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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英,상원의원 600명 감축/정부 개편안 마련

    【브뤼셀 연합】 영국 정부는 상원의원 수를 현재의 1,200여명에서 600명으로 잠정 감축하는 상원 개편 계획을 마련했다고 영국 일간 더 타임스가 30일 보도했다. 신문은 앞으로 약 700명에 달하는 세습 귀족 의원들이 상원에서 물러난 후 상원의 구조와 권한이 최종 확정될 때까지 영국 정부가 상원의원 수를 600명 선으로 유지할 방침이라고 전했다. 종신 귀족 중심인 이들 600명의 상원의원은 노동당과 보수당이 각각 200명, 민주자유당 등 기타 정당 70명,무소속 130명 등으로 구성될 예정이다. 영국 정부의 이 조치는 세습 귀족 의원들의 퇴진 후 새로 임명되는 종신 귀족 의원 수를 최소화하기 위한 것으로 현재 종신 귀족 상원의원은 이미 500여명에 달하고 있다.
  • 용감한 美 의원들/崔弘運 논설위원(外言內言)

    동맹군을 이끌고 나폴레옹의 프랑스군을 무찔러 워털루 전투에서 최후 승리를 거둔 웰즐리 웰링턴(1769.5.1∼1852.9.14)은 런던에서 있은 개선식에서 오늘까지 전하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워털루의 승리는 이튼교정에서 이루어졌다”라고. 헨리 6세가 1440년 나라의 핵심 지도자로 키울 우수한 학생 70명을 위해 만든 학교가 바로 이튼 칼리지다. 전교생 1,200명이 넘는 오늘까지도 왕실 장학생 70명은 오피단(Oppidan)으로 불리는 일반학생과 달리 연간 1,000여만원이나 되는 기숙사비와 학비일체를 면제받는다. 설립목적대로 영국을 이끈 기라성 같은 인물들이 대부분 이학교 출신이다. 이들의 대부분은 귀족이나 상류층의 반열에 들어 있으나 나라가 위급할 때 제일 먼저 달려나가 자신을 바친다. ‘왕과 국민의 영원한 공복(公僕)’이라는 이 학교의 변함없는 가르침이 이들을 이렇게 책임감 강한 지도자로 길러낸 것이다. 이는 서양 선진국 사회의 지도자들이 갖고 있는 일반적인 신념이며 생활자세이기도 하다. 바로 ‘노블레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다. 사회지도층 인사로서 지켜야 할 의무와 도덕률을 어김없이 지키기에 항상 존경을 받는다. 지난 24일 총기 난사사건이 일어났던 미국 의사당에서 보여준 미국 국회의원과 경찰관들의 희생적이며 의연한 자세도 바로 이 정신의 실천임을 깨닫게 한다. 사건 현장 사무실의 주인인 공화당 수석부총무 톰 들레이 의원은 한바탕 난동을 부리다 총상을 입은 범인 러셀 유진 웨스턴 2세가 총을 계속 겨누고 있는 위급한 상황에서도 공포에 떨고 있던 관광객들과 직원들을 안전하게 대피시켰다. 의사출신인 공화당의 빌 프리스트 상원의원은 연설을 마치고 지역구로 가던 길에 총격전 소식을 듣고 의사당으로 되돌아가 쓰러진 경찰관 2명과 범인을 응급조치했다. 그는 또 나중에 범인 웨스턴을 후송하는 응급차에 함께 타고 가며 인공호흡을 계속 해 주기도 했다. 의회경찰을 관장하는 빌 토머스 위원장도 총성이나자 몸을 숨기기는 커녕 곧바로 현장으로 달려가 관광객과 직원들을 진정시키고 사후 수습을 주도했다. 2명의 희생자를 낸 경찰도 살신성인(殺身成仁)의 모범을보여주었다. 의회는 이런 아수라장이 됐던 의사당을 계속 개방하겠다고 밝혀 또 한번 국민들의 신뢰를 쌓았고. 바로 이들이 한 사회를 이끌고 나라 전체를 지탱하고 있는 것이다. ‘유전면제(有錢免除) 무전현역(無錢現役)’풍토의 우리 사회와 너무 대조적이다.
  • 美 리버티메달 金 대통령 수상

    【워싱턴 연합】 미국을 방문중인 金景梓 의원(국민회의)은 8일 미국 필라델피아시(市)가 인권과 평화부문 공로자에게 수여하는 ‘리버티 메달’(자유의 메달)의 내년도 수상자로 金大中 대통령이 결정됐다고 밝혔다. 金 의원은 이날 워싱턴주재 한국 특파원들과 가진 간담회에서 이같이 밝히고 올해에는 북아일랜드 평화협상 타결을 이끌어낸 조지 미첼 전미(前美) 상원의원이 메달을 받았다고 말했다.
  • 金大中납치 李厚洛씨가 지휘/美국무부,73년 주한美대사 보고서공개

