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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슨 일이 생기기 전에 나타난다…관악산 ‘안전반장’

    무슨 일이 생기기 전에 나타난다…관악산 ‘안전반장’

    등산로 입구 공사 여파 낙석·붕괴 위험 노후주택·옹벽 등 직접 꼼꼼히 살펴 건축안전센터 가동 민원 때 현장 속으로 박 구청장 “점검 결과 홈페이지 공개”“대형 재해가 발생하기 전에는 29번의 작은 재해, 300번의 사소한 사고와 징후가 반드시 존재한다고 합니다. 현장을 찾아 미리 안전 점검을 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일깨워 주는 얘기죠. 위험 요인을 미리 제거해 구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관악을 ‘안전 1번지’로 만들겠습니다.” 지난 6일 박준희 서울 관악구청장은 ‘안전 반장’으로 변신했다. 그가 가장 먼저 찾은 현장은 관악산 등산객들의 만남의 장소로 사랑받는 관악산입구(대학동 산32-1). 이유가 있다. 무른 암석으로 이뤄진 급경사지가 있어 낙석, 붕괴 위험이 큰 데다 요즘 이 주변에 세 개의 교통 기반 시설 공사가 동시에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낙석방지망에 감싸인 비탈면의 상태를 꼼꼼히 살피던 박 구청장은 “요즘 관악산입구 앞에서 신봉터널, 신림선 경전철, 강남순환고속도로 공사가 함께 진행되면서 발파 작업이 계속 이뤄지고 있다”며 “그 충격에 더해 해빙기라 땅이 얼었다 녹으며 낙석이나 붕괴 위험이 우려돼 직접 안전을 챙기러 나왔다”고 설명했다. 박 구청장의 ‘안전 1번지 만들기’는 사고 발생 위험이 높은 해빙기에 더욱 고삐를 죈다. 안전사고의 위험은 언제 어디서나 도사리고 있지만 겨우내 지표면 사이 수분이 얼었다 녹으며 부풀었던 토양이 다시 줄어들면 경사지에 균열, 침하 등이 일어나기 쉽기 때문이다. 이에 구는 다음달 중순까지 지역 내 도로, 산지, 주택가 급경사지 42곳을 포함해 노후주택, 건설현장, 축대·옹벽 등 151곳을 해빙기 취약시설로 집중 관리하며 철저한 점검에 나선다. 이날 박 구청장은 봉천동의 40여년 된 연립주택도 찾아가 주민들의 우려에 귀를 기울였다. “집에 두 달 넘게 물이 새고 잠을 자는데 천장에서 시멘트 덩어리가 갑자기 떨어져 살기가 불안하다”는 주민 서영자(79)씨의 호소에 그는 “전문가들과 함께 꼼꼼히 살펴보고 보수·보강이 필요하면 최대한 신속히 조치해 불편함과 불안함을 덜어 드리겠다”고 약속했다. 관악구의 안전 행정은 구 조직에서도 구현되고 있다. 지난 1월 구 건축과에 건축안전팀을 새로 들여보내고 지난달부터는 건축안전센터를 본격적으로 가동하고 있다. 지난해 서울에서 잇달아 발생한 건축물 붕괴 사고를 예방하려는 조치다. 박 구청장은 “주민들께서 20년 이상 된 건축물이나 공사장의 안전 점검을 신청하면 토목기술사 등 14명으로 구성된 자문단이 바로 현장을 찾아 빠르게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며 “주민들의 안전을 위해 점검 결과는 구 홈페이지에 공개하겠다”고 강조했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함께 가요” 영정 품은 노부부는 마지막 잠에 들었다

    “함께 가요” 영정 품은 노부부는 마지막 잠에 들었다

    2016년 6월 19일 저녁 부산 금정구의 한 빌라. 노부부는 인생의 황혼기를 함께한 낡은 빌라에서 작은 잔치를 열었다. 할머니의 여든 두 번째 생일을 축하하는 자리였다. 근처에 사는 둘째 아들이 고기를 사들고 왔다. 할머니가 호호 불어가며 할아버지(당시 85) 입에 고기를 넣어주었다. 식사를 마칠 때까지 삼킬 수 있는 건 단 두 점이었지만 할아버지는 “맛나다”며 환하게 웃었다. 할아버지는 많이 아팠다. 위암 4기였다. 2011년 이 몹쓸 병이 덮쳤다. 수술을 받고 나은 줄 알았는데 재발했고, 식도와 십이지장까지 번졌다. 의사는 위 전체를 들어내고 식도와 장을 직접 연결해야 하는데, 결과는 장담할 수 없다고 했다. 할아버지는 “그렇게까지 하면서 살고 싶지 않다”며 수술을 거부했다. 두 달 만에 15㎏이 빠졌다. 낮에는 걸을 힘이 없어, 밤에는 배를 찢는 고통에 바닥을 기었다. 64년간 해로한 할머니에게 할아버지는 “이제 그만 헤어질 시간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함께 가요. 당신 없이 혼자 남겨지기 싫어요.” 잔칫상을 물리고 아들마저 돌아간 밤 10시.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안방 침대에 나란히 누웠다. 둘 다 곱게 한복을 차려입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손을 잡고, 각자 영정을 팔에 낀 채, 마지막 잠에 들었다. 노부부는 한날한시에 떠났다. 어느덧 석 달 뒤면 탈상(脫喪)이지만 늙은 아들은 아픈 기억을 털어내지 못했다. 같은 동네에 살며 매일 문안을 왔던 둘째 아들 김영성(59·가명)씨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이미 숨을 거둔 부모를 처음 발견해 신고한 이도 그였다. “처음 위암이 발병했을 때는 바로 수술도 받고, 억지로라도 음식 삼키게 하는 약까지 먹어가며 밥 드셨어요. 암이 재발했다는 말을 하니까 두 분 다 충격 많이 받았죠. 그때 그 표정은 평생 못 잊습니다.” 할아버지의 병은 점점 깊어졌다. 가장 큰 고통은 먹지 못하는 괴로움이었다. 새 모이처럼 잘게 썬 것만 간신히 넘길 수 있었다. 죽이 아니면 씹다가 내뱉는 게 대부분이었다. 협심증까지 덮쳤고, 종종 심근경색 증상이 왔다. 1931년생인 할아버지는 한국전쟁에 참전한 용사였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누구보다 건강하다고 믿었지만, 병에는 장사가 없었다. 결국 스스로 백기를 들었다. 자식에게 가장 하기 어려운 말을 건냈다. “이제 그만 내를 놔도….” 침묵이 흘렀다. “근데 걸리는 건 느그 엄마다. 자꾸 같이 가자고 안 카나…. 만다꼬 그래쌌는지 모르긋다. 니가 쫌 어뜨케 해봐라.” 할아버지는 할머니가 아들 내외와 좀 더 살며 남을 생을 누려주길 바랐다. 두 사람은 전쟁 통에 백년가약을 맺었다. 할아버지는 전쟁 후 공무원으로 일하며 남 부럽지 않은 가정을 꾸렸다. 할머니는 걱정이 많고 쉽게 우울해지는 성격이었다고 한다. 젊은 시절부터 ‘와 이리 쓸쓸하노’를 입에 달고 살았다. 하지만, 듬직한 남편인 할아버지를 의지하며 정성껏 세 아들을 길렀다. “내 나이가 인제 팔십인데 느그 아부지까지 없으면 내가 무슨 낙으로 살겠노. 내 친구 중에 살아 있는 아는 아무도 없다. 이 정도면 천수 누린거다. 그카고 맨날 토하는 이 병, 니는 안 겪어봐서 모른다. 하루종일 뱅기(변기) 붙들고 토악질해봐라. 딱 ‘죽고 싶다’는 생각밖에 읍따.” 할머니도 아팠다. 젊어서부터 메니에르병을 앓았다. 귓속 달팽이관이 부어 갑자기 어지럽고 구토가 이어졌다. 처음엔 단순히 체한 것인 줄 알았다.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게 이상해 병원에 가보니 치료하기 쉽지 않다고 했다. 건강할 때는 그래도 버틸만 했지만, 나이가 드니 병은 마치 달거리처럼 어김없이 찾아왔다. 사흘 내내 지속했고, 후유증으로 열흘은 누워 있어야 했다. 아들은 호스피스 병동에 들어가자고 권했다. 노부부 모두 고개를 저었다. “병원에 있는 건 딱 하루도 싫다. 고마 마음 편히 내 집에 있다 때 되면 갈 꺼니까 걱정하지 말그라. 몬 참아가 모르핀(마약성 진통제) 맞아야 하믄 때가 온 기다.” 노부부는 하나둘 작별할 준비를 했다. 가장 좋아하는 옷 한 벌씩을 꺼내 입고 사진관을 찾았다. 할아버지는 베이지색 남방, 할머니는 분홍색 재킷을 골랐다. 입체(3D) 사진을 찍고서 두 사람의 모습을 20㎝가량의 작은 인형으로 만들었다. 인형 속 두 사람은 죽음을 결심한 사람답지 않게 환하게 웃고 있었다. 적금도 해지해 아들들에게 나눠줬다. 마지막 목욕을 하고 하얀 종이에 글을 적었다.할머니의 생일잔치가 열렸던 그날, 노부부는 이미 마음을 굳혔다. 고기를 들고 온 아들에게 숯불로 구워먹고 싶다며 번개탄을 사오라고 했다. 아들이 자리에서 일어난 건 오후 8시쯤이었다. “제가 종종 어무이 곁에서 자거든요. 얼마나 더 사실지 모르니까 조금이라도 품을 더 느껴보고 싶어가…그날도 그랄라고 했는데, 자꾸 집에 가라고 하더라고요.” 노부부가 숨을 거둔 건 아들이 떠나고 2시간쯤 뒤로 추정된다. 지난 2년간 조금씩 모아왔던 수면제를 함께 입에 넣었다. 고기를 굽다 남은 번개탄에 불을 붙였다. 메스꺼운 연기가 시커멓게 방 안을 가득 메웠다. 고통 없이 떠나는 방법으로 번개탄을 선택했지만, 안타깝게도 그렇지 못한 듯했다. 몸부림친 흔적이 짙게 남아있었다. 자식들에게 부담 주지 않고 싶었던 노부부 바람과 달리 아들은 곤욕을 치렀다. 부모의 자살을 방조한 혐의로 기소됐다. 번개탄을 사다 놓은 게 문제가 됐다. 당시 아들은 집에 가지 않고 노부부 집 옥상에 있는 의자에 3시간 반가량 앉아 있었다. 오후 11시 30분쯤 노부부가 잠이 들었을 것으로 생각하고 조용히 함께 자려는 생각으로 내려갔다가 참사의 현장을 발견했다. 검찰은 이게 아들이 노부부의 자살을 예견했던 정황증거라고 판단했다. 아들은 “평소에도 자주 옥상에 있다가 내려갔고, 부모님이 이렇게 돌아가실지는 상상도 못했어요”라고 항변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심 재판부는 아들의 유죄를 인정하고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법적 공방에 지친 아들은 항소하지 않았고, 검찰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아 그대로 확정됐다. 모든 일이 마무리 되고서 아들은 아내와 함께 노부부의 집으로 이사했다. 노부부가 숨을 거둔 방을 침실로 사용한다. “저한테는 이 집이 슬프면서도 추억이 어린 장소예요. 맨날 이 문을 열면 두 분이 웃는 얼굴로 앉아 계셨는데…. 텅 빈 방을 보고 있으면 제가 꿈을 꾸는 것 같아요. ‘내한테 아버지와 어머니가 계셨던가…’ 이런 생각도 들고요.” 안락사가 허용됐다면 노부부는 좀 더 편히 떠날 수 있었을까. 우리나라에선 지난해 2월 연명의료결정법(일명 존엄사법)이 시행됐다. 임종이 임박한 환자가 원할 경우 심폐소생술이나 인공호흡기 등 연명의료를 중단하고 죽음을 맞을 수 있게 한 것이다. 환자가 의식이 없을 땐 가족 동의로도 가능하다. 하지만 환자의 죽음을 앞당기기 위해 영양 공급을 중단하는 ‘소극적 안락사’나 치명적인 약을 주입하는 ‘적극적 안락사’는 여전히 허용되지 않는다. 노부부가 세상을 떠났던 2016년엔 존엄사법도 시행되지 않았던 때였고, 결국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했다. 아들은 우리 사회가 안락사에 대해 심도 있는 논의를 해야 할 때라고 했다. “제가 (부모 죽음을 바랐던) 패륜아처럼 보입니까? 제 심정은 당사자가 아니면 절대로 알 수 없습니다. 그때는 ‘더 사셔야 한다’고 말하는 거 자체가 두 분께 또 다른 괴로움을 주는 거였어요. ‘죽기 전까지 고통을 더 참으라’는 말과 같은 거니까. 죽음을 보는 사회 인식도 이제 많이 바뀌었잖아요. 공포나 두려움, 소멸 이런 게 아니라 새로운 시작으로 보기도 하잖아요. 저는 몹쓸 병에 걸린다면 주저 없이 아버지와 같은 길을 선택할 겁니다. 본인의 죽음을 과연 본인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인지, 공론의 장이 열렸으면 합니다.” 부산 임주형 기자 hermes@seoul.co.kr 부산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으로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면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 전화하면 24시간 상담을 받을 수 있다.
  • [한 컷 세상] 생명을 살리는 기적

