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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꼭꼭 숨어라 과학 보인다”

    ‘극과 극은 통한다.’미술에 혁명적 변화를 불러온 계기로는 16세기 원근법 도입,19세기 카메라 발명,20세기 초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 등 과학이론의 발달,20세기 후반 컴퓨터의 등장을 꼽을 수 있다. 즉 인간 감성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는 미술작품이 이성의 산물인 과학기술과 맞물려 진보를 거듭한 셈이다. 세계적인 명작 속에 녹아있는 과학을 들여다본다. ●기하학을 모르면 화가도 아니다 15∼16세기 르네상스시대 초기에 활동한 화가 지오토의 ‘죄없는 학살’은 3차원적 깊이감, 즉 원근법을 살린 최초의 작품이다. 기존의 미술작품은 대다수 문맹자들에게 성서의 내용을 알리기 위한 수단으로 간주돼 오로지 신에 대한 신앙심을 표현했을 뿐, 사실적인 묘사와는 거리가 멀었다. 지오토의 원근법은 초보적인 수준이었으며 자로 잰 듯한 수학적 원근법은 마사초에 의해 제시됐다. 이후 르네상스시대에는 원근법이나 비례법 등 기하학의 원리를 모르고는 화가가 될 수 없을 정도로 영향을 크게 미쳤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은 이같은 기하학적 원리를 절묘하게 활용, 예수와 12명의 제자를 효과적으로 배치해 구성의 완성도를 높일 수 있었다. 또 ‘모나리자’에서는 기존의 정밀한 선을 활용한 원근법 대신 사물의 경계를 흐릿하게 처리해 원근감을 표현하는 공기원근법이 처음으로 사용됐다. 이 때문에 모나리자의 신비감이 더해질 수 있었다. 그러나 이같은 원리가 미술작품 전체를 지배한 것은 아니다. 수학적 원근법을 본격적으로 도입한 프란체스카의 ‘성스러운 대화’의 경우 그림 중간에 위치한 달걀이 원근법에 맞지 않게 크게 그려졌다. 이는 성모 마리아가 원죄 없이 잉태됐다는 성스러운 의미를 강조하기 위한 뜻으로 풀이된다. 즉 예술적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때론 과학을 희생시키기도 한 것이다. ●미술가의 눈은 곧 과학자의 눈 17세기 바로크시대에 접어들면서 화가들은 선과 색채 대신 빛과 어둠이 주는 광학적 효과를 작품에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한다. 바로크의 거장 카라바조는 ‘의심하는 도마’ 등에서 빛을 극적으로 활용해 인간의 심리상태까지 묘사했다. 이어 램브란트의 ‘야간순찰’도 작품에 역동감을 불러오는 매개체로 빛을 효과적으로 활용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금은 이 작품이 명작으로 손꼽히지만 당시에는 작품 외적인 요소 때문에 램브란트가 곤란을 겪기도 했다. 그림 속에 등장하는 순찰대원들의 얼굴은 그림을 그리는데 필요한 비용을 지불한 후원자들이었으나 그림이 완성된 후 얼굴이 어둠에 가려 제대로 드러나지 않자 후원금을 돌려달라는 소동이 빚어졌기 때문이다. ‘북유럽의 모나리자’라는 평가를 받는 베르메르의 ‘진주귀걸이 소녀’도 빛이 들어오면서 뺨과 콧날의 선을 투명하게 처리해 해체함으로써 특별한 아름다움을 연출했다. 이처럼 빛을 포함한 외부세계에 대한 세심한 관찰은 18세기말 영국 풍경화에서 꽃을 피운다. 자연의 현장감을 살리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재현하기 위해 과학자의 눈을 빌려 대기의 흐름까지 그림에 표현했다. 영국 풍경화의 대부 컨스터블과 영국 최고의 국민화가로 추앙받는 터너 등이 이에 해당한다. ●과학이 어려워지면 미술도 어려워진다 그러나 19세기 카메라의 발명은 이같은 화풍을 위기로 몰아넣었으며 동시에 인상주의를 비롯한 근·현대미술을 낳는 씨앗이 됐다. 마네의 ‘오페라 홀에서의 가면무도회’에서는 16세기 이후 ‘전가의 보도’처럼 활용되던 원근법이 파괴됐다. 이는 2차원적인 평면에 3차원의 공간을 표현할 수 없다는 회의에서 출발, 미술의 본질을 추구하겠다는 의도였다. 모네는 ‘노적가리 연작’ 등의 작품을 통해 빛에 의해 순간적으로 포착되는 모습을 그려냈다. 모네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형태와 색채가 시시각각 변하는 모습을 화폭에 담아내기 위해 한 장소에 14개의 캔버스를 놓고 동시에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또 세잔의 ‘생 박토아르 산’에서는 한쪽에서만 들어오는 빛, 한 지점에서만 바라보는 시점 등의 고정관념을 깨뜨렸다. 미술에서 고정관념에 대한 의문과 파괴 현상은 20세기 초반 각종 과학이론이 발표되면서 더욱 증가했다. 초현실주의 화가인 달리의 ‘기억의 고집’에서 등장하는 늘어진 모양의 시계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 영향을 미쳤다. 즉 시간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고 시간의 속성을 보다 유연하게 바라보자는 것이다. 또 입체주의 화가인 파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은 X-레이의 등장으로 안과 밖의 구분이 모호해지자 사물을 기하학적으로 해체, 표현한 것이다. 특히 이처럼 과학의 영향을 받는 미술은 20세기 후반 컴퓨터 등 이미지를 시각화할 수 있는 기술이 보급되면서 과학과 미술의 경계가 사라지기도 했다. 광학적인 착시효과를 이용한 옵티컬아트의 경우 과학이 곧 미술이라는 사조도 만들어냈다. 이같은 관점에서 보면 아인슈타인처럼 새로운 과학적 비전을 제시하는 과학자나 컴퓨터 프로그래머 등이 앞으로 예술가로 성장한다는 것이 전혀 불가능한 일만은 아니라는 얘기다. ■ 도움말 이명옥 사비나미술관장(국민대 미술학부 겸임교수)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Zoom in 서울] “청계천 걷다보니 고향길”

    [Zoom in 서울] “청계천 걷다보니 고향길”

    청계천에 가면 고향의 향수를 느낄 수 있다. 청계천변에 경남 창녕 우포늪의 갈대와 충북 충주 사과, 전남 담양의 대나무, 제주도의 돌하르방과 왕벚나무 등 지역색 짙은 거리가 조성돼 또다른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14일 서울시에 따르면 제주도는 청계천변에 돌하르방과 물허벅, 정낭(제주 특유의 사립문) 등을 설치한다. 왕벚나무와 구상나무, 팽나무, 참꽃나무 등 제주산 식물도 함께 심어 제주도의 멋을 연출한다. 경남 창녕군은 이미 성동구 마장동 일대 4000여㎡(1210평)에 우포늪과 화왕산을 상징하는 갈대 3만포기를 심어 100여m의 갈대숲을 조성했다. 올 가을이면 창녕의 갈대를 만끽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모두 3300여만원의 사업비가 들어갔으며, 갈대숲을 알리는 표지석이 서 있다. 경북 영주시는 광장시장 앞 마전교 상류, 버들다리 상류, 오간수교 하류지점 등 3곳 화단에 시화(市花)인 산철쭉을 심었다. 약 340㎡ 부지에 5400여포기로 조성했으며,‘영주시 소백산 철쭉꽃길´이라는 기념표석도 세워졌다. 복원구간 끝 지점인 3공구 고산자교에서 신답철교 사이 제방에는 충주 사과나무 100여그루가 잘 자라고 있다. 충주시에서 제공한 사과나무는 후지, 홍로, 홍옥 등 짙은 붉은색의 품종들이다. 이곳은 시민들의 왕래가 적고 주택가나 상가가 없어 청계천 물길이 되살아나는 올 가을에는 먹음직스러운 사과가 주렁주렁 매달린 모습을 볼 수 있게 된다. 서울시는 충주사과를 시민들이 직접 따는 체험행사를 가질 예정이다. 수확한 사과는 노인 및 사회복지시설에 보낸다. 경북 상주가 자랑하는 곶감 나무길도 눈길을 끈다. 상주시는 13일 서울의 환경친화적 청계천 복원에 동참하고 상주 곶감의 우수성을 알리기 위해 청계천 신답 철교에서 마장2교 사이 450m에 10∼15년생 감나무 90그루로 감나무길을 조성했다. 앞으로 곶감 홍보와 청계천 복원을 기념하는 ‘감나무길 걷기’도 열릴 예정이어서 시민들은 빨갛게 익어가는 감을 보며 고향의 정취를 느낄 것으로 보인다. 2공구인 광장시장∼난계로 2.1㎞에는 충남 천안의 상징인 능수버들이 휘휘 늘어져 더위에 지친 시민들에게 휴식을 제공한다. 청계천 복원추진본부 관계자는 “고장의 상징물을 옮겨놓아 이미지를 높이려는 지자체가 20여곳에 이르지만 대부분 시점부 등 도심쪽을 선호해 결정을 못하고 있는 곳이 많다.”고 말했다.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지역플러스] 상주한방단지 2011년 완공

