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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父子 함께 ‘로봇 부자’

    父子 함께 ‘로봇 부자’

    회사원 권청구(41)씨는 어느 날 아이와 함께 로봇을 만드는 기회를 알리는 인터넷 카페 공지를 봤다. 마침 아들 민재(7)도 한창 로봇에 관심을 보일 시기라 곧바로 참가 신청을 했다. 굴러다니는 고철 쓰레기 가운데 재료를 골라 아이와 함께 직접 만들어 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았다. 평일 저녁 한 차례 사전 모임을 가졌다. 문래동을 근거로 활발한 활동을 펼치는 안경진 조각가가 나와 로봇 디자인과 재료 준비를 거들었다. 같은 주 토요일 반나절 동안 아빠와 아들은 고철과 씨름했다. 용접 등 전문적 작업은 도움을 받았다. “아빠, 이렇게 만들면 어떨까?” 서로 의견을 주고받으며 땀흘린 끝에 약간 투박하지만 정성이 가득 담긴 작은 로봇이 탄생했다. 권씨는 “아이가 로봇을 만들며 무척 즐거워했다. 나이가 엇비슷한 동네 형, 동생과 어울릴 수 있어 더 좋아했다”고 웃었다. 영등포구 문래3동 북카페 치포리에서 다음 달 9일까지 철제 미니로봇 전시회가 열린다. 안 작가가 제안한 동네 공공미술 사업 가운데 하나인 ‘함께 만드는 미니로봇’ 프로그램에 참여한 아버지와 아들 20여명이 만든 작품 11점이 선보인다. 제작 과정을 담은 사진도 곁들여졌다. 안 작가는 철공소 밀집 지역으로 유명했던 문래동에 살지만 교류하지 않던 철공소 장인들과 예술가, 주민들이 서로 공감하는 기회를 만들어 보려고 공공미술 사업을 제안했다. 전시회는 철공소와 예술이 공존하는 공간에 대한 이해를 넓히려는 것이다. 안 작가는 동네 주민, 철공소 장인들과 문래동 상징물로 솟대를 만들 예정이다.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조선의 혼, 일본의 흙으로 빚은 41점의 예술

    조선의 혼, 일본의 흙으로 빚은 41점의 예술

    조선 도공들은 바다 건너 이국땅에서도 물레질을 멈추지 않았다.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던 일본의 흑토로 옹기와 간단한 도기를 구워내 이를 팔아 생계를 꾸렸다. 조선의 막사발조차 귀한 예술품으로 대접받던 시절, 일본 상류층에서 조선 자기는 권력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정유재란 당시 수많은 조선 도공이 왜군에 끌려간 이유다. 1598년 일본 해안가인 구시키노에 닿은 조선 도공의 숫자는 80명이 넘었다. 하지만 5년 뒤 내륙인 나에시로가와로 이주해 조선인 마을을 꾸린 도공은 40여명에 불과했다. 고향에 대한 향수와 토착병에 시달리다 절반가량이 목숨을 잃었다. 이후 도공들의 삶은 엇갈린다. 민족차별이 심해지자 이, 최, 박, 김 같은 성씨의 도기 기술자들은 마을에서 차례로 도망쳐 나온다. ‘도고’로 개명한 박씨 집안의 후손인 도고 시게노리(1882~1950)는 1941년 일본 외무대신에 오르기도 한다. 지금도 그의 기념관 마당에는 선조가 자기를 굽던 가마와 도자기 파편 더미가 넋을 위로하듯 남아 있다. 반면 심수관가(家)는 일본 가고시마에서 여전히 조선의 혼을 지키며 살아간다. 누가 봐도 전형적인 일본인이지만, 혼만은 조선 옛것 그대로다. 1대 심당길이 만들었다는 조선 사발 같은 투박한 ‘히바카리’는 심수관가의 상징물이다. 말간 색을 띤 그릇은 조선의 흙과 유약, 기술자를 빼고 불만 일본 것을 썼다는 뜻을 담고 있다. 심수관이란 이름은 ‘사쓰마 도기’를 세계적 명품으로 키워 낸 12대 심수관 때부터 가문에서 이어온 습명이다. 지금의 15대 심수관(54)은 와세다대를 졸업하고 이탈리아 유학까지 마친 뒤 1999년 가업을 이었다. 1대 심당길의 고향인 남원시 명예시민이기도 한 그는 한국의 김칫독 공장에서 조선의 가마를 배워갔다. 이런 15대 심수관이 이달 중순 한국을 찾는다. 오는 14일부터 26일까지 2주간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심수관 도예전, 사쓰마에서 꽃 핀 조선도공의 예술혼’전을 펼치기 위해서다. 서울신문사와 경북 청송군이 공동 주최하는 이번 행사는 1998년 이후 15년 만에 열리는 심수관가의 국내 단독 전시회다. 전시에는 12~15대 심수관의 도자기 41점이 나온다. 심수관가가 소장한 12점 외에 ‘심수관 도자기 전시관’ 개관을 앞둔 청송군과 ‘심수관 도예관’이 자리한 남원시가 각각 20점, 9점을 내놓았다. 이 중 12대 심수관의 ‘십금수송죽매화문다기’는 옛 청나라의 십금수기법을 사용했다. 소나무와 대나무, 매화의 문양이 다양하게 표현됐다. 12대 심수관은 1873년 오스트리아 빈 만국박람회에 금채를 입힌 대화병 한 쌍을 출품해 오늘날 심수관가의 초석을 이뤘다. 13대 심수관은 2차 세계대전으로 가세가 기운 가문을 지켜냈다. 그의 ‘금수군학비상도투각향로’ 1점이 이번 전시에 나온다. 이 전통 향로에는 한 무리의 학들이 여유롭게 하늘을 나는 모습이 투각됐다. 15대 심수관의 아버지인 14대 심수관(88)은 대표작 ‘사쓰마성금칠보설륜문대화병’을 내놓는다. 일본인 최초의 대한민국 명예총영사인 그는 1993년 대전엑스포에 이 화병을 출품해 호평받았다. 금을 두껍게 칠해 입체감을 한껏 살린 것이 특징이다. 15대 심수관은 가장 많은 23점을 전시한다. 대표작은 ‘이중투각삼종향로’. 겹으로 된 투각과 세 종류의 각기 다른 문양이 정교함을 자랑한다. 도예 관계자들은 “투각기법과 부조기법은 심수관요의 대표적인 도예기술”이라며 “적절한 흙의 습도와 정확한 계산이 요구돼 온전히 이를 구사하는 장인이 그리 많지 않다”고 평가했다. 무료. (02)2000-9752.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서울 플러스]

    [서울 플러스]

    압구정로데오거리 상징물 제막 강남구(구청장 신연희) 4일 신사동 압구정로데오거리에서 상징조형물 ‘I Love You’ 제막식을 연다. 유명조각가 김경민씨의 재능 기부로 들어섰다. 작품 콘셉트는 ‘젊음·패션·문화·예술’을 대표하는 로데오다. 하트를 든 모습은 로데오가 한국을 넘어 세계의 중심지로 역할하라는 응원의 메시지를 담았다. 지역경제과 3423-5490. ‘아름다운 미소사진전’ 공모 광진구(구청장 김기동) 오는 15일까지 ‘제15회 아름다운 미소사진전’의 작품을 공모한다. ‘미소 부문’과 ‘광진구 부문’으로 나뉜다. 금상에는 상금 500만원을 준다. 오는 25일 심사 후 입상자를 선정해 26일 구 홈페이지에 발표한다. 문화체육과 450-7577. 공영주차 요금 5분 단위로 성동구(구청장 고재득) 이달부터 공영주차장 요금을 10분에서 5분 단위로 매긴다. 조례 개정안에 따라서다. 1~2분 초과해도 10분 단위 요금을 무는 것에 비해 합리적으로 바뀐 것이다. 직영 27개소, 위탁 4개소 모두에 적용된다. 도시관리공단 2204-7960. 약 봉투에 복약안내문 서비스 송파구(구청장 박춘희) 약사회와 함께 ‘따라가는 복약지도 서비스‘를 추진한다. 약 봉투에 인쇄된 복약안내문을 보고 약품 효능, 주의사항을 바로 확인할 수 있다. 70개 약국이 참여했다. 스마트폰을 통해 받아볼 수도 있다. 의약과 2147-3531. 9일 사육신 추모제향 행사 동작구(구청장 문충실) 주민, 유림대표 등 1300명이 참석한 가운데 오는 9일 낮 12시 노량진 사육신공원에서 사육신 순절 557주년 추모제향 행사를 갖는다. 문 구청장이 초헌관, 사육신현창회 이철주 이사장이 아헌관, 홍운철 구의회 의장이 종헌관을 맡는다. 홍보전산과 820-1250.
  • [열린세상] 스웨덴 복지 맨얼굴과 산소 주변 등나무/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금연구센터장

    [열린세상] 스웨덴 복지 맨얼굴과 산소 주변 등나무/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금연구센터장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노후소득보장 분야에서 중요한 국제교류가 있었다. 최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개최된 ‘한국과 스웨덴 정부의 인구고령화 포럼’과 스웨덴 대사관저에서의 만찬을 통해서다. 양국 복지부 장관의 주제 연설, 라르스 다니엘손 주한 스웨덴 대사와의 진지한 토론과 여러 스웨덴 전문가들을 통해 스웨덴 복지의 맨얼굴을 경험할 수 있었다. 평균수명 증가와 경제성장률 감소가 연금재정에 부담을 주는 만큼 연금액을 자동 삭감토록 한 1998년 스웨덴 연금개혁에 관심이 많았던 필자가 다니엘손 대사에게 연금 개혁이 성공할 수 있었던 배경을 물었다. 연금 운영에서 정치논리 배제와 오랜 역사의 기초연금 폐지가 1998년 연금 개혁을 통해 가능했기 때문이다. 다니엘손 대사는 오래된 스웨덴 복지 역사를 주요 요인으로 꼽았다. 오랜 역사의 복지 학습효과를 통해 복지제도 필요성이 국민들 뼛속 깊이 녹아 있다고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연금운영을 책임지는 정부가 개혁이 불가피하다고 하니, 받아들이기 싫어도 개혁 필요성이 있겠지 하면서 국민들이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1980년대 이후 빈번해진 정권교체가 정치권의 책임의식을 높였다는 설명도 중요하게 들렸다. 언젠가 정권을 잡을 터인데 대책 없는 반대 또는 지나친 포퓰리즘이 야기할 정치적 부담 등을 감안, 정치권이 복지 관련 논쟁에서 일정한 선은 넘지 않는다는 것이다. 환경변화에 끊임없는 적응하는 것이 스웨덴 복지의 참모습이라는 답변도 가슴에 와 닿았다. 과거에 도입한 제도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고쳐나가는 것이 스웨덴 복지의 핵심이라는 대목에서 특히 그러했다. 이미 15년 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연금 개혁을 단행했음에도 인구고령화 대응 차원에서 추가적인 연금 개혁이 불가피하다는 스웨덴 포럼 참석자들의 견해가 이를 입증하는 것 같았다. 반면에 논란이 되는 우리나라의 기초연금 도입방향에 대한 거듭된 질문에 대해서는 우리의 역사·문화·전통을 고려하여 한국적 상황 및 정서에 부합하는 방향으로의 제도 도입이 최선일 것이라는 원론적인 답변만 되풀이하였다. 한국이 직면하고 있는 저출산과 급속한 인구고령화를 반영한 객관적인 평가는 할 수 있을 것이나, 구체적인 제도 도입방향은 우리 스스로가 결정할 문제라는 지극히 절제된 답변이었다. 우리 사정은 우리가 가장 잘 알 터인데도, 외국 사람들에게 구태여 해법까지 물어봤던 이유는 바람직한 개혁에 대한 사회적 합의 도출이 어렵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만남의 여운을 간직하며 맞이한 추석 성묘 길, 산소 주변의 등나무 숲이 눈에 들어왔다. 여름철 편안한 쉼터를 제공하는 등나무가 야생의 산 속에서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어서였다. 제한된 공간에서 자라는 도심의 등나무가 훌륭한 쉼터와 아름다운 꽃을 선물할 수 있는 반면, 적절한 통제가 없는 야생상태의 등나무는 그 특유의 강한 번식력으로 10m가 넘는 소나무까지 고사시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도심과 야생상태 등나무의 기능차이는 복지문제를 둘러싼 스웨덴과 우리나라의 현실과 환경 차이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상징물처럼 보였다. 복지에 대한 학습효과, 복지재원 마련을 위한 부담정도, 소득 파악 관련 인프라 등에서 존재하는 양국의 현격한 차이를 인정한다면 해법은 간단해 보인다. 우리 사회에서 문제가 심각한 취약계층의 삶의 질 향상을 우리가 추구할 복지의 제1원칙으로 설정하는 것이다. 노인 집단 내에서의 큰 소득격차를 고려할 때 논란이 되는 기초연금은 선별지급과 저소득 노인에게 더 큰 혜택을 주는 차등지급이 바람직해 보인다. 기초연금만으로는 노인빈곤 해소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저소득 노인을 위한 추가 복지지출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제도 운영원리가 상이한 기초연금과 국민연금의 연계 운영은 자칫 중산층 이하 저소득층의 국민연금을 고사시키는 야생의 등나무 기능을 할 가능성이 높다. 연계 운영방식 대신, 세금으로 운영되는 기초연금은 노후빈곤에 노출된 취약노인 중심 제도로 발전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되는 배경이다.
  • [문화단신]