    [한 컷 세상] 생명을 살리는 기적

    대한적십자사 서울남부혈액원 공급팀. 혈액형과 각종 바이러스 감염검사를 위한 검체정리 작업은 무척 엄격하고 까다롭다. 병원에서 새 주인을 만나기 위해 ‘예쁘고 건강한 피’로 뽑힌 ‘생명의 불씨’가 만들어 낼 수 있는 기적은 무한하므로 한층 소중한 작업이다 이종원 선임기자 jongwon@seoul.co.kr
  • 암 재발한 네 아이 엄마, 병원 갈 때마다 패션쇼하는 사연

    암 재발한 네 아이 엄마, 병원 갈 때마다 패션쇼하는 사연

    리사 프라이(39)는 요즘 병원에 갈 때마다 마치 파티라도 가듯 머리부터 발끝까지 한껏 치장한다. 의료진은 그녀를 ‘가장 매력적인 환자’라고 부르며 늘 반갑게 맞이하고 있다. 지난 4일(현지시간) 데일리메일은 범상치 않은 차림으로 병원을 찾는 잉글랜드 출신 여성의 이야기를 전했다. 리사는 서른 한살이던 지난 2011년 유방암 진단을 받았다. 셋째 아들 우디에게 모유를 수유하던 중 왼쪽 가슴에서 발견한 혹이 암 덩어리였다. 리사는 “그때를 떠올리면 끔찍하다. 정말 많이 아팠고 몰골은 형편없었다. 머리카락은 다 빠지고 양쪽 가슴을 떼어냈다. 화학요법 2년, 약물 복용 6년을 거쳤다”고 설명했다. 12차례의 항암치료와 방사선치료, 종양 절제술을 거친 그녀는 다행히 건강을 회복했고 헬스 트레이너와 군인으로서의 새 삶을 시작했다.활동적인 일을 하며 건강에 자신이 붙은 리사는 임신 생각이 간절해졌다. 찰리(14), 말리(12), 우디(10) 세 아들을 낳은 그녀는 넷째 아이를 원했고 남편 웨인 프라이와 함께 병원을 찾았다. 그러나 그녀의 간절한 바람은 벽에 부딪혔다. 의사는 항암치료 때문에 리사의 난자가 손상돼 임신은커녕 서른다섯에 폐경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리사는 “화학요법이 내 난소에 영향을 미쳤다. 아이를 낳지 못할 거라는 말에 실망이 컸다”고 말했다.그렇게 임신을 포기하고 다시 군인의 삶으로 돌아간 리사는 훈련 중 심한 메스꺼움을 느꼈다. 소총을 들고 숲을 기어 다니고 별 아래에서 잠을 자는 군사 훈련을 받는 동안 급격한 피로감이 엄습했다. 암이 재발한 건 아닌가 하는 걱정에 사로잡힌 리사는 병원을 찾았고 뜻밖의 이야기를 들었다. 의사는 그녀에게 임신 10주라고 확인해주었고 리사는 농담 아니냐며 끝까지 믿지 못했다. 그녀는 “불임 진단을 받았고 폐경이 될 거라고 했는데 갑자기 임신이 돼 믿을 수가 없었다”고 당시 심경을 밝혔다.  꿈에 그리던 넷째 아기를 갖게 된 리사는 임신 기간 내내 암이 재발해 아이를 잃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했다. 그녀는 “3주에 한 번씩 아기가 잘 있는지 확인했다. 나에게 찾아온 작은 기적이 사라질까 두려웠다”고 말했다. 두려움이 너무 컸던 탓일까. 우려는 현실이 됐고 임신 39주 차에 그녀는 병원에서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출산을 2주 앞두고 암이 재발한 것. 임신 35주 차에 가슴에서 혹이 지방 덩어리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그녀의 바람은 무너지고 말았다. 암은 가슴에서 림프절, 흉골까지 전이됐고 의사는 그녀에게 치료할 수 없다는 소식을 전했다.  작은 기적 뒤에 찾아온 청천벽력 같은 소식에 리사는 좌절했다. 2주 후 뱃속의 아기와 만날 생각에 부풀어 있던 그녀는 결국 암 재발 진단 3일 후인 2018년 3월 25일 넷째 아들 재거를 유도 분만으로 출산했다. 이렇게 아기는 천신만고 끝에 무사히 태어났으나 남편 웨인은 죽음을 앞둔 부인 리사를 보며 오열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리사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녀에게는 갓 태어난 재거를 포함해 네 명의 아들과 남편이 있었다. 리사는 암 진행 속도를 늦춰 생존 기간을 연장하기 위해 화학요법에 돌입했다. 그리고 병원에 갈 때마다 가장 특별한 옷을 차려입고 치료에 임하고 있다. 리사는 “화학요법을 받을 때마다 내 생명이 꺼져가는 느낌이 들어 싫었다. 그래서 항상 좋은 곳에 가는 것처럼 옷을 차려입는다. 화장하고 멋진 옷을 입고 하이힐을 신으면 나는 아직 살아있다는 느낌이 든다. 삶을 절대 포기할 수 없다는 걸 스스로 깨우친다”고 설명했다.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절대 죽을 수 없다는 그녀는 “한껏 꾸미고 나면 기분도 좋아지고 건강에도 확실히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아이들에게 암 때문에 무너지는 내 모습을 보여줄 수 없다. 아이들이 상처받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며 암이 나를 정의하도록 하지 않을 것”이라고 의지를 다졌다. 이어 “가공식품과 설탕을 끊고 매일 가장 좋은 옷을 입어라. 특별한 날은 없다. 특별한 날을 위해 아껴두지 말라”고 당부했다. 항암치료 때마다 아름다운 모습으로 등장하는 리사는 이제 병원에서 ‘가장 매력적인 환자’라 불리는 유명 인사가 됐다. 사람들은 리사를 보며 용기를 얻는다며 덩달아 투병 의지를 다지고 있다.  권윤희 기자 heeya@seoul.co.kr
  • 신고받고 출항까지 7분…물 위 화재 진압하는 ‘바다의 소방관’

    신고받고 출항까지 7분…물 위 화재 진압하는 ‘바다의 소방관’

    사방이 물뿐인 바다라고 해서 화재가 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대형 선박에서 화재가 발생하면 탈출할 길이 없어 큰 인명 사고로 이어지기도 한다. 지난해 5월 21일 인천항에 정박하던 파나마 자동차 운반선 오토배너호 화재가 대표적이다. 차량 2500대를 실은 무게가 5만t에 달하는 대형 선박에 불이 나자 67시간이 지난 24일에야 진화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이때 가장 먼저 출동해 화재 진압에 나선 건 인천 중부소방서 소방정대였다. 서울신문은 5일 이곳에서 근무하는 이윤상(38) 지방소방교와 박영신(36) 지방소방교를 만나 경력직으로만 뽑는 소방정대의 모든 것을 살펴봤다.●최악을 위해 존재하는 소방정대 이들은 육상에서만큼 자주 일어나지는 않지만 한 번 발생하면 대형 참사로 번지는 해상 화재에 대비해 늘 대기한다. 소방정대에서 각각 항해사와 기관사로 일하는 이 소방교와 박 소방교도 마찬가지다. 출동 사이렌이 울리자 곧바로 출동 지령서를 뽑아들고 바다로 나설 준비를 한다. 화재가 발생한 장소를 확인하고 무전기가 들어 있는 출동 가방을 다급히 챙겨 배로 뛰어간다. 항해사인 이 소방교는 조타실로 향한다. 박 소방교는 기관실로 내려가 엔진을 켜고 배를 움직일 준비를 한다. 소방정 한 척에 탑승하는 대원은 모두 5명. 각자의 역할에 따라 발빠르게 움직인다. 해상교통관제시스템(VTS)에 출항보고를 마치고 화재 진압을 위해 떠날 때까지 걸린 시간은 채 7분이 되지 않는다. 수년간 발을 맞춰 ‘시간누수’를 최소화한 덕분이다. 이들에게 부담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 소방교는 “기계 오작동이 날 수도 있어 그 부분에 특히 신경을 쓴다”며 “이 때문에 늘 신경이 곤두서 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박 소방교는 “배를 운항하면서 인원이 부족하다고 느낀다”며 “항해사와 기관사가 방수포를 조작하면서 항해도 해야 한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체력은 필수… 바다 화재는 우리에게 맡겨라 행정안전부령 제2호 ‘소방력 기준에 관한 규칙’에 따르면 정부는 소방기관을 소방서와 119안전센터, 119구조대, 119구급대, 119구조구급센터, 항공구조구급대, 소방정대, 119지역대로 구분한다. 이 가운데 소방정대는 선박의 화재, 해상에서 구급·구조를 하는 소방의 공식 기관이다. 일반인에게는 생소하지만 소방정대 역시 일반 소방서처럼 화재 구조와 구급 등 소방의 주요 임무를 똑같이 수행한다. 선박 화재가 발생했을 때 바다로 나가 화재를 진압하고 해양경찰이 출동 요청을 하면 오염 방제, 해상 대테러 훈련 등을 지원한다. 소방정대는 기관사와 항해사로 이뤄져 있다. 이 직렬은 경력 채용으로 모집한다. 소방 항해사와 기관사는 각각 항해사·기관사(1급~5급) 자격증을 취득한 뒤 승무 경력이 2년 이상이어야 지원할 수 있다. 시험은 필기와 체력, 신체검사, 면접시험 등 4단계로 돼 있다. 필기시험은 국어, 영어, 소방학개론 세 과목을 치른다. 경력 채용만 하는 이 직렬의 특성상 이 소방교와 박 소방교도 다른 직종에서 근무한 이력이 있다. 이 소방교는 해운회사에서 항해사로 4년, 선박 검사원으로 6년을 근무했다. 박 소방교는 한 수출회사에서 8년간 기관사로 일했다. 이 소방교는 국어 과목이 시험의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고 털어놨다. 그는 “공무원 시험을 준비한 적이 없다 보니 국어 과목이 많이 어려웠다”며 “아내가 인터넷 강의를 들어보라고 권유해 결과적으로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시간과의 싸움’도 이 소방교가 견뎌야 할 적이었다. 그는 “수험생활 당시 선박 검사원 일을 하고 있었다. 늘 밤 9시가 넘어 업무가 끝나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기 어려웠다”고 덧붙였다. 박 소방교는 체력시험이 가장 큰 고비였다고 한다. 그는 “민간기업에서 기관사로 일했는데 직업 특성상 배에서 내리면 휴가 기간이 보장돼 공부할 시간은 충분했다. 하지만 배를 타면 운동을 거의 할 수 없어 고생이 심했다”고 토로했다. 그는 부족한 체력을 사설학원을 통해 보완해 합격의 기쁨을 맛볼 수 있었다고 웃었다.●항해사·기관사지만 민간과 업무 차이 커 소방의 항해사와 기관사는 일반적인 항해사·기관사와 비교해 업무에 큰 차이가 있다. 항해사인 이 소방교는 “일반적으로 배를 부두에서 떼어내는 접안·이양 작업을 도선사가 하는데, 소방정대에서는 항해사가 그런 업무까지 다 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관사인 박 소방교는 “화재와 구급은 인명과 관련이 있기 때문에 시동이 걸리지 않을 때 부담이 훨씬 크다. 발전기가 가동이 안 되면 애타게 기다리는 사람들의 기대를 저버릴 수도 있다”고 밝혔다. 민간기업 기관사와 항해사는 대체로 고액 연봉을 받지만 전 세계를 돌아다녀야 해 집에 자주 들르기 어렵다. 하지만 소방에서 항해사는 상대적으로 급여가 적은 대신 가족과 함께할 시간이 많다. 이 소방교는 “선박 검사원으로 일하다가 지방으로 발령이 났다. 아기가 갓 돌이 지났는데 갑자기 주말 부부를 하게 돼 아내가 무척 힘들어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공무원이 돼 소방정대에서 일하면서 가족과 늘 함께할 수 있어 만족스럽다”고 덧붙였다. 화재·구급 사고가 발생했을 때 1분 1초가 급하기는 바다에서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5월 발생한 오토배너호 화재 진압에 참가한 박 소방교는 “5일간 진압 작전에 참여했다. 당시 대형 사고여서 해경과 육상 소방이 함께 출동했는데, 워낙 배가 커 두려움이 컸다”며 “배의 길이가 300m나 됐지만 소방정은 100t 규모에 불과했다. 불을 끄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고 아쉬워했다. 이 소방교는 익수자(물에 빠진 사람)가 발생했을 때 안타까움이 크다고 전했다. 그는 “지난해 인천대교에서 물에 빠진 이를 구하라는 출동지령을 받고 나섰다. 서치라이트로 바다를 조사한 끝에 어렵게 발견했다”며 “조금 더 일찍 출동했더라면 생명을 구할 수도 있었다는 생각이 들어 가슴이 아팠다”고 말했다. 열악한 장비와 인력에 대한 아쉬움도 토로했다. 이 소방교는 “지난해 긴급구조 통제 훈련을 하던 중 기관실 바닥에 구멍이 생겨 물이 새는 일이 있었다”며 “대원 한 명이 내려가 손가락으로 막은 뒤 임시방편으로 잠수부를 긴급 수배해 수중 접착제로 막았다”고 말했다. 박 소방교는 “인원 보충이 필요하다. 소방정대가 단독 출동이다보니 지원해줄 수 있는 자원이 적어 어려움이 많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민간 항해사와 기관사를 그만두고 다른 사람을 위해 봉사할 수 있는 소방관이 된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박 소방교는 “함께하는 대원이 가장 큰 자산”이라며 “아내도 모르는 사실을 대원이 알 수 있을 정도여서 또 다른 가족을 만난 것처럼 좋다”고 미소를 지었다. 이 소방교는 “배를 내려서 이직을 고민하는 사람에게 소방 항해사, 기관사를 추천한다”며 “아주 좋은 직업이고 도전해볼 만한 일이라고 생각한다”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신형철 기자 hsdori@seoul.co.kr
  • 뻐꾸기 자식 키우는 뱁새의 모정… 어머니는 자연이다