    경북 상주에 한방지방산업단지가 조성된다.14일 경북도에 따르면 북부지역 특화산업인 한방자원을 고부가가치화하고 새로운 한방산업 시장을 창출하기 위해 상주시 은척면 남곡리 일대 75만 9000㎡를 한방지방산업단지로 지정했다. 환경영향평가 등이 마무리되는 올 하반기 중 착공해 2011년 완공한다. 사업비는 모두 392억원이 투입된다. 한방단지는 예부터 한약재가 많이 나오고 한방이 성행했던 상주지역의 특색을 최대한 살려 추진된다. 이 곳에는 한방생태마을과 한방건강센터, 한방교육수련원, 한방자원개발센터 등이 들어선다. 특히 15∼20가구가 모여 약초를 재배하면서 생활하게 되는 한방생태마을은 한약재배와 가공의 전 과정을 관광객들에게 공개한다. 한방건강센터는 한의원이 입주해 진료하는 것은 물론 기공수련원, 마사지실, 참선휴식원, 황토찜질방 등을 갖춘다. 이밖에 한약재 연구시스템과 요양형 콘도, 공예촌 등을 만들 계획이다. 경북도 관계자는 “상주한방단지를 조성하면 생산 효과가 연간 112억원, 고용창출 1000여명으로 지역경제 활성화에 큰 도움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 마음놓고 학교가기 결의대회

    한국청소년육성회(회장 문상주)는 15일 오전 10시30분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에서 경찰청과 공동으로 ‘학교폭력 자진신고 운영 평가보고 및 마음 놓고 학교가기 범국민 결의대회’를 갖는다.
  • 재계 법조인 ‘로펌 뺨친다’

    재계에 법조인 사단이 생겨나고 있다. 증권집단소송법과 국제화에 대비하기 위해 주요 그룹들이 거물급 법조인들을 앞다퉈 영입하면서 생겨난 현상이다. 사외이사에도 법조인 영입 경쟁이 붙어 웬만한 로펌보다 진용이 더 화려한 그룹도 없지 않다. 법조 인맥이 가장 쟁쟁한 곳은 삼성이다.‘옷로비’ 등 굵직한 사건을 진두지휘한 이종왕 전 대검찰청 수사기획관이 그룹 구조조정본부내 법무실을 이끌고 있다. 서울고등법원 검사 출신의 서우정 부사장과 서울중앙지법 판사 출신의 김상균 부사장 등 법조인 출신 법무실 임원만 15명이다. 삼성전자는 특허전문 변호사 출신의 김광호 전무가, 삼성중공업은 수원지검 검사 출신의 이명규 상무보가, 삼성화재는 수원지검 검사를 지낸 이상주 상무가 각각 법무팀을 이끌고 있다. 현대차그룹도 지난 9일 검사장 출신의 김재기 변호사를 현대·기아차 총괄 법무실장(사장급)으로 영입하면서 뒤늦게 법무팀 보강에 나섰다. 이로써 그룹내 변호사는 김도식(과장) 미국변호사 등 해외변호사 3명을 포함해 총 4명으로 불어났다. 조직도 ‘팀’에서 ‘실’로 승격시켰다. 법무실 전체 인원은 27명. 김 법무실장은 검사시절 공안통으로 이름을 날렸었다. LG그룹에서는 판사 출신인 김상헌 부사장이 ㈜LG 법무팀장을 맡고 있고, 검사 출신인 이종상 상무 등 8명이 팀원으로 활동하고 있다.LG화학은 계열사 차원에서 신임변호사 2명을 채용해 법무팀 과장으로 발령했다. SK그룹에는 법무부 정책개혁단 출신인 김준호(SK㈜ 윤리경영실장·부사장급) 전 부장검사와 청와대 법무비서관실 행정관을 지낸 강선희(SK㈜ 상무) 변호사가 포진하고 있다. 지난 3월에는 남영찬 대전지법 부장판사와 양정일 판사가 SK텔레콤 윤리경영 총괄 및 법무실장(부사장),SK건설 상무로 각각 가세했다. 서울지검 남부지청 검사를 지낸 사시 35회의 김윤욱(SK㈜ 상무) 변호사도 있다.SK그룹의 판·검사 출신 법조인은 5명이다. 올 1월 사법연수원(34기)을 수료한 신임 변호사 3명을 채용해 SK㈜와 SK텔레콤에 각각 발령했다. 한화그룹은 ㈜한화 소속 법무팀을 법무실로 확대 개편하고 실장(부사장급)에 서울남부지검 부장검사 출신의 채정석 변호사를 영입했다. 법무실 인원은 총 8명. 두산그룹도 전략기획본부내에 법무실을 신설하고 법무실장(전무)에 임성기 전 창원지방검찰청 형사2부 부장검사를 선임했다.5명 안팎의 변호사를 더 충원할 계획이다. 법무팀 못지않게 각 그룹의 사외이사 면면도 쟁쟁하다. 서울지법 부장판사를 지낸 장준철 변호사와 김광년 변호사가 삼성SDI와 현대차에, 대법관을 지낸 정귀호 변호사가 삼성전자에, 대검 중수부장 출신의 한영석 변호사가 SK㈜에 있다. 현대모비스의 우창록 법무법인 율촌 대표변호사,LG건설의 김경한 법무법인 세종 대표변호사도 눈에 띈다. 이렇듯 기업들이 앞다퉈 법조 인맥을 강화하고 나서는 까닭은 올 초부터 시행된 증권 집단소송제와 갈수록 늘어나는 특허·통상분쟁, 총수 2·3세들의 경영권 승계 등에 대비하려는 포석으로 풀이된다. 일각에서는 대기업 수사를 전담했던 거물급 법조인들이 자신이 수사를 맡았던 기업으로 직행하는 것에 대해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라는 비판의 목소리도 있다. 안미현 류길상 김경두기자 hyun@seoul.co.kr
  • 朴대표 ‘대졸자 대통령론’ 사과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는 9일 논란이 돼온 전여옥 대변인의 ‘대졸 대통령론’ 발언에 대해 공식 사과했다. 박 대표는 이날 당 상임운영위에서 청년위원장인 이성권 의원이 전 대변인 발언 파문에 대한 책임론을 거론하자 “내용을 다 보니 와전된 부분도 있고, 오해의 소지가 있었다. 대변인이 학력지상주의를 가진 것도 아니고, 당 역시 학력지상주의가 아니다.”라며 “당대표로서 대신 사과한다.”라고 밝혔다. 박 대표의 공식 사과는 이번 파문으로 인한 당내 주류와 비주류의 갈등 조짐을 조기 수습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전 대변인도 “박 대표가 이렇게까지 사과하도록 한 데 대해 (대변인으로서) 임무를 잘못했다고 생각한다.”면서 “(일부 언론이) 고의적으로 제 말을 왜곡보도한 데 대해 할 말이 많지만 그 보도만 보고 상처를 입은 분이 있다면 공인으로서 사과한다.”라고 밝혔다. 전 대변인은 “국민 모두가 학력에 대해 자유로운 세상을 꿈꿨고 대통령부터 학력 콤플렉스가 없기를 바랄 뿐”이라며 “실제로 내 주변에 다양한 학력을 가진 분들과 교류하고 있고, 보좌진도 학력을 보고 뽑은 적이 없다.”라고 해명했다. 당내 일각의 사퇴 요구에 대해선 “앞으로 폐를 끼치지 않도록 대변인으로서 더욱 노력하겠다.”라고 일축했다. 전광삼기자 hisam@seoul.co.kr
  • 2집 앨범‘It’s unique’ 낸 빅마마

    2집 앨범‘It’s unique’ 낸 빅마마

    조화로운, 편안한, 부드러운, 솔직한, 사람 냄새나는…. 이런 느낌들을 한 데 버무려 노래에 녹이면,‘빅마마표 음악’에 얼추 가까지 가지 않을까? 빅마마. 외모 지상주의를 꼬집으며, 노래 실력 하나로 가요계에 새바람을 일으켰던 그녀들이 이번엔 핵폭풍을 만들어낼 태세다.2년 3개월 만에 2집 앨범 ‘It’s unique’를 손에 들고 팬들 곁으로 돌아온 것. 새 음반은 지난달 하순 발매를 시작한 이후 줄곧 전국 음반 판매량 집계 사이트인 한터차트에서 판매량 순위 1위를 지키고 있다.8일에는 MBC ‘수요예술무대’가 이례적으로 마련한 1시간짜리 특집 미니 콘서트를 통해 공식 방송 활동도 재개했다. 지난 5일 오후 서울 건국대학교 새천년홀 대공연장 녹화 현장에서 만난 빅마마는 음악적으로는 물론 외모적으로 한층 성숙해져 있었다. “이번 앨범을 통해 더욱 빅마마스러워지려 노력했어요. 전체적으로 풍요로움을 주면서도,‘여백의 미’라고 할까…‘쉼표’ 하나를 더 집어넣었죠.” 이번 앨범은 1집때 보여줬던 ‘빅마마표 음악’의 냄새가 더욱 진하게 풍긴다. 신연아(33), 이지영(27), 이영현(25), 박민혜(24) 4명의 멤버가 내는 ‘사구동성(四口同聲)’은 더욱 완벽한 화음으로 발휘됐다. 하지만 무작정 강한 것 만이 아닌, 부드러워야 할 때는 더 부드러워졌다. 솔로곡도 추가해 변화감을 줬다. 무엇보다 빅마마의 손으로 빚어낸 작품이라는 것. 리더 신연아가 전체 프로듀싱을 맡고, 수록곡의 절반 이상을 멤버들이 작곡했다. 타이틀곡은 ‘여자’. 사랑의 상처를 입은 여자의 마음을 그린 이 노래는 빅마마의 트레이드 마크인 감미롭고 달콤한 화음이 잘 녹아있다.‘어게인(Again)’은 경쾌한 펑키 리듬이 흥겹고,‘소리’는 정통 발라드의 진수를 보여준다. 여자들의 소소한 일상을 떠올리게 하는 ‘처녀들의 수다’는 피아노와 트럼펫 선율 속에 네 멤버의 개성 넘친 음색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특히 이번 앨범은 빅마마의 많은 음악적 고민속에서 탄생됐다. 지난 3월 ‘소리’라는 곡을 타이틀로 앨범을 다 만들어 놓고도 이미 제작된 10만 여장을 모두 폐기처분 한 것. 이들은 “수억원에 이르는 손해는 중요치 않았다.”고 말한다.1집과 차별성이 별로 없고,2년여의 시간과 노력을 들여 만든 빅마마의 새 앨범이라고 자부하기에는 도무지 성이 차지 않았던 것. “애초의 앨범엔 솔로곡이 하나도 없었어요. 때문에 너무 ‘꽉차서’ 부담스러울 정도의 느낌이었죠. 듣는 사람이 지루해할 것 같더라고요.” 결국 이미 녹음된 5곡을 과감히 버리고 계획에 없던 네 멤버 각자의 솔로곡을 집어넣었다.‘팀플레이’를 위해 꼭꼭 숨겨 놓았던 개개인의 개성과 매력을 마음껏 선보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거라고도 생각했다. 결과는 만족스러웠다.“그래도 성이 차지 않는 부분이 있을 것”이라고 말하는 기자에게 “할 만큼 했다. 대만족이다.”라고 잘라 말한다. 2년 동안 만든 앨범을 두 달 만에 뒤집은 데는 대중의 변화 요구를 의식한 결과로 비춰질 수도 있다. 하지만 이들은 손사래부터 친다.“음반 준비하는 과정에서는 대중들이 어디에 있는지 몰라요. 우리가 좋아하는 게 바로 대중이 좋아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죠.”본인들도 가수 이전에 ‘대중’이었지 않냐며 한 목소리를 낸다. 2집 활동은 단독 공연 위주가 될 것이라는 빅마마.“다음 3집 앨범을 통해서는 록사운드가 많이 가미된 모던록 스타일의 음악을 선보이고 싶다.”면서도 중요한 한 마디를 덧붙인다. “다음에는 ‘사회적 획일성’을 꼬집을 거에요. 하나의 유행에 일방적으로 끌려가고, 사고방식도 획일적으로 변해가는 사람들이 많잖아요? 점점 사라져가는 개인의 개성과 사회적 다양성의 문제를 메시지로 담을 거예요.”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22) 정감록과 천주교의 대화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22) 정감록과 천주교의 대화

