까요. “없어지지는 않을 겁니다. 30~40㎏씩 빼야 하는 심한 고도비만이라면 수술은 여전히 강력한 치료입니다. 저도 수술로 큰 효과를 봤지만 다시 체중이 늘어 약물치료를 하고 있잖아요. 앞으로는 ‘수술이냐 약이냐’가 아니라 어느 환자에게 언제 무엇을 쓰고 어떻게 조합할지가 중요해질 겁니다.” -비만 치료제가 더 널리 쓰이면 우리 생활도 많이 달라질까요. “그럴 겁니다. 미국에서는 이미 비만 치료제가 확산하면서 식료품 구매와 외식 지출이 줄었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어요. 약을 맞으면 먹는 양 자체가 줄거든요. 외식업, 식품업, 주류업까지 영향을 받을 수 있습니다. 앞으로 위고비나 마운자로보다 더 좋은 약이 계속 나올 겁니다. 비아그라가 나온 뒤 비과학적인 민간요법과 보조제 시장이 크게 바뀌었듯 다이어트 시장도 크게 재편될 거라고 봅니다.” -문제는 약값입니다. 일본에서 비만 치료제를 사 오는 사람도 있는데 왜 가격 차이가 납니까. “일본은 비만 치료제가 처음 들어올 때 후생성이 신약 가격을 굉장히 세게 낮춰서 시장에 들여왔습니다. 쉽게 말하면 약값을 엄청 후려친 거죠. 우리나라 보건복지부는 왜 그렇게 못 하는지 모르겠어요.” -비만 치료제에도 건강보험이 필요하다고 봅니까. “당연합니다. 고혈압과 당뇨는 국가가 관리하면서 고도비만 환자에게는 대부분 자기 돈으로 치료하라고 하는 게 이상하죠. 지금 비만수술은 BMI 35 이상이거나, BMI 30 이상이면서 당뇨·고혈압·수면무호흡증 같은 합병증이 있으면 건강보험이 적용됩니다. 비만치료제도 이런 고위험 환자부터 급여를 적용하는 방안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비만을 줄이면 여러 합병증 위험을 한꺼번에 낮출 수 있고, 이는 장기적으로 건강보험 재정에도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책과 방송 활동 이후 의료계 반응은 어땠습니까. “대한비만학회에서도 같이 해보자는 협업 제의를 받았습니다. 저는 비만 전문의는 아니지만 평생 비만 환자로 살았고 수술부터 약물치료까지 직접 겪었어요. 비만 환자가 무엇 때문에 힘들고 왜 치료를 망설이는지는 제 경험으로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다음 목표는 무엇입니까. “제 책을 해외에도 번역해 내고 싶습니다. 국내에서만 떠들 게 아니라 ‘비만은 의지가 약해서 생기고 덜 먹고 운동하면 해결된다’는 고정관념 자체를 좀 깨 보고 싶어요.” ■장형우 교수는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흉부외과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울대병원·삼성서울병원 전임의, 세종병원 흉부외과 진료과장을 거쳐 현재 분당서울대병원 심장혈관흉부외과 교수로 심혈관외과 중환자 진료를 맡고 있다. 2019년 관상동맥외과학회 학술상을 받았다. 박상숙 논설위원
  • 뇌 절반 없앤 생쥐에 사람의 미니 뇌 이식했더니…[사이언스 브런치]

    뇌 절반 없앤 생쥐에 사람의 미니 뇌 이식했더니…[사이언스 브런치]

    성인 인간의 뇌는 약 1.4㎏으로 체중의 2%에 불과하지만 섭취하는 에너지의 약 20%를 소모한다. 약 860억개의 신경세포가 시냅스를 통해 100조개 이상의 방대한 연결망을 형성하고 새로운 것을 배우거나 경험할 때마다 신경세포 간 연결이 새로 생성되거나 물리적으로 강화되는 신경가소성까지 갖추고 있다. 그래서 인간의 뇌는 우주에서 가장 복잡한 구조물로 불리기도 한다. 이런 작은 ‘소우주’인 사람의 뇌를 직접 실험할 수가 없기 때문에 인간과 생물학적으로 비슷해 뇌를 자유자재로 조작하고 관찰하기도 쉬운 생쥐로 실험하는 경우가 많다. 미국 스탠퍼드대 정신의학·행동과학과, 생명공학과, 심리학과, 의대 신경외과, 병리학과, 스탠퍼드 신경과학 연구소 및 바이오-X, 스페인 바스크 인지·뇌·언어 연구센터, 바스크 과학 재단 공동 연구팀은 뇌의 절반 이상이 제거된 생쥐에게 인간 세포로 키운 3차원 뇌 유사 조직 ‘뇌 오가노이드’를 이식하자 대뇌 피질의 90% 이상이 인간 뇌 세포로 채워지는 것을 확인했다. 이 연구 결과는 과학 저널 ‘네이처’ 9월 17일 자에 실렸다. 인간 뇌 발달 연구는 살아 있는 사람의 뇌 조직에 직접 접근하기 어렵다는 근본적 한계가 있다. 그래서 줄기세포를 이용한 뇌 오가노이드를 생쥐에 이식함으로써 인간 신경세포가 실제 생체 안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탐구할 수 있고 관련 질환과 잠재적 치료법을 연구할 수 있다. 문제는 머리뼈 안 공간이 작고 숙주인 생쥐의 뇌 신경세포가 이식된 인간 뇌 세포에 대해 면역 반응을 일으킬 수 있다는 점이다. 이런 상황에서 연구팀은 발생 초기에 대뇌피질을 이루는 세포만 골라서 제거해 신피질과 해마가 대부분 사라지고 인간 세포를 이식했을 때도 거부 반응 없이 자랄 수 있는 면역결핍·대뇌피질 결손 생쥐 29마리를 만들었다. 이 생쥐들의 뇌는 일반 생쥐 뇌의 절반 이하 수준이었다. 생후 5~17일 된 면역결핍·대뇌피질 결손 생쥐에게 인간 유도만능줄기세포로 30~60일 키운 인간 대뇌피질 오가노이드를 이식했다. 이후 자기공명영상(MRI), 단일핵 RNA 시퀀싱, 칼슘 이미징, 공간전사체 분석으로 이식 조직 전체의 신경 활동을 측정했다. 또 인공지능 기반 자발 행동 분석, 보행 분석, Y자 미로 작업기억 과제, 공포 조건화, 사회성 및 감각 검사도 실시했다. 그 결과, 이식 조직은 29마리 중 86.2%에서 살아남았고 이식 3개월 뒤에는 생쥐 대뇌피질 조직의 91.9%를 인간 뇌 조직이 차지한 것이 확인됐다. 생쥐 뇌 곳곳에 연결됐고 척수까지 신경 돌기를 뻗었고 이식 조직에서는 임신 2분기 후반 태아 수준의 다양한 피질 세포가 나타났다. 특히 기존 이식법보다 ‘5층 투사 신경세포’가 3배 이상 많았고 ‘폰 에코노모 신경세포’와 유사한 세포도 발견됐다. 행동 검사에서 이식된 뇌 세포는 Y자 미로 작업기억 과제를 상당한 수준으로 수행했지만 공포 조건화 학습 능력은 떨어지는 것으로 확인됐다. 조직에 산소가 충분히 공급되지 않는 저산소 손상 뒤 일반 생쥐와 달리 이식 생쥐는 걸음걸이가 달라지는 현상이 관찰됐다. 연구를 이끈 세르지우 파슈카 스탠퍼드대 교수는 “소두증이나 발달 초기의 심각한 허혈성 손상에 대한 치료 방법 및 치료제 개발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설명했다.
  • [씨줄날줄] 난제 푸는 AI

    [씨줄날줄] 난제 푸는 AI

    88시간. 지난주 오픈AI가 인공지능(AI) 에이전트 1만 개를 동원해 수학 최고 난제 중 하나인 나비에-스토크스 방정식을 정복하는 데 걸린 시간이다. 인류 200년 동안의 난제가 풀렸을 때 수학계에서 날아온 것은 필즈상 수상자 25명이 서명한 항의 서한이었다. AI 속도 조절 논쟁은 미국 정치권으로 번졌다. 오바마 전 대통령이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면 위험해진다”며 대응책을 촉구하자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과의 경쟁에서 이기는 게 먼저”라고 맞받았다. AI는 원래 난제를 풀라고 만든 기계다. 2016년 구글이 AI로 망막 질환을 판독하는 논문을 내고 신경망 번역으로 통번역 품질을 끌어올렸을 때 세계가 환호했다. 2021년 인실리코 메디슨이 4~6년 걸리던 신약 후보 발굴을 18개월로 줄였을 때 의료계가 들썩였고, 2024년 딥마인드가 50년 묵은 생물학 난제인 단백질 구조 예측을 풀었을 때는 노벨화학상이 수여됐다. 의학, 약학, 통번역 난제를 풀 때 쏟아진 갈채가 수학 앞에서 분노로 바뀐 까닭은 선명하다. 고통의 문제라면 빨리 푸는 것이 능사겠으나, 수학에서는 푸는 과정이 답 못지않게 중요하다. 수학자들은 난제를 정복할 산이 아니라 광맥으로 여긴다. ‘n이 3 이상일 때 xⁿ+yⁿ=zⁿ을 만족하는 자연수 해는 없다’라는 페르마의 정리는 1637년 제시돼 1995년에야 증명됐다. 358년간 푸는 과정에서 타원곡선, 인터넷 암호 기술 등이 파생됐다. 수백 년을 헤매야 얻는 지식을 AI의 88시간이 통째로 건너뛴 것 아닌지, 수학자들은 조바심이 날 수밖에 없다. 갈채와 분노가 곳곳에서 교차한다. 회계·법무 전문가의 판단을 대신하는 AI 앞에선 기대와 불안이 엇갈린다. 영상·음악 등 예술적 표현을 통째로 생성하는 AI 앞에서는 경탄과 두려움이 부딪친다. AI가 사람의 병부터 고쳐 주고, 판단은 그다음, 예술과 수학은 맨 나중이었으면 좋겠다. AI가 같은 생각인지는 지금 아무도 모른다. 홍희경 논설위원
  • 앤트로픽 ‘클로드’로 돌연변이·조류 인플루엔자 실험 시도…생물학 무기 가능성에 연구 차단

