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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트럼프 놀리려고 제작한 황금 변기, 처칠 생가에 전시 중 도난

    트럼프 놀리려고 제작한 황금 변기, 처칠 생가에 전시 중 도난

    18캐럿 순금으로 만든 변기를 누군가 훔쳐 달아났다. 영국 옥스퍼드셔주의 블레넘 궁전에서 전시 중이던 황금 변기 ‘아메리카’를 14일(이하 현지시간) 새벽 4시 40분 침입한 도둑이 뜯어 갔다고 BBC가 테임스 밸리 경찰의 발표를 인용해 보도했다. 전시만을 위해 만든 작품이 아니라 실제로 작동하는 이 변기는 예약한 방문객들은 공짜로 이용할 수 있었는데 한 사람당 3분 밖에 이용할 수 없었다. 이 고급 변기를 훔쳐간 명목으로 66세 남성이 체포됐지만 아직 변기를 찾지는 못했다. 이 변기는 건물에 배관이 연결돼 있었기 때문에 도둑이 뜯어가는 과정에 “상당한 피해와 물난리”가 뒤따랐다고 방송은 전했다. 지난 12일 막을 올린 이탈리아 설치예술가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전시회에 한 작품으로 참가하고 있었다. 블레넘 궁전은 18세기에 지어진 건물로 1987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됐으며 무엇보다 윈스턴 처칠 전 총리가 태어난 곳으로 유명하다. 수사가 진행 중이라 건물은 잠정 폐쇄됐다가 15일 다시 문을 연다.현재 11대 말버러 공작인 존 조지 반데빌트 스펜서 처칠 공작이 머무르고 있는데 그의 이복 형제인 에드워드 스펜서 처칠은 지난달 이 예술작품의 안전이 보장된 데 대해 위안을 느낀다며 “일 보기에 가장 편한 변기는 아닐 것”이라고 농을 하기도 했다. 경찰 관계자는 “범인 일당이 적어도 두 대의 자동차를 이용해 훔쳐갔다고 믿고 있다. 현재로선 그 작품을 찾지 못했지만 철저한 수사를 통해 책임있는 이들에게 정의를 안겨줄 것”이라고 말했다. 도미닉 하레 궁전 책임자는 “이 빼어난 이벤트가 엉망이 돼 슬프지만 아무도 다치지 않은 데 안심이 된다”면서 “존경하는 친구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훌륭한 작품이 이 바보 같은 행동에 의해서 망가지지 않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이 황금 변기는 2017년 미국 뉴욕의 구겐하임 미술관에 처음 전시됐는데 당시 반 고흐의 그림을 백악관 침실에 걸어두고 싶다고 했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놀리기 위해 카텔란이 제작했으며 ‘200 달러 짜리 점심을 먹든 햄버거를 먹든 결과는 마찬가지, 변기에 물을 내려야 한다는 것’이 작품의 메시지라고 설명했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만해의 발자취 따라 항일정신 되새긴 성북

    만해의 발자취 따라 항일정신 되새긴 성북

    서울 성북구는 3·1운동 100주년과 만해 한용운(1879~1944) 탄생 140주년을 맞아 지난달 29~30일 ‘2019 만해로드 대장정’을 개최했다고 5일 밝혔다. 만해로드 대장정은 만해 선사가 태어나고 불가에 귀의, 수행·입적한 유적지를 순례하는 것으로, ‘만해 한용운 선양사업 지방정부협의회’(협의회)가 주관한다. 협의회는 만해 선양사업 전국 확산을 위해 성북구 주도로 2016년 3월 설립됐다. 만해와 인연이 깊은 충남 홍성군(탄생), 강원 인제군·고성군(수행), 서울 서대문구(독립운동)·성북구(독립운동·입적)가 소속돼 있다. 성북구 심우장은 만해가 독립운동과 집필 활동을 하고, 입적한 곳이다. 지난달 29일 전국에서 모인 대학생들은 성북구 심우장에서 발대식을 하고, 중랑구 망우리공원을 찾아 만해 묘역을 참배했다. 경기 광주 만해기념관을 방문한 뒤 만해가 태어난 충남 홍성군으로 이동, 만해 생가 터와 만해문학체험관을 둘러봤다. 2일차인 30일엔 충남 천안 독립기념관을 찾은 뒤 상경, 심우장에서 해단식을 했다. 이승로 성북구청장, 김석환 홍성군수, 최상기 인제군수, 이경일 고성군수, 문석진 서대문구청장은 대장정 첫날 만해 생가 터에서 일본 경제 보복 조치를 규탄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협의회는 성명을 통해 “일본 정부의 수출규제와 화이트리스트(전략물자 수출 우대국) 제외는 공정 무역을 주장했던 일본의 모순된 행동”이라고 비판했다. 이 구청장은 “만해 선사 생가 터에서 성명서를 발표하는 만큼 각오가 남다르다”며 “앞으로도 친일 잔재 청산과 독립운동가 선양 등에 더욱 힘쓰겠다”고 말했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민주사랑방’ 故 홍남순 변호사 사택 원형 복원한다

    ‘민주사랑방’ 故 홍남순 변호사 사택 원형 복원한다

    민주항쟁 대책회의 장소로 이용됐던 곳 화순 생가터 복원과 연계 기념사업도‘민주·인권의 대부’로 통하는 고 홍남순 변호사의 광주 동구 궁동 주택에 대한 보존과 기념사업이 추진된다. 궁동 주택은 2017년 12월 5·18사적지 제29호로 지정됐다. 광주시는 29일 홍 변호사의 자택에 대한 보존 및 활용 계획을 마련하기 위한 연구용역을 발주했다고 밝혔다. 궁동 가옥은 1950년대 중반 홍 변호사가 광주지법 판사로 근무하면서 살았던 곳이다. 5·18민주화운동 때는 재야인사들이 모여 항쟁과 수습을 위한 대책회의를 하는 장소로 이용됐다. 박정희 정권 때도 독재정권 타도 투쟁을 주도한 곳이다. 그가 세상을 떠난 2006년 10월까지 전국의 민주인사와 시민·학생 등이 쉼터로 이용하면서 ‘민주 사랑방’으로 불렸다. 광주시는 10억원을 확보해 내년 4월 보존에 착공, 2022년 상반기 완료할 예정이다. 이번 용역을 통해 5·18 당시 수습대책위원회 활동과 이후 명예 회복 및 진실 규명을 위해 헌신한 홍 변호사를 재조명하고, 가옥의 보존·관리·공간 활용 계획 등을 마련한다. 홍 변호사가 실천한 민주·인권·평화 등 인류 보편적 가치를 계승하고 발전시키기 위한 기념사업과 각종 사료도 발굴한다. 시는 전남 화순군이 추진하는 도곡면 효산리 홍 변호사 생가터 복원사업과 연계하는 기념사업도 검토한다. 생가는 목조 초가 형태로 오는 10월 완공된다. 홍 변호사는 군사정권 시절 긴급조치법 위반 사건의 변론과 양심수들을 위한 무료 변론을 맡는 등 대표적인 인권 변호사로 꼽힌다. 5·18민주화운동 당시 시민 학살에 항의하며 ‘죽음의 행진’에 나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1년 7개월간 복역했다. 광주5·18구속자협의회 회장으로 활동하며 5·18 진상 규명과 명예 회복에도 앞장섰다. 광주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 “9년의 꿈 ‘용산시대’ 눈앞… 남산·한강 녹지축은 마지막 퍼즐”

    “9년의 꿈 ‘용산시대’ 눈앞… 남산·한강 녹지축은 마지막 퍼즐”

    사통팔달 입지를 자랑하는 서울의 중심인 용산구는 지난 수년간 서울 25개 자치구 가운데 부동산 가격이 많이 오른 것으로 유명하다. 용산 전체의 70%가 재건축·재개발 중으로 미군이 나간 자리에 도심 최대 크기의 용산공원이 들어서기로 한 데다 국제업무지구 개발을 시작하기 위한 물밑작업도 이어지면서 지역발전 기대가 크다. 4선인 성장현 용산구청장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스카이라인이 화려한 용산의 물리적 개발에 힘쓰면서도 지역의 역사·문화 정체성을 확립하는 작업도 병행하고 있다. 한 걸음만 걸어가면 역사현장이고 문화유적인 지역 역사를 제대로 보존해 역사가 흐르는 미래 도시로 힘차게 뻗어나간다는 지론이다. 2015년 유관순 열사 추모비를 세운 이태원부군당역사공원에서 28일 그를 만났다. -용산 부동산값이 많이 올랐는데. “용산은 한남뉴타운부터 용산공원, 국제업무지구에 이르기까지 전체 면적의 70%가량이 재건축·재개발 중이다. 기타 기반시설(SOC)도 새로 정비되고 있다. 서울역에서 영등포로 가는 국철 지하화 작업이 꼭 이뤄지도록 노력하고 있다. 국제업무단지 조성 이득금으로 원효대교에서 동작대교까지 강변북로를 모두 지하화하도록 하겠다. 이 같은 개발이 모두 이뤄지면 용산은 남산에서 걸어서 한강까지 오갈 수 있는 녹지축이 마련된다. 말 그대로 ‘세계의 중심, 이제는 용산시대’가 완성된다.” -미군이 옮겨간 자리에 용산공원이 들어서는데. “그동안 용산공원 조성 계획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용산구가 역할을 했다. 당장 제대로 조성되도록 국토교통부 대신 총리실이 컨트롤타워 역할을 해 달라고 건의해 관철했고, 미군 잔류시설인 호텔은 공원부지에서 외부로 나가도록 했다. 용산 수도여고 앞으로 옮기기로 했던 대사관직원숙소는 건설사 부영이 한강로에 짓는 아파트에 마련하기로 협의도 이끌어냈다. 나머지 부지 내 산재된 헬기방호부대 등 미군시설은 한곳으로 모아 정리하도록 계속 노력하고 있다.” -국제업무지구 개발은 땅주인 코레일이 소유권을 돌려받은 지 1년이 넘도록 사업이 재개되지 않고 있는데. “오리가 물위에 고요히 떠 있다고 발이 가만히 쉬고 있지 않다. 최근 김현미 국토부 장관을 만나 관련 문제에 대해 교감하는 등 사업이 시작되도록 협의하고 있다. 국제업무단지 내 우편집중국을 포함한 모든 건물을 없앴고 오염토양도 정화하고 있다. 맨 처음 계획과 달리 서부이촌동이 빠진 코레일부지만 단독으로 개발하는 것인 데다 관련 소송전도 모두 마무리된 만큼 급물살을 탈 수 있다.” -지역 역사박물관 조성 등 지역 역사 정체성 확립에 공을 들이는데. “용산은 근현대 역사 100년의 아픔을 오롯이 간직한 땅이다. 유적과 유물이 도처에 있다. 용산에서 우리 선조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남겨 후대에 전하려고 한다. 지난 5~6년 전부터 추진위를 구성해 사업을 진행 중이다. 코레일 소유 구 철도병원은 등록문화재여서 함부로 헐 수 없는 만큼 리모델링 후 기부채납받아 2021년 박물관을 연다. 대신 코레일은 국제업무단지 개발 시 병원 부지로 7000평을 받아 병원을 짓는다. 일제강점기 경성부(서울) 휘장이 있는 수로 덮개, 삼각지 파출소 개소식 기념 동상, 순종 국장 사진첩 등 8월 현재 896점의 유물을 모았다.”-지난 9년간 추진한 대표 역사사업은. “이곳 이태원부군당역사공원에 유관순 열사 추모비를 세운 게 가장 뿌듯하다. 1919년 만세운동을 주도한 유관순 열사가 이듬해 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국한 뒤 용산구 이태원동에 묻혔다는 기록은 있는데, 시신을 찾을 길이 없어 그의 묘지를 조망할 수 있는 이태원부군당역사공원에 추모비를 세웠다. 이 외에 일왕에게 폭탄을 던진 거사를 시도한 독립투사 이봉창 의사의 생가터가 효창4구역에 있다는 점에 착안해 60㎡ 내외의 이봉창 기념관도 내년 5월 준공을 목표로 짓고 있다. 앞서 2016년 효창공원에 방치된 독립운동가 7인의 묘를 관리해 제사를 모셔 왔고, 이와 관련해 효창공원 둘레길 조성사업을 위한 예산 확보 과정에서 서울시와 협의해 공원조성사업 계획도 도출해 냈다. 공원에는 독립운동가 7인의 묘역과 백범김구기념관, 독립운동기념관 등이 들어선다.” -용산이 역사박물관특구가 된다는데. “용산에는 박물관이 등록된 것만 11개, 등록되지 않은 것까지 합하면 20개도 넘게 있다는 점에 착안해 박물관특구 지정 절차를 밟고 있다. 연내 의향서를 제출해 내년 상반기 통과를 목표로 한다. 지역 내 문화유산도 재정비 중이다. 내년까지 근현대 역사문화명소 100곳을 선정해 안내판을 세우고 스토리텔링이 가미된 탐방 코스도 개발한다. 지역경제 활성화, 일자리 창출 등에 기여할 것이다.” -박항서 베트남 축구 감독에 앞서 베트남 정부에서 주는 민간 최고 우호 훈장을 받는 등 지자체 외교의 새 지평을 열었는데. “베트남 꾸이년은 자외선이 강해 시각장애인이 많다. 용산구가 백방으로 뛴 끝에 용산에 본사를 둔 아모레퍼시픽의 도움으로 순천향대학병원의 이성진 박사 등이 꾸이년 백내장 환자 4000여명을 수술했다. 48㏊ 땅을 50년간 무상으로 기증받았는데 812억원을 투입해 태양광 발전소를 건립해 주고 있다. 어학당도 건립해 연 300명씩 한국어 가능자를 배출하고 있다. 만나서 사진만 찍고 돌아오는 자매도시 결연과는 차원이 다르다.” -내년 총선 공천 때 현역 구청장에게 감점을 많이 줘 사실상 출마를 못 하게 하려는 당의 방침에 대한 견해는. “당원으로서 당의 방침에 따라야 한다. 다만 앞으로 그런 제한을 두지 말기를 바란다. 무엇보다 열심히 차려놓은 밥상에 갑자기 전략공천으로 오는 사람이 낙하산처럼 와서 숟가락을 얹으려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니다.” 진행 주현진 부장 jhj@seoul.co.kr정리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보수텃밭 사로잡은 민주당 출신 4선…구유지 환수 등 곳간 불리는 ‘살림꾼’ 보수색이 강한 서울 용산에서 소선거구제 도입 후 국회의원과 구청장 선거 때 민주당 출신으로 이긴 유일한 구청장이다. 근성과 배짱이 있다. 38세 늦깎이로 대학에 들어가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을 주제로 국내 1호 소파 박사 논문까지 썼다. 초선 구청장 시절 미군이 군사용으로 받은 땅을 한국인 대상 임대사업에 사용하는 게 부당하며 아리랑택시 부지(현 용산구청 터)를 소파 의제로 끌어올려 협상을 시작한 끝에 돌려받는 계기를 마련한 일화는 ‘당랑거철’에 비유됐다. 민선 5기 재임 때부터 재산권을 행사하지 못하던 구유지를 찾아내 구 재산으로 환수했고, 이 수입을 모아 제주도에 전국 처음 지자체 휴양지를 건립했다. 1955년 전남 순천에서 7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웅변으로 고교 장학금을 받을 만큼 언변 실력을 타고났다. 중학교 때인 1971년 당시 신민당 대통령 후보로 나온 김대중 전 대통령 후보 유세에 매료돼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정치인이 되기로 마음먹었다. 고교 졸업과 제대 뒤 빈손으로 상경해 막노동부터 시작해 안 해 본 일이 없다. 특기를 살려 보광동에 웅변학원을 열면서 용산과 인연을 맺었다. 1978년 민주당에 가입해 순천 지역 국회의원 선거를 도우면서 정치권에 첫발을 들였다. 꿈은 쉽게 이뤄지는 듯했다. 1991년 36세 때 용산 최연소 구의원으로 당선된 데 이어 최다 득표로 또다시 구의원을 역임했다. 1998년 43세에 민선 2기 최연소 구청장에 당선됐으나 선거 약 한 달 전 종교단체 모임에서 후원회장 자격으로 식사비 44만원을 결제한 게 문제 돼 취임 2년 만에 선거법 위반으로 낙마했다. 이후 국회의원 선거 두 번, 구청장 선거에서 한 번 고배를 마시며 10년간 야인생활을 하다가 2010년 6월 민선 5기 용산구청장으로 돌아온 뒤 3선 가도를 달리고 있다. 용산 첫 4선 구청장이다. 실패의 순간마다 세게 단련한다는 마음으로 견딘 게 오늘의 성취를 가져왔다며 “포기하지 마라”는 말을 많이 한다. ■ 성장현 용산구청장 ▲1955년 전남 순천 출생 ▲순천 매산고, 안양대 행정학과, 단국대 행정대학원(행정학 박사) ▲웅변학원(1979~1997) 운영 ▲전국웅변인협회 사무총장(1988) ▲제1~2대(1991~1998) 용산구의원 ▲민선 2기(1998) 용산구청장 ▲민주당 용산지역위원장(2005~2010) ▲서울시 구청장협의회 회장, 전국 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 회장 ▲민선 5·6·7기(2010~2019 현재) 용산구청장. 부인 김성희씨와 2남.
  • 브라질 아마존 열대우림 산불 진화에 군 병력 투입