    정감록은 조선후기 한국에 전파된 천주교와도 만났다? 서쪽에서 들어온 새 학문이라 당시엔 서학(西學)으로 불린 천주교와 정감록의 관계에 관심을 둔 사람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조금만 파고 들어가 보면 천주교와 정감록의 관계는 쌍방향 교류였다. 천주교 신자들은 정감록에 담긴 ‘해도진인(海島眞人)’이란 관념을 빌려갔다. 또한 ‘정감록’처럼 편년체 예언서 형식을 차용해서 ‘니벽전’이란 천주교신자들만의 예언서를 만들었다. 그런가 하면 정감록 신앙집단은 ‘요한계시록’에 보이는 말세관에서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를 발견했다. 얼핏 생각하면 서로 대립적이었을 것만 같은 정감록 신앙과 천주교 신앙 사이에 양방향의 교류가 있었다는 사실은 그 자체만으로도 관심거리가 될 만하다. 알다시피 18∼19세기 한국의 천주교는 일종의 비밀 종교단체였다. 정감록 신앙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천주교회에 호응한 사람들의 상당수는 민중이었다. 정감록의 경우도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양자는 저마다 종교 철학적 출발점은 달랐지만 신앙집단으로서 사회적 구성이 엇비슷했고, 그들이 처한 정치 문화적 배경도 같았다. 과장된 표현이겠지만, 조선 후기 천주교와 정감록 신앙은 이를테면 이란성(二卵性) 쌍생아와도 같았다. ●중국인 신부 주문모를 해도진인(海島眞人)으로 1801년(순조 1) 신유박해가 일어났다. 이때 정감록과 서학의 미묘한 관계를 증명하는 사건 하나가 사회의 주목을 받았다. 천주교 신자들 중에는 청국인 신부 주문모(周文謨)를 정감록에서 말하는 해도진인으로 보는 경향이 있었단 이야기다. 알고 보면 이미 1794년부터 주문모 신부는 국내에 잠입해 전교활동을 벌였다. 그 당시 국왕 정조는 천주교를 그다지 심하게 탄압하지 않았기 때문에 교세는 나날이 확장되었다. 하지만 천주교 신자들은 제사를 거부했기 때문에, 유교 국가인 조선왕조의 지배층은 이를 국가체제에 대한 심각한 위협으로 인식하였다. 1801년 정월, 정조가 세상을 뜨고 나이 어린 순조가 왕위에 올랐다. 섭정을 맡은 정순대비(貞純大妃)는 지배층의 정서를 대변하듯 천주교를 엄금한다는 명령을 내렸다. 소동을 겪은 끝에 주문모 신부를 비롯한 천주교 신자 100여명이 처형되고 400명가량이 유배되었다. 그 중에는 이승훈, 이가환, 정약용 등 지도급 천주교 신자들 및 진보적인 학자들이 다수 포함되었다. 사실 신유박해는 천주교세의 팽창에 불안을 느낀 지배층의 종교탄압인 동시에 반대파를 제거하기 위한 권력투쟁의 일부이기도 하였다. 신유박해에 관한 ‘실록’ 기사를 살펴보면 문제의 사건이 언급되어 있다. 그 대강을 간추려 보겠다. 당시 체포된 사람 중에 김건순이란 서울 양반이 있었다. 그는 집안도 좋고 재산도 많아 어느 모로나 부족함이 없었는데도 방술(方術)에 관한 책들을 유독 좋아해 문제의 발단이 되었다. 그는 이를테면 정감록과 같은 비결이나 도술에 관한 책을 늘 끼고 살았다. 자연히 그런 부류의 사람들이 주변에 몰려들었다. 그 중엔 천주교 신자들도 끼어 있었다. 신자들의 소개로 그는 주문모 신부를 만났다. 김건순의 눈에는 주문모 신부가 도사 중에서도 출중한 ‘이인(異人)’으로 비쳤다. 늘 주문모를 성심껏 모시던 김건순은 주문모에게 함께 해도(海島)로 들어가자고 간청했다. 섬에 들어가서 무기를 마련하고 큰배(巨艦)를 만들어 중국으로 쳐들어가자고 했다. 병자호란 등 청나라로부터 받은 원한을 씻어보자는 것이었다. 장차 진인이 해도에서 나와 세상을 평정한다는 정감록의 내용에 공명했던 김건순은 이런 제안을 했던 것이었다. 그러나 주문모는 이를 거절했다. 김건순의 계획은 물거품이 되었지만 주문모에 대한 그의 기대는 사그라지지 않아 결국 독실한 천주교 신자가 되었다. 당시 한국의 천주교 신자들 중에서 김건순은 지적 수준으로나 재력 면에서 최상위층에 속했다. 그런 그조차 해도에서 진인이 나와 세상을 바꾼다는 정감록의 예언에 매달려, 주문모를 진인으로 상정해 거사를 꿈꾸었던 것이다. 조선의 관헌 앞에서 털어놓은 말로는 장차 청나라를 공격할 생각이었다고 했지만 정말 그랬을지는 의문이다. 하필 가까운 조선을 놔두고 머나먼 청나라까지 쳐들어간다는 것이 애당초 어불성설이다. 역시 천주교 신자였던 김이백의 언사는 더욱 심했다. 그는 서울 사는 친척 김건순과 천안 사는 천주교 신자 강이천 두 사람 사이를 오가며 편지를 전해주곤 했는데, 정감록 풍의 예언을 많이 지어냈다. 예컨대 “바다 가운데 품(品) 자 모양의 섬이 있는데, 그곳에는 군사와 말(兵馬)이 무척 날래다.”고 했다. 이런 말도 했다 한다.“바다 가운데 진인(眞人)이 있다. 진인은 육임(六壬)과 둔갑(遁甲) 즉, 점과 도술에 능하다.” 당국의 조사 결과, 강이천과 김이백은 그런 예언을 이용해 남의 재물을 빼앗으려 한 적도 있었다. 달리 말해, 자기들이 섬에 있는 진인의 군대와 잘 통하므로 미리 군자금을 제공하면 장차 좋은 수가 생긴다는 식으로 사람들을 설득하려(?) 했던 것이다. 그런데 강이천이라면 꽤 유명한 선비였다. 일찍이 진사 시험에도 합격한 적이 있는 지식인인데, 그 또한 정감록의 내용과 논리를 빌려 포교의 기회를 노렸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아마도 강이천 등은 정감록 비결이 민중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단 점을 너무도 잘 알았기 때문에, 천주교를 전교하는 수단으로 이용하고 싶었을 것이다. ●‘니벽전’, 초기 천주교 지도자 이벽의 예언서 19세기 중엽 한국 천주교 신자들은 정감록을 모방해 일종의 신앙 비결을 직접 만들기도 했다.‘이벽선생몽회록(李檗先生夢會錄)’이란 이름의 필사본이 문제의 비결이다. 새 하늘과 새 땅을 알려주는 책이란 뜻에서 ‘새벽젼’이라 부르기도 하고, 예언자의 이름을 따라 ‘니벽전’이라고도 한다. 알다시피 정감록은 예언자 정감의 이름을 따서 붙인 책이름이다.‘니벽전’은 천주교 신자 정학술이란 선비가 천주교 초기의 거물인 이벽(1754-1786)을 사후 60년만인 1846년 6월 14일 밤 꿈에서 만나 주고받은 이야기를 기록한 대화체로 되어 있다. 이 책은 대화체란 점에서도 정감록을 연상시킨다. 비결에 예언자로 등장하는 이벽은 초기 한국 천주교회의 거물급 지도자였다. 그는 1784년 이승훈에게 세례를 받은 뒤 서울의 수표교 부근에 셋집을 빌려 천주교 교리 연구와 묵상에 전념하였다. 교리를 깊이 이해하게 된 그는 전도에 앞장서 정약전, 정약용, 정약종 형제들과 서울의 중인층인 김범우, 최창현, 최인길, 김종교 등에게도 천주교를 전했다. 당대의 석학 이가환, 이기양 등과 교리논쟁을 벌어졌을 때도 그들을 압도할 만큼 교리에 능통하였다. 이벽의 천주교 이해는 ‘성교요지(聖敎要旨)’란 저서에 잘 나타나 있다. 그는 마테오 리치를 비롯해 중국에 온 서양 선교사들이 하느님 을 천주(天主)나 천제(天帝)라고 불렀던 것과는 달리 상제(上帝) 또는 상주(上主)라고 불렀다. 자기 나름의 독자적인 용어를 사용했던 것이다. 아울러 수신(修身), 제가(齊家),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 등 유교적 윤리가 천주교의 교리와 일치한다고 보았다. 이벽이 그리던 하느님 나라는 유교에서 말하는 고대의 성인(聖人), 성군(聖君)의 정치와 일치했다. 그는 인간의 마음에 내재하는 하늘의 본성(天命)을 탐구해 천인합일(天人合一)을 이룩하는 데 신앙의 목적을 두었다. 이벽의 천주교는 다분히 유교적 천주교였다. 그는 ‘주교요지(主敎要旨)’를 쓴 정약종(丁若鍾·1760-1801)과 더불어 18세기 조선후기 천주교회를 대표하는 신학자였다. 공교롭게도 ‘니벽전’은 이벽을 예언자로, 정약종을 저자로 설정해 최고의 권위를 부여하고 있다. 책의 말미에 정약종이 “정유년(1777년·정조1)”에 기록했다고 적혀 있는 관계로, 사람들은 이 책을 정약종이 지은 종교 소설이라고 보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내가 조사한 바로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이미 1801년 신유박해 때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정약종이 어떻게 1846년 정학술이란 사람의 꿈속 일을 기록할 수가 있겠는가? 불가능한 일이 틀림없다. 하지만 정약종을 저자로 가탁한 것은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 그로 말하면 의금부에 잡혀 가서 심문을 받을 때 “나라에 큰 원수가 있으니 바로 임금이요, 가정에 큰 원수가 있으니 바로 아비다(國有大仇君也 家有大仇父也).”라고 하여, 유교적 사회질서를 한마디로 질타했다. 더욱이 그는 하느님에 대한 신앙을 고백하다 죽은 사람이므로 천주교 신자들에게는 위대한 신앙의 모범이었다. ‘니벽전’은 이와 같은 사람의 붓을 빌려 천상선인(天上仙人) 이벽이 천주교 신앙에 관한 말을 남긴 것으로 되어 있다. 그 소재를 훑어보면, 우주창조의 원리, 낙원추방과 예수의 구원, 유·불·도의 황당함, 조상제사와 우상숭배의 잘못된 점, 신유옥사와 천주교의 마지막 승리, 하느님의 최후심판이 거론된다. 그런 다음 이벽은 정학술에게 천주밀험기(天主密驗記)를 주고 다시 하늘로 올라가는 것으로 되어 있다. 두말할 것 없이 이 책의 목적은 천주교도들에게 널리 존경을 받는 이벽 같은 인물을 내세워 천주교 박해사건을 예언함으로써, 온갖 박해 속에서도 신자들이 신앙을 더욱 강화하도록 고무 격려하는 데 있었다. 책은 내용상 세 부분으로 나뉜다. 첫째, 반드시 알아야 될 교리에 대한 설명이다. 둘째, 하느님과 예수를 굳게 믿고 끝까지 제사를 거부하라는 교회의 명령이다. 셋째, 한국천주교회에 닥친 박해와 환란은 미리 예정된 것이지만 이제 곧 끝난다고 예언한다. 신유박해를 비롯해 19세기 전반의 숱한 박해사건을 연대기식으로 적어나가는데, 기록방식이 편년체란 점에서 정감록을 완전히 닮았다. 참고로, 이벽의 입에서 떨어진 마지막 예언은 이러했다.“병오 이후로 다음 세상이 되어 죄 있는 자는 모두 멸망하며 착하고 하느님을 공경하는 사람들이 세상을 이어갈 때가 오느니라.” 여기서 병오년은 1846년을 가리킨다. 이 예언에 따르면,19세기 중엽 세상은 종말을 맞이해 최후의 심판이 열린다. 죄지은 사람들은 모두 죽음을 당하고, 착한 천주교 신자들이 세상을 다스리는 이를테면 지상천국이 열릴 거라고 했다. 이런 천주교 신자들의 예언에서 나는 19세기말에 등장한 동학의 ‘후천개벽설(後天開闢說)’과 비슷한 인상을 받는다. 동학에서도 새 세상이 열리면 동학의 가르침대로 수련을 쌓은 군자(君子)들이 지상천국을 맡아 다스린다고 보았다. ●정감록에 스며든 ‘요한 계시록’ 물론 동학을 설립한 최제우가 말한 후천(後天)의 개념은 전적으로 새로운 것은 아니었다. 중국 고대부터 있었고, 우리 역사에서도 이미 고려 인종 때 선천과 후천이 곧 바뀔 거라는 예언이 나오기도 했다. 설사 그렇다 해도 동학과 고대 중국의 후천관은 차이가 있다. 동양 고대의 선·후천 교대설과는 달리 동학에는 ‘최후의 심판’이란 요소가 감지된다. 이 ‘심판’이란 것은 다분히 기독교적인 것이다. 그래서 고려시대는 물론, 조선 전기에 등장한 예언서에도 아직 찾아볼 수가 없는 형편이었다. 그럼 ‘정감록’은? 내가 보기에 조선후기에 출현한 정감록에는 ‘심판’을 연상시키는 구절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예컨대 ‘감결’에서 이심은 이렇게 말한 것으로 돼 있다.“세 사람이 마주하였으니 못할 말이 어디 있겠나. 신년(申年) 봄 삼월, 성세(聖歲) 가을 팔월에 인천(仁川)과 부평(富平) 사이에 밤중에 배 1000척이 정박하고, 안성(安城)과 죽산(竹山) 사이에 시체가 산처럼 쌓이고, 여주(驪州)와 광주(廣州) 사이에 인적이 영영 끊어지고, 수성(隨城)과 당성(唐城) 사이에 피가 흘러 내를 이루고, 한강 남쪽 백리에 닭·개의 소리가 없고, 인적이 영영 끊어질 것이다.” 이번의 신문연재에서 이미 한 두 차례 언급한 구절이라 자세한 설명은 필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말세에 전란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죽게 된다는 메시지는 다시 강조할 만하다. 이와 같은 비극적 종말은 ‘요한계시록’을 뇌리에 떠올리게 만든다. 그렇다고 정감록의 저자가 반드시 천주교 신자였다는 뜻은 아니다. 17세기 이후 한국사회는 직접 간접으로 천주교의 영향을 적지 않게 받고 있었다는 점을 우선 인정해야 하겠다. 이웃나라인 중국과 일본에는 비록 소수지만 천주교 신자들이 존재했다. 더욱이 중국에는 서양선교사들이 파견되어 있는 상태였다.18세기 후반엔 한국에도 천주교회가 지하조직으로 운영되었다. 그런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최후심판’과 같은 천주교의 기본교리라든가 몇몇 유명한 성경구절은 한국사회에 상식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고 믿어도 좋을 것이다. 설사 명확한 증거를 댈 순 없을지라도, 천주교가 정감록이란 민중의 신앙에 끼친 영향은 적어도 논리적인 면에선 개연성이 인정돼야 한다. 요한 계시록이 상정하는 말세의 비참한 모습은 정감록의 여러 곳에 그 모습을 드러낸다. 정감록의 일부라 할 ‘경주이선생가장결(慶州李先生家藏訣)’에도 최후의 상황이 비슷하게 묘사되어 있다.“살아 있는 백성들이 달아나 숨으니, 삼강(三綱)이 없어져 끊어졌네. 하늘의 재앙이 계속하여 혹독하니, 벌레의 독을 무엇이라 말하리. 부자가 먼저 죽으니, 아무리 뉘우쳐도 미치지 못하리. 우물 가운데 물이 연하여, 자미(紫微)에 저녁 무지개가 떴네. 다시 들러서 동쪽으로 나뉘니, 나라에 변괴가 있고, 상사가 참혹하네. 남쪽과 북쪽 군사의 조짐이 불과 같이 점점 번져오네. 집 위의 토운(土運)이 하늘의 재앙에 때로 변하네. 옛날에도 드물고 오늘날에는 없는 일, 굶주려서 사람끼리 서로 잡아먹어, 저마다 서로 짓밟고 있네. 사람의 목숨을 해치니, 산 자가 몇이나 되리. 또 겸해서 흉년이 들어, 쌓인 시체가 구렁을 메우네. 벼락같은 화운(火運)이 북을 치고 함성을 지르네. 먼 방향에서 움직여 화서, 바람과 구름이 어두우니 장차 다시 어찌한단 말인가.” 이처럼 정감록은 ‘최후의 심판’이 행해질 때, 그것이 여러 가지 방식으로 진행된다고 보았다. 전염병, 흉년, 전쟁은 그 대표적인 모습이다. 이 점은 ‘요한계시록’을 비롯해 신약과 구약의 경우에도 똑같다. 한 가지 나로선 무척 흥미롭게 생각하는 것이 있다. 정감록에 보이는 말세의 모습이 전통적으로 한국인들에게 가장 익숙한 불교적 세계관과 전혀 다르다는 점이다. 불교 경전에 따르면 현재도 도솔천에서 수행 중이라고 전하는 미륵보살이 이 세상에 내려와 건설할 용화세계(龍華世界)는 피를 흘리는 전쟁 따위를 전제로 삼지 않는다. 불교의 이상향인 용화세계를 선도할 전륜성왕은 절대 무력에 호소하지 않고 모든 적의 항복을 받는 것으로 되어 있다고 한다. 이런 점만 보더라도 정감록이 기술한 참혹한 말세는 문화적으로 이질적인 것, 다분히 기독교적이고 성경적이다. 좀더 생각해 보면 문화란 결국 상이한 계층, 종교, 언어권의 소통으로 풍요해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천주교와 정감록의 만남은 나쁘게 볼 일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당연한 일이고, 바로 그런 만남이 있었기에 한국 민중의 문화는 좀더 풍요로워졌다고 생각해야겠다. (푸른역사연구소장)
  • ‘오영수 문학상’에 성석제씨

