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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한국무협 중국 역수출 1호 작가 초우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한국무협 중국 역수출 1호 작가 초우

    중국은 베이징올림픽 개막식에서 ‘무협’의 본고장임을 세계에 과시했다. 최종 성화주자로 나선 리닝(李寧), 한때 무림의 최고수였다. 비록 세월이 지났지만 간단치 않은 내공의 깊이로 가볍게 공중부양을 한다. 이어 축지법(縮地法)을 보여주듯 허공에서 ‘사부작사부작’ 걷는 듯 달렸다. 성화봉송의 대장정에 참여했던 강호의 고수들도 그 뒤를 따랐다. 잠시 후 성화대에 불을 붙이고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흡사 한편의 ‘무협 드라마’를 보는 듯했다. ●엄청난 무협시장 부가가치도 막대 중국에서는 지금도 TV 채널의 40%가 ‘무협’을 다룬다. 드라마, 영화, 애니메이션 등 여러 캐릭터 산업으로 막대한 부가가치를 생산해내고 있다. 올림픽 개막식에서 보듯 중국은 최근들어 ‘무협’이 자신의 전통문화임을 부쩍 강조하고 있는 것. 이런 ‘무협 원산지’에 토종 한국작가가 쓴 무협소설이 처음 수출된다. 한국에 중국 무협소설이 처음 소개된 것은 1961년,‘정협지’(소설가 김훈의 아버지 김광주 작)를 효시로 여긴다. 따라서 중국에 역수출되는 것은 47년만의 일이다. 그동안 국내 무협지팬들이 중국에 익숙해 있었다는 점을 놓고 볼 때 한국작가가 쓴 무협소설이 중국으로 수출된다는 것 자체가 무척 흥미로운 일이다. 누구의 어떤 작품일까. 나이 40대, 덥수룩한 수염, 막 자다가 일어난 듯 항상 꾀죄죄한 모습이다. 하지만 날카로운 눈매는 무사의 그것처럼 번득이며 언제나 최고의 이야기꾼을 향해 거침없이 ‘진검’을 휘두른다. 호위무사-권왕무적-표기무사 등으로 이어지면서 이른바 한국 스타일의 무사 시리즈로 인기몰이를 하는 작가 초우(본명 양우석)가 바로 주인공. 그의 작품 중 ‘권왕무적’은 오는 10월,‘호위무사’는 올해 말에 중국 난징(南京)의 강소문예출판사와 베이징의 해방군출판사에서 각각 중국어로 번역 출간된다. 전 18권의 ‘권왕무적’과 전 10권의 ‘호위무사’는 이미 국내에서 20만부와 18만부 이상씩 팔린 베스트셀러. ●중국판 ‘권왕무적´·‘호위무사´ 연내 출간 특히 ‘호위무사’는 역대 한국무협 ‘베스트10’에 뽑힌 작품으로 무협에 연인의 사랑을 녹여내 로맨스 무협의 새 전기를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서글픈 운명을 가지고 태어난 용설아와 그녀를 지키기 위한 사공운의 처절한 싸움이 한편의 대하소설처럼 전개된다. 이런 흥미진진한 내용이 중국에 처음 알려진 것은 지난해. 중국 장강출판사에서 근무하고 있던 한 중국인이 서울에 유학을 왔을 때 번역가 김택규(숭실대 대학원 강사)씨의 소개로 ‘호위무사’를 감명깊게 읽었다. 그 중국인은 해방군출판사에 출간제의를 했고 출판사 관계자들도 선뜻 받아들였다. 때마침 지난해 11월 중국의 월간지 ‘미인지(美人誌)’에 ‘호위무사’가 연재되면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자 탄력을 받은 출판사측이 단행본 발간을 서두르게 됐다. 이뿐만 아니다. 중국에서 5만부 이상 발행하는 한류잡지 1호 ‘풍(風)’에 초우의 ‘표기무사’와 조돈형의 ‘궁귀검신(弓鬼劍神)’이 게재되면서 한국 무협작가들이 중국에서 인기가도에 박차를 가하고 나선 것. 우리나라의 경우,197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인 무협 창작의 시대를 열었다는 게 통설이다. 을재상인의 ‘팔만사천검법’(1979)을 시작으로 금강의 ‘금검경혼’(1981), 사마달의 ‘절대무존’(1981) 등이 대본소 무협소설의 전성기를 구가했다. 한국 창작무협 작가의 3세대격인 초우는 원래는 단순한 무협소설의 애독자였다. 대학에서 전자공학과를 나와 컴퓨터와 컨설팅 분야에서 사업을 하던 중 실패하자 머리를 식히려 시와 소설을 쓰기 시작했고, 이 글이 인터넷에 인기를 얻어 동인지 등을 발간했다. 내친김에 판타지소설 ‘아리우스전기’를 쓴 것이 운 좋게 2002년 황금가지 주최 ‘황금드래곤문학상’을 받으면서 ‘무협’의 길로 들어섰다. 지금은 인세 수입도 짭짤할 만큼 아주 잘나가는 작가로 소문나 있다. 경기도 부천에 있는 그의 작업실에서 그를 만났다. ●순수한 사랑 주제 일본판 호위무사도 준비 그는 요즘 어느 때보다도 바쁘다고 했다. 내년 초 크랭크인할 드라마 ‘호위무사’의 근간이 되는 한국판 ‘호위무사’와 신작 시리즈 ‘표기무사’를 집필 중이다. 아울러 일본출판사로부터 러브콜을 받아 ‘일본판 호위무사’를 준비 중이다. 스포츠서울에 ‘검왕본기(劍王本紀)’를 매일 연재하면서 차기작 ‘개마무사’에도 시간을 틈틈이 쪼개고 있다. ▶‘호위무사’ 중국어판 번역은 어느 단계까지 진행됐나요. “현재 중국인과 한국인 2명이 참여하고 있습니다.10월 중 완료하고 연말쯤이면 출간될 예정입니다.” ▶‘호위무사’가 중국에서 인기를 끌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기존의 무협에서는 남녀간의 사랑을 부수적인 것으로 터부시합니다. 하지만 그 틀을 깨고 사랑을 주제로 다뤘지요. 남녀의 사랑은 인류 보편적인 소재이거든요. 기존 무협에서는 남자 주인공 한 명에 여자 주인공 여러 명이 나오는 게 보통입니다. 호위무사는 남자 주인공이 여주인공 한 명을 위해 목숨을 걸 정도의 사랑을 바칩니다. 이밖에 스피디한 내용전개 등이 차별화되면서 인기를 얻는 것 같아요.” ▶중국어판 ‘권왕무적’은 어느정도 진척됐습니까. “원래는 ‘호위무사’를 먼저 계약했는데 ‘권왕무적’이 일찍 중국어판으로 발간하게 됐습니다. 번역도 거의 끝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명나라 때 명문가의 후예인 아운이 가출해서 밑바닥 인생을 전전한 끝에 주먹 하나로 천하를 제패한다는 내용이지요.” ▶‘호위무사’는 일본에서도 번역된다고 하던데요. “극내 모 출판사에서 계약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일본판 호위무사는 사무라이 무협으로 바꿔 집필할 예정입니다. 일본인들은 중국 무협을 허무맹랑하게 보는 경향이 있거든요. 사무라이 무협소설을 보면 하늘을 나는 식의 무술이 나오지 않습니다. 또 일본인들이 ‘겨울연가’에 매료된 것처럼 호위무사의 순수한 사랑도 얼마든지 일본에서 통할 것으로 자신합니다.” ▶‘호위무사’가 드라마로도 선보인다고 합니다. “이강운 감독의 24부작 드라마로 내년 초부터 촬영이 시작됩니다. 배경이 임진왜란 당시의 조선으로 바뀌게 되며 연말쯤 시나리오 작업을 완성할 예정입니다.” ●작가 많은 한국, 中 ‘무림´ 평정할 것 ▶중국에서 한국산 무협이 통하는 이유는 뭘까요. “한국에 우수한 작가가 많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는 1979년 창작무협이 나온 이후 꾸준히 역량을 키워왔지요. 탄탄한 스토리, 스피디한 전개와 필력을 갖춘 작가들이 많습니다. 중국은 한때 무협을 반동이라고 여겼습니다. 요즘들어서야 중국문화의 중요한 요소라고 인식하고 있지만 단시일 내에 뛰어난 작가가 나오기가 쉽지 않지요.“ ▶앞으로 무협시장의 규모는 어느 정도나 될까요. “무협은 소설뿐만 아니라 드라마, 영화, 애니메이션 등으로 연결돼 막대한 부가가치를 낳을 수 있습니다. 중국이 무협을 전통문화로 간주하고 무협 팬이 급속히 늘어나는 마당에 그 시장규모는 엄청나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요즘들어 서양에서도 동양의 무협을 차용하고 있습니다. 영화 매트릭스, 쿵푸팬더, 트로이 등도 무협에서 빌려왔지요.” 그는 무협이 어느새 미국의 할리우드를 정복했다면서 작가군이 중국보다 훨씬 풍부한 한국이 세계 시장에서 훨씬 유리하다고 거듭 강조한다.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수나라 공격 때 큰 공을 세운 고구려 개마무사를 주인공으로 한 ‘개마무사’를 집필 중이며 퓨전 판타지 ‘기갑신마(氣甲神魔)’를 인터넷에 연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무협소설의 매력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사나이들의 로망과 꿈’이라며 웃는다. 인물전문기자 km@seoul.co.kr 사진 안주영기자 jya@seoul.co.kr ■ 초우 그는 누구인가? 경기도 포천에서 태어난 작가 초우(草雨·본명 양우석)는 타고난 이야기꾼으로 통한다. 닥치는 대로 책을 읽고, 이것저것 보고 읽기, 아무렇게나 상상하는 것을 좋아한다. 뮤지컬이나 콘서트도 즐겨본다.30대 초반에 ‘사랑으로 핀 꽃은 이별로 핀 꽃보다 일찍 시든다’는 동인시집과 ‘지금 우리는 아직 사랑에 서툴지만’이라는 등의 수필집을 펴내면서 본격적인 글쓰기를 선언했다. 특유의 성격대로 장르를 가리지 않는다. 시, 수필 외에 영화 소설 ‘친구’‘태극기를 휘날리며’ 등을 썼다. 또 판타지 동화 ‘엘프의 눈물’‘무한의 기사’‘기억수집가’ 등도 있다. 일반 소설로는 ‘다세포소녀’ 등이 있다. 무협소설로는 ‘추혼수라’(00년)를 비롯 ‘질풍금룡대’(01년),‘아리우스전기’(02년·제1회 황금드래곤문학상 인기상),‘호위무사’(03년),‘권왕무적’(04년),‘녹림투왕’(05년),‘표기무사’(08년) 등을 펴냈다.‘스포츠서울’에 ‘검왕본기’를 연재 중이기도 하다.
  • [21세기 新다빈치 프로젝트-통섭을 말하다] 음악가가 음향기기 만드는 ‘통섭의 시대’ 온다

