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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유에 관한 오해 풀기

    이근 교수는 인터뷰 중 이런 사례를 거론했다.“동물은 새끼를 낳으면 어미가 혀로 온 몸을 핥아줍니다.새끼의 몸에 붙은 숱한 세균을 핥아먹는 거지요.어미는 그렇게 세균을 먹어 제 몸에서 항체를 만들고,그 항체는 젖과 함께 새끼 몸에 들어가 생명을 지키는 면역력으로 작용하게 되지요.그게 모유,바로 엄마젖입니다.” “더러는 분유 회사들이 머리를 좋게 하는 DHA를 넣었다고 선전하는데,그거 효과 없어요.벌써 연구도 진행중이고요.그런데도 우리 젊은 엄마들,너무 생각없이 분유를 먹이는 게 정말 안타까워요.모성의 본질은 희생인데,분유 먹이는 엄마들 사고방식 뻔하잖아요?” 그러면서 그는 시작 모를 터무니없는 오해가 넘친다며 일일이 열거했다. 먼저,분유의 질이 엄마젖에 못지않다는 생각에 쐐기를 박았다.“아직 누구도 엄마젖의 성분을 다 알아내지 못했고,앞으로도 알아내지 못할 겁니다.그런데 분유가 엄마젖과 비슷하다니요?” 그는 ‘아기가 젖을 빠는 것은 본능이지만,젖을 먹이는 것은 학습의 결과’라면서 덧붙였다. “그런데 지금 젊은 엄마들,대부분 분유 세대잖아요.그래서 아기에게 젖을 꼭 먹여야겠다는 각성이 없는 경우가 많아요.배우지 않았으니 못 가르치는 거죠.” 그는 이어 젖을 먹이면 산모의 체형이 나빠진다거나,젖꼭지가 낮거나 함몰돼 먹일 수 없다는 사람들도 있는데,전혀 그렇지 않다고 설명했다.체형으로 말하자면 ‘좋아진다.’는 게 정답이며,낮거나 함몰된 젖꼭지도 엄마의 생각일 뿐 아기에게는 전혀 문제될 게 없다고 했다.묽은 젖이나 출산 후에도 젖이 붓지 않는 경우도 오히려 젖을 빨림으로써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문득 이런 위안이 가슴에 번졌다.“그래,나도 엄마젖을 먹고 자랐지.” 심재억기자˝
  • YMCA의 산증인 ‘오리선생’ 전택부씨

    마태복음 6장에 나오는 ‘너희는 먼저 그 나라와 그의 의(義)를 구하라.’라는 구절이 제 삶의 원칙이었습니다. 그에 따라 하늘 나라를 위해서는 YMCA 일을 했고 땅의 나라를 위해서는 ‘한글 운동’을 했습니다.” 한국기독교청년회(YMCA)의 산 증인 전택부(全澤鳧·89).이름 뒷글자인 ‘오리 부(鳧)’자 덕에 ‘오리 선생’으로 불리며 70년대 좌담회와 80년대 ‘사랑방 중계’ 프로그램 등에서 구수한 입담과 재치있는 유머 감각으로 넉넉한 웃음을 안겨주었던 서울 YMCA명예총무가 최근 자신의 삶을 돌이켜 보는 수필선집 ‘자화상을 그리듯이’(범우사 펴냄)를 완간했다.서울 광진구 자택에서 만난 전택부 선생은 건강한 모습으로 무욕(無慾)의 삶을 살고 있었다. “7년 전 주위에서 자서전을 내라고 권유했는데 뭐 내세울 만한 것도 없어 반대했는데 하도 극성스럽게 말을 해 자서전은 뭐하고 해서 그 동안 낸 글모음집을 내기로 했어.그 속에 내 삶이 들어 있거든.” 60세까지 발표한 글을 모은 1권과 YMCA를 떠난 뒤 낸 수필을 담은 2권에 이어 이번에 낸 3권은 근래에 발표한 수필로서 자신의 삶을 돌이켜 보는 장면이 많이 나온다. ●YMCA 숨결 불어넣은 ‘영원한 Y맨’ 함남 문천에서 1915년 태어난 그의 삶은 YMCA와 뗄래야 뗄 수가 없다.고 장준하의 부탁으로 사상계 초대 주간을 맡은 뒤 57년 YMCA에 들어가 이듬해 사무국장,64∼75년 서울 YMCA총무를 역임했다.그 기간 1938년에 일본에 의해 해산된 뒤 유명무실해진 한국 YMCA에 숨결을 불어 넣었다. 78년 10여년 동안의 자료를 일일이 모아 ‘한국기독교청년회운동사’(1903∼1945)를 펴냈고 6·25 때 불타버린 서울시 종로구 YMCA회관 건물을 10여년에 걸쳐 다시 지었다. 또 지난해 ‘Y새끼다리들이여’를 펴내 서울YMCA 개혁운동에 길을 터주며 ‘영원한 Y맨’이라는 얘기를 듣고 있다. “1848년 시작한 YMCA운동의 기본정신은 정의와 자유야.산업혁명 뒤 영국에 몰려든 노동자들이 비참한 삶에서 헤어나려 자발적으로 주창한 이 운동은 한국에서는 독립운동이라는 특수성까지 맞물려 젊은 내 마음을 사로잡았어.” 2001년 쓰러진 뒤 거동은 불편하지만 기억력은 비상했다.삶의 주요한 장면을 들려줄 때 연도까지 정확히 짚어냈다.아마도 유머를 강조하며 실천해온 것이 기억력을 유지해온 비결인 듯 싶다. “YMCA운동의 핵심은 교파와 인종을 초월하는 통합정신과 유머를 강조하는 방법론이야.사회 정의를 실천하되 유머스럽게 하자는 거지.그런 의미에서 YMCA는 한국 유머의 발상지야.” 그의 유머감각은 많은 일화를 남겼다.‘사랑방 중계’패널 시절 초대손님으로 나온 중광스님에게 “앞으로 당신을 중광 목사라 부를 테니 저를 오리 스님으로 불러 달라.”고 해 방청객을 웃긴 일은 유명하다.또 2003년 낸 책 ‘Y새끼다리여‘의 ‘새끼다리’도 YMCA간사를 뜻하는 영어 ‘Secretary’의 음을 빌려 만들 정도로 감각이 탁월하다. ●한글사랑 온몸으로 솔선수범 오리 선생의 삶의 다른 축은 ‘한글 사랑’.함흥 영생학교 시절 민족주의자인 조선어선생 조정우에게 한글의 과학성과 편리함에 감화를 받은 뒤 한글에 대한 애정은 평생 이어졌다.일본 유학길에 조선어학회가 발간한 잡지 ‘한글’ 창간호부터 싣고 갔고 창씨 개명마저 거부했다. 해방후에는 초등학교 선생들에게 한글을 가르쳤고 54년 이승만 대통령이 ‘한글 간소화’를 추진하자 사상계에 특집기사를 실어 강력하게 항의해 철회시키기도 했다. “일본 신학교 본과에 다니던 40년 한글을 못쓰게 하자 이에 항의,학교를 자퇴하고 조선총독을 죽이고 나도 죽자고 마음먹기도 했어.그게 뜻대로 되겠어? 화병으로 건강이 악화돼 고향으로 돌아왔지.” 차분한 목소리가 한글날 대목에 이르자 언성이 높아졌다.“글이 없는 민족이나,있어도 소중히 여기지 않는 민족은 망해.만주족을 봐.유엔에서도 인정한 보배 같은 한글을 무시하고 국경일에서 빼는 얼빠진 나라가 어딨어?” 2000년 ‘한글날 국경일 제정 범국민추진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동분서주하던 도중 2001년 김대중 대통령에게 ‘한글날을 살려달라.’는 내용의 글을 전하고 오다 쓰러져 입원하기도 했다. ●“온통 돈주고 해처먹는 소리만 들려” 그의 삶은 ‘한 우물’로 정의될 수 있다.“평생 야인으로 살면서도 정권과 명예 앞에 굽실거리지 않았어.YMCA를 떠난 뒤 퇴직금으로 빚갚고 나니 생활에 쪼들릴 때 이름만 걸치면 월급을 주겠다는 제의도 거부했어.”라는 그가 바라보는 현실은 당연히 어둡고 답답하기만 하다. “온통 검은 돈 주고 돈 받아먹은 소리밖에 안들려.지조나 신의도 없이 이해관계에 따라 이 당 저 당 떠다니는 정치가들을 보면 개탄스러워.” 아흔을 바라보는 나이가 무색할 만큼 ‘서울 YMCA인물 70인전’을 펴낼 준비에 분주하다.그의 ‘YMCA 사랑’도 한결같았다.“YMCA운동만 잘해도 나라가 잘돼.” 이종수기자 vielee@ ■걸어온 길 △1975년 서울YMCA 명예총무 △1981년 외솔회 이사 △1986년 한국상록회 고문·인간상록수 △1987년 한글문화단체 모두모임 고문 △1999년 Hulbert 이사 기념사업회 명예회장 △1999년 성재 이동휘선생 기념사업회 이사 △2000년 한글날 국경일 제정 범국민추진위원회 위원장 △2002년 한글인터넷주소 추진 총연합회 의장˝
  • [눈에띄네 이얼굴] ‘목포는 항구다’ 박철민‘

    주연 뺨치는 또 한명의 조연배우? 지난달 20일 개봉한 ‘목포는 항구다’(제작 기획시대)의 인기 비결 가운데 하나는 주연인 차인표와 조재현이 걸쭉하게 뽑아내는 남도 사투리 속에 망가지며 보여주는 코믹 연기다.그런데 이들 못지않은 코믹 연기를 보여주는 조연배우가 있다.탁월한 개인기를 자랑하면서 영화를 빛내는 주인공은 박철민(37).눈썰미 있는 관객이라면 그가 SBS 드라마 ‘햇빛 쏟아지다’의 류승범의 동료인 ‘웃기는 경찰’임을 대번에 알아차릴 것이다.혹은 ‘춘향뎐’의 방자를 기억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목포는‘에서 그의 역은 형사 조재현의 군기를 잡고 구박하는 가오리파의 ‘새끼 두목’.발군의 입담과 끼있는 연기로 연신 눈길을 끈다.특히 주먹으로 잽을 날리며 “취취취,이것은 입으로 내는 소리가 아니여.”“이런 아름다운 새끼를 봤나…내가 너의 노래 때문에 나의 과거를 반성해야 쓰겄냐?” 등의 포복절도할 대사를 터뜨릴 때면 눈물마저 난다.하회탈을 연상시키는 미소가 특징인 박철민의 끼있는 연기는 이미 연극계에서 검증받은 바 있다.‘오봉산 불지르다’‘기호 0번 대한민국 김철식’‘비언소’ 등의 작품에서 코미디 배우로서의 자질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80년 ‘조용히 살고 싶다’로 영화에 얼굴을 내민 뒤 ‘부활의 노래’‘이재수의 난’‘박봉곤 가출사건’ 등에 출연한 그의 개인기에 ‘목포는‘ 홈페이지의 네티즌들도 열띤 반응을 보인다.“그 분 너무 웃겨서 죽는 줄 알았어요.”(‘입에서나’)“가오리 아저씨가 젤로 웃겨요.”(김경순) 그같은 반응은 연극에서 영화로 뛰어들어 개성강한 연기자로 인정받은 이문식·공형진·성지루 등과 같은 반열의 배우가 될 것임을 예감케 한다. 이종수기자 vielee@˝
  • [성인우화] 공작새 이야기

