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미나 주제발표 내용(IMF시대의 자화상:141)
◎국민들 경제회생 정부역할 큰 기대/소비·광고패턴도 바꿔야
25일 오후 한국프레스센터에서 대한매일 주관으로 열린 ‘IMF시대의 한국인 자화상과 진로’라는 주제의 학술세미나는 학계·업계 관계자 및 전문가·대학생 등 150여명이 참석,열기를 띠었다.세미나에서 참석자들은 IMF체제 1년을 맞아 국민의식과 경제생활 전반에 걸친 변화상을 진단하고 한국인이 나아갈 방향을 다각도로 제시해 관심을 끌었다. 이날 주제발표에 나선 서울대 洪斗承(사회학),고려대 李斗熙 교수(경영학·마케팅연구센터 연구소장),한양대 趙炳亮 언론정보대학장(광고홍보학)의 발표 내용을 요약한다.
◎국민의식 변화/소득계층간 격차 갈수록 심화/재벌에 대한 부정적 시각 많아/난국 극복할 국민적 활기 시급/洪斗承 서울대 교수
우리나라가 IMF관리체제하에 들어간 지 이달로서 1년이 되었다.마이너스 경제성장,수출 감소,기업 도산,실업률 증가 등 경제 현실과 관련된 수없이 많은 문제점이 우리를 괴롭히고 있다.물론 이와 같은 사태가 앞으로 더 큰 도약을 위한 교훈을 얻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스스로 위로해 보지만 현재 겪고 있는 고통은 가까운 장래에 쉽게 경감될 것 같지 않다.그동안 우리는 내실을 함께 기하면서 성장해 왔다기보다는 앞만을 보고 허겁지겁 달려온 감이 있고,이 때문에 지금 우리에게 가해지는 충격과 좌절감의 강도는 더욱 큰 것이다.
○국민경제 생활 크게 위축
IMF관리체제의 영향은 일차적으로 국민의 경제생활 위축으로 나타나고 있다.우리 국민 대다수는 우리 경제가 ‘매우’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고 판단하고 있으며 지금이 ‘IMF시대’라는 것을 절감하고 있다.우리 사회가 당면한 가장 큰 문제로 무엇보다도 실업이 손꼽히고 있다.IMF 이후 물가가 크게 상승하였음을 체감하고 있고 이러한 추세는 당분간 호전될 기미가 없는 것으로 인지하고 있다.다수 국민은 이 사태로 인해 여가활동을 억제해야 하고 재산 증식은 엄두도 낼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러한 일련의 사태 파급효과는 계층별로 달리 나타나고 있다.최근 통계청은 소득 계층이 낮을수록 실질소득 감소율이 높아 소득 계층간 격차가 심화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이러한 현상은 이번 조사에서도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다.특히 IMF 이후 빈부 격차가 심화되었다는 점을 체감하고 있으며 스스로 평가한 자신의 사회계층적 지위에서 IMF 전과 비교하여 지위 하강을 겪고 있는 사람이 무려 46%에 달하고 있고,반면 상승되었다고 보고한 사람은 5%에 불과하다.
○“계층 지위 낮아졌다” 46%
이와 같은 상황으로부터의 탈출을 위해 정부에 기대를 걸어보았다.경제회생을 위해 정부가 주도적 역할을 해주어야 한다는 데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있는 듯하다.그러나 이들 중 상당수는 신정부 출범 당시보다 지금은 그 기대가 낮아졌음을 밝히고 있다.정부의 정책 역시 이들을 만족시키기에는 크게 역부족이다.현정부의 정책수행에 대해서는 아직 많은 사람들이 그 평가를 유보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신정부 출범 후 아직 10개월이 되지 않은 시점에서 단정적으로 평가할 수는 없을 것이다.결국 현재의 위기상황이 어떻게 극복되느냐에 따라 그 과정의 정당성과 합리성이 평가될 수밖에 없는 여지를 남겨놓고 있다.