    브라질 아마존 열대우림 산불 진화에 군 병력 투입

    무분별한 개발로 아마존 열대우림에서 몇 주째 산불이 계속되자 브라질 연방정부가 산불 진화를 위해 군 병력을 투입하기로 결정했다. 자이르 보우소나루 브라질 대통령은 25일(현지시간) 아마존 열대우림을 낀 북부와 북동부 7개 주에서 진행 중인 산불 진화 작업에 군 병력 동원을 승인하는 대통령령에 서명했다. 군 병력이 동원되는 지역은 호라이마·혼도니아·토칸칭스·파라·아크리·마투 그로수·아마조나스 주 등이다. 4만 4000여명의 군인이 산불 진화 작업에 참여한다고 브라질 국방부는 밝혔다. 브라질 경제부는 군 병력 동원과 산불 진화작업을 위해 3850만 헤알(약 115억원)의 긴급예산을 편성했다. ‘지구의 허파’로 불리는 아마존 열대우림은 브라질, 볼리비아, 콜롬비아, 에콰도르, 가이아나, 페루, 수리남, 베네수엘라 등 남미 8개국에 걸쳐 있다. 아마존 열대우림에는 지구 생물종의 3분의1이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마존 열대우림 관리를 맡는 브라질 환경·재생가능 천연자원 연구소(Ibama)는 올해 브라질에서 발생한 산불은 7만 2800여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83% 늘었지만 환경 훼손 행위에 대한 벌금은 지난해보다 29.4% 줄었다고 밝혔다. 상파울루를 비롯한 브라질 주요 도시에서는 아마존 열대우림 보호를 촉구하고 보우소나루 정부의 환경정책을 비난하는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환경 전문가들은 “정부가 환경 사범에 대한 단속을 축소하고 전문가들을 내모는 등 환경 훼손 행위를 방관한 결과”라면서 환경보호보다 개발을 우선하는 보우소나루 정부 정책의 부작용이 나타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죽산 선생, 독립운동가로 인정받아야 완전히 명예회복”

    “죽산 선생, 독립운동가로 인정받아야 완전히 명예회복”

    “할아버지가 독립유공자로 인정돼야만 완전한 명예회복이 이뤄졌다고 할 수 있어요. 할아버지는 독립운동가이자 정치인이셨어요. 아직 그동안 해 오신 것의 반도 인정을 못 받았습니다.” 죽산 조봉암(1898~1959) 선생은 해방 후 국회의원을 지내며 진보당을 창당했다. 이승만 대통령과 정치적 라이벌이었던 죽산 선생은 1958년 ‘진보당 사건’으로 체포돼 간첩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기소됐다. 1959년 2월 27일 대법원에서 사형이 확정된 뒤 5개월이 지난 7월 31일 사형이 집행됐다. ‘사법 살인’으로 기록된 사건이 발생한 지 52년이 지난 2011년에야 재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죽산 선생의 장녀 조호정(91) 여사의 노력 덕택이었다. 지난 9일 조 여사의 외동딸 이성란(59)씨를 만났다. 조 여사는 노환으로 거동이 불편한 상태다. 이씨는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이 났을 때 어머니께서 ‘이제야 죽어서 아버지를 뵐 낯이 있다´고 하시면서 크게 기뻐하셨다”며 “어머니의 마지막 소망은 할아버지의 완전한 명예회복”이라고 말했다. ●광복 후 조선공산당 탈당… 건국 참여 -완전한 명예회복은 무엇을 의미하나요.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이 난 건 간첩죄에 대한 명예회복이에요. 정치인으로서 명예회복은 이뤄진 겁니다. 그런데 할아버지는 원래 독립운동가였어요. 3·1운동 때 독립선언서를 배포하다가 옥고를 치렀고 1932년부터 신의주 감옥에서 7년을 보냈으며 1945년 광복하던 날을 서대문형무소에서 맞으셨어요. 그런데 국가보훈처에서는 독립유공자 서훈 신청을 반려했어요. 독립운동을 인정받아야 ‘죽산’이라는 이름이 완성된다고 생각해요.”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박시환)는 2011년 1월 20일 조봉암 재심 사건에서 대법관 13명 전원 일치 의견으로 무죄를 선고했다. 대법원 재판부는 “피고인은 일제강점기하에서 독립운동가로서 조국의 독립을 위하여 투쟁하였고 광복 이후 조선공산당을 탈당하고 대한민국 건국에 참여하고 초대 농림부 장관으로 재직하면서 농지 개혁의 기틀을 마련해 우리나라 경제 체제의 기반을 다진 정치인이었다. 이 사건 재심에서 피고인에 대한 공소사실 대부분이 무죄로 밝혀졌으므로 이제 뒤늦게나마 재심 판결로써 그 잘못을 바로잡는다”는 내용을 판결문에 명시했다. ●빨갱이로 헐뜯는 것 볼까 봐 기사 댓글 못 읽어 -독립유공자 서훈 신청은 왜 반려된 건가요. “무죄 판결을 받은 2011년 그리고 2015년 두 차례 보훈처에 독립유공자 서훈을 신청했는데 모두 거절당했어요. 이번 정부가 들어서고 나서 지난해 7월 보훈처에서 연락이 왔어요. 자기들이 서류를 검토했는데 안 되겠다는 거죠. 기분이 안 좋았어요. 저희가 신청도 안 했는데 보훈처에서 검토하고, 또 안 된다니요. ‘이제는 그만 신청하라’는 의미로 이해했어요. 그래서 더이상 서훈을 신청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할아버지에게 누를 끼치는 일 같아서요.” “저희 가족은 아직도 할아버지 기사에 달린 댓글을 못 봐요. 여전히 무섭거든요. 나중에 언젠가 독립유공자 서훈을 받는다면 ‘빨갱이가 무슨 독립유공자냐’고 헐뜯는 사람들이 나타날까 봐 두렵습니다. 공산주의적인 독립운동을 했다는 이유죠. 이런 이야기를 더이상 하고 싶지가 않아요. 아직도 간첩이라고 떠드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한스럽지요.” ●‘진보당 사건’ 압수수색으로 자료 사라져 보훈처는 ‘친일 흔적’이 있다며 죽산의 독립유공자 서훈을 반려했다. 1941년 신문 기사에 죽산이 휼병금(장병 위로금)을 냈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는 이유에서다. “진보당 사건으로 구속되기 전 가택 압수수색으로 할아버지가 가지고 있던 많은 자료가 다 사라졌어요. 보훈처에서는 입증할 자료를 더 찾아서 가져오라고 하는데, 일반인이 접근하는 데는 한계가 있잖아요.” 이씨를 만난 지난 9일 국회 의원회관 세미나실에서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후원으로 ‘청년 조봉암’ 발대식이 열렸다. 이씨는 광복회, 죽산조봉암선생기념사업회 등이 주관한 이 행사에 참석했다. ‘청년 조봉암’은 죽산의 고향인 인천 지역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그를 기념하고 발자취를 좇기 위해 만들어졌다. -진보당 사건은 대표적인 ‘사법 살인’으로 불리는데 어떻게 생각하나요. “1심에서 간첩죄는 무죄, 국가보안법만 유죄로 징역 5년이 나왔는데 2심에서 간첩죄가 인정돼 사형이 선고됐어요. 대법원에서 판결이 확정되고 재심을 청구했는데, 기각되자마자 바로 다음날 사형을 집행했죠. 이게 사법 살인이 아니면 뭘까요. 다른 말로 대체할 수가 없죠. 할아버지 싹수를 자른 거예요. 여운형, 김구 선생을 살해하듯 정적을 제거한 거죠.” -기념사업회에서는 주로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요. “기념사업회에서는 죽산 선생의 정신과 사상을 계승하고 선양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어요. 학술 활동과 토론,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고요. ‘청년 조봉암’도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청년들이 죽산 선생의 생각과 이념을 공유하고 생각해 보는 거죠. 내년에는 생가터 복원과 기념관 건립을 본격적으로 추진하려고 해요.” 재심 무죄 판결을 받던 날 조 여사는 “아버지 비석에 비문을 새길 수 있게 돼 기쁘다”고 언론에 소감을 말했다. 그러나 서울 중랑구 망우리공원에 있는 죽산 묘지의 비석 뒷면은 아직도 비어 있다. ●60주기에 죽산정신 계승 청년들 참석 뜻깊어 “백비는 보존해야 될 역사적 가치가 있어 보존하려고 해요. 할아버지가 독립유공자 서훈을 받아 완전한 명예회복이 되면 비를 새로 세우려고 합니다. 지난달 31일 60주기 추모식이 열렸는데 호우 경보가 떴을 정도로 폭우가 쏟아졌어요. 그 빗속에서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오신 분들은 물론 죽산의 정신을 이으려는 청년들까지 참석해 정말 고맙고 뜻깊었어요.”-어머니 조 여사의 건강은 어떤가요. “지병은 없지만 거동이 불편하셔서 몇 년째 추모식에도 참석을 못 하세요. 어머니는 너무 고초를 겪으셔서 이제는 무슨 이야기를 해도 태연자약하시지요. 재심 무죄 판결이 나던 날도 저는 얼굴도 본 적 없는 할아버지 생각에 법정에서 부들부들 떨면서 울었는데, 어머니는 편안하게 웃으시더라고요. 그런데 사실은 그날 아침에 어머니가 눈을 떴는데 할아버지가 사형 선고받던 날이 생각나서 너무 힘드셨다고 해요. 50년이 지나도 잊히지가 않는 거죠. 아직도 서대문형무소 인근을 가면 어머니가 몸서리를 치세요. 텔레비전에서 감옥, 수의가 나오면 숨을 못 쉬고요. 옥바라지하던 시절이 생각나서요.” 고 노회찬 의원은 죽산 선생을 ‘한국 정치사 최초의 좌파 정치인’이라고 명명했다. 추모식에도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 -할아버지는 어떤 분이셨나요. 어머니께서 하신 말씀이 궁금합니다. “사회활동을 하실 때는 냉철하고 빈틈을 보이지 않으셨다고 해요. 반면 집에서는 너그러우시고 유머가 넘치셨다고 합니다. 식구들이 식사하고 있으면 와서 보시고는 ‘왜 내 상에 있던 반찬이 없냐. 내 상에만 특별한 반찬을 놓지 말고 다른 식구들도 똑같이 놓고 먹어라’고 하셨다네요.” -죽산 선생께서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길 바라십니까. “할아버지의 마지막 옥중 유언으로 대신할게요.” “우리의 정치적 이상은 책임 정치, 수탈 없는 경제 민주화, 그리고 평화 통일이었지. 우리는 벽에 막혀 하지 못했지만 먼 훗날 우리가 알지 못하는 후배들이 해 나갈 것이네. 그러면 결국 어느 땐가 평화 통일의 날이 올 것이고 국민이 고루 잘사는 날이 올 것이네. 씨를 뿌린 자가 거둔다고 생각하면 안 되지, 나는 씨만 뿌리고 가네.” 이민영 기자 min@seoul.co.kr
  • “죽산 선생, 독립운동가로 인정받아야 완전히 명예회복”

