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샘터
    2026-02-12
    검색기록 지우기
  • 서이라
    2026-02-12
    검색기록 지우기
  • 석방
    2026-02-12
    검색기록 지우기
  • 대입
    2026-02-12
    검색기록 지우기
  • 소총
    2026-02-12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503
  • 77세 수녀, 17세 소녀처럼… 매 순간 설레는 봄날 시심

    77세 수녀, 17세 소녀처럼… 매 순간 설레는 봄날 시심

    마음은 아직 열일곱 살인데 어느덧 70대 후반에 접어든 수녀는 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다고 느낀다. 코로나19 팬데믹 3년째를 맞아 불안과 우울의 시대를 사는 현대인들에게 수녀는 그 어느 때보다 진실한 위로와 축복을 보낸다. 희수(만 77세)를 맞은 시인 이해인 수녀가 봄을 알리는 꽃처럼 온기와 향기를 품은 시 편지 ‘꽃잎 한 장처럼’을 펴냈다. 2019년 11월 이후 쓴 시와 짧은 에세이를 한데 모은 이 책은 봄이 와도 여전히 얼어붙어 있는 우리 마음을 따뜻하게 녹여 주는 듯하다. 시인은 우선 나이 듦과 죽음에 대한 성찰을 풀어놓는다. 예컨대 “요즘은 자주/지상에서 영원으로/이사 간 이들을 생각하며/나도 그 집으로/들어가게 될 날을/약간의 두려움 속에/그리워한다”(‘꿈에 본 집’)라고. 하지만 시인은 아직 살아 있음으로써 얻는 기쁨으로 죽음의 두려움을 극복한다. ‘거울 앞에서’에서는 “오늘도 이렇게/기쁘게 살아 있다고/창밖에는 새들이/명랑하게/노래를 하고!/나를 부르고!”라고 시를 마무리한다. ‘시간의 새 얼굴’에서는 “시간은 언제나 살아서/새 얼굴로 온다/빨리 가서 아쉽다고/허무하다고 말하지 않고/새 얼굴로 다시 오는 거라고/살아 있는 내가/웃으며 말하겠다”며 살아 있기 때문에 가질 수 있는 희망을 꿈꾼다. 표제 시 ‘꽃잎 한 장처럼’에선 “살아갈수록/나에겐/사람들이/어여쁘게/사랑으로/걸어오네”라고 삶에 대한 고마움을 내비쳤다. 이를 통해 행복은 거창한 데만 있는 게 아니라 일상에서 당연히 누려 왔던 것의 소중함을 깨달으면서도 발견할 수 있다고 조언한다. 무엇보다 시인은 언제 특별히 행복하냐는 질문에 “매 순간이 설렌다”고 답하며 자신의 삶을 ‘즐거운 궁리가 많아서 행복한 삶’이라고 이야기한다. 순수 시나 에세이뿐 아니라 한반도 평화를 기원하고, 천호동 화재 희생자를 추모한 시들도 새겨 읽을 만하다. 단순히 계절의 변화로 찾아오는 봄이 아닌 우리 마음의 봄을 되찾아 주는 희망 가득한 선물로 다가온다.  
  •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사닥다리/황인숙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사닥다리/황인숙

    사닥다리/황인숙 봄이 되면 방바닥에 누워 있는 사닥다리를 세우겠네 은빛 사닥다리 은빛 사닥다리를 타고 지붕 위에 오르겠네 사닥다리, 뼈로만 이루어진 사닥다리 한 디딤마다 내 발은 후둑후둑 떨겠네 내 손은 악착같이 사다리를 쥐겠네 사닥다리, 발이 손을 따르는 사닥다리 구름이 사닥다리를 타고 올라오네 대추나무가 사닥다리를 타고 올라오네 종달새가 사닥다리를 타고 올라오네 돌멩이가 사닥다리를 타고 올라오네 땅바닥이 사닥다리를 타고 올라오네 내 사랑이 아슬아슬 사닥다리를 타고 올라오네 봄이 되면 땅바닥은 누워 있는 사닥다리를 세우네 봄이 오면 땅이 세우는 사닥다리 참 신비하군요. 땅이 세운 이 사닥다리를 처음 발견한 이가 시인이라는 것 또한 신비해요. 좋은 인간, 좋은 세상을 위해 학교 공부가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 왔지만 시 공부만큼은 좀 필요하다는 생각 드는군요. 시란 다름 아닌 마음 수련의 장이니까요. 사막 같은 인간의 마음도 시를 만나면 오아시스도, 은하수도 될 수 있지 않겠는지요. 35년쯤 전 대학로 샘터 앞 지날 때 “곽재구 시인 아니세요?” 물어 온 이가 있었습니다. 이 사다리를 발견한 이이지요. 봄이 35차례쯤 지나는 동안 단 한 차례 다시 만나지 못했으니 이 세월 또한 신비하군요.      곽재구 시인
  • 일산에서도 ‘리모델링’ 바람

    여야 대권 후보들이 1기 신도시 리모델링 공약을 발표하고 있는 가운데, 성남 안양에 이어 일산에서도 입주 30년이 다된 공동주택 리모델링 조합이 잇따라 출범한다. 25일 경기 고양시에 따르면 일산서구 문촌마을16단지와 강선마을14단지가 최근 주민동의율 67%를 넘겨 조합설립 요건을 갖췄다. 문촌16단지는 26일 조합설립 창립총회를 연다. 고양지역 첫 리모델링 조합이다. 입주민들은 조합 설립 동의서를 배포한지 한달 만인 지난 달 17일 동의율 67%를 확보해 조합설립 요건을 갖췄다. 문촌16단지는 ‘경기도 공동주택 리모델링 컨설팅 시범 단지’로 선정돼 3억원의 컨설팅 비용을 지원받았다. 공급면적이 104㎡ 이하인 중소형 공동주택으로, 1994년 956가구가 입주했다. 입주민들은 수평·별동 증축 방식의 리모델링을 통해 1099가구로 기존 보다 143가구를 늘릴 계획이다. GS건설, 포스코건설, 대우건설 등이 시공사로 관심을 갖고 있다. 인근에 있는 강선14단지는 지난 달 31일 조합설립에 필요한 주민동의율 67%를 두 달 만에 확보하고 2월 중 창립총회를 연다. 이 단지는 공급면적 105㎡ 이하 792가구 규모로, 리모델링을 하면 15%인 118가구가 늘어난다. 동 간격이 넓어 수평증축에 적합하지만, 수직증축도 고려하고 있다. 이밖에 경기도의 ‘찾아가는 리모델링 자문 시범 사업’ 단지로 선정된 강선마을12단지(309가구), 장성마을2단지(591가구)도 리모델링 조합 설립을 준비 중이며 후곡11·12단지(1554가구)는 통합 리모델링을 추진하는 등 확인된 것만 총 6개 단지가 리모델링을 준비중이다. 덕양구에서는 일산과 거의 같은 시기인 1995년 입주한 화정동 별빛마을8단지(1232가구)와 행신동 샘터마을1단지(822가구)가 리모델링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고양시는 다른 단지에 연쇄 영향이 예상되는 만큼 시 차원의 관리 및 지원방안을 마련할 예정이다. 이재준 시장은 “일산은 분당과 함께 타 1기 신도시 보다 3~4배 넓지만, 인구 밀도는 매우 낮고 녹지비율은 타 도시 대비 매우 높아 사업성이 높다”며 “시행사들이 개입해 입주민들의 이익을 침해하지 않토록 투명한 지원 및 감시체제를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 “동심이 세상을 구원한다” 동화작가 정채봉 21주기

    “동심이 세상을 구원한다” 동화작가 정채봉 21주기

    ‘오세암’과 ‘초승달과 밤배’ 등으로 유명한 동화작가 정채봉 선생의 21주기를 맞아 아동문학 문인들이 기일인 9일까지 추모 기간을 갖는다. 선생의 지인과 제자 문인들은 생전에 함께 찍은 사진과 함께 공부한 공간 사진, 고인의 육필 원고, 추억이 담긴 물건 등을 선생이 만든 동화창작 아카데미인 ‘동화세상 동화학교’ 커뮤니티에 공유한다. 8일에는 선생이 오랫동안 근무했던 샘터사와 가까운 서울 종로구 혜화동 성당에서 위령 미사를 봉헌한다. ‘동심이 세상을 구원한다’고 믿었던 선생은 동화의 독자층을 성인으로 확대시켜 한국 아동문학의 예술적 지평을 넓혔다는 평가를 받는다. 1988년부터 동화창작 강좌를 열었고 이후 ‘동화세상 동화학교’로 확대하는 등 후배 작가를 양성하는 데도 힘을 쏟았다. 지난 10주기에는 제자들이 십시일반 힘을 모아 정채봉문학상을 제정하기도 했다. 선안나 작가는 “과거에 아동문학을 성인 문학의 아류 정도로 치부하던 그릇된 인식을 바꾸는 데 굉장한 기여를 한 분이 정채봉 선생님”이라며 “‘아무리 세상이 흙탕물 같아도 거기에 동심 한 방울 보태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던 선생님을 기억하고 동화를 처음 시작했을 때 마음을 생각하며 추모의 시간을 보낸다”고 말했다.
  • 교원전용 콘텐츠 플랫폼·화상 강좌 ‘잇다×지식샘터’ 온라인 특별연수

    코로나19로 급변하는 교육 환경에 맞춰 교원들 간 지식, 경험을 나누는 자리가 마련됐다. 교육부는 교원 전용 디지털콘텐츠 운영 체제인 ‘잇다’(ITDA)와 교원 지식공유 플랫폼 ‘지식샘터’의 활용 방법을 공유하는 ‘잇다×지식샘터 온라인 특별연수’를 6일 개최했다고 밝혔다. 연수에는 교원 총 220여명이 대면과 비대면으로 참석했다.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현장 교원 간담회에 참석해 교원들의 고충을 청취했다. 연수 프로그램으로는 ‘잇다’·‘지식샘터’ 소개 및 활용 경험 공유, 선배가 들려주는 교직 생활, 천연 향료(아로마)를 활용한 향수 만들기 체험 등이 열렸다. 코로나19 상황을 고려해 행사는 ‘지식샘터’ 실시간 화상강의와 유튜브 채널 ‘교육부 TV’를 통해 온라인으로 송출됐다. ‘잇다’는 저작권 걱정 없는 3만 3000여개 교육 콘텐츠와 제작 도구를 제공하는 디지털콘텐츠 운영 체제다. ‘지식샘터’는 실시간 화상 강좌를 통해 교원 간 교육기술 활용 역량을 나누는 데 중점을 둔 플랫폼이다. 지난 10월 오픈한 ‘지식샘터’는 월 최대 1704명이 참여하고, 162개 강좌를 운영하고 있다.
  • 놓친 사랑의 바다, 얽힌 사랑의 사찰… 나타샤 거기 있나요

