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상원
    2026-08-15
    검색기록 지우기
  • 타인
    2026-08-15
    검색기록 지우기
  • 삼성
    2026-08-15
    검색기록 지우기
  • 대신
    2026-08-15
    검색기록 지우기
  • 태조
    2026-08-15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6,517
  • [오바마의 미국] 재계 “오바마 루트 개척하라”

    [오바마의 미국] 재계 “오바마 루트 개척하라”

    ‘소통의 루트를 개척하라.’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 당선인측과 소통할 창구 마련이 발등의 불이 됐다. 기존 한·미통상정책의 변화가 불가피한 데다 한국에 대한 오바마의 시각이 그리 우호적이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6일 재계 관계자는 “한국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재협상은 없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지만 이는 ‘희망사항’일 뿐”이라며 현실은 이런 기대를 무참히 저버릴 수 있음을 강조했다. 오바마의 한·미 FTA에 대한 비판은 단순히 자동차 몇 대 못 팔아서가 아니라 자국 산업과 노동자 보호를 위한 ‘철학’에서 비롯된 것이란 해석이다. 손성원 캘리포니아주립대 석좌교수는 YTN FM ‘강성옥의 출발 새아침’과의 인터뷰에서 “지금처럼 (미국)경제가 나쁜 상황에서는 FTA를 통과시키기는 굉장히 어렵다고 봐야 한다.”면서 “재협상을 하자고 나올 가능성이 많다.”고 진단했다. 특히 오바마가 한·미 FTA뿐만 아니라 한국인에 대해서도 곱지 않은 시각을 갖고 있는 것이 더 심각한 문제다. 오바마는 그의 저서 ‘내 아버지로부터의 꿈(Dreams from My Father)’에서 시카고 흑인 밀집 지역에서 장사를 하고 있는 한국 상인들을 ‘이기적인 사람들’로 묘사했다. 한국인들이 백인우월주의 단체인 KKK에 돈을 댄다는 내용도 있다. 재계 관계자는 “이 같은 오바마의 대(對)한국 시각을 바꿔놓지 못할 경우 한·미통상 마찰이 불거질 수밖에 없다.”며 “조속히 소통 창구를 개척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와 관련, 또 다른 재계 인사는 “정부나 개별 기업이 나서는 것은 현재로서는 무리가 있다.”면서 “민간 외교라인을 확대·보완해 가동해야 한다.”고 말했다. 재계에서는 오바마가 워낙 혜성처럼 나타난 신인이어서 국내에서 그와 직접 접촉이 가능한 인사들은 거의 없는 것으로 보고 있다. 때문에 미국 재계나 민주·공화 양당 등 정치권 인사들과의 교류 창구인 한·미교류협회나 한·미재계회의 등 민간라인을 적극 활용할 필요성을 제기했다. 이와 관련, 재계 인사 가운데 대표적인 미국통으로 알려진 조석래 전경련 회장과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류진 풍산 회장, 김윤 삼양사 회장 등이 주목받고 있다. 지난 2001년 한·미교류협회 회장으로 활약한 김승연 회장은 민주당과 공화당을 가리지 않고 미 정계에 폭넓은 인맥을 형성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 회장은 2003년 조지 부시 연두교서 연설회 초청을 받아 워싱턴을 방문했을 때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상원의원을 만났고 그의 남편인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을 한국에 초청, 방한을 성사시켰다. 김 회장은 민주당 중진인 찰스 랭글, 맥더모트, 포머로이 의원 등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 회장 못지않게 한·미재계회의 한국측 위원장인 조석래 전경련 회장도 눈여겨봐야 한다. 조 회장은 한·미재계회의 미국측 위원장인 월리엄 로즈 씨티그룹 부회장과 막역한 사이다. 한·미 통화스와프 체결이나 미국 비자면제 프로그램 등을 이끌어내는 데 로즈 부회장의 역할이 컸고 ‘거중조정’역할을 한 이가 조 회장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류진 풍산그룹 회장도 민주당 인맥이 탄탄하다. 오바마 지지를 선언한 콜린 파월 전 미 국무장관과는 좋은 관계다. 류 회장은 14일 서울 삼성동 그랜드인터컨티넨탈호텔에서 열리는 앨 고어 전 부통령 초청 만찬 강연을 성사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최용규기자 ykchoi@seoul.co.kr
  • 오바마 내각 인선 착수

    |워싱턴 김균미특파원|흑인으로는 미국 역사상 처음 대통령에 선출된 버락 오바마 당선인은 5일(현지시간) 정권인수팀을 발표하고 차기 백악관 참모 인선에 착수했다. 오바마 당선인은 주말쯤 차기 대통령으로서 공식 기자회견을 갖고 정권인수계획과 향후 국정운영 방향에 대해 밝힐 예정이다. 오바마 당선인은 경제상황의 심각성을 감안, 이르면 이번 주중 재무장관과 내각 인선을 협의할 백악관 비서실장을 먼저 발표할 것으로 보인다고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 등이 전했다. 오바마 당선인은 이날 램 에마뉘엘 민주당 하원의원에게 초대 백악관 비서실장직을 제안했다. 아직 수락하지는 않았지만 당선인과 같은 일리노이 출신으로 2000년 하원에 입성한 4선 의원, 현재 원내 서열 4위이다. 오바마 당선인은 또 정권인수위원장에 클린턴 백악관 비서실장을 지낸 존 포데스타 미국진보센터(CAP) 소장을 임명했다. 발레리 재럿 선임보좌역과 피터 라우스 상원의원실 비서실장도 공동위원장으로 활동하게 된다. 정권인수위는 12명의 위원으로 구성되며, 재닛 나폴리타노 아리조나 주지사, 윌리엄 데일리 전 상무장관, 페데리코 페나 전 에너지장관, 캐럴 브라우너 전 환경보호청장 등이 위원으로 내정됐다. 오바마 당선인은 6일부터 중앙정보국(CIA) 등 16개 정보기관을 총괄하는 국가정보국으로부터 일일 정보브리핑을 받으며 국가원수 및 군최고통수권자로서의 준비작업에 본격 착수한다. kmkim@seoul.co.kr
  • [오바마의 미국] ‘패장 3人’의 향후 행보는

    [오바마의 미국] ‘패장 3人’의 향후 행보는

    미국 대통령 선거가 버락 오바마의 승리로 대단원의 막을 내림에 따라 세 패배자의 향후 행보에도 눈길이 쏠리고 있다. 가장 뼈아픈 패배를 당한 공화당 존 매케인 전 후보는 연방 상원의원으로 돌아갈 것으로 보인다. 로이터 통신은 막바지 투표가 한창 달아오르던 4일(이하 현지시간) “매케인이 선거 뒤 (패배하면) 상원에 전념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실례로 2004년 대선에서 조지 부시 현 대통령에게 무릎을 꿇은 존 케리 당시 민주당 대선 후보가 매사추세츠 연방 상원 지역구로 돌아가는 등 원직에 복귀하는 게 미국 정치인들의 전통이다. 매케인은 5일 애리조나주 피닉스의 자택에서 측근들과 상원의원으로 돌아가는 자신의 역할에 대해 논의했다. 매케인의 러닝메이트 세라 페일린 알래스카 주지사는 차기 대권주자로까지 점쳐지고 있다. 대선과 상·하원 선거에서 참패한 공화당을 구할 지도자감으로 떠올랐다. 공화당은 6일 버지니아에서 대선 패배 이후 당의 진로를 모색하는 모임을 갖는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이 보도했다. 페일린은 이 자리에서 미트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와 함께 역경을 헤쳐갈 지도자로 거론될 전망이다. 보수파 단체 ‘세제 개혁을 위한 미국인’을 이끄는 그로버 노퀴스트 대표는 “매케인이 여론조사에서 앞선 단 2주는 페일린이 부통령으로 지명된 직후의 기간이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익명의 전문가들은 페일린이 대권도전을 하기 위해서는 상원의원이라는 단계를 밟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민주당 경선에서 오바마 당선인에게 져 꿈을 접은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뉴욕)은 가장 많은 패(牌)를 가지고 있다. 당내 비중이 상당히 높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스는 “힐러리가 오바마 행정부에서 국무장관을 맡아 대권에 재도전하길 바라고 있다.”며 힐러리의 속내를 전했다. 힐러리가 오바마에게 남편 빌 클린턴 전 대통령까지 동행시켜 선거를 뒷받침한 점은 오바마에게 ‘빚’으로 남았다. 6년 임기 가운데 2년을 남겨놓고 상원에 복귀하는 힐러리의 임기 이후 행보에 관심이 집중된다. 통상 대통령 집권 2년부터 차기 대선을 향한 움직임이 시작되기 때문에 오바마와의 ‘리턴매치’에 시동을 걸 수도 있다.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오바마의 미국] 오바마 측근 ‘시카고 사단’ 뜬다