    “야,너 진짜 아름답다!” “굉장하다! 정말 예뻐!” 누구든 꼬리를 활짝 편 공작의 모습을 보면,이렇게 감탄하곤 했지.그러면 대개의 공작들은 부끄러운 듯이 눈을 깜빡였어.그러고는 속으로 중얼거렸지. ‘아,내가 정말 아름답긴 아름다운 모양이지?’ 그런데 말이야,문제는 그런 입에 발린(아,물론 그 말이 진심에서 우러나온 경우도 드물게 있기는 하지) 소리를 듣고,이 공작들이 푼수없이 아무데서나 꽁지깃을 활짝 편다는 데 있는 거야. 이러니,배가 고픈 여우가 눈을 게슴츠레 뜨면서 “아아,이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인가!”라고 찬사를 늘어놓으면 영락없이 당하기 마련이었지.말하나 마나 꼬리를 쫙 편 상태에서는 전혀 도망갈 수가 없었으니까.너무도 쉽게 칭찬 한마디와 목숨을 맞바꾸는 셈이었지.그래서 공작의 숫자는 하루가 다르게 줄어들었어.무섭게 줄었지. 그런데 그중에 단 하나,조금은 남들과 다른 수공작이 있었어.그는 아주 똘똘했지.우선,‘아름답다’는 감탄사에 크게 감격하지는 않았던 거야.얼빠진 다른 공작들과는 달리,그런 칭찬을 들어도 그냥 담담하게 웃고는 그만이었어. 진심에서 우러나온 칭찬이든,아니면 희떠운 말장난이든,이 수공작에게는 커다란 영향을 주지 못했지.칭찬 한마디에 온몸의 긴장을 풀어버리고,시도 때도 없이 꽁지깃을 펼쳐드는 그런 멍청한 짓은 하지 않았기 때문에,이 수공작은 누구도 잡을 수가 없었어. 그런데,이 수공작은 어떻게 이렇게 남달리 똘똘하게 굴 수 있게 된 것일까? 물론 가장 큰 이유는 이 수공작이 기본적으로 머리가 좋고 생각이 깊다는 데 있겠지.그렇지만 어린 시절의 어느 날,우연히 듣게 된 늑대들의 수군거림도 이 수공작에게 아주 커다란 영향을 준 것이 사실이야. 그날은 햇살이 아주 맑았어.어미는 먹이를 구하러 둥지를 비운 상태였고,어린 수공작만 둥지 안 양지쪽에서 까무룩 졸고 있을 때였지.둥지 아래 아주 가까운 어딘가에서,숨을 죽이며 킬킬거리는 늑대들의 웃음소리가 들렸어.비릿한 피냄새가 확 났지. 어린 수공작은 본능적으로 몸을 움츠렸지.얼른 날갯죽지 사이에 부리를 묻고 숨소리를 죽였어.그럴 필요까지는 없었는데도 말이야. 약간은 거친 듯한 늑대들의 목소리가 웅얼웅얼 계속되었지. “멍청하기는! 아,저희들의 꽁지깃이 예쁘면 얼마나 예뻐!” “힛힛! 누가 아니래? 남들보다 색이 조금 곱다고 한들 그게 무슨 대단한 일이며,그 반대라고 한들 그게 또 무슨 대수라고….” “아,누가 아니래? 낄낄.예쁘다는 한마디에 흥분하는 꼴이라니….” “아,그럼! 안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이렇게 입안에서 살살 녹는 이런 고기를 맛보겠어? 친애하는 늑대 여러분,아,안 그래?” “히히히.” “킬킬킬.” 뭐가 그리 즐거운지 늑대들은 연방 무언가를 먹어가며 웃음을 그치지 못했지. ‘도대체 누가 그렇게 우스운 짓을 하고 돌아다니다 덜컥 잡혔을까?’ 어린 수공작은 용기를 내서 조금씩 조금씩 몸을 움직였어.둥지 가장자리까지 겨우겨우 몸을 옮긴 어린 수공작은,살그머니 고개를 빼내고 아래를 내려다보았지.그 순간,수공작은 자기도 모르게 짧고 낮은 신음소리를 냈어.먹이.그래.그 늑대들이 먹고 있는 먹이 말이야…. 그것은 바로 어느 가엾은 푼수 공작이었던 거야.어린 수공작은 덜덜 떨며 먹이 한쪽에 아직도 붙어 있는 빛깔 고운 깃털 하나를 정신없이 바라보았지. 이제까지 늑대들이 낄낄거리며 비웃었던 멍청이들이 바로 자기와 같은 족속의 공작이었던 것을 확실히 알게 된 후,어린 수공작은 그때 그 늑대들의 웃음소리를 평생 잊지 않기로 했지.절대로. 그리고 또 하나,그 수공작을 버티게 해준 것은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이었어. ‘내가 정말 예쁜가?’ ‘내 꽁지깃이 아직도 아름다운가?’ 아무래도 불안해서 남들의 입을 통해서 스스로의 아름다움을 확인해야만 안심이 되는 다른 공작들과는 달리,이 수공작은 조바심치지 않았거든.자신은 참 고운 빛깔의 꽁지깃을 가진,아름다운 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던 거야.드러내서 말하지는 않았지만.그래서 값싼 칭찬에 흔들리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이지. 그래서 수공작은 그 아름다운 꽁지깃을 좀처럼 펴려고 들지 않았지.펼칠 필요가 없었던 거야.그러나 수공작이 자라서 ‘어른’이 되었을 때 딱 한번,아주 마음껏 그 아름다운 꽁지깃을 펼쳐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지. 언제겠어? 그래 맞아.바로 사랑하는 암공작을 만났을 때,암공작이 그 아름다운 모습을 보고 싶어했기 때문이야.그래서 수공작은,글자 그대로 눈부시게 아름다운 꽁지깃을 활짝 폈고,그래서 그들은 결혼을 했지.아주 행복하게 살았어. 그럼 요즈음은 그 수공작이 꽁지깃을 전혀 펴지 않고 살겠다고? 아이,아니,아니야.이젠 그 문제의 꽁지깃을 썩 잘 이용하는 방법도 생각해 냈는걸! 그게 뭐냐 하면…. 사실은 말야,아빠 노릇,남편 노릇을 할 때 사용한단다.새끼와 암공작이 위험해졌을 때,수공작은 자신의 꽁지깃을 펴는 거야.그래서 적의 시선을 자신에게 돌리고….그래,그 방법으로 가족들을 지키지. 공작을 노리는 사나운 여러 동물들은,이 수공작 역시 아무 때나 ‘날 좀 봐주세요‘라고 푼수를 떠는 똑같은 공작인 줄 알고 깜빡 속지.그럴 수밖에 없잖아? 이 세상에는 아직도 똘똘이 공작보다 푼수 공작이 훨씬 더 많으니까.아니,대부분이 푼수 공작이니까.거의 대부분이. 파랑새어린이 ‘똘똘이 공작우화’시리즈에서 ●작가의 말 온 나라에서 입 달린 사람들은 모두 얼짱,몸짱에 대해 한마디씩 합니다.정말 아름다운 꽁지깃을 가졌지만 사실은 그것 때문에 잘 날지도,그렇다고 잘 달리지도 못할 공작을 보면서 ‘아름다움’이 대체 무얼까 생각합니다.그 효용에 대해서도. 글 이윤희 그림 배혜영˝
  • 허브향 진하게 맡으려면

    봄을 찾아 나섰다.봄의 향과 맛,그리고 색깔이 있는 곳으로.종잡을 수 없는 날씨 속에서도 화사한 봄의 향연이 있는 곳은 그리 멀지 않았다.봄의 향은 뇌리 깊은 곳까지 허브향이 밀려드는 충북 청원 ‘상수 허브랜드’에서 맡았다.이어 달려간 곳은 충남 논산의 딸기밭.새콤달콤한 무공해 딸기 맛은 묵은 음식 맛에 지친 혀를 자극할 만한 봄의 맛으로 부족함이 없었다.마지막 행선지는 충북 진천의 장미화훼단지.장미가 가득한 온실엔 벌써 봄이 발갛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봄의 향-상수허브랜드 허브랜드 실내 정원은 향기의 천국이다.문을 열자마자 라벤더,로즈마리 등 550여종의 허브가 뿜는 향이 몸속 깊이 스며든다.사람들은 허브 하나하나를 만져보거나 코를 갖다대고 향기를 맡는다. 상수허브랜드 대표 이상수(51)씨가 새끼 손톱만한 이파리를 하나 따서 건네준다.씹어보니 단 맛이 입속 가득히 퍼진다. 설탕보다 당도가 300배나 높다는 스테비아 잎이란다.이렇게 당도가 높아도 칼로리는 거의 없어 다이어트 식품업체들의 관심이 많다고. 작은 이파리와 꽃잎에 불과하지만 허브는 각기 독특한 향을 지니고 있다.보랏빛의 헬리오프로프 꽃잎에선 초콜릿 냄새가,타임 이파리에선 진한 레몬향이 난다. 가장 많이 알려진 로즈마리나 라벤더도 종류에 따라 각기 조금씩 다른 향을 지니고 있다. “허브는 태고적부터 인류를 지켜준 귀중한 식물이었어요.탁월한 약효로 인해 유럽에선 지금도 가정 상비약으로 몇가지 허브를 지니고 있는 가정이 많습니다.뜨거운 물에 라벤더 몇 잎만 띄워 드셔보세요.한결 기분이 상쾌해지고 정신이 맑아집니다.캐모마일이나 타임은 감기예방에 아주 좋아요.” 이씨의 허브 예찬이 끝없이 이어진다.‘허브 박사’로 통하는 이사장은 1994년 청원군 부용면 외천리에 국내 처음으로 허브농원을 세웠다.유럽에선 이미 1940년대에,일본에선 80년대 초에 허브농원이 생겨 향기 여행이 대중화됐으니 우리로선 상당히 늦은 셈. 이미 ‘상수 수박’이라는 씨없는 수박을 대량 생산해 유명했던 이씨는 88올림픽을 계기로 허브를 키우게 됐다.당시 그가 야채를 대주던 호텔에서 외국 손님들이 ‘한국엔 왜 허브가 들어간 음식이 없느냐?’란 물음에 허브의 가능성을 믿고 과감히 투자에 나섰던 것.개인돈 6000여만원을 들여 라벤더,로즈마리 등 각종 허브를 국내 처음으로 수입했다. 당시 뿌리에 붙어 있는 흙을 모두 제거해야만 통관이 됐는데,이 때문에 대부분의 허브가 말라죽었다고 한다. 그때 겨우 목숨을 건진 허브가 살아남아 오늘날 한국 허브산업의 뿌리가 됐다. 허브 관람료는 성인 3000원,초·중·고생 2000원.허브랜드 옆 레스토랑인 ‘허브의성’에선 허브꽃밥 및 샐러드를 맛볼 수 있다.(043)277-6633.www.sangsooherb.com. ●봄의 맛-논산 무공해 딸기 “이렇게 신선하고 맛있는 딸기는 처음이에요.직접 따서 씻지도 않고 먹을 수 있다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요.” 경기 용인시 수지에서 왔다는 예솔이(초등3)는 자기 주먹만한 딸기를 따 먹느라고 신이 났다.밭주인 아저씨가 준 비닐팩에 딸기를 따 담느라고 신이 난 것은 예솔이 친구들도 마찬가지.아이 엄마들 또한 빠른 손놀림으로 딸기를 따 담으랴,아이들에게 덩굴을 다치지 않게 조심시키랴 역시 분주하다. 논산은 요즘 딸기 천지다.논,밭 여기저기를 하얗게 덮고 있는 것은 대부분 딸기를 재배하는 비닐하우스라고 보면 된다.논산 딸기투어는 지난해 가장 히트했던 국내 여행상품중 하나. 아이들과 함께 빨갛게 익은 딸기를 직접 따 먹는 즐거움에 무공해 농산물을 싸게 살 수 있는 이점까지 더해 사람들이 전국에서 몰렸다. 올핸 ‘천적 딸기’로 더 큰 인기를 모으고 있다.지난해까지는 재배 초기에 약간의 농약을 쳤으나 올해부터는 해충을 잡아먹는 곤충을 이용하는 천적농법으로 딸기를 키우기 때문. 논산시청 농정과 공성운 계장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농약을 한 방울도 사용하지 않는 천적 농법 현장을 직접 보고 매우 신기해 한다.”며 “농가들의 반응도 좋아 천적이 달리는 형편”이라고 말했다. 딸기 체험에 참가하려면 논산시청이 운영하는 인터넷사이트 ‘그린투어’(www.greentour.net)에 예약하면 된다.담당 공무원이 직접 가이드로 나선다.체험료(1인당 6000원)만 농가에 직접 지불하면 밭에 들어가 마음껏 딸기를 따 먹을 수 있다.집으로 가져오려면 1팩(800g)에 6000원을 별도로 내야 한다.그린투어에는 딸기 뿐만 아니라 방울토마토(5000원),국궁(5000) 체험,문화재 답사(입장료)도 포함돼 있다. ●봄의 색깔-진천 장미화훼단지 “뭐 볼 게 있다고요.입학철에 맞춰 재배했기 때문에 꽃이 아직 덜피었는데.” 충북 진천군 이월면 삼룡리에서 장미를 재배하고 있는 정규식(35)씨는 꽃이 만개하지 않은 게 자기 탓인 양 미안해했다.1200여평의 온실엔 장미 봉오리들이 봉곳봉곳 솟고 있다.활짝 꽃을 피우진 않았지만,오히려 이른봄의 이미지에 더 어울린다. 진천 이월면 일대는 우리나라의 대표적 장미 재배단지.70여 농가가 각각 평균 1000여평의 온실에서 장미를 키운다.품종은 샤샤,비탈,사피아 등 대부분 반쯤 핀 상태에서 잘라서 파는 ‘절화 장미류’.정원 등에서 자라는 나무장미나 덩굴장미와 구분된다.아직은 관광객을 받을 만한 준비가 미흡하다.하지만 미리 연락을 하고 가면 언제든지 온실을 개방한다고 한다.총무로 일하고 있는 원예연구회 회원들은 어떻게 하면 장미온실을 관광상품화할 수 있을지 고민중이다.난방비,품종 로열티 등 비용이 워낙 많이 들어 농사짓기가 어렵다며 도시인들이 좀더 꽃을 사랑해줄 것을 호소한다. “꽃은 뇌기능을 활성화시켜 정신병 치료에도 도움을 준다고 해요.스트레스를 줄이는 효과가 과학적으로 증명되기도 했고요.집에서 장미 한 송이를 식탁에 꽃아두는 여유가 있으면 좋겠습니다.”온실 관람 문의,이월 원예연구회(016-402-8034). ●상수허브랜드의 허브 꽃밥 미각에 시각을 한꺼번에 만족시킬 만한 상수허브랜드의 별미음식.레스토랑인 ‘허브의성’에서 맛볼 수 있다. 로즈마리 새순을 섞어 지은 밥에 스위트바이올렛,레몬타임,차빌,세이지 등 13가지 허브 싹과 꽃잎을 얹어 내놓는다.여기에 허브의 맛과 향을 낸 고추장,가늘게 찢은 돼지 등심,호두 잣 등 각종 견과류를 넣고 젓가락으로 살살 비벼 먹는다. 또 마리노라벤더향이 깃든 라벤더된장국,민트와 스테비아로 향을 낸 동치미가 함께 나온다.색깔이 너무 고울 뿐만 아니라 진한 허브향 때문에 선뜻 젓가락을 대기 어렵다. 이상수 사장이 알려주는 꽃밥 맛있게 먹는 법.밥을 비비기 전 밥 위에 놓인 꽃잎을 젓가락으로 하나씩 집어 허브 동치미에 옮긴다.잘 비빈 밥을 숫가락으로 한 술 떠 그 위에 모양과 색깔이 그대로 살아 있는 꽃잎을 하나씩 얹어 먹는다. 입안 가득한 허브향과,돈 등심의 쫄깃함,견과류의 고소함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순식간에 그릇을 비우게 된다. 허브 종류와 양,기타 내용물에 따라 꽃밥(6000원),미트꽃밥(8000원),스트로베리 꽃밥(1만 2000원)이 있다.신선한 허브와 과일,샐러드가 만난 클레오파트라샐러드(1만 5000원)도 맛볼 수 있다.(043)277-6633. ●논산 안천매운탕의 붕어찜 논산시 부적면 탑정호(논산저수지) 주변에 가면 매운탕집이 많다.이중 ‘안천매운탕’은 붕어찜 잘하기로 유명한 집.평일에도 점심시간엔 자리를 잡기 어려울 만큼 손님이 많다. 주인 김평중씨는 부친에 이어 탑정호에서 물고기를 잡아 생계를 잇던 어부 출신.그래서 각종 민물고기 요리엔 예전부터 일가견이 있었다고 한다. 김씨는 반드시 저수지에서 잡힌 붕어만 쓴다.손님이 많다 보니 주변 어부들도 김씨에게 가면 항상 붕어를 팔 수 있다는 믿음 때문에 웬만해선 재료가 떨어지지 않는다고.무 시래기는 가을에 무우청을 대량으로 수집해 가마솥에 푹 삶아 말렸다가 쓴다.이렇게 하면 생 무우청을 그냥 말린 것보다 시래기가 훨씬 부드럽다. 붕어찜 조리는 비교적 간단한 편.시래기를 냄비 바닥에 깔고 칼집을 낸 붕어를 넣는다.통마늘,생강 등 각종 양념과 미나리 등 몇가지 야채를 얹은 뒤 물을 자작하게 붓고 조린다. 붕어 육질이 매우 부드럽고,비린내가 전혀 없다. 붕어튀김도 있다.붕어를 쪼개 튀김가루를 입혀 바싹 튀기는데,뼈째 먹을 수 있다.붕어찜 1만 8000원(2인 냄비),붕어튀김 1만원(1접시). 식당 유리 밖으로 펼쳐진 탑정호 풍광도 볼거리.해질녘 작은 목선을 타고 그물을 내려 붕어를 잡는 모습이 한폭의 그림처럼 아름답다.(041)732-7796. 글 논산·청원 임창용기자 sdragon@ ■이렇게 가세요 ●상수허브랜드 경부고속도로 청원IC에서 빠지자마자 좌회전해 70m 정도 가면 오른쪽으로 상수허브랜드가 보임.입구 표지판이 잘 보이지 않아 지나치기 쉬우므로 주의가 필요하다. ●논산 딸기밭 논산시 전역에 있으므로 약속된 장소로 가서 논산시청 담당공무원의 가이드를 받는 게 편하다.논산시 관촉사 주차장에 집합한다.천안∼논산 고속도로 서논산IC에서 빠져 논산시내를 지나면 금방 나온다. ●진천 이월화훼단지 중부고속도로 진천IC에서 빠져 우회전해 21번 도로를 타고 가다가 굴다리를 지나 좌회전해 2번 도로를 타고 10분 정도 가면 이월면 삼용리 일대에 닿는다. ■여기서 하룻밤 묵을까 ●숙박 논산에선 시청에서 안내하는 농가 민박이 묵을 만하다.깔끔하면서도 시골의 정취를 느낄 수 있다.숙박료 2만원.농가에서 직접 키운 야채와 삼겹살 등으로 차린 시골밥상(5000원)도 맛이 좋다.논산시청 농정과(041-730-1385). 청원에선 내수읍 초정리의 스파텔(043-210-7000)이 묵을 만하다.아토피성 피부염 치료에 특효가 있다는 초정리 광천수로 목욕을 할 수 있는 곳이다.입욕료 4500원,숙박료 8만원.˝
  • [성인우화] 코알라는 너무너무/글 이윤희 그림 민경순