    놓친 사랑의 바다, 얽힌 사랑의 사찰… 나타샤 거기 있나요

    가난한 내가 /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 눈은 푹푹 날리고 /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 /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 나타샤와 나는 /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중략) 눈은 푹푹 나리고 /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백석,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겨울이 잇닿아 오면, 아니 눈이 내릴 때마다 생각나는 시가 있다. ‘눈이 폭폭 쌓이는 밤’에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고 싶다던 사람과 그의 나타샤. 백석의 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다. 물론 나는 이 시를 언어영역(요즘은 국어 영역!) 지문의 한 구절로 처음 접했다. 월북한 시인의, 해금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작품을 수능 문제로 풀어야 했던 시절의 이야기다. 사랑은 하고 라니. 눈이 푹푹 나리거나 날리거나 사랑은 했다니. 어조사 ‘은’을 이해하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렸다. 바람맛도 짭짤한 물맛도 짭짤한 // 전북에 해삼에 도미 가재미의 생선이 좋고 / 파래에 아개미에 호루기의 젓갈이 좋고 (중략) 난(蘭)이라는 이는 명정골에 산다든데 / 명정골은 산을 넘어 동백나무 푸르른 감로 같은 물이 솟는 명정 샘이 있는 마을인데 / 샘터엔 오구작작 물을 깃는 처녀며 새악시들 가운데 내가 좋아하는 그이가 있을 것만 같고 (중략) 장수 모신 낡은 사당의 돌층계에 주저앉아서 나는 이 저녁 울 듯 울 듯 한산도 바다에 뱃사공이 되여가며 / 녕 낮은 집 담 낮은 집 마당만 높은 집에서 열나흘 달을 업고 손방아만 찧는 내 사람을 생각한다(백석의 ‘통영’) 백석이 사랑하는 여인 ‘난’을 만나기 위해 자주 찾았다는 통영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날은 하늘보다 더 짙푸른 바다를 볼 수 있는 날이었다. ‘천희’ 혹은 ‘난’을 기다렸다는 충렬사 앞은 절기는 겨울이지만 아직 가을을 품고 있는 노란 은행잎들이 빗줄기처럼 흩뿌려지는 중이었다. 이쯤에서 백석이 앉아 있던 걸까, 저 우물가에 정말로 난이 다녀갔을까 하며 통영 곳곳을 거닐었다. 사랑을 찾아왔지만, 거절당한 사람의 마음이 돼 통영 곳곳을 다녀 보았다. 그런 이가 맞는 비라니. 백석의 표현대로라면 ‘김 냄새 나는 비’일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1912년 7월 1일 평안북도 정주군에서 태어난 백석은 오산소학교를 졸업하고 오산고등보통학교에 진학한다. 교사가 되고 싶어 했지만 가난한 집안 사정 탓에 보통학교 졸업 후에는 바로 대학으로 진학을 하지 못했다. 1929년 조선일보 후원 장학생 선발시험에 붙어 일본의 아오야마학원 전문부 영어사범학과에 입학할 수 있었다. 이듬해인 193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그 모(母)의 아들’이 당선된다. 언어를 배우는 능력이 비상했던 덕분에 1학년 때는 영어를, 2학년 때 프랑스어를, 3학년 때는 러시아어를 공부했다고 한다. 영어사범이 전공이었지만 독일어를 더 좋아해서 정식으로 독일어 수업을 들었다. 이런 까닭에 해방 이후 북에서 수많은 번역서를 남길 수 있었던 게 아닐까 한다.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서는 조선일보에 입사해 교정부에서 일을 한다. 그와 동시에 ‘여성’의 편집을 도맡기도 했다. 이 즈음에 소설 대신 시를 쓰기 시작한다. 시 ‘정주성’(定州城)을 시작으로 수많은 시를 쏟아내기 시작했으며 신문사의 출판부로 자리를 옮겨 잡지 ‘조광’의 창간에 참여해 대성공을 이룬다. 잡지 편집자로도 인정받기 시작한 것이다.1936년 백석은 첫 시집 ‘사슴’을 자비로 출판한다. 당시 ‘사슴’의 가격이 2원이었는데, 다른 시집보다 두 배가량 더 비싼 가격이었다. 선광인쇄주식회사에서 100부 한정판으로 찍어 대부분 증정용으로 시집을 나누어 주었다고 한다. 이런 이유로 ‘사슴’을 구하지 못한 수많은 사람들은 그것을 필사해 가지고 다녔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시인 윤동주도 연세대 도서관에 있던 ‘사슴’을 옮겨 적어 다닐 정도로 좋아했다고 한다. 해방 후에 고향 정주로 돌아간 백석은 그곳에서 분단이 되기까지 계속 머무른다. 남으로 가자는 동료들의 제안도 마다하고 스승인 조만식의 곁에 남아 시를 쓰고 러시아어 번역과 함께 아동문학을 연구했다. 1950년대 초까지도 북한 문단에서 꽤 권위를 인정받으며 작품 활동을 이어 갔다. 정치에는 관심이 없어 외부활동을 하지 않은 채 칩거하며 엄청난 양의 러시아 소설들을 번역했다고 한다. 1958년 백석은 “사상과 함께 문학적 요소도 중요시하자”는 주장을 했던 이른바 ‘붉은 편지 사건’으로 인해 김일성 정권의 문예정책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자아비판을 강요당한다. 이후 양강도 삼수군의 협동농장 축산반으로 쫓겨나 아예 북한 문단에서 사라지게 된다. 백석은 삼수군의 양치기와 농사꾼으로 살기 시작했지만 평양에서 유명한 시인이 왔다는 소문이 퍼져 그곳의 아이들에게 문학 교육을 하며 살았다고 한다. 1996년 감기에 걸려 고생하다 갑자기 사망했다고 아내가 증언해 주어 백석의 사망이 밝혀진다.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통영까지 찾아갔지만 거절당한 뒤에 백석은 세 번의 결혼을 한다. 그리고 남쪽에는 그를 평생 그리워한 여인 자야(김영한)가 있었다. 김영한의 호인 ‘자야’는 이백의 시 ‘자야오가’에서 가져온 것이다. 함흥관 기생이었던 그는 백석의 애인으로 지내며 동거를 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부모의 강요로 결혼을 한 것이다. 자야는 김숙이라는 필명으로 ‘삼천리’에 수필을 발표하기도 한다. 백석과의 관계를 정리하기 위해 중국 상하이로 떠나지만 그에 대한 마음을 지우지 못하고 한 달 만에 경성으로 돌아온다. 만주의 산징으로 같이 떠나자는 백석의 청을 거절한 것이 그와의 마지막이었다고 회상한 자야. 그 뒤로 대원각이라는 큰 요정을 운영하다가 말년에 법정 스님에게 요정 전체를 시주했다. 당시 돈으로 1000억원이 넘는 거액이어서 스님은 몇 번이고 고사했지만 결국 대원각을 길상사로 개조했고, 김영한에게 ‘길상화’라는 법명을 지어 주었다. “1000억원이란 돈도 그 사람의 시 한 줄만 못하다”는 김영한의 말은 너무도 유명한 이야기.마음은 자신과 있지만 다른 여인과 결혼을 세 번이나 한 사람, 북으로 가서 연락조차 하지 않은 사람을 평생 기다리며 그의 시를 가슴에 품고 사는 삶은 어떠했을지 짐작조차 할 수 없지만, 그들의 사랑 이야기는 아직도 길상사에 오롯이 남아 있다. 최근 소설집 ‘통영’을 낸 반수연 작가는 통영 사람이다. 그에게 백석과 통영에 대해 물었다. 해금된 이후로 읽게 된 백석의 시편들 중에서 통영 연작시들을 특히 인상 깊게 읽었다고 했다. 반 작가의 친정어머니가 기거하던 맞은편 아파트에 100세를 넘긴 ‘난’의 올케언니가 살았다는 말도 전해 주었다. 반 작가에게 통영, 그리고 백석의 자취에 대해 돌아볼 수 있는 ‘통영 기행’에 대해 물었더니 단번에 ‘세병관’을 먼저 둘러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통영은 통제영의 줄임말이며 충청 전라 경상을 아우르는, 한강 이남 최고의 관청기관이 바로 세병관이라고. 300년 동안 이순신 장군을 비롯해 삼도수군통제사가 190명이나 거쳐 갔다고 한다. 그들이 오가는 동안 삼도의 문화가 얼마나 많이 오갔겠는가 하는 것은 이미 너무도 유명한 사실. 문화대박람회가 이루어진 장소가 세병관이고 또 옛 건축 양식을 현재까지도 고스란히 가지고 있는 곳이니 통영 여행은 그곳에서부터 시작돼야 한다고 했다. 세병관에서 충렬사, 백석의 시가 새겨진 명정 우물을 돌아 서호시장을 둘러보며 예전의 문화와 현재가 만나고 있는 것들을 즐겨 보라는 말을 전해왔다. 그것이 ‘통영’이라고도 했다.통영과 서울의 길상사는 백석과 그의 사랑들로 매우 유명해졌지만, 단순히 그것만을 이야기하기에는 거기에 서린 시간과 마음 그리고 발길이 너무 많고 깊다. 백석의 시를 따라 통영을 걷고 길상사에 서린 사랑의 마음을 읽는 일. 이루지 못한 사랑들이 아직도 꿈틀대는 그곳들을 새롭게 걸어 보는 일부터 이 겨울은 시작될 것이다. 나와 나타샤가 사랑은 하고 흰 당나귀를 타고 산골로 들어가는 그 밤에는 김 냄새 나는 비와 눈이 번갈아가며 내릴 테니까. 그때 어디선가 응앙응앙 우는 당나귀의 흰 울음소리가 들릴지 어찌 알겠는가. 그것들을 찾고 보러 통영과 서울의 길상사로 떠날 겨울이 왔다.소설가 이은선
  • 권정선 경기도의원 제1회 한용운문학상 수필부문 신인문학상 수상

    권정선 경기도의원 제1회 한용운문학상 수필부문 신인문학상 수상

    경기도의회 교육행정위원회 권정선 부위원장(더민주·부천5)이 28일 문학그룹 샘문이 주최하는 제1회 한용운 문학상 공모전에서 ‘고모의 작은 점방 외 1편’ 으로 ‘수필 부문’ 신인문학상을 수상했다. 심종숙 문학평론가는 “고모의 작은 점방은 전라남도 사투리가 산문 속에 녹아나서 더욱 정감을 주고 있다”며 “시인 자신의 추억을 재현하는 데에 있어 3인칭을 씀으로서 새로운 글쓰기의 방법을 모색하고 훌륭한 명작을 탄생시켰다”며 심사평을 말했다. 권 도의원은 “어린 시절의 기억과 신혼시절의 지나온 시간 한 자락을 소환하여 편하게 써내려 간 제 수필이 생각지도 못한 큰 영광을 안고 그 시절 함께 했던 분들이 무척이나 그러워지는 계절이다”며 “한용운 신인문학상의 명예에 누를 입히지 않도록 더 열심히 정진하겠다”고 소회를 밝혔다. 한용운 문학상은 한용운 시인의 시 세계에 대한 재조명과 코로나로 지친 국민들의 마음을 위로하기 위해 서울시와 중랑구가 K-문학 페스티벌 문학사업으로 선정 및 후원하여 올해 처음 개최됐다. 권 도의원은 2020년 샘터문학상 공모전에서 시 부문 신인문학상을 수상하여 작가로 등단해 화제를 모았다. 올해 첫 시집 ‘내 그리움의 끝은 언제나 너였다’를 출간했다.
  • 오진택 경기도의원 남양뉴타운 주변 도로공사 추진 현황 점검