    [21세기 新다빈치 프로젝트-통섭을 말하다] 음악가가 음향기기 만드는 ‘통섭의 시대’ 온다

    원효의 화엄사상 해설이나 조선 말기 실학자 최한기의 기(氣) 철학에서 주로 사용됐다. 정치적으로는 ‘총괄하여 관할한다.’는 뜻으로도 쓰인다.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최재천 교수가 에드워드 윌슨 미국 하버드대 석좌교수의 저서 ‘컨실리언스(Consilience)’를 번역하는 과정에서 재해석해 도입한 개념이다. 요즘 한국 지식사회의 최고 화두는 ‘통섭(統攝)’이다. 대학들은 앞다퉈 통섭을 표방한 학과를 설립하고, 석학들은 지식의 통합을 외치고 있다. 통섭이 ‘새로운 변화’의 상징으로 부상하고 있는 것이다.4년 전 일개 학설로 한국에 소개된 통섭은 이제 스쳐 지나가는 유행이 아닌, 우리 사회가 가야 하는 방향으로 대접받고 있는 셈이다. 통섭이 왜 국내 지식사회의 주제어로 떠올랐고, 그것은 왜 필요한 것일까. 통섭을 주장하는 많은 학자들은 통섭이 ‘한국적 특수성’을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라는 데 대부분 동의한다. 미국이나 유럽과 달리 고등학교 때부터 문과, 이과의 구분에 익숙해진 한국 사람들은 인문학과 자연과학을 별개의 학문으로 생각한다. 서양에서 점차 사라지고 있는 편의상의 학과 구분이 한국에서는 절대적인 기준으로 자리를 잡았고, 결국 그것은 유연하고 복합적인 사고를 갖는 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세계 각국의 학자들은 인간과 기계, 우주, 생명공학 등 다양한 학문을 과학적 방법과 인문학적 방법으로 동시에 고찰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미국 하버드대에서는 1933년부터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교류가 시작됐고, 일본도 학문 전 분야를 아우르는 ‘슈퍼대학원’의 등장을 앞두고 있다. 물론 특수한 학과가 오히려 인기를 끌 정도로 ‘전문성’이 강조되는 한국사회에서 통섭을 논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노령화, 산업 변화의 가속화 등 한국 사회가 겪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통섭적 사고를 갖춘 인간상이 필요하다. 한 예로 평생 직업의 개념이 희박해지는 상황에서 두 번째 또는 세 번째 직업을 찾기 위해 매번 새로운 자격증을 따고 공부를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대신 폭넓은 사고를 갖고, 뛰어난 적응력을 가진 사람을 키운다면 그만큼 새 길을 모색하고 목표를 세우는 데 유리할 수밖에 없다. 학자들이 ‘통섭형 사고 교육’을 어린 시절부터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통섭은 학문의 벽을 허무는 일에서 시작된다. 현재 한국의 대학사회는 같은 학과 교수들 사이에서도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것을 불문율처럼 여기고 있다. 한 사람이 모든 일을 해낼 수 없는 복잡한 현대사회에서 이같은 구분은 오히려 전체적인 그림을 그리는 데 장애로 작용할 뿐이다. 특히 다른 학문에 대한 관심과 기본적인 개념의 이해는 전혀 새로운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역할을 할 수 있다. 개미를 연구하는 생물학자가 인간사회를 기본으로 연구하거나, 기계공학자 대신 음악 전공자가 음향기기를 만든다면 지금까지와는 사뭇 다른 결과물이 나올 것이다. 미국의 경제학자들은 미분방정식으로 경제를 예측하는 대신 자기공명영상을 도입해 경제활동을 하는 인간의 뇌를 분석하기 시작했다.MIT에서는 사람이 전혀 등장하지 않은 채 전자기기가 오페라의 막을 올리고 공연을 한다. 여러 학문에 관심을 갖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아리스토텔레스 통섭의 원조 통섭은 인류 역사와 뗄 수 없는 관계를 갖고 있다.‘지식의 경계’를 넘어서려고 했던 모든 노력을 통섭의 일환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각종 학문에 ‘광범위한 관심’을 가진 것으로 유명하다. 지식의 경계가 없던 시절인 만큼 그의 관심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겠지만, 그 결과 수많은 분야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원조’로 떠받들어진다. 박지원, 홍대용, 최한기 등 조선시대 후기 실학자들도 인문사회과학을 배워 자연과학에 적용하려고 했다는 점에서 통섭의 역사에 기록될 만한 것으로 평가된다.200여년의 시간 차이는 있지만 서양의 다빈치와 조선의 정약용이 약속이나 한 듯 기중기(거중기)를 개발했다는 사실은 통섭적 사고가 시대적 배경이나 사회환경과는 상관없이 작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가장 전형적인 형태의 통섭은 ‘자연을 흉내내는 일’에서 시작된다. 인간사회를 바꾼 수많은 도구와 아이디어가 자연에서 비롯됐다. 기업들은 동물의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연구해 새로운 휴대전화를 만들기 위해 연구 중이다.‘현실에 존재하는 통섭의 메카’로 불리는 미국 MIT 미디어랩은 1985년 ‘함께 모여 상상의 나래를 펼치자.’는 소박한 목표로 시작됐지만, 매년 수백건 이상의 미래 먹거리를 만들어내는 ‘상상력 공장’으로 발전했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국내 연구 현주소 2005년 최재천 교수 등 윌슨의 ‘컨실리언스’를 번역 학문적 기반 아직 취약… 대학들 전면도입 움직 통섭의 개념이 국내 학계의 전면에 등장한 것은 과학철학자 장대익 박사와 최재천 교수가 에드워드 윌슨의 저서 ‘컨실리언스(Consilience)’를 ‘통섭’이란 이름으로 번역, 출간한 2005년의 일이다. 퓰리처상을 두 차례나 받은 미국 하버드대 석좌교수이자 생태학자인 윌슨은 개미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로 섬 생물지리학과 사회생물학이라는 두 개의 학문을 개척했다. 윌슨이 주창한 컨실리언스는 르네상스 회귀로 집약된다. 인문학과 사회과학 등 모든 학문이 언젠가는 자연과학적인 방법론으로 통합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컨실리언스는 19세기 자연철학자 윌리엄 휴얼이 처음 만들어냈다. 라틴어의 ‘컨실리에르(consiliere)’에서 파생된 것으로 추정된다.‘컨(con)’은 영어로 ‘함께’라는 뜻을,‘살리에르(salire)’는 ‘뛰어넘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결국 휴얼과 윌슨의 ‘컨실리언스’는 ‘서로 다른 현상들로부터 도출되는 결론들이 서로 일치하거나 정연한 일관성을 보이는 상태’를 의미한다. 최 교수와 장 박사는 컨실리언스에 대응하는 우리말을 찾기 위해 고심하다가 원효대사의 화엄 사상에서 통섭이라는 말을 찾아냈다. 그러나 이들의 통섭은 방법론과 지향점에서 윌슨 것과 다르다. 윌슨이 자연과학으로의 통합을 강조한 데 반해, 이들은 인문학과 자연과학이 동등한 위치에서 동반자적 관계를 유지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실제로 국내에서 진행되는 통섭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는 학자들의 상당수가 무조건적인 생물학 중심의 학문적 통합보다는 방법론적인 측면에서 자연과학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데 비중을 두고 있다. 통섭이 ‘학문간의 벽을 허물자.’라는 정도의 의미로 쓰이고 있지만, 그것의 정확한 의미나 지향점을 설명할 수 있는 학문적 기반은 취약하다. 올 초 서울대에서 열린 포럼에서는 “기계적으로 학과가 통합되는 것을 물리학적 통합, 두 학문이 새 학문을 만들어내는 것을 화학적 통합으로 정의한다면 통섭은 생물학적 결합으로 경계를 뛰어넘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차원으로 볼 수 있다.”는 발표가 있었지만 구체적 지향점에 대해서는 누구도 방향을 명확히 제시하지 못했다. 특히 가설과 학문 사이에서 여전히 논쟁 중인 외국과 달리, 전면 도입을 추진하고 있는 한국사회의 움직임은 다소 위험하다고 주장하는 쪽도 있다. 인위적인 벽 허물기가 될 경우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통섭의 시대’ 다시 주목받는 다빈치식 사고 통섭을 언급하는 학자들은 통섭형 인간의 표본으로 르네상스 시대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꼽는다. 다빈치식 사고는 끊임없는 지적 호기심과 경험을 통한 증명정신, 예리한 관찰과 섬세한 감각, 모호한 것까지 포용하는 묘사법, 과학과 예술의 조화, 건강한 육체와 정신, 그리고 한 가지 아이디어에 다양한 분야를 엮어내는 연결 습관 등으로 집약된다. 시대와 환경을 뛰어넘어 최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사람인 셈이다. 과연 다빈치는 어떤 사람이었고, 어떤 사고방식이 그로 하여금 위대한 업적을 쌓게 만들었을까. 다빈치식 사고를 가진 수많은 사람을 키워 새로운 시각으로 현대를 바라보게 할 수는 없을까. 이탈리아 각지에 숨어 있는 다빈치의 발자취를 찾아, 왜 그가 지금 다시 주목받고 있는지를 짚어봤다. |빈치·피렌체·밀라노(이탈리아) 박건형특파원|이탈리아 밀라노에 자리잡은 오페라극장 라 스칼라 앞 광장. 거대한 성당 두오모를 보려는 관광객들이 꼭 지나야 하는 이곳에 레오나르도 다빈치(1452∼1519)의 동상이 우뚝 솟아 있다. 동상 아래에 적혀 있는 ‘과학과 예술의 혁명가(AL Rinnovatore Delle Arti E Delle Scienze)’라는 문구는 다빈치를 설명해주는 가장 짧은 수식어이자,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천재로 추앙받는 다빈치에 대한 이탈리아인들의 헌사다. ●거대한 박물관이 된 다빈치 고향 500년이 훌쩍 넘는 시간이 흘렀지만 이탈리아 곳곳에는 다빈치가 여전히 살아 숨쉬고 있다. 다빈치는 이탈리아인들의 영웅이자 정신적 지주다. 수도 로마 공항의 공식 명칭은 ‘레오나르도다빈치공항’. 공항과 시내를 연결하는 기차의 이름 역시 ‘레오나르도 익스프레스’다. 공항 곳곳에 다빈치의 작품을 형성화한 조형물들과 그의 동상을 목격할 수 있다. 암흑의 중세를 벗어나 인문학의 부흥을 이끌어낸 르네상스의 핵심도시 피렌체를 지나 피사 방향으로 65㎞가량 떨어진 작은 마을 빈치에 도착했다. 나지막한 언덕으로 둘러싸여 있고, 사방 어느 곳에나 포도밭과 올리브 나무만이 가득한 특별할 것 없는 시골마을이 바로 다빈치의 고향이다. 마을 중심지의 가장 높은 곳에는 3m가 넘는 비트루비우스의 ‘인체 비례도’ 조형물이 다빈치의 고향임을 말해주고 있다. 다빈치는 로마의 건축가 비트루비우스의 이론에 따라 기하학적으로 완전하다고 생각하는 원 안에 사람의 몸을 그렸다. 이 비례도의 원본은 베니스 박물관에 소장돼 있지만, 공개는 허용되지 않는다. 다빈치가 빈치에 살았던 기간은 태어난 이후 피렌체에서 베르키오의 도제로 들어가기 전까지 16∼17년간으로 알려져 있다. 붉은색 벽돌로 지어진 그의 생가는 세 개의 방으로 이뤄져 있다. 집 내부에는 다빈치의 생애와 작품에 관한 글들이 벽을 장식하고 있지만, 실제로 다빈치의 흔적은 벽난로와 책상뿐이었다. 생가를 지키고 있는 빈치 시청의 알베르토 로카티는 “다빈치는 세르 피에로와 카테리나라는 하층계급 여인 사이에서 태어난 사생아였다.”면서 “다빈치를 연구하는 학자들 사이에서는 다빈치의 왕성한 학구열이 어린 시절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것에 대한 반사작용이란 설도 있다.”고 소개했다. 마을의 중심지 폭이 채 500m밖에 되지 않는 조그만 빈치지만, 마을 전체가 거대한 다빈치 박물관의 역할을 하고 있다. 성당 옆에 자리잡은 다빈치 박물관에는 그가 설계한 물레와 기중기 등의 원리가 자세히 설명돼 있다. 다빈치 아이디어 박물관은 다빈치의 사고가 어떻게 형성됐으며 후세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한 체험관이다. 박물관 학예사인 세르지오 페오네는 “다빈치는 고대 그리스의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처럼 사고가 다방면으로 발달해 있었다.”면서 “이 박물관의 첫 번째 전시물도 플라톤의 흉상”이라고 밝혔다. 이어 “다빈치가 스케치한 작품을 실제로 만들어보는 작업이 하나의 학문으로 자리잡고 있을 정도로 많은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고 덧붙였다. 마을 곳곳에 자리잡은 상점에서는 티셔츠나 엽서 등 흔한 기념품 대신 다빈치가 고안한 시계와 헬리콥터 모형 등이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학문과 예술 꽃피운 피렌체, 밀라노 다빈치 연구자들은 그의 생애를 크게 제1차 피렌체 시대(1466∼1482), 제1차 밀라노 시대(1482∼1499), 제2차 피렌체 시대(1499∼1506), 제2차 밀라노 시대(1506∼1513), 그리고 로마ㆍ앙부아즈 시대(1513∼1519) 등 다섯 시기로 구분한다. 말년을 제외하면 그의 성과가 대부분 밀라노와 피렌체에서 이뤄진 셈이다. 피렌체 우피치 박물관에는 다빈치의 작품 중 가장 오래된 1473년의 데생이 걸려 있다. 이때까지만 해도 다빈치는 보티첼리, 크레디, 페루지노 등 베로키오 산하의 수많은 제자들 중 한 명에 불과했다. 그러나 베로키오의 도제로 있는 동안 다빈치는 그림을 그리는 일에만 매달리지 않고 건축, 도형 연구, 광학론, 원근법, 기하학, 자연과학, 음악 등을 폭넓게 익혔다. 이때 배운 원근법의 결실이 바로 1495∼1497년에 다빈치가 완성한 밀라노 산타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성당의 ‘최후의 만찬’이다.15분에 단 25명의 관람객에게만 공개되는 이 불후의 거작은 성당의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울 만큼 크고 장엄했다.‘최후의 만찬’ 전문 가이드인 실비아 솜바루는 “작품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미술사학자, 구조학자, 역사학자, 광학자 등 각 분야에 걸쳐 있다.”면서 “지금도 이 그림 연구로 연간 수십편의 논문이 쏟아져 나올 정도”라고 밝혔다. 성당 길 건너편에는 레오나르도 다빈치 국립 과학기술박물관이 있다. 온통 과학에 관한 내용으로 꾸며진 박물관 전시물 중 다빈치가 고안한 각종 기계들이 단연 인기다. 피렌체 시내에도 다빈치의 기계를 실물 크기로 재구성해 전시·체험할 수 있도록 한 두 곳의 박물관이 있다. 두 도시의 대형 서점에는 다빈치 관련 서적들이 별도의 공간을 차지하고 있고, 탄생 555주년을 맞았던 지난해에는 도시 전역이 다빈치 기념물로 꾸며지기도 했다. 빈치시의 다빈치 박물관장 알레산드로 베조시는 “다빈치의 지식은 대부분 직접 아이디어를 구상하고 실험을 통해 검증하는 단계를 거쳤다.”고 소개했다. 이어 “다빈치가 ‘단순한 천재’였다면 그저 동경의 대상이자 신화적인 존재에 머물렀겠지만, 다빈치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각고의 노력을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닮고 싶은 존재’ ‘배워야 할 존재’로 평가받고 있다.”고 말했다. kitsch@seoul.co.kr ■다빈치는 어떻게 만능학자가 되었을까 호기심·증명정신 겸비 ‘노력하는 천재’ 해부학자, 건축가, 식물학자, 도시계획가, 의상·무대디자이너, 요리사, 해학가, 엔지니어, 발명가, 지리학자, 지질학자, 수학자, 군사과학자, 음악가, 화가, 철학자, 물리학자, 이야기꾼…. 다빈치는 인간이 알고 있는 거의 모든 분야에 관심을 가졌고, 여러 분야에서 천재성을 발휘했던 인물이다. 이탈리아 전역은 물론, 프랑스와 영국에도 다빈치 박물관이 있고 대부분 진품을 최소한 한 가지 이상 소장하고 있다. 평생 그가 만들어낸 결과물이 얼마나 방대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가 탄생한지 556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다빈치는 지식인들이 꿈꾸는 ‘만능인’(Universal Man)의 표상으로 꼽힌다. 심리학자 하워드 가드너가 주창한 지능의 다양성에 대한 이론에 따르면 천재는 논리·수학(스티븐 호킹, 아이작 뉴턴), 언어(윌리엄 셰익스피어, 에밀리 디킨슨), 공간·기술(미켈란젤로), 음악(모차르트), 신체·운동감각(무하마드 알리), 사회적 대인관계(엘리자베스1세, 마하트마 간디), 자기 인식적 대인관계(틱낫한, 테레사 수녀) 등 일곱가지 척도 중 하나에서 특이성을 보인다. 그러나 다빈치는 일곱가지 분야에서 모두 천재성을 나타냈다. 고도로 전문화되고 세분화된 현대 사회에서 다빈치가 다시 각광받는 것은 그가 거의 모든 학문에서 특이성을 보인 이유가 단순한 천재여서가 아니었다는 점이 밝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노력하는 천재’였고, 결과물을 만들어내기 위한 실용주의적인 시각을 갖고 있었다. 그가 해부학에 관심을 가진 것은 좀 더 정확한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였고, 물의 과학에 관심을 가진 것은 좀 더 좋은 다리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유체역학에 대한 연구는 비행기 설계로 이어졌고, 노년에는 이 모든 기계의 원리를 하나로 설명할 수 있는 근원을 찾기 위해 골몰했다. 최근 미국과 유럽에서는 다빈치의 사고방식을 이해함으로써 교육법에 적용하려는 시도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마이클 겔브가 쓴 ‘레오나르도 다빈치처럼 생각하기’는 현재 전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교육서적 목록에 올라 있다. 겔브는 “다빈치가 살았던 르네상스 시대에는 다재다능하고 균형잡힌 인간, 예술과 과학 양쪽을 모두 편안하게 포용할 수 있는 인간을 이상형으로 삼았다.”면서 “정보의 홍수 속에서 폭넓은 지식을 쌓아야 하는 현대인에게 다빈치식 사고는 최적의 모델”이라고 밝혔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변혁의 중동을 가다] (하) 아부다비에 부는 변화의 바람

