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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고] 음악 페스티벌의 대안 찾기/이동연 한예종 한국예술학과 교수

    [기고] 음악 페스티벌의 대안 찾기/이동연 한예종 한국예술학과 교수

    한국 최초의 대형 아웃도어 페스티벌인 트라이포트 록페스티벌이 열린 지 올해로 20년이 됐다. 그사이 크고 작은 음악페스티벌이 생겼다가 사라지길 반복했다. 2017년 음악산업디렉토리북 통계에 따르면 국내 음악축제는 총 55개다. 적지 않은 수치다. 이 많은 축제들은 도대체 어떻게 태어났고, 어떻게 생존하고 있을까. 아쉽게도 올여름 대형 아웃도어 음악페스티벌은 큰 파행을 겪었다. 7월 말로 예정된 ‘지산 록페스티벌’은 개최 3일 전에 취소되고, ‘홀리데이랜드페스티벌’은 대다수 출연 팀 취소 사태로 사실상 중단이나 다름없었다. 주최사의 무리한 기획과 저조한 티켓 판매가 주된 원인이지만, 시대의 문화 트렌드를 읽지 못한 탓도 크다. 대형 음악페스티벌은 총체적 난국에 빠졌다. 페스티벌의 원천인 스타급 밴드들이 재생산되지 못하고, 과열 경쟁으로 인해 규모가 비대해지면서 제작 비용만 상승했다. 특히 대기업 카드사가 슈퍼스타 콘서트를 프로모션 수단으로 활용하면서 록페스티벌의 기대효과는 반감됐다. 페스티벌 간에 과도한 경쟁으로 스타밴드들의 몸값만 올라갔다. 비슷한 경쟁 페스티벌의 개최 시기도 중복돼 관객 분산이 불가피하다. 유럽, 미국, 일본에 비해 관객층이 훨씬 적은 한국의 상황에서 관객을 끌어모으기 위해 상대의 흥행도 제압해야 한다. 또한 대형 페스티벌을 체계적으로 기획하고 마케팅할 수 있는 전문 인력들이 부족해서 문제 해결 능력도 부족하고, 관객의 취향을 사전에 간파하는 능력도 떨어진다. 헤드뱅잉과 슬램은 더이상 아웃도어 음악 페스티벌의 상징적인 아이콘이 아니다. 관객들은 대신 편하고 낭만적인 페스티벌을 원한다. 관객들의 음악 취향 역시 매우 다양해서 재즈, 힙합, 포크, EDM 등으로 특화된 음악 페스티벌을 선호한다. 자신들만의 소소한 페스티벌에서 행복을 느낀다. 헤드뱅잉과 슬램이란 아이콘은 소풍과 돗자리라는 아이콘으로 대체됐다. 관객을 탓할 게 아니라 대안을 상상해야 한다. 페스티벌 기획은 흔히 마약이라고 한다. 뻔히 적자가 날 줄 알면서도 페스티벌 제작의 마력에 취해 불나방처럼 달려든다. 모든 피해는 고스란히 뮤지션과 관객이 진다. 냉정한 현실 판단과 시대 트렌드를 읽는 창의적인 기획력 없이 헤드라이너 위주의 단순 기획만으로는 음악 페스티벌의 재앙을 막을 수 없다. 장기적인 발전 전략과 분명한 문화적 메시지와 정체성의 확립이 스타급 헤드라이너 섭외보다 우선돼야 한다. 그런 점에서 올해 대형 헤드라이너 없이 참신한 기획과 분명한 메시지로 큰 호응을 얻었던 DMZ피스트레인뮤직페스티벌은 한 대안이 될 수 있다.
  • 청와대 “북한 발사체, 우리군 패트리엇으로 요격 가능”

    청와대 “북한 발사체, 우리군 패트리엇으로 요격 가능”

    청와대가 최근 북한의 단거리 발사체 무력시위와 관련해 우리 군이 북한의 무기를 명확히 요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밝혔다. 우리 정부를 모욕한 북한 외무성 국장 명의 담화문에 대해서는 직접적인 입장을 밝히기 적절치 않다면서도 결국 훈련이 끝나면 비핵화 관련 북미 실무협상을 하겠다는 의지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청와대는 또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판결이 한일청구권협정에 배치된다는 일본의 주장을 미국이 지지했다는 일본 언론의 보도는 오보라고 밝혔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12일 한미 연합군사훈련에 불만을 품은 북한이 동해상으로 잇따라 발사체를 쏜 것과 관련해 안보 우려가 커지고 있다는 일부 언론의 지적을 반박했다. 이 관계자는 “현재 북한이 실험하는 정도의 무기는 우리도 다 갖추고 있다. 오히려 그보다 몇 단계 더 앞서고 있다”며 “우리 군이 운용 중인 패트리엇(지대공 미사일) 체계를 중심으로 단거리 탄도 미사일 위협에 명확한 대응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또 “국방비 예산 증액을 통해 변화하는 위협들에 지속적으로 대응하고 있다”며 “문재인 정부의 국방비 증가율은 8.2%로 전임 박근혜 정부(평균 4.1%), 이명박 정부(5.2%)와 비교하면 많은 수준”이라고 설명했다.청와대 관계자는 전날 권정근 북한 외무성 미국담당국장의 담화에 대해 “북한 외무성 국장 담화문에 청와대 관계자가 입장을 내는 것이 맞는지 고민도 있었고 단어 하나하나의 어감까지 일일이 거론하면 대응하는 것이 지금 시점에 맞는지 판단도 필요해 이제까지는 구체적으로 대응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해당 담화문의 진의가 뭔지, 무엇을 말하려는 것인지를 보는 게 가장 중요하다”며 이번 담화문은 한미연합훈련 종료 후 북미 간 비핵화 실무협상에 나서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라고 해석했다. 이 관계자는 담화문에 청와대를 겨냥한 강도 높은 비난이 포함된 것에 대해서도 “북쪽에서 내는 담화문은 통상 우리 정부가 내는 담화문과 결이 다르고, 쓰는 언어가 다르다”며 “이는 대부분 사람이 알고 있는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권 국장은 전날 담화에서 “(한미)군사연습을 아예 걷어치우든지, 군사연습을 한 데 대하여 하다못해 그럴싸한 변명이나 해명이라도 성의껏하기 전에는 북남 사이의 접촉 자체가 어렵다”며 “우리가 대화에 나간다고 해도 철저히 이러한 대화는 조미(북미) 사이에 열리는 것이지 북남대화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권 국장은 청와대를 향해서도 “새벽잠까지 설쳐대며 허우적거리는 꼴이 참으로 가관”, “겁먹은 개가 더 요란스럽게 짖어대는 것 이상으로 보이지 않는다” 등 강도높은 비난을 쏟아내기도 했다.한편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미국이 강제징용 배상판결에 있어 일본을 지지했다’는 일본 마이니치신문의 보도은 오보라고 밝혔다. 고 대변인은 “거의 수시로 소통하고 있는 한미 NSC(국가안전보장회의) 차원에서 미 측에 확인한 결과 사실이 아니라는 답을 들었다”고 말했다. 앞서 마이니치신문은 일본 외무성이 작년 10월 30일 한국대법원이 징용 피해자들에게 배상해야 한다고 판결한 뒤 원고 측이 미국 소재 일본 기업의 자산 압류를 신청할 것에 대비한 협의를 미 국무부와 진행했다고 11일 보도했다. 일본 측은 이 과정에서 미국에서 소송이 제기될 경우 미 국무부가 ‘소송은 무효’라는 의견서를 미국 법원에 내주도록 요청했고, 미 국무부는 작년 말 일본 주장을 지지하는 입장을 일본 측에 전달했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 청와대 “‘미국, 강제징용 日 지지’ 보도, 사실 아닌 것으로 확인”

    청와대 “‘미국, 강제징용 日 지지’ 보도, 사실 아닌 것으로 확인”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이 한일청구권협정에 배치된다는 일본의 주장을 미국이 지지했다는 일본 언론의 보도에 대해 청와대가 오보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은 12일 정례 브리핑에서 일본 마이니치신문의 해당 보도에 대해 “거의 수시로 소통하고 있는 한미 NSC(국가안전보장회의) 차원에서 미국 측에 확인한 결과 사실이 아니라는 답을 들었다”고 말했다. 앞서 마이니치신문은 일본 외무성이 지난해 10월 30일 한국 대법원이 징용 피해자들에게 배상해야 한다고 판결한 뒤 원고 측이 미국 소재 일본 기업의 자산 압류를 신청할 것에 대비한 협의를 미국 국무부와 진행했다고 11일 보도했다. 일본 측은 이 과정에서 미국에서 소송이 제기될 경우 미 국무부가 ‘소송은 무효’라는 의견서를 미국 법원에 내주도록 요청했고, 이에 미 국무부가 지난해 말 일본 주장을 지지하는 입장을 일본 측에 전달했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마이니치는 또 미일 양국이 지난달 고위급 회담에서 이 문제에 대한 일본의 법적 입장을 확인한 데 이어 이달 초 태국 방콕에서 열린 아세안 관련 외교장관회의 때 고노 다로 외무상을 만난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도 이해한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주장했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인천, 붉은 수돗물 보상 착수… 대책위 “동의 못해”