    ■허정화 개인전 ‘팬터시 메모리’ 15일까지 서울 인사동 갤러리 시:작. 사물을 베일로 감싸 세세한 부분까지 은폐시킨 뒤 관람자를 이상향으로 이끈다. 자연의 현장에서 목격한 섬세한 들풀과 꽃, 추억을 간직한 하염없이 맑은 달항아리, 담장의 와선 등 한국화의 뿌리와 연관된 것들로 채워졌다. 발광다이오드(LED)를 활용하는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창의적 표현을 펼친다. (02)735-6267. ■이종화 35회 개인전 오는 25일부터 다음 달 1일까지 서울 낙원동 갤러리 엠. 서울, 파리, 뉴욕 등 여러 도시의 대표적인 풍경과 상징물을 캔버스로 옮겨왔다. 수직과 직선의 색채 대비를 통해 뉴욕 맨해튼의 빌딩숲을 강렬하게 보여주거나, 야경의 아름다운 불빛과 어울린 남산타워를 묘사한다. 수많은 선들을 나이프와 붓 터치로 그려내 밀도 있는 작품을 선보인다. (02)737-0073. ■박지선 개인전 ‘플레이 더 원더랜드’ 11일부터 17일까지 서울 팔판동 갤러리 도스. 바쁜 일상 속에서 현대인들이 꾸는 꿈을 회화로 표현했다. 작고 가벼우며 때론 옅기까지 한 드로잉을 통해 고단하고 무거운 일상을 역설적으로 담아냈다. 이화여대에서 회화와 판화를 전공한 작가는 그간 불필요했던 현대미술의 메시지를 덜어내고 은근하지만 충실한 이미지만을 골라 전달한다. (02)737-4678. ■장수선 사진전 ‘가정동에서 존재하지 않는 공간의 기록 2011109~201308’ 15일까지 인천시 금곡동 사진공간 배다리, 창영동 한점 갤러리. 세계 경기 침체의 영향으로 유령 도시로 전락한 인천시 서구 가정동의 모습을 2년여에 걸쳐 카메라에 담았다. 사람들의 온기로 가득했던 공간이 과도한 개발주의로 흔적도 없이 사라진 현실을 꼬집는다. (070)4412-0897, (070)8227-0857.
  • 붙이고 붙인 ‘제3의 눈’ 빈디…여성 그리고 억압을 꿰뚫다

    붙이고 붙인 ‘제3의 눈’ 빈디…여성 그리고 억압을 꿰뚫다

    “하루를 마치며 ‘오늘 너는 무엇을 보았느냐’고 스스로 묻곤 합니다. 예술은 끝없는 질문이기 때문이죠.” 진한 코발트색 재킷에 옅은 핑크색 바지. 갈색 머리카락을 살짝 뒤로 묶은 그는 시종일관 두 손을 바지 주머니에 꽂고 무표정한 얼굴로 인터뷰에 응했다. 이걸 카리스마 넘친다고 해야 하나? 인도 출신 여성 작가인 바티 커(44)의 이야기다. 20대에 고국인 인도를 여행하다 인도의 국민 작가 수보다 굽타(49)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결혼한 순애보의 주인공이다. 또 국제 미술계의 주목을 받으며 ‘아트플러스옥션’지가 ‘다음 세대에 소장가치를 지닌 50인의 작가’로 지목했다. 그는 영국에서 유복한 인도계 이민자인 부모 밑에서 태어나 넥시켓 대학에서 회화를 공부했다. 대학 졸업 이듬해인 1992년 첫 인도 여행에서 남편인 굽타를 만났다. 이후 줄곧 인도 뉴델리에 거주하며 작품 활동에 매진 중이다. 지고지순한 순애보를 펼쳤지만 미술계에선 날 선 페미니즘 작가로 분류된다. “남들이 그렇게 평가한다면 (나도) 굳이 부인하지는 않겠다”는 두루뭉술한 답변이 돌아왔다. 커의 상징물은 ‘빈디’(인도 여성이 미간에 붙이는 점). 요즘 인도에선 이를 패션 아이콘 삼아 몸을 치장하는 남성마저 등장했으나 여전히 여성의 성과 자유를 억압하는 굴레로 인식된다. 커는 ‘제3의 눈’으로 불리는 빈디를 15년 전부터 캔버스에 붙이고 또 붙여 거대한 동그라미나 사각형을 만들어 왔다. 여기에도 일정한 규칙이 있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위에서 아래로 반복해 붙이다 보면 연금술처럼 새로운 풍경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늘 같은 행위가 되풀이된다는 점에서 반복이 이뤄낸 진실이요, 삶이자 종교라는 설명이다. 그의 국내 첫 개인전이 다음 달 5일까지 서울 종로구 소격동 국제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전시 제목은 ‘기형’(Abnomalies). 종교적이거나 장식적인 용도의 상징물을 끌어모아 비정상적 상황을 연출하며 끊임없이 관객에게 질문을 던진다. 예컨대 70개의 장식용 인형을 한 곳에 모은 작품을 통해선 누군가에게 복을 비는 대상물일지라도 이들을 한데 모으면 비정상적으로 보이는 역설적인 상황을 묘사했다. 인형들 가운데는 예수나 부처, 동물도 있다. 영국에서 태어나 자란 덕분에 제3자의 시선으로 인도 사회의 계급체제와 성별 문제를 냉철히 바라보는 작품관이 자연스레 몸에 뱄다. 그는 “빈디를 손으로 붙이는 반복적 행위를 통해 인도 여성의 정체성과 작업의 의미를 찾아간다. 속박의 상징인 빈디는 내 작품 속에서 종종 사랑과 번영을 뜻한다”고 말했다. 인도 여성의 전통 의상인 사리를 통해 여성성의 부재를 말하고, 반인반수의 여신 조각을 통해 불안정성을 표현하기도 한다. 또 밀랍으로 만든 기괴한 모습의 ‘와크 나무’는 기원전 4세기 인도의 역사를 배경으로 한다. 알렉산더 대왕이 인더스강을 건너기 전 강가의 한 그루 나무에게 미래를 물었다가 “인도에 가지 말라”는 답을 들었다는 전설이다. 나무의 충고를 무시하고 인도를 침략한 알렉산더는 풍토병에 걸려 사망한다. 나뭇가지마다 짐승과 괴물의 얼굴 모양이 걸려 있다. “관객과 나무가 대화를 나눴으면 한다”는 게 작가의 의도다. 하지만 그는 힌두교도도, 불교도도 아니다. 오히려 예술을 삼라만상 위에 올려놓은 예술지상주의자다. 작가는 “예술가가 만든 종교적 상징 덕분에 종교가 존재한다”면서 “작가는 자신이 처한 시대와 환경에 따라 다양한 경험을 열린 자세로 재해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옴부즈맨 칼럼] 문화재 관리부실, 더 이상은 안된다/유채윤 고려대 미디어학부 3학년

    [옴부즈맨 칼럼] 문화재 관리부실, 더 이상은 안된다/유채윤 고려대 미디어학부 3학년

    역대 왕의 행적을 알려주는 인장이자 상징물인 조선왕실의 ‘어보’에 낙서 흔적이 발견되었다. 조선 제8대 예종의 어보에서 한글로 ‘예종’이라고 쓴 글씨 이외에 썼다가 지운 흔적도 확인됐다. 이 문화재가 우리나라가 세계기록문화유산 등재를 추진 중인 유물인 것을 감안하면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서울신문은 지난 16일 자(8면)에서 시민단체 ‘문화재제자리찾기’의 대표인 혜문 스님이 문화재청이 발간한 도록의 사진에서 예종의 어보에 낙서 흔적을 발견하고 문화재청에 훼손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공문을 발송했다고 보도했다. 문화재제자리찾기와 민주당 안민석 의원실은 현재 미국 로스앤젤레스 주립박물관에 소장된 문정왕후 어보의 반환운동을 진행하고 있다. 6·25전쟁 당시 미군이 불법 반출한 문정왕후 어보의 반환을 요구하는 입장에서 이미 국내 국립고궁박물관에 관리 중인 예종 어보에 낙서 흔적이 존재한다는 것은 아이로니컬하지 않은가? 예종 어보 낙서사건을 계기로 서울신문이 낙서가 발견된 단편적인 상황 뿐 아니라 현재 우리나라의 부실한 문화재 관리상황까지 짚었다면 더 생산적인 비판을 이끌어낼 수 있지 않았을까. 문화재 당국은 언론 보도 이후 시민단체의 질의와 유물 훼손 여부에 관한 정보요청에 대응하는 데 급급한 모습을 보였다. 국립고궁박물관은 어보에 한글로 ‘예종’이라는 글씨가 쓰인 것은 사실이나, 이는 낙서라기보다 이전에 유물의 관리를 위해 표기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또한 글씨를 새긴 것이 아니고 필기구로 쓰여진 것이기 때문에 현재의 보존처리 기술로 쉽게 지울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는 의견도 덧붙였다. 그러나 유물의 관리를 위해 사인펜 등으로 유물에 직접 표기를 한다는 이야기는 금시초문이다. 이는 현재 문화재 부실관리의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는 상황이기에 아쉬움이 더 크다. 2012년 국정감사에 제출된 서울시 문화재 관리 현황에 따르면, 최근 3년간 서울시 소재 보물급 문화재 7건을 포함한 총 40건의 문화재가 훼손돼 26억원이 보수 예산으로 책정되었지만 유물 및 문화재의 상태는 개선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법률소비자연맹 등 각종단체에서 저조한 목조문화재의 화재보험 가입률, 자연재해 위기대응 예방시스템과 실무 매뉴얼 부재, 문화재 안전관리 예산 감소, 잦은 도난과 7.2%에 불과한 회수율 등을 지적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문화재청은 적절한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불과 5년 전인 2008년 국보 제1호 숭례문이 화재로 전소되다시피 했는데 문화재 관리의식은 여전히 미흡하다는 증거다. 우리나라 내 비종교적 전통 문화재의 90% 이상은 이미 소실된 상태라고 한다. 지난 6월 서울신문을 통해 보도된 경복궁의 엉성한 문화재 훼손기준을 지적하는 기사와 같이 통계자료를 바탕으로 문화재 관리 부실을 비판하는 글이 더욱 필요한 이유다. 서울신문은 앞으로 새로운 문화재의 발굴과 지정 못지않게 문화재의 관리·보존 문제에 더 많은 관심을 갖고 다뤘으면 한다. ‘문화재 기사는 따분하다’는 선입견은 진화하는 문화재 발굴과 보존·복원방법, 문화재와 지킴이들의 숨은 이야기 등을 통해 얼마든지 바꿔놓을 수 있다고 본다. 또한 문화재청은 어보 낙서 사례를 거울삼아 문화재·유물 보존·관리에 더욱더 심혈을 기울였으면 한다.
  • 광복절, 英 에든버러에 울려 퍼진 아리랑 선율