    앤트로픽 ‘클로드’로 돌연변이·조류 인플루엔자 실험 시도…생물학 무기 가능성에 연구 차단

    미국 인공지능(AI) 기업 앤트로픽의 AI 모델 ‘클로드’를 이용해 생물학 무기 개발에 악용될 수 있는 연구를 진행하려던 과학자들의 시도가 차단됐다. 뉴욕타임스(NYT)는 10일(현지시간) 앤트로픽이 최근 공개한 AI 악용 사례 보고서를 인용해 이같이 보도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5월 한 과학자는 군사 연구기관에서 진행할 치쿤구니야 바이러스 돌연변이 연구에 클로드를 활용했다. 치쿤구니야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수개월간 심각한 통증 등의 증상이 이어질 수 있다. 이 과학자는 살아 있는 동물에 바이러스를 반복적으로 감염시켜 바이러스의 유해성을 높이는 연구를 추진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같은 연구는 백신과 치료제 개발 등에 활용될 수 있지만, 바이러스의 병원성을 높여 생물학 무기로 악용할 위험도 있다. 앤트로픽의 정보 분야 책임자인 제이컵 클라인은 “해당 연구의 목적이 무기 개발인지는 알 수 없다”면서도 “군사기관에서 이 같은 연구를 한다는 것 자체가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클로드 사용이 제한된 지역에서 조류인플루엔자 관련 실험을 추진하려던 사례도 적발됐다. 앤트로픽은 국가 안보 우려를 이유로 중국·러시아·이란·북한·쿠바 등에서 클로드 사용을 제한하고 있다. 이들 지역에서 우회 접속을 시도하거나 연구 목적을 숨긴 이용자의 계정은 차단됐다. 앤트로픽은 생물학 무기 등 군사적 목적으로 전용될 가능성이 있는 연구에 대해서도 AI 안전장치를 강화했다고 밝혔다. 생물학 분야를 넘어 AI를 총기와 미사일, 무장 드론 등 재래식 무기의 설계·개발에 활용하거나 반체제 인사를 감시하려 한 사례도 보고서에 포함됐다. 특히 중국에서 3건, 러시아에서 2건, 예멘에서 1건의 재래식 무기 관련 악용 사례가 확인됐다. 중국과 이란 정부와 연계된 것으로 의심되는 세력은 AI를 이용해 반체제 인사와 해외 거주자들을 감시하려 한 것으로 전해졌다. 러시아의 한 국영 매체는 클로드를 활용해 몰도바 선거와 관련한 허위 정보를 독립 언론의 보도인 것처럼 위장하려 한 사례도 확인됐다. 워싱턴 싱크탱크 전략위험위원회(CSR)의 선임연구원 앤드루 웨버는 앤트로픽이 공개한 생물학 연구 사례에 대해 “국가의 지원을 받는 생물학 무기 개발자들이 빠르게 발전하는 AI의 능력을 이용하려 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섬뜩한 사례”라고 평가했다. 이어 “중국과 러시아, 북한이 금지된 생물학 무기를 계속 개발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들 국가의 연구자들이 강력한 AI 모델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철저히 막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 인류 진화의 ‘잃어버린 고리’…아시아인 핏속에 흐르는 고인류 정체 찾았다 [달콤한 사이언스]

    인류 진화의 ‘잃어버린 고리’…아시아인 핏속에 흐르는 고인류 정체 찾았다 [달콤한 사이언스]

    데니소바인은 유라시아 지역에 거주하는 인류 조상의 한 갈래다. 러시아 시베리아 지역 데니소바 동굴에서 발굴된 화석을 통해 처음 발견됐는데 이후 다른 지역에서 많이 발견되지 않았다. 그래서 데니소바인들의 형태학적 특징과 거주 범위를 완벽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유전체 데이터에 따르면 동남아시아와 오세아니아 지역 인구 집단에서 데니소바인의 유전체가 발견돼 중국 남서부 지역에서도 거주했을 것이라고 추정되고 있지만 이 가설을 뒷받침할 화석 증거는 매우 부족한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 과학원 부설 척추동물 고생물학 및 고인류학 연구소가 중심이 된 연구팀과 중국 과학원 티베트 고원 연구소를 중심으로 스페인, 프랑스, 이탈리아, 노르웨이, 덴마크, 호주 연구팀이 참석한 또 다른 연구팀은 각각 중국 남서부 한 동굴에서 데니소바인의 화석과 관련 유물을 발견해 그들이 어떤 외형을 가졌고 어떻게 진화했으며 어떤 행동 양식을 보였는지 파악할 수 있게 됐다고 11일 밝혔다. 두 개의 연구 결과는 과학 저널 ‘네이처’ 9월 10일 자에 나란히 실렸다. 첫 연구팀은 중국 남서부 윈난성의 비안푸 동굴에서 팔뼈 일부, 머리뼈 일부 2개, 치아 4개를 발견했다. 이 화석들은 동굴에서 발견된 6만 개 이상의 뼈 파편 중에서 호미닌의 것으로 식별된 7점이다. 연대 측정을 한 결과 16만 7000년에서 13만 4000년 전의 것으로 확인됐다. 연구팀은 단백질체 분석도 실시했는데 그 결과 호미닌 화석에는 데니소바인 고유의 아미노산 변이가 포함돼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팔뼈 조각은 네안데르탈인에서 관찰되는 특징과 유사성을 보였지만 전체적인 형태 측면에서 보자면 현생 인류와 더 밀접한 것으로 확인됐다. 두 번째 연구팀은 뼈 이외에 동물 유해, 1300여 점의 석기를 포함한 고고학적 유물을 분석했다. 해당 유물들은 약 19만 년 전부터 7만 년 전까지의 시기를 포괄한다. 동물의 뼈와 꽃가루 유해를 분석한 결과 데니소바인이 거주했던 환경은 침엽수가 주를 이루는 숲 형태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또 네안데르탈인이 사용했던 기술과 유사한 골각기와 최소한의 가공만 거친 도구들의 흔적도 발견됐다. 이를 통해 연구팀은 비안푸 동굴에 거주했던 데니소바인들은 중대형 몸집의 먹잇감을 표적으로 삼는 특화된 사냥을 하며 살았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지금까지 확인됐던 데니소바인은 북시베리아에서 동북중국, 티베트고원을 거쳐 대만해협을 건넜을 것으로 예상됐지만 정작 그 경로에 있는 서남중국이 비어 있었다. 이번 연구 결과는 동아시아-남아시아-동남아시아로 이어지는 교차 지점에서 데니소바인의 화석을 발견함으로써 그동안 비어 있던 지리적 공백을 메웠다는 의미가 크다. 또 데니소바인은 지금까지는 DNA로만 존재했던 인류였지만 이번 연구를 통해 한 유적지에서 분자적 신원과 유물이 발견됨으로써 실제 존재 양식을 파악할 수 있는 고인류로 자리잡게 됐다. 연구를 이끈 차오메이 푸 중국 척추동물 고생물학 및 고인류학 연구소 교수는 “이번 발견들은 동아시아 지역 데니소바인의 생물학적 특징, 행동 양식 및 생태에 대한 심도 있는 이해를 제공하며 그동안 공백으로 남아있던 이들의 분포 지역에 대한 기록을 채워주는 중요한 성과”라고 설명했다.
  • [책꽂이]

    [책꽂이]

    무수면 사회(김찬호 지음, 21세기북스) 잠이라는 렌즈로 한국 사회를 들여다본 책.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지고 기술이 발전했는데도 우리의 밤은 더욱 짧고 불안해졌을까. 압축 성장 과정 속 장시간 노동과 통근, 입시 경쟁, 24시간 물류와 심야 배송, 돌봄과 출산, 전쟁과 재난까지 추적하며 개인의 불면 뒤에 놓인 사회적 조건을 살펴본다. 저자는 ‘잠을 빼앗고 다시 잠을 상품으로 파는’ 현대사회의 역설을 짚어낸다. ‘왜 잠들지 못하는가’를 묻는 것에서 출발해 ‘어떻게 살아야 편안히 잠들 수 있는가’를 되묻는 사회학적 탐구로 이어진다. 300쪽, 2만 2000원. 히틀러의 복지국가(괴츠 알리 지음, 최준영 옮김, 생각의힘) 히틀러와 나치는 1933년 권력을 장악한 뒤 1945년 패망할 때까지 12년 동안 독일을 지배했다. 저자는 여기서 하나의 질문을 제기한다. ‘그토록 범죄적인 정권이 어떻게 12년간 유지될 수 있었는가’. 그동안 나치의 야만성에 대한 비난의 화살을 소수의 개인에게 돌렸지만, 저자는 수천만명의 평범한 독일인이 체제로부터 물질적 혜택을 받았고, 적어도 그 범죄를 묵인했다고 주장한다. 국가가 특정 집단의 권리와 재산을 빼앗아 다수의 풍요를 약속할 때, 우리는 어디까지 이를 정당화할 수 있는지 묻는 책이다. 464쪽, 2만 8800원. 불평등의 지리(정준호 지음, 산지니) 왜 같은 일을 하고 같은 월급을 받아도 어디에 사느냐에 따라 부의 축적과 삶의 기회가 달라질까. 지역경제와 부동산, 공간경제를 연구해 온 저자는 한국 사회의 지역 불균형을 소득 격차나 인구 감소의 문제가 아니라, 경제 활동이 공간적으로 조직되는 방식과 그 안에 내재된 권력 구조의 문제로 바라본다. 공간 분업에서 출발한 격차가 소득의 지리적 불일치를 낳고, 다시 주택을 중심으로 자산으로 전환되며, 금융과 정치 권력의 집중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분석한다. 560쪽, 3만 8000원. 과학적으로 옳다는 착각(지바 사토시 지음, 김종현 옮김, 부키) 소셜미디어(SNS)를 중심으로 유사 과학, 음모론, 회의론 등 과학의 가면을 쓴 거짓 주장들이 난무하는 시대. 이런 조작되고 왜곡된 주장은 개인뿐 아니라 사회, 심지어 정치와 국가 기관에까지 침투해 과학을 망치고 세상을 위태롭게 한다. 진화생물학자인 저자는 현대 사회가 직면한 과학의 위기를 역사적 경위와 함께 살피면서 이런 일이 생기는 원인을 밝히고 이를 어떻게 막을지 해법을 제시한다. 308쪽, 2만 2000원.
  • 경북 바이오산업 미래 한눈에…‘2026 바이오산업 엑스포’ 안동서 개막

