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생가
    2026-03-16
    검색기록 지우기
  • NC
    2026-03-16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2,946
  • 화폭에 스며든 詩

    화폭에 스며든 詩

    “김남조 선생님이 가끔 야단치시기도 했어요. 조금 더 공부에 매진했으면 정지용 최고 전문가가 되어 있었을 텐데 왜 딴짓만 하느냐고요. 그런데 어쩔 수 없죠. 공부보다 그림이 너무 좋고 재밌으니까요.” ‘시가 있는 그림’전을 여는 갤러리서림 대표 김성옥씨의 말이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원래 김 대표는 시인이다. 숙명여대 국문과를 다니면서 김남조 선생 밑에서 시를 배웠다. 1986년에는 정지용(1902~1950) 시인을 주제로 논문도 썼다. 지금이야 정지용 하면 노래로도 만들어졌던 그의 대표작 ‘향수’ 한 구절을 읊조릴 법도 한데, ‘정의사회 구현’에 몰두했던 그 시절엔 엄두도 못 냈다. 비록 전향했다지만 보도연맹에다 6·25전쟁 때 납북된 전력 때문이다. ●그림을 너무나 사랑한 시인… 정지용 작품으로 기획전 시작 “그땐 정지용 이름 석 자를 똑바로 못 썼어요. ‘정00’, 아니면 아예 ‘000’이라고 쓸 때예요. 아마 정지용을 본격적으로 다룬 논문은 제가 처음 썼을 거예요. 잡혀갈 생각까지 하면서 썼지요.” 정지용 생가 복원 사업의 기억도 있다. “지금이야 지방자치단체에서 열성적으로 하지만 그때만 해도 시비 하나 세우는 데 얼마나 많은 핍박을 받았던지…. 관뿐 아니라 주민분들도 왜 이런 걸 하려 하느냐고….” 연장선상에서 시작한 것이 ‘시가 있는 그림’전이다. 공부한 것은 시요, 너무 좋고 관심 깊었던 것은 그림이었으니 이 둘을 합쳐 보자 싶었던 것. 1987년 정지용 작품까지 포함해서 화가가 좋아하는 시를 골라 그림을 그리도록 했다. 시화전 형태로는 상업화랑에서 처음으로 열린 것이다. “그때 문학계, 미술계에 계신 분들이 매우 좋아했어요. 화가는 시를 읽고 시인은 그림을 보고. 그러고 만나서 같이 놀고. 언론에도 크게 났었지요. 그때처럼 기사가 크게 날 수 있을까 싶어요.” 그 첫 발걸음으로부터 벌써 25년이 흘렀다. ●박희진詩 테마… 이중희 등 작가 13명 작품 30일까지 판을 벌이는 습성은 청담동으로 옮겨 가서도 여전했다. 1991년 갤러리를 서울 강남구 청담동으로 옮긴 뒤 청담미술축제를 처음 만들었다. 당시만 해도 청담동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삼청동이나 인사동 못지많게 만들어 보고 싶었다. “그런데 그거 아세요? 초기에 청담동 갔었던 분들 가운데 딱 저만 건물을 안 샀어요.” 계산기 두드리는 재능은 없는가 보다 물었더니 그저 웃을 뿐이다. 이번 전시의 테마는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박희진(80)의 시다. 박돈, 이중희, 박철, 김광문, 이명숙, 노태웅, 이희중, 황주리, 김선두, 이영선, 정일, 임상진, 금동원 등 13명의 작가가 박희진의 시를 골라 이에 맞춰 그림을 그렸다. 전시는 오는 30일까지. 출품된 작품을 달력으로도 만들었다. 따로 주문하면 받을 수 있다. 1만원. (02)515-3377.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독일 프랑크푸르트, 어디까지 가 보셨나요

    독일 프랑크푸르트, 어디까지 가 보셨나요

    고민이다. 유럽 중앙에 자리 잡았다. 덕분에 항공망이 빵빵하다. 큰 국제공항이 자리 잡았다. 교통 이점 때문에 1년에 국제 행사만도 수십개가 열린다. 내년 일정, 그 가운데 큼직한 것만 꼽아 봐도 환상적이다. 파격적인 현대미술가 제프 쿤스의 전시, 빛과 도시를 주제로 한 ‘루미날레 12’, 박물관과 미술관이 한데 어울린 박물관 축제, 합창 축제를 거쳐 도서전까지. 여기에다 아이언맨 유럽챔피언십(국제 철인 3종 경기), 마라톤 대회도 있다. 다달이 새로운 행사다. 행사가 겹칠 무렵엔 인근 숙박시설이 동나기 일쑤다. ●아이젠나흐-거리에서 만나는 인간 바흐의 맨 얼굴 그런데 관광객들은 ‘찍고’ 갈 뿐이다. 해서 도시 이름을 대 봤자 ‘어디어디를 가 봤는데 좋더라.’ 하는 얘기는 쉬이 나오지 않는다. 8시간 시차를 끼고 한국과 연락을 주고받으며 일하다 보니 호텔방 ‘죽돌이 죽순이’가 됐다거나 드넓은 공항에서 노숙자처럼 늘어져 잤다거나 무거운 짐가방을 들고 헐레벌떡 뛰어다녔다는 얘기가 대부분이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얘기다. 그래서 내놓은 아이디어다. 겨울에 프랑크푸르트와 그 주변 도시를 거닐어 보라는 것. 전통의 대학 도시 하이델베르크, 바로크의 거장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1685~1750)와 종교개혁의 아버지 마르틴 루터(1483~1546)의 흔적을 더듬어볼 수 있는 아이젠나흐, ‘그림동화’를 남긴 그림 형제의 이야기가 숨어 있는 하나우 같은 도시들이다. 가장 인상 깊은 도시는 아이젠나흐. 예전에 동독 지역이었다는 선입관 때문일까. 시내에는 독일 특유의 고즈넉한 소도시 분위기가 진하게 배어 있다. 여기엔 바흐의 생가와 박물관이 있다. 알려졌다시피 바흐는 19세기 멘델스존이 복원하기 전까지 잊혀진 인물이었다. 생가와 박물관에서는 ‘음악의 아버지’ ‘바로크의 지존’이 아니라 교회에 적당한 일자리 하나 구하려고 노심초사했던 인간 바흐의 맨 얼굴을 만날 수 있다. 삐걱대는 마룻바닥 소리가 요란한 생가에서는 매시간 옛 악기로 바흐의 음악을 직접 연주해 준다. 초기 피아노는 피아노라기보다 큰 기타 같은 인상을 풍기는데 그 묘한 음색이 바흐 음악을 색다르게 느낄 수 있게 한다. 루터를 만나기 위해서는 아이젠나흐 인근 바르트부르크성으로 가야 한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 성은 11세기에 지어졌다. 중세 고성답게 주변 지형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언덕 위에 우뚝 서 있다. 종교개혁을 얘기하다 파문당하고 쫓기게 된 루터가 신약성서 번역을 위해 숨어든 곳이 바로 이 성이다. 좁디좁은 성에서 이뤄진 귀족들의 호사스러운 생활 모습을 엿보는 재미도 있지만 루터의 방만은 못하다. 구불구불 이어진 복도 끝 작은 방인데, 그 공간 자체가 이대로 주저앉지 않겠다는 루터의 결기를 느끼게 해 준다. ●하나우-그림형제의 고향… 폭격으로 흔적 소실돼 하나우는 그림 형제의 고향이다. 그런데 그림 형제의 흔적은 광장의 동상과 문패 하나가 전부다. 제2차세계대전 때 폭격으로 모두 소실돼서다. 전쟁 말기 연합군의 가혹한 폭격으로 모든 게 잿더미로 변했다. 그래서인지 하나우에서 만난 옛 기억을 가진 노인들은 “물론 우리가 잘못하긴 했지만….”이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드러내 놓고 불평할 처지가 아니라는 점은 잘 알지만 너무도 참혹하게 당한 기억을 떨쳐 버릴 수 없다는 얘기다. 그래서 하나우에서 눈에 띄는 건 오히려 시의회 청사다. 옛 시청 건물을 보존하면서 그 건물을 둘러싸고 건물을 하나 지었는데, 거기다 ‘콩크레스 파크’(Congress Park)란 이름을 붙였다. 왜 그런고 했더니 말 그대로 공원이다. 중극장 규모로 건물을 지어 둔 뒤 주민들 누구나 행사나 모임에 쓸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저마다 기념비적인 건물을 짓느라 여념이 없는 우리나라 지방자치단체들이 자연스레 비교되지 않을 수 없다. ●하이델베르크-미로같은 골목길·아름다운 고성 하이델베르크는 익히 알려진 대로 대학 도시다. 성은 한번쯤 꼭 올라가 볼 만하다. 아름다운 정원은 물론 세계 최대 규모인 22만ℓ의 와인 술통이 보관돼 있다. 미로 같은 골목길을 걸어도 되고 경사로를 오르는 트램을 타도 된다. 성 주변은 크리스마스 시즌을 맞아 행사 준비로 분주했다. 빛 장식으로 장관을 이룰 모습이 절로 연상된다. 프랑크푸르트에도 볼거리는 있다. 시내 중심의 괴테하우스를 빼놓을 수 없다. 요한 볼프강 폰 괴테(1749~1832)의 생가를 복원해 둔 것인데 한국어 안내도 있으니 불편함은 없다. 또 삐죽빼죽 솟은 마천루들도 눈여겨보길. 모든 노동자가 자연광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규정 때문에 건물 모두 뾰족한 하이힐 같은 느낌을 준다. 거기다 대부분 유리로 마감했다. 몇 층마다 하나씩 아예 정원을 꾸며 놓은 빌딩도 간간히 눈에 띈다. ‘그린 시티’ 열풍을 짐작해 볼 수 있다. ●프랑크푸르트-괴테하우스·하이힐 모양 건물들 프랑크푸르트가 대륙 중앙의 도시다 보니 이들은 모두 철도로 연결되어 있다. 아이젠나흐, 하나우, 하이델베르크 모두 프랑크푸르트에서 1시간 남짓한 거리에 있다. 또 아이젠나흐는 바이마르, 라이프치히, 에어푸르트, 예나 등 괴테가도로 이어진다. 하나우는 메르헨(민담)가도의 출발점이요, 하이델베르크는 체코 프라하까지 이어지는 고성가도와 독일 남서부를 관통하는 판타지가도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사통팔달, 이럴 때 쓰는 말이다. 단, 먹는 재미는 좀 덜하다. 독일의 족발이라는 슈바인학센과 겨울철 크리스마스 특식인 거위나 오리 요리가 있다. 맥주를 곁들이기 때문인지 전반적으로 짠맛이 강한 편. 그러나 한 가지 빼놓을 수 없는 것은 글루바인. 레드와인에 물을 타서 데운 것인데 주로 겨울에 마신다. 들쩍지근한 것이 노곤한 여행객의 단잠에 그만이다. 시장 같은 곳에 들어서면 시큼한 냄새가 나는데 이건 근처에 글루바인이 있다는 신호다. 크리스마스마켓에서 글루바인 한잔 사 들고 마인 강가에 서면 왠지 푸근해진다. 글 사진 프랑크푸르트(독일)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여행 TIP 도시마다 전일권 교통카드, 인근 도시 이동 땐 철도로 독일 대중교통은 편리하다. 시내를 운행하는 S반, 가까운 교외까지 운행하는 U반에다 지상의 트램도 있다. 1~2일에 걸쳐 충분히 둘러볼 생각이라면 ‘프랑크푸르트 카드’ 하는 식으로 도시마다 카드를 사두는 게 좋다. 가격은 도시별로 약간 차이가 있는데 1일권이 8유로 안팎, 2일권이 12유로 안팎이다. 대중교통 무제한 이용에다 시티투어버스 요금과 박물관·미술관 입장료 할인 혜택이 있다. 프랑크푸르트에서 쇼핑을 즐기려면 근교 ‘바르트하임 빌리지’가 좋다. 프랑크푸르트 중앙역 서편에서 왕복 버스가 매일 운행된다. 프랑크푸르트 시내 쇼핑도 괜찮다. 시내 중심가에 주요 상점들이 밀집해 있다. 유리를 이용해 빛을 건물 내부로까지 깊숙이 끌어들인 독특한 콘셉트의 갤러리백화점은 건물 그 자체만으로도 탐험해 볼 만하다. 인근 도시를 가는 데는 철도가 편리하다. 복잡한 철도망을 이해해 보겠다고 얽히고설킨 철도 노선표를 앞에 두고 고민할 필요는 없다. 기차역에 티켓 자동 발매기가 있는데, 목적지를 입력하면 노선과 개찰구를 일러주는 정보 제공 기능도 함께 있다. 노선 정보만 파악하는 것은 당연히 무료다. 국내에도 지점을 갖춘 ‘레일 유럽’을 통해 미리 기차표를 사 두면 편리하다. 독일 전역, 독일과 가까운 오스트리아와 스위스 일부 지역에서도 쓸 수 있는 저먼 레일, 독일 등 17개국에서 쓸 수 있는 유레일 패스 등 용도별로 다양하게 준비돼 있다.
  • ‘고향의 봄’… 그 꽃대궐 만나보세요

