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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훔치고 싶은 문장]

    [훔치고 싶은 문장]

    식물스케일(박세미 지음, 시간의흐름) “우리는 좀처럼 식물이 변하는 그 순간을 목격하기 어렵다. 문득 돌아보면 어느새 뿌리가 자라 있고, 어느새 새순이 나 있고, 어느새 꽃을 피우고, 어느새 죽어 있기도 하면서 끊임없이 우리에게 성장과 생명이라는 진부한 주제를 상기시킨다.” ‘손바닥 소설’ 같은 느낌의 산문집. 시의 이미지보다는 다소 긴, 단편소설보다는 짧은 글들이 독자와 대화하듯 이어진다. 저자는 2014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한 시인이자 건축 전문지 기자다. 건축이 인체스케일 개념에 따라 인간의 몸을 척도로 공간을 설계하듯, 시인은 식물을 척도로 삼아 자신의 삶과 공간, 관계를 새롭게 측정한다. 132쪽, 1만 6000원. 호르몬 체인지(최정화 지음, 은행나무) “인간은 이제 노화가 무엇인지 모른다. 하얗게 바랜 머리카락, 깊게 파인 주름, 드문드문 검버섯이 올라온 피부, 굽은 등허리 같은 것들을 본 적이 없다. 만약 노인이 길거리를 지나다닌다면 동물원 우리를 탈출한 원숭이와 다름없는 볼거리가 될 것이다.” 호르몬 수술 전문 병원인 ‘호르몬 리버스’. 타인의 호르몬을 주입받아 생체 나이를 젊게 되돌리는 수술이 벌어지는 상상 속 근미래의 공간이다. 젊고 건강한 몸을 향한 욕망, 이를 부풀리는 기형적인 시스템. 사회의 방관을 숙주 삼아 빈곤의 악순환은 지속적으로 반복된다. 224쪽, 1만 6800원. 레스토랑 핑크(이지현 지음, 사계절) “역시 음식은 플레이팅이 제일 중요해. 다이아 플레이트는 기본이지. 이 정도가 이 집에서 최고급이라니, 실망인걸.” “다, 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시켰지? 나는 뭘 시켜야 하지?” ‘레스토랑 핑크’는 정해진 메뉴 없이 고객의 특별 주문대로 맞춤형 식사를 제공하는, 어디에도 없는 레스토랑이다. 어쩌면 ‘레스토랑 핑크’는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자리한, 끝없는 욕망의 공간일 수도 있다. 과연 여기서 당신은 어떤 주문을 할까. 이지현 작가가 섬세한 색연필 작업으로 그려낸 실내 장식, 각종 요리와 식기들이 아기자기한 핑크빛 분위기를 연출하지만 실상은 묘하게 꺼림칙하고 날카롭다. 56쪽, 1만 6800원.
  • 꽃보다 해남…힐링정원과 만남…땅끝까지 신남

    꽃보다 해남…힐링정원과 만남…땅끝까지 신남

    새롭게 들어선 여행지 ‘산이정원’200살 넘은 동백 등 곳곳에 서사인근엔 해남 최초 4성급 ‘126호텔’윤선도가 낙향해 지은 ‘녹우당’도맨 아래 땅끝엔 ‘무장애 걷기길’핫플 ‘울돌목 스카이워크’ 지나이순신 기린 명량대첩비도 보고닭요리·삼치회 ‘맛라도’ 경험까지올봄, 전남 해남의 꽃들이 수상하다. 예년 같으면 벌써 만개했을 매화 등 봄꽃들이 감감무소식이다. 올봄 해체 수리 작업을 마치고 5년 만에 다시 열릴 예정이던 미황사 대웅보전도 여전히 공사 가림막에 가려져 있다. 그렇다고 실망하긴 이르다. 이즈음 해남엔 꽃보다 예쁜 여행지들이 수두룩하게 열렸으니 말이다. 이야기가 아름다운 수목원 산이정원, 땅끝탑까지 놓인 무장애 목재 데크길, 해남126호텔 등 새로 들어선 ‘신상’ 여행지에 봄 풍경으로 갈아입은 녹우당 등 전통의 명소까지 돌아볼 곳이 한가득이다. 먼저 새로 들어선 여행지부터. 산이정원을 앞줄에 세울 만하다. 목포와 영암, 해남이 경계를 이룬 간척지에 조성 중인 미래형 거대 도시 ‘솔라시도’의 핵심 시설이다. 전체 16만평 가운데 3분의1이 완료됐고 나머지 3분의2는 올해 안에 조성을 끝낸다는 계획이다. 산이정원이 들어서기 전에는 고구마밭이었다고 한다. 이 거대한 정원을 일군 이는 이병철(57) 대표다. 경기 가평의 아침고요수목원을 사실상 키워 낸 식물전문가다. 그는 늘 남쪽에 정원을 만들고 싶었다. “사람은 서울로, 말은 제주로 보내야 한다면 정원은 남도에서 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그 결과물이 산이정원이다. 산이정원은 광활한 경관이 자랑이다. 주변에 인문학 여행지가 많고 바다도 가깝다. 우리나라 최고의 ‘K정원사’ 고산 윤선도의 흔적이 남은 곳도 해남이다. 이 대표는 “화가가 종이 위에 그림을 그린다면 정원사는 땅에 그림을 그리는 이”라고 했다. 자신이 원하는 정원을 그리기에 해남만 한 곳이 없었던 거다. 산이정원은 수십 년 뒤를 염두에 두고 조성한 곳이다. 쉽게 부수고 지을 수 있는 테마파크와 달리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멀고 먼 미래를 기약하자니 버틸 힘도 필요했을 터. 수목원 외에 젊은이들이 좋아할 ‘약속의 정원’이나 미술관, 카페, 친환경 놀이시설 등을 둔 건 미래를 위한 심모원려의 장치였을 것이다. 그가 땅에 심은 건 식물만이 아니다. 이 땅에 얽힌 서사도 심었다. 정원 어디든 이야기가 스미지 않은 곳이 없다. 이 대표가 가장 좋아하는 자리는 중심 건물인 카페 뮤지엄 뒤의 후박나무숲이다. 그는 이곳에 ‘나비의 숲’이란 이름을 안겼다. 후박나무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예쁜’ 청띠제비나비가 사는 공간이다. 봉황이 벽오동에 깃들 듯 청띠제비나비는 후박나무숲에만 머문다고 한다. 다 자란 나비가 후박나무 아래서 짝짓기를 한 뒤 알을 까면 훗날 애벌레가 새순을 먹고 자라 나비로 환골탈태한다는 것이다. ‘나비의 숲’은 어린이를 위한 공간으로 가꿀 계획이다. 월계수, 치자나무 등 향기 나는 식물을 주로 심고 카이스트와 협업해 어린이 명상 프로그램도 진행할 예정이다. 가장 관심을 끄는 곳은 늙은 동백나무가 있는 노리정원이다. 동백나무의 수령은 200년이 넘는다고 한다. 이 구역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존재다. 원래 있던 곳은 산이면의 밭이다. 나무는 가지마다 상처가 가득하다. 긴 세월 동안 농기계에 치이고 소를 매 놓은 줄에 쓸리면서 생긴 것들이다. 조상이 후손을 위해 심은 나무가 고통받는 걸 보다 못한 밭 주인이 이 대표에게 이식을 권했고 나무 의사들이 애면글면 치료한 뒤 산이정원의 명당 터에 번듯하게 자리를 잡게 됐다고 한다. 산이정원 인근 오시아노 관광단지엔 해남126호텔이 들어섰다. 한국관광공사가 지은 해남 최초의 4성급 호텔이다. 관광공사가 호텔을 지은 건 강원 강릉 주문진가족호텔 이후 23년 만이다. 현지에선 정체된 오시아노 관광단지가 재도약할 계기라며 반색하는 분위기다. 해남126호텔은 해남 윤씨의 고택인 녹우당을 모티브로 지어졌다. 가운데 너른 중정을 둔 게 특징이다. 객실은 120개다. 모두 시원한 바다 조망(오션뷰)이다. 연회장, 바다와 마주한 인피니티풀, 카페 등의 부대시설도 갖췄다. 오시아노 관광단지에서 매화로 유명한 보해매실농원은 멀지 않다. 3월 중순까지 매화 개화율은 0%에 그쳤고 이달 하순쯤 절정을 이룰 것으로 예상된다. 해남 맨 위에 거대한 관광도시가 생겼다면 맨 아래 땅끝엔 걷기 길이 조성됐다. 올 초 완공된 ‘땅끝 꿈길랜드’다. 종전의 낡은 계단을 없애고 목재 데크를 깔아 노인, 장애인 등 여행 약자들도 오갈 수 있는 ‘무장애 걷기길’로 만들었다. 길 이름에 ‘랜드’가 들어간 건 다소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다. ‘땅끝 꿈길’이라 해도 충분하지 않았을까 싶다. 이 길의 들머리는 땅끝 모노레일 승차장이다. 여기서 땅끝탑까지는 800m 정도. 전체 구간에 경관 조명 등이 설치돼 밤에도 걸을 수 있다. 중간에 41m짜리 땅끝스카이워크도 조성했다. 바닥은 물론 강화유리다. 짜릿하게 땅끝의 풍경을 즐기라는 취지다. 땅끝탑 아래엔 칡머리당할머니 조각상이 있다. 칡머리는 이 마을 지명인 ‘갈두’를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칡 갈(葛) 자에 머리 두(頭) 자를 쓴다. 칡머리당할머니의 위엄은 예부터 대단했다고 한다. 한반도 전역의 뱃사람들이 이 일대를 지날 때면 칡머리당할머니가 보이는 곳에 배를 멈추고 안전과 풍어를 기원했다. 제때 제삿밥을 주지 않으면 풍랑을 일으켜 배를 침몰시키기도 했단다. 현재 조각상은 2023년 제작된 것이다. 녹우당은 봄을 재촉하는 푸른 비에 마음이 젖는 곳이다. 당호는 푸를 녹(綠) 자에 비 우(雨) 자를 쓴다. 말 그대로 ‘초록비’라는 뜻이다. 바람이 불면 집 뒤 비자나무에서 우수수 빗물 떨어지는 소리가 난다고 해서 이런 이름을 얻었단다. 녹우당은 조선의 17대 임금 효종이 고산 윤선도에게 하사한 집이다. 82세가 되던 해 낙향을 결심한 고산이 당시 수원에 있던 집을 뜯은 뒤 배로 싣고 와 해남에 다시 지었다. 비와 햇빛을 막는 겹처마, 높낮이로 아버지와 아들의 기거 공간을 구분한 공간 배치, 회랑 형태의 나무 기둥 등이 인상적이다. 녹우당 아래 ‘오우가 정원’이 새로 조성됐다. 윤선도의 시조 ‘오우가’를 모티브로 한 전통 정원이다. 아직 정식 개장하지는 않았지만 누구나 들어가 볼 수 있다. 윤선도 유물전시관도 반드시 들러야 한다. 비록 모사본이긴 하지만 국내 최고의 초상화로 꼽히는 ‘윤두서 자화상’(국보), 교과서에 실릴 만큼 유명한 ‘오우가’, ‘어부사시사’ 등의 유물을 만날 수 있다. 전통 명소인 우수영 관광지도 무척이나 번듯해졌다. 이 일대는 1597년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승리를 거둔 명량대첩의 현장이다. 곳곳에 이를 기념하는 공간들이 늘어서 있다. 해남 쪽은 우수영 관광지, 맞은편 진도는 녹진 관광지다. 두 관광지 사이를 명량해상케이블카가 오간다. 길이는 약 1㎞. 거친 울돌목을 하늘에서 가로지르는 재미가 아주 쏠쏠하다. 케이블카 캐빈에서 굽어보는 풍경도 빼어나다. 국내 최초 사장교라는 진도대교와 울돌목, 멀리 다도해 풍광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울돌목은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물살이 빠른 해협이다. 썰물 때 특히 빠른데 속도가 시속 20㎞에 달하기도 한다. 모터보트가 물 위를 질주할 때의 속도와 비슷하다. 워낙 급류다 보니 일본 세토내해 국립공원의 나루토 해협처럼 소용돌이도 생긴다. 이게 볼거리다. 우수영 관광지 관계자에 따르면 밀물과 썰물을 기준으로 1~2시간 내외에 소용돌이가 자주 생긴다. 물때도 영향을 미친다. 조수의 흐름이 거의 없는 조금 때는 소용돌이 숫자가 적고, 물고기가 잘 잡히는 7물~8물때는 소용돌이도 많아진다. ‘울돌목 스카이워크’가 핫플레이스다. 울돌목 위에 세운 110m 길이의 바다 전망대다. 강강술래를 모티브로 설계됐다. 스카이워크에 서면 포효하는 듯한 바닷물 소리가 그대로 들린다. 왜 이곳이 ‘바다가 울면 물이 돈다’는 뜻의 울돌목(명량·鳴梁)인지 여실히 느껴진다. 인근에는 우수영 문화마을이 있다. 쇠락해 가는 마을을 되살리려는 공공미술 프로젝트 덕에 잠시나마 ‘화사해졌던’ 마을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문 닫은 집이 늘고 벽화도 희미해졌지만 그래도 찬찬히 돌아볼 만하다. 잡풀만 무성했던 이 마을 법정 스님 생가터엔 도서관, 조형물 등이 새로 들어섰다. 명량대첩비(보물)도 잊지 말고 돌아봐야 한다. 명량대첩을 승리로 이끈 이순신 장군의 공을 기리기 위해 1688년(숙종 14)에 건립된 비석이다. 비록 비석 전문의 뜻은 헤아릴 수 없지만 충무공의 당시 활약상을 그대로 표현했다는 것만으로도 감동이다. 우수영 문화마을 끝자락에 있다. ‘맛라도’에 갔으니 음식 이야기를 안 할 수 없다. 읍내에서 삼산면으로 넘어가는 돌고개 일대에 닭요리촌이 형성돼 있다. 10개 업소가 닭 전문점을 자처한다. 대부분 토종닭으로 코스 요리를 낸다. 모래주머니와 가슴살을 저며 낸 육회, 고추장 양념으로 볶아 낸 닭 불고기, 오븐에 구운 바삭한 닭구이, 한약재를 넣고 푹 삶은 보양백숙, 깔끔한 닭죽 등을 즐길 수 있다. 끝물이긴 하지만 삼치회도 빼놓을 수 없다. 삼치를 급속 냉동시킨 뒤 숙성시켜 선어회로 먹는다. 보통 3월 말까지는 삼치회를 즐길 수 있다. 살짝 구운 김에 밥을 조금 얹고 양념장에 찍은 삼치와 묵은지, 고추, 마늘, 된장 등을 식성대로 얹어 먹는다. 해남 특산물인 겨울 배추에 싸 먹는 것도 별미다. 피낭시에는 해남 특산물인 고구마로 만든 제품이 유명한 빵집이다. 금괴 모양의 케이크를 일컫는 피낭시에, 밀가루 대신 해남 쌀을 써 쫄깃하고 달달한 고구마빵, 고구마 누룽지, 카스텔라 등을 판다. 읍내에 있다. 삼산브레드 역시 천연발효종으로 만든 빵을 내는 집이다. 토요일 하루만 빵을 팔고 다른 요일엔 문 닫고 빵을 만든다. 삼산면에 있다. 송지면 토문재는 작가를 위한 창작 레지던스, 북카페 등을 갖춘 곳이다. 자동 판매 시스템으로 운영되는 북카페는 24시간 문을 연다. 새벽에 여객선을 타기 위해 땅끝 선착장으로 가는 여행객들이 자주 찾는다고 한다. 함박꽃은 한지공예 공방을 겸한 카페다. 일가족이 함께 운영하는데 꽤 평이 좋다.
  • 봄날, 이름 고운 동네에서 이름 모를 그대에게 안부를 전합니다… 도서관 닮은 이 곳에서, 당신에게 엽서를 씁니다[박상준의 여행 서간(書簡)]

