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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슨 영화 볼까]

    ●쿵푸허슬 장르/예매율 액션/22.89%(15세) 감독/배우는 저우싱츠/저우싱츠·황성의·양소룡 어떤 줄거리 도끼파 조직과 숨은 고수들의 ‘맞짱 뜨기’ 이래서 좋아 리얼리티 무시한 ‘황당 코미디’의 최고 경지 이래서 별로 점잖고 논리적인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홈피 반응은 “신나게 웃다가 한순간 눈물도” ●하울의 움직이는 성 장르/예매율 애니메이션/19.97%(전체) 감독/배우는 미야자키 하야오/기무라 다쿠야 어떤 줄거리 저주로 노파가 된 소피와 마법사 하울의 모험기 이래서 좋아 반전, 자연친화의 메시지에 러브스토리까지… 이래서 별로 ‘센과 지히로의 행방불명’을 뛰어넘는 상상력을 기대했다면…. 홈피 반응은 “아기자기한 스토리들, 너무 이쁜 그림들” ●뉴 폴리스 스토리(21일 개봉) 장르/예매율 액션/10.50%(15세) 감독/배우는 진목승/청룽·사정봉·양채니 어떤 줄거리 부대원을 잃은 경찰반장, 복수에 나서다 이래서 좋아 청룽의 ‘리얼’액션과 익스트림 스포츠의 환상 결합 이래서 별로 허술한 내러티브와 웃기지 않는 청룽 홈피 반응은 “강력한 액션과 드라마, 역시 성룡!” ●엘렉트라(21일 개봉) 장르/예매율 액션/8.76%(15세) 감독/배우는 롭 바우만/제니퍼 가너·고란 비스닉 어떤 줄거리 여성 전사 엘렉트라의 액션 블록버스터 이래서 좋아 최강의 암살자들이 벌이는 현란한 필살기 이래서 별로 신나는 볼거리, 그러나 허전한…. 홈피 반응은 … ●샤크 장르/예매율 애니메이션/8.05%(전체) 감독/배우는 비키 젠슨 등/윌 스미스·안젤리나 졸리·르네 젤위거 어떤 줄거리 상어 대부와 영웅 꿈꾸는 작은 물고기의 대결 이래서 좋아 다양한 패러디와 스타들의 변신을 보는 즐거움 이래서 별로 흔한 주제와 단선적 줄거리 홈피 반응은 “넘 귀엽고 신난다.” ●키다리 아저씨 장르/예매율 드라마/8.05%(12세) 감독/배우는 공정식/하지원·연정훈 어떤 줄거리 눈처럼 투명하고 순수한 청춘들의 애틋한 로맨스 이래서 좋아 첫사랑의 환상에 집착하는 이들이라면… 이래서 별로 지루함은 참기 어려워∼. 홈피 반응은 “가슴 따뜻한 이야기, 마무리는 아쉽지만” ●마더 데레사(21일 개봉) 장르/예매율 드라마/6.79%(전체) 감독/배우는 파브리지오 코스타/올리비아 허시 어떤 줄거리 가장 낮은 곳에서 사랑을 실천한 테레사 수녀의 일대기 이래서 좋아 가슴 따뜻해지는 감동 이래서 별로 … 홈피 반응은 “투박한 곳에서 피어나는 진심” ●몽정기2 장르/예매율 코미디/6.71%(15세) 감독/배우는 정초신/이지훈·강은비·전혜빈 어떤 줄거리 호기심 많은 여고생들, 발칙한 상상에 빠지다 이래서 좋아 생각보다 ‘야하지’않은 여고생들의 성장기 이래서 별로 걸러지지 않은 대사와 과장 심한 유머 홈피 반응은 “기승전결 없는 에피소드의 연속”
  • 시각장애인에 ‘춤세라피’ 무료교습 장동현씨

    시각장애인에 ‘춤세라피’ 무료교습 장동현씨

    “어둠 속에 갇힌 시각장애우의 아픔을 춤으로 치료하고 싶습니다.” 지난 14일 서울 송파구 삼전동 서울시각장애인복지관에서 ‘춤 세라피(therapy·요법)’를 진행하던 장동현(38)씨와 시각장애우 10여명의 얼굴에는 어린 아이와 같은 행복한 미소가 피어나고 있었다. “멋지게 추고 싶은데…. 저 잘 하고 있나요?”한 시각장애우가 춤동작을 염려하며 묻자 장씨는 “손끝을 자연스럽게 올리시네요. 아주 잘 하고 있어요.”라며 칭찬으로 화답했다. 그는 “시각장애우가 춤을 통해 잠시나마 아픔을 잊고 밝아지는 모습을 볼 때가 가장 행복한 순간”이라고 말했다. ●무역업체 과장 틈틈이 춤강사 중소 무역업체 과장으로 일하는 장씨는 지난해 9월부터 이 복지관에서 틈틈이 시각장애우와 춤세라피를 더불어 나누는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서구의 무용치료를 응용해 만들어진 춤세라피는 억눌린 감정과 상처를 춤을 통해 표현하고 치유하는 요법이다. 장씨의 수업이 처음부터 쉽진 않았다. 시각장애우가 머리 속에 춤을 그릴 수 없다 보니 춤 동작을 잘 이해하지 못해서였다.“팔을 움직여 보세요.”라는 장씨의 권유에도 시각장애우는 가만히 서 있는 때가 많았다. 팔을 흔들거나 다리를 움직이는 동작 자체를 모르기 때문이었다. 그럴 때면 장씨는 상상력을 불러 일으키도록 했다.“바닷가에 시원한 바람이 불고 있다고 상상하고 춤을 추라.”고 했더니 한 장애우는 “바다를 본 적도 없는데 어떻게 상상을 하느냐.”고 되물었다. 그러면 장씨는 장애우의 팔을 잡아 올리고 무릎을 흔들어 줬다. 강의를 5차례 정도 반복하면 장애우의 몸에도 점차 리듬이 배어 들었다. 노래방에 가서도 뻣뻣하게 있던 장애우가 리듬에 맞춰 춤을 추게 된다. 딱딱하던 몸은 조금씩 유연해지고 어느새 스스로 즐기게 되는 것이다. 춤세라피를 통해 시각장애우는 세상과 부딪히며 느끼는 두려움을 조금씩 이겨낸다. 강모(41)씨는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긴장했던 마음이 조금씩 편해지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김모(41·여)씨는 “부모님을 원망하며 처지를 비관했지만, 이제는 부모님이 나 때문에 느꼈을 아픔을 이해하려 한다.”고 털어놨다. 손모(64·여)씨는 “처음엔 제대로 동작이 나오지 않을까봐 망설였다.”면서 “이제는 노래방에서 노래보다 춤을 더 즐겨 추게 됐다.”고 웃었다. ●“이젠 부모님·세상 원망 안해요” 장씨는 시각장애우와 특별한 인연을 갖고 있다. 그는 1991년 갑작스레 허리디스크를 앓게 됐다. 병원에 다녔지만 낫지 않았고, 제대로 걷지도 못했다. 고통을 겪던 장씨는 어머니가 자원봉사를 하면서 알게 된 시각장애우 침술가로부터 매일 무료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석달이 지나자 장씨는 거짓말처럼 완쾌됐다. 이후 그는 시각장애우에게 ‘빚’을 진 심정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길을 찾았다고 한다. 평소 명상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지난 2000년 한 수련원에서 춤세라피를 접하고 푹 빠지게 됐다. 처음엔 초등학생에게 춤세라피를 가르쳤다. 학교에서 왕따로 고통받던 어린이는 문화캠프에서 춤세라피를 배우면서 밝은 표정을 되찾았다. 장씨는 “춤세라피를 통해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게 됐고 시각장애우와 춤세라피를 하고자 마음을 먹었다. 장씨는 현재 서초동 예술심리치료센터에서 춤세라피 지도자과정을 밟고 있다. 장씨는 “올 9월 지도자과정을 마치면 시각장애우뿐만 아니라 지체장애인과도 리듬을 나누며 아픔을 함께 치유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박지윤기자 jypark@seoul.co.kr
  • [이주일의 어린이책] 빨간 목도리 가져가세요!/안 빌뇌브 글·그림

    그림책의 소명 중 하나는 ‘생각의 키’를 키워주는 것이 아닐까. 캐나다에서 날아온 ‘빨간 목도리 가져가세요!’(안 빌뇌브 글·그림, 꼬마이실 펴냄)는 상상력을 키우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는 그림책이다. 단 한 자의 글자도 없이 연속되는 그림만 보고 머릿속으로 이야기에 살을 붙여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노란 택시를 몰고 다니는 운전사 쥐돌이. 까만 망토를 걸친 신사가 그만 빨간 목도리를 뒷좌석에 두고 내리자 그를 뒤쫓아 따라간다. 서커스 공연장으로 쓱 들어가는 걸 보니, 아하! 신사는 바로 마술사였던 거다. 서커스 공연장 안으로 그를 찾아 들어간 쥐돌이는 혼쭐이 난다. 롤러스케이트를 탄 짓궂은 흰곰에게 쫓기는가 싶더니 급기야는 굶주린 사자에게 목도리와 함께 통째로 잡아 먹힌다. 그림은 숨 고를 틈을 주지 않고 쉼없이 이어진다. 여자 조련사에게 가까스로 구출된 쥐돌이, 목도리 주인을 다시 찾아나섰다가 관중들로 빼곡한 공연장 한가운데에 서게 되는데…. 주인공 쥐돌이가 예기치 못한 환경에 잇따라 내던져지는 상황은 그대로 한편의 모험 드라마다. 위기를 헤쳐 나가는 지혜와 용기, 목표를 향해 최선을 다하는 끈기와 인내심 등 여러 미덕이 쥐돌이의 모험을 통해 우회적으로 표현된다. “왜?” “그래서 다음엔 어떻게 됐지?” 등의 질문에 아이들이 스스로 답하게 되는 그림책은 그러나 호락호락하진 않다. 쥐돌이가 중심인, 엇비슷한 그림구도는 까딱 딴생각을 했다간 맥락을 놓치기 십상이다.5세 이상.8800원.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책꽂이]

    ●유클리드의 막대(장 피에르 뤼미네 지음, 김윤진 옮김, 문학동네 펴냄) 7세기 지중해 연안에 있던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역사를 통해 서양학문의 세계를 돌아봤다. 인류의 발전에 위대한 자취를 남긴 학자들의 업적과 일화를 흥미롭고 박진감 넘치게 묘사한 역사소설이자 과학·철학소설. 지은이는 프랑스의 천체물리학자.8800원. ●소설가의 죽음(전2권)(패트리샤 콘웰 지음, 홍성영 옮김, 노블하우스 펴냄) 시체안치소를 중심으로 사건이 전개되는 법의학 스릴러. 유명 여류소설가의 죽음과 함께 사라진 원고를 둘러싸고 잔혹한 살인게임이 벌어진다. 어려운 전문용어가 등장하는 법의학 소설의 편견을 버려도 좋을 듯. 사건과 드라마 위주의 전개 덕분에 수월하게 책장이 넘어간다. 각권 8000원. ●나비(안도현 지음, 리즈앤북 펴냄) 안도현 시인의 ‘어른들을 위한 동화’.1960년대 말 인구 2000명 규모의 시골마을 이야기. 말똥구리 한마리로 즐거웠던 시간들, 술지게미로 배를 채우는 아이들, 반공 웅변대회 등 가난했지만 훈훈했던 그때 그 시절을 추억했다.8000원. ●그 남자에게 보내는 일기(유미리 지음, 송현아 옮김, 동아일보사 펴냄) 재일교포 작가 유미리가 2001년 11월부터 이듬해 12월까지 내밀한 사적 영역을 송두리째 드러낸 일기책. 훗날 연인이 된 스승이자 연극연출가인 히가시 유타카와의 만남과 자신을 절망으로 몰아간 그의 죽음, 의도하지 않았던 임신과 출산 등 삶의 우여곡절을 일기형식으로 담담히 털어놨다.1만 1500원. ●남향(南向)(권명옥 지음, 열화당 펴냄) 1970년대 초 ‘심상’지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한 시인(세명대 국문학과 교수)이 뒤늦게 첫 시집을 냈다. 성서 속에서 퍼온 듯한 이미지와 상상력이 결합한 40편의 시들이 묵상하는 듯한 고요함을 안긴다.7000원. ●이상한 나라의 프로포즈(김하인 지음, 북웨이브 펴냄) ‘국화꽃 향기’의 베스트셀러 작가 김하인이 ‘사랑’을 주제로 단편 13편을 묶은 소설집.‘바다 속으로 내리는 눈’‘과일깎는 남자’ 등 마치 한편의 영화를 보듯 상상을 부추기는 감성소설들이 묶였다.8800원.
  • [그 영화 어때?]저우싱츠의 ‘쿵푸허슬’

    젊은 시절 뭔가 삐딱하면서도 창의적인 생각이 샘솟듯 하다가도 나이가 들면 누그러지는 게 보통 사람들의 모습일텐데, 이제 불혹의 나이를 훌쩍 넘긴 저우싱츠(周星馳)는 언제나 똑같다. 아니 오히려 전작 ‘소림축구’를 뛰어넘는 기발함이 ‘쿵푸허슬’(Kungfu Hustle·13일 개봉)엔 가득하다. 게다가 한 우물만을 파며 자신만의 ‘황당 코미디’를 완성해 냈기에, 이제는 소수의 컬트광이 아닌 다수의 대중이 그의 영화를 보고 웃고 즐길 수 있게 됐다. 감독, 제작, 주연, 각본까지 소화해 낸 저우싱츠가 이번에 택한 소재는 쿵후. 배경은 1940년대 중국 상하이고, 형식은 난세를 틈타 세상을 평정한 악의 무리들와 이에 맞서는 숨은 고수들과의 대결이라는 시대극에서 빌렸다. 하지만 한꺼풀 벗겨 보면 그만의 상상력으로 이 모든 고전적인 소재와 배경을 비튼다. 일단 겉으론 평범하게 보이는 ‘깡촌’인 돼지촌의 사람들이 알고 보니 무림의 고수들이었다는 황당무계한 설정으로 서민에 대한 애착을 드러낸다. 그렇다고 이들을 이상적으로 그리진 않는다. 집세를 내라고 독촉하는 악덕 집주인 아줌마(원추), 여자만 보면 침을 줄줄 흘리는 아저씨(원화), 뚱뚱한 찐빵 가게 주인 등 그저 평범한 인간 군상일 뿐이다. 그러던 사람들이 마을을 괴롭히는 도끼파 조직에 맞서 하나둘 고수의 정체를 드러내는 모습은 보통 사람들에게 묘한 희열을 전달한다. 시작부터 끝까지 리얼리티를 깡그리 무시하니 관객들은 이성을 무장해제시킨 채 그저 즐기기만 하면 된다. 저우싱츠의 영화에서 논리를 찾는다면 아직 그의 영화를 즐길 준비가 안된 것. 도끼파가 되고 싶어하는 싱(저우싱츠)이 갑자기 마음을 바꿔 고수 부부를 도와 주는 장면에서도, 궁금해할 관객들을 위해 저우싱츠는 부부의 입을 빌려 이 한마디 대사만을 삽입했다.“당황해서 실수한 거겠지.” 그렇다고 내러티브를 완전 무시하는 건 아니다. 큰 기둥줄기가 있기에 몰입할 수 있는 힘을 가진다. 싱과 아이스크림 가게 아가씨의 일화를 삽입해 감동적인 장면까지도 연출해 낸다. 물론 쿵후 영화다 보니 칼부림이 난무하면서 피가 튀기는 폭력적인 장면도 많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이것이 실제라고 착각하진 않을 만큼 황당하다 보니 오히려 문제될 게 없다. 아마도 저우싱츠는 폭력을 유희의 경지로 승화시킨 유일한 감독이지 않을까. 다양한 영화의 장면들을 빌려와 그만의 방식으로 소화시키는 패러디의 묘미 역시 놓칠 수 없는 그만의 장기다. 감옥에 갇힌 최고 고수인 야수를 빼내기 위해 침투하는 장면에서는 스탠리 큐브릭의 ‘샤이닝’에서 핏물이 쏟아져 나오는 장면을 따왔고, 여주인과 싱이 발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추격을 벌이는 장면은 애니메이션 ‘루니툰’에서 빌려 왔다. 아이스크림 가게 아가씨에게 돈을 뺏는 장면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포스터를 연상시킨다. 액션과 유머와 감동이라는 상업영화의 필요충분조건을 충족시키면서도 일반적인 상업영화의 공식과 어법을 뒤집는 영화. 저우싱츠를 좋아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15세 관람가. 김소연기자 purple@seoul.co.kr
  • [무슨 영화 볼까]