    ‘고향의 봄’… 그 꽃대궐 만나보세요

    한국 조각의 선구자 김종영(1915~1982)의 30주기 기념전 ‘나의 살던 고향, 꽃대궐’이 내년 3월 18일까지 서울 종로구 평창동 김종영미술관 신관 사미루에서 열린다. 전시의 초점은 경남 창원 소답동 김종영 생가다. 그의 생가는 창원 일대에서 가장 큰 기와집이었다. 동요 ‘고향의 봄’의 작사가 이원수(1911~1981)가 동네 후배다. ‘고향의 봄’ 가사에 나오는 ‘꽃대궐’이 바로 김종영의 생가다. 어린 시절 가난했던 이원수는 “작은 마을이었지만 오래된 큰 기와 지붕의 부잣집이 있었고 그 근처에 온갖 꽃이 만발했다.”고 회고한 적이 있다. 그 집 아들이 1936년 일본으로 건너가 현대조각을 배우고 1949년 서울대에 조각 전공 교수로 부임한 뒤 1953년 한국 최초의 추상조각 작품을 내놓은 김종영이다. 해서 이번 전시는 근대문화재로 지정된 김종영 생가를 찍은 사진작품, 김종영 집안을 조명해볼 수 있는 각종 자료들, 일제의 남작 작위를 끝내 거부한 석촌 윤용구의 작품 등이 전시됐다. 본관 불각재에서는 ‘김종영특별전-곡선’도 동시에 연다. 복잡한 기법 대신 단순한 자연미를 추구했던 그의 작품들을 볼 수 있다. (02)3217-6484.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CHINA HUNAN-펑황고성鳳凰古城에서의 밤과 낮 짧거나 긴 머무름

    CHINA HUNAN-펑황고성鳳凰古城에서의 밤과 낮 짧거나 긴 머무름

    펑황고성鳳凰古城에서의 밤과 낮 짧거나 긴 머무름 펑황고성 출신의 대표적인 작가 심종문(SHEN CONGWEN). 그는 펑황고성을 떠올리게 하는 전원 소설 <변경>으로 노벨문학상 후보에 오른 바 있으며, 중국 역사유물학자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그의 저서들 방대한 영토 안에 한 국가로 부대끼며 살고 있는 다양한 소수민족들. 그들이 보여주는 문화가 지방마다 다르기에 중국은 여행을 거듭해도 언제나 처음처럼 신선한 느낌이다. 전통가옥과 풍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고성古城’ 혹은 ‘고진古鎭’이 처음은 아니지만 후난성의 고성을 방문했을 때, 그 시간들은 여전히 이색적이었다. 그 고즈넉한 여행을 소개한다. 에디터 트래비 글·사진 Travie writer 이지혜 취재협조 중국국가여유국 02-773-0393 자연이 만들고 지킨 고성마을 고성은 오랜 역사와 문화를 가진 곳이므로 배경을 먼저 아는 것이 중요하다. 펑황고성은 행정구역상으로 상서토가족묘족자치주湘西土家族苗族自治州의 펑황현에 속한다. 1957년에 지정된 상서토가족묘족자치주는, 자치주 청사소재지인 지소우시吉首市와 루시현瀘溪, 구장현古丈, 후아위엔현花垣, 바오징현保靖, 용순현永順, 롱산현龍山 등으로 이뤄져 있다. 앞에 상서가 붙은 이유는 상강湘江이 흐르는 후난을 한자로 ‘상湘’으로 표시하기 때문이다. 상서 지역은 후난성 서부에 위치한다. 외국인이 소수민족의 문화를 구별하기는 쉽지 않으나, 다른 지역의 소수민족은 묘족, 강족, 장족 등이 주류를 이루는 데 반해, 이곳은 토가족 문화가 강하다. 2006년 기준으로 276만명이 거주하는데, 이 가운데 약 71%가 토가족과 묘족이다. 펑황현이라는 지금의 이름은 청나라 때부터 부르던 것. 현존하는 성곽 터 등은 대부분 원명 시대에 기초를 형성했고, 청나라 때 보수하고 개축했다. 산이 겹겹이 둘러싸인 지형 때문에 파괴되지 않고 특유의 문화를 간직할 수 있었다. 펑황고성은 타강?江을 끼고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강을 따라 수상가옥이 쭉 이어지는데, 목조로 된 가옥을 떠받치기 위해 세워놓은 얇고 길쭉한 나무들이 인상적으로 보였다. 강을 넘어 침범해 오는 적을 방어하고 홍수를 막기 위해 성곽은 강을 따라 세워졌다. 평지가 많은 중국 강남에는 성곽이 드문 편인데 펑황고성은 이런 지형적 조건 때문에 독특한 형태의 고성 마을을 형성하게 되었다. 아직 옛 건물의 겉모양은 그대로지만 내부는 호텔, 상점, 카페, 바BAR 등으로 개조해 손님을 맞이하고 있다. 신시가지에 위치한 일반 호텔에 묵을 수도 있지만, 다소 불편함이 있어도 타강을 따라 형성된 옛 거리에 묵으면 오래된 도시의 매력을 더 깊게 느낄 수 있다. 펑황고성에는 타강을 따라 수상가옥이 늘어서 있다. 수심이 낮고 해초가 많아 동력배는 이용할 수 없고, 여전히 나룻배와 돛단배가 교통수단으로 유용하다. 이런 유유자적한 모습이야말로 바쁘게 돌아가는 도시를 떠나온 이방인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부분이다 도시인을 사로잡는 거리 산책 이제 본격적으로 펑황고성 산책을 시작해 보자. 타강을 따라 성 밖으로는 수상가옥이 늘어서 있고, 그 반대편인 성 안쪽에는 주거지가 형성돼 있다. 북문인 벽휘문에는 수심이 낮을 때에도 효과적으로 이동할 수 있는 나룻배와 돛단배 여러 척이 자리하고 있다. 보기보다 민첩한 배들은 관광객을 태우고 일주를 하기도 하고, 주민들의 이동수단이 되기도 한다. 홍교는 청나라 강희제 때 보수한 후 지금까지 당시의 형태를 잘 보존하고 있다. 홍교에는 내부에 전망대가 있고, 부근으로 바와 카페들이 즐비하다. 반면, 홍교 건너편에 위치한 승항문쪽에는 소소한 전통 공예품과 먹거리를 파는 상점들이 이어지고 있다. 펑황고성은 특별히 사진 촬영을 위한 여행지로도 유명하다. 거리에서 고가의 카메라와 삼각대를 짊어진 이들을 만나기가 어렵지 않다. 하지만 풍경 자체가 멋져서 (똑딱이라고 하는) 소형 카메라만으로도 괜찮은 여행사진을 담아낼 수 있다. 전문가들이 추천하는 촬영의 적시는 해질 무렵이다. 혹은 해 뜨기 직전의 물안개 낀 모습도 특별하다. 펑황고성의 밤과 낮 풍경은 상당히 대조적이다. 낮의 펑황고성이 손님들로 분주한 상가와 여행객들의 상기된 표정으로 들썩인다면, 밤은 차분한 가운데 화려한 불빛이 타강 전체를 타고 흐른다. 그렇다고 무분별하게 전광판을 내걸지는 않았다. 어두운 강이 반사판이 되어 불빛이 저 홀로 2배, 3배로 환하게 반짝일 뿐이다. 기념품이야 어느 곳에나 있는 것이지만, 토가족과 묘족은 전통 수공예품을 만드는 기술이 유난히 빼어나다. 베틀로 직접 짠 천과 그것을 다시 한 땀 한 땀 꿰매 만든 망토와 숄이 예쁘게 걸려 있다. 몇 대에 걸쳐 염색 기술을 전승해 온 공방도 있다. 묘족은 결혼 예물로도 은장식을 준비할 정도로 은 세공품 제작기술이 뛰어나다. 길가에 앉아 바느질을 하거나 액세서리 제작에 열중하고 있는 아낙들의 정성 때문에라도 기념품들을 한 번 더 쳐다보게 된다. 시골의 작은 마을에서 만든다고 촌스러울 거라고 생각은 틀렸다. 자연에서 배운 그들의 예술 감각은 도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펑황의 골목을 산책하다 보면 간식거리도 다양하다. 중국의 음식은 향이 강하고 또 기름져서 샹차이(고수풀)가 들어가지 않는 경우에도 입맛에 맞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펑황에서라면 도전해 볼 만하다. 잎사귀에 싸서 찐 찰밥, 쌀로 만들었다는 두부와 짭쪼롬하고 매운 소스를 뿌린 각종 먹을 것들이 보는 즐거움뿐 아니라 먹는 재미까지 더해 준다. 후난성 펑황현 사람 심종문 ‘심종문, 22세, 학생, 후난성 펑황현 사람.’ 글은 심종문이 문인생활을 위해 베이징으로 갔을 때 처음으로 머물었던 여인숙의 숙박부에 기록했던 자신의 인적 사항이다. 심종문은 1902년에 펑황현에서 태어났다. 펑황고성 여행에 있어 심종문 생가는 주요한 방문지 가운데 하나다. 국내에도 번역서가 출간돼 있는 <변성邊城>은 심종문의 대표작이다. 소설에서는 펑황이라는 지명이 언급되지 않지만 소설에 묘사된 장소들을 그려 보면 쉽게 작가의 고향을 떠올릴 수 있다. ”쓰촨에서 후난으로 가는 길에 관가에서 닦은 도로 하나가 동쪽으로 나 있다. 이 길을 따라 가노라면 후난 서쪽 경계 부근에 차동茶洞이라 불리는 작은 산성이 나타난다. 거기에 작은 강이 하나 흘러 지나가는데 강가에는 작은 흰 탑이 세워져 있고 그 탑 밑으로 외딴 인가가 한 채 보인다. 이 집에 한 노인과 여자애 그리고 누렁개 한 마리가 함께 살아가고 있었다.” - 정재서 역/ 황소자리 노인은 단오절에 성 안에서 열리는 용주 시합에 취취를 데려가고, 부두를 관리하는 순순順의 두 아들 천보天保와 나송儺送이 동시에 취취를 좋아하게 된다. 취취도 둘째인 나송에게 끌리지만 정작 중매쟁이를 내세워 청혼한 것은 첫째 천보였다. 뱃사공은 뱃사공대로 외손녀의 사랑이 결실을 맺도록 도와주려 애쓰고, 천보 또한 두 번에 걸쳐 청혼하지만 결국 실패로 돌아간다. 그후 천보는 사고로 죽고, 충격을 받은 나송 또한 마을을 떠난다. 얼마 안가 뱃사공 노인이 죽고 취취는 할아버지에 이어 처녀 뱃사공이 된다. 취취는 “어쩌면 그 사람은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다. 또 어쩌면 바로 ‘내일’ 돌아올지도 모른다”며 나송을 기다린다. <변성>을 읽고 있으면 펑황으로 여행을 떠나고 싶은 마음이 저절로 생긴다. 소설 속에는 다음과 같은 묘사도 있다. ” 누런 흙벽이며 검은 기와며 알맞게 자리잡은 집터며, 모든 것이 주변 경치와 한데 어우러져 바라보는 이의 마음을 즐겁게 했다. 시를 좀 읊을 줄 알고 그림 좀 그릴 줄 아는 여행객이라면 누구나 이 강에 작은 배 하나를 띄우고 그 위에서 한 달여를 노닌다 해도 싫증나지 않을 풍경이었다. 눈에 들어오는 것마다 신기하고 아름다우니 자연의 거대하고 정교한 모습 하나하나가 보는 이를 황홀경에 빠지게 했다. “ - 정재서 역/ 황소자리 고성 한 켠에서 묘족이 전통 혼례를 선보이고 있다. 묘족 아가씨가 혼례에 참가한 하객들에게 전통 미주米酒를 권한다. 미주는 쌀로 만든 술로 우리 막걸리보다 달콤하고 도수가 약해 음료수처럼 부담 없이 마실 수 있다 소설보다 극적인 작가의 삶 심종문은 삶 자체가 마치 소설 같은 사람이다. 심종문 생가에는 이러한 그의 일대기와 작품, 사진 등이 전시돼 있다. 심종문의 집안은 할아버지가 구이저우 총독을 지낼 정도로 권력과 재산을 동시에 지녔었다. 그러나 심종문의 어머니는 묘족 여자였고, 또 아버지는 신해혁명 등에 가담해 점차 가세가 기울게 된다. 심종문은 소학교마저 마치지 못했지만, 상서군벌 진거진의 비서로 지내는 동안 송명대의 그림과 고서, 고전문학을 접할 수 있었다. 학력 때문에 대학에 갈 수 없었지만 베이징대에서 수업을 청강하며 호적, 서지마, 호야빈과 같은 문인사상가들과 교류했다. 그 중 호적이 교장으로 있는 오송중국공학에 교사로 재직하게 되었고 학교 학생이었던 장조화에게 반해 끊임없는 구애와 무수한 러브레터 끝에 결혼에 성공했다. 좌익사상은 물론이고 문인이 정치에 참여하는 것에 반대한 심종문은 중국 공산당 정부 수립 후 적응하지 못하고 자살을 기도하기도 했다. 그러나 후에 중국역사박물관에 배속돼 활발한 문화유물학자로 성과를 남겼다. 심종문은 <변성> 외에도 여러 작품에서 펑황과 상서, 그리고 후난 지역의 풍경과 사람을 묘사했다. 아내 장조화에게 보냈던 러브레터와 <상서산행湘西散行>, <상서湘西> 등이 대표적이다. 심종문뿐 아니라 펑황의 아름다움에 주목한 예술가로 황영옥黃永玉이 유명하다. 실제로 후난성의 장자지에를 방문해 보면, 동양의 수묵화가 눈앞에 펼쳐 있는 듯한 인상을 받는데, 그 펑황의 아름다움을 화폭에 담아 전세계적으로 알린 화가가 황영옥이다. 타강 강변에 자리잡은 그의 화실 ‘탈취루’ 역시 펑황의 명물인데, 심종문과 그는 친척관계다. 이 밖에 중화민국 초대 내각총리를 지낸 인물인 웅희령熊希齡은 어려서부터 ‘후난성의 신동’으로 그 천재성을 널리 알렸었다. Travel to Hunan ▶펑황고성 찾아가기 펑황고성은 후난성 서부에 위치한다. 장자지에와 이웃해 있어 차량으로 2~3시간여 거리다. 후난성의 성도인 창사長沙와 인천 사이에 직항편이 운항되고 있으며 비행시간은 약 3시30분여 정도 소요된다. 창사국제공항은 최근 신축을 통해 수용 규모가 크게 확대됐으며, 내부 시설 등이 업그레이드 됐다. 후난성은 아직 곳곳에 교통 인프라 개선이 진행 중으로, 고속도로가 개통된 창사-장자지에는 4시간이면 이동 가능하며, 창사에서 펑황고성까지는 총 5~6시간이 소요된다. 차량 이동 시간은 향후 더욱 단축될 것으로 기대된다. ▶<아바타> 촬영지 장자지에와 펑황고성 한국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여행지 장자지에가 속한 곳이 바로 후난성이다. 통상 ‘장가계’로 불리며, 장자지에 국가삼림공원, 삭계욕, 천자산, 양자지지에 등이 함께 ‘무릉원武陵源’으로 묶여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록돼 있다. 천자산과 원자지에, 보봉호, 황룡동굴 등도 함께 관람하려면 이곳에서 최소 2박 이상 머무르는 일정을 잡는 것이 좋다. 케이블카와 친환경 차량 등을 이용하기 때문에 장거리를 걷지 않고 등산코스도 험하지 않아 남녀노소 누구나 즐기기에 좋다. 또 영화 <아바타>에서도 그 모습을 빌려갈 정도로 독특한 기암괴석의 풍경이 함께 어우러져 중국의 산 가운데서도 가장 대중적인 관광지로 자리잡았다. 장자지에와 펑황고성은 2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 거리로 함께 여행해도 좋겠지만 두 곳을 함께 관광할 경우 5~6일의 일정을 잡아야 한다. 그런 이유로 현재 판매 중인 패키지여행 상품에서는 두 곳을 동시에 방문하는 일정을 찾아보기 힘들지만 자유여행을 계획한다면 고려해 볼 만한 일정이다. ▶또 하나의 후난성 고성 베이징 후통을 닮은 간저우고성乾州古城 상서토가족묘족자치주의 청사소재지인 지서우시에도 주목할 만한 고성이 있다. 바로 간저우고성이다. 펑황고성과 달리 시내에 위치해서 사뭇 분위기가 다르다. 입구인 북성문은 새로 지은 세트장 같은 인상을 줘서 첫인상에 다소 실망할 수도 있다. 그러나 조금만 안으로 걸으면 금세 베이징의 후통과 비슷한 고즈넉한 옛 건물과 정겨운 골목이 기다리고 있다. 간저우고성은 만용강萬溶江과 천성하天星河, 두 개의 물줄기가 흐르는 곳에 위치한다. 간저우라는 이름이 뜻하는 바로 그것이다. 북성문을 빠르게 지나쳐 오른쪽으로 조금만 거닐면 호가당이 나온다. 한 채의 집을 일컫는 말이 아니다. 연못 주위로 10여 가구가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으며 실제로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다. 여름이면 호가당이 끼고 있는 넓은 연못에 연꽂이 가득 찬다. 펑황고성이 들썩이고 활기에 찬 모습이라면, 호가당은 도시에 위치하면서도 마치 다른 세계에 온 것처럼 한가롭다. 연못가에 잠시 앉아 연꽃을 바라보고 있으면 시간이 멈춘 듯한 착각이 든다. 청나라 옹정제 때 지어진 간저우 건주문묘는 호남 지역에서 보존이 가장 잘 돼 있는 문묘(공자를 모시는 사당) 가운데 하나다. 가이드의 설명을 통해 알게 된 것인데, 건주문묘는 중국 문화대혁명 때 건물을 보호하기 위해 모택동 사상이 적힌 현판을 건물 외벽 곳곳에 덧붙여놨었다고 한다. ‘낡은 사상’을 몰아내자고 불교와 유교 유적들을 대거 훼손했던 문화대혁명의 폭풍을 그렇게 피해갈 수 있었다. 창사에서 펑황으로 가는 길은 지서우를 거쳐야 한다. 특히 대중교통을 이용할 경우에는 지서우를 거쳐야 펑황으로 가는 차량을 이용할 수 있다. 그러므로 지서우에 방문하게 된다면 간저우 고성을 함께 방문해도 좋을 것이다. 1 전통가옥을 보존하고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다. 후난성 지서우시에 위치한 간저우 고성 2 관광객들에 아랑곳없이 마을 구석구석은 어린이들의 놀이터다 3 후난 지역에서 가장 잘 보존돼 있다는 간저우 문묘, 오래된 멋이 느껴져 좋다
  • 충남 서산 황금산에 오르다