    울산매일신문사와 S-Oil㈜은 양사가 공동제정한 제13회 ‘오영수 문학상’ 수상자로 소설가 성석제(45)씨를 선정했다고 8일 밝혔다. 수상작은 성씨의 단편 ‘잃어버린 인간’(창작과 비평 2004년 가을호)이며, 시상식은 9일 오후 6시 울산시 남구 옥동 문수컨벤션센터에서 열린다. 울산매일과 S-Oil은 지난해 3월부터 올해 2월까지 국내 각 문예지와 단행본을 통해 발표된 중·단편 소설을 대상으로 심사해 성씨의 작품을 선정했으며, 심사는 송하춘(고려대 교수), 임헌영(문학평론가), 전상국(소설가·강원대 교수)씨 등이 맡았다. 성씨는 1960년 경북 상주에서 태어나 연세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1986년 6월 ‘유리 닦는 사람’ 등으로 문학사상 신인상(시)을 받으면서 등단했다. 소설 및 작품집으로는 ‘그곳에는 어처구니들이 산다’ ‘왕을 찾아서’ ‘내 인생의 마지막 4.5초’ 등이 있다. 이 상은 울산 출신의 소설가 오영수 선생을 기리기 위해 제정한 것으로, 역대 수상자는 이동하 현기영 송하춘 오정희 김문수 최일남 김원우 유재용 송기원 백시종 방현석 공지영씨 등이다.
  • 與 실용·개혁 갈등 재연 조짐

