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상원의원
    2026-03-12
    검색기록 지우기
  • 홈플러스
    2026-03-12
    검색기록 지우기
  • 중앙정부
    2026-03-12
    검색기록 지우기
  • 홀몸노인
    2026-03-12
    검색기록 지우기
  • 청와대 오찬
    2026-03-12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6,189
  • 닉슨기념관 “개관 준비 끝”(세계의 사회면)

    ◎출생지 가주에 1만평 규모/전시관 등 꾸며 19일 문열어/생가 복원,집념어린 정치역정 생동감 있게 비디오로 재현도 워터게이트 스캔들의 상처 속에 대통령직을 도중하차한 리처드 닉슨 전 미국대통령의 기념관이 개관을 약 2주 남짓 앞두고 요즘 마지막 손질이 한창이다. 대통령직을 도중 하차한 유일한 제37대 미국대통령인 닉슨. 그는 이 기념관으로 불명예를 씻어보려는 듯 마지막 열정을 쏟고 있다. 닉슨기념관이 세워지는 곳은 그의 출생지인 캘리포니아주 오렌지 카운티의 요바린다시. 닉슨은 1913년 이곳에서 태어나 9살까지 살다가 이웃 위티어로 이사했다. 앞으로 관광명소의 하나가 될 이 닉슨기념관은 10만 한국교포가 모여사는 캘리포니아내 제2의 코리아타운에서 불과 10여분 거리에 위치해 있다. 약 9에이커(1만1천여평)의 대지위에 2천만달러의 비용을 들여 세워지는 닉슨기념관은 그의 생애를 보여주는 기록전시관과 도서관으로 이뤄진다. 특히 그의 성장과정을 엄격한 고증을 거쳐 복원한 생가에서 볼 수 있도록 설계돼 있다. 기념관이 개관되는 오는 19일 요바린다시는 몰려드는 관광객(약 2만5천명으로 추산)으로 일대 혼잡을 이룰 것으로 예상,그 대책수립에 부심하고 있다. 특히 이날 개관기념식에서는 조지 부시 현 대통령을 비롯,제럴드 포드,로널드 레이건,장본인인 닉슨 등 4명의 전ㆍ현직 대통령들이 만나게 돼있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시 관계자들은 이날의 큰 교통혼잡에 대비,일대의 주요 거리를 차단해 아예 주차장으로 사용하면서 셔틀버스로 관람객들을 수송할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고인이 된 닉슨 전 대통령의 부모가 되살아난다면 대통령이 된 아들 어린 리처드를 키우던 바로 그 옛집으로 영낙없이 착각할 만큼 그의 생가가 옛모습 그대로 복원됐다는 게 그의 계수 클라라 닉슨 여사(70)의 말이다. 이 생가에는 닉슨이 태어났던 바로 그 침대와 그의 형제들과 함께 사용했던 침대들,소년시절의 그의 손때가 묻은 피아노ㆍ책상ㆍ등 높은 의자 등이 그대로 진열된다. 그의 방 침대 머리맡에는 그의 어머니가 걸어주었던 「엄마의 기도」라는 시구가 액자에 담겨 결린다. 벽에 새겨진 닉슨의 동상을 보며 들어가도록 설계된 이 기념관에는 그가 5년반동안 대통령 재임시에 받은 약 3만여점의 각종 선물도 전시된다. 그의 젊은 정치가 시절을 보여주는 전시품 가운데서는 그가 미연방 상원의원에 당선돼 워싱턴의 정가로 출정케하는데 기여한 49년도형 포드사의 머큐리 승용차가 눈길을 끈다. 아이젠하워 대통령 밑에서의 부통령,케네디 대통령과의 대결에서 패배,특히 케네디 대통령과의 네차례에 걸친 정치대토론회의 비디오 테이프가 기념관 내에 설치된 TV세트를 통해 방영되도록 설계돼 있어 그의 집념어린 정치역정을 생동감 있게 재현해 주고 있다. 이 기념관 전시품중의 「하이라이트」는 닉슨이 가장 좋아하는 10인의 세계 정치지도자의 방. 실물크기의 석고상에 그린색 수지가 입혀진 이 「지도자들의 방」에는 윈스턴 처칠,샤를 드골,니키타 흐루시초프,레오니드 브레즈네프 등 내노라 하는 10명의 세계 지도자들이 한 칵테일 파티장에서 담소하는 실물크기의 모습으로 꾸며져 있다. 이 기념관의 끝 출구 근처에서는 닉슨을 백악관에서 물러나게 한 소위 워터게이트사건의 육성이 담긴 테이프가 관람객들에게 직접 당시의 상황을 들려주고 있어 역시 미국다운 일면을 보여준다. 이 밖에도 이 닉슨기념관에는 대통령 재직시의 4천4백만 페이지의 각종 기록들이 전시된다. 집념어린 정치역정 못지 않게 올해 77세의 닉슨은 대통령 도중하차 후에도 8권의 베스트 셀러를 저술하는 저력을 보이면서 「외교전문가」로서 국가에 기여하려 노력하고 있다.
  • 이 북부주민들 “우리도 독립 하련다”(세계의 사회면)

    ◎자치 외치는 「동맹당」 급부상/스위스 방식의 「이 합중국」 전환이 최종목표/「선진 북부」ㆍ「낙후 남부」 해묵은 지역갈등 조짐 이탈리아 북부지역의 완전 자치를 외치는 롬바르디아 동맹당의 인기가 높아감에 따라 「선진 북부」와 「낙후 남부」간의 해묵은 지역갈등이 다시 불붙을 조짐을 보이고 있다. 12세기 북부 도시국가동맹의 이름을 본따 지난 79년 창당된 롬바르디아 동맹당은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소수 극단주의자 집단으로 간주돼 거의 주목을 받지 못했으나 지난 5월 지방선거에서 뜻 밖의 선전을 함으로써 일약 주시의 대상으로 떠올랐다. 롬바르디아 지역에서 전체유권자의 20%로 부터 지지표를 획득,집권 기민당에 이어 2위를 차지한데다 전국 득표율서도 5%를 차지해 기민당 연립정부를 구성하고 있는 5개정당 가운데 3개정당 보다 앞서가는 급성장을 보이자 프란체스코 코시가 대통령이 직접 『국가분열을 획책하는 집단』이라고 비난하고 나설 정도로 정치권에서 롬바르디아 동맹당이 차지하고 있는 비중은 점증하고 있다. 롬바르디아 동맹당이 내걸고 있는 정책목표는 현재의 공화국 체제를 스위스 방식의 연방체제인 「이탈리아 합중국」으로 전환 시키겠다는 것. 롬바르디아 지역을 비롯한 풍요로운 북부지역에 완전 자치권을 부여,비효율적이고 권모술수에만 능한 중앙정부의 간섭을 극소화 하겠다는 주장이다. 롬바르디아 동맹당 총재인 움베르토 부시 상원의원은 『과거 수십년 동안 남부지역의 이익과 정당을 북부지역이 지원해 온 것으로 족하다』고 말하고 북부지역 완전자치의 당위성을 역설하고 있다. 롬바르디아 지역은 1인당 국민소득 1만2천달러로 시칠리아 지역의 2배에 가깝다. 인구는 9백만명으로 전국의 15%를 차지하지만 국민총생산과 납세실적은 전국의 25%를 점하는 데도 납세혜택으로 돌아오는 몫은 18%에 불과,이 지역 주민들의 불만을 사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롬바르디아 동맹당의 완전자치 주장은 로마정부는 국방과 외교에 필요한 최소비용만을 사용하고 나머지 세금은 해당지역 발전을 위해 써야 한다는 일종의 조세저항적 성격도 담고 있다. 롬바르디아 지역당의주가가 오름에 따라 피에몬테와 베네토 등 인근 북부지역에서도 자치확대를 요구하는 지역정당의 인기가 덩달아 치솟고 있다. 그러나 롬바르디아 동맹당의 극구 부인에도 불구하고 이같은 완전자치 요구의 이면에는 남북간의 지역감정이 도사리고 있다는 풀이도 있다. 이탈리아는 1861년 이탈리아왕국으로 통일되기 전까지 오랜 세월동안 무수한 소도시국가로 분열돼 있었다. 경제적으로도 북부지역은 공업위주로 발달해온 데 반해 남부는 농업위주의 낙후사회 임에도 불구,정치적으로는 항상 남부출신들이 행세해온 터. 또 북부지역은 역사적으로 이탈리아 보다는 독일이나 프랑스와 가까운 지정학적 특성을 지니고 있다. 이같은 역사ㆍ경제ㆍ문화적 배경 때문에 상당수의 북부지역 주민들은 이탈리아를 중유럽에 속한 북부와 로마를 포함한 중부,나머지 남부 등 3개 역세권으로 나눠 생각하고 있을 정도다. 북부지역 주민들은 남부지역 주민들을 「테로니」(시골뜨기 촌놈)라고 경멸할 정도로 이곳의 지역감정은 심한 편이다. 지난해 겨울 남부의 나폴리 프로축구팀이 롬바르디아 지역의 밀라노에서 원정경기를 가졌을 때 경기장에는 『히틀러여,유태인들에게 한 것처럼 나폴리인들에게도 행하라』는 대형 현수막이 나붙기도 했다. 북부지역에서는 또 「테로니와 잡견은 출입금지」라는 문구를 내거는 술집이 급속히 늘어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최근들어서는 지난 1950∼1960년대에 일자리를 찾아 북부지역으로 진출,정착한 남부출신들끼리 모여 「남부의 별들」이라는 대항조직을 결성하고 나서 충돌의 조짐마저 보이고 있는 실정이다. 소련 인도 캐나다 유고 등이 소수민족 독립과 자치확대 움직임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것처럼 이탈리아도 세계적인 「유행」의 홍역을 한번쯤은 치러야 할 것 같다.
  • 새 실록 6ㆍ25 김학준:하