    [오바마의 미국] 오바마 측근 ‘시카고 사단’ 뜬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5일(현지시간) 대중의 눈에서 사라지면서 차기 행정부 구상을 위한 숙고(熟考)에 들어갔다고 워싱턴포스트(WP)가 6일 보도했다. 오바마가 정권인수 모드로 급전환하면서 정치적 참모 집단인 ‘시카고 사단’이 얼마나 워싱턴에 입성할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오바마 캠프의 정권인수팀을 이끌고 있는 존 포데스타(59)가 가장 눈에 띈다. 시카고 출생으로 오바마 사단의 핵심이다. 클린턴 집권2기에 마지막 백악관 비서실장을 지낸 베테랑이다. 워싱턴의 진보적 성향의 싱크탱크인 미국진보센터(CAP) 소장을 맡고 있다. 행정 경험에 오바마 당선인의 신임이 더해지면서 중책을 맡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인수팀 공동 위원장인 발레리 재럿(51)은 스탠퍼드대를 나와 시카고에 기반을 두고 활동하고 있는 여성 변호사이자 사업가다.1990년대 시카고 시장의 부실장으로 일하면서 당시 오바마의 약혼녀였던 미셸 로빈슨(지금의 미셸 오바마)을 시장 보좌역으로 ‘채용’했던 인연도 있다. 재럿은 오바마의 가장 오래된 측근으로 분류된다. 오바마 행정부에서 중책을 맡을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가장 많은 관심이 쏠리고 있는 인물은 단연 데이비드 엑슬로드(53). 오바마의 ‘오른팔’격인 그는 뉴욕 출생이지만 시카고대를 나왔고, 이후 시카고 컨설팅 회사에서 활동하면서 2004년 오바마의 상원의원 선거를 도왔다.2007년 1월부터 오바마캠프의 핵심 선거전략가로 활동했다. 1992년부터 오바마와 인연을 맺은 엑슬로드는 최근 WP와의 인터뷰에서 그를 존 F 케네디에 비유하기도 했다. 오바마에게 대권 출마를 권유한 것도 그였다. 지난해 1월 오바마에 관한 5분짜리 동영상을 제작, 인터넷에 올리면서 그의 대권 행보를 공식화했다. 엑슬로드는 특히 인터넷 선거운동에 주력,30대 이하 젊은 유권자들 사이에서 지지 외연을 넓히고 ‘개미군단’ 유권자들의 십시일반식 선거자금 기부를 견인해 냄으로써 오바마의 당내 경선과 본선 우위에 결정적 기여를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오바마의 수석 보좌관인 피터 라우즈(62)의 거취도 관심사다. 그는 하버드로스쿨 친구의 소개로 2004년 당시 오바마 상원의원을 만나 전략 참모로서 캠프의 방향타 역할을 맡았다. 라우즈는 1971년 이후 30년 이상 상원 주변에서 잔뼈가 굵어 ‘101번째 상원의원’이란 별명도 따라다닌다. 이기철기자 chuli@seoul.co.kr
  • [데스크시각] 미국이 변하면 세계가 변한다/이도운 미래기획부 차장

    [데스크시각] 미국이 변하면 세계가 변한다/이도운 미래기획부 차장

    버락 오바마는 미국의 대통령이 될 수 없다고 믿었다. 돈도 없고, 조직도 없었지만 무엇보다 그는 흑인이었기 때문이다. 오바마는 젊고, 똑똑하고,‘담대한 희망’을 가졌다지만 희망은 희망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오바마를 처음 본 것은 워싱턴 특파원으로 부임한 직후인 2004년 7월27일. 보스턴에서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의 둘째날 (TV로 생중계되는) ‘프라임 타임’ 연사로 나왔을 때다. 그 당시에는 오바마라는 인물보다는 그를 그처럼 중요한 정치무대에 당당히 세워준 민주당 지도부의 배려가 더욱 놀라웠을 따름이었다. 그해 말 오바마가 상원의원에 당선된 뒤 의회에서 이따금 그를 볼 수 있었다. 미국 기자들은 그에게 대선 출마 여부를 질문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한국기자나 미국기자나 ‘립서비스’ 해대는 것은 똑같다.”는 정도로 치부했다.2007년 1월 오바마가 실제로 대선 출마를 선언했을 때는 “욕심이 앞선다.”고 생각했다. 민주당 후보는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미 민주당과 공화당의 대통령 후보 경선이 서서히 달아오르던 그해 6월3일. 뉴햄프셔 주에서 두 당 후보들의 합동토론회가 차례로 열렸다. 토론회 전날 미 대선 후보 경선의 모든 기록을 보관하고 있다는 ‘뉴햄프셔 정치박물관’을 방문했다. 박물관의 한 관계자는 2008년 대선을 전망하면서 “멍청한 백인 남자들(Stupid White Men·마이클 무어 감독의 책 제목)은 오바마를 찍지 않을 겁니다.”라고 말했다. 역시 그렇구나…. 그러나 정치박물관에서 만난 레이 버클리 뉴햄프셔 주 민주당 의장이 들려준 힐러리·오바마 캠프의 비교 논평이 계속 귓가에 남았다. 힐러리 진영은 당시 뉴햄프셔에서 가장 ‘프로페셔널’하고 ‘비싼’ 선거 전문가들을 싹쓸이해서 캠프를 꾸렸다고 한다. 반면 오바마 캠프는 ‘젊음’과 ‘열정’만 가득한 아마추어들로 구성돼 있다고 했다. 그러나 이들은 하루 24시간, 일주일에 7일간을 일한다고 버클리 의장은 말했다. 만일 이런 열정이 지속된다면, 그리고 전국으로 확산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참으로 궁금하다고 그는 말했다. 2008년 1월2일 마침내 아이오와 주에서 첫 경선이 열렸다. 경선 전날 밤 힐러리와 오바마가 디모인 시내의 비슷한 장소에서 마지막 유세를 가졌다. 어느 쪽으로 갈까 잠시 망설이다가 힐러리 쪽을 선택했다. 그녀가 이길 것으로 봤기 때문이다. 힐러리의 유세는 나름대로 성황이었지만 기대했던 만큼의 열기는 없었다. 오히려 오바마 쪽이 뜨거웠다는 말을 전해들었다. 다음날 저녁 디모인 컨벤션센터. 경선에서 승리한 오바마는 열광하는 지지자들을 향해 사자후를 토해냈다.“결코, 이날이 결코 오지 않을 것이라고 냉소자들은 말해 왔다.” “그러나 우리는 해냈다(Yes, We Can).” “미국의 변화를 믿는다(Change We Believe In).”오바마의 가슴 벅찬 연설을 들으면서 그가 민주당의 대선 후보는 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오바마가 미국의 대통령이 될 수 있을까에 대한 회의는 지난 3월 특파원 임기를 마치고 귀국하는 순간까지도 남아 있었다. 지난 3일 저녁. 오바마는 단 한번도 민주당 후보를 지지한 적이 없었던 버지니아 주에서 마지막 유세를 벌였다.“미국이 변하면 세계가 변한다.”고 호소했다. 오바마의 호소를 결국 버지니아는 받아들였다. 놀라운 변화였다. 오바마의 말대로 미국이 바뀌니 전세계가 바뀐 듯하다. 지난 8년 동안 찢기고 불태워지던 성조기가 전세계인의 환호 속에 하늘 높이 휘날리는 모습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적어도 미국이 세계의 변화를 선도했다는, 또 선도할 수 있는 국가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미국인들의 대담한 변화를, 그리고 위대한 승리를 축하한다. 이도운 미래기획부 차장 dawn@seoul.co.kr
  • [오바마의 미국] 오바마의 부드러운 남성상이 여심도 훔쳤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여성계에 두 가지 큰 빚을 졌다. 먼저 오바마 때문에 여성 대통령의 꿈이 좌절됐다. 게다가 힐러리 클린턴을 부통령 후보로 지명하지 않음으로써 1300만명의 힐러리 지지자들을 다시 한번 낙담시켰다. 그럼에도 오바마는 미 여성들을 사로잡았다. 왜? 최초의 여성 하원의장인 민주당 낸시 펠로시 의원은 “여성 대통령의 꿈을 빼앗은 젊은 친구가 매끄럽게 잘 해결했다.”고 말하고 있다. 오바마는 부드러우면서도 강한 이미지를 갖고 있다. 보수와 마초 이미지가 넘쳐나는 워싱턴 정가에서 그는 이상적인 남편감이자 아버지상을 보여준 지도자로 자리매김했다. 그는 밤마다 어린 두 딸에게 ‘해리 포터’소설을 읽어주곤 했다. 영국 더 타임스는 6일 오바마의 차분한 언행과 기품있는 태도, 그리고 합의를 존중하는 현대적 남성성(masculinity)이 여성들을 매혹시켰다면서 그의 남성성은 어머니 스탠리 앤 던엄과 아내 미셸의 페미니즘에 영향을 받은 덕택이라고 전했다. 오바마는 자신의 어머니를 편견과 두려움이 없는 여성이라고 표현하곤 했다. 그녀는 어린 오바마에게 “한 나라가 얼마나 발전할 것인지를 알 수 있는 최고의 지표는 그 나라가 여성을 어떻게 대우하는지 보는 것”이라고 가르치곤 했다. 그녀는 홀로 오바마를 키우면서도 인류학을 공부했고, 인도네시아에서는 매일 오전 4시에 아들을 깨워 3시간동안 영어를 가르쳤다.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의 아내 재클린 케네디를 닮아 ‘블랙 재키’로 불리는 아내 미셸은 오바마에게 여성의 전형이었다. 미셸은 오바마가 자서전을 쓰고 정치적 꿈을 키워나갈 때 든든한 후견인 역할을 했다. 미셸은 대선 유세에서 오바마가 상원의원으로 바쁠 때 자신만 아는 이기적인 사람이라고 화를 낸 사실을 공개하기도 했다. 한편으로 오바마는 미셸을 통해 미국 사회가 여성들로 하여금 커리어 우먼과 어머니의 역할을 모두 성취할 수 있도록 충분한 지원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오바마는 강하고 독립적인 어머니와 아내를 통해 가장 미국적인 여성의 삶을 유머로, 그리고 진솔한 모습으로 드러냈다고 더 타임스는 풀이했다. 안동환기자 sunstory@seoul.co.kr
  • [오바마의 미국] 美재무 서머스·가이스너 거론

