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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맥주시장/3파전 벌인다/진로,미사와 합작… 진출 선언

    ◎10년내 「점유율」 20% 목표 야심찬 출발/기존 2사선 신제품 개발등 맞대응/증류식 소주 개방… 두산 참여 움직임 진로그룹이 6일 미국 쿠어즈사와 합작으로 맥주업계에 진출키로 확정함에 따라 오랫동안 동양(OB)과 조선(크라운)맥주가 양분해왔던 국내 맥주업계에 3파전이 벌어지게 됐다. 진로의 맥주업계 진출은 오래 전부터 예견돼 왔다. 진로는 충북 청주에 연간 20만㎘ 생산규모의 공장건설을 추진하고 있다.주력상표로는 프리미엄 맥주의 경우,쿠어즈사의 상표를 사용하고 일반맥주는 「고려맥주」「통일맥주」등의 독자상표를 붙일 예정이다. 진로는 국내맥주 수요가 앞으로 10∼15년이상 계속 증가할 것으로 보고 초기에 5∼7%의 시장을 점유한뒤 10년내 20%까지 끌어 올린다는 전략을 짜놓고 있다.또 기존 업체와의 품질경쟁을 위해 국산 보리만을 사용,우리 입맛에 맞는 맥주를 개발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진로의 합작사인 쿠어즈사는 안호이저 부시(미국내 시장점유율 44%)뮐러사(22%)에 이어 시장점유율 10%를 차지하고 있는 미국 제3위의 맥주회사이다.콜로라도주에 있는 이 회사는 1백20년 전통을 갖고 있으며 지난해 매출액 18억6천3백만달러를 기록했고 연간판매량은 2백26만㎘에 이른다. 진로가 설립하는 합작회사(가칭 한국맥주주식회사)는 진로측이 67%,쿠어즈사가 33%를 투자하며 94년초 제품을 내놓을 계획이다. 진로의 「의욕적」참여에도 불구하고 동양·조선 양대 맥주회사는 진로를 두려운 상대로 생각하지 않고있다. 현재 국내 맥주시장은 OB가 67%,조선이 33%를 차지하고 있는데다 양대 맥주맛에 길들여진 소비자의 취향을 바꾸기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라는 판단에서다.또한 진로맥주가 선보이려면 적어도 2년이상의 시간이 남아 있어 그동안 새 상품개발에 주력하면 진로가 경쟁상대로서 크게 두려울 것이 없다는 것이다.다만 진로가 쿠어즈사의 기술을 어느정도 소화하느냐가 변수이지만 이 또한 국내 기술수준보다 크게 높지 않아 별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따라서 국내 맥주업계의 본격적인 3파전은 4∼5년 후라야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이밖에 맥주업계 진출을 검토하고 있는 기업으로는 롯데를 비롯,삼성 일화등이 거론되고 있다.그러나 생산시설이 전혀 없고 시장정보에 어두워 선뜻 나서지 못하고 있는 상태이다. 이달부터 증류식 소주의 제조면허가 개방됨에따라 동양맥주의 모회사인 두산이 소주업계에 진출할 것이라는 소문도 끊임없이 나돌고 있으나 증류식 소주를 제외하고는 제조면허가 완전히 개방되지 않은데다 손익 계산상 타산이 안맞아 실현 가능성이 희박하다. 오는 93년 3월1일부터 제조면허의 전면 개방을 앞두고 관심을 끄는 것은 지방 소주업체의 합작여부이다.현재 무학(경남)과 대선(부산),보해(전남)와 선양(충남)등의 합작이 유력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 새 소련 창출의 「개혁틀」 마련/인민대표대회 「결의안」의 함축

    ◎“권력붕괴 막고 혼란 수습” 양면 포석/핵 관련 책임명시는 서방지원 겨냥 소련이 새로 태어난다.74년동안 국민위에 군림해온 공산당 일당독재의 종말을 가져온 지난 8월의 불발 쿠데타로 혼미를 거듭해온 소련정국은 긴급 소집된 인민대표대회 3일째인 4일 소련의 장래를 결정짓게될 결의안을 표결에 붙여 일괄처리는 일단 부결됐으나 과반수가 찬성함으로써 전반적인 지지분위기를 보였다. 소련관영 타스통신은 3일 인민대표대회가 제출한 결의안이 통과에 필요한 3분의2 선의 지지획득에 실패할 우려가 있다고 말했고 고르바초프대통령도 이날 지난 2일 자신을 비롯한 소련내 10개 공화국지도자들이 공동제안한 국정수습방안의 채택여부를 묻는 표결이 상당한 백중세를 보일 것으로 예측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소련문제 전문가들은 국정수습방안이나 인민대표대회의 결의안이 모두 5일 속개될 인민대표대회에서 승인을 얻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이는 소련인민대표대회 결의안이 『새로운 국가간 체제를 만들기 위한 과도기간을 선포한다』고 밝힌점으로 보아 혼란극복과 소련의 회생을 위해선 현재의 소련체제로는 안되며 과거와의 관계를 과감히 끊어버린 위에서의 새로운 출발이 불가피하다는데 인민대표대회의 의견이 모아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날 제출된 15개항의 결의안은 소련최고대회가 계속 존속돼야 한다고 규정하는등 2일 나자르바예프 카자흐대통령을 통해 제안된 국정수습방안과 약간의 차이를 두고 있다.그러나 이같은 차이는 고르바초프대통령이 3일 당초의 국정수습방안중 인민대의원대표회의를 새로 구성한다는 계획을 철회하고 소련최고회의를 계속 존속시키되 이를 개혁하기로 수정제안을 내놓음으로써 해소됐고 국정수습방안과 인민대표대회의 결의안은 거의 일치하게 됐다. 결국 인민대표대회 결의안은 지난 2일 제안된 국정수습방안을 좀더 세부화시킨 것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체제변경에 대한 보수강경세력들의 강한 반발이 예상되긴 하지만 이미 이들의 세력은 전체적 흐름을 뒤바꾸기엔 크게 미치지 못할만큼 약화돼 있다.이같은 점을 감안할때 이 결의안은 5일 약간의 수정만을 거쳐 채택될 가능성이 크며 국정수습방안도 무난히 인민대표대회의 승인을 얻을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이번 인민대표대회를 통해 소련은 과거의 연방을 버리고 새로운 연방체제로의 재출발의 길을 걷게 된 것이다.이런 측면에서 국정수습방안의 채택 여부를 결정할 5일의 인민대표대회의 표결은 소련역사의 분기점으로 기록될 것이다. 이는 이번 쿠데타를 통해 앞으로 소련이 살아남기 위한 길은 오직 민주화를 위한 근본적인 변혁과 국가의 쇄신에 있다는데 대해 전국민의 컨센서스가 이뤄졌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소련은 지금 과도기에 놓여 있다.앞으로의 소련이 어떤 형태로 유지될 것인지는 지금부터의 행동에 달려있다.그러나 앞으로의 소련이 어떤 행동을 취할 것인지를 점치는데 있어 인민대표대회의 결의안은 중요한 단서를 제공해주고 있다.인민대표대회 결의안의 주요내용은 ▲각공화국의 주권인정 ▲연방협정 서명촉구 ▲공동시장 창설등 경제협정 체결 ▲기존의 국제협정 준수 ▲인권의 보장과 수호 ▲통일된 외교정책및 집단안보 원칙에 관한협정체결 ▲핵보유국으로서의 책임 확인 등으로 요약할수 있는데 이 결의안이 앞으로 소련의 행동을 규제하는 일종의 행동지침과 같은 역할을 하게 될것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소련은 새로운 변화에의 길을 선택할 것으로 보인다.이 길의 종착지는 소련이 진정한 민주사회의 안정된 일원으로 참여하는데서 끝날 것이다.그러나 이 종착점에 도달하기까지 소련은 파탄지경에 빠진 경제를 소생시키고 각공화국들의 독립 열망을 상당부분 충족시켜주면서도 느슨하게나마 연방제 자체는 존속시켜야 하는등 무수한 장애를 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이는 전적으로 소련국민들의 손에 달린 것이다.그러나 인민대표대회의 결의안에서 국제협약의 준수와 핵보유국으로서의 책임을 명시한데서 알수 있듯이 소련은 지금 서방세계의 지원을 간절히 필요로 하고 있다.따라서 소련국민들이 무사히 종착점에 이를수 있도록 아낌없는 지원을 제공하는 것은 서방세계에 주어진 책임이 될것이다. ◎인민대표대회 개혁안 요지 소연방인민대표대회는 권력구조의 붕괴를 막기위해 공화국들의 의사와 공화국주민 이익에 바탕을 둔 새로운 국가간체제를 만들기위한 과도기간을 선포하며 과도기중 다음 사항이 필요하다. 1.소연방 구성 공화국들이 채택한 국가주권행위와 이들 공화국의 영토보전및 공화국간 현경계선을 인정한다. 2.공화국들이 참여형태를 독자적으로 결정할수 있는 연방협정을 준비해 연방참여를 바라는 모든 공화국들의 협정서명을 촉진한다.새 연방은 인권불가침,사회정의,직접대의민주주의등의 원칙에 바탕을 두어야한다. 3.과도기 연방국가기관에 관한 헌법조항승인이 필수불가결하며 이 법률에는 ▲소연방최고회의와 ▲국가평의회의 구성원칙 ▲공화국참여원칙에 따른 연방행정권의 신체제구축등이 명시돼야한다. 4.최고회의가 임시의장을 자체지명하고 연방대통령이 임시연방부통령을 임명해 승인받도록 지시한다. 5.공화국간 경제협정과 통화·금융협력,환경·안보협정,시민의 권리·자유수호협정 체결이 긴요하다. 6.소 연방인민대표회의,연방최고회의및 연방대통령은 민주적 시민사회로 이행하는 과정의 보장자로서 새로운 권력기관의 합법적 승계를 보장한다. 7.과도기중 무기감축과 검증,외채등 소 연방의 모든 국제협정과 책임이 엄격히 준수됨을 확인한다. 8.공동시장지역의 창설과 시장경제로의 이행,주권공화국 상호경제관계의 이익을 고려해 경제협정을 당장 체결하는 것이 긴요하다. 9.새연방기능중 가장 중요한 것의 하나는 인민의 권리보장 및 수호다. 10.과도기동안 언론·양심의 자유등 시민기본권은 엄격히 존중돼야한다. 11.주권국연방의 통일된 외교정책및 집단안보원칙에 관한 협정체결이 필요하다. 12.핵보유국으로서의 연방의 책임을 확인하며 연방최고기관의 승인없는 핵무기 배치를 배제할 믿을만한 제도를 확립할 특별조치를 취해야한다. 13.소정부최고기관에 과도기동안 전술·전략핵무기와 재래식무기의 일방적 감축과 핵실험 완전중지조치를 통해 핵무기감축협상을 실질적으로 신속히 추진하고 새연방의 국제적 권위를 높이도록 촉구한다. 14.새연방 가입을 거부키로 결정한 공화국에 핵무기확산방지조약을 포함한 국제적 협정과 조약을 즉각적으로 체결하도록 촉구한다. 15.세계공동체가 새연방과 그주권국가에서 상호협조를 발전시키기 위한 공동노력에 적극적으로 참여할수 있을 것임을 보장한다.
  • 청기와에 푸른 단청… 전통의 멋 물씬