    ◎“핵투하도 불사”… 미 으름장에 DMZ설정 동의/“휴전 지체할 수 없다”… 투르먼,맥아더 해임/반공포로 석방으로 한­미 방위조약약 가조인/아이크 대통령 당선ㆍ스탈린 사망후 「정전협상」급진전 ▷제4기◁ 중국군의 남진이 계속되자 맥아더는 과감한 보복조치를 마련했다. 그는 50년 12월30일 본국의 합동참모본부에 대해 ①중국해안의 봉쇄 ②중국본토의 군수산업시설 폭격 ③장개석 군의 파한 ④장개석 군의 중국본토에 대한 견제공격을 건의했다. 그는 미국이 이러한 조치를 취하지 않고 한반도에서 전면철수한다면 중국군의 침공위협은 보다더 중요한 지역에 대해 가중될 것이며 그 결과 보다 많은 전력의 투입이 요청될 것으로 내다보았다. 그러나 합참은 『일본의 방위와 국련군의 전력 보존에 주로 유의하면서 막대한 손실을 방지하기 위해 철수가 필요하다고 판단될 때까지 축차적인 방어작전을 수행하라』고 답변할 뿐이었다. 맥아더는 이 답변을 「명백히」 이해하기 어렵다고 주장하면서 『국련군의 전면철수를 피하기 위해 중국에 대해 보복조치를 취하든지,아니면 일본의 방위와 국련군의 전력보존을 위해 한반도를 포기하든지 양자택일해야 한다』고 맞섰다. 이에 대해 트루먼은 51년 1월13일 『공산군의 침략행위가 시정될 때까지 미국은 정치적으로나 군사적으로 침략의 결과를 결코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세계에 밝혀야 한다』고 전제한 다음 『최악의 경우 국련군은 제주도와 같은 남한 연안의 섬으로 철수해 전투를 계속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후임에 리지웨이대장 맥아더와 본국정부 사이에 이견이 오가는 사이 국련군은 전세를 수습하고 공세로 돌아섰다. 그리하여 국련군은 51년 3월 초순 이후 전선의 주도권을 장악했고 3월15일 서울을 재탈환했으며 3월30일께까지는 38도선까지 밀고 올라갔다. 이로써 한국전쟁을 국지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렸다. 전황이 국련군에게 어느 정도 유리하게 전개되고 무엇보다 전전원상의 회복이 이루어질 것으로 내다보이면서 국련에서는 다시 휴전이 논의되기 시작했다. 한국전쟁에 참가한 서방진영의 국가들도 국련군의 38도선 재북상에 반대하면서 만일 미군이 단독으로라도 재북상하기로 결정한다면 자신들은 한국에서 철수하겠다는 의사마저 나타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트루먼은 중국과의 정치적 협상을 통해 휴전을 성립시키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3월20일 맥아더에게 그러한 취지의 성명이 가까운 장래에 발표될 예정임을 통고했다. 맥아더는 트루먼의 이 결정을 좌절시키기로 결심하고 3월24일 본국정부와의 아무런 협의없이 중국에 대한 공식성명을 발표했는데 중국대륙에의 전면적 확전으로써 한반도문제를 해결지을 수 있을 것임을 암시함으로써 트루먼이 추구하려는 중국과의 협상을 사실상 어렵게 만들었다. 이 성명에 뒤이어 맥아더는 4월5일 하원 공화당 원내총무 조세프 마틴의원이 자신에게 보낸 3월2일자 편지에 대한 답장을 공개하여 트루먼을 더욱 격분시켰다. 아시아 중시정책을 강조하면서 논평을 요구한 마틴의 서한에 대한 이 답장에서 맥아더는 우선 트루먼의 유럽 중시정책을,그리고 유럽을 중시해야 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아시아를 경시하는 경향을 비판했다. 결론적으로그는 『우리는 승리하지 않으면 안된다. 승리를 대신할 수 있는 것은 없다』고 말했다. 맥아더의 3월24일자 공식성명을 보고 그의 해임을 결심했던 투르먼은 더이상 지체할 수 없었다. 그는 4월10일 라디오방송을 통해 맥아더의 해임을 발표하면서 『우리가 한반도에서 추구하고 있는 목표는 제한전에 의한 제3차대전의 방지』라고 선언했다. 맥아더의 후임으로는 8군사령관 리지웨이 대장이 임명됐다. 맥아더의 해임은 미국이 휴전을 향해 움직인다는 명백한 의사의 표시였다. 한편 공산군은 51년 4∼5월 춘계대공세를 폈으나 인명의 큰 손실을 겪었을 뿐이고,이 시점에서 전선은 완전히 교착됐다. 전선이 교착된 51년 5월 중순부터 미국과 국련에서 휴전논의가 활발히 일어났다. 특히 5월17일 에드윈 존슨 미국 상원의원이 국련이 휴전을 이끌도록 촉구하는 결의안을 제출하고 이 제의가 소련의 신문과 방송에 크게 보도된 것을 계기로 휴전논의는 더욱 활기를 띠었다. 예컨대 국련에서 리 사무총장과 캐나다의 레스터 피어슨 외무장관 및 미국의 애치슨 국무장관이 각각 전전원상의 회복이라는 선에서의 휴전안을 제의했다. 소련도 드디어 6월23일 국련대표 말리크의 연설을 통해 휴전에 동의했다. 통일을 염원하던 남­북의 한인들에게는 유감스런 일이었지만 쌍방의 참전국가들의 거의 예외없이 휴전을 바라고 있었다. ▷제5기◁ 이러한 배경에서 미국과 소련이 정전의 원칙에 합의함에 따라 7월8일 개성의 중심지 북방에 있는 지난날 유명했던 유곽에서 국련군쪽과 공산군쪽의 연락장교단에 의한 예비회담이 열렸다. 이어 7월10일 개성에서 본회담이 열렸다. 국련군쪽의 수석대표는 미해군 극동사령관 조이 제독이었다. 리지웨이 총사령관이 직접 뽑았다. 정전회담에서 공산군 대표들이 국련군 대표들을 자극해 국련군 대표들로 하여금 공공연하게 화를 내게 하여 회의장을 뛰쳐나가게 만드는 「충동작전」을 쓰거나 정반대로 몇시간씩 끌면서 지치게 만드는 「권태전술」을 쓸 것이라고 계산한 리지웨이는 따라서 국련군 수석대표는 어떠한 도발적 언동에 대해서도 침착하면서도 강경하게 맞설 수 있는 인물이어야 한다고판단했다. 즉 『6시간정도 앉아 있으면서도 눈 한번 깜짝하지 않고 오줌누러 갈 생각조차 하지 않는』협상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리지웨이에게 조이는 적임이었다. 조이는 제2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많은 훈장을 받았고 공산주의자들과 공산주의 이데올로기를 증오하고 있었으며 적을 굴복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은 적을 파괴하는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중ㆍ소에 “전면전”통첩 조이 수석대표를 보좌할 대표로 리지웨이는 2차대전의 베테랑들로부터 뽑았다. 유럽전선에서 보병연대를 지휘했었고 이때 미8군 참모차장으로 있던 호지스 소장,북아프리카에서 공중전을 지휘했었고 이때 미극동군 부사령관으로 있던 크레이기 소장,태평양전쟁에서 구축함전투를 대담하게 지휘해 용맹을 떨쳤었고 이때 미극동해군 참모차장으로 있던 버크제독이 선발됐다. 한국군으로부터는 제1군단장 백선엽소장이 선발됐다. 공산군쪽 수석대표는 남일중장이었다. 남일중장을 보좌하는 북한군대표는 전선사령부 총참모장 이상조 육군소장이었다. 정전회담에서 그는 파리가 얼굴에 앉아도 꼼짝 않고 앉아 「강철같은 자기억제」를 보여주려고 노력한 사람으로 알려졌다. 또 한 사람의 북한군 대표는 북한 육군 제1군단 총참모장 장평산 소장이었다. 중국군에서는 사방 소장과 등화 중장이 대표로 참가했다. 이들 가운데 사방이 사실상의 수석대표였고 남일은 이름이 수석대표였지 실제에 있어서는 사방의 지휘를 받는 것 같다고 국련군 쪽에서는 보았다. 회담도중 그는 동료 대표들과의 상의없이 발언했고 선전적인 문구 같은 것도 사용함이 없이 직설적으로 말했다. 양쪽 대표단들은 신경전을 거쳐 7월26일 다음과 같은 의제에 합의했다. ①전투행위를 정지하는 기본조건 아래 양군 사이에 비무장 지대를 설치하기 위해 군사분계선을 설정하는 문제. ②정전감시기구의 구성과 권한 및 기능을 포함하여 정전을 성립시키기 위한 구체적인 조처들을 결정짓는 문제. ③포로에 관한 결정. ④외국군대의 철수와 한반도 문제의 평화적 해결에 관해 쌍방에 관련된 나라들의 정부에 권고하는 문제. 의제에 대한 합의와 더불어 7월28일 첫번째 의제에 대한 토론에 들어갔다. 처음에는 합의가 쉬울 것 같아 버크 제독 같은 이는 본국의 아내에게 『가을이 되어 사과가 익었을 때는 나는 과수원이 있는 이곳에 있지 않을 것』이라고 썼는데 회담은 길어지면서 10월25일부터 회담장소를 판문점으로 옮긴다는 것 정도에 겨우 합의할 수 있었다. 회담이 이렇게 길어지면서 서방 참전국들은 초조해졌다. 이점을 간파한 공산군쪽은 자신들이 유리한 입장에 있다는 자신감에서 국련군쪽 대표들에게 모욕적인 용어마저 썼다. 호지스 소장을 「거북이 알」이라고 불렀고 조이 수석대표에 대해서는 『이름이 누구인지는 모르겠으나 어떻든 수석대표인 사람』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리지웨이는 견디기 어려웠다. 『이처럼 공개적으로 모욕하고 나오는 적에게 양보를 해야 한다는 말인가. 우리에게는 부드러운 비단보다 강한 쇠가 필요하다』라고 본국정부에 호소했다. 이에 미국은 소련에게 『공산군쪽이 협상에 진전을 보이지 않는다면 미국은 만주의 공산기지를 폭격하고 중국의 해안을 봉쇄하여 필요하다면 소련과 전면전에 돌입할 것』이라는 「공갈」을 전달했다. 이와 동시에 트루먼은 중국에 대해 핵무기를 쓰는 문제를 검토했다. 미국의 이와 같은 강경한 자세를 보면서 공산군쪽은 한발 물러서 『현재 쌍방의 접촉선을 군사분계선으로 삼는다는 원칙아래 앞으로 체결될 정전협정이 지정하는 시간에 쌍방은 이 분계선으로부터 2㎞씩 철수하여 그 지역을 정전 동안 비무장화 한다』는 국련군쪽 제의를 받아들였다. 이때가 52년 1월27일이었다. 이처럼 군사분계선에 관한 합의가 일단 이루어졌다는 것은 한국전쟁의 전체 흐름속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군사분계선 문제에 매듭이 지어지면서 쌍방은 「외국군대의 철수와 한반도문제의 평화적 해결에 관해 쌍방에 관련된 나라들의 정부들에 권고하는 문제」를 다뤄 나갔는데 여기에 대해서는 합의가 쉽게 이뤄졌다. 즉 정전회담 발효 3개월 안에 쌍방에 관련된 나라들의 정부사이에 「고위 정치회담」을 열기로 한 것이다. 정전의 세부사항에 대한 협상에서도 진전이 있었다. 52년 5월2일 양쪽은 스웨덴ㆍ스위스ㆍ폴란드ㆍ체코슬로바키아의 네 나라로써 중립국 감시위원단을 구성하기로 합의한 것이다. 공산군쪽은 소련을 중립국이라고 우기면서 중립국 감시위원단에 포함시키려고 애를 썼으나 끝내 좌절되고 말았다. 나머지 문제는 포로교환의 문제였다. 정전이 성립되면 포로교환은 당연히 쉽게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에 중요한 문제들이 모두 해결된 이 마당에 이 문제는 빨리 매듭지어져 정전협정이 곧 체결될 것으로 기대됐다. ○2년 1개월만에 매듭 국련군쪽은 우선 「자발적인 송환」의 원칙을 제의했다. 국련군에 포로로 잡힌 공산군에게 돌아갈 것인지 남을 것인지 선택할 권한을 주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공산군쪽은 「자동송환」의 원칙을 내세웠다. 모든 포로들은 포로 개개인의 의사에 관계없이 무조건 송환되어야 한다는 것으로 공산군쪽은 이 원칙을 관철시켜야 국련군쪽에 잡혀 있는 자신들의 장병들이 서방세계를 선택하지 않고 전원 돌아올 것이라고 계산했기 때문이다. 협상이 오래 끌면서 공산군쪽은 국련군쪽이 세균전을 펴고 있다는 선전전을 벌이기도 했다. 한편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는 공산포로들이 포로수용소 사령관 도드 준장을 납치하는 사건을 일이키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국련군쪽은 북폭을 강화하기도 했다. 협상이 지지부진한 가운데 미국에서는 52년 11월 대통령선거가 치러져 「조기정전」을 내세운 공화당의 아이젠하워가 당선됐다. 이로써 53년 1월 공화당 행정부가 출범하게 되었으며,휴전협상에 박차를 가하게 되었다. 소련에서는 53년 3월 스탈린이 죽으면서 정전을 향한 발걸음을 빨리 했다. 정전협상의 가능성이 매우 높아지자 이대통령은 통일의 기회가 사라진다는 실망감 속에서 6월19일 국련군에 수용되어 있는 공산포로들 가운데 송환을 거부하는 반공포로 2만5천여명을 극비의 작전을 통해 과감하게 석방했다. 이대통령을 무마하기 위해 미국은 국무부 극동담당 차관보 로버트슨을 대통령 특사로 파한했으며 이대통령이 요구하는 한­미 상호방위조약에 가조인하게 했다. 한­미간의 합의가 성립됨으로써 정전협정의 체결을 위한 길은 완전히 열렸다. 그리하여 7월27일 휴전협정은 판문점의 「평화의 천막」안에서 조인됐다. 2년 1개월 여의 긴 시간동안 5백75회의 공식회의를 갖고 1천8백여만 단어를 소비한 다음에야 매듭지어진 것이다.
  • 미,6ㆍ25 계기로 초강대국 부상/WP지,「한국전 40년」재조명

