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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독] 광주사고 감리자, 공사현장 한 번도 안 갔다

    [단독] 광주사고 감리자, 공사현장 한 번도 안 갔다

    언론에 처음 입 연 감리업체 대표 인터뷰사고 당일 핵심 단서 ‘감리일지’ 작성 안해“철거업체, 공사일정 공유 안 해줘 몰랐다”광주 붕괴사고가 일어난 철거현장의 감리를 맡았던 감리회사 대표 A씨가 사고 건물의 철거계획서가 통과된 후 사고가 날 때까지 보름간 한 번도 현장에 나가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A씨는 건물 붕괴의 원인을 밝힐 핵심 단서로 지목된 ‘감리일지’를 사고 당일 작성하지 않았다고 실토했다. 사고 직후 잠적했다고 알려진 A씨가 언론에 입을 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A씨는 13일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사고 당일 현장에 가지 않았다”면서 “철거공사가 언제 시작되는지 알지 못했다. 사고 당일에도 공사가 진행되는 줄 몰랐다”고 말했다. 광주 동구청이 철거(해체)계획을 허가해 준 지난달 25일부터 붕괴사고가 일어난 9일까지 철거업체로부터 공사 일정을 공유받지 못했기 때문에 현장에 나갈 수 없었다는 게 A씨의 주장이다. 철거계획서대로 공사가 진행되는지 현장을 관리·감독하고 안전점검까지 해야 하는 감리가 사실상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지자체 보고할 감리일지 작성 안 한 듯 A씨는 사고 당일 감리일지를 작성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감리일지는 감리업체가 공사 과정에서 감리업무를 진행하고 지적할 사항 등을 포함해 매일 기록하는 문서로 관할 지자체에 보고·제출해야 한다. 철거 공사가 규정대로 진행됐는지 확인하고 붕괴 원인을 밝혀줄 중요 단서이지만 A씨는 이 의무를 소홀히 한 것으로 보인다. 공사 일정을 몰랐다는 A씨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사고 당일뿐만 아니라 공사 전반에 관한 감리일지가 존재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경찰은 사고 다음날 감리사무소 등 5곳을 압수수색해 감리일지를 확보하려 했지만 사고 당일 감리일지를 포함해 공사 전반에 관한 감리일지 문건을 확보하지 못했다.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를 받는 피의자 신분으로 입건된 A씨는 지난 11일 경찰 조사에서도 묵비권을 행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새벽에 챙겨나온 물품…“자료 은폐 아니다”이 때문에 A씨가 감리일지를 포함해 관련 자료를 은폐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폐쇄회로(CC)TV를 통해 A씨가 지난 10일 새벽 자신의 사무실에 들러 자료로 추정되는 물품을 챙겨 빠져나가는 장면이 확인되기도 했다. 이에 대해 A씨는 “사고 이전 CCTV를 보면 내가 들고 다니는 보따리는 항상 똑같다”며 “빼돌린 것이 아니라 다른 일과 관계된 자료 등 평소에도 갖고 다니는 물품들을 들고 나온 것”이라고 해명했다. 철거업체가 계획서를 어기고 마구잡이식 철거를 한 것도 사실이라고 A씨는 말했다. 그는 “현장에서 철거계획서대로 공사를 하지 않았다”면서 “철거 건물 뒷편에 3층 높이의 잔재물을 쌓고 기계가 그 위에 올라가 5층과 4층을 차례대로 철거했어야 하는데 그러지 않았다”고 말했다. A씨는 “5층과 4층을 우선적으로 걷어내야 하는데 전면 부분만 먼저 철거했다. 사고가 난 도로 반대쪽 부분의 건물을 토막내듯이 자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비상주 감리, 현장 의무관리 규정 없어” A씨는 다단계 불법하도급 정황도 인지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뉴스를 보고 재하청 정황을 알았다. 저는 현장에 계속 상주하지 않는 비상주 감리로서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는 부분만 계획서대로 됐는지 감리할 뿐 내부 안전·품질·공정 등은 현장소장이 총괄한다”고 책임을 돌렸다. 이어 “비상주 감리가 몇 회 감리를 나가야 한다는 기준은 없다”고 덧붙였다. A씨는 감리가 현장에서 배제됐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현장에서 철거하는 사람들이 감리를 무시하고, 제대로 된 상의는커녕 한 번도 부른적이 없다는 것이다. A씨는 “공사를 시작할 때마다 공문을 보내 달라고 수 차례 말했음에도 내게 보낸 적이 없다”면서 “현장에서는 감리자를 무시한다”고 말했다. 손지민 기자 sjm@seoul.co.kr
  • 파리오페라발레의 ‘별’ 박세은 “이제 나를 믿고 춤출래요”

    파리오페라발레의 ‘별’ 박세은 “이제 나를 믿고 춤출래요”

    파리오페라발레 352년 역사상 첫 동양인 에투알“동경했던 뒤퐁 감독에게 인정받아 더욱 큰 의미인생 세 번째 챕터에선 더 폭넓게 관객 만나고파”“그날따라 많은 꽃다발이 배달됐고, 동료들이 공연을 보러 아주 많이 왔어요. 나중에 제일 친한 동료가 ‘우리는 오늘 하루종일 네 얘기만 했는데 너만 모르고 있더라’ 하더라고요.” 세계 최정상 발레단인 파리오페라발레단 수석무용수인 에투알(étoile·별)에 오른 발레리나 박세은이 감격스러웠던 그날을 이렇게 돌아봤다. 지난 10일(현지시간) 파리 바스티유 오페라에서 열린 ‘로미오와 줄리엣’ 개막공연을 마친 뒤 파리오페라발레단 알렉산더 네프 총감독이 박세은을 호명했다. 오렐리 뒤퐁 예술감독 제안으로 박세은을 에투알로 승급하기로 한 것이다. 마치 박세은을 위해 짜여진 듯한 무대였던 것처럼 기다렸다는 듯 모두가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박세은은 당초 16일부터 폴 마르케(로미오 역)와 줄리엣으로 호흡을 맞출 예정이었다. 5명의 줄리엣 가운데 유일하게 에투알이 아닌 그의 캐스팅 자체도 화제였다. 그런데 공연을 앞두고 다른 무용수의 부상으로 박세은이 개막 공연에 서게 됐다. 그렇게 코로나19로 멈췄다가 1년여 만에 재개된 공연의 시작을 열었다. 현지시간에 맞춰 13일 새벽에 전화로 만난 박세은은 “역할에 완전히 몰입해 제가 할 수 있는 100%를 다 해서 정말 만족스러웠다”면서 승급의 기쁨과 무대의 만족감이 뒤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에투알 아닌 줄리엣, 1년만의 개막 주역박세은의 매순간이 파리 발레계에 화제박세은은 2011년 한국 발레리나로는 처음 준단원으로 파리오페라발레단에 입단해 2012년 카드리유(군무), 2013년 1월 코리페(군무 리더), 11월 쉬제(군무와 주역을 오가는 솔리스트), 2016년 프리미에 당쇠르(제1무용수)로 단계를 밟았다. 네 등급은 매년 승급심사를 갖지만 마지막 에투알은 감독과 이사회 등이 논의를 거쳐 지명해 훨씬 까다로워 그야말로 하늘의 별 따기다. 박세은이 프리미에 당쇠르로 승급하자 한 동료가 “넌 이제부터 매일매일이 승급시험을 보게 되는 것”이라고 했을 만큼 치열하기도 하다. 그는 “무엇보다 처음 들어왔을 때부터 ‘저런 에투알이 되고 싶다’며 동경한 오렐리 뒤퐁에게 지명 받아 더욱 의미가 깊다”고 했다. 게다가 1669년 창단한 파리오페라발레단에서 동양인 무용수를 에투알로 지명한 것은 352년 만에 처음이다. “모두가 나의 승급을 기다린 것처럼 진심으로 축하하고 기뻐해주는 마음에 따뜻함을 느꼈다”고도 덧붙였다. 뒤퐁 감독은 승급 발표 다음날 박세은과의 면담에서 “네 얼굴이 무대 위에서 굉장히 아름답게 보인다”는 것을 비롯해 열 가지가 넘는 장점을 읊어줬다고 한다.박세은은 예원학교와 서울예고,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발레를 공부했고 2006년 미국 IBC(잭슨) 콩쿠르 금상 없는 은상, 2007년 스위스 로잔 콩쿠르 1위, 2010년 불가리아 바르나 콩쿠르 금상 등을 수상했다. 2009년 국립발레단 특채로 뽑혀 활동하다 파리오페라발레단에 진출했고 2018년엔 브누아 드 라 당스를 거머쥐기도 했다. 한국선 러시아 발레로 배워 낯선 프랑스 무용“잘 어울리려 노력… 관객과 함께 숨쉬고파” “파리오페라발레학교 출신도 아닌 데다 프로 무용수로 활동하다 모든 것을 다 접고 파리에 온 저의 노력을 동료들이 알아준 것 같았다”는 그의 말에서 더욱 짙은 기쁨이 전해졌다. “러시아 발레 교육법인 바가노바 메소드를 기본으로 배웠기에 프랑스 춤을 추기 위해 정말 많은 노력을 했어요. 여긴 그냥 테크닉만 좋거나 튀어선 안 되고 다같이 서있을 때 잘 어울리는 무용수가 되는 게 제일 중요하거든요.”‘이 길이 맞을까’를 수없이 되뇌이며 흔들리기도 했지만 박세은은 결국 ‘나에게 집중하자’며 자신을 믿고 춤추기로 했다. 그는 “20여년을 했는데도 아직도 배울 게 많고 지루할 틈 없는 게 발레의 매력”이라면서 “이제 더 치열해질 인생 세 번째 챕터에선 루돌프 누레예프 작품부터 아주 많은 레퍼토리로 관객들과 만나고 싶다”고 강조했다. “제가 좋아서 춤을 춘다고만 생각했는데 코로나19로 관객들이 있어야만 함께 숨쉴 수 있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꼈어요. 제가 표현하고 싶은 예술을 마음껏 주고받고 싶어요.”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시카고,오스틴,댈러스까지...미국 곳곳 총격에 ‘무고한 시민’ 희생

