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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디다 대고 감히…”/김명서 정치부기자(오늘의 눈)

    최근 신민당의 내분과정에서 눈에 띄는 것은 지나친 획일주의적 색채다. 그동안 신민당의 취약부분으로 지적되어온 권위적인 당운영방식과 맥락을 같이한다.권위의 주체는 물론 김대중총재이다. 주류와 비주류인 정발연의 싸움은 정발연의 입장에서 보면 「굴종이냐 저항이냐」라는 양자택일의 단순논리로 일관됐다.주류측으로서는 김총재의 지휘체제에 대한 절대승복여부의 선택을 정발연에 강요했다고 보아도 무리는 아닐성싶다. 주류측은 총선을 6∼7개월 앞둔 시점에서 일사불란한 당운영체제의 불가피성을 그 배경으로 강조하고 있다.지난번 광역의회선거에서 참패를 맛보게 된 저간의 사정을 고려하면 어느정도 납득이 되는 대목이다. 문제는 내분의 과정에서 김총재를 당보다 우월시하는 도식이 지나치게 부각되고 있다는데 있다.당소속원의 상당수는 이점에 대해 무비판적 감각상실증에 빠져있는 듯한 행태를 보이고 있다고 느껴진다. 김총재를 위하는 것만이 당을 위하는 길이라는 주관적 판단기준이 마치 거역할 수 없는 불문율로 뿌리를 내려가고 있다고 보인다.구평민당에서 지금의 신민당에 이르기까지 당안팎을 맴돈 적지않은 사람들은 이같은 판단기준에 이미 체질화돼 있지 않으냐는 생각을 갖게 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5일 발생한 신민당 사무처요원들과 당원들의 정발연소속의원 감금 폭행사건이다.이들은 당무회의장을 빠져나오는 정대철·이상수·김종완의원을 사무처와 당기위사무실로 끌고가 문을 걸어잠그고 갖은 폭언과 함께 주먹과 발길질까지 해댔다. 당은 격앙된 감정을 억누르지 못한데 따른 우발적 행동이라고 해명했다.폭행사태가 진행되는 동안 한 사무처요원은 『요즘 초선의원들이 분수를 모르고 날뛴다』고 말했다.격앙된 감정의 저변에는 『어디다 대고 감히…』라는 심정이 깔려있었던 것이다. 김총재는 평소 당이 권위주의적이라는 지적에 대해 정치지도자에게 권위는 꼭 필요한 덕목이라고 주장해 왔다.비판과 견제를 전제로 한 민주적 당운영의 필요성도 강조했다. 그러나 구평민당출범과 함께 총재직을 계속 맡아오면서 김총재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비판과 견제의 목소리는제기능을 적절하게 발휘하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특히 획일적 당운영체제가 강조되면서 당원들의 주관적 발언 자제와 함께 엄격한 자기관리의 의지마저 약화되고 있지 않느냐는 지적도 적지않다.의원들에 대한 폭력사태를 계기로 단순한 폭력의 진상규명 못지않게 신민당이 신중히 살펴봐야할 대목이다.
  • 「세모」 유 사장등 27명 출국금지/송재화씨 수배

    ◎「오대양」 사채일부 세모유입 추정/자수 7명,“우린 구원파 신자였다” 진술 【대전=박국평·손성진·최용규기자】 오대양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대전지검 특수부(이재형부장검사)는 22일 주식회사 세모의 유병언사장(50)등 이 사건 관련자 27명에 대해 법무부에 출국금지조치를 요청했다. 출국금지가 요청된 사람은 ▲유사장 등 오대양의 실체조사에 필요한 관련자 6명 ▲송재화씨(45·여)등 오대양의 사채유출관련자 6명 ▲최의호씨(31)등 이상배씨 폭행사건 관련자 9명▲이복희씨(30·여)등 암매장사건 관련자 3명 ▲박해용씨(55·전 공영정밀 서울사무소장)등 오대양의 자금관리자 3명 등이다. 한편 검찰은 송재화씨가 지난 83년부터 1년반동안 세모개발실에서 일하는등 세모측과 밀접한 관계를 맺어온 사실을 밝혀내고 송씨를 전국에 지명수배했다. 검찰은 송씨가 기독교 복음침례회(구원파)신도들의 사채를 모아 세모측에 대주는 역할을 맡아왔고 숨진 「오대양교주」박순자씨와도 관계를 맺어온 것으로 보고 박씨가 빌린 사채 1백70억원가운데 일부가 송씨를 통해 세모측에 흘러들어갔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한편 폭행치사및 사체유기혐의로 검찰에 구속 또는 불구속으로 송치된 김도현씨(38)등 9명 가운데 7명이 검찰조사에서 『구원파 신자였다』고 진술했으며 이에 따라 검찰은 「구원파」와 세모및 박순자씨의 「오대양교」와의 관계를 캐고 있다. 이들 가운데 특히 입건된 이인희씨(27·여)는 『오대양직원 모두가 기독교복음침례회 신자』라고 진술했다고 검찰은 밝혔다. 검찰은 이때문에 「오대양교」와 기독교복음침례회가 무관하지 않으며 종교적 색채가 비슷한 것으로 보고 있다. 또한 이들의 집단자수를 권유했다는 이재문씨도 「구원파」신자이며 세모측과 관련이 있다고 김도현씨가 진술했다는 것이다. ◇출국금지자 명단 △유병언 △김영자(34·여) △정화진(35·여) △이기정(57·박순자씨 남편) △이재문(39) △고재희 △이복희(30·여) △심해련(25·여) △박용택(28) △송문기(30) △최의호(31) △조세희(23) △김도근(26) △이길호(27) △이건호(33) △강수자(28) △유연숙(30·여) △박명자(36·여) △송재화 △박용준(40) △박용주(35) △김동현(33) △구로성(34) △기금순(56·여) △박해용 △김창용(34·전공영정밀과장) △서화남(47·전삼우트레이딩 사원)
  • 중진급 외교관 「요지」에 포진/외무부 해외공관장 인사의 의미

    ◎정치적 색채없이 전근무지·언어 중시/“장관진출 전초” 인도에 이정빈씨 임명 눈길/제네바 차석대사엔 통상협상능력을 고려 17일 단행된 해외공관장 및 외무부 본부인사는 주로 해외근무연한인 3년을 채운 대사를 대상으로한 정기인사다. 따라서 별다른 정치적 「색깔」을 찾을 수는 없으며 다만 인도·스페인 등 요지를 포함한 중진급 외교관의 이동이 상당수 이뤄졌다는 점에서 특징을 찾을 수 있다. 이번 인사에서 특히 고려된 원칙은 전근무지역과의 관련성,이력사항,사용가능한 언어권 등이었다는 것이 정부당국자의 설명이다. 외무부 정무차관보로 3년 가까이 근무한 이정빈차관보가 특1급으로 승진하는 동시에 주인도대사로 임명된 것이 우선 눈에 띈다.인도는 노신영 이범석전외무장관등이 거친 곳으로 장래 장·차관을 바라볼 수 있는 「야망의 임지」라는 것이 중론이다.이신임 주인도대사는 당초 이상옥외무장관으로부터 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이 개최될 스페인을 권유받았으나 스페인어가 능통하지 못해 인도를 택한 것으로 알려졌다. 주방글라데시대사로 발령난지 1년여만에 주일대사관 공사로 임명된 이재춘신임공사는 동북아1과(일본) 과장·주일참사관·아주국장 등을 거친 일본통.오재희주일대사가 그의 경력과 함께 화합능력을 높이사 함께 근무하기를 강력히 희망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신성오외무부문화협력국장도 주일대사관근무경력 등으로 주일공사에 거론되기도 했으나 본인이 방글라데시대사를 강력히 희망했다. 주제네바차석대사와 신설된 GATT담당대사를 겸임하게 된 김삼훈외무부통상국장은 탁월한 협상능력을 가진데다 관련 경제부처간 원활한 의견조정을 위해 막판에 결정됐다.제네바대표부의 대부분 업무가 GATT와 관련된 것을 감안하면 앞으로 박수길제네바대사와의 역할분담이 주목된다. 강웅식신임 주과테말라대사는 사기진작 차원에서 예상보다 빨리 대사로 임명된 케이스.미주국 심의관을 지낸 강대사는 미국·캐나다 등 북미지역을 미주국장이 주로 맡은 반면 중남미지역을 도맡아 담당했기 때문에 인사상의 배려도 있어야 한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특1급의 군출신 대사인윤영엽·한철수·박로영·홍순용대사등은 당초 정년으로 은퇴될 것으로 예상되기도 했으나 각각 뉴질랜드·브라질·대만·아랍에미리트연합(UAE)대사에 임명. 이승곤신임외무부기획관리실장(직무대리)은 원래 제1차관보 후보로 올랐으나 지역적인 안배로 기획관리실장을 맡게 됐다.경북이 고향인 이실장이 1차관보가 될 경우 이장관(경북)·유종하차관(경북)에 이어 대구·경북지역출신이 포진하게 되기 때문.
  • 외언내언

    2일밤 서울의 컬러TV에 나타난 미국 백악관의 「남쪽뜰」은 눈부시게 아름다웠다.완벽한 의전례를 갖춘 국빈환영식은 21발의 예포로부터 시작되고 있었다.한국대통령이 미국대통령의 이런 영접을 받는 것이 처음은 아니지만,한국국민이 이런 모습을 「색채」로 「동시」에 중계해서 본 것은 이것이 처음이었다. ◆『대통령직이란 위엄을 인정받는 노예와 같은 것』이라는 미국 잭슨대통령의 말을 노태우대통령은 오찬연설때 인용했다고 한다.컬러TV로 중계방송된 「국빈영접」의 백악관행사 모습을 볼수 있었던 2일밤의 한국 국민들에게는 노대통령의 이 인용구가 실감되는 느낌이었다.나라를 대표하는 사람이 밖에 나가서 융숭한 대접을 받는 것은 국민이 대접받는 것을 뜻한다.「위엄을 인정받는 노예」의 자격으로 국민이 파견한 대통령이 받은 대접을 우리는 TV로 즐겼다. ◆노대통령의 답사에는 스스로 한국을 말하는 대목이 나온다.「…사회주의 경제를 채택해온 나라에는 자유시장경제사회의 우월성을,모든 개발도상국에게는 개방경제와 자유무역의 효율성을 입증하는 빛나는 진열장」이 한국이라고 노대통령은 피력했다.세계인에게 특히 개발이 뒤진 나라들에게 희망을 주는 나라임을 자부한 것이다. ◆한국인은 여기까지 왔다.체격이 크고 당당한 편인 대통령내외를 파견하여 멋진 의식의 역할을 담당하게 하고 그걸 구경도 하고 이것저것 양국사이에 걸려있는 현안문제들도 해결해 보라고 당부했다.열심히 일하고 노력해서 남들이 보기에 억지로라도 시장개방을 시켜야만 이롭겠다고 느껴질 만한 나라로 성장한 우리.그게 다 우리가 스스로 쌓아온 공이다. ◆독립군복장을 한 고적대의 양키두둘두가 인상적이고 신명나던 이날의 의식에 날씨는 또 어찌 그리 좋았는지.군인들이 일사병을 일으킬만큼 햇빛이 빛났다.국민의 신성한 심부름을 안고 가있는 대통령내외가 부디 건강하게 잘 다녀오기를 빈다.
  • 대학신문의 운영체계 개선(사설)

