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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상훈 서울시의원, 시 출연·출자기관 노조협의회서 의정활동 감사패 받아

    이상훈 서울시의원, 시 출연·출자기관 노조협의회서 의정활동 감사패 받아

    서울특별시의회 도시계획관리위원회 소속 이상훈 의원(더불어민주당, 강북2)이 18일 서울시 출연·출자기관노동조합협의회(의장 세종문화회관 김현)로부터 의정활동 감사패를 수여받았다. 시의회 본관에서 열린 이번 행사는 서울시 출연·출자기관노동조합협의회(이하 ‘협의회’)가 노동자의 권익향상과 건전한 노사문화 형성에 기여한 서울시의원을 선정해 감사패를 전달하기 위해 마련됐다. 이 의원은 시 중간지원조직 인력의 처우개선 등을 위해 노력한 공로를 인정받아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이 의원은 수상소감을 통해 “노동이사제 도입 등 서울시는 다른 지자체가 벤치마킹 할 만큼 앞선 노동정책들을 추진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풀어야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며 “지방정부 노사관계에 관한 보다 전문적 연구를 통해 끊임없이 새로운 정책 아젠다를 제시하는 것이 노조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의원은 “협의회가 서울시 노동자들을 대표해 선도적인 노동정책을 발굴하는 등 롤 모델의 역할을 맡아주길 기대한다”며 “이를 위해 시의회 차원에서도 행정적·재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밝혔다. 한편, 이 의원은 과거 전국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조연맹 조직국장을 역임하는 등 노동자 조직화와 권익향상을 위한 노동운동가로 활동한 바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부흥 기폭제 ‘춘향전’ 멜로 이끈 ‘자유부인’… 장르의 신세계 열었다

    부흥 기폭제 ‘춘향전’ 멜로 이끈 ‘자유부인’… 장르의 신세계 열었다

    지금까지의 연재를 통해, 1900년대 초입 한국에 처음 영화가 들어온 시점부터 6·25 전쟁이 끝나고 재건을 시작한 1954년 시점까지 약 50년 동안의 영화사를 살펴봤다. 1901년 미국인 여행가 버턴 홈스 일행이 대한제국기 서울의 풍경을 촬영해 왕실에서 상영회를 개최한 것과 1903년 동대문활동사진소에서 표를 사고 입장한 대중 관객들을 대상으로 영화를 상영한 것이 한국에 영화가 소개된 가장 앞선 기록이었다. 또한 1919년 단성사에서 조선인 신파극단의 제작으로 연극 무대와 영화가 결합한 연쇄극을 상연한 것은 한국영화 100년의 출발로 기록된다. 이후 일제강점하 조선영화계는 무성영화와 발성영화시기를 개척해 가며 조선인 관객들의 지지와 사랑을 받았고, 일제 말기에는 국책선전영화로 명맥을 이어가기도 했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영화 제작을 멈추지 않았던 영화인들의 열정은 1945년 8월 이후 해방 정국과 1950년 6·25 전쟁 시기에도 꾸준히 극영화를 만들고 관객들과 만나는 것으로 이어졌다. 이는 1950년대 중반 한국영화산업이 급격히 성장하게 되는 기반이 되었음에 분명하다. 이제부터의 연재는 1955년 이후 한국영화계가 어떻게 국가 정책 그리고 제작 자본과 협상하며 ‘한국’ 영화를 만들어갔는지 살펴보기로 한다. 이번 지면은 우선 1950년대 중후반까지의 상황을 알아볼 것이다. ●1950년대 중후반 한국영화계 전후 한국 사람들의 깊은 상처를 위로한 것은 역시 영화였다. 전쟁 중에도 영화 만들기를 멈추지 않았던 영화인들은 폐허나 다름없는 열악한 환경에서도 곧바로 상업영화 제작에 착수했다. 1954년 18편, 1955년 15편을 기록한 한국영화 제작 편수는 1956년 30편, 1957년 37편으로 늘어나더니, 1958년 74편으로 전 해보다 두 배가 증가했고, 1959년에는 111편으로 한국영화사상 처음으로 100편대에 진입하게 된다. 한국영화산업이 휴전 후 불과 6년 만에 이 정도의 급성장을 이룩한 배경은 역시 인력이었다. 영화에 대한 한국영화인들의 열정은 도대체 어디에서 기인했던 것일까. 가장 대중적인 예술에 참가한다는 개인 창작자로서의 욕망, 자본을 투여한 것 이상으로 수익을 내야 하는 상업영화 셈법의 확고한 인식, 또 직업으로서 계속 영화 작업을 이어가겠다는 의지 등을 생각해 볼 수 있겠지만 무엇보다 한국영화를 기다리고 지지하는 관객들의 존재가 가장 중요한 동기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영화 매체는 대중과 만나는 순간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환도한 이승만 정부도 이러한 한국영화의 역할을 인식하고 영화계의 의견을 반영해, 1954년 ‘국산영화 입장세 면세조치’, 1959년 ‘국산영화 장려 및 영화오락 순화를 위한 보상특혜실시’라는 과감한 지원책으로 한국영화 진흥을 도모한다.전후 한국영화 부흥의 기폭제가 된 작품은 이규환이 연출하고 배우 조미령과 이민이 주연한 ‘춘향전’(1955)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고전 소설 ‘춘향전’은 1923년 한국 최초의 상업영화, 1935년 최초의 발성영화로 만들어지는 등 이후 한국영화산업의 중요한 분기점마다 영화화되었다(임권택 감독의 ‘춘향뎐’(2000)까지 모두 17번이나 영화로 만들어졌다). 1955년 벽두에 국도극장에서 개봉한 이규환의 ‘춘향전’ 역시 몰려드는 관객들로 대성황을 이뤘고, 2주간 상영에 10만명이 넘는 관객이 몰려들며 제작사에 큰 수익을 안겨주었다. 단 하나의 프린트로 전국 상영을 하던 시절, 서울 상영 이후 지방 각 도시의 상영관에서도 열띤 흥행은 계속되었고, 영화는 2년에 걸쳐 전국 방방곡곡을 돌며 관객들과 만났다. 춘향 역의 조미령과 이몽룡 역의 이민이 이 영화 한 편으로 일약 스타가 된 것도 잘 알려진 사실이다. 새롭게 출발한 한국영화계는 이 영화 덕분에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다. 그동안 한국영화로는 제작비 회수도 어렵다는 것이 일반적인 인식이었지만, 채산을 맞추는 것을 넘어 큰 수익도 올릴 수 있음을 확인하는 계기가 된 것이다. 잘 만든 한국영화라면 언제든 뜨거운 지지를 보낼 준비가 되어 있는 관객들의 존재를 확인한 것도 영화의 효과였다. ‘춘향전’의 성공은 이후 사극영화의 전성기를 열었다. 1956년에 제작된 30편 중 무려 16편이 사극 혹은 시대극 장르일 정도로 인기를 구가한다.●사극에서 멜로드라마로 1950년대 중후반 한국영화의 또 다른 축은 바로 현대극 장르였다. 관객들이 시대극 장르에 싫증을 내기도 전에 현대 도시를 배경으로 한 멜로드라마가 흥행 전선에 나선 것이다. 이 경향을 주도한 것이 바로 한형모 감독의 ‘자유부인’(1956)이다. 영화는 대학교수와 교수 부인 각각의 연애를 다뤄 전후 한국 사회에 커다란 파장을 일으켰다. 원작은 작가 정비석이 1954년 서울신문에 연재해 선풍적 인기를 모았던 소설로, 연재 당시에도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용납할 수 없는 죄악이며 중공군 50만명과 맞먹는 국가의 적이다”는 격렬한 비난을 받으며 화제가 되었다. 1950년대 중반 한국 사회를 휘몰아치던 계, 댄스, 사치라는 세 가지 바람을 시의성 있게 소설화한 원작이 센세이션을 일으키자, 한형모는 영화로까지 여세를 몰아 흥행에 성공한 것이다. 한편 영화에 등장한 “뭐든지 최고급품으로 주십시오, 최고급입니까”라는 극 중 백사장(주선태)의 대사는 당시 “최고급”이라는 말을 유행시키기도 했다. 이렇게 ‘자유부인’은 1950년대 한국을 대표하는 영화이자, 최고의 흥행작으로 기록되었다. 이듬해 1957년에는 홍성기의 ‘애원의 고백’, ‘실락원의 별’, 김성민의 ‘처와 애인’, 김기영의 ‘여성전선’, ‘황혼열차’, 이용민의 ‘산유화’, 한형모의 ‘순애보’, 유현목의 ‘잃어버린 청춘’ 등의 멜로드라마가 전후 사회의 정서와 시대상을 반영하며, 여성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작가주의적 미장센(화면 구도)이 유려한 유현목 감독의 ‘그대와 영원히’(1958), 박종호의 감독 데뷔작이자 배우 김지미의 청초한 매력이 돋보이는 ‘비오는 날의 오후 세시’(1959), 조긍하 감독의 대표작 ‘육체의 길’(1959)도 빼놓을 수 없다. 1950년대 후반의 멜로드라마 지형은 홍성기·김지미 콤비의 영화가 주도하는 가운데, 신상옥·최은희 콤비의 작품이 경쟁 구도를 그리며, 한국 대중영화의 수준을 한층 높였다. 전자는 ‘별아 내 가슴에’(1958), ‘산 넘어 바다 건너’(1958), ‘별은 창 너머로’(1959), ‘자나깨 나’(1959)가 대표적이고, 후자는 ‘어느 여대생의 고백’(1958) ‘그 여자의 죄가 아니다’(1959) ‘동심초’(1959) ‘자매의 화원’(1959) 등을 들 수 있다. 신상옥 감독이 이 영화들의 성공을 발판으로 ‘신필름’을 설립, 1960년대 이후 한국영화계를 주도하게 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양적 증가 넘어 영화 문화·산업 전반으로 성장 1950년대 중후반 한국영화의 성장은 제작편수로 대변되는 양적 증가뿐만 아니라, 영화문화와 산업 전반이 확장되는 것으로 이어졌다. 전후 사회적, 개인적 악조건 속에서 ‘미망인’(1955)을 연출한 박남옥은 한국영화사의 첫 번째 여성감독으로 기록되며, 이병일의 ‘시집가는 날’(1956)은 제4회 아시아영화제에서 특별희극상을 받으며 한국영화 최초로 국제영화제에서 수상한 작품이 되었다. 이 시기 한국영화의 중요한 특징은 다양한 장르가 시도된 점이다. 멜로드라마와 스릴러를 혼합한 ‘운명의 손’(1954)의 한형모는, 악극 요소를 가미한 코미디 ‘청춘쌍곡선’(1956), 탐정영화 ‘마인’(1957), 가요를 극 속으로 녹여낸 멜로드라마 ‘나 혼자만이’(1958) 등 다양한 장르를 실험하는 야심 찬 행보를 보였다. 노필 감독 역시 극 중 등장인물의 노래 장면이 삽입된 멜로드라마 ‘꿈은 사라지고’(1959), ‘사랑은 흘러가도’(1959) 등을 연출했다. 이 영화들은 미리 녹음한 음악을 촬영현장에서 틀면서 입 모양을 맞추는 ‘플레이백’ 녹음방식으로 만들어졌다. 이러한 음악영화들이 시도된 이유는, 뮤지컬 영화를 만들고 싶어도 기재와 기술력이 부족했던 당시 한국영화계가 절충적 제작 방식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새로운 영화기술에의 도전과 이를 뒷받침한 물적 기반도 검토해 봐야 한다. 해방기 ‘무궁화동산’(안철영, 1948) ‘여성일기’(홍성기, 1949)에서 도전했던 컬러영화 제작도 다시 시도되었다. ‘선화공주’(1957, 최성관)를 시작으로 ‘사랑의 길’(1958, 장황연), ‘춘향전’(1958, 안종화), ‘콩쥐팥쥐’(1958, 윤봉춘)가 컬러영화로 관객들을 만났다. 한편 홍콩과 합작한 ‘이국정원’(전창근·도광계·와카스기 미쓰오, 1957)은 해외 기술을 빌어 안정적인 컬러 색감을 선보이기도 했다. 한국 최초의 한홍 합작영화로 기록되는 ‘이국정원’은 임화수의 한국연예주식회사와 홍콩 쇼브라더스사가 공동 제작했고, 김화랑 감독의 ‘천지유정’(1957)이 그 뒤를 이었다. 두 영화는 1958년 한국 관객들과 만난다. 2.35:1의 시네마스코프 포맷을 통해 넓고 긴 화면 즉 와이드스크린도 선보였다. 그 첫 번째 작품은 수도영화사 대표 홍찬이 건설한 안양촬영소의 창립작 ‘생명’(이강천, 1958)이다. 영화는 미첼 카메라에 비스타라마 렌즈를 달아 촬영했고, 오프닝 크레디트와 포스터에는 수도영화와 시네마스코프를 합친 ‘수도스코프’라는 명칭을 내세웠다. ●정릉·삼성·안양 등 영화 전문 스튜디오 등장 컬러와 와이드스크린 등 1950년대 후반의 기술 시도는 영화촬영소라는 공간과 연동된 것이었다. 한국영화문화협회의 정릉촬영소, 삼성영화사의 삼성스튜디오, 수도영화사의 안양촬영소 등 본격적인 스튜디오 세 곳이 등장해 한국영화의 새로운 제작 기반이 되었다. 사실 스튜디오라는 공간은 선진 영화제작 시스템의 상징과도 같은 곳으로, 주먹구구식 수공업적 제작을 벗어나 할리우드식의 스튜디오 시스템을 갖추는 것은 한국영화인들의 오랜 꿈이었다. 스튜디오 시대의 첫 주자는 1957년 1월 개소한 정릉촬영소였다. 120평의 촬영장과 100평 규모의 현상소에 미국의 민간원조기구 아시아재단이 기증한 미첼 카메라, 휴스턴 자동현상기 등이 설비되었다. 촬영소를 건립한 한국영화문화협회는 아시아재단으로부터 기증받은 영화기자재를 관리하기 위해 1956년 7월 설립한 단체다. 한편 ‘자유부인’으로 큰 수익을 거둔 삼성영화사는 1957년 7월 군자동에 삼성스튜디오를 만들어 권영순의 ‘오해마세요’(1957), 유현목의 ‘그대와 영원히’, 한형모의 ‘나 혼자만이’(1958)를 제작했다. 규모나 내용에 있어 가장 주목할 곳은, 평화신문사와 수도영화사 사장 홍찬이 이승만 정권의 특혜를 받아 1958년 6월 개소한 안양촬영소이다. 그는 할리우드 스튜디오 시스템을 본떠 본격적인 프로듀서 시스템을 도입했고 자신은 총괄 프로듀서를 맡았다. 안양촬영소는 3만 3500평의 부지에 총건평 1975평으로 9개의 건물이 자리잡은 그야말로 ‘영화공장’이었다. 미첼 카메라 3대, 웨스트렉스 녹음 시설 등 미국의 최신 기재들도 들여왔다.하지만 수도영화사의 홍찬은 한국 최초의 시네마스코프 영화 ‘생명’과 두 번째 작품 ‘낭만열차’(1959)의 흥행 실패로 수십억원의 부채를 졌고, 결국 촬영소는 1959년 10월 부도 처리되며 산업은행의 관리로 넘어갔다. 1966년 9월 박정희 정권의 지원하에 신필름에 인수될 때까지 애물단지로 방치되었던 안양촬영소는 영화산업의 근대화가 산업 내부의 동력 없이 국가의 정책적 지원만으로 완성될 수 없음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하지만 이러한 1950년대의 다양한 시도와 노력들이 1960년대 한국영화가 중흥기를 맞고 본격적인 산업화의 길을 들어서는 기반이 되었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정종화 한국영상자료원 선임연구원
  • 임만균 서울시의원, ‘2019 대한민국파워리더대상’ 의회발전공헌부문 대상 수상

