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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되살아나는 ‘AI 망령’] 살처분 참여자에 증세 ‘전화 문진’

    ‘의사 조류인플루엔자(AI) 환자 발생’ 지난 8일 이같은 소식이 알려지자 질병관리당국이 몇 시간 만에 AI감염 가능성이 적거나 희박하다고 밝히는 등 기민하게 대응했다.그런데 이러한 대응이 문제라는 지적이다. 살처분에 동원된 인부들에 대해 감염 여부 등 사후관리 체계도 미흡하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이종구 질병관리본부 전염병대응센터장은 이날 오후 “AI가 발생한 경기 안성 양계농장에 투입돼 살처분 작업을 했던 안성시 공무원 김모(38·7급)씨는 인플루엔자 감염의 특징적 임상 증상이 없고, 단지 뇌수막염 양상을 보이고 있어 AI에 감염됐을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발표했다. 질병관리본부는 9일에도 같은 입장을 고수했다. 전염병관리팀 관계자는 “병원 임상소견과 의무기록을 살펴본 결과, 감염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나 의료계에서 AI진단은 통상 한달 이상 걸리는 정밀 작업으로 분류하고 있다. 삼성서울병원 감염내과 백경란 교수는 “항체 검사는 보통 수주일이 소요되며 항원 검사는 선별 진단이 어려워 확진이 안 된다.”고 말했다. 반면 단국대 병원은 단 2일간 검사로 AI가 아닌 뇌수막염 판정을 내렸다. 질병관리본부는 이를 거의 그대로 받아들였다. 확인 결과 질병관리본부는 현장에 직원을 급파해 진료와 함께 기존 임상자료를 훑어봤다. 따라서 확진되지 않은 사실을 성급하게 예단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다. 김씨의 고열 발생 시점도 석연치 않다. 보건당국은 2월12일 첫 발병 뒤 3월5일 천안 단국대병원으로 이송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안성시측은 2월26일 증상이 나타나 3월2일 이후 3일간 통원치료가 진행됐다고 전했다. 다른 감염자가 있는지 여부도 정확히 모른다. 안성시측은 “당시 농림부, 군측과 협의해 공무원 304명을 투입했고 5일,10일 뒤 전화 문진을 실시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전수 검사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질병관리본부측은 “감염가능성이 높은 그룹에만 한정적으로 실시했다.”고 밝혔다. 안성시 보건소 관계자는 “김씨 외에도 현장에 투입됐던 공무원 여러 명이 고열 등 감기 증상을 호소했다.”고 전했다. 특히 군(軍)측 동원자는 물론 초소 근무에 나섰던 민간인 자원봉사자에 대한 검사 결과도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오상도기자 sdoh@seoul.co.kr
  • [Seoul In] 종로구 민방위 응급상황 위주로 교육

    종로구(구청장 김충용) 올해 민방위교육과 비상소집훈련이 소양교육에서 응급상황 대처요령 등으로 바뀐다. 교육내용은 심폐소생술, 인명구조 요령, 소화기 사용법, 방독면 착용법 등이다. 민방위교육 대상(1∼4년차)은 오는 11월말까지 계동 현대문화센터 등에서, 비상소집훈련 대상(5년차∼40세)은 5월까지 지역민방위대장이 정한 장소에서 한다. 올해부터 민방위 편성연령은 45세에서 40세로 낮춘다. 재난관리과 731-0312.
  • 할리우드 영화와 노벨상 문학코드,무슨 관계가 있나?

    할리우드 영화와 노벨상 문학코드,무슨 관계가 있나?

    글 최정호 한양대 겸임교수, 경영학 박사, 《CEO여, 문화코드를 읽어라》의 저자 매년 10~12월이면 노벨문학상 선정 발표와 번역판 출간, 수상식 등이 문화 관련 뉴스의 초점의 하나가 된다. 세계 엘리트 문화의 진원지의 하나를 노벨문학상이라고 할 수 있다면 세계 대중문화의 막강한 리더로는 할리우드를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들 두 문화세력 간에 서로 윈윈의 공생관계가 있을 법하였으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참고로 유럽 영화계에서는 간혹 노벨상 수상작을 영화로 다루는 실험이 있었다. 핀란드의 카스퍼 레데(Caspar Wrede) 감독은 1970년 솔제니친의 노벨문학상 수상작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를 그가 노벨상을 수상한 같은 해에 영화화하였다. 독일의 폴커 슐렌도르프 (Volker Schloendorff) 감독이 노벨문학상 수상작인 자기 나라 작가의 작품 두 편을 골라 일찍이 영화화하였다. 즉 귄터 그라스의 《양철북(1979년)》과 하인리히 뵐의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1975년)》를 각각 영화화하였다. <양철북>은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과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등을 휩쓸었다. 그런데 실은 소설 《양철북》의 영화화 이후 20년이 지난 1999년에 와서야 귄터 그라스는 거꾸로 동명 소설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것이다. 그라스는 영화의 후광으로 수상에 플러스를 받은 셈이다. 독일에서 태어나 오스트리아에서 활약하고 있는 영화감독 미카엘 하네케가 오스트리아의 반체제 작가 엘프리데 옐리네크(Elfriede Jelinek)의 소설에 근거한 <피아니스트>(2001, La Pianiste, 일명: 피아노 치는 여자)를 영화화하였었다. 이 영화는 2001년 프랑스 칸 영화제 등 중요 영화제를 휩쓰는 성공을 거두었고, 그 후 2004년에 와서야 원작자인 옐리네크는 노벨문학상을 받는다. 참고로 이 영화는 아카데미 감독상 수상의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반나치 영화인 2002년 작인 <피아니스트>와는 전혀 별개의 영화이다. 하여튼 원작의 영화화가 앞서 가고 그 덕분에(?) 노벨문학상을 받는 역주행이 반이었다. 한편 할리우드는 과거 한때에 미국 출신의 노벨상 수상작가의 작품을 간헐적으로 영화화하였었다. 거슬러 올라가면 1949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윌리엄 포크너의 소설 《음향과 분노》를 1959년 영화화하였고, 1962년 수상자인 존 스타인벡의 소설 《에덴의 동쪽》을 그가 노벨상을 받기 전 일찍이 1955년에 영화화하였다. 그의 소설 《분노의 포도》는 이미 1940년에 영화화되어 존 포드 감독은 아카데미 최우수 감독상을 수상했다. 특히 할리우드는 미국 태생의 1953년 노벨상 수상자인 어네스트 헤밍웨이의 작품에는 집중적인 성의를 보였다. 그가 수상하기 전에 이미 《무기여 잘 있거라》(1932),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1943), 《가진 자와 못 가진 자》(1944, To Have and Have Not), 《킬러》 (1946), 《킬리만자로의 눈》(1952) 등 5편이 영화화되었다. 그가 수상한 이후에는 《태양은 또 다시 떠오른다》(1957), 《노인과 바다》(스펜서 트레이시 주연(1959), 안소니 퀸(1990) 주연, 두 차례), 《무기여 잘 있거라》(1957년 리메이크), 《킬러》(1964년 리메이크) 등 5편이 영화화되었다. 결국 10편이나 영화화된 셈이다. 미국작가들의 영화화도 노벨상 수상 이전에 주로 이루어졌다는 역주행성이 대부분이었다. 그 후 할리우드는 소련의 좌익 공산 혁명과 그 이후의 볼셰비키 정권 치하의 우파적 로망을 다룬 소련의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노벨상 수상소설 《닥터 지바고》를 1965년에 영화화한 이후 거의 40여 년 간 노벨 문학상 수상작을 영화화한 적이 없이 침묵을 지켜왔다. 세계 대중문화를 리드하는 할리우드가 노벨문학상을 왜 이렇게 백안시했을까? 작품들이 영화화하기에는 난해성이 많은 작품들로 구성된 수상작들 자체에 일차적 책임이 있을 수 있겠다. 나아가 좌파 반체제를 선호하는 노벨상의 추세적 경향에서 할리우드 코드와의 서로 다름에 비추어 할리우드가 노벨문학상 작품의 영화화에 전혀 의욕을 보일 수 없었으리라는 추론이 가능하다. 1994년 일본의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오에겐자부로는 스스로 좌파임을 언행으로 보이고 있고, 2000년 수상자 가오싱젠은 나중 전향하였다고 하였지만 원래 중국 공산 당원이었다. 독일 사회당을 옹호한 1999년 수상자인 귄터 그라스는 최근 이라크 전쟁에 즈음하여 부시 미대통령을 오사마 빈라덴보다 더 위험한 인물이라고 험담을 해대기도 했다. 자신을 공산주의자라고 밝힌 바 있는 포르투갈의 주제 사라마구는 98년 말 노벨 문학상을 받기가 무섭게 99년에는 쿠바혁명일 기념식에 참석했었다. 1997년 수상자인 이탈리아의 다리오 포는 노동자들의 파업을 지원하는 공연을 수백 회 한다. 교황청은 그들 두 사람의 수상을 비난하는 성명을 발표할 정도이다. 거슬러 올라가면 1972년 독일인 수상자 하인리히 뵐은 좌파 세력의 잔여 세력인 바더-마인호프 테러단을 옹호하였다. 1990년 노벨상 수상자 옥타비오 파스(멕시코)는 공산주의자였다. 1982년 수상자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콜롬비아)는 반미를 부르짖었다. 1971년 상을 받은 파블로 네루다(칠레)는 41살에 공산당 소속으로 상원의원이 된다. 1967년 노벨상 수상자 아스투리아스(과테말라)는 반미를 부르짖고 수상 직전에 소련의 레닌 평화상을 수여 받음으로써 좌파적 성향을 공인받았다. 최근에 들어 세계 지성인의 브라만 층에 전교조적 메시지를 줄기차게 전해온 노벨문학상, 큰 흐름으로 봐서 이상하리만큼 좌파를 옹호하는 노벨문학상 코드의 편집증을 헤아려 보면서 과연 이렇게 극심한 좌파 선호를 통하여 노벨문학상이 세계 문화 발전에 얼마나 기여했는지 참으로 궁금할 따름이다. 스웨덴은 좌파 사민당이 1932년 이후 9년을 빼고 65년 간 집권하면서 시행한 복지정책 탓에 ‘바퀴 빠진 볼보’라는 악명까지 얻었다. 최근에 스웨덴 총선에서 중도 우파가 승리하면서 이제 노벨문학상 코드를 둘러싼 체제와 진용이 바뀔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월간 <삶과꿈> 2007.01 구독문의:02-319-3791
  • [조선후기 신지식인 한양의 中人들] (8) 중인들 필운대·육각현서 노닐다

