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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씨줄날줄] ‘자토바이’/이동구 수석논설위원

    [씨줄날줄] ‘자토바이’/이동구 수석논설위원

    수많은 논문과 비평을 통해 강대국들의 폭력과 인권 유린을 고발해 ‘세계의 양심’, ‘미국의 양심’으로 불리는 ‘놈 촘스키’. 1960년대 베트남전쟁을 계기로 미국의 패권주의를 비판하고, “지식인의 책무는 진실을 말하는 것”이라며 실천적인 지식인의 삶을 살고 있는 그는 언어학자이다. “언어는 인간의 고유한 특성”이라 주장하며 ‘변형생성문법 이론’으로 언어학 발달에 혁명적 변화를 가져온 업적으로 ‘현대 언어학의 아버지’라 불린다. 언어란 사상과 감정을 표현하고 의사를 전달하기 위해 음성 또는 문자 등으로 사용하는 수단과 그 체계를 말한다. 인간만이 할 수 있는 능력이다. 언어를 사용하지 않는다면 인간이라 말할 수 없다. 인간 외의 다른 동물도 의사표현을 하며 감정을 전달하지만 말이나 문자를 사용하지는 못한다. 인간을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로 표현하다 언제부턴가 ‘호모 로쿠엔스’(Homo loquens)로도 표현한다. 호모 사피엔스가 인간의 생각하는 능력을 강조했다면 호모 로쿠엔스는 촘스키처럼 언어를 인간의 고유한 특성으로 부각한 말이다. 한발 더 나아가 “현대인은 디지털 시대가 고도화되면서 모바일 기술에 적응하며 진화한다”며 ‘호모 디지토 로쿠엔스’(Homo digito loquens)로 표현한다는 학자도 있어 흥미롭다. 언어에도 생명이 있다. 사람들이 사용하지 않으면 없어지고, 필요하면 새로운 언어가 생겨난다. 생성과 사멸을 반복하는 생명체와 똑 닮은 특성을 지녔다. 언어는 생각을 담는 그릇이라고도 한다. 인간의 희로애락과 높은 수준의 지적 사고를 모두 표현하고 전달한다. 그래서 언어는 사용하는 장소와 사람에 따라 색깔과 온도, 분위기도 달라진다. 물론 잘 알려진 대로 언어에는 시대성, 사회성도 담겨져 있다. 신조어와 유행어를 살펴보면 그 시대와 사회상을 느낄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최근 서울 집값이 폭등하자 ‘이생집망’(이번 생에 집 사기는 망했다)이라는 말이 생겼다. 입시지옥, 취업난, 주택난 등을 겪었던 젊은이들이 ‘이생망’, ‘헬조선’이라 자조했던 말의 변형인 셈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이 되면서 곧바로 ‘코로나 블루’(코로나로 인한 우울증)라는 말이 생겨났다. 이제 전 세계인이 공감하는 단어가 됐다. 최근엔 비대면이 생활화되면서 ‘호모 언택트’(Homo Untact)라는 신조어도 등장했다고 한다. 배달시장이 커지면서 배달기사 간의 경쟁이 치열해지자 ‘자토바이’(자전거로 등록했지만 실제로는 오토바이로 배달)와 ‘킥토바이’(오토바이 대신 킥보드로 배달)를 고발하는 사례도 있다. 부정적인 신조어가 자꾸 만들어진다. 언제쯤 따뜻한 단어가 많이 생겨날 수 있을까. yidonggu@seoul.co.kr
  • 외계인 찾던 ‘거대 망원경’ 미스터리…”이유 모를 파손”

    외계인 찾던 ‘거대 망원경’ 미스터리…”이유 모를 파손”

    지난 8월, 카리브해 섬나라 푸에르토리코에 세워진 거대한 전파망원경이 대파됐다. 사고가 발생한 지 무려 한 달이 지났지만 원인은 여전히 오리무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대파된 것은 아레시보 전파망원경으로, 지름 305m의 거대한 접시 안테나가 핵심장비다. 1963년에 세워져 세계 최대 전파망원경으로 불리다, 2016년 중국이 지름 500m 전파망원경을 완공하면서 ‘최대’ 자리를 내려놓았다. 한달 전 사고는 굵기 7.6㎝의 철제 케이블이 끊어지면서 발생했다. 끊어진 케이블은 아래에 있던 접시 안테나를 강타했고, 둥근 형태의 지붕은 너덜거릴 정도로 부서졌다. 아레시보 전파망원경의 주된 임무는 소행성을 추적하고 외계생명체의 신호를 찾는 것이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발달한 기계문명을 가진 외계인이 있다면 사람처럼 인공적으로 전파를 생성해 사용할 것이고, 아레시보 전파망원경의 임무 중 하나는 이 전파를 탐지하는 것이었다.문제는 사고가 발생한 뒤 한 달이 지난 현재까지도 케이블이 왜 끊어졌는지 등 사고의 정확한 원인을 파악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복구작업이 진행 중이긴 하지만, 파손 상태가 워낙 심한데다 정확한 사고 원인이 파악되지 않은 상태여서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아레시보 천문대 측은 최근 성명에서 사고 발생 원인을 찾지 못했다는 소식과 함께 “현재는 부서진 조각을 제거하고 본래의 임무를 시작하기 전, 거대한 안테나를 본래 자리로 올려놓아도 될 정도로 안전한지를 확인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밝혔다. 아레시보 전파망원경이 다시 제 모습과 기능을 되찾을 때까지는 수 개월이 더 걸릴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2017년 9월 허리케인 마리아 탓에 파손됐을 때에도 복구까지 3개월이 걸렸다. 전문가들은 아레시보 전파망원경이 외계생명체의 신호뿐만 아니라 지구 주변으로 접근하는 소행성을 찾는 핵심장비로 쓰이는 만큼, 최대한 빠른 복구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송현서 기자 huimin0217@seoul.co.kr
  • ‘지옥’ 금성서 생명체 존재 가능성 흔적 찾아

    ‘지옥’ 금성서 생명체 존재 가능성 흔적 찾아

    금성 대기에서 생명체의 존재 가능성을 설명할 수 있는 현상이 탐지됐다. 영국 카디프대의 제인 그리브스 교수팀은 금성의 대기에서 수소화인(phosphine)를 관측하고, 이에 관한 논문을 네이처 천문학에 발표했다고 BBC 등이 14일(현지시각) 보도했다. 그리브스 교수팀은 “하와이의 제임스 클러크 맥스웰 전파망원경과 칠레 아타카마 대형 밀리미터 집합체 전파망원경으로 금성의 표면 50~60km 상공 대기에서 수소화인을 포착했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10억개 대기 분자 중에서 10~20개의 수소화인 분자를 관측했다. 이들이 발견한 수소화인은 지구에서는 펭귄 같은 동물의 내장이나 늪 등 산소가 부족한 환경에서 미생물 등 생명체의 활동과 관련된 물질이다. 수소화인 가스는 호수 침전물이나 동물의 내장 등 산소가 궁핍한 환경에서 미생물이 방출한다. 이 때문에 수소화인은 생명의 표시로 간주된다. 연구팀은 금성의 대기에서 발견된 수소화인이 생명체의 존재를 입증하는 것은 아니지만, 인류가 알지 못하는 생명 현상이 존재할 수도 있을 가능성에 여지를 열어야 한다는 입장이다.수소화인은 화학 작용을 통해서 인위적으로 만들 수 있고 화산이나 번개, 운석 등 무생체적으로 만들어질 수도 있지만, 금성의 조건을 감안하면 무생체적으로 만들어지기는 극히 어렵다는 설명이다. 그리브스 교수는 “그렇게 많은 황산으로 둘러싸여 있는 곳에서 생명이 존재할 수 있다고 말한다면 완전히 놀라운 것”이라면서도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지질학적, 광화학적 통로들로는 우리가 보는 수소화인을 만들 수 없다”고 말했다. 금성은 표면 온도가 섭씨 400도가 넘고, 대기도 황산이 대부분인 구름으로 둘러싸여 있다. 인류가 알고 있는 생명체는 존재하기 힘든 지옥 같은 환경이나 마찬가지다. 이런 이유로 생명 현상인 수소화인이 관측된 것은 미지의 생명 현상이 있거나, 미지의 비유기적 화학 작용이 발생한 것으로 추측된다. 루이스 다트널 웨스트민스터대 교수는 “생명이 금성의 두꺼운 구름층에 생존한다면 매우 많은 것을 시사하는 것”이라며 “이는 생명이 우리 은하계 전반에서 흔한 현상임을 의미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조영학의 번역과 반역] 마스크, 마스크, 마스크

