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생명력
    2026-06-11
    검색기록 지우기
  • 공약
    2026-06-11
    검색기록 지우기
  • 이건
    2026-06-11
    검색기록 지우기
  • 호황
    2026-06-11
    검색기록 지우기
  • 비 소식
    2026-06-11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2,638
  • [기고] 야쿠시마 국립공원이 사슴을 잡는 이유/이돈구 산림청장

    [기고] 야쿠시마 국립공원이 사슴을 잡는 이유/이돈구 산림청장

    일본이 낳은 세계적인 애니메이션 감독 미야자키 하야오의 대표작 중 ‘원령공주’(1997)가 있다. 이 작품의 배경은 일본 규슈 남단 야쿠시마(屋久島)라는 외딴섬. 우리나라 울릉도의 7배 정도 되는 면적에 해발 1936m나 되는 높은 산이 있고 1만 3000여명의 인구, 3만여 마리의 사슴과 원숭이가 사는 일본의 마지막 남은 낙원이다. 일본의 29개 국립공원 중 하나인 야쿠시마는 또한 일본에 4개밖에 없는 유네스코 자연유산의 하나이기도 하다. 야쿠시마가 세계 자연유산으로 지정된 것은 수령이 최대 7200년에 달한다는 조몬스기 등 삼나무 군락이 높은 가치를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야쿠시마에는 1000년이 넘는 삼나무가 2000여 그루에 달해 인간의 짧은 역사를 넘어서는 장구한 자연의 신비와 생명력을 생생하게 보여 주고 있다. 그러나 최근 흥미로운 사실은 1970년대까지 섬 내에 2000~3000마리에 불과하던 사슴이 정부·지자체의 보호정책으로 1만 6000여 마리로 늘어 오히려 생태계의 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점이다. 개체수가 증가한 사슴이 숲속의 어린 순 등을 닥치는 대로 먹어치워 숲의 건강성과 순환에 악영향을 미치게 된 것이다. 결국 일본 정부는 환경성과 농림수산성(임야청) 간 협력사업을 통해 야쿠시마, 시레토코 등 대표적인 국립공원 지역에서 야생동물 개체수를 조절하고 서식지를 적극적으로 관리하는 공동 협력사업을 추진했다. 산림청은 2월 27일 국립공원관리공단과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다양한 협력사업을 추진할 준비를 하고 있다. 업무협약의 계기가 된 것은 북한산 국립공원의 산림병해충 때문이었다. 북한산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참나무 숲에 2008년 불치병으로 여겨지는 참나무시들음병이 처음 발생한 것이 확인됐고 이후 빠른 속도로 확산돼 나무가 붉게 시들면서 고사하고 있다. 올해부터 양 기관은 산불·산사태·산림병해충 등 산림재해방지 사업과 조림지 숲 생태 개선, 각종 산림문화·휴양 및 숲 치유기능 증진 사업 등을 추진할 계획이다. 참나무시들음병 방제는 병을 옮기는 광릉긴나무좀을 박멸해야 하므로 일부 고사목 등에 대한 벌채가 불가피하다. 이런 사정을 잘 모르는 일부 시민들은 올봄에 국립공원 숲속에서 나무를 자르는 광경에 혹시 의문을 갖게 될지도 모르겠다. 산림청의 방제작업은 숲 전체를 살리기 위한 과학적인 노력의 일환임을 이해해 주기 바란다. 우리나라의 숲은 1970년대 이후 산림녹화 사업을 통해 국민 모두의 땀과 노력으로 가꿔 왔다. 그래서 국민들은 나무 한 그루 자르는 데도 각별한 관심과 우려를 표하곤 한다. 숲을 관리하는 산림청과 국립공원관리공단은 그래서 늘 나무 한 그루, 곤충 한 마리에 담긴 생명의 가치에 대해 세계 어느 나라보다 막중한 책임감을 느낀다. 그러나 멧돼지가 유해조수로 분류된 데서 알 수 있듯 자연생태계의 적정한 관리를 위해서는 보전만이 능사가 아니며 관계 부처 간 긴밀한 협조와 적극적인 대응이 필수적이다. 산림청과 국립공원관리공단의 업무협약은 백두대간 등 우리나라 산림 생태축을 체계적으로 관리해 온 두 ‘달인’의 화통한 의기투합이다. 북한산 이곳저곳에 숨어 있던 광릉긴나무좀은 올봄에 많이 힘들게 됐다.
  • 멸종된 줄 알았던 희귀 ‘대벌레’ 화산섬에서 발견

    멸종된 줄 알았던 희귀 곤충이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보다 높은 바위 산꼭대기에서 발견됐다? 최근 멸종된 지 80여 년이 지난 것으로 알려져 있었던 ‘대벌레’(Stick insect, 학명 Dryococelus australis)가 오스트레일리아 ‘볼스 피라미드’(Ball‘s Pyramid)에서 다시 발견돼 학계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고 영국 일간지 데일리메일이 2일 보도했다. 볼스 피라미드는 뉴사우스웨일스주에 있는 화산섬인 로드하우스섬 내의 뾰족한 해상바위이며, 이곳에서 총 24마리의 희귀 대벌레가 발견됐다. ‘트리 로브스터’(Tree Lobster)라고 불리기도 하는 이 벌레는 영양분이 부족한 환경임에도 불구하고 몸길이 12㎝, 성인 손 보다 큰 몸집을 가졌다. 이 대벌레는 세계에서 가장 무겁고 날지 못하는 곤충으로 알려져 있으며, 척박한 환경에서도 살아남는 강인한 생명력을 지녔었지만 1930년대부터 로드하우섬에서 자취를 감춘 뒤 수 십 년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이후 2001년 볼스 피라미드에서 새로운 곤충의 배설물을 발견했다는 제보를 접한 오스트레일리아 과학자들은 이곳에서 총 4마리의 대벌레를 발견했지만, 이중 2마리는 죽고 나머지 2마리는 개체 보존을 위해 멜버른 동물원으로 옮겨졌다. 당시 이 두 마리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대벌레라는 뜻에서 ‘아담’과 ‘이브’라는 별명이 주어졌으며, 야생상태의 대벌레가 다시 모습을 드러냄에 따라 대벌레에 관한 연구가 다시 활발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전문가들은 척박한 환경의 해상섬인 로드하우섬에서 대벌레가 어떻게 살아남았는지를 연구함으로써 지구의 생태계를 더욱 자세히 알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송혜민기자 huimin0217@seoul.co.kr
  • [공연리뷰] 뮤지컬 ‘닥터지바고’

    [공연리뷰] 뮤지컬 ‘닥터지바고’

    명불허전(名不虛傳). 역시 조승우였다. 지난 1월 개막 이후 장황하고 지루한 데다 주연 배우들의 감정 전달이 다소 아쉽다는 평가를 받아 온 뮤지컬 ‘닥터지바고’. 공연 중 긴급 투입된 배우 조승우는 진정한 구원투수로서 제 역할을 톡톡히 해 냈다. 진지한 장면에서 황당한 대사와 다소 억지스러웠던 행동으로 객석의 비웃음이 끊이지 않았던 공연 초반과 달리 조승우 공연 당일 객석의 반응은 사뭇 진지했다. 황당하단 웃음은 단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 조승우의 연기는 ‘과연 4주 연습하고 무대에 오른 배우가 맞는지’ 의심이 들 정도로 캐릭터에 대한 이해가 깊었다. 지난해 11월부터 공연 연습에 들어간 다른 배우들과 비교해 봐도 그의 연기는 우위에 있었다. 특히 유리지바고와 라라가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는 ‘나우’(Now)와 빨치산 캠프를 탈출해 전장을 헤매며 복잡한 감정을 토해 내는 ‘애시스 앤드 티어스’(Ashes and tears) 장면에서 조승우의 연기는 절정에 달한다. 연기뿐만 아니다. 같은 역에 캐스팅된 홍광호가 ‘미친 가창력’이라 불리며 뛰어난 노래 실력을 뽐내는 것 못지않게 조승우의 노래에서도 굉장한 힘이 느껴졌다. 그는 대사와 노래의 강약을 스스로 쥐락펴락 조절하며 작품을 이끌어 나갔다. 새삼 뮤지컬 공연에서 주연 배우의 중요성을 느끼게 할 만큼 그는 공연 초반과 별 변화가 없는 작품에 연기력이란 양념으로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라라 역의 전미도는 극 속의 보석 같았다. ‘유리 지바고’, 남편 파샤, 그를 연모하는 법관 코마로브스키 등 세 남자의 사랑을 한몸에 받는 여인으로서 자격이 충분하다는 듯 공연 내내 사랑스러운 아우라를 발산했다. 물론 그 힘의 바탕은 그녀의 탄탄한 연기력과 뛰어난 가창력, 매력적인 외모 등에서 비롯됐다. 강한 카리스마를 발산하는 파샤 역의 강필석도 극에 위기감을 더하며 긴장감을 높였다. 조승우의 투입으로 닥터지바고는 괄목상대할 만한 결과를 냈지만, 작품 자체가 지닌 아쉬운 점은 여전했다. 1막에선 필요 이상의 장면이 많아 지루하다는 느낌을 줬고, ‘여기서 끝났겠지’ 싶은 장면이 실제로 여럿 있었다. 1차 세계대전, 러시아 내전 등을 표현한 전쟁 장면도 다소 밋밋한 느낌을 줘 극의 긴장감을 고조시키기보다는 힘을 빼는 역할을 했다. 4.4도 경사진 무대에서 철제 기차 등 무대 세트는 여러 번 전환하며 생동감을 더하지만, 시대적 상황 등을 설명하기 위해 등장하는 흑백 영상은 다소 세련되지 못한 인상을 남겼다. 러시아 혁명의 격변기 속에서 의사이자 시인이었던 유리 지바고와 그의 뮤즈 라라의 운명 같은 사랑을 다룬 뮤지컬 닥터지바고는 6월 3일까지 서울 잠실동 샤롯데시어터에서 공연된다. 7만~13만원. 1588-5212.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 [23일 TV 하이라이트]

    ●한국인의 밥상(KBS1 밤 7시 30분) 마음대로 올 수 없고, 마음대로 나갈 수도 없다는 섬 백령도. 이곳은 사람들의 말처럼 긴장과 평화가 공존하고 있다. 가까운 거리만큼이나 음식 문화에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또 민족분단의 아픔을 가지고 있는 아름다운 망향의 섬이다. 더불어 살아온 사람들의 잊지 못할 맛, 오래된 그리움을 담은 백령도의 겨울 밥상을 만나본다. ●호루라기(KBS2 밤 8시 55분) 지난 8개월 동안 숨 가쁘게 달려온 코너 김남훈의 ‘원펀치’. 전국에 퍼져 있는 각종 불법과 탈법 현장에 출동해 대한민국의 상식을 지키기 위해 열심히 싸워 왔다. 그렇다면 지난 8개월 동안 ‘원펀치’를 이끌어온 김남훈이 바라본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지난 방송들을 통해 우리 사회의 부끄러운 단면들을 정리해 본다. ●고향을 부탁해(MBC 오후 6시 50분) 바람 맛도 짭짤하고 물맛도 짭짤한 경남 통영. 그곳에서는 ‘입춘대길’ 대신 ‘도다리 쑥국’으로 봄을 시작한다. 도다리가 앉았던 뻘만 건져다 국을 끓여도 맛있다는 통영 봄 도다리가 드디어 제철을 만났다. 양식이 안 돼서 100% 자연산이라는 도다리는 제주도에서 지난겨울을 보내고, 산란을 위해 통영 앞바다로 돌아온다는데…. ●퀴즈쇼 곱하기 9(SBS 오후 6시 30분) 이번 주 도전 팀은 현대 홈쇼핑의 간판 쇼 호스트 9명으로 구성된 명품 쇼 호스트팀들이다. 항상 활기찬 에너지를 몰고 다니며, TV 홈 쇼핑에 마법 같은 생명력을 불어넣는 이들이 과감히 ‘곱하기 9’에 도전장을 던졌다. 넘쳐흐르는 끼와 재치로 MC 남희석에 못지않는 입담을 과시하는 이들. 과연 상금의 주인공이 될 수 있을까. ●TV입학사정관(EBS 낮 12시 10분) 새 학기가 얼마 남지 않았다. 곧 3학년이 되는 학생들은 입학 사정관 전형을 준비할 시간이 부족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시간은 채워 가는 것이라고 생각해 보는 건 어떨까. 예비 고3 학생들이 입학사정관전형을 어떻게 준비하는 것이 좋을지, 서울 금옥여자고등학교를 찾아가 학생들과 선생님의 상담을 받아 본다. ●검색녀(OBS 밤 11시 5분) 방송인 홍석천은 자신의 레스토랑에 한류 스타와 아이돌 스타 커플들이 많이 이용한다고 폭로했다. 하지만 친한 연예인에게도 이 사실을 밝히지 않고, 그들의 비밀을 지켜주기 위해 차량도 시간차를 이용해 이동시킨다고 한다. 한편 자신의 레스토랑에서 데이트를 즐기다 결혼에 골인한 스타도 있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 (68)청주 중앙공원 압각수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 (68)청주 중앙공원 압각수

