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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월호’이후 연극계 변화의 바람… 시대 아픔을 보듬다

    ‘세월호’이후 연극계 변화의 바람… 시대 아픔을 보듬다

    “유쾌한 공연들이 너무 많습니다. 물론 사는 게 힘든데 연극을 통해 더 힘든 이야기를 보겠냐 하실 수도 있죠. 하지만 유쾌한 이야기들이 돈이 되니 진지하고 무거운, 돈 안 되는 작품들은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지난 26일 박장렬 서울연극협회 회장은 그가 연출한 연극 ‘이혈’을 처음 공개하는 자리에서 이같이 일갈했다. 연극계에 상업화의 파도가 몰아친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세월호’ 이후 시대와 사회를 성찰하는 연극에 대한 요구가 곳곳에서 감지된다. 지난 28일 막을 내린 연극 ‘먼 데서 오는 여자’는 입소문만으로 관객이 몰려 60여석 소극장에 보조석까지 마련됐다. 한 노부부가 지난 세월을 돌이키며 나누는 대화 속에 한국전쟁과 산업화, 대구지하철 참사까지 현대사의 아픈 상처가 겹겹이 새겨져 있었기 때문이다. 세월호 참사와 비수기로 침체를 겪었던 연극계가 사회의 아픔을 보듬고 나섰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남북 분단, 산업화와 도시 빈민, 노사갈등까지 한국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정면으로 들여다보는 연극들이 올가을 줄줄이 관객들을 찾아온다. 지난 26일 개막한 ‘이혈(異血):21세기 살인자’(다음달 19일까지 서울 대학로 예술공간 SM)와 18일 개막한 ‘빨간시’(다음달 5일까지 대학로 선돌극장, 다음달 9~26일 대학로 뮤디스홀)는 위안부 피해의 아픔을 반복되는 비극의 악순환 속에서 조명한다. ‘이혈’의 주인공인 만화가 강준은 자신을 ‘괴물’로 묘사한 유작을 남긴 채 자살하는데, 그의 가족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치유되지 못한 위안부 피해의 상처가 있다. 박장렬 연출은 “인류의 역사에 비극이 되풀이되는 근원을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빨간시’는 여배우 성상납 문제와 위안부 피해와의 연결고리를 찾는다. 성상납을 강요받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여배우 사건을 목도했던 한 일간지 기자가 저승에서 일제강점기 위안부로 끌려갔던 할머니의 삶과 마주한다. 그가 기억하는 아픈 사건들은 여성에 대한 조직적인 폭력이라는 점에서 동일 선상에 놓인다. 2011년 초연 후 평단의 호평을 받으며 세 번째 무대에 올랐다. 지난해 극단 작은신화의 ‘우리연극만들기’ 프로젝트에서 선정돼 초연에서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창신동’(다음달 4~19일 대학로 정보소극장)도 다시 찾아온다. 영세한 봉제가게가 빼곡한 창신동을 배경으로, 가난을 대물림해 온 도시 빈민들의 팍팍한 삶을 한 편의 다큐멘터리 영화처럼 그린다. 단칸방에 살며 희생에 익숙한 삶을 사는 주인공 연주와 그에게 집착하며 폭력을 휘두르는 배다른 오빠, 그의 몸을 탐하는 동네 남자들까지 한국 사회의 불편한 민낯을 가감없이 보여주지만 삶은 계속된다는 희망의 여운을 남긴다. ‘창신동’의 박찬규 작가와 김수희 연출은 ‘공장’(다음달 2~11일 서울 중구 동국대 이해랑예술극장)에서도 호흡을 맞춘다. 원청·하청 간의 차별이 가져오는 노사갈등과 노노갈등, 그 안에서 서로 연대하지 못하고 무기력해지는 노동자들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러면서도 갈등을 극대화하기보다 노동자 개개인의 삶에 천착한 것이 작품의 특징으로 꼽힌다. 지난해 초연에서 호평을 받은 ‘이인실’(다음달 17~26일 서울 중구 명동예술극장)은 소극장에서 대극장으로 무대를 옮긴다. 병원 2인실을 함께 쓰다 뇌사상태에 빠진 탈북자 지룡의 비밀을 알고 이를 이용하려는 백수 남녀의 이야기로, 탐욕으로 뒤틀린 인간 본성과 탈북자의 시선에서 포착된 한국 사회의 이면을 꼬집는 블랙코미디다. 김소라 기자 sora@seoul.co.kr
  • 대학 창의적 자산 사업화 450억 지원

    대학이 보유한 특허와 원천기술 등 창의적 자산을 사업화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 3년 동안 모두 450억원이 지원된다. 황우여 교육부 장관은 23일 서울 중구 한국장학재단에서 열린 ‘대학의 창의적 자산 사업화를 위한 정책간담회’에서 이 같은 방침을 밝혔다. 교육부가 공개한 ‘대학의 창의적 자산 실용화 지원사업’ 계획에 따르면 내년부터 3년간 매년 4년제 대학 20개교를 선정, 연간 학교당 7억 5000여만원씩을 지원한다. 선정된 대학은 이 예산을 바탕으로 국내외 산업 및 연구개발 동향 수집·분석, 보유 특허에 대한 기술 상업화 가능성 분석, 사업화 후속 연구개발, 외국 특허 기획 및 출원 등을 추진한다. 변리사와 산업동향 전문가 등도 고용해 체계적으로 기술을 관리할 수도 있다. 이번 사업은 우수한 연구 성과를 내고도 자금과 전문인력 부족 등으로 연구 결과의 실용화에 어려움을 겪어온 대학을 위해 마련됐다. 실제 국내 대학의 연간 기술개발 건수는 1만 2482건에 달하지만 기술이전은 2431건으로 기술이전율이 미국(38%)의 절반 수준인 19.5%에 불과하다. 대학의 연구개발비 대비 기술료 수입은 1.05%로 미국(3.2%)의 3분의1 수준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대학 기술이 경제적 파급 효과가 큰 해외특허를 확보하게 되면 국내외 기업으로의 기술이전 가능성이 커진다”면서 “대학기술지주회사와 자회사를 설립하는 등 성과도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급구! 소림사 대변인

    1500년 역사를 가진 중국 무술의 본산인 소림사가 홍보 책임자 모집 공고를 내면서 또다시 상업화 논란에 휩싸였다. 소림사 산하 소림무형자산관리유한공사가 지난 1일 자체 웨이보(微博·중국판 트위터) 계정에서 “글 잘 쓰고 영어 소통이 가능하며 인터넷 등 신매체에서 일해 본 경험자를 우대한다”는 조건으로 홍보 책임자를 모집한 결과 4일 현재 300여명이 지원했다고 인민망이 5일 보도했다. 지원자 중에는 예일대 등 미국과 유럽에서 공부한 해외파를 비롯해 중국중앙(CC)TV, 신화통신 등 중국 유력 매체 출신의 언론인이 많다고 덧붙였다. 소림사 관계자는 “홍보 책임자를 선발하려는 것은 세계에 소림사를 잘 알리기 위한 의도”라면서 “웨이보 등 신매체를 통해 소림사를 알리고 소림사 국제청소년여름캠프 등 관련 활동도 홍보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소림사가 전액 출자한 소림무형자산관리유한공사는 소림사의 지적소유권을 관리하고 소림사를 대외에 알리는 역할을 맡고 있다. 그러나 홍보 책임자 선발을 두고 소림사 상업화의 연장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신경보는 이날 사설에서 “소림사가 더욱 힘써야 할 부분은 미디어관리인 채용이 아니라 소림 문화에 대한 보급”이라고 꼬집었다. 앞서 소림사는 경영학 석사 출신인 스융신(釋永信)이 1999년 방장을 맡은 뒤 쿵후(功夫)쇼와 영화 촬영, 기념품 판매, 모바일 게임 출시 등 수익사업에 몰두하면서 불교를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시켰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에 대해 스융신은 “소림사의 상업화는 생존을 위한 것이다. 기업 관리 모델을 적용하는 것은 소림사를 더 잘 발전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베이징 주현진 특파원 jhj@seoul.co.kr
  • 애들 나오는 프로, 왜 이렇게 찝찝하지?

    애들 나오는 프로, 왜 이렇게 찝찝하지?