    ◎박 대통령 승인 아래 조직적 단행 판단/미 대사,소재파악 다각 접촉… 정부 압박 【워싱턴〓金在暎 특파원】 지난 73년 발생한 ‘金大中 납치’사건은 朴正熙 당시 대통령의 동의를 얻어 李厚洛 당시 중앙정보부장의 지휘 아래 이뤄졌던 것으로 밝혀졌다. 미 국무부가 9일 조지 워싱턴대의 전시회를 통해 공개한 金大中 납치·귀환(73년 8월8일∼18일) 사건관련 외교문서에 따르면 필립 하비브 당시 주한 미대사는 납치사건이 “朴대통령의 명시적 또는 묵시적 승인을 얻어 李厚洛 중앙정보부장의 지휘로 이뤄졌다”고 국무장관에게 보고한 것으로 확인됐다. 하비브 대사는 도쿄에서 납치사건 발생직후인 8월8일 청와대,중앙정보부,총리실 등과 접촉해 피납자의 소재파악에 나서는 등 한국정부를 압박했다.이어 대사는 8월10일 미국무부장관에게 사건이 중앙정보부에 의한 것임을 보고하는 전문을 보냈다. 8월10일 전문에서 하비브 대사는 “朴正熙 대통령의 명시적·암묵적 동의를 얻어 李厚洛 정보부장의 지휘 아래 중앙정보부가 조직적으로 단행한 것”이라고보고했다. 이날 공개된 자료는 필립 하비브 당시 주한 미대사가 국무부에 보고한 날짜별 비밀전문 내용이다.미국 정부가 이 사건과 관련된 비밀문서를 공개하기는 처음이다.그러나 미국 정보기구의 문서들은 아직 공개되지 않고 있다. 다음은 공개된 비밀전문의 주요 부분을 사안에 따라 간추린 것이다. ◇필립 하비브 당시 주한미대사가 보낸 주요 전문. ▲8월8일=도쿄로 부터 金大中씨 납치사건을 보고받자마자 청와대와 중앙정보부,총리실 등과 접촉했다.청와대는 金씨 납치사건에 대해 아는바 없다고 통보했다.한국 정부는 이 사건과 관련되지 않았다는 부인성명을 준비하고 있다. ▲8월9일=金正濂 청와대 비서실장은 전화통화를 통해 한국정부가 이번 사건과 무관하다는 주장을 되풀이했다.나는 이번 사건과 관련,한국정부가 수집한 모든 정보를 우리측에 알려줄 것을 요구했고 그렇게 하겠다는 약속을 받았다. ▲8월10일=한국 언론의 이번 사건에 대한 보도가 한국정부에 의해 통제되고 지시받고 있음이 분명하다.우리는 비공식 접촉결과 이 사건이 한국정보기관의 소행이라는 결론을 내려가고 있다. ▲8월13일=한국 언론은 보도하기 전 검열기관에 기사를 제출해야 한다는 사실을 한 언론인으로부터 전해들었다. ▲8월14일=金씨의 갑작스런 출현과 납치과정에 대한 설명은 한국에 큰 충격을 주고 있다.우리 대사관은 처음에 매우 놀랐지만 지금은 그가 살아있다는데 안도하고 있다.한국인들 사이에서도 金씨의 납치와 강제귀환은 중앙정보부가 개입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라는 확신이 퍼져가고 있다. ◇하비브 대사가 사건발생 두달 후인 73년 10월10일 국무장관에게 보고한 사건의 개관 ▲사건 현황=한국 정부는 아직도 관련을 부인하고 있다.그러나 실제로는 李厚洛 중앙정보부장의 지시아래 납치사건이 저질러졌다.朴正熙 대통령도 명시적 또는 묵시적으로 승인한 것으로 보인다.한국수사기관이 수사를 한다고 밝히고 있지만 아직 진정한 수사는 벌이지 않고 있다.청와대에서 정치적 결정을 내리지 않는 한 수사와 진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金鍾泌 총리의 역할=金총리는 이번 사건이 일본과의 관계에 미치는 악영향을 깊이 우려하고 있다.그는 상황을 호전시키기 위해 타협을 모색하고 있다.朴대통령은 金씨의 조기석방을 고려하고 있지 않지만 金총리는 일본 언론과 야당의 비판으로 수세에 몰려있는 일본총리를 돕기 위해 대안을 찾고 있다.이같은 金총리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한국정부의 입장은 강경하다.이 노선을 주도하고 있는 것은 李厚洛 중앙정보부장이며 朴대통령의 생각을 반영하는 것으로 보인다. ◇레스터 울프 상원의원의 朴대통령 면담결과=8월24일 울프 상원의원은 朴대통령을 만나 이번 사건에 많은 주의를 기울여 줄 것을 요청하면서 朴대통령의 코멘트를 구했다.朴대통령은 “수사가 진행중이기 때문에 상세한 언급은 하고 싶지 않다”면서 “북한 공작원 소행이거나 일부 한국 정부기관의 개입 또는 자신을 부각시키려는 金大中씨의 자작극일 수 있다”고 말했다.
  • 金 대통령 訪美­미국과의 인연

    ◎72·82년 망명 이어 10번째 방문/61년 의원 신분으로 처음 찾아/71년엔 신민당 대통령 후보로 【뉴욕=梁承賢 특파원】 金대통령으로서는 이번이 열번째 미국 방문이다.金대통령은 지난 60년대말 의원신분으로 미 국무부의 초청을 받아 처음 미국과 인연을 맺었다.미국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신민당 대통령 후보자격으로 방문한 71년 두번째 방문부터였다.이 때만 해도 박해와 탄압의 상징과는 꽤거리가 있었다. 세번째는 국내에 10월 유신이 선포된 72년 10월부터 이듬해 8월까지의 이른바 ‘1차 망명’때였다.에드워드 케네디 상원의원 등 미국내 지우(知友)가 생긴 것도 이 무렵이었다.金대통령은 당시 해외 민주화단체를 결성하기 위해 미국과 일본을 분주히 왕래했다.그러다 일본 도꾜에서 납치돼 죽을 고비를 넘기고 동교동에서 가택 연금생활에 들어갔다. 80년 사형수로 수감된뒤 풀려난 82년 12월부터 85년 2월까지는 네번째이자 ‘2차 망명’시기였다.全斗煥 전 대통령의 방미 대가로 미국 망명길에 올랐다.91년 10월의 다섯번째는 야당총재 자격으로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을 기념하기 위해서였다.92년 4월에는 LA폭동으로 비탄에 빠진 동포들을 위로하기 위해 찾았다.당시 빌 클린턴 민주당 대통령후보와 면담했다.93년 9월과 10월에는 애틀란타 뉴욕 피츠버그를 방문했다. 95년 4∼5월에는 뉴욕 워싱턴 휴스톤을 차례로 찾았으며,부시 전 미 대통령과도 환담했다.97년 4월 국민회의 총재로 뉴욕과 워싱턴을 방문,조지타운 대학과 내셔널 프레스클럽에서 네번째 대권도전 의사를 밝혔던 때가 아홉번째의 방미였다.
  • 比 여성부통령 아로요(뉴스의 인물)