    |워싱턴 김균미특파원|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경제상황이 악화일로를 치닫고 있는 만큼 사상 첫 흑인 대통령으로 당선의 기쁨을 만끽하기도 전에 경제를 살리기 위해 달음박질하고 있다. 5일(현지시간) 뉴욕증시에서 다우지수를 비롯해 3대 지수가 경기지표 악화로 급등 하루만에 5% 이상 폭락했다. 다우지수는 전날보다 486.01포인트(5.05%) 떨어진 9139.27로 마감했고, 나스닥지수와 S&P500지수도 각각 5.53%와 5.27% 하락했다. 미 공급관리협회(ISM)가 발표한 10월 비제조업(서비스업) 지수는 44.4로 전달의 50.2에서 큰 폭으로 떨어졌다. 이 지수가 발표되기 시작한 1997년 이래 가장 낮은 수준이다.3일 발표된 ISM 10월 제조업지수도 38.9로 전달의 43.5보다 더 떨어지며 26년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제조업과 서비스업 활동의 악화가 현실화하고 있다는 우려가 반영된 것이다. 고용지표도 악화됐다. 전미고용보고서에 따르면 10월 민간 고용은 15만 7000명이 줄어 전달의 2만 6000명 감소를 능가했다.7일 발표될 노동부의 10월 비농업부문 고용도 20만명이 줄었을 것으로 예상돼 실업률은 6.1%에서 6.3%로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경제팀 인선 초미의 관심사 주가가 다시 폭락하고 경기와 고용지표가 더욱 악화되면서 경기를 회생시킬 오바마 당선인의 대책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먼저 오바마의 경제정책 방향과 우선순위를 가늠해볼 수 있는 경제팀 인선이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오바마는 시급한 경제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재무장관은 이번 주중 먼저 발표하고, 나머지 내각은 다음 주중에 발표할 것으로 미 언론들은 전했다. 재무장관 후보에는 로런스 서머스 전 재무장관과 티모시 가이스너 뉴욕 연방준비은행 총재 등이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빌 클린턴 전 행정부에서 재무장관을 지낸 서머스는 전문성과 행정력이 입증된 친시장적인 인물로,1930년대 대공황 이후 최악의 경제위기를 헤쳐나갈 적임자로 거론되고 있다. 티모시 가이스너 뉴욕 연방준비은행 총재 역시 클린턴 행정부에서 재무장관을 지낸 로버트 루빈 밑에서 일한 경험이 있다. 지난 9월 불거진 금융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구제금융안을 마련하는 데 헨리 폴슨 재무장관과 긴밀하게 협의해왔다. 따라서 정책의 연속성 차원에서 높은 점수를 받고 있다. 선거과정에서 경제정책과 관련, 자문역할을 해온 로버트 루빈의 이름도 거론되고 있지만 현재의 금융위기에 대한 책임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씨티그룹의 임원이라는 점이 부담스럽다. ●오바마 G20정상회담 불참할 듯 경제상황이 심상치 않자 미 하원은 오는 17일 레임덕 회기에 1000억달러 규모의 2차 경기부양안을 제출할 계획이다.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은 2차 경기부양책의 의회 처리를 위해 오바마 당선인과 사전 협의할 계획이나 조지 부시 대통령과 공화당 하원의원들이 반대할 경우 지난 9월 하원에서 처리된 610억달러 2차 부양책의 상원 통과를 대신 요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나머지는 내년 1월 새 의회에 제출, 처리한다는 복안이다.2차 경기부양책의 절반가량은 도로와 다리 등 사회간접자본 건설에 투입해 고용을 늘리는 데 들어가며, 나머지는 실업자와 저소득층 지원에 투입된다. 한편 오는 15일 워싱턴에서 열리는 G20 정상회담에 오바마 당선인은 불참하기로 했다고 뉴욕타임스가 측근의 말을 인용, 보도했다. 부시 대통령에 대한 배려와 현직 대통령과 당선인이 함께 참석할 경우 정책의 혼선을 줄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대신 준비상황과 협의내용 및 결과를 실시간으로 보고받고 참석하는 주요국 정상과 별도로 면담하거나 리셉션에 참석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kmkim@seoul.co.kr
  • [오바마의 미국] ‘첫 흑인대통령’ 승리요인

    CNN의 정치분석팀이 5일(현지시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승리 요인을 분석한 결과를 내놨다. 민주당 전략분석가인 폴 베가라는 공화당 후보로 나섰던 존 매케인 상원의원이 저지른 실수 몇가지부터 꼽았다. 가장 큰 오점은 지난 3월5일 공화당 경선 승리 직후 백악관으로 달려가 조지 부시 대통령과 사진을 찍은 것이다. 이런 행동은 그가 집권하면 ‘부시3기’일 것이라는 비판의 빌미를 제공했다. 매케인은 9월15일 리먼 브러더스 파산, 메릴 린치 매각으로 금융위기가 본격화됐을 때도 결정적인 실언을 했다.“미국 경제의 기초는 탄탄하다.”고 말해 유권자들에게 다시금 부시를 연상케 했다. 러닝 메이트로 세라 패일린을 지명한 것도 결과적으로 중도 성향의 유권자들이 오바마에게 투표하게끔 유도했다. 도나 브라질 민주당 분석가는 오바마가 풀뿌리 유권자들을 인터넷으로 포섭하는 데 성공했다고 평가했다. 오바마측은 이를 위해 포섭과 약속, 힘의 부여라는 3단계 선거 전략을 구사했다. 평범한 유권자들에게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확신을 준 뒤(포섭), 인터넷과 유세에서 현장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약속), 정치에 실망한 유권자들에게 확신을 줬다는 것이다. 힐러리 로젠은 오바마의 좌우명인 ‘너 자신을 알라.’를 들었다. 오바마는 스스로 매케인에 비해 경험이 일천한 사실을 잘 알고 있었고 유권자들에게 역으로 변화의 메시지를 던졌다. 레슬리 산체스 공화당 전략전문가는 아이오와주가 오바마 승리의 견인차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전통적으로 공화당주였던 아이오와는 민주당이 54%대 45%로 대승을 거뒀다. 젊은 층과 반전주의자, 문화적 자유주의자들이 오바마 지지에 앞장섰다는 분석이다. 오바마는 라틴계 유권자에게도 61%의 지지를 얻어 2000년 존 케리 민주당 후보 때 지지율 55%를 훌쩍 넘어섰다. 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 [인종 벽을 넘다-美 오바마 시대] 정치권 ‘오바마 인맥찾기’ 비상

    [인종 벽을 넘다-美 오바마 시대] 정치권 ‘오바마 인맥찾기’ 비상

    버락 오바마 대통령 당선인이 미국 대권을 거머쥐면서 국내 정치권이 분주해지고 있다. 여야는 5일 미국의 ‘첫 흑인 대통령’인 오바마의 등장을 환영하면서도 정권교체가 가져올 북핵문제, 한·미관계 등의 변화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물밑에선 어떻게든 백악관의 새 주인에게 줄을 대려는 ‘오바마 인맥찾기’도 한창이다. 한나라당은 “북핵폐기와 한반도 평화 등 미래지향적인 한·미 공조체제의 확대를 기대한다.”며 당선 환영 논평을 발표했다. 민주당도 “미국인이 변화와 미래를 선택했다.”면서 파급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중앙 정치무대 데뷔 4년차에 불과한 오바마 당선인과 인적네트워크를 구축하기 위해 고민하고 있다. YS정부 통역담당 비서관으로 일했던 박진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장은 오바마를 상원 외교위원회로 끌어들인 민주당 조지프 바이든 부통령 후보와 막역한 사이로 알려졌다. 한 측근은 수십차례 만나 의견을 나눴고 올 7월에도 한·미동맹과 대북정책 등을 논의했다.”고 전했다. 박 위원장은 오바마 캠프의 한반도정책팀장인 프랭크 자누지, 아시아정책 담당자 제프리 베이더와도 교류해 왔다. 차기 동아태담당차관보로 거론되는 자누지와는 10년 넘게 인연을 쌓아 왔다. 4년간 미국에서 근무한 황진하 의원은 국방분야 자문역인 윌리엄 코언 전 국방장관, 로버트 아인혼 미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 부소장 등 민주당 국방 인맥과 탄탄한 관계를 자랑한다. 이밖에 한미의원외교협의회장인 정몽준 의원, 미국에서 국제정치학을 전공한 윤상현 의원, 씨티은행 부행장 출신의 조윤선 의원, 하버드대 출신인 홍정욱 의원 등도 기대를 모으고 있다. 민주당의 오바마 인맥은 상대적으로 풍부하고 다양하다.‘한국의 오바마’란 구호를 내걸었던 송영길 최고위원은 지난해 1월 미국 민주당 초청으로 상원 개원식에 참석해 오바마 당선인, 조지프 바이든 부통령 후보와 만났다. 이밖에 자유선진당은 이회창 총재가 콜린 파월 전 국무장관과 두터운 관계를 쌓은 것으로 알려졌다. 오상도 나길회기자 sdoh@seoul.co.kr
  • [인종 벽을 넘다-美 오바마 시대] 국무장관 존 케리·비서실장 람 에마뉘엘 거론

