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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청장 현장인터뷰] 홍사립 동대문구청장

    [구청장 현장인터뷰] 홍사립 동대문구청장

    홍사립(61) 동대문구청장은 지프차를 즐겨탄다. 지역구를 다닐 때면 어김없이 ‘테레칸’ 앞 자리에 앉는다. 그는 “높아서 밖이 잘 보이고 투박해서 좋아한다.”고 말했다. 차가 움직이자 홍 청장의 눈길은 자연스럽게 창밖을 향했다. 수행비서의 보고를 들으며 주민들의 생활상을 찬찬히 훑어갔다. 뛰노는 아이들을 마주치면 환히 웃고, 무거운 짐수레를 끄는 어르신을 보면 안타까워했다.40년동안 이 곳에서 살아온 그에게 모두가 이웃사촌인 까닭이다. 다정하고 소탈한 성품이 묻어났다. 13일 홍 구청장은 6월에 문을 열 동대문구 정보화도서관 공사현장을 방문했다. 청량리 2동 홍릉근린공원 안쪽에 자리한 도서관을 홍 구청장은 “과거와 미래가 만나는 문화공간”이라고 소개했다. 홍릉은 조선조 고종의 비인 명성황후의 능(1897년)이 있던 곳이다.1919년 남양주시 금곡으로 홍릉이 옮겨가고 지금은 영휘원과 숭의원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영휘원은 고종의 후궁인 순헌귀비 엄씨의 묘이고, 숭의원은 고종의 넷째 아들인 영친왕의 아들 이진의 묘다. 1997년 동대문구는 이 지역 공터에 정보화도서관을 건립할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건립규모를 놓고 몇 년동안 제자리를 맴돌았다.2002년 홍 청장이 부임하면서 사업에 탄력이 붙었다. 그러나 설계를 진행하다 또다시 문제가 발생했다. 도서관이 영휘원 경관을 해친다며 문화재청이 건축을 허가하지 않았다. “위기 상황일수록 여유를 가져야 합니다. 삶의 질을 높이는 일인데 힘들더라도 차근차근 풀어가야죠.” 홍 청장은 서두르지 않고 순리를 따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도서관 부지를 옆으로 옮겨 지난해 2월 기공식을 가졌다. 사업계획 8년만이었다. 도서관은 연면적 938평에 지하 3층, 지상 3층 규모다. 홍 청장은 도서관의 외관부터 설명했다.“현대적인 느낌이 나도록 전체적으로 알루미늄 복합 패널을 사용했고, 중심 부분은 목재와 돌로 마무리했습니다.” 현대적이면서도 자연과 어울리도록 설계에 심혈을 기울였다는 설명이다. 독서를 하면서 아름다운 주변 경관을 즐길 수 있도록 투명유리를 많이 이용한 것도 특징이다. 유아·어린이 열람실은 1층에 자리잡았다. 전자책과 DVD,CD를 즐길 수 있는 전자자료실과 어린이도서 열람실이 나란히 자리한다. 동화를 읽어주고, 인형극·연극 등을 할 수 있는 20평짜리 소극장이 눈에 띄었다. 홍 청장은 “손자들과 함께 찾아와 책을 읽고 싶다.”며 흐뭇해 했다. 그는 아이들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 동대문구를 꿈꾼다. 문화·교육의 중심지로 육성해 ‘떠나는 구에서 돌아오는 구’로 만들겠다는 생각이다. 특수목적고와 자립형 사립고를 유치하고, 청량리 민자역사를 세우며, 전농·답십리 뉴타운을 개발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다양한 개발사업이 진행중입니다.2008년쯤이면 확 달라진 동대문구를 만날 것입니다.” 청소년과 일반인이 이용할 도서관 2층에는 전자자료실과 멀티미디어 감상실이 있다.3층은 일반도서실이다. 이용자들은 PC나 노트북으로 5만권의 전자책을 활용할 수 있다. 회원으로 등록하면 집에서도 얼마든지 자료검색이 가능하다. 옥상에 올라서면 생태학습장이 펼쳐진다. 콘크리트 바닥 위에 오솔길을 만들고, 각종 식물도 키울 계획이다. 언덕 중턱에 도서관이 자리해 주변 경관이 일품이다. 홍 청장이 나지막하게 말했다.“자연을 품은 도서관에서 아이들이 꿈을 키워나갈 것입니다.”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그가 걸어온길 ▲출생 1945년 충남 당진 ▲학력 고려대학교졸 ▲약력 육군중위(ROTC 5기), 민주정의당(동대문, 중랑) 사무국장, 민주자유당, 신한국당, 한나라당 동대문을지구당 사무국장, 홍준표 국회의원 특별 보좌역, 현 전국연사협회 부총재 ▲가족 김화옥씨와 1남 1녀 ▲종교 가톨릭 ▲주량 소주 1병 ▲좌우명 투명하고 최선을 다하자 ▲애창곡 동무생각
  • [염주영칼럼] 경제사령탑은 ‘부재중’

    [염주영칼럼] 경제사령탑은 ‘부재중’

    경제정책의 사전조율 기능이 실종되고 있다. 당·정·청의 목소리가 제각각이고, 정부내의 개별부처들도 개인플레이만 하고 있다. 그 결과 경제정책이 거칠어지고, 국민적 공감대가 있는 정책마저도 끝없이 흔들리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최근에 제기되고 있는 양극화 해소 대책은 그 전형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우리 사회는 민주화의 진전에도 불구하고 경제적으로는 너무 많이 가진 계층과 아무것도 갖지 못한 계층이 불어나고 그 중간계층은 줄어들어 기형적인 모습으로 변하고 있다. 소득격차의 확대는 교육·취업 기회의 격차 확대로 이어지며 계층이 고착화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다행히도 이를 치유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사회 전반에 폭넓게 형성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도 신년회견에서 이 문제를 올해 역점과제의 하나로 제시했다. 그러나 그 세부 대책을 세우는 과정은 한마디로 목불인견이었다. 주무부처인 재경부가 대책을 발표하는 족족 여당인 열린우리당이 뒤집고 나서는 일이 여러번 되풀이됐다. 일주일 동안 네번이나 뒤집힌 1∼2인 가구에 대한 근로소득 추가공제 폐지를 비롯, 상장주식의 양도차익 과세, 소주세율 인상 등이 그런 예다. 그뿐만 아니라 정부내에서도 환율·부동산 등의 굵직한 현안들마다 부처들간에 불협화음이 끝없이 불거지고 있다. 정부와 여당, 그리고 개별 부처에 따라 현안들에 대한 입장이 다를 수 있다. 이를 적절히 조정하기 위해 경제부총리-정책위의장-경제수석 라인과, 그 위로 총리-당의장-비서실장으로 이어지는 2중의 협의채널을 두고 있다. 왜 이런 채널들이 제때에 가동되지 않는 것일까. 사전에 조율하면 될 문제를 가지고 굳이 온국민을 관중 삼아 기싸움을 벌이는 행태가 되풀이되는가. 문제는 재경부가 경제사령탑으로서의 정책조율 기능을 상실했다는 데에 있다고 본다. 예산·세제·금리의 3대 정책수단이 분리된 현재의 기능분산 시스템은 DJ정부 시절 재경원(재경부 전신) 독주를 견제하기 위해 도입됐다. 그 결과 재경원 독주는 없어졌지만 경제부총리의 권한이 지나치게 약화돼 경제사령탑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해내기가 어렵게 됐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이 점을 잘 인식하고 잦은 독대를 통해 의식적으로 경제부총리에게 힘을 실어주었다. 대통령제 하에서 대통령을 자주 독대하면 리더십이 생긴다. 이 방식은 실제로 개별부처를 통솔하는 데 상당한 효력을 발휘했다. 참여정부에서는 실세총리로 일컬어지는 이해찬총리가 경제를 직할하는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경제사령탑의 역할도 경제부총리에서 총리로 바뀌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정책기능이 분산된 시스템 하에서 실세총리의 추진력은 상당한 장점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국정을 총괄하는 총리가 경제분야의 실무진들을 직접 진두지휘해가며 세세한 현안들을 모두 챙기고 조율해내기에는 물리적으로 한계가 있다. 이 총리에게는 강한 추진력이 있지만 섬세함이 부족하고, 한덕수 부총리에게는 섬세함이 있지만 기능발휘를 할 수 없게 되어 있다. 요즈음 그 틈새가 유난히 커보인다. 양극화 해소 재원대책을 비롯한 굵직한 경제정책들이 엎치락뒤치락하고, 그 과정에서 정부가 여론의 질타를 당하는 모습을 보면 더욱 그렇다. 언론의 편파보도라고만 몰아붙일 일이 아니다. 시스템에 문제점이 드러나면 신속하게 보완해야 하는 것이다. 경제부총리의 정책조율 기능이 시급히 복원돼야 한다. 경제부총리의 말발이 통하도록 힘을 실어주어야 한다. 그 일은 노 대통령의 몫이다. 수석 논설위원 yeomjs@seoul.co.kr
  • 보험 깨는 사람 20% 줄었다

