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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韓·日 가로질러 흥겨운 ‘전통놀이판’

    지난 85년 여름,일본 나고야 시내에 있는 사회체육센터로 매주 토요일마다 재일 한국인 2세들이 모여들었다.자녀들에게 한국 문화를 물려주자는 취지로 농악과 탈춤을 몸소 익히려는 이들이었다.선생이 따로 있을 리 없었다.한국에서 사물놀이를 배운 아마추어 강사나 비디오 자료를 보며 어설픈 몸짓과 장단으로 사물놀이를 흉내내는 데 만족해야했다. 그러길 10년.‘놀이판’이라 이름붙인 이들은 95년부터 한국의 노름마치 사물놀이와 여러 전통예술인들을 나고야로 초청해 해마다 3박4일씩 합숙훈련을 하며 제대로 된 전통문화를 배우기 시작했다.합숙 때 촬영한 비디오는 일년내내 훌륭한 교재로 활용됐다.그러는 사이 ‘놀이판’ 회원은 60여명으로 늘었고,그중 절반은 일본인이 차지했다.대한해협을 오가며 10년간 이어진 한국의 전통예술인과 재일교포 ‘놀이판’ 사람들의 우정은 지난해 8월 KBS 일요스페셜 ‘자이니치(在日)의 축제’로 국내에 소개됐다. 이들의 아름다운 인연이 광복절을 즈음해 서울 무대에서 한판 흥겨운 축제의 장으로 펼쳐진다.일본에서 20년을 갈고 닦은 ‘놀이판’의 첫 고국 무대인 ‘축제의 땅에서’는,이들을 가르친 한국 최고의 전통 예술꾼들이 함께 한다.노름마치 사물놀이를 비롯해 쇠잡이 김주홍,채상소고춤의 명인 김운태,통영굿의 지킴이 정영만,가객 장사익 등이 그들.모두 지난 10년간 수차례 일본을 오간 이들이다. 행사를 기획한 진옥섭씨는 “오래전부터 한국 공연을 꿈꿨던 놀이판 사람들의 소망이 마침내 현실로 이뤄지게 됐다.”면서 “20년간 배운 한국의 전통문화를 고국에 처음 공개하는 무대라는 점에서 매우 뜻깊은 행사가 될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예산이 여의치 않아 항공권은 놀이판 사람들이 각자 자비로 부담하고,한국 참가자들은 무보수로 출연하는 등 십시일반으로 꾸미는 소박한 무대여서 더욱 감동적이다.14일 오후6시 서울 한전아트센터.(02)396-0514.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 (10)한여름밤 공룡의 꿈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 (10)한여름밤 공룡의 꿈