    [조영학의 번역과 반역] 마스크, 마스크, 마스크

    우리가 기다리던 마스크는 이런 게 아니었다. 우리의 마스크는 영화 ‘마스크’, 짐 캐리의 마스크여야 했다. 마스크를 쓰는 순간 뭐든 마음먹은 대로 해내고, 응어리진 한을 풀고, 불가능한 사랑을 이루어 주는 초능력의 마스크. 아니면 지킬 박사의 하이드가 돼 숨은 욕망과 억압된 본능을 마음껏 휘두르거나, 애드가 앨런 포의 ‘붉은 마스크’처럼 탐욕과 허영이 가득한 부자, 귀족 나부랭이라도 처단할 수 있어야 했다. 그런데 어디에서 꼬인 걸까? 지금 내가 쓴 마스크는 신화의 화려한 마스크는커녕 추레한 반쪽짜리에 불과했다. 그것도 나 혼자가 아니라 인류 모두가 마스크를 쓰고 자기 의지로 벗을 수도 없다. 신화가 뒤집힌 것이다. 너희 모두의 입을 막을지니 마스크 벗은 자가 역병과 저주로 세상을 단죄하리로다. 저주의 원인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종교계는 인간이 생명체를 창조하는 불경을 저질렀다 하고 기후론자들은 늘 그렇듯 환경 파괴를 이유로 들었다. 인간의 막말이 도를 넘어 신이 입을 봉인했다는 주장도 있다. 나는 조심스레 막말론의 손을 들어 준다. 교수, 종교인, 정치가, 검사, 의사…. 그렇잖아도 소위 지도층의 막말에 골치가 아프기는 했다. 그들이 증오의 바이러스를 뱉어 내면 사람들은 마스크의 검열도 없이 입에서 입으로 퍼뜨렸다. 내 말이 악취가 돼 내 코를 공격한다. 아침 일곱시 반 출근길 지하철 풍경을 본다. 기왕의 핸드폰에 마스크가 더해지며 획일성의 카르텔도 더욱 공고해졌다. 매일 보고 있건만 도무지 익숙해지지가 않는다. 제1호 Mask가 Galaxy Note10으로 강남의 부동산 시세를 검색하오. 제2호 Mask가 LG V50으로 강남의 부동산 시세를 검색하오. 제3호 Mask가 Iphone 10으로 강남의 부동산 시세를 검색하오…. 1호선 3호차 5번 좌석. 누군가 콜록콜록 기침을 한다. 마스크의 시선이 일제히 그쪽을 향한다. 바이러스는 더이상 상징이 아니라 현실이다. 제4호 Mask가 제5호 Mask를 의심하오. 제5호 Mask가 제6호 Mask를 의심하오. 제6호 마스크가 제7호를…. 지하철에서 나오자 커다란 전광판의 노란 글씨가 먼저 시선을 사로잡는다. “마스크는 내 친구.” 네 이웃을 멀리하고 마스크를 사랑하라. 개정판 성서가 재빨리 수정된 복음을 발표하지만 교인들은 신의 가르침을 외면하고 하나가 돼 도시로, 광장으로 몰려간다. 정부가 부랴부랴 마스크를 옹호하는 성명을 발표한다. “마스크를 쓰십시오. 남이 씌워 줄 땐 늦습니다.” 내 친구 마스크, 내 사랑 마스크, 내 생명 마스크…. 사랑하는 이웃이여, 반경 2미터 이내 접근을 금함. 마스크는 부조리한 사회를 공격하는 예봉일 뿐 아니라 인간의 나약하고 추악한 본성을 감추는 방어 기제이기도 하다. 신이 우리에게 내려준 것은 후자의 마스크였다. 내 안의 바이러스를 막기 위한 마스크…. 마스크를 쓰자 사람들은 더이상 환경을 얘기하지 않는다. 기후를 언급하지 않는다. 그 어떤 말도 마스크의 검열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인류는 바이러스를 핑계로 엄청난 양의 폐기물을 뱉어 낸다. 인간이 벗어 낸 마스크는 다 어디로 가는 걸까? 신은 정말로 우리를 포기한 걸까? 그래서 역병의 저주를 내린 걸까? 문득 어쩌면 우리를 구원하려는 것인지 모른다는 생각도 해 본다. 영화 ‘마스크’에서 스탠리 입키스를 구하기 위해 마스크를 내렸듯 신은 인간을 인간으로부터 구하기 위해 우리에게 마스크를 씌웠을 것이다. 영원히 마스크를 벗지 않는 한 우리는 바이러스로부터 자유롭다. 바이러스와 협상을 시도하기도 했다. 하지만 바이러스는 대화를 거부하고 녹색 모니터에 흰 고딕체로 세 개의 단어를 선명하게 찍어낸다. “You are Virus.”(인간이 바이러스다, 영화 ‘바이러스’, 1999)
  • “금성의 대기에 포스핀, 박테리아가 떠다닐 가능성 있다”

    “금성의 대기에 포스핀, 박테리아가 떠다닐 가능성 있다”

    금성의 대기에 포스핀(phosphine, PH3)이 상당량 함유돼 있다는 관측 결과가 발표됐다. 제인 그리브스 영국 카디프 대학 연구진은 14일(이하 현지시간) 시작된 영국 왕립천문학회의 온라인 기자회견을 통해 금성 대기에서 방출되는 전파 스펙트럼 흡수선을 천체 망원경으로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들의 논문은 네이처 천문학 저널에 게재됐다. 처음에는 미국 하와이 마우나케야 산 정상의 제임스-클라스-맥스월 망원경을 이용해 희미한 형태로 관측됐고 나중에 칠레 아타카마 대형 밀리미터 집합체 망원경에 의해 더 선명한 형태로 확인됐다. 관측된 흡수선의 세기와 형태는 사가와 히데오 교토 산업대학 교수가 연구개발한 모델에서 10억개의 입자당 포스핀 분자가 20개 있을 때의 경우와 맞아떨어졌다. 포스핀은 목성이나 토성처럼 대기의 대부분이 수소로 이루어져 있고 강력한 대기압을 가진 행성에서 화학적으로 합성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진 가스다. 하지만 금성의 포스핀은 두 행성과 달리 수소도 풍부하지 않고 대기압도 충분히 높지 않아 이번에 관측된 양의 포스핀 가스가 절로 합성될 수 있는 여건이 아닌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포스핀 분자는 하나의 인(燐) 원자에 수소 원자 셋이 결합해 이뤄진다. 지구에서는 생명체, 예를 들어 펭귄과 같은 동물의 위장 속이나 산소가 부족한 늪지 같은 곳에 미생물 형태로 존재한다. 물론 공장 같은 곳에서 만들어질 수 있지만 금성에 공장이 존재하지도 않고 펭귄 같은 동물도 없다. 따라서 그리브스 교수 연구진은 우리가 전혀 모르는 방식으로 금성의 대기 환경에서 포스핀을 합성해 낼 수 있는 방법이 있거나 지구 대기에서의 생명체와 유사한 미생물이 금성의 대기에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금성의 표면은 극단적인 온실 효과 때문에 섭씨 500도에 가깝고 대기압이 90으로 높아 생명체의 존재 가능성이 태양계의 다른 행성들보다 낮게 점쳐져 왔다. 인류의 생명체 탐사도 화성이나 토성의 위성인 유로파와 타이탄 등에 집중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 그리브스 교수 발표로 금성의 우선 순위가 높아질 여지가 만들어졌다. 금성은 지구에 가깝기도 하다. 연구 팀의 사라 시거 교수는 포스핀 가스가 금성의 생명체에서 생성됐다면 그 생명체는 금성의 대기 중에 미생물의 형테로 존재할 것으로 추측한다고 발표하였다. 지구도 표면으로부터 41㎞ 떨어진 성층권에 박테리아가 떠다니는데 금성도 거의 같은 50~60㎞에 박테리아가 존재할 수 있다는 얘기다. 금성에는 과거 20억년 동안 풍부한 물을 갖고 있어서 지구처럼 생명이 탄생했을 가능성이 높은데 온실효과가 진행되면서 지표면의 생물은 멸종하고 대기 중의 미생물만이 바뀐 환경에 적응해 대기 순환에 따라 흘러다니며 포스핀을 합성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일단 금성의 지표와 대기에서는 유황이 다량 함유돼 있어 지구 생명체가 전혀 생존할 수 없기 때문에 금성의 생명체가 존재한다고 해도 지구의 것과는 상당히 다른 구성일 것이라고 추정했다. 그리브스 교수는 “평생 동안 우주의 생명체 존재 가능성을 파고들었지만 이번 연구 결과는 나로선 믿기지 않는 대목이 많다. 하지만, 맞다. 다른 분들이 우리가 놓친 것이 무엇인지 말해줬으면 한다. 우리 논문과 데이터를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도록 했다. 이런 것이 과학이 굴러가는 방식”이라고 말했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영국 BBC 보도와 티스토리의 블로거 ‘My External Knowledge Storage’ 내용과 2년 전 네이버 블로거 ‘잉여로운 우주 이야기’ 내용을 참고해 작성했습니다.
  • [유용하의 사이언스 브런치] 우주 여행 필수품은 다름 아닌 ‘장내미생물’

    [유용하의 사이언스 브런치] 우주 여행 필수품은 다름 아닌 ‘장내미생물’