    ◎청와대 새 본관 어떻게 꾸며졌나/중앙홀 좌우에 문무조화 벽화로 장식/조선총독부 옛 건물은 52년만에 역사속에/대지 조성때 「천하복지」 암각 나온 명당 국정수행의 최고기관인 「청와대」가 신축되었다.대통령이 집무하는 청와대 본관건물이 정통한옥양식으로 새롭게 준공된 것이다.이에따라 일제 조선총독의 사택으로 출발했던 기존 청와대본관은 이제 역사의 장으로 묻혀지게 되었다. ○본채·별채 ㄷ자 배치 ○…4일 준공된 청와대 신본관은 북악산 산자락에 정남향으로 위치해 서울시가지를 한눈에 굽어볼수 있으며 서울시내 중심가 어디에서도 잘 보인다.구본관이 눈에 잘 띄지않는 후미진 곳에 있던것과는 매우 대조적이다. 구본관에서 서북쪽으로 약1백50m쯤 떨어져 높은곳에 신축된 청와대본관은 경복궁 근정전지붕과 중앙박물관이 모두 발아래 높이에서 조망된다. 연건평 2천5백64평인 신본관은 중앙에 2층의 한식본채를 두고 그 좌우에 단층한식의 별채를 거느려 ㄷ자모양의 열린 쪽이 남쪽을 바라보는 형상이다.외형적으로는 본채와 별채로 나뉘어진 것같으나 내부는 모두 같은 평면으로 연결되어 있다. 본채와 별채의 지붕높이는 각각 28m와 18m로 팔작지붕 형태이며 섭씨1천1백도에서 구운 15만장의 청기와로 덮여져있다. 용마루 양끝에 세워진 취두는 용이 여의주를 물고있는 모습인데 이는 나라의 무궁한 발전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관계자들은 설명하고 있다. 건물외벽에 쓴 석재는 경기도 포천에서 나온 화강암으로 거친 정다듬으로 해서 순박한 우리맛을 느끼게 한다.외벽의 창문은 솟을빗꽃살문양의 덧문을 대 고궁의 모양을 본떴다. 대통령이 국빈을 맞을 때 직접 영접하는 본채 현관천장은 푸른색을 주조로 한 단청이 칠해져있어 한국고유미를 느끼게 한다. 본채 정면 아래쪽엔 국빈영접때 의전행사를 할수 있는 장방형의 잔디광장(1천4백80평)이 마련돼 지금까지 청와대에서 의전행사를 제대로 할수 없었던 옹졸함을 씻게 되었다. ○집현전 학사 그림도 ○…지난 89년7월22일 착공,약 2년여에 걸친 공사끝에 이날 준공을 본 청와대 신본관은 근정전(3백평)크기의 약4∼5배가량으로 총공사비는 1백63억원. 1층(1천2백2평)에는 중앙홀·대회의실·대식당·중식당·영부인접견실등이 있고 2층(4백58평)엔 집무실·접견실·회의실·소식당등이 있다. 이밖에 창고 음향실이 있는 중층(76평)중3층(3백32평·창고)그리고 기관실·전기실및 공조실이 있는 지하층(4백96평)등이다. 1층 현관을 들어서면 대청마루의 시원한 느낌을 주는 중앙홀이 나온다.왼쪽 벽면엔 문을 상징하는 높이 3.19m 길이 21m의 행차도 벽화가 걸려있다.오른쪽에는 무를 상징하는 고구려 수렵도가 맞은 편의 행차도와 대칭되게 걸려있다. 중앙홀에서 왼쪽 별채의 대회의실(세종실)로 이어지는 회랑식 복도벽면에는 세종대왕업적에 관한 동판부조와 집현전 학사도가 걸려있어 전체적으로 「문」의 분위기를 자아낸다. 역시 중앙홀에서 오른쪽 별채의 대식당(충무실)으로 이어지는 복도벽면에는 이순신장군의 승전등에 관한 부조와 씨름도가 장식돼 「좌문우무」의 조화를 이룬다. 청와대 국무회의등이 열리게 되는 대회의실에는 군학도·흉배·일월도 그리고 훈민정음을 월인천강지곡체로 그래픽한 작품등으로 장식해 전체적으로 통치권자,국정최고 책임자가 주재하는 「어전회의장」분위기를 느끼게 하고있다. 대통령이 집무하는 2층에 오르는 계단전면에 고지도기법으로 대한민국전도를 벽화로 장식했고 천장에는 천문도를 실크프린트하여 은은하게 보이도록 함으로써 대통령이 늘 금수강산 우리 국토와 하늘을 생각하면서 개단을 오르내릴수 있도록 했다고 한다. 2층 집무실벽면엔 황금색 대통령의 봉황문장이 벽에 새겨져있고 접견실은 순한식 가구와 장식으로 되어있다. ○고려땐 개경의 이궁 ○…청와대 자리는 지금부터 8백87년전인 고려 숙종9년(1104년)부터 당시 수도이던 개경의 이궁터로 쓰이다가 조선조에 들어와 태조4년(1395년)경복궁이 창건되면서 궁궐의 후원이 되었던 곳이다. 이곳은 일제가 1910년부터 조선총독부 청사부지로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공원화했다가 연건평 5백86평의 건물을 짓고 1939년부터 남차낭 등 3대에 걸친 총독관저로 사용했다.해방후에는 미군정이 실시된 약2년3개월동안 하지중장의 관사로 이용됐으며 48년 정부수립이후엔 이승만대통령이 경무대라 이름짓고 관저및 집무실로 사용했다.이후 윤보선대통령은 취임후 경무대라는 이름이 국민들에게 주는 인상이 좋지않다는 이유로 청와대로 개칭했으며 박정희·최규하·전두환대통령에 이어 노태우대통령도 이곳을 계속 사용해왔다. 청와대측은 노대통령의 결심을 얻어 「청와대신축 마스터플랜」을 수립,89년 5월 프레스센터인 춘추관에 이어 7월엔 본관,8월에는 관저의 신축에 들어가 춘추관은 지난해 9월29일,관저는 지난해 10월25일에 준공됐고 집무실인 본관은 이날 완공된 것이다. 신축공사를 위해 대지를 조성하던중 관저뒤 암벽에 3백년전에 새겨진 것으로 추정되는 「천하제일복지」라는 암각이 발견(본보 90년 2월23일자 보도」되기도해 신축지가 예로부터 풍수지리상 길지임을 입증했다. 청와대신축계획과 공사를 총지휘한 임재길 청와대총무수석비서관은 이날 『독립한지 45년이 지나도록 국가원수가 일제총독관저로 쓰였던 건물에서 집무를 한다는 것은 국민정서에도 안맞을 뿐아니라 민주자존에도 문제가 아니될 수없었다』며 신축배경을 설명했다. 임수석은 『우리 고유의 건축미에다 화려하지 않은 소박미를 최대로 살리면서도 대통령집무실답게 품위있게 건축하는데 역점을 두었다』면서 『청와대가 서울중심가에서 누구나 볼 수 있도록 위치한 것 부터가 바로 보통사람시대」에 걸맞는 민주대통령의 집무실임을 뜻한다』고 부연했다.
  • 옐친의 소련/공산독재 막 내리다:6

    ◎삼권분립 가속화… 「기득권」이 개혁 걸림돌/「국가=당」 무너져 각종제약 한꺼번에 풀려/민주적 여론 수렴할 신당 출현도 눈앞에 보수공산주의자들의 쿠데타실패는 결과적으로 소련에 정치개혁의 수문을 활짝 여는 계기가 됐다.역설적으로 말하면 고르바초프대통령이 페레스트로이카 5년여 동안 이루지못한 것을 이들 보수세력들이 단번에 해치운 것이다. 고르바초프가 소위 사회주의 틀속에서의 「한계내의 개혁」을 고집함으로써 파생됐던 숱한 문제들 다시말해 공산당의 권한 약화,다당제도입,시장경제로의 이행,신연방조약 구상 등에 있어서의 각종 제약들이 마치 칼로 자르듯 한꺼번에 해소돼 버렸다. 특히 공산주의 이데올로기의 족쇄에서 벗어나 정치면에서의 개혁은 지난 5년과는 질적으로 다른 의미를 갖게됐다.고르바초프 자신도 여러차례 강조했듯이 페레스트로이카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스탈린주의·교조적 마르크스주의의 요소를 청산하고 레닌이 볼셰비키혁명을 통해 구현하려했던 진정한 사회주의를 찾아가자는 것이었다.그리고 그 개혁의 과정과 폭은 당·국가에서 결정하고 추진하는 소위 「위로부터의 개혁」이었다. 즉 고르비의 개혁은 애당초 체제에 대한 회의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라 단지 체제의 효율성을 높이자는데 그 목적이 있었다.그러나 일단 시작된 개혁운동은 국민들의 의식은 물론 사회전반에 엄청난 변화들을 가져왔다. 이러한 소위 「아래로부터의 혁명」과 「위로부터의 혁명」사이의 괴리는 결과적으로 체제에 대한 회의로 발전했고 이러한 체제도전으로부터 체제를 수호하려는 세력들의 우려가 이번 쿠데타로 나타났다고 할수있다. 향후 정치개혁은 일단 신연방조약이 체결될 경우 새연방구성에 따른 헌법개정을 하고 직접선거등 민주적인 절차에 의해 새 국가기구들을 구성하게 된다.현행 헌법은 브레즈네프가 1977년 소련에 발전된 사회주의건설이 완성된 것을 전제로 만든 것이다.사회조직·국가조직·민족관계등 모든 정치적 문제들이 사회주의 틀속에서 규정돼 있기 때문에 완전히 새로운 헌법을 만들어야 한다. 선거방식도 완전히 바꾸어 순수한 국민대의제가 될것이다.지금까지는 당이 기득권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못해 이의 도입이 불가능했다.예를들어 인민대표회의 대의원선거에서도 공산당을 비롯한 각종 사회단체 몫으로 일정 의석을 할당하는 등의 편법을 썼었다. 소련공산당은 정상적인 의미의 공산당이 아니라 입법·사법·행정등 국가의 모든 업무를 당이 관장하는 기형적인 「국가=당」의 기능을 가졌었다.공산당의 이런 기능이 중지됨으로써 이제는 명실상부한 3권분립시대가 열리게됐다. 국가속의 국가로 불리며 모든 국가정책의 최고결정기구 역할을 했던 당정치국·당중앙위원회및 각급 당조직이 보유한 권한들이 모두 국가기구로 이전되게 됐다. 이미 여러 공화국에서 군·KGB·경찰·공장 등에 있는 당세포 활동이 중지됐다. 정치개혁의 가장 큰 장애가 돼온 것이 바로 당의 지도적 입장조항이었다.지난해 3월 헌법 제6조에서 이 조항이 삭제된 뒤에도 소련공산당은 여전히 지도적 위치를 누려왔다.공산당의 몰락으로 이제 소련에서도 민주적 여론수렴의 요체라 할수 있는 복수정당제시대가 열리게됐다. 알렉산드르 야코블레프·예두아르트드 셰바르드나제 전외무장관 등 개혁파 인사들을 중심으로 서구식 사회민주주의를 표방한 신당이 창당준비중이고 루츠코이 러시아공 부통령을 주축으로 한 공산당내 개혁파들도 새 마르크스주의당을 결성하는 등 벌써 몇개의 정당출현이 가시화되고 있다. 국가와 국민의 관계 뿐 아니라 중앙정부와 연방정부,연방정부들끼리의 관계도 지배­종속관계를 벗어나 횡적인 협조관계로 전환되고 있다. 소련의 정치개혁은 한마디로 사회 각 분야에 뿌리내리고 있는 공산당의 영향력을 제거해 나가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소련이 안고있는 정치제도상의 비정상적인 문제들의 대부분이 여기서 비롯됐기 때문이다.
  • 소비에트에서 러시아로(사설)