    대학신문의 제작태도가 오래 전부터 여러 문제를 제기해왔으나 여전히 개선의 기미는 보이지 않고 있다. 이번에 전국 1백21개 대학의 대학신문 주간교수들로 구성된 주간교수협의회가 대학신문의 운영체제를 개선키로 한 것도 그만큼 오늘의 대학신문이 심각한 상황에 있음을 반영한 것이다. 세미나에서도 지적된 대로 대학신문은 대체로 몇 가지 측면에서 문제를 안고 있다. 그것은 우선 신문의 제작방향이 무조건적인 반체제적 논조로 일관하고 있고 그런가 하면 운동권의 선전매체화됐다는 것이고 일부는 좌경운동권의 논리가 주도됨으로써 북한의 주장을 무비판적으로 활자화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흡사 북한의 기관지와 비슷하다는 소리가 있어온 것도 이 때문이다. 또 현실에 관심이 많을 수밖에 없는 젊은 학생들의 신문이어서 시국관련 기사가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고 해도 이 같은 이유로 인해 논조가 지나치게 급진적이고 편향적이라는 지적이 상당한 것이 사실이다. 게재되고 있는 글의 수준에도 많은 문제가 있음이 발견되고 있다. 대학신문다운전문성을 결여하고 있고 내용이 미흡하며 테마가 너무 천편일률적이라는 많은 사람들의 지적에서 그것을 알게 된다. 대학인들의 다양한 의견을 수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나 미래지향적이지 못하고 이념에만 편중돼 있다는 것들이 비판을 받아왔다. 그러나 대학신문이 그 동안 우리 사회에서 해온 긍정적인 역할도 적지 않다. 학생운동과 연계돼 민주화 추진과정에서 차지해온 비중을 무시할 수가 없고 또 어떻든 그런 민주화 운동에 나서온 학생운동의 이념을 확산시키는 데에 대학신문의 역할은 컸다는 사실이다. 이번 주간교수협의회 세미나에서도 나타났듯 대부분의 대학신문들이 주간교수 1명과 학생기자들만에 의해 제작됨으로써 문제를 일으키고 이로 인해 이념적 편향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은 한마디로 빨리 극복되어야 할 일이다. 이에 대한 대책으로 제시된 전문적 지식을 가진 교수의 참여확대 방안은 반드시 추진되어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다. 그것은 형식적으로는 주간교수의 검열을 거치도로 하고 있으나 지난 87년 학원자율화조치 이후 이런 검열과정을 생략한 채 학생들의 자의적인 판단에 따라 발행되고 있다는 실상의 개선없이 체질의 변화나 방향전환은 어렵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우리는 다시 대학신문이 가져야 할 특성을 살려 전문성과 내용의 수준이 강조되고,각 대학의 전통이 스며있고,침묵하는 다수의 생각이 반영되는 그런 학교신문으로의 체질개선을 당부하고 싶다. 대학신문이 갖는 진보적 색채가 충분히 이해되고 시국기사 치중제작 방향에 이해를 가지면서도 대학신문은 근본적으로 전향적인 토론의 광장으로 활용되고 학술발표와 함께 학사소식·대학생활 등 학생생활의 관심사가 중점 소개되는 마당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신문이 되도록 하는 데에 전문교수들의 참여확대가 실효를 가져 오게 되고 이를 위해서는 많은 학생들의 협조가 필수적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그렇게 될 때 대학신문의 자주성도 확보되는 것이다.
  • “총리임명 결정…귀국하라” 잠비아에 급전/정원식 총리 발탁 뒷얘기

    ◎장·단점 2시간 숙의… 행정경험 중시 낙점/“거부감 없는 인물…”… 당직자들 천거도 한몫 정원식 총리의 탄생은 「이동중지」 급전 8시간 만에 이뤄졌다. 총리 후보 3배수 압축순간에 『다음 행선지로 이동하지 말고 대기하라』는 메시지가 전달되었고 노태우 대통령의 낙점이 찍혔을 때 『곧바로 귀국 비행기를 타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노 대통령은 23일 상오 본관집무실에서 정해창 비서실장으로부터 김영일 사정수석 등 관계비서진이 마련한 총리 후보명단을 놓고 심사숙고 끝에 『행정경험과 소신이 뚜렷하고 국민에게 거부감이 없는 사람으로 해야겠다』는 결심을 피력. 비서실에서 최종 정리한 총리후보안은 정원식 전 문교장관·최호중 부총리 겸 통일원 장관·조순 전 부총리·현승종 한국교총 회장·고흥문 전 국회부의장 등 5명이었다고. 그러나 노 대통령의 이같은 결심에 따라 행정부 경험이 없는 현 교총 회장과 고 전 부의장은 일단 탈락. 노 대통령은 3배수로 압축된 명단을 두고 다시 장고에 들어가며 『하오에 다시 보자』고 했던것. 이에 이병기 의전수석 등은 대통령의 낙점에 대비,압축대상자의 현위치를 파악토록 했는데 문제는 대통령 특사로 아프리카 5개국을 순방중인 정 전 장관과의 연락관계. 관계관은 정 특사가 나이지리아 케냐에 이어 잠비아방문을 마치고 다음 행선지인 나미비아로 이동할 예정인 것을 알고 『총리 후보 최종명단에 포함된 것 같다』는 대강의 분위기만 전하고 『가부간에 통보를 할테니 현재의 위치에서 일단 대기해 달라』고 전달했는데 이때가 하오 1시쯤. 노 대통령은 하오 6시쯤 집무실이 아닌 관저로 정 실장을 불러 세 사람의 후보를 놓고 발탁에 따른 여러 가지 장단점을 2시간 가까이 검토한 끝에 정 전 장관에 낙점. 이에 따라 이 의전수석은 하오 9시쯤 잠비아의 수도 루사카의 우리 대사관에 대기하고 있던 정 전 장관에게 전화를 걸어 『총리에 임명되셨다』고 공식 통보. 이에 정 신임 총리 내정자는 자신에게 과분한 일이라며 대통령에게 재고해 달라고 겸사했다는 후문. 이 수석은 그러나 『대통령의 결정은 확고하고 최종적인 것』이라며 서둘러 귀국해 달라고 요청. ○…정 신임 총리서리는 노재봉 총리의 사퇴가 기정사실화되면서부터 유력한 후보자로 지목돼왔던 것. 정 총리서리가 인선 초반부터 선두를 유지한 것은 그가 88년 12월부터 2년간 문교부 장관으로 재임하는 동안 보여준 업무대처능력,그리고 인품이 중후하면서도 친화력이 뛰어난 점을 노 대통령이 높이 샀기 때문. 노 대통령은 정 총리가 지난해말 장수 케이스로 문교장관을 물러날 때 세종대 학내분규 당시 학생들로부터 봉변을 당해가면서도 흔들림없이 학내시위를 대처했던 사실을 상기시키면서 『조금만 기다렸다가 나를 더 크게 도와달라』는 각별한 위로 겸 당부를 했다는 것. ○…최호중 부총리와 조순 전 부총리도 막바지까지 유력하게 검토되었으나 최 부총리는 앞으로 남북관계의 중요성에 비추어 계속 업무를 맡아야 한다는 점이 고려되었고 조 전 부총리는 최각규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과 같은 강원 출신이어서 총리·부총리가 동일지역 출신이라는 점이 감안된 데다 현재의 경제정책기조에 자칫 혼선을 빚을 우려가있다는 점도 지적되었다고. 노 대통령이 인선구상에 착수하면서 제일 먼저 거론된 인사로 최영철 대통령정치특보. 특히 민자당 주변에선 최적임자로 손꼽혔는데 정치적 색채를 가급적 배제하는 총리로 인선의 가닥이 잡히면서 배제되었던 것. ○…정 전 문교장관이 총리로 발탁된 데는 민자당 주요 인사들의 천거도 한 몫을 했다는 후문. 노 대통령은 지난 17일 김영삼 민자당 대표와의 주례 정례회동에서 조기개각의사를 굳힌 뒤 김종필·박태준 최고위원,이춘구 의원 등을 잇따라 단독 면담해 후임 총리인선내용을 협의했는데 정 전 문교장관에 대해서 모두가 거부감이 없었다는 것. 당측에서는 후임 총리를 「원로형」과 「실무형」으로 나눠 각각 천거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청와대비서진들이 당측 입장을 감안,「실무형」의 발탁을 집중검토했다는 전문.
  • 다시 고개든 좌익세력에 “메스”/검찰의 용공유인물 전면수사 배경

