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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극리뷰]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에 치인 2인자, 살리에리의 삶

    [연극리뷰]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에 치인 2인자, 살리에리의 삶

    “철없는 풋내기가 놀면서 쓴 곡이 내가 심혈을 기울여 쓴 곡을 생명력 없는 낙서로 만들어 버리는구나.” 연극 ‘아마데우스’에서 안토니오 살리에리가 읊조리며 내뱉는 대사 일부다. 주위의 뛰어난 천재 때문에 열등감, 시기, 질투를 느끼는 것을 ‘살리에리 증후군’이라고 부를 만큼 살리에리는 천재 작곡가 모차르트의 재능을 부러워하면서도 저주했다. ‘아마데우스’는 모든 곡을 머릿속에서 구상해 프린터기가 인쇄하는 수준으로 종이에 옮겨 적곤 했던 모차르트의 예술성과 천재성, 모차르트와 같은 시대를 살았다는 이유만으로 2인자로 지내야 했던 살리에리의 콤플렉스와 낮은 자존심이 얽히고설킨 작품이다. 200여년 전 오스트리아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현대 사회 어느 곳에서나 빈번하게 일어나는 경쟁, 이 과정에서의 승리감, 열등감, 자괴감 등이 자연스럽게 녹아 있다. 그래서 관객은 천재 작곡가 모차르트보다 스스로의 평범함을 너무나 잘 인식하고 있는 살리에리의 인간적 고민과 슬픔에 더욱 동감하게 된다. 극은 일흔을 넘긴 늙은 살리에리가 죽기 전 과거를 회상하는 시점, 1823년 11월에서 출발한다. 극을 이끄는 해설자인 살리에리는 1781년 모차르트를 만난 시점부터 그를 떠나 보낸 10년 동안을 미래의 후손, 즉 관객들에게 회상하며 자신의 심정과 잘못을 깨알같이 고백한다. 잘나가는 궁정작곡가로 활동 중인 살리에리는 자신보다 18살이나 어린 모차르트를 처음 만난 순간부터 자신의 무능을 감지한다. 아무리 심혈을 기울여 쓴 곡일지라도 자유분방하게 음표를 그려내는 모차르트를 당할 수 없었다. 노력보다는 신에게 부여받은 능력 덕분에 모차르트가 인정받는 모습을 살리에리는 감당하기 어렵다. 그래서 모차르트를 최대한 지능적으로 악랄하게 괴롭힌다. 자유분방한 영혼의 소유자 모차르트는 살리에리의 계략을 눈치채지 못하고 점점 더 궁핍한 생활에 빠져든다. 하지만 죽는 순간까지도 예술혼은 놓지 않았다. 마지막 순간 그의 손에 쥐어져 있던 것은 레퀴엠(진혼곡)을 완성하기 위한 깃털펜이었다. 살리에리는 자신이 모차르트를 독살했다고 굳게 믿는다. 하지만 이를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관객은 쉬는 시간을 포함해 3시간의 공연 동안 모차르트와 살리에리의 애증 관계, 그리고 그들의 예술성에 빠져들게 된다. 배우들의 열연과 모차르트의 음악이 빚어내는 조화도 묘미다. 공연 내내 모차르트가 작곡한 ‘피가로의 결혼’, ‘마술피리’ 등이 피아노 독주 또는 피아노 4중주로 연주된다. 같은 제목의 영화 ‘아마데우스’를 본 관객이라면 비교하며 보는 재미도 쏠쏠할 듯. 화제의 연극 ‘에쿠우스’를 쓴 영국 극작가 피터 셰퍼의 작품이다. 내년 1월 1일까지 서울 명동예술극장. 2만~5만원.1644-2003.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 화제의 연극 ‘에쿠우스’ 현대무용으로 재탄생

    화제의 연극 ‘에쿠우스’ 현대무용으로 재탄생

    ‘에쿠우스’. 라틴어로 뜻은 말(馬). 우리나라에서는 고급대형차 이름으로 널리 알려졌지만, 문화계에서는 영국 최고의 극작가 피터 세프의 실험적 연극으로 이름이 더 높다. 말을 떠받들던 17살 앨런이라는 아이가, 어느 날 그렇게도 아끼고 사랑하던 말 26마리의 눈을 찌르는 범죄를 저지르고, 정신과 의사 다이사트를 만난 이야기다. ●8~10일 국립현대무용단 공연 실제 사건에서 소재를 가져온 데다 말이 상징하는 원초적 생명력에 대한 숭배, 첫 경험의 파격적인 섹스 등 정신분석학적 소재가 가득하다는 점에서 앨런 역은 단순히 하나의 배역을 넘어 배우에게 주어지는 훈장처럼 여겨진다. 강태기, 송승환, 최민식, 조재현 등이 앨런 역을 통해 진가를 인정받은 대표적인 배우들이다. 해외에서도 마찬가지여서 영화 ‘해리 포터’에서 귀여운 동안(童顔)으로 사랑받았던 대니얼 래드클리트가 성인이 된 뒤 앨런 역으로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그 ‘에쿠우스’가 현대무용으로 재탄생했다. 8~10일 서울 용산구 서계동 백성희장민호극장에 오르는 국립현대무용단(예술감독 홍승엽)의 ‘말들의 눈에 피가’ 공연이다. ●말의 눈을 찌르는 장면선 전율 연극이 말의 육체성을 시각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몸짱’ 남자배우들을 대거 무대 위에 불러올린다면, 언론에 먼저 공개된 ‘말들의’에서는 여자 무용수 9명이 파격적으로 말 역할을 맡았다. 해서, 말 그 자체의 근육질 몸뚱어리보다 앨런의 폐쇄적이고 분열적인 내면을 섬세하게 묘사하는 데 방점이 찍혔다. 또 기괴한 사건의 전후맥락을 읊는 대신, 앨런이 마침내 말 눈을 찌르는 과정까지만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그래서 공연시간도 1시간 남짓으로 길지 않다. 관객들이 가장 전율을 느낄 만한 대목은 공연의 시작과 끝이다. 도입부에는 영화 ‘피아노’의 음악감독으로 유명한 마이클 니만의 곡이 쓰였다. 말 역할을 하는 여자 무용수들이 바닥에 드러누운 채 온 몸으로 무대 위를 구르는데, 마치 퍼드덕대는 말들의 발자국 소리가 잦아들면서 앨런의 머릿속으로 차츰 스며들어가듯 느껴진다. ●무용수들 압도적 군무가 백미 말 눈을 찌르는 마지막 장면에서는 야생성과 원시성을 드러내는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 가운데 ‘희생의 춤’이 쓰였다. 이 극적인 음악에 리듬과 장단을 맞춰 펼쳐지는 무용수들의 압도적인 군무는 작품 최고의 백미로 꼽을 만하다. 얼마 전 어머니를 살해한 수험생 얘기로 사회가 떠들썩했다. 차단된 아버지, 광적인 어머니, 그 아래에서 절규하는 앨런의 이야기에서 그 원형을 찾아볼 수 있을지 모른다. 1만원. (02)3472-1420.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지방시대] 도시재생의 진화/김형균 부산시 창조도시본부장

    [지방시대] 도시재생의 진화/김형균 부산시 창조도시본부장

    ‘세계도시’의 신화가 무너지고 있다. 세계도시란 분야별로 세계적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영향력을 떨치고 있는 세계적인 수준의 도시를 말한다. 그런데 지금, 2008년 전 세계적인 금융위기와 함께 불어닥친 부동산 위기가 세계도시의 신화를 위협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무분별한 공간적 팽창과 도시의 내발적 발전 동력의 상실로 인해 부동산의 양극화 현상이 심화된 때문이다. 그 결과 대부분 세계도시의 원(原)도심은 공동화(空洞化)하기 시작했고, 이에 대한 대책이 시급해졌다. 이에 대한 처방으로 세계도시마다 앞다퉈 자신들의 특성을 살린 창조적인 도시 재생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활기를 잃은 원도심 등 도심의 취약지역을 어떻게 다시 살릴 것인가 하는 재생 프로젝트가 도시정책의 핵심적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도시 재생 프로젝트는 그 형식과 내용에서 급격히 진화·발전하고 있다. 도시 재생의 대상과 방식은 크게 두 가지로 크게 나뉜다. 하나는 개발 잠재력이 매우 큰, 이른바 ‘핫 플레이스’에 대한 민간의 대규모 자본 투입에 의한 메가프로젝트형 재생사업이 이뤄지는 방식이다. 다른 하나는 개발 잠재력이 매우 약한, 이른바 취약지역에 대한 공공의 재정 투입에 의한 소단위 재생사업이다. 사실 전자의 방식은 민간투자의 향방에 따라 그 내용과 성격이 결정되므로 기존 개발방식과 큰 차이를 발견하기 어렵다. 따라서 우리의 관심은 소단위 재생사업에 있을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재생과 창조의 단위가 국가에서 도시로, 나아가 도시에서 소단위 지역으로 이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가장 초보적인 마을 재생 방식은 거리벽화를 그리는 일이었다. 그러나 이 행위가 점점 발전해 지역에 부족한 공공시설물을 공급하는 단계로 발전했다. 그러나 이는 지역 재생에 필요한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은 아니었다. 물리적 재생과 더불어 지역과 마을의 사회경제적, 문화적 재생 등 삶에 복합적으로 영향을 주는 통합적 재생방식이 지금 요구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주민들은 경제적 활력을 찾기 위한 마을기업의 운영, 생활협동조합 운영, 마을화폐 도입 등을 통해 새로운 활로를 모색을 하고 있다. 문화적으로도 소규모의 마을박물관, 마을 문화관광프로그램, 예술창작가 입주공간의 운영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발전시키고 있다. 이러한 도시 재생 사업의 진화발전 과정을 보면 몇 가지 특징이 눈에 띈다. 초기의 시설 개선 중심에서 이제는 프로그램이 시설을 견인하고 있는 것이다. ‘창조적 아이디어’가 투자를 유인하고 있는 것이다. 또 하나는 주민의 참여와 공감이 사업의 생명력이 됐다는 점이다. 주민이 외면하는 시설 공급은 의미가 없다. 또 자본투입보다 더 큰 역할을 하는 것이 인적자원이다. 단순히 행정절차 중심에서 이제는 지역활동가나 지역전문가의 역할이 중요한 변수가 됐다. 결국, 사람이 재생의 주체로 역할을 하게 됐다는 의미다. 최근 우리 사회도 이러한 지역 재생의 관심과 수요를 반영한 ‘도시 활력 및 재생을 위한 특별법’이 입법 발의됐다. 조속하고 또 원만하게 법안이 마무리되기를 바란다. 현실적으로는 자본 투입에 의한 메가프로젝트형 사업은 어렵지만, 지역 재생의 수요만큼은 넘쳐나는 지방도시들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 [김문의 만난사람] 이중섭 55주기… 그를 추억하는 원로 시인 김광림