    소련보수파 쿠데타실패의 반작용이 격렬하다.공산당이 붕괴되고 연방이 해체위기를 맞고 있는 가운데 급진개혁을 표방하는 고르바초프대통령의 연설이 나왔다.예상되었던 사태의 전개이긴 하지만 변화가 너무도 급속하고 급격해 현기증을 느낄정도다.소련이라는 이름의 거대한 연방국가가 지구상에서 사라지는 것은 아닌가.걷잡을 수 없는 유혈의 내란사태가 촉발되는 것은 아닌가.그런 의문과 우려까지 갖게하는 급박한 사태의 전개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오늘의 소련사태는 한마디로 혁명적 상황이라 할수 있다.그만큼 유동적이고 예측을 불허하는 불확실의 상황인 것이다.다만 그동안의 상황전개와 고르바초프대통령의 연설로 미루어 소련의 민주화개혁이 급가속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그리고 소련의 근본적인 재구성이 불가피한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는 현실도 느낄수 있다.새로운 민주헌법이 채택되고 그에따른 민주자유총선의 실시를 통한 새출발을 예상할 수 있다.한마디로 동구제국의 민주화과정이 소련에서 진행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소련이세계적인 공산권개혁의 시발국이면서 그동안 속도가 느리고 조심스러우며 갈등이 심했던 것은 소련이라는 나라가 갖는 특수성 때문인 것으로 지적되어 왔다.공산주의의 발상지이며 70여년의 뿌리를 내리고 있는 공산당의 나라다.15개공화국으로 구성된 방대한 영토,1백개이상의 민족과 1백30여개 언어가 통용되는 복잡한 구성이 중요한 장애요인이었던 것이다.고르바초프는 이러한 현실에 너무 집착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옐친과 고르바초프의 누가 옳은지는 여전히 더 두고 봐야할 문제인지 모른다.그러나 보수파쿠데타실패는 대세의 방향을 옐친쪽으로 돌려버렸으며 소련도 마침내 급진개혁으로 치닫고 있는 것이다.그리고 그것은 고르바초프가 그토록 건너기를 주저했던 「루비콘강」을 소련의 개혁이 건너고 말았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한 것이다. 이제 문제는 10개공화국이 독립을 선언한 상황에서 소련방의 운명이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점이다.희망하는 공화국의 독립은 인정한다는 것이 옐친의 방침이며 고르바초프도 동의하고 있다.공화국들의 지위와권한이 대폭강화된 신연방조약이 조인되면 새연방의 모습이 드러날 것이다.고르바초프개혁의 발목을 가장 강하게 붙잡은 것이 발트3국을 비롯한 일부 공화국들의 독립문제였다.옐친은 연방보다 개혁을 선택했다고 할수 있다. 현재의 소 연방은 공산혁명과 2차세계대전의 산물이다.강제에 의한 약육강식의 결과인 것이다.공산주의를 포기한 지금 연방에 부담일 수도 있는 군소공화국의 이탈을 기어이 방지해야할 이유는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혁명전의 원상회복이 순리일 수도 있는 것이다. 소련은 러시아만으로도 세계 최대의 국가다.희망하는 공화국만의 연방으로 새 출발하는 것도 오히려 바람직한 것인지 모른다.소련은 동구위성국들을 이미 해방시킨 바 있다.독·일제국은 패전으로 강제 해체되었다.그러고도 큰 발전을 했다.소련공산제국의 자진해체 내지는 축소가 소련의 발전으로 이어지지 말라는 법도 없다.소련의 과감한 새출발을 기대한다.세계는 그것을 적극 지원해야 할 것이다.
  • 소 새 대통령 곧 직선/고르비 연설

    ◎신 연방조약 체결후… “쿠데타 내게도 책임있다”/9월2일 인민대표회의 소집/대통령·최고회의 대의원 선거일정 확정/공화국 독립,개별공화국과 협상/고르비 연설 내용/군은 연방 관할아래 계속 유지방침/KGB국경수비 지휘권 국방부로/경제정책 결정,연방서 공화국으로/공산체제 청산,시장경제 개혁 지속/토지개혁·사유재산제 도입등 확대 【모스크바=이기동특파원】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은 26일 쿠데타 실패후 처음으로 소집된 소련 최고회의에서 행한 연설을 통해 신연방조약이 체결되는 대로 대통령및 최고회의 대의원선거를 위한 준비작업에 들어가겠다고 밝혔다. 고르바초프대통령은 특히 연방대통령선거와 관련,연방의 붕괴를 막기위해 전체 국민이 참여하는 보통선거에 의한 대통령선출방식을 제안했다. 고르바초프대통령은 이날 TV중계된 35분간의 연설에서 탈소독립을 추구하고 있는 각 공화국들과도 독립협상을 시작할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자신에게도 쿠데타를 사전에 막지못한 일단의 책임이 있다고 시인했다. 이에 앞서 소련최고회의는 새로운 연방대통령 선출과 헌법개정 권한을 가진 인민대표회의를 오는 11월 개최예정에서 내달 2일로 앞당겨 개최키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새지도자가 선출되기까지는 지난번 쿠데타실패이후 고르바초프대통령과 보리스 옐친러시아공대통령간에 합의된 권력공유형태의 과도체제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고르바초프는 이날 연설에서 또 KGB의 전면개편 필요성을 강조하고 반헌법적 목적에의 이용을 배제하기 위해 지난 봄 통과된 KGB관련 법률을 폐지하고 새로운 법률이 제정돼야 한다고 말했다.이와함께 국경수비대의 관할권을 KGB에서 국방부로 이관할것을 촉구하면서 군기관에 대해서는 현재의 연방 관할체계가 그대로 유지될 것임을 밝혔다. 그는 이어 6년전부터 추진돼온 자신의 개혁정책은 계속될 것임을 밝히고 시장경제체제로의 전환을 가로막고 있는 모든 걸림돌은 제거되고 새로운 시장기구가 창설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고르비는 또 앞으로 경제정책 결정의 중심이 연방정부에서 공화국으로 이관돼야 한다고 강조하고 공화국간 경제위원회를 설립하는 한편 토지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에앞서 소련공산당 중앙위원회는 25일 성명을 발표,쿠데타사태에 책임을 지고 공산당을 해체하며 모든 공산당 자산을 국민에게 반환한다고 선언했다. 또 이 성명은 자유·민주주의 강령에 근거한 새로운 정당창설 작업을 서둘것을 촉구하면서 그 당원이 사회의 지도적 역할을 수행하지 않는다는 원칙에서 출발하는 새로운 정당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 고르비가 제시한 미래의 소련

    ◎소 새 연방 「국가연합」형태 예상/선거 통한 정통성 회복… 마지막 승부수/권위주의 청산… 민주사회 행보 가속/과도정부 이끈후 정치생명 단축 예상도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이 쿠데타이후 소련의 미래상을 제시했다. 그의 구도는 신연방조약체결을 통한 새로운 소련의 탄생과 시장경제로의 전환,그리고 KGB등 권력기관의 개편이다. 고르바초프대통령은 26일 쿠데타이후 처음 소집된 소련최고회의 연설에서 이같은 새로운 소련의 청사진을 제시했다. 고르바초프의 소련 미래상 제시는 쿠데타와 공산당 해체이후 나타나고 있는 크렘린의 권력공백을 최대한 줄이고 빠른 시일내에 소련을 정상화시키기 위한 조치로 분석된다. 고르바초프는 조속한 소련의 정상화를 통해 쿠데타로 현저하게 약화된 정치적 지도력을 회복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는 신연방조약체결후 대통령선거 실시를 제의했다. 고르바초프의 대통령선거실시 제의는 그의 마지막 승부수로 보인다. 그는 선거를 통해 정통성을 다시 확보하려 하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대통령선가 직선일 경우 고르바초프가 과연 출마할 것인지는 미지수이지만 선거법을 다룰 인민대표대회가 간접선거가 아닌 직접선거를 결정하더라도 그는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이 더 많다고 전문가들은 예상하고 있다. 이들은 소련의 새로운 지도자로 부상하고 있는 옐친이 연방정부의 권한이 대폭 약화되는 상황에서 소련의 핵심인 러시아공화국대통령을 포기하고 연방대통령에 도전할 가능성이 희박하기때문에 고르바초프의 연방대통령 가능성을 예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고르바초프가 연방대통령이 되더라도 그이 정치적 지도력은 소연방의 와해와 함께 제한적일 수밖에 없으며 그는 과도기적 지도자로 끝날 가능성도 없지 않다. 더욱이 오는 9월2일 소집되는 인민대표대회에서 쿠데타와 관련,고르바초프에 대한 불신임이나 탄핵이 있을지도 모른다. 고르바초프도 쿠데타를 저지하지 못한데 대해 책임이 있음을 스스로 인정하고 있다. 고르바초프는 그러나 신연방조약 체결을 강조했다. 그는 우선 연방조약을 체결한후 각공화국의 독립협상을 시작하자고 제의했다. 그는신연방조약을 강조하면서도 독립을 희망하는 공화국의 독립허용을 시사하고 있다. 그는 또 5년간의 독립과정을 명시한 헌법에 대해 언급하지않음으로써 공화국들의 보다 빠른 독립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소연방이 어떤 모습을 할것인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청사진을 제시하지 않았다. 일부 전문가들은 소연방이 국가연합이나 느슨한 형태의 연방 혹은 공화국연방체로 전환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고르바초프는 경제정책 결정의 중심이 연방정부에서 공화국으로 이관되고 공화국간의 경제위원회 설치를 주장했다. 경제위원회설치 제의는 각 공화국이 정치적으로 독립을 하더라도 경제적 유대관계는 그대로 유지될 필요가 있음을 지적한 것으로 분석된다. 고르바초프는 시장경제로의 전환을 강조했다. 그는 특히 시장기구의 창출과 토지개혁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토지개혁은 과감한 토지의 사유화를 시사하는 것으로 사회주의 경제체제에서 보다 빠른 「자본주의적」 경제체제로의 전환을 희망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또 KGB등 권력기관의 개편을 주장했다. KGB의 권한을 제한하는 새로운 KGB법을 제정하고 KGB가 가지고 있는 국경수비대의 지휘권을 국방부에 이관하는등 KGB의 기구와 권한을 축소시키려 하는 것이다. 과거 공포의 대상이었던 KGB의 개편은 쿠데타에 저항한 소련 시민들의 자유의지를 더욱 고취시킬 것으로 보인다. 이는 소련사회가 보다 빠르게 개방된 민주사회로 전환될 것임을 예고하는 것이다. 고르바초프가 지향하는 새로운 소련은 설사 그가 과도기적 지도자로 끝나더라도 다음 지도자에 의해 계승 발전될 것으로 전망된다. 소련은 지금 시민사회로 가고 있기 때문이다. ◎소 공산당 중앙위성명/요약 1.당은 모든 소련 시민들이 향유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당원들에게도 부여된 정치적 자결권에 따라 그 해체를 선언한다. 2.당은 공공기관의 활동과 재산에 관한 법률에 따라 모든 자산을 국민들에게 반환한다. 3.당은 자유·민주주의의 강령에 근거한 좌익 세력들의 새로운 정당을 창설하기위한 작업을 시작해야한다.이 새로운 정당의 당원들은 사회의 지도적 역할의 수행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원칙에서 출발하고 나아가 다른 정당과 동등한 위치에서 합법적인 의정활동을 통해 정치적 과업들을 이룩할 것이다. 4.이같은 신당의 창설 가능성은 민주개혁운동,러시아공산민주당,공산주의자및 기타 좌익세력들과 함께 검토돼야 할 것이다. ◎고르비 최고회의 연설/요지 연방조약이 체결된 직후 우리는 대통령직을 포함한 모든 연방기관의 선거실시를 위한 준비작업을 시작해야 한다. 신연방조약이 체결된 뒤 우리는 연방이탈을 원하고 있는 공화국들과 실무적인 협상을 즉시 시작해야 한다. 이번 쿠데타는 히스테리컬한 신문기사나 당회의석상에서 장성들이 행한 연설 등에서 이미 예고된 것이었다.헌정질서를 수호하기 위해 이들에 대한 특별조치를 취할 수 있는 충분한 근거가 있었는데도 단호한 조치를 취하지 못했었다. 소련최고회의가 제기능을 발휘하지 못했고 또 각료들이 창피할 정도로 무기력하고 비겁하게 쿠데타세력에 동조한 것으로 판명된 동시에 군을 책임진 기관의 최고 책임자들이 쿠데타를주도했다는 점에서 대통령으로서 커다란 책임이 있다. KGB가 바딤 바카틴 신임의장의 주도아래 완전 개편될 것이며 국경수비대에 대한 지휘권을 KGB에서 국방부로 이관할 것이다. KGB가 반헌법적 목적을 위해 이용되는 최소한의 가능성도 배제하기 위해 「장벽」이 설치돼야 하며 지난 봄 통과된 KGB에 관한 법률은 폐지되고 새로운 법률이 제정돼야 한다. 소련의 군기관들은 그대로 계속 유지돼야 한다. 6년전부터 시작된 개혁과정은 계속될 것이다. 대통령으로 남아있는 한 어떤 경우에도 개혁과정을 포기하거나 속도를 늦추지 않을 것이며 당과 정부기관들이 일부 페레스트로이카 개혁에 대해 공개적으로 사보타주를 했다. 시장경제체제 전환을 가로막고 있는 모든 걸림돌들이 제거되고 시장기구가 창설돼야 한다. 경제정책 결정의 중심이 연방정부에서 공화국으로 이관돼야 한다.공화국간 경제위원회가 설립되어야 하며 통화공급의 통제와 예산적자 축소를 위한 조치와 함께 토지개혁이 필요하다.
  • 소련공산당의 붕괴(사설)