    열대야다.뒤척이다가 밤을 새우기 일쑤다.이런 때는 그야말로 공룡을 주인공으로 한 ‘한여름 밤의 꿈’이 제격이다.갑자기 나타난 육식공룡,무지막지한 놈이 이빨을 턱,치켜세우고 잠자리를 굽어보며 혀를 날름거린다.생각만 해도 시원하지 않은가.그런 공룡을 실제로 만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8일 경남 고성에 공룡박물관 탄생 공룡이 ‘뜬 지’ 오래다.공룡영화의 고전인 영화 ‘쥐라기공원’은 공상소설은 물론 만화 패션 박물관 기념품과 애니메이션의 단골 소재가 됐다.이런 공룡 문화산업은 한반도 남단까지 밀려와 전남 해남 우항리의 공룡박물관을 낳았는가 하면,경남 고성 한려수도에도 세계 수준의 공룡박물관이 오는 8일 임시개장을 앞두고 있다.고성 땅으로 접어들면 타임머신을 탈 필요도 없이 공룡세계로 바로 들어갈 수 있다.아예 ‘공룡나라(The Land of Dinosaur Goseong)’라고 ‘공룡공화국’을 선포했다.중생대 백악기의 공룡 발자취가 남아 있는 하이면 덕명리 상족암 일대는 명실공히 ‘백악기 공원’에 걸맞은 곳이다. 군립공원으로 지정된 명승지 상족암,일명 상다리바위라 부르는 퇴적암지대는 마치 시루떡처럼 켜켜이 퇴적암이 층을 이루고 있다.그림 같은 사량도가 눈앞에 떠있고,율포만을 돌아가면 한려수도의 전형을 보여주듯 자란만(紫蘭灣)의 크고 작은 섬들이 공룡 신화와 더불어 나그네를 맞는다. 경북대의 양승영(지질학),임성규(고생물학) 등이 연구의 문을 연 이래 제법 세월이 흘렀다.연구자층과 애호가층이 넓어져 2006년에는 중국의 자공,일본의 후쿠이현,캐나다 로열티렐 공룡박물관이 모두 참여하는 공룡엑스포까지 열린다.가히 공룡 문화산업이 공룡화하는 느낌이다.중생대 지층은 육성층(陸成層)이라 화석이 드물다는 통설을 깨면서 해성층(海成層) 공룡화석이 속속 발견되고 있다.세계 학계에 보고된 해남 우항리,전남 보성의 대규모 공룡알과 알둥지,전남 화순의 육식공룡 발자국,여수시 사도 추도 낭도 등 도서지역에서 발견된 3500여점의 발자국,시화호와 통영시의 공룡알 등은 우리나라가 공룡의 보고임을 말해 주는 물증들이다. ●수많은 발자국으로 뒤덮인 고성화석지 하일면을 포함한 개천·영현·삼산·동해·마암·회화면 등지의 고성화석지는 수많은 공룡 발자국으로 어지럽다.심지어 옥천사가 자리잡은 연화산 도립공원 같은 내륙에도 공룡의 흔적이 있으니 상전벽해란 이를 두고 말함이렷다. 중생대에 거대한 호수가 있었다.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경상호수’쯤 되리라.이 물길은 일본까지 연결되어 하나의 호수를 형성했다.수많은 공룡이 잔잔한 물가를 거닐었을 것이다.당시의 파흔(波痕)이 굳어진 퇴적암을 보면 물결은 잔잔했다.호수 주변은 이질 평원퇴적층으로,공룡발자국 대부분이 이 암상에 찍혀 있다.기후는 건조한 가운데 건기와 우기가 반복되는 계절성이었을 것이다.걸어다닐 수 있을 정도로 얕고 경사가 완만한 호수였던 듯 물가를 또박또박 걸은 흔적뿐 아니라 수많은 공룡들에 의해 헝클어진 공란작용(dinoturbation)의 흔적까지 보인다.큰 놈은 발자국이 40∼50㎝에 이르니 그 크기가 짐작된다.날카로운 발톱을 보건대 더러 육식공룡도 있었지만,대부분 유순한 초식공룡이었음이 분명하다.익룡의 날카로운 발톱이 새겨진 게 우항리 것과 흡사한 발자국도 남아 있다.학계의 의견을 종합하면 공룡이 발자국을 남긴 과정은 다음의 세 단계로 정리된다. 가뭄 시기 가뭄에 물을 먹기 위해 호수 주변에 공룡이 출몰함. 오랜 시간 노출 석회질 토양화가 일어나면서 발자국이 찍힌 퇴적물이 굳어지는 고화현상이 진행됨. 홍수에 의한 범람 발자국이 찍힌 퇴적층이 매몰되면서 지층에 보존됨. 그 후로 수많은 세월이 흘러 발자국은 바위로 굳었다.호수는 바다로 바뀌었고 지각변동으로 퇴적암이 땅 위로 솟구쳤다.그러다 파도에 퇴적암이 한꺼풀씩 벗겨나가면서 드디어 발자국이 드러났다. ●공룡, 오랜 시간동안 완만하게 소멸 우리는 ‘호모사피엔스가 무엇인가.’하는 고민에 빠지지 않을 수 없다.‘오리진’을 쓴 리처드 리키와 로저 르윈의 ‘제6의 멸종’은 호모사피엔스가 결코 특권을 부여받지 않았음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지구를 온통 늪으로 몰아넣은 5대 멸종.수많은 생물체가 사라졌고,무수한 생물군이 새로 생겨났다.살아남은 우리는 억세게 운좋은 종 가운데 하나일 뿐,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뜻있는 많은 이들은 지금 인간들의 탐욕스러운 행동이 다시 한번 대멸절,즉 ‘제6의 멸종’을 부르고 있다고 경고한다. 우리는 1억 4000만년에 걸친 공룡의 육상지배를 종결지은 6500만년 전 백악기 말의 공룡 멸절사건을 기억해야 한다.공룡의 멸절이론도 운석충돌설 같은 외부충격설에서 벗어나고 있다.거대한 외부 충격으로 일시에 공룡이 사라진 게 아니라 오랜 시간동안 완만하게 소멸했다는 증거들이 속속 제시되고 있다. 바로 이어지는 신생대에서는 공룡의 뒤를 이어 포유류가 육지의 지배적인 척추동물이 되었다.포유류가 공룡보다 특별히 뛰어났던 건 아니다.쥐새끼만한 포유류는 공룡 눈치나 보다가 잡아먹히는 비운을 감수하면서 1억년을 버텼다.공룡이 멸절하지 않았더라면 호모사피엔스가 ‘만물의 영장’인 시대는 결코 오지 않았을 것이다.약 500만년 전 최초의 사람종이 나타났을 때,그것은 단지 ‘아름답고 무한한 형태들’ 가운데 하나였을 뿐이다. 구석기,아니면 현생지질학 제4기부터 따진다고 해도 인류가 세상을 지배한 시기가 얼마나 될까.공룡은 적어도 1억 4000만년 이상을 지구에 존재했다.인류는 극히 짧은 시간에 지구의 주인공이 되었고,특히나 현대인들은 불과 100여년 사이에 엄청난 개벽을 가져왔다.이런 인류에게 영구히 보장된 미래가 있는 것인가.의문이 꼬리를 문다. ●동양인들의 삶에서도 공룡 중요 공룡은 호모사피엔스의 기억에서 영영 사라졌을까.그렇지 않다.창공을 가르는 새들은 바로 공룡의 직계 후손이다.공룡은 또 인문학적 상상력에서도 여전히 살아 있으니,영화 ‘쥐라기공원’의 탄생 같은 공룡문화의 번성도 공룡이 영영 사라질 수 없는 것임을 웅변한다. 인류가 창조해 낸 최고의 상상동물인 용(龍)도 기실 공룡류의 조합이나 다름없다.인류의 유년기적 추억 속에 기록된 거대하고 두려운 어떤 동물의 형상이 각인되어 DNA로 전승되었던 것은 아닐까.신비로운 동물 용의 출발도 결코 인류사의 유년기적 추억에서 벗어나 있는 것은 아니다. 덧붙여 공룡의 발견 역시 서구학자들에 의해서만 이뤄진 것이 아니다.일찍부터 동양인들의 삶에서도 공룡화석은 중요했으며,용골(龍骨) 같은 한약재는 틀림없이 공룡의 화석을 의미했다.10여년 전,시베리아 사하공화국에 갔을 때다.그곳 주민들이 만드는 섬세한 뿔조각품이 코끼리상아가 아니라 지금은 역사에서 사라진 맘모스 상아,즉 화석으로 만들어진 것을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상족암 역시 숱한 시인묵객들이 찾아 ‘용굴’ 같은 해식동굴 지명을 남기고 있거니와,이래저래 문화사적 장기 지속의 우연성을 말해줌이 아닐까. ●선입견 깨고 ‘적지적시’의 공룡 되찾아야 중국의 기서(奇書) 산해경에 등장하는 ‘기이(奇異)’들은 저마다 나름의 연원을 갖고 있다.그렇기에 사마천 같은 이도 산해경에 대해 ‘감히 말할 수 없다(不敢言之也).’고 평하지 않았겠는가.동진의 문인 곽박(郭璞·276∼324)은 장자를 인용하면서,‘사람이 아는 것은 알지 못하는 것에 미치지 못한다.’고 했다.생각건대,우주는 광활하고 뭇 생명체는 도처에 산재해 있으며,음양의 기운이 왕성히 일어나면 온갖 종류로 나뉘어 생겨난다는 점을 지적한 말이리라.그는 ‘소 발자국에 괸 물에서나 노는 수준으로는 붉은 용이 하늘까지 치솟는 경지를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곽박의 말은 여러모로 정당하다.우리는 자동차 바퀴자국에 고인 물에서나 노는 수준이 아닐까.공룡과 인류시대의 시간이 던져주는 간극을 상상해 본다면,우리가 장구하다고 하는 인류사도 지질사의 미미한 일부,바로 ‘새발의 피’ 아닌가. 분류학 생물층서학 고생태학 고생물지리학 고환경학 등에서 공룡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그런 영향일까.오늘날 세계의 공룡학은 앙상한 골격이나 발자국 연구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새로운 세대의 디지털 고생물학자들은 공룡화석에 생기를 불어넣어 가히 ‘공룡연구의 르네상스’를 일으키고 있다.진화생물학 생물역학 식물학 생리학 등 다양한 분야의 젊은 학자들이 그들.그들은 컴퓨터,CT스캔,X선,전자현미경 등 다양한 도구와 방법론을 동원,‘겁없는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이제 우리는 고성의 공룡이 살아있는 실체로 바닷가를 노닐게 해야 한다.지금까지 공상영화가 창조해 낸,엉뚱할 수도 있는 선입견을 깨고 적지적시(適地適時)의 공룡을 탄생시킬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공룡학’이 그야말로 공룡화되어 거대 골격에 묶인 채 끝내 관료화되는 비극을 피하길 기대해 본다.공룡연구야말로 무한한 상상력과 이의 입증이 필수 아니겠는가. 한려수도 덕명리에서 심안(心眼)으로 공룡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무거운 수수께끼를 안고 오는 길,그 여행이 주는 즐거움이 공룡에 대해 ‘우리는 아는 것보다는 모르는 것이 훨씬 많다.’는 작은 성찰에서 싹튼 것은 아니었을까.
  • SICAF 코믹어워드 대상 받은 만화가 이두호씨

    “왠지 행동의 폭이 좁아진다는 느낌이 들어서 수상이 부담스럽습니다.원로인 점과 그간의 공로를 인정했다는 주최측의 선정 이유를 듣고 만화를 그만 그리라는 뜻이냐고 물었지요.” 2004 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페스티벌(SICAF)의 코믹어워드 대상 수상자로 선정된 만화가 이두호(60)씨.‘임꺽정’ ‘머털도사’ 등을 통해 대중들에게 사랑받아온 인기작가답지 않게 수상소감을 쑥스러운 듯 밝혔다. “왕성하게 활동하는 선배들이 많은데 상을 받아 송구스럽다.”는 이씨는 “다른 일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부럽기도 하고 신기하게 보일 때도 있지만 만화 말고는 다른 일은 못할 것 같다.”며 프로다운 고집을 드러냈다. 지난 69년 ‘투명인간’으로 데뷔한 이래 ‘폭풍의 그라운드’ ‘머털도사’ ‘임꺽정’ 등을 선보인 이씨는 지금도 매일 새벽 5시부터 오후 3시까지 만화작업에 빠져든다. 30여년간 만화를 그리면서 수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아왔지만 여전히 부족한 점을 발견할 때가 많다고 털어놓는다. 가장 마음에 드는 자신의 작품을 묻자 주저없이 세조의 오른팔이자 부패 정치인으로 악명 높았던 조선 전기 문신 홍윤성 소재의 ‘덩더꿍’을 꼽았다.“온갖 나쁜 짓을 저질렀지만 벌을 받기는커녕 평생 잘 살다 죽은 홍윤성을 알고는 기분이 몹시 나빴어요.결국 하인의 아들에게 처단당하도록 결말짓고 혼자 좋아했습니다.” 세종대 만화애니메이션학과에서 후학을 양성 중인 그는 요즘 침체된 우리 만화계에서 고통받는 후배 만화가들에 당부의 말을 전했다. “제가 만화를 시작할 때를 돌이켜보면 지금은 만화보다 재미있는 것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철저하게 고민하면서 세계를 제패하겠다는 야심을 가지고 만화를 그렸으면 합니다.” 김소연기자 purple@ seoul.co.kr
  • [부고]

