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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씨줄날줄] 영화, 역사를 부탁해?/황수정 논설위원

    일제강점기 독립군들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암살’이 1200만명 관객 확보를 눈앞에 두고 있다. 개봉 6주차에도 박스오피스 상위권을 유지하며 남녀노소, 특정 세대 관객에 쏠림이 없는 ‘국민영화’로 평가받는다. 제작사나 감독도 기대치 이상의 흥행에 놀라는 모양이다. 이 영화의 흥행에는 산술적인 기록 말고도 각별한 의미와 가치가 덧붙을 만하다. 역사에 무관심한 청년 세대에 해방 공간에 대한 인식을 유도했다는 점이 무엇보다 그렇다. 영화 한 편의 힘이 그 어떤 역사 교육 장치보다 강력한 효력을 보였다. 광복 70주년을 맞은 이달 청소년들의 인터넷 소통 공간에서 독립운동가 약산 김원봉이 주목받을 줄 누가 상상했을까. 그가 백범 김구보다 더 높은 현상금이 붙은 민족혁명당 의열단장이었다는 사실을 이전에 알고 있었던 사람이 얼마나 될까. 1930년대 독립운동의 중심축은 한국독립당과 김구만이 아니었다는 사실, 이념을 초월한 연대를 주창하며 1935년 결성된 민족혁명당의 역할이 대단했다는 사실 등이 재조명됐다. 김원봉의 부인이자 독립투사인 박차정 의사의 존재도 영화가 일깨웠다. 부산 동래의 박 의사 생가가 관광 명소가 됐다고 한다. 영화가 젊은 세대의 역사 인식에 자극제가 된 사례는 최근 꾸준히 이어졌다. 가까이는 ‘연평해전’에서부터 노무현 전 대통령을 소재로 했던 ‘변호인’, 6·25전쟁과 전후 개발시대의 파독 광부 이야기를 담은 ‘국제시장’, 시대를 더 거슬러 올라 이순신을 조명했던 ‘명량’까지. 처음 예상치보다 훨씬 많은 관객 600만명을 돌파했던 ‘연평해전’은 주요 관객층이 중장년이 아니라 20대(35%)와 30대(30%)였다. 영화 관람 전후에 실제 연평해전 사건을 포털사이트에서 검색했다는 이는 76%나 됐다. 인터넷에 친숙한 젊은 층 관객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청년 세대에게 영화의 위력은 새삼 말할 것이 없다. 이번 남북 대치 상황에서 2030세대가 뜻밖의 안보의식을 보여 준 것도 그와 무관하지 않을 듯하다. “‘연평해전’을 블록버스터로 만든 젊은 세대가 뒤이은 흥행작 ‘암살’로 안보 인식을 굳혔다”는 영화가 안팎의 평가는 일리 있다. 청소년들에게 한국사는 시험 점수 따기 부담스러운 기피 과목이다. 영화라도 있어 다행이라는 말을 언제까지 하고 있을 수는 없다. 돈 벌겠다는 스크린에 계속 역사 선생님 자리를 내주는 건 난감하다. 다음달 발표할 새 교육과정의 한국사 교과서 개편안을 만드느라 교육부가 고심하고 있다. 2010년 개정 때 줄였던 근현대사 부분을 더 줄이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분위기다. 학습량을 줄여 준다는 명목이다. “학생들의(근현대사에 대한) 충성도가 낮아” 근현대사를 아예 고등학교 필수 과목으로 정했다는 일본 문부성과는 움직임이 거꾸로다. 역사 교육을 학습량 부담으로 저울질할 일은 아니다. 황수정 논설위원 sjh@seoul.co.kr
  • 흐붓한 달빛 아래 열리는 메밀 축제 ‘제17회 효석문화제’

    흐붓한 달빛 아래 열리는 메밀 축제 ‘제17회 효석문화제’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작가 가산 이효석의 문학정신을 기리는 ‘제17회 효석문화제(봉평메밀꽃축제)’가 9월 4일(금)~13일(일) 강원 평창 봉평면 일대에서 진행된다.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배경인 봉평은 해마다 9월이면 들녘을 덮는 하얀 메밀꽃으로 장관을 이루는 메밀의 고장이다. 올해는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작품 속 주인공인 허생원과 성처녀의 애틋한 사랑이야기와 메밀꽃의 꽃말인 ‘연인’에서 영감을 얻어 ‘메밀꽃은 연인&사랑’이라는 주제로 열린다. 9월의 봉평은 메밀꽃이 만들어내는 하얀 융단과 토속적인 사랑이야기 덕에 낭만여행 1번지로 꼽힌다. 효석문화마을 일원은 올해도 100만㎡를 넘는 메밀꽃밭이 조성된다. 관광객들의 관람 편의를 위해 꽃밭 사이로 거미줄처럼 오솔길이 만들어져 있다. 축제공간은 전통마당, 문학마당, 자연마당 등 3개의 큰 마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통마당에서는 시골장터와 농특산물 판매로 장터분위기를 조성해 민속놀이와 함께하는 즐거운 마당이 펼쳐진다. 다양한 공연도 관람할 수 있다. 이효석문학관을 중심으로 문학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문학마당은 생가, 푸른집 체험행사 뿐 아니라 문학길에서 다양한 체험행사를 경험할 수 있다. 효석문화제의 압권은 단연 메밀꽃밭. 소설 속 메밀꽃밭에서의 감동을 느낄 수 있는 자연마당에서는 나귀를 타고 메밀꽃밭을 걸어보는 이색적인 체험을 할 수 있다. 메밀꽃밭에 앉아 책을 읽어도 좋고, 그리운 이에게 엽서 한 장 써보는 것도 좋겠다. 이효석 생가터 주변에는 메밀꽃을 가장 아름답게 볼 수 있는 곳으로 메밀꽃 포토존이 운영되고, 꽃밭 사이로 난 오솔길을 거닐며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을 감상할 수 있다. 축제장 곳곳에서 열리는 버스킹 공연, 소설 속 명장면을 재연하는 거리상황극 등도 색다른 재미를 더한다. 이효석문학선양회 (www.hyoseok.com) (033)335-2323.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 [김경운 기자의 맛있는 스토리텔링 4] 막국수와 소바

