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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화플러스] 英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 전시

    영국의 포스트 팝아트 작가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 전시가 서울 청담동 더 컬럼스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새달 2일까지. 전구, 책 등 일상의 평범한 사물들을 단순한 색과 강렬한 원색 등을 이용해 독특한 방식으로 재구성하는 작품세계를 만날 수 있다. 의자, 선글라스, 신발, 컵 등 일상생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대량 생산 제품들이 독특한 색감으로 전혀 다른 이미지로 재탄생한다. 노란 의자, 분홍과 자주색 소화기, 빨강과 보라색 변기가 떠있는 화면 등 팝아트와 미니멀리즘의 중간에서 묘하게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작품들이 관객들에게 감각적 사유를 하게 만든다.(02)3442-6301.
  • 성난 MB, 정보유출자 색출령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이 진노했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구성 때부터 철저한 보안을 위해 함구령을 내렸음에도 지켜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극비 사항이나 내부자료가 외부에 잇따라 유출되자, 이 당선인은 측근들에게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느냐.”고 질타하며 정보 유출자를 색출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당선인은 무엇보다 지난 5일 자신에게 보고된 정부조직법 개편 초안이 불과 20분 뒤에 한 방송사를 통해 보도된 것을 보고 격분했다고 한다. 이 당선인 비서실의 한 관계자는 “비서실이 발칵 뒤집혔다.”면서 “정보 유출자를 찾느라고 비서실 전체가 뒤숭숭하다.”고 내부 분위기를 전했다. 심지어 비서실 직원들과 일부 인수위 관계자들은 자신들의 통화기록 등을 조회해도 좋다는 ‘개인정보에 관한 조사동의서’에 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수위 한 관계자는 “인수위가 국민들에게 안정감을 줘야 하는데, 아직 결정되지도 않은 사안이 밖으로 흘러나가 의사결정 과정에서 혼선을 빚지 않을까 이 당선인의 걱정이 많다.”고 말했다. 이 당선인이 다시 한번 강도 높은 함구령을 지시하면서 인수위 관계자들도 입조심에 더욱 신경을 쓰는 분위기다. 측근들은 아예 외부에서 걸려오는 전화는 피하고 있다. 특히 이 당선인과 전날 밤 심야 회의를 마치고 귀가한 측근 의원들이 일제히 휴대전화를 꺼놓은 것도 이런 맥락이다. 이 당선인은 총리 인선과 조각에 대해서도 극도의 보안을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초기 구상 단계에서 모든 게 새나가면서 자칫 큰 그림을 망칠 수도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김지훈기자 kjh@seoul.co.kr
  • [NFL] 샌디에이고 PO서 웃다

    미프로풋볼(NFL) 샌디에이고 차저스가 아메리칸 콘퍼런스(AFC) 와일드카드 다툼에서 테네시 타이탄스를 누르고 13년 만의 포스트시즌 승리를 구가했다. 샌디에이고는 7일 홈경기에서 쿼터백 필립 리버스가 30차례 패스 가운데 19개를 성공시켜 292야드를 전진시키고 2006년 최우수선수(MVP)로 뽑힌 러닝백 라다니언 톰린슨이 42야드 패스를 막아낸 활약 끝에 테네시를 17-6으로 제쳤다.1994년 슈퍼볼에서 샌프란시스코에 26-49로 무참한 패배를 당한 이후 네 차례 포스트시즌 진출에서 모두 쓴잔을 마신 뒤 거둔 감격적인 승리였다. 샌디에이고는 콘퍼런스 결승 진출권을 놓고 14일 전년도 슈퍼볼 패자인 인디애나폴리스 콜츠와 힘겨운 싸움을 벌인다. 샌디에이고는 지난해 11월12일 인디애나폴리스와 맞붙어 지난 시즌 최우수선수(MVP)로 뽑힌 페이튼 매닝으로부터 여섯 차례나 가로채기를 뽑아내고 경기종료 1분31초를 남기고 시도한 키커 애덤 비나티에리의 29야드 필드골이 실패한 덕에 23-21 짜릿한 승리를 거둔 적이 있다. 또 올해 원정경기에서 8승1패의 압도적 우위를 보인 뉴욕 자이언츠는 탬파베이 버캐니어스와의 내셔널 콘퍼런스(NFC) 와일드카드 싸움에서 24-14 승리를 거두며 원정 연승을 이어갔다. 자이언츠는 14일 댈러스 카우보이스와 콘퍼런스 결승 티켓을 다툰다. 첫 번째 포스트시즌 승리를 챙긴 쿼터백 엘리 매닝은 27차례 패스 시도 중 20개를 성공시키며 185야드를 전진시키며 승리의 주역이 됐다. 코너백 코리 웹스터는 가로채기와 펌블 리바운드로, 마이클 스트레이헌은 9차례의 태클과 한 번의 ‘색(sack)’으로 승리를 뒷받침했다.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한국서 날린 새해 풍선, 日가정집서 받았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무자년 새해를 기념해 한국에서 날린 풍선이 일본의 한 가정집에서 발견돼 화제가 되고 있다. 일본 도쿠시마신문은 “한글이 쓰여진 색색깔의 풍선이 도쿠시마(徳島)시 다카라(多家良)마을의 한 가정집에서 발견돼 가족과 마을 주민들이 모두 놀라워하고 있다.”고 지난 3일 보도했다. 도쿠시마는 서울에서 비행기로 약 1시간 30분 떨어진 곳이다. 농민인 토리 타다(鳥居正·70)씨의 앞마당에서 발견된 이 풍선은 빨강·파랑색 등 9개가 끈으로 묶여있었으며 풍선에는 ‘무자년’과 ‘새해 소원 성취하세요’라는 문구가 한글로 쓰여져있다. 또 한국의 한 백화점 이름이 풍선에 적혀있어 신년 행사때 날린 것으로 추측된다. 풍선을 발견한 토리씨는 “지난해 12월 부친이 돌아가셔서 외로운 새해를 보내고 있었다.”며 “그러나 우리 가족에게 행운의 선물이 도착한 것 같아 2008년은 좋은 해가 될 것 같다.”며 기뻐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주미옥 기자 toyobi@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스턴트맨 출신 영화감독 원신연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스턴트맨 출신 영화감독 원신연

    흔히 ‘스턴트맨’으로 불린다. 온몸을 던져 각종 위험한 연기와 묘기를 직접 실연한다. 자신의 얼굴과 이름을 결코 드러내지 않는다. 말 그대로 ‘대역 인생’이기 때문. 그래서 목숨 걸고 열연을 해도 빛을 보지 못한 채 그저 그렇게 영화계를 떠나간다. 하지만 여기 예외가 있다. 스턴트맨 출신 영화감독 원신연(40)씨가 바로 주인공. 그는 한국영화가 한참 침체 속에 빠져 있을 지난해 11월, 주변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세븐데이즈’라는 영화를 불쑥 내놓았다. 결과는 전혀 예상 밖이었다. 개봉 한 달만에 200만 관객을 돌파하면서 ‘원신연’이라는 이름 석자를 확실히 각인시켰다. ●세븐데이즈 관객 200만 대박 그럴 것이 최근 네티즌들이 2007년 최고의 작품을 뽑은 결과 ‘화려한 휴가’(18.0%),‘디워’(12.2%),‘밀양’(10.2%)에 이어 ‘세븐데이즈’(8.3%)를 4위에 올려놓았다. 또 기대를 안 했으나 뜻밖에 재미있었던 영화로 ‘세븐데이즈’(5.9%)를 1위로 꼽았다. 아울러 2007년 말 시나리오작가들에 의해 ‘올해의 시나리오’에 뽑혀 시나리오의 중요성을 새삼 부각시켰다. 평론가들은 ‘세븐데이즈’가 영화적 재미와 작품성을 동시에 절묘하게 배합하는 데 성공했으며 한국 스릴러 장르를 한 단계 끌어올리는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특히 탄탄한 시나리오와 함께 침체일로의 한국영화계에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한 작품이라고 했다. 그러나 정작 관심을 끄는 것은 야간 고등학교를 겨우 나온 스턴트맨 출신이 온갖 역경과 좌절에도 결코 포기하지 않고 만들어낸 작품이라는 점. 해외 유학파들조차 여전히 감독 데뷔를 못하고 있을 정도로 고학력 인재들이 많은 충무로 바닥에서 촉망받는 감독으로 어엿하게 자리매김한 것이다. ●고졸출신이 해외파 제치고 충무로 우뚝 원 감독은 이에 대해 “그저 하고 싶었던 일이고, 단지 이제 시작일 뿐”이라고 담담하게 말한다.‘세븐데이즈’는 그동안 시행착오를 겪으며 갈고 닦은 내공을 응집해 ‘발사대’를 만든 것이나 다름없다고 했다. 따라서 앞으로는 이를 바탕으로 희망을 쏘아올리는 새로운 길, 즉 나이 마흔에 영화인생 제2막을 시작할 것이라고 새해 포부를 곁들인다. 서울 강남의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지난 12월부터 강화도 마니산 자락에 마련한 작업실에서 두문불출, 시나리오 작업에 매달리고 있다.)스턴트맨 생활을 해서인지 얼핏 보아도 단단한 몸매임을 금방 알 수 있었다. 우선 새해를 맞는 소감이 어떤지 물었다. 새로 준비하는 작품이 간단치 않다는 소문을 들어서였다. 그랬더니 “새해 첫날 마니산 정상에 올라 ‘삼고’를 목놓아 외쳤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아니 무슨 삼고? ‘목숨 걸고’‘(시나리오)쓰고’‘(영화를)만들고’ 등 세 가지란다. 준비 중인 영화는 어떤 것이냐고 하자 “할리우드의 블록버스터 못지 않다. 한국적인 정서가 충분히 녹아 있는 그런 영화가 될 것”이라면서 기대해도 좋다고 자신했다. 아직 내용을 밝힐 단계는 아니며 예산도 많이 투입되고 또 한국영화의 새로운 위상을 보여줄 것이라고만 했다. 아울러 올 여름에 크랭크인된다는 귀띔이다. ●“올여름 크랭크인… 한국영화 위상 보여줄 것” “관객들의 시선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높아져 있습니다. 그래서 영화는 관객들에게 시각적·청각적으로 즐거움과 또 뭔가를 남겨줘야 합니다. 한국영화는 그동안 어떤 틀이나 공식에 얽매여 있다고나 할까요? 예를 들어 코미디 영화인 경우, 처음에는 웃기다가 나중에 감동을 주는 식이지요. 이제는 좀더 자유로운 의식으로, 자유로운 영화가 만들어져야 합니다.” 우리 영화계의 현실에 대한 얘기가 나오자 그는 “별로 공들이지 않은 영화들이 400만∼500만 관객이 드는 것을 보고 많은 고민을 했다.”면서 “그러다보니 창의적인 텃밭과 그 밑거름이 무너져 우리 영화계가 스스로 무덤을 판 꼴이 되고 말았다.”고 안타까워했다. 또한 관객들이 보고 싶어하는 시나리오를 만들고 또 여기에 투자가 이루어져야 하는데 제작자들도 이런 것에 익숙지 않다는 것. 결국 새로움을 추구하는 창의성이 고갈되면서 홍콩영화처럼 아류작을 양산하다보니 우리 영화가 스스로 몰락하는 계기가 됐다는 지적이다. 관객들이 변하는 것처럼 감독이나 제작자들도 변해야 한국영화가 살아나갈 수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화제를 돌렸다. 왜 스턴트맨 생활을 했는지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경기도 여주에서 다섯 형제 중 넷째로 태어난 그는 1976년 부모를 따라 무작정 서울로 올라왔다. 집이 워낙 가난해 서울에 가면 입에 풀칠이라도 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딱히 갈 곳도 없던 식구들은 서울 중랑천 인근에 ‘방공 방첩’이라고 씌여진 빈 초소 등을 떠돌며 살았다. 이런 생활 때문인지 원신연은 초등학생 때 또래 아이들에게 놀림을 자주받았다. 하지만 원신연은 평소 좋아하는 운동을 하면서 이겨냈다. 도봉중학에 진학하면서 그는 기계체조를 배우기 시작했다. 이 무렵 88서울올림픽에 출전해 메달을 따면 포상이 푸짐하다는 얘기를 전해들었다. 즉, 배고픔을 벗어나겠다는 일념으로 기계체조를 하게 됐던 것. 하지만 제대로 된 코치한테서 정식으로 배우는 것이 아니라 혼자서 책 보고 응용하면서 철봉과 평행봉 등을 접했다. 마루운동 연습은 아스팔트나 땅바닥이었다. 넘어지고 깨어지는 것이 부지기수였다. 나중에 도봉중학의 대표선수에 뽑히기는 했지만 시합에는 나가지 못했다. 보성고교 야간에 입학하면서 체육관에 다니던 선배들한테 쿵후와 종합무술 등을 익혔다. 그러던 어느날 한 선배의 권유로 스턴트맨 역할을 하게 된다. 때마침 아르바이트 일을 구하던 참이었다. 이때부터 낮에는 영화 촬영장에서, 밤에는 학교에서 공부를 하는 생활이 연속됐다. 시간이 지나자 공부하기가 싫어 결석하는 날도 많아졌다. 어쩌다가 학교에 가면 담임선생한테 호된 야단과 함께 매맞기 일쑤였다. 한때는 아예 가출까지 해버렸다. 공부도 싫고 충무로에서 스턴트맨 생활이 그저 좋았다. 주위 설득으로 3개월만에 퇴학을 각오하고 다시 학교에 갔지만 다행히 담임 선생의 배려 덕분에 ‘없었던 일’로 됐다. 원신연의 솔직한 대답과 어려운 생활환경을 이해했기 때문이다. “달려오는 자동차에 몸을 던지고 높은 다리에서 떨어졌을 때 다들 박수를 쳤지만 촬영이 끝나 뒤돌아섰을 때 밀려오는 허무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지요.” ●시나리오도 독학…100여편 탈고 그래서 마음 먹은 것이 시나리오를 쓰는 일이었다. 독학으로 시나리오 작법을 터득하면서 낮에는 촬영현장에서 몸을 굴리고 밤에는 시나리오 작업에 미친 듯이 매달렸다. 그러는 한편, 스턴트맨 일당으로 필름을 사고 카메라를 빌려가며 단편 영화를 만들었다. 그야말로 고층빌딩에서 뛰어내려 번 돈으로 필름 사고, 돈 떨어지면 다시 뛰어내려 영화를 찍고 또 찍었던 것. 이런 열정으로 각종 단편영화·독립영화 공모전에서 수상하는 등 호평을 받았다. “어려서부터 소외계층에서 자랐다고나 할까요. 가난과 질시, 여러 고난이 생길 때마다 제 자신을 채찍질하기 위해 감자 몇개 들고 도봉산으로 들어가 며칠 밤낮을 견디곤 했지요.” 2003년에 각본 쓰고 감독했던 영화 ‘빵과 우유’가 자신의 처지와 비슷한 소외계층을 다룬 작품이다. 원 감독은 감성이 여린 편이다. 어려서부터 소외되다보니 희로애락을 잘 흡수하게 됐으며 오히려 영화를 만드는 데 장점으로 작용하게 된다는 것. 지금까지 100여편의 시나리오를 직접 쓰게 된 까닭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2008년 ‘삼고’의 결과가 벌써부터 기대된다. 글 인물전문기자 km@seoul.co.kr 사진 류재림기자 jawoolim@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1968년 경기도 여주 출생 ▲89년 보성고 졸업 ▲87∼98년 ‘49일의 남자’‘여고괴담’ 등 100여편의 영화에 스턴트 출연 ▲90년 ‘꼭지딴’ 단역출연 ▲91년 ‘밥풀데기 형사와 전봇대 형사’ 조연 출연 ▲97년 ‘넘버3’ 무술지도 ▲99년 ‘카라’ 무술감독 ▲2001년 ‘적’‘세탁기’ 감독 ▲02년 ‘자장가’ 감독 ▲03년 ‘빵과 우유’ 감독 각본 ▲05년 ‘가발’ 감독 각본 ▲06년 ‘구타유발자’ 감독 각본 ▲07년 ‘세븐데이즈’ 감독 각색 # 주요 수상 제29회 서울독립영화제 최우수상, 제2회 대한민국 영화대상 단편영화상,2004년 영화 진흥위원회 시나리오 공모전 최우수작품 ‘구타유발자’
  • 전도연·김연아 ‘아시아의 우상’ 선정