    [인종 벽을 넘다-美 오바마 시대] 국무장관 존 케리·비서실장 람 에마뉘엘 거론

    |워싱턴 김균미특파원|제44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 민주당의 버락 오바마는 전세계를 강타한 금융위기와 경기침체를 극복하기 위해 거국내각을 꾸릴 것으로 보인다. 오바마는 그동안 위기상황임을 감안, 선거 직후에 곧바로 백악관의 주요 보좌관과 국무·국방·재무장관 등 경제·국가안보 관련 장관을 발표하겠다고 밝혔었다. 정권인수 초기에 일찌감치 경제와 국가안보 관련 현안들을 점검하여 권력의 공백기를 최소한으로 줄이겠다는 것이다. ●내각 ‘빅3’ 최대 관심 백악관 비서실장에는 톰 대슐 전 상원 민주당 원내대표가 ‘0순위’로 거론된다. 대슐 전 상원의원은 오바마 캠프에 깊숙이 관여해왔다. 이밖에 일리노이주 출신인 람 에마뉘엘 하원의원과 윌리엄 데일리 전 상무장관도 후보로 오르내린다. 관심은 내각의 ‘빅3’인 국무·국방·재무장관. 이들 장관은 한국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누가 기용되느냐가 중요할 수밖에 없다. 최대 현안인 금융위기 해결사 역할을 맡을 재무장관으로는 티모시 게이스너 뉴욕 연방준비은행 총재와 로런스 서머스·로버트 루빈 전 재무장관, 폴 볼커 전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 등이 거론된다. 미국의 대외정책을 총괄할 국무장관에는 존 케리 상원의원과 리처드 루거 공화당 상원의원이 유력 후보로 거론되는 가운데 빌 리처드슨 뉴멕시코 주지사와 리처드 홀브루크 전 유엔대사의 이름도 오르내린다. 국방장관에는 로버트 게이츠 현 국방장관의 유임 가능성도 높다. 오바마 당선인은 게이츠 장관에 깊은 신뢰를 갖고 있다. 이밖에 척 헤이글 공화당 상원의원과 리처드 댄지그 전 해군장관, 존 햄러 전 국방부 부장관 등도 거론된다. 미국의 대외정책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에는 제임스 스타인버그 전 국가안보 부보좌관과 수전 라이스 전 국무부 차관보, 그레고리 크레이그 전 클린턴 특별자문 등이 후보군에 들어 있다. 백악관 경제자문역에는 후보 시절에도 같은 역할을 맡았던 오스탄 굴스비 시카고대 경제학 교수와 제이슨 퍼먼 등이 중용될 가능성이 크다. 이밖에 마이클 프로만 씨티그룹 임원이자 오바마의 하버드 로스쿨 시절 총장이 거론된다. ●가장 힘든 정권인수작업 될듯 정권인수위의 역할은 그 어느 때보다 막강할 것으로 보인다. 금융위기와 경기침체, 이라크·아프가니스탄 전쟁 등 시급한 국내외 과제들이 산적해 있어 1933년 대공황 와중에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허버트 후버 대통령으로부터 정권을 인수한 이래 75년만에 가장 힘든 정권인수 작업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클린턴 대통령 시절 백악관 비서실장을 지낸 존 포데스타 인수위원장은 인사, 정책, 입법전략, 경제위기 등 크게 4개 분야로 나눠 정권인수를 체계적이고 조직적으로 진행한다. 정권인수 기간 동안 글로벌 금융위기 해결의 사령탑은 일단 조지 부시 대통령이 맡겠지만, 오바마 인수위도 붕괴 위기에 몰렸던 금융시스템 점검과 일자리 창출이 핵심인 경기부양과 경제회생 등 취임 후 첫 100일 청사진을 구체화하는 데 중점을 둘 것이다. kmkim@seoul.co.kr
  • [오바마와 한반도] (1) 한·미 FTA와 통상전망

    세계 최강국이자 우리의 맹방인 미국의 차기 대통령에 민주당 버락 오바마 후보가 당선됨으로써 한·미 관계에도 큰 변화의 물결이 일 것으로 보인다.‘오바마 시대’의 개막이 한반도에 몰고올 파장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 및 양국 통상 전망,21세기 한·미 전략동맹 비전, 그리고 북핵 공조의 장래 등 세 분야로 나눠 차례로 짚어본다. 버락 오바마 민주당 후보가 5일 미국의 새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한·미 두 나라간 최대 경제 현안인 자유무역협정(FTA)이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초미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그동안 민주당이 한·미 FTA 협정 내용에 대해 공화당보다 한층 비판적인 자세를 보여온 터라 재협상 요구의 가능성은 물론이고 최종 의회 비준까지 순탄치 않은 과정이 예고되고 있다. ●오바마 “한·미 FTA는 결함 있는 협정” 오바마와 민주당은 지난해 한·미 FTA 협정 타결 이후 줄곧 비판적 입장을 견지해 왔다. 오바마는 올 초 상원 외교위원회에서 “한·미 FTA가 자동차와 쇠고기 등 무역 핵심산업 보호와 환경, 노동 등 신(新) 통상정책의 기준들에 맞지 않는다.”고 공격한 데 이어 5월에는 부시 대통령에게 보낸 공개서한에서 “한·미 FTA는 아주 결함 있는(badly flawed) 협정”이라고 발언의 수위를 더욱 높였다. 가장 크게 문제를 제기한 것은 자동차 부문이었다. 미국에서는 한국산 차가 연간 70만대 이상 판매되는 데 반해 미국산 차는 한국에서 5000대밖에 안 팔리는 역조 현상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여기에는 오바마 지지 세력인 전미자동차노조(UAW)에 대한 배려도 감안됐다. ●전망1:재협상 요구 가능성 높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지난 4일 보고서를 통해 “오바마가 당선될 경우 미국은 한·미 FTA 전반에 대해 전면 개정을 요구할 가능성이 크고 의회의 비준도 난항을 겪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특히 “노조의 지지에 기반을 둔 오바마 후보는 자동차 산업에서 한·미 무역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 한국으로부터 양보를 얻어내려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 민간경제연구소 관계자는 “미국이 오바마 당선인 취임 직후인 내년 2~3월쯤 재협상을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면서 “그러나 문제는 이미 자동차 시장을 상당폭 개방해 놓은 우리 입장에서 관세·소비세 등 그들에게 줄 당근이 마땅치 않다는 것으로 자칫 전체 판이 깨지는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전망2:재협상 요구 가능성 낮다 그러나 실물경기가 최악으로 치닫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이 FTA 재협상의 무리수를 두지는 않을 것이란 주장도 만만치 않다. 정인교 인하대 교수는 “오바마측이 일부 문제 제기를 한 적은 있지만 FTA 자체를 어떻게 하겠다는 얘기는 하지 않았다.”면서 “경기부양과 이를 위한 국제 공조가 중요한 만큼 대선 후보가 아닌 대통령으로서의 오바마는 재협상을 강도 높게 요구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형주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행정부에 더해 의회까지 장악한 민주당의 지지기반이 대부분 FTA로 수출 증대가 기대되는 지역들이라는 점에서 민주당이 재협상에 나서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 추가협상 여지 남겨 놓아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이날 “미국 새 행정부가 재협상을 요구하더라도 받아들일 수 없다.”면서 “오바마 당선인이 한·미 FTA 비준에 부정적인 견해를 밝혀 왔으나 대통령에 당선된 만큼 입장 변화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그러나 추가 협상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는 “우리 정부의 바람은 17일부터 시작되는 미 의회의 레임덕 세션 안에 비준안이 처리되는 것”이라면서 “추가 협상이 될지, 보완 협상이 될지는 좀더 상황을 지켜봐야 한다.”고 말해 추가 협상의 여지를 열어 놓았다. 한국의 ‘선(先) 비준’ 전략에 대한 논란도 가열될 것으로 보인다. 우리 정부는 그동안 미국에 앞서 선제적으로 비준 동의를 할 것을 국회에 촉구해 왔다. 우리가 먼저 비준을 해야 미국이 비준하도록 압박할 수 있고 재협상 요구도 차단할 수 있다는 논리였다. 그러나 익명을 요구한 통상 전문가는 “미국의 재협상 요구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우리가 먼저 국회 비준에 나서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라고 했다. 그는 “우리나라가 비준을 한 뒤 미국이 재협상 요구를 해 오면 우리는 수정된 내용으로 재비준을 해야 하는데 이는 이명박 정부에 엄청난 정치적 부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진경호 김태균 이영표기자 windsea@seoul.co.kr
  • [인종 벽을 넘다-美 오바마 시대] 민주당 행정·입법 모두 장악