    ‘너무너무’라는 말을 너무너무 잘 쓰는 엄마 코알라가 살고 있었어요.얼마나 그 말을 자주 하는지 열번쯤,아니 한 스무번쯤 ‘너무너무’라는 말을 써야 하루가 지나가곤 할 정도였다니까요. 그런데 재미있는 건,그 말을 쓸 때는 반드시 아기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라는 점이에요,반드시요. 엄마 코알라의 그런 말 버릇은 사실 아기를 가졌을 때부터 시작되었어요. “있잖아요,우리 아기는 너무너무 점잖은 것 같아요.뱃속에서 바스락대서 엄마를 놀라게 하는 다른 동물의 꼬마들하고는 정말,너무너무 다르다니까요.” 그 말을 듣고 있던 빨간캥거루는 픽,웃음이 나왔어요. ‘당연하지.낳아 놓아봤자 땅콩 알만한데 뱃속에 있을 때는 얼마나 작겠어?그 콩알보다 작은 것이 쿵쿵 뛴들,발을 구르고 고함을 친다 한들 그걸 어떻게 알겠어?’ 그러나 빨간캥거루는 차마 그 말을 할 수가 없었어요.엄마 코알라는 얼굴까지 붉히면서 정말 열심히 얘기했거든요. 한 달쯤 되자 엄마 코알라는 기다리던 아기를 낳았어요. 아기 코알라의 얼굴을 보자마자 엄마 코알라는 지나가던 가시도마뱀을 불러 세우고는 말했지요. “내 아이라서 하는 말이 아니라,이앤 정말 너무너무 귀엽게 생겼어요.안 그래요?” “아,예,예에.그,그렇군요.” 기가 막힌 가시도마뱀은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였어요.이제 막 이 세상에 태어난 새끼를 두고,더구나 얼굴이 너무 작아서 또렷하게 보이지도 않는 새끼를 두고 호들갑을 떠는 엄마 코알라를 보니 정말 어이가 없었으니까요. 그렇지만 엄마 코알라는 아기 코알라를 열심히 들여다보며 중얼거렸어요. “호호호.너는 어쩜 이렇게 매력적으로 생겼니? 단추 모양의 너무너무 귀여운 눈하며,에나멜 가죽으로 만들어 놓은 듯한 너무너무 귀여운 코,그리고 네 털가죽은 정말 정말 부드러울 거야.” 가시도마뱀은 그런 엄마코알라를 멍하니 바라보다가,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제 갈 길을 갔지요. 얼마 뒤 엄마 코알라는 하루종일 물 속에서 사냥을 하는 오리너구리 부자를 보고 쯧쯧 혀를 찼어요. “아휴,저 오리너구리 아빠는 너무 하는 것 같네요.어린것이 뭘 얼마나 잡는다고 저 차가운 물에 데리고 들어가서 사냥을 시키지요? 애처로워서 못 보겠네,정말!” 엄마 코알라는 정말 불쌍해서 못 견디겠다는 듯 말꼬리까지 바르르 떨었지요.그러고는 덧붙였어요. “우리 애 아빠 같으면 어림없는 일이에요.아무렴,그렇고 말고요.우리들은 이 애를 너무,너무 사랑하거든요.” 엄마 코알라는 아기주머니에서 늘어지게 잠만 자고 있는 새끼를 들여다보며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어요. 잠시 후,엄마 코알라는 아기 코알라의 귀에 속삭였어요. “아가야,일어나야지! 자,밥 먹자!” 엄마 코알라는 미리 잘게 씹어둔 유칼립투스 나무 잎사귀를 아기 코알라의 입안에 넣어주었지요. “아직은 넌 이렇게 부드러운 음식만 먹어야 해.체하면 큰일 나거든.그치,아가?” 다시 몇 달이 지났어요. 새끼 코알라는 이제 많이 자랐어요.더 이상 아기주머니에서 살 수가 없어진 새끼 코알라는 밖으로 나와 엄마 등에 업혀서 살고 있었지요. “아니,이애는 왜 아직도 엄마 꽁무니에 매달려 사나요? 다 컸으면 이제 슬슬 저 혼자 살 준비를 시작해야지.” 비단천막새가 입바른 소리를 했지요. “뭐라고요? 다 크다니 그게 무슨 소리예요? 당신 눈에는 이 조그만 아이가 다 큰 걸 로 보여요? 그리고 저 혼자 놔두라니,그러다가 너무너무 귀한 우리 아이에게 사고라도 나면 당신이 책임 질 거예요? 아,책임 질거냐고요?” 엄마 코알라는 푸르르 화를 내며 삿대질까지 해댔어요.깜짝 놀란 비단천막새는 도망치듯 멀리로 날아가버렸지요. 며칠뒤 엄마 코알라는 먹이를 찾고 있는 바늘두더지를 보고는 깔깔거리며 말했어요. “호호,정말 우리 꼬마는 입이 너무너무 고급이라니까요.아 글쎄 알맞게 자란 유칼립투스 나뭇잎이 아니면 손도 대려고 하지 않지 뭐예요.누굴 닮아서 그렇게 입맛이 뛰어난지 몰라!” 그러고는 입술을 비쭉이며 바늘두더지를 힐끗 내려다보았어요. “아무려면 누구처럼 풀밭이든 진흙바닥이든 가리지 않고 킁킁거리며 코를 디밀까,창피하게….” 너무너무 아기를 사랑한 엄마 코알라의 보살핌 덕에 아기 코알라는 정말 유칼리나뭇잎 외에는 어떤 것도 입에 대지 않았어요.심지어는 물도 마시지 않았거든요.믿어져요? 코알라는 원주민의 말로 ‘마시지 않는다’라는 뜻이라는 것이? 끝없이 돌보아주고,무조건 편들어 주고….아무리 봐도 코알라는 정말 너무너무 대단한 엄마예요.너·무·너·무 말이예요! ●작가의 말 코알라가 ‘물도 마시지 않는다’라는 뜻이라는 자료를 읽으면서 우리 아이들을 생각했습니다.정말 귀하고 귀한 아이들이지만,아니 이렇게 귀하고 소중한 우리 아이들이기 때문에,내가 겪은 세상보다 더 넓은 세상을 겪게 하고,내가 만난 사람보다 더 다양한 사람을 만나게 해 성장을 도와야 하지 않을까요? 입학식 철이 되었습니다.아이들을 내 손에서 떼어내는 연습을 할 때가 된 듯합니다.˝
  • [길섶에서]‘보리섬’/심재억 생활레저부 차장

    산밭에서 보리를 베시던 할머니가 휘휘 머릿수건을 벗어 저으며 멀찌감치 일꾼들을 물립니다.“오늘은 그만 하자.”시며 멍석 서너 장만큼 남은 보리밭 뙈기를 뒤로 하고 발길을 돌립니다.밭머리에서 주섬주섬 새참 그릇을 챙기던 할머니는 “왜 보리를 베다 마느냐.”며 눈만 말똥거리는 코흘리개 손자에게 이르십니다.“꿩이란 눔이 보리밭 가운데에다 새낄 쳐놨어.네댓새 후면 새끼가 자라 둥질 비울 게야.남지기는 그 때 거둬야 쓰겄다.” 할머니 소맷자락을 잡고 구불구불 밭둑을 따라 걷던 그 즈음이 다시 생각납니다.돌아보면 어질어질 더운 김 오르는 산밭에 그 ‘보리섬’만 뎅그렇게 남아 있었고,화들짝 놀란 꿩은 가슴 쓸어내리듯 성긴 울음을 울고 있었습니다.이렇듯 우리는 나보다 나 아닌 것을 먼저 생각하는 배려의 삶을 살았습니다. 새삼,사전에도 없는 옛날의 ‘보리섬’을 말하는 까닭은,죽이지 않으면 죽을 것처럼 눈에 쌍심지 돋우고 허구한 날 대거리를 일삼는 세상과,그런 세상을 이끄는 요즘 정치인들,한번쯤 이런 상생의 내림도 생각해 보라고 말하고 싶어섭니다. 심재억 생활레저부 차장 jeshim@˝
  • 어린이대공원 호랑이 풍년

    서울 광진구 능동 어린이대공원 ‘맹수 나라’에 경사가 났다. 한 쌍의 벵골산 호랑이 부부가 18개월이라는 짧은 기간에 새끼를 11마리나 출산해 국내에서는 드문 진기록을 세웠기 때문이다. 호랑이뿐 아니라 맹수들은 보통 새끼를 낳아도 출산의 고통 때문에 어미가 물어뜯어 죽이거나 성장과정에서 체력이 떨어지는 문제점 등으로 자연사하는 일이 종종 발생한다.이런 탓에 동물원측은 태어난 지 보름정도를 넘겨 공개하는 게 관례다.따라서 실제로 출산한 새끼는 발표보다 더 많을 수도 있다. 지난 8일 능동 어린이대공원 열대동물관에서는 경남 마산시 돝섬유원지 동물원 출신인 수컷 ‘대두’와 경기도 용인시 에버랜드에서 상경한 암컷 ‘건이’ 부부가 4남매(암컷 1마리,수컷 3마리)를 낳아 인공포육을 무사히 끝냈다.아기 호랑이들은 현재 몸무게가 1.5㎏으로 하루 5차례 우유를 먹으며 건강하게 자라고 있다. 공원측은 아기 호랑이 오누이가 재롱부리는 모습을 22일부터 동물원 열대동물관 2층에서 일반에 공개한다. 다섯살배기 동갑인 이들 호랑이 부부는 2002년 9월 처음으로 3마리를 낳은 이후 지난해 6월에도 4마리를 낳아 지금까지 3차례 출산으로 모두 11마리의 2세를 배출했다. 호랑이 임신기간이 약 4개월(112일)인 점을 감안하면 같은 기간동안 2차례 임신에 최대 8마리를 출산하는 게 보통이어서 이번의 경우는 국내에서 매우 보기드문 사례다. 송한수기자 onekor@˝
  • [이 주일의 어린이 책] 초등학교 입학해 겪는 에피소드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부모는 걱정이 많다.혹여 학교 가기 싫다고 투정을 부리지는 않을지,같은 반 친구들과 사이좋게 어울릴 수 있을지,학교 수업은 잘 따라갈지 …. 이런저런 고민끝에 다른 아이들보다 한해 일찍 학교에 보내기도 하고,반대로 한해 늦게 보내는 방법을 택하기도 한다. ‘소피가 학교가는 날’은 작지만 야무진 여자 아이 소피가 초등학교에 입학해서 겪는 여러가지 에피소드를 아기자기하게 담은 책이다.농장주인이 꿈인 소피에게 학교는 두렵고 낯선 곳.더욱이 늘 입던 셔츠와 면바지 대신 주름치마와 카디건을 입어야 한다는 것도 불만이다.하지만 학교에 가면 농장주인이 되는 수업을 받을 수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감 하나로 마침내 학교로 향한다. 소피의 캐릭터는 여느 여자아이와는 다르다.갈래머리에 예쁜 치마를 입고 공주처럼 앉아 있는 도온과 달리 소피는 드레스보다 청바지를 즐겨입고,인형놀이보다 벌레잡기를 더 좋아하는,자연을 닮은 건강하고 씩씩한 아이로 그려진다.농장주인이 되고 싶은 꿈을 일찍부터 갖고,그 꿈을 향해 학교에서든 집에서든 노력하는 소피의 모습은 절로 미소를 머금게 한다. 소피는 고양이를 싫어하는 부모님을 설득해 ‘깜돌이’를 키우게 된다.살찐 수컷으로만 알고 있던 깜돌이가 어느날 새끼 고양이를 낳자 소피는 깜짝 놀란다.농부가 되려는 소피나 겉보기에 수컷 같은 깜돌이는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교훈을 일러준다. 입학식에 가기 전 아이와 함께 읽으면 좋을 책.지은이 딕 킹 스미스는 영화 ‘꼬마돼지 베이브’의 원작인 ‘양치기 돼지’의 작가이기도 하다.총 6권으로 구성된 ‘소피의 성장동화’시리즈의 두번째 이야기. 초등학교 저학년용.6000원. 이순녀기자 coral@˝
  • [성인우화] 외로운 두더지