    전도연·김연아 ‘아시아의 우상’ 선정

    ‘칸의 여왕’ 전도연(35)과 ‘피겨요정’ 김연아(18)가 아시아의 우상으로 우뚝 섰다. 전도연과 김연아는 ‘아시아뉴스네트워크’(Asia News Network, ANN)가 연예, 스포츠, 정치, 경제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선정한 ‘아시아의 우상’(Asia’s Idols)에 이름을 올렸다. 특정 지역이나 단체가 아닌 아시아 14개 지역에서 발행되는 16개 신문이 공동으로 참여한 선정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ANN은 전도연에 대해 “엄밀히 따지면 젊고 예쁜 소위 ‘한류스타’는 아니다. 그러나 그녀는 한국을 대표하는 여배우이며 칸 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으로 그 사실을 증명했다.”고 소개했다. 이어 “전도연은 학생에서 불륜 여성 역할까지 소화해내면서 ‘카멜레온’이라는 평가를 받았다.”면서 “그녀는 언젠가 연기를 즐길 뿐 위대한 배우로 불리고자 하는 욕심은 없다고 말했었다.”며 높이 평가했다. 김연아는 “세계 피겨 역사를 다시 쓰고 있는 소녀”라는 평가와 함께 ‘우상’에 선정됐다. ANN은 김연아를 “평소에는 인터넷과 쇼핑을 즐기는 평범한 10대 소녀지만 스케이트만 신으면 특별해진다.” 며 “지난 시즌 쇼트프로그램과 프리스케이팅 모두에서 그랑프리 대회 최고 기록을 갈아치운 선수”라고 밝혔다. ANN의 이번 ‘아시아의 우상’에는 전도연과 김연아를 비롯해 군사정부에 맞서 시위를 진행한 미얀마 수도승들, 영화 ‘색, 계’의 탕웨이, 일본 투수 마쓰자카 다이스케등 여러 분야의 17명이 선정됐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박성조 기자 voicechord@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씨줄날줄] 봉황휘장/육철수 논설위원

    봉황은 우리 민족을 상징하는, 상서롭고 고귀한 상상의 새다. 봉(鳳)은 수컷이고 황(凰)은 암컷인데, 옛 문헌에 묘사된 모습은 각양각색이다. 아마 직접 본 사람이 아무도 없으니 그렇지 않나 싶다. 가장 그럴듯하고 마음에 드는 묘사는 열 가지 동물을 닮았다는 기록이다. 앞은 기러기(신의), 뒤는 기린(슬기), 턱은 제비(부귀), 부리는 닭(성실), 목은 뱀(풍년), 꼬리는 물고기(兵權), 이마는 황새(고귀), 뺨은 원앙(원만), 몸은 용(인재), 등은 거북(예지력)과 유사하다고 한다. 깃털은 5색이고 5음을 내서 운단다. 오동나무에 깃들고 대나무 열매와 감천수를 마시며, 덕치(德治)가 이루어지는 나라만 골라 날아든다고 전해진다. 예로부터 봉황이 덕·의·예·인·신(德義禮仁信)을 두루 겸비한 성군(聖君)을 상징한 연유일 것이다. 정부는 이런 점을 고려해서 1967년 1월31일 대통령의 지위와 권위를 상징하는 표장(標章)으로 봉황휘장을 만들었다. 대통령 관저와 집무실, 대통령이 참석하는 장소, 대통령이 이용하는 항공기·차량·열차, 그리고 대통령이 주는 임명장과 표창장 등에는 어김없이 황금색 봉황휘장이 장식돼 있다. 여기에는 나라의 태평과 훌륭한 국가지도자를 바라는 국민의 염원이 담겼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이 이렇게 멋있는 휘장을 쓰지 말자고 했다고 한다. 봉황이 너무 권위적이라는 게 이유다. 국민을 섬기고, 국민과 거리를 좁히려는 차원이라니 달리 뭐라고 할 말이 없다. 하기야 역대 대통령들은 독재와 쿠데타, 비리 구속, 친인척 관리소홀, 탄핵과 실정 등으로 숭고한 봉황휘장의 의미를 수시로 훼손했다. 이 당선인은 전임자들이 인격과 통치는 국민의 기대에 한참 못 미쳤으면서 봉황휘장을 달고 위세를 부리던 모습이 못마땅했을지도 모른다. 봉황휘장을 쓰고 안 쓰고는 이 당선인이 선택할 문제다. 낡은 권위를 털어내고 낮은 데로 임하려는 그의 충심을 모르는 바 아니다. 하지만 휘장에는 국가와 국민의 자긍심도 들어있음을 간과해선 안 된다. 개인적 결단을 굳이 말릴 수는 없으나, 새 국가지도자로서 봉황휘장 본연의 상징에 걸맞은 품성과 통치력을 발휘해주면 더 바랄 게 없겠다. 육철수 논설위원 ycs@seoul.co.kr
  • 2008 패션 키워드 노랑을 주목하라

    2008 패션 키워드 노랑을 주목하라

    파리, 뉴욕, 런던, 밀라노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패션 도시의 숨어 있는 패션 명소 가운데 한국인이 다녀가지 않은 곳이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한국인들의 세계 유행 따라잡기는 대단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열광적인 분위기를 받쳐줄 만한 좋은 정보는 항상 부족하다. 매년 이맘때 쯤이면 올 봄 유행을 전망하는 기사들이 넘쳐난다. 그러나 엇비슷한 유행 전망류의 기사가 공허하게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번역 문장들 때문일 터. 그 유명한 세계 4대 컬렉션 근처에는 가보지도 않고 오로지 스타일닷컴(www.style.com)이나 뉴욕 타임스의 실시간 온라인 기사들을 들여다 보며 유행을 점치고자 노력한다. 그 기사들을 직역해 발 빠르게 내 놓는 보도자료를 보면 참 복잡한 심경이 든다. 예를 들어 ‘선명한 컬러 팔레트와 소프트한 실루엣으로 내추럴한 무드를 가미’,‘핸드 페인팅과 아플리케 등의 정교한 수작업으로 표현된 모티브를 페미닌한 미니 드레스와 팬츠 수트’,‘엘리건트한 롱 드레스 등에 전개하여 내추럴한 여성미를 어필’ 등등. 구슬 꿰듯 영어 단어를 엮어 만든 이런 식의 문장으로 사람들은 어떤 스타일을 상상하게 될까. 패션을 좋아하는 학생이나 업계 사람이라면 패션 전문 케이블채널이나 주요 컬렉션을 한눈에 훑어 볼 수 있는 전문 서적을 읽는 편이 오히려 낫다. 그리고 좀더 부지런하게 자신만의 스타일을 개척하는 소비자라면 동대문, 남대문, 강남 고속버스 터미널 등에 나가볼 것을 권한다. 즐비한 패션 상가를 한번 둘러보기만 하는 것으로도 올 봄 유행할 소재와 색상, 스타일 등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물론 ‘올해는 무슨 유행을 만들까.’하고 고민하는 세계 유명 디자이너들의 컬렉션을 살펴보는 것은 잊지 말아야 한다.4∼5개월 동안 집중된 그들의 영감과 노력의 결과물이기에 충분히 눈여겨 볼 만하다. 대신 다가올 계절에 팔 만한 ‘스타일’을 건지려는 장사꾼의 시선보다는 나의 체형과 분위기에 맞을 만한 ‘독특함’을 건지려는 멋쟁이의 시선으로 보았으면 한다. ■눈에 띄는 빈티지 컬러와 노랑색 흔히 빨강, 노랑, 파랑을 두고 원색이라 부른다. 옷 입기에 원색을 잘 활용하는 사람들을 ‘진짜 멋쟁이’라 부를 만하다. 올 봄에는 스타일에 생동감을 부여할 만한 원색의 옷과 가방, 구두가 대거 쏟아질 전망이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촌스럽다고 기피했던 ‘빈티지 컬러’들이다. 흔히 ‘빈티지 컬러’는 오래 사용해 더럽혀지고, 바래지고, 낡아져 색이 변한 상태를 말하는데 명품 브랜드 루이비통이 이 빈티지 컬러를 잘 사용해 열광적인 반응을 얻었다. 루이뷔통의 예술 감독인 마크 제이콥스는 언제나 빈티지 의상과 미술품에서 많은 영감을 얻는다고 말하는데, 실제로도 그는 컬렉션을 준비하기 전에 워너 브러더스 등 영화사에서 소유하고 있는 오래된 의상들과 재래 시장에서 찾아낸 다양한 제품들을 샘플로 활용한다고 한다. 뉴욕의 마크 제이콥스 컬렉션과 파리의 루이뷔통 컬렉션에서 볼 수 있었던 노랑색은 기존에 자주 사용되지 않았으나 다양한 빈티지 컬러에 잘 어울릴 만한 컬러로 강력 추천한다. ■여자를 설레게 만드는 하늘하늘한 소재 하나만 꼭 집어 유행 소재라고 명명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한 소재가 사용되고 있지만 그 중에서 가장 크게 눈에 띄는 것을 고르라면 단연 ‘시폰’(얇게 짜 가볍고 섬세한 견직물)이다. 얇게 비치는 가벼운 직물로 주로 드레스, 모자, 전등갓, 커튼 등을 만드는 데 사용되는 시폰으로 디자이너들은 공통된 ‘복고 스타일’을 만들었다. 동대문 부자재 상가에 끝도 없이 쌓여 있는 다양한 색깔의 시폰을 보는 것만으로도 이 소재의 인기를 점칠 수 있다.‘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가짜 가죽(일명 페이크 퍼)’과 함께 시폰은 올 봄 유행을 선도하는 소재다. 시폰은 무엇보다 쉽게, 다양한 실루엣을 만들 수 있고 여러 번 겹쳐 독특한 느낌을 줄 수 있으며 액세서리에 사용할 경우 고전적인 효과를 줄 수 있다는 점이 매력이다. 요즘 구매 대행 사이트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런던의 탑숍(Topshop)이나 어번아웃피터스(Urbanoutfitters) 등에서는 시폰 베일이 달린 머리 장식을 유행 제품으로 꼽는다. ■촌스러운 꽃무늬의 다양한 스타일 원래 꽃무늬를 좋아하나 주변의 반대에 부딪쳐 입지 못했던 사람이라면 소원을 풀 수 있겠다. 파리 컬렉션에서 선보인 발렌시아가, 겐조, 드리스 반 노튼, 스텔라 매카트니, 폴 앤 조 등 감각적인 브랜드들이 앞다퉈 다양한 꽃무늬를 사용했기 때문. 앞서 말한 빈티지 원색과 어울려 여성적인 매력을 극대화하는 꽃무늬 옷을 잘 소화하기 위해선 다음 사항에 유념하자. 눈에 띄는 원색과 꽃무늬를 적절히 섞어 입는 센스, 화려한 패턴 때문에 두드러질 수 있는 체형의 결점을 효과적으로 감춰주는 시폰 소재를 선택하는 센스, 촌스러운 느낌을 주지 않도록 지나치게 크거나 강렬한 꽃무늬는 피해주는 센스 등이다. ■빈티지 의상을 탐색하라빈티지 의상과 관련, 디자이너들은 1970년대 스타일에 탐닉했다. 매끈한 스타일 차림으로 눈에 띄는 사람들을 보면 대개 아버지나 엄마, 누나, 언니의 옷으로 섞어 입는 모험을 즐긴다. 색상이나 소재, 유행하는 스타일에 대한 감각은 이렇게 여러 번의 시도 속에서 발현되는 것이라고 본다. 또한 장사꾼의 입장에서 보면 유행이라는 것이 일정하게 반복되는 흐름이자 규칙으로 보겠지만 소비자의 입장에서 보면 문득 ‘새롭고 아름답게’ 다가오게 마련이다. 최은선 스타일 칼럼니스트 aleph@nate.com ■ 도움말 및 사진제공:헤럴드 동아TV 컬렉션 북
  • 오바마, 힐러리에 압승… 美 첫 경선 ‘이변’