    뻐꾸기 자식 키우는 뱁새의 모정… 어머니는 자연이다

    “저희 형제들은 해마다 할아버지 산소로 해맞이를 가요. 산소에 갔다가 뻐꾸기 소리를 들으니 어릴 때 참새랑 오목눈이 집 뒤지던 생각이 나더라고요. 그렇게 해서 뻐꾸기를 키워 주는 오목눈이 입장에서 쓰는 이야기 하나, 뻐꾸기가 아프리카까지 날아갔다 오는 이야기 하나를 생각하게 됐습니다.” 동인문학상, 황순원작가상 등을 수상한 이순원(62) 작가가 장편소설 ‘오목눈이의 사랑’(해냄)을 출간했다. 흔히 ‘뱁새’라고 불리는, 얄미운 뻐꾸기가 낳은 알을 품어 성심성의껏 기르는 그 새에 대한 이야기다. 4일 서울 중구의 한 식당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작가는 “지난해 회전근개파열 어깨 수술로 팔도 못 뻗는 와중에도 통증 속에서 기쁘게 썼다”며 빙긋 웃었다. 작가는 고향인 강원 강릉 대관령의 할아버지 산소에서 들은 뻐꾸기 울음소리로 시작해 이 새가 아프리카에서 1만 4000㎞를 날아와 오목눈이 둥지에 알을 맡긴다는 사실, 지구를 반 바퀴 가로지르는 기나긴 여정 등에 착안해 작품을 구상했다. 자신보다 몇 배 큰 뻐꾸기의 ‘어미’로 새 생명의 탄생에 일조하는 오목눈이의 눈물겨운 모정과 모험을 작가 특유의 감성적인 문장으로 담아냈다. 남의 둥지에 알을 낳고, 자기보다 작은 오목눈이 어미가 날라다 주는 먹이를 염치도 없이 먹는 ‘얄미운 새’가 우리가 가진 뻐꾸기에 대한 통념이다. 작가는 이를 어떻게 봤을까. “뻐꾸기가 아프리카에서 다시 돌아오는 것도 자길 키워 준 오목눈이의 모습을 기억해서래요. 뻐꾸기와 어미새 사이에 자라는 동안 가졌던 정이 있지 않을까, 뻐꾸기의 DNA 안에는 자기를 키워 준 새에 대한 좋은 느낌을 갖고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작가는 책 끝에 “내가 본 것은 그 안에 깃들어져 있는 자연의 지극한 모성”이라며 “자연이 어머니고, 어머니가 자연이다”라고 썼다. 소설은 애니메이션·게임 전문 제작사인 드림리퍼블릭에서 제작을 맡아 애니메이션 영화로 선보일 예정이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남편 앗아간 건 메르스가 아니라 정부의 책임회피였다”

    “남편 앗아간 건 메르스가 아니라 정부의 책임회피였다”