    봄날, 이름 고운 동네에서 이름 모를 그대에게 안부를 전합니다… 도서관 닮은 이 곳에서, 당신에게 엽서를 씁니다[박상준의 여행 서간(書簡)]

    서울의 옛 정취 고스란히 남은 골목주택 사이 작은 카페·책방 등 빼곡사러가·빵집 돌며 먹거리 보는 재미 빵 굽는 냄새 반기는 건물 들어서면직접 디자인한 편지지·카드 등 가득낯선 이와 친해질 ‘펜팔 서비스’ 마련동쪽 창가에 앉아 편지 쓰며 힐링을승강기 없는 건물 계단 오르면도서관처럼 엽서 진열한 포셋3200장 저마다 다른 작품 구경100개 사서함에 기록 남겨볼까밖으로 나와 안산 봉수대 올라한양 배후로 좋았을 전경 즐겨더딜지언정 봄은 오고 있으니발끝에 아지랑이가 피어납니다. 계절이 바뀌는 걸 몸이 먼저 아는가 봐요. 꽃이 피기도 전에 봄 마중을 나갑니다. 숲이어도 좋겠습니다만 우선은 가까운 동네를 산책합니다. 오늘은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에 있습니다. 골목골목 작은 공간의 봄 내음을 탐하다 편지가게 ‘글월’에 다다랐습니다. 저는 이곳에서 펜팔을 할 겁니다. 이름 모를 당신과 편지로 벗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똑똑똑, 봄봄봄, 꼬무락꼬무락, 한 번에 한 줄 만큼 손가락을 움직여 당신에게 다가섭니다. ●연희동의 연서 서울에는 여러 동네가 있습니다. 연희동은 연세대 북서쪽 일대입니다. 왠지 연인의 이름 같지요. 예전에 연희궁이 있어 그리 불러요. 조선 정종이 왕위에서 물러나 머물렀고 세종이 태종을 위해 고쳐 지은 궁궐이라지요. 궁궐의 지위는 연산군이 연회장으로 쓰다 왕위에서 내려오며 상실됐습니다. 버스를 타고 연희동을 오가는 이들은 연희104고지라는 버스정류장이 익숙하겠습니다. 104고지는 일제강점기 훈련장이었고 천연의 요새라 6·25전쟁 당시 서울 수복의 격전지이기도 했습니다. 또 영화 ‘서울의 봄’의 한 장면도 떠오릅니다. 12·12 군사쿠데타를 일으킨 전두환씨의 집이 연희동이라 뉴스에 자주 등장하던 시절이 있었네요. 지금은 서울의 동네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골목 여행지의 하나입니다. 연희로 큰길에서 서편 안쪽으로 비켜서자 한결 평화롭습니다. 사람 사는 집과 집 사이로 작은 카페와 가게들이 차곡차곡 쌓여 갑니다. 그렇다고 프랜차이즈에 정복당한 카페 골목은 아니에요. 씨앗을 매개로 가드닝을 제안하는 ‘씨드키퍼’, 연필의 진심을 전하는 작은연필가게 ‘흑심’이라거나 독립 출판 축제 언리미티드 에디션을 개최하는 책방 ‘유어마인드 서울’ 등은 저마다의 개성과 철학이 있어 반가운 장소이기도 하지요. 연희동 이름 끝에 변함없이 ‘사러가’(쇼핑센터)가 등장하는 것 역시 ‘여기는 생활이 있는 마을입니다’라는 선언 같아 좋습니다. 오래되거나 새로 생긴 유명한 빵집이 많은 것도 그러하고요. 저는 지금 고운 이름에 이끌려 연희동 편지가게 ‘글월’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봄 햇살이 좋아 부러 빙글빙글 골목을 산책합니다. 편지를 쓰기 전 손가락 끝으로 펜을 돌리며 첫 문장을 고심하듯이요. ‘글월’은 가게 이름 이전에 편지의 우리말이기도 합니다. 어떤 말들은 혀끝의 울림부터 그 이름의 뜻 같아서 말할 때마다 뜻이 한층 깊어지기도 하지요. 글월의 ‘글’은 글자를 뜻합니다. ‘월’은 접미사 ‘-발’의 변형일 텐데 편지의 의미를 두고 보니 자꾸만 달(月)에 가까워 보입니다. 기어이 ‘달에게 띄우는 글’이라고 멋대로 정의해 봅니다. 또 글과 그리움은 ‘긁다’라는 같은 단어에서 태동했다고 합니다. 그러니 그리운 마음 그러모아 글로 쓰는 게 편지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연희라는 지명과 자리하니 연인의 이름 위에 고이 얹은 연서 같기도 합니다. ●인터뷰에서 시작한 편지가게 글월은 연희삼거리 근처에 있습니다. 서울 연희동우체국 옆, 반세기를 살아온 빵집 ‘피터팬1978’ 건물 4층입니다. 승강기가 없는 낡은 건물은 프랑스 파리의 오래된 아파트를 떠올리게 해요. 밖에서 볼 때는 평범한 사무동의 건물 같더니 2층을 지날 때는 빵 굽는 냄새가 납니다. 계단참 곁에는 몬스테라가 화분 밖으로 가지를 뻗어 환영하네요. 곧 3층의 머그잔을 파는 가게 문을 지나 4층에 이르면 글월의 입구가 나옵니다. 대문 옆에는 포스터 2장이 붙어 있습니다. 편지 쓰는 손과 문을 열고 들어서는 발걸음. 편지가 마음 문을 열고 다가가는 행위라 말합니다. 자그마하게 적은 ‘l’esprit’(에스프리)라는 글씨도 보입니다. 프랑스어로 마음, 정신을 뜻하는 글자입니다. 글월의 내부는 23㎡(7평) 남짓입니다. 가장자리에 서랍장이 단정하게 자리해요. 서랍장의 윗면은 쇼케이스 역할을 겸하는데 글월에서 디자인한 편지지, 편지봉투, 메시지 카드 등이 놓여 있습니다. 저는 자그마한 공간에 잠깐 놀라지만 이내 살구색의 포근함과 치장하지 않은 편안함에 녹아들어요. 동쪽과 북쪽으로 난 창으로 나른한 햇살이 스미네요. 창틀의 그림자를 밟으며 천천히 맴을 돕니다. 원래 이곳은 레터 서비스의 인터뷰를 위한 공간으로 꾸렸다고 합니다. 문주희 대표는 잡지사 기자로 일했다지요. 특별한 사람만이 아닌 보통 사람의 이야기를 인터뷰로 담아 전하고 싶었답니다. 레터 서비스는 한 시간가량 인터뷰를 진행한 후 인터뷰이의 일상을, 일생의 한 장면을 편지 형식의 기록으로 담아 전하는 서비스였습니다. 한 편의 글 속에서 주인공이 되고 싶은 바람이, 꼭 집어 사랑은 아닐지라도 건네 닿아 잇고 싶은 말들이 우리에겐 있지 않나요. 그 소망을 온전하며 친밀한 글로 전하기에 편지만큼 따스한 수단은 없었을 겁니다. 그래서 제게는 글월이 편지와 관련된 제품을 사는 곳이라기보다 편지를 쓰는 작은 방에 가깝습니다. 저만 그런 것은 아니어서 글월에는 편지를 쓰기 위해 찾는 이들이 많습니다. ●펜팔이 있는 글월 글월은 편지 좋아하는 이들의 ‘우체국’이기도 합니다. 편지 문구를 사러 오기도 하지만 못지않게 펜팔서비스를 이용하는 이가 많습니다. 펜팔은 낯선 이와 편지로 사귀는 일이지요. 1970~80년대에는 잡지 뒷면에 애독자 펜팔 코너가 있을 만큼 인기였고요. 아련한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펜팔이 지금 다시 주목받고 있다니 신기하기도 하고 반갑기도 합니다. 이메일과 카톡과 소셜미디어(SNS) 그리고 인공지능(AI)의 시대에 펜팔이 뜻밖이라고 생각할 수 있어요. 하지만 인공지능과 인간의 사랑을 다룬 영화 ‘그녀’의 주인공 테오도르(호아킨 피닉스)는 ‘편지 써주는 사람’이었지요. 편지는 분명 우리보다 더 오래 살아남을 것만 같습니다. 계산대에서 펜팔 키트를 구매해서는 동쪽 창가에 앉습니다. 공간을 구분 짓는 패브릭과 자그마한 액자 하나가 글월 안에 편지 쓰기 좋은 자리를 만듭니다. 펜팔 키트는 글월의 편지지와 편지 봉투, 우표를 대신하는 스티커 등으로 이뤄집니다. 이 편지가 누구에게 전해질지는 알 수 없어요. 하지만 나의 고민일 수도, 일기일 수도 있는 말들이 누군가에게 읽힐 거라는 사실만은 확실하지요. 편지를 쓴 후에는 마지막으로 편지 봉투에 나를 표현하는 형용사를 찾아 표시합니다. 글월의 펜팔은 익명성을 바탕으로 하고 편지는 글월에 위탁하는 방식으로 오가요. 대신 편지 봉투에는 편지 쓴 이를 알아챌 수 있는 ‘명랑한’, ‘느긋한’, ‘시간을 잘 쓰는’, ‘반려동물이 있는’ 같은 힌트가 있습니다. 편지를 접수시키고 나서는 타인이 쓰고 간 펜팔 편지를 고르게 되는데, 그럴 때도 편지에 표시된 단서들은 도움이 됩니다. 저는 봄에 관해 편지를 씁니다. 이 편지가 혹여 길어진 당신의 겨울 끝에 따스한 봄뜻이길 바란다고 적습니다. 편지 봉투를 닫은 후에는 ‘느긋한’, ‘그리움이 많은’, ‘얼빠진’에 동그라미를 칩니다. 이렇게 익명의 상태로 떠난 편지는 답장으로 이어지고, 또 답장의 답장이 한 해를 넘겨 오가기도 한다고 해요. 서로의 이름은 알 수 없지만 서로에게 마음을 여는 거지요. 느슨하지만 친밀한 연대, 그 편지가 귀하게 여겨진다면 아마도 시간을 들이고 공을 들여 오가는 안부이기 때문일 겁니다. 기다려 맞이하는 것만이 줄 수 있는 위안이라 그럴 겁니다. 편지를 건넨 후에는 앞서 쓰고 간 이의 편지 한 통을 받아 듭니다. ‘책 읽기를 좋아하는’, ‘유쾌한’, ‘달리기를 좋아하는’ 당신의 편지는 조금 미뤄 두었다 아껴 읽기로 합니다. ●포셋에서 책 한 권 고르듯 엽서 고르고 글월 가까이 또 하나의 편지 공간이 있습니다. 정확히는 엽서가 맞겠네요. 엽서는 봉투 없이 건네는 짤막한 편지입니다. 엿보아도 무방한, 가볍고 편하게 안부를 묻는 글이지요. ‘종이의 한 귀퉁이에 잊지 않도록 써놓는 단서’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편지가 은밀한 귓속말을 떠올리게 한다면 엽서는 다정한 메모를 연상케 합니다. ‘포셋’은 엽서 편집숍입니다. 글월과 마찬가지로 승강기 없는 건물의 계단을 오르지요. 문을 열고 들어서자 무려 3200장의 색색 엽서들이 도열해 있어요. 엽서를 진열하는 방식도 흥미롭습니다. 선반 위에 한 줄씩, 마치 도서관의 서가처럼 오밀조밀하게 자리해요. 책 한 권을 고르듯 낱낱의 엽서를 눈여겨봅니다. 포토그래피와 실크스크린, 모션그래픽과 타이포그래피 등 다채로운 이미지가 눈길을 끕니다. 그 모양 또한 네모나고 동그랗고 나뭇잎을 닮기도 한 것이 어느 하나 탐나지 않는 게 없어요. 엽서 전시회에 온 듯도 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한 장 한 장의 엽서는 작가들의 작품이기도 하니까요. 각각의 엽서 곁에는 엽서를 제작한 150여개 브랜드와 작가의 이름이 적혀 있어요. 김건주, 그럼사라는 제가 무척 좋아하는 작가이기도 해서, 저는 그들이 만든 엽서 몇 장을 집어 듭니다. 그러고는 창가에 있는 책상에 앉습니다. 조금은 다정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당신에게 봄날의 연둣빛 같은 엽서를 써나갑니다. 반대편에는 기록 보관함도 있어요. 100개로 이뤄진 사서함(개인을 위한 대여 우편함)입니다. 자신만의 기록을 보관하거나 친구와 연인이 서로를 향해 엽서나 편지, 선물을 주고받는 용도로 쓸 수 있습니다. 누군가는 봄이 왔다며 여린 진달래 꽃잎 하나를 서로에게 건넬지도 모르겠습니다. ●일러도 안산은 봄이어서 포셋을 나와서는 기어이 안산을 향하고 맙니다. 아직 봄꽃이 피지 않았을 거라는 걸, 새순은 굼뜨게 올라오고 있다는 걸 압니다. 하지만 편지 한 줄, 엽서 한 장에 더딘 봄을 눌러쓰다 보니 숲이 그리워집니다. 서울의 산은 북악산, 낙산, 남산, 인왕산의 내사산이 먼저 떠오를 테지요. 안산은 그에 비해 덜 알려졌지만 못지않게 아름다운 산입니다. 하지만 그 또한 한양의 주산이 될 뻔한 산이기도 하지요. 그럼 북악산의 지위는 안산의 것이었을 테고, 안산 남쪽 연희동은 한양의 중심인 종로가 됐을지 모르겠습니다. 한 시간 남짓 걸려 정상의 모악동 봉수대에 다다르면 왜 이곳을 한양의 배후로 삼으려 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서울의 전경이 시원스레 펼쳐지지요. 봉수대까지는 서대문구청, 서대문형무소, 연세대나 이화여대 쪽의 봉원사 등 여러 갈래에서 오를 수 있습니다. 천년고찰 봉원사에서 느슨한 시간을 보낼까 하다가 오늘은 서대문구청 쪽을 택합니다. 연희숲속쉼터와 안산자락길을 지나는 경로는 서울의 숨은 벚꽃 명소지요. 4월 초에는 꽃놀이 나온 이들이 가득하겠습니다. 그러다 안산 초입에서 또 마음이 살랑거려 홍제천을 걷고, 결국에는 홍제천인공폭포가 보이는 수변 테라스에 앉아 천변의 햇살을 누립니다. 변심이 변심을 거듭하는 봄날입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글월에서 읽은 프랑수아즈 사강의 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어떻게 대답하든 오답처럼 보일 테니까요.” 아직은 성긴, 봄에 대해 말하는 건 어떻든 서두른 오답처럼 보일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봄은 더딜지언정 한 번도 틀린 적이 없었지요. 저만치 봄이 오고 있습니다. ■ 여행수첩 글월(Letter Shop) 연희점 -오후 1 ~ 6시, 연중무휴 www.geulwoll.kr 포셋 연희 - 낮 12시 ~ 오후 8시 월요일 휴무 www.poset.co.kr
  • 희귀 ‘녹색비둘기’ 울산서 관찰

