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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정한 권력투쟁가… 유례없는 반세기 독재/김일성 82년의 인생역정

    ◎유년 평양·만주 전전… 20세에 빨치산 활동/해방후 구소점령군 배경업고 권력장악/도전세력 가치없이 제거… 1인체제 구축/민족통일 빙자 6·25남침… 「전범」 낙인/67년 주체사상 만들어 사회주의 통치도구로 활용하기도 김일성.현대사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장기집권을 누린 독재자이다. 우리 민족이 일제로부터 해방된 지난 45년 소련군을 등에 업고 한반도의 절반인 북한땅의 통치자가 된 뒤 거의 반세기동안 무소불위의 절대권력을 휘둘러왔다.그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국가주석과 당총비서라는 사회주의 체제 특유의 어마어마한 권력집중적 직책도 모자라 북한주민들에게 「위대한 수령」,「민족의 태양」으로 부르기를 강요한 전제군주적 독재자였다. 김은 어찌보면 사이비 종교집단의 교주처럼 전지전능하고 무오류의 존재로 인식되도록 주민들을 세뇌시켜왔다고 할 수 있다.먹을 것이 모자라 하루 두끼 먹기운동을 벌이면서도 철저한 사상무장과 외부 정보통제로 주민들로 하여금 지상낙원에서 살고 있는 것으로 믿도록 만드는능력을 갖춘 인물이 바로 김일성이기 때문이다. 김은 1912년 4월15일 평양의 한 농가에서 아버지 김형직과 어머니 강반석을 부모로 하여 철주와 영주를 동생으로 둔 삼형제의 장남으로 태어났다.본명은 성주였으나 만주에서 빨치산활동을 할 때 일성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그에 대한 기록은 우상화과정에서 지나치게 미화되거나 엄청나게 날조되어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인지 분간하기가 어렵다.그의 출생지가 평남 대동군 룡산면 하리 칠골에 있는 외가라는 설이 있는가 하면 이름도 성주에서 일성을 거쳐 다시 일성으로 바뀌었다는 얘기도 있다. 어쨌든 김일성의 「공식」생가는 평양 대동강변 언덕에 자리잡은 지금의 만경대이며 이른바 「혁명의 요람」으로 북한의 모든 주민들에게는 참배의 대상이 되어왔다. 김은 어린 시절 한때 외할아버지가 개신교 장로를 지내는 등 독실한 기독교 집안인 외가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 강반석의 손에 이끌려 교회에 다니기도 했다. 그는 만경대에서 짧은 유년시절을 보낸 뒤 가족과 함께 만주로 이주했다.그후 김은 만주의 중국계 소학교인 모예산소학교,팔도구소학교와 평양근교 외가인 칠골에 있는 외조부 강돈욱이 교감으로 있던 창덕학교 등을 전전하며 파란많은 소년기를 보내다 26년 역시 중국계인 무송소학교를 졸업한다. 이후 32년 유격대활동에 적극 가담하기까지의 기간은 뚜렷한 활동이 확인되지 않고 있다.다만 북한에서 나온 그의 전기들은 이 기간중 장춘과 길림 사이에 있는 가륜에서 한인농민들에게 사상교화작업을 했다고 쓰고 있다. 그는 31년 중국 공산당에 입당,32년 중순부터 중국 공산당 산하의 항일 빨치산집단에 참여한다.이때 이름도 성주에서 일성으로 바꾼 것으로 보인다. 김의 항일투쟁경력은 그가 북한정권을 장악한뒤 유일체제를 강화하면서 그에 대한 우상화를 합리화하기 위해 터무니없이 과장·미화되었다.북한의 선전용 김일성 전기들은 만주사변이 일어난 32년 그가 조선공산당을 창설했다고 하지만 당시 불과 19세였던 그는 당시 그럴만한 힘이 없었다. 그는 20세가 되어서야 비로소 양세봉이라는 한인이 이끄는 유격조직에 들어감으로써 항일빨치산 생활을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이후 그는 중국공산당 산하 동북인민혁명군 제2군에 사병으로 들어가 활동하다 우수한 중국어 실력을 인정받아 나중에 대대장급으로 승진했다. 백두산을 중심으로 한 만주 일대에서 소규모 유격활동을 벌이던 김은 37년 유격대원 2백명을 이끌고 국경 마을인 함남 보천보를 습격했다.일본경찰지서와 우체국 등을 방화하고 추격해오는 경찰서장을 비롯한 일경 7명을 살해한 이른바 「보천보전투」를 벌여 순식간에 유명해졌다. 김은 이 전투가 자신이 참여한 빨치산 전투중 가장 성공적인 전투였다고 자랑하며 보천보에 자신의 동상과 혁명박물관까지 세우고 북한 주민들에개 참관을 강요했다.하지만 보천보사건을 일으킨 사람이 김일성이 아니라는 소수 의견을 내는 학자들도 있다.즉 보천보사건의 김일성은 그해 11월 죽었으며 그의 부하였던 사람이 소련으로 도피한 뒤 그의 이름을 도용했다는 주장이 그것이다. 보천보사건 이후 일본이 중국 본토 침략의 전초전으로 만주의 빨친산에 대한 대대적인 토벌전에나서는 바람에 동북항일연군은 급속히 와해되기 시작했다.때문에 김도 41년 8월 소련의 블라디보스토크 서쪽으로 피신해야 했다. 소련은 이 무렵 만주에서 일본과의 전쟁에 대비,중국인과 한인유격대원들을 모아 블라디보스토크 근교 등지에 「88독립저격여단」이라는 부대를 창설했다.김도 김책,최용건,이동화 등 빨치산 동료들과 함께 이 부대에 들어가 43년에는 대위급으로 진급한다. 김은 여기서 만주에서 함께 빨치산으로 활동했던 김정숙과 결혼했다.그녀는 16세 때인 35년에 김일성의 빨치산부대에 가담해 주방일 등 잡일을 보았던 여자였다. 김은 42년 그녀와의 사이에 첫아들인 정일(소련명 유라)을 낳았다.하지만 그녀는 49년 평양에서 사산아를 낳다가 사망했다. 해방과 함께 무명의 소련군 장교로 평양에 입성한 그는 이후 소련의 절대적 후원과 타고난 권모술수로 재빨리 권력을 장악한다.소련 점령군은 친소세력에 의한 공산정권 수립의 필요성에 따라 자신들의 협조자들 가운데 하나를 북한지도자로 만들려는 의도를 갖고 있었고 김이 바로 그같은소련의 의도를 기민하게 포착한 것이다. 소련점령군이 46년 2월 북조선 임시인민위원회를 만들어 김일성을 위원장으로 지명하면서 정치지도자로서의 그의 기반이 강화되기 시작했다. 김일성은 1949년 3월에서 4월까지 한달동안 자신을 도와준 소련에 감사를 표시하기위해 모스크바를 방문하고 돌아온 뒤인 6월 24일 북로당과 남로당 중앙위원회연석회의를 열어 당 위원장자리를 차지했다.이 회의에서 당의 명칭도 북조선노동당에서 조선노동당으로 바꾸었다. 당과 정부기관을 장악하는데 성공한 김일성은 자신에게 도전하는 세력을 가차없이 제거함으로써 자신의 권력을 아무도 넘볼 수 없는 것으로 만들었다.그는 자신에게 협력했던 인사도 자신에 도전할 정도로 위험하다고 생각되면 언제든지 숙청 또는 암살이라는 수단을 동원하는 일을 서슴지 않았는데 심지어 자신과 유격대활동을 함께했던 빨치산대원들까지 가차없이 제거하기도 했다. 그는 조만식과 같은 민족주의자뿐 아니라 박헌영,김두봉등과 같이 자신에게 협력했던 수많은 인물들을 한국전쟁에 대한패전책임을 덮어씌우거나 종파주의를 부추키고 있다는등의 갖가지 죄목을 걸어 제거함으로써 결국 북한정권을 족벌체제로 만들어버렸다. 그는 소련의 힘을 빌려 48년 북한정권의 초대수상에,49년 조선노동당 초대위원장에 오른뒤 도전세력들을 가차없이 제거하기 시작했다.그는 조만식 등 민족주의자는 물론 현준혁 등 국내파,박헌영 등 남로당계,김두봉을 위시한 연안파,허가이 등 소련파를 차례로 숙청해 결국 아무도 넘볼 수 없는 독재체제를 구축했다. 김은 자신의 권좌가 어느 정도 다져진 50년 6월25일 한반도의 적화통일이라는 자신의 야망을 실현하기 위해 마침내 무력 남침을 감행한다. 그 자신이 식은죽먹기라고 여겼던 적화통일이 유엔의 개입으로 실패로 끝났음에도 그는 전혀 책임을 느끼지 않았다. 김일성이 무력 적화통일이라는 야욕을 공공연히 드러내기 시작한 것은 1947년부터였다.그는 신년사를 통해 『단합된 민주조선의 건설은 남한에 있는 반동적인 매국노들에 대한 궁극적인 승리를 통해서만 가능하다』며 『그러기 위해서는 인민군과 보안대를 강화시켜야한다』고 역설했다. 김일성은 모든 상황이 유리하다고 판단,밤도둑처럼 새벽야음을 틈타 남침을 했으나 유엔군이 참전하고 중국의용군이 자신을 도와주러 왔을때는 이미 전쟁이 자신의 관리능력 밖에 있다는 것을 깨닫지 않으면 안되었다.국제정세를 너무 단순하게 보았던 판단착오의 결과였다. 김일성은 자신의 실수로 엄청난 결과가 빚어지자 동료들을 숙청했다.그는 1950년 12월 21일 강계에서 열린 중앙위원회 제3차 전원회의에서 그의 빨치산 동료들을 비롯한 거의 모든 사람들을 공격했으며 그 가운데서 김일,최광,임춘추,김열,무정등은 당에서 축출해버렸다. 김일성은 뒤이어 당의 재조직문제를 놓고 자신과 이견을 보인 소련파의 거두 허가이를 숙청했으며 박헌영을 비롯한 국내파들도 정부전복을 기도하고 미국을 위해 스파이활동을 했다는등의 죄목으로 체포해 사형에 처하는등 자신에게 도전하거나 더이상 쓸모가 없다고 생각되는 세력은 여지없이 제거하는 비정함을 보였다. 김일성은 50년대 중반 자신에게 정치적으로 도전하는 세력들을 숙청하기 위한 수단으로 「주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이래 67년에 「주체사상」을 만들어 냈으며 72년에 와서 북한의 사회주의헌법에 통치이념으로 명문화시켜 통치의 도구로 사용했다. 그러나 이같은 주체사상과 김일성에 대한 극단적인 우상화가 맞물리면서 북한정권이 안에서부터 서서히 허물어지는 요인이 됐다. 북한의 선전매체들이 김일성에 대해 『가랑잎을 띄우고 대하를 건너가는 만고의 영웅이며 그가 한번 노려보기만 하면 원쑤도 가을 풀같이 쓰러진다』고 보도할 정도로 북한은 이후 유사종교집단적 사회구조를 띠면서 경직적인 김일성 1인체제가 굳어지기 시작했다. 70년대 이후 김일성은 남한과의 체제경쟁에서 완전히 밀리면서 철저한 폐쇄체제로 주민들을 통제하면서 다른 한편 아들인 김정일에게로 후계세습작업을 가시화하기 시작했다. 김일성은 나름대로의 준비과정을 거쳐 지난 72년 12월 비공개리에 당중앙위 전원회의를 거쳐 김정일을 자신의 후계자로 내부적으로 결정했다.그도 소련의 스탈린 등의 전례를 보고 자신의 사후에 대해 대비를 시작한 것이다.다시 말해 스탈린 사망후 대대적인 격하운동에 충격을 받은 김이 사후 안전판으로 세계사에 유례없는 부자간 권력승계라는 희화적 구도를 상정하게 된 것이다. 어쨌든 그는 자신에 대한 우상화 이상으로 김정일에 대한 상징조작을 단계적으로 확대해나가면서 권력을 하나씩 아들에게 이양하기 시작했다.김정일에 대한 호칭을 「당중앙」에서부터 「경애하는 지도자 동지」,「향도의 별」 등으로 격상시켜나가면서 노동당 조직비서(73년),노동당 정치 상무위원회 위원(80년),인민군 최고사령관(91년),국방위원장(93년) 등 핵심요직을 하나하나 물려주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북한주민들에게 「살아있는 신」으로 우상화작업을 펴온 김일성도 끝내 죽음을 거부할 수 없는,한 평범한 인간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그 자신도 70년대 이후 각종 질병에 시달리면서 건강유지에 발버둥쳐온 사실이 이를 말해준다. 김일성의 질환은 지난 73년께부터 확인된 뒷머리의 혹에서부터 고혈압·당뇨·난청·신경통·뇌일혈을 비롯해 그를 8일 새벽 마침내 죽음으로 몰고간 심근경색 등 10여가지에 이르렀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어쨌든 그는 분단 반세기만에 초유의 역사적 사건인 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급사했다.그를 갑작스런 죽음으로 몰고간 원인이 그의 일생일대의 도박이라고 할 수 있는 정상회담에 대한 준비과정에서의 과로 때문인지,아니면 경제난과 대외적 고립에 따른 누적된 스트레스 탓인지는 아무도 모른다.죽은 자는 말이 없기 때문이다. 다만 분명한 것은 북한주민들에게 영생불사의 존재로 신격화된 그도 죽음 앞에 아무도 예외일 수가 없다는 철리를 그의 맹목적인 추종세력들에게 마침내 일께워 준것이다. 그의 공과는 후세의 사가가 엄정하게 평가해줄 것이다.그가 역사의 장에 어떻게 기록되든 과대망상에 빠진 권력의 화신이었다는 사실은 동시대를 사는 우리 모두에게 이미 뚜렷이 각인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김일성 연표◁ △1912.4.15 평남 대동군 고평면 남리 만경대출생(본명은 김성주) △1923 만주 장백현 팔도구 소학교 졸업 △1926 만주 길림 육문중학 중퇴,재학중 공청 가입 △1930 김성주를 김일성으로 개명 △1931 중국공산당 입당 △1932 중국공산당 조선인부대 지대장 △1935 김일성으로 재개명 △1936 조국광복회 조직 △1937.6 함남 보천보 습격 △1937.9 함남 증평리 습격 △1940말 소련으로 망명 △1945.8 소련군 소좌 △1945.9 소련점령군 비호하 입북 △1945.10 조선공산당 서북5도당책임자 및 열성자대회 참석 △1945.10 「김일성장군」환영 평양시군중대회에 등장 △1945.12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 책임비서 △1946.2 북조선 임시인민위원회 위원장 △1946.7 북조선 민주주의민족통일전선의장단 의장 △1946.8 북조선노동당 부위원장 △1947.2 북조선 인민위원회 위원장 △1948.8 최고인민회의 제1기 대의원 △1948.9 수상(제1차 내각) △1949.3 경제문화 협정체결차 소련방문 △1949.6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위원장 △1950.6 군사위원회 위원장 △1950.7 인민군 최고사령관 △1953.2 원솔칭호 △1953.7 영웅칭호 △1956.4 노동당 중앙위원회 위원장 △1957.9 수상(제2차 내각) △1957.11 당 및 정부 대표단장으로 소련 10월혁명 40주년 기념식 참석 △1959.1 소련 제21차 공산당대회 참석 △1959.9 중국 정권창건 10주년 기념식 참석 △1961.7 우호협조 및 상호 원조조약 체결차 소련 중국 방문 △1961.9 노동당 중앙위원회 위원장 및 정치위원회 위원장 △1961.10 소련공산당 제22차대회 참석 △1962.10 수상(제3차 내각) △1966.10 노동당 중앙위원회 총비서 △1967.1 소련방문 △1967.12 수상(제4차 내각) △1970.11 노동당 총비서 겸 정치위원 △1972.12국가주석 △1972.12중앙인민위원회 위원겸 국방위원회 위원장 △1975.4중국방문 △1975.5루마니아·알제리·모리타니·불가리아·유고 순방 △1977.11국방위원회 위원장 △1977.11인민군 최고사령관(원수) △1977.12 국가주석 △1980.5 유고 티토대통령 장례식 참석 및 루마니아 방문 △1980.10 노동당 중앙위원회 위원 △1980.10 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위원·총비서·군사위원장 △1982.4 국가주석 △1982.9 중국 방문 △1984.5 소련등 동구권 8개국(소련·폴란드·동독·체코·헝가리·유고·불가리아·루마니아)순방 △1986.10 소련 방문 △1986.12 국가주석 △1988.6 몽골 방문(중국·소련 경유) △1989.11 중국 방문 △1990.5 국가주석 △1991.10 중국 방문 △1992.4 대원솔 칭호 △1993.4 「전민족 대단결 10대강령」발표 △1994.4.8 사망
  • YS의 통일경쟁력/최평길(시론)