    임만균 서울시의원, ‘2019 대한민국파워리더대상’ 의회발전공헌부문 대상 수상

    서울특별시의회 임만균 의원(더불어민주당, 관악3)은 지난 15일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제1소회의실에서 열린 ‘2019 대한민국파워리더대상’에서 의회발전공헌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관악구 출신 임 의원은 초선 의원임에도 불구하고 도시계획관리위원회 소속 위원으로서 시의회와 지역사회에서 활발한 의정활동을 수행했으며, 특별히 지방의회의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수상자로 선정됐다. 이번 시상식은 대한민국파워리더대상조직위원회, 국회출입기자클럽, 한국언론연합회가 주관하였으며, 조직위원회는 정치, 경제, 문화예술, 언론진흥 등 사회 각 분야에서 귀감이 되는 인물을 발굴하고 공정한 심사를 거쳐 사회 공헌도에 따라 매년 파워리더를 선정 및 시상한다. 임 의원은 수상소감에서 “이번 파워리더 수상은 지방의회의 발전을 위해 더 열심히 의정활동을 하라는 서울시민과 국민들의 뜻이라 생각하며, 초심을 잃지 않고 혁신적인 노력과 헌신으로 앞으로도 풀뿌리 민주주의의 실현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정종수의 풍속 엿보기] 군주와 곤룡포 속의 도끼

    [정종수의 풍속 엿보기] 군주와 곤룡포 속의 도끼

    창업보다 어려운 것이 수성이라 한다. 중국엔 2대로 단명한 왕조들도 있다. 조선 왕조 500여년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미래를 통찰하고 결단한 2대 태종과 함께 세종이란 걸출한 군주 덕분이다. 명장 김종서가 세종에게 양녕의 불찰을 자주 말했다. 세종은 김종서에게 ‘형 양녕이 양보하지 않았으면 왕의 자리에 오를 수도 없었다’며 무마했다. 백성들도 형제가 잘못하면 덮어 주고, 감옥에 가기라도 하면 뇌물을 써서라도 석방시키려고 하는데, 하물며 한 나라의 임금이 백성만도 못하게 형 하나를 감싸 줄 수 없겠냐며 오히려 다른 신하들에게도 알려 양녕을 비판하지 못하도록 했다. 세종은 신하들의 반대에도 정치가 아닌 가정사로 국한해 양녕을 끝까지 지켜 주었다. 이것이 아버지 태종과 아들 세조와 다른 점이다. 세종 23년(1441) 12월 3일 태조의 계비 신덕왕후의 명복을 빌기 위해 세운 덕수궁 뒤쪽의 흥천사 사리탑이 기울어 수리한 후 잔치를 베풀려고 하자 대소 신료는 물론 유생들까지도 수십 일간 상소를 올리며 반대했다. 하도 반대가 심하자 세종은 “예전에도 불탑이 기울어 위태로우면 수리하고 잔치를 베풀었으며, 내가 처음으로 시작한 것도 아니고, 이런 일로 나라가 망하고 임금을 폐할 일이 아닌데도 하나같이 통곡할 만하다고 하는데, 과연 이것이 통곡할 만한 일이냐”며 개탄했다. 이어 “신하가 세 번 간해 임금이 듣지 아니하면 벼슬을 버리고 간다고 하는데, 경들은 어찌 물러나지 않냐”며 빗발치는 반대를 물리치고 잔치를 베풀었다. 또 자기 부모들이 집에서는 염불하고 경을 읽어도 내버려 두면서 조정의 자그마한 불사를 탓하는 것은 소인배의 짓이라며 신하들의 이중성을 꼬집었다. 한 남자로서 세종은 어떠했을까. 황제는 후궁을 3000명까지, 왕은 60명까지 둘 수 있었다. 임금은 구중궁궐에서 미색에 빠져 크게는 나라를 망치고 적게는 몸을 망치는 일이 다반사였다. 세종의 총애를 한 몸에 받은 어린 궁녀가 잠자리에서 작은 청탁을 했다. 세종은 자신이 총애를 해 그렇다며 아직 어린데도 이런데 더 크면 나라를 망칠 것이라며 다음날로 내보냈다. 세종은 공과 사를 엄격히 했다. 세종은 항상 글을 읽으면 반드시 100번을 채웠다. 특히 ‘춘추좌전’과 ‘초사’는 어렵고 난해해 200번을 읽었다고 한다. 하도 글을 많이 읽어 몸이 쇠약해지자 태종은 세자 방에 있던 모든 책을 치워 버렸다. 마침 송나라의 구양수와 소식이 주고받은 편지를 엮어 만든 ‘구소수간’이란 책 한 권이 병풍 뒤에 있었다. 과연 세종은 이 책을 몇 번이나 읽었을까. 무려 1100번이나 읽었다 한다. 진짜일까 하는 의문은 바로 풀렸다. 조선시대에는 왕이 죽으면 당연히 중국에 부고를 보냈지만, 왕비의 규정이 없어 사정에 따라 보내기도 하고, 안 보내기도 했다. 세종은 왕비가 죽자 신하들과 긴 논의 끝에 명나라에 부고를 보냈다. 국상 중 책을 읽다 왕비의 경우는 보내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급히 부고를 중지시키고, 황희·맹사성·김종서·황보인 등 명재상들을 불러 “제발 책 좀 읽어라, 이게 무슨 나라 망신이냐”고 질책했다. 세종 때 한글이 만들어진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세종은 선대의 업적을 알아야 좋은 정치를 편다며 황희에게 아버지의 ‘태종실록’을 보자 했다. 황희는 만일 전하께서 실록을 보면 전례가 돼 후대 왕도 보게 될 것이고, 임금의 입맛에 맞게 쓰여질 수 있다며 반대했다. 이에 끝내 세종은 실록을 보지 않았다. 세종의 이런 면면은 군주는 모름지기 어떠해야 하는가를 보여 준다. 세종은 옳은 일에 대해서는 비록 자신의 권위가 손상될지라도 솔직하게 의사를 밝혀 관철시켰다. 이것이 소위 세종의 공론정치다. 군주는 엄격한 공과 사의 구분, 통치철학 및 역사관, 미래를 보는 통찰력이 있어야 한다. 특히 임금의 곤룡포에 그린 도끼는 바로 군주의 결단력을 상징한다.
  • [2000자 인터뷰 18]임재성 “강제동원 日 기업, 피해자 화해하도록 정부가 외교력 발휘해야”

