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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난 사회 업그레이드 시키는 소셜 디자이너”

    “난 사회 업그레이드 시키는 소셜 디자이너”

    ‘시민운동의 대부’(참여연대 상임집행위원장),‘나눔과 공익의 전도사’(아름다운재단·아름다운 가게 상임이사). 박원순 변호사에게 붙여진 이름이다. 지난 3월27일 민간 싱크탱크를 자임하며 만든 ‘희망제작소’는 박 변호사가 시민과 맺은 세번째 사랑이다. 시민들의 생활에서 나오는 아이디어와 열정을 발굴해 정책과 공공의 이익으로 연결해야 한다는 차원에서 벌인 일이다.‘정책’과 ‘비전’을 중시해온 평소 지론의 연장이다. 그는 한 사석에서 “진보진영은 콘텐츠의 위기를 맞았다. 그들이 주장하는 콘텐츠가 이미 다 수용돼 좋은 사회를 만들었는가. 언제까지 명분만 외치며 불우이웃돕기 차원의 캠페인만 벌일 것인가.”라고 지적한 적이 있다. 애정을 가져온 진보진영의 역할이 아직 남아있음을 역설한 말이다. 정치권도 다를 바 없다. 정책이 아닌 정쟁 중심의 정치권에 대한 비판이 이어졌다. 그는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말할 것도 없고 정당도 정책보다는 감정 중심의 정쟁으로만 치닫고 있다.”고 지적했다. 열린우리당의 열린정책연구원과 한나라당의 여의도연구소 등 정당 부설연구소에 1년에 수십억원이 지원되고 있지만 민생을 위한 연구개발비로 어느 정도 쓰이고 있는지 돌아봐야 한다는 쓴소리가 덧붙여졌다. ‘준비된 콘텐츠’를 강조하는 그에게 정치권은 고비마다 짝사랑을 던졌다.2007년 대선을 앞두고 여야는 앞다퉈 ‘박원순 대안론’을 흘리고 있다. 언론과 정치평론가들도 ‘경쟁력있는 참신한 외부선장’이라는 수식어를 보태고 있다. 하지만 만날 때마다 단호하다. 아예 ‘1시간 단위의 살인적인’ 일정표를 보여주며 “여기 정치권 관계자와 만나는 일정이 한 군데라도 있냐.”며 수첩을 꺼내 펼쳐보이기까지 했다. 이번에도 그는 “내가 하는 일이 이미 정치 아니냐.”며 완곡하게 부인했다. 하지만 “정치 절대 안한다.”(참여연대 물러날 당시)▶정치하겠다고 하면 말려달라(출입기자간담회)▶대선후보들과의 관계속에서 어떤 일을 할지 고민해보겠다(신진보연대 인터뷰)등 출마입장 변화가 있는 게 아니냐며 기대를 걸었던(?) 기자에게 예상 답변만 되돌아올 뿐이었다. 그는 “오래 전부터 이런 일에 열중해왔는데 모든 걸 다 바쳐 해보려고 했던 일”이라면서 “내가 만약 정치할 생각 있었다면 희망제작소 차리고 일을 이렇게까지 벌여 놨겠냐.”고 거듭 반문했다. 그러면서 “사회를 좋은 방향으로 바꾸는 고민은 같다. 조선시대에도 관리가 있으면 초야에 있으면서 상소하는 사람도 있다.”면서 “사람이 사는 데는 여러 길이 있게 마련인데 사회적 명성만 있으면 반드시 정치를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심지어는 보수진영의 한 교수가 “최근 박 변호사의 행보가 정치적으로 ‘탈색’되고 있다.”는 이유를 들어 정치권 진출의사가 있는 것처럼 말한 것을 염두에 둔 듯 “정치라는 게 분명한 자기 색깔이 있어야 하는 건데 하려고 든다면 굳이 탈색해야 할 필요가 있나.”라고까지 말했다. 인터뷰에 앞서 만났던 희망제작소 관계자는 끊임없는 박원순 영입설에 대해 “박원순 후보론은 거론 자체가 순수하지 못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의 말에 따르면 뉴라이트전국연합의 제성호 교수가 ‘박원순 후보론’을 거론한 뒤 본격화됐다는 것인데 “신종 운동권 세력들이 진보진영의 후보감이라고 생각해서 초장부터 흔들어놓기 위해 제기한 것”이라는 생각이다. 정치권의 현주소에 대해서는 신랄한 비판이 이어졌다. 정책과 콘텐츠 부재가 그의 입장에서는 못마땅한 대목이다. 여권이든 야권이든 새출발 이전에 치열한 자기반성이 있어야 하는데 그 점에서는 쉽게 동의하기 어렵다고 한다. 뒤늦은 얘기지만 그는 한나라당이 천막당사로 옮기기 전의 일화를 들려줬다. 이회창 전 총재에게 “당사를 팔고 천막당사로 옮기더라도 진정한 반성의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했더니 이 전 총재가 “팔려고 그래도 건물이 비싸서 살 사람이 없다.”고 했다고 한다. 그는 “고생할 생각이 있었다면 전세를 놓더라도 나갈 수 있었다.”며 제대로 반성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진단을 내렸다고 한다. 통합신당과 당 사수를 놓고 격론중인 여당도 자신들의 문제를 드러내놓고 자성하는지부터 되돌아봐야 한다고 그는 충고했다. 박 변호사와 인터뷰가 이어지는 동안 쉴 새 없이 휴대전화가 울렸다. 책상 위에는 희망제작소가 진행중인 지역사회 공무원 교육을 위한 교재로 가득차 있었다. 정치 얘기할 때는 고개를 저으며 쓴웃음을 보이던 그가 희망제작소가 하는 일을 설명할 때는 외국자료며 교재까지 찾아가며 너무나 신이 난 표정이었다. 하긴 그의 꿈은 ‘과로사’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는 “국민 모두가 정책입안자가 되는 세상을 만들고 싶다.”면서 “앞으로 어떤 길을 걸을지 모르겠지만 시민들의 참여를 통해 사회개혁을 만드는 길이라면 창의적인 실험은 계속될 것”이라며 4번째,5번째 ‘세상과의’ 사랑을 놓지 않을 것을 다짐했다. 구혜영기자 koohy@seoul.co.kr
  • “내년 상반기까지 자진신고때 분식회계 형사처벌 면제”

    법무부는 2006년도 결산 보고서 제출 때까지 분식회계 사실을 자진신고하는 기업에 대해서는 한시적으로 형사처벌을 면제해 주기로 했다. 연말 결산법인은 내년 3월31일까지,3월 결산법인은 6월말까지 금감위 등에 각각 관련 자료를 제출하면 된다. 이번 조치는 2005년 초 증권 관련 집단소송법이 시행되면서 2006년 결산 보고서 제출 때까지 과거분식 등을 자진신고하는 기업에 대해서는 집단소송법 적용에서 제외시킴과 동시에 특별감리 면제 등의 혜택을 주기로 했으나 형사처벌을 우려해 과거분식 회계를 스스로 수정하지 못하는 예가 적지 않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또 무분별한 손해배상 청구를 막기 위해 소송을 당한 기업이 원고를 상대로 반소(맞소송)를 청구할수 있도록 민사소송법 개정도 추진키로 했다. 종전에는 별도의 소송을 통해 맞소송을 해야 했다. 김성호 법무부장관은 18일 기자 간담회를 갖고 이 같은 내용의 ‘내년도 법무행정의 핵심방향’을 밝혔다. 이에 따르면 과거의 분식회계를 스스로 바로잡는 기업은 입건하지 않거나 기소유예를 내리는 등 형사처벌을 최대한 감면해 주기로 했다. 또 손해배상소송으로부터 기업을 보호하기 위해 반소를 허용하고 남소(소송 남용)가 명백한 경우 기업이 부담한 변호사 보수 전액을 패소자에게 부담시키는 방안도 추진키로 했다. 이를 위해 변호사 보수의 일부만 패소자에게 부담시키기로 한 대법원의 규칙을 개정한다는 방침이다. 법원과 검찰간의 영장기각을 둘러싼 갈등을 없애기 위해 형사소송법의 구속요건도 구체화하기로 했다. 아동성폭행 등 성범죄에 대한 사후관리를 강화하기 위해서는 성폭력범죄자에 대한 위치추적 전자장치(일명 전자팔찌)를 부착토록 할 방침이다. 한편 관심을 모았던 정치인과 기업인에 대한 크리스마스 특사 가능성 여부에 대해 김 장관은 “시기적으로 크리스마스 때까지는 어려울 것으로 본다.”면서 “내년 2∼3월은 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동구기자 yidonggu@seoul.co.kr
  • 과천은 ‘으뜸 복지도시’

    과천은 ‘으뜸 복지도시’