    인천시가 ‘붉은 수돗물’(적수) 사태 정상화를 선언하고 피해 보상에 착수했지만 주민들은 정상화되지 않았다며 여전히 반발하고 있다. ‘인천 서구 수돗물 정상화 민관 대책위원회 주민대책위’는 11일 인천시청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수질 정상화라는 표현에 동의할 수 없다”며 “지금도 서구 일부 지역에선 적수와 흑수가 나오고 짧은 시간 안에 변색되는 필터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대책위는 또한 “인천시가 밝힌 영수증 증빙을 통한 실비 보상과 상수도 요금 감면을 기준으로 한 피해 보상에도 동의할 수 없다”고 밝혔다. 대책위는 1인당 30만원 정도의 보상을 요구하고 있고, 인천시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집단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추진할 계획이다. 이와 관련, 인천시는 피해를 본 67만 5000명에게 30만원씩 보상하게 되면 2000억원이 넘는 예산이 필요하다며 난색을 표하고 있다. 박남춘 시장은 지난 5일 기자회견을 열고 “수질 민원이 사고 이전 수준으로 줄었다”며 대다수 피해 주민들의 부정적 입장에도 불구하고 수돗물 정상화를 선언했다. 적수 사태는 지난 5월 30일 서울 풍납취수장과 성산가압장의 전기설비 검사 때 수돗물 공급 체계를 전환하는 수계전환 중 수도관 내부 침전물이 떨어지면서 발생했다. 한상봉 기자 hsb@seoul.co.kr
  • 美 1700억·日 261억·韓 21억원… 턱없는 예산에 더딘 해외 유해발굴

    美 1700억·日 261억·韓 21억원… 턱없는 예산에 더딘 해외 유해발굴

    美 “조국은 잊지 않아” 전담인력만 450명일제강점기 국외 전쟁터와 노역장으로 강제 동원된 조선인은 125만여명으로 추산된다. 이들 중 20만~60만명이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광복 이후 올 6월까지 국내로 봉환된 국외 강제동원 희생자 유해는 총 1만 1069위에 불과하다. 대법원은 지난해 일본 기업이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1인당 1억원씩 배상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하지만 정작 우리 정부는 일제에 의해 일본군 해외 점령지 등으로 강제 동원됐다 희생된 한국인 징용 피해자들의 유해 대부분을 국내로 봉환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그나마 최근 들어 조금씩 속도를 내고 있다. 그동안 군인·군무원 중심으로 강제동원 피해자 유해 송환 작업을 벌여왔던 정부는 민간노무자까지 송환 대상에 포함시켰다. 유해 발굴 지역도 일본, 사할린 등지에서 태평양 격전지인 타라와섬이나 중국 하이난섬 등으로 확대하고 있다. 송환 작업도 정부 주도에서 민간단체와의 협력 등 투트랙으로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유해 발굴 및 송환에 걸림돌이 많다. 우선 유해 발굴 전문 인력 및 예산이 턱없이 부족하다. 현재 강제징용자 유해를 송환하는 정부 부서는 지난해 신설된 행정안전부 과거사관련업무지원단 내 ‘강제동원희생자유해봉환과’(9명)가 유일하다. 올해 유해 봉환 관련 예산은 21억원에 불과하다. 내년에는 기획재정부에 27억원을 요청해 놓은 상태다. 6·25전쟁에서 전사한 장병들의 유해 발굴 및 봉환사업은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이 별도로 맡고 있다. 미국 정부의 경우 1973년부터 제2차 세계대전, 6·25전쟁, 베트남전쟁 등에서 전사·실종된 미군 유해를 찾기 위해 전 세계를 샅샅이 훑고 있다. ‘그들이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 ‘조국은 당신을 잊지 않는다’ 등을 모토로 내걸고 미 국방부 산하 전쟁포로·실종자확인국(DPAA)에서 전사자·실종자 유골 발굴·수습 봉환사업을 전담하고 있다. 지난해 관련 예산은 약 1700억원이며 전문인력만 450명에 이른다. 일본 정부는 1951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이후 후생노동성 사회원호국을 중심으로 동남아, 남태평양의 일본군 전몰자 유골 수습에 본격 착수했다. 이런 노력 덕분에 2차 대전 당시 국외에서 전사한 군인, 군무원, 민간인 240만명 중 절반 정도인 127만여 위가 본국으로 송환됐다. 우리(1만 1069위)와 비교하면 유해 송환에 얼마나 적극적인지 알 수 있다. 2016년에는 유해 수습을 위해 ‘전몰자 유골수집 추진에 관한 법률’까지 제정했다. 최광숙 선임기자 bori@seoul.co.kr
  • 마이니치 “美, 강제징용 배상 끝났다는 日입장 지지”

    마이니치 “美, 강제징용 배상 끝났다는 日입장 지지”

    한국 대법원의 징용배상 판결이 1965년 체결된 한일청구권협정에 배치된다고 주장하는 일본 입장을 미국이 지지하고 있다고 마니이치신문이 일본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11일 보도했다. 한일청구권 협정에서 ‘예외’를 인정할 경우 1951년 체결된 미일 간 샌프란시스코 강화 조약의 원칙이 흔들릴 수 있다는 미국의 우려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보도에 따르면 일본 외무성은 지난해 10월 30일 한국 대법원이 징용 피해자들에게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린 뒤 원고 측이 미국 소재 일본 기업의 자산 압류를 신청할 것에 대비한 협의를 미 국무부와 진행했다. 일본 측은 이 과정에서 미국에서 소송이 제기될 경우 미 국무부가 ‘소송은 무효’라는 의견서를 미국 법원에 내주도록 요청했다. 마이니치는 이와 관련해 미 국무부가 작년 말 이전에 일본 주장을 지지하는 입장을 일본 측에 전달했다고 밝혔다. 미국은 한일청구권협정에서 ‘예외’를 인정하면 협정의 기초가 되는 1951년의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의 ‘전쟁 청구권 포기’ 원칙이 흔들릴 것으로 우려한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마이니치는 미일 양국은 지난 7월 고위급 회담에서 이 문제에 대한 일본의 법적 입장을 확인한 데 이어 이달 초 태국 방콕에서 열린 아세안 관련 외교장관회의 때 고노 다로 외무상을 만난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도 이해한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보도했다. 마이니치에 따르면 미국에서는 2000년대 들어 옛 일본군의 포로로 잡혔던 미국인들이 일본에서 강제노동에 시달렸다며 일본 기업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이 잇따랐다. 미 국무부는 당시 “샌프란시스코 강화 조약으로 청구권을 포기했다”며 원고 측 청구에 반대되는 의견서를 법원에 제출했고, 미국 법원도 원고 청구를 기각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정부가 징용 배상 판결과 관련해 일본 측 논리를 두둔하는 입장에 선 것은 한국 대법원 판결 영향으로 옛 포로 피해자들이 다시 배상 청구 소송에 나서는 것을 우려하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마이니치는 분석했다. 태평양전쟁 종전 후 패전국인 일본과 연합국 사이에 맺어진 샌프란시스크 강화조약의 당사자가 되지 못한 한국은 일본과 옛 식민지 간 청구권 문제를 당사자 간 특별약정으로 처리한다고 규정한 조약 ‘4조’에 근거해 한일청구권협정을 체결했다. 그러나 이 협정에 등장하는 청구권 문제의 ‘완전·최종적 해결’ 문항을 둘러싼 해석을 놓고 한국과 일본의 의견이 첨예하게 엇갈리고 있다. 한국대법원은 지난해 10월 최종 판결을 통해 불법 식민지배로 발생한 피해에 대한 개인청구권은 포함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반면 일본 정부는 그런 해석이 협정의 취지에 어긋나는 판결이어서 국제법 위반 상태가 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마이니치는 일본 정부가 징용 판결과 관련한 원칙적 주장에서 미국의 이해를 얻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며 이를 바탕으로 한국 정부가 배상책임을 지도록 하는 등 ‘청구권 협정 위반’ 상태의 시정을 계속 요구한다는 방침이라고 전했다. 한편 연합뉴스는 마이니치신문의 이날 보도내용이 일본 외무성 고위 관계자가 지난 9일 도쿄 주재 한국 특파원들과 만난 자리에서 언급한 내용과 비슷한 부분이 있어 주목된다고 보도했다. 익명을 요구한 일본 외무성 관계자는 당시 “미국이 일관되게 말하는 것은 관여는 하지만 중재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라며 “주권국가인 두 나라가 협의해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 미국 입장”이라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또 “(미국 내에서) 자신들이 만든 샌프란시스코 조약에 근거해 체결된 한일청구권협정을 한국이 사실상 다시 쓰려고 하는 게 아닌가 하는 강한 우려가 있다”고 미국 측 분위기를 전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경찰관 때려 코뼈 부러뜨린 30대 남성, 범행 발뺌하다 구속기소

    경찰관 때려 코뼈 부러뜨린 30대 남성, 범행 발뺌하다 구속기소

    30대 남성이 지나가는 사람에게 침을 뱉어 시비를 걸고 현장에 출동한 경찰관을 여러 차례 폭행해 중상을 입힌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서울남부지검은 공무집행방해, 상해 등의 혐의로 회사원 박모(31)씨를 구속기소했다고 연합뉴스가 10일 전했다. 박씨는 지난 6월 18일 밤 10시 25분쯤 서울 영등포구 여의나루역 에스컬레이터에서 행인에게 침을 뱉고,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관의 얼굴을 주먹으로 10여차례 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또 관할 경찰서 지구대에서도 경찰관을 발로 찬 혐의를 받고 있다. 당시 박씨는 만취 상태였던 것으로 조사됐다. 박씨에게 얼굴을 맞은 경찰관은 코뼈가 부러져 상당 기간 통원치료를 받아야 했다. 경찰은 박씨를 현장에서 체포한 뒤 구속영장을 신청했으나 한 차례 기각됐다. “박씨가 범행을 자백하고 반성하고 있으며, 도주나 증거 인멸 우려가 없다”는 것이 법원의 기각 사유였다. 하지만 박씨는 구속영장 기각 후 이어진 경찰 조사에서 ‘범행 내용이 기억나지 않는다’는 취지로 말을 바꿨다. 경찰은 박씨의 진술이 바뀐 점을 바탕으로 구속영장을 다시 신청했고, 법원은 두 번째로 청구된 박씨의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박씨는 재판에 넘겨진 뒤에야 법원에 반성문을 제출한 것으로 전해졌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SKY캐슬‘인 줄” 모던패밀리 박원숙, 김미화 딸 자랑에 폭발