    [2000자 인터뷰 18]임재성 “강제동원 日 기업, 피해자 화해하도록 정부가 외교력 발휘해야”

    일제 시기 강제동원 피해자 측이 일본 기업의 국내 자산에 대한 매각 신청(5월 1일)을 법원에 낸지 한 달 반 가량 지났다. 또한 일본 정부가 5월 20일 한국 대법원의 강제동원 배상 판결(2018년 10월 30일)과 관련해 제3국을 포함한 중재위원회 설치를 요구한 기한(6월 18일)이 며칠 남지 않았다. 대법원 판결 이후 악화된 한일관계의 해결점이 보이지 않는 가운데 일본 오사카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6월28, 29일)에서 한일 정상회담 개최 전망마저 불투명한 상황이다. 강제동원 피해자의 대리인으로 일본제철과 후지코시를 상대로 소송을 진행해온 법무법인 해마루의 임재성 변호사는 “정치가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은 적절치 않다”면서 일본 기업이 과거 행위에 대해 책임을 인정하고 사과하고 화해할 수 있도록 정부가 외교력을 발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 변호사는 2015년부터 변호사 활동을 시작하면서 일제 시기 강제동원 일본 기업에 대한 손해배상소송에 참가했다. 제주 4·3 사건 군사재판 생존자 18명을 대리해 재심, 형사보상 청구, 국가배상 소송을 진행 중이기도 하다. 다음은 임 변호사와의 일문일답 내용. 매각신청->감정->매각명령->송달->집행에 3개월 이상 Q: 강제동원 피해자 대리인들은 대구지법 포항지원과 울산지법에 일본제철(옛 신일철주금)과 후지코시로부터 압류한 자산을 매각해 달라는 신청을 냈다. 한 달 이상 경과됐는데 지금은 어떤 상황이고, 실제 자산 매각까지는 어떤 과정을 거치게 되며, 시간은 얼마나 소요되는가. A: 5월 1일 보도자료를 냈을 때 ‘최소 3개월’이라고 했다. 법원이 매각 명령을 내리고, 일본 기업에 송달되어서 그 명령이 확정되는 순간까지를 계산한 것이다. 실제 현금화는 그 이후에 이루어진다. 절차를 얘기하자면 먼저 압류한 자산에 대한 감정이 이루어질 것으로 본다. 압류된 일본제철과 후지코시의 자산은 비상장 주식인데, 액면가만 있을 뿐 시장 거래가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법원은 감정을 통해 이 주식을 매각하면 집행 비용을 빼고서도 채권자(원고측)을 만족시킬 수 있는가를 판단한 이후, 매각명령결정을 일본 기업에 송달시킬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한국 법원행정처가 매각명령결정서를 일본 외무성으로 보내고, 일본 외무성이 일본 기업에게 송달시키는 방식인데, 일본 외무성이 사인 간의 민사소송에서 이 송달절차를 거부한 적은 없었다. 일본 기업들은 매각명령결정서를 송달받고 즉시항고 절차를 통해 다툴 수는 있으나, 현실적으로 유효한 이의제기 사유가 없는 상황이기에 매각명령결정이 그대로 확정될 것으로 본다. 이후 절차에서는 집행관의 재량권이 큰데, 집행관이 일본제철에게 자신의 주식을 사갈지 의사를 물어볼 수도 있고, 경매에 부칠 수도 있다. 법원, 일본제철에 의견서 기회 줘 기간 늘어날 듯 최근 법원으로부터 대리인 측에 통보가 온 게 있다. 민사집행법에 따라 매각명령 과정에 심문기일이 필수적이지만 채무자(일본 기업들)가 외국에 있는 경우라면 심문기일을 생략할 수 있다. 그런데 포항지원에서 심문기일을 열지 않으나, 일본제철에게 의견서를 제출할 기회를 주겠다는 연락이 왔다. 주목을 많이 받는 사건이라 법원으로서도 방어권 행사를 꼼꼼하게 보장하려고 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나쁜 일은 아닌 듯하다. 일본 기업들의 의견서 제출 절차가 이루어지게 되면, 매각명령결정이 확정되기까지의 기간이 다소 늘어날 수 있다. Q: 그렇다면 여전히 시간이 남아 있다. 이들 일본 기업 자산(일본제철 소유 PNR 주식 19만 4794주 9억 7400만원 상당, 후지코시 보유 대성나찌유압공업 주식 7만 6500주 7억 6500만원 상당)이 실제로 매각되기 전까지 대리인단이 그간 시도해 온 일본 기업과의 협의를 통한 화해 가능성은 있는가.이춘식 할아버지, 연내 해결 희망 A: 대법원 판결 이후 소송대리인단, 지원단은 일관되게 일본 기업에게 합의를 요청해왔다. 일본 기업들이 피해자들에게 사과의 의사표시를 하고, 자발적으로 배상금을 지급하라는 요청이었다. 현실적으로 지금 국면에서 합의 가능성이 높다고 보기는 어렵다. 일본 기업들 본사에 수차례 방문하였지만 면담은커녕, 책임있는 답변도 듣지 못했다. 그 상황에서 법이 정한 집행 절차를 계속 늦출 수 없었다. 그동안 피해자분들에게 ‘일본 기업으로부터 사과를 받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말씀을 드리면서 집행 절차를 미루는 것에 대한 동의를 구했다. 피해자분들 역시 일본 기업들로부터 사과를 받고 싶어 하셨기에 우리를 믿어주셨다. 그러나 일본 기업들이 사과는커녕 판결 자체를 부정하고 있는 상황에서 더 이상 고령의 피해자분들에게 기다려달라는 말씀을 드릴 수 없었다. 일본제철 강제동원 피해자 이춘식 할아버지께서는 연내에 이 문제가 해결되기를 바라신다고 명시적으로 말씀하셨다. 대리인으로서 당사자의 의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Q: 2018년 10월 대법원 판결 이전까지 대리인들은 일본 기업과 화해를 위한 어떤 일들을 해왔는가. A: 광주 근로정신대 소송대리인단과 미쓰비시중공업은 2010년부터 2012년까지 도쿄와 나고야에서 16차례 협상을 진행했다. 일본제철도 일본 내 소송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대리인과 논의하는 과정이 있었다. 물론 이들 협상에서 어떤 결론을 내지는 못했지만, 일본 기업들이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협의에 나섰던 역사가 존재했다는 점이 중요하다. 2010년을 전후로 일본 사회가 그래도 유연성이 있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월급조차 주지 않고 노동을 강요한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어떤 방식으로든 책임을 회피할 수는 없다’는 분위기가 있었다. 그런데 2018년 10월 대법원 판결 확정 이후 일본 기업의 태도는 강경 일변도이다. 일본 사회의 우경화가 중요한 이유 중 하나라고 본다. 일본 기업 강경한 태도 배후에 일본 정부 있는 듯 Q: 일본 기업의 강경한 태도의 배후에는 일본 정부가 있다고 보는가. A: 그럴 것으로 추측한다. 판결 전에도 16차례 협상을 했던 기업이 판결 이후에는 일절 만나지 않는다는 게 이상하지 않은가. 2012년 일본제철 주주총회에서는 한국 대법원 판결이 확정되면 따를 수밖에 없다는 발언도 나왔다. 화해 통해, 사과와 배상 받는 게 최선의 길 Q: 지금의 한일관계는 사상 최악이라고들 한다. 그 배경에는 강제동원 판결을 꼽는다. 한일관계 타개책으로서 1)피해자 구제를 위한 2+2(한국 정부·기업+일본 정부·기업) 혹은 2+1(한국 정부·기업+일본 기업) 등에 의한 기금 방식 2)국제사법재판소(ICJ)에 대법원 판결이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을 어겼다는 일본 주장이 맞는지를 가려보자 3)대법원의 판단을 존중해 한국 정부가 일본과의 전면적인 외교전쟁을 선언하고 국민들에게도 피해를 감수해 줄 것을 설득해야 한다는 주장들이 나온다. 이런 논의를 어떻게 보고 계신가. ICJ에서 가리자는 방안은 부적절 A: 2, 3번은 정치가 없는 방식이다. 2번은 제3자에게 사법적 판결을 하라는 것인데 정치는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것이고, 피해자의 권리구제에도 효과적이지 않다. 올 오어 낫씽(All or Nothing·전부 아니면 전무)이다. 어떤 결과가 나오든 한쪽 정부는 감당할 수 없는 결과일 것이다. 일본에서도 강제동원이라는 역사적 사실 자체에 대해 인정한 것은 드물지 않다. 일본 내 소송에서 하급심 법원들은 일본 기업의 불법행위를 인정했다. 후지코시 사건의 경우 “면학 기회가 있는 것처럼 기망하고 근로정신대로 권유해서 참가시킨 행위는 충분한 판단능력을 가지지 못하고 진학 기회가 제한돼 있던 어린 나이의 여성에 대해 이른바 그 약점을 파고드는 것이고, 더불어 10대 여성의 장래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어서 메이지헌법 하의 법제에서도 위법이라고 평가되는 권유방법”이라고 판시했다. 식민지 조선사람들을 속여서 일본으로 끌고 가 노예와 같은 강제노동을 시켰다는 점에 대한 양국의 공통된 인식이 존재한다. 여기서부터 시작해야 하는데 ICJ로 가서는 역사적 사실에 대한 양국 사회의 합의를 증진시키는 것이 아닌, 사법적 판단에만 목을 매달게 할 것이다. 판단을 받기까지 시간과 비용 역시 상당할 수밖에 없다. 외교전쟁 불사 주장은 이해 안돼  3번 같은 외교적 전쟁 주장은 그 자체로 의문이다. 일부 전문가의 주장으로 알고 있는데, 수사에 불과할 뿐이다. 민주화 이후 어떤 정권이 과거사 문제에 있어서 일본과 좋은 관계를 맺고 있었나. 사실상 한국의 민주화 이후 피해자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조직해가면서, 식민지 시기 과거사 문제가 상수가 된 상황에서 외교적 전쟁을 주장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그리고 이러한 공방 속에서 결국 피해자들의 권리실현은 또다시 지연될 수밖에 없다. 싸울 필요가 있다면 싸워야겠지만, 목적이 무엇인지는 명확해야 하지 않겠나. 화해 통한 기금 조성, 초창기부터 논의된 방식  1번은 새로운 방식이 아니다. 강제동원 문제가 등장하였던 초창기부터 이야기되어 왔다. 독일 정부와 독일 기업들이 2차 대전에서 강제동원된 피해자들에게 ‘기억, 책임 그리고 미래 재단’을 설립하여 보상한 사례가 존재하며, 일본 기업이 중국인 강제동원 피해자들에게 중국 적십자 등을 통한 기금방식으로 배상금을 지급한 전례도 있다. 2010년 12월 11일 대한변협과 일본변호사연합회가 공동선언을 내고 기금방식의 해결에 대한 선호를 천명한 적도 있다. 기금방식이라고 하더라도 원칙은 변하지 않는다. 일본 기업이 자신들의 책임을 인정하는 전제 위에서 피해자들에 대한 사과 의사표시를 하고, 배상금을 출연하는 것이다. 