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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바마의 미국] ‘패장 3人’의 향후 행보는

    [오바마의 미국] ‘패장 3人’의 향후 행보는

    미국 대통령 선거가 버락 오바마의 승리로 대단원의 막을 내림에 따라 세 패배자의 향후 행보에도 눈길이 쏠리고 있다. 가장 뼈아픈 패배를 당한 공화당 존 매케인 전 후보는 연방 상원의원으로 돌아갈 것으로 보인다. 로이터 통신은 막바지 투표가 한창 달아오르던 4일(이하 현지시간) “매케인이 선거 뒤 (패배하면) 상원에 전념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실례로 2004년 대선에서 조지 부시 현 대통령에게 무릎을 꿇은 존 케리 당시 민주당 대선 후보가 매사추세츠 연방 상원 지역구로 돌아가는 등 원직에 복귀하는 게 미국 정치인들의 전통이다. 매케인은 5일 애리조나주 피닉스의 자택에서 측근들과 상원의원으로 돌아가는 자신의 역할에 대해 논의했다. 매케인의 러닝메이트 세라 페일린 알래스카 주지사는 차기 대권주자로까지 점쳐지고 있다. 대선과 상·하원 선거에서 참패한 공화당을 구할 지도자감으로 떠올랐다. 공화당은 6일 버지니아에서 대선 패배 이후 당의 진로를 모색하는 모임을 갖는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이 보도했다. 페일린은 이 자리에서 미트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와 함께 역경을 헤쳐갈 지도자로 거론될 전망이다. 보수파 단체 ‘세제 개혁을 위한 미국인’을 이끄는 그로버 노퀴스트 대표는 “매케인이 여론조사에서 앞선 단 2주는 페일린이 부통령으로 지명된 직후의 기간이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익명의 전문가들은 페일린이 대권도전을 하기 위해서는 상원의원이라는 단계를 밟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민주당 경선에서 오바마 당선인에게 져 꿈을 접은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뉴욕)은 가장 많은 패(牌)를 가지고 있다. 당내 비중이 상당히 높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스는 “힐러리가 오바마 행정부에서 국무장관을 맡아 대권에 재도전하길 바라고 있다.”며 힐러리의 속내를 전했다. 힐러리가 오바마에게 남편 빌 클린턴 전 대통령까지 동행시켜 선거를 뒷받침한 점은 오바마에게 ‘빚’으로 남았다. 6년 임기 가운데 2년을 남겨놓고 상원에 복귀하는 힐러리의 임기 이후 행보에 관심이 집중된다. 통상 대통령 집권 2년부터 차기 대선을 향한 움직임이 시작되기 때문에 오바마와의 ‘리턴매치’에 시동을 걸 수도 있다.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오바마의 미국] 오바마 측근 ‘시카고 사단’ 뜬다

    [오바마의 미국] 오바마 측근 ‘시카고 사단’ 뜬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5일(현지시간) 대중의 눈에서 사라지면서 차기 행정부 구상을 위한 숙고(熟考)에 들어갔다고 워싱턴포스트(WP)가 6일 보도했다. 오바마가 정권인수 모드로 급전환하면서 정치적 참모 집단인 ‘시카고 사단’이 얼마나 워싱턴에 입성할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오바마 캠프의 정권인수팀을 이끌고 있는 존 포데스타(59)가 가장 눈에 띈다. 시카고 출생으로 오바마 사단의 핵심이다. 클린턴 집권2기에 마지막 백악관 비서실장을 지낸 베테랑이다. 워싱턴의 진보적 성향의 싱크탱크인 미국진보센터(CAP) 소장을 맡고 있다. 행정 경험에 오바마 당선인의 신임이 더해지면서 중책을 맡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인수팀 공동 위원장인 발레리 재럿(51)은 스탠퍼드대를 나와 시카고에 기반을 두고 활동하고 있는 여성 변호사이자 사업가다.1990년대 시카고 시장의 부실장으로 일하면서 당시 오바마의 약혼녀였던 미셸 로빈슨(지금의 미셸 오바마)을 시장 보좌역으로 ‘채용’했던 인연도 있다. 재럿은 오바마의 가장 오래된 측근으로 분류된다. 오바마 행정부에서 중책을 맡을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가장 많은 관심이 쏠리고 있는 인물은 단연 데이비드 엑슬로드(53). 오바마의 ‘오른팔’격인 그는 뉴욕 출생이지만 시카고대를 나왔고, 이후 시카고 컨설팅 회사에서 활동하면서 2004년 오바마의 상원의원 선거를 도왔다.2007년 1월부터 오바마캠프의 핵심 선거전략가로 활동했다. 1992년부터 오바마와 인연을 맺은 엑슬로드는 최근 WP와의 인터뷰에서 그를 존 F 케네디에 비유하기도 했다. 오바마에게 대권 출마를 권유한 것도 그였다. 지난해 1월 오바마에 관한 5분짜리 동영상을 제작, 인터넷에 올리면서 그의 대권 행보를 공식화했다. 엑슬로드는 특히 인터넷 선거운동에 주력,30대 이하 젊은 유권자들 사이에서 지지 외연을 넓히고 ‘개미군단’ 유권자들의 십시일반식 선거자금 기부를 견인해 냄으로써 오바마의 당내 경선과 본선 우위에 결정적 기여를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오바마의 수석 보좌관인 피터 라우즈(62)의 거취도 관심사다. 그는 하버드로스쿨 친구의 소개로 2004년 당시 오바마 상원의원을 만나 전략 참모로서 캠프의 방향타 역할을 맡았다. 라우즈는 1971년 이후 30년 이상 상원 주변에서 잔뼈가 굵어 ‘101번째 상원의원’이란 별명도 따라다닌다. 이기철기자 chuli@seoul.co.kr
  • [오바마의 미국] 재계 “오바마 루트 개척하라”

    [오바마의 미국] 재계 “오바마 루트 개척하라”

    ‘소통의 루트를 개척하라.’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 당선인측과 소통할 창구 마련이 발등의 불이 됐다. 기존 한·미통상정책의 변화가 불가피한 데다 한국에 대한 오바마의 시각이 그리 우호적이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6일 재계 관계자는 “한국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재협상은 없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지만 이는 ‘희망사항’일 뿐”이라며 현실은 이런 기대를 무참히 저버릴 수 있음을 강조했다. 오바마의 한·미 FTA에 대한 비판은 단순히 자동차 몇 대 못 팔아서가 아니라 자국 산업과 노동자 보호를 위한 ‘철학’에서 비롯된 것이란 해석이다. 손성원 캘리포니아주립대 석좌교수는 YTN FM ‘강성옥의 출발 새아침’과의 인터뷰에서 “지금처럼 (미국)경제가 나쁜 상황에서는 FTA를 통과시키기는 굉장히 어렵다고 봐야 한다.”면서 “재협상을 하자고 나올 가능성이 많다.”고 진단했다. 특히 오바마가 한·미 FTA뿐만 아니라 한국인에 대해서도 곱지 않은 시각을 갖고 있는 것이 더 심각한 문제다. 오바마는 그의 저서 ‘내 아버지로부터의 꿈(Dreams from My Father)’에서 시카고 흑인 밀집 지역에서 장사를 하고 있는 한국 상인들을 ‘이기적인 사람들’로 묘사했다. 한국인들이 백인우월주의 단체인 KKK에 돈을 댄다는 내용도 있다. 재계 관계자는 “이 같은 오바마의 대(對)한국 시각을 바꿔놓지 못할 경우 한·미통상 마찰이 불거질 수밖에 없다.”며 “조속히 소통 창구를 개척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와 관련, 또 다른 재계 인사는 “정부나 개별 기업이 나서는 것은 현재로서는 무리가 있다.”면서 “민간 외교라인을 확대·보완해 가동해야 한다.”고 말했다. 재계에서는 오바마가 워낙 혜성처럼 나타난 신인이어서 국내에서 그와 직접 접촉이 가능한 인사들은 거의 없는 것으로 보고 있다. 때문에 미국 재계나 민주·공화 양당 등 정치권 인사들과의 교류 창구인 한·미교류협회나 한·미재계회의 등 민간라인을 적극 활용할 필요성을 제기했다. 이와 관련, 재계 인사 가운데 대표적인 미국통으로 알려진 조석래 전경련 회장과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류진 풍산 회장, 김윤 삼양사 회장 등이 주목받고 있다. 지난 2001년 한·미교류협회 회장으로 활약한 김승연 회장은 민주당과 공화당을 가리지 않고 미 정계에 폭넓은 인맥을 형성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 회장은 2003년 조지 부시 연두교서 연설회 초청을 받아 워싱턴을 방문했을 때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상원의원을 만났고 그의 남편인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을 한국에 초청, 방한을 성사시켰다. 김 회장은 민주당 중진인 찰스 랭글, 맥더모트, 포머로이 의원 등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 회장 못지않게 한·미재계회의 한국측 위원장인 조석래 전경련 회장도 눈여겨봐야 한다. 조 회장은 한·미재계회의 미국측 위원장인 월리엄 로즈 씨티그룹 부회장과 막역한 사이다. 한·미 통화스와프 체결이나 미국 비자면제 프로그램 등을 이끌어내는 데 로즈 부회장의 역할이 컸고 ‘거중조정’역할을 한 이가 조 회장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류진 풍산그룹 회장도 민주당 인맥이 탄탄하다. 오바마 지지를 선언한 콜린 파월 전 미 국무장관과는 좋은 관계다. 류 회장은 14일 서울 삼성동 그랜드인터컨티넨탈호텔에서 열리는 앨 고어 전 부통령 초청 만찬 강연을 성사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최용규기자 ykchoi@seoul.co.kr
  • 오바마 내각 인선 착수