    “엄마, 아빠 이야기가 왜 책에 나왔어?” “아빠가 훌륭한 사람이라서 그래.” 지난해 11월 일곱 살 아들은 납골당에 잠들어 있는 아빠 곁에 두꺼운 소설책 한 권을 가져다 놓았다. 아들은 네 살 때 떠나간 아빠가 ‘하늘나라’라는 곳으로 갔다는 걸 어렴풋이 안다. 하지만 왜 아빠를 만나러 갈 수 없는지는 아직 알지 못한다. ‘김석주’. 2015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종식’과 동시에 세상에서 지워져버린 아빠는 새 이름으로 다시 세상에 호명됐다. 김탁환 작가가 지난해 11월 발표한 소설 ‘살아야겠다’(북스피어)를 통해서다. 메르스라는 병마와, 정부의 무능과 싸우다 쓰러져 간 이들을 기리는 소설에서 ‘김석주’의 이야기는 감히 헤아리기조차 힘든 무게감으로 읽는 이들의 가슴을 후벼 판다. 172일 동안 격리된 채 사투를 벌이다 눈을 감은 마지막 사망자. ‘메르스 80번 환자’라 불렸던 그의 진짜 이름은 ‘김병훈’(사망 당시 35세)이다. 2015년 메르스 사태 당시의 감염자와 유족들은 다른 여느 재난 피해자와는 달리 자신들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 숨어버렸다. 구멍 난 방역체계의 피해자임에도 ‘바이러스 덩어리’라는 낙인이 찍힌 탓이다. 김씨의 아내 배윤희(40)씨는 지금까지 목소리를 내고 있는 몇 안 되는 유족이다. “망망대해에 돌멩이라도 던지는 심정으로” 여러 차례 언론 인터뷰에 응했고, 메르스 피해자와 유족을 수소문하던 김탁환 작가의 손을 잡았다. 소설이 출간된 뒤 반향이랄 게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고 한다. 하지만 “내가 죽고 없어져도 이 이야기를 기록을 남기고 싶었다”고 했다. “제 남편은 메르스에 감염됐다는 이유로 가해자 취급을 받았습니다. 아파서, 집에서 5분 거리에 있는 우리나라 최고의 병원을 찾았을 뿐인데….” 배씨는 메르스 감염자들이 ‘전파자’로 매도당했던 기억에 가슴을 쳤다. 김씨가 폐렴 증상으로 삼성서울병원을 찾았던 2015년 5월 27일. 응급실에 머무르던 사흘 동안 ‘메르스 슈퍼 전파자’라 불렸던 ‘14번 환자’도 같은 곳에 있었다. 14번 환자는 국내 첫 메르스 환자가 발생한 평택성모병원에서 감염됐지만, ‘2m, 1시간’이라는 지침상의 밀접접촉자 기준에 해당하지 않아 격리되지 않았다. 배씨는 14번 환자를 탓하지 않았다. “‘슈퍼 전파자’라 손가락질을 받으셨어요. 그분이 받았을 상처가 어느 정도였을지….”김씨는 6월 7일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았다. 배씨는 “폐렴 증상이 계속돼 병원에 메르스 검사를 요청했지만 1주일이 지나서야 검사가 이뤄졌다”고 말했다. 김씨에게는 1년 전 완치됐던 림프종까지도 다시 찾아왔다. 삼성서울병원에 1인실에서 메르스 대증(對症)치료를 받다 7월 3일 서울대병원 음압병실로 옮겨진 뒤 림프종마저도 확진 판정을 받았다. 항암 치료를 받으면 면역력이 떨어져 메르스가 악화되고, 당장 메르스부터 잡으려니 항암 치료가 미뤄지는 상황이었다. 김씨의 투병 과정은 172일이라는 ‘세계 최장 투병기간’뿐 아니라 양성과 음성을 여러 차례 오갔다는 점에서 특수한 사례였다. 질병관리본부는 10월 1일 김씨가 PCR(환자의 침이나 가래 등에서 극소량의 유전자를 검출, 증폭시켜 바이러스를 검사하는 방법) 검사에서 ‘24시간 간격으로 2회 연속 음성’이 나와 최종 음성으로 판정돼 퇴원했다고 밝혔다. 배씨는 “8월에 이미 2회 연속 음성이 나와 격리해제가 이뤄졌어야 했지만 정부와 병원의 결정을 기다리는 사이 다시 양성이 나왔다”고 설명했다. 김씨는 질본과 서울대병원으로부터 더이상 PCR 검사를 하지 않을 것이라는 설명을 들었다. 그러나 9일 만에 고열로 걷기 힘든 상태가 돼 삼성서울병원을 다시 찾았고, 삼성서울병원의 PCR 검사에서 다시 양성이 나와 서울대병원 음압병실에 격리됐다. 김씨가 퇴원 뒤 다시 양성 판정을 받았을 때 질본은 “감염 또는 재발이 아닌, 환자 체내에 잠복해 있던 극소량의 바이러스 유전자가 검출된 것”이라고 밝혔다. 서울대병원 의료진은 “감염력은 0%에 가깝다”고 설명했다. 림프종으로 면역력이 약해진 상황에서 사실상 죽은 바이러스 조각이 남아 있었다는 이야기였다. 김씨가 10월 초 퇴원해 집에 머무르는 동안 배씨와 아들을 포함해 김씨와 접촉했던 사람들 129명 어느 누구에게서도 증상이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나 정부의 방침은 모호했다. ‘24시간 간격으로 2회 연속 음성’이라는 기준을 여러 차례 충족했는 데도 정부는 김씨에 대한 격리를 해제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김씨가 음압병실 안에서 메르스 치료를 받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이에 대해 질본은 11월 16일 해명자료를 통해 “10월 초 음성 판정을 받았을 때와 동일하게 감염력은 여전히 낮다”면서도 “양성과 음성을 반복하고 있고, 세계보건기구(WHO)가 환자에 대한 감염관리 철저를 권고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질본이 근거로 든 한국·WHO 간 메르스 상황점검회의(10월 26일 개최)에서 WHO는 김씨에 대해 “감염력이 현저히 낮다(extremely low)”고 해석하며 메르스의 “전파 가능성 해소(the end of transmission)”라는 표현이 가능하다고 판단했다(질본 10월 29일 보도자료). 정부 스스로 앞뒤 안 맞는 해명을 내놓은 셈이다.배씨는 “남편은 음압병실에 있다는 이유로 림프종 치료를 제한적으로 받을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했다. 질본은 당시 “받아야 할 항암치료를 못 받고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해명했지만, 배씨는 “검사실로 이동해 받아야 하는 MRI와 CT 검사, 동종 조혈모세포 이식을 위한 유전자 검사, 백혈구 수혈을 위해 주사를 꽂는 일 등을 가족들이 항의하고 언론에 제보해서야 이뤄진 적이 많았다”면서 “병원은 환자를 위해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만에 하나 남아 있을지 모를 감염력이라도 차단하는 게 정부의 역할일 것이라고 배씨는 믿었다. 다만 림프종 치료가 한시라도 급했기에 언제 격리가 해제될지에 대한 확답이 절실했다. 배씨는 정부에 “남편의 특수한 상황을 고려한 격리 기준을 마련해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병원은 “결정권은 정부에 있다”고 했고, 질본은 연락조차 닿지 않았다. 배씨가 계속해서 항의 메시지를 보냈던 질본의 한 관계자는 배씨의 전화번호를 수신 차단했다. 골수이식에 희망을 걸었던 김씨의 건강은 하루가 다르게 악화됐다. 급기야 병원에서 연명치료 중단을 제안해 가족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았다. 배씨가 격리 해제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하려고 했던 11월 25일 새벽 3시 6분 김씨는 결국 눈을 감았다. 사인은 메르스가 아닌 악성 림프종이었다. 김씨는 족쇄 같았던 소변줄과 콧줄을 치렁치렁 단 채로 관에 담겼다. 차가운 비닐팩이 김씨의 몸을 이중으로 감쌌다. 관에 탕탕 못을 박는 소리가 마치 “다시는 이 땅에 발을 내딛지 말라”는 마지막 경고처럼 배씨의 가슴에 박혔다. 관이 음압병실을 나와 화장터로 향하는 길에 노란 줄이 쳐졌다. “몇 미터 밖으로 떨어지라”며 밀치는 통에 배씨는 남편의 관을 따뜻하게 안아주지도 못했다. “이게 남편과의 이별 방식이어야 했을까요. 병원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배려였나요.” 배씨가 서울대병원의 차가운 바닥 위에서 절규하던 그날 아침, 포털사이트는 “메르스 제로” “메르스 종식” 이라는 헤드라인으로 뒤덮였다. 배씨는 보건복지부와 질본으로부터 위로의 전화나 문자메시지 한 통조차 받지 못했다. 그러면서도 정부는 언론에 배포한 보도자료에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며 애도의 뜻을 표했다”고 설명했다. “정부가 공중 보건과 환자 개인 사이에서 최선의 노력을 한 것이었다면 마음이 덜 아팠을 겁니다.” 감염력이 사실상 0%였고 더이상 메르스 치료를 받지도 않는 김씨를 계속 음압병실에 가둬놓았던 건 정부와 병원의 책임 회피가 아니었냐고 배씨는 되묻고 있다. 배씨는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도움으로 정부와 서울대병원, 삼성서울병원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김씨의 생명을 앗아간 게 메르스가 아닌 정부와 병원의 무능과 무책임이 아니었는지를 따져 물으려 한다. 소송은 아직 1심도 열리지 않았다. 소송의 첫 단추인 의료감정을 해줄 기관을 찾는 데서부터 난관이었다. “이기기 힘들 것”이라는 회의 섞인 목소리도 들린다. “남편의 죽음에 애도가 아닌 안도를 한 세상과도 싸우고 있는 것 같다”고 배씨는 말했다.정부로부터 사과를 받는 게 끝이 아니다. 배씨는 ‘감염병 환자의 인권’에 대한 목소리도 낼 생각이다. 그렇게도 그리워하던 바깥 공기 한 번 쐬지 못한 채 눈을 감아야 했던 남편의 아픔을 달래기 위해서다. “남편이 음압병실에 갇혀있는 동안 그리워한 건 특별한 게 아니었습니다. 자동차들이 지나다니는 소음, 사람들의 말소리를 듣고 싶어했어요.” 김씨는 음압병실에 갇혀 있는 동안 아들의 얼굴을 한 번도 직접 보지 못했다. 24시간 돌아가는 카메라 앞에서 침대 위에 누운 채 용변을 해결해야 했다. 극심한 우울증이 김씨의 몸과 마음을 파고드는 동안 어느 누구도 살펴보지 않았다고 배씨는 분통을 터뜨렸다. “남편이 죽은 뒤에도 소변줄과 콧줄을 빼내주지 못한 게 가슴에 사무친다”는 배씨는 대학원에 진학해 환자의 인권에 대한 고민을 박사논문으로 풀어낼 계획이다. 비행기를 타고, 로켓을 타고 아빠를 만나러 가겠다던 아들은 이제 떨어진 속눈썹을 후 불며 소원을 빈다. “아빠를 돌려달라고 빌었는데 이뤄지지 않아… 엄마, 다음엔 우리 같이 소원 빌자.”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아들이 언젠가 장편소설 한 권을 읽을 나이가 될 때까지 배씨는 해야 할 일이 많다. “남편의 이야기가 세상에서 잊혀지고 없었던 일이 되는 게 제일 두렵습니다. 불씨가 꺼지지 않게 계속 목소리를 낼 겁니다. 이렇게라도 사랑했던 남편을 추모하려고 합니다.” 김소라 기자 sora@seoul.co.kr
  • 美검찰 비무장 흑인 오인 사격한 세크라멘토 경찰관에 “정당방위였다”

    美검찰 비무장 흑인 오인 사격한 세크라멘토 경찰관에 “정당방위였다”

    지난해 비무장 상태인 아프리카계 미국인을 오인 사격해 숨지게 했던 두 명의 미국 경찰에 대해 검찰이 정당방위를 인정해 논란이 일고 있다.워싱턴포스트는 2일(현지시간) 미 캘리포니아주 새크라멘토 지방검찰청 마리 슈버트 검사가 22살의 스테폰 클락이 무장 상태로 자동차 절도범으로 오인해 20발의 총을 쏴 숨지게 한 경찰관 테런스 메르카달과 자레드 로비넷에 대해 “합법적으로 무력을 사용했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당시 두 경찰은 차 절도 사건이 일어났다는 911 신고를 받고 출동했다가 자신의 할머니 집 뒤뜰에 있는 클락을 발견한 뒤 ‘손을 보여줘’라고 외치다 클락의 손에서 하얀 불빛이 새어 나오는 것을 보고 총으로 오인해 격발했다. 경찰이 쏜 20발 중 7발을 맞은 클락은 결국 사망했다. 클락이 손에 들고 있던 것은 총이 아닌 플래시를 켠 아이폰으로 드러났다. 클락의 가족들이 따로 진행한 부검 결과 클락은 등에 6발의 총을 맞았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슈버트 검사는 “지난해 3월 이후 클락의 가족과 지역사회가 엄청난 슬픔과 분노를 느끼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면서 이날 아침에 만난 클락의 어머니는 명백하게 슬퍼하고 있었다고 운을 뗐다. 그는 이어 “클락의 죽음이 비극이라는 사실에는 누구도 반대할 수 없을 것”이라면서 “지역 검사로서 나의 일은 이번 총격에 대한 공정하고 독립적이며 완전한 조사였다”고 전했다. 그러나 슈버트 검사는 “수개월에 걸친 조사 끝에 우리가 내린 결론은 두 경찰관이 치명적인 무력을 사용한 건 정당방위였다는 사실”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우리는 그들(경찰)이 종종 분초를 다두는 결정을 하도록 압박을 받고 있으며, 불확실하고 갑작스럽게 발생하는 상황 속에서 긴장 상태에 놓여있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면서 “핵심은 ‘두 사람이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정직하고 합리적인 믿음을 갖고 있었는가‘이다, 이번 사건에서 두 경찰은 그런 믿음을 갖고 있었다”고 결론지었다. 슈버트 검사가 이러한 발표는 내놓자 클락의 어머니는 “이것은 정의를 위한 싸움의 시작에 불과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녀는 “우리는 몹시 화가 났다. 그들은 내 아들을 처형했다. 그것도 내 어머니의 뒷뜰에서 그랬다. 이건 정당하지 않다. 우리는 이러한 결정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우리는 지난 1년간 인내심을 갖고 슈버트 검사가 올바른 일을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줬지만 그는 우리를 실망시켰다”고 말했다. 지난 1월 클락의 가족은 새크라멘토시를 상대로 2000만 달러의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클락의 사망은 캘리포니아를 넘어 미 전역에 경찰의 무력 진압을 반대하는 시위를 촉발시켰다. 시위 현장에서는 민권단체들이 퍼거슨 사태 당시 구호인 ‘흑인의 생명도 중요하다’(Black lives Matter) 등을 본떠 ‘휴대전화를 들었으니, 쏘지 마”(Cells Up, Don‘t Shoot!)를 외쳤다. 이는 2014년 미주리주 퍼거슨에서 일어난 흑인 소요 사태 이후 최대 규모의 시위였다. 민나리 기자 mnin1082@seoul.co.kr
  • ‘9월 출산 예정’ 김태희, “남편 주연 ‘엄복동’ VIP 시사회 불참”

    ‘9월 출산 예정’ 김태희, “남편 주연 ‘엄복동’ VIP 시사회 불참”

    ‘9월 출산 예정’ 김태희가 남편인 정지훈(비) 주연 영화 ‘자전차왕 엄복동’ VIP 시사회에 함께 하지 못한다. 김태희 측 관계자는 26일 “홀몸이 아닌 상황이라 안정을 취하기로 했다”며 시사회 불참 소식을 알렸다. 정지훈과 김태희 부부가 둘째를 가졌다는 소식이 이날 알려졌다. 김태희 측은 “지난 2017년 10월 첫째 딸을 품에 안은 뒤 또 한 번 축복처럼 찾아온 만남에 김태희 씨는 현재 설레고 감사한 마음으로 안정을 취하며 태교에 임하고 있다”며 “항상 많은 사랑과 따뜻한 시선으로 지켜봐 주시는 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리며 새 생명이 찾아왔음을 축복해 주시고 함께 축하해 주시면 감사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정지훈 김태희 부부는 지난 2017년 1월 결혼, 슬하에 딸 하나를 두고 있다. 사진 = 서울신문DB 연예부 seoulen@seoul.co.kr
  • ‘9월 출산 예정’ 김태희, 따뜻한 봄날 기쁜 소식 전해..[전문]

    ‘9월 출산 예정’ 김태희, 따뜻한 봄날 기쁜 소식 전해..[전문]

    김태희 9월 출산 예정 소식이 전해졌다. 26일 김태희의 소속사 비에스컴퍼니는 “김태희가 최근 둘째를 임신, 오는 9월 출산 예정으로 두 아이의 엄마가 된다”며 “현재 설레고 감사한 마음으로 안정을 취하며 태교에 임하고 있다”고 둘째 임신 소식을 전했다. 앞서 지난 2017년 10월 첫째 딸을 품에 안은 김태희는 1년 4개월여 만에 둘째를 안게 된다. 한편 비와 김태희는 지난 2017년 1월 5년 열애 끝에 백년해로를 약속했다. -다음은 비에스컴퍼니 측 공식 입장 전문 안녕하세요. 배우 김태희 씨의 소속사 비에스컴퍼니 입니다. 봄이 성큼 다가온 것 같은 포근한 날, 김태희 씨에게 찾아온 따뜻하고 기쁜 소식이 있어서 여러분께 전하려 합니다. 김태희 씨가 최근 둘째를 임신, 오는 9월 출산 예정으로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습니다. 지난 2017년 10월 첫째 딸을 품에 안은 뒤 또 한 번 축복처럼 찾아온 만남에 김태희 씨는 현재 설레고 감사한 마음으로 안정을 취하며 태교에 임하고 있습니다. 항상 많은 사랑과 따뜻한 시선으로 지켜봐 주시는 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리며 새 생명이 찾아왔음을 축복해 주시고 함께 축하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사진 = 서울신문DB 연예부 seoulen@seoul.co.kr
  • [김유민의 노견일기] “인간이 미안해”…한국 떠난 개들