    [김경운 기자의 맛있는 스토리텔링 4] 막국수와 소바

    맛과 건강을 함께 챙길 수 있는 음식으로 메밀국수가 있다. 메밀에는 각종 필수 아미노산을 함유한 단백질이 다른 곡류에 비해 많다. 그럼에도 메밀국수의 열량은 감자탕의 절반에 불과하고, 라면보다도 낮은 편이다. 따라서 성인병인 혈관계나 간 질환을 예방하며 동시에 다이어트 효과까지 누릴 수 있다. 국물에도 유효 성분이 많이 녹아 있기 때문에 쭉 들이키는 게 좋다. 다만 찬 음식인 만큼 몸에 냉기가 있으면 주의해야 한다. ●메밀 원산지 바이칼호 부근... 함경, 강원도 주로 재배 메밀은 원산지가 북중국의 바이칼 호수 등지로 알려져 우리 선조도 오래전부터 먹었을 것이다. 함경도와 평안도, 강원도 등의 춥고 메마른 땅에서도 잘 자란다. 석 달만 돼도 다 자라니 끼니 걱정을 덜어주는 구황식품이었다. 하지만 열량이 낮기 때문에 힘을 써야 하는 옛 농사꾼 등에겐 그리 반가운 음식이 아니었을 것이다. 함경도에서는 뜨끈한 국물에 말아 먹는 메밀국수를 즐겼지만, 강원도 평창 등 영서 지방에서는 시큼한 김치를 양념으로 쓰는 막국수가 유명하다. 메밀과 전분을 섞은 국수에 듬성듬성 썬 김치와 소금에 절였다가 꼭 짠 오이를 얹어 김치 국물에 말아 먹는다. 특히 무는 얇게 썰어서 고춧가루로 물들인 뒤 식초와 설탕을 넣고 재웠다가 고명으로 쓴다. 무는 메밀의 일부 유해 성분을 해독하는 작용을 한다. 단편소설 ‘메밀꽃 필 무렵’으로 유명한 작가 이효석의 생가터가 평창군 봉평면에 있다. 한국에 양념 맛이 강한 메밀 막국수가 있다면 일본에는 감칠맛이 있는 메밀 소바가 있다. 소바는 일본인이 좋아하는 가다랑어 포와 함께 고등어 포 또는 다시마로 우려된 육수에다 일본간장과 파, 무, 고추냉이 양념을 넣은 뒤 채반에 담긴 메밀국수를 찍어 먹는다. 요즘 우리는 여름철에도 메밀 소바를 즐기지만 일본에선 예부터 섣달 그믐밤에 장수를 기원하며 먹는 음식으로 여겼다. 소바를 말할 때 일본 에도 막부 시대의 초대 쇼군인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빼놓을 수 없다. 학자들은 도쿠가와가 한반도의 신라, 고려, 조선 왕조와 관련이 있는 (통일)신라계 무사 집안의 후손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는 백제계 후손이라는 오다 노부나가와 일본 원주민이지만 주군인 오다를 추종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집권 시절엔 은인자중을 하다가 결국 도요토미가 임진왜란 패전 후 사망하자 정권을 장악한다. 집권자가 기득권 세력을 떨쳐 버리고 혼란한 정국을 이끌려면 수도를 옮기는 천도가 효과적이다. 도쿠가와는 귀족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막부의 거점을 관서 지방인 교토에서 관동 지방인 도쿄(에도)로 옮긴다. 귀족들은 이런저런 핑계로 도쿄를 외면했지만, 도시개발에 필요한 일자리를 원했던 젊은이들이 도쿄로 모여들었다. 도쿠가와는 무사인 사무라이를 우대하며 상업과 공업을 중시하는 군사정권의 세습 통치를 한다. 1603년부터 1867년 에도 시대가 스러질 때까지 조선과는 우호적 협력 관계를 유지하는 것으로 봐선, 일본 역사에는 한반도의 고대사가 제법 깊숙이 관여돼 있다. ●소바, 도쿠가와 시대 도쿄서 덴푸라와 함께 인기 젊은이들에겐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할 수 있던 일자리가 많았지만, 먹을거리는 오랜 전통의 교토나 융성하던 오사카에 비할 수 없었다. 이때 길거리에서 후다닥 배를 채우고 일하러 갈 수 있는 일종의 포장마차와 패스트푸드가 등장한다. 그 포장마차의 인기 메뉴가 바로 소바, 스시, 덴푸라인 것이다. 소바는 미리 만들어 둔 간장 육수만 있으면 메밀국수를 빨리 삶아서 후루룩 먹을 수 있다. 아울러 척박한 도쿄 근처에는 메밀밭이 흔했다. 덴푸라는 바다와 가까운 도쿄에서 쉽게 구할 수 있던 생선과 어패류 등을 밀가루와 계란으로 튀김옷을 만들어 기름에 튀긴 요리다. 덴푸라의 어원은 당시 일본에 등장한 포르투갈 상인들의 언어에서 유래했다고 하는데, 분명치 않다. 어쨌든 이 튀김을 소바의 육수에 찍어 먹으면 맛있다. 반면 옛 모습이 된 교토와 오사카에서는 그전엔 무시했던 도쿄의 소바, 덴푸라 등을 받아들였으나, 콧대가 센 만큼 그대로 따르지 않고 소바의 육수에 비린 맛의 고등어 포 대신 맛깔스런 다시마를 넣었고, 더 연한 간장을 썼다. 덴푸라도 생선 등을 그대로 튀기지 않고 생선살을 곱게 갈아서 채소를 함께 넣으며 고급스런 맛을 즐겼다. 우리가 아는 어묵의 원형이다. 결국 한반도에서는 농사꾼 등에게 그리 환영받지 못하던 메밀국수가 동해를 건너 일본 역사상 최고의 중흥기에 상공업 성장을 이끈 중요한 먹을거리로 각광을 받았던 셈이다.  <봉평의 메밀밭> 시인 이갑상  봉평에 가면  벌들이 어디선가 메밀꽃을 부르고  메밀꽃은 사람을 찾아오게 한다   메밀꽃이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소금 뿌린 듯이 눈부시게 포근하고  나비와 벌이 숨이 막힐 지경이다 김경운 전문기자 kkwoon@seoul.co.kr
  • 영웅을 만나는 길, 강감찬 10리길

    영웅을 만나는 길, 강감찬 10리길

    관악구가 낙성대, 서울대학교 등 관악구의 명소를 엮은 ‘강감찬 10리길 투어’를 운영한다. 관악구는 20일 고려시대의 명장 강감찬 장군의 이야기가 많이 남은 관악구의 특성을 살려 ‘강감찬 10리길 투어’를 개발했다고 밝혔다. 유종필 관악구청장은 “낙성대공원은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로 만들어진 곳으로 낙성대란 바위에 새겨진 글씨도 박 대통령이 직접 썼다”며 “고려 역사와 대학의 낭만과 문화를 함께 느낄 기회가 될 것”이라고 소개했다. 10만 대군의 거란에 맞서 귀주대첩을 승리로 이끈 강감찬 장군이 태어났을 때 하늘에서 큰 별이 한 집으로 떨어지는 것을 송나라 사신이 보게 된다. 강감찬 장군의 탄생 설화에서 낙성대란 이름이 생겼고, 옆에 있는 인헌동은 장군의 시호를 따른 이름이다. 1974년 박 대통령의 뜻에 따라 강감찬 장군을 기리고자 낙성대공원이 조성됐고, 1988년부터 장군의 정신을 기리는 인헌제가 매년 10월 열리고 있다. ‘강감찬 10리길 투어’는 모두 5개의 코스다. 1코스는 ‘강감찬 10리길’로 지하철 2호선 낙성대역에서 시작해 강감찬 장군 생가터, 장군의 사당인 안국사, 서울시 과학전시관, 서울영어마을 관악갬프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2코스는 ‘당신만을 위한 길’로 백설상상 어린이공원, 관악구민 운동장, 낙성대공원, 봉천로를 거쳐 낙성대역으로 돌아온다. 낙성대공원에는 금방이라도 말 박차를 차며 호령을 할 것처럼 역동적인 장군의 동상이 있다. 초등학생들은 사실적으로 묘사된 동상을 보며 “강감찬 장군은 정말 키가 작았나봐요?”라고 묻기도 한다. 3코스는 ‘도심 속 숲길’로 낙성대공원 둘레길과 전망대, 상봉약수터, 마애미륵좌불상 등을 볼 수 있다. 4코스는 낙성대 재래시장, 재즈골목, 낭만적인 벽화가 있는 행운동고백길을 둘러보는 ‘샤로수길’이다. 재치 넘치는 벽화가 있는 행운동고백길에는 여기서 고백하면 꼭 이루어진다는 이야기가 있다. ‘샤로수길’은 대학생들이 즐길 만한 카페와 술집이 있는 관악로14길을 서울대생들이 강남의 가로수길에 빗대어 부르는 별칭이다. 마지막 5코스는 ‘역사문화의 거리’로 관악구청 2층 갤러리관악, 서울대 미술관, 서울대 박물관, 서울대 규장각 등을 구경한다. 마을관광해설사들이 있어 투어에 참여하면 풍부한 설명을 들을 수 있다. 관악구청은 앞으로 다도 배우기, 널뛰기, 투호 등 전통놀이와 전통혼례 체험을 추가해 역사와 문화를 즐길 수 있는 ‘강감찬 10리길 투어’로 운영할 계획이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아… 한용운, 님이 다시 왔습니다

    아… 한용운, 님이 다시 왔습니다

    조국을 일제에 빼앗기고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라며 절절하게 울부짖었던 독립운동가이자 저항시인 만해 한용운. 그가 생을 마친 집인 서울 성북구 심우장에서 만해 한용운이 부활했다. 성북구는 13일 한용운이 직접 지은 고택인 심우장 마당의 야외무대에서 그의 생애를 그린 뮤지컬 ‘심우’를 제작해서 발표했다. 뮤지컬 ‘심우’는 성북구에 기반을 둔 극단인 ‘늚’에서 음악도 직접 제작한 순수 창작 뮤지컬로 성북구에서 활동하는 무명 배우들이 출연한다. 뮤지컬은 한용운이 심우장에서 지내던 생애 말년을 담았다. 독립운동가들이 일제의 총부리 앞에서 스러져도 아무도 돌아보지 않던 시절에 직접 그들의 시신을 수습했던 만해는 백년 후 손님인 후손들에게 조국의 미래를 당부한다. 심우(尋牛)는 불교에서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는 과정을 잃어버린 소를 찾는 것에 비유한 데서 유래했으며, ‘자기의 본성인 소를 찾는다’는 뜻이다. 심우장은 한용운이 일제총독부 청사가 보기 싫다며 볕이 잘 드는 남향 대신 동북향으로 집을 틀어 지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김영배 성북구청장은 뮤지컬 발표에 앞서 이순선 인제군수, 김석환 홍성군수와 함께 한용운의 발자취가 깃든 순례길을 마련하고 직접 그 길을 다녀왔다. 세 지방자치단체가 손잡고 만든 만해 순례길은 만해의 출생부터 출가·수행·독립운동·입적과 관련된 전국의 장소들을 1박 2일 동안 돌아볼 수 있도록 구성했다. 충남 홍성군의 생가, 한용운이 출가한 강원 인제군 백담사와 만해마을, 성북동 심우장 등을 만해 순례길을 통해 찾아볼 수 있다. 성북구는 구청 1층과 2층에서 오는 29일까지 만해의 독립선언문과 옥중 작품, 신문자료 등을 통해 그의 시와 삶을 이해할 수 있는 다양한 전시도 마련했다. 김영배 성북구청장은 “만해 한용운의 삶의 궤적이 남아 있는 성북구, 홍성군, 인제군이 함께 2000리의 긴 순례길을 시작했다”면서 “앞으로도 만해와 관련된 내용을 발굴하고 알리는 일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서동철 기자의 문화유산 이야기 3] 항일 ‘도해순국’의 현장 산수암