    |워싱턴 김균미특파원|흑인으로는 미국 역사상 처음 대통령에 선출된 버락 오바마 당선인은 5일(현지시간) 정권인수팀을 발표하고 차기 백악관 참모 인선에 착수했다. 오바마 당선인은 주말쯤 차기 대통령으로서 공식 기자회견을 갖고 정권인수계획과 향후 국정운영 방향에 대해 밝힐 예정이다. 오바마 당선인은 경제상황의 심각성을 감안, 이르면 이번 주중 재무장관과 내각 인선을 협의할 백악관 비서실장을 먼저 발표할 것으로 보인다고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 등이 전했다. 오바마 당선인은 이날 램 에마뉘엘 민주당 하원의원에게 초대 백악관 비서실장직을 제안했다. 아직 수락하지는 않았지만 당선인과 같은 일리노이 출신으로 2000년 하원에 입성한 4선 의원, 현재 원내 서열 4위이다. 오바마 당선인은 또 정권인수위원장에 클린턴 백악관 비서실장을 지낸 존 포데스타 미국진보센터(CAP) 소장을 임명했다. 발레리 재럿 선임보좌역과 피터 라우스 상원의원실 비서실장도 공동위원장으로 활동하게 된다. 정권인수위는 12명의 위원으로 구성되며, 재닛 나폴리타노 아리조나 주지사, 윌리엄 데일리 전 상무장관, 페데리코 페나 전 에너지장관, 캐럴 브라우너 전 환경보호청장 등이 위원으로 내정됐다. 오바마 당선인은 6일부터 중앙정보국(CIA) 등 16개 정보기관을 총괄하는 국가정보국으로부터 일일 정보브리핑을 받으며 국가원수 및 군최고통수권자로서의 준비작업에 본격 착수한다. kmkim@seoul.co.kr
  • [데스크시각] 미국이 변하면 세계가 변한다/이도운 미래기획부 차장

    [데스크시각] 미국이 변하면 세계가 변한다/이도운 미래기획부 차장

    버락 오바마는 미국의 대통령이 될 수 없다고 믿었다. 돈도 없고, 조직도 없었지만 무엇보다 그는 흑인이었기 때문이다. 오바마는 젊고, 똑똑하고,‘담대한 희망’을 가졌다지만 희망은 희망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오바마를 처음 본 것은 워싱턴 특파원으로 부임한 직후인 2004년 7월27일. 보스턴에서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의 둘째날 (TV로 생중계되는) ‘프라임 타임’ 연사로 나왔을 때다. 그 당시에는 오바마라는 인물보다는 그를 그처럼 중요한 정치무대에 당당히 세워준 민주당 지도부의 배려가 더욱 놀라웠을 따름이었다. 그해 말 오바마가 상원의원에 당선된 뒤 의회에서 이따금 그를 볼 수 있었다. 미국 기자들은 그에게 대선 출마 여부를 질문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한국기자나 미국기자나 ‘립서비스’ 해대는 것은 똑같다.”는 정도로 치부했다.2007년 1월 오바마가 실제로 대선 출마를 선언했을 때는 “욕심이 앞선다.”고 생각했다. 민주당 후보는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미 민주당과 공화당의 대통령 후보 경선이 서서히 달아오르던 그해 6월3일. 뉴햄프셔 주에서 두 당 후보들의 합동토론회가 차례로 열렸다. 토론회 전날 미 대선 후보 경선의 모든 기록을 보관하고 있다는 ‘뉴햄프셔 정치박물관’을 방문했다. 박물관의 한 관계자는 2008년 대선을 전망하면서 “멍청한 백인 남자들(Stupid White Men·마이클 무어 감독의 책 제목)은 오바마를 찍지 않을 겁니다.”라고 말했다. 역시 그렇구나…. 그러나 정치박물관에서 만난 레이 버클리 뉴햄프셔 주 민주당 의장이 들려준 힐러리·오바마 캠프의 비교 논평이 계속 귓가에 남았다. 힐러리 진영은 당시 뉴햄프셔에서 가장 ‘프로페셔널’하고 ‘비싼’ 선거 전문가들을 싹쓸이해서 캠프를 꾸렸다고 한다. 반면 오바마 캠프는 ‘젊음’과 ‘열정’만 가득한 아마추어들로 구성돼 있다고 했다. 그러나 이들은 하루 24시간, 일주일에 7일간을 일한다고 버클리 의장은 말했다. 만일 이런 열정이 지속된다면, 그리고 전국으로 확산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참으로 궁금하다고 그는 말했다. 2008년 1월2일 마침내 아이오와 주에서 첫 경선이 열렸다. 경선 전날 밤 힐러리와 오바마가 디모인 시내의 비슷한 장소에서 마지막 유세를 가졌다. 어느 쪽으로 갈까 잠시 망설이다가 힐러리 쪽을 선택했다. 그녀가 이길 것으로 봤기 때문이다. 힐러리의 유세는 나름대로 성황이었지만 기대했던 만큼의 열기는 없었다. 오히려 오바마 쪽이 뜨거웠다는 말을 전해들었다. 다음날 저녁 디모인 컨벤션센터. 경선에서 승리한 오바마는 열광하는 지지자들을 향해 사자후를 토해냈다.“결코, 이날이 결코 오지 않을 것이라고 냉소자들은 말해 왔다.” “그러나 우리는 해냈다(Yes, We Can).” “미국의 변화를 믿는다(Change We Believe In).”오바마의 가슴 벅찬 연설을 들으면서 그가 민주당의 대선 후보는 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오바마가 미국의 대통령이 될 수 있을까에 대한 회의는 지난 3월 특파원 임기를 마치고 귀국하는 순간까지도 남아 있었다. 지난 3일 저녁. 오바마는 단 한번도 민주당 후보를 지지한 적이 없었던 버지니아 주에서 마지막 유세를 벌였다.“미국이 변하면 세계가 변한다.”고 호소했다. 오바마의 호소를 결국 버지니아는 받아들였다. 놀라운 변화였다. 오바마의 말대로 미국이 바뀌니 전세계가 바뀐 듯하다. 지난 8년 동안 찢기고 불태워지던 성조기가 전세계인의 환호 속에 하늘 높이 휘날리는 모습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적어도 미국이 세계의 변화를 선도했다는, 또 선도할 수 있는 국가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미국인들의 대담한 변화를, 그리고 위대한 승리를 축하한다. 이도운 미래기획부 차장 dawn@seoul.co.kr
  • [오바마의 미국] 오바마의 부드러운 남성상이 여심도 훔쳤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여성계에 두 가지 큰 빚을 졌다. 먼저 오바마 때문에 여성 대통령의 꿈이 좌절됐다. 게다가 힐러리 클린턴을 부통령 후보로 지명하지 않음으로써 1300만명의 힐러리 지지자들을 다시 한번 낙담시켰다. 그럼에도 오바마는 미 여성들을 사로잡았다. 왜? 최초의 여성 하원의장인 민주당 낸시 펠로시 의원은 “여성 대통령의 꿈을 빼앗은 젊은 친구가 매끄럽게 잘 해결했다.”고 말하고 있다. 오바마는 부드러우면서도 강한 이미지를 갖고 있다. 보수와 마초 이미지가 넘쳐나는 워싱턴 정가에서 그는 이상적인 남편감이자 아버지상을 보여준 지도자로 자리매김했다. 그는 밤마다 어린 두 딸에게 ‘해리 포터’소설을 읽어주곤 했다. 영국 더 타임스는 6일 오바마의 차분한 언행과 기품있는 태도, 그리고 합의를 존중하는 현대적 남성성(masculinity)이 여성들을 매혹시켰다면서 그의 남성성은 어머니 스탠리 앤 던엄과 아내 미셸의 페미니즘에 영향을 받은 덕택이라고 전했다. 오바마는 자신의 어머니를 편견과 두려움이 없는 여성이라고 표현하곤 했다. 그녀는 어린 오바마에게 “한 나라가 얼마나 발전할 것인지를 알 수 있는 최고의 지표는 그 나라가 여성을 어떻게 대우하는지 보는 것”이라고 가르치곤 했다. 그녀는 홀로 오바마를 키우면서도 인류학을 공부했고, 인도네시아에서는 매일 오전 4시에 아들을 깨워 3시간동안 영어를 가르쳤다.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의 아내 재클린 케네디를 닮아 ‘블랙 재키’로 불리는 아내 미셸은 오바마에게 여성의 전형이었다. 미셸은 오바마가 자서전을 쓰고 정치적 꿈을 키워나갈 때 든든한 후견인 역할을 했다. 미셸은 대선 유세에서 오바마가 상원의원으로 바쁠 때 자신만 아는 이기적인 사람이라고 화를 낸 사실을 공개하기도 했다. 한편으로 오바마는 미셸을 통해 미국 사회가 여성들로 하여금 커리어 우먼과 어머니의 역할을 모두 성취할 수 있도록 충분한 지원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오바마는 강하고 독립적인 어머니와 아내를 통해 가장 미국적인 여성의 삶을 유머로, 그리고 진솔한 모습으로 드러냈다고 더 타임스는 풀이했다. 안동환기자 sunstory@seoul.co.kr
  • 美 보호무역 강화… 車산업 ‘흐림’

