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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열린세상] 2007년의 처용가/김정란 상지대 교수·시인

    [열린세상] 2007년의 처용가/김정란 상지대 교수·시인

    오늘날까지 전하는 신라 향가 14수 중 하나인 ‘처용가’는 대체로 역신(疫神)이 자신의 아내를 범하는 것을 보고도 너그럽게 용서한 마음씨 넉넉한 한량이 부른 노래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처용가는 매우 깊은 노래이다. 파고 들어갈수록 이 노래는 우리를 아득히 먼 인류의 근원적 정신 세계로까지 데리고 간다. 그렇게 멀리까지 거슬러 올라가지 않더라도, 이 노래는 단순히 너그러운 남편이 부른 노래가 결코 아니다. 그런 이유만으로 이 노래의 끈질긴 생명력은 설명되지 않는다. 신라 향가들 중에서 유독 이 노래만이 고려 시대를 지나, 조선 시대까지 살아남았을 뿐만 아니라, 노래로, 춤으로, 연희로 계속 확장되었고, 민중의 사랑뿐 아니라 귀족들의 사랑까지 받았다. 처용과 처용가가 그렇게 오래 살아남았던 데는 분명히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처용가는 ‘비장한’ 노래이다. 오늘날 우리는 처용가를 통해 비장한 정서를 느낄 수 없지만, 고려 시대까지만 해도, 그 정서는 생생하게 남아 있었던 것 같다. 나라 안팎에 문명(文名)을 떨쳤던 고려말 문인 이숭인은 ‘도은집(陶隱集)’에서 신라 처용가를 듣고 ‘비장함’을 느꼈다고 기록하고 있다. 처용가가 그 표면적 의미에 머물러 있었다면, 당대의 뛰어난 한 문인이 그 노래를 듣고 비장함의 느낌을 받았을 리는 없다. 이숭인은 처용가를 듣고 ‘슬픈 바람은 나무 끝에서 우네/끝없이 일어나는 회포 견디기 어렵구나/부귀공명이 다 무엇일까’라고 쓴다. 처용가는 분명히 훨씬 더 진지한 어떤 것에 관계된 노래였을 것이다. 처용가는 유난히 많은 해석 상의 이견이 존재하는 노래이다. 대체적으로 설화와 노래만을 따로 떼어 연구하던 방향에서 최근에는 처용가가 수록되어 있는 삼국유사의 ‘처용랑 망해사’조의 기록 안에서 전체 맥락을 고려하는 방향으로 연구 기조가 바뀌고 있다. ‘처용랑 망해사’조는 신라말기 헌강왕대의 물질적 풍요와 그에 따른 타락을 신들이 등장하여 계속 경고하는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 신들은 계속 왕 앞에 등장하여 신라의 멸망을 예고했지만, 왕과 신라인들은 그 경고를 오히려 상서로운 징조로 이해하여, 계속 향락에 몰두한 결과, 나라가 망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처용가와 처용설화는 그 이야기들 안에 액자처럼 끼워 넣어져 있다. 이 맥락을 따라 처용설화를 이해하면, 처용 아내를 범한 역신(疫神)은 전혀 다른 사회적 의미를 가지게 된다. 그는 신라의 타락을 상징하는 존재이다. 그 맥락 안에서 처용의 존재는 신들의 경고를 알아듣지 못한 헌강왕과는 달리, 그 메시지를 알아듣고, 문제를 해결한 현자로 자리매김된다. 그 때문에 그는 이후에 역신을 쫓아내는 문신(門神)으로서 좌정하게 되는 것이다. 2007년, 한국 사회는 다시 역신의 습격을 받고 있다. 물질의 풍요가 망가뜨린 어떤 근원적 가치체계의 몰락. 물질의 풍요만이 보장된다면, 부패와 거짓말쯤 얼마든지 용인할 수 있다는 역신의 도래. 우리의 영혼을 좀먹는 거짓말의 난무. 지난 12월19일 대한민국의 유권자들은 매우 의미심장한 선택을 했다. 그들은 거짓과 술수에게 압도적인 지지를 보냈다. 이미 한국사회에는 수많은 신들이 나타나 경고한 바 있다. 경고는 이미 수없이 발해졌다. 징조는 흘러넘친다.12월19일, 우리는 헌강왕과 그 시대의 신라인들처럼 그 수많은 경고를 지레 ‘상서로움’으로 오해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 선택의 책임은 우리 자신에게 있다. 운명이 우리 나라를 어디로 이끌어갈지 나는 모른다. 다만,2007년 다시 처용가가 절실하게 필요하다는 것을 시인의 직관으로 느낄 뿐이다. 헌강왕에게 전해진 최종적 메시지는 ‘지리다도파도파(智理多都波都波)’라는 밀어(密語)로 전해졌다. 삼국유사의 저자 일연은 그것을 “지혜로운 자들이 위난을 깨닫고 파도처럼 도피했다.”라고 해석한다. 이제 지혜가 입을 다물어 버리는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 그리고 세상은 거짓과 술수의 왕국이 되어 버릴지도 모른다. 그런데, 새로운 처용은 올까? 김정란 상지대 교수·시인
  • [어린이 책꽂이]

    ●우리 호랑이를 찾아서( 임순남 글·정석호 그림, 마루벌 펴냄) 1994년부터 호랑이 연구에 전념하고 있는 ‘호랑이 아저씨’ 임순남씨가 전국 곳곳을 누비며 사라져간 우리 호랑이를 찾아나섰다. 수묵화풍의 그림은 ‘무서운 호랑이’보다 ‘친근한 호랑이’를 탄생시켰다. 책 본문은 호랑이의 일반적 생태를, 페이지 하단의 짧은 문장은 지은이가 호랑이를 찾아 헤매는 과정을 묘사하는 ‘이원 구조’를 취했다.1만 2500원.●수학 영재를 꿈꾸는 마법의 인도수학 계산법칙(나카무라 아키라 지음, 정경남 감수, 인터윈 펴냄) 일반적인 구구단은 9단(‘9×9=81’)까지지만, 인도 구구단은 19단(‘19×19=361’)까지다. 초등학교 때부터 19단을 배우는 인도 학생들은 정보기술(IT) 강국답게 계산력이 탁월하다고들 한다. 인도식 계산법의 핵심인 ‘두 자리 암기법’을 설명한 어린이용 인도 수학 입문서.9500원.●우리와 안녕하려면(하이타니 겐지로 글·쓰보야 레이코 그림, 햇살과나무꾼 옮김, 양철북 펴냄) 지난해 타계한 일본 아동문학가 하이타니 겐지로의 단편집.‘일본의 권정생’이라 할 만큼 작가는 전쟁과 가난, 절망과 고통 속에서도 빛을 발하는 아이들의 생명력을 무한히 신뢰했다. 재일동포의 설움을 그린 ‘물 이야기’, 일본 제국주의 흔적을 더듬은 ‘손’ 등 5편의 단편이 실렸다.2003년 출간된 ‘손과 눈과 소리와’의 개정판.●휠체어를 찾고 말겠어(고정욱 글·장선환 그림, 을파소 펴냄) 교통사고로 두 다리를 잃은 대운이는 어머니가 큰 돈을 들여 사준 휠체어를 잃어버리자 휠체어를 찾기 위한 작전에 돌입한다. 체육인이자 방송인인 박대운씨가 휠체어에 의지해 달리는 법을 배우고, 초등학교 야구부에 들어가기까지의 과정을 그렸다.‘사람이 사람다울 수 있는 힘은 그의 의지’란 메시지를 담았다.9000원.●책가방을 버린 아이(김희석 글·김혜진 등 그림, 자유지성사 펴냄) 물리치료사로 18년 동안 뇌성마비 아이들을 치료해온 작가는 자신이 만난 아이들 이야기를 통해 뇌성마비 장애인들을 ‘불쌍하고 도와줘야 하는 존재’가 아닌 ‘나와 조금 다른 친구들’로 바라봐 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책을 썼다.8500원.
  • [주말탐방] “韓中소무역상인으로 불러주세요”

    [주말탐방] “韓中소무역상인으로 불러주세요”

    “아직도 중국을 오가는 보따리상이 있습니까.” 이같은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 적지 않지만 보따리상들은 여전히 끈끈한 생명력을 이어오고 있다. 오히려 현실에 적응하면서 진화하고 있다고 표현하는 것이 정확할지도 모른다. 이들은 한∼중 간 항로가 개설된 1992년부터 10개 항로 여객선을 통해 중국 농산물을 우리나라로 들여와 팔면서 보따리상으로 불리게 됐다. 물건을 보따리에 담고 오는 경우가 많아 이같은 명칭이 붙여졌지만 정작 이들은 상당히 불쾌해 한다. 규모가 작기는 해도 자신들이 하는 일도 엄연히 무역인 만큼 ‘한·중소무역상인’으로 불리는 것이 합당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이 만든 단체 이름도 ‘한·중카페리 소무역상인연합회’다. ● “IMF당시 한·중 여객선 승객 2명 중 1명은 보따리상” 어쨌던 보따리 장사가 ‘물좋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IMF 사태 때에는 실직자들이 대거 몰려 “한·중 여객선 승객 2명 중 1명은 보따리상”이라는 말까지 나돌았다.5000명이 넘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이들은 고추·참깨·잣·참기름 등 값싼 중국산 농산물과 한약재 등을 들여와 팔아 수배에 달하는 시세 차익으로 평균 월수입이 200만∼250만원은 족히 되었고, 일부는 큰 돈을 벌었다는 소문도 돌았다. 이 중에서도 고추·참깨의 시세차익이 커 단골 품목이었다. ‘잘 나가던’ 시절을 구가하던 보따리상은 인천세관이 1999년 국내 농업을 보호하기 위해 세금없이 휴대 반입할 수 있는 농산물을 80㎏ 이내로 제한하면서 일대 위기를 맞게 된다. 나아가 세관측은 2000년 6월부터 두달 간격으로 면세 허용량을 70㎏→60㎏→50㎏으로 계속 낮췄다. 이제 수백㎏씩 수레로 실어나르는 일이 불가능해진 것. 보따리상들은 자구책으로 규제를 완화시켜줄 것을 요구하는 농성을 끈질기게 벌였지만 한번 강화된 규제는 요지부동이었다. 이 여파로 보따리상은 점차 감소해 2003년쯤에는 1500명 정도로 줄어들었다. 조선족과 중국인이 보따리상 대열에 뛰어든 것은 이때부터다. 절반 수준으로 줄어든 수입으로 한국 보따리상들은 활력을 상실했지만 조선족 등에게는 큰 돈이기 때문이다. 대신 남아 있는 보따리상들은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변신을 꾀한다. 지난날 농산물만 취급하던 것과 달리 공산품으로 영역을 확장했다. 중국으로 갈 때는 기업 부자재나 가전 제품을, 한국으로 올 때는 생산품 샘플이나 농산물을 가져오는 방식이다. 보따리상이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과 국내를 잇는 ‘퀵서비스’로 탈바꿈된 것이다. 보따리상 신모(52)씨는 “요즘도 중국에서 농산물을 들여오지만 여객선 운임이나 마련하자는 차원”이라고 말했다. 기업들도 물건을 화물로 보내면 요금이 비싸고 며칠씩 걸리지만 보따리상은 15∼25시간이면 어김없이 물건을 전달하기에 이들을 선호한다. 물건 분실이나 파손 우려도 화물 운송보다 적다. 이처럼 기업과 보따리상 간에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져 국가 간에도 ‘인간택배’라는 기이한 형태가 생겨난 것이다. ●2004년 중국인여행자 입국절차 간소화로 급증 게다가 2004년부터 중국인 여행자에 대한 입국 절차가 간소화되면서 중국인 보따리상이 증가, 지금은 보따리상이 2500여명으로 다시 늘어났다. 그렇지만 공산품 운송이 큰 수입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공산품은 ㎏당 2500∼3000원의 운반비를 받는데, 한국의 경우 공산품 면세 허용량이 40㎏에 불과해 큰 돈벌이가 되지 않는다. 올해 들어 한국∼중국 간 항공 요금이 여객선과 비슷할 정도로 크게 내려 보따리상들이 대거 인천항에서 인천공항으로 옮겨갈 것이라는 예상이 있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배에서는 숙식을 해결할 수 있으며, 화물의 집하 등은 선박을 이용하는 편이 유리하기 때문이다.1주일에 두번 이상 중국을 왕복하는 보따리상에게 여객선은 ‘집’같은 존재이고, 선사에게는 보따리상이 여전히 ‘VIP’다. 보따리상은 긍정·부정적 측면을 동시에 갖고 있지만 세관으로서는 ‘뜨거운 감자’다. 수·출입 절차 간소화로 민원이 급격히 줄고 있는 데도 불구하고 보따리상은 항상 민원의 소지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 보따리상이 들여오는 물품은 검역 대상에서 제외되기 때문에 국민 건강을 위협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보따리상과 연계된 마약류·짝퉁물품 반입, 지적재산권 침해, 외화 밀반입 등도 늘고 있다. 하지만 보따리상들의 입장은 절박하다. 한 보따리상은 “대부분 50·60대여서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면서 “당국이 아량을 베풀어 이들이 노숙자나 범죄자로 전락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관측도 이같은 점을 어느 정도 인정하고 있다. 우범성이 높은 일부 보따리상에 대한 집중관리 필요성은 인정되지만, 현실적으로 보따리무역 실체를 부인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인천세관 관계자는 “한국과 중국 간에 자유무역협정이 체결돼 관세 장벽이 없어지면 보따리상은 자연히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시 말해 1960∼70년대에 비행기를 통해 일본 전자제품을 몰래 들여왔던 ‘원조 보따리상’들이 일본제품 수입자유화 이후 일제히 자취를 감춘 점을 상기하라는 얘기다. 인천 김학준기자 kimhj@seoul.co.kr ■‘수입품 통관’ 3시간이면 OK… 2003년보다 3배 단축 보따리상과 좋든 싫든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인천세관도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양상이 다르다면 국민들에게 극히 바람직한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너무 많이 풀어준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있었습니다.” 관련 절차가 복잡하기 그지없어 ‘말 많고 탈 많았던’ 관세 행정을 간소화한 데 따른, 인천세관 한 직원의 솔직한 소회다. 절차와 규제를 대폭 줄인 뒤 밀수 등 일부 부작용도 드러나고 있다. 그러나 화주 등 고객들은 세관의 조치를 크게 반기고 있다. 지난날 며칠씩 걸리던 수입화물 통관 절차가 수시간으로 줄어들어 물류비와 시간 낭비가 크게 줄어들었다. 통관이 잘 될까 마음을 졸여야 했던 ‘정신적’ 비용까지 감안하면 이득을 수치로 산출하기조차 힘들다. 때문에 세관에서 민원인들이 호소하거나 떼를 쓰는 장면은 이제 먼 옛날의 일처럼 돼 버렸다. 수입 절차의 경우 70% 가량이 서류 제출없이 전산망으로 수입신고를 접수하고 승인을 해준다. 관련 서류를 제출해야 하는 경우는 30%에 불과하다. 수출의 경우 이보다도 적은 20% 선이다. 수입품 통관에 소요되는 시간도 크게 줄어들었다.10여년 전만 해도 3∼5일 걸리던 것이 지금은 3시간에 불과하다.2003년 9시간에 비교해도 4년 동안 3배나 단축시켰다. 전국 항만세관 가운데 가장 빠른 수준이다. 수출허가 절차는 더 간단해 10분이면 끝난다. 세액 문제는 선 통관 후 사후 심사하는 형태를 취한다. 검사 대상도 크게 줄어들었다. 수입신고 전에는 관리대상 품목에 한해 검색대 검사나 정밀검사를 하는데 대략 수입건수의 10%에 불과하다. 수입신고 후에는 5% 정도만 직원들이 직접 검사를 한다. 검사 대상을 줄이는 대신 차량형 X-Ray 등 첨단 장비를 동원함으로써 정확성을 보완한다. 컨테이너 한개를 사람이 검사하려면 1시간 이상 걸리지만 검색기는 5분이면 된다. 이처럼 수출입 절차나 검사에서 사람이 개입할 여지가 적다 보니 자연히 부정이 사라지고 투명성이 확보된다. 인천세관 옴부즈만 최은환씨는 “애로사항을 수렴하기 위해 기업을 방문하다 보면 세관에서 해결할 수 없는 것을 요구하는 경우도 적지 않지만 고객 입장에서 사안에 접근하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인천 김학준기자 kimhj@seoul.co.kr
  • 홀로 안으로 익어 가면 그게 남자요, 아버지요