    [변혁의 중동을 가다] (하) 아부다비에 부는 변화의 바람

    |아부다비 최종찬특파원|아랍에미리트(UAE)의 제1도시이며 수도인 아부다비는 두바이에서 서쪽으로 160km 떨어져 있다. 자동차로 1시간30분밖에 안 되는 거리다. 두바이에서 시작하는 8차선 고속도로인 셰이크 자이드 로드를 타고 가면 아부다비가 나온다. 국경표지판은 없지만 나무들이 많이 보이기 시작하면 아부다비 땅에 들어온 것이다. 도로변과 중앙분리대에는 2m 간격으로 나무들이 촘촘하게 심어져 있었다. 야자나무와 어린 묘목들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나무를 관리하는 인부들이 무더위를 피해 나무 그늘 밑에서 쉬고 있었다. 풀 한포기 나지 않는다는 사막 한가운데서 보는 ‘8월의 크리스마스’같은 풍경이었다. 자세히 보면 나무와 나무 사이에 검정호스가 깔려 있었다. 그 호스에는 일정한 간격으로 구멍이 뚫려 있었다. 이 구멍을 통해 아침과 저녁에 물을 공급한다. 비가 거의 오지 않기 때문에 물을 인위적으로 주지않으면 나무들이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가이드 정영미(35)씨는 “이 물은 바닷물을 담수화해서 사용한다.”고 말했다. 이는 UAE 초대국왕인 세이크 자이드의 국토 녹지화 프로젝트에 따른 결과다. 그는 오일머니로 벌어들인 돈 가운데 1억 5000만달러를 쏟아부었다. 그 결과 현재 국토 전체의 80%에 관목, 나무, 잔디밭이 조성돼 있다. ●나무 많고 차량소통 원활한 ‘인간적인 도시´ 아부다비 도심에 들어서자 인간적인 냄새가 물씬 풍겼다.20년 이상된 건물들도 많고 고층빌딩들도 두바이에 비하면 절반 크기였다. 대신 나무들은 몇배나 많고 차량소통도 원활했다. 번잡하고 어수선한 두바이에 비하면 조용하고 정돈돼 있었다. 또한 도심 가까이에 에메랄드빛 아라비아걸프해가 있어 녹색의 가로수들과 조화를 이뤄 이국적인 멋을 내고 있었다. 8성급 호텔인 에미리트호텔에서 18개월째 객실종업원으로 일하고 있는 한송이(25)씨는 “한국 사람들은 두바이를 보지 않으면 중동구경을 하지 않은 것으로 생각하지만 나는 아부다비가 휠씬 정이 간다.”고 말했다. 아부다비 유일의 한국음식점인 한국관 주인 황긍순(73)씨는 “아부다비는 자동차에 기름을 가득 채워도 한국 돈으로 2만원정도면 충분하다.”며 “교통체증도 범죄도 없어 여유 있는 생활이 가능한 곳”이라고 거들었다. 물론 아부다비에도 개발의 바람이 불고 있었다. 곳곳에서 망치질하는 소리가 들렸다. 높이 경쟁하듯 고층빌딩들이 들어서고 큰 도로가 만들어지고 있으며, 해안선을 따라 전망 좋은 집들이 생겨나고 있었다. 자연섬을 개발하고 고속도로와 항구도 만들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두바이처럼 개발만을 우선시하지 않았다. 환경과의 조화를 최우선으로 고려하고 있었다. 아부다비 공기업인 TDIC는 이런 개발전략을 수행한다. 자연자원을 보존하면서 아부다비의 유산과 문화를 강조하는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두바이식 ‘개발 지상주의´ 지양 바셈 데르카위(35) TDIC 홍보담당 부이사는 “두바이의 발전을 반면교사로 삼아 아부다비 개발을 서두르지 않을 것”이라며 “환경, 안전, 에너지 등을 고려한 발전전략을 구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에 따르면 TDIC는 2개의 대형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하나는 자연섬을 통째로 개발하는 사디야트 아일랜드 프로젝트다. 아부다비 본토에서 500m 떨어진 사디야트는 버뮤다의 절반크기로 27㎢의 자연섬이다. 총 공사비 27억달러를 들여 2018년까지 레저, 문화, 주거 삼박자를 갖춘 복합문화주거단지를 건립한다. 특히 7개구역 가운데 하나인 문화구역에는 세계최대 규모의 루브르박물관, 구겐하임 미술관(이상 2012∼2013년 오픈), 파리 소르본 대학 분교를 유치한다. ●“속도 꽉찬 알토란 도시 될 것” 또 하나는 8개의 섬을 복합휴양단지로 개발하는 데저트 아일랜즈 프로젝트다. 30억달러를 투입해 환경생태학적 개념으로 개발된다. 예컨대 도심으로부터 250㎞ 떨어져 있는 시르 바스 야니 섬은 여러 야생동물과 350만그루가 넘는 나무들로 우거져 있는 점을 고려해 카약과 등반, 하이킹 장소로 활용할 계획이다. 같은 회사 직원인 마라 칼리드 알 카시미(30)도 “두바이는 최고점에 달했지만 아부다비는 이제 기지개를 켠 것에 불과하다.”고 강조했다. 도심에서 만난 사미라 요니스 알-가페리(28)는 “두바이가 콘텐츠를 바탕으로 외자를 끌어들이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면 아부다비는 풍부한 재산을 지렛대로 한 고품질 전략을 쓰고 있다.”며 “겉만 화려한 두바이보다 속도 알토란 같이 만드는 아부다비의 앞날이 더 유망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처럼 UAE 원유생산의 92%를 차지하고 있으며 1인당 GDP가 4만 5000달러로 세계 최고 갑부도시인 아부다비가 형님 본색을 드러내고 있다. 동생인 두바이의 그늘을 벗어나 세계문화 허브로서 자리매김할 꿈을 차근차근 실현해 가고 있는 것이다. siinjc@seoul.co.kr ■스카이라인 화려한 두바이의 두 얼굴 “부자들 쇼핑의 천국” vs “허상 덩어리… 비싼물가 문제” |두바이 최종찬특파원|두바이 하늘은 모래바람으로 뒤덮여 있었다.5일째 계속되고 있었다. 모래바람은 2월에 잦은데 최근 기상이변으로 6월에도 나타난 것이었다. 두바이도 기상이변을 못 비켜가는 모양이었다. 모래바람 덕분에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두바이의 스카이라인은 제 모습을 다 보여주지 못했다.7성급인 버드 알 아랍 호텔의 위용은 간 곳이 없었다. 인간의 기술도 자연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서울의 6배 크기인 두바이 거리는 인공적인 냄새가 물씬 풍겼다. 주요 도로를 따라 늘어서 있는 고급 빌라들은 거의 같은 모양 같은 크기였다. 누가 바벨탑이 될 것인가를 놓고 내기하는 듯한 고층 건물들의 색다른 디자인에서 그런 냄새는 더욱 풍겼다. 두바이는 한낮에 40도를 넘는 폭염 때문에 거리는 한산했다. 폭염 속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외국인 건축노동자들이었다. 인도나 파키스탄, 서남아시아에서 온 노동자들이 비지땀을 흘리며 철근을 박고 콘크리트를 다지고 있었다. 반면 아라비아걸프해에 있는 해변에 가면 수영복을 입은 서양사람들이 파도와 씨름을 하며 다른 세상을 연출하고 있었다. 두바이 최대 쇼핑물인 에미리트몰은 사람들로 넘쳐났다. 한달동안 계속되는 쇼핑 페스티벌이라는 바겐세일 때문이다. 상점마다 60∼70%를 할인한다는 안내문구가 적혀 있었다. 두바이 현지인들은 돈이 많기 때문에 고가의 물건도 주저없이 산다. 실제로 전통옷을 차려입은 여성이 4000디르함(약 113만원)이 넘는 의류를 수십 벌을 사는 것을 목격했다. 이곳에서 만난 스코틀랜드인 알렉스 데이비드선(60)은 “두바이는 세상 만물의 전시장이며 쇼핑 천국”이라고 말했다. 카타르에서 온 압둘라 알 몬디(40)는 “두바이 쇼핑몰은 중동 부자들의 친목잔치 장소”라고 거들었다. 하지만 두바이가 명성에 걸맞은 곳인가에 대한 견해는 갈렸다. 사막 사파리투어 전문가이드인 아크바드 칸(32)은 “두바이에는 범죄도 없고 사업하기도 좋은 기회의 땅”이라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반면 부동산 컨설팅회사에서 근무하는 호주 출신의 라네사(22)는 “두바이는 문화가 없으며 모든 것이 허상”이라고 잘라 말했다. 카르푸에서 만난 상사원부인인 정춘희(42)씨는 “두바이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저임금에 시달리고 가파르게 치솟는 물가와 터무니없이 높은 주택 임대료 등 문제점이 많은데 세계 언론들이 장점만 부각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종찬기자 siinjc@seoul.co.kr ■전략문제연구소 미디어국장 “TV·신문 24시간 모니터링 대통령 등 최상부에 보고” |아부다비 최종찬특파원|“매일 아침 세계 주요 뉴스를 스크린해서 가장 중요한 내용을 간추려 대통령 등 최상층부 4명에게 보고합니다.” 아부다비 전략문제연구소 모하메드 압둘라 알-알리 미디어국장은 연구소의 중요 역할 하나를 이렇게 밝혔다.1994년 3월14일 설립된 이 연구소는 UAE와 걸프지역에 영향을 미치는 정치, 사회, 경제 이슈와 주제, 발전에 대한 객관적인 조사를 한다. 그동안 40차례의 국제회의, 강연, 세미나를 개최했다. 연구성과를 담은 570권의 책도 출간했다. 전체직원은 300명이며 그중 70명이 미디어국에서 일한다. 그는 “세계 주요 방송과 라디오를 모니터링한다.”며 “350개 TV채널과 179개 라디오채널을 24시간 모니터링해서 중요뉴스를 취합한다.”고 밝혔다. 이어 “매일 아침 350개 신문도 모니터링해 중요 내용을 간추린다.”고 덧붙였다. 지역정보 수집을 위해 러시아, 중국, 일본 등 14개국에 직원을 상주시키고 있다. 그는 “신문과 방송을 통해 취합된 뉴스는 보고서로 만들어져 UAE 중요 인사 800명에게 페이퍼형태로 보내고 동시에 SMS메시지로도 보낸다.”고 강조했다. 상층부의 지시에 따라 여론조사도 가끔 한다는 그는 “한국관련 기사는 영어와 아랍어로 번역된 내용을 취합하며 동시에 한국에 있는 아랍어를 구사할 수 있는 사람으로부터 정보를 얻는다.”고 밝혔다. siinjc@seoul.co.kr
  • 개화기·일제시대에도 영어는 출세의 필수 수단