    “복지정책, 이 정도는 돼야지요.” 과천시가 전국 최고의 복지도시라는 영예와 함께 특별지원금 1억 2000여만원을 받았다. 과천시의 수상은 자치단체별로 재정능력과는 별개로 노력 여하에 따라 주민복지가 크게 향상될 수 있다는 사례를 남겼다는 점에서 다른 자치단체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지자체 복지평가대회서 종합 최우수상 과천시는 보건복지부가 지난 5일 전국 236개 시·군·구 기초자치단체를 대상으로 실시한 ‘2006년 지방자치단체 복지 종합평가대회’에서 종합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시는 평가에서 복지행정과 노인복지, 아동복지, 장애인복지 부문에 모두 A를 받았다. 저소득층과 의료급여 등에서는 상대적으로 낮은 점수를 받았지만 전체 총점에서는 역시 A등급을 유지했다. 과천시의 수상소식이 알려지면서 복지부문에 대한 타 자치단체의 벤치마킹이 이어지고 있다. 복지정책이 어떻게 다른지, 예산 배분의 현황 등 일거수 일투족이 관심거리다. 과천시의 복지정책은 노인인구의 증가와 발맞춰 추진한 선진국 수준의 노인복지정책을 우선 꼽을 수 있다. 과천시는 이미 1998년 중앙동 83 일대 노인복지요양원을 건립해 65세 이상 저소득층 노인들을 무료로 입주시키고 있다. 물리치료사와 간호사·의사 등 16명의 직원이 상주하며,50여명의 중산층 이하 노인들의 건강과 레저를 책임지고 있다. 의료서비스로는 일반진료에서부터 침과 뜸·물리치료 등이 있고, 여가생활을 겸한 미술치료와 치료레이션·산책·영화감상·노래교실 등이 있다. 세탁 서비스에서부터 이·미용 서비스, 그리고 관광행사까지 제공된다. 입소를 원하는 노인들이 늘고 있어 시는 추가로 부지마련에 나섰다. 어르신 해피워크(happy-work)사업도 눈여겨 볼 만하다. 노인들에게 소일거리를 제공하고 돈도 벌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60세 이상 어르신 180여명이 어린이놀이터와 자전거보관대 등을 정리하며 하루 4시간씩 주4회 일하는 조건으로 매달 24만원가량을 받는다. ●노부모 모시면 주말농장 이용 지원 노부모를 모시는 가족을 우대하는 정책도 있다.‘실버가족 주말농장’사업으로 60가구가 선정돼 가구당 주말농장 10평씩을 임대 지급하고 있다. 이밖에 만성질환이나 장애로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에 대한 재가노인보호센터 등 눈여겨 볼 만한 사업이 많다. 요양원과는 별도로 문원동에는 지하1층 지상4층 규모의 노인복지관이 마련돼 있다. 관내 60세 이상 노인들을 대상으로 법률상담에서부터 치매 등 의료상담까지 담당하고 있다. 탁구와 당구, 바둑, 장기 등 다양한 취미활동프로그램도 선보이고 있다. 영어와 중국어, 일본어 등 제2외국어 강의에도 노인들의 참여도가 높다. 아동복지 부문에는 타시·군과는 달리 법적 저소득층 외 소외되기 쉬운 기타 일반 저소득층의 아동까지 지원대상으로 하고 있다. 저소득층의 둘째이상 보육료는 도내 거주 보육시설 이용시 국공립보육료의 70%까지 지원한다. 액수로는 25만원가량이다. 장애아동은 35만원으로 높은 편이다. ●장애인 가정 전화요금도 대폭 할인 다양한 장애복지정책도 부러움의 대상이다. 장애수당에다 의료비, 자녀교육비 등은 기본이고 장애인 자립자금까지 대여한다. 여기다 재활보조기구도 시가 지원하고 장애아동 부양수당도 마련돼 있다. 또 이들에 대해서는 공동주택 특별공급을 알선하고, 전화요금도 대폭 할인해주고 있다. 특히 장애인재활보조기구에는 욕창방지용 매트에서부터 음향신호 리모컨과 음성탁상시계, 휴대용 무선신호기, 자세보조용기구까지 다양하다. 시 관계자는 “재정자립도가 높은 지역일수록 복지수준이 높다는 관념을 깨고 지자체의 노력에 따라 복지수준이 좌우된다는 것을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성남 윤상돈기자 yoonsang@seoul.co.kr
  • 과천은 ‘으뜸 복지도시’

    과천은 ‘으뜸 복지도시’

    “복지정책, 이 정도는 돼야지요.” 과천시가 전국 최고의 복지도시라는 영예와 함께 특별지원금 1억 2000여만원을 받았다. 과천시의 수상은 자치단체별로 재정능력과는 별개로 노력 여하에 따라 주민복지가 크게 향상될 수 있다는 사례를 남겼다는 점에서 다른 자치단체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지자체 복지평가대회서 종합 최우수상 과천시는 보건복지부가 지난 5일 전국 236개 시·군·구 기초자치단체를 대상으로 실시한 ‘2006년 지방자치단체 복지 종합평가대회’에서 종합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시는 평가에서 복지행정과 노인복지, 아동복지, 장애인복지 부문에 모두 A를 받았다. 저소득층과 의료급여 등에서는 상대적으로 낮은 점수를 받았지만 전체 총점에서는 역시 A등급을 유지했다. 과천시의 수상소식이 알려지면서 복지부문에 대한 타 자치단체의 벤치마킹이 이어지고 있다. 복지정책이 어떻게 다른지, 예산 배분의 현황 등 일거수 일투족이 관심거리다. 과천시의 복지정책은 노인인구의 증가와 발맞춰 추진한 선진국 수준의 노인복지정책을 우선 꼽을 수 있다. 과천시는 이미 1998년 중앙동 83 일대 노인복지요양원을 건립해 65세 이상 저소득층 노인들을 무료로 입주시키고 있다. 물리치료사와 간호사·의사 등 16명의 직원이 상주하며,50여명의 중산층 이하 노인들의 건강과 레저를 책임지고 있다. 의료서비스로는 일반진료에서부터 침과 뜸·물리치료 등이 있고, 여가생활을 겸한 미술치료와 치료레이션·산책·영화감상·노래교실 등이 있다. 세탁 서비스에서부터 이·미용 서비스, 그리고 관광행사까지 제공된다. 입소를 원하는 노인들이 늘고 있어 시는 추가로 부지마련에 나섰다. 어르신 해피워크(happy-work)사업도 눈여겨 볼 만하다. 노인들에게 소일거리를 제공하고 돈도 벌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60세 이상 어르신 180여명이 어린이놀이터와 자전거보관대 등을 정리하며 하루 4시간씩 주4회 일하는 조건으로 매달 24만원가량을 받는다. ●노부모 모시면 주말농장 이용 지원 노부모를 모시는 가족을 우대하는 정책도 있다.‘실버가족 주말농장’사업으로 60가구가 선정돼 가구당 주말농장 10평씩을 임대 지급하고 있다. 이밖에 만성질환이나 장애로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에 대한 재가노인보호센터 등 눈여겨 볼 만한 사업이 많다. 요양원과는 별도로 문원동에는 지하1층 지상4층 규모의 노인복지관이 마련돼 있다. 관내 60세 이상 노인들을 대상으로 법률상담에서부터 치매 등 의료상담까지 담당하고 있다. 탁구와 당구, 바둑, 장기 등 다양한 취미활동프로그램도 선보이고 있다. 영어와 중국어, 일본어 등 제2외국어 강의에도 노인들의 참여도가 높다. 아동복지 부문에는 타시·군과는 달리 법적 저소득층 외 소외되기 쉬운 기타 일반 저소득층의 아동까지 지원대상으로 하고 있다. 저소득층의 둘째이상 보육료는 도내 거주 보육시설 이용시 국공립보육료의 70%까지 지원한다. 액수로는 25만원가량이다. 장애아동은 35만원으로 높은 편이다. ●장애인 가정 전화요금도 대폭 할인 다양한 장애복지정책도 부러움의 대상이다. 장애수당에다 의료비, 자녀교육비 등은 기본이고 장애인 자립자금까지 대여한다. 여기다 재활보조기구도 시가 지원하고 장애아동 부양수당도 마련돼 있다. 또 이들에 대해서는 공동주택 특별공급을 알선하고, 전화요금도 대폭 할인해주고 있다. 특히 장애인재활보조기구에는 욕창방지용 매트에서부터 음향신호 리모컨과 음성탁상시계, 휴대용 무선신호기, 자세보조용기구까지 다양하다. 시 관계자는 “재정자립도가 높은 지역일수록 복지수준이 높다는 관념을 깨고 지자체의 노력에 따라 복지수준이 좌우된다는 것을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성남 윤상돈기자 yoonsang@seoul.co.kr
  • 무역 불균형·위안화 절상 담판?

    무역 불균형·위안화 절상 담판?

    |베이징 이지운특파원|‘부시의 강타자들이 베이징에 왔다.’ 13일 중국 국영 영자지 차이나데일리의 머리기사 표제다.14∼15일 ‘중국-미국 경제전략대화’ 참석을 위해 폴슨 재무장관 등 미국 대표단이 이날 방중했다. 칼로스 구티에레스 상무장관, 마이크 리빗 보건장관, 수전 슈워브 무역대표부(USTR) 대표 등 장관급 각료에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벤 버냉키 의장까지, 진정한 ‘강타자’들임에는 분명하다. 그럼에도 차이나데일리의 이같은 표제는 전략대화에 임하는 중국의 자신감을 드러낸다. 이날 베이징의 한 경제전문가는 “중국이 협상에 앞서 양국간 현안에 대해 나름대로 상당한 ‘사전 조치’를 실행했다.”면서 “중국은 사전 조치와 의지, 그간의 성과 등을 내보이며 미국에 시간을 요청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때문에 “알려지고 드러난 것과는 달리 양국간 경제전략대화가 ‘전투’ 양상으로 진행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중국의 자신감 중국이 지난 5∼7일 개최한 ‘중앙경제공작회의’는 협상 준비의 결정체라 할 수 있다. 당 중앙은 여기서 대외개방을 강화해 국제수지가 균형을 이루도록 하는 데 다각적인 방안을 마련키로 했다. 미국측의 가장 큰 불만 가운데 하나인 무역수지 문제에 대해 먼저 강한 개선의지를 내보인 것이다. 또 하나의 현안인 환율은 협상소식이 전해진 11월 중순 이후부터 빠르게 상승했다. 중국으로서는 미국 협상단의 방중에 따른 ‘시장의 반응’일 뿐이지만, 미국측에는 하나의 ‘성의’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런던의 은행간 금리인 ‘리보(Libor)’를 모델로 상하이 은행간 금리인 ‘시보(Shibor)’를 도입키로 한 것도 비슷한 제스처로 여겨진다. 외환 및 채권시장 등 금융 개혁·개방을 서두르겠다는 신호를 보낸 셈이다. 지적재산권 분야가 중국으로서는 성적이 가장 저조하지만, 이를 인정하고 있고 분발을 다짐하고 있는 상황이다. ●강타자들의 강공 협상에 앞서 폴슨 장관 등 협상 당사자는 물론, 미국 정치계와 재계, 언론 등은 중국에 날카로운 공격을 쏟아냈다.USTR는 중국이 투자 규제와 불공정한 보조금 등으로 자유무역을 저해하고 있다고 비판하는 보고서를 발간했다. 미국 관리들은 언론을 통해 중국의 지적재산권 보호 노력이 미흡하다고 비판했다. 지난 11일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에 따른 약정을 이행한 중국을 WTO에 제소할 것이라는 이야기도 전해졌다. 폴슨 장관도 TV회견에서 “중국이 위안(元)화 환율 개선 노력을 본격화하지 않을 경우 국제사회가 더 이상 용인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국 재계 대표단은 미국측 협상단을 만나 “더이상 미·중 무역 불균형을 참을 수 없다.”면서 백악관에 강력한 대책을 촉구하기도 했다. jj@seoul.co.kr
  • 주택대출 산정때 미래소득도 반영