    당·정·청 갈등이 노무현 대통령과 측근, 이해찬 국무총리를 한 때 겨냥하더니 이번에는 열린우리당 지도부로 옮겨갔다. 당 지도부는 의원들의 ‘언행 신중’을 공개적으로 경고하고, 유시민 상임중앙위원이 지도부의 책임론을 들고나오면서 또다른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정세균 원내대표는 7일 국회에서 열린 고위정책조정회의에서 “책임 있는 자리에 있는 분들은 자중자애하고, 언행에 각별힌 신중해야 할 때이다.”면서 신중한 처신을 거듭 당부했다. 이는 노 대통령의 정책을 ‘이상주의적’이라며 정면 비판한 정장선 제4정조위원장을 겨냥한 경고성 발언으로 해석된다. 이목희 제5정조위원장도 “근래 몇몇 발언이 있었는데 원칙에도 맞지 않고 어느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거들었다. 문희상 의장도 이날 상임중앙위원 간담회에서 “현재는 예민한 시기이므로 입장이나 얘기들이 왜곡되거나 곡해될 소지가 있는 만큼 가급적 자제하는 게 좋겠다.”고 ‘입조심’을 당부했다. 그러나 유 상중위원은 실용주의 지도부를 비판하는 듯한 발언을 해 당내 노선논쟁 재점화 조짐까지 보이고 있다. 유 상중위원은 이날 한 라디오프로그램에서 지도부의 혁신의지 부족을 질타한 뒤 “대통령과 총리를 욕한다고 당이 달라지는 것이 아니다.”며 “생각과 지향이 달라도 공동의 목표 아래 움직이도록 하는 게 리더십의 요체인데 저를 포함해 지도부가 잘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지도부 일원인 유 위원이 언급한 ‘혁신 의지가 부족한 지도부’는 결국 문 의장 등 실용주의파를 겨냥한 것으로 보여 노선경쟁이 다시 불거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박준석기자 pjs@seoul.co.kr
  • 국립대 통합 말만 요란

    국립대 통합 말만 요란

    국립대 통합이 지지부진하다. 통합하자면서 요란하게 변죽은 울리지만 막판에 서로 이해 득실을 따지며 포기선언을 한다. 그런 가운데 부산대와 밀양대가 통합에 합의해 ‘흡수통합’은 물꼬를 텄으나, 비슷한 규모의 대학끼리의 ‘대등통합’은 여전히 난항이다. ●부산·밀양대 ‘통합 부산대’ 출범 합의 부산대와 밀양대는 지난 4월 교수·교직원 등 대학 구성원을 대상으로 실시한 통합 찬반투표가 통과됨에 따라 2006학년 새학기부터 ‘통합 부산대’로 출범하기로 했다. 통합 부산대는 두 대학측의 유사·동일학과(부)를 통·폐합하는 대신 나노과학기술대학과 생명자원과학대학 등 2개 단과대를 신설, 현 밀양대를 나노·바이오캠퍼스로 특화할 계획이다. 두 대학측은 이달중 평가 관련 서류를 교육부에 제출,7월쯤 심의가 통과되면 재원 마련 등 절차를 거쳐 내년 새학기부터 밀양대를 부산대 밀양 캠퍼스로 운영할 방침이다. 강원대와 삼척대도 지난달 25일 두 대학 총장들이 통합대학의 학교명을 강원대 춘천캠퍼스와 삼척1캠퍼스(삼척시내)·삼척2캠퍼스(도계읍)로 하고, 대학본부는 통합시점인 내년 3월 1일을 기점으로 각 캠퍼스에 2년 주기로 번갈아 두기로 잠정 결정했다. 앞서 삼척대는 교수·교직원·동문들로부터 강원대와 통합에 찬성한다는 동의서를 받았다. 강원대는 이어 로스쿨 유치를 위해 법학과를 두고 있는 강릉대, 국립 2년제 원주대와 물밑 통합을 추진하고 있다. ●경상·창원대 지역민 반발에 발목 반면 경상대와 창원대의 통합은 무산됐다. 두 대학측은 3일 통합 기본합의서 도출을 위한 경남국립대학교 통합 공동추진위원회를 마지막으로 열었으나 대학본부 위치와 단과대학 배치 등 핵심 쟁점사항에 대한 이견차를 좁히지 못해 합의도출에 실패했다. 이로써 지난해 4월 통합을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 이후 13개월 만에 통합 논의는 종결됐다. 창원대는 통합대학의 본부가 도청소재지인 창원에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나 경상대는 대학의 역사나 규모 등을 감안, 교육도시인 진주에 있어야 하며 특히 지역정서상 절대로 양보할 수 없다며 맞섰다. 두 대학측은 더이상 통합에 관한 논의는 진행시키지 않기로 했다. 대신 각 대학 특성화에 역량을 집중하고 향후 교육인적자원부의 구조개혁 선도대학 지원사업에 각각 참여키로 의견을 모았다. 충남대와 충북대의 통합 추진도 물건너간 상태다. 지난달 12일 충북대가 학장회의에서 내부 반대를 이유로 통합을 전면 중단키로 결정한 것. 두 대학 총장은 지난해 10월 통합 양해각서(MOU)를 교환하고 통합을 추진해 왔다. 그러나 충북대는 통합에 따른 설문조사에서 교직원의 경우 반대 282명 찬성 32명, 학생은 반대 3102명 찬성 457명, 교수는 반대 382명 찬성 256명으로 내부 구성원 대부분이 통합에 반대했다. 이들은 반대 명분으로 통합 이후 정부의 구체적인 재정지원 등의 약속이 없다는 것을 내세웠으나, 충남대에 흡수 통합될 경우 통합대 본부와 인문·예술대가 행정도시 예정지인 충남 연기·공주에 들어서면 학생들이 빠져나가 지역경제가 어려워진다는 이유가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군산대와 익산대도 통합을 논의해 왔으나 군산대가 교수·학생·교직원·동문중 한 집단이라도 반대하면 통합을 추진하지 않기로 했고, 최근 실시한 투표에서 일부 집단들이 반대를 해 통합논의를 중단했다. ●대구·경북국립대 사실상 무산 경북대는 지난해 12월 안동대와 금오공대, 대구교대, 상주대 등 대구·경북국립대학간 통합 청사진을 제시했으나 해당 대학들의 소극적인 자세로 논의는 지지부진한 상태다. 이중 경북대와 상주대는 지난 12월 구조개혁공동연구단을 발족, 통합작업을 추진하고 있다. 경북대는 안동대, 금오공대, 대구교대와의 통합도 적극 시도할 방침이었으나 3개 대학이 통합에 부정적이어서 사실상 포기한 상태다. 경북대 관계자는 “통합에는 대부분 공감하지만 대학들이 서로 득실을 따지며 눈치를 살피고 있다.”면서 “통합 이후 구조조정 등에 따른 내부 반발도 통합을 더디게 하는 걸림돌”이라고 말했다. 대구 황경근기자 kkhwang@seoul.co.kr
  • [지금그곳은] 강남역 지하상가