    북한지도부는 한국과 러시아 및 중국의 수교로 3백60도 외교포위를 당한데다 바닥이 드러난 경제,서독식 흡수 통일에 대한 위기의식,정권승계의 부담 속에서 가장 경제적이며 가장 파괴력이 있는 방편으로 「핵」을 선택하게 되었다.최근 평양주재 러시아대사관 공사로 근무하다 귀국한 제니소프 러시아 외무부국장은 한달전 필자에게 『북한 정부의 과장급 이상은 남한 주도의 현실성있는 통일에 일종의 공포감을 느끼고있다』고 북한의 내부사정을 말한 바 있다. 이에반해 한국은 북한핵 개발에 미국이 무력대응을 할 때 발생가능한 전쟁공포감에 시달리고 있다.6·25에 대한 연상과 최신의 무기 때문에 일반 국민들은 더욱 공포감을 느끼는 듯 하다.그러나 체제붕괴,흡수통합,전쟁 공포의 삼중 공포감에 시달리는 북한이 보다 어려운 위치에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 시점에서 남북정상회담이 북한의 제의로 추진되고 있다.북측의 경우 안병수·백남준 회담꾼 말고 이번 예비회담에 나오는 김용순은 실세 중의 하나이다.김일성대학 출신으로 해외유학이나 재외공관근무경험이 없는 국내파이긴 해도 노동당 국제부장이였으며 해외감각이 있고 불어에도 능통한 김용순 최고인민회의통일정책위원장이 예비대표로 온다니 무게는 다소 실리는 것 같다.1990년말 루마니아 차우세스쿠가 무너지고 체코의 무명 지하 극작가 바츨라프 하벨이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을 때 이를 감지하지 못한 구 소련 KGB나 외무부,당 외교 계통에서는 대경실색하여 다음의 민주화 대상국은 북한으로 보아 고르바초프의 직접 명령으로 소련 공산당 국제부 극동본부의 트카첸코 본부장은 김일성 이후 차세대 지도자 후보 1백인 리스트를 만들었는데 10위권 이내에 김용순이 있었다고 말한 바 있다. 민족주의자 조만식·국내 공산파 현준혁·소련파 허가이·연안파 김두봉·자기식구 박금철·심지어 신세대 이용무 장군까지 서로 이간시켜가며 숙청의 무대에서 방어자로 자란,그리고 중국과 러시아의 비위와 수모와 권력이동을 교묘히 이용해 오며 북한의 예수로 자처하는 80고령의 김일성은 중학교육을 받았으며 일제하의 민족 게릴라출신의 노쇠한 우회 돌파형의 정치술수가이다. 해방세대의 대학교육을 받고 야당의 정적을 처리하고 정보정치속에서 줄기찬 도전자로 성장한 투사형 김영삼대통령은 정면돌파의 정치전략가이다. 체제붕괴와 세습체제 종말,남한에 의한 흡수통합,핵무기제조로 승자도 패자도 없는 전쟁공포의 3중고에 시달리는 김일성에게 김영삼대통령이 주저하거나 일말의 불안감을 가질 하등의 이유가 없다.따라서 가능하면 판문점이나 개성 정도에서 7월중에 북미회담과 맞물린 정상회담을 하되 시간과 장소에 너무 구애받을 것이 없다.오히려 느긋한 쪽은 남한이며 김영삼대통령 쪽이다. 그러나 반드시 관철해야 될 일은 회담의제이고 처음 만남에 간결하고 정확한 메시지가 담겨야 하는데 여기서는 다음의 다섯가지 의제를 제시하고 분명히 설명해야 될 것이다. 첫째는 북한이 핵무기제조를 중단하고 그간의 경위를 소상히 IAEA는 물론 남한에도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과 그것이 불이행될때 남한도 단시일내에 북한보다도 더 빨리 핵무기제조를 할 수 밖에 없음을 통고해야 할 것이다.특히 제조능력은 갖추고 있더라도 만들지는 않는다는 메시지를 주어야 한다.둘째 정권승계나 경제난·대중봉기 등 북한의 혼란이 있다해도 경제원조 등은 있어도 남한이 먼저 의도적으로 흡수통일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현재의 남한경제여건과 남한 국민이 통일비용부담을 탐탁치 않게 생각하고 있다는 점에서 분명히 밝혀야 한다.셋째 무슨일이 있어도 남북한 관계는 전쟁이 아닌 평화적 해결이며 그 실질적·상징적 표상으로 남북한 정상 핫라인을 개설하여 항시 두 정상이 전화로 통화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넷째는 이렇게 될때 북미간의 외교수립이나 국제관계에서 남한이 협조해야 할 것이며,다섯째는 군축·남북경제·사회·문화교류,특히 북한이 원하는 식량·원유원조·남북교역·두만강 특구 등 모든 경제교류 협조의 일대 물꼬를 트는 대담한 큰 정치 회담을 이끌어야 될 것이다. 통일시대의 YS와 IS의 대좌가 임박한 이때 YS의 국제경쟁력 향상,국내 정치 주도권 장악에 이어 자유민주체제를 위한 통일정국의 장악력을 기대해 본다.
  • 포항공대 총장/국내 첫 공모 마감… 관심 집중