    오바마, 힐러리에 압승… 美 첫 경선 ‘이변’

    |디모인(미국 아이오와 주) 이도운특파원|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을 꿈꾸는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일리노이 주)이 3일(현지시간) 아이오와 주에서 열린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뉴욕 주)에게 압승을 거뒀다. 또 함께 치러진 공화당 경선에서는 마이크 허커비 전 아칸소 주지사가 미트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를 누르고 1위를 차지했다. 민주당과 공화당의 이 같은 경선 결과는 그동안 두 당내에서 상대적으로 소수파였던 후보들이 승리한 것으로 올해 11월까지 계속될 미 대선전에 ‘변화’의 바람이 거세게 불어올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오바마 의원은 개표결과 경선 투표에 참가한 민주당원 37.6%의 지지를 얻었다. 오바마 의원을 지지한 아이오와 주 민주당 유권자의 51%가 “변화를 위해 표를 던졌다.”고 말했다고 CNN이 전했다. 민주당의 선두 주자로 일컬어져 왔던 클린턴 의원은 29.5%를 차지,29.7%의 지지를 얻은 존 에드워즈 전 상원의원에게도 밀려 3위를 기록해 그동안 내세워온 ‘대세론’에 큰 타격을 입었다. 공화당의 허커비 전 주지사는 공화당원 34%의 지지를 얻어 25% 득표에 그친 롬니 전 지사를 눌렀다. 이날 승리한 오마바 의원은 처음 경선에 참여한 젊은 민주당 유권자들로부터 압도적인 지지를 받은 것으로 나타나 오는 8일 실시되는 뉴햄프셔 주 경선에서도 승세를 이어갈 수 있는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게 됐다. 침례교 목사 출신으로 아이오와 주에서 영향력이 큰 복음주의자 기독교도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은 허커비 전 지사의 경우 뉴햄프셔 등 종교색이 덜한 주에서는 고전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날 경선에서 저조한 득표율을 기록한 민주당의 조지프 바이든(델라웨어 주)·크리스 도드(코네티컷 주) 상원의원은 후보에서 사퇴했다. dawn@seoul.co.kr
  • [그의 삶 그의 꿈] 겨울에도 장미는 핀다

    [그의 삶 그의 꿈] 겨울에도 장미는 핀다

    장미의 이름 《장미의 이름》은 움베르토 에코의 베스트셀러 소설이다. 영화로도 만들어져 국내에서도 히트했다. 그렇지만 《장미의 이름》속의 장미는 에코가 고백했듯 소설의 내용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소설 속에서 장미는 향기로도 그 모양으로도 이름으로도 전혀 언급되지 않는다. 에코의 ‘장미’는 추리 소설을 추리소설답게 장식해 보려는 작가의 의도된 상징일 뿐이다. ‘장미’ 자체가 하나의 암호인 셈이다. 그리고, 이 난해한 상징은 독자를 호기심으로 이끄는 표지판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한다. 아무려나, 심명보 화백의 이야기는 ‘장미’로 시작해야 할 듯하다. 품을 좀 넓혀서 말하자면, 세상은 꽃이 있어 한결 아름답다. 특히 실체로서의 장미는 꽃의 대명사로 불릴 만하다. 장미에 관한 역사는 그 다양한 모양과 빛깔만큼이나 살이의 비극과 희극을 무수히 넘나드는데, ‘장미전쟁’은 에코의 소설 제목처럼 실제의 장미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권력다툼에서 비롯된 전쟁인데 그 전쟁에 관여했던 두 가문의 문장이 공교롭게도 흰장미와 붉은 장미였던 까닭에 세인들이 그렇게 부른 것이었다. 전쟁은 오래 전에 끝났지만 장미는 여전히 사랑받는 꽃으로 우리 주변을 장식한다. 진부하고 통속적긴 얘기지만 문학과 예술에서 꽃이 종종 여인을 상징하듯이, 장미는 여인 중의 여인을 지칭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여인이 저 유명한 클레오파트라 아니었던가. 클레오파트라는 장미를 자신의 분신으로 여기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장미를 사랑한 여인이었다. 클레오파트라와 더불어 장미는 역사에서의 실체이며 현재다. 다시, 장미의 이름 이제, 앞에서 말했던 ‘장미’의 기억을 심명보 화백의 작업실로 가지고 가자. 화백의 작업실을 방문하는 이는 누구나 장미를 볼 수 있고 그 향기를 맡을 수 있다. 작업실이 온통 장미 꽃밭이다. 화백의 장미는 향기와 빛깔로만 버티는 보통 장미가 아니다. 화백이 피워내는 장미 꽃송이들에서는 향과 더불어 화백의 숨결이 느껴진다. 화백이 피워 낸 장미는 대체 얼마나 긴 수명을 가지고 있을까. 화백의 장미꽃들에서 숨결을 느낄 수 있다면, 그는 꽃을 사랑할 자격이 있는 사람이다. 화백은 장미꽃을 그린다. 1백호의 캔버스에 달랑 한 송이만 피어 있는 거대한 장미도 있다. 화백의 의지일 수도 있지만, 화면을 가득 채우고 피어 있는 장미는 상당히 사실적이고, 화백의 시선이 줌인한 지점에서는 정지 상태가 아닌 영속성을 담보하며 그 영속성의 자리에서 피어 있는 어떤 순간이 화백의 영감에 의해 붙잡혀 있다. 사진이 아닌 그림이라는 사실이 파문과 전율을 불러일으킨다. 장미가 이렇게 흙이 아닌 사람의 손끝에서도 피어날 수 있는 거로구나! 이 장미들도 또 다른 아름다움이구나! 알게 된다. 장미가 피어 있는 구름 정원 개가 끌고 가는 장미, 소파에 기대어 졸고 있는 장미, 바이올린과 첼로에서 피어나고 오래되어 낡고 녹슨 삽에서도 피어나고 허공의 구름 정원에서 피어나는 장미. 화백의 장미들은 사진이 할 수 없는 또 다른 자연의 신비를 그려내고 있다. 장미를 그리면서 화백은 빛(색깔)을 시각화한다. 빌은 에너지인데, 화백은 ‘장미’라는 실체를 ‘빛의 꽃핌’으로 간주한다. 구름 속에서 피어난 장미는 환상적인데, 장미의 배경인 구름들을 오래 바라보고 있노라면 그 구름들은 여인들의 누드가 된다. 장미와 구름들이 숨을 쉬고, 그리고 이 어울림에서는 역동적인 아름다움의 실체가 느껴진다. 구름 속에서 피어난 장미는 구름이 되고 구름은 장미 꽃잎이 된다. 화백의 장미 사랑은 미국에서 시작되었다. 그때까지는 추상 계열의 그림을 주로 그렸다. 지방 국립대학교 교수로 재직하고 있던 1987년에 화백은 뉴저지 주립대학의 연구 교수로 미국 뉴욕에 간다. 화백의 집 근처에 장미를 전문으로 판매하는 화원이 있었다. 화백은 그곳에서 본 장미의 매력에 빠졌다. 미국 대학에서 수채화 클래스를 담당했는데, 발렌타이데이에 아끼던 제자에게 장미 한 송이를 그려 선물했다. 화백이 제자의 집에 초대받아 가 보니 자신이 준 그림을 큰 액자에 넣어 걸어놓고 있었다. 그의 가족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서 즐거움이 예술의 사회적 기능의 하나라는 사실을 새삼 절감하게 되었다. 충격과 당혹감도 예술이 줄 수 있는 기능이지만 기쁨과 즐거움도 중요한 요소라는 걸 깨달은 것이다. 화백의 장미는 그렇게 피어나기 시작했다. 꽃병이 아닌 야생의 장미들이 화백의 캔버스에서 피어나기 시작했다. 화백은 말한다. 인간이나 곤충을 확대하면 괴물이 되지만 꽃은 확대하면 할수록 환상성의 아름다움을 준다고. 화백의 그림 속 장미들을 보면서 화백의 말씀에 기꺼이 동의한다. 그리고, 영원한 장미의 이름 화가로서의 생을 살아가기 위해서 화백은 철밥통으로 불리는 대학 교수직을 버린다. 지천명을 지난 나이에 전업작가의 길로 들어선다는 건 누구나 결심하고 실행할 수 있는 쉬운 노릇이 아니었다. 그 후로 화백은 늦깎이 전업작가의 길을 고집스럽게 걸어오고 있다. 장미 화가로 다시 태어났다. 타고난 실험정신을 자신의 생에서도 끊임없이 실험한 결과를 장미꽃으로 피워내고 있다. 화백의 캔버스엔 액자가 없다. 캔버스 옆면까지도 그림이 이어진다. 평면이 아닌 입체다. 무한 확대인 셈인데, 프레임마저도 캔버스의 영속성으로 간주하는 화백의 고집이 엿보인다. 화백의 장미는 빛의 축제다. 정물로서의 장미가 아닌, 실체가 주는 신비로움이다. 색은 빛을 전제로 존재하는 것. 아름다움을 그대로 옮기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화백의 고백처럼, 화백이 피워낸 장미들은 빛을 숨쉬고 자연을 호흡한다. 신의 축복인 빛을 화백의 장미 꽃송이들이 발산하고 있다. 뽐내고 있다. 화면에 한껏 확대된 장미와 빛이 어울리면서 영원으로 이어지는 어떤 지점에 화려하게 멈춰 있다. 화원에 가 보면 알 수 있다. 요즘 꽃은 계절이 따로 없다. 화백의 캔버스에서 태어나는 장미 꽃송이들도 그렇다. 그리고, 화백의 장미들이 더욱 소중한 것은 시한성으로부터 떠나 있다는 사실이다. 화백이 피워내는 장미들은, 영원한 생명을 가진다. 예술의 본질인 영원성과 더불어 숨쉬면서 세상과 우주와 진하게 입맞추고 있다. 심명보 2004∼ The Bridgeman Art Artist(London, UK). 1987∼1991 미국 뉴저지 주립대 연구교수. 1972∼1990 경성대, 창원대 미술학과 교수. 1988∼1991 아트스튜던츠 리그 오브 뉴욕에서 수학. 아트엑스포 뉴욕, 레이먼 갤러리, 프릿뱅크 엠파이어 스테이트 갤러리, 동아미술관, 갤러리 코리아 등 1970년에서 2007년까지 국내외에서 44회의 개인전을 가졌다. 글 최준 시인, 편집위원 월간 <삶과꿈> 2007년 11월호 구독문의:02-319-3791
  • 작게…작게… 작게

    작게…작게… 작게

    밝은 색 진바지와 손바닥만 한 핸드백, 얇은 벨트와 깃털 머리 장식용품…. 멋쟁이라면 올해 눈여겨봐야 할 패션 아이템들이다. 여기에 화려한 색상의 MP3플레이어와 재활용 유리 물병을 두 손에 든다면 금상첨화다. 미국 abc방송이 1일(현지시간) 2008년 유행할 패션 트렌드와 라이프 스타일을 소개했다.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색상의 변화. 단색의 진이 유행했던 지난해와 달리 올해에는 밝고 화려한 색상의 진바지가 바람을 일으킬 것으로 예상된다. 의상뿐만 아니라 랩톱, 휴대전화,MP3플레이어 등 첨단 IT제품에도 다채로운 색깔이 입혀질 전망이다. 크기를 줄이는 것도 올해의 새로운 유행 코드. 지난해 미 전역을 휩쓸었던 대형 가방 대신 올해는 작고 앙증맞은 핸드백이 유행할 것으로 보인다. 지갑을 비롯한 액세서리의 크기도 가방의 크기에 맞춰 줄어들 듯하다. 한동안 유행했던 와이드 벨트가 사라지고 폭이 좁은 벨트가 그 자리를 대신할 것으로 예상된다. 머리띠 대신 깃털 장식 헤어용품의 유행도 점쳐지고 있다. 현대인의 주 관심사인 건강과 친환경 관련 제품 역시 인기를 모을 전망이다.100㎈ 단위의 포장제품에 이어 올해는 60㎈로 낮춘 간식이 대거 등장할 것 같다. 포장 단위와 지방 함량 등을 동시에 줄인 제품이다. 항산화제가 녹차보다 50배나 많은 홍차도 녹차의 인기를 앞지를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플라스틱 생수통 대신 재활용이 가능한 유리병이 선호되고, 가정용 음식물 쓰레기 분해기에 관한 관심도 높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서울신문 신춘문예-평론당선작] ‘여수’에서 식물성의 세계로, 그 타자 찾기 - 한강론/주지영