이 원칙이 지켜진다면, 기금에 다른 주체들의 참여는 탄력적일 수 있을 것이다.  소송이 아닌 기금을 통한 해결이 더욱 적절한 이유는, 소송에 참여하기 어려운 많은 피해자들의 권리까지 구제할 수 있으며, 강제동원이라는 역사적 불법행위에 대한 일본 기업들의 의사표시가 공식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소송에서는 피해자가 자신의 피해사실을 입증해야 하는데, 연금기록 등 관련 자료가 대부분 일본에 있는 상황에서 엄격한 사법적 입증 책임의 문턱을 넘을 수 있는 피해자가 많지 않다. 또한 판결을 통해서는 손해배상금 지급만을 강제할 수 있을 뿐인데, 피해자들께서는 자신을 끌고 갔던 기업들의 사과를 원하신다. Q: 중국에서는 강제동원 피해자와 일본 기업이 개별 사안에서 화해를 했는데 왜 다른가. A: 남한과 일본, 중국와 일본이 국교정상화 과정에서 각 체결한 협정이 다르다. 조선은 일본의 식민지였고, 중국은 일본의 교전국이라는 차이도 존재한다. 그러나 피해자 규모로 인하여 일본의 대응이 다른 것이 아닌가 의심도 있다. 한국은 피해자 숫자는 강제동원위원회에서 파악된 것만 17만명이고 범위를 넓히면 104만명까지 된다는 통계치가 있다. 화해 없으면 강제동원 소송 꾸준히 늘어날 것 Q: 현재 진행 중인 강제동원 피해 관련 소송은 몇 건 정도이고, 향후 계속 늘어날 것으로 전망하는가. A: 2018년 10월30일 판결 이전까지 제기됐던 것과 그 이후를 비교해보면, 판결 이전까지 소송 건수로는 16건이었다. 소송 1건에 피해자 숫자는 적게는 1명에서 많게는 수백명이 경우도 있으나 모든 소송을 대리하는 것이 아니어서 정확한 확인은 어렵다. 판결 이후에는 피해자 기준으로 광주 대리인단이 54명, 서울 대리인단이 30여명의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이후 계속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日, 협정 아닌 인권 시각으로 강제동원 봐야 Q: 대리인으로서 일본 정부에 하고 싶은 말은. A: 1965년 협정과 관련해 일본 정부는 ‘청구권협정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었다’라고 반복하고 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서도, 일본 기업들에 의해 강제동원된 피해자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청구권협정 당시 강제동원 피해자 문제에 양국 정부가 온전히 인식하고, 이들의 피해를 회복하기 위한 적절한 합의를 체결하지 못했다는 정황들이 다수 확인되었다. 또한 국제노동기구(ILO) 등 국제사회는 청구권협정에도 불구하고 식민지시기 피해자들에 대한 충분한 보상이 이루어지지 못했다고 지적하고 있다. 일본 사법부 역시 일본 기업의 불법행위는 존재했고, 청구권협정을 통해서도 피해자들의 개인청구권은 소멸되지 않았다고 판단하고 있다(다만, 소송을 제기할 소권이 소멸된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배보다 배꼽 더 큰 日기업 소송비용  그렇다면 일본 정부로서는 1965년의 협정만을 주문처럼 되뇌일 것이 아니라, 1990년 이후 비로소 자신의 피해를 증언하며 사회적으로 등장한 식민지 시기 여러 조선인 피해자들에게 충분한 사과와 보상이 이루어졌는지를 살피는 것이 필요하다. 청구권에서 인권으로, 관점의 전환이 필요한 것이다. 청구권협정에 대한 일본 정부의 기존 해석을 부정하라는 것이 아니라, 식민지시기 피해자에게 온전한 배상과 사과가 이루어졌는지를 살피는 방식이야말로 진정한 미래지향적 한일관계가 만들어질 수 있다.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들의 자산을 압류하는 등의 집행절차로 나아가면서 한일관계가 파탄나고 있다고 보시는 분들이 있겠지만, 그렇다면 20년 가까이 소송에서 싸워 비로소 승소한 피해자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침묵해왔던 피해자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낼 때 무너지는 양국관계라면, 그 관계는 문제다.  우스개소리를 하나 하자면 일본 기업들이 강제동원 소송에 대응하면서 국내 대형 법무법인에 막대한 변호사비용을 지불했을 것인데, 이 돈이 실제 피해자들이 청구한 손해배상금보다 클 것이다. 일본 정부든, 일본 기업이든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실질적으로 더 손해일 수 있다. ‘국제법 무시한 대법 판결 잘못’ 日 시각이 잘못 Q: 일본에서는 한일협정이란 국제법이 한국 법률보다 상위에 있는데 한국 대법원이 그걸 무시한 판결을 했다고 주장하는데. A: 비법률적인 주장이고, 사실 왜곡이기도 하다. 한국이나 일본은 국제법, 즉 국가 간 협정이나 조약을 체결하면, 그에 따른 별도의 국내법을 제정해야 하는 이원론적 법체계가 아니다. 협정을 맺고 국회 비준이 이루어지면 곧바로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지니는 일원론을 취하고 있다. 즉, 한국과 일본 모두에서 1965년 청구권협정은 그 자체로 국내법과 동등한 효력을 지닌다. 국제인권법의 경우 국내법보다 상위 효력을 지녀야 한다는 논의가 있지만, 청구권협정은 인권협정도 아니다.  청구권협정이 법률의 효력을 지닌다면, 법률에 대한 최종해석의 권한이 사법부에 있다는 3권 분립의 원칙에 따라 청구권협정의 해석권한 역시 각 국가의 법원이 가진다. 즉 한국 내에서 청구권협정에 대한 배타적이고 최종적인 해석권한은 한국 대법원이 가진다. 한국 대법원은 그 권한을 행사하여 청구권협정으로 강제동원 피해자들에 대한 반인도적 불법행위 손해배상채권이 소멸되지 않았다고 해석한 것이다. 해석권한을 가진 대법원이 전원합의체를 통해 13명 대법관 모두가 의견을 내며 치열하게 해석한 판결에 대해, 일본이 “한국 대법원이 국제법을 위반했다”라는 부당한 비판을 하고 있을 뿐이다. 서울, 대구, 광주 3개 지역에서 소송 진행돼 Q: 대리인단 구성은 어떻게 돼있나. A: 지역을 기준으로 할 때 서울과 대구, 광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서울에서는 법무법인 해마루가 대리인으로, 민족문제연구소,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보추협)가 지원단으로 활동하고 있다. 대구에서는 법무법인 삼일의 최봉태 변호사님이 이 소송의 시작부터 현재까지 대리인 역할을 하고 있다. 광주에서는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 하는 시민모임 등이 지원단체로, 이상갑, 김정희 변호사님들이 대리인으로 참여하고 있다. 2018년 10월 대법원 선고 이후 추가소송을 위해 대리인단 규모가 확대되었는데, 서울에서는 민변 공익변론센터, 광주에서는 광주 민변지부를 중심으로 대리인단이 구성되어 활동하고 있다. 한국보다 먼저 일본서 소송 이끈 일본인 지원에 감사 Q: 일본 측 지원은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가. A: 한국에서의 소송 이전, 1990년대 일본에서 강제동원과 관련한 소송이 있었다. 모두 패소하고 2000년대에 한국에서 소송이 제기되어 결국 대법원 판결까지 내려진 것이다. 일본 소송 당시 결합하였던 일본 변호사들과 시민단체들은 한국 소송 과정에서도 많은 조력을 보냈다. 대법원 판결 이후의 방향에 대해서도 한일 시민사회가 함께 논의 중이다. 특히 일본 측 활동가들은 강제동원 문제를 일본 내에서 끊임없이 환기시키는 활동을 하고 있는데, ‘금요행동’이 대표적이다. 일본 미쓰비시 중공업 앞에서 진행되는 캠페인인데, 10년째 이어지고 있다. 우리는 일본 대사관 앞 ‘수요집회’는 많이 알지만, 정작 일본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금요행동’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일본에서 일본 기업의 책임을 묻는 활동을 그 오랜 시간 이어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울까 상상해보면 고개가 숙여진다.피해자 목소리 누군가 대변해야 Q: 대리인으로서 이번 소송에 임하는 자세라고 할까, 마음가짐은. A: 중압감이 크다. 같은 사무실에서 강제동원 사건을 같이 대리하고 있는 김세은 변호사는 ‘살얼음을 걷는 것 같다’고 한다. 집행절차에 나가가는 과정이 특히 그러했다. 일본 정부의 맹공격과 거대한 일본 기업들의 의도적인 침묵이 있다. 우리 대리인의 역할은 거대한 주체들이 서로 소리지르는 판 속에서 또 다시 배제되는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것이다. 한일관계 파탄을 걱정하는 사람들에게 여기 피해자의 고통도 좀 보아달라고 이야기하는 역할 말이다. 피해자분들이 정말 고령이시다. 판결에 이긴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죽기 전에 일본 기업에게 사과를 받고 배상을 받으시는 것, 누군가는 그걸 목표로 삼아야 하지 않겠나.   [강제동원 소송 관련 일지] -2018년-  10월 30일: 대법원, 일본제철(옛 신일철주금)에 강제동원 근로자 1인당 1억원 배상 판결  12월 31일: 피해자 대리인, 일본제철 한국 자산 강제집행 신청 -2019년-  1월 3일: 대구지법 포항지원, 일본제철 한국 자산 압류 신청 승인  1월 9일: 일본 정부, 한일청구권협정에 근거, 한국에 협의 요청  3월 7일: 강제동원 피해자, 대전지법에 미쓰비시중공업 국내 자산 압류 신청  3월 15일: 울산지법, 후지코시 소유 국내 자산 압류 신청 승인  3월 22일: 대전지법, 미쓰비시중공업 국내 자산 압류 신청 승인  4월 4일: 강제동원 피해자 대리인, 서울중앙지법에 일본제철, 후지코시, 미쓰비시중공업, 일본코크스공업을 대상으로 추가 손해배상청구소송  5월 1일: 강제동원 피해자 대리인, 각 지방법원에 일본제철, 후지코시 국내 자산 매각 신청  5월 20일: 일본 정부, 대법원 판결과 관련한 제3국을 포함한 중재위원회 설치 한국에 요청 6월 28, 29일: 일본 오사카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서 한일정상회담 불투명 황성기 평화연구소장 marry04@seoul.co.kr
  • 부마항쟁 피해자 21명, 국가에 첫 집단 손배소