    홀로 안으로 익어 가면 그게 남자요, 아버지요

    ‘최불암 시리즈’ 아시죠? 변함없는 가치도, 인정할 만한 권위도 없는요즈음의 세태를 우스꽝스럽게 그렸다지요. 웃음과 여유를 줄 수 있다면, 근엄한 모습을 버리는 일 따위가 대순가요? 어쩌면 아버지의 역할이 원래 그러할 테지요.사진 _ 한영희 최불암(배우) · 인요한(의사) 홀로 안으로 익어 가면 그게 남자요, 아버지요 인요한 늘 ‘한국의 아버지 상(像)’으로 회자되시는데 정작 선생님의 아버님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최불암 선친*께서는 해방 이후 국내에서 활발하게 사업을 하셨고, 그렇게 번 돈으로 영화를 제작하셨답니다. 그런데 막상 영화 <수우(愁雨)>의 개봉을 앞두고 제작진들과 숙소에서 담소를 나누시다가 갑자기 돌아가셨어요. 아버지 영정을 안고 시사회를 했던 기억이 아련합니다. 당연한 얘기지만, 너무 어려서 당신을 여의었으니 나는 사실 아버지를 잘 몰라요. ‘아버지!’라고 불러 본 기억이 두 번쯤 될까. 아이러니컬하게도 그 큰 품과 정을 느껴 볼 기회가 내겐 없었던 거지요. 인요한 하면 그렇게 깊은 부정(父情)은 도대체 어떻게 표현해 내시는 건가요. 최불암 굳이 따지자면 외할아버지가 아버지의 역할을 대신했던 것 같기도 하고. 아, 그래서 내가 노역 전문 배우가 되었나, 흐흐. 그나저나 나이 들어 아들딸 낳으면 아버지 되는 거 아닌가요? 아버지 역할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전원일기를 오래 했을 뿐이지…. 아버지, 아무런 말씀도 않으셨던 인요한 선생님은 실제로 어떤 아버지이신지. 최불암 약한 아버지라는 표현이 맞을 겝니다. 무녀독남으로 자라서 그런지 난 좀 약해요. 전원일기의 아버지 김 회장도 4대를 거느리고 있었지만 그 이도 막상 강한 사람이 아니야. 생각해 보면 그게 당연한 게 아닐까 싶어요. 손자, 자식, 어머니 모시고 쓰다듬고, 안으려면 강해선 안 될 것 같아요. 강하다는 말을 해석하기 나름이겠지만. 인요한 아버지는 숙명적으로 약한 존재라는 뜻이군요. 최불암 요즘 들어 내가 주례를 많이 보는데, 아버지가 울면 딸이 울고, 딸이 울면 꼭 아버지가 울어요…. (거 참 희한한 일이지, 식장에서 두 사람이 마주볼 일이 없는데도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그런다니까.) 그런데, 아버지는 손으로 눈물을 닦지 않아요, 마치 흘린 적이 없다는 것처럼 그저 눈만 껌벅거릴 뿐. 그래서 결혼식장에서는 아무도 아버지의 눈물을 볼 수 없고 다만 딸이 그것을 느끼게 되는 것이지요. 내 사무실에 아주 어렵게 자란 여직원이 하나 있었는데 시집갈 때 내가 주례를 봤어요. 계속 아버지가 눈물을 떨구는데, 신부도 똑같이 울고 있더라고요. 화장 지워 가면서. (아들? 그 때는 대개 어머니가 울지.) 인요한 그 드러낼 수 없는 심정이, 감당해야 할 무게가 아버지이겠지요. 최불암 그런데, 아들은 몰라도 딸은 아버지의 속을 조금 들여다보는 것 같습디다. 내가 제 엄마하고 말다툼하는 것 같으면 괜히 밖에서 얼쩡거리지요. 아빠가 속상할까 봐 문 밖에서 왔다 갔다 서성거리는 걸 내가 느끼겠다니까. 깔깔대며 일부러 웃고, 분위기를 바꾸려고 애를 쓰는 게 참 예쁘지. 미국, 다시 돌아와야 할 친구 같은 인요한 요즘 미국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이 많이 변화해서 가끔 혼란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제가 속은 타고난 한국 사람이지만 겉은 어쩔 수 없는 미국인이기 때문에 예민하게 느끼는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말이지요. 미국이라는 나라, 어떻게 생각하세요. 최불암 뭐랄까, 지금 이 시점에서 이런 말을 하면 젊은 사람들은 의아하게 여길지 모르지만, 나는 미국인을 좋아해요. 가감 없이 표현해서, 우리 세대는 미국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이 사실이니까요. 학교에서도 시청각 교육도 대부분 미국 영화였고. 인요한 선생님이 생각하시는 미국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묘사해 주실 수 있으신가요. 최불암 존 웨인, 게리 쿠퍼, 제임스 스튜어트…. 정의가 무엇이냐, 남자다운 게 무엇이냐를 나는 그 때 그 미국 영화배우들에게서 배웠던 거요. 언젠가 미국을 방문했을 때 미 의회의 몇몇 상·하의원들을 만날 기회가 있어서 이런 질문을 던져 봤어요. 한국이 당신네 나라에서 도움 받은 바 크다, 그처럼 약소국을 위한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은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냐, 미국의 어떤 힘이냐,라고. 그랬더니 종교다, 와스프(WASP)*다, 교육이다, 여러 얘기가 많았어요. 그러다가 마지막에 어떤 사람이 말을 하는데, 그게 아주 인상적이었어요. 왈, 그것은 영화의 힘이다…. 좋은 시나리오, 좋은 배우, 좋은 감독이 나와서 좋은 일을 하는 좋은 미국인의 전형을 개발한 거다, 이러는 겁니다. 그러면서 프랭클린 루즈벨트 얘기를 하는데, 그가 주창한 경제부흥정책 뉴딜이 별 게 아니었다는 거지요. 흔히 뉴딜 정책을 통해서 미국의 은행 구조가 바뀌었다고 하는데, 사실은 루즈벨트가 예리하게 포착한 야심찬 문화우선정책이 은행 구조를 바꿨다는 게 옳다는 것이었어요. 이전까지 은행에서 박대받던 엔터테인먼트 종사자들에게도 걱정 말고 돈을 빌려 주라고 했다는 거지요. 그 때만 해도 속되게 말해서 연예인들을 ‘딴따라’ 취급할 땐데, 루즈벨트에게는 혜안이 있었던 겁니다. 가수, 만화가, TV 연기자, 영화배우 등 문화의 전면에 위치한 그들이 바로 서야 나라도 바로 선다는 것을 일찌감치 깨달았다고 할까요. 다만 몇 가지 원칙은 있는데, 작품 속에 반드시 개척정신(Frontier spirit)과 사랑(Romanticism)과 정의(Justice)와 인도주의(Humanism)가 스며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루즈벨트에게 이런 확고한 신념이 있었기에 “경제공황의 시기에 기간산업이 아닌 연예산업에 투자하고 있다.”는 상원의 비판에도 눈 하나 깜짝 않고 뉴딜을 관철시킬 수 있었다는 겁니다. 그나저나 “부자 나라 미국을 만들기 전에 먼저 훌륭한 미국인을 만들어야 된다.”는 그의 말은 지금 생각해도 가슴 저릿한 감동적인 명구네요. 인요한 미국을, 제가 선생님께 배우고 있습니다. 하하. 최불암 다만 아쉬운 것은 요즘 들어 미국이 세계 각국들로부터 비난을 받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는데, 그것은 아마 예전의 미국이 지니고 있었던, 약자에 대한 배려가 결여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인요한 우리 집안이 100년을 넘게 한국에서 살아서 이런 얘기를 할 수 있겠습니다. 미국 밖에서 미국을 볼 때의 문제는, 미국의 잣대가 두 개라는 점입니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미국 밖에서 하는 행동을 미국 내의 가치 기준으로 심판하면 큰 소동이 날 텐데, 그것이 미국 안에서 묵인이 되고 있다는 겁니다. 왜 그러냐고요? 그런 사실을 미국인들이 잘 모르는 겁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게 있습니다. 미국의 많은 의원들은 여권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합니다. 의외이겠지만, 사실입니다. 역설적일까요? 지금 한국인은 세상을 보며 살지만, 미국 사람은 자기 주(州)밖에 몰라요. 미국 밖의 세상을 잘 모르기 때문에 종종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벌어지는 겁니다. 한국인, 드러낼 수 없지만 내 안에 있는 최불암 오늘 우리 미국 얘기 참 많이 합니다. (웃음) 나는 다만 순수한 의미에서 가치와 도덕을 준수하는 올곧은 정신의 미국인을 존경하는 것일 터이고, 그것도 결국은 한국이 어떤 나라이고 한국인이 어떤 사람이냐를 말하기 위해서이겠지요. 인요한 그렇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말과 생각과 입맛까지 저는 누구보다 뿌리깊은 한국사람입니다만, 그런 저에게도 ‘한국인’ 하면 떠오르는 닮고 싶은 모습이 있습니다. 바로 최 선생님이시지요. 최불암 아이구, 무슨 그런 송구스러운 말씀을…. 그런데 말이에요, 저는 사실 ‘한국의 아버지 상’보다는 오히려 ‘한국인의 원형(原型)’에 관심이 많습니다. 해서 곰곰 따져 보는데, 인내와 끈기, 질박함과 투박함 그리고 선비정신에 이르기까지 우리를 표현하는 말은 많지만 딱히 이것이다, 하는 명쾌함은 없어요. 단일 민족, 순혈 문화를 이야기하지만, 냉정하게 현실을 돌이켜보면 일본에서, 구라파에서, 미국에서 건너온 것이 섞여 있는 형국이지요. 다시 한복을 입고 수염을 기르라는 얘기는 아니고 단지 오늘날 우리의 사고와 행동이 그렇게 되고 있다는 거지요. 나보고도 한국인이냐 물으면 고개를 흔들지 몰라요. 인요한 제가 생각하는 한국인의 특질이란, 어떤 조건에서도 살아 남는 강한 생명력과 그에서 비롯되는 인생에 대한 유쾌하고 낙천적인 태도입니다. 당장 쌀독이 비어서 앞날이 막막한 순간에도 옛사람들은 웃으면서 여유를 가지고 헤쳐 나갔단 말이에요. 의료 지원을 위해 북한을 방문하면서 제가 느꼈던 것은, 아직 그들에게 그러한 모습들이 남아 있었다는 겁니다. 결핵에 걸려 죽음을 눈앞에 둔 그이들이 해외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어떤 말을 하는지 아세요? “몹쓸 병에 걸렸지만 어쩌겠어요. 열심히 끝까지 싸워 봐야죠.” 비록 몸은 수척하지만 너무나 의연한 자세로 주어진 현실을 받아들이고 용기 있게 맞서는 모습에서 경외감마저 들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어떻습니까? 툭하면 강물에 뛰어들고, 그것도 혼자도 아니고 온 가족을 데리고…. 그런 나약한 태도는 원래 우리의 모습이 아니에요. 비겁한 도피입니다. 최불암 그래요. 특히 TV와 같은 대중 매체의 영향도 크지요. 대중의 입맛을 핑계삼아 말초적이고 표피적인 이미지들로만 가득 차 있으니, 우리의 본래 모습에 대한 오해가 증폭되는 거지요. 전통의 가치를 지켜 내는 긍정적인 캐릭터가 브라운관에서 실종된 지는 이미 오래되었고…. TV, 화려함 그 이상을 품어야 하는 인요한 그러고 보니 선생님 드라마 연기 인생이 어언 40년이 다 되어갑니다. TV 매체에 대한 이해도 남다르실 텐데…. 최불암 글쎄, TV라는 게 노크 없이 안방에 들어갈 수 있는 권력을 지니고 있으니 그만큼 책임감도 크고 조심스럽지요. 아이들을 십 년 넘게 교육시키면 뭐 하겠어요? 한 시간 텔레비전 보면 다 흩어지는데…. 기왕에 오락 매체이니 달콤한 것, 화려한 것을 쫓는 경박한 풍조를 탓할 수는 없겠지만, 문제는 그 콘텐츠를 걸러서 받아들이기 어려운 연령대의 시청자들이지요. 허구인지, 진실인지 아직 판단할 수 없는 무방비 상태에서 자극적인 내용에 노출이 되었을 때, 그 폐해가 적지 않은 거지요. 인요한 TV가 낳은 최고의 스타가 심중에 담고 있는 TV에 대한 고민이군요…. 최불암 대중문화가 사소해지는 것을, 그래서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악영향을 미치고 대중 연예인들의 위상이 추락하는 것을 가슴 아프게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입니다. 인요한 선생님의 말씀에 공감합니다. 다만 한 가지, 그래도 우리 젊은이들이 무비판적으로 저급한 문화를 흡수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에게는 기성세대가 생각하는 것보다는 훨씬 뚜렷한, 자기 삶에 대한 이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최불암 맞아요. 그런 것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에요. 실제로 우리 젊은이들이 분명한 자기 소신을 가지고 현재의 정보 환경을 이용하고 있는 것을 느낍니다. 그런 맥락에서, 어느 방송국 회의 석상에선가 내가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어요. “요즘 TV는 젊은 친구들 위주의 내용으로 편성되는데, 과연 그들이 보긴 보는 거냐. 아니다. TV는 젊은이들이 보는 게 아니다. 착각하지 말아라. 그들이 얼마나 넓은 눈을 가지고 있는데 저녁 7시에서 10시 사이에 TV 앞에 앉아 있겠냐.” 라고. 인요한 날카로운 지적이시군요. 내친 김에 감초 같은 질문을 한 가지 더 드리겠습니다. 연기에 관한 고견(高見) 한 말씀…. 최불암 연기자는 백지 같아야 한다는 것이 저의 지론입니다. 좋은 연기 하려면 그림 그리는 캔버스처럼 맑아야 합니다. 그래야 형상을 그릴 수 있으니까요. 신문지 위에 그리면 잘 보이겠어요? 한 인물의 배역이 끝나면 빨리 잊어버리고 타성적 연기와 관습적 캐릭터를 깨뜨려야 해요. 꾸미고 바르는 일보다 지우고 닦는 일이 더 급하니까. 인요한 <수사반장> 19년, <전원일기> 23년. 그 시간, 그 작품들을 한 마디로 표현하신다면. 최불암 스스로의 옷 매무새를 단정케 했다는 점에서 <수사반장>은 ‘안방보안관’이고, 삶의 의욕과 용기를 주었다는 점에서 <전원일기>는 ‘삶의 텃밭’이라 할 수 있겠지요. 그리고 남은 이야기들 인요한 고(故) 정주영 회장에 대한 선생님의 남다른 기억을 궁금해 하는 독자도 많을 것 같습니다. 최불암 한참 대선을 준비할 때의 에피소드 하나를 들려 드릴까요. 신문에 ‘서너 시간 자고 일해서 대통령 나온다’라는 제목으로 기사가 나왔어요. 아침에 대책회의를 하는 자리에서 “기사 잘 봤습니다. 서너 시간씩밖에 안 주무신다고요….”라고 여쭈었더니, 대뜸 “아니, 누가 그렇게 자고 버텨요? 사람이 일곱 시간은 넘겨 자야지. (손을 보여주면서) 내가 손도 크고 장사예요. 쌀 가마도 지고 말이죠. 그렇지만 잠을 자야 힘도 쓰는 거예요. 엉터리 기사예요.” 그러면서 덧붙이시길, “이거 봐요. 앞으로 잠 서너 시간 잔다는 사람하고는 장사도 하지 말아요. 병자 아니면 사기꾼이에요….” 이러시더라고요. 인요한 정 회장님의 표정과 말투가 선하게 그려지는군요. 최불암 언젠가 당신께서 직접 <전원일기>에 출연을 원하신 일도 있었지요. 20분쯤 드라마에 등장해서 농사 철학을 얘기하시겠다고. 그게 80년대 후반 즈음의 일인데, 그쪽 회사 사정상 녹화 전날 취소가 됐기는 하지만, 어쨌든 그만큼 농사를 좋아하셨지요. 한마디로 그분의 철학은 땅이고 아버지였지요. “부모가 준 최고의 선물이 무엇인가요?”라는 질문에 그분의 대답은 망설임 없이 명쾌했어요. “가난이야.” 인요한 대담을 마무리할 시간입니다. 연말에, 정초에 요즈음 사람들 많이 만나시지요? 약주도 많이 하시고…. 모쪼록 건강 주의하세요. 최불암 왜 술 얘길 안 하나 했네. 인 박사나 나나 넉넉한 인심을 그리워하는 사람이니 적당한 술자리를 피할 수는 없겠지요. 그래요, 이왕 마무리니까 인사 대신 술에 관한 얄팍한 철학을 토로해 봅시다. 술은 무언가를 깨닫자고 먹는 거니까, 인 박사나 나나 이제 그만 먹어도 되지 않을까 하는 게 내 생각입니다. 예전에는 말도 잘 안 통하고 세상도 답답해서 말 없이 술을 마셨지만, 이제 왜 안 통하는지, 왜 막막했는지를 깨닫는 나이가 되었을 테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인 박사. 파~! 글_홍승범 (본지 편집장) 인요한 John A. Linton 왜 냇가에서 미꾸라지 잡고 들판에서 쥐불놀이 하던 유년기의 추억을 잊었느냐고, 그 강직하고 따뜻한 심성은 어디 가고 나약하고 각박한 세태만 남았느냐고, 세기를 넘겨 한국 사랑을 실천해 온 린튼 가의 후예인 그가 꼬장꼬장한 전라도 사투리로 묻는다. 그 때, 당신은 무어라 대답할 것인가. 1959년 전주 생. 연세대 의대 졸 1987, 미국 가정의학과 전문의 1991, 한국 가정의학과 전문의 1992. 현 연세대 의대 가정의학과 교수, 세브란스병원 외국인진료소 소장. 최불암 수사반장(1971 ~1989)이 10년째에 접어들었을 때 전원일기(1980~2002)가 시작됐다. 박 반장이 김 회장과 오버랩(overlap)되고 이른 바 ‘믿음직한 맏형’ ‘속 깊은 아버지’의 이미지가 형성될 바로 그 때, 그는 영화를 잠정 중단하고 TV에만 전념하기로 결심한다. 그는 이미 79년에 <달려라 만석아>라는 영화로 제18회 대종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대형 연기자였는데, 문득 “연기는 하나지만, 영화와 TV 둘 중 하나는 놓아야 한다.”는 생각에 이른 것이다. (최근 그는 친구 오지명과의 의리 때문에 잠시 옛 기분을 내서 영화 <까불지 마>를 찍었다.) 그리고 모두가 아는 것처럼 시간은 흘렀고, 그는 거침없이 그러나 낯설지 않게 서민의 일상으로 들어와서는 쓸쓸하고 팍팍한 그들의 가슴에 머물렀다. 고(故)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의 권유로 정치에 입문(14대 국회의원)했으니, 평생 연기자인 그도 잠시 외도를 하긴 했다. 하지만 곧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와 그를 아끼는 사람들을 안심시켰고 근자에는 한국의 문화와 전통을 외국인들에게 홍보하는 시민협의회 ‘Welcome to Korea’의 회장 직을 맡아 기꺼운 활동을 펼치고 있다. 좌우명은 ‘즐거움에 지나침이 없고, 슬프되 비통해 하지 않는다(樂而不淫 哀而不悲)’라는 공자님 말씀. 잘 알려진 사실의 부연. 돌아가신 그의 어머니 이명숙(李明淑) 여사가 운영했던 은성(銀星) 은 문화예술의 명소였다. 그는 실제 어린 시절부터 그 곳을 드나들었던 이봉구, 김수영, 천상병, 변영로 등 많은 재인문사(才人文士)로부터 영감과 우수를 얻었다. 탤런트 김민자 씨와의 사이에 1남 1녀. 1940년 인천 생. 중앙고, 서라벌예대, 한양대 연극영화과 졸업. 국제백신연구소 홍보대사. 육군 홍보대사 등. * 그의 아버지 최철(崔鐵)은 해방 후 중국에서 귀국해 인천일보사와 건설영화사를 설립, <수우(愁雨)> (1948, 안종화 감독. 김소영, 전택이 주연)와 <여명(黎明)> (1948, 안종상 감독. 이민자, 이금봉 주연)을 제작했다. 큰아버지 최도선(崔道善)도 문교부 제정 제1회 우수국산영화상 작품상을 받은 <곰>(1959·조긍하 감독)과 <내일 없는 그날> (1959·민경식 감독) 등을 만든 영화제작자. * WASP_ 미국 사회를 이끄는 앵글로색슨 계의 백인 개신교도(White Anglo-Saxon Protestant).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민주적 법치주의를 철학으로 내걸고 교육의 민주성, 창의성, 경쟁성, 합리적 실용주의를 추구한다.
  • ‘바다를 품은 사찰’ 김제 망해사