    충남 서산 황금산에 오르다

    숲에 이슬을 더해 주는 바다. 가로림만(加露林灣)입니다. 예쁜 이름에 견줘 물살은 여간 사납지 않지요. 가로림만이 품은 여러 절경 가운데 비교적 덜 알려진 곳이 충남 서산의 황금산입니다. 해거름이면 황금빛으로 빛난다는 산. 비록, 체구는 작아도 바다와 만나는 해안가 절벽에 ‘국립공원급’ 절경을 숨겨두고 있지요. 황금산의 자랑은 저물녘 풍경입니다. 보다 정확히는 바닷가 절벽들이 그려내는 적벽도(赤壁圖)입니다. 저물녘 햇살에 바닷가 절벽들이 활활 타오르는 듯한 모습은 어디서도 쉽게 볼 수 있는 풍경이 아닙니다. 이제 달력도 달랑 한 장 남았습니다. 산정에서 저무는 해 망연히 바라보고 싶다면 황금산이 좋은 대안이 되겠습니다. 황홀한 해넘이 풍경과 만난 뒤 되짚어 올 때를 대비해 손전등 준비하는 것도 잊지 마시고요. ●봉우리가 아닌 바다를 보러 가는 산 지도를 펴고 가로림만에 초점을 맞추면 꼭 게가 두 집게발을 치켜세운 듯한 지형이 보인다. 아래쪽 집게발은 벌천포(벌말), 위쪽 집게발은 황금산(156m)이 있는 대산읍 독곶리다. 독곶리는 서산의 오지로 꼽히는 대산에서도 끝자락에 있다. 예전엔 독곶리에서 하루 두어 번 오가는 완행버스로 한 시간 이상 걸려 서산으로 나가는 것보다 인근 삼길포에서 뱃길로 인천을 오가는 게 더 편했을 정도였다. ‘독곶’이라는 이름도 ‘외따로 떨어져 있는 곶’(串·바다를 향해 돌출한 지형)이란 의미다. 황금산은 그 외진 땅이 숨겨둔 풍경의 보고다. 산이라 부르기 민망할 정도로 높이는 낮지만, 풍채만큼은 제법 당당하다. 쉬엄쉬엄 걸어도 4시간이면 둘러볼 수 있다. 황금산 들머리는 이름조차 없는 작은 포구다. 바다 인근의 산을 오르는 길이니 갯마을을 지나는 게 당연할 터. 하지만 일반적인 산행 기점과는 느낌이 사뭇 다르다. 황금산을 기준으로 한쪽은 풍요로운 가로림만 갯벌, 다른 쪽은 수많은 굴뚝이 서 있는 공업단지다. 포구 앞바다는 더없이 잔잔하다. 바닷가 사람들 표현대로 ‘장판’을 깐 듯하다. 그러나 포구에서 조금만 나가도 물살은 곧 사나워진다. 물살이 갯바위를 찢으며 울부짖는 듯한, 딱 그 느낌이다. 산행은 대부분 황금산 주차장에서 오른쪽 산사면을 따라 이어진 등산로를 따른다. 하지만 등산로 나무계단이 끝나는 곳에서 좌회전, 먼저 황금산사(黃山祠)가 있는 정상을 오르는 편이 낫다. 원래 등산 코스를 따르면 온 길을 다시 되짚어 내려가야 하는 번거로움이 따르기 때문이다. 황금산은 능선으로 이어진 3개의 작은 봉우리가 남북으로 길게 늘어선 형태를 하고 있다. 정상까지는 20분쯤 걸린다. 다소 된비알이지만, 숨이 턱에 찰 정도는 아니다. 황금산사는 임경업 장군을 모신 사당. 바로 뒤편엔 정상을 알리는 돌탑이 이정표처럼 서 있다. 여기까지는 다소 밋밋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섣부른 실망은 금물이다. 황금산의 진수는 정상의 봉우리들이 아니라 바닷가 절경들에 있다. 일반적인 산행과 다른 점이다. 황금산을 바다를 보는 산이라고 하는 것도 이런 이유다. 정상에서 자박자박 내려오면 길은 네 갈래로 갈린다. 오른쪽은 원래 등산로에서 올라오는 길, 아래쪽은 금굴과 코끼리 바위 등 해안 절벽으로 내려가는 길, 곧장 가면 헬기장이다. 여기서 해안절벽 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금이 있던 산’이 ‘금쪽 같은 풍경의 산’이 되다 푹신푹신한 흙길. 게다가 힘들 것 없는 내리막길이다.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대략 유행가 두어 곡쯤 부를 시간, 두 번째 교차로와 만난다. 왼쪽은 코끼리바위, 가운데는 ‘등산로 끝’, 오른쪽은 금굴(堀)로 내려가는 길이다. 여기서부터 풍경이 속도를 내기 시작한다. 그리 높지도, 크지도 않은 산이니 둘러보는 방향을 잘 잡아야 한다. 황금산은 위에서 보고 아래에서 느끼는 게 순서다. 먼저 절벽과 똑같은 높이에서 전경을 휘휘 굽어본 뒤, 아래로 내려가 바닷가 트레킹을 즐기는 게 좋다는 얘기다. 산행의 대미인 해넘이 풍경과 마주할 곳은 코끼리바위가 있는 곳이다. 예서 금굴이 있는 해안까지는 20분이면 닿는다. 금굴은 절벽 아래 뻥 뚫린 해식동굴을 말한다. 금굴해변은 날물 때 가야 제맛이다. 김영숙(51) 서산시 문화관광해설사는 “물 빠진 자리에 드러난 다양한 형태의 갯바위들이 산수화 같은 절경을 펼쳐낸다.”고 전했다. 시간 여유가 있다면 금굴 너머 끝골까지 해안트레킹을 즐겨도 좋겠다. 금굴해변에서 왼쪽으로 난 산길을 따라 오르면 코끼리바위 해변으로 이어진다. 황금산은 이곳부터 숨겨둔 속살을 아낌없이 드러내기 시작한다. 산굽이를 돌 때마다 색다른 풍경들이 펼쳐진다. 기골이 장대한 절벽들이 해안을 굳건하게 감싸고, 이른바 ‘말 근육’ 같은 절벽 사이사이로 소나무들이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다. 낮은 산이란 선입견은 그 자리에서 산산조각 난다. 바다는 또 어떤가. 물색은 푸르고, 갯내는 없다. 파도가 몽돌 사이를 빠져나갈 때마다 ‘차르르’ 소리를 내는데, 듣고만 있어도 마음이 잔잔해진다. ●코끼리 바위 넘어가면 푸른바다·기암·노송이 삼중주 밧줄 타고 코끼리바위를 넘어가면 풍경은 보다 다이내믹해진다. 맑고 푸른 바다와 기암, 노송이 삼중주를 펼쳐낸다. 윽박지르는 듯 서 있는 암벽은 누런 빛깔과 옅은 자줏빛이 뒤섞였다. 해안가 돌들도 마찬가지. 이곳의 풍경은 그야말로 천변만화다. 날씨와 계절, 시간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바뀐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엄지손가락 곧추세우는 풍경은 해거름에야 드러난다. 저물녘, 햇살이 암벽에 부딪치며 황금빛으로 산란한다. 해안 절벽들이 기다렸다는 듯 한껏 자신의 세포를 부풀리는 게다. 짜릿한 풍경이다. 이를 보는 탐승객의 세포도 소름끼치듯 반응한다. 황금빛으로 빛나는 산, 황금산(黃金山)의 실체다. 예부터 금(金)이 있는 산이라 해서 황금산이라 불렸다던데, 금이 사라진 요즘엔 금쪽 같은 풍경을 캐는 산이란 뜻이겠다. ●‘용유대’(龍遊臺)엔 용의 알(?)이 있다 서산 지역 명소 가운데 외부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곳이 용유대(龍遊臺)다. 광해군 때 벼슬을 버리고 낙향한 단구자 김적이 자주 뱃놀이를 즐기던 곳. 음암면 유계리 정순왕후 생가에서 용유천변 길을 따라 몇 백m 올라가면 단구대(丹丘臺)다. 붉은 언덕이란 뜻의 너럭바위다. 용유대는 여기서 도보로 5분 거리에 있다. 갈대 무성한 용유천을 거슬러 오르다 보면 둥그런 바위 7~8개가 몰려 있는 희한한 풍경과 만난다. 말 그대로 용이 놀았다는 곳으로, 둥근 바위는 용의 알이란다. 어찌나 심한 풍화를 겪었던지 모난 곳 하나 없이 달걀처럼 둥글둥글하다. ‘알’들을 감싸고 있는 건 노송(松)들이다. 고아한 풍취의 소나무들이 바위 위에 자라고 있는데, 제법 독특한 정취를 풍긴다. 용의 해인 새해에 여행을 계획한다면 한번쯤 둘러보는 것도 좋겠다. 글 사진 서산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여행수첩(지역번호 041) 가는 길 수도권에서 승용차로 갈 경우 서해안고속도로→송악 나들목→38번 국도 대산·석문 방면→지하차도(북부산업로)→가곡 교차로→대산·성구미 방면 우회전→성구미 삼거리→대산·석문방조제 방면 좌회전→대호방조제 방면 우회전→초락2로 방면 우회전→서산·대산 방면 좌회전→화곡교차로 우회전(29번 국도)→황금산 순으로 간다. 서해안 고속도로 서산 나들목에서 대산 읍내를 거쳐 독곶리로 가는 방법도 있다. 맛집 해미읍성 맞은편 읍성뚝배기(688-2101)는 조미료를 쓰지 않은 소머리곰탕(8000원)과 사골설렁탕(700 0원)이 맛있다. 서산시청 뒤 진국집(664-4994)은 토속음식 ‘게국지’로 소문났다. 1인분 6000원. 향토(668-0040)에서는 서산의 전통음식인 우럭젓국과 꽃게장, 게국지를 한자리에서 즐길 수 있다. 주변 볼거리 천수만 버드랜드에서 다양한 겨울 철새와 만날 수 있다. 간월암도 지척이다. 삼길포에선 배 위에서 갓 잡아 파는 생선회를 맛볼 수 있다. 포구 뒤 삼길산에 오르면 다도해 같은 서해 풍경과 마주할 수 있다.
  • [생각나눔 NEWS] 친일파 동상·기념비 철거 vs 보존