    [김문의 만난사람] 이중섭 55주기… 그를 추억하는 원로 시인 김광림

    가을 끝자락이다. 창덕궁의 나무들도 겨울을 맞이할 요량으로 나뭇잎마저 무겁다는 듯 후드득 털어낸다. 한 노(老)시인은 백발을 만지작거리며 실로 오랜만에 자신의 시집을 뒤적인다. 돋보기를 꺼내 들고 책장을 넘기던 노시인은 “그래 바로 이 시야, 이거!”라고 탄성을 터뜨린다. 어떤 시일까. ‘팔삭둥이 첫 아들이 죽었을 때/그는 곤드레만드레가 되어/죽은 애 또래의 살아 있는 애들을/그리고 있었다/저승동무 길동무로/천도 따는 애며/맨손으로 물고기 잡는 애들이랑/학 타고 날아가는 애도/상기도 애비 목 틀어잡는 녀석이며/여직 애미 젖가슴 뒤지는 녀석/오오라 게한테 물린 고추녀석이 제일 늦구나/개구쟁이 코흘리개 오줌싸개 울보랑 모두 모이자/그는 잠자코 붓을 놓았다/그리고 죽은 애 목덜미에 그림을 그려주었다/십자가보다 더 빛부신 동심(童心)을’ 지난 16일 오전 창덕궁 바로 옆 바움갤러리에서 원로 시인 김광림(82) 선생을 만났다. 그는 천재 화가 이중섭과의 추억을 새삼 떠올린다. ●‘시전집’에 이중섭 연작시 8편 담아 “17살 때 함경남도 원산에서 이중섭 화가를 처음 만났어요. 그의 첫애가 죽어 애도할 때였지. 하루는 이중섭의 집에서 같이 잤는데 새벽녘에 일어나 보니 온데간데없어요. 그래서 옆방에 슬쩍 가 봤더니 그림을 그리고 있었어요. 뭘 그리나 어깨너머로 봤더니 애들이 하늘에서 새를 타고 다니는 거, 천상의 복숭아를 따는 아이들, 학을 타고 날아다니는 아이들, 아버지 목에 매달려 있는 애들, 게가 아이의 아랫도리를 물고 있는 모습 등을 그리더군요.” 노시인은 잠시 창밖을 바라본다. 추억의 편린들이 가을 낙엽과 함께 머릿속을 이리저리 나뒹굴고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에게 올해가 이중섭 화가 탄생 95주년이고 작고 55주기가 된다고 했다. 그랬더니 노시인은 “아, 그렇게 됐나요. 나보다는 13살 위였는데….”라고 말끝을 흐린다. 얘기 도중 가끔 백발을 쓰다듬는 모습이 어쩌면 천상의 복숭아를 따러 날아가 버린 이상한(?) 새를 그리워하는 것 같았다. “손바닥만 한 공간만 있으면 언제 어느 때 어느 곳에서나 쓸 수 있는 시, 그는 시인이 부러워 시처럼 그림을 그렸지…. 은박지 그림이 생각나. 내가 군 장교로 있을 때였어. 외출을 나올 때마다 군보급품 박스에 있던 양담배 럭키스트라이크 은박지를 수집해 갖다주었어요. 아주 좋아했지. 그림을 그릴 수 있었으니까. 그런데 나중에 그 그림들을 죄다 불태워 달라고 했어. 참으로…. 은박지 그림만 200~300장 됐어.” 이중섭 화가는 1955년 서울 미도파백화점과 대구 미공보관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하지만 결과가 기대에 못 미치자 실망과 충격으로 대구에서 만난 김 시인에게 “내 그림은 다 가짜야.”라고 하면서 불태워 달라고 했다. 이중섭 화가는 그렇게 그림을 던지고 확 가 버렸고 김 시인은 은박지 그림과 소품들을 보관했다가 이중섭 화가와 같이 머물고 있던 친구이자 소설가 최태응에게 모두 돌려줘 가까스로 은박지 그림을 살려냈다. 이 그림들은 지금 수천만원에서 수억원을 호가한다. 노시인은 2006년 이중섭 화가에 대한 추억의 글과 시를 모은 ‘가짜와 진짜의 틈새에서’라는 책을 펴내면서 “그의 그림을 불사르지 않고 세상에 남아돌게 한 것이 지금 생각하면 잘한 일인지, 잘못한 일인지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게 되었다.”고 언급했다. 이중섭 작품에 대한 순수한 평가보다는 그림값을 올리려는 상업적 행태가 눈에 거슬린다는 지적을 했던 것. 노시인은 지난해 1100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의 ‘김광림 시전집’을 펴냈다. ‘이중섭 생각’이라는 연작시 8편도 담았다. 여기에서 노시인은 ‘왜 그는 자신의 그림을 가짜라고 우겼을까/그가 진정 진짜로 그리고 싶었던 것은 무엇일까’라는 물음을 던지며 꿈틀대는 어기찬 생명력을 더 지켜보지 않았음에 대한 안타까움을 표현하고 있다. 특히 ‘다하지 못한 정을 엽서에다 그리고/ 은박지에 또 그려서/고통을 환희로 바꿔 찬 한 사내가/거뜬히 시의 수렁 속을 가고 있다/갈증도 모르고 허기도 저버린 채’라고 그에 대한 영원한 그리움을 토해냈다. “이중섭은 시인의 마음을 가진 화가였습니다. 또 그런 그림에서 영감을 얻어 다수의 시를 쓰게 됐어요. (다시 백발을 만지작거리다가) 연작시 말고 또 뭐 있더라….” 옆에 있던 딸 김상미씨가 얼른 기억을 돕는다. 노시인은 요즘 병원에 다니느라 딸 집에 기거하고 있다. “아마 ‘사막’일 겁니다. (딸이 시를 읊는다) ‘화가 이중섭은 사막으로 걸어갔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아랫도리를 게의 예리한 발톱에 찝힌 것이다. 물린 순수의 피나는 이적(異蹟)을 담배 은종이에 나타내었다’ 아버지 맞죠.” 노시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나이를 먹어서 그런지 기억이 잘 안나.”라며 활짝 웃는다. 화제를 바꿨다. 문단 데뷔 시절을 물었다. “전쟁 2년 전인가 그래요. 친구집에서 지내고 있을 때 새벽녘에 문득 낡은 문풍지를 보고 시를 하나 썼어. 그랬더니 친구가 ‘안양에 박두진 시인의 문하생 동인(청포도)들이 있는데 한번 가보자’고 해서 갔어. 아무 생각 없이 내가 쓴 시를 박두진 시인에게 보여줬더니 ‘10년 후면 우리나라의 시가 달라지겠네’라고 하면서 구상 시인한테 가보라고 하더군. 그때 구상 시인은 연합신문 문화부장으로 있었지. 구상 시인과는 원산에서 만났던 사이였지. 어쨌든 찾아갔어. 때마침 점심시간이었는데 나를 아래층으로 끌고 내려가 우동 두 그릇을 시키면서 ‘배가 고플 텐데 두 그릇 다 먹으라’고 했어요. 그러면서 시를 읽더니 ‘관념적이긴 하지만’이라고 말을 하더군. 그 2~3일 뒤에 ‘문풍지’라는 제목으로 시가 발표됐어. 그래서 데뷔작이 ‘문풍지’야. ●“그의 그림에서 詩 영감 많이 얻어” 이후 6·25전쟁이 끝난 1957년 전봉건, 김종삼 등과 함께 ‘전쟁과 음악과 희망과’라는 3인 시집을 내면서 본격적인 시작 활동을 펼쳤다. 1959년 첫 시집 ‘상심하는 접목’을 시작으로 2009년 제10회 청마(靑馬)문학상을 수상한 ‘버리면 보이느니’까지 통산 18권의 개인 시집을 펴냈다. 그러는 동안 평양 출신의 박남수(1918~1994) 시인과 친하게 지냈으며 문덕수(83)·홍윤숙(86) 시인 등과 절친 문우로 교류했다. 1990년 제12차 세계시인대회 때였다. 일본의 저명한 국제적 여류 시인 시라이시 가즈코가 ‘오늘의 율리시스’라는 시를 낭독하기 직전 노시인이 “나는 북에서 온 한국의 율리시스입니다.”라고 말해 장내의 무거운 분위기를 부드럽게 풀어낸 일화는 지금도 문단에서 회자된다. 그는 또 한국과 일본, 타이완 등 동아시아 국가들과 문화 교류를 하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6·25전쟁 때는 9사단 29연대에 배속(소위)돼 백마고지와 저격 능선 전투에 참가했다. 이때 전우의 죽음을 다룬 시 ‘진달래’가 ‘국방’지에 게재돼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기도 했으며 후에 은성화랑무공훈장을 받았다. 슬하에 김상수(사업가)·김상일(조각가)·김상호(중문학자)·김상미(주부)씨 등 3남 1녀를 두었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노시인에게 시 한편을 부탁했다. 잠시 생각하더니 “죽음이란 걸(주제)로 병원에 있을 때 써보긴 했는데….”라는 대답이 나지막이 돌아온다. 다음은 그가 최근에 쓴 미발표작 시. 김문 편집위원 km@seoul.co.kr ●김광림은 김광림은1929년 함경남도 원산에서 2남 4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본명은 충남(忠男)이다. 원산공립중학을 거쳐 평양종합대 역사문학부 외국문학과에 입학했다. 1948년 12월 한탄강을 거쳐 단신으로 월남했다. 그해 안양에서 ‘청포도’ 동인과 어울리다가 청록파 시인 박두진을 만났고 그의 권유로 연합신문 문화부장으로 있던 구상 시인을 만난 것이 인연이 돼 ‘문풍지’라는 시를 처음 발표했다. 경기 여주군 북내초등학교 교사로 있던 중 6·25전쟁을 만나 육군 소위로 9사단 29연대에 배속돼 전쟁에 참가했다. 1959년 첫 시집 ‘상심하는 접목’을 펴냈으며 1961년 고려대 국문과를 졸업했다. 이듬해 두 번째 시집 ‘심상의 밝은 그림자’, 1965년 세 번째 시집 ‘오전의 투망’ 등 지금까지 18권의 시집을 내면서 왕성한 활동을 펼쳤다. 1983년 장안대 교수, 한양대 강사 등으로 강단에서 후학을 가르쳤으며 1985년 대한민국 문학상을 수상했다. 1992년 한국시인협회 회장을 맡아 아시아 시인대회 서울대회 집행위원장을 역임했다. 1999년 대한민국 보관문화훈장, 2001년 국가유공자증서 등을 받았다. 2009년에는 ‘허탈하고플 때’로 청마문학상을 수상했다.
  • 정선아 “에바 페론에 매료… 이번엔 연기로 승부”

    정선아 “에바 페론에 매료… 이번엔 연기로 승부”