    경기가 회복 조짐을 보이면서 보험을 중도에 해약하거나 보험료를 제때 내지 못해 보험 효력이 정지되는 가입자가 줄어들고 있다. 13일 생명보험협회에 따르면 2005 회계연도(2005년 4월∼2006년 3월) 첫달인 지난해 4월부터 11월까지 보험 효력 상실 및 해약 건수는 457만 3493건으로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20.1% 줄어들었다. 이에 따라 효력 상실 및 해약률도 7.9%로 전년 동기(10.4%)보다 2.5%포인트나 떨어졌다.2개월 이상 보험료를 내지 않으면 보험 효력이 없어지며, 그 이후 2년 안에 다시 계약을 할 수 있다. 외환위기를 겪은 1999년 4∼11월에는 보험 효력 상실 또는 해약 건수가 729만 883건까지 치솟았다. 1년 이상 보험 계약이 유지되는 비율(13회차 계약 유지율)도 2005 회계연도 상반기(4∼9월) 79.3%로 전년 동기보다 1%포인트 높아졌다.2년 이상 보험계약이 유지되는 비율(25회차 계약 유지율)은 8.2%포인트 오른 64.6%를 기록했다. 생보업계 관계자는 “경기가 어려우면 생활비 마련을 위해 보험을 먼저 해약하는 경향이 있다.”면서 “지난해부터 경기가 살아날 움직임을 보이면서 해약이나 효력 상실 계약이 줄어들고 있다.”고 분석했다.전경하기자 lark3@seoul.co.kr
  • 부산시 영도다리 보수 ‘신경 쓰이네’

    도개(跳開)부문 등 복원이 추진중인 부산 영도다리에 대해 문화재청이 지방문화재로 지정해줄 것을 요청함에 따라 부산시가 진퇴양난에 빠졌다. 부산시는 13일 문화재청이 최근 영도다리가 근대문화재로 보존할 가치가 충분하다며 지방문화재로 지정할 것을 권고하는 공문을 보내왔다고 밝혔다. 시는 현재 왕복 4차로인 영도다리를 6차로로 넓히는 등 지난 1966년 상실된 도개기능을 복원한다는 방침이었다. 시가 문화재청의 권고안을 받아들이면 영도다리의 원형을 최대한 보존해야 하기 때문에 보수공사 등 복원사업이 차질이 예상되고 있다. 부산시 관계자는 “문화재청의 공문이 강제성을 띤 것은 아니지만 무시할 수 없는 입장”이라며 “문화재청이 영도다리가 근대문화재로서의 가치가 있다고 판단한 만큼 심사숙고해 빠른 시일내 최적의 결론을 내겠다.”고 말했다. 지난 1934년 길이 214.7m, 너비 18.3m 규모로 준공된 영도다리는 부산 최초의 연륙교이자 도개교량이었으나 지난 1966년 9월 도개기능이 상실됐다.부산 김정한기자 jhkim@seoul.co.kr
  • 민주 한화갑號 위기 커지나

    한화갑 대표,2심에서 의원직 상실형 판결(2월8일)▶당원, 한 대표 퇴진 요구&당사 점거농성…한 대표, 기자회견(9일)▶김경재 전 의원, 한 대표 반박 성명(10일)▶유종필 대변인, 반(反)한화갑 당원에게 구타당함(11일) 민주당이 위기에 봉착했다. 당내 세력다툼은 폭력사태로까지 번졌다. 급기야 전남 구례경찰서가 12일 수사에 나섰다. 그간 미묘한 신경전을 벌여온 주류·비주류 갈등이 5·31 지자체 선거를 앞두고 ‘친 한화갑’vs‘반 한화갑’ 대결로 구체화되는 분위기다. 가까운 예로는 11일 새벽 유종필 대변인 겸 광주시당위원장이 당원으로부터 얼굴을 맞고, 왼쪽 팔꿈치를 맥주병으로 맞아 전치 3주의 골절상을 입었다.표면적으로는 최경주 광주 북구을운영위원장과 이춘범 전 광주시의회 의장이 워크숍 운영방식에 불만을 품어 화풀이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실질적으로는 당내 대표적인 ‘반 한화갑’ 인사인 최 위원장과 이 전 의장의 의중에 무게가 많이 실리고 있다. 지자체 선거의 공천을 둘러싼 이해관계가 엇갈렸다는 것이다. 더구나 최근 김경재 전 의원이 “우리나라 정당 중 유일하게 민주당만 단일 지도체제를 고집한다. 한 대표 혼자서 위기에 처한 당을 끌고 가기란 힘에 부치는 것 같다.”며 한 대표를 공개 비판한 데 이은 ‘후속조치’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그만큼 당내 친한·반한 대립구도가 곪을 대로 곪았다는 얘기다. 당 일각에서는 2004년 총선을 앞두고 공천 때문에 주류·비주류의 다툼으로 내홍을 심하게 앓았던 악몽이 재연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 상황이 악화되자 이낙연 의원은 12일 “당이 어려울 때 서로 자제하고 서로에 대한 요구를 줄이며 지금의 상처를 씻고 지방선거 승리를 위해 매진하자.”며 봉합에 나섰다.박지연기자 anne02@seoul.co.kr
  • [7·9급 공무원시험 완전정복]

    오늘날 행정입법은 불가피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행정입법을 인정할 수 있느냐 없느냐는 더 이상 문제되지 않는다. 행정입법과 관련한 오늘날의 중심과제는 행정입법을 인정은 하되,▲행정입법의 한계를 어떻게 설정하고 ▲설정된 한계를 준수하도록 어떻게 행정입법을 통제하며 ▲국민을 어떻게 행정입법과정에 참여시킬 것이냐 하는 점에 있다. 행정기관의 법규명령이 국민의 생활에 미치는 영향이 날로 커져가고 있음에 따라 법규명령으로 인한 국민의 권익침해 가능성도 그만큼 커졌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법규명령에 대한 효과적인 통제는 현대 행정입법에 있어 매우 중요한 과제가 되고 있다. 아래 문제에서 법규명령에 대한 사법적 통제에 관한 내용을 파악하고자 한다. 문)법규명령의 통제에 관한 설명으로 옳지 않은 것은? (1)법규명령에 대하여 헌법소원을 제기할 수 있는가에 대해 다수설과 헌법재판소는 긍정하고 있다. (2)법원은 법률에 위반되는 법규명령에 대해 추상적 규범통제를 통하여 무효로 할 수 있다. (3)법원에 의한 법규명령의 통제는 원칙적으로 법규명령이 구체적 사건에 대한 재판의 전제가 되는 경우에 간접적 통제방식으로 행한다. (4)법규명령이 집행행위를 매개하지 않고 직접적으로 국민의 법적 지위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에는 처분성이 인정되어 항고소송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정답)(2) 문제연구 및 해설-법규명령에 대한 사법적 통제 1. 법규명령에 대한 법원의 통제 (1)원칙:구체적 규범통제(선결문제 심리방식에 의한 간접적 통제) (1)구체적 규범통제의 의의 우리 헌법은 제107조 제2항에서 명령·규칙의 위헌·위법 여부가 재판의 전제가 된 경우에 명령·규칙의 위헌·위법 여부의 심사를 인정하는 구체적 규범통제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우리의 경우 추상적 규범통제는 인정되고 있지 않다. 따라서 법규명령은 그것의 위헌·위법성 여부가 구체적 사건에 있어 재판의 전제가 된 경우에 한하여 그 사건의 심판을 위한 선결문제로 다루어 질 뿐이며, 법규명령에 대해 행정소송을 제기하여 법규명령의 효력을 독립하여 직접적으로 다투는 것은 원칙적으로 허용되지 않는다. 즉, 법규명령은 원칙적으로 행정소송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2)규범통제의 주체-각급 법원 지방법원, 행정법원, 군사법원, 특허법원, 고등법원 및 대법원 등 모든 법원이 명령·규칙의 위헌·위법성 여부를 심사할 수 있다. 다만, 최종적인 심사권은 대법원이 갖는다. (3)규범통제의 대상-법규명령 대통령·총리령·부령과 국회규칙·대법원규칙·헌법재판소규칙·중앙선거관리위원회규칙 및 지방자치단체의 조례와 규칙이 구체적 규범통제의 대상이 된다. 내부적 효력만을 갖는 행정규칙은 헌법 제107조 2항의 구체적 규범통제의 대상이 아니다. (4)규범통제의 효과(법원에 의한 위헌·위법판단과 법규명령의 효력)-개별적 효력 재판의 전제가 된 명령·규칙이 법원에 의해 위헌·위법판단을 받았다 하더라도 구체적 규범통제의 결과, 위헌·위법판단을 받은 명령·규칙이 일반적으로 효력을 상실하는 것은 아니고 당해 사건에서 적용이 배제될 뿐이다.(*개별적 효력)따라서 형식적으로는 당해 명령·규칙은 여전히 유효한 것으로 존재한다. (2)예외-행정소송을 통한 직접적 통제(처분법규의 경우) 법규명령이 직접적으로 국민의 권리·의무를 구체적으로 규율할 때 즉, 처분성이 인정되는 처분법규일 때는 국민은 그 법규명령을 행정소송(항고소송)의 대상으로 삼아 직접 법규명령의 효력을 다툴 수 있다. 따라서 처분성이 인정되는 법규명령은 법원의 직접적인 통제대상이 될 수 있다.(예외적인 직접적 통제) 2. 법규명령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통제 법원뿐만 아니라 헌법재판소도 법규명령의 위헌여부에 대한 심판권을 갖는가. 즉, 법규명령도 헌법소원의 대상이 되는가. 이에 대해 적극·소극의 견해대립이 있다. 법규명령도 헌법소원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 즉, 법규명령도 헌법재판소의 통제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이 다수설과 헌법재판소의 입장이다. 법무사법 시행규칙에 대한 헌법소원사건(아래 89헌마178)에서 헌법재판소는 ‘법규명령에 의해 직접 기본권이 침해되었음을 이유로 헌법소원이 제기된 경우에 있어서는 법규명령이 재판의 전제가 된 것이 아니므로 헌법 제107조 제2항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취지하에 법무사법 시행규칙에 대해 헌법소원의 대상성을 인정했다. 이어 ‘법무사법 시행규칙 제3조 제1항은 평등권과 직업선택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으로 헌법에 위반된다.’고 판시했다. 출제 : 김욱 남부행정고시학원 강사
  • 신계륜 의원직 상실