    ◎“자천타천” 석학 10여명 경합/학교측,후보 4∼5명 선정후 재단에 일임 「한국의 MIT」로 불리는 포항공대의 총장 공개모집이 22일로 마감됐다. 지난 4월30일 김호길초대총장이 체육대회 행사중 불의의 사고로 급서한 뒤 국내사상 처음으로 총장의 공모에 나서 주목을 받은 포항공대에는 이날까지 10명안팎의 인사가 자천타천으로 총장후보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학교측은 후보자명단을 공개하지 않았으나 이중에는 장수영현부총장외에 국내외 저명 과학자·석학들이 다수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주변에서 거론되던 고김총장의친동생 김영길박사는 최근 설립된 한동대총장으로 내정되고 고김총장과 막역한 사이였던 조순전부총리는 후보신청을 내지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학교측은 지난달 25일 총장공모 사실을 발표하며 염영일교무처장(52)등으로 구성된 9인의 총장추천위원회가 총장선임과정의 압력과 청탁을 배제하기 위해 후보자 명단과 심사기준을 일체 비밀에 부치기로 함에 따라 뚜껑을 열었을 경우 의외의 거물총장 탄생가능성을 배제할수 없다. 학교측은 후보자의 학문적 업적과 인품,경영능력은 물론 신임총장이 향후 10년간 포항공대를 이끌어가야 한다는 점에 비춰 연령까지 심사기준으로 삼고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학교측은 심사를 거쳐 오는 7월20일까지 4∼5명을 총장후보로 선정,재단측인 제철학원에 넘겨 포항제철회장이자 재단이사장인 김만제회장에게 2학기 전에 총장선임을 맡길 계획이다.
  • “대원군 호칭은 합하”/운현궁 복원중 상량문 2장 발견

    ◎지위는 만조백관의 으뜸/운현궁 건축연대 밝혀져 흥선대원군 지위는 「백료들의 열위 위에 으뜸이다」라고 밝힌 운현궁 상량문이 발견됐다. 서울시는 지난 6월초 대원군의 사저였던 운현궁의 복원공사중 사랑채인 노안당과 안채인 이로당에서 각각 발견된 상량문을 20일 공개했다. 이 상량문은 운현궁의 건축연대는 물론 대원군의 구체적인 지위와 대원군시대의 역사연구에 귀중한 사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날 공개된 노안당 상량문은 가로 1백50㎝ 세로 97㎝의 중국산 붉은색 비단위에 김이해서체로 29행 6백61글자가,이로당의 상량문은 가로 1백65㎝ 세로39.5㎝의 고급 닥나무 종이위에 예서체로 6백63글자가 쓰여져 있다. 노안당과 이로당의 상량문을 해석한 서울대 이태진교수(국사학)는 『노안당의 상량문에서 대원군의 지위를 「관백료열위지상」이라고 구체적으로 밝혀 고종초 10년간 정치를 주도했지만 왕조실록등 정사의 기록은 대부분 국왕의 이름으로 행해져 그동안 파악하기 어려웠던 대원군의 실제지위에 대한 문제점이 해결됐다』고 밝혔다.또 이들 상량문은 지금까지 추정으로만 알려진 운현궁의 건축연대를 「노안당의 상량일은 고종즉위 4개월째인 원년(1864) 3월23일로,이로당의 상량일은 고종6년(1869)」이라고 정확히 밝혀 운현궁이 그동안 「고종이 출생해 12세까지 성장한 곳」이라고 전해진 것과는 달리 실제로는 고종이 즉위하기전 거주하지 않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와함께 이날 공개된 상량문에는 대원군의 집안내력과 인품·중국 고대 고사등을 인용,고종이 왕위 계승자로 지명된 배경을 서술하는등 즉위당위성에 상당부분을 할애하고 있다.이밖에도 운현궁 상량문은 재위중인 왕의 생가이자 정사의 주체인 대원군의 거처를 위해 특별제작,크기와 재료는 물론 글자수·필서등이 보통 사대부집 상량문과는 크게 달라 문화재적 가치로서도 귀중한 재료가 될 것으로 이교수는 밝혔다. 지난해 12월부터 복원공사를 시작한 운현궁은 사적 제257호로 현재 지붕및 벽체 해체작업이 한창이며 95년 12월 복원공사를 마무리한 뒤 대원군의 유품전시등 생활상 재현·전통예절 교육장등으로 일반에 공개된다.
  • 장삿속에 환경보호 외면한다

    ◎백화점/상품 과대포장일쑤/패스트푸드점/1회용품 사용 여전/종이컵 등 쓰레기 하루 수백㎏/푸드점/말로만 “그린”… 재활용은 기피/백화점 세계환경의 날(5일)을 맞아 각종 기념행사와 환경보호운동이 활발하게 펼쳐지고 있지만 1회용품과 과대포장등 쓰레기 다량 발생의 상행위가 개선되지 않아 환경보호의 생활화는 요원한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백화점의 포장물수거·쇼핑백 안쓰기는 자사 이미지제고를 위한 일과성 캠페인에 지나지 않으며 패스푸드점은 1회용 용기를 아무 제약없이 마구 쓰고 있어 쓰레기 발생을 가중시키고 있다. 백화점 환경운동연합(공동대표 장을병)이 지난달 서울시내 10개 백화점을 대상으로 「백화점 환경실천실태」를 조사,4일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모든 백화점이 자연분해성 비닐백을 사용하고 있으나 재생용지로 포장지를 사용하는 곳은 그레이스백화점과 갤러리아백화점뿐이었으며 광고전단지를 수거하는 곳은 신세계백화점등 2곳뿐이었다. 장바구니를 제공하고 이를 사용하는 고객을 우대하는 제도를 시행하는 백화점은 뉴코아,미도파,갤러리아,현대등 4곳이었으며 자사 판매상품의 포장물을 수거하는 곳은 신세계와 현대백화점등 2곳에 불과,대부분의 업체가 과대포장을 줄이기 위한 노력이 미흡한 것으로 지적됐다. 또한 재생화장지,폐유를 이용한 비누,재생문구류등 재생용품만을 판매하는 매장을 따로 설치,운영하는 곳은 그레이스,미도파,쁘렝땅,갤러리아등 4곳이었으며 나머지 백화점들은 재활용품교환행사를 일회성으로 끝내고 있어 각 백화점들이 앞다투어 내세우고 있는 「그린백화점」이미지와는 거리가 먼 것으로 밝혀졌다. ▷푸드점◁ 최근 성업중인 편의점이나 패스트푸드점들은 1회용품을 마구 쓰고 있어 이에 대한 규제가 시급하다는 지적이 높다. 정부는 쓰레기발생량을 줄이기 위해 지난해 6월말 「자원의 절약과 재활용촉진에 관한 법률」을 제정,식당·목욕탕등 공중위생업소에서 1회용품의 사용을 억제하고 있으나 용기등 모든 보조재료를 1회용품으로 사용하는 이들 즉석식품점의 경우 일반요식업소·목욕탕등에 비해 쓰레기발생량과 환경오염도가 훨씬 많은데도 당국은 아무런 대책을 세우지 않고 있다. 현재 서울에는 세븐일레븐·LG25·훼미리마트·써클K·바이더웨이·원스톱등 편의점 수가 5백개를 웃돌지만 매장에 분리수거용 쓰레기통이 없어 고객들이 분리배출에 참여하고 싶어도 불가능한 형편이다. 특히 이들 매장들은 2∼3개의 쓰레기통만 비치할 뿐 분리수거함은 아예 찾아볼수 없다. 이들 편의점의 주요 이용객이 초·중·고생등 젊은 층이어서 교육적 측면에서도 편의점의 분리수거는 물론 1회용품사용억제가 시급한 실정이다. 부산지역의 경우도 L·M·O등 유명 패스트푸드 체인점이 1백여개에 이르나 이들 업소에서는 음식을 담는 용기를 비닐·합성수지·종이류등 재생가능한 1회용품을 사용하면서도 분리수거를 하지 않는 것은 물론 재활용방안은 전혀 마련하지 않고 있다. 이에대해 M체인 관계자는 『영업에 관련된 모든 물자를 미국본사로부터 공급받기 때문에 국내법에 따른 쓰레기감량이나 재활용 방안마련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밝혔다.
  • 과천정부청사 「경쟁력강화 토론회」