    잘나가는 뮤지컬 여배우 가운데 유난히 팔색조 매력을 내는 이가 있다. ‘아이다’, ‘모차르트’, ‘아가씨와 건달들’에 이어 올 하반기 기대작 ‘에비타’의 여주인공으로 낙점된 정선아(27)다. 주연급 여배우들은 정해진 이미지에 따라 캐스팅되는 경우가 많은 게 공연계의 현실이다. 여리고 귀여운 공주 캐릭터, 섹시하고 강렬한 캐릭터 등등…. 2002년 고3 때 뮤지컬 ‘렌트’의 통통 튀는 미미 역으로 데뷔한 정선아는 ‘지킬앤하이드’(2006)의 섹시한 루시, ‘아이다’(2010~2011)의 암네리스 공주, ‘아가씨와 건달들’(2011)의 요조숙녀 사라 등 다양한 색깔의 배역을 소화해냈다. 가창력도 받쳐줘 ‘뮤지컬계의 비욘세’란 별명을 얻었다. 그런 그녀가 실존 인물이었던 아르헨티나의 퍼스트 레이디 에바 페론(1919~1952, 애칭 에비타)의 극적인 삶과 사랑을 연기한다. 5년 만에 다음 달 국내 무대에 다시 오르는 뮤지컬 ‘에비타’에서다. 정선아를 지난 7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에비타 역에 도전한 이유는. -국내 뮤지컬 중에 여배우 원톱 작품이 ‘에비타’ 말고는 없는 것 같다. 데뷔한 지 10년째인데, ‘에비타’ 같은 큰 작품에 도전해보고 싶었다. →가수 리사와 교대로 주인공을 맡는다. 정선아의 에비타는. -작년 중순쯤 저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 있었다. 공연을 줄이고 봉사 활동에 많이 참여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가난한 자들을 위해 노력했던) 에바 페론 역할을 맡으려고 그랬나 보다. 하하. 그동안 노래와 춤은 많이 보여드렸으니 이번에는 연기에 많이 신경쓰려고 한다. →에비타는 사생아로 태어나 삼류 배우를 거쳐 부통령 후보에까지 오르지만 암으로 33살에 요절했다. 연기하기 쉬운 인물은 아닌데. -실존 인물은 처음이다. 요즘 에바 페론에 푹 빠져 산다. 그녀에 관한 책도 많이 읽고 자료 조사도 열심히 하고 있다. 2006년 공연했던 선배들에게 조언도 구하고…. 공부할수록 느끼는 거지만 에바 페론은 가슴으로 대할 수 있는 여자다. →또래 여배우들에 비해 색깔이 다양하다는 평을 듣는다. ‘오래갈 배우’를 꼽을 때 늘 우선순위에 놓이는데. -어찌 보면 뮤지컬 배우는 생명력이 짧다. 일찍 데뷔한 까닭에 솔직히 처음에는 나 자신이 잘났다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무대에 서는 것에 대한 고마움을 안다. 뮤지컬 여배우 계보를 든든히 받쳐주는 이태원 선배나 최정원 선배 등을 보면 너무 감사하고 멋지다. 그리고 한 가지 캐릭터는 재미 없다. 여러 캐릭터를 경험해 보는 것은 행복이다. →스스로 생각하는 배우로서의 장점은. -솔직히 저는 노력파는 아니다. 미친 듯이 노력하는 배우들을 보면 무섭다.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보기에는 제가 기가 세고 욕심이 많아 보이는데 사실 욕심이 별로 없다. 대신 다양한 보컬을 지니려고는 노력한다. 타고난 목소리는 은쟁반 옥구슬 같이 예쁘다. 하하. 그런데 그게 지겨워 록 음악도 많이 듣고, 알앤비(R&B)도 따라부르며 여러 목소리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성대도 강한 편이라 탈 난 적이 없다. →유독 여자 팬들이 많다. -그게 너무 좋다. 국내 뮤지컬 시장의 여성 관객 파워는 대단하다. 티켓 파워도 세다. 하하. →원톱 공연이라 체력 소모가 많을 텐데. -저는 제 몸이 이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지만공연 때는 꼭 운동을 한다. 하하. →더 욕심나는 작품이 있나. -요즘엔 소극장 공연이 너무 욕심난다. 대극장 공연만 하다가 얼마 전 ‘아가씨와 건달들’을 중극장에서 공연했는데 처음엔 관객이 너무 가까이 있어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이내 관객과의 호흡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 알게 됐다. 지방공연 때는 무대가 객석과 너무 멀어 재미가 없더라. 그리고 서른 살 전에 뮤지컬 ‘틱틱붐’과 데뷔작인 ‘렌트’를 꼭 한번 다시 해보고 싶다. 더 나이 들면 뮤지컬 아카데미를 만들고 싶다.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에비타’ 12월 9일부터 내년 1월 29일까지 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 3만~13만원. 1577-3363.
  • 국악이 Rock을 만나면…퓨전밴드 ‘프로젝트 락’(인터뷰)

    국악이 Rock을 만나면…퓨전밴드 ‘프로젝트 락’(인터뷰)

    가슴 절절한 가야금과 피리 소리가 들리는 듯하더니, 피아노 건반과 드럼 소리가 이내 한데 어우러진다. 우리 전통음악인가 싶더니 어느새 대중음악보다 친근한 멜로디가 귀에 감긴다. 바로 전통 국악과 록 등 현대음악을 맛깔나게 섞은 에스닉 팝그룹 ‘프로젝트 락’의 음악이다. 대중음악에 치우진 우리 가요계에서 국악이 차지하는 비중은 그야말로 미미하다. 무대에는 올랐지만 조명이 없어 배우를 보지 못하는 처지와 비슷하다. 알릴만한 창구가 없으니 대중들의 무관심도 어찌 보면 당연하다. 이러한 열악한 환경에서도 ‘프로젝트 락’의 활약은 가히 놀랍다. 2006년 3월 결성된 뒤 2007년, 2010년 문화관광부 주최 21C 한국음악 프로젝트 한국음악상(대상)수상, 2008년 뉴욕 브로드웨이 공연, 2009년 1집 ‘Beautiful days’ 발표, 한국일보가 선정한 올해의 유망주, 2010년 Yepp Music 튜닝어워드 대상, 수많은 공연무대까지 쉼 없이 달려왔다. 지난 8일, ‘국악=재미있는 음악’이라는 공식을 알리는데 앞장서는 프로젝트 락의 음악감독이자 피아노 세션을 맡고 있는 작곡가 유태환씨를 만나 이야기를 나눠봤다. ●‘프로젝트 락’을 결성하게 된 계기는? -우리 전통음악과 현대음악을 접목한 음악을 해보자는 취지로 국악 작곡가 2명, 나를 포함한 대중음악 작곡가 2명이 모였다. 모두 작곡가여서 연주자들이 필요했다. 퍼커션, 베이스, 피리, 가야금, 대·소금, 등 연주자 11명이 모여 활동을 시작했다. 당시 나를 포함한 모든 멤버가 20대 였다. 현재는 보컬 김나니를 포함해 총 10명이 활동하고 있다. ●대중들이 편하게 들을 수 있는 국악을 작곡하는데 필수 조건이 있다면? -국악기나 밴드 중 한쪽이 과하지 않도록 밸런스를 맞추는 것도 중요하지만, 일단 재미가 있어야 한다. 1집 앨범 중 ‘난감하네’라는 곡은 코믹하고 지루하지 않으면서도 국악과 밴드의 요소를 적절히 살린 좋은 예다. ●국악기와 피아노, 드럼 등 서양 악기는 어떤 차이점이 있나. -나는 피아노를 맡고 있으니 가야금과 비교해 본다면, 피아노는 차갑고 가야금은 따뜻한 느낌을, 피아노는 정확하고 가야금은 푸짐한 음색을 낸다. 국악기는 애절한 감성을 표현하기에 적합하고, 서양 악기는 정확한 박자를 구현한다. ●우리나라에 프로젝트 락과 같은 퓨전그룹이나 전통장르를 고집하는 그룹이 얼마나 되나. -약 150여개 팀 정도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퓨전국악대회 등 관련 프로젝트의 규모도 점차 커지고 있다. 하지만 이에 비해 대중들의 관심과 인지도는 상당히 낮은 편이다. ●국악에 대한 관심과 인지도가 낮은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나. -홍보나 마케팅이 부족한 탓이라고 생각한다. 국악전문마케팅 등의 분야가 활성화되지 않은데다 국악은 고리타분하다는 생각이 지배적인 것이 사실이다. 대중가요는 TV출연이 가능하지만 국악은 그렇지 못하다. 국악 공연을 보려면 관객들이 일부러 찾아 나서야 하는 수고가 필요하다. 콘텐츠를 자꾸 보여줘야 하는데 출구가 부족한거다. ●1집에 이어 곧 2집 발매를 앞두고 있다. 홍보나 지원은 어느 수준인가. -사실 1, 2집 모두 멤버들 사비를 털어 만들었다. 낮에는 학생, 교수, 음악단원 등 각자의 일을 마치고 틈틈이 모여 곡 작업을 해왔다. 국가에서 지속적인 지원을 받는 예술단체는 많지 않다. ●우리 전통음악으로 활동하는 뮤지션으로서 가장 힘들다고 느낄 때와 보람을 느낄때는 언제인지. -사람들에게 우리 앨범을 만들어서 들어보라고 추천했을 때 “국악이야?”라며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거나, 국악을 어렵고 재미없는 음악이라고 이야기 할 때 가장 힘들다. 하지만 매 공연마다 와주는 ‘다양한 연령층’의 팬들을 볼 때나, 라디오에서 우리 음악이 나올 때에는 매우 뿌듯하다. ●대중음악, 특히 생명력이 짧은 아이돌 위주의 음악으로 치우쳐져 있는 국내 음악시장에서 어떻게 하면 국악이 선전할 수 있을까. -일단 공연이 많아져야 한다. 공연을 보면 분명 국악이 재미있다고 생각할거라고 확신한다. 국가에서 전용 공연장 등을 만드는 것도 방법이다. 지금도 국악 관련 앨범은 쏟아지고 있지만 이들이 설 무대는 거의 없다. ●앞으로의 계획은? -12월 9일 2집 발매 쇼케이스가 홍대 음악전용 소극장인 판씨어터에서 열릴 예정이다. 12월 24일 단독공연도 준비 중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즐길 수 있도록 가능한 많은 공연을 할 생각이다. ●국악 또는 프로젝트 락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 -“한번만 들어주세요. 들어보면 달라져요.”(웃음) 실망시키지 않는 음악 선보일테니 공연장에 많이 찾아와 주길 바란다. 사진=프로젝트 락 음악감독 유태환씨(여민 제공) 송혜민기자 huimin0217@seoul.co.kr
  • [베를루스코니 ‘시장의 비수’ 맞다] 유로존 위기로 퇴장한 리더들

    [베를루스코니 ‘시장의 비수’ 맞다] 유로존 위기로 퇴장한 리더들

    악화일로로 치닫는 유로존 위기가 유럽 리더들을 잇따라 집어삼키고 있다. 지난 6일(현지시간) 게오르기오스 파판드레우 그리스 총리에 이어 질긴 생명력을 과시해 오던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이탈리아 총리까지 8일 퇴진을 천명하는 등 유럽 각국의 정권이 쓰나미처럼 교체되고 있다. 첫 번째 희생양은 브라이언 카우언 아일랜드 전 총리였다. 아일랜드를 80년간 집권해온 공화당을 이끈 카우언 전 총리는 구제금융 협상에 대한 반대 여론에 밀려 지난 3월 조기 총선에서 패배했다. ●다음 희생양 스페인 사파테로? 조제 소크라트스 포르투갈 전 총리는 지난 3월 의회가 긴축안을 부결시키면서 사퇴하는 불운을 맞았다. 소크라트스 전 총리는 1년도 안 되는 시점에 긴축안에 대해 의회에서 네 차례나 퇴짜를 맞았다. 이베타 라디초바 슬로바키아 총리가 이끄는 중도우파 정부도 지난 10월 정부 신임이 걸린 유럽재정안정기금(EFSF) 확대안 승인 투표에 패배하면서 실각하게 됐다. 두 번째 승인 투표에서 야당의 지지를 얻어내는 조건으로 조기 총선을 내걸면서 내년 3월 총선이라는 역풍을 맞게 된 것이다. ●佛사르코지·獨메르켈 연임 도전 호세 루이스 사파테로 스페인 총리는 지난 7월 정치불안, 경제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방편으로 당초 내년 3월 치러질 예정이던 총선을 4개월 앞당겨 치르기로 했다. 하지만 최근 각종 여론조사에 따르면 오는 20일 치러질 조기 총선에서 보수 야당인 국민당의 승리가 확실시되고 있다.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도 내년 대선을 앞두고 유로존 위기의 희생양이 되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2013년 3선을 앞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도 그간의 당 방침을 180도 바꿔 최저임금제 도입을 들고 나서는 등 벌써부터 선거운동에 돌입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 (52)상주 판곡리 낙화담 소나무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 (52)상주 판곡리 낙화담 소나무