    신계륜 의원직 상실

    대법원 2부(주심 이강국 대법관)는 10일 대부업체 굿머니로부터 불법정치자금을 받아 정치자금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신계륜 열린우리당 의원에게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 추징금 55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신 의원은 이에 따라 의원직을 상실하고 앞으로 집행유예 기간인 2년 동안 피선거권이 제한돼 2008년 4월 실시되는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할 수 있다. 재판부는 “정치자금법은 국회의원이 후원회 등을 통하지 않고 개인이나 법인으로부터 직접 정치자금을 받은 경우에는 책임을 면할 수 없다.”고 밝혔다. 또 “피고인은 5000만원의 영수증을 발행하고 받은 돈 중 2억원을 반환했다고 주장했지만 이는 사후 정황에 불과해 이미 성립된 범죄에 영향을 미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신 의원은 2002년 11월 굿머니 전 대표 김영훈씨에게서 불법 정치자금 500만원을 받고 같은 해 12월 초 김씨에게서 받은 3억원 중 2억 5000만원에 대해 후원금 영수증을 발급하지 않은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한편 이날 선고로 정당별 의석 수는 열린우리당 143석, 한나라당 126석, 민주당 11석, 민주노동당 9석, 국민중심당 5석, 자민련 1석, 무소속 2석 등으로 바뀌었다. 김효섭기자 newworld@seoul.co.kr-
  • “친일후손 환수재산 독립유공자 유족 지원”

    군 복무 중에 병이 생기거나 악화된 경우 군 생활과 직접적인 연관성이 적더라도 지원하는 방안이 추진된다. 환수한 친일파 후손의 재산을 독립유공자 유족을 위해 사용하는 안도 적극적으로 검토된다. 국가보훈처는 10일 이같은 내용의 ‘2006년도 업무계획’을 노무현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업무계획에 따르면 보훈처는 군 복무 요인보다는 유전성 및 기질성이 강해 직무 관련성이 적은 경우라도 국가 유공자와는 별도의 지원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군 복무와의 인과 관계가 입증되지 않아 국가 유공자로 지정되지 않는 경우 국가 배상 등 사법적 구제절차에 의존해야 하는 현실을 개선키 위한 조치다. 보훈처는 또 사지절단 등 근로 능력을 완전히 상실한 중(重)상이자에 대한 보상금을 2010년까지 전국 가구 평균 소비지출액 수준으로 인상하기로 했다. 현재 중상이자에 대한 보상금은 전국 가구 평균 소비 지출액의 92.5%인 165만 5000원이다. 올해 보훈 대상별 보상금 지급 규모는 ▲국가 유공자 및 유족 1조5221억원 ▲독립 유공자 및 유족 543억원 ▲참전 유공자 2085억원 ▲고엽제 후유의증 환자 1278억원 등 모두 1조 9127억원에 달한다. 보상금 지급제도의 형평성을 고려해 결혼한 딸의 보상금 지급 순위를 아들과 같게 하는 한편, 사회적 취약계층인 모자가구 및 소년소녀 가장 지원을 위한 미성년 자녀 양육수당을 신설해 2인 양육시 16만 5000원,3인 양육시 33만원을 매달 지급할 방침이다. 보훈처는 특히 친일재산환수법에 의한 환수재산이 독립유공자 유족지원과 독립운동 공훈선양사업에 사용되도록 정부 관련부처에서 재산의 귀속 방법과 관리방안을 연구하고 있으며 재단이나 기금 형식으로 환수 재산을 사용하는 방안을 모색 중이라고 설명했다. 또 재향군인회 혁신과 관련, 정부 수의계약을 없애고 산하업체에 민간 최고경영자(CEO)를 영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한화갑대표 “盧정권, 동교동 종자를 죽이고 있다”

    한화갑대표 “盧정권, 동교동 종자를 죽이고 있다”

    한화갑 대표의 ‘민주당호’가 사면초가에 몰렸다. 한 대표는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8일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항소심 형이 확정될 경우 의원직 상실은 불가피하다. 당 안팎에서 ‘통합론’이 불거지고 있고, 당내에서는 ‘한화갑 퇴진론’도 고개를 들고 있다. 민주당의 총체적 위기인 셈이다. ●黨일부서 대표 퇴진론 고개 ‘사면초가´ 민주당은 9일 ‘대여 총공세’로 돌파구 마련에 나섰다. 한 대표의 이날 신년 기자회견이 신호탄이다. 한 대표는 법원 선고를 ‘불평등한 판결’로 규정하고 “노무현 정권이 동교동 종자를 죽이고 있다.”고 반발했다. 한 대표는 “한화갑을 놔두고는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이 통합할 수 없다는 말이 시중에 돌고 있다.”고 전제, 법원 판결이 ‘한화갑 죽이기 전략’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사활을 걸고 ‘민주당 말살 음모’로 몰아치면서 서울과 광주·전남 지역에서 대규모 릴레이 항의, 규탄 집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의원직상실땐 ‘우리-민주통합´ 급부상 가능성 민주당의 대여 총공세는 다목적 카드로 보인다. 재판 결과로 열린우리당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민주당 통합론’이 급부상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 대표적인 ‘통합 반대론자’인 한 대표의 입지 약화를 사전에 막으면서 ‘호남 민심’을 결집하려는 전략으로 볼수 있다. 한 대표가 이날 기자회견에서 “지난 전당대회에서 전체 대의원 83%의 지지를 받았다.”고 강조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그는 통합론과 관련, 고건 전 총리가 자신의 회동 요청을 거절했다며 “통합론은 지금 당 발전에 도움이 안 된다. 통합을 위해서라도 당의 존재 부각에 우선 힘을 써야 한다.”고 일정한 선을 그었다. 하지만 ‘한국 정치의 창조적 공존론’을 앞세워 중도실용 개혁 노선의 연대 가능성은 열어놓았다. 당의 한 관계자는 “수도권 등에서 국민중심당 등과의 연합공천 가능성 등은 배제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총체적 위기에 몰린 ‘한화갑호’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귀추가 주목된다. 오일만기자 oilman@seoul.co.kr
  • [박성서의 7080 가요X파일] 록그룹사운드 효시 ‘키보이스’

    [박성서의 7080 가요X파일] 록그룹사운드 효시 ‘키보이스’