    [조선후기 신지식인 한양의 中人들] (8) 중인들 필운대·육각현서 노닐다

    인왕산의 네 구역 가운데 지난주에 소개한 안평대군의 무계정사가 인왕산의 왼쪽 기슭이라면, 필운대와 육각현은 오른쪽 기슭이다. 필운대는 현재 배화여자고등학교 안에 있다. 필운대 정자에서는 대원군 당시 핵심측근이었던 중인들이 시를 지으며 풍류를 즐겼다. ●권율과 이항복의 집이 필운대 인왕산의 다른 이름은 필운산(弼雲山)이다.1537년 3월에 명나라 사신 공용경(用卿)이 황태자의 탄생 소식을 알리려고 한양에 들어오자, 중종(中宗)이 그를 경복궁 경회루에 초대하여 잔치를 베풀었다. 중종은 그 자리에서 북쪽에 솟은 백악산과 서쪽에 솟은 인왕산을 가리키면서 새로 이름을 지어 달라고 부탁했다. 손님에게 산이나 건물 이름을 새로 지어 달라는 것은 최고의 대접이었기 때문이다. 한양 주산의 이름을 새로 짓게 된 공용경은 도성을 북쪽에서 떠받치고 있는 백악산을 ‘공극산(拱極山)’이라 이름 지었으며, 경복궁 오른쪽에 있는 인왕산은 ‘필운산(弼雲山)’이라고 이름 지었다. 필운산이라고 이름 지은 까닭을 ‘우필운룡(右弼雲龍)’이라고 설명했다. 운룡(雲龍)은 임금의 상징이니 인왕산이 임금을 오른쪽에서 돕고 보살핀다는 뜻이다. 그러나 인왕산이나 북악(백악)이라는 이름이 조선 초부터 널리 알려져 있어 공용경이 지은 이름들은 별로 쓰이지 않았다. 명재상으로 알려진 백사(白沙) 이항복(李恒福·1556∼1618)이 살았던 집터에 ‘필운대’라는 이름으로 전할 뿐이다. 순조 때의 실학자인 유본예(柳本藝)는 ‘한경지략(漢京識略)’에서 필운대를 이렇게 소개했다. (필운대는) 성안 인왕산 밑에 있다. 필운대 밑에 있는 도원수 권율(權慄)의 집이 오성부원군 이항복의 처갓집이므로, 그는 그곳에 살면서 스스로 별호를 필운(弼雲)이라고 하였다. 지금 바위벽에 새겨져 있는 ‘필운대(弼雲臺)’ 석자가 바로 오성부원군의 글씨라고 한다. 필운대 옆에 꽃나무를 많이 심어서, 성안 사람들이 봄날 꽃구경하는 곳으로는 먼저 여기를 꼽는다. 시중 사람들이 술병을 차고 와서 시를 짓느라고 날마다 모여든다. 흔히 여기서 짓는 시를 “필운대 풍월”이라고 한다. 필운대 옆에는 육각현(六角峴)이 있으니, 이곳도 역시 인왕산 기슭이다. 필운대와 함께 유명하다. 종로구 필운동 9번지에는 이항복의 글씨라는 ‘필운대(弼雲臺)’ 석자가 아직도 남아 있다. 지금도 필운대 바위 앞에 서면 경복궁과 백악산을 비롯한 서울의 모든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옆에는 1873년(고종 10년)에 이항복의 9대손인 이유원(李裕元·1814∼1888)이 찾아와 조상을 생각하며 지었던 한시가 새겨져 있다. 이 해는 최익현의 상소로 대원군이 물러나고 이유원이 영의정에 임명된 해인데, 날짜가 없다. 조상님 예전 사시던 곳에 후손이 찾아오니 푸른 소나무와 바위벽에 흰구름만 깊었구나. 백년의 오랜 세월이 흘렀건만 유풍(遺風)은 가시지 않아 부로(父老)들의 차림새는 예나 지금이나 같아라. ●가객 박효관 영의정과 교류 그 옆 바위에는 가객 박효관(朴孝寬·1800∼1881무렵)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계유감동(癸酉監董)’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옆에 박효관을 비롯한 일행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는 것을 보면, 이유원 일행과 함께 이곳에 와서 풍류를 즐기며 한시를 바위에 새기는 일을 돌봐주었던 듯하다. 위항의 가객이었던 박효관은 필운대에 운애산방(雲崖山房)을 마련해 노래 부르며 제자들을 가르쳤다. 이유원도 시조에 관심이 깊어 당시 대표적인 시조 45수를 칠언절구의 한시로 번역했다.20종 이상의 시조집을 조사하여 45수를 뽑아내고 한시로 번역해 감상할 정도로 조예가 깊었으므로 위항의 가객들과도 친하게 지냈던 것이다. 그는 또한 악부(樂府)에도 관심이 많아, 칠언절구 100수의 연작시로 ‘해동악부(海東樂府)’도 지었다.(박효관의 운애산방을 중심으로 필운대에 모였던 가객들의 이야기는 다음 기회에 설명하기로 한다.) ●정선과 위항시인 칠송정서 풍류 인왕산에 오래 살았던 화가 겸재(謙齋) 정선(鄭敾·1676∼1759)은 인왕산을 여러 각도에서 여러 모습으로 그렸다. 그는 1676년 1월3일에 한성부 북부 순화방 유란동(幽蘭洞)에서 태어났다. 지금 종로구 청운동 경기상고 부근에 있던 동네이다. 그런 인연으로 젊은 시절에는 난곡(蘭谷)이라는 호를 썼다. 청운동 일대에는 장동 김씨들이 살았는데, 영의정 김수항(金壽恒·1629∼1689)의 아들 6형제가 다방면에 이름나 6창(昌)이라고 불렸다. 정선은 그 가운데 셋째인 삼연(三淵) 김창흡(金昌翕·1653∼1722)에게 글을 배웠다. 김창흡은 성리학뿐만 아니라 불교와 도교, 제자백가와 시문(詩文)·서화(書畵)에 달통한 학자였다. 정선이 7세였던 1682년에 북악산 남쪽에 낙송루(洛誦樓)를 짓고 글을 읽으며 제자들을 가르쳤다. 정선이 육각현을 바라보며 그린 그림이 전하는데, 후배 조영석이 “농은당에서 육강현을 바라보았다.”고 썼다. 육강현은 육각현을 소리나는 대로 쓴 듯하고, 농은당은 김창흡의 형인 농암(農巖) 김창협(金昌協·1651∼1708)의 집일 가능성이 있지만, 확인할 수 없다. 왼쪽에 크게 그려진 집이 바로 농은당이고, 언덕 너머 솔숲 사이의 큰 바위가 필운대, 그 너머 고개가 바로 육각현이다. 송석원시사 동인 박윤묵이 장혼의 집에 들렸다가 주인이 없어 육각현에 올라가 지은 칠언율시가 전한다. 육각현 위에 세운 칠송정(七松亭)이라는 정자가 바로 위항시인들의 모임터였다. ●중인, 대원군을 움직이다 칠송처사 정훈서의 소유였던 칠송정에는 송석원시사의 선배인 정내교(鄭來僑·1681∼1759) 때부터 위항시인들이 모여 시를 지었다. 한동안 버려져 폐허가 되었다가 1840년대에 위항시인 지석관이 수리하여 다시 옛모습을 찾았다. 박기열·조경식·김희령 등이 칠송정과 일섭원에 모였는데, 이 무렵에는 서원시사(西園詩社)라고 불렸다. 육각현 칠송정이 장안의 주목을 받게 된 것은 대원군이 권력을 잡은 뒤부터이다. 대원군은 안동김씨를 비롯한 당시의 권력층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아전들에게 많은 권한을 주었으며, 수많은 중인 서리들이 그의 사조직으로 흡수되었다. 이 가운데 대표적인 인물이 ‘천하장안’으로 불렸던 천희연·하정일·장순규·안필주 네 사람이었다. 개화파 지식인 박제경(朴齊絅)은 ‘근세조선정감(近世朝鮮政鑑)’에서 그 실태를 이렇게 기록했다. 형조의 책임을 맡은 아전에는 오도영을, 호조의 책임을 맡은 아전에는 김완조와 김석준을, 병조에는 박봉래를, 이조에는 이계환을, 예조에는 장신영을, 의정부 팔도의 책임을 맡은 아전에는 윤광석을 뽑아서 맡겼다. 이들은 모두 대대로 아전 일을 보았던 집안의 후손들이어서 전례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일을 당하면 곧바로 판단하여 처리하였다. 대원군이 하나같이 그들의 말을 따랐다. 박제경은 대원군의 아전 정치를 비판적으로 기록했지만, 이 책에 평을 덧붙인 위항시인 차산(此山) 배전(裵琠)은 그들의 능력을 인정했다. 특히 이들 가운데 위항시인으로 이름난 여러 명의 행정능력을 이렇게 칭찬했다. 운현궁에서 신임하는 자들을 보면 모두가 민간의 기이한 재주꾼들이다. 윤광석·오도영·장신영 등은 글재주를 사랑할 만하고, 기억력도 놀랍게 총명하였다. 무리 가운데 뛰어나게 민첩하여, 사리를 훤하게 통달하였다. 이들 가운데 오도영과 장신영이 육각현 칠송정시사에 드나들며 시를 지었다. 경복궁을 중건하는 대사업을 벌이던 대원군은 위항시인들의 시사를 격려하기 위해 칠송정을 수리해 주었다. 대원군은 박효관·안민영 등 가객들과도 친해 함께 어울리며 풍류를 즐겼는데, 박효관이 위항시인들보다 더 총애를 받자 칠송정시사의 중심인물이었던 오횡묵(吳宖默·1834∼?)이 백운동에 집을 짓고 모임터를 옮겼다. 지금의 청운초등학교 뒷골목이 바로 백운동 골짜기였다. (정선이 인왕산에서 그린 그림들은 다음 기회에 소개하기로 한다.) 허경진 연세대 국문과 교수
  • 3400만명 설 대이동 첫날 곳곳 정체