    “죽산 선생, 독립운동가로 인정받아야 완전히 명예회복”

     “할아버지가 독립유공자로 인정돼야만 완전한 명예회복이 이뤄졌다고 할 수 있어요. 할아버지는 독립운동가이자 정치인이셨어요. 아직 그동안 해 오신 것의 반도 인정을 못 받았습니다.”  죽산 조봉암(1898~1959) 선생은 해방 후 국회의원을 지내며 진보당을 창당했다. 이승만 대통령과 정치적 라이벌이었던 죽산 선생은 1958년 ‘진보당 사건’으로 체포돼 간첩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기소됐다. 1959년 2월 27일 대법원에서 사형이 확정된 뒤 5개월이 지난 7월 31일 사형이 집행됐다. ‘사법 살인’으로 기록된 사건이 발생한 지 52년이 지난 2011년에야 재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죽산 선생의 장녀 조호정(91) 여사의 노력 덕택이었다. 지난 9일 조 여사의 외동딸 이성란(59)씨를 만났다. 조 여사는 노환으로 거동이 불편한 상태다. 이씨는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이 났을 때 어머니께서 ‘이제야 죽어서 아버지를 뵐 낯이 있다‘고 하시면서 크게 기뻐하셨다”며 “어머니의 마지막 소망은 할아버지의 완전한 명예회복”이라고 말했다.-완전한 명예회복은 무엇을 의미하나요.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이 난 건 간첩죄에 대한 명예회복이에요. 정치인으로서 명예회복은 이뤄진 겁니다. 그런데 할아버지는 원래 독립운동가였어요. 3·1운동 때 독립선언서를 배포하다가 옥고를 치렀고 1932년부터 신의주 감옥에서 7년을 보냈으며 1945년 광복하던 날을 서대문형무소에서 맞으셨어요. 그런데 국가보훈처에서는 독립유공자 서훈 신청을 반려했어요. 독립운동을 인정받아야 ‘죽산’이라는 이름이 완성된다고 생각해요.”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박시환)는 2011년 1월 20일 조봉암 재심 사건에서 대법관 13명 전원 일치 의견으로 무죄를 선고했다. 대법원 재판부는 “피고인은 일제강점기하에서 독립운동가로서 조국의 독립을 위하여 투쟁하였고 광복 이후 조선공산당을 탈당하고 대한민국 건국에 참여하고 초대 농림부 장관으로 재직하면서 농지 개혁의 기틀을 마련해 우리나라 경제 체제의 기반을 다진 정치인이었다. 이 사건 재심에서 피고인에 대한 공소사실 대부분이 무죄로 밝혀졌으므로 이제 뒤늦게나마 재심 판결로써 그 잘못을 바로잡는다”는 내용을 판결문에 명시했다. -독립유공자 서훈 신청은 왜 반려된 건가요.  “무죄 판결을 받은 2011년 그리고 2015년 두 차례 보훈처에 독립유공자 서훈을 신청했는데 모두 거절당했어요. 이번 정부가 들어서고 나서 지난해 7월 보훈처에서 연락이 왔어요. 자기들이 서류를 검토했는데 안 되겠다는 거죠. 기분이 안 좋았어요. 저희가 신청도 안 했는데 보훈처에서 검토하고, 또 안 된다니요. ‘이제는 그만 신청하라’는 의미로 이해했어요. 그래서 더이상 서훈을 신청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할아버지에게 누를 끼치는 일 같아서요.”  “저희 가족은 아직도 할아버지 기사에 달린 댓글을 못 봐요. 여전히 무섭거든요. 나중에 언젠가 독립유공자 서훈을 받는다면 ‘빨갱이가 무슨 독립유공자냐’고 헐뜯는 사람들이 나타날까 봐 두렵습니다. 공산주의적인 독립운동을 했다는 이유죠. 이런 이야기를 더이상 하고 싶지가 않아요. 아직도 간첩이라고 떠드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한스럽지요.”  보훈처는 ‘친일 흔적’이 있다며 죽산의 독립유공자 서훈을 반려했다. 1941년 신문 기사에 죽산이 휼병금(장병 위로금)을 냈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는 이유에서다.  “진보당 사건으로 구속되기 전 가택 압수수색으로 할아버지가 가지고 있던 많은 자료가 다 사라졌어요. 보훈처에서는 입증할 자료를 더 찾아서 가져오라고 하는데, 일반인이 접근하는 데는 한계가 있잖아요.”  이씨를 만난 지난 9일 국회 의원회관 세미나실에서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후원으로 ‘청년 조봉암’ 발대식이 열렸다. 이씨는 광복회, 죽산조봉암선생기념사업회 등이 주관한 이 행사에 참석했다. ‘청년 조봉암’은 죽산의 고향인 인천 지역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그를 기념하고 발자취를 좇기 위해 만들어졌다. -진보당 사건은 대표적인 ‘사법 살인’으로 불리는데 어떻게 생각하나요.  “1심에서 간첩죄는 무죄, 국가보안법만 유죄로 징역 5년이 나왔는데 2심에서 간첩죄가 인정돼 사형이 선고됐어요. 대법원에서 판결이 확정되고 재심을 청구했는데, 기각되자마자 바로 다음날 사형을 집행했죠. 이게 사법 살인이 아니면 뭘까요. 다른 말로 대체할 수가 없죠. 할아버지 싹수를 자른 거예요. 여운형, 김구 선생을 살해하듯 정적을 제거한 거죠.” -기념사업회에서는 주로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요.  “기념사업회에서는 죽산 선생의 정신과 사상을 계승하고 선양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어요. 학술 활동과 토론,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고요. ‘청년 조봉암’도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청년들이 죽산 선생의 생각과 이념을 공유하고 생각해 보는 거죠. 내년에는 생가터 복원과 기념관 건립을 본격적으로 추진하려고 해요.”  재심 무죄 판결을 받던 날 조 여사는 “아버지 비석에 비문을 새길 수 있게 돼 기쁘다”고 언론에 소감을 말했다. 그러나 서울 중랑구 망우리공원에 있는 죽산 묘지의 비석 뒷면은 아직도 비어 있다.  “백비는 보존해야 될 역사적 가치가 있어 보존하려고 해요. 할아버지가 독립유공자 서훈을 받아 완전한 명예회복이 되면 비를 새로 세우려고 합니다. 지난달 31일 60주기 추모식이 열렸는데 호우 경보가 떴을 정도로 폭우가 쏟아졌어요. 그 빗속에서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오신 분들은 물론 죽산의 정신을 이으려는 청년들까지 참석해 정말 고맙고 뜻깊었어요.” -어머니 조 여사의 건강은 어떤가요.  “지병은 없지만 거동이 불편하셔서 몇 년째 추모식에도 참석을 못 하세요. 어머니는 너무 고초를 겪으셔서 이제는 무슨 이야기를 해도 태연자약하시지요. 재심 무죄 판결이 나던 날도 저는 얼굴도 본 적 없는 할아버지 생각에 법정에서 부들부들 떨면서 울었는데, 어머니는 편안하게 웃으시더라고요. 그런데 사실은 그날 아침에 어머니가 눈을 떴는데 할아버지가 사형 선고받던 날이 생각나서 너무 힘드셨다고 해요. 50년이 지나도 잊히지가 않는 거죠. 아직도 서대문형무소 인근을 가면 어머니가 몸서리를 치세요. 텔레비전에서 감옥, 수의가 나오면 숨을 못 쉬고요. 옥바라지하던 시절이 생각나서요.”  고 노회찬 의원은 죽산 선생을 ‘한국 정치사 최초의 좌파 정치인’이라고 명명했다. 추모식에도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 -할아버지는 어떤 분이셨나요. 어머니께서 하신 말씀이 궁금합니다.  “사회활동을 하실 때는 냉철하고 빈틈을 보이지 않으셨다고 해요. 반면 집에서는 너그러우시고 유머가 넘치셨다고 합니다. 식구들이 식사하고 있으면 와서 보시고는 ‘왜 내 상에 있던 반찬이 없냐. 내 상에만 특별한 반찬을 놓지 말고 다른 식구들도 똑같이 놓고 먹어라’고 하셨다네요.” -죽산 선생께서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길 바라십니까.  “할아버지의 마지막 옥중 유언으로 대신할게요.”  “우리의 정치적 이상은 책임 정치, 수탈 없는 경제 민주화, 그리고 평화 통일이었지. 우리는 벽에 막혀 하지 못했지만 먼 훗날 우리가 알지 못하는 후배들이 해 나갈 것이네. 그러면 결국 어느 땐가 평화 통일의 날이 올 것이고 국민이 고루 잘사는 날이 올 것이네. 씨를 뿌린 자가 거둔다고 생각하면 안 되지, 나는 씨만 뿌리고 가네.” 이민영 기자 min@seoul.co.kr
  • 여행지 같은 공간… 어서 와, 이런 휴게소는 처음이지