    특수 처리한 우주식품이 장내미생물 교란장염유발 세균 증가, 염증억제 세균 감소장내미생물 불균형 우주인 건강 악영향 평소 과학에는 전혀 관심이 없더라도 건강에 조금만 신경 쓰는 사람이라면 요즘 가장 많이 듣는 용어가 다름아닌 ‘장내미생물’일 것이다. 사람 몸에 있는 미생물 숫자는 인간 세포 수와 비슷하거나 약간 많은 39조개로 대부분 소장, 대장 같은 소화기관에 집중돼 있다. 이들 소화기관에 있는 미생물을 장내미생물이라고 하는데 인체가 분해할 수 없는 영양소를 분해해 소화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수준으로만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최근 들어 비만은 물론 대장암을 비롯한 여러 암, 면역계 질환, 치매나 파킨슨병 같은 퇴행성 뇌질환, 우울증, 양극성장애 같은 신경정신질환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들이 잇따라 공개되고 있다. 그야말로 장내미생물 연구 ‘전성시대’이다. 이번에는 유럽 과학자들이 지구와는 전혀 다른 환경인 우주에서 우주인들이 건강하게 생존하는 데 장내미생물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밝혀내 주목받고 있다.이탈리아 볼로냐대 약학·생물공학과, 브라질 파라이바연방대 식품공학과, 프랑스 소르본대 부속 피티에 살페트리에르병원, 심장대사·영양학 연구소, 리옹1대학 의생명과학연구소, 독일 베를린 응용과학대, 본대학 식품영양과학연구소 공동연구팀은 유익한 장내미생물이 혹독한 환경의 우주여행에서 우주인들의 신체적, 정신적 건강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13일 밝혔다. 이 같은 연구 결과는 ‘첨단 생리학’(Frontiers in Physiology) 9일자에 실렸다. 지난 7월 미국, 중국, 아랍에미리트(UAE)가 동시에 화성탐사선을 발사하고 2022년 유럽, 2024년에는 일본이 화성탐사를 계획하는 등 많은 나라들이 화성탐사에 주목하고 있다. 현재는 지구 밖 생명체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 화성에 탐사선을 보내고 있지만 궁극적인 목표는 사람이 거주할 수 있는 ‘제2의 지구’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2016년 12월 세계적인 과학저널 ‘사이언스’는 인간이 화성과 그 너머 우주공간을 여행할 때 발생할 수 있는 5가지 문제점을 지적했다. 사이언스가 제시한 우주여행의 5가지 걸림돌은 △우주방사선 △고독감 △우주곰팡이 △미세중력 △인적오류이다. 특히 미세중력은 오랜 시간이 걸리는 유인 우주탐사에서 가장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무중력에 가까운 미세중력은 우주인의 뼈와 근육을 약화시켜 각종 디스크 질환을 쉽게 일으킬 수 있다. 이 때문에 국제우주정거장(ISS)에 장기간 거주하는 우주인들에게는 근육손실을 막기 위해 매일 약 2시간씩 운동을 하도록 하고 있지만 골밀도가 낮아지는 것은 운동으로도 막기가 힘들다. 뿐만 아니라 미세중력은 시신경과 안압에도 영향을 미쳐 시력 약화를 가져온다.연구팀은 미세중력으로 인한 근육량 감소와 골밀도 저하는 소화기관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지적했다. 더군다나 우주라는 특수한 환경에서 보관하기 위해 동결건조한 뒤 방사선조사로 무균 상태로 만들기 때문에 지구에서 먹는 음식과 비슷하게 만든다고는 하지만 맛과 영양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특수한 과정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우주인의 식단은 장내미생물을 교란시킬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우주여행과 관련한 앞선 여러 연구를 분석한 결과 같은 임무를 수행하는 우주인들의 장에서는 장염을 유발하는 박테리아는 증가하고 항염효과를 보이는 유익한 세균은 줄어들었다고 밝혔다. 이는 감염과 염증에 취약하게 만들고 영양실조, 위장장애를 가속화시킬 수 있으며 면역체계 결핍, 신경정신질환, 인지력 저하를 유발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연구를 이끈 마르티나 헤어 본대학 교수는 “이번 연구는 장내미생물의 작은 변화라도 미생물과 숙주 사이에 복잡하게 얽혀 있는 균형관계를 붕괴시킬 수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고 말했다. 거대한 우주를 탐사하고 정복하기 위해서는 작은 우리 몸속부터 제대로 관리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이번 연구 결과는 언젠가 유인 우주탐사에 나설 한국에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다.
  • 英해변에 쓸려온 ‘미스터리 생물’ 정체는? 고급 식재료 “7600만원어치”

    英해변에 쓸려온 ‘미스터리 생물’ 정체는? 고급 식재료 “7600만원어치”

    최근 영국의 한 해변을 산책하던 일가족이 조개 같은 생물이 빽빽이 달린 유목을 발견했다. 이들 가족은 촉수를 뻗으며 꿈틀거리는 그 모습에 “이 세상의 것이 아닌 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그 정체를 조사한 결과 유럽 일부 지역에서 고가에 거래되는 식재료인 것을 알아냈다고 리버풀에코 등 현지매체가 전했다.보도에 따르면, 머지사이드주(州) 뉴브라이튼에 사는 마틴 그린(47)은 가족과 함께 주말에 북웨일스 카나번 인근 해변을 산책하다 커다란 유목을 발견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조개 같은 생물이 빽빽이 유목을 뒤덮고 있었다. 각 조개는 반투명의 긴 촉수를 뻗어 유목에 달라붙어 있다. 조개 속에서 문어의 다리처럼 갈라진 입을 벌린 개체도 있어 외계생명체처럼 생각됐다.마틴은 발견 당시 일에 대해 “처음 발견한 아내 제마가 ‘이리 와서 이것 좀 봐’라고 해서 가보니 이 세상 것이 아닌 것 같은 물체가 거기 있었다”면서 “이런 것은 지금까지 본 적도 없으니 놀랐었다”고 밝혔다. 마틴이 아들 다니엘과 함께 이 생물에 대해 조사해보니 ‘거위목 따개비’(Gooseneck Barnacles·학명 Pollicipes pollicipes)라는 이름의 따개비 일종으로 밝혀졌다. 이 따개비는 특히 점액성이면서 짠맛이 나는 독특한 식감을 지녀 스페인과 포르투갈에서는 페르세베(percebe)로 불리는 식재료로 쓰인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아시아 일부 지역에서는 이와 생김새는 물론 맛도 비슷하다고 알려진 거북손(학명 Pollicipes mitella)이 있지만, 정확히 같은 종은 아니다. 특히 이 따개비는 값이 매우 비싼 것으로 유명하다. 마틴은 “구글에서 검색해보니 이 따개비의 가격은 마리당 25파운드(약 3만8000원)에 달한다”면서 “우리가 발견한 유목에는 2000마리 정도 붙어 있었으므로 합치면 5만 파운드(약 7600만원) 정도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거위목 따개비는 제철이 되면 kg당 322파운드(약 49만원)에 거래되기도 한다. 이에 대해 마틴은 “발견한 유목의 정확한 위치를 밝히면 사람들이 몰려들어 위험할 수 있다”고 말하며 자세한 장소를 공개하길 꺼렸다. 사진=마틴 그린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와우! 과학] 9번째 행성을 찾아라…32억 화소 디지털카메라로 우주를 본다면?

    [와우! 과학] 9번째 행성을 찾아라…32억 화소 디지털카메라로 우주를 본다면?

    미국 에너지부 산하의 스탠퍼드 선형가속기센터(SLAC National Accelerator Laboratory)에서 개발 중인 32억 화소 카메라 센서가 완성됐다. 이 초고해상도 카메라는 암흑물질의 비밀을 풀고 태양계의 미스터리를 규명하기 위해 2015년부터 추진 중인 LSST(Legacy Survey of Space and Time) 프로젝트의 핵심 시스템이다. LSST 카메라는 칠레의 고산지대에 있는 베라 C 루빈 천문대(Vera C. Rubin Observatory)의 구경 8.4m 망원경에 설치되어 2022년부터 관측을 시작한다. 역사상 가장 높은 해상도인 32억 화소 이미지 센서는 사실 하나의 센서가 아니라 189개의 센서를 결합해 만든 것이다. 각 센서의 해상도는 1600만 화소다. 일반적인 DSLR 카메라나 스마트폰 메인 카메라와 비슷한 해상도이지만, 사람이나 풍경을 찍는 용도가 아니라 매우 희미하고 멀리 떨어진 천체를 찍는 카메라이기 때문에 희미하고 작은 물체를 잡아내는 능력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뛰어나다. LSST 카메라는 별도의 망원 렌즈 없이도 24㎞ 떨어진 골프공을 식별할 수 있을 정도다.이런 고해상도 카메라를 이용해 한 번에 달 면적의 40배에 달하는 하늘을 자동으로 관측한다. 다만 이런 정밀도를 위해 영하 101도의 극저온 환경에서 가동해야 한다. 스탠퍼드 선형가속기센터 연구팀은 189개의 이미지 센서를 모아 너비 61㎝의 LSST 카메라 센서를 만든 후 이를 극저온 용기에 넣어 실제 사물을 촬영했다. 첫 대상은 브로콜리로 마치 종양 조직이나 외계 생명체 같은 느낌을 준다.연구팀은 2021년 중반까지 테스트를 진행한 후 특별한 문제가 없으면 2021년에는 베라 C 루빈 천문대로 보내 망원경에 장착할 계획이다. LSST는 10년에 걸쳐 남반구 하늘 전체를 관측해 적어도 370억 개의 별과 은하, 그리고 태양계 소행성 데이터를 수집할 예정이다. 과학자들은 LSST를 통해 아직 그 정체를 모르는 암흑물질에 대한 결정적인 단서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과학자들이 기대하는 또 다른 성과는 태양계의 9번째 행성이다. 만약 실제로 존재한다면 LSST 데이터를 통해 밝혀질 가능성이 높다. 일부 과학자들은 9번째 행성의 정체가 미니 블랙홀일 가능성을 제시했다. 이 역시 LSST 데이터를 통해 검증할 수 있다. LSST의 첫 데이터는 2024년 공개 예정이다. 32억 화소 디지털카메라가 보여줄 우주의 모습이 어떨지 궁금하다. 고든 정 칼럼니스트 jjy0501@naver.com
  • 지구와 비슷한 대기와 액체 물 존재…생명체 살 가능성 큰 외계행성 45개 발견