    ●北올림픽위원회 조상남 부위원장 북한 체육계의 실세인 조상남(45) 조선올림픽위원회 부위원장 겸 서기장이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공식 홈페이지(www.olympic.org)의 국가올림픽위원회(NOC) 동정란을 통해 최근 북한이 조상남 부위원장의 사망 사실을 알려왔다고 밝혔다. IOC는 또 북한이 문시성을 서기장 직무대행으로 선임했다고 덧붙였다.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에 북한 선수단을 이끌고 김해공항에 도착해 주목을 받았던 조 부위원장은 영어와 중국어에 능통한 북한 체육계의 국제통으로 2001년 북한NOC 서기장에 발탁되는 등 젊은 나이에 고위층에 오른 신진 엘리트였다. 조 부위원장은 특히 지난해 북한의 장웅 IOC 위원이 권력에서 밀려난 뒤 부위원장까지 겸임했으며 지난 2월 그리스 아테네에서 열린 국가올림픽위원회총연합회(ANOC) 총회에서는 이연택 대한올림픽위원회(KOC) 위원장과 아테네올림픽 남북 공동입장에 합의하기도 했다. ●金淳植(전 건국대 부총장)씨 별세 學明(사업)學周(신도리코 과장)씨 부친상 許亨碩(연합뉴스 국제뉴스국 부장급)尹錫哲(사업)씨 빙부상 26일 오후 11시30분 신촌세브란스병원,발인 29일 오전 7시 (02)392-3099 ●金斗錫(전 한양대병원 구매과장)斗完(전 고속도로관리공단 중장비사업부장)斗憲(선명칼라현상소 대표)斗榮(로뎀가든 〃)씨 부친상 金在植(현진에버빌 부장)金榮鎬(아기·모아건축 대표)씨 빙부상 26일 오후 11시30분 서울 한양대병원,발인 29일 오전 6시 (02)2290-9457 ●吳基貞(증권예탁원 안전관리실 차장)씨 빙모상 27일 오전 1시 삼성서울병원,발인 29일 오전 3시 (02)3410-6909 ●吳聖浩·聖燦(사업)씨 모친상 鄭光容·金泰鳳·李賢馥(〃)崔奉柱(강진경찰서 읍내지구대 사무소장)金興基(한국사보협회장)씨 빙모상 26일 오후 7시 강진군 영락장례식장,발인 28일 오전 9시 (061)433-4886 ●金一相(프로야구 두산베어스 운영홍보팀 과장)씨 빙부상 26일 오후 2시 전북 남원시 남원의료원,발인 28일 오전 10시 (063)636-4012 ●金榮秀(코트라 비상계획팀 부장)씨 빙모상 26일 오후 2시 전남 영광군 단주리 영광종합병원,발인 28일 오전 10시 (061)351-1651 ●金貞植(삼성물산 부장)正文(배재철강 대표)씨 부친상 全鍾賢(사업)씨 빙부상 27일 삼성서울병원,발인 29일 오전 6시(02)3410-6917 ●太文煥(대림레더월드 대표)仁煥(한국EDS 대리)씨 부친상 26일 오후 5시30분 경희의료원,발인 28일 오전 6시 (02)958-9548 ●千亮民(김포 제일동물병원장)亮賢(세일산업 대표)씨 부친상 李秀令(감사원)씨 빙부상 千亮哲(전 연합뉴스 상무이사)씨 숙부상 27일 전주장례식장,발인 29일 오전 9시 (063)211-7675 ●金相萬(전 광운대 명예교수)씨 별세 泰熙(안동대 신소재공학부 교수)俊熙(경민대 강사)씨 부친상 安在恩(충신교회 목사)秋泰和(안양대 기독교문화학과 교수)씨 빙부상 27일 오전 5시 고대안암병원 발인 29일 오전 6시30분 (02)921-5899 ●韓五鍾(전 프로야구 두산베어스 투수)씨 빙부상 27일 오후 2시 상계백병원,발인 29일 오전 7시 (02)951-0499
  • [부고]

    ●北올림픽위원회 조상남 부위원장 북한 체육계의 실세인 조상남(45) 조선올림픽위원회 부위원장 겸 서기장이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공식 홈페이지(www.olympic.org)의 국가올림픽위원회(NOC) 동정란을 통해 최근 북한이 조상남 부위원장의 사망 사실을 알려왔다고 밝혔다. IOC는 또 북한이 문시성을 서기장 직무대행으로 선임했다고 덧붙였다.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에 북한 선수단을 이끌고 김해공항에 도착해 주목을 받았던 조 부위원장은 영어와 중국어에 능통한 북한 체육계의 국제통으로 2001년 북한NOC 서기장에 발탁되는 등 젊은 나이에 고위층에 오른 신진 엘리트였다. 조 부위원장은 특히 지난해 북한의 장웅 IOC 위원이 권력에서 밀려난 뒤 부위원장까지 겸임했으며 지난 2월 그리스 아테네에서 열린 국가올림픽위원회총연합회(ANOC) 총회에서는 이연택 대한올림픽위원회(KOC) 위원장과 아테네올림픽 남북 공동입장에 합의하기도 했다. ●金淳植(전 건국대 부총장)씨 별세 學明(사업)學周(신도리코 과장)씨 부친상 許亨碩(연합뉴스 국제뉴스국 부장급)尹錫哲(사업)씨 빙부상 26일 오후 11시30분 신촌세브란스병원,발인 29일 오전 7시 (02)392-3099 ●金斗錫(전 한양대병원 구매과장)斗完(전 고속도로관리공단 중장비사업부장)斗憲(선명칼라현상소 대표)斗榮(로뎀가든 〃)씨 부친상 金在植(현진에버빌 부장)金榮鎬(아기·모아건축 대표)씨 빙부상 26일 오후 11시30분 서울 한양대병원,발인 29일 오전 6시 (02)2290-9457 ●吳基貞(증권예탁원 안전관리실 차장)씨 빙모상 27일 오전 1시 삼성서울병원,발인 29일 오전 3시 (02)3410-6909 ●吳聖浩·聖燦(사업)씨 모친상 鄭光容·金泰鳳·李賢馥(〃)崔奉柱(강진경찰서 읍내지구대 사무소장)金興基(한국사보협회장)씨 빙모상 26일 오후 7시 강진군 영락장례식장,발인 28일 오전 9시 (061)433-4886 ●金一相(프로야구 두산베어스 운영홍보팀 과장)씨 빙부상 26일 오후 2시 전북 남원시 남원의료원,발인 28일 오전 10시 (063)636-4012 ●金榮秀(코트라 비상계획팀 부장)씨 빙모상 26일 오후 2시 전남 영광군 단주리 영광종합병원,발인 28일 오전 10시 (061)351-1651 ●金貞植(삼성물산 부장)正文(배재철강 대표)씨 부친상 全鍾賢(사업)씨 빙부상 27일 삼성서울병원,발인 29일 오전 6시(02)3410-6917 ●太文煥(대림레더월드 대표)仁煥(한국EDS 대리)씨 부친상 26일 오후 5시30분 경희의료원,발인 28일 오전 6시 (02)958-9548 ●千亮民(김포 제일동물병원장)亮賢(세일산업 대표)씨 부친상 李秀令(감사원)씨 빙부상 千亮哲(전 연합뉴스 상무이사)씨 숙부상 27일 전주장례식장,발인 29일 오전 9시 (063)211-7675 ●金相萬(전 광운대 명예교수)씨 별세 泰熙(안동대 신소재공학부 교수)俊熙(경민대 강사)씨 부친상 安在恩(충신교회 목사)秋泰和(안양대 기독교문화학과 교수)씨 빙부상 27일 오전 5시 고대안암병원 발인 29일 오전 6시30분 (02)921-5899 ●韓五鍾(전 프로야구 두산베어스 투수)씨 빙부상 27일 오후 2시 상계백병원,발인 29일 오전 7시 (02)951-0499
  • 與, 언론피해구제법 추진