    美 보호무역 강화… 車산업 ‘흐림’

    그야말로 ‘시계 제로’ 상태다.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이 5일 미국 44대 대통령으로 당선되면서 반도체와 자동차 등이 주축인 우리 산업계가 긴장하고 있다. 후보 시절 오바마 당선인이 한·미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해 여러 차례 날선 발언을 한 데다, 자동차 교역 불균형을 지적하기도 한 탓이다. 미국의 보호무역 기조가 강해질 것으로 예상되고, 클린턴 행정부 시절처럼 반덤핑 제소 건수가 증가할 가능성도 높게 점쳐지고 있다. 삼성과 현대·기아차,LG 등 대기업들은 예상되는 통상관계 변화 등에 대한 분석에 나섰다. 분석의 초점은 금융과 실물경제가 동반 침체에 빠진 상황에서 오바마 당선인이 어떤 분야에 가장 먼저 처방을 내릴 것인지에 맞춰졌다. 이런 관점에서라면 자동차 산업이 가장 먼저 영향권 안에 들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전미자동차노조(UAW)가 지지한 민주당 후보가 당선된데다 고용 효과가 큰 자동차 산업에 오바마 당선인이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코트라는 ‘미국 대선 결과에 따른 경제통상정책 방향 전망과 시사점’이라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오바마 정부가 미국 자동차 산업이 직면한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자국 자동차 산업에 대해 폭넓은 지원을 펼친다면, 한국산 자동차의 대미수출에 장기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반면 기회 요인도 있다. 하이브리드차 등 친환경 차량 부문이나 부품소재 부문에서 우리가 비교우위를 보인다면, 미국 시장에서의 운신의 폭이 오히려 넓어질 수도 있다는 설명이다. 오바마 당선 소식에 전 세계 환경주들이 급등세를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오바마 정부는 이전 부시 행정부에 비해 이산화탄소 규제 등에 적극 나설 태세다. 현대·기아차가 미국 앨라배마에 공장을 설립, 연 30만대 규모의 생산시설을 갖추고 미국인들을 대거 고용하고 있는 점도 오바마 행정부 체제에서 유리한 조건으로 꼽힌다. 앞으로 미국의 자동차 산업 정책에 맞춰 현지 공장과 국내 수출물량의 라인업을 바꾸는 등 운영의 묘를 발휘할 여지가 있어서다. 오바마 당선 이후 자동차 산업이 주목받는 이유는 이 문제가 한·미FTA 재협상 여부와 연결된다는 시각 때문이다. 산업계는 미국과 한국이 경제뿐 아니라 안보 등 여러가지 면에서 얽혀 있기 때문에 한·미FTA가 완전 무산될 가능성은 낮게 보지만, 부분 협상 가능성은 남아 있다고 내다봤다. 한국무역협회는 논평을 통해 “한·미 양국 경제관계에 획기적 전기가 될 한·미FTA 조기비준에 힘써 달라.”고 당부하며 오바마 당선인측을 압박했다. 오바마 당선인이 자국 산업을 보호하는 정책을 고수할 가능성이 있어서다. 특히 오바마 당선인 캠프가 철강과 섬유산업에서 미국이 외국산, 특히 중국산 제품으로 인해 피해를 많이 봤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는 점은 우리에게 불리한 요인으로 꼽혔다. 중국에 철강과 섬유 완성재 이전 단계의 중간재를 수출하는 우리 기업들에 연쇄적으로 비우호적인 환경이 조성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물론 미국으로 직접 수출하는 우리 기업도 새롭게 규제를 받을 수 있다. 한국은 미국에 연 170만t의 철강을 수출한다. 주요 미국 수출업체들이 오바마 당선에 따른 환경변화로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정보·통신(IT) 산업과 재생에너지 산업, 전력기자재 산업 등 오바마가 육성하기로 약속한 산업 분야에서는 새로운 시장이 열릴 전망이다. 미국 경기의 회복 속도와 전체적인 방향 가운데 우리 기업의 활로가 남아 있는 셈이다. 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 [인종 벽을 넘다-美 오바마 시대] 47세 검은 케네디 ‘노예 해방’ 완결짓다

    [인종 벽을 넘다-美 오바마 시대] 47세 검은 케네디 ‘노예 해방’ 완결짓다

    “숯처럼 까만 아버지에 우유처럼 하얀 어머니…” 소년 오바마는 혼란스러웠다. 미국 절반이 흑백결혼을 금지하던 시절이었다. 고민하고 또 고민해도 답은 찾을 수 없었다.‘흑백결혼’이란 단어가 괴기스럽고 추하게 느껴졌다. 혼란은 오래 갔다. 상처는 덧났다. 백인 가정에서 자란 흑인. 미국인도, 아프리카인도 아닌 정체성. 모든 게 모호했다. 위안이 필요했다. 당연한 듯 술과 마리화나에 손을 댔다.“술에 취하면 내가 누군가 하는 의문을 잠시 지울 수 있었다.”고 했다.“매일 아침 눈 뜨면 다시 눈을 질끈 감고 싶었다.”고도 했다. 방 안엔 안주 담은 그릇이 뒹굴고 재떨이엔 꽁초가 넘쳤다. 모든 게 황량했던 시절이었다. 흔한 마약쟁이로 일생을 보낼 뻔했던 이 흑인은 5일(현지시간) 미 합중국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세계 언론은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고 평가했다. 환호하는 지지자들 속에서 오바마의 검은 얼굴엔 흰 미소가 번졌다. 그는 당선이 확정된 5일(현지시간) “혼란스럽고 고단했던 날들이 결국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고 고백했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 당선인은 1961년 8월4일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아프리카의 케냐 출신 유학생이었고 어머니는 대학에 갓 입학한 18세 소녀였다. 두 사람의 결혼식에는 단 한 사람의 축하객도 없었다. 하와이라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혼혈과 외지인이 많았던 하와이는 본토보다는 자유로운 분위기였다. 아버지 버락 후세인 오바마 1세는 케냐 루오족 출신이었다. 서부 빅토리아 호숫가의 작은 마을에 살았다. 오바마의 할아버지는 영국인 지주 집에서 요리사로 일했고, 오바마 1세는 염소를 몰았다. 그래도 할아버지는 아들을 식민지의 영국학교에 꼬박꼬박 출석시켰다. 그런 오바마 1세에게 일생일대 기회가 찾아왔다. 케냐가 독립하기 전날, 미국 유학 프로그램에 선발됐다. 오바마 1세는 하와이 대학에 입학했다. 거기서 어눌하고 수줍음 많던 스탠리 앤 던엄을 만났다. 금세 사랑에 빠졌고 곧 아기를 가졌다. 어머니 던햄은 학교를 중퇴해야 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행복했다. 그러나 이별의 시간은 빨리 다가왔다. 새로운 장학금을 받아 아버지가 하버드로 떠났다. 어린 엄마와 흑인 아들은 하와이에 남겨졌다. 오바마가 두살 때였다. 어머니는 새삶을 살았다. 학교에 복학하고 인도네시아 유학생 롤로 수토르와 재혼했다. 여섯살 오바마는 새아버지와 인도네시아 자카르타로 떠나게 된다.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오바마에 남다른 애정을 갖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동네 친구 에디 뿌르완또로는 오바마의 어린 시절을 기억했다.“사룽(인도네시아인들이 허리에 두르는 천)을 뒤집어 쓰고 해가 질 때까지 함께 닌자놀이를 했다.”고 했다.“서로 다른 신을 믿지만 그래도 오바마가 대통령이 되기를 줄곧 기도했다.”고도 했다. 열 살 되던 해, 오바마는 호놀룰루로 돌아갔다. 어머니는 아들이 미국에 있는 학교에 다닐 때가 됐다고 생각했다. 호놀룰루에선 오바마의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가 기다리고 있었다. 오바마를 진정한 미국인으로 만들어 냈다는 평가를 듣는 사람들이다. 오바마는 외할머니를 ‘투트(Toot)’라 부르며 따랐다. 하와이 원주민 말로 할머니를 뜻하는 ‘투투(tutu)’를 변형한 애칭이다. 숨가쁜 대선 레이스가 계속되던 지난달 23~24일, 오바마는 외할머니가 위독하다는 소식에 선거운동을 중단했다. 하와이로 급히 날아갔다. 캠프 안팎에서는 이런 행보가 선거에 긍정적이냐, 부정적이냐를 놓고 저울질이 한창이었지만, 오바마에게는 그저 ‘투트’가 소중했다. 오바마는 지난 3일 조용히 숨을 거둔 외할머니를 “미국의 수많은 ‘조용한 영웅’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고 기렸다. 선거 전문가들은 “오바마의 외가쪽 이력이 백인 보수층의 거부감을 무너뜨리는데 큰 역할을 했다.”고 평가한다. 실제 대선전에서도 외할머니는 오바마의 큰 우군이 됐던 셈이다. 1979년, 고등학교를 마친 오바마는 로스앤젤레스 옥시덴털칼리지에 입학했다.2년 뒤엔 컬럼비아대로 편입했다. 정치외교학을 전공한 그는 “당시 수도승처럼 공부만 했다.”고 회고했다. 대학을 졸업한 그는 공동체 운동가가 되기로 결심한다.“흑인을 조직해 풀뿌리부터 변화시키리라.”여러 차례 시행착오를 거친 그는 시카고에서 운동가 생활을 시작했다. 쉽지 않았다. 곳곳에서 한계에 부딪혔다. 더 많은 지식, 한 단계 높은 시각이 필요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1988년, 오바마는 하버드대 로스쿨에 입학했다.“더 나은 인간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도서관에서 판례와 법전에 파묻혀 시간을 보내던 그는 1990년 ‘하버드 로 리뷰(Harvard Law Review)’ 편집장에 선출된다. 학술지 역사 104년 만에 첫 흑인 편집장이었다. 이 사건으로 그는 일찌감치 흑인사회의 리더로 각인됐다. 당시 오바마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내가 이 자리에 서게 된 것은 미국이 진보하고 있음을 뜻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1996년 오바마는 정치인으로 변신했다. 일리노이주 주상원의원 보궐선거에서 승리했다.1998년에 재선,2002년에는 3선에 성공했다. 그 사이 2000년 연방 하원의원 선거에서 패배하는 아픔도 겪었다. 대통령선거가 있었던 그해에는 일리노이주 민주당 대의원으로도 선출되지 못했다.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에선 ‘구경꾼’이 될 수밖에 없었다. 4년 뒤 2004년 대선에서 기회가 찾아왔다. 존 케리 당시 민주당 후보가 보스턴 전당대회 기조연설을 요청했다. 케리는 “우연히 선거 행사장에서 오바마의 연설을 듣고 감명을 받았다.”고 했다. 오바마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무명에 가깝던 이 흑인 정치가는 이날 연설 이후 전국적인 스타가 됐다. 그리고 흑인으로는 다섯번째로 연방 상원 입성에 성공했다. 그로부터 다시 4년이 지난 2008년 이 ‘검은 케네디’는 새로운 출발점에 섰다. 금융위기로 흔들리는 ‘미국호’의 새로운 조타수가 됐다. 그는 “아직 미국에는 꿈꾸는 이들이 있고, 그들이 있으면 희망은 남아있다.”고 말했다. 아프리카계 흑인 몽상가의 도전은 이제 시작이다. 박창규기자 nada@seoul.co.kr
  • [인종 벽을 넘다-美 오바마 시대] 한미관계·북핵문제 정통