    광복절, 英 에든버러에 울려 퍼진 아리랑 선율

    광복절인 15일 오전 11시(이하 현지시간), 영국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의 번화가에 자리한 어셔홀에선 ‘아리랑’이 울려 퍼졌다. 행인들의 눈길이 에든버러 최대 콘서트홀인 어셔홀의 유리벽에 쏠리는 순간, 500여개의 발광다이오드(LED) 화면에선 우리 민족의 상징물인 백두산과 한라산, 독도의 웅장한 인공위성 사진이 투사됐다. 이 미디어 아트의 제목은 ‘미디어 스킨스’. 김형수(54)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교수가 스코틀랜드 출신의 물리학자인 데이비드 브루스터가 1817년 발명한 만화경의 원리를 활용해 LED 화면에 옮긴 작품이다. 미디어 스킨스는 민족의 상징물 외에도 아리랑 2, 3호가 찍은 전 세계 100곳의 위성사진을 마치 거울에 반사된 색채무늬처럼 90초 간격으로 투사한다. 나일강과 아마존강은 물론 에든버러, 뉴욕, 파리, 런던, 상하이 등의 모습이다. 아리랑 선율에 맞춰 절로 관객들의 탄성을 자아낸다. 김 교수는 “한반도의 인위적인 국경은 예부터 만화경처럼 끊임없이 바뀌어 왔지만 우리 고유의 정신은 그대로 이어져 왔다”면서 “분단된 한반도가 언젠가 다시 통일될 것이란 꿈을 담았다”고 말했다. 그는 2007년 국내 처음으로 서울 광화문 KT빌딩을 실시간 스크린으로 이용한 미디어 아트를 선보인 뒤 주목받아 왔다. 김 교수는 지난 9일 개막한 세계 최대의 공연 예술제인 ‘2013 에든버러 국제 페스티벌’(EIF)에 고 백남준의 작품과 함께 초청받았다. 1947년 출범한 EIF는 매년 세계 최정상의 예술가를 공식 초청한다. 올해는 미디어 아티스트인 김 교수와 그의 부인인 무용가 김효진(YMAP 대표), 백남준이 초청됐다. 지난 2011년 정명훈 서울시향 단장 등에 이어 두 번째다. 미디어 스킨스는 개막식 오프닝 행사 때 조너선 밀스 예술감독에 의해 개막작품으로도 선정됐다. 어셔홀 광장은 물론 페스티벌 극장 야외 무대에서 가로, 세로 각 60㎝ 크기의 한국산 LED 패널 560여개를 사용해 상영됐다. 다음 달 1일까지 이어지는 전시에서는 위성사진 투사를 통해 기억과 역사, 재생의 이미지를 하루 12시간씩 선보이고 있다. 현지의 반응은 뜨겁다. ‘이브닝 타임스’ ‘데일리 익스프레스’ 등 현지 언론들은 그의 작품을 비중 있게 다루고 있다. 김 교수는 “이번 축제의 주제인 ‘예술과 기술’에 부합한다는 호평을 듣는다”고 말했다. 전 세계 40개국 3000여명의 예술가가 참여하는 EIF는 다음 달까지 에든버러 일대에서 개최된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세계기록문화유산 등재 추진 유물 조선왕실 어보에 ‘한글 낙서’ 발견

    세계기록문화유산 등재 추진 유물 조선왕실 어보에 ‘한글 낙서’ 발견

    조선 왕실의 의례용 상징물인 ‘어보’(御寶)에서 한글 낙서가 발견돼 훼손 여부를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어보는 역대 왕과 왕비, 세자와 세자빈의 행적과 공덕을 담은 인장(印章)으로, 우리나라가 세계기록문화유산 등재를 추진 중인 유물이다. 국내에는 모두 324과(顆)가 남아 있다.시민단체인 ‘문화재제자리찾기’는 최근 조선왕실어보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조선 8대 왕인 예종의 어보에서 낙서로 의심되는 흔적을 발견했다고 15일 밝혔다. 이 단체의 대표인 혜문 스님은 문화재청이 발간한 도록의 사진에서 예종의 어보 하단, 거북의 머리 앞쪽에 한글로 ‘예종’이라고 쓰여 있는 것을 발견하고 문화재청에 훼손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공문을 발송했다. 혜문 스님은 “조선왕실의 어보는 왕권을 상징하는 물건으로 종묘에 보관돼 있던 중요한 문화재”라며 “측면에 한지를 붙이고 한문 묵서로 누구의 어보인지 표기하는 것이 관례인데 예종 어보처럼 한글로 직접 쓰여진 것은 처음 본다”고 말했다. 예종 어보 하단에는 이 같은 낙서 외에 또 다른 글씨를 썼다가 지운 듯한 흔적도 발견됐다. 혜문 스님은 “문화재 당국의 부실한 문화재 관리 행태를 드러내는 단적인 사례”라며 “누가 새겨넣은 것인지, 볼펜으로 쓴 것인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문화재청은 펜으로 쓰여진 흔적으로 판단해 조만간 간단한 보존처리를 거쳐 복구한 예종 어보의 모습을 공개할 예정이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서민의 혼 깃든 막사발 직접 체험해봐요

    “완주에서 막사발의 진가를 직접 체험해 보세요.” ‘한국 100대 민족문화 상징물’인 막사발을 세계적인 예술품으로 재탄생시키기 위한 학문적 연구와 체험행사가 전북 완주군 삼례읍에서 열린다. 완주군은 ‘세계 막사발 장작가마 심포지엄’을 15일부터 18일까지 막사발미술관(옛 삼례역)에서 개최한다고 이날 밝혔다. 이번 심포지엄에서는 품질은 떨어지지만 서민의 혼이 깃든 막사발을 만드는 도예가의 혼을 느끼고 도자기를 직접 불에 구워보는 자리가 펼쳐진다. 나흘간 열리는 이 심포지엄에서는 국내외 도예가 100여명이 참여하는 학술대회, 장작 가마 복원, 도예가 재능나눔 행사, 어린이 도공전, 막사발 만들기 체험 등이 마련됐다. 17일에는 완성된 가마에 고사를 지내고 가마 쟁임과 장작불을 지피는 행사가 펼쳐진다. 이 기간 주민과 어린이들이 만든 막사발이 저렴한 가격으로 판매된다. 이에 앞서 김용문 세계막사발축제조직위원장 등이 지난달 우리 전통 가마인 막사발 장작가마를 제작했다. 임정엽 완주군수는 “우리 전통의 상징인 막사발을 한 단계 높은 예술적 가치로 승화시키고 한국 도자기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기 위해 심포지엄을 마련했다”고 말했다. 전주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 숭례문, 1350㎡ 캔버스에 담겨 예술작품으로 태어난다

    숭례문, 1350㎡ 캔버스에 담겨 예술작품으로 태어난다

    오는 18일 자정, 국보 1호 숭례문이 새 옷을 갈아입는다. 숭례문 뒤에 자리한 대형 기중기 4대가 가로 45m, 세로 30m의 흰색 광목천을 들어 올리면 숭례문은 마치 캔버스에 담긴 한폭의 그림처럼 오롯한 모습을 드러낸다. 일요일 오전 6시, 하루 중 가장 잠잠한 시기를 틈타 이명호(38) 경일대 사진영상학부 교수는 자신의 필름 카메라에 2시간 동안 300여장의 사진을 담아낸다. 숭례문을 배경으로 거대한 가림막을 설치한 뒤 다시 사진으로 이를 촬영하는 작업이다. ‘가시적 은폐’라는 역설적 방법으로 협업자들을 살짝 드러내는 일종의 컬래버레이션도 진행된다. 공공장소에서 펼치는 대규모 ‘예술 프로젝트’인 셈이다. 이어 낮 12시. 이 교수와 스태프 50여명, 관람객 500여명은 12시간에 걸친 행위예술을 마치게 된다. 이 프로젝트에는 1년 6개월여의 준비 기간과 2억 1000만원의 예산이 투입됐다. 현대미술 작업을 지원해 온 비영리단체 쿤스트독과 아트비즈는 13일 서울 숭례문 인근 대한상공회의소에서 내외신 기자간담회를 열어 이 계획을 공개했다. 프로젝트는 이 교수가 2000년부터 ‘나무 시리즈’와 ‘사막 시리즈’를 통해 세계 곳곳을 떠돌며 빈 캔버스(가림막)를 채워 온 ‘사진 행위 예술’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 그가 설치한 캔버스는 누군가 채우도록 비워 놓은 것이다. 다만 이번에는 자연의 품을 떠나 인공의 문화유산으로 눈을 돌린 게 차이점이다. 일본 사진계의 대부인 호소에 에이코 ‘기요사토 사진미술관’ 관장은 이 교수를 가리켜 “사진 행위 예술을 한 단계 끌어올린 세계적인 작가”라고 치켜세웠다. 그의 작품은 덴마크 왕립도서관, 프랑스 에르메스미술관, 미국 장 폴 게티 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등에 영구 소장돼 있다. 이 교수는 왜 이런 작업을 시작한 것일까. 그는 “지난해 초 숭례문 근처의 작업실을 오가다 우연찮은 기회에 이런 작업 구상을 글로 남겼다. 숭례문 복구단장이 글을 읽고 괜찮은 아이디어라며 힘을 실어줬다”고 전했다. 이어 “외신기자들에게 물어보니 서울의 상징물을 비무장지대(DMZ)라고 답한 사람이 의외로 많더라”며 “파리의 에펠탑처럼 숭례문을 서울의 상징물로 알리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실현 과정은 녹록지 않았다. 문화재 심의위원회와 경찰청의 허가를 받는 과정이 특히 그랬다. 이 교수는 “공개 프레젠테이션을 거쳐 충분히 설명하니 길이 열렸다”면서 “예술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김성호 미술평론가는 “이교수의 작업은 ‘행위의 과정’을 통해 사회 곳곳에서 여러 담론으로 재생산될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욱일승천기 사용 문제없어” 日정부 공식화 추진 논란