    ◎득표율 47% 최고 인기 ‘21세기 대통령감’ 필리핀에 미모와 재능을 겸비한 여성 부통령이 탄생했다.주인공은 이번 필리핀 선거전에서 9명의 부통령 후보중 최고 득표율을 기록한 글로리아 마카파갈 아로요 상원의원(51). 그녀는 지난 62∼65년 필리핀을 이끌었던 디오다스도 마카파갈 전 대통령의 딸이다.47%의 높은 득표율로 39.8%를 얻은 조지프 에스트라다 대통령 당선자보다 인기도에서 앞선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빌 클린턴 미 대통령과 워싱턴 조지타운대 동기창생인 그녀는 필리핀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대학교수·칼럼니스트·상원의원 등을 두루 거치며 필리핀 경재개방·외국인 투자유치·세계무역기구(WTO) 가입 등에 앞장서 왔다. 칼럼니스트로 활동하던 중 코라손 아키노 전 대통령에게 전격 발탁돼 무역산업부 차관으로 일한 그녀는 92년 상원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했다.특히 95년 1,600만표라는 필리핀 선거 사상 최다 득표로 재선돼 일찌감치 ‘21세기 대통령감’으로 꼽혔다. 그녀의 이같은 화려한 경력은 음주·도박·혼외정사 등으로 ‘자격’ 시비가 일고 있는 에스트라다 대통령 당선자를 보완해 줄 것으로 기대된다.에스트라다는 벌써 아로요를 새 내각의 사회복지장관을 겸임하도록 결정했다.
  • 골드워터 前 美 의원 사망

    【피닉스(미 아리조나주) AP 연합 특약】 배리 골드워터 전 미(前美) 상원의원이 29일 사망했다고 미망인 수잔 여사가 밝혔다.향년 89세. 지난 64년 공화당 대통령후보로 나서 떨어지긴 했지만 강렬한 보수주의론으로 공화당에 대한 인식 자체를 바꾸는데 크게 기여했던 골드워터는 84년 한국도 방문했으며 특히 카터 대통령의 주한미군 철수론을 강력히 비난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 林龍根씨 美 연방 상원의원 후보 당선

    ◎공화당 예비선거서 압도적 표차로 승리 【포틀랜드(미 오리건주) 연합】 미국 이민 1세인 임용근 오리건주 상원의원(62)이 연방상원의원 선거에 나서게 됐다. 임의원은 19일(현지시간) 주 전역에서 있은 예비선거에서 경쟁 후보인 존 피츠패트릭씨와 발렌타인 크리스천씨를 압도적 표차로 누른 것으로 잠정집계됐다. 이로써 임의원은 한국계로서는 처음으로 11월의 미 연방상원의원 본선거에 출마해 이날 예비선거에서 역시 압승한 민주당의 론 와이든 현 연방상원의원과 접전을 벌인다. 임의원은 전통적인 민주당 지지세력권인 오리건주에서 92년과 96년 연달아 주 상원의원에 선출되는 저력을 보였다.
  • ‘세계경찰’美의 이상한 침묵/“印尼문제는 스스로 풀어야할 숙제”

    ◎“수하르토 버릴 경우 국익에 큰 손상” 【워싱턴=김재영 특파원】 인도네시아 사태는 실익을 먼저 고려한다는 ‘미국외교’를 또 한번 확인시켜주었다. 인도네시아 사태가 수일간 지속되는데도 미국은 침묵으로 일관했다.마지못해 밝힌 입장은 ‘잘해야 한다’는 게 전부였다.‘세계경찰’을 자임해온 예전의 미국이 아니다.인도네시아 사태의 분수령이 될 수하르토 대통령의 ‘결단’이 밝혀진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다. 백악관의 에릭 루빈 대변인은 수하르토 대통령의 담화와 관련, “인도네시아 정부가 취해야 할 가장 중요한 조치는 정치개혁과 화해문제를 놓고 각계대표들과 즉각 공개적인 대화를 갖는 것”이라고 언명했다.한마디로 ‘좋게 해결하라’는 것이다. 이어 “수하르토 대통령이 조기총선을 제의한 사실은 알고 있으나 구체적 일정 등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확인하지 못했다”고 밝혔다.더이상 입장을 묻지 말아달라는 주문인 셈이다. 미국의 이상한 침묵이나 알멩이없는 언급은 12년전 필리핀 때와 대비시켜보면 더욱 의아심을 자아낸다. 당시 레이건 대통령은 락살트 상원의원을 필리핀으로 보내 마르코스의 퇴진을 직접 촉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이 바뀌어서 미국의 태도가 달라진 것은 아니다.미국의 실익을 고려한 액션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수하르토를 ‘버릴’ 경우 곧바로 닥쳐올 혼란을 크게 우려하고 있다는 분석이다.국익이라는 측면을 고려하면 수하르토의 뒤를 이을 인물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앞에 나설 엄두를 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한때 식민지관계였던 필리핀에 비해 인도네시아는 미국의 관계가 ‘진하지 못했다’는 점도 꼽혔을 것이라는 풀이도 있다. 하여튼 지금까지의 대응으로 보아 수하르토에 대해 미국은 인도네시아의 학생들과는 달리 불확실하고 부정적인 측면보다는 긍정적인 면을 더 크게 보려고 하고 있다고 요약된다.
  • 미국,중동지역 영향력 강화 시급(해외사설)