    경북 바이오산업 미래 한눈에…‘2026 바이오산업 엑스포’ 안동서 개막

    2026 경북 바이오산업 엑스포가 10일 안동체육관 보조경기장에서 사흘간의 일정으로 막을 올렸다. 올해로 5회째인 이번 엑스포는 ‘첨단 바이오 미래를 여는 경북’을 주제로 오는 12일까지 안동문화예술의전당, 안동시청소년수련관 등에서 열린다. 현장에서는 SK바이오사이언스, 티리보스, 바이오솔루션, 네오켄바이오 등 77개 기업과 기관이 참가해 제품 및 기술을 전시한다. 또 첨단재생의료, 백신, 세포배양, 뷰티, 대마·천연물, 합성생물학 등 6개 분야 콘퍼런스가 열리고 수출상담회와 구매·투자 상담회와 취업 박람회가 진행된다. 개막식에서는 경북도와 안동시, 한국과학기술원(KAIST)이 ‘정밀 발효 기반 바이오·푸드테크 산업 육성’ 업무협약도 체결했다. 이번 협약은 정부의 바이오 제조·농식품 등 5대 분야 거점 조성에 맞춰 지역 특화 농식품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다. 협약에 따라 세 기관은 정밀 발효 기반 미래식품·바이오소재 신산업 육성, 첨단 바이오 연구개발·실증·산업화 추진, 전문인력 양성 등에 협력한다.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엑스포는 안동의 백신·실증 인프라와 포항의 R&D 역량을 잇는 바이오·신약 밸류체인의 경쟁력을 알리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산업화를 이끌었던 경북이 첨단바이오 산업의 성장엔진으로 자리 잡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 여성이 남성보다 성욕 낮은 이유 찾았다…호르몬 아닌 ‘이것’ 때문 [라이프+]

    여성이 남성보다 성욕 낮은 이유 찾았다…호르몬 아닌 ‘이것’ 때문 [라이프+]

    흔히 여성의 성욕이 남성보다 낮다고 생각하지만 전문가들은 어린 시절의 성적 경험이 남녀 성욕 차이와 관련이 있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캐나다 토론토 대학교의 심리학자 에밀리 임펫과 다이애나 펠라진 연구진에 따르면 젊은 세대의 성관계 빈도는 이전 세대의 절반에 불과하다. 성관계 빈도를 높이기 위해 제안된 많은 방안은 여성의 성욕 증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러나 연구진은 이러한 접근 방식이 여성의 성욕을 마치 ‘고장 난 것을 고쳐야 할’ 것으로 취급하는 것이므로 잘못됐다고 지적한다. 오랫동안 여성의 성욕이 남성보다 낮은 이유는 진화와 호르몬에서 비롯된 생물학적 차이 때문이라고 여겨져 왔다. 그러나 연구진은 남녀 간의 성욕 차이가 성인이 되어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청소년기의 성 경험을 통해 형성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어린 시절의 성 경험을 통해 성관계가 즐거운지, 누구의 쾌락을 우선시하는지를 배우고 이러한 성에 대한 인상이 이후의 성욕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실제로 2022년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캐나다에 거주하는 18~25세 이성애자 838명을 대상으로 첫 경험에 대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여성의 8.2%, 남성의 69.5%가 첫 성경험에서 절정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만족감을 느꼈다는 여성은 21%, 남성은 45.1%였다. 현재 성욕을 비교했을 때, 첫 성경험에서 성적 절정을 경험한 여성은 남성과 비슷한 수준의 성욕을 보였지만, 반대로 첫 성경험에서 이를 경험하지 못한 여성은 남성과 성적 절정을 경험한 여성 모두보다 성욕이 낮았다. 남성의 경우 첫 경험에서 성적 절정을 경험했는지 여부와 현재 성욕의 유의미한 차이는 확인되지 않았다. 연구진은 “청소년기는 성적 경험에서 얻는 쾌감이 ‘다시 경험하고 싶다’는 욕망과 연결되는 시기”라며 “만약 젊은 여성들이 이 시기에 ‘성관계는 즐기는 것이 아니라 견뎌내야 하는 것’이라고 배우게 된다면 이러한 경험에 의해 형성된 성적 욕망의 차이가 남녀 간의 성욕 차이로 이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여성들이 어린 시절부터 모순된 메시지에 노출되는 것도 문제점으로 꼽혔다. 연구진은 “‘성적으로 매력적이어야 하지만 먼저 성관계를 요구해서는 안 된다’, ‘성관계에 동의할 수는 있지만 자신의 쾌락에만 너무 집중해서는 안 된다’, ‘불쾌한 경험은 묵묵히 참아야 한다’ 등의 모순적인 메시지는 훗날 여성의 성욕에 영향을 미친다”고 지적했다. 이어 “반면 남성들은 성관계에 있어 상대의 동의가 필요하다는 것을 배우면서도 두 파트너 모두 동등하게 쾌감을 느껴야 한다는 것은 배우지 못한다”면서 “이는 남성이 성적 절정에 도달하면 성관계가 끝난다고 생각하는 경향으로 이어진다”고 덧붙였다. 이와 더불어 북미와 유럽에서 남녀의 첫 성경험을 비교한 연구에 따르면 젊은 여성은 남성보다 통증을 더 많이 느끼고 쾌감은 덜 경험하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여성은 첫 성경험에 대해 긍정적인 감정과 부정적인 감정을 모두 경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첫 성경험에서 절정을 느끼는 여성은 10명 중 1명도 채 되지 않으며, 남녀 간의 이러한 격차는 성인기 성경험에서 나타나는 격차보다 훨씬 크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연구진은 “특히 청소년기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며 “이 시기에 겪는 성적 경험은 나중에 성생활에 대한 안전감, 자신감, 흥미를 느끼는 데 장기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성욕은 성인이 된 후 경험에 따라 증가하거나 감소할 수 있지만 과거의 성 경험은 바꿀 수 없다”며 “따라서 여성의 성욕 저하를 개인적인 문제로 보고 약물이나 기구를 이용해 증가시키려 한다면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을 놓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해당 연구는 지난 1월 미국계 글로벌 학술 출판사인 세이지 퍼블리싱이 운영하는 ‘세이지 저널’ 학술 플랫폼에 소개됐다.
  • “미국엔 치타가 없었다”…3만 년 전 DNA가 밝힌 정체 [사이언스 브런치]

    “미국엔 치타가 없었다”…3만 년 전 DNA가 밝힌 정체 [사이언스 브런치]

    과학기술의 발달로 과거 고생물학 연구의 결과가 바뀌는 경우가 많다. 과거 북미지역에 서식했다가 멸종한 ‘미국 치타’에 대해 수십 년 동안 이어져 왔던 통념이 새로운 연구에 의해 뒤집혔다. 미국 산타크루즈 캘리포니아대(UCSC) 생태·진화생물학과, 알래스카대 물·환경 연구센터, 해양생물학과, 디모인대 해부학과, 콜로설 바이오사이언스, 캐나다 유콘 고생물학 프로그램 공동 연구팀은 화석 핵 고유전체와 안정동위원소를 분석한 결과 미국 치타는 진짜 치타가 아니라 퓨마의 친척이며 물고기를 잡아먹기도 했다고 6일 밝혔다. 이 연구 결과는 생명과학 분야 국제 학술지 ‘커런트 바이올로지’ 9월 4일 자에 실렸다. 미국 치타는 플라이스토세(약 258만~1만 1700년 전)에 날씬한 몸통과 긴 앞다리로 북아메리카 초원에서 서식했던 육식 동물로 알려졌다. 성체의 몸무게는 평균 68㎏ 안팎이며 어깨 높이는 90㎝, 코끝에서 꼬리 끝까지 길이는 약 2.4m로 추정된다. 최근까지 이어진 많은 연구에서 이 동물은 땅 위에서 먹잇감을 뒤쫓는 추격 사냥과 강한 앞다리로 먹이를 붙잡는 사냥을 모두 해낼 수 있는 다재다능한 포식자라고 밝혀졌다. 지난 수십 년 동안 미국 치타는 북미 고생태학 단골 소재로, 특히 아메리카 가지뿔영양(프롱혼)이 왜 빠른지를 설명하는 진화적 이유로 자주 인용됐다. 이른바 ‘과거 포식자의 유령’ 가설로 가지뿔영양의 달리기 속도는 치타처럼 고속으로 추적하는 사냥꾼에 맞서 함께 진화해 온 방어 수단이라는 설명이다. 실제로 가지뿔영양의 최고 속도는 시속 97~99㎞로 치타 다음으로 빠르지만 치타가 단거리 선수라면 가지뿔영양은 최고 속도로 오랫동안 달릴 수 있다는 측면에서 지구상 가장 빠른 동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연구팀은 2만 3000년~3만 1000년 전 미국 치타의 화석에서 확보한 유전체 데이터를 해독해 후기 플라이스토세의 극한 환경에서 번성할 수 있게 해준 구체적 유전적 설계도를 조사했다. 그 결과 미국 치타는 치타가 아니라 현생 퓨마의 자매종이며 약 260만 년 전 퓨마 계통에서 갈라져 나왔다는 것을 확인했다. 서식 범위도 그동안 알려졌던 것보다 위도로 20도나 더 북쪽까지 뻗어 있었다. 미국 와이오밍주나 플로리다주 같은 남부 지역에 서식한 개체군은 온대 초원에서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사냥하는 일반적 포식자로 살았던 반면 북극권 유콘에 살던 같은 종의 개체들은 연어처럼 바다와 강을 오가는 소하성 어류를 주로 잡아먹는 3차 소비자로 독특한 생태적 지위를 가진 것으로 나타났다. 또 치타처럼 날씬한 몸매는 수렴 진화 때문으로 확인됐다. 수렴 진화는 서로 가깝지 않은 두 종이 비슷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비슷한 형질을 각각 진화시키는 현상이다. 연구팀은 겉모습만 보고 멸종한 종에 이름을 붙이는 일은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미국 치타라는 이름 때문에 치타와 가까운 혈연 관계라는 인상을 주고 치타와 같은 사냥 방식을 공유했다는 인상을 주지만 지금까지 확보한 데이터는 그 어느 쪽도 뒷받침하지 않고 있다. 이번 연구에서 분석한 모든 고양잇과 계통은 신맛 수용체를 만드는 유전자 기능을 잃은 상태라는 것을 확인했다. 모든 고양이가 단맛을 느끼지 못한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지만 고양잇과에서 신맛 인지에 관여하는 유전자가 불활성화된 사례가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연구를 이끈 베스 서피로 UCSC 교수(고유전체학)는 “이 육식동물은 북극에서 미국 본토 48개 주에 이르기까지 어마어마하게 넓은 서식 범위를 갖고 있었다”라며 “멸종은 갑작스러운 것이 아니라 느리게 진행됐는데 가장 큰 이유는 기후변화로 적응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 배란기 여성, ‘큰 로고’ 명품에 더 끌린다? 알고 보니 [사이언스 브런치]