    열린우리당 언론발전특별위원회 준비위원회(위원장 김태홍)는 22일 언론의 악의적 보도로 피해를 입은 경우,징벌적 손해배상을 명령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언론피해구제법’제정을 추진키로 했다. 준비위원회 관계자는 “현행법상 국민 입장에서 아무리 억울한 언론보도 피해를 봐도 제대로 피해구제를 받을 방법이 없다.”며 “피해자에 대한 적극적인 피해구제를 위해 미국에서 시행 중인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를 도입키로 의견을 모았다.”고 말했다. 위원회는 이 같은 내용을 포함한 언론피해구제법을 다음달까지 마련한 뒤,정기국회에서 신문법 등 언론관계법과 함께 처리할 계획이다. 미국 41개주에서 시행 중인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는 보도로 인한 피해자의 손해입증 여부와 관계없이 ‘악의의 가해자’에게 고액의 손해배상을 명령,피해자를 보호하는 제도다.그러나 미국과 법적 환경이 다른 우리나라에 도입될 경우 논란이 예상된다. 이와 관련,준비위원회 소속인 우리당 노웅래 의원은 언론피해구제법안을 자체적으로 준비,위원회의 동의를 받은 뒤 당론으로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노 의원이 준비중인 언론피해구제법안에는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와 함께 신속한 언론피해 구제를 위해 현행 21일로 돼 있는 언론 중재기간을 줄이는 내용이 포함될 것으로 알려졌다.또한 피해자가 언론을 상대로 소송을 낼 때 일정 액수 이내의 소송일 경우 언론중재위가 손해배상소송까지 대행해 주는 방안도 포함시킬 예정이다. 노 의원은 “징벌적 손해배상은 언론의 악의적 보도를 경계하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며 “배상액의 한도 등은 시행령 등에서 제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현갑기자 eagleduo@seoul.co.kr
  • 환상소설첩/방민호 엮음

    ‘일제시대 문인들의 수필’‘자전적 소설’ 등 한국의 현대문학에 질서를 부여할 테마를 찾아 유목의 길을 걸어온 소장 국문학자 방민호 서울대 교수가 이번엔 ‘환상성’에 주목했다.향연출판사에서 나온 ‘환상소설첩’(근대편·동시대편) 2권은 그 환상성을 주제로 한 작품을 엮은 것. 그러나 저자가 정의하는 ‘환상성’은 여느 환상 개념과는 다르다. 그는 환상성이 그저 비현실적인 황당무계한 상황이 아니라 “작가가 발견한 새로운 현실의 존재를 풍부하게 암시하고 드러내는 유력한 방법” 혹은 “아직 인간적 현실로 분명하게 인준되지 못한 미지의 영역을 향해 내미는 인간의 예지적인 촉수”라고 규정한다.이 환상성의 개념을 통해 저자는 그동안 자신이 문학을 분석해온 주요틀인 리얼리즘의 개념을 확장시킨다. 이런 분석틀에 바탕하여 저자는 멀리는 김동인의 ‘광염 소나타’에서 가까이는 전성태의 ‘웃음과 슬픔의 변주곡’이나 신경숙의 ‘마당에 관한 짧은 얘기’ 등 20편의 작품을 아우르면서 다양한 형태로 변주된 환상성을 보여준다. 저자가 상정한 ‘환상성’이란 프리즘을 통과한 소설은 4가지 색깔의 빛으로 분리된다. 현실의 변화를 추구하는 저항적 메시지를 담은 작품(이기영 ‘쥐 이야기’,최서해 ‘기아와 살육’),현실적 압력에서의 탈주(나도향 ‘꿈’,최인석 ‘내 영혼의 우물’),지식인·예술가의 정신적 강박증(박태원 ‘적멸’,이상 ‘날개’) 그리고 낭만적 도피(안회남 ‘동물집’,윤대녕 ‘빛의 걸음걸이’) 등이 그것이다. 이종수기자 vielee@seoul.co.kr˝
  • 백범 김구, 대한매일신보 지사장이었다

    백범 김구(1876∼1949) 선생이 서울신문의 전신인 대한매일신보의 지사장으로 민족신문 보급활동을 했다는 사실이 새롭게 밝혀졌다. 한남대 사회학부 박정규 교수는 6일 ‘대한매일신보의 참여인물과 언론사상’이라는 논문을 통해 김구 선생이 1905년 11월부터 1907년 2월까지 약 14개월 동안 황해도 장연에서 대한매일신보 지사장으로 활동했다고 밝혔다. 박 교수는 그 증거로 이 기간 중 대한매일신보의 광고란에 매일 실린 사고(社告) 내용을 제시했다.‘본사특고’란 제목의 1905년 11월28일자 사고는 평양·선천·장연 등 3곳의 지사 개설 사실을 알리며,장연의 경우 독자들은 김구(金龜)에게 구독신청하고 대금도 그에게 납부하도록 광고하고 있다. 백범일지에 따르면 백범은 초기 이름이 창암(昌巖),창수(昌洙)였다가 1900년 구(龜)로 개명했으며 1912년 다시 구(九)로 바꾸기 전까지 이 이름을 사용했다.백범은 또 이 시기 장연에서 살며 학교를 세우고 애국계몽과 교육에 힘을 쏟은 것으로 되어 있어 거주 지역도 일치한다. 1905년 진남포에서 을사늑약 소식을 들은 백범은 서울에 올라가 전덕기·이준·이동녕·최재학 등과 함께 상소를 올리고 종로에서 가두연설에 나서는 등 구국대열의 선봉에 섰으며,12월 신교육에 투신하기로 하여 장연으로 돌아와 교육과 함께 대한매일신보 보급도 함께 했다고 박 교수는 설명했다. 박 교수는 또 “1907년 4월 초 대한매일신보의 설립자인 양기탁이 안창호와 함께 비밀 결사로서 신민회를 창립했고,백범은 신민회 황해도 총감으로서 양기탁 주도의 비밀 전국간부회의 개최 사실을 백범일지에 기록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대한매일신보의 지사원들은 민족신문의 보급뿐만 아니라 신민회와 같은 국권회복운동 단체에 참여한 사람들이 적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신용하(한양대 석좌교수)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협회 부설 백범학술원 원장은 “백범 선생이 대한매일신보 장연지사를 설치해서 민족신문 보급활동을 했다는 것은 종래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사실”이라며 ”백범 연구는 물론,구한말 애국운동과 애국언론운동에 새로운 연구자료가 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박 교수의 이 연구 논문은 7일 오전 10시부터 서울 프레스센터 19층 기자회견장에서 열리는 서울신문·한국언론학회 공동주최 ‘대한매일신보 창간 100주년 기념 학술회의’에서 발표된다. 신연숙 논설위원 yshin@seoul.co.kr ˝
  • 서울시 ‘4만쪽 복사’ 비상

    서울시가 판공비 내역을 적은 서류 4만여쪽을 복사,교부하라는 대법원 판결 때문에 초비상이 걸렸다. 29일 서울시 행정국에 따르면 시는 ‘기관운영 업무추진비’(판공비) 내역을 담은 서류의 복사지와 작업에 드는 비용을 시민단체에 부담시킬 계획이다.시는 대법원으로부터 판결문이 오는 대로 당초 전체에 대한 사본 공개를 요구한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를 상대로 다시 의견을 나눌 예정이지만 현재대로라면 시민단체가 한발짝 물러날 여지는 적어 보인다. 4만여쪽을 복사하는 데에는 인력은 고사하고 시간이 너무 들어 서울시의 고민이 쌓이고 있다.한 장에 10초로 잡더라도 12시간을 꼬박 매달려야 하는 분량이다. 지난 25일 대법원 판결이 나왔고,판결문 송달에는 통상 일주일이 걸리기 때문에 이르면 다음 달 초에는 시와 참여연대 사이에 복사본 교부방식을 놓고 팽팽한 긴장감이 돌 전망이다. 사본을 복사하는 일은 서울시에 이만저만 부담이 아니어서 총무국은 벌써부터 걱정이 태산이다.비슷한 사례인 경북도의 경우 승소한 적이 있어서 내심 대법 판결에 기대했지만 정반대의 결과가 나왔다. 서울시는 지난 2000년 10월 참여연대가 고건 시장을 상대로 전 직원의 그해 1∼6월분 판공비 공개를 요구하며 제기한 행정소송에서 패소하자 불복,올 1월 대법원에 상소했다.서울시 최임광 총무과장은 “몇몇 시민단체의 요구를 받아들이기 위해 시민의 돈인 예산을 들일 생각은 없고,그렇게 해서도 안 된다.”고 말했다.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건강노인 선발대회 “일흔살도 청춘”