    나무가 고마운 건 사람보다 수명이 길어서, 사람이 채 기억할 수 없는 숱하게 많은 사람살이의 흔적을 자신의 속살에 챙겨 둔다는 데에도 있다. 나무가 한 지역 역사의 상징이 되어, 지역민의 존경을 받는 존엄한 생명체로 남는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나무를 향해 제사를 올리는 제의에 대한 종교적 편견과 오해가 때로는 나무를 소홀히 여기는 장애가 되기도 하지만, 여전히 우리나라의 많은 지역에서는 오래 살아온 나무를 소중하게 지키고, 나무를 향해 사람살이의 안녕과 평화를 기원하는 풍습이 이어진다. 그건 우리의 삶과 우리가 이웃한 모든 생명에 대한 존경과 자존심을 표현하는 일종의 상징 행위라 해도 될 일이다. 충북 청주시 한복판에는 중앙공원이라 이름한 시민의 쉼터이자 이 지역민의 역사가 그대로 담긴 유적지가 있다. 도청과 청주시청, 청원군청과 이웃한 청주의 중심이다. 공원 한가운데를 지키고 있는 건 900살 된 한 그루의 은행나무다. ●지역공동체 큰 잔치 ‘행목성신제’ “이 나무는 우리 청주시의 최고 어르신이에요. 청주에서는 가장 나이가 많은 생명체로, 살아있는 청주의 향토사나 마찬가지입니다. 해마다 정월 대보름에 이 나무 앞에 청주 지역민이 모여 지역민의 건강과 안녕, 그리고 국태민안을 기원하는 제사를 올립니다.” 36년째 ‘망월제’라는 이름의 은행나무 목신제를 주관해 온 청주국악협회의 이종달(59) 회장은 은행나무를 ‘어르신’이라고 부른다. 그동안 ‘망월제’라고 불러왔던 제사를 올해는 ‘행목성신제’(杏木聖神祭)라고 이름을 바꾸어 불렀다. “망월제라고 하면 한밤에 달을 바라보며 올려야 맞겠지요. 하지만 더 많은 청주 시민이 참여하는 축제가 되려면 낮에 올리는 게 좋다고 판단했어요. 그러자니 망월제라는 이름이 어울리지 않아서 이름을 바꿨습니다. 하지만 행목성신제라는 이름도 새로 지어낸 건 아니고, 원래 망월제의 일부였지요.” 이 회장의 이야기대로 행목성신제는 다른 지역에서 볼 수 있는 당산제나 동신제와는 사뭇 다르다. 지역민의 안녕과 평화를 기원하는 기원제라는 점에서야 다를 게 없으나 이 제사는 단순한 기원제를 넘어, 지역민이 함께 모여 즐기는 공동체의 잔치 한마당과 같은 성격이 더 강하다. 지역축제로 확장했다는 의미다. 행사를 이끄는 단체가 국악협회인 까닭에 행목성신제는 국악인들의 바라춤에서 시작해서 전통 국악 경연 등 여느 당산제와는 달리 볼거리가 풍성한 축제로 진행된다. 축제의 중심에 놓인 은행나무를 사람들은 ‘청주 압각수’라고 부른다. 압각수는 은행나무의 잎이 오리의 발을 닮았다고 해서 오리를 뜻하는 압(鴨)과 다리를 뜻하는 각(脚)을 써서 중국에서 불러온 은행나무의 여러 별명 가운데 하나다. 우리나라에도 은행나무라는 본래 이름을 젖혀놓고, 압각수로 불리는 은행나무가 있다. 바로 이 청주 압각수와 경북 영주 순흥면 금성단에 서 있는 ‘순흥 압각수’다. 두 나무에 별다른 연관성은 없다. 굳이 공통점을 찾는다면 모두 옛 유학자들과 관련한 유래와 그들의 기록이 남아있다는 점이다. 중국 문헌에 익숙한 유학자들이 이 나무에 얽힌 고사를 기록할 때 중국식 별명을 사용한 게 그 시작이지 싶다. ●충신 이색의 목숨 살리고 무죄 대변 청주 중앙공원 은행나무가 압각수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 건 고려 말, 이성계가 조선 건국의 꿈을 키우던 때부터다. 이성계가 공양왕을 옹립하고 그의 반대파를 차례대로 제거하던 무렵이었다. 그때 고려의 무신 이초(李初)는 명나라의 힘을 빌려 이성계의 계획을 막으려 했다. 이를 알게 된 이성계는 이색, 권근 등 반대파의 주요 인물 십여 명을 청주의 감옥에 감금했다. 공양왕 2년인 1390년 5월에 벌어진 ‘이초의 옥사’가 그 사건이다. 그해 여름 청주에는 대홍수가 났다. 며칠째 불어난 큰 물로 청주 관아는 물론이고, 시내의 거의 모든 집들이 물에 쓸려 내려갔으며 이색이 갇혀 있던 감옥도 물에 잠겨 무너지고 갇혀 있던 사람들까지 휩쓸려갔다. 그때 이색은 감옥 곁에 서 있는 큰 나무의 가지 위에 올라가 목숨을 건졌다. 기적 같은 이 상황을 전해들은 공양왕은 이는 곧 무죄를 입증하는 증거라며 이색을 풀어줬다고 한다. 그때 이색과 함께 풀려나온 권근이 그때 지은 시는 지금도 나무 앞의 시비(詩碑)에 남아 옛일을 증거한다. ●900살 나무에 청주·민족의 역사 오롯이 의로운 선비를 가지 위에 보듬어 안고, 큰물을 피할 수 있을 만큼 큰 나무였다면, 당시에도 300살은 족히 넘었을 게다. 나무를 900살 정도로 추측하는 근거다. 키 20m, 줄기둘레 8.6m인 청주 압각수의 수세는 그러나 별로 좋지 않다. 줄기 중심부의 상당 부분은 썩어들어 충전재를 메워 준 수술 자국이 역력하고, 부러진 굵은 가지들의 흔적도 눈에 띈다. 900년이라는 긴 세월을 견디는 건 나무에게도 쉽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나무는 여전히 왕성한 생명력을 잃지 않고, 땅 깊은 곳으로부터 봄이 다가오는 소리를 짚어가며 서서히 물을 끌어올리는 중이다. 중앙공원 한쪽의 청주문화관에 사무실이 있어서, 밤낮없이 나무를 바라보며 산다는 충북예총 정상용(53) 사무처장은 “나무에 청주와 우리 민족의 역사가 고스란히 들어있다는 건 무척 자랑스러운 일”이라며, “특히 내력이 확실한 유서 깊은 나무가 곁에 있다는 게 더없이 듬직하다.”고 말한다. 죄 없는 사람을 가려낼 만큼 현명함을 갖춘 청주 압각수는 청주시민뿐 아니라 이 땅의 모든 국민이 더 소중하게 지켜야 할 자연유산이자 문화유산임에 틀림없다. 글 사진 청주 고규홍 나무칼럼니스트 gohkh@solsup.com ▶▶가는 길 충북 청주시 상당구 남문로2가 92-6. 경부고속도로의 청주나들목에서 청주공항 방면으로 좌회전하면 양버즘나무 가로수 길로 들어서게 된다. 1948년에 심은 약 1500그루의 양버즘나무가 6㎞에 걸쳐 상큼한 가로수 터널을 이룬 명품 도로다. 이 길을 통해 청주나들목에서 10㎞를 조금 더 가면 청주시내를 관통하는 무심천에 이르고, 그 위로 청주대교를 건너게 된다. 다리를 건너 100m쯤 가서 우회전해 500m쯤 들어가면 중앙공원이다. 공원 주변 도로에 갓길 주차장이 있다. 나무는 공원 한가운데 있다.
  • 3만 2000년전 열매 얼음 속에서 꽃 피우다

    3만 2000년전 열매 얼음 속에서 꽃 피우다

    무려 3만년 이상 된 극지식물이 화려하게 부활했다. 러시아 토양생리화학과 생물학연구소의 데이비드 기리친스키 연구팀은 시베리아 동북부 지역의 콜리마강 저지대에서 3만 2000년 전의 얼어붙은 상태의 석죽과 ‘실레네 스테노필라’(패랭이꽃)의 열매를 발견, 이를 꽃 피우고 열매를 맺도록 하는 데 성공했다고 미국 뉴욕타임스와 영국 BBC방송이 2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연구 결과는 미 국립과학원회보(PNAS) 최신호에 소개됐다. 지금까지 부활시킨 가장 오래된 고대 식물은 이스라엘 마사다에서 발견된 2000년 전 야자 씨앗이며, 중국에서 발견된 1300년 전 연꽃 씨앗의 꽃을 피워내기도 했다. 러시아 연구팀은 콜리마강 저지대 지하 38m 지층의 얼룩다람쥐의 볼 속에서 동결(凍結) 상태의 수많은 씨앗과 열매를 발견했다. 방사선 연대측정 결과 이들 식물의 연대는 3만 2000년 전으로 밝혀졌다. 연구팀은 처음에는 씨앗을 이용해 되살리려고 노력했으나 실패한 뒤, 열매에서 확보한 태반조직을 떼어 내 시베리아와 같은 영하 10도의 추운 환경에서 조직 배양했다. 태반조직이 싹을 틔우자 이를 일반 토양에 옮겨 심은 결과 꽃이 피고 열매까지 맺었다. 연구팀은 몇 년 안에 죽는 대부분의 식물과는 달리 1300년 전의 연꽃이나 패랭이꽃처럼 생명력이 강한 종들은 DNA를 보존하거나 수리하는 자체 메커니즘을 갖고 있다면서 이번 사례를 통해 사람이 어떻게 DNA를 수리해 암을 예방할 수 있을지 등을 연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김규환 선임기자 khkim@seoul.co.kr
  • [이용철의 영화만화경]도랑

    [이용철의 영화만화경]도랑

    지난 7일부터 한국영상자료원에선 신도 가네토와 야마모토 사쓰오의 회고전이 열리고 있다. 26일까지 계속되는 회고전은 한국영상자료원과 일본국제교류기금 서울문화센터가 공동 주최하는 ‘일본영화 거장 시리즈’의 네 번째 프로그램이다. 두 사람은 한국에서 널리 알려진 감독은 아니다. 그들의 영화를 보아야 하는 이유는 ‘일본 독립영화의 힘’을 목격하는 데 있다. 우리에게 익숙한 일본 감독들, 즉 구로사와 아키라, 오즈 야스지로, 미조구치 겐지 등의 발자취는 대개 도호, 쇼치쿠 같은 스튜디오의 성쇠와 연결된다. 그들에 비해, 독립영화의 리더로 활약한 신도와 야마모토의 영화는 일본 영화의 또 다른 역사를 발견하도록 돕는다. 특히 신도는 일본 독립영화의 역사를 쓴 인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스튜디오 작업을 병행한 야마모토와 달리, 신도는 독립 제작사 ‘근대영화협회’를 세우고 지금껏 이끌어 왔다. 대표작들은 물론, 지난해 99살의 나이에 발표한 ‘한 장의 엽서’도 같은 제작사의 작품이다. 더욱이 1912년생으로 현역 최고령 감독인 신도가 발표한 영화들이 하나같이 수준 이상을 유지하고 있어 놀랍다. 1990년대 이후 작품들인 ‘오후의 유언장’, ‘한 장의 엽서’는 저명한 영화지인 ‘키네마준보’가 그해 일본 영화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선정한 바 있다. 독립영화라고 해서 지루하고 딱딱한 영화를 상상했다면 오산이다. 생명력이 넘치는 신도의 영화는 여느 장르의 영화 못지않게 재미있다. 신도의 대표작은 1960년대 발표된 ‘오니바바’와 ‘벌거벗은 섬’이다. ‘오니바바’는 1960년대 일본 영화에 기대하는 모든 것을 집대성해 놓은 작품이다. 시대극과 괴기 드라마의 외피 아래로 사회정치적인 메시지를 전하며, 인간의 욕망이 초래한 끔찍한 상황이 잊지 못할 충격을 안겨준다. 모스크바영화제 그랑프리 수상작인 ‘벌거벗은 섬’에서 신도는 실험적인 양식과 사실주의를 결합한다. 외딴 불모의 섬을 일구는 일가족의 이야기인데, 영화는 몇 마디 자막 외에 어떤 대사도 없이 진행된다. 단순한 일상을 미적 차원으로 승화시킨 걸작이다. 두 영화만큼 유명하진 않으나 ‘도랑’(원제:どぶ)은 한국관객의 기호에 더 맞을 작품이다. 신도의 초기작으로 전후 궁핍한 일본사회를 배경으로 한다. 더러운 개천 옆에 형성된 판자촌으로 한 백치 여인이 흘러들어온다. 일본의 패전 후 만주에서 귀국한 그녀는 가는 곳마다 착취당한 끝에 굶어 죽기 직전이다. 끔찍한 건, 밑바닥 삶을 사는 판자촌 사람들조차 그녀의 희생을 요구한다는 점이다. 당장 현실이 아쉬운 그들은 그녀에게 손을 벌리고, 그때마다 그녀는 몸을 팔아 번 돈을 아끼지 않고 나눈다. 온갖 험한 꼴을 당하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백치 여인을 보면 당장 떠오르는 인물이 하나 있다. 페데리코 펠리니의 ‘길’에서 젤소미나라는 여인도 비슷한 삶을 살다 죽는다. 여인을 착취한 인물이 오열한다는 설정도 같다. 흥미롭게도 두 영화는 1954년에 대륙의 양끝에서 나란히 공개됐다. 어수룩한 얼굴의 천사가 패전한 두 나라의 하층민 앞으로 도착했던 셈이다. 비록 두 나라가 전쟁을 일으키긴 했지만, 삶을 모조리 빼앗긴 민중에게 죄를 물을 수는 없는 일. 신도와 펠리니는 영화를 통해 자기 나라의 민중이 선한 모습으로 살아남기를 기도했다. 지금으로부터 58년 전, 그런 감독들이 사는 세상이 있었다. 영화평론가
  • [데스크 시각] 검사 엄상섭 그리고 검찰개혁/이기철 사회부 차장