이 조사를 통해 볼 수 있는 것은 정치권,기업인을 포함한 사회지도층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명료하게 드러난다고 하는 사실이다.이들이 사회적 책무를 다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또한 사태를 지금 상태로까지 이르게 한 원인 제공자라는 생각도 떨쳐버리지 못한다.
그 중 하나는 재벌에 대한 부정적 견해로 나타나고 있다.재벌은 소수의 주력기업으로 재편성되어야 한다거나,기업에 대한 정부 규제가 강화되어야 한다거나,기업간 빅딜 과정에서 정부가 역할을 해주기를 바라고 있는 것 등은 모두 이러한 의식 표출이라 볼 수 있다.민간 부문의 자율적 조정을 통해 스스로 딛고 일어설 수 있도록 기업의 자유의사에 맡겨두는 일에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다.
○사회적 통합·화해 열망 지녀
경제적 어려움은 우리의 일상생활과 사고 폭을 크게 좁혀 놓았다.지금까지 우리가 그나마 지녀왔던 여유로움이 더욱 왜소화해가는 듯한 안타까움이 있다.국가적 어려움에 봉착해 있으면서도 사회적 통합과 화해에 대한 열망은 모두 지니고 있다.이는 정치적 수사(修辭)로서가 아니라 사회적 와해의 개연성에 대한 국민적 우려의 표현이기도 하다.현재 우리에게 일어나고 있는 변화는 과연 일시적이고 일과적인 것인가,아니면 보다 심층적이고 근원적인 것인가.이를 판단하기에 아직은 이르다.그러나 일시적 현상이기를 바라고 있으면서도 여기에는 본질적이고 구조적 장애가 내재되어 있다는 점에 우려를 보이고 있다.크게 상처를 받은 민족적 자긍심과 자신감을 되살리고 현재의 좌절을 미래의 발전으로 승화시키기 위한 국민적 활기가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히 요구된다 하겠다.
◎경제주체로서의 체감과 반응/“4∼5년후나 경기안정” 비관적 전망/70%가 실직불안감에 시달려/임금 깎여도 정리해고 최소화 바라/李斗熙 고려대 교수
○가구당 월소득 20% 줄어
IMF 구제금융을 초래한 경제위기를 지난 1년간 겪으면서 국민이 경제주체로서 체감하고 있는 것을 한마디로 요약하면‘극도의 불안감과 무기력에 따른 위축’이다.우리 경제가 어려운 상황이라는 데 98%의 국민이 공감하고 있으며 많은 국민은 4∼5년또는 그 이후라야 경기가 안정될 것으로 비관적인 전망을 하고 있다.
이러한 불황 영향으로 우리나라 가구의 15.8%가 실직한 동거가족이 있으며 70%의 국민이 실직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고,실업자와 정리해고문제를 가장 심각한 문제로 80.2%의 국민이 인식하고 있다.가구당 월평균 소득은 약 20%가량 감소함으로써 가정경제에 대한 불만족도는 매우 높아졌다.설상가상으로 대부분 국민은 물가가 인상되어 생활필수 항목의 지출이 더 많아졌다고 체감하고 있으며 내년 물가 역시 어둡게 전망하고 있다.
그 결과 지난해 41%에서 급격히 줄어든 33.5%의 국민만이 스스로를 중산층이라고 인식하고 있다.이러한 인식은 부익부 빈익빈현상이 최근에 두드러진다는 느낌과 맞물려 상당수 국민에게 자기 비하와 패배의식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런 가운데 경제위기를 초래한 원인 제공자는 정치인,대통령 및 경제각료순으로 인식하고 있는가 하면 현재 가장 덜 고통받고 있다고 느끼는 계층도 아이로니컬하게도 바로 이들이다.그리고 경제회생을 위해서는 정리해고가 불가피하다는 데 국민 과반수 이상이 동의하고 있으며 정리해고를 반대하는 노조의 시위는 외국자본 유입의 저해요인으로 생각하고 있다.이렇게 볼 때 난국의 원인 제공자와 피해자는 다르다는 인식과 함께 사회에 대한 신뢰는 약해져 국민은‘무기력한 자의 외로운 생존’을 절박하게 체감하고 있다.