    부마재단, 개별 소송들 조직적 진행 추진 법률구조활동 첫 사업… 21일까지 訴 제기 “고문받아 40년간 사회경제적 피해 막대” 최근 손배소송 2건 1심서 보상 판결 달라 진상규명 따른 ‘소멸시효 시작 시기’ 관건 부마항쟁에 대한 조직적 손해배상소송이 처음으로 제기돼 그동안 피해자와 유족들이 요구했던 진상조사와 재평가로 이어질지 주목된다. 부마항쟁 피해자 21명이 부산지방법원과 창원지방법원에 오는 21일까지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할 예정이라고 부마민주항쟁기념재단이 13일 밝혔다. 그동안 일부 항쟁 관련자들이 개별적으로 소송을 진행한 적은 있지만 이렇게 많은 관련자가 동시에 조직적으로 추진한 것은 처음이다. 재단 측은 “이번 소송 제기는 부마 재단이 준비한 관련자들에 대한 법률구조 활동 첫 사업”이라면서 “변영철·박미혜 변호사 등 부산·창원 자문변호인 6명을 법률대리인으로 선임해 진행한다”고 말했다. 부마민주항쟁과 관련해 구금되거나 피해를 본 사람은 1500명이 훨씬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현재까지 부마진상규명위원회에 의해 관련자로 인정된 이는 230명 남짓에 불과하다. 이들은 대부분 긴급조치 9호 위반이나 소요죄 또는 계엄법 위반으로 옥고를 치르거나 구류 처분을 받았다. 고호석 재단 상임이사는 “구금 기간은 짧지만 그동안 당한 혹독한 폭행과 고문 그리고 이후 40년간 받은 사회경제적 피해는 다른 사건 피해자들에 못지않다”면서 “당연히 그에 상응하는 보상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최근 부마항쟁 피해자 손해배상소송과 관련해 부산지법과 동부지원에서 진행된 1심 판결 결론이 엇갈렸다. 지난 5월 초 부산지법 민사 6부는 피해자들의 소송을 기각했고, 이어 한 달 뒤에 이뤄진 동부지원 민사 2부 판결은 국가가 2000만원을 피해자에게 배상하라고 했다. 두 재판부가 국가배상 소멸시효 시작 시기를 달리 보면서 발생했다. 재단 관계자는 “동부지원 판결은 원고 자신에 대한 부마항쟁 진상규명 및 관련자명예회복심의위원회의 진실규명결정일인 2015년 10월 26일을 소멸시효의 기산점으로 보고 원고 청구를 인용한 것으로 환영한다”고 말했다. 1979년 10월 16일부터 20일까지 유신 독재에 맞서 일어난 부마항쟁은 4·19혁명, 5·18광주민주화운동, 6·10항쟁과 함께 4대 민주화운동으로 꼽힌다. 학생들이 선도하고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해 박정희 정권의 몰락을 이끌었는데도 전두환 시대가 이어져 독재의 사슬을 끊지 못했다는 이유로 진정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부산 김정한 기자 jhkim@seoul.co.kr
  • “아버지 머리만 냉동”…美 유족, 냉동인간 회사 상대 소송

    “아버지 머리만 냉동”…美 유족, 냉동인간 회사 상대 소송

    세계적인 화제와 논란을 부른 인체 냉동보존 서비스를 놓고 소송이 진행 중이다. 지난 11일(현지시간) 미국 USA투데이 등 현지언론은 몬타나 출신의 커트 필그램(57)이 알코르 생명연장재단을 상대로 100만 달러의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고 보도했다. 이번 소송에 얽힌 사연은 지난 2015년 4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커트는 아버지인 로렌스 필그램이 90세를 일기로 작고한 지 한달 후에서야 화장한 유골 상자를 받았다. 충격적인 것은 시신의 머리 부분만 제거된 채 화장됐다는 사실. 이는 알코르 생명연장재단과 생전 로렌스가 맺은 계약과 관계가 있다. 과거 국내에서도 보도돼 큰 화제가 된 알코르 생명연장재단은 1972년부터 인체 냉동보존 서비스를 해주는 세계 최대 규모의 회사다. ‘극저온학’(cryogenics)이라 불리는 인체냉동보존술을 이용해 시신이나 신체 일부를 냉동하는데 먼 미래에 첨단과학으로 다시 사람을 살려내는 것이 목적이다. 회사 측은 계약자가 죽음에 임박하면 교통수단을 동원해 신속하게 재단으로 옮길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숨진 로렌스도 그중 한 명이었다. 결과적으로 로렌스는 머리만 냉동보존되고 나머지 시신은 화장된 것이다. 이같은 사실을 알게된 커트는 분노했다. 그는 "회사 측이 아버지의 머리만 제거한 채 화장해 집으로 보냈다"면서 "극심한 정신적 고통에 대한 배상과 공식적인 사과를 원한다"고 밝혔다. 이어 "아버지의 머리를 돌려주면 화장해 몬타나 가족농장에 뿌릴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에대해 알코르 생명연장재단 측의 입장은 단호했다. 회사 측 변호사는 "로렌스는 지난 1990년 67세 나이에 우리 회사와 계약했으며 문서대로 이행해 문제가 없다"면서 "계약이 마음에 들지않는다며 문제제기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반박했다. 보도에 따르면 로렌스는 알코르 생명연장재단의 135번째 고객으로 12만 달러에 계약을 맺은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알코르 생명연장재단에는 불치병에 걸려 죽기 직전에 냉동을 택한 월트 디즈니와 메이저리그의 전설적인 타자 테드 윌리엄스 등 100명이 넘는 환자가 냉동 보존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죽기 직전의 사람을 강제로 죽인 것과 같다"는 비판론자들의 주장도 거세 이에대한 윤리적 논쟁도 뜨겁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올 1분기 저소득층 소득 0.9% 늘었다

    올 1분기 저소득층 소득 0.9% 늘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10일 그동안 통계청 가계동향조사에서 빠졌던 1인 가구를 조사 대상에 넣어 올 1분기 가계동향을 재조사한 결과, 소득이 가장 낮은 하위 20%(1분위) 가구의 소득이 1년 전보다 0.9%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앞서 2인 이상 가구 대상으로 조사한 통계청의 올 1분기 가계동향조사에선 소득 1분위 가구의 소득이 전년 동기 대비 2.5% 줄어든 것과 사뭇 다른 결과다. 같은 조사 방식으로 진행했으며 1인 가구를 조사 대상에 포함했을 뿐인데 저소득층의 소득 증감률에서 차이를 보인 것이다. 가계동향조사는 소득의 양극화를 보여주는 통계로, 통계청은 그동안 2인 이상 가구를 기준으로 한 통계만 발표해 왔다. 보건사회연구원은 “올 1분기 소득 1분위 가구의 소득이 전년 동기에 비해 소폭이지만 증가한 것으로 분석됐다”면서 “그러나 여전히 시장소득 측면에서는 취약하다”고 지적했다. 통계청 조사에서 1분위 경상소득은 125만 4000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7% 감소했는데, 특히 근로소득이 14.5%나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1인 가구를 포함한 보건사회연구원 조사에선 1분위 경상소득이 65만 7000원으로 1년 전보다 2.5% 증가했으며, 근로소득은 7.7% 올랐다. 반면 사업소득은 13.9%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소득 1분위와 고소득층인 소득 5분위의 월평균 소득 격차는 통계청 조사의 경우 867만원가량 벌어졌고, 보건사회연구원 조사에선 837만원가량 차이를 보여 격차가 줄었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AB6IX, V라이브서 첫 1위 소감 “다시 한번 에비뉴 소중함 알았다”

    AB6IX, V라이브서 첫 1위 소감 “다시 한번 에비뉴 소중함 알았다”