    ◎개성파 차관 4총사/“불꽃튀는 경제특강”/강골·단칼 등 별명 걸맞게 “말의 성찬”/복지부동·개방미흡 통렬한 자성도/정 부총리 “후배가 두렵다” 시종 즐거운 표정 과천 관가의 「말의 성찬」­. 4일 과천 정부청사에서 열린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한 정책토론회」는 한리헌기획원,김용진재무,이석채농림수산,박운서상공자원부차관 등 이른바 경제부처의 「개성파 차관 4총사」가 나서 불꽃 튀는 특강을 통해 경제국제화의 방향을 제시한,훌륭한 토론마당이었다. 정재석부총리를 비롯해 홍재형재무·최인기농림수산·서상목보건사회·남재희노동부장관과 경제부처 3급 이상 간부 1백64명이 모두 참여,단합을 과시하며 여러 화제를 낳았다. ○…하이라이트는 「싸움닭」 또는 「다혈질」로 불리는 핵심 경제차관 4명의 릴레이 강연.상오 9시부터 30분씩 이어진 특강은 마치 후보들의 정견발표나 부처별 대표선수들의 실력 겨루기를 방불케 했다. 처음 나선 한리헌기획원차관은 「강골」이라는 별명답게 공직사회의 복지불동 현상과 관련,『과거에는 부정부패가 공무원 사회의 인센티브였으나 문민정부 들어 인센티브가 없어지자 「금단현상」 속에서 방황하고 있다』 『우루과이 라운드(UR)등 급속한 국제사회의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고 통렬하게 자성한 뒤 『국제화는 개방과 개혁의 조화이며 과천청사의 공직자부터 사고를 개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단칼」로 불리는 김용진재무부차관은 『아직도 우리는 대원군 시대를 사는 느낌』이라며 개방의 미흡함을 비유한 뒤 『그동안 우리 경제는 40점짜리 아이를 80점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스파르타식 교육을 했으나 앞으로 우등생이 되려면 마음보다 행동,또 제도와 관행이 확실히 변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다소 지루해질 무렵,속사포식 달변가인 이석채농림수산부차관(미보스턴대 경박)은 『차관에 취임한 뒤 열흘밖에 안 됐으므로,허락해 준다면 「경제학도 이석채」의 입장에서 평소 생각을 말씀드리겠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낸 뒤 『개방시대에 본인은 삼국지의 제갈량이 되고자 하며,결론은 우리 농업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이라며 자신감을 피력. 한번 물면 놓지 않는다고 해서 「타이거박」이라는 별명을 가진 박운서상공자원부차관은 앞서 재무부 김차관이 금융을 인체의 혈액에 비유한 것을 빗대 『경제의 혈액인 금융이 실물에 피는 대주지 않고 물만 잔뜩 먹이고 있다』고 가시돋힌 공박을 해 폭소가 터졌다.곧 이어 『쌀 시장을 개방하는 마당에 돈은 왜 수입개방을 않느냐』고 따지는 등 상업차관 허용문제 등 재무부의 정책을 「마음껏」 비판. ○…특강이 끝나자 참석자들은 10개조로 나뉘어 40여분씩 분임 토의를 마친 뒤 정재석부총리 주재로 청사 구내 식당에서 오찬. 정부총리는 식사를 마치고 폐막 예정인 하오1시가 되자 『1시가 넘으면 차수가 변경되니 1분만 얘기하겠다』고 말해 폭소를 자아낸 뒤 강평을 통해 『후생가외(후배가 두렵다)』라며 차관들의 강연내용에 후한 점수를 주고 다음에는 차관보와 국장에게도 기회를 주겠다고 약속. 정부총리는 또 강연 도중 남재희 노동장관이 『차관들 오디션(심사)을 하느냐』고 묻자 『누가 차기(기획원)차관인가를 보고 있다』고 조크를 건네는 등 시종 즐거운 표정. ○…한편 토론을 마친 관리들 사이에서는 강연에 나선 차관들이 새로운 시각에서의 접근과 구체적인 실례 등으로 분위기를 여유있게 끌고 가는 등 당대의 「논객」으로서 진면목을 유감없이 발휘하자 「차관들의 전성시대」라는 말이 나돌기도. 일부에서는 『어느 차관이 가장 낫다』는 식의 점수매기기에 열을 올렸는데 한 참석자는 『한차관이 정치인의 비유법스타일 강연인 반면 이차관은 수준 높은 강의스타일,박차관은 활달한 자유토론 식이었다』고 평가. 그러나 박차관이 김차관의 말을 인용하면서 상업차관 불허에 대한 불만을 내비친데 대해 재무부 관리들은 『산업정책 때문에 금융산업이 희생 돼 왔는데 무슨 뚱단지 같은 소리냐』며 즉각 매서운 반격.
  • “개만도 못한…”/김문수(일요일 아침에)

    임어당의 수필 「중국의 개 이야기」에 「우룡」이라는 개가 소개되어 있다. 중국의 삼국시대 제씨가 기르던 그 개는 늘 주인을 따라다녔다.그러던 어느날 제씨가 술에 곯아떨어져 교외의 들판에서 잠이 들고 말았다.그런데 때마침 그 지방의 태수가 사냥을 나와 들판에 불을 질렀다.우룡은 위험을 느껴 주인의 옷을 물어 당기는 등 온갖 방법을 다 썼으나 허사였다.우룡은 할수없이 그곳에서 25m쯤 떨어진 웅덩이로 가 온 몸에 물을 묻혀 주인 주변에 뒹굴어 잔디밭을 적셨다.그런 일을 수없이 반복했으므로 들불은 제씨가 누워있는 곳까지 번지지를 않았다. 이튿날,제씨가 눈을 떴을 때 이미 우룡은 지쳐서 죽어 있었고 사방이 불에 타 있었으나 자기가 누워 있는 주변만은 물에 흥건하게 젖어 있었다.그는 우룡이 자기를 살려 놓고 죽은 것을 알고 목놓아 울었으며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태수에게 탄원하여 사람처럼 관에 넣어 정성껏 장례를 치렀다.그 무덤이 지금도 제남이라는 곳에 남아 있다고 한다.그런데 이상한 것은 이와 똑같은 내용의 전설이 우리나라에도 곳곳에 널려있고 무덤 앞에는 의구총이라 새겨진 비석까지 세워져 있다.경북 선산군 도개면의 의구총을 비롯하여 전북 임실군 오수면,전남 낙안읍성,충남 부여군 홍산면에도 있다.이북에도 평남 용강군,평양 선교리에 이런 의구총이 있다고 한다. 이렇듯 똑같은 전설을 지닌 의구총이나 의구비 또는 의구탑이 곳곳에 널려 있으니 그 전설의 사실성 여부가 의심스럽지 않을 수 없다. 만약 우리나라의 의구총들이 중국의 「우룡」이라는 충견의 얘기를 모방한 것이라면 왜 모방했으며 또 왜 전국 곳곳에 그런 무덤들을 만들게 했는지 궁금하기 짝이 없다. 충견의 이야기를 매개로 백성들에게 충효사상을 진작시키려는 목적의 가짜 의구총,가짜 의구비일 수도 있겠고 또는 그곳에서 개만도 못한 사람이 어떤 사건을 일으켰기 때문에 그 고장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불어넣기 위해 국가시책으로 세우게 했을 수도 있다는 추리가 가능하다.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 여러곳의 의구비,의구총,의구탑이 지닌 전설이 그토록 똑같을 수가 있단 말인가.만약 그렇다고 한대도상속을 노리고 부모를 살해한 박한상의 이 천인공노할 패륜과 같은 사건은 아니었을 것이다.아마도 박한상은 역사 이래 가장 극악무도한 패륜일 것이다. 그가 범죄를 저지른 때가 어버이날이 들어 있는 가정의 달 5월임을 생각하면 더욱 더 몸서리가 쳐진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끔찍한 사건이 발생한 원인에 대해 황금만능주의,교육부조리,과보호,도피성 외국유학 등을 들어 입을 모으고 있다.필자도 물론 동감이다.그러나 나는 그런 원인에다 또 한가지 중요한 원인을 덧붙이고 싶다.그것은 다름 아닌 우리 사회가 조장한 잔인성이 바로 그것이다. 어릴때부터 전자오락실에서 몸에 배게 만드는 잔인성,영화관에서의 그 잔인한 살인장면… 그렇게 자란 아이들의 심성이 어떻겠는가. 기성세대들은 가난했을망정 자기네가 자라던 옛날이 좋았다고 말한다.그러나 그 시절이 반드시 모든 사람들에게 있어 다 좋았던 시대는 아니다.또 인류는 과거의 역사나 문화에만 집착할 수가 없는 것이다.나라의 장래를 위해서 고도의 기술진보도 필요하며 산업화도 필요한 것이다.다만 그 기술과 산업의 그늘 때문에 미풍양속이나 전통문화가 고사하는 것이 탈인 것이다.도덕적 향상이 뒤따르지 않는 산업·기술의 발달은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공자의 말씀대로 「하늘이 친 그물은 하도 커서 엉성한 것 같지만(천망회회)그 그물을 빠져나갈 수 있는 것은 없기(소이불루)」때문에 극악무도한 패륜이 밝혀졌지만 앞으로 또 이런 패륜이 저질러지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다. 물론 대부분의 신세대들의 삶은 밝고 믿음직스러워 기성세대들로 하여금 문자 그대로 「후생가외」를 느끼게 하지만 이렇듯 존경스러운 마음이 아닌 「후생가공」을 느끼게 한다면 나라의 장래가 어떻게 될 것인가. 후생들에게 공포를 느끼지 않으려면 그들의 덕육이 최우선이다.
  • 도피성 유학 병폐(인성위기 신세대:상)