    희귀 ‘녹색비둘기’ 울산서 관찰

    국내에 드물게 찾아오는 ‘녹색비둘기’가 울산에서 처음으로 관찰됐다. 울산시는 지난 19일 오후 4시쯤 남구 옥동 울산대공원에서 ‘녹색비둘기’를 발견했다고 25일 밝혔다. 시에 따르면 임현숙 울산자연환경 해설사가 울산대공원 종가시나무 인근에서 녹색비둘기를 처음으로 발견했다. 울산시도 다음 날 오후 같은 장소에서 녹색비둘기 두 마리를 관찰했다. 이후에도 지역 사진작가들에게 포착되기도 했다. 녹색비둘기는 머리와 등이 녹색이고 배는 흰색이다. 수컷은 작은날개덮깃이 적갈색이고 암컷은 등과 같이 녹색이다. 주요 서식지는 일본, 대만, 베트남 북부 같은 온대숲이다. 도서지역이나 해안과 인접한 내륙지역에 도래하는 나그네새다. 국내에는 제주도, 독도, 태안 등에서 간혹 관찰된다. 녹색비둘기는 초여름부터 가을까지 염분을 섭취하려고 바닷물을 먹기도 한다. 주로 나무 위에서 열매와 새순을 먹지만 간혹 땅에서도 먹이활동을 한다. 조류전문가들은 “녹색비둘기는 사람을 크게 두려워하지 않는 습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시 관계자는 “울산대공원의 자연환경을 잘 가꾸어 온 결과 도심으로 귀한 새들이 꾸준히 찾아오는 것으로 같다”며 “철새들을 지속적으로 조사하고, 서식 환경 변화에 대해 관찰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 “울릉도가 국내 유일의 야생꿩 식용 허용지역 되나 했는데”…결국 무산 ?

    “울릉도가 국내 유일의 야생꿩 식용 허용지역 되나 했는데”…결국 무산 ?

    울릉도를 국내 유일의 야생꿩 식용 허용지역으로 만들려는 계획이 사실상 무산됐다. 경북 울릉군은 섬에 집단 서식하는 유해 야생동물 꿩을 포획해 합법적으로 자가소비(식용) 또는 유통할 수 있도록 하려던 계획을 철회하기로 했다고 5일 밝혔다. 군은 이를 위해 지난해 상반기부터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 근거해 ‘울릉군 유해 야생동물에 의한 피해 보상 등에 관한 조례’에 야생 꿩 식용 조항 신설하는 조례 개정 작업을 추진해 왔다. <서울신문 2024년 3월 20일자 12면>. 야생동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은 멧돼지와 꿩 등 야생동물을 매개로 한 각종 감염병 차단을 위해 식용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으나 지역적 특수성 등을 고려하여 시군구 조례가 정한 방법으로 처리할 수 있도록 예외를 허용하고 있다. 육지와 약 210㎞ 떨어진 울릉도에서는 그동안 엽사 등이 야생에서 잡은 꿩을 직접 조리해 먹거나 유통시키는 등 불법 행위가 자행돼 왔으며, 울릉군은 관련 근거없이 이를 허용했다. 군은 뒤늦게 꿩 자가소비 등이 위법이라는 점을 알고 관련 조례 개정에 나섰다. 하지만 최근 미국 등 일부 국가에서 조류인플루엔자(AI) 인체 감염이 보고되고 국내 방역 당국에서도 다음 팬데믹(감염병 대유행)은 ‘AI 인체 감염’이 될 가능성이 높으로 것으로 점쳐지면서 군의 꿩 식용 관련 조례 개정에 급제동이 걸렸다. 울릉군 관계자는 “꿩 식용으로 인한 불법 논란을 불식시키기 위해 관련 조례 개정을 추진했으나 결국 주민 건강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할 수 밖에 없었다”이라며 “앞으로 포획된 꿩 전량을 관련 법에 따라 매몰 또는 랜더링(고온·고압 처리)해 처리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울릉도에는 매나 독수리 같은 꿩 천적이 거의 없어 섬 전역에 걸쳐 기하급수적으로 번식해 봄철 울릉도 특산물로 농가의 주요 소득원인 명이(산마늘) 새순을 닥치는 대로 먹어치우는 등 농가에 큰 손해를 끼치고 있다. 이에 울릉군은 ‘꿩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총력전을 펼치고 있으나 포획이 제대로 되지 않아 골칫거리가 되고 있다.
  • [이소영의 도시식물 탐색] 여름 병마로부터 우리를 지켜주는 음나무

    [이소영의 도시식물 탐색] 여름 병마로부터 우리를 지켜주는 음나무

    종종 학생들과 야외에서 식물을 그리는 수업을 한다. 식물원, 정원, 산에서 학생들에게 묻는다. “지금 눈에 보이는 식물 이름을 말해 볼까요?” 그러면 학생들은 눈앞에 화려한 꽃을 피운 관목(작은키나무)과 눈에 띄는 꽃이 핀 풀 그리고 강아지풀이나 양치식물처럼 푸르른 풀까지 시야를 점점 땅으로 낮춰 식물 이름을 말한다. 의외로 가장 늦게 이름을 말하는 식물은 교목(큰키나무)이다. 커 봐야 2m가 되지 않는 우리 눈높이에 8m가 넘는 교목은 시야에 잘 들어오지 않는 식물, 잡초라 불리는 들풀보다도 존재감을 알아채기 어려운 존재다. 얼마 전 광릉 국립수목원에 갔을 때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원내 수생식물원 옆에는 봄이면 현호색, 여름이면 비비추가 꽃밭을 이루는 전시원이 있다. 그곳에서 산사나무 열매를 올려다보다 문득 산사나무 가지 뒤편에 피어 있는 음나무꽃을 발견했다. ‘여기에 음나무가 있었구나!’ 15년이 넘게 이 구역을 오가면서도 음나무를 처음 보았다. 현호색과 찔레나무, 산사나무 그리고 미선나무, 산당화 등의 개화와 결실에 눈길을 주느라 음나무의 존재를 알아채지 못했다.그러나 이미 음나무는 우리 삶 깊숙이 들어와 있는 친숙한 식물이며, 한여름인 이맘때 이야기하지 않고 넘어갈 수 없는 존재이기도 하다. 음나무가 이 계절에 가장 잘 어울리는 식물인 데는 여러 이유가 있다. 우선 이들은 지금 화려한 꽃을 피우는 여름꽃 식물이다. 사람 손보다 큰 산형꽃차례에 연노랑 꽃이 무리 지어 핀다. 게다가 밀원식물인 이들 꿀에는 약효가 있다고 알려져 엄나무 꿀은 여름에 채취하는 꿀 중 가장 귀한 취급을 받는다. 누군가는 어린잎을 먹는 봄을 음나무의 제철이라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두릅나무의 새순처럼 음나무의 새순도 살짝 데쳐 나물로 먹는데 향과 맛이 두릅보다 더 강하다. 그래서 음나무를 개두릅이라고도 한다. 물론 음나무의 어린잎보다 요리에 더 많이 이용되는 부위는 가지다. 뾰족한 가시가 난 음나무 가지를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계절 또한 바로 이맘때다. 오래전부터 조상들은 아이들의 허리춤에 ‘음’이라 부르는 육각형 노리개를 채워 병마와 잡귀로부터 보호했는데, 이 ‘음’을 만드는 나무라 하여 음나무란 이름이 붙여진 것으로 전해진다. 음나무는 엄나무, 엄목이라고도 불린다. 가시 돋아 험상궂은 가지가 엄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이들은 잡귀를 내쫓고 운과 복을 불러들이는 역할을 해 왔다. 하필 음나무가 이런 기능을 하게 된 것은 가지의 뾰족한 가시 때문일 것이다.동서양 가릴 것 없이 가지와 줄기에 뾰족한 가시가 난 식물은 사람이 사는 집을 보호하는 울타리로 심겨 왔다. 우리나라 남부지역에서 탱자나무로 울타리를 치고, 서양에서 호랑가시나무 가지로 만든 리스를 현관에 거는 풍습이 있던 것은 식물의 가시가 집안의 불운과 악재를 막아 준다는 이유에서였다. 탱자나무와 호랑가시나무보다 더 두꺼운 가시가 나는 음나무 또한 잡귀를 몰아내고 집안에 금실과 행운을 가져온다는 길상목으로 인기가 많았다. 음나무 가지를 문설주에 걸쳐 놓거나, 집안에 음나무 연리목을 만들어 놓으면 부부간 금실이 좋아지고 집안이 번창한다고 믿어 왔다. 어제 동네 마트에 가니 채소 매대에 일정한 길이로 잘린 음나무 가지가 포장돼 판매되고 있었다. 이들 가지는 초복부터 말복까지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요리, 백숙과 삼계탕의 주재료다. 오래전부터 사람들은 백숙과 삼계탕에 넣는 음나무가 몸에 양기를 보충해 줄 거라 믿었다. 실제로 음나무 수피는 소염, 진정, 항균, 복통, 이질 등에 효과가 있기에 ’해동피’라는 한약재로 쓰여 왔다. 해동피, 해동목은 음나무 잎이 오동나무와 닮아 붙여진 이름이다. 음나무는 오래 사는 나무이기도 하다. 예로부터 조상들은 오래 산 나무를 신성시해 왔다.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이란 연유로 음나무를 귀하게 여겨 보호해 온 터라 우리나라에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음나무도 몇 그루 있다. 지난봄 강의를 하기 위해 마산에 간 김에 창원 신방리 신방초등학교 근처의 음나무 군락에 들렀다. 학교를 오가는 길목의 언덕에는 네 그루의 음나무가 자라고 있다. 이들이 여느 산의 음나무처럼 하늘을 향해 높게 자란 것은 아니지만 두꺼운 나무 기둥이 살아온 400여년의 시간을 증명하는 듯했다. 그중 가장 거대한 음나무 한 그루는 언덕을 따라 옆으로 누워 자라고 있었다. 사람이 지나는 인도 위를 가로질러 자연스레 음나무 터널이 형성됐다. 나무를 둘러싸 화려한 꽃을 피우는 화단이 조성돼 있었지만 400년산 음나무의 강렬한 존재감을 따라잡을 수 없는 듯했다. 적어도 신방초등학교를 다닌 사람들에게 음나무는 학창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나무일 것이다. 어린 시절 기억 속 떠오르는 나무 한 그루가 있다는 것, 그 나무가 여전히 존재한다는 사실이 얼마나 부러운지 모른다. 어제는 서울 남산에 다녀왔다. 남산의 식물을 조사하느라 산 중턱에 오르니 저 위에서 노란 꽃을 피운 거대한 음나무가 보였다. 음나무는 우리 곁 어디에든 있다. 주변 식물들보다 부쩍 키가 큰 나무. 1~2m밖에 되지 않는 인간의 시야에 잘 들어오지 않는 나무. 이맘때 먹는 식재료지만 왜 넣는지 굳이 생각해 보지 않을 정도로 우리 삶 깊숙이 들어와 있는 나무. 그 나무가 지금 꽃을 피우고 있다. 이소영 식물세밀화가
  • 폭우로 뽑힌 포천 천연기념물 ‘오리나무’, 대(代) 잇는다