    “인생은 70부터?” 지난 23일 성남시청사 옆 성남시민회관 대강당에서 이색 건강노인 선발대회가 열렸다. 비록 대회라는 성격을 가지고는 있지만 노인들이 오랜만에 만나 끝말잇기와 재치 등을 뽐내 신명나는 놀이판으로 변했다.가족들의 응원도 곁들여져 흥겨운 하루가 됐다.이날 행사에는 고령화시대 노인건강에 대한 관심을 유도하기 위해 70살 이상 노인 20명이 출전했다. 4명의 심사위원들이 끝말잇기 등을 통한 언어활용 능력,유머감각을 엿보는 재치력,건강상태 등을 살피는 외적관리능력을 측정했지만 정작 심사보다는 함께 웃고 즐기는 관객에 가까웠다. 시는 앞서 3개보건소를 통해 참가를 신청한 70명을 대상으로 혈압과 당뇨,소변 검사,X-레이 촬영,치매 검사,한발 오래서기 등 체력검사를 통해 본선에 참가할 20명을 선발했다. 이번 대회에는 참가자 중 최고령인 이치복(92·대상) 할아버지가 참가해 눈길을 끌었으며 참가자들을 응원하러 동료와 친구 노인 600여명이 열띤 응원전을 펼쳤다. 대상 외 건강꽃띠상,젊은이상,멋쟁이상,장려상 등 모두 8명이 수상을 했으며 20명 가운데 1명은 전날 맹장수술로 출전하지 못했다.수상소감을 ‘가문의 영광’이라고 밝혀 객석에서 폭소가 터져나오기도 했다. 중원구 보건소 정춘화 건강증진계장은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장수를 기원하기 위해 행사를 마련했다.”며 “참가자들 모두가 40∼50대 못지않은 기력을 보였다.”고 말했다. 성남 윤상돈기자 yoonsang@seoul.co.kr˝
  • 건강노인 선발대회 “일흔살도 청춘”

    “인생은 70부터?” 지난 23일 성남시청사 옆 성남시민회관 대강당에서 이색 건강노인 선발대회가 열렸다. 비록 대회라는 성격을 가지고는 있지만 노인들이 오랜만에 만나 끝말잇기와 재치 등을 뽐내 신명나는 놀이판으로 변했다.가족들의 응원도 곁들여져 흥겨운 하루가 됐다.이날 행사에는 고령화시대 노인건강에 대한 관심을 유도하기 위해 70살 이상 노인 20명이 출전했다. 4명의 심사위원들이 끝말잇기 등을 통한 언어활용 능력,유머감각을 엿보는 재치력,건강상태 등을 살피는 외적관리능력을 측정했지만 정작 심사보다는 함께 웃고 즐기는 관객에 가까웠다. 시는 앞서 3개보건소를 통해 참가를 신청한 70명을 대상으로 혈압과 당뇨,소변 검사,X-레이 촬영,치매 검사,한발 오래서기 등 체력검사를 통해 본선에 참가할 20명을 선발했다. 이번 대회에는 참가자 중 최고령인 이치복(92·대상) 할아버지가 참가해 눈길을 끌었으며 참가자들을 응원하러 동료와 친구 노인 600여명이 열띤 응원전을 펼쳤다. 대상 외 건강꽃띠상,젊은이상,멋쟁이상,장려상 등 모두 8명이 수상을 했으며 20명 가운데 1명은 전날 맹장수술로 출전하지 못했다.수상소감을 ‘가문의 영광’이라고 밝혀 객석에서 폭소가 터져나오기도 했다. 중원구 보건소 정춘화 건강증진계장은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장수를 기원하기 위해 행사를 마련했다.”며 “참가자들 모두가 40∼50대 못지않은 기력을 보였다.”고 말했다. 성남 윤상돈기자 yoonsang@seoul.co.kr
  • “늑장 응급조치 환자사망 병원책임”

    응급조치가 늦어 증상이 악화돼 환자가 사망하였다면 병원측의 책임이 크다는 판결이 내려졌다.수원지법 제6민사부(재판장 김한용 부장판사)는 14일 병원응급실을 찾은 뒤 증상이 악화돼 숨진 김모(사망당시 46·여)씨의 유족이 K의료재단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병원측은 유족에게 7500여만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병원측이 적절한 응급조치를 제때 취하지 않아 증상이 악화됐고 이로 인해 김씨를 사망에 이르게 한 책임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김씨는 사망률이 0.001%인 ‘아나필락틱 쇼크(저혈압·기도유지장애 등 호흡계 또는 순환계 저하를 포함하는 전신적 알레르기)’로 응급실을 찾았으나 2시간이 넘도록 기도 확보·동맥혈가스검사 등 증상에 상응하는 조치를 받지못해 ‘성인형호흡곤란증후군’으로 악화됐다.”고 밝혔다.재판부는 “다만 성인형호흡곤란증후군의 경우 정상적인 치료를 받아도 사망률이 50∼60%에 달하는 점 등을 인정,피고의 손해배상 책임을 60%로 제한한다.”고 덧붙였다. 김씨는 지난 2002년 3월 하순 아나필락틱 쇼크로 K의료재단 소속병원을 찾아 응급치료를 받았지만 다음날 성인형호흡곤란증후군으로 증상이 진행돼 사망하자 유족들이 “병원측이 적절한 응급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며 병원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냈다. 수원 김병철기자 kbchul@seoul.co.kr˝
  • 분식회계 ‘전과’기업 비상

    ‘분식회계’ 전력이 있는 주요 기업에 비상이 걸렸다. 서울중앙지법이 최근 분식회계로 투자자들에게 손해를 끼친 대우그룹 김우중 전 회장 등과 대우중공업에 투자손실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린 터라 상황이 심각해졌다. 게다가 내년부터 자산 2조원 이상 기업에 대해서는 증권집단소송제가 시행되기 때문에 만에 하나 분식회계 관련 손해배상소송이 집단소송으로 제기될 경우 천문학적인 금액의 손실을 감수해야 한다. 이번 대우그룹 판결은 소송을 제기한 이모씨에게만 효력이 발생하지만 집단소송제가 시행된 뒤 이같은 소송에서 소송 대표자가 이기면 모든 소송 구성원이 배상을 받을 수 있다. 1일 현재 검찰수사 등으로 분식회계가 드러난 주요 기업은 SK네트웍스,현대상선,동아건설,진로 등이다.지난 2002년 참여연대가 고발한 한화㈜,한화석유화학,한화유통에 대해서는 수사가 진행중이다. 지난해 한나라당 김부겸(현 열린우리당) 의원이 공개한 주요 그룹 분식회계 실태에 따르면 2000년에는 SK증권,2001년에는 아시아나항공·워커힐 등이 포함됐다.2002년은 SK건설,SK케미칼,한화석유화학,한화유통,현대모비스 등이 연루됐다. 아직까지 투자자들이 분식회계에 대해 손배소를 제기해 외부에 알려진 사례는 대우그룹뿐이지만 앞으로 유사한 소송이 언제든지 제기될 수 있다. SK네트웍스는 지난해 3월 1조 5587억원의 분식회계가 검찰에 적발되면서 1만원 수준이던 주가가 3000원대로 폭락했었다. 당연히 투자자들은 막대한 손해를 봤고 손해배상 청구 가능 금액이 3000억원대로 추정됐다.회사 관계자는 “지금까지 소송을 제기한 투자자는 없었고 출자전환,감자 등으로 분식을 해결해 집단소송 대상도 아니지만 만일의 경우에 대비해 법무팀에서 해당사항을 면밀히 검토중”이라고 말했다. 지난 3월 금융감독원에 제출한 감사보고서를 통해 지난 2000∼2001년 6224억원의 자산을 부풀렸다고 실토한 현대상선은 “논란이 된 자산을 손실로 처리했기 때문에 더 이상 문제될 것은 없다.”고 밝혔다. 법원은 이번 판결에서 분식회계가 시작된 회계연도 재무제표 공시일로부터 분식회계가 드러난 날까지 주식의 취득가와 처분가의 차액을 배상금액의 기준으로 제시했다.따라서 분식회계 기간의 주가와 적발 당시 주가의 차액이 크면 클수록 해당기업이 물어내야 할 배상액도 커진다. 문제는 분식회계가 외부로 알려져 ‘매를 맞은’ 기업보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기업이 더 많다는 데 있다. 이 때문에 재계에서는 2005년 이전 분식회계가 회계장부에 계속 묻어 있는 경우에 대해서는 집단소송 대상에서 제외하자는 논의가 활발하다.전국경제인연합회는 오는 15일 ‘분식회계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를 주제로 증권집단소송 모의재판을 개최할 계획이다. 전삼현(숭실대 교수) 기업소송연구회장은 “올해 안에 과거 분식을 해소하기 어려운 기업에 대해 집단소송이 제기되면 살아 남을 기업이 많지 않을 것”이라면서 “기업들이 과거 분식을 해소할 수 있도록 2∼3년 정도 유예기간을 두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류길상기자 ukelvin@seoul.co.kr˝
  • 車엔진출력 뻥튀기 집단손배소 움직임