    앞으로 개인이 주택담보대출을 받을 때 미래 소득이나 앞으로의 근무기간 등도 종합적으로 반영된다. 이에 따라 미래 소득이 줄어들거나 불확실한 사람은 주택담보대출을 받기가 어려워질 전망이다. 금융감독원은 다음주 금융기관들과 ‘주택담보대출 여신심사 체계 선진화 작업반’을 구성, 이런 내용의 여신심사 기준을 마련해 내년 1·4분기 중 시행할 계획이라고 7일 밝혔다. 시중은행에서 먼저 시작하고 보험사, 저축은행 등 제2금융권에도 도입할 계획이다. 금감원은 앞으로 주택담보인정비율(LTV) 적용률 범위 내에서 개인의 현재소득과 부채, 신용등급, 금융자산, 향후 예상소득액, 예상 근무연수 등을 포괄하는 지표를 만들어 대출금액에 차등을 둔다는 계획이다.전경하기자 lark3@seoul.co.kr
  • [儒林 속 한자이야기] (149) 賻儀(부의)

    儒林(735)에는 ‘賻儀’(부의 부/예법 의)가 나오는데,‘상가(喪家)에 扶助(부조)로 보내는 돈이나 물품’을 말한다.弔意金(조의금)을 전하는 봉투의 전면에 흔히 謹弔(근조),賻儀(부의),弔儀(조의)와 같은 문구를 사용한다.謹弔는 ‘죽음에 대하여 삼가 애도의 뜻을 표한다.’는 뜻이요,賻儀는 ‘초상난 집에 부조로 돈이나 물건을 보낸다.’는 의미다.弔儀는 ‘죽음을 슬퍼하는 마음을 표현한다.’는 뜻이다.奠儀(전의),香奠(향전),菲儀(비의),哲人其萎(철인기위),千秋永訣(천추영결)의 문구를 쓰기도 한다. 언제부터인가 빈 봉투에 弔意金만을 넣고 單子(단자)를 생략하는 게 일반화된 느낌이다.禮(예)는 時俗(시속)을 따르는 것이라 하더라도 왠지 迫切(박절)하다는 느낌이다. 單子는 ‘부조나 선물 따위의 내용을 적은 종이’를 말한다. 조선시대 문서 작성의 길라잡이라는 儒胥必知(유서필지)에 의하면,單子에는 弔辭(조사),物目(물목),日字(일자), 보내는 사람의 성명을 차례대로 기록하고 말미에 護喪所(호상소:초상 치르는 데에 관한 온갖 일을 맡아보는 곳) 入納(입납)이라고 적는다. 봉투 전면의 우측에는 弔辭, 좌측에는 ‘○○宅 護喪所 入納’(○○댁 호상소 입납), 후면에는 ‘○○○ 謹上’(○○○ 근상)이라고 쓰면 된다. ‘賻’는 ‘貝’(조개 패)가 意符(의부)로 쓰인 形聲字(형성자).‘貝’는 고대 중국에서 화폐로 사용하던 ‘조개’의 상형이다.‘甫’(보)는 ‘밭’과 ‘풀 한포기’의 상형이 합쳐진 글자로 ‘밭’을 의미한다.‘薄賻(박부:가벼운 부의),賻助(부조:부의를 보내 장사를 도움),賻贈(부증:장례를 돕기 위해 초상집에 부조하는 물건)’ 등에 쓰인다.‘儀’의 본디 글자는 ‘義’이다. 깃털로 만든 장식을 나타내는 ‘羊’과 무기류의 일종인 ‘我’를 합쳐 ‘깃털로 장식한 儀仗用(의장용) 武器(무기)’의 뜻을 나타냈다. 후대로 오면서 본뜻과 달리 ‘마땅하다’ ‘옳다’의 뜻으로 널리 쓰이자 본래의 뜻을 보존하기 위해 만든 글자가 ‘儀’이다.用例로 ‘容儀(용의:몸을 가지는 태도),儀軌(의궤:본보기),祝儀(축의:축하하는 뜻을 나타내기 위하여 내는 돈이나 물건)’등이 있다. 조선 중기의 정희등(鄭希登)은 불의와 타협할 줄 모르는 선비였다. 그를 사위로 맞으려는 김안로(金安老)의 의중을 간파하고,“평생을 홀아비로 살지언정 醜門(추문)에 들지 않겠다.”고 거부하였다.實權(실권)을 장악한 윤원형(尹元衡)이 그의 인물 됨됨이를 알고 出仕(출사)를 권유하는 편지를 보냈다. 이에 ‘윤원형과 손잡고 일하느니 차라리 죽음을 택하겠다.’고 화답하니 윤원형의 분노는 극에 달하였다. 결국 그는 혹독한 拷問(고문)의 후유증으로 別世(별세)하고 말았다. 殮襲(염습)조차 할 수 없을 만큼 구차한 살림살이는 가족을 더욱 안타깝게 하였다. 덕은 외롭지 않다는 말을 實證(실증)하듯, 한밤중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선비들이 300여尺(척)의 베를 가지고 와 염습을 하고 사라졌다.額數(액수)의 寡多(과다)로 성의를 가늠하는 風潮(풍조). 우리의 慶弔文化(경조문화)를 ‘조선인이 갖고 있는 뜨거운 마음의 표시’라 했던 淸末(청말)의 사상가 강유위(康有爲)가 다시 온다면 어떻게 평할지 궁금하다. 김석제 경기도군포의왕교육청 장학사(철학박사)
  • 儒林(741)-제6부 理氣互發說 제3장 君子有終(22)

    儒林(741)-제6부 理氣互發說 제3장 君子有終(22)

    제6부 理氣互發說 제3장 君子有終(22) 이튿날 아침. 두향과 여삼은 다시 안동을 출발하였다. 어차피 장례에는 참여할 형편이 못 되었으므로 서둘러 집으로 돌아와 제사를 지낼 심산이었다. 다행인 것은 선조가 특별히 영의정의 벼슬을 추증하고 국장으로 거행할 것을 어명으로 내렸으므로 퇴계의 장례는 의정예법에 따라 이듬해 3월 임오(壬午)일에야 거행되는 것이었다. 임오일이라면 이듬해 3월25일. 정확히 퇴계가 숨을 거둔 날로부터 100일째 되는 날이었다. 기록에 의하면 맏아들 준은 돌아가신 아버지의 유명을 따라서 임금에게 두 번이나 상소를 올려 국장을 사양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선조는 단호히 이를 윤허하지 않았다. 선조는 봉명사신(奉命使臣)으로 승정원의 유홍(兪泓)을 직접 보내어 치제(致祭)케 함으로써 자신이 직접 회장(會葬)하지는 못하였지만 퇴계의 넋을 극진히 모셨던 것이다. 두향은 집으로 돌아오자 곧 초당에 궤연(筵)을 꾸몄다. 퇴계의 영위를 차리고 그 곁에 생전에 퇴계가 두향에게 정표로 써준 치마폭을 개어 놓았다. 두향은 그 신주 앞에 아침저녁으로 상식(上食)을 올리고 머리를 풀고 곡을 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두향은 거문고를 들고 궤연 앞에서 연주를 하면서 노래를 불렀다. 퇴계와 헤어진 후 단 한번도 손에 들지 않았던 거문고였다. 지금도 남아 있는 묘비에 새겨져 있듯 두향은 거문고의 명인. 그러나 퇴계와 헤어진 후 두향은 의식적으로 거문고를 멀리하지 않았던가. “즐겁도다. 산 속에 숨어사는 삶은 큰 사람의 너그러운 모습일러라. 홀로 잠자고 홀로 말하니, 그 깊은 뜻 길이 잊지 말거라.” 두향이가 궤연 앞에서 거문고를 뜯으며 불렀던 노래는 공자가 편찬한 시경에 나오는 ‘고반(考槃)이란 시. 생전에 퇴계가 각별히 좋아하던 노래였다. 철저하게 산과 언덕, 그리고 물가에 숨어 사는 군자의 은둔생활을 찬미하고 있는 이 노래는 퇴계가 단양의 군수로 있을 무렵 강선대에서 함께 노래하고 듣던 애창곡이었으며, 실제로 퇴계는 단양 군수를 끝으로 고향으로 돌아가 서당을 짓고 자신의 손으로 ‘고반’을 완성하였던 것이다. “즐겁도다. 물가에 숨어 사는 삶은 큰 사람의 유연한 모습일러라. 홀로 잠자고 홀로 밤을 새우니, 그 즐거움 남에게 알려 무엇하리.” 어느덧 세월이 흘러 두향의 얼굴은 잔나비처럼 중늙은이의 모습으로 변하였으나 사랑하는 사람을 부르는 두향의 만가(輓歌)는 여전히 맑고 청아하였다. 퇴계를 위한 두향의 진혼곡은 이듬해 봄까지 계속되어 단 하루도 그침이 없었다고 한다.
  • [문화마당] 뭔가 다른 영국의 문화전략/임영균 중앙대 사진학과 교수