    ●몽정기2 장르/예매율 코미디/20.63%(15세) 감독/배우는 정초신/이지훈·강은비·전혜빈 어떤 줄거리 호기심 많은 여고생들, 발칙한 상상에 빠지다 이래서 좋아 생각보다 ‘야하지’않은 여고생들의 성장기 이래서 별로 걸러지지 않은 대사와 과장 심한 유머 홈피 반응은 “기승전결 없는 에피소드의 연속” ●쿵푸허슬 장르/예매율 액션/22.46%(15세) 감독/배우는 저우싱츠/저우싱츠·황성의·양소룡 어떤 줄거리 도끼파 조직과 숨은 고수들의 ‘맞짱 뜨기’ 이래서 좋아 리얼리티 무시한 ‘황당 코미디’의 최고 경지 이래서 별로 점잖고 논리적인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홈피 반응은 “신나게 웃다가 한순간 눈물도” ●알렉산더 장르/예매율 액션/4.58%(15세) 감독/배우는 올리버 스톤/콜린 파렐·발 킬머·안젤리나 졸리 어떤 줄거리 꿈을 좇아 세상 끝까지 나아갔던 영웅 알렉산더 이래서 좋아 장대한 전투신과 화려한 이국적 풍광 이래서 별로 주제를 장황하게 말하는 내레이션과 긴 러닝타임 홈피 반응은 “트로이보다 더 리얼한 전쟁신” ●샤크 장르/예매율 애니메이션/5.41%(전체) 감독/배우는 비키 젠슨 등/윌 스미스·안젤리나 졸리·르네 젤위거 어떤 줄거리 상어 대부와 영웅 꿈꾸는 작은 물고기의 대결 이래서 좋아 다양한 패러디와 스타들의 변신 보는 즐거움 이래서 별로 흔한 주제와 단선적 줄거리 홈피 반응은 “넘 귀엽고 신난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 장르/예매율 애니메이션/6.51%(전체) 감독/배우는 미야자키 하야오/기무라 다쿠야 어떤 줄거리 마녀의 저주로 노파가 된 소피와 마법사 하울의 모험기 이래서 좋아 반전, 자연친화의 메시지에 러브스토리까지 이래서 별로 ‘센과 지히로의‘이상을 기대했다면…. 홈피 반응은 “아기자기한 스토리들, 너무 예쁜 그림들” ●월드 오브 투모로우 장르/예매율 SF·액션/13.50%(전체) 감독/배우는 케리 콘랜/주드 로·기네스 팰트로·안젤리나 졸리 어떤 줄거리 1939년 인류 최초의 로봇이 습격하다 이래서 좋아 고전미와 SF의 상상력이 결합 이래서 별로 어둠침침하고 흐릿한 화면과 뻔한 스토리 홈피 반응은 “다소 유치하긴 하지만 킬링타임용으론 그만” ●키다리 아저씨 장르/예매율 드라마/15.36%(12세) 감독/배우는 공정식/하지원·연정훈 어떤 줄거리 눈처럼 투명하고 순수한 청춘들의 애틋한 로맨스 이래서 좋아 첫사랑의 환상에 집착하는 이들이라면… 이래서 별로 지루함은 참기 어려워∼. 홈피 반응은 … ●오션스 트웰브 장르/예매율 드라마/9.23%(12세) 감독/배우는 스티븐 소더버그/조지 클루니·브래드 피트·캐서린 제타 존스 어떤 줄거리 훔친 돈을 되갚기위해 다시 뭉친 오션 패밀리 이래서 좋아 더욱 화려해진 캐스팅과 영상 이래서 별로 돌아온 그들, 솜씨는 예전만 못하네 홈피 반응은 “생각만큼 재미있는 영화는 아닌듯”
  • [씨줄날줄] 딥 임팩트/우득정 논설위원

    지난 1998년 세계인들은 2편의 미국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 넋을 잃었다. 혜성과 지구의 충돌을 다룬 ‘아마겟돈’과 ‘딥 임팩트’다. 그동안 과학적인 가설로만 존재했던 지구종말론은 20세기 말이라는 분위기에 편승해 영화관을 찾은 세계인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두 영화는 시나리오 제작과정에 천재 천문학자,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전문가 등이 대거 참여해 현실감을 높임으로써 미국식 영웅주의와 휴머니즘이라는 도식적인 한계도 극복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영화 속 가설이 이번에는 과학적인 검증절차를 거친다고 한다.12일(현지시간) NASA의 혜성탐사선 ‘딥 임팩트’호가 혜성 ‘템펠1’과의 충돌 임무를 띠고 6개월간의 대장정에 오른다는 것이다. 미국 독립기념일인 7월4일 딥 임팩트호에 탑재된 무게 370㎏의 작은 우주선이 ‘템펠1’의 표면에 충돌하면 혜성에서 방출되는 물질을 카메라와 분광기를 이용해 정밀 촬영한다는 프로젝트다. 혜성이나 소행성으로부터 지구를 지켜내려면 영화처럼 충돌이나 폭발을 통해 진로를 바꿔야 한다. 충돌 실험은 진로 변경에 필수적인 혜성과 소행성의 내부구조와 질량분포를 파악하기 위한 절차다. 천문학적인 재앙을 예고하는 종말론의 중심에는 76년마다 지구에 근접하는 핼리혜성이 자리잡고 있었다.1910년 접근 당시 핼리혜성이 늘어뜨린 꼬리부분을 지구가 통과하면서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가 혜성 꼬리를 감싼 독가스에 질식사할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았다. 어떤 이들은 공포에 질린 나머지 자살했다고 하지만 우려했던 재앙은 일어나지 않았다. 가스 밀도가 워낙 엷었을 뿐 아니라 성분도 독가스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나 6500만년 전 멕시코만 부근에 떨어진 지름 10㎞의 소행성으로 인해 공룡이 멸종됐다는 설이 정설로 굳어지고 있고, 노아의 홍수도 지중해 지역에 떨어진 소행성 때문이라는 가설이 제기된 점 등을 감안하면 딥 임팩트호의 충돌 실험은 지구인들의 가슴을 설레게 할 것 같다. 1.5㎏ 크기의 소행성 충돌이라는 100만분의 1 확률에 대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난 연말 서남아시아를 강타한 쓰나미로부터 인류를 구하는 것이 보다 시급하지 않나 싶다. 우리는 지구 외부의 적보다 내부의 적이 훨씬 더 위협적인 시대에 살고 있다. 우득정 논설위원 djwootk@seoul.co.kr
  • 연출가 오태석·서재형씨 문예진흥원 ‘베스트&퍼스트’에 나란히

    연출가 오태석·서재형씨 문예진흥원 ‘베스트&퍼스트’에 나란히

    한국 연극계를 대표하는 원로 연출가 오태석(65)과 주목받는 신예 서재형(35)이 만났다. 나이가 한 세대만큼 차이가 나는 이들의 만남은 한국 문화예술진흥원 예술극장이 마련한 2005 기획시리즈 ‘베스트&퍼스트’가 계기가 됐다. 이번 기획은 독창적 작품 세계를 구축한 ‘베스트’ 연출가와 패기 넘치는 ‘퍼스트’ 연출가의 작품을 나란히 선보이는 것. 오태석과 서재형이 그 첫 주자다. 이들은 각각 신작 ‘만파식적’(21일∼2월12일)과 지난해 초연 돼 호평을 받았던 ‘죽도록 달린다’(15일∼2월6일)로 관객 앞에 선다. 지난 6일 기자간담회에서 두 사람을 만났다. 오태석은 “다른 공연장들이 너무 상업적인 쪽으로 치중하는데 연극다운 연극으로 방향을 잡아주니 (예술극장측에)고맙다.”고 소감을 밝혔고 서재형은 “여러모로 아버님 같으신 분과 함께 하게 돼 새해부터 복을 많이 받고 있다.”고 뿌듯해 했다. 그러면서 서재형은 오태석과의 나름의 인연을 밝혔다.“배우를 꿈꾸던 학창시절 오태석 선생님의 ‘부자유친’을 보고 연출가로 전환하게 됐고,‘죽도록 달린다’를 끝내고 지쳐 있을 때 선생님을 보면서 에너지를 얻었죠. 또 선생님이 흔쾌히 허락해 주셔서 지난해 4월 ‘죽도록 달린다’를 한 달간 아룽구지 무대에 올려 호평을 받을 수 있었고요.” ‘죽도록 달린다’의 작가 한아름은 오태석의 제자. 이번 기획으로 사제지간의 만남까지 성사된 셈이다. ‘만파식적’은 오태석이 2년 만에 내놓는 신작. 전통 신화나 설화를 창작 모티브로 삼아온 그가 이번엔 삼국유사에서 ‘만파식적’을 빌려왔다. 둘로 갈라져 있다가 하나로 합쳐지면 소리를 내는 만파식적을 남과 북으로 갈라진 우리 현실을 빗댄 것. 두 동강 난 국가는 사회 분열과 단절을 초래했다. 때문에 그가 작품을 통해 말하고 싶은 것은 소통이다.“우리 민족은 일제 식민지에서 풀려나자마자 이데올로기의 급습을 당했어요.47년 4·3사태부터 보자면 60년 가까이 그 멍에가 영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아요. 그 속에서 일생을 살아오다 보니 본의 아니게 천착하게 됐습니다.” ‘만파식적’의 주인공 종수는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옆에 빈 관을 마련하고 납북된 아버지를 찾아나선다. 신문왕의 도움으로 아버지를 찾아 남으로 모셔오려는데 북쪽의 배다른 형제들이 반대한다. 그들은 남쪽이 더 살기 좋다는 사실을 입증하라 하고 종수는 내려와 양심우산 캠페인을 벌인다. 불운한 가족사도 작품에 녹아 있다.“지난해 1월에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 납북된 아버지를 상봉하지 못하고 생을 마감하니 안타까웠죠. 두 사람을 만나게 할 방법이 없을까 생각해 연극으로나마 두 분이 만나는 시늉을 해보는 거예요. 통일이 어려우니 만나는 방법으로 삼국유사를 빌려 보자 했지.(웃음)” 그의 작품은 종종 과감한 비약과 생략으로 엉뚱한 재미를 준다거나 또는 이해가 어렵다는 상반된 평을 들어왔다.“나도 미술관에 안 가본지 몇 십년 됐어요. 버릇이 안돼서 그렇죠. 뭐든지 재미를 붙이면 더 쉬운 거고. 내 연극은 말하자면 먹여주는 게 아니라 관객이 직접 칼질해서 먹는 재미가 있는 거라고 봐주면 좋겠어요.” 지난해 4월 초연 돼 호평을 받은 서재형의 ‘죽도록 달린다’는 ‘활동 이미지극’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표방한 연극.“사진을 이어서 넘기면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잖아요. 연결된 동작 하나를 떼서 보면 사진처럼 보이는 그런 개념이에요.” 보지 않고서는 감 잡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처음엔 배우들도 애로를 겪었다. 알렉산드르 뒤마의 고전 ‘삼총사’에서 모티브를 따왔다. 줄거리는 ‘삼총사’의 속편 격으로, 신예 작가 한아름이 기발한 상상력을 동원해 새롭게 썼다. 권력에 집착한 안 왕비는 달타냥을 유혹해 아들을 낳고, 추기경은 왕비 제거 음모를 꾸민다. 애인을 버린 비정한 달타냥은 왕을 살해한 누명을 쓰고 쫓긴다. 서재형은 “목걸이를 갖고 온 후 궁 안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죠. 어느 궁궐 안에서나 있을 법한 음모, 복수, 대 잇기, 현실정치 문제 등이 모두 담겨 있다.”고 설명했다. 출연 배우들의 몸무게가 도합 30㎏이나 빠졌을 만큼 무대 위에서 달리고 또 달린다. 그런데 왜 달리는 걸까.“저에게 ‘달린다’는 개념은 긴장된 상태에서 심장이 뛴다라는 것과 같아요. 지난 번엔 극 후반부에 좀 덜 달렸는데 이번엔 입에서 단내가 나도록 끝까지 달릴 작정입니다.” 글 박상숙기자 alex@seoul.co.kr 사진 정연호기자 tpgod@seoul.co.kr
  • 야! 토성이다…중미산 과학캠프