    여행지 같은 공간… 어서 와, 이런 휴게소는 처음이지

    한가위 연휴가 겹친 9월은 초가을 나들이를 떠나기에 더없이 좋은 달이다. 한국관광공사가 전국의 특색 있는 휴게소 6곳을 9월의 ‘추천 가볼 만한 곳’으로 선정했다. 휴게소 자체가 여행 목적지가 되는 ‘여행이 가능한 휴게소’들이다. 한가위 때 고향 오가는 길에 잠시 들러도 좋겠다.●경기 이천 덕평자연휴게소 영동고속도로 덕평자연휴게소는 덕평소고기국밥으로 이름난 곳이다. 2016년 한 해 동안 60만 그릇 가까이 팔려 전국 고속도로 휴게소 판매 신기록을 세웠다. 유명 음식점 수준의 푸드 코트와 쇼핑몰을 갖췄고, 아름다운 정원①에서 산책도 할 수 있다. 아이들과 ‘터널 갤럭시 101’②에서 야경을 감상하는 것도 환상적인 경험이다. 개를 좋아하는 이들을 위해 반려견 전용 풀장도 만들었다. 인근의 이천도자예술마을 예스파크(藝’s Park)는 도자기 장인들이 작품 활동을 하면서 대중과 소통하는 문화 공간이다. 한자리에서 다양한 도자기를 보고 싶다면 이천세라피아가 적당하다. 아이들과 함께라면 이천 출신 외교관 서희의 이야기를 형상화한 서희테마파크, 우리나라에서 처음 문을 연 한국동요박물관을 둘러봐도 좋다.●강원 인제 내린천휴게소 서울양양고속도로에 있는 내린천휴게소는 ‘V자’ 모양의 독특한 상공(上空)형 휴게소다. 내부 인테리어③와 외부 디자인④도 독특하다. 휴게소 안에서는 유리창으로 강원도의 그윽한 산세를 감상하고, 옥상 전망대에서는 깨끗한 공기를 온몸으로 누린다. 휴게소 내 백두숨길관에서 국내 터널 중 가장 긴 인제양양터널 건설 과정과 백두대간 생태계를 살펴볼 수 있다. 연꽃이 활짝 핀 생태습지공원도 매력적이다. 자작나무와 갈대 등 각종 식물을 보며 여유롭게 산책하기 좋다. 휴게소 인근에 방태산자연휴양림이 있다. 울창한 숲에서 하룻밤 묵은 뒤, 방동약수 한 그릇 마시면 일상의 피로가 사라진다. 내린천을 따라 드라이브하다 보면 순백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속삭이는 자작나무숲’과 만난다. 박인환문학관, 인제산촌민속박물관 등에서 인제의 문화를 맛볼 수 있다.●충북 단양팔경휴게소 중앙고속도로 단양팔경휴게소는 알찬 볼거리와 즐길거리, 먹거리를 갖춰 쉼터 이상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상행선(춘천 방향) 휴게소 건물 뒤쪽으로 난 오솔길을 따라가면 단양 신라 적성비(국보 198호)와 단양 적성(사적 265호)을 만난다. 울퉁불퉁한 산길을 내려오면 충주호 전망이 보석처럼 펼쳐진다. 별빛테마공원은 야간에 빛나는 또 다른 보물이다. 쏟아지는 별빛을 볼 수 있다. 망원경을 무료로 대여해 준다. 마늘수제떡갈비가 대표 메뉴로 꼽히는데, 마늘왕돈가스도 휴게소의 별미다. 하행선(부산 방향) 휴게소는 직원들이 꾸민 야생화테마공원⑤ ⑥과 원두막 음식 배달 서비스가 돋보인다. 장승과 솟대, 물레방아 등 아기자기하게 꾸민 산책로를 걷는 재미가 쏠쏠하다. 반려견을 위한 작은 놀이터도 있다.●충북 옥천 금강휴게소 경부고속도로 금강휴게소는 자체가 여행지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 휴게소 뒤로 유유히 흐르는 금강이 여느 전망대보다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한다. 휴게소에서 금강 변으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고, 차를 이용해 외부 도로를 따라 내려가 낚시와 수상스키를 즐길 수도 있다. 금강휴게소의 별미는 도리뱅뱅이⑦다. 금강 쪽 테라스⑧에 있는 ‘사랑의 그네’는 연인들의 데이트 장소로 유명하다. 난간 쪽 철조망에 이들이 사랑을 염원하며 다닥다닥 매단 자물쇠가 보인다. 옥천은 정지용의 시 ‘향수’의 무대다. 생가와 문학관에서 시인의 생애와 문학 세계를 엿볼 수 있다. 군북면 추소리의 부소담악은 물 위로 솟은 기암절벽으로, 우암 송시열이 ‘소금강’이라 예찬한 절경이다. 이원면의 이원양조장은 1930년대에 설립해 4대째 막걸리를 빚는 곳이다. 예약하면 견학과 시음도 가능하다.●삼국유사군위휴게소와 군위영천휴게소 상주영천고속도로에서 만나는 삼국유사군위휴게소와 군위영천휴게소는 각각 ‘복고’와 ‘공장’을 테마로 내방객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한다. 삼국유사군위휴게소가 드라마나 영화 촬영장 못지않은 1960~1970년대 분위기의 이색 공간⑨으로 인기몰이 중이라면, 군위영천휴게소는 최근 유행하는 업사이클링 공간을 재현한 독특한 폐공장 인테리어로 승부한다. 대표 먹거리인 ‘추억의 도시락&라면’⑩을 비롯해 쫀드기, 라면땅 등 그 시절 먹거리를 맛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삼국유사군위휴게소는 군위 여행의 전초기지 역할도 톡톡히 한다. 이곳에서 5㎞ 정도 떨어진 동군위 IC를 이용하면 일연이 ‘삼국유사’를 저술한 인각사와 홍예문이 인상적인 화산산성, 엽서처럼 예쁜 화본역 등 군위의 대표 여행지에 가기 쉽다.●완주 이서휴게소 호남고속도로 이서휴게소⑪는 서전주 IC와 김제 IC 중간 지점에 있다. 규모는 작아도 먹고, 쉬고, 즐기는 재미가 있다. 으뜸은 먹는 재미. 한국도로공사 전북본부 관내 휴게소에서 2900원에 판매하는 우동과 라면은 가성비가 좋다. 애호박과 돼지고기를 듬뿍 넣은 애호박국밥, 꼬막과 채소에 유자청 고추장으로 상큼함을 더한 꼬막비빔밥은 올봄 한국도로공사 전북본부가 주관한 ‘휴게소 대표 음식 선발대회’에서 각각 대상과 동상을 수상했다. 안마 의자와 벨트 마사지 기구를 갖춘 휴식 공간⑫, PC와 복합기가 있는 쉼터, 아늑한 수유실도 만족스럽다. 순천 방향 휴게소 야외에는 전래 동화 ‘콩쥐팥쥐’를 주제로 조성한 포토 존이 있다. 글 사진 손원천 선임기자 angler@seoul.co.kr 한국관광공사
  • 여행지 같은 공간… 어서 와, 이런 휴게소는 처음이지

    여행지 같은 공간… 어서 와, 이런 휴게소는 처음이지

    한가위 연휴가 겹친 9월은 초가을 나들이를 떠나기에 더없이 좋은 달이다. 한국관광공사가 전국의 특색 있는 휴게소 6곳을 9월의 ‘추천 가볼 만한 곳’으로 선정했다. 휴게소 자체가 여행 목적지가 되는 ‘여행이 가능한 휴게소’들이다. 한가위 때 고향 오가는 길에 잠시 들러도 좋겠다.●경기 이천 덕평자연휴게소 영동고속도로 덕평자연휴게소는 덕평소고기국밥으로 이름난 곳이다. 2016년 한 해 동안 60만 그릇 가까이 팔려 전국 고속도로 휴게소 판매 신기록을 세웠다. 유명 음식점 수준의 푸드 코트와 쇼핑몰을 갖췄고, 아름다운 정원①에서 산책도 할 수 있다. 아이들과 ‘터널 갤럭시 101’②에서 야경을 감상하는 것도 환상적인 경험이다. 개를 좋아하는 이들을 위해 반려견 전용 풀장도 만들었다. 인근의 이천도자예술마을 예스파크(藝’s Park)는 도자기 장인들이 작품 활동을 하면서 대중과 소통하는 문화 공간이다. 한자리에서 다양한 도자기를 보고 싶다면 이천세라피아가 적당하다. 아이들과 함께라면 이천 출신 외교관 서희의 이야기를 형상화한 서희테마파크, 우리나라에서 처음 문을 연 한국동요박물관을 둘러봐도 좋다.●강원 인제 내린천휴게소 서울양양고속도로에 있는 내린천휴게소는 ‘V자’ 모양의 독특한 상공(上空)형 휴게소다. 내부 인테리어③와 외부 디자인④도 독특하다. 휴게소 안에서는 유리창으로 강원도의 그윽한 산세를 감상하고, 옥상 전망대에서는 깨끗한 공기를 온몸으로 누린다. 휴게소 내 백두숨길관에서 국내 터널 중 가장 긴 인제양양터널 건설 과정과 백두대간 생태계를 살펴볼 수 있다. 연꽃이 활짝 핀 생태습지공원도 매력적이다. 자작나무와 갈대 등 각종 식물을 보며 여유롭게 산책하기 좋다. 휴게소 인근에 방태산자연휴양림이 있다. 울창한 숲에서 하룻밤 묵은 뒤, 방동약수 한 그릇 마시면 일상의 피로가 사라진다. 내린천을 따라 드라이브하다 보면 순백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속삭이는 자작나무숲’과 만난다. 박인환문학관, 인제산촌민속박물관 등에서 인제의 문화를 맛볼 수 있다.●충북 단양팔경휴게소 중앙고속도로 단양팔경휴게소는 알찬 볼거리와 즐길거리, 먹거리를 갖춰 쉼터 이상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상행선(춘천 방향) 휴게소 건물 뒤쪽으로 난 오솔길을 따라가면 단양 신라 적성비(국보 198호)와 단양 적성(사적 265호)을 만난다. 울퉁불퉁한 산길을 내려오면 충주호 전망이 보석처럼 펼쳐진다. 별빛테마공원은 야간에 빛나는 또 다른 보물이다. 쏟아지는 별빛을 볼 수 있다. 망원경을 무료로 대여해 준다. 마늘수제떡갈비가 대표 메뉴로 꼽히는데, 마늘왕돈가스도 휴게소의 별미다. 하행선(부산 방향) 휴게소는 직원들이 꾸민 야생화테마공원⑤ ⑥과 원두막 음식 배달 서비스가 돋보인다. 장승과 솟대, 물레방아 등 아기자기하게 꾸민 산책로를 걷는 재미가 쏠쏠하다. 반려견을 위한 작은 놀이터도 있다.●충북 옥천 금강휴게소 경부고속도로 금강휴게소는 자체가 여행지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 휴게소 뒤로 유유히 흐르는 금강이 여느 전망대보다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한다. 휴게소에서 금강 변으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고, 차를 이용해 외부 도로를 따라 내려가 낚시와 수상스키를 즐길 수도 있다. 금강휴게소의 별미는 도리뱅뱅이⑦다. 금강 쪽 테라스⑧에 있는 ‘사랑의 그네’는 연인들의 데이트 장소로 유명하다. 난간 쪽 철조망에 이들이 사랑을 염원하며 다닥다닥 매단 자물쇠가 보인다. 옥천은 정지용의 시 ‘향수’의 무대다. 생가와 문학관에서 시인의 생애와 문학 세계를 엿볼 수 있다. 군북면 추소리의 부소담악은 물 위로 솟은 기암절벽으로, 우암 송시열이 ‘소금강’이라 예찬한 절경이다. 이원면의 이원양조장은 1930년대에 설립해 4대째 막걸리를 빚는 곳이다. 예약하면 견학과 시음도 가능하다.●삼국유사군위휴게소와 군위영천휴게소 상주영천고속도로에서 만나는 삼국유사군위휴게소와 군위영천휴게소는 각각 ‘복고’와 ‘공장’을 테마로 내방객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한다. 삼국유사군위휴게소가 드라마나 영화 촬영장 못지않은 1960~1970년대 분위기의 이색 공간⑨으로 인기몰이 중이라면, 군위영천휴게소는 최근 유행하는 업사이클링 공간을 재현한 독특한 폐공장 인테리어로 승부한다. 대표 먹거리인 ‘추억의 도시락&라면’(10)을 비롯해 쫀드기, 라면땅 등 그 시절 먹거리를 맛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삼국유사군위휴게소는 군위 여행의 전초기지 역할도 톡톡히 한다. 이곳에서 5㎞ 정도 떨어진 동군위 IC를 이용하면 일연이 ‘삼국유사’를 저술한 인각사와 홍예문이 인상적인 화산산성, 엽서처럼 예쁜 화본역 등 군위의 대표 여행지에 가기 쉽다.●완주 이서휴게소 호남고속도로 이서휴게소(11)는 서전주 IC와 김제 IC 중간 지점에 있다. 규모는 작아도 먹고, 쉬고, 즐기는 재미가 있다. 으뜸은 먹는 재미. 한국도로공사 전북본부 관내 휴게소에서 2900원에 판매하는 우동과 라면은 가성비가 좋다. 애호박과 돼지고기를 듬뿍 넣은 애호박국밥, 꼬막과 채소에 유자청 고추장으로 상큼함을 더한 꼬막비빔밥은 올봄 한국도로공사 전북본부가 주관한 ‘휴게소 대표 음식 선발대회’에서 각각 대상과 동상을 수상했다. 안마 의자와 벨트 마사지 기구를 갖춘 휴식 공간(12), PC와 복합기가 있는 쉼터, 아늑한 수유실도 만족스럽다. 순천 방향 휴게소 야외에는 전래 동화 ‘콩쥐팥쥐’를 주제로 조성한 포토 존이 있다. 글 사진 손원천 선임기자 angler@seoul.co.kr 한국관광공사
  • 명동성당 앞에서 비수로 거사… 공범 묻자 “2000만 동포가 도왔다”

    명동성당 앞에서 비수로 거사… 공범 묻자 “2000만 동포가 도왔다”