    그룹 AB6IX(이대휘, 박우진, 임영민, 김동현, 전웅)가 데뷔 후 첫 1위 소감을 전했다. AB6IX는 4일 방송된 SBS MTV ‘더쇼’에서 함께 1위 후보에 오른 CLC와 러블리즈를 제치고 데뷔곡 ‘브리드’(BREATHE)로 1위 트로피를 안았다. AB6IX는 방송 후 V라이브 채널을 통해 팬들에게 음악 방송 첫 1위 수상에 대한 감사 인사를 남겼다. 이대휘가 “아까 수상소감 시간도 너무 짧고 팬분들과 얘기를 나눌 시간이 없어서 V라이브를 켜게 됐다”고 말하자 멤버들은 모두 함께 고개를 숙여 감사 인사를 했다. 임영민은 “모든 건 에비뉴(팬덤명)가 만들어준 것이다. 오늘은 너무 감격스러운 날이다”라고 덧붙였다. 박우진은 “AB6IX로서 1등을 하게 돼서 너무 영광이었다. 너무 신났는데 여러분께 진심을 전하고자 마음을 가라앉혔다”고 말한 뒤 환호성을 지르며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김동현은 “다시 한번 우리 에비뉴의 소중함을 알았다. 저희 에비식스가 더더더 잘하겠다”고 말했다. 박우진인 전웅을 가리키며 “아까 웅이형을 살짝 봤는데 (1위 트로피를) 받는 순간 눈물이 맺혀 있었다”라고 말했다. 전웅은 “우진이가 옆에서 토닥토닥해줘서 더 울뻔했다”며 웃었다. 한편 지난달 22일 데뷔 앨범 ‘비:컴플리트’(B:COMPLETE)를 발매하고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AB6IX는 다음달 13~14일 서울 팬미팅을 시작으로 아시아 6개 도시를 도는 첫 팬미팅에 나선다. 이정수 기자 tintin@seoul.co.kr
  • WTO 패소한 日 “새달 韓수산물 검역 강화”

    후쿠시마산 수입규제 보복 조치인 듯 대일수출 타격 우려… 국내 점검 강화 일본 후생노동성은 30일 “다음달 1일부터 한국에서 수입하는 광어와 냉장조갯살 등에 대한 모니터링 검사를 강화한다”고 밝혔다. 자국 내 식중독 사고 예방을 이유로 들었지만, 당장 한국 수산물에 특별한 이상이 발생했던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한국의 후쿠시마산 수산물 등 수입 금지에 대한 대응조치 성격일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광어에 대한 쿠도아 기생충 검사는 현행 전체 수입신고 물량의 20%에서 40%로, 생식용 냉장조갯살과 성게에 대한 장염비브리오균 검사는 10%에서 20%로 각각 2배 확대한다. 필요에 따라 모든 물량에 대한 100% 전수검사도 실시한다. 산케이신문은 “특정국의 수산물 규제를 강화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라면서 “한국이 후쿠시마 등 일본 8개 현의 수산물 수입규제를 계속하고 있는 데 따른 사실상 대응조치로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에 대해 후생노동성은 “최근 국내에서 식중독이 발생하고 있기 때문에 여름철을 앞두고 국민 건강을 보호한다는 차원에서 실시하는 것으로, 한국에 대한 대응조치는 아니다”라고 밝혔다. 앞서 지난달 11일 세계무역기구(WTO) 상소기구(최고심판기구)는 일본이 제기한 한국 정부의 후쿠시마 주변산 수산물 수입금지 관련 제소 사건에서 1심 격인 분쟁해결기구(DSB) 패널의 판정을 뒤집고 한국의 처분이 타당하다고 판정했다. 그동안 일본은 ‘WTO의 개혁 필요성’까지 거론하며 강력하게 반발해 왔다. 한국 정부는 이날 오후 대책회의를 열었다. 일본의 진짜 의도가 무엇인지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한편 일단은 일본이 여름철 수산물 안전성 확보를 한국산 검역 강화의 명분으로 내세운 만큼 광어 양식장 등 관리감독 강화와 수산물 안전점검 등에 나서기로 했다. 하지만 일본의 조치가 한국에 대한 보복적 성격이라면 앞으로 국내 안전 점검을 강화하더라도 대일 수산물 수출에 타격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도쿄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서울 김동현 기자 moses@seoul.co.kr
  • “연가 사이 토요일은 휴가 아냐… 경찰은 비상소집 응해야”

    연가와 연가 사이 토요일에 쉬고 있던 해양경찰관이 대형 사고로 인한 비상소집에도 불구하고 늑장 복귀했다면 징계가 정당하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연가와 달리 토요일에는 경찰관으로서 비상소집에 응할 의무가 있다는 판단이다. 28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5부(부장 박양준)는 A씨가 해양경찰청장을 상대로 낸 견책 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 해경 본청 간부로 일하던 A씨는 금요일인 2017년 12월 1일과 월요일인 12월 4일 이틀간 연차 승인을 받았다. 그런데 토요일인 12월 2일 오전 6시쯤 15명의 사망자를 낸 ‘인천 영흥도 앞바다 낚싯배 충돌 사고’가 발생했다. 해경은 오전 6시 27분 A씨 등 해경 195명에게 비상소집을 내렸지만 A씨는 12시간이 지나 해경 상황센터에 복귀했다. 해경은 A씨의 늦은 복귀가 국가공무원법상 성실 의무와 명령 복종 의무 위반에 해당한다고 판단해 견책 처분을 내렸다. A씨는 연가 사이 토요일도 연가에 해당하므로 비상소집에 응할 의무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A씨는 “10일 이상의 연가 사용을 보장하고 있는 국가공무원법 복무 규정 등에 비춰 보면 연가 사이 토요일도 연가에 해당한다고 봐야 한다”면서 “이와 달리 보면 공무원들은 연가 중에도 관내에서 대기를 해야 한다는 불합리한 결론이 되고, 10일 이상의 연속된 연가 사용도 불가능하게 돼 직장·가정의 양립이 위태로워진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국가공무원 복무 규정의 다른 조항에 주목했다. ‘휴가기간 중의 토요일 등은 그 휴가 일수에 산입하지 않는다’, ‘공무원은 근무시간이 아닌 때에도 항상 소재 파악이 가능하도록 연락 체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부분이었다. 재판부는 “경찰공무원이 비상소집에 응할 필요성은 상당수 경찰공무원이 근무하지 않는 토요일에 발생한 비상사태에 더욱 크다”면서 “연가에 연속된 토요일에 비상소집 응소 의무를 부과한다고 해서 반드시 불합리하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유영재 기자 young@seoul.co.kr
  • 대형재난·테러 대비도 한다…27일부터 첫 을지태극연습

    대형재난·테러 대비도 한다…27일부터 첫 을지태극연습

    대형 재난이나 테러, 전시 등 국가 위기상황 대응 능력을 종합적으로 점검하는 을지태극연습이 오는 27~30일까지 나흘간 전국에서 실시된다고 행정안전부는 26일 밝혔다. 을지태극연습이란 한미 연합 군사연습 중단에 따라 정부 연습인 ‘을지연습’과 한국군 단독 훈련인 ‘태극연습’을 합쳐 올해 처음 개최하는 것이다. 시·군·구 이상 행정기관과 공공기관 등 4000여곳에서 48만여명이 참여한다. 27~28일까지는 국가위기 대응연습을, 28~30일에는 전시대비연습이 진행된다. 국가위기 대응연습은 대형 재난이나 테러 등 비군사적 요인도 국가 안보의 위협으로 보는 ‘포괄안보’ 개념을 적용한 것이다. 대형 재난 등이 터졌을 때 국가의 위기관리 능력을 점검하고자 마련됐다. 지진 등 전국적인 복합재난이 발생하는 상황을 가정해 위기대응조직 가동 훈련과 상황판단회의, 민·관·군 합동 훈련이 이뤄진다. 국무총리 주재로 ‘국가위기관리 상황평가회의’도 연다. 중앙재난안전상황실 등 지휘통제기구와 훈련 현장 사이에 신속하고 정확한 의사소통이 이뤄지도록 재난안전 통신망과 위성방송(SNG) 차량, 무인비행선, 드론 등 첨단 장비도 활용한다. 전시대비 훈련은 기존 한미연합훈련인 을지프리덤가디언(UFG) 폐지로 미국이 참가하지 않고 한국군 단독으로 군사훈련을 하는 것이다. 전시작전통제권 환수에 대비하면서 주변 안보환경에 영향받지 않는 연습체계를 마련하는 게 목적이다. 통합방위사태 선포 절차 훈련, 공무원 불시 비상소집훈련, 전시직제 편성훈련 등 초기 대응 절차를 숙지하고 사이버테러나 위성항법장치(GPS) 교란 등 사이버 위협에도 대응하는 훈련을 진행한다. 비상상황에서 주민이 대피할 수 있도록 행동 요령을 실습하는 한편 방독면 착용법이나 심폐소생술 등 교육도 이뤄진다. 오경진 기자 oh3@seoul.co.kr
  • 봉준호 감독 ‘기생충’ 황금종려상 수상..영화 ‘기생충’ 줄거리는? [종합]

    봉준호 감독 ‘기생충’ 황금종려상 수상..영화 ‘기생충’ 줄거리는? [종합]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제72회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25일(현지시간)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은 올해 칸 영화제에 초청된 쿠엔틴 타란티노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 장 피에르·뤼크 다르덴의 ‘영 아메드’,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페인 앤 글로리’, 셀린 시아마의 ‘포트레이트 오브 어 레이디 온 파이어’ 등 21개 작품 가운데 최고 작품상을 받았다. 봉준호 감독은 “프랑스어 연설은 준비 못 했지만 언제나 프랑스 영화를 보면서 영감을 받았다”며 “‘기생충’이라는 영화는 놀라운 모험이었다. 그 작업을 가능하게 해준 것은 저와 함께해준 아티스트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위대한 배우들이 없었다면 한 장면도 찍을 수 없었을 것이다. 배우들께 감사드린다”고 수상소감을 전했다. 봉준호 감독은 이어 “이 자리에 함께해준 가장 위대한 배우이자 저의 동반자 송강호의 소감을 듣고 싶다”고 말했다. 배우 송강호는 “인내심과 슬기로움, 열정을 가르쳐주신 존경하는 대한민국의 모든 배우께 이 영광을 바치겠다”고 소감을 전했다.한편, 영화 ‘기생충’은 전원 백수인 기택네 장남 기우가 박사장네 고액 과외 선생이 되면서 일어나는 예기치 못한 사건을 다루는 블랙 코미디다. 가난한 가족과 부자 가족 이야기를 통해 보편적 현상인 빈부격차의 문제를 다룬다. 사진=뉴스1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광명시자원봉사센터, ‘이달의 신규봉사왕’에 한국카스연합회 이남연씨 선정