    오진택 경기도의원 남양뉴타운 주변 도로공사 추진 현황 점검

    경기도의회 건설교통위원회 부위원장 오진택 의원(더민주·화성2)은 지난 10일 경기도의회 화성상담소에서 경기도 건설국, 화성시 및 LH 관계자들과 함께 남양뉴타운 주변 도로공사 추진현황을 점검했다. 해당 구간은 남양뉴타운~지방도322호선 연결도로 신설·확장 1.6Km(4차로) 및 남양·샘터교차로 개량 2개소 등 화성 남양뉴타운 광역교통 개선 대책의 일환으로 추진 중인 사업으로 경기도 집행부 및 공사 관계자들과 함께 진행상황을 확인하고 문제점을 논의하여 주민 불편사항을 해결하고자 뜻을 모았다. 오 도의원은 경기도 건설국 관계자에게 “화성남양뉴타운 지역 주민들의 쾌적한 도로교통 환경 조성을 위해 남양읍사무소 앞에서 송림리(지방도322) 신설도로 4차선 연결도로(600m) 구간의 조속한 개통이 필요하다”며 강력히 요청했다. 한편, 도의회에서는 화성상담소(화성시 동화길 85 이원타워 3층)를 통해 주민의 입법·정책 관련 건의사항, 생활불편 등을 수렴하고 관계부서와 논의하는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 99굽이 대관령 옛길 타박타박… 99세 금강송 향기에 솔솔 녹다

    99굽이 대관령 옛길 타박타박… 99세 금강송 향기에 솔솔 녹다

    “늙으신 어머님을 고향(강릉)에 두고 / 이 몸은 홀로 서울길로 가는 이 마음 /돌아보니 북촌(오죽헌 마을)은 아득도 한데 / 흰 구름만 저문 산을 날아 내리네.” 신사임당이 대관령을 넘으며 어머니와 고향에 대한 애틋함을 표현한 ‘유대관령망친정’(踰大關嶺望親庭)이라는 시다. 대관령은 한 해 500만명 이상이 방문할 정도로 아름다운 자연과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는 관광 명소지만 과거에는 영동과 영서를 잇는 유일하지만 험준한 고갯길로 다양한 사연과 애환을 간직하고 있다. 대관령 내 만들어졌던 여러 길을 연결한 대관령 숲길(102.96㎞)이 지난 5월 국가숲길로 지정됐다. 4개(목장·소나무·옛길·구름) 순환코스와 12개 숲길이 조성돼 있지만 구별이 무의미하다. ‘100년 소나무의 숨(息)과 걸으며 쉼(休) 있는 평화의 길’이 코로나19 장기화로 활력이 떨어진 국민들에게 치유와 희망의 공간으로 다가서고 있다. ● ‘험로’ 옛 대관령, 신사임당·이이 넘어 다녀 강원 강릉시 성산면과 평창군 횡계리를 연결하는 해발 832m의 대관령은 영동 사람들에게는 신성한 땅이자 거대한 장벽과 같았다. 대관령은 고개가 험해 오르내릴 때 ‘대굴대굴 크게 구르는 고개’라는 뜻의 ‘대굴령’에서 따왔다는 설과 영동 지방으로 오는 ‘큰 관문에 있는 고개’라는 의미가 혼재한다. 대관령 옛길은 말이나 우마차를 갈아탈 수 있는 강릉 쪽 구산역에서 횡계역(차항리)을 연결하는데 현재 강릉 성산 어흘리에서 국사성황당 간 6.4㎞만 복원됐다. 어흘리 주차장~반정 구간(4㎞)과 반정~국사성황당 구간(2.4㎞)이다. 고속도로가 건설되면서 ‘아흔아홉 굽이’는 옛말이 됐지만 대관령 옛길이 얼마나 ‘험로’(險路)인지를 짐작할 수 있다. 아흔아홉 굽이는 율곡 이이의 일화에서 유래됐다. 율곡이 강릉에서 한양으로 과거를 보러 가는 길에 곶감 100개를 챙겼는데 굽이를 넘을 때마다 하나씩 먹으며 대관령을 넘었더니 1개만 남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굽이가 없었다면 대관령을 오르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21일 직접 찾은 옛길은 옛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다. 과거를 보러 가는 선비와 보부상 등 통행이 많았던 것으로 짐작된다. 옛길 중간 지점인 ‘반정’에 이르는 길은 폭이 1.5m 이상, 넓은 곳은 3m가 넘는 곳이 많다. 오랜 역사를 반영하듯 계곡의 형태를 보이고 있다. 대관령은 역사의 교육장이기도 하다. 대관령을 넘은 신사임당과 이이, 허균은 위인이 됐고 대관령을 넘어온 김홍도와 김정희는 예술작품을, 정철은 ‘관동별곡’이라는 문학작품을 남겼다. 김홍도의 ‘금강사군첩’에 있는 ‘대관령도’는 관정에서 강릉을 보면서 그린 그림으로 현재 도시의 모습을 빼면 지금 경관과 비교해도 큰 차이가 없다. 옛길은 지명에도 남다른 의미가 있다. 강릉 쪽 굴면이 마을은 ‘구르는 것을 면한 곳’ 즉 판판한 평지로 강릉에 도착했음을 알려 준다. 삼거리주막은 제왕산과 반정(대관령 방향), 강릉으로 갈라지는 곳에 위치해 있다. 주변에 감나무·밤나무·복숭아 등 유실수가 심어져 있는데 과거 사람이 살았던 흔적이다. 반정을 지나 대관령 정상에 오르기 전 고개이름은 ‘원울이재’다. 강릉으로 부임하던 관리가 대관령이 너무 험해 한 번 울고, 강릉을 떠날 때는 정이 들어 떠나기 싫어 울었다고 해서 이름이 붙여졌다.대관령 숲길 계획을 마련한 이상익 산림청 산림복지국장은 “옛날 강릉 사람들은 일생에 대관령을 넘지 않는 것이 복된 삶이라는 말이 전해질 정도로 대관령의 존재감이 대단했다”며 “보부상이 등짐을 메고 올랐던 고단한 길을 걷다 보면 현재의 자신에게 큰 위안을 줄 수 있고, 대관령의 위대한 생태적 경관에 새로운 활력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100년 만에 등장한 위풍당당 소나무 숲 대관령 소나무숲에 들어서면 마스크를 벗고 싶은 유혹을 뿌리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대관령 숲길 곳곳에서 아름드리 금강송을 만날 수 있지만 소나무 숲은 의미가 남다르다. 국제 규격 축구장 571개 규모인 400㏊에 달하는 소나무 숲은 100년의 시간을 보낸 소나무의 장대한 기상과 함께 끝없이 이어진 규모에 놀라게 된다. 숲은 아픈 태생의 비밀을 간직하고 있다. 일제가 목재 수탈을 위해 소나무를 벌채하고 연료 등으로 이용하면서 변한 민둥산에 조성한 인공조림지다. 더욱이 묘목이 아닌 씨앗을 뿌려 키워 낸 역사적 현장이기도 하다. 험한 지형 탓에 묘목을 가지고 올라오는 것이 어렵다 보니 지난 1922~1928년 525㏊에 솔방울에서 채취한 종자 1452㎏을 가지고 올라와 땅에 심는 ‘직파조림’ 방식으로 숲을 만들었다. 폭설과 산불, 병해충 등의 피해 속에서 현재 면적을 유지하고 있다. 잘 자란 소나무의 바다는 1988년 문화재 복원용 목재생산림으로 지정돼 그동안 3422㎥의 목재를 공급하기도 했다. 100년의 세월을 견딘 금강송은 마치 거북이 등과 같은 검푸른 색의 두꺼운 껍질로 둘러싸여 있는데 그 깊이가 손가락이 들어갈 정도다. 금강송 향연의 ‘백미’는 대통령 쉼터 주변에서 맛볼 수 있다. 대관령휴양림 방향에서 올라온 탐방객은 쉼터를 지나 풍욕대에서 피톤치드를 만끽한 뒤 다시 쉼터로 오르는 수고만 감수한다면 최고의 소나무 풍경을 확인할 수 있다. 대관령 소나무숲은 2018년 개방됐으나 별 주목을 받지 못하다 코로나19를 계기로 숲으로 발길이 이어지게 됐다. 김종근 산림청 산림휴양등산과장은 “대관령 소나무숲은 현존하는 직파 조림지 중 최대 규모이자 성공 사례로 평가받는다”며 “일제강점기에 사라진 숲을 우리가 직접 복원한 현장이자 후손에게 물려줄 위대한 숲으로 지속적인 보호와 관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역사의 흔적 찾기, 허기 채우는 산촌 도시락 대관령 숲길에서 가장 인기가 높은 곳은 양떼목장을 거쳐 가는 ‘선자령’이다. 접근성이 좋고 탁 트인 전경과 이국적인 정취로 탐방객이 몰린다. 백두대간 마루금이자 대관령 숲길 중 가장 높은 곳이라는 상징성도 있다. 이에 더해 김정란 대관령숲길 안내센터장은 “백두대간 중심부에 위치한 봉우리인 선자령에 산과 봉이 아닌 ‘령’(嶺) 자를 붙인 것은 대관령을 넘어 다니던 또 다른 옛길이었다는 해석이 있다”고 전했다. 옛길 하부에는 서어나무·박달나무·굴참나무 등 다양한 활엽수가 자라 생태적 건강성을 보여 준다. 대관령에는 과거 화전민들이 많이 살았는데 1968년 화전정리법이 시행되면서 독가촌으로 강제 이주를 당했다. 숲길 곳곳에는 화전민의 거주를 알려 주는 돌담과 물을 길러 먹던 샘터 등이 남아 있다. 이들은 나무를 활용해 소득을 창출하기도 했다. 굴피집 지붕을 만들던 굴참나무 껍질은 코르크와 촉감이 유사하다. 영동 지역에서는 굴참나무 껍질을 일정한 크기로 잘라 그물을 띄우는 용도로 사용했다. 칡넝쿨은 코다리를 말리는 용도로 어민들에게 판매됐다. 숲길에 빠져 허기를 느낄 때 이곳에서만 맛볼 수 있는 대굴령 솔찬 도시락을 만날 수 있다. 2019년 10월 어흘리 주민들이 첫선을 보인 후 입소문을 타고 해마다 도시락을 찾는 탐방객이 늘고 있다. 1만 2000원인 도시락은 취나물·표고·어수리 등 산채 위주의 건강식이다. 10인 이상, 탐방 2일 전에 예약해야 손에 쥘 수 있는 ‘까칠한’ 도시락이다
  • [김기중 기자의 책 골라주는 남자] 젊은 건축가가 바라본 그곳…갈 수 없다면, 집콕 건축 여행