    [데스크 시각] 검사 엄상섭 그리고 검찰개혁/이기철 사회부 차장

    검찰이 위기다. 국가의 중추적 법집행 기관으로서 신뢰의 위기는 국가적 문제다. 공정한 법집행과 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이 국민적 신뢰 회복의 지름길이다. 위기의 검찰에는 개혁이 절대적이다. 검찰 개혁 하면 효당 엄상섭이 생각난다. 효당은 일반인에게는 다소 생소하지만 법조계, 특히 검찰에서는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대쪽 검사’ 김익진과 함께 한국 검찰의 두 기둥으로 꼽힌다. 효당은 검사와 정치인을 지내면서 오늘의 형법과 형사소송법, 검찰의 뼈대를 만드는 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 효당은 1907년 전남 광양에서 태어나 32세 때 고등시험 사법과에 합격했다. 일제강점기에 검사를 지냈다. 광복을 맞아 일제시대에 검사를 지낸 다른 7명과 함께 사직했다. “검사생활, 이것이야말로 왜정 압력하에서 독립운동에 신명을 바치시던 애국지사들에 대하여는 지금도 면목 없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왜정하에서 검사를 지냈다는 것은 한없이 후회되는 일입니다. 굴절했고 왜제 통치에 협력을 하였다는 것만은 아무리 사과를 해도 오히려 모자랄 것입니다.” 그가 단행본 ‘권력과 자유’에서 밝힌 친일 반성문은 가장 통절한 반성문 가운데 하나로 평가받는다. 이후 지조 없는 행동을 하지 않겠다는 듯 ‘고집불통’으로 변했다. 재야에 있던 그를 미군정은 검사로 발령냈다. 신생국의 검사로서 법령을 정비하다 1949년 9월 검찰을 떠났다. 1950년 5월 30일 치러진 제2대 민의원 선거를 통해 정치인으로 변신했다. 한국전쟁의 피란길에서 세 아들을 잃었다. 1960년 5월 3일 효당은 헌법기초위원회 회의를 주재하다 뇌내출혈로 53세로 세상을 떠났다. 효당은 대한민국 건국시대에 국가권력의 핵심이 되는 형법과 형사소송법 제정의 중심에 섰다. 제정 헌법 정신에 맞게 형사재판의 민주화와 형사소송의 정치도구화 방지에 초점을 맞췄다. 효당은 이를 실현하는 도구로서 현재의 검찰조직 큰 얼개인 검찰청법을 마련했다. 검찰청법을 입안할 때 그가 가장 고심했던 부분은 검찰의 ‘독립과 견제’였다. 검사의 신분보장과 법무부 장관의 개별 사건에 관한 지휘권 배제를 주장해 관철했다. 흥미로운 부분은 고등검찰청 폐지론이다. 범죄수사에서 기민성을 발휘하고, 수사 및 형사정책의 통일성을 유지하기 위해 명령계통의 간명화가 필수적이기 때문에 고등검찰청 같은 중간단계는 필요없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검찰이 법원에 대응하는 조직이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말한 부분은 60여년이 흐른 지금으로서도 상당히 독창적이다. 여기에 그쳤다면 효당은 검사의 관점과 이익을 대변한 인물에 불과했을 것이다. 그가 평가받아야 할 부분은 검찰에 대한 외부의 견제장치 도입을 제안한 점이다. 물론 사법경찰의 검찰전속화가 전제돼 있다. 효당은 검찰의 ‘권력 강대화와 독선의 폐단을 예방하기’ 위해 검찰위원회를 설치, 검찰권을 감시하자고 강조했다. 검찰위원회는 외부인을 포함해 10~11명으로 구성된다. 그의 의견이 다소 설익은 느낌이지만 외부 통제를 과감히 도입해 검찰의 강대화와 독선을 견제해야 한다는 생각은 그 이전 누구에게서도 찾아볼 수 없는 아이디어였다. 시민의 참여로 검찰의 공정성과 독립성, 책임성을 강화시키자는 요즘의 주장과 맥락이 같다. 그의 발상이 아직까지도 생명력을 유지하는 이유를 검찰은 곰곰이 되새겨 봐야 한다. 최근 검찰은 법원과 경찰의 협공을 받는 형국이다. 스스로 개혁하는 데 실패한 탓이다. 법률가인 검사는 수사전문가도 겸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비전과 전략을 갖고 수사를 전문화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또 거악과 맞서는 ‘고독한 전사’ 이미지에서 벗어나야 한다. 우리 사회의 참다운 공익의 대표자로 거듭나야 한다. 효당이 제안했던 검찰위원회의 참뜻이다. 검찰은 효당처럼 과거 잘못을 절절하게 반성하고, 시민의 통제를 받는 개혁의 길을 스스로 모색해야 한다. 실기하면 중수부가 아니라 대검찰청 자체가 존폐 문제에 내몰릴 수 있다. chuli@seoul.co.kr
  •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 (65) 전남 강진 당전마을 푸조나무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 (65) 전남 강진 당전마을 푸조나무

    ‘사람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표가 난다.’고 한다. 더불어 살아가는 모든 생명체에 대한 존재감은 뒤늦은 상실감과 함께 다가온다는 아쉬움을 드러낸 옛말일 게다. 빈 자리에 남은 상실의 아픔을 메워 주는 건 언제나 나무다. 한번 뿌리내린 뒤로는 제 명을 다할 때까지 제 자리를 떠나지 못하는 게 나무의 운명인 까닭이다. 남은 사람들은 떠난 사람이 그리울 때면 그와 함께했던 자리에 서 있는 나무를 찾아가 잊혀가는 기억의 실마리를 떠올리려 애쓰게 마련이다. 또 떠났던 사람이 다시 고향에 돌아와서 가장 먼저 고향의 푸근함을 느끼게 되는 것도 마을 어귀에 서 있는 큰 나무이기 십상이다. ●고려 최대 규모 가마터에 뿌리 고려 때 신비의 빛을 가진 청자를 굽던 가마터로 유명한 전남 강진 대구면 사당리 당전마을. 내로라하는 전국의 도공들이 모여 저마다의 작품을 빚어 내던 곳이다. 당대 최대 규모였지만, 고려 말에 이르러서는 왜구의 잦은 침범으로 가마터는 차츰 폐쇄되고 도공들은 하나둘 흩어져 떠났다. 그들이 떠난 자리를 한 그루의 나무가 지켰다. 푸조나무라는 다소 생소한 이름을 가진, 경기도 이남의 바닷가에서 잘 자라는 우리 나무다. 중부지방에서는 찾아보기 어렵지만, 남해안 지역을 여행할 때면 느티나무나 팽나무 못지않게 마을 어귀에서 자주 만날 수 있다. 고려청자 가마터인 당전마을 어귀에 서 있는 강진 사당리 푸조나무는 키 16m, 가슴높이 둘레 8.5m의 큰 나무이지만, 중심 줄기가 없어 조금은 허전한 느낌도 준다. 줄기는 300년 전에 불어온 태풍에 부러졌다고 한다. 그 빈 자리 곁에서 새로 자란 6개의 새 줄기가 굵고 튼튼하게 솟아 올라 웅장한 모습을 이뤘다. 사방으로 가지를 고르게 펼쳤는데, 서쪽의 무성한 나뭇가지는 스스로의 무게가 버거운 듯 땅에 닿을 정도로 늘어져 불균형의 아름다움을 갖췄다. 전체적으로 펼쳐진 넓은 품은 마치 거대한 짐승이 웅크려 있는 모습을 연상하게 한다. 줄기가 부러져 나간 뒤 생긴 상처를 나무는 스스로 감싸 안았다. 깊은 상처는 살아남은 다른 줄기의 껍질이 부드럽게 덮었고, 곁에서 자란 새 줄기들은 꿈틀거리며 안쪽의 빈 공간으로 파고들었다. 아픔의 세월을 거치며 나무는 오랜 안간힘으로 부러지기 전의 모습 못지않게 근사한 수형을 이뤘다. 부러진 줄기를 바라보면서도 생명을 놓지 않고 새 가지를 틔워 생명력을 회복한 질긴 인내가 볼수록 신비롭다. ●300년 전 태풍에 부러진 가운데 줄기 문화재청 자료에는 천연기념물 제35호인 이 나무는 고려 도공이 살펴 키운 것으로 나이는 300살 정도로 추정된다고 나와 있다.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부분이다. 일단 고려 도공이 살핀 나무라는 사실과 300년 전에 심은 것이라는 시간의 불일치가 그렇다. 게다가 300살 된 여느 푸조나무에 비해 클 뿐 아니라, 300년 전에 부러졌다는 사실과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 그처럼 큰 피해 뒤에도 살아남는다는 건 웬만큼 큰 나무가 아니고서는 어림없는 일이다. 남아 있는 기록이 없어 확인할 수는 없지만 이 푸조나무는 마을에 태풍이 닥친 300년 전에도 이미 큰 나무였음이 틀림없다. 어쩌면 고려 청자 가마터가 스러지던 즈음인 600여년 전에 도공들이 심고 키웠던 나무일 수 있다. “박물관이 들어오면서 살림이 많이 달라졌어요. 농사 짓던 땅에 박물관을 지으니 농사 규모가 줄었지요. 그 바람에 마을을 떠난 사람도 적지 않아요. 지금은 마흔 가구 남짓 있지만, 농사일도 옛날 같지 않아요. 변하지 않은 건 당산나무뿐입니다.” ●마을 어귀 지키며 귀향객 맞아 수도권에서 공장 일을 하다가 고향에 돌아와 농사를 지으며, 소를 키우는 조규남(54)씨 이야기다. 조씨가 지친 몸을 끌고 고향에 돌아왔을 때에는 청자박물관이 세워진 뒤였다. 논과 밭이 풍성하던 고향 풍경은 몰라보게 달라졌다. 그나마 옛 추억을 떠올릴 수 있는 건 당산나무뿐이었다. “우리 당산나무가 대단한 나무야. 옛날에 어떤 가난한 나무꾼이 그 나뭇가지를 꺾은 적이 있었다고 해. 그 사람이 제 명대로 살았겠어? 급살을 맞고 죽었지. 그만큼 우리 나무가 신성한 나무라는 말이야. 아직도 해마다 정월 대보름이면 당산제를 올리지.” 조씨의 집 조붓한 앞마당으로 불쑥 찾아든 옆집 박정임(86) 할머니가 나무 이야기를 덧붙인다. 박 할머니는 이 마을에서 태어나 아직까지 마을을 떠나지 않아, 사당리 당산나무를 누구보다 잘 안다고 조씨가 거든다. “마을 사람들이 이 나무를 잘 지키려고 날을 잡고 모여서 얘기하곤 했어. 나무에 거름이라도 줘야지 싶으면 마을 사람들이 돈도 십시일반으로 추렴하고, 일도 거들면서 지켜온 나무인걸.” 열아홉 살에 이 마을로 시집 왔다는 조씨의 어머니 하금댁(84)도 한마디 보탠다. 문화재청에서 관리하면서부터 굳이 마을 사람들이 나무 관리를 위해 별다른 일을 할 필요가 없어졌지만, 예전에는 해마다 칠월칠석이면 마을 사람들이 모여 나무의 건강을 살폈다고 한다. ●해마다 칠월칠석에 나무의 안부 살펴 극진한 보호 속에 살아온 사당리 푸조나무는 사람들의 들고남을 모두 바라보았다. 처음엔 우리 민족의 자랑 가운데 하나인 고려 청자를 빚어내던 옛 도공을, 다음에는 가마터가 스러진 자리에 깃든 농민을, 이제는 간단없이 찾아오는 관광객의 들고남을 바라보며 나무가 보낸 계절이 1000번을 넘는다. 긴 세월 동안 말없이 사람살이를 지켜보는 나무에게서 사람살이의 모든 추억을 되살리게 되는 까닭이다. 글 사진 강진 고규홍 나무칼럼니스트gohkh@solsup.com ▶▶가는 길 전남 강진군 대구면 사당리 51-1. 서울에서 강진을 가려면 서해안고속국도의 종점까지 간 뒤 국도를 이용하는 게 가장 빠른 길이다. 목포톨게이트에서 3㎞ 쯤 가서 나오는 죽림분기점에서 국도 2호선으로 빠져나가면 강진군청까지 빠르게 갈 수 있다. 강진군청 못 미쳐 강진의료원 앞 남포사거리에서 3.5㎞ 직진하면 목리교차로가 나온다. 여기에서 국도 23호선으로 우회전하여 15㎞ 정도 남진하면 미산삼거리에 이른다. 좌회전하면 곧바로 고려청자도요지와 청자박물관이다. 나무는 박물관 부지 끝 건너편 도로변에 있다.
  • [사설] 나꼼수 ‘비키니 인증샷’ 너무 나간 것 아닌가

    인터넷 방송 나꼼수의 ‘정봉주 구하기’ 1인 시위 수영복 인증샷이 논란을 부르고 있다. 몇몇 여성 지지자들이 비키니 수영복을 입고 자신의 가슴 부위에 정 전 의원의 석방을 요구하는 글을 적은 사진을 올리면서부터다. 나꼼수 멤버들에게 동지적 애정을 보이고 있는 ‘도가니’의 공지영 작가까지 불쾌하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나꼼수에 사과를 요구한 공 작가의 불편함에 인터넷 공간에서 찬반 양론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여성들이 ‘나와라 정봉주 국민운동’ 홈페이지에 비키니 인증샷을 올린 것 자체를 문제 삼고 싶지는 않다. 비키니 시위도 엄연한 표현의 자유이자 항의 표시라고 보기 때문이다. 여성들이 상의를 벗고 모피 반대 시위를 하고, 올해 다보스에서도 반나체로 반(反)자본주의 시위를 한 것 등을 보더라도 여성이 자신의 신체 부위를 드러내며 의사 표시를 한다고 비난받을 일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우려하는 것은 나꼼수 멤버들의 가슴 시위 이후 발언 및 트위터에 올린 내용들이다. 한 멤버는 “정 전 의원이 독수공방을 이기지 못하고 부끄럽게도 성욕 감퇴제를 복용하고 있다. 마음 놓고 수영복 사진을 보내길 바란다.”고 했고, 다른 멤버는 자신의 트위터에 “가슴 응원 사진 대박이다. 코피를 조심하라.”고 했다. 나꼼수의 수영복 사진 유도는 ‘씨바 졸라’ 등 언어 일탈과는 차원이 다른 얘기다. 명백한 성희롱이다. 대중적 인기에 도취해 자신들은 아무렇게나 해도 괜찮다는 듯한 오만이 짙게 배어 나오는 행태다. 나꼼수는 간단치 않은 영향력을 가진 매체로 자리매김했다. 그런 점에서 폭넓은 인기에 걸맞은 도덕적 책임도 뒤따라야 한다. 자극적인 표현은 순간적으로 카타르시스를 제공할지 모르지만 생명력은 길지 않다. 인기에 취해 어느새 자신이 비판하던 권력의 모습을 답습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짚어 봐야 한다. 나꼼수의 비키니 시위 인증샷은 누가 뭐래도 너무 나간 것이다.
  • [기고] 눈 속에 피어난 무궁화/민병원 국립대전현충원장