    [서동철 기자의 문화유산 이야기 3] 항일 ‘도해순국’의 현장 산수암

    영양유생 벽산 김도현 선생은 1910년 강제로 한일합병조약이 맺어졌다는 소식에 비분강개한다. 벽산은 병든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상례가 모두 마무리되기를 기다려 1914년 가을 영덕 영해읍 대진 앞바다에서 순국한다. 스스로 바다에 걸어들어가 자결하는 도해순국(蹈海殉國)을 택한 것이다. 동포들에게 충의로서 일제에 복수할 것을 강조하고 자신은 죽어서라도 기어이 일제를 멸망시키겠다는 내용의 글 ‘우리동포에게’(與國內同胞)를 남겼다. 죽어서도 왜적으로부터 나라를 지키겠다며 경주 감포 앞바다의 대왕암 수중릉에 묻혔다는 신라 문무왕의 염원과 닮은꼴이다. 벽산 선생은 실천적이고 전투적이었다는 점에서 의병사에 특별한 족적을 남겼다. 그는 1895년 명성황후 시해사건이 일어나자 이듬해 봉화 청량산에서 모병하여 8개월 동안 항쟁했다. 1906년에는 고종의 비밀명령을 받아 활동했으나 이듬해 2월 일본군에 체포되어 6개월 동안 대구감옥에서 옥고를 치렀다. 벽산은 그러나 무력항쟁에 그치지 않고 상소운동을 벌이거나 서양 각국 공사관에 만국공법론에 의거한 포고문을 보내 지원을 요청하는 외교적 노력을 기울이기도 했다. 벽산은 1852년 현재의 경상북도 영양군 청기면 상청리에서 태어났다. 지금도 마을에는 1580년 지어진 벽산의 생가와 1958년 세워진 유허비를 비롯해 그의 흔적이 여럿 남아있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마을 뒷산의 검산성(劍山城)이다. 일종의 의병기지로 벽산이 사재를 털어 쌓은 것이다. 길이 200m 남짓에 불과하고 높이도 2m가 채 되지 않는다. 하지만 뒷편으로는 깎아지른 절벽 아래로 하천이 흘러 자연해자의 역할을 톡톡히 한다. 간단치 않은 방어력을 발휘했을 것이다. 벽산이 순국한 영덕 대진 산수암(汕水巖)에는 1971년 도해단(蹈海壇)이 세워졌다. 지금도 해마다 선생의 생일인 음력 7월14일에는 기념행사가 열린다. 올해는 오는 27일이다. 산수암의 북쪽에는 대진해수욕장, 남쪽에는 대진항이 자리잡고 있다. 몇해전 찾은 ‘도해단 전례’에는 폭염경보가 내려진 뙤약볕 아래 참배객들이 선생의 우국정신을 기리는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그럴수록 벽산의 ‘도해순국’이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지지 않고 지역 행사에 그치고 있는 것은 아쉬운 일이다. 글·사진 서동철 수석논설위원 dcsuh@seoul.co.kr  
  • “셰익스피어, 대마초 피우며 작품썼다” (남아공 연구)

    “셰익스피어, 대마초 피우며 작품썼다” (남아공 연구)

    수많은 걸작을 남긴 영국의 대문호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창조력이 어쩌면 마약에서 나온 것일지도 모른다는 주장이 제기돼 문학계와 과학계의 관심을 동시에 받고 있다. 영국 미러 등 외신은 7일(현지시간) 남아공 비트바테르스란트 대학교 연구팀이 셰익스피어 생가의 앞마당에 묻혀 있던 담배 파이프를 분석, 대마초 성분을 확인하고 이 같은 가능성을 제기했다고 보도했다. 연구팀은 ‘기체 크로마토그래피 질량분석법’을 통해 영국 스트래퍼드 어폰 에이번(Stratford-upon-Avon) 지역의 셰익스피어 생가에서 발견된 도자기 파이프 4개에서 대마초 성분을 찾아냈다. 이웃집에서 발견된 파이프에서는 또 다른 마약류 식물인 ‘코카’(coca)를 태운 흔적도 발견됐다. 연구팀에 따르면 당시에는 지금과는 달리 대마초를 피우는 것이 범법행위가 아니었다. 셰익스피어가 살았던 엘리자베스 시대에 코카와 대마초는 담배의 일종으로 분류됐고 보편적 기호품이었다는 것이 연구팀의 설명. 당시 대마초는 이미 유럽에서 수세기동안 소비돼온 상황이었고 코카는 남미에서 들어와 새로운 유행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연구를 이끈 프랜시스 새커리 교수는 셰익스피어가 보다 강력한 마약인 코카 사용을 지양하고 대마초만을 즐겼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한다. 그는 셰익스피어의 작품에서 실제로 이를 암시하는 대목이 있다고 주장했다. 셰익스피어는 '76번 소네트'에서 유행에 맞는 ‘신선한 표현’(compounds strange)을 사용하지 못하고 마치 ‘구식 옷’(noted weed)을 입은 것 같은 시를 쓰는 자신을 책망하고 있다. 영단어 ‘compounds’는 화학적 혼합물, ‘weed’는 대마초를 의미하기도 한다. 새커리 교수는 이 표현이 새로운 마약 유행을 따르지 않은 채 대마초만을 즐겨 피우는 자신의 모습을 빗댄 일종의 언어유희에 해당한다고 주장한다. 새커리 교수는 “셰익스피어는 코카의 강력한 영향에 대해 알고 이를 기피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는 ‘남아공 과학 저널’(South African Journal of Science)에 소개됐다. 사진=데일리메일캡처(좌)/ⓒ포토리아 방승언 기자 earny@seoul.co.kr
  • 포항제철소 피어오르는 검은 구름 “사고 원인은 대체 무엇?”

    포항제철소 피어오르는 검은 구름 “사고 원인은 대체 무엇?”

    포항제철소 포항제철소 피어오르는 검은 구름 “사고 원인은 대체 무엇?” 29일 오전 11시 17분쯤 포항시 남구 포항제철소 내 파이넥스 1공장 외벽의 가스배관이 터졌다. 사고는 파이넥스 1공장에서 형산발전소까지 연결된 직경 2.2m의 부생가스(FOG) 배관에 구멍이 생겨 압력이 분출하면서 일어났다. 조업하지 않는 곳이어서 다행히 큰 피해는 없었으나 한동안 검은 연기가 치솟아 제철소 자체 소방차 등 10여대가 출동했다. 현장 인근에 있던 직원 1명이 폭발음에 귀가 멍멍한 상태에서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큰 부상은 아닌 것으로 알려졌다. 제철소 관계자는 “파이넥스 1공장에서 외부로 연결된 배관 가스를 빼내고 철거하고 있었는데 배관 일부 낡은 부분에 구멍이 생기면서 사고가 났다”고 말했다. 또 파이넥스 1공장과 관련 설비는 가동을 하지않아 사고가 조업과는 관련이 없다고 밝혔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자세한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포항제철소 가스배관 폭발 “사고, 조업과는 관계 없다”

    포항제철소 가스배관 폭발 “사고, 조업과는 관계 없다”

    포항제철소 포항제철소 가스배관 폭발 “사고, 조업과는 관계 없다” 29일 오전 11시 17분쯤 포항시 남구 포항제철소 내 파이넥스 1공장 외벽의 가스배관이 터졌다. 사고는 파이넥스 1공장에서 형산발전소까지 연결된 직경 2.2m의 부생가스(FOG) 배관에 구멍이 생겨 압력이 분출하면서 일어났다. 조업하지 않는 곳이어서 다행히 큰 피해는 없었으나 한동안 검은 연기가 치솟아 제철소 자체 소방차 등 10여대가 출동했다. 현장 인근에 있던 직원 1명이 폭발음에 귀가 멍멍한 상태에서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큰 부상은 아닌 것으로 알려졌다. 제철소 관계자는 “파이넥스 1공장에서 외부로 연결된 배관 가스를 빼내고 철거하고 있었는데 배관 일부 낡은 부분에 구멍이 생기면서 사고가 났다”고 말했다. 또 파이넥스 1공장과 관련 설비는 가동을 하지않아 사고가 조업과는 관련이 없다고 밝혔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자세한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포항제철소 피어오르는 검은 구름 “가스 배관에 구멍 생겨 분출”

    포항제철소 피어오르는 검은 구름 “가스 배관에 구멍 생겨 분출”

    포항제철소 포항제철소 피어오르는 검은 구름 “가스 배관에 구멍 생겨 분출” 29일 오전 11시 17분쯤 포항시 남구 포항제철소 내 파이넥스 1공장 외벽의 가스배관이 터졌다. 사고는 파이넥스 1공장에서 형산발전소까지 연결된 직경 2.2m의 부생가스(FOG) 배관에 구멍이 생겨 압력이 분출하면서 일어났다. 조업하지 않는 곳이어서 다행히 큰 피해는 없었으나 한동안 검은 연기가 치솟아 제철소 자체 소방차 등 10여대가 출동했다. 현장 인근에 있던 직원 1명이 폭발음에 귀가 멍멍한 상태에서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큰 부상은 아닌 것으로 알려졌다. 제철소 관계자는 “파이넥스 1공장에서 외부로 연결된 배관 가스를 빼내고 철거하고 있었는데 배관 일부 낡은 부분에 구멍이 생기면서 사고가 났다”고 말했다. 또 파이넥스 1공장과 관련 설비는 가동을 하지않아 사고가 조업과는 관련이 없다고 밝혔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자세한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포항제철소 가스배관 폭발 “특별한 부상자 없어” 사고 원인은?

