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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평검사도 조직적 반발 조짐

    사법개혁추진위원회(사개추위)가 추진하고 있는 형사소송법 개정안에 대한 검찰의 반발이 확산되고 있다. 특히 일선 검찰청 평검사들이 잇따라 내부회의를 열어 사개추위안의 문제점을 성토하는 등 ‘제2의 검란’ 국면으로 치닫는 양상이다.30일 사개추위의 마지막 토론회가 이번 사태의 분수령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평검사 회의 잇따라 개최 29일 검찰에 따르면 전날 인천지검, 대전지검 천안지청, 광주지검 순천지청 검사들이 내부회의를 가진데 이어 30일에는 대전지검 공주지청 검사들이 회의를 갖기로 했다. 천안지청과 순천지청 평검사회의에서는 “사개추위안 대로라면 뇌물사범, 조폭, 성범죄자 등 범법자들이 거리를 활개치고 다니게 된다.”며 사개추위를 성토하는 분위기였던 것으로 전해졌다.“사표를 내자.”는 강한 의견도 제기됐다고 한다. 이런 가운데 김종빈 검찰총장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피고인 인권 강화와 투명하고 공정한 재판 보장을 목표로 추진중인 사법개혁 노력에 원칙적으로 동의한다.”면서도 “하지만 균형된 수사와 재판을 위해서는 사개추위 개정안의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검찰은 ▲사법방해죄 신설 △플리바게닝(유죄협상제도) 도입 등의 보완책을 요구했다. ●졸속 추진 논란 검찰 고위관계자는 이날 “당초 지금 문제가 된 형사소송법상의 증거법은 가을쯤 논의할 것으로 예정돼 있었다.”면서 “우선 배심·참심제를 운용하면서 형소법상 증거법을 일부 적용해 보기로 했는데, 위헌 소지 등의 문제로 사개추위에서 이번에 한꺼번에 증거법 부분을 일괄 개정키로 한 것”이라고 말했다. 시급하지 않은 사안이라고 판단, 천천히 대처하려 했는데 ‘뒤통수’를 맞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사개추위측은 “출범 때부터 사법개혁안은 올 정기국회에 상정키로 예정돼 있었다.”면서 “증거법 부분을 따로 다룰 계획은 전혀 없었다.”고 반박했다. ●검찰 내부게시판은 ‘벌집’ 전날에 이어 이날도 검찰통신망인 ‘이프로스’ 게시판에는 사개추위의 형소법 개정안이 적용됐을 때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글이 잇따라 올랐다. 개정안을 적용, 소설 형식으로 ‘가상재판’을 묘사한 글도 실렸다.K검사가 쓴 ‘김미모씨 성폭행 무죄사건’이라는 제목의 가상소설은 이렇게 전개된다. 200자 원고지 80장 분량의 이 가상소설을 읽은 일선 검사들은 ‘대검에서 형사 모의재판을 해보자.’ ‘만화로 그려 홍보하자.’ 등의 대글로 공감을 표시하고 있다. 게시판에는 또 정부기관중 한 곳이 전방위적 대처를 통해 위기 극복에 성공한 사례를 소개하며 “검사장을 단장으로 검사 30명, 계장 및 주임 120명, 여직원 30명, 기타 20명 등 모두 200명으로 가칭 ‘민주적 형사사법제도 연구단’을 조직, 구체적 대응에 나서자.”는 글도 올라왔다. 박경호기자 kh4right@seoul.co.kr
  • 담배소송 5년만에 조정 회부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3부(부장 조경란)는 “피고측 변호사의 요청에 따라 지난 1999년 흡연으로 폐암에 걸린 환자와 유족 31명이 국가와 KT&G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소송을 21일 조정에 부쳤다.”고 26일 밝혔다. 하지만 양측의 입장이 맞서고 있어 5년을 끌어온 이 사건이 조정까지 갈지는 미지수이다. 흡연 피해자측 변호사인 배금자씨는 “담배 수익금으로 흡연자를 위한 공익재단을 만들어 피해자를 지원한다면 KT&G와 피고 모두에게 득이 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KT&G는 “공익적 차원의 취지는 좋지만 ‘위협적인 행위를 하는 기업이 아니다.’는 내용이 조정안에 담겨야 한다.”고 전했다. 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 진기홍옹, 구한말 우편자료 172점 기증

    한 개인 수집가가 우리나라 근대우편 역사를 알 수 있는 진귀한 자료를 대거 정보통신부에 기증하기로 했다. 대부분이 국내 최초로 공개되는 것이어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정보통신부는 21일 우정사업본부 광주체신청장을 지낸 진기홍(92)옹이 평생 사재를 털어 수집한 172점의 정보통신 관련 자료를 정통부에 기증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한나라당 진영 의원의 부친인 진옹은 “1940년초부터 한국우정 관련자료 발굴을 위해 도서실과 박물관 등을 수없이 찾았고 특히 일본을 네 차례나 방문해 외무성과 의회 등에서 해당자료를 수집했다.”고 밝혔다. 이번에 전달된 자료들은 오는 8월3일부터 6일간 서울 코엑스에서 열리는 대한민국 우표전시회 특별전시관에서 소개된다. 구한말 우정제도와 발전 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대조선국우정규칙(사진 오른쪽·1884년)’은 물론 효종 2년 당시 ‘역폐(驛弊)’의 시정을 요구하는 상소문 초안도 처음 소개되는 것이다. 구한말 우체국의 효시인 우정총국을 만든 홍영식이 당시 개혁 주도세력 김옥균의 설득에 따라 개혁운동에 나서면서 지은 친필 시문은 물론 동학혁명때 전라감사 앞으로 전달된 전보 등도 있다. 자료는 우정사업본부가 운영하는 천안의 우정박물관에서 관리하며,22일 ‘정보통신의 날’을 맞아 진대제 정보통신부 장관에게 전달된다. 주현진기자 jhj@seoul.co.kr
  • [사회플러스] 대한민국 사진전 대상작 취소

    한국사진작가협회(이사장 김종호) 주최 제24회 대한민국사진대전의 대상작으로 최근 선정된 황정석(66)씨의 ‘평화’가 기발표작과 새 사진을 합성한 것으로 드러나 대상 선정이 취소됐다. 문제의 작품은 황씨가 수상소감을 통해 네 차례의 인도여행에서 찍은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협회는 회원들의 이의제기에 따라 문제의 작품을 검토한 결과 황씨가 1999년 제18회 대한민국사진대전에 출품해 입선한 ‘갈증’을 하단부에 배치하고 다른 사진을 위쪽에 합성배치해 일부를 수정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14일 발표했다.
  • 수입쌀 2만t 9월부터 시판

    수입쌀 2만t 9월부터 시판

    세계무역기구(WTO)가 지난해 말 타결된 쌀협상 결과를 받아들임에 따라 오는 9월쯤 밥쌀용 수입쌀이 처음으로 국내에 시판될 예정이다. 정부는 12일 이런 내용의 쌀 관세화 유예 추가연장에 대한 WTO의 이행계획서 공식 인증결과를 공개했다. 정부는 지난해 말 중국·미국·태국 등 9개국과 쌀협상을 타결한 뒤 결과를 WTO에 통보했었다. 정부는 이행계획서를 6월 임시국회에서 비준받을 예정이지만 농민단체 등의 반발로 진통이 예상된다. 농민단체와 농촌지역 출신 의원들은 의무수입물량 확대와 수입쌀 시판은 국내 쌀산업의 붕괴를 초래할 수 있다고 반발하고 있다. 이행계획서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쌀 관세화 유예를 10년간 추가 연장하는 대신 올해 4%(1988∼90년 국내 평균 쌀소비량 대비·20만 5000t)인 쌀 의무수입물량을 매년 같은 양으로 늘려야 한다. 이에 따라 2014년에는 기준연도 소비량의 7.96%(40만 8700t)를 수입해야 한다. 또 쌀과자 등 가공용으로만 허용하던 수입쌀의 밥쌀용 시판을 올해부터 허용하고 시판물량은 2005년 의무수입물량의 10%에서 2010년까지 30%로 확대한 뒤 2014년까지 30% 비율을 유지해야 한다. 정부는 국회비준이 끝나면 쌀 보관이 어려운 장마철(7∼8월)을 피해 9월께 수입쌀을 국내로 들여와 시중에 유통시킬 계획이다. 수입쌀 시판이 시작되면 소비자들은 중국과 미국의 자포니카(중단립종) 쌀과 태국의 안남미 등을 시중에서 직접 살 수 있다. 올해 밥쌀용 시판물량은 2만 2575t,15만 8000섬으로 연간 쌀 예상소비량(3200만섬)의 0.5% 수준에 불과하지만 국내산 쌀과 수입쌀의 경쟁은 불가피하게 된다. 이와 함께 정부는 중국 등 일부 국가별로 농수산물 조정관세 부과 품목 축소 등에 대한 양자간 전문가 협의 등을 진행하기로 합의했다. 김태균기자 windsea@seoul.co.kr
  • [식목일 산불] 첫 선포 ‘재난사태’ 의미

    강원도 양양 산불피해 지역에 재난사태가 선포됨으로써 재난수습을 위한 총동원령을 발령할 수 있게 됐다.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에 따르면 시·도지사나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장인 행정자치부장관이 극심한 인명 또는 재산피해가 발생하거나 발생할 것으로 판단되면 중앙안전관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선포 대상지역이 3개 시·도 이상이면 국무총리가,2개 시·도 이하면 행자부 장관이 재난사태를 각각 선포할 수 있다. 이 법은 지난해 3월11일 소방방재청 개청을 2개월여 앞두고 통과됐다. 재난사태가 선포되면 재난경보 발령과 인력 장비 및 물자 동원, 위험구역 지정 설정과 대피명령 등 법에 의한 응급조치와 함께 해당지역 행정기관 소속 공무원의 비상소집과 이 지역에 대한 여행 자제 권고를 할 수 있다. 재난사태 선포로 발령된 명령을 듣지 않을 경우 최고 200만원의 벌금이 부과된다. 한편 소방방재청은 지난해 7월 태풍 ‘민들레’가 한반도를 관통할 것이라는 예보가 나온 뒤 목포지역에 큰 비가 내리자 긴급 간부회의를 소집해 재난사태 선포 여부를 신중히 검토했으나 태풍이 예상보다 약해지는 바람에 선포하지 않았다. 조덕현기자 hyoun@seoul.co.kr
  • [주말화제] 삼국지 장수중 누가 가장 셀까