    야! 토성이다…중미산 과학캠프

    이 세상에서 가장 빠르다는 빛, 북극성은 그 빛을 타고 800년을 날아가야 만날 수 있다고 한다. 그 신비의 별 북극성과 환상의 데이트가 대한민국 경기도 양평군 옥천면 신복3리 중미산 천문대에서 펼쳐지고 있다. 새로운 친구를 사귀고, 겨울철 야외 놀이도 체험할 수 있어 초등학생들에게 어린시절의 추억을 심어주는 별자리 캠프. 서울신문이 마련한 중미산 천문대 겨울방학 천문과학캠프를 동행취재했다. 체감온도 영하 15도. 서울에서는 좀처럼 만날 수 없는 매서운 추위다. 두꺼운 내복에도 모자라 겉옷을 여러 벌 껴입고 장갑에 목도리로 완전무장한 ‘별 사냥꾼’ 70명이 지난 4일 양평 중미산 천문대에 모였다. ●행성·별·성단 등 배우고 보고 겨울바람은 찼지만 구름 한점없이 맑은 하늘은 별보기에는 안성맞춤. 별이 좋아 논산에서부터 한달음에 쫓아온 최연소 참가자 샘(6)도, 큰개자리의 시리우스를 좋아한다는 오류초등학교의 ‘별 박사’ 병건(9)이도, 나란히 참가한 매송초등학교의 은중(8)·범중(7)이 남매도 모두 들뜬 모습이다. 날이 어두워지기를 기다리면서 아이들은 숙소에 짐을 풀고 강당에 모여 2박3일을 함께할 팀을 짠다. 한 팀은 7∼8명으로 팀마다 1∼6학년을 고르게 구성했다. 형제없는 외톨이가 많은 요즘 아이들에게 언니나 형을 사귈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다. 동그랗게 둘러앉은 아이들은 팀 이름을 정하고 팀을 상징하는 깃발을 만든다. 매송초등학교 현우(8)는 깃발에 토성을 그려 넣었다. 능길초등학교 윤나(9)는 아름다운 우리별, 지구와 상상 속의 비행접시,UFO를 그렸다. 우주에 대한 호기심과 기대를 가득 담은 깃발을 앞세우고 아이들은 앞마당에 모였다. 오늘 첫 이벤트는 썰매타기와 비료포대 눈썰매 타기. 아이들은 꽁꽁 얼어붙은 40평 남짓한 연못 위에서 썰매를 타고 신나게 얼음을 지친다. 도심에서 이런 연못을 좀처럼 볼 수 없기 때문에 대부분의 어린이들이 태어나서 처음으로 썰매를 타본다고 했다. 아이들은 썰매의 매력에 푹빠져 “놀이동산의 범퍼카는 저리가라.”라고 입을 모았다. 비료포대 눈썰매의 재미도 쏠쏠하다.50m가량 되는 흙 비탈에 폭 1m 정도의 눈길을 냈다. 신남성초등학교 철홍(7)이는 TV에서 보았던 봅슬레이 선수의 자세를 흉내낸다. 비료포대 위에 앉아 등을 뒤로 바짝 붙이고 다리를 쭉 뻗어 최대한 몸을 일자로 만든 철홍이는 엄청난 스피드에 놀라 환호성을 지른다. 즐거운 겨울 놀이에 아이들은 시간가는 줄도 몰랐다. 이른 저녁을 먹고나니 하늘은 금방 어둑어둑해졌다. 아이들은 강당으로 자리를 옮겨 오늘 밤 무슨 별을 볼 것인지 점검한다. 수성부터 명왕성까지 지구가 속한 태양계 식구들의 특징을 이해하고 오늘 관찰할 토성과 플레이아데스 성단에 대해서도 공부한다. ●낮엔 태양흑점 망원경 관측 이윽고 밤 하늘에 초롱초롱 별이 떠오르자 아이들은 설레는 마음으로 주 관측실로 들어선다. 원형돔이 자동으로 열리고 새까만 밤 하늘에 헤아릴 수 없이 반짝이는 별이 한눈에 들어온다. 능길초등학교 은지(10)는 8인치 굴절망원경에 눈을 대고는 토성을 찾아보았다. 은지는 “책에서만 보았던 토성의 고리를 직접 확인하니 너무 신기하다.”면서 활짝 웃는다. 원형돔 밖에서는 황소자리에 있는 플레이아데스 성단을 찾느라 법석이다. 우리말로는 ‘좀생이별’이라는 플레이아데스 성단은 북동쪽 하늘에 옹기종기 모여 신비한 빛을 내뿜고 있었다. 삼정초등학교 지윤(12)이는 “앞으로 과학시간에 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플레이아데스 성단이 생각날 것 같다.”면서 “우주에 대한 궁금증이 너무도 많이 생겨 책을 많이 보아야겠다.”고 말했다. 중미산의 첫날 밤이 가고 새 아침이 밝았다. 오늘 아이들이 관찰해야 할 것은 태양의 흑점. 온도가 아주 낮은 태양의 흑점은 강력한 자기장으로 통신장애를 불러일으키는 등 지구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다. 능길초등학교 한솔(10)이는 11년을 주기로 숫자가 늘었다 줄었다 한다는 흑점에 호기심이 발동했다. 망원경으로 태양 중심 부위에서 작고 검은 점 3개를 관찰하긴 했지만 흑점에 대한 궁금증은 풀리지 않는다. 한솔이는 “태양에 대해서 모르는 것이 많아 앞으로 과학공부를 열심히 해야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눈썰매 타고 언덕길 질주도 즐거운 점심시간이 끝나자 태양계 체험활동이 펼쳐진다. 팀별로 우리 은하를 직접 꾸며보는 것이다. 백마초등학교 혜진(10)이는 은하계의 핵심인 태양을 맡았다. 태양에서 가장 가까운 별 수성은 능길초등학교 예지(9)가 맡았다. 샛별이라고 불리는 금성은 신남성초등학교 동현(7)이가, 우리별 지구는 능길초등학교 융경(10)이가, 화성은 영본초등학교 항식(8)이 몫이다. 태양계에서 가장 큰 행성인 목성은 응봉초등학교 민수(10), 고리가 아름다운 토성은 신흥초등학교 지은(9)이에게 맡겨졌다. 이들은 태양을 중심으로 원을 그리며 공전하는 모습과 스스로 회전하는 자전도 실험해본다. 혜진이는 “우리 은하계에 많은 별이 함께 살고 있다는 것이 정말 신기하다.”면서 “이번 캠프가 공부를 더 열심히 하는 계기가 될 것 같다.”고 말했다. 평소에도 별에 관심 많아 캠프에 가게 해달라고 엄마를 졸랐다는 병건이는 “캠프에 와보니 우주에 대해 궁금한 것이 오히려 더 많이 생겼다.”면서 “미래에 훌륭한 천문학자가 될 수 있도록 열심히 공부하겠다.”고 다짐했다. 올해로 6회째를 맞은 중미산천문대 천문과학캠프는 12∼14일 제5차 캠프로 겨울 일정을 마무리한다. 양평 이효연기자 belle@seoul.co.kr ■ 중미산 천문대는 3000여개 별 육안관측 가능 중미산 자연휴양림 입구에 자리잡은 중미산 천문대는 서울 근교에서 별이 가장 잘 보이는 곳이다. 이곳은 천문대가 문을 열기 전부터 ‘별 좀 본다.’는 아마추어 천문가들에게 사랑받아 왔다. 서울의 밤 하늘에서 확인할 수 있는 별은 가장 밝은 1등성 20개 정도. 하지만 불빛과 공해가 없는 중미산 천문대에서는 북반구에서 맨눈으로 볼 수 있는 4000여개의 별 가운데 3000개가 보인다. 김학(50) 중미산 천문대장은 별보기 좋은 해발 437m 지점에 사비를 털어 2001년 천문대를 세웠다. 대지 1만 3000여평 규모의 중미산 천문대는 천문관측실과 과학실험교실, 숙박시설 및 자연체험학습장을 갖추고 있어 체험캠프 장소로 적합하다. 천체 관측 기구들의 성능도 좋다. 지름 6.6m로 360도 회전하는 주관측실은 우리나라에서 3번째로 큰 원형돔이다. 독일 APM사의 8인치 굴절망원경으로는 성단, 달의 크레이터, 행성을 관측할 수 있다. 이밖에도 10여개의 굴절·반사·보조 망원경을 보유하고 있다.50여명이 누워서 하늘을 볼 수 있는 야외 관측소도 있어 여름에는 평상에 누워 별을 볼 수 있다.(031)771-0306 양평 이효연기자 belle@seoul.co.kr ■ 별 재미있게 보는 법 별을 관측하는 데는 순서가 있다. 중미산 천문대 송한석(29)교육팀장은 무턱대고 하늘만 바라본다고 별을 알게 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초보자가 별 보는 데 재미를 붙이려면 순서를 익혀야 한다는 것이다. 초보자는 먼저 북극성을 찾아보는 것이 좋다. 북극성은 나침반이 발명되기 오래 전부터 망망대해를 항해하는 사람들이나 밤 길을 가는 이에게 방향을 일러주는 친근한 벗이었다. 북극성을 만나려면 북쪽 하늘에 떠 있는 북두칠성이나 카시오페이아를 먼저 찾아야 한다. 북두칠성은 잘 알려져 있는 대로 국자모양, 카시오페이아는 W모양이다. 북극성은 북두칠성과 카시오페이아의 사이에 있다. 북극성을 중심으로 방향을 파악한 뒤에는 길잡이 별을 찾아야 한다. 매일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는 길잡이 별은 가장 밝은 1등성으로 별자리를 찾는 지표가 된다. 늘 한자리에 있는 북극성이 먼 길 떠나는 사람들에게 방향을 알려주듯 계절마다 이정표가 되어 준다. 봄철 길잡이 별은 목동자리 별 가운데 가장 밝은 아크투르스와 처녀자리의 스피카이다. 여름철 길잡이 별은 거문고자리의 직녀성, 독수리자리의 견우성, 그리고 백조자리의 데네브이다. 한여름 밤 밝은 세 개의 별이 직각삼각형으로 놓여져 있어 여름철의 대삼각형으로 불린다. 가을밤이 깊어가면 하늘 한가운데에 거대한 사각형을 볼 수 있다. 페가수스 자리의 몸통 부분에 해당하는 이 사각형이 가을철 길잡이 별이다. 겨울에는 우주 축제라도 열린 듯 볼 수 있는 별이 많다. 오리온 자리의 리겔이 겨울철 대표적 길잡이별이다. 계절별 길잡이 별을 확인하면 자신이 알고 있는 별자리부터 찾는다. 송 팀장은 별자리 공부의 재미를 더하기 위해서는 풍부한 상상력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밤 하늘을 수놓은 아름다운 별들을 풍부한 상상력을 동원해 선으로 이어보는 것이다. 그리스 신화와 별자리의 주인공을 함께 연관해 상상하며 별을 공부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송 팀장은 “처음 별을 볼 때는 가로등이나 자동차 불빛 등 주변에 빛이 없는 어두운 곳에서 맨눈으로 시작하는 것이 좋다.”면서 “별 관찰이 익숙해지면 쌍안경이나 망원경으로 어두운 별도 관찰하면서 서서히 성단과 성운까지 관찰하는 것이 재미있게 별을 보는 방법”이라고 설명한다. 송 팀장은 “하늘을 뿌옇게 가리는 공해와 별 보기를 방해하는 자동차·가로등 때문에 서울 하늘에서 볼 수 있는 별은 그리 많지 않다.”면서 “별 관찰이 익숙해 지면 친구 또는 가족들과 서울 근교로 별소풍을 떠나면 좋을 것”이라고 권했다. 양평 이효연기자 belle@seoul.co.kr
  • 얘들아, 학원 하루쉬고 재밌는 공연 보러갈까

    얘들아, 학원 하루쉬고 재밌는 공연 보러갈까

    평소 어른보다 더 바쁜 아이들.40일간의 겨울방학은 아이들에게 다양한 경험을 허락하는 황금 같은 시간이다. 학원과 집을 오가며 TV와 컴퓨터만을 오락거리로 삼아온 아이들에게 색다른 즐거움을 주는 것은 부모가 해야 할 일. 올 겨울 가족들이 함께 볼 수 있는 공연이 풍성하다. 아이의 손을 잡고 함께 공연장 나들이에 나서 보자. 아이들의 호기심과 상상력을 충족시키고 어른들은 잃어버린 동심을 잠시나마 되찾을 수 있는 시간이 되지 않을까. 그림책으로 친숙한 ‘미피’가 뮤지컬로 살아난다.‘미피의 남극탐험’은 네덜란드 작가 딕 브루너의 인기 캐릭터 ‘미피’를 이용해 만든 순수 창작 어린이 뮤지컬.31일까지 과천 시민회관 대극장에서 공연된다. 미피와 아기곰 보리스, 바버라, 돼지 뽀삐, 강아지 스너피가 길 잃은 친구 ‘핑’을 집이 있는 남극에 데려다주기 위해 여행을 떠나는 이야기다.12개월 이상이면 관람할 수 있고 공연장 로비에는 아이들을 위해 미피 캐릭터 동산도 꾸며진다.1588-7890. 찰스 디킨스 원작의 ‘올리버 트위스트’도 어린이 뮤지컬로 만들어졌다.3월 6일까지 하늘땅소극장에서 공연된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밝게 살아가는 고아 올리버 트위스트를 통해 가족의 소중함을 이야기한다.(02)7474-222. ‘그림일기 속의 내 친구들’은 일기를 소재로 또래 친구 고복이와 화영이의 우정과 성장을 그린 작품.2000년 대표 희곡으로 선정된 ‘흉가에 볕들어라’의 작가 이해제와 히트 연극 ‘늙은부부 이야기’의 위성신 연출가가 만나 만든 가족 뮤지컬이다.23일까지 소극장 축제.(02)741-3934. 대학로 컬트홀에서 2월12일까지 계속될 ‘내친구 플라스틱2’는 재미와 교육의 효과를 동시에 지닌 연극. 빈 병, 막대기, 조각난 천, 플라스틱통 등 쓸모없게만 보이는 폐품들이 다시 아이들의 친구가 되어 환경의 소중함을 일깨운다.‘내친구 플라스틱’은 1998년 초연 이래 호평을 받아온 극단 ‘사다리’의 대표적인 레퍼토리다.(02)382-5477. 박상숙기자 alex@seoul.co.kr
  • [논술이 술술] 자유에서의 도피/글쓴이:에리히 프롬

    에리히 프롬은 독일 출신의 유태인으로 나치즘이 대두하자 1933년 미국으로 망명해 활동한 학자다. 그는 ‘근대인에 있어서의 자유의 의미’를 분석하는 데 초점을 둬 사회 구조의 변혁과 인간의 심리적 해방을 연동시키는 신프로이트 학파의 이론적 지도자로 활약했다.1940년에 발표된 이 책에서 그가 논의의 출발점으로 삼은 것도 자신의 이러한 경험과 관련이 있다. 흔히 나치즘과 같은 전체주의 체제가 강제력이나 국가의 선전에 의해서만 형성, 유지되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당시 사람들의 폭넓은 지지에 기반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현상은 왜 나타났을까. 그는 이 문제를 ‘∼로부터의 자유(freedom from)’와 ‘∼에로의 자유(freedom to)’라는, 지금은 이미 보편화되어 널리 쓰이는 개념들에 근거하여 분석한다. 우선 프롬에게 ‘자유’는 하나의 심리학적 문제로 나타난다. 인간은 자유를 갈망하고 있다.‘소극적인 자유’가 아닌 자아의 자발성을 뜻하는 ‘적극적인 자유’다. 인간은 자유를 억압하는 외적 요인들을 제거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그러나 인간에 대한 외적 억압이 제거될수록 내적인 억압은 커진다. 이러한 내적 억압은 바로 무력감과 고독감이다. 인간은 무력감과 고독감을 피하기 위해 두 가지 길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한다. 하나는 자발적 자아를 이룩해 세계와 새로운 방식으로 결합함으로써 피하는 방법이다. 이 방법은 ‘적극적 자유’의 궁극적인 목표이며, 인간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다른 하나는 자기 자신의 자아의 통일성을 포기함으로써 세계와 결합하는 방법으로, 곧 ‘자유로부터 도피’하는 것이다. 이것은 결국 누군가를 지배하거나 누군가에게 복종함으로써 안정을 얻는 사도-마조히즘적인 권위주의에 굴종하는 것이고, 사실상 자아의 통일성을 무너뜨리는 것을 말한다. 그에 따르면 나치즘과 같은 전체주의의 등장이나 종교 등에 대한 지나친 의존은 이러한 ‘자유로부터의 도피’로 설명될 수 있다. 중세의 억압에 대한 투쟁을 통해 인간은 ‘∼로부터의 자유’를 쟁취했다. 그러나 신에서의 탈출은 동시에 혼돈의 세계로의 입문이었다. 현대인은 중세의 속박에서 자유로워지기는 했지만, 그 자유가 나아갈 새로운 인간 관계와 방향성을 찾지 못한 채 지도자나 민족·국가에 복종함으로써 새로운 안전을 추구하고 있다. 이처럼 프롬은 전체주의 운동이 근대 이후 인간이 획득한 자유로부터 도피하려고 하는 마음 속 깊은 열망에 기초하고 있음을 밝히며, 현대 사회에서 나타나는 인간의 소외 현상을 다루고 있다. 그리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에로의 자유’를 실현할 ‘생산적 사랑’에 기초를 둔 만족스러운 인간 관계의 창조를 강조한다. 프롬은 이를 사랑과 인간 존중에 기초한 ‘인간적 공동체 사회주의’로 지칭하며, 이후의 저작인 ‘건전한 사회’에서 이를 좀더 구체화하고 있다. 유니드림 대학입시연구소(www.unidream.co.kr) ■ 독서 지도시 참고사항 -대상 학년:고1∼고3 -관련 교과:고등 사회, 윤리와 사상, 사회문화 -함께 읽어 볼 책과 고전:건전한 사회(에리히 프롬·범우사), 소유냐 존재냐(〃), 사랑의 기술(〃),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사르트르·청솔출판사), 지식인을 위한 변명(〃·한마당), 사회학적 상상력(밀즈·홍성사), 고독한 군중(리즈먼·홍신문화사), 도덕적 인간과 부도덕한 사회(라인홀드 니버·문예출판사) -기출논제:1998학년도 한양대 인문계 논술,2001학년도 논술,1997학년도 서울대 논술,2004학년도 서강대 모의논술,2001학년도 부산대 정시 논술 ■ 생각해보기 -소극적 자유와 적극적 자유의 차이를 생각해보자. -현대인을 지배하는 무력감과 고독감의 원인은 무엇인지 밝혀보자. -무력감과 고독감에서 나타나는 사회적 현상은 어떤 것이 있는지 써보자. -인간 소외란 무엇인가. 그것이 나타나는 사회적 원인은 무엇인가.
  • [무슨 영화 볼까]