    [김유민의 노견일기] “인간이 미안해”…한국 떠난 개들

    한겨울처럼 함박눈이 펑펑 쏟아졌던 지난 19일. 캐나다에서 온 구조팀은 새벽부터 충남 홍성으로 향했다. 캐나다의 동물보호센터에 갈 17마리 개들을 공항 검역소로 보내기 위해서다. 검역 절차를 마친 개들은 비행기를 타고 미리 약속된 센터로 가 가족을 찾는다. 2015년부터 시작된 구조 활동으로 13개 개 농장에서 1800마리 개들이 미국과 캐나다에서 새 가족을 찾아 근황을 전하고 있다. 이번 농장 역시 이름도 없는 200여 마리 개들이 ‘식용’이나 ‘번식용’ 목적으로만 존재했던 곳이다. 수일에 걸쳐 160마리가 먼저 캐나다 토론토에서 미 중서부 동물보호단체로 떠났고, 남아있는 개들은 구조 기간에 순차적으로 이동하게 된다. 까다로운 해외 입양과 이동절차 때문에 그날 검역 절차가 예정된, 각종 검진과 예방 접종을 모두 마친 개들이 이동하는 것이다. 구조대원들은 이날도 구조를 위해 철창에 들어가 놀란 개를 진정시켰다. 직접 지어준 이름을 부르고 입맞춤을 하며 안아주었다. 비좁은 철창 안이 집이자 세상의 전부였던 개들은 바깥만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으면서도 문이 열리면 한 발자국을 내딛지 못하고 구석에 웅크려 나가지 않으려 했다. 철창에선 낯선 사람들의 등장에 있는 힘껏 짖으면서도 막상 가까이 다가가면 혀로 손을 핥았다.번식용 개들이 있던 안쪽 상황도 절망적이었다. 거미줄로 뒤덮인 가건물 안쪽은 입구부터 숨을 쉬기 힘든 악취가 올라왔다. 아침임에도 빛 한줄기 들어오지 않는 곳에서 푸들, 시츄, 포메라니언, 프렌치불독 등 익숙한 얼굴들이 잔뜩 엉킨 털과 발간 눈물자국을 하고 짖어댔다. 가장 안쪽에 있던 엄마 푸들과 시츄는 경계심을 모르는 손보다 작은 새끼들을 지키려는 듯 맨 앞으로 나와 눈을 마주쳤다. 손 한번을 내밀면 온몸으로 좋아했다. 가져간 간식은 몇 마리 주지도 못하고 동이 났다. 듬성듬성 깔린 지푸라기 사이로 바짝 마른 사료만 덩그러니. 개들이 가진 전부였다. 건조한 표정으로 바닥을 쓸던 농장주인 이상구(62)씨는 8년 동안 운영했던 농장을 폐쇄하며 시원섭섭하다고 했다. 돈을 벌기 위해 시작한 농장이었지만 더 이상 돈이 되지 않는 데다 체력적으로 힘이 부쳐 지인의 도움으로 HSI에 농장 폐쇄와 전업을 위한 지원을 요청했다고 설명했다. 이씨는 구조대원들이 자신의 개들을 대하는 모습을 보면서 깨달은 것이 있다고 했다. “식용견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고 농장을 운영했어요. 그런데 더 이상 젊은 사람들이 개고기를 먹지 않고, 구조대원들이 이름을 불러주며 안아주자 좋아하는 개들의 모습을 보면서 그런 건 따로 없구나. 다 같은 생명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최근 국내최대동물단체 케어가 구조 동물 안락사 논란에 휩싸이면서 묵묵히 해왔던 구조 활동과 해외입양에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사람들이 생겼다. 현장이 논란이 된 케어 농장과 가깝다는 이유로 케어와 관련된 단체가 아니냐는 소문이 생기기도 했다. 현장 구조를 총 지휘한 캐나다지부 마이클 버나드는 “한국의 개농장은 대부분 무허가 불법으로 운영되고 있어서 다른 개농장 주인들이 폐쇄를 결정한 주인한테 항의하거나 민원을 넣는 경우가 많다. 주인의 요청으로 상세한 주소는 공개하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날 취재현장에 함께한 덴마크 프리랜서 기자 모텐(Morten Larsen)은 기자를 포함한 농장 주인에게 개고기를 먹어 본 경험이 있는지 물었다. 푸른 눈의 기자에게 비친 한국은 여전히 개고기를 소비하고, 품종이 있고 작고 예쁜 개를 선호하는, 그래서 개를 사고파는 문화를 가진 나라였다. 이러한 이유로 구조된 개들은 잔인하게 도살되거나 끊임없이 새끼를 빼내야 하는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로 보낸다. 미국과 캐나다에 있는 여러 동물단체로 이관된 개들은 입양 공고를 통해 마당이 있는 가정으로 분양을 간다. 북미에서는 개를 사고파는 문화가 없기 때문에 개를 키우기 위해서는 동물보호소를 찾는다. 미 서부에 머물 때 거리에서 같은 종류의 개들을 찾아보기 힘들고, 어떤 품종인지 알아채기 어려웠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 품종이나 크기에 연연하지 않고 함께 뛰어놀 수 있는 곳. 개 농장의 개들이 난생 처음으로 차별 없이 사랑받으며 지내는 모습을 볼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고 HSI 한국지부의 김나라 캠페인 매니저는 말했다. 소리도 안내고 이동장에서 유난히 순하게 앉아있던 개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떠나는 것이 두려워서였을까. 비행을 마치고 도착한 곳에서 그동안의 기억은 잊고 가족과 함께 실컷 뛰어다닐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랬다. ‘인간이 미안해.’매년 약250만 마리 이상의 개들이 한국 전역의 수천 개의 개고기 농장에서 사육되고 있다. 개식용 산업은 국내에서 합법도, 불법도 아닌 법적 회색지대에 속해있다. 하지만 목을 매는 등의 잔인한 방법으로 동물을 도축하거나 공공장소 혹은 같은 종의 동물 앞에서 도축하는 것을 금지하는 동물 보호법에 위반된다. 국제 동물보호단체인 휴메인 소사이어티 인터내셔널은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동물 보호 단체 중 하나로, 20년여년 동안 과학, 협력, 교육, 체험 프로그램 등을 통해 모든 종류의 동물을 보호하기 위해 힘써 왔다. 아시아 전역에서 매년 약 3000만 마리의 개들이 식용 목적으로 도축되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엄청난 동물 학대가 발생한다. 현재 개식용이 이루어지는 주요 국가인 한국, 중국, 인도, 베트남, 인도네시아에 집중해서 개식용 산업을 종식시키기 위한 다양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홍성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김남길 연기가 개연성” ‘열혈사제’, 자체 최고 시청률 경신

    “김남길 연기가 개연성” ‘열혈사제’, 자체 최고 시청률 경신

    김남길의 열연이 캐릭터 서사에 힘을 더하며 안방극장이 뜨겁게 응답했다. SBS ‘열혈사제’(연출 이명우, 극본 박재범)에서 김남길의 눈빛과 섬세한 감정연기로 탄생한 인생캐릭터가 극의 몰입도를 높이고 있다. 이에 6회 방송은 닐슨코리아 전국기준 16.2%를 달성하며 또 다시 자체최고시청률을 깼고, 김남길과 이하늬가 앙숙케미를 발산하던 장면은 20.6%를 돌파하기도. 어제(23일) 방송된 ‘열혈사제’에서 유치장에 갇혀있던 해일(김남길 분)은 경선(이하늬 분)이 찾아와 구속영장을 찢으며 내보내주자 바로 안치실로 달려갔다. 이신부(정동환 분)의 시신을 찾아가려는 해일은 저지당하고, 보초서던 대영(김성균 분)과 대치하다 급기야 테이저 건을 맞고 기절했다. 깨어난 해일은 대교구를 찾아가서 호소를 하거나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사람을 만나 증거들을 수집했고, 알고 지내던 법의관에게 연락해 외부검시까지 받았다. 이렇게 홀로 고군분투했던 해일은 경선에게 자료들을 내밀었지만 거절당하고, 설상가상으로 대주교의 대국민사과를 보곤 크게 낙담했다. 한편 이신부를 공원묘지에 묻으며 그와 인연을 맺게 된 순간을 회상한 해일. 국정원을 그만두고 테러사건의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괴로움을 잊고자 부러 자신의 몸을 혹사시켰던 그는 결국 길에 쓰러져버렸고, 지나가던 이신부에게 발견되었다. 이어 이신부의 지극정성에 해일은 사제가 되기로 했고, 새 출발을 시작했던 것. 이 과정에서 김남길은 깊이있는 눈빛과 섬세한 감정연기를 통해 소중한 생명을 잃고 괴로워하던 모습과 새로운 삶을 부여해준 존재의 갑작스런 부재 그리고 진실을 밝혀내기 위한 노력까지, 캐릭터의 서사를 탄탄하게 표현했고 이에 시청자들의 극 몰입도는 자연스레 높아졌다. 방송을 본 시청자들은 “내 주말을 사로잡은 김남길 연기!”, “김남길, 사이다연기에 사이다액션까지! 더할 나위 없는 작품이 왔다!”, “김남길이 개연성이네, 오늘도 최고시청률 경신 가즈아!”등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다양한 감정변화를 탁월하게 그려낸 김남길. 그의 연기는 스토리 전개에 개연성을 부여하며 안방극장에 ‘김해일 신드롬’을 일으킬 준비를 마쳤다. 앞으로 또 어떤 열연으로 우리를 빠져들게 할지 기대를 모으는 이유다. 다혈질 가톨릭 사제 김남길과 바보 형사 김성균이 살인 사건으로 만나 공조 수사를 시작하는 익스트림 코믹 수사극 SBS ‘열혈사제’는 매주 금,토요일 밤 10시에 방송된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칼 라거펠트 별세, ‘패션밖에 몰랐던 별’ 수트 입기 위해 42kg 감량