    [주말화제] 삼국지 장수중 누가 가장 셀까

    ‘삼국지’에서 가장 싸움을 잘하는 장수는 누구일까. 삼국지를 학술적 차원에서 연구해 일명 ‘삼국지연구소’라고 불리는 인하대 한국학연구소의 조성면(39) 연구원은 “단순 무력으로만 봤을 때는 여포가 최고”라고 말했다. 이어 관우-장비-조자룡-마초-황충-위연 등의 순이다. 그러나 종합적인 장수적 자질에 있어서는 관우를 최고로 꼽았다. 연구소측은 또 지략이 뛰어난 책사(策士)를 제갈량-방통-사마의-육손-순욱 순으로 평했다. ●인하대 삼국지硏 ‘국내본 300종’ 분석 인류의 영원한 고전 삼국지가 해부된다. 연구소는 지난해 9월 학술진흥재단으로부터 2년 기한으로 ‘삼국지 역본 및 서사변용 연구’라는 색다른 책무를 부여받은 뒤 조선 중기부터 지금까지 발간된 400여종의 삼국지 한국어 번역 판본을 발굴·조사 및 해석하는 작업을 펴고 있다. 정학성 인하대 국문과 교수와 중문학과 국문학 등을 전공한 5명의 연구원이 맡고 있다. 현재 수집한 삼국지 판본 300종에 대한 학술적 해제작업에 치중하고 있으며, 내년에 연구성과를 논문과 단행본 등으로 발표한다. 연구에 따르면 우리나라 역사서에 삼국지 이야기가 처음 등장한 것은 조선 선조 2년(1569년)으로 성리학자 기대승의 상소문에 “삼국지가 널리 읽혀 풍속의 괴란이 우려된다.”는 문구가 나온다. 이때 이미 삼국지가 유행했다는 증거다. 당시 원본을 손으로 옮긴 필사본을 비롯해 목판본·납활자본 등이 널리 퍼져 있었으며 조선 후기에는 청나라에서 석판본이 수입됐다. ●지략은 제갈량·방통·사마의·육손順 조선 정조 이후는 삼국지가 상업적 측면에서 출간되다가 1904년에 근대화 판본인 구활자본이 박문서관에서 간행되었다.1929년에는 양백화에 의해 최초로 신문(매일신보)에 연재되었으며,1945년에 현대화된 판본인 ‘박태원 삼국지’가 등장했다. 해방 이후에는 삼국지 출간이 본격화돼 지금까지 370여종이 발행됐으며, 삼국지 처세학·경영학·논술 등 실용서도 50여종 등장했다. 최근에는 비디오·컴퓨터게임·애니메이션 등 ‘읽는’데서 ‘보고 즐기는’ 형으로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1800여년 전의 일이 첨단 문명시대를 사로잡는 ‘삼국지 신드롬’에 대해 윤진현(37) 연구원은 “삼국지 만큼 인물적 상상력을 펼칠 수 있는 작품이 세계적으로 드문데다 전문가들의 영역이었던 역사연구에 일반인의 접근도 가능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근대 이후에 발간된 삼국지 판본은 중국 ‘모종강류’와 일본 ‘요시가와 에이지류’가 양대 산맥이다. 모종강은 1494년 나관중이 펴낸 ‘삼국지연의(삼국지 원전)’를 소설 성격으로 완성시킨 장본인이다. 삼국지연의가 서기 285년 진나라 역사가 진수가 3부 65권으로 펴낸 정사(正史) ‘삼국지’를 참고하고 항간에 떠도는 이야기를 종합정리한 것이라면 모종강은 서사적 구성을 완결지었다. 우리나라의 박태원, 최영해, 박종화, 김구용 등이 쓴 삼국지가 모종강류인데 원전에 충실하면서도 소설적 묘미를 살린 것이 특징이다. 반면 김동리, 김광주, 양주동 등이 쓴 삼국지는 1939년 요시가와 에이지가 현대적 기법으로 재창작한 것을 그대로 번역한 수준이다. ●7은 사실,3은 허구 삼국지 최대의 논란은 역사적 사실과의 괴리. 내용 가운데 70%는 사실이고 30%는 허구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반적 견해나 오히려 허구가 더 많다는 분석도 있다. 대부분 성인군자로 묘사하고 있는 주인공 유비에 대해 연구소측은 “유비는 ‘쪼다’이면서도 ‘음흉’한 측면을 지닌 이중인격자였다.”고 주장한다. 제갈량은 비바람까지 부르는, 신에 가까운 전략가로 등장하지만 실제론 재정 등 내치를 담당하는 참모에 가까웠다는 것이다. 여포는 정원과 동탁 등 양아버지를 잇따라 죽이는 ‘배신’의 상징으로 그려졌지만 여포가 정통 한족이 아닌 색목인(위구르족)이었기에 상대적 폄하를 받았다는 시각도 있다. 조 연구원은 “삼국지는 중국인 특유의 과장과 ‘촉한 정통론’의 시각에서 쓰여졌기 때문에 사실(史實)과 부합되지 않는 대목이 적지 않다.”면서 “작가의 의도가 많이 가미됐다는 것을 알고 읽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인천 김학준기자 kimhj@seoul.co.kr
  • [논술이 술술] 모모/미하엘 엔데

    시간을 절약하고 합리적으로 관리해야 한다는 것은 근대 이후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가장 중요한 원칙이 되어 왔다. 더 빨리 보고, 듣고, 생각하고, 움직여야 한다는 것은 뚜렷한 목적이 없이도 그 자체로 윤리적인 의무로 여겨졌고, 나아가 시간을 합리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시계가 문명의 중요한 발명품으로 등장했다. 이러한 변화를 우리는 자연스러운 것, 곧 인간과 자연의 본성에 기초한 보편적 상황으로 받아들이기 쉽다. 시계가 나타내는 시간은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자연의 시간을 정밀하게 표현하고 있는 것에 불과하고, 인간이 본성적으로 갖고 있는 이기적 욕망에 의해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부지런히 열심히 살아가는 것을 윤리적으로 여기게 되었다고 말이다. 그러나 시계가 나타내는 시간은 자연의 시간 자체가 아니고, 시간을 아끼며 살아야 한다는 것도 인간의 보편적 본성과는 관계없는 근대적 세계관의 산물일 뿐이다. 근대의 세계관은 인간의 과학·기술과 기계에 의한 무한한 물질적 발전을 궁극의 가치로 여기며 발전해 왔다. 이러한 세계관에서 시간을 표준화하고 정확히 측정하는 문제는 매우 중요하게 나타난다. 단위 생산물의 생산 속도로 정의되는 생산성의 개념에서처럼 주어진 시간에 일을 빨리 하는 것이 발전이자 진보로 이해되기 때문이다. 인간은 물질적 세계로부터 독립되어 직선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객관적 실재로서 시간을 파악하게 되었으며, 시계를 통해 동질적인 ‘24시간’ 체제로 인간의 삶을 표준화시켰다. 그러나 시계를 통한 근대적 시간의 지배는 자연적 시간에서 인간의 삶을 분리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이제 인간은 일하는 것은 물론이고 먹는 것, 쉬는 것, 잠자는 것까지 신체의 요구에 의해서가 아니라 시계에 의해 지배받게 되었다. 또한 시간의 지배는 근대 사회에서 인간의 행동과 언어, 사고를 제약하여 삶의 양상을 극도로 표준화시켰을 뿐 아니라, 기술의 변동에 그것을 직접 종속시키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독일의 미카엘 엔데라는 작가가 쓴 ‘모모’는 이러한 근대적 시간관의 문제점을 날카롭게 드러내면서 근대 문명의 물질주의와 획일주의를 비판한다. 그리고 이를 시간 도둑인 회색 인간들과 싸우는 모모라는 거지 소녀의 활약이라는 동화적 상상으로 재미있게 그린다. 이 책은 1970년대 후반에 우리 나라에 처음 소개된 뒤 큰 반향을 일으키며 널리 읽혔다. 하지만 그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더 빨라진 세상에서 사는 우리들에게 이 책의 의미는 더욱 진지하게 다가올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이 시간을 재는 모든 단위는 무가치한 것이기도 하다. 그 이유는 시간은 바로 생활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람이 사는 생활은 진실로 그 사람의 마음속에 있기 때문이다.”라는 작가의 말은 ‘속도’와 ‘경쟁’의 현실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우리들에게 자신의 삶에 대해서 진지하게 성찰할 것, 그리고 자신의 ‘존재의 이유와 목적’을 주체적으로 회복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유니드림 대학입시연구소(www.unidream.co.kr) ■ 생각해보기 -밀란 쿤데라는 ‘느림’이라는 소설에서 오토바이나 자동차를 타고 가는 경우에 비유해 현대인들은 속도에 집착하면 할수록 그만큼 더 주변을 돌아보지 않으며 자신 안에 갇히게 된다고 현대문명의 속도를 비판한다. 이밖에도 시간과 관련, 현대 문명이 갖는 문제점은 어떠한 것이 있을까. -근대 사회에서 나타난 객관화되고 절대화된 표준시의 관념이 가져온 장점과 단점은. -흔히 동양사상의 전통이 현대 문명의 대안으로서 강조되기도 한다. 동양사상의 전통 가운데 어떤 것이 현대 문명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까. 과연 현대 물질 문명의 문제를 극복할 근본적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시간은 바로 생활, 그리고 생활이란 인간의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는 것’이라는 작가의 말의 의미는. ■ 독서지도시 참고사항 -대상 학년:중1∼고3 -관련 교과:고등 사회, 윤리와 사상, 사회문화 -함께 읽어 볼 책:느림(밀란 쿤데라), 월든(소로우), 맥도날드 그리고 맥도날드화(조지 리처), 조화로운 삶(헬렌 니어링, 스코트 니어링),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피에르 상소), 무소유(법정), 프로테스탄티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막스 베버) -기출논제:연세대 2003학년도 자연계 정시 논술, 고려대 2002학년도 정시 논술, 인하대 2002학년도 수시1학기 논술, 수시2학기 자연계 논술
  • 儒林(309)-제3부 君子有終 제2장 鄒魯之鄕