    포항제철소 가스배관 폭발 “특별한 부상자 없어” 사고 원인은?

    포항제철소 포항제철소 가스배관 폭발 “특별한 부상자 없어” 사고 원인은? 29일 오전 11시 17분쯤 포항시 남구 포항제철소 내 파이넥스 1공장 외벽의 가스배관이 터졌다. 사고는 파이넥스 1공장에서 형산발전소까지 연결된 직경 2.2m의 부생가스(FOG) 배관에 구멍이 생겨 압력이 분출하면서 일어났다. 조업하지 않는 곳이어서 다행히 큰 피해는 없었으나 한동안 검은 연기가 치솟아 제철소 자체 소방차 등 10여대가 출동했다. 현장 인근에 있던 직원 1명이 폭발음에 귀가 멍멍한 상태에서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큰 부상은 아닌 것으로 알려졌다. 제철소 관계자는 “파이넥스 1공장에서 외부로 연결된 배관 가스를 빼내고 철거하고 있었는데 배관 일부 낡은 부분에 구멍이 생기면서 사고가 났다”고 말했다. 또 파이넥스 1공장과 관련 설비는 가동을 하지않아 사고가 조업과는 관련이 없다고 밝혔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자세한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이광식의 천문학+] ‘마녀사냥자’ 루터는 왜 코페르니쿠스를 욕했나?

    [이광식의 천문학+] ‘마녀사냥자’ 루터는 왜 코페르니쿠스를 욕했나?

    -천년 이상 지식인의 머리를 옥죈 성구 '한 문장' 천문학의 발전에 있어 최악의 장애물을 하나 꼽자면 다른 것도 아닌 다음의 한 문장일 것이다. “여호와께서 아모리 사람들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붙이시던 날에 여호수아가 여호와에게 고하되, 이스라엘 목전에서 가로되, 태양아 너는 기브온 위에 머무르라 달아 너도 아얄론 골짜기에 그리할지어다 하매, 태양이 머물고 달이 그치기를 백성이 그 대적에게 원수를 갚도록 하였느니라. 야살의 책에 기록되기를 태양이 중천에 머물러서 거의 종일토록 속히 내려가지 아니하였다 하지 않았느냐.” '구약 성서' 중 여호수아 10장 12~13절의 내용이다. 이 성구만큼 중세 지식인들의 정신을 옥죈 고문 도구도 없을 것이다. 이 한 문장이 1000년 이상 두고두고 문제가 되어 지식인들에게 엄청난 고통을 강요했다. 브루노가 로마 광장에서 화형을 당하고, 갈릴레오가 피렌체 자택에 종신연금을 당한 것도 이 한 문장 때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성서는 천국으로 가는 방법을 말해주는 것이지 하늘의 운행을 말해주는 것은 아니다'란 갈릴레오의 항변도 이 한 마디로 무력화되었다. 종교개혁가 마르틴 루터가 코페니르쿠스에게 '멍청이'라고 욕한 것도 이 한 문장에 기댄 것이었다. 그는 이렇게 반문했다. 만약 태양이 움직이지 않고 정지해 있는 것이라면 어떻게 여호수아가 태양에게 멈추라고 명령할 수 있겠는가. 결국 지동설은 성서에 대한 해석과 진리 문제로 귀결되는 것이다. 루터가 코페르니쿠스를 비난한 말을 옮기면 다음과 같다. “코페르니쿠스라는 어떤 신출내기 점성술사가 나타나, 이 하늘, 해, 달이 아니라 지구가 움직인다고 주장하는 것에 사람들이 귀를 기울인다고 한다. 이 멍청이는 이제까지의 모든 천문학을 뒤집어엎으려 하고 있다. 하지만 신성한 성경에서 이르기를, 여호수아는 지구가 아닌 태양에게 그대로 머물러 있으라고 말하였다.”​ 하긴 루터만 탓할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1,800년 전 아리스타르코스가 지동설을 발표했을 때도 독신죄에 몰렸었는데, 코페르니쿠스 시대야 더 말해 무엇하랴. 21세기에 사는 미국 인구 중 21%가 아직도 태양이 지구 둘레를 돈다고 믿으며, 7%는 모르거나 관심이 없다고 한다. 인간이란 원래 완고한 법이다. -루터와 천문학자 간의 악연 그러니 16세기 사람인 루터가 그렇게 말했다고 해서 하등 놀랄 일은 아니다. 하지만 루터가 천문학의 발전에 악영향을 끼쳤다는 사실만은 부정하기 힘들다. 더욱이 마녀사냥의 열렬히 지지자였던 루터는 평소 어느 누가 마녀 혐의가 나오더라도 무조건 태워죽여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이런 마녀몰이에 또 피해를 입은 사람이 16세기 천문학의 영웅 요하네스 케플러였다. 케플러의 어머니가 마녀라는 혐의를 받고 투옥당해 몇 년 동안 재판을 받았는데, 케플러는 어머니에게 씌워진 마녀 혐의를 벗기기 위해 재판정으로 관공서로 뛰어다니며 엄청난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부어야 했다. 천문학의 입장에서 볼 때 크나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 루터를 비롯한 중세인들의 머리에는 '신의 형상을 닮은' 인간은 고귀하며 당연히 우주의 중심에 거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인간 중심의 오만함이 도사리고 있었고, 따지고 보면 이런 오만함이 수많은 희생자들을 양산해내고 천문학의 발전을 가로막았다고 할 수 있다. 천문학의 역사는 어떤 면에서는 우주 속에서 인간이 차지하는 위치에 관한 역사이기도 하다. 기원전 3세기에 걸출한 천재인 아리스타르코스라는 사람이 나타나서 우주 속에서의 인간의 위치를 정확히 말하고 최초로 행성들의 배치를 정확하게 그려냈음에도 불구하고, 그후 1,800년 동안 인류 중 누구도 이 사실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여전히 지구는 우주의 중심에 있으며, 인간은 우주의 중심적인 존재로 군림해왔다. 서구인들은 인간만이 신의 은총을 받은 존재인 양 행세하며, 이단 박멸, 이교도 말살 같은 깃발을 올리고 십자군 전쟁도 여러 차례 일으켰다. ​-​'만물의 중심에는 태양이 있다' 이런 잘못된 우주관을 뒤엎은 사람이 바로 지동설을 들고 나온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였다. 그는 우주의 중심에 놓인 지구를 가차없어 끌어내리고 태양을 거기다 갖다놓았다. 그래서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라는 말이 나왔다. 그런데 어째서 대명천지에서 1,800년이나 지나서야 지동설이 다시 나온 걸까? 인류 지성이란 게 무색해지는 장면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 뒤에서 무소불위의 절대권력 교회가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다. 맹신은 사람을 저능화한다. 이 분야에서 집단 저능화 현상이 나타나 오랜 동안 지속되었다고 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 동안 내로라 하는 천재들이 왜 없었겠는가. 그러나 아무리 천재라 하더라도 시대의 대세를 거스르기란 쉽지 않은 법이다. 그런 면에서 지동설을 세상에 내민 코페르니쿠스는 진정 영웅이었다. 하지만, 무척 조심스런 영웅이었다. 그는 자신의 태양중심 우주론을 담은 첫 저서 ‘소론’을 완성하고도 바로 출판하지 않았다. 요즘 말로 하자면, 획기적 학설을 담은 베스트셀러를 쓰고도 세상에 내놓지 않았다는 뜻이다. 몇몇 필사본이 돌아다니는 정도였다고 한다. 코페르니쿠스는 사실 프로 천문학자가 아니었다. 대학에서 의학과 함께 잠시 천문학을 공부한 적은 있지만, 본업은 어디까지나 교회의 행정직원이자 의사였다. 