    지구와 비슷한 대기와 액체 물 존재…생명체 살 가능성 큰 외계행성 45개 발견

    지구와 비슷한 대기와 액체 상태의 물이 존재해 생명체가 살 가능성이 큰 외계행성을 천문학자들이 무려 45개나 발견했다. 스웨덴 룰레오공대 연구진은 잠재적으로 거주할 수 있는 외계행성들의 대기 조성을 연구함으로써 이런 ‘먼 세상’에서 거주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정하는 새로운 분석 기술을 만들었다. 이들 연구자는 대기 중의 화학 물질인 ‘대기 종류’에 관한 정보와 이런 물질이 우주로 얼마나 빨리 탈출하는지(대기 탈출)를 알아내 지구와 비교했을 때 기온과 대기 조성면에서 얼마나 비슷한지를 추정할 수 있었다.그러고 나서 이들은 자신들이 만든 새로운 모형을 기존 외계행성 목록에 있는 잠재적으로 거주할 수 있는 후보 행성 55개에 적용했다. 기존 목록은 주성과의 거리에만 초점을 맞춘 것이었다. 그 결과, 기존 목록에 수록된 후보 행성 55개 중 17개만이 이번 연구에서 정의한 기준을 충족해 지구와 비슷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자들은 또 이보다 좀 더 범위가 넓은 외계행성 목록에서도 28개의 행성이 지구와 비슷하다는 것을 발견해 지구와 비슷한 행성을 총 45개까지 끌어올렸다. 이에 따라 현재 외계행성을 탐사하기 위해 지구와 우주에 기반을 두고 있는 첨단 망원경들을 이용한 임무들을 수행하는 연구자들은 이번 연구에서 확인된 자료를 사용해 자신들의 탐사 연구에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대해 연구자들은 “거주할 수 있는 외계행성을 찾는 것은 어려운 도전”이라면서 “이유는 별들 사이라는 그 먼 거리까지 우리가 탐사선을 보낼 수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잠재적으로 거주할 수 있는 대기를 지닌 가장 가까운 외계행성인 프록시마b도 무려 4.22광년 또는 40조㎞나 떨어져 있다. 미국항공우주국(NASA)의 주노 탐사선이 목성에 접근할 때 시속 26만5000㎞까지 도달했는데 이런 속도로 프록시마b에 간다면 1만7000년이 넘게 걸린다.따라서 현재 외계행성이 생명체를 수용할 능력을 정하는 분석 기술은 대기 조성에 관한 저해상도 공간 및 스펙트럼 정보에 의존해야 한다. 그래서 이번 연구에서는 거주할 수 있는 외계행성의 최종 후보 목록을 만들기 위해 기체가 대기에서 어떻게 움직이는지에 관한 ‘기체 운동론’과 지금까지 확인된 외계행성의 대기에 남아있을 수 있는 화학 물질에 관한 목록을 사용했다고 이들 연구자는 설명했다. 이를 통해 이들은 탐지된 외계행성들에 관한 현재 지식을 바탕으로 그중 45개가 거주가능성 연구의 좋은 후보들이라고 결론지을 수 있었다고 밝혔다. 연구자들은 또 이런 외계행성은 지구와 같은 대기를 가질 수 있고 안정적인 액체 상태의 물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고 언급했다. 이번 연구의 일부분으로 연구자들은 또 태양계에 있는 행성들의 진정한 대기 조성을 참고 자료로 사용했다. 그러고 나서 이들은 수소와 산소, 이산화질소 그리고 이산화탄소의 대기를 지닌 외계행성들을 지구와 비슷한 외계행성 목록에 후보로 올렸다. 연구자들은 “우리는 또 거주가능성에 관한 추가적인 연구를 위해 외계행성들의 대기에서 생명과 관련한 필수적 기체를 유지하는 능력과 같이 바람직한 조건을 지닌 45개의 행성 목록을 제안한다”고 명시했다. 이들 연구자는 행성이 생명을 수용할 수 있는지를 고려할 때 모항성 주위의 거주가능영역(HZ)에 관한 현재 정의를 다시 검토할 것을 권고했다.이들은 액체 상태 물 분자의 안정성을 지탱할 수 있는 지구와 같은 대기를 수용하는 행성의 능력은 거주가능성을 위해 필요한 조건에 추가돼야 한다고 말했다. 연구진은 “대기 중에 유지할 수 있는 기체(화학물질)에 기반을 둬 외계행성을 구별하는 것은 잠재적인 거주가능성을 위한 가장 가능성 있는 후보들을 정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면서 “미래의 이런 임무들은 더 많은 대기 조성 연구와 광화학 모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연구의 주요한 학문적 발전 중 하나는 외계행성의 거주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해 필요한 정보의 양을 줄이는 것이다. 연구자들은 연구논문에 “우리는 쉽게 구할 수 있거나 추정할 수 있는 매개변수를 사용하고 최소한의 가정으로 외계행성 대기권의 그럴듯한 조성을 추정할 수 있는 대기 모형을 제시한다”면서 “우리 모형은 질량이 적어 방사선이 적게 나오는 외계행성들을 위해 설계됐다. 이런 외계행성에서는 고전적인 열적 탈출(thermal escape, 대기 탈출의 일종)에 의해 움직이는 대기 진화가 이뤄지고 있다”고 썼다. 이들 연구자는 실제 기온의 개요와 반사율(albedo) 그리고 원소 존재비를 포함한 미래의 관측 자료들은 연구자들이 그들 자신의 모형을 더욱 정교하게 다듬고 그들의 진짜 대기 조성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연구자들은 새로운 외계행성이 발견되는 대로 연구함으로써 잠재적으로 지구와 비슷한 외계행성의 목록을 계속해서 업데이트할 계획이다. 자세한 연구 결과는 ‘영국 왕립학회보A’(Proceedings of the Royal Society A) 최신호(9월 9일자)에 실렸다.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열린세상] 바이러스와도 함께 사는데/김세연 전 국회의원

    [열린세상] 바이러스와도 함께 사는데/김세연 전 국회의원

    경제가 멈춰 선다. 자영업자의 비명이 거리를 메운다. 사회는 급속히 비대면 체제로 전환되고 있다. 보이지도 않는 바이러스 때문에 맞게 된 이 상황이 언제까지 이어질 것인가? 세계보건기구 백신 개발 목록의 29종이 임상시험 중이고, 국가 간, 기업 간 개발 경쟁이 불붙었으니 기대하며 기다려 보자. 인류의 생명을 위협하는 사건들 중에서도 질병의 살상력은 늘 전쟁이나 자연재해의 규모를 훌쩍 뛰어넘어 왔다. 20세기만 보더라도 홍역, 인플루엔자, 천연두 이 세 개의 질병 사망자 수가 전쟁 사망자 수의 5배에 달했다고 한다. 제대로 된 생명체도 아닌, 유기물과 무기물 상태를 오가는 이 바이러스란 녀석은 실로 고약한 존재다. 그런데 지구촌 전체를 이렇게 힘겹게 만드는 바이러스 ‘코로나19’가 인류를 습격할 마지막 바이러스일 것인가? 문제는 전혀 그렇지 않다는 데 있다. 무증상 감염이 가능한 잠복기, 전파력, 치사율 등에서 코로나19와 유사하거나 더 강력한 바이러스가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은 아무도 할 수 없다. 단지 운 나쁘게 이번에 인류가 코로나19와 접촉하게 됐던 것이다. 2010년대 미국 정부가 진행한 동물 바이러스 발견을 위한 프로젝트 ‘프리딕트’(PREDICT)는 35개국에서 수집한 16만종의 인간 및 동물 조직 샘플을 분석해 949개의 새로운 바이러스 종을 찾아냈다. 이들은 한 발 더 나아가 자연계에 존재하는 모든 바이러스를 찾아내는 것을 목표로 ‘글로벌 비롬(Virome)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즉 인수공통 감염 바이러스의 병원소(病原巢)로 추정되는 포유류 및 물새 7400여종에 서식하는 약 150만 종의 바이러스를 파악할 것으로 예상되고, 그중 약 70만종은 인간도 감염시킬 수 있는 종류의 바이러스일 것으로 예상된다고 한다. 코로나19는 그중 하나에 불과한 것이다. 20세기에만 최대 5억명의 목숨을 앗아간 천연두 바이러스를 1979년에 완전 박멸했듯 앞으로도 바이러스는 퇴치의 대상으로 남을 것이다. 그러나 최근 이어지는 생물학 연구 결과들은 놀라운 반전을 보여 주기도 한다. 포유류 일부 종에서 모체와 태아 간에 산소 및 영양분, 이산화탄소 및 노폐물의 교환 통로 역할을 하는 기관인 ‘태반’이 바이러스 유전체에서 유래했다는 것이다. ‘뇌’ 발달 과정에 관여하는 유전체도 그렇다고 한다. 인간 게놈 중 이렇게 바이러스에서 유래한 것의 비중이 적게는 8%, 많게는 25%까지 차지한다고 한다. 즉 진화 과정에서 바이러스 유전체가 인간 유전체 일부로 편입돼 우리 몸의 일부가 되면서 사실상 이들과 공존해 온 것이다(칼럼의 통계 및 연구 결과는 이코노미스트지 8월 22일자 ‘에세이’ 참조). 그럼 눈길을 자연계에서 우리 사회로 돌려 보자. 바이러스와도 공존해 온 것이 인류 역사인데, 왜 우리는 우리 안에서 공존을 받아들이지 못하는가. 다름을 적으로 규정하는 무자비한 폭력이 가해지고 있다. 과거 국가권력에 의한 위압도 당연히 안 될 일이지만, 요즘은 기자들도 신상털기에 두려움을 느껴 기사 작성 시 자기검열을 할 정도라 하고, 5공 때도 허용되던 코미디 정치 풍자도 지금 시대의 개그맨들은 감히 엄두를 못 낸다고 한다. 언론의 자유에 실질적인 제약이 가해지는 것이다. 내가 완전무결한 존재가 아니라는 자각과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양심과 용기가 필요하다. 어느 집권세력도 권력을 쥐고 나면 예외 없이 권위주의적 경향을 보여 왔다. 이제 그런 후진적 상태에서 졸업할 때가 됐다. 어느 때보다 공존에 대한 시민들의 각성과 위정자들의 자성이 필요하다. 공존은 균형에서 온다. 서로 다른 주체들 간의 인정과 협력이 필요하다. 헌법상 삼권분립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부터 살펴야 한다. 국가권력의 분립을 통한 견제와 균형은 국민의 기본권 보장을 위한 방법인데, 이 원리가 지금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입법부가 행정부를 견제, 감독하는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마침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표가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우분투’ 정신을 강조하며 협치를 언급했다. 이를 진정으로 실천하는 길은 행정부를 견제하는 입법부 본연의 역할을 회복하는 것임을 자각하고 꼭 실천해 주기를 기대한다.
  • [핵잼 사이언스] 400년 전 알프스 ‘냉동 염소’ 발견… “DNA 완벽 보존”