    이스라엘 국가의 건국일을 팔레스타인인들은 ‘재앙’이라고 부른다.지난 5월14일은 팔레스타인들에게 재앙에 해당하는 것이었다.9명의 팔레스타인인들이 가자지구를 지키는 이스라엘 군인들이 쏜 총에 맞아 숨졌다. 그들중에는 8살짜리 어린이도 끼어 있었다.이날 일어난 사건도 정말 불행한 일이었다. 이 사건은 그동안 불행한 운명에 억매어온 팔레스타인인들을 다시 한번 분노케 했다.그러나 이는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간에 연일 계속되는 긴장의 연장선상에 머무는 일과성 사건으로 지나가고 말았다. 이런 상황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클린턴 미 행정부의 중동지역에서의 영향력 약화에 따른 산물이다. 2년 전부터 클린턴 행정부는 이스라엘을 옹호하는 세력 및 미국내 이스라엘 지지자들과의 분쟁을 피하기 위해 협상테이블에서 자신의 주장을 강력히 피력하는 것을 스스로 거부해 오고 있다.그리고 중동평화를 깨는 베냐민 네타냐후 정권의 여러 행동에 대해서 높은 목소리로 비난하지도 않았다.심지어는 이스라엘에 대해 최소한의 압력도 계속 행사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이를 당연시하는 행동마저 하고 있다. 미국은 중동 평화문제에 불편부당한 그리고 충실한 중재자로서의 위치를 원하지 않고 있는 셈이다.실제로 이미 이들은 더이상 중동평화의 중재자가 아니다.이러한 위치를 지키려면 클린턴 대통령은 의회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친이스라엘 세력의 압력에 적극 맞서야 했다. 미 의회의 친이스라엘 세력에는 최근 몇년 사이에 공화당 의원들에다 클린턴 대통령의 동료들인 민주당의원까지 합세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이스라엘에 대한 체계적인 방어정책과 관련,친이스라엘 세력을 형성해냈고 미행정부에 대항해 이들을 조종하고 있다.그는 지난 4월초 엄청난 승리를 얻어냈다.미 상원의원 100명 가운데 81명의 서명으로 클린턴 대통령에게 이스라엘에 어떠한 압력도 행사하지 못하도록 했다.그 결과 중동평화는 깨졌다. 클린턴 대통령은 미국의 친이스라엘 로비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함으로써 네타냐후 총리에 대해 속수무책이 되버렸다.그 결과 미국은 중동지역에서 영향력 있는 중재자의 자격은 물론이고 국가적 신뢰도 함께 잃어버리게 됐다.
  • 에스트라다 野 후보 선두 달려/필리핀 오늘 대통령선거

    ◎여 후보 베네치아보다 여론조사서 18% 앞서/빌라 전 국방 다크호스로 필리핀은 11일 대통령 및 부통령,국회의원,지방의원을 뽑는 선거를 동시에 실시한다.필리핀 유권자 3천4백만명은 이날 10만여명의 후보자들 가운데 1만7천300명의 공직자를 선출할 예정이다. 가장 눈여겨볼 대목은 역시 6년 단임의 대통령 선거이다.이번 대권 레이스에 ‘출사표’를 던진 사람은 모두 80여명.그러나 피델 라모스 대통령의 경제개혁을 본궤도에 올려놓을 후보는 그리 많지 않다. 이중 선두주자는 필리핀 3개 야당연합인 민족주의자 필리핀 대중투쟁(LAMMP) 후보로 출마한 조셉 에스트라다(61) 현 부통령이다.영화배우 출신인 그는 상원의원과 산후안 시장을 지냈다.에스트라다 후보는 최근 여론조사에서 33%의 지지율을 얻어 그의 강력한 라이벌인 호세 드 베네치아 하원의장(61·지지율 15%)을 크게 앞서고 있어,당선권에 가장 근접해 있는 상태다.그러나 도덕성과 국정운영 능력에서 문제가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 뒤를 집권 라카스당 후보로 나선 베네치아 하원의장이 바짝 뒤쫓고 있다.그는 지지율에서 뒤지지만,라모스 대통령의 ‘낙점(落點)’을 받은 데다 금력과 조직력에서 에스트라다 후보를 앞서는 강점을 지니고 있다.신문기자에서 석유회사 사장으로 변신했던 그는 ‘카리스마’가 없고 ‘때묻은 기성 정치인’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는 점이 취약점이 될 수 있다.같은 여권 후보인 레나토 드 빌라 전 국방장관(62)은 다크호스다.전형적인 군인으로 통하는 그는 지난해말 라모스 대통령의 상원의원직 제의를 뿌리치고 독자출마를 선언했다.
  • 폴린 페리 英 상원의원 韓·英 세미나 주제발표

    ◎職訓 개혁이 英 경제난 극복 원동력/①국가투자 대폭 늘려/②기초능력 배양 주력/③기업요구 적극 반영/④실직자들 집중 교육⑤전국민 자격증 취득 한국직업능력개발원(원장 李茂根)이 영국문화원(원장 테리 토니)과 공동으로 7일 주한영국대사관에서 개최한 한·영 직업훈련 세미나에서 폴린 페리 영국 상원의원은 ‘산업경쟁력을 위한 훈련­영국의 경험’이라는 주제 발표를 통해 영국이 직업교육훈련을 개혁함으로써 실업문제를 해결하고 경쟁력을강화시킬 수 있었다고 밝혔다.다음은 발표요지. 한국보다 앞서 국제통화기금(IMF) 한파를 겪었던 영국은 최근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발전의 원동력을 다양하게 찾을 수 있지만 무엇보다도 국민들의 직업 능력을 높인데서 찾을 수 있다.즉 직업교육훈련에 대한 국가 투자증대 및 국민들의 직업 기초능력 개발,새로운 제도의 도입과 실천 등이다. 첫째,직업교육훈련에 대한 국가의 투자를 늘렸다.직업교육훈련에 대한 투자는 낭비가 아니라 오히려 경제성장에 도움이 됐다. 둘째,영국의 직업교육 개혁조치들은국민들의 기초기능 습득단계에서 재취업까지 종합적이었다.우선 국민들의 직업 기초능력을 높이는데 노력했다.한예로 영국에서 새롭게 성장하는 산업분야로 예술분야가 있는데 이것은 초중등학교 때부터 창조적이고 실질적인 직업능력 습득교육이 이뤄졌기 때문이다.또 성인에 대한 직업교육훈련도 강화했다.심지어 박사학위 소지자도 자존심을 버리고 직업훈련을 받는다. 셋째,직업교육훈련에 대한 새로운 제도를 만들었다.영국은 모든 교육과정과 프로그램의 도입에 기업인들을 참여시켜 산업현장의 요구를 적극 반영하도록 했다.외부인사가 프로그램에 직접 참가하여 평가를 함으로써 직업교육훈련의 질적 향상을 꾀한다. 넷째,실업자에 대한 직업기술훈련을 강화했다.한국의 현상황과 같이 급격하게 늘어나는 실업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영국에서는 직업교육훈련을 실시했다.지난 10여년간 영국에서도 실업문제는 심각한 사회문제였다.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직업교육훈련을 강화했다.실직자들에 대해 영국정부는 정보산업과 같은 새로운 산업분야에 대한기술교육을 적극 실시하였으며 기업경영과 관리기술 등을 집중 훈련시켜 중소기업 창업을 유도했다. 다섯째,새로운 직업기술자격제도를 도입했다.영국은 자격제도를 국가경쟁력 강화에 필요한 정책의 하나로 생각하고,전국민을 대상으로 국민 각자가 갖고 있는 직업능력에 따라 자격을 취득하도록 했다.자격 취득이 생산현장의 기술향상과 생산비용의 절감에 기여하기 때문에 기업주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등 자격제도가 근로자와 고용주 모두에게 이익이 되게 만들었다. 이러한 일련의 개혁조치들은 영국의 직업교육훈련에 대한 인식과 평가 수준을 높였으며,근로자들을 사회가 요구하는 수준으로 교육시켜 세계적으로 영국의 경쟁력 강화에 큰 도움이 됐다.
  • 美 슈퍼 301조 영구 부활 모색/의원 48명 클린턴에 촉구