그는 평소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 우주론에 커다란 불만을 갖고 있었다. 프톨레마이오스의 이론대로 정말 지구가 중심에 자리잡고 있다면 화성의 역행 같은 현상은 결코 일어나서는 안된다고 그는 생각했다. 또한 금성과 수성이 실제로 지구 둘레를 돈다면 가끔씩 태양으로부터 멀어질 때가 있어야 하는데, 그러한 현상이 전혀 관측되지 않았던 것이다. 코페르니쿠스는 오랜 탐구 끝에 마침내 수많은 원들을 필요로 하는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을 버리고 1,700년 전 아리스타르코스의 지동설로 되돌아갔다. 그가 이러한 결론에 이른 것은 아리스타르코스처럼 태양의 거대한 크기를 생각한 결과에서가 아니고, 태양을 중심으로 모든 행성들이 돈다고 생각하면 행성의 움직임을 예측하는 수학이 더욱 아름답고 간단해지며, 행성의 역행 운동도 아주 쉽게 설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원래의 원고에서 코페르니쿠스는 아리스타르코스를 언급했다가 무슨 이유에선지 나중에 선을 그어 지워버렸다). 어쨌든 신에게 특별히 은총받은 인간의 지구가 우주 중앙에 딱 버티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저 불덩어리 태양 둘레를 돌고 있는 행성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혁명적인 주장을 담은 코페르니쿠스의 책은 입소문을 타고 삽시에 번져나갔다. 지식인 사회에서는 큰 화제가 되고 열띤 토론거리가 되었지만, 그래도 코페르니쿠스는 그런 자리에 일절 나가지 않았다. 한마디로 몸조심한 거다. 이러한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에 대해 비판과 반발이 나온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 비판의 선두에 섰던 사람이 바로 마르틴 루터였다. 그는 직접 자기 눈으로 마귀를 보았다는둥, 툭하면 마귀 얘기를 꺼내곤 했는데, 귀머거리, 장님, 절름발이 등 장애인들은 그의 기준으로 볼 때 무조건 마귀에 씌인 사람들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마귀로 몰려 참혹한 죽음을 당한 것은 기독교의 대표적 흑역사에 속한다. 14세기 후반부터 18세기 중반에 걸쳐 50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마녀재판에서 마녀 혹은 마법사라는 죄목으로 처형되었다고 역사는 전한다. 어쨌든, 코페르니쿠스의 천동설을 담은 책이 정식으로 출판된 것은 그가 70살의 나이로 눈을 감기 바로 직전이었다. '소론'이 나온 후 30년이나 지난 뒤였다. 그만큼 코페르니쿠스는 교회와의 마찰을 극도로 두려워했다. 코페르니쿠스가 인쇄된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란 책을 받아본 것은 바로 임종 때였다. 뇌졸중으로 의식을 잃었는데, 책을 쥐어주자 잠깐 눈을 떴다가 영면했다고 한다. 향년 70세.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 1616년에 '배교적 저술'로 금서목록에 올랐다가 1999년에야 풀려난 그 책에는 다음과 같은 코페르니쿠스의 유명한 문장이 있다. “만물의 중심에는 태양이 있다. 전체를 동시에 밝혀주는 휘황찬란한 신전이 자리잡기에 그보다 더 좋은 자리가 또 어디 있단 말인가. 어떤 이는 그것을 빛이라 불렀고, 또 어떤 이는 영혼이라 불렀고, 다른 이는 세상의 길라잡이라 불렀으니, 그 얼마나 적절한 표현인가. 태양은 왕좌에서 자기 주위를 선회하는 별들의 무리를 굽어본다.” 코페르니쿠스는 각각의 천체들은 제각기 고유한 무게를 갖고 있으며, 이 무거운 천체들은 자체의 중심으로 향하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생각이 궁극적으로는 만유인력에 이르게 되지만, 당시의 코페르니쿠스는 이러한 문제에 답할 만한 ‘물리학’을 갖고 있지 못했다. 그 답은 뉴턴이 출현하기까지 200백 년 이상을 기다리지 않으면 안되었다. -천지불인(天地不仁), 인간은 우주의 중심이 아니다 근대과학은 코페르니쿠스가 우주의 중심에서 지구를 치워버린 해인 1543년에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후 인간은 어떤 의미에서도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는 사고가 하나의 원리로서 확립되었다. 이미 오래 전 노자(老子)가 한 말처럼 천지불인(天地不仁), 곧 자연은 인간에 연연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갈릴레오가 코페르니쿠스를 가리켜 지동설의 부활자로 일컬었듯이, 코페르니쿠스가 지동설의 최초 주창자는 아니다. 그러나 그의 지동설은 중세의 암흑시대를 벗어나 근대과학의 출발을 알리는 신호탄이 되었고, 인류 역사상 가장 중요한 전환을 가져왔던 것이다.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고, 인간은 그 위에 사는 존엄한 존재이며, 달 위의 천상계는 영원한 신의 영역이다. -이 같은 중세의 우주관을 폐기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던 코페르니쿠스. 괴테의 다음과 같은 말은 그에 대한 가장 감동적인 찬사일 것이다. “모든 발견과 견해 중에서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만큼 인간 정신에 큰 영향력을 끼친 것은 다시없을 것이다. 우주의 중심에 위치한다는 엄청난 특권의 포기를 요구받기 이전까지, 지구는 둥글고 그 자체로서 완결된 것이라는 사실이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인류에게 이보다 더 큰 변혁을 가져온 것은 결코 없었다. 왜냐하면, 이 사실을 인정함으로써 그토록 많은 것들이 연기처럼 허공 속으로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다." 나폴레옹이 정복군을 이끌고 폴란드 코페르니쿠스 생가를 방문했을 때 위대한 과학자를 기념하는 동상 하나 세워져 있지 않은 걸 보고는 깜짝 놀랐다고 한다. 동상은커녕 무덤조차 밝혀지지 않았다. 그런데 지난 2005년, 코페르니쿠스 유해가 사후 5세기 만에 발견되었다. 그가 재직한 폴란드의 프롬보르크 대성당 지하묘지에서 발견됐는데, 코페르니쿠스가 사용한 책에서 나온 두 올의 머리카락 DNA 검사를 통해 유해임이 확인되었다. 코페르니쿠스의 유해는 아무 묘비도 없이 무명으로 묻혔다가 사망한 지 5세기 만에 최고의 예우를 갖춰 ‘영웅’으로 재안장됐다. 대성당측은 코페르니쿠스의 사망 467주기 다음날 치르진 장례에서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에 대한 가톨릭 교회의 탄압에 대해서도 유감을 표시했다. 폴란드 국민들은 코페르니쿠스를 국민영웅으로 칭송하는 추모행사를 갖기도 했다. 새로 세워진 검은 화강암의 묘비에는 지동설을 표시하는 태양계의 도형을 새겨넣어 500년 전 그의 업적을 기렸다. 역시 조심스러운 영웅의 부활답다고나 할까. 이광식 통신원 joand999@naver.com
  • [광복 70년 기획-설치작가 전수천 철의 실크로드를 가다] (상)블라디보스토크~이르쿠츠크