    [핵잼 사이언스] 400년 전 알프스 ‘냉동 염소’ 발견… “DNA 완벽 보존”

    이탈리아 알프스산맥을 여행하던 등산객이 우연히 수백 년 동안 얼어있던 '냉동 염소'를 발견해 학계가 조사에 나섰다. 라이브사이언스 등 과학전문매체의 6일 보도에 따르면, 이를 처음 발견한 등산객은 눈과 얼음이 뒤섞인 땅 위로 무언가 올라와 있는 것을 보고 가까이 다가가 확인했고, 이내 완전히 얼어버린 동물의 사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최초 발견자는 “마치 피부가 손질된 가죽처럼 보였고, 털은 단 한 올도 보이지 않았다. 한 번도 이런 것을 본 적이 없어서 곧바로 사진을 찍어 해당 지역 공원 관계자에게 보냈다”고 밝혔다.이 소식은 이탈리아 문화유산부에 전해졌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해발 3200m 지점에서 발견된 것은 온몸이 꽁꽁 얼어붙은 ‘아이스 염소 미라’였고, 분석 결과 무려 400년 전 것으로 확인됐다. 이 염소는 본래 빙하 사이에 묻혀 있었는데, 지구온난화로 기온이 오르면서 빙하가 녹아내리자 모습을 드러낸 것으로 추정된다. 헬리콥터를 이용해 이탈리아 북부 볼차노에 있는 연구실로 옮겨진 ‘아이스 염소 미라’는 현재 영하 5℃의 냉동고에 보존돼 있다.연구진은 “이 염소 미라가 일종의 ‘빙하 무덤’에 묻혀있었던 만큼, DNA가 완벽하게 보존돼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다만 주위 기온이 오르면 DNA가 파괴될 수 있어 최적의 보존 조건에서 연구를 진행 중”이라면서 “400년 전 ‘아이스 염소 미라’의 분석 결과는 당시의 서식 환경뿐만 아니라 생명체의 유전적 미스터리를 푸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기후변화로 전 세계의 산악빙하가 녹아내리면서 이러한 유전적 정보를 담은, 더 많은 고대 생명체의 얼어붙은 시체가 모습을 드러낼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이번 발견은 1991년 이탈리아 알프스에서 5300년 전 ‘아이스 맨’으로 불리는 미라 ‘외치’를 연상케 한다는 점에서 학계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다. 외치는 발견 당시 빙하 속에서 냉동 건조되어 피부와 내장은 물론 혈액 속 DNA까지 완벽하게 보존됐다. 송현서 기자 huimin0217@seoul.co.kr
  • 강명구-송인엽, 526일 2만 1200㎞ 달린 여정 오롯이

    강명구-송인엽, 526일 2만 1200㎞ 달린 여정 오롯이

    ‘영원한 KOICA맨’이라 불리는 송인엽 한국교원대 교수가 지구를 두 발로 한 바퀴 완주한 유일한 생명체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와 함께 책 ‘나는 달린다’를 펴냈다. 요시카 피셔 전 독일 외무장관, 오지 및 극지 마라토너 안병식 씨가 똑같은 제목의 책을 냈는데 송·강 커플의 이 책은 조금 결이 다르다. 강씨는 2015년 2~6월 미국 무지원 횡단(5200㎞), 같은 해 9월 전국 일주 마라톤(독도 세월호 추모 달리기), 다음해 1월 진오 스님 베트남 마라톤 일부 동반, 같은 해 6월 네팔 지진피해 돕기 마라톤 카투만두~룸비니, 2017년 6월 사드 반대 평화마라톤 제주 강정~서울 광화문, 같은 해 9월~이듬해 10월 유라시아 대륙 횡단(1만 5000㎞), 2018년 11~12월 동해~고성~임진각 마라톤(500㎞), 지난해 7월 평화협정 촉구 국민대행진 제주 강정~임진각까지 526일 동안 매일 마라톤 풀코스를 소화하며 달렸다. 강씨의 도전에는 늘 송 교수가 함께 했다. 국제협력 전문가(ODAist)라고 자신을 소개하곤 한다. 한국국제협력단(KOICA) 창립 멤버로 아이티, 이라크, 에티오피아 등 8개국 소장을 역임했다. 한국교원대학 교수를 역임했고 다문화 TV 자문위원이기도 하다. ‘국제협력과 인류 공영’ ‘사랑과 인생’ ‘해외 취업과 봉사’ ‘여행과 도전’을 주제로 강연도 많이 한다. 104개국을 여행하고 쓴 ‘시(詩)로 노래하는 세계여행’, 대한민국 100대 명산과 10대 강, 15대 섬을 누비고 쓴 ‘시(詩)로 노래하는 우리 산하’를 내놓았다. 강씨 혼자 했던 미국 대륙 횡단과 둘이 함께 유라시아 대륙 2만 1200㎞를 책에 담았으니 얼마나 많은 사연, 사건들을 품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만났겠는가. 도전 과정에 마주친 풍광을 기록하고 역사·문화·사랑·평화 정신을 담아냈다. 매일 마라톤 풀코스를 뛰고서도 웅숭깊은 생각과 고민의 깊이를 보여주는 강씨의 글쓰기 실력도 정평 나 있다.두 사람이 함께 호흡한 유라시아 1만 5000㎞ 대장정은 따로 세 권의 책으로 나눠 내놓는다고 했다. 송 교수는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가 지금까지 펼쳐 온 지구 한 바퀴 2만 1200㎞ 달리기는 조국의 평화통일 일념과 불굴의 투지로 가능한 일이었다”며 “미완으로 남은 북녘 달리기는 우리 국민들의 관심과 염원이 있을 때에만 북한 당국이 문을 열어줄 것 같다. 독자들의 응원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송영길 더불어민주당은 유라시아 대륙 횡단과 그 화룡점정이 될 북한 통과를 위해 물적으로나 심적으로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데 이 책의 추천사를 썼다. 그는 유라시아 횡단 도중에도 “나는 오늘도 그들과 함께 뛴다. 비록 몸은 서로 떨어져 있을지라도 한반도 평화에 대한 간절한 마음과 열정을 늘 공유하면서 매일 그들의 힘찬 심장박동 소리를 듣는다. 그렇게 그들이 발로 뛰며 뿌린 평화의 씨앗이 지구촌 곳곳에 뿌려져 알알이 열매 맺는 날을 나는 꿈꾸고 있다.”라고 격려하고 응원했다. 그는 또 2018년 10월 방북 때 리선권 당시 조평통 위원장에게 두 저자의 북한 달리기를 위해 국경을 열어줄 것을 부탁하고, 국회 대정부 질문을 통해 통일부 장관에게 질의하기도 했다.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과 송하진 전라북도 지사가 축사로 거든 것도 이 책의 다른 결을 얘기해준다 할 수 있겠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우주를 보다] 화성에 부는 악마?…큐리오시티 ‘회오리 바람’ 포착

    [우주를 보다] 화성에 부는 악마?…큐리오시티 ‘회오리 바람’ 포착

    머나먼 화성에서 탐사를 진행 중인 ‘호기심 해결사’ 큐리오시티(Curiosity)가 화성 표면에서 부는 회오리 바람을 포착했다. 최근 미 항공우주국(NASA)은 큐리오시티가 게일 크레이터의 경사면 사이에서 마치 춤추는듯한 회오리 바람을 포착했다고 밝혔다. 지난 9일 큐리오시티가 잡아낸 화성의 회오리 바람은 멀리서 잡혀 이동 모습이 드러날 뿐 사실 실감이 날 정도는 아니다. 다만 화성 표면에서도 지구와 같은 자연 현상이 일어난다는 점이 또다시 확인됐다는 점에서는 의미가 있다. 서구에서는 '더스트 데빌'(dust devil)로 불리는 화성의 회오리 바람은 모래 바람으로, 작은 토네이도라 볼 수 있다. 이처럼 화성에서도 지구의 사막과 유사한 방식으로 형성된 바람이 부는데 영화 ‘마션’에 나오는 장면처럼 강력하지는 않다.화성에 바람이 부는 사실은 사구(砂丘)가 이동한 모습을 통해서도 충분히 확인됐으나 이번 큐리오시티의 사례처럼 직접 바람 자체의 움직임을 잡아낸 사진은 많지 않다. 행성대기전문가인 클레어 뉴먼 박사는 "현재 게일 크레이터 부근은 거의 여름"이라면서 "표면 온도가 올라가면 대류 현상이 심해지고 이처럼 카메라로도 보이는 회오리 바람이 생긴다"고 설명했다.    한편 큐리오시티는 지난 5일 부로 화성에 착륙한 지 8주년을 맞았다. 소형차 만한 크기의 탐사 로보 큐리오시티는 화성에 생명체가 있는지 호기심을 해결하기 위해 지난 2012년 8월 5일 폭이 154㎞에 이르는 게일 크레이터 부근에 내려앉았다. NASA에 따르면 8년 간 큐리오시티가 여행한 거리는 총 23㎞에 불과하지만 기간 중 드릴로 화성 표면에 구멍을 뚫어 26번째 암석 샘플을 수집했으며 토양 샘플을 채취해 고대 화성이 실제로 생명체가 살기에 적합했다는 놀라운 사실을 증명했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아하! 우주] 무지갯빛이 블링블링, 희귀 운석 공개…태양계 초기 물질 보유