    ‘바다를 품은 사찰’ 김제 망해사

    서해안고속도로 서김제나들목을 나서면 횡으로 드넓은 평야가 확 펼쳐진다. 국토의 3분의2가 산지인 이 땅에서 하늘과 땅이 맞닿은 풍경을 볼 수 있는 유일한 곳, 김제·만경평야다. 내 나라 안 으뜸가는 곡창지대. 그 지평선의 끝자락, 그리고 막 수평선이 시작되는 곳에 망해사(望海寺)가 자리잡고 있다. 동해 양양의 낙산사, 남해 여수의 향일암 등 바다에 접한 명찰들과 규모에서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해조음(海潮音) 가득한 망해사 또한 서해를 대표할 만큼 빼어난 주변 경관을 갖고 있다. 망연히 바다만 바라보고 서 있을 것 같은 절. 승속의 구분이 엄연한 절집 이름에서 여전히 끊어내지 못한 세속에의 그리움이 느껴지는 불경을 범하며 절집 마당으로 들어선다. # 지평선과 수평선이 만나는 절집 망해사로 가는 길의 초입은 드넓은 평야다. 조정래는 소설 ‘아리랑´에서 ‘그 끝이 하늘에 맞닿아 있는 넓디나 넓은 들녘은 어느 누구나 기를 쓰고 걸어도 언제나 제자리에서 헛걸음질을 하고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만들었다.´고 표현했다. 얼마나 들판이 넓었으면 ‘징게맹갱 외애미뜰(김제 만경 너른 들)´이란 말이 나왔을까. 망해사는 지평선이 수평선과 만나는 진봉산자락 한 귀퉁이에 비좁게 서 있다. 징게맹갱 외애미뜰의 장대한 규모에 비교하면 손바닥보다도 작은 사찰이다. 아미타불을 모신 극락전과 학승 몇 명이 기거한다는 낙서전, 그리고 요사채와 범종각 등이 절집의 전부다. 거기에 팽나무 몇 그루가 찰랑거리는 바닷물을 내려보며 서 있을 뿐이다. 하지만 절집 뜨락만은 세상의 어느 거찰보다 넓다. 바다-새만금간척사업이 바다를 갈라놓았기 때문에 정확히 표현하자면 육지 속 바다라고 불러야 옳을 듯하다-를 앞마당 삼고 있기 때문이다. 계곡물과 강물소리를 듣는 절집은 흔천이지만, 지척에서 바닷물이 들고나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곳은 흔치 않다. 해우소의 창문은 차라리 해학적이다. 슬며시 미닫이문을 열면 바다가 한걸음에 달려오는 듯하다. 살아온 연륜도 짧지 않다. 처음 세워진 시기에 대해 백제 의자왕 2년(642년)에 부설거사가 세웠다고도 하고, 신라 문무왕 11년(671년)에 부설스님이 지었다고도 한다. 어쨌거나 개창 시기가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것만은 분명하다. 사세(寺勢)를 크게 확장시킨 인물은 조선시대 대표적인 선승 가운데 한 사람인 진묵대사다. 전라북도 지정문화재 자료 128호로 지정된 낙서전도 1589년(선조22년)에 그가 세운 것으로 전해진다. # 작지만 풍광만은 너른 곳 낙서전 앞 바닷가쪽에 7∼8m 거리를 두고 선 팽나무 두 그루가 눈길을 끈다. 나이는 400세 남짓. 전라북도 기념물 제114호로 지정된 이 나무들에는 각 각 할배나무와 할매나무라는 별명이 붙어 있다. 안쪽의 할매나무는 바깥쪽 할배나무에 비해 다소 왜소한 편이다. 할배와 더불어 거친 세상과 마주하며 애면글면 수고로움을 아끼지 않았던 할매의 신산한 삶을 보는 듯하다. 절집 위쪽의 전망대에 오르면 작은 진봉산에서 바라보는 풍경치고는 참으로 넓은 세상과 마주하게 된다. 군산에서 김제, 부안까지 내쳐달리는 황톳빛 바다가 망망대해를 이루고, ‘징게맹갱 외애미뜰´의 누런 들판이 비슷한 크기로 뭍을 뒤덮고 있다. 시리도록 파란 하늘 아래로 눈을 돌리면, 오른쪽엔 내륙의 한가운데를 관통해온 만경강이 마지막 줄기를 토해내고, 왼쪽으로는 심포항이 바다 위에 고즈넉하게 걸려 있다. 대해(大海)와 단절된 탓일까. 광대하기는 하나 어딘가 쓸쓸함을 감출 수 없는 풍경이다. 범종각에 걸린 낙조가 아름답기로도 유명하다. 대해의 위세를 잃어버린 바다 아래로 몰락하는 해가 여느 곳보다 유난히 붉을 듯하다. 김제땅에서 바닷가와 만난다는 느낌을 갖게 해주는 곳은 심포항이다. 백합 산지로 많이 알려진 곳. 물때에 따라 끝이 4㎞에 달한다는 심포 갯벌은 어민들의 삶의 터전이다. 새만금 물막이공사로 인한 갯벌 생태계 변화가 걱정거리지만 어민들은 여전히 조개를 캐고, 물고기를 잡는다. 요즘은 관광단지로 탈바꿈을 시도하고 있다. 찾는 발길은 많지 않은 편. 아직까지는 때묻지 않은 소박한 어촌풍경을 느낄 수 있다. 닻을 내린 채 매서운 겨울바람을 견디며 서 있는 고깃배들의 모습이 평온하기만 하다. 비승비속의 호방한 행적으로 유명했던 진묵대사는 심포항에서 지척인 불거촌 태생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고기를 잡은 뒤에는 통발을 잊는 법(得魚忘筌)´이란 경구를 후세에 남겼다고 한다. 새만금 물막이공사의 당사자들은 거대한 둑으로 물길을 막아도 갯벌이 예전과 같은 생명력을 유지하도록 할 것이라고 말해왔다. 기왕 고기는 잡았더라도, 통발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글 사진 김제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가는 길 서해안고속도로→서김제 나들목→삼거리 우회전→29번 국도 만경 방향→만경고 삼거리→좌회전→702번 지방도 심포항 방향→망해사. 심포항은 망해사를 지나쳐 직진하면 된다. 김제시청 063)540-3114, 망해사 543-3187. # 맛집 김제 시청 인근 매일회관(542-7345)은 청국장, 김치찌개 등에 20여가지 반찬이 딸려나오는 백반집.5000원.‘가격대비 성능’이 좋다. 시청 지나 지평선마트 사거리에서 우회전, 시장길을 따라가다 새마을금고 앞 사거리에서 좌회전, 낙원예식장 근처다. 시내 수협 옆의 변산온천산장바지락죽 김제점(546-3939)은 바지락죽으로 유명한 변산온천산장의 김제 분점.2만원짜리 바지락정식을 주문하면 바지락전, 바지락죽, 초밥, 백합구이, 조개구이 등이 나온다. # 주변 관광지 금산사(geumsansa.org)는 후백제의 왕 견훤이 아들에게 감금된 역사를 간직한 대찰이다.3층탑 형식의 미륵전(보물 62호)은 내부가 하나로 이어져 있는 독특한 건물. 금산면 금산리 모악산 자락에 있다.1700년 역사를 자랑하는 최고의 치수시설인 벽골제가 지척이다. 김제시에서 29번 국도를 타고 부량면 방향으로 달리면 된다.
  • [열린세상] 태왕사신기 유감/김정란 상지대 교수·시인