    3400만명 설 대이동 첫날 곳곳 정체

    민족 최대 명절인 설 연휴를 하루 앞둔 16일 3400만명이 고향을 찾는 민족대이동이 시작됐다. 예년과 달리 연휴기간이 짧아 고속도로 곳곳에서는 오후들어 본격적인 정체가 시작됐다. 서울 시내 주요 역과 버스터미널, 공항 등은 오전부터 이른 귀성길에 나선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고속도로는 이날 하루 평소 금요일(28만대)보다 7만대 정도 많은 35만여대가 수도권을 빠져나가면서 경부고속도로 하행선 판교IC∼수원, 기흥∼안산 구간이 극심한 정체를 빚었다. 서해안고속도로는 조남∼발안 구간 등 곳곳에서 가다서다를 반복했다. 한국도로공사는 “16일 35만여대,17일 33만 3600대가 서울을 빠져나가는 등 짧은 연휴 탓에 귀성길 정체가 극심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귀성길은 17일 오전 9시에서 정오가 가장 혼잡할 것으로 예상된다. 도로공사는 ‘설 연휴 교통혼잡정보 사이트(www.roadplus.com)’를 통해 시간대별·구간별 예상소요시간을 미리 파악한 뒤 귀성·귀경길에 나설 것을 당부했다. 열차의 경우 17일 오후 9시 이후 KTX 하행선 특실 좌석 몇 개를 빼고는 16∼17일 경부·호남선 전 열차가 완전 매진됐다. 상행선은 19일 전 열차가 매진됐다. 한국철도공사는 16∼20일 매일 KTX 164편과 새마을호ㆍ무궁화호 547편을 증편, 하루 평균 46만 6000명(평소 29만 3000명)의 승객을 수송할 계획이다. 서울 반포동 서울고속버스터미널도 평소보다 1.5배가량 많은 승객들이 찾아 부산과 광주, 동대구 등 주요 도시로 가는 예매·판매율이 90%에 육박했다. 터미널 측은 평소 1106대가 운행되는 경부선 버스를 1786대로,646대가 운행되는 호남선은 1149대로 각각 증편했다. 김포공항은 16∼17일 지방으로 가는 전 노선이 매진됐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특별수송기간 동안 각각 96편과 28편을 증편했다. 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 “신귀영 일가 간첩사건은 조작”

    1980년 ‘신귀영 일가 간첩사건’이 경찰의 공작 계획에 따라 조작됐던 것으로 드러났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위원장 송기인)는 외항선원인 신귀영(71)씨 등 일가 4명을 간첩으로 기소해 3년에서 15년간 복역시킨 사건에 대해 조작사건이라며 진실규명 결정을 내렸다. 진실화해위는 국가가 피해자와 유족에게 사과하고, 폭행가혹행위죄와 불법체포죄가 인정되므로 피해자측은 재심 등의 조치를 취하라고 권고했다. 진실화해위는 “부산시경은 1980년 재일교포 신모(81)씨가 조총련 간부라고 단정하고 내사를 벌이다 증거를 찾지 못하자 치안본부장이 승인한 공작 계획에 따라 한국에 사는 가족 신귀영 일가를 불법체포한 뒤 40∼67일간 불법감금한 상태에서 고문 등 가혹행위를 가해 허위 자백을 받아 간첩으로 조작한 것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진실화해위는 신귀영씨 등이 가혹 행위와 고문 때문에 허위자백했다고 1심에서부터 일관되게 주장해 왔으나 법원이 증거재판주의에 어긋나는 위법한 판결을 내렸고, 수사를 담당한 경찰관이 가혹행위를 한 사실을 시인했다고 덧붙였다. 진실화해위는 신귀영 일가를 직접 수사했던 전직 경찰관 6명을 조사한 결과 대체로 신씨 일가를 불법감금한 사실을 시인했다고 전했다. 전직 B경사는 “신귀영 일가에게 뭉둥이를 써 가혹행위를 하고 물고문을 했던 것으로 기억하며 전기고문은 했던 것 같기도 하고 하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하다.”고 말했다고 진실화해위가 전했다. 진실화해위는 80년 부산지검이 이 사건을 송치받아 형식적인 수사절차만 거쳐 기소한 것은 국민의 인권을 보호할 공익의 대표자로서 직무를 버린 처사이고, 법원은 허위 조작 개연성이 높은 상태에서 중형을 선고하고 상소를 기각했다고 지적했다. 또 신귀영씨 등이 두 차례 재심을 청구했을 때 1심에서는 재심개시 결정을 내렸으나 대법원이나 부산고법에서 결정을 뒤집은 것은 오판을 시정할 기회를 저버린 처사라며 유감을 나타냈다. 재일교포 신씨의 동생인 신귀영씨와 신복영씨, 사촌처남 서성칠씨, 오촌아저씨 신춘식씨 등은 외항선원으로 65∼79년 일본을 왕래하면서 군사기밀을 탐지한 혐의로 80년 기소돼 부산지법에서 신귀영씨와 서성칠씨는 징역·자격정지 15년, 신춘식씨는 징역·자격정지 10년, 신복영씨는 징역·자격정지 3년·집행유예 5년을 각각 선고받았다.강아연기자 arete@seoul.co.kr
  • ‘장 펀드’ 벽산건설 지분 5.4% 취득