    시카고,오스틴,댈러스까지...미국 곳곳 총격에 ‘무고한 시민’ 희생

    시카고서 보도 위 행인에 총격 1명 사망·9명 부상오스틴서 서로 총격전 벌인 2명에 최소 14명 부상올해들어 총격에 11세이하 133명 사망·326명 부상코로나19가 조금씩 진정되면서 총기 사건이 늘어나는 미국에서 이번 주말에 시카고, 오스틴, 댈러스 등 곳곳에서 총격 사건으로 무고한 시민들이 희생됐다. CNN은 일리노이주 시카고 남부 지역에서 12일(현지시간) 새벽 2시쯤 남성 2명이 보도에 있는 행인에게 총을 쏴 여성(29) 한 명이 숨지고 9명이 부상당했다고 보도했다. 경찰은 도망간 용의자들을 쫓고 있으며 다른 부상자들은 23∼46세였다. 한 목격자는 ABC방송에 “몇 명이 불꽃놀이를 하고 있었고 이를 싫어하는 이들이 있었다”며 “그러더니 갑자기 누군가 총을 쏘는 소리가 들렸다”고 말했다. 올해 들어 시카고에서 총기 사고로 피해를 당한 이는 1500여명이며 이중 250여명이 숨졌다. 이날 오전 1시 30분쯤에는 텍사스주 오스틴 시내에서 총격 사건이 벌어져 최소 14명이 다쳤다. 대부분이 무고한 시민이었다. 용의자는 2명으로 둘이 서로 다투다가 총격을 벌인 것으로 전해졌고 이중 1명이 체포됐다. 현지 경찰은 사건 발생 현장 인근에 경찰관들이 있었기 때문에 그래도 바로 대응이 가능했다고 전했다. 전날인 11일에는 조지아주 서배나에서 밤 9시쯤 총격이 벌어져 1명이 숨지고 최소한 7명이 부상당했다. 부상자 중에는 2살, 13살 어린이도 포함됐다. 이날 오후 4시 45분에는 텍사스주 댈러스에서 4살짜리 아이를 포함해 5명이 다치는 총격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 역시 두 집단이 싸움을 벌이는 과정에서 발생한 총격에 무고한 시민들이 다쳤다. 비영리 연구단체 ‘총기폭력 아카이브’에 따르면 미국에서 올해 들어 발생한 총기 난사 사건은 269건에 달하며 1만 6991명이 사망하거나 다쳤다. 특히 이중 11세 이하의 어린이 133명이 사망했고, 326명이 부상당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공격용 무기 및 고성능 자동 소총을 금지하는 입법을 추진하는 한편, 앞서 하원을 통과한 무기 구입시 신원 확인 의무화 법안에 대해 상원 통과를 요청한 바 있다. 하지만 공화당은 총기 규제에 반대하고 있다. 워싱턴 이경주 특파원 kdlrudwn@seoul.co.kr
  • “짚은 우리 의식주와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 올가을 시흥서 첫 전국 짚풀공예대회 열 계획”

    “짚은 우리 의식주와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 올가을 시흥서 첫 전국 짚풀공예대회 열 계획”

    “예전엔 짚으로 옷을 짓고 밥을 짓고 집도 지어 우리 의·식·주 모든 삶에서 쓰이지 않는 곳이 없었죠. 올가을엔 시흥시 호조벌에서 전국적인 짚풀공예대회를 열 계획입니다.” 경기 시흥시 향토민속보존회 회장이며 대한민국 짚풀공예 숙련기술 김이랑(62) 전수자는 공예재료인 볏짚은 60~70년대까지만 해도 우리 생활에서 매우 중요한 필수품이었다고 13일 말했다. 우리 조상들은 집에서 아이를 낳으면 대문 앞에 짚으로 엮은 새끼줄을 걸어 뒀다. 아이를 뉘일 때 미리 방바닥에 볏짚을 깔아 두면 구들장이 너무 뜨거워지는 걸 막아주고, 구들장이 식어가면 추운 걸 막아주는 역할을 했다. 이렇게 태어난 우리들은 짚신을 비롯해 도롱이·짚삿갓·둥구미 등을 사용하며 살다 생을 마감하면 새끼줄에 묶여 땅으로 간다. 사람과 짚은 태어나면서부터 평생동안 떼려랴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였다. 사람에게 필요한 모든 걸 다 내어주는 짚을 재료로 하는 짚풀공예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한국에서만 이어오고 있는 민속전통이다. 김 전수자는 20년 전 어려운 생활고에 아이 둘을 키우며 무기력하게 살고 있을 무렵 시흥 신천동의 한 복지사 권유로 처음 짚풀공예의 길로 들어섰다. 시흥의 드넓은 호조벌이 창작작품의 무대다. 짚으로 씨줄을 삼고 시간으로 날줄을 삼으며 볏짚공예 길을 운명처럼 걷고 있는 김 전수자는 “사람살이에 필요한 모든 필수품을 만들 수 있다는 게 짚풀의 매력”이라고 말했다. 농사를 지을 때 필요한 농기구들이 주된 작품소재다. 공방 안에는 누런 황소를 비롯해 토실토실 웃는 돼지와 빗자루·맷방석과 바구니·지게·삼태기 등 크기별로 200여개 다양한 둥구미들이 있다. 이 중 최신작인 ‘티라노 사우루스’가 눈길을 끈다. 호조벌을 상징해 ‘호티’라고 부른다. 수많은 작품 중 김 전수자가 가장 아끼는 건 짚신과 맷방석·길마다. 볏짚은 습도에 가장 약하므로 보존을 위해 각별한 관리가 필요하고 작품 보존기간은 조건만 잘 갖춰지면 1000년 이상도 가능하다고 한다.김 전수자는 “짚풀공예는 예술이라기보다 전승이며 작가라기보다 장인이고, 창작이기보다는 맥을 이어가는 전통이자 민속”이라며 “짚풀공예 분야 장인으로서 세대 간 단절되지 않게 맥을 잇고 보존하는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녀는 처음 볏짚에 쓸려 손에 피가 맺히고 지문이 없어지듯 닳아 생손을 앓는 경험을 수없이 하고 나서야 볏짚 두려움이 없어졌다. 보통 오전 9시부터 밤 12시까지, 길게는 새벽 2시까지 하루 10시간 이상 커피로 잠을 쫓으며 몰입해 작업한다. 한 자리에 오래도록 구부리고 앉아 작업을 하다보면 어깨며 팔이며 안 아픈 곳이 없지만 하루라도 짚을 엮지 않으면 손가락에 가시가 돋을 것 같다는 김 전수자. 그동안 노력으로 선조들한테 물려받은 손끝의 기량도 축적돼 있고, 전남 곡성에 있는 전남무형문화재 제55호 임채지(83) 스승으로부터 짚풀공예의 다양한 기술도 배웠다.피나는 노력을 인정받아 2018년 고용노동부와 한국산업인력공단으로부터 우수한 숙련기술의 단절을 방지코자 숙련기술을 전수하는 숙련기술전수자로 선정됐다. 역점사업으로 올해 호조벌 300주년을 맞아 가을추수 후 전국 규모의 짚풀공예 솜씨 겨루기대회를 준비하고 있다. 그녀는 “이번 대회를 전국 솜씨겨루기 대회의 원년으로 삼고 짚풀공예 분야와 시흥시의 정체성을 홍보하는 무대로 만들어 호조벌의 역사를 빛내고 후손들에게 자부심을 물려주겠다”면서, “최대한 능력을 발휘해 의미있는 짚풀축제 잔치를 펼쳐보고 싶다”고 강조했다. 앞으로 바라는 점에 대해 김 전수자는 “이젠 무형문화재가 되고 싶다. 특히 청소년들에게 볏짚의 자연물을 접할 수 있는 일상놀이를 통해 감성인지와 인성함양 등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체험기회를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그다음은 소박한 짚풀공예 전수관을 갖고 싶다. 안전한 공간이 없어 여기저기 옮겨다녀 작품이 훼손되고 효율성이 떨어져 많은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 호조벌 근처에 작업실이 있으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특히 김 전수자는 “다른 지자체에서는 일자리를 제공해 소득창출과 노인 치매예방에도 좋아 시민들에게 권장하고 있다”면서, “100세 실버시대 자아실현과 호조벌 정체성을 세우는 데도 매력적인 짚풀공예 노인일자리 창출사업을 시흥시에 적극 제안하고 싶다”고 전했다. 김 전수자는 서울산업대 미술학사 졸업 후 전주대 대학원에서 한지문화산업을 전공했다. 2001년부터 임채지 선생한테 짚풀공예를 사사했으며 국가숙련기술전수자 짚풀공예부문, 한얼의 천년혼으로부터 명장자격을 받았다. 베트남 세계전통민속축제 후에페스티벌을 비롯해 시흥갯골축제, 연성문화재와 대보름행사, 전남 곡성 심청축제, 남도축제, 고성 세계공룡엑스포, 정선 아리랑제 등에 출품했다. 글·사진 이명선 기자 mslee@seoul.co.kr
  • 덴마크 FA “에릭센 의식 되찾아 추가 검진 예정” 의료진 재빠른 대처 덕분

    덴마크 FA “에릭센 의식 되찾아 추가 검진 예정” 의료진 재빠른 대처 덕분

    13일 새벽(한국시간) 세계 축구 팬들이 가슴을 쓸어내렸다. 핀란드와의 유로(유럽축구선수권) 경기 도중 갑자기 기절해 그라운드에 쓰려진 덴마크 스타 크리스티안 에릭센(29·인터 밀란)이 힘겹게 의식을 되찾았다. 덴마크축구협회는 트위터를 통해 “에릭센이 깨어났다”며 “덴마크 국립의료원(Rigshospitalet)에서 추가 검사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유럽축구연맹(UEFA)도 “에릭센이 병원으로 옮겨졌고, 현재 안정을 되찾았다”고 밝혔다. 잉글랜드 프로축구 토트넘에서 뛰며 손흥민과 호흡을 맞춰 우리에게도 낯익은 에릭센은 이날 덴마크 코펜하겐 파르켄에서 열린 핀란드와의 유로 2020 조별리그 B조 1차전 전반 43분에 스로인을 받으러 달려가다 누구와도 충돌하지 않은 채 혼자 쓰러져 의식을 잃었다. 의료진이 10분 정도 심폐소생술을 실시했지만, 한동안 그라운드에 누워 일어나지 못해 큰 우려를 낳았다. 덴마크 대표팀 선수 중에는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는 이도 있었다. 동료 선수들이 에릭센 주변을 둘러싼 가운데 1만 6000여 관중은 숨죽인 채 이 장면을 지켜보며 격려의 박수를 보내기도 했다. 그 뒤 경기 진행요원들이 흰색 가림천을 세운 가운데 에릭센은 경기장 밖으로 옮겨졌다. 로이터는 현장 취재 중이던 사진기자가 에릭센이 들것에 실려 나갈 때 손을 드는 모습을 봤다고 전했다. AP 통신이 찍은 사진을 보면 에릭센이 들것에 실려 나갈 때 왼쪽 손을 이마에 얹은 채 정면을 응시하는 듯한 장면이 나온다. 아스널과 잉글랜드 대표팀의 물리요법사인 개리 르윈은 영국 BBC에 “에릭센이 그라운드를 떠날 때 산소호흡기를 달고 있었던 장면은 어떤 일이 일어났건 의료진이 아주아주 빨리, 아주 효율적으로 움직였다는 다른 증거”라면서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이 아주 훌륭하게 임무를 해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에릭센이 의식을 되찾았다는 소식에 UEFA는 경기 재개를 결정했고 결국 핀란드는 후반 15분 요엘 포얀팔로(우니온 베를린)의 헤딩 결승 골을 앞세워 1-0으로 승리했다. 카스퍼 휼만드 덴마크 감독은 패배 뒤 기자회견 도중 눈물을 글썽였다. 그는 “정말 힘든 저녁이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 무엇인지를 우리 모두 돌아보게 됐다. 의미있는 관계와 우리와 가까운 사람들인 가족과 친구들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벨기에 축구대표팀의 ‘골잡이’ 로멜루 루카쿠(28)는 팀 동료 에릭센의 쾌유를 비는 감동 세리머니로 눈길을 끌었다. 상트 페테르부르크 스타디움을 찾아 벌인 러시아와의 B조 1차전에서 루카쿠의 멀티 골과 뫼니에의 1골 1도움 활약을 앞세워 3-0 대승을 거뒀다. 루카쿠는 전반 10분 러시아 수비수가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볼을 페널티지역 부근에서 재빨리 잡아 왼발 터닝슛으로 결승 골을 꽂았다. 그는 중계 카메라로 달려가 얼굴을 대고 “크리스, 크리스, 사랑해(Chris, Chris, I love you)”를 외치며 에릭센의 쾌유를 기원하는 감동의 세리머니를 펼쳤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형제복지원 생존자, 다시 그곳을 말하다] <3>고문당해 ‘도둑질’ 거짓자백하자 강제 수용…‘부랑아’ 낙인 계속됐다