    [열린세상] 태왕사신기 유감/김정란 상지대 교수·시인

    최근 고대사를 다룬 드라마들이 쏟아지는 현상은 세계문화사적으로도 설명할 수 있으며, 한국적 상황에서도 충분한 문화적 이유가 있다. 한국에서 고대사가 돌아오고 있는 현상은 한국인이 스스로의 정체성을 자부심의 바탕 위에서 다시 구축하고 있다는 사실의 반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른바 ‘붉은악마 현상’은 한국인이 오랫동안 한국인을 주눅들게 했던 열등감을 벗어내기 시작했다는 증거 중의 하나이다. 이런 현상들을 두고 ‘민족주의의 위험’을 경고하는 논자들도 있다. 우리 문화 안에 버려야 할 닫힌 민족주의적 성향이 존재하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혼혈아들이나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잘못된 시각 등 닫힌 민족주의의 폐해를 드러내는 문제는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나 고대사의 귀환이나, 붉은악마 현상 등은 이러한 닫힌 민족주의의 발현이라기보다는 한국인들이 문화적 열등감을 벗어내고, 당당한 세계 주민으로서 자문화의 우수성을 인식해 가기 시작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낼 뿐이다. 드라마가 고대사를 다루는 것은 자연스럽고 바람직하기까지 한 일이다. 그러나 그 고대사를 어떻게 다루고 있는가를 따져 보아야 한다.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라고 가볍게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몇 백억원씩 돈을 퍼부어 만든 ‘태왕사신기’ 같은 드라마라면, 그 문화적 대차대조표를 뽑아 보아야 하지 않을까? 우선 ‘태왕사신기’가 광개토대왕을 신격화하기 위해 무리한 신화 해석을 하는 바람에 많은 문제점을 노정시켰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1회에서 주신제국의 기원은 고조선 건국신화인 단군신화를 통해 설명된다. 홍익인간의 메시지를 가지고 하늘에서 내려온 환웅, 신단수, 곰, 호랑이, 단군, 풍백, 우사, 운사 등 단군신화의 신화소(神話素)가 그대로 사용된다. 웅족과 호족의 대결에서 웅족 부족장 새오가 환웅의 사랑을 얻어 환웅의 아기를 잉태한다는 해석에는 큰 무리가 없다. 단군신화 연구자들 가운데 상당수는 웅녀의 유래를 곰 토템 부족과 호랑이 토템 부족 대결에서 곰 토템 부족이 승리한 것으로 해석한다. 그러나 그 외에는 문제투성이이다. 가장 큰 문제는 광개토대왕을 신격화하기 위해 단군을 지워 버렸다는 사실이다. 단군신화는 분명히 단군을 우리 민족의 시조로 제시한다. 그런데 광개토대왕이 환웅의 환생이라면, 단군은 대체 누구란 말인가? 또한 4신의 무리한 해석도 문제가 된다.4신은 음양오행 철학에서 유래한 방위 신으로 동서남북을 관장하며, 그 방위는 각기 목금화수(木金火水)의 원소에 대응한다.‘태왕사신기’는 환웅이 하늘에서 데리고 내려왔다는 우사, 운사, 풍백을 현무, 청룡, 백호에 연결시키는데, 이는 매우 무리한 해석이다. 운사, 풍백은 모두 농경신이다.4신과는 기능이 전혀 다르다. 나는 이 드라마가 차라리 순수 판타지를 지향했더라면, 이런 모든 문제들이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문제는 드라마 제작자들이 인문학을 경시하기 때문에 생겨난 현상이다.‘신화’를 황당무계한 이야기 정도로 생각했기 때문에 자의적으로 해석해도 된다고 생각한 것은 아닐까? 신화는 그렇게 만만한 것이 아니다. 겉보기의 황당무계함 아래에는 인류의 수천년에 걸친 문화 경험이 녹아 있다. 그것의 재해석은 얼마든지 용인되는 것이며, 신화는 재해석에 의해 생명력을 이어 간다고까지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재해석이 철학 없이 ‘아무렇게나’ 이루어질 때, 신화는 아무것도 말하지 못한다. 화려한 볼거리만이 좋은 판타지를 만들어 내는 것은 아니다. 모든 성공한 판타지는 탄탄한 인문학적 해석에 바탕한 내러티브를 가지고 있다. 더군다나 역사적 인물에 대한 판타지라면, 더욱더 치밀한 인문학적 해석이 뒤따라야 한다. 김정란 상지대 교수·시인
  • 겨울 거리로 내몰리는 야학

    겨울 거리로 내몰리는 야학

    경기도 용인에 있는 신갈야학은 최근 용인시로부터 “주차타워 신축을 위해 방을 빼 달라.”는 통보를 받았다.26년간 한결같았던 보금자리가 사라지게 됐다. 서울 구의동 정립회관에서 15년째 자리를 지켜온 노들장애인야학도 연말까지 건물을 비워 줘야 할 처지다. 정립회관측에서 업무용 공간 부족을 이유로 비워 달라고 요청했기 때문이다. 사회운동 요람이자 배움의 터전으로 질긴 생명력을 유지했던 야학들에 존폐의 위기가 몰려왔다. 겨울 찬바람과 함께 온 위기여서 더욱 힘들다. 난방비는 열악한 야학 운영비의 20%나 차지한다. 게다가 국가청소년위원회가 올해부터 학생 중 청소년이 80% 미만인 야학에는 보조금을 주지 않아 형편이 더 힘들어졌다. 야학21의 김한수 대표는 “요즘 야학은 청소년뿐만 아니라 탈북자, 이주노동자, 노인 등 여러 계층을 받아들이고 있다.”면서 “청소년위가 일방적으로 1년치 800만원의 지원금을 끊었다.”고 말했다. 교육개발원에서 보조하는 문해(文解)사업 지원금이 있긴 하지만 받아내기가 힘들다. 문해사업은 글을 읽지 못하거나 읽어도 뜻을 모르는 ‘비문해자’들을 위한 교육사업이다. 이 지원금은 지방자치단체의 승인을 받아야만 탈 수 있어 지자체가 야학에 무관심한 경우에는 지원금을 받지 못한다. 전국야학협의회에 따르면 160여개의 소속 야학 가운데 올해 53개만이 문해사업 지원금을 받았다. 김동영 회장은 “야학을 위한 교육개발원의 문해지원금은 4억원이지만 대부분 받지 못하고 있다.”면서 “지자체가 지원금의 30%를 부담하도록 돼 있는데 이를 아까워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야학에 대한 재정 지원이 줄어드는 것은 “국민소득 2만불 시대에도 야학이 필요하냐.”는 사회적 오해 때문이다. 그러나 통계청에 따르면 의무교육 수준의 교육을 받지 못한 인구가 전체의 15.7%인 600여만명에 이른다. 교육부의 요청으로 ‘야학의 실태 및 지원방안연구’를 총괄한 양병찬 공주대 교육학과 교수는 “비문해자가 실제로는 21%에 이른다.”고 말했다. 양 교수가 70개 야학을 조사한 결과 전·월세로 공간을 확보한 야학이 58.5%이며 안정적인 부지 확보 사례는 34.3%에 불과했다. 운영상의 어려움을 묻는 질문에는 ‘재정 부족’이 가장 높게 나타났고, 다음은 ‘교사 모집’,‘교육 공간 부족’ 순이었다. 인력구조는 ‘무급자원교사’가 기관 당 평균 17.59명으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양 교수는 “프랑스, 호주 등 선진국도 비문해자가 40% 정도로 전혀 줄지 않고 있어, 각 국가마다 대책 마련에 분주하다.”면서 “현재 우리 정부는 비문해자 및 이주노동자, 탈북자 등의 기본 교육을 책임지는 정책이 거의 없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이경주기자 kdlrudwn@seoul.co.kr
  • 전성기 맞은 아이돌 그룹…‘빛과 그림자’

    전성기 맞은 아이돌 그룹…‘빛과 그림자’

    아이돌 댄스그룹이 장악한 2007년 한국 가요계. 관계자들은 10여년만에 돌아온 아이돌 그룹 최고의 전성기라고 말한다. 1990년대 하반기까지 서태지와 아이들, 듀스,H·O·T, 핑클,S·E·S,god, 신화 등 국민적인 관심을 받았던 아이돌 그룹은 2000년대에 들어서 동방신기를 제외하곤 세력이 주춤했다. 하지만 최근 빅뱅, 원더걸스, 슈퍼주니어를 필두로 한 아이돌 그룹은 무서운 속도로 질주하고 있다. 이들의 약진이 두드러진 것은 대형기획사의 지원과 디지털 음반시장의 영향력이 맞물린 결과다. 가요계에 다시 열린 아이돌 그룹 전성시대의 명암을 짚어본다. ●디지털 음반시장 활성화로 다양한 시도 가요계를 이끌고 있는 JYP,YG,SM엔터테인먼트는 올해 히트 아이돌 그룹을 하나씩 배출했다. 가수 박진영이 프로듀서로 있는 JYP엔터테인먼트가 내놓은 여성그룹 원더걸스는 복고풍 댄스곡 ‘Tell me’로 하반기 가요시장을 강타했고, 서태지와 아이들 출신의 양현석이 대표로 있는 YG엔터테인먼트는 남성그룹 빅뱅이 ‘거짓말’을 히트시키며,10대에 국한됐던 팬층을 20∼30대까지 끌어올렸다. 동방신기, 슈퍼주니어 등 아이돌 그룹의 산실인 SM엔터테인먼트는 ‘소녀시대’를 무난히 안착시키며 여성 아이돌의 세대교체를 선언했다. 이렇듯 올해 아이돌 그룹이 쏟아진 것은 그동안 최소 2∼3년, 길게는 5∼6년 동안 대형기획사들이 훈련시킨 연습생들이 한꺼번에 데뷔했기 때문. 톱가수들을 기본으로 보유하고 있는 대형기획사들은 가수 발굴은 물론 홍보 마케팅에서도 노하우를 갖고 있다. 홍승성 JYP엔터테인먼트 대표는 “10대라는 확실한 수요층을 기반으로 20∼50대까지 대상으로 할 수 있는 아이돌 그룹은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면서 “특히 세계시장 진출을 생각하면 습득력이 빠른 10대 그룹의 가능성은 무한하다.”고 말했다. 올해 아이돌 그룹의 활동이 두드러진 것은 디지털 음반시장의 활성화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휴대전화 벨소리 수요가 커지고, 음반 구매가 아닌 인터넷 다운로드 등 음악의 소비패턴이 다양해지면서 신인가수라 하더라도 온라인에서 대중들의 귀에 들면 오프라인까지 인기가 이어지는 사례가 많다. 예를 들어 지난 6월 데뷔한 FT아일랜드는 아이돌밴드라는 컨셉트도 특이했지만,‘사랑앓이’,‘천둥’ 등이 온라인에서 먼저 인기를 끌면서 유명 선배가수들 틈새에서도 선전했다. 때문에 최근 신진 아이돌 그룹은 정식 음반을 내기 전에 많게는 몇 장씩 싱글 앨범을 내고 음악과 얼굴 알리기에 주력하곤 한다. 빅뱅은 ‘거짓말’이 히트하기까지 싱글과 정규·미니 앨범을 합쳐 모두 5장의 앨범을 발매했고, 원더걸스 역시 올초 ‘아이러니’가 실린 싱글앨범으로 데뷔한 뒤 하반기에 정규 앨범을 발표했다. 지난 8월 싱글 ‘다시 만난 세계’를 냈던 소녀시대도 석 달 만에 다시 1집 앨범을 냈다. YG 박재준 이사는 “아무래도 신인들이 정규 앨범을 내는 것은 들인 노력이나 비용면에서 위험이 많이 따를 수밖에 없다.”면서 “요즘은 디지털 음반시장이 활성화되어 있는 만큼 신인들은 기성 가수들에 비해 다양한 시도를 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트렌드만 좇으면 생명력 단축 하지만, 대형기획사의 노하우와 마케팅을 등에 업은 아이돌 그룹이 무조건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제2의 신화’로 불리며 화려하게 데뷔했던 ‘배틀’이나,‘제2의 핑클’을 표방했던 ‘카라’는 기대에 못 미치는 성과를 거뒀다. 특히 음악적 능력에 기초하지 않고, 기획사에서 만들어 내다시피 한 아이돌 그룹의 자생력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도 많다. 회사의 색깔이나 프로듀서의 입김이 너무 강하게 작용하다 보면 진정한 뮤지션이라기 보다는 방송용 엔터테이너만 양산한다는 것이다. 나아가 10대가 좌우하는 가요시장에서 아이돌 그룹은 가뜩이나 좁아진 음반시장의 다양성을 해친다는 지적도 있다. 시청률을 의식할 수밖에 없는 공중파 방송 등의 미디어는 이들을 주목하지만, 그밖의 세대는 점점 더 소외되어 ‘반시장’을 가속화시킨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다양한 음악을 접하고 자라야 할 10대들에게도 획일적인 음악패턴과 일부 배타적인 팬문화는 좋은 영향을 미친다고 볼 수 없다. 대중음악평론가 박은석씨는 “어느 나라, 어느 시대에서나 아이돌 그룹은 있어 왔지만, 한국에서는 구조적으로 미디어와 제작사들이 이들의 단기적인 흥행에만 관심을 두는 것이 문제”라면서 “음악적 고민보다 각종 트렌드의 결과물로 가공된 아이돌 그룹은 음악시장의 균형적인 발전을 저해할 뿐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자신들의 생명력을 단축시키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헤비급 댄싱퀸 탄생기 뮤지컬 ‘헤어스프레이’