    ◎국방비 지출 3배ㆍ병력수 6배 늘어나/외교정책 반공으로 선회… 냉전 본격화 미국에서 한국전은 「잊혀진 전쟁」으로 불려진다. 승리의 영광도 패배의 치욕도 남기지 않아 오래전에 이미 미국인들의 뇌리에서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전은 미국의 정치ㆍ군사ㆍ세계전략 등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전쟁이었다고 24일자 워싱턴 포스트가 한국전 발발 40주년 특집 기사에서 회고했다. 다음은 EJ 다이오네 기자가 쓴 이 기사의 요약이다. 한국전은 2차대전 처럼 승리의 영광을 안겨주지 않았지만 월남전 처럼 패배의 치욕도 남기지 않았다. 초기를 제외하면 한국전은 특별히 인기있는 전쟁도 아니었고,또 월남전처럼 극심한 국론 분열도 야기 하지 않았다. 결말도 나지 않고 인식도 잘못된 한국전은 그후 미국이 50년대의 번영을 구가하며 세계의 초강대국으로 뻗어 나가자 재빨리 대중의 기억 속에서 사라졌다. 그래서 한국전은 미국인들에게 「잊혀진 전쟁」이 돼버렸다. 한국전은 미국을 크게 바꿔 놓았다. 미국의 정치,대통령권한에 대한 이해,군의 지위,그리고 세계에서의 미국의 역할 등에 중요한 변화를 초래했다. 한국전은 초강대국으로서의 미국의 위치를 확인해 주었고,또한 월남전으로 이어지는 길을 깔아 놓았다. 어느 면에서 이 잊혀진 전쟁은 미국 전사상 가장 긴 파장의 영향을 미친 전쟁이었다. 중도 좌파 정책연구소의 리처드 바네트는 『장차 한국전은 월남전보다 더 중요하게 회고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견해는 논란의 여지가 많지만,역사가들 사이에서 토대를 넓혀 가고 있다. 몇가지 수치만 보더라도 한국전은 미국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 왔음을 알 수 있다. 미군사비 지출은 49년의 1백40억달러에서 53년엔 4백40억달러로 늘어났다. 한국전이 터진 50년 6월 미국은 59만명의 병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한국전이 휴전된 53년에 이 숫자는 3백60만명이 되었다. 북한 공산주의자들의 남한침공은 당시 트루먼 정부가 사상 최대의 군비 증강을 추진하는데 필요한 「명백한 군사적 위협의 실존」증거를 제공했다. 역사학자이며 50년대에 출간된 「미국 전성시대」의 저자인 윌리엄 오닐은 『미국의 한국전 참전은 2차대전 후 조지케넌이 제창한 대소 봉쇄정책의 골간 수정을 보여준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중국을 공산주의자 수중에 넘겨 주었다는 비난 속에 대소 자세를 경화하고 있던 트루먼 행정부는 북한의 남침 배후에 소련의 스탈린이 도사리고 있는 것으로 확신하고 한국전에 신속히 대응했다. 트루먼은 유엔의 한국 파병 결의를 내세워 전쟁 선포에 관한 의회 승인을 구하지 않았다. 냉전의 중요한 선례가 된 이같은 처사는 월남전 기간중 큰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한국전은 또 미 공화당에서 고립주의 세력을 약화시켜 공화당 보수파의 대외정책의 근간을 고립주의에서 반공으로 바꾸게 했으며,이러한 변화속에 상원의원 매카시의 공산주의 탄압 입장을 강화시켰다. 역사학자 존 패트릭(캘리포니아대)은 매카시즘을 『전쟁의 성취도가 결여된데 따른 심리적ㆍ정치적 좌절의 소산』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맥아더 장군이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시켜 북한군을 38도선 이북으로 몰아냈을때 전쟁을 종결했다면 미국은 신속한 승리를 주장할 수 있었을것이다. 53년 7월27일 휴전협정 체결때까지 한국전에서 미국인 남녀 3만3천6백29명이 죽었고 10만3천명이 부상했다. 한국전 종전 공약으로 대통령에 당선된 아이젠하워가 휴전이라는 모호한 결론을 성립시킨후 『우리는 하나의 전장에서 휴전을 이뤘을 뿐 세계 평화는 정착시키지 못했다』고 선언했을 때 그는 한국전이 후에 월남전까지 이어진 긴 냉전의 시작에 불과했음을 간파하고 있었다.〈워싱턴=김호준특파원〉
  • 「주한미군철수」 팽팽한 찬반공방/미 캐토연구소 「한미동맹」 세미나