    사람보다 오래 사는 나무는 사람살이의 오랜 내력을 담고 살아남는다. 그러나 나무 스스로 사람살이의 내력을 드러내 이야기하는 법은 없다. 나무 안에 담긴 사람의 역사는 나무와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고서는 지켜낼 수도, 알아볼 수도 없다. 나무를 지켜내려는 사람들의 노력이 없다면, 나무는 그저 평범한 자연물에 불과하다. 하나의 자연물이 사람의 정신과 문화를 상징하는 의미를 갖게 되려면 반드시 그를 지키는 사람들의 노력이 전제돼야 한다. 그게 아니라면 나무의 줄기에 새겨진 사람살이의 속내는 한낱 먼지 되어 사라지고 만다. 나무에 새겨진 삶의 정신과 가치를 지켜내고, 살리는 것은 온전히 지금 사람의 몫이라는 이야기다. ●한스러운 역사 지닌 ‘낙화담’ 경북 상주시 화동면의 청도김씨세거지인 판곡리에 들어서면, 먼저 마을의 내력을 상징하는 재실을 만나게 된다.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킨 김준신 의사의 제단비가 있는 재실이다. 청도김씨 출신의 의병장인 김준신 의사는 이 마을의 역사 속에서 가장 빛나는 업적을 일군 선조 가운데 한 사람이다. 재실 곁으로 너른 들판이 내다보이는 자리에는 앙증맞은 연못이 있다. 연못 가운데에는 못 전체를 가득 채울 듯한 인공 섬이 있고, 그 섬 안에 아름다운 수형의 소나무가 한 그루 서 있다. 연못과 소나무가 모두 아늑한 자연마을에 잘 어울려 가을 운치가 살아 있는 풍광이다. 이곳에 연못이 지어진 건 조선 건국 무렵이다. 당시 황간 지역에서 현감을 지내던 김구정이라는 선비가 있었다. 고려가 망하고 이성계가 새 왕조를 세우자, 그는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며 벼슬을 버리고, 은거할 곳을 찾아나섰다. 그의 눈에 들어온 터가 바로 이곳 화동면 판곡리였다. 숲이 우거지고 골이 깊어서, 세상살이와 거리를 두고 살기에 알맞은 곳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이 땅은 유난히 불의 기운인 화기(火氣)가 드셌다. 김구정은 그래서 화기를 누르기 위해 마을 중심에 바로 이 연못을 팠다. 지금은 고작 330㎡ 규모지만, 처음에는 무려 5000㎡를 넘었다고 한다. 낙화담이라는 이름은 임진왜란 때 마을 사람들의 한스러운 내력이 보태지며 붙었다. 당시 전투에서 승승장구한 김준신 의사가 순직한 뒤의 일이다. 복수를 위해 찾아온 왜병을 피하려던 아낙들은 몸을 더럽히느니 차라리 스스로 목숨을 끊겠다며 차례차례 연못에 몸을 던졌다는 것이다. 지금 연못의 규모로는 짐작할 수 없는 일이지만 당시 주변 풍광을 압도할 만큼 큰 연못이었음을 생각하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두 번의 죽을 고비 넘기고 살아나 옛일을 또렷이 바라보았을 낙화담 소나무는 여전히 매우 싱그러운 자태로 600년의 세월을 증거하고 서 있다. 아담한 크기의 규모로 작아진 연못에 잘 어울리는 소나무는 김구정이 연못을 완공한 뒤에 손수 심었다고 한다. 그는 사람들이 손쉽게 건너갈 수 있는 연못 가장자리에 인공 섬을 쌓고, 그 위에 한 그루의 소나무를 심었다. 풍광 좋은 연못에 솔향기 가득 품은 자연 정자를 지은 셈이다. 그때가 조선 건국 무렵이니 나무의 나이는 600살을 넘었다. “저 나무가 두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겼지. 1964년에는 거의 죽은 거나 마찬가지였어. 내가 젊어서 고향을 떠나 있던 사이에 동네 사람들은 나뭇가지에 그네를 걸고 놀기도 했지만 보살필 줄을 몰랐던 거야. 나무가 반절 가까이 죽었더라고.” 청도김씨 대종중 김재궁 부회장의 이야기다. 조사 끝에 그는 곁에 있는 방앗간에서 흘러나와 연못으로 스며든 기름이 원인임을 알아냈다. 인공섬에까지 기름기가 차올라 나무가 숨 쉬기 어려울 지경이었던 것이다. 김 부회장은 대부분의 흙을 새 흙으로 교체하는 어려운 작업을 마다하지 않았다. 기계도 없이 손수 삽과 지게를 짊어지고 해낸 수고로운 일이었다. 당시 전문가들도 나무의 생존 가능성이 50% 미만이라고 했다. 하지만 김 부회장의 지긋한 노력으로 나무는 죽음의 고비를 이겨냈다. 또 한번의 고비는 1992년에 찾아왔다. 소나무에 해충이 들면서 시들해진 것이다. 이때에도 김 부회장은 나라 안에서 용하기로 소문난 나무병원의 전문가들을 불러들여 자문을 얻고 나무를 치료해 살려낼 수 있었다. “저 나무가 어떤 나무인데 그냥 죽이겠어. 우리 조상께서 손수 심으신 나무이고, 또 이 연못에 우리가 살아온 고난의 역사가 아로새겨져 있는데 그걸 지키지 않고서야 어떻게 하늘을 바라보고 살 수 있겠어.” ●나무 사랑은 곧 조상과 나라 사랑 김 부회장의 낙화담 소나무에 대한 사랑은 단지 한 그루의 소나무에 대한 사랑만은 아니다. 이는 필경 나무를 심은 조상과 이 땅의 역사에 대한 지극한 애정 그리고 자존심임에 틀림없다. 낙화담 소나무는 물속의 험난한 생육환경에서도 13m의 높이로 자랐다. 가슴 높이 둘레도 2m를 넘는다. 죽을 고비를 여러 차례 넘기면서도 나무는 생명력을 잃지 않고 여전히 싱그럽다. 김 부회장의 지극정성이 만들어낸 결과다. 마침내 나무는 지난 2004년에 경상북도기념물 제147호로 지정됐다. 옛것을 지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스러져가는 옛것을 지키기 위해서 가진 것을 선선히 내놓는 헌신적인 노력만이 우리의 오래된 가치와 정신을 지켜낼 수 있다. 아늑한 자연마을에서 옛것을 지키기 위해 애쓰는 사람의 향기를 머금고 낙화담 소나무는 앞으로도 오랫동안 우리 앞에 펼쳐질 1000년의 역사를 다시 쓸 것이다. 글 사진 상주 고규홍 나무칼럼니스트 gohkh@solsup.com
  • [열린세상] 존재감과 행복한 노후/석영중 고려대 노문학과 교수

    [열린세상] 존재감과 행복한 노후/석영중 고려대 노문학과 교수

    어머니는 연세가 여든 여섯이다. 몇 년 전에 심장수술을 하셨고 여러 가지 약을 복용하고 계시지만 그래도 동년배 친구분들에 비하면 건강한 편이다.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일상생활을 할 수 있으며, 보청기 없이 대화가 가능하고, 갈비도 1인분 정도는 너끈히 소화하시며, 기억 등의 인지능력 역시 정상이다. 어머니의 노후생활은 그리 나빠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도 어머니는 지난 이십년간 끊임없이 불평을 해 오셨다. “우두커니 앉아 있기 싫다.”는 것이다. 그것은 “삭신이 쑤신다.”거나 “외롭다.”거나 아니면 “용돈이 모자란다.”는 상식적인 불평보다 훨씬 일관되게 지속되어 왔다. 생각해 보니 어머니는 언제나 무슨 일인가를 하셨다. 고령의 나이에도 손주를 돌보고 옛날 옷을 꺼내 고치고 하다못해 가구의 위치를 바꾸기라도 했다. 전혀 그럴 필요가 없는 상황인데도 요리를 하실 때도 있었다. 나는 어머니가 왜 그러시나 의아했다. 어머니 성격 탓이려니 했다. 편안하게 노후를 보내게 해드리고 싶었는데 매일매일 일을 하고 싶어하시는 어머니가 야속할 때도 많았다. 그러나 이제는 어머니의 불평이 존재감 상실의 두려움에서 나온 것이라는 것을 안다. “우두커니 앉아 있기 싫다.”는 것은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하고자 하는 소망의 다른 표현이다. “나 아직 죽지 않았다.”라는 전언의 다른 표현이다. 존재감이란 말은 요즘 우리사회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단어이다. 국어사전은 존재감을 사람이나 사물이 실재로 있다는 느낌이라고 정의하지만 통상 그것은 자아감이나 자존감과 동의어로 사용된다. 존재감이란 것은 사실상 인간 본성의 일부이다. 그 근원은 플라톤의 ‘국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여기서 소크라테스는 인간의 영혼을 구성하는 요소로서 그리스어의 티모스(thymos)를 언급한다. 혈기, 생명력, 원기, 기개, 등으로 번역되는 티모스를 사회심리학자들은 타인한테 인정받고 싶은 욕구의 근원이라 간주한다. 인간은 물질에 대한 욕구와 동일한 정도로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를 갖는다. 노인들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아니 노인들이야말로 존재감에 가장 민감한 연령층이라 할 수 있다. 건강도, 경제적 여유도 예전만 못하기 때문에 오히려 더욱 존재감에 신경을 쓴다. 흔히 노인들을 괴롭히는 세 가지 요인으로 질병, 빈곤, 고독을 손꼽는다. 그동안 고령화사회와 관련하여 쏟아져 나온 무수한 연구와 정책들 대부분이 노인 질병관리와 경제적 자립에 초점이 맞추어진 것도 이 점을 반영한다. 그러나 건강과 돈은 행복의 수동적인 조건이다. 수동적인 조건들이 충족된다 하더라도 능동적인 조건, 즉 존재감 확보가 충족되지 않으면 행복한 노후는 완성되기 어렵다. 노년층이 존재감을 확보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수단은 일자리다. 할 일이 있는 노인은 행복하다. 자신이 무언가에 필요한 존재라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도 노인들의 행복감은 상당히 높아질 것이다. 사실 노인 고용은 그동안 끊임없이 논의되어온 문제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노인 고용 증진과 고령자친화형 일자리 창출, 노인 창업기회 확대 등이 논의될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반드시 유념해야 할 것은 노인 고용이 소외계층에 대한 선심성 일자리 제공처럼 진행되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동기 부여와 목표 설정, 적절한 보상과 성취감 같은 것들이 노인일자리의 수와 종류 못지않게 중요한 변수로 고려되어야 한다. 노인들의 재취업은 평생 쌓아온 지식과 경험을 사회 발전에 기여하는 기회로 인식되어야 한다. 그래야 존재감과 행복감이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한다. 2010년 기준 우리나라 65세 이상 고령자는 542만 5000명이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1 고령자 통계’에 따르면 55세부터 79세까지의 노인 중 일하고 싶다고 응답한 사람은 거의 60%에 육박한다. 이 수치는 앞으로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이제 각계의 지혜를 모아 고령자들이 경제적으로 자립도 하고 존재감도 유지할 수 있는 새로운 고령자 취업문화에 관해 고민해봐야 할 것이다. 10월은 경로의 달이다. 노인을 존경하고 우대하는 방법 중 가장 으뜸인 것은 아마도 그의 존재감을 인정해주는 것이리라.
  • 난삽한 서정시 반성 간결한 극서정시 지향