    소련의 이번 쿠데타사태는 한마디로 소멸위기에 직면한 공산당의 존립과 기득권 옹호를 위한 보수강경파의 마지막 몸부림이라 할수 있는 것이었다.그 몸부림이 삼일천하의 무참한 실패로 끝난 지금 소련 공산당의 몰락·붕괴 내지 결정적 약화는 불가피한 순서라 해야할 것이다.그리고 그 순서가 지금 소련에서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우리는 그 추이와 결과,그리고 그것이 갖는 역사적 의미와 가져올수 있는 또 다른 세계적 파장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소련 공산당은 고르바초프 개혁의 시작과 동시에 소멸이냐 근본적인 개혁의 변신이냐의 양자택일을 해야 할 운명이었다.고르바초프는 개혁을 통한 변신을 모색했으며 옐친을 비롯한 급진개혁파는 공산당 소멸의 새출발을 희망함으로써 갈등의 불씨를 키워온 것이 그동안의 과정이었다.그러나 고르바초프의 근본적 개혁구상이나 옐친의 새출발 희망이나 궁극적인 목표는 동일한 것이라 할수 있는 것이었다.고르바초프는 서구형사회주의 정당을 지향했으며 그것은 정통 공산당의 사실상 소멸을 의미하는 것이었기때문이다.옐친도 서구형 사회주의 정당의 존재까지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당장의 공산당 소멸이라는 급진개혁 추구의 옐친을 용납할 수 없는 것은 물론 서구형 사회주의정당을 모색하는 고르바초프의 점진적 개혁에도 불만이었던 보수 강경파의 반발이 이번 쿠데타였던 것이다.그리고 그 중요한 동기는 1천5백만 공산당원은 물론 공산당과 군부 및 KGB의 간부등 70만 노멘클라투라(붉은 귀족)의 기득권 옹호에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시도는 일단 저지되었으며 당연한 반작용으로 지금 소련에서는 공산당 박멸캠페인이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고르바초프는 아직도 근본적이긴 하나 공산당의 기본틀을 살리는 서구형 사회주의정당화를 모색하고 있지만 급진개혁파의 대세에 압도당하고 있는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현재의 대세로 보아 소련 공산당의 운명은 사실상 끝난것 같으며 획기적인 개혁을 통해서도 집권당으로 살아남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동구 민주화과정에서 우리는 이미 공산당의 몰락과정을 목격한바 있다.공산종주국이며 공산당의 발원지이자 조국인 소련에서는 좀 다를 수도 있을 것이란 생각도 했다.그러나 역시 공산당 중심의 개혁은 한계가 있고 어려울 뿐 아니라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을 이번 쿠데타사태는 보여준 셈이다.그리고 그것은 뒤늦었지만 소련에도 마침내 동구식 개혁의 불길을 댕겨 놓는 결과를 가져오고 있는 것이다.그 불길을 더욱 약화된 고르바초프가 진정시킬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소련 공산당의 붕괴는 원조공산당의 붕괴를 의미한다.그것이 민주화 개혁을 거부하는 아시아공산당에 주게 될 충격 또한 클수 밖에 없을 것이다.북한공산당의 대응이 주목된다.민주사회주의정당으로의 개혁과 변신이야말로 살아남기 위한 유일한 활로일 것이다.북한공산당도 하루속히 개혁과 변신을 통해 통일한국의 새 질서에 적응토록 재출발하는 것이 역사의 요구요 순리일 것이다.
  • “개교이래 첫 직선”… 서울대 김종운총장의 새 포부

    ◎“공부하는 대학 뒷받침에 최선”/학원 폭력투쟁 버려야 할때/발전기금 1천억 조성 주력/「기여입학」은 운영의 묘가 중요 『국내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에도 기여할 수 있는 「연구하는 대학」을 만드는데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서울대 개교이래 처음으로 전체교수들의 직접선거 절차를 거쳐 제19대총장으로 취임한 김종운총장(62)은 취임 이틀만인 16일에야 처음으로 기자들과 만나 서울대를 세계적인 명문대학으로 발전시키기 위한 기금조성 및 대학의 자율성 확보에 힘쓸것을 다짐했다. ­재임기간동안 가장 역점을 둘 사업은. 『모든 교수들의 열망이 담긴 제2캠퍼스의 조성과 96년까지 1천억원의 발전기금을 모으는데 학교의 역량을 모을 계획이다』 ­대학원중심대학으로 학교를 발전시킬 계획이라는데 학부교육은 어떻게 할것인지. 『어떤 상황에 내 놓더라도 중추적 역할을 하는 인재가 될 수 있도록 학부생들에게는 올바른 교양교육에 중점을 두겠으며 전공교육은 대학원에서 깊이있게 하도록 하겠다.이를 위해 필요한 재정을 확보하는 등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 ­교수들의 직선으로 선출됐는데 총장직선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많은 교수들의 가시적 지지를 얻어 총장에 오른만큼 모든 행정을 「쾌도난마」식으로 풀어갈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있으나 이는 잘못이다.직선총장이라고 해서 독자적 결정만으로 대학운영을 한다는 것은 난센스다.임명제총장과 직선총장을 크게 구분지을 필요는 없다고 본다.제도가 변했을 뿐 총장의 역할은 달라진 것이 없기 때문이다.물론 직선제총장의 장점도 많다.과거의 임명제총장은 교수들의 지지를 많이 기대했을 것이나 지지가 가시적으로 나타나지 않아 많은 어려움을 겪은데 비하면 출발부터 과반수이상 교수들의 지지를 얻은만큼 성원해 주는 분들이 많아 마음 든든하다.그러나 직선제도 문제는 있다.지난 선거에서는 나타나지 않았지만 직선제의 가장 큰 폐단은 교수사회가 선거로 인해 분열된 모습을 나타낼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학생들과의 관계는 어떻게 꾸려갈 생각인지. 『학생운동은 학교경영뿐 아니라 국내외적 환경변화에서도많은 영향을 받는다고 본다.다행히 국내외적인 상황이 좋아지고 있으므로 학생운동의 이슈도 점차 줄어들것이라고 보고 있다.학생들은 학교재산을 함부로 파괴하거나 실정법을 어기지말고 지성인답게 대화로 문제해결에 노력해야 할 것이다.전체교수들의 총의에 따라 선출된 총장이니만큼 학생들과의 관계에서도 과거의 총장들보다 입지가 더욱 튼튼해진 점도 도움이 되리라 생각하며 학생들과의 관계에 대해 낙관적인 입장을 갖고 있다』 ­최근 문제가 되고있는 사립대학의 기여입학제에 대해서는. 『국가발전이라는 대의명분아래서는 국·사립의 구분이 크게 의미가 없으므로 국가는 사립대학에도 응분의 재정지원을 해야한다.기여입학제를 단순히 『돈있는 집 자식만 공부한다』는 것으로만 이해하면 안된다고 본다.정원외 일정한 기준안에서 기여입학생을 선발해 그 돈으로 학자금이 부족한 우수학생을 선발,장학금을 지원한다면 더 큰 의미에서 사회정의에 부합될 수도 있다.당장 수용하는 것은 사회일반의 인식에 비춰 힘들 것이나 앞으로 긍정적인 입장에서적극 검토해야 할 것이다』 ­94학년도부터 본고사가 부활되는 등 대학의 자율성 신장에 따른 책임도 커지는데. 『본고사도입에 따른 시행의 어려움 때문에 일부대학에서는 이를 주저하고 있다고 들었다.신입생을 선발하고 졸업생을 배출하는 등 대학운영에 관한 전권을 대학이 가져야 하는데 이를 시행의 어려움 때문에 포기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본다.학교운영에 있어서도 시장경제의 원리가 적용돼 능력있고 쓸모있는 대학만이 살아남아야 사회에 실질적인 도움을 줄수 있다고 생각한다』 ­바라는 총장상이 있다면. 『우리나라에서는 대학총장을 고매한 학식과 훌륭한 성품,남다른 경륜을 갖춘 대학의 대표자로 생각,대학총장들에게 많은 짐을 지우고 있다.물론 그 모든 것을 갖출 수 있다면 좋겠으나 현실적으로는 너무 부담이 되는 것이 사실이다.따라서 분에 넘치는 그러한 역할보다는 학교가 설정한 목적이나 목표의 달성을 위해 뒷바라지를 열심히 하는 「실무형 총장」이 되고 싶다』 ▷약력◁ ▲서울출신 ▲서울대영문과졸·미뉴욕대대학원졸 ▲성균관대조교수 ▲서울대 기획실장·교무처장·인문대학장·부총장 ▷저서 및 편·역서◁ ▲미국문학산고 ▲전후한국단편소설선 ▲Virtuous Women
  • 말도 많고 탈도 많다/교육위원 선출