    ◎지하방송 아닌 유인물 발견은 처음/“정권타도,민중정부 수립”등 이적 표현도 검찰이 15일 명지대에서 강경대군의 영결식이 치러지는 동안 이 학교 운동장과 신촌로터리 주변에서 발견된 유인물에 대한 전면 수사에 나선 것은 시국의 혼란을 폭력혁명의 선동에 이용하려는 좌익세력의 의도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그 동안 각종 시위현장이나 대학가에서 북한이나 김일성을 찬양하는 내용의 불온유인물이 가끔 발견된 적은 있었으나 이번처럼 여러 좌익·재야단체의 명의로 된 유인물이 한꺼번에 대량으로 뿌려진 적은 없었다. 최근의 시국상황은 기초의회 의원선거가 치러진 데 이어 광역의회 의원선거와 장기적으로는 국회의원 선거 및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고 물가상승 등 경제적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는 데다 강군치사사건으로 민심불안 요인까지 겹쳐 이를 틈탄 좌익세력의 발호가 크게 우려되고 있다는 것이 검찰의 분석이다. 검찰은 강군 장례행사장 주변과 시위현장에서 다양한 종류의 불온유인물이 발견된 데 대해 이같은 우려가단적으로 드러난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더욱이 발견된 유인물 가운데는 공안당국이 가장 큰 좌익 지하조직으로 보고 있고 지난 89년 수사에 나선 뒤 2차례에 걸쳐 핵심인물들을 구속하고 계속 활동상황을 추적하고 있는 「남한 사회주의 노동자동맹」(사노맹)과 북한의 「한국 민족민주전선」(한민전) 명의의 유인물이 포함되어 있어 주목되고 있다. 「사노맹」은 지난해 북한의 사회주의 노선을 그대로 따라 폭력민중혁명을 선동하는 내용의 유인물을 성균관대 등 대학가에 뿌려 공안당국이 이 단체에 대한 수사에 나서 얼굴없는 노동자 시인 박기평씨(33·필명 박노해) 등 핵심인물이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구속되기도 했었다. 특히 「한민전」은 「구국의 소리」라는 대남방송을 전담,평양에서 내보내는 북한의 지하공작 조직으로 방송 아닌 유인물로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는 것이다. 검찰은 이번에 「사노맹」 명의의 유인물이 4종이나 발견된 것으로 보아 핵심구성원들이 구속된 뒤에도 「사노맹」의 활동력이 아직도 건재한 것으로 보고있으며 북한의 「한민전」과 연계된 남한의 고정간첩조직이나 좌익세력이 있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검찰은 우선 이들이 뿌린 유인물을 수거,내용을 검토한 결과 이적성이 짙은 유인물이 9종,용공성이 있는 것이 8종인 것으로 밝혀내고 면밀한 분석작업에 나서는 한편 작성한 단체와 사람을 추척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분석결과 유인물의 내용은 현정부를 비판하는 것 외에도 자유민주체제의 전복을 선동하고 노동자 농민 학생 등 민중이 통일전선을 형성,폭력혁명으로 사회주의 사회를 건설하자는 내용도 들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검찰은 이들 유인물들의 내용으로 보아 개정된 국가보안법 제7조 5항에 규정된 국가의 안전과 존립을 위태롭게 하고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되는 이적표현물에 해당되는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은 또 「명지대학생 투쟁위원회」 명의로 된 「이제 노태우 시대는 끝났다」는 제목의 유인물을 분석한 결과 체제전복 세력이 「명지대학생투쟁위원회」 명의를 도용,폭력혁명을 선전선동하는 전술로 보고 그 배후에 대해서도 철저히 수사하기로 했다. 검찰은 이와 함께 「범국민대책회의가 4천만 국민에게 호소합니다」라는 제목의 유인물도 노동자·농민·도시빈민·학생 등 기층민중을 중심으로 단결하여 현정권 타도 투쟁을 선동하고 있는 사실도 중시,『이는 좌경세력의 색채를 노골적으로 표방하고 있는 체제전복세력』이라고 밝혀 이 부분에 대해서도 수사할 뜻을 강력히 나타냈다. 검찰은 「노동자 권력을 염원하는 노동자 일동」 명의의 「부활하라 열사여 노동자 권력의 깃발로」라는 유인물과 「서울민족민주노동자모임」 명의의 「4천만 똘똘뭉쳐 거국내각 쟁취하여 민주정부 수립을 앞당기자」는 유인물 등도 민중정부수립과 거국내각 수립 등을 주장하고 있는 것은 사회주의로 가기위한 전 단계로 판단된다고 분석했다. 검찰은 이번 수사에서 유인물 작성자만을 색출하고 활동을 추적하는 선에서 끝내지 않고 이들 단체들의 조직과 구성원을 파악해 검거하는 등 수사를 확대할 방침을 세우고 있다.
  • 몸은 좌에,정책은 우로/미테랑 집권10년/프랑스 사회당정권의 변신

    ◎초기 국영화시책 실패 뒤 공산당과 결별/“자본주의체제 무시한 개혁은 환상” 체득/“우파의 향도” 극좌파 비난에도 국민지지 더 상승 프랑수아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이 10일로 취임 만 10년을 맞았다. 지난 81년 대통령선거전에 만년 야당의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던 사회당(PS) 후보로 나서 승리,전후 최초로 프랑스에 좌파정권을 탄생시키면서 화려하게 등장한 미테랑 대통령은 88년 재선에 성공함으로써 서구에서는 드물게 민주사회주의 정권의 장기통치체제를 구축,오늘에 이른 것이다. 취임 10주년을 이틀 앞둔 지난 8일 미테랑 대통령은 파리시내 팡테옹으로 프랑스 좌파의 시조인 장조례스의 묘역을 찾아 사회당의 심볼인 붉은 장미 한송이를 바쳤다. 자신과 사회당의 좌파통치 10년을 기념하는 뜻에서였다. 그러나 오늘의 미테랑 대통령이나 사회당을 두고 그 노선이 진정한 좌파라고 생각하는 프랑스사람은 맞지 않은 것 같다. 지난 81년 「사회를 바꿔보자」는 선거구호를 내걸고 당선된 미테랑 대통령에 대해 관심이 집중됐던 것은 20여 년간 우파지배 아래 짜여진 자본주의 사회구조를 좌파정권이 어떤 모양으로 바꾸어 나갈 것인가에 대한 궁금증 때문이었다. 「노동자의 최저이금을 올리겠다」 「노동시간을 단축하겠다」 「휴가를 늘리겠다」는 등 무려 1백10가지에 이르는 미테랑의 선거공약은 듣기만 해도 곧 장미빛 사회가 전개될 듯한 착각에 빠져들게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오랫동안 자본주의체제 아래서 뿌리를 내린 기업들,특히 사회구조와 국민의식이 쉽사리 사회주의 이념에 따른 국가관리 경제체제에 순응하기를 기대한 것은 당초부터 무리였다. 실업자의 증가,투자의욕의 감퇴,생산저조 및 이에 따른 국가재정의 적자 등 경제파탄현상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자본주의를 부수자」는 캐치프레이즈가 1년도 안 돼 잘못된 것으로 드러난 것이다 그리하여 미테랑 정권은 83년 다시 긴축정책을 펴면서 세금을 올리고 물가를 인상하는 한편 소비억제책을 썼다. 서구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해외여행 제한조치까지 취했다. 이른바 「프랑스식 사회주의건설을 위해서」라는 명분을 내걸었지만 이는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혼합형태의 성격을 띠었을 뿐 본래의 사회주의정책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이때부터 미테랑의 좌파적 이미지는 퇴색하기 시작한 것이다. 미테랑정권이 이념적으로 이같이 옆길로 빠져들자 84년에 들어서는 사회당에 협조해오던 공산당이 등을 돌렸다. 미테랑 대통령의 집권기간 동안 가장 이상한 형태의 국가통치현상이 빚어진 것은 우파와의 「동거정부」 때문이다. 사회당은 86년 총선에서 하원(국민의회)의석의 과반수 획득에 실패,그때까지 야당이던 우파에 총리직을 내줄 수밖에 없었으며 공화국 연합의 자크 시라크 당수가 총리에 기용되어 좌파대통령에 우파총리라는 기묘한 권력구조가 형성됐다. 이렇게 되자 우파행정부는 그때까지 미테랑의 사회당정권에 의해 국유화됐던 기간산업과 은행 보험회사들에 대한 민영화를 추진하는 등 좌파정책에 수정을 가했다. 이후 88년 대통령선거에서 재집권에 성공한 미테랑 대통령은 당내에서도 가장 우파 쪽으로 치우친 미셸 로카르를 총리를 기용하면서 정책집행에서 사회주의 색채를 더욱 희석시켜 나갈 것을 분명히했다. 그가 재선된 뒤 국책운영과 관련하여 새로이 내건 슬로건은 「비국영화·비민영화」였다. 더 이상 민간기업을 국유화하지 않겠으며 이미 국유화된 기업을 더 이상 민영화하지도 않겠다는 것이었다. 이를 두고 당내 극좌그룹이나 공산당 등 좌파 쪽에서는 사회주의 이상의 포기 또는 무소신정책이라고까지 몰아붙이며 미테랑을 「우파의 향도」라고 비아냥거리기도 한다. 사회당 대통령의 통치가 10년이 됐지만 프랑스 사회에서는 기업활동,상품의 유통,재화의 이동·보전 등 거의 모든 경제·사회활동이 자본주의하의 그것과 다를 것이 없다. 미테랑 대통령의 취임 10주년을 맞아 사회당 쪽에서는 그 동안의 미테랑과 사회당의 치적에 중점을 두어 홍보활동이 한창이다. 국내적으로는 평등사회를 향해 큰 진전이 있었으며 대외적으로는 프랑스의 국제적 지위가 크게 높아졌다고 자랑하고 있다. 그러나 야당 쪽에서는 『미테랑 10년에 남은 것은 실업자 증가,세금인상,그리고 윤리의 타락 뿐』이라고 공박하고 있다. 실제로 이같은 비난을 뒷받침하고 있는 현상들이 미테랑 대통령을 궁지로 몰아넣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비난에도 불구하고 각종 여론조사결과는 미테랑 대통령이 국민들로부터 꾸준한 지시를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10년 장기집권에 대한 염증을 말하는 이도 없지 않으나 그는 여러 정치지도자들 가운데서 항상 1위의 인기를 유지하고 있으며 하리스 여론조사의 경우는 최근의 지지도가 55%로 81년 집권 때의 52.2%보다 훨씬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서구 민주사회주의의 새로운 모델 시험시기로 평가되기도 하는 「미테랑10년」은 다른 한편으로는 자본주의체제 속에서 개혁과 변화를 추구하자면 그 체제의 논리와 구도를 존중해야 하며,이를 무시하고서는 아무리 좋다고 믿어지는 이상이라도 그것은 한낱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는,시행착오에서 얻어진 값진 교훈을 남기고 있다.
  • 고르비 수행원 거의가 “핵심브레인”/막강참모진 면모를 살펴보면