    [생각나눔 NEWS] 친일파 동상·기념비 철거 vs 보존

    ‘도대체 어디까지가 후손들이 기려야 할 순국선열일까.’ 17일 ‘제72회 순국선열의 날’을 맞아 추모제 등 순국선열의 고귀한 정신을 기리는 다채로운 행사가 전국 각지에서 열린다. 그러나 아직도 논란은 뜨겁다. 지난달 관련 사회단체들이 친일 인사로 지목된 인물들의 동상 철거와 친일파 단죄를 요구하고 나서면서 논란이 재점화됐다. 이들은 “동상 철거는 곧 역사 바로 세우기”라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다른 쪽에서는 “부관참시”라며 “그들의 업적도 인정받아야 한다.”고 강하게 맞서고 있다. ‘친일 행적’이 확인된 인물들의 동상이나 기념비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 쉽지 않지만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친일파 동상 방치는 교육에 도움 안 돼” 민족문제연구소는 강원 정선읍에 친일 인사인 이범익(1883~미상)의 영세불망비(永世不忘碑·업적을 영원히 잊지 않겠다는 의미)가 있다는 사실을 최근 확인했다고 16일 밝혔다. 민문연 측은 “현지 실사 뒤 해당 지자체에 기념비 철거를 요구하겠다.”고 말했다. 이범익은 일제강점기 강원·충남지사 등을 지낸 행정관료로, 일제가 세운 만주국의 간도특설대 창설을 제안하는 등 친일 행적을 보인 인사로 알려졌다. 앞서 14일 박정희(1917~1979) 전 대통령의 동상이 경북 구미시 생가에 건립된 데 이어 16일 새마을운동중앙회가 경기 성남시 새마을운동중앙연수원에 새마을운동을 만든 업적을 기리기 위해 그의 흉상을 설치하겠다고 밝혔다. 민문연 관계자는 이와 관련, “친일 인사를 기리는 어처구니없는 일”이라면서 “유신 독재 40년째인 내년부터 역사정의실천연대 등을 중심으로 박 전 대통령의 친일·독재 행적에 대해 교육·홍보활동을 펴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고인의 행적 오늘날 잣대로 평가 말아야” 민문연은 지난달 31일에도 경기 과천 한국마사회 본관 앞에 설치된 김동하(1920~1995) 전 마사회장의 흉상을 철거하라는 공문을 마사회 측에 보냈다. 김 전 회장이 1940년대 만주군 장교로 복무하는 등 친일 행위를 일삼았던 인물이라는 이유에서다. 독립운동가 운암 김성숙 기념사업회도 지난달 서울대공원에 제2대 부통령을 지낸 인촌 김성수(1891~1955) 동상을 철거할 것을 요청하는 공문을 보냈다. 기념사업회 관계자는 “친일파인 인촌의 동상을 방치하는 것은 공원을 찾는 어린이들의 교육에도 도움이 안 된다.”고 설명했다. ●“개인 견해로 존폐 거론은 잘못” 반대도 만만찮다. 철거 반대론자들은 “고인이 된 인물들의 행위를 오늘날의 잣대로 평가하는 것은 또 다른 역사 왜곡”이라는 입장이다. 일제강점기하에서 그들이 보인 현실 참여적 태도와 공적을 인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지난 8월 서울 남산에 이승만(1895~1965) 전 대통령의 동상을 건립했던 한국자유총연맹은 “인촌이 항일투쟁에 앞장서지는 않았어도 교육·언론사업에 나서 독립 기반 조성에 기여했다.”며 “민문연의 동상 철거 요구는 이해할 수 없다.”고 밝혔다. 역사학자들은 이와 관련, 의견 표명을 꺼리고 있다. 그만큼 민감한 사안이라는 의미다. 김희곤 안동대 사학과 교수는 “정리된 입장이 없다.”면서 “독재자로 평가받는 이 전 대통령의 동상도 어떤 시각에서 보느냐에 따라 평가가 다르지 않겠느냐.”며 즉답을 피했다. 유금종 순국선열유족회 회장은 “특정 단체나 개인의 견해를 반영해 친일파의 동상이나 기념비의 존폐를 거론하는 것은 잘못”이라며 “국가 차원에서 각계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 결정하는 게 좋을 것”이라는 의견을 내놨다. 이영준·김진아기자 apple@seoul.co.kr
  • 충남관광 밑그림 나왔다

    충남관광 밑그림 나왔다

    해양도서, 내포문화, 역사온천, 백제문화, 녹색성장 등 5개 권역으로 나눠 개발하는 충남 관광의 밑그림(그림)이 나왔다. 충남도는 16일 도청에서 ‘제5차(2012~2016년) 5개년 관광개발계획’ 연구용역 최종 보고회를 가졌다. 보고회에서 도는 태안, 보령, 서천 등을 기존의 해양도서관광권 인프라를 활용해 관광레저도시로 개발한다고 밝혔다. 안면도 개발과 관련해서는 개발사업자 인터퍼시픽컨소시엄이 6성급 최고급 호텔, 해수온천장과 미술관, 승마장 등 국제 수준의 휴양 해양관광지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태안 만리포해수욕장은 개발 계획 용역이 진행 중이고, 보령 대천해수욕장에는 워터파크가 조성될 예정이다. 서산, 당진, 예산, 홍성 등 내포문화관광권은 백제 불교의 전래지인 데다 당진의 김대건 신부 생가와 서산 해미읍성 등 천주교 성지가 즐비한 특색을 살려 역사문화 관광지로 개발된다. 예산군에 ‘보부상(부보상)촌’도 만들어진다. 김좌진 장군, 만해 한용운 시인, 윤봉길 의사 등 역사적 인물을 적극 활용하는 개발에 중점을 뒀다. 천안·아산 일대 역사온천관광권은 전통의 온양온천과 현충사, 독립기념관을 아우르는 문화·휴양 관광지로, 백제문화관광권은 백제의 고도(古都) 부여와 공주의 무수한 역사 유적 및 금강 생태축을 묶은 역사·생태 관광지로 각각 개발된다. 녹색성장관광권은 금산의 쾌적한 산림자원을 활용하고 기호학파의 본거지인 논산·계룡시의 유교문화를 계승하는 형태로 개발이 이뤄진다. 대전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박정희 기념사업 논란 확산

    박정희 전 대통령 기념도서관과 동상이 잇따라 완공됨에 따라 박 전 대통령의 역사적 평가를 둘러싼 논란이 한층 확산되고 있다. 근대화의 공적을 들어 찬성하는 쪽이 있는가 하면 친일 행적 및 독재를 거론하며 역사왜곡이라고 반발하는 목소리도 만만찮다. 박정희기념사업회는 14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 ‘박정희기념도서관’이 완공됐다고 밝혔다. 사업회 측은 “현재 건물은 완공된 상태”라면서 “준공 절차와 전시물 설치 등 작업을 거쳐 12월에 개관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기념도서관은 3층에 연면적 5290㎡(약 1600평) 규모다. ●기념사업회측 “산업화 공로 커” 경북 구미의 박 전 대통령 생가에서는 이날 박근혜(한나라) 의원 등 6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동상 제막식이 열렸다. 박동진 구미시 새마을회장은 “박 전 대통령의 근면·자조·협동정신을 다시금 일깨워 더 큰 번영과 민족문화의 창달을 구현하기 위해 제작됐다.”고 건립 배경을 설명했다. 박 전 대통령 기념사업에 대해 역사 관련 단체들은 비판의 수위를 높이고 있다. 학술단체협의회와 민족문제연구소 등 422개 시민사회단체는 ‘역사정의실천연대’를 발족한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친일·독재 인사에 대한 기념사업을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회견에는 함세웅 전 민주화기념사업회 이사장과 이만열 전 국사편찬위원장 등 사회 원로들도 대거 참석했다. ●역사·시민단체 “역사왜곡” 반발 역사정의실천연대는 친일·독재 전력이 있는 인사들의 기념사업을 제지하는 한편 관련 조형물 철거운동도 펴나갈 계획이다. 이 전 위원장은 “최근 역사교과서 개정과 박정희·이승만 전 대통령의 재평가는 정치적 목적을 갖고 진행되는 일”이라면서 “친일·독재 전력이 있는 인사의 기념사업은 역사를 왜곡하고 민주주의를 후퇴시키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박정희기념사업회 관계자는 이에 대해 “어떤 인물이든 평가는 엇갈리게 마련”이라면서 “산업화라는 공로도 있고, 김대중 전 대통령도 추진했던 사업인 만큼 문제될 것은 없다.”고 말했다. 구미시 관계자도 “기념사업에 대한 주민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면서 “지역 차원에서 진행하는 사업에 외부 단체가 관여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구미 김상화·서울 김동현기자 moses@seoul.co.kr
  • 홍성, 이응로 기념관 개관

    홍성, 이응로 기념관 개관

    현대미술의 거장 고암 이응로(1904~1989) 화백의 생가·기념관이 8일 고향 충남 홍성에서 문을 열었다. 홍성군은 이날 홍북면 중계리에서 이 화백의 부인 박인경씨, 유홍준 명지대 교수 등 각계 인사와 주민 2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개관식을 가졌다. 생가는 100㎡의 단층 초가, 기념관은 지하 1층 지상 1층 규모의 콘크리트 건물이다. 북카페도 지어졌다. 기념관·북카페는 1200여㎡다. 모두 70억원을 들여 건립했고, 총부지는 2만 596㎡에 이른다. 전시홀, 어린이미술실, 다목적실, 야외전시장, 공원 및 산책로 등이 갖춰져 있다. 전시홀에는 이 화백의 작품 325점과 방명록, 편지 등 유품 418점을 비롯해 모두 743점이 전시된다. 대표 작품인 ‘군상’, ‘문자추상’도 있다. 홍성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5300년 만에 깨어난 ‘아이스맨’ 진짜 사인 알고보니…