    儒林(309)-제3부 君子有終 제2장 鄒魯之鄕

    제3부 君子有終 제2장 鄒魯之鄕 퇴계가 얼마나 단양의 군민들에게 사랑을 받았던가는 이퇴계의 ‘언행록’3권에 기록된 ‘거관(居官)’편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거관’이란 벼슬살이를 가리키는 것으로 퇴계의 제자 중의 한 사람이었던 우성전(禹性傳)은 어느 날 단양을 지나다가 한 노인을 만나서 다음과 같이 물었다고 한다. “지금까지의 이곳 고을의 태수로서 누가 정치를 잘하였소.” 그러자 노인은 ‘황준량(黃俊良)’이라고 대답한다. 황준량은 퇴계보다 17년이나 어린제자였는데 퇴계를 만나면서 ‘근사록’ 등 여러 글을 접하게 되고, 주자의 글을 읽게 됨으로써 성리학에 눈뜬 학자였다. 그는 고을을 다스림에 있어서도 밝은 지혜와 청렴한 자세로 한결같은 치적을 이루었는데, 특히 단양군수로 부임하였을 때에는 거의 쓰러질 상태의 고을을 다시 일으키고자 임금에게 상소문을 올려 부역을 면하게 하였다. 특히 4800자의 명문장은 임금을 크게 감동시킨 명태수였던 것이다. 그러자 우성전은 다시 묻는다. “그럼 황중량이 제일 잘한 사람인가요.” 노인은 머리를 흔들며 대답하였다. “아닙니다. 이 아무개(퇴계를 가리킴)가 제일 잘했습니다.” 이에 우성전이 다시 물었다. “그런데 어째서 아까는 황준량이라고 말하였소.” 노인이 다시 대답하였다. “황준량은 최근이요, 또 그는 나라에 글을 올려 부역을 면하게 한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공은 이곳에 와서 오래 있지 않았는데 비록 나라에 글을 올린 일은 없었으나 그의 모든 행동은 사람들의 마음을 감복시켜 사람들은 지금까지 그를 사모하여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언행록’을 쓴 사람, 우성전은 본관이 단양으로 이퇴계의 문인이었다. 훗날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경기도에서 의병을 모집하여 이를 추의군(秋義軍)이라 하고 의병장으로도 뛰어난 활약을 펼쳤던 사람인데, 그의 기록을 보면 알 수 있듯이 퇴계는 비록 9개월 동안만 단양에 머물러 있었지만 그의 빼어난 인격은 단양사람들의 마음을 감복시켜 두고두고 그를 사모하게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퇴계로서는 단양에 더 이상 머무를 수 없는 뜻밖의 사정이 생긴다. 그것은 그해 여름 퇴계의 형인 해가 충청감사로 부임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충청감사는 단양군수의 직속상관으로 만약 퇴계가 그대로 단양에 머물러 있으면 형제가 나란히 한 지역에서 국록을 먹는 불합리한 일이 생기는 것이었다. 퇴계가 스스로 상소를 올려 단양의 군수에서 사직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퇴계는 차기 후임지로 풍기를 청하였는데, 이는 단양과 풍기가 죽령(竹嶺)을 사이에 둔 지척지간이었으나 단양은 충청도의 관할이고, 풍기는 경상도의 관할이므로 전혀 별개의 지역이었기 때문이었다. 조정에서는 소장을 받아들여 퇴계를 풍기의 군수로 임명하였는데, 이는 퇴계로서도 뜻하는 바였다. 퇴계는 자신이 이제 퇴사(退仕)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찾아왔음을 알고 조금이라도 고향에서 가까운 곳으로 나아가려는 의지를 나타내 보인 것이었다. 단양군수의 외직을 자원하였던 것도 그러한 마음 때문인데 제자 김성일은 ‘언행록’에서 퇴계의 의지를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그때 세상 형편이 한번 변하자 선생은 도를 펴는데 뜻이 없었다. 선생이 단양으로 내려온 것도 장차 고향으로 내려갈 계획에서였다. 공무 중에 틈만 있으면 책보기로써 스스로 즐겼고, 혹은 홀로 귀담이나 석문사이에 가서 온종일 거닐다가 돌아왔다.…”
  • [논술이 술술]1984/글쓴이:조지 오웰

    조지 오웰의 ‘1984’는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미래소설 또는 정치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2차 세계대전의 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인 1948년에 36년 후의 세계를 나타냈기 때문에 미래 소설이라고 할 수 있으며, 전체주의 사회의 문제를 소설로 나타냈으므로 정치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이 소설의 무대인 오세아니아는 아메리카와 영국을 가리키고 있지만, 독자들은 작가가 스탈린 당시의 소련을 모델로 하여 이 작품을 쓰고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러나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문제는 미래 사회를 다양하게 그리고 있는 흔한 가상 공상소설들이나 소련에 대한 비판이라는 협소한 주제에 갇힌 정치소설과는 구별된다. 그것은 어빙 하우가 “현대에 대한 움직일 수 없는 증언”이라고 말하고 있듯이,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문제는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사회 속에 숨어 있는 보편적인 가능성들이기 때문이다. 오웰이 미래를 상상해서 나타내고 있는 ‘1984’의 세계는 오세아니아, 유라시아, 이스트아시아의 세 커다란 초국가(超國家)로 나뉘어 끝없이 전쟁이 이루어지고 있는 세계이다. 주인공인 6079호 윈스턴 스미스가 살고 있는 곳은 오세아니아의 제일 지대인 런던이다.‘당’이 자신의 권력을 의인화하여 내세운 ‘대형’(big brother)이 지배하고 있는 오세아니아는 사상 통제와 과거 통제라는 두 가지 방식으로 특징을 보인다. 사상 통제란 ‘INGSOC’이란 정당에서 다른 사고 방식을 철저히 통제하는 것을 말하며, 이것은 텔레스크린으로 개인의 사생활을 철저히 감시하는 것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사찰과 함께 ‘신어’(新語)를 통해서 사상을 통제하기도 한다.“해마다 낱말이 줄어드는” 이 신어는 언어에서 이단적인 사고와 행위의 표현을 없애서 범죄의 의식마저 불가능하게 하려는 것이다. 곧 자유니 평등이니 하는 말의 의미를 없애서 “장기를 모르는 사람이 장기의 ‘퀸’을 알 수 없듯이” 모든 이단적인 사고의 가능성을 배제하려는 것이다. 그리고 과거 통제란 당의 독재 권력을 절대화하기 위한 과거의 날조를 뜻한다.‘1984’의 세계는 “과거를 지배하는 자는 미래를 지배한다. 현재를 지배하는 자는 과거를 지배한다.”는 논리에 따라서 과거의 모든 기록은 당의 정치적 필요에 따라 끊임없이 수정된다. 물론 이러한 통제는 소련과 같은 일당독재 체제 하의 전체주의 국가를 비판하기 위한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그러나 ‘1984’년 이후를 살고 있는 우리는 지금의 세계 안에서 그러한 문제를 본다.‘이라크 민중을 향한 무자비한 폭격’과 ‘이라크 민중의 해방’이라는 명분의 기묘한 결합, 여러 정당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개혁들’끼리의 갈등…. 우리의 사고와 행동은 과연 ‘해방’과 ‘개혁’이라는 정치적 ‘신어’들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운가. 우리들이 생각하는 진리는 과연 얼마나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가. 이 책의 진정한 가치는 이처럼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의 모습을 진지하게 되돌아보게 만드는 데 있다. 프롬의 말처럼 “조지 오웰의 ‘1984’는 분위기의 표현이며 경고이다. 그것은 인간의 미래에 관한 절망적 분위기의 표현이고, 역사적인 변화 과정이 없이는 전세계의 인간이 인간성을 상실한 자동 기계가 될 것이며, 이것을 인식조차 하지 못하게 되리란 사실에 대한 경고이다.” ■생각해보기 -인간의 사고와 행동에 언어가 미치는 영향은. -‘역사’는 정치권력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정치권력에 의해 씌어지는 ‘역사’를 극복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할까. -과학기술의 발달에 따라 인간의 삶에 대한 기술적 통제의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나타나는 구체적인 예를 들어 그 문제점과 해결 방안을 생각해보자. -국가 권력의 거대화와 정보 독점에 따른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할까. ■독서 지도시 참고사항 -대상 학년:중3∼고3 -관련 교과:고등 사회, 윤리와 사상, 정치, 사회문화 -함께 읽어 볼 책과 고전:멋진 신세계(헉슬리), 동물농장(조지 오웰), 소유의 종말(제레미 리프킨·민음사), 일반언어학강의(소쉬르), 영화(매트릭스, 공각기동대) -기출논제:중앙대 2000학년도 정시 논술, 고려대 2002학년도 수시2학기 논술 유니드림 대학입시연구소(www.unidream.co.kr)
  • [CEO 칼럼] 드라큘라와 청렴한 CEO/이해익 리즈경영컨설팅 대표컨설턴트