    [김기중 기자의 책 골라주는 남자] 젊은 건축가가 바라본 그곳…갈 수 없다면, 집콕 건축 여행

    코로나19 탓에 휴가 기간 가족 여행은 일찌감치 포기했습니다. 대신 집에서 책으로 혼자만의 건축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조진만 건축가의 ‘그를 만나면 그곳이 특별해진다’(쌤앤파커스)와 이규빈 건축가의 ‘건축가의 도시’(샘터)입니다. 세계 곳곳 유명한 건물을 소개하는 책인데, 두 책 모두 저자가 젊은 건축가임을 내세우기에 호기심이 일어 책을 들었습니다. 조 건축가는 세계 여러 곳의 건축물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냅니다. 서울 종로구 원서동 공간 사옥, 핀란드 이타케스쿠스 수영장, 캐나다 토론토 거대 지하보행로 패스, 미국 세인트루이스의 프루이트 아이고 아파트 등을 종횡무진 오갑니다. 여러 사례로 건축의 정의, 사랑받는 도시를 만드는 건축의 비밀 등을 알려 줍니다. ‘도발하는 건축가의 생각노트´라는 부제처럼 날카로운 해석이 돋보입니다. 저자는 우리나라 놀이터가 모두 비슷한 모습인 이유에 대해 ‘최소한 그네, 미끄럼틀, 철봉, 모래판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는 규정이 담긴 주택건설촉진법 기준 때문이라고 지적합니다. 여기에 안전과 위생 문제가 대두하면서 모래는 고무 소재 바닥으로 바뀌었습니다. 저자는 이러한 공간에서 아이들의 창의력이 커질 리 만무하다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합니다.‘건축가의 도시’는 이 건축가가 일본, 중국, 미국, 브라질, 프랑스 등 5개국을 오가며 마주했던 건축물 30여개에 대한 생각을 기록했습니다. 공간이 지닌 역사적 배경과 의미, 그리고 그곳에 속한 이들의 이야기도 살펴봅니다. 예컨대 중국 베이징에 있는 갤럭시 소호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자하 하디드의 건축이지만, 기존 마을을 밀어버리고 지은 점은 비판받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건축의 공공성, 대중교통과의 연계, 공간에서 사람들의 생활 등 세세한 부분까지 분석합니다. 특히 저자가 그린 40여장의 도면이 백미입니다. 직접 찍은 감각적인 사진까지 잘 어울립니다. 두 권 모두 젊은 건축가의 날카로운, 때론 따뜻한 시선이 담겼습니다. 부담 없이 건축 여행 다녀오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 시조로 읊어내는 시대정신… 세상의 어둠을 걷어내다

    시조로 읊어내는 시대정신… 세상의 어둠을 걷어내다

    빼어난 문화민족은 저마다 고유한 정형시 양식을 계승해 왔다. 영미 쪽의 소네트, 한자 문화권의 한시, 일본의 와카나 하이쿠 등이 그 사례다. 우리의 경우에는 시조가 오랜 사랑을 받아 왔다. 그리고 시조는 지금도 왕성하게 쓰이고 읽히고 있는 현재형이다. 이렇게 우리의 운문 양식 가운데 거의 모든 것이 소멸했거나 다른 장르로 흡수된 데 비해 시조는 민족문학의 장자 역할을 수행하면서 면면히 이어 가고 있다. 시조시단의 종가인 한국시조시인협회는 이러한 시조시인들의 열정과 역량을 모아 문학장(場)에 실현하는 데 큰 역할을 해 왔다. 지난 3월 20일 제26대 이사장으로 선출된 이정환 시인은 40년 이상 시조를 써 온 우리 시조시단의 대표 중진이다. 그를 만나 시조만의 매혹을 느껴 보고 그 미래를 예감해 보리라 생각했다.●‘목숨 그 자체’인 시조시인의 길 이정환 시인은 1954년 경북 군위에서 태어나 대구에서 학교를 다녔다. “대구 영신중 3학년 가을 국어 시간에 박상근 선생님께서 예이츠의 ‘이니스프리의 호도’ 육성 파일을 들려주셨습니다. 뜻은 못 알아들었지만 그 운율과 음악이 몸에 감겨 왔습니다. 시에 관한 첫 기억이지요.” ‘소년 이정환’은 이때부터 날마다 시를 생각했고 대학에 가서는 직접 시와 시조를 쓰는 습작생이 됐다. 그러다가 시조로 안착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 1976년 월간 ‘샘터’에 시조를 응모해 한 해에 세 번이나 뽑혔던 것이었다. 여기서 용기를 얻은 ‘청년 이정환’은 본격적인 시조시인의 길을 걷게 된다. “연말에 가작으로 입상했을 때 잡지가 한 권 배달됐어요. 처음 보는 ‘시조문학’이라는 시조 전문 계간지였습니다. 보낸 분은 오래전 돌아가신 류제하 선생님이었습니다.” 그 안에는 마음 내키면 신인 추천에 응모해 보라는 권유의 쪽지가 들어 있었다. 류 선생의 권면에 따라 그는 1978년 겨울호에 ‘시조문학’으로 추천을 완료했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1981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됐다.그 후 거침없이 시조시단의 한복판으로 걸어 들어갔다. 1984년 ‘오류’ 동인을 결성해 시조시단에 혁신의 바람을 일으킨 것이 그 첫걸음이었다. 이때 그는 민족문학의 자존심인 시조가 자신을 선택한 것 같은 떨림을 체험했다고 한다. 시조가 민족정신의 위의를 세워 가고 시대의 어둠을 걷어 내는 데 이바지해야 한다고 믿던 시절이었다. 그만큼 그에게 시조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유일한 것이 돼 갔다. 문청 시절에 ‘시림’, ‘순수연대’ 등 자유시 동인 활동을 했지만 시조를 쓰면서 “시조가 숙명이라는 자각을 했고 길은 하나뿐이라는 것을 절감했다”고 떠올린 그는 “시조 형식이 몹시 갑갑할 수 있을 터인데 처음부터 몸에 잘 맞았다”고 했다. 그는 시조를 쓰면 쓸수록 오묘하다는 것을 느꼈고, 시조 3장으로 무슨 노래든지 다 부를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졌다. 그 깨달음이 40여년을 관통해 시조의 길을 달려오게끔 해 준 것이다. “시조는 제게 목숨 그 자체”라고 단언한 이정환 시인은 “시조가 더욱 사랑받는 양식이 되기 위한 길은 본령에 충실한 창작이다. 전통적 기율을 잘 지키는 가운데 다채로운 변용과 변주에 힘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인은 창의적 의미 공간인 종장의 반전을 잘 살리는 일이 중요하다고 거듭 말했다. 시조는 반드시 3장을 구비해야 하는데 그것이 시조의 존재론적 전제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형식의 확장과 축소를 내세우더라도 매력과 마력의 율격인 3장이 훼손되는 일은 있어서는 안 됩니다. 시조가 많은 이로부터 사랑받는 일은 그 길밖에 없습니다. 자유시와는 판연히 다른 시조만의 고유성을 등한시하고서는 널리 사랑받기 어렵습니다. 시조의 생명은 가락에 있거든요.” 나아가 시인은 시조를 쓰는 이들이 고시조와는 변별되는 ‘다른 목소리’의 주체가 돼야 한다고 힘주어 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시대정신에 충실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면 다중으로부터 외면당할 것이라고 봤다. 뜨겁게 읽히는 시조가 어떤 것인지 끊임없이 궁구하지 않으면 시조시단이 ‘우리만의 리그’가 될 것이라고 스스로에게 다짐하고 있었다.●엄격한 제약… 그럼에도 왜 시조인가? 정형시와 자유시 사이에는 일정한 차이가 존재한다. 정형시에는 선험적 율격이 주어져 있고 자유시에는 시인의 호흡에 따른 자유로운 운율이 부가될 뿐이다. 그러니 시조를 쓰는 게 불편해 보이는 것도 자연스러워 보인다. 여기서 우리는 “왜 굳이 시조인가?”라는 질문을 던져 보게 된다. 자유시로도 표현할 수 있는 것을 왜 제약이 큰 시조라는 형식을 통해 표현하려 하는가? 이 첨단의 디지털 시대에 시조라는 오랜 양식이 왜 필요한가? 이러한 질문에 대해 이정환 시인은 “시조는 분명히 자유시와 다른 특성이 있다”면서 “그것을 ‘시조성’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시조성을 얼마나 잘 구현하고 있는지, 즉 전통적 기율에 충실하면서도 시대적 요청에 답하는 길을 잘 감당하고 있는지 살펴야 한다”고 대답했다. 시인은 시조의 다양한 형식은 인정하되 시조의 본령인 단시조 창작에 주력하는 일이 더 요청된다고 덧붙였다. 그것만이 ‘왜 시조인가?’에 대한 명징한 답변이 된다고 했다. 시조를 해외에 알리는 데 단시조가 가장 적절한 텍스트인데 단시조야말로 가장 맞춤한 ‘존재의 집’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을 묻자 그는 조금도 주저함 없이 ‘새와 수면’을 들었다. “강물 위로 새 한 마리 유유히 떠오르자// 그 아래쪽 허공이 돌연 팽팽해져서// 물결이 참지 못하고 일제히 퍼덕거린다// 물속에 숨어 있던 수천의 새 떼들이// 젖은 날갯죽지 툭툭 털며 솟구쳐서// 한순간 허공을 찢는다. 오오 저 파열음!” 역동적인 팽팽함과 퍼덕거림의 몸짓이 새 떼의 솟구치는 비상을 감각적으로 잘 전달해 준다. 시인은 이 밖에도 ‘애월 바다’, ‘에워쌌으니’, ‘주상절리’ 등을 떠올렸다. 시조시인으로 살아오면서 가장 보람 있는 일은 무엇이었을까? “정음시조문학상을 제정해 시행한 것입니다. 2019년에 제1회 수상자를 냈고 올해로 3회째를 맞습니다.” 제정 취지에서 시인은 훈민정음에서 찾아낸 ‘정음’의 정신을 받들겠다고 선언했다. 등단 15년 미만인 신진 시인의 창작 의지를 북돋우기 위한 의도로 시작된 이 문학상이 한국 시조시단의 청량한 기폭제가 될 것이라 생각해 본다. 그리고 시인은 문학이 인간의 영혼을 구원할 것이라고 문청 시절부터 믿었던 것이 한순간 무너져 내린 순간을 들려줬다. 1987년 첫 시조집 ‘아침 반감’을 내러 갔던 서울 길에서 체험한 종교적 회심이 그것이다. 이때부터 그는 진정한 영혼 구원의 길을 찾아가는 데 종교와 문학의 균형이 중요하다는 판단을 하게 된다. 더불어 이정환 시인은 어린이들을 위한 동시조를 꾸준히 쓰고 있는데, 2000년에 펴낸 첫 동시조집 ‘어쩌면 저기 저 나무에만 둥지를 틀었을까’에 수록된 ‘친구야, 눈빛만 봐도’가 초등학교 6학년 교과서에 실리기도 했다. 이 모든 것이 그가 가진 역량과 열정이 빛을 발하는 단면들일 것이다.●공복으로서, 시인으로서의 지극한 울림 이제 그는 1000명이 넘는 회원을 거느린 한국시조시인협회 이사장으로서 임기를 시작한다. 3년 동안 이 협회를 이끌어 간다. “공복이라는 말을 생각했습니다. 저는 이 말을 ‘공공을 위한 일꾼’이라고 여기고 항상 낮은 자세로 일하고자 합니다. 종가는 한 문중에서 맏아들로만 이어 온 큰집이기에 그 책무가 무겁고 중차대합니다.” ‘이사장 이정환’은 협회의 소중한 자산인 회원들의 작은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참여 지분을 적극 넓혀 나가도록 힘쓸 것이라고 한다. 전국적으로 여러 시조단체가 활동 중인데 모두 함께 시조 발전을 위해 협조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하는 일에도 노력을 기울일 생각이라고 한다. 그 가운데 그는 ‘한국현대시조문학사’ 편찬을 구상 중이라고 밝혔다. “유구한 역사를 지닌 우리의 전통 시가인 현대시조가 100년 역사를 맞고 있으나 아직 현대시조문학사를 정리한 전공 서적이 없는 실정이라 문학사 간행위원회를 구성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3년 안에 우리는 비교적 두툼하고도 정치한 시조문학사 한 권을 그의 노력으로 받아 보게 될 것 같다. 막중한 임무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이 ‘시인 이정환’임을 한순간도 잊지 않는다. 그는 팔순이 넘어서도 시조와 동시조를 쓰면서 명작을 남긴 백수 정완영 선생을 떠올리며 “시인의 길에 나이는 조금도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시조는 삶을 향한 태도와 마음 상태가 중요하지요. 여력을 확보해 시조의 본질에 근접해 가는 활동을 이어 가고 싶습니다.” 이정환 시인의 밝고 굵은 목소리에서 시조를 통해 빛을 뿌리는 미학적 순간들이 지극한 울림으로 다가오는 봄날이었다. 문학평론가·한양대 교수
  • 박형준 “엘시티 아파트, 정상 매입…딸도 분양권 사서 입주”