    ◎베스메르트니흐 외무·카투셰프 대외경제장관 포함/체르냐예프·이그나텐코 보좌관외 자문관 3명 대동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은 19일 방한에 외교 및 경제분야의 핵심참모 12명을 공식수행원으로 대동한다. 공식수행원 서열 1위인 알렉산드르 베스메르트니흐 외무장관은 58세의 미국통 직업외교관으로서 지난 1월 셰바르드나제의 후임으로 소련 외교의 총수자리에 올랐다. 알타이 크라이지역에서 출생한 베스메르트니흐 외무장관은 모스크바 국립국제관계연구소에서 법학을 전공한 뒤 지난 57년부터 외교관생활을 시작했다. 60년부터 6년간 유엔대표부,70년부터 83년까지 주미 대사관에 근무한 뒤 86년까지는 본부 미주국장을 역임하는 등 주로 대미 관계일을 맡아왔다. 86년 외무차관,지난해 5월 주미 대사에 영전됐었으며 최근까지 미소 군축협상에서 소련측 고위급 대표로 능란한 협상기술을 발휘해왔다. 소련내 급진개혁파들은 그를 보수파로 규정하고 있으나 본인 자신은 개혁정책을 추진하겠다는 의욕을 가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지난해 7월 소련공산당 중앙위원으로 선출되기 전까지는 당 관료로서 활동한 적이 없어 정치적 색채는 비교적 덜한 것으로 평가된다. 콘스탄틴 카투셰프 대외경제장관은 고리키 태생의 기술관료 출신으로 64세이며 당과 내각에서 요직을 두루거쳤다. 지난 52년에 공산당에 입당,59년까지 고리키 자동차회사의 책임서기를 지냈으며 66년에 공산당 중앙위원에 발탁됐다. 68년부터 77년까지 공산당 중앙위 서기를 포함,주요당 요직을 역임했으며 77년부터 82년까지는 각료회의 부의장,82년에는 주쿠바 대사에 임명됐었다. 카투셰프 대외경제장관은 한때 총리직 물망에도 오를 만큼 서방시장경제 지식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대외경제협상능력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아나톨리 체르냐예프 대통령외교안보보좌관은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브레인집단인 과학아카데미 출신으로 이른바 「고르비 5인방」 중의 한 사람. 모스크바대 역사학과 출신으로 자본주의국가담당외교보좌관을 거쳐 최근에는 대통령외교안보보좌관직을 맡고 있으며 지난해 샌프란시스코 한소정상회담을 성사시킨 막후 주역으로 알려지고 있다. 블라디미르 이그나텐코 대통령공보보좌관은 타스통신 부사장과 개혁파 주간지 뉴타임스지의 편집장을 거쳤다. 88년 서울올림픽 때 소련측 취재단장으로 내한하는 등 수차례 방한 경험이 있는 지한파. 이고르 로가초프 외무차관은 이번달초 서울에서 열린 유엔아태경제사회이사회총회 참석차 방한,한소 제주도정상회담을 성사시키는 데 상당한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특히 공로명 주소 대사 등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한소 공식외교의 대화창구를 맡고 있다. 카렌 브루텐츠 대통령자문관은 공산당 국제부 부부장시절 김영삼 민자당대표의 방소를 강력히 뒷받침했으며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외교시책 방향에 상당한 영향력을 가진 인사로 평가되고 있다. 밀류코프 대통령자문관은 고르바초프 대통령에게 사회·경제분야 조언을 하고 있으며 경제학 박사이자 교수 출신으로 일본 경제전문가로 알려졌다. 공식수행원 중에는 이밖에 구센코프 대통령자문관과 함께 쉐브첸코 대통령의전장,체르니셰프 외무부 의전장,소콜로프 주한 대사,라조프 외무부 극동·인지국장 등이 포함되어 있다.
  • 개인연설회 허용여부가 쟁점/지방의회선거법 개정과 여·야 입장

    ◎여,불법만연 우려 정당유세에 반대/야선 “선거운동 과도한 제한 없애자” 오는 6일 실시되는 광역의회의원선거를 앞두고 이번 임시국회에서 지방의회선거법이 어떻게 손질될 것인지가 정가의 관심을 끌고 있다. 특히 정당간여가 철저히 배제된 기초의회의원선거와는 달리 광역의회의원선거의 경우 정당활동이 허용된만큼 여야 모두 개혁입법 처리 못지않게 상당한 체중을 싣고 있는 실정이다. 더욱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지난 3월의 기초의회의원선거에서 나타난 문제점을 반영한 지방의회선거법 개정의견을 지난 11일 국회에 제출,선거관리업무의 현실적 어려움을 지적함에 따라 당초 이번 임시국회에서 헌법재판소가 위헌결정을 내린 후보자의 기탁금제도 및 농·수·축협 조합장의 입후보 허용문제만을 개정하려던 민자당과 신민당은 법 개정의 중요성을 인식,적극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민자당은 지방의회의원선거법 개정과 관련,헌법재판소 결정내용과 같이 「반드시 개정해야 될 조항」뿐만 아니라 선관위의 개정의견을 참작,여야간에 합의개정이 가능한 대목의 우선순위를 선정,협상에 임한다는 전략이다. 민자당은 이에 따라 공명선거 분위기를 그대로 지속해나간다는 전제 아래 광역선거 후보자의 대유권자 홍보방법 확대 등 건전한 선거운동방안 마련에 골몰하고 있다. 반면 신민당은 선관위 의견을 대폭 수용,법 개정에 그대로 반영하되 다만 정당의 색채를 보다 뚜렷이 할 수 있는 정당연설회의 허용문제까지도 넣어야 한다는 복안이다. 우선 기탁금제의 경우 선관위는 이를 폐지,후보자가 납부한 금액의 범위 안에서 선거비용을 쓰고 정산하는 「공영비용 예납제」의 도입을 제안하고 있지만 민자·신민 입장은 이와는 약간 다르다. 공명선거를 위해서는 오히려 기탁금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는 민자당은 기탁금을 2백만∼3백만원으로 하향조정하는 선에서 매듭짓도록 희망하고 있으며 신민당은 위헌결정을 감안,아예 법조문에서 삭제해버리고 선관위의 규칙으로 정하자는 입장을 밝히고 있어 협의 결과가 주목된다. 또 선거운동의 포괄적 제한규정을 삭제하자는 선관위 의견에 대해서도 민자당은 선거가과열되고 각종 기상천외한 불법선거운동방법이 동원될 우려가 크다는 점에서 반대의사를 분명히 밝히고 있다. 그러나 신민측은 현행 선거법이 선거운동을 너무 과도하게 제한하고 있는 데다 선거에 관한 자유로운 의견개진마저 일체 금지하고 있어 이의 근거규정인 포괄적 제한조항을 삭제,금지되는 선거운동방법만을 나열한 「네거티브 시스템」으로 바꾸자는 입장이다. 그리고 개인연설회의 허용여부도 민자당은 합동연설회를 개최하는 것 못지않게 선거관리 측면에서 많은 문제점이 발생하고 금품살포 등 부정선거운동이 횡행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개인연설회 채택을 반대하고 있다. 민자당은 또 경실련 등 시민단체가 후보자를 추천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부정적 입장을 갖고 있다. 이러한 시민단체가 법적인 보장을 받을 수 없는 데다 정당법상 후보자를 추천할 수 있는 유일한 단체는 정당밖에 없다는 주장이며 또한 시민단체의 초청에 의한 후보자간 토론도 이들 단체의 공정성 여부에 문제가 있는만큼 이를 허용할 수 없다는 게 민자당의 생각이다. 이와 함께 전화를 통한 선거운동 방법도 현실적으로 규제하는 데 어려움이 많지만 타후보에 대한 온갖 흑색선전이 난무한다는 점에서 원칙적으로 반대하고 있다. 그러나 신민당은 개인연설회와 전화를 통한 선거운동의 허용,시민단체의 후보자 추천 등에 관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어 여야협상 과정에서 최대의 논란거리가 될 것 같다. 민자당 일부에서는 특히 지난 기초선거에서도 후보자들의 이력표기에 허위가 많았다는 판단에 따라 이번 광역선거에서 후보자들이 허위사실의 경력을 표기할 경우 당선무효 또는 등록무효시킬 수 있도록 하자는 「강경책」을 제시하고 있으나 국회의원선거법에도 유사한 규정이 없다는 난점 때문에 법조문화하기는 힘들 것으로 관측된다. 신민측은 또 이번 협상에서 관권·행정선거 및 금권선거의 원천적인 예방조항을 포함시키자는 입장이나 입법화보다는 구두선에 그칠 공산이 크다. 그렇지만 민자·신민 양당은 유권자에게 후보자들의 면면을 알릴 수 있는 기회를 확대한다는 측면에서 현행법상 투표일 4일 전에 보내게 돼있는 선거공보의 발송을 최소한 일주일 전에 이뤄지도록 합의할 가능성이 높으며 지역신문의 후보자간 지상좌담토론 및 유선방송을 이용한 후보자간 토론 등의 허용에도 합의할 것으로 전망된다. 또 현수막이나 선거벽보 등에 선거구를 표시,유권자의 후보자 식별을 용이하게 하는 문제도 쉽게 합의될 것으로 보인다. 여하튼 이번 임시국회에서 지방의회선거법은 어떤 형태로든 개정의 모습을 띠겠지만 여야의 첨예한 이해가 대립된 대목의 경우 계속 논란거리로 남아 다음 국회로 이월될 것 같다.
  • 색채·음향·입체도 상표권 인정/특허청/만화영화 「캐릭터」등도 보호

    국내에서도 상표개념에 색체와 음향 그리고 입체 등이 포함될 전망이다. 특허청은 10일 현재 도형·기호·문자 또는 이들의 결합으로 한정되어 있는 상표개념을 확대,입체·음향·색채도 상표로 인정받게 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입체·음향·색채가 상표로 인정받게 되면 특정회사가 도형·문자와 함께 결합해 사용하고 있는 특정 색의 배합도 상표로서 보호된다. 또 소리와 입체로 같은 권리를 갖게 된다. 한편 만화영화·TV·라디오 프로그램 등에 등장하는 인물·동물·로버트 등으로서 독특한 개성이나 이미지를 갖는 「성격적 존재」(캐릭터) 등도 상표법이나 부정경쟁방지법에 의해 보호받을 수 있게 된다. 현재 국내에선 배트맨 미키마우스 스머프 스누피 등 외국의 「성격적 존재」 등이 저작권의 대상으로 보호되어왔다. 김철수 특허청장은 9일 서울 조선호텔에서 열린 주한 미 상공회의소 지적재산권위원회와의 조찬회에서 『미키마우스 등 미국의 주요 캐릭터 등이 상표법이나 부정경쟁방지법을 통해 보호받을 수 있도록 표장의 개념에 입체물의 포함가능성을 검토할 방침』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밖에도 이날 김 청장은 미국이 제시한 음반보호기간의 30년 연장(현재 20년)과 비디오테이프의 대여권 문제는 우루과이라운드 지적재산권 협상과 궤를 같이해야 하지만 국내 저작권법의 기본적인 개정은 어려운 실정이라며 연장과 대여권 인정의 불가함을 시사했다.
  • 박철언 장관,월계수회 후퇴의 배경