    폭우로 뽑힌 포천 천연기념물 ‘오리나무’, 대(代) 잇는다

    경기도산림환경연구소가 폭우로 부러진 포천시 관인면 초과리 천연기념물 제555호인 국내 최고령 오리나무(수령 230살 추정) 후계목 생산을 추진한다. 초과리 오리나무는 지난 7월 23일 경기북부 지역에 내린 집중호우로 밑동이 뿌리째 뽑히면서 소생이 불가능하다는 판정을 받았다. 이에 경기도산림환경연구소는 천연기념물 오리나무와 같은 유전자를 가진 후계목 생산을 위해 국가유산청과 협의해 부러진 오리나무의 가지와 잎눈 등을 채집했고, 지난 26일부터 본격적으로 조직배양 실험에 들어갔다. 조직배양은 채집한 조직의 잎눈이나 어린줄기에서 새순과 뿌리를 발달시켜 식물체를 만들거나 조직에 상처를 내어 발생한 세포를 배양하고 그 세포로부터 식물체를 만드는 등의 다양한 방법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초과리 오리나무는 높이 21.7m, 가슴높이 둘레 3.4m에 이르며, 지난 2019년 9월 문화재청이 국가지정문화재 천연기념물로 지정했다. 경기도산림환경연구소는 앞서 2018년 6월 26일에 수원시 영통구에 있는 보호수 느티나무(530년)가 비바람에 부러졌을 때도 조직배양으로 후계목 생산에 성공한 바 있다. 경기도산림환경연구소는 느티나무 후계목을 수원시에 기증하고 일부는 물향기수목원에 보존 중이다. 유충호 경기도산림환경연구소장은 “경기도 보호수 관리지원센터를 운영하는 등 오래된 노거수 보호에도 힘쓰고 있다”면서 “경기도 식물 종 보존을 위해 계속해서 노력하겠다”라고 말했다.
  • 속 빈 복숭아, 썩은 토마토… 농부의 땀까지 삼킨 ‘도깨비 장마’

    속 빈 복숭아, 썩은 토마토… 농부의 땀까지 삼킨 ‘도깨비 장마’

    “비닐하우스 다 잠겨 올 농사 망쳐”짧은 시간 폭우… 농촌에 더 가혹농진청 “3일 내 배수 안 되면 썩어”낮엔 흐리고 밤엔 비 ‘일조량’ 부족수확량 감소… 결국 물가 상승으로 “올해 농사도 망쳤네요. 지난해엔 수해와 냉해로 토마토 절반을 갈아엎었는데, 이번 폭우로 비닐하우스가 다 잠겼습니다. 건질 수 있는 게 없어요.” 12년째 전북 익산에서 토마토 농사를 짓는 왕봉수(63)씨는 9일 물에 잠긴 비닐하우스를 보며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6000㎡(약 1800평) 규모의 토마토 비닐하우스가 비 피해를 입어 사실상 올해 농사를 망쳐서다. 왕씨는 “1년에 12번, 한 번에 4~5t의 토마토를 수확했는데 이번 비로 묘목이 썩어 모두 걷어내야 한다”며 “땅이 마른 뒤 모종을 다시 심어 수확하려면 빨라야 겨울”이라고 말했다. 이어 “지난해 여름에는 수해를 입고, 올 1~2월 비가 많이 내려 역병(전염병)이 걸렸다”면서 “폭염, 호우가 번갈아 닥쳐 농사짓기가 점점 어렵다”며 원망스럽게 하늘을 바라봤다. 전북 전주시 원동에서 25년간 복숭아 농사를 지은 송주호(69)씨는 올 초까지만 해도 작황이 좋아 기대가 컸다. 희망은 곧 악몽으로 바뀌었다. 송씨는 “얼마 전까지 건조해 잎이 다 떨어졌는데 뒤늦게 비가 쏟아진 뒤 갑자기 새순이 나왔다. 상품성이 사라졌다”고 했다. 그는 “떨어진 복숭아를 열어 봤더니 대부분 ‘뻥카’(속이 빈 복숭아)였다. 가장 먼저 익은 나무를 확인해 보니 (복숭아) 절반이 비어 있었다”고 말했다. 때 이른 폭염에 이어 장마가 널뛰듯 변덕을 부려 농가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불규칙적으로 퍼붓는 집중호우는 사람 생명을 위협할 뿐 아니라 농산물 생육에도 치명적이다.신용습 영남대 원예생명과학과 겸임교수는 “우리처럼 온대지역의 과일은 여름에 햇빛을 충분히 받아 광합성을 해야 당도가 올라간다”며 “노지(밭) 채소는 폭우로 수확이 안 되고 시설채소는 일조량이 부족해 정상 생육이 안 되는 문제가 동시에 발생할 수 있다”고 했다. 습한 기후는 병해충의 주원인이다. 농약은 과수 표면을 ‘코팅’해 병해충의 공격을 막는다. 그런데 집중호우가 불규칙하게 내리면서 농약이 씻겨 내려가길 반복하는 상황이다. 윤순진 서울대 환경대학원장은 “‘금사과’ 파동의 원인은 지난해 습한 기후가 계속되면서 탄저병이 발생한 탓”이라며 “올여름 호우는 농민에게 대처할 시간조차 주지 않아 더 문제”라고 말했다. 수해도 늘고 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지난해 “태풍과 호우 피해 때문에 농작물 재해보험에서 지급된 보험금이 2018년 이후 1000억원대 이상으로 급등했다”고 분석했다. 반기성 케이웨더 예보센터장은 “요즘 폭우는 하루에 200㎜가 내리는 게 아니라 3시간 만에 쏟아지는 식이라 배수 인프라가 빈약한 농촌에 더 가혹하다”고 했다. 박승무 농촌진흥청 재해대응과 기상팀장은 “불규칙한 집중호우는 침수 위험을 키울 수밖에 없다”며 “3일 내 배수가 안 되면 뿌리가 썩고 이파리에 묻은 흙 때문에 광합성이 안 되기도 한다. 조기경보시스템을 통한 사전 대응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도깨비 장마’는 물가 상승을 압박하는 요인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평균 강수량이 추세 대비 100㎜ 증가하면 신선식품 가격이 최대 0.93% 포인트 상승하는 것으로 분석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이날까지 배추(10kg·도매가격)는 전달보다 38.9%, 적상추(이하 4kg)는 114.0%, 시금치는 129.0% 뛰었다.
  • 토마토 등 재배 농가 골칫거리 ‘가루이’ 방제길 열려

    토마토 등 재배 농가 골칫거리 ‘가루이’ 방제길 열려

    충남도 농기원, 방제용 효력증진제 개발“1회 85%, 2회 97% 살충효과 확인” 외래해충으로 토마토·오이 등 시설 재배 작물의 주요 해충 중 하나인 ‘가루이’ 방제 길이 열렸다. 개발한 효력증진제는 인체에 해가 없는 천연원료로 만들어졌으며, 식물에 약해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충남도 농업기술원은 가루이 전용 유기농업 자재를 위한 효력증진제 개발에 성공했다고 7일 밝혔다. ‘가루이’는 1983년 이후 발생 지역이 급속히 확대돼 현재 전국적으로 분포하고 있으며 시설재배 작물의 주요 해충 중 하나다. 애벌레와 성충이 모두 진딧물과 같이 식물체 즙액을 빨아 먹어 식물 잎과 새순 생장이 저해되며, 퇴색·위조·낙엽·생장 저해·고사 등 직접적 피해와 바이러스를 매개하는 간접적인 피해도 크다. 최근 기후변화 등으로 가루이류 발생 밀도가 증가하고 있지만, 지금까지 이를 방제할 수 있는 유기농업 자재는 전혀 없는 실정이었다.도 농업기술원은 2020년부터 국내 토종 자생식물 꿀풀류 식물의 성분을 추출·분석해 살충성을 높일 수 있는 성분들을 확인하고 이를 활용해 연구해 왔다. 이번에 개발한 효력증진제는 가루이류 전용 효력증진제로 인체에 무해한 천연원료로 만들었으며, 식물에 약해가 없고 흰가루병 방제 효과도 있는 것을 확인했다. 도 농업기술원은 효력증진제 효과 검증을 위해 익히 알려진 살충성 원료에 효력증진제를 넣은 후 온실가루이에 1회 및 2회 연속 살포 후 방제 효과를 조사했다. 결과 1회 살포 시 85%, 2회 살포 시 97%의 살충효과를 확인했다. 도 농업기술원 관계자는 “개발한 효력증진제의 제형 화를 거쳐 제품화한다면 가루이류가 문제가 되는 토마토, 오이 등 재배 농가의 고충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며 “효력증진제를 활용해 응애류와 총채벌레 전용 유기농업자재도 개발할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도 농업기술원은 지난해 진딧물 전용 효력증진제를 개발해 농업회사법인 쉐어그린에 기술 이전했다.
  • [김동률의 아포리즘] 한동훈은 질경이에게 배워라

    [김동률의 아포리즘] 한동훈은 질경이에게 배워라

    마당 있는 집에 사는 사람에게 사월은 팽팽한 긴장감을 안긴다.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지를 읽는” ‘사월의 노래’는 지극히 로맨틱하다. 오히려 사월은 만물이 생존경쟁에 돌입하는 계절쯤 된다. 그리고 단독주택에 사는 사람은 마당에 나서야 한다. 하루가 다르게 날이 따뜻해지면 하루가 다르게 할 일이 많아진다. 바로 잡초와의 전쟁이다. 잡초의 대장주는 민들레다. 누구는 민들레꽃을 두고 보기도 예쁘고 쓸모도 많다고 한다. 하지만 내게는 엄청난 스트레스다. “님 주신 밤에 씨를 뿌리고/사랑의 물로 꽃을 피운 게” 중요한 게 아니다. “일편단심 민들레가 끝끝내 마당을 떠나지 않는다”는 데 방점이 있다. 구로공단 어느 공장 앞에서, 광화문에서, 신촌에서, 장소를 구별하지 않고 민들레는 거친 틈에 산다. 심지어 도심 아스팔트 틈에서도 노랗게 비집고 올라온다. 봄이면 어디서나 볼 수 있고 어떤 조건에서도 잘 자란다. 억세고 질긴 덕분에 민주화 세대에게는 저항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래서 맘 편하게 파내질 못한다. 민들레를 가만히 보면 밟아 보라는 듯 빤히 쳐다보는 것 같다. 험악했던 70, 80년대 박노해의 시에 곡을 붙인 민중가요 ‘민들레처럼’을 열심히 불렀다. “민들레꽃처럼 살아야 한다/(중략)/무수한 발길에 짓밟힌대도/민들레처럼//(중략)/온몸 부딪히며 살아야 한다/민들레처럼//특별하지 않을지라도/결코 빛나지 않을지라도/흔하고 너른 들풀과 어우러져.” 노래를 들으며 잠시 먹먹해지다가도 뽑을 생각을 하면 갑갑해져 온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마당이 있는 집에 살려면 사월에 마땅히 치러야 할 통과의례다. 이처럼 밟히면서도 잘 자라는 식물이 있다. 보리나 잔디도 그렇다. 밟아도 본래대로 돌아오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밟아서 생기는 상처에도 아주 강하다. 이런 특징 때문에 정원이나 골프장, 운동장에 밟히기 위한 식물로 널리 이용된다. 한데 이런 식물들 가운데서도 특히 센 것이 있다. 질경이다. 내가 살던 시골에서는 질경이를 두고 ‘빼뿌쟁이’라고 불렀다. 발음도 세다. 경음이 두 개나 있다. 질경이라는 표준어도 범상치 않다. 아마 질기다는 말에서 파생됐을 것이라고 짐작해 본다. 웬만큼 밟아도 전혀 위축되지 않는다. 뿌리째 뽑아야 되는데 상당한 힘을 써야 한다. 번식력도 아주 강력하다. 마당에 여기저기 솟는 질경이를 보면 심란해진다. 머리부터 아프다. 질경이를 보면 생각나는 얘기가 있다. 질경이를 두고 한계를 기회로 바꿔 삶을 이어 가는 지혜의 풀이라고 한다. 바닥에 납작 엎드려 살아남고, 밟히는 순간조차 번식의 기회로 만든다. 씨앗은 주로 이들의 발바닥에 붙어 멀리까지 퍼진다. 질경이가 살아가는 방법이다. 비옥한 땅보다는 척박한 땅을 골라 뿌리를 내린다. 기름진 땅에서 인간들에게 사랑받는 화려한 꽃들과 경쟁해 봐야 결과가 뻔하기 때문이다. 차라리 버려진 땅에 싹을 틔워 밟히고 치이면서 자라난다. 비록 고난은 당하지만, 엄연히 자기만의 ‘나와바리’와 자유가 있다. 한계를 기회로 바꿔 삶을 이어 가는 지혜로운 풀이라는 말이 그냥 나온 게 아니다. 사람 이치도 마찬가지다. 좋은 기회는 낮추는 사람에게만 보이고, 처한 환경이 절박할 때 오히려 나타난다. 많은 사람은 좋은 기회란 높은 위치에 있거나 경제 호황기 때 생긴다고 하지만, 대개의 경우 바닥에 있거나 경제 쇠퇴기에 발생한다. 선거가 끝났다. 여야를 막론하고 패배자들, 특히 한동훈의 울분, 상실감은 짐작조차 어려울 것 같다. 그러나 이 같은 절박함에서 인생을 바꿀 수 있는 새로운 각오가 생긴다. 현실을 회피할 수 있지만, 현실 회피의 결과에서는 회피할 수 없다. 개가 아무리 짖어도 기차는 간다. 질경이처럼 다시 일어나면 된다. 앵두나무 새순 사이로 봄 햇살이 뭉텅뭉텅 쏟아지고 있다. 김동률 서강대 교수(매체경영)
  • ‘정치 9단’ 박지원 귀환…5선에 헌정 사상 지역구 최고령 의원 등극