    [기고] 눈 속에 피어난 무궁화/민병원 국립대전현충원장

    아무도 걷지 않은 새하얀 눈 위를 ‘뽀드득’ 소리를 내며 걷다 보면 마음도 새하얗게 맑아진다. 햇살을 받은 눈이 투명하게 반짝이면 현기증이 날 정도로 눈부시다. 세상은 순백의 설원이다. 소나무들은 흰 모자를, 들판은 두툼한 이불을 선물 받았다. 눈 속에 피어난 발자국을 따라가니 묘비 위, 친구인 나목들이 서 있다. 나목들은 어깨에 눈 외투를 걸친 채 상념의 잎사귀를 떨어뜨리고 임을 위해 추모 기도를 올리는 묵언 수행자다. 겨울 나목들과 악수하며 걷다 보면 ‘357 무궁화 언덕’이 보인다. 푯말에는 “2002년 6월 29일, 제2연평해전에서 장렬하게 전사한 대한민국 해군 참수리 357정 용사들의 영웅적인 희생정신을 영원히 기리려고 무궁화를 기념식수한 곳입니다.”라는 글귀가 쓰여 있다. ‘제2연평해전 전사자 추모회’가 여섯 전사자의 나라사랑정신과 숭고한 희생정신이 국민의 가슴속에 무궁화로 피어나길 바라는 마음에서 이 언덕을 조성했다. 이 추모회는 무궁화 여섯 그루를 2005년 6월 6일, 무궁화 잔치를 개최하고 있는 홍천에서 가져와 장사병 제2묘역 뒷길 경사진 부분에 심었다. 이 무궁화 나무들은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치고 호국의 언덕에 피어난 제2연평해전 여섯 전사자의 현신이다. 대전현충원에서는 국기인 태극기는 언제나 볼 수 있지만, 국화인 무궁화를 연중 볼 수 없음이 못내 안타까웠다. 그래서 방문객들이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사계절 모두 무궁화 꽃을 보고 나라 사랑하는 마음을 갖게 하려고 가로 6m, 세로 6m, 높이 4m의 대형 무궁화 토피어리를 제작했다. 하얀 눈 속에 활짝 만개한 무궁화 토피어리는 반만년 겨레와 함께 고난과 역경을 이겨낸 강인한 모습을 닮았다. 대전현충원에는 3500여 그루의 무궁화가 있으며 품종은 아사달, 단심, 배달 등 100여종이 있다. 무궁화 품종은 200가지가 넘는다. 그중 일편단심은 백의민족이 즐겨 입던 하얀 옷에 독립을 위해 순국했던 선열들의 붉은 피가 맺힌 듯하며, 신태양은 우리 조국의 미래를 환하게 비출 다섯 개의 붉은 태양이 떠오른 듯하고, 옥토끼는 하얀 꽃잎 속에 달나라 토끼 한 마리가 숨어 있는 듯하다. 무궁화는 한 그루에 3000여 송이의 꽃이 피고 지는데, 은근과 끈기를 상징하며 왕성한 생명력을 가진 꽃으로 매일 피고 지는 영원불멸의 에너지를 갖고 있다. 나날이 새 꽃을 피우는 모습은 겨레의 진취적인 기상을 닮았다. 한순간 확 피었다가 바람에 날려 흔적 없이 사라지는 벚꽃과는 큰 차이가 있다. 무궁화 축전은 모르면서 벚꽃 구경을 가는 점이 안타깝다. 지금이라도 일본강점기 우리 겨레와 고난을 함께했던 무궁화를 관공서에도, 회사에도, 집 마당에도 심고 무궁화 차를 마시며 별이, 순이 등 예쁜 품종 이름으로 아이 이름을 짓자. 그리고 우리 모두 무궁화 축전에 아이들과 함께 참여하여 무궁화 묘목도 받고 무궁화 종이접기와 글짓기, 무궁화를 이용한 떡과 차도 마셔보며 무궁화를 우리 가슴에 심었으면 한다. 올해는 제2연평해전 10주년이 되는 해이다. 대전현충원을 가족과 함께 방문하여 ‘357 무궁화 언덕’에서 추모의 시간을 가져보고, 무궁화 토피어리 앞에서 기념사진도 찍으며 무궁화 한 송이를 헌화하여 나라 사랑정신을 키워보는 것이 어떨까.
  • 죽어가는 꽃에 ‘비아그라’ 줬더니 ‘벌떡!’

    죽어가는 꽃에 ‘비아그라’ 줬더니 ‘벌떡!’

    죽어가는 꽃도 비아그라 주면 OK? 영국의 한 정원사가 TV프로그램에 출연해 “소량의 비아그라를 사용하면 꽃을 싱싱하게 유지할 수 있다.”고 밝혀 화제로 떠올랐다. 유명 정원사인 데이비드 도머니는 최근 자신의 경험담을 바탕으로 유명 발기부전 치료제인 비아그라를 사용해 꽃을 화사하게 가꿀 수 있다고 주장했다. 도머니는 “비아그라 단 1mg을 녹인 물을 꽃에 주게되면 생명을 늘릴 뿐 아니라 싱싱함을 유지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비아그라 성분이 꽃의 생명력에 큰 영향을 주는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비아그라에는 산화질소 성분이 함유되어 있으며 산화질소는 세포증식을 억제하거나 항균 및 숙주방어효과 등 다양한 작용을 한다. 지난해 10월 영국의학저널(the British Medical Journal)에도 “비아그라가 식물을 싱싱하게 만든다.”는 호주 연구팀의 조사결과가 게재된 바 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연극리뷰] ‘돈키호테’

    [연극리뷰] ‘돈키호테’

    78세 노배우가 이렇게 깜찍하고 엉뚱해도 되는 걸까. 연극 ‘돈키호테’의 주연배우 이순재의 이야기다. 폭탄 머리에 양은냄비 모자를 쓴 채 천연덕스러운 표정을 짓다가 어느새 근엄한 표정으로 반전을 노리는 그는 145분가량의 공연 시간 내내 극을 이끌며 관객을 웃기고 울린다. 연극 ‘돈키호테’는 스페인 미겔 데 세르반테스의 1605년 작 소설인 ‘돈키호테’를 원작에 가장 가깝게 각색한 프랑스 극작가 빅토리앵 사르두의 희곡을 바탕으로 했다. 극은 좌충우돌 세상과 맞서는 몽상가 알폰소의 이야기를 다뤘다. 알폰소는 책에 감염된 인간으로, 책에 너무 심취한 나머지 현실과 이상을 구분하지 못한다. 특히 기사소설을 너무 많이 읽은 탓에 스스로 편력기사 ‘돈키호테 데 라 만차’라는 환상을 갖는다. 즉, 돈키호테는 알폰소가 스스로 만들어 낸 또 다른 자신의 모습이다. 사람들에게 소설의 세계는 허구이지만, 돈키호테에겐 현실의 일부다. 그래서인지 낭만적이고, 순수하다. 다소 엉뚱한 돈키호테의 캐릭터는 원작자인 세르반테스가 의도적으로 만들어 냈다. 묘하게 얽히고설킨 사각 관계의 네 남녀와 돈키호테, 그리고 돈키호테를 따라 모험 여행에 나선 판사 산초가 우연히 마주치며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속도를 내기 시작한다. 서로 너무나도 사랑하지만, 바람둥이 기사 돈 페르난도(한윤춘 역)의 계략에 속아 헤어지게 된 훈남 기사 카데니오(최광일 역)와 루신다(김리나). 그리고 루신다를 빼앗아 기뻐하는 돈 페르난도와 자신을 버린 남편 돈 페르난도를 애타게 찾는 도로시아(김양지 역)의 관계 속에 돈키호테는 은근슬쩍 개입하며 해결사 노릇을 톡톡히 해낸다. 절망적인 상황의 네 남녀에게 돈키호테는 희망과 꿈을 안겨주고, 절망적인 순간에도 생명력을 불어준다. “지금 이 시대는 꿈과 희망이 사라지고, 절망과 고통 속에 온갖 술수와 거짓, 악덕이 판을 친다. 나, ‘슬픈 표정의 기사’ 돈키호테는 낭만과 꿈, 사랑과 정의를 찾아 영원히 방랑과 모험의 길을 떠나 이룰 수 없는 꿈을 위해, 열정을 위해, 사랑을 위해, 보이지 않는 소중함을 위해 온 마음과 온몸을 바칠 것이다. 가자 정의를 위해! ”라고 외치며 극을 마무리 짓는 돈키호테. 그는 정의 실현을 꿈꾸는 이상주의자 그 자체다. 언덕 위의 풍차를 보며 거인이라 우기고, 일반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일삼지만 고결한 마음만큼은 주변인들로 하여금 경외감을 느끼게 한다. 이는 그와 너무나도 다른 노선의 현실주의자 산초가 우직하게 그의 모험 길을 동행하는 이유이자 수백년이 지난 후세의 관객들마저 돈키호테의 매력에 빠질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돈키호테 역에는 이순재, 한명구가 번갈아 맡아 연기하며 산초 역의 박용수, 오티즈 역의 정규수 등 실력파 배우들의 열연도 볼 만하다. 2010년 초연 당시 객석 점유율 92%를 기록하며 큰 인기를 끌었던 연극 돈키호테는 22일까지 서울 명동예술극장 무대에 오른다. 2만~5만원. 1644-2003.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 [씨줄날줄] 탁월한 홍보의 조건/이도운 논설위원

    빌 와인트로브. 마케팅 분야 세계 랭킹 1위인 노스웨스턴 대학 켈로그 스쿨 졸업. P&G 브랜드 관리 책임자, 켈로그 마케팅 책임자, 쿠어스 맥주 마케팅 담당 부사장. 브랜드위크가 선정한 ‘올해의 마케터’, 프롤링거가 꼽은 ‘최고의 마케터’. 2002년 1월 유학 중이던 콜로라도대학 마케팅커뮤니케이션학과에 와인트로브가 교수로 초빙됐다. 그는 ‘브랜드 전략’을 강의했다. 첫 수업부터 악연이었다. 5분 늦게 도착했는데, 이미 강의는 한참 진행 중이었다. ‘지각생’이라는 선입견 때문인지 그는 유난히 나에게 매정했다. 첫째 주 과제물에 C를 줬다. 자존심 때문에 더 열심히 공부를 했다. 중간고사에서 93점을 맞았다. 그런데 성적표를 받아보니 B였다. 쫓아가서 따졌다. 그는 태연히 말했다. “A는 94점부터야.” 입에서 욕이 저절로 나왔다. 유태인인 그가 한국인을 차별하는 것 아닌가라는 의심까지 하게 됐다. 사람을 싫어해도 존경할 수 있다는 것을 와인트로브를 통해 깨달았다. 그는 혹독하게 과제를 많이 주고, 까칠하게 평가했다. 그러나 그는 이론과 실무 양면에서 최고의 마케터이자 선생이었다. 학기를 마치고 월드컵을 보기 위해 귀국했다. 인터넷으로 기말성적을 확인하니 A였다. 그에게 장문의 편지를 썼다. “내가 당신에게 A를 받을 자격이 있는지 모르지만 자랑스럽다. 당신 때문에 괴로웠지만 정말 많이 배웠다.” 다음 날 답장이 왔다. 학교에 남을지 뉴욕의 컨설팅 회사로 갈지 고민 중이었는데, 나의 편지를 받고 남기로 했다고. 와인트로브는 마지막 수업에서 말했다. “지금까지 배운 것은 다 잊어버려도 됩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성공하려면 두 가지는 꼭 기억하세요. 첫째, 최고의 제품 또는 서비스를 만드세요. 둘째, 홍보 특히 TV 광고 잘하세요.” 둘 가운데 어느 쪽이 중요하냐는 질문이 당연히 나왔다. 그는 답변했다. “그렇다면 첫번째입니다. 제품이 최고이면 시간이 걸려도 반드시 성공합니다. 그러나 제품이 나쁘면 아무리 광고가 좋아도 오래가지 못합니다.” 한나라당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광고쟁이’라는 조동원씨를 홍보기획본부장에 임명했다. 그가 만든 카피 가운데 ‘침대는 가구가 아닙니다’는 에이스 침대가 첨단과학기술을 응용했기 때문에, ‘우리강산 푸르게 푸르게’라는 카피는 유한킴벌리가 실제로 숲을 가꿔왔기 때문에 생명력을 가진 것이다. 그가 한나라당을 위해 얼마나 탁월한 카피를 쓸 수 있을까. 결국 한나라당의 실체에 달려 있다. 이도운 논설위원 dawn@seoul.co.kr
  • [서울신문 2012 신춘문예] 평론 당선작 - 종언의 시대를 살아가기/이강진