    ◎경제력 북보다 우위… 자위능력 보유 철군론/군사균형 감안,2천년까진 어려워 반대론/“군사력 감축을 남북관계의 지렛대로 이용 바람직” 미국의 민간정책연구단체인 캐토연구소가 한국전 발발 40주년에 즈음하여 21일 워싱턴에서 한미 양국의 학자 및 관계자 1백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한미 동맹관계­변화의 시기」라는 주제로 가진 세미나에서 캐토연구소측의 주제발표자인 테드 카펜더(대외정책연구부장)와 둑 반도우(수석연구원) 등은 주한미군의 전면철수와 한미 상호방위조약의 일방적인 폐기를 주장,열띤 찬반논쟁을 촉발시켰다. 카펜더와 반도우는 『미국의 위험부담을 정당화시킬 만큼 한국은 미국에게 경제적 전략적으로 중요한 존재가 아니다』 『한국은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경제적 군사적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며 전면철군과 방위조약 폐기를 제기했다. 셀리그 헤리슨(카네기국제평화재단 수석연구원)은 『주한미군이 남한에선 민주화를 방해하고 북한에선 군부중심의 강경파를 강화시키는 요인』이라고 주장하면서 『군사전략상으로도 이제미국은 소련을 겨냥한 군대를 한국에 둘 필요가 없다』고 부연했다. 서대숙교수(하와이대)는 『미국과 북한의 적대관계는 바꿔야한다』고 말하고 『미국이 한국에서 군대를 철수함으로써 한반도 긴장완화에 기여하고 남북한에 공평한 정책을 채택해야할 최선의 시점은 바로 지금』이라고 강조했다. 이에대해 윌리엄 테일러(국제전략문제연구센터부소장)는 『한반도의 군사균형이 언젠가는 한국우위로 바뀌겠지만 문제는 그같은 분수령이 2000년 이전엔 올것 같지 않다는 데 있다』고 진단하고 『따라서 미국은 이 지역의 군사력 조정에 극도의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제임스 그레거(버클리대교수)도 『현재 동아시아를 지배하고 있는 위험한 환경을 미국이 적절히 평가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성급한 철군론에 제동을 걸었다. 김창수(한국국방문제연구소 연구원)는 『한반도평화정착과 통일촉진을 위해선 남북한군축이 집선무』라고 강조하면서도 『주한미군감축의 규모와 시기설정은 마지막 단계에 생각할 수 있는 문제』라고 철군 신중론을 폈다. 오찬 연사로 초빙된 티모시 워드상원의원(민주ㆍ콜로라도주)은 『90년대에 한반도에서 긍정적 변화를 유도하기 위해 한미 양국은 주한미군감축을 지렛대로 삼아 남북관계 개선정책을 공동개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제의했다. 한편 데릴 플렁크(헤리티지재단객원연구원)는 한소 수교시기에 대해 『소련이 북한의 영공ㆍ영해를 이용하는 군사적 고려를 중시하고 있는 만큼 몇년이 걸릴지도 모른다』고 분석하고 『북한이 서울과의 긴장완화에 의욕을 보이는 시기가 도래해야만 한소수교가 가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음은 주요논문 요지다. ◇둑 반도우=미국은 의미가 퇴색해 가는 한미 상호방위조약을 폐기해야 하며 주한미군의 철수를 개시해야 한다. 한국은 경제력ㆍ인구 등 거의 모든 면에서 북한을 크게 앞서고 있으며 군사력 면에서도 한국의 우위도달은 시간문제다. 소련및 동구와의 관계개선,중국과의 접근 등으로 한국의 국제적 위상이 더욱 확립돼 가고 있는데 비해 북한의 고립화는 더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젊은 세대간에는 반미감정이 확산되고 있으며 한미간의 무역마찰은 친미적 성향의 기업인들과 중산층마저도 미국에 불만을 갖게끔 만들고 있다. 기존의 한미관계는 균형을 잃고 있으며 따라서 한미 군사동맹관계도 더이상 존재이유가 없다. 미국의 자동개입이 보장돼 있는 한 한국은 방위책임의 확대를 원치 않는 것이 당연하다. 한국방위는 한국인 스스로가 떠맡아야 한다. 북한은 이제 위협적 존재가 아니다. 한국이 미군을 필요로 하던 과거의 상황은 변화됐으며 이제 한반도의 분쟁은 완전히 한국화 돼야 한다. ◇테드 카펜더=한국의 안보는 흔히 미국의 안보이해관계에 대단히 「결정적」인 것으로 얘기되어 왔다. 그러나 이는 묵은 냉전식 사고의 산물이다. 미국에 대한 안보공약의 비용과 위험부담을 정당화시킬 만큼 한국은 경제적으로 전략적으로 미국에게 중요하지가 않다. 한국이 미국의 중요한 무역상대국이라지만 최악의 경우 전체교역이 갑자기 끊어진다해도 미국의 거대한 5조달러 경제에는 결정적인 타격을 주지 못하며 한국을 중요한 전략적 자신의 하나로 간주케 한 전진배치의 냉전 독트린개념도 중요성을 크게 잃었다. 이런 상황에서 한반도의 군사충돌은 남북한간의 지역분쟁이지 세계적인 전략에 영향을 주는 분쟁으로 받아들일 필요도,받아들여져서도 안된다. 따라서 부시행정부는 주변적 이해관계를 결정적인 것으로 혼동해서는 안되며 주한미군은 모두 철수시키고 한국이 원하든 원치않든,남북한간에 긴장이 있든 없든 한미 상호방위조약을 동결시키는 결정을 내려야 한다. ◇윌리엄 테일러=공산주의의 황혼,그리고 고르바초프의 새 사고에 영향받아 한반도가 군사력 삭감의 인기있는 한 표적이 되고 있으나 이는 기본적으로 방향이 잘못된 것이다. 한국군은 지난 40년 전보다는 훨씬 강해졌지만 북한은 사실상 모든 분야에서 한국에 비해 여전히 군사적 우위를 누리고 있다. 한반도의 군사균형이 언젠가는 한국우위로 바뀌겠지만 문제는 그같은 분수령이 2000년 이전에는 올 것 같지는 않다는 데 있다. 그 사이에 북한은 그들 맹방의 도움없이도 한국에 대해 기습공격을 감행할 수 있는 능력을 이미 갖추고 있다는 것이 거의 모든 정보기관들의 분석평가다. 따라서 미국은 이 지역 군사력조정에 극도의 신중을 기해야 하며 주한미군의 감축이 꼭 불가피할 경우 한국정부와 협의,북한 및 소련측에서도 그에 상응하는 군사력 감축을 보장받는 선에서 감축이 이뤄지도록 해야한다. 억지력을 멀리서 유지하려는 전략조정은 북한의 오판을 불러올 뿐이다. ◇제임스 그리거=소련은 태평양지역에 관한한 그들의 공격력을 전혀 감소시키지 않고 있다. 그들은 이지역 군사력을 종전 그대로 유지하고 있을 뿐 아니라 태평양함대를 증강시키고 있다. 최소한 단기적으로 볼 때 동북아에 있어서 소련군사력은 미국과 지역국가들의 이익에 대한 잠재적 위협으로 남을 것이다. 아울러 북한도 장차 모스크바정권의 장래가 어떻게 변하든 지속적인 군사력 증강및 독자적 행동으로 한반도의 불안정상태를 증가시키고 있을 뿐 아니라 소련의 해공군에 대해 기항권을 제공함으로써 동남아에 대한 우려까지 초래하고 있다. 가까운 장래에 어떤 상황이 발생하든 그리고 설사 워싱턴이 국제관계에 과격한 변화를 감행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서태평양지역에서 미군에 대한 대폭 감축이 있을 경우 재단의 위험성은 순식간에 커질 수 있다.
  • 한국전 40돌 맞아 재조명 미 유에스 뉴스지