    1. 잃어버린 타자를 찾아서 우리네 일상은 끝을 가늠할 수 없는 경계의 반복적인 명멸과 대면하는 자리에 인간을 위치시킨다. 정체를 알 수 없는 힘들에 의해 일상의 공간은 구획되고 짜여진다. 주어진 공간의 구획을 넘어서는 순간에도 경계 짓기는 끝없이 지속된다. 안주와 일탈의 길항은 일상의 작은 균열들 속에서 내파되고, 일탈의 가능성을 지속시키는 새로움을 향한 갈망조차 이미 기획된 미시적인 욕망의 파편들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번번이 실패한다. 그러기에 ‘가지 않은 길’을 향한 욕망은 달콤하면서도 씁쓸하다. 욕망을 충족시키고자 한다면 일상을 전복시킬 위험을 무릅써야 한다. 그 위험을 고스란히 떠맡은 것, 그것이 소설의 운명이 아닐까? ‘길이 시작되자 여행은 끝났다.’는 루카치의 명제는 소설의 발생론적 배경을 논하는 자리에서 도출된 것이지만, 그것은 현대의 소설이 처한 위상을 거론할 때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그 소설의 문법 속에는 고향으로 가는 길을 비추는 작가의 ‘별빛’이 있어야 하고, 또한 현실사회의 고해를 건너는 ‘모험’이 있어야 함은 물론이다. 모험을 통한 별빛 찾기, 이를 달리 잃어버린 타자 찾기라 명명할 수 있을 것이다. 근대적 인식이 현실을 지배하기 시작한 후, 인간은 이가 빠진 동그라미 같은 불구자로 전락해 버렸다. 이가 빠진 동그라미는 자신의 반쪽을 찾아 끊임없이 벌판을 방황한다. 그 벌판은 근대자본주의로 인해 황폐화된 불모지이다. 그곳은 산업사회일 수도 있고, 후기산업사회일 수도 있다. 동그라미는 그런 삭막한 곳에서 자신의 반쪽인 타자(the other)를 찾아 온전한 존재가 되고자 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그 반쪽을 찾지 못하는 한 동그라미는 영원한 불구자일 수밖에 없다. 잃어버린 타자를 찾아나서는 고독한 탐험가, 그가 작가이다. 잃어버린 타자는 인간이 황폐화시킨 자연일 수도, 남성에 의해 도구화되어 억압받는 여성일 수도, 도시에 의해 황폐화된 농촌일 수도, 자본가에 의해 착취당하는 노동자일 수도, 이성에 의해 감금된 비이성일 수도 있다. 소설은 잃어버린 타자를 되찾고 타자와의 합일을 이뤄내고자 하지만, 당연히 그러한 지향은 실패한다. 그러나 실패할 줄 알면서도 그 세계를 강렬하게 지향한다. 그래서 우리가 발 딛고 선 현실이 얼마나 황폐한가, 또 얼마나 폭력적인가를 깨달을 수 있게 한다.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해 우리는 어떠한 것에 가치를 두어야 하고, 어떠한 삶을 영위해야 하는가를 뼈저리게 깨우쳐 주는 것, 그것이 소설이 짊어져야 할 비극적 운명이다. 어떤 타자를, 어떻게 지향하는가, 바로 그 점에서 소설의 색채와 작가가 이뤄내고자 하는 세계는 다른 빛깔을 띠게 된다. 소설사적 흐름에서 위대한 작가로 평가받는 이들은 바로 이 잃어버린 타자를 찾기 위해 모험을 시도했고, 그 모험의 결과로 산출된 별빛들은 ‘지금, 여기’를 살아가는 우리 앞에 빛을 밝혀준다. 인간에게 불을 내어 준 프로메테우스가 그 대가로 자신의 심장을 독수리에게 내맡기듯 그들은 우리에게 ‘지금, 여기’를 밝혀 줄 소설을 쓰기 위해 벌판을 고독하게 방황한다. 그렇다면 최근 소설에서 프로메테우스처럼 소설의 비극적 운명을 천형으로 짊어지고 가는 작가는 얼마나 되는가. 오히려 우리는 이러한 소설의 운명을 포기하는 경우를 더 많이 보고 있지는 않은가. 후기 자본주의 사회의 매스미디어적 메시지들을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재생산함으로써 소설의 고독한 운명을 방기하고 현상적이고 피상적이며 찰나적인 것에 쉽게 자리를 내어주는 작품을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 현실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을 결여한 채 일상에 안주하여 후기 자본주의 사회의 쾌락들을 경탄해마지 않는 그런 소설들을 대하는 일은 무척이나 고통스럽다. 프로메테우스의 천형처럼 소설의 비극적 운명을 짊어지고 고독한 방랑의 길을 떠나는 작가가 더욱 고귀해 보이는 것은 그 때문이다. 한강은 ‘모험을 통한 타자 찾기’에 충실한 작가이다. 한강의 ‘모험’은 현실사회 모순의 해부보다는 그 현실사회에서 불구자로 전락한 인간의 보편적인 존재 조건에 초점을 맞춘다. 그의 작품은 죽음과 광기, 소통의 법칙을 뒤집는 침묵이나 몸짓, 욕망의 금기를 위반하는 근친상간, 동물성에 대비되는 식물성 같은 언표들을 공적인 영역 속에서 가시화한다. 뼛속부터 밝음의 영역에 속해있던 기획된 욕망들을 삭제하려는 충동질로 가득한 그의 소설에서 인위적인 모든 것들은 부정된다. 제도나 관습 일반에 ‘길들여지는’ 것을 거부하고, 획일화된 것들을 거부한다. 먹고 마시는, 삶을 지탱하는 가장 기본적인 욕망들조차 깡그리 부정하고 난 뒤에서야 비로소 인간존재의 진정한 의미들을 힘겹게 터득해 나간다. 폭력적인 일상에 휘둘릴수록 본래의 육체에 깃들이고 있었을 법한 영혼에 대한 갈급이 더욱 증폭되는 것이다. 그 공간에서 가라앉았던 감정의 앙금들을 분출하고, 토해낼 때 비로소 영혼의 정화는 일단락된다. 의식(儀式)과도 같은 파토스가 지나가고 난 빈 자리에 ‘타자’를 향한 존재의 갈망이 채워진다. 그렇다면 한강 작품에 나타나는 ‘모험’은 무엇이며, 그 모험을 통해 찾고자 하는 ‘타자’는 무엇인가. 초기 작품에서는 죽음의 기억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여수’로 상징되는 타자가 설정된다. 타자의 자리가 설정된 이후 그 타자와의 합일 방법을 탐구하는 쪽으로 나아가는데, 그것이 ‘가면벗기와 맨얼굴 찾기’에서부터 출발하여 ‘언외언과 관의 사유’를 거쳐 ‘식물성의 세계에 대한 강렬한 욕망’으로 이어진다. 그 과정이 첫 창작집 ‘여수의 사랑’(문학과지성사,1995)에서부터 ‘내 여자의 열매’(창작과비평사,2000)를 거쳐,‘채식주의자’(창비,2007)로 전개되는 바, 이에 대한 검토를 통해 한강 작품의 의의를 탐색하고, 나아가 ‘지금 여기’에 대해 고민하는 소설이 나아가야 할 올바른 지평이 무엇인지를 점검하고자 한다. 2. 관념으로서의 여수(旅愁), 행(行) 일곱 편의 단편이 실린 첫 창작집 ‘여수의 사랑’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대부분 일상 현실에 적응하지 못한 채 병적 징후에 시달리거나 심지어 자살 같은 극단적 행위를 통해 죽음을 택하기도 한다. 한강 소설에서 다루어지는 죽음은 인간의 육체에서 숨이 빠져나가는 생물학적 의미의 죽음에 한정되어 있지 않다. 죽음은 그 기억 속에 유폐된 인물들이 좌절하고 절망하도록 만드는 요인이면서, 한편으로는 그 인물들이 삶의 영역으로 나오도록 이끄는 통로이다. 그 통로의 끝에서 인물은 좌절과 절망 같은 심리의 장막 뒤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던 타자와 조우한다. 그런데 여기서 작중 인물의 병적 증후나 자살 등을 유발하는 가족의 죽음을 두고 죽음의 원인이 무엇인가를 물음으로써 현실에 내재한 모순이 무엇인가를 밝혀내는 일은 큰 의미를 갖지 않는다. 죽음의 기억은 인물의 내면에 일상에 적응할 수 없을 만큼의 정신적 상흔으로 남겨져 있다는 것이 중요할 뿐이다. 어린 시절 농약을 먹고 자살한 아버지와 동네 아이들에게 매맞아 죽은 동생 진규에 대한 기억으로 인해 괴로워하는 ‘질주’의 인규, 생모의 죽음에 대한 기억으로 일상에 적응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저녁빛’의 제헌, 어머니의 죽음과 아버지의 동반 자살에 대한 기억으로 인해 심각한 결벽증을 앓는 ‘여수의 사랑’의 정선 등을 보면 그렇다. 누군가의 죽음이 현실을 살아가는 인물들에게 부적응이라는 요인을 촉발하는 정신적 상흔으로서 작동한다면, 그것은 작가의 인식이 현실의 모순에 대한 인식이 아닌 인간 존재의 보편적인 조건을 문제 삼는 쪽에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말하자면 한강의 관심은 불행한 존재로서의 인간을 드러내는 측면에 놓인다. 따라서 작가는 가족의 죽음을 인물의 기억 속에 저장해 두고, 삶과 죽음, 사랑과 미움, 용서와 증오 등과 같은 보편적 주제와 연결시킴으로써 특정 시대, 특정한 상황을 뛰어넘어 인간의 보편적인 존재 조건을 탐색하려 한다. 어린 시절 가족의 죽음과 관련된 기억, 그러한 정신적 상흔으로 인한 병적 징후, 죽음과 같은 음울한 기운이 만연한 일상에의 부적응, 기억을 벗어나고자 하는 몸부림 등으로 구성된 서사가 ‘여수의 사랑’ 전편을 관통한다. 이러한 서사구조를 깔고 작가는 삶과 죽음의 문제를 전면에 내세운다. 어둡고 침울한 어조에도 불구하고 작품에 설정된 타자는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공간으로 한 폭의 아름다운 수묵화 안에 오롯이 담긴다. 가령,‘여수의 사랑’을 보자. 이 작품에서는 정선과 자흔이라는 두 명의 인물이 서사를 이끌어 나간다. 먼저, 정선의 경우. 여수에서 보낸 어린 시절, 어머니가 죽자 아버지는 술에 찌들어 살다가 결국 정선과 어린 동생과 함께 바다로 뛰어들어 동반자살을 꾀한다. 혼자 살아남은 정선은 서울에 살면서 직장에 다니고 있지만, 어린 시절의 끔찍한 기억으로 인해 일상에 적응하지 못한다. 정선은 서울을 죽음과 같은 음험한 기운이 만연하고, 온갖 병균이 득실한 곳으로 여긴다. 그곳에서 정선은 ‘결벽증’과 같은 병적 증세에 시달린다. 다음 자흔의 경우. 그녀는 두 살 때 서울역에 버려져 고아가 된 뒤 보육원 생활을 거쳐 입양이 된다. 돈에 대한 욕심도, 행동거지에 조심성도 없다.‘모든 것을 생각 없이’ 다루는 그녀는 아무 희망도 없이 도시를 옮겨 다닌다. 자흔은 일상의 ‘나’와 또 다른 ‘나’의 두 가지 모습으로 존재한다.‘핏기가 없는 데다가 입가와 뺨에 온통 하얗게 버짐이 피어 흡사 분가루를 뒤집어쓴 광대 인형’ 같은 것이 일상의 ‘나’이고, 늘 떠돌아다니면서 세상사에 무관한 채 ‘견고한 평화가 어른거리는 얼굴’,‘무구하고도 빛나는 웃음’,‘천진한 영혼’을 가진 것이 또 다른 ‘나’이다. 또 다른 ‘나’는 여수에 대한 사랑을 간직하고 있다. 고향도 모르는 자흔은 성인이 되어 문득 찾게 된 여수에서 ‘아름다움’을 느끼고 여수를 고향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일상의 ‘나’를 버리고 또 다른 ‘나’로 거듭 태어나고자 한다. 그녀에게 여수는 풍경이 아름다운 공간이 아니라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진정한 아름다움을 품은 공간으로 인식된다. 죽음과 같은 음험한 기운, 온갖 병균으로 득실한 ‘서울’에 대비되는 여수란 과연 어떤 곳인가. 길 여기저기에 소들이 쟁반만 한 똥을 갈겨놓은 진짜 시골이었어요.(중략) 그냥 ‘아름답구나’ 하고 생각하면서 다시 길을 내려오는데 갑자기 눈물이 쏟아지는 거예요. 마을 앞 버려진 부두에는 누더기 같은 천막이며 더러운 판자때기들이 뒹굴고, 검푸른 물결은 갯벌을 향해 천천히 다가왔다가 밀려가고……염소 울음 소리, 새소리, 바람, 두엄 냄새, 일하는 아낙네들……그 가운데 어느 하나도 낯익은 것이 없었는데도 마치 내가 얼굴도 모르는 어머니 품속에 돌아와 있는 것 같았어요.(‘여수의 사랑’,50∼51쪽) 따뜻한 산수화 한 폭을 보고 있는 듯한 여수의 풍경은 자흔에게 인간과 자연이 어우러진 곳으로 각인된다.‘푸른 실 하나하나를 촘촘히 엮어 놓은 것같이 잔잔한 만’에 염소 울음소리와 새소리가 있고, 바람이 불고, 두엄 냄새가 나며, 그런 자연적인 것들과 어우러져 백발 성성한 노인과 머릿수건을 쓴 아낙네, 상고머리 소년들이 일을 하는 곳,‘무덤’마저 ‘착하고 둥글둥글’하게 생긴 곳, 그곳이 바로 자흔의 기억 속에 자리한 ‘여수’이다. 고향도 모른 채 고아로 자란 그녀에게 여수는 ‘어머니 품속’처럼 아늑하고, 아름답고, 따뜻한 마음의 고향으로 살아 숨쉰다. 여수로 표상되는 이 세계야말로 자흔에게 인간다운 삶을 가능토록 하는 타자이다. 그녀가 여수를 갈망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녀는 도시의 삶을 견디기 위해 어항에 물고기를 키우기 시작한다. 그녀가 물고기 키우는 일에 정성을 들이는 까닭은 자신이 물고기가 되고 싶어서이다.“세상에 있는 모든 물은 바다로 흘러가고, 그 바다는 여수 앞바다하고 섞여 있”다고 생각하는 그녀에게서 물고기가 되고자 하는 일이란 어머니의 품속 같은 여수로 흘러들어 가는 일에 다름 아니다. 일상의 ‘나’를 거부하고 아름다운 어머니의 품속 같은 ‘여수’와 일체가 되고자 하는 또 다른 ‘나’를 지향하는 자흔을 통해, 정선은 어린 시절의 정신적 상흔으로부터 힘겹게 빠져나오기 시작한다. 정선에게 죽음의 기억이 서린 여수는 병적 증세를 심화시키는 요인이 된다. 자흔은 그런 정선에게 여수를 이야기하고, 그럴 때마다 정선의 결벽증은 심해진다. 그러다가 정선은 차츰 자흔을 통해 환기되는 여수의 아름다움에 빠져들게 되고, 결국 자흔이 그녀의 곁을 떠나자 정선 역시 여수행 기차를 탄다. 정선의 여수행은 자흔처럼 일상의 ‘나’로부터 벗어나 아름다운 여수를 사랑하는 ‘나’로 거듭 태어나기 위한 피할 수 없는 여행이다. ‘여수의 사랑’은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어머니의 품속’ 같은 타자를 찾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런데 그것이 ‘지금, 여기’라는 현실에 작가가 천착한 결과로 얻어진 것이 아니라,‘인간은 불행한 존재다.’라는 관념의 영역에서 설정된 것이어서 이 작품은 삶에 대한 리얼리티가 충분히 확보되어 있지 않다는 지적을 면할 수 없다.‘여수’라는 타자가 실현가능한 것으로서의 몸피를 얻기 위해서는 현실에 대한 작가의 천착이 심화되어야 하며, 더불어 그렇게 얻어진 타자와 합일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서도 탐구해 들어가야 한다. 3. 맨얼굴에 담긴 관(觀)의 사유 실현가능한 것으로서의 ‘타자’가 되기 위해 작가의 인식이 구체적인 현실로 들어가야 한다는 것, 그리고 타자와 합일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을 탐구하는 것, 그것이 ‘어둠의 사육제’와 ‘아기부처’에서 이뤄진다. 이들 작품에서 ‘여수’로 상징되는 타자에 대한 직접적인 지향은 두드러지지 않는다. 대신 타자와의 합일이 가능할 수 있는 방법을 탐구하는 데 주력한다. 그 방법은 ‘가면 벗기를 통한 맨얼굴 찾기’와, 용서라는 마음이 우러나오도록 하는 ‘관’의 사유로 구체화된다. ‘어둠의 사육제’를 보자. 먼저 주목할 것은 ‘서울’을 바라보는 작가의 인식이다. 작가는 ‘서울’이라는 도시를 여전히 ‘어둠’이자,‘인간들의 더러운 그림자’가 지배하는 ‘무덤’으로 인식한다. 죽음의 기억이 이러한 인식을 이끌어내었던 초기작과는 달리, 이 작품에서는 서울의 구체적 현실에 천착하여 그 속에 내재된 동물적 폭력성을 감지해내고 있다는 점에서 작가의 인식이 현실에 밀착해 있음을 보여준다. 얼마나 세상에 밟히고 뒤둥그러지면 저렇게 되는 것일까, 하고 나는 생각하고 있었다. 그 여자의 동물적인 분노와 보복을, 번들거리는 눈과 기차 화통 같은 목소리를, 그 이상 철면피할 수 없을 되바라진 억양을 묵묵히 관찰하며 나는 연민이나 환멸이라고만은 설명하기 힘든 야릇한 슬픔에 사로잡히고 있었다.(‘여수의 사랑’,230쪽) 중년 여자는 자신의 얼굴을 실수로 때린 여대생에게 ‘동물적인 분노와 보복’으로 폭력을 휘두르고, 전철에서 뻔뻔스럽게 자리 양보를 요구한다. 비단 중년 여자뿐만이 아닌 이 작품의 여러 인물들에게서 모두 감지되는 동물적 폭력성은 이후 전개되는 한강의 소설에서 현실 인식의 한 증좌가 된다. 나(영진)와 인숙 언니는 같은 고향 사람으로 둘 다 서울로 상경한다. 영진은 ‘세상에 대해 좋은 것만 생각’하고 ‘착하게’ 살아왔다. 그리고 인숙 언니는 ‘커다랗고 감정이 풍부했던 눈이며 부드럽기만 했던 입매’를 가진 사람이다. 그러나 이들은 서울로 올라와 변화한다. 여직공이던 인숙은 ‘거친’ 말씨를 내뱉고 ‘나쁜 쪽만 생각’하는 ‘독한 사람’으로 변한다. 무역회사 경리를 하면서 돈을 모아 대학 영문과에 진학할 생각을 하던 영진은 인숙이 전세금을 빼들고 도망가자,‘악하게 살아남아야 한다.’고 생각하며 ‘잘 벼린 오기 하나만을 단도처럼 가슴’에 품고 ‘인간에게 살의를 느끼는 사람’으로 변한다. 명환 역시 ‘본래 선한 사람’이었으나, 교통사고로 아내와 뱃속의 아이를 잃고 ‘모든 인간들에게 살의’를 품는다. 간암을 치료하기 위해 전세금을 갖고 도망간 인숙이나, 그 인숙으로 인해 ‘독기’를 품은 ‘나’나, 돈으로 용서를 구해온 가해자에게 복수를 꾀하는 명환이나, 모두 중년 여인처럼 동물적 분노와 보복심으로 폭력을 휘두른다. 어둠 속에 꼿꼿이 네 발을 세운 채로, 경련하는 암고양이의 모습을 소리없이 주시하고 있는 검은 수고양이의 모습은 흡사 악령 같았다.(‘여수의 사랑’,223쪽) 쥐약을 먹고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암고양이를 냉혹하게 주시하는 악령 같은 수고양이는 동물적 폭력성이 난무하는 현실을 환유하는 장치이다. 영진과 인숙, 명환 등은 바로 이 동물적 폭력성에 길들여진다. 이러한 동물적 폭력성으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은 무엇인가. 우선 가면을 벗음으로써 맨얼굴을 찾는 것이 그 첫 번째 방법이다. 동물적 복수심으로 남을 괴롭혀 온 명환이 결국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고통스러워하다가 ‘빈손’,‘완전한 빈 몸뚱이’가 되기 위해 자살하는 모습을 보고, 영진 역시 그런 복수심을 버리고 간암 치료를 받는 인숙 언니의 행동을 이해하고 용서한다. 바로 이 과정에서 가면 벗기와 맨얼굴 찾기가 이뤄진다. 지하철 창문에 비친 객실의 음산한 풍경 속에 내 얼굴은 어딘가 낯설어 보였다. 나는 그 가면 같은 얼굴을 뒤집어쓴 사람이 더 이상 눈물 따위를 흘릴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있었다.(‘여수의 사랑’,231쪽) 폭력적이고 비인간적인 일상에 길들여진 자들의 뻔뻔스러운 얼굴을 표상하는 ‘가면 같은 얼굴’은 인간 존재의 본질을 은폐한다. 그 얼굴은 인간의 것이라기보다는 폭력적인 동물성을 표상하는 수고양이의 것에 가깝다. 작가는 가면을 쓴 비정한 일상의 인간들에게서 발견한 물질만능주의, 출세지향주의, 가족이기주의와 같은 현실의 모순을 비판의 목록에 등재한다. 동물적 폭력과 복수심에 길들여진 일상의 가면을 벗고 또 다른 ‘나’의 맨얼굴을 획득할 때 비로소 용서와 화해를 품을 수 있고, 또한 타자와의 합일이 가능하다. 요컨대, 맨얼굴 찾기가 타자와의 합일을 가능케 하는 일차적 방법인 셈이다. 맨얼굴로 도심의 일상에 나서는 영진에게서 현실을 향한 적극적인 대응 의지가 엿보인다. ‘어둠의 사육제´가 동물적 폭력성이 길들여진 가면을 벗고 그것에 오염되지 않는 맨얼굴을 되찾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면,‘아기부처´는 그 맨얼굴이 어떤 마음을 지녀야 하는지를 ‘언외언(言外言)´과 ‘관(觀)´의 사유를 통해서 강조하고 있다. 바로 이것이 타자와의 합일을 가능케 하는 두 번째 방법이다. 주인공 선희는 프라임타임의 앵커인 남편과 소원한 관계를 유지한다. 남편은 어릴 적에 입은 화상 흉터를 감추려고 철저하게 긴 옷을 입는다. 선희가 감기에 들자 자신에게 감기를 옮길까봐 병원에 가보라고 강요하기도 한다. 그는 말실수 하나 용납하지 못하는 완벽주의자이고, 독단적인 인물로서 출세를 위해 자기관리를 철저히 한다. 선희는 처음엔 남편의 흉터를 보고 고됐을 그의 삶을 연상하지만, 결혼 후 이기적이고 권위적이고 철저히 자기중심적인 남편의 실체를 알고부터는 남편의 화상 흉터를 싫어하게 된다. 자신의 흉터를 보듬어 줄 사랑을 찾아 남편은 외도를 하고 선희는 남편으로부터 철저하게 버림받는다. 나는 한갓 짐승이었다. 땀에 젖어 산비탈에 엎드린, 누더기 같은 한겹 가죽만 남은 병약한 짐승이었다. 그 가죽 안에서 악취나는 거품처럼 부글거리고 있는 것은 오래 묵은 분노와 후회와 증오, 억울함과 자책감과 부끄러움이었다. 그것들이 내 살을 속에서부터 조금씩 조금씩 부식시켜 왔다(‘내 여자의 열매’,111쪽) 현실의 동물적인 폭력성에 선희는 철저히 희생당한다. 그 결과 남편과 세상을 향해 분노와 증오를 쌓아간다. 그렇지만 분노와 증오는 앞서 ‘어둠의 사육제’의 인물들처럼 스스로를 동물적 존재로 만들 뿐이다. 그런 동물적 삶으로 인해 선희는 황폐해져 간다. 그 삶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선희의 모습은 꿈 속 아기부처의 얼굴에 비춰진다. 아기부처가 짓는 표정들은, 음흉한 입꼬리와 날카로운 눈초리를 하거나, 차갑게 빈정대는 눈꼬리를 한 그녀의 내면과, 진흙이 끈적이며 달라붙기도 하고, 모래가 되어 부서지기도 하는 남편과의 현재 관계를 거울처럼 되비친다. 아기부처의 얼굴은 선희가 병약해가는 것이 “마음속에 맺힌 악취 나는 감정들” 때문임을 깨닫게 하는 경고의 스크린인 셈이다. 그렇다면 아기부처로부터, 동물성으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은 무엇인가? 먼저 그것은 ‘말’이 아니라 ‘침묵이나 몸짓’ 속에 현현하는 ‘언외언’에 있다.‘몸짓’으로서의 ‘언외언’은 ‘말’이 야기하는 폭력성으로부터 벗어나 있다. 남편, 어머니, 아기부처와 선희는 ‘말’이 아니라 ‘몸짓’으로 소통함으로써 화해한다. 어머니의 불화 그리기, 아기부처의 얼굴 빚기, 혹은 언어 장애 아동을 위한 삽화 그리기 등이 ‘언외언’의 도정에 가로놓인다. 아이, 까르르 웃는다. 처음으로 입을 열어 외친다. ‘가자!’ (중략) 아이의 손을 번쩍 들게 하고 엉덩이도 약간 띄워서 아이가 펄쩍 날아오르는 것처럼 해야겠다. 아빠의 몸까지 함께 날아오르려는 것처럼 해야겠다.(‘내 여자의 열매’,102쪽) 언어장애아동처럼 언어를 거부하는 것은 말의 논리와 체계, 즉 말을 배우면서 사회로 편입되는 사회화과정 자체를 거부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말하자면 동물적 폭력이 난무하는 일상 현실의 ‘말’을 거부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이가 아버지의 노력에 힘입어 자기 안의 성벽을 허물고 드디어 입을 연다. 선희는 그들이 느꼈을 법한 기쁜 감정을 몸짓에 담아 삽화로 그려내야 한다. 아이와 아버지의 “날아오르는” 듯한 몸짓에 ‘기쁘다’는 말로는 전할 수 없는 마음이 담긴다. 삽화를 그리며 깨닫게 된 ‘언외언’은 남편의 흉터를 어루만지는 몸짓에 담긴다. 남편이 다른 여자로부터 마음의 상처를 입고 머리를 짓찧을 때 선희가 남편의 머리를 감싸안고 상처를 어루만지는 ‘몸짓’ 역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마음이다. 그 마음은 ‘말’ 그 자체에는 은폐된 ‘무엇’이며,‘침묵’의 빈 공간에, 말없이 이루어지는 ‘몸짓’ 속에 실재한다. 결국 언표화 되지 않는 마음을 환기시키는 방법은 ‘언외언’에 있다. 그러나 단지 그뿐인가. 이 작품에서 ‘언외언’의 심층을 ‘관(觀)’의 사유가 가로지른다.‘말’의 폭력성 때문에 갇혀 있던 용서와 화해의 마음은 ‘관’의 사유에서 풀려난다. 이쪽과 저쪽의 경계를 나누는 구분 자체를 초월한 곳에, 그리고 속물적인 욕망을 넘어선 자리에 “관”의 사유가 존재한다. 일상을 지배하는 논리규범에는 담길 수 없는 진정한 마음이 “관”의 사유 속에서 우러나온다. (i) “그 스님이 그러더라. 관세음보살은 내 속에 있다고. 내 몸이 용서하는 마음으로 그득해지면 그게 바로 관세음보살이라더라.” (‘내 여자의 열매’,104쪽) (ii) 관음의 입술은 보일 듯 말 듯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귀가 퍽이나 예민한 이인가 보았다. 빗소리를 듣다가 깨달음을 얻었고, 늘 세상사람들의 소리를 관(觀)하고 있어 괴로이 부르는 음성을 듣는 즉시 곧 구제해 준다고 어머니는 말했다.(‘내 여자의 열매’,105쪽) 삶의 고통을 인내하고, 마음속에 관세음보살을 잉태하듯 용서와 사랑과 화해의 마음을 잉태하는 것, 그럼으로써 일종의 해탈의 경지로 나아가는 것, 그것이 ‘관’의 사유이다. 선희는 남편을 이해하려는 마음이 있어야 자신이 바라는 진정한 부부 관계가 이루어질 것이라고 깨닫는다. 자신이 그동안 봐왔던 남편의 모습은 실은 화상을 입은 그의 껍질에 지나지 않음을, 정작 남편의 마음은 화상으로 일그러진 피부 밑에 고통스럽게 감추어져 있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된다. 이런 마음을 가질 때,“목련은 나무에 핀 연꽃이라 목련(木蓮)이지. 그렇게 생각하며 올려다보자, 하오의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그 봉오리들은 마치 꽃잎 안에 흰 등불들을 감추고 있는 것 같았다.”(117쪽)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으며, 나아가 겨울 나무에서 봄의 생명력을 감지할 수 있는 경지로 나아갈 수 있다. 겨울부터 저 날카로운 솔잎들은 초록빛을 띠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보니 같은 푸른색이지만 분명히 달랐다. 방금 나온 어린 싹 같은 연푸른빛이 생생하게 차올라 있었다./ 겨울에는 견뎠고 봄에는 기쁘다.(‘내 여자의 열매’,125쪽) ‘아기부처’의 마지막 장면이다. 겨울 지나 봄으로 가는 문턱에서 자연을 보고 느낀 감상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리 단순하지 않다.‘같은’ 푸름에서 ‘다른’을 간취하고, 겨울부터 ‘지속’되는 것들 가운데 ‘방금 나온’ 생명의 시작을 발견한다. 봄에는 꽃이 피고, 가을에는 낙엽이 떨어진다는 획일적인 공식이 아닌, 한 나무 안에서도 서로 다른 색의 잎들이 공존하고 있음을 긍정하는 사유, 앙상한 겨울나무에서도 미세한 생명의 떨림과 그 소중함을 깨달을 수 있는 사유, 그것이 바로 ‘관’의 사유이다. 이 관의 사유를 마음속에 지닐 때, 동물적 폭력이 난무하는 현실의 삶을 극복하고,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고 용서하고 사랑할 수 있는, 보다 인간다운 삶을 지향할 수 있다.‘겨울에는 견뎠고 봄에는 기쁘다.’라는 잠언과 같은 감탄은 아무나 도달할 수 있는 경지가 아니다. 4. 식물성을 향한 욕망의 존재론 타자와의 합일을 이루는 방법으로서의 맨얼굴과 ‘관’의 사유는 작가가 죽음의 기억으로부터 벗어나 구체적 현실의 삶에 뿌리내리면서 발견한 중간 경유지이다. 이 방식들은 의식의 층위, 마음의 층위에서 이루어진다. 이 층위는 평면의 동심원에서, 외원을 이루는 동물적 폭력성이 강렬한 외파로 밀고 들어올 때 위태롭게 흔들리는 내원과도 같다. 그 어떤 외파도 견딜 수 있기 위해서는 의식과 마음이라는 동심원의 평면 저 아래 깊은 심연에 자리한 무의식의 영역으로 그것을 심화시켜야 한다. 요컨대 타자와의 합일을 향한 무의식의 강렬한 욕망이 있다면, 그래서 의식의 수면을 꿰뚫을 정도로 강렬하다면, 그럴 때 현실의 외파에 맞설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된다. 한강은 ‘내 여자의 열매’를 거쳐 ‘채식주의자’,‘몽고반점’,‘나무불꽃’ 연작에 이르는 도정에서 욕망의 영역으로 작가 인식을 심화시킨다. 식물성의 세계에 대한 욕망이 그것이다. 이 순간 타자와의 합일을 이루는 방법으로 무의식의 심연에 자리한 욕망의 영역이 설정되고, 그 결과 관념에 지나지 않았던 ‘여수’ 대신 ‘식물성’의 세계가 새로운 타자의 자리에 위치한다. 이 타자는 여수처럼 현실과는 동떨어진, 현실 저 너머의 또 다른 공간에 있는 어떤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욕망 속에 살아 꿈틀거리는 것이자, 현실 속에서 실현 가능한 타자이다. ‘내 여자의 열매’는 식물성의 세계로 들어가는 첫 관문이다. 그러나 이 작품의 식물적 상상력이 길어내는 삶의 진실은 그 힘이 아직 미약하다. 현실도피의 차원에서 기획된 것이기 때문이다. 획일화된 일상이 싫어서, 도심의 똑같은 아파트가 싫어서, 지긋지긋한 피를 갈고 싶어서, 어머니처럼 되기 싫어서, 어디에서도 행복을 느낄 수 없어서 결국 식물이 된다는 가정이 단순한 현실도피를 방증한다. 그리고 식물성의 세계에 대한 인물의 욕망 역시 미약한 수준에 머물러 있다. 식물성의 세계를 강렬히 욕망하는 인물에 의해 식물성의 세계가 온전히 개화하는 작품은 ‘몽고반점’이다. 이 작품은 비디오아티스트인 그와, 몽고반점을 가진 처제와의 사이에서 벌어진 근친상간을 예술적 시선과 현실 윤리의 시선 속에서 포착해낸다. 이 작품에서 눈여겨 보아야 할 것은 처제의 욕망과 그의 욕망이다. 우선 처제의 욕망을 보자. 그 욕망은 그의 눈에 포착된 몽고반점 속에서 엿볼 수 있다. 약간 멍이 든 듯도 한, 연한 초록빛의 분명한 몽고반점이었다. 그것이 태고의 것, 진화 전의 것, 혹은 광합성의 흔적 같은 것을 연상시킨다는 것을, 뜻밖에도 성적인 느낌과는 무관하며 오히려 식물적인 무엇으로 느껴진다는 것을 그는 깨달았다.(‘채식주의자’,101쪽) 처제의 몽고반점은 ‘순수성’ 혹은 ‘순수한 영혼’을 표상한다. 곧 ‘어린아이’처럼 처제는 일상의 폭력성에 물들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그의 붓칠에 의해 ‘순수한 영혼’이 육체에 새겨진 ‘몽고반점’으로 가시화된다. 꽃을 그려 넣는 행위는 폭력적인 일상에 의해 상처받은 인간의 몸에 ‘순수한 영혼’이라 할 수 있는 식물성을 부여하는 일이라 할 수 있다. 그 결과 처제는 “뱃속의 얼굴”에 대한 무서움을 이겨낸다. “뱃속에서부터 올라온 얼굴”은 그 자신에게 내재되어 있었던 진정한 욕망을 의미한다. 뱃속의 얼굴이 낯설고 무섭게 느껴진 까닭은 일상의 질서에 자신이 길들여져 있기 때문이다. 일상의 질서로부터 벗어날 때 그 얼굴은 자신의 본래 모습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런 처제는 자신의 “순수한 영혼”을 가시화한 꽃 그림에 힘입고, 그녀 자신에게 내재해 있던 진정한 욕망을 발견함으로써, 더 이상 무서워하지 않게 된다. 그 결과로 풍겨 나오는 처제의 “배냇내”는 타자와의 합일이 뿜어내는 식물성의 ‘향기’인 셈이다. 몽고반점, 즉 꽃잎 그림자로서의 순수한 영혼과, 몸 혹은 꽃으로서의 진정한 욕망이 유기적 통일성을 이루는 세계, 그것이 ‘색채의 세계’로서의 식물성의 세계이다.“색채의 세계”는 “격렬한 세계”이자,“마술적” 세계이고,“전혀 다른 세계”이다. 식물성에 대비되는 동물성의 세계는 일상에 만연해 있는 후기 자본주의 사회의 폭력성을 함축한다. 그것은 육식성, 적자생존, 약육강식 등으로 점철된 일상이자 문명의 세계를 표상한다. 반면에 식물성은 순수성과 공존의 세계이자, 가족의 윤리마저 붕괴되는 탈일상이자 탈문명의 세계로 압축된다. 인간의 몸과 꽃, 그리고 짐승이 뒤섞인 교합에서도 드러나듯, 식물성의 세계는 “추악하면서도 아름답고” 동시에 “삶의 시작이자 끝”이기도 하고,“모든 것이 담겨 있는” 동시에 “모든 것이 비워진 곳”이기도 한, 차별상을 가진 일체의 것이 존재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드러내는 공간인 것이다. 하기에 처제가 욕망하는 식물성의 세계는 처제와 형부의 불륜관계처럼 제도의 금기마저 초월한 곳에 있다. 현실 제도의 금기를 위반하는 욕망이 존재할 수 있는 방식은 오로지 ‘죽음’과 ‘광기’의 영역 안에서이다. 곧 식물성의 세계에 대한 욕망은 금기의 위반에서 맛본 죽음과도 같은 향유(jouissance)를 안은 채 죽음을 향해 돌진할 것인가, 아니면 ‘광기’로 내몰려 사회로부터 배제당할 것인가를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 놓여 있다. 그것이 어떤 선택이건 모두 일상에서의 ‘죽음’과도 같은 귀결로 치닫는다. 처제는 그런 위험을 무릅쓰고서라도 자신의 욕망을 끝까지 치열하게 표출한다. 그렇다면 그의 욕망은 어떠한가. 그의 욕망은 육체적 욕망과 예술적 욕망 사이의 긴장 속에서 유동한다. 비디오 아티스트인 ‘그’는 “후기 자본주의 사회에서 마모되고 찢긴 인간의 일상”을 담아내는 작업을 통해,“강직한 성직자”로 불릴 정도로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을 강도 높게 비판해 왔다. 그러다가 처제의 자해사건을 겪으면서 그가 작업했던 것들 역시 일상에서 자행되는 폭력에 지나지 않음을 깨닫는다. 처제의 ‘몽고반점’은 그가 찾았던 “더 고요한 것, 더 은밀한 것, 더 매혹적이며 깊은 것”으로서의 실재를 현현하고 있었다. 처제의 ‘몽고반점’은 비디오아티스트인 그에게 이미지가 갖는 재현의 한계를 깨닫게 한다. 그는 지금까지 작업해 온 일상의 폭력성을 담은 이미지들이, 어떠한 방식으로 재현했든 간에 상관없이, 실재의 고통과 감정을 사라지게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 한계는 삶의 여러 국면에서 용솟음치는 욕망과 대면할 때마다 현실과 욕망의 경계 선상에서 그가 느꼈을 법한 환멸과도 같다. 그는 근친상간이라는, 현실의 금기를 위반하며 욕망의 극단에 잠시 도취된 결과, 잡으려 했던 욕망의 실재가 허망하게 스크린 너머로 사라지는 것을 보아야 한다. 그의 욕망은 처제가 보여주었던 내면으로부터 우러나온 욕망의 시선이 될 수 없다. 오히려 그 욕망은 현실과 예술 사이에서 끊임없이 줄다리기를 하다 결국 자신의 육체적 쾌락 앞에 예술적 욕망을 무릎 꿇린 결과를 낳고 만다. 여기서 ‘그’의 욕망을 작가 한강의 글쓰기의 욕망과 연결시킬 수 있다. 처제와의 근친상간을 통한 식물성의 세계를 전면적으로 형상화하고자 하는 것이 작가의 애초의 글쓰기의 의도이다. 이 의도대로라면, 작중 인물은 ‘그’와 처제만으로 충분하다. 두 인물의 근친상간을 담은 캠코더의 화면처럼, 근친상간 그 자체만을 다루면서 식물성의 세계를 오롯이 드러내고자 하는 것, 그것이 작가의 본래 기획이고, 작가가 생각하는 예술이다. 그러나 그것은 밀실에서나 가능하다. 그것이 공적인 장으로 나올 때(발표될 때), 현실로부터 포르노그래피 혹은 외설로 집중 공격을 받을 수 있다. 이러한 비난을 피하고, 작가가 생각한 본래의 의도를 어느 정도 형상화하는 안전장치가 필요하다. 그것이 ‘아내’이다.‘아내’는 현실 사회의 제도적이고 관습적인 윤리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이 ‘아내’의 등장에 의해 ‘그’와 ‘처제’의 근친상간은 작품 속에서 불륜으로 비판된다. 작가는 ‘아내’를 작품 결말 부분에 등장시켜 이 작품이 포르노그래피 혹은 외설이라는 비판을 비껴나가게 하고, 그러면서 자신이 본래 지향하는 예술(식물성의 세계를 형상화한 것)의 측면을 드러내 보이는 것이다. 이러한 측면은 한편으로는 작가 한강의 영민한 균형 감각에 기인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식물성의 세계를 전면화한 예술을 공적 영역으로 드러내기에는 아직도 현실의 억압과 금기가 완강하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드러내는 작가의 비판 의식에 기인하는 것이기도 하다. 작가의 본래적 욕망과 안전장치가 균형을 이루면서, 식물성의 세계에 대한 욕망을 드러내는 것이 ‘채식주의자’,‘몽고반점’,‘나무불꽃’으로 이어지는 연작이다. 이들 소설에서 영혜라는 인물은 그녀의 남편, 형부, 언니의 시선 속에서 포착된다. 세 인물은 각각 독특한 인물형을 표상하며, 그 인물형이 일상 속에서 살아가는 방식을 드러낸다.‘채식주의자’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그녀의 남편(나)은 속물을,‘몽고반점’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형부(그)는 예술가를, 그리고 ‘나무불꽃’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언니(그녀)는 일상에 함몰되어 정체성을 잃고 방황하는 인간을 표상한다. 그들은 모두 길들여진 욕망에 사로잡힌 채 진정한 욕망을 추구하려는 영혜를 경계 밖으로 일탈한 인물로 취급하고 폭력을 휘두른다. 광인으로 내몰리는 가운데 영혜는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라도 자신의 욕망을 지켜내려 한다. 연작에서 교직된 인물들이 그려내는 삶의 진실은 무엇인가. 그들은 어떠한 삶이 진정한 삶이라고 인식하는가. 혹시 그것은 우리에게 진정한 욕망이란 ‘광기’와도 같은 것, 정상의 영역을 벗어난 것, 그래서 죽음과도 같다고 말하는 것은 아닌가.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한 채로 영혜는 죽음을 향해 한발 한발 다가간다. 그런 영혜에게 작가 한강의 깊고 고통스러운 숨결이 느껴지는데, 그것은 한강의 고민이 바로 진정한 욕망의 탐구 위에 있음을 방증한다. 5. 텍스트의 독법, 타자를 향하여 한강의 소설은 탄탄한 서사구성으로 인정받는다. 거기에 더해 텍스트 간의 긴장관계까지도 탄탄하게 조여 낸다. 그런 까닭에 한강의 소설 전체를 하나의 텍스트로서 파악하는 독법이 필요하다. 일종의 텍스트 간 소통의 재구성 방식이다. 그 하나로 고통스러워하는 주인공의 내면을 내밀하게 파헤치는 방식.‘여수의 사랑’에서 그 면모를 발견할 수 있다. 둘, 둘 이상의 고통스러워하는 인물들이 서로의 고통을 마주 보기.‘저녁빛’이나 ‘진달래능선’,‘어둠의 사육제’에서는 서로의 고통스러운 내면을 보듬어주는 중층적인 시선들이 교직된다.‘내 여자의 열매’에서는 식물 되기를 꿈꾸는 인물의 내면을 편지 형식으로 삽입하고 지켜보는 시선에 남편을 배치한다. 셋, 동일한 사건을 겪는 인물들의 다중초점화.‘채식주의자’,‘몽고반점’,‘나무불꽃’이 만드는 연작 형식. 영혜라는 인물을 중심에 두고 ‘채식주의자’는 그녀의 남편의 시선에,‘몽고반점’은 형부의 시선에,‘나무불꽃’은 언니의 시선에 초점을 맞추고, 영혜를 바라보는 중층적인 시선들을 세 작품에 나누어 배치한다. 그럼으로써 식물성의 세계를 지향하는 영혜의 욕망을 보여주고, 그녀의 욕망이 일상 속에서 어떻게 인식되는가를 부각시킨다. 더불어 텍스트마다 화자를 바꾸어 조명함으로써 각 인물의 내면을 포착하고 그 인물이 다른 인물들에게 어떻게 인식되는가를 보여주고자 한다. 그 결과 각 인물들은 세 텍스트 안에서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시선에 의해 입체적으로 살아 움직이면서 ‘지금, 이곳’의 리얼리티를 무수히 직조한다. ‘여수의 사랑’에서 자흔이 꿈꾸는 ‘여수’에서부터 출발하여 ‘채식주의자’ 연작에서 영혜가 꿈꾸는 ‘나무 인간의 세계’로 나아가는 한강의 소설들은 궁극적으로 인간 존재에게 결여된 빈 공간이자 잃어버린 ‘타자’를 찾아가는 지난한 행보를 보인다. 한강은 그러한 타자와의 합일을 지향함으로써 폭력적인 일상 속에서 위협당하는 나약한 인간 존재를 보듬고자 한다. 작가 한강이 어두움의 세계, 즉 은밀하고도 사적인 영역들에 은폐되어 있는 죽음, 성, 욕망 등을 공론화의 장으로 내어 놓고, 그럼으로써 인간 존재에 대한 철학적 사유의 깊이를 마련하려는 시도는 그래서 더욱 값진 의미를 갖는다.
  • “요금 20% 깎으라니…” 속타는 이통사