    “욱일승천기 사용 문제없어” 日정부 공식화 추진 논란

    일본 아베 신조 내각이 한국을 비롯한 주변국들에 군국주의의 상징물로 받아들여지는 욱일기의 사용에 대해 문제없다는 입장을 정부 견해로 공식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산케이신문이 6일 보도했다. 그러나 우리 정부 관계자는 “일본 정부 당국자들은 산케이 보도와 같은 검토를 진행 중인 바 없다는 입장”이라고 전했다. 우리 정부는 확인되지 않은 언론 보도임을 감안해 공식 입장은 내놓지는 않았다. 신문은 일본 정부가 ‘욱일기를 사용하는 것이 문제없다’는 인식을 담은 견해를 작성 중이라고 주장했다. 이 보도대로 일본 정부가 일본 제국주의 침략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욱일기의 사용을 정부 차원에서 뒷받침할 경우 주변국의 정서를 고려하지 않는 일방적 처사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전망이다. 일본 국기인 일장기(히노마루)의 태양 문양 주위에 퍼져 나가는 햇살을 형상화한 욱일기는 태평양전쟁 등 일본이 근대 이래 벌인 각종 전쟁에서 군기로 사용됐으며, 현재 자위대도 이 깃발을 사용하고 있다. 지난달 말 서울에서 열린 동아시아 축구대회 한·일전에서는 일본 응원석에 욱일기가 등장해 한국 응원단의 강한 반발을 샀다. 지난해 8월 일본에서 열린 20세 이상 여자축구월드컵 때는 대회 조직위원회가 스타디움에서의 욱일기 소지를 금지하기도 했다. 우익 성향의 산케이신문은 “욱일기는 국제 사회에서 받아들여져 온 것으로 태평양전쟁의 상대였던 미군도 욱일기 사용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면서 “한국이야말로 욱일기의 의미를 모른다”고 전했다. 하지만 기미야 다다시 도쿄대 교수 겸 현대한국연구센터장은 “많은 전후세대들은 욱일기에 대해 큰 의미를 두지 않고 살다가 한국 등의 항의를 계기로 그것이 전쟁종결 이전과의 연속성을 갖는 문제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며 “만약 일본 정부가 욱일기의 사용에 대해 인정한다면 그것이 정치적 의미를 담는 것으로 볼 수 있는 만큼 오해를 살 소지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최근 ‘나치식 개헌’ 망언으로 파문을 일으킨 아소 다로 부총리는 한국의 광복절이자 일본 패전일인 오는 15일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지 않는다는 의향을 굳혔다고 아사히신문이 이날 보도했다. 앞서 아베 총리도 15일에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하지 않을 것이라는 보도가 잇따라 올해는 자민당 정권의 1, 2인자가 모두 참배를 하지 않을 공산이 커졌다. 도쿄 김민희 특파원 haru@seoul.co.kr
  • 부처홈피 오류투성이… 마이너스 ‘정부 3.0’

    정부의 얼굴인 부처별 인터넷 홈페이지 곳곳에 오기와 맞춤법 오류, 일부 정보 누락 탓에 국정 과제로 추진하는 ‘정부 3.0’ 비전이 무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신문이 1일 주요 부처별 인터넷 홈페이지를 확인한 결과 가장 공신력이 있어야 할 정부 기관 소개 홈페이지 곳곳에서 오기가 발견됐다. 국가인권위원회는 현병철 위원장의 기관 소개 인사말에서 “우리나라가 개개인의 보편적 인권이 존중되고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를 껴안는 진정한 인권선진국으로 발돋음할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하겠습니다”라는 구절에서 ‘발돋움’을 ‘발돋음’으로 잘못 표기했다. 현 위원장의 맞춤법 실수를 인권위 내 어느 직원도 바로잡아 주지 않았다는 점에서 다양한 해석이 나온다. 경찰청은 홈페이지 내 경찰의 상징물을 소개한 부분이 문제로 지적된다. “미 군정하에 제작(1964년)되어 그간 정체성의 논란이 있었던 독수리의 상징물을 과감히 한국 수리인 참수리 형상으로 새롭게 표현…”이라는 구절에서 제3공화국 시절인 1964년을 미군정기(1945~1948년)로 잘못 표기하는 오류를 저질렀다. 경찰청 관계자는 이에 대해 “1946년을 오기한 단순 실수로 바로 시정 조치했다”고 해명했다. 일부 부처 홈페이지에는 역대 장관을 소개하는 사진이 누락돼 국민의 알 권리를 제대로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외교부 홈페이지의 경우 역대 장관 소개란에서 지난 3월 퇴임한 김성환 장관의 사진 부분이 여전히 공란이다. 또 9대 최덕신 장관(1961~1963년) 사진은 이미지 준비 중으로 표시돼 있다. 공보처에서 공보부, 문화공보부, 문화체육부 등으로 부처 이름이 바뀐 문화체육관광부의 경우 홈페이지에서 역대 장관 46명을 소개하며 초대부터 20대까지의 장관 사진들을 빠뜨렸다. 기획재정부는 홈페이지에 역대 장관 소개란이 아예 없어 정보 제공에 인색하다는 평을 받는다. 이 밖에 지난 3월 미래창조과학부의 신설로 교육과학기술부에서 부처 이름이 변경된 교육부는 홈페이지 영어 소개란에 한동안 교육과학기술부로 소개해 빈축을 사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정부 부처의 이 같은 행태가 홈페이지 이용객인 국민을 외면하고 여전히 공급자인 정부 중심의 행정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방증으로 진단하고 개선을 촉구했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각종 기관 홈페이지의 구성이 일반 국민의 입장에서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 주는 것”이라면서 “우리 정부가 홈페이지의 구동 속도 등 전자정부의 기술적 측면에서는 높은 평가를 받아도 실제로 얼마나 많은 국민이 정부 홈페이지를 찾아볼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이창원 한성대 행정학과 교수는 “정부의 ‘대문’이라고 할 수 있는 온라인 홈페이지의 정보 오류와 누락은 오프라인의 오류보다 파급효과가 더 크다”면서 “홈페이지 정보의 정확성이나 오기 여부 등을 부처 평가에 반영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김민석 기자 shiho@seoul.co.kr
  • 운동장 대신 숲을 품은 학교… 도심 속 아이들의 ‘힐링 놀이터’

    운동장 대신 숲을 품은 학교… 도심 속 아이들의 ‘힐링 놀이터’

    막연히 나무와 꽃이 주변에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지위 높은 사람들이 학교에 순시 왔을 때 심은 ‘기념식수’가 출발점이었다. 지금은 자투리땅이 거의 남지 않고 시멘트와 아스팔트로 포장된 도시의 허파 기능을 할 ‘마지막 희망’ 역할로 주목받고 있다. 학교에 조성된 숲, 학교숲 이야기다. 최근 ‘탄소지킴이 도시숲’이란 제목의 책을 발간한 산림청은 학교숲의 온실가스 저감 효과에 대해 큰 기대를 내비쳤다. 서울시만 해도 전체 초·중·고교가 1341곳이고, 구마다 학교가 골고루 배치되어 있다. 이곳에 ‘녹색 환경’이 조성될 경우 전체적인 산소 배출 효과뿐 아니라 미세먼지 흡착, 소음감소 및 차단과 같은 지엽적인 효과도 기대된다는 설명이다. 산림청은 건물·운동장과 몇 그루 나무, 작은 화단이 있는 일반 학교의 평균 탄소 저장량은 9887㎏C(건조된 목재 1㎥당 탄소저장량은 250㎏C)인 데 비해, 나무와 연못 등 학교숲이 조성된 학교의 탄소 저장량은 1만 412㎏C로 늘어난다고 설명했다. 산책로 등 대규모 식재를 통해 학교 공원화를 하면 저장량은 1만 651㎏C로, 학교숲과 학교공원화를 함께한다면 저장량은 1만 1176㎏C로 증가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런 연구 결과에 힘입어 올해 15년째인 학교숲 조성 운동이 재도약의 기회를 맞고 있다. 그동안 진행되어 온 ‘운동장 vs 학교숲’ 논쟁에서 학교숲에 대한 지지가 커지고 있다는 얘기다. 지난 18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산림비전센터에서 열린 ‘학교숲이 미래다 포럼’에서 참석자들은 학교숲 조성 초기와 달라진 학교 분위기를 설명했다. 오창길 인천구산초 교사는 “조선시대 향교와 서원에는 대개 오래된 큰 나무가 위용을 과시하며 상징물 역할을 했지만, 일제시대 이후 학교는 건물과 운동장으로 꾸며졌다”면서 “운동장이 들어선 데에는 1895년 교과과정에 병식체조를 도입한 학교령이 공포된 것과 관련이 깊다”고 설명했다. 김인호 신구대 환경조경과 교수도 “학교숲 운동의 가장 큰 장애물은 운동장에 대한 막연한 신화(神話) 때문으로, 학교숲 조성 대신 운동장에 인조잔디와 트랙을 설치하자는 주장이 힘을 얻기도 했다”면서 “2000년대 중반 인조잔디를 깐 학교들은 최근 낡아서 새로 시공을 해야 하는 어려움에 직면한 반면 학교숲은 환경적 효과뿐 아니라 교육적인 효과까지 거두고 있다”고 주장했다. 운동장을 대체할 실내 체육관 건립, 자투리 숲 조성기술의 발전도 학교숲 조성에 동력을 보탰지만, 인성교육뿐 아니라 교과교육에서도 유용하다는 점이 학교숲 확산을 이끌었다. 학교숲 운동을 해 온 ‘생명의 숲’은 학교숲이 1999년 700여곳에서 최근 3000여곳으로 늘었다고 집계했다. 허윤선 서울대 조경학과 박사는 “학교 안에 숲이나 텃밭을 조성하거나 담장을 숲으로 대신하는 등 여러 가지 학교숲 조성 방식이 있다”면서 “일단 학교숲이 조성되면 수업시간이나 방과 후 활동 시간에 생태체험 교실을 운영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방과 후에는 주민들의 운동공간과 휴식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해외에서도 지역 커뮤니티와 연계해 녹색학교를 만드는 움직임이 활발하다”면서 “영국의 지속가능한 학교 프로그램은 학교를 중심으로 개인에서부터 타인과의 관계, 지역과의 네트워크 형성에 이르는 범위를 다루며 지속가능한 삶에 대한 인식을 키워 준다”고 강조했다.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 응답하라, 노르웨이 2013