    [CEO 칼럼] 드라큘라와 청렴한 CEO/이해익 리즈경영컨설팅 대표컨설턴트

    드라큘라는 영국의 괴기소설가 B 스토커의 소설 ‘흡혈귀 드라큘라’의 주인공이다. 이 소설의 모티브가 된 인물은 15세기 왈라키아 공국의 영주였던 블라드 체페슈다. 체페슈는 루마니아어로 꼬챙이를 뜻한다. 전쟁포로나 범법자를 긴 꼬챙이로 잔인하게 처형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는 이처럼 잔인한 인물로 알려져 있으나 루마니아 역사에서는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군대를 물리친 용장으로 유명하다.‘용(Dracul)’이라는 작위를 받은 그의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생각해서 자신의 이름을 블라드 드라큘이라고도 했다 한다. 어쨌건 드라큘라는 흡혈귀로 뭇사람의 목에서 생피를 빨아 먹는 어둠의 악마였다. 그러나 매력이 넘치고 힘이 장사였다. 다만 그는 빛과 십자가, 그리고 마늘을 두려워했다. 그를 완전히 제거하려면 심장에 나무말뚝을 꽂아야 했다. 스토커의 소설 ‘드라큘라’는 음습하고 무섭지만 나름의 미학을 갖고 있어 아름답기까지 하다. 어둠의 제왕은 능력이 엄청났지만 약점이 있었다. 그는 우선 빛에 약하다. 광명세계에서는 괴력도 무용지물이다. 둘째, 십자가의 뜻은 희생봉사다. 셋째, 마늘은 ‘알리신’이라는 매운 맛을 내는 특성이 있다. 이는 살균력이 대단하다. 소금과 마늘은 부패를 막는 먹을거리다. 고위공직자 재산변동 공개가 있었다. 대부분 고위공직자 재산이 1년새 늘었다. 특히 경제수장인 이헌재 전 부총리의 재산급증이 말썽이 됐다. 청와대의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끝내 자리를 내놓지 않을 수 없었다. 경제수장으로서는 탁월했는지 모르지만 재산공개 앞에는 무력할 수밖에 없었다. 자연인으로서 그의 재테크는 그리 나무랄 일이 아닐지 모른다. 그러나 공직자는 희생을 요구받는 사람이다. 그래서 그의 부인이 부동산 재테크로 재산을 불린 것은 뭇서민들을 실망시켰다. 고위공직자는 여러 사람을 거느리고 영향력이 큰 정책을 주무른다. 고위공직자가 소금이 되고 마늘이 돼야 뭇사람이 그나마 청결을 유지하기 쉽다. 모처럼 경제회복 기미가 있는 상황이라서 그의 퇴진은 그만큼 어려웠겠지만 여론은 끝내 야박했다. 1993년 조무제 전 대법관은 첫 공직자 재산공개에서 25평 아파트와 1000만원 예금 등 6400만원을 신고해서 고위법관 103명 가운데 꼴찌를 기록했다. 대법관으로 임명된 후 서울 서초동에서 보증금 2000만원짜리 원룸에 살면서 5급비서관도 ‘필요 없다.’고 거절했던 일화로 유명하다. 관례로 여겨지던 전별금을 받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2004년 퇴직시까지 3597만원이 늘어난 것으로 집계돼 ‘빈 손’으로 떠났다. 퇴직 후에도 한 움큼 돈을 만질 수 있는 변호사를 마다하고 대학 강단에 서 학자의 길을 선택한 것도 감동스럽다. 이런 분 때문에 그래도 살맛이 나고 나라가 이만큼 견디나 보다. 조 전 대법관이나 황희 정승 같은 경륜과 청렴함을 갖춘 CEO를 국민은 모두 바랄 것이다. 물론 무리하고 소박하고 순진한 소망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게 백성이고 국민이고 고위 공직자다. 황정승이 벼슬에서 물러난 뒤 그의 아들이 정승에 올라 선물을 가져왔다.“네 놈이 벌써 재물을 아느냐.”고 호통치며 임금께 파직 상소까지 올렸다. 가족을 다스린 본보기가 아닐 수 없다.18년간이나 영의정을 지냈지만 가난했다. 지붕에서 빗물이 새어 그릇으로 받아냈다. 오늘날 부동산 재테크도 말썽이지만 ‘주식백지신탁제’도 물 건너가는지 국민들은 궁금하다. 부동산과 함께 주식을 통한 재산증식이 고위공직자들의 양대 재테크이기 때문이다. 최소한 돈과 권력, 그리고 명예 중 하나만 취해야 한다. 그것도 삼권분립이다. 이해익 리즈경영컨설팅 대표컨설턴트
  • [매향리 투기 광풍] 매향리 사격장 일지

    ▲1955년 2월 SOFA 협정에 따라 쿠니사격장 721만평 미군에 공여 ▲1988년 6월 피해주민 대책위원회 결성 ▲1988년 7월 가구주 614명 연명으로 청와대·국방부·경기도청에 피해대책 요구 진정서 제출 ▲1989년 3월 팀스피리트 훈련 기간에 주민 700여명 3주일 동안 폭격장 점거 ▲1994년 12월 198채의 가옥 균열피해에 대한 피해배상 요구. 미군기지앞 3개월 천막농성. 한·미 배상심의위원회로부터 3억 5000만원 보상 ▲1998년 2월 주민대표 14명 국가 상대로 폭격소음 손해배상소송 제기 ▲2000년 5월 A-10 근접지원기 오폭으로 주민 6명 부상. 일명 ‘매향리 오폭사건’ 발생 ▲2000년 6월 폭격훈련 알리는 주황색 깃발 찢은 전만규 위원장 군사시설보호법위반·기물손괴 혐의 구속 ▲2000년 8월 국방부, 육상 기총사격장 폐쇄 발표/1차 투기조짐 ▲2001년 4월 1심 재판에서 주민대표 14명 원고 일부 승소판결 ▲2001년 8월 주민 1899명 국가 상대로 2차 손해배상 소송 제기(이후 322명,149명 추가) ▲2002년 1월 주민대표 14명에 대한 항소심 원고일부 승소판결 ▲2004년 3월 대법원 원심대로 확정판결 ▲2004년 4월 배상금 1억 9400만원 지급/국방부,‘2005년 8월 폐쇄’발표/본격 투기 양상 ▲2005년 1월 주민 1863명 2차소송 일부 승소,81억 5000만원 배상 판결 ▲2005년 3월 ‘전북 군산 직도 쿠니사격장 대체 부지 유력’보도/투기과열 양상
  • [데스크시각] 지하철 본선개통의 신화와 안전/임태순 지방자치뉴스부장

    광복 60년이 됐지만 우리 사회 구석구석에는 아직도 일제의 잔재가 남아 있다. 철도를 보면 1945년 이후 신설 노선이 거의 없을 정도로 인프라는 대부분 일제 강점기에 건설됐다. 대륙으로의 물자수송을 위한 병참 목적이었겠지만 최근 복선화가 한창 진행되고 있는 서울역∼문산 구간도 이미 일제 때 계획됐었다. 그러다 보니 하드웨어뿐 아니라 소프트웨어도 많이 전수됐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어떤 일이 있어도 기차는 달려야 한다는 ‘본선개통의 신화’다. 일본인들은 철도기관사들에게 연료가 떨어지면 천황을 위해 자신의 몸을 화차에 던져서라도 기차를 운행하게 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이러한 전통은 오늘날까지 이어져 철도 역무원들은 정시 운행을 최고의 덕목으로 여긴다고 한다. 철도 종사자들이 초기 지하철 운행을 담당함으로써 본선개통의 전통은 자연스레 지하철로 옮겨졌다. 지하철 관계자들은 연초에 광명역에서 발생한 방화에 의한 지하철 화재사고도 이러한 전통과 무관하지 않다고 말한다. 당시 광명역장은 불 붙은 전동차가 역사로 들어오자 소화기로 진화에 나서 불을 끈 뒤 곧바로 전동차를 운행시켰다. 운행을 빨리 정상화시켜야 한다는 잠재의식이 깔려 있었기 때문이다. 역장으로선 새해 벽두부터 지하철 사고가 나 정상운행이 안 됐을 때 돌아올 승객들의 비난도 떠올랐을 것이다. 그러나 불씨는 완전히 잡히지 않아 전동차에서 다시 불이 나고 말았다.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안전에 무감각했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었다. 본선개통의 전통은 일제의 유산이기도 하지만 승객들이 조장한 측면도 적지 않다. 비행기, 기차 등의 연발착에 과민 반응을 보이는 것이 우리들이다. 러시아워에 전동차가 늦게 오면 역무실로 달려가 분풀이를 하거나 심하면 유리창을 부수는 등 소란을 피운다. 서울 시티투어 버스는 시내 명소를 순회해 외국인들의 인기가 높다. 시티투어 버스 여승무원은 교통정체 때 외국인과 한국인 승객 사이에는 뚜렷한 차이가 있다고 한다. 버스가 정체돼 미안하다고 하면 외국인들은 당신 책임이 아니지 않으냐면서 조용히 기다리는 반면 내국인들은 왜 이렇게 길이 막히느냐며 짜증을 낸다. 지하철사고가 났을 때도 마찬가지다. 프랑스의 경우 지하철이 늦게 오면 줄을 흩트리지 않고 기다린다고 한다. 도시철도 공사 관계자가 프랑스 지하철을 방문, 전동차가 늦어져 승객이 소동을 부릴 때 어떻게 대응하느냐고 묻자 승객의 안전을 위해 지하철을 고치고 있는데 왜 소란을 부리느냐며 의아해했다고 한다. 본선개통이라는 투철한 직업의식을 남겨준 일본도 프랑스와 다르지 않다. 최근 한국에 부임한 도쿄신문 서울특파원 나카무라는 지하철이 고장나면 자리에 앉아 기다리다 정상소통이 되면 역무실에서 지각증명서를 발급받아 간다고 했다. 대구지하철사고, 광명역사고 등 각종 사고를 통해 지하철 안전망은 조금씩 개선되고 있다. 가연성이 있는 시트가 불연성인 철제의자로 바뀌고 지하철 경찰, 지하철 소방서의 설치도 검토되고 있다. 그러나 시스템 구축만으론 한계가 있다. 개인이 부주의하면 언제든 사고는 발생하기 때문이다. 승객의 안전을 위해서는 이제 본선개통의 신화도 깨져야 한다. 승객들도 자신의 안전이 위협받을 때에는 불편을 감내하는 인내를 길러야 한다. 임태순 지방자치뉴스부장 stslim@seoul.co.kr
  • [제77회 아카데미 시상식] 오스카는 이스트우드를 선택했다