    자동차 제조사들이 지난 2000년까지 생산한 일부 차종에 엔진출력을 과대 표시한 것과 관련,소비자들이 집단 소송에 나서기로 결정해 파장이 예상된다. ‘자동차 10년타기 시민운동연합’(대표 임기상)은 최근 현대자동차가 미국에서 엔진출력을 과대표시해 자동차를 산 개인에게 1인당 25∼225달러를 배상토록 미국 법원과 잠정 합의한 사실에 대해 국내에서도 유사 소송을 준비 중이라고 25일 밝혔다. 운동연합측은 이날 현대·기아 자동차와 GM대우의 대표이사를 공정거래위원회에 허위 과대광고로 고발 조치했다. 건설교통부는 2001년 3월 현대·대우·기아 등 국내 자동차 3사 41개 모델의 엔진출력에 대해 최대 13.7%까지 과대표시라는 판정을 내리고 고치도록 조치했다.이중 오차 허용범위인 5%를 초과해 과대표시한 27개 차종에 대해 소송을 제기하기로 하고 26일부터 홈페이지(www.carten.or.kr)를 통해 한달간 소송 참여자들을 모집하기로 했다. 현대차의 경우,미국 현지법인이 2002년 9월 캘리포니아주 오렌지카운티에서 처음 집단소송을 제기한 뒤 8개 주로 소송이 확대됐다.이달초 엘란트라 등 6개 차종 12개 모델을 구입한 85만여명의 고객에게 보상금을 지급하기로 잠정 합의했다. 운동연합측은 “미국과 달리 국내에서는 집단소송제가 적용되지 않아 손해배상소송을 청구할 계획”이라면서 “해당 차종을 구입한 소비자만 잠정적으로 400만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고 주장했다.운동연합 임기상 대표는 “수출용에 비해 내수용 고객들이 푸대접을 받았던 것이 사실”이라면서 “이제 국내 소비자들도 정당한 권리를 찾고 과대광고 관행을 고쳐야겠다는 생각에 소송을 준비했다.”고 강조했다. 현대차측은 “정부 당국의 검사를 받아 엔진출력을 표시했던 것”이라면서 “미국과는 엄연히 현실이 다른데 과거 관행을 문제삼아 소송을 내려는 움직임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이효용기자 utility@˝
  • 서울학생상 ‘1급 장애인’ 이희아양

    “몸은 정상이지만 마음이 병들어 좌절하고 자살까지 생각하는 청소년들에게 제가 희망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네 손가락 피아니스트’로 널리 알려진 이희아(19·서울 주몽학교 고등부 3학년)양이 21일 서울시교육청이 주는 서울학생상을 받았다.태어날 때부터 한 손에 손가락이 두 개씩이고 허벅지 아래가 없는 선천성 사지기형 1급 장애인인 이양은 특기를 통해 장애인들에게 용기를 주고 학생의 명예를 드높인 점을 인정받았다. ●“혐오감 준다” 음악경연대회서 못나오게 손가락의 힘을 기르기 위해 6세 때 시작한 피아노는 그의 인생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선천적인 음악성에 피나는 연습으로 이양의 실력은 하루가 다르게 늘어갔다. 이듬해인 1992년 처음 출전한 음악경연대회에서 최우수상을 차지하면서 이양의 의지는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당시 ‘전국 학생 음악경연대회’ 주최측은 “혐오감을 준다.”는 이유로 신청서를 받지 않았다.지도 교사가 항의하여 간신히 참가할 수 있었고,그는 “실력으로 승부하자.”고 다짐했다.이양은 하루 10시간이 넘는 맹연습끝에 최우수상을 받았다.시상식이 끝난 뒤 심사위원들은 “네가 장애인인 줄 몰랐다.”고 감탄했다. 이양은 1999년 장애극복 대통령상을 받으면서 미국·일본·호주 등 해외로 무대를 넓혀갔다.그동안 각종 자선무대에도 수없이 올라 장애를 극복하려는 많은 이들에게 힘을 주었다.지난해에는 한국문화예술인총연합(예총)이 주는 ‘문화예술인상’을 받았다. ●‘즉흥환상곡’ 좋아해… 연주에 5년 매달려 이양이 가장 좋아하는 곡은 쇼팽의 ‘즉흥환상곡’.고도의 테크닉이 필요한 이 곡을 연주하기 위해서는 무려 5년을 매달려야 했다.좋아하기도 했지만 비장애인도 치기 힘든 곡에 도전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연주를 들은 사람들이 “너처럼 5년 동안 노력해 보지 않고서는 무엇이든 포기하지 않겠다.”고 말했을 때 말할 수 없는 뿌듯함을 느꼈다고 이양은 회상했다. 얼마 전에는 연주에 반해 찾아온 남자 친구도 있다고 자랑한 이양은 “신체의 장애는 대인관계에서 결코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여섯살 때 아빠하고 수영장에 갔는데 아이들이 ‘귀신이다,괴물이다.’하면서 놀리는 거예요.다른 애들 같으면 울었을 텐데 저는 ‘그래,내가 귀신할 테니 귀신놀이 하자.’고 그랬죠.그렇게 다가가니까 금방 친구가 되던데요.” 이양은 “내년에 대학에 들어가면 연주와 작곡을 본격적으로 공부해 ‘희아 창작음악회’를 꼭 해보고 싶다.”면서 “저의 오늘이 있기까지는 모두 주위에서 도와준 덕이라고 생각하며 항상 겸손한 자세로 봉사하며 살고 싶다.”고 수상소감을 밝혔다. 이날 시상식에서는 이양을 비롯한 특수학교 학생 23명과 고교생 236명 등 모두 268명이 서울학생상을 받았다. 이효용기자 utility@˝
  • 儒林(91)-제1부 王道 제4장 文正公