    종언의 시대를 살아가기/이강진 1. ‘저항’의 시대와 그 기원 누군가 제게 2000년대 문학에게 주어질 단 하나의 이름을 꼽으라 한다면, 저는 주저하지 않고 그것을 ‘저항의 시대’라고 명명할 것입니다. 물론 이 저항은 여러분이 알고 있는 ‘저항’의 기표, 이를테면 세계에 대한 저항이나 주체를 둘러싼 폭력들에 대한 투쟁 등과는 다른 의미를 지니는 것입니다. 최근의 문학이 보여주는 강렬한 ‘저항’들은, 오히려 역사적 투쟁이 끝났다는 저 냉엄한 현실과 맞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여러분은 제 말을 의아하게 생각하고 계실지도 모르겠네요. 실제로 지난 몇 해간 문학은 끊임없이 그가 떠맡을 수 있는 정치적 가능성들에 대해 고민해왔고, 또 우리 앞에 그 실천적 노력을 내놓았으니 말입니다. 실은 저의 고민도 이곳에서 출발합니다. 최근 갑작스럽게 대두된 ‘시와 정치’에 대한 격렬한 저 논쟁의 배경에는, 과연 일반적인 평가에서처럼 단지 촛불시위나 용산참사와 같은 문학 외적인 요인만이 작용했던 것일까요?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이러한 진단은 문학이 예술적인 층위에 안주하면서도 대중적 관심을 추수하는, 일종의 권위적 시장주의를 드러냈다는 음울한 기억으로 남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사회적인 관심사에 대한 어쩔 수 없는 반응이라고 보기에, ‘시와 정치’논쟁은 지나치게 끈질기고 또 적극적이었다는 느낌을 주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에는 단순한 사회적 정세 이상의 무언가가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보는 편이 타당하지 않을까요. 그렇습니다. 바로 여기에, ‘저항의 시대’가 숨어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입을 모아 2000년대 들어서 낯선 감각과 새로운 어법으로 무장한 젊은 시인들이 ‘집단적’으로 출현했다고 말한다. 이들의 출현과 반응, 이 집단에 대한 정의는 다양하다. 소통불능의 자폐적이고 이기적인 문학이라는 신랄한 비판이나 조금만 더 자아 밖으로 나오라는 애정 어린 충고에서부터, 여러분이야말로 ‘도래’할 문학적 민중이 될 거라는 뜨거운 격려에 이르기까지, 상이한 반응들의 폭발에 정작 시인들은 당황했다. 새로운 시들을 둘러싼 이 논의들은 여러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겠지만, 적어도 내게는 나를 난감하게 만드는 문제, 즉 문학과 윤리 또는 미학과 정치의 관계에 대해 영원 회귀하는 질문들 그리고 그 대답들로 느껴진다.(진은영, ‘감각적인 것의 분배: 2000년대의 시에 대하여’, ‘창작과 비평’ 2008년 겨울호. 69쪽) 문학이 고민하는 정치가 즉흥적인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시와 정치’논쟁의 기폭제가 되었던 진은영의 ‘감각적인 것의 분배: 2000년대의 시에 대하여’에서부터 이미 드러납니다. 하지만 시가 미학적인 완성을 추구하면서도 동시에 직접적으로 정치적이어야 한다는 귀결은, ‘문학과 윤리 또는 미학과 정치의 관계에 대해 영원 회귀하는 질문들’에 대한 당연한 정답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이 글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이 진부한 결론이 아니라, 오히려 ‘2000년대의 시에 대하여’라는 그 시작이 되어야 합니다. 어째서 진은영은 특정한 것으로 정의 내릴 수 없는 낯선 시들의 출현으로부터 시의 정치성에 대한 고민을 읽어냈던 것일까요? 80년대와 결별한 후 정치에 대한 반동적인 면모를 보여 왔던 문학이, 촛불시위와 용산참사를 목격한 후 뒤늦게 정치성에 대한 필요를 느꼈다는 해석은 지나친 음모론같이 보입니다. 반면에 이 글의 출발점이었던 ‘젊은 시인’들을 주목하는 순간, 이야기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기 시작합니다. 진은영이 가진 문제의식이란 현실과 문학 사이의 괴리에 대한 즉흥적인 고민이 아니라, 포스트모던 담론 이후 등장한 새로운 시에 대한 오래된 고민이었던 것입니다. 랑시에르의 결론부터 먼저 말하자면, 문학을 비롯한 예술 전반의 문제는 ‘감각적인 것을 분배하는’ 문제이며 그런 면에서 예술은 필연적으로 ‘정치’와 관계한다―책제목 ‘감각적인 것의 분배: 감성론과 정치’라는 말 자체에 이미 그의 문제의식과 결론이 압축적으로 표현되어 있다.(진은영, 앞의 글, 71쪽) 진은영이 소개한 랑시에르의 감성론은, 미적 자율성의 이름으로 정치를 함께 담보할 수 있는 매력적인 이론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당시 문단에서 이 이론을 열렬하게 환영했던 데에는, 혹시 ‘시와 정치’에 대한 고민과는 별개의 이유가 있지는 않았을까요? 저는 그것이 우리 문학이 직면했던 거대한 과제, 가라타니 고진의 ‘근대문학의 종언’을 넘어설 방법이 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문학은 어디까지나 ‘근대문학’이며, 근대의 사회구조가 만들어낸 일종의 상상적 권위에 불과하다는 이 충격적인 선언 앞에 당시 우리 문단은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때마침 유령처럼 배회하던 ‘문학의 위기’에 대한 우울과 겹치면서, 가라타니의 종언론은 엄청난 파괴력을 가진 폭탄으로 다가왔던 까닭이죠. 한참 후에야 가까스로 정신을 추스른 비평가들은, 이후 너나 할 것 없이 앞을 다투어 ‘문학의 종언-이후’에 대한 갖가지의 견해들을 내놓게 됩니다. 하지만 그것들은 대부분 ‘나는 더 이상 문학에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습니다’라는 가라타니의 태도가 지나치게 자극적인 종언의 기표일 뿐이라거나, 그가 논의하는 내용이 일본문학만의 특수한 상황을 전제하고 있다는 식의 비생산적인 사족에 그칠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사실은, 애초에 가라타니가 종언을 이야기한 맥락이 문학의 소멸을 말하는 비관이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오히려 가라타니가 문학에 요구한 것은 종언을 받아들이고 그 이후에 전개될 ‘종언의 시대’를 살아가는 태도였습니다. 이것은 ‘근대문학의 종언’이라는 표제를 내걸었음에도 실제로 그가 집중적으로 조명한 것이 세계자본주의의 전개양상이었던 점을 통해 확인할 수 있지요. 따라서 문학에 대한 기대를 그만두겠다는 그의 말은, 철저하게 ‘근대문학’에 부여된 상상적 층위의 정치적 역할과 그 권위에 기대지 않겠다는 뜻으로 이해되어야만 했던 것입니다. 가라타니에게 문제의 핵심은 ‘정치’에 있었지만, 당시 우리 문단은 그것을 성급하게 ‘문학’에 국한시키며 오해를 낳은 셈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이렇게 급조된 대응담론이 아니라, 고진이 ‘종언’을 선언한 이후에 등장했던 우리의 문학 그 자체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2. ‘정치’의 자유, ‘정치’로부터의 자유 ‘근대문학의 종언’이 등장했던 해는, 우리 문단에서 ‘미래파’라는 새로운 바람이 막 불기 시작하던 시기였습니다. 처음 그 갑작스러운 등장에 대해 보내던 우려와 달리, ‘미래파’는 얼마 지나지 않아 그것을 환영하는 이들과 비판하는 이들 모두에게 중심담론으로 여겨지게 되었습니다. 그만큼 새로 등장하기 시작한 시인들이 과거와 같이 (담론화하기 쉬운)특정 논의의 틀 안에 규정되는 일이 드물었던 까닭도 있었겠지만, 미래파 논의가 이토록 빠르게 문단의 중심담론으로 부상한 데에는 분명 석연치 않은 부분이 많은 것이 사실이죠. 이후 전개된 ‘미래파 논쟁’의 주된 핵심은 다음 두 가지로 요약해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과연 ‘미래파’란 존재하는가, 둘째는 이들이 진정으로 우리 시의 ‘대안’이 될 수 있는가가 그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재미있는 사실 하나가 숨어있습니다. 논쟁에 참여한 거의 모든 이들이, 별다른 합의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시가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새로움’을 보여준다는 데에 동의했다는 점입니다. 실제로 ‘미래파 논쟁’이 얼마 지나지 않아 기세가 한풀 꺾였던 것에 비해, 그것을 가능하게 했던 시적 ‘새로움’에 대한 믿음은 ‘미래파’라는 분류가 유명무실해진 지금까지도 굳건히 이어져오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에게 남겨진 과제는 단순히 최근 젊은 시인들의 시적 작업을 분석하여 그것이 ‘미래파’의 증거가 되느냐를 따질 것이 아니라, 어떤 이유로 우리 문단에 이러한 논의가 등장했고 또 불붙었는가를 살펴보아야 할 일인 것입니다. 어차피 우리 시의 미래는 이들이 적어나갈 것이다. 이들에게는 80년대 시인들이 걸머져야 했던 역사와 시대에 대한 채무의식이 없고, 90년대 시인들이 내세운 그럴듯한 서정, 고만고만한 서정이 없다. 그 대신에 다른 게 있다. 그리고 이들의 시는 무엇보다도 먼저, 재미있다.(권혁웅, ‘미래파: 2005년, 젊은 시인들’, ‘미래파’, 문학과지성사, 2005. 149~150쪽) 가라타니는 문학의 종언을 가져온 중요한 전제로서, 이제 더 이상 문학이 현실의 ‘정치’나 ‘실천’을 대리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을 들고 있습니다. 반면에 권혁웅은 ‘채무의식’이 없어짐으로써 우리 시가 시적인 새로움을 폭발시킬 수 있었던 원동력을 마련했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두 사람의 차이로부터 시의 ‘새로움’이 가진 기원을 엿보게 됩니다. 이제 시는 80년대적인 ‘역사와 시대에 대한 채무의식’, 즉 ‘실천’이라는 기표에 대한 강박으로부터 당당할 수 있는 자유를 획득하였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오늘날의 현실이 80년대의 시가 직면했던 폭력적인 억압을 그대로 내재하고 있다는 점에 있습니다. 현실의 억압이 보이지 않게 되면서, 시는 더 이상 불가능한 실천을 상상적으로 담보하던 과거의 역할을 해낼 수 없게 되었습니다. 더는 ‘우리에게/아무도 총을 겨누지 않는’(진은영, ‘70년대産’) 사회가 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는 여전히 존재하는 폭력들과 맞설 것을 요구받습니다. 가라타니가 ‘정치의 자유’로 인해 발생한 이 모순적 상황을 종언의 원인으로 인식했다면, 우리는 이 모순된 상황을 ‘정치로부터의 자유’를 획득한 후 겪는 일시적인 홍역으로 여겼습니다. 저는 바로 이 분기점이야말로 어째서 진은영이 랑시에르의 감성론을 급히 ‘수혈’할 수밖에 없었는가를 설명해준다고 봅니다. ‘시와 정치’에 대한 논의는 ‘정치로부터의 자유’를 획득한 ‘새로운’ 시가, 어떻게 여전히 남아있는 저 정치에 대한 요구를 떠맡을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직접적으로 정치적이면서도 첨예하게 미학적이’고 싶다는 진은영의 고백에는, 전자에 의한 ‘실천’의 획득과 후자에 의한 ‘새로움’의 향유를 동시에 소유하고픈 욕망이 고스란히 묻어납니다. 바로 이곳에서, 제가 진은영이 랑시에르를 소개한 배경에 ‘근대문학의 종언’을 극복하려는 의지가 숨어있다고 말한 이유가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시적인 ‘새로움’에 대한 요란한 환영, 심지어는 강박적인 것으로마저 여겨지는 저 ‘새로움’에 대한 추수는 단순한 예술사조의 변천이나 시대적 흐름에 의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자기 의지로 얻어낸 것이 아니었던 ‘정치로부터의 자유’에 대한 강한 채무감에서 기인했던 것입니다. 지금까지 대다수의 논의들은 ‘채무의식’의 극복이 ‘새로움’의 원동력이라고 말해왔지만, 실제로는 그 반대였던 셈이지요. 아마도 신형철은 이러한 진실에 일정 부분 닿아 있는 듯 보입니다. 그가 황지우의 시에 대해 언급하면서 이야기하는 미학과 정치의 논의는, 앞선 것들과는 조금 다르게 나타납니다. 이렇게 아주 엄밀한 의미에서, 미학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이 한몸이었던 사례가 우리 시사(詩史)에 있는가? 물론 있었다. 예컨대 황지우의 시는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가. 그의 시가 대표적으로 보여준, ‘회의하면서 긴장하는’ 그 언어의 배후에는 권력에 의한 커뮤니케이션의 억압이라는 외적 상황이 있었다. 할 수 있는 말과 해야만 하는 말의 분열 속에서, 언어의 회의 혹은 언어의 긴장은 (시인 자신의 의지나 역량에 힘입은 바 못지않게) 상당부분 ‘역사적으로’ 성취되었다. 덕분에 그의 시는 첨예하게 미학적이면서 동시에 직접적으로 정치적일 수 있었다.(신형철, ‘가능한 불가능’, ‘창작과 비평’ 2010년 봄호, 375쪽) 과연 최근 우리 시는 80년대의 채무의식을 ‘극복’하였을까요? 신형철은 여기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을 내비치고 있습니다. 오히려 그는 과거의 시가 정치를 떠맡을 수 있었던 원인이 현실정치의 불가능함에 있었다는 가라타니의 견해에 더 가까운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날 ‘시’와 ‘정치’가 확고한 동반자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데에는, 시인이 가진 분노의 감정이 미학의 이름을 통해 고스란히 정치적 정념의 형태로 분출될 수 있었던 역사적 맥락이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신형철 또한 이 이상으로 나아가는 데에는 실패하고 맙니다. 새로운 시와 비평에 대한 요구가 ‘아무도, 적어도 시에서는, 그 어떤 발화도 억압하지 않는’ 오늘날의 상황에 의해 생겨난 것이라고 말하면서도, 그가 제시하는 방향이란 ‘첨예하게 미학적인 시들에서 우선 그 미학적인 것의 핵심을 정확하게 읽어내고, 그 이후에 거기에서 정치학적인 것까지를 읽어내는 일’에 그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정치적’인 것과 ‘정치학적’인 것을 구분하는 신형철의 화법에서, ‘실천’의 강박과 ‘새로움’의 강박을 서로 다른 것으로 떼어놓으려는 시도를 명백하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단언컨대, 이들이 지니는 동일성을 철저하게 인식하고 또 인정하지 않는 이상, ‘시와 정치’는 영원한 제자리걸음을 면할 수 없을 것입니다. 3. 정치적인 것의 가장자리에서 정치를 ‘고유한 주체의 합리성에서 유래하는 특정한 행위 양식’으로, 시를 ‘주체가 스스로의 자유 안에서 건네는 내밀한 고백’이라고 정의할 때, 시와 정치가 본질적으로 다른 차원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명백해 보입니다. 플라톤이 ‘국가론’에서 시인을 거부했던 이유는, 시가 가지는 본연의 속성이야말로 가장 정치적이었던 데에 그 이유가 있습니다. 훌륭하게 완성된 공동체에게 시는 위협적인 존재가 됩니다. 왜냐하면 시가 가지는 힘이란 공동체의, 세계의 질서가 보지 않으려 하는 것들을 목격함으로써 얻어지기 때문입니다. 정치의 과정 또한 이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가 논의하던 랑시에르의 표현을 빌자면, ‘정치는 권력 행사가 아니’며, ‘정치는 그 자체로, 즉 고유한 주체 때문에 현실화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세계의 상징체계 속에 ‘없음’으로 규정된 ‘자리-없음’(placelessness)들이야말로 가장 정치적인 실재의 공간이라고 말했던 라캉의 언명과 동일한 맥락을 지니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정치란 처음부터 통치 과정(치안)의 바깥, ‘정치적인 것의 가장자리에서’만이 가능한 행위인 셈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바깥의 존재양식이야말로 시와 정치가 떼어놓을 수 없는 관계임을 입증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놓쳐버린 권위’라고 생각했던 과거 문학의 정치성을 되돌아보면, 그것들이 방금 이야기한 ‘정치’와는 사뭇 다른 층위에 있었다는 것을 알아내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정치적인 시’라고 불러온 것들은, ‘정치’의 문제라기보다는 오히려 ‘정치적인 것’에 더욱 가깝게 다가서 있었던 것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어떤 것은 실체가 있는 폭력들에 맞서는 형태로 나타나기도 하였고, 다른 곳에서는 도래할 혁명을 향해 나아갈 것을 소리 높여 외치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신형철도 이미 지적했듯이, 과거 우리 시들이 ‘정치적인 것’에 대한 행동을 통해 스스로의 정치적 역할을 해낼 수 있었던 것은 역사적 맥락에 기댄 결과였습니다. 때문에 이제부터 시가 추구해야 할 정치성이란 랑시에르의 진단과 같이 본래적인 의미의 ‘정치’가 되는 것이지요. 그러나 최근의 논의는 단순히 이전과 다른 ‘정치’의 정의에만 집중한 나머지, 스스로 경계할 것을 주장했던 전위적 언어에 대한 맹신에 빠지고 말았던 것이 사실입니다. 