    [형제복지원 생존자, 다시 그곳을 말하다] <3>고문당해 ‘도둑질’ 거짓자백하자 강제 수용…‘부랑아’ 낙인 계속됐다

    12년간 수용인원 총 3만 8000여명, 공식 사망자 513명. 1970~1980년대 국가 최대 부랑인 수용시설이었던 ‘부산 형제복지원’에서 벌어진 인권 유린 사태는 1987년 처음 세상에 알려졌다. 34년이 지난 지금, 2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형제복지원 사건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다. 이는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진상 규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뜻이다. “더는 기다릴 수 없다”는 생존자 13명은 지난달 20일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에 나섰다. 법원에 낼 진술서를 쓰는 과정 또한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반드시 쓰여져야 할 글이었다. 서울신문은 매주 1명씩 이들의 증언을 기록으로 남긴다. 해운대서 놀던 꼬마 잡아간 경찰, 허위자백 받아내 형제원으로박상현(47·가명)씨는 37년 전 형제복지원으로 끌려간 날이 아직도 생생하다. 해운대 해수욕장에서 놀고 있던 그를 붙잡아 간 경찰들은 “배달하다 돈을 훔쳐 도망나온 것이 아니냐”고 추궁했다. 매질과 물고문을 당한 박씨는 결국 강압에 못 이겨 거짓 자백을 했고, 이튿날 형제복지원으로 보내졌다. 박씨는 1987년 형제복지원이 폐쇄될 때까지 3년 동안 아동소대와 청소년소대에 머물렀다. 흙벽돌을 만들고 흙마대를 나르는 작업에 강제로 동원됐다. 할당량을 못 채우면 기합을 받았다. 소대 안에서 폭력은 일상이었고 밤마다 소대장에게 성폭행 피해를 입었다. 13살 때 형제복지원을 나온 박씨는 시설을 전전했다. 부산소년의집에서 서울소년의집으로, 다시 부산소년의집으로 옮겨다니며 고등학교까지 마쳤다. 시설은 형제복지원보다는 나았지만, 구타는 여전했다. 박씨는 스무살이 되어서야 수소문 끝에 가족을 찾았다. ‘형제복지원 출신’이라는 꼬리표는 평생 그를 따라다녔다. 가족들의 시선조차 곱지 않았다. 한때 취업을 하기도, 직업군인이 된 적도 했지만 그의 유년기를 알게 된 사람들의 시선은 차가웠다. 결국 박씨는 모든 것을 그만두고 일용직 일을 하면서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부산을 떠나 연고가 없는 한 도시에 자리잡은 그는 지금도 제 과거를 아는 사람을 만나게 될까봐 하루하루가 두렵다. 아래는 박씨의 진술서 전문. ※원문에서 일부 표현만 다듬어 그대로 옮겼습니다. [진 술 서] 제목: 형제복지원 피해자 진술서 성명: 박상현 진술 내용: 1. 형제복지원 입소경위와 피해사실 1984년 4월 10일 오후에 해운대 해수욕장에서 놀고 있었는데 사복 입은 형사 2명이 저를 잡더니 다짜고짜 집이 어디냐고 묻지도 않고 “어디서 배달하다가 도망 나온 거냐?” “뭐 훔치고 도망 다니는 거 아니냐”고 물었습니다. 아니라고 했지만, 바로 해운대파출소로 데리고 갔습니다. “훔친 적 없다”고 그렇게 말을 했지만 제가 행색이 초라해서인지 믿어주지 않았습니다. “중국집에서 배달하다가 돈 훔쳐서 도망 나온 거냐?”고 묻길래 “절대 아니다”라고 했지만, 제 말은 듣지도 않고 바른 대로 말하라고 하면서 무릎을 꿇게 하더니 수건 같은 것을 허벅지에 올리고 경찰봉으로 허벅지를 때렸습니다. 그래도 아니라고 하니 수갑을 뒤로 채우고 경찰봉을 무릎 뒤로 끼우더니 책상 양쪽에 걸고 매달았습니다. 그리고 수건을 얼굴에 씌우고 주전자의 물을 얼굴에 붓는 고문을 했습니다. 너무 힘들고 괴로워서 형사들이 말하는 대로 배달도 했고, 주인의 시계와 돈을 훔쳐서 도망 나온 것이라고 말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원하는 대답을 들은 후에야 풀어주면서 유치장은 아니고 의자 구석에 수갑을 채운 채로 자라고 했습니다. 너무 아프고 졸려서 잠을 청했습니다. 한참을 자다가 깨워서 일어나니 “내일이면 집에 갈수 있다. 저 차를 타고 가면 저 아저씨들이 내일 집에 보내 준다”는 말에 아무런 의심 없이 그 차를 탔습니다. 흙벽돌 만들고 흙마대 나르고, 매일 구타에 성폭행까지 당해 한참을 달려 내린 곳이 형제복지원이었습니다. 새벽에서야 도착했고 차에서 내리자 마자 몽둥이로 때리면서 어느 건물로 들어가라고 해서 들어갔더니 줄을 세워놓고 옷을 다 벗게 했습니다. 소방호스로 찬물을 한참을 뿌리고 이상한 하얀 가루를 머리부터 뿌리고 체육복 같은 것을 입히더니 자게 했습니다. 물론 철문은 굳게 잠겨 있었기에 도망갈 엄두도 못 냈습니다. 단지 두려움에 벌벌 떨면서 밤을 지새웠을 뿐입니다. 잠깐 잠을 자고 나니 새벽에 기상을 시켰고 밥을 선착순으로 먹게 했습니다. 그후에 아동소대인 24소대에 배치돼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24소대에는 저보다 어린애들도 있었고 저보다 나이 많은 조장들도 있었습니다.그날부터는 매일이 지옥 같은 생활이 이어졌습니다. 하루라도 안 맞은 날은 정말이지 행복해 할 정도였습니다. 매일매일 맞았고, 형편 없는 식사조차 항상 선착순이였습니다. 밤에는 소대장이라는 사람한테 성폭행도 당했었습니다. 저녁 점호가 끝나면 어김없이 철창문과 철문이 이중으로 잠겼으며, 그 철문이 잠기고 나면 또다른 고통이 시작되었습니다. 차라리 맞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소대원들이 텔레비전을 보고 있으면 소대장이 따로 불러 성폭행을 했습니다. 거부할 경우에는 조장들이 따로 불러 폭행과 얼차려를 했습니다. 조장들한테는 기본적으로 매일 몽둥이로 맞고 ‘얼차려’는 일상이였습니다. 낮에는 학교를 다녔지만 수업이 끝나면 작업장에 불려나가서 흙벽돌을 만드는 데 동원됐습니다.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면 역시 얼차려를 받거나 맞아야 했습니다. 할당량을 채웠다고 하면 기껏 앙꼬(앙금) 없는 빵 한 조각과 콩물이 전부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교회 뒤쪽에 공사를 할 때도 흙마대를 지고 날라야 했으며, 시에서나 어디서든 손님이라도 오게 되면 평소엔 나오지도 않은 보여주기식의 음식이 조금 나왔습니다. (손님이 온다고) 나눠줬던 옷들도 다시 수거해 반납을 하게 했습니다. 운동장 스탠드 밑에는 소를 가져다놓고 보여주기식으로 도축도 하는 그런 실정이였습니다. 먹는 것은 항상 부실했고, 썩은 냄새 진동하는 정어리 젓갈은 항상 나왔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3년 가량 형제복지원에서 지낸 생활은 정말이지 뼛속 깊이 상처가 되어 지금, 아니 이후로도 절대 잊혀지지 않는 고통이 될 것입니다. 1987년 형제복지원 사건이 터진 후 소년의집으로 이동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형제복지원 안에서 개금분교를 다니고 있었기에 (부산)소년의집으로 이동한 후 면담을 했고, 초등학교를 다녀야 했기에 서울소년의집으로 다시 이동했습니다. 소년의집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졸업생들은 부산소년의집으로 다시 옮겨 왔습니다. 부산에서 소년의집 안에 있는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졸업하게 되었습니다. 수녀님과 신부님의 도움으로 학업은 이어갈 수 있었지만, 그 곳 역시 보호시설이었기 때문에 선배들에게 구타를 당했습니다. 구타당한 사실을 알리면 또다시 보복을 당했기 때문에 알릴 수가 없었습니다. 소년의집에서 생활을 하면서 형제복지원보다는 나아졌지만 역시나 구타와 괴롭힘은 있었으며, 저의 어린 시절은 제가 원하지 않는 단체 생활과 폭력과 폭언, 구타와 괴롭힘의 생활이 항상 따라다녔던 것 같습니다. ‘형제복지원 출신’ 낙인에 가족도 직장동료도 떠났다 2. 형제복지원과 소년의집 퇴원 후의 생활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소년의집에서 호적을 만들어주셔서 취업을 할 수 있었습니다. 고등학교 졸업 후에 어린 시절 기억을 더듬어 다니던 초등학교와 포항 북부 경찰서 등을 찾아 가출 신고를 한 흔적을 수소문했지만 찾을 수 없었습니다. 제가 어린 시절 살던 동네를 찾아서 가게 됐고, 거기서 어머님의 친구 분 소식을 접하고 제가 어머님을 찾으러 왔다는 것을 알릴 수 있었습니다. 그 후에 어머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어머님을 만나고 나니 제 이름과 생일 모든 것이 제 기억과는 달랐고 집을 찾았기에 소년의집에서 만들어주신 호적과 제 본래 호적이 2개가 되어 호적 정정 신청을 해 소년의집 호적은 말소 처리했습니다. 하지만, 가족들과의 오랜 단절이 있었고 제가 지낸 곳이 형제복지원과 소년의집이라는 걸 알게 된 가족과 친지들은 저를 멀리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가족의 일원이라는 것을 거의 부정하게 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그 후에 가족들과의 거리는 여전했고 다니던 직장에서도 제가 형제복지원과 소년의집에서 자란 것을 알게 돼 대인관계를 형성하기가 너무 어려워졌습니다. 그래서 직장도 그만두게 됐고, 가족들과도 멀어지게 되면서 저는 도피처를 찾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도피처로 군대를 선택했고 직업군인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직업군인 생활조차도 쉽지가 않았습니다. 사람들의 편견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지내온 어린 시절을 인정해주지 않고 오히려 선입견을 가지고 저를 피하고는 했습니다. 그래서 제대를 결심하게 되었고, 제대 후에도 직장생활은 제게 사치였습니다. 저의 사정을 알게 된 사람들의 날선 시선과 선입견 속에 지내는 게 너무 힘들다보니 직장생활도 힘들었고 저는 택배일과 퀵 서비스 같은 일용직 일만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가족들은 만난 지 27년이란 시간이 흘렀지만 왕래조차 하지 못하고 있으며 지금 역시 제대로 된 직장 생활은 힘들어 퀵서비스 일을 하고 있습니다. 혹시라도 저를 아는 사람을 만나게 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과 항상 싸우고 있습니다. 자연히 대인기피증도 생기고 어린 시절의 그 고통과 아직도 마주하고 있습니다. 생활고는 당연한 것이며, 주위에 아는 지인조차 손에 꼽을 정도입니다. 존경하는 판사님. 어린 시절의 제가 겪었던 일들을 두서없이 적은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의 지난 고통과 아픔을 잊지 않고 기억해주시는 분들이 있기에 저희는 지금까지 버티고 버티면서 지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저희의 지난 고통과 아픔은 쉽사리 잊혀지지 않습니다. 뼛속까지 사무쳐 있습니다. 이 억울하고 슬펐던 지난 날들을 조금이나마 보상받고 치유가 될 수 있도록 저희의 마음을 헤아려 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형제복지원 사건, 어디까지 왔나 형제복지원을 운영한 고(故) 박인근 원장은 1989년 특수감금 혐의에 대해 무죄가 확정됐다. 2018년 문무일 전 검찰총장은 무죄 판결을 취소해 달라며 비상상고를 신청했지만 지난 3월 대법원에서 기각됐다. 다만 재판부는 형제복지원 사건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인정했고 정부에서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을 당부했다. 형제복지원 사건과 관련해 국가를 상대로 첫 손해배상 소송에 제기한 형제복지원 서울경기피해자협의회는 현재 2차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1차 소송에 참여한 13명은 모두 입·퇴소 증빙자료가 준비돼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은 이러한 증거가 없어 피해사실 입증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형제복지원 서울경기피해자협의회는 비용 부담 때문에 소송 참여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피해자들을 위해 후원금을 모금하고 있다. 진선민 기자 jsm@seoul.co.kr
  • 광주 붕괴 건물 감리자, 사고 다음날 새벽 사무실서 물품 챙겨