    【워싱턴 교도 연합】 미의회의 상·하원 의원 48명으로 구성된 초당파 모임은 6일 빌 클린턴 미대통령에게 작년으로 시효가 종료된 슈퍼 301조 무역법을 영구 부활시킬 것을 촉구했다. 칼 레빈 상원의원(민주)이 이끌고 있는 이 모임은 클린턴 대통령에게 보낸 서한을 통해 슈퍼 301조를 부활시키는 것은 “미 상품에 대한 불공정 무역장벽을 제거하지 않으면 미국이 이에 상응하는 제재조치를 부과할 것이라는 분명한 신호를 보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불공정 무역국에 대한 보복조치를 규정,일본과 유럽연합(EU) 등 무역상대국으로부터 비난의 대상이 돼 온 미국의 슈퍼 301조는 지난 88년 제정 이후 행정부 권한으로 2차례나 부활된 바 있으며 97년에 법률의 시효가 종료됐다.
  • 美,대인지뢰 유예법 폐기 추진

    ◎“해외미군 안전 위협” 軍 주장 수용 【뉴욕 연합】 클린턴 美 행정부는 내년 2월부터 적용할 예정이던 대인(對人)지뢰 사용의 일시유예를 규정한 관계법의 폐기를 추진중이라고 미국의 뉴욕 타임스가 3일 보도했다. 이 신문은 익명의 행정부 관리들의 말을 인용,이같은 움직임은 미국방부가 전세계에 주둔중인 미군에 대한 심각한 안전 위협을 경고한 후 나왔다고 전했다. 신문은 클린턴 대통령이 지난 96년 대인지뢰 사용의 일시유예를 담고 있는 관계법에 서명했지만 백악관 고위 보좌관들은 지뢰사용 금지를 결코 지지하지 않았던 군수뇌부의 의견에 동조하고 있다고 말했다. 새뮤엘 버거 백악관 안보담당 보좌관도 이번주 대인지뢰 사용의 일시유예를 발의,법안을 통과시켰던 패트릭 레이 상원의원(민주,버몬트주)에게 이 법의 폐기 추진을 호소했다고 신문은 덧붙였다. 또 윌리엄 코언 국방장관과 헨리 셀턴 미합참의장은 지난달 30일 스트롬 서몬드 상원 군사위원장에게 보낸 서한을 통해 “대인지뢰 사용의 모라토리엄을 규정하고 있는 법은 우리 군이수용할 수 없는 위험을 내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임무 완수를 위협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 부토 일가 전자산 동결/파키스탄 법원

    【이슬라마바드 AFP 연합】 파키스탄의 2개 법원은 27일 베나지르 부토 전(前) 총리를 비롯해 그녀의 모친,수감중인 남편 및 친지들의 전자산을 동결했다고 한 고위 정부관리가 밝혔다. 정부의 주요 반(反)부패 사정기관인 심계국의 사이푸르 레만 국장은 라호르와 라발핀디 소재의 펀자브주 특별고등법원이 부토 일가의 전자산을 동결하는 잠정명령을 내렸다고 말했다.나와즈 샤리프 총리의 보좌관이자 상원의원인 레만 국장은 이 명령은 부토 전 총리 일가와 20명 이상에 달하는 친지의 재산,농지,은행예금,공장 및 사업체 등에 적용된다고 밝혔다.
  • 존 F.케네디(美國의 대통령 문화:19)