    [광복 70년 기획-설치작가 전수천 철의 실크로드를 가다] (상)블라디보스토크~이르쿠츠크

    광복 70년, 분단 70년을 맞아 평화와 통일의 염원을 담은 ‘유라시아 친선특급 2015’가 지난 14일 시작됐다. 박근혜 대통령의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시범사업의 하나로 외교부와 코레일이 공동주최하는 이 행사는 중국 횡단열차(TCR)와 시베리아횡단열차(TSR)를 이용해 러시아, 중국, 몽골, 벨라루스, 폴란드, 독일 등 6개국 1만 4400㎞를 19박 20일간 달리는 대장정이다. 독립유공자 후손, 정치인, 문화예술인 등 각계 인사 300명과 함께 열차에 동승한 설치작가 전수천(68)씨가 ‘철의 실크로드’를 달리는 심경을 글과 그림, 사진에 담아 서울신문으로 보내왔다. 총 3회에 걸쳐 싣는다. 날개를 펼치면 세상을 더 넓게 바라볼 수 있다. 7년 전쯤이었을까. 해군 함정을 타고 독도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100여m나 되는 크기의 함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높게 밀려오는 파도에 가끔은 흔들려가면서 독도에 도착했다. 정상에 올라 팔을 벌린 채 실눈을 뜨고 주위를 바라보았던 감회를 가슴만으로는 헤아릴 수가 없었다. 그저 사방에 보이는 바다가 아름다워서였더라면 오죽이나 좋았겠는가? 우리 국민 대부분이 감성적으로 ‘독도는 우리 땅’이라고 외치며 마음에 담고 살고 있는 게 사실이다. 해양을 터전으로 삼고, 대륙을 앞마당으로 여기며 뛰놀았던 민족의 시원(始原)이 가슴 한편에서 꿈틀거렸고, 마음은 또 다른 경계를 향해 치달았다. 광복 70주년 기념의 일환으로 유라시아를 내달리기 시작한 특급열차는 지난 15일 연해주(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했다. 석양빛이 블라디보스토크의 숲과 평야를 물들이기 시작했다. 버스를 타고 달리는 도로 양편으로 펼쳐지는 차창 밖 풍경은 푸르다 못해 검은색에 가깝다. 검푸른 숲이 시야 속으로 끝없이 이어진다. 흔히들 시베리아 연해주를 동토의 땅이라고 말하지만 끝없이 펼쳐지는 풍요롭게만 보이는 여름의 대지가 눈 안으로 파고들었다. ●항일운동의 대부 최재형 선생 생가 등 방문 연해주 하면 우리는 무엇을 연상할까. 독립운동을 하며 말을 타고 달리던 독립운동의 선구자들을 연상하게 되는 게 당연할 것이다. 연해주는 겨울에 영하 30~40도까지 내려가는 추위가 몰려오는, 그야말로 동토의 땅이다. 그러나 실상은 다르다. 이곳은 봄, 여름, 가을에는 숲이 우거지고 목초지가 끝도 없이 펼쳐지는 기름진 땅이다. 나라를 찾겠다고 숨어 살며 싸우던 독립운동가들에게 망명지나 다름없는 타국이 과연 내 나라처럼 편한 가슴으로 품을 수 있는 나라였을 수는 없었을 터다. 우리는 그 시대적 배경을 그저 상상하는 감상의 차원에서 가볍게 한 페이지를 읽고 지나치며 그리는 스케치 같은 스토리텔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연해주에서 버스를 타고 우수리스크에 가서 항일운동의 대부였다는 최재형 선생의 생가를 방문했다. 옛날 한인의 고택으로는 놀랄만한 저택이었다. 그는 어려서 노비의 아들로 태어나 연해주에 이주한 한인의 아들이었다. 12살 나이에 러시아인의 양자로 들어가 공부를 하였고 러시아 정부가 인정하는 사업가로 돈을 벌었으며 그 돈으로 항일 운동을 하는 독립군에게 활동자금을 지원했지만, 우리에게는 많이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다. 더욱이 그는 독립운동가들에게 자금을 지원했다는 죄로 일본군에게 잡혀 처형된 인물이다. 특급열차를 탄 일행은 안중근 의사의 활동 안내 비문 앞에 도착했다. 그리고 이상설 선생의 유허비를 보며 위령제를 지냈다. 유허비를 바라보는 뚫려버린 것 같은 가슴 사이로 바람이 스쳐 지나가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이상설 선생의 유허비 앞에는 아무르강(흑룡강) 물이 흐른다. 죽으면 화장해서 흑룡강에 뿌려달라는 그의 유언 때문에 유골의 재를 흑룡강에 뿌리고 오랜 세월이 흐른 뒤 근래에 유허비를 세웠다고 한다. 우수리스크는 안창호 선생, 김규식 선생 등등 많은 분들이 나라를 찾기 위해 희생한 연해주 지역이다. 블라디보스토크 러시아 혁명광장에는 혁명용사들의 동상들이 있고 우수리스크에도 레닌의 웅장한 동상이 높이 서 있다. 동상들은 하나같이 동쪽을 바라보며 동쪽을 향해 손을 들어 가리키고 서 있다. 레닌의 동북 정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조형물들이란다. 블라디보스토크의 ‘블라디’는 정복이라는 뜻의 단어이고, ‘보스토크’는 동쪽이라는 뜻의 단어다. 동쪽을 정복한다는 의미로 레닌이 붙인 지명이다. 그는 결국 동쪽 끝 블라디보스토크를 정복했다. ●광복 70주년 기념 일환… 정부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시동 우리는 다시 열차를 타고 블라디보스토크를 출발하여 하바롭스크를 지나 이르쿠츠크를 향해 달리고 있다. 몇 시간을 달리다 보면 가끔 조그만 간이역에서 사람을 만날 수 있는 외에 거의 사람을 발견할 수가 없을 정도로 그저 허허벌판이다. 눈이 쌓여 있을 숲을 머릿속에 상상할 뿐이지만 며칠 전에 별세한 오마 샤리프가 주연했던 영화 ‘닥터 지바고’가 기억의 풍경으로 내 머릿속에 잠시 자리 잡는다. 한편으로는 푸시킨의 시를 떠올리게 하는 살아 있는 눈 덮인 자작나무 숲의 그림들이 상처처럼 흔적으로 다가온다. 끝없는 자작나무 숲이 철길을 따라 그림을 그린다. 문득 수년 전 그 독도가, 그 감회가 기억의 한 공간에서 슬며시 떠오른다. 막연하게 인지하고 있던 독도가 자작나무 숲 철길 위에서 현실로 다가오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넓이는 창의적 상상을 확장시켜주는 공간이다. 땅은 국력의 원천이다. 광복70주년 기념의 일환인 정부의 유라시아 친선특급 프로젝트는 유라시아 인접 국가들과 상호 간 이해증진의 실질적인 관계를 모색하는데 새로운 싹의 역할을 할 것이라는 예상을 갖게 했다. 시작에 불과하지만 횟수를 늘려 간다면 물류-교통 노선을 여는 일이 꿈만은 아닐 것이며 남북이 하나 되는 통일을 앞당길 수 있는 프로그램이라는 생각도 했다. 크든 작든 북한을 포함하는 유라시아 정책에 있어서 정부는 정부대로 상호 협력관계를 유지하면서 교류를 확대할 필요가 요구된다. 또한 개인을 포함한 민간적인 문화예술 활성화 사업도 적극적으로 뒷받침 되어야 할 것이다. 서울을 출발하여 5일째 자작나무 숲과 낮은 구릉 사이를 쉴 틈 없이 달려 하룻밤을 새고 나면 이르쿠츠크에 도착한다. 갑자기 한인들의 독립운동 발자취를 더듬어 보면서 미국의 사상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말한 ‘만일 내가 나 자신이 아니라면 과연 누가 나를 대신하여 내가 될 것인가?’라는 구절이 떠올랐다. 우리 스스로가 풀어야 할 국가적 프로그램을 우리가 아니면 누가 대신하여 줄 것인가! 멀리서 바이칼 호수가 희미하게 눈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한다. ■전수천 작가는 1947년 전북 정읍에서 태어나 일본 도쿄 와코대 예술학과와 미국 뉴욕 프랫 인스티튜트 석사를 마쳤고, 일본 도쿄 무사시노 미술대학에서 유화를 전공했다. 1995년 설치작품 ‘방황하는 혹성들 속의 토우-그 한국인의 정신’으로 베니스비엔날레 특별상을 수상했다. 2005년에는 미국 동부에서 서부까지 기차로 횡단하는 ‘움직이는 드로잉 프로젝트-뉴욕에서 로스앤젤레스까지’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2011년까지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로 재직했다.
  • [씨줄날줄] 대통령의 노래/최광숙 논설위원

    마오쩌둥 사망 이후 화궈펑과 권력 투쟁을 벌이던 덩샤오핑 중국 전 주석은 1979년 9월 중국 지도자로는 처음으로 미국 방문길에 올랐다. 그는 방미 기간 중 카우보이 모자를 눌러쓰고 로데오 경기를 관람했다. 공식석상에서 ‘로큰롤의 황제’ 엘비스 프레슬리의 ‘러브 미 텐더’를 열창하기도 했다. 공산주의 중국에 대해 거부감과 경계심을 갖고 있던 미국인들은 자신들의 우상 엘비스의 노래를 부르는 그를 보고 친근한 지도자로 생각을 바꿨다고 한다. 그로부터 27년 후인 2006년 6월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 역시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과 함께 엘비스의 생가가 있는 멤피스를 방문해 기타 치는 엘비스를 흉내 내며 서투른 영어 발음으로 ‘러브 미 텐더’ 등 엘비스의 노래를 불렀다. 엘비스의 열렬한 팬인 고이즈미는 이를 미국과 일본 두 나라의 밀월관계를 보여 주는 데 적극 활용했다. 노래 솜씨가 꽤 좋았던 노태우 전 대통령도 멕시코를 방문했을 때 애창곡 ‘베사메무초’를 불러 멕시코 국민들로부터 호평을 받은 적이 있다. 이렇듯 정치인들의 노래는 일반인들이 자유롭게 부르는 노래와 다르다. 노래를 부르는 장소와 선곡 등에는 보이지 않는 메시지가 숨겨져 있다. 외교 무대에서는 외교 행위가 되고, 정치 무대에서는 고도의 정치행위가 되는 것이 정치인들의 노래다. 최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선택한 노래는 찬송가다. 그는 지난 26일 백인 청년의 총기 난사로 희생된 클레멘타 핑크니 목사의 영결식에 참석해 갑자기 반주도 없이 찬송가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불러 잔잔한 감동을 줬다. 대통령의 예상치 못한 노래에 이내 6000여명의 참석자들은 모두 일어나 대통령과 함께 찬송가를 불렀다고 한다. 그 뒤 연설에 나선 오바마는 희생자 9명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며 “그들은 은총을 받았다”고 말했다. 백인에 대한 성토보다는 신의 은총을 얘기하며 이번 사건으로 상처받은 미국민들을 위로했다고 한다. “신의 은총은 그냥 얻어지는 게 아니다. 노력하는 사람들에게 주어진다. 인권 문제, 흑백 갈등을 하룻밤 사이에 개선할 수 없다”고 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오래 기억될, 사회 통합에 대한 역대 대통령 최고 수준의 메시지”라고 평가했다. 최근 박근혜 대통령은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를 향해 ‘배신의 정치’를 한다며 국민 심판까지 운운했다. 당에 ‘퇴출’을 명해 여권 내 친박·비박 간 갈등이 고조되는 분위기다. 공당의 원내대표를 온 나라가 떠들썩하도록 거칠게 공개적으로 질책하고, 이에 어린아이처럼 처절하게 반성문을 읊조리는 원내대표를 보면서 누가 옳고 그르고를 떠나 국민들의 마음은 편하지가 않다. 노래 한 구절로 상처받은 국민들을 하나로 묶어 준, 오바마의 통합 리더십이 더욱 돋보이는 이유다.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에너지 절약 특집] 포스코, ‘온실가스 줄이기 캠페인’ 임직원·가족 적극 참여