    ◎“잊혀진 전쟁”6ㆍ25… 「공산화 도미노」막았다/동ㆍ서 이념대립서 군사충돌로 급선회/「값비싼 희생」은 동구민주화와 연계성/“전쟁의 물적ㆍ심리적 유산은 한국인 모든 세대에 깊이 자리” 미국의 시사주간 유에스 뉴스 앤드 월드 리포트지는 6ㆍ25 40주년을 맞아 「잊혀진 전쟁」을 재조명하고 이 전쟁이 남긴 유산과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남북대결의 현실을 분석하는 특집기사를 6월25일자 카버스토리로 다뤘다. 장장 14쪽에 이르는 유에스 뉴스지의 특집기사를 요약한다. 지금부터 꼭 40년전 장마비가 내리는 아침에 시작돼 그후 37개월동안 이미 수탈당한 아시아 변방의 반도를 뒤흔든 야만적인 투쟁은 마지막 전쟁(제2차 세계대전)의 후기인 동시에 다음에 일어날 전쟁의 서문이었다. 이것은 갑자기 열전으로 변한 냉전이었고 공산주의 사상 가장 담대한 「국제해방전쟁」이었으며 유엔으로서는 처음이자 아마도 마지막일 「경찰업무」였다. 판문점이라는 무인지대의 황량한 「휴전마을」에서 교착상태로 끝날 때까지 이 전쟁에는 22개국이 참전했고5백만명의 인명이 이로 인해 희생됐으며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는 정치적ㆍ경제적 소요를 탄생시켰다. 그러나 발발 40년이 지난 지금 한국전쟁은 미국인들의 기억속에 미국의 킬링필드였던 안개낀 산들만큼이나 아물거리는 존재로 남아있다. 폭찹힐이나 하트브레이크 리지에서,또는 장진호에서 퇴각하는 길에 쓰러진 수많은 사람들의 죽음에 값하는 기념비는 어디에 있는가? 베를린 장벽이 유럽 분단의 상징이라면 남북한을 가르는 경계선은 아시아의 베를린 장벽이다.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과 한국의 노태우대통령이 2주전 샌프란시스코에서 만났을때 이들은 냉전의 가장 뚜렷한 흔적인 한국의 분단상태를 언젠가는 끝낼 수도 있을 해빙작업을 시작한 것인지도 모른다. 더구나 아시아에서 화해의 봄이 무르익고 있는 지금 공산주의 양대 종주국인 중국과 소련은 자신들이 지난 1950년 파괴하려 했고 그후 40년간 무시하고 비난하고 전복시키려 애써 왔던 한국과의 외교재개를 위한 새로운 조치들을 취하고 있다. ▷냉전의 모델◁ 한국전은 유럽일변도였던 미국의 관심을 태평양쪽으로 되돌렸다. 2차 대전후 극동에 대한 미국의 관심은 약화되기 시작했었다. 트루먼행정부는 「중공」과의 타협에 접근하게 된다. 당시 칼럼니스트 월터 리프먼은 『아시아는 서방의 군사적 영향력,경제력 통제 및 사상적 영향력에서 벗어나 있다』고 기술했다. 한국전이 중국과 소련간 불화의 서막이었다는 증거가 현재 나타나고는 있지만 당시 한국전은 획일적 공산주의의 이미지를 강화했으며 미정책입안자로 하여금 이때문에 오랜기간 골머리를 앓게 해왔다. 한국전은 무엇보다도 냉전을 정치ㆍ이념적 성격에서 군사충돌로 변모시켰다. 이는 전후 봉쇄정책의 촉매일뿐 아니라 드와이트 아이젠하워가 표현한대로 「군사산업 복합체」를 형성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1951회계연도 미군사예산은 1백40억달러(책정기준)에서 53회계연도에는 5백40억달러로 상승된다. 보다 놀라운 점은 미국의 대외 원조계획의 군사화이다. 1950회계연도의 경우 군사원조가 대외원조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12%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는 60회계연도에 41%로높아졌다. 한국전은 또한 냉전기간을 통해 미국의 외교정책을 괴롭혀온 기본적인 모순을 가져다 주었다. 미국은 한편으로 국내에서 악의에 찬 반공주의에 반대하는 것처럼 행동하면서 한편에서는 공산주의 침략이 이루어지는 세계 어디서고 이를 퇴치한다는 결의를 다짐하도록 만들었다. 50년 9월30일 북한이 남침을 시작한지 3달째가 되는 날 트루먼은 국가안보회의문서 68호에 서명한다. 이 문서는 『소련의 강대국 부상을 막기위해 미국은 희생이 어떠하더라도 국내외에서 민주주의를 수호할 결의를 갖추어야 한다』고 언급한다. ▷미 극우세력의 득세◁ 다른 수준에서 한국전은 핵시대(소련은 전쟁발발 3개월전 첫 핵실험에 성공했음을 발표한다)에서 전쟁이 가열돼서는 안된다는 점을 상기시켜준 전쟁이었다. 이같은 새로운 「제한전」의 개념은 그러나 중국을 핵공격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온 더글러스 맥아더장군에게는 맞지 않는 것이었다. 51년 3월 맥아더는 중국 로비스트였던 조셉 마틴하원의원에게 보낸 서한에서 트루먼의 제한전 개념을 공개적으로통박한다. 그는 『공산주의가 세계무대 장악을 위해 준동하는 지역이 아시아』임을 상기시키면서 『아시아가 떨어지면 유럽도 공산화를 피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이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명령에 순종하는 외에는 대안이 없었다. 트르먼은 마침내 맥아더를 해임하나 공산주의 「격퇴」에 관한 논란은 끊이지 않는다. 맥아더가 밀려난데 자극받아 존 맥가시상원의원은 공산주의 동조세력이 트루먼 행정부안에 도사리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이게 된다. 그로부터 13년후 피그만사건이 있고난후 미국이 아시아에서 또다른 제한전으로 치달을 무렵 배리 골드워터상원의원은 64년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자유방위를 위한 극단주의는 악이 아니다』라고 선언함으로써 맥아더를 상기시켰다. 이같은 우익노선은 마침내 로널드 레이건에 의해 미국의 정책으로 채택된다. ▷잊혀진 전쟁◁ 한국전의 여파가 오래 지속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전에 관한 한 가장 놀라운 것은 거의 잊혀졌다는 사실이다. 한국전에서 전사한 미군 병사수는 5만4천여명으로 한 세대후의 베트남전의 미군희생자 5만8천명에 거의 육박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반 미국인들의 한국전에 대한 기억은 뚜렷한 것이 없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과 일본으로부터 무조건 항복을 받아낸 사람들에게 북한과 중국을 상대로 싸운 전쟁에서 비겼다는 사실은 결코 달갑지 않는 일이었을 것이 분명하다. 트루먼대통령은 ▲징집연장 ▲세금인상 ▲임금ㆍ물가 통제부과 등을 취했으나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상황에 비교하면 국내의 피해는 극히 미미했다고 하겠다. 또 베트남전이 TV를 통해 대대적으로 소개된 것에 비하면 한국전은 신문에나 조금 보도되는 등 일반인들의 관심밖의 일이다. 한국전이 끝난지 40년이 지난 지금 냉전이 종식되고 있는 현실을 되돌아 보건대 한국의 산하에서 치른 희생과 최근 프라하,바르샤바,부다페스트에서의 민주주의 태동은 분명한 연계성을 갖고 있다. 미국의 봉쇄정책은 성공했으며 미국과 우방국들은 한국에서 공산주의의 침공을 저지하기 위한 값비싼 희생을 치른 것이 분명하다. 최종적인 결과를 볼때 그 희생이 가치 있는 것이었다고 역사는 결론을 내릴 것이 분명하다. ▷계속되는 남북대결◁ 한국전쟁은 총성이 멈춘지 1세대가 지났지만 아직도 남북한 국민들의 생활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국이 경제기적을 거두고 한소 정상회담이 열렸음에도 불구하고 전쟁의 물적ㆍ심리적 유산은 모든 세대와 사회계급에 걸쳐 깊이 자리잡고 있다. 도쿄에서 발행되는 친북한신문의 편집인 손진형씨는 『전쟁은 민족 최대의 비극』이었다고 말한다. 휴전된지 37년이 되도록 남북한은 아직도 기술적으로 전쟁상태이며 1백51마일 휴전선에는 1백만의 병력이 마주 대하고 있다. 한국의 영화관에서는 영화상영전에 간첩과 공산주의자를 113으로 신고하라는 자막이 계속해서 나오고 있다. 북에서는 김일성이 또다른 전쟁 가능성을 내세워 권력을 유지하고 있다. 모든 북한주민은 매년 열리는 한미 합동군사훈련 기간동안 전투비상체제하에 놓인다. 김일성은 『미제국주의자와의 전쟁경험은 금과도 바꿀 수 없는 귀중한 경험』이라고 말했다. 남쪽에서는 전쟁이 재벌이라는 신흥기업군이 자랄 수 있는 혼란스럽고 독점적인 시장을 마련해 주었다. 전쟁은 남북을 합쳐 1백50만명의 사망자와 실종자를 낳았으며 수백만명의 인구가 고향을 떠나게 만들었다. 인구의 대량이동은 도시화를 촉진시켰다. 전쟁이 미친 가장 큰 영향은 남북 모두 군인들이 정치권력을 쥐도록 만든 점이다. 남에는 장성출신의 대통령이 3명이나 되고 그중 2명은 쿠데타로 집권했다. 북에서는 전현직 고위 장교들이 김일성의 강력한 지지그룹을 형성하고 있으며 당의 고위직에 앉아 있다. 경희대 나종일대학원장은 『전쟁은 우리가 정치적으로 성숙되지 못했음을 보여줬다. 우리는 우리의 문제들을 군사적인 수단과 독재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라고 지적한다. 아직도 남북 모두에게 분단상황은 마음속에 굳게 자리잡고 있으며 남한은 독일통일방식의 단계적 통일을,북한은 1국2체제 방식을 내놓고 있다. 한국전쟁의 사회적 영향을 연구한 서울대 김경동교수는 『전쟁이 왜,어떻게 발발했는지 분명히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 우리는 당시 전쟁을 막을 통제능력이 거의 없었다』라고 진단한다. 전쟁이 한국민들에게 가치 있었다고 한다면 그것은 적어도 남한은 자신들이 1950년에는 갖지 못했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할 힘을 갖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 지원자 격감… 미 여자대 “존폐위기”(세계의 사회면)