    [인종 벽을 넘다-美 오바마 시대] 민주당 행정·입법 모두 장악

    미국 민주당이 4일(이하 현지시간) 대선과 함께 치른 미국 상·하원 및 주지사 동시선거에서도 압승을 거뒀다. 이로써 미 민주당은 1932년 프랭클린 루스벨트 전 대통령 이후 76년 만에 처음으로 행정부와 상·하 양원을 모두 독식하는 ‘슈퍼파워’를 탄생시켰다. 상원 35명과 하원 435명을 뽑은 이번 총선을 통해 민주당은 상원에서 17명, 하원에서 258명을 당선시켰다. 공화당은 상원 14명, 하원 177명을 입성시키는 데 머물렀다. 이번에 새로 선출한 상원 35석 가운데 나머지 2석은 무소속에 돌아갔으며, 다른 2석은 5일 오전 1시까지 결정되지 않았다. 이날 선거 이전까지 상원에서는 민주당과 공화당이 49석씩 양분하고 무소속이 2석을 차지했었다. 민주당은 상원에서 전체 의석 가운데 3분의2인 60석을 넘김으로써 공식적인 의사진행 방해(필리버스터)를 표결로 막아 정책결정에 탄력을 얻으려던 당초 목표를 이루지는 못했다. 그러나 양당 싸움에서 우위를 되찾았다는 데 의미가 적잖은 것으로 풀이된다. 이번 선거 이전까지 하원 의석분포는 민주당 236석대 공화당 199석이었다. 이로써 민주당은 상·하원에서 모두 다수당을 유지했다. 미 연방 상원은 전체 100석인 의석 가운데 임기가 6년으로 2년마다 3분의1씩 번갈아 뽑고, 하원은 임기가 2년이기 때문에 올해도 선거를 치렀다. 주지사 선거를 치른 11곳에서 민주당은 워싱턴과 몬태나, 미주리 등 7명, 공화당은 버몬트와 유타 등 4곳에서 당선자를 냈다. 이에 따라 민주당은 연방 50개 주 가운데 37곳에 지사를 진출시킴으로써 위치를 더욱 넓혔다. 이전엔 민주당 28대 공화당 22곳이었다. 특히 민주당은 상징성이 큰 2곳에서 낙승을 거둬 반색하고 있다. 워싱턴주의 경우 민주당 소속인 현 크리스 그레고리 지사가 공화당의 디노 로시를 맞아 지난 2004년 선거에서 단 133표 차이로 승리를 차지했으나 이번엔 득표율 53.5%대 46.5%라는 예상 밖의 큰 표 차로 따돌렸다. 공화당 텃밭으로 불리던 노스캐롤라이나주 선거의 경우에도 민주당의 베벌리 퍼듀 후보가 당선이 유력하던 공화당의 팻 매코이 샤롯시장을 득표율 50.2%대 46.9%로 여유있게 눌렀다.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인종 벽을 넘다-美 오바마 시대] 한미관계·북핵문제 정통

    지한파(知韓派)로 알려진 조지프 바이든(65) 부통령 당선인은 관록의 6선 정치인이다.1972년 29세의 나이로 상원의원에 당선된 뒤 36년 동안 상원에서 활동하며 외교위원장과 법사위원장 등을 지냈다. 상·하원을 통틀어 최고의 한반도 전문가로 한·미 동맹 관계, 북핵 문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등 두 나라 사이의 현안에도 정통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부통령의 중요성은 대통령 유고시에 드러난다. 대통령이 사망하거나 사퇴, 혹은 탄핵을 당하면 부통령은 대통령직을 대행하거나 승계하게 된다.1974년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사퇴한 리처드 닉슨 당시 대통령의 뒤를 이은 제럴드 포드 등 모두 9명의 현직 부통령이 대통령직을 이어받았다. 대통령이 일시적으로 직무를 수행하지 못할 경우에도 부통령은 1순위로 권한대행을 맡는다. 부시 정부의 딕 체니 부통령은 2002년과 2007년 조지 부시 대통령이 수술을 받았을 때 잠시 대통령직을 넘겨받았고,1985년 당시 부통령이었던 아버지 조지 부시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의 권한을 잠시 대행한 적이 있다. 부통령이 되면 미국 헌법에 따라 자동으로 상원의장 자격이 주어지며, 상원 표결 결과 동수일 경우 상원의장이 결정권한(Tie Breaking Vote)을 갖게 된다. 무엇보다 부통령직의 매력은 차기 대권 도전에 유리한 고지를 차지한다는 데 있다.1988년 아버지 조지 부시를 포함해 부통령직을 수행하며 대통령에 당선된 경우도 4차례나 있다. 바이든은 펜실베이니아주 스크랜튼에서 태어나 델라웨어대, 시러큐스대 로스쿨을 졸업했다.27세에 변호사가 됐고 28세에 주의회 의원으로 선출됐다. 김민희기자 haru@seoul.co.kr
  • ‘검은 거인’ 232년 인종 벽 허물다

    ‘검은 거인’ 232년 인종 벽 허물다

    |워싱턴 김균미특파원|지금까지 겪어보지 못한 새로운 경험이었다. 독립 이후 232년의 미국 역사뿐 아니라 세계 역사에도 기록되어야 할 사건이었다. 당사자인 미국민에게만 쇼크를 준 것이 아니라 지구촌의 모든 사람에게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흥분을 안겨주기에 충분했다. ●338 vs 163 더블스코어 압승 2008년 11월4일(현지시간), 민주당의 버락 오바마(47) 후보가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의 존 매케인 후보에 승리하며 제44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됐다. 아버지가 케냐 출신인 ‘아프로 아메리칸’이 1619년 첫 노예선이 신대륙에 도착한 이후 400년에 가까운 인종갈등의 뿌리깊은 사슬을 끊고 ‘무혈 혁명’을 이뤄낸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 당선인은 5일 오전 3시 현재 538명의 선거인단 가운데 과반을 훨씬 넘는 338명의 선거인단을 확보하며 모든 미국인의 대통령으로 역사 앞에 우뚝 섰다. 총득표율이 51.6%로 과반을 넘어선 명실상부한 압승이었다. 오바마 당선인은 이날 밤 11시57분(동부시간) 시카고 그랜트공원에서 100만명이 훨씬 넘는 지지자 앞에서 “미국에 변화가 도래했다.”고 선언했다. 그는 “잃어버린 ‘아메리칸 드림’을 되살리고 미국의 지도력을 재건하며 미국을 새롭게 건립하는 데 시간이 걸리겠지만 우리(미국인)는 반드시 이룩할 수 있다.”고 희망과 변화를 강조했다. 오바마 당선인은 “오늘의 승리는 우리 모두의 승리”라면서 “국내외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봉사와 희생 정신이 그 어느 때보다 요구되는 지금, 내가 아닌 우리를 생각하며 새로운 미국을 만들어 나가자.”며 단합을 호소했다. ●매케인 “패배 인정”·부시 “축하” 매케인 후보는 오바마 후보의 당선이 확정된 직후 애리조나주 피닉스에서 열린 지지자 모임에서 겸허하게 패배를 인정했다. 매케인은 “이제 오랜 여정을 끝내야 할 때가 됐다.”면서 “오바마 상원의원은 역사적인 승리를 통해 자기 자신과 미국을 위해 대단한 일을 해냈으며 그에게 박수를 보낸다.”고 말했다. 부시 대통령도 오바마 당선인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대통령 당선을 축하했다. 데이너 페리노 백악관 대변인은 순조로운 정권이양을 약속했으며, 빠른 시일 내에 백악관을 방문해 달라는 뜻을 전달했다고 밝혔다. ●민주당 상·하원 석권 이날 민주당은 상·하원 선거에서도 압승을 거두며 행정부와 입법부를 모두 장악하여 진보적인 개혁정책들을 펼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민주당은 5일 오전 2시 현재 상원에서 7석을 늘려 56석을 확보했다. 하원에서도 22석 늘어난 258석으로 다수당의 지위를 유지했다. 민주당은 11개 주지사 선거에서도 7개 주에서 승리했다. 반면 공화당은 4곳을 차지하는 데 그쳤다. 오바마 당선인은 77일 동안의 정권인수 기간을 거쳐 내년 1월20일 대통령에 취임한다. kmkim@seoul.co.kr
  • 국제中 헌소·효력정지 신청