    [에너지 절약 특집] 포스코, ‘온실가스 줄이기 캠페인’ 임직원·가족 적극 참여

    포스코는 업종의 특성상 에너지를 많이 소비하는 기업이다. 그만큼 다각적인 방법으로 에너지 절감 활동에 나서고 있다. 2012년 아시아 철강업계 최초로 ISO 50001(에너지경영시스템 인증) 국제규격 인증을 받아 체계적인 에너지절감 활동을 벌이고 있다. 일례로 심야전력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도록 압연공정의 조업 일정을 조정했다. 덕분에 회사 비용 절감과 국가 전력사용 균형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 또 제2차 국가에너지 기본계획에 발맞추고자 공장과 건물 등에 1.5㎿급 전기저장장치(ESS)를 설치해 현재 시운전을 하고 있다. 포스코는 철강 공정에서 발생하는 부생가스를 대부분 회수해 자가발전 등에 재활용하고 있다. 제강 단계에서 나오는 찌꺼기인 슬래그를 재활용하거나 고부가가치 상품으로 가공하는 사업도 추진 중이다. 지난해 포스코가 개발한 제품 중 환경친화제품 비중은 49%에 달한다. 구성원의 참여도 적극적이다. 2011년 시작한 그린워크는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는데 포스코 임직원과 가족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대표적인 사내 환경캠페인으로 자리매김했다.
  • [스페인 가톨릭 영성 성지를 가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영적 근원 이냐시오 순례길

    [스페인 가톨릭 영성 성지를 가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영적 근원 이냐시오 순례길

    2013년 취임한 이후 ‘가난한 자를 위한 가난한 교회’를 모토로 가톨릭 개혁과 쇄신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프란치스코 교황. 사제들에게 ‘거리로 나가라’며 청빈과 관용의 실천을 솔선하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영성은 가톨릭 신자라면 다 아는 이냐시오(1491~1556) 성인에 뿌리를 두고 있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주관으로 열려온 스페인 성지순례의 마지막은 바로 청빈과 정결, 순명을 생명으로 삼는 예수회 창시자인 이냐시오 순례길이었다. 지난 10일 일행이 먼저 찾은 곳은 이냐시오 성인이 나고 자라 인생행로를 바꾼 스페인 북부 바스크 지방 로욜라의 생가. 화강암 석축 요새에 2층 벽돌건물을 다시 지어올린 건물이 단출하지만 묘한 기운을 뿜는다. 귀족집안 로욜라가의 막내아들로 태어난 이냐시오는 1521년 프랑스 페르난도 1세가 영토회복을 위해 일으킨 나바라 팜플로냐 전투에서 다리 관통상을 입고 이곳으로 돌아왔다. 명예를 무엇보다 중시하는 기사 정신에 철저했던 이냐시오에게 그 패배와 부상은 나락과도 같은 것이었을 것이다. ●이냐시오 성인의 생가 방문객 年 10만명 생가 4층은 그 절망과 무력감에 빠져 ‘무엇 때문에 사는가’라는 근원적인 의심에 빠졌던 이냐시오가 성인들의 전기를 읽고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삶을 찾은 ‘회심’(回心)의 소성당. 이른바 ‘예수회의 심장’으로 불리는 이냐시오 영성의 탄생지인 셈이다. 예수회원 55명과 민간 봉사자 60여명이 이 일대에 이냐시오의 정신을 계승해 살고 있으며 연간 방문객이 10만명에 달한다고 한다. 아기 예수를 안은 성모마리의 환시를 보고 회심한 이냐시오는 ‘톱날산’으로 불리는 해발 723m의 몬세라트 베네딕도 수도원으로 향해 ‘블랙마돈나’(검은 성모상) 앞에 기사의 상징인 칼을 내려놓고 수도자로 거듭났다. 하루 두 차례 열리는 소년합창단의 성가 공연과 유럽지역에 단둘뿐이라는 블랙마돈나를 보려는 신자들의 발길이 이어지는 성지. 수도원을 찾은 일행도 순례객들의 인산인해에 푹 잠겼다. ●만레사 동굴은 수도원서 15㎞ 거리 이냐시오가 회심의 순례를 떠난 16세기 중반 가톨릭 교회는 세속화와 부패에 봉기한 종교개혁으로 큰 위기에 봉착했다. ‘청빈을 어머니처럼 사랑하라’고 외친 이냐시오의 예수회는 소용돌이에 빠져 있던 가톨릭 입장에서 프로테스탄트 파도를 막는 방파제였다고 한다. 그리고 그 예수회의 큰 특징은 수도회의 복장과 격식마저 버리고 속세로 뛰어드는 융통성과 적응성으로 압축된다. 가톨릭 교회 안에서라면 교황의 명령에 언제든 달려나갈 준비가 되어 있다고 한다. 수도원의 한 사제는 ‘우리는 항상 한 발을 들고 산다’고 귀띔한다. 순례의 마지막 대미는 그 예수회의 영성을 낳은 만레사 동굴이었다. 몬세라트수도원에서 15㎞ 떨어진 바위산 동굴. 몬세라트 수도원에서 고해성사를 한 이냐시오는 이곳에서 누더기를 걸친 채 구걸하며 11개월간 묵상과 고행의 나날을 보낸 끝에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자살의 유혹까지 받을 만큼 자신과의 극한 싸움으로 일관한 매일 매일의 묵상 기록을 묶은 게 바로 수도자들의 필독서인 ‘영신 수련’이다. 멀리 몬세라트 수도원이 있는, ‘톱날산’이 바라보이는 동굴 경당을 들어서니 무릎을 꿇은 한 여인이 눈에 든다. 일행의 눈길과 움직임에 아랑곳하지 않고 요동 없이 기도를 올리는 여인. 그 여인은 지금 이곳에서 이냐시오와 만나 무슨 대화를 나누고 있을까. 글 사진 로욜라·몬세라트·만레사(스페인)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어쩌면 마지막 방문… 젊은 세대 우리 기억해 주길”

    “어쩌면 마지막 방문… 젊은 세대 우리 기억해 주길”

    1400만 관객을 기록한 영화 ‘국제시장’에도 등장했던 파독(派獨) 간호사들이 백발이 성성한 모습으로 고국 여행길에 나섰다. 7일 재유럽한인간호사협회에 따르면 독일을 비롯한 유럽 곳곳에 흩어져 살고 있는 파독 간호사 출신 26명이 이날부터 12일까지 5박 6일간 고국을 돌아본다. 이들은 서울을 출발해 경북 구미·포항을 거쳐 울릉도·독도를 둘러보고 강원 춘천·평창 등지를 돌아 서울로 돌아올 예정이다. 8일에는 구미에 있는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도 방문한다. 행선지는 이들이 ‘한국에서 가장 가고 싶은 곳’을 뽑은 결과에 따라 결정됐다. 파독 간호사들은 이제 대부분 일흔 살이 넘는 고령이 됐다. 하영순(71·여) 재유럽한인간호사협회 회장은 “부모님이 다 돌아가신 데다 친척들과도 오랜 기간 떨어져 살다 보니 서먹해진 경우가 많지만 다들 고국이 그리워서 왔다”며 “우리들 나이를 생각할 때 이번이 마지막 한국 방문이 될지도 모른다는 심정으로 왔다”고 밝혔다. 그는 “우리나라가 어려웠던 시절에 파독 광부와 간호사가 해외에서 일하며 이바지한 점이 있었다”면서 “젊은 세대가 우리를 조금이라도 기억해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재유럽한인간호사협회가 1년 넘게 준비한 이번 여행의 경비는 전액 참가자들이 부담했다. 1960~70년대 독일에 파견된 광산 노동자는 8000명, 간호사는 1만여명에 달한다. 현재 독일에 있는 파독 근로자는 3000여명이다. 최선을 기자 csunell@seoul.co.kr
  • 대전- 홍성 故이응노 화백 놓고 신경전 눈살