    “SKY캐슬‘인 줄” 모던패밀리 박원숙, 김미화 딸 자랑에 폭발

    ‘미국 오바마 대통령상’에 빛나는 김미화의 막내딸 자랑에 박원숙이 역정(?)을 내, ‘깨알 웃음’을 선사한다. 9일(오늘) 밤 11시 방송하는 MBN ‘모던 패밀리’(기획 제작 MBN, 연출 송성찬)에서는 김미화 가족의 ‘작은 음악회’에 초대받은 박원숙의 두 번째 이야기가 펼쳐진다. 앞서 그는 재혼 13년차임에도 ‘신혼부부’급 금슬을 자랑하는 김미화-윤승호 부부에게 질투 어린 부러움을 드러내는가 하면, 두 사람의 세 딸과 ‘발달장애’ 맏아들이 어우러져 화목한 가정을 이룬 데 대해 존경심을 보였다. 이날 박원숙은 본격 음악회에 앞서 저녁 요리를 손수 준비한 김미화의 막내딸 윤예림 양을 칭찬해,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만든다. 그런데 김미화가 “우리 딸이 미국에 있을 때, 식당 일을 해서 학비에 보탰다. 거기에 공부도 잘해서 중학생 때 ‘오바마 대통령상’을 탔다”고 무덤덤하게 덧붙여 박원숙의 눈총을 산다. 여기에 윤승호 교수마저도 “예림이가 미국에 간 지 2년 만에 담임 선생님이 ‘이런 훌륭한 아이를 보내줘서 고맙다’고 인사를 해왔다”고 거들어 박원숙을 폭발시킨다. 박원숙은 “이 두 사람한테는 무슨 말을 못하겠다. ‘스카이 캐슬’처럼 어마어마하게 자랑할 일을 그냥 일상처럼 얘기한다. 오랜 만에 보니까 좀 이상해졌어”라며 핵직구를 날린다. 물론 그는 “그냥 내가 칭찬하게 내버려 둬”라면서 윤예림 양에 이어 맏아들 윤진희 군도 칭찬한다. 발달장애인들의 축제인 ‘오티즘 엑스포’의 메인 무대에 윤진희 군이 올라 축하 공연을 펼친다는 이야기를 듣고, “멋지다”를 연발하는 것. 이후 윤진희 군의 드럼, 윤승호 교수의 기타 연주에 맞춰 김미화가 ‘사랑밖에 난 몰라’를 열창하는데, 노래 도중 왈칵 눈물을 쏟아 감동적인 순간이 연출된다. 제작진은 “박원숙이 김미화 가족에 대한 정이 남다르다. 이날도 ‘미화 가족이야 말로 진정한 모던 패밀리’라며 ‘큰 감동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많이 했다. 박원숙이 느낀 감동의 순간이 시청자들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지길 바란다”고 밝혔다. 한편 9일(오늘) ‘모던 패밀리’에서는 ‘입관 체험’에 나선 ‘40대 싱글남’ 김민준의 남모를 고독과 고민 이야기, ‘종말이’ 곽진영과 26년 만에 고향 여수에서 ‘부녀상봉’(?) 하는 백일섭의 여행기가 웃음과 감동을 선사할 예정이다. ‘모던 패밀리’는 매주 금요일 밤 11시 방송한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캠핑클럽’ 이진, 눈 뜨자마자 남편과 영상통화 “뉴욕 사랑꾼”

    ‘캠핑클럽’ 이진, 눈 뜨자마자 남편과 영상통화 “뉴욕 사랑꾼”

    이진이 남편과의 꿀 떨어지는 영상 통화로 반전 매력을 선보였다. 11일 방송되는 JTBC ‘캠핑클럽’에서는 캠핑 4일차를 맞아 세 번째 정박지인 울진 구산해변을 찾은 핑클의 모습이 공개된다. 어느새 밤이 깊어 오고 가장 먼저 잠자리에 든 이진은 다음 날 아침에 1등으로 기상해 혼자 캠핑카 밖으로 나갔다. 서둘러 바다로 향한 이진은 미국에 있는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남편에게도 바다의 일출 풍경을 보여주기 위해 눈을 뜨자마자 연락을 한 것. 통화하는 내내 서로를 사랑스럽게 바라보던 두 사람의 대화는 점점 달달해졌고, 특히 이진은 평소 무뚝뚝한 성격과 달리 애교 섞인 애정표현을 하는 등 반전의 모습을 보여 눈길을 끌었다. 또한 해가 안 뜰까 봐 걱정하는 이진에게 남편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다정한 멘트를 건네며 알콩달콩한 통화를 이어갔다는 후문이다. 뉴욕 사랑꾼으로 거듭난 이진의 영상 통화는 오는 8월 11일 일요일 밤 9시에 방송되는 JTBC ‘캠핑클럽’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Focus人] ‘죽음 속 인권과 정의를 보다’ 유성호 법의학자