    ◎교육자치 출발 잡음의 안팎/공공연한 매표행위… 정치판 닮아가/로비 극심… 특정집단 이익대변 우려/직선제 전환등 제도적 보완대책 절실 30년만에 부활된 교육자치제 실현의 첫걸음인 교육위원선출을 둘러싸고 갖가지 잡음이 잇따르고 있다. 후보추천과정에서의 금품제공사건,일부 후보의 자질문제,추천권을 가진 기초의회의원들의 금품요구행위,관계법률의 미비 등이 드러나 우리교육의 미래를 가늠할 교육자치제가 출범초기에서부터 삐거덕거리고 있는 것이다. 얼마전 일부 지방의 교육위원후보중에는 폭력이나 성폭행 등의 전과기록을 갖고 있는 것으로 밝혀지기도해 우리에게 충격을 주었으며 특히 이번 성남시 교육위원 후보자들이 시의회의원 11명에게 금품을 준 사건은 지방의회의원선거 당시 나타났던 일부지역의 타락상이 교육위원선거에서도 재현됐다는 점에서교육자치제에 거는 국민적 기대를 단번에 허물어뜨리고 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교육위원 후보추천과 선출과정에서 나타난 문제점과 그 대책 등이 무엇인지 알아본다. ▷추천과정◁ 시·군·구의회가 교육위원후보에 추천할수 있는 현행제도가 교육의 정치적 오염과 금권개입의 소지를 안고 있다는 지적이다. 성남시에서 시의회의원이 후보추천을 둘러싸고 금품을 주고받은 사건이나 추문으로 학교를 떠났던 인사가 후보로 추천된 일 등이 당초 우려했던 바가 현실로 나타난 사례들이다. 또 도봉구의회에서는 1백만원짜리 돈봉투를 전해준 한 후보의 매표행위를 폭로한 의원이 있었는가 하면 지역유지가 되고 싶은 졸부들이 대거 출마하면서 금품수수행위가 암암리에 벌어지기도 했다. 서울지역의 경우 후보추천에서 이름있는 교육계 원로들이 모두 떨어지고 영수학원 경영자들이 많이 진출한 것도 우리가 바라던 교육자치제의 이상은 아니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또한 교육위원 후보 가운데 비경력자도 추천할수 있도록 한데서 이같은 일부 졸부들이나 전과자들까지 교육위원자리를 넘보게 한 결과를 가져왔으며 바로 이 점이 문제가 된다는 것이다. ▷선출과정◁ 시·군·구 의회에서 각각 2명씩을 추천한 것을 시·도 의회가 1명씩 뽑기 때문에 경쟁률은 2대1에 불과하지만 이 때문에 후보들이 소견발표보다는 당선을 위한 로비활동에 더 열중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 8일 하오에 실시된 서울시 교육위원 선출의 경우 구의회에서 추천을 받은 42명의 후보들은 3분간의 소견발표보다는 회의장 입구에서 드나드는 시의원들을 상대로 선거운동을 하는데 관심을 쏟는 모습이었다. 이들 후보중에는 교육위원들이 교육장을 뽑고 교육장은 각 시·군·구의 교육장을 임명하는 현행제도를 의식,시의원들과 선출된 뒤에 교육장을 내정하는 등의 사전 묵계를 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날 광주시 교육위원 선출에서는 과열선거를 막는다는 이유로 보도진과 경찰관,시의회 관계자 이외에는 시민들의 방청을 허용치않아 교육자치제 본래의 뜻과는 정반대의 폐쇄성을 보여주기도 했다. 또 후보자들의 소견발표 시간을 3분이내로 제한,교육에 대한 소신을 밝히기에 미흡하다고 말하는 후보자들이 많았으며 시의회의원들조차 후보에 대한 정확한 능력 등을 파악하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형식적인절차로 일관된 선출과정에서 과연 뽑아야할 인물들이 제대로 뽑힐 수 있을는지 의심스럽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관된 견해이다. 특히 현행제도가운데 교육위원후보를 추천할때 비경력자도 추천할수 있게 해놓고 선출과정에서 경력자가 50%를 넘게 선출되도록 규정하고 있는 것도 모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만일 투표결과,경력자출신 위원이 전체의 반을 넘지 못할 경우 시·도의회는 재투표를 실시,이미 선출된 일부 비경력자 위원의 당선을 무효로 하고 경력자후보로 대체해야하기 때문이다. 이밖에 기초의회에서 다수로 추천한 후보를 시·도의회가 얼마든지 번복할 수 있는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운영과정◁ 교육위원에 비경력자를 허용함으로써 운영과정에서 자칫 교육위원회가 특정집단이나 개인의 이익을 대변하는 기구로 전락할 우려가 없지않다. 또 금품을 뿌려 당선됐을 경우에는 적어도 쓴돈만큼은 되찾으려 할 가능성이 높으며 이 때문에 시·군·구교육장 임명과정등에서도 금품을 주고받을 소지가 많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특히 사립학교관계자나 학원경영자가 교육위원이 될 경우에는 자신들의 이익을 적극 대변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대책◁ 새로운 제도를 시행하는 과정에서는 늘 시행착오가 있게 마련이지만 백년대계라는 교육정책을 다룰 인물을 선출하는 문제라는 점에서 이번에 드러난 모순이나 문제점은 재발되지 않도록 그 대책을 강구해야할 것이다. 특히 교육위원후보 자격을 현재 경력자의 경우 15년이상을 30년이상으로 늘리는등 강화하고 추천에 이어 선출하는 간접선거제도를 주민직접선거로 바꾸는 방안 등도 검토해 볼만한 것이다. 또 이번 서울시의회가 중구의회에서 추천한 후보를 과반수 득표에 미달됐다는 이유로 후보추천을 반려하면서 법적 근거가 없는 행위라고 물의가 빚어진 점등도 감안,법적 미비점에 대한 보완작업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
  • 새 경찰에의 기대(사설)

    치안본부가 1일부터 경찰청으로 격상됨으로써 경찰사에 새로운 획이 그어졌다.우리는 이것이 방향을 제대로 잡은 하나의 중요한 발전으로 보고 환영한다.아울러 경찰의 새출발을 계기로 민생치안을 중심으로한 모든 치안문제에 있어 보다 획기적인 성과가 빠른 시일내에 나타나기를 기대해본다. 우리가 특히 민생치안을 강조하는 것은 최근들어 범죄가 너무 흉포해지고 다발하고 있기 때문이다.아무리 민생치안을 강조해도 부족할 정도로 작금의 치안상태는 허점이 많고 따라서 국민불안도 심화되어 온것이 사실이다.국민을 위한 국민의 경찰이 되기 위해서는 누구나 안심하고 밤길을 다닐수 있을 정도의 치안상태를 이루어 놓겠다는 비장한 각오아래 경찰전체가 배전의 분발을 해줄것을 당부한다. 물론 만족할만한 상태의 치안수준을 유지하려면 경찰의 각오와 분발만으로는 충분치 못하다.경찰인력의 보강,수사과학화를 위한 장비의 도입,경찰사기앙양등에 필요한 예산의 뒷받침이 필요하다. 정부가 민생치안의 확립을 바라는 국민의 뜻을 제대로 읽고 이에 정책적 우선순위를 둔다면 예산상의 배려는 당연한 일이다. 우리는 이와 아울러 경찰내부의 뼈를 깎는 노력을 촉구한다.지난 수년간 법과 질서를 유지해 나가야 할 공권력이 제대로 역할을 다하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이는 공권력의 도덕성과도 결부되는 문제였다.그러나 이제 민주화가 상당부분 이루어지고 지난 지자제선거에서도 나타난 바와 같이 불법과 혼란에 대한 국민적 거부감이 커진 오늘날 공권력 또한 제역할을 찾아야 한다.이를 위해 가장 중요한 일은 스스로 도덕성을 제고시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경찰의 정치적 독립이 실질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청단위의 형식적 독립형태에서 한걸음 나아가 보다 내실있는 민주경찰로의 전환노력이 모색되어야 한다.경찰위원회의 역할도 이런점에서 제대로 확립되어야 할것이다.경찰청발족에 즈음한 인사에서 특정지역출신들이 우대되었다든지,경찰위원회의 동의과정을 거치지 않은 경찰청장 임명이라든지 등의 몇가지 뒷말이 무성한 것은 그런점에서 매우 유감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또 비리를 근절시키겠다는 의지와 행동이 경찰내부에서 구체적으로 나와야 한다.그동안 비이라는 측면을 놓고 경찰의 인상이 그렇게 좋지는 않았다는 점을 경찰스스로 잘알고 있을 것이다.그렇다면 경찰스스로 달라지려는 노력을 국민들에게 보여줘야 마땅하다.특히 국민과 직접 부딪치는 부서에서는 이 문제에 더욱 신경을 쓸 일이다. 이에 더하여 경찰은 국민을 위해서 일한다는 적극적 이미지를 창출해 나가야 한다.그러려면 범인을 잡고 죄를 가리는 일에 적극 나서는 노력이 배가되어야겠고 질서를 유지하는 일과 사건·사고를 미리 예방하는 일에 보다 신경을 집중시켜 나가야 할것이다. 경찰청의 발족을 계기로 경찰은 물론,정부나 국민 모두가 경찰독립·경찰민주화의 취지에 맞는 경찰로 발전하도록 다함께 노력해 나가야 할 것이다.
  • 내일 경찰청 발족… 승격의 의의

    ◎「홀로서기」 새출발… 경찰이 달라진다/예산편성·인사권등 부여,운영 쇄신/기구 개편으로 민생분야 대폭 강화 우리 경찰이 마침내 독립을 성취,그 위상을 한층 높일 수 있게 됐다. 내무부장관의 보조기관이던 치안본부가 1이루터 내무부의 외청인 경찰청으로 분가하는 것이다. 29일 경찰위원회(위원장 허정훈)가 구성되고 경찰청(청장 김원환) 수뇌부의 인사가 단행되는등 조직을 새로이 가다듬고 기구 또한 민생치안분야를 보강하는등 대폭으로 개편,명실상부한 새출발을 하고 있다. 지난 50년대부터 틈틈이 제기돼온 경찰의 독립문제는 그동안 정파간의 정치적 견해차이와 관계기관간의 이해상충 등으로 논의에 논의만을 거듭하며 뚜렷한 결실을 보지 못했던게 사실이었다. 그러다가 지난해 국립경찰 창설 45주년에 즈음하여 노태우대통령이 『내년 안에 경찰청을 발족시킬 것』을 천명함에 따라 발족작업이 급속히 추진됐다. 물론 다소의 논란이 없었던 것은 아니나 지난 5월10일 경찰청법이 국회를 통과했고 치안본부는 기구와 조직을 개편,경찰청으로일대 변신을 이루게 된 것이다. 지난 45년 10월21일 미군정청에 의해 경무부로 발족한 우리경찰은 48년 정부가 수립되면서 내무부 치안국으로 편입됐고 74년 치안본부로 승격하면서도 결국 내무부장관의 보조기관에 머물렀었다. 일부에서는 경찰청의 위상이 보다 격상돼 완전한 독립을 이뤄야 한다는 급진적인 주장도 있기는 하나 이번 외청으로의 독립만으로도 상당한 진전을 의미하며 결과적으로는 경찰의 중립화를 보다 가속화시킬 수 있는 획기적인 계기가 마련된 것이라는게 일반적인 평가이다. 경찰청의 독립으로 경찰은 우선 지휘체계를 일원화 할수 있게 됐다. 지금까지 경찰은 법제상으로 제1급 경찰행정관청인 내무부장관에서 제2급 경찰행정관청인 특별시장·직할시장·도지사를 거쳐 제3급 경찰행정관청인 경찰서장으로 연결되는 지휘감독체계를 유지하면서 실질적으로는 치안본부장→경찰국장→경찰서장으로 이어진 명령체계를 준수,이원적인 지휘감독체계에 놓여 있었다. 그러나 새 경찰청법은 지방경찰을 각 시 도지사 소속아래 두되 경찰청장의일원적인 지휘·감독을 받도록 하고 치안행정과 지방행정 사이에 문제가 있을 때는 신설되는 치안행정협의회를 통해 조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새 경찰법은 이와 함께 경찰업무의 특성을 감안,경찰청을 기본적으로 독임제로 하되 합의제와의 절충형으로 경찰위원회를 두도록 하고 있다. 비상임위원장 1명 및 상임위원 1명,비상임위원 5명 등 모두 7명으로 구성되는 경찰위원회는 경찰조직의 개편,업무발전 및 인권보호에 관한 사항,인사·예산 등 주요사항을 심의 의결하는 등의 권한을 갖고 경찰청의 독주를 견제하게 된다. 경찰청의 발족으로 경찰청장의 권한 또한 매우 넓어졌다.그동안 실제로는 어떠했든 법령상으로는 경감이하의 승진·전보는 시 도지사가 발령하고 경정이상의 임용·승진·전보는 내무부장관이 발령하도록 돼 있었으나 앞으로는 경정이하의 임용·승진·전보와 총경의 전보인사권이 모두 경찰청장에게 돌아간 것이다. 또 치안본부장은 내무부를 통해 경제기획원에 제출해오던 예산안도 이제부터는 경찰청장이 독자적으로 제출할 수 있게 됐으며 예산과목변경이나 전용도 단독으로 요청할 수 있게 됐다. 경찰청의 발족으로 두드러진 현상은 특히 중앙경찰기구가 축소되는 대신 일선 경찰관서의 인력이 크게 보강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우선 본부장,5차장(치안감),16부(경무관),46과(총경)로 돼있던 치안본부 직제가 경찰청장 밑에 차장(치안정감)을 두고 7국4관 5심의관 41과로 통합된다.치안정감이 1명 는 대신 6부5과가 축소되므로 경무관 6명과 총경 5명이 감축된다. 이에 비해 지방경찰청은 서울의 경우 치안감급 차장직이 신설되고 5담당관 13과가 7부17과로 강화되며 대구·경남 지방경찰청의 직급이 경무관에서 치안감으로 상향 조정된다. 이에 따라 전국적으로 보면 치안정감 1명,치안감 4명이 늘고 경무관은 1명이 준다. 인원으로는 경찰청에서 96명,지방경찰청에서 2천2백84명이 일선경찰조직에 재배치된다.올해 증원할 4천4백22명을 포함하면 모두 7천1백88명의 경찰인력이 일선에 증강배치되게 되는 것이다. 이같은 증원은 중앙조직을 기획·조정쪽으로 축소시키고 일선 경찰력을 보강함으로써 그동안 상대적으로 미흡했던 민생치안분야를 대폭 강화하는 것이라고 경찰관계자들은 밝히고 있다. 이렇게 되면 민생치안분야에서 상당한 역할을 감당할 수 있으리라는 것이 관계자들의 바람이다. 그러나 이같은 바람을 현실화 하기 위해서는 때때로 문제가 되고 있는 경찰의 자질향상과 예산의 뒷받침 등이 절실하다는 견해들도 무시할 수 없다. 자질향상이 따르지 않는 단순한 인력증강만으로는 그동안의 갖가지 부조리와 사고등에 따른 국민들의 선입관 때문에 민생치안에 실효를 거두기가 어려움은 물론이다. 또 상대적으로 위축된 경찰의 사기를 북돋우기 위해서는 생활급의 보장은 물론 위험한 직무에 상응하는 각종 후생복지문제가 해결돼야 하며 충분한 시설과 장비의 확보가 선결과제라는 것이다. 경찰내부에서는 비록 일시에는 이뤄지지 않더라도 경미한 사건부터나마 점진적으로라도 경찰에 독자적인 수사권이 주어져야 하며 경찰관직무집행법 등도 고쳐 다른 기관의 지휘감독을 받는 과중한 업무에서도 해방돼야 할 것등을 앞으로의 과제로 꼽고 있다.
  • 김원환 초대경찰청장은 말한다/“이제 불한한 치안은 없습니다”