    ‘정치 9단’ 박지원 귀환…5선에 헌정 사상 지역구 최고령 의원 등극

    10일 치러진 22대 총선에서 전남 해남완도진도애 출마한 더불어민주당 박지원(81) 후보가 당선돼 5선에 성공했다. 이로써 박 당선인은 헌정사상 지역구 최고령 국회의원이 됐다. 해남완도진도 선거구는 원래 해남진도 선거구였으나, 강진완도 선거구가 폐지되면서 완도군이 포함됐다. 1942년 6월생인 박 당선인은 이번 선거에서 1945년 1월생인 국민의힘 곽봉근(79) 후보와 맞대결해 승리했다. 박 당선인은 임기가 종료되는 2028년엔 85세가 된다. ‘올드보이 맞대결’이라는 세간의 지적에 박 당선인은 “지역구를 돌면서 지난 10개월 20일 동안 매일 2시간씩 걷기를 해 ‘스트롱보이 새순’이다”고 강조한 바 있다. 박 당선인은 10개월 이상 ‘목귀월래’하며 유세를 했다. 목요일에 해남으로 내려갔다가 일요일 밤 서울로 올라갔다는 말이다. 일주일에 4일은 지역에서 유권자들을 만나고 남은 사흘은 중앙정치 무대에서 TV 등 방송에 출연하고 강연했다. 윤석열 정부를 향해 쓴소리하면서 민주당 후보들을 지원했다. 민주당 도우미 역할도 톡톡히 했다. 박 당선자는 특유의 입담으로 전국적 관심을 모은 ‘스타 정치인’이다. 그는 정치흐름을 정확하게 꿰뚫어 ‘정치 9단’으로 통한다. 이번 총선에서도 그의 ‘말’이 맞아떨어지기도 했다. 일찍이 민주당이 압승할 것이라고 했다. 또 그는 “이낙연 새로운미래 대표가 민주당을 탈당한 것은 자신의 정치생명을 단축하는 것”이라며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와 손잡게 되면 결국 실패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결국 두 당은 깨졌고 이낙연 대표는 이번 선거에서 낙선했다. 진도 출생인 박 당선자는 미국 로스앤젤레스를 거점으로 성공한 사업가였다. 1970년대 미국 망명 중이던 김대중 전 대통령을 만나 정치에 발을 디뎠다. 1992년 14대 총선에서 민주당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해 4년간 대변인으로 활동했다. 이어 청와대 공보수석비서관, 정책기획수석비서관, 비서실장을 지내며 김대중 전 대통령의 ‘복심’으로 통했다. 이어 목포에서 18~20대 3선 국회의원을 지냈다.
  • 16만㎡ 꽃밭 찍고 해발 500m 벚꽃엔딩… 더 진한 ‘진안의 봄’이 왔다

    16만㎡ 꽃밭 찍고 해발 500m 벚꽃엔딩… 더 진한 ‘진안의 봄’이 왔다

    소백산맥과 노령산맥 사이에 있는 진안고원. 이곳에선 수많은 산들로 이뤄진 아름다운 산 그리메(그림자의 옛말)를 감상할 수 있다. 마이산과 운장산, 구봉산은 100대 명산에도 포함돼 있다. 조선시대의 사상가 정여립의 얘기가 있는 천반산, 생태·건강·치유 도시 진안의 대표 시설이 될 국립지덕권산림치유원이 들어서는 덕태산과 선각산도 빼어난 풍광을 자랑한다. 근처에는 홍삼 스파, 캠핑장, 감성적인 사진 촬영 명소들이 있어 여독을 풀거나 낯선 지역에 와서 등산 인증만으로는 아쉬운 여행자들에게 여유로운 여행의 느낌을 선사한다. 올봄엔 전국에서 가장 늦게, 가장 아름다운 봄을 느낄 수 있는 전북 진안군의 매력에 빠져보는 건 어떨까.꽃잔디·튤립·철쭉 등 ‘분홍빛 카펫’원연장 꽃잔디 동산서 ‘인생사진’ ●개인이 한 땀 한 땀 심은 ‘꽃잔디 동산’ 봄꽃 하면 흔히 벚꽃을 떠올린다. 진안 마이산은 전국에서 벚꽃이 가장 늦게 핀다. 벚꽃이 지더라도 봄이 끝난 건 아니다. 진안에는 벚꽃보다 더 오래 더 화려하게 봄을 만날 수 있는 곳이 있다. 바로 화사한 꽃잔디가 언덕을 가득 수놓는 ‘원연장 꽃잔디 동산’이다. 진안을 대표하는 봄나들이 명소가 된 진안 원연장 꽃잔디 동산은 늦은 봄, 막바지 꽃놀이를 즐길 수 있어 상춘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진안읍 원연장마을 인근에 있는 꽃잔디 동산은 2000년부터 개인이 조성하기 시작했다. 첩첩산중에 가족들이 1년에 1~2차례만 왔다 가는 선산이 아니라 연중 언제든 방문할 수 있는, 가족과 친지들의 화합과 만남의 장소로 만들어야겠다는 바람이었다고 한다. 그렇게 매년 조금씩 꽃잔디를 심고 어린나무들이 자라면서 지금의 꽃잔디 동산이 됐다. 이곳은 매년 4월 초순부터 5월 초순까지 16만 5000㎡에 이르는 동산이 마치 분홍빛 카펫이 깔린 것처럼 화사한 꽃잔디로 물든다. 이 시기에는 튤립, 철쭉도 피어 찐득한 색감의 꽃밭을 배경으로 인생 사진을 남기려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명산의 고장 진안고원 신비의 명산 마이산은 진안을 대표하는 산이자 진안의 상징과도 같다. 뾰족한 말의 귀를 닮은 암수 두 봉우리로 이뤄진 마이산은 전북도 도립공원으로 지정됐다. 단일 규모로는 세계 최대의 타포니(암석이 풍화작용을 거치며 떨어져 나간 둥근 구멍)가 있어 국가 지질명소로도 지정됐다. 이런 경관 가치를 인정받아 미슐랭 그린가이드북에서 별 3개 만점을 받기도 했다. 마이산은 이성계의 건국 설화 배경으로 전북 역사 투어에도 소개된다. 산 아래에는 미국 CNN방송이 선정한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찰 33곳’에 포함된 탑사가 있다. 마이산이 자연이 만든 걸작이라면 탑사는 인간이 만든 걸작이다. 봄에는 부처님오신날 연등이, 여름에는 마이산을 수놓은 주홍빛 능소화와 폭포, 겨울에는 거꾸로 자라는 역고드름이 마이산과 탑사의 분위기를 더욱 신비롭게 만든다. 노령산맥의 주봉이자 금남정맥의 최고봉인 운장산도 진안군의 3개 면(부귀, 정천, 주천)과 완주군 동상면에 걸쳐 있다. 운장산은 언제나 구름이 감돈다고 해서 이 이름이 붙었다. 운일암반일암 계곡과 운장산 자연휴양림이 있는 갈거계곡은 운장산에서 흘러내린 맑은 물과 암벽, 숲이 만들어 낸 진안군 최고의 여름철 피서지로 꼽힌다. 운일암반일암에는 시원하게 그늘진 물길 옆 숲길과 깊은 계곡의 풍광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구름다리가 있어 사계절 사람들이 찾는다. 최근에는 산수화 같은 풍광을 조망할 수 있는 백패킹 명소로 입소문 났다. 미슐랭 그린가이드북 만점 ‘마이산’CNN 인증한 아름다운 사찰 ‘탑사’ 아홉 개의 봉우리가 연달아 그림 같은 풍경을 그려 내는 구봉산은 식어버린 마그마가 풍화와 침식으로 깎여 지금의 모습을 갖춘 국가 지질명소다. 독특한 모양 덕분에 계절마다 다른 색 옷을 갈아입으며 전혀 다른 풍광을 자랑한다. 4, 5봉 사이에는 100m 길이의 구름다리가 있어 이곳에 서면 마치 구름 위에 서서 하늘을 걷는 듯하다. 구봉산은 운장산, 운일암반일암 계곡을 형성하는 명도봉과 이어지고 산으로 둘러싸인 호수 용담호까지 조망할 수 있어 최근에는 많은 이들이 찾는다. 구봉산 남쪽 기슭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아름다운, 전나무로는 처음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천황사 전나무’가 있다. 구봉산 주차장에서 운일암반일암으로 가는 길에는 주천생태공원이 있어 늦가을에 방문한다면 환상적인 물안개와 호수에 비친 단풍 반영을 촬영할 수 있다. 휴양치유숲길 1.3㎞ ·산책로 1.1㎞ 편백숲서 가벼운 힐링 즐길 수도 ●부귀 메타세쿼이아길 연둣빛 여린 새순이 돋아난 부귀 메타세쿼이아길은 계절마다 색다른 매력을 보여 주며 여행, 드라이브, 사진 촬영지로 인기다. 여름에는 초록 잎이, 가을에는 단풍이, 겨울에는 눈이 쌓인 길이 경사와 커브가 어우러져 촬영 명소로 유명하다. 아우디코리아의 광고가 촬영됐고, 영화 ‘국가대표’에서 하정우와 성동일이 달렸던 길로 나왔다. 현재 진안군에서는 메타세쿼이아길의 정취를 안전하게 만끽할 수 있도록 산책로를 조성하고 있다. 올여름이면 메타세쿼이아길을 걸으며 힐링할 수 있다.●편백숲 산림욕장과 용담호 휴식도 거창하게 생각하면 부담스러운 시대다. 빠르게 지나가는 일상처럼 휴식도 가볍게, 마음 편하게 하는 게 트렌드다. 부귀면에 있는 편백숲 산림욕장은 휴양치유숲길 1.3㎞와 산책로 1.1㎞의 짧은 구간 덕분에 오솔길을 따라 걸음걸음마다 편백 내음을 한껏 들이마실 수 있다. 작은 도서함과 평상 데크 52곳이 있어 잠시 앉거나 누워서 숲속 정취를 즐길 수 있다. 진안군에는 우리나라에서 다섯 번째로 큰 다목적 댐인 용담댐이 생기면서 길이 64㎞의 호반 일주도로가 만들어졌다. 봄에는 벚꽃과 철쭉이 도로를 수놓고, 일교차가 큰 늦가을에는 수면 위로 춤추듯 피어오르는 물안개가 몽환적인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용담호를 달리다 보면 맛집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주민들이 잡은 동자개(빠가사리), 모래무지(마주), 붕어, 피라미 등 민물고기로 만든 신선한 어죽과 매운탕을 맛볼 수 있다. 최근에는 호수 주변의 쉼터들이 아늑한 카페로 리모델링돼 느긋하게 풍광을 즐길 수 있는 여유를 선사한다.
  • 4월의 한 주…책속에 스며들다 [박상준의 書行(서행)]

    4월의 한 주…책속에 스며들다 [박상준의 書行(서행)]