    ●샤크(7일 개봉) 장르/예매율 애니메이션/26.72%(전체) 감독/배우는 비키 젠슨 등/윌 스미스·안젤리나 졸리·르네 젤위거 어떤 줄거리 상어 대부와 영웅 꿈꾸는 작은 물고기의 대결 이래서 좋아 다양한 패러디와 스타들의 변신 보는 즐거움 이래서 별로 흔한 주제와 단선적 줄거리 홈피 반응은 “넘 귀엽고 신난다.” ●알렉산더 장르/예매율 액션/20.16%(15세) 감독/배우는 올리버 스톤/콜린 파렐·발 킬머·안젤리나 졸리 어떤 줄거리 꿈을 좇아 세상 끝까지 나아갔던 영웅 알렉산더 이래서 좋아 장대한 전투신과 화려한 이국적 풍광 이래서 별로 주제를 장황하게 말하는 내레이션과 긴 러닝타임 홈피 반응은 “트로이보다 더 리얼한 전쟁신” ●하울의 움직이는 성 장르/예매율 애니메이션/20.07%(전체) 감독/배우는 미야자키 하야오/기무라 다쿠야 어떤 줄거리 저주로 노파가 된 소피와 마법사 하울의 모험기 이래서 좋아 반전, 자연친화의 메시지에 러브스토리까지… 이래서 별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뛰어넘는 상상력을 기대했다면…. 홈피 반응은 “아기자기한 스토리들, 너무 이쁜 그림들” ●오션스 트웰브(7일 개봉) 장르/예매율 드라마/16.82%(12세) 감독/배우는 스티븐 소더버그/조지 클루니·브래드 피트·캐서린 제타 존스 어떤 줄거리 훔친 돈을 되갚기위해 다시 뭉친 오션 패밀리 이래서 좋아 더욱 화려해진 캐스팅과 영상 이래서 별로 돌아온 그들, 솜씨는 예전만 못하네 홈피 반응은 … ●내셔널 트레져 장르/예매율 액션/8.76%(12세) 감독/배우는 존 터틀타웁/니컬러스 케이지·저스틴 바사·다이앤 크루거 어떤 줄거리 독립선언문에 숨은 지도를 따라가는 보물찾기 이래서 좋아 첩보영화식 두뇌게임과 어드벤처의 결합 이래서 별로 할리우드의 미국식 영웅 또 등장! 홈피 반응은 “오락물의 완성판” ●인크레더블 장르/예매율 애니메이션/3.27%(전체) 감독/배우는 브래드 버드/크레이그 넬슨·새뮤얼 잭슨 어떤 줄거리 은퇴한 슈퍼영웅, 가족과 함께 일어서다 이래서 좋아 최첨단 기술 이용한 초능력의 아찔한 전시장 이래서 별로 … 홈피 반응은 “‘초딩’옆에서 배꼽잡고 웃다가 ‘쪽’팔려 죽는줄 알았음” ●오페라의 유령 장르/예매율 뮤지컬·드라마/2.52%(12세) 감독/배우는 조엘 슈마허/제라드 버틀러·에미 로섬 어떤 줄거리 오페라하우스에 숨어사는 한 남자와 여가수의 사랑 이래서 좋아 화려한 화면과 주옥같은 선율 이래서 별로 뮤지컬을 그대로 따라가다보니 지루하네 홈피 반응은 “각각 장단점이 있지만, 뮤지컬에 한표” ●폴라 익스프레스 장르/예매율 애니메이션/0.85%(전체) 감독/배우는 로버트 저메키스/톰 행크스 어떤 줄거리 크리스마스 이브 북극행 열차를 탄 소년의 모험 이래서 좋아 롤러코스터를 탄 것처럼 짜릿한 재미와 아름다운 환상 이래서 별로 너무 고전적이고도 뜬구름 같은 소재 홈피 반응은 “예상치 못한 재미 만점”
  • 책 많이 읽기보다 제대로 읽어라

    책 많이 읽기보다 제대로 읽어라

    2008학년도 대학입시부터 새 대입제도가 시행되면 논술시험이 한층 강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 때문에 논술 실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방법으로서 독서가 어느 때보다 강조되고 있다. 하지만 독서법에 대한 교육은 없다시피 한 실정이다. 부모들은 그저 많이 읽기만 하라고 강요한다.‘더 빨리, 더 많이’ 읽히려고 심지어 속독학원에 보내기도 한다. 잘못된 독서 습관과 고치는 법을 살펴본다. 아이들의 독서에 대해 대부분의 부모들은 많이 읽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잘못된 생각이다. 무조건 많이 읽는 것이 사고력과 글쓰기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좋은 방법은 아니다. 한국독서교육개발원의 분석에 따르면 우리나라 초등학생들은 독서량은 많은데도 판단력, 상상력, 창의력이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독서의 방법이 잘못됐기 때문이다. ●열권 통독보다 한권 정독이 바람직 독서의 목적은 크게 보아 지식습득과 사고력 향상이다. 독서 습관과 창의력이 길러지는 시기에는 후자가 강조된다. 한우리독서문화운동본부 박선이 연구이사는 “아이들에게 독서를 강조하는 것은 책을 읽으면서 생각할 기회를 갖고 그 의미를 자기 것으로 소화해 사고의 폭을 넓히기 위한 것”이라면서 “통독이나 속독으로 책을 많이 읽는 것은 지식 습득 외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독서에 익숙하지 않은 아이가 책을 빨리 읽는다는 것은 ‘대충 독서’를 의미한다. 이렇게 하면 사고력 향상은 물론 지식습득조차도 기대하기 어렵다. 흔히 글을 잘 쓰기 위해 다독을 강조한다. 하지만 책을 빨리, 많이 읽는 것보다는 한권이라도 생각을 하면서 읽는 것이 논술 등 글쓰기에 더 도움이 된다. 박선이 이사는 “논술시험에서 처음 도입 때와 달리 갈수록 창의성이 중요해지고 있기 때문에 읽으면서 생각하는 습관을 기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면서 “책 열권을 빨리 읽는 것보다 한권을 제대로 읽는 것이 낫다.”고 조언했다. ●속독은 이해력·사고력 향상과 무관 최근 독서열풍과 맞물려 쏟아지는 각종 속독법에 대해 전문가들은 “사고력 향상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잘라 말한다. 한국독서지도연구회 임은정 회장은 “속독법을 통해 글을 읽는 속도는 향상시킬 수 있을지 몰라도 이해의 폭을 넓힐 수는 없다.”면서 “독서 속도는 이해력이 향상되면 자연히 빨라지는 것이지 편법을 동원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한국독서교육개발원 남미영 원장은 “속독법을 배운 아이들을 보면 창의력, 문제해결 능력뿐만 아니라 어휘력도 부족한 것으로 나타난다.”면서 “키워드를 중심으로 줄거리 파악 위주로 책을 읽기 때문에 이는 당연한 결과”라고 지적했다. 언어 심리학에서는 독서능력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은 시기에 속독을 위한 키워드를 뽑을 수 있다는 것 자체를 허구로 본다. 남미영 원장은 “독서능력이 형성되지 않은 시기에 속독을 배우면 독서습관을 망칠 수 있다.”면서 “필요에 의해 속독을 배우고자 할 때는 16세 이후가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독서습관 진단은 이렇게 속독을 가르치지 않더라도 여러 가지 요인으로 아이가 빨리, 대충대충 책을 읽는 경우가 많다. 책에 따라 소요되는 시간이 다른 만큼 단순히 ‘1권당 몇 시간’과 같은 기준으로 독서 속도를 진단할 수는 없다. 대신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집에서도 쉽게 아이의 독서습관을 파악할 수 있다. 우선 아이에게 그동안 읽은 책의 제목을 모두 쓰게 한다. 제목 옆에 각 책의 주인공 이름 등 관련된 단어를 적게 한다. 다시 그 옆에는 책 내용을 한두 문장으로 요약해 쓰게 한다. 제대로 독서를 한 아이라면 책 제목과 함께 관련 단어와 문장을 대부분 채워 넣을 수 있다. 반면 기억하는 책 제목 수에 비해 내용을 적은 수가 턱없이 적다면 아이가 ‘대충 독서’를 한 것이다.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 재미있는 책만 읽으려는 아이 ‘엄마찾아 삼만리’ 읽혀보길

    책을 지나치게 빨리 읽는 것을 비롯해 잘못된 독서습관들이 있다. 이를 바로잡는 방법과 도움이 되는 책을 소개한다. ●책을 대충, 빨리 읽는다면 우선 원인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아이와 대화를 통해 스스로 원인을 찾게 한다. 대표적인 이유는 읽어야 하는 양이 많아서다. 즉 부모가 “오늘은 이만큼은 읽어야 해.”라고 정해주면 그 목표량을 채우기 위해 빨리 읽게 되는 것이다. 책을 대여해서 읽을 때도 마찬가지다. 책 반납 날짜에 맞추기 위해 아이는 줄거리만을 파악하는 수준에서 책을 읽게 된다. 따라서 아이에게 책읽는 양과 시간으로 스트레스를 주지 말아야 한다. 독서 후에는 책에 대한 내용을 얘기하면서 책을 제대로 읽었는지 확인을 한다. 단 부모가 일방적으로 질문을 던지는 방법은 아이가 독서를 하나의 시험으로 생각하고 흥미를 잃을 수 있기 때문에 피한다. ●얕은 재미만을 찾는다면 독서를 하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재미 추구다. 하지만 아이가 여운과 감동이 동반되는 재미가 아닌 코미디, 폭력, 공포 등 얕은 재미만을 추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런 아이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미술관’(메리디스 후퍼 지음, 국민서관)이나 ‘엄마 찾아 삼만리’(아미치스 지음, 예림당) 등 재미는 물론 상상력과 감성을 자극할 수 있는 책을 권하면 좋다. ●책만 읽으려고 한다면 책을 읽지 않는 것이 걱정이지, 책을 많이 읽는 것도 문제일까. 다른 일은 제쳐놓고 책만 읽는 아이들의 경우 책 속의 주인공하고만 소통을 해 비현실적인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또 운동부족 등 건강 문제도 발생한다. 이런 아이들은 대부분 팬터지, 탐정류, 폭력물, 무협류를 주로 읽는다. ‘찔레꽃 울타리’(질 바클렘 지음, 마루벌) ‘미스 럼피우스’(바버러 지음, 시공사) ‘내가 채송화꽃처럼 조그마했을 때’(이준관 지음, 푸른책들)와 같은 책을 권하면 도움이 된다.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당선작-그로테스크 멜랑콜리, 상실에 대응하는 한 가지 방식(천운영의 소설세계)/차미령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당선작-그로테스크 멜랑콜리, 상실에 대응하는 한 가지 방식(천운영의 소설세계)/차미령