    제77회 아카데미는 노장 클린트 이스트우드(75)의 손을 들어줬다.28일(한국 시각) 미국 로스앤젤레스 코닥극장에서 열린 올해 오스카상 시상식에서 ‘밀리언 달러 베이비’는 유력한 경쟁작이었던 마틴 스코시즈 감독의 ‘에비에이터’를 따돌렸다.11개 부문 후보에 올랐던 ‘에비에이터’가 5개부문 수상으로 최다 부문 수상의 영광을 안긴 했지만,4개의 주요부문 수상은 ‘밀리언‘에 돌아감으로써 주연과 감독을 맡은 이스트우드가 올해 아카데미의 실질적인 주인공이 됐다. 아카데미의 꽃으로 불리는 작품상·감독상을 모두 휩쓴 데다 여우주연상과 남우조연상에까지 이름을 올렸다. ●두번째로 감독·작품상 수상 이번 수상으로 이스트우드는 1993년 ‘용서 받지 못한 자’에 이어 두번째로 감독·작품상을 동시에 수상하는 기록을 세웠다.71년 ‘어둠 속에 벨이 울릴 때’로 감독 데뷔한 뒤 ‘앱솔루트 파워’‘미스틱 리버’등 지금까지 20여편의 영화를 만들어 온 그는, 동년배들이 현역에서 물러났을 때부터 오히려 빛을 발하는 노익장을 과시했다. 이제 아무도 그를 서부영화의 아이콘으로만 여기지 않는다. 그는 시상식장에 올라 96세인 어머니를 소개하며 “유전자에 감사한다.”는 수상소감을 밝혀 눈길을 끌기도 했다.‘밀리언‘은 세상과 담을 쌓고 사는 늙은 트레이너 프랭키와 여성 복서 매기의 가족보다 진한 교감을 그린 영화. 가족주의와 휴머니즘을 넘어선 삶을 관통하는 깊이있는 시선이 돋보이는 작품이지만, 삶을 비관하지 않는 승리자의 태도가 아카데미의 손을 들어주게 만든 요소로 작용했다는 평이다. ●아카데미가 사랑한 배우들 이스트우드뿐만 아니라 ‘밀리언‘에서 여성 복서 역을 맡은 힐러리 스왱크(31) 역시 아카데미와 두번째로 인연을 맺게 됐다.2000년 ‘소년은 울지 않는다’의 남장여자 역에 이어 여우주연상을 받은 그는 “내가 무슨 착한 일을 해서 이렇게 상을 받게 되는지 모르겠다.”며 감격해했다. 남우주·조연상은 ‘흑인들의 잔치’였다. 레이 찰스를 완벽하게 연기해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레이’의 제이미 폭스(38)는 수상 소감에서 “어려서 연기 지도를 해주신, 지금은 하늘에 계신 할머니께 감사드린다.”며 울먹였다.1963년 ‘들에 핀 백합’의 시드니 포이티어,2002년 ‘트레이닝 데이’의 덴젤 워싱턴 이후 흑인 배우로는 세번째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수상이다. 남우조연상은 은퇴한 복서 역을 맡은 ‘밀리언‘의 모건 프리먼(68)이 아카데미에 4번째로 도전한 끝에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아카데미가 ‘인종의 벽’을 완전히 허물었다는 증거다. 여우조연상은 ‘에비에이터’에서 캐서린 햅번을 연기한 케이트 블랜쳇(36)이 차지했다. ●‘몰아주기’ 없었던 시상식 올해 아카데미의 가장 큰 특징은 ‘몰아주기’가 없었다는 것.‘에비에이터’(5개),‘밀리언‘(4개)에 이어 ‘레이’와 애니메이션 ‘인크레더블’이 각각 2개 부문을 수상했다. 한편 아카데미 사상 한국인(호주 교민)의 작품으로는 처음으로 단편 애니메이션부문 후보에 올랐던 박세종 감독의 ‘버스데이 보이’는 ‘라이언’에게 밀려 수상의 영광을 놓쳤다. 이순녀 김소연기자 coral@seoul.co.kr ●부문별 수상자(작) ▲작품상 밀리언 달러 베이비▲감독상 클린트 이스트우드(밀리언 달러 베이비)▲남우주연상 제이미 폭스(레이)▲여우주연상 힐러리 스왱크(밀리언 달러 베이비)▲남우조연상 모건 프리먼(밀리언 달러 베이비)▲여우조연상 케이트 블랜쳇(에비에이터)▲각색상 사이드웨이▲각본상 이터널 선샤인▲촬영상 에비에이터▲편집상 에비에이터▲장편 애니메이션상 인크레더블▲단편 애니메이션상 라이언▲미술상 에비에이터▲음향편집상 인크레더블▲음향상 레이▲시각효과상 스파이더맨2▲의상상 에비에이터▲분장상 레모니 스니켓의 위험한 대결▲작곡상 네버랜드를 찾아서▲주제가상 모터사이클다이어리▲장편 다큐멘터리상 본 인투 브라델스▲단편 다큐멘터리상 마이티 타임스▲외국어영화상 시 인사이드(스페인)▲단편영화상 WASP ■ 이모저모 ●마틴 스코시즈 감독과 아카데미의 악연은 올해도 이어졌다.2년 전 10개 부문 후보에 오르고도 단 한개의 상도 수상하지 못한 ‘갱스 오브 뉴욕’에 비한다면 5개 부문 수상이 위안이 될지 모르겠지만, 스코시즈는 6번째로 감독상 후보에 오르고도 고배를 마시는 비운의 주인공이 됐다. ●5년 만에 여우주연상 후보에 나란히 오른 아네트 베닝과 힐러리 스왱크의 남다른 인연도 눈길을 끌었다. 지난 2000년 ‘아메리칸 뷰티’로 여우주연상을 노렸다가 ‘소년은 울지 않는다’의 신인 힐러리 스왱크에게 오스카상을 뺏겼던 아네트 베닝은 ‘줄리아 되기’로 권토중래를 꾀했으나 또 한번 분루를 삼켜야 했다. ●두 명의 한국교포가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의 카메라에 잡혔다. 단편 애니메이션 부문 후보에 올랐다가 안타깝게 수상을 놓친 ‘버스데이 보이’의 호주 교포 박세종 감독과 ‘사이드웨이’의 여배우이자 캐나다 교포인 샌드라 오가 그 주인공. 특히 샌드라 오는 ‘사이드웨이’를 만든 알렉산더 페인 감독의 아내로, 페인 감독은 각색상 수상소감에서 “내 아내 샌드라는 대단한 배우다. 아내에게 감사한다.”며 부부애를 과시했다.
  • [의회] 서울시의회 조례 ‘우수’

    서울시의회가 잇따른 수상소식으로 희색이다. 서울시의회(의장 임동규)는 23일 한국 지방자치학회가 주관한 제1회 지방자치우수조례상 평가에서 단체부문과 개인부문에서 모두 우수상을 수상했다. 단체부문의 경우 제6대 서울시의회 출범 후 지금까지 의원 및 위원회가 발의한 조례의 제·개정 내용이 창의성, 시행가능성, 시정기여도, 시민참여도 등의 평가에서 가장 우수했던 것으로 평가됐다. 특히 지난해 5월 정책연구위원회설치운영조례 제정으로 정책연구실이 설치, 활동에 들어가 의원들의 의정활동을 한층 수준 높게 지원하고 있는 시스템이 높은 점수를 받았다. 개인부문에서는 이정선(한나라당 비례대표)의원이 여성의 권익과 사회참여 등에 미칠 영향을 분석할 수 있는 성별영향평가제를 도입토록 개정한 ‘여성발전기본조례중 개정조례’의 발의공로로 우수상을 수상했다. 한편 서울시의회는 앞으로 의원입법활동을 적극 지원하여 보다 창의적이고 시정에 기여할 수 있는 조례를 제·개정해 시민의 욕구충족과 삶의 질 향상에 앞장설 방침이다. 이동구기자 yidonggu@seoul.co.kr
  • 혁재의 별난 과거·현재·미래

    혁재의 별난 과거·현재·미래

    지난해 연말 KBS 연예대상 시상식. 대상을 수상한 뒤 산적 같은 ‘터프’한 외모와 어울리지 않게 울먹였던 개그맨 이혁재(32)의 모습을 보고 웃기다고 생각했다면 그의 진심을 모르는 거다.“KBS에 결초보은하겠다.”는 수상소감도 ‘아부’성 발언은 아니었다.“제가 가장 어려울 때 받아줬거든요. 경력으로봐도 아직 상을 받을 단계는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정도(正道)를 걸은 결과인 것 같습니다.” 지난 1999년 MBC 공채로 출발한 뒤 우여곡절 끝에 지난해 KBS2 ‘스펀지’를 통해 개그맨 MC의 최고 위치에 오른 이혁재.“방송도 상도덕이 필요하다. 큰 상을 받았으니까 앞으로 1년간 KBS에서만 열심히 활동하겠다.”고 말하는 모습엔 거짓없는 의지가 담겨있었다. 실제로 그는 앞 뒤 재며 작은 이익을 좇거나 남 눈치를 보기보단, 자신만의 큰 목표를 향해 앞만 보고 달리는 스타일이다. 직설적인 화법 탓에 안티팬도 많고, 연예대상 수상 직후 공정성 시비에 휘말리기도 했지만 그런 건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린다. 그저 “내가 초반에 세워놓은 방송관만을 좇는다.”는 그는 “막 웃고 본 뒤 인터넷에 들어가면 도덕군자가 되는, 이중적인 시청자들에게 욕을 먹는 악역을 담당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 당당함을 뒷받침하는 건 피나는 노력이다.‘스펀지’의 대본을 늦어도 방송 이틀 전에 받는다는 그는, 검증이 되지 않은 ‘설’에 대해서는 네티즌의 생각들을 모두 숙지하고 과학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모교(인하대 기계공학과)에 물어본다. 심지어 스스로 오류를 잡아내는 경우도 있다고 자랑했다. 그 노력은 한 프로그램을 넘어 오랜시간 자신의 정체성으로 삼아온 ‘개그맨 MC’의 자질을 높이는데도 쏟고있다. 그는 지난해 서울정보통신대학 IT 경영학 석사과정으로 입학했다.“디지털 방송 시대가 왔는데 이를 진행하는 사람이 그게 뭔지도 모르면 안되잖아요.” 앞으로 TV채널이 무한히 증가하고 이를 소화해낼 진행자의 수요가 급증할 때에 대비해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지치지 않는 열정에 걸맞게 먼 미래의 꿈도 크다. 쉰 넘어가면 인천시장에 도전해보고 싶단다.“아니 한 남자의 원대한 꿈을 왜 색안경을 끼고 보는지 모르겠다.”며 ‘진담’임을 거듭 강조했다.“물론 정치를 하게되면 다 그만두고 10년 정도 공부를 하고 좋은 일도 할 거예요.” 자신의 지역을 위해 일할 그 때를 위해 지금도 인천에서 서울까지 출퇴근을 하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그 전까지는 방송 진행에만 전념할 생각이다. 지금까지 영화 ‘슈퍼스타 감사용’, 드라마 ‘야인시대’등 연기자로 외도도 했지만 “제작진이 ‘이 역은 이혁재 아니면 안된다.’며 삼고초려한 것만 골랐다.”고 설명했다. 정말 하고 싶은 건 “팬들과 같이 늙어가며” 자신의 나이에서 세 살 위아래 또래가 공감할 수 있는 토크다. 이를 위해 ‘이혁재만의 진행 스타일’을 여전히 찾아나가고 있다. ‘스펀지’외에도 ‘스타 골든벨’‘즐거운 일요일 해피선데이’등 오락프로그램에서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그이지만 “타고난 외적 조건 때문에” 현재 단독으로 진행하는 것은 MTV의 토크쇼 ‘파티왕’뿐이란다. 남은 길을 향해 결코 깨지지 않을 꿈을 힘차게 굴리며 걸어가는 남자, 그가 바로 이혁재였다. 김소연기자 purple@seoul.co.kr
  • 크리스 록, 아카데미시상식 사회