    ◎그들의 충격적 행태 긴급 점검/“공부는 뒷전”… 마약·도박 탐닉/문화·환경적응 못하고 탈선 예사/“도덕성 없다”… 교민들,접촉 기피 한약상부부 피살사건은 미국유학중이던 23세의 아들이 재산상속을 목적으로 저지른 범행으로 밝혀져 충격을 주고 있다. 이번 사건은 일부 부유층 자녀들이 무작정 유학길에 올라 현지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사치와 낭비로 방황하고 있어 문제가 되고있는 가운데 목적을 위해서는 무슨 짓이든지 하고자 하는 일부 신세대의 비뚤어진 의식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을 더해주고 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인성위기 신세대」란 주제로 방황하는 해외유학파,잘못된 자녀교육,이상보다는 쾌락이 좋다등 3회에 걸쳐 일부 부유층 자녀들의 탈선 실태와 원인을 점검한다. 무분별한 해외유학이 청소년들을 망치고 있다. 해외유학 문호가 개방되면서 일부 부유층 자녀들의 「도피성 해외유학」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고 최근에는 대학진학에 실패한 학생은 물론 성적이 부진한 고교 재학생까지도 미리 미국등 해외에 유학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앞뒤 가리지 않고 무작정 유학을 떠난 청소년들 가운데에는 언어장벽때문에 학업에 흥미를 잃거나 갑작스런 문화·환경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해 학업은 뒷전으로 하고 도박과 약물에 탐닉,신세를 망치는 일이 허다하며 일부 여자유학생들의 경우는 외국인과 동거생활까지 하는등 탈선의 길을 걸어 「유학 만능주의」에 경종을 울리고 있다. 한약협회 서울시지부장 박순태씨(48)부부 살해범인 박씨의 장남 한상씨(23)는 그 대표적 경우다. 한상씨는 지방에 있는 W대학 토목과를 휴학,군복무를 마친뒤 『지방에서 학교다니기가 힘들다』며 복학을 하지 않고 집에서 빈둥거리며 놀았고 이를 보다 못한 아버지 박씨는 『차라리 미국 유학이나 가라』고 말했다. 그러나 한상씨가 지난해 유학준비과정으로 어학연수를 받기 위해 들어간 로스앤젤레스의 프레즈노 퍼시픽컬리지 부설 어학원은 미국 현지에서도 거의 무명에 가까운 교육기관이었다. 한상씨는 유학간지 불과 1년도 안돼 친구들과 도박에 빠졌고 나중에는 라스베이거스에서 포커도박을 하다 거액을 날리고 돈을 마련하기 위해 부모를 살해하는 패륜아로 전락했다. 그가 경찰에서 『미국사회는 도박이 자유스럽고 나와 같은 입장의 한국 유학생들은 한꺼번에 보내오는 생활비등 목돈을 만질 기회가 많아 항상 도박의 유혹이 있었다』고 말한 사실은 유학생들이 얼마나 도박에 손대기 쉬운 환경에 처해 있는가를 말해준다. 실제로 도박으로 유명한 뉴저지주의 애틀랜틱시티에서는 지난해 국내 모재벌의 회장 아들이 도박으로 수만달러를 날리고 서둘러 귀국했다는 얘기가 공공연히 나돌았을 정도이다. 게다가 뉴욕의 경우 맨해튼 42번가의 지하철역이나 고속버스역등을 중심으로 포르노나 마약,마리화나에 빠져 「젊어서 놀만큼 놀아보자」는 식으로 방탕한 생활을 하고 있는 유학생들이 상당수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뉴욕 컬럼비아대에서 1년간의 어학연수를 마치고 지난해 돌아온 이경희씨(24·여·연세대졸)는 『대다수 유학생들이 온갖 어려움속에서도 학업에 열중하고 있는 반면 일부 몰지각한 유학생들이 외국의 자유분방한 겉모습에 빠져 고급승용차를 몰고 다니며 도박과 마약에까지 손을 대는등 방탕한 생활을 하는 경우가 많아 가슴아프다』면서 『특히 여자유학생들가운데 일부는 외로움때문에 외국인과 동거까지 한다』고 말했다. 최근 북경의 B대학에 재학중인 1백30여명의 한국유학생가운데 약 40명이 6시간이나 시험을 거부하며 연좌농성을 벌여 중국학생들을 놀라게 한 일이나 천진에서 한국학생들끼리 패싸움을 벌여 4명의 학생이 중상을 입은 사건등은 해외유학의 문제점이 얼마나 심각한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지난 1월21일 서울 신사동에서 그랜저 승용차를 타고 유흥가를 돌아다니던 해외유학중인 재벌2세들이 자기차 앞으로 끼어들었다는 이유로 프라이드를 몰고가던 청년을 벽돌과 각목으로 집단구타한 사건도 「엉터리 유학생」들의 비뚤어진 행태를 드러낸 경우였다. 지난해 미국 시카고대학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대학원 진학을 준비중인 강재원씨(27)는 『최근 유학생들이 윤리와 도덕성을 내팽개쳐버리고 도박과 향락에 빠져드는 경우가 흔히 있어현지 교민들이 이들과의 접촉을 꺼리는 현상마저 있다』면서 『충분한 준비없는 도피성유학은 자제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교육전문가들은 『이러한 유학생들의 탈선행위는 단순히 특정 학생이나 학부모들의 잘못된 인식때문이지만 「돈만 있으면 교육은 저절로 된다」는 식의 그릇된 교육풍조가 어느새 우리 사회전반에 물들어 있다는 증거』라면서 『해외유학제도를 면밀히 재검토하여 개선책을 마련하는 일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 독 아우디/알루미늄차 대량생산 “시동”

    ◎10년 연구끝에 제작비 대폭 낮춰/열효율 높고 재생가능… 타사 모방 잇따를듯 독일의 아우디사는 차체가 번쩍이는 흰 알루미늄만으로 제작한 미래형 자동차 A8­Audi의 대량생산 공장을 준공함으로써 자동차공업의 혁명을 이루었다는 찬사를 받고있다. 아우디의 기술진들은 지난 10년간의 연구 개발끝에 자동차의 차체와 새시를 모두 알루미늄으로 바꾸는데 성공하고 올봄부터 독일의 소에스트에 A8­Audi라는 신형 알루미늄 자동차의 대량생산공장을 가동했다. 지난 1917년 미국의 도지형제들이 목제였던 자동차의 차체를 철제로 개발한뒤 80년 가까운 세월동안 철제는 모든 자동차의 기본형이었으나 금속과 야금술의 비약적인 발달로 현대 기술은 알루미늄만으로도 자동차를 만들 수있게 되었다. 그동안 자동차의 제작에는 철보다 값이싸며 강하고 대량생산을 할 수있는 대체금속이 없어 철이 주종을 이루었으나 경주용 자동차들이 차체의 무게를 줄이기위해 알루미늄으로 보디와 프레임을 만들기 시작하면서 알루미늄이 새로운 자동차의 재질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지난 80년대 일본의 혼다는 고성능의 스포츠 카 아쿠라 NSX를 알루미늄으로 제작함으로써 주목을 받았으나 생산비가 비싸 대중화하는 데는 실패했다. 알루미늄은 철보다 가벼워 완성된 차가 철로 만든 차무게의 70%밖에 되지않아 연료소비가 적고 또 폐차가 된 뒤에는 다시 재생해서 쓸 수 있는 이점이 있다. 그러나 알루미늄을 자동차에 사용하기 위해서는 몇가지 전제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즉 알루미늄을 사출 성형하는 기술이 필요하며 표면에 특수 코팅과 도금을 할수 있는 기술이 있어야 한다. 또 강한 강도를 필요로 하는 차부품의 연결부분은 얇으면서도 마모되지 않게 하고 바닥과 차 표면은 소금기나 알칼리성 물질에 부식되지 않게 특수 코팅을 해야 한다. 알루미늄은 철보다 가볍지만 강도가 낮아 고속으로 달리는 차가 무게를 받고 외부의 충격을 이기기 위해서는 많은 양을 사용해야 한다. 스웨덴의 볼보는 높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85년부터 알루미늄 자동차생산을 시작하고 미국의 포드도 세이블의 보디를 알루미늄으로 제작하고 있으나 가격이 비싸 주문 생산하는 정도이다. 아우디는 세계적인 알루미늄회사인 알코아사와 함께 알루미늄을 자동차 제작에 본격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판형을 만들고 사출실험을 하면서 제작 단가를 크게줄이는 데 성공,대량생산의 길을 열었다. 아우디와 알코아사가 자동차의 대부분을 철보다 강도가 낮은 알루미늄으로 제작하는데 성공하자 벤츠와 피아트등 전통적인 자동차회사들은 철제를 사용하면서도 무게를 줄이며 견고한 차를 제작하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아우디의 알루미늄 자동차가 판매시장에서도 성공할 경우 열효율이 높고 폐차 공해가 적은 알루미늄 자동차가 다투어 출현할 전망이다.
  • “핵폐기장 반대” 격렬 시위/양산군 주민 3천여명

    ◎도로 차단… 한때 도시기능 마비/학생 1천여명도 등교 못해 【양산=이기철기자】 경남 양산군 장안읍·정관면등 5개읍·면지역 주민 3천여명은 핵폐기물처분장 유치에 반대,12일 상오 5시부터 장안농협앞등에서 트랙터와 경운기등으로 도로를 차단한채 폐타이어를 태우는등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주민들은 자녀들의 학교등교마저 못하게해 월내국교,장안중,장안종합고등 6개 초·중·고교의 3천3백52명의 학생가운데 2천2백30여명만이 등교해 수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시위대의 도로차단으로 부산과 울산등지로 연결되는 시외버스운행이 대부분 중단됐고 각급 관공서와 상가 대부분이 철시돼 도시기능이 한때 마비되기도했다. 또 고리원자력발전소는 시위대가 출입구를 막는바람에 1천8백여명의 직원가운데 3백여명의 필수요원들이 육로를 피해 해상으로 간신히 출근,발전중단의 위기를 넘겼다. 이날 사태는 장안읍 월내면의 핵폐기물처분장 유치문제를 놓고 지역주민들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가운데 핵폐기물처분장 설치를 찬성하는 「장안읍발전추진위원회」(위원장 신태조)가 11일 좌천리 한림정에서 현판식을 가지려 하자 이를 저지하는 과정에서 촉발됐다.폐기물처분장 유치를 반대하는 「반대위」측 주민 4백명은 현판식행사를 봉쇄한데 이어 즉각 철야농성에 들어갔고 12일 날이 밝으며 반대위측 주민이 늘어나 3천여명에 이르렀다. 한편 격렬한 시위를 벌였던 장안읍 주민 1천여명은 이날 하오 7시쯤 모두 자진했다.시위대 해산과정에서 김봉조씨(70)등 경찰과 주민등 10여명이 다쳐 양산 고려병원등에 입원,치료를 받았다. 주민들은 13일에도 하오 1시쯤 기장면 시장광장에서 대규모 집회를 계획하고 있어 농성과 도로점거등의 악순환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 이 전총리/이 부총리/「오고 간」 경기고 동기