    박형준 “엘시티 아파트, 정상 매입…딸도 분양권 사서 입주”

    “딸 홍대 입시 비리도 흑색선전” 박형준 국민의힘 부산시장 후보가 15일 “제가 살고 있는 엘시티 아파트는 특혜분양 비리와 전혀 관계가 없고 지난해 4월 정상적인 매매를 거쳐 사 현재 1가구 1주택자”라고 강조했다. 박 후보는 이날 후보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렇게 밝혔다. 딸도 엘시티에 거주하고 있는 것과 관련 박 후보는 “제 딸은 남편이 사업가이고 자신들이 살던 센텀 아파트를 팔아서 융자를 끼고 분양권을 사서 입주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제 딸의 입시와 관련한 흑색선전도 벌어지고 있다. 제 딸은 홍대 입시에 임한 적도 없고 제 배우자가 부정한 청탁을 한 적도 없고 제가 홍대 입시 비리 사건에 개입할 이유는 더더욱 없다”고 말했다. 박 후보는 “근거도 없이, 사실관계 확인도 없이 ‘묻지마 의혹’을 제기하는 것은 전형적인 흑색선전이자 비열한 선거공작”이라며 “이에 단호히 맞서 싸울 것이고 동시에 이번 선거가 시민이 바라는 깨끗한 선거, 공정한 선거, 정책 선거가 될 수 있도록 끝까지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인호 더불어민주당 수석대변인은 이날 중앙선대위 회의에서 “박형준 후보와 가족은 각종 비위가 마르지 않는 샘터 같다”며 “자녀 입시비리 의혹, 특혜채용 의혹에 이어 오늘은 엘시티 두 채를 부인과 직계가족이 소유한 것이 밝혀져 여러 궁금증을 낳는다”고 밝혔다. 최선을 기자 csunell@seoul.co.kr
  • 권정선 경기도의원, 제9회 샘터문학상 공모전 시부분 신인문학상 수상

    권정선 경기도의원, 제9회 샘터문학상 공모전 시부분 신인문학상 수상

    경기도의회 교육행정위원회 권정선 의원(더불어민주당·부천5)이 지난 20일 샘터문학이 주최하는 제9회 샘터문학상 공모전에서 시 부분 신인문학상을 수상했다. 신인문학상 당선은 작가로 등단을 알리는 통과의례란 점에서 현역 정치인이 시인으로 등단하는 이색적인 진풍경이 연출된 것이다. 권 의원은 지난해 샘터문학상 공모에 ‘벌초(엄니의 작은집)외 4편’을 응모해 당선됐으며, 수상작 ‘엄니의 작은집’은 부모님에 대한 자전적 추억을 서술한 서정시로 권 의원의 부모님에 대한 애달픈 마음을 담았다. 수상에 대해 권 의원은 “뜻밖의 수상소식에 살아생전 자식이라면 벌벌 떠시던 부모님이 더욱 그립고 보고 싶어졌다”며 “아버지가 쉴새 없이 구해주셨던 책에서 상상력을 키울 수 있었고, 어머니의 삶의 모습은 화수분 같은 시상을 가져다 주셨다. 앞으로도 글을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쓰고, 숨 쉬는 일상 하나하나를 기록해 나가겠다”고 소회를 밝혔다. 한편 이날 시상식은 당초 작년 말에 개최할 예정이었으나 코로나19 방역 지침에 따라 시상식이 미뤄져오다 해가 바뀐 20일 중랑문화원에서 수상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개최됐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詩 떠메고 봄 햇살 둘러메고 천생 시인, 천상에 들다