    지한파(知韓派)로 알려진 조지프 바이든(65) 부통령 당선인은 관록의 6선 정치인이다.1972년 29세의 나이로 상원의원에 당선된 뒤 36년 동안 상원에서 활동하며 외교위원장과 법사위원장 등을 지냈다. 상·하원을 통틀어 최고의 한반도 전문가로 한·미 동맹 관계, 북핵 문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등 두 나라 사이의 현안에도 정통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부통령의 중요성은 대통령 유고시에 드러난다. 대통령이 사망하거나 사퇴, 혹은 탄핵을 당하면 부통령은 대통령직을 대행하거나 승계하게 된다.1974년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사퇴한 리처드 닉슨 당시 대통령의 뒤를 이은 제럴드 포드 등 모두 9명의 현직 부통령이 대통령직을 이어받았다. 대통령이 일시적으로 직무를 수행하지 못할 경우에도 부통령은 1순위로 권한대행을 맡는다. 부시 정부의 딕 체니 부통령은 2002년과 2007년 조지 부시 대통령이 수술을 받았을 때 잠시 대통령직을 넘겨받았고,1985년 당시 부통령이었던 아버지 조지 부시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의 권한을 잠시 대행한 적이 있다. 부통령이 되면 미국 헌법에 따라 자동으로 상원의장 자격이 주어지며, 상원 표결 결과 동수일 경우 상원의장이 결정권한(Tie Breaking Vote)을 갖게 된다. 무엇보다 부통령직의 매력은 차기 대권 도전에 유리한 고지를 차지한다는 데 있다.1988년 아버지 조지 부시를 포함해 부통령직을 수행하며 대통령에 당선된 경우도 4차례나 있다. 바이든은 펜실베이니아주 스크랜튼에서 태어나 델라웨어대, 시러큐스대 로스쿨을 졸업했다.27세에 변호사가 됐고 28세에 주의회 의원으로 선출됐다. 김민희기자 haru@seoul.co.kr
  • ‘검은 거인’ 232년 인종 벽 허물다

    ‘검은 거인’ 232년 인종 벽 허물다

    |워싱턴 김균미특파원|지금까지 겪어보지 못한 새로운 경험이었다. 독립 이후 232년의 미국 역사뿐 아니라 세계 역사에도 기록되어야 할 사건이었다. 당사자인 미국민에게만 쇼크를 준 것이 아니라 지구촌의 모든 사람에게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흥분을 안겨주기에 충분했다. ●338 vs 163 더블스코어 압승 2008년 11월4일(현지시간), 민주당의 버락 오바마(47) 후보가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의 존 매케인 후보에 승리하며 제44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됐다. 아버지가 케냐 출신인 ‘아프로 아메리칸’이 1619년 첫 노예선이 신대륙에 도착한 이후 400년에 가까운 인종갈등의 뿌리깊은 사슬을 끊고 ‘무혈 혁명’을 이뤄낸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 당선인은 5일 오전 3시 현재 538명의 선거인단 가운데 과반을 훨씬 넘는 338명의 선거인단을 확보하며 모든 미국인의 대통령으로 역사 앞에 우뚝 섰다. 총득표율이 51.6%로 과반을 넘어선 명실상부한 압승이었다. 오바마 당선인은 이날 밤 11시57분(동부시간) 시카고 그랜트공원에서 100만명이 훨씬 넘는 지지자 앞에서 “미국에 변화가 도래했다.”고 선언했다. 그는 “잃어버린 ‘아메리칸 드림’을 되살리고 미국의 지도력을 재건하며 미국을 새롭게 건립하는 데 시간이 걸리겠지만 우리(미국인)는 반드시 이룩할 수 있다.”고 희망과 변화를 강조했다. 오바마 당선인은 “오늘의 승리는 우리 모두의 승리”라면서 “국내외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봉사와 희생 정신이 그 어느 때보다 요구되는 지금, 내가 아닌 우리를 생각하며 새로운 미국을 만들어 나가자.”며 단합을 호소했다. ●매케인 “패배 인정”·부시 “축하” 매케인 후보는 오바마 후보의 당선이 확정된 직후 애리조나주 피닉스에서 열린 지지자 모임에서 겸허하게 패배를 인정했다. 매케인은 “이제 오랜 여정을 끝내야 할 때가 됐다.”면서 “오바마 상원의원은 역사적인 승리를 통해 자기 자신과 미국을 위해 대단한 일을 해냈으며 그에게 박수를 보낸다.”고 말했다. 부시 대통령도 오바마 당선인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대통령 당선을 축하했다. 데이너 페리노 백악관 대변인은 순조로운 정권이양을 약속했으며, 빠른 시일 내에 백악관을 방문해 달라는 뜻을 전달했다고 밝혔다. ●민주당 상·하원 석권 이날 민주당은 상·하원 선거에서도 압승을 거두며 행정부와 입법부를 모두 장악하여 진보적인 개혁정책들을 펼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민주당은 5일 오전 2시 현재 상원에서 7석을 늘려 56석을 확보했다. 하원에서도 22석 늘어난 258석으로 다수당의 지위를 유지했다. 민주당은 11개 주지사 선거에서도 7개 주에서 승리했다. 반면 공화당은 4곳을 차지하는 데 그쳤다. 오바마 당선인은 77일 동안의 정권인수 기간을 거쳐 내년 1월20일 대통령에 취임한다. kmkim@seoul.co.kr
  • [인종 벽을 넘다-美 오바마 시대] 국무장관 존 케리·비서실장 람 에마뉘엘 거론