    ◎돈독한 40년 우정… “경질되고 기용되고” 사람가리기로 소문난 이회창전국무총리도 이홍구통일부총리를 스스럼없이 「존경하는 인물」의 하나로 꼽는다.두사람은 고교동창생(경기고 49회·53년졸업)이다.서울대 법대에도 같이 입학했으나 이부총리는 2년뒤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대쪽」과 「온후」라는 정반대의 성품을 지닌 것으로 비쳐지면서도 두사람은 오랜 우정을 유지해왔다.때문에 이부총리가 40년지기의 경질파동결과로 통일부총리에 기용됐다는 것은 아이러니컬한 측면도 있다. 두사람을 모두 잘 아는 주변인사들이 전하는데 따르면 이부총리는 이전총리의 「정치 과외교사」였다.너무 원칙만을 강조하는 이전총리에게 현실적인 문제점을 항상 충고해왔다는 것이다.그렇다고 이부총리가 원칙을 저버린 적도 없었다. 이전총리도 이부총리의 「현실적 혜안」에 대해 여러차례 언급했었다.지난해 가을 감사원장이던 이전총리에게 기자들이 『대법원장 물망에 오르기만 하고 실제 임명되지 않은 것이 기분 나쁘지 않느냐』고 물었다.이전총리는 그때『얼마전 이홍구씨와 대전엑스포시찰을 함께 갔는데 기차안에서 이런 말을 하더라.당신이 대법원장이 된다면 사람들이 뭐라 하겠느냐.전직대통령을 조사한다는등 이제까지 해온 행동이 대법원장을 하기 위한 것으로 밖에 더 비치겠느냐고 충고해줬다.평소에도 존경했지만 그의 예견력,분별력이 새삼스럽게 보이더라』고 대답했다. 이런 사정으로 이전총리가 외교안보정책기구문제로 청와대와 대립했을때 이부총리가 국내에 있었다면 상황은 달라졌으리라는 얘기도 있다.「이회창파동」이 일던 당시 이부총리는 평통부의장으로 일본출장중이었다.그는 이전총리가 전격경질된 뒤에야 소식을 듣고 국제전화를 걸어 위로하는 정도의 역할밖에 할 수 없었다. 두사람은 개인적으로도 수시로 만나지만 같이 참여하는 모임도 많다.대표적인 것이 「청하회」와 「서울국제포럼」이다. 청하회는 경기고 49회 동창생가운데 마음이 맞는 몇몇이 정기적으로 만나는 모임이다.유명인사들이 다수 포진한 것으로 알려진 청하회안에서도 두사람과 함께 이세중대한변협회장,오성환전대법관은 아직도 서로의 이름을 부를 만큼 단짝들이다.
  • “필사즉생 각오 개혁”/김 대통령,현충사 헌화 분향

    김영삼대통령은 28일 『나는 필사즉생,필생즉사의 각오로 개혁을 추진해 나가고 있다』고 강력한 개혁의지를 거듭 천명했다. 김대통령은 이날 상오 충남 아산 현충사에서 열린 제449회 충무공 탄신기념 다례행제에 참석,헌화 분향한 뒤 『충무공은 당대에는 죽음으로 나라를 구했고 사후에는 정신으로 민족의 나아갈 길을 일깨워 주었다』면서 『이 시대를 사는 우리는 충무공이 보여주신 것처럼 민족 앞에 바치는 뜨거운 애국심과 희생정신,그리고 개척정신을 이어받아 실천해 나가야한다』고 강조했다. 김대통령은 『우리 모두 충무공처럼 「그때 나는 이 나라 이 민족을 위해 부끄럽지 않게 살았노라」고 말할 수 있도록 각자가 서있는 자리에서 할수 있는 일을 다해야 한다』면서 『모두가 신한국 창조의 주역이 되어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김대통령은 이날 현충사 참배에 이어 충남 예산에 있는 매헌 윤봉길의사의 사당인 충의사도 참배했다. 김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박중배충남지사에게 충의사 관리를 철저히 하고 윤의사의 숭고한 애국애족정신이 참배객의 마음에 느껴질 수 있도록 보다 상세한 안내와 홍보를 하는 한편 경내를 확장하고 윤의사 생가를 포함한 충의사 주변정비 방안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김대통령은 이어 예산군 오가면 신석리에 있는 예산사과주산단지를 방문,시설을 돌아본 뒤 과수재배 농민 30여명과 오찬을 나누며 이들을 격려했다.
  • 문학박물관(외언내언)

    미국의 대표적 현대작가중 한사람인 존 스타인벡(1902∼1968)은 무명작가시절 캘리포니아의 해변도시 퍼시픽 그로브에서 살았다.그가 살던 집은 침실 한개짜리 오두막으로 바닷가 돌을 주워다 손수 지은 것이었다. 그가 이곳에서 산 기간은 몇년에 불과했으나 스타인벡이 죽기도 전에 그의 문학애호가에게 팔려 「스타인벡의 오두막」으로 명명됐다.「스타인벡의 오두막」 주인은 스타인벡연구회를 결성하고 시당국과 스탠더드 오일 및 아메리카은행의 지원을 받아 3층짜리 스타인벡기념관까지 마련했다. 스타인벡과 비슷한 시기를 살다 간 우리 시인 청마 유치환(1908∼1967)전집에는 「…어부의 겁인가」란 독해불가능한 대목이 있었다.어떤 연구자는 이 구절을 「…어부의 업보인가」로 해석하기도 했다.그러나 유족이 보관하고 있던 초고를 확인한 다른 부지런한 연구자에 의해 「어부의 집인가」로 정정됐다.청마기념관을 우리는 아직도 갖고 있지 못하다. 많은 나라들이 그들의 문학사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작가의 생가는 물론 그가 묵던 곳이나 작품의 무대가 된 곳까지 기념물로 보존하고 있다.작가의 육필원고를 비롯,생전에 쓰던 온갖 생활용품들이 고스란히 전시된 그곳은 문학연구의 산실이 되기도 하고 책속에 갇힌 문학사를 생생히 재현하는 문학관광의 명소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 문인들의 생가는 보존된 경우가 드물며 육필원고도 무관심속에 사라지고 있다.육필원고가 남은 청마의 경우는 오히려 다행한 편에 속한다. 신라시대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유명문학작품과 문인의 유품을 보관·전시하는 문학박물관이 빠르면 오는 11월 문을 열리라는 소식은 참으로 반갑다.서대문구청이 옛 서울여상 팔각정건물을 개수하여 황순구교수(동국대)와 문인협회 제공자료를 전시한다니 실현가능성이 높을 듯싶다.문학박물간 건립은 지난 70년대부터 논의돼온 우리문단의 꿈이다.
  • 상무대 국정조사/예상밖 증인 축소… 순항 가능성

    ◎「발동」 앞둔 여야분위기/물증 없는데다 「당내악재 가능성」 부담/여선 “본격 조사땐 야쪽이 말릴것” 자신 상무대 공사대금 일부의 정치자금 유입의혹에 대한 국정조사와 관련,여야가 증인채택등을 둘러싸고 팽팽하게 맞설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민주당이 14일 노태우전대통령을 비롯,최형우내무부장관과 서석재전의원을 증인채택 대상에서 제외할 뜻을 시사함에 따라 별다른 마찰 없이 순탄하게 진행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민자당은 여전히 『뒤져봐야 나올 게 없다』면서 느긋해하고 있다. 이같은 국면전환에 대해 정가 일각에서는 민주당의 「내부사정」과 무관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민자당◁ 14일 상오 김종필대표가 주재한 고위당직자 회의에서는 정면대응 원칙과 민주당의 증거 없는 증인요구는 수용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거듭 확인. 그러나 내심 부담을 느끼고 있던 노전대통령,최내무부장관,서전의원등에 대해 민주당이 「꼬리를 내리는」 움직임을 보이자 안도하는 기색이 역력.특히 최장관과 서전의원 문제는 계속 거론될수록 여권이 상처를 입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던 것.그러나 민주당이 이들의 결백을 증명이라도 해주듯이 돌연 방향전환을 하자 당연한 결과로 평가하면서도 무척 반기는 분위기. 민자당은 민주당의 이같은 모습을 크게 세가지의 이유로 분석. 첫째 당국이 의혹이 제기된 여권인사에 대해 조사한 결과 무고함을 확인했고,반면 민주당은 이를 뒤집을 만한 물증이 없다는 것.군 특검단과 검찰의 수사에서도 밝혀내지 못한 의혹을 『민주당이 해봐야 얼마나 캐내겠느냐』고 전망. 둘째 민주당이 내부 연루자가 분명히 없음을 자신하지 못하는 것도 안도감을 주는 대목.즉 상무대이전사업의 무대가 광주이고,사퇴한 서의현총무원장이 김대중씨의 아·태재단 고문이라는 것등의 사실 때문에 내부 문제에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고 관측.민자당의 한 당직자는 『조사활동이 본격적으로 이뤄지면 그쪽에서도 말릴 것』이라고 말한 것도 이같은 배경. 마지막으로 이 사건이 6공 때의 일로 현정부와는 무관하다는 여권 핵심부의 생각도 이를 뒷받침.그러나 이는 자칫 부담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고심스러운 대목. ▷민주당◁ 국정조사권발동에 대해 원칙적으로 환영하면서도 거둬들일 수확에 대해서는 짐짓 자신하지 못하는 분위기. 특히 지금까지의 주장과 달리 여권핵심인사의 개입여부와 관련,「터뜨릴 만한」 호재를 찾지 못해 내심 고민하는 모습.이에 따라 공공연하게 거론됐던 노전대통령과 최내무부장관,서전의원에 대한 증인선정도 불투명한 상황.정대철 상무대진상조사위원장은 이와 관련,『이들을 증인으로 신청하겠다고 밝힌 적이 없다』고 말해 기세등등하던 모습에서 한발 물러서는 인상. 김대식총무도 『얼마만큼의 증인을 확보하느냐가 이번 조사의 관건』이라면서도 『구체적으로 누구를 증언대에 세울지에 대해서는 당론으로 정한 바 없다』고 말해 여권핵심부를 공략할 실탄이 없음을 간접 시사. 민주당은 15일 법사위와 진상조사위 연석회의를 열어 증인선정문제등 조사계획서 작성을 위해 협의할 예정이나 당내 인사의 관련설등 「잡음」때문에 회의분위기는 상당히 위축되리라는 것이 당안팎의 전망 한편 여권이 국정조사에 흔쾌히 응한 배경과 관련,「야당에도 약점이 있는 것 아니겠느냐」면서 은근히 동교동을 겨냥한 일부의 시각에 대해 『그쪽에서는 펄쩍 뛰고 있다』(문희상대표비서실장)며 강력 부인.그러나 한 의원은 『지난 대선때 서의현총무원장이 20여명의 정치인과 접촉했다는 설이 있다.그 사람들이 전부 여당인사였겠느냐』면서 의외의 악수가 터져 나올 수 있음을 경계. ◎심기 불편한 연희동/“또 6공이냐” 볼멘소리… 구설수 신경/노 전대통령 개입했을 개연성도 일축 노태우전대통령의 연희동주변 공기가 다시 흐려지고 있다.상무대 공사대금의 정치자금 유입의혹 때문이다. 최근들어 여권 핵심부는 이 문제에 대해 「6공 때의 일」이라는 논리를 내세웠다.잘못이 있더라도 「6공인사」가 간여했을 것이라는 견해이다.이에 대해 노전대통령측은 『또 6공이냐』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한마디로 불쾌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노전대통령의 핵심측근인 이현우전청와대경호실장과 이진삼전체육부장관이 구설수에 오르는데 대해서는 신경이 쓰이는 눈치다.물론 연희동측 인사들은 『문제될 것이 없다』고 말한다.그러면서도 두사람을 「희생양」으로 삼아 상무대 문제를 매듭지으려는 것이 아닌가 하고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국정조사권의 발동을 여권이 순순히 받아들인 것이나,여권 인사들의 입을 통해 두사람이 언론에 오르내리게 한것도 이와 맥이 닿아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사실이 그렇다면 마냥 자신할 수만도 없다는 점에서 고심하는 듯한 분위기이다. 이전실장과 이전장관은 상무대공사의 시공업체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거액을 챙겼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야당의 주장이다. 그러나 당사자인 이전실장은 주변 인사들에게 『그런 일 없다.신경 쓸 것 없다』고 혐의를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연희동의 한 인사는 『최근 이전실장의 모습에서 달라진 점을 찾아볼 수 없었다』고 전했다. 이전장관은 지난 1일 미국으로 출국,한 때 도피성 외유라는 의심을 받았으나 이는 전혀 사실과 다르다고 해명했다.1심에서 집행유예로 석방된 그는 「바람이나 쐬려고」 지난 1월20일 미국으로 갔다가 항소심 첫 재판을 받으려고 지난달 30일 잠시 귀국했었다는 것.국정조사 증인으로 채택되면 귀국해 출두할 것이라고 주변 사람들은 밝혔다. 연희동측은 노전대통령의 개입 가능성에 대해서는 『상무대 건으로 얘기되고 있는 동화사는 노전대통령의 생가와 가까워 노전대통령이 자라다시피한 곳으로 거기에 불상을 세운다는데 부정한 생각을 갖는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는 말로 일축했다.
  • 「핵 안전이용」 경각심 새롭게/그린피스 왜 한국에 오나