    개화기·일제시대에도 영어는 출세의 필수 수단

    새 정부가 ‘아륀지’소동으로 영어사교육을 부추기고 혀를 더 잘 굴리기 위해 아이들이 수술대에 내몰리는 시대. 이같은 ‘영어 쓰나미’ 현상은 초등학교에 영어교육이 도입된 1997년부터 이미 그 싹을 보였다. 그러나 ‘개화기·일제시대에도 영어가 곧 권력이자 출세의 필수 수단이었다.’는 주장이 제기돼 관심을 모은다. 박거용 상명대 영어교육학과 교수는 계간 ‘내일을 여는 역사’(내일을 여는 역사재단 펴냄) 여름호에 실린 ‘영어 신화의 어제와 오늘’이란 논문을 통해 이같은 주장을 폈다. 일제시대는 흔히 영어교육의 ‘암흑기’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박 교수는 “이는 정확하지 못한 인식”이라고 단언한다.3·1운동 후 일본은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를 고등보통학교의 필수 과목으로 정했다.1922년 제2차 조선교육령이 시행되면서부터는 주 32시간 교육 중 외국어 교육시간이 5∼7시간을 차지하기도 했다. 개화기에는 ‘미션스쿨’이 큰 역할을 했다.1885년 배재학당,1886년 이화학당·경신학교 등이 설립되면서 영어교육기관으로 활용됐다. 특히 영어교육이 설립 동기 가운데 하나였던 배재학당에는 많은 학생들이 몰렸다. 그러나 1903년 영어 과목이 정규과목에서 제외되자 학생들이 대부분 다른 학교로 전학 가버리는 일도 발생했다. 박 교수는 “이는 예나 지금이나 영어가 지식과 정보를 얻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그 자체로 독자의 가치를 지닌 물신’ 또는 ‘문화자본’으로 기능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꼬집는다. 결국 “영어는 근대문명 수용의 도구이자 출세의 수단으로 기능했고, 한국 영어교육의 고질병인 문법 중심·번역식 영어교육도 이때부터 출발했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영어 제일주의’ 풍조는 해방 후 3년간 미 군정기에서 극에 달했다. 당시 미 군정청의 ‘조선인에게 고함’이라는 태평양 미군 육군부대 사령부 포고 1호는 “군사적 관리 기간 동안에는 영어가 공식 언어다.”라고 규정했다. 공식 언어는 영어이고 영어 원문이 기준이 되며 조선어나 일본어는 참고자료일 뿐이라는 것이다. 박 교수의 지적대로 “정치·경제·사회·문화·교육 등 모든 면에 걸쳐 일제(日帝)에서 미제(美帝)로의 이동이 자연스럽게 완료된 셈”이다. 박 교수는 영어광풍을 잠재우기 위해 “미신이 되어버린 영어신화를 깨고 초등학교와 중등학교, 대학교까지 아우르는 일관성 있는 교육 정책과 과정 개발이 절실하다.”고 강조한다.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가난 극복 해법은 ‘자본’에 있다

    마르크스의 ‘자본’(강신준 옮김, 길 펴냄) 독일어 완역본이 나왔다. ‘자본’을 놓고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다만 과거 금기의 언어로 치부되던 ‘자본’이 최근 한 설문조사(4월4일자 ‘교수신문’)에서 정부 수립 후 한국사회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책 1위로 꼽혔다는 역설만 짚고 넘어가자. 현재 한국엔 두 개의 ‘자본’ 판본이 존재한다. 역자가 익명 뒤에 숨어야 했고 출판사 대표와 편집장에게 수배령이 떨어지게 했던 이론과실천사 판본과 ‘자본’의 국내 대중화에 기여한 비봉출판사 김수행 판본이다. 이론과실천 판본 1권은 1987년 6명이 급하게 공동 번역한 것을 강신준 현 동아대 경제학과 교수가 손봐 냈고,2권과 3권은 강 교수가 따로 번역해 출간했다. 이번 독일어 완역본은 절판된 이론과실천 판본을 강 교수가 20년 만에 다시 번역한 것이다.1999년부터 새 번역을 시작했으니 1권이 나오는 데만 10여년이 걸린 셈이다. 김수행 판본도 영어 중역(重譯)본이란 점에서 독일어 완역본 출간이 갖는 의미는 적지 않다. 강 교수는 독일 관념론을 딛고 일어선 변증법적 유물론의 정교한 논리를 영어로 옮기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본다. 그는 독일 프랑크푸르트 대학에서 독일 노동운동사를 공부했다. ‘자본’이 씌어진 19세기의 지배적인 사회경제적 조건은 지독한 가난이었다. 당대의 가난은 전 시대의 가난과 질적으로 달랐다. 노동하는 사람들에게 특히 집중됐던 가난은 죽도록 노동해도 결코 떨칠 수 없는 것이었다. 자본주의로 명명되기 시작한 특수한 역사발전 단계의 파생물이었고,‘자본’은 자본주의의 체계적 분석을 통해 가난 극복의 해법을 모색한 저작이었다. 강 교수는 중요한 것은 ‘자본’의 현재성이라고 말한다. 오늘날 가난은 사회양극화 심화로 다시 한번 ‘변신’을 꾀하고 있다. 부자와 빈자는 늘 있었지만, 부자와 빈자 간의 오늘 같은 간극은 전에 없었다. 강 교수는 “노동하면서도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현상이 존재하는 한 ‘자본’은 지금도 여전히 진행중인 저작”이라고 말한다. 출판사 측은 이번에 나온 1권에 이어 나머지 2권과 3권을 1년 정도 시차를 두고 펴낼 계획이다.1-1권 3만 5000원,1-2권 3만원. 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 [이대통령 취임 100일]새정부 ‘美쇠고기 협상’ 기점으로 ‘날개없는 추락’

    [이대통령 취임 100일]새정부 ‘美쇠고기 협상’ 기점으로 ‘날개없는 추락’

    “인선을 잘못해 ‘강부자 내각’을 구성했다. 정무 능력 부재다. 정책 조율을 못한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민심을 무시할 정도로 소통에 서투르다.” 취임 100일을 이틀 앞둔 1일 이명박 정부를 향한 평가로는 이같은 혹평이 주를 이룬다. 국민들이 정권과의 ‘허니문’ 대신 ‘조기 이혼’을 요구하며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간 형세다. 각종 조사에서 이 대통령 지지율은 20% 대 초반을 기록했다. 유례가 없는 일이다. 정치컨설팅업체 폴컴의 윤경주 대표는 “20%로 떨어진 지지율이 50%대로 회복되기는 어렵다. 회귀해도 30% 정도”라고 내다봤다. 상황이 이만큼 악화됐다. ●인선 잘못한 ‘강부자 내각’ 구성 참여정부의 낮은 인기를 발판으로 삼았던 이 대통령이지만, 최근 전임 노무현 정부에 쏠렸던 비판을 고스란히 물려받는 모양새다.‘무능’ 또는 ‘아마추어리즘’에 대한 비판이 그것이다. 여러 형태로 제기된 비판이 ‘무능’이라는 요소로 수렴되고 있다.‘강부자 내각’은 원래 도덕성 논란으로 연결됐지만, 애초부터 새 정부에 높은 도덕성을 기대하지 않았던 탓에 곧 사그라졌다. 하지만 청문회에서 장관들이 우물쭈물한 태도를 보이자 인선 문제는 “주변에 사람이 그렇게 없나.”라는 식의 ‘무능’에 대한 비판으로 비화됐다. 취임 초기 이 대통령이 정부 업무보고를 받고 즉석에서 생필품 50개 물가 관리를 지시할 때에는 즉흥적인 행보가 도마에 올랐지만, 역으로 ‘실무형·CEO형 리더십’이라는 매력이 부각됐다. 하지만 이후 물가가 오르고 경기가 침체되면서 문제가 생겼다. 윤경주 대표는 “정부가 물가를 희생하거나 환율·금리 운용을 잘못한 측면이 있다. 또 최근 쇠고기 협상 과정에서 번역을 잘못하는 등 정부의 무능한 모습이 드러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경제보다는 정치개혁에 초점을 맞춘 참여정부 때에 비해 이번 정부에 무능이 덧씌워졌을 때 더 큰 타격이 생길 것”이라면서 “경기가 호전되기 전에 지지율이 회복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경제 대통령 이미지도 잠식당할 위기 전문가들은 미 쇠고기 문제 해법을 통해 남은 임기 동안의 정국을 예상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지금까지 역경을 겪은 뒤 이를 극복하는 ‘영웅적 서사 구조의 삶’을 살아온 이 대통령이 자신의 경험칙대로 움직일지, 새로운 형태의 리더십을 발휘할지가 관전 포인트다. 정치 컨설턴트인 김윤재 변호사는 “여야 정쟁하듯 국민과 정쟁을 할 생각이 아니라면 청와대가 전면적 쇄신을 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그는 “촛불시위 배후를 거론하며 시위대와 일반 시민을 분리하고, 시위대를 고립시켜 버린다면 매우 불행한 일이 발생할 것”이라면서 “국민과의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국민들은 아직 참여정부를 선택한 손으로 찍은 이명박 정부에 미련이 남아 있다고 본다.”면서 “국민들도 재협상 요구가 받아들여졌을 때 미국과의 관계 악화 등을 감내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 굵직굵직한 이슈들 정리 번역의 역사적 의미 조명

    훌륭한 번역가를 만났을 때 국경을 넘어온 책에는 없던 날개가 달린다. 원문의 묘미를 다치지 않고 옮기는 글작업이 얼마나 힘든지를 압축한 표현이 있다.“번역은 반역이다.” 영국속담이기도 한 이 말은 빼어난 언어감각으로 독일어권 문학의 지평을 넓힌 번역작가 슐레겔이 인용해 더 유명해졌다. 일본의 저명 번역가 쓰지 유미가 쓴 ‘번역사 오디세이’(이희재 옮김, 끌레마 펴냄)는 번역의 인류문화사적 의미를 짚는다. 원작자 혹은 번역가 둘 중의 하나는 만신창이가 되고만다는 번역의 고단한 면모를 따진 게 아니라 인류사에 걸쳐 그것이 남긴 ‘성과’에 주목했다. 책은 인류의 문화, 학문, 예술, 과학이 세대와 국경을 넘어 파급되는 과정을 ‘번역’이라는 창을 통해 들여다봤다.“다른 나라의 언어에 새 생명을 불어넣어 자기의 문화를 재창조하는 작업”이라고 번역을 정의한 뒤 번역은 창조에 종속되는 작업이 아니라 한때 창작에 버금가는 중요한 문화행위였음을 흥미로운 일화들을 동원해 재확인시킨다. 번역이 처음 시작된 고대 이집트에서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는 번역가들이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 기원 이후의 이집트나 중세 유럽의 번역가들은 왕국과 귀족의 후원을 받았다는 것. 르네상스기에서부터 근대까지 번역을 둘러싸고 벌어진 굵직굵직한 이슈들을 정리한 대목은 특히 주목해볼 만하다. 그리스도교 국가인 중세 유럽은 이슬람교도인 아랍인들의 번역으로 꽃피워진 그리스·로마 문화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심각하게 고민했다. 성경이 아랍의 번역을 거쳐 중세로 전해졌으나, 유럽은 라틴어 성경을 고집했다. 대중의 통속어(프랑스어)로 성경을 번역할지의 문제도 대단한 사회적 이슈가 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일리아스’ 원문의 번역을 둘러싸고 고대파와 당대파가 서로 우월하다고 다투는 바람에 프랑스가 시끌시끌했던 적도 있었다. 책이 귀띔하는 흥미로운 사실 또 한가지. 앙드레 지드, 보들레르, 몽테뉴, 뒤마, 볼테르 등 중세와 근대를 움직인 대다수의 저명작가들은 번역으로 글쓰기의 탄력을 붙여갔다.1만 4000원.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영국선 팩션과 여성취향 소설이 인기”

    “영국선 팩션과 여성취향 소설이 인기”

    “한국 문학은 영어로 번역돼 나온 게 별로 없는 탓에 제대로 읽어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한국 영화는 여러 편을 봤죠. 그 중 ‘괴물’이 기억에 남습니다. 한강에 괴물이 살고 있다는 작품 설정 차체가 매우 흥미로웠죠.” 18일 한국문학번역원 주최로 개막된 ‘2008 서울, 젊은 작가들’ 축제에 참석한 영국 작가 스티븐 홀(33)은 서울 서교동 서교호텔에서 기자와 만나 “한국에 오기는 이번이 처음”이라며 “어젯밤 도착해 호텔 인근 신촌지역의 여러 쇼핑몰을 둘러봤는데, 매우 다양한 상품을 갖추고 있어 환상적이었다.”고 말했다. 지난 2007년 출간한 뒤 세계 33개국에서 번역소개된 ‘날상어 텍스트’라는 단 한편으로 영국 문단의 샛별로 떠오른 그는 셰필드 핼럼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한 뒤 소설가가 된 독특한 경력의 소설가.“나의 경우 화가 지망에서 소설가가 된 게 자연스럽다고 생각해요. 그림을 그리며 단어에 흥미를 갖다 보니 자연스레 단어의 시각적 효과에 관심을 갖게 되고, 이는 곧 이야기로 발전해 하나의 소설이 된 것입니다.” 올 여름 국내에 번역·출간될 ‘날상어 텍스트’는 한 남자의 사랑과 좌절, 상실 등을 그로테스크하게 그려낸 장편. 작품의 주인공인 한 남자가 깨어났는데, 과거의 기억을 모두 잃어버린 상태여서 당황스러워하는 모습으로 소설은 시작된다. 이때 의사는 “당신은 기억상실증에 걸렸다.”고 진단한다. 하지만 남자는 우연히 ‘의사의 말을 믿지 마라.’는, 자신이 이전에 남긴 쪽지를 찾아내면서 또다시 혼란에 빠진다는 것. “‘상어’는 머릿속에 있는 상상의 존재이고 그 남자가 정상적인지, 아니면 미쳤는지, 그 남자가 말하는 것이 진실인지, 허구인지를 정확히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이는 독자들이 내 소설을 끝까지 읽고 판단할 몫이기 때문이죠.” 단숨에 읽어 내려가기가 쉽지 않은 이 소설 속에는 여러가지 시각적 이미지가 들어가 있다. 예컨대 ‘상어’가 이야기를 묘사하는 장면에서는 단어를 ‘상어’ 형태로 배치하는 등 독특하게 꾸며져 있다. 시각적 이미지가 텍스트와 결합된 이야기인 셈이다. “영국에서는 10년전만 하더라도 현실적이고 진지한 작품들이 인기를 끌었는데, 요즘 들어서는 역사적 사실과 허구가 뒤섞인 팩션류나 SF(공상과학물) 등 판타지, 여성 취향의 소설들이 많이 읽힙니다.” 영국 문단의 흐름과 관련해 댄 브라운의 ‘다빈치 코드’ 등의 팩션과 여성 취향의 칙릿소설 등이 인기를 얻고 있다고 작가는 전했다. “지난 1년동안 새 작품을 구상하기 위해 미국·캐나다, 뉴질랜드 등 세계 여러나라를 여행했습니다. 그래서 ‘날상어 텍스트’는 과거를 회상하고 반추하는 형식인 반면, 새 작품은 완전한 행복을 찾아 떠나가는 미래 이야기가 될 것입니다. 판타지도 들어가고 리얼리티도 포함돼 있어 재미있게 읽히는 소설이 될 것입니다.” 글 사진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 [김성호 전문기자의 한국서 길찾는 이방인] (16) 원불교 연지교당 원성제 부교무