    한국기업지배구조펀드(KCGF·일명 장하성펀드)가 8번째 투자자로 벽산건설을 골랐다. 기업지배구조개선합의에는 이르지 못해 당분간 양측의 신경전이 예상된다.‘장하성펀드’는 5일 벽산건설 지분 5.4%를 취득했다고 공시했다.‘장하성펀드’는 벽산건설 최대주주인 인희의 벽산건설주 553만주 무상소각과 인희·벽산건설간 거래중단 등을 요구했다.전경하기자 lark3@seoul.co.kr
  • [사설] ‘기반시설’ 확대에 담긴 편의적 발상

    행정자치부가 지난해 말 국회에서 개정된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재난법)에 따라 민간사업장 29곳을 포함한 896곳을 국가기반시설로 지정하는 안을 마련했다고 한다. 국가기반시설로 지정되면 재난관리 책임기관장은 기능이 마비될 경우에 대비해 대체인력 확보 등 재난대책을 정부에 보고해야 한다. 긴급 재난 발생시 국가기반시설이 마비되는 사태를 사전에 방지하겠다는 뜻인 것 같다. 하지만 문제는 민간 사업장의 불법 파업까지도 긴급 재난으로 간주하고 있는 점이다. 행자부는 ‘공익’을 내세우고 있으나 헌법에 보장된 노동3권 중 하나인 단체행동권을 위축시킬 우려가 있다고 본다. 지난해 말 개정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은 필수공익사업장에 대한 직권중재를 폐지하는 대신 필수공익사업의 범위를 확대하고 파업참가자의 절반까지 대체근로를 허용토록 했다. 또 파업 중에도 국민의 생명 및 재산과 직결된 필수업무에 대해서는 반드시 유지토록 했다. 정부는 국제노동기구(ILO)의 권고와 국내 여건을 감안한 최선의 선택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노동계는 파업을 무력화한다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행자부가 재난법에 민간사업장의 대체근로 허용을 규정하고 나서겠다는 것은 법의 위임 한도를 벗어난 편의주의적인 발상이라는 게 우리의 판단이다. 현대차노조 등 대기업 강성노조의 연례행사와도 같은 불법파업에 제한을 가하려는 취지를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불법파업에 대해서는 업무방해 고발 외에 손해배상소송 등으로 제어할 수 있고,‘긴급조정’이라는 사후적 수단도 마련돼 있다. 따라서 행자부는 불필요하게 노동계를 자극하는 시도를 철회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문제가 있다면 노동관계법으로 대응하는 것이 정도다.
  • 검찰, 인혁당사건 항소 포기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부장 송찬엽)는 관련자 8명에 대해 무죄 판결이 내려진 ‘인민혁명당 재건위원회’ 재심 사건에 대한 항소를 30일 포기했다.이로써 지난 23일 서울중앙지법이 내린 1심 판결이 확정됐다. 검찰은 “수사 과정에서 고문 등 가혹행위가 있었던 것으로 인정돼 원심에서 유죄 증거가 된 조서 대부분이 재심에서 증거능력을 상실했다.피고인들은 원심 공판에서 혐의를 부인했고, 변호인의 조력도 받지 못해 원심에서의 공판조서의 증명력이 인정될 수 없게 됐다.”고 밝혔다. 이어 “결국 사형 선고의 근거가 된 반국가단체 구성 부분 등에 대해 검찰이 상소해도 무죄 판결이 번복될 가능성이 희박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검찰은 아울러 “30여년간 진상 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해 애써 온 유족들의 고통을 감안해야 한다는 점도 고려했다.”고 덧붙였다. 안창호 서울중앙지검 2차장검사는 “항소의 법리적인 타당성 등에 주안점을 두고 고민했지만, 결과적으로 상급심에서 뒤집힐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점을 고려해 항소를 포기했다.”고 말했다. 검찰은 유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민사소송이 마무리되는 대로 구상권 문제 등을 검토키로 했다. 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 [사설] 32년만에 바로잡은 ‘인혁당 사법살인’

    인혁당 재건위 사건 재심에서 법원이 이미 사형 처분을 받은 8명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사법부가 32년전의 잘못된 판결을 이제라도 바로잡은 것을 환영한다. 이번 판결로 고인과 유족들의 명예회복과 함께 사법부도 과거 질곡에서 벗어나는 계기를 만들었다고 본다. 관련자들의 정치적·사회적 복권 등 후속조치에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다. 인혁당 사건은 유신치하의 대표적 ‘사법살인’ 사례로 꼽힌다. 고문·증거조작으로 유신에 반대했던 이들을 용공으로 몰아 대법원 확정 판결 후 18시간만에 사형을 집행하는 폭거를 저질렀다. 재판부는 당시 수사기관의 피의자 신문조서와 진술서가 조작됐거나 강압적인 상태에서 작성됐음을 인정했다. 증거능력이 없는 신문조서로 8명의 애꿎은 인명을 유신정권이 죽음으로 몰았음을 인정한 셈이다. 정치권력에 예속되어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한 과거사를 사죄하는 의미가 담긴 판결이었다.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피고인과 30여년을 간첩 가족이란 누명을 쓰고 살아온 유족들의 애통함을 한번의 판결로 모두 씻어주기는 어렵다. 추가 명예회복 조치와 함께 손해배상소송을 통해 길고 길었던 고통의 일부라도 보상하는 방안이 나와야 한다. 또 사형이 집행되지 않았던 인혁당 사건 관련자, 민청학련 사건 관련자 등 유신정권의 다른 피해자들에게도 상응한 판결과 조치가 뒤따라야 한다. 인혁당 사건 무죄선고는 국민의 기본권과 생명을 함부로 침탈하는 정권이 다시 태어나선 안 된다는 교훈을 주고 있다. 사법부는 잘못된 판결이 얼마나 두려운 결과를 낳는지 깊이 새겨야 한다. 정치적 독립과 공정한 판결로 재판의 권위와 국민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전력을 쏟겠다는 다짐을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정부와 정치권은 사형제 폐지를 본격 검토해야 한다. 나중에 죄가 없음이 밝혀지더라도 돌이킬 수 없다면 너무 안타깝지 않은가.
  • “현대車 불매”… 성난 e세상

    현대차동차 조업이 18일 완전 정상화됐으나 현대차에 대한 비난 여론이 거세지면서 파업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노사합의에 대한 네티즌(누리꾼)들의 불만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노사도 전날 합의 사항을 놓고 신경전을 펼치고 있다.●현대차 불매운동 확산 현대차 불매운동 동참자가 크게 늘어나면서 ‘차값 인상 가능성이 있다.’는 등으로 불똥이 튀고 있다. 포털사이트 다음의 아고라게시판에는 현대차 불매 운동이 발의된 지 이틀 만에 서명자가 2만명을 넘어섰다. 불매 운동은 네티즌들이 단순히 리플을 다는 수준을 넘어서는 분위기다. 네티즌들은 회사측의 성과급 추가지급이 차값 상승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hypherlink’란 아이디의 누리꾼은 “조만간 현대차 가격이 상승할 것이다. 손실분이 소비자들에게 그대로 전가되니까.”라고 했고 ‘gkna’는 ‘또 차값만 올리면 모든 게 보상되니까.’란 제목으로 “손해 난 적자는 소비자가 덤터기 쓰면 된다. 소비자는 봉이다.”라고 지적했다. 시민단체인 소비자시민모임 김자혜 사무총장은 “제품의 소비자가격에 모든 비용이 반영되는 것은 자명하다.”면서 “이번 사태로 빚어진 비용도 결국 언젠가 판매비에 포함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현대차는 “비용 절감을 위해 전사적으로 노력해 가격 인상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회사 관계자는 “소비자들의 심정은 이해가 간다. 노사가 화합해 좋은 품질의 차를 만들어 보답하겠다.”면서 “이번 노사분규가 자동차 판매가 인상으로 연결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파업 여진 계속 노조원들은 이날 정상출근한 뒤 조업에 앞서 각 공장별로 성과급 사태 노사 합의에 대한 보고대회를 갖고 오전 9시부터 정상조업에 들어갔다. 노사는 그러나 전날 합의한 합의서 내용을 놓고 각자 유리한 쪽으로 다른 해석을 하는 등 신경전을 펼쳤다. 회사는 생산량 만회에 따른 격려금은 지난해 성과급이 아니고 올해 새로운 ‘조건부 격려금’임을 강조했다. 그러나 노조는 “조건부가 아니고 2월 말에 지급하기로 했다.”고 반박했다. 노조는 고소, 손해배상소송은 취하하지 않고 법과 원칙을 준용하기로 했다는 회사 주장에 대해서도 사실과 다르다고 주장했다. 손배소 사건과 쟁의행위 가처분 신청 등에 대해서는 노사가 협의를 해 조속히 해결키로 합의했다며 손배소 취하 등은 앞으로 계속 요구할 뜻임을 밝혔다. 이에따라 합의서 내용의 구체적인 해석을 놓고 갈등이 계속될 전망이다. 한편 구인영장이 발부된 박유기 노조위원장은 이날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지 않았다. 경찰은 구인장 및 체포영장이 발부된 노조간부 등에 대해 검거와 함께 수사를 본격적으로 진행할 방침이다. 그러나 박 위원장 등은 노조현안문제 마무리 등을 이유로 수사에 당장은 응하지 않을 것으로 알려졌다.울산 강원식·서울 박경호기자 kws@seoul.co.kr
  • [씨줄날줄] 요코 이야기/육철수 논설위원