    배란기 여성, ‘큰 로고’ 명품에 더 끌린다? 알고 보니 [사이언스 브런치]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 값비싼 물건을 사는 이른바 ‘과시적 소비’는 미국 경제학자 소스타인 베블런이 저서 ‘유한계급론’에서 처음 제시한 뒤 사회학자와 경제·경영학자, 심리학자들 연구 대상이 됐다. 짝짓기 동기와 과시적 소비를 연결한 연구는 대부분 남성을 대상으로 했고 여성의 명품 소비는 지위 추구나 동성 간 경쟁으로 설명하는 데 그쳤다. 그 배경에 어떤 생물학적 조건이 작동하는지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덜 다뤄졌다. 전북대, 미국 럿거스대 경영대학원, 플로리다 뉴베리 스키마 행동과학 연구소, 오네온타 뉴욕주립대(SUNY Oneonta) 경제경영학부, 미네소타대 경영대학원 공동 연구팀은 가임 능력과 관련된 호르몬 변화가 여성이 눈에 잘 띄는 명품 소비 경향을 높인다고 밝혔다. 이는 남성의 시선을 끌기 위한 행동일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전북대 경영학과 김애경 교수가 제1저자 및 교신저자로 참여한 이번 연구 결과는 미국공공과학도서관에서 발행하는 국제 학술지 ‘플로스원’ 9월 3일 자에 실렸다. 전 세계적으로 소비자들은 해마다 수십억 달러를 명품 의류, 액세서리, 보석, 고급 자동차 같은 제품 구입에 쓴다. 대체로 자기를 과시하기 위해서다. 명품과 관련 서비스 지출 절반 가까이는 여성이 차지하는데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알리려는 동기가 일부 작용한다고 알려져 있다. 연구팀은 이런 지위 추구와는 별개로 에스트로겐 수치가 올라가고 임신 가능성이 높아지는 배란기 무렵에 여성이 짝을 끌어들이기 위해 눈에 띄는 명품 소비에 나서는지 주목했다. 이에 연구팀은 배란기에 가까운 여성일수록 명품을 선호하고 다른 사람 눈에 잘 띄는 큰 로고가 박힌 옷을 입는 식으로 명품을 과시적으로 드러낼 가능성이 크다고 가정했다. 연구팀은 호르몬 피임약을 복용하지 않는 여대생 70명(평균 22.6세)을 대상으로 핸드백과 구두에 구찌, 샤넬, 루이비통 같은 명품 브랜드 로고를 연필로 직접 그리게 한 뒤 캘리퍼로 가로, 세로 크기를 측정해 면적을 계산하게 했다. 그 결과 참가자들은 가임력이 낮은 시기보다 배란기에 가까울 때 로고를 더 크게 그렸다. 이에 대해 연구팀은 이성의 눈에 띄기 위해 과시적 명품을 선호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두 번째 연구에서는 역시 호르몬 피임약을 복용하지 않은 여성 332명을 대상으로 설문해 배란 예정일을 추정한 뒤 명품 브랜드와 일반 브랜드 구매 의향, 그리고 명품 브랜드를 공개 착용할 것인지 집에서만 착용할 것인지를 물었다. 그 결과 배란기에 가까운 여성일수록 남들이 보는 자리에서 착용하는 명품에 대한 구매 욕구가 높았지만 혼자 쓰는 명품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배란기에 명품 욕구가 커지는 이유는 눈에 띌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서라는 점을 시사하는 것이라고 연구팀은 밝혔다. 세 번째 실험에서는 358명의 여성을 두 그룹으로 나눠 한쪽은 “남성은 여성의 미소와 미모, 걸음걸이를 보지만 입은 옷의 브랜드는 보지 않는다”는 가짜 기사를 보여주고 다른 쪽은 “관측 가능한 우주에 은하가 2조 개”라는 기사를 읽도록 한 뒤 일반 브랜드와 명품 브랜드의 100달러 상품권 중 하나를 고르도록 했다. 그 결과 앞선 남성 성향에 대한 가짜 기사를 읽은 여성들은 배란기에 가깝더라도 명품 브랜드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연구는 여성의 명품 선호가 눈높이가 높다는 것을 알려 부적절한 남성을 걸러내는 ‘짝 선별’ 신호로 쓰인다는 기존 연구에 대해 반박하며 ‘더 많은 남성의 눈에 띄기 위해’ 명품을 쓴다고 주장한다. 이번 연구는 과시적 소비와 짝짓기 동기를 엮은 연구들 대부분이 남성을 대상으로 하고, 여성들은 섹시한 옷차림 연구가 주였지만 미모를 높여주지도 않는 명품이 왜 배란기에 더 매력적으로 느껴지는지를 다룬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연구팀은 설명했다. 연구팀 관계자는 “이번 연구는 여성이 남성의 관심을 끌려는 모든 상황에 적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인과관계를 입증하도록 설계된 것은 아니다”라고 전제했다. “배란이 명품 욕구에 미치는 영향이 단순히 값비싼 제품 전반에 대한 선호가 높아지는 현상이 아니며 오히려 사회적으로 전략적 성격을 보인다”며 “명품 소비가 남들 눈에 보이고 자신에게 직접 해당될 때 효과가 강해지는 반면 남성이 그런 신호에 주목하지 않는다고 믿을 때는 사라진다”고 덧붙였다.
  • 100도 온천·남극 얼음에도 생명체가…세계 석학 서울 모인다

    100도 온천·남극 얼음에도 생명체가…세계 석학 서울 모인다

    섭씨 100도에 가까운 뜨거운 온천과 영하 수십 도의 남극 얼음, 햇빛도 닿지 않는 깊은 바다. 다른 생명체라면 버티기 어려운 극한환경에서 살아가는 미생물의 ‘생존비법’을 연구하는 세계 석학이 서울에 모인다. 이 작은 생명체가 코로나19를 겪으며 익숙해진 유전자증폭기술(PCR) 검사부터 이차전지 소재 개발, 우주 생명체 탐사 등에 폭넓게 활용되고 있다. 연세대는 오는 9월 13일부터 17일까지 서울 신촌캠퍼스에서 국제 극한환경 미생물학회 세계학술대회인 ‘익스트리모파일(Extremophiles) 2026’을 연다고 2일 밝혔다. 미국과 독일, 일본, 프랑스, 이탈리아 등 35개국 이상의 연구자가 참가한다. 올해는 국제 극한환경 미생물학회가 만들어진 지 30년이 되는 해여서 의미를 더한다. 극한환경 미생물은 뜨거운 온천과 남·북극의 얼음, 수천 미터 깊이의 바다, 소금기가 매우 강한 호수, 방사선이 강한 지역 등에서 사는 미생물이다. 이런 환경을 견디기 위해 열이나 추위, 강한 압력에도 쉽게 망가지지 않는 특별한 효소와 생존 방식을 갖고 있다. 이런 특성은 이미 우리 생활에도 활용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코로나19 검사에 쓰인 PCR이다. PCR은 적은 양의 유전자를 크게 늘려 감염 여부를 확인하는 기술이다. 이때 필요한 핵심 효소는 미국 옐로스톤 국립공원의 뜨거운 온천에 사는 미생물에서 발견됐다. 뜨거운 곳에서도 망가지지 않는 효소 덕분에 유전자 검사가 가능해진 것이다. 최근에는 활용 범위가 더 넓어지고 있다. 극한환경 미생물을 이용해 플라스틱을 분해하거나 폐기물에서 희귀금속을 뽑아내는 연구도 진행되고 있다. 친환경 연료와 신약, 산업용 촉매를 만드는 데도 활용된다. 화학물질을 덜 쓰고 에너지 소비를 줄일 수 있어 탄소중립 기술로도 주목받는다. 국내 연구기관도 관련 연구를 활발히 하고 있다. 한국해양과학기술원은 깊은 바다에 사는 미생물이 어떻게 살아남는지를 연구하고, 이를 이용해 수소를 생산하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극지연구소는 남극과 북극의 미생물을 살펴보며 차세대 이차전지 소재 같은 산업적 활용 가치가 높은 후보물질을 발굴하고 있다. 연세대는 매우 높은 온도에서도 활동하는 미생물의 효소를 활용해 천연감미료를 만드는 공정을 개발했다. 닭털 같은 농축산 폐기물을 분해해 값비싼 바이오 원료로 바꾸는 기술도 연구하고 있다. 버려지는 물질을 새로운 자원으로 바꾸는 방식이다. 이번 대회에서는 극한환경 미생물이 어떻게 살아남고 진화했는지뿐 아니라 인공지능(AI)을 이용한 효소 개발, 친환경 에너지, 탄소중립 기술 등이 소개된다. 화성과 목성의 위성 유로파, 토성의 위성 엔셀라두스에 생명체가 존재할 가능성도 주요 주제다. 이들 천체는 춥거나 물이 얼어 있는 등 지구의 극한 환경과 비슷한 점이 많다. 이번 학술대회는 국내 극한미생물 연구의 30년 성장사를 보여주는 자리이기도 하다. 연세대는 1996년 해외 연구를 국내에 소개하기 위해 작은 국제심포지엄을 열었다. 당시에는 국내에서 거의 알려지지 않은 분야였지만 30년 만에 세계 연구자들이 참여하는 학술대회로 커졌다. 익스트리모파일 2026은 연세대와 한국미생물·생명공학회, 한국해양과학기술원, 극지연구소가 공동으로 연다. 이동우 연세대 생명공학과 교수는 “극한환경미생물 연구는 건강과 식량, 에너지, 환경, 우주탐사까지 이어지는 미래 기술”이라며 “이번 대회가 한국의 연구 성과를 세계에 알리고 국제 공동연구를 늘리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 “남 괴롭히고는 좋다고 ‘방실방실’”…싸이코패스, 장 속부터 남달랐다