    MBC ‘아빠! 어디가?’와 KBS ’슈퍼맨이 돌아왔다’, SBS ‘오! 마이 베이비’ 등 육아 예능의 인기가 식을 줄을 모른다. 연예인 부모의 육아법을 보고 배우고 싶고, 우리 아이들도 사랑이나 민율이처럼 귀엽게 키우고 싶다. 하지만 ‘삐딱한’ 시선도 있다. 연예인 부모를 둔 아이들을 보며 내 아이에게 미안해지고 아이의 순수함이 상업적으로 이용당하는 것 같기도 하다. 각계 전문가들로부터 육아 예능에 대한 불편한 시각을 문답으로 풀어 봤다. 육아 예능이 불편하다면 그건 결코 ‘기분 탓’이 아니다. Q 방송에서 배울 것, 참고할 것이 많은 만큼 고민도 많아져요. 처음엔 방송에 나오는 장난감을 아이에게 사 주기도 했고, 방송에 나온 장소들이 어딘지 찾아보기도 했어요. 하지만 지금은 “저런 걸 다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A 아이를 둔 부모들은 육아 예능을 통해 정보를 얻는다. 장난감과 교재·교구, 체험학습장뿐 아니라 보고 배울 만한 육아법들도 적잖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부모에게 보다 철저한 분별력을 주문한다. 최일선 경인교대 유아교육과 교수는 “좋아 보이는 장난감이나 놀이라도 아이의 성별과 기질, 성격에 따라 효과가 다르므로 연예인들의 육아법을 유행처럼 따라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각 방송사는 육아 전문가에게 자문해 프로그램을 제작하지만 전문가들은 여전히 경계한다. 최 교수는 “방송에 소개되는 교재·교구나 놀이 장소 중에는 광고성인 것과 학계에서 검증되지 않은 것들도 더러 있다”며 “그런데도 선망의 대상인 연예인들을 통해 소개되는 육아 정보는 전문가의 조언보다도 파급력이 크다”고 짚었다. Q 방송에서 워터파크나 캠핑 같은 걸 가면 아이들이 “우리도 저런 데 가자”라고 보챕니다. 주말에도 일을 해야 하는 저는 나쁜 아빠인가요? 연예인 가족이 좋은 곳에 놀러 가는 걸 왜 TV로 봐야 하나요? A ‘슈퍼맨’에서는 연예인 가족의 부유한 생활과 여가 문화, 부모의 연예계 인맥이 노출된다. ‘오마베’ 역시 연예인 가족의 넓은 집과 고급 유아용품이 두드러진다. ‘아빠’는 여전히 고생스러운 저가 여행을 고집하지만 뉴질랜드 홈스테이와 브라질 여행은 예외였다. 연예인 부모와 사랑스러운 아이, 이들이 누리는 풍족함은 연예인의 재력과 적절한 편집, 업계의 협찬이 결합한 ‘판타지’일 뿐 현실의 육아는 ‘전쟁’이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육아 예능이 성공하는 이유 중 하나가 아이에게 잘해 주고 싶어도 그렇지 못하는 부모의 부채감”이라며 “‘아빠’처럼 시골 여행을 다루던 육아 예능이 연예인의 일상으로 시선을 옮기기 시작하면서 현실의 부모들에게 위화감을 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Q 아이들을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것 같아요. 연예인들이 귀여운 아이 덕에 인기를 얻잖아요. 특히 아이들이 협찬 상품에 둘러싸이고 광고까지 찍는 건 눈살이 찌푸려져요. A 육아 예능의 간접광고(PPL)는 위험 수준에 도달했다. 아웃도어 의류와 여행가방, 식품(‘아빠’), 장난감과 교구·교재, 유아용품, 테마파크, 체험전 등(‘슈퍼맨’, ‘오마베’) 육아 예능은 거대한 육아 상품 전시장이 됐다. 방송법 시행령은 어린이 프로그램의 간접광고를 금지하고 있다. 어린이 프로그램의 지나친 상업화를 방지하기 위해서다. 물론 육아 ‘예능’은 이와 무관하지만, 윤여진 언론인권센터 사무국장은 “방송법에 저촉되지 않더라도 윤리적인 문제는 남아 있다”고 짚었다. 방송사들은 아이의 애교와 사랑스러운 모습을 경쟁하듯 홍보하고, 연예인들은 아이와 함께 광고를 찍는다. 윤 국장은 “아이가 아닌 부모의 뜻에 따라 아이를 방송에 노출시키는 것부터 어린이가 주축인 프로그램에서 과도한 간접광고를 하는 것까지 어린이를 앞세워 상업성을 추구한다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비판했다. 김소라 기자 sora@seoul.co.kr
  • ‘돈 독’에 빠진 소림사… “대기업이라 불러다오”

    ‘돈 독’에 빠진 소림사… “대기업이라 불러다오”

    중국 쿵푸(쿵푸)문화의 본거지이자 중국 ‘문화 경제’를 이끄는 큰 축으로 평가받는 소림사가 자본주의에 물들었다는 비난이 잇따르고 있다. 소림사 방장 승려인 스융신(49)은 소림사 승려 중 최초로 경영학 석사(MBA)출신이라는 점에서 눈길을 끈 바 있다. 중국 차이나데일리에 따르면 소림사는 거대 자본이 움직이고 명확한 직책이 있는 여럿 CEO까지 둔 대기업이라는 평가에 대해 소림사 측도 인정하는 분위기다. 1500년의 역사를 가진 소림사는 2000년대 들어 다양한 무술 공연뿐만 아니라 텔레비전, 서점까지 ‘점령’하며 문화를 판매하는데 열을 올리기 시작했다. 2010년에는 중국의 페이스북이라 불리는 ‘시나 웨이보’를 개설, 은막에 가려져 있던 역사에서 탈피해 소통을 시작했고, 현재 팔로워는 15만 명에 이른다. 지난 3월에는 스융신 대표가 구글과 애플 등 거대 IT기업의 본고장을 직접 방문하는 등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소림사의 새로운 행보를 시도하기도 했다. 외국인, 특히 서양인을 대상으로 한 무술 체험 교육 프로그램도 소림사의 상업화에 큰 몫을 한다. 지난 10년간 소림사 내에서 외국인을 보는 것은 흔한 일이 됐으며 소림사 내에는 외국인 전용 부서가 따로 존재해 ‘관리’를 쉬지 않는다. 지난 1월부터 현재까지 무려 800명의 외국인이 소림사에서 기거하며 훈련을 받았다. 소림사가 학교 재단까지 설립해 ‘쿵푸 팔이’에 나선 것은 이미 오래 전 이야기다. 소림사 인근에 있는 타고우 무술학교에는 중국의 10대 소년 3만 2000여명이 수련하고 있다. 2007년부터는 외국인들을 위한 강좌도 개설해 매년 200명이 이 학교에서 수업을 듣고 있는데, 이들의 한 해 수업료는 1000만원이 훌쩍 넘는다. 소림사 승려들도 싫지 않은 눈치다. 1981년, 16살의 나이로 소림사에 들어와 현재 승무원장을 맡고 있는 한 승려는 “당시 이곳(소림사)는 황폐 그 자체였다. 먹을 것조차 충분하지 않았다”면서 “찾아오는 사람도 없었고 소림사 절의 건축 상태도 매우 좋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1990년대 후반부터 관광객을 받고 수도원장이 되어 일반인을 상대하기 시작하면서 이야기가 달라졌다”고 말했다. 소림사에서 승려생활을 한지 얼마 되지 않은 스옌보(25) 역시 “소림사가 예전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말도 안된다”면서 “소림사는 세계와 함께 발전하고 세계와 함께 존재한다. 우리는 침착함을 유지하며 관광객들을 즐거운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스융신 소림사 대표는 최근 한국의 태권도와 태국의 킥복싱, 중국의 쿵푸 등 다양한 무술의 일대일 대련을 관객에게 선보이는 세계무림대회를 열겠다고 밝혔다. 소림사 내에서 다양한 무술 관련 행사가 개최돼 왔지만 이벤트 색채가 짙은 무술대회 개최 의사를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중국 정부 역시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한 ‘문화 정책’의 가장 큰 축으로 ‘공자’와 더불어 ‘쿵푸’를 꼽고 있는 만큼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는 상황이지만,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다. 참된 도를 수련하고 가난하고 억울한 인민들을 도와야 할 소림사와 승려가 돈벌이로 전락했다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는 가운데, ‘대기업’ 소림사는 지난 달 소림 무술을 소재로 한 모바일 게임 개발에 나설 것이라고 밝히는 등 뜻을 굽히지 않고 있어 갈등이 예상된다. 사진=중국 차이나데일리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밝아진 서촌 골목, 그늘진 주민 얼굴