    [Focus人] ‘죽음 속 인권과 정의를 보다’ 유성호 법의학자

    “유병언을 처음 부검한 건 순천에 있는 병원 의사선생님이셨어요. 노숙자가 아니라 유병언이었다는 걸 시간이 한 참 지난 뒤 유전자 검사를 통해서 알게 된 거예요. 국민들은 당시 유병언이 죽었는지 안 죽었는지 의심하는 상황이었잖아요. 관(官) 혼자서 처리하게 되면 뭔가 음모가 있다거나, 지금도 아마 죽지 않았다고 믿은 분들도 꽤나 있어요. 시신 자체가 엄청나게 부패했기 때문에 사망원인을 밝히지 못한 게 좀 아쉬웠지만 치아와 유전자 등 개인식별 측면에서 도움을 줄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수많은 의문과 의혹을 자신의 죽음으로 묻어버린 유병언. 그의 ‘확실한’ 죽음을 법의학적 관점으로 바라보고 증언한 서울대 의과대학 법의학교실 유성호 교수. 이렇듯 전 국민적 관심이 모아진 유병언 사망사건, 선임병의 잔인한 폭행으로 사망한 28사단 윤일병에서부터 그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하고 열악한 환경 속 결핵질환으로 쓰러져 간 어느 이름 모를 부검실의 시신까지, 법의학자로 살아오면서 그와 마주한 죽음은 자그마치 1500여건.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매주 월요일만 되면 시체를 만나러 가는 남자. 서울대 의과대학 4학년 때 스승이신 이윤성, 이정민 교수님의 강의를 듣다 법의학에 매료됐고 의학에선 좀처럼 듣기 힘든 인권, 정의라는 테마에 빠져들어 이 길을 선택하게 됐다고 말하는, 누구보다 많은 죽음을 마주하고 누구보다 죽음을 깊이 성찰했던 그와의 만남을 정리했다.(Q) 법의학자가 된 계기서울대 의과대학 4학년 때 이윤성, 이정민 교수님의 강의를 듣던 중 매우 흥미있는 과목이라 느꼈고, 인권이라는 용어를 의학에선 좀처럼 듣기 어려운데 인권과 정의와 관련된 여러 강의 내용이 매우 인상적이어서 선택하게 됐죠. (Q) 얼마나 많은 시신을 부검했는지한 달에 보통 적을 때는 6건, 많을 때는 16건 정도 합니다. 지금까지 1500건 이상은 부검한 거 같습니다. (Q) 법의학자들의 인력난은 어떤지현업에 종사하시는 분이 40여명 정도다. 1년에 6000건이 넘는 부검을 하다보니까 한 사람당 거의 150건 가까이 하게 되는 게 현실이다. 원래 인기 있는 직종은 아니지만 현재 사회에서 필요한 거에 비하면 굉장히 적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든다. (Q) 법의학자분들은 ‘한 버스에 함께 타지 않는다?’제주도 학회에서 있었던 일이다. 학회가 끝나고 저녁 식사하기 위해 버스로 이동해야 하는지 고민하고 있던 찰나 한 교수님께서 농담반 진담반으로 말씀하셨는데 저도 인상에 깊이 남아서 책에도 썼다. ‘우리들이 한 버스에 타다 큰일이라도 나면 어떻게 하냐’라고 했을 때 웃을 수 만은 없는 안타까운 현실을 대변해 주는 말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당시엔 우리나라 법의학자 분들이 30여명 정도밖에 안됐다. 지금도 여전히 한 버스로 움직일 수 있는 숫자라서 버스 숫자가 넘은 사람이 될 때가 언제일까 궁금하고 기다려지기도 합니다. (Q) 법의학자가 유난히 적은 이유요즘 직업을 선택할 때 워라밸, 급여, 서울(근무지) 이 세 가지를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저희 직업은 모두를 충족하지 못합니다. 급여는 임상 의사들에 비해서는 반도 안 되죠. 워라밸의 측면에선 ‘법의학이 죽은 사람을 대상으로 부검을 주로 하니깐 응급이 없을 거다’라고 생각하는데 일이 상당히 고됩니다. 또한 대부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들어가서 일하게 되는데 지방 순한 근무가 있습니다. 좋은 직업이라고 추천할 만한 요소는 많지 않죠. (Q) 검안만 하는 법의학자도 있다는데검안은 돌아가신 분들에 대해서 해부를 하지 않고 체표면을 통해 사망원인, 사망시각 등을 추정하는 걸 말합니다. 우리나라는 1년에 8만 명 정도가 사망하는 데 그중에 변사가 3~4만 명이 됩니다. 저희 입장이야 모두 부검을 하고 사망원인을 밝히는 게 여러모로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현실적으론 불가능한 면도 있고요. 그럴 때 검안하는 의사의 역할도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법의학에 계시다가 퇴직하시는 분들이 검안을 하게 됩니다. (Q) 사망 원인을 알 수 없는 경우도 있는지사망 후 형태학적으로도 검사를 통해 알아낼 수 없는 질병도 있습니다. 그럴 때는 다른 걸 모두 배제하는 방법을 씁니다. 소거를 하는 거죠. 외인사인지 아닌지에 따라 경찰의 수사의 지속성 여부가 결정되기 때문에 매우 중요합니다. 외인사를 제거하고 나면 그 다음은 질병에 대한 건데요. 질병도 통계청에 넘어가기 때문에 중요하게 밝혀야 합니다. 부정맥 같은 경우는 모든 질병을 다 소거하고 남은 카테고리 안에서 저희가 임상적으로 판단하게 되는 거죠.(Q) ‘목욕탕 익사’ 관련 논문도 썼는데목욕탕에서 목욕하다가 돌아가시는 노인들이 많아요. 목욕 중 익사인지 아니면 심장질환이나 뇌혈관 질환 때문에 사망한 건지 부검을 했을 경우 정확히 알 수 있기 때문에 매우 중요합니다. 하지만 만일 사망원인이 밝혀지지 않으면 보험 분쟁이 됩니다. 보험사 입장에서는 ‘물을 흡입하지 않았다. 심장질환이 발생해서 돌아가셨고 마침 그 장소가 물이 있었기 때문에 떠오른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지만, 가족 입장에서는 ‘목욕탕에서 돌아가셨으니깐 당연히 익사가 되지 않느냐’라고 할 수 있는 거죠. 만일 익사로 돌아가신 게 증명되면 이건 상해사망, 재해사망이라고 부르는 카테고리에 속하게 됩니다. 질병과 상해는 보험금의 차이가 매우 큽니다. 유가족 입장에서는 당연히 높은 보험금을 받길 원하는 거죠. (Q) 부검할 때의 마음가짐‘이분이 사람이었고 지금도 사람이라는 거, 나와 같은 인간이었다’라는 마음을 가지게 되면 사실을 따로 마음을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돌아가신 분이라고 해서 그분이 ‘사람이 아니다’라고 생각할 필요가 전혀 없고요. 다만 저는 그분의 사망원인과 사망종류를 밝혀줄 제 직업적 소명의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시신이니깐 무섭다거나 피하고 싶다거나 그런 마음을 전혀 들지 않습니다. (Q) 2014년 윤일병 폭행 사건도 맡았는데당시 KBS 윤진 기자가 사건을 발굴해 가져왔고 단지 의학적인 판단을 제공했을 뿐이다. 처음엔 가해자들이, 음식물 먹고 있던 윤일병의 뒤통수를 쳤는데 캑캑거리며 질식사 했다고 했죠. 하지만 부검을 통해 비장이 파열될 정도의 잔인한 폭행과 출혈이 있었고 그로인해 사망한 건데 그 사실이 숨겨질 뻔 했던 거죠. 결국 기소를 다시 하게 되고 살인으로 판단하게 된 거죠. 마음속으로는 처음 이윤성 교수님의 강의에서 들었던 인권, 정의 이런 게 실현된 게 아닐까 하는, 마음속으로 뿌듯함이 있었죠. 세종대왕이 편찬하신 ‘무언록(無寃錄)’의 말처럼 원한을 없게 하는, 그게 바로 유족에게 드릴 수 있는 작은 위로 그리고 고인한테 제가 해드릴 수 있는 마지막 정의실현, 인권이라고 생각합니다. (Q) 꽃피는 봄이 오면 더 바쁜 이유는보통 시신은 물에 빠지면 20~30%는 바로 떠올라요. 간혹 입고 있던 옷의 상태 등 여러 가지 상황에 따라 가라앉게 되는 경우에는 부패하지 않으면 좀처럼 떠오르지 않게 돼요. 하지만 봄이 오고 따뜻해지면 부패가 진행되면서 시신이 떠오르죠. 어느 날은 익사로 사망해 떠오르게 된 부패가 다 진행된 시신들을 네 건이나 부검한 적도 있고요. (Q) 부검을 통해 시신의 과거모습을 느낄 수 있는지시신의 안쪽 장기를 보게 되면 ‘아, 이분이 어떻게 사셨구나’라고 느낄 때가 있어요. 요즘엔 결핵으로 돌아가시는 분들이 많지 않지만, 생활형편이 어려운 지역에 계셨던 분을 보다 보면 결핵으로 사망한 경우도 있어요. 약복용과 치료를 잘 받았다면 그런 불행한 일을 겪지 않았겠죠. 폐기종이 많은 분들을 보면 ‘아, 정말 담배를 많이 피셨구나’라고 느끼죠. 임상 의사들은 초음파나 CT 등을 통해서 간을 보지만 저는 실물을 보기 때문에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되는 거죠. (Q) 기억에 남는 유서가 있다면단지 시신만을 보고 알 수 있는 게 한정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자료의 해석에 있어서 경찰이 처음에 수집한 모든 상황들을 같이 공유합니다. 유서를 보게 되는 이유죠. 많은 분들은 유서라고 하면 제갈량의 출사표처럼 길지 않을까라고 생각하는데 요즘 유서는 점점 짧아집니다. 본인의 죽음을 통해서 가족분들에게 미안하다는 감정을 표현하는 게 제일 많습니다. ‘어렸을 때 때려서 미안하다. 살기 힘들어서 그랬다‘라고 아이에게 남기는 유서도 있고, ‘단골가게에 외상이 있는데 장례 치르고 남은 돈으로 갚아 달라’고 말씀하시는 분도 있었고 여러 가지의 유서 형태를 보게 되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Q) 죽음을 통해 느낀 나름의 성찰이 있다면처음에 법의학을 공부하고 부검을 하게 되면 가장 무서운 건, ‘자신이 갑자기 죽게 된다면…’입니다. 하지만 세월이 오래 흘러가다보면 ‘죽음이란 과연 무엇인가’라는 생각을 하게 되고 역설적으로 그런 죽음을 오래 경험하다보면 ‘현재의 유한한 나의 삶이 얼마나 소중한가’라고 많이 느끼게 돼요. 많은 분들은 법의학자 만나면 재밌고 미스터리한 사건 얘기해달라고 하는데, 사실 그런 건 기억에 잘 남지 않습니다. (Q) 부검 중 눈물 흘린 이유의정부 한 아파트에서 어떤 여성분이 돌아가셨는데 아이를 끌어안고 화상을 입은채로 발견돼 병원에서 치료받다가 돌아가셨어요. 그 분 자신도 보육원에서 입양과 파양을 겪으면서 홀로 외롭게 자라왔죠. 인생의 아이러니라고 할까요. 미혼모로서 아이를 홀로 키우다 뜻하지 않는 사고를 당하게 된 거죠. 그 분 한쪽 눈가 끝에 눈물이 말라 붙어 있는 걸 보고 돌아가시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란 생각에 마음이 많이 아팠던 기억이 있습니다. (Q) 인간의 악함에 분노했던 부검 사례가 있다면굉장히 놀란 사건이었어요. 여성이 147번을 칼에 찔렸습니다. 이별 통보받은 남성이 격분해서 찌른 건데 그땐 굉장히 마음이 우울했어요. 잔혹한 것도 잔혹한 거지만 인간이 얼마나 악할 수 있을까 도대체 어떤 마음으로 이랬을까, 그것도 한 때 사랑했던 사람에 대해서. 인간의 악함에 분노했던 기억이 납니다. (Q) 부검은 중요한 국가적 과제어떤 사람의 형법적 정의, 인권이라는 면에서 굉장히 중요하고요. 또 하나는 국가가 세금을 걷어서 제대로 쓰려면 국민의 인생 마지막 과정인 죽음에 있어서 실제로 어떤 과정에 의해서 일어났는지를 정확히 알아야 돼요. ‘자살이 많다’면 당연히 그쪽을 예방하기 위해 국가 세금 써야 합니다. 그런 것에 근간이 되는 게 사망원인의 규명이죠. 부검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진 않지만 법의학자가 열심히 활동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 줘야 그 사회가 형법적 정의는 물론 국가의 세금을 제대로 쓸 수 있는 그리고 그걸 통해서 국민의 수명이 더 늘어나고 기대여명이 더 늘어날 수 있게 되는 거죠. (Q) 어떤 죽음을 맞이하고 싶은지저는 직업 때문에 당연히 죽음을 오래전부터 생각해 왔습니다. 시나리오도 여러 개 생각해 봤고요. 안타깝지만 현대사회에서의 죽음은 사실 의사에 의해서 좌우될 때가 많아요. 정신없이 뭔가를 진단받고 치료에 전념하다가 결국 사랑하는 사람이나 주변에 본인이 남기고 싶은 죽음에 대한, 죽음을 통해서 얻은 자신만의 성숙한 고찰 등을 전혀 남기지 못하고 그냥 갈때가 많아요. 내가 뭘 원했는지 뭘 안 원했는지를 명확하게 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죽음에 대한 준비, 거창하게 어딘가에 틀어박혀서 로뎅의 생각하는 사람처럼 그렇게 하는 게 아니라 일상적으로 나의 삶에 최선을 다하면서 어떻게 마무리 지을까를 준비하는 게 진정한 죽음의 준비가 아닐까요. (Q) 앞으로의 계획법의학자가 된 후 살아온 삶보다 앞으로 법의학자로서 살아야 할 삶이 더 길다고 생각해요. 쓰고 싶은 주제의 논문도 많고요. 리서치와 실험 등 해야 할 게 많아서 차근차근 준비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글 박홍규 기자 gophk@seoul.co.kr 영상 박홍규, 문성호, 김민지 기자 sungho@seoul.co.kr
  • [정-치어쓰] 법무 조국 “난 청문회 통과 못한다”···과거 인터뷰서 밝힌 이유