    “남 괴롭히고는 좋다고 ‘방실방실’”…싸이코패스, 장 속부터 남달랐다

    장 속 특정 세균이 많을수록 사이코패스 성향 점수가 함께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네이처 자매지인 ‘트랜슬레이셔널 사이키애트리’(Translational Psychiatry)에 최근 발표된 논문에 따르면, 포르투갈 포르투대 카롤리나 코스타 연구팀은 장과 구강에 서식하는 미생물군 구성이 사이코패스적 성격 특성과 연관이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미생물이 사람의 정신 상태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지만 구체적인 연관성을 다룬 연구는 이번이 처음이다. 사이코패스는 공감 능력 부족, 반사회적 성향, 충동성, 자기중심적 성격 등으로 정의된다. 타인에게 피해를 입혀도 애초에 공감할 수 없어서 죄책감이나 후회를 거의 느끼지 않으며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는 것이 특징이다. 자신의 목적을 위해 타인을 조종하거나 거짓말을 서슴지 않고 반복적으로 반사회적 행동을 한다. 연구팀은 사이코패스 성향의 근원을 밝히기 위해 건강한 성인 200명을 모집한 뒤 사이코패스 성향을 수치화하는 설문을 작성하도록 했다. 이후 참가자들의 혈액과 침, 대변 샘플을 채취해 체내 세균 구성과 각종 대사 지표를 분석했다. 개별 참가자의 미생물 다양성만 놓고 보면 사이코패스 성향과 뚜렷한 연관성이 드러나지 않았다. 하지만 참가자들의 결과를 서로 비교하자 다른 양상이 나타났다. 연구팀은 알리소넬라, 프레보텔라, 클로아시바실루스 에브리엔시스 등 세 가지 장내 세균의 수치가 높은 참가자일수록 사이코패스 성향 설문에서도 높은 점수를 기록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들 장내 세균이 어떤 경로를 통해 사이코패스적 성향으로 이어지는지는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연구팀은 여러 질환의 원인으로 알려진 알리소넬라 세균이 유발하는 염증 반응에 주목했다. 이 염증이 불안이나 우울증과 깊은 연관이 있는 만큼, 사이코패스 성향을 불러오는 전조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다. 프레보텔라 역시 이전부터 다양한 정신질환과 관련된 세균으로 알려져 있다. 클로아시바실루스 에브리엔시스는 충동 조절에 관여하는 뇌 화학물질을 생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이번에 발견된 장내 세균과 사이코패스적 성향 간 연관성이 사이코패스 성향을 판별할 수 있는 ‘생물학적 지표’를 찾아낸 성과라고 강조했다. 다만 이번 연구는 특정 미생물이 사이코패스 성향의 직접적인 원인이라는 사실을 입증한 건 아니라고 덧붙였다.
  • 공부 뒤 낮잠?…뇌는 자는 동안 ‘학습 중 기억할 것’ 꼬리표 붙인다 [달콤한 사이언스]

    공부 뒤 낮잠?…뇌는 자는 동안 ‘학습 중 기억할 것’ 꼬리표 붙인다 [달콤한 사이언스]

    학생들은 수업시간에 배운 것, 교과서에서 읽은 것을 모두 기억하길 원한다. 그렇지만 사람은 자신이 겪은 모든 경험을 기억하지 못한다. 뇌는 잠을 자는 동안 일부 경험만 골라 장기 기억으로 공고화하고 나머지는 흘려보낸다. 쉽게 이야기하면 학습이 이뤄지는 시점에 이미 특정 경험이 ‘나중에 기억으로 저장할 대상’으로 표시된다는 것이다. 이런 기억 태깅 가설은 여러 신경생물학 이론에서 오래전부터 제기돼 왔지만 실제 그런 작업이 벌어진다는 실험적 증거는 그동안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영국 요크대 심리학과, 킹스 칼리지 런던 의생명공학 및 영상과학과, 미국 베일러대 심리·신경과학과, 독일 뮌헨 루트비히 막시밀리안대 심리학과 공동 연구팀은 사람의 뇌는 무언가를 배우는 순간에 이미 어떤 경험을 나중에 잠자는 동안 장기 기억으로 굳힐지 꼬리표를 붙여 표시할 가능성이 크다고 31일 밝혔다. 이 연구 결과는 생명과학 분야 국제 학술지 ‘플로스 생물학’ 8월 27일 자에 실렸다. 연구팀은 뇌가 어떤 경험을 수면 중 장기기억으로 넘어갈 대상으로 선별하는지 알아보기 위해 성인 남녀 31명을 대상으로 뇌전도(EEG)를 이용해 뇌 활동 패턴을 측정했다. 연구팀은 참가자들에게 단어와 사물 이미지를 짝지은 세트를 학습하도록 한 다음 학습 직후와 2시간 휴식 뒤에 각각 기억 검사를 받았다. 연구팀은 실험을 두 번 했는데 한 번은 2시간 동안 낮잠을 자게 했고 다른 한 번은 같은 시간 동안 깨어 있게 하고 관찰했다. 연구팀은 참가자들이 학습하고 휴식하는 동안 뇌전도 기록을 분석해 학습 중 나타난 반복적 뇌파 진동 패턴과 수면 후 기억에 남은 항목을 대조했다. 분석 결과, 학습 도중 3~8㎐의 세타파를 동반한 단어·사물 쌍은 잠을 자고 난 뒤 더 잘 기억되는 것으로 확인됐다. 반면 깨어 있는 상태로 2시간을 보낸 경우에는 이런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다. 학습 중 세타파 활동이 강할수록 이후 수면 중 느린 뇌 진동(서파)과 수면 방추 사이의 결합이 더 활발해지는 것으로 확인됐다. 서파-방추 결합은 다시 수면 후 더 좋은 기억 성적과 연결됐다. 우리가 경험한 모든 것을 다 기억한다면 뇌는 금세 과부하 상태에 빠지게 된다. 감정적으로 두드러지거나 앞으로 일에 중요한 사건을 선별적으로 우선 처리함으로써 과거 경험을 세상과 상호작용하는 데 길잡이로 쓸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연구팀에 따르면 세타 진동이 뇌가 수면 중에 기억으로 굳힐 경험을 골라내는 메커니즘을 보여주는 신호다. 특정 종류의 정보를 우선시하는 것은 대개 적응에 도움이 되지만, 그것이 오히려 해가 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우울증 환자는 부정적인 정보에 주의 자원을 과도하게 배분하는 반면 긍정적인 경험은 무시하거나 축소하는 경향이 있다. 이번 연구 결과는 무엇이 최종적으로 기억에 남을지를 좌우하는 뇌의 처리 과정 연구와 우울증처럼 흔한 정신 건강 문제를 이해하고 치료하는 새로운 길을 열어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연구를 이끈 댄 데니스 영국 요크대 박사는 “뇌가 무엇을 기억할 만큼 중요하다고 판단하고 무엇을 잊어도 된다고 판단하는지는 여전히 수수께끼”라면서도 “이번 연구 결과는 수면 중에 어떤 경험을 처리해 장기 기억으로 만들지 뇌에 지시하는 신경 활동의 특징적 신호를 처음으로 밝혀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설명했다.
  • 케임브리지대 팀 르윈스 교수의 『생명윤리의 생물학적 토대』 한국어판 출간