    ◎운영난에 공학전환 시도… 재학생은 반발/60년 2백98개대서 지금은 98개로 줄어 미국의 여자대학들이 고민을 하고 있다. 지원자가 줄어들고 있기때문이다. 1백수십년의 오랜전통을 지켜 계속 여학생만의 대학으로 남아 있자니 운영이 어렵고,남학생을 받아들여 남녀공학으로 전환하자니 재학생들의 반대가 거세다. 2주전부터 보스턴 시내의 시몬즈 여자대학 기숙사 건물에는 남녀공학으로의 전환을 반대하는 갖가지 현수막이 나붙었다. 이는 캘리포니아의 오클랜드에 있는 자매학교 밀즈 여자대학 학생들의 남녀공학 반대 투쟁을 지원하기 위한 것이다. 밀즈 여대 이사회가 대학 운영난을 타개하기 위해 91학년도부터 남학생도 뽑기로 결정하자 밀즈여대 학생들은 「남녀공학할 바엔 차라리 폐교를」이라는 표어까지 내걸고 반대하고 있다. 보스턴 근교의 웰즐리 여대 학생들도 이 결정을 재고해 주도록 8백명이 서명한 건의서를 밀즈 여대 이사회에 보냈다. 웰즐리 여대는 일부 학생들이 대통령 부인 바바라 부시 여사가 졸업식에 연사로 오는 것을 반대하여 요즘 이목을 끌었던 대학이다. (본보 5월7일자 보도)밀즈 여대이사회는 웰즐리 학생들의 건의를 받고 남녀공학 결정을 재론하기로 한 것으로 전해졌다. 여자대학들은 일반 대학들이 여학생을 입학시키지 않던 시절에 이 차별에 대한 반발로 세워졌기 때문에 그 역사는 대체로 1백년이 넘는다. 이제 곧 여자대학 명단에서 빠질 밀즈대학도 1백38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대학이 남녀 차별없이 입학시키는 시대가 되면서 여자대학의 중요성이 예전과 같지는 않게 되었다. 1960년 2백98개였던 미국내 여자대학은 30년이 지난 오늘날 98개만 남아 있다. 이 가운데 11개가 매사추세츠주에 있는데 보스턴 지역에는 래디클리프ㆍ웰즐리ㆍ시몬즈ㆍ에마누엘ㆍ레지스ㆍ레즐리 대학등이 있다. 지금의 시대에도 여자대학이 있어야 하느냐 하는 물음에 여자대학 학생들은 당연히 「그렇다」고 말한다. 남녀공학 대학에 가면 여학생은 항상 뒷전으로 밀려 불리한 대접을 받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여자대학을 선택함으로써 이 차별을 피할 수 있으며 이 선택권이 박탈되어서는 안된다는 주장이다. 이 학생들의 남녀공학 반대는 교육현장에서 아직도 여성들이 차별을 받고 있는데 대한 항변으로 받아들여 지고 있다. 그 불리한 대접이란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중요한 자리는 남학생들이 차지하여 여학생이 지도력을 기를 기회가 없다 ▲강의실에서 남학생과 여학생이 동시에 손을 들면 교수는 본능적으로 남학생을 지명한다 ▲여학생의 발언은 덜 중요하게 받아들여진다. 이러한 불평은 많은 연구자들에의해 사실로 밝혀졌다. 남녀공학대학 강의실에서의 불평등은 여자교수가 가르칠 때에도 마찬가지라는 것도 밝혀졌다. 또한 이러한 차별은 유치원 시절에서부터 시작되고 있다고 지적되고 있다. 아메리칸 대학의 데이비드 새드커 교수와 마이라 새드커교수(둘은 부부임)가 지난 10년간 교실에서의 성차별에 대해 연구했는데,이들은 남학생이 교사의 더많은 주목을 받고 더 많이 질문하거나 답할 기회를 얻고 더많이 칭찬받거나 나무람받고 교사의 더 많은 도움을 받는다는 것을 구체적으로 밝혀냈다. 고등학생들을 보면 입학 때 성적이 좋았던 여학생이 졸업할 때는 남학생들에게 모든 면에서 뒤떨어지고 있다고 새드커교수는 지적했다. 여자대학 옹호론자들은 여자대학에서 여학생들이 더욱 자신감과 성취감을 지니고 공부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퍼스트 레이디가 되지말고 대통령이 되라는 것이 웰즐리 여대 같은 곳의 기풍이라고 한다. 실제로 크게 성공한 여류명사들이 대개 여자대학 출신들이라는 것도 이들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여자대학을 나온 제럴린 페라로(매리마운트 여대)는 여성 최초의 부통령 출마자가 되었고,바바라 미컬스키(마운트 세인트 애그네스 여대)등 여성 상원의원의 반수가 여자대학 출신이며,작가 주디스크랜츠는 웰즐리여대,신문기고가 엘렌 굿맨은 레디클리프 여대를 나왔다. 막강한 텔레비전 뉴스 시간 진행자 바바라 월터즈와 다이앤 소여도 여자대학 출신이다. 여자대학 학생들 모두가 남녀공학을 반대하지만,그 대학의 교수들 가운데는 여학생만의 교육환경 자체부터가 문제있는 것이며 남녀공학 강의실이 훨씬 활기가 있다고 말하는 이도 있다.
  • 내무ㆍ재무 역임한 여당의“기둥”/콜롬비아 새대통령 가비리아

    ◎마약문제강경… “암살표적 1호” 콜롬비아 집권 자유당 후보이자 마약 밀매단 소탕의 열렬한 지지자인 세사르 가비리아 트루히요 후보(43)가 27일 실시된 콜롬비아 대통령 선거에서 총 유효투표의 47.3%를 획득,26.8%의 지지를 얻는데 그친 사회주의 보수계 정당인 국민구조운동(MSN)의 알바로고메스 우르타도 후보(71)를 물리치고 당선이 확정됐다. 집권 자유당과 현정부내에 요직을 두루 거친 경제전문가로 콜롬비아의 「새 세대의 희망」으로 일컬어지는 가비리아는 지난 74년 수도 보고타 서쪽 약 2백㎞ 떨어진 커피재배 페레이라시에서 하원의원에 당선되면서 정치무대에 등장했다. 40대에 하원의장을 지냈으며 현 비르힐리오 바르코대통령 정부내에서 재무장관(86년)과 내무장관(87∼89년)을 역임한 그는 지난해 8월18일 자유당의 대통령후보였던 루이스 카를로스 갈란 상원의원이 마약밀매조직에 의해 암살될 때까지 선거운동을 지휘했었다. 폭력에 대해서는 절대 양보할 수 없다는 신념을 지닌 것으로 알려진 그는 마약밀매조직과 좌익게릴라문제에 대한 강경입장 때문에 이미 「암살표적 제1호」가 되고 있다.
  • 루마니아,오늘 총선

    【부쿠레슈티 AP 로이터 연합】 루마니아가 20일 53년만에 최초로 역사적인 자유총선에 들어간다. 루마니아의 1천7백만 유권자들은 이번 선거에서 1백19명의 상원의원과 3백87명의 하원의원을 선출하며 아울러 대통령도 새로 뽑는다. 총 82개 정당이 난립하는 가운데 실시되는 이번 총선에서는 그러나 구국전선(NSF),국민자유당(NLP),전국농민당(NPP),환경당 등 4개 정당이 유권자들의 지지표 대부분을 쓸어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 미 의원들 한해 2백불이상 선물 못받는다

    ◎의회「윤리강령」어떻게 돼 있나/“부당이득ㆍ선거자금 사용금지”등 명시/세비의 30% 넘는 「세비외 수입」가져서는 안돼/법원서 유죄판결땐 본회의 표결권 박탈 작년 5월 온 미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짐 라이트 하원의장과 민주당 중진 토니 코엘호 의원의 연쇄 사퇴 선언은 윤리문제를 둘러싼 미의회의 곤경을 단적으로 보여준 것이었다. 당시 라이트 의장은 하원 윤리위가 제기한 선물 과다수수 등 69개 항목에 대해 결백을 주장했지만 결국 여론에 밀려 2백년 미의정사상 최초로 불명예 퇴진한 의장이 되었다. 정치자금 모금에 남다른 수완을 발휘했던 코엘호의원은 부실 채권을 사들여 재미를 봤던 건이 문제가 되자 「지루한 조사 소동에 휘말리기보다는 차라리 의원직을 그만두겠다」고 전격 선언,정계를 놀라게 했다. 작년 미 의회는 전반 5개월을 윤리문제의 수렁에서 허우적 거렸다. 따지고 보면 이같은 윤리파동은 엄격해진 미의사당의 윤리기준을 반영하는 것이었다. 역사적으로 미의회는 의원 비행에 대해 징계권의 사용을 기피해 왔다. 지금까지미의회에서 비행 때문에 동료들에 의해 공식적으로 징계를 받은 사람은 상원의원 7명,하원의원 18명,해외영토 대표 1명이다. 또 상원의원 15명과 하원의원 3명이 제명됐다. 미 의회가 의원들의 행위를 감독하는 윤리위원회를 상하원에 각기 설치하고 의원과 의회 직원들의 행동규범인 윤리강령을 제정한 것은 의원들의 스캔들이 잇따랏던 1960년대였다. 미 하원은 68년4월 하원의원과 하원사무처의 각 기관장 및 직원들이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행위준칙으로서 「공직자 윤리 규범」을 채택했다. 하원규칙 제43조로 명문화된 이 규범의 주요 내용은. ◇명예 유지 및 규칙 엄수=하원에 소속한 모든 의원ㆍ기관장ㆍ직원은 하원의 명예를 위해 항상 노력해야 하며 하원이 제정하는 규칙의 기본 정신과 세부 사항을 엄수해야 한다. ◇부당 이득 금지=▲하원에 소속한 의원ㆍ기관장ㆍ직원은 금전적인 이득과 관련한 정보나 자료를 획득하기 위한 어떠한 보상도 받거나 주어서는 안된다. ▲하원에 소속한 의원ㆍ기관장ㆍ직원은 입법에 직접적인 이해를 가진 내외국인으로부터 연간 총액으로 시가 2백달러 이상에 상당하는 선물을 받아서는 안된다. 그러나 그 선물이 순수한 개인적 호의에 의한 것일 경우 예외가 인정된다. (선물 총액은 당초 1백달러로 제한했었으나 작년 말 관계법 개정을 통해 2백달러로 상향 조정됐다) ▲하원에 소속한 의원ㆍ기관장ㆍ직원은 연설,기고,기타 이와 유사한 활동으로 타인이나 다른 기관 또는 단체로부터 통상적인 범위를 초과하는 사례금을 받아서는 안된다. ◇선거자금 사용의 제한=의원은 선거운동 자금을 개인 자금과 별도로 구분 계리해야 하며 이를 사용으로 전용할 수 없다. ◇직원 채용상의 유의사항=의원이 허용된 범위내에서 직원을 채용코자 할때는 보수에 상응하는 직무를 수행하지 못하는 직원을 채용해서는 안된다. ◇의원활동의 제한=2년 이상의 금고형에 처할 죄를 범하고 법원에서 유죄판결을 받은 바 있는 의원은 소속위원회의 활동에 참여할 수 없으며 본회의나 전원위원회의 표결에 참여할 수 없다. 그러나 유죄판결을 받은후 재선된 경우나 사법 또는 행정상의 소정 절차에따라 무죄추정을 받은 경우 이같은 제한은 해제된다. 의원들은 이같은 윤리규범을 준수해야 할 뿐만 아니라 재산을 공개해야 하며 세비외수입을 제한받는다. 모든 하원의원은 공직자 윤리법 제1장의 규정에 따라 매년 재산관계보고서를 사무처에 제출해야 한다. 또 모든 하원의원은 연간 세비의 30%를 넘는 세비외 수입을 가져서는 안된다. 세비외 수입이란 의원의 개인적인 활동에 대한 보상으로 주어지는 임금 봉급 강의료 사례금 기타 수입을 말한다. 따라서 의원이 행한 연설이나 회의 참석 등으로 지급받는 금전 또는 금전적 가치가 있는 물품도 여기에 포함된다. 상원은 1968년3월 상원의원과 직원의 윤리지침을 규정한 4개의 새 규칙을 채택하면서 「상원의원은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력을 국민의 이익만을 위해 사용해야 하며 자신이나 소수의 이익을 위해 사용해서는 안된다」고 선언했다. 이 규칙을 통해 ▲상원에 소속한 의원 기관장 직원의 겸직 및 직무관련 유급활동금지 ▲상원의원 및 상원 선거 출마자 등의 재산관계 공개 ▲정치자금 모금 및용도제한 ▲50달러이상 선물 공개 등을 규정했다.
  • 내한한 84년 미 부통령후보 페라로여사(인터뷰)