    칼 라거펠트 별세, ‘패션밖에 몰랐던 별’ 수트 입기 위해 42kg 감량

    칼 라거펠트 별세 소식이 전해진 가운데 그의 업적이 재조명됐다. 칼 라거펠트가 지난 19일(현지 시각) 프랑스 파리 자택에서 눈을 감았다. 향년 85세. 췌장암 투병을 해온 그는 최근 병세가 악화돼 사망한 것으로 전해졌다. 칼 라거펠트는 1933년 독일 함부르크에서 태어났다. 1955년 피에르 발망의 보조 디자이너로 패션계에 입문, 1983년 샤넬에 합류했다. 이후 36년 동안 수석디자이너로서 장기집권하면서 샤넬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샤넬, 클로에, 펜디 등의 수석디자이너를 지냈을 뿐 아니라 음반이나 아이팟을 상상 이상으로 모으는 음악 수집광이기도 하며 일흔이 넘는 나이에 디올 옴므 수트를 입기 위해 42kg를 감량하고 등장하는 등 유별난 행동으로 사람들을 놀라게 한다. 완벽한 백발과 묶음 머리, 검은 선글라스, 블랙수트. 칼 라거펠트는 대부분 이 모습으로 공석에 나타났다. 1982년 샤넬과 인연을 맺으면서 다소 주춤했던 브랜드에 새 생명을 불어넣었다는 찬사를 받았다. 2010년에는 프랑스에서 문화적 공적이 있는 이에게 수여하는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았다. 또 게이라는 이유로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패션 디자이너나 포토그래퍼, 메이크업 아티스트처럼 섬세함을 요구하는 패션계에서 게이들의 파워가 상당하는 사실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알렝 베르트하이머 샤넬 최고경영자(CEO)는 “그는 창조적인 천재성과 관대함, 뛰어난 직감으로 시대를 앞서갔다”면서 그의 업적을 기렸다. 이어 ”나는 오늘 친구를 잃었을 뿐만 아니라 뛰어난 창조적 감각까지 모두 잃었다“며 칼 라거펠트의 죽음을 애도했다. 샤넬의 패션 사업 부분을 이끄는 브루노 파블로브스키 역시 “칼 라거펠트는 가브리엘 샤넬의 전설과 남겼고 샤넬 하우스 역사에 발자취를 남겼다”고 했다. 외신 보도에 따르면 칼 라거펠트는 숨지기 직전까지도 이탈리아 밀라노 패션 위크에서 선보일 예정이었던 명품 브랜드 펜디의 ‘2019 콜렉션’을 준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라거펠트는 최근 몇 주 동안 건강이 좋지 않아 참석이 예정됐던 각종 패션쇼에 참석하지 못하다가 이날 숙환으로 숨진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 = 서울신문DB 김채현 기자 chkim@seoul.co.kr
  • [글로벌 인사이트] 빙하 녹는 속도 빨라져… 한국 100년 뒤 서울 면적 1.6배 바다로

    [글로벌 인사이트] 빙하 녹는 속도 빨라져… 한국 100년 뒤 서울 면적 1.6배 바다로

    남극과 북극의 빙하가 빠른 속도로 녹고 있다는 경고가 잇따르고 있다. 특히 올해 지구촌 빙하 지역의 최후 보루라는 남극 대륙뿐 아니라 그린란드 빙하의 유실 속도가 급격하게 빨라졌다. ‘이젠 인류가 무엇인가 하기에 너무 늦었을 수 있다’는 최후통첩성 경고까지 나오고 있다. 하지만 빙하를 본 적도 없는 우리에게는 정말 먼 나라의 이야기처럼 들린다. 과연 남극의 빙하와 우리 생활이 연관이 있기는 있는 것일까. 도대체 지구촌 반대편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아봤다.●170년 새 美 탠지어섬 66%가 해수면 아래로 미국 오하이오주립대 연구팀은 최근 급격한 지구온난화로 그린란드 빙하 유실 속도가 2003년 이후 4배나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고 미국립과학원회보에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남극 대륙에서 사라지는 빙하의 양이 지난 40년 사이에 6배나 급증했다는 연구 결과에 이어 과학계에 큰 충격을 줬다. 미 캘리포니아주립대 에릭 리그놋 교수는 “전체적인 남극 빙하 유실량이 늘었을 뿐 아니라 그동안 빙하가 녹지 않는 곳으로 알려졌던 남극 동부에서도 얼음이 녹는 것으로 조사됐다”면서 “인류가 기후변화와의 싸움에서 돌아올 수 없는 지점을 넘었다”고 말했다. 리그놋 교수는 이어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적응하거나 추가적인 기온 상승을 완화하는 것이지만 너무 늦어 효과가 없을 수 있다”면서 “(빙하 유실이 늘어나면서) 해수면이 상승하고 더욱 빙하의 유실 속도를 빠르게 하는 악순환이 이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처럼 빠른 속도로 빙하가 유실되면서 해수면 상승이 이어지고 있다. 많은 나라의 사람들이 해안을 따라 삶의 터전을 잡고 있다. 미국 인구의 절반 정도가 해안에서 80㎞ 이내에 살고 있다. 또 아시아와 유럽, 아프리카 등 전 세계 인구의 40%가량이 해안 지역에 거주하고 있기 때문에 해수면의 상승은 곧 삶의 터전을 잃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에는 아직 큰 영향이 없지만 지구촌 곳곳에는 해수면 상승으로 삶의 터전을 잃은 사람들이 넘쳐나고 있다.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에는 갠지스강 저지대 마을 주민들이 급격하게 유입되면서 안전과 주거 등 사회문제가 커지고 있다. 이들은 해수면이 높아져 담수 공급이 어려워지고 토양의 염분이 증가해 농사를 포기한 사람들이다. 국제이주기구(IMO)는 “다카에 몰려든 이주민 중 70% 이상이 환경적 어려움 때문에 고향을 떠난 사람들”이라고 분석했다. 미 버지니아 체서피크만 탠지어섬도 1850년 대비 3분의1밖에 남지 않았으며, 대서양 남쪽 해안 지역인 루이지애나 남부 해수면은 해마다 9㎜ 이상 상승하면서 지역 주민들이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삶의 터전을 갉아먹고 있다. ●100년 후엔 이탈리아 베네치아 바다에 잠겨 한국도 앞으로 100년 뒤 서울 면적(약 605㎢)의 1.6배인 968㎢가 바닷속으로 사라질 것이라고 과학자들은 전망했다. 한반도의 해안 마을이 사라진다는 의미다. 특히 항구 도시인 부산은 해수면이 1m 상승한다면 해수욕장이나 항만시설, 산업공단 등이 모두 침수 위험에 처하게 된다. 태풍으로 인한 높은 파도로 부산은 재난영화인 ‘해운대’가 실제 상황이 될 수 있다고 과학자들은 지적한다. 워싱턴의 한 과학자는 “한국은 해수면 상승에 인한 피해가 아직 없지만 다음 세대쯤에는 분명히 영향권에 들 것”이라면서 “인터넷 사이트인 ‘인포메이션 이스 뷰티풀’이 시각화한 ‘해수면의 공격’이라는 인포그래픽을 보면 해수면 상승의 위험이 얼마나 심각한지 알 수 있다”고 말했다. 해수면의 공격이라는 인포그래픽은 그린란드의 빙하가 다 녹으면 해수면이 6.5m 상승하고, 남극의 빙하가 녹으면 73m를 상승하는 것을 가정해 해마다 해수면 아래로 가라앉을 도시를 한눈에 알 수 있도록 했다. 100년 후 해수면이 1m 상승하면 물의 도시로 유명한 이탈리아 베네치아가, 200년 후 해수면이 3m 상승하면 독일 함부르크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이, 미 뉴욕 맨해튼의 저지대 등이 사라지게 된다. 또 400년 후 해수면이 6m 높아진다면 중국 상하이도 수중 도시로 변할 것이라고 경고한다.●온난화로 이상기온·재난… 바다 생태계 교란 현재 남극과 북극 해빙의 가장 큰 피해자는 ‘겨울 수영 선수’이자 귀여운 북극곰이다. 과학자들은 2050년 북극곰이 멸종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해빙과 북극곰의 삶은 무슨 연관이 있을까. 북극곰은 먹이 사냥과 짝짓기, 새끼 낳기 등에 모두 바다를 떠다니는 유빙을 이용한다. 북극곰은 얼음이 없으면 살 수 없다. 특히 부빙(浮氷)에 구멍을 뚫고 숨 쉬러 올라오는 바다표범을 잡아먹을 수도 없고, 빙산과 빙산 사이를 헤엄쳐 다닐 수도 없다. 따라서 굶주린 북극곰이 동족을 잡아먹는 경우나 인근 마을의 쓰레기장을 뒤지는 사례도 빈발하고 있다. 북극곰은 따뜻한 계절에 겨울 사냥을 위해 지방을 축적해야 하지만 봄과 여름이 길어지면서 겨울 전의 활동량이 급격하게 늘었다. 따라서 겨울 사냥에 쓸 충분한 에너지를 비축하지 못한다. 또 사냥할 장소도 부족하고, 어렵게 이동하더라도 쓸 힘이 없게 됐다. 그래서 수영 선수인 북극곰이 익사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북극곰은 20여㎞까지 쉽게 헤엄치고, 일부는 최고 160㎞까지도 수영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거리가 100㎞ 이상으로 늘어나면 탈진과 저체온증으로 인해 높은 파도를 이겨 내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얼음 면적이 줄어 부빙 간의 거리가 늘어날수록 먹이 구하기는 물론 기본적인 이동도 어려워진다. 체력 고갈로 짝짓기가 어려워지고 결국에는 멸종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의 줄리엔 베트로스 교수는 과학잡지 네이처에 “북극곰, 바다표범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라면서 “인간을 비롯한 모든 종은 빙하에 큰 영향을 받는 생물”이라고 지적했다. 빙하의 감소는 바다 생태계를 파괴한다. 하얀 빙하는 태양 에너지를 다시 우주로 돌려보내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빙하의 감소로 우주로 보내지던 태양 에너지를 바다가 흡수하게 된다. 흡수된 태양 에너지는 바닷물을 데우고 다시 더 많은 빙하를 녹인다. 빙하가 녹아 바다의 면적이 커지면서 더 많은 태양열을 흡수하는 해빙의 악순환이 이어지는 셈이다. 이는 지구온난화로 인한 이상기온뿐 아니라 바닷속 생태계를 교란시킨다. 케빈 애리고 미 스탠퍼드대 교수는 북극해의 기온이 올라가면서 2015년 연간 해조류 생산량이 1997년에 비해 47% 늘었다고 지적했다. 해조류는 북극해 먹이사슬의 첫 단계다. 새우와 새뿐 아니라 물개와 고래, 북극곰 등 상위 포식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생명체에 영향을 미친다. ●이제라도 종이컵 줄이고 온난화 늦추기 실천을 이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리그놋 교수의 지적처럼 ‘벌써 늦었는지 모르겠지만 지구온난화를 늦추는 일’뿐이다. 지금부터라도 일회용 종이컵 사용을 줄이고,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집에서 안 쓰는 가전제품의 플러그를 뽑는 일 등을 실천해 빙하를 지키는 일이 건강한 지구를 다음 세대에 물려주는 첫 걸음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워싱턴 한준규 특파원 hihi@seoul.co.kr
  • 윤창호 가해자 겨우 징역 6년… “이래서 윤창호법 필요”

    윤창호 가해자 겨우 징역 6년… “이래서 윤창호법 필요”

    윤씨 父 “국민 정서 부합한 형벌인가” 친구들 “한 사람의 생명 잃었는데…”“6년 선고에 대해 1심 사법부 판단을 존중하지만 국민 정서에 부합한 형벌인가에 대해선 의문이 듭니다.” 13일 부산지방법원 동부지원 형사4단독에서 열린 ‘특별한’ 재판에 나와 판결을 들은 고 윤창호(당시 23)씨 아버지 기현(53)씨는 이렇게 말하며 고개를 떨궜다. 김동욱 판사는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위험운전치사) 등 혐의로 기소된 박모(27)씨 공판에서 징역 6년을 선고했다. 앞서 검찰은 징역 10년을 구형했다. 김 판사는 “업무상 주의 의무 위반 정도가 매우 중하고 결과도 참담하다”며 “음주에 따른 자제력 부족 정도로 치부하기에는 결과가 너무 중하다”고 선고 이유를 밝혔다. 법정에는 박씨 공판을 보려는 고인의 친구들과 유족, 취재진 등 30여명이 방청석을 가득 채웠다. 재판부 선고에 방청객들 사이에선 흐느끼는 소리도 새어나왔다. 기현씨는 선고 후 법정을 나와 “국민적 관심도를 볼 때 국민 정서를 모르고 판결한 게 아닌지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검찰에서 조치한다고 하니 앞으로 함께 적극적으로 대응하겠다”며 검찰에서 항소 의사를 밝혔다는 점을 내비쳤다. 함께 사고를 당했던 윤창호씨 친구 배모(23)씨는 “한 사람의 꿈을 앗아간 가해자인데, 피해자 입장에서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선고”라며 이맛살을 찌푸렸다. 박씨는 지난해 9월 25일 새벽 면허취소 수준(0.1% 이상)을 훌쩍 넘은 혈중알코올농도 0.181% 상태로 BMW 승용차를 몰다가 부산 해운대구 미포오거리 횡단보도에 서 있던 윤씨를 치어 숨지게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병원으로 옮겨진 윤씨는 의식불명 상태로 사경을 헤매다 결국 46일 만에 숨졌다. 법조인을 꿈꾸던 청년의 안타까운 사고 소식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글을 통해 국민에게 알려지며 음주 운전자에 대한 공분을 형성했다. 윤창호 친구들의 호소에 여론과 정치권이 움직였고 사고 23일 만에 음주 운전자 처벌을 강화하는 특정범죄가중처벌법 개정안(윤창호법)을 발의해 지난해 11월 국회를 통과했다. 부산 김정한 기자 jhkim@seoul.co.kr
  • [신간] ‘박재혁-적의 심장에 폭탄을 던져라’