    케임브리지대 팀 르윈스 교수의 『생명윤리의 생물학적 토대』 한국어판 출간

    서울대병원 수련의 윤정환 씨 번역, 서연비람 발행케임브리지대학교 팀 르윈스(Tim Lewens) 교수의 저서 『생명윤리의 생물학적 토대(The Biological Foundations of Bioethics)』 한국어판이 도서출판 서연비람에서 출간됐다. 번역은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현재 서울대병원에서 수련의로 근무하는 윤정환 씨가 맡았다. 의학 기술이 발전할수록 의료 현장에서는 더 복잡한 윤리적 판단이 요구된다. 환자에 대한 유전적 개입은 어디까지 허용해야 하는가. 정상과 비정상, 치료와 향상의 경계는 생물학적 사실만으로 결정될 수 있는가. 이 책은 임상 현장에서 제기되는 이러한 질문들을 철학적으로 다시 묻는다. 지난 2015년 옥스퍼드대학교 출판부에서 처음 발간된 원서는 전통적 규범 윤리 이론의 단순 반복에 머물렀던 기존 생명윤리학의 한계를 짚고, 생물철학의 엄밀한 개념 분석을 접목해 생명윤리의 기초를 재정립한 기념비적 저작으로 평가받아 왔다. 이번 한국어판 번역은 서울대학교병원에서 근무 중인 윤정환 수련의가 맡았다. 서울대 의대에 수석으로 입학한 윤 씨는 학부 시절 최상재 전 SBS 특임이사와 함께 『논리를 알면 세상이 보인다』를 펴내며 날카로운 논리적 통찰을 선보인 바 있다. 윤정환 씨는 “생명윤리의 구체적 쟁점을 올바르게 이해하려면 추상적인 윤리 이론뿐 아니라 그 논의가 암묵적으로 전제하는 생물학적·의학적 개념과 설명 방식까지 함께 성찰해야 한다”며 번역에 착수한 계기를 설명했다. 역자는 의학적 전문 지식을 토대로 난해한 철학적·생물학적 논제를 정밀하고 자연스러운 우리말로 풀어냈다. 책은 특정 형질만을 결정론적으로 해석하는 ‘유전자 예외주의’를 비판하며, 유전공학적 신체 개조에 앞서 사회적 환경을 개선하는 것이 보다 근본적인 해법임을 역설한다. 아울러 보건의료 정책의 핵심 판단 기준은 단순한 질환 유무를 넘어 ‘개인의 자율성과 삶의 복리 증진’에 맞춰져야 한다고 제언한다. 의료 현장의 실무적 시각과 엄밀한 과학철학이 결합된 이 책은 현대 의학과 생명과학의 방향성을 모색하는 연구진과 독자들에게 충실한 이정표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생명윤리의 생물학적 토대』 팀 르윈스 지음 | 윤정환 옮김 | 서연비람 | 420쪽
  • 김지민도 안 하는데 “우욱”…김준호, 한 달째 입덧하는 이유 [라이프]

    김지민도 안 하는데 “우욱”…김준호, 한 달째 입덧하는 이유 [라이프]

    코미디언 김준호(52)가 임신한 아내 김지민(41)을 따라 한 달째 입덧 증상을 겪고 있다고 밝혀 눈길을 끌었다. 임신하지 않은 남편에게도 아내의 임신과 함께 입덧과 유사한 증상이 나타나는 이른바 ‘쿠바드 증후군’이다. 30일 방송된 SBS ‘미운 우리 새끼’에서는 시험관 시술에 도전한 김준호·김지민 부부가 임신을 확인하는 모습이 공개됐다. 이날 두 사람은 병원을 찾아 임신 사실을 확인한 뒤 눈물을 흘렸다. 이후 임신 12주 차 초음파 검사를 통해 태아의 모습도 확인했다. 김지민은 초음파 사진을 보며 “턱이 나를 닮았다”고 신기해했고, 김준호 역시 “우리 두릅이 완벽하다”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특히 눈길을 끈 것은 김준호에게 나타난 ‘입덧’ 증상이었다. 김지민을 위해 요리하던 김준호는 갑자기 헛구역질을 하며 “너무 사랑하면 대신 입덧하는 거 알지”라고 말했다. 이에 김지민은 “오빠가 왜 하냐. 나도 안 하는데”라며 황당해했다. 김준호는 실제 한 달가량 입덧과 비슷한 증상을 겪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처럼 임신하지 않은 남성이 임신한 배우자와 유사한 신체적·심리적 증상을 경험하는 현상을 ‘쿠바드 증후군(Couvade Syndrome)’이라고 한다. 쿠바드 증후군은 프랑스어로 ‘알을 품다’라는 뜻의 ‘couver’에서 유래했다. 대표적인 증상으로는 메스꺼움과 구토, 식욕 변화, 복부 팽만, 체중 증가, 피로, 수면 장애 등이 있으며 불안이나 짜증, 우울감 등 심리적 변화가 동반되기도 한다. 지난해 코미디언 손민수 역시 아내 임라라가 쌍둥이를 임신했을 당시 비슷한 증상을 보여 화제가 된 바 있다. 당시 임신 8주 차였던 임라라가 입덧과 먹덧을 겪는 가운데 손민수도 갑자기 속이 메스껍고 음식 냄새를 맡기 힘들어하는 등 입덧과 유사한 증상을 보였다. 구역질을 하다 화장실로 달려가기도 했다. 이후 임라라는 남편의 증상을 찾아본 뒤 쿠바드 증후군을 언급했다. 쿠바드 증후군은 의학적으로 독립된 질환으로 분류되지는 않는다. 정확한 원인도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지만 배우자의 임신에 대한 공감과 스트레스, 아버지가 된다는 데 따른 심리적 부담 등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호르몬 변화와의 연관성을 살펴본 연구도 있다. 배우자의 임신 기간 남성의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낮아지거나 프로락틴과 코르티솔 수치가 변하는 현상이 관찰되면서 심리적 요인뿐 아니라 생물학적 변화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제기돼 왔다. 증상은 대개 임신 기간 일시적으로 나타났다가 출산 후 자연스럽게 사라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구토나 복통 등 증상이 심하거나 장기간 지속될 경우 쿠바드 증후군으로 단정하기보다 다른 질환이 있는지 의료진의 진료를 받는 것이 좋다.
  • 부의 집중·패권 충돌·극단 정치… 1920년대가 보내온 ‘경고’ [모종린의 문화로 읽는 AI시대]

    부의 집중·패권 충돌·극단 정치… 1920년대가 보내온 ‘경고’ [모종린의 문화로 읽는 AI시대]