    헤비급 댄싱퀸 탄생기 뮤지컬 ‘헤어스프레이’

    “자, 다들 신나게 놀아보자!” 꿈도 사랑도 다 잡은 뚱보 소녀 트레이시의 이 한마디에 여기저기서 관객들이 튀어 올랐다.2시간30분간의 흥겨운 시간여행이 끝나자 무대 위 아래는 하나가 됐다. 공연 내내 웃음, 박수, 환호성이 끊이지 않고 크게, 오래도록 울렸다.16일 정식 개막한 국내 초연 뮤지컬 ‘헤어스프레이’의 앞날을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았다. ‘헤어스프레이’는 뚱뚱하고 못생긴 백인 소녀가 강력한 긍정의 힘으로 TV 스타로 올라선다는 자아실현기가 중심 이야기다. 흑백갈등이 정점을 이룬 1962년 미국 볼티모어를 배경으로, 인종차별 문제 등 40년 전 미국의 어두운 현실을 달콤하게 녹였다.1988년 미국에서 영화로 처음 만들어졌으며,2002년 뮤지컬로, 최근에 다시 영화(새달 6일 국내 개봉)로 리메이크되는 등 20년간 끈질긴 생명력을 과시하고 있다. 트레이시의 동화 같은 사랑과 성공이 시공을 초월해 흡입력을 발휘하고 있는 셈. 그 매력 속으로 들어가보자. ●60년대로…눈과 귀가 즐거워 고등학생인 트레이시의 가방에 교과서는 없어도 헤어스프레이는 있다. 공룡 발바닥 만큼 부풀린 머리가 행여 주저 앉을 새라 열심히 헤어스프레이를 뿌려댄다. 화려한 색감의 알록달록한 의상과 케이크처럼 쌓아올린 과장된 머리는 춤의 향연 만큼 볼거리다. 경제적 풍요를 맞은 미국의 60년대를 보여주기 위해 사용된 의상은 600개, 가발은 60개가 넘는다. 뮤지컬의 관건은 음악. 이 점에서 ‘헤어스프레이’는 일단 합격점을 받을 만하다.“새로운 기회가 열리네.”라고 트레이시가 노래하는 첫 곡 ‘굿모닝 볼티모어’에서부터 ‘엄마, 이제 나도 다 컸어’‘종소리 들려’‘우린 운명이야’, 마지막곡 ‘멈출 수 없어’까지 흥겹게 이어지는 뮤지컬 넘버들은 낯설지만 이내 귀를 파고 든다. ●돋보인 무대… 연주는 어디서 하지? 충무아트홀 대극장은 오케스트라 핏(연주자 좌석)이 없다. 그럼 어디 있을까. 무대 뒤편을 자세히 보시라. 전면이 유리로 된 계단식 오케스트라 박스가 서있다. 연주자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보통의 공연과 달리 박칼린 음악 감독을 비롯한 연주단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브로드웨이에서 뮤지컬 ‘아이다’급이었던 이 작품은 국내에서 중규모로 축소됐는데 세트의 압축미가 돋보였다. 객석은 또 하나의 무대. 한참 정신 팔려 있다가 무대 위로 올라가는 배우를 보고 놀라지 마시라. ●못생기고 뚱뚱해… 누가? “진짜 넓다. 앞뒤 장난 아니야.”“못생기고 뚱뚱해서 필요 없으니 쫓아낼 수밖에” 오디션을 보러 간 트레이시를 향해 쏟아지는 얄미운 말들. 하지만 무대 위의 트레이시는 어쩐지 억울해 보인다. 깡마른 체형의 배우 방진의, 뚱녀 변신을 위해 몸통과 다리 부위에 특수 제작된 라텍스 의상을 껴입었으나 역부족이다. 라텍스로 만들었지만 무게는 1㎏ 정도. 빠른 속도로 쉼없이 춤추고 노래해야 하기에 더이상 부피를 늘릴 수 없는 한계가 있다. 저절로 살이 붙기만을 기다려야 할 텐데, 워낙 고난도 무대라 오히려 살이 내릴 지경이라 고민이 크다고. ●쟤 누구니?… 눈에 띄는 조연들 무대 위에서 놀 줄 아는 배우들을 보면 흥겹다. 주·조연·앙상블 할 것 없이 모두 고른 기량을 보였다. 전통적으로 남자 배우가 맡아온 트레이시 엄마 에드나 역의 김명국은 풍부한 표정과 몸놀림으로 우람하지만 귀여운 엄마 역을 완벽하게 소화했다. 가장 호기심을 불러 일으킨 사람은 트레이시의 춤꾼 흑인 친구 스위드로 분한 오승준이다. 그는 처음으로 비중 있는 역을 맡았는데 ‘흑인필’ 가득한 춤사위로 여려차례 관객들의 탄성을 이끌어 냈다. 흑인 3인조 여성 그룹 ‘다이너마이트’로 등장한 배우들은 고음에서 시원하게 터지는 폭발적인 가창력을 선보여 큰 박수갈채를 받았다. 내년 2월17일까지 충무아트홀 대극장(02)577-1987. 박상숙기자 alex@seoul.co.kr
  • 한국미술의 탄생/솔출판사 펴냄

    고구려 고분벽화는 공간의 절반 이상이 갖가지 무늬로 장식되어 있다. 벽면은 현실세계를 묘사하고, 천장을 이루는 궁륭에는 천상의 세계를 묘사했다. 우주에는 기와 생명, 도가 충만하여 있지만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것이라 추상적 무늬로 표현했다는 것이다. 미술사학자인 강우방(66) 전 국립경주박물관장은 고분벽화의 무늬들에 고대미술은 물론 이후의 통일신라, 고려, 조선시대에 이르는 모든 장르에 걸쳐 그동안 풀 수 없었던 문제들을 해결하는 열쇠가 숨겨져 있다고 말한다. ‘한국미술의 탄생’(솔출판사 펴냄)은 그가 이런 문제의식을 갖고 한국 미술에 나타난 영기무늬(靈氣文)를 해독하여 한국미술사 전체를 새롭게 해석한 성과를 담은 것이다. 영기(靈氣)란 신령스러운 기운을 말한다. 기(氣)를 표현하는 용어로는 기존에도 눈에 보이지 않는 기를 구름 모양으로 설명한 운기(雲氣)가 있어 중국과 일본에서 사용됐다. 그런데 인도에는 우주 만물이 연꽃에서 태어난다는 연화화생(蓮華化生)이라는 개념이 있다. 이 개념을 바탕으로 일본의 미술사학자 이노우에 다다시(井上正)가 다시 운기화생(雲氣化生)이라는 이론을 제시했다. 하지만 운기화생은 구름 모양의 기 표현만을 연상하기 쉬우므로, 다양하게 표현되는 기 무늬를 포괄하기에는 문제가 있었다. 이러한 한계를 우주 만물이 영기에서 비롯된다는 영기화생(靈氣化生)이라는 개념을 새로이 제시함으로써 극복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강 전 관장에 따르면 만물은 영기의 화신이므로 만물에서 다시 영기가 발산된다. 용이나 봉황 또한 본질적으로 동물이 아니라 영기의 집적이므로 영기를 발산한다. 그러기에 석가여래나 예수와 같은 성인은 광배로 영기를 발산하는 모습을 형상화한다. 뿐만 아니라 고구려의 삼족오투조장식이라든가 백제 무령왕릉의 관 장식, 백제 금동대향로, 경주 황남대총의 신라금관이나 곡옥(曲玉), 신라 성덕대왕 신종의 무늬, 고려 수월관음도에서도 영기무늬는 강인한 생명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것이다. 강 전 관장은 “그동안에는 통일신라미술이 이후 전개되는 한국미술의 모태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지만 고구려 고분벽화의 영기무늬를 해독하고나서부터는 한국미술 전체를 새로이 살피고 새로이 해석하게 되었다.”면서 “그만큼 고구려 고분벽화의 성립은 절체절명의 중요하고 위대한 사건”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책의 제목을 ‘한국미술의 탄생’이라고 한 것은 한국미술의 참모습이 처음으로 밝혀졌다고 확신하기에 붙인 것”이라고 설명했다.9만원.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문화마당] 민족문학 없이 글로벌문학 없다/전기철 시인·숭의여대 미디어창작학과 교수

    요즘 우리 문학의 흐름이 급속도로 보수화되어 가고 있다. 삶의 현장이나 역사적 상상력에서 문학은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일부 단체나 평단에서는 ‘민족문학’이라는 개념 자체까지도 경원시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다분히 글로벌 경제나 시장, 혹은 정치권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한 결과로, 새로운 시대의 가능성을 보려는 문학의 본래적 의의까지도 잃게 하고 있다. 이는 한·미FTA로 인한 시장의 확대나 현 정권의 철학 부재에서 비롯된 측면이 없지 않다.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문학의 보수화는 우리 문학의 장래에 불안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하지만 우리 문학이란 어쩔 수 없이 민족문학일 수밖에 없다. 이때 민족문학이란 대립과 배척의 개념이 아니라 포용적이며 주체적인 개념이다. 이러한 민족문학은 자아의 주체적 논리를 갖고 세계문학과 대화하면서 스스로의 존립 기반을 넓혀가고 그 의의를 확대해 가는 자생적이며 진보적인 개념이다. 따라서 민족문학은 일부에서 생각하는 편협하고 폐쇄적인 의미가 아니다. 그럼에도 일부에서 최근의 글로벌한 정치·경제의 흐름에 따라 추수적인 자세를 보이면서 민족문학의 존립 의의를 부정하고 있는 듯한 경향은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이러한 경향 때문에 최근 우리 문학은 우리시대의 삶의 현장이나 역사에서 그 소재를 취하지 못하고 극히 사적이며 몽환적인 데에서 취재하여 말초적인 감각에만 의존하고 있다. 소설은 판타지에 빠져 있거나 극히 사적인 연애의 기록이요, 시는 음악이나 그림의 컨텍스트에 몰입하고 있다. 그러므로 작가나 시인은 우리 시대 삶의 현장이라는 땅에 발을 딛고 있을 필요가 없으며 자신의 골방 전깃불 아래에서 인터넷 서핑을 하거나 음악이나 미술을 감상하며 몽환에 젖어 말초적인 감각의 신경성을 드러내고 있다. 이들에게 문학의 국적이란 무의미하며 글로벌한 상상 속에서 새로운 감각의 유영을 적어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이들은 악마적이며 때로는 퇴폐적이기까지 한 자유 상상을 통해 불안한 생의 신경증을 보여준다. 이러한 문학 속에서는 어떤 삶의 지평을 읽어낼 수 없다. 문학의 최대 목표는 유토피아이며 휴머니즘이다. 유토피아나 휴머니즘은 철저히 땅에 발을 딛고 거기에서 새로운 푯대를 모색하는 방향감각이다. 이는 우리 시대의 문제의식을 드러내는 것이며, 우리 민족의 역사적 궤적을 읽어내는 것이며, 세계문학 속에서의 민족문학의 활로를 모색하는 일일 것이다. 문인은 우리 시대 갈등의 현장으로 가야 한다. 환각의 고공비행으로는 삶이 잡히지 않으며, 아카데믹한 논리적 지식으로는 문학의 생명력을 담보할 수 없다. 오늘날 문인들은 대학의 문예창작학과나 문화센터의 강당에 갇혀 있다. 그들은 문학 지배권을 희롱하면서 문학 권력에 탐닉하고 있다. 그러므로 노숙자들이나 이주 노동자들, 그리고 비정규직의 생활을 모른다. 그들에게 문학은 글로벌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민족문학이 없는 한 글로벌 문학도 없다. 문학이란 때로는 시대를 반영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다가올 시대를 읽기도 한다. 오늘날처럼 다국적 기업이 세계를 지배하고 있고, 상상의 글로벌화가 진행되면 될수록 민족문학의 가치 또한 그만큼 중요하게 되며, 이때 민족문학이란 글로벌 문학과의 교류 속에서 자신의 본모습을 찾는 정신적이며 철학적인 개념일 뿐만 아니라 현실적인 것이다. 이제 다자 간의 자유무역협정이 본격적으로 진행될 것이다. 이러한 때에 우리는 민족문학이 무엇인가에 대한 본격적인 자아 찾기가 필요하다. 전기철 시인·숭의여대 미디어창작학과 교수
  • 깊은 계곡, 물그림자는 신비의 누드