    응답하라, 노르웨이 2013

    대자연 속 일상을 누리는 시간 응답하라,노르웨이 2013 산이 깊다는 역사학자 유홍준의 표현은 우리나라에만 해당되는 게 아니었다. 노르웨이의 피오르는 그 깊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산세가 그 속내를 알 수 없는 바닷물과 거의 직각을 이루며 굽이굽이 이어졌다. 그리고 잊을 만하면 나타나는 산속 작은 마을에는 사찰 대신 작은 교회가 어김없이 서 있었다. 신의 작품 앞에서 신음만 번지는 인간은 몸과 마음으로 자연의 위로를 받아들였다. FIORD 피오르 몸과 마음이 깨어나다 두어 해 연속 어렵게 만든 휴가를 서운하게 마쳤다. 무슨 영문인지 세계적인 도시에서 내도록 하품을 하며 멍하니 서 있는 스스로를 발견했던 것이다. 그 멋진 상징물 앞에서도 시큰둥하고 줄이 긴 전시장에선 기다릴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여행에 관한 한 공항부터 조증에 걸린 양 들뜨는 사람에겐 퍽 당황스러운 증상이었다. 뜬금없이 지난 기억을 떠올리는 건 그에 대한 진단을 이곳 노르웨이 피오르에서 내리게 된 탓이다. 출발 전 과로나 장거리 비행, 빡빡한 현지 스케줄 등 조건은 다를 게 없는데 현장을 대하는 마음과 정신이 놀랍도록 명료하다. 그러니까 여행도 인연 못잖게 적절한 타이밍이 중요한 법이다. 이제 와 돌이켜보니 전후 사정은 생각도 않고 무리해 대도시를 찾은 게 화근이었던 듯하다. 노르웨이는 복지와 행복지수, 국민소득 등의 선두주자로 대단히 익숙한 이름이지만 여행지로 따지자면 유럽의 다른 나라에 비해 심리적 거리감이 느껴지는 곳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전 국민이 아는 노르웨이어가 있다. 지리 시험 주관식 문제의 정답으로 꼭 한번은 등장했던 바로 그 이름 ‘피오르fjord’가 노르웨이 단어다. 그러니까 노르웨이로 향한다는 건 사전적 정의 그대로 ‘빙하의 침식으로 만들어진 골짜기에 바닷물이 들어와서 생긴 좁고 기다란 만’을 찾아가는 길이기도 하다. 수도 오슬로부터 북단의 트론하임까지 노르웨이에는 수많은 피오르가 존재한다. 그 어디를 택하더라도 후회 없는 여정을 보장하지만 굳이 하나를 택해야 한다면 송네피오르Sognefjord나 하당에르피오르Hardangerfjord를 추천한다. 피오르에 몸을 맡기다 미르달Myrdal역에서 플램Flam행 열차에 탑승했다. 산악 지역 주민들의 이동을 돕기 위해 건설된 이 철로는 무려 20년의 공사 기간이 소요된 것으로 유명하다. 그도 그럴 것이 미르달에서 플램까지 거리는 20km에 불과하지만 해발 차가 860m에 달한다. 과장을 보태면 굽이굽이 산세를 거의 수직으로 내려가는 셈이다. 각종 매체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기찻길이라 찬사를 보낸 곳답게 열차 밖으로 펼쳐지는 풍광이 가히 환상적이다. 기차는 숱한 터널을 지나며 지그재그로 회전하느라 천천히 달리는 데 비해 객차 안 다국적 승객들은 왼쪽과 오른쪽 창문을 오가느라 분주하다.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도 카메라를 내려놓지 못하는 승객들을 위해 중간에 5분간 정차 구간이 있다. 해발 699m 청명한 쿄스포센Kjosfossen폭포 앞에서 잠시 내려 선 여행자들은 감탄사를 내려놓고 깊은 숨을 들이쉬며 찰나의 여운을 만끽한다. 해발 2m 플램역에 도착하면 지나온 풍경이 꿈이었나 싶게 몽환적이다. 기차역에서 바로 눈앞에 보이는 고풍스런 건물이 프레타임Fretheim호텔로 플램 철도와 더불어 플램의 상징이 되는 곳이다. 인구 500명 남짓의 이 조그만 마을로 유럽은 물론 전 세계 사람들이 찾아오는 까닭은 바로 피오르의 비경을 목도할 수 있는 ‘피오르 사파리’를 경험하기 위해서다. 19세기 말에 지어진 프레타임 호텔은 피오르를 찾아오는 여행자와 함께 성장해 현재는 전통과 모던 객실 중에서 선택해 머물 수 있다. 객실 번호 대신 노르웨이의 대표적 이름이 붙은 전통 객실이든, 비스듬한 삼각 지붕이 매력적인 모던 객실이든 플램 특유의 푸근함만은 다르지 않다. 전통을 중시하는 마을답게 노르웨이 고어古語를 포함한 독특한 책을 소장한 자체 도서관을 운영하며, 또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훈제용 스모킹룸이 남아있는 것도 흥미롭다. 이제 드디어 피오르에 몸을 맡길 차례다. 구명조끼를 겸하는 큼직한 방한복을 입고 배에 오르는 마음이 자못 두근거린다. 놀랍도록 잔잔한 물 위로 미끄러지듯 배가 나아가면 좌우로 우뚝 솟은 절벽의 단면이 펼쳐진다. 배가 속도를 높일수록 절벽과 천연 스키 슬로프, 순도 백프로의 폭포와 알록달록한 마을, 뾰족한 첨탑이 있는 교회 등이 다가왔다가 뒤편으로 멀어진다. 머리 위에는 천사의 머리띠마냥 구름이 살포시 걸려 있고 산봉우리 하나를 지나면 또 다른 봉우리들이 배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 플램에서 출발한 배가 닿는 이곳은 풍광이 특히 빼어난 네뢰피오르와 아울란피오르로 노르웨이 최대 피오르인 송네피오르의 지류다. 물 위를 날 듯 달리노라면 서울에서 가져온 문젯거리들은 어느새 툭툭 바다 밑으로 털어 버리게 된다. 피오르 여행의 최고 시즌으로 꼽히는 7월과 8월 사이에는 보다 다양한 피오르 사파리 구간과 하이킹 코스가 열리므로 원하는 루트를 선택해 즐기는 호사도 부릴 수 있다. 육지에 발을 딛고 다시 펼쳐 본 노르웨이의 지도는 배를 타기 전과 전혀 다르게 다가온다. 이처럼 노르웨이의 주인공은 단연 대자연이다. 하지만 이 자연이 위대하고 아름답게 보이는 건 평생을 살아온 자신의 조국을 이제 막 연애를 시작한 애인 보듯 사랑하며 가꾸는 노르웨이 사람들 덕분일 게다. 보기에 따라선 더없이 척박한 자연을 있는 그대로 보존하면서 동시에 즐기고 또 사랑하는 노르웨이 사람들로 인해 노르웨이는 오늘도 반짝반짝 빛난다. 일상이 풍요로운 노르웨이의 도시들 노르웨이의 대자연에서 가슴 속 고민들을 툭툭 털어냈다면 이제 발길은 사람의 흔적을 찾아 도시로 향할 차례다. 불황에 허덕이는 이웃 유로존과 달리 보편적 복지와 호황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노르웨이의 도시들 속으로 들어가 보자. OSLO 오슬로 불황을 잊은 노르웨이의 심장 오슬로는 노르웨이 제1의 도시이자 수도지만 숨 막히는 인파나 위압적인 마천루는 찾아볼 수 없다. 또한 파리의 에펠탑이나 뉴욕의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 런던의 빅벤 같은 상징물로 연결되는 장소나 건축물도 없다. 그래서 순위 놀이에 익숙한 관광객들은 오슬로의 지도를 펼치고 잠시 머뭇거린다. 그런 서열을 매기기에 오슬로는 지극히 수평적인 도시다. 효과적인 마케팅 기법은 아닐지 모르겠으나 현지인의 삶에 관심이 많은 여행자라면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을 것이다. 300개가 넘는 호수와 200여 개의 공원이 있는 오슬로에서 자연과 인공의 경계를 찾는 것은 무의미한 일 같다. 그래서 오래도록 오슬로는 자연을 만끽할 수 있는 도시로 유럽 전역에 알려져 왔다. 한데 최근 몇년 사이 오슬로는 이런 자연 위에 예술적 색채를 깊게 덧입고 있다. 오슬로 시정부가 펴낸 2013년 가이드북에서 안내하는 52개의 어트랙션 중 대부분이 ‘뮤지엄’ 등 예술의 꼬리표를 달고 있는 것만 봐도 이들이 어디에 중점을 두고 있는지 짐작할 만하다. 인구 50만의 작은 도시 규모를 생각해 보면 대단한 비율이다. 게다가 시 전역에 흩어져 있는 이런 예술 공간은 여행자만을 위한 관광 명소가 아니라 시민들이 일상적으로 즐기는 공간이다. 매일을 살아가는 시민들의 일상에 여행자가 슬쩍 발을 들여놓는 셈이라고 할까. 실제로 만만찮은 무게의 예술가들이 이곳 오슬로를 배경으로 삶과 예술을 고민했다. 화가 에드바드 뭉크Edvard Munch와 조각가 구스타프 비겔란드Gustav Vigeland 그리고 극작가 헨리크 입센Henrik Ibsen 등이 대표적이다. 특별히 올해는 뭉크 탄생 150주년으로 오슬로 전역이 떠들썩하다. 이를 기념해 뭉크박물관과 국립박물관은 특별전 준비가 한창이다. 유년시절부터 성인이 된 이후까지 어머니와 형제들의 죽음을 차례로 지켜봐야 했던 뭉크는 불안과 고독 속에 살아가는 현대인의 모습을 격렬한 색감과 왜곡된 형태로 표현해냈다. 6월2일부터 시작된 뭉크 특별전은 1903년을 기점으로 그 이전 작품은 국립박물관에서, 이후 작품은 뭉크 박물관에서 전시 중이다. 특별전은 오는 10월13일까지 계속된다. 오슬로의 햇살을 만끽하기 가장 좋은 곳은 도심의 북서쪽에 위치한 비겔란 조각 공원이다. 로댕의 영향을 받았지만 특유의 섬세함으로 인간의 고뇌를 표현해냈다는 평가를 받는 그의 작품 200여 점이 정문에서 후문까지 길 양옆으로 늘어서 있다. 인간의 희로애락을 주제로 작업한 그의 작품 중 가장 유명한 것은 탑 모양의 ‘모노리스Monolith’. 제작 기간이 13년이나 걸린 것으로 전해지는 이 대작은 121명의 남녀노소가 위로 올라가려 애쓰는 모습이다. 태어나 성장하고 늙어 가는 인생을 표현했다고 해석하기도 하는데 어찌 되었든 조급증에 지친 사람이라면 이 앞에서 잠시 서성이게 될 것이다. 이 공원에서 시선과 마음을 훔치는 것은 비단 비겔란의 작품뿐이 아니다. 어린 아이부터 노인까지 이곳에선 오슬로 시민들의 행복한 일상을 쉽게 엿볼 수 있다. 2008년 개장한 오슬로 오페라하우스는 노르웨이에서 드물게 호들갑스런 화제를 낳았던 곳이다. 설계자 스뇌에타의 유명세나 고가의 대리석과 화강암, 세계 최고 수준의 음향 시설 등 호사스런 부연 설명은 차치하더라도 노르웨이의 상징인 피오르를 형상화한 구조는 이방인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비스듬한 경사를 따라 천천히 걷다 보면 어느새 지붕 위에 서게 되는 독특한 구조의 오페라하우스는 유리 안으로 들여다보이는 내부 시설만큼 바다를 향한 전망도 아름답다. 여름 기운이 더 완연해지면 오슬로 시민들은 이곳에서 피크닉을 즐기며 발레와 오페라 등을 만끽할 게다. 오페라하우스 인근인 오슬로 중앙역에서 왕궁에 이르는 칼 요한슨 거리가 오슬로 최대 번화가다. 이 번화가를 중심으로 노벨평화상 수상식이 열리는 시청사와 수상 만찬이 열리는 그랜드 호텔, 그리고 국회의사당과 오슬로 대성당, 국립극장, 입센 뮤지엄 등이 조밀하게 자리하고 있다. 매년 12월이면 이 조용한 도시는 노벨평화상 수상식으로 소란스러워진다. 헛갈리는 이들을 위해 잠시 짚고 넘어가자면 평화상을 제외한 여타의 노벨상 시상식은 모두 스웨덴에서 거행된다. 오직 노벨 평화상만 이곳 오슬로에서 진행된다. 그 까닭을 두고는 설이 분분한데, 이유야 어찌 되었든 매년 세계 평화에 공헌한 이들을 맞이하는 것은 분명 가슴 벅찬 일일 게다. 그래도 명색이 수도인데 조금은 더 왁자한 자극을 원한다면 도심 북동쪽에 위치한 마탈렌Mathallen을 추천한다. 마탈렌은 건축자재 공장과 타이어 공장을 거친 뒤 방치되었던 낡은 건물을 레노베이션해 음식 백화점으로 살려낸 ‘잇플레이스’다. 3층 구조물인데 1층에 30여 개 상점이 오밀조밀 모여 있고 2·3층은 테두리에만 독특한 성격의 업장을 배치했다. 산업시대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인테리어나 다채로운 음식의 변주를 보고 있노라면 흡사 뉴욕의 첼시 마켓이 떠오른다. 각각의 가게들은 좋은 품질의 식재료와 음식을 판매한다는 자부심이 가득하다. 또 요리강습과 실습, 푸드 페어 등 음식에 관한 다양한 행사도 진행 중이다. 공원에서, 뮤지엄에서, 레스토랑에서 마주친 오슬로 시민들이 빠뜨리지 않고 언급한 몇 개의 단어가 있다. 가족, 자연, 오늘 그리고 행복. 너무 당연해서 자주 잊고 사는 그것들에 콕콕 방점을 찍는 이 현명한 도시. 우리가 오슬로를 여행할 때 놓지 말아야 하는 키워드이기도 하다. BERGEN 베르겐 과거의 영화는 지금도 계속된다 세상 어디나 있는 라이벌 도시는 이곳 노르웨이에도 있다. 오슬로보다 먼저 수도였던 노르웨이 제2의 도시 베르겐. 도시 면적은 비슷하지만 인구로 보면 오슬로의 절반 규모인데도 베르겐 사람들은 오슬로를 마치 철없이 혈기 넘치는 어린 동생 보듯 한다. 상주인구가 25만에 불과한 이 작은 도시는 그러나 연중 문화 행사가 빼곡해 유럽 전역에서 밀려드는 문화 탐욕가들로 넘쳐난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매년 5월 말 열리는 ‘국제 페스티벌’로 100년이 넘는 전통을 자랑하는 노르웨이 최대 문화 축제다. 노르웨이 국왕이 참석해 개막 테이프를 자르는 이 축제를 직접 즐기기 위해서는 적어도 반년 전에 호텔을 예약해야 할 정도란다. 실제로 이곳은 14~16세기 런던, 브뤼헤 등과 함께 유럽을 대표하는 한자 동맹의 주요 거점이자 북유럽 최대의 물류 무역항이었다. 특히 대구와 소금 거래로 유명세를 떨쳤는데, 당시 이곳에서 거래되는 물량이 북유럽 최고였다니 베르게너의 자부심이 근거 없는 것은 아닌 듯하다. 선원과 상인으로 넘쳐나는 왁자한 부둣가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 브리겐Bryggen, 삼각형의 뾰족한 지붕이 열을 이루고 있는 곳이다. 사실 본래의 목조 건축들은 수차례의 화재로 소실과 복원을 반복했다. 특히 1702년 대화제로 일대는 완전히 잿더미가 되었는데, 20세기 들어 사료를 바탕으로 세심하게 복원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브리겐은 1979년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에 등재되었으며 과거 말린 대구를 보관하던 창고 자리는 현재 다양한 예술가들의 공방과 레스토랑, 기념품 가게 등으로 운영되고 있다. 동화 같은 브리겐의 예쁜 정면 얼굴을 볼 수 있는 곳은 항구 건너편 어시장이다. 시장이라고 부르지만 세련된 건물 안에 자리한 쾌적한 공간이다. 바닷가재와 대구, 캐비아까지 다양한 해산물이 요리하기 좋게 손질되어 있다. 해산물뿐 아니라 질 좋은 노르웨이 치즈와 버터, 수공예품도 판매한다. 또 즉석에서 먹을 수 있는 따뜻하고 고소한 생선스프와 짭조름한 생선튀김도 여행의 즐거움을 배가시킨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이 도도한 도시는 어느 계절에 방문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기억을 안고 돌아갈 수 있겠다. 연중 270일이나 비가 내리는 이 도시는 하루에도 먹구름이 끼었다가 햇살이 반짝였다가 우박이 내렸다가 다시 청명하게 개는 변덕스런 일기를 선보인다. 하지만 이렇게 잦은 비 덕분에 베르겐은 청정한 노르웨이에서도 유난히 깨끗한 도시로 명성이 높다. 이 깨끗한 도시를 한눈에 내려다보려면 플뢰엔FlØyen 산 전망대에 오르면 된다. 산의 경사면을 따라 놓인 레일 위를 날아오르듯 부드럽게 이동하는 푸니쿨라Funicular에 몸을 실으면 약 7분여 만에 320m 높이 정상에 다다른다. 탁 트인 전망대의 시야는 그야말로 ‘파노라마 뷰’가 어떤 것인지 보여주는 듯하다. 호수와 항구, 피오르와 도심이 한데 어우러진 베르겐의 모습이 그야말로 거칠 것 없이 펼쳐진다. 오슬로에 에드바드 뭉크가 있다면 베르겐에는 에드바드 그리그Edvard Grieg가 있다. 물론 이런 이분법적인 구분은 바람직하지 않다. 뭉크 역시 이곳 베르겐에서 상당 부분 영감을 받은 것으로 전해지며, 그리그가 베르겐을 떠나 있었던 시간도 제법 길기 때문이다. 하지만 베르겐에서 그리그의 존재는 절대적이다. 그는 누구보다 노르웨이적 색채가 짙은 음악가로 명성이 높은데, 우리에게도 익숙한 ‘페르귄트 모음곡’ 중 ‘솔베이지의 노래’를 들어 보면 당시 식민 상황이던 조국에 대한 그의 마음이 느껴지는 듯하다. 그리그는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원하는 만큼 음악을 공부하고 작업하면서 오페라 가수였던 아내 니나와 평생을 해로했다. 하지만 그에게도 남모를 아픔이 있었으니 어린 딸을 잃고 그 아이를 평생 그리워하며 살았다. 그리그 부부가 30대 중반부터 여름철에 지냈던 생가가 바로 베르겐 외곽에 있는 트롤하우겐이다. 북유럽에서 요정을 가리키는 ‘트롤하우겐’은 노르웨이 사람으로는 눈에 띄게 단신이었던 그리그의 별명이기도 했는데, 그의 집이 지금도 요정의 정원으로 불리고 있다는 사실이 재미있다. 그리그 부부가 합장된 묘가 있는 이곳에는 그들이 사용했던 스타인웨이 피아노와 악보, 편지, 초상화 등의 흔적이 남아있다. 집에서 바다로 스무 걸음쯤 내려간 곳에 한 사람이 간신히 들어갈 만한 작은 오두막이 하나 있는데 바로 복원한 그리그의 작곡실이다. 그리그는 바다로 향한 창문을 중심으로 피아노와 책상, 오선지와 펜 등 최소한의 물건을 비치해 두고 곡을 썼다. 그리그 사후 이 작곡실을 복원할 때 전해지는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아내 니나에게 최종 점검을 받는 중에 니나가 갑자기 집으로 뛰어가더니 두꺼운 악보집을 가져다 피아노 의자에 놓았다고 한다. 이것 없이 그리그의 작곡실은 완성되지 않는다고 하면서. 153cm의 단신이었던 그리그는 피아노를 칠 때 두꺼운 악보집을 깔고 앉아야 편하게 건반을 두드릴 수 있었던 것이다. 이 작곡실과 함께 바다를 조망할 수 있는 전망을 갖춘 200석 규모의 콘서트홀이 자리하고 있다. 자연과 예술이 이렇게 환상적으로 어우러진 곳에서 어떤 음악이 울려 퍼진들 감동적이지 않을까. 글 Travie writer 김정은 사진 Travie writer 김정은, 트래비CB, Travie writer 노중훈 취재협조 노르웨이관광청 www.visitnorway.com ▶travie info 항공 현재 우리나라에서 노르웨이까지 직항 정규 노선은 없다. 핀에어, KLM 등 주요 유럽 항공사가 1회 경유로 오슬로와 베르겐을 당일 연결한다. 언어 공용어는 노르웨이어지만 노르웨이 사람들은 1~2개의 외국어에 익숙하다. 영어가 가능한 여행자라면 노르웨이에서 언어 때문에 불편을 겪을 일은 거의 없다. 전기 220V이며 한국과 플러그 모양도 동일하다. 화폐 노르웨이 크로네Krone를 사용하며 공식적인 표기는 NOK이나 줄여서 kr로 표기한다. 1크로네가 약 200원 정도. 유로존이 아닌 만큼 유로화는 거의 통용되지 않는다. 여행자가 피부로 느끼는 물가는 상당히 비싼 편이라 카페에서 마신 커피 한 잔이 약 1만2,000원, 편의점에서 구입한 생수 한 병이 약 6,000원이었다. 날씨 백야가 시작되는 6월부터 10월 초까지는 날씨가 화창하고 청명해 그야말로 노르웨이 여행의 황금시즌이라 할 만하다. 오슬로의 7월 평균 낮 최고기온은 21.5도. 음식 바이킹의 후예답게 생선을 즐겨 먹는데 식탁에 자주 오르는 메뉴가 대구와 청어, 연어 등이다. 이와 더불어 빵과 감자의 소비량이 높다. 농지 비율이 낮기 때문에 야채나 과일의 생산량이 미미한 대신 목축업이 발달해 버터와 치즈 등 유제품의 품질이 좋다.
  • ‘70년대 타워팰리스’ 서대문 유진상가 예술로 다시 태어나