    영화배우 겸 코미디언인 크리스 록(39)이 오는 27일(한국시간 28일 오전) 열리는 제77회 아카데미 시상식 사회자로 선정된 데 대해 미국의 한 기독교 단체가 “추잡하고도 저속한 선택”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미국을 걱정하는 여성들(CWA)이란 이 단체는 록에게 사회를 맡기기로 한 결정이 “저속한 문화를 더 멀리, 더 깊게 확산시키려는 의도를 갖고 있는 것 같다.”며 “록은 상소리 문화의 완벽한 할리우드판 대사”라고 비아냥댔다. 록은 영화 ‘나쁜 친구들’‘러셀웨폰 4’‘베벌리힐스캅 2’ 등에서 상소리를 따발총으로 내뱉는 연기를 보여준 바 있다. 록은 시상식 쇼를 “정말 멍청한 짓”이라고 말해 새로운 논란거리를 남겼다.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삼성家 ①-CJ그룹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삼성家 ①-CJ그룹

    CJ그룹에는 삼성그룹의 모태인 제일제당의 오랜 ‘역사와 전통’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1953년 설탕회사로 출범, 제일모직·삼성전자·삼성생명 등 현재 삼성그룹의 기업적 ‘젖줄’이 된 곳이 바로 CJ(옛 제일제당)다. 또 삼성의 인재를 길러낸 ‘인재사관 학교’ 역할을 했던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90년대 중반까지 CJ하면 떠오르는 것은 설탕·밀가루 등을 만드는 식품회사 정도였다. 그 이후 점차 생명공학, 홈쇼핑, 엔터테인먼트 등 신세대 사업으로 외연을 확장하면서 식품회사의 틀과 이미지를 완전히 벗어던졌다.1995년 그룹 분리 당시 1조 5000억원이었던 그룹 매출은 지난해 8조원, 영업이익은 97억원에서 5000억원으로 껑충 뛰었다. 자산 기준 재계 서열 23위의 기업으로 도약했다. 끊임없이 모험과 변신을 꿈꾸는 벤처기업처럼 역동적으로 사업을 발굴, 추진해 온 덕분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삼성가(家)의 장손이 우뚝 서있다. ●부친 ‘공백’ 메우는 직계 장손 CJ는 고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의 장손인 이재현(46) 회장이 이끌고 있다. 그의 부친은 고 이 회장의 장남인 이맹희(76) 전 제일비료 회장. 부친이 할아버지 눈밖에 나는 바람에 이 회장은 일찌감치 부친을 대신, 집안의 대소사를 챙기며 삼성과 제일제당에서 경영 수업을 쌓았다. 한솔그룹(창업주의 장녀 이인희 고문), 신세계(4녀 이명희 회장), 새한미디어(차남 고 이창희 회장)에 이어 가장 늦게 삼성에서 떨어져 나왔다.1993년 시작된 CJ의 계열 분리 작업은 지난 97년 법적으로 완전히 정리됐다. 이 회장이 36세때의 일이다. 그룹을 혼자 경영하기에는 나이나 경험이 모두 부족했다. 그러다 보니 CJ는 자연히 이 회장과 외삼촌인 손경식(66) 회장이 함께 경영하는 ‘쌍두마차’ 체제로 유지됐다. 손 회장은 대외업무, 이 회장은 내부경영 등으로 역할 분담을 했다는 것이 CJ측의 공식적 설명이지만 이들의 역할을 뚜렷하게 구분짓기 어려웠다는 것이 중론이다. 그만큼 이 회장의 비중이 컸다는 얘기가 된다. 이 회장의 ‘등극’은 삼성가의 3세 경영이 본격화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장남인 이재용 삼성전자 상무, 이인희 한솔그룹 고문의 3남 조동길 한솔그룹 회장 등 사촌들과 함께 삼성가의 3세 경영시대를 여는 주역으로 떠올랐다. 서울 남대문로 본관 사옥에 있는 그의 할아버지 흉상은 그가 삼성가의 직계 장손임을 상징해 주고 있다. ●평범한 혼인, 드러나지 않은 내조 고 이 회장의 장남 맹희씨는 부인 손복남(71)씨와의 사이에서 2남1녀를 뒀다. 자녀 모두 평범한 집안과 혼인해 이렇다 할 화려한 혼맥이 눈에 띄지 않는다. 맹희씨가 코흘리개인 네살 때 이미 “아이들이 자라면 혼인을 시키자.”는 양가 어른의 언약이 인연이 돼 손씨와 결혼했다. 이화여대 교육학과 출신인 손씨는 부친이 경기도 지사와 농림부 양정국장을 지낸 손영기씨다. 손복남씨가 부친을 모시고 병원에 가는 것을 먼 발치에서 지켜보고 난 뒤 맹희씨는 결혼을 결심했다고 한다. 손씨는 삼성가의 맏며느리로서 겉으로는 화려해도 남편이 풍상을 겪자 말 못할 마음의 고통을 삭이며 살아왔다. 서울 장충동 집에서 시부모를 모시며 3남매를 키웠다.CJ가(家)의 명실상부한 ‘안주인’ 역할을 묵묵히 해오고 있는 것이다. 경영에는 일절 관여하지 않았으나 제일제당의 최대주주로 있다가 주식 증여를 통해 경영권을 장남 재현씨에게 넘겼다. 재현씨는 어릴 때 할아버지로부터 각별한 사랑과 함께 엄격한 교육을 받았다. 체격 등 외모, 사고나 행동방식까지 조부와 비슷해 ‘리틀 이병철’이라고도 불린다. 결혼 후 “나가서 신혼살림을 하라.”는 부모님의 얘기에도 “할머니를 모시고 살겠다.”며 고집을 피워 2001년 1월 할머니 박두을씨가 별세할 때까지 서울 장충동 집에서 모셨다. 지금도 모친 손여사와 함께 장충동 집에서 산다. 경복고, 고려대 법대 출신인 재현씨는 “누구 덕을 본다는 이야기를 듣기 싫다.”며 1983년 씨티은행에 취직,‘탈 삼성행’을 시도했다. 하지만 조부인 고 이병철 회장이 “재현이에게 왜 남의 집살이를 시키냐.”는 불호령을 내려 결국 85년 삼성의 주력 계열사였던 제일제당 경리부 평사원으로 입사했다. 이후 88년 경리부 차장,89년 기획관리부장으로 승진했다.92년부터 1년 정도 삼성전자 전략기획실 이사대우로 일하기도 했다.93년 제일제당 이사로 친정에 복귀해 97년 부사장,99년 부회장을 거쳐 2002년 회장에 올랐다. 부산 출신으로 이화여대 미대 장식미술학과를 졸업한 부인 김희재(46)씨와는 대학시절 미팅을 통해 결혼, 딸 경후(21)씨와 아들 선호(16)군을 뒀다. 두 자녀는 현재 해외 유학 중이다. 90년대 중반 이 회장은 회식을 끝내고 밤늦게 직원들을 집으로 데려와 2차 술자리를 갖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도 부인 희재씨는 한번도 짜증을 내지 않고 뒷바라지해 직원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주기도 했다. 또 이 회장과 함께 노인무료급식소 등에서 김장을 하고 노인들의 가정에 도배도 하는 등 사회봉사활동에도 열심이다. 이 회장의 장모인 김만조씨는 ‘김치박사’로 유명하다.CJ의 김치개발에도 참여했다. 영국과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김씨는 연세대, 서울여대 등에서 교수로 재직했다. ●홈쇼핑·영화등 사업다각화… 재계 23위 ‘껑충’ 이 회장의 누나 미경(48)씨는 부친이 유학 중이던 미국에서 동생 재현씨와 함께 태어났다. 어릴 때 ‘미키’라고 불린 것을 계기로 지금도 ‘미키 리’라는 이름으로 해외 활동을 한다. 중학교때 대통령배 영어 웅변대회에서 1등을 하기도 했다. 영어외에 불어, 중국어에도 능통하다. 경기여고, 서울대 가정학과, 미국 하버드대에서 동아시아연구로 석사학위를, 상하이 푸단대학에서 박사과정을 밟았다. 1995년 제일제당 멀티미디어 사업부 이사 시절 스필버그 등이 설립한 세계 최대의 영상소프트회사인 ‘드림웍스’와 제일제당의 합작을 성공시킨 주역이기도 하다. 당시 이건희 회장과 이재현 회장은 직접 미국으로 건너가 스필버그와 협상을 벌일 만큼 드림웍스 설립에 남다른 애착을 보였으나 결국 그는 삼촌 대신 동생 재현씨의 손을 들어주었다는 후문이다. 지난해 말 CJ엔터테인먼트 사업의 글로벌 부문을 맡아 사업의 본격적인 해외진출을 진두지휘하게 됐다. ■ ‘비운의 황태자’ 이맹희씨-삼성 경영서 물러난 뒤 유랑생활 고 이병철 회장의 장남이자 이재현 회장의 부친인 맹희(76)씨는 요즘 몽골에 머물고 있다. 과거 유목민의 후예들이 사는 그 곳이 그에게는 오히려 편안함을 준다고 했다. ‘비운의 황태자’‘양녕대군’은 맹희씨에게 따라 다니는 수식어다. 그는 삼성을 이끌 ‘운명’을 타고 났지만 오히려 바람처럼 떠도는 처지가 그의 ‘운명’이 된 ‘풍운아’다. 동생 이건희 회장으로 후계구도가 정해진 후 그는 형제들은 물론 자신의 가족들과도 떨어져 세속을 등진 채 살아왔다. 그의 ‘유랑생활’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그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부친이 기업을 일구는 것을 보며 컸다.1938년 삼성의 설립으로 기록되는 삼성상회 간판 아래 부친이 대구에서 국수공장을 운영할 당시 공장 귀퉁이 방안에서 부친이 새우잠을 자며 일하는 것을 보며 자라난 삼성 성장사의 산증인이기도 하다. 경북고 32회 출신으로, 노태우 전 대통령, 고 김윤환 의원, 정호용 전 의원 등 TK출신 정치인들과는 친구사이다. 그는 일본, 미국 유학을 거쳐 안국화재 업무부장을 시작으로 중앙일보, 삼성전자 부사장 등 직함이 무려 17개에 이를 정도로 강도 높은 경영 수업을 받았다. 이 때만 해도 그의 호칭은 삼성의 ‘젊은 부총수’였고, 아무도 그가 삼성의 경영 대권 주자로 낙점될 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세계 최대의 비료공장을 만들려 했던 선친이 ‘사카린 밀수사건’으로 1966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자 그는 실질적으로 그룹을 맡기도 했다. 하지만 선친의 눈밖에 나면서 그룹 경영에서 완전히 손을 떼야 했다. 그때가 1971년이었다. 그는 회고록 ‘묻어둔 이야기’에서 “자신이 삼성에서 일한 기간은 7년이고, 물러난 것은 기업이 혼란에 빠져서가 아니라 몇마디로 간단하게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한 사정이 있어서다.”라며 부친의 주장이 사실과 다르다고 했다. 부친이 동생 이건희 회장으로의 대권이양 선언시를 회고할 때는 “아버지와의 사이에 상당한 틈새가 있었지만 언젠가는 나에게 삼성의 대권이 주어질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며 당시의 ‘충격’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bori@seoul.co.kr ■ 차세대 사업의 양날개 ‘左-미경, 右-재환’ 차남 재환(44)씨는 배재고, 타이완대 정치학과 출신으로 현재 경영기획실 중국담당 상무로 베이징에서 근무하고 있다. 