    난삽한 서정시 반성 간결한 극서정시 지향

    ‘운조가 걸어간다/ 운조가 걸어간다/ 푸른 지평선 황토치마 벌리고/ 한 모랭이 지나 화살표 사이로/ 두 모랭이 지나 화살표 사이로/ 운조가 걸어간다/ 마음 떨며 운조가 걸어간다’(강은교 시인의 ‘운조’ 중에서) 1968년 등단해 43년이 지난 오늘에도 여전히 예민한 감수성과 남다른 매혹을 발휘하는 시를 쓰는 강은교(66) 시인이 6년 만에 12번째 시집 ‘네가 떠난 후에 너를 얻었다’(서정시학 펴냄)를 내놓았다. 서정시학은 요즘 유행하는 소통불능의 장황하고 난삽한 서정시를 반성하고,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고자 짧고 간결한 극서정시(極抒情詩)를 지향하는 시집을 발표하고 있다. 강 시인의 시집은 이기철(68) 시인의 ‘잎, 잎, 잎’, 이선영(47) 시인의 ‘하우부리 쇠똥구리’와 함께 발간됐다. 시집 ‘허무집’을 통해 절망적 시대에 대한 인간적 위기의식을 표현했던 강 시인은 초기에 버려진 딸이 병든 아버지를 구한다는 ‘바리데기 노래’를 불렀다. 바리데기에 이어 최근 시인이 제목이나 후렴구에서 자주 사용하는 ‘운조’는 조선시대 한 인물의 이름을 아주 조금 바꾼 것이다. 최동호 고려대 교수는 “‘운조’란 시어는 역사적으로 명멸한 수많은 여성의 대명사이며 오늘도 희생하며 사는 여성들의 이름”이라며 “이 시대 여성의 이름이자 천 년, 이천 년 전 여성의 이름이기도 한 ‘운조’란 조어를 빌려 여성의 삶 또는 인간의 존재적 의미를 규명해 보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강 시인은 “시는 유행어와는 다른 뭔가가 있어야 한다.”며 “구태여 시를 읽을 필요가 없고 시인이 따로 있는 게 아닌 요즘, 시인이란 아름다움을 꺼내고 세계를 긍정하는 사람이 아닌가 한다.”고 말했다. 첫 시집을 낼 때는 부정적이었다는 시인은 서울에서 부산으로 떠나 40여년간 바다 또는 절을 바라보며 살았다. 이제 시인은 “이 시대의 시인은 위로에서 끝나지 않고 감동을 통해 뭔가를 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졸업식을 위해 쓴 시 ‘이제 일어서라, 과나코를 찾아서’에서 시인은 열정적으로 사랑과 희망을 노래한다. 과나코는 남미에서 가장 강력한 생명력을 지닌 당나귀와 유사한 동물이다. ‘잠시 잘못 가도 좋다, 잘못 가면 다시 가라, 인생은 낙타의 발굽, 낙타의 등 같은 저 언덕들/가라, 과나코를 찾아서 가라’고 말하는 시인은 ‘오, 과나코 네가 일어서지 않으면 누가 네 속에서 일어설 것인가’라고 언어의 주술을 건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계좌 전환의 날’ 주도한 크리스천 페이스북 인터뷰

    ‘계좌 전환의 날’ 주도한 크리스천 페이스북 인터뷰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작은 갤러리를 운영하던 20대 여성이 대형은행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소비자들에게 비용을 전가하는 대형은행의 계좌를 없애고 중소은행이나 신용조합으로 돈을 이체하자는 ‘계좌 전환의 날’을 주도한 크리스틴 크리스천(27)이다. 지난 5일 그녀가 개설한 ‘계좌 전환의 날’ 페이스북 페이지에는 월가 시위대를 포함, 12일 현재 2만 6000명 이상이 동참 의사를 밝혔다. 서울신문이 페이스북 쪽지를 통해 단독 인터뷰한 크리스천은 “구제금융을 수혈받은 대형은행들이 빈곤층을 괴롭히는 데 분노했다.”고 밝혔다. →‘계좌 전환의 날’을 시작한 계기는. -수년간 미국 최대 은행 뱅크오브아메리카(BoA)의 높은 수수료와 형편없는 서비스에 좌절해 왔다. 최근 BoA는 계좌에 2만 달러(약 2300만원) 이하를 보유하고 있는 모든 고객들에게 직불카드 수수료를 매달 부과하겠다고 선포했다. 내가 맞서야 할 때라는 걸 깨달았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정부의 구제금융을 받고 살아난 대형은행들이 빈곤층과 노동자 계층을 타깃으로 괴롭히고 있다. →1605년 영국 국왕 제임스 1세를 살해하려던 가이 포크스가 체포된 11월 5일을 ‘D데이’로 택한 까닭은. -영화 ‘브이 포 벤데타’(2005)가 나온 이후 미국인들은 가이 포크스를 영웅으로 여기고 있다. 나는 ‘사람들의, 사람들을 위한 평화로운 운동’을 통해 11월 5일이라는 날짜와 가이 포크스의 가면에 새로운 생명력과 의미를 부여하고 싶었다. →이번 캠페인이 대형은행에 던지는 메시지는. -은행뿐 아니라 모든 기업을 향한 메시지다. 오늘날 전 세계 사람들은 ‘새로운 시대’에 눈뜨고 있다. 우리가 기업의 편에 서고 기업들의 횡포에 당하던 시대는 끝났다. 우리 돈을 원한다면 먼저 존중하는 마음으로 소비자와 고객들을 대하고 윤리적인 기업 관행을 만들어 가야 한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번 행동이 또 다른 경제위기나 금융시스템의 붕괴를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하는데. -내가 내 나라 경제를 망하게 하려고 한다니, 그건 어리석은 생각이다. 이 캠페인이 제2의 금융위기를 초래할 것이라고 두려워하는 이들은 2008년 금융위기의 원인이 뭔지, 우리가 왜 이런 어려움에 처했는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15일 한국에서도 시위가 열린다. 시위에 참여하는 한국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내 마음도 한국의 시위대와 함께할 것이다. “증오는 증오를 몰아낼 수 없다. 사랑만이 가능하다.”던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메시지를 기억해 달라. →‘계좌 전환의 날’과 ‘월가 점령 시위’가 미국을 어떤 방향으로 이끌고 갈까. 미국식 자본주의가 변할까. -이 캠페인은 반역도 아니고 무정부주의 운동이나 테러도 아니다. 비윤리적 관행으로 운영되는 기업에 대한 불매운동(보이콧)이다.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문화마당] 아이유와 대학 특례 입학/강태규 대중문화평론가

    [문화마당] 아이유와 대학 특례 입학/강태규 대중문화평론가

    고3 수험생에게 대학 합격보다 더 큰 선물이 있을까. 본인에게도, 뒷바라지를 해온 부모들에게도 그보다 더 기쁜 일이 어디 있으랴. 그런데 이를 마다한 수험생이 있다. 인기 가수 아이유가 바로 그다. 올해 연예인 수험생 중 연예관련학과가 있는 대학의 스카우트 표적 1순위가 그였다. 몇몇 대학은 아이유 모시기에 공을 들였다. 며칠 전 아이유는 연예 특례 입학을 정중히 거절했다. 그 이유가 눈길을 끈다. ‘대학 진학의 필요성을 아직 느끼지 못했다.’였다. 또한 가수로서 해야 할 일이 남아 있고, 대학에 진학해서는 그것을 함께 병행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도 했다. 대학생이란 ‘타이틀’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의지다. 1993년 5월생. 만 18세. 아이유의 그 같은 결단은 한낱 가십성 뉴스에서 그칠 일이 아니다. 시사 하는 바가 크다. 때가 되면 으레 해야 할 일들을 거부한다는 게 생각처럼 쉽지 않다. 더군다나 우리의 교육 정서는 학업에 있어서만큼 예외가 주어지지 않는다. 이를 감안한다면, 그 같은 결단은 주목 받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아이유였기에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아이유가 방송사의 가요프로그램 녹화 무대에서 한껏 노래 솜씨를 발휘하고 내려와서 첫 번째로 하는 일은 무대복을 벗고 화장을 지운 뒤 교복을 입는 것이다. 스태프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 그녀는 ‘스스로’ 고등학생의 본분으로 돌아간다. 진학 포기라는 용단을 내리긴 했지만 음악 이론과 뮤지션으로서의 성장을 위해 때가 되면 공부를 다시 하겠다는 그녀의 다짐은 우리 가요계의 미래를 엿보게 하는 대목이다. 우리 사회는 그동안 연예인이 되면 대학 진학은 ‘옵션’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많은 청소년들이 인기도 누리고 대학 진학 특례도 누리는 모습을 보면서 연예인을 선망하게 된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매년 입시철마다 나오는 문제지만, 연예인 대학 특례입학이 비판의 도마 위에 오른다. 연극·영화학과와 음악 관련 학과 등에 진학하려는 수험생은 한 해 1만명 내외다. 이상 과열이랄 수도 있는 이런 인기는 연예인이 얼마나 선망의 대상인가를 보여주는 사례다. 연예인 특례입학을 한 학생들 가운데는 정말 예술적 기질이 넘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기획사의 홍보력 덕에 TV에 몇번 나왔다는 것만으로 혜택을 보는 사람도 있다. 특례입학생 중에는 출석 여부와 관계없이 학교 책임 아래 졸업까지 보장받는 사람도 있다 하니 더더욱 놀랍다. 연예 관련 학과가 인기를 끌다 보니 지난 1990년대 중반 이후 관련 학과를 만드는 대학들이 줄을 이었다. 이들은 체계적이고 내실 있는 교육시스템을 통해 인재를 길러야 하지만 인기 학과임을 자랑하기 위해 기존 연예인을 받아들여 학교 홍보에 주력하는 방식을 쓴다. 100년을 내다봐야 한다는 대학 행정의 우울한 단면이다. 교육 행정은 상술이 아니다. 진중하고도 진중해야 한다. ‘출석’이 중요한 것은 학문에서 정보 교류를 하는 법, 정기 공연 등을 통한 통합적 메커니즘을 배우기 때문이다. 이런 진지한 협동작업을 통해 예술을 알아가는 과정 자체가 참된 예술인으로 성장하는 일이다. 이런 과정 없이 오랜 생명력을 유지하기는 힘들다. 연예 관련 학과에 대한 입시준비도 그야말로 벼락치기다. 성적이 고만고만하니까 실기 비중이 큰 연예 관련 학과로 급히 눈을 돌린다. 중·고교 시절 연극 한 편 보지 않고, 시나리오나 희곡 하나 진지하게 읽어본 적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니 ‘기본’이라 할 것도 없을 정도로 민망한 수준이다. 이는 실기 현장에서 곧장 드러난다. 겉멋만 잔뜩 들어간, 유행어만 남발하는, 깊이와 느낌이 전혀 없는, 그런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올해도 연예 관련 학과의 경쟁률은 치솟을 전망이다. 즉흥적이고 근시안적 대학행정과 준비 없이 오직 스타만을 꿈꾸는 수험생들. 우리 교육이 이들을 벼랑 끝으로 몰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묻고 싶다. 입학 자격을 갖추고도 대학 진학을 하지 않는 가수 아이유의 결단을 이제는 되짚어 볼 때다.
  • 사람과 뒹굴고 노는 5m 초대형 악어 ‘화제’