    소설은 허구(fiction)다. 작가가 상상력을 발휘해서 창조한 가공의 세계에 현실적 인물을 등장시키거나 사건 전개를 통해 진실인 양 꾸며낸 이야기인 것이다. 작가의 경험이나 사고방식이 소설에 자연스레 투영되겠지만 결국 소설은 소설일 뿐이다. 그러나 역사·종교소설이나 자전소설은 좀 다르다. 사소한 전개 부분이야 전적으로 작가의 소관이겠으나, 역사·종교적으로 큰 줄기나 사실이 왜곡·날조되면 문제가 커질 수 있다. 1988년 출간된 살만 루시디(영국)의 환상소설 ‘악마의 시’(The Satanic Verses)는 마호메트를 풍자하고 코란을 악마의 계시라고 표현하는 바람에 이슬람 국가들의 공분을 샀다. 당시 이란 최고지도자 호메이니는 루시디에게 사형을 선고하고 100만달러의 루시디 암살 현상금을 걸었다. 나아가 유럽연합 나라들과 이란이 서로 자국대사를 소환하고, 영국은 이란과 단교하는 등 국제적 파장이 만만치 않았다.2003년 출간된 댄 브라운(미국)의 스릴러 소설 ‘다빈치 코드’(The Da Vinci Code)도 교회의 역사를 왜곡했다는 이유로 종교계와 심한 마찰을 빚었다. 재미 일본작가 요코 가와시마 왓킨스의 자전실화소설 ‘요코 이야기’(원제:So far from the bamboo grove, 대나무 숲 저 멀리서)가 일파만파다. 일제 말기 패망해서 귀국하는 일본 부녀자들을 한국인들이 학대하고 성폭행했다는 끔찍한 내용이 이 소설에 담겨 있다고 한다. 문제는 이 소설이 “전쟁의 참상을 생생히 묘사하고, 문학성이 우수하다.”는 이유로 10년 전부터 미국 청소년을 위한 반전(反戰) 교재로 쓰이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에서도 2년전 번역 출간됐고 일부 외국인 학교에서 교재로 활용하고 있다고 한다. 일제 전범의 딸로 알려진 작가가 11세 소녀시절, 패전국 퇴각 국민으로서 겪은 공포의 경험을 소설화한 것을 시비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가해자인 일본이 피해자로 둔갑한 것은 명백한 역사왜곡이다. 아무리 문학성이 있다 해도 청소년 교재로는 부적절하다. 정부는 외교력을 총동원해서 미국에 교재사용 중단을 강력히 요구하라. 교민에게만 해결을 맡길 일이 아니다. 육철수 논설위원 ycs@seoul.co.kr
  • 현대차노사 ‘생산차질 만회땐 성과급’ 합의

    현대자동차 노사가 17일 노조의 파업 빌미가 됐던 성과급 50%의 조건부 지급에 합의하자 각계각층에서는 이번 파업 사태를 계기로 현대차의 기업문화와 노조의 행태가 바뀌어야 한다는 주문이 이어졌다. 먼저 노조에 대해 ‘도덕성 회복’과 ‘막가파식 파업 문화 청산’을 촉구했다. 시민·사회·경제 단체는 현대차 노조가 이번 사태를 거울삼아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는 데 매달리는 노조에서 탈피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노동계 전문가들은 “노조는 잇따른 비리사건으로 도덕성에 치명적인 약점을 입은 것에 대해 스스로 반성해야 한다.”며 ”정치파업, 막가파식 파업을 반성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회사측에 대해서도 ‘회오리식’ 인사 시스템 개선과 노무관리 전문가 육성, 투명 경영 정착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산업연구원 조철 연구원은 “노무 담당자가 책임지고 일하는 분위기를 만들려면 시도 때도 없이 노무팀과 임원을 갈아치우는 회오리식 인사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아울러 노무관리 전문가를 육성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사측의 약점이 많은 것도 현대차 노조를 오늘날 강성으로 키운 한 요인”이라면서 “현대 특유의 뚝심 기업문화도 좋지만 주먹구구식 대응에서 벗어나 좀 더 체계적이고 조직적으로 기업문화를 보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울산 강원식 현대자동차 노사는 이날 노사 대표 및 실무협의를 잇따라 갖고 막판 타결을 위한 의견을 조율, 성과급 50% 지급 등 쟁점 현안에 합의했다. 회사는 노조가 지난해 발생한 생산차질을 올해 만회하면 그 시점에 50%를 지급하기로 했다. 회사는 노조에 대한 고소와 손해배상소송을 취하하지 않기로 했으며 노조는 이를 받아들였다. 윤여철 사장은 파업 타결과 관련,“성과에 따라 성과급을 지급한다는 기본원칙에서 벗어난 것은 아니다.”면서 “고소 및 손해배상 소송은 별개의 문제로 원칙적으로 계속 진행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박유기 노조위원장은 “미지급된 성과급을 바로 받지 못하고 지급이 2월로 미뤄진 부분은 불만족스럽다.”면서 “우리는 최선을 다했고 노사관계의 파국을 막자는 생각이 이런 합의를 가져왔다.”고 말했다. 그러나 국민들의 목소리는 격려보다는 질책하는 쪽이다. 노조는 힘을 앞세워 목적을 관철했고, 회사는 또 다시 원칙을 고수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많다. 회사원 김모(45)씨는 “목표를 채우지 못한 노조가 불법파업을 하는데도 회사가 원칙을 지키지 못해 한심하다.”며 노사 양측을 비난했다. ‘현대차 불매,100만 서명운동’이 펼쳐지고 있는 포털사이트 다음의 토론공간 아고라에는 18일 새벽 2시 현재 현재 약 1만명의 네티즌들이 서명하기도 했다. 아이디가 soyo-JJANG인 한 네티즌은 “노조도 막나가지만 경영진들도 정말 무능하다.”면서 “노사 어느 쪽이든 맘에 드는 게 없어서 현대가 만든 자동차는 절대 안 살 것”이라는 글을 올렸다. 서울 안미현기자 kws@seoul.co.kr
  • [깔깔깔]

    ●돈이란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큰 재산을 물려받기로 돼있는 사오정이 그 부를 함께 누릴 여자가 필요했다. 술집에 간 사오정은 예쁜 여자를 보고 말했다. “나는 200억원을 상속받을 예정인데 그 돈을 함께 쓸 상대를 찾고 있어요.” 그 여자는 사오정과 함께 집으로 갔다. 그런데 이튿날 그녀는 사오정의 계모가 돼버렸다.●웃음을 주는 사람과 수상소감 사오정이 온 국민들에게 웃음을 선사한 공로를 인정받아 훈장을 받게 되었다. 시상식이 끝나고 기자들이 사오정에게 물었다. “훈장을 수상하신 소감은 어떻습니까?” 잠시 머뭇거리다 사오정이 대답했다. “물의를 일으켜 죄송합니다.”
  • [사설] 사법테러는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가 소송 당사자에게 석궁으로 테러를 당한 사건은 사법부를 향한 중대한 테러이자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심각한 도전이다. 어떠한 일이 있어도 사법부가 내린 판결은 존중되어야 한다. 그것이 우리 사회가 합의한 법치주의를 지켜나가는 골간임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 테러를 한 전직 대학교수는 재임용에서 부당하게 탈락했다며 소송을 제기했으나 1,2심에서 연거푸 패소하자 범행했다.“합법적 수단을 거부당해 최후의 선택을 했다.”는 것이 범행동기라고 한다. 대학 교수를 지낸 그의 지성이 의심스럽다. 대법원 상소라는 합법적인 수단이 남아 있다. 자신에게 불리한 판결을 내렸다고 해서 판사에게 살인 무기를 들이댄다면 이는 법치와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것이다. 용서 받을 수 없는 야만적 행동이다. 우리는 이 사건을 판결에 불만을 가진 자의 비정상적인 돌출 행동으로 본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지켜내야 할 최후의 보루를 훼손했다는 점에서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사법부의 권위에 흠집을 냈다는 점이다. 승자와 패자로 갈리기 마련인 재판에서 진 쪽이 승복하지 않고 판사에게 직접 폭력을 가한 사례를 남겼다. 그래서 민감한 재판을 맡는 판사들이 자칫 위축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대법원이 연일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 사회에 떠도는 사법 불신이 이 사건의 근저에 있는 건 아닌지 살펴야 한다. 법조비리와 법원·검찰간의 갈등, 이용훈 대법원장의 부적절한 언행 등이 국민의 불신을 더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사법 테러에 일벌백계로 단호히 대처하고 빈발하는 법정 난동부터 막을 수 있는 예방적 조치를 서둘러야 한다. 가해자를 동정하는 일부 무책임한 네티즌도 자제해야 한다. 민주사회 구성원이 마지막으로 기댈 수 있는 것이 법이다. 사법부의 권위를 지키는 책임은 법조계뿐 아니라 국민에게도 있다.
  • 정조와 노대통령 통치 “닮은꼴”