    두더지는 혼자였어.주위에는 아무도 없었지.기억도 가물가물한 아주 오래 전에,두더지도 낯선 동물과 맞닥뜨린 적이 있기는 했었어.하지만…. 맨 처음에 만난 동물은 토끼였지.토끼는 아무 스스럼없이 두더지에게 깡충깡충 뛰어 왔어.그리고는 불쑥 앞발을 내밀었지. “만나서 반갑다.우리 친구 할래?” 그러나 두더지는 얼른 뒤로 물러났어. “넌 나랑 너무 많이 다르게 생겼어.몸은 너무 하얗고,눈알은 또 너무 빨갛잖아!” 토끼는 무안했어.그래서 말없이 숲 속 저 멀리로 사라져버렸지.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찌르륵찌르륵 멧새 소리가 아주 가까이에서 들렸지. “아,참 고운 목소리야! 어디서 나는 소리지?” 두더지는 갈참나무 가지에 앉아서 꽁지를 달싹이고 있는 멧새를 발견했어. ‘저런 새와 친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늘 고운 노래를 들을 수도 있고 저 먼 세상 얘기도 해 줄 텐데….’ 두더지는 가슴이 벅차올랐어.그렇지만 다음 순간 중얼거렸지. “치,저 새는 나를 분명히 좋아하지 않을 거야.난 노래도 못하고 날 줄도 모르잖아? 어쩌면 날 멍청이라고 생각할지도 몰라!” 두더지는 공연히 돌멩이를 걷어찼어.그 바람에 멧새는 날아가 버리고 말았지.쓸쓸해진 두더지는 갑자기 맥이 탁 풀리면서 온 몸에 기운이 하나도 없었어. “아,배고파! 지렁이 녀석들은 다 어디 갔어?” 두더지는 먹이를 찾기 위해 땅바닥에 고개를 킁킁거렸어.그때 멧돼지가 나타나 뿔을 내밀었지.뿔에 걸려있던 통통한 지렁이가 흔들거렸어. “야,이거 너 먹을래?” 두더지는 멧돼지를 뚫어져라 쳐다보았지. “넌 참,친절하구나.그렇지만 왜지? 어째서 내게 따뜻하게 구는 거야? 대체 무슨 꿍꿍이가 있는 거냐구?” 기가 막혔어.멧돼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눈만 꿈벅거렸지. 그 다음에 만난 동물은 고슴…,그래 고슴도치라고 했지.온몸을 뾰족한 침으로 둘러 쓴 그 동물은,보기보다 무척 싹싹했어. “나랑 같이 놀자.난 참 심심해.” 고슴도치는 한발 바짝 다가섰어. “왜 이래?” 두더지는 손사래를 치며 뒤로 풀쩍 물러났지. “너랑 안놀아.네 가시에 찔리면 어떻게 해?” 고슴도치가 원래 다정한 성품이라든가,침을 창처럼 세우는 경우는 공격을 당할 때뿐이라는 것을,두더지는 알 수가 없었던 거야.알려고 하지도 않았고. 고슴도치를 그렇게 보내고 나서 두더지는 오래도록 무릎에 얼굴을 파묻고 앉아 있었어.그런데 그때 어디선가 재잘거리는 밝은 목소리가 들렸지.두더지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지. “안녕하세요!” “안녕!” “아저씨 안녕!” 꼬마 땃쥐들이었어.여섯 마리나 되는 꼬마 땃쥐들이 엄마 땃쥐의 허리에 한 줄로 줄줄이 매달린 채 저마다 반갑게 손을 흔들며 소리친 거야.이렇게 밝고,쾌활하고,거리낌없는 목소리를 들어본 것이 얼마 만인지! “으응,그,그래…” 엉거주춤 땃쥐 가족의 인사를 받은 두더지는 허둥대기 시작했어.이 반가운 마음을 무슨 말로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거든.망설이던 두더지는 기껏 이렇게 물었어. “너희들은 그렇게 희한한 꼴로 어딜 가는 거냐?” 사실,앞선 녀석의 허리 언저리를 꼭 물고 한 줄로 졸졸 움직이는 땃쥐 가족의 모습은 조금 우습기도 하지.하지만 그렇다고 해도,희한한 꼴이라니! 아니나 다를까,멋쩍어진 꼬마 땃쥐들은 공연히 찍찍 수선을 떨고 엄마 땃쥐는 샐쭉 삐쳐버렸어. ‘무례한 두더지 같으니라구! ’ 엄마 땃쥐는 콧등을 움찔거리며 흥,콧방귀를 뀌었지.그리고는 찬바람 소리가 나게 휙,돌아섰어.엄마 등에 줄줄이 매달려있던 새끼들이 으악,으악,소리를 질러댔지.땃쥐 가족은 두더지가 자신의 잘못을 깨닫기도 전에 바람과 함께 사라져버렸어. 밤이 되었지.두더지는 땅바닥에 누워 하늘을 보았지.하늘엔 별이 가득했어. ‘아,나는 혼자야!’ 두더지는 이렇게 중얼거리며 눈을 감았지.도무지 잠이 오지 않았어.날이 밝으려면 아직도 멀었고.두더지는 부스스 자리에서 일어났어.외로움을 잊으려면 차라리 몸이라도 바삐 움직이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지.그래서 두더지는 밤새 일을 하기로 했어.느릿느릿 지렁이를 잡기 시작했지. 한 마리,두 마리,세 마리…. 두더지는 굴을 파고 지렁이를 차곡차곡 쌓아 놓았어. 삼십마리,사십마리,오십마리…. 이제는 정말 아무도 두더지에게 말을 걸어주지 않았어.두더지는 점점 더 외로움을 탔지.몰래 땅을 파고 들어가 혼자 웅크리고 있기도 하고,눈이 침침해지도록 밤마다 울기도 하면서. 지금도 두더지는 여전히 그렇게 살고 있어.아무도 없는 땅속에서 하루종일 애꿎은 지렁이만 잡아대면서. 파랑새 어린이의 ‘외톨이 두더지’에서 ●작가의 말 이렇게 지렁이를 잡아다 쌓아놓곤 하는 두더지가 꽤 많다고 합니다.그 자료를 읽으면서 저축을 하고 미래에 대비해야 한다는 바람직한(?) 교훈 대신,외로움을 잊기 위해 일벌레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떠올리는 것은,아무래도 제가 친구와 사귀는데 서툰 두더지와 더 많이 닮았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 [10일 TV 하이라이트]

    ●생로병사의 비밀(오후 10시) 흔히 이는 나이가 들면 빠지는 것이라 생각하지만,이는 죽어서도 남을 만큼 수명이 길다.구강건강의 중요성은 그동안 끊임없이 강조됐지만,우리 국민의 90%는 여전히 치과질환으로 고통받고 있다.잘못된 생활습관으로 늘어나고 있는 치과질환의 원인을 밝힌다. ●성녀와 마녀(오전 9시) 병원에서 기억상실을 회복하기 위한 최면 치료를 받은 국주는 물에 빠져서 죽을 뻔한 기억이 살아나자 혼란스러워 한다.한편 하란이 집을 나온 것을 알게 된 세준은 하란에게 수영과 헤어질 결심을 했냐고 묻는다.조금 더 기다리겠다는 하란에게 세준도 하란을 기다리겠다고 말한다. ●과학과 미래(오전 8시30분) 지구의 인구는 60억명.그 많은 사람들 가운데 같은 목소리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단 한 쌍도 없다.좋은 목소리를 타고난 성우나 가수가 있는 반면,타고난 음치도 있다.저마다 다른 목소리는 그 사람의 성격이나 기분을 드러내기도 한다.목소리 속의 과학을 살펴본다. ●자연다큐멘터리(오후 10시) 로키산맥은 겨울은 춥고 여름은 짧다.변덕스러운 겨울의 횡포 때문에 봄은 늦게 온다.로키산맥과 주변 초원에 사는 동물들의 봄맞이 풍경을 새끼를 낳은 늑대와 들소의 이야기를 통해 살펴본다.들소의 새끼는 40㎏이나 나간다고 한다.방울뱀은 왜 큰 먹이감을 기피하는지도 확인해본다. ●실제상황(오후 10시50분) 인적 드문 곳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두 여자.개업식부터 이어진 인연으로 친하게 지내던 손님이 어느날 새벽녘까지 술을 마시다 갑자기 강도로 돌변한다.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살아온 두 여자.그날 새벽에 그 카페에선 무슨 일이 있었는지 현장속으로 들어가본다. ●왕의 여자(오후 9시55분) 조정신료들은 인목대비 문제를 놓고 팽팽히 맞선다.정인홍은 보위를 탐한 인목대비를 폐위할 것을 청한다.대세가 정인홍 쪽으로 기울자 인목대비는 영창대군을 살리고자 머리카락을 잘라 중전 유씨부인에게 보낸다.영창대군은 조정신료들의 뜻에 떠밀려 인목대비와 떨어져 홀로 거처한다. ●인간극장(오후 8시50분) 원룸에서 네 식구가 생활을 하다보니 불편한 점이 많다.상희는 공부할 때마다 귀마개를 하고,부부는 조금이라도 소리를 안내려고 안간힘을 쓴다.한편 포장마차촌이 철거된다는 소식에 종열씨는 새로운 일거리를 찾아나선다.어느날 계정씨의 부모님이 연락도 없이 포장마차를 찾아온다.˝
  • 전역 앞둔 한미연합사 스티브 딸프 중령

    “10·26 박정희 암살 사건은 제게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사고 소식을 들었을 때 우리 대대는 임진강 근처에서 훈련을 하고 있었으며 2,3일내로 북한군 공격에 대비하라는 명령을 받았지요.” 한·미연합사 기획참모부 정책기획장교로 근무 중인 스티브 딸프(Steve Tharp·49) 중령은 1979년 7월 미 2사단 소속 병장으로 한국땅을 처음 밟은 이래 한국 근무만 14년째를 기록하고 있다.주한미군의 경우 대개 2년 정도 근무하면 본국으로 돌아가는 관례에 비추어볼 때 그는 한국과 매우 ‘특별한 인연’을 맺고 있는 셈이다.오는 6월 그는 28년의 군생활과 14년의 한국근무를 동시에 마감하게 된다.아울러 다음 달부터 메릴랜드대학 한국분교에서 ‘한국학’과 ‘한국전쟁사’ 등으로 일주일에 두번씩 강단에 설 예정이어서 더욱 화제가 되고 있다. ●오겹살과 소주 가장 좋아해 그는 10·26과 12·12,그리고 5·18사건 등 격동의 한국 현대사를 ‘주한미군’이라는 입장에서 생생하게 지켜봤다.특히 92년부터 6년 동안 군사정전위에 근무하면서 북한측과 150여차례나 회담을 가져 남북 분단역사의 소중한 산증인으로 꼽힌다.또 한국 여자와 결혼,함께 서울 흑석동 감리교 집사를 맡아 각별한 부부애를 과시하고 있다.6일 오후 한·미연합사(미군 용산기지)에서 만난 그는 오겹살과 소주를 가장 좋아할 정도로 한국과 무척 친숙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딸프 중령이 군사정전위에 근무할 당시 겪었던 일화가 흥미롭다.96년 5월 어느날 한탄강에서 북한군 시체 1구가 발견됐다.검시를 해보니 북한군 시체는 95년 8월 홍수 때 익사한 것으로 판명됐다.시신의 상태는 뼈만 앙상하게 남아 있었고 군복이 너덜너덜하게 걸쳐 있었다. 딸프 중령은 신원이 확인되자 북한측에 시신을 돌려주기 위한 비공식 회담을 즉각 열자고 제안했다.이윽고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내 군사분계선상에 위치한 T3막사(비공식 회담 장소) 안.딸프 중령은 북한군 시체를 길다란 플라스틱 가방에 넣고 북한측 대표인 곽철희 상좌와 마주 앉았다. “곽 선생,틀림없는 당신네 북한군 시신이지요?” 이리저리 살펴보던 곽 상좌는 “그런 것 같다.”고 대답했다. “자,그럼 인수하시지요.” 딸프 중령은 막사 안에 그어진 군사분계선 위로 시신이 든 플라스틱 가방을 쭉 밀었다.시신은 곽 상좌가 앉은 의자 바로 옆에 놓여졌고 인수인계 서류가 오고갔다. 바로 이때였다.플라스틱 가방에서 후다닥 하는 소리와 함께 뭔가 툭 튀어나왔다.시신이 갑자기 벌떡 일어서는 것으로 착각한 곽 상좌는 혼비백산 자리를 피했다.딸프 중령도 한걸음 뒤로 물러섰다.알고 보니 시신이 워낙 부패해 냄새를 맡은 쥐가 시신에 파고들었다가 인수인계 순간에 삐죽하게 열려진 플라스틱 가방 사이로 빠져나와 도망쳤던 것이다.놀란 가슴을 간신히 쓸어내린 둘은 다시 마주 앉았다. ●북한군 시체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쥐새끼 “딸프 중령,당신 미 중앙정보국(CIA) 첩자 아니오?” “아니,갑자기 그게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요?” “딸프 중령,저 쥐는 분명 CIA에서 특별제작된 쥐로 도청뿐만 아니라 고성능 촬영기술까지 갖춘 게 틀림없소.빨리 자백하시오!” 딸프 중령은 어안이 벙벙했다.잠시 생각하던 그는 “허허,맞소이다.CIA 쥐는 분명한데 전자장치는 없는 것 같소.그러니 쥐도 시신과 함께 북으로 데리고 가시오.만약 살려두면 저 쥐가 다시 이쪽으로 돌아올 테니 알아서 하시오.”라고 대답했다. “94년 7월29일 금요일 중립국감독위 초청으로 공동경비구역내 휴게실에서 조촐한 오찬행사가 열렸지요.북측에서는 유영철 대표,박임수 대좌,중국 파견관 5명 등 모두 10여명이 참석했습니다.그게 최후의 오찬이 될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원래는 7월27일 휴전협정 조인 기념일에 맞춰 오찬이 열릴 예정이었으나 김일성 사망(94년 7월8일)으로 인한 북한측 사정으로 이틀 연기됐다가 이날 열린 것이다.그는 이후 ‘중립국감독위’라는 명칭은 사실상 없어졌다고 증언했다.그해 11월 주북한 중국대사가 예고없이 판문각을 전격 방문하더니 이튿날 중립국감독위에 파견중인 중국 무관들을 모두 본국으로 철수시켰다.대신 판문점 북측대표부가 남북 군사회담 등의 창구역할을 맡기 시작했다고 딸프 중령은 설명했다. 98년 9월 딸프가 중령진급하던 날 오전이었다.때마침 미군 유해송환식이 판문점에서 열렸다.행사가 끝난 직후 딸프 중령은 T3막사내의 일직장교회의실로 자리를 옮겼다.회의실에는 유엔사와 군정위 관계자들이 많이 참석했다.행사가 시작됐다.먼저 유엔사 부참모장인 헤이든 소장이 중령 계급장을 들고 딸프에게 다가갔다. 이때 누군가가 남북통일을 위해 북한땅에서 계급장을 달면 어떻겠느냐는 제의가 즉석에서 나왔다.박수가 터져나왔다.결국 딸프 중령과 헤이든 소장,딸프 중령의 부인 등은 두어 걸음 군사분계선을 넘어선 채 진급식 행사를 치르는 최초의 기록을 세웠다. ●서로의 문화 이해해야 한·미 발전할 것 “10·26 당시처럼 초긴장 상태는 없었습니다.즉각 전쟁대비태세의 명령을 받은 우리는 곧 죽음으로 생각했습니다.생사의 갈림길을 처음 경험하게 되면서 오히려 한국에 깊은 매력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12·12 때는 외출 제한명령을 받아 미2사단 영내에서 노태우 9사단장 휘하 병력이 3번 국도를 통해 서울로 출동하는 것을 직접 목격하기도 했다.또 5·18 때는 신문보도 이상의 내용을 알지 못하다가 83년 메릴랜드대학에서 수업을 듣던 중 교수로부터 자세한 내용을 듣게 됐다고 회고했다. “83년 10월 전방순찰 중 헬기가 추락해 모두 죽을 뻔했으나 다행히 무사했습니다.이때부터 한국에 수호신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딸프 중령은 이래저래 역대 주한미군 중에서 누구보다도 한·미관계를 잘 아는 장교임에는 틀림없다.그는 용산기지 이전과 관련해 “어느 국가든 수도에 대규모 외국군이 주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면서 한·미관계는 서로의 문화를 이해해야 더욱 바람직한 관계로 발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 약력 ▲1955년 버뮤다섬에서 4형제 중 막내로 출생 ▲76년 82공정사단 공수보병으로 자원입대 ▲79년 미2사단 휘하 보병23연대 소속으로 한국 근무 ▲80년초 한국 여인과 결혼 ▲81년 23연대 수색소대 병장 제대 ▲82년 미2사단 23연대 수색소대장으로 다시 한국 근무 ▲84년 한국을 떠나 미 본토 제1유격대에서 근무 ▲87년부터 2년 동안 보병24사단 참모장교 ▲92년 8월 다시 한국에 와 96년 10월까지 군사정전위 언어장교로 근무 ▲98년 2002년까지 군사정전위 부비서장으로 다시 근무 ▲2002년∼현재,한·미연합사 정책기획장교로 근무중 ▲오는 6월 전역예정 김문기자 km@ ˝
  • 안양천에 새떼가 몰려든다