    詩 떠메고 봄 햇살 둘러메고 천생 시인, 천상에 들다

    지난 15일 시인 김형영 선생이 우리 곁을 떠났다. 선생은 1944년 전북 부안에서 태어나 1966년 문학춘추로 등단한 이래 55년 동안의 시력(詩歷)을 쌓아 온 우리 시단의 대표 중진이다. 오랜 세월 ‘시’와 ‘신앙’이라는 두 바퀴로 조용조용 달려온 그의 정결한 생애를 두고 빈소에 모인 지인들은 깊은 추념과 안타까움을 나누었다. 시선집 ‘겨울이 지나간 자리에 햇살이’(문학과지성사)는 선생이 지상을 떠나던 그날 지상에 내려앉았다. 투병하던 당시 시인 스스로 그동안의 시집 10권에서 213편을 선정해 최종적으로 정본 작업을 완료한 시적 에센스가 영정 앞에 놓인 것이다. 비록 고인은 만져 보지 못했지만 그 책은 그 순간 선생의 몸이 되어 그가 천생 시인이었음을 증언하고 있었다.●저항의 세계에서 통회의 심연으로 선집 체재는 네 개의 시기별 분류를 택했다. 시인 스스로 ‘저항’→‘신앙’→‘자유’→‘교감’을 키워드로 해 자신의 삶의 궤적을 조감하도록 배려한 결과로 읽힌다. 아닌 게 아니라 그의 초기시는 폭력이 미만한 세계에 대한 항의와 저항으로 점철된 것이었다. 물론 그의 시는 소리 높여 외치는 것이 아니라 깊은 곳에서 조용하게 솟구쳐 오르는 나지막한 것이었다. 그 은유적 상관물로 시인은 ‘모기’를 택했는데 가령 시인이 간절하게 속으로 외친 소리는 “모기들은 죽으면서도 소리를 친다/죽음은 곧 사는 길인 듯이”(‘모기’)처럼 작고 소소한 이들의 마음으로 현상했다. 2015년 박두진문학상 수상 소감에서 “저는 지금도 왜 시를 쓰느냐고 자신에게 가끔 묻는다. 쓰면 쓸수록 어렵기만 하고, 때로는 숨이 막히게도 하는 시”라고 말씀한 그 ‘시’를 평생 떠메고 모기 소리처럼 작은 저항의 세계를 온축했던 선생은, 원치 않은 병고로 말미암아 스스로 깊은 신앙의 세계로 들어간다. 지금도 나는 김형영의 ‘통회(痛悔)시편’ 연작을 선연하게 기억하고 있다. 당시 나도 신앙의 문전에서 어정거리고 있을 때였기 때문일 것이다. “주님, 저를 죽이지 마소서./화가 나시더라도/ 흐느끼는 이 소리 들으소서.// 뼈 마디마디 경련이 일고/ 내 마음 이토록 떨리는데/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이 목숨 살리소서.”(‘통회시편 1’) 1980년대에 쓴 이 기도는 하늘에 상달되어 그로 하여금 ‘영성의 시인’으로 우리 곁에 머무르게끔 해 주었다. 무릇 모든 존재자는 현상계에서 물질적 존재 방식을 한시적으로 취하다가 시간의 흐름을 따라 사라져 가게 마련이다. 그럼에도 소멸이란 온통 비극적인 것이 아닌가. 하지만 선생은 그것을 평생 통회의 심정으로 탐구하고 형상화하면서 스스로의 존재 증명을 해 갔다. 선생의 말처럼, 모든 것이 은총이었을 것이다. 어쨌든 김형영은 이때부터 평범한 일상에서 근원적 사유와 형이상학적 전율의 세계를 길어올린다. 가장 신성하고 아름다운 세계를 희원하는 시인의 품과 격을 보여 준 것이다. 깊은 영성을 시로 담아 냄으로써 남루한 존재자들이 신성한 존재와 연루되고 있음을 고백하고 증언하고 탐구하는 지향을 일관되게 개척해 간 것이다. 그만큼 시인에게 가톨릭에 기반을 둔 사유와 감각은 신성한 존재를 희구하고 물어가는 실존적 사건이었으며 그러한 시선이 마침내 스스로에게 돌아오는 회귀성을 가지게 해 주었다. 세례명이 ‘스테파노’인 그는 수많은 이들의 대부 역할을 마다하지 않았는데, 대자 가운데 한 사람인 전동균 시인은 “가톨릭 영성을 심층적으로 서정성과 결합해 탐색해 낸 정말 보기 드문 시인”이라고 회고하기도 했다.●신성의 자유로운 현장으로서의 자연 후기로 갈수록 김형영 시의 주된 요소는 자연과 시인이 상응하는 장면에서 일어나게 된다. 말하자면 자연 사물의 구체성과 시인이 지향하는 삶의 지표가 서정적 순간성 속에서 견고하게 결속한 것이다. 그 빛나는 순간을 통해 우리는 김형영 브랜드인 형이상학적 빛을 한껏 쬐게 되고 이때 우리도 스스럼없이 환한 서정과 영성의 순간에 놓이게 된다. 후기 대표작 가운데 한 편을 읽어 보자. “봄비 오시자/ 땅을 여는/ 저 꽃들 좀 봐요.// 노란 꽃/ 붉은 꽃/ 희고 파란 꽃,/ 향기 머금은 작은 입들/ 옹알거리는 소리,/ 하늘과/ 바람과/ 햇볕의 숨소리를/ 들려주시네.// 눈도 귀도 입도 닫고/ 온전히/ 그 꽃들 만나고 싶거든/ 마음도 닫아걸어야겠지.// 봄비 오시자/ 봄비 오시자/ 땅을 여는 꽃들아/ 어디 너 한번 안아보자.”(‘땅을 여는 꽃들’) 물론 자연은 신성의 거소(居所)이자 고유의 향기와 소리로 스스로를 증명하는 신성 자체이기도 하다. 작은 입으로 하늘과 바람과 햇볕의 숨소리를 들려주는 봄날의 꽃을 온전하게 만나기 위해 시인은 눈도 귀도 입도 마음까지 닫은 채 크나큰 품으로 온전하게 봄날의 꽃들을 안아 들인다. 그러한 신성과의 소통 과정을 일러 시인은 ‘교감’이라고 규정했을 것이다. “영혼이 오가는 순간을/ 어찌 귀와 입으로 붙잡겠는가./ 눈도 아니다./ 생각도 아니다./ 나 없는 내가 되어/ 가슴으로 듣는 말,/ 사랑의 숨결이다.”(‘교감’) 이처럼 시인이 들려주는 사랑과 영혼의 소리에 우리도 가장 행복한 마음의 상태를 경험한다. 김병익 선생도 시선집 해설에서 “육신의 회복과 정신의 부활을 치르면서 김형영의 시는 이 세계와의 교감과 공감을 싱싱하게 드러낸다”고 하지 않았는가. 이처럼 그에게 ‘시’는 생명의 리듬이 만져지고 보이는 음악이요, 숨결의 형식이 선연하게 들려오는 보이지 않는 그림이었을 것이다. 시선집 ‘시인의 말’에서도 선생은 “계절이 바뀔 때마다 새로 태어나고 사라지는 생명들과의 교감 그리고 가끔 거기서 얻은 감동을 시로 꽃피우는 즐거움, 그 은총이야 말해 무엇하리”라고 적었다. 이러한 김형영 시의 지향은 결국 실존적 형이상학의 세계로 귀납될 것이고, 그때 그의 언어는 우리의 마음을 깊이 울리는 음악으로 남을 것이다.●샘터, 아버지, 그리고 봄 햇살을 따라 선생은 ‘샘터’에서 30여년간 편집자로 일했다. 이 오랜 전통의 월간지가 정점을 구가할 때였을 것이다. 법정, 이해인, 최인호, 정채봉 등 이 책을 그득하게 채웠던 언어들은 지금도 한국문학의 보석이 되어 빛을 뿌린다. 개인적 경험으로는 소설가 한강이 대학을 졸업하고 샘터에 들어갔는데, 입사 직후의 그를 만나러 대학로의 붉은 벽돌 건물 앞에서 얼떨결에 선생을 뵈온 일이 있었다. 나중에 선생의 시집 해설도 쓰고 같은 잡지의 자문편집위원도 하면서 선생의 말년과 함께할 수 있어 영광이었다. 마지막 투병 중 전화로 들었던 선생의 떨리는 목소리의 힘으로 선생의 시에 대한 기록을 더 깊이 수행해 갈 다짐을 해본다. 빈소에서 인사를 나눈 둘째아들 김상조씨와 장례를 마치고 전화 통화를 했다. “저나 형한테는 늘 친구 같은 아버지셨어요. 같이 식사하고 탁구나 배드민턴도 같이 치고, 힘들 때 서로 전화해 격의 없이 대화를 나누던 분이셨습니다.” 상을 치르면서는 지인과 후배들이 휴대폰에 남긴 내용이나 빈소에서 슬퍼하는 모습을 보고 아버지가 새삼 ‘큰 분’이었다는 것을 느꼈다고 한다. “유품을 정리하다가 지난해 12월 20일에 온 크리스마스 카드 한 장을 발견했어요. 자신이 한없이 방황할 때 신앙으로 인도해 주신 마음에 고마움을 표하는 감사 카드였습니다.” 선생의 묘역은 따로 없다. 가톨릭대학에 시신을 기증했기 때문이다. 상조씨는 아버지가 ‘유언시’라고 하시면서 1월 중에 보내 주신 작품 한 편을 문자메시지로 보내주었다. 처음 공개되는 선생의 마지막 작품 전문이다. “사랑하는 아들들아, 내가 죽거든/ 무덤일랑 만들지 마라/ 납골당에도 가두지 마라// 나를 먼지로 만들어/ 관악산 중턱 후미진 곳에서 뿌려다오/ 바람이 불면 바람 따라/ 구름이 흘러가면 구름 따라/ 새들 지저귀면 새소리로/ 꽃들 향기 뿜으면 그 향기에 취해/ 천지사방 허공을 떠돌며/보이지 않는 자연이 되어 날아다니고 싶다”(‘화살시편115-내가 죽거든’) 지금쯤 선생은, 바람 따라 구름 따라 훨훨 흘러가고 계실 것이다. 이제 선생은 스스로 언어의 화살이 되어 하늘나라로 들어갔다. 나는 새삼 그의 세례명을 생각했다. 신약성서 사도행전에 등장하는 스테파노는 돌에 맞아 순교하면서도 햇살보다 더 밝은 얼굴로 신에게 영혼을 의탁하는 모습이 기록된 분이다. ‘김형영 스테파노’의 얼굴에도 그 햇살이 환하게 비추었을 것이다. 그리고 하늘로 돌아간 그날 출간된 시선집 제목처럼 ‘겨울이 지나간 자리에’ 따뜻한 봄 햇살로 우리에게 남을 것이다. 스스로를 염두에 두고 쓴 것 같은 작품 한 편을 선집에서 꺼내어 봄 햇살에 비추며 읽어 본다. “별이 하나 떨어졌다./ 눈에 없던 별이다.// 캄캄한 하늘에 비질을 하듯/ 한 여운이 잠시/ 하늘에 머물다 사라진다./ 흔적 하나 남기지 않고/ 보다 작게/ 보다 낮게/ 한 점 남김없이 살다 간 사람.// 그를 기억하소서./ 그의 여운이 아직 사라지기 전에/ 한때 우리들의 이웃이었던 그를.”(‘무명씨’) 문학평론가·한양대 교수
  • [인사] 산업통상자원부, 샘터사, 기상청, 한국포스증권

    ■ 산업통상자원부 ◇ 과장급 전보 △ 공정거래위원회 파견 오재철 △ 무역안보심사과장 이희재 ■ 샘터사 △ 사업총괄 부사장 이상준 ■ 기상청 ◇ 고위공무원단 전보 △ 기상청 차장 유희동 △ 기획조정관 장동언 △ 기후과학국장 이미선 △ 지진화산국장 김남욱 △ 광주지방기상청장 김금란 ■ 한국포스증권 <선임> △ 사업총괄(부사장) 이병렬 <본부장 보직> △ 경영전략본부(상무) 김승현 △ 영업본부(상무보) 남광현 △ 플랫폼사업본부(상무보) 제현성
  • 인터파크 독자 선택한 올해의 책은 ‘펭수 다이어리’

    인터파크 독자 선택한 올해의 책은 ‘펭수 다이어리’

    ‘펭수 다이어리’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인기를 끌었다. 온라인 서점 인터파크는 독자들이 뽑은 올해의 책 1위에 ‘오늘도 펭수 내일도 펭수-꽃눈 에디션’(놀)이 선정됐다고 16일 밝혔다. 인터파크는 전문가들을 통해 우선 후보 도서 30종을 선별하고, 지난달 23일부터 이달 14일까지 독자를 대상으로 투표를 진행했다. 전체 24만 6396건의 투표에서 펭수 다이어리는 2만 6006표를 얻었다. 책은 펭수의 미공개 사진과 따뜻한 멘트를 담은 에세이집 형태의 다이어리로, 지난해 것을 리커버 에디션으로 재출간했다. 지난해 12월 예약 판매에도 시간당 1000부 이상 팔리며 관심을 끌기도 했다. 2위는 1만 3056표를 받은 김이나 작사가의 에세이 ‘보통의 언어들’(위즈덤하우스)이 차지했다. 법정 스님 열반 10주기 특별판 ‘스스로 행복하라’(샘터)가 1만 2162표로 뒤를 이었다. 인터파크 측은 “독자 선호도 투표만으로 선정했기 때문에 베스트셀러 순위와는 다소 다른 결과를 보였다”면서 “코로나19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만큼 위로와 공감을 건네는 에세이나 삶의 지혜를 얻을 수 있는 인문학 도서, 상상력을 자극하는 소설류가 많은 표를 얻었다”고 설명했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2020년 대한민국 자원봉사대상’ ④ 국민포장 수상자 김정구 회장