    [정-치어쓰] 법무 조국 “난 청문회 통과 못한다”···과거 인터뷰서 밝힌 이유

    조국 전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이 9일 차기 법무부장관 후보자로 지명됐습니다. 앞으로 인사청문회가 예정돼 있는데요. 그간 조 후보자와 친일 논쟁을 벌였던 야당은 후보자 낙마를 벼르는 모습입니다. 조 후보자의 소셜네트워크 서비스(SNS), 저서, 인터뷰를 종합해 청문회 쟁점을 예상해봤습니다. 먼저 2010년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시절 조 후보자의 언론 인터뷰 한토막을 꺼내보겠습니다. 인터뷰에서 “어떤 자리를 생각해 본 적이 있냐”라는 기자의 질문에 조 후보자는 “난 청문회 통과 못한다”라고 답합니다. 당시 조 후보자가 말한 자신의 불가 사유 두 가지는 ‘국가보안법 처벌’과 ‘위장전입’ 전력입니다. 당시 인터뷰 전문을 옮기면 이렇습니다. -그러면 ‘장외 우량주’인 조 교수도 거론되겠다. 드림팀 놀이를 하면서 어떤 자리를 생각해 본 적 있나. =하하. 나는 청문회를 통과 못한다. 국가보안법으로 처벌받은 적이 있고…이 대목은 오프더레코드를 요청해야 하나? 위장전입을 한 적도 있다. 내가 제사를 모시는데 집안 어른들이 내 명의로 선산을 구입하면서 실제 거주하지 않았던 친척집으로 주소를 옮긴 적이 있다고 들었다. <한겨레21 2010. 11. 03>그해 7·28 재보궐 선거에 이름이 오르내리며 정치권에서 주목받던 조 후보자는 ‘진보집권플랜’이라는 책을 내고 정파를 뛰어넘어 시민들이 직접 대통령, 총리, 장관 후보들을 뽑아보자며 ‘드림팀 놀이’를 제안합니다. 이에 대해 기자가 ‘(놀이 제안자로서) 당신은 어떤 자리를 생각해봤냐’고 물었더니 자신 스스로 청문회에서 공격받을 수 있는 지점을 언급한 겁니다. 우선 국가보안법 처벌 부분입니다. 조 후보자는 1992년 최연소로 울산대 법학과 교수가 됩니다. 바로 다음 해인 1993년 사노맹(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 산하 남한사회주의과학원 사건에 연루돼 국가보안법상 반국가단체가입죄 위반으로 구속되죠. 1심 재판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았지만 5~6개월간 구치소 생활을 합니다. 조 후보는 당시 일에 대해 “사노맹 핵심 간부였던 백태웅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 교수가 고향·학과 선배여서 자금 지원과 글을 써줬다. 사노맹에 이견도 있었다”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자유한국당은 이 부분을 도돌이표처럼 재언급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실제로 전희경 자유한국당 의원은 지난해 민정수석 자격으로 운영위원회에 출석한 조 후보자를 향해 ‘시대착오적 좌파정권의 척수’라고 비난한 바 있죠.위장전입 문제는 지금까지 언론에서 지적한 바가 없기에 지난 7일 조 후보자에게 직접 사실 확인을 요청했습니다. 하지만 조 후보자는 수 차례 전화 연결에도 답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조 후보자 측에서 문자로 연락을 해왔는데요. 요지는 “‘선산 구입 위해 위장전입했다고 들었다’라고 인터뷰에서 말했는데 실제로 확인해보니 그런 사실이 없었다”라는 겁니다. 문자 내용을 그대로 옮겨보겠습니다. 조국 측) 위장전입한 바 없습니다. 기자) 그럼 인터뷰 내용이 잘못됐다는 말인가. 조국 측) “선산 구입 위해 위장전입했다라고 들었다”라고 했는데 그러지 않았음을 확인했습니다. 기자) 그렇게 들었는데 직접 사실 확인을 해보니 아니라는 말인가 조국 측) 네, 집안 어른들이 그랬다고 들었는데 아니라는 말입니다. 이 사안은 서류를 통해 확인될 것입니다. 조 후보자 측의 말을 종합해보면 조 후보자가 집안 어른들에게 들은 내용으로 인터뷰를 했지만 확인해보니 사실과 다르다는 겁니다. ‘단순한 해프닝’으로 볼 수 있지만 아직은 조 후보자 측의 주장이기 때문에 서류상 확인이 필요할 듯 보입니다.그동안 청문회에서 위장전입은 단골 소재였습니다. 많은 후보자들이 ‘과거에는 관행이었다’, ‘위장전입 관련 법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등의 이유로 그대로 장관직에 임명됐죠. 청와대 고위공직후보자 인사검증 7대 기준조차 위장전입에 대해 ‘05년 7월 이후 부동산 투기, 자녀의 선호학교 배정 등을 위한 목적으로 2회 이상 위장전입을 한 경우’로 세부규정을 두고 있습니다. 2005년 이전에 한 위장전입 한 번 정도는 괜찮다는 겁니다. 국민들이 주민등록법 위반으로 전과자가 되는 현실과 비교하면 후보자들에게 관대한 측면이 있습니다. 조 후보자가 청문회에서 다시 한번 이 부분을 명확하게 짚고 넘어가야 하는 이유입니다. 또한 조 후보자가 SNS에서 일본 정부의 문제에 대해 다른 목소리를 내는 일부 야당과 언론을 ‘친일파’로 규정하고 그들의 행위를 ‘이적(利敵) 행위’라고 비판한 것이 정당한지를 놓고 야당의 문제 제기가 있을 듯합니다. 물론 틀린 사실을 얘기하는 일부 야당 의원들에게는 잣대를 들이대야죠. 그럼에도 ‘적(일본)을 돕는 행위를 했다’고까지 규정한 건 과도해 보입니다. 이번 청문회 역시 제대로 된 ‘정책’ 청문회가 되기는 힘들 듯한데요. 야당은 ‘흠집 내기’가 아닌 도덕성 검증을 하되 조 후보자가 주장해 온 검찰·경찰 수사권 조정과 고위공직자 비리수사처 도입이 옳은 일인지 검증하는 데 집중하는 건 어떨까요. 이범수 기자 bulse46@seoul.co.kr 유튜브에서 ‘정-치어쓰‘ 검색하셔도 영상 확인 가능합니다.
  • “100년 전 독립투사 발자취를 따라서” 시흥꿈나무 중국 탐방

    “100년 전 독립투사 발자취를 따라서” 시흥꿈나무 중국 탐방

    경기 시흥시 ‘시흥꿈나무 세계속으로! 해외견학체험단’이 지난 4일부터 4박5일 일정으로 중국 해외 견학 중이다. 8일까지 진행되는 견학일정은 ‘100년 전 그날, 그리고 시흥’ 주제로 중국 상하이~항저우 일대에서 일제강점기 독립운동 지역과 관련인물에 대해 배웠던 역사를 현장에서 체험하고 학습하고 있다. 답사 일정은 우리나라 항일 독립운동 근거지를 살펴볼 수 있는 상하이(상해)와 자싱(가흥)·하이옌(해염)·항저우(항주)를 거친다. 독립운동가 발자취를 따라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를 비롯해 윤봉길 의사 폭탄투척 의거현장인 홍구공원, 김구 피란처인 재청별장 등을 답사했다. 우리나라 독립운동 역사뿐만 아니라 중국의 전통문화와 개항역사를 함께 살피는 역사·문화탐방으로 진행된다. 또 한·중청소년 교류회를 통해 청소년교류 활동 등 의미 있는 답사가 진행되고 있다. 5일에는 상하이에서 한·중청소년 교류회를 가졌다. 상해펑푸중학교 학생 40명과 함게 환영식을 가졌다. 상호간 마음의 벽을 허무는 아이스브레이킹과 양국문화를 소통하는 ‘몸으로 말해요’ 게임에 이어 마음을 담아 만든 부채를 교환하는 시간 등을 통해 짧지만 깊은 우정을 나눴다. 교류회에 참여한 한 학생은 “교류를 함께한 중국학생들과 SNS계정을 주고받기로 했다며 “서로간 편견이나 이해관계에 얽매이지 않아 금방 친해지고 마음을 열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소감을 밝혔다. ‘시흥꿈나무 세계속으로! 해외견학체험단’은 올해로 9년째 추진하는 시흥시 대표적인 청소년국제교류 사업이다. 초등학교 5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 청소년 50명이 지난 4월부터 5회차 전문가 사전교육을 거쳐 역사와 문화예술 테마별 주제로 해외답사를 진행하고, 사후교육 과정으로 이어진다. 시흥꿈나무 세계속으로! 해외견학체험단 프로그램은 매년 2~3월 모집해 4월 중 선발한다. 자세한 내용은 시흥시 교육청소년과(031-310-3612~3)로 문의하면 된다. 이명선 기자 mslee@seoul.co.kr
  • 전직 대통령 체포 나선 키르기스스탄 특수부대원 오히려 인질로