    [아하! 우주] 무지갯빛이 블링블링, 희귀 운석 공개…태양계 초기 물질 보유

    중앙아메리카 남부 코스타리카에서 신비로운 무지갯빛을 내는 운석이 공개됐다. 전문가들은 이 운석이 생명체 기원의 비밀을 품고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스페이스닷컴 등 과학전문매체의 24일 보도에 따르면 지난해 4월 코스타리카에서 발견된 이 운석은 세탁기 정도 크기의 거대한 유성이 지구 대기권에서 부서지면서 생긴 파편으로, 당시 코스타리카의 두 마을에서 공통으로 발견됐다. 코스타리카국립대학 지질학과 연구진이 1년가량의 연구 끝에 공개한 운석의 분석 결과에 따르면, 해당 운석은 탄소질 콘드라이트로 확인됐다. 80~85%가 점토로 이뤄진 탄소질 콘드라이트는 유기화합물이 포함돼 있긴 하나 생물에 의해 만들어진 것은 아니며, 태양계 초기에 만들어진 이후 열변성을 받지 않은 채 유지된 것이기 때문에 태양계에서 가장 초기의 성질을 보유한 물질로 여겨진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이 운석의 모체인 소행성이 초기 태양계부터 존재했으며, 궁극적으로 우리 태양계의 매우 오래된 별에서 관찰할 수 있는 특징들을 담고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구체적으로 연구진은 이 암석에서 100여 개의 각기 다른 아미노산을 발견했다. 이중 일부는 지구상의 생명체에게서도 매우 드물게 발견되거나 알려지지 않은 것들이다. 무게는 약 1.1㎏ 정도이며 오묘한 무지갯빛을 내는 것이 특징이다. 연구진은 “이 운석은 45억 6000만 년 전부터 존재해 온 소행성의 일부분으로 보여진다”면서 “특히 이번에 공개한 운석은 수십억 년 동안 오염되지 않은 채 보존돼 있었으므로, 연구가치 뿐만 아니라 희소가치도 매우 높다”고 설명했다.이번에 공개된 운석은 지난해 당시, 한 가정집 지붕을 뚫고 떨어져 발견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코스타리카 아과스자르카스에 거주하던 한 여성은 저녁 무렵 거실에서 텔레비전을 보다가 지붕을 뚫고 떨어진 운석과 처음 마주했다. 이 여성은 당시 인터뷰에서 “떨어진 돌을 만졌을 때 여전히 온기가 있었다”고 밝혔다. 한편 운석은 희소성과 종류 등에 따라 천차만별의 경제적 가치를 지닌다. 희귀한 운석의 경우 ‘우주의 로또’로 불릴 만큼 높은 가격을 자랑하는데, 1㎏에 최소 1억 원 이상을 호가하기도 한다. 송현서 기자 huimin0217@seoul.co.kr
  • “물의 기원은 혜성 아니다…지구가 처음 만들어질 때 유입됐을 것”

    “물의 기원은 혜성 아니다…지구가 처음 만들어질 때 유입됐을 것”

    지구 표면의 70%를 덮고 있는 물은 우리가 아는 모든 생명체가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요소지만, 어떻게 지구에 왔는지는 오랫동안 과학계에서 논쟁의 쟁점이 돼 왔다. 이와 관련해 프랑스 로렌대 암석·지구화학연구센터(CRPG) 연구진은 어떤 우주 암석이 지구에 물을 공급한 역할을 했는지를 시사하는 연구 논문을 발표해 그 비밀을 푸는 데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게 됐다.연구를 주도한 CRPG 우주화학자 로레트 피아니 박사는 AFP에 “이 연구 결과는 멀리 떨어진 혜성이나 소행성에 의해 물이 건조한 초기 지구에 유입됐다는 일반적인 이론과 모순이 된다”고 밝혔다. 태양계 형성에 관한 초기 모델에 따르면, 태양 주위를 빙빙 돌다가 결국 수성과 금성, 지구 그리고 화성이라는 내행성들을 형성한 가스와 먼지로 이뤄진 거대한 원반들은 너무 뜨거웠기에 얼음이 존재할 수 없었다. 이는 수성과 금성 그리고 화성이라는 나머지 세 행성의 척박한 환경으로 설명할 수 있지만, 광활한 바다와 습한 대기 그리고 수분이 풍부한 지질 환경을 갖춘 우리의 푸른 행성인 지구를 설명할 수는 없다. 따라서 과학자들은 물은 지구가 형성되고 나서 어디선가 유래했다는 가설을 세웠고 유력한 후보는 수소를 함유한 미네랄이 풍부한 ‘카보네이셔스 콘드라이트’(C-콘드라이트)라는 운석이었다. 하지만 C-콘드라이트의 화학적 조성은 지구의 암석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문제가 있다. 게다가 이들 운석은 혜왕성 너머 외태양계에서 형성됐기에 초기 지구에 도달했을 가능성은 적다. 반면 엔스터타이트 콘드라이트(E-콘드라이트)라는 또 다른 운석군은 산소와 티타늄 그리고 칼슘의 유사한 동위원소(유형)을 함유해 지구의 암석들과 화학적으로 훨씬 더 가깝다. 이는 E-콘드라이트가 내행성들이 처음 만들어질 때 사용된 물질 중 일부였음을 시사한다. 하지만 이들 운석은 태양에서 가까운 곳에서 형성됐기에 지구의 풍부한 물을 설명하기에는 너무 건조한 것으로 여겨졌다.이 가설이 정말 사실인지 시험하기 위해 로레트 피아니 박사와 동료 연구자들은 질량분석법(mass spectrometry)이라는 기술을 이용, E-콘드라이트 13점의 수소 함량을 측정했다. 그 결과 이들 운석은 오늘날 해양의 3배 이상의 물을 지구에 공급하기에 충분한 수소 구성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또 E-콘드라이트에서 두 수소동위원소를 측정했다. 이는 이들 동위원소의 상대적 비율이 천체마다 상이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해양의 동위원소 조성은 E-콘드라이트의 물을 함유한 혼합물과 95% 일치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는 이들 운석이 지구의 물 대부분에 기여했다는 또 하나의 증거가 된다. 연구진은 E-콘드라이트의 질소동위원소들은 지구의 것과 유사하다는 것을 발견하고 이들 운석에 있는 것이 지구의 대기에서 가장 풍부한 성분이기도 한 질소의 기원일 수도 있다고 제안했다. 이와 함께 피아니 박사는 “혜성과 같이 태양계 밖에서 물이 추가로 공급됐다는 점을 배제하지 않지만 E-콘드라이트는 지구가 형성될 당시 공급된 물에 크게 기여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덧붙였다.이번 연구를 살펴본 미국항공우주국(NASA) 소속 앤 페슬리어 박사는 사설에서 “이는 물의 기원이라는 퍼즐에 중요하고 우아한 조각을 끼워맞춘 것”이라고 명시했다. 자세한 연구 결과는 세계적 학술지 ‘사이언스’ 최신호(8월 27일자)에 실렸다.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핵잼 사이언스] 지구최강 생명체 ‘곰벌레’ 생존 비결은?…DNA에 전기 실드 친다

    [핵잼 사이언스] 지구최강 생명체 ‘곰벌레’ 생존 비결은?…DNA에 전기 실드 친다

    곰벌레는 지구에서 가장 강력한 내성을 지닌 생명체로 유명하다. 절대영도에 가까운 영하 272℃부터 물 끓는 점을 웃도는 150℃까지 극한의 온도에서 살아남고 극도의 탈수 상태에서도 세포질을 유리화해 세포 형태를 유지하기 때문. 또 고선량의 방사선을 견딜 수 있어 우주 공간에서 열흘 넘게 살아남은 사례가 보고되기도 했다. 지금까지 지구에서 알려진 어떤 다세포 생명체도 물곰으로도 불리는 이들 완보동물에 맞먹는 내성을 지니고 있지 않다. 그런데 최근 이들 생명체의 극강 내성에 숨겨진 비밀에 근접한 연구가 진행돼 관심이 쏠리고 있다. 곰벌레의 DNA는 특수 단백질로 보호돼극단적인 온도와 방사선은 생물의 DNA를 파괴한다. 하지만 몸길이 50㎛(1㎛는 1m의 100만분의 1)~1.7㎜로 현미경으로 봐야 보이는 다리 8개의 무척추동물인 이들 곰벌레는 수분이 없는 곳에서 탈수 상태가 돼도 ‘툰’(tun)이라는 가사 상태가 됨으로써 살아남을 수 있다. 툰 상태에서는 세포질이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유리화돼 건조 상태에 강해지고 DNA는 손상 억제(damage-suppressor·이하 Dsup) 단백질이라고 부르는 특수 단백질로 감싸여 높은 내성을 갖는다. 2016년 연구자들이 곰벌레의 이런 내성 유전자(Dsup)를 인간 세포에 이식함으로써 세포의 방사선 내성을 극적으로 높이는 데 성공했지만, Dsup이 어떤 구조로 DNA를 보호하는지 그 상세한 분자 메커니즘은 풀리지 않았다. 특수 단백질이 DNA에 ‘전기 실드’ 제공그래서 스페인의 연구자들은 Dsup과 DNA의 상호작용을 슈퍼컴퓨터를 이용해 시뮬레이션했다. 그런데 의외의 사실이 드러났다. 이는 곰벌레의 특수 단백질(Dsup)이 DNA에 ‘정전 차폐’(electrostatic shielding·전기 실드)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정전 차폐는 어떤 공간을 외부 힘의 장으로부터 차단하거나 내부 힘의 장을 외부와 차단하는 것을 말한다. 이들 연구자는 며칠에 걸친 슈퍼컴퓨터의 연산 끝에 Dsup가 ‘기본적으로 무질서’하며, ‘높은 유연성’을 갖추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 이런 무질서함과 높은 유연성 덕분에 Dsup은 위 이미지와 같이 DNA 형태에 딱 맞게 결합할 수 있었다. 중간의 붉은 선이 DNA로 그 주위에 Dsup 2개가 둘러싸고 있다. 또 Dsup의 결합에 의해 DNA의 주위에는 특수한 전기력선들을 형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전기력선들이 정전 차폐가 돼 방사선이나 자유라디칼(활성산소)로부터 DNA를 전기적으로 차폐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왜 이렇게 강한 내성을 지닌 것일까? 이번 연구를 통해 Dsup이 DNA와 비특이적으로 결합해 DNA를 방사선과 활성산소의 피해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구조적인 지원뿐만 아니라 전기적 차폐를 제공했음을 시사했다. Dsup은 자외선 차단제처럼 DNA를 보호해 곰벌레의 불멸성을 높이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곰벌레의 생존 능력은 지구에서 생활하는 데 있어 ‘오버 스펙’이라고 할 수 있다. 보통 지구상의 다세포 생물에 우주 공간에서 열흘 이상 살아남을 능력은 필요 없다. 마찬가지로 우주 방사선에 대한 내성과 절대 영도에서 150℃를 넘는 폭넓은 온도에서 살아남는 능력도 잉여일 것이다. 이런 능력이 탈수 상태에 대한 내성을 높여간 결과로 얻어진 부산물인지 아니면 과거 곰벌레는 이런 스펙을 요구하는 환경에 노출됐을 가능성도 생각할 수 있다. 그런 환경은 진공이고 강렬한 방사선이 날아오며 절대 영도와 물 끓는 점을 넘는 온도였을지도 모른다. 일반적으로 이런 환경은 안정된 대기가 존재하는 지구가 아니라 우주에 존재한다. 곰벌레가 우주에서 진화했는지 어떤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남아도는 스펙의 출처는 앞으로도 탐구 대상이 될 것이다. 자세한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Science Advances) 최신호(8월 7일자)에 실렸다.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무지갯빛 뿜는 ‘희귀 운석’ 공개… “태양계 초기 성질 보유”