    가요평론가/저널리스트.1956년 충주에서 출생. 월간지 ‘여원’‘수정’ 등 취재기자를 거쳐 1995년부터 2001년까지 서울문화사 편집부장 역임. 현재 한국대중문화연구원 연구위원, 한국가요작가협회 편집위원, 그리고 서울 wbs-FM 원음방송 ‘박성서의 가요사 5060닷컴‘과 부산 mbc ’박성서의 음악파일’을 진행하고 있다. 한국 첫 록그룹 음반은 ‘빗속의 여인´이 아닌 ‘그녀 입술은 달콤해´ 지난 한해 가요계의 큰 변화 중 하나는 ‘포크’와 ‘그룹사운드 음악’을 주축으로 하는 이른바 ‘7080 음악’이 부활됐다는 것이다. 아울러 LP 음반에 대한 관심이 새삼 높아지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그룹사운드 사상 최초의 음반은? 지금까지 대다수의 전문가들은 신중현이 이끌던 그룹 ‘에드포’의 첫 앨범에 담긴 ‘빗속의 여인’을 꼽는다. 하지만 여러 경로를 통해 필자가 취재한 결과 ‘키보이스’가 발표한 노래 ‘그녀 입술은 달콤해’로 확인됐다.‘에드포’‘코끼리 캄보’와 더불어 우리나라 록그룹사운드의 효시를 이루는 5인조 그룹 키보이스의 ‘그녀 입술은 달콤해’가 처음 취입, 발표된 것은 1964년 7월3일. 이는 ‘빗속의 여인’(64년말)보다 5개월 앞선다. 따라서 ‘그녀 입술은 달콤해’는 그룹사운드 최초이자 최고(最古)의 음반인 셈이다. 당시 키보이스의 멤버는 차중락(싱어), 김홍탁(리드기타), 옥성빈(리듬기타)), 차도균(베이스기타), 윤항기(드럼) 등이다. 이 라인업이 갖춰진 것은 1963년 늦가을. 이 음반의 실제 주인공들인 당시 키보이스의 멤버들을 직접 만나봤다. 멤버 중 차중락씨는 이미 고인이 됐고 옥성빈씨는 현재 미국에 거주하고 있어 김홍탁, 윤항기, 차도균씨를 만날 수 있었다. 이들은 한결같이 존재 자체를 반신반의했다. 그러나 필자가 제시한 음반과 그리고 당시 취입 날짜가 기록된 마스터 카드, 그리고 음반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들을 들려주자 이들은 매우 놀라워했고 어렴풋이나마 조금씩 당시 상황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설핀사운드(Surfin Sound)를 모방하는 그룹으로 출발 이승만 자유당 정권의 3·15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4·19 의거, 그리고 5·16으로 이어지는 60년대는 그야말로 격동의 연속이었다. 이 무렵 영국에서는 리버풀 출신의 비틀스가 요란스레 ‘I Wanna Hold Your Hand’을 외쳐대고, 롤링 스톤스가 폭발적이면서도 괴상한 불협화음으로 세계 젊은이들의 심장을 흔들고 있었다. 우리의 60년대는 ‘보릿고개’ 시절이었다. 작가 김승옥의 단편소설 ‘서울 1964년 겨울’에서 드러나 있듯 60년대 젊은이들은 현대에 동화되지도 못하고 전통에 대한 미련도 없는 우울한 세대였다. 가요사적 측면에서 보면 64년은 이미자의 ‘동백아가씨’가 대히트한 해로 61년 한명숙의 ‘노란 샤쓰의 사나이’로 촉발된 신가요의 붐이 다시 트로트로 급선회한다. 그러나 이때 미8군무대를 중심으로 그룹사운드가 고고한 탄성을 알리며 ‘젊은이들만의 또 다른 문화’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미8군 무대를 통해 활동을 시작했던 키보이스는 ‘이미테이션(카피) 그룹’이었다. 비치 보이스와 비틀스의 노래·연주가 이들의 연습 테마였고 무대에서의 주요 레퍼토리였다. 때문에 이들의 초기 사운드는 ‘설핀 사운드’가 주류를 형성한다. 미국에서는 50년대 베이비붐 세대를 거쳐 풍요로운 60년대, 여유와 놀 거리를 찾던 틴에이저들에 의해 캘리포니아 사운드, 즉 ‘웨스트 코스트 사운드’가 열광적 지지를 받은 시기였다. 한국에 온 젊은 미군들에게도 예외일 수 없었다. 키보이스도 이러한 영향을 받아서인지 ‘한국의 비틀스’라고 불리기도 했다. 비틀스의 등장이 당시 각국의 록그룹들에게 끼친 영향력은 절대적이었다. 특히 기타 3대와 드럼만으로도 노래와 연주가 가능하다는 것을 획기적으로 제시해 주었고 이것이 곧 세계 그룹사운드의 형태를 순식간에 바꾸어 놓는 계기가 된다.5인조 키보이스 역시 초기에는 기타 셋, 그리고 드럼과 보컬로 구성됐다. 키보이스는 ‘Ky’에서 시작 키보이스의 태동은 가수 윤항기로 부터 시작된다. 윤씨의 회고. “해병대 군악대 복무 중이던 60년대 초 휴가때면 친구들과 어울려 록그룹의 꿈을 지폈지요. 그때 함께 어울렸던 멤버들이 나중에 키브러더스에 합세하는 김광정,‘김치스’의 리더가 되는 유희백 그리고 미8군 무대에서 활동하는 차도균이었습니다.” 차도균은 62년 KBS 신인 콩쿠르를 통해 발탁돼 작곡가 손석우로부터 곡을 받아 ‘타고난 팔자’ 등의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당시 방송국 전속가수 제의를 마다하고 본인의 취향인 팝을 부르기 위해 미8군 무대에 나섰던 패기 넘치는 젊은 싱어였다. 보컬을 강화하기 위해 차도균은 사촌동생 차중락을 가세시키고 연습시절 함께했던 유희백이 떠난 자리에 ‘한국 기타의 파이오니아’로 일컬어지는 김홍탁을 불러들였다. 한국 록 역사에서 ‘김홍탁가(家)’라는 확실한 계보를 구축하는 김홍탁의 가세로 키보이스는 한국 록그룹 사상 가장 개인기가 출중한 초호화 라인업을 갖춘다. 이들이 처음 모여 사용한 그룹명은 ‘더 키즈’였다. 당시 미 8군쇼에 출연하는 연예인들은 이름 끝에 ‘키’자를 쓰는 경우가 많았다. 작곡가 손목인의 장남인 ‘후랭키손’, 그리고 신중현은 ‘잭키’,‘히키신’으로 통했다. 또 윤항기는 ‘항키, 차도균은 ‘도키’로 불리었다. 해서 이들은 처음 그룹명을 ‘더 키즈’로 정했으나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면서 보다 분명한 뜻을 가진 ‘Key(열쇠)’, 즉 ‘키보이스(Key boys)’로 팀 이름을 바꾼다. 한국 록의 1세대 키보이스는 미8군 쇼 가수들을 공급하는 업체 ‘대영’에 소속되면서 미8군 무대에 진입한다. 아울러 일반 무대로의 진출을 위해 발표한 노래가 바로 ‘그녀 입술은 달콤해(김영광 작사·곡)’였다. 이로써 당시 젊은 작곡가 김영광에 의해 마침내 우리나라에서도 록 스타일의 노래가 탄생됐던 것. 김영광의 곡이라는 점도 록 그룹사운드 역사상 매우 의미있는 일이라 하겠다. 당시 서울 장충스튜디오에서 녹음된 이들의 첫 음반에서 또 하나 주목할 만한 곡이 ‘정든 배는 떠난다’이다. 이 노래는 나중에 에보니스 나훈아 등에 의해 리바이벌된다. 첫 발표때 리드보컬은 가수 송기영이 맡았다. 송기영은 활동기간 동안 10여장의 음반을 발표했음에도 음반 어디에도 얼굴 사진이 공개된 적이 없다. 그래서 얼굴 없는 가수로 불렸다. 지금도 도대체 그가 누구였는지 가요계 관계자들조차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 이 지면을 통해 그의 실체를 비로소 밝히자면 바로 작곡가 김영광이었다. 이에 얽힌 에피소드와 비화는 후에 소개하기로 한다. 키보이스의 인기는 일반무대에서도 여전했다. 세시봉 디쉐네 등 음악감상실의 무대를 통해서 대중적 영향력을 과시했던 이들은 64년 여름 KBS-TV에 출연해 한국 최초의 록 그룹사운드임을 과시한다. 그해 12월 내한했던 영국의 5인조 록그룹 ‘리버풀 비틀스(리버풀5)’와 경복궁 합동공연의 파트너로 선정된 주인공 역시 키보이스였다. 이 공연은 프로모터가 오리지널 비틀스가 내한했던 것처럼 홍보해 사기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이 무렵 부산 해운대에서 한국 록그룹사운드 사상 처음으로 단독 야외공연을 펼치며 인기를 얻는다. 초기 키보이스 멤버들은 모두 넉 장의 음반을 남기고 67년에 해체한다. 이후 윤항기는 71년 ‘키브러더스’를 결성하며 컴백했고 이후에도 솔로로 활동했다. 리드싱어 차중락은 66년 키보이스 시절 솔로로 발표하는 ‘낙엽따라 가버린 사랑(Anything That Part of You)’을 발표하면서 솔로로 전향했다. 이후 ‘사랑의 종말’ ‘철없는 아내’ 등을 발표하며 이듬해 가수왕에 등극했고 차도균 역시 67년 ‘가이즈 앤 돌스(Guys & Dolls)’에 잠시 몸담았다가 68년 12월 ‘꽃잎에 새긴 사랑’을 발표하며 다시 솔로로 전향했다. 스탠더드 팝보다 헤비메탈 사운드를 추구하던 김홍탁 역시 이후 ‘HE5’‘HE6’ 등을 거치면서 당대 최고 인기그룹으로 부상하며 그룹사운드 황금기를 주도한다. 이들 초기 멤버들은 키보이스를 떠나서도 솔로로, 그룹으로 각기 가요사에 큰 획을 그었다. 초기멤버 중 옥성빈만이 잔류하게 된 키보이스는 다시 조영조 장영 등과 함께 제2기 키보이스를 결성, 활동하게 된다. 키보이스의 대표곡인 ‘해변으로 가요’ ‘바닷가의 추억’ 등은 모두 2기 키보이스 시절의 발표곡들이다. 이들에 의해 굳건히 명맥을 이어온 키보이스는 이후로도 3,4기 등으로 이어지며 키보이스 계보를 이어간다. <계속>
  • [클릭 이슈] 재건축 개발부담금제 공방 확전