    깊은 계곡, 물그림자는 신비의 누드

    ‘붕괴되고 있는 계곡 그 아름다움 화폭에라도 남기겠다. 비경의 계곡들이 파괴되고 있다. 아니 이미 붕괴되었다. 도시는 어쩔 수 없이 사람들이 살아야 하니 집을 지어야 하고 길을 내어야 하지만 깊은 산속 맑은 물이 흘러내리는 계곡까지 망가뜨려야만 한다는 것은 죄악이다. 이것은 인간의 허황된 욕심이 불러오는 돌이킬 수 없는 범죄다.’ 골수 산꾼인 배종호(裵宗鎬.58) 화백은 스스로를 ‘산과 계곡’을 그리는 화가임을 자임한다. 그렇지만 옆에서 엄밀하게 살펴보면 그는 ‘산과 계곡’이 아니라 ‘계곡과 산’을 그리는 화가다. ‘산보다는 계곡이 먼저’라는 뜻이다. 산행의 형태에 비유를 한다면 그는 ‘등정주의(登頂主義)’가 아니고 ‘등로주의(登路主義)’다. 산행길, 그의 직관에 포착된 계곡의 표정은 맑고 깨끗하고 건강했다. 화가의 길에 오르기 전 그는 대구시가지 도심의 빌딩과 상가, 소음공해 속에서 생업으로 상업미술을 했다. 이러한 환경이었기에 산과 계곡이 더욱 그리워졌을지도 모른다. 주말이면 산을 찾았고 산행길, 계곡의 물가에 앉아 때묻은 일상을 훌훌 털어 버리고 캔버스 위에 계곡의 아름다움을 담기 시작했다. 미술대학에서 정규 미술공부를 한 바가 없다. 독학으로 미술공부를 하고 상업미술분야에서 오랫동안 종사하다가 마흔 살, 불혹의 나이가 되어 화가의 길로 뛰어 들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입문한 화가의 길에는 이 땅에서 가장 아름다운 산, 그 산속의 계곡들이 무궁무진 펼쳐져 있었다. 지리산을 찾았다. 지리산 북쪽자락, 경남 함양군 마천면 - 이곳에는 한국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계곡, 셋 중의 한 곳인 칠선계곡이 있다. 지리산 최고봉 천왕봉에서 발원한 급류가 절벽을 뚫고 깊은 계곡을 이루는 곳으로 지리산 10경 중 하나로도 꼽힌다. 화백은 이 골짜기에서 한번 더 꺾인 더 깊은 광점동 계곡으로 들어가서 진을 쳤다. 그림 한 점 담아 오는데 한 달이 걸렸다고 한다. 이 때부터 그의 계곡그림산행은 이어졌다. ‘운문산학소대’에서 ‘가야산홍유계곡’으로, 또 더 멀리 ‘설악산천불동계곡’으로, 그의 발길은 계속 이어졌고 지금껏 계속되고 있다. 1997년, 드디어 ‘계곡의 선경’들이 담긴 그림들로 세상에 첫선을 보였다. (제1회 개인전 - 대동은행 본점) 이 그림들을 보고 어느 시인은 ‘계곡은 그 자체로 자연의 가장 은밀한 처소, 깊은 협곡과 맑은 물이 어우러져 빚어낸 신비로운 누드’라고 했고 ‘물은 때로 희게 부서지며 급하게 굽이쳐 흐르거나 폭포를 만들기도 하고, 때로는 한없이 느리게 흘러 내리다가 깊은 소(沼)를 만들기도 한다. 배화백은 이러한 계곡의 신비로운 자태를 정감어린 눈으로 어루만지며 정교한 필치로 캔버스에 옮겼다’고도 했다. 제1회 개인전에서 각계 각층으로부터 뜨거운 박수를 받은데 힘을 얻은 배화백은 2000년 제2회, 2004년에는 제3회 개인전을 열었고 2005년에는 현대미술 체코프라하전, 한일작가 교류 아오야마 초대전에도 참여했다. 지난해 연말에는 ‘배정숙(바르나바수녀) & 배종호 개인전’을 열기도 했다. ‘그 빛과 그림자’라는 주제의 이 전시회는 1956년에 문을 연 대구파티마병원 개원 50주년의 기념전이었다. 바르나바수녀는 배화백의 친누님이시고 남매전의 성격이었던 이 전시회에서 누님은 양초공예가로 양초작품을 전시했다. 네 차례의 전시회를 여는 동안 배화백은 미술평론가와 시인들 그리고 여러 언론들로부터 많은 찬사를 받았다. 배종호, 그를 보면 자연이 떠오른다. 그의 손을 거치면 또 하나의 자연이 된다. 버려진 들녘의 풀 한 포기도, 이름 모를 들꽃과 산야에 나 뒹구는 돌맹이조차도, 그를 만나면 자연의 생명력을 가진다. - 정인열(매일신문정치부장) 화가 배종호는 산수(山水)의 초상화가(肖像畵家)다....늘 그의 그림 산수속에서 등산복 차림으로 불쑥 나타날 것 같은, 즉 자연의 내밀(內密)함을 매우 조심스럽게 표출하는 그에게 ‘산수의 초상화가’라는 말을 붙이는데 대하여 어느 누구도 이견(異見)이 없을 것이다. - 김태수(시인) 바위와 물의 흐름, 그리고 수면에 비친 정경 등을 사실적으로 재현해 내는 그의 필치는 범수(凡手)가 아니다…그는 관광객들의 발길이 잘 닿지 않는 숨겨진 계곡을 그리러 자주 산을 오른다. 비경을 감추고 있는 그 계곡들처럼 배종호의 그림 세계 또한 신비한 아름다움을 감추고 있는 숲으로 우거져서 우리 화단을 더욱 풍성하게 할 그날을 기다려 본다. - 박원식(미술평론가) 황금분할, 수평적 구도의 캔버스, 그 위로 계절의 변화에 따라 각기 다른 의상을 두르고 떠오르는 산과 계곡, 넉넉한 모성애로 그 맑은 계곡을 어루만지며 흐르는 맑은 물…, 그는 아직 사람의 손이 닿지 않는 원시적 살결을 지니고 있는 계곡을 편애하는 소박하고 감성적인 리어리즘 화가다. - 김선굉(시인) 찬사를 보낸 분들은 ‘아직 사람의 손이 닿지 않는 원시적 살결을 지니고 있는 계곡’이라는 표현들을 했지만, 막상 계곡 현장에서 배화백이 보고 있는 현실은 그러하지 않다는데서 배화백은 가슴 아파 한다. 사람들로 하여금 억만년 동안 간직되어 온 아름다운 자연이 파괴되고 있는 이 비극을 어떻게 막아야 하나. 그리고 화가인 자신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100년, 200년 후, 후손들이 추하게 망가진 계곡만을 보게 될 것이라는 생각에 이르면 화백의 등에는 땀이 흐른다고 했다. 그래서 산으로 계곡으로 향하는 그의 발길은 더 바빠지고 ‘그래도’ 아직까지는 살아 숨쉬고 있는 계곡의 아름다움에 자신의 혼을 불어넣은 그림을 많이 남겨야겠다고 했다. 칠곡미협 회원이자 한국미술전업작가협회 회원이기도 한 배종호 화백은 대구광역시산악연맹 부회장으로도 활동을 하고 있다. 글 박재곤《산따라 맛따라》《이렇게 사는 인생》저자, www.sanchonmirak.com     월간 <삶과꿈> 2007.09 구독문의:02-319-3791
  • [사설] 임기말 말뚝박기 후유증 우려한다

    ‘참여정부 정책이 차기정부에서도 바뀌지 않도록 하겠다.’노무현 대통령의 한결같은 집념이다. 그래서 임기 말까지 ‘말뚝박기’에 한창이다. 종합부동산세, 로스쿨, 행정중심복합도시, 혁신도시, 기업도시, 북방한계선(NLL) 논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참여정부가 지역균형개발 사업으로 애착을 보여온 기업도시와 혁신도시는 조기 착공을 독려하기 위해 수백억원의 포상금까지 내걸었다. 그제 충남 태안기업도시 착공식에서는 위헌 결정이 난 행정수도를 되살리려는 채근까지 나왔다. 임기 중 공약을 지키겠다는 노 대통령의 집념은 탓할 바가 못된다. 말뚝박기 사업 중 상당수는 국민의 폭넓은 공감대 속에서 추진돼온 게 사실이다. 하지만 차기정부의 운신의 폭을 과도하게 제한할 정도면 문제다. 토지보상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착공식 경쟁을 벌이고 있는 혁신도시와 기업도시가 대표적인 사례다. 전국 곳곳을 삽질하다 보니 이들 지역의 공시지가는 4년새 58%나 치솟았다. 차기정부까지 떠맡아야 할 토지보상금만 100조원을 웃돈다. 그럼에도 기업도시와 혁신도시에 입주할 기업과 공기업들은 말뚝박기에 상관없이 정권이 바뀌기만 기다리는 형국이다. 정책이란 말뚝만 박는다고 생명력이 지속되는 게 아니다. 정권교체와 상관없이 경제성과 보편타당성이 있어야 한다. 지금처럼 지역이나 직역의 이기주의를 볼모로 대못질을 해서는 아까운 혈세만 낭비할 수 있다. 지방에 재량권을 대폭 부여한 뒤 스스로 경쟁력을 갖추도록 지원해주는 것이 올바른 접근법이다. 이러한 정도를 무시한 채 지방 이전만 강제한다면 경쟁력 약화에 따른 손실을 결국 국민이 짊어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우리는 말뚝을 박더라도 시장원리 작동이라는 큰 틀을 깨트려선 안 된다고 본다. 정책 결정을 정권의 전유물로 치부하는 소아병적인 자세에서 벗어나길 바란다.
  • 12월 마지막 경매에 관심

    2년 넘게 고 박수근·이중섭 화백의 작품으로 주장돼 오던 2827점의 그림이 최근 검찰에서 모두 위작으로 결론나자 미술계는 “예상했던 일”이라면서도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먼저 주목할 것은 이중섭 화백의 차남 이태성씨가 이번 위작사건에 개입되었다는 점이다. 표구상을 하고 있는 이씨는 일본으로 직접 찾아간 방송국의 카메라에 “한국인의 피가 흐르지만, 일본인이고 일본법의 보호를 받고 있다.”며 한국 검찰의 수사에 응하지 않겠다는 반응을 보여 더욱 배신감을 낳았다. 혹시 몇점이라도 진품이 섞여 있을 수 있다는 기대조차 무참히 꺾였다. 이중섭의 위작 가운데는 50년 전 여중생이 그린 그림도 있었다. 서울 황학동 일대에는 손바닥만한 크기의 이중섭, 박수근 스케치가 3만∼4만원, 유화는 크기에 따라 30만∼100만원에 나돌아 다니고 있는 것이 현실. 이 ‘가짜’그림들이 시간이 지나 세탁과정을 거쳐 유통되면서 시장 질서를 어지럽히는 경우가 심심찮게 생겨나고 있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서울옥션, 박수근 작품들 출품 예정 올해 미술 시장은 오는 12월 양대 경매사인 서울옥션과 K옥션의 마지막 경매로 마무리될 예정이다. 지난 9월 이들 회사의 경매가 가격 조정국면을 보여 줬던 만큼 12월 경매에서 이번 위작 사건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 박수근의 작품이 하이라이트가 될 것은 분명해 보인다. 서울옥션은 9월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경매와 함께 개최한 옥션쇼를 통해 박수근의 미공개작 10여점을 전시한 바 있다.12월 경매에는 이때 공개된 작품이 아닌 다른 작품들이 출품될 것으로 알려졌다. 3년여 전 이태성씨가 서울옥션에 아버지 그림이라며 작품을 내놓은 이래 이중섭은 경매에서 거래가 거의 끊겼다. 지난해 12월 서울옥션 경매에서 ‘꽃과 아이들’이 추정가 2억∼3억원에 나왔지만 응찰자가 없었다.K옥션의 지난해 12월 경매에서는 ‘과수원의 가족과 아이들’이 4억 8000만원에, 올 3월 경매에서는 ‘통영 앞바다’가 9억 9000만원에 팔린 것이 전부다. 이중섭은 유화 100점, 드로잉 330점 등 모두 430여점을 남긴 것으로 추정된다. 이 가운데 200여점은 리움미술관을 포함한 삼성에서 갖고 있다. 그런 만큼 박수근, 이중섭의 작품이 위작 사건에 따른 불안감으로 경매에 쏟아질 확률은 희박하다. 반면 최근 1∼2년간 지나치게 작품값이 올라, 이 정도 가격이면 팔아도 되겠다는 생각에 시장에 내놓는 작품이 늘고 있다는 지적이다. ●생존 인기작가 작품에도 관심 쏠릴 듯 위작 사건의 여파로 오치균, 사석원 등 생존 인기 작가들의 작품에 관심이 쏠릴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서울옥션의 심미성 이사는 “박수근, 이중섭의 작품은 워낙 귀한 만큼 요즘 주목받는 작가들의 작품과는 별개로 꾸준한 생명력과 인기를 이어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서울옥션은 위작 사건 이후 감정단의 숫자를 이전의 2배인 20여명으로 늘렸고, 만장일치로 진품이란 결론이 나지 않으면 출품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지켜 오고 있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세탁기에서 ‘세탁’되고도 살아난 고양이

    ‘고양이는 9개의 목숨을 가지고 있다’는 서양속담은 진짜일까? 생후 10주 된 새끼 고양이가 빨래더미에 섞여 ‘세탁’되고도 살아나 영국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영국 북동부 더럼주의 고양이 ‘몰리’가 그 주인공. 몰리는 빨래에 섞여 세탁기에 넣어졌다가 호기심에 세탁기 안을 들여다 본 주인 베다니 홀(Bethany Hall)에게 발견됐다. 극적으로 구조되기 전까지 몰리가 세탁기 안의 거센 물살과 엉키는 세탁물들 사이에서 견딘 시간은 무려 20분. 간신히 목숨을 건진 몰리는 현재 가까운 동물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몰리를 진찰한 수의사 재키 몰리뉴(Jacqui Molyneux)는 “처음 고양이를 봤을 때는 치료할 자신이 없을 정도로 상태가 좋지 않았다.”고 당시 상태를 밝혔다. 이어 “그러나 녀석은 놀라울 정도로 빠른 회복을 보이고 있다.”며 “이 일로 가족에게 더욱 특별한 고양이로 기억되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이 강한 생명력의 새끼 고양이는 BBC가 방송과 인터넷을 통해 보도하면서 영국 전역에 알려졌다. 나우뉴스 박성조 기자 voicechord@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백제 미소를 찍고… 숨결을 빚다