    광주 붕괴 건물 감리자, 사고 다음날 새벽 사무실서 물품 챙겨

    지난 9일 17명의 사상자를 낸 광주 동구 철거건물 붕괴사고와 관련해 경찰이 현장 감독 책임이 있는 감리자를 불러 조사하고 있다. 이 감리자는 사고 발생 다음날 새벽 사무실에 들러 자료로 추정되는 물건을 챙겨나갔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광주경찰청 수사본부는 이날 광주 동구 학동 4구역 재개발사업지 철거 공사의 감리계약 회사 대표 A씨를 소환해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A씨는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로 철거업체, 시공사 등 관계자 6명과 함께 불구속 입건됐다. 감리자는 현장 작업이 설계도, 해체계획서 등에 따라 제대로 이뤄지는지 지도 감독하는 역할을 한다. 경찰은 지난 10일 오후 A씨의 사무실을 포함해 5군데를 압수수색했다. 경찰은 사고 당일 작업과 관련된 일부 자료는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가운데 A씨가 사고 다음날 새벽 사무실을 찾아와 자료로 의심되는 물품을 챙기는 모습이 CCTV 카메라에 잡혔다. 경찰은 A씨가 강제수사 전 자료를 은폐하려 했는지 등도 조사할 방침이다.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 “또 그 놈 목소리”…심야 여대생들에 걸려오는 ‘괴전화’

    “또 그 놈 목소리”…심야 여대생들에 걸려오는 ‘괴전화’

    “…” “○○○○” “소근소근” 요즘 충남 아산 A 대학 여학생들은 자정부터 새벽 3시쯤까지 걸려오는 괴전화에 불안감을 호소하고 있다. 10일 A 대학에 따르면 이 대학 특정 학과를 중심으로 여학생들만 골라 한 남자가 ‘발신자 표시제한’으로 전화를 걸고 있다. 이 전화를 받은 여학생은 지금까지 100여명에 이르는 것으로 전해졌다. 학생들은 발신자 표시가 없어 궁금한 마음에 받으면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채 숨소리만 내거나, 속삭이기도 해 깜짝 놀란다고 전했다. 일부 학생들은 “자위행위를 하는 듯한 이상한 소리를 내 순식간에 소름이 돋는다”고 불쾌감과 함께 불안감을 호소했다. 이 사실은 피해 여학생들이 교내 커뮤니티 앱과 각 단톡방에 글을 올리면서 드러났다. 한 학생은 “학교 이름은 물론 학과와 전화번호를 알고 있는 범인이 집 주소도 아는 게 아닌가 해서 너무 불안하다”면서 “조속히 잡아야 한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A 대학 관계자는 “피해 학생들을 조사한 뒤 다음주 초 학생들과 함께 경찰서에 신고해 수사를 요청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경찰은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상 불안감 조성 혐의가 있는 것으로 보고 피해 여학생들의 신고가 접수되는 즉시 수사에 나설 방침이다. 아산 이천열 기자 sky@seoul.co.kr
  • “심야에 숨소리”…특정학과 여학생 100여명에 ‘발신제한’ 전화

    “심야에 숨소리”…특정학과 여학생 100여명에 ‘발신제한’ 전화

    심야에 충남의 한 대학 여학생들에게 익명의 전화가 잇따르고 있어 피해 학생들이 불안해하고 있다. 10일 충남 서북부지역 A대학 학생들에 따르면 최근 대학 내 특정 학과를 중심으로 여성으로 보이는 이름을 가진 학생만을 골라 한 남자가 ‘발신자 표시제한’으로 전화를 걸고 있다. 주로 자정부터 새벽 3시 사이 심야에 전화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남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채 숨소리만 내거나, 속삭이기도 해서 전화를 받은 여학생들을 놀라게 한다. 심지어 일부 학생들은 “자위행위를 하는 듯한 이상한 소리를 듣고 소름이 돋았다”고 말했다. 한 학생은 “학교 이름과 학과, 전화번호를 알고 있는 범인이 집 주소도 알고 있는 것이 아닌가 불안하다”며 “조속히 잡아달라”고 호소했다. 이런 사실은 피해 여학생들이 각 단톡방과 교내 커뮤니티 앱에 올리면서 드러났다. 학생들은 피해 학생이 대략 100여명은 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학교 측은 경찰 조사를 요청할 예정이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내일 전국에 장대비…비 그치면 주말엔 다시 30도 넘는 폭염

    내일 전국에 장대비…비 그치면 주말엔 다시 30도 넘는 폭염

    금요일인 11일에는 제주도와 남부지방을 중심으로 장대비가 내리겠고 그 밖의 지역에도 많은 양의 비가 내리겠다. 비가 그친 뒤 주말에는 낮기온이 다시 30도가 훌쩍 넘는 무더위가 찾아오겠다. 기상청은 “서해상에서 북동진하는 저기압의 영향으로 10일 오후 제주도와 경기북부지역에서 비가 시작돼 11일까지 전국으로 확대되면서 많은 양의 비를 뿌릴 것”이라고 10일 예보했다. 특히 11일 오전까지 고온다습한 공기가 고도 1.5㎞의 대기하층의 강한 남풍을 따라 유입되고 지형효과가 더해지는 전남해안과 지리산부근, 경남 남해안, 제주도에는 시간당 30㎜ 이상의 매우 강하고 많은 비가 내릴 것으로 기상청은 전망했다. 예상 강수량은 제주도 산지 300㎜ 이상, 제주 동부와 남부 100~200㎜, 전남해안, 경남권 남해안, 지리산부근, 제주도 북부와 서부지역 50~100㎜, 수도권, 충청권, 남부지방 30~80㎜, 강원도 5~40㎜가 되겠다. 비는 오후가 되면 대부분 지역에서 그치겠지만 충청권과 경북권은 토요일 새벽부터 아침 사이에 빗방울이 떨어지겠고, 강원 남부 산지는 토요일 낮 대기불안정으로 인해 한 때 비가 내리겠다. 이번 주 내내 더웠던 날씨는 11일 전국에 비가 내리면서 낮 기온이 25도 내외로 다소 낮아지겠지만 비가 그친 12일 토요일에는 다시 전국 대부분 지역에서 30도 내외까지 오르면서 무덥겠다. 11일 전국의 예상 아침 최저기온은 17~21도, 낮 최고기온은 22~28도가 되겠으며 12일 토요일은 낮 최고기온이 24~31도 분포를 보이겠다. 유용하 기자 edmondy@seoul.co.kr
  • 98억년 악동 유령 텐션…60세까진 할 수 있겠죠?

    98억년 악동 유령 텐션…60세까진 할 수 있겠죠?