    [신간] ‘박재혁-적의 심장에 폭탄을 던져라’

    1920년 9월 14일 오후 2시. 부산경찰서 서장실에서 천둥과 같은 소리가 터져 나왔다. 고막이 터질 듯한 굉음은 1층 천장을 뚫고 2층 창문까지 모조리 박살 내며 밖으로 퍼졌고 화약 냄새와 연기가 새어 나왔다. 부산경찰서장 하시모토에게 폭탄을 던진 이는 부산의 대표적인 독립운동가인 박재혁 의사(義士)다. 박 의사도 파편에 맞아 병원에 실려 갔다. 이후 모진 고문과 재판이 이어졌고 끝내 사형선고를 받았다. 그는 대구 형무소에서 일본의 손에 죽기 싫다며 단식을 시작했고 결국 27세의 나이로 스스로 순국했다.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박 의사의 생애를 담은 동화책이 나왔다. 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가 펴낼 ‘부산을 빛낸 5인’ 동화책 시리즈 중 첫 번째인 ‘박재혁-적의 심장에 폭탄을 던져라’다. 동화작가 안덕자가 집필한 박 의사 이야기는 박 의사의 이손녀 김경은(55)씨 인터뷰를 기반으로 해 의열단 가입부터 폭탄 투척, 순국까지의 과정을 사실적으로 기술했다. 명지대 박철규 교수, 부경근대사료연구소 김한근 소장, 개성고 역사관 관계자 등의 자문과 고증을 받았다. 그러나 어린 시절은 사료가 부족해 일부 허구를 가미할 수밖에 없었다. 박 의사는 독립운동가 이전에 어머니를 사랑하는 아들이었고 나아가 여린 생명을 사랑했던 따뜻한 마음의 소유자였다. 책에서는 그의 혁명가 기질이 의협심이나 애국심을 넘어 인간에 대한 따스한 관심과 사랑에서 왔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호밀밭출판사. 손성진 논설고문 sonsj@seoul.co.kr
  • [아하! 우주] 화성을 360도 파노라마로 보니…선명한 붉은 토양 (영상)

    [아하! 우주] 화성을 360도 파노라마로 보니…선명한 붉은 토양 (영상)

    미국항공우주국(NASA)의 화성무인탐사선인 큐리오시티가 찍은 화성의 전경이 파노라마로 재탄생했다. 현지 시간으로 지난 8일 NASA의 제트추진연구소(Jet Propulsion Laboratory, JPL)가 공개한 영상 속 장소는 큐리오시티가 지난 1년 간 구멍을 뚫으며 탐사를 이어온 베라 루빈 능선(Vera Rubin Ridge) 및 샤프산 등지다. 마우스를 직접 움직여 화성의 모습을 360도로 확인 가능한 이 영상에서는 큐리오시티가 베라 루빈 능선에 작업한 구멍의 고화질 이미지도 확인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베라 루빈 능선을 지나 이보다 남쪽 지역인 새 탐사지 클레이-베어링 유닛(clay-bearing unit) 지역의 모습도 볼 수 있다. 현재 큐리오시티는 이 지역에 머물며 탐사를 이어가고 있다. 클레이-베어링 유닛 지역의 탐사는 과학자들이 화성 샤프산의 낮은 층을 형성하는데 영향을 미친 고대 호수 및 토양 광물 구성을 알아내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이번 영상에서는 화성의 하늘과 큐리오시티의 모습은 확인할 수 없지만, 붉은색을 띠는 화성의 토양뿐만 아니라 멀리 보이는 화성의 산까지 한 눈에 볼 수 있어 신비로운 느낌을 준다. 연구를 이끈 아비게일 프래만 제트추진연구소 연구원은 “이번 영상은 큐리오시티가 지난해 12월 19일 보내온 자료를 파노라마로 엮어 제작한 것”이라며 “큐리오시티의 여정은 우리가 화성을 이해하는데 필요한 모든 요소들을 파악하는데 도움을 준다”고 설명했다. 한편 큐리오시티는 2012년 8월 화성 생명체 탐사를 위해 게일 크레이터 부근에 착륙했으며, 하루 200여m 움직이며 탐사를 이어가고 있다. 큐리오시티는 오래 전 화성 땅에 물이 흐른 흔적, 생명체에 필요한 메탄가스와 질산염 증거를 발견하는 큰 업적을 남겼다. 송현서 기자 huimin0217@seoul.co.kr
  • 재난관리체계 바꿨지만… 작년 침수·좌초 해양사고 23%나 늘어

    재난관리체계 바꿨지만… 작년 침수·좌초 해양사고 23%나 늘어

    참사 5주기를 앞둔 세월호가 또다시 논쟁의 중심에 섰다. 지난 5일 서울시가 침몰의 진상 규명을 위해 2014년 7월 서울 광화문광장에 들어선 천막을 걷어내고 이곳에 세월호 추모 공간을 마련하겠다고 밝히자 시민들의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국가적 참사를 기억할 공간이 필요하다는 목소리와 여론 수렴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엇갈린다. 2014년 4월 16일 사고 발생 이후 1763일이 흐른 지금도 세월호라는 글자가 뉴스를 장식하는 것은 대응만 제대로 이뤄졌다면 미수습자를 포함한 사망자 304명 모두를 구했을지도 모른다는 깊은 아쉬움에서 비롯된다. 국가는 대형 재난으로부터 국민을 구할 수 있는가. 세월호 사건이 우리에게 던진 물음이다. 침몰의 진상을 밝히려는 노력은 지난해 발간된 ‘세월호 선체조사위원회 종합보고서’로 이어졌다. 왜 사고가 났고, 어떻게 가라앉았나. 같은 사고가 반복된다면 우리는 준비가 돼 있을까. 11일 참담했던 그날의 기억을 되짚는 이유는 이런 물음에 답하기 위해서다.전복 ●와르르 무너진 화물에 결국 넘어진 세월호 2014년 4월 15일. 세월호 침몰 사고 전날 밤 배 위에선 불꽃놀이가 한창이었다. 제주도 수학여행에 들뜬 아이들은 쉽사리 잠들지 않았다. 이렇게 배는 전남 진도 해역에 도착했고, 날이 밝아 왔다. 16일 오전 8시 49분. 세월호의 뱃머리가 갑자기 오른쪽으로 빠르게 돌았다. 배는 기우뚱하더니 이윽고 왼쪽으로 넘어졌다. 물살이 거칠기로 유명한 ‘맹골수도’에 진입한 지 20분. 조타수가 병풍도 인근 수역에서 제주도를 향해 뱃머리를 돌린 것이지만 배가 넘어질 정도는 아니었다. 누구의 잘못이었을까. 넘어지고 그대로 가라앉은 세월호가 2017년 4월 11일 참사 1091일 만에 육지로 인양됐고 새로운 사실이 밝혀졌다. 타기 펌프 유압장치인 ‘솔레노이드 밸브’가 고착된 상태로 발견된 것. 키는 배의 방향을 조종하고 솔레노이드 밸브는 그 키가 움직이도록 압력을 가한다. 밸브 고착으로 배를 돌릴 때 키에 작용한 압력이 조타수가 입력한 수치보다 훨씬 커졌고 이것이 세월호가 넘어진 최초의 계기가 됐다. 다만 이에 대해서 선조위 전체가 완전한 합의에 이르지는 못했다. 어쨌든 넘어진 세월호는 영영 제자리를 찾지 못했다. 정상적인 배는 기울어져도 이내 평형상태로 돌아온다. 기울어진 배가 다시 돌아오려는 성질을 수치화한 ‘복원성수치’(GoM)라는 게 있는데 선조위 일부 위원들은 “세월호의 복원성수치가 출항 때부터 낮았기 때문에 되돌아오지 못했다”(내인설)고 주장한다. 이에 “복원성수치가 낮은 것만이 배가 전복된 원인이라고 할 수 없다”(열린안)고 주장하는 위원들도 있어 결국 보고서는 둘로 나뉘어 쓰였다. 이견에도 불구하고 공통으로 인정되는 사실은 배에 실린 철근 등 무거운 화물들이 제대로 묶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세월호가 20도쯤 기울었을 때 화물들은 굉음을 내며 배의 왼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무게중심이 쏠린 세월호는 결국 완전히 평형상태를 잃었고 1시간 40분 만에 130도까지 기울었다. 결국 세월호는 뱃머리 일부를 제외하고 전부 물속으로 가라앉았다. 한참을 그렇게 있었다. 속수무책 ●완전히 열려 있던 세월호 배가 넘어진 지 1시간쯤 지났을 때부터 안으로 물이 새기 시작했다. 완전히 기울었을 때 선내 갑판 두 곳은 완전히 침수된 상태였다. 밀려든 바닷물은 세월호를 바다 밑으로 끌어당겼다. 무척 빠른 속도였다. 선조위는 세월호가 침몰 당시 완전히 열려 있었기 때문이라고 봤다. 대부분 선박에는 ‘수밀문’이 있다. 바닷물이 배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는 문이다. 한국선급 지침에 따르면 수밀문은 배가 정박했을 때만 열어두게 돼 있다. 출항할 땐 반드시 닫아야 한다. 통상 항해 중 열어둘 때도 있지만 반드시 조건이 붙는다. 비상 상황에서 원격으로 폐쇄할 수 있어야 한다. 세월호의 모든 수밀문은 열려 있었고 배가 전복됐을 때도 닫히지 않았다. 아무도 닫을 생각을 하지 않아서다. 속수무책 밀려든 바닷물은 배 안을 자유로이 흘러다녔다. 선조위 조사 결과 수밀문뿐만 아니라 배 안에 있는 맨홀도 모두 열린 상태였다. 박기호 당시 세월호 기관장은 선조위 조사에서 “(맨홀을) 닫아둔 상태로 운항을 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그러나 배가 가라앉는 상황에서만큼은 수밀문과 맨홀을 닫아야 했다. 세월호 선원들의 생각은 여기에 미치지 못했다. 그저 도망치기 바빴다. 바다 위에서 언제든 발생할 수 있는 비상 상황에 세월호는 무방비 상태였다. 이렇듯 안일한 관행에서 비롯된 순간적인 판단 부재는 돌이킬 수 없는 참사로 돌아왔다. 세월호가 만약 닫힌 상태였다면 어땠을까. 선조위가 네덜란드 해양연구소 ‘마린’에 시뮬레이션을 맡긴 결과 수밀문이 닫힌 세월호는 기울기가 65도에서 머무르며 오랜 시간 떠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촌각을 다투는 구조 현장에서 다만 몇 명이라도 더 구할 수 있었던 것이다. 무능 ●구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배 위에서 비상 상황이 발생하면 승객들은 혼란에 빠진다. 이들을 안전하게 대피시키는 게 선원들의 임무다. 총지휘자인 선장은 침착하게 상황을 살피며 필요하다면 퇴선 명령을 내려야 한다. 이준석 당시 세월호 선장에게 그런 의무감은 없었다. 오전 9시 45분. 이 선장은 세월호를 뒤로하고 도주했다. 배 안에 있던 강혜성 사무원은 10번 넘게 “현재 위치에서 움직이지 말라”고 승객들에게 방송했다. 방송을 그대로 믿은 사람들은 결국 희생됐다. 세월호 선원들은 구호 활동 준비도 전혀 돼 있지 않았다. 배가 침몰하는데도 구명 뗏목을 투하하라는 지시를 내리지 않은 이 선장은 “깜빡했다”고 변명하기도 했다. 손지태 당시 세월호 1등기관사는 비상사태에서 배 우현에 있는 ‘슈터’를 내리는 역할을 담당했다. 그러나 그는 슈터가 무엇인지도 몰랐다. 슈터는 갑판에서 바다로 승객을 대피시키는 장치다. 해양경찰은 우왕좌왕했다. 진도 해상교통관제시스템(VTS)에선 세월호와 교신하면서도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세월호가 가라앉는 상황을 인지했으면 직접 퇴선 지시를 내릴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고 결국 ‘골든타임’을 놓쳤다. 세월호가 50도쯤 기울어진 오전 9시 34분에 해경 경비정인 ‘123정’이 도착했다. 현장에서도 해경의 무능함은 반복됐다. 김경일 당시 123정장은 세월호에 사람이 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퇴선 방송은 하지 않았다. 김 정장은 “방송이 들리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재판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들리지 않을 거라고 판단했다면 직접 대원들과 배 안으로 진입해서 구조활동을 펼쳐야 했지만 김 정장은 그러지도 않았다. 부실한 구조 활동에 책임이 있는 그는 업무상 과실치사 등으로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트라우마 ● 무엇이 바뀌었나 우리 사회에 깊은 트라우마를 남긴 세월호 참사 이후 국가 재난관리체계는 전반적인 변화를 겪었다. 해양사고 분야로만 좁히면 현장 대응 역량 강화를 위해 2015년 신설된 해경 동·서해지역대를 2017년 해양특수구조본부로 개편해 운영하고 있다. 여객선 안전 관리·감독 강화 차원에서 카페리(자동차를 싣고 운항하는 여객선) 선령을 30년에서 25년으로 축소했다. 과적을 차단하고자 여객과 화물에 대한 전자발권시스템도 도입했다. 여객선 운항관리 업무도 민간에서 공공기관인 선박안전기술공단으로 이관했다. 선박에 대한 전반적인 안전 관리를 담당하는 해사안전감독관 제도도 새로 만들었다. 비상 상황에서 승객이 도움을 청할 수 있도록 항해 중엔 선원이 반드시 제복을 착용하도록 했다. 선박 안전규정을 위반했을 때 제재도 강화해 과징금을 최대 3000만원에서 10억원으로 늘리고 고의나 중대한 과실로 다수 생명을 위험에 빠뜨린 사업자에 대한 ‘영구적 결격제도’도 도입했다. 선장·선원이 구조를 하지 않아 인명사고가 발생하면 처벌도 5년 이하의 징역에서 최대 무기징역까지 받도록 법을 바꿨다. 내항여객선 관리 주체도 해경에서 해양수산부로 1997년 이후 20년 만에 환원됐다. 정부 조직도 대폭 손질됐다. 무능한 구조 활동으로 책임을 피해 갈 수 없는 해경은 특히 부침을 겪었다. 세월호 참사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은 “해경을 해체하겠다”고 전격 선언했다. 재난 주무부처인 당시 안전행정부는 행정자치부와 국민안전처로 쪼개졌고 해경은 국민안전처 산하 해양경비안전본부로 격하됐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2017년 해수부 외청으로 부활했다. 이때 국민안전처도 다시 합쳐져 지금의 행정안전부로 거듭났다. 인력도 꾸준히 늘었다. 해경에 따르면 현원 기준 해경 인력은 2013년엔 8499명이었지만 지난해 11월 1만 560명으로 대폭 확대됐다. 특히 해경은 지난해 기준 762명 수준인 구조 전문 인력을 2020년 1154명까지 확보할 계획이다. 해경은 현재 구조현장에 투입할 대형 헬기 2대를 운영하고 있으며 2028년 총 5대까지 확보할 계획이다. 지난해 1월엔 잠수지원함도 1척 사들여 중앙해양특수구조단에 배치하기도 했다. 지향점 ●같은 아픔 겪은 스웨덴은 세월호 참사 이후로도 해양사고는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해경에 따르면 세월호 참사 1년 뒤인 2015년 2740척의 배에서 해양사고가 발생했으나 지난해엔 3434척까지 많아졌다. 인명 피해는 지난해 총 89건으로 56명이 사망했고 33명이 실종됐다. 지난해 기준 어선 사고가 1937건(56.4%)으로 대부분을 차지했으며 화재·침수·좌초 사고가 전년 대비 23.1% 증가했다. 세월호 이후 대표적인 해양사고로는 ‘추자도 돌고래호 전복사고’(2015년·15명 사망·3명 실종), ‘영흥도 낚싯배 전복사고’(2017년·15명 사망)가 있으며 지난해에도 ‘완도 근룡호 전복사고’(2월·2명 사망·5명 실종), ‘통영 11제일호 전복사고’(3월·4명 사망·4명 실종), ‘목포 2007연흥호 충돌사고’(4월·3명 사망·3명 실종) 등이 발생했다. 이렇듯 끊이지 않는 해양사고 속에서 세월호 참사를 겪은 우리의 지향점은 어디가 돼야 할까. 전문가들은 비슷한 아픔을 겪은 스웨덴의 사례를 제시한다. 1994년 9월 스웨덴 로로선(컨테이너선) ‘에스토니아호’가 침몰해 탑승객 989명 중 852명이 숨졌다. 사고 발생 3년 뒤 사고조사보고서가 발표됐다. 보고서는 사고 원인을 크게 세 가지로 요약했다. 도착시각을 지켜야 한다는 선장의 압박감, 선원들의 늦은 대처, 선박설계 오류 등이다. 단순히 개인의 잘잘못을 가리는 것을 넘어 사고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문제를 손질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후 스웨덴은 현재까지도 같은 해양사고를 반복하지 않기 위한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프로젝트의 핵심은 안전에 대한 전반적인 인식의 개선이다. 조직 내 모든 활동에 안전과 관련된 내용을 반영하면서 구성원들이 안전을 명확히 인식하도록 한다. 리더인 선장을 비롯해 선원들에게도 사고 상황에서의 리더십을 배양한다. 선박을 설계할 때도 기관실을 이중으로 만들고 그 사이에 격벽을 설치한다. 사고가 발생했을 때 배 자체가 거대한 ‘구명정’으로 기능할 수 있어야 한다는 개념이다. 오경진 기자 oh3@seoul.co.kr
  • [아하! 우주] 우리은하와 안드로메다는 언제쯤 충돌할까?