    꽃피는 전주… 봄날에 물들다 오는 12일은 도서관의 날이고 18일까지는 도서관 주간이다. 전북 전주는 도서관의 날을 위해 아껴 둔 여행지다. ‘도서관의 천국’이라 불러도 좋겠다. 전국에서 유일하게 도서관 여행 프로그램이 있을 정도다. 도서관을 돌아보는데 굳이 프로그램까지 예약할 일인가 반문할 수 있다. 하지만 일부 코스는 예약 당일 마감되기도 한다. 충분히 그럴 만하다. 프로그램이 아니어도 무방하다. 전주의 작은 도서관들은 잘 꾸며진 책방이나 북카페와 견주어 부족함이 없다. 지금 도서관이 어디까지 왔는지 알고 싶다면 단연코 전주다.●너와로 지은 학산숲속시집도서관 두 해 전이다. 전주 학산숲속시집도서관에 다녀왔다. 전주의 도서관들이 막 알려지던 시절이고 학산숲속시집도서관이 소문나기 전이다. 조문차 찾았던 길이었다. 내 선배인 당신의 자식과 친구들의 생활이기도 한 책의 공간이라서, 좀더 머물다 가는 것을 이해해 주리라 믿었다. 학산숲속시집도서관은 맏내호수를 내려다보는 학산 기슭에 있었다. 그림동화에 나올 법한 아담한 집이었다. 너와를 비늘처럼 장식한 외관은 숲과 잘 어울렸다. 실내는 계단식 열람석과 다락방 등으로 이뤄져 있었는데 어느 쪽에서나 호수가 보였다. 빼곡한 시집의 서가에서 ‘우리는 좀더 어두워지기로 했네’(이설야·창비)를 집어 들었다. ‘크레파스’라는 시를 제법 오래 그리고 반복해서 읽었다. 사물함에서 사라진 반장의 크레파스에 관한 내용이었다. 그 시를 여러 번 읽은 건 ‘모두가 거짓말 같은/엄마의 장례식,/지나서였다’라는 마지막 연 때문이었다. 시인이 말한 죽음이 오늘의 죽음과 같은 뜻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죽음은 그 자체로 슬프고 처연해서 ‘공사장에다 크레파스를 파묻어버’린 소녀의 심정에 공감할 수 있었다. 시집을 덮고는 내 곁에 없는 그리운 얼굴들을 떠올려 보았다. 상실은 쓸쓸한 감정인데 텅 빈 채로만 남지 않는다는 건 또 고마운 일이었다. ●4월의 숲과 정원의 도서관 죽음이란 무엇일까, 시란 무엇일까, 하고 거창하게 묻지 않아도 어떤 물음은 종종 우리를 여행에서 여행 바깥으로 이끈다. 책은 그런 질문의 친구이고, 전주의 도서관들은 여행자를 책 곁으로 이끄는 길라잡이다. 2019년 전주시립도서관 꽃심 개관 후 전주 도서관의 변화는 놀랍기만 한데, 사람들에게 책 읽기를 강요하지 않고 어떻게 책과 마주하게 할 것인가를 고민한 흔적이 역력하다. 학산숲속시집도서관에서 ‘크레파스’에 마음을 포갤 수 있었던 건 숲이라는 장소와 시(집)를 짝지어 책 읽는 이들의 시심을 깨워 낸 도서관 사람들의 덕이기도 했을 것이다. 전주 도서관들은 책과 책의 공간을 큐레이션하는 능력이 확실히 남다르다. 그러니 전주에서 도서관 여행의 첫걸음을 떼도 좋겠다. 전주에는 학산숲속시집도서관 외에도 잔잔한 책 쉼터로 추천할 만한 크고 작은 도서관이 많다. 그 가운데 4월의 도서관으로는 서학예술마을도서관을 꼽아 본다. 4월의 봄과 무관하지 않다. 서학예술마을도서관은 학산숲속시집도서관과 더불어 전주 도서관 여행 프로그램의 정원 코스에 속한다. 이맘때가 제격이다.●정원의 쉼 같은 서학예술마을도서관 서학예술마을도서관은 전주의 작은 도서관 중에서도 개방형 야외 정원을 가진 예술특화도서관이다. 이를 언급하지 않아도 왜 정원 코스의 출발지인지 금세 알 수 있다. 건물 동은 북쪽 은행나무동과 한때는 카페로 쓰였던 남쪽 팽나무동, 50년 가까이 의료원이었던 담쟁이동으로 나뉜다. 팽나무동은 도서관 남서쪽에 팽나무 고목이 있어서, 담쟁이동은 옛집의 벽을 타고 오르는 담쟁이가 아름다워 붙은 이름이다. 팽나무동과 담쟁이동은 남쪽으로 아담한 정원을 공유한다. 4월은 정원의 새순이 돋는 시기고 담쟁이가 푸르러지는 계절이다. 정원 의자에 앉아 봄날의 공기를 머금고 있으면 잠시나마 내 집의 정원인 양하고 또 그랬으면 싶어진다. 묵은 근심들은 책을 들기 전에 이미 시나브로 잊힌다. 결국 여행은 희망 닮은 햇볕 한 줌 주워 보려 나서는 것인지 모를 일이다. 봄볕에 그슬릴 때쯤 팽나무동 안으로 자리를 옮긴다. 팽나무동은 복층의 형태로, 책을 팔지 않을 뿐 영락없는 북카페다. 커피나 음료의 반입은 기본이다. 실내디자인은 빈티지풍이다. 옛 건물의 골격을 살렸고 고재나무 책장으로 온기를 더했다. 2층까지 두루 보고 나면 의자와 책상, 받침대 하나하나까지 세세하게 신경 써 골랐다는 걸 알 수 있다.●서가 사이 숨은 예술 서학예술마을도서관의 서가는 크게 빛들다, 깃들다, 스며들다, 물들다의 네 가지 주제로 나뉜다. 팽나무동 1층은 빛들다이다. 이때 빛은 사진 예술의 근간을 일컫는다. 스티브 매커리, 만 레이, 로버트 프랭크 등의 사진집을 볼 수 있다. 또 한쪽 벽을 허문 방에는 아이들을 위한 팝업 북과 그림책이 가득하다. 도서관은 전주교대 부설초등학교와 이웃한다. 아이들이나 부모들이 서로를 기다려 만나곤 하는데, 그림책 방의 평일 오후는 다정하게 복작댄다. 2층은 스며들다와 깃들다이다. 스며들다는 음악이 주제다. 음악과 관련한 책들은 물론 CD와 LP 플레이어 등이 공존한다. 이제 도서관에서 음악을 들으며 책장을 넘기는 건 낯선 경험이 아니다. 깃들다에는 서학예술마을 예술가들의 전시 도록 등이 비치돼 있다. 도서관을 나와 마을을 산책할 때 우연히 마주칠 수 있는 작가들이다. 담쟁이동은 팽나무동에서 2층 난간으로 곧장 연결된다. 담쟁이동 2층은 물들다로, 미술 관련 서적이 모여 있다. 한쪽에는 자그마한 개방형 다락방이 있다. 1층 정원을 내려다보며 독서를 즐길 수 있는 자리로, 박공지붕 아래 은밀한 다락이라기보다 우리네 한옥의 누마루처럼 안락한 느낌의 공간이다. 1층은 담쟁이갤러리다. 책 대신 예술가들의 작품을 만나 볼 수 있는 전시실이다. 서학예술마을도서관의 예술은 예술서적과 갤러리에 그치지 않는다. 지역 작가들의 작품은 도서관 서가의 책과 책 사이에 또 다른 책처럼 숨어 있다. 무심코 책을 꺼내다 또는 책을 읽거나 메모를 하다 우연히 눈이 마주친다. 문수호 작가의 ‘책과 꼭두’는 익살스러운 장면이 위트 있고, 한숙 작가의 ‘꽃물’은 전주와 잘 어울린다. 서학예술마을도서관만의 특색이다. ●책은 우리를 더 멀리로 전주 작은 도서관들은 소소한 체험거리도 흥미롭다. 다이어리를 꾸미듯 방명록을 남기거나 컬러링으로 개성을 발휘할 수 있다. 서학예술마을도서관에는 담쟁이동 1층 창가에 ‘예술을 쓰다’라는 코너가 있다. 글감바구니에서 글감 쪽지 2개를 꺼내 자유롭게 표현하는 방식이다. 헤밍웨이가 단어 여섯 개로 썼다는 세상에서 가장 슬픈 소설 ‘For sale: baby shoes, never worn’(팝니다. 아기 신발. 신은 적 없음)이 생각난다. ‘오후’와 ‘찾아온다’ 두 단어를 뽑고는 어떤 문장을 만들지 고민하다가, 앞선 이들이 쓰고 꾸민 글들에 그만 기가 죽고 만다(명색이 여행작가인데). 대신 옆 서가에서 사진집 한 권을 꺼내서는 정원 쪽 창가에 앉는다. ‘노 시그널 자연과 가장 가까이 사는 법’(브리스 포르톨라노·복복서가)은 프랑스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브리스 포르톨라노의 사진에세이다. 작가는 ‘월든’의 헨리 데이비드 소로에게서 영감을 받아 약 5년간 21세기 소로를 찾아 떠났다. 첫 장은 핀란드 라플란드에 사는 티냐 편이다. ‘매번 좀더 멀리 가본다. 숲속에서 티냐는 자연의 일부로서 자기 자리를 잘 지키고 있다’라고 쓰여 있다. 썰매 자국이 선명한 설원 사진 한 장이 강렬하다. 도서관에서 읽는 책들은 우리의 여행을 ‘매번 좀더 멀리’로 데려간다. 오늘은 핀란드에서 출발해 몽골, 미국 알래스카, 이탈리아, 이란 등으로 이어진다. 책 속의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낭만의 동경보다 ‘소박함, 여전히 소박함, 언제나 소박함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창밖에는 팽나무 노거수가 이백몇 번째인지 알 수 없는 봄을 맞이하고 있다. 뒤늦게 ‘오후’와 ‘찾아온다’로 작문할 말이 생각난다. 작은 도서관의 오후, 4월의 초록이 찾아오고 있다. ●도서관 여행해설사와 Go! 전주는 한옥마을이 유명하다. 오목대에 꼭 올라가 보길 바란다. 한옥마을의 웅장한 전경이 펼쳐진다. 전주가 첫 여행이 아니라면 다른 선택도 고려해 보시길. 예를 들면 앞서 말한 도서관 여행 프로그램이다. 전주 도서관 여행은 도서관 여행해설사와 전주의 여러 도서관을 방문한다. 매주 토요일 하루 코스와 반일 코스를 운영하며 격주 단위로 코스가 바뀐다. 프로그램은 매월 1일부터 다음달 예약을 받는다. 5월 정원 코스는 이미 매진이다.전주의 도서관들은 도시재생, 생활관광, 예술여행 같은 테마들이 자연스레 녹아든다. 무엇보다 도서관 여행해설사의 활약을 빼놓을 수 없다. 도서관과 도서관을 이동하는 차 안에서 책에 관한 다채로운 이야기를 펼쳐 놓는다. 마치 책 한 권을 같이 읽은 기분이다. 특히 올해는 전주의 여행지와 체험프로그램을 추가했다. 전주천년한지관, 팔복예술공장 등을 경유하거나 책놀이 프로그램, 반려식물 체험 등이 어우러져 여행의 느낌을 배가한다. 매월 둘째, 넷째 주 ‘비밀코스’는 출입연령 제한이 있는(어른의 입장이 불가하다) 전주시립도서관 꽃심의 우주로1216과 혁신도시복합문화센터 청소년창작기지 등을 방문할 수 있어 한층 특별하다.●동문헌책도서관서 보물책 찾기 홀로 여행하는 걸 선호하는 이들은 전주도서관이 직영하는 작은 도서관들에 주목할 일이다. 각각의 작은 도서관은 시, 예술, 여행, 헌책 등의 주제로 특화돼 있고, 그에 걸맞은 공간으로 꾸려져 도서관 여행의 즐거움을 더해 준다. 책의 기둥이 건물을 받치는 전주시청 로비의 책기둥(도서관), 옛 치안센터(파출소)를 개조해 취조실을 연상케 하는 다가여행자도서관의 지하 열람실, 첫마중길여행자도서관에서 볼 수 있는 데이비드 호크니의 38㎏짜리 한정판 비거북(Bigger Book), 덕진공원 연못 가운데 연꽃처럼 뿌리 내린 연화정도서관, 옛 전주공예명인관의 전통한옥을 개조한 한옥마을도서관 등은 공간과 요소들만으로 이채롭다. 여느 도시의 책방 투어 이상이다. 그중 동문헌책도서관은 비교적 최근에 개관했다. 몇몇 신간을 제외하고 도서관에 헌책 아닌 것이 어디 있을까? 헌책과 도서관이라는 모순과 조화가 관심을 끈다. 실은 동문의 헌책방골목에서 기인한다. 지금도 근처에는 헌책방들이 영업 중이다. 물론 추가된 의미도 있다. 동문헌책도서관 간판에는 ‘보물책 찾아 삼만 리’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지난 시절의 옛 책을 보물로 해석하고, 숨은 보석 같은 책들을 찾아내 추천하겠다는 표명이다. 그래서 서가의 구성도 한때는 금서로 지정돼 볼 수 없었던 ‘어제의 금서가 오늘의 고전’, 같은 테마의 다른 책을 짝지은 ‘책짝궁’ 등으로 독특하다.제일 인기 있는 서가는 대한민국 30여명의 명사가 추천, 기증한 ‘내 인생의 책’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 영화배우 전도연, 축구선수 박지성 등의 추천 도서를 볼 수 있다. 소설가 조정래와 김훈은 육필 추천사를 따로 남겼다. 책의 보물은 역시 ‘보물섬’(만화잡지 1982~1996)이지,라고 말하는 이들은 지하 1층의 ‘만화야’와 ‘추억책방’을 놓치지 마시길. 옛 만화책과 추억의 잡지가 기다리고 있다.●‘금암’ 뷰 ·‘완산’ 꽃동산도 봄날에 딱 작은 도서관 외에 전주를 대표하는 시립도서관들 역시 빼어난 여행지다. 금암도서관과 완산도서관은 오히려 ‘여행’에 방점이 찍힌다. 금암도서관은 1980년에 개관한 전주 최초의 시립도서관으로 몇 해 전 새로 단장했다. 현재는 전주도서관 가운데 최고의 전망을 자랑한다. 도서관 2층 지식마루에 이르니 탁 트인 전망이다. 고지대에 위치한 까닭에 여느 호텔 스카이라운지 버금간다. 창가 쪽 에그체어가 명당인데 경쟁률이 치열하다. 그럴 만하다. 책장을 넘기기보다 풍경에 빠져드는 시간이 더 길 수밖에. 3층 트인마당은 아예 야외 테라스로 나아간다. ‘전망대’라는 이름이 어울리는 경관이고, 망중한이나 봄을 ‘멍’하니 누리기 알맞은 자리다.완산도서관은 현재 리모델링을 위해 휴관 중이다. 그러니 도서관 때문에 소개하는 건 아니다. 완산도서관 옆은 완산공원 꽃동산이다. 전주의 대표적인 꽃놀이 명소로 매해 4월에는 겹벚꽃과 철쭉이 만개한다. 언덕길을 따라 벚꽃 터널이 열리는데 꽃철에는 늘 사람들로 북적인다. 철쭉 또한 봄꽃의 주인공을 쉽사리 양보하지 않는다. 사람 키보다 높고 넓게 꽃가지를 드리우니 봄날이 이리 붉어도 되나 싶다. 겹벚꽃과 철쭉은 벚꽃보다 개화 시기가 조금 늦는 편이다. 이번 주말보다 도서관 주간인 12~18일 사이가 낫다. [여행수첩] ●학산숲속시집도서관 운영 시간 화~일 오전 9시~오후 6시, 월요일, 법정공휴일 휴관 누리집 lib.jeonju.go.kr 063-714-3525 ●서학예술마을도서관 운영 시간 화~일 오전 9시~오후 6시, 월요일, 법정공휴일 휴관 누리집 lib.jeonju.go.kr 063-714-3528 ●전주 도서관 여행 매주 토요일 하루 코스 6000원(여행기록물 등 제공, 중식 불포함), 반일 코스 4000원(여행기록물 등 제공) 누리집 lib.jeonju.go.kr 063-230-1842 사전예약제, 7세 이상 권장
  • 순천 청년들 “우리도 고향을 떠나기 싫다”···청년 정책 5개항 요구