    [김성호 전문기자의 한국서 길찾는 이방인] (16) 원불교 연지교당 원성제 부교무

    전북 정읍의 원불교 연지교당(정읍시 수성동 1020-4). 법회 출석 교인이 고작 70명 남짓한 작은 교당이지만 원불교가 운영하는 어린이집이 달려 있어 여느 원불교 교당과는 사뭇 다르게 활기차다. 이곳에서 아이들을 돌보며 영어를 가르치고 어린이·청소년 법회를 이끄는 네팔 포카라 출신의 원성제(29·본명 케삽 사르마 파우렐) 부교무. 카스트 제도가 여전히 엄격한 네팔의 최고 계급인 브라만 집안 출신으로 원불교에 귀의해 성직자의 길을 걷는 인물이다. 원불교가 뭔지도 모른 채 그냥 불교와 한국문화를 배우러 한국에 왔다가 출가, 고국 네팔 사회의 차별없는 삶과 발전을 늘상 가슴에 새기며 사는 독특한 신앙인이다. 대각개 교절은 원불교 교조인 소태산 대종사가 구도 끝에 깨달음을 얻었다는, 원불교 최대의 축일. 이 대각개교절 사흘 뒤인 지난 1일 오후 연지교당에서 원성제 교무를 만났다. 연이은 기념행사 끝이어서일까 조금은 피곤한 기색. 하지만 환하게 기자를 맞는 원 교무의 눈빛은 녹록지 않았다. 원광대 원불교학과 4년과 대학원 2년을 마치고 원불교 귀의겸 출가식을 가진게 지난해 12월. 한달 뒤인 올해 1월 교무 발령을 받아 첫 부임지인 이곳에서 주임교무를 돕고 있다. 원불교 성직자 생활이 채 5개월도 안된 신참인 셈이다. 한국에 사는 원불교 유일의 남성 외국인 교무 원성제. 그에게 한국은 무엇일까. 원불교 교단에서조차 눈여겨볼 만큼 독특한 외국인 교무이니, 응당 원불교에 닿은 인연과 출가 서원이 예사롭지 않았을 터. 지레짐작으로 섣부른 물음표를 찍었다. 한데 돌아온 것은 “속아서 원불교를 알게 됐다.”는 생뚱맞은 대답. 원불교가 무엇인지, 이름조차 알지 못한 채 한국에 들어왔다고 한다. ● 네팔 최고계급인 브라만 출신 장·차관급 고위관리들이 수두룩한 브라만 계급의 독실한 힌두교 집안에서 둘째아들로 태어난 원성제 교무, 아니 케삽. 그는 남부러울 것 없이 유복한 어린 시절과 청년기를 보냈다. 국비 장학생으로 해외유학을 한 뒤 고위관리로 최고급 대우를 받으며 사는 작은아버지가 대학진학 때까지 ‘인생의 모델´쯤으로 서있었던 것 같다. “공부 잘해서 유학 다녀와 고위관리로 살겠다는 생각을 가졌었고, 실제로 공부도 꽤 잘했습니다. 그런데 일종의 계획된 작전에 인생이 바뀌었어요. 돌이켜 보면 거스를수 없는 인연이지만…” ‘일종의 계획된 작전´이라. 알듯 모를듯한 말에 고개를 흔들자 웃으며 자초지종을 들려 준다. 원광대 교수인 김범수 화백이 작전의 장본인이자 인연의 씨. 불교미술에 관심많은 김 화백이 네팔을 자주 드나들던 중 케삽의 외삼촌과 가깝게 지냈다고 한다. 원불교 교도였던 김 화백에 감화된 외삼촌은 한국에 들어와 광주보건대를 졸업하고 귀국, 지금은 네팔에서 관광사업을 하고 있다. “9살 때 외삼촌 집에서 김 화백을 처음 만났는데 아주 편안하고 재미있는 분이었어요.1년에 두 번씩 외삼촌 집에서 만나면서 한국이라는 나라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 원불교와 관련한 이야기는 전혀 없었고요.” 카트만두 트리부번 대학에서 수학·물리를 전공하던 2학년때 결국 김 화백과 외삼촌의 “한국에서 불교와 한국문화를 공부해 보라.”는 권유에 넘어가 한국행을 결심했다고 한다. “어릴 적부터 힌두교 신자였지만 부처에 대한 관심이 많았어요. 불교가 강한 한국에서 공부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에 잠시 진로를 바꿨는데, 원불교 성직자가 되어 있네요.” 한국에 들어와 원광대 어학원에서 한국어를 배우면서도 원불교가 무엇인지 전혀 몰랐다고 한다.5개월쯤 지나 당시 원불교 광주전남 교구장인 박성석 교무와 이야기하면서 비로소 ‘원불교 공부를 하러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됐던 것이다. “법당에서 원불교 상징인 일원상을 처음 보고 많이 놀랐어요. 불교는 뭐고 원불교는 무엇인지. 너무 당황한 나머지 네팔 외삼촌에게 전화를 해 심하게 항의했지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시간이 갈수록 원불교가 좋아졌다. 그중에서도 마음이 끌린 것은 ‘처처불상 사사불공(處處佛像 事事佛供)´. 세상 곳곳에 부처님이 계시니, 하는 일마다 불공을 드리는 정신으로 정성들여 살자는 ‘사실불공´의 정신이 가슴에 콕 박혔다. “힌두교에는 33억의 신이 있다고 해요. 이 33억의 신 대신 부처님을 놓으면 바로 처처불상이지요. 힌두교 신자이면서 거부감 없이 원불교에 빠져들 수 있었던 핵심인 셈이지요.” 말을 이어가는 원 교무의 입을 쫓다 보니 개혁 성향이 짙다. 실제로 그는 힌두교 신자이면서도 지나치게 소를 숭배해 받드는 네팔의 힌두교 신앙행태를 좋아하지 않는다. 네팔에 있을 때부터 ‘무조건 높여서 숭배하는 게 아니라 대상에 맞춰 공을 들이는 평등한 신앙´을 생각했다고 한다. 원불교의 인과(因果)며 평등 같은 교리에 빠져들다 보니 카스트의 신분 구분과 굴레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네팔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브라만 집안의 ‘귀한 아들´이 사람들의 차별과 종교의 평등을 놓고 고민이 컸다니 신앙의 근기가 예사롭지 않다. “전체 인구의 80%를 힌두교인이 차지하는 네팔은 여전히 카스트의 나라입니다. 법적으로 계층과 계급을 규제하진 않지만 결혼은 물론 교육, 취업 같은 일상생활에서 카스트의 계급은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지요.” ● 원광대 입학… 정전·대종경을 네팔어로 번역 원불교 공부를 제대로 하자는 생각끝에 원광대 원불교학과와 대학원을 차례로 마쳤고 원불교 성직자가 됐다. 대학시절 주말과 방학때면 전국을 돌며 이주노동자들의 취업과 원만한 한국정착 돕기에 매달렸다. 연지 교당에 ‘외국인센터´를 마련한 것도 그 연장이다. 어느 순간 고국 네팔을 향한 원불교 신앙인이 되었고 지금도 그 목표는 한결 같다. 원광대 원불교학과 졸업논문 제목이 ‘힌두교와 원불교의 비교고찰´이고 대학원 석사학위 논문제목이 ‘원불교 정전의 네팔어 번역´이다. 말할 것 없이 모두 원불교 선교, 특히 네팔 선교를 염두에 둔 고심의 흔적들. 원불교 전서 가운데 교전, 즉 기본교리인 정전과 대종경을 네팔어로 번역해 놓기도 했다. 한국에 머문 지 8년새에 제법 많은 것을 일궜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고 한다. “친 형님과 사촌동생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불쑥 꺼낸다. 대학을 졸업하고 네팔에서 3년째 대우좋은 경찰생활을 하던 형과, 대학 3학년이던 사촌동생을 자신이 걸었던 것과 똑같은 방법으로 원불교에 귀의케 한 것이다. 형은 원광대 원불교학과를 마친 뒤 대학원 재학 중이고 사촌동생은 원광대 원불교학과 3학년. 자신 때문에 원불교에 귀의, 한국에 사는 둘의 모범이 되기 위해서도 똑바로 살아야 한단다. “처음 원불교를 알게 됐을 때 몹시 당혹스러웠지만 이젠 네팔을 떠난 때부터 출가한 것으로 생각한다.”는 원 교무. 그는 한국말 가운데 ‘지금´, ‘여기´라는 두 단어를 가장 좋아한다. 지금 이 순간 이 장소에서 매사에 최선을 다한다면 최고의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말. 바로 ‘처처불상 무시선(處處佛像 無時禪)´이다. “내가 먼저 사람답게 살아야 고국 네팔의 평화와 발전도 있지요.” 끊임없는 마음공부야말로 나와 남이 함께 잘 살 수 있는 지름길이라며 대종사 법문으로 기자를 배웅한다.“다른 사람을 바루고자 하거든 먼저 나를 바루고, 다른 사람을 가르치고자 하거든 먼저 내가 배우고, 다른 사람의 은혜를 받고자 하거든 먼저 내가 은혜를 베풀라.” kimus@seoul.co.kr
  • [68혁명 40돌] (2) 혁명은 살아있다-佛 대표적 68세대 이냐시오 라모네 교수 인터뷰