    무지갯빛 뿜는 ‘희귀 운석’ 공개… “태양계 초기 성질 보유”

    중앙아메리카 남부 코스타리카에서 신비로운 무지갯빛을 내는 운석이 공개됐다. 전문가들은 이 운석이 생명체 기원의 비밀을 품고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스페이스닷컴 등 과학전문매체의 24일 보도에 따르면 지난해 4월 코스타리카에서 발견된 이 운석은 세탁기 정도 크기의 거대한 유성이 지구 대기권에서 부서지면서 생긴 파편으로, 당시 코스타리카의 두 마을에서 공통으로 발견됐다. 코스타리카국립대학 지질학과 연구진이 1년가량의 연구 끝에 공개한 운석의 분석 결과에 따르면, 해당 운석은 탄소질 콘드라이트로 확인됐다. 80~85%가 점토로 이뤄진 탄소질 콘드라이트는 유기화합물이 포함돼 있긴 하나 생물에 의해 만들어진 것은 아니며, 태양계 초기에 만들어진 이후 열변성을 받지 않은 채 유지된 것이기 때문에 태양계에서 가장 초기의 성질을 보유한 물질로 여겨진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이 운석의 모체인 소행성이 초기 태양계부터 존재했으며, 궁극적으로 우리 태양계의 매우 오래된 별에서 관찰할 수 있는 특징들을 담고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구체적으로 연구진은 이 암석에서 100여 개의 각기 다른 아미노산을 발견했다. 이중 일부는 지구상의 생명체에게서도 매우 드물게 발견되거나 알려지지 않은 것들이다. 무게는 약 1.1㎏ 정도이며 오묘한 무지갯빛을 내는 것이 특징이다. 연구진은 “이 운석은 45억 6000만 년 전부터 존재해 온 소행성의 일부분으로 보여진다”면서 “특히 이번에 공개한 운석은 수십억 년 동안 오염되지 않은 채 보존돼 있었으므로, 연구가치 뿐만 아니라 희소가치도 매우 높다”고 설명했다.이번에 공개된 운석은 지난해 당시, 한 가정집 지붕을 뚫고 떨어져 발견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코스타리카 아과스자르카스에 거주하던 한 여성은 저녁 무렵 거실에서 텔레비전을 보다가 지붕을 뚫고 떨어진 운석과 처음 마주했다. 이 여성은 당시 인터뷰에서 “떨어진 돌을 만졌을 때 여전히 온기가 있었다”고 밝혔다. 한편 운석은 희소성과 종류 등에 따라 천차만별의 경제적 가치를 지닌다. 희귀한 운석의 경우 ‘우주의 로또’로 불릴 만큼 높은 가격을 자랑하는데, 1㎏에 최소 1억 원 이상을 호가하기도 한다. 송현서 기자 huimin0217@seoul.co.kr
  • 공기만으로 생존하는 박테리아, 지구 온난화 해결 열쇠 지녔다

    공기만으로 생존하는 박테리아, 지구 온난화 해결 열쇠 지녔다

    박테리아로 흔히 부르는 세균은 질병의 원인이 되거나 비위생적인 곳에서 발생하는 종들이 있어 대개 나쁘다는 인식이 있지만, 동식물이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존재이기도 하다. 장내 소화를 돕는 것도, 나무가 땅속에서 얻는 질소를 공급하는 것도 바로 이들 박테리아이기 때문이다. 즉 박테리아는 지구의 영양분을 순환하도록 하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박테리아는 놀라울 정도로 극한인 환경에서도 살아나갈 힘을 지녔다. 남극의 토양에서 발견됐던 한 박테리아는 영양분이 없는 곳에서도 공기만으로 생존할 수 있다. 특히 이들 박테리아는 현재 인류의 가장 큰 고민거리인 지구 온난화 문제를 해결하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공기를 먹이로 삼는 이 박테리아가 몇 년 전 발견된 남극의 토양은 영양분이 극단적으로 적은 환경이다. 이에 따라 호주 뉴사우스웨일스대(UNSW)의 미생물학자 벨린다 페라리 박사가 이끄는 연구진은 이 새로운 미생물의 탄소 고정(carbon fixation) 과정에 의존하는 생태계가 존재하리라 추정했다. 연구 결과, 이들 박테리아는 대기 중의 수소 가스를 받아들여 산화함으로써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탄소로 바꾸는 능력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이들 미생물이 유발하는 대기 화학합성(atmospheric chemosynthesis)이라고 불리는 과정은 광합성이나 지열 화학합성(geothermal chemotrophy)을 조합해 무기물에서 생명체에 꼭 필요한 유기물을 생성하는 것이었다. 이는 얼음에 갇힌 열악한 환경 속에서 몇 안 되는 생물에게 에너지를 공급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리고 이번 새로운 연구에서는 이 박테리아가 남극 외에도 북극이나 티베트 고원 등 두꺼운 얼음층에 갇혀 있는 땅이 존재할 가능성이 제기됐다.이들 연구자는 얼음으로 덮여 있지 않은 14개의 장소에서 122개의 토양 표본을 수집해 분석했다. 이들의 조사 목적은 대기 화학합성에 연관성 있는 유전자를 찾아내는 것이다. 이곳은 정기적인 동결과 융해라는 주기를 갖고 있어 자외선이 강하고 수분과 탄소 그리고 질소가 극단적으로 낮은 환경이다. 이런 장소에서는 광합성을 하는 미생물마저 존재하는 사례는 매우 드물다. 그런데도 이들 연구자는 이런 모든 장소에서 원하는 유전자를 풍부하게 발견할 수 있었다. 따라서 연구진은 대기 중의 탄소를 직접 영양원으로 바꾸는 이들 미생물의 식사법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널리 대중적일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즉 우리가 아직 모르는 잠재적인 탄소 흡수원이 극한의 환경 아래 존재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것이다. 이 연구는 또 이들 미생물의 대기 화학합성이 지구 규모의 탄소 평형에 공헌하고 있는 것을 보여준다. 이에 대해 연구진은 지구 온난화의 영향으로 영양분이 부족한 혹한의 땅에서 이런 미생물이 증가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연구는 아직 일부 토양 조사에만 한정돼 있고, 이들 미생물이 전 세계적으로 활동하는 존재인지 아닌지를 확인한 것은 아니다. 따라서 이를 밝히려면 앞으로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고 이들 연구자는 말했다. 자세한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프론티어스 인 마이크로바이올로지’(Frontiers in Microbiology) 최신호(8월 12일자)에 실렸다.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지플릭스] 심해의 공포, 사람보다 큰 거대 ‘대왕오징어’의 비밀

    [지플릭스] 심해의 공포, 사람보다 큰 거대 ‘대왕오징어’의 비밀

    외계생명체도 CG도 아니다!! 진짜 지구상에 서식하는 미스터리한 대왕오징어의 모든 것. 과장 조금 보태 성인 키 만한 대왕오징어, 사람이 먹을 수 있다? 없다? 심해에 사는 대왕오징어와 거대한 향유고래가 싸우면 누가 이길까? 신비로운 대왕오징어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드립니다! '지플릭스'를 구독해주세요!
  • 빈칸으로 남은 경희궁 방공호… 아픈 유산도 안고 가야 할 이유