○정치권의 솔선수범 있어야
이렇게 절박한 상황하에서 국민은 우선 모든 지출을 줄이고 대외 활동을 극도로 자제하면서 뾰족한 대안이 별로 없는 가운데 좋은 상황이 올 때까지 관망하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대다수 국민은 임금이 삭감되더라도 정리해고를 최소화해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하고 있으며 의류 구입비,술값,경조사비,선물비 등 순으로 지출을 줄이고 있다.
지출의 절제는 대인관계 횟수와 유형 변화를 초래하고 있다.사람들은 각종 모임 등 사회활동을 자제하고 음주행위도 줄이고 있다.친구들과 만났을 때 비용을 각자 부담하는 비율이 급격히 늘어 개인주의화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사회생활의 감소와 아울러 가정에서의 행동도 전과 다르게 변화하고있다.
가족과의 외식횟수도 줄었으며 여가활동에 사용하는 시간과 비용이 현저히 감소되었다.즉 국민은 경제적·심리적 부담으로 주로 집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과의 원만한 대화시간이 늘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은 매우 충격적이었다.국민은 전에 없이 가정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으나 화목한 대화보다는 단지 텔레비전 시청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비디오테이프를 빌려 보는 것조차 절약하고 있어 여가활동의 일환이라기보다는 수동적으로 텔레비전 앞에 앉아 있는 상태로 보인다.이는 스트레스를 해소하기는커녕 심리적 불안감을 더욱 가중시킬 가능성이 높아 사회 전체의 무기력으로 나타나거나 오히려 우발적인 돌출행위로 나타날까 우려가 된다.
○자기비하·패배의식 늘어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근본적 열쇠는 경제 회복에 있다.국민이 기대하고 있는 것은 공적인 구조조정과 정치권과 정부의 솔선수범이다.위정자들은 국민이 행동으로 보이는 이 조용한 외침에 귀기울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경제 회복은 시간이 걸리는 사안이다.문제는 경제가 회복될 때까지 국민이 이러한 극도의 심리적 불안상태를 어떻게 안정시킬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이론에 의하면 사람이 느끼는 삶의 질은 경제적 상황보다 가정생활의 만족도에 의해 더 많이 결정된다고 한다.따라서 지금부터 우리는 가족구성원간의 대화를 촉진하고 가족활동을 장려하고 협동정신을 함양할 수 있도록 제반 여건을 갖추어주는 데 많은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사회 각층이 참여하고 언론도 동참하는 이벤트와 캠페인을 제안한다.
◎소비패턴과 광고/‘현명한 지출’ 추세… 알뜰쇼핑 늘어/실속구매전략에 과학적 대처 시급/趙炳亮 한양대 학장
국제통화기금(IMF)관리체제 1년,이 기간 동안 가장 큰 변화를 겪은 부문 가운데 하나가 민간소비 부문의 급격한 침체이다.불과 몇년 전만해도 소비가 미덕이던 시대에서 무조건 안사고 안쓰고 보자는 소비억제시대로 접어들면서 “이제는 더 줄일 것이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소비가 위축됐다.먼저 IMF 1년을 보내면서 국민이 겪은 가장 큰 변화는 소득과 소비의 감소라고 할 수 있다.이번 조사에 따르면 IMF 이전에 비해 월평균 소득이 약 20%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이러한 감소 폭은 소득이 낮은 계층일수록 커 빈부 격차가 심화되고 있음을 보여줬다.월 소득 100만원 미만 가구의 소득감소율이 35.9%로 300만원 이상 가구의 11.5%보다 3배 이상 높게 나타난 것이 단적인 예다.