    ◎「대권경쟁」 마찰음 해소… 통치권 강화/「내분의 불씨 제거」·「당결속」 양면포석/“조기 전당대회” 민주계 요구에 제동 6공 「실세」이자 차기 대권경쟁의 유력한 주자로 지목됐던 박철언 체육청소년부 장관이 6일 돌연 자신의 정치적 사조직으로까지 일컬어지는 월계수회의 고문직을 사퇴한다고 발표함에 따라 그의 사퇴가 미칠 여파와 향후 박 장관의 위상에 정치권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특히 박 장관이 현재 정치권에서 차지하고 있는 비중과 역할 때문에 그의 월계수회 고문직 사퇴는 사건 이상의 무게로 정치권에 파문을 던지고 있다. 게다가 시기적으로 박 장관의 차기대권도전설과 각종 투서가 끊이질 않는 시점에서 박 장관의 강력한 후견인으로 알려진 노태우 대통령의 뜻에 따라 그가 월계수회 고문직을 사퇴했다는 측면에서 향후 당 및 정국운영과 관련,갖가지 추측이 무성하게 나돌고 있다. 박 장관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자신의 사퇴배경을 「최근 월계수회 활동을 특정인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사조직인 것처럼 오해하는 억측이난무했기 때문에 그같은 억측을 불식시키기 위한 것」으로 단순화시켰으나 사실 지금까지 월계수회는 박 장관의 정치적 행보와 동일선상에서 해석돼 왔다. 또 박 장관은 지난해초 3당통합을 추진하면서 그때까지 친목단체의 성격이 짙었던 월계수회의 활동을 「국민운동조직」으로 개편할 것을 측근 참모들에게 지시한 것으로 알려져 월계수회와 박 장관의 차기대권전략이 무관치 않은 것으로 관측돼 왔다. 이에 따라 민정당시절 김윤환·이종찬·이한동·이춘구 의원 등 「비주류」 중진들은 월계수회의 활동을 박 장관에 대한 견제명분으로 활용해왔으며 3당통합 이후에는 김영삼 대표측에서도 조기 당권요구 등 차기 보장에 대한 빌미로 월계수회를 꾸준히 거론해온 것이 사실이다. 특히 지난달 23일 노 대통령이 박 장관,김복동·금진호씨 등 친인척들과 가진 만찬석상의 대화와 관련하여 나도는 『박 장관의 월권행위를 엄하게 꾸짖었다』 『박 장관을 포함한 친인척이 차기대권주자가 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했다』는 소문도 이같은 맥락에서 확대 재생산된것으로 관측된다. 그럼에도 박 장관이 『그날 모임에서는 걱정하는 말씀도 있었고 격려하는 말씀도 있었다』고 토론한 데서 볼 수 있듯이 노 대통령은 그 동안 여러 경로를 통해 접한 월계수회 및 박 장관 관련보고를 듣고 고문직 사퇴뿐만 아니라 행동지침까지 시달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지난 89년말 5공청산 직후 이춘구 당시 민정당 사무총장이 당조직과의 마찰 등 당내 결속을 해치는 요인으로 월계수회의 분파활동을 지적하면서 이의 해체를 요구했을 때,또 지난해 4월 박 장관과 김영삼 대표최고위원간의 대결국면 당시 민주계의 월계수회 해체요구에 대해서도 『월계수회는 나의 조직』이라며 사실상 박 장관을 엄호했던 노 대통령이 이처럼 급작스럽게 방향선회하게 된 이면에는 복합적인 의도를 깔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우선 무엇보다도 통치권 후반기의 권력누수현상을 경계하고 있는 노 대통령의 입장에서는 최소한 14대 총선 이전에는 여권의 차기대권 후보가 부각될 수 없다는 무언의 메시지를 박 장관의 행동반경 제한조치에 담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즉 3당통합 이후 노 대통령이 김 대표측에 대한 견제구로서 월계수회의 세확장을 묵인했던 방식에서 탈피,대권도전설로 논란이 분분한 박 장관을 먼저 제어함으로써 광역의회 직후로 예상되는 김 대표측의 조기당권요구계획을 사전에 차단하는 「성동격서」의 전략을 구사한 것으로 이해된다. 다시 말하면 3당통합 이래 「대구합의문」에 이르기까지 김 대표측의 신경을 곤두세우게 만든 위협요소인 박 장관의 기를 꺾어줌으로써 향후 정국을 노 대통령의 의지대로 주도하는 한편 김 대표가 조기에 당권을 요구할 빌미를 주지 않겠다는 것이 노 대통령의 숨은 뜻으로 해석된다. 이와 함께 지난 2월말 취임준비위 멤버들과 청와대만찬 때 뿐만 아니라 민정계 중진들과의 회동에서도 노 대통령이 여전히 강한 의지를 피력한 바 있는 내각제개헌으로의 권력구조 변경을 위해서도 박 장관이 향후 지향하는 권력구조와는 무관한 대권 후보로 지목되는 것은 바람직스럽지 않다는 판단에 따라 대권경쟁의 상징물이 된 월계수회와 박 장관과의 연결고리를차단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박 장관이 이날 밝혔듯이 앞으로 신임 월계수회 회장은 비정치적인 인물 가운데서 선정됨으로써 모임의 본래기능인 「친목」의 성격으로 환원될 것으로 관측되지만 월계수회가 지난 대선에서 기여한 공로 등에 대한 노 대통령의 인식을 감안할 때 당조직에 흡수되는 형태로의 해체는 기대하기 어려울 것 같다. 오히려 박 장관에서 비정치적인 인물로 관리자의 교체를 통해 월계수회를 정치권의 태풍권에서 일단 비켜세웠다가 차기대권 경쟁에서 이를 다시 정권창출의 선봉대로 활용하리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즉 노 대통령은 향후 정국운영의 주도권을 계속 확보하고 자신이 구상하고 있는 미래정치 형태를 차기정권 창출에까지 투영시키는 지렛대로 월계수회를 활용할 것으로 관측된다. 이와 함께 본인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유력한 차기대권후보로 지목돼온 박 장관은 노 대통령의 이같은 구상 등을 감안할 때 최소한 금년말까지는 의도적으로 정치적인 색채를 감추면서 조용한 행보를 계속할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하면 월계수회처럼 공연한 억측과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정치성향의 집회에서 한 발 벗어나 오히려 미래의 보고로 추정되는 생활체육협의회와 같은 비정치적인 조직과의 연대활동을 통한 이미지 쇄신과 발판구축에 치중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박 장관의 월계수회 고문직 사퇴를 지금까지 계속된 투쟁의 산물로 인식하고 있는 김 대표측이 당초 의도했던 금년내 당권장악이라는 목표를 포기하고 노 대통령의 정치일정 운영구상대로 순응할지는 의문시된다. 김 대표측이 원하는대로 자신을 중심으로 당이 결속되는 조짐이 보이지 않거나 박 장관이 점유했던 위치에 또다른 연합전선이 구축되는 등 자신의 당내지분 확장에 이상기류가 감지되면 언제든지 이를 빌미로 당권투쟁을 꾀할 수 있으며 그 반대급부로 또다른 양보를 노 대통령에게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고 하겠다. ◎월계수회는 어떤 모임인가/전국에 20개 조직… 의원 20여 명 가입/87년 대통령선거 지원 기구로 결성 6·29선언 직후인 87년 7월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박철언 당시 안기부장 특보의 주도로노태우 민정당 후보의 선거후원조직으로 결성됐다. 노 후보를 당선시켜 월계관을 씌워주자는 취지에서 모임명칭도 「월계수회」라 붙였다. 대선 이후 「월계수회」는 88년 여름 조직을 재정비,전국적인 하부조직을 50여 개로 통폐합하면서 박철언 당시 청와대정책보좌관은 고문으로 추대되고 이재황 의원(전국구)이 회장으로 선출됐다. 노 대통령은 그 동안 민정계 중진들이 월계수회 해체 또는 당내 공식조직으로 흡수할 것을 건의할 때마다 『월계수회는 나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라며 일축한 것으로 알려져 월계수회는 자연스레 여권내 최대 실세조직으로 부각됐다. 이 모임은 지역마다 이름이 달라 팔공회·대지회·무등회·노령회·충우회·태백회·지역문제연구소·탐라회·미래민족문제연구소·북방문제연구소 등 전국에 20여 개 조직이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나 회원수 등 구체적인 사항은 잘 알려지지 않고 있다. 지난 87년 대선 당시 회원이 1백80여 만 명에 이르렀던 월계수회는 현재 회장단 70여 명을 비롯,2만7천여 명의 핵심회원들만 관리대상으로 분류해 운영하고 있다. 원내에는 강재섭·박승재·이긍규·나창주·조영장·임무웅·김정길 의원 등 20여 명이 정규회원인 것으로 알려졌다. ◎박철언 장관 1문1답/“정치목적 사조직” 의심 씻으려 결심/모임 해체여부는 회원의사에 달렸다 박철언 체육청소년부 장관은 6일 월계수회 고문직 사퇴의사를 밝히면서 『이제 모든 오해와 억측에서 벗어나 홀가분하게 체육청소년부 장관으로서의 맡은 바 임무에 충실하겠다』고 말했다. ­월계수회 고문직을 사임하게 된 배경은. ▲월계수회는 지난 87년 대통령선거를 계기로 노태우 대통령을 좋아하고 6·29선언 등 노 대통령의 통치철학을 지지하는 사람들로 구성된 순수한 민간모임으로 출발,우의를 다지는 친목모임이다. 그러나 지난 2월부터 온갖 오해와 억측이 증폭되고 있고 특히 월계수회의 목표나 취지가 특정인의 정치적 목적을 위한 사조직인 것처럼 왜곡되고 있어 그렇지 않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기 위해 고문직을 물러나기로 결심했다. ­고문직 사임에 대해 대통령과 사전 상의를 했는가.▲물론 노 대통령과도 얘기가 되었고 나의 고문직 사임이 화합을 추구하는 노 대통령과의 뜻과도 맞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월계수 해체론이 제기되고 있는데. ▲고문직을 떠나는 사람이 그 조직이 어떻게 된다고 말하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고 본다. 그것은 전적으로 회원들 의사에 따라 결정될 문제라고 보며 궁극적으로 노 대통령을 위한 모임이며 또한 노 대통령을 좋아하는 모임이기 때문에 회원들이 노 대통령의 뜻을 고려해 결정할 문제다. ­이번 고문직 사임이 노 대통령의 친인척 배제방침과 관련이 있는가. ▲나는 20년 동안 공직에서 일한 사람으로 6공에서도 역시 공직자로서 일하고 있을 뿐 친인척문제와는 상관이 없다고 본다. ­최근 일부 언론사에 공무원 단체의 이름으로 배포된 괴문서내용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옛날 수법이다. 그런 정치풍토는 사라져야 한다. 정치적 음해를 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게 분명하다. ­장관으로 임명되면 의원직을 사퇴하는 것이 상례가 아닌가. ▲지금까지 의원직을 사퇴하지 않은 장관들이 많이 있었던 것으로 안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임명권자가 결정할 문제이기 때문에 내 자신이 이렇게 하겠다 저렇게 하겠다 언급할 일이 아니다. ­민자당내의 대지회가 박 장관의 대권도전을 위한 모임으로 결성됐다는 소문이 있는데. ▲나는 대지회 회장도 총무도 아니며 회원도 아니다. 대지회 회원 중 나와 가깝게 지내는 사람도 있지만 이를 두고 박계보다 월계수계보다 하는 것은 지나치다고 본다.
  • 영 작가 그레이엄 그린