비평가들은 ‘감성의 분할’이라는 개념을 통해 그것을 벌충하려 하였으나, 포스트모더니즘 담론을 둘러싼 논쟁에서 가장 혹독한 비판을 받았던 ‘텅 빈 해체’의 문제를 그대로 답습하는 오류를 저지르고 말았던 것입니다. 내가 보기에 시 비평의 영역에서 그동안 관성적으로 제기되어온 ‘소통’에 대한 요구가 지닌 본질적 문제점은, 개인과 사물 세계를 ‘자명한 것’들로 번역하려는 ‘투명성’에 대한 욕망을 숨기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그러나 오히려 시적 공간에서 보존해야 할 것은 개인과 사물의 불투명성이며, 빛의 언저리에 드리워진 기이한 그림자와 지우려 해도 지워지지 않는 얼룩이 아닐까? (…) 그러므로 낯선 현전의 형식들에 직면해 여전히 소통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우리 시대의 비평이 우선 대결해야 하는 것은, 텍스트 자체라기보다는 오히려 의사소통 공동체의 지평에 나타난 저 낯선 얼룩을 깨끗이 지우고자 하는 순백을 향한 비평 자신의 욕망이 아닐까? (함돈균, ‘균열, 불면, 기화, 그리고 여백은 어떻게 정치적인 것이 되는가’, ‘얼굴 없는 노래’, 문학과지성사, 2009, 133쪽) 함돈균이 내놓은 ‘불투명성’의 문제의식은 이러한 오류를 확연히 드러내고 있습니다. ‘자명한 것’과 ‘투명성’을 추구하는 질서란 개인과 사물을 명확하게 재단함으로써 그것들을 교정하고 규정지으려 하는 힘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랑시에르가 ‘세계의 감성분할행위’라고 불렀던 것과 동일한 행위를 뜻하지요. 언뜻 생각하기에 이들에 대한 저항이란 혁명의 의지를 내포하고 있는 듯 보이기도 합니다. 세계의 규정들을 무화하는 시도는 그 자체로 하나의 저항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유려한 수사와 문장들을 걷어내고 함돈균의 주장을 다시 읽어보면, 이야기는 조금 달라집니다. 그가 비평이 나아가야 할 목표로 제시하고 있는 ‘비평 자신의 욕망’과의 대결이란, ‘낯선 얼룩’을 보존하고 ‘불투명성’을 획득하는 작업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함돈균이 이것을 결국 우리들이 직면한 ‘낯선 현전의 형식’에 대한 옹호를 위해 주장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의 논리는 세계에 대한 전위의 저항을 제시한 이후에 실제로 태어나고 있는 ‘낯선 형식’들을 조명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새롭게 출현한 시들을 ‘낯선 현전’과 ‘낯선 형식’으로 명명한 뒤, 이들에게 ‘소통의 문제를 제기하’는 태도의 반동성을 비판하는 방식으로 전개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비단 함돈균만이 보여주고 있는 문제가 아니며, 전반적인 포스트모더니즘 담론이 공통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문제점입니다. 그러나 이 사실이 그의 논리적 모순을 합리화해줄 수는 없을뿐더러, 오히려 우리 문학담론 전체의 병폐를 폭로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저만이 아닐 것입니다. 한마디로 해체나 전위를 통한 저항의 대부분은, 다분히 사후적인 평가를 위해 ‘만들어진’ 정치성이었던 셈입니다. 백낙청은 자신의 글에서, 시의 정치성에 대한 논의들이 가지는 이러한 환원론적 오류에 대해 일침을 가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런 통상적인 의미의 윤리 내지 도덕을 거부하는 것 자체가 문학의 진정한 윤리임을 강조하는 데 머물 경우 그것은 구체적인 정치현실과 무관한 또하나의 정언명령을 발하는 것밖에 안 된다.’(백낙청, ‘우리시대 한국문학의 활력과 빈곤’, ‘창작과비평’ 2010년 겨울호, 20쪽)고 강조합니다. 그의 이러한 지적은 매우 정확한 것이어서, 대부분의 논의들이 가지는 정치성이 단지 제스처에 불과한 껍데기라는 것과 함께, 이제는 그러한 논의방식들이 하나의 새로운 정형이 되어가고 있음을 명확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백낙청은 그 너머로 논의를 이어가지 못한 채, ‘동아시아 전통에서 말하던 도덕, 즉 도(道)와 ‘도의 힘’으로서의 덕(德)에 대한 사유가 실종되고 만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며 방향을 선회합니다. 그의 글에서 이 말이 의미하는 바가 정확히 드러나고 있지는 않지만, 우리는 그가 의도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음미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먼저 도(道)는 노자의 ‘道’ 개념으로 이해해볼 수 있습니다. 규정적 명명을 거절하는 상태로서의 이 개념은 포스트모더니즘의 해체적 사고와 밀접하게 연관되는 부분이지요. 그리고 덕(德)을 일종의 공동체적 당위성, ‘세계-내-존재’가 되기 위한 최소한의 합의점으로 바라본다고 할 때, 우리는 백낙청의 이 진술이 포스트모더니즘 담론들의 한계를 재차 강조하고 있음을 읽어낼 수 있습니다. 즉 ‘동아시아 전통에서 말하던 도덕’을 이야기함으로써, 포스트모더니즘이 도달할 수밖에 없는 허무주의가 앞뒤 없이 계속된 막무가내식 해체의 결과임을 꼬집는 셈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백낙청의 지적은 매우 합당함에도 불구하고 선명한 한계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이 지적을 어디까지나 ‘모더니즘 논의’의 문제로 국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백낙청은 (모순을 드러낸)이들과 달리 ‘다른 흐름’들이 있음을 주장하며, 그것의 구체적 성과로 자신이 전개해 온 리얼리즘 논의를 들고 있습니다. 한국적인 리얼리즘 논의를 지속적으로 발전시키면, 랑시에르의 감성론보다 훨씬 우리의 현실에 밀착된다는 것입니다. 그는 논쟁적인 문제제기를 피하기 위해 자세한 검토를 하지 않겠다고 말하지만, ‘역시, 마구 가거나 너무 가서는 잘 갈 수가 없다’는 경구적 발언을 인용하는 백낙청의 태도로부터, 우리는 자신이 발전시켜온 리얼리즘론의 우월함을 주장하는 그의 함의를 어렵지 않게 발견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오늘날 문학이 직면한 문제가 이전부터 계속되어온 리얼리즘 대 모더니즘의 구도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것이라는 데에 있습니다. 전에 없던 시적 변화들은 문학이 직면한 고민을 그대로 보여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모더니즘 논의’로 한정짓는 태도는 여전히 ‘시’와 ‘정치’를 별개의 것으로 보려는 자세를 드러내고 있는 셈입니다. 강동호는 이러한 오류를 극복하고 정치성의 논의를 상당 부분 발전시키고 있습니다. 그는 재현행위가 가질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한계를 오롯이 인정하고, 그 실패로부터 가능성을 발견하기 위한 우회로를 탐색하기 시작합니다. 시가 할 수 있는 일은 어쩌면 여기까지인지도 모른다. 시의 잠재적 정치성을 긍정적 어법인 잠재성의 정치로 바꾸는 일은 오롯이 독자에게 남겨진 몫일 것이다. 아울러 저 시적 언어들이 탄생하게 된 배경을 찾아주는 것, 즉 시의 유물론적 조건을 탐사하고 그것을 현실의 언어로 변환시키는 ‘목숨을 건 비약’(salto mortale)을 감행하는 일은 어디까지나 비평가의 몫이다. 이러한 작업은 오늘날의 미학과 사회적 현실 간의 상관도를 상세히 규명하는 사회학적 분석에 해당하며, 이를 근거로 이 세계에 대한 비판적 목소리를 던지는 복화술사의 정치에 속할 것이다. (강동호, ‘존재론적 비명으로서의 시적인 것’, ‘창작과비평’ 2009년 가을호, 312쪽) 시의 언어는 삶을 직접적으로 드러낼 수는 없지만, 그것이 처한 시공간을 써냄으로써 제 기능을 수행한다는 그의 주장이 기존의 ‘텅 빈 해체’와 결별할 수 있는 것은, ‘시가 할 수 있는 일은 어쩌면 여기까지인지도 모른다’는 진실에 과감하게 다가서는 태도가 있기에 가능했습니다. 궁극적으로 강동호가 ‘비평의 의무’라고 여기고 있는 ‘시의 유물론적 조건’을 탐색하는 행위란, 어디까지나 시가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예외성 너머에서만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모두 시가 세계에 대한 어떠한 물리적 강제를 행사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행동양식을 이끌어내기 위한 선전이 되는 순간, 그것이 이미 시로서의 생명력을 상실한다는 것 또한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와 시인에게 ‘예술가의 의무’라는 이름하에 불가능한 것들을 요구하는 일이란 기만에 다름 아닌 셈입니다. 물론 제가 여러분에게 ‘시는 정치적일 수 없다’는 말씀을 드리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시가 가진 예외성을 인정하는 것은, 오히려 강동호가 지적했듯 오로지 시만이 할 수 있는 일을 발견하는 초석이 됩니다. 왜냐하면 시의 예외적 속성에 대한 고의적인 망각이란, 시가 ‘정치적인 것’에 봉사할 것을 요구하는 논리의 한가운데에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는 현실정치에 대해 물리력을 행사할 수 없는 시를 가지고 통치행위에 연관된 영향력을 고민하려다 보니, 우리 시는 필연적으로 스스로의 불가능성을 은폐하고 왜곡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신형철이 말한 ‘역사적 맥락’이 소멸한 지금, 더 이상 망각의 방법은 통용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제 문학은 ‘정치적인 것의 가장자리에서’ 있을 수밖에 없다는 자신을 첨예하게 인지하고, 그것을 통해 자신의 ‘조건’들을 낳았던 본래의 ‘정치’로 회귀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4. ‘상상적 대리자’에서 ‘상상의 대리자’로 앞서 저는 새로운 시대에 요구되는 문학의 의무란, 리얼리즘과 모더니즘의 이분법적 구분을 모두 넘어서는 것으로만 가능하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이것은 모더니즘-리얼리즘의 이분법적 구도를 해체하자는 맥락의 이야기가 아니라, 분리된 담론으로 여겨져왔던 각각의 한계들을 한번에 조망하고, 그것들을 총체적으로 극복할 고민이 필요하다는 의미입니다. 가라타니는 자유로워진 ‘정치’의 시작이 ‘문학의 종언’을 가져왔다고 했지만, 제 생각은 약간 다릅니다. 기실 오늘날 우리 문학이 직면한 위기는 달리 보면 ‘정치’의 위기이기도 했습니다. 격렬한 투쟁의 시대가 이미 지나갔음에도, 우리에게 ‘80년대적 실천’은 커다란 그림자가 되어 여전히 드리워져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이 굴레를 벗어던지기 위해 두 가지 과제를 오늘의 정치에 요구합니다. 하나는 우리가 지난 역사를 통해 이미 민주화를 달성했다는 승리의 착각을 극복하는 일이며, 다른 하나는 투쟁의 과정을 경험하며 우리에게 각인된 ‘실천’의 기표에 대한 강박을 벗어던지는 일입니다. 그리고 이 두 과제는, 흥미롭게도 문학이 직면한 과제이기도 합니다. 포스트모더니즘 담론의 유입 이후, 이제까지 문학은 더 이상 대문자로 적어야 할 정치행위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전제 위를 내달려왔습니다. 지금에야 그 유행이 거의 수그러들었지만, 몇 해 전만 하더라도 ‘거대담론이 사라졌다’는 구호가 굉장한 인기를 얻었음을 보면 쉽게 알 수 있지요. 그러나 80년대의 투쟁이 맞서왔던 억압의 구조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사회의 깊은 이면에 내재된 채 현존하며, 오히려 더욱 교묘한 전술로 우리를 구속하고 있습니다. 허용된 자유의 형태로 드러나는 자본주의의 자유는 문학이 겨냥할 만한 명확한 적대를 제공하지 않았지요. 이후 문학은 진퇴양난의 고민에 휩싸였던 것입니다. 해체주의의 대안적 담론을 추수하자니, 그것은 이미 ‘거대담론의 붕괴’라는 잘못된 필요조건을 요구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었고, 과거의 실천적 구호를 답습하자니 오히려 그 적대행위 자체가 초자아적 정언명법이 되어 주체를 구속할 뿐이었습니다. 확고한 결단이 불가능했던 문학은 결국 두 가지 사이에서 모호하게 표류하였고, 그 결과 등장한 것이 기형적인 ‘미래파’의 규정과, 그들의 부족한 정치성을 벌충할 ‘시와 정치’의 논의였던 셈입니다. 흑백논리의 모순을 회색이 되어 피해보고자 한 것이죠. 그러나 이러한 자기합리화는 문학의 생명력을 더욱 옥죄는 결과를 낳았을 뿐이며, 가라타니의 진단대로 문학은 독자들에게 더 이상 스스로의 권위를 내세울 수 없게 되었습니다. 몇몇 비평가들은 이러한 현상을 ‘미적 모더니티의 운명’으로 설명해보려는 시도를 했지만, 그것이 억지스러울 수밖에 없다는 것은 그들 자신이 더욱 잘 알고 있었을 일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문학이 지향해야 할 진정한 방향성이란 무엇일까요? 저는 문학이 철저하게 현실정치의 바깥에 존재하는, ‘정치적인 것의 가장자리에서’의 역할을 재인식할 것을 주장합니다. 과거의 문학이 불가능했던 정치의 ‘상상적 대리자’ 역할을 통해 권위를 획득했다면, 이제부터 문학은 그것을 넘어서서 현실정치의 불가능한 감성을 떠맡는 ‘상상의 대리자’가 됨으로써 그것을 넘어서야만 하는 것입니다. 놀랍게도 벤야민은 이미 1929년에 이러한 개념의 기초를 제시한 바 있습니다. 현재로서는 초현실주의자들이 그 ‘공산주의자 선언’이 오늘날에 내리는 지령을 파악한 유일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그들의 얼굴 표정을, 매분 60초 동안 째깍거리는 자명종의 숫자판과 맞바꾸며 짓고 있다. (발터 벤야민, ‘초현실주의’, ‘발터 벤야민 선집 5’, 길, 2008, 167쪽) 오늘날의 문학은 현실정치가 절대로 수행할 수 없는 두 가지의 역할을 짊어짐으로써 스스로의 정치성을 획득해내야 합니다. 우선 첫째는 ‘정치적인 것’들에 발목이 잡혀 있는 현실정치를 대신하여 ‘정치’만의 고유한 미래적 지향을 상상하는 일입니다. 수많은 조건들의 제약을 받는 ‘실천’을 대신하여, 문학은 자신의 자유로움을 통해 ‘정치’가 필수적으로 요구하는 아나키스트적 상상력을 회복해야 합니다. 억압의 구조가 주관적 폭력에서 객관적 합리성으로 이행된 이상, 현실정치의 조직적인 치밀함만으로는 저 합리성을 넘어서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그러므로 문학은 이들에게 객관을 넘어설 상상력을 부여함으로써, 저 ‘정치’에 부재하는 ‘미래에의 의지’를 대신하는 역할을 부여받는 것입니다. 벤야민에게 ‘초현실주의자’로 상징된 예술가의 의무가 다음 시대로부터의 지령을 파악하는 것이었듯이, 시인이 세계를 조망하는 소실점들을 거부할 수 있는 자유란 처음부터 저 상상력을 지켜내기 위함이었던 것입니다. 문학에 부여된 두 번째 역할은, 우리 주변의 ‘얼굴 표정’을 ‘한 사람도 빠짐없이’ 바라보는 일입니다. 벤야민의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에는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역사는 한 번도 진보하지 않았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친부살해를 통해 권력구조를 뒤집은 형제는 결국 그들 중 한 사람이 아버지의 권좌에 앉음으로써 권력을 더욱 강하게 재생산하고 맙니다. 마찬가지로 ‘혁명’을 자처했던 지난 역사의 모든 변화들은, 대개 그 결과가 새로운 지배구조를 낳는 반복을 가져왔을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문학이야말로 이러한 역사의 악순환을 끊어낼 수 있는 최후의 희망이 됩니다. 이제까지의 혁명이 다시 권력이 된 까닭은, 그 전개과정 안에서 필연적으로 소외되는 이들을 끌어안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문학은 현실정치의 과정이 미처 목격하지 못하는 그늘에까지도 자신의 시선을 가져갈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따라서 문학이야말로 모두를 끌어안을 영구한 혁명, 벤야민이 희구했던 단 한 번의 진보를 완성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정치적 사명을 띠고 있는 것입니다. 어떠한 수식을 붙인다 하더라도, 문학이 감행하는 정치란 처음부터 예외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문학이야말로 라캉적 ‘없음’이 된 자리들, 상징체계에서 추방된 이들과 초대받지 않은 미래를 세계 속에 드러낼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세계의 감성분할을 재분할하는, 상징계를 넘어설 ‘미학적 예술 체제’의 실재인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시와 정치’에 대한 논의가 이제 끝났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입니다.
  • [박명재 세상 추임새] 이름을 불러주는 사회