    ‘70년대 타워팰리스’ 서대문 유진상가 예술로 다시 태어나

    종로의 세운상가는 한국 근대건축의 상징으로 꼽힌다. 맨 밑에 도로가 지나가고 그 위에 상가와 녹지대 배치, 다시 그 위에 주택들이 올라선 구조, 그러니까 오늘날 교통과 상업, 주거가 한데 뒤섞인 주상복합의 시초 격이라 할 수 있다. 철거 이후 녹지대로 변경되려다 살아남은 것은 그 때문이다. 그와 같은 건물로 서대문구에는 홍은상가가 있다. 하지만 홍은상가는 홍제천 개발 등과 맞물려 재개발되며 사라질 예정이다. 서대문구는 오는 24일까지 홍은동 유진상가 건물 1층에서 ‘유진상가 해피 이어스(Happy Years)’ 전시를 연다고 15일 밝혔다. 김치다 작가의 ‘회상의 조각2’, 장서희 작가의 ‘유진상가 to 아트란티스’, 임석호 작가의 ‘B를 위한 무대’, 전병철 작가의 ‘시간을 달리는 달팽이 1970~2013’ 등 작가 10여명의 70여 작품이 선보인다. 유진상가 건물 자체를 오브제로 삼아 빈 공간과 외벽, 복도 같은 곳에 현장전시 형식으로 전시된다. 유진상가는 1970년작. 이 건물의 가장 큰 특징은 전쟁 대비 기능이다. 탱크가 올라가도 괜찮을 정도로 튼튼하게 지었다, 유사시에는 아파트 동 전체를 교통 차단용 초대형 낙석으로 쓸 수 있도록 했다는 등의 얘기가 나올 정도다. ‘싸우면서 건설하자’는 1970년대 구호가 생생히 드러난 준전시 체제의 상징물이다. 1층에만도 100여개의 상점이 들어서고 군장성과 외교관, 연예인이 모여 사는 대표적 부촌이기도 했다. 문석진 구청장은 “유진상가 건물이 역량을 갖춘 예술가들에 의해 예술적으로 새롭게 재해석됐다는 점에서 기쁜 일”이라고 말했다. 조태성 기자 cho1904@seoul.co.kr
  • 이집트 스핑크스 이스라엘서 발견