    5300년 만에 깨어난 ‘아이스맨’ 진짜 사인 알고보니…

    5300년 전 사망한 뒤 오랜 세월에 걸쳐 얼음에 보존됐던 ‘아이스 맨’의 사인이 밝혀졌다. 사체를 연구한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 대학의 고고학 연구진은 아이스 맨이 화살에 맞아 숨졌다는 기존의 가설을 뒤엎고 직접적인 사인을 실족사로 확인했다고 영국 대중지 데일리메일이 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연구진은 아이스 맨은 살해당한 게 아니라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연구팀을 이끈 볼프강 레체이스 박사는 “그가 화살에 맞은 건 죽기 전에 일어난 일이었다. 사냥을 하려고 산에 오르던 중 추락해 왼쪽 쇠골 아래 동맥에 구멍이 나는 치명상으로 사망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이스 맨의 몸에서 발견된 상처는 현대의 의학기술로도 회생가능성이 40%에 불과한 치명상이다. 과학자들은 이 남성이 산에서 떨어져 치명상을 입은 뒤 상당한 출혈을 하다가 심장마비 쇼크로 사망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아이스 맨으로 불리는 이 남성 사체는 1991년 9월 오스트리아와 이탈리아의 국경지대 지점의 알프스를 오르던 독일인 부부 관광객이 최초로 발견했다. 사체는 발견된 지점인 ‘외치 계곡’(Oetz Valley)에서 이름을 따 ‘외치 맨’(Oetzi Man)으로 불렸다. 죽음을 맞을 당시 외치 맨은 그대로 얼음 속에서 얼려 ‘자연 미라’ 상태가 됐다. 당시 아이스 맨의 나이는 46세. 키는 159cm에 불과했다. 고고학자들은 그가 활과 화살, 구리도끼를 가지고 다니며 사냥과 다른 부족 공격에 이용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또 이 남성은 잦은 사냥으로 관절염을 앓고 있었다. 내용물을 확인해본 결과 마지막 식사메뉴는 사슴과 소과(科) 동물인 아이벡스 고기였다. 기생충과 편충 등에 감염된 흔적도 나타났다. 눈 색깔은 확인되지 않았다. 아이스맨은 선사시대 인류를 파악할 수 있는 매우 귀중한 자료로 평가받는다. 현재까지 이탈리아 사우스 타이럴 고고학박물관에 –6°C가 유지되는 특수한 방에 보존돼 있으며 제한적으로 관람객에 공개되고 있다. 강경윤기자 newsluv@seoul.co.kr
  • 안전장치 제거서 사격 다섯단계로… 인질극땐 바로 발포

    안전장치 제거서 사격 다섯단계로… 인질극땐 바로 발포

    경찰이 추진 중인 ‘권총사용 매뉴얼’의 가장 큰 특징은 상황별로 단계를 나눠 총기사용 정도와 유의사항 등을 규정해 놨다는 것이다. 특히 일선 경찰관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사용단계에 맞춰 현장 사례를 세부적인 예시로 들었다. 기존 매뉴얼은 ‘현행법상 총기사용 요건 및 유의사항’과 관련 판례에 대한 설명 수준에만 그쳤을 뿐 상황에 따른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이 없었다. 때문에 현장 경찰관의 판단에 주로 의존하는 방식으로 운용돼 왔다. 새로 제작 중인 매뉴얼은 크게 ‘안전장치 제거-권총 꺼냄-경고사격-경고 후 사격-경고 없이 실제사격’ 등 다섯가지 상황으로 구분된다. ①‘안전장치 제거’ 상황은 두 가지다. 피의자 등이 흉기를 소지하고 3년 이상의 징역이나 금고에 해당하는 죄를 짓거나 범할 우려가 있는 현장에 경찰이 출동할 때다. 또 경찰관 또는 시민에 위해를 가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판단되는 경우도 해당된다. 예컨대 경찰이 총기·칼 등을 휴대한 자가 거리를 배회하고 있거나 조직폭력배가 흉기를 소지한 채 모여 있다는 신고를 받고 현장으로 갈 때다. 불심검문이나 범인 체포 및 수색 상황 시 흉기 소지 개연성이 높다고 판단될 때에도 경찰이 미리 안전장치를 풀 수 있게 했다. ②‘권총을 꺼낼 수 있는 경우’는 세 가지다. 피의자가 흉기를 들거나 자동차 등 위험한 물건을 이용해 저항할 때다. 경찰장구를 빼앗기 위해 극렬히 공격해 올 때도 마찬가지다. 두 명 이상이 함께 정당한 이유 없이 경찰관이나 시민에게 신체적 위협을 가하는 사례도 포함된다. 수배차량이 순찰차에 충돌하며 도주하려 하거나 추격 중 범인이 저항할 때도 권총을 뺄 수 있다. ③‘경고사격을 할 수 있는 상황’은 경찰관이 권총을 꺼낸 상태에서 피의자 등에게 3회 이상 ‘행위중지 및 권총사격’을 경고했지만 불응하는 등 제지가 불가능할 때다. 경찰관이 권총을 꺼낸 상태에서 피의자 등이 도주할 때도 경고사격을 할 수 있다. 범인을 도주시키려는 자에게 경고를 했는데도 흉기를 쓰며 오히려 저항하고 거듭 경고를 해도 듣지 않을 때도 해당된다. ④‘경고 후 실제 권총을 쏠 수 있는 조항’은 두 가지다. 피의자 등을 향해 권총을 쏘지 않으면 자기 또는 타인의 생명·신체를 방위하거나 범인의 체포 및 도주방지가 불가능하다고 판단되는 경우다. 경고사격까지 했는데도 도주를 중지하지 않을 때도 포함된다. ⑤‘경고나 경고사격 없이 바로 발포할 수 있는 경우’는 인질을 붙잡고 있을 때처럼 경고나 경고사격이 더 큰 위해를 유발할 우려가 있거나 간첩 및 테러사건에 있어서 은밀한 작전을 수행하는 상황을 뜻한다. 이윤호 동국대 교수는 새 매뉴얼에 대해 “허용되는 총기사용과 허용되지 않는 총기 사용에 대해 명확히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면서 “진전된 안”이라고 의미를 평가했다. 이 교수는 또 “이례적으로 광견 등 동물에 마취총이 여의치 않을 때 권총을 쏠 수 있도록 한 조항도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계점도 없지 않다. 표창원 경찰대 교수는 “피의자의 생명·신체에 중대한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전제가 있는 만큼 발생가능한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한 반복 훈련으로 경찰관의 위기대응 능력을 향상시키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훈련과 교육이 먼저라는 얘기다. ‘손실보상 제도’ 의 도입 필요성도 나왔다. 표 교수는 “대상자에게 발생한 피해가 커 국가가 그 치료나 유족 피해보상 등을 해줘야 한다고 법원이 판단하면, 해당 경찰관의 총기사용을 불법행위로 규정해야 배상이 가능하다.”면서 “이럴 때 형사책임은 무죄이나, 민사재판에서 국가배상책임이 인정될 수 있다. 결국 결과에 따라 경찰관이 징계책임을 져야 하고 배상액에 대한 구상의 위험까지 상존하므로 경찰관들이 총기사용을 기피하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이 때문에 법 개정을 통해 당사자가 아닌 국가가 손실금을 지원해 주는 제도 마련이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고 분석했다. 인권침해 우려와 실효성도 여전히 걸림돌이다. 도주 피의자에게 발포가 가능한 조항의 경우 ‘흉악범일 가능성’에 대한 판단을 경찰관에게 전적으로 맡김으로써 오판을 낳을 수 있고, 총기 남용을 부추길 수도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또 3회 이상 경고 시 권총을 사용할 수 있다는 점도 적절한 발포 시기를 놓치게 해 총기사용의 의미를 무색하게 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유정현 한나라당 의원은 “매뉴얼을 비롯해 현장 실무능력을 갖출 수 있는 실무교육과 사격훈련, 지원책 마련이 체계적으로 갖춰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백민경·김진아기자 white@seoul.co.kr
  • “카다피, 나토군 아주 무서워했다”

    42년간 최고의 권좌에서 호의호식해 온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는 도망자로 전락한 지난 2개월여 동안 자신의 신세를 선뜻 인정하지 못하고 걸핏하면 짜증을 내는 등 불안한 심리상태를 보였다고 생포된 그의 최측근이 전했다. 카다피와 함께 붙잡힌 전 인민수비대 사령관 만수르 다오 이브라힘은 22일자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카다피 일행의 마지막 날들을 털어놨다. 그의 진술에 따르면 카다피는 수도 트리폴리가 과도정부군에 함락된 지난 8월 22일 보좌관과 경호원 10여명만 데리고 거점 지역인 타르후나와 바니 왈리드를 경유해 곧바로 고향 시르테에 도착했다. 남부 사막지대에 은신했다거나 니제르로 도피했을 것이라는 그간의 추측을 뒤엎은 것이다. 시르테행은 4남 알무타심이 외부의 예상을 역이용한 결정이었다. 카다피는 민가에 은신하면서 “왜 전기가 안 들어오는 거지?”, “왜 물이 없어?”라고 불만을 터뜨리곤 했다고 한다. 그는 쌀과 파스타로 연명했다고 한다. 또 카다피의 지지자들이 그를 ‘호전적’이라고 선전한 것과 달리 카다피는 전투에 나서지 않았으며 총 한 발 쏘지 않았다고 한다. “카다피는 나토군을 아주 무서워했다.”고 이브라힘은 말했다. 카다피는 코란을 읽거나 전화를 하는 데 시간을 보냈다. 그와 세상을 이어주는 유일한 끈은 위성전화뿐이었는데, 이를 이용해 지지자들에게 투쟁을 독려하는 육성 메시지를 시리아 방송사로 전달했다. 상황이 최악으로 치닫기 전 주위에서 권력을 이양하라고 설득했지만, 카다피는 “이곳은 내 조국이다. 나는 1977년에 권력을 리비아 국민에게 모두 넘겼다.”며 거부했다고 한다. 특히 카다피보다는 아들 알무타심이 더 강경한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2주 전 과도정부군의 포위망이 시르테 중심부까지 좁혀오자 카다피 부자는 주택 2곳을 오가며 공격을 피해 다녔다. 궁지에 몰린 카다피는 결국 인근에 위치한 자신의 생가로 옮기기로 결정하고 20일 새벽 3시를 출발시간으로 정했다. 그러나 무질서했던 카다피군의 혼란으로 출발이 지연되면서 차량 40대로 구성된 카다피 일행은 오전 8시에야 이동을 시작했고, 카다피와 최고사령관, 친척, 이브라힘이 탄 도요타 랜드크루저는 30분 만에 나토군의 미사일 공격을 받았다. 파편을 맞고 정신을 잃은 후 눈을 뜨니 병원이었다는 이브라힘은 “리비아에서 발생한 모든 일에 대해 미안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고 신문은 전했다. 워싱턴 김상연특파원 carlos@seoul.co.kr
  • 동화 시상 ‘정채봉문학상’ 제정

    동화작가 정채봉(1946~2001)을 기리는 문학상이 만들어졌다. 제자들로 구성된 ‘정채봉 선생 10주기 추모위원회’는 16일 “‘동심이 세상을 구원한다’고 믿었던 고인의 문학정신을 기리기 위해 십시일반 힘을 모아 제1회 정채봉문학상을 제정했다.”고 밝혔다. 정채봉문학상은 1년 동안 국내 문예지에 발표된 창작 단편동화 중 문학적으로 뛰어난 작품 한 편을 선정해 시상한다. 상금은 1000만원. 첫 회 수상자로는 ‘그 고래, 번개’를 쓴 류은이 선정됐다. 시상식은 오는 22일 고인의 생가 근처에 마련된 전남 순천문학관에서 열린다.
  • KOCHI-일본이 사랑한 세 남자의 고향 료마전의 고치