    4∼5년 전만 해도 ‘오염하천’의 대명사로 불리던 안양천에 새떼가 몰려들고 있다. 구로구(구청장 양대웅)는 서울대 산림자원학과 이우신 교수팀에 의뢰해 안양천 조류 실태를 조사한 결과,천연기념물 323호인 황조롱이 등 희귀종 겨울철새와 텃새 등 18종 2300여마리에 이르렀다고 5일 밝혔다. 1999년에는 흰뺨검둥오리 등 4종 46마리가 관찰됐으나,2001년 8종 500여마리,2002년 13종 1300여마리,지난해엔 16종 1800여마리로 매년 급증세다.특히 안양천을 한번 찾은 철새들이 새끼를 낳고 떠난 뒤 다시 찾아들어 안양천이 철새도래지로 자리잡고 있다. 장세훈기자 shjang@˝
  • “달하 높이곰 돋아샤”자치구마다 대보름 행사 풍성

    대보름 ‘놀이 대박’이 터진다.자치구마다 시내 곳곳에 있는 고궁 등 명소에서는 정월 보름날인 오는 5일을 전후로 재미있고 뜻깊은 행사가 줄을 잇는다. ●주민들 화합 다지고 동대문구는 26개 동별로 지역의 안녕을 비는 민속놀이 행사가 7일까지 펼쳐진다.제기차기와 투호(옛날 궁중이나 양반집에서 항아리에 화살을 던져넣던 놀이) 등 선조들이 즐겨 하던 놀이들을 재연한다. 종로구는 동별 잔치를 마련했다.오는 8일까지 윷놀이,농악,널뛰기,제기차기 등이 주민자치센터와 근린공원에서 이어진다.특히 이웃을 아끼는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남의 말을 좋게 합시다.’라고 쓰인 액자를 주민들에게 나눠줄 예정이다.도봉구도 대보름날 쌍문1동과 방학3동,창4동 월천근린공원 등에서 민속놀이 행사를 연다. 송파구 석촌호수 옆 서울놀이마당에서는 대보름날 오후 2시 길놀이,경기민요,풍물놀이,다리밟기 등 문화행사가 열린다. 다리밟기란 자기 나이만큼 냇가 다리를 밟으면 다리에 병이 나지 않고 복을 불러들인다는 풍속에 따라 선조들이 즐기던 놀이다. ●한해의 소망 띄우고 5일 오후 5시30분부터 남산골 한옥마을에서는 관람객들이 각자 소원을 한지(韓紙)에 적어 새끼줄에 매달아 태우는 ‘달집 태우기’ 달맞이 행사가 열린다.대보름 특식인 진채식(陳菜食) 전시,오곡밥 짓기 시연 등 세시풍속도 체험할 수 있다.진채란 묵은 나물을 뜻한다.가을에 호박고지·박고지·말린가지·말린버섯·고사리·고비·도라지·시래기·고구마순 등 9가지 나물을 말렸다가 삶아서 기름에 볶아 먹는다.이 음식을 먹으면 입맛이 돌아오고 더위를 먹지 않는다고 전해진다. 마포구도 7일 성산사회종합복지관 옆마당에서 길놀이,널뛰기 등 전통놀이 한마당 행사를 연다.영등포구는 4일 관내 오목교 인근 안양천 둔치에서 쥐불놀이,고구마 구워먹기 등 행사를 개최한다. 강서구는 화곡동 백연공원에서 주민화합 윷놀이행사를 개최한다.윷놀이는 개인전,직능별,단체전 등으로 진행된다.은평구는 4일 구산동 예일여고에서 구민의 화합과 건강을 기원하며 500여발의 폭죽을 터뜨리는 ‘달맞이 불꽃놀이 대축제’를 펼친다. 송한수기자
  • 2분기 연속 흑자기조… 부채 대폭 줄여/하이닉스 ‘부활 날갯짓’

    ‘미운 오리새끼’ 하이닉스반도체가 ‘백조’로 거듭나기 위해 힘찬 날갯짓을 하고 있다. 주력상품인 D램 반도체 시장 전망이 밝은 데다 플래시메모리 사업에도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지난해 4·4분기 실적도 2분기 연속 흑자를 기대하고 있다.때맞춰 지난해 4·4분기 세계 D램시장 점유율에서 독일 인피니온(14.6%)을 제치고 15.8%로 3위를 탈환했다는 소식도 들려온다.하이닉스는 512Mb 난드 (NAND·데이터저장형) 플래시메모리에 대한 개발을 완료하고 회로선폭 120나노(1나노=10억분의 1m)급 공정기술을 적용,이번달부터 본격 양산에 들어간다고 3일 밝혔다. 하이닉스는 지난해 4월 유럽 반도체 업체인 ST마이크로사와 난드 플래시메모리에 대한 전략적 제휴를 맺은데 이어 ‘플래시 사업본부(본부장 오춘식 전무)’를 재가동하는 등 역량을 플래시메모리에 집중하고 있다. ●2005년 난드플래시 세계3위 목표 하이닉스는 올해 4·4분기에는 90나노급 공정기술을 적용한 1Gb와 2Gb 제품을 선보이고,2005년에는 70나노급 공정기술을 적용한 제품 개발 등을 통해난드 플래시메모리 시장에서 삼성전자·도시바에 이어 매출 3위를 목표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37억달러 규모인 난드플래시 시장은 현재 삼성전자가 54%,도시바가 36%가량 점유하고 있다.히타치와 미쓰비시 반도체부문 합작회사인 르네서스 등 기타 업체들이 나머지 10%를 나눠 먹고 있다.현재 2Gb까지 출시됐지만 올 상반기까지는 512Mb∼1Gb가 주력인데다 아직 공급이 부족한 상황이다. 호전된 실적도 정상화 가능성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지난 2002년 1분기 30억원의 순이익을 기록한 이후 무려 1년 반만인 지난해 3분기 1340억원의 순이익을 달성한데 이어 4분기에도 흑자를 기대하고 있다. 99년 15조원이었던 부채도 지난 2002년 3분기 6조 2050억원으로 줄어든 뒤 출자전환,사업매각 등을 통해 지난해 3분기 현재 3조 8000억원(본사 2조 6000억원)으로 크게 줄었다.하이닉스는 2001∼2002년 17개 사업부문을 매각·분리했고 사옥·LCD 매각 등을 통해 1조 4350억원을 들여왔다. ●설비 투자재원 마련이 관건 주가도 지난해말 5000원대에서 8000원대로 크게올랐다.4분기 실적과 4억 3000만달러 규모의 비메모리 사업부문 매각 협상에 대한 기대 등에 힘입은 탓이다. 하이닉스는 올해 설비투자에 지난해의 2배 가까운 1조 3000억∼1조 4000억원을 투입,이르면 연말부터 300㎜웨이퍼 시험생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 대우증권 정창원 팀장은 “지난해 4분기 500억원 이상 흑자에 이어 올해도 흑자 기조를 유지할 전망”이라면서 “부채규모도 크게 줄어 현 수준을 유지한다면 경영정상화도 멀지 않았다.”고 전망했다.하지만 막대한 설비투자 재원 마련에 대해 ‘반신반의’하는 분위기도 여전하다.반도체 가격이 급락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데다 올여름부터 일본 정부가 20∼40%의 상계관세를 부과할 가능성이 있는 등 넘어야 할 장애물도 적지 않다. ●난드 플래시메모리 D램과 달리 전원이 끊어져도 저장된 정보를 그대로 보존할 수 있고 정보의 입출력도 자유로운 장점이 있어 디지털TV,디지털 캠코더,디지털 카메라,휴대전화,MP3플레이어 등에 널리 사용되고 있다.512Mb는 MP3 파일 1시간,신문지 4000장,단행본 80권을 저장할 수 있는 용량이다. 류길상기자 ukelvin@
  • 주말매거진We/그 영화 어때?

    지난주 영화와 음악 시상식이 열린 미국의 베벌리힐스와 프랑스 칸에서는 세계적인 ‘은막의 요정’들과 ‘디바’들이 눈부신 의상과 현란한 몸짓을 선보였다.우승 트로피보다 이들의 관능미가 세계인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니콜 키드먼은 ‘몬스터’의 찰리 데론에게 골든 글로브 여우주연상을 빼앗겼지만 금빛 비늘에 싸인 ‘인어공주’로 변신,시상식에 참석한 전 남편 톰 크루즈 등 뭇남성들의 시선을 독차지했다.금발로 염색한 머리와 금구슬이 박힌 헤어밴드,금줄무늬가 들어간 핸드백에 금팔찌,금반지까지 몸 전체를 그야말로 영화제 이름처럼 ‘골드’로 통일시켰다. 유럽 라디오그룹 NRJ의 뮤직어워드에 참석하기 위해 칸에 도착한 팝의 요정 브리트니 스피어스는 가슴이 절반 넘게 드러난 원피스를 입고 건강한 육체미를 과시했다.최근 고향 친구와의 결혼 소동이후 다소 체중이 늘어 더욱 풍만해진 모습. 역시 NRJ어워드에 나타난 미국 여가수 크리스티나 아길레라는 지중해 분위기에 맞춰 헤어스타일과 눈화장,드레스,목걸이,귀걸이,왼쪽 팔꿈치 안의 문신까지 이집트풍으로 연출했다. 최근 미국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여가수 비욘세는 흑인혼혈 특유의 탄력있고 풍만한 몸을 한껏 과시할 수 있는 짧은 의상을 입고 NRJ 시상식에서 공연했다.사자갈기 머리를 젖히고 뒤를 돌아보며 던지는 눈웃음이 더욱 뇌쇄적이다. 이도운기자·외신 dawn@ ●신설국-사랑은 눈 녹듯이… 새달 말 개봉하는 ‘신설국(新雪國)’은 1968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설 ‘설국’을 모티브로 한 동명의 작품을 원작으로 만든 영화다.영화의 무대는 제목처럼 눈이 지천에 깔린 마을 츠키오카(月岡).절망적 상실감에 자살 여행에 나선 50대 남자와 비슷한 아픔을 지닌 젊은 게이샤가 서로의 몸과 마음을 달래주는 이야기다.그 분위기는 화면을 가득 메운 눈처럼 따스하다. 온 마을이 눈으로 덮인 마을 츠키오카역에 뭔가 사연을 간직한 듯한 쿠니오(오쿠다 에이지)가 내린다.특별한 대사없이 그의 발걸음을 따라가는 영화는 그가 당돌한 게이샤 모에코(유민)를 만나면서 속도를 낸다.연인이 교통사고로 죽는 장면을목도한 상처를 지닌 그녀인지라 직감적으로 쿠니오의 황량한 내면세계를 감지한다.상처입은 과거사를 징검다리로 두 사람의 사랑이 싹튼다. 고토 감독이 영화 기획단계에서 염두에 뒀다는 일본의 인기배우 에이지의 우수어린 연기가 은은하게 빛나고 풋풋한 이미지의 유민은 적극적이고 발랄한 연기로 화답한다.지난 2001년 한국으로 건너와 왕성하게 활동하는 일본인 탤런트 유민(일본명 후에키 유코)이 주연으로 데뷔한 영화인데 한국에서는 인터넷에서 누드신이라는 ‘비틀어진 논란’으로 화제를 모았다.정작 영화 속 정사 장면은 그녀의 깔끔한 이미지를 더해준다. 그러나 영화의 따스한 메시지는 갈수록 그 밀도가 떨어진다.별다른 반전 없이 두 사람의 이야기가 이어지다 보니 자연히 산만해지고 식상해진다. 이종수기자 vielee@ ●구루-사랑은 사고처럼… ‘유쾌하고 발랄한 러브스토리.’ 30일 개봉하는 ‘구루(The Guru)’는 존 트래볼타 같은 스타가 돼 부와 명성,인기를 얻겠다고 미국으로 건너온 인도의 댄스 강사 라무 찬드라 굽타(지미 미스트리)의 꿈과 좌절과 사랑 등을 다룬 로맨틱 코미디다.재미있고 달콤하게 엮어가는 사랑 이야기,성적 이미지와 유머를 결합시킨 참신한 발상에 젖다 보면 94분의 상영시간이 휙 지나간다.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미국으로 날아온 라무를 기다리는 것은 냉혹한 현실뿐.울며 겨자먹기로 친구들과 월세방에서 합숙을 하면서 시작한 인도식당 웨이터 일이 성에 찰리가 없다.그러다가 영화사를 찾아가 배역을 맡았는데 알고 보니 “주연이지만 대사가 너무 적은” 포르노 영화다.실의에 빠진 그에게 행운이 찾아온다.뉴욕 상류층 만찬에서 주방일을 거들다 우연히 인도 영적 지도자의 대역을 맡아 정신적 지도자인 ‘구루’로 떠오른다.비결은 포르노의 파트너 샤로나(헤더 그레이엄)가 들려준 성 관련 표현을 그럴 듯하게 포장한 것. 미스트리의 신선한 연기가 매력을 뿜고 진지한 조연을 주로 맡아온 마리사 토메이의 코믹연기 변신도 인상적이다. 이종수기자 ●곰이 되고 싶어요-사랑은 함께 하는 것… 30일 개봉하는 애니메이션 ‘곰이 되고 싶어요’는 한마디로 기존의 질서를벗어나는 ‘대항적’인 영화다.애니메이션의 양대 산맥인 미국과 일본이 아닌 덴마크·프랑스·노르웨이 합작으로 만들어진 점도 그렇지만,형식과 내용면에서도 기존의 틀을 과감하게 깨버린다. 얼음이 뒤덮인 그린랜드를 배경으로 한 이 영화는 엄마 곰과 에스키모 부부의 출산을 나란히 보여주면서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갑작스러운 늑대의 습격으로 새끼를 잃은 엄마 곰은 슬픔에 잠긴다.아빠 곰은 대신 인간 부부의 갓난아이를 훔쳐와 자식처럼 키운다.이번엔 행복했던 인간 부부가 곰이 겪었던 비탄에 똑같이 빠지게 된다.한참 뒤 에스키모는 곰을 죽이고 아이를 되찾아 오지만,아이는 이미 정체성을 잃어 버린 상태.외모만 인간일 뿐 곰으로 자라난 아이는 다시 사람이 되길 거부한다.결국 에스키모 부부는 아이를 곰의 세계로 돌려보내고,아이는 고통의 시간을 거쳐 다시 곰으로 살아간다.‘사랑=함께 있는 것’이라는 평범한 상식을 다시한번 생각하게 해주는 이 영화는 아이는 물론 어른들에게도 재미와 감동을 줄 것 같다. 이영표기자 tomcat@
  • [농촌경제 비상구가 없다](6)그래도 길은있다-성공사례(상)