    전직 대통령 체포 나선 키르기스스탄 특수부대원 오히려 인질로

    중앙아시아 ‘파미르 고원’의 관문 격인 키르기스스탄 당국이 7일(현지시간) 부패 혐의를 받는 알마즈벡 아탐바예프 전(前) 대통령 체포에 나섰지만 총기 등으로 무장한 그의 지지자들이 저항하는 바람에 작전은 실패했고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현지 언론의 보도를 종합하면 키르기스스탄 경찰은 이날 저녁 특수부대원들을 투입해 수도 비슈케크 인근의 아탐바예프 전 대통령 자택을 급습했다. 아탐바예프는 수사당국의 증인 출석 요구를 세 차례나 거부해 이번 작전의 빌미를 제공한 범죄조직 두목 불법 석방 사건에 개입했다는 혐의 외에 비슈케크 열병합발전소 보수 사업 관련 부정, 발전소에 대한 불법적 석탄 공급, 불법 택지 수령 등의 혐의를 받고 있다고 현지 수사당국은 밝혔다. 재판에서 유죄가 확정될 경우 그는 종신형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키르기스스탄 의회는 앞서 지난 6월 27일 아탐바예프의 면책특권과 전직 대통령 직위를 박탈하기로 결의했다. 하지만 총기 등으로 무장한 아탐바예프 지지자들이 경찰의 진입을 막고, 특수부대원들의 무기와 장비 등을 빼앗거나 이들을 인질로 잡기도 해 결국 8일 새벽 체포 작전은 실패로 막을 내렸다. 키르기스스탄 보건부는 특수부대원 1명이 총탄에 맞아 숨졌으며, 45명이 부상해 병원으로 이송됐다고 밝혔다. 한때 아탐바예프 전 대통령의 측근은 타스 통신에 “경찰 특수부대원들이 아탐바예프를 체포해 모처로 연행해 갔다”고 전했는데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인테르팍스 통신은 수르산 아사노프 내무부 차관을 인용해 당국이 아탐바예프 지지자들과 협상을 벌여 인질로 잡힌 대원 6명을 석방하겠다는 약속을 받은 뒤 대원들을 철수시켰다고 전했다. 또 현지 매체인 jg,24도 경찰이 마을에서 떠났다고 전했으나 구체적인 내용은 언급하지 않았다. 리아노보스티 통신은 현장을 취재하던 기자들을 포함해 10명이 부상했다고 전했다. 아탐바예프 전 대통령의 변호사는 면책 특권 박탈이 위헌이라고 반박했다. 아탐바예프도 이번 사태를 소론바이 제엔베코프 현 대통령의 정치적 탄압이라고 규정하면서, 자신에 대한 혐의들은 완전한 넌센스라고 반박했다. 이렇게 양측이 물리적으로 충돌하면서 러시아 공군기지가 있는 데다 중국과 국경을 맞댄 키르기스스탄의 정정 불안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아탐바예프는 지난 2011~2017년 대통령으로 재임하고 스스로 물러나면서 제엔베코프를 대선 후보로 추천했다. 그의 지원을 등에 업은 제엔베코프는 2017년 10월 치러진 대선에서 당선됐다. 하지만 그 뒤 정부 구성 문제 등에서 틈이 벌어졌고 제엔베코프는 지난해 4월 초부터 보안 부처와 검찰 등에서 아탐바예프 측근들을 몰아내는 등 ‘홀로서기’를 시도해왔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씨줄날줄] 공매도/전경하 논설위원

    [씨줄날줄] 공매도/전경하 논설위원

    미중 환율전쟁으로 주식시장이 폭락하면서 ‘공매도’가 주요 현안이 됐다. 공매도는 주가 하락을 예상해 주식을 판 뒤 나중에 그 주식을 보다 싼 값에 되사서 수익을 얻는 기법이다. 주가가 떨어져 투자자들 손실이 크고, 주가는 더 떨어질 거 같은데 주가 하락으로 이익을 얻는 공매도를 허용해야 하느냐가 금융 당국의 고민이다. 실제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8년 10월부터 2009년 5월까지 8개월, 유럽 재정위기 때인 2011년 8월 10일부터 11월 9일까지 3개월 동안 모든 종목의 공매도가 금지됐다. 금융주는 2008년 10월부터 2013년 11월까지 공매도가 금지됐다. 공매도에는 빌려서 파는 차입공매도와 신용에 기반해 파는 무차입공매도가 있다. 예를 들어 A주식 보유자에게 한 주당 10만원씩 100주를 1000만원에 빌렸다가 돌려줄 때 주식이 8만원이 됐다. 그러면 8만원씩 100주를 사서 돌려주고 200만원을 벌게 된다. 물론 빌려준 값 등 각종 수수료를 빼면 이익은 줄어든다. 나중에 주겠다는 약속만 하고 주식을 파는 무차입공매도는 한국뿐만 아니라 일본, 홍콩, 중국 등에서는 금지돼 있다. 미국과 유럽연합(EU)도 매우 예외적인 경우에 한해 허용한다. 공매도했는데 주가가 오르면? 그래도 약속이므로 사서 돌려줘야 한다. 예측을 틀리게 했으므로 주가 상승에 따른 손실은 공매도한 사람 몫이다. 금융 당국이 공매도를 선뜻 금지하지 못하는 것은 공매도의 순기능 때문이다. 주식을 얼마에 팔겠다고 하면 공매도인지 밝혀야 하고 공매도라면 제시하는 가격(호가)은 직전 체결가보다 1틱(최소호가) 높아야 한다. 주식시장이 상승세일 경우 공매도는 본래 가치보다 고평가됐거나 사업 전망이 안 좋다고 여기는 투자자 의견을 반영해 가격을 적정화시키는 기능을 한다. 또 공매도 과열 종목 지정, 위반 시 제재 등을 꾸준히 강화해 왔다. 개인투자자들 입장에서는 현재 규제가 형식적이고 기관투자자들에게 유리하게 돼 있다. 지난해 6월 세계적 투자은행(IB)인 골드만삭스 서울지점은 공매도 주문 중 20개 종목을 결제하지 못했다. 즉 자신의 신용에 기반해 무차입공매도를 했다. 개인이 공매도를 하려면 증권사에 대차거래를 신청하고 거래 전 증거금을 입금해야 한다. 반면 기관투자자들은 전화나 메신저만으로 공매도를 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다 보니 공매도에서 개인투자자 비중은 지난 1분기 기준 1.3%다. 기관투자자(33.7%)는 물론 외국인투자자(65.0%)에 한참 못 미친다. 사람들은 자신의 주식이나 부동산은 늘 오르고 올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믿음에 찬물을 끼얹는 공매도. 반갑지는 않지만 때론 필요하다.
  • 김송 SNS테러, 시험관 아기 시술 고충까지 털어놨는데..왜?

    김송 SNS테러, 시험관 아기 시술 고충까지 털어놨는데..왜?

    강원래 아내인 김송이 SNS테러 소식을 전했다. 김송은 6일 자신의 SNS에 “어제 두 명의 여자들에게 인스타(인스타그램) 테러 받고 잠을 못 잤네요”라고 시작하는 글을 올렸다. 이어 “난 성격이 까탈스럽지도 않고 참 털털한데. 아…고집 쎄고 욕도 잘하지…그런데 한 아이의 엄마이고 한 남편의 아내이기에 참았습니다”며 “이유가 있어서 욕먹는다면 받겠지만 어제의 경우는 일방적으로 당해서 참 억울했습니다. 그래서 차단했고요”라고 덧붙였다. 김송은 “공격 글이 오면 또 참아야겠지요? 비공개로 해야 되나…여러 생각을 하게 되네요”라고 속상해했다. 게시물을 본 네티즌들은 악플 테러에 대해 우려를 표하며 “힘내세요”라는 응원의 메시지를 남겼다. 한편 김송은 최근 한 방송에 남편 강원래, 아들과 함께 출연해 “제가 43살에 아들을 낳았다. ‘안 낳았으면 어떡했나’는 생각이 든다”며 아들을 향한 애정을 드러냈다. 강원래도 “시험관 아기를 시도하며 아내 김송도 많이 힘들었다. 그러나 아들 선이 태어난 후 온 우주가 선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고 행복한 마음을 고백했다. 김송은 “2003년 10월 12일에 결혼식을 올렸고, 병원에서 임신 성공 소식을 결혼 10주년인 2013년 10월 12일에 들었다”며 “여자에게 굉장히 복잡하고 힘든 시술이다. 여덟 번 만에 임신에 성공하게 됐다”고 시험관 아기 시술의 고충을 털어놔 눈길을 끌었다. 사진 = 서울신문DB 연예부 seoulen@seoul.co.kr
  • [명예기자가 간다] 한국인 1호 특허가 정인호 선생, ‘말총모자’ 민족기업 육성해 독립운동 앞장