    서울시교육청이 추진 중인 국제중 설립과 관련해 대원중과 영훈중 인근 지역주민 등 1713명이 5일 오전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과 특성화중학교 지정·고시 효력정지 가처분신청을 냈다. 참교육학부모회와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국제중 반대 강북주민대책위원회 등 75개 교육·시민단체는 이날 오전 헌법재판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연 뒤 헌법소원 심판청구서와 가처분신청서를 제출했다. 청구인들은 국제중 설립으로 ▲균등한 교육을 받을 권리 ▲의무교육 무상원칙 ▲인간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추구권 등이 침해된 점을 헌법소원 청구 이유로 들었다. 참교육학부모회 등은 공정택 교육감 퇴진운동에도 본격 나서기로 했다. 청구인들은 “대원·영훈중을 특성화중학교로 지정·고시해 교육과정 운영이 특성화되고 의무교육 단계인 중학교에서 수업료를 내는 유상교육 제도를 인정한 것은 교육제도 법률주의에 위반된다.”고 밝혔다. 또 “제한된 소수만이 입학해 별도의 특성화된 교육을 받도록 혜택을 베푸는 것은 균등한 교육을 받을 권리 및 평등권, 부모의 자녀교육권,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 및 인간의 존엄성 및 행복추구권을 침해한다.”고 지적했다.이경원기자 leekw@seoul.co.kr
  • [인종 벽을 넘다-美 오바마 시대]한반도정책 누가 이끄나

    [인종 벽을 넘다-美 오바마 시대]한반도정책 누가 이끄나

    버락 오바마 차기 행정부 출범에 있어 우리의 관심사 가운데 하나는 오바마의 ‘한반도 브레인’들이다. 오바마의 싱크탱크는 클린턴 행정부에서 일했던 전직 관료가 많다. 대체로 소장파로 구성돼 있다. 친민주당 성향의 브루킹스 연구소도 한반도 정책 등에 대한 밑그림을 그렸다. 선거과정에서 한반도 정책에 대해 조언을 한 선거 참모진의 상당수는 백악관과 국무·국방부에서 한반도 관련 정책을 담당하는 요직에 등용될 것으로 보인다. 한반도 정책과 관련된 주요 인물은 지난 8월 미국 워싱턴 내셔널프레스빌딩에서 열린 ‘아시아 관련 정책 토론회’에 민주당 외교 안보 참모로 참석한 프랭크 자누지 상원 외교전문위원과 로버트 겔버드 전 인도네시아 대사가 대표적이다. 부통령 후보인 조지프 바이든 상원의원의 보좌관을 지낸 자누지는 “북한 핵프로그램에 대한 검증 체계를 확보하기 전까지 제재를 가하는 일은 안 된다. 단계적으로 ‘행동 대 행동’으로 이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누지는 예일대 출신으로 국무부에서 일한 경험이 있다. 겔버드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은 그동안 미국이 다른 나라와 체결했던 FTA와 다르고 중요하기 때문에 심각하게 들여다 볼 필요가 있으나 미 행정부가 의회와 충분한 협의를 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FTA 자체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자동차 조항 등에 결함이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한다. 이런 결함이 보완된다면 비준동의를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자누지 등 오바마 외교안보 정책라인에 정책 조언을 하고 있는 조엘 위트 전 국무부 조정관과 한반도 전문가인 고든 플레이크 맨스필드재단 사무총장도 한반도 전문가로 부각되고 있다. 위트는 1994년 제네바 합의 당시 대북협상을 맡았던 인물이다. 아시아 정책을 총괄하는 인물은 제프리 베이더 브루킹스 연구소 선임연구원으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아시아국장과 중국 주재 미 무역대표부 부대표를 역임했다. 예일대 출신인 그는 일본팀장인 마이클 시퍼 스탠리재단 연구원의 자문을 받고 있다. 이들은 주로 한반도 문제를 포괄한 중국과 일본, 한국, 북한 등에 대한 큰 그림을 그릴 것으로 보인다. 오바마 외교안보 정책의 총괄 책임은 앤서니 레이크 전 국가안보보좌관이 맡고 있다. 주로 이라크·아프간 전략을 총괄하고 있지만 핵확산 문제 등이 대북 정책과 연관을 맺고 있다. 그는 지나치게 군사적 방법에 의존한 부시 행정부와 달리 외교력과 도덕주의를 결합한 ‘통합 외교’를 강조하고 있다. 핵확산 문제에 대해 국제적인 공조로 대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토머스 허버드·도널드 그레그 전 주한 미대사도 선거 과정에서 오바마 진영의 자문에 수시로 응한 인물로, 이들의 보고서는 레이크를 통해 오바마에게 전달됐다. 레이크는 수전 라이스 전 국무부 차관보와 리처드 댄지크 전 해군장관과도 자주 의견을 주고 받는다.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 [인종 벽을 넘다-美 오바마 시대] ‘변화·희망’ 내걸고 性·흑백대결 ‘검은 혁명’

    [인종 벽을 넘다-美 오바마 시대] ‘변화·희망’ 내걸고 性·흑백대결 ‘검은 혁명’