    [클릭 이슈] 재건축 개발부담금제 공방 확전

    재건축 개발부담금제 도입이 유력한 가운데 개발부담금제에 따른 논란이 위헌논쟁과 정책의 실효성 문제로 확전되는 양상이다. 정부와 여당은 개발부담금제가 중병을 앓고 있는 재건축 시장의 특효약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재건축조합 등은 개발부담금제에 위헌 소지가 있다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 헌법소원 등 법적 대응도 하겠다며 벼르고 있다. 정부·여당도 개발부담금제가 일부 위헌 소지가 있다는 점은 인정하고 있다. 때문에 위헌 소지를 없앨 수 있는 방안으로 개발부담금제를 도입한다는 방침이다. ●“공공의 이익을 우선한 정책이다” 개발부담금제 도입을 제안한 박헌주 대한주택공사 주택도시연구원장은 공익적 차원을 우선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재건축 조합원들의 재산권이 일부 침해를 받을 수는 있지만 개발부담금제로 인해 재건축 시장이 바로서게 되면 그에 따른 이익은 사회구성원 모두가 얻게 된다는 주장이다. 박 원장은 현행제도에는 재건축에 따른 개발이익 환수 장치가 없기 때문에 조속한 개발부담금제 도입 등의 다양한 방안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위헌론자들은 재건축 때 일정비율의 임대주택을 의무적으로 짓도록 하고 있어 사실상 개발이익을 환수하고 있다고 주장한다.”면서 “그러나 재건축에 따른 모든 임대주택은 지방자치단체가 재건축조합으로부터 매입하기 때문에 진정한 의미의 개발이익 환수로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재건축 때 지어진 임대주택을 지자체가 원가에 매입하면 재건축 조합의 이익이 줄어드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을 개발이익 환수로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박 원장은 “일부 주택을 무상으로 기부채납하는 방식 등이 뒤따라야 명실상부한 개발이익 환수”라고 덧붙였다. 토지정의시민연대 남기업 사무국장은 “재건축조합이 일정비율을 소형주택으로 지었다 해도 일반에 분양하지 않느냐.”면서 “때문에 소형주택의무비율제도 개발이익환수조치로 볼 수 없다.”고 강조했다. 부동산 법률 전문 변호사도 “제도의 효율성 차원을 떠나 정부가 정책 재량 범위 내에서 투기를 방지할 입법 목적으로 접근하기 때문에 재건축 개발부담금 제도를 위헌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소견을 밝혔다. ●“재산권을 침해하고, 과잉금지의 원칙을 위배했다” 재건축조합측은 개발부담금제는 명백한 위헌이라고 단언한다. 바른재건축실천전국연합(재건련) 김진수 회장은 “개발부담금제는 과도한 사유재산권 침해일 뿐 아니라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과잉금지의 원칙에도 어긋난다.”고 밝혔다. 현재도 기반시설부담금제, 임대주택의무비율제 등의 제도가 있는데 또다시 개발부담금제를 도입하는 것은 과잉금지의 원칙을 벗어난 제도라는 것이다. 전국 재건축 조합장과 추진위원장들로 구성된 재건축 법률제도개선위원회는 최근 잇따라 관련 대책회의를 열고 당초 오는 10일로 예정된 국회 공청회를 무기한 연기하는 대신 장외투쟁 등에 나서는 방안을 검토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회장은 “법리검토를 거쳐 헌법소원을 내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시립대 정창무 교수는 “사업이윤이 확보되지 않는 사업을 하라는 것은 자본주의의 시장경제에 어긋난다.”면서 “신축 아파트에는 물리지 않는 부담금을 재건축에만 물리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날 뿐 아니라 합리적 근거를 상실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일부 부동산 전문가들은 개발부담금제 정책의 실효성에도 의문을 제기하고 나섰다. 재건축 대상 단지를 옥죄면, 이미 추진 중인 재건축 아파트나 기존 아파트값만 더 오르게 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한 전문가는 “재건축은 강남에 아파트를 공급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면서 “재건축을 막아 공급이 줄면 강남의 집값은 오히려 올라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강남 재건축만 규제할 것이 아니라 강북 뉴타운 건설 등 지금까지 내놓은 정책부터 조속히 시행하는 것이 순서”라고 꼬집었다. 강충식기자 chungsik@seoul.co.kr
  • 정부산하기관 고객만족도 마사회 ‘꼴찌’

    한국마사회가 77개 정부산하기관에 대한 고객만족도 조사에서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꼴찌’를 기록했다. 국민연금관리공단과 부산항만공사도 문화·국민생활과 건설·시설관리 부문에서 2년 연속 최하위에 이어 지난해 끝에서 2,3위를 차지했다. 국민건강보험공단과 한국농림수산정보센터, 한국광기술원, 산업기술시험원, 한국보건산업진흥원 등도 해당 기관유형에서 새롭게 최하위를 기록했다. 특히 일반 국민들의 생활과 밀접한 국민연금관리공단과 국민건강보험공단의 만족도가 모두 최하위여서 앞으로 이들 정부산하기관들의 대민 서비스 질을 높일 필요성이 제기됐다. 한국보훈복지의료공단, 대한주택보증, 한국환경자원공사 등은 유형별 1위를 차지했다. 기획예산처는 정부산하기관 가운데 국민에게 직접 서비스를 제공하는 77개 기관을 대상으로 현장실사를 통해 ‘2005년도 고객만족도 조사’를 실시한 결과 100점 만점에 평균 평점이 77.1점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전년도의 72.5점보다 4.6점 높다. 최하위를 기록한 마사회(61.9점)는 전년도에 비해 평점이 8.6점 높아졌지만 고객서비스 측면에서 여전히 개선할 점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연금관리공단과 부산항만공사는 각각 64.0점과 65.4점을 받았다.88관광개발(16.8점), 국립공원관리공단(13.4점), 축산물등급판정소(12.9점), 한국정보보호진흥원(12.3점), 한국방송광고공사(11.9점) 등은 전년보다 점수가 많이 올랐다. 이번 조사는 한국능률협회컨설팅과 중앙리서치 등 12개 기관이 4만 4236명을 대상으로 3개월간 현상실사를 통해 이뤄졌다. 김균미기자 kmkim@seoul.co.kr
  • 유기주석 중독환자 국내 첫 발생

    국내에서 처음으로 유기주석 중독 환자가 발생했다.3일 울산대 병원에 따르면 지난해 8월9일 기억상실 및 언어장애 증상으로 입원한 울산의 모 청소대행업체 대표 공모(43)씨의 병력을 추적하고 소변을 울산과학대와 일본의 전문기관에 의뢰해 분석한 결과, 유기주석에 중독된 것으로 밝혀졌다.병원 측은 국내에서는 첫 사례라고 밝혔다. 유기주석 중독은 환자의 중추신경계에 장애를 일으켜 환자에 따라 기억상실과 운동장애, 언어장애 등의 증상을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공씨는 지난해 8월4일부터 7일까지 폴리염화비닐(PVC) 원료를 생산하는 울산 남구 여천동 모 정밀화학기업의 생산설비에서 주석 찌꺼기를 제거하는 작업을 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공씨는 지난달 25일까지 입원치료를 받은 결과, 증상이 일부 호전돼 퇴원, 통원치료를 받고 있으나 평형감각에 이상이 있어 아직 제대로 걷지 못하는 등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울산대병원 산업의학과 유철인 교수는 “국내에서 유기주석 중독증세가 보고된 것은 처음”이라며 “세계적으로도 일본과 프랑스 등에서 극소수 사례만이 보고됐다.”고 말했다.울산 강원식기자 kws@seoul.co.kr
  • 기억을 잃어버린 도시/김진송 지음