    ◎“봉사하는 제모습 찾고 격무 줄여 사기 높일터” 45년 전통의 국립경찰이 8월1일로 경찰청으로 독립,독자적인 행보를 하게된다. 그동안 때로는 비난과 불신의 대상이 되기도 했지만 이제 13만 경찰관 모두가 「국민의 지팡이」라는 제모습을 찾기위해 자세를 가다듬고 있다. 초대 경찰청장에 발탁된 김원환서울시경국장 또한 그 어느 누구보다 새로운 결의에 넘쳐있다. 『새롭게 출발하는 경찰이 앞으로 해야 할 가장 큰 과제는 무엇보다 먼저 민생치안을 확립하는 것입니다.이 때문에 새 경찰청의 조직과 기구는 일선경찰의 인원을 대폭 증원하고 민생치안 분야의 조직강화에 역점을 두고 있는 것이지요』 그는 『민생치안은 통계발표등 책상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며 행동으로 나타나야한다』면서 『밤에는 파출소직원과 순찰차가 빠짐없이 관내순찰에 나서 방범활동을 펼치고 낮에는 교통근무자가 열심히 거리질서를 확립해나가야하며 중요강력사건은 반드시 해결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이제 폭력시위에 대해서는 국민들도 염증을 내고 있기 때문에 그동안 시국치안에 투입됐던 경찰력을 가능한 민생치안 쪽으로 돌리겠다고 했다. ­최근 경찰관의 자질이 떨어지고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는데…. ▲의정부 총기사건 등으로 그런 지적이 나오고 있다.앞으로는 부적격자를 가려내고 경찰관의 교육·감독을 철저히 시행해 이같은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하겠다. 부적격자를 가려내기 위해서는 경찰관 채용때 과학적인 인성검사방법을 도입하고 주기적으로 기존 경찰관에 대한 교육을 실시하겠다.특히 총기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총기관리에 철저를 기하도록 하겠다. ­경찰관들의 사기 또한 매우 떨어져있는데…. ▲대부분 경찰관들이 과중한 업무와 박봉에 시달리는 것이 사실이다.따라서 앞으로 서울 등 6대도시에서만이라도 우선적으로 파출소 3부근무제를 실시하고 비번때는 확실히 휴식을 취하도록 할 계획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찰관들은 생명을 바쳐 국가와 사회의 질서를 유지할 각오가 서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는 임명장을 정식으로 받지 못한 상태에서 인터뷰를 하는 것이 사리에 어긋난다며 한사코인터뷰를 거절하다 끈질긴 기자의 요구로 겨우 몇마디 말문을 열었을뿐 이내 말문을 닫고 말았다.
  • 경찰청시대… 시민의 기대/국민 신뢰받는 새경찰상 확립을

    ◎대민업무 공정처리·중립성확보 노력해야 ▲박용일변호사(45)=새경찰청법에 부족한 점이 많아 실제로 경찰이 권력으로부터 어느정도 독립할 수 있을지 걱정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찰청의 발족을 계기로 새시대의 새로운 민주경찰상을 보여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지방자치제실시 등으로 경찰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커졌기 때문에 국민들은 역할확대에 따른 민주화와 치안확립에 많은 기대를 걸고 있다. ▲서재근교수(동국대·경찰행정학)=국민이 경찰의 독립에 거는 기대는 「경찰의 민주화」에 있다.그동안 경찰업무의 속성상,그리고 치안수요의 급증 등으로 경찰이 국민들로부터 불신을 받아 왔으나 이제 홀로 선 만큼 책임과 권한에 알맞는 역할을 다함으로써 민주경찰로 자리잡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또 중앙의 경찰위원회와 지방의 치안행정협의회가 잘 운영되도록 보완돼야 할 점이 많으며 국립과학수사연구소도 경찰청 산하에 들어와야 할 것이다. ▲정현수씨(38·약사·서울 강동구 둔촌동 현대아파트11동401)=경찰이 이제까지는 국민들이 기대하고 있는만큼 역할을 다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엄연한 독립기관으로 새출발하는 만큼 국민들이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새로운 경찰상을 정립해 주었으면 좋겠다. 민생치안을 최우선으로 하는 정책을 수립하고 대민업무에 더욱 공정을 기해 주었으면 한다. ▲조대현군(21·성균관대 금속공학과 3년)=그동안 우리의 경찰은 국민들의 일상적인 삶과는 어느정도 동떨어져있는 것으로 인식돼온 것이 사실이다. 그것은 경찰이 국민의 파수꾼이라는 본연의 임무에서 벗어나 때로는 정치적 목적에 이용당하거나 심지어는 불미스러운 사건까지 일으켰었기 때문이다. 경찰청 발족을 계기로 경찰은 지금까지의 폐단에서 벗어나 엄정한 정치적 중립을 지켜 진정한 「민중의 지팡이」로서의 역할을 다하도록 부단한 노력을 기울여 줄것을 바란다. ▲박향자씨(49·주부·서울중구신당동304)=범죄양상이 갈수록 대담해지고 흉폭해지면서 밤에는 집앞 구멍가게에도 나가기조차 무서울 정도가 됐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주기 때문에 친근감을 가져야 하지만 지금까지는 경찰서 근처를 지날때는 어쩐지 겁이 날 정도로 거리감을 느껴왔다. 이제는 경찰도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한다고 하니 국민과 가깝고 국민을 위하는 진정한 길잡이가 돼 주길 바란다.
  • 런던 G7정상회담 무얼 남겼나

    ◎경제회담 탈피… 정치·군축에 “큰 비중”/한반도·중동등 지역평화 심도있게 논의/소 지원·UR협상등은 큰 테두리만 합의 서방선진7개국(G­7)정상회담이 17일 경제선언 채택과 함께 3일간에 걸친 협의를 모두 끝마쳤다.이번 정상회담은 동서냉전 종식과 걸프전 뒤의 새로운 국제질서 모색을 위해 세계의 지도자들이 공동협조하기 위한 기본틀을 마련한 회담이었다는 점과 함께 사상 처음으로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이 초청돼 G­7 정상들과 회담을 가짐으로써 동서관계사에 새 장을 열었다는 측면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고 할수 있다. 이번 회담은 특히 종래 경제정상회담으로 불리던 G­7회담의 성격에서 탈피,「재래식 무기와 핵및 생물·화학무기의 확산방지를 위한 선언」과 같은 군축선언을 채택하는 한편 중동평화 정착을 위한 방안 마련등 지역평화 모색을 심도있게 다룬 정치선언을 채택했으며 경제선언에서는 우루과이라운드의 연내타결이란 큰 정치적 목표에만 합의했을뿐 세부적인 사항의 타결은 실무협상에 맡긴다는 태도를 견지,다른 어떤 때보다도정치성이 짙은 회담으로 기록될수 있는데 이는 새 국제질서 창출에 대한 각지도자들의 공통된 염원이 반영된 결과라고 할수 있다. 이번 런던회담의 주요내용을 간추려보면 다음과 같다. ▷정치선언◁ 런던회담에서 채택된 정치선언의 초점은 유엔의 기능을 강화,새로운 세계질서가 유엔의 주도아래 정착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는 점이라고 할수 있다.이는 지난 걸프전쟁때 유엔이 서방지도국의 단합과 소련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신속한 대응을 함으로써 걸프전쟁 해결에 크게 기여했다는 인식아래 유엔이 보다 강력하고 효율적으로 운영될수 있게 만듦으로써 유엔주도 즉 서방선진국들 주도의 새 국제질서를 확립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볼수 있다.특히 이스라엘과 아랍간의 분쟁해결등 중동에서의 평화정착을 위한 노력이 이번 정치선언에서 높이 평가될만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군축선언◁ 이번 런던회담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G­7회담 사상최초로 전쟁방지를 위해 군축선언이 채택됐다는 점이다.특히 유엔의 주관하에 세계의 무기등록 작업을 추진한다는 제안이 매우 높은 평가를 받고 있으며 핵확산금지조약을 강화·확대한다는 제안도 세계평화를 위해 중요한 기여를 할수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서방의 대소지원 문제◁ 17일 채택된 경제선언은 소련을 세계경제에 동참·통합시키기 위해 지원을 제공할 준비를 갖출 것이라는 모호한 지원약속만으로 돼있어 일견 고르바초프대통령이 만족할 만한 지원약속을 받아내지 못한 것으로 보여질수 있다. 그러나 베이커 미국무장관이 16일 기자회견을 통해 『고르바초프대통령이 「빈손으로」 돌아가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밝힌 점과 함께 앞으로 G­7 회담의 의장이 소련지도자와의 회담을 매년 갖기로 하고 소련에 IMF(국제통화기금)와 세계은행에의 준회원국 자격을 부여키로 합의한 점은 G­7국들이 아직 대소지원의 구체적인 방안에는 합의하지 못했지만 앞으로 소련과의 협의를 통해 대소지원을 구체화시킬수 있는 길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보다 중요한 의미가 부여되고 있다. ▷한반도문제의 언급◁ 메이저 영국총리는 16일 G­7회담 의장성명을 통해 남북한의 유엔가입과 남북고위급회담의 조속한 재개에 대한 기대를 표시하는 한편 북한의 조속한 핵안전협정 체결및 핵사찰 수용을 촉구했다.한반도문제가 G­7회담에서 논의된 것은 이례적인 일로 북한의 핵개발 위험이 최근 국제적 관심사로 부각된데 따른 것이기도 하지만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가 국제정세에서 중요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이번 런던회담에선 또 미소간의 전략무기감축협상(START) 타결여부도 중요한 관심사로 부각됐다. 결국 이번 런던 G­7정상회담은 소련에서 시작된 「신사고」를 지구전체로 확대시킴으로써 새 질서를 확립하고 동서화합의 실질적인 출발점이 될수 있는 회담이었다는 점에서 그 의미를 찾을수 있을 것이다.
  • 세종연 “새 출발”… 진통 1년 마감/재산처리등 진로확정 배경