    세계적인 민간환경단체인 그린피스(GreenPeace)가 오는 13일 내한할 예정으로 있어 원자력발전의 안전성에 대한 논란이 재연될 조짐이다.그린피스는 무엇때문에 오며 우리나라와 일본의 원전현황및 그 안정성은 어느 정도인가를 점검해 본다. ◎울진·고리 등 원전지대 돌며 방사능 측정/전문가 참석 「21세기 에너지」 심포지엄도 환경운동연합 초청으로 방한하는 그린피스는 24일까지 12일간 우리나라에 머무르면서 여러가지 행사를 계획하고 있다. 그린피스의 이번 방문은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일본에 이은 「아시아 비핵지대화 대장정」의 일환으로 13일 강원도 삼척항에 입항,영일·부산·고리·영광·광주·인천등 우리나라를 일주하면서 일반인들에게 그린피스선박을 공개하고 핵발전소 근처 방사능측정및 피해자면담·선상토론회등을 갖는다. 또 서울에서 반핵인사·에너지전문가·과기처·한전등 관계자들이 참석하는 가운데 「21세기 한국의 에너지 대안」이라는 주제로 심포지엄도 계획하고 있다. 그린피스는 남극보호·해양생태계 보호를 위한 과도한 어획및 고래잡이 금지·핵에너지 이용을 금지하는 것을 포함한 반핵운동·삼림보호등 다양한 활동을 벌여왔다.일반인들에게 그린피스가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프랑스의 남태평양에서의 핵실험 반대등 반핵 캠페인이라고 할 수 있다. 환경운동연합은 환경운동의 국제적인 연대를 강화하고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문제,즉 수질오염·삼림생태계 파괴·핵을 포함한 에너지문제를 집중적으로 조명하기 위해 그린피스를 초청했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그린피스가 울진·고리·영광등 원전이 건설된 지역을 순회하면서 행사를 가질 계획인 것이나 그동안의 반핵운동 전력등을 감안할 때 초점은 역시 핵에너지개발,즉 원전의 안전성 여부에 모아질 것으로 보인다. 상공자원부·과학기술처·한전등 원전개발 주무 부처들이 대대적인 홍보전을 벌이면서 바짝 긴장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린피스는 원전이 엄청난 효율성에도 불구하고 돌발사고가 일어났을 때 인류에게 돌이킬수 없는 재앙을 불러온다는 이유로 핵의 평화적 이용까지도 반대하고 있다.그 대신 에너지 이용효율을 극대화하고 나아가 안전하고 경제적이고 재생가능한 에너지원 개발을 촉진해야 한다는 원론적인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현재 환경적으로 무해한 대체에너지원으로는 태양열·조력(조력)·풍력발전등이 거론되고 있다.그러나 이러한 대체에너지원이 아직 실용화 단계에는 이르지 못했고 이론적으로 검토되고 있는 정도이다. 이때문에 그린피스를 초청하는 환경운동연합의 핵에너지 이용에 대한 접근방식도 상당히 조심스럽다. 환경운동연합은 지난달말에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원전에 대한 내부입장 정리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며 이번 그린피스의 방한행사를 핵에너지 개발이 갖고 있는 양면성에 대한 주의를 환기시키고 대안을 모색해보자는 문제제기 차원으로 이해해달라는 정도이다. 환경운동연합이 이처럼 신중한 자세를 취하는 것은 북한이 핵무기개발을 포기하지 않고 있고 일본이 핵무기개발에 이용될 수 있는 고속증식로 가동에 들어가는등 최근의 미묘한 상황을 잘 알고 있기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즉 이미 비핵화선언을 한 우리나라에서 그린피스가 동아시아지역의 비핵지대를 선언하는등 반핵활동을 벌이는 것은 「번지수가 틀린 것」이 아니냐는 반론을 의식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이번 행사는 원전의 안정성은 물론 에너지원 개발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가진다고 볼 수 있다. ◎우리의 원전 현황/현재 9기 가동… 발전설비의 28%/2천6년까지 비중 40%로 공익홍보 시급 「원전을 계속 건설해야 하나」­. 대답은 의외로 간단치 않다.원전의 안전성에 대한 신뢰 외에도 전력정책과 국민의 수용여부가 복잡하게 얽혔기 때문이다.문제는 원전을 대체할만한 에너지원이 있느냐 이다. 불행하게도 우리나라에는 자원이 많지 않다.기껏해야 석탄 정도다.석유 가스 등 주요 에너지원이 대부분 해외에서 수입돼 에너지 해외의존도가 94%나 된다.값싼 에너지를 확보하느냐 여부에 우리 경제의 사활이 달려있다. 원자력 에너지는 값이 싸고,깨끗하다는 점이 장점이다.발전원가를 비교해 보면원전은 1㎾H의 전력을 생산하는 데 23원96전,수력은 27원72전,석탄은 30원2전,석유는 28원93전,LNG(액화천연가스)는 37원70전이다.발전원가를 제쳐두더라도 석탄 석유 등 화석연료의 사용을 규제할 그린 라운드(GR)가 본격화되면 원자력 에너지와 같은 청정에너지의 수요는 늘 수 밖에 없다. 구 소련의 체르노빌 사고와 미국의 트리마일(TMI) 사고로 안전성 시비가 한때 있었지만,많은 나라가 여전히 원전을 주력 전원으로 활용하고 있다.세계 28개국이 4백25기의 원전을 가동하고 있다.건설 중이거나 계획된 것까지 5백기가 넘는다. 우리나라는 78년 고리원전 1호기가 상업운전을 시작한 이래 현재 9기(7백61만6천㎾)가 가동 중이며 전체 발전설비의 36%가 원전이다.영광 3·4호기 등 7기가 추가로 건설되면 99년 6월 이후에는 발전용량이 1천3백71만6천㎾에 달한다. 정부는 날로 증가하는 전력수요에 맞춰 2006년까지 설비용량을 5천8백66만㎾까지 늘릴 계획인데,이렇게 되면 원전 비중은 40%로 높아진다. 그러나 원전에 대한 오해와 이해부족 때문에 차질을 빚을 가능성도 있다.많은 사람이 전력을 생산하는 원자로와 원자폭탄을 똑같은 것으로 오해하며,원전에서 많은 양의 방사선이 나오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 원자로가 원자탄처럼 터지는 일이란 있을 수 없다.원전가동으로 지역주민이 추가로 받는 방사선 양도 자연 방사선보다 훨씬 낮다. 때문에 원전의 안전문제는 자동차의 안전성을 따지는 일과 다르지 않다.핵은 약처럼 「남용하면 인류에 해가 되지만 활용하면 더없는 득」이 될 수 있다.
  • 꺼풀벗는 「80억 의혹」/「정치권 유입」은 가설