    제1부 王道 제4장 文正公 심곡서원(深谷書院). 심곡서원은 조광조와 그의 시신을 이곳까지 운구하였던 양팽손을 제향하고 있는 서원으로 조광조의 무덤이 있는 이곳에 선조 38년(1605년) 서원을 세우고 조광조의 위패를 모신 데에서 비롯된다. 선조는 특히 조광조를 존경하여 조광조를 영의정에 추증하고 시호를 내렸는데,‘문정공(文正公)’이라 하였다.이는 ‘도덕이 있고 학식이 넓으며 올바른 도리를 행한다.’는 뜻으로 선조의 이러한 배려에도 재력이 부족하여 서원이 세워지지 못하다가 시호를 받은 지 30년이 지난 후에야 서원을 세울 수 있었는데,서원의 이름을 ‘심곡(深谷)’이라 하였던 것은 원래 이곳이 조광조의 선영이 있었던 ‘심곡리’란 곳으로 조광조가 19세 되던 해 아버지 조원강이 별세하자 3년간 시묘를 하면서 이곳에 초당과 연못을 만들어 놓고 학문에 정진하던 유서가 깊은 곳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간신히 서원이 세워졌어도 임금으로부터 사액(賜額)을 받지는 못하였다.임금으로부터 서원에 이름을 지어 그것이 새겨진 편액(扁額)을 받지 못하면 서원으로서의 정통성을 인정받지 못하는데,그 후 인조 9년(1631년),유문서(柳文瑞) 등이 상소하여 사액해 줄 것을 청하였지만 거절당하였고,‘심곡’이란 사액을 받은 것은 효종 원년인 1650년이었다.서원이 세워진 지 반세기가 지나서야 임금으로부터 사액을 받은 것을 보면 조광조에 대한 평가는 사후 130년이 흘러가도 부정적인 평가를 완전히 씻을 수는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그 후 200년이 지난 고종 2년(1865년),흥선대원군에 의해서 서원철폐령이 내려 전국의 서원 417개 중 27개소만 살아남을 때 조광조를 배향하고 있는 심곡서원이 존치(存置)할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 이 서원이 차지하고 있는 비중이 크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지난 겨울 능주에 있는 ‘적려유허비’를 답사함으로써 시작된 조광조의 추적은 조광조의 시신이 묻혀 있는 묘소와 심곡서원을 찾아감으로써 대단원의 막을 내리게 되는 것이다. 조광조가 죽은 지 500년. 지금까지의 추적은 조광조의 생애와 살아있을 때의 그의 정치적 행적이었다면 심곡서원과 그의 무덤을 찾아감으로써 사후 500년이 흘러가는 동안 조광조가 역사에서 어떠한 인물로 평가받고 있는가에 대한 마무리 작업을 하기 위함인 것이다. 특히 숙종(肅宗)은 조광조를 매우 깊이 존경하여 ‘정암집’을 읽고 나서 ‘독정암집유감(讀靜菴集有感)’이란 어제(御製)를 내린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늘 돌아가시기 전에 한 말씀 생각하면 눈물이 절로 솟아났었는데,지금 선생의 글을 읽어 보니 더욱 더 도덕이 밝았음을 알겠도다. 조정의 벼슬아치들은 공을 이루기를 간절히 바랐고,시골의 노파들도 존경하였다네. 부수적으로 예(藝)에 노닐며 굳센 필세(筆勢) 또한 아름답도다. (每思臨死言 涕淚自交 今讀先生書 益知道德晟 朝紳咸仰成 野亦尊敬 餘事游於藝 佳哉筆勢勁)” 조광조에 대한 숙종대왕의 어제는 지금도 심곡서원 강당에 현판으로 내걸려 있다 한다. 차는 어느덧 신도시에서도 외곽지대로 접어들고 있었다.외국에서나 볼 수 있는 명품들을 싼값에 살 수 있는 아웃렛들이 갑자기 나타났다.지금까지 비교적 한적하였던 도로는 먼 곳에서 싼값에 고급 상품들을 사려는 사람들이 몰고 온 차량들의 행렬로 시장거리처럼 붐비고 있었다.˝
  • 儒林(91)-제1부 王道 제4장 文正公

    儒林(91)-제1부 王道 제4장 文正公

    제1부 王道 제4장 文正公 심곡서원(深谷書院). 심곡서원은 조광조와 그의 시신을 이곳까지 운구하였던 양팽손을 제향하고 있는 서원으로 조광조의 무덤이 있는 이곳에 선조 38년(1605년) 서원을 세우고 조광조의 위패를 모신 데에서 비롯된다. 선조는 특히 조광조를 존경하여 조광조를 영의정에 추증하고 시호를 내렸는데,‘문정공(文正公)’이라 하였다.이는 ‘도덕이 있고 학식이 넓으며 올바른 도리를 행한다.’는 뜻으로 선조의 이러한 배려에도 재력이 부족하여 서원이 세워지지 못하다가 시호를 받은 지 30년이 지난 후에야 서원을 세울 수 있었는데,서원의 이름을 ‘심곡(深谷)’이라 하였던 것은 원래 이곳이 조광조의 선영이 있었던 ‘심곡리’란 곳으로 조광조가 19세 되던 해 아버지 조원강이 별세하자 3년간 시묘를 하면서 이곳에 초당과 연못을 만들어 놓고 학문에 정진하던 유서가 깊은 곳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간신히 서원이 세워졌어도 임금으로부터 사액(賜額)을 받지는 못하였다.임금으로부터 서원에 이름을 지어 그것이 새겨진 편액(扁額)을 받지 못하면 서원으로서의 정통성을 인정받지 못하는데,그 후 인조 9년(1631년),유문서(柳文瑞) 등이 상소하여 사액해 줄 것을 청하였지만 거절당하였고,‘심곡’이란 사액을 받은 것은 효종 원년인 1650년이었다.서원이 세워진 지 반세기가 지나서야 임금으로부터 사액을 받은 것을 보면 조광조에 대한 평가는 사후 130년이 흘러가도 부정적인 평가를 완전히 씻을 수는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그 후 200년이 지난 고종 2년(1865년),흥선대원군에 의해서 서원철폐령이 내려 전국의 서원 417개 중 27개소만 살아남을 때 조광조를 배향하고 있는 심곡서원이 존치(存置)할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 이 서원이 차지하고 있는 비중이 크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지난 겨울 능주에 있는 ‘적려유허비’를 답사함으로써 시작된 조광조의 추적은 조광조의 시신이 묻혀 있는 묘소와 심곡서원을 찾아감으로써 대단원의 막을 내리게 되는 것이다. 조광조가 죽은 지 500년. 지금까지의 추적은 조광조의 생애와 살아있을 때의 그의 정치적 행적이었다면 심곡서원과 그의 무덤을 찾아감으로써 사후 500년이 흘러가는 동안 조광조가 역사에서 어떠한 인물로 평가받고 있는가에 대한 마무리 작업을 하기 위함인 것이다. 특히 숙종(肅宗)은 조광조를 매우 깊이 존경하여 ‘정암집’을 읽고 나서 ‘독정암집유감(讀靜菴集有感)’이란 어제(御製)를 내린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늘 돌아가시기 전에 한 말씀 생각하면 눈물이 절로 솟아났었는데,지금 선생의 글을 읽어 보니 더욱 더 도덕이 밝았음을 알겠도다. 조정의 벼슬아치들은 공을 이루기를 간절히 바랐고,시골의 노파들도 존경하였다네. 부수적으로 예(藝)에 노닐며 굳센 필세(筆勢) 또한 아름답도다. (每思臨死言 涕淚自交 今讀先生書 益知道德晟 朝紳咸仰成 野亦尊敬 餘事游於藝 佳哉筆勢勁)” 조광조에 대한 숙종대왕의 어제는 지금도 심곡서원 강당에 현판으로 내걸려 있다 한다. 차는 어느덧 신도시에서도 외곽지대로 접어들고 있었다.외국에서나 볼 수 있는 명품들을 싼값에 살 수 있는 아웃렛들이 갑자기 나타났다.지금까지 비교적 한적하였던 도로는 먼 곳에서 싼값에 고급 상품들을 사려는 사람들이 몰고 온 차량들의 행렬로 시장거리처럼 붐비고 있었다.
  • 복지부 감사관실 “전화가 무서워”