    ◎뉴 프런티어정책 편 美 상징적 지도자/평화봉사단 창설… 후진국 교육·영농지도/蘇의 쿠바 미사일 배치 기도 ‘힘’으로 봉쇄 【보스톤(美 메사추세츠주)=羅潤道 특파원】 “국가가 당신을 위해 무엇을 해줄수 있는가를 묻지 마십시요.당신이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수 있는가를 물으십시요.” 1961년 1월20일,43세의 나이로 미역사상 최연소의 기록을 세우며35대 대통령에 취임한 존 F.케네디 대통령(1917­1963)의 취임사는 냉전체제에 대한 염증 때문에 강한 개인주의적 성향을 보이던 미국민들에게 신선한충격으로 다가왔다. 63년 11월21일 댈러스에서의 총성으로 최고의 전성기에 역사의 뒤안으로 물러서게 된 케네디는 불과 2년10개월(1천37일)의 짧은 집권기간에도 불구하고 미국민에게 가장 사랑받는 대통령으로 남아 있다.그래서 그는 죽어서도 포토맥강 건너 알링턴 국립묘지 한복판,워싱턴 시가지가 내려다 보이는 중앙 언덕에 ‘불멸의 불꽃’(eternal flame)으로 살아 미국민들의 마음속에 타오르고 있다. 첫 20세기 출생 대통령인 그는 많은 업적을남겼다.‘뉴 프런티어’라고 불린 그의 정책은 루즈벨트의 ‘뉴 딜’에 버금가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평화봉사단’을 창설,미국의 젊은이들로 하여금 세계 구석구석 후진국을 찾아가 교육과 영농을 지도케하는 인류애적 차원의 일에 적극 나섰다.흑인인권 보호를 위해 흑백차별을 금지하는 민권법안도 만들었다.소련보다 한발늦기는 했지만 선구자적인 의지로 우주개발계획을 추진,미국이 최초의 달정복 국가가 되도록 했다. ○흑백차별금지법 제정 대외적으로도 소련의 베를린 봉쇄에 대한 강력한 대처,쿠바내 소련의 미사일 배치를 저지키 위한 쿠바 봉쇄 등 ‘힘’으로 소련을 굴복시킨 그의 강력한 대외정책은 미국민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는 것은 물론 국제적인 관심또한 불러 일으켰다.비록 쿠바침공 실패로 국제적 망신을 하기도 했지만 60년대 들어 대중문화의 급속한 확산과 함께 미국적 이상을 실현할 젊고 용기있는 지도자의 출현을 기대하고 있던 미국민들에게 케네디는 ‘미국의 상징’으로까지 받아들여졌던 것이다. 그는 탁월한 두뇌의 소유자도 아니고 강력한 의지력을 갖춘 인물도 아니었다.더우기 정계 입문에서 대통령이 되기까지 정치적 성장과정이 백만장자 아버지 조지프 케네디의 금권을 앞세운 적극적 개입에 의한 것이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그러나 그가 강력하고 진보적인 정책을 펼수 있었던 것은 겸손하고 노력하는 자세 때문이다.그는 사려깊고 여러 사회문제들에도 깊은 관심을 갖고 있었으며 특히 민주주의 원칙의 수호자로 이미지를 심었다. 1917년 보스턴 교외의 브루클린에서 아일랜드 이민의 후손으로 백만장자가 된 조지프와 로즈 케네디 사이의 9남매중 둘째 아들로 태어난 케네디는 병약하고 그다지 학교성적은 좋지 않았으나 사람을 사귀기 좋아했고 스포츠를 좋아했다.부친이 루즈벨트 행정부때 영국대사를 지내 런던대학에도 잠깐 재학한 일이 있는 그는 하버드에 입학,광범위한 여행을 즐겼다. 그러나 상급 학년으로 올라가면서 그는 점차 학업에 흥미를 보였다.영국의 나치 독일에 대한 대응 실패를 다룬 그의 졸업논문은 ‘왜 영국은 잠을 잤는가’라는 제목의 책으로 출판되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이어 1942년 진주만 폭격 직전 미해군에 입대해 PT(어뢰정)지휘관으로 활약,일본군과 싸운 공로로 은성훈장을 받기도 했다.45년 디스크 수술로 전역한 그는 부친의 권고로 46년 민주당 소속으로 연방하원에 출마,당선됐다. ○57년 퓰리처상 수상 52년 3선의원인 케네디는 35세의 젊은 나이로 상원의원에 당선됐다.이듬해 그는 조지워싱턴대를 나오고 워싱턴타임스­헤럴드의 런던특파원 이던 24세의 재클린 부비어와 결혼했다.지성과 미모를 갖춘 재클린과 미남 총각 상원의원과의 결혼은 커다란 화제를 불러 일으켰지만 겉보기와는 달리 두사람의 결혼생활은 케네디의 바람기로 원만치 못했다. 57년 미의회에서 훌륭한 업적을 남긴 의원들의 이야기를 엮은 ‘용기있는 사람들’이라는 책을 저술,퓰리쳐상을 받은 케네디는 바른 이상을 가진 정치인으로 호평을 받았으며 TV토론이 처음 실시된 60년 대통령선거에서 닉슨을 근소한 차이로 따돌릴수 있었다. 백악관에 들어간후 재클린은 훌륭한 참모이자 동반자 역할을 했으며 특히 63년 8월 2살바기 아들 패트릭이 죽은 후에는 두사람의 금슬이 상당히 좋아진 것으로 전해졌다.그러나 이 좋은 금슬도 케네디의 피격으로 3달밖에 지속되지 못했다.케네디 가문은 대통령과 3형제 상원의원을 내는 등 미역사상 가장 번성한 집안의 대명사가 됐지만 두아들이 총에 맞아죽고 아들과 딸들이 사고로 죽는 비운의 가문으로도 남아 있다. 서거 35주년이 되는 오늘날까지도 그는 미국민들에게 가장 인기있는 대통령으로 남아있으며 보스턴항 남부의 컬럼비아 포인트에는 케네디도서관이 우뚝 서 케네디 대통령 당시 각종 자료 및 유물을 집대성하고 있다.또 브루클린에는 그의 생가,히아니스항 인근에는 하계별장 등이 잘 보존돼 있다.
  • 제임스 먼로(美國의 대통령 문화:18)