    ‘우리 동네는 서울에 있었다. 지금은 없다. 서울시 지도를 펴고 아무리 살펴본들 우리 동네는 흔적도 남아 있지 않다. 가끔은 그런 동네가 있었는지 나 역시 의심이 들 때가 있다.’(24쪽)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도시가 고향인 사람들에게 사라진 유년의 공간은 아련한 그리움을 넘어 정체성의 일부를 잃어버린 듯한 상실감을 안겨준다. 미술평론가이자 목수인 김진송씨가 쓴 책 ‘기억을 잃어버린 도시’(세미콜론)는 개발의 이름으로 세상이 빼앗아간 유년의 기억을 찾아 떠나는 여정이다. 경계가 불분명한 기억을 더듬는 저자의 행보는 자전 소설과 에세이를 넘나든다. ‘1968 노량진, 사라진 강변마을 이야기’란 부제가 말해주듯 1959년생인 저자가 유년기를 보낸 노량진 강변마을은 빈민촌 철거계획에 의해 흔적없이 사라졌다. 1부 ‘강변의 기억’은 이사 온 첫날부터 마을을 떠나던 날까지 강변마을에서 보낸 기억의 조각들을 모아 재구성한 자전적 소설이다. 끝없이 펼쳐진 백사장, 철교와 둑, 별장의 나무그늘, 짝사랑했던 꽃집 아줌마, 장난 심한 쌍둥이 형제가 차례로 불려나온다. 2부 ‘기억의 재현, 혹은 조금 긴 후기’는 거대한 수산시장으로 변한 현재의 노량진을 둘러보며 느낀 격제지감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횟집으로 변한 별장, 우뚝 선 63빌딩, 생태공원으로 변해버린 샛강…. 저자는 “깡그리 점령당한 유년의 장소와 맞닥뜨리면서 나는 점점 알 수 없는 좌절에 빠져들었고, 방문한 내내 내가 태어나고 자란 도시 공간에 대한 회의의 시선을 거두지 못했다.”고 탄식한다. 어릴 적 뛰놀던 동네를 다시 한번 가보고 싶은 충동을 느끼면서도 그 변화의 폭이 두려워 망설여본 적 있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내용이다. 미술평론가이면서 전시기획자, 출판기획자인 저자는 1930년대 서울의 근대화 과정을 담은 ‘현대성의 형성, 서울에 딴스홀을 허하라’를 내기도 했다.1만 2000원.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실전논술] 학교의 역할과 오늘날의 대학

    ●다음은 황종희의 ‘명이대방록(明夷待訪錄)의 일부이다. 글쓴이가 주장하는 학교의 역할이 무엇인지 분석하고, 그러한 역할이 오늘의 대학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는지 자신의 견해를 논술하시오.(띄어쓰기를 포함하여 1600자 내외(±200자)로 쓸 것.) 학교는 인재를 양성하기 위한 기관이다. 그러나 옛날 성왕들의 의도는 단지 거기에 머물지만은 않았다. 반드시 천하를 다스리는 모든 수단이 학교에서 나올 수 있도록 갖추어 놓은 뒤에야 비로소 학교를 설립하는 의의가 갖추어질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은 조정에서 서열을 정하고 법령을 제정하는 정치 활동, 노인을 봉양하고 고아를 보살피는 후생 복지 사업, 신속한 법 절차, 전쟁 상황에서의 통신 체계, 전쟁이 일어났을 때 장병의 징집, 커다란 소송 사건에 연루된 관리와 일반 백성들에 대한 소환 조사, 큰 제사를 지낼 때 반드시 조상에게 흠향하는 일 등이 모두 옛날 국립 대학인 벽옹이 설립되었을 당시부터 비롯된 제도인데, 그렇다고 물론 이러한 일들만을 모든 구비 조건으로 말하고 있지는 않다. 그러므로 교육이란 조정에 있는 군주로부터 방방곡곡의 여염집에 이르기까지, 모두들 성인의 가르침에 감화되어 관대한 기풍을 갖추지 않은 사람이 없게끔 하려는 것이다. 군주가 옳다고 해서 반드시 옳은 것만도 아니요, 군주가 그르다고 해서 반드시 다 그른 것만도 아니다. 군주라도 함부로 자신에 대해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않고, 반드시 옳고 그름을 학교의 공론에 맡겨야 한다. 그러므로 인재를 양성하는 일은 학교에서 할 수 있는 일 가운데 일부일 뿐, 학교는 오로지 인재만을 길러 내기 위하여 설립되었던 것은 아니다. 옛날 삼대 이후로 천하의 옳고 그름은 한결같이 조정에서 결정하여 왔다. 그래서 천자가 칭찬하는 일이라면 모든 신하들이 무조건 따라서 옳다고 말하였고, 천자가 욕하는 일이라면 모든 신하들이 무조건 따라서 그르다고 하였다. 문서 정리, 회계, 조세, 군사, 소송 등의 실무적인 일들은 하급 관리들에게 위임시키고 다만 세속의 풍습이나 대중적 유행을 벗어난 몇몇 사람들은 학교 안에서 마땅히 세속적 거래나 술수가 없어야 좋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면서도 그들이 말하는 학교란 과거 시험을 놓고 벌이는 치열한 경쟁, 그리고 부귀 영화의 꿈을 불태우는 곳이 되었고, 마침내 조정 내에서 일어나는 세력과의 이해 관계에 따라 그 본령이 바뀌어 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선비들 가운데 재주와 덕있는 학자들은 더러운 세상에서 벗어나 스스로 덕을 닦고 학교와는 처음부터 관여하지 않은 사람도 있었다. 그리하여 마침내 학교는 그나마 인재를 길러내는 마지막 남겨진 기능마저 상실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리하여 학교의 설립 취지는 서원 형태로 변하였다. 그러므로 자연히 조정의 생각과 노선이 다른 경우가 많았다. 만약 서원에서 그르다고 말하면 조정에서는 반대로 반드시 그것을 옳다고 주장하고, 서원에서 옳다고 말하면 조정에서는 반대로 반드시 그것을 그르다고 비난하였다. 서원에서 주장하는 일이라면 그 진실이 어찌되었든 무조건 거짓된 학문이라 하여 배우지 못하도록 금지령을 내리거나 서원을 철폐하거나 탄압하였고, 어떻게 해서라도 조정의 권력을 동원하여 이기려고 들었다. 그래서 벼슬하지 않은 자에게는 형벌을 가하면서,“이 자는 천하의 사대부들을 선동하여 조정을 배반하는 자이다.”라고 하였다. 당초에 학교는 조정과 각별한 관계는 없었으나, 후대로 갈수록 조정과 학교는 대립하면서 마침내 인재를 길러내는 일조차 제대로 할 수 없었을 뿐 아니라, 심지어 그 인재들을 해치며 탄압하기까지 하였다. 그러면서도 오히려 학교라는 이름만 남겨 놓은 것은 무엇 때문인가? 동한(東漢) 시대 태학(太學)의 3만 명에 이르는 학생들은 권력자들에 대해 조금도 거리낌없이 통렬하게 비판하자 공·경·대·부 등 고위 관리들은 그들의 비판을 피하기에 급급하였다. 또한 송나라 시대에는 많은 학생들이 대궐문 앞에 모여 북을 두드리면서 이강(李綱)의 복직을 강력히 청하기도 하였다. 하·은·주 삼대가 남긴 유풍 중에서 오직 이러한 사실만이 같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당시 조정 중신들에게 학생들의 옳고 그르다는 기준에 따라 그들의 옳고 그름의 잣대로 삼게 하여 장차 도적의 무리들과 간신배들이 학생들의 올곧고 준엄한 기상 앞에서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었으니, 군주도 편안하고 나라도 보존할 수 있었다. 그런데 어떤 자들은 그것을 보고 세상의 일이 쇠퇴하여 간다고 생각했다. 나라가 망해가던 원인은 당인을 잡아들이고 진동(陳東)과 구양철(歐陽澈)을 유배 보냈기 때문이며, 게다가 학교를 파괴함으로 인하여 일어난 일이라는 것을 모르고 학교의 사람들만 탓하고 있다. 아! 하늘이 이 백성을 낳아 군주에게 맡겨서 가르치고 양육하게 하였으나 밭을 주던 법은 사라져 백성들은 밭을 사서 스스로 먹고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세금을 부과하여 그들의 생활을 어렵게 만들었다. 게다가 학교를 폐지시켜 백성들은 바보처럼 교육받을 기회도 잃게 되었는데 오히려 권익과 이익만으로 그들을 유혹하니, 이는 매우 어질지 못한데도 공허한 이름으로 칭송해 높여 군부(君父)라 부르니, 누구를 속일 수 있겠는가? ●지문의 분석 교육의 역할에 대한 글쓴이의 견해가 담겨 있는 이 책의 제목은 퇴조하는 명나라를 재건하기 위한 정치 체계 내지는 원리를 세워 어진 군주를 기다린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글쓴이는 이 책에서 당시 정치·경제·사회의 문제들을 주로 맹자의 민본 사상의 입장에서 비판하고, 하·은·주 삼대의 정치를 이상으로 국가 체계에 관한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하였다. 그는 무엇보다 천하의 정치는 한 성(姓)의 흥망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백성들의 고통과 행복의 문제임을 밝히고, 정치의 기본적인 모습을 여러 사람이 큰 나무를 옮겨 가는 모양에 비유하기도 하였다. 제시문은 그 중 학교 역할의 변질에 대해 비판하고 있는 부분이다. 글쓴이는 학교는 인재 양성 기관이라는 점을 전제로 천하를 다스리는 모든 수단이 학교에서 나올 수 있도록 갖추어야 한다고 했다. 즉, 학교 설립의 목적과 의의에 대해 말하면서 학교는 단순히 인재만을 양성하는 곳이 아니라 천하를 다스릴 수 있는 모든 조건이 나오는 곳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또한, 교육의 목적이 성인의 가르침에 감화되어 관대한 기풍을 가지도록 하는 데 있음을 밝히고 있다. 그리고 모든 시비 판단을 학교의 공론에 맡겨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편 역사적으로 학교가 인재를 길러내는 기능을 상실했다는 점과, 대학을 파괴하면서부터 나라가 망하게 되었다고 말하면서 학교의 역할, 학생들의 직언, 대중 운동의 정당성 등을 강조하고 있다. ●출제 의도와 생각하기 이 문제는 제시된 글을 읽고 논점을 파악하여 분석한 후에 이를 다시 우리의 상황에 적용할 수 있는가를 평가하기 위한 문제이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제시문에 나타난 학교 교육의 역할에 관한 필자의 견해를 파악하고 분석해야 한다. 제시문에 의하면, 학교는 우선 천하를 다스리는 수단을 제공하고 성인의 감회를 가르쳐 임금에서 백성에 이르기까지 관대한 기풍을 지니도록 해야 한다. 또한 세상의 모든 시비를 판단하며 인재를 양성하고 권력을 비판하는 역할을 맡아야 한다. 그런데 학교의 본래적인 역할이 변질됨으로써 과거 시험을 위한 경쟁, 세속적 욕망의 추구 수단으로 전락하게 되었고, 급기야는 인재 양성의 기능마저 상실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요약하면 학교 교육은 통치 원리의 제공, 국민 인성의 함양, 시비의 판단, 인재 양성, 권력 비판의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내용 분석이 이루어지면 다음에는 이러한 학교 교육의 역할을 오늘의 대학에서도 똑같이 담당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 판단해야 한다. 수험생 각자의 가치관에 따라 제시문에 나타난 역할을 제한적으로 수용해야 한다는 관점이 제시될 수도 있을 것이고, 과거의 역할을 전적으로 회복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을 수 있다. 이는 가치관의 문제이므로 어느 관점이 옳고 그르다 할 수 없지만, 어떤 주장이든지 논거가 분명해야 한다. ●어떻게 쓸까 논제에서 제시문을 토대로 학교의 역할이 무엇인지 분석하고 그것을 오늘날 대학과 연관지어 논의를 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내용을 제시문과 연관지어 생각해 보아야 하는데, 논술문의 주제로는 ‘전문적 능력을 지닌 인재의 양성’ 정도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러한 내용을 토대로 오늘의 대학은 전문성을 지닌 인재 양성의 책무에 전념하고 인성 교육을 통해 전문적 능력을 통합해야 한다는 내용을 주제문으로 글을 이어나가면 자연스러운 논술문을 작성할 수 있다. 먼저 서론 부분에서는 사회 변화에 따른 역할 분담에 대하여 언급하고 학교의 역할 변화에 대한 구체적 내용으로 본론을 이어가면 자연스럽다. 물론 여기에서 오늘날 학교의 현실을 언급하면서 논의를 도입하면 논의의 구체성을 지닐 수 있다. 본론의 첫 단락에서는 주어진 논제대로 제시문을 분석하여 글쓴이가 주장한 학교의 역할이 무엇인지 분석해야 한다. 제시문에 나타난 인재 양성과 권력 비판 등과 관련지어 학교의 역할에 대하여 언급하면 된다. 이어서 사회와 학교의 관련성에 대하여 논지를 이어가면 글쓴이가 주장한 학교의 역할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분석할 수 있다. 최근 우리 사회의 교육 현안과 관련지어 언급을 하면 그만큼 논의가 구체성을 지닐 수 있다. 이 단락에서는 제시문의 내용 핵심을 얼마나 정확히 파악해 논점을 이끌어내고 있는지가 채점의 핵심이 될 수 있다. 본론의 두 번째 단락에서는 앞서 언급한 글쓴이가 주장한 학교의 역할이 오늘날의 대학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는가에 대해서 논술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대학이 어떤 기능을 지니고 있고, 우리 사회 속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를 전개해야 한다. 또한 오늘날 대학에 대한 우리 사회의 기대와 한계에 대해 언급해야 한다. 이때 유의해야 할 것은 대학의 역할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무엇인지, 그에 따른 대학의 위상 변화와 그 역할에 대해 언급하면 논의가 심화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결론 부분에서는 앞부분에서 논의한 학교의 역할과 그 역할이 대학에 적용될 수 있는지 여부에 대한 핵심적 주장을 요약해 강조하면서, 인성 교육을 바탕으로 한 전문성 고양과 교육의 사회적 통합 기능을 강조하며 마무리지으면 좋은 답안이 된다. 이석록 서울 대치메가스터디 원장
  • 김동준 큐로컴대표 ‘잘나가네’