    [지금그곳은] 강남역 지하상가

    분수대가 사라진 강남역 지하상가는 어떤 모습일까? 3일 오후 강남역 지하상가에 남·북으로 나뉘어 자리잡고 있던 100여평의 분수대 부지 중 5분의 3을 차지하는 공간에는 새로운 매장 20개가 들어서 있었다. 대부분 오픈을 앞두고 인테리어 공사가 한창이다. 나머지 공간에는 양쪽에 각각 4∼8개의 기둥이 남아 있고, 기둥을 따라 설치된 의자에 시민들이 드문드문 앉아 있었다. ●휴게소 기능 분수대 없어진 사연은? 강남역 분수대는 지난 3월14일 강남역 지하상가를 관리하는 서울시설관리공단에 의해 철거됐다(서울인 3월 19일자 보도). 당시 상인들은 철거를 반대하는 플래카드를 상가 곳곳에 붙여놓고 강남역 상가번영회를 중심으로 거세게 항의했다. 분수대가 없어지면 강남역 지하상가의 환경이 더욱 나빠질 것이라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서울시설관리공단측의 판단은 달랐다. 분수대가 설치된지 20여년이 지나 관리가 어려워진 데다, 노숙자들이 분수대 주변에 상주해 시민들과 상인들의 안전을 오히려 위협한다는 입장이었다. 결국 공단은 분수대를 철거했고,‘철거 반대’를 외치던 플래카드는 거의 사라졌다. 분수대 철거를 강력하게 반대하던 상인들이 플래카드를 거두고 침묵하고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 이들 상인이 서울지방법원에 제기한 ‘공사금지 가처분신청’이 4월 중순 기각됐기 때문이다. ●상인들 고법 판결에 촉각 강남역 지하도상가 번영회 김광년 회장은 “법원에서 가처분신청이 기각된 이후 감사원·서울시·고충처리위원회 등에 민원을 제기했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면서 “지금은 항의할 수 있는 별다른 방법이 없어서 고등법원의 판결을 기다리고 있는 실정”이라고 설명했다. 김 회장은 “겉으로는 조용해 보이지만, 분수대 철거를 반대하는 주장에는 변함이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또 “분수대 철거로 인해 지하상가의 공기가 더욱 안 좋아졌기 때문에 할 수만 있다면 분수대를 다시 만들기를 원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분수대가 원상 복구될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공단은 20개의 매장에 대한 임대를 마치고 계약만 남겨둔 상태인 까닭이다.20개의 새 매장중 15개의 매장은 강남역 지하상가의 매장 주인들 가운데 서울시설관리공단과 계약을 맺지 못한 사람들에게 돌아갔다. 그들은 강남역 지하상가의 민간 사용기간이 지난 2002년 서울시설관리공단으로 소유권이 이전되면서 계약을 맺을 당시 인상된 상가 임대료에 반대하며 공단과의 계약을 미루다 결국 기회를 놓친 사람들이다. 나머지 5개의 매장은 공개 경쟁 입찰을 통해 주인을 찾았다. 분수대가 다시 돌아올 확률은 거의 없지만 강남역 지하상가의 환경은 개선될 것으로 보인다. 공단측은 “침침한 조명을 밝게 바꾸고 기둥도 산뜻하게 꾸밀 예정”이라면서 “공기청정기를 설치했으며, 앞으로도 공기 정화 등 환경 개선을 위한 방법을 최대한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글 서재희기자 s123@seoul.co.kr
  • 전문성 실종 ‘유목민 국회’

    전문성 실종 ‘유목민 국회’

    행정부를 치밀하게 견제하는 동시에 그와 더불어 국정을 심층 논의해야 할 국회 상임위원회가 ‘유랑 극단’처럼 변질되고 있다. 개혁을 표방하며 출범한 17대 국회도 예외는 아니다. 지난 1년간 전체 의원 299명 중 46명이 상임위를 옮겨다니는 ‘유목민’ 처지가 됐다. 국회법 40조에 나오는 “상임위원 임기는 2년으로 한다.”는 규정이 무색할 정도로 ‘정치 유랑인 시대’를 17대도 이어가고 있다.“전쟁터로”“물좋은 곳으로”“적성이 맞아서” 등 타의든, 자의든 유랑하는 이유도 다양하다. 17대 국회 1년을 맞아 국회 사무처의 경과보고서와 국회 공보의 ‘위원회 사·보임’을 토대로 서울신문이 6일 그동안의 상임위 이동상황을 분석한 결과다. 사·보임 명단에 이름이 거론되는 46명은 전체 의석의 15%를 웃돈다. 정보·운영·여성위 등 겸임 상임위에서의 이동은 아예 제외한 수치다.‘부전공’은 차치하고 ‘주전공’을 바꾼 의원들이 그만큼 많다는 얘기가 된다. 이 가운데 29명은 ‘임시 땜질용’으로 상임위를 옮겼다가 ‘원위치’했다. 나머지 17명은 아예 다른 상임위로 완전히 이동했다. 한나라당 박창달 의원은 지난달 26일자로 국회 산업자원위원회로 옮겼다.‘원적’은 교육위였지만,17대 국회 1년 만에 같은당 맹형규 의원과 ‘맞트레이드’됐다. 산자위원장이던 맹 의원이 당 정책위원장을 맡게 되면서 위원장직을 내놓아야 했고, 마침 4·30 재보선으로 보충된 ‘초짜 의원’도 배정해야 해 ‘수혜’를 입은 것이다. 같은당 고흥길 의원은 결사 반대했던 언론관계법이 지난 연말 국회를 통과하자, 그동안 몸담았던 문화관광위를 떠나 행정자치위로 이동했다. 문광위를 평소 원하던 같은당 박찬숙 의원과 맞바꿨다. 같은당 안상수 의원은 교육위에서 ‘노른자위’로 일컬어지는 건설교통위로 이동했는데, 과천 지역구에서 행정도시법안으로 몸살을 앓자 지도부가 ‘배려’차원에서 신경을 썼다고 한다. 열린우리당 유시민, 한나라당 이한구 의원은 전공을 살려 재정경제위로 갔다. 전에는 보건복지·정무위에 있었다. 한나라당 박종근 의원은 김무성 의원 후임으로 재경위원장에 오르며 당초 정무위에서 재경위로 옮겼다. 반면 원내 지도부들은 보복·환경노동위처럼 ‘3D상임위’도 마다하지 않는다. ●문제 상임위엔 ‘땜질용’ 임시 투입 29명의 의원들은 원래 상임위를 ‘베이스 캠프’로 삼고 있다가 ‘문제’가 터지면 지도부 지시에 따라 전략 요충지로 파견됐다.‘임무’를 마치면 복귀했다. 경제계나 법조계 등 전문 지식에 ‘전투성’까지 겸비한 의원들이 으뜸 대상이었다. 지난 연말 국가보안법 개폐 논란으로 시끌벅적했던 법제사법위에는 열린우리당 김태년·선병렬·송영길·우원식, 한나라당 김정훈·박승환 의원 등 6명이 투입됐다. 짧게는 2∼3일, 길게는 30일씩 상주하면서 여야 대치상황을 주도했다. 국민연금법이 걸려 있던 보건복지위,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놓고 여야가 맞섰던 정무위에도 일시적으로 ‘전사’들이 투입됐다. 열린우리당 천정배 당시 원내대표는 ‘친정’인 법사위 대신 환노위에 가 있었다. 한 측근은 “원내 전체를 진두지휘하려면 법사위만을 지킬 수 없어 부득이하게 소신이 강한 의원을 배치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외유 중인 동료를 대신해 혹 있을 표결 대비 차원으로”라든가,“지도부의 지시에 의해서”라며 이동 경위를 설명하는 의원이 많았다. ●전문가 “말로만 원내정당” 의원들의 잦은 상임위 이동을 바라보는 시선은 곱지 않다. 국민대 김형준 교수는 “겨우 7∼8개월 일한 뒤 다른 상임위로 옮기고, 당직을 맡았다며 국회 상임위원장직을 내던지는 것 자체가 말로는 ‘원내정당’을 외쳐도 ‘원외정당’에 기대는 꼴”이라면서 “상임위는 최소한 2년, 많게는 4년 넘게 임기를 채워야 전문성과 책임감, 자율성을 길러 예전 국회와 차별화를 꾀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박지연기자 anne02@seoul.co.kr
  • 덕수궁미술관 ‘20세기로의 여행’전