    한자까지 똑같은 동명이인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알아도 이재명 의사(李在明 義士)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완용을 처단하려다가 실패한 독립운동가 정도라도 알고 있는 사람이 드물다. 이 지사는 우연히도 의사의 의거일이 자신의 생일과 같은 날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매국노를 죽이려다 스물셋 꽃다운 나이에 교수형을 당한 의사에 대한 인식과 대접이 이렇다. 의사에게는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됐지만, 직계 후손이 없어 훈장을 국가보훈처가 보관하고 있었다. 고향도 평북 선천이라 생가나 일가붙이를 찾을 수도 없다. 형이 집행된 후 시신도 수습되지 않아 유골의 행방도 묘연하니 묘소도 있을 리 없다.잊혀진 의사의 존재를 세상에 알린 것은 종친회였다. 이 의사의 본관은 진안인데 진안 이씨는 전북 진안을 비롯해 의사의 고향인 평북 등지에 집성촌이 있다. 또한, 진안 마이산은 1907년 이석용이 조직한 호남 의병 창의동맹단의 집결지였다. 진안에는 1925년 유림들이 일제에 항거해 순국한 의사와 열사 등 79위를 배향한 사당인 이산묘(耳山廟)도 있다. 말의 귀를 닮은 마이산 두 봉우리의 서쪽이다. 이산묘 영광사(永光祠)에는 안중근· 윤봉길· 이봉창 의사 등과 더불어 이 의사도 모셔져 있다.그런 인연으로 의사의 동상과 기념관이 고향에서 천 리 길이 넘는 먼 곳 진안에 자리잡게 되었다. 진안군청에서 마이산도립공원으로 들어가다 보면 도로 오른쪽에 이재명 의사 기념관이 있다. 2001년 종친회와 정치인들이 이재명 의사 추모사업회를 결성해 진안읍 군하리 6500여㎡ 부지에 조성한 시설이다. 그러나 금요일에 찾아간 기념관과 사업회의 문은 자물쇠가 굳게 채워져 관람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 홍살문은 나무가 삭아 홍살이 떨어져 뒹굴고 있고 마당에는 잡초가 무성했다. 이러니 방문객은 있을 리도 없고 간혹 지나가다 들러도 관람을 할 수 없다. 몇 해 전 수리를 요청하는 민원이 제기됐지만, 군청에서는 토지보상금 사용 승인이 나지 않았다고 답했다. 뜻을 모아 거액을 들여 지은 기념관이 보상금 갈등과 무관심, 예산 부족으로 방치되고 있는 것이다. 기념관 옆 타향 땅에 세워진 의사의 동상은 더 쓸쓸해 보였다. 이 의사는 1887년 10월 16일 선천에서 태어나 8살 때 평양으로 이사 가서 그곳에서 성장했다. 의사는 평양 일신학교를 졸업하고 1904년 미국 노동 이민회사의 모집에 응해 미국 하와이로 갔다. 1906년 3월에는 공부를 더 할 목적으로 미국 본토로 옮겨가 안창호가 중심이 돼 창립한 공립협회에 가입했다. 이듬해 일제는 고종을 강제 퇴위시키고 ‘정미7조약’을 체결하는 한편 대한제국 군대를 해산시켰다. 이에 공립협회는 매국노 처단을 결의하고 실행자를 선발했는데 거기에 지원한 사람이 바로 이 의사다.●이토 암살 실행 무산되자 이완용 죽이기로 의사는 그해 10월 9일 일본을 거쳐 고국으로 돌아왔다. 때를 엿보던 의사는 1909년 1월 평안도 순시를 떠난 한국통감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하려고 평양역에서 기다렸다. 그러나 거사를 실행하지 못했다. 안창호가 이토와 함께 다니던 순종 황제의 안전을 위해 만류했기 때문이었다. 이토는 10월 26일 안중근 의사에게 하얼빈역에서 사살됐다. 의사는 원래 목표대로 을사 5적을 비롯한 매국노들을 처단할 계획을 세웠다. 여러 동지와 야학당에 모여 이완용은 이 의사와 김병록· 이동수가, 이용구는 김정익이 죽이기로 했다. 그러던 중 이완용이 12월 22일 종현 천주교당(명동성당)에서 벨기에 황제 레오폴드 2세의 추도식에 참석한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당시 양심여학교 학생이던 아내 오인성씨와 마지막 작별의 밤을 지냈다. 오씨는 울지 않았고 남편의 거사를 만류하지 않았다고 한다. 날이 새자 김병록, 이동수와 함께 의사는 명동성당으로 향했다. 그날 오전 11시 30분쯤 의사는 성당 밖에서 군밤장수로 변장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드디어 이완용이 인력거를 타고 앞으로 지나갔다. 의사는 비수를 들고 달려들었다. 인력거꾼 박원문이 제지하려 하자 그를 찔러 숨지게 하고 이어 이완용의 허리 쪽을 공격했다. 혼비백산한 이완용이 달아나려 하자 다시 3곳을 더 찔렀다. 거사 직후 의사는 현장에서 일경에게 체포됐다. “오늘 우리의 공적(公敵)을 죽였으니 정말 기쁘고 통쾌하다”고 외치며 만세를 불렀다. 그러나 이완용은 치명상을 입지는 않고 목숨을 건졌다. 이완용은 자신의 집으로 가서 의사를 불러 응급 치료를 받았다. 일본 경찰은 이 의사를 이완용의 집으로 데리고 갔다. 그곳에 와 있던 농상공부대신 조중응이 “네가 흉행(兇行)을 한 자냐”고 물었다. 이에 의사는 눈을 치켜 뜨며 “너 조중응은 귀중한 인사를 이 모양으로 하대하느냐”며 오히려 추상과 같이 꾸짖었다. 그러면서 옆에 있던 일경에게 “더러운 냄새가 코를 찌르니 권연초 한 개를 가져오라”고 하여 유유히 피웠다.●“내 목숨 빼앗을 수 있으나 충혼은 못 빼앗아” 경시청에서 조사를 받은 의사는 일경이 “공범이 있느냐?”고 묻자 “이러한 큰 일을 하는데 무슨 공범이 필요하냐. 공범이 있다면 2000만 우리 동포가 모두 나의 공범이다”고 말했다. 이듬해 4월 열린 재판에서도 “도와준 자를 말하라”는 일본인 재판장 스가하라에게 “이완용을 죽이는 것을 찬성한 자는 우리 2000만 동포 모두며 방조자는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엄숙한 목소리로 역적 이완용의 8개 죄목을 거론하며 통렬하게 비판했다. “공평치 못한 법률로 내 목숨을 빼앗을 수는 있으나 나의 충혼, 의혼(義魂)은 절대 빼앗지 못할 것이다. 한번 죽음은 슬프지 않다. 생전에 이루지 못한 일이 한심스러울 뿐이다. 내 결코 죽어서 그 원한을 갚을 것이다.” 의사는 1910년 5월 18일 경성지법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이 의사는 사형 선고를 받고 꼿꼿한 자세로 재판장을 꾸짖으며 이렇게 최후 진술을 했다. 부인 오씨는 ‘국적 이완용이 아직 죽지 않고 살았는데 우리 가부(家夫)는 왜 사형에 처하느냐’며 눈물을 흘렸다. 의사는 총독부 체제 발족 바로 전날인 1910년 9월 30일 순국했다. 의사는 의거를 공모한 사람들은 아무 관련이 없다고 보호하면서 끝까지 단독 범행임을 주장했다. 그러나 김병록 등 동지 10여명도 최고 징역 15년형의 중형을 선고받았다. 이 의사는 부인 오씨를 성모여학교 교사인 함마리아의 소개로 만나 1907년 겨울 부부의 연을 맺었다. 오씨도 경찰에 끌려가 혹독한 심문을 받았다. 그러면서도 변호인을 선임하는 등 남편 뒷바라지에 열성을 다했다. 남편이 죽은 뒤 오씨도 독립운동에 뛰어들어 중국 길림성과 상해 등지로 돌아다니며 독립운동을 도왔다. 1919년 3·1만세운동이 일어나자 오씨는 귀국했다가 일경에 체포됐다. 증거와 단서가 없어 석방되었지만, 미행과 감시를 받았다. 오씨는 다시 망명을 도모하다 병을 얻어 29세에 요절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인 외과 의사의 집도로 수술을 받은 이완용은 53일 동안 입원했다. 순종과 고종은 이완용이 퇴원하는 날까지 하루도 거르지 않고 시종을 보내 안부를 묻고 거액의 위로금을 보냈다. 전국의 관찰사와 군수들로부터도 위로금이 답지했다고 한다. 퇴원 후 충남 온양에서 휴양을 한 이완용은 총리직으로 복귀해 데라우치 통감과 한일합방조약에 서명했다. 그 4일 후 순종 황제로부터 대한제국 최고훈장인 금척대수훈장을 받았다. 이완용은 일제의 보호 속에 백작 작위를 받고 호의호식하면서 부귀영화를 누리다 1926년 68세로 사망했다. 사인은 의사의 칼을 맞아 폐를 다친 후유증이었다고 한다. 글 사진 논설고문 sonsj@seoul.co.kr
  • ‘해투4’ 송가인 해명 “얼굴 보톡스? 원래 볼살이 많아”

    ‘해투4’ 송가인 해명 “얼굴 보톡스? 원래 볼살이 많아”

    ‘미스트롯’ 송가인이 보톡스 의혹을 해명했다. 1일 방송된 KBS2 ‘해피투게더4(해투4)’는 ‘트롯투게더’ 특집으로 꾸며졌다. 이날 600회를 맞이한 ‘해투4’를 축하하기 위해 트로트 가수 설운도, 김연자, 송가인, 장민호가 출연했다. 이날 송가인은 ‘해투4’ 출연에 대해 “어렸을 때부터 TV에서만 보던 곳을 나와서 꿈만 같다”고 소감을 밝혔다. 유재석이 “송가인 고향집도 화제라던데”라고 하자 송가인은 “송가인 생가처럼 하루에 150명 정도 방문한다. 부모님께서 음료수를 준비해 방문객들에 제공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진도군에서 팻말도 붙여주셨다. 요즘엔 제가 진도의 명물 진돗개보다 더 유명하다”고 자랑했다. 송가인은 “친오빠들이 ‘너는 돈도 안벌고 뭐하냐’고 했는데 지금은 ‘밥 먹었어?’라며 따뜻하게 대해준다. 영상통화도 징하게 한다”고 밝혔다. 송가인은 또 “씻김굿 인간문화재인 어머니 덕에 15년간 국악을 해왔다. 둘째 오빠는 아쟁, 올케언니는 꽹과리를 공부했다“고 덧붙였다. 전현무가 “송가인의 댓글에는 악플이 없다”고 하자 그는 “보톡스를 맞았다. 얼굴에 뭘 넣었다 라는 댓글이 있었다. 저는 엄마랑 똑같이 생겨서 볼살이 많다. 수술은 안했다”고 해명했다. 이어 “저도 댓글 많이 읽어보는데 악플에 상처를 받는다. 좋은 글이 더 많아 위안이 된다. ‘노래 잘한다’는 댓글이 가장 좋다”고 말했다. 송가인은 ”‘미스트롯’ 출연 이후 팬카페 회원이 140명에서 2만5,000 명까지 늘었다“며 팬들에 고마움을 드러냈다. 송가인의 팬들은 행사장에서 직접 스태프를 자청하며 진행을 돕는다며 ”팬들이 스태프 복장까지 갖추고 행사장에서 주차할 공간까지 가이드 해준다. 저의 아버지 정도 연령대가 많으시다. 또 20대 팬들은 아이돌용 대포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찍어주신다“며 미소를 지었다. 그는 “예전에는 한달에 2~3개 행사가 있었다면 지금은 한달에 1~2일 정도만 쉰다. 신인 시절에 비해 지금은 행사비도 10배 정도 올랐다. 연말까지 행사 스케줄이 다 찼다”며 “’미스트롯’ 상금은 어머니께 다 드렸다. 지금은 콘서트 수입이 정산돼 나오고 있는데 부모님께 다 드리고 싶어서 돈이 생기면 바로 보내드리고 있다”고 밝혔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김포 청소년들 하얼빈서 “코레아우라”(대한독립만세) 외쳤다

    김포 청소년들 하얼빈서 “코레아우라”(대한독립만세) 외쳤다

    경기도김포교육지원청 김포 청소년 역사문화 탐구단의 동북3성팀이 30~31일 하얼빈역에 재개관한 안중근의사 기념관을 방문했다. 기념관 자리는 안중근의사 의거 110주년을 맞이해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했던 장소다. 지난 27일부터 3박4일 여정을 시작해 김포학생대표 32명과 인솔자 8명이 함께 방문 중이다. 학생들은 안중근 의사의 생애와 거사과정 등 안 의사 발자취가 고스란히 담긴 전시물을 하나하나 살펴보며 일제강점기 일본에 항거한 안중근 의사의 행적에 대해 자세히 살펴봤다. 또 안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장소를 직접 확인하고, 안 의사가 남긴 유묵들을 관람할 때는 눈시울을 붉히거나 일제의 만행에 분노하기도 했다. 특히, 고촌중학교 학생들은 사전 대한민국임시정부 100주년 기념 체험활동으로 인근 초등학교 학생 30명을 초대해 체험부스를 운영했다. 당시 만들었던 안 의사 손도장이 찍힌 가방과 안중근 의사 유묵인 ‘일일부독서 구중생형극(一日不讀書 口中生荊棘)’ 탁본한 작품을 모두 갖고 와 안중근 의사 기념관에서 “코레아우라”(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기념 촬영을 하기도 했다.기념관을 방문한 양곡초의 한 학생은 “통유리 너머로 하얼빈역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1번 플랫폼 장소를 보니 안 의사의 나라 사랑하는 마음이 가슴에 와 닿았다”고 감회를 밝혔다. 지난 30일 4일차 탐방을 마친 3개 학교 모든 참가자들은 하얼빈 곤륜호텔 만찬장에서 나흘간 여정을 정리하고 조사한 내용과 감상을 나누는 나눔의 자리를 마련했다. 참가자들은 탐구단 활동을 통해 가장 힘들었던 것으로 음식과 중국 화장실 문화를, 가장 기억에 남는 것으로는 안중근 의사 기념관과 731부대 기념관, 백두산, 윤동주 생가를 꼽았다. 고촌중 임상혁 학생은 “비행기를 타고 2시간 넘게 날아온 땅에서 한국 문화를 갖고 사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놀라웠고, 옌볜에서 살아가는 중국 동포도 우리와 같은 민족임을 느꼈다”며, “독립투사들이 어렵게 지켜낸 이 나라에서 언젠가 옌볜 사람과 북녘 사람들과 함께 통일 한국에서 다함께 살아가기를 소망한다”고 소감을 말했다. 학생들은 ‘독립군가’를 함께 부르며 탐구단 일정을 마무리했다. 이날 함께 부른 독립군가는 일제강점기 항일 독립투사들이 부르던 ‘독립군가’를 고촌중 학생들이 직접 개사했다. 노래를 부르는 학생들 손에는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는 없다, 10월 26일을 잊지 않겠습니다’라는 문구가 들려 있었다. 백경녀 교수학습지원과장은 “안중근 의사의 조국 독립을 향한 열망과 희생정신은 100년이 지난 지금에도 우리 국민들 가슴 속에 살아있다”며, “안 의사를 비롯한 애국선열들의 뜻을 잘 받들어 나가자”고 강조했다. 또 “이번 여정을 통해 김포 청소년 역사문화탐방단 학생들이 올바른 역사관을 갖고 사유하는 김포시민들로 자라나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이명선 기자 mslee@seoul.co.kr
  • 노무현의 철학과 건축가의 미학, 그리고 봉하