    몸무게가 400kg 넘게 나가는 대형 악어와 둘도 없는 친구처럼 지내는 남자가 언론에 소개돼 화제다. 중미 코스타리카에 시키레스라는 곳에 살고 있는 길베르토 쉐덴(54)이 바로 그 주인공. 이름보다 치토라는 별명으로 불러주는 게 편하다는 그는 시골에서 평생을 보낸 평범한 남자다. 보통사람인 치토지만 그에겐 세상에서 둘도 없는 친구가 있다. 바로 악어 ‘포초’다. 포초는 이름이 있을 리 없는 악어에게 치토가 직접 지어준 이름이다. 포초는 평범한 악어가 아니다. 공포를 자아낼 정도로 엄청나게 덩치를 가진 자이언트 악어다. 포초의 몸길이는 장장 5m, 무게는 445kg나 나간다. 입에는 날카로운 필살무기 이빨이 70개나 촘촘히 박혀 있다. 둘은 매일 호수에서 엉켜 뒹굴며 논다. 누가 봐도 보통 절친한 사이가 아니다. 치토가 지시를 하면 악어는 한쪽 눈을 찡긋하며 윙크까지 한다. 발을 달라면 발을 내밀고, 머리와 꼬리를 치켜들라고 하면 묘기까지 부린다. 치토의 몸 위에서 뒹굴며 애교를 피는 건 기본이다. 둘의 우정은 벌써 20년째다. 치토는 34살 때 악어 포초를 처음 만났다. 파리스미나라는 강에서 보트를 타던 치토가 총에 맞고 시름하는 포초를 발견했다. 포초는 한 농장에 들어가 가축을 훔쳐먹으려다 농장주가 쏜 총을 맞고 사경을 헤매던 상태였다. 치토는 가죽이 욕심 나 악어를 보트에 실었다. 하지만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던 악어는 질긴 생명력을 보였다. 좀처럼 숨이 끊어지지 않는 악어를 보면서 치토는 마음을 바꿨다. “치료를 해주자” 그래서 건강을 회복한 악어는 치토의 농장에 있는 호수에서 새롭게 삶의 둥지를 틀었다. 그리고 20년이 지나면서 둘은 최고의 친구가 됐다. 끈끈한 우정으로 얽힌 둘은 이제 멋진 콤비플레이어로 주말에는 돈까지 번다. “인간과 악어가 친구라더라” 소문이 나면서 관광객들이 몰려들기 시작한 것. 매년 1월 1일에는 치토가 포초의 입에 머리와 손을 집어넣는 특별공연을 한다. 인간과 친해진 악어는 코스타리카 당국의 특별보호 대상이다. 수의사 등이 수시로 포초의 건강을 체크한다. 포초의 나이는 현재 약 50살. 몸이 건강해 앞으로 30년은 더 살 수 있다는 게 당국의 설명이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해외통신원 손영식 voniss@naver.com
  • 심수봉 “난 10·26으로 장사한 가수 아니다”

    심수봉 “난 10·26으로 장사한 가수 아니다”

    “전쟁기념관에 답사를 가 객석을 바라보니 뜻밖에도 제가 군사재판을 받았던 육군본부가 보이더군요. 1979년 이후 3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제가 쓰러지지 않고 꿈꾸던 공연을 연다는 사실에 만감이 교차했다.” 가수 심수봉(56·본명 심민경)은 다음 달 8일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 평화의광장에서 ‘더 심수봉 심포니’란 제목으로 공연하는 소감을 이렇게 전했다. ●“음악인으로 살아나고 싶었다” 그는 22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의 한 카페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사람들은 내가 고통의 시간을 보낸 걸 모르고 10·26으로 장사한다고들 했다.”면서 “하지만 난 의도적으로 (그 사건을) 피하고 싶었고 음악인으로 살아나고 싶었다. 그렇게 이름난 가수가 아니란 걸 음악으로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공연에서 레퍼토리 전곡을 오케스트라로 편곡해 70인조 오케스트라와 무대를 꾸민다. 공연에 앞서 지난 19일 디지털 음반도 발표했다. “지금껏 제대로 가수 활동을 하지 못했다. 가수로 공연한 게 최근 5년의 일이고 영세한 공연만 했기에 이번처럼 준비되고 기획된 무대는 없었다. 내가 꿈꾸던 오케스트라와 원했던 공연을 하는 건 30여년 만에 처음이다. 1년 전 세시봉 가수들이 대중 음악 시장을 흔들고 사랑받는 걸 보고 중장년층을 대표하는 음악 시장이 부활하는 시점이라고 여겼다. 내 공연이 뒤를 이어 그 흐름을 가속화하길 바란다.” ●“운명은 바꿀 수 있다는 걸 알게 돼” 신곡 ‘나의 신부여’ 등 유난히 사랑에 천착하는 곡이 많은 까닭에 대해 그는 “아버지 없이 자랐기에 남편에게 사랑받고 싶었고 가정을 갖는 게 꿈이었다. 한번 이혼한 뒤 난 그런 복이 없는 사람이라고도 여겼다. 하지만 운명은 바꿀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소유하는 것보다 아가페적인 사랑이 진짜 사랑이다.”라고 말했다. 후배 가수들의 자극적인 가사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뱉었다. “10대들을 향한 아이돌 가수들의 노랫말이 무척 중요하다.”는 그는 “후배들이 생명력 있고 창의적인 가사를 쓰려면 컴퓨터 등 기계 앞에 오래 앉아 있지 말고 책을 읽고 좋은 음악을 많이 들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함께 작업해 보고 싶은 후배로는 YB의 윤도현과 KBS 2TV ‘불후의 명곡2’에서 1등을 한 효린(걸그룹 씨스타 멤버)을 꼽았다.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고전 인물로 다시 읽기] (24) ‘월든’의 헨리 데이비드 소로