    ■오바마 출마서 대권까지 2007년 2월10일 일리노이주 스프링필드의 ‘올드 스테이트’ 주의회 의사당 앞. 영하 11도의 살을 에는 듯한 추위가 몰아쳤지만 1만 5000명 남짓한 지지자들이 한 흑인 연방 상원의원의 대통령 선거 출사표를 듣기 위해 광장에 모였다. 의사당 계단에 선 이 흑인 남자는 지지자들에게 “우리 세대가 이제 시대적 소명을 다할 때”라며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지지자들은 환호했지만 마음 속으로는 ‘미국 사회가 과연 흑인 대통령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라며 반신반의했던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로부터 21개월이 흐른 2008년 11월5일. 혜성 같이 등장한 이 흑인 연방상원 의원은 미국 사회의 편견을 보기 좋게 뛰어넘으며 마침내 제44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가 바로 미국 232년 역사상 흑인 최초로 대통령에 당선된 버락 오바마다. ●링컨 노예해방 선언 장소서 출사표 2004년 11월 연방 상원에 입성한 오바마는 2006년부터 대선 출마를 위한 ‘물밑작업’을 시작했다. 새내기 초선 의원이었지만 민주당 동료 의원들의 지지를 끌어내기 위해 동료 의원들을 돕는 데 주안점을 뒀고, 연설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라크 전쟁 반대 등 자신의 메시지를 부지런히 알렸다. 지인들조차도 “미국은 아직 흑인 대통령을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됐다.”며 만류했지만 “머뭇거리지 말라. 이번 기회를 놓치면 다음 기회가 오리라는 생각을 버려라.”라는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를 지낸 톰 대슐의 권유를 받고 출마를 결심했다. 그는 2007년 1월 선거 출마를 위한 준비위원회를 설립하면서 대선 출마를 본격화했다. 이어 같은 해 2월10일 올드 스테이트를 택해 출마 선언을 했다. 그는 “링컨의 꿈과 희망이 존재하는 이곳에서 미국 대통령 후보 경선에 출마한다.”고 선언했다. 올드 스테이트는 1858년 링컨이 “이 정부가 반은 노예로, 반은 자유의 상태에서 영구히 계속될 수 없다. 내부가 갈라진 집은 서 있지 못한다.”는 명연설로 노예해방의 정치 투쟁을 시작했던 곳이다. 링컨은 3년 뒤인 1861년 제16대 미국 대통령에 올랐다.150년 만에 똑같은 장소에서 똑같은 상황이 재현된 것이다. ●젊은 백인층 ‘진보적 가치´ 지지 오바마는 올 1월 처음으로 시작된 대선후보 경선인 아이오와 코커스(당원대회)에서 최대 경쟁자인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을 꺾고 승기를 잡았다. 그는 신자유주의에 대해 강하게 반대하는 등 경쟁자인 힐러리보다 진보적인 정치공세를 폈다. 이후 뉴햄프셔에서 힐러리에 지기도 했지만 젊은 백인층과 흑인의 지지를 결집해 사우스 캐롤라이나에서 압승했고, 그 여세를 몰아 2월의 슈퍼 화요일에 승리를 거두면서 미국 최초 흑인 대통령 탄생을 일찌감치 예고했다. 그는 연설에서 케네디 닮기 전략으로 지지자들을 열광시켰다는 평가를 받았다. 록스타 공연장을 연상케 하는 그의 유세장에는 젊은이들이 모여들었고, 항상 ‘Yes,We can(예, 우리는 할 수 있어요.)’,‘Change we can believe in(우리는 변화를 믿는다.)’는 구호가 끊이지 않았다. 오바마와 매케인의 대결은 지난 6월 본격적으로 막이 올랐다. 상대 후보는 역전의 명수이자 4선 상원의원 존 매케인. 지난 7월에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오바마에 7%포인트가량 앞서갔지만 매케인은 판 흔들기에 밀려 8월에는 5%포인트 뒤지는 등 엎치락뒤치락하는 박빙의 승부가 이어졌다. 8월28일 오바마는 자신의 최대 약점인 외교 안보 분야를 보완하기 위해 조지프 바이든 상원 외교위원장을 부통령 후보로 지명, 매케인에 8%포인트 앞서 나갔다. 이에 맞선 매케인이 9월4일 끝난 전당대회에서 부통령 후보로 알래스카 보수적 여성 주지사 세라 페일린을 깜짝 지명하면서 잠시 판세가 요동쳤으나 ‘깜짝 효과’는 오래가지 않았다. ●오바마 당선 도운 경제위기 대선의 중요한 변곡점은 9월14일 리먼브러더스 파산이었다.7000억달러의 구제금융 발표와 다우존스 1만선 붕괴 등 대공황 이후 미국 최대 금융위기는 오히려 오바마에게 호재로 작용했다. 매케인은 판세를 뒤집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10월 이후 오바마로 돌아선 민심은 쉽게 돌아서질 않았다.5일 개표 결과 오바마가 당선에 필요한 과반수(270명)를 훌쩍 넘는 선거인단을 확보하면서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한 미국 대선은 종지부를 찍었다.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흑인들 고난의 美정치 도전사 6전 7기 끝의 성공이다. 버락 오바마 당선자 이전, 백악관 입성에 도전했던 흑인은 모두 6명이었다. 수치상으로는 그리 나빠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미국 흑인의 ‘백악관 도전사´는 고난의 연속이었다. 우선 도전할 기회 자체가 변변찮았다. 민주·공화 두 거대정당은 흑인 후보에게 오래도록 냉랭했다. 뿌리깊은 편견이 있었고 흑인의 정치·경제적 역량도 모자랐다. 흑인이 ‘대권 도전’에 처음 나선 것은 1972년이다. 당시 하원의원이던 셜리 치솜이 민주당 대선 후보 경쟁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호응은 없었고 중도에 레이스를 포기했다. 이후 ‘흑인 사회의 대부’ 제시 잭슨 목사가 1984년과 1988년, 연속으로 민주당 후보 경쟁에 뛰어들었다. 당선보다는 흑인 정치 세력을 키우려는 의도적 참가로 풀이됐다. 흑인으로 처음 대통령 선거 투표 용지에 이름을 올린 사람은 1988년 무소속으로 출마한 여성 심리학자 레노라 풀라니다. 작가 출신인 앨런 키스는 1996년과 2000년 공화당 대선 경선에 거푸 나섰다.2004년에는 캐럴 브라운 상원의원과 사회운동가 앨 샤프턴이 민주당 대선 경선에 참가했다. 사실 흑인은 의회 진출조차 쉽지 않았다. 현재 임기 6년의 연방 상원의원 100명 가운데 흑인은 오바마가 유일하다. 역대를 통틀어도 흑인 연방 상원의원은 5명뿐이다. 1870년 리럼 레블스가 흑인으로는 처음으로 미시시피주에서 상원의원이 됐다.1875년에는 노예 출신 블랑시 브루스가 같은 주에서 상원의원에 당선됐다. 남북전쟁 직후, 특수한 사회 분위기 덕이었다. 이후 한 세기 가까이 흑인은 연방 상원에 발을 들여놓지 못했다.1966년에야 민주당 에드워드 브루크가 매사추세츠주에서 상원의원에 선출됐다.1993년에는 일리노이주에서 민주당 캐럴 브라운이 상원의원에 당선됐다. 브라운은 최초의 흑인 여성 상원의원이기도 하다. 재선에 성공한 흑인 상원의원은 브루크 단 하나다. 연방 하원에는 모두 116명의 흑인이 진출했다. 대부분 1990년대 이후 선출됐다.1965년부터 하원을 지키고 있는 존 콘이어스 의원은 흑인정치사의 산증인으로 불린다. 최초의 흑인 주지사는 1872년 루이지애나 주지사를 지낸 핑크니 핀치백이다. 임명직이었고 단 35일 동안 주지사 자리를 지켰다.1990년에야 첫 민선 흑인 주지사가 탄생했다. 버지니아 주지사를 지낸 더글러스 와일더다. 현재 흑인 주지사는 단 두 사람뿐이다. 뉴욕 주지사 데이비드 패터슨과 매사추세츠 주지사 데벌 패터릭이다. 패터슨은 지난 3월 스캔들로 물러난 엘리엇 스피처 전 주지사의 뒤를 이었다. 최초의 시각장애인 주지사이기도 하다. 오바마의 뒤를 이을 흑인 대선 주자는 누가 있을까. 전문가들은 최초의 흑인 여성 국무장관 콘돌리자 라이스를 첫손가락에 꼽는다. 그러나 라이스는 현재까지는 선출직 정치인이 되는 것에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걸프전의 영웅 콜린 파월 전 국무장관도 꾸준히 대중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박창규기자 nada@seoul.co.kr
  • 美 보호무역 강화… 車산업 ‘흐림’

    美 보호무역 강화… 車산업 ‘흐림’

    그야말로 ‘시계 제로’ 상태다.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이 5일 미국 44대 대통령으로 당선되면서 반도체와 자동차 등이 주축인 우리 산업계가 긴장하고 있다. 후보 시절 오바마 당선인이 한·미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해 여러 차례 날선 발언을 한 데다, 자동차 교역 불균형을 지적하기도 한 탓이다. 미국의 보호무역 기조가 강해질 것으로 예상되고, 클린턴 행정부 시절처럼 반덤핑 제소 건수가 증가할 가능성도 높게 점쳐지고 있다. 삼성과 현대·기아차,LG 등 대기업들은 예상되는 통상관계 변화 등에 대한 분석에 나섰다. 분석의 초점은 금융과 실물경제가 동반 침체에 빠진 상황에서 오바마 당선인이 어떤 분야에 가장 먼저 처방을 내릴 것인지에 맞춰졌다. 이런 관점에서라면 자동차 산업이 가장 먼저 영향권 안에 들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전미자동차노조(UAW)가 지지한 민주당 후보가 당선된데다 고용 효과가 큰 자동차 산업에 오바마 당선인이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코트라는 ‘미국 대선 결과에 따른 경제통상정책 방향 전망과 시사점’이라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오바마 정부가 미국 자동차 산업이 직면한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자국 자동차 산업에 대해 폭넓은 지원을 펼친다면, 한국산 자동차의 대미수출에 장기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반면 기회 요인도 있다. 하이브리드차 등 친환경 차량 부문이나 부품소재 부문에서 우리가 비교우위를 보인다면, 미국 시장에서의 운신의 폭이 오히려 넓어질 수도 있다는 설명이다. 오바마 당선 소식에 전 세계 환경주들이 급등세를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오바마 정부는 이전 부시 행정부에 비해 이산화탄소 규제 등에 적극 나설 태세다. 현대·기아차가 미국 앨라배마에 공장을 설립, 연 30만대 규모의 생산시설을 갖추고 미국인들을 대거 고용하고 있는 점도 오바마 행정부 체제에서 유리한 조건으로 꼽힌다. 앞으로 미국의 자동차 산업 정책에 맞춰 현지 공장과 국내 수출물량의 라인업을 바꾸는 등 운영의 묘를 발휘할 여지가 있어서다. 오바마 당선 이후 자동차 산업이 주목받는 이유는 이 문제가 한·미FTA 재협상 여부와 연결된다는 시각 때문이다. 산업계는 미국과 한국이 경제뿐 아니라 안보 등 여러가지 면에서 얽혀 있기 때문에 한·미FTA가 완전 무산될 가능성은 낮게 보지만, 부분 협상 가능성은 남아 있다고 내다봤다. 한국무역협회는 논평을 통해 “한·미 양국 경제관계에 획기적 전기가 될 한·미FTA 조기비준에 힘써 달라.”고 당부하며 오바마 당선인측을 압박했다. 오바마 당선인이 자국 산업을 보호하는 정책을 고수할 가능성이 있어서다. 특히 오바마 당선인 캠프가 철강과 섬유산업에서 미국이 외국산, 특히 중국산 제품으로 인해 피해를 많이 봤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는 점은 우리에게 불리한 요인으로 꼽혔다. 중국에 철강과 섬유 완성재 이전 단계의 중간재를 수출하는 우리 기업들에 연쇄적으로 비우호적인 환경이 조성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물론 미국으로 직접 수출하는 우리 기업도 새롭게 규제를 받을 수 있다. 한국은 미국에 연 170만t의 철강을 수출한다. 주요 미국 수출업체들이 오바마 당선에 따른 환경변화로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정보·통신(IT) 산업과 재생에너지 산업, 전력기자재 산업 등 오바마가 육성하기로 약속한 산업 분야에서는 새로운 시장이 열릴 전망이다. 미국 경기의 회복 속도와 전체적인 방향 가운데 우리 기업의 활로가 남아 있는 셈이다. 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 [인종 벽을 넘다-美 오바마 시대] 47세 검은 케네디 ‘노예 해방’ 완결짓다