    노무현의 철학과 건축가의 미학, 그리고 봉하

    얼마 전 ‘노무현 대통령의 지붕 낮은 집’(노무현재단)이란 책을 접했습니다. 경남 김해 봉하마을의 집터 선정 과정부터 2018년 시민 개방 때까지 십여년의 이야기가 담긴 책입니다. 무엇보다 관심을 끈 대목은 ‘대통령의 집’을 설계한 이가 정기용(1945~2011) 건축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묘역을 설계한 이는 승효상 국가건축정책위원장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나라 안팎의 존경을 받는 두 건축가가 공들여 세운 건축물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다니요. 김해행을 결심하는 데는 그 이유만으로도 충분했습니다.정기용 건축가는 흔히 ‘감응의 건축가’라고 불린다. 단어 몇 개로 그를 규정하기는 어렵겠지만, 그가 남긴 말로 그를 표현하면 ‘자연과 인간의 교감과 감성을 일깨워 준 이’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 몇 해 전 전북 무주 읍내의 ‘등나무 운동장’을 방문한 뒤 그의 건축 철학에 깊은 감명을 받은 적이 있다. ‘등나무 운동장’은 생전 자신이 가장 잘한 일 가운데 하나로 꼽았던 건축물이다. 수많은 군민들이 뙤약볕 아래 앉아 있던 ‘본부석 이외의 자리’에 등나무 스탠드를 세워 몇몇 유지들만 앉는 ‘본부석 차양막’보다 훨씬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준 것으로 유명하다. 노 전 대통령이 그를 기억한 계기도 “무주 공공건축 프로젝트에 관한 기사를 보”게 되면서다. 봉하마을 옆 화포천 습지에 대한 생태학적 영감을 준 이도 정 건축가다. 노 전 대통령은 책을 통해 “나에게 화포천을 되돌려 준 사람”이라며 고마움을 표하고 있다.책에 담긴 정 건축가의 메모를 보면 주인이 요청하는 집은 ‘느리게 살고, 적게 쓰고, 부끄럼 타는 집’이었다. 여기에 지형과 시대가 요청하는 것들을 고려해 건축가가 제안한 집은 ‘두 개의 기능(대통령 업무와 생활 공간), 두 개의 영역이 통합된 건축’이었다. 그러니까 노 전 대통령의 철학과 정 건축가의 미학이 오롯이 남은 작품이 바로 ‘대통령의 집’인 셈이다. 그러나 ‘대통령의 집’엔 이제 사람이 살지 않는다. 집에 정신을 불어넣은 이도, 집을 지은 이도 없다. 후대에 남은 많은 이들이 애면글면 보살피고는 있지만, 질 지은 집 어딘가에서 애수가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듯하다.책의 첫 장을 펴면 동네 전경을 스케치한 그림이 나온다. 정 건축가가 봉하마을 건너편, 그러니까 뱀산 쪽에서 본 모습을 그린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이 고시 공부하던 마옥당(摩玉堂)이 바로 이 산에 있었다. ‘대통령의 집’은 봉화산 능선이 유순해지는 마을의 끝자락에 들어섰다. 마을 사람들의 불편을 최소화하겠다는 뜻이 담긴 위치 선정이다. 그러니 ‘지붕 낮은 집’은 곧 ‘끄트머리 집’이기도 하다. 지붕을 낮게 설계한 건 산등성이 흐름이 집 안으로 자연스레 이어지도록 하자는 생각에서다. 지붕이 저 혼자 우쭐대며 솟았다면 산과 집이 포근하게 공존할 수는 없었을 터다. 산자락 경사진 터에 집을 짓자니 땅을 파내거나 돋워야 했다. 지상은 1층만 올리고 지하 공간을 널찍하게 활용하게 된 건 그 때문이다. 공간을 기준으로 ‘대통령의 집’을 보면 채 나눔 구조로 지어졌다. 우리 조상들이 안채와 사랑채를 나누어 산 것과 같은 형태다. 공간적으로는 불편해도 주변 환경과의 관계성을 끊임없이 확인할 수 있는 구조다. 정 건축가는 이를 “하나의 공간에서 나와 다른 공간으로 들어가는 과정에 ‘바깥’이 끼어든다. 실내에 있는 동안 차단됐거나 부분적으로만 가능했던 공감각적 체험이 가능해진다”고 설명했다. 대신 회랑의 처마는 길게 냈다. 미래에 이 집을 돌아볼 ‘시민’들이 눈비와 뜨거운 볕을 피할 수 있게 하려는 배려다.정문에서 ‘낮은 키’의 돌담을 지나면 곧 손님 맞이 공간인 사랑채다. 건물 안에 들면 안뜰 쪽으로 난 세로 창이 객을 맞는다. 다른 쪽에 비해 천장을 높게 설계한 덕에 한결 길게 느껴진다. ‘대통령의 집’에서 맞는 ‘최고의 호사스러운’ 장면은 바로 이 창에서 비롯된다. 세로 창은 모두 네 개다. 각각의 창엔 잘생긴 소나무가 담겼다. 그 너머로 사자바위와 봉화산의 모습도 보인다. 그야말로 네 폭 병풍이다. 남쪽으로 난 창은 긴 가로 형태다. 뱀산과 봉하들녘이 담겨 있다. 우리 전통 조경의 큰 원칙, 이른바 ‘차경’(借景)을 여기서 본다. 차경은 자연을 경관 구성 재료의 일부로 빌려 왔다는 뜻이다. 창은 잠시 빌린 풍경을 담는 액자다. 저 유명한 경복궁 경회루의 ‘낙양각’에 담긴 뜻도 이와 같다.사랑채 맞은편은 안채다. 노 전 대통령 내외의 개인공간이었던 곳. 안채 뒤란으로 돌아가면 또 하나의 전통 조경양식, ‘꽃계단’과 만난다. 이른바 화계(花階)다. 개화 시기가 다른 식물을 계단에 심어 철 따라 다른 풍경을 즐길 수 있게 했다. 안채 옆은 서재. 900여권의 책과 평소 노 전 대통령이 즐겨 쓰던 밀짚모자 등이 전시돼 있다. 벽면의 시계는 이 건물 내 모든 시계와 마찬가지로 ‘그날 오전 9시 30분’에 맞춰져 있다.서재 앞은 중정이다. 건축적으로 이 집의 백미라는 평가를 받는 공간이다. 노 전 대통령의 사적 영역과 부속실 직원들이 근무하는 공적 영역이 이곳에서 만난다. 공간 가운데에 하늘이 열린 작은 뜨락을 조성했고, 건물 곳곳에는 채광창을 뒀다. 햇볕 한 줌이라도 허투루 쓰지 않겠다는 의지가 읽힌다. 작은 뜨락은 귀퉁이 한 곳만 남기고 싹 비웠다. 뜨락 귀퉁이엔 화마를 는 작은 사각형의 드므를 만들었다.대문 아래는 생가다. 이 초가집 역시 정 건축가의 작품이다. ‘대통령의 집’ 옆은 묘역이다. 승효상 건축가가 한 언론과 인터뷰한 내용에 따르면 묘역의 형태는 삼각형이다. 두 개의 물길이 모이는 곳에 조성됐다. 묘역을 정면에서 보면 역삼각형, 묘지 쪽에서 보면 정삼각형의 형태다. 정면이 역삼각형인 건 여러 사람의 작은 발걸음이 한 방향을 향해 걷다 보면 큰 미래가 열린다는 뜻이 아닐까. 반대로 노 전 대통령이 누운 자리에서 보면 수많은 이들의 발걸음이 단합해 한 가지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모습이 될 터다. 물론 혼자만의 해석이지만, 요즘처럼 국민 통합이 절실한 시점에 곱씹어야 할 덕목이 아닐까 싶다.묘역의 콘셉트는 서울의 종묘에서 가져왔다. 종묘의 월대처럼 기단을 쌓고 그 위에 시민들의 추모글을 새긴 박석을 깔았다. 노 전 대통령이 안장된 곳에는 평평한 너럭바위가 놓여 있다. 그 뒤를 붉은 빛 강판이 에워싸고 있다. 세월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녹이 스는 내후성 강판으로, 묘역과 자연이 경계를 이루는 곡장의 역할을 하고 있다.묘역 뒤는 ‘부엉이 바위’가 있는 봉화산이다. 부엉이 바위에서 흘러내린 물을 모은 ‘거울못’을 지나면서 봉화산 탐방로가 시작된다. 이 일대에 대한 설명은 책에 담긴 노 전 대통령의 글로 대신한다. “그 산에는 오래된 절터가 있다. 옆으로 드러누운 부처님이 큰 바위에 새겨져 있고(진영 봉화산 마애불·경남도유형문화재 40호, 고려시대) 근처에서는 깨진 기왓장이 나오곤 한다. 사람들은 가야 시대의 왕자가 살았다 하여 골짜기를 자왕골이라 불렀다. 유년시절의 내 기억에서 봉화산과 자왕골은 빼놓을 수 없는 무대이다. 나는 그곳에서 칡을 캐고 진달래도 따고 바위를 타기도 했다.”노 전 대통령이 묘사한 곳을 느린 걸음으로 20분 정도 오르면 ‘그곳’이 나온다. 굳이 표지판이 없어도, 탐방객의 출입을 막고 있는 벽과 철조망으로 인해 이곳이 그의 생애 마지막 장소라는 걸 금방 알게 된다. 봉하마을에서 1㎞ 남짓 떨어진 곳에 화포천 습지생태공원이 있다. 아주 오래전, 젊은 노무현과 권양숙이 사랑을 쌓아 가던 장소다. 퇴임 후엔 새벽마다 자전거를 타고 돌아볼 만큼 생태계 회복에 관심을 쏟았던 곳이기도 하다. 부들 틈에서 나는 개개비 울음소리를 들으며 물가 느티나무 그늘에서 늘어지게 쉴 만하다. 글 사진 김해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여행수첩(지역번호 055) →봉하마을은 모든 시설이 무료다. 다만 대통령의 집은 관람에 앞서 홈페이지(presidenthouse.knowhow.or.kr)에서 예약을 해야 한다. 회 당 10명 정도 예약을 받는다. 현장에서도 예약을 받는다. 당일 입장권은 오전 9시 30분부터 관람안내소에서 선착순 배부한다. 관람시간은 45분 정도다. 344-1309.
  • [미래유산 톡톡] 석파랑 건물들 통해 보는 서울…옛것과 새것이 공존하는 도시