    [인종 벽을 넘다-美 오바마 시대] 국무장관 존 케리·비서실장 람 에마뉘엘 거론

    |워싱턴 김균미특파원|제44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 민주당의 버락 오바마는 전세계를 강타한 금융위기와 경기침체를 극복하기 위해 거국내각을 꾸릴 것으로 보인다. 오바마는 그동안 위기상황임을 감안, 선거 직후에 곧바로 백악관의 주요 보좌관과 국무·국방·재무장관 등 경제·국가안보 관련 장관을 발표하겠다고 밝혔었다. 정권인수 초기에 일찌감치 경제와 국가안보 관련 현안들을 점검하여 권력의 공백기를 최소한으로 줄이겠다는 것이다. ●내각 ‘빅3’ 최대 관심 백악관 비서실장에는 톰 대슐 전 상원 민주당 원내대표가 ‘0순위’로 거론된다. 대슐 전 상원의원은 오바마 캠프에 깊숙이 관여해왔다. 이밖에 일리노이주 출신인 람 에마뉘엘 하원의원과 윌리엄 데일리 전 상무장관도 후보로 오르내린다. 관심은 내각의 ‘빅3’인 국무·국방·재무장관. 이들 장관은 한국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누가 기용되느냐가 중요할 수밖에 없다. 최대 현안인 금융위기 해결사 역할을 맡을 재무장관으로는 티모시 게이스너 뉴욕 연방준비은행 총재와 로런스 서머스·로버트 루빈 전 재무장관, 폴 볼커 전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 등이 거론된다. 미국의 대외정책을 총괄할 국무장관에는 존 케리 상원의원과 리처드 루거 공화당 상원의원이 유력 후보로 거론되는 가운데 빌 리처드슨 뉴멕시코 주지사와 리처드 홀브루크 전 유엔대사의 이름도 오르내린다. 국방장관에는 로버트 게이츠 현 국방장관의 유임 가능성도 높다. 오바마 당선인은 게이츠 장관에 깊은 신뢰를 갖고 있다. 이밖에 척 헤이글 공화당 상원의원과 리처드 댄지그 전 해군장관, 존 햄러 전 국방부 부장관 등도 거론된다. 미국의 대외정책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에는 제임스 스타인버그 전 국가안보 부보좌관과 수전 라이스 전 국무부 차관보, 그레고리 크레이그 전 클린턴 특별자문 등이 후보군에 들어 있다. 백악관 경제자문역에는 후보 시절에도 같은 역할을 맡았던 오스탄 굴스비 시카고대 경제학 교수와 제이슨 퍼먼 등이 중용될 가능성이 크다. 이밖에 마이클 프로만 씨티그룹 임원이자 오바마의 하버드 로스쿨 시절 총장이 거론된다. ●가장 힘든 정권인수작업 될듯 정권인수위의 역할은 그 어느 때보다 막강할 것으로 보인다. 금융위기와 경기침체, 이라크·아프가니스탄 전쟁 등 시급한 국내외 과제들이 산적해 있어 1933년 대공황 와중에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허버트 후버 대통령으로부터 정권을 인수한 이래 75년만에 가장 힘든 정권인수 작업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클린턴 대통령 시절 백악관 비서실장을 지낸 존 포데스타 인수위원장은 인사, 정책, 입법전략, 경제위기 등 크게 4개 분야로 나눠 정권인수를 체계적이고 조직적으로 진행한다. 정권인수 기간 동안 글로벌 금융위기 해결의 사령탑은 일단 조지 부시 대통령이 맡겠지만, 오바마 인수위도 붕괴 위기에 몰렸던 금융시스템 점검과 일자리 창출이 핵심인 경기부양과 경제회생 등 취임 후 첫 100일 청사진을 구체화하는 데 중점을 둘 것이다. kmkim@seoul.co.kr
  • [인종 벽을 넘다-美 오바마 시대]한반도정책 누가 이끄나

    [인종 벽을 넘다-美 오바마 시대]한반도정책 누가 이끄나

    버락 오바마 차기 행정부 출범에 있어 우리의 관심사 가운데 하나는 오바마의 ‘한반도 브레인’들이다. 오바마의 싱크탱크는 클린턴 행정부에서 일했던 전직 관료가 많다. 대체로 소장파로 구성돼 있다. 친민주당 성향의 브루킹스 연구소도 한반도 정책 등에 대한 밑그림을 그렸다. 선거과정에서 한반도 정책에 대해 조언을 한 선거 참모진의 상당수는 백악관과 국무·국방부에서 한반도 관련 정책을 담당하는 요직에 등용될 것으로 보인다. 한반도 정책과 관련된 주요 인물은 지난 8월 미국 워싱턴 내셔널프레스빌딩에서 열린 ‘아시아 관련 정책 토론회’에 민주당 외교 안보 참모로 참석한 프랭크 자누지 상원 외교전문위원과 로버트 겔버드 전 인도네시아 대사가 대표적이다. 부통령 후보인 조지프 바이든 상원의원의 보좌관을 지낸 자누지는 “북한 핵프로그램에 대한 검증 체계를 확보하기 전까지 제재를 가하는 일은 안 된다. 단계적으로 ‘행동 대 행동’으로 이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누지는 예일대 출신으로 국무부에서 일한 경험이 있다. 겔버드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은 그동안 미국이 다른 나라와 체결했던 FTA와 다르고 중요하기 때문에 심각하게 들여다 볼 필요가 있으나 미 행정부가 의회와 충분한 협의를 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FTA 자체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자동차 조항 등에 결함이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한다. 이런 결함이 보완된다면 비준동의를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자누지 등 오바마 외교안보 정책라인에 정책 조언을 하고 있는 조엘 위트 전 국무부 조정관과 한반도 전문가인 고든 플레이크 맨스필드재단 사무총장도 한반도 전문가로 부각되고 있다. 위트는 1994년 제네바 합의 당시 대북협상을 맡았던 인물이다. 아시아 정책을 총괄하는 인물은 제프리 베이더 브루킹스 연구소 선임연구원으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아시아국장과 중국 주재 미 무역대표부 부대표를 역임했다. 예일대 출신인 그는 일본팀장인 마이클 시퍼 스탠리재단 연구원의 자문을 받고 있다. 이들은 주로 한반도 문제를 포괄한 중국과 일본, 한국, 북한 등에 대한 큰 그림을 그릴 것으로 보인다. 오바마 외교안보 정책의 총괄 책임은 앤서니 레이크 전 국가안보보좌관이 맡고 있다. 주로 이라크·아프간 전략을 총괄하고 있지만 핵확산 문제 등이 대북 정책과 연관을 맺고 있다. 그는 지나치게 군사적 방법에 의존한 부시 행정부와 달리 외교력과 도덕주의를 결합한 ‘통합 외교’를 강조하고 있다. 핵확산 문제에 대해 국제적인 공조로 대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토머스 허버드·도널드 그레그 전 주한 미대사도 선거 과정에서 오바마 진영의 자문에 수시로 응한 인물로, 이들의 보고서는 레이크를 통해 오바마에게 전달됐다. 레이크는 수전 라이스 전 국무부 차관보와 리처드 댄지크 전 해군장관과도 자주 의견을 주고 받는다.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 [인종 벽을 넘다-美 오바마 시대] ‘변화·희망’ 내걸고 性·흑백대결 ‘검은 혁명’

    [인종 벽을 넘다-美 오바마 시대] ‘변화·희망’ 내걸고 性·흑백대결 ‘검은 혁명’