    ◎“적극적 정치참여로 여성지위 향상을”/환경ㆍ인권문제 등에 관심 돌려야 지난 84년 민주당 먼데일 대통령후보의 러닝메이트로 미국 최초의 여성 부통령후보가 돼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바 있는 미국의 여성 정치지도자 제럴딘 A 페라로여사(55)가 15일 내한했다. 페라로여사의 이번 한국방문은 평민당초청에 의한 것으로 16일 하오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여성의 정치참여와 선거제도를 주제로 강연을 갖고 한국 여성정치인들을 만나 여성의 정계진출확대방안에 대해 의견을 교환한 후 판문점을 둘러보고 18일 출국할 계획이다. 『지금 이 시대는 여성들이 한국과 미국으로 구분하거나 국한할 것이 아니라 지구촌의 여성은 하나라는 기본생각을 갖고 공동으로 처한 문제를 함께 연구하고 풀어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 이를 위해서는 정계의 여성진출 확대와 함께 정계에서의 여성지위 향상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35년 뉴욕에서 태어난 페라로여사는 메리마운트맨해턴 야간대학에서 법학을 전공,변호사가 되고 하원의원에 당선(3선)된투철한 신념의 여성. 지금은 내일을 염려하는 미국인(ACT)을 통해 정계에서 활약중이다. 『미국은 노동력의 44%를 여성들이 맡고 있습니다. 이는 16세이상 여성의 54%,25∼44세 여성의 70%이며 1세미만의 아기를 둔 주부중 절반이 집밖에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페라로여사는 여성들이 직업을 갖고 일을 하는 것은 반드시 경제적인 문제만이 아니고 자기성취라는 긍정적 요소가 더 중요하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여성들은 안타깝게도 같은 일을 하면서도 남성보다 낮은 보수에 보조적 역할만 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현재 미국여성들은 환경ㆍ군축ㆍ인권문제에 많은 관심을 갖고 걱정을 합니다. 그렇지만 이렇다할 움직임을 못보이고 있는데 여성들이 힘을 결집한다면 좋은 미래사회도 가능하다고 믿습니다』 미국에서는 1백21명의 여성이 주요도시의 시장으로 재직하고 있으며 이밖에도 많은 여성들이 기회가 있을 때마다 정계진출을 희망한다고. 남편 존 자카로씨(부동산업)와의 사이에 1남2녀를 두고 행복한 가정을 위해 알뜰주부로서의 노력도 잊지 않는 페라로여사는 92년 상원의원에 출마,본격적인 정치활동을 다시해 볼 계획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 비,“미군기지 임대연장 불허”/비 외무,미에 외교문서 전달

    ◎국민반발 수용/양국 외교마찰 가능성 【마닐라 AP UPI 연합】 필리핀 정부는 15일 오는 91년 9월로 임대계약이 만료되는 필리핀내 2개 미군 기지들의 임대기간을 연장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미국측에 공식 통보했다고 필리핀정부 관리들이 밝혔다. 라울 망글라푸스 필리핀 외무장관에 의해 이날 미국측에 통보된 필리핀정부의 이같은 임대계약 연장 불허방침은 필리핀내 2개 미군 기지들의 장래와 관련,양국간에 상당한 외교적 논란을 불러 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망글라푸스 장관은 이날 미군기지 협상 2일째를 맞아 리처드 아미티지 미국측 협상대표에게 전달한 한 외교문서를 통해 기지 임대에 관련된 필리핀 헌법 조항들과 지난 47년에 체결된 미­비간 군사기지 협정을 지적,클라크공군기지와 수비크만 해군기지를 비롯한 필리핀내 6개 미군 시설물들의 임대기간을 더 이상 연장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이 외교문서는 「필리핀 정부는 지난 47년에 체결돼 몇차례의 수정을 거친 필리핀과 미국의 군사기지 협정이 오는 91년 9월 16일로 만료되며 더이상 연장될 수 없다는 점을 미국정부에 통보한다」고 돼 있다. 필리핀정부의 이같은 갑작스런 강경방침은 필리핀내 미군기지들의 조속한 폐쇄를 줄기차게 요구해온 국민들의 의사를 수용한 것으로 보이는데 야당의 후안 폰세 엔릴레 상원의원은 이와 관련,『아키노정부는 아직도 이들 미군기지의 존속을 원하고 있으나 수많은 시위자들과 제반 문제점들을 감안,이같은 드라마를 연출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 “주한미군 철수 7천명은 부족”/미 상원의원 주장

    【워싱턴=김호준특파원】 미 상원의 데일 범퍼스의원(민주)은 1일 부시 행정부가 향후 3년에 걸쳐 주한미군 7천명을 감축하려는 계획은 신중하고 유용한 조치지만 더 많은 병력감축을 위한 시간표와 전후 관계를 결여하고 있다고 비판하며 주한미군의 대폭 감축을 주장했다. 지난해 미 의회에 주한미군 1만명 철수안을 제출한 바 있는 범퍼스 의원은 이날 볼티모어 선지에 게재된 「한국에 대해 신사고를 할 시기」라는 제목의 기고문에서 『한국전때 형성된 대한정책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미국은 세계를 휩쓸고 있는 변화의 맥락에서 한국에 왜 4만3천명의 미군을 주둔시켜야 하는지를 재검토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 주한미군 감축 불가/북한위협 변함없어/샘넌 미 상원의원

    【워싱턴 연합】 샘 넌 미 상원군사위원장은 29일 소련군의 위협이 거의 소멸한 유럽에서 미군을 대폭 감축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으나 북한의 위협에 변화가 없는 한반도와 위험이 증대하고 있는 서남아시아에서는 미군의 대폭적인 감축이 있어서는 안될 것이라고 말했다.
  • 동구사태 놓고 보수파들 견해차(특파원 코너)