    [미래유산 톡톡] 석파랑 건물들 통해 보는 서울…옛것과 새것이 공존하는 도시

    한정식집으로 쓰이는 석파랑은 서예가 소전 손재형(1903~1981)이 말년에 작품 활동을 했던 장소로 그 가치를 인정받아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됐다. 소전은 해방 이후 한국 서예계를 이끌었으며 일본식 표현이었던 서도를 서예라 처음 명명한 인물이다. 1903년 예술의 고장인 전남 진도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난 소전은 20대에 조선미술전람회를 거쳐 서예계에 등단했다. 해방 이후 대한민국미술전람회(일명 국전)가 시작되자 서예 부문에서 주도적 역할을 했다. 국전 서예 부문의 조직과 운영, 심사위원, 운영위원 등을 줄곧 맡으면서 많은 제자를 길러냈다. 소전 손재형은 추사 김정희를 존경하며 늘 그처럼 되길 원했다. 조선시대의 좋은 서화 자료를 많이 소장했던 소전의 수집품 중에 가장 유명한 것도 김정희에 관한 것이었다. 그가 추사 김정희의 명작 ‘세한도’를 석 달간의 피눈물 나는 노력으로 일본에서 되찾아온 일은 전설처럼 전해진다. 소전은 문화재 수집가로도 유명하다. 벼루와 연적 같은 문방구부터 향토 자료와 문헌 등 우리 역사에 귀중한 자료를 수집했으며 사라져 가는 한옥들을 사서 오랜 기간 옮기고 자재를 보충하면서 지은 곳이 바로 석파랑이다. 흥선대원군의 별장과 순종 황후인 순정효황후 윤씨의 옥인동 생가를 옮긴 후 30여년에 걸쳐 덕수궁 돌담과 운현궁, 선희궁에서 헐린 재료들을 모아 지은 집이 현재의 석파랑을 이뤘다. 석파랑 별채는 흥선대원군 별장이었던 석파정의 사랑채 건물이었다. 1958년 소전이 매입해 현재 위치로 이전했는데 원래 ‘ㅡ자’형 건물이었으나 옮겨 짓는 과정에서 ‘ㄱ자’형 구조로 변형됐다. 10평 남짓한 아담한 규모지만 선비의 기품과 풍류가 배어 있다. 석파랑 본채는 순정효황후 윤씨의 생가를 옮겨 왔다. 이렇게 석파랑에는 시할아버지와 손자며느리의 건물이 시대를 넘어 같은 공간에 마주하고 있다. 목재와 나무, 돌들을 하나하나 옮기면서 한국 전통 가옥을 짓고자 했던 소전의 마음을 담은 석파랑 건물들에서 옛것과 새것이 공존하는 도시 서울을 읽을 수 있다. 정순희 ‘표석을 따라 경성을 거닐다’ 공저자
  • DJ정신 잇는다더니… 10주기에 평화당 내분

    분당 국면으로 치닫고 있는 민주평화당이 김대중(DJ) 전 대통령 서거 10주기(8월 18일) 기념행사를 두고도 분열했다. 평화당 지도부는 24일부터 이틀간 김 전 대통령의 10주기 기념행사를 한다. 24일에는 목포에서 당원 연수를 하고, 이튿날에는 전남 하의도에 있는 김 전 대통령 생가에서 최고위원회의와 추도식을 연다. 특히 추도식에서는 DJ정신을 계승하겠다는 의지를 담은 ‘하의도 선언’을 발표할 예정이다. 애초 행사에는 정동영 대표와 박주현 최고위원 등 당권파와 유성엽 원내대표와 최경환 최고위원 등 반당권파가 모두 참석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24일 반당권파 의원들이 결성한 ‘대안정치연대’에서 이번 행사에 참여하지 않기로 결정하면서 ‘DJ 추도식’이 파행 국면에 몰렸다. 정 대표가 최근 반당권파를 징계하겠다고 언급한 게 발단이었다. 장정숙 대안정치연대 대변인은 “징계 사유 운운하는 것은 월권행위”라며 “당신(정 대표)이 판단할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대안정치는 다른 날을 택해 하의도의 김 전 대통령 생가를 방문해 뜻을 새길 것”이라고 밝혔다. 신형철 기자 hsdori@seoul.co.kr
  • 산청 남사예담촌 독립운동 성지로 조성

    산청 남사예담촌 독립운동 성지로 조성

    유림 독립운동가 면우 곽종석(1846~1919) 선생이 태어난 경남 산청군 남사예담촌이 유림 독립운동 관광지로 조성된다.산청군은 19일 유림 독립운동 유적지인 남사예담촌 일원을 독립운동 성지로 조성하는 ‘산청 독립운동 100주년 기념 테마공원 조성사업’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이 사업은 행정안전부가 시행한 ‘3·1운동 100주년 기념 공모사업’에 선정돼 추진하는 사업이다. 총 사업비 23억원(교부세 11억원, 도비 2억원, 군비 10억원)을 들여 곽종석 생가를 복원하고 독립운동 체험시설, 테마공원 등을 조성하는 내용이다. 실시설계 등을 거쳐 오는 10월 착공해 2020년 완공 예정이다. 현재 남사예담촌에는 유림 독립운동을 기리는 유림독립기념관을 비롯해 파리장서 내용이 새겨진 기념탑 등이 건립돼 있다. 또 곽종석 선생 사후에 후학들이 선생을 기리고 가르침을 전파하기 위해 지은 이동서당도 유림독립기념관 옆에 있다.산청군은 남사예담촌 일대를 ‘독립운동’이라는 역사적 요소와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 제1호’ 남사예담촌을 연계해 독립운동 이념과 자긍심을 느끼고 체험하는 성지로 개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곽종석 선생은 산청군 단성면 사월리 출신으로 남명 조식 선생의 사상을 계승한 영남 유림의 영수다. 붓과 글로 국권회복과 조국 독립을 위해 헌신했으며 을사늑약 체결 반대 투쟁에도 앞장섰다. 면우 선생을 대표로 한 한국 유림 137인은 3·1운동 당시 전문 2674자에 이르는 장문의 한국독립청원서를 작성해 파리강화회의에 보내는 등 국제사회에 한국독립 당위성을 알리기 위해 힘썼다. 산청 강원식 기자 kws@seoul.co.kr/
  • 바이오연료 폐기물로 다시 바이오연료 생산하다고?

    바이오연료 폐기물로 다시 바이오연료 생산하다고?

    화석연료로 인한 지구온난화가 가속화되고 부존량의 한계 때문에 많은 연구자들이 효율 높은 친환경 바이오연료 개발에 나서고 있다. 문제는 바이오연료 생산에 사용되는 목재나 식물 등 바이오매스들의 폐기물도 상당히 많이 나온다는 것이다. 이에 한-미 과학자들이 바이오매스 부산물을 이용해 바이오연료를 효과적으로 추출할 수 있는 재활용 기술을 개발해 주목받고 있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청정에너지연구센터, 육군사관학교 화학과, 미국 뉴욕주립대 환경과학임업대, 로런스 버클리 국립연구소 시스템생물학부, 테네시대 화학및생명분자공학과 공동연구팀은 목재의 30~40%를 차지하지만 바이오연료를 만들 때 부산물로 나와 대부분 폐기되는 리그닌이라는 물질을 다시 바이오연료로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개발했다고 7일 밝혔다. 이번 연구결과는 미국 국립과학원에서 발행하는 국제학술지 ‘PNAS’에 실렸다. 보통 바이오연료를 만들기 위해서는 석유에서 추출한 용매를 활용해 목재나 식물에서 리그닌 성분을 제거한다. 문제는 바이오연료를 만들 때 사용되는 용매는 석유화학 공법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환경 오염 가능성도 있고 바이오연료의 생산 단가를 높일 가능성도 높다. 이 때문에 바이오에탄올과 같은 바이오연료를 만들 때 기존 석유화학 유기용매 대신에 사용할 친환경 용매를 개발하는데 연구가 집중됐다. 연구팀은 펄프산업이나 바이오에탄올 공정에서 부산물로 나오고 있는 리그닌을 이용해 용매를 만드는데 성공했다. 식물에서 바이오연료를 만든 뒤 폐기되거나 제거되는 물질인 리그닌을 이용해 용매를 만들었기 때문에 저렴하고 친환경적이며 재생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김광호 KIST 박사는 “이번 연구는 바이오연료 생산에 필수적인 용매를 바이오매스에서 부산물로 나오는 리그닌에서 직접 만들었다는 것이 특징“이라며 “바이오연료 공정에 필요한 물질을 공정 내에서 수급해 활용한다는 점에서 순환형 바이오연료 생산을 가능케 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용하 기자 edmondy@seoul.co.kr
  • 송중기 아버지, 지인들에 뭐라고 문자했나?

    송중기 아버지, 지인들에 뭐라고 문자했나?

    배우 송중기의 아버지가 주변에 문자로 미안한 심경을 전했다. 송중기의 아버지가 최근 송중기, 송혜교의 이혼조정신청 소식을 전하게 된 것에 대한 심경을 담아 지난 5일 지인들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송중기 아버지는 문자메시지에서 “갑자기 좋지 않은 소식 전해서 죄송합니다. 모든 게 저와 중기의 부족함이라 여기고 성실하게 잘 마무리 하겠습니다”며 “지켜봐 주시고 많은 지도 편달 부탁드립니다. 건강하시고 행복한 나날 되세요”라고 전했다. 송중기와 송혜교는 지난 6월 27일 언론을 통해 직접 이혼조정신청서 접수 사실을 밝혔다. 두 사람은 2015년 KBS 2TV 드라마 ‘태양의 후예’에서 남녀 주연배우로 만나 2년간 열애 후 2017년 10월 31일 결혼, 1년 8개월 만에 파경을 맞은 것. 송중기 송혜교의 이혼 소식이 전해진 다음 날에는 송중기 대전 본가에서 송혜교와 ‘태양의 후예’ 사진, 배너의 흔적을 치웠다고 알려졌다. 박물관 형태로 이곳을 관리해온 송중기의 아버지가 이혼 소식 후 며느리 송혜교의 사진을 치운 게 아니냐는 추측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에 ‘송중기 생가’와 ‘송중기 아버지’가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순위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네티즌 반응은 갈렸다. 우선 ‘송중기 아버지’ 혹은 ‘송중기 생가’라는 검색어가 보기 불편하다는 반응이 많았다. 이혼은 어디까지나 부부 본인들의 문제인데 가족이 거론되며 대중의 관심과 공격을 받는 자체가 문제가 많다는 지적이다. 송중기, 송혜교의 이혼 발표 일주일이 지났음에도 두 사람의 이혼 관련 이슈는 여전히 대중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사진 = 서울신문DB 연예부 seoulen@seoul.co.kr
  • 물 만나 쉬리… 체험하며 즐기리