    고대 이집트의 상징물인 스핑크스가 이스라엘에서 처음으로 발굴됐다. 중동 지역 일간 더내셔널은 고대 유적지인 이스라엘 북부의 텔 하조르 국립공원에서 스핑크스의 발 부분이 발견됐다고 1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스라엘 히브리대 발굴단에 따르면 이번에 발견한 스핑크스 발 부분의 길이는 0.5m 정도로 약 4500년 전 고대 이집트 왕국을 통치한 멘카우라 왕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멘카우라 왕은 수도 카이로 인근 기자 지역에 있는 피라미드 3개 가운데 하나를 건설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그의 스핑크스가 발견된 것은 처음이다. 아울러 시리아, 레바논, 요르단,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등을 아우르는 레반트 지역에서 이집트의 대표적인 유적인 스핑크스가 발견된 것 역시 최초다. 발굴단은 이 스핑크스가 하조르 지역의 가나안 왕궁이 파괴됐던 기원전 13세기의 단층 지대에서 발견됐다고 설명했다. 발굴에 참여한 고고학자 암논 벤 토르에 따르면 전체 스핑크스의 길이는 1.5m, 높이는 0.5m 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집트 멘카우라 왕의 스핑크스가 이스라엘에 이르게 된 경위를 둘러싸고 학자들은 저마다 다른 견해를 내놓았다. 히브리대 소속 샤론 주커먼은 “멘카우라 왕이 하조르 왕국에 건넨 선물이었을 것”이라면서 “이는 가나안과 이집트 간의 긴밀한 관계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벤 토르는 “당시에는 이집트와 레반트 지역이 전혀 교류가 없었기 때문에 멘카우라 왕 생전에 이 스핑크스가 가나안에 전달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기원전 16세기 초반 가나안인들이 이집트 남부 지역을 점령했을 당시 스핑크스를 약탈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김문이 만난사람] ‘빗물박사’ 한무영 서울대 빗물연구센터 소장

    [김문이 만난사람] ‘빗물박사’ 한무영 서울대 빗물연구센터 소장

    빗물의 맛은 과연 어떨까. 2010년 10월 서울대에서는 물에 관한 흥미로운 블라인드 테스트를 한 적이 있다. 한 콜라회사가 했던 챌린지와 비슷한 방법의 시음 조사였다. 수돗물(A형), 빗물(B형), 시중에 파는 병 물(C형) 등 세 가지 물을 시음한 후 가장 물맛이 좋다고 느낀 유형에 스티커를 붙여 달라고 했다. 그 결과 수돗물 6표, 병 물 7표, 빗물 23표로 빗물이 압도적인 승리를 차지했다. 빗물이 가장 맛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만큼 빗물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깨끗한 물이라는 뜻이기도 했다. 이참에 빗물에 대한 추억을 하나 떠올려 보자. 어린 시절 마을 뒷동산에서 놀다가 빗방울이 하나둘 떨어지는 날, 마치 ‘구름 주스’를 마시기라도 하려는 듯 고개를 한껏 젖히고 혀를 내밀어 빗물을 마셨던 일이 있다. 또 사랑과 낭만이 담긴 비와 관련된 노래도 많다. ‘비가 오도다’로 시작되는 ‘비의 탱고’, ‘잊지 못할 빗속의 여인, 그 여인을 잊지 못하네, 노란 레인코트’로 시작되는 ‘빗속의 여인’ 등은 비가 오는 날 그럴듯하게 들린다. 하지만 요즘은 어떨까. 비에 대해 우선 ‘산성비’라는 부정적인 인식이 많다. 산성비를 맞으면 머리가 빠진다는 속설까지 생겨났다. 그뿐만 아니다. 비가 많이 오면 ‘물난리’와 ‘홍수’라는 말로, 비가 안 오면 ‘가뭄’이라는 말로 하늘을 원망한다. 따지고 보면 홍수와 가뭄의 원인은 자연의 순리를 무시한 인간에게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도시화가 되면서 거의 모든 땅이 포장되고 각종 개발로 콘크리트화되다 보니 물을 품을 땅이 점점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3년 전 서울 광화문 일대와 강남역 주변이 물에 잠긴 사례만 보더라도 잘 알 수 있다. 물이 땅속으로 스며들어야 하는데 그럴 공간이 없는 데다 흐르고 머무를 곳(저장 시설)마저 없어 빚어진 결과였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우리나라는 물 부족 국가라고 한다. 정말일까. 물이 부족한 게 아니라 물 관리가 부족한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대안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빗물을 연구하는 곳이 있다. 바로 서울대 빗물연구센터다. 지난 4일 오후 이 연구센터의 소장인 한무영(57) 교수를 서울대 연구실에서 만났다. 그는 빗물 연구에 푹 빠진 ‘빗물 박사’로 통한다. 원래는 상하수 처리 전문가였지만 2000년부터 본격적으로 빗물 연구에만 매달려 오고 있다. 현재 서울대 건설환경공학부 교수로 재직하면서 ‘빗물모아지구사랑운동본부’ 공동대표 등을 맡아 빗물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새로운 가치 부여를 위한 연구와 홍보에 힘쓰고 있다. 빗물 연구의 첫 사회적 성과물은 2006년 완공된 서울 광진구 주상복합 건물 스타시티의 빗물 저장 시설이다. 이 건물 입주민들은 빗물을 생활용수로 활용하기 때문에 물값을 따로 내지 않으며 한강에서 물을 적게 끌어 와 쓴 덕분에 에너지도 절약하고 있다. 스타시티의 빗물 시설은 2008년 국제물학회지의 커버스토리에 ‘세계적인 미래형 물 관리 모델’로 소개됐다. 이후 동남아와 아프리카 등 가뭄으로 허덕이는 물 부족 국가들을 방문해 빗물 저장 시설 설계와 그동안의 연구 노하우를 전파해 오면서 빗물을 통해 지구의 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하고 있다. 세계의 수자원 전문가들도 학회지 등을 통해 ‘한무영의 빗물’을 칭찬하고 있다. 그가 쓴 여러 저서 가운데 ‘지구를 살리는 빗물의 비밀’은 중학교 2학년 국어 교과서에 실려 일반인뿐만 아니라 학생들에게도 빗물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고 있다. 한 교수의 연구실은 서울대 건설환경공학부 건물에 있다. 이곳에는 특별한 것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옥상에 있는 녹지 공간이다. 예쁜 꽃이 심어져 있어 경관도 좋지만 건물의 온도를 내려 주고 비가 올 때면 빗물을 아래로 천천히 내려보내는 역할도 한다. 다른 하나는 건물 입구에 있는 ‘빗물저금통’이다. 말 그대로 빗물을 잠시 모아두는 통이다. 한 교수는 빗물저금통 밑부분에 달린 수도꼭지를 틀면서 “요즘 비가 자주 내려 빗물이 많이 모였다”고 설명한다. 원리는 간단하다. 옥상에서 물이 내려오는 홈통에 파이프를 연결하면 된다. 빗물 일부는 지표면으로 천천히 내려가고 일부는 빗물저금통에 흘러 들어가 저장되는 것이다. 그는 “건물에 설치된 홈통 하나당 1년에 대략 130t의 물을 커버할 수 있다고 할 때 1t짜리 빗물저금통으로 1년에 60~70%인 약 100t 정도의 물을 확보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면서 “따라서 10개의 홈통이 있다면 1년에 1000t의 수자원을 확보할 수 있으며 이를 건물마다 많이 설치하면 홍수 유출 방지 역할까지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여기에 예술적 감각이나 미적 감각을 활용해 정원의 아름다운 조형물이나 분수 등을 만든다면 건물의 상징물로 승화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스타시티의 3000t 규모 빗물 저장 시설도 이 같은 원리로 만들어 홍수 방지용, 수자원 확보용, 비상용 등의 다목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또한 그는 “여름에만 한시적으로 건물 지하 주차장의 주차 공간 2~3면 정도를 활용하면 100t짜리 간이 저장조가 금방 만들어진다”면서 물난리를 자주 겪는 동네에 이런 시설을 설치하면 일석이조로 활용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이 같은 빗물저금통을 설치하려 할 때 서울, 부산, 수원의 경우 경비의 90%를 지원받을 수 있도록 조례로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비용 부담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광화문이 물에 잠겼던 원인에 대한 얘기가 나오자 “뜬금없는 소리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그때 청와대 주변에 커다란 연못이 있었더라면 광화문 일대가 물에 잠기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어째서일까? “원래 북악산 일대는 녹지 공간이었습니다. 그런데 청와대가 들어서고 주변에 군부대 등 여러 건물이 생기면서 대정원이 콘크리트 시설로 덮이고 말았지요. 그러다 보니 당시 한꺼번에 내린 빗물이 아래로 계속 흘러 결국 하류 지점인 광화문 일대가 잠겨 버렸습니다. 홍수라는 것이 정확히 말하면 많이 내린 비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한꺼번에 빠르게 흘러 생기는 일입니다. 경복궁에는 경회루지와 향원지 등 두개의 연못이 있습니다. 우리 조상들이 큰 집을 짓거나 궁을 지을 때 홍수를 염려해 크고 작은 연못을 늘 생각했듯이 지금이라도 청와대 주변에 저류조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래쪽에 있는 광화문이 잠기는 일이 또 생기겠지요.” 화제를 돌렸다. 빗물이 산성비라는 부정적인 인식이 많다고 하자 한 교수는 그런 질문을 자주 받는다는 듯이 “도대체 누가 어떤 목적으로 그런 악의적인 이미지를 만들어 퍼뜨렸는지 모르겠다”고 한 뒤 “빗물이 산성인 것은 맞지만 아무것도 아닌 산성이다. 어떤 사람은 산성비를 맞으면 머리카락이 빠진다고들 하는데, 그런 사람 있으면 머리카락을 다 심어 드리겠다”며 웃는다. 오히려 머리 감을 때 쓰는 샴푸와 린스 가운데 어떤 제품은 산성비보다 100배쯤, 시큼한 오렌지주스나 콜라 역시 그 정도의 강한 산성을 띠고 있다고 설명한다. 유황온천 물도 마찬가지란다. 아울러 빗물은 땅에 떨어지면 곧 중화된다면서 지난해 9월 보성 녹차 홍보팀과 함께 빗물로 녹차를 만들어 시음을 했을 때도 반응이 좋았다며 이제는 빗물에 대한 인식을 바꿔야 한다고 강조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산성비라고 하지만 아프리카에서는 생명의 물로 소중히 여기고 있다고 한다. 토목(상하수도)을 전공한 그가 빗물과 인연을 맺은 것은 2000년 봄 전국적으로 심한 가뭄이 들었을 때였다. 이런 상황을 보고 이제는 상하수도가 아닌 물 부족 현실로 눈을 돌려야겠다고 생각하던 중 일본의 무라세 마코토 박사가 쓴 ‘빗물을 모아 쓰는 방법을 알려 드립니다’라는 책을 접했다. 책에서 영감을 받은 그는 전 세계 빗물 전문가를 만나기 시작했다. 일본에도 가 보고 독일에도 가 봤다. 하지만 그들은 우리와 사정이 달랐다. 한국으로 눈을 돌렸다. 그러던 어느 날 고궁에 있는 연못에서 행정단위를 나타내는 ‘동’(洞)이라는 글자를 보고 의미를 찾았다. 마을 사람들이 같은 물을 마신다는 조상들의 물 관리 철학을 깨달은 것이다. 측우기 발명과 강우 기록을 통해 기후변화에 대비한 빗물관리법들이 민본사상에서 출발했다는 점도 알아냈다. 그러던 2004년 서울대 측에 빗물연구센터를 만들어 달라고 건의했고 이를 성사시키면서 본격적으로 연구를 하기 시작했다. 2008년부터 4년 동안 빗물 관련 논문을 8편 썼다. 세균만 죽이고 마실 수 있는 연구 결과물도 내놓았다. 그러자 세계 학자들이 “빗물을 버리는 것만 알았지, 모아서 먹을 수 있다는 것은 아무도 생각 못 했다”며 높이 평가했다. 올 2월에는 탄자니아에 가서 빗물 설치 사업에 대해 강연했고 이달에도 케냐, 탄자니아, 코트디부아르 등 아프리카 3개국에서 ‘마시는 빗물’ 등에 대해 강연할 예정이다. 어떻게 마실까. “페트병에 빗물을 담아 반나절 정도 햇빛을 쪼이면 미생물이 죽는데 그때부터 마시면 된다”면서 “이러한 방법은 돈이 한푼도 안 들어가니 얼마나 좋으냐”며 웃는다. 그의 휴대전화 컬러링은 ‘빗속의 여인’이다. 빗물에 대한 사랑이 널리 퍼졌으면 하는 희망에서다. 선임기자 km@seoul.co.kr ■빗물 연구가 한무영 소장은 1956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경복고를 졸업한 뒤 서울대 토목공학과에서 학사와 석사학위를, 미국 텍사스 오스틴대학에서 박사학위(상하수 처리 전공)를 받았다. 이때 쓴 논문이 미국 대학원 교재에 실렸다. 현재 서울대 건설환경공학부 교수로 재직하면서 서울대 빗물연구센터 소장, 빗물모아지구사랑운동본부 공동대표 등을 맡고 있다. 2006년 서울 광진구 주상복합 건물 스타시티의 빗물 저장 시설을 설계했다. 이 시설은 2008년 국제물학회지 커버스토리로 소개됐다. 주요 저서로 ‘지구를 살리는 빗물의 비밀’ ‘빗물과 당신’ 등 다수가 있다. 주요 수상으로는 대한상하수도학회 우수논문상(2003년), 세계환경공학과학교수협의회 최우수논문상(2005년), 환경부 장관 표창(2005년), 국제물학회 창의프로젝트상(2010년), 대한민국 국가녹색기술대상(2010년) 등이 있다.
  • [주말 인사이드] 한산모시·나전칠기 스타들마저… 웬만해선 그들을 살릴 수 없다?