    밝아진 서촌 골목, 그늘진 주민 얼굴

    “관광객이 떠드는 통에 잠을 설치는 날이 많아요. 임차료가 올라 쫓겨나듯 떠난 상인도 많고….” 17일 서울 종로구 통인동 주민 김모(69·여)씨는 정자에 앉아 관광객으로 북적이는 마을을 지켜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경복궁 서쪽에 있어 최근 ‘서촌’(종로구 효자동·통인동 등 15개 동)으로 불리기 시작한 이곳은 서울 강북의 새 관광 명소가 됐다. 조선시대 ‘서촌’으로 불리던 서울 서소문·정동 일대와는 다른 곳이다. ‘북촌’(종로구 재동·가회동·삼청동 일대)의 한옥마을이 큰 인기를 끌다가 관광객이 붐벼 포화 상태가 되자 인근 서촌이 조명받게 됐다. 궁중에 물자를 공급하는 서인과 역관이 많이 살았던 서촌에는 비교적 최근 지은 개량 한옥이 많고 지난해 박노수 화백의 가옥을 새로 꾸며 개관한 미술관도 있어 외부인이 즐겨 찾는다. 여행 가방을 끌고 와 카메라로 동네 곳곳을 찍으며 재잘거리는 젊은 관광객의 모습은 낯익은 풍경이 됐다. 마을이 활기를 얻으면 모든 주민이 좋아할 것 같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관광객이 늦은 밤까지 근처 카페에서 술을 마시며 소란을 피우는 일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모르는 이들이 집 앞에서 사진을 찍는 통에 주민들은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다. 한 주민은 “주말에 주차할 곳을 찾지 못해 동네 주변을 뱅뱅 도는 관광버스 때문에 나다니기 어려울 지경”이라고 하소연했다. 또 마을의 인기와 더불어 집값과 점포 임대료가 오르면서 건물주는 미소 짓지만 오래전 터를 잡은 세입자들은 울상이다. 종로구 옥인동에 10년 전 자리 잡은 한 공인중개사는 “통인시장 후문에서 수성동계곡에 이르는 옥인길의 경우 최근 2~3년 새 가게 임차료가 2배 가까이 올랐다”며 “그런데도 외지 사람들은 매장을 못 구해 난리”라고 전했다. 옥인길에서 성업하던 세탁소 3곳과 슈퍼마켓 3곳이 최근 문을 닫고 새 카페와 음식점 등에 자리를 내줬다. 서촌 주민들은 갑자기 달라진 마을 풍경을 보며 마음을 졸인다. 상업화가 더 진행되면 전통 마을 고유의 멋이 사라지고 프랜차이즈 음식점 등 자본만 남은 북촌처럼 될까 걱정된다고 했다. 서촌에서 30여년째 살고 있는 이발사 이천동(65)씨는 “이 동네가 학군이 좋고 청와대에 인접해 치안도 잘돼 있어 예전부터 살기 좋았다”며 “주변에 문 닫는 가게가 늘어나면서 우리처럼 건물주와 사이가 좋은 관계가 아니면 불안해하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또 독거노인 등 취약계층이 오른 집세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일도 생겼다. 조기태 사단법인 세종마을가꾸기회 대표는 “주민들의 의견이 적극 반영된 ‘문화 마을’로 거듭나는 길을 함께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10분 만에 충전’ 휘어지는 전지 개발

    ‘10분 만에 충전’ 휘어지는 전지 개발

    국내 연구진이 10분 만에 충전이 가능한 ‘휘어지는(플렉시블) 전지’를 만들 수 있는 원천기술을 개발했다. 정보통신기술 기기 시장에 막대한 파급효과를 낳을 수 있는 기술로 주목받고 있다. 조재필 울산과학기술대학교(UNIST) 에너지 및 화학공학부 교수는 31일 “기존에 1시간 이상 소요되던 충전 시간을 10분 내에 가능하게 한 휘어지는 2차전지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연구 결과는 국제저널 ‘나노 레터스’ 7월호에 실렸다. 최근 전 세계 정보통신기술(ICT) 시장에서는 휘어지는 스마트폰, 스마트 시계, 입는 PC 등이 차세대 상품으로 각광받고 있다. 하지만 디스플레이나 케이스 등 다른 분야에 비해 전지는 자유롭게 구부러지게 만들기 힘들어 산업화의 큰 걸림돌로 꼽혀 왔다. 조 교수팀은 양극, 음극 소재와 구조를 획기적으로 바꿔 두께 1㎜ 이하의 전지를 만들었다. 실험 결과 10분 만에 전지가 100% 충전됐고, 200번 이상 구부림 테스트를 해도 안정적으로 수명이 유지됐다. 특히 전지에서 가장 큰 비용을 차지하는 전극을 현재 사용하는 천연 흑연 대신 저가의 팽창 흑연을 사용, 상업화 가능성을 높였다. 조 교수는 “자유자재로 휘어지면서 성능도 우수하다는 점에서 휘어지는 전지 시장의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건형 기자 kitsch@seoul.co.kr
  • 유연·창의적으로… 틀 깬 ‘관리의 삼성’

    유연·창의적으로… 틀 깬 ‘관리의 삼성’

    자율출퇴근제 전면 시행에서도 보듯 삼성이 급격히 달라지고 있다. 지난해 이건희 회장이 신경영선언 20주년을 맞아 “모든 것을 바꾸자”며 ‘마하경영’을 화두로 던진 이후 그 결과물이 하나둘씩 나오고 있다. 변화는 ‘글로벌 삼성’이라는 위상에 맞게 삼성의 특장점이자 동시에 단점으로도 꼽히던 ‘관리의 삼성’에서 과감히 탈피하는 것에서 시작되고 있다. 강력한 시스템에 의존하던 경영방식에서 직원의 유연하고 창의적인 사고를 북돋는 방식으로 변모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이러한 변화는 후계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강한 의지가 반영된 결과라는 것이 삼성그룹 안팎의 시각이다. 13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를 보면 삼성전자는 올 1분기 전체 매출의 87.4%(올 1분기)를 해외에서 벌어들였다. 매출 구조만 보면 한국 국적을 붙이기 애매할 정도다. 삼성전자 임직원들이 하나같이 “우리의 경쟁 상대를 국내가 아닌 구글·애플·인텔 등 국외에서 찾아 달라”고 강조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국내 직원(9만 9794명)에 비해 2배 이상 많은 해외 직원(19만 206명)도 조직문화의 글로벌화를 재촉하는 이유 중 하나다. 지난달 15일부터 해외 출장 시 가족 동반을 허용한 것도, 다음 달부터 전 직원을 대상으로 자율출퇴근제를 전면 시행하는 것도 ‘글로벌 스탠더드’에 부응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이들 제도는 경쟁사인 구글이나 마이크로소프트(MS) 등에선 이미 당연한 것이다. 지난 11일 도입한 ‘모자이크’ 제도도 구글의 ‘20% 프로젝트’와 닮았다. 모자이크는 직원들로 하여금 상업화 여부와 상관없이 1년간 현업을 떠나 관심 있는 분야를 연구하도록 보장하는 제도다. 구글에선 근무시간의 20%를 원하는 일에 쓰도록 했더니 그 결과물로 지메일과 구글어스가 탄생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최근 스마트폰 등 모바일 기기를 둘러싼 환경 자체가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 중심으로 넘어가고 있는 점도 조직문화 변화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 내부에서조차 수년 전부터 ‘삼성전자는 껍데기(기기)만 만드는 것 아니냐’는 자조 섞인 우려가 나왔다. 총수 일가의 ‘은밀한 자금 뒷거래용’이라는 눈총을 받은 삼성SDS와 삼성에버랜드의 기업공개를 결정한 것도 변화의 징조로 여겨진다. 승계자금 마련을 위한 것이란 비판도 있지만 기업공개는 일반 주주를 참여시키고 공공의 감시를 받겠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또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직원들의 백혈병 발병 피해에 대해 7년 만에 경영진이 공식 사과한 것 역시 일련의 변화와 맥이 닿는다. 관리보다는 소통으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제스처’이기 때문이다. 이 같은 변화의 중심에 이 부회장이 있다는 게 그룹 안팎의 중론이다. 삼성 계열사의 한 관계자는 “자율출근제부터 해외출장 가족동반, 모자이크 등 삼성의 변화는 불과 몇년 전만 해도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이 같은 변화에는 JY(이재용)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김양진 기자 ky0295@seoul.co.kr
  • ‘관리의 삼성’ 급격히 달라지고 있다

    ‘관리의 삼성’ 급격히 달라지고 있다

    자율출퇴근제 전면 시행에서도 보듯 삼성이 급격히 달라지고 있다. 지난해 이건희 회장이 신경영선언 20주년을 맞아 “모든 것을 바꾸자”며 ‘마하경영’을 화두로 던진 이후 그 결과물이 하나둘씩 나오고 있다. 변화는 ‘글로벌 삼성’이라는 위상에 맞게 삼성의 특장점이자 동시에 단점으로도 꼽히던 ‘관리의 삼성’에서 과감히 탈피하는 것에서 시작되고 있다. 강력한 시스템에 의존하던 경영방식에서 직원의 유연하고 창의적인 사고를 북돋는 방식으로 변모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이러한 변화는 후계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강한 의지가 반영된 결과라는 것이 삼성그룹 안팎의 시각이다. 13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를 보면 삼성전자는 올 1분기 전체 매출의 87.4%(올 1분기)를 해외에서 벌어들였다. 매출 구조만 보면 한국 국적을 붙이기 애매할 정도다. 삼성전자 임직원들이 하나같이 “우리의 경쟁 상대를 국내가 아닌 구글·애플·인텔 등 국외에서 찾아 달라”고 강조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국내 직원(9만 9794명)에 비해 2배 이상 많은 해외 직원(19만 206명)도 조직문화의 글로벌화를 재촉하는 이유 중 하나다. 지난달 15일부터 해외 출장 시 가족 동반을 허용한 것도, 다음 달부터 전 직원을 대상으로 자율출퇴근제를 전면 시행하는 것도 ‘글로벌 스탠더드’에 부응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이들 제도는 경쟁사인 구글이나 마이크로소프트(MS) 등에선 이미 당연한 것이다. 지난 11일 도입한 ‘모자이크’ 제도도 구글의 ‘20% 프로젝트’와 닮았다. 모자이크는 직원들로 하여금 상업화 여부와 상관없이 1년간 현업을 떠나 관심 있는 분야를 연구하도록 보장하는 제도다. 구글에선 근무시간의 20%를 원하는 일에 쓰도록 했더니 그 결과물로 지메일과 구글어스가 탄생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최근 스마트폰 등 모바일 기기를 둘러싼 환경 자체가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 중심으로 넘어가고 있는 점도 조직문화 변화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 내부에서조차 수년 전부터 ‘삼성전자는 껍데기(기기)만 만드는 것 아니냐’는 자조 섞인 우려가 나왔다. 총수 일가의 ‘은밀한 자금 뒷거래용’이라는 눈총을 받은 삼성SDS와 삼성에버랜드의 기업공개를 결정한 것도 변화의 징조로 여겨진다. 승계자금 마련을 위한 것이란 비판도 있지만 기업공개는 일반 주주를 참여시키고 공공의 감시를 받겠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또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직원들의 백혈병 발병 피해에 대해 7년 만에 경영진이 공식 사과한 것 역시 일련의 변화와 맥이 닿는다. 관리보다는 소통으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제스처’이기 때문이다. 이 같은 변화의 중심에 이 부회장이 있다는 게 그룹 안팎의 중론이다. 삼성 계열사의 한 관계자는 “언제부터라고 잘라 말할 순 없지만 지금 삼성은 JY(이 부회장)가 움직이고 있다”면서 “삼성의 변화 역시 당연히 그의 의지가 반영된 결과”라고 말했다. 김양진 기자 ky0295@seoul.co.kr
  • 월드컵 코앞인데… 애도 속 거리응원 딜레마