    정조와 노대통령 통치 “닮은꼴”

    몇해 전 유홍준 문화재청장이 노무현 대통령을 정조와 닮았다고 해 곤혹을 치른 적이 있다. 유 청장은 노 대통령이 수도이전 정책 등을 추진한 것을 그렇게 표현했지만, 야권에서는 노 대통령이 어떻게 위대한 정조와 비교될 수 있느냐며 강력히 반발했다. ‘정조실록학교’를 관장하는 한국학중앙연구원 박현모(42) 연구교수는 15일 노 대통령과 정조의 통치행태가 비슷한 점이 있다고 주장했다. 유 청장과 다른 분석 포인트는 정조의 부정적인 측면도 감안했다는 점이다. 박 교수는 “정조는 언로를 틀어막은 국왕이었다.”면서 “아버지였던 사도세자나 이복동생 은언군 문제 등이 논란이 되면 상소 등을 아예 올리지 말라는 금지령을 내렸다.”고 말했다. 일종의 ‘언론탄압’으로 반대파였던 노론의 벽파 관료들은 “중국의 나쁜 임금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고 비판했다는 것이다. 최근 노 대통령과 청와대 측근인사들이 언론과의 대립각을 세우고, 한나라당 등 야당 및 보수세력이 “언론탄압을 중단하라.”고 주장하는 것과 무관치 않느냐는 게 박 교수의 설명이다. 박 교수에 따르면 연초 노 대통령이 기자회견 등을 통해 개헌 추진을 공약한 것은 정조의 ‘오회연교’와 부합한다. 오회연교(五晦筵敎)는 정조가 서거하기 한달 전인 1800년 5월 그믐날 신하들을 모아놓고 한 일종의 연설을 말한다. 정조는 당시 ▲뜻에 맞는 인사들을 주기적으로 등용하고 ▲개혁정책에 노론 벽파가 동참하는 한편 ▲국정 운영구도에 끝까지 동참하지 않으면 결코 용납하지 않겠다고 역설했다. 일종의 최후통첩인 셈이다. “이번에 개헌하지 않으면 20년을 기다려야 한다.”는 노 대통령의 ‘선언’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정조와 노 대통령의 이같은 공통점은 두 사람 모두 다변(多辯)이라는 점에서 출발한다. 정조의 다변에 대해 최측근이었던 정약용은 “등용했으면 일을 시켜야 하는데 오히려 말이 많고, 가르치려 든다.”며 불만을 제기했을 정도다. 박 교수는 ▲집권 초기의 열세를 극복하고, 대세를 장악한 점 ▲화성 건설(정조)과 행정도시 건설을 추진한 점 ▲뜻에 맞는 인사들을 중용, 개혁을 추진한 점(코드인사) 등을 정조와 노 대통령의 공통점으로 꼽았다. 박홍환기자 stinger@seoul.co.kr
  • ‘다시 살아나는’ 정조

    ‘다시 살아나는’ 정조

    조선의 21대 국왕인 정조가 ‘화두’로 떠올랐다. 조선조 최대의 개혁 역동기였지만 개혁을 완결짓지 못하고 마감한 정조시대를 재조명하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정조의 개혁이 미완성으로 끝났고, 결국 100여년 뒤 조선의 망국으로 연결됐다는 점에서 ‘수구-개혁’ 공방이 한창인 현재 우리에게 던져주는 교훈이 적지 않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영화계에서도 정조시대를 배경으로 한 ‘방각본 살인사건’ 등 역사극 두 편이 제작될 예정이다. ●실록으로 읽는 정조 한국학중앙연구원(옛 한국정신문화연구원) 부설 세종국가경영연구소는 17일부터 6주 동안 매주 수요일 ‘정조실록학교’를 개설한다. 정조를 포함한 정조시대 사람들의 ‘꿈’과 ‘고뇌’를 정조실록을 토대로 되짚어 보자는 취지다. 스토리텔링 기법을 활용해 일반인 수강생들이 어렵지 않게 강의를 꾸몄다. 6장으로 구성된 강의 가운데 핵심은 맨 마지막과 4번째 장이다. ‘왕의 죽음, 그리고 가지 않은 길’이라는 제목의 마지막 장에서는 정조가 시도했으나 성취하지 못한 개혁안들과 그의 죽음을 둘러싼 논란을 다룬다. 정조는 즉위초 경제, 인사·교육, 군사, 재정 등 4대 분야를 개혁하겠다는 이른바 ‘경장대고’를 발표했다. 이 가운데 일부 성공한 분야는 ‘시장자유화’(신해통공)를 골자로 한 경제개혁과 장용위를 친위부대인 장용영으로 확대개편한 군사제도 개혁이다. 하지만 정조가 심혈을 기울였던 탕평책은 재위 19년(1795년) 자신의 고모 화완옹주와 이복동생 은언군 처리 문제를 둘러싼 관료들과의 갈등, 천주교와 연관된 측근 정약용·이가환의 좌천 등으로 물거품이 됐다. 실록을 토대로 개혁실패의 원인을 정조의 시각에서 분석하게 된다. ●독살? 과로사? 아울러 독살설 등 정조 죽음의 실체도 재미있는 소재다. 일각에서는 정조의 급작스러운 죽음 이후 세도정치가 시작됐다는 점에서 독살설을 제기하고 있다. 하지만 죽음을 5개월여 앞둔 정조는 “옷을 입은 채로 밤을 지새우길 벌써 25일째다.”라며 체력, 정신력의 소진 가능성을 스스로 제기하고 있어 종기 부작용과 과로가 겹쳐 사망하게 된 것이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정조시대의 보·혁 논쟁 이번 강의를 통해 조명되는 정조는 개혁을 주도하는 ‘현실 정치인’의 모습이다. 당시 보혁논쟁의 중심에 정조가 있었다. 따라서 제4장의 주제도 ‘보수와 개혁 사이에서’이다. 보혁논쟁의 핵심은 이른바 ‘왕안석 논쟁’. 정조는 송나라의 대표적 개혁론자인 왕안석과 그 반대편에 섰던 사마광 가운데 왕안석을 우위에 놓고,“개혁은 하지 않고 있을 뿐 할 수 없는 문제가 아니다.”라며 개혁긍정론을 설파했다. 또 왕안석을 등용한 송나라 신종을 “큰 일을 할 수 있는 임금”이라며 적극적인 개혁정치가로서 국왕의 위상을 강조했다. 개혁을 반대하고, 사마광을 추종하던 관료들에게 “개혁에 따르라.”며 일침을 놓은 셈이다. ●언로(言路) 막은 정조 정조에 대해 부정적인 평가도 적지 않다. 집권 후반기에 갈수록 자신의 뜻에 반대하는 상소에 대해서는 금지령을 남발하는 등 언로를 막은 부분이 그렇다. 박현모 한국학중앙연구원 연구교수는 “왕권강화에 따른 명령체계의 일원화로 심각한 당쟁을 완화하는 효과는 있었지만 언관의 비판기능을 약화시키고, 관료들의 소명의식을 박탈하는 문제점을 드러냈다.”고 밝혔다. 그는 “비판과 견제가 없는 정치체계가 만들어진 것도 정조시대였다.”고 덧붙였다. 박홍환기자 stinger@seoul.co.kr
  • [오늘의 눈] 현대차 노사 악재 부풀리지 말라/강원식 지방자치부 차장