    [박명재 세상 추임새] 이름을 불러주는 사회

    이름은 지구상에서 인간만이 지니는 특권이다. 세상의 숱한 생물 중에서 자기 고유의, 자기 혼자만의 이름을 가진 것은 오직 사람뿐이다. 수많은 식물과 동물들은 종류를 나타내는 이름만 가질 뿐 개체 하나하나가 각자의 이름을 갖지는 않는다. 백합은 백합, 소나무는 소나무, 고래는 고래, 사자는 모두 사자일 뿐이다. 예로부터 사람의 이름은 함부로 범접하거나 훼손할 수 없는 존엄과 영예의 대상이었다. 사람의 이름에는 뜻하는 바 의미와 함께 이루고자 혹은 되고자 하는 소망, 그리고 조상과 가문의 얼이 온전히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이름은 자신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이자 자신을 총칭해 내보이는 정체성과 고유성인 동시에 인격의 결정체이다. 요즈음은 대체로 한 사람이 평생 하나의 이름을 가지고 살아가지만 옛날에는 아명(兒名) 따로, 성인 이름 따로, 그리고 벼슬이나 관직에 나아갈 때 또 다른 이름을 갖는 등 성장 연대기에 맞춰 여러 개의 이름을 가지는 경우가 많았다. 우리가 잘 아는 포은 정몽주의 경우, 처음에는 어머니가 태몽에 난을 보았다 하여 몽란(夢)으로, 그 후 집 앞 나무에 용이 올라가는 꿈을 꾸고는 몽룡(夢龍)으로, 마지막으로 부친이 꿈속에 주희(朱子)를 만났다 하여 몽주(夢周)로 개명하기에 이른다. 지금도 좋은 이름을 짓기 위한 성명학과 작명소가 유행하고 있다. 요즘 세상에서는 이 이름 대신 번호가 등장하여 온통 번호 세상이 되고 있다. 아파트 현관문을 나서는 순간 우리는 이름 대신 몇 동, 몇 호 아저씨가 되고, 병원 환자 대기실에서도, 은행 창구 앞에서도 번호가 부르는 곳으로 이리저리 움직인다. 그러다 보니 이름이 불려지는 기회가 줄면서 이름을 기억하려는 노력 또한 점점 줄고 있다. 심지어 선생님의 이름을 모르는 학생이 있는가 하면 스승의 이름조차 모르는 제자들이 수두룩한 게 현실이다. 마찬가지로 제자의 이름을 모르는 선생님도 꽤 있지 않을까 싶다. 좋은 이름보다 중요한 것은 그 이름을 자주 불러주는 것이다. 무엇보다 이름이 번호로 대체되면서 개개인의 가치와 존엄성 내지는 생명력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번호 속에는 개인의 개성과 인간성 내지 정체성이 몰각되어 그저 공허한 숫자의 개념만 있을 뿐이고, 번호에는 책임과 이름값이 따르지 않는다. 이러한 번호 뒤에 숨어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지 않는 편리성과 집단을 효과적으로 통제·관리할 수 있는 효용성 등으로 현대사회는 점점 번호를 선호하는 세상으로 빠르게 변하고 있다. 우리가 흔히 인용하는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기고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긴다.’(人死有名, 虎死有皮)는 말이 있듯이 이름은 생전과 사후까지 자신의 전부를 드러내고 표상하는 소중한 그 무엇인 것이다. 그래서 인간사에 있어 가장 치욕적인 일은 살아서는 이름에 걸맞은 자기 이름값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이고, 죽어서는 이름이 더럽혀지는 것이다. 이름이 가장 극진히 대접을 받고 소중히 여김을 받는 것이 바로 종교이다. 불가에서는 합장하고 기원할 때 부처님의 이름으로, 기독교에서는 모든 간구와 기도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무슬림은 알라의 이름으로 하게 된다. 상관이 친근하게 부하 직원의 이름을 불러줄 때, 의사가 따뜻하게 환자의 이름을 불러줄 때, 선생님이 자애롭게 학생의 이름을 불러줄 때, 낯선 사람이 공손히 나의 이름을 불러줄 때, 우리 사회에는 그만큼 신뢰와 존경과 사랑이 넘쳐나게 된다. 이처럼 머리로 기억하여 번호를 부르는 대신 마음속에 기억하여 이름을 불러주는 사회에는 따스한 시선과 훈훈한 인간미가 넘쳐나는 살가운 세상이 된다. 시인은 말했다. 누가 나의 빛과 색깔에 맞는 알맞은 이름을 불러다오. 나는 그에게로 가서 잊히지 않는 의미가 되고 싶다고. 세상 끝날 때까지, 생명이 다할 때까지 서로가 서로의 이름을 다정스레 불러주는 사회, 이 어렵지 않은 아름다운 세상이 필자의 소박하고 작은 세상 추임새이다.
  • [종교계 수장들의 임진년 신년사] “혼란과 전환의 해, 공존의 지혜 모아야”

    [종교계 수장들의 임진년 신년사] “혼란과 전환의 해, 공존의 지혜 모아야”

    임진년 새해를 앞두고 각 종교계 수장들이 일제히 신년사를 발표했다. 불교, 천주교, 개신교, 민족종교 수장들은 최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급서로 인한 정세 불안과 새해 두 차례의 선거를 의식해서인지 한결같이 평화와 협력의 지혜 찾기를 강조했다. 수장들의 신년사를 요약한다. ●정진석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눈앞의 이익보다 영원한 가치를 지향해야” 새해에는 모두가 지혜로운 삶을 살기를 기원합니다. 성경에서는 지혜의 원천을 인간이 아니라 하느님이라고 가르칩니다. 하느님을 경외하고 겸손한 마음을 지닌 사람이 올바른 지혜를 얻을 수 있습니다. 지혜로운 삶과 선택은 늘 우리를 행복하게 할 것입니다. 눈앞의 이익을 보지 않고 영원한 가치를 지향하는 삶이야말로 하느님이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입니다. 공동체의 이익과 평화를 가져올 수 있어야 참으로 지혜로운 행동입니다. 겸손하고 착한 마음, 작은 행복에도 감사하는 사람이야말로 지혜롭게 사는 사람입니다. ●인공 태고종 총무원장 “승천하는 용의 기상으로 세계의 중심에 서자” 우리 민족은 어려움에 직면할 때마다 더욱 단결해 온 저력의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지금 국가와 민족의 미래를 가름할 많은 중대사가 있습니다. 이런 때일수록 한마음으로 어둠과 갈등, 고통과 번뇌를 청산하고 지혜와 자비를 바탕으로 화해와 협력의 큰 마음을 내어 국운 융성과 국가 발전을 위해 힘을 모아야 할 것입니다. 힘차게 승천하는 용의 기상으로 대한민국이 세계의 중심에 서서 국제질서를 만들어 가고 국민 모두가 주인이 되어 원대한 희망과 포부를 마음껏 펼치는 한 해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김영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총무 “차별 없이 평등하게 살아갈 세상 만들어야” 새해에는 우리 사회에 깊이 뿌리박힌 이념·세대 간 갈등, 남북 갈등, 분열의 골이 메워지기를 소망합니다. 모든 피조물들이 더불어 살아가는 아름다운 공동체를 이루는 일에 협력합시다. 성서가 말하는 하나님의 정의는 철저하게 약자의 편에 서서 세워야 합니다. 가진 자나 못 가진 자들이 평등하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 가는 일에 협력해야 할 것입니다. 특히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으로 한반도 상황에 큰 관심이 모아지고 있습니다. 남북관계 개선을 위하여 정부, 시민사회단체가 지혜를 모아야 합니다. ●안운산 증산도 종도사 “잊었던 내 뿌리·내 역사부터 바로 세워야” 하늘의 광명과 땅의 광명, 사람의 광명이 온 누리에 차고 넘치기를 축원합니다. 지금은 천지에서 사람 알캥이를 결실하는 때입니다. 세상이 흔들릴수록 원시반본(原始返本), 곧 내 뿌리를 찾고 내 뿌리에 기대야 삽니다. 모든 생명력은 뿌리에서 나옵니다. 잊었던 내 뿌리, 내 역사, 내 조상을 바로 세우고 그 힘을 받는 사람만이 새로이 열리는 상생 세상의 주인공이 됩니다. 이제 상극의 원한과 갈등을 넘어 보은, 해원, 상생, 원시반본의 도심(道心)을 회복해 지난 세월의 원과 한을 풀고 모두가 화합합시다. ●자승 조계종 총무원장 “밝은 지혜의 눈으로 새 지도자 선택하자” 새해 두 번의 선거와 북녘에서 전해진 세연이진(世緣已盡)의 소식이 민족 명운을 좌우할 전환점들로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지혜로운 선택과 판단의 기준은 공존과 번영, 평화와 행복에 맞춰져야 합니다. 새 지도자를 선택함에 있어 밝은 지혜의 눈으로, 국민이 찾으면 일궤십기(一饋十起) 하는 참된 지도자를 봐야 합니다. 불확실성의 시대일수록 정확한 선택과 판단을 도리로 삼아야 합니다. 지혜의 눈으로 오늘의 안개를 헤쳐가야 합니다. 모든 분들에게 승천하는 기상이 선업(善業)의 공덕으로 이어지기를 빕니다. ●무원 천태종 총무원장직무대행 “대지와 같은 마음으로 갈등·불화 잠재워야” 올해도 세계적인 경제위기와 정세혼란으로 점철될 상황이 잠복되어 있습니다. 민족·문화·세대·종교 간 갈등은 더욱 폐쇄적이고 정치상황은 오리무중인 듯 혼란스럽습니다. 부처님의 자비광명이 우리를 보듬고 지혜광명이 길을 비춰 우리 사부대중의 슬기가 나날이 성장하여 흥법호국(興法護國)의 대원력으로 모든 위기를 극복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모든 생명을 차별 없이 길러 주는 대지와 같은 마음으로 갈등과 불화를 잠재우고, 장엄하게 떠오르는 태양을 보며 새 희망의 서원을 세웁시다. ●경산 원불교 종법사 “지도자는 신뢰를 생명처럼 지켜 나가야” 지도자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습니다. 밝은 시대의 지도자는 선공후사(先公後私)와 지공무사(至公無私)를 표준 삼아 이끌어 갈 때 공익의 참 주인, 세상의 큰 주인으로 우뚝 설 것입니다. 대중의 마음은 곧 하늘 마음이라 했습니다. 지도자가 신뢰를 생명처럼 지켜 나갈 때 우리 사회는 더욱 정직해질 것이며, 자연히 하늘 마음은 지도자에게로 향할 것입니다. 지도자의 혜안은 이정표가 되고, 공익정신은 한층 넓은 길을 개척하며, 신뢰로 함께 가는 길은 어려움을 헤쳐 나갈 용기를 갖게 할 것입니다. ●임운길 천도교 교령 “모두 힘 합쳐 동귀일체 하면 불가능은 없어” 새해를 맞아 국내외 모든 동덕들과 동포 여러분의 건승을 기원합니다. 용은 큰 희망과 성공을 상징합니다. 천도교 경전에 ‘용이 물 기운을 얻으니 가장 재미가 좋고 용이 태양주를 전하니 궁을(弓乙)이 문명을 돌이키도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 모두 희망을 안고 모든 일이 뜻대로 이뤄지도록 힘써야 합니다. 우리 모두가 힘을 합쳐 동귀일체 하면 불가능은 없을 것입니다. 김성호 편집위원 kimus@seoul.co.kr
  • [2012년 지구촌 뒤흔들 3대 사건] (1)아랍의 봄