    “지금은 그래도 좀 홀가분해요. 3~4주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하고 말도 안 했어요.” 장르를 불문하고 유쾌한 연기로 많은 사랑을 받아 온 배우 유준상이 “지난 20여년의 시간이 지금을 위한 훈련이었나 보다 생각했다”며 고개를 내저었다. 핼쑥해진 베테랑 배우의 얼굴이 험난한 준비 과정을 어렴풋이 가늠하게 했고, ‘힘들었다’는 토로도 겉치레가 아닌 듯 보였다. 8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만난 유준상은 “어느 대사 하나도 허투루 칠 수 없다”며 작품이 주는 무게감을 전달하면서도 설렘을 감추지 못했다. 오는 18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개막하는 뮤지컬 ‘비틀쥬스’에서 유준상은 정성화와 함께 유령 비틀쥬스 역으로 관객들을 만난다. 팀 버턴 감독의 동명 영화(1988)를 바탕으로 브로드웨이에서 흥행 돌풍을 일으킨 화제작으로, 세계 첫 라이선스 공연이다. 재미도, 의미도 있는 작품이라 열심히 오디션을 거쳐 배역을 따냈지만 “연습 들어가자마자 후회했다”고 할 만큼 쉽지 않았다. 유머가 가득한 재치 있는 대사와 다채로운 비트가 엮인 빠른 템포의 노래, 손짓 하나와도 촘촘히 엮인 화려한 무대효과를 온전히 그의 몸으로 소화해야 했다. “하루 12시간 이상 연습해야 몸에서 뭔가를 끌어낼 수 있었다”는 그는 “잠들었다 새벽에도 깨서 중얼중얼거리며 한 장면씩 만들어 갔다”고 했다. 수백번 반복해서 입에 붙인 대사와 가사가 지금까지도 매일 몇 차례씩 바뀌기도 한다. 미국식 코미디를 좀더 우리 정서에 맞게 하기 위해 작은 뉘앙스라도 손질을 거듭하는 이유에서다. 그는 “전 세계 누가 봐도 이해할 수 있는 유머와 공감할 수 있는 명확한 메시지가 있기 때문에 최대한 관객들에게 와닿도록 전달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 중”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1997년 ‘그리스’ 공연할 때 새벽까지 땀 흘렸던 순간들이 떠오른다”면서 “물론 매 작품마다 많은 연습을 했지만 특히 이 작품은 어떻게든 표현하고 싶은 마음이 너무 커 혼신의 힘을 다했다”고 강조했다. 그런 시간을 감내한 지금은 “정말 재미있고 신나고 무대의 시간만 기다리고 있다”고도 했다. 분장한 자신의 모습에 화들짝 놀라고 가발 6개를 바꿔 쓰며 변화무쌍한 모습을 보여 줄 그가 이토록 강렬하게 객석에 전하고픈 이야기는 결국 삶과 죽음에 관한 것이다. 갑작스러운 사고로 유령이 된 부부가 집에 들어온 낯선 가족을 쫓아내기 위해 소환한 악동 유령 비틀쥬스, 98억년을 홀로 지낸 외로운 유령이 객석에 살고 죽는 것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대사와 노래가 순식간에 지나가지만 하나하나 마음에 꽂히실 거예요. ‘유령이나 나나 똑같네’라고 공감할 만큼 그 안에 인생의 정말 많은 과정과 정서들이 담겨 있거든요.” ‘그날들’, ‘프랑켄슈타인’, ‘벤허’ 등 많은 작품들의 처음을 함께한 그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찾아 관객들에게 보여 주는 게 저의 배우로서 가장 중요한 임무”라고 말했다. 비틀쥬스라는 새로운 이야기도 오래 전달하고 싶다면서 “60세에 이런 ‘저 세상 텐션’ 갖기 쉽진 않겠지만 한번 도전해 보고 싶다”며 활짝 웃었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기세등등 암릉에 안길쏘냐…찰박찰박 붉은해 품을쏘냐…곱디고운 쪽빛에 물들쏘냐

    기세등등 암릉에 안길쏘냐…찰박찰박 붉은해 품을쏘냐…곱디고운 쪽빛에 물들쏘냐

    하늘은 맑고 대기는 따스했다. 전남 진도의 관매도 가는 길. 바람은 다소 세찼지만 누구라도 기분이 좋아질 법한 날씨였다. 한데 진도항(옛 팽목항) 여객선 터미널의 매표원이 전한 말은 청천벽력이었다. 심드렁한 표정의 그는 메마른 목소리로 내일 날씨가 안 좋다고, 돌아오는 배가 뜨지 못할 수도 있다고 했다. 새벽부터 먼 길을 달려온 여행자로선 그야말로 ‘멘붕’의 순간이었다. 자연의 제약에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는 섬사람들의 애환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지금부터 전하려는 건 그날 진도의 남쪽에서 만난 별 같은 풍경들에 대한 이야기다. 비유하자면 ‘멘붕 끝에 낙이 온다’ 정도려나. 관매도와 아직 마주하지는 못했어도, 절대 꿩 대신 닭이 아니었다는 것만은 분명하게 말할 수 있다.●높이는 뒷동산, 난이도는 1000m급 ‘동석산’ 진도항 가는 길에 시선을 사로잡은 산이 있었다. 그 산은 해안가에서 흔히 보는 육산과 결이 달랐다. 보통의 산들은 바다와 만나면서 어딘가 유순하고 말랑말랑해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 산은 강경했다. 육지를 내달려 오던 그 기세 그대로 완강하게 서 있었다. 오르고 나서야 알았다. 그 산이 등산가들 사이에서 소문난 동석산(銅錫山·219m)이란 것을. 왜 동네 뒷산만큼 작은 산을 오르면서 오금이 저려야 했는지, 그리고 그게 그리 창피해할 일이 아니란 것도 나중에야 알게 됐다. 동석산은 진도 남쪽에 솟은 산이다. 높이는 낮지만 나라 안의 200m급 산 중에선 가장 빼어나다는 상찬을 받는다. 바닷가에 솟은 덕에 산정에서 굽어보는 다도해 풍경도 그만이다. 등산을 즐기는 이들이 오르기 힘든 산을 두고 자주 쓰는 표현들이 있다. 가장 흔한 건 “암릉 종합선물세트”일 터다. “산은 높이로 말하지 않는다”거나 “높이는 뒷동산급, 난이도는 1000m급”이란 표현도 종종 듣는다. 동석산은 이런 표현들이 적확하게 들어맞는 산이다. 사실 오르는 것 자체가 힘들지는 않다. 어느 고산준봉에 견줘도 뒤지지 않을 아찔한 스릴, 그로 인해 몸이 느끼는 ‘저세상 텐션’ 탓에 힘들게 느껴지는 것이지 싶다. 동석산 들머리는 세 곳이다. 남쪽의 종성교회와 천종사, 북쪽의 세방마을이다. 남쪽은 ‘흉악하기 짝이 없는 악산(岳山)’이고 북쪽은 상대적으로 완만한 육산이다. 일반적인 경우라면 완만한 곳을 선택하는 게 상식일 것이다. 하지만 이미 동석산의 남쪽을 ‘봐 버린’ 눈은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많은 이들이 들머리로 삼는 곳은 종성교회다. 예전엔 천종사 코스로 오르는 이들이 더 많았다고 한다. 그나마 등산로의 흔적이 있어서 상대적으로 안전했기 때문이다. 철제 난간, 등반 로프 등 각종 안전 설비가 마련된 요즘엔 바뀌었다. 오금 저리는 상황을 즐기려는 이들이 부러 종성교회 코스를 찾는다. 물론 안전 설비가 갖춰졌다 해도 방심은 금물이다. 한때 ‘목숨 걸고 오른다’고 했을 만큼 난코스였던 걸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특히 칼날능선(사실 칼보다는 두툼한 모양새가 작두에 더 가깝다) 같은 곳은 말 그대로 칼날처럼 날카로운 암릉 구간이어서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 강풍도 잦다. 조산운동 초기에 항아리처럼 둥글었을 바위가 칼날처럼 날렵하고 매끈한 모습이 된 건 십중팔구 풍화 때문이었을 것이다. 관매도에 들지 못한 이유를 다시 상기해 보시라. 걸핏하면 배가 끊기는 이유도 이 세찬 바람 때문이었다. ●급치산 오르니 다도해 경관 오롯이 내눈에 들머리의 교회도, 절집도 이름에 하나같이 ‘쇠북 종’(鍾)자가 들어간다. 그 이유는 산 중턱의 종성바위에 오르면 알게 된다. 종성바위는 바람이 지날 때면 종소리가 난다는 곳이다. 신라 때 한 승려가 지나는데 동석산 봉우리들이 일제히 종소리를 토해 냈다지. 그때부터 산 아래는 종성골이라 불렸고, 동쪽 직벽 아래에 1000개의 종을 뜻하는 ‘천종사’, 남쪽 바위 아래에는 ‘종성교회’가 들어서게 됐다고 한다. 정상까지 빠르게 오르려면 천종사 코스가 낫다. 동석산 가운데쯤에서 출발해 정상과 가깝다. 반면 산자락 초입의 암릉미를 감상하려면 갔던 길을 되짚어 와야 하는 단점이 있다. 동석산은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암릉이다. 어디서 출발하든 ‘워밍업’ 따위는 없고 곧바로 오르막이다. 3~4시간 소요되는 원점회귀가 일반적이지만 석적막산, 애기봉 등을 거쳐 세방마을로 내려서는 종주산행을 즐기는 이들도 있다. 이 경우 산행 시간은 5시간 이상으로 늘어난다. 동석산을 기준으로 동쪽과 서쪽에 진도의 명소들이 매달려 있다. 제때 제자리에 서려면 시간 안배를 잘해야 한다. 1박 2일 여정일 경우, 첫날 마지막 목적지는 당연히 세방낙조 전망대여야 한다. 여건만 맞는다면 일생에 두 번 보기 힘든 해넘이 풍경과 마주할 수 있다. 동석산 바로 옆은 급치산이다. 다도해 경관을 한눈에 품을 수 있는 곳이다. 급치산에도 낙조전망대가 있다. 찾는 사람이 거의 없어서 호젓한 것이 장점이다. 주변 의식할 필요 없이 마음껏 셀피 사진을 찍을 수 있다. 오르는 도로도 잘 닦여 있다. 한데 노을 풍경으로만 보자면 세방낙조나 동석산에 견주기는 어려워 보인다.●갯벌 따라 마음 적시는 해넘이 ‘세방낙조’ 세방낙조 전망대 주변은 ‘시닉(Scenic) 드라이브 코스’다. 해안도로를 따라 달리는 동안 차창 밖으로 줄곧 빼어난 풍경이 매달린다. 해넘이는 세방낙조 전망대에서 맞는다. 사위가 노을로 붉게 물들 때면 주차장과 도로가 차들로 북새통이다. 전망대 아랫마을에서 맞는 해넘이 장면은 좀더 서정적이다. 바닷물이 찰박대는 갯벌 너머로 붉디붉은 해가 넘어간다. 두 채의 펜션이 나란히 선 곳이 포인트다. 둘 다 사유지여서 꺼려지긴 하지만, 염치 불고하고 들어가야 한다. 민망한 시간은 짧고 남겨질 사진의 시간은 길다. 동석산에서 해안도로를 따라 10분 남짓 내려가면 팽목항(현 진도항)이 나온다. 대한민국 사람 누구에게나 가슴 한 켠에 상흔처럼 새겨졌을 지명이다. 팽목항 주변에 당시를 기억할 수 있는 공간들이 많다. 누구나 갖고 있을 먹먹한 아픔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차분하게 고백하고 가는 것이 좋겠다.●팽목항 상흔 지나면 ‘삼별초 항전’ 남도석성 팽목항에서 서망항을 지나면 곧 남도석성이다. 삼국시대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는 성이다. 고려 때 진도까지 밀려온 삼별초가 몽골군에 맞서 최후의 항전을 벌였던 곳이다. 남도석성 앞에 쌍홍교와 단홍교 등 두 개의 홍예교(무지개다리)가 있다. 편마암 판석을 겹쳐 세워 질박한 아름다움이 일품이다. 진도 일대에는 삼별초와 관련된 유적들이 많다. 남도석성, 용장산성 등이 대표적이다. 굴포리엔 이 포구에서 전사한 삼별초 장군 배중손의 사당이 조성됐고, 의신면엔 왕족 왕온을 모시던 궁녀들이 몸을 던졌다는 삼별초 궁녀둠벙이 정비돼 있다. 남도석성 바로 앞은 동령개 마을이다. 대단한 볼거리는 없지만 동령개 소공원, 해안가 숲 등에서 넋 놓고 쉬어갈 만하다. 동령개는 여느 갯마을과 달리 해안이 몽돌이다. 바닷물이 들고 날 때마다 나는 독특한 소리가 마음을 다독이고 가라앉혀 준다. 여귀산 돌탑길은 이름 그대로 여귀산 아래에 돌탑들을 세워 조성한 길이다. 안내판에 따르면 사이가 좋지 않았던 여귀산 남신과 여신 전설을 돌탑의 모티브로 삼았다고 한다. 돌탑 주변엔 시비도 세웠다. 이 지역 문인들이 쓴 창작시들이다. 돌탑길 아래에 탑립마을, 아리랑마을 등이 있다. 진도아리랑 가락을 보듯, 유연하게 굽이치는 마을길이 일품이다. 죽림리의 해안 풍경도 빼놓을 수 없다. 이 일대 바다는 물색이 아주 곱다. 연한 사파이어빛 바다와 갯벌이 잘 어우러져 있다. 죽림마을 앞 솔숲은 얼추 400년 역사가 담긴 방풍림이다. 낮은 돌담이 둘러친 마을 안길을 자박자박 걸어도 좋고, 솔숲에 앉아 쉬어 가도 좋겠다.의신면 도로변엔 ‘훈장님탑’이 있다. 이름 그대로 ‘서당 훈장님’들을 기리며 세운 탑이다. 공덕비도 여럿 세웠다. 의신면으로 ‘위리안치’됐던 한양 출신 훈장님도 있고, 출세길에 나서지 않고 고향에 남은 훈장님도 있다. 나라 안에 ‘사또님’ 공덕비 무리는 숱하게 봤어도 훈장님의 공덕을 칭송하는 탑과 비석 무리는 처음인 듯하다.●유배지서 웰빙 등산길로… ‘섬 속의 섬’ 접도 이제 접도를 말할 차례다. 진도 동남쪽 여정에서 긴 시간을 보낼 만한 곳이다. 접도는 섬 속의 섬이다. 진도와 접해 있다고 해서 접도다. 해안선 길이라야 12㎞ 정도에 불과한 작은 섬이다. 1989년에 접도대교가 놓이면서 진도와 연결됐다. 접도는 조선시대 대표적인 유배지 중 하나였다. ‘유배지 공원’ 안내판에 따르면 1703년 박필위를 시작으로 모두 21명이 유배를 왔다고 한다. 접도는 아담하고 예쁘다. 대표 명소는 ‘웰빙 등산로’다. 접도 최고봉인 남망산 일대의 숲과 해안을 아우르는 길이다. 들머리는 수품항과 여미주차장 등 두 곳이다. 여미주차장 코스가 비교적 짧지만, 그마저 최소 3시간은 잡아야 한다. 일반 여행객들이 준비 없이 나서기는 사실 쉽지 않은 거리다. 여기서 ‘꿀팁’ 하나. 쉽고 편하게 남망산 정상에 오르는 방법이 있다. 수품항 초입 언덕에서 오른쪽 남망산 방향으로 도로가 나 있다. 도로 중간쯤 여미재에 차를 대고 오르면 10분 만에 정상까지 오를 수 있다. ‘체력은 정력’이라는 ‘거창한’ 표지석이 세워져 있어 찾기는 어렵지 않다. 등산을 꺼리거나 시간이 없는 도시 여행자에게는 그야말로 ‘웰빙’ 등산로이지 싶다. 남망산은 밖에서 보면 별 특징이 없는 야산처럼 보인다. 한데 숲 안으로 들어서면 다양한 수종의 상록수림이 펼쳐진다. 정상은 쥐바위(159m)다. 표지석이 세워진 곳보다 맞은편 바위에서 보는 전망이 훨씬 좋다. 남망산 아래 수품항도 예쁘다. 항구 주변에 낚시 공원이 조성돼 가족들이 편히 낚시를 즐길 수 있다. 글 진도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여행수첩 -뜸부기탕은 진도의 독특한 먹거리 중 하나다. 해초인 뜸부기를 소갈비 등과 함께 끓여낸다. 읍내 신호등회관, 맛나식당 등에서 맛볼 수 있다. 소담은 수제 돈까스, 김치찌개 등을 맛깔스럽게 낸다. ‘신비의 바닷길’ 인근에 있다. 용궁관은 현지인들이 ‘강추’하는 중국집이다. 특히 홍합짬뽕은 앵두를 씹는 것처럼 차지고 포실한 홍합 맛이 일품이다. 양도 푸짐하고 재료도 신선하다. 세방낙조와 가까운 지산면 소재지에 있다. -세방낙조 주변에 펜션들이 많다. 다만 인근에 맛집들이 많지 않아 지산면이나 진도읍에서 먹고 들어가야 한다. 접도 쪽도 먹거리 사정은 좋지 않은 편이다. 접도 끝자락의 수품항에 작고 깔끔한 커피숍이 한 곳 있다.
  • 글로벌 CEO와 어깨 나란히...쿠팡 김범석이 포춘에서 밝힌 성장 비결은?