    성과급 차등지급을 놓고 시무식 충돌로 새해를 연 현대차 노사가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회사는 시무식 충돌과 잔업거부 등을 주도한 노조간부를 형사고소하고 손해배상소송을 냈다. 노사합의대로 이미 성과급을 지급했기 때문에 더 줄 것도 없고 노사교섭도 필요가 없다는 강경한 입장이다. 노조는 노조대로 완강하다. 잔업·특근거부에 이어 12일 대의원대회에서 파업여부를 결정한다. 지난 8일부터는 본관앞에 텐트 20여개를 치고 대의원 철야농성을 하고 있다.10일에는 노조원 600여명이 상경투쟁을 했다. 성과급 50%를 주는 것이 해결책이라며 물러설 기미가 없다. 현대차 노사 갈등은 회사가 지난해 연말 성과급을 생산목표 미달을 이유로 차등지급한데서 비롯됐다. 노조는 회사가 생산목표달성과 관계없이 성과급 150%를 주겠다고 노사 협상장에서 했던 구두약속을 어기고 대외용으로 작성한 합의서를 내세워 50%를 삭감했다며 즉각 반발했다. 노조는 회사대표가 “150%를 주겠다는 뜻이지 안될 목표를 갖다놓고 안주겠다는 것은 아니다.”며 구두약속을 한 사실이 있음을 강조한다. 증거로 녹취록과 회의록 내용을 공개했다. 회사도 구두약속사실을 인정한다. 회사는 가능한 150%를 지급하려고 생산목표를 축소 조정했음에도 노조가 불법정치파업을 하는 바람에 달성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이유야 어떻든 구두약속을 파기한 회사가 노조에 시비의 빌미를 제공했다는 시각이 많다. 원칙과 상식이 통하는 노사관계를 만들기 위해 원칙대로 대응할 수밖에 없다는 회사 논리가 구두약속을 어긴 부분에서는 궁색해 보인다. 노조의 행동이나 대응방식에도 문제가 많다. 시무식을 난장판으로 만든 것이나 잔업거부, 공장안 텐트농성 등으로 비난을 자초했다. 화사에 이어 노조도 회사가 단체협약을 불이행했다며 지난 8일 울산노동지청에 고소해 성과급 차등지급의 잘잘못은 법정에서 가려지게 됐다. 노사가 더이상 악재를 부풀리지 말고 법적 판단에 따르거나 현명한 해결책을 찾기를 기대한다. 강원식 지방자치부 차장 kws@seoul.co.kr
  • [민속학으로 본 돼지 해] 민속학서 돼지의 의미

    [민속학으로 본 돼지 해] 민속학서 돼지의 의미

    돼지(亥)는 12지의 열두번째 동물이다. 해방(亥方)은 북서북에 해당하는 시간과 방향을 지키는 시간신(神)이자 방위신에 해당한다. 돼지는 한국 신화에서 신통력을 지닌 동물, 제의의 희생, 길상으로 재산이나 복의 근원, 집안의 재신(財神)을 상징한다. 반면 속담에서는 대부분 탐욕스럽고 더럽고 게으르며 우둔한 동물로 묘사된다. 돼지는 아주 오랜 옛날부터 한반도에 살았다. 경남 김해·양산, 황해도 몽금포 등지의 조개무지에서 멧돼지 이빨이나 뼈가 출토되고 있다. 울주 대곡리 암각화에도 멧돼지가 새겨져 있다. 멧돼지 모양의 토우는 이미 부산 지방의 동삼동 조개무지에서 보이고 있다. 신라 토우에서도 멧돼지 모양이 다른 동물보다 훨씬 많다. 이처럼 돼지의 조상격인 멧돼지가 출토되고 표현되는 것으로 보아, 야생 멧돼지가 한반도 전역에 자생하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나라의 멧돼지는 뭉툭한 몸뚱이, 거친 털, 길다란 주둥이, 조그만 눈, 빈약한 꼬리 등의 모습을 하고 있다. 하지만 저돌(猪突)이란 말처럼 성이 나서 날뛰면 그 날랜 동작이란 노한 호랑이와 진배없을 정도이다. 우리의 고대 문헌이나 문학에서의 돼지는 상서로운 징조로 많이 나타난다. 신라 태종무열왕의 즉위 원년에 돼지를 바치는 자가 있었다. 그런데 머리 하나에, 몸뚱이는 둘, 발이 여덟개였다. 해석하는 자가 이는 천하를 통일할 징조라 했는데 과연 그렇게 되었다. ‘돼지 같은 녀석’이라고 욕을 하면서도 한국인은 꿈에 본 돼지는 대단한 귀물(貴物)로 친다. 만일 돼지에 개마저 덧붙이면 그 욕은 사뭇 상소리가 되는데도 돼지꿈은 용꿈과 같은 항렬이다. 한국인이 갖는 동물꿈 가운데 돼지는 용과 더불어 최상의 길조라는 것을 누구나 다 알고 있다. 돼지꿈과 용꿈은 최고의 꿈이지만 속신에 돼지띠와 용띠는 서로 맞지 않는다고 한다. 용은 12지 짐승의 형태를 골고루 다 갖추고 있으나, 용의 코는 시커먼 돼지코이고 용의 발굽이 돼지의 발굽으로 제일 못생긴 것만 닮았기 때문에 용은 돼지를 싫어한다. 그래서 돼지띠 여자가 태몽으로 용꿈을 꾸고서 아들을 낳았다고 해도 아들이 커서 귀하게 되기는커녕 말썽만 일으키게 된다고 믿는다. 돼지꿈은 부의 상징이다. 집안에 모시고 믿음을 바치던 ‘업신’이 현실의 재물신이라면, 돼지는 꿈속의 재물이다. 어쩌면 돼지꿈은 용꿈보다 한 수 위인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돼지꿈은 단적으로 길조와 행운의 상징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거기다 돼지는 다산(多産)까지 겸하고 있다. 돼지우리의 주변은 항상 습기가 차고 더러운데, 돼지의 땀샘이 발달하지 못해 체내의 모든 수분을 소변으로 배설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배설장소를 따로 만들어 주면 냄새를 맡고 그 장소에서만 배설하며, 누울 곳은 항상 깨끗하게 유지한다. 보통 돼지우리는 지저분한 것의 대명사로 여기지만 실은 소나 닭보다 깨끗한 동물이다. 가축으로서 돼지는 고기와 지방을 얻기 위한 것이었지만, 하늘에 제사 지내기 위한 신성한 제물(祭物)이었다. 돼지는 일찍부터 제전(祭典)의 희생으로 쓰여진 동물이다. 제전에서 돼지를 쓰는 풍속은 멀리 고구려시대부터 오늘날까지도 전승되는 역사 깊은 민속이다. 고구려 때는 하늘에 제물로 바치는 돼지를 교시(郊豕)라고 해서 특별히 관리를 두어 길렀고, 고려 때는 왕건의 조부 작제건이 서해 용왕에게서 돼지를 선물받았다. 조선시대에 와서도 멧돼지를 납향(臘享)의 제물로 썼다. 오늘날 무당의 큰 굿이나 집안의 고사, 마을 공동체 신앙에서도 돼지를 희생으로 쓰고 있다. 돼지는 이처럼 제전에서 신성한 제물이었기 때문에 돼지 자체가 신통력이 있다고 생각했다. 고구려 유리왕은 도망가는 돼지를 뒤쫓다가 국내위나암(國內尉那巖)에 이르러 산수가 깊고 험한 것을 보고 나라의 도읍을 옮겼다. 고구려 산상왕은 아들이 없었는데, 달아나는 교시를 쫓아 가다가 한 처녀의 도움으로 돼지를 붙잡고, 그 처녀와 관계하여 아들을 낳았다. 부여에서도 돼지가 벼슬이름으로 있다. 이러한 관념은 다시 돼지를 상서로운 길상의 동물로 표출하는 것이다. 천진기 국립민속박물관 민속연구과장
  • [진화하는 인권 변호사] 시민단체 법률상담등 ‘공익전담’ 로펌 속속 등장