    프랑스 파리에서 영국 런던으로 가는 기차 유로스타를 타면 일반 기차와 같이 승객들이 출발할 때는 어수선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도버해협을 지나기만 하면 그렇게 어수선하던 승객들이 갑자기 쥐죽은 듯 조용해지면서 책장하나 넘기는 소리도 부담스러울 정도로 침묵을 지킨다. 그만큼 영국은 남에게 불편을 끼치기 싫어하는, 에티켓이 세계에서 가장 발달한 무서운 나라라고 할 수 있다. 불과 10여년 전, 필자가 배낭여행을 갔을 때만 해도 켄싱턴 근처의 외곽에는 집들이 텅텅 비어 있었고,IMF 구제금융에 직면해 우리 기업을 유치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우리나라 대기업이 영국 현지에 공장을 열었을 때는 영국 여왕이 직접 테이프 커팅을 하기도 했다.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던 나라가 ‘철의 여인’ 대처의 지도력으로 위기를 극복, 지금은 금융업·관광업·문화산업 등으로 유럽연합국 중에서 유일하게 호황을 누리고 있다. 그 원인은 무엇일까? 수년전 뉴욕 타임스 문화 핫 이슈면에서 독일 사진가 볼프강 틸먼이 영국의 대표적인 미술상인 터너상을 수상했다는 기사를 읽었다.19세기 영국 화가 터너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만든 미술상을 영국인이 아닌 독일 사람에게 주는 것도 자존심이 상하는 일인데, 수상자인 틸먼은 화가도 아닌 사진가이기에 더욱 더 논란이 된 것이다. 그러나 그런 논란 덕분에 전 세계 문화예술인들에게 영국의 터너미술상을 확실하게 각인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영국의 문화전략이 성공을 거둔 셈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저명한 미술상인 이중섭 미술상을 과연 일본인이나 외국인 예술가에게 줄 수 있을까? 그것도 화가가 아닌 사진작가나 비디오작가에게 수여할 수 있을까? 필자는 뉴욕 타임스에 실린 볼프강 틸먼의 터너상 수상소식을 읽고난 후 그의 작품 내용이 궁금해 런던 테이트 모던 미술관을 찾았다. 틸먼의 수상소식을 듣기 전부터 테이트 모던 개관소식에 한번 가보고 싶던 터였다. 런던 템스 강변에 있는 테이트 모던은 원래 화력발전소 건물을 현대미술관으로 개조한 것으로 세계에서 가장 천장이 높은 건축물에 속한다. 테이트 모던 별관에 전시된 볼프강 틸먼의 수상 작품은 기대했던 것만큼 완성도가 뛰어난 작품은 아니었다. 하지만 권위주의와 거리가 먼 예술가의 일상적인 생활을 액자도 없이 벽면에 설치한 것이 편안함을 안겨 줬다. 테이트 모던이 화력발전소를 개축해 세계적인 현대미술관으로 탈바꿈됐듯이 우리도 한강변의 좋은 위치에 있는 당인리 화력발전소를 현대미술관으로 개축할 수는 없을까. 특히 당인리 발전소 주변은 젊은 예술가들이 많이 모여 사는 곳인 만큼 서울 시민들에게 새로운 활력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기대된다. 2년 전 그리스 데살로니카 포토산크리아 사진 페스티벌에서 영국의 사진작가 폴 시라잇을 만난 적이 있다. 그는 아프가니스탄 전쟁터를 촬영한 사진가로 유명하다. 그에 의하면 영국 국방부는 막대한 비용을 들여 전쟁을 하기 전에 사진작가와 글 쓰는 작가를 척후병으로 적진에 먼저 침투시켜 사진과 글을 써오게 한다고 한다. 전략수립에 참고자료로 활용하고 런던에 있는 전쟁박물관에서 전시도 해 대중에게 전쟁의 상황을 인식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웨일스 예술대 사진학과 교수인 그는 대학간 교류협정을 맺기 위해 해외 출장이 잦다. 그는 중국의 대학과 조인식을 맺으러 갈 때는 중국식 발음이 적힌 명함을 가지고 간다고 한다.24시간 이상을 지체하지 않을 정도로 시간관리에도 엄격하다. 그만큼 영국인들은 사소한 일에도 철저하다. 무엇보다 문화적인 전략 마인드를 갖추고 있다. 우리가 배워야 할 대목이다. 임영균 중앙대 사진학과 교수
  • 제12회 서울광고대상-입상작 39점·광고인상 1인 선정

    제12회 서울광고대상-입상작 39점·광고인상 1인 선정

    광고산업 발전과 광고인의 창작의욕을 고취하기 위해 제정한 ‘제12회 서울광고대상´에서 입상작 총 39점과 ‘올해의 광고인상´ 1인이 선정됐다. 대상은 SK의 ‘행복은 쉽다! OK! SK´가 차지했다. 마케팅대상은 삼성전자의 ‘파브-보르도´편이 뽑혔고, 기업PR대상은 SK주식회사의 ‘해외유전´편이 선정됐다. 최우수상에는 LG화학 ‘보이지 않아도 좋습니다´, SK텔레콤 ‘사람을 향합니다´ 시리즈, KT ‘라이프 이즈 원더풀-소녀´편이 이름을 올렸다. ‘올해의 광고인상´의 영예는 김광태 삼성전자 전무가 안았다. 수상작 및 수상소감, 심사평 등을 소개한다. 김태곤 kim@seoul.co.kr ■ 심사위원 조병량 (위원장·한양대 광고홍보학부 교수) 김충현 (서강대 영상대학원장) 김광규 (한국브랜드협회장) 김명서 (본사 이사) 홍성추 (간사·본사 광고마케팅국장)
  • 儒林(735)-제6부 理氣互發說 제3장 君子有終(16)

    儒林(735)-제6부 理氣互發說 제3장 君子有終(16)

    제6부 理氣互發說 제3장 君子有終(16) 참으로 편안한 죽음이었다. 평생 동안 갖은 질병과 병고에 시달리던 퇴계에게 있어서 마지막의 임종 순간은 믿어지지 않을 만큼 평온하고 평화스러운 죽음이었던 것이다. 주역에 나와 있는 ‘겸사’의 점괘 그대로 ‘군자유종(君子有終)’의 최후였다. 퇴계의 죽음과 더불어 어느덧 한 치 정도 쌓이던 눈이 그치고 곧바로 구름이 걷혔다. 이에 대한 기록이 임종을 지킨 이덕홍의 ‘간재문집’에 다음과 같이 나와 있다. “12월8일. 아침에 분매에게 물을 주라고 지시하셨다. 유시 초에 누운 자리를 정돈하게 하고는 부축을 받고 일어나 앉아 편안하게 서거하셨다. 이날 날씨가 맑았는데, 유시 초에 갑자기 흰 구름이 집주위로 몰려들더니 눈이 한 치가량 내렸다. 퇴계 선생이 서거하자 곧바로 구름이 걷히고 눈이 그쳤다. (酉時 靑天忽白雲集 宅上雪下寸許 須臾先生命整臥席 扶起而坐逝 卽雲散雪霽)” 퇴계의 서거 소식은 뒤늦게 선조에게 전해진다. 퇴계가 죽은 지 3일후 선조는 뒤늦게 퇴계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내의(內醫)에게 약을 가지고 역마를 타고 급히 가서 구하도록 지시하였으나 전의가 채 도착하기 전에 퇴계가 숨을 거뒀다는 비보를 전해 듣자 12월18일 선조는 퇴계에게 영의정을 추증(追贈)하고는 그에 맞추어 치제(致祭) 장례 등의 제반사를 조치토록 하였다. 이때 선조가 내린 시호는 다음과 같다. “大匡輔國崇祿大夫 議政府領議政兼領經筵 弘文館 藝文館 春秋館 觀象監事” 물론 퇴계는 죽기 사흘 전 조카 영에게 절대로 ‘국장을 쓰지 마라. 해당 관청에서 규례에 따라 국장을 정하면 반듯이 유명이라고 말하여 상소하여 고사토록 하라.’라는 유계를 내렸으나 선조가 친히 내린 어명이었으므로 이를 물리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선조는 2일간 조회를 폐하게 한 뒤에 의정에 합당한 일 등 국장으로 장례를 치르게 하고 이에 필요한 각종 제물을 부의(賻儀)로 보내도록 친히 지시하였다. 선조는 직접 퇴계의 빈소를 찾아가 거애(擧哀)하고 싶어 하였으나 거리가 멀었으므로 대신 승지를 보내어 조제(弔祭)토록 하였다. 이때 율곡은 스승 퇴계의 슬픔을 애도하여 ‘퇴계 선생을 곡하다(哭退溪先生)’란 만시를 짓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좋은 옥 정한 금처럼 순수한 정기타고 나시어 참된 근원은 관민(關:장재와 주희를 가리킴)에서 갈려나왔다. 백성들은 위아래로 혜택입기를 바랐건만 자신의 행적은 산림에서 홀로 몸을 닦으셨네. 호랑이 떠나고 용도 사라져 사람의 일 변했건만 물결 돌리고 길 여신 저서가 새롭구나. 남쪽 하늘 아득히 저승과 이승이 갈리니 서해 물가에서 눈물 마르고 창자 끊어집니다. (良玉精金稟氣純 眞源分派自關 民希上下同流澤 迹作山林獨善身 虎逝龍亡人事變 瀾回路闢簡編新 南天渺渺幽明隔 淚盡腸西海濱)”
  • [함혜리 기자의 프렌치 리포트] (4) ‘느림의 미학’에 멍드는 경제