    시리즈 ‘농촌경제-비상구가 없다.’ 제 6회 ‘그래도 길은 있다.’편이 26일자부터 이어집니다.상·중·하 세 차례에 걸쳐 성공사례를 소개합니다. “빚,파산,이농(離農)요? 우리 마을 사람들은 그런 말 잊은 지 오랩니다.” 첩첩이 산으로 둘러싸인 강원도 화천군 상서면 신대리 토고미(土雇米) 마을.이곳 주민들은 도시생활이 부럽지 않다.오히려 도시인들로부터 살고 싶은 마을로 한껏 부러움을 사고 있다.4년 전부터 시작한 친환경 유기농사와 그린투어리즘(농촌체험관광)이 자리 잡으면서부터다. ■강원 화천 토고미 마을 ●56가구 200여명… 유기농으로 승부 토고미 마을은 야트막한 백암산 자락과 실개천인 파포천에 둘러싸여 56가구 200여명의 주민들이 모여사는 전형적인 농촌이다.잘 정리된 논 한쪽 모퉁이마다 옹기종기 오리를 몰아 넣도록 만든 검은 비닐막사와,논두렁에 세워 놓은 ‘오리농법 들녘’이라는 대형 간판이 이곳이 친환경 오리농사를 짓는 마을이라는 걸 알려준다. 토고미 마을의 오리농사는 주민들만 참여하는 단순한 농업이 아니다.농촌과 도시가 함께 살아간다는 취지에서 도시인을 대상으로 ‘나눔의 가족’이라는 회원제를 운영하고 있는 게 특징이다.도시인들로부터 해마다 3만 5000원씩 회비를 받아 회원마다 오리 15마리씩을 ‘일꾼’ 명목으로 기르게 한다.대가로 농사를 지어 추석 때 햅쌀 8㎏씩을 택배로 보내주고 있다.이같은 가족 회원제는 풍년이나 흉년에 구애받지 않고 농산물 가격을 원가이상으로 유지시켜 주는 원천이다. ●다양한 혜택으로 ‘나눔의 가족' 회원 늘려 ‘나눔의 가족’ 회원들에게는 마을에서 생산한 청정 유기농산물을 시중보다 15∼20% 싸게 살 수 있는 혜택을 준다.마을입구에 지은 펜션(10평·20평)과 폐교를 깔끔하게 리모델링해 다양한 체험학습장으로 활용하고 있는 ‘토고미 자연학교’도 30% 할인가로 이용할 수 있다. 해마다 논에 오리를 방사하는 6월 초에는 ‘토고미 푸른마을 오리쌀 축제’를 열어 가족회원들과 친목도 나눈다.회원들을 가족으로 받아들이는 어울림 행사다. 마을 주민들은 4년째 오리농법만을 고집하다 지난해부터 우렁이농법도 병행하며 가능성을 찾고 있다.농약은 전혀 사용하지 않고 해마다 7000여마리의 오리와 우렁이를 논에 풀어 농사를 짓고,가끔 목초액과 키토산을 뿌려 병충해를 예방할 뿐이다.거름은 추수 후 논에 뿌려둔 호맥을 그대로 갈아 엎어 대신한다.이렇게 농사를 짓는 면적은 마을 전체 농토 48㏊ 가운데 30㏊이다.‘토고미 오리쌀’로 포장된 쌀은 지난해에는 80㎏짜리 1300가마를 생산해 60%를 가족회원들에게 판매했다.나머지는 생식회사와 삼성전기 등에 직거래를 통해 팔았다. 토고미마을 대표 한상렬(47)씨는 “가족회원들이 늘어나는 추세에 맞춰 단계적으로 유기농 재배면적을 늘려가고 있다.”며 “현재 980여명에 이르는 회원들이 2000여명으로 늘면 마을의 모든 농토가 유기농 재배지로 바뀌고 농촌과 도시가 어우러진 공동체 마을이 될 것”이라며 희망에 부풀어 있다. 무공해 유기농사를 도입하면서 수입은 4년 전보다 가구당 800만원 이상 증가했다.지난해에는 농사 하나만으로 가구당 3000여만원씩에 육박하는 수입을 올렸다.강원도 농가 평균 2100만원을 훨씬웃돈다. 이 마을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이성진(75) 노인회장은 “긴 장마 등 날씨가 좋지 않았던 지난해에도 우리 마을은 수입을 꽤 올렸다.”며 “이제는 청년들이 돌아오고 생기넘치는 마을로 다시 태어나고 있다.”고 뿌듯해했다. ●자연학교 운영 마을수입 7400여만원 토고미 마을은 농사 외에 그린투어리즘으로 짭짤한 농외소득을 올리는 곳이기도 하다. 마을 한가운데 있는 폐교를 ‘토고미 자연학교’로 개조해 사계절 농촌관광 및 체험장으로 활용하고 있다.이곳에서는 농산물 파종에서부터 수확체험은 물론 짚공예,허수아비,메주,올챙이국수,두부 만들기와 메뚜기 잡기,나물캐기,초가지붕 이기,새끼꼬기,장담그기 등 찾아오는 도시인들을 대상으로 다양한 체험활동을 연중 실시한다. 계절에 맞게 이뤄지는 농사일에 참여시켜 농촌 현실을 있는 그대로 체험토록 하고 있다.가족단위 또는 학생·직장인 등 50∼60명씩 단체로 찾아와 3∼4일 동안 머물며 농촌을 배운다.마을 앞을 흐르는 파포천과 마을 뒷산 언덕도 체험학습장으로 이용되고 있다.맑은 파포천은 여름에 물고기잡이와 물놀이 장소로,겨울이면 썰매타기 장소로 인기다.지난 한해 동안 찾아온 외지인이 9000명을 넘었다. 지난해 자연학교에서 얻은 수입만 7400만원을 웃돌아 고스란히 마을주민들 몫으로 돌아갔다.마을사람들이 사무국장 등 관리요원과 청소 및 취사를 담당하는 일용직으로 고용되면서 취업효과와 부수입을 함께 올리는 곳으로 자리잡았다. 연간 마을주민들에게 돌아가는 인건비만 4000만원이 넘는다.나머지는 마을발전기금으로 적립해 이 마을 학생들에게 장학금으로 지급하고 있다.학생 대부분이 장학금 수혜자다. 외지에 나가 공부하는 학생들도 방학 때면 고향으로 돌아와 아르바이트를 통해 학비를 벌 수 있게 했다.진한 고향의 사랑을 맛보게 하려는 배려다. 마을 정미소와 자연학교 운영,외부에서 받아온 상금 등이 쌓여 지금은 마을공동기금이 2억 5000만원에 이른다.기금이 조금 더 모이면 마을 입구에 주차장과 공원을 조성하는 게 주민들의 꿈이다. 마을 출신의 유일한 공무원인 최수명(41·화천군 농업기술센터)씨는 “토고미 마을은 농산물시장이 완전 개방되고 수매제도가 없어진다 해도 걱정없다.”고 말했다. 글·사진 화천 조한종기자 bell21@ ■ 울주 ‘친환경 쌀 생산단지' 울산시 울주군 두서면 복안리 들판에는 ‘친환경 쌀 생산단지’가 조성돼 있다.단지 규모는 국내에서 가장 넓은 15만평이다. 이 지역 두북농협(조합장 이장우)이 주도해 지난해 조성했다.두서면 신기·양지·음지·활천 등 4개 자연마을 63개 농가가 참여하고 있다. 이곳 친환경 쌀 생산단지에서는 화학비료나 농약을 전혀 쓰지 않는다.대신 모내기 후 쌀겨를 뿌리는 ‘쌀겨농법’으로 벼를 재배한다. 지난해 전국적으로 벼 작황이 좋지 않았지만 이 단지에서는 평년을 웃도는 총 240t의 벼를 수확했다.농협과 농민들은 일반농법에 비해 영농비는 비슷한데 생산량은 10%쯤 많다고 귀띔했다. 쌀겨농법이란 기계를 이용해 쌀겨를 적당한 크기로 만든 뒤,모심기 한 논에 뿌려 벼를 재배하는 방식이다. 쌀겨 속 식물생장 억제물질인 아브시신산(식물호르몬)과 탄수화물,지방성분 등의 영향으로 미생물 분해작용이발생,잡초가 발아하지 못하거나 고사하기 때문에 제초제를 쓸 필요가 없다.쌀겨 속 탄수화물,무기질,비타민 등이 천천히 분해되면서 벼에 적절한 영양분을 공급해 화학비료를 쓰지 않아도 벼가 튼튼하게 자란다.농약이 필요없을 정도로 병충해에 강하고 바람에도 잘 견딘다. 완전 무공해 방식으로 생산한 벼라서 수매가가 일반 벼보다 훨씬 비싸다.40㎏ 한 포대에 6만 3000∼6만 4000원으로 일반 벼보다 1만원 이상 비싼 셈이다.농협과 계약재배 방식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수매 걱정도 할 필요가 없다.농약을 사용하지 않아 벼를 심은 논에 자연산 미꾸라지가 많은 것도 일석이조.가을철 미꾸라지를 잡아 판 수입도 짭짤해 농가마다 평균 100만원에 이른다. 울산시와 울주군은 기계 구입비와 기술 개발비로 지난해 4000여만원을 지원하는 등 적극 뒷받침해주고 있다.쌀겨농법으로 수확한 벼는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으로부터 친환경 농산물 인증을 받았다.두북농협은 ‘황우쌀’이라는 상표를 붙여 울산지역 백화점과 대형 할인매장,농협지점을 통해 판매한다.소비자 가격은 20㎏ 한포대에 5만 8000원.일반쌀(4만 8000원) 보다 1만원 더 비싸다. 백화점 매장 직원들은 “무공해 쌀인데다 밥맛이 워낙 좋아 한번 먹어 본 집에서는 단골로 찾는다.”고 말했다. 현재 두북농협 저온창고에는 쌀겨로 재배한 벼가 120t쯤 남아 있다.두북농협은 울산지역에만 공급해도 오는 6월 말이면 바닥날 것으로 예상한다. 농협은 지난해 시험재배를 통해 지역환경에 가장 적합한 품종을 선정해 뒀다.볍씨도 충분하다.따라서 올해는 더욱 풍성한 수확이 기대된다. 두북농협 서정익(45) 상무는 “농업시장 개방으로 갈수록 어려운 농업이 경쟁력을 가지려면 친환경·과학영농으로 극복하는 수밖에 없다.”면서 “쌀겨농법이 벼농사로는 가장 좋은 친환경 농법”이라고 자랑했다. 처음 시도하는 농법이라 서 상무,농협 농업기술지도사와 울산시·울주군 공무원 등은 농민들에게 사전준비를 철저히 시켰다.지난해 2월 충남 홍성군 농업기술센터가 일본의 쌀겨 벼 재배전문가를 초청해 실시한 교육에 참가해 강의를 들었다.농업진흥청 전문가를 초청해 농민들과 함께 교육을 받기도 했다. 황우쌀 생산단지 작목반장 이형우(53·두서면 복안리)씨는 “작목반 농민들도 앞으로 친환경 과학농사가 아니면 버티기 어렵다는 사실을 알고 쌀겨농법 벼농사에 온 힘을 쏟고 있다.”고 말했다. 울산 강원식기자 kws@
  • [나의 건강보감] 국민소리꾼 신영희 씨