    [고전 인물로 다시 읽기] (24) ‘월든’의 헨리 데이비드 소로

    법정 스님이 가장 사랑했다는 책, ‘월든’! 우리는 흔히 그 책을 나이 지긋한 은자의 기록으로 생각한다. 그러다 막상 책을 펼치면 도처에서 마주치는 신랄한 풍자와 전투적 문체 때문에 깜짝 놀란다. 그러나 이상할 건 없다. 우리가 ‘월든’에서 만나는 주인공은 높은 이상과 패기만만한 열정 이외는 아무것도 없었던 불과 스물여덟의 젊은 청년이기 때문이다. 고작 2년 동안의 숲 생활로 ‘월든’을 쓰고, 단 하루의 감옥 경험으로 ‘시민불복종’을 썼던 자. 그러나 단 두 권의 이 책들로 전 세계에 지울 수 없는 영향을 끼친 사람. 바로 헨리 데이비드 소로! (1817~1862) ●스물여덟살 청년의 독립선언 19세기 초 미국, 하느님의 영광은 자본주의의 영광이 되었다. 고작 인구 2000명 정도의 작은 마을에서조차 사람들은 “호수에서 헤엄을 치거나 그 물을 마시는 대신 호수의 물을 수도관으로 마을까지 끌어와 설거지를 할 생각”이나 하고, 철도는 “귀가 찢어질 듯 비명 소리를 마을 구석구석까지 울리고” 있었다. 또한 사람들은 각종 ‘비즈니스’를 통해 돈 벌기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그러나 인디언의 땅 콩코드에서 나고 자란 소로. 어디에서나 인디언의 기억과 전통이 배어 있는 부싯돌과 화살촉을 발견할 수 있던 평원에서 여섯 살부터 암소를 몰고 맨발로 쏘다닌 소로가 보기에 이 모든 것은 어리석거나 부질없는 일이었다. 왜 야생딸기를 직접 먹는 대신에 사람들은 딸기를 사기 위한 돈을 벌기 위해 아침부터 밤까지 동분서주해야 한다는 말인가. 부자가 되기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은 아무 것도 원하지 않는 것 아닐까. 그런 산발적 질문을 체계적 사유로, 나아가 글쓰기로 인도한 것은 소위 ‘초월주의 운동’을 통해 미국의 문예부흥을 이끈 19세기의 대표적인 지성, 랄프 에머슨이었다. 물론 누구에게나 직업이 필요하다. 소로 스스로도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직업’으로 자기 자신을 학교 교사, 가정교사, 측량기사, 정원사, 농부, 페인트공, 목수, 석공, 날품팔이 일꾼, 연필 제조업자, 사포 제조업자, 작가 또는 삼류시인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소로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나 자신을 가장 나은 상태로 유지하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야생자연에 대한 탐구를 유일한 ‘비즈니스’로, 산책을 유일한 ‘직업’으로 삼아야 한다. 그렇게 살자! 1845년 7월 4일, 미국 독립기념일. 모든 사람들이 축포와 성조기로 ‘미국이여 영원하라’를 외치며 찬양하던 그날, 소로는 신이나 돈 혹은 국가가 아니라 완전한 내면의 목소리를 듣고 따르기 위해 숲으로 간다. 스물여덟의 독립 선언! 그리고 ‘가장 단순한 삶’에 대한 위대한 실험이 시작된다. “내가 숲 속으로 들어간 이유는 깨어 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였다. 나는 삶이 아닌 삶을 살고 싶지 않았다. 삶은 정말로 소중하다. 그리고 가능한 한 체념하지 않는 삶을 살고 싶었다. 나는 깊이 있는 삶을 통해 삶의 정수를 모두 빨아들이고, 굵직한 낫질로 삶이 아닌 모든 것들을 짧게 베어버리고 삶을 극한으로 몰아세워, 최소한의 조건만 갖춘 강인한 스파르타식 삶을 살고 싶었다.” 그가 월든 숲에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자신의 거처인 오두막을 손수 짓는 일이었다. 대부분은 혼자, 가끔씩은 친구의 도움을 받아 다락방과 벽장이 갖춰져 있는 오두막을 완성했다. 오두막에 쓴 비용은 단돈 28달러. 그리고 침대 하나, 식탁 하나, 책상 하나, 의자 셋, 거울 하나, 냄비 하나, 프라이팬 하나, 국자 하나, 세숫대야 하나, 나이프와 포크 두벌, 접시 세 개, 컵 하나, 스푼 하나, 기름단지 하나, 당밀단지 하나와 램프가 그의 전 살림목록이었다. ●삶의 목적은 삶, 그 자체이다 그의 눈에 사람들이 필수품이라 생각하는 물건들은 언제나 “너무” 많았다. 그걸 위해 너무 많은 시간을 스스로 자신의 노예감독관이 되어 쉴 새 없이 일을 하고, 쉴 새 없이 물건을 구입하러 다닌다. 비교적 작은 시골마을 콩코드에서도 그랬다. 농부들이 집을 장만하게 되면 부유해지기보다 더 빈곤해진다. 그가 집의 주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집이 그의 주인이 된다. 오우, 가련한 하우스 푸어들! 삶의 모든 곁가지들을 들어내자. 할 수 있는 한 단순하게 살자. 먹는 것은 쌀과 거칠게 간 옥수수 가루와 감자가 전부였으나, 필요하다면 숲에서 잘 익은 월귤을 따서 먹을 수 있었다. 다소 거칠지만 실용적인 옷을 입고 살면 입는 데는 거의 돈이 들지 않았다. 살고 있는 집은 어찌나 단출한지 집안 청소를 위해서는 모든 가구를 밖에 내놓고 오두막에 물을 뿌려 박박 닦은 후, 햇볕과 바람에 집을 말리기만 하면 청소 끝이었다. 그리고 산책과 노동! 매일 아침 숲을 산책하고 모든 관목과 야생 열매와 새와 동물들, 그리고 호수의 변화를 관찰했다. 그리고 땅을 갈아 콩, 감자를 심고 가꿨다. 첫해의 수익은 고작 8달러뿐이었지만 상관없었다. 돈이 더 필요하면 그때마다 마을에서 날품을 팔면 그뿐이었다. 대신 더 많은 시간, 더 많은 느낌, 더 많은 감정, 더 많은 만족감을 얻었다. 점점 더 생활의 달인이 되어가는 소로. 그는 걷고, 뛰고, 수영하고, 배를 젓는 데 전문가였고, 거리와 높이를 발과 눈으로 정확히 측정할 수 있었으며, 무게를 손으로 정확히 달 수 있었다. 심지어 커다란 통 속에 있는 연필을 한 번에 열두 개씩 꼬박꼬박 집어낼 수 있을 정도였다. 척도-되기! 동시에 점점 더 신비해지는 소로. 그는 어떤 사냥개보다도 더 냄새를 잘 맡을 수 있었고, 인디언처럼 땅에 귀를 대지 않고서도 먼 곳의 희미한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부시맨-되기! 이제 숲 속의 오두막은 그의 거처일 뿐 아니라 숲 속의 모든 살아 있는 생명체의 거처가 된다. 두 해 후 소로는 월든을 떠난다. 물론 오두막에서의 삶은 자족적이고 충만하였다. 그러나 소로에게 오두막은 마치 외투나 모자 같은 것이었다. 언제나 입을 수도 있고 벗을 수도 있는 것이었다. 그가 진정으로 원한 것은 ‘자연’ 그 자체가 아니라 ‘자연스러운 삶’이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삶이 때에 맞춰 무르익는 것! 완전히 무르익은 곡식이 열매를 맺고, 완전히 자란 나무의 열매가 떨어지듯, 그렇게 자신의 삶의 완벽한 자연스러움을 얻는 것. 그것이 소로가 원하는 절대자유, 어떤 공리적 목적도 없는 일체무위의 삶이었다. 소로는 집으로 돌아온다. 자기가 머무는 곳이 자연이 되길 바라면서. ●나는 정부의 통치를 거부한다 1846년 미국은 멕시코 전쟁을 통해 단 1500만 달러로 텍사스, 뉴멕시코, 캘리포니아를 양도받았다. 많은 미국인들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이 전쟁을 지지하였다. 물론 대부분이 노예제도 지지자였다. 소로는 다른 많은 당대의 개혁가들처럼 이런 상황을 참을 수 없었다. 자신의 물질적 이익을 위해 타인의 자유와 존엄을 짓밟는 이런 전쟁과 노예제도는 결단코 받아들일 수 없는 일 아닌가? 하지만 말로 하는 반대 이상의 것이 필요했다. 소로의 선택은? 세금납부 거부! 소로는 6년간 인두세를 내지 않았고 결국 체포되고 투옥된다. 단 하루 동안! (소로의 동의 없이 가족이 세금을 납부했기 때문에 소로는 하루만에 풀려난다) 그리고 감옥에서 더 절실히 깨닫는다. 감옥 안에는 국가가 없으며 감옥은 결코 자유로운 정신을 가둘 수 없다고. 소로는 면회를 온 에머슨이 “자네, 왜 그곳에 있는가?”라고 묻자 “선생님은 왜 밖에 계십니까?”라고 응수한다. 그리고 그는 그 하루 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몇 년 후 ‘시민불복종’을 집필한다. 그가 생각하기에 국가란 자유롭고 독립적인 개인들이 상호 공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만든 ‘편의적인 체제’이다. 그런데 그런 편의적인 체제가 갑자기 ‘다수결’의 원칙을 내세워 부당한 질서에 모두를 굴복시키려 한다면? 그때 ‘저항’은 의무이다. 생명을 걸고서라도 그 부당한 국가의 작동을 멈추게 해야 한다. 누가? 바로 내가! 1859년 노예해방론자인 존 브라운이 노예를 도망시키다가 체포되어 교수형에 직면했을 때 존 브라운을 옹호하는 첫 번째 공개강연을 한 것도 소로였다. 아마 소로는 존 브라운을 실질적으로 구원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가 소유한 생명력과 힘을 자신의 의지대로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어떤 불이익에도 불구하고 불의에 가담하지 않아야 한다는 게 소로의 생각이었다. 월든을 떠나 온 후 소로는 주로 글쓰기와 강연을 하면서 살았다. 물론 생계를 위한 측량기사의 일을 꾸준히 하면서 말이다. 살아 생전, 두 권의 책이 출판되었으나 자비 출판한 첫 책 ‘콩코드 강과 메리맥 강에서의 일주일’은 초판 1000권 중 700권이 반납되었다. ‘월든’ 역시 그가 살았을 때는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여전히 소로는 간결하고 평화롭게 일상을 살았다. 너무 일찍 찾아온 병마 때문에 마흔여섯의 나이에 세상을 떴지만 “회한은 없었다.” 어떤 것들은 끝마치는 것이 당연히 더 좋은 것이기 때문이다. 12년간 주로 편지로 소로와 교류했던 신학자 해리슨 블레이크는 소로가 죽은 지 30년 가까이 지난 후에 이렇게 회상한다. “나는 때때로 그의 편지를 다시 읽어보곤 한다. 그의 글을 거듭 읽으면서 새로운 의미를 찾아내기도 하고, 전보다 더 강력한 가르침을 받기도 한다. 따라서 어떤 의미에서 그것들은 여전히 개봉되지 않았고, 아직 나에게 완전히 도달하지 못했으며, 어쩌면 내가 죽기 전까지는 도착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그 서신들은 거기에 담긴 진정한 가르침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사람에게 발송된 것이다.” 과연 우리는 소로의 편지를 받을 수 있을까. 우리의 부박한 일상 속에서 ‘월든’을 발견할 수 있을까. 각자 물을 일이다. 이희경 문탁네트워크 연구원
  • ‘쓰촨성 대지진’ 영웅돼지, 복제 성공했다

    2008년 중국을 강타한 쓰촨성 대지진에서 극적으로 구조되며 전 세계적인 유명세를 얻은 수퇘지가 최근 유전자 복제로 새끼 6마리를 얻었다고 현지 언론매체들이 전했다. 이 돼지의 유전자 복제를 실시했던 광저우 선전의 과학자들은 지난 몇 주에 걸쳐 새끼돼지 6마리를 탄생시켰다고 밝혔다. 수퇘지는 지진이 발생하기 수달 전 거세된 상태였기 때문에 자연적으로 새끼를 얻는 건 불가능했다. 대지진 당시 이 돼지는 무너진 가옥 잔해 속에서 무려 36일을 빗물을 마시고 숯을 씹어 먹으며 버텼다. 지진이 일어났던 날이 이 돼지가 도축되기로 돼 있던 날이었지만, 이 돼지는 강인한 생명력으로 살아남았고 중국국민들의 성원으로 도축되지도 않았다. 오히려 쓰촨성 대지진의 영웅으로 불리며 이 마을의 주민들은 돼지가 구조된 6월 17일을 돼지가 다시 태어난 생일로 정하고 매년 큰 생일잔치를 열어주고 있다. 또 과학자들은 의미 있는 돼지의 자손을 남기기 위한 목적으로 유전자 복제를 실시했다. 연구를 이끈 두 유타오 박사는 “영웅 돼지가 불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일을 또 해냈다.”고 만족해했다. 복제돼지들은 눈 사이에 있는 점들과 큰 몸집 등 아비돼지를 그대로 빼닮은 것으로 전해졌다. 새끼들은 박물관과 유전자 연구소로 보내질 계획이다. 강경윤기자 newsluv@seoul.co.kr
  • 죽음의 질주?…악어 머리 올라탄 거북 포착

    ▶원문 및 사진 보러가기 악어 머리부위에 올라탄 겁없는 거북 한마리가 카메라에 포착돼 놀라움을 주고 있다. 8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메트로는 미국 신시내티 동물원에서 한울타리에 사는 악어와 거북의 신기한 일상을 포착한 사진 한 장을 소개했다. 공개된 사진을 보면 이 거북은 자신의 몸보다 대여섯 배나 큰 약 1.5m짜리 악어의 머리와 목 부위를 밟고 고개를 곳곳이 쳐들고 있다. 마치 이 거북은 자신의 목표에 더 일찍 도착할 수 있다면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듯한 모습이다. 이후 이 거북은 악어의 간식이 됐을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동물원 관계자들은 이들 악어와 거북의 모습을 보고 지극히 정상적이라고 말한다. 즉, 이들은 이미 오랫동안 이 울타리 안에서 함께 살아왔던 것. 또한 해당 악어는 몸길이 약 1.5~2m의 소형악어로서 중국 양쯔강에 분포하는 멸종위기의 양쯔강악어다. 이들 악어는 성질이 온순하며 못이나 호수에서 도마뱀, 물고기, 쥐, 곤충 등 작은 동물을 잡아먹는다. 이에 반해 겁 없이 악어 머리 위에 올라탄 거북은 머리 옆 붉은 반점이 특징인 붉은귀거북이다. 이들 거북은 생명력이 강하고 식욕이 왕성해 생태계를 파괴하는 주범으로 알려져 우리나라에서는 자연방생이 금지돼 있다. 한편 이 사진은 미국 오하이오주에 사는 야생동물 전문 사진작가 코니 렘펄이 찍은 사진으로, 그는 호기심을 자극하는 동물들의 모습을 위주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윤태희기자 th20022@seoul.co.kr
  • 김달진문학상 수상자