    ◎‘먼로 독트린’ 천명… 미 외교정책 기틀 확립/재임전 국무­전쟁장관 자격 영과 전쟁서 승리/성실과 결단력으로 재선… 평화­번영시대 열어 【프레데릭스버그(美 버지니아주)=羅潤道 특파원】 미국의 제5대 대통령 제임스 먼로(1817­1825)는 1823년 유럽 열강으로부터의 아메리카 대륙에 대한 간섭 배제를 천명한 ‘먼로 독트린’을 통해 신생 미합중국의 독자적 외교정책 기틀을 확립한 것으로 유명하다. 독립전쟁의 영웅으로 독립초기 신생국의 체제정비에 심혈을 쏟았던 버지니아왕조의 막내이자 건국세대(Founding Fathers)의 마지막 대통령을 역임한 그는 두차례 임기 내내 국민들의 폭넓은 지지를 받았다.특히 그는 신생국가로써의 국내외적 불안정을 씻고 평화와 번영을 가져온 ‘호감의 시대’(Eraof Good Feelings)를 전개시켜 미국민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준 대통령으로 평가되고 있다. ○대학중퇴 독립전쟁 참전 영국으로부터 독립의 기운이 무르익던 1758년 버지니아주 웨스트모어랜드의 개척농 아들로 태어난 그는 총명했으며 16세 되던 해에윌리엄스버그에 있던 당시 버지니아 식민지의 최고 명문이던 윌리엄&메리 대학에서 수학했다.그러나 2년후 독립전쟁이 발발하자 그는 대학을 중퇴하고 대륙군 소위로 참전,뉴욕전투,저먼타운전투 등에서 용맹을 떨침으로써 특진을 거듭,1778년 전쟁이 끝날때는 계급이 중령까지 올랐다. 특히 먼로는 당시 버지니아 주지사 토머스 제퍼슨(3대 대통령)에 의해 남부 미군의 현황파악을 위한 연락관으로 임명받아 활약했으며 이후 줄곧 제퍼슨의 오른팔 역할을 했다.전쟁이 끝난후에는 제퍼슨의 지도로 변호사 시험에 합격,프레데릭스버그에서 개업했다.제퍼슨과 먼로의 우정은 16년의 나이차에도 불구하고 죽을때까지 계속됐다. 이어 먼로는 1782년,24세의 약관에 버지니아 주의회 의원으로 당선돼 정계에 입문했으며 이듬해에는 대륙회의 의원으로 선출돼 3년간 활약한뒤 잠시 정계를 떠나 변호사일에 주력했다.그러나 1790년 연방 상원의원에 진출,제퍼슨,매디슨(4대 대통령)과 함께 민주공화당을 결성,알렉산더 해밀턴의 연방주의당에 맞섰다. 그는 프랑스와 영국주재 대사를 맡는등 외교관으로 활약했으나 이렇다할 결실은 거두지 못했다.1794년 초대 워싱턴 대통령에 의해 프랑스대사로 임명돼 프랑스와의 관계강화에 노력했으나 프랑스혁명 신봉자인 그의 노골적인 친프랑스 언동은 워싱턴의 분노를 사게돼 2년만에 소환되고 말았다.그는 다시 1803년 제퍼슨 대통령에 의해 영국대사로 임명됐으나 역시 본국정부 의도와 다른 무역협상을 벌임에 따라 다시 소환되는 불운을 겪어야 했다. 후에 먼로는 제퍼슨에 의해 루이지애나 식민지 구매협상 대표단장으로 프랑스에 파견됐다.1천500만달러에 당시 미국영토 2배에 달하는 영토를 구매토록하는 협상을 나폴레옹과의 담판에서 성사시킴으로서 협상력을 과시했다.또 매디슨에 의해 국무장관에 임명된 그는 1812년 영국에 선전포고,전쟁에 돌입했다.그러나 워싱턴이 함락되는등 전세가 불리해지자 자신을 전쟁장관에 임명해줄 것을 요청,국무와 전쟁 겸임장관이 된 그는 탁월한 지휘역량을 발휘,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전쟁이 끝난후 매디슨 행정부 말기는 전례없는 평화와 번영을 누리게 됐고 그 주역인 먼로의 인기는 치솟았다.대사로 프랑스·영국을 오가는 사이사이에 두차례 버지니아 주지사를 역임한 경력도 갖춘 그는 자연스레 민주공화당의 대통령후보로 1816년 선거에서 당선,매디슨의 뒤를 잇게 됐다. 59세에 대통령에 취임한 그는 어느 대통령보다도 다양한 공직경험을 갖추고 있었으며 거기서 생성된 그의 정치감각은 탁월한 각료 임명으로 나타났다.국무장관 존 퀸시 애덤스(6대 대통령),전쟁장관 존 칼훈,재무장관 윌리엄크로포드,법무장관 윌리엄 워드 등은 지성적이고 뛰어난 능력과 함께 단합이 잘돼 환상의 진용으로 평가됐다.더우기 먼로 자신의 최선을 다하는 성실함과 굳센 결단력은 모든 국민들로부터 존경을 받게 했다. 먼로는 남부와 서부 등을 광범위하게 여행하며 국민들로부터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그의 인기는 더욱 치솟아 1820년 실시된 두번째 선거에서는 232표중 231표를 얻어 만장일치로 당선된 조지 워싱턴에 이어 최다 득표로 재선되는 기록을 세웠다. 먼로는 퇴임후 리스버그의 오크힐에서 거주했으나경제적 어려움으로 고통을 겪었으며 5년후 부인 엘리자베스가 죽자 뉴욕의 딸 집으로 옮겨 쓸쓸한 말년을 보내다 1831년 7월4일,73세를 일기로 숨을 거뒀다. ○퇴임후 곤궁… 사저 매각 먼로의 유적으로는 현재 프레데릭스버그의 박물관,사저이던 샬롯빌의 애쉬론,리스버그의 오크힐 등이 보존돼 있다.변호사 사무실이 있던 건물에 들어선 박물관은 먼로독트린을 초안하던 책상 등 다양한 유품들이 진열되고 있다.또한 애쉬론 사저는 퇴임후 경제난으로 팔았던 것을 1931년 박애주의자 제이 존스가 구입,일반에 공개했다.1974년 존스 가족은 그의 모교인 윌리엄&메리 대학에 이를 기증,이 대학이 박물관과 함께 관리하고 있다. 먼로는 제퍼슨,매디슨과 매우 가깝게 지냈으며 특히 제퍼슨은 자신의 사저인 샬롯빌의 몽티첼로 인근에 ‘지적공동체’(intellectual community)마을의 설립을 위해 이들을 모여살도록 권고,애쉬론을 먼로에게 소개했으며 매디슨의 사저 몽펠리에도 이 부근에 있다. ◎먼로 지명/도시·학교·산·교회 등 238개/워싱턴·링컨과 함께 도시지명 ‘빅3’ 【프레데릭스버그(美 버지니아주)=羅潤道 특파원】 미국의 도시들은 역대 대통령의 이름을 딴 지명들이 많다.신대륙으로의 이주자들이 정착,새 도시를 건설할때마다 자신들이 좋아하는 대통령이나 위인들의 이름을 붙였기 때문이다.먼로 지명은 워싱턴,링컨과 함께 미대통령 가운데 도시명으로 가장 많이 쓰인 ‘빅3’로 알려져 있다. 워싱턴 지명이 49곳으로 가장 많고,링컨은 45,먼로는 44,제퍼슨은 41 순으로 나타나 있다.이 숫자는 미자동차협회(AAA)가 최근 발행한 ‘로드 아틀라스’에 나타난 지명을 기준으로 한것이기 때문에 산·강·호수 등 자연의 이름과 학교·역 등 공공기관의 이름까지 합하면 실제로 대통령 이름이 사용되고 있는 경우는 훨씬 많다. 먼로박물관이 펴낸 먼로 지명 연구 책자인 ‘먼로,USA’에 따르면 미국내 ‘먼로’가 들어가는 지명은 모두 238개에 달한다.그리고 미국 해방흑인들이 세운 아프리카 라이베리아의 수도 ‘먼로비아’와 남극해의 먼로섬 등 미국 밖에도 존재한다. 미국내 50개주중 36개주에 흩어져 있는먼로 지명 가운데 가장 많은 것은 도시이름으로 26곳이 있다.인구 40명인 노스 다코타주의 소읍에서부터 인구 5만5천인 루이지애나주의 먼로시까지 다양하다.우리의 군에 해당하는 카운티 이름은 모두 18곳으로 인구 9천명의 미주리주 먼로카운티에서 인구 71만명의 뉴욕주 먼로카운티까지 그 규모가 제각각 이다. 먼로 지명이 가장 많은 주는 오하이오로 35곳이 있고,다음은 인디애나 23,일리노이 19,미주리 17,아이오와·펜실베이니아 13,버지니아 11 순을 기록하고 있다.자연지명으로는 강·호수명 10곳,산 6,숲 2,협곡 2,다리·전망대 1곳 등이 있고 교회 7곳,학교 3곳 등도 있다.
  • 클린턴,北아일랜드 평화 “숨은 주역”