    “뭐라 말할 상황이 아니다.”“당선자측의 의중을 좀 더 파악해 봐야겠다.” 이명박 당선자측의 이동통신요금 20% 인하 방침에 이동통신사들의 속이 바짝바짝 타들어가고 있다.3사(社) 3색(色)이다.‘진의 파악이 우선’‘어쩔 수 없지 않으냐.’‘인위적 시장 개입’이라는 등 신중론과 걱정이 교차하고 있다. 31일 SK텔레콤측은 “얼마전부터 망(網)내 할인이나 결합상품 출시 등으로 요금 인하가 진행 중이기 때문에 당장 어떻게 하겠다고 말하기는 어렵다.”며 “정보통신부와 협의할 사항이 있으면 협의하겠다.”고 밝혔다.KTF 관계자는 “어떤 식으로든 검토는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LG텔레콤측은 “인수위의 요금 인하 압박이 거세지면 올해 매출도 재조정해야 한다.”면서 “요금 인하 여지가 더 있는지 꼼꼼히 따져 보겠지만 솔직히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이라고 털어놨다. 이통사들의 이같은 반응은 최근 통신요금 인하 발표에 이어 인수위의 방침이 나왔기 때문이다. 이통사들은 불과 두달전인 지난해 10월 망내할인과 휴대전화 문자메시지(SMS)요금인하, 사회적 약자에 대한 요금인하 등 요금인하 방안을 발표했다.SMS 요금은 1일부터 건당 30원에서 20원으로 내린다. 업계 한 관계자는 “당선자의 이동통신 요금 인하공약을 자율경쟁이나 제도개선을 통한 요금인하 유도 정도로 파악했다.”면서 “정확한 진위를 파악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세율 등을 조정하면 되는 유류세와는 달리 이동통신요금은 민간기업의 서비스 요금”이라면서 “별도의 논의가 없었던 상황에서 인수위의 (일방적인)발표는 성급한 면이 없지 않다.”고 우려했다. 하지만 통신요금 인하가 새 정부의 핵심공약인 만큼 요금인하 압력은 계속될 것으로 보고 내부 검토작업에 착수했다. 김효섭기자 newworld@seoul.co.kr
  • 45억2000만원에 낙찰 박수근 ‘빨래터’ 위작 논란