    ■오바마 출마서 대권까지 2007년 2월10일 일리노이주 스프링필드의 ‘올드 스테이트’ 주의회 의사당 앞. 영하 11도의 살을 에는 듯한 추위가 몰아쳤지만 1만 5000명 남짓한 지지자들이 한 흑인 연방 상원의원의 대통령 선거 출사표를 듣기 위해 광장에 모였다. 의사당 계단에 선 이 흑인 남자는 지지자들에게 “우리 세대가 이제 시대적 소명을 다할 때”라며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지지자들은 환호했지만 마음 속으로는 ‘미국 사회가 과연 흑인 대통령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라며 반신반의했던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로부터 21개월이 흐른 2008년 11월5일. 혜성 같이 등장한 이 흑인 연방상원 의원은 미국 사회의 편견을 보기 좋게 뛰어넘으며 마침내 제44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가 바로 미국 232년 역사상 흑인 최초로 대통령에 당선된 버락 오바마다. ●링컨 노예해방 선언 장소서 출사표 2004년 11월 연방 상원에 입성한 오바마는 2006년부터 대선 출마를 위한 ‘물밑작업’을 시작했다. 새내기 초선 의원이었지만 민주당 동료 의원들의 지지를 끌어내기 위해 동료 의원들을 돕는 데 주안점을 뒀고, 연설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라크 전쟁 반대 등 자신의 메시지를 부지런히 알렸다. 지인들조차도 “미국은 아직 흑인 대통령을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됐다.”며 만류했지만 “머뭇거리지 말라. 이번 기회를 놓치면 다음 기회가 오리라는 생각을 버려라.”라는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를 지낸 톰 대슐의 권유를 받고 출마를 결심했다. 그는 2007년 1월 선거 출마를 위한 준비위원회를 설립하면서 대선 출마를 본격화했다. 이어 같은 해 2월10일 올드 스테이트를 택해 출마 선언을 했다. 그는 “링컨의 꿈과 희망이 존재하는 이곳에서 미국 대통령 후보 경선에 출마한다.”고 선언했다. 올드 스테이트는 1858년 링컨이 “이 정부가 반은 노예로, 반은 자유의 상태에서 영구히 계속될 수 없다. 내부가 갈라진 집은 서 있지 못한다.”는 명연설로 노예해방의 정치 투쟁을 시작했던 곳이다. 링컨은 3년 뒤인 1861년 제16대 미국 대통령에 올랐다.150년 만에 똑같은 장소에서 똑같은 상황이 재현된 것이다. ●젊은 백인층 ‘진보적 가치´ 지지 오바마는 올 1월 처음으로 시작된 대선후보 경선인 아이오와 코커스(당원대회)에서 최대 경쟁자인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을 꺾고 승기를 잡았다. 그는 신자유주의에 대해 강하게 반대하는 등 경쟁자인 힐러리보다 진보적인 정치공세를 폈다. 이후 뉴햄프셔에서 힐러리에 지기도 했지만 젊은 백인층과 흑인의 지지를 결집해 사우스 캐롤라이나에서 압승했고, 그 여세를 몰아 2월의 슈퍼 화요일에 승리를 거두면서 미국 최초 흑인 대통령 탄생을 일찌감치 예고했다. 그는 연설에서 케네디 닮기 전략으로 지지자들을 열광시켰다는 평가를 받았다. 록스타 공연장을 연상케 하는 그의 유세장에는 젊은이들이 모여들었고, 항상 ‘Yes,We can(예, 우리는 할 수 있어요.)’,‘Change we can believe in(우리는 변화를 믿는다.)’는 구호가 끊이지 않았다. 오바마와 매케인의 대결은 지난 6월 본격적으로 막이 올랐다. 상대 후보는 역전의 명수이자 4선 상원의원 존 매케인. 지난 7월에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오바마에 7%포인트가량 앞서갔지만 매케인은 판 흔들기에 밀려 8월에는 5%포인트 뒤지는 등 엎치락뒤치락하는 박빙의 승부가 이어졌다. 8월28일 오바마는 자신의 최대 약점인 외교 안보 분야를 보완하기 위해 조지프 바이든 상원 외교위원장을 부통령 후보로 지명, 매케인에 8%포인트 앞서 나갔다. 이에 맞선 매케인이 9월4일 끝난 전당대회에서 부통령 후보로 알래스카 보수적 여성 주지사 세라 페일린을 깜짝 지명하면서 잠시 판세가 요동쳤으나 ‘깜짝 효과’는 오래가지 않았다. ●오바마 당선 도운 경제위기 대선의 중요한 변곡점은 9월14일 리먼브러더스 파산이었다.7000억달러의 구제금융 발표와 다우존스 1만선 붕괴 등 대공황 이후 미국 최대 금융위기는 오히려 오바마에게 호재로 작용했다. 매케인은 판세를 뒤집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10월 이후 오바마로 돌아선 민심은 쉽게 돌아서질 않았다.5일 개표 결과 오바마가 당선에 필요한 과반수(270명)를 훌쩍 넘는 선거인단을 확보하면서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한 미국 대선은 종지부를 찍었다.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흑인들 고난의 美정치 도전사 6전 7기 끝의 성공이다. 버락 오바마 당선자 이전, 백악관 입성에 도전했던 흑인은 모두 6명이었다. 수치상으로는 그리 나빠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미국 흑인의 ‘백악관 도전사´는 고난의 연속이었다. 우선 도전할 기회 자체가 변변찮았다. 민주·공화 두 거대정당은 흑인 후보에게 오래도록 냉랭했다. 뿌리깊은 편견이 있었고 흑인의 정치·경제적 역량도 모자랐다. 흑인이 ‘대권 도전’에 처음 나선 것은 1972년이다. 당시 하원의원이던 셜리 치솜이 민주당 대선 후보 경쟁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호응은 없었고 중도에 레이스를 포기했다. 이후 ‘흑인 사회의 대부’ 제시 잭슨 목사가 1984년과 1988년, 연속으로 민주당 후보 경쟁에 뛰어들었다. 당선보다는 흑인 정치 세력을 키우려는 의도적 참가로 풀이됐다. 흑인으로 처음 대통령 선거 투표 용지에 이름을 올린 사람은 1988년 무소속으로 출마한 여성 심리학자 레노라 풀라니다. 작가 출신인 앨런 키스는 1996년과 2000년 공화당 대선 경선에 거푸 나섰다.2004년에는 캐럴 브라운 상원의원과 사회운동가 앨 샤프턴이 민주당 대선 경선에 참가했다. 사실 흑인은 의회 진출조차 쉽지 않았다. 현재 임기 6년의 연방 상원의원 100명 가운데 흑인은 오바마가 유일하다. 역대를 통틀어도 흑인 연방 상원의원은 5명뿐이다. 1870년 리럼 레블스가 흑인으로는 처음으로 미시시피주에서 상원의원이 됐다.1875년에는 노예 출신 블랑시 브루스가 같은 주에서 상원의원에 당선됐다. 남북전쟁 직후, 특수한 사회 분위기 덕이었다. 이후 한 세기 가까이 흑인은 연방 상원에 발을 들여놓지 못했다.1966년에야 민주당 에드워드 브루크가 매사추세츠주에서 상원의원에 선출됐다.1993년에는 일리노이주에서 민주당 캐럴 브라운이 상원의원에 당선됐다. 브라운은 최초의 흑인 여성 상원의원이기도 하다. 재선에 성공한 흑인 상원의원은 브루크 단 하나다. 연방 하원에는 모두 116명의 흑인이 진출했다. 대부분 1990년대 이후 선출됐다.1965년부터 하원을 지키고 있는 존 콘이어스 의원은 흑인정치사의 산증인으로 불린다. 최초의 흑인 주지사는 1872년 루이지애나 주지사를 지낸 핑크니 핀치백이다. 임명직이었고 단 35일 동안 주지사 자리를 지켰다.1990년에야 첫 민선 흑인 주지사가 탄생했다. 버지니아 주지사를 지낸 더글러스 와일더다. 현재 흑인 주지사는 단 두 사람뿐이다. 뉴욕 주지사 데이비드 패터슨과 매사추세츠 주지사 데벌 패터릭이다. 패터슨은 지난 3월 스캔들로 물러난 엘리엇 스피처 전 주지사의 뒤를 이었다. 최초의 시각장애인 주지사이기도 하다. 오바마의 뒤를 이을 흑인 대선 주자는 누가 있을까. 전문가들은 최초의 흑인 여성 국무장관 콘돌리자 라이스를 첫손가락에 꼽는다. 그러나 라이스는 현재까지는 선출직 정치인이 되는 것에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걸프전의 영웅 콜린 파월 전 국무장관도 꾸준히 대중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박창규기자 nada@seoul.co.kr
  • [2008 美國이 바뀐다] 오바마측 “방심 말자” 매케인측 “막판 역전”

    |워싱턴 김균미특파원|미국 대선 투표를 앞둔 마지막 일요일인 2일(현지시간) 민주당의 버락 오바마 후보와 공화당의 존 매케인 후보는 초경합주로 꼽히는 오하이오와 펜실베이니아를 돌며 막판 유세를 벌였다. ●오바마 “성급한 승리 확신 경계해야” 오바마는 이날 오하이오 콜럼버스와 신시내티, 클리블랜드를 돌며 수만명의 지지자들에게 끝까지 긴장을 늦추지 말 것과 4일 꼭 투표에 참여해 줄 것을 당부했다. 오바마는 콜럼버스에서 6만여명의 지지자들에게 “지난 수십년간 워싱턴의 낡은 정치와 지난 8년간 조지 부시 대통령의 실패한 정책에서 벗어나 미국에 변화를 가져올 날이 이틀 남았다.”고 자신감을 피력하면서 동시에 “선거가 끝난 상황이라고 잠시라도 방심해서는 안 된다.”고 당부했다. ●매케인 부동층 공략 총력 매케인은 지지율 격차가 좁혀지고 있는 펜실베이니아 스크랜턴과 월링퍼드를 찾아 부동층 공략에 힘을 쏟았다. 매케인은 월링퍼드에서 “우리는 펜실베이니아에서 승리해 이번 대선에서 승리할 것”이라며 지지를 호소했다. 매케인은 펜실베이니아 유세를 마친 뒤 뉴햄프셔를 거쳐 플로리다 마이애미에서 자정 유세를 벌인 뒤 유세 마지막날인 3일 고향인 애리조나 등 7개주에서 강행군을 한다. ●선거책임자들 대리전 오바마와 매케인 선거책임자들은 이날 ABC방송과 연쇄 인터뷰를 갖고 대리전을 치렀다. 오바마의 수석선거전략가인 데이비드 액슬로드는 확대된 조기투표 영향으로 콜로라도나 플로리다 등 격전지에서 오바마에게 유리해졌다고 주장했다. 반면 매케인의 선거총책임자인 릭 데이비스는 오하이오와 플로리다, 버지니아 등 격전지를 거론하며 “우리는 지금 승리의 길로 가고 있다.”고 승리를 장담하며 신경전을 벌였다. ●상호 비방전 치열 유세가 막판으로 치달으며 상호 비방전이 가열되고 있다. 오바마는 오하이오 유세과정에서 전날 매케인에 대한 지지를 호소한 딕 체니 부통령을 계속 거론하며, 체니 부통령의 지지야말로 매케인 후보의 집권이 조지 부시 대통령의 세 번째 임기임을 보여준다고 강하게 몰아붙였다. 체니의 매케인 지지 연설을 재빠르게 TV광고로 제작, 방영하기도 했다. 비난전은 공화당이 한 수 위다. 매케인 후보의 당부에도 불구, 매케인 후보 선거운동본부는 ‘갓 댐 아메리카’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켰던 제레미아 라이트 목사와 오바마의 관계를 다룬 TV광고를 펜실베이니아주에서 방영하기 시작했다. 또 민주당 후보 경선에서 패한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이 경선 당시 오바마 후보의 경험 부족 문제를 언급한 발언내용을 전화 선거광고용(로보콜)으로 쓰기 시작했다. 힐러리 의원측은 발끈하고 나섰다. ●미 방송사들 대선 중계 전쟁 대선 방송에서 승기를 잡기 위한 미국 방송사들의 ‘중계 전쟁’도 치열하다.‘슈퍼볼’에 맞먹는 시청률을 보일 것으로 예상되는 대선 방송에서 미 3대 지상파와 CNN 등 케이블방송들은 최첨단 방송 기술과 스타 진행자들을 총동원, 한판 승부를 예고했다. kmkim@seoul.co.kr
  • [2008 美國이 바뀐다] 힐러리 이변의 희생자… 매케인 금융위기에 고전