    진실이 나를 절망으로 밀어 넣으려 한다면 나는 단호히 거부할 것이다. ―천운영,‘포옹’ 천운영 소설에 대한 보다 정확히 말해,‘바늘’이 출간되고 난 후 이 작가의 첫 소설집을 중심으로 한 지금까지의 논의는 ‘엽기성’,‘동물성’,‘야생성’,‘야수성’,‘육식성’,‘파괴성’,‘공격성’,‘관능성’ 등의 키워드를 중심으로 진행되어 왔다. 천운영 소설에 이르러 우리 문학은 “가부장적 질서를 난도질하는 육체적 질감을 지닌 현장(김양선,‘기이하고 낯선 가족과 여성이야기’)”을 갖게 되었다는 식의, 지난 연대의 여성 소설과 천운영 소설을 구획짓고자 하는 시도가 여러 평문에서 발견되는 것은 그러므로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다. 불감증, 거식증, 불임, 도벽 등과 같은 히스테리적 징후로서만 즉, 부정으로서만 여성 소설의 위반성을 거론할 수 있었던 지난 연대와는 달리,“맹수의 이미지를 띤 여성인물들(황종연,‘탈승화의 리얼리즘’)”은 유례없이 “전복적이고 파괴적인(황도경,‘환상 속으로 탈주하라’)”힘을 독자들에게 보여주었던 것이다. 이 작가의 차기작에 대한 관심이 “신선한 살과 피를 원하는 이 짐승의 다음 먹잇감은 무엇이 될 것인가(남진우,‘늑대의 후예’)”쯤으로 표현되는 것이 지금은 전혀 어색하지 않을 정도이다. “육체적 질감”,“신선한 살과 피” 등의 앞서 인용한 비평적 수사에서 은연 중 드러나듯, 천운영 소설이 보여 주는 이러한 특징은 무엇보다 그 생생한 현장감에 힘입은 바 크다. 그러나 이제는 잘 알려진 ‘발로 쓰는’ 이 작가의 스타일이나 그로 인한 생동감 넘치는 디테일의 창출에도 불구하고, 천운영이 정작 공들여 반복해서 말하고 있는 것은 그가 취재한 세계, 바로 그 곳으로부터 도출되지는 않는다. 아무리 직접 회를 뜨고, 야나기상의 문신을 보고, 소머리 가르는 접칼을 쥐어도, 작가의 시선은, 장어를 다루는 횟집 주방장의 손놀림에서 텅 빈 수족관 앞에 망연히 앉아 있는 그의 ‘아내’에게로, 남자의 육체에 수놓아진 화려한 거미 문신에서 문신사의 자살한 ‘어머니’에게로, 뼈와 살이 갈려진 소머리에서 우시장 노동자의 ‘할머니’와 ‘연인’에게로 이동한다. 한 세밀한 묘사가 담고 있는 내용이 작품의 전체적인 의미를 좌우하는 데까지 미치지는 못한다는 어쩌면 당연한 사실 앞에서, 우리의 포커스 또한 이동할 때가 된 듯하다. 예컨대, 다음과 같은 질문들;천운영 소설의 세밀한 묘사와 이에 기반한 그로테스크한 이미지에 가려 미처 드러나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 저토록 야수적이고 공격적이며 파괴적인 인물들 내면에는 과연 무엇이 자리하고 있는가? 작가의 두 번째 창작집 ‘명랑’이 출간된 지금, 우리가 시도해야 할 작업은 엽기성과 파괴성의 이면 혹은, 공격성과 야수성의 연원을 추적해 들어가 보는 것이다. 그렇다면 먼저 그 그로테스크함으로 인해 앞서 언급한 비평적 키워드들의 시발점의 하나가 되었던 천운영 소설 인물들의 ‘몸’으로부터 출발해 보자.“감각적이고 물질적인 신체를 보여(심진경,‘아름다움과 추함을 가로지르는 섹슈얼리티의 모험과 위반’)”주면서 “몸의 해부학적 묘사라 할 만큼 유난히 신체에 대한 묘사에 집착(황도경, 앞의글)”한다고 평가받는 이 작가의 소설에서, 몸, 그것으로부터 다시 시작해 보는 것이다. 그러나 이 글에서 주목하는 몸의 일부는 얼굴이 아니다. 바로 ‘등’이다. 우리 중 누군가 자신의 ‘등’의 진짜 모습을 본 사람이 있을까. 등은 인간의 육체를 지탱하는 가장 중요한 부분이지만 사람들은 대개 죽을 때까지 자신의 등의 실제 모습을 모르고 산다. 심지어 거울 앞에서도. 그 실재를 파악할 수 없다는 점에서 그것은 무의식의 세계를 은유하고 있으며, 나조차 알지 못하는 이면을 타자는 볼 수 있다는 인식은 불안과 공포의 근원으로 자리한다. 만약 자신의 등이 “굽은 등”이고, 자신이 “곱사등이”이라면, 그 불안과 공포는 피할 수 없는 것이 된다.‘포옹’의 ‘나(인경)’는 “평면만을 보여주는 거울의 기만성(1:213, 이하 괄호안의 표기는 수록소설집:페이지수)”을 충분히 알고 있다.“그렇게 화장을 하고 차려 입으니 너무 예쁘구나(1:213)”라는 거울 속 어머니의 말은 그러므로 거짓이라는 것도. 일찍이 멜라니 클라인이 말한 대로 거울의 드라마가 막을 내릴 때 더 이상 엄마의 일부분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는 아이의 고통은 원초적인 것에 육박하지만, 거울이 제공하는 이 기만적인 나르시시즘은 자기정체성을 구성해 내고, 거울을 통과한 후에야 아이는 자신을 3인칭으로 말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굽은 등을 보기를 두려워하는 인경은 여전히 엄마의 일부일 때에만 완전하다고 느낀다. 그녀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진실이 아님을 알고 있으면서도 아니, 그것이 진실이 아니기 때문에 여전히 “엄마 품에 안겨 거울 속 나를 바라보(1:213)”며, 자신의 뒷모습이 “백지”로 남기를 바란다. 진실이 절망을 가져다준다면 그 진실을 단호히 거부하는 것, 그것은 자신이 불완전하다고 믿는 그녀가 불우한 삶을 견뎌 내는 일종의 방법론이다. ‘포옹’에서 인경의 등은, 어머니를 제외한 그 누구도 손대기를 꺼려한다는 점에서는 나조차 어찌할 수조차 없는 내 안의 괴물―‘바늘’에서 곱추를 연상시키는 ‘나’의 등이나,‘숨’에서 육식동물을 연상시키는 할머니의 단단한 등뼈를 보라―이지만, 거꾸로 누군가의 손길을 간절히 요구한다는 점에서 소통을 불러오는 몸의 유일한 창구가 된다.“어느 누구도 자신의 등을 쓰다듬을 수는 없는 법이며, 타인만이 그 등을 쓰다듬고 보듬어 줄 수 있”(‘등뼈’)다는 소설 속의 한 전언은 천운영 소설에서 타인과의 소통이란 것은 곧 위무의 다른 말이라는 사실을 암시한다. 자신은 볼 수조차 없지만 타자는 볼 수 있으며, 자신은 안아주고 보듬어 줄 수 없지만 타자는 안아주고 보듬어 줄 수 있기 때문에,“아내의 굽은 등”“할멈의 굽은 등”(‘행복 고물상’)에서 번져 나오는 고독감은 남편과 이웃에게 연민을 불러일으키고, 지친 이를 위로하는 가장 좋은 방편은 “등을 쓰다듬어 주는” 것(‘멍게 뒷맛’)이며, 위로받는 가장 좋은 방법 또한 “등을 내맡기는”(‘아버지의 엉덩이’) 것이다. 천운영 소설에서는 환상 속에 잠깐 이루어진 만남 또한 “등을 만졌던 것 만 같다”(‘월경’)라고 표현된다. 이런 식이라면 타인에 대한 분노나 타인으로부터의 외면은 등을 돌리거나, 등을 치는 것으로 그려질 성싶다. 마치 아버지를 경멸하는 아들이 제 아버지의 “등을 쏘아 보”고, 그 아버지의 “등짝을 후려”치고 싶어 하는 것(‘아버지의 엉덩이’)처럼, 친구들이 대항할 힘도 없는 ‘나’를 “등을 밀쳐 땅바닥에 넘어뜨리”던 것(‘세번째 유방’)처럼, 살인 장면의 마지막 기억이 “남자가 정말 당신 등을 밀었다”(‘멍게 뒷맛’)로 남게 되는 것처럼. 그러나 무엇보다 천운영 소설에서 등은 대부분 대상­타자를 상실할지도 모른다는 작중인물의 불안을 담고 있다. 등을 돌린 사람 혹은, 돌아선 사람의 등에 대한 이를테면 다음과 같은 사례들;“등을 돌리고 누워”있는 남편 뒤에서 그의 아내는 “침묵하는 당신(남편)의 등”을 바라보며 그 “등이 언제든지 떠날 준비가 되어 있다”고,“왜소한 그 등을 보이고 당신은 영영 돌아오지 않을 것만 같다”(‘당신의 바다’)며 견딜 수 없어 한다. 연인들의 연애의 끝은 또 어떠한가. 꿈 속에서 골목을 헤매던 여자는 길 모퉁이에서 “남자가 등을 보이고 서 있”는 것을 발견하고 다가가지만 모퉁이를 돌면 새로운 모퉁이만 계속해서 나타날 뿐이고(‘모퉁이’), 연인에게 입 맞추던 여인은 “등을 보이고 돌아”선 후 그로부터 “점점 멀어진”다(‘세번째 유방’). 이렇듯 도저한 상실감이 등의 이미지를 빌려 가장 성공적으로 형상화된 소설은 그 표제가 아예 ‘등뼈’이다. “여자가 떠났다”라는 간결한 문장으로 시작되는 ‘등뼈’는 자신에게 맹목적으로 집착하던 여성이 떠난 이후 전개되는 남성의 황폐한 내면풍경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아무런 징후나 예고도 없이 순식간에(1:138)”라는 구절에서 강조되고 있듯이, 여자의 실종은 너무나 갑작스러운 것이어서 남자에게 그것은 “떠난 것이 아니라 증발한 것(1:143)”에 가까우며, 남자는 당연히 여자의 그러한 증발에 대비할 수 있는 아무런 준비도 해 놓지 못한 채이다. 그러나 “그때 왜 여자의 등을 쓰다듬어주지 못했을까(1:148)”라는 소설 속의 한 구절을 제외한다면 남자가 여자의 사라짐을 안타까워하는 모습은 쉽사리 발견되지 않는다. 대신 남자는 특이하게도 “여자가 떠난 뒤 살 속에 숨은 뼈에 집착하기 시작(1:150)”한다. 주위 사물들에서 뼈를 연상해 내고(1), 원인을 알 수 없는 요추디스크로 고통받다가(2), 급기야 뼈를 찍은 엑스레이 필름을 닥치는 대로 모으며(3), 결국 아무런 식욕조차 느끼지 못하게 되어 그의 몸엔 뼈만 두드러지게 된다(4). 여자가 떠난 후 이 남자가 보여주는 모든 증상((1)∼(4))은 그러니까 ‘뼈’에 대한 집착으로 수렴된다. 그런데 왜 하필 ‘뼈’일까? 등에 통증이 느껴졌다. 손을 돌려 등을 만졌다. 손끝에 등뼈 마디마디가 분명히 잡혔다. 남자는 욕조에서 기어 나와 거울 앞에 섰다. 거울에 서린 김을 걷어내자 남자의 퀭한 얼굴이 보였다. 광대뼈가 툭 튀어 나오고 눈이 쑥 들어간 낯선 사람이 거울 속에 들어 있었다. 남자는 가까스로 몸을 움직여 거울에 등을 비추어보았다. 등골이 패고 뼈가 튀어나온 등이 어렴풋이 보였다. 여자가 그 등뼈에 숨어 남자의 등을 하염없이 쓰다듬고 있었다.(1:158) ‘뼈’에 대한 남자의 집착은 그의 일상을 와해시키고 결국 그 자신을 말 그대로 뼈만 남게 만들어 버리는데, 사라진 여자가 등뼈는 말할 것도 없고 광대뼈, 턱뼈, 어깨뼈, 복사뼈까지 유난히 뼈가 도드라졌으며 식성도 특이해서 생선뼈, 닭갈비뼈, 조개껍데기와 같이 뼈에 붙은 살들만을 골라 먹었다는 사실로 미루어 볼 때, 이러한 남자의 집착은 그녀에 대한 남자의 무의식적 동일시 즉, 사라진 대상을 불완전하게나마 보유하고자 하는 멜랑콜리적 동일시가 빚어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사랑하는 대상이 사라지면 누구나 그 대상에 대한 집착을 어느 정도 유지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일정한 시간이 흐르면 현실적인 요구와 함께 대상에 투자되었던 리비도는 다시 회수된다(프로이트,‘애도와 우울’). 이것이 상실된 대상에 대한 상식적인 ‘애도’의 과정이다. 그러나 상실된 대상에 대한 리비도가 너무나 강해서 현실에서 상실된 대상을 대체할 만한 다른 대상을 찾지 못할 때, 주체는 상실된 대상을 내면화(internalization) 혹은 합체(내적 동일화,incorporation)함으로써 계속 보유하고자 한다(J 버틀러,‘멜랑콜리적 젠더/거부된 동일시’). 결코 재현될 수 없는 상실된 대상은, 이러한 과정을 통해 살아 있는 현재로 끊임없이 소환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남자가 가까스로 거울에 비춰본 자신의 등에서 “여자가 그 등뼈에 숨어 남자의 등을 하염없이 쓰다듬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는 환상으로 처리되는 소설의 마지막 장면은 이러한 맥락에서 음미해 볼 만하다.“뼈가 튀어나온 등”은 현재의 환상 속에서 과거의 상실된 대상과 남자가 조우하는 장소로 공간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천운영 소설의 인물들은 이처럼 상실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측면에서, 그리고 그 저항이 지극히 위장된 형태로 드러난다는 점에서 멜랑콜리적 주체의 성격을 상당 부분 공유하고 있다. 상실로 인한 슬픔이 애도로 승화되지 못한 원인은 무엇보다 이들이 도저한 상실감의 원인이 된 대상에 대해 ‘의식적으로는’ 알지 못한다는 데 있다. 그리하여 환상 속에서조차 대상과의 만남이 허락되지 않을 때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는 “난폭한 짐승(2:119)”이 출몰하게 된다. 이 “난폭한 짐승” 혹은,“광포한 짐승” 혹은,“제 속에 든 짐승”은 인물들 특히, 여성인물들을 숨이 차도록 달리게 만들기도 하고, 그녀들에게 무서운 식욕을 부추기기도 한다. 다음을 보라:애도할 만한 죽음이 나타나면 여자 속에 숨은 짐승도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무언가 슬픈 일이 일어나기를, 짐승을 다스릴 만한 제물이 나타나기를 여자는 빌었다(‘모퉁이’, 강조 인용자).“애도할 만한 죽음”이 여자 속 숨은 짐승을 사라지게 하고,“무언가 슬픈 일”이 그 짐승을 다스릴 것이라는 저 여자의 내면이 가리키는 것은, 자신의 상실감의 원인이 되는 대상이 앞에 있다면 그 상실을 치유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막막한 기대이다. 통제 불가능한 내면은 분명 무언가의 상실로부터 비롯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상실된 대상은 이미 존재하지 않는다, 상실된 대상이 눈 앞에 있어 이를 애도할 수 있다면 자신도 어찌할 수 없는 내면을 잠재울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 기억-내용은 이미 소실되었으되 기억-감정이 남아 있어 유사한 심리적 기제가 주어지면 어김없이 리비도가 투자된다. 그러나 그 대상이 상실된 바로 그 대상은 아니기에 상실의 흔적은 그녀들에게 애도해야 할 무언가를 끊임없이 요구한다. 애초에 존재하지조차 않았던 남자의 유골을 뿌리러 제주도로 향하는 여자(‘포옹’)가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 또한 바로 그것이다. 천운영의 소설들에서 누군가의 죽음 혹은 (갑작스러운) 사라짐은 서사를 이끌어 가는 가장 기본적인 모티프이다. 이 작가의 어느 작품을 들춰 보아도 이 점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명랑’‘아버지의 엉덩이’‘세번째 유방’에서는 할머니가,‘바늘’‘명랑’‘월경’‘당신의 바다’에서는 아버지가,‘바늘’‘멍게 뒷맛’‘월경’‘아버지의 엉덩이’에서는 어머니가,‘숨’‘그림자 상자’에서는 양친부모 모두가,‘등뼈’‘멍게 뒷맛’에서는 여자가,‘모퉁이’에서는 연인이,‘당신의 바다’에서는 남편이 죽거나, 실종되거나, 아무런 예고 없이 주인공 곁을 떠난다. 