한때 제일제당 일본지사 부장으로 근무하기도 했다. 재환씨는 일본과 중국쪽 사업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7·8·9대 국회의원을 지낸 민기식 전 의원의 딸 재원(38)씨와 결혼, 딸 소혜(15)양과 아들 호준(7)군을 뒀다. 재원씨는 연세대 경영학과를 나왔다. ●“오너보다 CEO로 평가받겠다.” CJ맨들이 보는 이 회장은 ‘꿈과 비전·열정이 큰 사람’으로 요약된다. 회사의 실적을 보고 받으면 “최소한 얼마는 돼야 하는데, 회사가 좀 더 커야 한다.”며 항상 아쉬움을 토로한다. 사원들과의 대화를 ‘정말’ 즐긴다. 좀처럼 격식을 따지지 않는다. 책상에 걸터 앉아 얘기를 하고, 직원들과 남산에 올라 자유토론도 한다. 회사의 경영 방침과 경영 철학을 직접 설파, 공감대를 넓혀나가는 식이다. CJ 관계자는 그런 그의 행보를 두고 “오너라기보다는 유능한 최고경영자(CEO)로 평가받고 싶어한다.”고 말했다. 최태원 SK 회장이 사석에서 “이 회장은 정말 공부를 열심히 한다.”면서 “10년 뒤 살아 남을 사람(오너)은 이 회장밖에 없다.”고 말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그만큼 오너 2,3세들 중에서 가장 성공적으로 안착한 경영인이란 방증이다. 재벌가의 후손들이면 보통 가는 해외유학 코스도 밟지 않은 ‘토종파’인데도 그의 기업 문화론은 어느 기업보다 앞서간다. 오래된 보수적인 회사로 짧은 시간에 젊고 활기찬 기업으로 변모시킨 것은 바로 ‘이재현 식’ 기업 문화에서 비롯됐다. 국내 최초로 복장 자율화,‘∼님’으로 호칭 통일, 플렉서블 타임제(자율 출퇴근시간), 층마다 비치된 간이 도서관 등은 다 그의 작품이다. CJ의 역사가 순탄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삼성과의 결별을 앞둔 94년 10월 삼성측이 제일제당에 이학수 당시 삼성화재 부사장(현 삼성 구조조정본부장)을 파견, 삼촌 이건희 회장과 조카 이 회장의 신경전은 제일제당이 삼성본관에서 95년 4월 현재의 사옥으로 이사오기까지 6개월간 계속됐다. 제일제당이 보유한 부동산, 삼성생명주식 평가방법을 놓고 양측은 치열한 공방을 벌인 끝에야 제일제당은 ‘독립’을 선언할 수 있었다. 삼성그룹에서 분리될 당시의 제일제당은 삼성의 전자 및 중공업 위주의 우선 투자전략에서 밀려 성장한계를 보인 상황이었다. 식품회사라는 고정된 이미지도 그룹 성장의 걸림돌로 작용했다. 그러나 1995년 독자경영을 시작한 이후 이 회장 주도로 식품 등 기존의 사업을 다지면서 미디어·영상·물류·유선방송·홈쇼핑 사업 등 다각화된 사업으로 포트폴리오를 짰다. 식품·정보통신·화장품, 음료사업 등 매년 수십억에서 수천억원의 적자를 내는 비주력 사업은 과감히 매각했다. 이 가운데 인터넷사업인 드림라인은 이 회장이 주도한 사업 중의 하나였으나 그다지 빛을 보지 못했다. 그렇지만 ‘미련’을 갖지 않고 구조조정을 무난하게 해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현재의 식품, 식품서비스, 바이오, 미디어&엔터테인먼트, 신유통 등 4개 분야를 CJ의 핵심 사업으로 확정했다.“설탕이나 파는 식의 마인드로 살아 남을 수 없다.”면서 이 회장은 당시 직원들의 신발끈을 조였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내실있는 임원 김주형(58) ㈜CJ 대표이사 사장은 1972년 제일제당에 들어온 이후 최고 경영자자리에까지 오른 입지적인 인물. 곡물구매 전문가로 자기 색깔을 내지 않으며 두루 회사를 아우르는 ‘덕장’형이다. 각양 각색의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자칫 불협화음이 나올 수 있는 갈등 사안들을 절묘하게 중재·조정하는 ‘조율사’로서 탁월한 역할을 해낸다는 평이다. 특유의 친화력과 유연성 덕분이다. 그는 아랫사람에게도 존대하며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경청해 권위의식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는 포근한 느낌을 준다. CJ개발 문성기(56)사장은 1974년 제일제당에 입사, 신사업 본부장 등을 거쳐 99년부터 CJ개발 대표를 맡았다. 우리나라 골프장 최초로 미국 LPGA 대회를 유치해 2002년 부터 3년 연속 성공적으로 개최,CJ의 골프장 ‘클럽 나인브릿지’를 세계 100대 회원제 골프장으로 만드는 것은 물론 CJ그룹을 해외에 알린 주역이다. 조용하면서도 강한 리더십이 강점이다. 이태호(57) CJ푸드시스템 대표(부사장)는 1973년 삼성그룹으로 입사, 사료본부장 등을 거쳐 2003년 말부터 CJ푸드시스템을 맡았다. 사료본부장 시절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으로 일찌감치 사업을 확장한 주역이다. 부하직원들로부터 냉철한 판단력과 따뜻한 마음을 가진 리더로 평가받는다. 의사결정이 빠르고 사업의 비전 제시력이 강하다는 평이다. 소탈한 성격으로 격식에 얽매이지 않아 평이 좋다. 박동호(49) CJ엔터테인먼트 대표(부사장)는 ‘비즈니스맨의 모범’으로 불린다. 국내 최초로 멀티플렉스(복합상영관) 극장체인인 CGV를 도입, 업계 1위로 성장시켜 사업역량을 인정 받으면서 한국 영화판을 좌지우지하는 ‘충무로 파워맨’으로 입지를 굳히고 있다. 지난해 게임업체인 플래너스를 전격 인수하는 수완도 발휘했다.‘튀는’ 사람들과 일하는 분야에서 내부를 꼼꼼하게 추스르고 챙기는 관리자의 역할에 꼭 맞는 인물이다. 김진수(54) CJ홈쇼핑 대표(부사장)는 제일제당 마케팅 실장 등을 거쳐 다국적기업 한국 존슨의 사장으로 잠시 외도했다가 친정으로 복귀한 케이스. 마케팅실장때 대상(옛 미원)과의 조미료 전쟁에서 ‘다시다’로 역전을 이뤘고, 식품본부장 시절에는 ‘햇반’ 등 신상품을 시장에 안착시켰다. 중국 홈쇼핑시장에 진출하는 개가를 올리기도 했다. 해외통이자 마케팅 전문가로 평가 받는 그는 분단위로 스케줄을 관리할 정도로 자기관리에 철저하다. 박대용(53) CJ GLS 대표(부사장)는 업계에서 손꼽히는 물류 전문가다.1977년 제일제당에 입사,89년 물류개선팀장으로 발탁된 이후 16년간 물류관련 업무에만 종사해 왔다. 지난 99년 택배사업에 진출,3년만에 매출 1000억원을 돌파하며 CJ GLS를 택배업게 ‘빅 4’에 합류시켰다. 권위보다는 따뜻한 가슴으로 부하직원들을 대하는 ‘온화한 리더십’의 소유자다. 정진구(60) CJ푸드빌 대표(부사장)는 패밀리 레스토랑인 스카이락·빕스·한쿡과 베이커리 뚜레쥬르 등 외식사업을 총괄한다. 아이스크림전문점 배스킨 라빈스, 커피전문점 스타벅스 등이 그의 손을 거쳐 최고 브랜드로 성장했다. 국내 외식 업계의 ‘미다스의 손’으로 불린다. 직관력과 현장 감각이 뛰어나 한국에 진출하려는 외국기업들의 영입대상 1순위로 알려져 있다.2003년 말 CJ그룹에 부사장으로 영입됐다. 김홍창(51) CJ투자증권 대표(부사장)는 1981년 당시 제일제당에 입사, 제일투자증권 상무, 제일선물 대표 등을 거친 대표적인 관리·금융통. 제일선물 대표 당시 업계 8∼9위에 불과했던 회사를 1년여 만에 업계 2위로 끌어올려 놓기도 했다. 이재현 회장의 입사 초기 수년간 경리·관리 부서에서 함께 근무하기도 했다. 직원들과 스스럼 없이 이메일을 주고받는 등 격의없는 성격이며 조직 밀착 경영에 강하다는 평이다. 지난 1월 정기인사에서 전격 발탁된 CJ미디어 강석희 대표(상무)는 자타가 인정하는 제약마케팅의 귀재다. 마케팅에서 보여준 실력이 미디어라는 복합다기한 사업분야에서 어떻게 적용될지 관심사다. bori@seoul.co.kr ■ 손경식 회장은 누구 손경식(66) 회장은 이재현 회장의 외삼촌이면서 CJ그룹을 이끄는 또 다른 한 축이다. 이 회장에게 할아버지 고 이병철 회장이 정신적 지주라면 외삼촌 손 회장은 ‘경영 스승’인 셈이다. 이 회장이 회사 중대 사안을 놓고 허심탄회하게 얘기를 나누는 상대다. 경기고 2학년때 검정고시로 서울대 법대에 입학할 정도여서 ‘천재’라는 얘기를 들었다. 손 회장은 누나이자 이재현 회장의 모친인 손복남 고문이 삼성가로 시집가면서 삼성과 인연을 맺었다. 1968년 미국 오클라호마주립대 경영학 석사과정을 마치고 공부를 하려던 그를 고 이병철 회장이 비서실로 불러들였던 것. 아무리 가까운 혈연이라도 능력이 없으면 발탁하지 않는 삼성가에서 그는 77년 38세의 나이에 안국화재(현 삼성화재)사장으로 발탁돼 삼성을 이끌 리더로 자리잡았다. 안국화재는 자신의 부친인 손영기 전 경기도지사가 사장을 맡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1993년 6월 제일제당이 삼성그룹에서 계열 분리되면서 조카 이 회장의 ‘후견인’ 역할이 요구됐다. 당시 경영 수업을 받던 재현씨를 어떻게든지 잘 보호해 제일제당의 ‘주인’으로 ‘옹립’해야 하는 임무가 주어진 것. 그는 주저하지 않고 삼성전자에서 일하던 조카 재현씨와 함께 제일제당 대표이사 부회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후 삼성과의 분리과정에서 갈등을 겪는 등 제일제당이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구원 투수’로 활약했다. 96년 5월 “삼성과의 관계를 청산하고 제일제당 그룹으로 새롭게 출발한다.”며 삼성그룹과의 결별을 공식 선언한 것도 그였다. 거대 그룹의 우산 아래서 떨어져 나온 제일제당이 큰 위기를 겪지 않고 오늘의 CJ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손 회장의 역할이 컸다는 것이 안팎의 평가다. 화려한 학맥으로 그는 정·관·재계의 인맥 네트워크가 강하다. 재작년에는 경기고 명예 졸업장을 받았다. 부인 김교숙(59)씨와의 사이에 1남 1녀를 두고 있다. bori@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김성곤·최광숙차장 안미현·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임권택 감독, 베를린영화제 명예황금곰상 수상