    월드컵 코앞인데… 애도 속 거리응원 딜레마

    세월호 참사 이후 온 나라가 50여일째 ‘국상’(國喪) 분위기에 젖은 가운데 코앞으로 다가온 브라질월드컵 한국-러시아전(6월 18일 오전 7시) 거리응원 여부와 장소 등을 놓고 논쟁이 달아오르고 있다. “거리응원이 국민적 애도 분위기를 깰 수 있다”는 의견과 “힘을 합친 응원으로 국민이 지친 마음을 추스를 수 있다”는 반론이 팽팽히 맞서고 있는 셈이다. 여전히 세월호 실종자 10여명이 남은 데다 진상규명을 위한 국회 국정조사가 본격화하는 상황에서 “지나친 축제판은 세월호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우려가 희생자 가족과 시민사회단체, 학계를 중심으로 제기된다. 정희준 동아대 스포츠과학부 교수는 “비단 유가족뿐 아니라 우리 아이들과 우리 사회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세월호 참사는 월드컵으로 잊혀선 안 될 문제”라며 “한 달이나 지속되는 월드컵 기간에 국민의 분노나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목소리들이 잊힐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세월호 희생자 가족 등도 월드컵 열기에 세월호에 대한 관심이 묻힐까 걱정된다는 우려를 거듭 밝힌 바 있다. 2006년 독일월드컵부터 불거진 자본과 결탁한 대규모 길거리응원에 대한 피로감은 더욱 가중될 전망이다. 이번 월드컵 거리응원은 국제축구연맹(FIFA) 공식후원사인 현대자동차와 KT가 후원을 맡게 된다. 스포츠 칼럼니스트인 정윤수씨는 “2006년 독일월드컵 이후 거리응원은 순수성을 잃고 축구 국가대표팀 응원단인 ‘붉은 악마’를 중심으로 기업, 방송사, 연예인 등이 정교하게 기획된 상업 이벤트로 변질됐다”면서 “재벌이 주도하는 거리응원은 세계 어디에도 없다”고 거듭 강조했다. 정 교수 역시 “붉은 악마도 이전보다는 조금 조용하게 하려고 하겠지만, 근본적으로 재벌이 후원하고 붉은 악마 같은 상업적인 조직이 주도하는 거대한 마케팅 공간에 시민이 휩쓸릴 필요가 없다”며 “현재 붉은 악마의 응원 방식은 국가주의의 또 다른 발현”이라고 비판했다. 논란의 중심에 선 붉은 악마 측은 “세월호 참사 여파로 거리응원을 하는 것이 매우 조심스럽다”면서도 “거리응원은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손형오 붉은 악마 미디어팀장은 “피땀 흘려 가며 월드컵을 준비한 선수들을 응원하는 것이 본래 목적”이라면서 “다만 세월호 희생자를 기리고자 응원 중 잠시 침묵하는 등 여러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붉은 악마 측은 서울광장에 세월호 희생자 합동분향소가 마련됐기 때문에 광화문광장, 서울월드컵경기장, 올림픽공원 등 대체 장소를 물색 중이다. 이와 별도로 월드컵 공식 후원사인 현대자동차는 서울 영동대로를 거리응원 장소로 검토하고 있지만, 정해진 것은 없으며 서울시와 논의 중이다. 상업화 논란에 대한 부담을 지닌 붉은 악마가 현대자동차와 함께 거리응원을 진행할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손 팀장은 “대규모 거리응원 때 안전 조치를 하려면 비용이 필요하기 때문에 후원을 받는 것”이라며 “후원 기업들도 (홍보 등에) 어느 정도 이득을 얻어야 스포츠에 대한 지원을 계속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서울시 체육진흥과 관계자는 “서울광장에 분향소가 있는데 그 옆에서 거리응원을 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맞지 않는 부분”이라면서 “정해진 건 없으며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유대근 기자 dynamic@seoul.co.kr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문화 In&Out] 2세대 ‘붉은 미술’ 상륙

    세계 최대 규모의 시장을 자랑하는 중국 미술이 다시 국내 화랑가 문을 거세게 노크하는 분위기다. 추상과 구상, 설치미술 등을 가리지 않고 외연을 넓혀가는 모양새가 과거와 확연히 달라진 점이다. 중국 작가들의 국내 시장 진출 사례는 최근 눈에 띄게 많아졌다. 국공립미술관만 해도 지난해에는 아르코미술관(신중국미술전)과 제주현대미술관(펑정지에전)에서 관련 전시가 열렸고, 올해에는 서울시립미술관(액체문명전)과 대구미술관(장샤오강전)이 흐름을 이어갔다. 지난해 상반기 아르코미술관에서 열린 ‘신중국미술’전은 ‘차이나 아방가르드’ 1세대로 분류되는 쉬빙을 비롯해 장르의 다양화를 추구해온 먀오샤오춘, 조형언어를 탐구하는 리후이와 왕웨이 등 8명의 대표 중견·신진 작가들이 참여해 눈길을 끌었다. 중국 문화부와 국립미술관인 중국미술관이 공동 주최와 기획에 나설 만큼 중국 현지의 관심도 뜨거웠다. 또 서울시립미술관이 지난달까지 이어온 액체문명전의 경우 한국과 중국의 현대미술작가 12명의 공동 전시를 통해 이해의 폭을 넓혔다는 데 의의가 있다. 화랑가의 분위기는 더 달아올랐다. 올 2월 말까지 천안 아라리오갤러리에서 열린 중국 작가 리판의 개인전 ‘인생예찬’은 100여 점의 회화 작품을 통해 단편적인 중국 미술계의 분위기를 전하는 데서 벗어났다는 평가를 들었다. 지난해 말 상하이에 지점을 개설한 서울 소격동의 학고재갤러리도 중국의 대표 수묵화가인 티엔리밍의 전시를 오는 15일까지 이어간다. 서울 강남의 화랑가에서도 심심찮게 중국 작가들의 단체전을 만날 수 있다. 서울 서초동의 더페이지 갤러리는 지난달 말까지 ‘평면과 심도’전을 통해 탄핑, 장팡바이, 수신핑 등 중국 추상회화를 이끄는 8명의 미술가들을 소개했다. 다소 투박한 중국 추상 미술작품들이 유행에 민감한 강남 화랑가까지 파고들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끌었다. 이 같은 흐름은 과거와 뚜렷이 구분된다는 게 미술계의 평가다. 국내 미술계가 호황이던 2000년대 중반에는 화랑과 경매시장을 중심으로 중국 유명 미술가들의 작품이 제한적으로 거래되는 데 그쳤다. 장샤오강, 위엔민준, 쩡판즈, 팡리준 등 ‘중국 미술계의 4대천왕’이라 불리는 작가들의 고가 작품이 맹위를 떨쳤다. 하지만 지난해부터는 국공립미술관에서도 중국 미술 전시가 잇따르고 있다. 화랑가까지 가세하면서 중국 현대미술시장의 인물 구상화는 물론 추상미술 작가들까지 부각됐다. 그간 국내에 소개된 중국 작가들의 작품은 선전적 성격이 강했고, 이는 구상미술 작품을 통해 주로 반영됐다. 반면 최근 소개되는 작품들은 반복적인 선을 긋거나 원의 형태를 활용해 생명력을 강조한다. 아울러 중국의 사회문제를 직접적으로 거론하거나 흐릿한 선을 통해 개성을 표출하는 작품도 상당수다. 중국 시장에 진출했다가 고배를 마셨던 국내 대형 화랑들이 다시 중국 시장에 눈독을 들이는 것도 이런 흐름을 부채질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교류를 확대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중국 미술작가에 대한 관심을 끌어올렸다는 것이다. 일각에선 우려의 목소리도 들린다. “국내 미술시장이 침체된 가운데 지나치게 상업화된 중국 미술계의 융단폭격이 가해진다면 국내 신진작가들의 설 자리가 없어지는 등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가속화될 것”이라는 이야기다. 세계 미술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하는 중국 미술에 대한 관심을 제대로 반영하면서 동시에 우리 미술의 생명력까지 북돋우는 ‘솔로몬의 지혜’는 과연 없는 것일까.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문화 In&Out] 中작가 국내시장 진출 러시