이러한 상실이 대개 가장 기본적인 삶의 단위인 가족 관계에서부터 발생한다는 것은 이렇게 열거한 목록에서도 금방 포착되는데, 그 중에서도 두드러지는 것은 아버지와 어머니(할머니)의 빈자리이다. 천운영 소설이 가족관계 안에서의 갈등을 그 기본 축으로 하면서도 ‘모퉁이’‘그림자 상자’‘세번째 유방’을 제외하면 형제나 자매를 전혀 찾아 볼 수 없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 소설들에서마저도 언니, 오빠, 동생은 화자를, 부모 특히 어머니 곁에 가까이 할 수 없게 만드는 경쟁자로서만 그 의미를 지닌다. 천운영 소설 속 주인공들의 어머니에 대한 집착 혹은 애증은 그 유례를 찾아 보기 힘들 정도로 강렬하다. 최근 한 평론에서는 천운영 소설의 두드러진 특징 중의 하나로 ‘부재하는 아버지’가 거론되었거니와(남진우, 앞의 글), 이 논자의 지적대로 무능하고 비루한 아버지의 초상은 이 시대 거세된 남성성의 표상이라 할 만하다. 물론 아버지가 부재한다는 사실 그 자체로는 그리 특별할 것이 없는지도 모른다.‘부재하는 아버지’는 실로 오랫동안 우리 소설의 한 테마였고,‘아비-부재’,‘아비-찾기’,‘아비-되기’,‘아비-부정’의 기나긴 순환 속에서 우리 소설의 주인공들은 그 정체성의 근거를 상실할지도 모른다는 존재론적 불안과 함께 지금껏 성장해 왔다고 해도 그리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천운영 소설에서 아버지의 죽음, 그 부재의 효과는 말 그대로 그저 ‘없음’에 불과한 경우가 대부분이라 특징적이다. 아버지의 위치가 지극히 주변화되어 있음에도, 이 작가의 소설에 등장하는 아들들에게서는 그에 대한 어떠한 연민도, 이를 복권하려는 의지도, 스스로 가부장으로 전신하고자 하는 충동도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천운영 소설에서 강력한 입법자로서의 아버지란 ‘세번째 유방’의 아버지를 빼고는 찾아보기 힘들며, 심지어 ‘아버지―법’은 “어머니를 닮은 부라보콘”에게까지 자리를 내준다(‘눈보라콘’);“오직 부라보콘만이 내 운명에 관여할 수 있는 존재(1:90)”다.‘∼하지 말라’가 사라진 자리에서, 가위를 든 “이발사” 아버지가 사라진 바로 그 자리에서,‘나’는 어머니를 마음껏 향유하고자 한다.‘눈보라콘’에서 부재하는 아버지는 그러므로 이후 도래할 어머니의 빈자리를 보다 선명하게 부각시키기 위한 하나의 장치에 그치게 된다. 또 다른 남성 주인공이 등장하는 ‘아버지의 엉덩이’에서도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다. 아버지는 느낄 수 없을 만큼 고개를 돌렸다가 다시 텔레비전을 본다. 나는 신경질적으로 상을 내려놓고 아버지의 등을 쏘아 본다. 텔레비전 화면에는 쇼핑호스트가 플라스틱 밀폐용기를 소개하고 있다. 앞치마를 두른 쇼핑 호스트는 크기가 각기 다른 밀폐용기를 쌓아놓고 얼마나 저렴한지에 대해 과장되게 말하며 전화주문을 유도한다.(……) 아버지는 냉장고에 뭐가 들었는지 관심도 없으면서 조금씩 내려가는 숫자판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다.(2:172) 위 장면의 등장인물의 성(性)을 여성으로 치환시켜 놓으면 즉, 아버지와 아들의 식사장면이 아니라 어머니와 딸의 그것으로 바꾸어 놓으면, 우리 눈 앞에 매우 익숙한 광경이 펼쳐진다. 늙은 어머니가 “텔레비전”을 보고 있다, 딸이 “상”을 차려 들어간다, 어머니의 모습에 “신경질”이 난 딸은 그녀를 “쏘아 본다”, 텔레비전에서는 “플라스틱 밀폐용기”를 선전하는 “홈쇼핑” 프로그램이 한창이다, 어머니는 숫자판에 넋을 놓고 있다. 그러나 이 장면의 주인공은 분명 아버지와 아들이다. 홈쇼핑 중독자인 아버지의 “게걸스런 주문과 반품”이 “외출”로 이어지는 이 소설은 우리가 익히 보아왔던 히스테리 여주인공이 등장하는 소설 혹은 홈드라마의 역전된 판본이라 할 만한다. 그러나 이 장면을 언급한 것은 이 시대의 ‘아버지 부재’를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다. 아버지는 그렇게 존재한다. 아버지의 ‘엉덩이’라는 발칙한 상상력이 말해 주듯이 다만,‘어머니 부재’로 세계의 중심을 잃어버린 한 “엄마”의 아들로서만, 아버지는 그렇게 존재할 뿐이다. 이 소설의 아버지와 아들, 두 남성 주인공을 움직이는 숨은 작인은 아버지가 아니라 부재하는 어머니이다. 자신의 어머니 묘소 앞에서 “이제 막 탯줄을 끊고 세상에 나온 갓난아이처럼 우는(2:166)” 아버지는 물론이고, 태어나자마자 잃어버린 “따뜻한 자궁(2:167)”을 그리워하는 아들 역시 포도나무 가지에서조차 “침묵하며 나를 바라보는 할머니(2:182)”를 발견한다. 이들 부자(父子)에게 ‘부재하는 어머니(할머니)’는 모성적 초자아(maternal superego)의 형상으로 그녀의 아들들을 조종한다. 남성인물을 움직이는 모성적 초자아의 형상은 ‘숨’에서는 ‘차가운 자궁’의 이미지를 빌려 섬뜩하게 변주된다. 할머니를 설득하는 마지막 방편인 송치를 구하기 위해 주인공 ‘나’가 불법적인 물먹이기를 감행하다가 경찰에 발각되어 도망치는 대목에서, 단속반의 추격을 피해 숨어든 장소가 높이 2미터, 영하 20도의 “거대한 냉장창고”라는 점을 쉽게 지나쳐서는 안 된다. 그 추격의 장면이 마치 사냥의 한 대목처럼 그려지고 있다는 점―할머니가 “육식동물”이라는 점을 상기하자―, 이 발각으로 인해 할머니의 의사를 거스른 미연과의 결혼이 틀어질 위기에 처한다는 점, 그 안에서 ‘나’는 입을 틀어막은 채 “숨을 죽여(1:55)”야 한다는 점 등은 이 냉동고가 ‘나’에게는 공포 그 자체일 수밖에 없는 ‘얼어붙은 자궁’이 물질화된 것임을 암시한다.‘숨’에서 아들을 숨죽이게 만드는 냉동고가 이처럼 은유적 차원에서 자궁의 부정적 이면을 함축하고 있다면,‘행복고물상’에서 그것은 “유산된지도 모르고 보름 동안이나 자궁 속에 죽은 아이를 넣고 다녔던(1:162)” 아내를 빌려 실체화되고 있기도 하다. 자궁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이나 자궁을 연상케 하는 이미지는 천운영의 소설들에서는 빈번하게 출물하면서 작품의 기저음의 일부를 이루고 있다. “당신을 둘러싼 바다 밑바닥 같은 어둠”(‘당신의 바다’)과 같은 표현에서 볼 수 있듯이, 천운영 소설에서 어둠, 바다는 의미론적인 층위에서 긴밀한 연관관계 속에 놓이는 경우가 흔하며,“깊은 어둠(1:195)”,“어두운 바닷 속으로 깊숙이(1:139)”,“바다 깊숙한 곳(1:156)”,“물 속 깊숙이(1:158)”,“깊은 바다로 침잠(1:136)” 에서와 같이 곧잘 하강 혹은 침잠의 이미지와 함께 나타나는데, 이 모든 것이 궁극적으로 가리키는 최종지점에 어머니―모체―자궁이 자리한다.“탄생 이전의 따뜻한 양수 속으로 돌아가고 있는” 할머니(‘명랑’)나,“태아처럼 몸을 구부리”고 “어머니의 자궁처럼 포근해진 어둠”을 즐기는 아이(‘유령의 집’)는 천운영 소설의 주인공들에서 발견되는 모체―자궁으로의 회귀욕을 보다 직설적으로 드러낸다. 천운영 소설에 등장하는 위와 같은 사례들에서 다음과 같은 해석들을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무력한 아버지를 대체하는 어머니에게서 아버지-법에 내포된 헤게모니의 일시적인 전복을 읽어낼 수도 있고, 성적 관계의 절대적 방해자로 나타나는 할머니로부터의 탈출을 꿈꾸는 손자의 서사를 아버지―질서의 외부를 꿈꾸는 딸의 서사의 역전된 판본으로 체감할 수도 있으며, 빈번히 등장하는 자궁 회귀욕으로부터 주체―대상의 이분법에 이전하는 원초적 충동으로서의 모체 회귀욕을 지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위 소설들에서는 그것이 의존성이건, 억압이건, 회귀이건 간에 어머니의 부재가 스토리―시간 내에서 발생하는 경우는 드물며, 발생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죽음(‘아버지의 엉덩이’)이나 재혼(‘눈보라콘’)을 매개로 하여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 자체로 버려짐이나 내쳐짐의 쓰라린 감각을 동반하지는 않는다. 대상―타자의 상실을 ‘버려짐’으로써 격렬하게 경험하는 인물들은 무엇보다 ‘바늘’‘멍게 뒷맛’‘월경’‘모퉁이’에 등장하는 여성인물들이다. 울음보가 터졌다. 엄마의 뒷모습을 보는 순간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다락 계단을 기어오르면서부터 나는 이미 울고 있었다. 코피가 나올 것처럼 콧잔등이 매큼해지고 입술은 움찔움찔 울음을 품었다. 엄마는 내 울음소리에도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엄마는 뒤도 안 돌아보고 걸었다. 내 울음이 엄마를 돌려세울 수 없다는 것은 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울음을 그칠 수는 없었다.(2:100) ‘모퉁이’는 주인공 ‘나’가 ‘엄마’와 헤어지는 인상적인 장면으로부터 시작한다. 이 장면에서 엄마를 잃어 비통한 한 소녀의 심사는,14줄에 걸쳐 집요하게 서술된다. 마치 그것을 영원한 이별이라 예감하는 듯이 소녀는 줄기차게 울어댄다. 그러나 소녀가 그토록 떠날까봐 전전긍긍하는 엄마는 단지 아빠의 공장에 밥을 가져다주러 나선 길일 뿐이다. 매일 반복되었을 이 일상적인 엄마의 떠남 앞에서 소녀는 한참동안 울음을 멈추지 않는다. 심지어 엄마를 자신으로부터 떼어놓는다고 생각되는 존재는 “뱃속의 아이”라도 저주하는 소녀,“엄마가 없으면 당장이라도 죽을 것처럼 악을 쓰고 울었(2:112)”던 그 소녀,“우는 것만이”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2:105)”이었던 바로 그 소녀는, 성인이 되어서도 “남자”에게는 여전히 “울음소리”로 존재한다.‘멍게 뒷맛’,‘바늘’에서 역시, 어머니와의 이별은 언제나 이미 되돌릴 수 없는 것이며, 성장한 그녀들이 겪는 모든 상실의 밑그림이 된다. 엄마들은 결국 떠난다. 엄마가 떠난 길목을 바라보며 꼼짝도 못하고 있던 그날을 기억하는 ‘나’(‘바늘’)나, 좋은 옷을 차려 입고 기차에 올랐을 때부터 이미 엄마에게 “버려질 것”을 짐작하고 있었던 ‘당신’(‘멍게 뒷맛’)은, 그런 점에서는 모두 닮은 존재들이다. 이 세 작품에 비해 어머니의 비중이 미미하게 그려진 ‘월경’에서조차, 주인공 ‘나’는 어머니의 화사한 보석함에, 손톱 자른 것, 빠진 머리카락, 상처에서 떼어낸 딱정이와 같이 제 몸에서 떨어져 나온 것들을 모아둠으로써, 뿌리깊은 분리 불안을 드러낸다. 이 소설들에 등장하는 여성 주인공들은 어린시절, 주로 어머니로 대표되는 대상-타자에게 강렬한 애착을 가지고 있었으되, 필연적으로 그 애착이 거부(혹은 금지)됨을 경험한다. 가령,‘모퉁이’에서 그것은 금지의 양상(“엄마의 가슴이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엄마는 젖무덤을 헤치는 내 손을 단호하게 뿌리쳤다. 나는 엄마의 매정한 손이 야속했다. 엄마는 내게 동생이 생길 거라고 했다. 동생이라는 단어를 듣는 순간 나는 되우 맞은 사람처럼 휘청거렸다(2:109)”)으로,‘바늘’에서 그것은 거부의 양상(“엄마가 내민 보자기에는 꽤 많은 돈뭉치가 들어 있었다. 그리고 엄마는 스님의 옷을 들고 집을 나섰다.‘나는 그곳으로 가야겠다.’ 엄마가 마지막으로 내게 남긴 말이었다.(1:24)”)으로 전면화된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금지/거부에도 불구하고 그녀들의 욕망은 부인된 형태로 여전히 잔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할머니를 갑작스러운 사고로 잃은 뒤 그녀의 뼛가루를 생전의 할머니가 명랑가루 먹듯 맛보는 손녀가 “내 내부에는 언제나 나를 바라보며 침묵하는 그녀가 있다(2:37)”고 고백하는 것(‘명랑’)처럼, 상실이 일어났을 때 상실을 부인하고 상실된 대상의 속성을 취하여 이를 내면화하는 것이 천운영 소설에 등장하는 멜랑콜리적 주체의 생존전략이라고 한다면,‘바늘’과 ‘월경’의 ‘나’는 바로 그 길을 간다. ‘바늘’과 ‘월경’은 각각 그로테스크한 인물 묘사와 도착적인 섹슈얼리티로 인해 발표된 직후부터 유독 많은 평자들의 주목을 받아 온 작품들이다. 이 글의 관점에서 역시, 두 작품은 매우 흥미롭게 읽힌다. 이 글을 마무리하는 지점에서 두 소설을 집중적으로 되짚어 보고자 하는 이유는 다음의 몇 가지 단서들로부터 비롯한 것이다. 먼저 두 소설 모두 여성 화자들이 이미 유년기를 통과한 이후임에도 여전히 아동인 것처럼 그려지고 있으며 또한 공히 인물이 비성적인 단계―통상적인 의미로―에서 성적인 단계로 이행하는 순간을 문제 삼고 있다는 점, 인물들은 각각 어머니(‘바늘’) 혹은 아버지(‘월경’)와의 이별을 하나의 트라우마로 간직하고 있으며 이와는 대조적으로 반대성(性)의 부모는 거의 무시되고 있다는 점 등이 그 단서들로, 이로부터 우리는 천운영 소설에 나타나는 도저한 공격성(/도착성)의, 이면(/연원)을 다시금 집약적으로 확인해 볼 수 있을 듯하다. 왜냐하면 ‘바늘’과 ‘월경’에서는 여성 주인공들이 어린 시절 겪어야 했던 한 쪽 부모의 상실이 그녀들의 자아정체성의 형성에 결정적인 기제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작가의 데뷔작이자 출세작인 ‘바늘’에서는 그로테스크한 삽화가 여러 번 반복해서 등장하는데, 그 중에서도 다음의 세 장면은 특히 문제적이다;(1)먼저, 죽어가는 새끼고양이. 간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절에서 살던 시절 ‘나’는 “어미고양이의 날카로운 울부짖음(1:20)”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단 일초의 망설임도 없이” 새끼고양이를 변기통에 버리고는 그 변기통 속으로 고양이가 자취를 감추는 모습을 “오랫동안” 바라보았다.(2)다음으로, 전쟁기념관에서의 상상. 전쟁기념관에서 ‘나’는 전시된 무기들을 하나씩 꺼내 스님을 공격하는 불온한 상상을 해보지만 스님의 심장이 관통당하고 내장이 갈가리 찢기고 발에서 피가 솟구쳐도, 그녀는 결코 만족하지 못한다.“좀더 강인하면서 잔인한”“엄마가 할 수 있는 그런 방법(1:21)”이 아니었기 때문에.(3)마지막으로, 어머니의 자살 소식 직후 행해지는 육식. 