    대전- 홍성 故이응노 화백 놓고 신경전 눈살

    ‘세계적 미술가를 통해 지역을 알리고 싶은데 손발이 안 맞아서….’ 고암 이응노(1904~1989) 화백을 둘러싸고 대전시와 충남 홍성군이 상생보다 신경전을 앞세워 아쉬움을 주고 있다. 대전은 고암이 1967년 발생한 동베를린 간첩단 조작사건으로 옥고를 치른 대전교도소가 있고, 홍성은 고암이 태어난 곳이다. 대전에는 이응노미술관이, 홍성에는 이응노 생가와 기념관 등이 자리잡고 있다. 3일 두 자치단체에 따르면 지난달 9일 이응노 화백 기념 미술대회를 동시에 열었다. 홍성은 13회째이고, 대전은 첫 행사였다. 이를 두고 비판의 목소리가 쏟아지고 있으나 양측은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있다. 이지호 이응노미술관장은 “함께 뭔가를 하려면 필요한 쪽이 먼저 찾아와야 하는 것 아니냐”고 했고, 이응노기념관 윤후영 학예사는 “갑과 을의 관계를 강조해서는 협의가 곤란하다”고 반박해 평행선을 달리는 상태다. 고암을 둘러싼 두 지역의 갈등은 2012년 홍성군이 자체 제정한 ‘고암미술상’ 명칭을 상표출원한 뒤 대전 이응노미술관이 곧바로 ‘고암 이응노’라는 문구를 상표등록하면서 수면으로 떠올랐다. 이는 홍성군이 미술상 관련 조례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대전시와 미술관 관계자들이 찾아와 이의제기하자 홍성이 먼저 상표등록한 것이다. 이들의 승강이는 미술대회 개최로 이어졌고, 같은 날 동시에 행사를 치르는 볼썽사나운 형태로 번졌다. 이 화백의 작품도 분산돼 있다. 대전 이응노미술관은 이 화백의 두 번째 부인인 박인경(90)씨 등으로부터 기증받아 1200여점을, 홍성 이응노 생가와 기념관은 유품 400여점과 미술작품 470여점을 보유하고 있다. 대전은 지리적 이점과 도시 규모에서 대중화하는 데 유리하고, 홍성은 고암 관련 상징성에서 앞선다. 신재남 한국전업미술가협회 이사장은 “고인을 놓고 벌이는 지나친 경쟁은 보기 안 좋다. 상생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대전 이천열 기자 sky@seoul.co.kr
  • 개별 수영장 갖춘 ‘아랑훼스펜션’, 이른 폭염에 바캉스 여행 숙소로 호평

    개별 수영장 갖춘 ‘아랑훼스펜션’, 이른 폭염에 바캉스 여행 숙소로 호평

    봄이 지나고 때이른 폭염이 시작되면서 서울에서 1시간 거리의 충북 진천으로 바캉스 여행을 고려하는 가족단위 여행객들이 늘어나고 있다. 충북 진천은 서울에서 1시간정도면 도착할 수 있고, 김유신 장군의 고향이자 천년의 세월을 이겨낸 동양 최고의 돌다리 진천농다리 등 역사와 자연이 어우러진 고장이라 여름 여행지로 추천할 만한 곳이다. 보통 벚꽃 시즌과 단풍 시즌에 많이 찾지만, 최근에는 사람들이 몰리면서 사계절 여행지로 인식이 바뀌는 추세다. 진천은 맑고 깨끗한 물과 공기로 많은 여행지가 있는 곳이다. 진천군에는 초평저수지, 백곡저수지 등 경관이 좋은 저수지가 있고. 특히 초평 붕어마을은 매운탕으로도 유명한 곳이다. 또한 진천에는 수많은 문화재들이 있는데 대표적으로는 연곡리 석비, 진천 삼룡리, 진천 성당, 덕산 양조장, 진천 향교, 산수리 마래여죄상, 진천 종 박물관, 김유신장군 생가, 김유신장군 사당, 보탑사, 송강 정철의 사당 등이 진천을 대표하는 문화재로 자리 잡고 있다. 더운 땡볕 아래에서 하루 종일 움직이다 보면 시원하고 편안한 숙소가 간절해지기 마련이다. 진천에는 깨끗한 환경과 최신식 설비를 갖춘 숙박 시설이 많은데, 그 중에서도 ‘수영장펜션’ '스파펜션'으로 유명한 '아랑훼스펜션'은 고급스러운 외관과 각각의 개별 '독채펜션'으로써 프라이빗하게 휴가를 즐기고자 하는 가족단위와 커플방문객들에게 유명세를 떨치고 있다. 최근 풀빌라 객실 오픈으로 '풀빌라 펜션'으로도 불리우며 많은 여행객들이 방문하고 있는 '아랑훼스펜션'은 개별 실내 스파외에도 펜션 야외에 25m에 달하는 대형 수영장이 있어 뜨거운 여름 가족단위 여행객들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또한 '아랑훼스펜션'에서는 방문객 모두에게 카페에서 브런치 및 스타벅스 커피 제공, 폴라로이드 즉석 사진 촬영등 많은 격조있는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 ‘풀빌라펜션’ 아랑훼스펜션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홈페이지(http://www.aranghwese.com/)나 전화(043-536-3366~7)를 참고하면 된다.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전통이 살아 숨쉬는 6월 축제 ‘제26회 한산모시문화제’ 주목

    전통이 살아 숨쉬는 6월 축제 ‘제26회 한산모시문화제’ 주목

    여름이 시작되는 6월의 초입, 가족과 연인, 친구와 함께 소중한 추억을 만들고 싶다면 충남 서천으로 떠나자. 대한민국 최고의 6월의 축제, 행사로 손꼽히는 한산모시문화제가 열린다. 올해로 26년의 역사를 맞이하는 전통이 살아 숨쉬는 한산모시문화제는 6월 11일부터 14일까지 한산모시관 일대에서 개최된다. 한산모시문화제는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2년 연속 우수 문화관광축제로 선정된 검증받은 행사로, 매년 다양한 변화를 시도한다는 점에서 관광객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이번 제26회 한산모시문화제는 예년보다 더욱 풍성한 프로그램을 준비, 축제의 품격을 한 차원 높였다. 지역주민과 다양한 사회단체가 직접 참여하는 것은 물론, 문헌서원, 춘장대해수욕장, 남당이색체험마을, 국립생태원 등 서천을 대표하는 랜드마크에서 문화제와 연계된 행사도 다채롭게 준비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스토리텔링이 녹아있는 12개의 큰 마당은 그 어떤 축제에서도 만날 수 없는 특별한 프로그램으로 가득하다. 제1마당인 모시전시체험마당에서는 한산모시의 역사와 모시에 관한 올바른 정보를 공부하고 모시 제조과정을 직접 체험할 수 있다. 관광객은 모시로 만든 전통 혼례복을 입고 사진촬영을 할 수 있고, 격을 갖춘 전통 혼례의식 공연도 관람할 수 있다. 모시홍보체험마당에서는 모시 한지공예체험을 통해 머리핀과 브로치 등의 공예품을 만들 수 있고, 모시옷을 직접 입는 시간을 통해 모시옷의 우수성과 아름다움을 직접 체험할 수 있다. 제3마당인 모시문화마당에서는 전통 농경 문화 놀이인 저산팔읍 길쌈놀이와 들풍장, 풍물패 공연을 실시하고, 관람객과 함께하는 모시 진기록 게임 및 전통차를 마시며 예를 배우는 서천 다례체험이 진행된다. 제4마당인 모시전통체험마당에서는 모시 탄생의 설화를 마당극과 각종 재주를 통해 재연하는 백일간의 기도 마당극과 한산의 특산물인 소곡주를 무료로 시음할 수 있는 소곡주 카페가 운영된다. 대장간 체험, 떡메치기 체험, 모시 엿치기 체험도 즐길 수 있다. 모시체험마당에서는 모시 천연염색, 모시 음식체험, 모시 소망등 달기 등의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서천 특산물&향토음식마당에서는 김, 쌀, 장아찌 등의 특산물 및 향토음식 전시를 실시하며, 서천문화마당에서는 폐막식을 비롯해 전국규모의 가요제가 펼쳐진다. 또한 임벽당 김씨 생가지인 남당리 행복마을에서는 6월 13일부터 14일까지 제2회 임벽당 김씨 전국자수대회가 열린다. 이 대회는 서천군 출신의 조선시대 여성문인 임벽당 김씨를 기리는 전국 유일의 자수대회로, 김씨 생가지, 신성리 갈대밭 등 투어형 프로그램을 바탕으로 자수대회라는 딱딱함에서 탈피하여 자수도 즐기고 서천 관광도 함께하는 축제형식으로 운영돼 더욱 기대를 모은다. 해당 대회 참가 신청은 5월 18일부터 6월 5일까지며, 상세 정보는 한산모시문화제 홈페이지(www.hansanmosi.kr)를 통해 확인 가능하다. 이외에도 개막식 축하공연으로 한산모시 패션쇼와 걸그룹의 축하공연이 열리고, 문화제 곳곳에서는 어린이들을 위한 다양한 놀이기구가 설치된다. 또한 관광객에게 이색적인 잠자리를 제공하기 위해 모시캠핑장을 마련하고, 글로벌 축제의 일환으로 각종 민속 공예품을 전시하는 세계풍물시장도 진행할 예정이다. 한산모시문화제 관계자는 “충남 서천은 생태체험을 할 수 있는 숲과 습지를 간직한 곳으로 이번 한산모시문화제는 모시문화의 전통과 자연체험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축제로 거듭날 것”이라면서 “대한민국 우수축제의 명성을 이어가기 위해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이번 행사를 준비하겠다”고 전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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