    세계 최대 규모의 시장을 자랑하는 중국 미술이 다시 국내 화랑가 문을 거세게 노크하는 분위기다. 추상과 구상, 설치미술 등을 가리지 않고 외연을 넓혀 가는 모양새가 과거와 확연히 달라졌다. 중국 작가들의 국내 시장 진출 사례는 최근 눈에 띄게 많아졌다. 국공립미술관만 해도 지난해에는 아르코미술관(신중국미술전)과 제주현대미술관(펑정지에전)에서 관련 전시가 열렸고, 올해에는 서울시립미술관(액체문명전)과 대구미술관(장샤오강전)이 흐름을 이어 갔다. 지난해 상반기 아르코미술관에서 열린 신중국미술전은 ‘차이나 아방가르드’ 1세대로 분류되는 쉬빙을 비롯해 장르의 다양화를 추구해 온 먀오샤오춘, 조형언어를 탐구하는 리후이와 왕웨이 등 대표적인 중견·신진 작가 8명이 참여해 눈길을 끌었다. 중국 문화부와 국립미술관인 중국미술관이 공동 주최와 기획에 나설 만큼 중국 현지의 관심도 뜨거웠다. 또 지난달까지 이어 온 액체문명전의 경우 한국과 중국의 현대미술작가 12명이 공동 전시를 하면서 양국 이해의 폭을 넓혔다는 데 의의가 있다. 화랑가의 분위기는 더 달아올랐다. 올 2월 말까지 천안 아라리오갤러리에서 열린 중국 작가 리판의 개인전 ‘인생예찬’은 회화 작품 100여점을 통해 단편적인 중국 미술계의 분위기를 전하는 데서 벗어났다는 평가를 들었다. 지난해 말 상하이에 지점을 개설한 서울 종로구 소격동의 학고재갤러리도 중국의 대표 수묵화가인 톈리밍의 전시를 오는 15일까지 이어 간다. 서울 서초구 서초동 더페이지갤러리는 지난달 말까지 ‘평면과 심도’전을 통해 탄핑, 장팡바이, 수신핑 등 중국 추상회화를 이끄는 미술가 8명을 소개했다. 다소 투박한 중국 추상 미술작품들이 유행에 민감한 강남 화랑가까지 파고들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끌었다. 이 같은 흐름은 과거와 뚜렷이 구분된다는 게 미술계의 평가다. 국내 미술계가 호황이던 2000년대 중반에는 화랑과 경매시장을 중심으로 중국 유명 미술가들의 작품이 제한적으로 거래되는 데 그쳤다. 장샤오강, 웨민쥔, 쩡판즈, 팡리쥔 등 ‘중국 미술계의 4대 천왕’이라 불리는 작가들의 고가 작품이 맹위를 떨쳤다. 국내 미술시장 침체와 함께 한동안 거래가 뚝 끊겼던 중국 미술작품들은 지난해부터 다시 관심을 모으고 있다. 국공립미술관들이 앞다퉈 다양한 예술관을 지닌 작가들을 소개하면서부터다. 여기에 화랑가까지 가세하면서 작품 경향도 달라졌다. 그간 국내에 소개된 중국 작가들의 작품은 선전적 성격이 강했고, 이는 구상미술 작품을 통해 주로 반영돼 왔다. 반면 요즘에는 중국 현대미술시장의 인물 구상화는 물론 추상미술 작품까지 폭넓게 부각되고 있다. 이런 작품들은 반복적으로 선을 긋거나 원을 활용해 생명력을 강조하곤 한다. 중국의 사회문제를 대놓고 거론하고, 흐릿한 선과 배경에 몽환적 노장사상을 담는 작품도 상당수다. ‘붉은 미술’ 재상륙의 중심에는 중국 시장에 진출했다가 고배를 마셨던 국내 대형 화랑들이 있다. 한·중 간 문화교류 확대라는 긍정적 취지 외에 양국 간 미술시장의 파이를 키워 이득을 보겠다는 심산도 깔려 있다. 일각에선 우려의 목소리도 들린다. “침체된 국내 미술시장에 지나치게 상업화된 중국 미술계의 융단폭격이 가해지면 국내 신진 작가들의 설 자리가 없어지는 등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가속화될 것”이라는 이야기다. 세계 미술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하는 중국 미술에 대한 관심을 제대로 반영하면서 동시에 우리 미술의 생명력까지 북돋우는 ‘솔로몬의 지혜’는 과연 없는 것일까.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개신교계 ‘21세기 찬송가’ 갈등 재연

    개신교계 ‘21세기 찬송가’ 갈등 재연

    찬송가를 둘러싼 개신교계의 갈등이 재연될 조짐이다. 한국교회연합(한교연)이 현재 통용되고 있는 찬송가를 신랄하게 비판한 데 이어 새 찬송가 제작을 위한 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찬송가를 보급하고 있는 (재)한국찬송가공회 측이 ‘찬송가의 역사성을 무시한 집단행동’이라며 강경하게 맞서 분란이 예상된다. 한교연이 지난 2일 프레스센터에서 마련한 ‘한국교회 찬송가 대토론회’는 현재 개신교계에서 널리 쓰이는 ‘21세기 찬송가’를 겨냥한 집중 성토의 자리였다. 참석자들은 현 찬송가의 편집·관리 운영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며 신도들의 심성과 정서에 맞는 찬송가를 새로 제작할 것을 강력하게 주문했다. 홍성식 한국찬송가위원회 총무는 “(재)한국찬송가공회가 2006년 ‘21세기 찬송가’를 출시했지만 지금까지 많은 잡음과 혼란이 발행하고 있다”며 “이는 수록된 645곡 중 5분의1에 해당하는 한국인 작사·작곡자의 곡 때문이며 일부가 정치적 배려나 (재)한국찬송가공회 회원 간 친분을 앞세워 수록됐다”고 지적했다. 홍 총무는 특히 “‘21세기 찬송가’는 매년 지불해야 하는 수억원대의 저작권료, 민·형사상 소송, 불필요한 가사 수정 등의 문제로 정상적인 출판이 힘든 지경”이라고 꼬집었다. 전희준 한국찬송가작가총연합회 대표회장은 “상업화와 이익을 추구하면서 공회 조직과 저작권, 출판권, 수익금 등 관리운영을 둘러싼 심각한 문제들이 발송했다”며 “이 문제점을 먼저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개신교계에 따르면 현재 ‘21세기 찬송가’의 경우 한국 곡에 대해 매년 8억원 이상의 저작권료를 지급하고 있다. 전 대표회장은 특히 “찬송가 창작 가사들의 경우 비성서적, 비신앙적 내용이 다수 발견되고 있다”며 “잘못된 부분을 과감히 시정해 우리 심성, 정서에 맞는 찬송가를 개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재)한국찬송가공회 측 인사들은 이날 토론회에 초청받았지만 “행사의 정확한 의도를 파악할 수 없고 준비시간이 촉박하다”며 불참했다. 한교연은 이와 관련해 최근 위원장 안영로 목사(통합 증경총회장)와 21명의 위원으로 구성된 찬송가대책위원회를 발족했다. 대책위원회는 공청회를 한두 차례 더 열어 대중들의 의견을 수렴한 뒤 새 찬송가 제작을 위한 본격적인 활동에 나설 방침이다. 이 같은 움직임에 대해 (재)한국찬송가공회 측은 “현 ‘21세기 찬송가’에 음악적·신학적 문제는 전혀 없다”며 강력 대응할 태세여서 분란이 예상된다. 한편 (재)한국찬송가공회가 지난달 정기총회에서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4월부터 올해 3월까지 찬송가공회를 통해 총 77만 6900부의 찬송가가 보급됐으며 아가페출판사와 성서원이 가장 많은 39만여권과 25만부를 각각 출간한 것으로 확인됐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꽃비보다 아름다운 예술의 유혹