    광명시자원봉사센터, ‘이달의 신규봉사왕’에 한국카스연합회 이남연씨 선정

    경기 광명시자원봉사센터는 ‘이달의 신규봉사왕’에 이남연씨를 선정했다. 광명시자원봉사센터는 지난 24일 광명시청에서 한국카스연합회에서 취약계층 생계구호와 배식봉사 등 다양한 봉사활동을 실천한 이남연씨를 이달의 봉사왕으로 뽑아 시상했다. 이남연씨는 “이제 막 봉사의 걸음마 수준인데 이렇게 큰 상을 줘 매우 고맙다”며 “봉사는 저에게 그동안 살아온 인생을 되돌아보게 하는 소중한 시간이었고, 앞으로도 이 소중한 시간을 지역사회와 함께 공유하고 싶다”고 수상소감을 밝혔다. 광명시자원봉사센터는 2019년 신규 사업으로 ‘이달의 신규봉사왕’을 매월 선정하고 있다. 시민들에게 1365자원봉사 포털가입과 활동실적 관리를 독려하고, 신규봉사자 발굴을 통해 자원봉사 활성화를 도모하려는 뜻에서다. ‘이달의 신규봉사왕’은 2018년 1월 1일 이후 1365자원봉사포털 가입자 중 매달 최장시간 자원봉사자 10인 중 관내활동과 지속성·활동내용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선발한다. 문의 광명시자원봉사센터(2687-1365,1465). 이명선 기자 mslee@seoul.co.kr
  • [판깨스트] ‘영초언니’도 국가소송 패소… ‘양승태 대법원’이 막은 긴급조치 배상

    [판깨스트] ‘영초언니’도 국가소송 패소… ‘양승태 대법원’이 막은 긴급조치 배상

    ‘영초언니는 제게 담배를 처음 소개해준 나쁜 언니였고, 저를 이 사회의 모순에 눈뜨게 해준 사회적 스승이었고, 행동하는 양심이 어떤 것인가를 몸소 보여준 지식인의 모델이었습니다. 천영초 선배는 긴급조치 시대 대학가의 상징적인 인물 중 하나였고 주위 사람들에게 깊은 영향을 준 사람이지만, 이제는 완벽하게 잊혀버렸습니다. 아무도 그녀의 역사를 기록해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2017년 5월 출간된 책 ‘영초언니’의 주인공 천영초씨와 책을 쓴 서명숙 제주올래 이사장 등이 ‘긴급조치 9호’로 입은 피해를 배상해 달라며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냈지만 패소했습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대법원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의 긴급조치 발령은 ‘고도의 정치적 행위’이기 때문에 불법행위가 아니라고 판단한 이후 긴급조치 피해자들이 국가로부터 배상받을 길이 막혀있기 때문입니다. 24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0부(부장 문혜정)는 지난 17일 천씨와 서씨, 안희옥씨와 가족, 고 유구영씨의 가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소송에서 “원고들의 청구를 모두 기각한다”고 판결했습니다. ●‘긴급조치 9호 위반’ 천영초·서명숙…국가배상 소송 패소 천씨와 서씨는 대학생들의 시위를 주도하는 유인물을 작성하고 유포했다는 이유로 1979년 4월 15일 영장없이 경찰에 체포돼 구금됐습니다. 그해 5월 16일 구속영장이 집행됐고 재판에 넘겨져 9월 1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다가 12월에서야 구속집행정지 결정에 따라 석방됐습니다. 이들과 같은 날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체포·구금된 안씨는 재판에 넘겨지지 않고 석방됐고, 유씨는 1979년 3월 20일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구속됐다가 12월 석방됐습니다.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지만 1980년 긴급조치가 해제되면서 항소심에서 모두 면소 판결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이후 서울지역 노동조합협의회 정책실장과 민주노총 정책기획실 부국장 등을 지낸 유씨는 1996년 간암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재판에 넘겨졌던 인사들과 가족은 2013~2014년 서울고법에 형사보상을 청구해 270여일의 구금에 대한 보상을 받았고, 민주화운동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에서 생활지원금을 지급받았습니다. 국가는 천씨와 안씨가 민주화보상법에 따른 보상결정에 동의하고 보상금을 받아 재판상 화해의 효력이 발생했기 때문에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낼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지난해 헌법재판소가 “민주화보상법에는 정신적 손해에 대한 배상이 포함돼 있지 않다”며 국가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고 판단한 만큼 보상금을 받았어도 정신적 위자료에 대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는 판결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이 긴급조치 피해자라는 점이 배상의 길을 막았습니다. 이들은 2013년 소송을 내며 “당시 유신헌법에 규정된 긴급조치권의 목적과 발동요건을 충족하지 못했음에도 위헌·무효인 긴급조치 9호를 발령했으니 대통령의 긴급조치 9호 발령행위 자체가 공무원의 고의 또는 과실에 의한 불법행위에 해당한다”고 주장했습니다. 1심에서 유죄 판결을 선고한 것도 애초부터 위헌·무효인 긴급조치 9호에 의한 위법한 공권력 행사였고, 수사기관이 이들을 형사소송법상 구금기간을 넘어 체포·구금하고 가족 및 변호인의 접견을 일체 금지하고 고문 등 가혹행위를 한 것 역시 공무원의 고의나 과실에 의한 불법행위였다고 주장했죠. 그러나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대법원(2010년)과 헌법재판소(2013년)가 긴급조치가 유신헌법과 현행 헌법에 위반돼 무효라고 판단한 뒤 많은 과거사 피해자들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고, 법원에서도 잇따라 배상판결이 나왔습니다. 그러나 법원에서 배상을 인정하는 부분은 주로 수사·재판과정에서 고문 등의 가혹행위가 있었다는 점에서 불법행위를 인정하는 경우였고, 긴급조치 발령 자체에 대해선 불법행위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2015년 3월 26일 선고된 대법원 판결 때문입니다. 양 전 대법원장 시절인 2015년 3월 26일 대법원은 대통령의 긴급조치 발령행위가 고도의 정치적 행위인 만큼 불법행위가 아니라며 국민 개인의 국가배상청구권을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긴급조치가 사후적으로 법원에서 위헌·무효로 선언됐지만 당시에는 유효한 법규였던 만큼 공무원들의 직무행위가 곧바로 불법행위가 되는 것은 아니라 ●양승태 대법원 “긴급조치 발동은 고도의 정치적 행위” 는 겁니다. 민주화보상법에 따른 보상금을 받았더라도 정신적 피해에 대한 보상을 받을 수 있다고 결정한 지난해 8월 30일 헌법재판소 결정에도 그러한 대법원 판결을 취소할 순 없다고 명시돼 있습니다. 천씨 등에 대한 국가의 배상책임을 인정하지 않은 재판부도 이러한 대법원 판단을 따랐습니다. 영장없이 체포·구금돼 1심에서 유죄판결을 선고받아 복역한 자체는 긴급조치와 관계 없이 불법행위가 맞지만, 이미 석방된 뒤 30년여가 흐른 뒤에야 소송을 제기해 소멸시효가 지났다고도 판단됐습니다. 다만 최근 법원에서는 ‘양승태 대법원’의 판단에 반하는 하급심 판결이 다시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7부(부장 임정엽)는 지난달 19일 긴급조치 1호 위반 혐의로 체포·구금됐던 김모씨의 가족들이 낸 소송과 정모씨와 가족들이 낸 소송에서 각각 원고 승소 판결을 했습니다. 재판부는 “긴급조치 1호 발령행위 자체가 불법행위에 해당한다”면서 “긴급조치 위반으로 수사와 재판을 받은 경우에는 수사 및 재판과정에서 불법구금 또는 가혹행위를 당하지 않았어도 국가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앞서 2016년 당시 광주지법 민사합의13부(부장 마은혁)와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1부(부장 김기영)도 헌법상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해야 하는 대통령이 긴급조치를 발령한 것이 불법이라며 국가의 배상책임을 인정하는 판단을 했습니다. 항소심에서 1심 판결이 파기돼 상고심에서 국가배상의 책임이 없다는 결론으로 확정됐지만요. 최근 서울중앙지법에서 나온 판결도 같은 내용의 판단이 담겼지만 지난해 헌법재판소에서 당시 대법원 판결을 뒤집을 수 없다고 판단한 뒤 나온 첫번째 하급심 판결입니다. 긴급조치 피해자들의 국가 배상의 길을 열어달라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지난 16일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주최로 국회에서 ‘긴급조치 피해자 원상회복 방안 토론회’도 열렸습니다. 이 자리에서 박 의원은 “긴급조치 위헌성이 확인됐지만 피해자에 대한 피해보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고, 지난해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기간 중의 사법농단 의혹사건 피해자 구제를 위한 특별법’과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기간 중의 사법농단 의혹사건 재판을 위한 특별형사절차에 관한 법’을 대표발의하기도 했습니다. 1979년 당시 첫 번째 공판에서 천씨는 법정에 들어서자마자 “독재정권 물러가라! 민주주의 쟁취하자!”며 목청을 높였다고 합니다. 전원 유죄 판결을 받아 천씨는 징역 2년 6개월과 자격정지 2년 6개월, 서씨는 징역 1년과 자격정지 1년을 선고받은 그날엔 방청객들의 탄식과 함께 누군가가 법정에서 “사법부가 역사의 죄인이다!”라고 소리쳤다고 합니다. 서 이사장의 책 ‘영초언니’ 속 기록입니다. 이들의 싸움과 외침이 아직도 끝나지 않은 것 같습니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유명희 통상본부장 “일본 WTO 수산물 판정 승복해야”

    유명희 통상본부장 “일본 WTO 수산물 판정 승복해야”