    순천 청년들 “우리도 고향을 떠나기 싫다”···청년 정책 5개항 요구

    “우리도 고향을 떠나기 싫습니다.” 전남 최다 인구도시인 순천지역 청년들이 지방소멸의 위기를 지적하고, 지역을 떠나는 청년들의 아픔과 지역 미래를 살리기 위한 청년 정책을 제안해 눈길을 끌고 있다. ‘순천시 청년단체 연합회’는 3일 순천시의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오늘 저희들은 고향을 살리기 위한 절박한 심정으로 이곳에 섰다”며 “매력적인 일자리를 지역에 유치해 주시고, 지역인재 고용에 대한 혜택을 부여해 청년들이 일자리 문제로 순천을 떠나지 않도록 해달라”고 읍소했다. 이들은 “얼마 전 친한 친구 한 명이 창업을 하고 싶은데 이곳에서는 할 수가 없어 순천을 떠나 서울로 터를 옮겼다”며 “전남도의 낙후와 침체는 지방소멸, 저출산·고령화 라는 말과 함께 우리 청년들의 유출을 심화시키고 있다”고 이같이 말했다. 청년단체는 전남도 인구는 2018년 188만 2970명에서 2023년 181만 1554명으로 5년간 7만 1416명이 줄었지만 전남 청년인구는 2018년 45만 8623명에서 2023년 37만 8220명으로 5년간 8만 403명이 감소해 전남 총 인구수 보다 청년세대 인구수가 더 줄어든 기이한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현택 순천시 청년권익위원회장은 “청년들이 떠나는 이유는 당연히 일자리 부족과 낮은 임금, 동네 창업은 하고 싶어도 기업을 만들 수가 없기 때문이다”며 “전남에서 청년이 가장 많은 순천도 청년 인구가 2018년 7만 9247명에서 2023년 7만 1273명으로 약 8000명인 10%가 줄었다”고 말했다.상상 이상으로 심각한 상황인 만큼 혁신이 필요하다고 주장한 청년들은 “청년 기업이 탄생할 수 있도록 펀드를 만들어 투자해 달라”고 요구했다. 청년창업 펀드를 조성해 청년 기업가를 위한 교육과 코칭, 투자를 확대해 지역에서 페이스북과 애플같은 세계적인 기업이 탄생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달라는 의미다. 청년들은 또 “사회에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청년주택’을 만들고, 아이를 마음 놓고 낳을 수 있도록 사회가 비용을 분담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의료 기본권이 보장된 지역에 살고 싶다”며 “대학병원급 종합병원을 유치해 달라”고 강조했다. 심정지·뇌졸중 등 위급한 상황에 처했을 때 가족의 생명이 위협받고 싶지 않고, 암과 같은 큰 병에 걸렸을 때 서울로 가서 치료를 받아야하는 불편함을 감수하지 않게 해달라고 했다. 청년들은 “젊은 친구들이 사회에 잘 정착해서 세금을 많이 내게 해 주고, 저녁만 되면 동네 술집에 사람이 붐비게 해 주라”며 “누군가 어디 사냐고 물어봤을 때 순천에 산다고 하면 부러워 하는 곳으로 만들어달라”고 호소했다. 이날 참여한 청년단체는 순천시 청년권익위원회, 순천시 청년협의체, 새순천 청년회, 순천 보컬크루, 라별 등이다. 이들은 제안한 정책을 순천시장과 국회의원 입후자들에게 전달할 방침이다.
  • 식물집사들의 제주 성지, 가시림 수목원의 강남춘 [지방을 살리는 사람들]

    식물집사들의 제주 성지, 가시림 수목원의 강남춘 [지방을 살리는 사람들]

    “어릴 때는 제주 고사리를 꺾어 용돈을 벌었는데, 지금은 관상용 고사리를 애지중지 키우고 있습니다.” 제주 서귀포 안덕면 토박이인 강남춘(57) 가시림 대표는 그가 한평생 키워 온 나무를 닮은 사람이다. 조경 사업에 종사한 강 대표는 제주의 식생을 한 공간에 담은 공간을 남기고 싶었고, 나무가 잘 자라는 땅의 힘이 있는 가시리를 주목했다. 시간이 더해지는 곳이란 뜻의 가시(加時)리란 시적인 지명도 수목원을 가꿔 같은 이름을 붙이기에 더할 나위 없었다. 강 대표는 “건설업 자체가 하향길에 접어들면서 조경회사가 서서히 후퇴하는 느낌에 평생의 꿈이었던 수목원을 일구었다”면서 “서민들이 이끼를 한 땀씩 심은 정원에서 차를 마시고 산책하며 대화할 수 있도록 가시림을 꾸몄다”고 밝혔다. 제주의 식생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수목원인 가시림에서는 일 년 내내 꽃을 볼 수 있다. 2월 중순까지 동백이 ‘레드 카펫’을 만들며 가시림을 붉게 물들이면 이어 수선화, 삼지닥나무가 피고 황금 메타세쿼이아 나무의 순이 올라온다.‘애기 동백의 성지’로 불리며 겨울관광의 백미인 설국 속 동백의 화려한 아름다움을 자랑했던 가시림은 이제 벚나무의 은은함으로 물들고 있다. 산딸나무의 흰색 순결한 꽃이 피면 수국이 색색으로 정원을 물들이고, 배롱나무가 100일간의 개화기 동안 향기를 뽐낸다. 그가 “4300여평의 땅에 나무 하나하나마다 잘생긴 놈으로 잘생기게 크도록 심고 길렀다”고 강조하는 가시림에는 200여종에 가까운 제주 자생 수종이 있다. 강 대표가 가장 아끼고 정성스럽게 키우는 식물은 이끼와 고사리다. 이끼의 고사리를 좋아하는 이유에 대해 “태초의 식물로 사시사철 푸르다”며 “양치식물을 잘 키우려면 무엇보다 물이 잘 빠지는 토양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모든 이끼도 손수 심어서 가꾼 강 대표는 가시림 방문객들에게 ‘식물을 잘 돌보는 집사’의 지혜를 아낌없이 베푼다.“이끼와 고사리는 식생과 습성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면 키울 때 혼란스럽기 쉽다”면서 양치식물도 광합성을 하기 때문에 햇빛을 피하는 것보다는 보습과 배수가 잘되는 토양이 중요하다고 가시림 방문객들에게 귀띔했다. 가시림이 있는 땅은 일조량보다 강수량이 많은 지역이라 과수 농사는 잘 안 되지만 나무 키우기에는 좋은 곳이다. 넓고 평평한 땅에 묘가 하나도 없고, 주거지로 주로 이용됐다. 때문에 민간인 학살 사건인 제주 4·3의 피해가 컸던 곳이기도 하다. 수목원은 동백나무 숲을 중심으로 주변에 봄에는 메타세쿼이아, 여름이면 능소화와 배롱나무, 가을에는 팜파그라스를 통해 사계절 푸른색의 싱그러움과 꽃을 느낄 수 있도록 했다. 가시림의 카페는 제주 감귤창고 모양을 본떠 숲속에 건물이 내려앉은 포근하고 안락한 느낌을 줬다.지난해 11월 문을 열었지만 12월 한 달에만 1만명이 찾을 정도로 가시림에 쏟은 강 대표의 정성을 알아봐 주는 이들이 늘고 있다. 매일 잡초를 뽑고 이끼에 물을 주는 강 대표의 손길에 제주 고사리의 연한 새순이 올라온다. 4월이면 고사리 장마라 불리는 짧은 봄장마가 온다. 식물을 가꾸는 ‘식집사’ 강 대표는 더욱 바빠질 터다.
  • 꾸벅꾸벅 졸지 말고… 커피 대신 과일주스 한 잔 들고 걸어 봄

    꾸벅꾸벅 졸지 말고… 커피 대신 과일주스 한 잔 들고 걸어 봄

    입맛 없고 졸리며 나른해지는 봄생체리듬 변화에 일시적 부적응스트레스 많고 운동 부족 땐 더 취약피로감 반년 지속 땐 만성피로 의심야채·과일 섭취하고 규칙적 생활운동할 시간 없다면 스트레칭해야커피는 ‘오전 9시 반~11시 반’ 추천활동적 분위기로 피곤 전염 예방도 봄만 되면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도 싫다. 졸리고 나른하다. 입맛도 없고 밥을 먹고 나면 멍하다. 만물이 소생하는 봄이 찾아왔는데 내 몸은 고사하는 느낌. ‘봄의 불청객’ 춘곤증이다. ‘계절성 피로 현상’이라 꼭 병으로 낙인찍어야 하냐는 논란도 많지만 피로를 많이 느끼고 회복이 잘 안 되는 만성 피로와는 구분된다. 춘곤증을 극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춘곤증은 봄에 찾아오는 일시적 환경 부적응증이다. 불면증, 두통, 심하면 무기력증을 호소하기도 한다. 원인이 의학적으로 명확히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계절의 변화, 업무 환경의 변화, 과로 등이 거론된다. 특히 생체리듬과 관련된 ‘일주기의 변화’가 대표적으로 꼽힌다. 봄이 오면 해가 일찍 떠 생체리듬이 바뀌는데 인체의 신진대사 기능은 겨울에 익숙해져 있어 봄에 적응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다. 손다혜 강남세브란스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25일 “낮이 길어지면 세로토닌의 분비가 늘어 우리 몸에 활력을 주지만 봄이 되면서 호르몬의 변동 폭이 커지는 것은 체내 스트레스로 작용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박훈기 한양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겨우내 짧았던 일조시간이 길어지면서 활동량이 늘어나다 보니 일시적으로 몸에 적응장애가 나타난다”면서 “춘분을 기점으로 증상이 많이 줄어든다”고 말했다. 몸이 자꾸 늘어지면서 업무 능률이 떨어지고 집중도 안 된다. 시도 때도 없이 졸린다. 특히 학교나 직장 내 자리가 불안하거나 경제적 압박이 심하고 심리적으로 침체된 경우 춘곤증을 더 느낄 수 있다. 박 교수는 “춘곤증은 심리 상태와도 관련이 있어 눈코 뜰 새 없이 바쁠 때는 못 느끼다가 오히려 적당하게 바쁘고 좀 쉬어도 될 만한 상황에서 찾아온다”면서 “규칙적으로 운동을 하지 않고 편식하는 사람이 춘곤증을 더 잘 느끼고, 직장 내 분위기가 처져 있을수록 증상이 더 심해진다”고 전했다.춘곤증을 유난히 잘 타는 사람들이 있다. 스트레스가 많거나 평소 생활 방식이 불규칙하고 아침잠이 많은 사람, 외부 기온에 민감한 사람, 겨울철 영양 섭취가 부실한 사람들이 춘곤증에 더 취약하다. 추운 겨울 운동을 하지 않고 신선한 야채와 과일 섭취가 적어져 비타민 같은 영양소가 부족해 춘곤증이 유발된다는 분석이다. 다만 춘곤증은 우울증, 만성피로, 수면 장애, 갑상선 기능이상, 빈혈, 간염, 결핵, 암 등 다른 피로 원인과 구분해야 한다. 피곤함과 무기력증은 계절성 우울증(SAD)의 한 종류인 ‘봄철 우울증’에서도 나타난다. 화려해지는 계절과 달리 본인만 초라한 것 같은 상대적 박탈감과 진학, 취업, 승진과 같은 ‘새로운 상황’이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손 교수는 “식욕 저하나 체중감소, 심한 무기력증으로 인해 누워 지내는 시간이 많다면 SAD를 의심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춘곤증이 오래 지속되며 휴식을 취해도 해소되지 않고, 검사에서 큰 이상 소견이 보이지 않는다면 ‘만성피로증후군’을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손 교수는 “피로 증상이 6개월 이상 지속되거나 쉬어도 증상이 호전되지 않고 일상생활 수행 능력이 떨어지는 동시에 기억력 장애나 근육통, 인후통, 다발성 관절통 등이 있다면 만성피로증후군을 의심할 수 있어 의료진과 상담을 받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만성피로로 해마다 3만명 이상 병원을 찾는데 코로나19 이후 점점 늘어 2022년엔 4만 1682명으로 최다를 기록했다.춘곤증을 이겨 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춘곤증 자체는 병이 아니어서 보통 1~3주가 지나면 증상이 없어진다. 운동, 규칙적인 취침·기상 시간, 충분한 영양소 섭취와 같은 식사조절, 과하지 않은 커피 섭취 등이 도움된다. 규칙적인 운동이 이상적이지만 시간이 없다면 가볍게 스트레칭으로 근육을 풀어 줘야 한다. 조깅이나 자전거 타기, 줄넘기, 수영, 에어로빅 등도 도움이 된다. 조비룡 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피로를 호소하는데 ‘운동’을 하라고 하면 의아해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평소 스트레스를 받고 활동량이 적은 사람들에게는 약간의 운동이 몸에 큰 활력을 불어넣어 준다”면서 “10~30분 팔을 힘차게 흔들며 빨리 걷기를 하루에 2~3회 시행하는 정도만으로도 스트레스로 인한 몸의 노폐물을 연소시키는 효과가 난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피곤도 전염되므로 가급적이면 적극적이고 활동적인 사람들과 어울리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아침에 일어나는 시간을 유지하는 규칙적 생활리듬도 도움이 된다. 박 교수는 “잠이 부족하면 차라리 점심 식사 후 토막잠을 자는 게 좋다”면서 “밤에 더 잔다고 잠 부족이 해결되지는 않는다”고 설명했다. 또한 신선한 야채와 과일 섭취로 몸 안의 저장 비타민을 늘려야 한다. 조 교수는 “다이어트를 한다고 불규칙적인 때우기식 식사 습관은 피로의 주원인”이라면서 “깨끗하지 못한 연료로 비포장도로를 마구 달리면 자동차가 빨리 고장 나듯 인스턴트 식품 등 신선하지 못한 음식을 자주 섭취하고, 불규칙적인 생활을 즐기는 사람은 몸이 빨리 망가지게 돼 있다”고 강조했다. 단백질 섭취를 늘리고 탄수화물 섭취를 줄이는 식단도 권장한다. 박 교수는 “아침과 점심에는 단백질이 풍부한 음식을 많이 섭취하는 게 좋다”면서 “단백질은 몸속의 아드레날린 분비를 자극하는 반면 탄수화물은 많이 섭취할수록 쉽게 졸리고 피곤해진다”고 말했다. 춘곤증에 도움이 되는 제철 음식은 새순, 봄나물과 신선과일, 생선, 견과류 등이다. 졸음을 이겨 내려고 많은 사람들은 커피를 마시는데 커피를 마시기 가장 좋은 시간은 바로 오전 9시 30분~11시 30분 사이다. 손 교수는 “몸의 스트레스에 반응해 분비되는 ‘코르티솔’ 때문이다. 이는 신체에 필요한 에너지를 공급해 주고 집중력을 향상하며 신진대사와 면역체계 반응, 혈압 등을 조절하는 역할을 한다”면서 “코르티솔은 아침에 우리 몸을 각성시키기 위해 분비되는데 너무 아침 일찍 커피를 마시면 코르티솔이 과하게 분비돼 몸이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고 말했다. 너무 많은 커피는 수면을 방해하므로 한두 잔 이하로 섭취하는 것이 좋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했다.
  • [김동언의 공연예술 이야기] 신춘음악회