    미중 패권경쟁, 100년전과 닮은꼴‘군함·석유’ 대신 ‘반도체·AI’로 맞서부의 불평등은 자본주의 위기 불러극단주의·문화 충돌 ‘반작용’까지대공황·세계대전 필연적 역사 아냐‘불안한 번영’의 경고 외면한 대가중산층 경제·다자주의 질서 재정립‘자유주의 복원’으로 파국 막아야역사가 필요한 시대다. 인공지능(AI)이 산업과 노동시장의 지형을 재편하며 화이트칼라 일자리마저 위협하고, 무역과 기술을 넘어 군사와 이념의 영역으로 확산되는 미중 패권 경쟁의 핵심 대상으로 부상했다. 유럽과 미국에서는 극우 정당과 포퓰리즘 세력이 주류 정치로 복귀하는 반면 미국 Z세대에서는 사회주의에 대한 호감과 기술 권력에 대한 경계가 커지고 있다. 서로 반대 방향으로 보이는 변화들이 이제는 하나의 시대적 위기 속에서 얽히며 동시에 밀려오고 있다. 어느 것이 원인이고 어느 것이 결과인지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정책 하나, 정치인 한 명을 탓하는 진단으로는 이 복잡한 국면을 설명할 수 없다. 다만 흐름의 끝에서 경제위기와 정치적 극단화, 패권 충돌이라는 낯설지 않은 궤적이 어른거린다. 낯선 시대를 이해하려면 먼저 닮은 시대를 찾아야 한다. 미래는 반복되지 않지만 구조는 되풀이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을 이해하는 데 특히 유용한 시대적 나침반이 바로 1920년대다. ●美서 주목한 1910년대론·1930년대론 현재 미국 학계는 1920년대보다 1910년대와 1930년대에 더 주목한다. 예일대 교수 오드 아르네 베스타는 지금을 1차 세계대전 전야에 견준다. 강대국의 세력균형이 흔들리고 민족주의와 경제적·인종적 긴장이 고조된 시기다. 그는 지금의 다극화가 1914년 이전의 불안정한 세력균형과 닮았다고 본다. 존스홉킨스대 교수 할 브랜즈는 대공황과 파시즘이 부상한 1930년대를 지목한다. 그는 중국을 미국 주도의 국제질서에 도전하는 수정주의 세력으로 규정하고, 지금을 그 도전이 본격화되는 국면으로 읽는다. 두 견해는 서로 다른 시대를 호출하지만 국제질서의 불안정을 강대국 간 힘의 이동과 수정주의 세력의 도전에서 찾는다는 점에서는 궤를 같이한다. 그러나 국제정치라는 단일 축만으로는 불평등과 독점, 금융 불안정, 문화적 충돌 같은 자본주의 체제 내부의 위기를 온전히 파악하기 어렵다. 특히 브랜즈의 1930년대론은 파시즘의 부상을 강조하지만 그 확산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대공황이라는 경제위기를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다. 국제정치학은 강대국 간 힘의 재편을 설명하는 정교한 이론을 갖추고 있지만 자본주의 내부의 균열을 분석하는 축은 상대적으로 취약하다. 그 빠진 축을 채워 줄 역사적 참조점이 1920년대다. 미국에서 1920년대는 흔히 ‘광란의 20년대(Roaring Twenties)’로 불린다. F 스콧 피츠제럴드는 이 시대를 ‘재즈 시대(Jazz Age)’라고 명명하고 대중화했다. 유럽도 비슷했다.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가 그린 파리와 드라마 ‘바빌론 베를린’이 재현한 베를린에서는 예술과 대중문화가 도시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전쟁 뒤 경제적 번영과 대량소비가 확산되고 도시문화는 새로운 해방감을 누렸다. 그러나 그 화려함 아래에서는 국제질서의 재편과 자본주의 체제의 위기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었다. 영국의 패권이 저물고 미국의 힘이 부상했지만 권력의 이양은 아직 완결되지 않았다. 워싱턴 해군군축조약과 국제연맹이 상징하듯 새로운 질서를 구축하려는 시도는 있었으나 힘의 재배분은 진행 중이었다. 미국은 세계 최대 채권국이 되고도 국제연맹 가입을 거부하며 패권국으로서의 책임을 주저했다. 지금의 미중 경쟁 역시 기존 패권국의 우위가 흔들리지만 신흥국이 기존 질서를 완전히 대체하지 못한 과도기라는 점에서 닮았다. 1920년대 군함과 석유를 둘러싼 경쟁의 자리에는 오늘날 반도체와 데이터센터, AI와 배터리가 놓여 있다. 자본주의 체제 내부의 유사성도 뚜렷하다. 미국 상위 1%의 소득 비중은 1920년대 말 다시 1차 세계대전 이전의 18~19% 수준에 이르렀다. 포드의 대량생산 체제 아래 ‘모델 T’가 대중 자동차로 자리잡으면서 소수의 거대 기업이 다수의 소비를 조직하는 산업 구조가 확립됐다. 할부 구매와 신용을 동원한 주식 투자가 확대됐고 과도한 부채와 투기는 금융 붕괴의 파괴력을 증폭시켰다. 피츠제럴드의 1925년작 ‘위대한 개츠비’가 화려함 아래 감춰진 공허를 그렸다면, ‘바빌론 베를린’은 그 이면의 정치를 보여 준다. 1929년 베를린의 재즈클럽에서 사람들이 춤추는 동안 거리에서는 공산주의자와 극우 세력이 충돌했다. 미국에서도 재즈 시대의 열기는 이민 배척주의, KKK의 재부흥, 적색공포와 나란히 존재했다. 무솔리니와 히틀러로 모습을 드러낸 극우 세력도 전쟁의 상처와 경제 불안, 불평등, 민족주의가 결합하며 성장했다. 지금도 플랫폼과 AI 붐을 이끄는 빅테크 기업의 천문학적 기업가치와 부의 집중은 1920년대를 연상시킨다. 동시에 예술과 문화는 인간의 정체성과 새로운 생활양식을 둘러싼 사회변화를 주도하고 있다. 그러나 경제적 자유주의가 중산층의 위기를 심화시키고 문화적 진보주의가 이를 충분히 다루지 못하면서, 그 반작용으로 공동체와 정체성을 둘러싼 갈등은 더욱 커지고 있다. 유럽의 극우 정당 약진과 미국의 포퓰리즘 부상 속에서 인종과 이민, 젠더와 정체성을 둘러싼 문화충돌도 격화되고 있다. ●두 번의 전환이 겹친 시대 1920년대와 지금의 유사성을 관통하는 첫 번째 개념은 ‘패권전이’다. 강대국 간 힘의 배분이 재편될 때 기존 패권국은 쇠퇴하고 신흥국은 부상한다. 어느 쪽도 질서를 온전히 주도하지 못하는 과도기는 구조적으로 불안정하다. 두 시기는 모두 미완의 전환 국면에 서 있다. 국제질서에 패권전이가 있다면 자본주의 내부에도 정치와 경제의 국면 전환이 존재한다. 아서 슐레진저 주니어의 정치순환론은 1920년대가 미국 정치의 어떤 국면이었는지를 보여 주고, 피터 터친의 구조인구학 이론은 그 국면에 축적된 불평등과 엘리트 경쟁이 어떻게 사회 불안으로 이어지는지를 설명한다. 역사학자 슐레진저는 미국 정치가 ‘공적 목적’과 ‘사적 이익’ 사이를 한 세대 안팎의 주기로 오간다고 보았다. 그의 구분에 따르면 1920년대는 진보주의 시대의 개혁이 후퇴하고 방임과 사적 이익이 지배한 국면이었다. 그 과정에서 누적된 문제가 대공황을 거치며 뉴딜이라는 새로운 공적 목적을 불러냈다. 터친이 ‘종말의 시대(End Times)’에서 제시한 구조인구학 이론(Structural-Demographic Theory)으로 보면, 1920년대 미국은 기존 질서의 균열이 정치적 불안과 폭력으로 분출한 전환기였다. 진화생물학자 출신으로 역사동역학을 연구해 온 터친에 따르면 대중의 생활수준이 정체되는 가운데 엘리트 지망자가 늘어나고 한정된 지위와 권력을 둘러싼 경쟁이 격화되면 사회의 구조적 압력도 높아진다. 두 이론을 함께 읽으면 지금의 불안은 구조적 패턴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국제정치체제의 패권전이와 자본주의체제의 국면 전환이 동시에 진행되며 임계점에 가까워지던 시대가 1920년대였다. 지금 그 두 전환이 다시 겹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다. ●1920년대가 주는 시대적 교훈 1920년대가 주는 진짜 교훈은 파국이 예정된 운명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무솔리니의 1922년 로마 진군과 히틀러의 1923년 뮌헨 폭동은 파시즘의 부상을 알렸지만 아직 독재의 완성은 아니었다. 무솔리니의 일당독재는 1926년에야 확립됐고 히틀러의 뮌헨 폭동은 실패로 끝났다. 파시즘의 부상과 독재의 완성 사이에는 경로를 바꿀 시간이 있었다. 대공황도 필연은 아니었다. 1929년 주식시장 폭락으로 경제위기가 시작되자 미국의 긴축적 대응은 경기침체를 악화시켰다. 이어 각국이 경쟁적으로 관세를 높이면서 위기는 세계적 대공황으로 확산됐다. 세계대전의 발발도 피할 수 없는 운명은 아니었다. 영국과 프랑스는 1938년 뮌헨협정에서 히틀러를 저지하는 대신 체코슬로바키아의 주데텐란트 병합을 허용했다. 그러나 유화정책은 전쟁을 막지 못했고, 히틀러는 이듬해 체코슬로바키아를 해체한 뒤 폴란드를 침공했다. 1930년대의 파국은 경고가 없어서가 아니라 경고를 거듭 외면하고 대응을 미룬 결과였다. 2020년대가 1920년대와 닮았다면 이 역사는 예언이 아니라 파국으로 향하는 경로를 미리 바꾸라는 경고다. 현재와 같은 혼란 속에서 완성된 대안을 제시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방향은 분명하다. 자유주의의 복원이다. 국내 정치에서는 극단주의와 포퓰리즘의 압력으로부터 자유민주주의의 제도와 규범을 지켜야 한다. 경제에서는 자유주의를 시장방임과 동일시하지 않고 부의 집중을 완화하며 안정된 일자리와 소득, 사회적 이동성을 뒷받침하는 중산층 경제를 다시 세워야 한다. 국제 정치에서는 강대국의 일방주의와 충돌을 완충할 국제기구의 조정 기능과 중견국의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 정치적 자유, 중산층 경제, 다자주의 국제질서는 서로 분리될 수 없는 하나의 자유주의 질서다. 개츠비가 밤마다 바라보던 초록빛은 희망인 동시에 끝내 닿을 수 없었던 신기루였다. 1920년대의 사람들은 그 불빛을 좇느라 발밑에서 커지던 균열을 보지 못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또 하나의 초록빛을 좇는 일이 아니다. 이미 도착한 역사의 경고 신호를 읽고 파국으로 향하는 경로를 바꾸는 일이다. 1920년대라는 나침반이 가리키는 방향도 바로 그곳이다. 모종린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교수
  • 수십만 년 걸리는 이산화탄소 청소, 미생물로 앞당긴다 [사이언스 브런치]

    수십만 년 걸리는 이산화탄소 청소, 미생물로 앞당긴다 [사이언스 브런치]

    바위가 물과 공기에 노출돼 부서지고 녹는 암석 풍화는 지구의 천연 온도조절 장치다. 규산염 광물이 풍화되면 대기 중 이산화탄소가 물속에서 중탄산염 형태로 포집되고 이것이 바다로 흘러들어가 기온을 낮추는 식이다. 문제는 이런 순환이 수십만 년 단위로 움직인다는 점이다. 그래서 잘게 부순 규산염 암석을 농경지나 바다에 뿌리는 ‘강화 암석 풍화’(ERW)가 등장했지만 이것 역시 진행 속도가 생각만큼 빠르지 않아 경제성을 확보하지 못했다. 이런 가운데 미국 하버드대 의대 시스템생물학과, 하버드대 와이스 생명공학 연구소, 스탠퍼드대 지구시스템과학과 공동 연구팀은 미생물을 이용해 바위가 잘게 부서지고 녹는 암석 풍화 속도를 높여 대기 중 이산화탄소를 제거하는 방식을 개발했다고 30일 밝혔다. 이 연구 결과는 생명공학 분야 국제 학술지 ‘네이처 바이오테크놀로지’ 8월 28일 자에 실렸다. 연구팀은 세균이 철을 확보하려고 분비하는 작은 분자인 ‘시데로포어’에 주목했다. 감람석 같은 규산염 광물이 녹으면 마그네슘, 철, 규산이 나오는데 이때 방출된 철이 공기와 만나면 물에 녹지 않는 산화철이 돼 광물 표면을 코팅한다. 일종의 녹인데 이 녹층이 더 이상의 용해를 막아 풍화 속도를 떨어뜨린다. 시데로포어는 이 녹을 다시 녹이는 일종의 광물 표면의 녹을 벗겨내는 역할을 한다. 연구팀은 자체 제작한 생물반응기를 이용해 자연 상태의 세균이 언제 시데로포어를 만드는지 분석했다. 그 결과 철이 든 광물이 아주 조금만 있어도 시데로포어 생산이 완전히 멈춰버린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에 연구팀은 해양세균 중 하나인 ‘알테로모나스 마클레오디’의 유전자를 조작해 주변 철 농도와 무관하게 시데로포어를 계속 만들도록 했다. 연구팀은 이렇게 유전자 조작된 시데로포어를 바닷물 환경에서 실험했다. 연구팀은 감람석 모래 수 ㎏을 보스턴 항에서 길어온 정제하지 않은 바닷물에 잠기게 한 뒤 소형 생물반응기 여러 대를 가동했다. 그 결과 풍화 속도가 2.6배 증가하고 반응기 기준으로 하루에 대기 중 이산화탄소 0.5g을 흡수했다. 하루 0.5g은 성인 한 명이 약 15분 동안 내쉬는 이산화탄소 수준이다. 연구를 이끈 파엘라 실버 하버드대 교수는 “이번 연구는 합성생물학을 이용해 지질학적 시간 규모의 과정을 앞당길 수 있다는 원리를 입증했다는 데 의미가 크다”며 “인류가 연간 배출하는 이산화탄소가 수백억t이라는 점을 감안할 경우 실용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경제성 있는 먹이, 광물 공급원 확보, 유전자변형 미생물을 실제 해양 환경에 적용할 때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 등에 대해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 3살 이전에 ‘이것’ 못 먹게 하면 평생 암 발병률 낮았다 [라이프]