    [인종 벽을 넘다-美 오바마 시대] 47세 검은 케네디 ‘노예 해방’ 완결짓다

    “숯처럼 까만 아버지에 우유처럼 하얀 어머니…” 소년 오바마는 혼란스러웠다. 미국 절반이 흑백결혼을 금지하던 시절이었다. 고민하고 또 고민해도 답은 찾을 수 없었다.‘흑백결혼’이란 단어가 괴기스럽고 추하게 느껴졌다. 혼란은 오래 갔다. 상처는 덧났다. 백인 가정에서 자란 흑인. 미국인도, 아프리카인도 아닌 정체성. 모든 게 모호했다. 위안이 필요했다. 당연한 듯 술과 마리화나에 손을 댔다.“술에 취하면 내가 누군가 하는 의문을 잠시 지울 수 있었다.”고 했다.“매일 아침 눈 뜨면 다시 눈을 질끈 감고 싶었다.”고도 했다. 방 안엔 안주 담은 그릇이 뒹굴고 재떨이엔 꽁초가 넘쳤다. 모든 게 황량했던 시절이었다. 흔한 마약쟁이로 일생을 보낼 뻔했던 이 흑인은 5일(현지시간) 미 합중국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세계 언론은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고 평가했다. 환호하는 지지자들 속에서 오바마의 검은 얼굴엔 흰 미소가 번졌다. 그는 당선이 확정된 5일(현지시간) “혼란스럽고 고단했던 날들이 결국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고 고백했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 당선인은 1961년 8월4일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아프리카의 케냐 출신 유학생이었고 어머니는 대학에 갓 입학한 18세 소녀였다. 두 사람의 결혼식에는 단 한 사람의 축하객도 없었다. 하와이라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혼혈과 외지인이 많았던 하와이는 본토보다는 자유로운 분위기였다. 아버지 버락 후세인 오바마 1세는 케냐 루오족 출신이었다. 서부 빅토리아 호숫가의 작은 마을에 살았다. 오바마의 할아버지는 영국인 지주 집에서 요리사로 일했고, 오바마 1세는 염소를 몰았다. 그래도 할아버지는 아들을 식민지의 영국학교에 꼬박꼬박 출석시켰다. 그런 오바마 1세에게 일생일대 기회가 찾아왔다. 케냐가 독립하기 전날, 미국 유학 프로그램에 선발됐다. 오바마 1세는 하와이 대학에 입학했다. 거기서 어눌하고 수줍음 많던 스탠리 앤 던엄을 만났다. 금세 사랑에 빠졌고 곧 아기를 가졌다. 어머니 던햄은 학교를 중퇴해야 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행복했다. 그러나 이별의 시간은 빨리 다가왔다. 새로운 장학금을 받아 아버지가 하버드로 떠났다. 어린 엄마와 흑인 아들은 하와이에 남겨졌다. 오바마가 두살 때였다. 어머니는 새삶을 살았다. 학교에 복학하고 인도네시아 유학생 롤로 수토르와 재혼했다. 여섯살 오바마는 새아버지와 인도네시아 자카르타로 떠나게 된다.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오바마에 남다른 애정을 갖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동네 친구 에디 뿌르완또로는 오바마의 어린 시절을 기억했다.“사룽(인도네시아인들이 허리에 두르는 천)을 뒤집어 쓰고 해가 질 때까지 함께 닌자놀이를 했다.”고 했다.“서로 다른 신을 믿지만 그래도 오바마가 대통령이 되기를 줄곧 기도했다.”고도 했다. 열 살 되던 해, 오바마는 호놀룰루로 돌아갔다. 어머니는 아들이 미국에 있는 학교에 다닐 때가 됐다고 생각했다. 호놀룰루에선 오바마의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가 기다리고 있었다. 오바마를 진정한 미국인으로 만들어 냈다는 평가를 듣는 사람들이다. 오바마는 외할머니를 ‘투트(Toot)’라 부르며 따랐다. 하와이 원주민 말로 할머니를 뜻하는 ‘투투(tutu)’를 변형한 애칭이다. 숨가쁜 대선 레이스가 계속되던 지난달 23~24일, 오바마는 외할머니가 위독하다는 소식에 선거운동을 중단했다. 하와이로 급히 날아갔다. 캠프 안팎에서는 이런 행보가 선거에 긍정적이냐, 부정적이냐를 놓고 저울질이 한창이었지만, 오바마에게는 그저 ‘투트’가 소중했다. 오바마는 지난 3일 조용히 숨을 거둔 외할머니를 “미국의 수많은 ‘조용한 영웅’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고 기렸다. 선거 전문가들은 “오바마의 외가쪽 이력이 백인 보수층의 거부감을 무너뜨리는데 큰 역할을 했다.”고 평가한다. 실제 대선전에서도 외할머니는 오바마의 큰 우군이 됐던 셈이다. 1979년, 고등학교를 마친 오바마는 로스앤젤레스 옥시덴털칼리지에 입학했다.2년 뒤엔 컬럼비아대로 편입했다. 정치외교학을 전공한 그는 “당시 수도승처럼 공부만 했다.”고 회고했다. 대학을 졸업한 그는 공동체 운동가가 되기로 결심한다.“흑인을 조직해 풀뿌리부터 변화시키리라.”여러 차례 시행착오를 거친 그는 시카고에서 운동가 생활을 시작했다. 쉽지 않았다. 곳곳에서 한계에 부딪혔다. 더 많은 지식, 한 단계 높은 시각이 필요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1988년, 오바마는 하버드대 로스쿨에 입학했다.“더 나은 인간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도서관에서 판례와 법전에 파묻혀 시간을 보내던 그는 1990년 ‘하버드 로 리뷰(Harvard Law Review)’ 편집장에 선출된다. 학술지 역사 104년 만에 첫 흑인 편집장이었다. 이 사건으로 그는 일찌감치 흑인사회의 리더로 각인됐다. 당시 오바마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내가 이 자리에 서게 된 것은 미국이 진보하고 있음을 뜻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1996년 오바마는 정치인으로 변신했다. 일리노이주 주상원의원 보궐선거에서 승리했다.1998년에 재선,2002년에는 3선에 성공했다. 그 사이 2000년 연방 하원의원 선거에서 패배하는 아픔도 겪었다. 대통령선거가 있었던 그해에는 일리노이주 민주당 대의원으로도 선출되지 못했다.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에선 ‘구경꾼’이 될 수밖에 없었다. 4년 뒤 2004년 대선에서 기회가 찾아왔다. 존 케리 당시 민주당 후보가 보스턴 전당대회 기조연설을 요청했다. 케리는 “우연히 선거 행사장에서 오바마의 연설을 듣고 감명을 받았다.”고 했다. 오바마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무명에 가깝던 이 흑인 정치가는 이날 연설 이후 전국적인 스타가 됐다. 그리고 흑인으로는 다섯번째로 연방 상원 입성에 성공했다. 그로부터 다시 4년이 지난 2008년 이 ‘검은 케네디’는 새로운 출발점에 섰다. 금융위기로 흔들리는 ‘미국호’의 새로운 조타수가 됐다. 그는 “아직 미국에는 꿈꾸는 이들이 있고, 그들이 있으면 희망은 남아있다.”고 말했다. 아프리카계 흑인 몽상가의 도전은 이제 시작이다. 박창규기자 nada@seoul.co.kr
  • 마지막 여론조사서도 “오바마”

    |워싱턴 김균미특파원·서울 안동환기자|제44대 미국 대통령을 뽑는 선거가 4일 0시(한국시간 오후 2시) 뉴햄프셔주의 산골마을 딕스빌 노치를 시작으로 미 전역에서 순차적으로 실시된다. 사상 첫 흑백대결로 치러지는 이번 대선에서 모든 여론조사에서 앞서고 있는 민주당의 버락 오바마 후보가 공화당의 존 매케인 후보를 누르고 미 232년 역사상 첫 흑인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이날 투표는 동부지역에서 시작해 시차를 두고 서부지역으로 진행되며 미 동부시간 기준으로 5일 오전 1시(한국시간 오후 3시) 알래스카를 마지막으로 종료된다. 또 대선과 함께 상원의원 100명 가운데 35명을 새로 뽑는 상원선거와 435명 전원을 재선출하는 하원선거,11개주의 주지사 선거도 치러지며 민주당의 압승이 점쳐진다. 선거일을 하루 앞둔 3일 마지막으로 발표된 모든 여론 조사에서 오바마 후보가 매케인 후보에게 최대 11% 포인트 앞서는 것으로 나타나는 등 이변이 없는 한 미 역사상 최초의 흑인 대통령 탄생이 예고되고 있다. 갤럽-USA투데이 여론 조사에서 오바마는 55% 지지를 얻어 매케인보다 11%포인트 앞섰다. 한편 당선자 윤곽은 4일 오후 10시(한국시간 5일 정오) 이후가 돼야 드러날 것으로 예상된다. kmkim@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