    ◎주고받은 사람 진술 일치/검찰서도 “향방 가려졌다” 상무대 공사대금의 일부가 과연 정치권으로 흘러갔을까. 공사대금이 정치문제로 떠오른 것은 지난 2월 임시국회에서 민주당의 정대철의원이 『상무대 공사를 맡은 청우건설 조기현회장이 공사비 2백여억원을 횡령,그 가운데 상당액을 민자당의 대선자금으로 바쳤다』고 주장하면서부터다.민주당은 특히 지난 1월 율곡사업 특감을 벌인 국방부와 조회장을 구속수사한 검찰이 이같은 사실을 밝혀내고도 자금추적등 횡령한 돈의 사용처에 대한 수사를 고의로 덮어 버렸다고 공격하고 나섰다. 국방부와 검찰은 이에 대해 횡령한 돈은 ▲동화사 통일대불건립 시주금 80억원 ▲법회비 45억원 ▲빌라구입비 20억원 ▲기타 44억원등으로 사용처가 규명됐으며 횡령액도 모두 1백89억원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민주당은 동화사주지 출신의 서의현 조계종 총무원장과 일부 여권내 실력자들과의 친분등을 내세우며 대불 건립비 80억원에 대해 집중적인 의혹을 제기했다.▲실제로 돈은 동화사에 들어가지도 않았거나 ▲일단 시주금 명목으로 들어가 「돈세탁」을 거친 뒤 곧바로 여권에 전달됐을 것이라는 두가지 가설을 내세웠다. 이에 대해 조회장은 9일 검찰에서 『80억원은 모두 대불공사 총감독인 현철스님과 조계종 총무원사람을 통해 동화사측에 전달했다』고 확인,민주당의 첫번째 가설을 전면부인했다.현철스님 역시 이날 검찰에서 『91년 10월부터 10여차례에 걸쳐 조회장으로부터 80억원에서 5백만원이 모자라는 시주금을 받아 모두 대불건립비로 썼다』고 말해 민주당의 두번째 가설을 뒤집었다. 검찰 또한 이날 총공사비와 관련해 현철스님이 제출한 「대불사업비 지출전표」및 공사대금 영수증등을 분석한 결과 처음 공사비가 60억원으로 알려진 것은 대불앞의 「통일대전」 건립비가 와전된 것이며 지금까지 소요된 공사비만도 모두 1백56억원에 이른다고 밝혔다. 검찰은 『문제가 된 80억원을 주었다는 사람과 받았다는 사람의 진술이 대부분 일치,횡령액의 향방이 일단 가려진 것으로 본다』고 밝힘으로써 횡령사건에 대한 법적조사는 사실상 마무리됐음을 시사하고있다. 검찰은 같은 맥락에서 자금추적의 필요성을 부인하고 특히 종교사업에 대한 탄압의 우려가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여권은 물론 『그것봐라.대형 사건이 터질 때마다 야당은 정치자금설을 유포했지만 한번이라도 사실로 드러난 적 있었느냐』고 반색이다. 지난 대선 때 민자당 선거대책본부에 참여했던 한 인사는 『대선 때 서총무원장은 기독교도인 김영삼후보가 아니라 정주영후보를 지지했으며 대선후기에 서총무원장이 김후보 지지쪽으로 돌아섰을 때도 조계종 내부의 방침은 변함이 없었다』고 강조했다.그는 대선 때 불교계에 대한 민자당 진영의 창구는 권익현의원에서 서석재 전의원으로,다시 강삼재 현기조실장으로 바뀐 점만 보더라도 민자당이 조계종과의 거리를 좁히는데 얼마나 어려움이 컸던가를 반증한다고 덧붙였다. 민자당은 시주금이 기업자금과는 달리 구체적 수입지출내역으로 기재되지 않고 총액으로만 기재되는 것이 관행이어서 더이상 뒤져봐야 더 나올 것이 없는 만큼 야당이 더이상 이 문제를 얘기하는 것은 정치공세에 불과하다는 소리를 높이고 있다. ◎서원장 잔뼈굵은 대찰… 연8억 수입/대구 동화사 어떤 절인가 최근 「조계사 폭력사태」 파문이 80억원의 시주금 행방으로 확산되면서 대구 동화사(주지 벽봉스님)에 세인들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대구 팔공산중턱에 자리잡고 있는 동화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9교구 본사.높이가 30m에 이르는 통일약사대불은 92년 11월에 점안식을 가져 현재 완공단계에 있으며 대불주변의 각종 석조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신라시대 흥덕왕 7년(서기 8백32년) 심지대사가 창건한 동화사는 약수암·비로암등 7개 부속암자,70여개의 말사를 거느리고 4백여명의 승려들이 불공을 닦고 있는 영남 중북부의 대표적인 사찰이다. 이곳도 60년대말과 70년초 여느 대사찰과 마찬가지로 주지권을 놓고 극심한 다툼을 벌였다.그러다 70년대 초반 청담스님이 총무원장직을 맡고 서의현스님이 조계종내에서 실권을 얻으면서 안정을 되찾았다.노태우전대통령 생가가 절 건너편동네에 있고 그가 재임중 두차례나 들러 유명사찰로서의 명성을 과시하기도했다. 특히 서총무원장이 이곳에서 처음으로 승려생활을 시작해 주지까지 역임한 곳이라는데서 서원장의 영향력이 깊게 작용했고 그가 총무원장직을 맡으면서 「직영사찰」이 되다시피 했다.서원장의 보살핌속에 평온을 유지해오던 동화사는 통일약사대불 조성공사가 한창이던 92년8월 당시 주지인 무공스님이 총무원의 지나친 간섭에 반발하다 쫓겨 나면서 주지권을 둘러싼 분쟁이 또 다시 폭발했다. 동화사는 연간 4억∼5억원의 관광객 입장수입과 4천5백여 신도들의 시주금및 팔공산시설지구 일대의 주차장과 토지에 대한 임대료등 연간 7억∼8억원의 수입을 올리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 굴지의 부자 사찰이다.
  • 「대한유화」 법정관리 결정

    서울민사지법은 6일 대한유화공업(주)이 낸 법정관리신청을 받아들였다.이에따라 대한유화에 대한 채권 및 채무가 당분간 동결돼 회생가능성이 높아졌다. 법원의 결정은 반도체와 자동차 등 관련산업의 경기가 호전돼 합성수지가격이 오르면서 수요도 늘고 있어 회생이 가능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대한유화는 지난해 8월 판매부진으로 자금사정이 악화되자 법정관리 및 회사재산보전신청을 냈다.
  • 고향서 봉영식…애국혼추모행렬/서재필박사·전명운의사 유해봉송 스케치

    ◎기념관서 2천여명 헌화/서 박사/광주시가 행진… 선영 들러/전 의사 애국지사 서재필박사 유해 봉영식이 6일 상오 10시30분 생가인 전남 보성군 문덕면 용암리 서박사 기념관에서 구용상 전남지사와 주민등 각계인사 2천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30여분동안 엄숙히 거행됐다. 이날 봉영식은 구지사의 봉영사와 외종손 이정섭씨(58)의 약력보고,이채환 서박사기념사업회 상임이사의 경과보고,유족대표인 이의순세방그룹회장의 인사말과 주민들의 헌화·봉헌순으로 진행됐다. 구지사는 봉영사에서 『대한의 자주독립을 위해 일생을 바치고 멀리 미국땅에 묻혀있다 43년만에 그토록 그리던 고향에 돌아온 선생님의 숭고한 뜻을 받들어 통일의 정신으로 이어가자』고 말해 참석자들을 숙연케했다. 서박사의 유해는 이날 하룻동안 일반인들의 분향을 받은뒤 기념공원에서 하룻밤을 새우고 7일 상오 10시 서울로 환송돼 8일 전명운의사와 함께 국립묘지 애국지사묘역에 안장된다. 한편 애국지사 전명운의사의 유해는 이날 광주와 시조 선영이 있는 전남 담양에 들른뒤 서울로 환송됐다. 전의사의 유해는 낮 12시 광주에 도착,시가행진을 가진뒤 하오 1시10분부터 전남 도청앞 광장에서 강영기광주시장등 각급기관장과 종친회원등 3백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고인약력보고·전의사기념사업회장인사말·추도묵념순으로 10여분 동안 출영행사를 가졌다. 유족으로 구성된 전의사의 유해봉송단이 시가지를 통과하는 동안 수많은 시민들이 연도에 나와 묵념으로 고인의 애국혼을 기렸다. 유해봉송단은 이어 하오 2시 10분부터 담양군 담양읍 향교리 담양전씨 시조묘에서 종친회 주최로 열린 참배행사와 노제를 마친뒤 하오 2시30분쯤 서울 국립묘지로 향했다.
  • 서박사·전의사 유해 고향도착/선열추모 행렬 줄이어

    【광주·보성=최치봉·남기창기자】 독립운동가 서재필박사의 유해가 5일 하오 6시 10분쯤 전남 보성군 문덕면 가내마을 서박사의 생가에 도착,안치됐다. 서선생의 유해봉송단은 이에 앞서 이날 하오 4시 서광주 톨게이트에 도착,중외공원∼광주역∼유동3거리∼금남로에 이르는 20㎞의 구간에서 1시간여동안 시가행진을 벌인뒤 전남도청앞 광장에서 구용상전남지사와 강영기광주시장을 비롯한 각급 기관장과 광복회 회원등 1백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출영행사를 가졌다. 한편 전명운의사의 유해는 6일 낮 12시부터 광주에서 시가행진을 갖고 하오 1시 담양군 담양읍 향교리 시조선산을 들른뒤 이날 국립묘지로 돌아와 안치된다.
  • 서재필박사·전명운의사 유해 환국

    ◎어제 국립묘지 영현봉안관 안치… 8일 안장 독립신문을 창간하고 독립문을 세운 서재필박사(1864∼1951)와 친일 미국인 외교관 스티븐스를 저격한 전명운의사(1884∼1947)의 유해가 4일 미국에서 40여년만에 환국했다. 이들 애국지사 두분의 유해는 이날 김포공항에 도착,인공폭포∼양평로터리∼영등포로터리∼대방동∼노량진을 거쳐 동작동 국립묘지 영현봉안관에 안치됐다. 서박사의 유해는 5일 서울과 광주에서 각각 환국 행사를 가진뒤 고향인 전남 보성 문덕 용암리 생가로 모셔지며 6일 분향과 헌화의식을 갖고 8일 국립묘지 애국지사 묘역에 안장된다. 전의사의 유해는 6일 전남 담양 향교리 선산을 방문하고 국립묘지로 돌아와 8일 서박사와 함께 안치된다. 두분의 유해는 6일부터 7일까지 국립묘지 현충관(분향소)에서 일반인들의참배도 받는다. 이로써 국내에 봉환된 해외안장 독립유공자는 지난해 8월5일 환국한 박은식선생등 선열 5위를 비롯해 모두 32위로 늘어났다. 보훈처는 현재 유해를 봉환한 32위를 포함,1백24위의 해외선열을 확인하고 있으며 지금까지 봉환되지 않은 선열 92위 가운데 묘소위치가 확인된 선열은 30위,미확인된 선열이 62위이다. 보훈처는 앞으로 묘소위치가 확인된 선열의 경우 유족들의 뜻에 따라 고국으로 봉환할 예정이다. 지난달 30일,31일 출국한 「서재필선생 유해봉환단」(단장 김시복보훈처차장)과 「전명운의사 유해봉환단」(단장 신동하 보훈처기념사업국장)은 지난 2일 각각 필라델피아와 로스앤젤레스 현지에서 유해 봉송식을 가졌다. 서박사의 유해는 미 필라델피아 발라킨위드 웨스트 라우렐힐 공동묘지 납골당에 화장된 상태로 유골함에 봉안,관리돼 왔으며 전의사의 유해는 미 로스앤젤레스 갈보리 천주교공동묘지에 안장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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