    ◎미서 「공산주의 생사논쟁」 치열/“자본주의 승리… 소ㆍ동구 회생 불능” 신우익/“「악마의 제국」 건재”… 대소경계 촉구 강경파 공산주의는 죽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반공주의자들은 여전히 경각심을 촉구하며 투덜거리고 있다. 물론 동구 공산주의 몰락이후 이들의 기세가 등등해진 것도 사실이다. 최근 워싱턴에서 열린 미보수주의자 정치행동회의(CPAC)는 서방 우익 보수진영의 이같은 이중기류를 잘 드러내 보였다. 『미국 지도자들은 성급하게 자축 무드에 빠져 버렸습니다. 그들은 불길한 현실 앞에서 판단이 흐려진채 눈이 멀어 가고 있습니다』 수백명의 보수 행동파들 앞에서 마이크를 잡은 미보수주의자 코커스의장 하와드 필립스는 성난 표정으로 경고연설을 이어갔다. 그는 소련 대통령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세계 분쟁의 장기판에서 잃은 말을 줍기 위해 서방측을 속이고 있다고 공박했다. 또 폴란드의 자유노조 출신 타데우스 마조비에츠키 총리는 대소협력자임이 분명하지만 모스크바로부터 독립성을 확보하려는 의지때문에 대서방 원조 구걸이 가능한 것이라고 풀이했다. 그리고 남아프리카에서 고르바초프는 아주 교활한 술책으로 사태를 조작한 끝에 남아프리카 정부로 하여금 「아프리카 국민회의」(ANC)라는 공산주의 깡패들에게 합법성과 명예와 국제적 지위를 부여토록 했다고 그는 주장했다. 직업적인 반공주의자 잭 윌러는 다른 메시지를 내놓았다. 『지금은 득의에 찬 미소를 지을 때』라고 서두를 꺼낸 그는 한 보수주의 신문을 집어 들어 「소련의 서방 정복전략」이란 표제를 냉소적으로 읽어 내려간 뒤 이렇게 제의했다. 『소련 사람들에게 말합시다. 이제 지구상에 두개의 초강대국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초강대국은 하나 밖에 없는데 당신들은 아니라고. 우리는 또 소련을 향해서 이런 얘기도 해야합니다. 미국은 차관과 무역등을 통해 소련을 구제할 수 있다. 그러나 소련은 대가를 치러야한다고. 소련에 대해 모든 핵무기를 폐기하라고 요구합시다. 소련이 핵무기를 버리면 소련은 번영할 수 있고 미국은 군사적 우위를 지킬수 있게 됩니다』 미 전국에서 모여든 보수주의자약 7백명이 참가한 가운데 3일간 비공개로 열린 이 회의의 벽두에 미보수연합(ACU)의 수뇌 데이비드 킨은 『반공은 언제나 우익을 결집시키는 접착제 역할을 해왔다』고 상기시켰다. 그러나 이번 회의에서 보수주의자들은 틈새를 보였다. 하원 공화당총무 뉴트 깅리치와 신보수주의의 권위인 진 커크팩트릭 등은 『우린 이겼다. 이제 칭찬을 받자』는 입장을 보인 반면 완고한 보수주의자들은 『악마의 제국은 여전히 살아있다』고 맞섰다. 상원의원 제시헬름즈는 『고르바초프는 전 세계를 사회주의 체제로 전환 시키기 위한 마스터 플랜을 갖고 있다』고 주장했고 미주안보회의 수석연구원 존 렌초우스키는 『1989년의 동구혁명은 서구를 중립화하고 미국을 나토에서 몰아내기 위해 크렘린이 연출한 것』이라고 목청을 돋웠다. 렌초우스키는 소련이 대대적인 보수주의자 유인 음모를 꾸미고 있다고 주장했다. 소련은 지금 대소강경파인 소련문제전문가 리처드 파이프스와 전국가안보회의 보좌관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같은 사람이 소련 출판물에 기고하도록 유혹하고 미국의 군사 및 정보관리들이 소련의 카운터파트들과 교류하도록 미끼를 던지고 있다는 것이다. 윌러와 필립스 사이의 논쟁은 변화하는 세계에 대한 적응 방법과 향후 진로를 둘러싼 우익의 갈등을 보여 주는 것이었다. 공산전체주의 국가의 실상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천안문광장시위의 주동자 쉔 통과 미주안보회의 대표 프렌시스 부치가 함께 참가한 토론에서는 미의사당내 일부 인사를 가상의 공산주의자로 몰아붙이는 비열한 사냥도 있었다. 또 일부 토론자들은 공산 베트남 정부를 폭력으로 전복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산주의가 아니더라도 보수주의자들에겐 아직도 많은 공동의 적이 있었다. 『지금까지 우린 소련을 경계했지만 앞으로 미국내 좌익분자들을 경계해야 합니다』 윌러는 이렇게 역설하면서 『하버드대 교수진에는 동구보다도 더 많은 마르크시스트들이 있다』고 주장했다. 제시 헬름즈는 『워싱턴 포스트를 비롯한 몇몇 신문사의 언론인들은 공산당원증을 가진 사람이 백악관의 주인이 될 때까지 만족하지 않을 것』이라고 언론에 화살을 돌렸다. 청중들은 큰 소리로 환호했다. 여권주의자와 「좌익에 의해 관장되고 있는 제국의회」(깅리치 의원말) 동성연애등도 특별한 공격 표적이 됐다. 수년전 이란ㆍ콘트라 사건 청문회를 통해 보수주의자들 사이에서 「영웅」으로 부상한 올리버노스와 부시 행정부내의 매파로 알려진 댄 퀘일 부통령의 감동적인 연설이 끝난후 등단한 연사들은 미주대륙 유일의 공산정권을 이끄는 쿠바 수상 『카스트로의 머리를 쟁반에 받쳐 오라』고 소리치는가 하면 『미국은 파나마운하를 내놓아서는 안된다』고 역설하기도 했다. 그러나 일부 대표들은 이번 회의에 열기가 없다고 불평했다. 이들의 지적이 사실이라면 이유는 접착제 역할을 해오던 것이 약화된 때문일 것이다. 공산주의의 몰락이 서방 보수진영의 응집력을 약화시키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지금 이의 소멸 가능성까지 이야기하기엔 시기상조다. 그러나 보수주의자들의 세계가 「반공이라는 단일 목표 아래 뭉쳤던 제국」에서 「다수의(쟁점별) 소국으로 나뉘어 대립하는 발칸화」 현상을 보일 가능성은 높아졌다고 하겠다.
  • 이라크,“화학무기 폐기용의”/후세인대통령 이스라엘의 핵무기해체조건

    【모술(이라크) AP 로이터 연합】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은 12일 이라크의 군비증강과 관련한 서방국들의 비난에 대응,이라크는 이스라엘 등이 동일한 조치를 취한다면 화학무기를 폐기할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후세인 대통령은 로버트 돌 상원의원이 이끄는 미국의원사절단과 이날 이라크 북부도시 모술에서 2시간30분 가량 회담을 갖고 이같은 방침을 피력한 것으로 이라크 관영 INA통신이 정부대변인의 회담관계 발표내용을 인용,보도했다.
  • 미 하원,리투아니아 독립지지/부시에 “외교수립 촉구”결의안 채택

    ◎상원선 소 무력개입 대책 촉구 【워싱턴 AFP 연합】 미하원은 4일 조지 부시 미대통령이 리투아니아 공화국과 정상적인 외교관계를 수립하고 발트해연안 공화국들의 탈소 독립에 대한 지지입장을 재확인할 것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압도적 표차로 채택했다. 미하원은 이날 4백16대3이라는 압도적인 표차로 이같은 결의안을 채택했으며 이에 앞서 미상원의원 31명도 리투아니아를 지지할 것을 촉구하는 서한을 부시대통령에 전달했다. 미상원의원들은 이날 부시대통령 앞으로 보낸 서한에서 소련의 리투아니아 무력개입에 대한 부시대통령의 경고는 무위로 돌아갔다고 지적하고 소련이 더 이상의 무력을 사용할 경우 미국이 취할 대응조치들을 구체적으로 밝히라고 부시대통령에게 촉구했다. 셰바르드나제 외무장관은 이날 베이커 국무장관과 약3시간 반에 걸친 회담을 마치고 가진 기자회견에서 소련은 리투아니아 국민들의 이익에 다같이 부합되는 현명하고 공정한 방식으로 리투아니아 사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 영 경제사절 평양에/무역촉진위장 만나

    【도쿄 AFP 연합 특약】 영국의 경제사절단이 지난 3일 평양에 도착했다고 북한관영 중앙통신이 4일 보도했다. 도쿄에서 수신된 중앙통신은 이날 『상원의원이며 교육기술평의회의장인 테일러경이 인솔하는 경제사절단이 평양에 도착,이성록무역촉진위원회 위원장의 환영을 받았다』고 밝혔다.
  • 유럽주둔 미군/75%감축 가능/10년내 7만선으로

    【워싱턴 UPI 연합】유럽 주둔 미군 병력은 오는 90년대말까지 7만5천명 수준으로 감축될 수 있을 것이라고 윌리엄 코헨 미상원의원과 해럴드 브라운 전국방장관이 1일 말했다. 이들 두사람은 이날 기자들에게 상하원 의원들과 학자들,전 군사 지도자들이 공동 집필한 「대서양 동맹(나토)의 증가하는 부담과 변화하는 역할」이라는 새로운 연구논문에 대해 브리핑하면서 이같이 말했다. 이 연구논문은 미국이 유럽배치 랜스 미사일의 현대화 계획을 포기해야만 하며 전략무기 감축협정이 타결되는 즉시 소련과 단거리 핵무기 감축 협상을 시작해야만 한다고 말했다. 미행정부는 랜스 미사일이 배치돼 있는 서독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 단거리 미사일의 현대화 계획을 의회가 승인해 줄것을 요구하고 있으며 현재 중부유럽에 주둔하고 있는 30만5천명 미군병력의 감축한도를 19만으로 설정해 놓고 있다.
  • 미,외국로비 규제 움직임/상원에 새법안/로비스트 등 등록 의무화

    【워싱턴 AP 연합】 외국의 대미로비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는 새로운 법안이 미상원에 제출되는 등 외국정부나 기업의 미국내 로비활동에 대한 미의회의 규제강화 움직임이 구체화되고 있다. 존 하인즈 미상원의원은 외국인들이 미국의 정책이나 국가안보를 뒤엎을 수 없도록 외국을 위해 일하는 로비스트들 및 관련기업들의 등록의 무조항을 강화하는 것 등을 골자로 한 새로운 법안을 의회에 제출했다고 27일 밝혔다. 하인즈 의원이 제출한 로비규제 강화법안은 ▲외국인 지분비율이 50%를 초과하는 합작기업에 대해서도 로비스트를 고용할 경우 미법무부 등록을 의무화 하고 있으며 ▲행정부 및 사법부 소간사항 담당 변호사에 대한 등록면제규정을 삭제하고 ▲모든 로비스트들에 대해 매년 1월30일과 6월30일에 신고서를 일제히 제출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하인즈 상원의원은 대공산권 수출통제규정을 어기고 소련에 잠수함 프로펠러가공용 정밀공작기계를 판매한 일본의 도시바(동지)사가 미의회의 제재조치를 피하기 위해 머지법률사무소 등 5개 법률회사를로비스트로 고용,1천1백만달러에 달하는 거금을 대미로비에 동원하고 있는 등 총력로비를 펼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이같은 사례가 이번 로비규제강화법안 제출의 배경이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