    |워싱턴 김균미특파원|지난해 1월 민주·공화 양당 후보가 출사표를 던진 뒤 22개월에 걸친 미 대선 대장정이 4일 막을 내린다. 이번 대선은 역대 가장 비싼 선거라는 기록도 남겼다. 비영리단체 책임 정치센터(CRP)에 따르면 올해 대선 및 총선의 선거비용은 53억달러(약 7조 64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됐다.2004년 대선 때보다 27% 증가했다. 블로그와 유튜브 등의 영향력도 재확인됐다.●22개월간 반전의 연속지난 1월부터 시작된 민주당 경선부터 반전을 거듭했다. 경력이나 자금, 조직 면에서 최강을 자랑하던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은 초선 상원의원 출신인 흑백혼혈의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에게 초반부터 기선을 제압당하며 이변의 희생자가 됐다. 오바마는 1월 첫 아이오와 코커스에서 힐러리와 존 에드워즈 전 상원의원을 누르고 승리하며 돌풍을 예고했다. 뒤이어 열린 뉴햄프셔 프라이머리에서는 힐러리의 눈물에 ‘반격’을 당했다.22개 주에서 동시에 치러진 ‘슈퍼 화요일’에 오바마가 13개주에서 승리하며 유리한 고지를 선점했으나 힐러리는 뉴욕과 캘리포니아 등 대의원이 많은 대형 주에서 승리를 낚았다. 오바마는 이후 11연승을 거두며 승리에 쐐기를 박는 듯했으나, 힐러리가 오하이오와 텍사스, 펜실베이니아에서 압승하며 기사회생했다. 결국 6월8일 노스캐롤라이나에서 오바마가 대승을 거두며 민주당 경선은 막을 내렸다. 공화당 역시 경선 초반 마이크 허커비 전 아칸소 주지사가 아이오와 코커스에서 1위를 차지하며 이변을 연출했다. 하지만 존 매케인 후보가 뉴햄프셔에서 화려하게 컴백했고, 슈퍼화요일에서 압승을 거두면서 일찌감치 공화당 후보로 확정됐다. 최초의 흑백 대결로 펼쳐진 대선 본선은 양당 전당대회를 계기로 본격화했다. 먼저 전당대회를 치른 민주당 오바마의 ‘전당대회 효과’는 매케인이 부통령 후보로 미 역사상 두 번째로 여성인 세라 페일린 알래스카 주지사를 지명하면서 삽시간에 사그러들었다.40대의 보수적인 ‘하키 맘’으로 공화당 지지층을 결집시키는 데 기여한 페일린 덕으로 매케인은 9월 말까지 전국 여론조사에서 오바마에 앞섰으나 결국 금융위기에 발목이 잡혔다.●오바마 가장 성공적인 선거운동 평가가장 막강한 조직력을 자랑하는 클린턴가와 공화당 조직을 잇달아 제압한 오바마의 선거운동은 가장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04년 민주당 경선 당시 하워드 딘 후보가 활용했던 인터넷 선거를 극대화하는 데 성공했다. 온라인 선거전담팀을 구축, 온라인으로 소액 기부자들로부터 선거자금을 기부받고, 유권자들에 대한 엄청난 자료구축과 분석을 토대로 밑바닥부터 훑고 나가는 전략을 폈다.9월 한 달 동안 1조 5000억달러라는 기록적인 선거자금을 모았고, 지난해 1월 이후 모두 7억달러에 가까운 선거자금을 거둬 든든한 자금력으로 매케인을 압도했다. kmkim@seoul.co.kr
  • [2008 美國이 바뀐다] 두 후보 동률땐 대통령은 하원·부통령은 상원서 결정

    미국 대통령은 국민의 직접선거에 의해 선출하는 한국과는 달리 선거인단을 통한 간접선거 방식을 택하고 있다. 그래서 한국과는 차이가 많다. 미국 대통령을 선출하는 절차와 관련 용어들을 문답식으로 살펴본다. ▶이번이 몇 대 대통령이며, 몇 차례까지 당선 가능한가. -1789년 조지 워싱턴이 초대 대통령에 당선됐고, 현재의 조지 부시가 43대다. 연임을 하더라도 1대로 간주한다. 이번의 대통령 당선인은 44대가 된다. 그러나 지금까지 미 대통령의 숫자는 모두 42명이다. 그로버 클리블랜드가 1884년 22대 대통령을 지낸 뒤 1892년에 또다시 24대 대통령으로 당선됐기 때문이다.1933년 취임한 민주당의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1945년 서거하기까지 내리 4선을 했다. 그 뒤 1951년 수정헌법 제22조가 통과돼 누구도 두 차례 이상 대통령직을 수행할 수 없게 됐다. ●상원+하원의원수⇒선거인단수 ▶대통령 선거 선출 절차는. -국민이 선출한 선거인단이 대통령을 뽑는 간접선거로 선출된다. 각주 유권자는 소속주 출신 연방 상·하원 의원 수만큼의 선거인단을 선출한다. 선거인단 총수는 538명. 상원의원(100명), 하원의원(435명) 및 수도 워싱턴(3명) 등을 합친 수다. ▶선거인단이 많은 주는. -선거인단이 가장 많은 주는 캘리포니아주로 55명이다. 이어 텍사스(34), 뉴욕(31), 플로리다(27), 일리노이(21), 펜실베이니아(21), 오하이오(20) 등이다. 반면 아무리 작은 주라도 선거인단은 최소 3명을 배정한다. ●1800년 제퍼슨-버르때 무승부 ▶선거인단에서 비기면 어떻게 되나. -선거인단이 538명이어서 이론적으로 두 후보가 269표씩으로 동률을 이룰 수 있다. 무승부가 되면 미 수정헌법에 따라 하원이 대통령을, 상원이 부통령을 각각 결정한다. 무승부는 미국 역사상 딱 한 차례 있었다. 실제로 5명의 후보가 출마한 1800년 선거에서 토머스 제퍼슨과 아론 버르가 각각 73표를 얻었다. 그래서 결정권이 하원으로 넘어갔으나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결국 두 사람이 정치적으로 타협해 제퍼슨이 대통령이 됐다. 미국은 이같은 정치적 거래를 막기 위해 1804년 헌법을 개정, 하원은 주별 의원 대표자들의 투표를 통해 대통령을 선출한다. 하원 의원 한 사람이 한 표를 행사하는 것이 아니라 한 주가 한 표를 갖도록 했다.26개주 이상 지지를 얻은 후보가 당선된다. 하원이 대통령 취임일까지 당선인을 내지 못하면 상원에서 선출한 부통령이 대통령직을 수행한다. 상원 부통령 선출마저 난관에 봉착하면 ‘대통령권한대행법’에 따라 하원의장이 부통령이 뽑힐 때까지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는다. ▶대통령 선거일은 언제인가. -국민이 각주에 배당된 선거인단을 뽑는 날은 ‘11월 첫째 일요일 다음 화요일’로 올해는 11월4일이다. 이날 선거인단에 대한 전국적 투표로 사실상 대통령 당선인이 결정된다. 하지만 각 주에서 승리한 정당의 선거인단은 ‘12월 둘째 수요일 다음의 첫 월요일’ 즉 올해는 12월15일 주도에서 자당 대선후보에게 형식적으로 본선 투표를 한다. 선거인단 투표 결과는 밀봉돼 연방 상원의장에게 우송된다. ●‘배신투표´ 美역사상 82명 있었다 ▶선거인단이 다른 정당 후보에게 투표할 수 있나. -미국 헌법은 특정후보 지지를 선언한 선거인은 본선 투표에서 반드시 그 후보를 찍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를 어겨도 처벌 규정이 없다. 미 역사상 이렇게 배신투표를 한 선거인이 모두 82명으로 집계됐지만 유권자의 표심을 바꾸지는 못했다. 이기철기자 chuli@seoul.co.kr
  • 마지막 여론조사서도 “오바마”

    |워싱턴 김균미특파원·서울 안동환기자|제44대 미국 대통령을 뽑는 선거가 4일 0시(한국시간 오후 2시) 뉴햄프셔주의 산골마을 딕스빌 노치를 시작으로 미 전역에서 순차적으로 실시된다. 사상 첫 흑백대결로 치러지는 이번 대선에서 모든 여론조사에서 앞서고 있는 민주당의 버락 오바마 후보가 공화당의 존 매케인 후보를 누르고 미 232년 역사상 첫 흑인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이날 투표는 동부지역에서 시작해 시차를 두고 서부지역으로 진행되며 미 동부시간 기준으로 5일 오전 1시(한국시간 오후 3시) 알래스카를 마지막으로 종료된다. 또 대선과 함께 상원의원 100명 가운데 35명을 새로 뽑는 상원선거와 435명 전원을 재선출하는 하원선거,11개주의 주지사 선거도 치러지며 민주당의 압승이 점쳐진다. 선거일을 하루 앞둔 3일 마지막으로 발표된 모든 여론 조사에서 오바마 후보가 매케인 후보에게 최대 11% 포인트 앞서는 것으로 나타나는 등 이변이 없는 한 미 역사상 최초의 흑인 대통령 탄생이 예고되고 있다. 갤럽-USA투데이 여론 조사에서 오바마는 55% 지지를 얻어 매케인보다 11%포인트 앞섰다. 한편 당선자 윤곽은 4일 오후 10시(한국시간 5일 정오) 이후가 돼야 드러날 것으로 예상된다. kmkim@seoul.co.kr
  • [2008 美 대선 D-3] 친할머니 마마 세라 오바마 ‘깜짝 인기’

    [2008 美 대선 D-3] 친할머니 마마 세라 오바마 ‘깜짝 인기’