    지난해 5월 서울옥션을 통해 국내 미술품 경매 사상 최고가인 45억 2000만원에 거래된 박수근(1914∼1965) 화백의 유화 ‘빨래터’(크기 72×37㎝)가 진위 논란에 휩싸였다. 미술 전문 격주간지 ‘아트레이드’는 1월1일자 창간호에 ‘대한민국 최고가 그림이 짝퉁?’이라는 기사를 싣고 1995년 시공사가 펴낸 ‘박수근 작품집’에 실린 ‘빨래터’(111.5×50.5㎝)와 서울옥션 경매로 낙찰된 ‘빨래터’를 비교하면서 서울옥션 경매 작품의 위작 의혹을 제기했다. 아트레이드의 류병학 편집주간은 이 기사에서 “기존 박수근 작품은 인물의 옷 색깔이 배경의 갈색 톤을 거스르지 않는데, 서울옥션 경매에 나왔던 ‘빨래터’에는 각각의 색이 두드러졌으며 물줄기 또한 깊이감 없이 어설프게 표현됐다.”고 의혹의 근거를 제시했다. 이 잡지는 또 “서울옥션의 당시 경매 도록에는 참고 작품으로 박수근의 54년작 ‘빨래터’ 유화 2점과 54년으로 잘못 표기된 34년작 드로잉 1점이 함께 실렸지만 경매에 나온 빨래터와 유사한 작품인 시공사의 도록에 실린 빨래터는 정작 누락돼 이 작품이 출품된 것으로 착각한 사람도 많았다.”며 “서울옥션이 일부러 빼놓은 게 아닌가.”라는 의혹도 제기했다. 이에 대해 서울옥션은 “해당 경매 작품은 박수근 화백으로부터 직접 작품을 받아 약 50년간 간직해온 미국의 소장가로부터 나온 진품으로 당시 전문 감정위원의 감정과 유족의 감정도 거친 작품”이라고 반박했다.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열린세상] 색 계,다이아몬드와 브람스/ 최병서 동덕여대 문화경제 교수