    【파리·브베(스위스) AP 로이터 연합】 지난 반세기 동안 수많은 추리소설로 세계의 독자들을 사로잡았던 영국의 소설가 그레이엄 그린이 3일 스위스의 제네바에서 타계했다. 향년 86세. 그의 딸 카롤린 부르제씨는 그린이 이날 상오 11시35분 스위스 브베에 있는 한 병원에서 혈액관련 질병으로 사망했다고 밝혔다. 런던 북서부 버컴스테드의 한 중류가정에서 태어나 전세계를 폭넓게 여행한 그린은 「권력과 영광」,「제3의 남자」,「조용한 미국인」 등 소설로 갈채를 받았으며 많은 작품을 영화화해 성공을 거두기도 했는데 그의 소설중 성공적인 작품은 상당수가 정치색채를 띤 것들이다. 금세기 최대작가 중의 한 사람으로 일컬어지고 있는 그린은 지난해 스위스에서 치료를 받기 위해 남부 프랑스의 앙티브를 떠났었다.
  • “친DJ” 재야,평민합류의 수순/신당 창당발기의 배경

    ◎「지역당」 인상 희석 노려 「당대당」 통합 추진/김 총재 대권도전 지원·민주당 견제 겨냥 평민당과 꾸준히 「물밑접촉」을 갖고 창당작업을 벌여온 신민주연합당(가칭)이 23일 창당준비위를 구성함으로써 평민·민주·민중당과 재야로 나뉘어져 있던 범야권 재편 작업이 가시화됐다. 신당준비위측은 당의 위상에 대해 기존의 야당,구체적으로 말해 평민당과의 통합을 위한 「한시적 정당」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신평민계 재야가 주축을 이룬 이들은 평민당과 이미 광역의회선거(5·6월 예정) 이전에 한 배를 타기로 내부적인 「조율」을 마쳤으나 평민당은 신당이 자기의 「위성정당」으로 여론에 비칠 경우 지역당 성격에서 벗어나기 위해 통합을 추진한 효과가 엷어질 것을 우려,통합의 모양새 갖추기에 골몰하고 있다. 왜냐하면 신당과 평민당의 소통합은 평민당과 김대중총재의 입장에서 보면 장기적으로는 대권레이스를 앞두고 호남지역당이라는 이미지를 희석시키기 위한 「포석」이고,단기적으로는 광역의회선거 등에서 민주당 등 여타 군소야당을 견제하기 위한 「착점」으로 볼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 13대 총선을 앞두고 이른바 김대중총재에 대한 「비판적 지지그룹」이 주축인 평민연이 평민당에 사실상 입당했던 전례와는 사뭇 다르게 이번에는 적어도 외형적으로는 굳이 당대당 대등통합의 형식을 취하려 하고 있는 까닭도 여기에 있는 듯하다. 이같은 맥락에서 신당준비위측은 ①창당준비위 결성후 평민당으로 흡수통합 ②창당준비위 결성후 평민당의 법적해체를 통한 신당결성 ③신당창당후 평민당과의 당대당통합 등 3가지 방식을 놓고 가능성을 저울질해 왔다. 그러나 결국 평민당과 신당준비위측은 형식적으로 ③당대당방식으로 「포장」하되 실제 내용면에서는 불가피하게 ①흡수통합 방식을 택할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평민당의 법적해체를 통한 신당창당 방식은 평민당에 분기별로 배분되는 6억7천여만원의 중앙선관위 정치자금을 포기하는 위험을 감수해야하고,당대당방식을 취하기에는 시일도 촉박할뿐 아니라 신당세가 평민당에 비해 현저히 열세인데다 그나마 친평민계일색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빠르면 4월 임시국회 이전에 열릴 「통합전당대회」는 실제 내용에 있어서는 평민당의 당명을 「신민당」으로 바꾸고 현재의 단일지도체제를 단일성 집단지도체제로 변경하는 수준의 평민당 「제2창당 전당대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신당에 참여하고 있는 인사들은 조남기(NCC 인권위원장) 오충일(전 전민련의장) 최성묵(목사) 박종화(한신대교수) 박일(전 의원) 김형래( 〃 ) 이원범( 〃 ) 신도성(전 통일원장관) 김말룡(전 노총위원장) 이우정씨(전 여성단체연합회장) 등 「종로5가권」으로 불리는 개신교인사 및 이른바 「비판적 지지파」와 김총재와 오랜교분을 가진 학계·운동권출신 및 구정치인 일부다. 지도체제가 단일성 집단지도체제로 낙착될 경우 김대중총재를 쟁점으로 이우정 창당발기준비위원장이나 추가 합류가 예상되는 김관석 전 통추회의 의장이 대표최고위원으로 안배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이들 신당추진그룹은 「제1야당 확충」을 통한 「정권교체」를 주목적으로 내세우고 있는데서도 볼수 있듯이 결성의 속셈은 궁극적으로 김대중총재의 대권도전 기반강황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같은 입장은 세대교체론자가 주축을 이룬 민주당이나 진보적 색채를 통한 독자행보를 모색하고 있는 민중당과는 상충되는 입장이어서,광역의회선거 등 향후 선거국면에서 연합공천 등 연대관계를 어렵게 만들 것으로 관측된다. 또 민주연합과 민주당의 「소통합」에 이은 평민·신당준비위의 또 다른 소통합은 궁극적으로 야권의 「대통합」 가능성을 그만큼 줄였다고도 볼 수 있다. 이는 이번 신당발기인 가운데 김창환 전 의원,김정강씨 등 민주당 이탈인사들이 눈에 띄고 있는 것으로 미뤄 봐도 알수 있다. 어쨌든 평민당의 지역당적 성격 탈피라는 이번 소통합의 목적이 어느 정도 소기의 성과를 올릴 것인지는 신당이 어느 정도 김총재 1인 카리스마에서 탈피,당내 민주주의를 확립하느냐에 따라 윤곽이 드러날 것이고 이는 일차적으로 다가올 광역의회선거에서 여론의 검증을 받게될 것이다.
  • “인해전술시대는 갔다”/중국,걸프전 분석/홍콩=우홍제(특파원코너)

    ◎북경·홍콩 언론에 나타난 반응/“모택동식 밀어붙이기는 집단 자살행위”… 첨단무기에 경탄/“패트리어트의 스커드격퇴는 예술”/3백만 해방군의 질향상 필요성 절감 걸프지역에서 미군이 발휘하고 있는 첨단군사기술은 과거 한국전쟁에서 이들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던 중국의 인민해방군에게 깊은 감명과 교훈을 주고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걸프전쟁에 관해 중국은 미국과 이라크 양측에 자제와 평화적 해결을 촉구하고 공식적으로 중립에 가까운 입장을 취하면서 중재에 나설 의향을 비추고 있다. 이 전쟁과 관련된 중국측 언론의 보도내용도 정치적 색채가 강한 것은 될 수 있는 한 피하려는 인상이 짙은 것 같다. 그러나 군사적인 측면에서 중국이 보이고 있는 관점은 대단하며 특히 미군의 첨단과학 병기활약에 대해선 우호적이고 감탄섞인 논평도 마다하지 않고 있다. 대부분의 중국측 언론은 미국 등 서방국가들이 정치 경제적으로 느끼는 이해관계와는 별도로 전문적인 군사기술의 관점에서 걸프전쟁을 다루고 있으며 관영 신화사 통신의 경우미군이 유명한 중국 고대의 병법가인 손자의 전술을 연구했다고 보도했다. 또 홍콩의 중국계 신문인 대공보 문회보 등은 미군의 패트리어트미사일을 「애국자 도탄」으로 표기하는 등 찬미성향의 보도를 하고 있다. 중국 군부에서 발행하는 것으로 알려진 해방군보는 해설기사를 통해 『미군의 패트리어트미사일이 이라크의 스커드미사일을 맞춰 떨어뜨리는 것은 매우 아름답기까지 하며 우수하고 성공적인 미사일대 미사일의 전쟁기술』이라고 말한 것으로 지난 6일 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지가 밝혔다. 이 기사는 이밖에도 미 F117 A전투기 토마호크 크루즈미사일 등의 우수성과 이를 정확히 다룰줄 아는 미군장교 및 병사들의 높은 교육수준을 칭찬한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도 전에 이라크에 「홍기」라는 미사일을 판매한 적이 있으나 중구계 언론이 이 사실에 대해 언급치 않고 있음은 물론이다. 중국측이 특히 군사기술의 시각에서 걸프전쟁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는 이유에 대해 전문가들은 크게 세가지 사실을 꼽고 있다. 첫째 3백만에 이르는 중국인민해방군은 인력규모나 장비 및 정신력에서 이라크군대와 흡사한 점이 매우 많다는 것이다. 이라크가 정규군 1백만,예비군 85만명 등 2백만이 넘는 대규모 병력과 첨단과학과는 비교적 거리가 먼 전통적인 재래식 화력에 의존하는 것이나 병사 개개인의 용감성에 프리미엄을 두는 점 등은 중국과 별차이가 없다는 얘기다. 중국군은 한국전쟁때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인해전술로 미군을 곤경에 빠지게 했고 89년 6월의 천안문사태 때에는 시위군중에 의해 봉쇄당한 병력들이 며칠동안의 굶주림에도 끄떡없이 견디어 내는 놀라운 정신력을 보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중국 인민해방군의 장비는 낡고 오래된 것이 많아서 지난 79년 하노이정권의 월남군과 벌인 국경전투에선 미군으로부터 노획한 현대장비로 무장한 상대방에게 적잖은 피해를 입었던 것이다. 두번째로 지적되는 것은 중국군이 아직도 모택동의 전술에만 매달려 있다는 점이다. 장교 사병할것 없이 충성을 다해 모의 전술을 익히도록 강요받고 있으며 만약 2차대전 당시의 미국 조지 패튼이나 독일 롬멜장군에 관한 책을 읽으면 서구식을 흉내낸다는 비판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군사전문가들은 적군을 소수단위로 분리시킨 뒤 대규모 아군 병력으로 각개 격파하는 식의 모전술은 과거 40년대에나 성공할 확률이 많았을뿐 오늘날의 전장에서는 집단자살의 결과가 될 가능성이 많다는 지적을 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들고 있는 것은 중국 인민해방군의 교육수준이 매우 낮다는 점이다. 전체 인구의 80% 이상이 농민인만큼 대부분의 사병이 농촌 등 벽지에서 징집되고 문맹률도 20%에 이르는 데다 장교들도 첨단과학기술에 관한 기초지식이 크게 부족하다는 것이다. 이밖에 중국은 지난해 북경 아시안게임때 금메달을 휩쓸었던 그들의 전통무예 우슈(무술)를 인민해방군 병사들이 열심히 익히도록 강조하고 있지만 각종 최첨단과학병기로 무장되는 현대전투에서 그같은 몸싸움 기술이 과연 어느정도의 승전효과를 가져올수 있는가에 대해선 의문의 여지가 너무 많다는게 전문가들의 풀이이다. 따라서 어느나라건 국방력을 중시하기는 마찬가지이지만 특히 그동안제3세계 지도자임을 자처하고 군사대국임을 은연중 과시해온 중국이 이번 걸프전쟁을 통해 군사력의 양적 규모 못지 않게 질적 개선이 시급하다는 교훈을 깊이 새기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는 얘기다.
  • “걸프전 변수”… 이라크·이란 손잡을까