    [2012년 지구촌 뒤흔들 3대 사건] (1)아랍의 봄

    또다시 격동의 한 해가 간다. 하지만 ‘송구영신’은 인간의 계산법일 뿐, 격동은 멈추지 않고 사건은 인과(因果)의 생명력을 이어간다. 2011년 지구촌을 들썩인 3대 사건으로 아랍의 봄, 유럽 재정위기, 월가 시위를 꼽았다. 2012년 한 해에 이 사건들은 지구촌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2012년을 전망하고 지나온 흔적을 되짚어 봤다. ‘아랍의 두 번째 봄바람이 군주제 국가와 사하라 이남에도 불어닥칠까.’ 2011년 예보 없는 태풍이었던 ‘아랍의 봄’(북아프리카·중동의 연쇄적 반정부시위)이 절반의 성공을 거둔 채 ‘1막’을 내렸다. 서막의 희생자 대부분은 이집트와 리비아, 예멘 등 세습을 시도했던 공화정 국가의 독재자였다. 현재진행형인 이 지역 민주화 시위는 2012년에도 계속될 전망이다. 다음 퇴출의 타깃은 군주제를 표방한 중동국 지도자들이 될 공산이 크다. 아랍 각국은 격변과 혼란을 감내하며 숨가쁜 1년을 버텨냈다. 혁명의 발원지는 북아프리카 튀니지였다. 정부의 부당한 단속에 항의하며 몸에 불을 붙였던 젊은 노점상 모하메드 부아지지(당시 26세)가 지난 1월 4일 숨지자 분노의 불씨는 독재와 가난에 지친 튀니지 민중의 가슴에 옮겨붙었다. 반(反)정부 시위가 들불처럼 확산됐고 결국, 지네 엘아비디네 벤 알리 대통령은 같은 달 14일 사우디아라비아로 망명했다. 끝날 것 같지 않던 23년 철권통치는 민중의 분노 앞에 무너졌다. 반정부 시위의 동력은 생활고와 독재, 지도층의 부패에 대한 염증이었다. 10% 가까운 실업률에 시달리던 이집트인들은 이웃 나라 튀니지의 재스민혁명이 성공하자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이 다음 차례”라며 그의 퇴진을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를 열었다. 30년간 비상계엄령에 의지해 권좌를 지켰던 무바라크는 군대를 앞세워 진압에 나섰지만 시위발생 18일 만인 지난 2월 11일 끝내 하야했다. ‘아랍의 봄’은 리비아의 42년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가 축출되면서 정점에 이르렀다. 정권이 시민들의 민주화 요구에 총칼로 답하면서 시위는 내전으로 비화했다. 리비아 사태는 지난 10월 20일 서방의 지원 속에 기세를 탄 시민군에게 카다피가 붙잡힌 뒤 숨지면서 종지부를 찍었다. 예멘을 33년간 장기 집권했던 알리 압둘라 살레 대통령도 지난달 23일 면책을 조건으로 권좌에서 물러나기로 약속했다. 미완의 혁명을 완수하기 위한 아랍 국민들의 투쟁은 내년에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가장 눈여겨봐야 할 곳은 시리아다. 바샤르 알 아사드 대통령이 부자세습으로 권력을 유지하고 있는 곳이다. 그는 국내외적 퇴진 요구에 아랑곳하지 않고 권력을 붙들고 있으나 오래 버티기 어려울 것 같다고 영국 시사 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최근 분석했다. 국민 다수를 이루는 이슬람 종파인 수니파가 아사드의 시아파 정권에 등을 돌렸고, 야권 세력이 시리아국가위원회(SNC)를 구성하는 등 반정부 시위가 조직화되고 있다. 올해 민주화시위를 가까스로 막았던 중동 군주제 국가들에 다시 한번 혁명의 바람이 불어닥칠지도 관심사다. 서정민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는 26일 “시민혁명이나 내전이 아닌 중재를 통해 평화적 정권 교체를 이룬 예멘식 모델이 다른 국가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분석했다. 절대왕정과 독재자들의 ‘낙원’으로 여겨졌던 아프리카 중·남부 국가들로 민주화시위가 확산될지도 관전 포인트다. 아랍의 봄을 지켜보며 중동·아프리카 국민들이 권위주의에 저항할 수 있는 의식을 키운 만큼 민주화 혁명의 불길이 사하라 이남까지 번질 가능성이 있다. 또 이집트, 리비아 등 혁명 이후 민주화 과정에서 파열음을 내온 국가들이 내년에는 정상 궤도에 진입할지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씨줄날줄] 당명개정/임태순 논설위원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애송하는 김춘수의 시 ‘꽃’의 한 구절이다. 물체나 사람에 이름이 없으면 존재한다고 해도 아무런 의미가 없는 ‘하나의 몸짓’에 불과할 뿐이다. 그러나 이름이 붙으면 비로소 존재에 생명력이 불어넣어지고 유의미한 존재가 돼 ‘꽃’이 된다. 이름이 부여돼야 정체성을 갖게 되는 만큼 이름은 중요하다. 동양에서는 이름이 그 사람의 운명과 길흉화복을 결정짓는다 하여 성명의 음양, 횟수, 음운 등을 분석하여 신중하게 이름을 지었다. 어렸을 때와 성인이 됐을 때의 이름이 다르고 어른이 돼서 자(字), 호(號)를 갖는 것도 호칭을 통해 자아를 구현·실현하려는 깊은 뜻이 담겨 있는 것이다. 우리 정치를 이끌어온 주요 정당들은 수많은 이름을 갖고 명멸해 왔다. 미국이나 영국이 민주·공화, 보수·노동당 등으로 큰 변화 없이 고착화된 구조를 이루어온 것과 달리, 우리나라는 큰 틀에서는 양당구조였지만 정당의 부침은 심했다. 독재, 쿠데타 등 정치적 격변도 원인이지만 정당이 이념이나 정책 중심이 아니라 특정인에 의해 유지·운영돼 왔기 때문이다. 자유당, 공화당, 민정당, 민자당, 신한국당, 국민회의, 열린우리당 등 주요 정당들이 모두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등 대통령을 배출했으나 정권 재창출에 실패하자 모두 간판을 내렸다. 민주정치를 구현해야 할 정당이 1인 지배구조였다는 것은 아이러니라 할 수 있다. 최근 기존 정당들이 안철수 바람 등으로 변신에 내몰리고 있다. 진통 끝에 야당 통합을 이룬 민주당은 지난주 당명을 민주통합당으로 개명, 새출발을 했다. 반면 국정 난맥, 중앙선관위 홈페이지 공격사건 등으로 만신창이가 된 한나라당은 쇄신파로부터 개명 요구를 받고 있지만 당명 변경은 일단 수면 아래로 내려간 상태다. 당의 이름을 바꾸는 것은 상징성은 크지만 어쩌면 환골탈태, 쇄신의 가장 간편하고 쉬운 방법일 수 있다. 자신의 과오를 당명 변경을 통해 지우려는 편의주의적인 발상도 엿보인다. 오명(汚名)을 씻기 위해 철저히 반성하고 하나하나 진정성 있게 고쳐 나가면 더 깊은 감동을 줄 수 있다. 정치적 기득권을 과감히 내던지고 당 운영을 민주적으로 하는 등 소프트웨어를 획기적으로 개선하면 국민들도 다시 관심을 보일 것이다. 쉬운 길보다는 힘든 길을 가야 한다. 임태순 논설위원 stslim@seoul.co.kr
  • [일본통신] 기아 출신 그레이싱어의 끈질긴 생명력

    [일본통신] 기아 출신 그레이싱어의 끈질긴 생명력

    2005-2006년 KIA 타이거즈에서 활약하며 에이스 노릇을 했던 세스 그레이싱어(36)가 지바 롯데와 계약을 맺고 일본무대에서 살아 남았다. 그레이싱어는 요미우리 자이언츠와의 계약을 끝내며 일본을 떠날 것이 확실했지만 지바 롯데에 새 둥지를 틀며 내년시즌 또다시 일본무대에서 얼굴을 볼수 있게 됐다. 그레이싱어는 한국에서 1년 반을 뛰며 20승 18패(평균자책점 3.28)를 기록하며 빈약한 KIA 마운드를 이끌었지만 2006년 시즌 후 일본으로 진출, 야쿠르트 스왈로즈에서 활약했다. 야쿠르트에서 그레이싱어는 첫해 16승 8패 평균자책점 2.84를 기록하며 성공적인 한해를 보냈고 이듬해인 2008년 요미우리로 이적해 17승, 2009년 13승을 올리며 외국인 투수 성공시대를 활짝 열었다. 하지만 그레이싱어를 발목 잡은 것은 팔꿈치였다. 한국에서도 팔꿈치 문제로 고생했던 그는 지난해 팔꿈치 수술로 한 시즌을 통째로 날렸고 올 시즌 복귀했지만 단 1승(5패, 평균자책점 4.15)에 머물며 이제 전성기가 지나 갔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투수력 부족으로 인해 2년연속 부진했던 요미우리 입장에선 외국인 선수 쿼터 1장이 아쉬웠던 것은 당연했다. 팔꿈치 수술 전력이 있는 외국인 투수가 이렇게까지 일본에서 살아 남은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그레이싱어를 영입한 지바 롯데는 에이스인 나루세 요시히사와 올 시즌 가능성을 확인한 카라카와 유키, 그리고 오미네 유타등 강속구 투수들이 있지만 베테랑 와타나베 순스케의 기량이 예전만 못해 경험이 풍부한 선발투수가 부족했던게 사실이다. 지바 롯데 입장에선 검증된 외국인 투수 보강이라고 하지만 이미 2년동안 허송세월을 보냈던 그리고 팔꿈치 수술 전력이 있는 그레이싱어가 얼만큼 팀 전력에 보탬이 될지는 미지수다. 그레이싱어 입장에선 운이 좋은 편이다. 그레이싱어의 5년간 일본에서의 통산 성적은 47승 30패 평균자책점은 3.25다. 지난해 두산 베어스에서 활약하다 올 시즌 일본프로야구 라쿠텐 골든이글스로 이적한 켈빈 히메네스(31)는 내년시즌에도 라쿠텐 유니폼을 입게 됐다. 히메네스는 2010 시즌 두산에서 14승 5패 평균자책점 3.32의 호성적을 기록하며 성공한 외국인 투수로 평가받으며 두산 팬들을 흥분시켰지만 1년만에 일본으로 이적하며 잊혀진 선수가 됐다. 라쿠텐과 2년계약을 맺은 히메네스는 그러나 올해 초 스프링캠프에서 팔꿈치 통증이 찾아왔다. 팔꿈치 부상으로 인해 동계훈련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했고 시범경기 역시 참여하지 못해 올 시즌 부진이 예상됐던 것은 당연했던 일. 더군다나 올해 초 터진 일본 동북부 지방의 지진, 특히 라쿠텐의 홈인 미야기현 센다이시가 직접적인 피해를 입은 과정을 몸소 체험하며 정신적인 충격까지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히메네스는 뒤늦게 1군에 합류했지만 1승 7패(63.1이닝) 평균자책점 3.69로 기대에 못미쳤고 타팀과 비교해 선발전력이 떨어지는 라쿠텐 입장에선 내년시즌 히메네스를 전력 외로 평가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때를 같이해 두산 베어스에서 히메네스를 다시 데려올 것이란 소문이 나돌았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히메네스는 내년에도 라쿠텐 유니폼을 입는다. 히메네스가 일본으로 건너갈 당시 호시노 센이치 감독은 그의 투구모습을 직접 관찰하며 2년계약을 체결했다. 만약 1년만에 계약을 해지한다면 호시노가 외국인 선수를 잘못 뽑았다는게 증명되는 상황이니 히메니스 입장에선 상당히 운이 좋다고도 할수 있다. 또한 올해엔 팔꿈치 이상으로 겨울동안 훈련이 부족했던 것도 부진했던 원인 중 하나라고 평가하고 있는만큼 내년 시즌이 기대가 되는 것도 당연해 보인다. 라쿠텐은 내년시즌 투수 대럴 레스너와 히메네스, 그리고 야수 루이스 가르시아와도 재계약을 체결했다. 최근 한국프로야구에서 뛰어난 기량을 선보인 외국인 선수들은 약속이나 하듯 일본프로야구에 진출하는 것이 관례처럼 되고 있다. 시즌 중에도 일본프로야구 스카웃트들이 대거 방한해 쓸만한 선수를 관찰하는 일을 야구장에서도 쉽게 목격할수 있다. 심지어는 남의 나라 덕아웃을 제집 드나들듯 하는 일본의 태도도 종종 목격되곤 한다. 그리고 약속이나 한듯 한국에서 좋은 성적을 올린 외국인 선수들은 이듬해 일본으로 떠나는 일이 빈번해 지고 있다. 일본과 비교해 돈싸움에서 상대가 되지 않은 한국의 현실을 감안하면 한국은 일본프로야구의 팜 역할을 하고 있는 모양새다. 그레이싱어가 그랬고 히메네스 역시 마찬가지다. 한국은 2명의 외국인 선수만 보유할수 있는 반면 일본은 1군에만 4명의 외국인 선수를 쓸수 있고 선수를 보유하는 것은 무한대이기에 선수 입장에선 경기를 뛰는데 있어 어떠한 제약이 한국보다는 자유롭다. 또한 한국에선 부상이라도 발생하면 그걸로 끝인 경우가 많지만 일본은 어느정도 검증된 외국인 선수는 부상이 회복될때까지 기다려 주는 것도 가용할수 있는 외국인 선수 범위가 그만큼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년이면 6년째 일본무대에서 뛰는 그레이싱어, 그리고 올 시즌 극도의 부진에 빠졌던 히메네스의 재계약은 의미하는 바가 크다고 볼수 있다. 어찌됐든 이들의 기량은 아직도 쓸만하다는게 대체적인 시각이기 때문이다. 특히 올 시즌 후 일본무대에서 퇴출 될것으로 예상됐던 그레이싱어의 지바 롯데 이적은 그의 값어치를 떠나 끈질긴 생명력이라 불려도 손색이 없을듯 싶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일본야구통신원 윤석구 http://hitting.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