    김동준 큐로컴대표 ‘잘나가네’

    ‘황우석 사태’로 침체 늪에 빠진 바이오 업계에서 에이즈 백신 사업권을 거머쥔 큐로컴의 김동준(41) 대표가 승승장구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김 대표는 강칠용 박사팀의 에이즈백신 개발·판매업체인 ‘스마젠’의 지분 100%를 지난해 인수했다. 이후 강 박사팀의 백신이 미국 특허를 받은 것으로 알려지고 ‘상용화되면 시장 규모는 천문학적이다.’ ‘상용화까지 2년 정도 남았다.’는 등의 입소문이 퍼지면서 큐로컴의 주가는 최근 3개월 새 5배 가까이 급등하기도 했다. 김 대표는 기자와 통화에서 “백신 제조 허가를 위한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승인까지 여러 단계가 남았지만 상용화 가능성은 충분하다.”면서 “FDA의 허가가 나면 내후년에 사업화를 시도하겠다.”고 밝혔다. 김 대표와 스마젠의 인연은 200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회계사 출신 M&A 전문가로 활동하던 김 대표는 한미약품 감사시절 스마젠측으로부터 연구비 지원을 요청받고 바이오 산업에 관심을 기울여왔다. 지난해 11월 IT솔루션 회사인 큐로컴의 대표이사직에 오른 뒤 곧 이어 스마젠 인수를 단행한 그는 “IT,BT(생명공학) 기술을 융합한 비즈니스를 창출할 수 있는 기회라고 보았다.”고 설명했다. 현재 한국창업투자·에스비텍·큐로컴·스마젠의 대표이사직을 겸임하고 있는 그는 “추가 인수나 사업 확장보다는 당분간 에이즈백신 연구 지원에만 집중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에이즈백신 사업화 논의가 시기상조라는 우려를 내놓고 있다. 앞으로 까다로운 독성실험과 임상실험을 거쳐 FDA의 허가를 받아야 하며, 이를 위해 최소 2년 이상 투자해야 하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임상실험을 하다가 실패할 수도 있지만 18개국의 특허를 받는 등 다각도로 국제적 검증을 받고 있기 때문에 ‘황우석 사태’와 같은 일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서재희기자 s123@seoul.co.kr
  • “우린 여자인형과 결혼해요”