    [김동언의 공연예술 이야기] 신춘음악회

    봄이다. 해마다 맞는 봄이지만 꽁꽁 언 대지를 뚫고 돋아나는 여린 새순과 피는 꽃은 볼 때마다 가슴이 벅차다. 절기의 순환, 저절로 찾아오는 의미 없는 계절이 아니다. 봄은 생명력의 신비를 일깨우는 시간이며 공간이다. 그러니 그냥 봄이 아니라 새봄이다. 신춘(新春)이다. ‘봄은 기적’이다. 박노해 시인의 시처럼. 계절이 가진 특별한 의미와 분위기라는 시의성(時宜性)은 오랫동안 공연기획의 중요한 요소로 활용되고 있다. 역사적으로 유명한 예술가들의 탄생이나 서거 등이 시의성을 적극 활용한 기획공연의 예다. 또 크리스마스나 연말연시에 맞춘 신년음악회, 송년음악회, 제야음악회 등이 있다. 이 중에서 기적 같은 새봄이 공연기획의 소재로 활용된 사례가 신춘음악회다. 새로운 시작이라는 의미를 활용한 신춘음악회는 음악가와 단체들이 의욕적으로 마련하는 기획공연이다. 해마다 3월이면 신춘음악회를 알리는 각종 홍보물이 나붙고, 공연을 준비하는 사람들의 분주한 발걸음으로 공연장은 활기가 넘친다. 그런데 1월의 신년음악회는 동장군이 여전히 맹위를 떨치는 와중이어서인지 새로운 기운을 충분히 느끼기가 어렵다. 그렇다 보니 본격적인 신년 공연 프로그램의 출발점은 아무래도 신춘음악회가 아닌가 싶다. 그런데 신춘음악회라는 용어는 언제부터 사용했을까? 정확한 기록을 찾기가 쉽지 않지만, 여러 기록에 따라 일제강점기에 시작됐다는 정도만 확인할 수 있다. 어쨌거나 일제 식민지 시대의 신춘음악회는 조선인들의 문화적 정체성과 독립의 의지 강화에 중요한 방식으로 활용됐다는 특별한 의미가 담겨 있다. 억압받던 조선인들이 문화와 예술을 통해 민족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저항과 독립의 의지를 담아내고자 노력했을 것이다. 1923년 2월 2일자 조선일보에 처음으로 신춘음악회 소식이 실렸다. ‘1923년 2월 3일 저녁 7시 30분 종로 기독교청년회(현 YMCA) 대강당에서 경성악대의 서곡, 배화여학교의 합창, 서울악우회의 4중창, 피아노 독주, 단소 연주, 독창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기사였다. 1925년 4월 17일자 동아일보에서는 원산의 독서인클럽이 주최한 신춘동양인음악회에 500여명의 관객이 몰려들어 대성황을 이루었다는 기사가 확인된다. 1925년 3월 16일자 조선일보도 진주에서 개최된 신춘음악회에 대해 소개를 하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이미 1920년대에는 신춘음악회가 전국적으로 개최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신춘음악회는 서양 음악이 보편화되지 않았던 시절에 선구적인 음악가들에 의해 새로운 서양 음악 장르를 소개하고 발전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하지만 식민지라는 상황에서도 예술을 통해 조선인의 문화적 정체성을 유지하고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문화운동이기도 했다. 신춘음악회는 한국전쟁이 끝난 이후 1950년대부터 큰 인기를 누리게 된다. 신문, 방송사들이 마련한 굵직한 신춘음악회는 신진 음악가들에게 중요한 무대를 제공하는 동시에 최정상 연주자들이 신작을 선보이는 자리로 활용되면서 성악, 국악, 오케스트라, 실내악 등 다양한 장르의 한국음악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100년을 넘게 이어오며 하나의 브랜드가 된 신춘음악회가 해마다 우리 삶에 넘치는 활력과 기쁨의 선물이 되기를 바란다. 김동언 경희대 문화예술콘텐츠학과 교수
  • [사설] 민주당, ‘사천 논란’ 안고 총선 치를 셈인가

    [사설] 민주당, ‘사천 논란’ 안고 총선 치를 셈인가

    더불어민주당의 공천 난맥상이 극한으로 치닫고 있다. 친문(친문재인)계 핵심인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이 어제 서울 중·성동갑 공천에서 탈락하면서 집단 탈당이 본격화할 조짐마저 보인다. 앞서 ‘원칙과상식’의 조응천 의원 등 3명이 선도 탈당한 데 이어 김영주 국회부의장과 이수진·박영순 의원 등이 잇따라 당을 나갔다. 설훈 의원도 탈당을 예고했다. 이들은 비명계에 대한 ‘공천학살’이 자행되고 있다고 반발하고 있다. 불공정 문제를 제기해 왔던 고민정 최고위원은 어제 “위기 논의 없는 지도부는 의미가 없다”며 최고위원직에서 물러났다. 총선 때마다 여야를 막론하고 공천을 둘러싼 잡음은 있었다. 하지만 지금 민주당의 자멸적 모습은 보기 딱할 정도다. 이재명 대표는 “떡잎이 져야 새순이 자란다”고 했지만 문제는 지는 떡잎이 비명계에 집중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26일 이뤄진 7차 심사 결과에선 17개 단수공천지역 중 15곳에서 친명계 현역 의원들이 공천을 받았다. 그제까지 단수 공천을 받은 현역 의원 51명 중 비명계 인사는 김두관·김영배 의원 등 영남권 ‘험지’ 출마자들을 제외하면 6명에 그쳤다. 시중에 떠도는 ‘친명횡재, 비명횡사’란 말이 전혀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공천 과정만 공정하고 투명하다면 누가 뭐라 하겠는가. 한데 이재명 대표의 성남시장 시절 조사 용역을 맡았던 업체가 갑자기 끼어들어 경선 여론조사를 맡는가 하면 공천관리위원장은 평가 점수를 공개하겠다고 했다가 말을 뒤집는 등 불신을 자초하고 있다. 공천 과정 구석구석 ‘이재명 프리미엄’이 작용하고 있다는 뒷말이 나온다. 이런 상황에선 누구라도 결과를 승복하기 어렵다. 당 지지율은 뚜렷한 하락세다. 이 대표의 ‘사천 논란’을 해소하지 못하는 한 총선도 그만큼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 ‘투톱 갈등’ 진화 나선 민주, 공천 ‘3대 뇌관’ 남았다

    ‘투톱 갈등’ 진화 나선 민주, 공천 ‘3대 뇌관’ 남았다

    더불어민주당이 공정성 논란을 빚은 ‘리서치디앤에이’를 경선 여론조사에서 배제한다고 25일 밝혔다. 당대표와 원내대표 간 ‘투톱 갈등’을 조기에 진화하려는 취지다. 다만 임종석 전 대통령실 비서실장과 ‘여전사 3인방’(추미애·전현희·이언주)에 대한 전략 공천, 올드보이 물갈이 등 ‘3대 공천 뇌관’이 남아 있어 내홍 진화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여기에 친명(친이재명)계 원외 조직이 이재명 대표에게 불분명한 여론조사를 문제 삼은 홍익표 원내대표에게 “부적절한 개입을 멈추라”고 압박했다. 민주당 선거관리위원회는 이날 공지에서 “민주당 경선 조사업체로 선정된 리서치디앤에이는 이번 경선 조사를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며 “리서치디앤에이 측에서 조사에 문제가 전혀 없으나, 불필요한 정치적 논란으로 민주당에 부담이 되기에 조사 업무를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알려 왔다”고 밝혔다. 리서치디앤에이는 민주당 경선 여론조사 업체 4곳 중 하나로 홍영표 의원 등 비명계 현역 의원을 제외한 여론조사를 실시해 불공정 조사 의혹을 받았다. 특히 민주당의 경선 여론조사업체 선정 과정에서 공식 공모 절차 이후에 추가로 선정됐고, 2013년 성남시장을 지내던 이 대표가 재선을 앞두고 ‘성남시 시민만족도 조사’ 용역을 수행한 바 있다. 지난 21일 전북 익산갑 경선에서 패하고 이날 재심 신청을 한 김수흥 의원은 통화에서 “(리서치디앤에이가) 불공정하게 여론조사를 진행했으니 다른 공정한 여론조사 업체를 선정해 (경선을 다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친명계 원외 조직인 더민주전국혁신회의는 이날 논평에서 “최근 홍 원내대표는 시스템 공천 결과를 부정하는 발언을 했다. 민주당 공천의 신뢰를 무너뜨릴 부적절한 개입이자 월권”이라고 비판했다. 홍 원내대표는 더민주혁신회의 수장 출신인 김우영(강원도당위원장) 전 은평구청장의 서울 은평을 지역구 경선 참여 결정을 강하게 비판한 것으로 전해졌다. 더 큰 뇌관은 임종석 전 실장의 중·성동갑 공천 여부다. 이곳은 홍 원내대표의 지역구 이동(서초을)으로 전략 지역으로 지정됐다. 친명계에선 ‘윤석열 정부 탄생 책임론’과 더불어 임 전 실장이 과거 이 지역구에서 두 차례 의원을 지냈고, 여당이 ‘86운동권 청산론’을 편다는 점을 이유로 들며 공천 불가 기류가 강하다. 당 전략공천관리위원회는 임 전 실장에게 송파갑 출마를 타진했으나, 임 전 실장은 중·성동갑 출마를 고수하고 있다. 비명(비이재명)계에선 임 전 실장을 공천에서 배제하면 ‘친문 학살’로 보고 전쟁도 불사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이 대표의 정치적 멘토이기도 한 이해찬 전 대표가 총선 승리를 위한 ‘원팀’을 위해 임 전 실장의 중·성동갑 공천을 용인해야 한다는 뜻을 이 대표에게 전한 것으로 알려져 주목된다. 안규백 전략공관위원장이 여전사 3인방으로 지칭하며 수도권 전략 공천 가능성을 언급한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과 전현희 전 국민권익위원장, 이언주 전 의원의 공천도 결정을 앞두고 있다. 무엇보다 과거 문재인 전 대통령을 비판했던 이언주 전 의원의 공천 문제는 비명계의 반발을 더욱 자극할 수 있다. 이 밖에 최근 이 대표가 “떡잎이 져야 새순이 자란다”고 말하며 새 인물을 앞세운 ‘공천 물갈이’ 의지를 표명해 박지원 전 국정원장과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 등 올드보이의 공천 배제 방안도 논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 전 원장은 초선 윤재갑 의원이 현역으로 있는 전남 해남·완도·진도에 출마해 여론조사에서 독주 중이고, 정 전 의원은 재선 김성주 의원 지역구인 전북 전주병에서 치열한 접전 중이다. 컷오프(공천 배제)된 인사들의 반발은 이날도 이어졌다. 서울 마포갑 전략지역구 지정에 반발해 지난 22일부터 단식 농성을 이어 가는 노웅래 의원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부정한 돈을 받지 않았다. 부당한 공천을 바로잡을 때까지 무기한 농성을 이어 가겠다”고 했다. 민주당은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에게서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재판 중인 기동민(성북을) 의원에 대해선 컷오프를 검토했으나 결론 내지 못하고 27일 공관위 도덕성 검증위가 소명받기로 했다. 만약 당이 기 의원의 공천 배제 결정을 내릴 경우 같은 혐의로 재판 중인 친명계 이수진(비례) 의원에게 경선 기회를 준 점을 비명계가 문제 삼을 수 있다.
  • 박지원·정동영의 운명은?… 민주당, 공천배제 방안 논의

    박지원·정동영의 운명은?… 민주당, 공천배제 방안 논의

    더불어민주당이 4월 총선 공천에서 ‘올드 보이’ 인사들을 공천 배제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연합뉴스는 24일 민주당의 핵심 관계자 발언을 인용해 “박지원 전 국정원장과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 등 소위 올드보이라고 하는 분들에 대해 공천 배제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올드보이 인사들의 총선 출마에 대한 당 내부와 국민 여론 등이 긍정적이지 않다고 판단해 본격적인 논의에 들어간 것”이라고 했다. 이재명 대표가 최근 “떡잎이 져야 새순이 자란다”고 말하는 등 새 인물론을 들고나온 점에서 세대교체가 예상됐다. 박 전 원장과 정 전 장관은 이번 총선에서 모두 5선에 도전한다. 1942년생인 박 전 원장은 윤재갑 의원이 현역으로 있는 전남 해남·완도·진도에 출마했다. 17대 대선 후보를 지낸 정 전 의원은 1953년생으로 김성주 의원의 지역구인 전북 전주병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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