    [명예기자가 간다] 한국인 1호 특허가 정인호 선생, ‘말총모자’ 민족기업 육성해 독립운동 앞장

    국가의 명운이 걸린 경술국치 1년 전인 1909년 8월 19일. 통감부 특허국은 정인호(1869~1945) 선생의 ‘말총모자’를 한국인 최초 특허로 등록했다. 한국인 제1호 특허권자인 정 선생은 발명가이자 독립운동에 앞장선 애국지사다. 경기 양주 출신으로 궁내부 감중관과 청도군수를 지냈고 일제 침탈이 가속화되자 군수직을 사직했다. 민중 교육과 산업진흥만이 나라를 구하는 길이라 믿고 독립운동에 헌신한 그는 1908년 초등대한역사 등 교과서를 저술하며 민족교육운동에도 힘썼다. 한국과 일본에서 특허 등록한 말총 제품을 해외로 수출하며 민족기업으로 성장시켰다. 청량리에 5096평의 공장부지를 마련할 정도로 사업은 번창했다. 단발령 이후 머리를 짧게 깎으며 두발 관리 일환으로 모자가 대중화됐고 화학제품이 없었던 시기 말총 제품은 질기고 깔끔한 소재로 인기가 높았다. 당시 특허제도는 일본에 의해 1908년 시행된 한국특허령이다. 일본특허제도를 그대로 적용한 것으로 한국 내에서 미국·일본의 권리보호가 목적이었다. 경술국치 후 조선총독부가 설치되자 일제는 한국특허령을 폐지하고 내선일체란 명목으로 일본 특허법을 시행했다. 이에 정 지사는 일본에 말총모자·말총셔츠·말총연초갑 등의 특허를 등록했다. 한국인 1호 특허권자이자 해외 특허등록 1호 주인공인 셈이다. 1911년 ‘105인 사건’에 연루돼 종로경찰서에서 모진 고문을 당하기도 했다. 1919년 3·1 운동을 계기로 대한독립구국단을 결성해 상해 임시정부에 군자금을 조달했고 윤용구·한규설 등 100여명을 임시정부 의정원 의원으로 추천하기도 했다.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하던 활동으로 일본경찰에 체포돼 5년 징역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정 지사는 광복을 못 보고 세상을 떠났지만 정부는 독립운동가의 공훈을 인정해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했고 국립대전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 안장됐다. 일제에 의한 한국인 제1호 특허가 민족기업을 성장시켜 상해 임시정부에 군자금을 지원하며 독립운동의 자금원 역할을 한 셈이다. 올해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년, 광복 74주년이다. 특허사에서도 한국인 제1호 특허등록 110주년이자 대한민국 200만 번째 특허 등록을 앞둔 의미 있는 해다. 한국인 제1호 특허가 임시정부에 군자금을 지원하며 독립운동의 숨은 조력자 역할을 했듯 새롭게 특허 등록될 우리의 발명들이 한국의 혁신성장을 이끌 원동력이 될 것으로 자신한다. 조성수 명예기자 (특허청 대변인실 주무관)
  • 흡연하던 10대에 훈계하던 40대, 욕설 듣자 흉기 휘둘러

    흡연하던 10대에 훈계하던 40대, 욕설 듣자 흉기 휘둘러

    법원 “미성년자 훈계 과정서 범행…참작할 사정 있다” 담배를 피우던 10대들에게 훈계하던 중 욕설을 듣자 화가 나 흉기를 휘두른 40대가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수원지법 형사11부(부장 이창열)는 특수상해 및 특수폭행 혐의로 기소된 김모(49)씨에 대해 징역 6개월을 선고하고, 형의 집행을 1년간 유예한다고 6일 밝혔다. 김씨는 지난해 5월 9일 오후 11시쯤 시흥시 소재의 한 공원 정자에서 담배를 피우던 A(18)군을 보고, 담배를 끌 것을 요구했다. 그러자 A군은 욕설을 섞어가며 “야, 담배 끄라고 한다”고 말했고, 이에 화가 난 김씨는 흉기를 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A군의 머리카락을 잡아챈 뒤 뺨을 1대 때렸다. 이에 옆에 있던 B(17)군이 김씨를 제지하려고 김씨의 손을 잡았지만, 김씨가 흉기를 휘두르면서 B군은 손을 베였다. 이러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김씨에 대해 법원은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의 죄책이 가볍지 않으나, 피고인이 당시 미성년자였던 피해자들을 훈계하는 과정에서 범행한 것으로 그 경위에 참작할 만한 사정이 있는 점을 고려했다”고 판시했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엘패소 총기 난사 때 아내 앞에 몸 던져 총알 막은 남성 끝내

    엘패소 총기 난사 때 아내 앞에 몸 던져 총알 막은 남성 끝내

    지난 3일(이하 현지시간) 미국 텍사스주 엘패소에서 총기 난사 때 범인과 아내 사이에 몸을 던졌다가 총알을 여러 발 맞은 멕시코 남성이 끝내 5일 숨졌다고 로이터통신이 전했다. 비운의 주인공은 후안 드 디오스 벨라스케스(77)로 아내 에스텔라 니콜라사(65)를 월마트 참극 현장에서 구해내기 위해 일부러 범인과 아내 사이에 몸을 날렸다. 총알은 그의 몸을 관통해 아내까지 쓰러뜨렸다. 국경에서 멀지 않은 시우다드 후아레스에서 엘패소로 이사 온 지 6개월 만에 마주친 비극이었다. 조카딸 이달리 벨라스케스는 이날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를 통해 “그는 더 이상 싸울 수 없었다. 그의 심장이 무너지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다른 조카딸 니콜 라모스는 여러 차례 수술을 받았지만 총알들이 장기들을 관통하는 바람에 소생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아내 니콜라사도 복부에 총탄을 맞았지만 수술을 받고 회복해 안정을 취하고 있다. 특히 이날 총기 난사에 희생된 22명 가운데 멕시코인 희생자는 8명으로 늘었다. 멕시코에서는 당연히 엄청난 반발을 불러 모았다. 엘패소는 미국에 거주하는 멕시코인들이 국경을 넘어온 가족들과 재회하며 주말 쇼핑을 즐기던 곳이었다. 멕시코 정부는 테러 행위로 보고 수사에 나서기로 했으며 재판 회부를 위해 범인 패트릭 크루시어스의 신병 인도를 요구할지 모른다고 5일 밝혔다. 엘패소를 방문해 현지 멕시코영사관에서 기자들을 만난 마르셀로 에브라르드 멕시코 외무장관은 이번 사건으로 8명의 멕시코인이 숨지고 6명이 부상해 입원 중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에브라르드 장관은 아울러 미국 당국에 숨진 멕시코인들의 시신을 가능한 한 조속히 본국의 유족들에게 넘겨줄 것을 요청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번 사건에 사용된 무기의 판매와 유통에 대해서도 조사를 시작할지 모른다고 말했다. 엘패소 경찰은 범인 크루시어스가 소지한 무기는 합법적으로 구매한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한편 엘패소와 오하오주 데이턴에서 30여명의 목숨을 앗아간 총기 난사 참극이 잇따라 벌어졌을 때 골프클럽에서 머무르며 낯선 이의 결혼식에 참석했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7일에야 두 도시를 방문할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총기 난사를 ‘악(惡)의 공격’이라고 규탄하는 대국민 성명을 발표했으나, 자신의 분열을 획책하는 발언이 증오 범죄를 조장했다는 ‘책임론’을 불식시키는 데 거리가 멀어 보인다. AFP통신에 따르면 디 마고 엘패소 시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어제 전화를 했다. 그는 상냥한 목소리로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방식으로 도움을 주겠다고 말했다”면서 “그가 방문하면 연방정부의 모든 가용자원을 동원해 우리의 노력을 지원해 달라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의회 전문 매체 더힐은 이날 데이턴도 방문할 것으로 보인다고 미국 연방항공국(FAA) 공지 내용을 인용해 보도했다. 그러나 엘패소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그리 환영받지 못할 것이란 목소리가 나온다고 AFP는 전했다. 마고 시장은 트럼프 대통령을 환영할 것이라면서도 “누구도 우리의 역사와 가치에 부합하지 않은 방식으로 엘패소를 묘사하는 것은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소속인 낸 웨일리 데이턴 시장은 트럼프 대통령 방문 계획에 퉁명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웨일리 시장은 기자들에게 “그가 수요일에 온다는 말은 들었는데, 전화는 오지 않았다”며 “그는 아마 털리도로 갈 것이다. 난 모른다”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국민 성명 가운데 “털리도에서 숨진 이들의 기억을 신이 축복하기를”이라며 잘못 언급한 것을 꼬집은 것이었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태풍 프란시스코 7일 새벽 안동 인근서 열대저압부로 소멸

    태풍 프란시스코 7일 새벽 안동 인근서 열대저압부로 소멸

    제8호 태풍 프란시스코가 일본 가고시마 북북서쪽 약 200㎞ 부근 육상을 시속 28㎞의 속도로 북서진하고 있는 가운데 6일 오후 부산 남쪽 90㎞ 해상까지 근접한다. 당초 태풍 예상경로에 따르면 강원도 속초지역을 빠져나간 뒤 열대저압부로 약화돼 소멸될 것으로 전망됐지만 이보다 빠르게 경북 안동지역에서 열대저압부로 변할 것으로 전망됐다. 기상청은 “8호 태풍 프란시스코는 경북 안동지역에서 열대저압부로 바뀌겠지만 비구름대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경상지역에 특히 많은 비가 내릴 것”이라고 6일 예보했다. 태풍의 영향으로 7일에는 전국적으로 비가 내리겠지만 특히 동부지역에 많은 비가 내릴 것으로 보인다. 태풍 프란시스코는 일본 큐슈 육상에 상륙해 많은 비를 뿌리면서 약화된 상태에서 북상하고 있어 기상청은 태풍 진행방향 서쪽에 위치한 일부 전라도와 충청도의 태풍 예비특보를 강풍 예비특보로 변경했다. 태풍 프란시스코는 열대저압부로 바뀌기는 하지만 많은 비구름을 갖고 있기 때문에 경상도와 충북, 강원도 지역에 50~150㎜, 경상해안 지역에는 200㎜의 많은 비가 내릴 것으로 전망된다. 한편 지난 4일 필리핀 마닐라 인근 해상에서 발생한 제9호 태풍 레끼마는 6일 오전 일본 오키나와 남쪽 해상을 지나고 있다. 바닷물 온도가 높아 레끼마는 점차 강한 중형태풍으로 성장해 시속 14㎞ 속도로 북서진해 8~9일 타이완을 거쳐 10일 오전 중국 내륙 푸저우 지역에 상륙한 뒤 상하이를 거쳐 지나갈 것으로 보인다. 현재 경로상으로는 한반도에 영향을 미치지는 못할 것으로 기상청은 전망하고 있다. 유용하 기자 edmondy@seoul.co.kr
  • 명동성당 앞에서 비수로 거사… 공범 묻자 “2000만 동포가 도왔다”