    물 만나 쉬리… 체험하며 즐기리

    7월,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됐다. 시원한 물가에서 더위를 피하고 다양한 제철 먹거리로 건강을 챙겨야 할 때다. 한국관광공사가 가족과 함께 다양한 체험을 즐기고 휴식도 취할 수 있는 농어산촌체험마을을 7월의 가볼 만한 곳으로 선정했다. 여행을 떠나기 전 체험의 종류와 시간대를 확인하고 예약을 해 두는 것이 좋다.●카누 타고 캠핑 즐기고… 강원 홍천 배바위카누마을 배바위카누마을은 홍천의 서쪽 끝, 청평호로 이어지는 홍천강 하류에 있다. 춘천, 가평 등 수도권에서 가까워 접근하기 좋다. 마을 앞 강물은 수심이 깊지 않고 유속이 느려 카누를 즐기기 좋다. 널찍한 강변에는 근사한 캠핑카와 크고 작은 텐트들이 늘어서 있다. 카누 체험 코스는 왕복 4㎞다. 한 시간 남짓 걸린다. 일반 카누 16대와 투명 카누 5대, 카약 5대가 있다. 캠핑장도 운영하고 있다. 캠핑 장비가 없는 이들은 방갈로를 이용하면 된다. 마을에서 1시간 거리에 공작산 수타사 계곡이 있다. 맑고 청량한 공기로 가득한 ‘공작산생태숲 산소길’을 걸으면 호흡이 깊어지고 머리가 맑아진다. 독립운동가 한서 남궁억 기념관과 옛 홍천군청(등록문화재 108호)을 리모델링한 홍천미술관, 홍천성당(등록문화재 162호) 등도 가볼 만하다. 상설시장과 오일장(끝자리 1·6일)이 함께 서는 홍천전통시장도 빼놓지 말자.● 펄떡펄떡 개매기 체험… 전남 장흥 신리어촌체험마을 전남 장흥군 대덕읍 신리어촌체험마을에서는 여름 한 철 ‘개매기 체험’이 펼쳐진다. 갯벌에서 펄떡이는 물고기를 잡는 특별한 어촌 체험이다. 개매기란 바다에 그물을 쳐 놓고 밀물 때 들어온 물고기를 썰물 때 잡는 전통 어업 방식이다. 갯벌을 뛰어다니느라 온몸이 진흙 범벅이 되지만, 숭어와 도미 등 값비싼 먹거리를 잡고 나면 얼굴이 환하게 펴진다. 개매기 체험 행사일과 시간은 물때에 따라 달라진다. 물때를 꼭 확인하고 방문해야 한다. 허리까지 올라오는 물장화도 반드시 준비해야 한다. 개매기 체험 뒤엔 문학의 발자취를 좇는다. 마을에서 멀지 않은 회진면에 선학동마을과 이청준 생가가 있다. 장흥 출신 문인과 작품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천관문학관도 빼놓지 말자. 정남진전망대는 장흥의 새 랜드마크다. 정남진은 서울 광화문에서 정남 쪽에 있는 해변이다. 전망대에 오르면 남도의 풍요로운 바다가 품에 안긴다.●‘갯벌+수영장’ 휴가세트… 경기 안산 종현어촌체험마을 안산 대부도의 종현어촌체험마을은 갯벌을 몸으로 체험하고 바닷가 수영장에서 물놀이도 즐길 수 있는 일석이조의 체험마을이다. 대표 체험 프로그램으로 갯벌 조개 캐기가 꼽힌다. 다양한 갯벌 생명체를 살펴보고 바지락도 잡을 수 있다. 갯벌 체험을 하려면 방문 전에 물때를 확인해야 한다. 장화와 호미는 현장에서 유료(2000원)로 대여해 준다. 8월 말까지는 마을 앞 갯벌에 야외 수영장을 운영한다. 규모는 작아도 아이들이 물놀이를 즐기기 좋다. 종현어촌체험마을 인근의 구봉도낙조전망대는 안산9경에 속하는 명소인 만큼 꼭 들르는 게 좋겠다. 마을에서 도보로 30분 남짓 걸린다. 갯벌과 백사장, 해송이 어우러진 방아머리해수욕장과 시원한 국물맛이 일품인 바지락칼국수도 대부도 여행의 재미를 더한다. 시화방조제에 우뚝 솟은 시화나래조력문화관 달전망대에서 서해안 풍경을 감상하는 재미도 각별하다.●물질 배우고 해녀밥상 받고… 울산 주전어촌체험마을 울산 동구의 주전어촌체험마을은 파도 소리 아름다운 몽돌해변과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자랑한다.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해녀 체험이다. 마을 해녀들에게 물질을 배우고 얕은 앞바다에서 전복과 해삼, 소라 등 싱싱한 수산물을 직접 채취할 수 있다. 맨손으로 소라와 고둥을 줍는 맨손잡이 체험은 유치원 아이도 즐길 수 있을 만큼 쉽고 재밌다. 출출해진 배는 ‘해녀 밥상’으로 채운다. 해녀들이 직접 잡은 해산물이 밥상에 오른다. 아울러 어선 승선 체험, 투명 카누 체험, 바다낚시 체험, 스킨스쿠버 체험 등 어촌에서 하는 거의 모든 바다 체험이 가능하다. 인근에 둘러볼 곳도 많다. 문무왕비의 전설을 간직한 대왕암공원과 태화강십리대숲은 울산을 대표하는 관광 명소다. 고래잡이로 유명한 장생포 옛 마을을 복원한 장생포고래문화마을, 울산 최초의 상설 야시장인 울산큰애기야시장도 들러볼 만하다.●더위 피하며 ‘꽃강’에서 ‘쉬리’… 강원 철원 쉬리마을 철원군 김화읍의 쉬리마을은 ‘꽃강’이라 불리는 화강(花江) 주변 학사리와 청양리 일대를 아우른다. 마을에서 운영하는 철원화강쉬리캠핑장과 수영장, 쉼터와 산책로 등이 화강 주변에 모여 있다. 김화교에서 수변수영장으로 미끄러지는 워터슬라이드, 수상레저체험장, 물썰매장 등 놀이시설도 갖췄다. 쉬리캠핑장과 김화 읍내를 잇는 김화교는 보행 전용교다. 쉬리와 다슬기 모양의 터널이 있다. 오후 8시부터 다리에 경관 조명이 켜져 밤 산책 코스로도 좋다. 8월 1~4일에는 철원화강다슬기축제도 열린다. 마을 인근의 두루웰숲속문화촌은 에코어드벤처, 목재체험장 등을 갖춘 휴양림이다. 지난 6월 에코하우스가 새로 개장해 숙박지로 좋다. DMZ 안보 여행은 구철원의 소이산전망대와 노동당사를 중심으로 돌아볼 만하다. 지난 6월 개방한 ‘DMZ평화의길’ 철원 구간도 관심이 집중되는 곳이다.●계곡에서 즐기는 수상 체험… 강원 양양 해담마을 양양의 서림계곡은 양양을 대표하는 두 계곡, 미천골과 갈천이 합류되는 곳이다. 해담마을은 두 물길이 하나 된 서림계곡을 품은 마을이다. 해담마을의 매력은 물 맑은 계곡에서 즐기는 다양한 수상 체험이다. 보트를 닮은 몸체에 바퀴 8개가 달린 수륙양용차는 해담마을 수상 체험의 대표 주자. 계곡은 물론 숲길과 산길을 거침없이 내달린다. 페인트볼 사격, 활쏘기 체험, 뗏목·카약 등도 즐길 수 있다. 송천떡마을에서 맛보는 쫄깃한 인절미와 에메랄드빛 바다도 양양 여정에서 빼놓으면 섭섭하다. 특히 낙산해변은 수심이 완만해 가족 피서지로 손색이 없고 솔숲 사이로 난 산책로가 매력적이다. 최근에는 서핑을 즐기려는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다. 아울러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신석기 유적 가운데 하나인 양양 오산리 유적(사적 394호)과 움직이는 갈대 군락으로 유명한 쌍호 갈대숲도 가볼 만하다. 글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사진 한국관광공사
  • [강릉愛 물들다] 전통의 품격·청춘의 정열·천혜의 환경… 발길 머무는 3색 도시

    [강릉愛 물들다] 전통의 품격·청춘의 정열·천혜의 환경… 발길 머무는 3색 도시

    청정 자연자원과 강릉대도호부관아, 천년축제 단오제, 커피축제 등 유·무형 문화유산이 어우러진 강릉은 예부터 격조 높은 문화관광도시로 유명하다. 오죽헌, 선교장, 경포대, 허균·허난설헌 생가 등 발길 닿는 곳마다 옛 선조들의 숨결이 밴 문화유적이 즐비해 외지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명품 고장이다. 이런 강릉이 2018 동계올림픽 이후 세계적인 문화관광 명소를 만들기 위해 새로운 테마를 발굴하고 있다. 이끌림이 있고 젊음이 숨쉬는 관광지로 변화시키겠다는 뜻이다. 동해안 최대 해변을 간직한 1.8㎞ 길이의 경포해변과 인접한 곳에는 세계적인 테마파크가 추진되고 있다. 옥계 금진지구 해안단구 절경에는 최고급 관광타운도 들어설 예정이다. 세계적인 테마파크와 최고급 휴양단지를 만들어 강릉을 최고의 문화관광도시로 업그레이드하겠다는 복안이다. 올림픽 이후 KTX 등 교통 인프라가 좋아진 만큼 한 차원 높은 사계절 문화관광도시로 빠르게 변화하는 강릉을 돌아봤다.강릉의 문화는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다. 관광도 유·무형의 옛 문화유산이 중심이다. 이런 연유로 젊은이들한테는 가까이 다가가지 못한 측면이 있었다. 강릉시가 이를 바꾸기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시는 청춘들을 끌어들이는 테마를 접목해 새로운 시대를 열고 있다고 2일 밝혔다. 우리의 옛것을 살리면서 ‘이끌림이 있고 젊음이 숨쉬는 관광의 변화를 이루겠다’고 선언했다. 성과는 벌써 나오고 있다. 올 단오제부터 젊은이들이 적극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해 인기를 끌었다. 커피축제 등 앞으로 강릉 지역 모든 축제와 행사에 젊은 세대가 참여해 즐길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천수답식 여름 피서철 반짝 관광의 한계도 벗어나고 있다. 테마와 주제가 있는 사계절 관광이 가능한 관광 패러다임을 제시해 관광 트렌드를 이끌고 있다. 인기 높은 정동심곡 바다부채길은 정동항까지 연장 추진한다. 해수욕장별로 특화된 해양레저스포츠를 접목해 관광자원으로 키울 계획이다. 동호인이나 마을 단위로 이뤄지는 스킨스쿠버와 스노쿨링, 요트, 윈드서핑 등 다양한 해양레저스포츠를 체계적으로 관리하며 지역 명소로 가꾸겠다는 심산이다. 도심관광의 축도 넓힌다. 월화거리와 전통시장의 상설 버스킹 공연은 올림픽 이후 강릉의 관광명소로 자리잡았다. 먹거리와 놀거리, 볼거리가 한자리에서 충족되면서 자연스레 강릉의 관광명소가 됐다. 도심을 살리는 원천이 되고 있다. 이를 계기로 도시 관광 테마를 확장한다. 남대천 월화교 스카이워크를 비롯한 도심 랜드마크형 시설이 건립돼 시 중심부의 관광 활성화에 가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지난 4월 강릉선 KTX 출발·종착역이 서울역으로 정해지면서 체류형 관광객을 위한 콘텐츠 개발에도 나섰다. 대형 숙박시설과 주요 관광지를 연계한 다양한 패키지 관광상품을 개발한다. 유료 관광지를 두 곳 이상 방문하면 입장료를 할인해 주고 모바일로 관광지 스탬프를 활용한 기프티콘 이벤트와 강문천 하구 야간경관 조명시설 등 젊음이 넘치는 밤거리 명소화도 추진된다. KTX 이용객이 늘면서 다양한 관광 편의 상품도 생겨나고 있다. 김세용 공보팀장은 “강릉선 KTX는 지난해 452만여명이 이용했다”며 “자연스레 지난 4월에는 외국인 전용 관광택시가 선보였고 5월에는 강릉컬링 체험과 ‘어게인, 고 이스트’ 등 연계 관광 상품이 생겼다”고 말했다. 내년 중반쯤이면 주요 역과 빠르게 연계돼 강릉이 동해안 KTX 요충지로 자리잡을 전망이다. 특히 동계올림픽특별법의 올림픽특구 2단계 개발사업 확대를 통해 경포권, 문화권, 남부권의 3개 권역에 기존과 차별화된 테마와 주제가 있는 사계절 체류형 관광지를 조성한다. 경포권에는 글로벌 콘텐츠를 활용한 세계적인 테마파크를 추진한다. 세계적인 영화 캐릭터를 주제로 한 테마파크로 상당한 진척을 보이고 있다. 시 부지로 남아 있는 경포저류지를 활용한 관광테마도 구상 중이다. 저류지를 제2의 경포호수로 만들어 현재 경포호수와 물길을 낸 뒤 배를 띄워 볼거리를 만들겠다는 복안이다. 여기에 강릉역~올림픽경기장~이젠(강릉녹색도시체험센터)~경포를 잇는 트램(노면 전차)을 놓아 경포 관광을 활성화하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 오죽헌과 선교장, 경포대, 방해정 등 호수변 전통가옥과 정자를 하나로 엮어 관광상품으로 만들 예정이다.오죽헌 일대 문화권은 전남 순천 낙안읍성과 경기 파주 헤이리마을을 모델로 문화예술관광 체험단지를 조성한다. 한옥마을과 오죽헌, 예술창작인촌, 강릉농악전수관, 율곡평생교육원 등 주변시설을 연계해 문화와 예술을 기본으로 한 색다른 관광과 체험형 공간으로 가꾸겠다는 복안이다. 옥계 금진의 남부권은 크로아티아의 ‘아드리아해의 진주’, 그리스의 ‘산토리니’를 모델로 최고급 관광타운을 조성한다. 천혜의 해안단구 지형을 활용하고 주변 숙박시설과 조화된 저층, 저밀도의 아름다운 타운을 만들 예정이다. 강릉 관광 변화에 대한 기대와 함께 성공을 자신하고 있다. 습지 복원으로 살려낸 경포가시연 습지도 중요성과 생물종다양성 확보 등의 성과를 부각시킬 방침이다. 각종 국제행사와 연계해 생태·문화도시 강릉을 홍보하는 주요 관광자원으로 활용될 예정이다. 시민들이 즐기고 참여하는 문화의 일상화 시대도 연다. 다양한 문화 콘텐츠를 도입해 문화의 일상화를 실천할 계획이다. 우선 문화도시 공모사업 선정에 행정력을 모을 방침이다. 문화적 삶을 함께 누릴 수 있고 문화를 통한 지속가능한 지역 발전을 위해서다. 시민들이 원하는 문화를 시민들이 직접 참여해 추진하는 직접 문화시스템도 마련한다. 강릉아트센터의 격조 높은 공연과 품격 있는 전시로 강릉의 공연·예술 문화 수준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높일 계획이다. 생활체육시대도 열어 시민들이 편리하게 체육 활동을 즐기면서,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누리는 환경을 조성해 나갈 계획이다. 이를 위해 강릉 북부권 실내수영장 조성, 강릉테니스장 조성, 강릉아레나의 다목적 문화 체육시설 리모델링, 국민생활체육복합센터(장애인형) 건립 등을 추진한다. 오는 5일부터 개장하는 경포해수욕장 등 주변 해수욕장은 만반의 손님맞이 준비를 마쳤다. 해마다 600만명의 관광객이 찾는 경포해수욕장은 올 들어 처음 무료 해수풀장을 설치해 기상 악화에도 안전하게 물놀이를 즐길 수 있게 했다. 파도와 깊은 수심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영유아와 어린이 동반 가족들에게 희소식이다. 3년 전부터 운영되는 ‘해변송림 도서관’을 올해도 열어 피서객들에게 책 한 권의 여유를 갖게 했다. 해수욕장 전체를 금연구역으로 지정하고 별도의 흡연 부스를 설치해 운영한다. 안전사고 제로화를 위해 24시간 종합상황실을 운영하고 드론 인명구조대와 수상안전요원도 배치한다. 장찬영 도시재생과장은 “동계올림픽 이후 세계적인 도시로 자리매김한 강릉을 품격 있는 다양한 문화와 청정 자연자원을 활용해 최고의 도시로 다시 한번 도약시키겠다”고 말했다. 강릉 조한종 기자 bell21@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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