    꽃비보다 아름다운 예술의 유혹

    4월의 푸른 하늘 아래 전시장들도 앞다퉈 화사한 봄옷을 차려입었다. 상춘객들을 유혹하는 전시 테마도 각양각색이다. 난분분하게 한바탕 흐드러진 벚꽃 잔치상을 물린 북한산, 인왕산 자락으로 다시 걸음 해 볼 일이다. 산자락에 옹기종기 붙어 앉은 미술관과 갤러리들에서 조각, 사진, 회화, 영상, 설치미술의 향연이 이어지고 있다. 서울 종로구 평창길에 자리한 김종영미술관은 한국 추상조각의 선구자인 우성 김종영(1915~1982)의 조각, 드로잉, 서예 등을 모은 특별전 ‘무위의 풍경’전을 오는 6월 1일까지 이어 간다. 인위성을 배제한 ‘조각하지 않는’ 아름다움을 추구해 온 김종영의 미감을 엿볼 수 있는 전시다. 김종영은 서구 모더니즘과 무위자연 의식을 접목해 자연적 질감을 극대화한 예술 세계를 펼쳐 왔다. 상업화를 늘 경계한 덕분이다. 이번 전시에는 대표작인 철조 ‘전설’과 나무에 채색을 한 ‘작품80-3’ ‘자각상’ 등이 포함됐다. 종로구 자하문길의 대림미술관은 오는 10월 12일까지 ‘트로이카’전을 펼친다. 기술이 감성을 깨우는 것이 과연 가능한지 되묻는 전시다. 젊은 외국인 예술가 3명이 ‘소리’ ‘빛’ ‘시간’을 주제로 과학과 예술이 분화되지 않았던 중세 르네상스 시대의 아련한 향수를 자극한다. 독일 출신 디자이너 코니 프라이어와 에바 루키, 프랑스 출신 엔지니어 세바스티앵 노엘 등 3명으로 구성된 그룹 ‘트로이카’는 2003년부터 영국 런던을 무대로 활동해 왔다. 기계 장치나 전자 기기 등의 인공적인 기술을 통해 자연의 아름다운 빛과 소리를 흉내 내는 작업들이다. 트로이카는 미국 뉴욕 현대, 영국 런던 빅토리아-앨버트, 테이트 브리튼 등 유수의 미술관에서 전시를 했다. 이번 전시에선 대표작인 ‘클라우드’와 ‘폴링 라이트’를 국내에 처음으로 소개한다. ‘클라우드’는 시시각각 변화하는 구름의 역동적인 움직임을 표현한 작품으로 런던 히스로 공항 5터미널에 설치됐던 인기 작품이다. 종로구 세종길의 일민미술관은 한국영상자료원, 문지문화원 사이와 손잡고 오는 6월 8일까지 ‘토탈리콜’전을 선보인다. 미술가와 영화감독의 영상 작품을 동원함으로써 이종 장르의 미학을 접목했다. 8개 팀 13명의 작가와 감독은 ‘트로트, 트리오, 왈츠’(차재민), ‘철의 사나이: 만들어진 장소’(배윤호), ‘열린 도시의 이방인들’(김소영) 등 사회성 짙은 작품을 내놓았다. 지난해 박찬욱, 박찬경 감독이 제작한 ‘고진감래’는 시민들이 인터넷을 통해 제출한 1만 1852편의 영상 가운데 152편을 추려 63분 분량으로 편집한 것이다. 아름다운 도시의 모습 못지않게 잊고 싶은 도시의 현재와 과거를 포착했다. 옥인콜렉티브의 ‘서울 데카탕스’는 트위터에 북한에 관한 농담을 올려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기소된 퍼포머 ‘P’가 재판을 앞두고 화법을 교습받는 모습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김경만의 ‘삐 소리가 울리면’은 1960~1970년대 국가에서 만든 반공 홍보 영화, 교육 자료 등을 재조합해 선전 목적으로 제작한 영상이 오랜 시간이 지나 얼마나 이율배반적으로 가치 전환했는지를 드러낸다. 멕시코 출신의 작가 다미안 오르테가는 종로구 삼청길 국제갤러리에서 다음 달 11일까지 첫 내한 전시인 ‘리딩 랜드스케이프스’전을 이어 간다. 작가는 폴크스바겐 뉴비틀 차량을 분해한 뒤 차량 부품을 도면처럼 천장에 매다는 작품을 선보여 세계적으로 화제를 모았다. 이번 전시에선 1㎜∼5㎝ 크기의 수많은 작은 돌멩이를 투명한 실에 매달아 구 모양으로 선보였다. 10여점의 신작을 포함해 콘크리트와 벽돌, 알루미늄, 고무, 골판지, 스티로폼 등 일상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로 만든 다양한 작품들이다. 작가는 “초등학교 교사인 어머니와 배우였던 아버지 밑에서 열린 교육을 받았다”면서 “작품 가운데 지각이 거대한 얼음덩어리처럼 부유하고 있다는 판 구조론을 연상시키는 작품도 있다”고 소개했다. 개인 사진전 가운데는 임채욱의 ‘인사이드 마운틴즈’전이 눈길을 끈다. 종로구 인사동길 아라아트센터에서 오는 28일까지 열리는 전시에선 산수화를 연상시키는 폭 6m의 대형 사진 등 60여점의 작품이 내걸렸다. 산봉우리 등 겹겹이 이어진 산세를 접어서 표현하는 ‘부조사진’ 18점도 처음 공개한다. 서울대 미대 재학 시절 닥종이에 그림을 그렸던 작가는 겸재 정선이 살던 인왕산 자락에 작업실을 마련하고 운무와 빛, 암벽이 어우러지는 독특한 사진 회화의 세계를 펼치고 있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속보]성형외과들 ‘수술의사 바꿔치기’ ‘마취제 과다투여’ 등 사실로

    대한성형외과의사회(회장 이상목)는 10일 최근 물의를 빚은 일련의 의료사고에 대해 공개적으로 사과하고 강도높은 자정활동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그동안 일부 기업형 성형외과에서 공공연히 자행된 ‘유령의사(쉐도우닥터)에 의한 대리수술’과 이를 환자가 알아채지 못하게 하기 위해 프로포폴 등 수면마취제를 과다하게 사용하는 문제 등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이의 근절도 다짐했다. 의사회는 이날 오후 2시 대한의사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그랜드성형외과 등에서 발생한 일련의 성형 관련 사건·사고가 “날로 심해지는 의료기관 간의 과다 경쟁과 상업화로 인한 일부 회원들의 비윤리적이고 불법적인 행위에서 비롯되었다”면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데 대해 국민 앞에 고개 숙여 사과하며, 국민 건강과 생명에 위협이 되는 작금의 사태에 무한한 책임과 함께 참담함을 느낀다”고 토로했다. 의사회는 이어 “이와 관련된 사태와 해당 의료기관에 대해서는 고강도 조사를 통해 사실을 규명하고 재발 방지책을 마련하는 것은 물론 해당 의료기관의 잘못된 관행과 제도를 바로 잡음으로써 정상적인 의료질서를 확립해 나가겠다”고 다짐했다. 이를 위해 대한성형외과학회·대한미용성형외과학회 등 관련 학회와 공조해 일선 병의원에 대한 대대적인 실태조사를 벌여 새로 드러난 불법·탑법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고발 등 강력한 제재조치를 취하기로 했다. 또 기존 전문의는 물론 새로 배출될 전문의에 대한 윤리교육을 강화하기로 했다. 의사회는 최근 의료사고를 일으켜 물의를 빚은 일부 의료기관에 대한 현장조사에서 확인된 불법행위도 구체적으로 적시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유령의사에 의한 대리수술이었다. 의사회에 따르면 일부 기업형 성형외과들은 광고를 통해 이른바 ‘유명의사’를 날조하고 환자들에게는 그 의사가 수술할 것처럼 진료상담까지 하지만 막상 수술실에서는 환자가 전신마취나 수면마취 상태에 빠져 의식이 없는 사이에 다른 의사를 들여보내 수술을 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의사회는 “이는 명백한 불법행위이자 비윤리적 의료행위”라면서 “심지어는 성형외과 전문의가 아닌 의사가 대리수술을 하는 경우도 있었으며, 외국인들조차 한국의 ‘유령의사’를 알고 있을 정도”라고 개탄했다. 수면마취제의 과다 사용도 문제로 드러났다. 의사회는 “엉뚱한 의사가 대리수술을 하려면 환자를 속여야 하는데, 이를 위해 대량의 수면마취제를 투여하고 있다”면서 “이에 필요한 수면마취제를 대량으로 유통하기 위해 의사면허를 대여해 의료기관을 잇따라 개설하는가 하면 불법행위를 은폐하기 위해 면허 대여자를 바꿔가며 운영하는 병원도 있는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근로기준법을 무시한 근무조건과 의료인 혹사도 사실로 드러났다. 의사회는 “심지어 일부 성형외과에서는 격무를 못 견딘 간호사가 퇴직하면 자격증도 없는 간호조무사 학원생들을 진료에 투입해 업무를 대신하도록 하는 위험천만한 일도 자행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상목 의사회장은 “이번 조사를 통해 불법·탈법행위가 드러난 병의원과 의사들에 대해 회원제명, 회원자격정지 등 엄중한 징계 조치를 취했으며, 향후 드러난 문제에 대해서는 고발 조치도 불사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 의사회는 이달 초 그랜드성형외과에 대해 대표원장을 제명한는 등 강도 높은 제재조취를 취했다. 의사회는 자체적인 자정활동을 위한 실천방안도 내놨다. 우선, 공공장소에서의 무분별한 과대광고로 성형수술을 부추기는 행위를 자제하도록 하는 한편 성형 관련 광고에 대해서는 합리적인 규제책을 담아 국회 입법을 추진할 방침이다. 또 환자의 권익 보호와 의료인의 책임의식을 강화하기 위해 환자 동의 없이 수술하는 의사를 바뀌는 행위를 범죄행위로 규정, 법적 대응에 나서기로 했다. 이상목 회장은 “성형수술은 고도의 집중력과 높은 수준의 의학 지식 및 윤리의식이 요구되는 의료행위임에도 사회 일각에서는 성형수술을 지나치게 가볍게 인식하고 있다”면서 “일부 부도덕한 의사들이 이에 편승해 성형수술을 상업적으로만 다루고 있는 만큼 이를 바로잡기 위해 노력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심재억 의학전문기자 jeshim@seoul.co.kr
  • [씨줄날줄] GMO 논쟁/오승호 논설위원