형사로부터 어머니의 자살 소식을 전해 들은 ‘나’는 의연히 수화기를 내려놓고 고기 한 점을 집어 먹으며, 바위에 찢긴 엄마의 모습을 떠올려 보지만 ‘나’의 머릿속엔 “여자의 하얀 알몸만 떠오를(1:31)” 뿐이다;상식적인 수준에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행위들이 무대화되고 있는 이 세 장면을 이해하기 위하여, 그러니까 ‘나’의 공격적인 행위의 메커니즘을 해명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 보자. 첫 번째 장면에 대한 질문 하나. 어미고양이에게서 떨어져 나와 변기통 속으로 빠져 들어간 새끼고양이는 마찬가지로 버려진 ‘새끼’인 ‘나’의 분신과 다름 없을 터. 그렇다면 이 장면은 ‘나’에게 지극한 고통을 유발했을 것임에도 왜 ‘나’는 이를 스스로 자행하며 게다가 “오랫동안” 지켜 볼 수 있었던 것일까? 마조히스틱한 쾌감 때문에? 그러나 문제는 그리 간단치 않다. 상실이 곧 결핍을 부른다는 오래된 통념은, 천운영 소설의 인물들 앞에서 수정되어야 할지도 모른다. 자아가 포기된 대상의 심리적 저장고이며 상실된 대상은 구성적 동일시의 하나로 자아 안에 거주하면서 자아와 함께 출몰한다는 사실은 일찍이 프로이트가 ‘자아와 이드’에서 기술한 바 있으며, 버틀러는 그러하기에 사랑하는 대상을 떠나보낸다는 것은 대상을 완전히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대상의 위상을 외부적인 것에서 내부적인 것으로 전이하는 것이라 지적한 바 있다(J 버틀러, 앞의 글). 즉, 상실에 대처하는 멜랑콜리적 전략은 역설적이게도 상실 자체를 무화하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나’가 새끼고양이를 변기통 속에 버릴 수 있었던 까닭으로 이미 그녀의 자아 안에, 거부된 애정의 대상으로서의 어머니가, 멜랑콜리적 동일시를 통해 그 자아의 일부로서 함께하고 있다는 사실을 제시할 수 있을 듯하다. 어머니는 내 안에서 나와 함께, 숨쉰다! ‘나’의 행위에서 ‘나’의 위치와 어머니의 위치가 이중적으로 얽혀있는 것은 이러한 내면화의 결정적인 증거다. 버려짐과 버림을 동시에 구현하는 새끼고양이의 에피소드는 물론이고, 스님을 잔인하게 공격하는 상상이나, 자살 소식 직후의 육식 또한 마찬가지의 메커니즘 아래에서 작동한다. 스님을 공격하는 것은 자신으로부터 어머니를 빼앗아간 존재에 대한 응징이라는 점에서 그 일차적 의미가 있지만, 그 방식은 어머니가 자신을 버렸던 방법 혹은 어머니가 스님을 살해했던 바로 그 방법에는 미치지 못하기에 ‘나’는 그 잔인함에도 불구하고 만족할 수가 없다.‘나’가 공격으로부터 성취하고자 하는 것은 그녀의 내부에서 그녀와 함께 공존하는 어머니의 시선 바로 그것을 체현해 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고기 한 점을 씹어 삼키면서 찢겨진 엄마의 모습을 상상하는 그녀로부터 우리는, 어머니가 여전히 ‘나’에게는 알몸의 여자로 현현하는 에로틱한 대상이라는 사실을 유추함과 동시에,“상실하기보다는 차라리 조각내고 분해하고 자르고 삼키고 소화하고”자 하는 곧, 대상을 먹음으로써 그 대상을 제 안에서 부활시키고자 하는 멜랑콜리적 식인 행위의 환상(J 크리스테바,‘검은 태양’)의 한 풍경과 마주하기에 이른다. 정신이 아득해져온다. 가슴 한쪽에서 뜨거운 덩어리가 솟구쳐 올라온다. 나는 방으로 뛰어들어간다. 그리고 그가 했던 것처럼 팔을 마구 휘두르기 시작한다. 누구를 향해 팔을 휘둘렀는지 모른다. 푸른 모자가 튀어오른 것 같기도 하고 계집의 찢어지는 목소리를 들은 것도 같다.(1:83) ‘바늘’에서와 같이 유년기를 통과한 이후에도 여전히 아동으로 남겨진 듯한 여성 주인공은 ‘월경’의 ‘나’로 재등장한다.‘월경’의 ‘나’는 스무살을 코앞에 두고 있지만 어른과 아이의 경계를 월경(越境)하지 못한 채 바로 그 경계 위에 서 있다.‘나’의 말을 빌리자면 ‘나’의 “몸은 작정이라도 한 듯 자라기를 멈추었다(1:62).” 이 소설의 주된 관심사가 바로 그 경계를 넘어서는 한 순간에 있다는 것은 제목에서부터 암시되는 바다. 그런데 ‘바늘’과 마찬가지로 한쪽 부모의 상실을 초점화하고 있는 이 소설을 전작 옆에 나란히 놓고 따져볼 때 새롭게 부각되는 측면이 하나 있으니, 그것은 그 상실이 ‘나’의 젠더 정체성 형성에 개입됨으로써 ‘나’의 젠더 정체성을 매우 불안정하게 구조화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월경’에서는, 천운영 소설에서는 이례적으로, 어머니의 떠남이 아니라 아버지의 떠남이 ‘나’에게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으며,‘나’가 떠나버린 아버지를 하나의 이성으로 욕망하는 것처럼 보이는 대목 또한 수차례 등장한다. 그녀가 아버지를 아버지라 칭하지 않고 ‘그’라고 지칭하는 것이 바로 이러한 인상을 강화하는데, 이러한 이유 때문에 이 소설은 일렉트라 콤플렉스의 천운영식 판본으로 받아들여지기 쉬울 듯하다. 그러나 프로이트에게 이성부모에 대한 근친상간적 욕망과 그 욕망의 금지가 여아에게 여성성을 최종적으로 선사하는 것과는 달리 이 소설에서 ‘나’의 젠더 정체성은 오히려 남성의 그것에 가깝게 드러나고 있어 차별적이다. 즉,“가슴도 가슴이지만 계집의 엉덩이는 정말 탐스럽다. 표주박 두 개를 나란히 놓은 듯 완만한 곡선을 이루다가 툭 불거지는 모습이 여간 아니다(1:70)”라는 구절을 비롯한 소설의 여러 대목에서 나타나듯이 ‘나’는 “은하수 계집”을 성인 남성의 시선으로 욕망하고 있으며, 바로 이 점이 여러 평자들로 하여금 ‘월경’을 도착적 섹슈얼리티가 전경화된 소설로 주목하게 한 주요한 요인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함께 트럭 짐칸에 누워 밤하늘을 바라보면 온 우주가 우리를 중심으로 돌았고, 별들은 작은 이슬방울이 되어 우리의 배 위에 사뿐히 내려 앉았다(1:63)”에서와 같이 지극히 감상적으로 또 지극히 여성적인 시선으로, 떠나버린 아버지를 기억하고 또 애타게 그리는 ‘나’가 어떻게 동시에 “은하수 계집”을, 그것도 저러한 시선으로 욕망할 수 있게 되는 것일까? 이러한 불균형은 작가가 도발적인 캐릭터를 만들어 내는데 몰두한 나머지 그 일관성은 신중히 검토하지 못했기 때문에 발생한 결함에 불과한 것일까? 여기서 우리는, 상실한 어머니와 자신을 동일시함으로써 내면화하고자 했던, 그럼으로써 상실로 인한 상처를 무의식적으로 무화하고자 했던 ‘바늘’의 주인공과 마찬가지로,‘월경’의 ‘나’ 역시 상실한 아버지를 그러한 방식으로 제 속에 부활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품을 수 있다. 즉, 그녀의 자아 안에, 상실된 애정의 대상으로서의 아버지가, 그 자아의 일부로서 공존하고 있다고 말이다.“은하수 계집”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이 이에 대한 한 근거가 됨은 물론이거니와,‘나‘가 “은하수 계집”을 여러모로 ‘그녀(어머니)’와 견주어 보면서 ‘그녀(어머니)’의 분신처럼 수용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러한 가정을 뒷받침해 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소설의 클라이맥스에 위치하는 사건 곧,“은하수 계집”과 “푸른 모자를 쓴 사내”의 정사장면을 ‘나’가 목격하고 그들을 공격하는 그 사건에서,‘나’가 ‘그(아버지)’의 위치를 그대로 반복함으로써, 과거의 ‘그(아버지)’―‘그녀(어머니)’―“낯선 남자”의 구도를, 현재의 ‘나’―“은하수 계집”―“푸른 모자를 쓴 사내”의 구도로 전이시키고 있다는 점은 그 결정적인 증거로 제출되기에 모자람이 없다. 요컨대 ‘월경’에서 ‘나’는 아버지를 욕망하는 데서, 아버지의 욕망을 그리고 아버지가 욕망할 것이라 추정되는 대상을 욕망하게 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으며 바로 이 점이 ‘나’의 젠더 정체성의 혼란을 초래한 근본적인 요인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메커니즘의 시발점에 현실에서의 상실을 절대로 수락할 수 없는 멜랑콜리적 주체의 내면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읽는 이를 순식간에 포박하는 천운영 특유의 자질 뒤편에 도사리고 있는 상실과 박탈의 어두운 그림자……, 누군가는 사라지고 그 사라짐이 가족 내의 또 다른 누군가에게 저토록 결정적인 흔적을 남긴다. 그리하여 이 작가에게 가족은 천운영식으로 표현하자면 “거대한 괴물의 아가리 같은 유령의 집(‘유령의 집’)” 즉,‘아가리(구강기)’적 욕구에 충실한 “괴물”스러운 인물들이 집 안을 떠도는 “유령”의 “어두운” 그림자와 씨름하는 전쟁터나 다름없다.“핏줄”과 얽혀진 인간 욕망의 가장 원초적인 그래서, 들여다보고 싶으면서도 그러기에는 두려운 “하수도” 속 같은 “어둠”이야말로 이 작가의 해부 대상인 것이다. 이어지는 ‘유령의 집’의 다음과 같은 대목을 보라;“보이는 것만으로는 아무것도 볼 수 없고 들리는 것만이 전부는 아닙니다.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그 이면에 삶은 존재하니까요.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들리지 않는 것을 들으려고 해보세요. 그건 때때로 흥미진진한 일이 될 겁니다.” 천운영이 꾸며놓은 유령의 집을 방문한 독자에게 이 보다 더 친절한 안내가 또 있을까. 천운영은 이렇게 근본적인 상실을 문제 삼는다는 점에서, 그것도 가족 내부에서 끈질기게 문제화한다는 점에서 현재 우리 문단에서는 매우 독특한 존재감을 지니고 있다. 배수아, 백민석 같은 바로 앞선 연배의 작가는 물론이고, 비슷한 연배이며 비슷한 시기에 등단한 정이현이나 김윤영에 견주어 보아도 이는 이 작가 특유의 자질이다. 앞서 살펴본 작품들에서처럼 특히나 천운영은 가족 안에서의 상실을 한 인간을 배태해내는 결정적인 그 무엇으로 여기고 있다. 그러나 이제 전환을 맞을 때가 온 것은 아닐까.‘늑대가 왔다’나 ‘그림자 상자’와 같은 비교적 근작들에서는 이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파괴적 욕구가 분출되고 있는 장면이 등장한다. 물론 가족이 부여한 운명으로부터의 탈출은 아직 환상 속에서만 가능하고 결국에는 처참한 결말을 맞지만 말이다. 앞으로 이 작가에게 “배꼽을 버리고자 하는(‘그림자 상자’)” 욕구가 앞설 것인지, 아니면 그럼에도 절대 벗어날 수 없는 운명론에 더 깊숙이 천착할 것인지, 우리는 이 작가를 계속 눈여겨 지켜볼 필요가 있다. ■ 당선 소감 하루 평균 서른 통 정도의 전화를 받고 또 그만큼의 전화를 하며 두 해를 보냈다. 맞춤법을 묻는 전화부터 부고를 알리는 전화까지. 아무리 사소하게 보이는 일도 누군가에게는 더없이 소중하며 또 누군가의 수고가 있어야만 가능하다는 사실을 비로소 체감할 수 있었다. 그런 점에서 문학을 한다는 것 역시 그리 다르지 않은 일인 것 같다. 누군가의 호소에 응답하는, 그러나 혼자서는 할 수 없는. 마음껏 공부할 수 없어 애태우던 나날들이었지만 헛되지 않았다고 믿는 것은 이 때문이다. 부족함을 스스로 잘 알기에 당선은 여전히 실감나지 않는다. 응모한 글에 미덕이 있다면, 그것은 내 공이 아니라 주위 여러분들의 은덕이다. 국문과 은사님들과 조남현 지도 교수님,202호와 326호에서 동고동락했던 선후배 동료들, 이 분들께 더 좋은 글로 보답하고 싶다. 결점이 많은 글을 너그러이 감싸주신 김윤식 선생님과 정과리 선생님께도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한결같이 믿어 주시는 부모님과 언니, 동생, 오랜 벗들에게는 쑥스럽지만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고백하건대, 좋은 소설을 쓰고 싶다는 어린 시절의 꿈을 나는 아직도 버리지 못했다. 이제는 다른 길을, 그것도 멀리 와버렸다는 생각이 들어 한편으론 쓸쓸하다. 그러나 약속한다. 아무리 힘들더라도 세상을 향한 내 새로운 수화기를 함부로 놓지 않겠노라고. 그것이 지금 주어진 이 지면에 대한 책임을 다하는 길인 것 같다. 이제 겨우 시작이다. ●약력 ▲1976년 대구 출생 ▲서울대 국문과 박사과정 수료 ■ 심사평 이번에도 평론의 기초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현대 이론에 대한 지식을 과시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설익은 개념들이 횡행하면서 작품을 파괴하거나, 작품과 겉도는 독무를 추는 글이 적지 않았다. 이론이 문학의 이해에 도움을 주는 것은 사실이니 배울수록 좋다. 그러나 제대로 소화해내지 못하니 작품 분석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가지 못하는 것이다. 마지막까지 경합한 작품은 네 편이다. 김수영의 시를 다룬 정경은의 ‘생활의 뒤란, 시’는 엉뚱한 상상력으로 김수영의 시를 장식해가면서 시의 변주를 다룬 재미있는 글이다. 그러나 그 상상력이 김수영 시의 이해에 꼭 필요한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이장욱과 김행숙의 시를 다룬 송승환의 ‘청동 방패를 바라보는 두 가지 방식’은 동일성의 부정이라는 기본적인 전제 하에 새로운 시의 존재 가능성을 탐색한 글이다. 꼼꼼한 분석이 돋보이고 설득력도 있었다. 오랫동안 시를 써본 사람이라는 짐작이 간다. 다만 구도가 지나치게 단순한 게 흠이었다. 최윤의 세 장편을 분석한 허병식의 ‘진정성의 서사와 주체의 귀환’은 ‘기원의 부재’라는 현대 이론의 신화에 깊이 침윤된 글이다. 그래서 마치 소설이 그 이론을 증명하기 위해 씌어진 것처럼 읽었다. 그것이 약점이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로부터 주체의 귀환이라는 명제를 끌어낸 것은 글쓴이만의 독창적 사유의 결과이다. 전체적으로는 대상 작품에 들어맞았지만 세목들에서는 무리한 적용이 많았다. 천운영의 소설 세계를 해부한 차미령의 ‘그로테스크 멜랑콜리, 상실에 대응하는 한 가지 방식’은 ‘등뼈’ 이미지를 천운영 소설의 핵심 징조로 보고 그것으로부터 소설의 무의식의 ‘작업’과 변주를 정신분석학적으로 파고든 글이다. 분석과 해석이 요령을 얻고 있었으며 무엇보다도 기존의 상식적인 해석을 뛰어넘으려는 패기가 돋보였다. 마무리를 서둘러 처리했다는 약점이 있었지만 글 전체가 보여준 가능성은 그런 약점을 무시해도 좋게 하였다. 당선을 축하한다. 김윤식·정과리
  • [서울신문 신춘문예] 희곡 당선작-청진기/박만호