    [함혜리 기자의 프렌치 리포트] (4) ‘느림의 미학’에 멍드는 경제

    “인간의 모든 불행은 단 한 가지, 고요한 방에 들어앉아 휴식할 줄 모른다는 데서 비롯한다. ”프랑스의 사회철학자 피에르 상소는 자신의 저서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를 이런 파스칼의 말로 시작한다. 그는 느림을 삶의 활력이자,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세상을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한 방편으로 소개했다. 뒤처지지 않기 위해 앞만 보고 달려야 했던 현대인들에게 상소가 제시한 느림의 철학은 얼마나 신선하게 다가왔던가. 그런데 프랑스 땅에서 프랑스인들과 부딪치며 살아보니 그 느림이란 것이 절대 그런 게 아니었다. 절대 서두르지 않는 그들의 느림보 근성 때문에 일상생활에서 분통이 터질 때가 한두번이 아니었다.‘느림의 미학’을 예찬하는 그들의 나태함 때문에 프랑스는 점점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었다. ●“시간은 돈이 아니다.” 우리는 ‘시간은 돈’이라고 들어왔다. 실제로 그렇다. 많은 기업들이 시간을 절약해 주는 사업으로 돈을 벌고 있다. 서비스업이란 것도 따지고 보면 내가 할 일을 남이 시간을 내서 대신 해주는 것이다. 그러나 프랑스인들에게 시간은 돈이 아니다. 그들은 전혀 바쁘지 않다.“오늘 안 되면 내일 하면 되고, 이번 주에 안 되면 다음 주에 하면 되는데 무슨 걱정이냐?”는 식이다. 프랑스인들은 경쟁에 익숙하지 않다. 치열하게 살지 않아도 걱정할 게 별로 없다. 프랑스는 그동안 국가가 복지를 책임지고, 기업은 노동자를 평생 고용하는 사회경제모델을 유지해 왔기 때문이다. 더구나 토지는 비옥하고, 조상들이 남겨놓은 풍부한 문화유산 덕분에 가만히 앉아 있어도 돈이 들어온다. 좁은 땅덩어리에 부존자원은 거의 없고, 인구는 엄청나게 많은 우리와는 비교할 수 없이 풍요를 누린다. 부족할 것 없는 나라에서 여유롭게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은 정말 부럽다. 그런데 이 ‘여유’가 ‘느림’이 되어 돌아올 때 느끼는 불편함은 우리처럼 ‘빨리빨리’ 문화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받아들이기 힘든 문제가 된다. 상점이나 식당에서도 바빠서 재촉하는 사람은 일부러 외면한다. 관공서의 공무부터 진료, 사소한 수리, 애프터서비스까지 무슨 일이든지 약속을 잡아야 한다. 심지어 약속을 잡기 위해 약속을 잡는 경우도 있다. 약속 날짜는 짧게는 1주일 뒤, 길게는 3개월 뒤로 잡히는 수도 있다. 빠른 서비스를 생명으로 하는 DHL도 프랑스 땅에만 오면 속도계가 고장난다. 한국에서 하루면 충분한 인터넷 개설이 프랑스에서는 3주 이상 걸린다. 정말 운이 없으면 느림 때문에 중요한 순간에 낭패를 본다. 지난 여름 명문대 시리즈 취재를 위해 독일 출장을 갔던 때의 일이다. 북역에서 TGV를 타고 쾰른까지 갔다가, 그곳에서 뒤셀도르프로 가서 저녁 7시에 인터뷰를 하고, 다시 밤기차를 타고 아헨으로 갈 계획이었다. 그 다음날은 아헨공대에서 방문과 인터뷰 약속이 줄줄이 잡혀 있었다. 그런데 택시를 잘못 탄 바람에 2분 늦게 역에 도착해서 기차를 놓쳤다. 길이 텅비어 있는데도 택시 기사가 시속 50㎞ 이상을 달리지 않았던 탓이다. 그날 나는 2분 때문에 10여만원을 주고 표를 새로 사야 했고, 다음 기차를 타기 위해 3시간을 역에서 기다렸으며,7시 인터뷰 약속을 취소해야 했다. ●프랑스병(病)은 깊어가는데 느리지만 꼼꼼하게 일을 처리하는 측면도 있다. 프랑스인들은 졸속이라는 것을 모른다. 길을 닦을 때나, 건물을 지을 때도 수백년 뒤를 바라본다. 이런 점은 우리가 분명히 배워야 할 대목이다. 하지만 사회 전체가 느리게 돌아가는 것은 큰 문제다. 속도가 경쟁력인 정보화 시대엔 더욱 그렇다. 글로벌화된 경쟁체제 아래에서 프랑스는 경쟁력을 잃고 있다. 사회당 정부는 1990년대 말 실업대책의 하나로 주 35시간 근무제를 도입했다.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의 공약사항이었던 35시간 근무제가 급여삭감없이 적용되면서 프랑스인들의 연간 총 근무시간은 1568시간으로 줄었다. 유럽 평균 1697시간에 비해 129시간이 적은 것이다. 프랑스인들은 5주간의 유급 정기휴가를 갖는데, 주 35시간이 된 이후엔 실질적으로 평균 3주일이 더 늘었다. 열심히 일한 뒤에 재충전을 위해 휴식을 취하는 게 아니라, 쉬다가 가끔 일하러 나가는 셈이 된다. 쉬다보면 자꾸 쉬고 싶어지는 법. 경쟁에 익숙하지 않고 여유를 즐기는 프랑스인들에게 35시간 근무제는 근로의욕만 상실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한 기업인은 “프랑스병의 가장 심각한 증상은 일하기 싫어하는 풍조이며, 주 35시간 근무제 도입 후 증세가 더 깊어졌다.”고 개탄했다. 프랑스는 근무시간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짧은데다 노동시장은 어느 나라보다 경직돼 있다. 고용주가 정당한 이유로 해고해도 노동자가 소송을 하면 75%는 승소할 정도로 법이 노동자 편이다.“근로자 한 명을 해고하는 것이 이혼하는 것보다 힘들다.”고 말할 정도다. 노동시장이 이렇게 경직되다 보니 프랑스 회사에서는 정규직 근로자 뽑기를 꺼린다. 높은 실업률이 여간해서 해소되지 않는 이유다. 위기의식이 없는 것도 아니다. 프랑스에서 지난 봄 큰 문제가 됐던 최초고용계약제(CPE)는 이런 노동시장의 경직성을 해소해 보자는 의도에서 시도된 것이었다. 하지만 학생들과 노조의 반대로 도입은 무산됐다. 프랑스는 최근 주 35시간 근무제를 사실상 폐지하고 노동시간을 최대 49시간까지 노사가 조정할 수 있도록 법적으로 보장했다. 이 역시 노동자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히고 있다. lotus@seoul.co.kr ■ 프랑스 경제의 현주소 경제적인 측면에서 볼 때 프랑스의 국제적 위상은 여전히 화려하다.2005년 기준 국내총생산(GDP) 2조 1250억달러로 미국, 일본, 독일, 영국에 이어 세계 5위의 경제대국이다. 독일 영국과 함께 세계 최대의 단일시장인 유럽연합(EU)을 이끌어가는 중심국가이기도 하다. 해외 직접투자에서도 프랑스는 해외투자비율(개별 국가투자/세계총투자) 13.5%로 미국(16.1%) 다음으로 많다. 교역규모는 2005년 기준 9555억달러로 세계 5위의 교역국이다. 기계, 운송장비, 농산품, 소비재 등이 중심이 된 수출 규모는 4592억달러로 세계 5위, 수입은 4958억달러로 세계 6위다. 세계 100대 기업 중 토탈, 카르푸, 비방디, 푸조시트로앵, 국영전기공사, 르노, 생고뱅 등 10개가 프랑스 기업이다. 이같은 화려한 외형에도 불구하고 고유가와 기록적인 무역적자, 구조적인 문제 때문에 경기가 수년째 침체 국면을 못 벗어나고 있다. 특히 복지와 분배에 우선을 둔 경제정책에 따른 과도한 국가재정 부담은 성장의 걸림돌로 작용한다.GDP 중 국가채무가 차지하는 비중은 2005년 현재 54%나 된다. 프랑스는 재정적자를 GDP대비 3% 범위에서 운영해야 하는 EU의 안정·성장협약을 3년 연속 위반했다. 재정부담이 큰 사회보장제도의 개혁과 함께 예산동결, 공무원수 감축, 주요 기업의 정부보유 지분 매각 등 재정적자 축소정책을 추진하고 공기업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작업을 가속화하고 있으나 저항이 만만치 않다. 다행히 세계 경제가 전반적으로 호전된 덕분에 2005년을 고비로 차츰 회복되는 분위기다.2005년 1.4%에 그쳤던 경제성장률은 2006년 상반기 1.9%를 기록했고 민간소비 및 설비투자 회복 등 실물경제의 완만한 회복세 속에 올해 성장 목표치 2∼2.5% 달성은 무난할 것으로 전망된다. 2005년 초 10%를 초과했던 실업률도 경제상황이 개선되면서 올해 7월에는 8.9%로 낮아졌다.
  • [사고] 제12회 서울광고대상 수상작 발표

    [사고] 제12회 서울광고대상 수상작 발표

    광고산업 발전과 광고인의 창작의욕을 고취하기 위해 제정한 ‘제12회 서울광고대상’에서 SK의 ‘행복은 쉽다! OK! SK’가 대상을 차지했다. 서울광고대상 심사위원회(위원장 조병량 한양대 광고홍보학부 교수)는 지난 7일 심사에서 입상작 총 39점과 올해의 광고인상 1인을 선정했다. 마케팅대상은 삼성전자의 ‘파브-보르도’편이 뽑혔고 기업PR대상은 SK주식회사의 ‘해외유전’편이 선정됐다. 최우수상에는 LG화학 ‘보이지 않아도 좋습니다’,SK텔레콤 ‘사람을 향합니다’ 시리즈,KT ‘라이프 이즈 원더풀-소녀’편이 이름을 올렸다. 광고인상의 영예는 김광태 삼성전자 전무가 안았다. 수상작 및 수상소감, 심사평 등은 오는 22일 서울신문 지면을 통해 소개된다. ●시상식 11월22일(수) 오후 3시, 서울신문사빌딩 20층 프레스클럽 ●심사위원 조병량, 김충현(서강대 영상대학원장), 김광규(한국브랜드협회장), 김명서(본사 이사)
  • [새영화] 조국독립을 향한 형제의 갈등·우애