    ◎양국 고위대표단 회담 안팎/이라크병력 월경설… 심상찮은 기류/이란/“개입은 자살” 겉으로는 중립을 표방/“민간인 공습말라” 대미 비난 나서 관심 이라크의 공군기들이 대거 이란으로 넘어간데 이어 육군도 월경할 것이라는 보도가 나오는 가운데 이라크 대표단이 이란을 방문해 이란이 과연 중립을 지킬 것인가가 걸프전의 양상을 바꿀 수도 있는 주요 관심사항이 되고 있다. 이라크는 다국적군과의 접경지역에 대규모 병력을 배치하며 지상전 준비를 갖추는 한편 지난달 31일 사둔 하마디 부총리를 대표로 한 고위 대표단을 이란으로 보내 이란 지도자들과 연쇄회담을 갖고 있다. 지금까지 밝혀진 회담 내용을 보면 이번 방문의 일차적인 목적은 최근 이란으로 넘어간 이라크 항공기들의 처리문제를 다루기 위한 것으로 돼 있다. 그러나 이라크기들이 이란으로 넘어간 경위에 석연치 않은 점들이 많고 대표단의 방문시기가 다국적군에 대한 이라크의 반격이 본격화된 시점에 이루어진 점 등을 들어 두 나라간에 모종의 협력관계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 이란은 걸프전 개전당시부터 일관되게 중립적인 입장을 견지해 왔다. 라프산자니 대통령은 최근에도 이란의 개입은 『자살행위』라고 말하며 이번 전쟁에서 끝까지 중립을 지킬 것을 다짐했다. 벨라야티 외무장관도 지난달 31일 이라크 대표단을 만난 자리에서 이같은 이란정부의 입장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그러나 이라크는 처음부터 회교형제국인 이란의 대미 「성전」 참여를 끈질기게 요구해 왔다. 실제로 쿠웨이트를 침공한 직후인 지난해 8월부터 이란과의 관계개선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이란­이라크 전쟁뒤 점령하고 있던 이란 영토를 되돌려 주었고 샤트 알 아랍수로에 대한 주권문제도 이란 요구대로 합의해 주었으며 전쟁포로 교환문제도 이란 요구대로 다 들어주었다. 이라크가 이란을 전쟁에 끌어들이려는 의도는 이스라엘에 스커드 미사일 공격을 감행하고 사우디에서 지상전공격을 시작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볼 수 있다. 전선을 지상전으로 전환,확대하고 전쟁의 양상을 아랍 대 이스라엘의 싸움으로 몰고가는데 이란의 도움이 필요한 것이다. 이란은 이라크와 함께 중동지역에서는 정치 군사적으로 최대 강국이다. 만약 이 두나라가 공동전선을 구성한다면 다국적군으로서는 엄청난 부담이 될 것이 분명하다. 일부 외신들은 이라크군의 최정예인 공화국 수비대까지 이란으로 피신하고 있다고 전한다. 더구나 이들이 이란군 복장을 하고 국경을 넘는 것이 목격됐다고 한다. 이란의 협조없이는 이루어지기 힘든 사태라는 것이다. 벨라야티 이란 외무장관은 이라크 대표단을 맞아 이라크기들이 이란정부의 사전허가 없이 국경을 넘어온 것에 대해 유감을 표시했다. 그러나 넘어온 항공기 대수가 10여대에 불과하다고 밝혀 다국적군측 집계와는 큰 차이를 보였다. 역시 이란의 진의를 의심케하는 대목이다. 걸프전에 임하는 태도도 종전의 중립 천명과는 미묘하지만 변화를 감지케 하고 있다. 벨라야티장관은 지난달 31일 중립원칙을 재천명하면서 동시에 다국적군에 대해서도 무차별 공습으로 민간인들까지 살상하고 있다며 강도높은 비난을 함께 했다. 유엔의금수조치가 내려진 뒤로도 이란이 금수품목에서 제외된 식품·의약품 등을 계속 이라크에 공급해왔다는 사실도 다국적군측으로서는 거슬리는 대목이다. 하지만 이런 몇가지 점에도 불구하고 이란이 실제로 걸프전쟁 기간중에 이라크와 손을 잡지는 않을 것이란 분석이 아직 우세한 것 같다. 호메이니 사후 등장한 현 이란 지도부가 기본적으로 실용주의를 표방한 친서방 색채를 강하게 띠고 있고 또한 이라크와의 대결·적대의식이 아직 강하게 남아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이란 지도부내 일부 과격파들이 성전에의 동참을 주장하고도 있지만 라프산자니 대통령을 비롯한 지도부 대부분이 반이라크 입장을 고수함으로써 얻을 국제적인 위상제고에 더 관심을 두는 것 같다. 다국적군의 승리로 전쟁이 끝날 경우 이라크 군사력의 약화로 상대적으로 이란이 이 지역의 지도국으로 부상할 것이라는 기대가 클 것이라는 설명도 있다. 지금 이라크를 도와주면 이라크가 언제 또 총부리를 이란으로 돌릴지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점들을 고려,미국도 이란이 넘어오는 이라크기들을 마지못해 받아주기는 했지만 중립약속을 지켜 줄 것으로 믿는 것 같다. 하지만 이러한 희망도 결국은 이란인들이 품고 있는 반후세인 감정이 반미 감정보다 더 악화돼 있다는 점을 전제로 한 것이다. 1980년부터 8년간 계속된 이란­이라크 전쟁에서 양측은 1백만명 이상의 희생자를 냈다. 두 나라의 감정이 좋을리가 없다. 그러나 1979년 미국인 인질들이 무려 4백44일간 이란에 억류돼 있던 악몽을 기억한다면 이란인들의 반미감정도 결코 가볍게 볼수는 없을 것 같다. 이라크의 의도대로 전선이 확대되고 전쟁이 장기화될 경우 그리고 이스라엘 대 아랍 대결이라는 구도로 전쟁 양상이 바뀔 경우 이란내 분위기도 어떻게 뒤바뀔지 모르는 것이다.
  • 농협중앙회,「쌀을 알자」 주제 심포지엄

    ◎“낱알 둥글고 투명하면 좋은 쌀”/「중간굵기」가 끈기 좋아 “품질 우수” 평가/햇볕아래 볏짚서 말려야 싸래기 적어 우리가 선호하는 쌀중 경기미의 연간 생산량은 서울시민이 1백일 정도면 소비할 수 있는 5백73만섬에 불과하기 때문에 쌀을 고를 때 생산지 보다는 쌀의 겉모양이 약간 둥글고 투명하며 딱딱한 쌀로 소포장된 것을 고르는 것이 품질좋은 쌀을 구입하는 요령이다. 이처럼 좋은 쌀을 고르는 방법은 농협중앙회가 14일 농협회관에서 학계ㆍ농민ㆍ식품가공업계인사 2백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개최한 「쌀을 알자」는 주제의 심포지엄에서 제시됐다. 윤인화씨(농촌진흥청 농업기술연구소)가 이날 발표한 「좋은쌀 고르기」에 따르면 길이 4.9∼6.9㎜,두께 1.7∼1.9㎜,폭 2.4∼2.9㎜의 둥그스런 중립종 쌀이 길이 4.7∼5.2㎜,두께 1.9∼2.6㎜의 단립종 쌀보다 단백질 함량이 높은 것으로 밝혀졌다. 또 중립종 쌀은 일본 쌀과 같은 일반형에 비해 씹을 때 단단하게 느끼는 정도는 약간 떨어지나 끈기는 좋은 것으로 분석돼 중립종이 비교적 좋은 쌀로 평가됐다. 이밖에 벼수확 때 온도가 60도 이하에서 적당한 속도로 건조된 쌀이 밥을 지었을 때 끈기가 있고 밥맛이 있는데 비해 60도 이상의 높은 온도로 말렸을 때는 단백질이 응고되는 등 품질이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건조방법의 경우 햇볕아래 볏짚위 망사에서 말린 쌀이 콘크리트에서보다 도정률이 높고 싸래기가 나오는 비율이 낮아 품질이 좋은 것으로 분석됐다. 이에 비해 개량곳간이나 태양열집열 건조기에서 말린 쌀은 자연건조 보다 품질이 크게 떨어지고 있다. 벼를 찧을 때 식용류의 첨가여부나 정도도 미질을 좌우하는데 식용유를 0.01% 안팎으로 첨가했을 때 쌀의 색깔이 조금 퇴색하는 반면에 윤기가 나 미질도 향상되는 것처럼 분석돼 윤기여부를 판단할 때 이같은 가공방법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감안해야 한다. 또 습식정미기와 색채선별기로 쌀겨 등 이물질이 제거되고 색깔있는 쌀을 골라낸 쌀은 씻지않고도 밥을 지을 수 있다. 청결ㆍ영양 강화미의 경우 외관ㆍ맛 등에서 일반쌀보다 광택 82%,맛 66%,윤택 69%인,냄새 49%가 각각 좋은 것으로 나타났다. 쌀 포장도 큰 포장은 장기간 보관하는데 따라 저장성이 떨어지므로 소포장된 것을 구입하는 것이 신선도가 높은 밥을 먹을 수 있다.
  • “연말겨냥 매기”… 주가 이틀째 상승

    ◎8포인트 올라 「7백10」 회복/거래도 활발… 1천7백만주 매매/상한가 37개 주가가 이틀째 상승세를 탔다. 13일 주식시장은 그동안 얽혀있던 국내외의 현안들이 순조로이 풀어질 가능성이 커지는데 따라 「사자」세력이 부각됐다. 종가는 전날보다 8.53포인트가 상승해 종합지수를 7백10.06으로 올려 놓았다. 거래량은 1천7백65만주를 기록했다. 이틀 연속상승으로 12.4포인트가 올랐으며 증시 바깥에서 크게 도와주지 않더라도 내부적인 힘에 의해 지수 7백선이 지지될 가능성이 아주 강해진 양상이다. 지난주 장세를 지배했던 마이너스적 조정국면이 뚜렷하게 플러스 색채로 전환되는 분위기다. 이날 상승세를 부추긴 외부여건들이 더 악화되지 않고 현상유지만 해도 소극적인 조정국면을 떨쳐버릴 수 있다는 예측도 있다. 중동사태가 평화적으로 해결될 조짐이 있어 전쟁이 나더라도 내년에나 일어난다는 말이 돌았으며 이를 반영,도쿄증시가 급등하고 국제유가가 하락했다는 소식에 투자심리가 풀어졌다. 여기에다 국회정상화 전망이 한층 강해져 장중에 경계매물이 쏟아졌어도 재반등하는 플러스기운을 펼쳤다. 전장 중반엔 4포인트 반락했으나 다시 3포인트를 회복해 플러스 9.6으로 마감했고 후장에서도 개시 40분 사이 6포인트가 밀려났다가도 다시 4포인트를 끌어올려 지수 7백10선을 확보했다. 특히 거래량이 전날보다 5백만주가 늘어 외부여건 개선에 앞서 투자의욕의 자발적인 상승이 지적되고 있다. 조금 성급한 예상이란 전제를 내걸고 시중유동성과 연말장세를 연결시켜 상승기로의 대세역전을 점치는 관계자도 많다. 5백99개 종목이 상승(상한가 37개)했고 1백92개 종목이 하락(하한가 17개)했다.
  • 잇단 과격파 테러속「평성시대」개막/62년만의 일왕 즉위식 이모저모