    [68혁명 40돌] (2) 혁명은 살아있다-佛 대표적 68세대 이냐시오 라모네 교수 인터뷰

    |파리 이종수특파원|“모든 종류의 권위주의와 싸웠던 68혁명의 정신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그런데 현대인들이 30주년이니 40주년 하면서 68혁명을 자꾸 ‘의례화’하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프랑스의 대표적 앙가주망(현실 참여) 지식인으로 불리는 이냐시오 라모네(65) 파리7대 교수는 68혁명 40돌을 맞이한 심정이 약간 착잡한 듯했다.2일(현지시간) 파리 13구 ‘비판적 저널리즘의 상징’인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건물에서 만난 그는 68혁명의 ‘계승’을 거듭 강조했다. 그래서인지 혁명 주역들의 ‘변신’을 뼈아프게 꼬집었다.“당시 학생운동 리더였던 다니엘 콘-벤디트가 녹색당의 일원으로 유럽의회에 진출한 것은 흥미로웠다. 그러나 정작 그가 한 일은 무엇인가. 현재의 그는 정치적 부르주아에 불과하다.” 68혁명 당시 마오쩌둥(毛澤東)주의자로서 비판의 칼을 빼들었던 철학자 앙들레 글뤽스만에 대한 평가는 더 혹독했다.“그는 아예 신보수주의로 돌아섰다. 미국의 이라크 공격을 지지하더니 지난해에는 사르코지를 공식 지지했다. 그의 모습에서 타락·부패를 연상했다. 깨끗하지 못한 ‘늙음의 형태’라고나 할까.” 인터뷰 도중 그의 휴대전화가 끊임없이 울렸다.1997년부터 10여년간 맡았던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주간직을 지난 3월에 그만뒀지만 여전히 분주했다. 프랑스의 대표적 68세대로서 68혁명의 정신을 가장 잘 실천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그에게 68혁명의 본질과 현대적 의미를 물어보았다. 그는 차분한 어조(이제껏 인터뷰 한 인사 가운데 가장 듣기 쉬운 프랑스어였다는 느낌이었다)로 68혁명의 어제와 오늘을 정리해줬다.“68혁명은 20세기에 가장 중요한 사건이었다. 정치적 혁명이라기보다는 ‘삶을 변화시키자.’는 문화 혁명이었다. 칼 마르크스는 ‘세계를 변혁시키자.’고 했지만 68세대는 ‘삶을 바꾸자.’고 거리로 나섰던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현대 서양사가 68혁명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이어 68혁명의 현대적 계승에 대해서는 “여전히 할 일이 많다. 특히 세계화라는 거센 물결과의 싸움은 매우 중요하다. 각국의 경제 주권을 훼손시키는 국제 자본의 거대한 야망과 싸우는 것은 68혁명과 맥이 닿는다.” 그는 1990년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와 인연을 맺은 뒤 세계화를 비판하는 날카로운 기고문을 남겼다. 또 세계화에 반대하는 시민운동단체 ATTAC(Association for a Taxation of financial Transactions in Assistance to the Citizens)를 세워 세계화와 싸우고 있다.ATTAC는 지난해 5월 미국산 쇠고기 광우병 위험등급을 결정하는 국제수역사무국(OIE) 총회장 앞에 항의 시위를 하러 왔던 한국 농민단체와 함께 지지 시위를 했다. 이어 68혁명의 현재적 의미와 관련, 최근 벌어지고 있는 고교생들의 시위를 주목했다.“교원 정원 감축에 항의하는 고교생들의 시위는 겉으로 보면 교사들의 권익을 옹호하는 것 같지만 실제는 일방적으로 감원안을 밀어붙이는 정부 입장에 반발하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68혁명의 정신을 이어받은 움직임이다.” 당시 상황을 설명해달라는 기자의 요청에 “지방 도시 보르도에서 공부하고 있어서 파리 시위 현장에는 없었다. 그러나 당시 프랑스 전역이 혁명의 열기에 휩싸였다. 보르도에서 열린 시위와 정치 논쟁에 참가했는데 ‘새 사회’의 대안으로 마오쩌둥주의, 체게바라주의자 등 다양한 이념들이 분출됐다. 당시 열기는 혁명적 낭만주의에 비유할 수 있다.” 이어 68년 5월혁명의 정점이었던 5월 ‘바리케이드의 밤’에 참여한 많은 친구들의 경험담을 들려줬다.“경찰과의 대치 속에 팽팽한 긴장이 오갔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시위 현장에 참여한 남녀노소가 모두 하나가 돼 갔다.”고 들려주었다. 화제는 프랑스의 현안으로 넘어갔다. 기자가 지난해 대통령선거 2차 국면에서 사르코지 대통령이 “프랑스가 발전하려면 68혁명의 유산을 청산해야 한다.”고 도발적인 주장을 해 거센 논란이 일었다고 환기시켰다. 그러자 라모네 교수는 즉각 냉소적 표정으로 “사르코지 대통령이 68혁명의 유산을 청산하자고 한 것은 자가당착이다.”라고 맞받았다. 구체적 이유를 묻자 “68혁명이 발생하지 않았으면 이혼 경력이 있고 이민자 출신의 가정에서 태어난 그가 프랑스 대통령으로 당선되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프랑스와 한국 등 최근에 일고 있는 실용주의 ‘열풍’에 대한 우려도 잊지 않았다. 그는 한국을 네차례 방문할 정도로 한국의 시민운동에 관심이 많았다. “한국과 프랑스 대통령이 모두 ‘실용주의’를 주창하고 나섰는데 실용주의가 무엇인가. 돈이 되면 다 한다는 것 아닌가. 연대와 공동체 정신이 훼손될 가능성이 많아 걱정스럽다. 또 한 국가의 경제가 쉽게 개선될 수 있는가. 한 국가의 경제는 국제 경제와 맞물려 있다.” 그 연장선에서 자신이 비판해온 세계화가 첫 위기에 직면했다고 진단했다.“미국 서브프라임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파동에서 시작한 세계 금융 위기는 결국 세계화의 위기를 의미한다. 또 석유·곡물 가격의 폭등과 환경 파괴 등 악재가 동시다발적으로 맞물려 있어 국제 경제의 사이클이 달라지는 시기에 직면했다. 이와 관련 미국 대통령 선거가 주목된다.” vielee@seoul.co.kr ●이냐시오 라모네는? 프랑스에서 68혁명 정신을 실천하고 있다고 평가받는 대표적 지식인.1943년 스페인 레돈델라에서 출생. 기호학자 롤라 바르트의 제자로 파리 고등사회과학연구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뒤 파리7대 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로 임용됐다.1997년부터 지난 3월까지 국제문제 전문 월간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의 편집주간으로 활동. 이 신문에 실은 세계화에 대한 날카로운 기고문으로 유명하다. 피델 카스트로 쿠바 전 국가평의회장과 단독 인터뷰를 할 정도로 친분이 두텁다. 한국에도 번역 출간된 ‘커뮤니케이션의 횡포’를 비롯 ‘상업의 제물, 커뮤니케이션’‘세계의 새로운 권력과 지배자’‘조용한 프로파간다-대중, 텔레비전, 영화’‘마르코스, 반역의 존엄성’ 등 다수의 책을 펴냈다.
  • [한국을 배우는 외국인들] 마음을 따라, 인연을 따라

    [한국을 배우는 외국인들] 마음을 따라, 인연을 따라

    마음을 찾아서 ‘마음’이라는 비실체를 알아가는 과정이 ‘수행’이라는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면, ‘업보’라는 것이 있어서 ‘마음을 찾아 나서는 수행’을 평생 짊어져야 한다면, 우리는 어떨까. 한국에서 수행의 길을 걷고 있는 법현 스님의 본명은 루스탐(Rustam)이다. 선하면서도 명민해 보이는 얼굴과 강인한 체격을 지닌 우즈베키스탄의 20대 청년이 속세를 버리고 이국의 땅에서 불경과 불법과 자기 수행으로 7년을 살아 왔다. 그 긴 세월을 단 한 번의 고향 방문도 없이 말이다. 법현 스님이 불교를 처음 만난 것은 우즈베키스탄의 타쉬캔트에 포교당이 생겼을 때였는데, 포교당에서 불교를 1년여 공부하고 한국행을 결심하게 되었다. 한국에 들어오기 전, 그러니까 출가를 하기 전의 루스탐은 목수였다. 도로공사의 일을 하청받아 창문을 만드는 목수였던 그가 속세의 옷을 벗어던진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루스탐은 청소년기에 대한 기억이 싸움과 이별(연인과의), 자살에 대한 충동에 휩싸인 시절이었다고 회상한다. 그가 10대와 20대에 겪었을 마음의 황폐함을 짐작할 만하다. 그는 늘상 불운에 휩싸인 자신의 처지가 고달팠다고 한다. 의기충천한 젊은 날들이 그에게는 세상과의 인연을 끊고만 싶었던 시절로 기억되고 있다. 그런데 불교와의 만남은 운명과도 같아서 그는 불교를 통해, 참선과 수행을 통해, 그리고 포교를 통해 진정한 ‘마음’을 찾게 되었다고 한다. 7년이란 짧지 않은 기간 동안 법현 스님이 찾은 ‘마음’은, 아니 찾으려고 애쓰는 ‘마음’은 이제 고단한 삶 속에서 더욱 강해지는 법을 배우게 된 것과 불교를 통해 삶의 인연을 되찾게 된 것이다. 한국 불교와의 만남과 한국어 공부 처음 한국에 왔을 때 법현 스님은 강원도의 최전방 비무장지대 접경의 작은 절 건봉사에서 기거하였다. 오는 이 적고 한적한 한국의 지방에서 불법을 공부하고 수행을 하기에는 적합했지만 한국어가 늘리는 만무한 일이었다. 이후에 해인사로 옮겨 갔을 때 스스로 한국어 책을 사서 독학으로 공부를 시작하였다. 2007년 동국대 선학과에 입학하기 전 6개월간 어학당에서 한국어를 배운 것이 기관 교육의 전부였다. 놀라웠다. 법현 스님의 한국어 말솜씨는 수준급이기 때문이다. 법현 스님은 자연스러우면서 유연하며 여유 있고 편안하기까지 한 한국어를 구사한다. 그러나 법현 스님은 여전히 한국어에 대한 고민이 많단다. 그것은 작문의 어려움인데, 경전을 번역하고 자신의 깨달음을 적어 후인들에게 전달하고 싶은 욕구가 많아서이다. 입과 귀는 조금 편해졌지만 손은 여전히 말을 듣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어떻게 하면 글쓰는 작가들처럼 잘 쓸 수 있느냐고 반문하는 법현 스님의 한국적 너스레에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법현 스님이 해인사에서 수년간 수행을 하고 서울 화계사의 외국인선원에 온 지는 몇 해 되지 않는다. 가끔씩 포천의 자인사에서 은사 스님을 뵙고 불법을 행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서울생활은 동국대학교 재학생으로서의 삶으로 이어져서 법현 스님의 꿈을 키우는 터전이 되고 있다. 대학생들과 함께 강의를 듣고 한국어로 토론을 하고 불법을 배우는 일이 법현 스님은 마냥 즐겁다. 법현 스님은 그간 지방과 서울의 한국생활을 통해 한국인의 모습이 무척 성실하고 근면하며 민족성이 강하다고 생각한다. 한국은 법현 스님에게 새 삶의 터전이었기에 이미 타국이 아닌 것이다. 인연을 따라서 이제 법현 스님의 삶의 인연이 한국이었음을, 한국에서의 수행생활이었음을 알 것 같다. 법현 스님은 속세에 대한 미련은 없단다. 내년쯤 한번 고향을 방문할까 생각하지만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다. 우선 동국대학교를 무사히 졸업해야 하며(지금은 2학년이다), 대학원에 진학할 것이며, 이후에는 러시아연방에서 불교를 포교할 계획이다. 그리고 한국 불교의 역사를 깊이 연구하고 싶고 경전을 러시아어로 번역하고 싶다. 눈빛이 맑고 온유한 법현 스님의 수행 길이 한국에서 넓고 깊게 뻗어 러시아까지 이어지기를 기원해 본다. 글 전해수 문학평론가, 동국대 한국어교육센터강사 월간 <삶과꿈> 2008년 5월호 구독문의:02-319-3791
  • ‘해리포터’ 롤링 잇는 스타작가 탄생

    ‘해리포터’ 롤링 잇는 스타작가 탄생

    |워싱턴 김균미특파원|해리 포터 시리즈의 J K 롤링을 잇는 또 한명의 스타 작가가 탄생했다고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이 최신호에서 보도했다. 주인공은 미국 전업주부 출신의 소설가 스테프니 메이어(34).10대 소녀와 뱀파이어의 사랑을 그린 ‘트와일라잇’은 현재 3편까지 나왔고 오는 8월 4편이 출간된다. 예약주문을 받고 있는 4편은 벌써 아마존닷컴 베스트셀러 명단 8위에 올라 있다. 트와일라잇은 지난해 국내에서도 번역, 출판됐다. 메이어의 책은 지금까지 모두 530만부가 팔렸고, 최근 1년새에만 400만부가 팔렸다. 특히 지난해 해리포터 마지막 편이 출간된 직후 발표된 3편은 해리포터를 제치고 각종 베스트셀러 명단에서 1위에 오를 정도로 인기라고 타임은 전했다. 모르몬교도로 세 아들의 엄마인 메이어는 전혀 예상치 못한 상태에서 소설가가 됐다.2003년 6월1일 젊은 여성이 뱀파이어인 잘생긴 남성과 사랑에 빠진 꿈을 꾸었다. 꿈이 너무나 생생해 기록으로 남기지 않고는 못배겨 석 달 만에 밤을 새워가며 500페이지 첫 책을 완성했다. 갓난 아이를 왼손으로 안고 얼르면서 오른손으로는 자판을 두드렸다. 이 같은 설정들이 해리포터의 롤링을 연상케 한다. 타임이 꼽은 롤링과 메이어의 공통점은 현재를 배경으로 판타지를 그린다는 것이다. 롤링은 마법사를 통해, 메이어는 뱀파이어를 각각 통해서다. 또 이들의 팬들은 소설만 읽는 것이 아니라, 소설속 주인공들처럼 생활한다. 마법사 복장을 하고 돌아다니고, 팬클럽을 결성하듯, 뱀파이어 복장을 하거나 붉은 색 컬러렌즈를 끼고 모이는 메이어 팬클럽에는 20만명이 넘는 회원들이 가입돼 있다. 팬사인회가 열리면 수천명의 팬들이 줄을 서는 것도 비슷하다. 하지만 메이어의 소설들은 롤링의 해리포터와 달리 줄거리가 복잡하게 꼬여있지 않고 단선적이다. 해리포터가 영국식 절제미가 있다면 메이어의 소설에는 감정의 표현이 풍부하다. 트와일라잇은 오는 12월 영화로 제작돼 개봉된다. 현재까지는 해리포터가 간 길을 따라가고 있지만 그만큼 전세계적으로 파장을 일으킬지는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 할 것 같다. kmkim@seoul.co.kr
  • [김달진 문학상] 김달진의 생애와 작품세계