    칸영화제의 단골손님 켄 로치(70) 감독은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The Wind That Shakes the Barley)으로 올해 황금종려상을 거머쥐었다.1920년대 아일랜드 독립전쟁을 배경으로 형제의 우애와 대립을 그린 영화는 단순히 ‘찬사를 받을 만한’ 좋은 작품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 자신이 수상소감에서 “아일랜드의 상황은 지금의 이라크전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이라크를 탄압하는 미국과 영국의 구도는 아일랜드에 대한 영국의 태도와 비교해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고 밝혔듯, 영화는 과거를 통해 현재의 모순을 드러낸다. 조국의 독립을 향해 같지만 다른 길을 걷는 두 형제의 이야기는, 목표는 하나지만 그 안에서 벌이는 이념 논쟁, 좌파와 우파의 갈등 등 우리의 모습과 교묘하게 오버랩되며 남다른 의미를 던지기도 한다. 너른 들판에서 하키를 즐기는 아일랜드 청년들. 여유로움은 한순간이다. 영국군의 위협과 강압, 살육으로 가득찬 현실이 들이닥친다. 런던의 큰 병원에 취직한 데이미언(킬리언 머피)은 영국군의 강제와 억압을 직시하며 의사의 꿈을 포기한 채 아일랜드공화군(IRA·Irish Republican Army)에 입대한다. 구두에 흙이 묻을까 걱정하며 낮은 포복도 제대로 못하던 아일랜드 신사들은 독립이라는 대명제 아래 투사로 거듭난다.IRA 활동은 영국과 아일랜드의 휴전을 이뤄내지만, 또다시 아일랜드는 완전한 독립과 영국의 자치령화를 둘러싼 혼란에 휩싸인다. 감독은 형제 중 누구의 편에도 서지 않은 관찰자의 시선을 유지한다. 조용히 형제의 끝을 그려내면서 관객에게 많은 질문을 던지는 듯 하다. 희망이란, 또 현실은, 그리고 조국을 위해서라면 어떠한 것도 정당화할 수 있는가. 한편 오는 26일까지 서울 동숭동 동숭아트센터 하이퍼텍나다와 부산 해운대 요트경기장의 시네마테크부산에서 ‘켄 로치 특별전’이 열린다.‘케스’‘하층민들’‘레이닝 스톤’ 등 13편의 작품에서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과 사회적 이슈를 향한 그의 날카로운 시선을 느낄 수 있다. 서울(02-766-3390) 11월9일까지, 부산(051-742-5366) 10∼26일.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儒林(723)-제6부 理氣互發說 제3장 君子有終(4)

    儒林(723)-제6부 理氣互發說 제3장 君子有終(4)

    제6부 理氣互發說 제3장 君子有終(4) 퇴계가 실질적인 유계(遺戒)를 내린 것은 다음 날인 12월4일이었다. 이날은 마침 퇴계의 병세가 조금 가라앉아 있었다. 그러자 퇴계는 주위를 물리치고 조카 영(寗)을 불러 자신의 곁에 앉게 한 다음 지필묵을 준비토록 하였다. 이때의 장면이 ‘퇴계언행록’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12월4일. 병이 조금 덜해진 틈을 타서 좌우를 물리치시고 조카 영에게 유계를 받아 적게 하셨다. 기침 소리가 심하였는데, 좌우를 물리치고 말씀하실 때에는 문득 질병이 몸에서 떠난 듯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다. 쓰기를 마치자 직접 한번 읽어보시고는 영에게 봉하고 서명하라고 지시하셨다. 그런 뒤에야 기침소리가 다시 들리기 시작하였다.” 물론 퇴계의 유계는 그가 죽은 후에야 밀봉이 뜯기고 공개되었다. 퇴계가 남긴 유계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국장(國葬)을 쓰지 말라. 해당 관청에서 규례에 따라 국장을 청하면 반드시 유명(遺命)이라 말하고 상소하여 고사토록 하라. 2. 유밀과(油蜜果)를 쓰지 말라. 과일은 넉넉지 못할 것이니 간소하게 한 단씩만 차리고 그 외에는 일절 쓰지 말도록 하라. 3. 비석(神道碑)을 세우지 말라. 다만 작은 돌에다 그 앞면에는 ‘퇴도만은진성이공지묘(退陶晩隱眞城李公之墓)’라고만 쓰고, 그 뒷면에는 향리(鄕里)·세계(世系)·지행(志行)·출처(出處)의 대략을 ‘가례(家禮)’에 언급된 대로 간략하게 순서대로 기록해라. 이 일을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여 짓게 하면 기대승처럼 서로 잘 아는 사람은 반드시 실속 없는 일들을 장황하게 늘어놓아서 세상의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그래서 일찍이 뜻한 바를 스스로 적고자 하여 먼저 자명문(自銘文)을 지었으나 그 나머지는 미루다가 마치지 못했다. 그 초고가 여러 원고들 중에 섞여 있을 것이니 찾아서 쓰도록 하라. 4. 선세(先世)의 묘갈(墓碣)을 세우는 일을 마치지 못하고 이렇게 되니 영원한 한이 된다. 그러나 여러 가지 일이 이미 갖추어져 있고, 형편도 어렵지 않으니, 반드시 문중 사람들과 의논하여 새겨서 세워라. 5. 동쪽의 작은 집은 본래 너(퇴계의 맏아들 준을 가리킴)에게 주려했고, 적(寂)을 위하여 따로 작은 집 한 채를 짓고 있었는데, 반도 못 짓고 이렇게 되었다. 적의 모자는 가난해서 반드시 완성하지 못할 것이니, 네가 맡아서 집을 완성해주면 정말 좋겠다. 만약 형편이 어려우면 차라리 네가 그 재목과 기와 등의 물자를 가져다가 재실(齋室) 등에 사용하고 적 모자에게는 이 집을 그대로 주는 것이 좋겠다.” 퇴계의 유계는 지금도 엄격히 지켜지고 있다. 도산의 동쪽 끝자락인 청량산 쪽으로 달려 나와 온계에서 흘러내린 퇴계의 물이 하계마을에 이르러 낙천물과 합쳐지는 지점을 직선으로 바라보고 있는 건지산 기슭에 묻힌 퇴계의 묘소 앞 비석에는 다만 다음과 같은 10자의 비문이 새겨져 있는 것이다. “도산으로 물러나 만년을 숨어산 진성이씨의 묘(退陶晩隱眞城李公之墓)”
  • [이주일의 어린이책] 눈이 즐거운 타이완 동화 ‘내 사랑, 파란나무 숲’

    책 갈피갈피에서 상상의 꽃망울이 팡팡 소리를 내며 터질 동화책이 한권 나왔다. “서쪽 숲을 향해 해 지는 길을 뛰어가다 보면, 하늘 한 쪽에 걸린 장난꾸러기 마술사 같은 태양 할아버지가 달걀노른자로 변해서는 먼 산 위로 황금색 노른자를 뚝뚝 흘리곤 하지요.” 잠자던 오감을 살살 꼬드겨 깨우는 감각 넘치는 묘사들이 쉼없다.“파란 나무숲에 닿으면 나는 파랑에 둘러싸여 파랑을 보고, 파랑을 들이마시고, 파랑을 듣기도 해요.” 타이완에서 날아온 창작동화 ‘내 사랑, 파란나무 숲’(장자화 글, 신민재 그림, 전수정 옮김, 사계절 펴냄)의 도입부이다. 지은이는 타이완의 신인 동화작가. 때묻지 않은 참신한 상상력에서 신인작가의 가치가 고스란히 읽힌다. 어린 주인공 마그리트가 사는 마을은 모든 게 신기하다. 황금색 노른자가 뚝뚝 떨어지는 태양, 달콤한 파인애플 즙이 흘러나오는 달,“야옹, 야옹, 야옹”“꿀꿀꿀꿀” 제멋대로 소리를 내는 괘종시계…. 꿈꾸기를 좋아하는 마그리트가 학교숙제로 그리는 파란 나무숲 그림은 그야말로 환상의 극치다. 나뭇가지도, 기둥도, 나뭇잎과 열매까지도 온통 파랗기만 한 파란나무숲을 춤추듯 헤집고 다니는 커다란 물고기떼. 극적 구도가 돋보이는 서사의 즐거움보다는 액자 속 그림을 들여다 보듯 미술적 감식안이 도드라진 장면묘사가 압권이다. 또 어느결엔 어른들의 환상소설에서나 만남직한 팬터지 화법이 쓰윽 끼어들어 책읽기의 다양한 질감을 보태기도 한다. 마그리트가 물고기들이 헤엄쳐 다니는 파란나무숲을 그리면, 거짓말처럼 갖가지 모양새의 물고기들이 현실에 나타나 파란 나무숲 사이를 돌아다닌다. 화려한 시각장치에 시력이 맞춰질 즈음. 슬며시 갈등요인을 집어넣어 이야기를 곱씹을 여지를 주기도 한다. 황금동이라는 이름의 낯선 남자가 나타나면서 평화롭던 마그리트와 파란 나무숲의 꿈은 짓밟히게 생겼다. 오래전 마을을 떠났던 그 남자는 왜 갑자기 돌아왔을까. 파란 나무들은 밑동만 남긴 채 모두 사라지고, 숲 사이를 한가롭게 누비던 물고기들은 떨어진 잎사귀들 위에 나뒹군다. 마그리트의 슬픔이 어떻게 달래질 수 있을까. 굳이 품평하자면 이 책이 줄을 서는 문예사조는 초현실주의 쪽이다. 마그리트, 달리, 미로 같은 초현실주의 대표주자들의 이름을 등장인물에 붙인 작가의 의도에서도 분명해지는 사실이다. 그런데 그런 잣대가 무슨 소용이 있을까. 빼고 보탤 것도 없이 아이들 눈높이에서 바라본 상상의 세계를 고스란히 옮겨놓은, 눈과 귀와 가슴이 한꺼번에 즐거운 재치 많은 창작물이다. 초등생.7500원.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儒林(718)-제6부 理氣互發說 제2장 四端七情論(64)

    儒林(718)-제6부 理氣互發說 제2장 四端七情論(64)