    글로벌 CEO와 어깨 나란히...쿠팡 김범석이 포춘에서 밝힌 성장 비결은?

    “쿠팡은 점진적인 방식이 아닌 기하급수적으로 고객의 경험을 개선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성공적인 비즈니스 성장을 이끌어 내고 있다.” 김범석 쿠팡 의장이 9일 ‘2021 포춘 글로벌 포럼’에서 쿠팡의 성장 비결을 이 같이 정의했다. 김 의장은 이날 포춘의 루신다 쉔 기자와의 대담을 통해 약 15분간 쿠팡의 ‘고객 중심 문화’를 집중적으로 소개했다.김 의장은 먼저 “쿠팡의 진화 과정을 알기 위해서는 먼저 고객들이 ‘쿠팡이 없이 어떻게 살았을까’라고 말하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쿠팡의 미션을 이해해야 한다”면서 “쿠팡은 설립 초기 그루폰과 같은 소셜커머스로 시작해 이미 수십억 달러의 매출을 기록하고 있었으나 우리 DNA에 새겨진 쿠팡의 미션에 대해 다시 한번 진지하게 고민하는 과정에서 아직은 고객에게 혁신적인 변화를 가져오지 못하고 있음을 깨닫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 같은 각성을 통해 풀필먼트 시스템, 라스트마일 배송 기술, 엔드투엔드 물류 네트워크를 실현하고 로켓 배송, 새벽 배송, 반품 서비스 등을 통해 완전히 새로운 고객 경험을 제공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고객들이 열광하는 쿠팡의 ‘새벽 배송’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는 “이커머스 분야의 전형적인 트레이드오프 요인인 상품 선택폭 확대와 배송 시간 단축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모두 잡은 성공적인 사례로 요약할 수 있다”고 소개했다. 코로나 19가 종식된 후 이커머스 판도가 어떻게 바뀔 것으로 보느냐는 관객의 질문에 대해서는 “이커머스 트렌드는 팬데믹이 종식된다 하더라도 성장을 이어갈 것”이라면서 “불편했던 과거의 쇼핑 경험으로 사람들은 되돌아가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미국의 종합경제지 포춘이 ‘리더십 개념의 재정립’을 주제로 주최한 이번 포럼은 김 의장 외 케빈 존슨 스타벅스 최고경영자(CEO), 데이비드 테일러 P&G회장, 브라이언 체스키 에어비앤비 창업자 겸 CEO 등이 참여했다. 명희진 기자 mhj46@seoul.co.kr
  • 이인영, 관광공사에 “금강산 관광 재개 역할하라…평화의 상징” [이슈픽]

    이인영, 관광공사에 “금강산 관광 재개 역할하라…평화의 상징” [이슈픽]

    이인영 “금강산 관광 재개 매우 중요”이인영 “한미정상회담 잘 마무리돼 남북관계서 우리 역할 확대 기대 가능”금강산 관광, 북한군 韓민간인 피격에 중단故박왕자씨 子 “제2피해자 없도록 약속받아야”이인영 통일부 장관은 9일 “금강산 관광은 남과 북을 연결하는 평화의 상징”이라며 사업자인 한국관광공사에 적극적인 역할을 해달라고 주문했다. 이 장관은 “금강산 관광 재개는 매우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금강산 관광은 2008년 금강산 관광지구 내에서 북한군의 총격으로 민간인 박왕자씨가 숨졌으나 북한이 남한 탓을 하며 사과는커녕 조사를 거부하면서 13년간 완전 중단된 상태다. “北 호응해온다면 남북교류 다시 속도”안영배 “금강산 관광 조기 안정화 보조” 이 장관은 이날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안영배 한국관광공사 사장과 만나 “한미정상회담이 잘 마무리되면서 남북관계에서 우리의 역할과 공간이 확대되는 상황을 기대할 수 있게 됐다”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북측이 호응해온다면 그간 멈췄던 남북교류와 평화의 발걸음이 다시 속도를 낼 수 있다”면서 “한국관광공사가 금강산 개별방문과 관광 재개 과정에서 통일부와 소통하며 적극적으로 역할 해주길 바란다”고 밝혔다. 이에 안 사장은 “남북 관광교류를 해야 하는 저희 입장에서 정부가 남북 교착상태를 풀기 위해 노력해주는 데 대단히 감사하다”면서 “금강산 관광이나 개별방문이 조기에 안정화되고 활발해지도록 차질없이 준비하고 보조를 맞추겠다”고 약속했다. 통일부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한미공동성명에서 남북 대화·관여·협력에 대해 지지를 표명하고 2018년 판문점 선언을 존중하기로 하면서 남북이 대화와 협력을 적극 추진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됐다고 판단하고 있다. 앞서 이 장관은 지난 1일과 4일에 각각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금강산 골프장 건설에 참여한 아난티 그룹의 이중명 회장 겸 대한골프협회 회장을 만나 향후 사업추진 방향에 대한 의견을 교환했다.2008년 북한군 피격에 민간인박왕자 피살로 금강산 관광 중단北, 南 탓하며 현재까지 사과 없어 금강산 관광 사업은 중단된지 올해로 13년째다. 2008년 7월 11일 새벽 해변 산책을 하던 한국 관광객 박왕자(당시 53세)씨가 등 뒤에서 쏜 북한군의 총격에 피살됐고 이후 남북간 금강산 관광은 곧바로 중단됐다. 친구들과 함께 2박 3일 여행을 왔던 박씨는 서울 노원구에 사는 평범한 전업주부였다. 북한은 박씨가 금강산 관광지구 내 규율을 어겼다며 남측의 책임으로 떠넘겼고 끝까지 사과하지 않았다. 북측의 민간인 총격과 조사 거부로 10년간 이어지던 햇볕정책도 사실상 끝이 났다. 금강산 관광은 전면 폐지됐고, 1년 반 뒤 북한의 폭침으로 장병 46명이 희생되는 천안함 사건까지 발생하면서 북한과 대부분의 교류를 끊는 ‘5·24 대북조치’가 단행됐다. 이후 2016년에는 개성공업지구까지 폐쇄되는 악화일로를 걸었다. 금강산관광은 1998년 6월 남북한이 금강산 관광‧개발 사업에 합의하고, 같은 해 11월 금강산 관광선인 금강호가 출항하면서 본격화됐다. 이후 2003년 9월부터는 육로를 이용한 금강산 관광이 허용됐다. 금강산 관광 중단으로 2008년 베이징올림픽 남북 공동 입장도 모두 무산됐다. 북한군의 피격으로 숨졌던 박왕자씨의 아들 방재정씨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안타까움을 토로하며 “규명되지 않은 무고한 국민의 죽음이 있었다. 본격적으로 교류가 재개되기 전에 정부가 민간인 피격 사건을 짚고는 넘어가 줬으면 한다”면서 “우리에게 사과나 배상을 하라는 게 아니라 앞으로 우리 국민 중 제2의 피해자가 나오지 않게 재발 방지 약속만큼은 필요하다”고 호소했다.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엄마가 ‘조카 물고문 살해‘ 범행도구 나뭇가지 직접 사서 전달…검찰,친모도 불구속 기소