    백제 미소를 찍고… 숨결을 빚다

    1500여년전 백제의 미소를 사진과 조각으로 만난다.17∼30일 인사동 학고재에서 ‘백제 사진전’을 여는 준초이와 18일∼11월11일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조각·회화전 ‘구도의 여정’전을 갖는 최종태. 눈썹과 콧날이 하나의 선으로 이어져 내려가는 국보 83호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의 포근한 표정은 그야말로 한국인을 대표하는 얼굴이다. ●준초이 내일부터 백제 사진전 삼성생명,SK텔레콤 등 대한민국 광고대상을 휩쓴 광고들의 사진작업을 도맡아 온 준초이(55·본명 최명준)는 25년간 광고 사진가로 활약해 오고 있다. 한국인 최초로 미국 맨해튼에 스튜디오를 차리고 활동해 온 그는 지난 1년간 백제 유물을 찍었다. 국립부여박물관과 부여군의 기획 아래 촬영된 백제 유물 사진은 한길사에서 ‘백제’라는 제목의 200만원짜리 도록으로도 출간됐다. 한달전 반가사유상과 흙항아리 사진 2점은 반기문 유엔총장의 관저와 집무실을 꾸미기 위해 판매되기도 했다. 작가는 작품 가격은 공개하지 않았다. 준초이는 광고 사진을 찍다가 백제 유물에 빠지게 된 것에 대해 “단층적인 아름다움에 만족할 수 없었다. 인간의 힘과 세월이 만난 유물은 보면 볼수록 가슴이 뜨거워지는 아름다움을 발산한다.”고 말했다. 반가사유상 촬영은 국립중앙박물관으로부터 단 이틀 허가를 받았는데 첫날은 어떤 이미지도 건지지 못했단다. 2∼3t에 이르는 대형 물레에 불상을 올려놓고 천천히 돌려가며 찍다가 촬영 허가 시간이 끝나갈 무렵 눈썹에서 콧날로 이어지는 선을 발견,“이거다!”하며 셔터를 눌렀다고 한다. 특히 유물과 충남 공주와 부여의 자연을 합성한 사진은 백제 유물이 다시 태어난 듯한 생명력이 느껴진다. 호자(남성용 요강)는 보름달 아래서 입구를 쩍 벌리고 있다. 산의 운무 앞에서 금동대향로의 세심한 조각이 살아난 사진은 마치 향로가 다시 향을 뿜는 듯하다.(02)739-4937. ●최종태 18일부터 조각·회화전 원로 조각가 최종태(74)는 1959년 27살의 나이로 국전에 처음 입선한 이래 인물상과 종교 조각에 외곬으로 매달려 왔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 성당에 설치된 성모상 등을 만들어 왔지만 그는 불상에도 조예가 깊다. 서울 성북구 길상사에 있는 석불도 그의 작품이다. 백제 반가사유상의 매력에 빠진 그는 50여년간 일관되게 매달려 온 인물 조각의 얼굴에 불상의 표정을 담아냈다. 아무리 큰 조각도 110㎝이내인 그의 인물 조각은 IMF외환위기로 미술시장에 한파가 불 때에도 꾸준히 찾는 사람이 있었다는 게 전시를 기획한 가나아트센터측의 설명이다. 미간에서 콧날로 이어지는 동그랗고 날렵한 선과 살포시 내리감은 눈, 보듬어가며 조각한 듯한 단순하고 자그마한 몸체의 인물 조각은 포근하면서도 숙연한 느낌을 자아낸다. 그의 조각은 수십년간 거의 변한 게 없어 보이지만, 최근 작품의 특징은 예전에는 차렷 자세이거나 턱을 던 손이 기도를 하듯 모아졌다는 점이다. 소란스럽고 가벼운 몸놀림이 지배적인 오늘의 우리 미술계에서 진중한 구도자처럼 조각의 길을 걸어 온 그는 전시와 함께 자신의 작품세계를 담은 책 ‘구도를 향한 모뉴망’도 펴낼 예정이다. 이번 전시에는 40점의 조각 작품 외에 수채화, 파스텔화 등 회화작품 60여점도 출품된다.(02)720-1020.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한국소설 객지·사람의 아들·외딴방 훌륭”

    “한국소설 객지·사람의 아들·외딴방 훌륭”

    중국 소설가 모옌(52)의 작품이 한꺼번에 번역 출간됐다.‘홍까오량 가족’(문학과지성사),‘티엔탕 마을 마늘종 노래’(랜덤하우스),‘풀 먹는 가족’(랜덤하우스) 3편이고, 권수로는 모두 5권이다. 모옌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대산문화재단 주최로 11일부터 17일까지 열리는 한·중문학인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에 왔고, 출판사들은 때에 맞춰 책을 냈다. ●방한에 맞춰 번역서 3편 출간 모옌은 위화, 쑤퉁 등과 함께 현대 중국을 대표하는 소설가이자 중국 작가 중 가장 유력한 노벨문학상 수상후보다. ‘홍까오량 가족’은 모옌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소설의 첫 번째 단편은 장이머우 감독의 영화 ‘붉은 수수밭’의 원작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일렁이는 수수밭을 배경으로 중국 민초들의 생생한 항일투쟁기를 그렸다.‘티엔탕 마을 마늘종 노래’는 개혁·개방 이후 놀라운 경제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는 중국과 그 이면에 만연된 관료사회의 병폐, 빈익빈부익부 등의 사회문제를 고발한다.‘풀 먹는 가족’은 모옌이 창작기법에 일대 변화를 준 소설로 가브리엘 마르케스의 ‘백년 동안의 고독’을 떠올리게 한다. 띠풀의 강인하고 질긴 생명력과 띠풀을 먹고 사는 주민들의 배변행위를 통해 작가 자신의 자연주의적 세계관을 드러낸다. 각기 다른 소재를 다루고 있지만, 세 편의 소설에선 몇 가지 공통점이 발견된다. 소설 배경이 모두 모옌의 고향인 산둥성 카오미 둥베이향이다. 세 소설의 주인공 모두 농사를 짓고 살아가는 농민이고, 세 소설 모두 중국 민초들의 강인한 생명력에 무한한 신뢰를 보낸다. 또한 세 소설 모두 상징적이다.‘홍까오량 가족’의 붉은 수수밭은 온갖 험난한 역사의 격랑에도 굴하지 않는 민족정신을 상징하고,‘티엔탕 마을 마늘종 노래’는 ‘티엔탕’ 즉 ‘천당’이란 마을 이름에서부터 현대 고도성장 중국 사회의 음울한 이면을 역설적으로 비판한다.‘풀 먹는 가족’은 도시가 아닌 자연 속에서만 어머니의 자궁 같은 안식을 누릴 수 있다는 세계관을 제시한다. ●“내 소설 배경은 중국 사회체제 상징적 축약” 모옌은 12일 출간기념 기자간담회에서 “난 원래 하층민 출신으로 누구보다 그들의 생활상을 잘 알고 있다.”면서 “내 소설의 공통된 배경인 카오미 둥베이향은 중국 사회 체제의 상징적 축약”이라 설명했다. 그는 “한국 문학을 평가할 만한 지식은 없으나 황석영의 ‘객지’나 이문열의 ‘사람의 아들’, 신경숙의 ‘외딴방’은 매우 훌륭한 소설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오전엔 모옌과 함께 한·중문학인대회에 참석한 중국작가단이 기자회견을 열어 “이번 대회가 한·중 양국이 문학교류를 통해 서로를 이해하는 물꼬를 트길 바란다.”는 희망을 밝혔다. 기자회견엔 중국작가협회 장종 명예부주석, 중국 몽롱시의 대표주자인 쑤팅, 한국 고등학교 교과서에 소설 ‘빨간 기와’가 실린 차오원셴, 김구와 윤봉길의 전기소설과 평전을 써 화제가 된 샤롄성 등이 참석했다. 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 [옴부즈맨 칼럼] TV와 차별화 못한 남북정상회담 보도/ 황용석 건국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남북정상회담은 지난 한 주 신문을 장식한 빅뉴스이다. 그러나 이번 정상회담의 주인공은 텔레비전이었다.7년 전 김대중 대통령의 방북 때 녹화된 테이프를 기다리던 것과 다르게 정상회담의 주요 소식은 텔레비전을 통해 생중계되었다. 실로 엄청난 변화가 아닐 수 없다. 회담과정 내내 텔레비전의 영향력은 절대적이었고 이를 통한 정치효과 역시 매우 컸다. 남북정상회담 그 자체가 거대한 미디어 이벤트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청와대를 나서는 장면에서부터, 군사분계선을 넘는 모습, 그리고 김정일 위원장이 참석한 평양에서의 환영행사가 텔레비전을 통해 생중계되었다. 지난 4일 노 대통령의 귀환 때에는 9시 뉴스시간대에 맞춰 도라산역에서 대통령의 상세한 귀국보고가 생중계로 이어졌다. 귀환 당일 심야시간에 방송된 각 방송사의 생방송 토론프로그램에는 정상회담의 주요 배석인사들이 참여해서 정상회담의 뒷이야기를 전해주었다. 정상회담 전후로 모든 정치행사가 텔레비전에 맞춰진 듯했다. 역동감있는 텔레비전 중계를 보고 나서 다음날 아침에 본 신문은 식어버린 죽 같기도 하다. 내용이 새롭지 않고, 이미 인터넷에 넘쳐나는 정보를 정리한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광속의 시대에 신문이 갖는 기능적 딜레마가 아닐 수 없다. 사실 이 문제는 세계신문업계의 공통된 과제로 최근 몇년간 고민되어온 것이다. 그래서 나온 경향이 데드라인기사에서 기획기사로 1면을 혁신적으로 바꾸는 것, 시각적 이미지의 강조,‘무엇이 발생했나’에 초점을 맞추던 것에서 ‘그래서 어떻게 될 것 같아’로 보도의 방향을 바꾸는 것, 심층 해설기사의 강화 등이다. 국내 신문도 이러한 경향을 좇아가고 있다. 최근 들어 1면의 차별화가 두드러지고 있으며, 기사의 수보다는 깊이에 치중하는 모습이다. 이번 남북정상회담보도에서도 많은 신문들이 남북정상선언 이후에 초점을 맞추면서 전자매체와 기능적 차별화를 시도했다. 서울신문 역시 정상선언 이틀 후인 10월6일자부터 향후에 미칠 영향과 현안 과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런데 꼼꼼히 읽어보면 텔레비전 뉴스와 별반 달라 보이지 않는다. 다른 경쟁지도 상황은 비슷하다. 왜일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 가운데 하나는 빈약한 취재원에 있다. 예를 들어 6일자 ‘경협비용 최대 11조원’이라는 긴 해설기사의 경우 타 언론사와 같이 현대경제연구원의 자료에 의존해서 작성했지만, 연구원 자료 이외에 실명 취재원이 발견되지 않는다. 반면 돈 오보도퍼 존스홉킨스대 교수와의 인터뷰기사는 미국 내 전문가의 시각을 보여주어서 유익했다. 서울신문은 고급 취재원을 보다 강화하고 지속적으로 관리하는 노력이 필요할 것 같다. 이것은 신문이 이종매체와 경쟁하기 위한 필수조건이기도 하다. 신문기자의 생명력은 취재원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회사 차원의 취재원 관리시스템을 도입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것은 지식경영의 일부이다. 우수한 취재원을 기자들이 상호 공유할 수 있도록 하는 뉴스룸 정책도 필요할 것이다. 물론, 기자들의 노력도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신문사들은 라디오 저널리즘을 본받을 필요가 있다. 라디오저널리즘은 다양한 전문가를 사안별로 초대한다. 자사 기자에 의존하지 않고 신문기자나 인터넷매체 기자와 전화 인터뷰를 통해 시급한 사안을 정리하기도 한다. 탄력적으로 취재원을 연결하고, 경계선을 긋지 않고 누구든지 협력자로 만들어서 깊이있는 정보를 주려는 시도들이 필요하다. 결국, 정보상품으로서 신문의 효용가치는 생생한 현장감이나 속보라기보다는 깊이와 적절성으로 대표되는 뉴스의 품질에 있기 때문이다. 황용석 건국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 [땅끝마을에서 한양까지 다시 걷는 옛길] (8) 전주 원동 ~ 익산 여산