    제6부 理氣互發說 제2장 四端七情論(64) 편지에 나오는 임율(林栗)과 왕회(王淮)의 고사는 주역에 대한 의견이 자신들의 견해와 다르다 하면서 주자를 기롱하고 주자의 도학을 공격하여 주자의 학문을 위학(僞學)이라고 공격하였던 사람들로 퇴계의 그러한 내용은 고봉이 올린 상소문에서 그 당시 최고의 권신이었던 이준경 일파를 유학에서 최고의 기회주의자로 백안시하는 임율과 왕회 일파로 맹비난하였던 고봉의 태도를 옹호하는 내용이었던 것이다. 이 무렵 고봉은 이준경과 일일이 대립하여 대사성의 벼슬을 버릴 만큼 불화가 심하였는데 특히 을사위훈(乙巳僞勳)을 논할 때 ‘을사의 녹은 위헌이 아닐 뿐더러 또한 선왕이 이미 정한 것이니, 함부로 삭탈할 수 없다.’고 주장함으로써 당시의 선비들뿐 아니라 선조에게까지 미움을 받게 되었던 것이다. 이로 인해 고봉은 크게 상심하고 있었는데, 퇴계는 고봉의 상소문이 ‘너무 거리낌 없었다고 볼 수 있을지는 몰라도 크게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란 말로 위로하고 있었던 것이다. 고봉은 이미 11월1일에 보낸 편지에서 자신의 상심을 퇴계에게 다음과 같이 하소연하고 있었던 것이다. “…마음속에 품은 뜻을 다 숨길 수 없기에 그저 몇 마디의 말로 임금께서 굽어살피시기를 바랐던 것인데, 바깥의 의논이 시끄럽고 온갖 헐뜯음과 나무람이 사방에서 일어나니, 두려워 떨면서 엎드려서 돌이켜 스스로를 책망할 뿐입니다. 초가을에 글을 닦아 올리려 꾀했으나 이처럼 난처한 일을 갑자기 만나게 되니 다른 것을 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고봉은 자신의 답답한 마음을 도저히 진정할 수 없는 듯 편지를 끝내고 나서도 다음과 같은 추신을 적어 보내고 있다. “…서울 소식을 한동안 듣지 못했습니다. 책을 두루 살펴보아도 어찌 이와 같은 시절이 있겠습니까. 대중의 여론이 몹시 소란한 것이 무슨 까닭인지 모르겠습니다. 성현들께서 이런 때를 맞으셨다면 어떻게 일을 처리하셨을까요. 한탄스러움을 호소할 데가 없습니다. 헤아려 주시기 바랍니다.” 물론 퇴계도 일찍이 조정의 이러한 파당싸움과 분별없는 다툼에 대해서 걱정한 적이 있었다. 삼사(三司)에서 을사 기유년에 억울하게 죄를 지은 이를 복직시켜 문묘에 종사케 하고 자격이 없는 전국공신의 훈장을 삭탈하기를 여러 차례 아뢴 일을 통해 국론이 분열되고 고봉 역시 난처한 입장에 빠져 탄핵에 이르게 된 사실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퇴계의 고민은 1570년 1월24일자 고봉에게 보낸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드러나고 있다. “…파당의 구분이 이미 생겨, 옳고 그른 것이 뒤섞여 버렸습니다. 만약 임금의 마음이 조금이라도 움직이셨다면 산이 옮겨가고 물길이 바뀌는 기세를 누가 막을 수 있겠습니까. 또한 복직·삭훈 같은 일을 일년 내내 멈추지 않고 반드시 윤허를 받아내려 한다고 들었습니다. 성현들께서 이런 일을 처리하셨다면 반드시 이런 지경에 이르게 하시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참으로 근심스럽고 두렵습니다. 어쩌면 좋겠습니까.”
  • 儒林(717)-제6부 理氣互發說 제2장 四端七情論(63)

    儒林(717)-제6부 理氣互發說 제2장 四端七情論(63)

    제6부 理氣互發說 제2장 四端七情論(63) 퇴계의 마지막 편지는 다음과 같이 이어지고 있다. “…이 때문에 앉아 있다 보면 더욱 피곤하여, 어떤 때는 책을 보거나 글을 쓰다가 어지럼증이 발작하여 사방을 분별할 수 없는 지경이 되곤 합니다. 나날의 공부에 방해되는 정도를 알만 할 것입니다. 근래에는 또 가슴에 가래가 갑자기 끓어 온 몸이 결리고 아픈데다가 다른 증세까지 겹쳐 신음하며 엎드려 있었는데, 그대의 편지가 이르렀습니다. 생각을 다해 자세히 회답할 수 없었으니, 부끄러운 마음을 이길 수 없었습니다. 다만 ‘심통성정도(心統性情圖)’를 고치는 일이 마땅하지 않다고 하신 데 대해서는 지난 번에 김이정이 그대의 글을 적어 보내 준 덕분에 이미 짤막한 논변을 지었습니다. 미리 한 장 베껴서 이정에게 부쳤는데 중간에 잃어버리지는 않았을 테니 오래지 않아 그대에게 전해질 것입니다. 제 생각은 이미 거기에서 갖추어 말했으니 지금 다시 늘어놓지는 않겠습니다. 무릇 예의바름·지혜로움 두 글자의 자리가 편치 않아 고치고자 한 것일 뿐입니다. 만약 이 두 글자를 온당하게 자리매길 수만 있다면 옛 도형을 그대로 두는 것이 제가 정말 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온당하게 자리매길 도리가 달리 없다면 고친 내용도 유의하여 받아들일 부분이 있을 듯합니다. 스스로 헤아리건대 그 병폐가 그대가 염려하는 지경에는 이르지 않을 것입니다. 김이정이 바야흐로 작은 규모로 ‘심통성정도’를 만들고 있는데, 논의가 정해진 뒤에 마저 베끼려고 한다고 하기에 그에게 답장을 보내어 그냥 속히 가져오라고 했습니다.…” 그 순간, 또다시 기침이 터져 흘렀다. 편지를 쓰던 일을 멈추고 퇴계는 자리에 엎드려서 온몸이 찢어지는 통증을 참아 견디고 있었다. 한번 터진 기침의 발작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가래가 끓어올라 숨조차 쉬기 힘들었다. “괜찮으십니까.” 퇴계의 기침소리가 심상치 않자 문밖에서 제자 하나가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물어 말하였다. “괜, 괜찮네.” 간신히 대답하면서 퇴계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벽에 기대었다. 온 몸에서 비 오듯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다. 자신의 병세가 심상치 않자 서당에 있는 모든 제자들이 긴장하고 있음을 퇴계는 눈치채고 있었다. 실제로 퇴계의 병이 위중하다는 소문이 돌자 많은 제자들이 서당에 속속 모여들고 있음도 퇴계는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 몸이 좀 안정되자 퇴계는 다시 편지를 써 내리기 시작하였다. “…상소문 안에 임율(林栗)·왕회(王淮) 따위의 소행과 같다고 거리낌 없이 넣은 것은, 모두 너무 거리낌 없었다고 볼지는 몰라도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다만 지금 세상에 그런 일로 말하는 이가 없으니, 너무 노골적으로 보여서 저들이 용납할 수 없을 것입니다. 권세에 아부하는 무리들이 머리가 부서져도 원한을 갚겠다는 말을 하기에 이르렀다 합니다.…”
  • 세계가 주목한 예술계 샛별 김선욱·박세은 ‘한자리’

    세계가 주목한 예술계 샛별 김선욱·박세은 ‘한자리’

    한국 예술계에 최근 낭보가 잇따랐다. 피아니스트 김선욱(18·한국예술종합학교 3학년)군이 지난달 24일 세계적 권위의 영국 리즈국제피아노콩쿠르에서 아시아인 최초로 우승한 데 이어 지난 8일에는 발레리나 박세은(17·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입학예정)양이 중국 베이징국제발레경연대회에서 2등상 수상소식을 전했다. 박양은 석달 전 세계 4대 콩쿠르의 하나인 USA발레콩쿠르(잭슨 콩쿠르) 주니어부문에서 금상없는 은상을 차지해 발레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둘 다 해외 유학경험이 전혀 없는 순수 국내파라는 사실이 더욱 돋보였다. 세계가 주목한 예술계 샛별들을 지난 15일 오후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만났다. 김선욱군은 “이번이 서른번째 인터뷰”라며 엄살을 부렸고, 박세은양은 “베이징콩쿠르 수상 축하공연 중 왼쪽 발가락을 다쳐 며칠 쉬고 있다.”고 근황을 전했다. 이날 처음 만난 둘은 잠시 어색해하는가 싶더니 예원학교 1년 선후배 사이임을 확인하고는 이내 10대다운 생기를 되찾았다. # 부모의 무간섭·무강요 교육법이 보약 아이가 조금이라도 예술에 소질을 보이면 부모가 나서서 영재교육을 시킨다며 호들갑떨기 예사다. 하지만 김군과 박양의 부모는 극성 부모와는 거리가 멀다.‘힘들다.’며 말리는 부모님을 오히려 설득해야 했다. 김군은 세 살때 형이 다니는 피아노학원에 따라갔다가 피아노 치는 재미에 빠졌다. 초등학교 5학년때 한국예술종합학교(예종)예비학교 시험을 치르면서 자신의 판단으로 김대진 교수의 이름을 지도교수로 지원서에 써넣을 정도로 주관이 뚜렷했다. 교사부부인 김군의 부모는 스스로 제 할 일을 척척 해내는 아들을 두말없이 믿어줬다.“연습하라는 부모님 잔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어요. 그랬다면 아마 중간에 그만뒀을 걸요.(웃음)” 박양은 초등학교 3학년때 할머니의 제의로 국립발레단 문화학교에 들어갔다. 발레는 재밌었지만 노력만큼 실력이 따라주질 않아 한동안 방황했다.“소질이 없는 것 같아 그만둘까 고민한 적이 많았지만 발레가 너무 하고 싶어서 죽어라 연습했지요.” 박양의 부모는 딸의 고통을 안타깝게 지켜볼 뿐 이래라 저래라 간섭하지 않았다. 박양은 “지금도 엄마는 ‘스물다섯까지만 발레하고, 시집갔으면 좋겠다’고 얘기한다.”며 웃었다. # 콩쿠르 수상은 목표 아닌 과정일 뿐 어려서부터 자립심이 강했던 김군은 초등학생때 콩쿠르 출전 일정을 담은 인생 계획표를 짜서 가족을 놀라게 했다. 지금까지 출전한 국제콩쿠르는 모두 다섯번, 이 중 독일 에틀링겐 콩쿠르(2004), 클라라 하스킬 콩쿠르(2005) 등에서 세차례 우승했다. 리즈국제콩쿠르 우승은 특히 의미가 크다. 사이먼 래틀이 지휘하는 런던필하모닉과의 협연 등 100여회의 연주회가 주어지기 때문이다.“매년 콩쿠르에 나간 건 우승이 아니라 세계 무대에서의 연주회 기회를 얻기 위해서였다.”는 김군은 “꿈을 이룬 만큼 앞으로 콩쿠르는 다시 나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양은 지난달 서울국제무용콩쿠르에 참가했다 큰 코를 다쳤다. 잭슨콩쿠르 우승의 흥분 때문인지 어이없는 실수가 이어졌고, 결국 순위에 들지 못했다.“많이 창피했어요. 자만했던 건 아닌데 긴장이 풀어졌었나 봐요. 덕분에 베이징에서는 좋은 성과를 얻을 수 있었지요.” 박양은 또다른 도전을 앞두고 있다. 내년 1월 스위스 로잔콩쿠르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는 것이다. 로잔콩쿠르는 발레리나 강수진이 동양인 최초로 우승한 명성이 높은 대회다. 박양은 “오랫동안 꿈꿔온 콩쿠르여서 정말 잘하고 싶다.”며 눈빛을 반짝였다. # 정규 교육 건너 뛴 영재의 삶 김군은 초등 5학년부터 예종 예비학교에 다녔고, 중학교를 졸업한 뒤 곧바로 예종에 입학했다. 고교 생활을 날린데 대한 후회는 없다. 반면 내년 예종 무용원에 입학하기 위해 얼마전 서울예고를 자퇴한 박양은 “학교에서 친구들이랑 어울리며 배우는 점들도 많아서 갈등이 컸다.”고 털어놨다. 그럼 이성친구는? 쑥쓰러운 듯 고개를 젓는 박양이나 “바빠서 사귈 여유가 없다.”며 유쾌하게 받아치는 김군의 표정은 어느새 영락없는 10대의 모습이다. 이제 막 꽃봉오리를 틔운 이들 예비 예술가가 정명훈, 강수진을 능가하는 세계적인 대가로 성장하는 과정을 지켜보는 기쁨은 오롯이 우리의 몫이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OUR STORY] 설악四季 찰칵찰칵 30년 사진작가 성동규씨