    빈칸으로 남은 경희궁 방공호… 아픈 유산도 안고 가야 할 이유

    국보나 보물이 문화유산의 전부는 아니다. 시민의 일상과 조금 더 가깝고 그러하기에 더욱 생명력이 느껴지는 문화유산이 있다. 서울시민이 근현대를 살아오면서 함께 만들어 온 공통의 기억이나 감성이 응축된 유·무형의 모든 것들 가운데 미래세대에게 전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을 대상으로 하는 서울미래유산이 바로 그것이다. 서울신문이 서울시, 사단법인 서울도시문화연구원과 함께하는 ‘2020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의 ‘제12회 돈의문 주변’은 서울미래유산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 고민해 볼 수 있는 코스로 잡았다. 정동의 옛 문화방송 사옥이자 현 경향신문 사옥에서 시작, 창덕여중 담장~경교장~돈의문박물관마을을 거쳐 종착지인 경희궁 방공호로 향했다.총연장 18.6㎞, 높이 5~8m의 한양도성. 조선 건국과 함께 쌓기 시작한 이 성은 놀랍게도 축성 기간이 단 98일에 불과했다. 49일씩 2번에 나눠서 했는데, 그 시기가 각각 한겨울인 음력 1~2월과 추수 뒤 다시 겨울 초입이었다. 봄가을처럼 공사하기 좋은 계절을 내버려두고 굳이 겨울에 공사를 강행한 이유가 있을까. 세상사 모두 이유가 있는 법. 새로운 왕도의 치안을 위해 성을 세월아 네월아 지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또 백성을 오래 잡아 두는 것만큼 원성을 사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태조 이래 세종과 숙종, 순조 대를 거쳐 꾸준히 개보수하는 등 힘겹게 짓고 이어 온 한양도성의 현재 모습은 그러나 예전 같지 않다. 흥인지문에서 동대문디자인플라자까지, 광희문 언저리에서 장충체육관까지, 숭례문에서 인왕산 밑까지는 거의 남아 있는 게 없다. 일제강점을 전후한 시기에 한양도성의 평지 부분을 헐어버린 결과다. 일부는 사가의 축대나 벽으로도 이용되는 경우를 볼 수 있다. 이번 투어 코스인 창덕여중 후문에 가면 학교 담장의 기초로 이용된 모습을 볼 수 있다. 물론 한양도성이 일제 당시 모습 그대로 남아 있는 것도 물론 아니다. 1963년 사적으로 지정한 이후 1975년쯤 이른바 ‘국방유적 성역화’를 위해 여러 구간에 걸쳐 복구작업을 진행했다. 박정희 정권은 군사정권에 의한 통치의 정당성을 부각하고자 국방 관련 유적에 대한 대대적인 정비를 진행했다. 문화재는 이렇게 정치적 이유로 사라질 뻔하다가도 역시 같은 이유로 다시 살아나기도 한다.옛 문화방송 사옥은 건물 상부의 창문틀을 브라운관 텔레비전 모양으로 설계하고 송신탑도 남겨 둬 누가 봐도 방송사 사옥답다. 지난주 투어 때 들른 아르코미술관과 아르코예술극장, 그리고 옛 샘터 사옥을 설계한 김수근의 작품이다. 1층 현관부에 외벽을 치지 않고 비워 둠으로써 지금처럼 장맛비가 내릴 땐 잠시 비를 그을 수도 있고, 햇볕이 강할 땐 산책자들의 그늘막 역할을 해 주기도 한다. 일반적으로는 최대한 격벽을 쳐 임대수익을 극대화하고자 하지만 이 건물은 남다른 면이 있다. 건축가의 센스와 건축주의 배려가 엿보인다. 다만 서울 내 김수근의 작품 중 14개가 서울미래유산에 등재됐지만 이 건물은 아직이다. 한국 방송의 역사나 건축적인 면에서 무게감이 각별하지만 아직 소유주의 신청이 없었기 때문이다. 언젠가 서울미래유산 목록을 두텁게 할 수 있는 예비후보 같은 건물이다. 다음 목적지는 경교장이었다.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마지막 청사가 있던 곳은 중국 상하이도 충칭도 아니다. 돈의문 터를 중심으로 옛 문화방송 사옥 맞은편에 있는 강북삼성병원 자리에 있었다. 최근까지 강북삼성병원의 현관 구실을 해 온 경교장이 바로 그곳이다. 경교장의 원래 명칭은 ‘죽첨장’(竹添莊)이었다. 갑신정변 이전까지 조선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던 일본공사 다케조에(竹添) 신이치로의 성을 딴 것이었다. 단 실제 소유주는 일본인이 아니라 일제강점기 금광을 개발해 ‘조선의 황금귀신’이라 불릴 정도로 많은 부를 축적한 친일부역 혐의자 최창학이었다.“해방은 도둑같이 뜻밖에 왔다”는 함석헌의 말마따나 갑작스러운 해방은 죽첨장에 새로운 운명을 부여한다. 전투기를 헌납하는 등 친일부역을 열심히 했다 해방을 맞은 최창학이 자신의 안위를 걱정해 이 건물을 오랜 타국 생활 끝에 환국한 임시정부에 내놓은 것이다. 경교장에 여장을 푼 백범 김구 일행은 건물 이름을 왜색이 짙은 죽첨장에서 근처에 있던 다리 ‘경교’의 이름을 따 경교장으로 바꾸고 임시정부 청사로 삼았다. 그러고는 해방정국의 어수선한 상황에서 남북분단을 막기 위한 활동들을 펼쳐나간다. 김구가 북행을 결의하는 등 통일운동의 구심점 역할을 한 곳이다. 그러나 1949년 백범이 서거하면서 경교장의 운명은 또다시 파란을 겪는다. 최창학이 되가져간 이후 자유중국대사관과 미군 특수부대사령부, 베트남대사관저 등으로 이용되면서 원래 모습을 서서히 잃어 갔다. 이윽고 1968년 강북삼성병원의 전신인 고려병원에 인수되고부터는 건물 내부가 완전히 개조되기 시작했다. 2000년대 초까지도 원무과와 X선 촬영실, 의사휴게실 등으로 쓰이면서 외벽만 그대로일 뿐 내부는 원래의 모습을 상당 부분 잃은 상태였다. 그랬던 경교장이 새로운 출발대 앞에 선 것은 2005년이었다. 늦은 감이 있지만, 김구 암살 이후 별다른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던 경교장이 국가 사적으로 지정된 것이었다. 그리고 2013년, 사적 지정 이후에도 김구가 암살당한 2층 집무실 정도만 원형에 가깝게 재현돼 관람객을 맞았으나 드디어 건물 전체를 당시의 모습에 가깝게 보수해 일반에 무료로 공개하기 시작했다. 해방정국과 그 이후 펼쳐진 정치지형에서는 등한시될 수밖에 없는 공간이었지만, 민주화 이후 사회적 성숙이 거듭되고 시민사회의 관심이 커지면서 비로소 경교장도 문화재의 반열에 오를 수 있던 것이다. 즉 동시대인들의 관심과 참여 여부에 따라 파괴되기도 하고 보수되기도 하며, 또 문화재로 지정되기도 한다.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문화유산도 생멸함을 확인할 수 있는 현장이다.경교장과 경희궁 방공호 사이에 있는 돈의문박물관마을, 그중에서도 서울미래유산관을 찾았다. 지금은 470개의 서울미래유산 중 1960~80년대에 시민들의 사랑을 받던 식당과 찻집, 극장을 비롯한 휴식공간을 소개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가장 관심이 간 대상은 전시물이 아니었다. 출입문 옆에 비치된 ‘내가 제안하는 서울미래유산’ 설문지였다. 말 그대로 이곳을 찾은 시민들에게 과연 당신이라면 무엇을 서울미래유산으로 꼽고 싶은지 묻고 있었다. 서울미래유산의 본질이 그 질문 속에 녹아 있었다. 무엇이 서울미래유산이 되고 안 되고를 결정하는 것은 전문가들의 식견만이 아니다. 서울미래유산은 다른 어떤 문화재체계에 견줘 개방적인 개념이다. 실제로 시민이 직접 제안한 대상을 두고 서울미래유산 등재 여부를 판단하는 심사가 열리곤 한다. 판단 가늠자는 오로지 서울시민 개개인에서 나아가 우리의 미래세대에게 어떤 가치가 있느냐는 점이다. 시대적 공감대에 따라 문화재로 지정되거나 등재되고, 때론 철회되기도 하는 등 부침을 거듭할 수 있는 문화재란 존재…. 이번 투어는 서울미래유산을 하나도 만나지 않은 여정이기는 했다. 하지만 바로 그러하기에 서울미래유산의 의미와 내용, 나아가 문화유산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루트이기도 했다.마지막으로, 서울에 거의 유일하게 남아 있는 태평양전쟁의 흔적이지만 시민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공간이 하나 있다. 서울역사박물관 주차장 한쪽에 숨어 있는 이른바 경희궁 방공호가 그것이다. 태평양전쟁 말기인 1944년 초 일제가 미군 폭격에 대비해 만든 것이다. 길이 110여m에 폭 9m, 높이 6m 정도의 규모로, 내부는 20개 남짓한 크고 작은 방들로 구성돼 있다. 특히 콘크리트 외벽의 두께는 자그마치 3m나 됐다. 일제가 만든 서울 시내의 다른 방공호들은 철거되는 신세를 면치 못했다. 부정적 유산이기에 보존해야 할 가치가 없다고 판단해서다. 그러고 보면 경희궁 방공호 역시 아직까지 그 어떤 문화재로도 지정되거나 등록돼 있지 않다. 서울미래유산도 아니다. 하지만 그게 온당한 처사일까. 역사와 문화유산을 대할 때 긍정적인 것은 취하고 부정적인 것은 지양하기만 한다면 성찰의 시간이 끼어들 틈이 없다. 암울했던 과거를 떠오르게 할 수는 있지만 도리어 이 시대에 전하는 메시지는 강렬한, 다크 헤리티지가 지니는 현재적 가치는 이 땅의 어제와 오늘을 돌아보게 하는, 즉 성찰과 반성의 계기를 마련해 준다는 데에 있다. 왜 그런 일이 벌어졌으며, 어떻게 해야 그 상흔을 보듬을 수 있고, 나아가 비슷한 상황의 재발을 막고 더 나은 미래를 그려 보려는 사고의 여유는 이 같은 부정적인 역사유산이 지닌 현재적 존재 이유 중 하나다. 2013년 상암동 일본군 관사가 서울미래유산에 등재된 것처럼 이 방공호도 어떻게든 남아 지나간 식민지 시대의 아픔을 증언하는 동시에 잊지 못할 교훈을 주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지 않을까. 글 권기봉 ‘다시, 서울을 걷다’ 저자 사진 김학영 서울도시문화연구원 연구위원 ●다음 일정 : 제13회 항동철길 ●출발일시 : 8월 22일 오전 10시 온수역 ●신청(무료): 서울미래유산 홈페이지(futureheritage.seoul.go.kr) ●문의 : 서울도시문화연구원(www.suci.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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