    [아하! 우주] 우리은하와 안드로메다는 언제쯤 충돌할까?

    우리은하가 현재의 형태로 예상한 것보다 약간 더 오래 살아남을 것이라는 새로운 연구 결과가 발표되었다. 가이아 위성의 관측 데이터에 기초한 새로운 연구에 따르면, 우리은하와 이웃 나선은하인 안드로메다 은하 사이에 일어날 거대 충돌은 약 45억 년 후에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전의 대체적인 추정치는 충돌이 약 39억 년 후일 것으로 알려졌지만, 새 연구는 두 은하의 충돌이 이보다 약 6억 년 늦추어질 것이라는 연구결과를 내놓은 것이다. 지난 2013년 12월에 발사된 유럽우주국(ESA)의 관측위성 가이아는 연구원들로 하여금 최고 수준의 우리은하 3D지도를 만들 수 있게 도와주고 있다. 가이아는 엄청난 수의 별과 다른 대상의 위치와 움직임을 정확하게 모니터링한다. 미션 팀은 가이아가 그 예리한 눈을 영원히 감을 때까지 10억 개 이상의 별을 추적할 계획이다. 가이아는 대체로 우리은하계 내에 있는 별들을 추적하고 있지만, 일부는 가까운 이웃 은하의 별들을 대상으로 삼기도 한다. 새로운 연구에서, 연구자들은 우리은하를 비롯하여 안드로메다(M31)와 삼각형 자리은하(M33)에서 수많은 별을 추적했다. 이들 이웃 은하는 우리은하에서 250만-300만 광년 거리에 존재하며, 은하들끼리 상호작용하고 있다고 연구팀은 밝혔다. 볼티모어의 우주망원경 과학연구소의 롤란드 반 데르 마렐 대표 저자는 “우리는 은하들이 어떻게 성장하고 진화했는지, 그리고 무엇이 그 같은 특징과 행동을 만드는 데 영향을 미치는지 밝혀내기 위해 은하의 움직임을 3D로 탐사했다”면서 “우리는 가이아가 발표한 고품질 데이터의 두 번째 패키지를 사용해 이 작업을 수행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연구팀은 이 작업으로 M31과 M33의 회전 속도를 결정할 수 있었으며, 가이아에서 얻은 결과와 기록 분석을 사용하여 M31과 M33이 과거 어떻게 움직였는지, 그리고 앞으로 수십억 년 동안 어떻게 움직일지에 대한 궤적을 찾아냈다. 이 팀이 제시한 모델은 우리은하와 안드로메다 은하의 충돌 시점을 예상보다 늦게 잡고 있으며, 충돌 양상은 정면 출돌이 아니라 스치는 듯한 측면 충돌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두 은하의 별들끼리 충돌할 가능성은 아주 낮다. 별들 사이의 거리가 너무나 멀기 때문에 두 은하는 별들의 충돌 없이 서로 관통할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은하 합병으로 인해 우리 태양계가 혼란에 빠질 확률은 아주 낮다. 그러나 그때쯤이면 지구는 달아오르는 태양에 의해 숯덩이가 되어, 두 은하가 지구 하늘에서 몸을 섞는 장관을 볼 수 있는 생명체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이 새로운 연구는 이번 달 ‘천체물리학 저널’에 발표되었다. 그런데 우리은하를 합병한 안드로메다가 다음의 우리은하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대마젤란 은하가 25억 년 후 먼저 우리은하에 합병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광식 칼럼니스트 joand999@naver.com
  • ‘이모그래피’ 허회태, 19~27일 새 조형예술 ‘심장의 울림’전

    ‘이모그래피’ 허회태, 19~27일 새 조형예술 ‘심장의 울림’전

    이른바 ‘이모그래피’의 창시자로 이름난 허회태 서예 작가가 오는 19일부터 붓글씨와 입체조각과의 섞임을 통해 우주와 생명의 메시지를 표현한 ‘심장의 울림’전(展)을 연다. 서울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 제7전시전에서 27일까지다. 이모그래피(Emography)는 감정(Emotion)과 회화(Graphy)의 합성어로 전통 서예를 통합 예술로 발전시키기 위해 현대미술과 융합한 새로운 예술 장르다. 특히 울림전에서 선보이는 이모스컬프쳐(Emosculpture)는 2차원 평면의 이모그래피에서 벗어나 회화와 조각과의 융합이라는 또 다른 조형예술 세계의 구축이다.허 작가는 전시될 작품 45점과 관련, “위대한 생명의 탄생, 생명의 꽃, 심장의 울림, 헤아림의 잔치 등 모든 작품들은 생명과 존재의 근원에 대한 탐색”이라면서 “이모스컬프쳐라는 조형예술의 매력을 알리고 자연과 생명의 일치성과 소중함을 함께 이야기하는 뜻 깊은 시간이 됐으면 한다”고 설명했다. 미국 올드 도미니언대학교 켄 데일리 명예교수는 허 작가의 작품에 대해 “작가가 종이에 쓴 담론의 조각, 단어와 문장의 조각들이 서로 쌓이고 접혀서 소용돌이치며 앞으로 나아간다”면서 “그의 언어는 존재 그 자체로 아름다움을 나타내는 꽃으로 활짝 피어난다”고 평했다 허 작가는 1995년 대한민국 미술대전에서 대상을 수상했으며, 50여회 전국대회 심사위원장과 운영위원 등으로 활동했다. 현재 카이로스허회태 미술관 관장, 연변대학교 미술대학 교수로 일하고 있다. 박홍기 기자 hkpark@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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