    [땅끝마을에서 한양까지 다시 걷는 옛길] (8) 전주 원동 ~ 익산 여산

    옛길은 이야기속으로 사라진 길이다. 한때 민족 이동의 대동맥이었던 호남대로는 이제 역사로만 기억되는 잊혀진 길이다. 하지만 옛길은 우리 역사와 문화를 오롯이 간직한 보고이다. 길을 다니던 사람들의 삶이 녹아있기 때문이다. 옛길의 생명력은 또한 끈질기다. 국토의 개발이라는 거대한 밀물에 사라지기도 했지만 아직도 원형이 보존된 곳이 적지 않다. 개발에서 소외된 호남지역은 그런 의미에서 옛길을 가장 많이 보존하고 있는 지역일 수 있다. 원(院)과 주막(酒幕), 객주(客主)는 사라지고 없지만 기쁨, 슬픔, 절망, 한의 역사를 간직한 옛길의 흔적을 좇을 수 있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전주의 뒤안길이 된 옛길 전북 지방의 옛길은 전북의 도청 소재지인 전주시의 서쪽 변두리를 지난다. 호남대로란 옛말이 무색할 정도다. 나지막한 구릉지대를 지나는 옛길은 한적한 2차선 도로로 변했다. 옛날 원이 있었다 해 붙여진 전주시 원동을 지난 옛길은 전주∼군산간 국도 26호선과 교차한다. 국도 26호선은 호남평야에서 생산된 쌀을 군산항을 통해 일본으로 반출하기 위해 일제가 만든 길이다. 봄이면 전국에서 가장 긴 일백리 벚꽃터널을 이룬다. 벚나무는 고향을 그리워하는 재일교포들이 전해준 것이다. 일제가 수탈을 위해 만든 길에 재일교포들이 일본의 나라꽃을 심은 길은 이제 전주와 익산, 군산을 연결하는 산업도로로 변했다. 옛길이 국도 26호선과 교차하기 직전 오른쪽에는 ‘한국도로공사 수목원’이 자리잡고 있다. 1970년 호남고속도로를 건설하면서 남은 땅에 다양한 수목과 희귀식물을 심어 꾸민 수목원이다.33만 9380㎡의 부지에 178과 3010종의 수목을 재배하고 있다. 인터체인지 부근은 일제 시대에 미쓰비시 재벌이 운영하던 동산농장을 비롯한 일본인들의 대규모 농장이 있었던 곳이다. 전라선 철도도 동산농장에서 생산되는 쌀을 반출하기 위해 부설된 사설 협궤 철도였다. 그러나 동산농장이 있던 곳에는 전주월드컵경기장이 들어섰다. 옛길은 용덕·용정·구정마을을 지나면서 호남고속도로와 교차해 완주군 삼례읍을 향한다. 호남고속도로를 왼편에 끼고 삼례까지 펼쳐지는 평야지대를 나란히 달린다. 옛길은 아련한 모습으로 논밭 사이를 지나다 만경강 상류인 삼례 한내 천변에서 끊겼다. 강을 건너던 다리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한내를 건너면 완산팔경(完山八景)의 하나인 비비정(飛飛亭)이 자태를 자랑하고 있다. 비비정은 1573년(조선 선조 6년) 무관이었던 최영길에 의해 건립됐다. 이곳에 오르면 전주시내와 호남평야가 한눈에 들어온다. 앞으로는 한내가 흐르고 주변으로 드넓은 평야가 펼쳐져 풍광이 대단히 아름답다. 유유히 흐르는 물위로 기러기들이 내려앉는 풍경을 볼 수 있어 옛 조상들은 이곳을 비비낙안(飛飛落雁)이라 했다. 양반들은 이 정자에 앉아 술을 마시고 시를 지어 주고 받으며 정취를 달랬다고 한다. 깊고 천이 넓어 군산, 부안에서 온 소금배와 젓거리배가 쉴새 없이 오르내렸다. 백사장 한쪽에는 큰 시장이 열렸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곳은 조선시대 9대로 가운데 전주·남원·통영 방면으로 가는 ‘6대로’가 분기하는 곳이다. 호남대로는 비비정 옆 언덕을 지난다. ●동학농민군 2차 집결지 삼례 비비정 마을을 지난 옛길은 삼례읍 중심지에 들어선다. 삼례초등학교 앞을 지나 원삼례마을을 향하면서 헤어졌던 국도 1호선과 다시 교차한다. 국도 1호선은 익산쪽을 향하지만 옛길은 호남고속도로와 나란히 삼례중앙초등학교 옆을 지난다. 삼례는 동학농민혁명에서 각별한 의미가 있는 곳이다.1894년 9월(음력) 10만여 농민군이 항일 투쟁의 깃발을 앞세우고 재집결한 2차 봉기 장소이다. 일본군이 경복궁을 침범하고 청일전쟁을 일으키자 일본군과 탐관오리를 아내기로 결의한 농민군들은 삼례뜰에서 거대한 물결을 이루었다. 삼례봉기는 근대 민족·민중운동의 출발이요 새로운 한국사회를 밝히는 위대한 횃불이었다. 이에 앞서 1892년 11월(음력)에는 동학교도 수천명이 교조 최제우의 억울함을 탄원하기 위해 모인 장소다. 이른바 교조신원운동(敎祖伸寃運動)이다. 삼례집회는 전라감영의 무력진압을 각오한 것으로 실은 탐관오리에 대한 투쟁이었다. 이들은 삼례역에 모여 두차례 전라감영에 의송(議送)을 보내 동학 교조의 신원(伸寃)을 할 것과 동학도에 대한 수탈 중지를 요구했다. 삼례집회는 본 뜻을 이루지 못했으나 동학도에 대한 부당 주구금지 조치를 얻어냈다. ●백제 도읍지 익산 호남고속도로 삼례인터체인지를 지나면 행정구역이 변한다. 옛길 남쪽은 완주군 삼례읍, 북쪽은 익산시 왕궁면이다. 왕궁은 백제문화제가 널리 분포되고 있는 지역이다. 제석사지(사적 제405호), 왕궁리 유적(사적 제408호), 함벽정(전북도 유형문화제 제127호) 등이 있다. 왕궁리 유적은 1989년부터 학술 발굴조사가 진행되고 있다. 마한의 도읍지설, 백제 무왕의 천도설, 안승의 보덕국설, 후백제 견훤의 도읍지설이 전해지고 있다. 왕궁리 유적지에는 백제계 석탑 형식에 신라탑 형식이 가미된 고려 초 작품으로 추정되는 5층 석탑(국보 제289호)이 남아있다. 옛길은 왕궁면 남촌마을과 삼례읍 농원마을 사이를 지나 봉광동을 스친다. 통정·역기·신기마을을 지날 때까지 왼쪽으로는 호남고속도로가 계속해 달린다. 전광리에서 호남고속도와 교차한 옛길은 왕궁저수지를 향한다. 왕궁저수지는 1931년 일제시대에 준공됐다. 옛길은 왕궁저수지 건설로 일정 부분이 수몰됐다. 대동여지도에 옛길은 왕궁저수지 중앙을 통과하는 것으로 기록돼있다. 저수지를 지나 연봉정 마을을 지난 옛길은 탄현고개를 넘는다. 연봉정 마을은 주막촌이었으나 현재는 초라한 농촌 마을에 지나지 않는다. 탄현고개를 넘으면 익산시 여산면이다. 이곳부터 옛길은 국도 1호선과 다시 한몸이 된다. ●천주교 성지 여산 여산은 한양에서 내려올 때 호남의 초입 고을로 위세를 떨쳤던 지역이다. 호남에 들어가기 전 중요한 길목이어서 주막과 객주가 많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현재는 장급 여관 하나 볼 수 없는 전형적인 농촌 면소재지다. 충청도와 전라도의 경계를 이루는 여산은 한때 학문과 행정의 중심지였다. 천주교의 전래도 다른 지역보다 훨씬 빨랐다. 그만큼 박해도 많이 받았다. 여산성당은 1866년 병인박해 때 여산부의 속읍지였던 금산·진산·고산 등지의 심산유곡에 숨어있던 신자들이 여산관아로 잡혀와 모진 형별과 굶주림의 고통을 당하고 1868년 처형돼 순교한 성지다. 이곳에는 다른 곳에서는 대부분 철거된 동헌이 남아 있다. 동헌은 사또가 있었던 관아다. 여산동헌(전북도 유형문화재 제93호)은 조선 후기 관아 건물 가운데 원형에 가깝게 잘 보존된 몇 안되는 귀중한 문화재다. 동헌 앞에는 천주교 신자들의 얼굴에 물을 뿜고 그 위에 백지를 여러 붙여 질식사시킨 ‘백지사(白紙死)터 성지’가 남아 있다. 옛길은 여산 동헌을 지난 뒤 1번 국도와 다시 만나 충청남도 논산시를 향한다. 전주 임송학기자 shlim@seoul.co.kr ■신정일 사단법인 ‘우리땅 걷기’ 대표 “옛길 복원해 보행권 되찾아야” “역사 속에서 실재했던 옛길을 복원해 국민들의 보행권을 확보해야 합니다.” 사단법인 ‘우리땅 걷기’ 신정일(53) 대표는 “옛길을 복원해 보행권이 확보되면 삶의 질이 향상되는 것은 물론 우리 국토의 재발견과 민족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 땅 걷기 모임은 차를 타는 것 보다 느리게 걸으며 우리 국토를 다시 보아야 한다는 취지로 발족했다.‘보행권 되찾기 운동’과 ‘옛길 문화재 지정 운동’을 벌이고 있다. 두발로 우리 땅을 걷자는 뜻으로 11월11일을 ‘길의 날’로 정했다. “우리 산, 우리 강, 우리 국토가 너무 아름다워 걷기를 멈출 수 없습니다.” 그는 전국 방방곡곡을 답사하며 얻은 우리 문화와 역사에 대한 지식을 책으로 쓰고 있다. ‘다시 쓰는 택리지’를 비롯해 그가 펴낸 책은 무려 32권이나 된다. 모두 그가 발로 뛰며 몸으로 느끼고 본 것을 엮은 것이다. 영남대로, 삼남대로는 물론 한강, 낙동강, 금강, 만경강 등 8개 강을 걸었고 400개의 산을 올랐다.25년 동안 전국을 답사하며 걸은 거리만 해도 지구를 몇바퀴 돌 정도다. 이 때문에 그에게는 ‘현대판 김정호’라는 별명이 따라 다닌다. “옛날 만경강을 건너기 위해서는 주로 배를 탔지요. 비비정이 완산팔경으로 꼽히는 것은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즐겨 찾았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는 “현재 왕궁리 근처에 가면 축산 폐수가 악취를 풍기지만 옛 백제의 숨결을 느끼고 대화를 할 수 있는 의미 깊은 곳”이라며 “호남대로는 걸으면 걸을수록 깊은 맛을 느낄수 있다.”고 강조한다. “옛 선비들은 산천을 유람하는 것은 좋은 책을 읽는 것과 같고 책을 읽는 것은 산천을 유람하는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저 역시 답사를 하다 지치면 책을 읽거나 쓰고, 이 역시 지치면 다시 답사를 떠나지요.” 그는 이처럼 요즘도 일주일에 3일은 답사를 위해 걷고 4일은 책을 쓴다. 신 대표는 “걷는 것은 곧 자연 사랑이고 자연 속으로 내가 들어가는 하나의 첩경”이라며 옛길 복원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전주 임송학기자 shlim@seoul.co.kr
  • [데스크시각] 천의 얼굴을 가진 인도/최종찬 국제부 차장급

    나게시라오 파르타사라티 주한 인도대사는 최근 한국언론재단 주최 인도지역 전문가과정의 특강에서 ‘코리아 친디아’란 신조어를 제시했다. 인도와 중국을 하나의 경제권으로 묶어 이르는 친디아는 세계경제의 다크호스로 부상한 신형 엔진이다. 여기에 한국을 끼워 넣은 것이다. 이 말은 대학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했으면서도 외교관의 길을 걷고 소설가로도 활동하는 주한 외교사절의 외교적인 수사로 생각될 수도 있지만 그만큼 한국은 인도에 중요한 파트너임을 드러내는 말이다. 한국은 인도의 외국인 직접투자 10위안에 든다. 포스코는 인도의 오리사주에 무려 120억달러(약 11조원)를 들여 제철소를 짓기로 했다. 한국과 인도는 역사와 문화적으로 그리 먼 나라가 아니다. 세계를 평정한 코카콜라와 청바지가 기를 못 펴는,1달러로 충분히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독특한 정신세계를 가진 인도의 저력은 과연 뭘까. 인도는 천의 얼굴을 가진 나라다. 서방의 시각으로 보면 그 속을 헤아릴 수 없다. 역사의 무대에서 인도는 침입해온 이민족들과의 싸움에서 늘 졌지만 다시 살아남는 질긴 생명력을 보여줬다.800년에 걸친 이슬람의 통치와 200여년간의 영국통치도 인도를 굴복시키지 못했다. 이옥순 연세대 연구교수는 “인도의 역사는 모자이크 역사”라며 “바이런은 인간은 미소와 눈물을 왕복하는 시계추라고 노래했으나 인도는 수없이 패배한 눈물의 역사를 결국은 살아남아 미소로 바꿨다.”고 강조했다. 인도에는 다른 나라에는 없는 카스트제도가 있다. 브라만, 크샤트리아, 바이샤, 수드라의 네 계층으로 구분되며 계층에 들지 못하는 불가촉천민계급도 있다.BC 1000년경에 확립된 후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는 이 제도는 계급이 아니라 계층의 구분이다. 카스트 계층마다 4000여개의 집단이 있으며 그 집단의 규모는 수백명에서 수만명까지 다양하다. 카스트 집단은 고정적인 것이 아니라 없어지기도 하고, 새로 생기기도 한다. 카스트 집단마다 문화가 다르고 쓰는 어휘가 다르다. 결혼도 같은 카스트집단끼리 이뤄진다. 이 제도는 인도가 발전한다고 해도 쉽게 없어질 것 같지 않다. 집단 이기주의의 단맛을 경험한 이들이 이 제도를 포기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카스트는 인도의 어두운 면이기도 하지만 인도를 실질적으로 끌어가는 ‘보이지 않는 손’이라고도 볼 수 있다. 인도는 또한 다원화된 나라다. 어디를 가도 다민족, 다언어, 다종교를 경험할 수 있다. 언어는 3000개가 넘고 공식언어만 22개에 달한다. 각 주에서 주관하는 시험 문제지는 22개 언어로 각각 출제한다. 인도가 못사는 이유 중의 하나가 복사비가 너무 많이 들기 때문이라는 우스갯소리도 나올 정도다. 종교도 불교, 힌두교, 이슬람교, 조로아스터교 등 지구상의 거의 모든 종교가 있다. 이슬람인구는 1억 3000만명으로 인도네시아에 이어 세계 두 번째로 많다. 이런 다양성이 국가란 질화로 속에서 제 빛깔을 살리며 시너지효과를 내는 것이다. 인도는 지금 경제와 외교부문에 있어 순항하고 있다. 경제는 매달 650만명이 휴대전화에 신규 가입할 정도로 뜀박질 성장을 하고 있다. 구매력은 세계4위이며 2020년까지 세계3위 경제대국이 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상한다. 외교적으로는 국익에 도움되면 어느 나라와도 손을 잡는 신(新)비동맹 외교노선으로 전세계의 러브콜을 받고 있다. 인도는 9·11테러후 가장 많은 혜택을 받고 있는 나라로 평가받고 있다. 한국은 이런 인도를 배워야 한다.11억인구가 내뿜는 저력을 배워야 한다.“큰 틀에서 큰 길로 가는 인도는 우리에게 대안이 아니라 국가 안보와 생존에 필수”라는 김찬완 한국외국어대 교수의 말이 ‘인도풀기 퍼즐’의 한 단서가 될 듯하다. 최종찬 국제부 차장급 siinjc@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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