    보건복지부 감사관실 직원들이 ‘전화 노이로제’에 시달리고 있다.시도 때도 없이 걸려오는 ‘스토킹’성 전화 때문이다. 최근에는 여성 두 명의 활약(?)이 두드러진다.서울에 사는 40대 여성 김모씨.하루에도 4∼5차례 감사관실로 전화를 한다.요즘 민원은 “동네싸움이 났는데 진단서가 너무 지나치게 나왔다.복지부가 현장조사를 해보라.”는 것.이미 사건이 검찰로 넘어간 건이라 복지부에서 특별히 할 일이 없다는 답변을 줬지만,“책임회피가 아니냐.”며 막무가내로 따지고 들어 직원들이 일을 못할 정도다. 한번 전화를 하면 기본이 30분이고,전화를 받은 직원의 이름까지 일일이 물어서 적기 때문에 ‘허투루’ 대할 수도 없다. 또 한명은 70대 할머니인 자칭 ‘따봉여사’.입에 담지 못할 상소리를 하고,여직원들이 받으면 더 심해진다.“기초생활보장 수급자가 아닌데도 돈을 타니 알아보라.”는 내용부터 동네 민원을 전부 챙기는 스타일이다.하루 5∼6통은 기본이고 심하면 1시간도 넘게 전화를 한다. 요령이 생긴 직원들은 요즘 웬만큼 시간이 지났다 싶으면 수화기를 내려놓는다. 김성수기자 sskim@˝
  • ‘최고과학기술인상’ 황우석·윤덕용교수

    “하고 싶은 연구를 할 수 있도록 그동안 국가와 사회가 지원해준 것만으로도 고마운데 상까지 주셔서 무한책임을 느낍니다.” 우리나라 과학기술인들에게 주어지는 최고의 영예인 ‘대한민국 최고 과학기술인상’ 공동수상자로 선정된 황우석 서울대 교수와 윤덕용 한국과학기술원(KAIST) 석좌교수는 20일 수상소감을 이렇게 밝혔다. 3억원의 상금을 어디에 쓸 계획이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황 교수는 “그동안 받은 상금을 모두 모아 놓았는데 5000만원이나 된다.”면서 “이번 상금까지 합쳐 (과학계를 위해)유용하게 쓰는 방안을 원로 과학자들과 상의하고 있다.”고 말했다.마침 이날은 김재철 동원그룹 회장이 주축이 된 ‘황우석 교수 후원회’도 출범해 경사가 겹쳤다.얼마전에는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이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들기도 했다.노벨과학상 후보로도 꼽힌다. 황 교수는 “세계 70여개 연구기관에서 인간배아 줄기세포를 분양해줄 것과 공동연구를 진행하자는 요청이 쏟아지고 있다.”면서 “국익과 연구 활성화 기여도를 충분히 따져 내달께 대상자를 선정,상대국과 MOU(양해각서)를 맺을 계획”이라고 밝혔다.윤 석좌교수는 “여건이 되면 남북 학자들의 교류에 기여하고 싶다.”며 남북간 학술교류에 강한 의지를 내비쳤다.그는 중학교 2학년까지 평양에서 살다가 6·25 전쟁이 터지면서 월남했다. 안미현기자 hyun@ ◇훈장 1등급(창조장)=朴勝德 한국과학기술단체 총연합회 부회장,姜昌五 ㈜포스코 대표이사 사장,河斗鳳 광주과학기술원 석좌교수◇훈장 2등급(혁신장)=朴基漸 ㈜우영 대표이사,金鍾鎭 한국과학기술원 교수,金容海 한국과학기술원 화학과 석좌교수,李泰燮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원장,黃海雄 한국기계연구원 원장˝
  • 儒林(75)-제1부 王道 제3장 至治主義

    제1부 王道 제3장 至治主義 조광조가 빼어든 두 번째의 칼은 정국(靖國)공신의 개정이었다. 정국공신이란 연산군을 몰아내는 데 공을 세웠다 해서 주어진 훈작(勳爵)이었다.그런데 이를 받은 사람 중에 엉터리가 많이 있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바였다.그래서 혁명 후 얼마 안돼서부터 공훈록을 바르게 고쳐야 한다는 논의는 항상 있어왔던 것이었다.그러나 조신들의 성의 부족과 그들에 의해서 왕위에 옹립된 중종의 우유부단한 거부로 차츰 그에 대한 논의가 시들해가는 추세에 갑자기 조광조가 공론으로 제시한 것이었다.즉,중종반정 때 공신이 된 사람들의 훈적을 삭제하려 했던 것이었다. 연산군을 폐위시키고 왕이 된 중종은 자기를 왕위에 올려준 신하들의 공로에 따라 사등급하여 정국공신에 봉하였다.즉,일등 공신에는 박원종·성희안·홍경주 등 8명,이등 공신에는 운수군 효성과 심순경·이계남 등 13명,삼등 공신에는 유계종·고수겸·심정 등 30명,사등 공신에는 변준·윤여필 등 52명을 각각 책록하여 도합 103명에 이르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러나 이들 중에는 납득하지 못할 공신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었던 것이다.운수군(雲水君)은 반정에 공이 있어서가 아니라 중종과 종친이라는 이유 하나 때문에 특혜를 입은 것이었고,이희옹(李希雍)이란 사람은 연산군이 혁명에 쫓겨나는 날 승지로 있었는데,혁명군이 궐내로 밀고들어오자 소매를 붙잡고 놓지 않으려는 연산군을 뿌리치고 하수구로 도망쳤던 사람이었다.그렇게 해서 슬그머니 혁명 등 배열에 끼여 엉뚱하게도 정국공신에 올랐던 비열한 인물이었던 것이었다. 이에 대사헌 조광조는 정국공신의 전면적인 개정을 요구하면서 다음과 같이 간하였다고 기록은 전하고 있다. “정국공신은 책봉된 지 비록 오래되었다고는 하지만 이 공신 중에는 폐주(연산군)의 총신들이 많은데 이들의 죄를 논하자면 결코 용서할 수가 없습니다.비록 폐주의 총신이라 할지라도 반정할 때에 공을 세웠다면 마땅히 공신으로 기록될 수 있겠지만 이들은 아무런 공도 없지 않습니까.대개 공신을 중하게 여기면 공을 탐하고,이로움을 탐해서 왕을 시해하고,나라를 빼앗는 일이 자주 일어나게 됩니다.그러므로 임금이 만약 나라를 잘 다스리고자 한다면 이러한 일의 근원을 막아야 하는 것입니다.성희안은 당시에도 그렇게 하려고 하지는 않았지만 유자광은 자제와 인아 를 귀하게 만들기 위해 그렇게 하였으니,이는 전적으로 소인들이 모의에 참석하였기 때문입니다.지금 상하 모두가 잘 다스려지기를 바라는 때에 이를 앞세워 정국공신을 개정치 않는다면 온전히 국가를 유지할 수 없을까 걱정이 됩니다.” 조광조는 위와 같은 상소를 올려 왕의 결단을 촉구하였다.곧 조정의 대신들도 이를 지지하고 계속해서 사헌부와 사간원이 성희안,박원종,유자광 등의 잘못을 들어 탄핵하였으나 중종은 삭훈에 응하지 않았다.이에 다시 대간이 사직서를 내고 삭훈할 것을 주장하였다. “이 일은 비단 한 가지 정사(政事)의 잘못만은 아닙니다.사람들이 모두 이익만을 알고 인의를 모르면 장차 나라의 일이 어떻게 될지 걱정입니다.” 공신들은 여러가지 특권을 누려 국가로부터 소위 녹권(錄券)을 받아 그 자신은 물론 자손 대대로 귀족으로 행세하여 영화를 누릴 수 있었으며,국가에서 토지와 노비를 받아 경제적인 보상까지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그러므로 한 번 공신에 책록되는 일은 자신과 후손들의 정치적,경제적 기반을 아울러 확보하는 일이 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조광조 등 신진세력들이 수구세력의 기반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권력층으로서의 위치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당시 가장 위세가 당당한 기성층인 정국공신을 제거해야 했던 것이다.그러나 조광조가 이처럼 강력하게 정국공신의 개정을 요구하고 나선 것은 그들의 기반을 무너뜨려 권력을 장악하려는 이유보다는 다른 이유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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