    유전자변형농산물(GMO)의 상업화가 이뤄진 것은 20년 전. 1994년 미국의 칼젠사가 물러지지 않는 토마토 ‘플레이버 세이버’(Flavr Savr)를 개발한 것이 효시다. 토마토 껍질은 시간이 지날수록 폴리갈락투로나아제에 의해 펙틴이 분해되면서 무르게 돼 유통 중 품질이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이어 1996년에는 미국 몬산토사의 제초제 저항성 콩(Roundup Ready Soybean)과 스위스 노바티스사의 병충해 내성 옥수수가 판매되면서 GM작물의 본격적인 상업화 시대가 열렸다. 당시 GMO 재배 면적은 170만㏊였으나 지금은 1억 7000만㏊로 100배로 늘었다. 전 세계 28개국에서 1730만여명의 농업인들이 GM작물을 재배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세계 2위 GMO 수입국가다. 2012년 옥수수, 카놀라(유채), 콩 등 186만t을 수입해 일본의 뒤를 이었다. 지난달에는 수입업체들이 한국소비자원의 권고에 따라 GMO 원재료를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카놀라유를 전량 회수하기도 했다. 우리나라는 전 세계적으로 상업화된 18개 GMO 작물 가운데 7개 품목을 표시 대상으로 하고 있다. GMO 표시제는 소비자의 알권리 보장을 위해 2001년 3월 콩, 콩나물, 옥수수를 대상으로 시작해 면화, 사탕유, 감자 등으로 확대됐다. 가공식품은 같은 해 7월부터 표시제를 시행하고 있다. 문제는 GMO 성분이 남아있는 식품이나 원료 함량이 상위 5순위 이내만 대상으로 한다는 점이다. 또 GMO가 검출되더라도 함량 3% 이하이면 생산·유통 과정 중 비의도적 혼입을 고려, 표시 의무를 면제해 준다. 생명공학기술이 발달하면서 유전자변형농산물의 생산 및 유통이 확대됨에 따라 인체나 환경에 대한 안전성 논란은 수그러들 줄 모르고 있다. GMO는 기후변화 등으로 인한 21세기 식량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핵심기술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반면 잠재적 인체위해성, 환경문제, 사회윤리적 문제 등은 풀어야 할 과제다. 우리나라가 9일부터 GMO가 섞인 미국 가공식품을 유기농으로 인정할지 여부를 놓고 미국과 협상을 시작해 결과가 주목된다. 미국은 GMO에 대한 별도의 표시제는 없다. GMO 식품이 특성이나 성분, 함량 등에서 기존 식품과 차이가 없을 경우 동일하게 보는 실질적 동등성 개념을 적용한다. 우리나라는 세계 5위의 곡물 수입국이다. 2012년 곡물자급률은 23.6%로 역대 최저다. 2002년 30.4% 이후 10년째 30%를 넘지 못하고 있다. 이모작 등 토지이용률을 높이고 난개발 억제로 농지를 확보해 곡물자급률을 우선 30%대로 끌어올려야 한다. GMO 의존도를 낮추는 방책을 고민해야 한다. 오승호 논설위원 osh@seoul.co.kr
  • [사설] 의료 선진화 구호 무색게하는 잇단 성형사고

    성형수술을 받다 사망하는 사고가 잇따르고 있다. 불과 보름 새 서울과 부산에서 30대 여성과 남성이 수술 도중 연달아 숨졌다. 지난해 수능시험을 마치고 성형수술을 받은 여고생은 석 달째 뇌사 상태에 빠져 있다. 세계 성형시장의 25%를 차지하는 ‘성형공화국’ 대한민국에서 이런 비극은 예고된 것이나 다름없다. 성형을 부추기고 성형관광을 장려하면서도 환자의 안전 문제는 도외시한 탓이다. 예뻐지려는 인간의 욕구를 무조건 나무랄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외모 중시는 세계에서 유별날 정도로 비정상적이다. 언어구사력이 먼저인 방송인의 요건에서 외모가 우선시되는 것은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다. 많은 기업들이 외모를 중요한 사원선발 기준으로 삼는다. 결혼도 마찬가지다. 그러다 보니 여성은 물론이고 남성까지도 성형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는 사회가 되었다. 이런 풍조에 편승해 TV는 버젓이 성형 사례를 방송하고 병원들도 무차별적인 광고로 성형을 부추기고 있다. 우리나라의 인구 1000명당 성형수술 건수는 13.5건 수준으로 전 세계 1위다. 더불어 발전한 한국 의사들의 성형시술 능력은 외국인 환자 유치를 통한 국익 창출에도 한몫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과열 경쟁과 상업화는 과잉 성형을 낳고 환자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 성형의 판단은 코디네이터들이 맡아서 수술비를 더 받아내는 데 혈안이 돼 있다. 부작용을 제대로 설명해 주지 않고 불필요한 수술까지도 권유하는 이런 행위가 불법임은 물론이다. 의료사고가 발생하는 가장 큰 원인은 마취의 전문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우리 의료법은 의사면허만 있으면 누구나 마취를 할 수 있어 사고가 발생할 위험이 늘 도사리고 있다. 수술실을 보유한 의료기관 중 마취 전문의가 없는 병원은 36.7%나 된다고 한다. 특히 개인병원 규모의 성형외과들은 비용 부담 때문에 마취 전문의를 두는 경우가 극히 적다. 수술 중 응급 상황에 대한 대처도 매우 미흡하다. 성형외과를 둔 의료기관 1091곳 중 심장충격기와 인공호흡기를 갖춘 곳은 77%에 불과하다. 물론 의료사고의 일차적인 책임은 병원 측이 져야 한다. 사고를 막으려면 마취 전문의를 참여시키고 응급 상황에 철저히 대비하는 자체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러나 의료관광 활성화를 국가적 시책으로 장려하는 정부에는 더 큰 책임이 있다. 가능한 행정권을 동원해서 불법 성형을 제재하고 의료사고를 막을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 루이비통이 전통악기를 만났을 때

    루이비통이 전통악기를 만났을 때

    순수미술과 명품 가방 사이에는 어떤 상관관계가 있을까. 현란한 소비문화에 흠뻑 젖은 현대사회에서 팝아트풍의 분위기를 자아내는 미술관의 전시공간과 초현실적인 백화점의 명품관 인테리어는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허상의 이미지를 통해 인간 내면의 욕망을 돌아보고 어떤 방식으로든 이를 소비한다는 점에서는 일맥상통한 부분까지 있다. 오는 13일부터 31일까지 서울 강남구 신사동 스페이스K에서 공개되는 루이비통의 사회공헌 미술프로젝트 ‘아티잔스’(ARTisans)는 최근 거세게 불고 있는 미술과 명품 브랜드 ‘콜라보레이션’(협업)의 대표적인 사례다. 프로젝트는 영상과 악기, 설치미술, 조각 등 광범위한 영역을 포괄한다. 마치 미술관과 백화점 명품관 사이의 벽을 허물려는 노력으로 비친다. 이번 협업의 소재는 백수광부의 아내 여옥이 불렀다는 ‘공무도하가’(公無渡河歌). 구슬픈 사연을 담은 노래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음악’으로 꼽힌다. 현대미술 작가 전준호(45)·문경원(45)은 여기에 초점을 맞췄다. 최초의 악기란 어떤 형태일지, 소리의 원료와 원형은 어떤 모습일지를 담은 다큐멘터리 ‘공무도하’를 찍고 있다. 두 작가는 2대째 전통악기를 제작하는 이영수(85·중요무형문화재 제42호 악기장 보유자)·이동윤(58·악기장 전수교육조교) 부자를 만나 영감을 얻었다. 악기장 부자는 또 순수미술, 도예, 가구, 디자인, 작곡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6명의 신진 작가에게 관련 작품을 만들도록 도움을 줬다. 아울러 젊은 작가들은 2개월간 악기장 부자를 도와 가야금을 만들었다. 프로젝트는 이렇게 장인-현대미술가-신진작가를 잇는다. 협업에 필요한 2억원의 예산은 루이비통이 댔다. 루이비통이 국내 작가를 초청해 전시를 연 경우는 종종 있었으나 1년여에 걸쳐 전통문화와 현대예술의 교류를 시도한 것은 처음이다. 이동윤 악기장은 “처음에는 안 한다고 했다. 그런데 나무 트렁크를 만드는 데서 출발했다는 회사의 역사를 듣고, 전통과 현대적인 것이 만나 새로운 것이 만들어질 수 있다고 생각해 참여했다”고 말했다. 프로젝트는 루이비통 입장에선 비교적 적은 돈으로 수월하게 브랜드 이미지를 제고할 수 있는 기회다. 이 회사는 앞서 제임스 터렐, 아니시 카푸어, 그자비에 베이앙 등 세계적 거장들의 작품을 주요 매장 내에 전시해 예술적 메시지를 전하고, 일본의 팝아티스트인 무라카미 다카시와 협업해 제품(루이비통 다카시 백) 라인업을 다양화하는 등 미술협업 분야에선 ‘선수’로 꼽힌다. ‘아티잔스’와 비슷한 미술 협업의 사례는 국내 화장품 브랜드인 설화수에서 찾을 수 있다. 설화수는 2007년부터 매년 전통 장인과 현대 미술가를 잇는 ‘설화문화전’을 이어오고 있다. 지난해 11월에는 활을 주제로 궁장 권무석, 궁시장 김윤경·유영기 등과 현대미술 작가들이 참여하는 대규모 기획전을 열었다. 가방 브랜드인 쌤소나이트도 2011년부터 배병우, 이용백, 황주리 작가와 아트 콜라보레이션을 진행하고 있다. 이 회사가 올해 초 시작한 신진작가 공모전도 미술협업의 한 사례라 할 수 있다. 한 미술계 인사는 “‘예술의 상업화’란 비난에도 불구하고 명품 브랜드와 미술 작가는 협업을 통해 이미지 상승과 경제적 도움이란 상호이익을 챙기고 있다”고 설명했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LG화학 “2017년 세계 3~4위 화학기업”