    ‘2020년 대한민국 자원봉사대상’ ④ 국민포장 수상자 김정구 회장

    행정안전부는 ‘제15회 자원봉사자의 날’(12월 5일)을 맞아 ‘2020년 대한민국 자원봉사대상’ 수상자를 발표했다. ‘자원봉사자의 날’은 자원봉사자에게 경의를 표하고 자원봉사활동을 촉진하기 위해 1985년 국제연합(UN)이 지정한 기념일이다. 우리나라는 2005년 ‘자원봉사활동 기본법’상 기념일로 지정됐다. 올해는 전국 각지에서 오랜 기간 헌신적으로 이웃 사랑을 실천해온 개인과 단체·기업·지방자치단체에 훈·포장과 표창 244점을 수여했다. 국민훈장은 이유근(76) 제주 아라요양병원 원장과 이상기(60) 나눔자리문화공동체 대표가 받았다. 국민포장에는 김덕애(75) 부산 원불교봉공회 고문과 김정구(65) 샘터뭉침회 회장이 선정됐다. 서울신문은 4회로 나눠 훈·포장자 4인을 차례로 소개한다. 이번 시간은 국민포장 수상자 김정구 샘터뭉침회 회장. ●김정구 샘터뭉침회 회장 주요 프로필 나이 : 65세 거주지역 : 대구광역시 직업 : 자원봉사원 소속 : 샘터뭉침회 봉사기간 : 40년 6월 이력 : 샘터뭉침회 회장 수상경력 : 행정안전부장관 표창(2011), 유집 박창원선생 추모사업회장 표창(1996), 보건사회부장관 표창(1991) ●김정구 샘터뭉침회 회장 공적 내용 서술 집에만 갇혀 지내던 장애인들을 세상 밖으로 나오게 한 사람이 있다. 샘터뭉침회 회장 김정구 씨다. 장애인이라는 단어조차 없었던 1980년, 2급 지체장애인이었던 그는 교양지 샘터에 회원 모집공고를 냈다. 그것은 그들의 권익을 스스로 찾자는 의지의 표명이었다. 길거리에서 일반인과 마주치기라도 하면 편견의 시선을 고스란히 받아내야 했던 시절이었으니 사회활동은 생각할 수도 없었다. 그들의 인권은 논의대상이 되지 않았던 사회 분위기 속에서 그가 장애인 인권운동에 나선 이유는 청소년 시절에 겪었던 좌절 때문이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텔레비전기술학원에서 기술을 배웠던 그에게 취업은 요원한 일이었다. 다시 가구공장에서 목공예기술을 배웠지만 생계는 막막하기만 했다. 운전의 필요성을 느낀 그는 대통령에게 장애인운전면허발급을 청하는 편지를 보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잡지사에 글을 기고하며 자신들의 처지를 알렸다. 1981년 장애인의 날이 제정되고 그도 대구 동촌 유원지에서 샘터뭉침회를 창립해 활동하기 시작했다. 그러한 노력 때문이었는지 1983년 1월 드디어 장애인운전면허증이 발급되었다. 그들에게 자립의 길이 열리게 된 것이다. 본격적으로 인권운동에 나섰다.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법관 임용에서 탈락한 박은수 씨를 위해 서명운동을 전개해 임용되도록 도왔다. 그들의 인권은 자립에서 얻는다고 생각한 그는 그들에게 맞는 직업을 찾아다녔다. 그 노력으로 섬유가공사, 금은세공, 가구공장 등에 현재까지 150여명을 취업시킬 수 있었다. 1992년에는 대구장애인기술지원센터를 설립하고 목공예, 인장, 열쇠수리, 구두수선 등의 기술을 무료로 가르쳐 기능인 양성에 열정을 쏟았다. 그 결실로 장애인기능대회에서 많은 메달을 획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13년부터는 자립보다는 기초생활비에 의지해 살려는 장애인들이 많아지는 현실에 안타까워했다. 그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를 만들고 싶었다. 사회통합은 그저 얻어지는 것이 아니기에 먼저 손을 내밀었다. 대구시민들의 휴식처인 앞산공원에 새집을 달고 환경정화 활동을 했으며 인천자유공원에 장미 묘목을 식수하는 등 76회에 걸쳐 시민을 위한 활동을 전개했다. 장애인이 도움만 받는 대상이 아니라 는 것을 보여준 일이지만 사회 봉사활동은 자신들의 자존감을 높이는 일이기도 했다. 2008년부터는 어울림체육대회를 개최해 서로 단합하고 소통하는 장을 만들고 있다. 샘터뭉침회 배드민턴클럽과 보치아클럽을 창단해 체력증진과 재활운동은 물론 장애인 체육 선수 양성에도 기여하고 있다. 장애인 인권운동은 궁극적으로는 행복 추구를 위한 일일 것이다. 그는 장애인들도 행복한 가정을 이루기를 바란다. 그동안 상담과 친구 맺기를 통해 150여명이 짝을 찾았다. 그들이 잘사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니 그는 장애인들의 진정한 아버지다. 그는 40년 전에 장애인단체를 창단해 오늘날 장애인복지의 초석을 놓았다. 넉넉지 않은 형편에도 장애인 복지와 인권향상을 위해 변함없는 활동을 펼치고 있는 그에게 찬탄의 박수를 보낸다. 그가 발행하는 회보 ‘어둠 속에 빛’ 12월호에 어떠한 사연과 활동이 담길지 궁금하다. 김태곤 객원기자 kim@seoul.co.kr
  • ‘2020년 대한민국 자원봉사대상’ ③ 국민포장 수상자 김덕애 고문

    ‘2020년 대한민국 자원봉사대상’ ③ 국민포장 수상자 김덕애 고문

    행정안전부는 ‘제15회 자원봉사자의 날’(12월 5일)을 맞아 ‘2020년 대한민국 자원봉사대상’ 수상자를 발표했다. ‘자원봉사자의 날’은 자원봉사자에게 경의를 표하고 자원봉사활동을 촉진하기 위해 1985년 국제연합(UN)이 지정한 기념일이다. 우리나라는 2005년 ‘자원봉사활동 기본법’상 기념일로 지정됐다. 올해는 전국 각지에서 오랜 기간 헌신적으로 이웃 사랑을 실천해온 개인과 단체·기업·지방자치단체에 훈·포장과 표창 244점을 수여했다. 국민훈장은 이유근(76) 제주 아라요양병원 원장과 이상기(60) 나눔자리문화공동체 대표가 받았다. 국민포장에는 김덕애(75) 부산 원불교봉공회 고문과 김정구(65) 샘터뭉침회 회장이 선정됐다. 서울신문은 4회로 나눠 훈·포장자 4인을 차례로 소개한다. 이번 시간은 국민포장 수상자 김덕애 부산 원불교봉공회 고문. ●김덕애 부산 원불교봉공회 고문 주요 프로필 나이 : 75세 거주지역 : 부산시 기장군 직업 : 주부 소속 : 부산 원불교봉공회 봉사기간 : 35년 이력 : 부산 원불교봉공회 부회장과 회장 역임, 현재 고문 수상경력 : 10,000시간 이상 자원봉사명예장(2016), 부산광역시장상(2016), 행정부장관상(2012), 부산광역시 센터장상(2009), 부산광역시장상(2007), 세계봉사자의 날 국무총리상(2005) ●김덕애 부산 원불교봉공회 고문 공적 내용 서술 분홍 조끼를 곱게 입은 그녀는 사랑스러운 미소를 가졌다.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는 웃음에는 경계가 없다.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이웃이 있다면 하던 일 제쳐두고 마중 나간다. 지난 35년 동안 부산 원불교봉공회 회원으로서 소외된 이들의 편에 서서 생각하고 몸을 움직였다. 우리는 각자 주어진 시간 속에서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살아갈 것인데, 그녀의 인생행로에는 자원봉사라는 아름다운 동행이 있었다. 그래서 붙여진 이름이 ‘은혜로운 덕애 씨’다. 그녀는 이웃과 함께한 자원봉사 1만 시간의 헌신으로 부산시 자원봉사자의 날에 자원봉사명예장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1985년 부산봉공회 회원이 되면서부터 그녀의 움직임은 지역사회로 향했다. 부산적십자 헌혈캠페인에 동참하면서 자연스레 지역병원에 관심 가지게 됐고, 국군통합병원과 백병원에서 정신질환자들을 보살피고 의료 침구를 수선하는 등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흰 지팡이의 날’이면 맹인들을 위한 위문잔치를 열어 위로했고, 장애아동시설에서 아동들을 돌보는 일에 정성을 쏟았다. 저소득층 가정에 신생아 용품과 식료품을 지원하는 일에도 성심을 다했다. 환경보호에도 관심이 깊어 어린이대공원과 청소년수련장에서 자연정화 운동을 펼쳤는데, 그 운동은 부산 해운대와 광안리 해수욕장을 비롯해 다대포해수욕장, 금정산까지 범위를 넓혀갔다. 부산 원불교봉공회가 1998년에 보건복지부 제821호로 복지법인 인가를 받으면서 더욱 체계적이고 활발한 자원봉사활동을 이어나갈 수 있었다. 부산의 남부민동은 열악한 지역 중의 하나였다. 그곳에 봉공센터를 세우고 소외된 이웃을 돌보기 시작했다. 무료 한방교실을 열어 어르신들의 건강을 증진했으며 국수를 끓여 대접하고, 홀로어르신, 청소년가장, 결식아동들에게 반찬을 지원하는 일을 수년째 해오고 있다. 중고의류매장을 운영해 장학후원 사업을 하기도 했고, 위아자나눔장터를 열어 불우이웃을 돕는 일에 적극 활용했다. 그녀의 지역사랑은 국제행사에서 더 빛이 난다. 2002아시아경기대회와 아태장애인 경기대회, 2008년 세계대회가 열렸을 때 자원봉사자로 활동하며 대회가 성공리에 마칠 수 있도록 도왔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가정은 갈수록 국제화되고 있다. 따라서 다문화가정의 문제를 외면할 수 없게 됐다. 인식이 많이 바뀌었다고 하나 여전히 편견과 차별이 존재하고 있다. 그들의 인권과 복지증진 없이는 대한민국의 모든 가정이 행복하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녀는 동구문화복지회관과 연계해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다문화가정에 따뜻한 손길을 내밀었다. 출산가정에는 산후도우미 역할을 자처했고, 여성들과 그 2세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운영해 한국문화를 알리고 그들의 문화를 공유하면서 지역사회 구성원으로 끌어안는 일에 힘을 쏟았다. 그녀의 얼굴에서 가장 환한 미소가 지어질 때는 나누미가 될 때다. 은혜의 쌀을 복지시설 마당에 가득 쌓아 올릴 때, 은혜의 김장을 홀로어르신 댁의 냉장고에 넣고 돌아갈 때, 은혜의 연탄을 창고 가득 채우고 돌아설 때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된 듯하다고 말한다. 늘 소외된 이들을 위해 몸을 움직였던 은혜로운 덕애 씨, 그녀의 미소가 아름다운 이유는 바로 그 행복감 때문이다. 김태곤 객원기자 kim@seoul.co.kr
  • ‘2020년 대한민국 자원봉사대상’ ② 국민훈장 석류장 수상자 이상기 대표