    ◎「신헌법」 이후 첫 의식… 일 열도 흥분/일왕 오픈카 퍼레이드에 12만인파 환호/자위대기지 5곳 피습… 전철 운행도 중단 아키히토(명인) 일왕의 즉위식이 12일 하오 1시 왕궁내 세이덴(정전)의 마쓰노마(송□간)에서 일본왕족과 3부요인,세계 1백58개국 및 2개 국제기관의 사절 등 모두 2처5백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거행됐다. 일왕은 이날 『일본국 헌법과 황실전범에 정해진 바에 따라 이미 황위를 계승했으며 이제 소쿠이노레 세이덴노기(즉위례 정전□의)를 거행,즉위를 국내외에 선포한다』며 즉위사실을 선언했다. 그는 즉위에 즈음한 「말씀」을 통해 『쇼와(소화)천황의 60여년에 걸친 재위기간중 어떠한 때라도 국민과 고락을 함께 한 마음 씀씀이를 깊이 새겨 항상 국민의 행복을 기원한다』고 말하고 『일본국 및 일본 국민통합의 상징으로서의 직분을 다할 것을 맹세하며 국민의 예지와 꾸준한 노력으로 일본이 더 한층 발전을 이루어 국제사회의 우호와 평화,인류의 복지와 번영에 기여할 것을 간절히 희망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가이후 도시키(해부준수) 총리가 축하의 인사와 함께 만세 3창을 선창했다. 이날 일왕의 즉위식은 1928년(소화 3년) 이래 62년만에 거행된 것이며 일왕의 지위가 「통치권의 총람자」에서 「상징천황」으로 바뀐 신헌법 하에서는 처음 거행된 것이다. 이날 즉위식은 규모면에서는 쇼와(소화) 일왕의 즉위식보다 성대했으나 도쿄(동경) 도심부 등 전국에서는 이날 새벽 JR역 및 지하철,자위대기지,신사 등을 겨냥한 28건의 동시 다발 과격게릴라 습격사건이 발생,3만7천여명의 병력을 풀어 경비중인 경찰당국을 당황케 했다. 이 게릴라 습격으로 도쿄의 순환동맥인 야마노테센(산수선)과 게힝도후쿠센(경빈동북선)은 2시간20분동안 운행을 중단,4만7천여 승객이 발이 묶이는 피해를 입었으며 나라시노(습지야) 육상자위대기지 등 5곳의 기지가 박격포 공격을 받았으나 별다른 피해는 없었다. 신사도 5곳이 방화됐다. 즉위식을 끝낸 일왕부처는 왕궁에서 아카사카고쇼(적판어소)에 이르는 4.7㎞를 오픈카에 동승하고 퍼레이드를 벌여 일장기를 흔들며 「천황폐하 만세」를 연호하는 약 12만 인파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일왕의 즉위식은 12일 하오 1시 아키히토(명인) 일왕이 정전의 「마쓰노마」(송□간)에 모습을 나타내면서 시작됐다. 정전 북쪽 회랑을 통해 「마쓰노마」에 들어선 일왕은 중앙에 안치된 「천황의 자리」인 「다카미구라」(고어좌)에 들어섰다. 시신들이 이 좌대의 포장을 젖히고,일왕은 즉위의 「말씀」을 했다. 이번 즉위의 「말씀」은 62년전 「쇼와」천황(소화천황)이 즉위했을 때 보다는 많이 민주화됐다고 관계자들은 지적했다. 우선 과거에는 『일본국 헌법을 지키고』라고 말했으나,이날은 『준수하고』라고 바뀌었으며,『천황의 책무를 다할 것』이라는 표현도 『국민통합의 상징으로서 직분을 다하겠다』로 수정됐다. 그러나 전통의식에 따라 거행된 이날의 즉위식은 비록 신헌법하에서의 첫 즉위식이라고는 하나 여전히 「등극」의 분위기를 씻지는 못했다고 많은 사람들은 지적했다. 즉위식후 하오 3시30분부터 왕궁에서 아카사카고쇼(적판어소)에 이르는 4.7㎞의 연도에 늘어서 「반자이」(만세)를 외치는 많은 시민들의 모습도 일왕은 여전히 「일본의 천황」이라는 사실을 실감케했다. ○…일왕이 즉위를 선언한 정전내의 「옥좌」인 「다카미구라」(고어좌)는 8각의 3층 대좌인데 높이 6.5m,폭 5.4∼6m,무게 약 8t이다. 왕비가 앉는 「미조다이」(어장대)는 이보다 약간 작은 무게 약 7t 규모였다. 일왕은 이 대좌에서 즉위를 선언하는 「말씀」을 했다. 가이후 도시키(해부준수) 총리의 만세 3창은 본래 이 대좌가 있는 전상에서 내려서서 중정에서 할 예정이었으나 『민주국가에서 신하의 색채가 너무 강하다』는 의견을 받아들여 「다카미구라」가 안치된 전상에서 선창했다. 만세 3창을 선도하는 말도 처음에는 단순히 「천황폐하 만세」라고 되어 있었으나 『만세의 목적이 있어야 한다』는 야당측 주장에 따라 『즉위를 축하하여 천황폐하 만세』로 바뀌었다. 이번 사용된 「다카미구라」는 대정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대정ㆍ소화 양 일왕이 사용했으며 교토(경도)에 보관중인 것을 옮겨와 수리하고 칠을 새로 입혔다. 이날 일왕이 서 있는 위치는 총리가 서있는 자리보다 1.3m 높았다. ○…일왕 즉위식에 관련된 비용은 총리부ㆍ궁내청ㆍ경찰청ㆍ외무성 등 관계 각 분야를 합쳐 모두 1백20억엔에 이르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 가운데 즉위식 자체인 「소쿠이노레」(즉위□례)의 예산은 총리부에 계상된 33억8천5백만엔인데 내역별로는 메인 이벤트인 「세이덴노 기」(정전□의)에 14억3천6백만엔,오픈카 퍼레이드에 1억2천만엔,12일부터 15일까지의 7차례에 걸친 만찬비용 4억3천3백만엔 등이다. ○…일왕의 즉위식이 거행된 12일은 「국민의 휴일」로서 공립학교는 거의 휴교했으나 주로 기독교계통의 사립학교를 중심한 20여개교는 정상수업을 하거나 교사ㆍ학생이 자유참가하는 강연회 등을 개최했다. 특히 이가타(신석)의 경화학원고교 등은 평소대로 수업을 했다.
  • 소련의 「사회주의」 국호 삭제(사설)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이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됐을 때 그의 국제적인 성가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던 데 반해 국내적으로 봉착하고 있는 시련을 우려하는 소리가 높았다. 소련이 맞고 있는 위기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 가운데서도 정치불안과 경제난 해결이 2대 과제이며 어느 것도 풀기 쉬운 문제는 아니다. 지난달에 발표된 시장경제로의 전환과 8일 밝혀진 새 연방조약 초안이 바로 이들 난제의 「해결사」를 자임하고 나선 것이다. 고르바초프는 이 두 가지 개혁안을 동전의 양면에 비유하면서 새 연방체제가 이룩되지 않고서는 시장경제도 성공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 연방조약 초안에서 국명을 「주권공화국」으로 명시하고 「사회주의」를 삭제한 것만 봐도 시장경제에 부응하고 이데올로기 색채를 일소하겠다는 의지를 읽게 한다. 새 연방조약안은 「연방주권은 가맹공화국의 주권으로부터 나오며 각 공화국은 평등의 입장에서 가맹한다」고 규정해 자유화 바람으로 날로 거세지는 공화국들의 이탈움직임을 방지하려는 취지를 담고 있다. 그러나 공화국이 연방에 이양한 권한에 대해 연방법이 공화국법보다 우선하고 공화국이 연방에서 이탈할 권한은 갖되 이탈절차는 연방법이 정한다는 애매한 부분을 남겨 논란의 소지를 안고 있다. 소련연방내 15개 공화국 중 14개가 중앙정부에 맞서 독립 또는 주권을 선언하고 있는 것은 궁극적으로는 독립보장이지만 1922년에 체결된 구연방조약에서 법률적으로 이들 공화국의 위치가 불분명한 데다 지나치게 모스크바 중심적이어서다. 이러한 현상을 두고 고르바초프는 소련의 「레바논화 현상」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주권선언의 속출은 결국 고르바초프의 권력기반 약화를 예고하는 것이다. 특히 고르바초프가 수레바퀴의 한 쪽으로 보고 있는 시장경제로의 이행은 다른 한쪽인 공화국들의 지지없이는 굴러갈 수 없을 만큼 직접적으로 관련돼 있는 것이다. 공화국이나 그 이하 수준에까지 경제운영의 권한을 양도해야 한다는 것이 고르바초프의 기본정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공화국의 지도층은 개혁에 있어서 급진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어고르바초프의 온건정책에 반발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소련 최대의 공화국인 러시아의 보리스 옐친 대통령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는 이미 고르바초프의 「완만한」 경제개혁방침에 반기를 들어 독자행동을 선언한 바 있다. 고르바초프가 공화국들의 반발이 잇따라 일어나고 있는 데 대해 『공화국지도자들,특히 러시아공화국의 옐친이 정치적 야심 때문에 현실을 무시하고 국민들의 인기에 영합,급속한 개혁만을 요구하고 있다』고 비난한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고르바초프의 이 비난은 옐친 없이는 문제해결이 사실상 어렵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옐친은 소련에서 정치비중이 가장 크고 경제중심인 거대 공화국을 통치하고 있다. 때문에 고르바초프가 정치ㆍ경제현안을 풀려면 우선 옐친과 손을 잡아야 할 것이다. 이들의 협력여부가 소련의 장래를 좌우할 것이라는 게 우리의 시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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