    김달진문학상 수상자

    제2회 창원KC국제시문학상 수상자로 클로드 무샤르 프랑스 파리8대학 명예교수가 선정됐다. 국제시문학상은 한국의 대표적인 문학상으로 권위를 인정받는 김달진문학상이 또 한번의 변화를 위해 지난해 새로 도입한 수상 부문이다. 첫 회 수상자는 중국의 망명 시인 베이다오(北島). 올해는 ‘보편성’에 무게를 두고 무샤르 교수를 뽑았다. 그는 이창동 감독의 영화 ‘시’에 나오는 시를 공동 번역한 주인공이다. 프랑스 칸 영화제 출품을 위해 영화 서평을 쓰기도 했으며 이상·기형도·김혜순 시인의 시도 번역한 지한파다. 수상을 위해 내한한 무샤르 교수는 2일 기자들과 만나 “시가 사라져버리는 순간에 우리 인간들이 숨 쉬는 공기는 부족해지고 위협당할 것”이라며 “수상의 기쁨은 한국 시가 갖는 예외적인 생명력에 대한 나의 찬사에서 오는 것”이라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이어 “인간의 언어로 된 시는 한 사람에게서 다른 사람에게로 건너가기 위해 만들어진다. 그래서 시는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번역되기 위해 있으며 조심스럽고 은밀하게 모든 국경을 뛰어넘을 것을 요구한다.”며 앞으로 한국 시를 열심히 번역, 소개하겠다고 의지를 다졌다. 제7회 김달진창원문학상의 수상자는 ‘말할 수 없는 애인’의 김이듬씨, 제6회 김달진문학상 젊은시인상은 ‘눈의 심장을 받았네’의 길상호씨, 젊은평론가상 수상자는 ‘수런거리는 시, 분기하는 비평들’의 김문주씨로 결정됐다. 지난 6월 먼저 발표된 제22회 김달진문학상 수상자는 ‘지독한 서정시인’ 오세영(69) 서울대 명예교수였다. 오 교수는 최근 서울신문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나는 시의 영원성과 감동을 추구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자본주의 가치관에 물든 오늘의 사람들은 우리 시대의 시에 무슨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느냐고 비웃는 것 같다.”며 “순진하고 미련하고 낡은 시인일지 모르지만, 언제인가 잃어버린 문학의 그 영원성과 감동이 다시 돌아오는 날이 있으리라고 우직하게 믿는다.”고 말했다. 평론 부문에는 최현식 경상대 국문과 교수가 선정됐다. 심사를 맡은 김윤식 서울대 명예교수는 최씨의 평론집 ‘시는 매일매일’에 대해 “제법실상(모든 존재의 참다운 모습)에 빠져들지 않을 만큼 지적 견제력이 발휘되었다.”고 평했다. 이숭원 서울여대 교수는 “최현식은 시를 논하기 이전에 시를 즐기고 사랑한다. 즐기고 사랑하는 마음을 논리적인 언술로 전달해야 한다는 것이 비평의 고민거리”라며 “좋은 비평이 거쳐야 할 즐거운 난관인 그 소슬한 외나무다리를 건너 신경지를 개척하기 바란다.”고 기대했다. 시상은 김달진 시인의 생가가 있는 경남 창원과 인근 도시 진해에서 3~4일 열리는 김달진 문학제에서 이뤄진다. 3일 진해구민회관에서는 ‘음유시인’ 윤형주의 무료 공연도 열린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용어 클릭] ●김달진문학상 시인이며 한학자인 월하(月下) 김달진(1907∼1989)을 기리고자 1990년에 제정된 상이다. 시사랑문화인협의회(회장 최동호 고려대 교수)가 주최하고 창원시와 서울신문사가 후원한다. 인간의 고유한 얼에 대한 믿음에 바탕을 둔 정신주의를 성공적으로 구현한 시인과 평론가 등에게 주어진다.
  • [공연리뷰] 브로드웨이서 직접 본 화제작 ‘워 호스’

    [공연리뷰] 브로드웨이서 직접 본 화제작 ‘워 호스’

    요즘 미국 브로드웨이에선 웬만한 배우들도 말(馬) 앞에서 고개를 숙인다. 말과 인간의 우정을 그린 영국 연극 ‘워 호스’(War Horse·군마) 때문이다. ‘워 호스’는 2007년 영국에서 초연돼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여세를 몰아 올 4월 브로드웨이에 상륙했다. 공연 두 달 만에 작품상 등 올해 토니상 5개 부문을 석권했다. 명성에 걸맞게 표 구하는 일이 녹록지 않았다. 두세 달 전에 예매하지 않으면 최소 40달러 이상의 웃돈을 얹어줘야 한다고 했다. 운 좋게 표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말과 인간의 우정 감동적으로… 영국서 초연 ‘워 호스’는 제1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소년 앨버트와 그의 애마인 조이에 관한 이야기다. 앨버트의 아버지는 대출받은 돈으로 술김에 좋은 망아지 한 마리를 사온다. 앨버트는 말에게 ‘조이’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정성껏 보살핀다. 하지만 갑자기 찾아온 전쟁으로 모든 것이 변하고 만다. 조이가 군마로 기병대에 팔려간 것. 조이는 전쟁의 공포 속에서도 고향에 있는 앨버트를 그리워하며 다시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17살의 앨버트 또한 조이를 찾기 위해 나이를 속여가며 군대에 지원한다. 그 사이 조이는 프랑스군과 독일군 양쪽 진영에서 사선을 넘나들며 참혹함을 경험한다. 마침내 둘은 천신만고 끝에 재회하게 되는데…. ‘워 호스’의 성공 요인은 소문대로 ▲감동적인 스토리 ▲말이 무대 위에 있는 듯한 사실주의적 말 모형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에 있었다. 극 중 조이에게 생명력을 불어넣는 것은 세 명의 배우들이다. 이들은 뼈대 골격과 최소한의 피부로 이뤄진 ‘모형말’의 머리, 가슴과 앞발, 뒷발에 들어가 일일이 뼈대와 관절을 움직인다. 특히 가죽으로 만들어진 조이의 귀가 배우들에 의해 움찔할 때마다 관객들은 조이가 실제 말일지도 모른다는 착각에 휩싸인다. 한 마리의 말이 무대 위에 완벽하게 탄생한 셈. ●국내 수입 추진중… 스필버그가 영화로도 제작 배우들의 이러한 ‘아날로그적’ 노력은 관객으로 하여금 말이 느끼는 기쁨과 고통, 조이와 앨버트의 눈물 나는 우정을 ‘실제 현실’로 받아들이게 한다. 커튼콜 때 앨버트보다 조이의 모형 배우 세 명에게 더 뜨거운 박수갈채가 쏟아진 것은 그래서다. 안타깝게도 국내에는 이 작품이 아직 소개되지 않았다. CJ엔터테인먼트가 수입을 추진 중이라고 하니 기대를 걸어볼 만도 하다. 공연이 무산되더라도 세계적인 영화감독 스티븐 스필버그가 ‘워 호스’를 본 뒤 감동을 받아 영화 제작을 진행 중이니 너무 낙담할 일은 아니다. 뉴욕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 지금 안방극장은 ‘로코퀸’ 전쟁

    지금 안방극장은 ‘로코퀸’ 전쟁

    요즘 안방극장은 ‘로코퀸’(로맨틱 코미디의 여왕) 전쟁이 한창이다. 저마다 털털하고 현실적인 캐릭터를 앞세운 여배우들의 자존심 대결이 팽팽하게 펼쳐지고 있다. 코미디와 멜로를 오가는 로맨틱 코미디는 상당한 연기력과 내공을 필요로 하는 장르다. 때문에 극의 중심인 여주인공이 매력을 잃지 않으면서 시청자들의 공감을 얻는 것이 중요하다. 요즘 드라마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로코퀸’ 3인방을 만났다. 로맨틱 코미디를 이야기할 때 이 배우를 빼놓을 수 없다. 바로 SBS ‘여인의 향기’의 김선아다. 2005년 MBC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에서 예쁘지도 날씬하지도 않지만, 귀엽고 사랑스러운 파티셰를 연기해 신드롬을 일으켰던 그는 이번 드라마에서 한층 업그레이드된 ‘삼순이’로 식지 않은 인기를 과시하고 있다. ‘김삼순’의 성공 이후 자연스럽고 코믹한 노처녀 연기는 김선아의 트레이드 마크가 됐으나, 그에겐 넘어야 할 또 다른 벽으로 작용했다. 비슷한 색깔의 연기를 선보였던 후속작 ‘밤이면 밤마다’(2008)의 흥행 성적이 그다지 좋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새로운 드라마에 꾸준히 출연하며 자신의 연기 스펙트럼을 조금씩 넓혔다. 김선아는 10급 공무원이 최연소 여성 시장이 되는 ‘시티홀’(2009)에서 여주인공 신미래 역을 맡아 코미디뿐만 아니라 정극 연기에 대한 자신감을 높였다. 그의 연기 내공이 빛을 발하고 있는 드라마가 바로 ‘여인의 향기’다. 그가 연기하는 이연재는 그동안 맡았던 인물 중 가장 극적이다. 학력이나 외모가 평균치를 살짝 밑돈다는 설정은 비슷하지만, 담낭암 말기 판정을 받고 6개월 시한부 인생을 살게 된 인물의 캐릭터는 기본적으로 비극을 밑바닥에 깔고 시작할 수밖에 없다. 때문에 생애 마지막으로 선택한 강지욱(이동욱)과의 로맨스는 더욱 애절하게 다가온다. 김선아는 그런 연재를 입체적이고 현실감 있게 표현해 재벌 2세와의 사랑 놀음으로 끝날 뻔한 드라마에 생명력을 불어넣고 있다. 살이 너무 빠져 홀쭉해진 ‘삼순이’가 다소 낯설기는 하지만, 그가 ‘로코퀸’뿐만 아니라 ‘멜로퀸’으로 진화하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은 꽤나 흥미롭다. 김선아의 독주에 제동을 걸고 나온 이가 바로 최강희다. 현재 SBS 수목 드라마 ‘보스를 지켜라’에서 당찬 여비서 노은설 역을 맡아 열연을 펼치며 차세대 ‘로코퀸’의 자리를 노리고 있다. 최강희의 가장 큰 장점은 과장이 없고 솔직하고 자연스러운 연기다. 그의 이런 매력은 작품 속 캐릭터와 어울려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극중 은설은 돈도 없고 배경도 없는 삼류대 출신으로 이 시대의 88만원 세대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하지만 오기와 깡으로 똘똘 뭉친 그에겐 언제나 씩씩하고 밝은 기운이 넘친다. 최강희는 드라마 ‘달콤한 나의 도시’와 영화 ‘달콤살벌한 연인’ 등 로맨틱 코미디 장르에 자주 얼굴을 비췄다. 하지만 엉뚱한 ‘4차원’ 이미지가 강해 대중과 다소 거리감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는 이번 작품에서 그런 간극을 줄이고 인기의 폭을 넓히고 있다. 극 초반 ‘발산동 노전설’로 불리는 은설의 캐릭터로 과격한 액션 연기도 서슴지 않았던 최강희는 중반을 넘어서며 두 남자 주인공 차지헌(지성)과 차무헌(김재중)의 사랑 고백을 받고 목하 고민 중이다. 하지만 허황된 신데렐라의 꿈을 덥석 좇지 않고, 재벌가 사모님 앞에서도 기죽지 않고 당당한 모습을 보이는 ‘노은설식 사랑 방정식’에 관심이 쏠린다. 한류스타 최지우도 그동안의 청순가련형 이미지를 벗고 ‘로코퀸’ 전쟁에 뛰어들었다. 지난 24일 처음 방송한 MBC 수목 드라마 ‘지고는 못살아’로 안방극장에 컴백한 그는 털털하면서 터프한 주부로 변신해 눈길을 끌었다. 극중 이혼 위기에 처한 변호사 이은재 역을 맡은 최지우는 돈보다 정의를 찾는 남편 연형우(윤상현)에게 바가지를 긁고 술에 취해 망가지는 연기를 펼치는 등 영락없는 아줌마로 탈바꿈했다. ‘겨울연가’, ‘천국의 계단’을 비롯해 최근 ‘스타의 연인’까지 멜로 드라마를 고집했던 최지우에게 이번 작품은 꽤 과감한 도전이다. 데뷔 이후 처음 도전하는 로맨틱 코미디이기 때문이다. 사실 최지우의 변신은 최근 ‘1박2일-여배우편’에서 이미 감지됐다. 그는 이 프로그램에서 기존의 이미지와는 달리 몸개그도 마다하지 않는 소탈함으로 시청자들의 호감을 샀다. 이번 작품을 시작으로 그의 다양한 연기 행보가 기대되는 이유다. 최지우는 지난 17일 드라마 제작 발표회에서 “청순가련 이미지를 15년 동안 했으면 이젠 깰 때도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해 변신을 예고했다. 이어 “이제 화면에서 예쁘게 보이는 것은 내려놨다.”며 ‘로코퀸’에 대한 욕심을 숨기지 않았다. 첫 방송이 나간 뒤 그의 연기 변신에 새롭다는 평가가 이어지고 있다. 최지우가 멜로에 이어 로맨틱 코미디에서도 두각을 나타낼 것인지 주목된다.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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