    [OUR STORY] 설악四季 찰칵찰칵 30년 사진작가 성동규씨

    만산홍엽. 국내 단풍 1번지 설악산이 붉디 붉은 속살을 아낌없이 드러내며 절정의 자태를 뽐내고 있다. 마등령은 물론, 수렴동 대피소와 양폭산장 등 설악산의 단풍명소들은 마치 빨간 융단을 깔아 놓은 듯하다. 지난달 하순 대청봉을 중심으로 시작된 단풍은 하루 25㎞씩 남진(南進)을 거듭하며 설악산은 물론 전국의 산들을 붉게 물들이고 있다. 설악산에는 단풍만 있는 것이 아니다.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설악의 비경만을 카메라에 담아 온 산악 사진작가 성동규씨 또한 설악의 일부분으로 자리하고 있다. 설악산 길이라면-설령 길이 아니라 해도-모르는 곳이 없고, 풀 한 포기인들 그의 시선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전설적인 인물. 쉰아홉의 나이가 무색하게 여전히 설악의 구석구석을 누비고 있다. 추석연휴로 인한 교통체증 때문에 다녀올 엄두를 못냈다면 이번 주가 설악의 단풍을 감상할 절호의 시기. 도발적인 자태로 우리곁에 다가온 설악의 유혹에 흠뻑 빠져 보자. 성씨가 견마잡이를 자청하고 나섰다. 글 사진 속초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사진작가 성동규씨의 설악산 단풍예찬 “설악의 단풍은 맑고 윤기가 납니다. 수분과 일조량이 잘 조화를 이루기 때문이죠.” 중청봉 대피소앞 바위에 올라 선 성씨가 산아래를 굽어보며 설악단풍 예찬론을 펼쳤다. “위도상 한대성 수종의 남방한계선과 온대성 수종의 북방한계선이 맞물린 곳에 위치해, 수종이 다양하고 색채변화가 심한 것도 자랑입니다. 단풍이나 벚나무처럼 잎이 붉어지는 나무와, 신갈나무 등 잎이 노랗게 변하는 나무들이 한곳에 어우러져 있죠. 게다가 몸빛깔이 하얀 사스래나무와 일년내내 푸른 소나무 등이 뒤섞여 형형색색의 물감을 풀어놓은 듯해요. 단풍색깔이 온통 붉기만 하다면, 그 단순함에 금방 싫증을 내고 말겠죠. 마치 이리저리 얽히고 설킨 우리네 인생살이와 비슷하다고 할까요. 이산 저산의 빨갛고 노란 단풍들이 서로가 자기 색깔을 뽐내며 절묘한 하모니를 이루고 있는 모습에서 신비로움마저 느껴집니다.” 한줄기 바람소리가 짐승의 날카로운 울부짖음처럼 귓전을 찢으며 계곡사이를 내달렸다. 그리고 운무사이로 살짝 모습을 드러낸 설악. 용의 이빨처럼 생긴 용아장성도, 공룡의 등줄기를 닮은 공룡능선도 온통 울긋불긋한 빛깔을 한 채 아래로 줄달음을 치고 있다. 천하절경이 따로 없다. 설악의 요염한 자태에 취한 이방인의 볼 또한 점차 붉게 변해가던 즈음, 문득 성씨의 이력이 궁금해졌다.30여년동안 오로지 설악산만을 카메라에 담아 온 이유는 무엇일까. 충남 대전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1968년, 맹호부대 통신병으로 베트남전에 참전하면서부터 그의 사진인생은 시작된다.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전장에서 접한 미국의 사진 전문잡지 ‘라이프’는 그를 평생 사진에만 빠져 살게 할 만큼 강렬한 충격을 안겨주었다.71년 베트남에서 돌아와 사진현상소를 운영하며 지내던 그는 산악사진가 안승일씨를 따라 설악산을 둘러보다 이번엔 설악의 자태에 매료되고 만다. “내설악 백담골을 지나 양폭산장까지 가던 중에 그만 맑고 고운 설악의 속살을 보고 말았어요. 마음으로만 설악산을 짝사랑하다가 73년 봄 마침내 이곳으로 이사를 왔죠. 설악을 영원히 내것으로 만들기 위해서요.” 그때부터 기다림, 외로움 등과 싸우는 고통스러운 나날들이 계속됐다. 굶는 일은 예사. 몇날며칠을 세수 한번 못하고 꼬박 한자리에서 지낸 적도 허다했다. 어느 해 겨울인가는 꼬박 30일을 야영하다 한 컷도 못찍고 내려온 적도 있다. “그렇지만 그 고통의 순간들은 마침내 산과 자신이 혼연일체가 되는 순간 희열로 용솟음치죠. 그리고 떨리는 가슴으로 셔터를 누르면 금속음이 정적을 깨면서 산은 정지된 채 사진가의 가슴에 흡인됩니다.” 그의 사진일기를 보면 설악에 대한 연모의 정이 얼마나 깊은지 가늠해볼 수 있다.‘산은 평등하고, 평화와 자유가 있다. 찬밥 한덩이와 된장찌개, 필름 몇 롤만 있으면 무한정 산에 머무는 행복이 있다. 자연이 연출하는 아름다움을 나만의 생각으로 사각틀 속에 자유롭게 디자인할 수 있는 그런 산을 나는 좋아한다. 아직까지도 자연의 섭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난 시각장애인이나 다름없다. 설악은 그런 나를 여전히 포용하고 가르쳐 준다. 그래서 나는 설악을 사랑하고, 오늘도 산에 오른다.’ 성씨가 당일 단풍산행 포인트로 추천한 곳은 세 곳.“우선 설악동에서 출발해 천불동 계곡의 양폭산장 주변을 둘러볼 것을 권하고 싶어요. 단풍을 가장 가까이서 바라볼 수 있고, 암석사이에 뿌리박고 선 식물들의 강한 생명력을 느낄 수 있습니다. 시리도록 푸르른 계곡수와 어우러져 그야말로 절경이죠.” 두번째 포인트는 수렴동 대피소에서 봉정암에 이르는 등산로. 노란 단풍이 군락을 이루고 있는 가운데 군데군데 빨간 단풍이 액센트를 더해준다. 백담계곡을 지나 수렴동계곡과 상류의 구곡담계곡에 이르는 지역이 그중 압권이다. 만해 한용운이 이 곳을 오르내리며 ‘님의 침묵’을 탈고했다고 전해진다. 수렴동대피소에서 수렴동계곡과 갈라지는 가야동계곡은 행락객들의 발길이 드물어 평화롭기 그지없는 곳. 여유있는 산행을 즐기기에 적당한 곳이다. 세번째 포인트는 마등령 오르는 길. 공룡능선 등 기골이 장대한 산세와 어우러진 단풍이 일품인 곳이다. 역광으로 단풍을 보며 오르기 때문에 가장 설악산답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중청봉 대피소처럼 쉬었다 갈 곳이 없다는 것이 한가지 흠. “각 지역에 따라 단풍이 어떤 특색을 보이는지, 주변의 생명들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유심히 살펴 보세요. 생로병사와 희로애락이 있는 인간세상과 그리 다르지 않다는 것을 느끼게 될 겁니다. 그때쯤이면 비로소 산이 자신에게 다가오고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고요.” 묘한 화두를 던진 성씨는 단풍이 구름과 조화를 이룬 마등령을 찍겠다며 능선너머로 총총이 사라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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