    KOCHI-일본이 사랑한 세 남자의 고향 료마전의 고치

    JAPAN KOCHI 일본이 사랑한 세 남자의 고향 료마전의 고치 인천공항, 나리타공항이 그러하듯 한국과 일본의 공항 이름도 대체로 지명을 내세운다. 그러나 뉴욕 JFK공항이나 파리의 샤를드골공항과 같이 간혹 위인의 이름을 붙이는 경우가 있다. 일본의 고치현은 료마공항을 가지고 있다. 료마는 고치가 그리고 일본인들이 사랑하는 인물이다. 마침, 국내 케이블TV 채널J에서도 사카모토 료마의 일대기를 그린 NHK대하드라마 <료마전>을 11월 중순까지 방영한다. 글·사진 이지혜 기자 취재협조 일본 고치현 1 평야지대에 위치한 고치성은 텐슈가쿠天守閣와 오테몬大手門을 함께 사진에 담을 수 있다. 초기 번주 야마우치 가츠토요가 도사번으로 오기 전에 자신의 성이었던 가케가와성을 모방해 지었다. 원래의 건물이 잘 보존돼 있고, 다른 일본 성과 달리 텐슈가쿠 내부에는 엘리베이터가 없다 2 NHK대하드라마 <료마전>. 오른쪽이 후쿠야마 마사하루가 분한 사카모토 료마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Man of Kochi I 사카모토 료마 사카모토 료마, 한국에선 다소 낯선 이름이지만 일본인들에겐 근대화와 부국강병의 선구자로 존경받는 대표적인 인물이다. 2000년을 맞이하면서 <아사히신문>이 실시한 ‘일본 1,000년의 정치 지도자’ 앙케이트에서는 사카모토 료마가, 2위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3위 오다 노부나가를 제치고 1위에 꼽혔다. NHK는 지난해 사카모토 료마를 주인공으로 하는 <료마전>을 연중 기획으로 방영했고, 현재 일본방송 전문 케이블TV 채널J에서 이 드라마를 방영하고 있다. NHK는 매년 연중 기획으로 대하드라마를 방영해 왔다. 인기가 높기도 하지만 NHK대하드라마가 가지는 문화적 사회적 코드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인물을 선정하는 데 현재의 시대 상황이 우선 고려되며, 우리가 역사를 통해 교훈을 얻듯이 드라마 속 인물들이 현실의 인물과 일부 겹쳐지곤 한다. NHK대하드라마가 방영되는 동안 예능 프로그램과 시사만화, 광고 등은 물론이고 다양한 분야에서 패러디되는 것은 물론이다.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은 매회 드라마가 끝날 무렵 역사적인 배경이 되는 장소와 여행정보를 소개하는 코너를 삽입하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사카모토 료마의 탄생과 유년 시절을 그린 회에서는 그의 고향과 생가터가 어디 있는지, 현재 어떤 모습인지를 보여준다. 때문에 NHK드라마는 인기 테마여행의 주제가 되기도 하고, 여행상품으로 출시돼 있기도 하다. 우리가 달구벌, 한밭 등과 같은 옛 지명을 일부 사용하듯 일본에서도 옛 지명을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 시코쿠섬 남부에 위치한 고치현의 옛 이름은 도사다. 야마우치 가문을 번주로 하는 도사번을 이뤘던 곳이다. 료마는 바로 이 도사번의 가미마찌에서 1835년 11월15일(공교롭게도 그가 죽은 날과 같다)에 카시의 신분으로 태어났다. 도사번주가 거주하는 도사성은 오늘날 고치성이라고 부르며, 고치현과 고치시청이 인접해 있는 등 고치 시내 중심에 위치한다. 고치성을 중심으로 봤을 때 동쪽에 JR고치역이, 서쪽에 가미마찌가 각각 위치한다. 과거 번의 취락은 성을 중심으로 상위 계급인 죠시가 가까이에 거주했고, 그 바깥으로 하위계급인 카시가, 그리고 더 바깥으로 일반 백성들이 살았다. 하위 계급은 특별한 일이 없고서는 상위계급이 거주하는 곳에 들어갈 수 없었다. 료마가 태어난 마을은 오늘날에도 가미마찌라고 부르며, 료마의 옛집은 보존돼 있지 않다. 료마의 탄생지임을 알리는 이정표에 서면 고치성이 손바닥만해 보인다. 성에 가까이 갈 일이 거의 없었던 만큼 아마도 평생 료마의 눈에 비친 성의 모습이었을 그러했을 터이다. 가미마찌에는 시립 료마박물관이 있다. 작은 규모이지만 료마의 일생을 알기 쉽게 보여주고 있고, 시내 중심에 위치해 방문하기 쉽다. 또 료마 생가 부지에는 료마우체국과 난스이호텔이 있다. 난스이호텔은 1층의 료마 기념숍을 비롯해 료마를 특화한 인테리어가 눈길을 끈다. 호텔에 묵지 않더라도 구경삼아 방문할 수 있다. 고치시에서 태평양 바다까지는 차량으로 30여 분 가량 거리다. 해변 가츠라하마는 현립 사카모토료마기념관과 가츠라하마 수족관 등이 있는 관광 포인트다. 고치의 바다는 태평양이다. 고치시내에서 쉽게 갈 수 있는 곳이지만, 일본내해와 다른 망망대해의 빛깔과 웅대한 규모가 인상적이다. 가츠라하마에는 지금도 태평양을 바라보고 있는 거대한 료마 동상이 세워져 있는데 높이가 무려 13.5m다. 매년 료마의 생일인 11월15일을 전후로 약 한 달여간 단을 만들고 료마와 같은 눈높이에서 사진 촬영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이벤트를 갖고 있다. 사카모토 료마 기념관은 시내에 있는 박물관과 달리 배를 형상화한 외관이 태평양 바다와 어우러져 멋진 모습을 자랑한다. 기념관에는 료마가 암살당했을 당시 피가 튀었던 병풍을 비롯해 다양한 전시품과 료마에 관한 자료를 전시하고 있다. 태평양을 향한 면은 전면 통유리로 돼 있어, 마치 크루즈 선미에 서서 바다를 조망하는 듯한 기분을 선사한다. NHK대하드라마 <료마전> 지난해 일본 NHK가 연중기획으로 방영했던 대하드라마 <료마전>이 국내 케이블TV 채널J에서 오는 11월 중순까지 방영된다. 매주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1일 1회분이 방영되며, 토요일에는 5회를 연속 방영한다. 평일의 경우 아침 9시, 오후 5시, 밤 11시에 같은 회차가 여러 차례 방송되며, 토요일에는 오후 2시부터 5회분을 연속 방영한다. 올해 초에도 채널J에서 방영해 좋은 반응을 얻었다. <료마전>의 주인공 료마역으로는 영화 <용의자 X의 헌신> 등으로도 친숙한 배우이자 가수인 후쿠야마 마사하루가, 료마가 사랑한 네 여인으로 히로스에 료코, 아오이 유우, 마키 요코, 칸지야 시호리가 출연하고 있다. <료마전>은 사카모토의 일대기를 그리고 있는 사극이지만 일본 역사를 잘 모르더라도 흐름을 따라가기 어렵지 않다. 일본 및 해외에서 <대장금> 등 국내 드라마가 인기를 끌듯이, 현대적인 해석과 개성 있는 인물 묘사 등을 통해 재미를 더했다. 1 현립 사카모토 료마 기념관. 함선을 형상화 한 외관이 인상적 2 료마 탄생지 유적. 신분에 따라 거주지 가 엄격히 제한되던 시절이기에, 료마가 실제로 봤던 고치성의 크기는 손바닥만 하다 3 오토메와 료마 남매, 여장부 오토메는 <료마전>의 인기 캐릭터로 드라마에 출연한 테라지마 시노부의 모습을 따라 제작했다 4 료마의 이야기를 더 재미있게 들려주는 해설사. 일본어 가이드북에도 출연해 친근한 느낌을 받았다 Man of Kochi II 이와사키 료타로 드라마 <료마전>은 미츠비시 창업주인 이와사키 료타로의 내레이션을 통해 료마의 삶과 당시 일본을 조명하고 있다. 이와사키 료타로는 카시보다 더 하위 계급인 낭인 출신으로 집이 무척 가난했다. 의사가문 출신의 어머니가 아들 교육을 꾸준히 뒷바라지 한 덕에 훗날 큰 기업의 창업주가 될 만큼 성공을 거두게 된다. 이와사키 료타로의 고향은 고치시 동부에 위치한 아키시다. 고치에서 약 1시간 거리이며, 이와사키 생가는 아키역에서 자전거로 약 10여 분 거리다. 방문객을 위해 자전거와 지도를 무료로 대여해 준다. 길이 단순한 편이어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일본의 시골전원을 만끽하기 좋은 곳이다. 이와사키 생가 앞에 카페가 운영되고 있는데 고치의 특산물인 유자차를 꼭 마셔 볼 것을 추천한다. 지나치게 달지 않으면서 깊은 풍미가 느껴진다. 또 이 가게는 유제품으로 유명한 이와테현의 치즈공방과 자매결연을 맺고 있어 제품을 판매한다. 주인이 직접 엄선한 아이템을 모아 셀렉트숍도 함께 운영하고 있는데, 사진, 미술, 공예품 등 갤러리에서 취급할 법한 소품이 눈길을 끈다. 이와사키 생가 가까이에는 노라시계탑이 있다. 과거에 논밭에서 일하던 농부들에게 시간을 알려주기 위해 설치한 것인데, 지금도 집주인 하루코 할머니의 아들이 정기적으로 손을 보고 있다. 아들은 고치시에서 치과의사를 하고 있는데, 전자방식이 아니라 수동 시계라 사람이 직접 만져줘야 작동한다. 노라시계탑 옆에는 치리멘동 전문점이 있는데, 고치 내에서도 유명한 맛집이다. 치리멘은 작은 바늘 크기의 잔멸치로, 인근 바다에서 잔뜩 잡힌다. 솥에 쪄낸 것을 유즈폰즈 등을 섞어 간이 밴 밥에 얹어 함께 먹는다. T crip. 메이지유신과 사무라이 신분제도 메이지유신明治維新은 1868년부터 1889년까지 진행된 일련의 정치·사회 개혁을 일컫는다. 메이지 일왕은 1867년에 즉위했으며, 사카모토 료마는 이 해 11월15일에 암살당한다. 이전까지의 일본은 도쿠가와 가문을 중심으로 한 에도 막부 체제를 유지해 왔다. 메이지유신 기간 동안 서양의 입헌군주제를 채택해 도쿠가와 쇼군에게서 권력을 박탈하는 한편 번 제도를 폐지하고 지금의 현 제도로 개편한다. 또 사농공상 등의 기존 신분제도도 이때 폐지됐다. 메이지 유신이 가능했던 것은 사카모토 료마가 사츠마번(가고시마)의 사이고 다카모리와 쵸슈번(야마구치현)의 기도 다카요시의 삿초동맹을 성사시키고, 고메이 일왕을 지지토록 만들어서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사무라이는 쇼군에게 충성하는 무사 계급이다. 이 사무라이 내에도 계급이 3가지가 있다. 죠시上士는 정치에 직접 참여하고 번주를 보필하는 주요 직책을 맡는 최상위다. 카시下士는 평소에는 실무를 담당하는 하위 계층이고, 낭인은 가난하거나 직책이 없이 사무라이 신분을 유지하지 못하는 이들이다. 도사번의 경우, 본래 시즈오카현 출신이었던 야마우치 번주가 데려온 사무라이들이 죠시를 대대로 세습했고, 도사 토착민 가운데 부와 능력이 있던 소수에게 카시의 신분이 주어졌다. <료마전>에 보면 죠시가 카시를 무시하거나 함부로 죽여도 처벌을 받지 않는 등 지나친 차별의 모습이 보여진다. 유럽의 근대화에 있어 시민계급이 활약했다면, 일본의 근대화에는 카시의 활동이 눈부시다. 카시였던 료마는 메이지유신을 가능케 해 스스로 신분제 폐지를 이뤄냈다. 1 새로 지어진 마키노식물원의 온실 2 이색적이고 아름다운 야광식물 3, 4 마키노 토미타로우 박사의 평생의 연구와 업적을 전시해 놓은 상설 전시관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Man of Kochi III 마키노 토미타로우 ‘와사비아 와사비 (시에브) 마키노Wasabia Wasabi (Sieb) MAKINO’. 우리가 흔히 아는 바로 그 와사비의 정식 이름이다. 앞에 있는 와사비아가 학명이고, 그 다음 와사비가 통칭이며, 괄호 안에 있는 것은 유사종이 등록돼 있는 경우에 표시된다. 그리고 마지막에 있는 것이 발견 및 연구하고 등록한 사람의 이름이다. 와사비를 비롯해 많은 일본의 식물에는 마키노라는 이름이 끝에 오는 경우가 많은데, 이 마키노 토미타로우 박사는 일본을 대표하는 식물학자다. 현재까지 보고된 약 6,000여 종의 식물 가운데 절반 가량이 마키노 토미타로우 박사에 의해 등록됐다. 고치시 고다이산에는 마키노 식물원이 있다. 마키노 토미타로우 박사는 고치현 출신으로 많은 연구를 고치에서 진행했다. 또 이와 같이 자신의 연구에 근간이 된 고치에 식물원이 설립되길 바랬다. 식물을 연구하는 곳은 여럿 있지만, 마키노 식물원은 일반인들도 관람하고 접해 볼 수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식물원은 본관, 전시관, 정원, 온실 등 4개의 영역으로 이뤄져 있다. 전시관에는 상설·기획전시 외에 마키노 박사의 일생과 업적이 전시돼 있는데, 특히 인상적인 것은 그가 남긴 식물 화보다. 요즘처럼 놀라운 접사 기능의 카메라가 없던 시절, 식물을 연구·보고하기 위해서는 4계절의 표본과 그에 대한 그림을 자료로 제출해야 했다. 바로크 시대 곤충화가 메리안의 일생을 그린 <나는 꽃과 나비를 그린다>에서처럼 화가가 그리는 아름다운 꽃그림도 많지만 마키노의 식물 그림은 이에 못지않게 아름답고 세밀하다. 목조 건축물의 특성을 잘 살린 설계와 디자인은 식물원의 성격과도 맞는데다 미술작품과 같은 감흥을 느낄 수 있다. 온실은 새로 건립한 지 얼마 안 됐는데, 각 식물을 위, 아래, 또 옆 등 다양한 위치에서 감상할 수 있는 점이 특징이다. 온실에 들어서는 순간 입구에 가득 심어져 있는 바닐라가 행복한 기운을 선사한다. 또 하나 눈길을 끄는 것은 길가에 위치한 작은 비석이다. 마키노 박사의 필체로 “나를 지탱해 주고 가정을 잘 지켜 줘서 고마워요”라고 쓰여져 있고, 그 앞에는 작고 소박한 난초들이 심어져 있다. 이 난초의 이름은 ‘사사엘라 스에코아나 마키노Sasaella Suekoana MAKINO’다. 부인인 스에코 여사가 죽을 무렵에 발견한 난초에 부인의 이름을 붙였다. 마키노 토미타로우 박사는 일본의 대표적인 식물학자이지만 그의 업적은 사실 국가나 연구소 등의 지원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다. 그는 연구를 지속하는 한편 빚까지 져가며 몇 번이고 도망을 다니면서 힘들게 살았다고 한다. 유명한 일화로 스에코 부인은 집에 빚쟁이가 찾아온 날은 밖에 빨간 이불을 내걸어 들어오지 말라는 신호를 보냈을 정도였다고. 감동적이라고만 하기에는 뭔가 서글픈 이야기다. 마키노 식물원은 시내에서 차로 20여 분 거리의 고다이산 기슭에 위치한다. 사람에 따라 식물원에 관심을 가질 수도 있고 시큰둥해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일반적인 식물원과 다른 이색적인 매력이 있는 곳으로 다른 관광지에 비해 다소 접근성이 떨어져도 꼭 강추하고 싶다. 고다이산은 또한 전망대가 있어 고치시의 모습을 조망하기에 좋다. 연인들이 많이 찾는 인기 데이트 코스이기도 하다. Travel to Kochi ▶고치현은 사카모토 료마의 고향이기도 한 고치현은 메이지유신 전까지 도사국土佐國으로 불렸다. 시코쿠四國라는 지명은 섬 내에 도사국, 사누키국, 아와국, 이요국 4개의 국이 존재하는 것에서 유래한다. 도사국과 관련해 친숙한 대명사로 도사견이 있다. 투견과 경호견으로 유명한 바로 그 품종으로 투견 경기는 고치현의 이색적인 볼거리 가운데 하나다. 남쪽으로 태평양을 마주하고 있으며 난류가 흘러서 같은 위도의 지역보다 따뜻한 편이다. 한신타이거스의 2군 경기장 및 스프링캠프가 이곳에 있으며, SK와이번스 역시 지난 4년여간 이곳을 다녀갔다. ▶가는 방법 고치는 일본 시코쿠섬 남부에 위치한다. 아시아나항공이 인천에서 다카마츠(화·목·일요일)와 마츠야마(화·금·일요일)를 각각 주 3회씩 운항한다. 고치시까지는 차량으로 약 2시간 가량 소요된다. 시코쿠는 아니지만 인천에서 세토나이 대교가 연결돼 있는 혼슈의 오카야마를 대한항공이 매일 연결한다. 차량으로 약 2시간30여 분이 걸린다. 고치의 료마공항으로 ANA의 에코패스와 일본항공의 재팬세이버 등의 국내선 연계 요금도 이용할 수 있다. ▶Must Have @고치현 자유여행을 떠나는 이들이 좋아하는 곳을 꼽자면 시장이다. 여기에 부담없이 이것저것 사먹을 수 있는 길거리 음식과 선술집이 있다면 금상첨화겠다. 고치시에는 히로메시장과 일요시장이라는 두 개의 상설시장이 있는데, 고치시민들에게도 인기 있는 곳이어서 그 흥과 왁자지껄함에 이방인도 동참할 수 있어 좋다. 히로메시장은 다양한 종류의 먹을거리를 파는 음식점들이 모여 있는 푸드코트다. 그렇다고 해도 한국의 백화점이나 마트에 있는 푸드코트와는 좀 다르다. 식사를 해도 좋고, 가볍게 술을 즐기기에도 좋다. 고치현의 대표적인 별미인 가츠오타타키는 물론이고, 야스베 교자 체인점, 소금이나 유자폰즈 등을 뿌려먹는 게 더 잘 어울리는 타코야키, 쇠고기초밥, 고등어초밥, 어묵, 라멘 등을 즐길 수 있다. 실내이고, 두 개의 큰 공간 한가운데 등받이 없는 통나무식 테이블과 의자가 놓여 있다. 자리를 잡고 마음에 드는 음식을 사와서 같이 놓고 먹으면 된다. 그야말로 ‘골라먹는 재미’가 있다. 사람이 너무 많아서 타이밍을 놓치면 한참을 기다려야 할 수도 있다. 그럴 때는 한 테이블에 둘셋이 앉아 있는 곳을 공략해 보자. 한국어로 이야기하고 있으면 오히려 옆에 앉아 있던 일본인들이 먼저 말을 걸어 온다. 고치시 사람들은 대체로 정이 많아 금세 어울릴 수 있다. 일요일에는 고치성 입구에서부터 이어지는 차도에 자판과 노점상 행렬이 이어진다. 일요일에 열리기에 일요시장이라고 불리우며 수백년 역사를 가지고 있다. 술을 받으면 다 마시기 전엔 내려놓을 수 없는 일본 스타일의 술잔, 또 갖가지 아기자기한 공예품, 옛 물건 등 다양한 시장 풍물을 만날 수 있다. 날씨가 좋은 일요일 아침에 산책하며 이것저것 구경하다 보면 금세 시간이 지나간다. 시장 음식을 먹는 재미도 있다. 꼬치구이, 튀김, 과자, 오코노미야키 등 여러 가지를 먹다 보면 식사를 대신할 수 있다. 고치는 유자, 고구마, 가지 등이 유명한데, 특히 고구마 튀김이 독특하면서도 맛이 있다. 1 고다이산에서 바라본 고치시 전경 2 시코쿠의 별미 ‘가츠오타타키’. 가츠오를 짚불에 그을려 특유의 풍미를 더했다. 문득문득 먹고 싶어지는 인상적인 맛을 가졌다 3, 4 골라먹는 재미가 있는 히로메시장 음식들 5 잔멸치 치리멘과 유즈폰즈를 버무려 먹는 치리멘동. 아키의 별미 6 가츠라하마 해변에서 태평양을 바라보고 있는 사카모토 료마 동상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위 기사는 기사콘텐츠 교류 제휴매체인 여행신문의 기사입니다. 이 기사에 관한 모든 법적인 권한과 책임은 여행신문에 있습니다.
  • 충북 ‘반기문 테마사업’ 과열