    명동성당 앞에서 비수로 거사… 공범 묻자 “2000만 동포가 도왔다”

    한자까지 똑같은 동명이인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알아도 이재명 의사(李在明 義士)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완용을 처단하려다가 실패한 독립운동가 정도라도 알고 있는 사람이 드물다. 이 지사는 우연히도 의사의 의거일이 자신의 생일과 같은 날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매국노를 죽이려다 스물셋 꽃다운 나이에 교수형을 당한 의사에 대한 인식과 대접이 이렇다. 의사에게는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됐지만, 직계 후손이 없어 훈장을 국가보훈처가 보관하고 있었다. 고향도 평북 선천이라 생가나 일가붙이를 찾을 수도 없다. 형이 집행된 후 시신도 수습되지 않아 유골의 행방도 묘연하니 묘소도 있을 리 없다.잊혀진 의사의 존재를 세상에 알린 것은 종친회였다. 이 의사의 본관은 진안인데 진안 이씨는 전북 진안을 비롯해 의사의 고향인 평북 등지에 집성촌이 있다. 또한, 진안 마이산은 1907년 이석용이 조직한 호남 의병 창의동맹단의 집결지였다. 진안에는 1925년 유림들이 일제에 항거해 순국한 의사와 열사 등 79위를 배향한 사당인 이산묘(耳山廟)도 있다. 말의 귀를 닮은 마이산 두 봉우리의 서쪽이다. 이산묘 영광사(永光祠)에는 안중근· 윤봉길· 이봉창 의사 등과 더불어 이 의사도 모셔져 있다.그런 인연으로 의사의 동상과 기념관이 고향에서 천 리 길이 넘는 먼 곳 진안에 자리잡게 되었다. 진안군청에서 마이산도립공원으로 들어가다 보면 도로 오른쪽에 이재명 의사 기념관이 있다. 2001년 종친회와 정치인들이 이재명 의사 추모사업회를 결성해 진안읍 군하리 6500여㎡ 부지에 조성한 시설이다. 그러나 금요일에 찾아간 기념관과 사업회의 문은 자물쇠가 굳게 채워져 관람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 홍살문은 나무가 삭아 홍살이 떨어져 뒹굴고 있고 마당에는 잡초가 무성했다. 이러니 방문객은 있을 리도 없고 간혹 지나가다 들러도 관람을 할 수 없다. 몇 해 전 수리를 요청하는 민원이 제기됐지만, 군청에서는 토지보상금 사용 승인이 나지 않았다고 답했다. 뜻을 모아 거액을 들여 지은 기념관이 보상금 갈등과 무관심, 예산 부족으로 방치되고 있는 것이다. 기념관 옆 타향 땅에 세워진 의사의 동상은 더 쓸쓸해 보였다. 이 의사는 1887년 10월 16일 선천에서 태어나 8살 때 평양으로 이사 가서 그곳에서 성장했다. 의사는 평양 일신학교를 졸업하고 1904년 미국 노동 이민회사의 모집에 응해 미국 하와이로 갔다. 1906년 3월에는 공부를 더 할 목적으로 미국 본토로 옮겨가 안창호가 중심이 돼 창립한 공립협회에 가입했다. 이듬해 일제는 고종을 강제 퇴위시키고 ‘정미7조약’을 체결하는 한편 대한제국 군대를 해산시켰다. 이에 공립협회는 매국노 처단을 결의하고 실행자를 선발했는데 거기에 지원한 사람이 바로 이 의사다.●이토 암살 실행 무산되자 이완용 죽이기로 의사는 그해 10월 9일 일본을 거쳐 고국으로 돌아왔다. 때를 엿보던 의사는 1909년 1월 평안도 순시를 떠난 한국통감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하려고 평양역에서 기다렸다. 그러나 거사를 실행하지 못했다. 안창호가 이토와 함께 다니던 순종 황제의 안전을 위해 만류했기 때문이었다. 이토는 10월 26일 안중근 의사에게 하얼빈역에서 사살됐다. 의사는 원래 목표대로 을사 5적을 비롯한 매국노들을 처단할 계획을 세웠다. 여러 동지와 야학당에 모여 이완용은 이 의사와 김병록· 이동수가, 이용구는 김정익이 죽이기로 했다. 그러던 중 이완용이 12월 22일 종현 천주교당(명동성당)에서 벨기에 황제 레오폴드 2세의 추도식에 참석한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당시 양심여학교 학생이던 아내 오인성씨와 마지막 작별의 밤을 지냈다. 오씨는 울지 않았고 남편의 거사를 만류하지 않았다고 한다. 날이 새자 김병록, 이동수와 함께 의사는 명동성당으로 향했다. 그날 오전 11시 30분쯤 의사는 성당 밖에서 군밤장수로 변장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드디어 이완용이 인력거를 타고 앞으로 지나갔다. 의사는 비수를 들고 달려들었다. 인력거꾼 박원문이 제지하려 하자 그를 찔러 숨지게 하고 이어 이완용의 허리 쪽을 공격했다. 혼비백산한 이완용이 달아나려 하자 다시 3곳을 더 찔렀다. 거사 직후 의사는 현장에서 일경에게 체포됐다. “오늘 우리의 공적(公敵)을 죽였으니 정말 기쁘고 통쾌하다”고 외치며 만세를 불렀다. 그러나 이완용은 치명상을 입지는 않고 목숨을 건졌다. 이완용은 자신의 집으로 가서 의사를 불러 응급 치료를 받았다. 일본 경찰은 이 의사를 이완용의 집으로 데리고 갔다. 그곳에 와 있던 농상공부대신 조중응이 “네가 흉행(兇行)을 한 자냐”고 물었다. 이에 의사는 눈을 치켜 뜨며 “너 조중응은 귀중한 인사를 이 모양으로 하대하느냐”며 오히려 추상과 같이 꾸짖었다. 그러면서 옆에 있던 일경에게 “더러운 냄새가 코를 찌르니 권연초 한 개를 가져오라”고 하여 유유히 피웠다.●“내 목숨 빼앗을 수 있으나 충혼은 못 빼앗아” 경시청에서 조사를 받은 의사는 일경이 “공범이 있느냐?”고 묻자 “이러한 큰 일을 하는데 무슨 공범이 필요하냐. 공범이 있다면 2000만 우리 동포가 모두 나의 공범이다”고 말했다. 이듬해 4월 열린 재판에서도 “도와준 자를 말하라”는 일본인 재판장 스가하라에게 “이완용을 죽이는 것을 찬성한 자는 우리 2000만 동포 모두며 방조자는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엄숙한 목소리로 역적 이완용의 8개 죄목을 거론하며 통렬하게 비판했다. “공평치 못한 법률로 내 목숨을 빼앗을 수는 있으나 나의 충혼, 의혼(義魂)은 절대 빼앗지 못할 것이다. 한번 죽음은 슬프지 않다. 생전에 이루지 못한 일이 한심스러울 뿐이다. 내 결코 죽어서 그 원한을 갚을 것이다.” 의사는 1910년 5월 18일 경성지법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이 의사는 사형 선고를 받고 꼿꼿한 자세로 재판장을 꾸짖으며 이렇게 최후 진술을 했다. 부인 오씨는 ‘국적 이완용이 아직 죽지 않고 살았는데 우리 가부(家夫)는 왜 사형에 처하느냐’며 눈물을 흘렸다. 의사는 총독부 체제 발족 바로 전날인 1910년 9월 30일 순국했다. 의사는 의거를 공모한 사람들은 아무 관련이 없다고 보호하면서 끝까지 단독 범행임을 주장했다. 그러나 김병록 등 동지 10여명도 최고 징역 15년형의 중형을 선고받았다. 이 의사는 부인 오씨를 성모여학교 교사인 함마리아의 소개로 만나 1907년 겨울 부부의 연을 맺었다. 오씨도 경찰에 끌려가 혹독한 심문을 받았다. 그러면서도 변호인을 선임하는 등 남편 뒷바라지에 열성을 다했다. 남편이 죽은 뒤 오씨도 독립운동에 뛰어들어 중국 길림성과 상해 등지로 돌아다니며 독립운동을 도왔다. 1919년 3·1만세운동이 일어나자 오씨는 귀국했다가 일경에 체포됐다. 증거와 단서가 없어 석방되었지만, 미행과 감시를 받았다. 오씨는 다시 망명을 도모하다 병을 얻어 29세에 요절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인 외과 의사의 집도로 수술을 받은 이완용은 53일 동안 입원했다. 순종과 고종은 이완용이 퇴원하는 날까지 하루도 거르지 않고 시종을 보내 안부를 묻고 거액의 위로금을 보냈다. 전국의 관찰사와 군수들로부터도 위로금이 답지했다고 한다. 퇴원 후 충남 온양에서 휴양을 한 이완용은 총리직으로 복귀해 데라우치 통감과 한일합방조약에 서명했다. 그 4일 후 순종 황제로부터 대한제국 최고훈장인 금척대수훈장을 받았다. 이완용은 일제의 보호 속에 백작 작위를 받고 호의호식하면서 부귀영화를 누리다 1926년 68세로 사망했다. 사인은 의사의 칼을 맞아 폐를 다친 후유증이었다고 한다. 글 사진 논설고문 sonsj@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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