    |베를린 연합|한국 영화계의 원로인 임권택(69) 감독이 12일 제55회 베를린 국제영화제에서 명예 황금곰상을 수상했다. 임 감독은 베를린 필름 팔라스트에서 디터 코슬릭 베를린 영화제 조직위원장으로부터 “오랜 세월에 걸친 작품 활동을 통해 한국과 아시아, 나아가 세계 영화에 크게 기여한 공로”로 명예 황금곰상을 받았다. 임 감독은 수상소감으로 “개인의 영화 인생을 평가받았을 뿐 아니라 한국 영화가 세계적 수준에 있음을 재확인하게 돼 매우 기쁘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열린 기자회견에서는 “데뷔 후 10여년 동안 할리우드 영화를 모방한 오락영화를 만든 것을 반성한 뒤, 직간접으로 체험했던 삶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영화에 담고자 노력했던 일이 평가받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이날 저녁 열린 수상 축하 리셉션장에는 각국 영화인들과 영화학도, 외교관 등 200여명이 참석해 잇따라 질문을 던지며 임 감독의 영화에 관심을 나타냈다. 베를린 영화제 측은 시상식이 끝난 뒤 상영한 ‘춘향뎐’을 비롯해 임 감독의 대표적 작품 7편을 ‘특별회고전’ 형식으로 소개한다. 또 ‘만다라’‘길소뜸’‘왕십리’‘서편제’등 20편이 새달 말까지 베를린 아르제날 극장에서 특별 상영된다.
  • [클릭 이슈] 김민수교수 vs 서울대 공방 2라운드

    서울대 대학본부 앞에는 지금도 김민수 전 미대 교수의 항의 농성용 천막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잘 알려진 대로, 지난달 28일 김 전 교수의 재임용 탈락을 취소하라는 신청에 법원은 원고의 손을 들어주었다. 하지만 이후에도 천막은 거둬지지 않았고, 지난 3일에는 오히려 천막에서 겨울을 나겠다는 듯 비닐이 하나 덧씌워졌다. 이틀 전 정운찬 총장이 “3월1일까지 김 전 교수를 재임용하고 7년 동안 받지 못한 봉급도 보상하겠다.”고 말했지만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학교 측 언론에만 입장발표” 김 전 교수가 가장 못마땅해하는 것은 학교측의 ‘무반응’이다. 김 전 교수는 6일 “학교측은 나에게는 어떤 제안도 내놓지 않았으면서도 언론에만 전향적으로 결정하겠다는 뜻을 흘렸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학교는 3월1일 나를 강단에 세우겠다고 하지만 법원 송달에 10일, 행정처분에 14일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면서 “수강신청기간이 지난 뒤 강의실을 내준다면 학생 없이 수업을 하라는 말이냐.”고 항변했다. 이에 대해 학교측은 “세부적인 결정이 내려지지 않은 상태에서 타협안을 제시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면서 “우리도 최대한 신속하게 결론지을 수 있도록 학칙과 법률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서울대는 판결 이후 학장회의 등을 잇따라 갖고 문제를 논의하고 있다.29일에는 총장 주재로 무려 6시간에 걸쳐 회의를 열어 김 전 교수의 재임용을 ‘전향적으로’ 추진하겠다는 공식 발표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구체적인 안은 여전히 논의 중”이라는 말로 설명을 대신했다. ●“7년 무시하고 조교수 자리 주겠다니…” 판결 이후 학교측과 김 전 교수는 법원의 결과를 놓고 논쟁을 펼쳤다. 김 전 교수는 “법원의 판결에 따라 당시 심사는 명백하게 잘못됐던 것으로 드러난 만큼 ‘재임용’이라는 단어 대신 ‘원직 복직’이라는 용어를 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전 교수의 법률자문을 맡고 있는 고유창 변호사는 “김 전 교수의 동료들은 이미 부교수를 거쳐 정교수의 자리에 올랐다.”면서 “학교측은 형식적으로 재임용 심사를 거쳐 조교수 자리를 주겠다는 부당한 주장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 변호사는 “이미 6개월 전부터 교수지위확인소송과 피해배상소송 등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논쟁이 길어지자 교수협의회(회장 장호완)도 나섰다. 교수협의회는 지난 3일 “대학당국은 김 전 교수의 교단 복귀와 희생보상을 위해 법과 학칙이 허용하는 범위에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협의회는 양측이 ‘재임용’과 ‘복직’이라는 지엽적인 문제에 매달리지 말라는 당부도 했다. 교수협의회는 “정 총장이 김 전 교수가 정상적으로 교수직을 수행했다면 기대할 수 있는 정상적 지위에 대한 개연성을 고려해 달라는 제안에 긍정적인 답변을 했다.”고 전했다. 김 전 교수측은 그러나 “복직에 관련된 사항은 지엽적인 문제가 아니고, 또 대학은 사법부를 무시하는 행정처분을 내리고 있다.”고 여전히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김 전 교수는 “학교측에서 형식논리에 따라 재임용 심사를 받으라고 한 뒤 곧바로 미대에서 승진심사를 받으라고 하면 다시 탈락하는 것 아니냐.”고 항변했다. 미대 교수들과 김 전 교수는 이미 감정의 골이 깊게 패어 있다. 권영걸 미대 학장은 최근 ‘김민수 교수 공동대책위원회’가 1998년 심사 당시 김 전 교수에 낮은 점수를 주어 탈락시킨 당사자로 자신을 지목한 데 유감을 갖고 있다. 지난해 12월 김 전 교수측은 “권 학장이 사실상 서울대 교수로 내정된 내부인사이면서 외부인사 자격으로 심사에 참여했다.”고 의혹을 제기했으나 권 학장은 “심사에 참여한 적이 없다.”고 맞받아쳤다. ●학생들 의견도 엇갈려 학생들도 생각이 서로 달랐다. 인문대 한성신(21)씨는 “대학측이 무관심하다가 법원판결이 있고 나서야 결정을 존중하는 양 언론에 생색을 내려고 하는 것 같다.”면서 “교수지위 확보와 명예회복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달 28일 고법 파기환송심 판결이 나기 전에는 이 문제에 관심을 보였던 학생들도 판결이 나자 모든 문제가 해결됐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쉽다.”고 덧붙였다. 반면 사회대 김종권(21)씨는 “김 전 교수의 싸움이 정의를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개인적인 원한을 풀기 위한 것 같다.”면서 “김 전 교수도 승소 판결이 났으니 다른 학교로 가는 방안도 생각해 볼 수 있지 않겠느냐.”고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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