    ‘2020년 대한민국 자원봉사대상’ ② 국민훈장 석류장 수상자 이상기 대표

    행정안전부는 ‘제15회 자원봉사자의 날’(12월 5일)을 맞아 ‘2020년 대한민국 자원봉사대상’ 수상자를 발표했다. ‘자원봉사자의 날’은 자원봉사자에게 경의를 표하고 자원봉사활동을 촉진하기 위해 1985년 국제연합(UN)이 지정한 기념일이다. 우리나라는 2005년 ‘자원봉사활동 기본법’상 기념일로 지정됐다. 올해는 전국 각지에서 오랜 기간 헌신적으로 이웃 사랑을 실천해온 개인과 단체·기업·지방자치단체에 훈·포장과 표창 244점을 수여했다. 국민훈장은 이유근(76) 제주 아라요양병원 원장과 이상기(60) 나눔자리문화공동체 대표가 받았다. 국민포장에는 김덕애(75) 부산 원불교봉공회 고문과 김정구(65) 샘터뭉침회 회장이 선정됐다. 서울신문은 4회로 나눠 훈·포장자 4인을 차례로 소개한다. 이번 시간은 국민훈장 석류장 수상자 이상기 나눔자리문화공동체 대표. 이상기 대표는 지난 23년간 매일 자원봉사를 실천해 총 3만 시간이 넘는 활동을 기록해오고 있으며, 지금까지도 관내 취약계층 지원, 독거 어르신 식사 제공, 어르신·청소년 정서 상담 등 왕성한 참여를 이어오고 있다. ●이상기 나눔자리문화공동체 대표 주요 프로필 나이 : 60세 거주지역 : 시흥시 직업 : 자원봉사원 소속 : 나눔자리문화공동체 봉사기간 : 23년 6월 이력 : 나눔자리문화공동체 대표 수상경력 : 자원봉사유공 안전행정부장관 표창(2013), 대한민국나눔대상 보건복지부장관 표창(2012) ●이상기 나눔자리문화공동체 대표 공적 내용 서술 넉넉하고 맛깔스러운 손맛을 자랑하는 이상기 대표는 이른 아침부터 분주하다. 그녀의 작은 부엌 앞에 몰래 놓고 간 감자며 호박이며 두부, 콩나물 같은 식재료들을 다듬어 40인분의 반찬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매일 신선한 재료로 만들어내는 반찬은 취약계층 가정에 전달된다. 지금까지 21만 6000가정에 일 년 300일을 18년째 이어오고 있다. 풍족하지는 않지만 매일 반찬을 만들 수 있어 행복하다고 말하는 그녀에게는 후원자가 많다. 고맙게도 시장이나 슈퍼마켓 혹은 농가에서 식재료를 지원해준다. 또 그녀를 도와 반찬을 만들고 전달하는 봉사자들이 있다. 혼자였다면 분명 힘이 들었을 일이지만, 그녀와 함께 걸어가는 동행에는 사랑이 넘쳐난다. 1365자원봉사시스템에 누적된 봉사 시간이 3만 시간 이상이면 하루에 8시간씩 10년 이상을 봉사해야 가능한 시간이다. 자원봉사시간이 하루에 8시간만 인정된다고 하니 실제로는 3만 시간이 훨씬 넘는다. 그녀의 일상이 봉사였던 셈이다. 봉사의 시작은 199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청소년 문제에 관심이 많았던 그녀는 시흥시 관내 고등학교에서 청소년 상담과 멘토링 활동을 시작했다. 학교 밖 청소년들에게도 관심을 기울여 길거리 상담을 통해 우리 아이들이 올바르게 성장할 수 있도록 선도하고 소통하는 엄마이며 선생님이기를 자처했다. 2007년에는 드림스타트 운영위원으로 활동하며 한 부모와 조손가정, 다문화가정의 아동·청소년에게도 마음을 쏟았다. 지역사회 네트워크를 활용해서 푸드뱅크와 연계하거나 멘토를 맺어줘 몸과 정신이 바르게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왔다. 그녀의 청소년에 대한 여러 활동은 청소년 봉사문화 형성에 디딤돌이 됐다. 2002년부터 신천동자원봉사협의회에서 청소년 봉사팀을 운영한 계기로 2009년 청소년 중심의 나눔자리 문화공동체를 조직하고, 이후 적십자 청소년봉사회와 지역 RCY를 조직해 청소년 자원봉사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그녀가 특별히 청소년 봉사에 지극정성인 이유는, 청소년들이 봉사를 통해 나누는 마음을 갖게 되면서 함께 살아가는 법을 체득할 것이라는 신념이 있었다. 자기 자신과 사회가 운명공동체라는 사실을 안다면 학교폭력으로 고통받는 아이도 생기지 않을 것이었다. 일반 시민과 함께하는 환경정화 활동을 통해 지역 사랑을 알리는 일을 한 지도 20년이 넘었다. 장애인을 위한 복지증진을 위한 일도 그녀의 활동목록에 있다. 장애인체육대회 급식 봉사를 지원하고, 하계·동계 방학 동안 장애인을 위한 교육사업도 진행한다. ‘Talk, Play, Learn하자.’ 이 슬로건은 평범하지만, 사랑과 희생으로 가능한 일일 것이다. 다양하고도 광범위한 그녀의 활동을 돌아보면 모든 것이 지역사회의 복지증진을 위한 일이었다. 그래서 청소년을 위한 교육사업도, 사회복지시설과 정기적인 교류를 하는 일도, 홀로 어르신들과 어버이 결연을 맺는 일도 그만둘 수 없다. 그녀는 매일 반찬을 전달하면서 안부를 묻고 필요 물품이 없는지 챙기고 청소와 이불빨래까지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는다. 코로나19로 복지관과 급식소가 문을 닫으면서 이 활동은 더욱 가치 있는 일이 됐다. 사랑하고 나누는 일이 달콤하다고 말하는 그녀는 오늘도 그 넉넉한 손으로 도시락 가득하게 반찬을 담는다. 김태곤 객원기자 kim@seoul.co.kr
  • ‘2020년 대한민국 자원봉사대상’ ① 국민훈장 석류장 수상자 이유근 원장

    ‘2020년 대한민국 자원봉사대상’ ① 국민훈장 석류장 수상자 이유근 원장

    행정안전부는 ‘제15회 자원봉사자의 날’(12월 5일)을 맞아 ‘2020년 대한민국 자원봉사대상’ 수상자를 발표했다. ‘자원봉사자의 날’은 자원봉사자에게 경의를 표하고 자원봉사활동을 촉진하기 위해 1985년 국제연합(UN)이 지정한 기념일이다. 우리나라는 2005년 ‘자원봉사활동 기본법’상 기념일로 지정됐다. 올해는 전국 각지에서 오랜 기간 헌신적으로 이웃 사랑을 실천해온 개인과 단체·기업·지방자치단체에 훈·포장과 표창 244점을 수여했다. 국민훈장은 이유근(76) 제주 아라요양병원 원장과 이상기(60) 나눔자리문화공동체 대표가 받았다. 국민포장에는 김덕애(75) 부산 원불교봉공회 고문과 김정구(65) 샘터뭉침회 회장이 선정됐다. 서울신문은 4회로 나눠 훈·포장자 4인을 차례로 소개한다. 이번 시간은 국민훈장 석류장 수상자 이유근 제주 아라요양병원 원장. 이유근 원장은 60년 평생을 취약계층에 대한 의료봉사와 지역인재 육성을 위한 교육·기부활동에 전념해 왔다. 특히 제주도 자원봉사협의회 및 자원봉사센터의 출범과 정착을 주도하는 등 지역사회 자원봉사의 기틀을 마련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이유근 제주 아라요양병원 원장 주요 프로필 나이 : 76세 거주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직업 : 의사 소속 : 아라요양병원 봉사기간 : 62년 이력 : 한국병원 원장 역임, 한마음병원 원장 역임, 제주경실련 평생교육아카데미원장 역임, 동리평생학교 교장 역임, (사)제주특별자치도자원봉사협의회장 역임, 제주국제관악제조직위원회 수석 부위원장, 아름다운가게 제주 공동대표, 휴먼르네상스아카데미 운영위원장, (사)위즈덤시티 이사장, 한국스카우트제주연맹 위원장과 고문, 김영갑갤러리두모악법인 이사장, 아라요양병원 원장. 수상경력 : 자원봉사유공 국무총리 표창(2004), 우수기관 국무총리 표창(2004), 자원봉사유공 여성부장관 표창(2001), 의료발전유공 국무총리 표창(2001), 자원봉사유공 법무부장관 표창(1997), 자원봉사유공 법무부장관 표창(1994) ●이유근 제주 아라요양병원 원장 공적 내용 서술 ‘나의 삶과 나의 의술을 순수하고 경건하게 유지할 것이다.’ 히포크라테스의 선서를 일생 지키며 사는 이유근 원장에게는 직함이 많다. 아라요양병원 원장을 포함해 7개나 된다. 그만큼 책임지고 해야 할 일이 많다는 뜻이겠다. 직함의 면면을 살펴보면 부와 명예를 위한 일이기보다는 제주시민을 위한 일임을 알게 된다. 그의 봉사는 시작부터 남달랐다. 1959년 까까머리 고등학교 시절부터 도서실 봉사를 했다는 그는 졸업식에서 공로표창을 받았다. 이후 그가 쌓아 올린 봉사 시간이 62년이라고 하니 일생 봉사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대학 시절 광주적십자사 청년봉사회에 가입한 그는 무의촌 의료봉사에 전념했다. 그 헌신으로 1966년 적십자사총재 표창을 받기도 했다. 군의관으로 재직하는 동안에도 의료봉사는 계속되었고, 전역 후 북제주군 보건소장으로 있으면서 산간마을 학생들의 교의를 맡아 학생 보건에 힘썼다. 방사선과 전공의를 마치고 그의 제주사랑은 곧장 시민에게로 향했다. 제주의 낙후한 의료수준을 안타까워했던 그는 1979년 최초로 방사선과 의원을 개원해, 1년여 동안 서귀포 지역 의사들에게 무료특강을 하는 등 의료수준을 높이는 데 노력했다. 이후 그가 설립한 제주 최초의 종합병원인 한국병원은 현재 시민 보건의 중추적인 역할을 맡고 있다. 바쁜 업무에도 그의 시선은 늘 불우한 이웃에게로 향했다. 무의촌 봉사를 손에서 놓지 않았고, 형편이 어려운 환자들에게 치료비를 감면하는 등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몸소 실천하고 있다. 1985년부터 본격적으로 청소년 선도 활동에 나섰다. 제주지방검찰청 소년선도위원으로 선임되면서 범법 청소년들을 사회구성원으로 복귀하도록 도왔다. 또 중고등학교와 제주보호관찰소에 성교육, 금연, 알코올 중독 예방 교육을 실시해 건강한 청소년문화를 조성했다. 가정형편이 어려운 청소년들에게 공부방 지원 사업을 추진해 학업성취는 물론 탈선 예방에도 큰 성과를 거뒀다. 청소년 사업은 그가 속한 한마음병원에서도 이루어졌다. 직원들은 급여의 1%를 사회기금으로 적립하고 있는데, 그는 전체 액수만큼의 성금을 장학사업에 기탁한다. 병원 내 자원봉사활동도 활발해 의료기관의 모범사례로 칭찬받고 있다. 사랑의 장기기증운동, 시신기증운동은 의료봉사 활성화의 결실이기도 하다. 나아가 제주문화원을 창설하는 일에도 적극적으로 나서서 제주의 자원봉사문화 형성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지역사회를 복지공동체로 만드는 일은 그의 큰 꿈이었다. 2000년 제주시자원봉사단체협의회가 결성되고 초대회장을 맡은 그의 행보는 거침이 없었다. 보육원과 소년소녀가장 돕기, 한센복지협회, 새생명후원회, 외국인근로자 무료진료소개원 등에 적극 동참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장애인관광도우미사업, 취약계층 주거환경개선사업, 우리 바다 살리기 운동, 휴먼르네상스아카데미 등 일일이 나열할 수도 없을 정도다. 모두 지역민을 위한 복지문화 사업이었다. 그는 제주의 풀뿌리 민간자원봉사자들의 자발적인 움직임이 안녕한 사회를 만든다고 말한다. 그는 그 토대를 다지는 일에 일생을 헌신한 사람이다. 열정은 멈추지 않아서, 앞장서고 있는 여러 활동에 여전히 동참자이자 든든한 지원자다. 김태곤 객원기자 kim@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