    “득음은 먼놈에 득음이라우?죽을 때꺼정 득음,득음 허다가 말겄제.”우렁우렁한 우조와 애절한 계면조,12박 중모리에서 4박 휘모리까지,그리고 동·서편제를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그의 소리에 수많은 사람들이 울고 웃지만 환갑을 넘긴 그는 지금도 제 목으로 내는 ‘소리’가 성에 안찬다.그래서 나이 들수록 ‘명창’이라는 찬사가 부끄럽고,‘국민소리꾼’이라는 말이라도 들을라치면 ‘오메,저거이 먼 소리랑가.’싶어 턱,하고 오금이 꺾인다.“배운 것이 도둑질이라고 내가 소리꾼 아부지헌티 받은 것은 이것이 전부라 따른 일 생각한 적도 고,그래서 이것 아니믄 내가 어치케 험한 세상 살겄냐 싶어 젊어서는 20년 30년을 미친년겉이 소리 소리 토했어도 득음은 숭내도 못내봤소.” ●소리꾼 아버지 반대 무릅쓰고 시작 명창 신영희(63).그는 소리꾼이다.그것도 ‘내가 난데…’하고 수염만 훑는 ‘방안풍수’가 아니라 전국 팔도 소리가 있어야할 곳이라면 불원천리 뛰어가는 소리의 전령이다.“세상이 그란다는디 말해 뭣하겄소만 사람이 지 뿌리럴 모르고으게 사람노릇 허겄소.요새 젊은 사람덜 신식노래 좋아허는 거 탓할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뭣이 우리 껏인지는 알어야 안쓰겄소.” 영화 ‘서편제’와 “우리 것은 소중한 것이여.”라는 박동진 명창의 CF,그리고 그가 TV에서 개그맨 김미화씨 등과 함께 엮은 ‘개그 소리’를 묶어 ‘소리 중흥의 3대 사건’이라고 일컫는다.이렇듯 그는 소리의 대중화에 젊은 시절을 한 허리 뚝 떼어내 바쳤다. “소리,소리 말도 마쑈.나야 내가 좋아서 했제마는,참말로 피눈물 나는 세월 안살믄 소리 못허요.암만 웃음서 해도 소리는 한(恨)이 내는 것 아니요.”열한 살 나던 해,아버지한테 소리를 배우던 젊은 소리꾼이 한 대목 고비를 못넘기고 꺽꺽거리자 그는 대뜸 방문을 열고 들어가 ‘들은 풍월’로 흥부 매품팔러 가는 대목을 뽑아 넘겼다.“그때 울아부지가 내 소리럴 듣고넌 후∼,허고 한숨을 쉬시면서 고개럴 푹 꺾습디다.그때만 해도 여자소리꾼은 기생 취급하던 시절인디,어느 부모가 지 새끼 소리를 시킬라고 했겄소.”그런 아버지를 어머니가 설득했다.“기생이든,말든 명창되믄 안되겄소?”해서 겨우 아버지의 마음을 돌려 소리꾼의 삶을 시작했다.그의 아버지 신치선씨는 진도 어름에 소문이 짜한 소리꾼이었다.그는 소리꾼의 끼를 타고났다.아버지는 그의 손을 끌고 수백리길을 걸어 소리품을 팔러 다녔으며,가는 곳마다 “그놈,한 소리 허겄다.”는 말을 들었다.이듬해,‘소리 한번 원없이 해보겠다.’고 작정한 가족은 목포로 거처를 옮겼으나 신식 바람에 살랑거리는 도회는 소리꾼에게 결코 녹록한 삶터가 아니었다. “유달산 아래 죽교동에서 살었는디,새벽 4시 통금 사이렝만 울리믄 털고 일어나 후적후적 유달산을 타고 올라갔어요.거그 유선각 아래 쬐끄만 바위굴에 들어앉아 바위등을 두들기며 6∼7년 소리연습을 했더니 목이 자리를 잡습디다.” 오빠들 틈바구니에서 선머슴처럼 자라 몸 하나는 실한 그였지만 허튼 공력으로 명창이 될 수는 없었다.열 여섯에 아버지를 여의고 잔칫집,소리판을 전전해 심봉사 젖동냥 하듯 큰오빠 대학까지 공부시키면서도 김상룡 강도근 장월중선 최일환 박봉술 김준섭씨 등 당대의소리꾼은 모두 찾아다니며 내공을 쌓았다.서른 한살나던 73년에는 춘향가 세종제를 완창하더니 마침내 그 이듬해 명창 김소희씨를 만나 세상에 그의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그가 요새 선보이는 창법은 바로 김소희씨의 만정제에 뿌리를 두고 있다. ●장시간 연습하다 보면 목에 통증… 똥물 접해 “천하는 사람도 앉아서는 득도 못허요.소리꾼 치고 골병 안든 사람 봤소?나도 한창 클 때 주린 속에 하루 열 대여섯시간씩 소리연습을 허고 나면 목울대며 배가 띵띵 붓고 아퍼 내 살인디도 내가 만지덜 못허겄습디다.그때 말로만 듣던 똥물 첨 묵어봤소.”아무리 몸에 좋다 해도 남의 똥은 엄두가 안나 자신의 똥을 우려 마셨다.소리꾼에 대한 열망이 없었다면 꿈도 못 꿀 일이었다.“옹구그럭에 물붓고 그걸 푼 뒤 하루밤쯤 가라앉혀 우러난 물을 마시는디,소리로 골병든 어혈 푸는데는 그만입디다.” 소리는 단전에 기를 모아 내뱉기 때문에 기력이 달리면 절대 좋은 소리가 나오지 않는다는 게 그의 지론.그가 지금도 반신욕으로 항상 단전을 따뜻하게 지키고 뜀뛰기로 기력을 키워가는 이유다.“사람마다 목욕법이 다르겄지만,나는 반신욕과 욕탕 뜀뛰기가 좋습디다.”더운 물에 하반신을 담그고 20∼30분쯤 지나 몸이 덥혀지면 간단한 맨손체조로 몸을 유연하게 한 뒤 곧장 냉탕에 들어가 제자리뛰기를 하는데,뛰는 횟수가 한번에 3000번 가량 된다.뜀뛰기를 하다보면 금세 더워져 몸이 오그라 붙는 찬물 속에서도 차갑다는 느낌을 못받는다.“그 운동이 장(腸)을 정리하는 데는 그만이요.소리가 배에서 나는디,장이 시끌벅적허믄 좋은 소리가 나올 턱이 지요.” ●‘똥물 마셔 목 틔우기' 소리꾼 통과의례 소리꾼은 물론 방송일을 같이 해본 사람은 누구나 아는 식도락도 그가 세상을 ‘재미나게’ 사는 방법.“식도락인지는 몰라도 음식은 꼭 가려서 묵지요.조미료로 맛내는 집은 두번 걸음을 안허요.나도 손끝이 매워 음식은 제법 맹근다는 말 듣고 살었지요.”이런저런 밑반찬에 농어·민어매운탕과 게장 등 그의 손맛은 소문이 나 전통음식책까지 펴냈을 정도다.또 사철 집에 홍어가 끊이지 않아 부군인 서석주씨도 “집사람음식 아니면 선뜻 손이 가지 않는다.”고 할 정도. 지난 81년,그는 월정사로 탄허스님을 찾아가 심청가 중 심청이 유언하는 대목으로 ‘소리공양’을 했다.그의 절창에 노스님은 돌아서서 눈물을 훔치더니 그에게 무현(無絃)이라는 아호를 내렸다.그후,탄허스님이 입적하기 직전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는 생전 처음 병실을 찾아 소리를 하기도 했다.이렇듯 ‘소리밭’에 한 줌 거름으로 생애를 묻고 살지만 그는 아름다운 가인(歌人)이다.그래도 ‘소리’와 ‘웃음’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믿는. 글 심재억기자 jeshim@ 사진 강성남기자 snk@ ■소리꾼과 똥물이야기 사실,목을 틔우고 전신의 어혈을 풀어내기 위해 똥물을 마시는 일은 예전 소리꾼에게 통과의례 같은 일이었다.설령 똥물을 안마신 사람도 엄두가 안났을 뿐 몰라서 안마신 경우는 없었다.“소리허다 보믄 목이 띵띵 붓고 잠겨 피를 토하기도 하고,뱃거죽이 붓고 땡겨 ‘이러다가 죽는 것 아닐까.’싶을 때가 있습디다.그때 나도 똥물을 마셨지요.” 지금이야 의사 많고 약이좋아 이런 체험을 하는 사람이 없지만 예전에는 ‘매맞아 생긴 장독(杖毒) 푸는데는 똥물이 최고’라고 했다.일종의 민간요법이다.그는 “그래도 남의 똥은 생각도 못했고 내 걸 썼으니 좀 낫지요.그냥 물에 풀어 말갛게 가라앉은 웃국을 마셨는데,전신에 후끈 열이 돌고 땀이 배어 이불 뒤집어쓰고 한숨 자고 나믄 소리로 골병든 삭신이 정말로 말짱해집디다.” 민간에서는 대나무 마디를 통째로 잘라 돌을 매단 뒤 잘 삭은 똥통 속에 담가 뒀다가 며칠 뒤 꺼내 속에 고인 노란 물을 마셨다.더러는 소줏병 주둥이를 솔잎으로 틀어막아 거르거나,묵은 똥통을 작대기로 휘저어 곰삭은 아래쪽 똥물을 퍼올린 뒤 고운 무명베로 걸러 마시기도 했다. 판소리 연구가인 군산대 최동현 교수는 자신의 저서에서 “주로 인분을 사용했으나 더러는 개똥을 사용하기도 했으며,이런 방식이 목을 다치기 십상인 소리꾼에게 약이 됐던 게 사실”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심재억기자
  • [농촌경제 비상구가 없다](5)악어와 악어새에서 반목과 불신의 관계로-농협대해부

    “농민이 잘 되면 농협이 잘 되지만,농협이 잘 된다고 농민이 좋아지는 것은 아니더라고요.” 16일 농협중앙회 관계자가 농민과 농협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임에는 분명하지만,시·군 단위 지역조합(개별법인)과 농협중앙회의 이원적 조직운영 하에서 농협중앙회가 농민을 직접 도울 수 있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안타까움을 토로하면서 한 말이다.1997년,사회구조 전반에 폭풍을 몰고 오다시피했던 외환위기를 고비로 농민과 농협(이하 지역조합)의 ‘악어와 악어새’ 관계에 틈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살인금리에 연체이자,논·밭 등 부동산과 농산물값 폭락,사회전반에 불어닥친 구조조정으로 부실채권에 대한 가압류와 경매가 쏟아지면서 둘 사이는 불신과 반목으로 치닫고 있다. 농민회원이나 농업인들은 내놓고 “농민들은 말라죽는데 조합 임원들은 돈만 챙긴다.”며 불만투성이다.농업인이 주인인 농협은 조합원들의 출자금과 대출이자,예금과 대출마진,판매(경제)사업 등으로 수익을 창출해 되돌려 준다는 게 설립 취지인데,결국 농민에게 돌려준 게 뭐냐는얘기다. ●“조합장 연봉 6천만~8천만원” 박모(46·경북 군위군 효령면)씨는 ‘농협 맨’이었지만 언제부턴가 농협 이야기만 나오면 알레르기 반응이다.논밭을 담보로 돈을 빌린 뒤 이자를 못갚아 애태우는데 ‘담보물을 경매처분하겠다.’는 독촉을 시도 때도 없이 보내기 때문이다. 청도군 금천면 농민 30여명은 지난해 말 금천농협 앞에서 집단시위를 벌였다.시위에 참여한 한 농업인은 “농민들은 부채에 깔려 죽을 판인데,농협 직원들과 조합장의 연봉이 6000만∼8000만원이나 된다니 말이나 되느냐.그것도 부족해 해마다 임금을 6∼10%씩 올리고 있다.”며 목청을 높였다. 구미 장천농협 대의원들은 조합개혁을 둘러싸고 농협과 한치 양보도 없이 맞서고 있다.대의원들은 최근 전체 조합원 1200여명 중 915명의 일괄 탈퇴서를 조합에 제출,주장이 관철되지 않으면 조합 해산까지 불사하겠다는 태도다.대의원들은 임원 구조조정,경영책임자 문책,인건비 하향,노조 해산 등을 요구하고 있다.특히 장천농협은 올 사업계획서에 임원 급여로 조합장 7100만원,전무 8100만원,상무(3명)6400만∼7800만원,부장(2명)6100만∼6200만원을 반영하고 있다. 전 직원 19명의 평균 연봉이 5700만원이라고 대의원협의회측은 밝혔다. 농업인들이 선호하는 정책자금 대출의 경우 조합원은 1년(일반자금은 6개월)마다,비조합원은 3개월,6개월 단위로 이자를 내야 한다.조합원이 가구당 1명꼴이니 남편이 대출한도를 넘어 집사람 앞으로 받으면 조합원 요건이 안 된다.농협 채권팀은 정해진 기간 안에 이자를 못내면 연체이자 독촉장이 나가고 3개월 동안 유예기간을 주면서 ‘이자에 대한 이자’를 받고,이 기한마저 넘기면 ‘원금에 대한 이자’까지 합쳐서 받는다.연체 이자율은 담보대출이 15%이고 신용대출은 18%나 된다. ●농협만 배불러서야 조합은 지역조합 1246개,품목조합(인삼조합) 89개 등 모두 1355개다.이 중 부실이 우려되는 곳이 농협 48개,축협 53개,인삼협 1개 등 102개(7.4%)로 집계된다. 외환위기 때부터 2000년 말까지 3년 동안 전국 지역조합의 부실채권은 가파르게 상승했다. 조합마다 부실채권에 대한 대손충당금을 짧은 시간에 적립하다 보니 당기손실이 커졌다.농협중앙회에 따르면 부실 우려가 있는 조합(169개)의 연체 채권액이 97년 말 3조 8657억원에서 2000년 말 5조 3829억원으로 39.2%나 증가했다.무수익 채권도 같은 기간 대비 59.7%(1조 2609억원)나 늘었다. 지난해 말 전남도내 196개 지역농협은 외관상으로는 흑자 결산했다.하지만 부채 연체율이 6∼20%를 넘고 있다.연체율은 도시권 소재 농협이 낮고 소득원이 없는 농촌으로 갈수록 높아져 곤궁한 농촌 실정을 보여준다. 충남도내에서도 지역조합 167개 가운데 경영부실 등으로 지난해 27개 조합이 문을 닫았다.9개는 통·폐합 위기다.충북도 87개 지역조합 중 2개 조합이 파산절차를 밟고 있다.1년여 만에 4개가 정리됐다. ●부실 원인은 조합장 그동안 농민회는 조합 직원의 체력단련비 등 급여성 경비를 없애라고 줄기차게 요구했다. 경영능력이 없는 인물이 조합장에 당선되면 조합 부실화율이 높다고도 경고했다.40대 농민은 “많게는 10억원 이상을 쓰고 조합장이 되는데,맘이 콩밭에 가 있는 것은 당연한 것아니냐.”고 반문했다. 한 농민회장은 “수백억원대의 농협 살림살이를 전문가도 아닌 대의원들이 예산·결산 총회를 하루 만에 끝내는 현실에서 어떻게 감시기능을 신뢰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이에 맞서 농협측은 “3개월마다 분기별로 경영실태 등 결산서를 공개하도록 의무화하고 있어 분식회계 등은 꿈도 못꾼다.”고 말했다.이미 집행된 정책자금은 9조원에 이른다. 특별취재팀 대구 김상화 대전 이천열 광주 남기창기자 ■정책자금의 허와 실 문민정부는 1993년 출범 이후 농·어촌 구조개선을 외치며 무려 56조원이라는 천문학적인 돈을 풀었다.정부는 보조를 구실로 은근히 정책자금을 쓰도록 권했고,이렇게 나간 돈은 몇해 지나자 새끼까지 쳐서 농가부채로 고스란히 옮겨졌다. 정책자금은 영세 농업인이 자금을 필요로 할 때 사업 타당성과 영농능력을 고려해 정부가 빌려주는 돈이다.용도별로 너무나 다양해 줄잡아도 100가지를 넘어 일원화가 시급하다는 지적이다.연 이자율이 4.0%로 비교적 낮고 시설투자비의 경우 3년이나 5년 거치 10년 분할상환 조건이어서 농·어업인들에게는 단비와도 같다.농·어촌 구조개선자금,농·축산 경영자금,농기계 구입자금 등이 여기에 속한다.양파·마늘 농사를 짓는 박안수(44·전남 무안군 삼향면 평산1구)씨는 “2차례에 걸쳐 퇴비사와 대형 트랙터를 사느라 정책자금 2500만원을 빌려 해결했다.”고 말했다.하지만 이같은 자금은 통상 보조액수가 전체 사업비의 절반에도 못미친다.따라서 사업비의 30∼40%는 융자,10∼20%는 자부담이어서 농업인들로서는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쓰려는 사람에 비해 자금이 달려 혜택범위가 그다지 크지 않다는 불평도 많다.게다가 농협창구를 통해 나간 정책자금의 경우,상환기간이 돌아오면 농협이 정부에 3.85% 이자를 쳐서 대신 갚아주고 10% 이상 연체이자를 농민에게 받는다. ●시설투자비만 대출… 운영비 빚으로 50대 한 농민은 “농어촌진흥자금(2400만원)으로 논을 샀는데 이자율(3%)이 싼 데 비해 상환기간(3년 거치,4년 상환)이 너무 짧아 원금과 이자 등 연말에 900만원가량을 갚다 보니 허리가 휜다.”며 짧은 상환기간 문제를 제기했다. 방울토마토 하우스를 하는 송모(47·전남 무안군 삼향면)씨는 “그동안 정책자금을 신청하면 행정기관에서 대출 대상자를 선정하고 이듬해에야 자금이 나오기 때문에 정작 돈되는 작물을 심을 기회를 놓친 적도 있었다.”고 털어놨다.20년째 딸기농사에 매달린 최모(58·담양군 봉산면)씨는 “정책자금이라는 게 시설할 때 단 한 번에 그쳐 운영자금은 빚을 내는 식이고,1∼2년 값이라도 폭락하면 빚더미에 올라앉기 십상”이라고 말했다. 방울토마토를 재배중인 유모(43·충북 옥천군 안남면)씨는 “정책자금을 빌려준 뒤 운영비 지원이라든가 생산량 파악 등 정부의 사후관리가 없어 아쉽다.”고 꼬집었다. ●생산량 파악등 사후관리도 했으면 그래서 2000년부터 이런 단점을 보완해서 연속성을 가진 ‘농업종합자금’이 나왔다.대출 주체도 행정기관이 아닌 농협이다.신청하면 농협이 심사해 한 달 안에 필요자금의 100%까지 대출해준다.시설자금은 물론 개·보수자금,운영자금까지 대출 가능하다. 농협 전남도지부 관계자는 “지금껏 농업종합자금을 쓴 농업인들 가운데 연체자는 단 한 명도 없다.”며 가능성을 강조했다.지난해 전남도내에서 농업종합자금으로 750억원을 대출했고 올해는 1000억원을 빌려준다. 특별취재팀 ■중앙회 어느 간부의 고백 “농민들이 그렇게 된 데는 우리의 책임도 크지요.하지만 하느라고 했는데도 농촌의 현실이 이렇게 되고 보니 정말 할 말이 없네요.” 농협중앙회의 한 간부는 16일 “문민정부와 국민의 정부를 거치면서 지난 10여년간 수십조원을 농촌에 쓸어붓다시피했는데….”라며 말끝을 맺지 못했다.그는 농협중앙회로서는 시·군단위의 지역조합에 대해 인사권 등 특별한 통제력을 갖고 있지 않아 개별조합의 부실에 적극 개입할 수 없는 애로를 강조했다.농협중앙회가 지역조합을 도울 수 있는 것은 연간 1조 6000억원 정도를 무이자로 대출해주는 것인데,개별조합에 돌아가는 혜택은 기껏해야 평균 6000만∼7000만원(전국 1300여개 조합이 연간 이자분 700억∼800억원을 나눠갖는 수준) 정도여서 큰 도움은 안 된다는 얘기였다.한마디로 주는 쪽은 ‘큰 돈’인데농민들로서는 도움을 받으나마나 한 수준이라는 것이다. 표면적으로 ‘수십조원’이라는 정책자금도 농민들이 빌려쓰고 갚은 뒤,이 돈이 다시 투·융자로 쓰이면 이를 정책자금에 포함시키기 때문에 실제 정책자금 규모는 드러난 것보다 훨씬 적다고 설명했다. 그는 “산더미 같은 농가부채에다 급격한 농촌 노령화·공동화,세계무역기구(WTO) 농업협상,자유무역협정(FTA) 등 국내외에서 사정없이 몰아치는 파고 앞에서 무력하게 무너져내리는 우리 농촌을 정부 못지않게 발을 동동 구르며 지켜보는 것은 농협일 것”이라며 “어렵다고 손을 놓을 것이 아니라 각종 사업 성과가 농가소득과 농업인들의 편익증진에 직결될 수 있도록 사업체계를 바꾸고 있다.”고 소개했다. 특히 조합육성을 위한 자금지원을 대폭 늘리고 농가소득 증대와 농산물 제값 받기를 위해 규모화된 산지 조합을 적극 육성하며,대량 수요처 개발에도 박차를 가하겠다고 밝혔다. 농촌의 어려움으로 농협을 일방적으로 매도하고 폄하하기보다는 농업인과 농협이 ‘윈·윈’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별취재팀
  • [농촌경제 비상구가 없다](3)노모와 이별하는 농촌가장-아기 울음 끊긴 농촌