    “우리는 모든 것을 신께 맡깁니다. 그는 오랜 기다림이자 희망입니다. 모든 것이 잘 될 것입니다.”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 버락 오바마의 친할머니 마마 세라 오바마(86)는 최근 몰려드는 기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오바마의 외할머니와 외가쪽은 널리 알려졌으나 친가쪽은 그의 피부색과 조상들의 종교의 벽에 가려 비교적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오바마 후보는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할 때인 1983년과 하버드법대 졸업 직후인 1991년, 상원의원 시절인 2006년 등 3차례 아버지의 고향인 케냐를 방문했다. 오바마가 외가 못지않게 친가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높았음을 보여준다. 이런 가운데 아프리카 케냐의 수도 나이로비 서쪽 농촌마을 코겔로에 사는 할머니에게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고 유에스 뉴스 등 외신들이 30일(이하 현지시간) 전했다. 마마 할머니는 오바마 부계(父系)쪽의 최연장자다. 오바마의 친할아버지 후세인 온양고 오바마는 1979년 작고했다. 2개짜리 양철 지붕인 할머니 집에는 전기와 수도가 들어오지 않는다. 한쪽 방에는 실물 크기 오바마 후보의 사진이 걸려 있다. 오바마의 아버지 사진은 후보의 두 딸 사샤와 마리아의 사진옆에 걸려 있다. 오바마의 일리노이주 상원의원 선거캠페인 포스터에는 그의 사인이 들어 있었다. 손자 오바마의 선거운동 과정이 궁금해 할머니는 최근 태양열로 충전되는 휴대전화와 라디오를 샀다. 케냐 부족어 루오어와 약간의 스와힐리어밖에 모르는 할머니가 집 밖의 망고나무 아래를 걸어가면서 “오바마는 다른 사람들의 어려움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인다.”고 말했다.“그는 다른 사람의 말을 경청하는 사람입니다. 세상을 어지럽히는 악의 문제를 처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가 이 세상의 평화와 경제적 발전을 촉진할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지역 주민들은 “우리는 그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이들은 케냐 언론이 전해주는 미국 여론조사와 쟁점 토론 등을 꾸준히 지켜본단다. 대선 승리 가능성을 묻자 할머니는 “예감이 좋아 너무 행복하다.”고 답했다. 자신뿐만 아니라 케냐 사람 모두, 그리그 세계 사람 모두가 그렇게 생각한다고 믿는다는 것이다. 오바마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취임식에 참석할 것이냐는 질문에 할머니는 “그가 오라고 하면 나는 가겠다.”고 답했다. 이기철기자 chuli@seoul.co.kr
  • [특파원 칼럼] 궁금해지는 美 대선 이후/김균미 워싱턴 특파원

    [특파원 칼럼] 궁금해지는 美 대선 이후/김균미 워싱턴 특파원

    미국 대통령 선거까지 사흘 남았다. 지난해 1월 민주당과 공화당 후보들이 출사표를 던진 뒤 꼭 22개월간의 대장정의 끝이 보인다. 민주당의 버락 오바마 후보와 공화당의 존 매케인 후보의 마무리 유세만 남겨놓고 있다. 공은 미국 국민들의 손으로 넘어갔고, 세계는 미국민의 선택을 지켜보고 있다. 4년전 예상 밖의 결정에 놀랐던 세계인들은 4년이 지난 지금, 또 한번 세계를 놀라게 할지 숨을 죽이고 있다. 미국 역사상 최초의 흑인 대통령을 탄생시키든, 아니면 최대의 이변을 연출해 세상을 놀라게 하든, 그 결과는 나흘 뒤면 판명된다. 올해 미국 대통령 선거만큼 미국뿐 아니라 전세계의 관심 속에 치러지는 선거도 드물 것이다. 한국만 하더라도 올초 양당 경선이 시작된 이래 남의 나라 대통령 선거를 이번처럼 관심을 갖고 지켜본 것도 유례가 없을 것이다. 먼저 결과에 상관없이 미국은 새로운 역사를 앞두고 있다. 버락 오바마라는 최초의 흑인 대통령, 아니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유색 대통령이 탄생하는 것이 더 극적이지만 공화당의 존 매케인이 당선된다면 세라 페일린이라는 최초의 여성 부통령을 맞게 된다. 8개월 전 미국에 도착했을 때가 생각난다.2월말 미국은 민주당 경선에서 오바마 돌풍이 일면서 온 천지가 오바마였다. 정치 신인이나 다름없던 오바마가 민주당의 가장 강력한 ‘정치조직’인 클린턴 가문을 무너뜨리면서 대통령 선거는 보통 사람들에게 한층 다가섰다. 초등학교부터 중·고등학교 교실도 선거 열풍에 휩싸였다. 학생들마저 오바마와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을 놓고 투표할 정도로 관심은 최고조에 달했다. 8개월이 지난 지금도 상황은 비슷하다. 초등학교 5학년인 딸 아이는 학교에서 누가 대통령이 됐으면 좋겠는지 손을 들어 알아봤다고 한다. 거의 30명이 다 되는 딸 아이 반 친구들 가운데 매케인 지지자는 7명이었다고 한다. 다른 반들도 상황은 비슷하다고 했다. 초등학생들도 이번 선거에 대해, 후보들에 대해 어른들만큼이나 높은 관심을 갖고 있는 모양이다. 지난해 한국 대통령 선거때와 어쩌면 그렇게도 닮았는지. 이번 미국 선거는 그 어느 때보다 일반인들의 참여가 높은 선거이다.300만명이 넘는 일반인들이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오바마에게 후원금으로 보냈다. 지난 9월 한달동안 오바마 캠프에 들어온 선거자금은 1억 5000만달러다. 한사람당 평균 86달러를 기부했다고 한다. 돈잔치라는 비난도 있지만 선거자금 기부를 통해 일반인들의 정치참여가 활성화됐다는 긍정적인 평가도 적지 않다. 생전 처음 선거자금을 기부한 사람들 못지않게, 자원봉사 활동에 나선 사람들도 적지 않다. 쇼핑몰에서, 지하철 역 앞에서 유권자 등록을 독려하던 대학생이나 70대 노인까지 어느 누구 동원된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선거가 2년 가까이 지루하게 진행되면서 유세장에서 상대방 후보를 비난하다 몸싸움이 있었다는 보도를 본 기억이 없다. 이런 면에서도 참 특이한 나라다, 미국이라는 곳은. 또 다른 특이한 점. 워싱턴포스트나 뉴욕타임스 등 주요 신문들의 오피니언 페이지에는 하루도 빠짐없이 대선과 관련된 기명칼럼이 1~2개씩은 실린다. 한 페이지가 모두 대선 관련 칼럼일 때도 적지 않다. 특정 후보에 대한 공개적인 찬성이나 반대의 글을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지 않는 풍토도 부럽다. 이같은 부러움이 오는 4일 선거가 끝난 뒤에도 유효할지는 지켜볼 일이다.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웠던 유세였기에 결과에 대한 후보들 당사자의 승복보다 이들을 지난 22개월동안 열성적으로 지지했던 지지자들이 어떻게 반응할지 기다려진다. 변화든, 안정이든 이제 미국 국민들의 결정만 남았다. 김균미 워싱턴 특파원 kmkim@seoul.co.kr
  • [2008 美 대선 D-6] 제 식구도 못 챙기는 매케인

    |워싱턴 김균미특파원|공화당의 존 매케인 대통령 후보가 유세를 지나치게 보수적으로 운영하면서 매케인과 가까웠던 중도 또는 무소속 성향의 공화당 관계자들이 줄줄이 민주당의 버락 오바마 후보 지지를 선언하고 있다. 27일(현지시간) 정치전문지 폴리티코에 따르면 지난 19일 콜린 파월 전 국무장관에 이어 23일에는 미네소타 주지사를 두차례나 지낸 칼슨 전 주지사가 오바마 지지를 선언했다.24일에는 미트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의 공화당 경선 때 선거운동을 도왔던 윌리엄 웰드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가, 이틀 뒤에는 상원 상무위원장을 지낸 레리 스페슬러 전 사우스다코타 상원의원이 같은 길을 걸었다. 앞서 지난여름에는 하원 금융위원장을 역임한 제임스 리치 전 아이오와 하원의원이 오바마를 지지하고 심지어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연설까지 했다.9월에는 공화당 경선에서 패해 이번 11월 선거에 출마가 좌절된 중도 성향의 웨인 길크레스트 메릴랜드 하원의원이 오바마를 지지하고 나섰다. 폴리티코는 이들 대부분이 전직 의원들이거나 주지사 출신이지만 상당수는 여전히 공화당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중도 또는 매케인과 같은 ‘이단아’로 분류되는 정치인들이라고 전했다. 15선을 역임한 리치 전 하원의원은 매케인의 공격적인 선거유세 때문에 중도 성향의 공화당 지지자들이 등을 돌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프레슬러 전 상원의원도 “내가 알고 있던 1970년대의 공화당은 사라지고 없다.”면서 지나치게 보수화한 공화당 분위기를 비판했다. 콜린 파월 전 국무장관도 ‘오른쪽’으로 쏠린 공화당의 정체성을 비판한 바 있다. 그런가 하면 공화당 경선 때 매케인을 지지했던 윌리엄 밀리켄 전 미시간 주지사는 이달 초 매케인에 대한 지지를 철회했다. 밀리켄 전 주지사는 “매케인이 유세 과정에서 이슈보다는 오바마에 대한 개인적인 공격을 하는 데에 실망했다.”며 지지 철회 이유를 밝혔다. 매케인이 세라 페일린 부통령 후보를 지명하면서 전통적인 보수층의 결집은 가져왔지만 동시에 지나친 보수화로 중도 성향의 공화당 지지자들의 등을 떼밀고 있다. kmk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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