    피카소, 백남준, 몬드리안, 칸딘스키, 잭슨 폴락, 앤드 워홀… 미술 교과서에서나 볼 수 있는 20세기 미술 거장들의 작품이 한자리에 모였다.‘20세기로의 여행:피카소에서 백남준으로’라는 제목의 전시회에서다. 이번 전시회는 네덜란드와 한국의 합작품. 네덜란드에서 현대미술 소장품이 가장 많기로 유명한 스테델릭 미술관과 국립현대미술관이 함께 손잡고 기획하면서 국내에서는 보기 드물게 거장들이 한 무대에 서게 됐다. 그것도 피카소, 브라크, 블라맹크 등 20세기 초의 회화작품부터 신디 셔면, 로버트 롱고와 같은 현대 사진의 대가들, 백남준, 브루스 나우먼, 길버트 앤 조지와 같은 비디오 아트의 전설적인 각가들에 이르기까지 20세기 미술의 역사를 여행하면서 다양한 장르를 만날 수 있다. 한국의 백남준, 서세옥, 최정화, 이불등 한국작가 18명도 자리를 빛낸다. 출품된 작가는 이들을 포함, 모두 94명. 이번 전시회는 20세기 미술의 흐름을 ‘추상’‘표현’‘개념’이라는 세가지 주제로 나눠 작품 감상의 이해를 돕고 있다. 피카소의 ‘기타가 있는 정물’과 브라크의 ‘나이프가 있는 정물’은 기하하적으로 단순화된 형태를 가지고 원근법을 무시하며 ‘추상’에 이르는 길을 실험했던 작품이다. 피카소는 이 작품에서 콜라주 기법도 보여주고 있다. ‘표현’파트에서는 인상주의에 대한 반항으로 객관적인 사물의 관찰에서 벗어나 개인의 이미지, 행동, 의미 등을 담은 ‘표현주의’작품들이 선보인다. 반 고흐의 영향을 받은 블라맹크의 ‘사투 근처의 마을’과 한지에 수묵으로 그린 서세옥의 ‘사람’, 남관의 ‘흑과 백의 율동’들이 그것이다. 가장 눈길을 끄는 장르는 역시 현대 사회를 직시하면서 조롱하는 ‘개념’의 작품들. 남성변기를 미술관으로 옮겨놓으면서 20세기 최초로 회화를 포기한 작가중의 하나가 된 뒤샹의 ‘물과 가스’와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 ‘라디오 데이’, 최정화의 ‘슈퍼 플라워’ 등의 작품을 보다 보면 기존 회화에 길들여진 미술세계에서 해방될 수 있다. 이번 전시회의 특징은 대가와 젊은 작가가 동등한 위치에서 작품을 내걸었다는 점이다. 바로 피카소와 한국작가 이불이, 블라맹크와 더글러스 고든의 작품들이 같은 전시장을 체우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분관인 덕수궁미술관 김인혜 학예사는 “보험액수 80억원짜리 작품과 800만원짜리 작품이 하나의 전시회를 위해 함께 걸려지는 것은 상당히 이례적”이라고 말했다. 이번 전시회를 위해 네덜란드 스테델릭미술관은 71점, 국립현대미술관은 42점의 소장품을 내놓았다. 스테델릭미술관이 오는 2008년 재개관을 앞두고 확장공사하면서 공사기간을 이용, 소장품의 세계 순회 전시가 가능해졌다. 전시회를 둘러 보다 보면 아쉬움이 남는다. 우리 미술관의 소장품이 외국 미술관에 비해 턱없이 초라하다는 점이다. 덕수궁 미술관 8월 15일까지.(02)2022-0616 최광숙기자 bori@seoul.co.kr
  • ‘당정갈등→당청갈등’ 확산

    ‘당정갈등→당청갈등’ 확산

    여권 내 갈등이 열린우리당의 대 정부 비판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청와대로 과녁만 바뀐 채 확대 재생산되는 양상이다. 무주와 과천에서 가진 두 차례의 워크숍을 통해서도 갈등은 ‘봉합’되지 않은 형국인 셈이다. 당내 ‘중도파’로 알려진 ‘안개모’(안정적인 개혁을 위한 국회의원 모임) 소속의 정장선 의원과 안영근 의원은 4일 각각 노 대통령과 청와대를 향해 직격탄을 날렸다. 논란이 확산되자 정 의원은 5일 보도자료를 내 “중간 점검하고 문제를 해결하자는 발언을 대통령에 대한 공격으로 환원하는 것은 본질에서 벗어난 것”이라며 발언 수위를 낮췄다. 그러나 안 의원은 이날 전화통화에서 “문제가 있어 할 말을 한 것”이라며 발언의 수위조절에 뜻이 없다고 밝혔다. 정 의원은 4일 “노무현 대통령의 이상주의에 근거한 정책추진이 많은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면서 “국토균형발전이라는 취지에는 모두 공감하고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이상에 불과한 국가발전계획과 현실의 문제 속에서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고민이 많다.”고 밝혔다. 건교부 등을 총괄하는 제4정조위원장인 정 의원은 이날 불교방송 ‘아침저널’ 프로그램에 출연,“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 혁신도시건설, 기업도시 건설, 혁신클러스터,S·J프로젝트 등 전 국토를 상대로 광범위한 계획이 계속 발표되니까 부동산이 엄청나게 뛰고, 이것을 다시 규제와 세금을 통해 해소하려니 건설경기가 위축되는 등 악순이 거듭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또 노 대통령이 주창한 ‘동북아 균형자론’에 대해 “종속적인 한·미 관계를 되돌아본다는 이상은 좋다.”면서도 “그러나 현실적인 뒷받침이 없는 균형자론을 주장해 한·미·일 관계가 냉각됐다.”고 지적한 뒤 “외교안보를 담당하는 소속 의원들도 상당히 불만이 많지만 말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안 의원은 4일 “월권을 하거나 청와대에 근무하면서 본연의 임무에서 벗어난 사람에게 징계성 문책이 있어야 한다.”며 “남은 (집권)후반기를 제대로 마무리하기 위해 대통령의 용단이 필요하다.”라고 주장했다. 안 의원은 이날 SBS 라디오 시사프로그램 ‘진중권의 SBS전망대’에 출연해 이같이 말하고,“전체 23개 자문위 가운데 15개는 업무영역이 제한돼 있는데, 월권행위가 있을 수 있고 매너리즘에 빠질 수 있으니 차제에 위원회 기구 자체에 대한 전면적 재점검을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자문위를 축소하거나, 일부 위원회는 폐지하는 등 위원회의 역할을 분명히 규정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안 의원은 당 지도부에 대해 “정부와 청와대에 대해서 감싸주기를 해왔지만 이제 청와대의 실수가 드러난 만큼 감싸주기에서 벗어나 동반자적 관계로 가야 한다.”고 주문했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사설] 여권갈등, 노대통령이 정리하라

    청와대와 정부, 열린우리당의 갈등이 감정싸움으로 번지고 있다. 이런 여권의 갈등에다가 ‘노무현 대통령을 사랑하는 사람들’(노사모)까지 가세해 서로를 공격하는 모습은 보기에도 안타깝다. 당·정·청은 다른 뿌리가 아니다. 그런데 최근 국정난맥상과 재보선 패배 등의 책임을 떠넘기는 과정에서 이런 갈등이 빚어지는 것은 여권의 무능을 확연하게 드러내는 것이다. 여권의 지지도 하락은 당·정·청의 총체적 책임이다. 함께 반성하고 국정에 전념해야 할 때지, 말싸움으로 지샐 때가 아니다. 그저께 열린우리당의 정장선 의원은 “노무현 대통령의 이상주의에 근거한 정책추진이 많은 문제점을 야기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노사모는 “정작 문제는 대통령이 갖고 있는 철학을 여당이 제대로 구현하지 못하는 데 있다.”고 즉각 반격에 나섰다. 여권의 갈등이 누워서 침뱉기식으로 전개되는 것도 한심하지만 사조직까지 가세하고 나서는 것은 국정을 우습게 봐도 한참 우습게 본 처사다. 최근 국정난맥상에 대해 청와대시스템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기 때문이라는 지적은 옳다. 또 국무총리가 사조직의 문제점을 지적한 것도 옳다. 당정관계가 원만하지 않아 정책추진에 차질이 빚어졌다는 지적도 일리가 있다. 문제는 이런 지적들을 바로잡는 것이 중요하지 서로 네탓이라면서 책임을 미뤄서는 안된다. 집권 2년이 넘도록 여권이 보여준 문제점은 실천보다는 항상 말이 앞선다는 것이다. 여권의 갈등을 수습하는 것은 노무현 대통령에게 달렸다. 대통령이 더이상 혼란을 방치하고 침묵해서는 안된다. 당·정·청은 같은 배를 탄 운명이고 그 배의 선장은 대통령일 수밖에 없다. 더욱이 대통령이 가만 있는데 노사모가 나서서 편을 드는 것도 모양이 우습다. 노 대통령은 여권내부의 지적들을 수렴해서 국정쇄신에 나서야 할 것이다. 국정쇄신에는 청와대의 시스템 정비와 인적쇄신, 정부 여당의 협조체제 구축 등이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더이상 집안싸움으로 국정이 흔들려서는 안된다.
  • [여의도IN] “대통령은 대학나온 사람이…”

    한나라당 전여옥 대변인이 “다음 대통령은 대학을 다닌 경험이 있는 분이 적절하지 않나 생각한다.”라고 말해 논란을 빚고 있다. 거침없는 의견 개진으로 유명한 전 대변인은 지난 2일 CBS 라디오의 한 시사프로그램에 출연,“우리 국민의 60%가 대학을 나온 국민”이라며 자신은 “아직도 대학 나온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겠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는 다분히 ‘고졸 대통령’인 노무현 대통령을 겨냥한 말이다. 전 대변인은 “인간 노무현이 아닌 대통령 노무현이 싫다.”면서 “그분의 역할이나 임무 수행에 문제가 많다고 생각한다.”며 자신의 감정을 직설적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그러나 “소탈한 자세는 좋은 점이라고 생각한다.”면서 “문장 구사능력이 뛰어나고 대중에게 전달력이 상당히 있다.”며 노 대통령의 장점 평가에도 인색하지 않았다. 정치인 평가도 직설적이었다.“노무현 대통령은 지도자감이 아니고, 박근혜 대표는 너무 고지식하고, 이명박 서울시장은 열혈 청년이며, 김근태 보건복지부장관은 이상주의자고, 정동영 통일부장관은 아나운서 같은 기자”라고 평가한 뒤 “가장 섹시한 정치인은 홍준표 의원”이라고 치켜세웠다. 전광삼기자 hisam@seoul.co.kr
  • “정당공천 없애 중앙당 영향력 줄여야”