    LG화학 “2017년 세계 3~4위 화학기업”

    LG화학이 올해 연구개발(R&D) 투자액을 전년 대비 31% 늘리는 등 부문별 신규 투자를 확대해 2017년까지 매출 30조원을 달성하겠다고 밝혔다. 계획대로라면 세계 3∼4위권 화학 기업이 국내에서 탄생하는 셈이다. 2012년 기준 글로벌 1~4위 화학회사는 바스프, 다우, 듀폰, 미쓰비시화학 등 순이다. 박진수 LG화학 부회장은 지난달 28일 서울 광화문 한 식당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이 같은 비전을 발표했다. 그는 “올해 R&D 분야에 지난해보다 31% 증가한 5900억원을 투자하기로 했다”면서 “기술 기반을 강화하고 신사업을 적극 창출해 2017년 매출 30조원 이상을 달성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LG화학의 매출은 23조 1436억원. 올해는 일단 24조원대 진입을 목표로 한 뒤 앞으로 매년 2조원 이상씩 매출을 끌어올린다는 구상이다. 이를 위해 올해 말까지 R&D 인력을 2500명에서 2900명으로 늘리기로 했다. 부문별 투자 전략도 밝혔다. 박 부회장은 한번 충전으로 300㎞ 이상 주행이 가능한 배터리 셀(Cell)을 개발해 머지않은 시기에 선을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박 부회장은 “전기차 배터리는 현재 10개 기업의 주문을 수주했고, 확장될 것을 합치면 20개 기업 정도가 된다”면서 “2015년 말 이후엔 성과가 가시화될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세계 최초로 출시한 ‘스텝트 배터리’ 등 신제품의 적용 범위를 확대하고, 구부리고 매듭을 묶어도 성능을 발휘하는 ‘케이블 배터리’ 등 플렉시블(flexible) 배터리 상용화에도 박차를 가할 방침이다. 석유화학 부문에서 기술기반 산업인 SAP(고흡수성 수지), 합성고무, EP(엔지니어링 플라스틱) 등 분야를 적극 육성하고 CNT(탄소나노튜브), CO2 플라스틱 등 고기능·친환경 사업 분야의 상업화를 추진한다. LG화학은 또 올해 카자흐스탄에 에탄가스를 기반으로 하는 생산공장단지 건설을 시작해 2017년부터 양산체제를 갖추기로 했다. 박 부회장은 “카자흐스탄 가스는 미국의 셰일가스보다 값이 훨씬 저렴해 경쟁력이 있다”고 밝혔다. 유영규 기자 whoami@seoul.co.kr
  • [당신의 책]

    [당신의 책]

    자저실기(심노숭 지음, 안대회·김보성 외 옮김, 휴머니스트 펴냄) 18세기 후반~19세기 전반을 살았던 학자이자 문인인 심노숭(1762~1837)의 자서전 ‘자저실기’(自著實紀)를 완역한 책이다. 심노숭은 노론시파의 강경파인 심낙수의 아들로 정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불우한 정치적 삶을 살았지만 타고난 감성으로 소품문에 뛰어난 재능을 보이며 출중한 문학작품을 남겼다. 세기의 로맨티시스트로 자유분방한 삶을 살았던 그는 인생에서 특별한 일을 겪을 때마다 반드시 붓을 들어 기록을 남겼으며 이 책은 그 ‘기록벽’의 산물이다. 다른 문집들처럼 후대의 평가를 인식한 자기검열도 없이 그는 자신의 일상과 풍속, 그가 목도한 사건·사고에 대한 생각과 감정을 솔직하게 고백하고 신랄하게 폭로했다. 심지어 자신의 시시콜콜한 인생사와 버릇, 일상 속 치부와 솔직한 감정을 적나라하게 글로 옮겼다. 산뜻하고 해학 넘치는 이야기, 세밀하고도 사실적인 묘사를 따라가다 보면 역사가 들려주지 못한 당시 지배층과 사회이면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만날 수 있다. 764쪽. 3만 2000원. 세계 전쟁사 사전(조지 차일즈 콘 엮음, 조행복 옮김, 산처럼 펴냄) 4000년에 걸친 인류 역사에서 동서양 기록 속에 나타난 전쟁에 관한 정보를 담았다. 기원전 1700년에 일어난 히타이트 전쟁부터 최근 벌어진 아프가니스탄 전쟁까지 세계 각지에서 벌어진 전쟁, 혁명, 봉기, 분쟁과 내전, 군사폭동, 학살, 포위공격, 독립전쟁, 원정 등 무력을 동원한 모든 집단행동을 포괄했다. 1, 2차 세계 대전과 한국전쟁을 포함해 1800여 전쟁을 다뤘다. 전쟁의 발발 원인부터 전개 상황, 종전까지의 과정을 소개한다. 군사적 상황을 중심으로 전개하지만 여기에 영향을 끼친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요인을 함께 서술함으로써 전쟁이 무력 충돌 그 자체로 그치는 것이 아님을 보여 준다. 전쟁은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거대한 비극을 낳는다. 지리적으로 주변 국가나 집단에 영향을 미치며, 시간적으로는 몇 세대까지 뒤흔들어 놓는다. 전쟁에 대한 문명사적 접근을 통해 전쟁으로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한다는 것을 새삼 일깨운다. 1376쪽. 7만 8000원. 왜 정치는 우리를 배신하는가(남태현 지음, 창비 펴냄) 민주주의의 꽃으로 불리는 선거는 결과를 놓고 보면 우리 사회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반영하지 못한다. 심지어 선거제도 자체가 민의를 배반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워싱턴 DC 근교 솔즈베리대학의 정치학과 교수인 저자는 책에서 정치인과 정치가 사람들을 수시로 배신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그리고 우리 정치제도의 한계가 무엇인지를 한국현대사의 사례를 통해 심도 있게 논의한다. 이어 ‘한 표의 힘’이 얼마나 미약한지, 반면 ‘종교’와 ‘돈’은 얼마나 큰 힘을 지녔는지를 구체적인 자료를 통해 논의한다. 저자는 정치의 참 얼굴을 보기 위해서는 민주주의에 대한 맹목적인 신념, 즉 선거만능주의의 함정을 직시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혁명이 불가능한 시대, 대의민주주의의 제도적 한계 안에서 진정한 변화는 시민의 직접적인 참여를 통해서만 이룰 수 있다는 주장을 펼친다. 민주주의와 정치의 정의에서 출발해 현실정치에서 어떻게 발현되는지를 한국의 사례로 풀어냈다. 340쪽. 1만 5000원. 서점 VS 서점(로라 J 밀러 지음, 박운규·이상훈 옮김, 한울아카데미 펴냄) 오늘날의 자본주의적 소비는 서점이라는 공간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책은 미국 도서산업의 초기부터 현대의 대형 체인서점에 이르기까지 서점의 변천 과정과 소비문화를 자본주의 관점에서 다뤘다. 서점의 상업화 과정, 대기업으로 성장한 체인서점과 지역 독립서점 간의 갈등, 서점 직원의 노동과 독자의 서점 이용방식 등 쟁점을 통해 서점의 역할과 의미를 두루 살폈다. 미국 문화에서 소매업과 소비가 갖는 의미, 미국사회에서 책이 차지하는 위치도 포함됐다. 저자는 참고문헌 외에 도서산업 종사자와 서점을 방문한 독자 인터뷰 자료를 바탕으로 도서산업, 특히 서점이 변화해 온 과정을 설명했다. 미국서점의 사례이긴 하지만 기업화된 체인서점과 지역을 기반으로 한 독립서점의 갈등과 긴장관계 등 한국의 서점이 직면한 문제와 유사한 부분이 많다는 점에서 충분히 참고할 만한 가치가 있다. 424쪽. 3만 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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