    [열린세상] 색 계,다이아몬드와 브람스/ 최병서 동덕여대 문화경제 교수

    얼마 전 한 5년 만에 영화관을 찾았다. 몇달 전 이 영화가 베니스 영화제에서 상을 받았다는 기사를 본 후 언젠가 봐야지 하는 숙제를 한 셈이다. 이 영화는 일본이 중국을 점령하고 있던 당시 상하이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최근 중국 본토에서 많은 사람들이 홍콩으로 무삭제판을 보기 위해서 몰려들고 있다는 보도도 있었다. 색과 계는 두가지 서로 다른 대립적 요소의 구도를 설정한다. 색은 인간이 가진 본능적 욕구를 상징하며 감정적 정열에 의해서 지배되며, 계는 그것에 대한 경계, 금지를 의미하며 이성적 통제에 의해서 규정된다. 리안 감독은 투철한 목적에 뿌리를 두고 있는 금기가 인간 열정의 저항할 수 없는 표출로 인하여 어떻게 깨어지게 되는지 화면을 통해서 섬세하게 보여주고 있다. 영화가 끝나고 나오는데 50대의 중년 여성들로 보이는 몇 사람이 나누는 대화를 듣게 되었다. 한 여인이 “여자는 보석에 약해. 다이아몬드가 너무 예쁘니 그럴 수밖에….” 다른 여인들도 맞장구를 친다. 딱히 틀린 얘기는 아니다. 신파조로 말하자면 주인공 탕웨이는 마치 ‘김중배의 보석이 탐이 난 심순애’와 다를 바 없게 되었다. 다이아몬드는 이 영화에서 중요한 상징이자 시그널이다. 영화 앞부분에 몇 여자들이 모여 마작을 하면서 보석에 대한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나온다. 리안 감독은 여기에 마지막 극적 장면에 대한 라이트모티브, 즉 복선을 깔아놓았다. 다이아몬드는 경제학적으로 보면 아주 논란거리 재화다. 우선 다이아몬드처럼 그 재화의 사용가치와 교환가치가 엄청나게 차이가 나는 재화는 좀처럼 찾기 어렵다. 그래서 재화가치에 대한 한계효용이론이 등장하기 전까지 고전학파 경제학자들은 이 문제를 퍼즐로 생각했고, 그래서 ‘가치의 역설’이라는 논제가 등장했을 정도였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두 주인공에게 다이아몬드는 사실 중요한 가치를 갖지 못한다. 단지 이것을 매개로 두사람은 마음에 미묘한 떨림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리안 감독은 이 메시지를 전하는 데 대단한 공을 들인 듯하다. 그는 다이아몬드 원석을 보는 장면과 마지막에 량차오웨이와 같이 반지를 찾는 장면에서 주인공 탕웨이의 얼굴 표정을 현미경을 들여다보듯이 앵글을 맞추고 있다. 그러면서 량차오웨이의 대사에 그녀의 마음을 미묘하게 움직일 대사를 준비해놓고 있다.“나는 다이아몬드에 별 관심이 없다고, 단지 당신 손에 낀 반지가 보고싶을 뿐이라고….’ 여기서 그녀의 심금이 떨림으로써 계를 파기하게 만드는 것이다. 영화 전편을 통해서 극적인 긴장감을 주는 배경음악이 깔리지만 단 한 대목에서 이안 감독은 고전음악 한 작품을 차용한다. 그 음악은 바로 계(戒)의 음악이다. 그는 브람스가 말년에 쓴 아주 소박한 왈츠 가운데 인테르메조를 두 사람이 처음 만나서 식사를 하는 장면에 집어넣었다. 이 간주곡은 브람스가 슈만의 부인인 클라라에게 일생동안 품었던 깊은 연모의 정이 흘러넘치는, 그러나 아주 절제된 멜로디다. 감독은 이 음악을 통해서 량차오웨이가 말로는 표현하고 있지 않지만 그녀에 대한 깊은 관심을 관객들에게 시그널링하고 싶었을 것이다. 다이아몬드가 물질적인 소유의 본능을 상징하는 것이라면 브람스의 간주곡은 그에 대한 절제와 금욕을 표상하는 음악인 것이다. 브람스가 흐르며 코냑이 반주로 곁들여지는 이 식사장면은 이 영화에서 가장 우아한 장면이다. 우리도 한번 ‘음식은 맛이 없지만 얘기를 나누기에는 더없이 좋은’ 그런 식당을 찾아서 리안 감독이 우리에게 주려고 한 메시지를 다시 음미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리안 감독, 그는 역시 명불허전이다. 최병서 동덕여대 문화경제 교수
  • 2007년 스크린 누빈 스타들의 이면

    EBS ‘시네마천국’은 연말을 맞아 한 해 동안 스크린 안팎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정리한다.28일 오후 10시 50분에 방송되는 ‘연말특집 2007, 그 영화가 있었다’에서이다. 먼저 ‘비하인드 컷’에서는 ‘시네마 천국’이 만났지만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배우들의 숨겨진 면면들을 살펴본다. 너무나 진지하게 인터뷰에 응했던 유아인을 비롯해 촬영 중간중간 깜찍한 모습을 선보인 엄정화, 그리고 보석같은 배우들 윤진서, 이하나, 김혜수, 봉태규까지. 촬영장을 달군 그들의 뜨거운 호흡을 포착했다. 또 올해 우리 곁을 떠난 세 명의 거장도 추억해 본다.‘하나 그리고 둘’ 등으로 타이완 영화의 새로운 지평을 연 에드워드 양,‘제7의 봉인’‘화니와 알렉산더’ 등으로 영화라는 장르를 예술의 반열에 올려놓은 스웨덴의 거장 잉마르 베리만의 세계를 돌아본다. 또 ‘정사’‘욕망’을 남겨 이탈리아 모더니즘 영화의 거장으로 불린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감독의 작품세계도 다시 본다. 이와 함께 기억할 만한 영화 세 편을 조명한다. 먼저 감상할 영화는 황규덕 감독의 ‘별빛 속으로’.1970년대 말 혼란스러웠던 시대,‘삐삐소녀’(김민선)가 민주화 구호를 외치다 창문에서 떨어져 자살한 후, 수영(정경호)이 겪게 되는 이상한 경험들을 그리고 있다.1990년대 초반 리얼리즘 영화의 시작을 연 황 감독은 이 영화에서 몽환적 판타지를 결합한 새로운 리얼리즘을 선보였다. 또 치명적인 사건을 겪은 한 소년의 내면변화를 그린 구스 반 산트 감독의 ‘파라노이드 파크’, 인간의 본질을 노골적이고도 숨막히게 이야기하는 이안 감독의 신작 ‘색, 계’도 다시 이야기한다.강아연기자 arete@seoul.co.kr
  • [지리산 산마을 이야기] (12) 경남 산청군 시천면 중산리

    [지리산 산마을 이야기] (12) 경남 산청군 시천면 중산리

    1967년 12월 29일, 우리나라 최초로 국립공원에 지정된 지리산은 그 면적의 절반 이상을 경상남도에 두고 있다. 지리산에 잇닿은 5개 시·군 중 3개 군이 경상도 함양·하동·산청인데 산청군이 경상도 부분의 약 40%를 차지한다. 너른 면적도 그렇지만 지리산 최고봉(1915m)이 산청군에 속하고, 천왕봉을 오르는 최단 코스 중산리, 세석고원까지 이어진 거림골, 치밭목을 거치는 코스 등 동부 지리산 곳곳으로 연결된 많은 등산로를 품고 있기도 하다. 지리산국립공원 본소가 있는 것은 물론이다. ●임소혁사진갤러리 등 볼거리 많아 중산리(中山里)는 이름 그대로 천왕봉 허리춤에 자리하고 있다. 산중의 산마을이 되어야 마땅하지만 정상까지 오르는 제일 짧은 길인데다 그에 따른 등산객 집중 현상으로 민박과 식당이 밀집된 관광지가 되었다. 다행히 지리산 사진작가 중 가장 대중적 지명도를 얻은 임소혁(58)씨가 중산리 버스 종점 한쪽에 ‘임소혁 사진갤러리(055-973-5199)’와 ‘지리산 문화학교’를 열어 천왕봉을 오가는 이들에게 신선한 볼거리를 제공한다.10년을 꾹꾹 채워 지리산 왕시루봉(1243m)에 머물렀던 그가 전남 곡성군 태안사 인근의 ‘섬진강문화학교’를 거쳐 산청군 후원으로 중산리에 들어온 건 지난 4월이다.1,2층으로 나뉜 전시관에서는 역동적이고 다양한 지리산의 구름, 섬진강 수려한 물줄기, 야생화와 연초록 원시림, 지리산의 사계 등 약 400여 점의 사진을 볼 수 있다니 모든 작품을 꼼꼼히 감상하려면 한나절을 꼬박 쏟아 부어도 모자랄 지경이다. 그밖에 왕시루봉 시절 묵었던 숙소(A텐트) 전경을 포함, 손때 묻은 등산장비, 낡은 카메라 도구, 매킨리에서 사용했던 마운틴스키, 온몸이 찌그러진 수통, 방향감각을 잃은 나침반, 온기를 잃은 석유스토브까지 다양한 소품들도 만날 수 있다. “어느날 지리산 세석에서 밤새도록 술을 마시고 잠이 들었는데, 일어나보니 해가 중천에 떴더라고요. 나 자신에게 얼마나 실망했는지…. 그 후로 15년간은 절대 술을 대지 않았습니다. 사진작가에겐 자살행위나 다름없어요. 요즘이야 긴장이 풀린 탓인지 약간씩 마시긴 하지만요.” 멋쩍게 웃어 보이는 그이의 사진 철학은 흔들림이 없다. 자연의 색을 그대로 담기 위해 UV필터 외에는 사용하는 장비가 거의 없을 정도. 아침엔 무조건 일출 자리에 가 있어야 직성이 풀렸고, 저녁 땐 해지는 언덕에 서 있어야 마음이 놓였다. 커피 한잔 끓여 마시고 오는 한이 있더라도 그 시간 그 자리엔 꼭 있어야 한다. 자신과의 투철한 약속이다.‘바람이 불어서, 친구가 와서, 날씨가 흐려서’ 이런 핑계는 통하지 않는다. 결정적 한 컷을 위해 말하는 것조차 아낀 그다. 그만큼 체력관리에 중점을 두었다는 뜻이다. ●등산로 입구엔 우천 허만수 추모비도 임소혁씨에겐 곡성에서의 몇 해가 불만이던 시절이다. 근처 어느 산을 올라도 지리산이 손톱만큼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그저 내다만 보여도 좋겠다. 지리산이 보이면 더할 나위 없겠다.’라던 소원을 천왕봉을 지척에 둔 중산리에서 이뤘다. 그렇다고 그이의 사진을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12월 21일 시작해 새해 2월 10일까지 전북도립미술관에서 열리는 ‘백두대간 대미 지리산전’에 임씨의 사진 30여 점이 전시 중이다. 그밖에 사진집으로, 엽서로, 새해 달력으로, 다양한 전시회로 지리산의 사계를 옮겨 놓는다. 중산리 산행 초입에는 “산을 사랑했기에 산에 들어와 산을 가꾸며 산에 오르는 이의 길잡이가 되어 살다 산의 품에 안긴 이가 있다.”로 시작하는 우천 허만수의 추모비도 있다.1940년대 지리산에 들어와 등산지도를 제작해 배포하고, 이정표와 안전시설을 만들었으며, 인명구조에도 앞장섰던 우천은 지금까지도 존경받는 전설적 산사람이다. 글 사진 황소영 월간 마운틴 기자(www.emountain.co.kr) ■ 가는 길 자가용의 경우 대전∼통영간 고속도로 단성IC로 진입해 20번 국도를 타고 중산리로 이동한다. 산청IC로 나왔다면 금서면 매촌(국도 59번)에서 밤머리재를 넘어야 한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려면 서울 서초동 남부터미널에서 진주행 버스를 타고 산청군 원지에서 내려 중산리행 버스로 갈아탄다. 부산에도 진주를 거쳐 중산리로 가는 시외버스가 있다.
  • 완벽 복원된 ‘명나라 황제 의복’ 中서 공개