    충북 ‘반기문 테마사업’ 과열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 태어나고 학창시절을 보낸 충북지역에서 반 총장을 테마로 한 각종 사업이 넘쳐나고 있다. 그러나 의욕이 지나쳐 자칫 이름 석 자의 가치를 훼손시키는 등 부작용이 우려된다는 지적도 잇따르고 있다. 반 총장의 고향인 음성군은 2016년까지 500억원을 들여 반 총장 생가 주변 330만 5000㎡ 부지에 반기문 테마관광지를 만든다. 유엔본부 모양의 외국어교육원과 반 총장의 학창시절 성적표, 일기장 등을 갖춘 전시관 등이 들어설 예정이다. 복원한 반 총장 생가에 방문객이 몰리고, 반 총장 이름을 딴 마라톤대회와 백일장이 전국대회로 자리매김하는 등 재미를 보자 이참에 반 총장 생가 주변을 관광지로 개발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음성읍에 반기문 광장을 조성, 농산물 판매장으로 활용한다는 계획도 갖고 있다. 반 총장이 학창시절을 보낸 충주시도 반 총장 테마사업에 뛰어들고 있다. 시는 4일 반 총장이 20여년간 살았던 문화동 고택을 매입해 내년부터 복원키로 했다고 밝혔다. 학용품들을 전시하고, 무학시장에서 반 총장이 즐겨 사먹었던 먹거리들을 관광상품으로 개발키로 했다. 또 반 총장이 자주 다녔던 길을 정비해 ‘유엔로드’로 이름을 붙이고 세계유엔잼버리대회를 유치한다는 계획도 세웠다. 충북도교육청은 2007년부터 해마다 반기문 영어경시대회를 개최하고 있다. 또 충북도는 민선4기 당시 청주공항을 ‘반기문공항’으로 변경할 계획이었으나 반 총장이 부담스럽다는 뜻을 전해 포기했다. 반 총장을 테마로 한 각종 사업이 과열 양상을 띠자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태어난 곳과 자란 곳의 옛집을 복원해 관광상품화할 경우 반 총장의 고향이 어디인지 혼란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실례로 거제에서 태어나 4살 때 통영으로 이사를 간 시인 유치환 선생의 경우도 거제시와 통영군이 제각각 기념사업을 하다 보니 관광객들이 혼란에 빠진 경우와 같다. 또 짜임새 없는 무분별한 사업은 반 총장의 이미지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장희정 신라대 국제관광경영학과 교수는 “부산 유엔묘지가 가치를 인정받는 것은 세계에서 유일한 유엔묘지이기 때문”이라면서 “반 총장 기념관이 여기저기 난립하다가는 가치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청주 남인우기자 niw7263@seoul.co.kr
  • 가야금 명인 김난초에 바치는 ‘100인의 선율’

    가야금 명인 김난초에 바치는 ‘100인의 선율’

    가야금 산조의 명인 죽파 김난초(1911~1989) 선생에게 100명의 가야금 연주자들이 산조 연주를 바친다. 오는 9일 오후 5시 서울 서초동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열리는 ‘고(故) 인간문화재 김죽파 탄생 100주년 기념 공연’이다. 죽파 선생의 제자인 인간문화재 양승희(63)와 그의 제자 100명이 꾸미는 무대다. 김죽파는 김창조(1856~1919) 선생의 손녀다. 김창조 선생은 기악독주곡이라 불리는 가야금 산조를 1891년 성립시킨 인물이다. 가야금이 가야시대부터 내려온 악기라지만 이전에는 대부분 합주곡에 쓰였거나, 독주곡이라 해봐야 3~4분 길이의 간단한 곡이 전부였다 한다. 이런 상황에서 김창조 선생은 40분 길이의 대곡을 손수 지은 것이다. 가야금 산조가 탄생하자 거문고, 대금, 해금, 단소, 퉁소 등 다른 악기로 연주하는 산조들이 쏟아져 나왔다. 원곡은 악보도 없고 녹음장치도 없이 구전심수(口傳心授)로 전해지다 보니, 그가 지었다는 459가락 가운데 112가락 정도가 손녀딸인 김죽파 선생을 통해 전해진 것으로 본다. 때문에 문화재청은 가야금산조와 대금산조를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에 등재신청하고 있다. 이에 발맞춰 김창조 선생의 고향인 전남 영암군에서는 기념관 설립, 생가 복원, 가야금 테마공원 설립 같은 사업들을 진행하고 있다. 이번 공연에서 스승이 남긴 가야금 병창과 가야금 산조는 물론, 국악계에서 가장 대중화된 레퍼토리로 꼽히는 황병기의 ‘침향무’, 황의종의 ‘25현 뱃노래’ 같은 곡까지 선보인다. 마지막에는 100명의 제자들이 나와 김죽파류 가야금 산조를 다 함께 연주한다. 5만~10만원.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박영길 마포구의회 의장 “마포에 활력 불어 넣는 건 관광뿐”

    박영길 마포구의회 의장 “마포에 활력 불어 넣는 건 관광뿐”

    “의회가 외딴 절간이란 말을 들으면 곤란합니다.” 박영길 마포구의회 의장은 22일 의정 철학을 묻자 이렇게 답했다. “문턱을 없애고 주민 속에서 낮아지는 게 의회의 존재의의”라고 덧붙였다. ‘구민과 함께하는 열린 의회’라는 캐치프레이즈도 이를 반영한다. 박 의장은 전국 기초의회에서도 몇 손가락에 드는 5선이다. 그가 20년 가까이 구민들의 변함없는 지지를 받고 활동하면서 계속 강조해 온 게 ‘주민과의 호흡’이다. 그런 호흡을 유지하고 구의회를 ‘절’이 아닌 ‘사랑방’으로 바꾸고자 청사의 홀과 다목적실 등을 주민들에게 열어주기도 했다. 지금도 이곳에서는 관내 단체들의 각종 설명회·전시회·강연회 등이 열리고 있다. 의정활동에 있어서 박 의장의 최대 현안은 ‘마포 관광산업 활성화’다. 그는 “마포에 새 활력을 불어 넣는 건 관광밖에 없다.”고 잘라 말했다. 지역에는 주거지가 많고 기업체는 드물다는 점을 염두에 둔 얘기다. 이에 박 의장은 의회에 처음으로 관광산업활성화특별위원회를 설치하기도 했다. 박 의장은 개발 가능한 관내 자원으로 ‘토정비결’의 저자 토정 이지함 선생의 생가터, 세종대왕이 백성을 생각하며 거닐었던 망원정, 마포 나루 등을 들었다. 그는 “문화·역사에 스토리를 붙이면 브랜드가 된다.”며 “이곳들이 가진 뜻을 잘 풀어내고 현대화하면 뛰어난 관광상품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길게는 마포를 세계적인 도시로 끌어올리기 위해 ‘마포 노벨상(가칭)’도 구상 중이다. 그는 “어떤 분야에서든 두각을 나타내 마포구를 빛낸 사람에게 40만 구민의 이름으로 주는 상”이라며 “100년만 이어지면 마포구가 세계적으로 유명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봉평 효석문화제-“봉평 메밀꽃밭에서 가을축제 열렸네”

    봉평 효석문화제-“봉평 메밀꽃밭에서 가을축제 열렸네”