    3살 이전에 ‘이것’ 못 먹게 하면 평생 암 발병률 낮았다 [라이프]

    1940년 1월 영국은 독일의 해상 봉쇄로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었다. 독일 잠수함이 영국으로 드나드는 해상 보급선을 위협하면서 민간 물자가 고갈될 우려가 커졌기 때문이었다. 이에 따라 영국 정부는 설탕, 버터, 베이컨 등 주요 식품에 대한 배급제를 전면 도입했다. 수십년이 지난 뒤 이때의 배급 조치가 의외의 결과를 낳은 것이 연구를 통해 밝혀졌다. 제2차 세계 대전 중 불가피하게 설탕 섭취가 제한된 덕분에 전시에 태어난 세대의 건강이 극적으로 좋아진 결과가 관찰된 것이다.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에 최근 실린 논문에서 연구진은 태아 때부터 생후 약 2년까지 설탕 섭취가 제한됐던 사람들이 그렇지 않았던 사람들보다 성인이 됐을 때 여러 암의 발생 위험이 낮았고, 노화 관련 생체지표도 더 양호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이 결과는 제2차 세계 대전 중 영국에서 실시된 설탕 배급제 덕분에 이뤄진 일종의 ‘자연실험’ 덕분에 도출됐다. 1940년 1월 8일 실시된 설탕배급제는 1953년 9월 26일 종료됐다. 배급이 끝나자 영국의 설탕 소비량은 급격히 증가했다. 연구진은 1951년 10월~1956년 3월 출생자를 추려 약 6만 3000명을 분석했다. 즉 배급이 진행되던 시기에 태어난 사람과 배급이 끝난 직후 태어난 사람의 경우 출생 시점이 몇 달 차이밖에 나지 않지만, 영유아기에 설탕에 노출된 정도가 크게 달랐던 것을 비교한 것이다. 연구진은 이 시기 배급을 가장 오랫동안 경험한 사람, 즉 태아기부터 태어난 뒤 24개월까지 설탕 배급제를 겪은 집단을 배급을 경험하지 않은 집단과 비교했다. 버터나 베이컨 등은 배급제 전후 섭취량이 설탕만큼 극적으로 변하지 않았기 때문에 연구진은 설탕을 변인으로 삼았다. 그 결과 설탕에 제한적으로 노출된 집단 쪽이 폐암은 약 44%, 간·간내담도암은 약 68%, 직장암은 약 40%, 전립선암은 약 36%, 유방암은 약 52% 발병률이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논문의 핵심 가설은 첫 1000일에 있었다. 즉 임신부터 출생, 생후 약 2년까지의 영양 상태가 장기적인 신체 발달과 대사 체계를 프로그램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어린 시절의 영양 환경이 몸의 ‘기본 설정값’을 만들어 놓는데, 그 영향이 수십년 뒤까지 남을 수 있다는 가설이다. 연구진은 특히 대사, 인슐린, 염증, 장내 미생물, 식습관 형성 등이 영향을 받는 대상으로 추정했다. 다만 연구진이 이번 관찰과 분석에서 임산부·영유아 개인의 설탕 섭취량을 파악하고 그 인과관계를 살펴본 것은 아니었다. 대신 ‘배급제에 얼마나 오래 노출됐는가’를 살펴본 것이며 “생애 초기 설탕 배급이라는 환경에 더 오래 노출된 사람들이 훗날 암 발생 위험이 낮았다”라는 결론을 도출한 것이다. 연구진은 이를 정책 노출 효과로 해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구진은 암뿐만 아니라 생물학적 노화 지표도 측정했다. 대표적인 것이 텔로미어 길이다. 텔로미어는 염색체 끝부분의 구조로, 일반적으로 세포 분열과 스트레스 등의 영향을 받아 짧아지며 이는 노화와 수명과 연관돼 있다. 설탕 배급제에 가장 오래 노출된 집단에서 텔로미어 길이가 더 긴 것으로 관찰됐고, 나이로 환산했을 때 생물학적 노화가 약 2.2년 정도 늦는 것으로 추산됐다. 또 암뿐만 아니라 설탕 배급제에 가장 오래 노출된 집단에서 제2형 당뇨병도 28% 줄었고, 고혈압은 16% 낮았다. 비만과 심부전도 비슷한 경향이 나타났다. 다만 연구진은 이번 연구의 몇 가지 한계를 인정했다. 일단 1953년 전후 출생자 사이에는 설탕 외에도 사회·경제적 환경이 조금씩 달랐을 수 있었다. 또 배급 해제 이후 총열량 섭취량도 하루 약 100~150kcal 증가했다. 따라서 비교 관찰 결과가 설탕 자체 때문인지, 아니면 증가한 총에너지 섭취가 일부 영향을 미친 것인지 완전히 분리할 수 없었다. 다만 총열량 증가의 상당 부분이 설탕에 의한 것이었고, 다른 식품의 변화는 상대적으로 작았던 것으로 분석됐다. 또 다른 한계점은 이런 결과를 현대에 그대로 적용할 수 있는지 여부다. 1950년대 영국 사람들과 현재 영국 사람들은 비만율과 식생활 등이 크게 다르다. 당시 성인 비만율은 매우 낮았지만 현대 영국은 훨씬 높다. 따라서 오늘날 설탕을 줄였을 때 효과의 크기가 당시와 같을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 추가로 분석 대상 중 간암과 직장암 환자 수가 상대적으로 적어 그 차이를 비교하기에 충분하지 않았던 점도 있었다. 연구진은 “두 가지 메커니즘이 작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나는 생물학적 메커니즘으로, 초기 영양 섭취가 신진대사, 장기 및 면역 체계 발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이다. 또다른 하나는 행동적 메커니즘으로, 어릴 때 형성된 덜 단 음식에 대한 선호도가 지속되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 고소해서 맛있는데 “반숙란 먹다 죽을 수도” 발칵…비상 경고 내린 이유 [월드픽]

    고소해서 맛있는데 “반숙란 먹다 죽을 수도” 발칵…비상 경고 내린 이유 [월드픽]

    영국 전역에서 오염된 달걀로 인한 대규모 살모넬라균 식중독이 확산해 1명이 숨지고 200여명이 감염된 것으로 전해졌다. 최근 영국 데일리메일에 따르면 현지 보건당국은 카페나 식당 등 외식업체에서 주로 사용하는 수입산 달걀을 주요 감염원으로 지목하고, 노약자와 임산부 등 고위험군을 대상으로 날달걀 및 반숙란 섭취 주의보를 발령했다. 영국 보건당국에 따르면 현재까지 잉글랜드 199건, 스코틀랜드 6건, 웨일스 1건, 북아일랜드 1건 등 총 207건의 ‘살모넬라 엔테리티디스’(Salmonella Enteritidis) 감염 사례가 공식 확인됐다. 전체 감염자 중 3분의 1 이상이 상태가 악화해 병원 입원 치료를 받았으며, 2명은 패혈증 등 치명적인 혈류 감염으로 이어졌다. 이 중 1명은 끝내 숨졌다. 조사 결과 환자 대부분은 증상이 나타나기 전 카페, 식당, 테이크아웃 전문점 등에서 식사한 것으로 드러났다. 당국은 감염자가 2명 이상 발생한 음식점 5곳을 특정하고 정밀 조사를 진행 중이다. 영국 식품기준청(FSA)은 65세 이상 고령층, 5세 미만 영유아, 임산부, 만성질환자 등 면역 취약계층에 식당 이용 시 완전히 익히지 않은 반숙란뿐만 아니라 날달걀이 들어가는 마요네즈, 홀란다이즈 소스 등의 섭취를 전면 중단할 것을 강력히 권고했다. FSA는 “이번 식중독 사태는 확산 속도가 이례적으로 빠르고 규모가 크다”며 “외식할 때는 달걀이 포함된 모든 음식이 완벽하게 익었는지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와 관련해 영국 달걀 산업협의회(BEIC)는 2021년 이후 수입산 달걀 유입량이 6억개(약 60%) 이상 급증했으며, 특히 우크라이나(65% 증가)와 폴란드산 달걀이 식당과 출장 급식 업체로 대거 유통됐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영국산 달걀의 경우 산란계에 대한 살모넬라 백신 접종과 주기적인 전수 검사가 의무화돼 안전한 반면, 일부 수입산은 영국 내에서 2012년부터 금지된 배터리 케이지(비좁은 철창 사육) 방식을 유지하는 등 위생 및 안전 기준이 낮다고 비판했다. 폴 위글리 브리스톨대 미생물학 교수는 “영국산 달걀은 백신 접종 등으로 살모넬라 감염 위험이 거의 제로에 가깝다”며 “정부는 오염된 수입 달걀의 원산지를 대중에게 즉각 공개하고 필요시 수입 제한 조치를 단행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유럽 내 인접국에서도 달걀 관련 살모넬라균 확산세가 잇따르고 있다. 벨기에에서는 최근 현지 달걀 생산업체의 살모넬라 오염으로 1세 영아부터 96세 고령자까지 약 300명이 식중독에 걸렸으며, 해당 제품이 프랑스·이탈리아·스페인 등 유럽 전역으로 유통돼 대규모 리콜 조처가 내려졌다. 서울아산병원에 따르면 살모넬라균은 열에 약해 저온 살균(62~65℃에서 30분 가열)으로도 충분히 사멸되기 때문에 조리 식품에 2차 오염이 없다면 살모넬라균에 의한 식중독은 발생하지 않는다. 그러나 가열한 조리 식품을 먹더라도 살모넬라균에 중독될 수 있는데, 이는 가열이 충분하지 않았거나 조리 식품에 2차 오염이 있었기 때문이다. 살모넬라균은 저온 및 냉동 상태에서뿐 아니라 건조 상태에도 강해 이에 의한 식중독은 6~9월에 가장 많이 발생하며 겨울에는 발생 빈도가 낮은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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