    유명희 통상교섭본부장이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각료이사회에서 “‘세계무역기구(WTO) 일본산 수입식품 분쟁’ 결과에 대한 일본 측의 반복적이고 지속적인 문제제기는 부당하다”며 일본에 직격탄을 날렸다. 24일 산업통상자원부은 22∼23일 파리 OECD 본부에서 WTO 비공식 통상장관회의를 겸해 열린 OECD 각료이사회에 부의장국 통상장관 자격으로 참석한 유 본부장이 이 같이 발언했다고 밝혔다. 유 본부장은 “적법절차를 거쳐 최종 판결이 내려진 사안을 WTO 상소기구 개혁과 연계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며 “일본 측은 상소기구의 최종 판정결과를 존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달 11일 WTO 상소기구는 한국 정부의 일본 후쿠시마산 수산물 수입금지 조치가 타당하다고 판정을 내렸으나 일본은 승복하지 않고 오히려 WTO 상소기구를 개혁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WTO 비공식 통상장관회의에서는 수산보조금 협상 타결 방안과 2020년 6월 예정된 제12차 WTO 각료회의(MC-12)에서의 성과도출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유 본부장은 WTO 개혁방안과 관련, 투명성을 강화하고 협정 가능한 분야를 발굴해 WTO 기능을 정상화하자고 촉구했다. 유 본부장은 이번 회의에 참가한 에르네스투 아라우주 브라질 외교장관, 펙잔 터키 무역부 장관 등과도 면담을 가졌다. 특히 브라질과는 양국 수교 60주년을 경축하고 한·메르코수르 자유무역협정(FTA) 조기 타결 등을 당부했다. 세종 김동현 기자 moses@seoul.co.kr
  • 김경 서울시의원, ‘2019 자랑스런 대한민국 시민 大賞’ 수상

    김경 서울시의원, ‘2019 자랑스런 대한민국 시민 大賞’ 수상

    서울특별시의회 교육위원회 김경 부위원장(비례대표)이 지난 23일 백범김구기념관에서 열린 ‘2019 자랑스런 대한민국 시민 대상’ 수상식에서 영예의 ‘2019 교육발전공로대상’을 수여했다. 대한민국신문기자협회와 언론인연합협의회가 공동으로 주최하는 ‘자랑스런 대한민국 시민대상’은 정치‧사회‧경제‧문화‧환경‧예술‧스포츠 등 사회 각 분야에 걸쳐 수상자를 선정하고 있으며, 주최 측은 대한민국의 국가 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도록 매년 시상식을 개최하고 있다. 김 의원이 수상한 ‘의정, 행정, 의회, 공직’ 부문에서는 심재권 국회의원과 유승희 국회의원을 포함해 기초단체장, 광역의원, 기초의원 등 총 21명이 수상했으며, 서울시의회에서는 김 의원과 성중기 의원이 각각 교육발전과 교통혁신 공로를 인정받아 수상을 하게 됐다. 김 의원은 현재 제10대 서울시의회 교육위원회 부위원장으로서 서울시 전역의 교육발전과 미래교육에 큰 기여를 하고 있다. 지난 3월에는 ‘사물인터넷 기반 교육환경 조성 조례’를 제정해 학교에 사물인터넷 구현에 필요한 교육환경을 조성하고 이를 지원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고, 최근에는 교육청 관계자와 함께 메이커교육 등 서울시의 혁신 미래교육을 위한 정책 연구에 몰입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 의원은 수상소감을 통해 “현직 의원으로서 이런 상을 받아 책임감이 무겁다.”라며, “앞으로도 지금처럼 학생들을 위한 교육이 제대로 이뤄질 수 있도록 노력하고, 서울시교육이 우리나라의 ‘혁신 미래교육’을 선도해나갈 수 있도록 더욱 활발한 의정 활동을 펼쳐 나가겠다.”밝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생물다양성·습지보호 공로” 윤순영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 대통령 표창

    “생물다양성·습지보호 공로” 윤순영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 대통령 표창

    사단법인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윤순영 이사장이 생물다양성 및 습지보호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국가에서 수여하는 최고의 영예를 안았다. 윤 이사장은 22일 경남 창녕군 우포늪생태관 일대에서 열린 ‘2019년 생물다양성의 날 및 세계 습지의 날’ 공동 기념행사에서 대통령 표창을 수상했다고 23일 밝혔다. ‘세계 생물다양성의 날’은 1993년 유엔 총회에서 생물다양성 협약 발효일로 제정하면서 시작됐다. 올해로 26주년이다. 우리나라는 2010년부터 정부 차원에서 기념식을 개최하고 있다. 올해는 격년으로 습지의 날과 공동으로 기념하는 해다. 윤 이사장은 1992년 10월 김포시 홍도평야에서 7마리의 재두루미를 발견한 이후 현재까지 김포시 재두루미 지킴이로 활동해오고 있다. 홍도평야 재두루미 먹이주기를 해마다 진행해오고 있다. 또 야생조류 구조 활동과 야생조류 서식지 밀렵감시, 지역 하천 및 습지 관리 보호 활동 등을 추진해 왔다. 특히 2006년 4월 한강하구 습지(장항~산남~시암리~유도~철산리) 60.668㎢(1835만평)에 대해 습지보호지역 지정 계획이 발표된 바 있다. 이때 윤 이사장이 부동산 가치 하락을 우려하는 반대 토착 주민들을 설득해 해당지역 습지 지정을 관철하는 데 기여했다. 2008년에는 제10차 세계 람사르협약 당사국총회에 초청돼 재두루미 사진을 전시했다. 한강하구와 김포지역의 생물학적 가치를 국내외에 알렸고, 2009년 대한민국 국회 초청 재두루미 사진전을 통해 국회차원의 환경의식 재고를 요청했다. 현재 한겨레신문 환경생태웹진 ‘물·바람·숲’ 필진으로 자연생태 사진과 글을 기고하고 있다. 다양한 사진전과 새를 주제로 한 공연을 진행하는 등 활발한 활동으로 한강하구습지 중요성을 지역 주민들에게 알리고 있다. 김포문화상과 환경의 날 경기도지사상, 김포시 환경대상, 경인지방환경청장 표창, 환경부장관상, 국무총리 표창 등을 수상한 바 있다. 윤 이사장은 수상소감에서 “김포는 한반도 중심에 위치해 철새들에게 이동 길목을 제공하고 있어 매우 중요한 중간 기착지이자 서식지로서 철새들의 생명줄같은 지역”이라고 강조하고 “한강하구에 대한 국가 차원의 보전방안 수립이 절실하다”고 설명했다. 이명선 기자 mslee@seoul.co.kr
  • [과학계는 지금] 빛으로 수술 상처 봉합 ‘바이오 글루’

    중국 저장대 의대, 화동과학기술대, 국립 정형외과·재생의학그룹(CORMed), 저장성 재생의학·조직공학연구소 공동연구팀은 빛을 이용해 수술 부위를 빠르고 손쉽게 접합할 수 있는 ‘바이오 글루’ 기술을 개발하고 기초과학 및 공학분야 국제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 15일자에 발표했다. 연구팀이 개발한 바이오 글루는 동물 세포 단백질 구조와 비슷한 하이드로겔 형태로 생체 독성이 없고 자외선을 쐬여주면 굳는 물질이다. 연구팀은 실제로 돼지 3마리의 심장동맥(관상동맥)과 심장, 간에 4~6㎜ 크기의 상처를 낸 뒤 바이오 글루를 사용해 수술한 결과 상처가 빠르게 봉합되는 것을 관찰했다. 바이오 글루로 봉합 수술을 받은 돼지들은 봉합사로 상처 부위를 꿰맨 돼지들과 마찬가지로 수술 2주 뒤에도 생체 이상소견이 발견되지 않았다. 유용하 기자 edmondy@seoul.co.kr
  • [씨줄날줄] 세계유산, 한국의 서원/이순녀 논설위원

    [씨줄날줄] 세계유산, 한국의 서원/이순녀 논설위원

    1543년(중종 38) 경상도 풍기 군수 주세붕은 성리학의 선구자인 고려말 학자 안향이 살았던 백운동에 그의 영정을 모신 사묘(祠廟)를 세워 제사를 지내고, 양반 자제들을 모아 유학을 가르쳤다. 중국 송나라 주자가 세운 백록동서원을 벤치마킹한 조선 최초의 서원, 백운동서원이다. 사학인 서원을 부흥시킨 건 퇴계 이황이다. 풍기 군수로 부임한 이황은 1549년(명종 4) 조정에 편액과 토지, 책과 노비 하사를 청하는 상소를 올렸다. 명종은 이듬해 ‘무너진 교학을 다시 이어 닦게 하라’는 뜻의 소수서원(紹修書院)이란 친필 현판을 내렸다. 면세, 면역 등의 특권을 부여받은 사액서원의 시초다. 교육과 제사 기능을 겸비한 서원은 인재 양성과 유교적 향촌 질서 유지, 정치적 공론 형성 등에 크게 기여했다. 반면 파벌과 당쟁을 부추기고, 서원 소유 토지의 증가로 국고 수입이 줄어드는 등 부작용도 적지 않았다. 명종대에 17곳이었던 서원은 18세기에는 700여곳에 달했다. 공립 학교인 향교가 붕괴되고, 서원의 폐단이 갈수록 극심해지자 1864년 흥선대원군은 고종 즉위 직후 소수서원, 도산서원 등 47곳만 남기고 전면 철폐를 단행했다. 이렇게 살아남은 서원 중 9곳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곧 등재될 예정이다. 세계유산위원회 자문기구인 이코모스(ICOMOS·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가 최근 ‘한국의 서원’에 대해 등재 권고 판정을 내렸다. 등재 권고를 받은 유산은 이변이 없는 한 등재된 전례를 볼 때 오는 6월 30일 아제르바이잔 바쿠에서 개막하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등재가 확실시된다. ‘한국의 서원’은 영주 소수서원, 경주 옥산서원, 안동 도산서원과 병산서원, 달성 도동서원, 함양 남계서원, 정읍 무성서원, 장성 필암서원, 논산 돈암서원 등이다. 성리학의 전파를 이끌고, 정형성을 갖춘 건축문화를 이룩했다는 점이 세계유산 필수 조건인 ‘탁월한 보편적 가치’로 제시됐다는 게 문화재청의 설명이다. 한국의 서원은 세계유산 등재에서 한 차례 실패했다. 2016년 이코모스가 전문가 패널 심사에서 서원 주변 경관이 문화재 구역에 포함되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하며 ‘반려’ 판정을 내려 등재 신청을 자진 철회했었다. 당시 이코모스는 한국의 서원이 지닌 독창성과 연속유산으로서의 연계성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고 평가했다. 문화재청은 이런 지적을 반영한 신청서를 다시 제출해 3년 만에 결실을 보게 됐다. 해당 서원이 위치한 지자체에선 벌써 관광특수를 기대하며 들뜬 분위기다. 폐단에 가려졌던 서원의 긍정적인 전통과 가치를 오롯이 되살려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유산으로 자리매김하길 바란다. cora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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