    [김달진 문학상] 김달진의 생애와 작품세계

    월하(月下) 김달진 시인은 생전 평생을 한결같이 세속에서 벗어나 세상을 관조하며 인간이 지향해야 할 숭고한 정신 세계를 추구한 시인이요 한학자다. 세속의 명리를 깃털보다 가볍게 여긴 시인의 삶은 천민자본주의가 팽배한 이 시대 사표(師表)가 되기에 충분하다. 1907년 2월 경남 창원군 웅동(현 진해시 소사동)에서 태어난 월하는 항일 민족 기독학교인 계광보통학교를 졸업했다.1926년 서울 경신중학 재학중 일본인 영어교사 추방운동을 주도하다 퇴학을 당하는 고초를 겪었다. ●인간이 지향해야 할 숭고한 정신세계 추구 그는 고향으로 돌아가 모교 계광보통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바쁜 생활 속에서도 1929년 순수 문예지 ‘문예공론’에 시 ‘잡영수곡(雜詠數曲)’을 발표하며 등단했다. 이후 시인은 ‘시원’‘시인부락’‘죽순’의 동인으로 참여하며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당시 ‘유점사를 찾는 길에’‘나의 뜰’‘샘물’ 등을 잇달아 발표했다. 그러나 항일교육에 앞장섰다는 이유로 계광보통학교가 폐교되자 민족 현실에 절망한 시인은 1934년 금강산 유점사에 들어가 수도생활에 매진했다. 시인은 1936년 동국대학교 전신인 중앙불교전문학교에 입학, 불경 연구의 길을 걸었다. 불교전문학교를 졸업한 뒤 1940년 시집 ‘청시(靑枾)’를 발표했다. 유점사로 돌아간 시인은 1941년 ‘불령선인’이라며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던 일제 경찰을 때려 눕히고 중국 용정으로 건너갔다. 이곳에서 소설가 안수길을 만나 그가 발간하던 잡지 ‘싹’에 ‘향수’ 등 시를 게재하기도 했다. 1945년 광복과 함께 서울로 돌아온 그는 이듬해 서울을 떠나 창원 남면중학교 교장, 해군사관학교 교관 등을 거쳐 1973년 동국대학교 역경원 역경위원을 지냈다. 이 기간에 ‘한국선시’‘법구경’‘금강삼매경론’ 등 불교서적도 번역했고 ‘장자’‘한산시’ 등 동양고전을 우리말로 옮겼다. 이러다 보니 자연히 시작 활동은 뜸해져 문단에서 서서히 잊혀졌다. 역경 작업에 몰두하던 시인은 1967년 ‘임의 모습’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재개한 이후 ‘벌레’‘속삭임’‘낙엽’‘포만’ 등을 발표했다.1983년 불교정신문화원에 의해 한국고승석덕(碩德)으로 추대된 시인은 시전집 ‘올빼미의 노래’와 장편 서사시집 ‘큰 연꽃 한 송이 피기까지’ 등을 펴냈다.1989년 6월 ‘한국 한시’(전 3권)의 완간을 앞두고 숙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김달진 시인은 일제시대부터 제도권 문단의 편입을 거부하고 고고한 삶을 살았다. 그런 삶이 시 속에도 오롯이 녹아들어 그만의 순수한 시적 영토를 지켰다. 시인은 그 어떤 이데올로기나 관념에도 편벽되지 않고 자연 본연의 모습을 질박한 언어로 담아냈다.“여기 한 자연아(自然兒)가/그대로 와서/그대로 살다가/자연으로 돌아갔다./ 물은 푸르라/해는 빛나라/자연 그대로./이승의 나뭇가지에서 우는 새여./빛나는 바람을 노래하라.”(‘비명(碑銘)’) ●동양고전·한시·불교서적 번역에도 힘써 시인의 시어는 평이하다. 하지만 청아한 정신주의적 세계관을 표방하는 시인의 도저한 시적 상상력은 끝간 데가 없다. 시인의 작품은 물질만능주의에 휘둘리는 이 시대에 인간 본연의 순정한 본성을 일깨워 주는 마력의 힘을 발휘한다. 시인의 작품은 자연에 대한 관조와 종교적 초월의 경계 속에서 태어난다. 그것은 곧 우리 시사(詩史)에 면면히 이어져온 순수 서정시와 동양적 미학을 접목, 새로운 경지로 나아가려는 몸짓이다. 노장사상과 불교사상으로 대표되는 동양적 사유의 전개, 그것이 바로 월하 시의 요체다. 김달진문학상 운영위원인 오세영(서울대 명예교수) 시인은 “월하의 시세계는 서구의 이미지스트적 감각과 한국의 토속적인 자연, 동양사상의 합일로 요약된다.”면서 “시인의 작품들이 은둔생활에 가까운 생활로 대부분 묻혀 있는 만큼 그의 문학사적 위치를 제대로 찾아주려면 앞으로 더 많은 연구가 있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 [씨줄날줄] 히키코모리/ 황성기 논설위원

    지난해 일본 NHK에서 방송한 ‘슬로 스타트’는 ‘히키코모리’의 사회 복귀를 다룬 드라마이다.‘은둔형 외톨이’로 번역되는 히키코모리는 학교나 직장에 가지 않고 자기만의 협소한 방에서 지내는 사람의 총칭이다. 주인공인 20대 남성은 커튼으로 가려진 침침한 방에서 생활한다. 그 방에서 무엇을 하는지는 부모조차 모른다. 식사를 방문 앞에 갖다 놓고 인기척이 없다 싶으면 슬그머니 들여다 먹고는 빈그릇을 내놓는다. 스스로 격리시킨 공간에서 보내는 무용의 시간들. 속이 끓은 부모가 히키코모리를 돕는 비영리조직(NPO)에 도움을 요청하고 ‘대여 누나’가 주인공과 세상을 잇는 조력자로 등장한다. 골방의 남성을 불러내는 시도가 눈물겹다. 방 앞에서 이름을 불러보고, 편지를 써 방 안으로 들이밀고 때로는 폭력도 당하는데 마침내 조력자를 포함해 가족이 집을 몽땅 비우는 처방도 해 본다. 주인공은 조금씩 마음을 열고 세상 밖으로 나와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과 천천히 인생의 새출발을 한다. 지난 2월 도쿄도가 조사한 히키코모리 실태는 놀랍다. 인구 1280만명중 히키코모리 상태로 추정되는 15∼34세의 청년층이 2만 5000명이다. 히키코모리군(群)으로 분류되는 사람들은 남자(71%)에게 많이 나타나고 연령별로는 30∼34세(43%)에 몰려 있었다. 얼마 전 20대 남성이 길거리에서 흉기를 휘둘러 8명을 살상하는 등 히키코모리에 의한 ‘묻지마 범죄’가 일본에서 기승을 부리고 있다. 서울에서도 은둔하며 인터넷 생활을 하던 40대가 부친 회사의 직원을 흉기로 찌르고 도주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선진국병으로 일컬어지는 히키코모리가 우리라고 비켜가지 않는 모양이다. 한국에도 뿌리내린 현상으로 포착한 봉준호 등 영화감독들이 작품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수험, 직장에서의 좌절 등 여러 원인이 있다지만 휴대전화, 이메일 같은 디지털적 소통이 히키코모리 증가에 한몫한다는 시각도 있다.NPO 등에서는 찾아가 얼굴을 보며 얘기하고, 편지를 쓰는 아날로그적 소통으로 세상과 만나게 한다. 삶을 포기하지 않고, 사람과의 끈을 놓지 않게 하는 것이 은둔형 외톨이 해결의 단서라는 믿음 때문일 것이다. 황성기 논설위원 marry04@seoul.co.kr
  • “휴대전화로 유튜브 즐기게 될 것”

    “아직은 유튜브의 미국 사이트를 번역한 수준에 불과합니다. 앞으로는 유튜브의 미국 사이트와 전혀 다른 한국만의 유튜브를 만들어 나갈 것입니다.” 스티브 첸(30) 유튜브 최고기술책임자(CTO)는 11일 서울 종로구 신문로2가 미로스페이스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지난 1월 시작한 유튜브의 한국 서비스에 대해 이같이 평가했다. 스티브 첸은 지난 2005년 20대인 채드 헐리 유튜브 최고경영자(CEO)와 함께 유튜브를 개발한 공동창업자다. 유튜브는 2006년 타임지에 ‘올해의 발명품’으로 선정됐고, 같은 해 구글에 16억 5000만달러에 팔렸다. 친구들과의 저녁자리에서 찍은 동영상을 공유하는 데 어려움을 겪다가 유튜브를 만들게 됐다는 스티브 첸은 “한국에는 좋은 콘텐츠들이 많다.”면서 “유튜브는 한국의 콘텐츠들을 세계에 알리는 다리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유튜브로 시작된 온라인 비디오 산업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며 “앞으로는 휴대전화나 텔레비전으로도 유튜브를 즐길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 “좋은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으면서 몇 년을 허송세월하는 사람이 많다.”면서 “일생에 한번쯤은 자신만의 새 아이디어를 직접 실행하는 것도 좋다.”고 덧붙였다.김효섭기자 newworld@seoul.co.kr
  • 21세기 세계사상 흐름 담을 ‘새 장’ 마련

    21세기 세계사상 흐름 담을 ‘새 장’ 마련

    새물결출판사가 새로운 총서 ‘What´s up’ 시리즈를 내놓았다. 출판사는 “포스트모더니즘, 민족주의 패러다임,87체제 등 과거 10여년간 우리 사회를 설명해온 낡은 ‘술부대’ 대신 이제는 21세기 세계사상계의 흐름을 읽어 새 술을 부어넣을 새 부대를 장만할 때”라고 기획의도를 밝혔다. 출판사가 기획 및 편집자로 내세운 이는 김항, 박진우, 한보희, 황호덕 등 4명.89학번인 박진우씨를 제외하면 모두 90년대 초반 학번의 소장학자들이다. 첫 권은 이탈리아 정치철학자 조르조 아감벤(66)의 저작 ‘호모 사케르’ 3부작의 1권을 국내 처음으로 번역한 ‘호모사케르-주권 권력과 벌거벗은 생명’(박진우 옮김). 아감벤은 ‘인간은 벌거벗은 생명이다’라는 제1원리에서 출발해 생명을 살리고 죽이고, 관리하고 보호하고, 감시하고 처벌하는 주권의 개념을 새로 규명한다. 아울러 로마시대에 주류에서 비켜난 희생자를 가리켰던 호모 사케르를 지적하면서 현대사회의 인권, 뇌사문제, 수용소 문제 등에 눈을 돌린다. 아감벤의 저작은 9·11테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 이라크 전쟁, 관타나모 수용소 문제 등을 겪으면서 본격적으로 전세계 철학자 및 사회과학자들의 주목을 받아왔다. 출판사는 아감벤 관련 국내외 학자들의 논문을 모으고 7월에는 기획자들이 베네치아 현지에서 아감벤과 진행할 심층인터뷰를 엮어 또 한 권의 책을 낼 예정이다. 좌파 지성계를 대표하는 철학자 중 한 명인 알랭 바디우의 책 ‘사도 바울-제국에 맞서는 보편주의 윤리를 찾아서’(현성환 옮김)와 국내에서 급속도로 주목받고 있는 슬로베니아 학자 슬라보예 지제크가 ‘전체주의’라는 관념의 오ㆍ남용을 분석한 ‘전체주의가 어쨌다구?’(한보희 옮김)도 함께 출간됐다. 앞으로 출판사는 일본 문화평론가 가라타니 고진을 비판적 시각에서 재조명하거나 최근의 화두인 환경론 분야의 저작 등으로 총서를 이어갈 예정이다. 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 [김성호 전문기자의 한국서 길찾는 이방인] (10) 성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장 엘마르 신부

    [김성호 전문기자의 한국서 길찾는 이방인] (10) 성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장 엘마르 신부