    인권변호사들은 역할과 영역을 빠르게 넓혀 왔다. 시민사회의 성장과 함께 부업이 아닌 본업으로 공익활동을 펴는 인권변호사들이 등장했다. 노동·환경 분야 사건만 전문적으로 맡는 법무법인도 등장했다.1988년 설립돼 인권변호사들의 본산 역할을 해온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이 약간의 정체성 혼돈을 겪으며 활동방향을 잡는 데 주춤하는 동안 생긴 현상이다. 인권변호사 내부의 ‘파워이동’이 생긴 셈이다. ●“민변은 구조조정중” 민변 사무차장인 송호창 변호사는 “지난 5월 출범한 백승헌 체제의 민변은 지금 내부정비에 들어갔다.”고 설명했다. 문어발식으로 여러 사안에 대해 목소리를 내기보다는 민변이 가장 효율적으로 작용할 수 있는 분야에 역량을 집중하겠다는 것이다. 올해 신규가입 회원이 12명으로 사상 최소였다는 점과 내부 회원들로부터 “민변이 무기력해졌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도 이런 움직임과 무관하지 않다. 시위문화를 낯설어하는 90년대 학번 변호사들의 탈(脫)정치성도 민변의 변화를 재촉한다. 민변은 최근 조직에 대해 외부 컨설팅을 받았다. 현안이 생길 때마다 늘어난 위원회의 역할을 조정하고, 신규 회원들에 맞는 세미나와 활동 영역을 개발하는 게 과제로 떠올랐다. 송 변호사는 “로펌에 들어간 젊은 변호사들은 민변 활동을 하기에는 사무실 업무가 너무 많은 게 사실이다.10년차 이하 변호사를 유인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과 활동의 내실을 다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진화모델 ‘노총 법률원’&대안모델 ‘공익로펌’ 민주적인 정권이 들어서고 시민사회가 급속도로 바뀌면서 인권변호사의 활동 방식이 위기를 맞고 있다는 점은 여러 차례 지적됐다. 일단 시국사건 자체가 줄어든 상태에서 공안사건이 터질 때마다 자신의 사무실을 운영하는 변호사들이 프로젝트식으로 모여 변론을 대리할 기회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변화가 불가피했지만, 참여정부와 밀접한 관계에 있었던 민변이라는 조직은 결국 개혁의 기회를 놓치고 무기력증에 빠져버렸다. 하지만 이 와중에도 새 활동 영역을 찾는 인권변호사의 실험은 계속돼 왔다.2002년 2월 민변이 담당하던 역할 가운데 노동 관련 사건 송무 분야를 민주노총에 소속된 법률원이 맡아 전문성을 길러온 게 대표적이다. 이 법률원 소속 변호사 4명은 연간 200여건의 노동사건을 맡는다. 대리인은 민노총 조합원일 수도 있고, 일반 노동자일 수도 있다. 수임료는 시중의 절반가량이지만, 의뢰인이 못낼 때는 우선 로펌에서 낸다. 노총 산하지만, 정식 로펌이기 때문에 소속 변호사들은 ‘전일제’로 근무한다. 민변이 사람 중심 조직이라면, 민주노총 법률원은 일 중심 조직이다. 금속연맹 법률원과 환경운동연합 산하 환경법률센터 등도 같은 유형에 속한다. 개별사건을 맡다가 입법·정책적 문제점이 발견되면, 변호사들은 노총 또는 시민단체 등과 협의해 대안을 마련한다. 매년 노조나 시민단체 간부를 위한 법률교육도 한다. 판례 대로라면 패소가 예상되지만 구조적 문제점을 밝히기 위한 공익소송을 제기하는 것도 이들의 몫이다. ●비영리재단 ‘공감’…인권변호 영역 선점 민변과 민주노총 법률원이 같은 뿌리를 갖고 있다면,2003년 12월 탄생한 공익변호사 그룹 ‘공감’은 여태껏 볼 수 없는 새로운 시도로 평가된다. 이 곳은 시민단체처럼 기부금으로 운영되고, 따로 사건별 수임료를 받지 않는다. 이곳 변호사들도 전일제로 일을 한다. 인권변호사라는 말 대신 공익변호사를 쓰는 이유를 묻자 전영주 기획홍보실장은 “공익변호사가 인권변호사에 포함되는 개념이겠지만, 인권변호사라는 말에는 정치색이 약간 들어간 것 같아 꺼리게 된다.”고 털어놨다. 정 실장은 이어 “공감은 ‘자유권’ 보다는 ‘사회권’을 지키는 데 주력한다고 보면 된다.”고 정리했다. 3~4년차인 공감 변호사 5명은 연계된 37개 시민단체에서 파견 변호사로 일한다. 직접 또는 시민단체 간부들을 통해 각 단체 법률상담을 해주고, 단체를 통해 사건을 수임한다. 미얀마인 난민인정불허처분 취소소송이나 가정폭력 피해여성의 국가 상대 배상소송, 학대받는 이주 여성들의 이혼 소송을 대리했다. 필요하면 정책보고서도 만들고, 국가인권위원회와 손잡고 실태조사에 나선다. 변호사들이 1인시위에 나설 정도로 현장밀착 형으로 유명하다. 공감은 변호사의 공익사업을 확대하는 방안도 모색하고 있다. 올해에는 매년 공감이 맡는 공익소송 10건을 법무법인 충정에서 대리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충정은 지금까지 2건의 사건을 맡았다. 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 인권변호사들의 어제와 오늘 현재 활동중인 인권변호사들은 자신들을 3세대 또는 4세대로 분류한다. 일제시대부터 70년대 초까지 활동하던 인권변호사를 1세대로, 긴급조치 시대인 70년대 말부터 활동한 세대를 2세대로,88년 창립한 민변을 중심으로 활동한 세대를 3세대로 구분했을 때의 얘기다. 민변 회원들 대부분은 자신들을 3세대로 느끼는 반면, 공익활동에 관심이 많은 젊은 변호사들은 자신들을 4세대로 규정했다. 일제시대 허헌·김병로·이인 변호사는 형사변호공동연구회를 중심으로 독립운동가와 사회운동가를 변론했다. 인권변호사 1세대인 이들을 민족변호사 또는 사상변호사라고 불렀다. 유신시대에 접어들며 시국사건 변호를 주로 하는 2세대 인권변호사들이 나타났다.‘인권 4인방’으로 불린 이돈명·황인철·홍성우·조준희 변호사와 한승헌·고영구 변호사가 그들이다. 한국기독교회협의회 인권위원을 맡은 박세경 변호사, 재일교포 간첩사건을 맡았던 태윤기 변호사, 광주의 홍남순 변호사도 이 시절에 활동했던 거물들이다. 이들은 86년부터 88년까지 정의실천법조인회(정법회)를 만들어 활동했다. 정법회 주요 구성원으로 강신옥·박원순·이돈명·이돈희·이상수·조영래·최병모·최영도·하경철·황인철 변호사 등이 있다. 정법회 후신으로 탄생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은 88년 51명이 모여 출발했다. 창립 멤버로는 천정배, 김갑배, 백승헌, 김선수, 이석태 변호사 등을 들 수 있다. 노무현 대통령도 이때 인권변호사로 이름을 날렸다. 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 정·관계 인권변호사들 “인권변호사 출신이라는 대통령부터 저 모양인데요…. 그 쪽 얘기는 하지 않겠습니다.” 현장의 인권변호사에게 정치권으로 간 선배들의 활동을 평가해 달라고 하자 싸늘한 반응이 돌아왔다. 참여정부의 인맥풀 역할을 해온 민변은 이 정부 들어 정부 정책에 대한 반대성명이 늘었다고 하소연했다. 문재인·전해철 전·현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 이석태 전 청와대 민정수석실 공직기강비서관, 이용철 전 방위사업청 차장, 박주현 전 청와대 국민참여 수석, 김선수 청와대 사법개혁비서관, 김준곤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실 조정2비서관, 박범계 전 청와대 법무비서관, 최은순 전 청와대 참여혁신수석실 민원제안비서관, 조준희 전 대법원 사법개혁위원장, 박원순 전 사법개혁위원, 고영구 전 국정원장, 강금실 전 법무장관, 최영도·김창국 전 국가인권위원장 등이 민변 출신이다. 열린우리당에는 김종률·문병호·송영길·유선호·이상경·이원영·이종걸·임종인·정성호·조성래·천정배·최재천 의원 등 12명이 있다. 한나라당 박승환 의원도 민변 출신이다. 사법부 쪽에서도 한승헌 변호사가 대통령 직속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개혁을 주도했다. 이들은 대부분 민변 시절 활동에서 크게 벗어난 입장을 보이지는 않은 것으로 평가된다. 최재천 의원은 국가보안법 개·폐 논의를 주도했다. 문병호 의원은 과거사기본법과 군의문사법 입안을 이끌었다. 정성호 의원은 국민소환제 도입을 추진했다. 천정배 전 장관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받는 강정구 동국대 교수에 대해 불구속 수사지휘를 내렸다. 하지만 민변계 변호사들은 참여정부가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평택 미군기지 이전에 반대 입장을 공표하고 있다. 정치적인 입지가 단순하지 않다는 말이다. 한 변호사는 “정치권으로 간 인사들의 생각이 변했을 수도 있고, 원래 민변에 있을 때부터 서로 생각이 달랐던 사람들도 있다.”며 민변과 정부내 민변 출신들과의 시각차를 인정했다. 정치권 선배들이 아마추어리즘과 무능력 때문에 비난받는 모습을 본 이들에겐 선배들의 행보를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현실도 숨길 수 없다. 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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