    엄마가 ‘조카 물고문 살해‘ 범행도구 나뭇가지 직접 사서 전달…검찰,친모도 불구속 기소

    10살짜리 조카에게 귀신이 들렸다며 폭행하고 강제로 욕조 물에 집어넣어 사망케 한 이른바 ‘조카 물고문 살인’ 사건 피해아동의 엄마가 자신의 언니이자 사건 주범인 이모에게 범행도구를 직접 사서 전달한 것으로 확인됐다. 수원지검 여성아동범죄조사부(김원호 부장검사)는 9일 아동복지법 위반(아동학대 방조 및 유기·방임) 혐의로 친모 A(31)씨를 불구속기소 했다. A씨는 지난 1월 25일 오후 3시 40분쯤 언니 B(34·무속인)씨로부터 카카오톡 메시지를 통해 딸 C(10)양의 양쪽 눈에 멍이 든 사진을 전송받고도 아무런 조처를 하지 않은 혐의를 받고 있다. 이어 C양의 사망 전날인 2월 7일 오후 7시 40분쯤 B씨에게 카카오톡 메시지를 통해 “애가 귀신에게 빙의가 됐는지 확인해야 한다. 그러려면 복숭아 나뭇가지가 필요하다”는 취지의 말을 듣고 복숭아 나뭇가지 한 묶음을 사 전달한 혐의도 받는다. 당시 A씨는 B씨로부터 빙의와 관련한 유튜브 영상 링크도 전달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A씨는 그날 밤부터 새벽까지 3시간여 전화 통화 과정에서 B씨로부터 “파리채로 아이를 때렸다”는 등의 말을 들었지만, 오히려 C양과 전화를 바꿔 “이모 손을 닿으면 안 고쳐지는 것이 없다”고 다독인 것으로 파악됐다. A씨가 이런 말을 할 때 C양의 건강은 이미 크게 악화한 상태였다. 지난 8일 B씨 부부의 3차 공판 과정에서 공개된 범행 동영상을 보면,전화 통화 하루 뒤이자 사망 당일인 지난 2월 8일 오전 9시 30분쯤 C양은 왼팔을 아예 들지 못했고,오전 11시 2분에는 거실에서 몇 걸음을 떼지 못한 채 반려견집 울타리 쪽으로 넘어졌다. 이는 복숭아 나뭇가지 등을 이용한 폭행이 1월 말부터 계속된 데서 비롯된 것으로,C양은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C양은 이후 욕실로 끌려가 물고문 행위를 당한 끝에 숨졌다. A씨는 자신의 혐의에 관해 부인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검찰은 B씨의 진술과 카카오톡 메시지 등을 통해 A씨의 범행을 특정,이날 재판에 넘겼다. 검찰은 A씨 사건을 B씨 부부의 재판에 병합 신청할지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 신동원 기자 asadal@seoul.co.kr
  • 온 국민이 분노 중인데…공군 부사관, 술 취해 경찰관 폭행

    온 국민이 분노 중인데…공군 부사관, 술 취해 경찰관 폭행

    여중사의 성추행 피해를 무마하려 한 정황이 드러나 공군을 향한 사회적 공분이 거센 가운데 한 공군 부사관이 술에 취해 경찰관에 주먹을 휘두른 혐의로 붙잡혔다. 경기 수원중부경찰서는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A(34) 상사를 붙잡아 군 헌병대로 인계했다고 9일 밝혔다. A씨는 지난 4일 오후 11시쯤 술에 취한 채 수원 장안구의 한 길바닥에 쓰러져 있다가 행인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관이 귀가시키려 하자 욕설을 하고 주먹을 수차례 휘두른 혐의를 받고 있다. 폭행을 당한 경찰관은 크게 다치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입건 다음날인 5일 새벽 A씨를 군사경찰에 인계했다”고 말했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펜 대신 호미로 농촌 살리는 농사꾼 장관님

    펜 대신 호미로 농촌 살리는 농사꾼 장관님

    퇴임식 다음날 40년 만에 귀향노모 모시고 사는 게 가장 큰 낙 ‘1234’ 슬로건 의미 바꿔서 실행 국회의원 출마 권유 뿌리치고무너진 농촌 살리기에만 전념달라진 고향 보며 공직 자괴감 귀촌까지 지원해야 농촌 살아나귀향 꿈꾸는 400만 베이비부머지방 소멸 해결해 줄 수도 있어 ‘삼십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오니/알고 지내던 사람은 어디로 떠나고 살던 집은 무너져 온 마을이 황량하네/ 청산은 말이 없고 봄날은 저무는데/어디서 두견새 우는 소리 아득히 들려오네.’ 임진왜란 때 승병장으로 활약한 서산대사 휴정이 고향으로 돌아와 읊은 ‘환향’이란 한시다. 마음속에 간직했던 고향의 그리움을 물씬 드러내고 변해 버린 모습에 대한 안타까움을 담았다. 2016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에서 퇴임하자마자 고향인 경북 의성으로 귀향해 농사를 짓고 있는 이동필(66) 전 장관은 이 시를 즐겨 부른다. “2016년 9월 5일 퇴임식을 하고 바로 다음날 어머니가 계신 의성 단촌면으로 내려왔습니다. 어릴 적 할머니 손을 잡고 마실을 다녔던 바로 그곳이죠. 공부를 하겠다며 집을 등진 게 1970년대 말이었으니 40년 만의 귀향이었습니다. ‘평소에도 퇴임하면 바로 고향으로 돌아가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던 터라 아내도 별로 반대하진 않았어요. 다만 ‘무슨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꼭 이 저녁에 가야겠느냐’며 핀잔은 주더군요.” 지난 2일 의성에서 만난 이 전 장관은 머리에 하얀 서리가 잔뜩 내려 있었다. 장관 시절엔 염색을 하며 감췄던 흰머리지만 이제는 그냥 둔다. 5년 전엔 제법 덩치가 있는 편이었는데, 지금은 호리호리하단 표현이 어울린다. “한 14㎏ 정도 빠졌어요. 서울에 살 땐 매일 헬스장을 다녀도 그대로던 살이 여기 오니 6개월 만에 빠집디다.” 장관 시절 이 전 장관은 ‘이동필의 1234’를 슬로건으로 내세웠다. ‘(1)한 달에 (2)두 번 이상 현장을 찾아 (3)세 시간 이상 (4)사람들을 만나 소통하겠다’는 각오였다. 의성에도 ‘이동필의 1234’가 있다. 대신 의미는 ‘(1)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 하루 (2)두어 차례 밭에 나가 일하고 (3)삼시세끼 노모와 함께 밥 먹고 (4)사람들이 찾아오면 말동무나 하겠다’로 바뀌었다. “가장 큰 낙이라…. 어머니랑 같이 사는 거죠.” 여든 아홉의 노모를 모시고 있는 이 전 장관은 마당에 ‘애일당’(愛日堂)이란 이름의 정자를 하나 지었다. 정자라기보단 오두막이다. ‘오늘을 사랑하자. 오늘이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어머니와 행복하게 지내자’는 뜻에서 이렇게 이름 지었다고 한다. 애일당 옆엔 ‘사원재’(思源齊)라는 이름의 작은 사랑채도 하나 있다. ‘사람의 도리를 생각하는’ 공간이다. 보통 새벽 3시쯤 일어난다는 이 전 장관은 만물이 잠을 청하는 시각 이곳에서 동서고금의 서적을 탐독한다. ●귀향 2년 후 농촌 살리기 자문관으로 농식품부는 김현수 현 장관까지 65명의 장관을 배출했다. 가장 재임 기간이 길었던 장관이 61대였던 이 전 장관이다. 2013년 3월부터 3년 6개월간 농정(農政)을 책임졌다. 퇴임 후 좀더 ‘빛이 나는’ 자리를 맡아 달라는 요구가 많았을 법하다. 정치권에선 국회의원 출마를 권유하기도 했지만 이 전 장관은 모두 뿌리쳤다. “서울에서 공부하기 위해 집을 떠나면서 아버지한테 이렇게 말했어요. 농민이 밤낮없이 일하는 데도 가난하게 사는 이유를 알아보고 돌아오겠다고요. 아버지는 오래전 작고하셨지만 약속을 지키고 싶었습니다. 퇴임 당시 탄핵 정국으로 정부가 혼란스러웠던 것도 귀향 결심을 굳힌 계기죠. 제가 몸담았던 정부가 국민으로부터 외면당한 것에 대한 책임을 느끼고 제 스스로를 돌아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귀향한 지 2년 정도 지난 2019년 이 전 장관은 경북도 ‘농촌살리기 정책자문관’을 맡아 잊혀져 있던 그의 이름을 다시 알렸다. ‘장관→농부→5급 공무원(계약직)’으로 이어진 그의 행보는 화제를 낳기 충분했다. 이철우 경북지사가 ‘삼고초려’를 했다, 이 전 장관이 ‘백의종군을 했다’는 이야기가 쏟아졌다. 하지만 이 전 장관은 그런 근사한 스토리가 아니라며 손을 휘저었다. “일평생 꿈에 그리던 고향이 난개발로 일그러져 있고 양로원처럼 노인들만 남은 실정을 보면서 ‘나는 뭘 했나’라는 자괴감이 들었습니다. 그런 찰나 우연히 지나가다 들른 이 지사가 ‘뭐든지 자문해 달라. 바꿔 보겠다’고 제안해 맡게 된 것뿐이에요. 자문관으로 활동하면서 토론회는 12번, 현장은 50번 정도 찾았네요. 농촌 재생과 지역 청년 문제 해결을 위한 정책 포럼을 운영한 게 특히 기억에 남는 활동입니다.” 40년 전과 지금 마을 모습이 어떻게 다르냐고 물었다. 이 전 장관은 근처에 있는 학교 하나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제가 나온 단촌초등학교예요. 그땐 한 학년에 학생이 200명이 넘었죠. 지금은 전 학년을 통틀어 20여명 정도 된다더군요. 지난 40년간 사람이 이렇게 없어졌어요. 고향이 사라지고 있는 겁니다.” 이 전 장관 말처럼 1965년 21만명을 넘었던 의성 인구는 올 4월 말 기준 5만 1380명에 불과하다. 더 큰 문제는 지금 이 순간도 계속 인구가 줄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8월 말엔 5만 1940명이었으니 8개월 새 560명 감소했다. 이 전 장관은 이러한 ‘지방 소멸’은 지역 젊은이들의 현지 정착과 결국 귀농·귀촌으로 풀어야 하는데, 지금의 정책이 귀농 지원에만 집중돼 있어 효과를 내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귀농과 귀촌은 의미적으로 차이가 있다. 귀농은 농사를 짓는 게 주된 목적인 반면 귀촌은 농사가 아닌 전원 생활 등 다른 이유로 이주하는 걸 말한다. 귀농보다는 귀촌 인구가 월등히 많다. 2019년의 경우 귀농은 1만 1422가구, 1만 6181명에 그친 반면 귀촌은 31만 7660가구, 44만 4464명이었다. 이 전 장관은 “귀촌인은 사실상 제 발로 농촌을 찾아오는 사람들인데, 이들을 안착시키려는 정책적 노력이 미흡하다”며 “범정부 차원에서 귀촌인 지원을 늘리고 세제 혜택 같은 인센티브를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책상서 못 느낀 농민 애환 직접 느껴 “중국 도연명의 한시 ‘귀원전거’(歸園田居·고향으로 돌아와 살다)에 이런 귀절이 있죠. ‘새장 속 새가 옛 숲을 그리워하고, 연못의 물고기가 놀던 웅덩이를 그리워한다.’ 지방 출신 베이비부머 400만명이 수도권에 살고 있는데, 이들 중 상당수는 귀향을 꿈꾸고 있습니다. 이들을 고향으로 돌려보낼 수 있다면 ‘지방 소멸’은 해결됩니다.” 서울대와 미국 미주리대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한 이 전 장관은 젊은 시절 농가의 소득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을 찾는 데 몰두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서 30년 이상 연구원으로 활동하면서 ‘농업이 2·3차 산업과 융합해야 한다’고 일찌감치 강조했다. 지금이야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지만 당시엔 신선한 접근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실학자’로 부르기도 했다. 이 전 장관은 다산 정약용 선생을 이상으로 삼는다. 실학자 이 전 장관의 농사짓기는 어떨까. “말로만 하던 농사가 쉽지 않더군요. 이 마을에서 제가 제일 못 지을 겁니다.” 이 전 장관 얼굴에 살짝 미소가 지나갔다. “씨를 뿌리고 싹이 올라오는 걸 기다릴 때면 누군가를 사랑하고 배려하고 보살피는 것 같아요. 농업이란 게 누군가를 먹여 살리는 것이잖아요.” 이 전 장관은 밭과 논을 합쳐 3000평 정도 땅에 농사를 짓고 있다. 콩을 심고 복숭아와 자두를 딴다. 정원수도 기르고 있다. “입학생이 없어 애를 태우는 초등학교, 승객 부족으로 해마다 줄어드는 대중교통, 전기요금을 아끼려 마을회관에 모여 지내는 노인들, 외식을 하거나 영화라도 보려면 인근 도시까지 나가야 하는 사람들…. 학자나 장관을 할 때는 알 수 없었던 농민들의 애환을 여기서 직접 느끼고 있습니다. 늙고 지친 농업·농촌의 절박한 현실을 보면서 제가 그동안 뭘 했는지 부끄러울 때가 많습니다. 지방 소멸을 막고 농촌을 살리는 공부를 하는 현대판 ‘서당’이라도 만들어 젊은이들에게 저의 지식과 경험을 나누는 것. 이게 남은 인생의 목표입니다.” 의성 임주형 기자 hermes@seoul.co.kr ■ 이동필 前장관 프로필 ▲1955년 경북 의성 ▲영남대-서울대 대학원-미국 미주리대 대학원 ▲1994년 국무총리실 농업정책심의회 실무위원 ▲1998~2000년 대통령 직속 규제개혁위원회 상근 전문위원 ▲2006~12년 농림수산식품부 규제심사위원장 농촌희망찾기현장포럼 대표 ▲2010~11년 농촌희망찾기현장포럼 대표 ▲2011~13년 한국농촌경제연구원장 ▲2013~16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 술 취해 편의점 직원 등에 행패…출소 직후 또 구속