    경북 칠곡군 왜관(왜관읍 왜관리 134-1)의 성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은 천주교 수도승들이 모여 사는 은밀한 곳이다. 독일인 수사(修士) 4명을 포함해 70여명의 수사들이 기도와 노동을 함께 하며 하느님을 찾는 독특한 공동체. 일반인들의 접근이 철저히 막혀 있는 이곳엘 가면 뭇 수사들의 귀감이 되고 있는 70대 중반의 독일인 신부가 유난히 눈에 띈다. 이마가 훤하게 벗겨진 머리 양쪽 뒷부분에 금발이 조금씩 남아 있어 ‘황금박쥐’란 별명으로 통하는 장 엘마르(75·본명 랑 곳프리드·한국명 장휘) 신부.47년간 한국에 머물며 오로지 ‘하느님을 찾는 수도자’의 길을 걸어온 이방인이다. 성베네딕도 수도회는 조선교구장 뮈텔(1873~1949) 주교가 독일 오틸리엔 수도회에 요청해 한국에 들어온 선교회.1909년 독일인 수도승 두 명이 서울 백동(혜화동)에서 활동한 게 한국 수도회의 시초로 6·25전쟁 중 이곳 왜관으로 피란해 수도생활을 하다가 정착해 본원을 삼은 게 지금의 왜관수도원이다. 지난 음력 설 이틀 전, 세상의 달뜬 분위기란 도무지 찾아볼 수 없는 수도원에서 강론 준비를 하다가 기자를 맞은 엘마르 신부는 짙은 밤색 수도복 차림이었다. 환한 웃음과 함께 경상도 사투리가 약간 섞인 한국말로 인사를 건넨 노 신부는 “기자와 인터뷰를 하기는 처음”이라며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해줄 수 있느냐.”고 입을 열었다. “한국에서의 수도 생활이 힘들지 않느냐.”고 먼저 물었다.“하느님을 찾는 사람들이라면 힘들고 불편한 것을 피해가려 들지 않지요. 더구나 내가 선택해 47년을 몸담아 살아온 ‘우리 집’인데 불편하고 힘들 게 있겠습니까.” ‘우리 집’이란 표현을 썼다. 철저한 공동생활을 하며 몸을 낮추는 수도 삶의 터전,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 수많은 ‘우리 집’ 가운데 하필 한국의 집을 택한 이유는 뭘까. 2006년 월드컵 개최지인 바바리아주, 인구 8000명의 작은 농촌 클라인오스트하임에서 삼형제 중 둘째로 태어난 엘마르는 가난하고 힘든 유년 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베네딕도회 수사였던 외삼촌의 영향을 받아 초등학교 시절부터 수도원엘 자주 갔고 그곳에서 읽은 한국 파견 선교사 이야기 책들이 여간 흥미로운 게 아니었다. “한국 천주교 초창기 중국에서 조선에 들어온 선교사들은 사람들의 눈을 피해 상복을 입고 주로 밤에 활동했지요. 어린 나이에도 책 속의 한국 이야기는 아주 독특했습니다.” 한국과의 인연은 어릴 적부터 그렇게 시작되었던 것 같다. 다른 길을 갈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고 베네딕도 수도회에 입회한 뒤 바바리아주립 뷔르츠부르크 대학에서 신학공부를 마쳐 사제서품을 받은 게 1959년.2년 뒤 베네딕도수도회 오틸리엔 연합회의 선교 총책임자가 우연치 않게 “한국에서 수도생활을 하는 게 어떠냐.”고 물어와 망설임 없이 한국행을 결정했다. “신학대를 졸업할 무렵 독일에선 동양 교회들에 대한 관심이 높았어요. 어릴 적 읽었던 책 때문이었을까요? 한국, 일본엘 가고 싶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던 참에 한국행 제의를 받고 보니 마치 정해진 운명처럼 느껴졌지요.” ● 2003년 뇌경색 진단 불구 하루 5번씩 기도 1961년 7월 왜관수도원에 몸을 담아 성주 본당 보좌와 상주·왜관 본당 주임을 거쳤고 2003년 1월 왜관수도원장 자리에 올랐지만 뇌경색으로 5개월 만에 원장 직을 그만두어야 했다. “원장 자리에 앉은 지 얼마 안 돼 강론 준비를 하는데 갑자기 앞이 안 보였어요.20년 전 심한 근시로 망막이 파열된 적이 있어 비슷한 증상이려니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뇌경색 진단이 내려지더군요.” “그때 섭섭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서슴지 않고 “그것도 하느님의 뜻”이라는 대답을 들려준다.“끊임없이 하느님을 찾는 수도승의 길을 걸어왔지만 돌이켜 보면 거꾸로 하느님이 더 나를 찾아주었던 것 같아요.” 한국에 처음 와 한국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던 시절 만난 한국인들이며 본당 주임시절 맺은 인연들은 지금도 잊지 못한다고 한다. 물론 그에겐 모두 하느님이 찾아준 길이다. “한국에 온 지 2년이 지나 상주본당 주임이 되었는데 그때 신자 고백성사차 외진 공소를 찾아갔었지요. 장마철 불어난 시냇물로 돌아오는 길이 막혀 어쩔 줄 몰랐는데 한 번 본 적도 없는 한 주민이 집으로 안내해 재워 주는 것을 보고 한국에 정착할 맘을 굳혔지요.” 모르는 이를 하룻밤 재워 주면서도 아랫목을 내어주는 한국인들이 퍽이나 인상적이었고 그들에게서 안정감을 찾았다고 한다. 왜관 본당 주임 시절 자신을 아버지 대하듯 따르던 초등학생들은 결혼 후에도 엘마르 신부를 집으로 초대해 감사의 뜻을 전했다. 왜관 본당 주임시절 가끔씩 막걸리 잔을 나누던 촌로들이 이젠 거의 세상을 떠나 안타깝다고도 한다. 뇌경색 진단 후 “위험할 수 있으니 혼자 다니지 말라.”는 의사의 말이 있었고 약도 늘상 달고 살지만 해야 할 일이 너무 많다. 이곳 수사들은 아침 5시에 잠자리에서 일어나 하는 첫 기도부터 저녁 8시 기도까지 하루 5번씩 빼놓지 않고 함께 기도를 한다. 기도 시간을 빼놓곤 모두 출판사며 목공소, 공예실에서 일을 하지만 엘마르 신부는 대신 강론 준비 같은 다른 일을 한다. ● 신학강사로 통해… 그레고리오 성가도 ‘독보적´ 천주교계에선 이름난 신학강사.1969년부터 무려 30여년간 대구 신학원에서 신약성서를 가르친 인물이다.1970년대 중반부터 20여년간 대학교수 4명과 함께 신약성경 번역작업을 벌여 1991년 새 번역 성경을 세상에 내놓았다. 로마 가톨릭교회의 전통적인 단선율(單旋律) 전례성가인 그레고리오 성가에서도 독보적 존재. 천주교에선 전통적으로 모든 미사를 라틴어로 진행하다가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각국 언어로 대체했지만 미사나 의례 때 부르는 라틴어 그레고리오 성가는 대부분 그대로 유지하는 편. 독일에서 수도회에 입회한 뒤 한국 땅을 밟을 때까지 그레고리오 성가를 배웠던 만큼 한국의 신부들이나 수사들에게 성가를 가르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고 한다. ‘환상적인 목소리’를 가진 그레고리오 성가의 대가로 통하는 엘마르 신부는 지금도 변함없이 매주 일요일 낮 미사 때 부르는 그레고리오 성가를 이끈다. 토요일이면 모든 수사와, 서원을 앞둔 예비 수사들의 성가 연습을 지도하는가 하면 일요일 미사 직전에도 그레고리오 성가를 독창하는 칸토레스들을 점검한다. 요즘은 한 달에 한 번씩 안동 ‘그리스도의 교육수녀회’를 찾아 강의와 고백성사를 하고 마산 ‘수정의 트라피스트 수녀원’에서 강의하는 것을 빼놓곤 수도원 문을 나서지 않는다. 지난해 4월 그가 그토록 절실하게 여기며 살아온 ‘우리 집’인 수도원이 누전으로 불탄 것은 큰 아픔이라고 했다.“내 삶의 터전이 불타 없어진 것도 그렇지만 개인적인 소지품은 물론 그동안 해온 강의 기록이며 모든 자료들이 한순간에 사라졌어요.‘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다.’는 사실이 도저히 믿기지 않더군요.” “한국생활 초기 독일에 갔을 때는 이런저런 한국 이야기들을 전해주었지만 이제는 한국인이 된 내가 그들에게 해줄 새로운 이야기가 전혀 없다.”는 엘마르 신부.“친구들과 형제들이 모두 이곳에 있고 하느님을 찾는 나의 영혼이 머무는 ‘우리 집’은 내가 영원히 살아야 할 소임의 터전”이라며 강론 준비를 마저 끝내겠다고 기자 곁을 떴다. 글 사진 왜관 김성호 문화전문기자 kimus@seoul.co.kr ■ 장 엘마르 신부는 ●1933년 독일 클라인오스트하임 출생 ●1953년 성베네딕도회 입회 ●1959년 뷔르츠부르크 대학 신학과 졸업, 사제 수품 ●1961년 한국 입국, 왜관수도원 생활 시작 ●1962년 성주 본당 보좌 ●1963년 상주 본당 주임 ●1964년 왜관 본당 주임 ●1969년 대구 신학원 강사 ●1983년 왜관수도원 부원장 ●2003년 왜관수도원장 취임, 뇌경색으로 5개월 만에 사임 ●현재 왜관수도원에서 그레고리오 성가 지도 등 수도생활
  • MB “영어 공교육 정치 쟁점화 안돼”

    31일 비공개로 진행된 대통령직 인수위 간사단회의 초반 분위기는 ‘봉숭아 학당’ 같았다고 한 참석자가 전했다. 참석자들이 저마다 영어와 관련해 한 마디씩 했기 때문이다.“‘김포’의 영어식 표기를 Gimpo라고 쓰는데, 외국인이 보면 ‘짐포’라고 읽기 쉽다.”는 말도 나왔다고 한다. 이런 소란스러운 분위기를 다잡은 것은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이었다. 이 당선인은 영어 교육의 변화를 강조하는 취지가 희화화돼서는 안 되며, 영어를 잘 하는 국민이 더 잘 산다는 쪽으로 논지의 초점을 맞춰 달라고 당부했다는 것이다. 앞서 언론에 공개된 간사단회의 모두발언에서도 이 당선인은 인수위의 ‘영어 정책’에 힘을 실어 주면서도 대국민 설득을 병행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그는 “방향은 인수위가 맞다.”면서도 “큰 원칙을 인수위가 잡고 설득을 시키는 과정을 좀 더 가졌으면 한다.”고 했다. 이 당선인은 변화를 거부하는 움직임에 일침을 가했다. 그는 “고속도로에서 상·하행선이 분명한 데도 역주행으로 대형 사고가 일어나는데, 생활 모든 면에서 왜 요즘 역주행이 많은지 모르겠다.”며 “신선하게 변화하는 과정에는 반대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인수위에서 만드는 영어 공교육 문제가 정치쟁점화되는 것은 반대다. 정치쟁점화해서는 안 되고 국가의 미래를 위해 머리를 맞대야지, 반대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지적했다. 인수위의 영어 드라이브로 4월 총선에서 표를 잃을지 모른다는 한나라당 내 우려를 의식한 듯한 뉘앙스다. 한편, 인수위는 경제관련 국내법률을 영어로 번역한 영문판 법률을 마련하기로 했다. 인수위 관계자는 “조만간 주요 경제관련 법률을 영어로 번역하는 작업을 시작할 것”이라며 “새 정부가 들어선 이후에도 이런 번역작업은 계속될 예정”이라고 말했다.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이명박-대처정부 닮은점… 다른점…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의 대통령 당선으로 ‘대처리즘’(1979년부터 90년까지 집권한 대처 전 영국 총리의 신자유주의 통치철학)이 새롭게 각광받고 있다.‘이명박 당선=한국판 대처리즘의 승리’란 분석이 속속 나오면서, 바다 건너온 대처리즘은 새 정부 출범과 함께 한동안 한국 땅에서 풍미할 듯하다. 때마침 대처리즘의 성공요인을 조망한 ‘대처리즘의 문화정치’(스튜어트 홀 지음, 임영호 옮김, 한나래 펴냄)가 번역돼 나왔다. 자메이카에서 태어나 영국에서 활동한 문화이론가 스튜어트 홀은 70년대 말 대처가 노동당 정권을 누르고 집권에 성공한 뒤 11년 동안 정권을 연장할 수 있었던 까닭을 ‘문화정치’란 맥락에서 분석했다. 홀이 보기에 보수당 승리의 핵심 요인은 ‘대중의 인식 흐름 장악’이었다. 홀은 “대처리즘의 목적은 ‘이 시대의 상식’이 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정책 및 후보에 대한 지지와는 다른 차원의 정권창출 동력이 존재한다는 뜻이다.‘공공부문은 관료적이고 비효율적이다.’,‘민간부문은 경제적이고 효율적이다.’라는 인식을 ‘상식’으로 만들어낸 것이 무엇보다 선거 승리에 결정적이었다고 홀은 지적한다. 이명박 당선인이 자신의 핵심 구호 ‘경제를 살리자!’를 강력한 시대정신으로 부각시켜 생활고에 시달리는 한국 유권자들의 뇌리를 파고든 것도 같은 맥락이다. 결과적으로 대처리즘이 만들어낸 상식은 현 한국사회에서도 상식이 된 셈이다. 홀의 분석에 따라 대처리즘과 이명박 당선인의 정책, 당시 영국과 지금 한국의 공통점을 찾아보면, 우선 국민의정부-참여정부로 계승되는 한국의 여권과 영국 노동당 정권의 실각 배경의 유사함을 꼽을 수 있다. 경제가 침체의 늪으로 빠져들면서 영국에선 사회민주주의의 근간이 되는 사회복지 정책과 고교 평준화 등에 대한 환멸이 일었고, 과거 민주화운동의 정당성을 강조하면서도 먹고 사는 문제 해결에 실패한 현 정권에 한국 유권자들도 등을 돌렸다. 대부처로의 개편, 공무원 축소, 공기업 민영화, 규제완화, 세율인하 및 경쟁력 우선의 교육정책 등은 대처 정부와 이명박 정부가 내놓은 공통의 해법이라 할 수 있다. 차이점도 있다. 대처리즘의 또 다른 특징인 ‘개입주의’는 철저한 시장주의를 전제로 전통적 가치, 애국심, 도덕심 등을 강조하는 이데올로기적 개입의 형태로 나타났다. 반면 이명박 정부의 개입주의는 시장주의 정책 그 자체에서 모습을 드러낸다.‘친시장 정책’을 표방하지만 실제로는 정부의 개입이 있어야만 가능한 ‘친기업 정책’이 우선시되고 있기 때문이다. 책을 번역한 임영호 부산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홀의 분석은 보수든 진보든 대중이 필요로 하는 갈증을 제대로 읽어내지 못하면 사회 혁신은 물론 스스로의 혁신도 불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면서 “이는 한국의 보수와 진보 또한 명심해야 할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 고대 새 총장 이기수 교수 “대학자율화 정책에 협조할 것”

    이기수(63) 고려대 법학과 교수가 1년 가까이 한승주 총장서리 체제로 운영돼 온 고려대의 새 총장에 선임됐다. 고려대 학교법인 고려중앙학원(이사장 현승종)은 17일 교내 인촌기념관에서 이사회를 열고 이 교수를 제17대 총장으로 선임했다고 밝혔다. 이날 이사회에는 현승종 이사장 등 법인 이사 8명 전원이 참석했으며, 최종 후보자였던 이 교수와 염재호(53·행정학과) 교수, 김호영(59·기계공학과) 교수 등 3명을 차례로 심층 면접한 뒤 이같이 결정했다. 이 교수는 2006년 16대 총장 선출 과정에서 총장후보자 추천위원회(총추위) 평가에서 1위에 올랐지만 당시 이필상 전 총장에 밀려 선임되지 못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지난 11일 총추위 평가에서 염 교수에 이어 2위에 머물렀지만 총장으로 선출돼 총장선거 ‘3수’ 만에 한을 풀었다. 고려대 법학과 65학번인 이 교수는 기획처장과 학생처장, 법과대학장을 역임했고 한국법학교수회 회장과 한국중재학회 회장을 현재 맡는 등 풍부한 행정 경험을 쌓았다. 이 교수는 외국 저서를 그대로 번역해 자신의 이름으로 책을 냈다는 의혹을 받아 학교로부터 정직처분을 받았으나 2006년 12월 표절이 아니라는 대법원 판결로 멍에를 벗었다. 이 교수는 “이명박 당선인의 대학 자율화 정책을 지지한다.”면서 “여기에 호응해 정부 정책에 도움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이경원기자 leekw@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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