    회색빛 도시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강렬해질 때면 문득 떠올리곤 하는 풍경이 있다.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붓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이효석의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한 장면이다. 회색빛 도시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강렬해질 때면 문득 떠올리곤 하는 풍경이 있다.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붓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이효석의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한 장면이다. 그렇게 흐드러지게 핀 메밀꽃이 절정을 이루는 것은 마침 나들이하기에 좋은 9월이다. 에디터 이지혜 기자 자료제공 (사)이효석문화선양회 033-335-2323 1 넓은 메밀꽃밭은 가을의 특별한 정취를 느끼게 한다 2 허생원처럼 메밀밭 사잇길로 나귀를 타보는 체험이 가능하다 3, 4, 5 봉평사진전, 전통공연 등 다채로운 부대행사가 축제의 재미를 더한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이효석의 생가가 위치한 강원도 평창군 봉평면 일대에는 170여 만 평방미터의 메밀밭이 조성돼 있다. 소설을 읽고 소설 속에서 묘사했던 정경을 직접 느껴보고 싶었던 이들에게 반가운 일이다. 사람들이 산책하기 좋도록 밭 사이로 이리저리 오솔길을 만들어 놓았기에, 푸른 하늘과 어우러진 하얀꽃, 초록의 이파리가 청량감을 선사한다. 이 메밀밭 하나만으로도 주말에 훌쩍 봉평으로 떠나오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벚꽃이나 단풍에도 시기가 있듯이 메밀꽃에도 시기가 있다. 여행하기 가장 좋은 가을에 맞춰 다양한 즐길거리를 제공하는 효석문화제가 개최된다. 2011년 문화체육관광부 유망축제로 선정되기도 한 효석문화제는 올해 9월9일부터 18일까지 10일 동안 진행될 예정이다. ‘소설처럼 아름다운 메밀꽃밭’이라는 주제와 ‘메밀꽃이 피었습니다’라는 부제로 감수성을 자극할 만한 다채로운 문학행사와 체험행사, 공연이 펼쳐질 예정이다. 올해의 효석문화제는 효석문화마을과 흥정천 개울, 먹거리촌을 중심으로 메밀꽃밭 오솔길, 봉숭아 물들이기, 캐리커처 등 7가지의 자연체험을 마련했다. 또 통나무 빨리 자르기, 우마차 끌기 등 8가지의 전통체험과 기념 기획전으로 모두 400여 점의 자료들을 선보이는 ‘봉평의 어제와 오늘’ 사진전, 일본 토가촌-봉평 우호교류 사진전, 행사사진전 등 11가지의 전시체험행사를 포함해 모두 26가지의 상설체험행사도 함께 열릴 예정이다. 부대행사로는 32회 전국효석백일장 등의 문학프로그램이 마련되고, 통기타공연, 전통국악공연, 전국사물놀이 경연대회 등의 다채로운 무대도 펼쳐질 예정이다. 또 일본국수 수타 체험행사 등 이색적인 볼거리도 기다리고 있다. 효석문화제 개막식은 축제 일정보다 하루 빠른 9월8일 오후 6시 봉평면 가산공원 일원에서 유명 문학인 및 주요 인사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릴 예정이다. 12회 이효석 문학상 시상식을 가지며, <해마, 날다>의 윤고은 작가에게 상패와 상금 2,000만원이 수여된다. 효석문화제 찾아가기 대중교통으로는 장평시외버스터미널(033-332-4208)에 도착한 후 봉평행 시내버스를 이용하면 된다. 기차를 이용할 경우에도 원주역 또는 강릉역으로 이동한 후 장평행 시외버스터미널까지 이동해야 한다. 효석문화제를 즐길 수 있는 국내여행 기획 상품을 이용해도 편리하게 다녀올 수 있다. 여행사에 따라 일정이 다소 차이가 있고 상품가도 다르지만 대략 1인당 4만원 전후의 예산이 소요된다.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영동고속도에서 강릉 방향으로 향하다가 면온IC나 장평IC에서 봉평 방향 6번 국도로 진입하면 효석문화제 행사장을 찾아갈 수 있다. “모바일 페이지에서 만나요” 이효석문학선양회에서는 스마트폰 이용자를 위해 전용 모바일 페이지(www.hyoseok.com)를 제작했다. 축제를 찾는 이들이 이동 중에도, 현장에서도 쉽게 정보를 얻을 수 있다. 구성은 인사말, 축제개요, 프로그램, 축제장안내, 소설읽기, 축제갤러리, 관광안내, 오시는길 등으로 이뤄져 있다. 모바일페이지 메뉴 중에서 특히 ‘소설읽기’에 눈길이 간다. 여행에 앞서 <메밀꽃 필 무렵>을 모바일 페이지를 통해 다시 읽는 재미가 있다. 분량도 길지 않고, 화보가 함께 실려 있다. 효석문화제를 알차게 즐기는 법 ■이효석 생가를 찾아보세요? 행사가 개최되는 효석문화마을에는 이효석 생가를 비롯해 소설의 정취를 느껴볼 수 있는 테마 공간이 구석구석에 자리하고 있다. 드넓은 메밀밭은 물론이고, 소설 속에서 허생원과 성씨처녀가 인연을 맺었던 장소인 물레방아와 장돌뱅이들의 쉼터인 주막 충주집도 재현돼 있다. 이효석과 관련해 이효석 생가마을은 이효석 생가를 복원하고 평양에서 살던 푸른집, 북카페, 집필촌 등이 조성돼 있다. 이효석문학관은 문학전시실과 문학교실, 문학정원 등으로 꾸며져 있다. 충주집 인근에는 전통 먹거리장터와 가산공원 등이 있다. ■달빛 아래의 황홀한 산책 <메밀꽃 필 무렵>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달빛 아래 펼쳐지는 메밀밭의 모습이다. 그렇다면 낮뿐 아니라 밤에 이곳을 방문해 보고 싶어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이에 효석문화제측은 야간 프로그램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올해에는 새롭게 야간 한지등韓紙燈을 설치하여 가을밤에 한층 더 운치 있는 정경을 만날 수 있다. ■40종의 메밀 별미 맛보기 축제의 즐거움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먹을거리다. 메밀은 메밀국수, 메밀전병 등 일상에서도 인기 메뉴로 자리잡고 있다. 효석문화제에서 마련하는 메밀음식 시식회도 매년 많은 관광객들의 인기를 모으고 있다. 그동안 아쉬움으로 지적된 부분이 시식회에 참여할 수 있는 인원이 적었다는 점이다. 올해는 음식의 양을 늘려 1,000명 이상이 함께할 수 있도록 준비했다. 40여 종류의 메밀로 된 음식을 저렴한 가격에 맛볼 수 있다. 이 밖에 국립국악원의 협조로 전통 혼례를 거행하고 잔치 음식코너도 마련해 관광객들에게 잔치음식을 선보일 예정이다. ■축제와 함께 1박2일 봉평이 위치한 평창은 2018년 동계 올림픽 개최 예정지로 선정되기도 한 대표적인 휴양레저 여행지다. 1박2일로 여정을 계획해 달빛 아래 하얀 메밀밭을 거닐어 보는 것도 좋겠다. 휘닉스파크, 한화리조트, 용평리조트, 알펜시아리조트 등은 물론이고 다양한 테마 펜션이 운영되고 있다. 함께 여행하면 좋은 곳으로 허브나라, 오대산국립공원, 월정사, 한국자생식물원, 삼양대관령목장, 양떼목장, 신재생에너지전시관, 평창바위공원, 백룡동굴 등이 있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위 기사는 기사콘텐츠 교류 제휴매체인 여행신문의 기사입니다. 이 기사에 관한 모든 법적인 권한과 책임은 여행신문에 있습니다.
  • 김달진문학상 수상자

    김달진문학상 수상자

    제2회 창원KC국제시문학상 수상자로 클로드 무샤르 프랑스 파리8대학 명예교수가 선정됐다. 국제시문학상은 한국의 대표적인 문학상으로 권위를 인정받는 김달진문학상이 또 한번의 변화를 위해 지난해 새로 도입한 수상 부문이다. 첫 회 수상자는 중국의 망명 시인 베이다오(北島). 올해는 ‘보편성’에 무게를 두고 무샤르 교수를 뽑았다. 그는 이창동 감독의 영화 ‘시’에 나오는 시를 공동 번역한 주인공이다. 프랑스 칸 영화제 출품을 위해 영화 서평을 쓰기도 했으며 이상·기형도·김혜순 시인의 시도 번역한 지한파다. 수상을 위해 내한한 무샤르 교수는 2일 기자들과 만나 “시가 사라져버리는 순간에 우리 인간들이 숨 쉬는 공기는 부족해지고 위협당할 것”이라며 “수상의 기쁨은 한국 시가 갖는 예외적인 생명력에 대한 나의 찬사에서 오는 것”이라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이어 “인간의 언어로 된 시는 한 사람에게서 다른 사람에게로 건너가기 위해 만들어진다. 그래서 시는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번역되기 위해 있으며 조심스럽고 은밀하게 모든 국경을 뛰어넘을 것을 요구한다.”며 앞으로 한국 시를 열심히 번역, 소개하겠다고 의지를 다졌다. 제7회 김달진창원문학상의 수상자는 ‘말할 수 없는 애인’의 김이듬씨, 제6회 김달진문학상 젊은시인상은 ‘눈의 심장을 받았네’의 길상호씨, 젊은평론가상 수상자는 ‘수런거리는 시, 분기하는 비평들’의 김문주씨로 결정됐다. 지난 6월 먼저 발표된 제22회 김달진문학상 수상자는 ‘지독한 서정시인’ 오세영(69) 서울대 명예교수였다. 오 교수는 최근 서울신문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나는 시의 영원성과 감동을 추구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자본주의 가치관에 물든 오늘의 사람들은 우리 시대의 시에 무슨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느냐고 비웃는 것 같다.”며 “순진하고 미련하고 낡은 시인일지 모르지만, 언제인가 잃어버린 문학의 그 영원성과 감동이 다시 돌아오는 날이 있으리라고 우직하게 믿는다.”고 말했다. 평론 부문에는 최현식 경상대 국문과 교수가 선정됐다. 심사를 맡은 김윤식 서울대 명예교수는 최씨의 평론집 ‘시는 매일매일’에 대해 “제법실상(모든 존재의 참다운 모습)에 빠져들지 않을 만큼 지적 견제력이 발휘되었다.”고 평했다. 이숭원 서울여대 교수는 “최현식은 시를 논하기 이전에 시를 즐기고 사랑한다. 즐기고 사랑하는 마음을 논리적인 언술로 전달해야 한다는 것이 비평의 고민거리”라며 “좋은 비평이 거쳐야 할 즐거운 난관인 그 소슬한 외나무다리를 건너 신경지를 개척하기 바란다.”고 기대했다. 시상은 김달진 시인의 생가가 있는 경남 창원과 인근 도시 진해에서 3~4일 열리는 김달진 문학제에서 이뤄진다. 3일 진해구민회관에서는 ‘음유시인’ 윤형주의 무료 공연도 열린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용어 클릭] ●김달진문학상 시인이며 한학자인 월하(月下) 김달진(1907∼1989)을 기리고자 1990년에 제정된 상이다. 시사랑문화인협의회(회장 최동호 고려대 교수)가 주최하고 창원시와 서울신문사가 후원한다. 인간의 고유한 얼에 대한 믿음에 바탕을 둔 정신주의를 성공적으로 구현한 시인과 평론가 등에게 주어진다.
  • 故마이클 잭슨 생일맞아 생가 찾은 3자녀 눈길

    故마이클 잭슨 생일맞아 생가 찾은 3자녀 눈길

    ’팝의 황제’ 故 마이클 잭슨의 생일(1958년 8월 29일)을 맞아 전세계 팬들과 동료들이 기념 메시지를 보내는 가운데 잭슨의 3자녀들이 나란히 잭슨의 생가를 찾아 눈길을 끌었다. 잭슨의 3자녀인 프린스(14), 패리스(13), 블랭킷(9)은 지난 27일(현지시간) 잭슨이 유년시절을 보낸 인디애나 주 게리 시의 생가를 찾았다. 이 집은 한때 11명의 잭슨 가족들이 살았던 약 84㎡ 규모의 작은 집으로 현재 비어있으며 시 측은 이곳을 기념관으로 꾸몄다. 딸 패리스는 “수많은 팬들이 아버지를 추모하기 위해 이곳을 찾아 기쁘다.” 며 “아빠를 몹시 사랑하며 그리워 하고 있다.”고 밝혀 팬들의 눈시울을 붉혔다.  게리 시 측은 지난해 6월 마이클 잭슨의 사망 1주기를 맞아 생가 앞에 기념비를 세우고 제막식을 한 바 있다. 잭슨 가족을 비롯한 유명 뮤지션들의 추모 메시지도 이어지고 있다. 누나 라토야 잭슨은 자신의 트위터에 “마이클, 생일을 축하한다. 네가 없어 외롭다. 모두가 너를 사랑하고 있다.”는 글을 남겼다. 또 가수 크리스 브라운 역시 자신의 트위터에 “생일 축하해요. 당신은 최고에요!”라는 추모의 글을 올렸다. 서울신문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