    ◎정부,노조설득 5개월만에 합의/국고귀속 땅엔 영빈관 건립계획 5공의 마지막 유산인 세종연구소(구 일해연구소)가 연구소 운영에 필요한 최소한의 부지를 남기고 대부분을 국가에 헌납키로 함으로써 5공비리에 대한 법적·행정적 절차가 사실상 모두 마무리된 셈이다. 지난83년 버마(현 미얀마)아웅산 테러폭발사건을 계기로 설립된 일해재단은 그동안 5공청산과정을 거치면서 일해연구소에서 세종연구소로 명칭이 바뀌는 등 그 처리문제를 놓고 진통을 거듭해 왔다. 일해재단은 설립된지 3년여만인 86년 1월 평화안보연구소를 개소,곧이어 이를 다시 일해연구소로 이름을 바꿨다.그러나 5공청산의 바람이 불기 시작한 88년 5월 세종연구소로 명칭을 변경했다. 정부는 5공청산차원에서 그동안 89년 12월 4당체제 당시 여야영수회담의 합의사항과 90년 7월 국회5공특위의 건의를 바탕으로 세종연구소 재산처리 방안을 다각적으로 모색해 왔다.세종연구소 재산처리의 기본반향은 「국민에게 유익한 목적을 위해 사용되어야 한다」는 것이었고 그 주체는 정부였다.이에따라 세종연구소의 주무관청인 외무부는 지난해 하반기에 ▲이 연구소를 외무부 산하 국책연구소로 바꾸고 ▲연구소 부속 영빈관을 개축,정부 영빈관으로 하며 ▲국제회의및 행사를 위한 국제교류센터를 건립해 종합연구단지를 조성하는 내용 등을 골자로한 법인형태변경안을 마련했다.외무부의 이같은 처리방안이 알려지자 노조는 신분의 위협을 느끼고 생존권 차원의 투쟁을 선언하고 나서 두달여동안 연구활동 중단과 행정기능의 마비를 겪었다.파행운영되던 세종연구소문제가 해결의 실마리를 찾은 것은 지난1월부터 이상옥외무장관이 연구소 이사진을 직접 만나 설득 작업을 본격화하면서 부터였다.정부와 연구소측은 유종하외무차관과 정일영 당시 이사장(현 소장)을 각각 대표로한 실무위를 구성,연구소 기능설정및 재산처리문제를 협의하기 시작했다.쌍방은 결국 현재의 부지와 시설및 인력은 순수 연구기관으로서의 지출이 과대하므로 적정수준으로 축소한다는데 의견 접근을 보았다.정부와 연구소측은 지난6월21일 ▲세종연구소는 민간연구소로 존치시키기로 하고 ▲연구소 부지 1만여평을 제외한 나머지 19만여평은 국고에 귀속키로 한다는데 합의,연구소측은 직후 이사회를 열어 이같은 내용을 의결했다. 외무부측은 연구소의 시설감축으로 인해 발생할 30∼50여명의 관리직 직원들을 전원 외무부의 산하 국제협력단(KOICA)에 흡수할 계획이다.또한 국제교류연구단지에는 국제협력단이 들어설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외무부가 밝히고 있는 영빈관 건립문제는 앞으로 상당한 진통이 따를 것으로 전망된다.시내와 거리가 멀어 경호·의전 등의 문제가 많다는 것이 정부관계자들의 지적이기 때문이다.따라서 이 연구소 부지를 서울 시내의 적당한 땅과 바꿔 영빈관을 짓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
  • 내일 G7회담/고르비,경원 얻어낼까

    ◎획기적 개혁안 발표… 독·불·이 적극적 호응/“밑빠진 독 물붓기” 미·일 주저… 성과 불투명 선진국정상회담(G­7)이 15일부터 영국런던에서 열린다.이번 G­7회담의 최대관심사는 대소경제지원문제이다.이문제에 대해 현재까지 미·영·일 등은 소련의 선개혁을 내세워 신중한 입장을 보이는 반면 독·불·이등은 적극적인 대소지원을 주장하고 있다.그중에서도 독일의 콜총리가 가장 적극적으로 서방의 대소지원을 성사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이는 지난해 독일의 통일과정에서 소련이 결정적인 지원을 한데 대해 독일도 이에 상응하는 보답을 해야 한다는 점과 함께 독일의 안전보장이 소련의 안정과 밀접하게 관련돼 있는데 따른 것이다. 사실 런던 G­7회담에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이 참석할수 있게된 것도 독일통일과정에서 긴밀한 인간관계가 이루어진 콜독일총리의 적극적인 지원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콜총리가 서방선진국들을 설득해 런던회담에 소련을 참석할수 있도록 한것은 고르바초프로하여금 소련의 개혁의지를 직접 천명할기회를 주어 회원국들의 대소지원을 유도하기 위해서였다.콜총리는 소련의 협조가 없었더라면 독일의 통일이 이루어질수 없었기 때문에 어려운 처지의 소련을 도와주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하고있다. 콜총리의 이러한 의도는 지난달 하순 G­7수뇌들과 가진 일련의 회담을 통해 고르바초프의 런던회담참석을 유도해 냄으로써 1단계 작업을 마무리지었다.그리고 2단계작업은 콜총리가 지난 5일 소련의 키예프에서 독소정상회담을 갖고 고르바초프로부터 런던회담에서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냄으로써 완료됐다.이제 런던회담에서 선진국들이 대소지원을 약속한다면 콜의 의도는 완전히 성공을 거두는 것이다. 그러나 3단계작전의 성패여부는 아직 미지수이다.미·영·일등이 정치적 앞날이 불확실한 소련에 대해 밑빠진 독에 물붓기식으로 막대한 자본을 쏟아넣을 필요가 있겠느냐는 입장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따라서 콜총리는 고르바초프에게 정치적 생사의 기로라고도 할수 있는 이번 런던회담에서 획기적인 새 계획을 제시할 것을 거듭 촉구해왔다. 고르바초프로선 가장 마음든든한 원군이라 할수 있는 콜총리마저 이처럼 대소지원에 선뜻 나서지 못하고 있는 것은 통일후의 독일 경제사정이 독일단독의 대소지원을 허용할 만큼 여력이 없는데 따른 것이다. 고르바초프는 이번 런던 G­7 정상회담에서 제시할 새로운 경제개혁안을 이미 준비해 놓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고르바초프의 새 계획이 어떤 내용인지는 아직 알려지지 않고 있지만 이것이 서방각국에 받아들여진다면 이제까지 대소지원을 주저해오던 서방국들도 집약적이고 효과적인 대소지원을 약속할게 틀림없으며 그 지원은 주로 IMF(국제통화기금)와 세계은행을 통해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 고르바초프가 런던회담이 끝난뒤 당장 수십억달러의 자금을 가지고 모스크바로 돌아가지 못하더라도 이번 회담에서 서방국들의 지원약속만이라도 받아낸다면 이는 소련이 위기국면에서 벗어나는 출발점이 될것으로 보인다.
  • 노 대통령이 밝힌 남북관계 정책기조

    ◎“통일은 우리 손으로” 주도의지 천명/북방외교등 결실,“주변여건 성숙” 판단/「문화공동위」제의는 이질성극복 의지/지방의원 위촉으로 새 「평통」역할 기대 남북통일을 본격적으로 주도하겠다는 노태우대통령의 의지가 한층 더 구체화되고 있다. 노대통령은 12일 명실상부한 범국민적 통일기구로 재출범한 민주평통자문회의 제5기 출범회의에서 통일정책의 기조를 총정리하여 밝혔다. 노대통령은 이날 통일정책기조와 관련,▲한반도문제는 남북한이 스스로 해결해야하고 ▲남북한이 대화를 통해 해결하지 못할 문제가 없으며 ▲통일이 유혈이나 비극을 수반해서는 안된다는 큰 방향을 재천명했다. 얼핏 보기에는 너무나 당연한 원칙을 언급한 것 같지만 최근의 한반도주변정세,북방정책의 결실,방미외교의 성과등 현재의 상황을 대입해 보면 대단한 함축성을 지니고있다. 한반도문제의 자주적 해결은 비록 분단은 주변강대국에 의해 이뤄졌지만 통일은 우리손으로 이룩한다는 것이다.실제 한소관계의 급진전,중국과의 관계개선등 일련의 정세변화로 한반도의 외부적 통일장애요인은 없어지고 있다는 인식이 여기에 깔려있다. 『대화로 해결하지 못할 문제는 없다』는 말뒤에는 대북협상카드가 모두 남측에 있지 결코 주변강대국에 있지않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 가령 북한이 한반도의 핵문제 특히 주한미군의 핵이동문제도 북한이 미국과 얘기할 것이 아니라 우리와 바로 얘기할때 실효성을 거둘수 있다는 메시지도 들어있다고 본다. 이같은 통일정책의 기조는 지난1년간 3차례에 걸친 한소정상회담,이달초의 한미정상회담등 일련의 통일외교를 통해 통일분위기의 성숙을 확인하고 동시에 우리가 주도적으로 통일을 추진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획득한데서 그 바탕을 이루고있다. 이번 민주평통개회사에서 천명된 구체적인 통일정책가운데 주목해야할 대목은 ▲8·15경축행사 공동주최를 비롯한 「민족문화공동위원회」설치 ▲TV,라디오등 방송의 상호개방 ▲실효성있는 불가침선언채택 ▲휴전체제의 평화체제로의 전환등이다. 이같은 통일정책의 제시는 뉴스라는 측면에선 별로 새로운 것이 없으나 6공들어 처음으로 초당적 범국민통일기구로 출발하는 자리에서 천명했다는 점에 매우 의미가 크다. 시군구및 시도의회의원들이 민주평통자문위원으로 전원위촉됨으로써 이번 제5기의 평통은 통일정책에 관한 헌법기관으로서 국민의 결집된 의사를 반영하기 때문에 이 기구에서 거른 통일정책은 그만큰 정통성과 함께 비중을 갖게되는 것이다. 8·15경축행사 공동개최등 남북교류문제는 「밴쿠버지시」의 반복이기는 하나 「민족문화공동위원회」설치는 새로운 제의라고 할 수 있다. 이 공동위는 남북의 학자와 전문가들이 민족문화유산을 공동으로 조사·연구하고 언어의 이질현상을 해소하는 일들을 추진하자는 것이다. 40년이 넘는 오랜 단절기간으로 한민족의 생활양식과 사고마저 달라지고 있는 현실을 우선과제로 타결해야겠다는 노대통령의 간절한 소망이 담겨져있다. 남북의 방송교류는 동서독의 경험에서 알수 있듯이 민족의 이질화를 막고 동질성을 회복하는 첩경이라고 할수 있다.동서독 양쪽 주민들은 오래전부터 방송을 상호 시청해옴으로써 생활양식이나 사고를 하나로 묶을수 있었고 통일에 대한 마음의 벽을 이미 헐어놓고 있었던 것이다. 「불가침선언채택」이나 「휴전체제의 평화체제로의 전환」등은 이미 88년 노대통령의 유엔연설등을 통해 우리의 통일정책으로서 밝힌 것이다. 다만 노대통령이 「불가침선언」앞에 「실효성있는」단서를 붙여서 채택을 강조한 것은 북한이 남북고위급회담에서 제의하고 있는 「불가침선언」과 채택수순을 달리하고 있음을 표시한 것이다. 불가침선언채택과 관련,한국의 입장은 불가침의 토대가 마련될 수 있도록 인적교류,군사면에서 상호 신뢰를 구축해야 불가침의 실효성이 있다는데 비해 북한은 당장 「불가침선언」만 채택한뒤 이를 근거로 주한미군철수를 주장한다는 전술을 갖고 있다. 휴전체제의 평화체제로의 전환문제는 오는9월 남북한이 유엔에 함께 가입하게되면 남북관계의 최대현안으로 부각될 전망이다. 북한은 지금까지 지난53년 체결된 휴전협정이 당시 유엔군사령관과 중공군사령관 그리고 김일성 3자사이에 체결됐음을 들어 한국은 휴전협정당사자가 아니라고 주장해왔다. 따라서 한국을 제외시키고 북한과 미국이 평화협정을 맺어야 한다는 것이 북한측의 주장이지만 한국측은 6·25전쟁의 당사국으로서 북한과의 직접협상에 의해 휴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한다는 원칙아래 다각적인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8·15광복절을 전후로한 경축행사인 민족통일대행진(판문점 공동경축행사,서울·평양 통일대토론회,백두산∼한라산 국토종단순례,판문점 민속예술한마당)을 비롯한 구체적인 방안들은 민주평통과의 협의를 거쳐 오는 15일 북한측에 공식제의될 것으로 보인다. 이는 당초 북한측의 제의를 대부분 수용한 것이기 때문에 실현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관측된다.또한 노대통령의 이날 통일기본정책 재천명으로 오는 8월 27일 평량에서 중단6개월만에 재개되는 남북고위급회담도 크게 활성화 될 것같다.
  • 고대혜화병원 명륜동시대 마감/10일부터 이사하는 「반세기의 사연」