    심재덕 의원은 “최근 가장 관심을 끄는 것은 자치단체장의 정당공천 문제와 연임제한”이라면서 “지방의원 등 지방정치인은 현 체제를 찬성하지만, 정당의 영향력이 덜한 도시 정치인들은 공천배제와 3기 연임제한 철폐를 주장한다.”고 말했다. 시민단체를 비롯해 언론과 일반 국민들도 공천배제와 연임제한 철폐를 주장한다고 소개했다. 그는 이어 “정당공천은 정당제에서는 필요하지만 10년을 경험해 보니 폐지하는 게 옳다.”라고 주장했다. 이는 정당이 개입하면 순수성이 없어지고 단체장은 정당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는 이유에서다. ●“3기 연임제한 철폐를” 김충환 의원은 “지방자치는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건전하게 발전해 왔다.”면서 “단체장 임명제 같은 논의가 더 이상 발붙일 수 없게 된 것만 봐도 큰 발전”이라고 평가했다. 김 의원은 “중앙과 지자체간의 갈등은 중앙정부가 아무런 대가를 주지 않고 부담만 줘 생긴 것”이라며 “부담을 주는 대신 대가를 주면 쉽게 해결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자치경찰제와 교육자치, 특별행정기관 통합 등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당공천 폐지 문제는 지구당이 폐지된 상황이므로 어려운 형편이지만 후원회 허용,3기 연임제한 폐지, 의원유급제는 여야 공히 긍정적 입장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권문용 구청장은 “현행 선거법이 자치단체에 대한 지나친 규제로 지방행정을 위축시키고, 감사원이 지방선거 기간 동안 상주감사를 실시하는 것은 ‘해외토픽감’”이라고 주장했다. 또 단체장 공천배제,3기 제한철폐, 단체장 후원회제도는 실현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자치 10년을 맞아 공과 실을 따지는 것은 당연하며, 건전한 비판과 함께 대안제시가 있어야 함에도 마치 지방자치제가 비리의 온상인 양 매도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강조했다. 이목희 논설위원은 “우리의 지방자치제는 긴 역사를 통해 점진적으로 발전해온 선진국과 달리 대통령·국회의원선거에서 유·불리가 제도도입의 주된 관심이었고, 중앙정치적 맥락에서 이뤄졌다.”고 도입과정을 소개했다. 얼마나 효율적이고, 주민들에게 도움이 되느냐는 부차적 문제였다는 것이다. 이 위원은 민선지방자치 10년을 맞아 큰 틀에서 자치제도의 조정이 필요하며 중앙정당의 영향력을 대폭 축소하는 방안이 추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현행 선거법으로 내년 지방선거를 치르면 대선 전초전이 돼 혼탁양상이 심화되고, 지역별로 특정 정당의 독식이 심화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특정 정당이 단체장과 지방의회 다수를 차지하면 실질적으로 지방행정의 견제가 안 되기 때문에 정당공천제 폐지를 우선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성호 정책실장은 “경실련의 주민평가에서 보통수준으로 나타난 것은 지방자치 이후에도 중앙집권적 국가행정체계를 여전히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주민이 가장 관심있고 서비스 받고 싶은 사무를 단체장이 권한이 없어 챙기지 못해 주민 만족도가 낮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도시기본계획, 도시관리계획결정권 등 민원이 많은 것은 지방에 이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기우 교수는 “지방자치를 한 뒤 지방정부는 대통령이 탄핵 당하는 비상적인 정국 속에서도 주민 생활문제를 자율적으로 처리해 국정의 안정을 가져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할 정도로 성숙했다.”면서 “이 시점에서 중요한 것은 잘못하는 지방정부를 욕할 것이 아니라, 잘하는 지방정부를 더 많이 만들어 아래로부터 국가를 조금이라도 바꾸는 데 있다.”고 말했다. ●지역사회 새 갈등구도 조장도 김재석 사무처장은 “지방자치가 상당한 수준으로 발전해 여러가지 긍정적 변화를 가져 왔음에도 불구하고 적잖은 시행착오와 부작용도 많았다.”고 평가했다. 각 분야가 고루 성장하지 못해 불균형 상태에 있으며, 특히 주민참여 확대와 자치원리의 실질적인 구현 문제는 달라진 게 없다고 혹평했다. 그는 참여정부 들어서 지역정치 카르텔이 분권과 지역균형발전정책에 기대어 지역민의 지역발전 요구와 기대를 독점, 지역간 갈등을 부추기고 지역사회내에 새로운 갈등과 대결구도를 조장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리 조덕현기자 hyoun@seoul.co.kr
  • [신연숙칼럼] 표준화 지상주의에서 벗어나기

    [신연숙칼럼] 표준화 지상주의에서 벗어나기

    대입시제도에 있어서도 표준화 평가에 의지하기보다 어떻게 하면 특별한 개성과 창의력을 가진 인재를 선발할 수 있는지를 고민했으면 한다. ‘표준’이 없다면 오늘날의 문명생활은 이뤄질 수 없을 것이다. 볼트, 너트의 크기에서부터 휴대전화의 전파송출 방식에 이르기까지 규격과 품질의 표준화는 재화 이용의 편리성과 신뢰성 확보의 관건이다. 표준의 선점은 시장확보의 필수조건이 되었다. 근대사에 있어 서양의 승리는 자신의 정치적, 군사적, 경제적, 문화적 표준을 세계표준화함으로써 가능했다는 국제정치학적 분석도 있다. 이토록 ‘표준’은 효율과 통합의 효과적 수단이었으나 획일화와 차별, 일방적 지배 기제로 작용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특히 국가의 개입이 줄어들고 다양성과 창의성, 자율성이 중시되는 탈근대 사회에 들어와 표준의 지위는 크게 흔들린다. 정신적 영역인 문화와 교육, 학문 분야에서는 특히 그렇다. 표준어에 밀렸던 방언의 복권이 그 한 예라 할 수 있다. 흔히들 표준어는 옳은 말, 사투리는 틀린 말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표준어의 개념은 국민국가 형성기에 사회통합 수단으로 나왔다. 우리나라에서의 표준어란 ‘수도권의 교양있는 사람들이 쓰는 품위있는 말’일 뿐이다. 이 잣대 속에 지방의, 혹은 하위 민초들의 언어들은 비표준어로 전락하고 만다. 우리말을 갈고 닦는 많은 시인과 작가들은 방언을 사용해 한국인의 삶을 형상화했고, 오늘날 언어학자들은 이 언어의 가치에 새삼 주목한다. 표준어와 더불어 이러한 현실어들이야말로 우리말을 풍부하고 섬세하게 만드는 보물창고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표준에 대한 권위의식은 쉽게 바뀌지 않는 듯하다. 신문사에서도 방언을 이용한 표현들이 곧잘 ‘교열’의 대상이 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표준의 가치에 대한 믿음, 혹은 집착은 다른 모든 분야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작년 가을 근현대사교과서 왜곡 논란이 있었을 때 교과서 검인정제도 자체에 대한 의문 제기가 있었던 것을 기억한다. 근현대사교과서는 역사의 객관적 서술과 다양한 해석의 관점을 보장하는 세계적 흐름에 맞게 국사교과서를 국정체제에서 검인정체제로 전환한 첫 결과였다. 그러나 이념적 편향성문제가 제기되며 논란이 격화되자 우리의 지적 풍토에서 검인정체제는 시기상조가 아니었나 하는 회의론이 나왔다. 다원화 사회를 지향하는 마당에 교과서발행이 국정체제로 회귀할 수 없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겠다. 또하나 표준화에 대한 믿음이 굳건한 분야가 교육평가 분야다. 국민교육 개념 역시 국민국가 형성기에 국민의 일체성 확보를 목적으로 시행됐던 것은 다 알려져 있는 바다. 그러나 오늘날 교육은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할 뿐만 아니라, 교육의 목적 역시 전인교육과 개인의 개성실현에 둔다. 이렇게 볼 때 획일적인 입시교육보다는 다양하고 자유로운 학교교육이 이뤄져야 함은 너무도 자명하다. 그럼에도 우리 교육의 평가제도는 표준화된 평가에 집착해 학교교육을 이에 종속시키고 만다. 최근 한 학부모 여론조사에서는 서울대학이 수능을 자격 기준 정도로 사용하겠다고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대입시에서 가장 많이 반영해야 할 성적으로 수능 52%, 내신 29%, 논술 및 면접 19%를 꼽았다. 똑같은 잣대에 집착해 수능점수에 목을 매다 보니, 국가가 전 국민(학생)을 상대로 똑같은 내용을 강의하는 EBS 수능특강이 등장하게 되었다. 그러나 창의적이고 독자적인 사고력이 요구되는 시대에 모든 학생이 하나의 정답만을 생각하도록 강요하고 있는 게 수능이요,EBS수능 강의다. 미래를 개척하려면 특별한 답이 없는 문제에 도전하도록 하라는 해외 석학의 말은 이런 상황에서는 공허한 울림일 뿐이다. 표준화에 대한 과도한 믿음은 이제는 접어둘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대입시제도에 있어서도 표준화 평가에 의지하기보다 어떻게 하면 특별한 개성과 창의력을 가진 인재를 선발할 수 있는지를 고민했으면 한다. 수석논설위원 yshin@seoul.co.kr
  • [수도권플러스] 동두천 “수도권 발전지구 지정을”

    동두천시(시장 최용수)가 시 일원을 수도권정비발전지구에 포함시켜줄 것을 대통령에게 직접 요청했다. 동두천시는 30일 건교부 수도권발전대책협의회 산하 수도권규제개선반이 최근 수도권 규제를 풀어 지역을 개발시키기 위해 지정하려는 수도권정비발전지구에서 동두천을 제외한 것을 재고해 줄 것을 요청하는 시장 명의 이메일을 노무현 대통령에게 발송했다고 밝혔다. 수도권규제 개선반은 수도권정비계획법을 손질해 낙후지역 발전의 물고를 트기로 하고 최근 인천 강화와 옹진, 경기북부 포천·연천을 정비발전지구에 포함시켰으나 동두천은 제외했다. 그러나 시는 동두천은 국도 3호선이 유일한 간선도로로 사회간접자본이 열악하고, 수도권이란 이유로 산업단지와 대학입지가 제한되고 있는 데다 미군재배치에 따라 6000여명의 실직과 상주인구 2만여명의 감소가 예상된다며 발전정비지구 지정을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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