    기온이 영하로 뚝 떨어진 13일 새벽,대구의 한 재래시장.채소가게 한 모퉁이에 짐꾼 서너명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옷도 제대로 입지 못해 무척 추워 보이는 40대 후반의 한 남자가 유난히 눈에 띄었다.지난해 2월 인근 농촌에서 빚 때문에 이곳으로 피신해 온 김모(49)씨였다. “참,뭐라고 말할 수가 없죠.빚 때문에 가정이 산산조각났고,정든 고향 친구와 선후배들에게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었지요.돌아가신 어머니를 제 손으로 모시지도 못….” 김씨는 지난 2년여간의 처참했던 자신의 처지를 떠올리며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그의 짐꾼생활은 빚 독촉을 이기지 못해 야반도주한 뒤부터 시작됐다. “하늘이 캄캄했어요.당장 먹고 잘 곳이 있어야 말이죠.막무가내로 시장을 찾았지요.” 김씨는 2∼3년전만 해도 부자는 아니었지만,어머니를 모시고 자식들을 학교에 보내며 남부럽지 않은 생활을 했다.인건비를 줄이려고 농협에서 영농자금을 빌려 거액의 농기계도 구입했다.그러나 태풍으로 농사를 연거푸 망친 데다 빚보증 때문에 전 재산을 날렸다.아내와다툼이 잦아졌고,술로 날을 지샜다.그렇게 보낸 허송세월이 1년.아내와 이혼도 했다.결국 빚 독촉을 이기지 못해 남몰래 고향을 등졌다.자신의 빚 5000여만원 전액을 보증서 준 고향 친구들에게 떠넘긴 채. 엎친 데 덮친 격이었다.할머니와 함께 살던 고등학생 딸은 가출했다.아들은 구미에서 직장생활을 하지만 연락할 길이 없다.지난 여름에는 어머니가 숨졌으나,고향 사람들 뵐 면목이 없어 장례식에도 못갔다.“어느 날 한밤중에 어무이 산소를 찾아가 목놓아 울었어요.못난 자식이라 그 옆에 계신 아부지도 뵐 면목이 없었어요.”라며 눈물을 뚝뚝 떨어뜨렸다. 하루 수입 3만∼4만원으로 끼니를 때우며,쪽방에서 근근이 산다는 김씨는 “제발 고향 사람들에게 내 소식을 전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특별취재팀 대구 김상화 대전 이천열 광주 남기창기자 ■한마을 46명중 44명 환갑넘어 농촌에서 희망과 미래를 뜻하는 갓난 아기 울음소리가 멎은 지 오래다.대신 상여꾼들의 구슬픈 소리는 더 높아만 간다. 농촌이 출산율 급감과 노령·사망률 증가로텅 비어가고 있다.적은 수나마 농촌을 지켜왔던 젊은이들도 폐농으로 정처없이 하나 둘 떠나고 있다.농촌은 이제 풍전등화다. ●26년째 아기 없어 27세가 막둥이 2002년 말 기준 주민 평균연령이 44.8세로 전국 최고령 지자체인 경북 의성군의 구천면 청산2리는 아기울음 소리가 사라진 지 벌써 26년이 넘었다.이 마을 박종하(55) 이장은 “우리 마을에서 태어난 막둥이가 올해로 27살이 됐다.”고 말했다. 군위군 산성면 무암리도 신생아 출생이 20여년 전의 까마득한 일이 됐다.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100여명이 넘던 주민이 해마다 줄어 지금은 46명만 남았다.그것도 노인들밖에 없다.50대 2명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60대 이상이다. 지난해 말 현재 인구 2만 9762명인 군위군의 주민 사망자 수는 연간 411명으로,출생 143명을 3배 가까이 웃돈다.이런 현상은 해가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박영언 군수는 “계속되는 농촌 인구 감소로 지자체의 존립 자체가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며 “농촌발전을 위한 정부 차원의 대책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축사·사육하던 소까지 경매 인구 감소에다 빚을 감당하지 못한 농촌 일꾼들이 고향을 떠나 도시 일용직 근로자로 전락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그들은 막다른 골목에서 극단의 야반도주를 택한다. 의성군 점곡면 김모(50)씨는 빚으로 2개월 전 자신의 축사와 먹이던 소들이 몽땅 경매처분되자 가족과 함께 마을을 몰래 빠져 나가 지금은 도망자 신세로 살고 있다. 김씨는 한때 알부자였다.1995년 축협에서 5000만원을 대출받아 축사를 짓고 소도 들여왔다.빚을 추가로 내 소를 계속 불려 나갔다.소가 새끼를 낳으면서 금세 50여마리로 늘었다.남부러울 게 없었다.그러나 98년부터 외국산 쇠고기 수입이 자유화되면서 소값이 하루가 다르게 폭락했다.결국 6억원의 빚더미에 깔려 신음하다 보따리를 싸고 말았다.군위군 효령면 박모(34)씨도 2년전 어느날 갑자기 도시로 사라졌다.1000여평에서 오이 시설농사를 짓던 그는 면내 지인들의 대출보증을 섰다 전재산을 날렸다.보증서준 사람들 중 상당수가 야반도주해 버렸기 때문이다.자신의 빚 5000여만원에다 이들의 빚 1억여원까지 고스란히 떠안게 됐다.농사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게 된 그는 정든 땅을 등질 수밖에 없었다.이런 이유로 지난 한해 동안 의성·군위·고령군에서만 고향을 등진 농민회원만도 20여명이나 되는 것으로 파악됐다.충남 청양군 비봉면 한모(48)씨도 쌀농사와 돼지 등을 기르며 진 빚 2억원이 부도로 이어지자 연대보증을 서 함께 망가진 장인을 남겨둔 채 사라졌다.‘농촌의 보루’라는 영농후계자들도 속속 농촌을 떠나고 있다.80년대 중반 농민후계자로 선정됐던 이모(44·군위군 군위읍)씨는 2년 전부터 농사를 포기했다.의성군 금성면 김모(50)씨도 마늘 등 복합영농을 하면서 진 빚으로 전재산을 날리고 대구에서 막노동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IMF때 귀농인 다시 도시로 IMF사태 이후 농촌으로 몰려 들었던 도시 실직자들도 다시 농촌을 떠나고 있다.경북도에 따르면 97년 이후 지난해 상반기까지 도시근로자 1028가구가 농촌으로 돌아왔다.그러나 영농 경험부족에다 영농비 폭등,농산물 가격 하락 등 열악한 농촌환경을 극복하지 못한 이들이재이농 행렬을 이루고 있다. 4년 전 고향인 영양군 석보면으로 돌아와 부모와 함께 고추,배추,벼 등 복합영농을 하던 전모(47)씨는 지난해 가을 다시 대구로 돌아갔다.기상이변과 농산물값 하락으로 2년 연속 ‘쭉정이 농사’만 지었다.경북도 및 군 관계자들은 “도시 귀농인들이 정착에 실패,지난해 하반기부터 농촌을 떠나는 사례가 많은 것으로 파악된다.”고 말했다. 군위군의 한 관계자는 “비록 때늦은 감은 있지만 정부는 농민들이 삶의 터전인 농촌에 머물 수 있도록 희망을 심어주고 적극 뒷받침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특별취재팀 ■‘나홀로 농사' 팔순의 母情 “큰 아들이 도회지로 달아나다시피했지.제발 잘 살아 줬으면 해.여기 일은 하루빨리 잊고….” 경북 의성군 금성면에 사는 박분순(83) 할머니.돈 때문에 곁을 떠난 아들식구 생각에 자나깨나 눈물이 마를 날이 없다.그래서 언제부턴가 늘 염주를 손에 들고 다닌다.노령에 불편한 몸을 이끌고 거의 매일 절에도 간다.아들(50)이 잘 되게 해달라고 부처님께 빌고 또 빈다. 박 할머니의 기도생활은 1년 전부터 시작됐다.함께 살던 큰 아들 부부가 눈덩이처럼 불어난 빚을 감당하지 못해 대구로 도망치듯 떠난 뒤부터다.애지중지하던 손자·손녀도 ‘할머니,할머니…’라고 울먹이며 따라갔다. 할머니는 농사짓는 것 밖에 모르던 아들에게 빚이 그렇게 많아진 게 못내 답답할 따름이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농산물 개방이니,농가부채 탕감이니 하는 말은 잘 몰라.하지만 농사지으면 빚만 는다는 게 말이 되냐고….” 늘 재롱을 피우던 손자·손녀들이 아른거리는지,할머니의 눈에는 어느새 눈물이 가득 고였다.할머니를 더 안타깝게 하는 건 연락이 뜸한 나머지 세 아들과 딸들.울산 사는 둘째 아들 내외도 지난 추석 때 잠깐 얼굴 본 게 마지막이다.구미에 사는 딸도 생활이 어려운지 좀처럼 기별이 오질 않는다.모두들 살기가 바빠 그런 줄 알지만,섭섭한 속마음은 헤아릴 수 없다. 할머니는 아들이 넷이나 돼 국민기초생활수급대상자로 선정되지 못해 최소한의 생계비도 지원받지 못한다.살기가 고달플 땐 면사무소에 가서 기초생활수급자로지정해 달라고 떼도 써 보지만 ‘그저 알았다.’고 할 뿐 별 소식이 없다.매월 교통비로 나오는 8400원과 이웃들이 틈틈이 도와주는 것으로 하루하루를 근근이 살고 있다.손수 밥을 지어 먹는 일도 고달프기만 하다.병마와도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다.신경통,고혈압,위장병….병이란 병은 다 달고 다닌다.그래서 요즘엔 자신이 어찌될까봐 늘 불안하다. “이웃들 보고 매일 아침 우리 집에 와서 내가 죽었는지,살았는지 봐 달라고 하지….” 할머니는 추운 날씨 때문인지 최근 들어 부쩍 자식들보다 이웃들이 소중하다고 말한다.그래도 할머니는 큰 아들 내외,손자·손녀와 다시 오순도순 사는 게 소원이다. “내가 살면 얼마나 더 살겠어.하루빨리 농사꾼들이 잘 사는 세상이 돼 큰 아들이 돌아와 같이 사는 게 내 마지막 소원이야.” 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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