    ◎안암 캠퍼스내에 의대건물등 신축,이전/경성의전으로 첫출발… 71년 고대서 흡수/현 부지·건물은 아남건설서 구입… 조합아파트 건립 고려대 의대부속 혜화병원이 개원 50년만에 종로구 명륜동시대를 마감하고 오는 22일 서울 성북구 안암동 고려대 본교 캠퍼스안에 있는 신축병원으로 이사,새출발한다. 지난 87년 5월 착공,만4년2개월만에 완공된 안암동 캠퍼스내의 신축병원은 2만8천평의 대지에 지상 5층의 의과대 건물과 1천병상을 갖춘 지상 7층,지하 2층의 부속병원및 지상4층의 의학도서관건물이 들어섰다. 이에따라 혜화병원에 입원하고 있는 2백여명의 환자와 8t 트럭 1천대 분량의 각종 진료기자재는 오는 10일부터 20일까지 신축병원으로 이사한다. 현 혜화병원 부지와 건물은 아남건설에서 사들여 이 회사의 주택조합이 들어서게 될 것으로 알려졌다. 혜화병원의 역사는 지금부터 53년전인 일제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1938년 4월8일 우석 김종익선생의 유지에 따라 미망인 박춘자여사가 사재를 털어 재단법인 우석학원을 설립,같은해 5월1일 경성여자의학전문학교로 개교했다.3년 뒤인 1941년 9월 현위치에 부속병원을 개원한 것이 혜화병원의 모태가 된다. 5년제인 경성의전 부속병원은 그뒤 서울여자의과대학 부속병원(48년5월),수도의과대학 부속병원(57년1월),우석대학교 의과대학 부속병원으로의 변신을 거쳐 1971년 12월 학교법인 고려중앙학원이 우석학원을 합병하면서 고려대의과대 부속우석병원으로 그 소속과 명칭이 바뀐다. 우석학원이 고려중앙학원에 흡수되면서 부속병원 인수를 둘러싸고 같은 명륜동에 있는 성균관대와 고려대간 문서가 수차례 오고가는 치열한 경합을 벌인끝에 결국 고려대가 병원을 인수해 오늘에 이르게 된것. 이같은 숱한 변천과정을 거친끝에 혜화병원은 1948년 5월 서울여자의과대학 부속병원일 당시 이정복박사가 초대병원장에 취임한 이래 지난 89년 제14대로 취임한 구병참원장에 이르고 있다. 경성여자의학전문학교 부속병원으로 태동한 이래 지금까지 혜화병원이 배출한 의학계의 인사로는 전국립의료원장이며 현 의료보험관리공단이사장인 주양자씨(13회),재미과학자이며 미국립암연구소 분자생물학 연구실장인 조윤상박사(56·여·14회),김세민 고려대의과대학장(18회),윤중진 국립과학연구소장(19회),구병참 혜화병원장(21회)등이 있다. 이밖에도 정호순 서울위생병원의무원장(21회),이상웅 서울시의사회장(22회),손경순 보건병원원장(23회),법의학계의 권위자인 황적순 고려대법의학연구소장(30회)등도 이곳에서 배출된 인사들이다. 3천8백여평의 대지에 4백80병상을 갖추고 있던 명륜동 혜화병원은 지난 한햇동안 30여만명의 외래환자와 17만여명의 입원환자가 치료를 받았고 의정부등 경기지역과 서울의 도봉구,성북구,종로구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주로 이 병원을 이용해왔다. 고려대측은 새로 이전한 안암동 병원이 병상과 시설면에서 현 혜화병원보다 월등히 우세하기 때문에 더욱 많은 환자들이 병원을 찾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 노 대통령,미·가 순방결산 기자간담

    ◎“한반도 통일 「한국 주도­미 지원」 확인”/미,한국 배제한 대북 직접 접촉 없을 것/정상회담서 「시장개방」 구체 논의 안해 노태우대통령은 5일 상오8시(한국시간 5일 하오9시) 오타와를 떠나 귀로에 오르기전 숙소인 캐나다 총독관저에서 수행기자들과 조찬간담회를 갖고 미국·캐나다 방문을 결산했다.다음은 일문일답 요지. ­이번 순방결과를 어떻게 평가하시는지요. 『본국서 출발하기전에 구상하고 계획했던 것 그대로 그 목적이 달성됐다고 생각합니다.그중 가장 중요한 것이 새로운 세계질서가 형성돼가는 상황에서 동북아의 안보를 위시해서 한반도의 안정·통일과 번영이 이루어질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비단 미국과 캐나다에서 뿐아니라 모스크바와 제주에서 고르바초프 소연대통령과 나눈 대화의 핵심도 바로 여기에 있었습니다.나는 그간 한반도를 중심으로 동북아의 새 질서를 형성하는데 가장 기본적이고 근본적인 것은 한반도의 안정과 통일이라는 중요성을 인식,부단히 이를 위해 노력해왔습니다.지난 1년간 세계는 많은 변화를 겪었습니다.이제는 중동에서도 새로운 질서가 형성돼가고 있습니다만 미국의 노력이 유럽과 중동지역에만 집중돼서는 안될 일입니다.우리는 미국의 노력이 아태지역에 집중되지 않아 이른바 「공백」상태가 됐을때 일어난 불행한 일들을 역사에서 교훈으로 겪은바 있습니다.그래서 부시대통령과 만나 이 문제를 중심으로한 내생각을 솔직히 얘기했고 부시대통령도 전적으로 동감의 뜻을 표시했습니다.부시대통령은 나아가 한국의 평화와 통일이 앞으로 동북아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이며 이를 위해 미국은 지금까지의 지원을 바탕으로 더욱 더 긴밀히 협조,지원해 나가겠다고 다짐했습니다.한반도의 통일은 한국이 주도하고,미국은 한국의 통일방안에 전적으로 협력하겠다고 했습니다.이것이 가장 중요한 성과라 할수 있습니다』 ­부시대통령과 나눈 그밖의 회담내용을 설명해주십시오. 『한반도안정과 통일문제등을 포함,그동안 고르바초프대통령과 세차례 만나 의견의 일치를 보았던 문제들에 대해 부시대통령과 결산을 한번 했습니다.부시대통령은 한소정상회담을 비롯,나의 북방정책에 대해 전적으로 동의하고 그간에 이루어진일들을 높이 평가했습니다.이것은 소중한 성과의 하나라고 할수 있습니다.국내 정치인과 언론 일부에서는 이번 국빈방문을 계기로 미국이 경제개방압력을 덮어씌울것 아니냐고 염려했는데 정상회담에서는 그런 구체적인 얘기들을 하지 않았습니다.단독회담에서는 전혀 논의조차 되지 않았고 확대정상회담에서 포괄적인 얘기가 한마디 있었습니다』 ­캐나다 방문결과는. 『동북아와 아태지역의 새질서 형성과 앞으로의 발전을 위해 협력관계를 더욱 강화해가는 문제를 논의했습니다.미국과 마찬가지로 나의 구상에 전적으로 동의했습니다.양국간 경제협력이 증가돼가고 있는 추세에 모두 만족했습니다.캐나다측은 우리 기업이 투자를 보다 늘려줄 것을 원했습니다.앞으로 투자과정에서 기술결합,자원개발에서의 합작등이 이루어져 협력규모는 더욱 확대돼 나갈 전망입니다』 ­「통일한국」의 모습은 어떻게 구상하고 계십니까. 『아직 남북간에 마음을 주고 받는 단계가 아닙니다.관계개선이 급선무예요.이것이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어느 일방이 자신의 생각을 얘기하는 것은 실제 통일을 추진하는데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합니다』 ­현실적으로 우리가 북한보다 우위에 서 있는만큼 통일을 앞당길수 있도록 보다 획기적인 대북정책을 강구할 용의는 없으신지요. 『구상이 있지요.앞으로 하나하나 추진해 나갈 것입니다.지금까지는 어떻게보면 서로 들어주기 거북한 얘기만 많이 나왔습니다.예를 들어 보안법을 폐기하면 대화하겠다고 해서야 되겠습니까. 그러나 잘 찾아보면 풀어나갈 방안도 있습니다.북한의 경우 현재 경제파탄·외교적 고립·권력승계 등으로 엄청난 고통을 받고 있고 해외에 나가 세계의 물결을 아는 식자들이 거의 북한으로 소환됐습니다.이들이 앞으로 자체내의 변화요소가 될수도 있을 것입니다. ­북한의 핵무기 개발포기와 주한미군의 핵철수를 연계시켜 추진해야 한다는 의견들이 적지않습니다만. 『그건 국내외 일부학자의 얘기지 당국자 생각은 그렇지 않아요.미정책에 학설이 참고는 되지만 결정적 영향을 미치지는 못합니다.국제적으로 보세요. 소연·중국·일본 어느나라가 그런 얘기를 합니까.미국이 핵이건 재래식 무기건 선제공격을 않는다는데 대한 신뢰라 할수 있습니다.유독 북한만이 그런 조건을 붙이고 있으나 모든 나라가 공감을 하지 않는 입장입니다』 ­대통령께서는 북한이 핵과 관련한 국제적 요구를 전면 수용할 경우 미·북한관계개선도 전향적으로 검토할 수 있을 것으로 말씀하셨는데요. 『그것은 앞으로 우리가 주도적으로 이끌어 나갈 문제입니다.핵문제를 위시해서 남북의 모든 문제는 남북당사자간의 대화와 협력등을 통해 풀어나가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통일로 나가는 주도적 역할은 우리가 맡아야 합니다.미국도 우리를 제외하고 북한과 직접 접촉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11월 아·태각료회의(APEC) 서울총회에서는 APEC를 중심으로 한 아·태지역 공동협력체 창설문제를 강력히 추진할 생각이신지요. 『물론입니다. APEC에는 동북아와 아세안·미주국가 등이 망라돼 있어 11월 서울총회에서 이러한 문제들이 제기될 것인만큼 어떻게 이를 바람직하게 처리해 나갈 것인가 연구해야지요.이런 점에서도 이번 서울총회의 의미는 매우 큽니다』 ­APEC사무국 설치를 추진할 의향이 있습니까. 『실무적으로 검토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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