    일본의 오타쿠 문화가 10억달러(약 1조원)의 소비시장을 형성하며 주류 문화로 부상중이라고 AP통신이 1일 보도했다. 오타쿠는 만화와 미소녀 캐릭터를 광적으로 탐닉하는 남성 마니아들을 일컫는다. 오타쿠 문화는 세계적 인기를 끌고 있는 일본의 만화책과 애니메이션에서 출발했다. 오타쿠들은 한 발 더 나아가 사람 크기의 여자 인형을 수집하고, 여종업원들이 만화 주인공처럼 옷을 입은 카페에 간다. 도쿄의 전자제품 상가 아키하바라는 만화책, 비디오게임, 애니메이션 DVD 등을 사려는 20∼40대 오타쿠들로 늘상 북적인다. 섹시한 사슴눈을 하고 미니 스커트를 입은 여자 인형이 가장 잘 팔리고, 길목마다 오타쿠들을 위해 하녀 복장을 한 여종업원이 있는 ‘메이드 카페’가 있다. 인형 제작사인 가이요도는 올해 매출을 지난해보다 10% 많은 30억엔으로 추산했다. 컴퓨터 엔지니어 마사(32)는 150㎝짜리 여자 인형 고노하, 아이리스와 함께 살며 결혼할 생각도 여자친구를 만날 생각도 없다.70만엔이 든 고노하와 아이리스를 위해 산 중국풍 실크 드레스, 부츠, 운동화 등으로 그의 작은 아파트는 빈 틈이 없다. 이러한 오타쿠 문화는 젊은 층의 자신감 상실을 반영해 100만명에 이르는 사회적 은둔자 ‘히키코모리’로 연결되기도 한다.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교통사고 사망 장애인 위자료 차별지급 부당”

    교통사고로 숨진 장애인에게 비장애인보다 낮은 위자료를 책정한 것은 부당한 차별이라는 판결이 나왔다. 장애인이 교통사고를 당했을 경우 일실수입(逸失收入·노동력 상실로 인한 손해액)은 물론 위자료를 산정할 때도 등급별 신체장애율을 감안해 비장애인보다 감액했던 기존 판례를 벗어나 장애인의 권리를 확대한 판결이다. 서울고법 민사18부(부장 김종백)는 31일 교통사고로 숨진 손모(당시 36세·여)씨의 부모가 “장애를 이유로 위자료까지 비장애인의 절반만 지급한 것은 불합리하다.”며 S화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항소심에서 “피고는 원고측에 비장애인과 동일한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헌법과 장애인복지법에 누구든 장애를 이유로 차별을 받지 않고 차별해서는 안된다고 규정하고 있다.”면서 “교통사고로 사망한 경우 그 정신적 고통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동등한데도, 일실수입 산정 때 노동능력 상실률을 감안한 것을 넘어 위자료에까지 이를 감안한 것은 합리적인 이유 없이 비장애인과 차별하는 부당한 행위”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재판부는 손씨의 위자료 산정 때 신체장애율을 50%로 평가해 비장애인의 절반만 주도록 한 1심을 깨고, 비장애인이 받는 위자료와 같은 액수를 지급해야 한다며 피고측이 지급히자 않은 8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뇌병변장애 3급 장애인인 손씨는 2003년 부산에서 도로를 무단횡단하다 승용차에 치여 숨졌고, 유족들은 운전자가 가입한 보험사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이효용기자 utility@seoul.co.kr
  • 백남준을 떠나보내며

    “아방가르드는 오래 살아야한다. 살아서 승부를 보아야 한다.”라고 입버릇처럼 외치던 백 선생님께서 74세를 일기로 타계하셨다. 한국이 낳은 20세기 최고의 예술가 백남준, 혜안과 용기로 미래적 비전을 제시하는 문화적 ‘비저너리’이자 실험적 아방가르드로서 60년대 해프닝의 주역, 비디오의 창시자가 되었던 그가 10여년의 투병 끝에 우리 곁을 떠나신 것이다. 세계미술사의 한 장을 차지하면서 세계적인 ‘남준팩’이 된 백남준, 그가 한국 미술계, 한국의 젊은 미술인들에게 남긴 교훈은 적지 않다. 무엇보다 그는 한국전통, 아시아 정신의 뿌리를 추적하는 ‘글로컬’한 작품세계로 세계속 한국미술을 일궈내고자 노력하는 한국의 젊은 작가들에게 좋은 길잡이가 되어 주셨다. 그는 실로 한국을 떠나면서 세계적인 작가가 되었지만, 그 이면에는 아이로니컬하게도 한국성, 아시아성에 대한 강한 집착과 그것을 작품에 녹여내는 미학적, 조형적 탐구 의지가 깔려 있었다. 어려서 고국을 떠나 홍콩, 일본, 유럽을 거쳐 미국으로 이주하고 국제적인 예술활동으로 세계인이 된 그에게 이주, 이산, 유랑 등 탈식민주의 이슈와 함께 민족, 인종적 정체성에 대한 인식은 삶, 예술과 분리될 수 없는 의식의 한 층을 형성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산(離散) 작가에게 정체성에 대한 관심은 절실하면서도 보편적인 현상이다. 그러나 백남준에 있어 특이한 점은 정체성이라는 화두를 새로운 조형방식과 미학언어로 풀어냄으로써 비디오라는 새로운 장르의 예술을 창안하였다는 점이다. 그에게 있어 새로움의 추구는 예술뿐 아니라 인생의 좌우명으로 그것이 그로 하여금 아방가르드와의 끈을 놓지 않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아방가르드의 특성 가운데 하나가 시각의 결단력 있는 재조정이라고 규정할 때, 서구적 가치관과 전통미학에 대한 도전으로 극단적 변화를 유도한 백남준이야말로 아방가르드의 선봉에 자리매김된다고 볼 수 있다. 더구나 예술의 사회적 역할, 타자와 주변 문화의 목소리에 대해 주목하면서 비가시적인 것을 가시적이게, 음성 없는 것에 음성을 부여하는 탈식민주의, 후기구조주의 시대에 서구에 대응하는 아시아 효과를 증폭시킨 백남준의 예술은 탈중심주의에 입각한 현대적 정치예술의 목적을 공유한다고 볼 수 있다. 백남준은 실로 예술과 사기, 예술과 정치 사이의 ‘위험한 사잇길’에서 유희한다. 이러한 유희가 그의 예술에 힘과 맛을 부여한다. 그는 예술에 하극상이 없으면 발전이 없다는 ‘하극상론’, 현대미술은 진선미보다 새로움이 앞서야 된다는 ‘신(新) 우선설’,“국수주의도 사대주의와 같은 망국병이다, 한국의 젊은 작가들이 외세를 받아들이고 동시에 이기기 위하여는 무엇이든 씹고 소화시켜야 한다.”는 강한 이빨론 등 예술과 사회, 미술과 생활에 대한 진솔하고도 통찰력 있는 경구들로 우리의 머리와 가슴에 깊은 여운을 남겼다. 그래서 그를 떠나 보내는 슬픔은 세계적 ‘남준팩’으로서의 존재나 위상에 앞서, 훈훈하고 끈끈한 정을 붙들고 살라온 한국인 백남준에 대한 허탈함과 상실감으로 더욱 깊어진다. 김홍희 쌈지스페이스 관장
  • [사설] 최대 노동단체 된 민주노총의 책임

    합법화에도 불구하고 ‘법외노조’로 남기로 선언한 전국공무원노동조합(전공노)이 민주노총에 가입함에 따라 노동계의 지각변동이 시작됐다. 당장 민주노총은 창립 11년만에 한국노총을 제치고 조합원 규모면에서 제1노총으로 떠올랐다. 특히 단일노조로는 조합원 14만여명으로 최대 규모이자 강경투쟁노선을 견지해온 전공노가 민주노총에 가세함에 따라 노사관계가 더욱 대립적인 갈등국면으로 내닫게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민주노총 내부에서도 무게의 중심이 제조업에서 공공부문으로 옮겨지는 과정에서 주도권 다툼이 선명성 경쟁으로 번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우리는 이러한 노동계 지형변화에 대비한 정부의 대책 강구를 촉구한 바 있다. 법과 원칙을 허물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유연성을 발휘토록 주문했다. 동일한 맥락에서 최대 노동단체로 부상한 민주노총도 지금까지의 투쟁일변도에서 벗어나 사회적 책임을 공유하는 형태로 변신을 서둘러야 한다고 본다. 자신의 주장과 행동에 대해서는 책임을 분명히 지라는 뜻이다. 국가적인 당면과제인 양극화 해소라든가 빈부격차 해소 등에 목소리만 높일 것이 아니라 ‘참여’를 통해 사회적 약자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정책을 이끌어내야 한다. 노동운동은 지금 사상 최저치로 떨어진 조직률에서 보듯 총체적인 위기 상황에 내몰려 있다. 노동계 지도부의 투쟁노선이 도덕성과 대중성을 상실한 채 외따로 놀아난 결과다. 그런 의미에서 민주노총은 최대 현안인 비정규직 보호법과 노사관계로드맵에 무작정 결사반대 구호만 외칠 게 아니라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민주노총이 규모에 걸맞은 책임주체로 탈바꿈하느냐 여부에 한국 노동운동의 미래가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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