    [주말 인사이드] 한산모시·나전칠기 스타들마저… 웬만해선 그들을 살릴 수 없다?

    독일 ‘쌍둥이칼’은 280년 전 군인용 단검을 만들던 대장장이 마을에서 가내수공업으로 출발했다. 산업혁명 때 민수용으로 전환했다. 오롯한 장인 정신에 생산환경 변화에 맞춰 디자인과 기술 개발이 덧칠됐다. 러시아 목각인형 ‘마트료시카’는 120여년의 역사를 뽐낸다. 일본 목각인형에 착안했다. 예술가들이 수작업으로 만들면서 러시아 상징 민예품이 됐다. 지금 세계를 호령하는 명품이나 한 나라의 상징물로 날개 돋친 듯 팔리는 제품들은 가내수공업에서 출발했다. 보잘것없는 규모로 출발했을 가내수공업이 전통의 두께를 더하고, 현대 감각에 맞게 발전하면서 세상 사람 누구나 갖고 싶어 하는 최고 명품이 된 것이다. 하지만 국내 전통 가내수공업은 딴판이다. 웬만한 사람은 다 아는 유명 수공업 제품조차 ‘몰락’했다고 할 만하다. ‘화문석’을 전문적으로 다루던 인천 강화군 강화읍 남산리 강화토산품판매장이 몇해 전 슬며시 자취를 감추었다. 재래 돗자리 중 최고급이라는 명성을 얻었지만 찾는 사람이 드물어서다. 화문석체험장을 운영하는 고미경(강화군 송해면 당산리)씨는 “예전에는 강화 5일장에 화문석시장이 따로 마련됐는데 줄어든 거래량 탓에 아예 사라졌다”고 안타까워했다. 1880년대 강화 일대에는 화문석 재료인 왕골 재배 농가가 1000여 가구나 됐으나 지금은 고작 100가구 남짓이다. 그나마 가구당 재배 면적은 330~660㎡뿐이다. 대개 부업에 그치고 송해·양사면 일부 가구에서 주문을 받아 연간 2000~3000장 짜는 정도다. 1970년대 강화에서만 연간 5만여장이 생산됐는데 말이다. 39년간 수도 역할을 한 고려 중엽 왕실에까지 공급했던 화문석이 명맥만 겨우 유지하는 것이다. 화문석의 몰락은 1980년대 이후 주거 형태가 단독주택에서 아파트로 바뀌면서 카펫이 대세를 이룬 탓이다. 전북 전주 부채도 에어컨과 선풍기에 자리를 내줬다. 부채는 일부 무형문화재들이 소량 생산하고 있다. 양반들은 합죽선, 서민들은 태극선을 무더위를 날리는 필수품으로 삼았지만 이젠 장식품, 소장품, 선물용으로 나가는 정도다. 반면 제작 과정은 복잡해 배우려는 사람도 없다. 최공호 한국전통문화대 교수는 “우리나라 전통 가내수공업은 원형만 고집하고 시대 변화를 따라가지 못해 사양길로 접어들었다. 산업화가 자신의 역사인 외국에선 가내수공업도 자연스럽게 진화했지만 우리는 새것을 급히 받아들이면서 전통 수공업을 버리다시피 한 게 큰 이유다. 외국인들이 선뜻 구입할 수 있는, 우리의 정체성을 담은 전통 제품이 없는 게 아쉽다. 관련 통계조차 없다”고 말했다. 한때 1만 4000가구에 이르던 전남 보성삼베 제작 농가는 10가구 남짓밖에 남지 않았다. 원료인 대마 생산량은 2004년 40t(30㏊)에서 2011년 7.1t(4.3㏊)으로 줄더니 올해 5농가에서 겨우 2㏊를 재배한다. 보성삼베 영농조합 이찬식(70) 대표는 “36년째 종사하는데 너무 힘들고 일손도 부족해 버티기 힘들다”면서 “삼베를 찾는 사람은 많지만 값싼 중국산이 들어오고, 일당이 5만원도 안돼 일하려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하소연했다. 전남 담양 죽세품의 명성도 옛날얘기다. 대나무공예 명인 9명, 준명인 4명, 무형문화재 6명과 일부 농가에서 만들지만 31개 판매 업소에서도 중국산을 팔 정도로 위상은 초라하다. 경기 안성 유기는 현재 3곳만 가족 공방을 운영 중이고, 경북 안동포는 100여명이 삼베를 짜고 있으나 예전에 비하면 형편이 없다. 권구찬 안동시 주무관은 “삼에서 실을 만드는 삼삼기가 삼베 짜기의 95%를 차지하는데 기계화가 안 돼 있다”면서 “그렇다 보니 값이 비싸 일부 부유층의 옷과 침구 등으로만 만들어지고 청바지 등 현대 의류 제작은 엄두도 못 낸다. 정부가 기계 개발에 나서지 않으면 안동포 부활은 꿈도 못 꾼다”고 내다봤다. 명성이 덜한 가내수공업은 더 쪼그라들었다. 충남 서천군 서천읍 삼산리 고살메마을의 ‘갈꽃비’가 그 예다. 한때 농한기 최고 농가소득원이었던 이 빗자루가 청소기와 플라스틱 빗자루에 밀린 것이다. 농촌 고령화도 한몫했다. 갈꽃의 부드러움으로 자잘한 먼지까지 쓸어 내는 장점이 있지만 지금은 10명 남짓한 주민이 해마다 3000자루를 만든다. 본래의 용도를 벗어나 장식용으로 많이 팔린다. 이장 한병우(51)씨는 “겨울이면 마을회관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얘기꽃을 피우면서 빗자루를 만들던 옛날 모습이 생생하다”면서 “요즘은 강원 철원 등에서 조금씩 갈대를 사와 빗자루를 만들지만 이마저 머잖아 사라질 판”이라고 전했다. 최 교수는 “스위스는 한 마을 전체가 가위만 만들어 유명해졌고 이탈리아와 프랑스는 유리공예, 일본은 도자기 마을을 상품화해 외국 관광객을 끌어모은다”면서 “우리 가내수공업은 외국인 특성에 대한 연구가 부족하고 생산품에 의미를 부여하는 데 미숙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독특하고 개성 있는 최고 명품은 수공업에서 태어난다. 우리도 잠재력이 충분하다”며 나전칠기가 명함 케이스 등으로 상품을 다각화하는 것에 주목했다. 충남 서천 한산모시도 부활의 날갯짓을 하고 있다. 150년간 양반들 바지저고리를 만들던 데서 벗어나 청바지, 와이셔츠, 팬티, 양말 등 현대 제품까지 제작한다. 해외 패션쇼를 개최하고 브랜드화해 모시떡과 모시막걸리 등 먹거리까지 제품을 확대했다. 모시풀 재배 농가도 지난해 150곳에서 올해 190곳으로 늘었다. 2005년 서천군이 한산모시세계화사업단을 만들어 지원한 뒤 모시 제품이 다양하게 개발돼 팔리기 시작하자 주민들이 ‘돈이 된다’고 봤기 때문이다. 연간 소득은 20억원으로 늘었고, 고용 33명 등 부수 효과도 생겼다. 김맹선 군 한산모시계장은 “아직 해외 지명도가 낮지만 현대 감각에 맞게 상품을 개발하고 고급화해 부유층이 찾다 보면 외국에서도 알아 줄 것”이라고 말했다. 국립농업과학원 정명철 박사는 “(전통 가내수공업은) 지금 없어지면 영원히 없어지는 것이다. 이미 많이 사라졌다. 정부와 자치단체에서 관심을 가져야 부활을 꿈꿀 수 있다”고 강조했다. 서천 이천열 기자 sky@seoul.co.kr 강화 김학준 기자 kimhj@seoul.co.kr 보성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 ‘복수’의 신념으로 모교 찾아가 ‘야동’ 촬영한 女

    ‘복수’의 신념으로 모교 찾아가 ‘야동’ 촬영한 女

    한 19세 여성이 ‘복수’의 일념으로 자신의 모교를 찾아 ‘야동’을 찍어 화제가 되고 있다. 최근 미국 네브래스카 주 링컨시에 사는 19세 여성 발레리 도즈가 현지 경찰로 부터 공공 노출과 학교 무단침입 혐의로 벌금 딱지를 받았다. 그녀의 혐의가 현지에서 화제가 된 것은 ‘동기’가 황당하기 때문이다. 그녀가 ‘노출 사건’을 일으킨 것은 지난달 13일(현지시간). 당시 그녀는 자신의 모교인 네브래스카 가톨릭 고등학교를 찾아 학교 상징물을 포함 교내 이곳저곳에서 누드 사진 및 영상을 찍었다. 이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현지 경찰이 수사에 나서 도즈에게 벌금을 부과하는 선에서 사건은 끝났다. 그러나 도즈는 자신의 웹사이트를 통해 그 동기를 밝혀 화제로 떠올랐다. 도즈는 “과거 학교에 재학 중일 때 내 꿈은 성인 엔터테인먼트 사업에 종사하는 것이었다.” 면서 “이 꿈을 밝혔을 때 선생님과 친구들이 나를 조롱했다.”고 밝혔다. 결과적으로 복수의 신념으로 이를 갈다 졸업 후 실천에 옮긴 셈. 실제로 그녀는 현재 성인 영상물 업계에서 떠오르는 ‘신성’으로 활약 중이다. 인터넷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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