    ◎95년 중재자 미첼 파견… 대선공약 실행/협정타결 전후 11회의 전화로 막후 지원 【워싱턴〓金在暎 특파원】 북아일랜드 평화협상 타결에 미국의 중재가 돋보인 가운데 특히 클린턴 대통령의 끊임 없는 관심과 측면지원이 중추적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된다. 유난히 이해 당사자와 협상 파트너가 많은 이번 협상에서 끈기 있는 중재자역을 잘 수행한 조지 미첼 전 상원의원을 3년반 전 특사로 파견한 것은 클린턴 대통령이 세운 공의 한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92년 대선 때 북아일랜드평화협상을 공약으로 내걸었던 클린턴 대통령은 94년 1월 가톨릭 분리주의지도자인 게리 아담스 신페인당수의 미국 비자신청을 허용하도록 명령했다. 당시 이는 외교에서 클린턴보다 몇수 위의 대가연(大家然)하던 공화당 인사들은 물론 국무·법무장관들도 반대한 모험이었지만 북아일랜드 협상의 물꼬를 튼 조치였다. 95년 11월 북아일랜드를 방문했던 클린턴은 96년 초부터의 휴전협정 파기 및 테러 재개에도 불구하고 협상중재의 노력을 멈추지 않았다. 10일의 최종 타결을 전후해 클린턴 대통령은 밤 11시부터 다음날 상오까지 14시간 동안 협상 당사자들과 11통의 전화를 주고받아 타결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 북아일랜드 평화협상 타결 임박

    ◎남북의윈위 신설·국민투표 실시 등 최종안 마련 【벨파스트 AFP AP 연합】 북아일랜드 분쟁 관련 각 정파가 10일 최종협정안 검토작업에 들어감에 따라 거의 30년간에 걸친 유혈분쟁을 종식시키기 위한 역사적인 북아일랜드 평화협상의 타결이 임박했다. 신교도 준군사단체중 하나를 대표하는 친영(親英) 진보연합당의 데이비드어빈 당수는 “우리는 합의쪽으로 다가가고 있다”면서 “타결가능성은 90%이상”이라고 말했다. 그는 역사적인 중대사건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다며 “여기서 우리가 논의하고 있는 것은 베를린장벽 붕괴와 맞먹는 엄청난 것”이라고 강조했다. 협상 중재자인 조지 미첼 전 미국상원의원은 영국과 아일랜드 총리의 끈질긴 중재노력에 따라 당초 협상시한인 9일 자정(한국시간 10일 상오 8시)을 넘겨가며 각 정파들과 막판 절충을 벌인 끝에 최종협상안을 마련했다. 협상안은 북아일랜드의 장래문제를 놓고 오는 5월22일 북아일랜드와 아일랜드에서 동시에 국민투표를 실시하고 남북의원위원회 등을 신설,상호협력하는 것을 골자로하고 있다. 이 협상안은 최종검토를 위해 모든 협상대표들에게 제시되며 각 협상대표들은 최후 수정을 제의할 수 있다.
  • 美 담배사,‘흡연피해 배상’ 거부/40개 주와 합의 번복

    ◎상의 의료비 배상액 증액에 반대/클린턴,“결정재고” 촉구 【워싱턴 AP AFP 연합】 RJR 나비스코,필립 모리스,로리야드 등 미국의 주요 담배제조업체들은 지난해 성사된 정부와 담배업계간 담배관련 일괄 합의를 거부한다고 8일 선언했다. 이들 업체들은 지난 1일 상원에서 담배회사들이 25년간에 걸쳐 지불해야할 담배관련 의료비 배상액을 97년 6월 합의된 3천6백85억달러보다 1천3백80억달러가 많은 5천60억달러로 늘리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수정안이 통과된데 대해 반발,이같은 결정을 내렸다. RJR 나비스코의 스티븐 골드스턴 회장은 “담배와 관련,미국을 새롭고 건설적인 방향으로 인도할 수 있었던 지난해 6월20일 합의된 사항들은 이제 무효가 됐다”고 항의하고 “올해내로 종합적 해결방안이 나올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단언했다. 지난해 40개 주정부와 담배업계는 담배업계가 의료비 관련 소송에서 3천6백85억달러를 배상하고 광고를 제한하며 청소년 흡연을 막도록 노력하기로 하고 대신 정부는 집단소송을 막고 업계에 요구할 수 있는 손해배상금의 상한선을 정해주기로 합의했었다. 그러나 1일 존 매케인 상원의원의 중재로 통과된 새 타협안은 연방 및 주에 대한 담배업체들의 의료비 배상액을 늘리고 담배 가격을 2003년까지 갑당 1.10달러 인상하는 등 보다 엄격한 내용으로 돼 있다. 이에대해 빌 클린턴 대통령은 기자회견을 열고 담배회사들이 이같은 결정을 재고해줄 것을 촉구하고 흡연방지를 위한 새로운 법률제정을 위한 노력을 계속하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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