    술 취해 편의점 직원 등에 행패…출소 직후 또 구속

    부산에서 동네 주민을 상대로 행패를 부려 실형을 산 50대가 출소 직후 또다시 행패를 부리다 구속됐다. 부산경찰청은 협박,업무방해 등 혐의로 A씨가 구속 송치됐다고 8일 밝혔다. A씨는 지난 3월 26일 새벽 사상구 한 편의점에서 직원을 향해 욕설을 하고,의자를 던지는 등 난동을 부린 혐의를 받는다. 당시 편의점 안에서 마스크를 쓰지 않은 채 술을 마신 A씨는 직원이 제지하자 행패를 부린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에 따르면 A씨가 범행을 벌인 날은 출소한 직후인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지난해초에도 술에 취해 동네노인들에게 욕설과 협박을 해 노인복지법 위반,업무방해 혐의로 구속,징역 1년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부산김정한 기자 jhkim@seoul.co.kr
  • 동거녀가 미워한 7세 딸 숨져…살해 혐의 아빠, 무죄로 뒤집혔다

    동거녀가 미워한 7세 딸 숨져…살해 혐의 아빠, 무죄로 뒤집혔다

    1심 징역 22년형→대법원 무죄 확정2심 “살해까지 나아갈 동기 없다” 판단 동거녀가 미워한다는 이유로 자신의 7세 친딸을 살해한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22년형을 선고받았다가 2심에서 무죄 판정을 받은 중국인 남성에 대해 무죄가 확정됐다. 대법원 3부(주심 안철상 대법관)는 살인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장모(42)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8일 밝혔다. 장씨는 2019년 8월 서울 강서구의 한 호텔 욕실에서 자신의 딸(당시 7세)을 목 졸라 사망하게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장씨는 2017년 전 부인과 이혼했고, 두 달 뒤부터 여자친구인 A씨와 중국에서 동거해왔다. A씨는 장씨와 사귀면서 장씨의 딸을 만나면 장씨에게 안 좋은 일이 생긴다고 여겼고 장씨의 딸을 ‘마귀’라고 부르기도 했다. 특히 A씨는 장씨와 동거 중 장씨의 아이를 2번 유산했는데, 그 이유도 장씨의 딸 때문이라고 생각하며 장씨의 딸을 극도로 증오하기에 이르렀다. 검찰은 A씨가 극단적 선택까지 시도하자 결국 장씨가 자신의 딸을 살해하기로 마음먹고, 2019년 자신의 딸과 함께 한국에 입국한 뒤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봤다. 장씨는 2019년 8월 7일 딸과 함께 한강유람선을 탄 뒤 밤 11시 58분 호텔로 들어갔고 8일 새벽 0시 42분쯤 맥주를 들고 방을 나왔다. 장씨는 흡연구역으로 이동해 전화 통화를 하거나 담배를 피운 다음 휴대전화를 보다가 1시 40분쯤 객실로 들어갔다. 그 사이 방에 출입한 사람은 없었다. 장씨는 “외출 뒤 돌아와 보니 딸이 욕조 안에 떠 있었다”며 살인 혐의를 극구 부인했다. 한국어를 전혀 못 하는 자신이 중국이 아닌 한국에서, 그것도 다른 사람이 출입한 흔적이 없어 범인으로 의심받기 쉬운 호텔 객실에서 딸을 살해할 이유도 없다고 주장했다. 반면 검찰은 메신저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A씨가 “강변에 던져 죽여버려라”라는 말을 하고, 장씨가 “한강에서 딸을 밀어버릴 수도 있다. 중요한 몇 군데는 카메라가 있다”, “오늘 저녁 호텔 도착 전에 필히 성공한다”라는 대화를 나눈 것을 근거로 살인을 계획했다고 보고 장씨를 재판에 넘겼다. 1심은 장씨가 A씨와 피해자를 욕조에서 살해하는 방안에 대해 의논한 적이 있었고, 부검을 담당한 법의관이 익사의 가능성이 고려된다며 타인의 개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한 점 등을 들어 장씨의 살인 혐의를 유죄로 판단했다. 1심 재판부는 “피해자 앞에 펼쳐졌을 무한한 삶의 가능성이 송두리째 상실됐다”며 징역 22년을 선고했다. 반면 2심은 1심의 판단을 완전히 뒤집고 장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장씨가 A씨와 딸의 살해를 공모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상당한 의심이 들기는 한다”면서도 “피해자가 욕조 안에서 미끄러져 쓰러지면서 욕조 물에 코와 입이 잠기고, 피해자의 목이 접혀 경정맥(목에 분포하는 정맥)이 막혔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또 장씨가 딸과 함께 자주 여행을 다니는 등 유대관계가 좋았고, 전 부인도 장씨가 딸을 정성스레 돌봤으며 양육하는 데 모든 노력을 다했다고 진술한 점, 동거녀가 딸을 싫어한다고 하더라도 딸이 전 부인과 살고 있어 면접·교섭 횟수를 줄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살해까지 나아갈 동기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봤다. “장씨는 계속해서 벽을 치고 크게 울면서 통곡했다. 통상적으로 사고를 당한 딸을 봤을 때 부모들이 괴로워하는 모습처럼 보였다”는 구급대원의 진술과 전 부인의 반대에도 딸의 부검을 주장한 점도 고려됐다. 검사는 상고했지만 대법원은 무죄를 선고한 2심 판결을 확정했다. 최선을 기자 csunell@seoul.co.kr
  • 대구 경찰관, 수배자 검거하러 용인 갔다가 음주운전 사고

    대구 경찰관, 수배자 검거하러 용인 갔다가 음주운전 사고

    새벽에 동료 태운 채 터널 벽 충돌사고 대구 지역 경찰관이 수배자를 찾으러 간 경기도에서 음주운전 사고를 냈다. 8일 오전 3시 20분쯤 경기 용인 처인구 해곡동 곱등고개 터널에서 대구 모 경찰서 소속 A 경사가 몰던 카니발 승용차가 벽에 충돌했다. 이 사고로 A 경사와 동료 B 경장이 다쳐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사고 당시 운전을 한 A 경사의 혈중알코올농도는 0.102%로 면허취소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두 사람은 수배자를 검거하러 갔다가 밤에 숙소에서 나와 술을 마신 것으로 경찰은 보고 있다. 두 사람이 사고를 낸 시간이 자정을 훌쩍 넘긴 것으로 볼 때 술을 마신 경위에 따라 방역수칙 위반 가능성도 있다. 또 동석했던 B 경장의 경우 음주운전 방조 혐의도 적용될 수 있다. 경찰 관계자는 “현재 사고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며 “조사 후 두 사람에 대해 징계 등 처분을 할 방침이다”고 말했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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