○저소득층 수입 급감
소득 감소에 비해 소비 지출은 더 크게 줄었다.저축·보험·곗돈이 32.7%로 가장 많이 줄었으며 옷값,문화·레저비 등 순으로 감소했다.부문별 지출 감소를 보면 경조사비는 IMF 이전의 건당 4만∼5만원에서 3만원 이하로 줄었고,여름 휴가는 아예 가지 않았다는 응답이 46.6%였다.휴가를 가지 않은 이유는 ‘경제적 여유가 없어서’가 1위로 나타나 지난해의 ‘일 때문에 시간이 없어서’와 대조적이었다.승용차 이용률은 30% 정도 감소했고 10명 중 7명은 승용차 유지비에 부담을 느낀다고 응답했다.과외교육 형태는 개인과외 및 보습학원을 통한 과외가 줄어든 반면 상대적으로 저렴한 학습지 교육이 증가해 1위를 차지했다.
쇼핑 및 구매 형태의 변화를 보면 충동구매보다 알뜰구매가 우세해졌다.응답자의 과반수 이상이 세일기간을 기다렸다가 상품을 구입하고 있으며 가격 비교 구매도 거의 과반수에 달했다.거품시대의 감성구매나 충동구매 대신 신중구매,실속구매가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음주 습관 크게 달라져
쇼핑비는 의류 구입비(47.2%),술값,식사비 등 순으로 줄어들었으며 남자는 술값과 의류비에서,여자는 의류비와 화장품 구입비에서 지출을 줄였다.가족과의 외식횟수 역시 지난해 월평균 2회에서 1.4회로 줄었으며 특히 월 3회 이상 외식을 하던 층은 절반 이하로 감소되었다.음주를 거의 하지 않는다는 응답이 크게 늘었고 주 2∼3회 이상의 잦은 음주빈도는 크게 감소해 많은 사람들이 음주횟수를 줄인 것으로 조사되었다.가장 많이 마시는 술 종류도 맥주 소주 순으로 바뀌었다.
그런 속에서도 광고에 대해서 자세히 보는 층은 TV광고가 20%,신문광고가 19.2% 정도로 비슷하게 나타났는데 20대와 30대,대학생층,미혼자 등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관심있게 보는 광고 종류로는 TV광고에서 식품 음료,정보 통신,관광 레저 영화,화장품 등 순이었고 신문광고에서는 관광 레저 영화,정보 통신,부동산 주택,의류 패션,도서 출판,기업PR 등 순이었다.도움이 되는 정도에서는 TV광고가 40.7%,신문광고가 40.4%로 비슷하게 긍정적 대답이 나왔으며 특히 젊은층이 광고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케이블 TV를 이용해 상품을 구입한 경험이 있다는 응답자가 39.2%로 비교적 높게 나타났으며 30대 여자들은 62.2%가,주부들은 56.7%가 홈쇼핑을 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어 다른 부문과 대조를 이루었다.이밖에도 이번 조사는 우리 국민들이 1년 사이에 얼마나 크고 급격한 변화를 겪었는가를 세부적으로 보여준 것으로 무조건 안쓰는 것보다 현명하게 쓰는 지혜가 필효한 시점이라는 점을 말해준다고 하겠다.
○‘거품’시대 벗어날때
소비지출,소비패턴 등 소비생활과 내수시장 전 부문에서 전례없는 침체와 변화를 가져온 IMF 1년,과거 거품시대의 거품소비를 주도해온 광고역시 새롭게 전개되고 있는 실속구매시대에 걸맞도록 과학적인 메지시전략과 매체전략으로 재무장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건전한 소비확대를 통한 내수진작이 국내외적 과제로 등장한 시점에서 소비에 대한 인식변화는 물론 광고도 좀더 적극적인 역할을 모색해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