    최근 중국에서 완벽하게 복원된 명나라시대 황제복이 공개돼 관심을 끌고 있다. 지난 23일 베이징에서 공개된 두 벌의 황제복은 1958년 9월 ‘명십삼릉’(명나라 역대 13 제왕의 능)에서 출토된 것으로 이는 13대 황제인 ‘만력제’(萬曆帝)의 옷이다. 출토 당시 심하게 훼손되어 있었으나 난징(南京)의 비단연구소(云锦研究所)가 16년간의 복원을 통해 화려한 제 모습을 찾았다. 이날 가장 주목을 받은 것은 황제가 입던 ‘예복’. 비단연구소 장홍바오 주임은 “황제의 예복은 붉은 색을 위주로 하되 황색과 백색 등 여러 색깔이 혼합되어 있으며 도안이 매우 화려하다.”며 “예복 한 벌에 ‘卍’(만)자 도안이 279개, ‘壽’(수)자가 256개, 둥근 용의 무늬가 12개나 그려져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사료에 근거해 옷의 문양이나 소재를 연구하는데 13년, 제작하는데 3년의 시간이 걸렸다.”며 “그간 복원에 참여한 사람은 무려 1920명에 달한다.”고 전했다. 마지막으로 “이 황제복은 다른 어떤 유물보다 완벽하게 복원되었다.”며 “디자인 연구 뿐 아니라 역사적 고증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와~ 산타가 정말로 있네

    “와~ 산타가 정말로 있네

    “요즘 애들은 산타를 믿지 않는다고요? 아이들의 맑은 눈망울을 보면 생각이 달라질 겁니다.” 조효진(21·이화여대 수학과3)씨와 동료 5명은 지난 23일 저녁 7시 빨간 방울 모자를 쓰고 서울 서대문구 연희3동 서대문청소년수련관 앞에 모였다. 소외계층 어린이들을 위해 ‘몰래 산타’로 변신하는 ‘2007사랑의 몰래산타대작전’에 자원봉사자로 참여하기 위해서다. 23∼24일 이틀간 서대문청소년수련관에서 주관한 이 ‘작전’에 참여한 자원봉사자는 무려 500명. 이들은 서울 시내 600여명의 불우 아동들에게 느닷없이 찾아가 선물을 안겼다.‘몰래 산타’ 180명으로 시작한 지난해 행사보다 참여 인원과 규모가 훨씬 늘었다. ●자원봉사자 500여명 올해도 사랑 전달 조씨가 이끄는 9팀 4조가 방문할 곳은 영철(10·가명)이와 신영(8·여·가명)이 남매가 사는 노량진의 허름한 주택가였다. 지하철역에서 20여분을 걸어가는 동안 팀원들의 손과 발은 꽁꽁 얼었다. 드디어 영철이네 집에 도착. 여섯 산타는 발달장애를 앓고 있는 영철이가 들릴 수 있도록 큰 목소리로 남매를 불렀다. “영철아, 신영아 집에 있느냐∼. 우린 착한 어린이에게 선물을 주는 산타란다∼.” 영철이가 어리둥절해서 얼굴을 내밀었다. 영철이는 ‘엄지 공주’처럼 예쁜 동생 신영이의 뒤에 얼른 숨었다. 남매의 굳은 얼굴을 풀어주려고 진수진(21·여) 산타가 풍선으로 직접 만든 푸들과 꽃을 안겼다. 정소라(19·여) 산타는 미리 배운 간단한 마술을 보여줬다. 신문지에서 하트가 나오고, 영철이의 손에 있던 카드가 다른 색으로 바뀌었다.‘몰래 산타’를 의심하던 남매의 눈동자가 “이젠 산타 할아버지를 믿겠다.”는 듯 부드럽게 빛났다. 아이들은 긴장을 풀고 산타들과 신나는 징글벨을 불렀다. 어느새 눈사람 모양의 초가 밝게 타오르는 케이크가 등장했고, 아이들은 눈을 감은 채 소원을 빌었다. ●오빠는 과학상자, 나는 동화책… “너무 기뻐” 여섯 산타가 정성스럽게 마련한 선물을 주는 시간. 영철이에게는 산타들이 직접 만든 과학상자가 돌아갔고, 신영이는 엄지공주가 숨어 있는 동화책을 받고 깡충깡충 뛰었다. 남매는 자기들이 원하던 선물을 받았다며 놀라워했다. 조씨는 “미리 부모님께 전화를 걸어 아이들이 원하는 선물을 물어봤다.”며 빙긋 웃었다. 영철이와 신영이의 배웅을 뒤로하고 ‘몰래 산타’들은 재빨리 다른 ‘작전’ 장소로 옮겼다. 이번에는 대방동의 세 집을 방문해야 했다. 가는 집마다 아이들이 좋아했고, 부모들은 “수고한다.”며 불우이웃돕기 성금을 내놓는다. 아파트는 큰 소리를 낼 수 없어 조심스러웠다. 그러나 산타에 금방 빠져드는 아이들의 눈망울은 어느 집이나 똑같았다. 지체장애를 갖고 있는 태준(10·가명)이는 곰인형을 선물받고는 조씨의 배를 너무 세게 쳐서 조씨가 한동안 아픔을 호소하기도 했다.“태준이가 기분이 너무 좋다는 표시래요.” ●“아이들 웃는 얼굴서 보람 느껴요” 네 집을 모두 방문하고 나온 시간은 밤 10시. 여섯 산타는 국수를 먹기 위해 포장마차에 둘러앉았다.3시간의 몰래 산타 대작전이 못내 아쉬운 표정이다.“아이들의 웃는 얼굴을 보니 하루종일 함께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앞으로는 상대적으로 도움의 손길이 덜 미치는 지방에서도 봉사를 떠날 것입니다.” 이경주 신혜원기자 kdlrudwn@seoul.co.kr
  • [김미라 교수의 부모들을 위한 특강] (31) 같은 문제 또 안 틀리려면

    [김미라 교수의 부모들을 위한 특강] (31) 같은 문제 또 안 틀리려면

    한 번 틀린 문제를 또 틀리는 것은 왜일까요? 시험 보고 난 뒤 학생들이 하는 말 중에 ‘아는 문제인데 틀렸어요.’,‘전에 틀린 문제인데 또 틀렸어요.’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아마 학부모님들도 비슷한 경험이 있을 겁니다. 학창 시절 시험 공부를 하다 보면 항상 틀린 문제는 그 문제가 또 나와도, 혹은 그 비슷한 문제만 나와도 여지없이 틀렸던 적이 있지요. 이런 경험을 한 사람들이 묻습니다.‘틀린 문제를 또 틀리는 실수는 왜 하는 걸까요?’ 그러나 이렇게 틀린 경우는 실수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실수는 조심하지 않아서 잘못한 경우를 말합니다. 문제를 잘못 읽거나 서두르다가 틀린 경우가 아니라, 분명 전에 풀어본 문제인 것이 기억나고 그때 틀려서 다시 풀어 답을 맞힌 것도 기억이 나는데 또 틀린 경우는 제대로 몰랐기 때문에 틀린 것입니다. 무지개는 몇 가지 색깔일까요? ‘빨주노초파남보’ 초등학생만 돼도 거의 반사적인 대답이 나옵니다. 진짜로 무지개는 빨주노초파남보의 일곱 가지 색깔로 되어 있을까요? 무지개를 실제로 보았던 기억의 흔적을 떠올려 보면 일곱 가지 색보다는 많았던 것 같지요. 또는 조금만 생각해 보아도 빨강과 주황 사이에 주홍색이 있는 것처럼 일곱 가지 색 중간 중간에 있는 색채를 모두 합치면 일곱보다는 더 많은 색이 들어가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망설임 없이 대답하는 일곱 빛깔 무지개라는 생각은 어디서 온 것일까요. 지구상의 사람들이 무지개를 보아온 긴 세월에 비하면 무지개가 일곱 빛깔로 결정된 것은 그리 오래 되지 않았습니다. ●무지개 색깔 수도 이해의 틀 따라 달라 1660년대에 와서야 아이작 뉴턴이 공식적으로 무지개를 일곱 가지 색으로 규정했답니다. 프리즘을 발명한 뉴턴은 백석광선을 프리즘에 통과시키자 나타난 무지개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비 갠 후의 하늘에서나 볼 수 있었던 무지개가 실험실에서 만들어 진 것이지요. 이 신기한 사실을 학회에 보고해야 하는데, 학회에 보고하려면 글로 써야만 하지요. 글로 쓰기 위해서는 눈으로 보는 무지개를 언어적으로 규정해야만 합니다. 보이는 색채의 명칭을 무엇으로 할 것인지, 보이는 색채를 몇 가지로 나타낼 것인지를 결정해야 합니다. 뉴턴은 자신이 살던 세계와 시대의 영향을 받았답니다. 하늘의 언어인 음악 7음계, 행성의 개수 7행성, 시간의 틀인 7요일 등의 7이라는 숫자를 받아들여 무지개의 색채를 일곱 가지로 결정했습니다. 뉴턴이 살던 서양과는 달리 동양에서는 무지개를 몇 가지 색깔로 보았을까요. 옛 소설이나 전래동화에서는 어떤 무지개를 타고 선녀가 내려오나요.‘칠색 영롱’한 무지개가 아니라 ‘오색 영롱’한 무지개이지요. 우리의 음계는 ‘도레미파솔라시도’의 칠음계가 아니라 ‘중황무임태’의 오음계이지요. 국기인 태극기는 사괘와 가운데 태극 다섯 가지로 이루어져 있지요! 두 장의 사진은 무지개를 찍은 것으로 두 나라의 신문사에서 세계의 신문사로 보낸 것입니다. 제목을 보면 시베리아 툰드라 숲 위의 일곱 빛깔 무지개와 방콕의 하늘을 덮고 있는 오색 무지개입니다. 동일한 대상인데도 어떤 이해의 틀을 가지고 보냐에 따라 다르게 보이지요. 방콕의 오색 무지개를 제목과 함께 학생들에게 보여주고, 약간의 시간이 흐른 뒤 지나가듯이 무엇을 보았느냐고 물어보면 대부분의 학생들이 일곱 빛깔 무지개를 봤노라고 무심하게 대답합니다. ●어린시절 실험 등 통한 직접 경험이 도움 틀린 문제를 계속해서 틀리는 실수 아닌 실수’는 무지개를 보는 것과 같습니다. 무지개를 보는 이해의 틀이 일곱 가지 색으로 구성되어 있으면 어떤 무지개를 보아도 칠색 무지개로, 다섯 가지 색으로 구성되어 있으면 오색무지개로 보입니다. 무지개가 다양한 빛의 스펙트럼이어서 수많은 색으로 이루어진 것임을 배운 사람들도 이해의 틀이 바뀌지 않는 한 무지개를 볼 때마다 망설임 없이 일곱 가지 혹은 다섯 가지 색깔의 무지개를 이야기하고 받아들일 겁니다. 잘못된 이해의 틀을 바꾸어 주지 않는 한 틀린 문제는 계속해서 틀립니다. 잘못된 이해를 바로잡는 과정을 거쳐야만 다시는 똑같은 문제에서 틀리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웬만해서는 이해의 틀을 바꾸려고 하지 않습니다. 오늘 아이와 함께 다음 실험을 해보시기 바랍니다. 물을 가득 담은 그릇과 거울, 흰 종이를 준비한 다음 (1)거울을 태양 쪽으로 놓은 다음 그릇의 가장자리에 걸쳐 놓습니다.(2)태양 빛이 정확히 반사하여 비추는 곳에 흰 종이를 놓은 다음 거울 방향과 종이 위치를 조절하여 보십시오. 종이에 무지개가 비칩니다.(3)아이에게 물어보십시오, 무엇이 보이냐고, 몇 가지 색채로 보이냐고! 어린 시절 이런 직접 경험들이 쌓이면 이해의 틀을 쉽게 변화시킬 수 있는 융통성이 발달합니다. 그렇게 되면 고정된 이해의 틀로 인해 문제를 틀리는 일은 거의 없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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