    [서울신문 신춘문예] 희곡 당선작-청진기/박만호

    (무대) 원룸 아파트 아래 위층,301호와 401호 (등장인물) 남:소리감별사 여:빨간 구두의 여인 의뢰인1:50대 초반 의뢰인2:30대 중반 의뢰인3:30대 초반 할머니:꿈속의 환영 딸:중학생 (소리에 대해) 소리는 하나의 등장인물처럼 연기한다. 극의 흐름을 이끌고 가는 극적 요소로 기능하는 것이다. 이 소리를 측정하는 청진기는 ‘호른’의 유려한 곡선 음관을 부착한 특별한 도구이다. ●제1장 어둠 속에서 “영호야- 영호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원룸 아파트 아래 위층인 301호와 401호가 서서히 드러난다. 스탠드만 침침하게 켜져 있는 아래층 301호는 실내가구들이 어렴풋이 보인다. 그 위층 401호는 아직 어둠 속에 싸여있다. “우웅 우웅-”하는 진동음이 들리자, 침대에서 부스스 일어나 귀마개를 벗고 휴대전화를 확인하는 남자.“새로운 메시지가 없습니다.”라는 안내음이 들린다. 이어 아파트의 여러 생활소음들이 와글와글 들려온다. 다시 귀마개를 하고 눕는 남자. 이때 다급한 뾰족구두 소리. 쫓기듯 달려와 위층 401호로 올라간다. 문을 닫고 구두를 벗고 룸으로 들어서는 여자. 외투를 벗고 침대 위로 무너지듯 쓰러진다. 아래층 침대에 누웠던 남자가 슬며시 몸을 일으킨다. 플래시를 켜서 천장을 비춰본다. 위층 여인의 숨소리가 평정을 되찾는다.“끼리리리-”하며 냉장고 가동 소음이 시작된다. 냉장고를 비추는 플래시. 새벽 4시를 알리는 괘종시계 소리와 함께 암전된다. 무대 밝아지면, 아래층 301호의 실내가 드러난다. 침대와 평범한 실내가구들. 구석 쓰레기통에는 호른 나팔과 야구방망이가 처박혀 있다. 탁자에서 남자에게 소리 감별을 받고 있는 의뢰인들. 호른을 닮은 청진기로 손목시계들을 검진하던 남자가 고개를 끄덕인다. 소리:(손목시계) “째각 째각 째각 째각-” 남자:이게 불량입니다. 태엽이 긁히는 소리가 나는군요. 의뢰인1:계측기로는 아무 이상이 없었는데. 남자:0.5데시벨의 소음이군요. 계측기는 보통 플러스 마이너스 1데시벨의 오차를 가지고 있지요. 다음 분. 의뢰인2:(믹서기 3개를 탁자에 놓고) 동방가전에서 출시한 신제품입니다. 모델별 소음의 차이를 알고 싶습니다. 소비자에게 주는 청각적 영향 말이죠.(뚜껑을 살피는 남자에게) 저... 뚜껑이 아니라 작동시의 소음만 분석해 주시면. 남자:모든 소리를 다 분석해야죠. 의뢰인2:우리가 필요한 건. 남자:다시 말하지만, 소리는 복합적입니다. 의뢰인1:감별사님을 믿고 따르세요. 남자:G-1800, Q-300, A-7, 이 세가지 모델의 소리 중에서 A-7이 가장 우수합니다. 의뢰인2:그럴리가요.A-7이 가장 구형인데. 남자:신제품이 G-1800이죠? 이건 실패작입니다.110데시벨의 고주파 파동 현상이 발생합니다. 여기에 무방비로 노출되면 고객만족도가 어찌 될까요? 다음 분이오. 의뢰인3:역시 탁월한 분석이십니다.(포도주 2병을 내밀며) 적포도주와 백포도주입니다. 소리:(뾰족구두) “또각 또각 또각 또각-” (포도주 병을 살펴보다가, 뾰족구두 소리에 눈길을 돌리는 남자. 초인종 소리. 남자가 청진기를 벗고 문을 연다. 복숭아 접시를 들고 들어오는 이층 여자) 여자:안녕하세요? 저는…. 남자:위층 401호 분이시죠? 여자:어머나, 어떻게 아셨죠? 남자:(여인의 빨간색 뾰족구두를 보며) 내 추측이 맞았군요. 빨간색일 거라 생각했죠. 어젯밤에 구두 소리를 들었어요. 여자:어머나, 새벽 4시가 넘어 들어왔는데. 남자:새벽엔 더 잘 들리죠. 여자:한데 색깔까지 어떻게 아셨나요? 남자:검은색 구두였다면 소리가 더 낮게 깔리거든요. 낡은 가죽이라 세월의 나이가 느껴지던데요.15년 된 캥거루 가죽입니다! 여자:호호호- 점쟁이신가봐! 어제 이사왔어요. 인사도 드릴 겸 복숭아 좀 드시라고요.(남자에게 복숭아 접시를 건네며) 어머나, 손님들이 많이 계시군요. 남자:제 의뢰인들입니다. 여자:무얼 의뢰 받으시는데요? 남자:소리요. 의뢰인1:제품의 소리를 감별해 주시는 거죠. 의뢰인2:그 느낌까지요. 의뢰인3:감별사님은 기계보다 정확하시죠. 여자:우리 아파트에 대단한 명인이 살고 계시는군요. 저…이것도 감별이 되나요?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내) 소리가 잘 안 들리거든요. 남자:(휴대전화를 검진하며)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소리가 작게 설정된 거 외엔.(진동음을 조정하고) 들어보세요. 소리:(휴대전화 진동음) “우웅 우웅 우웅…” 남자:커졌죠? (휴대전화를 여자에게 주며) 이웃사촌이니 감별비는 받지 않겠습니다. 여자:아유, 고마워요. 남자:소리를 놓치면 후회가 크답니다. 여자:맞아요. 일년 전에 정말 중요한 연락을 놓친 적이 있어요. 샤워 중이었거든요. 제 인생이 걸린 중요한 기회였는데….30분 늦게 연락하는 바람에 바이 바이! 근데 감별사님은 소리를 어떻게 분석하시나요? 남자:기억되어 있는 소리들 때문에 분석이 되는 겁니다. 여자:이 세상 소리를 전부 기억하고 계세요? 남자:한 번 들으면. 의뢰인2:스리쿠션 때린 당구공처럼요? 의뢰인3:구구 팔십일 구구단처럼요? 여자: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처럼? 남자:망각이 안돼요. 모두:오!…. (다시 포도주 병을 검진하는 남자. 가만히 주시하는 사람들) 소리:(포도주) “출렁 출렁 출렁 출렁-” 남자:아르마냑 17년산이군요. 의뢰인3:네! 맞습니다. 남자:색깔도 소리를 냅니다. 적포도주는 백포도주보다 0.3데시벨 정도 고음을 지닙니다. 잔에 따를 때, 잔을 부딪칠 때, 적포도주는 유혹의 소리를 발산하지요. 좋은 술은 좋은 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모두:우와!…. 의뢰인2:선생님. 그 차이를 일반인도 인식할 수 있나요? 남자:그들도 분명 듣습니다. 말로는 표현하진 않지만, 마켓에서 돈으로 표현하죠. 의뢰인들:(박수치며)니즈는 욕망이다! 여자:전 들을 수 없거든요! 색깔이 소리를 낸다고요? 그런 황당한 말을 어떻게 믿으라는 거죠? 왜들 무조건 믿는다고만 하시죠? 남자:이걸 쓰고 한번 들어보세요. (여자에게 청진기를 건네는 남자) 여자:이건 호른의 음관이잖아요! 남자:제가 특별히 제작한 청진기입니다. 여자:(쓰레기통에 처박힌 호른의 나팔부분을 발견하고) 저기서 떼어내 만드셨나요? 남자:네. 난 새로운 악기가 필요하거든요. 여자:이 청진기가 악기라고요? 남자:그럼요. 혼자만 들을 수 있는 악기죠. 여자:혼자만 듣는 게 어떻게 악기가 되죠? (청진기를 던지며) 이건 장난감에 불과해요. 남자:진정하세요. 이 세상은 소리로 가득차 있습니다. 소리를 외면하지 마세요. 제발…. 이리 오셔서 들어보세요. 호른 소리를 음미할 수 있어야 진정한 호른 주자가 될 수 있듯이, 이 청진기는 들을 수 없는 소리를 듣게 해 줍니다. 이 세상이 얼마나 수많은 소리로 가득 차 있는가를 가르쳐 주는 거죠.(청진기를 여자에게 씌워주고 백포도주를 흔든다.) 들리나요? 눈을 감고 들어 보세요. 소리:(백포도주) “출렁 출렁 출렁 출렁-” 여자:들려요. 남자:이번엔 적포도주입니다. 소리:(적포도주) “출렁 출렁 출렁 출렁-” 남자:안단테 칸타빌레로 사라지는 아련한 고음의 잔상이 왼쪽 귓전을 스치죠? 여자:(청진기를 벗으며) 들려요…. 하지만 차이는 모르겠어요. 의뢰인1:허허허- 소리 감별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지요. 의뢰인2:그래서 우린 의뢰를 하러 오고요. 의뢰인3:기계보다 정확하시니까요. 여자:흥, 정말로 듣지 못하는 소리가 하나도 없어요? 남자:듣지 못하는 소리라…. 있죠. 잠들었을 때. 여자:밤에도 안 자고 전부 듣는다면서요. 새벽 4시에 제 구두소리도 듣고. 남자:낮에 자나보죠? 여자:농담하세요? 어째 좋은 이웃이 되기는 힘들 것 같군요. (휭하니 나가버리는 여자. 의뢰인들도 일어선다.) 의뢰인1:허허허. 성질도 급하시네. 오늘도 좋은 감별을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의뢰인2,3:최상의 분석이었어요.(박수치며) 엑설런트! (모두 나가면 하품하는 남자. 위층 402호로 들어서는 여자. 소리를 읊조린다.) 여자:“우리 아기 예쁜 배, 할미 손은 약손, 쓱쓱 만져 주면, 뭐든지 다 낫는다. 우리 아기 동그란 배, 할미 손은 약손. 궁글궁글 쓸어 주면, 뭐든지 다 낫는다.” (남자, 위층의 소리를 의식하며 침대 밑에서 박스 하나를 꺼낸다. 박스에서 인라인스케이트를 꺼내 물끄러미 바라보는 남자. 스케이트 신발의 줄을 풀렀다가 다시 매더니 하품하며 드러눕는다. 조명 분위기가 바뀐다.) (탁자 위에서 남자의 휴대전화가 진동한다. 코를 고는 남자. 이어 부르는 소리) 소리:“우웅 우웅 우웅- 영호야. 영호야-” 남자:(몸을 뒤채며) 순이니…. 인라인 스케이트 사놨다. 어여 신어봐….(부스스 얼굴을 들고) 엥! 내가 자고 있었나. 순이니? 순이 왔니? 날 저물었는데 얘는 뭐하고 안 들어오나. 어휴, 말을 말아야지. 세상 좋아졌다. 맨땅에서 스케이트를 다 타고.(보호장구와 헬멧을 착용해보며) 돈 쓰게 만드는 기술도 가지가지여. 앉아서 이런 거만 연구하는 놈들 천지니. 어뗘. 순이야. 아빠도 멋져 보이냐? 아빠도 소싯적에 얼음지치기 한가닥 했다. 외날 썰매 모르지? 우선 중심을 잘 잡고…. 긴 꼬챙이 하나를 다리 사이로 넣고 얼음을 팍팍 찍으면서 달리는 거여. 대가미 방죽에선 아빠가 일등했다. 니 이렇게 차려입고 씽씽 달리면 동네 남학생들이 줄줄 따르것다. 순이야, 얼른 들어온나. 인제 호른을 필요로 하는 나이트클럽은 없다. 그러니 아빠는 내일이면 배 타러 가야헌다. 한동안 못 보니까 얼른 와. (시계를 흘낏 보다) 아니 근데 이누무 지지배가 아직도 들어올 생각을 안 하고 어딜 싸돌아 다니는 거여. 내 이년을….(휴대전화 메시지를 발견하고) 얼래, 이게 뭐여.“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그려 근데.“아빠. 로데오광장 빨리….” 20분전에 온 거네. 로데오 광장? 하하- 요것이 눈치 하난 빨라요. 거기서 스케이트 타고 싶다 이거지? 다른 애들처럼. 오냐. 아빠가 가마. 근데 얘가 스케이트 사논 걸 어떻게 알았지? 돈 없다고 등짝을 후려패서 학교 보내 놨더니…. 하여튼 귀신이여 귀신. (박스를 옆구리에 끼고 달려 나가는 남자. 그 열린 문으로 여자가 은밀하게 들어와, 가구들 뒤에 무엇인가를 붙여 놓는다. 감별사의 청진기를 보고 자기 심장에 대본다.) 소리:(심장박동) “쿵 쿵 쿵 쿵-” (남자가 돌아오는 기척. 얼른 복숭아 가져왔던 접시를 드는 여자. 남자가 힘없이 들어선다.) 여자:어머! 오셨네요. 문이 열려 있기에 접시를 가져가려고요. 아깐 제가 너무 흥분했었나 봐요. 어디 산책 다녀오세요? 남자:근처 로데오 광장에 갔었습니다. 아이들이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고 있더군요. 가만히 보고 있으면 나도 즐거워지거든요. 그런데… 이상한 일이 있었지요. 웬 처녀가 글쎄 나한테 “아빠”라고 부르는 겁니다. 여자:어머나, 그래서요. 남자:후후후. 당황스러워 혼났습니다. 여자:그 아가씨 아빠가 감별사님과 비슷한가 보죠. 남자:하긴…. 그 아가씨도 우리 딸애와 비슷하긴 했어요. 여자:따님이 있으세요? 남자:……. 여자:참, 그거 잘 타세요? 스케이트요. 남자:내 스케이트가 아닙니다. 여자:누구한테 선물하시려나 보죠? 남자:……. 여자:호호- 말씀하기 싫으신가 봐요.(문으로 가며) 그럼 또 뵙겠습니다. 남자:일년 전, 휴대전화 소리 때문에 인생이 달라졌다고 했죠? 소리는 사람을 기다려 주지 않습니다. 금방 사라지거든요. 여자:감별사님. 좋은 이웃이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어요. (여자 나가면, 남자는 박스를 옆에 낀 채 홀로 서성인다. 조명 분위기 다시 바뀐다.) 남자:어휴! 몇 분 차이로 이게 뭐여. 속 터져. 쬐금만 더 기다리지 않고선.(박스를 놓고 휴대전화 메시지를 확인하며) 이누무 기지배는 대체 어딜 간 거여. 소리:“삐- 삐- 새 메시지는 없습니다.” 남자:아! 눈부시다. 눈부셔. 왜 이리 눈이 부시지? 불을 끌 수도 없고. 순이야, 어여 연락 좀 해라. 아빠 이러다가 죽는다잉. 일주일째 이러고 잠 한숨 못 잤다.(침대에 드러누우며) 이러다 아빠 죽겠다. 순이야. 순이야…. 소리:(진동소음) “우웅 우웅 우웅 우웅-” 남자:(벌떡 일어나 휴대전화 확인하며) 아니잖아. 어디지? 아래층 201호여! 죽겠네. (문을 열고 아래층으로 뛰어가는 남자. 문을 다급히 두드리는 소리) 남자(E):여보세요,201호 아저씨! 전화 왔어요- 얼른 휴대전화 좀 받아 봐요. 201호(E):돌겠네! 안 받으려던 건데. 알았다니까- (휴대전화 진동소리 겨우 멈춘다. 다시 들어오는 남자) 남자:싸가지 없는 놈. 끝까지 안 받네. 매너들 없어. 소리:(TV 끝나는 소리) “대한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치이-” 남자:302호 미친놈. 오늘도 저 모양이야. 꺼라. 제발 좀 꺼라. 바로 옆방에서 이러면 어떡하냐.(앞쪽 베란다로 나와서) 302호- 텔레비전 좀 끄쇼. 시끄러워 살 수가 있나. 이웃들(E):조용히 좀 해요. 남자:302호, 조용히 하라잖아요∼ 이웃들(E):301호, 당신이 조용히 해∼ 당신 때문에 못자. 아저씨 날마다 이게 뭐예요. 남자:이런 우라질. 귓구멍이 거꾸로 뚫렸나. 나는 니들 때문에 못자- 아! 눈이 터질 것 같네. 그래도 안 끈다 이거지. 니기미! 대한사람 살아야 길이 보전도 된다. (야구방망이 들고 나가는 남자.302호 문 부서지는 소리. 비명소리. 순찰차 사이렌 소리) (위층 401호 여자는 나지막이 뭔가를 읊조린다.) 여자:“쓱쓱 만져 주면…뭐든지 다 낫는다…궁글궁글 쓸어 주면…뭐든지 다 낫는다….” 무대 서서히 어두워진다. 암전. ●제2장 무대 밝아지면, 아래층 301호 침대에 우울하게 앉아있는 남자. 얼굴에 수건을 두르고 귀마개를 하고 있다. 말씨가 점차로 사투리 운율로 변해간다. 남자:백두산이 다 닳기 전에, 대한사람 살고 보자는데 웬 말들이 많은 겨.(수건을 풀며) 돌아와 보니 문은 닫혀있고 불은 꺼져 컴컴하고…. 아무도 없는 거여. 그냥 빈집이여. 빈집.(귀마개를 벗으며) 기껏해야 한 삼일이면 됐지. 왜 삼일이 열흘 되고 달포 되고 한달 되느냔 말이여. 왜 삼일이 석달 되고 석삼년 되느냔 말이지. 이상타. 참말 이상한 일이다. 어무이는 금가락지 끼워주면 훨훨 날아간다 허지, 딸년은 스케이트 있어야 씽씽 달려간다 하지. 아! 나도 편지 한 장 달랑 써 놓고 부산으로 가서 외항선 탔다 했지? 석달 열흘만 꾹 참고 다녀오자. 어무이도 없지. 딸자식도 없지. 여편네도 없지∼ 허참, 귀신이 곡할 노릇인 거여, 시방 이것이. 태평양 넘어 동지나해 건너 알류산 열도 거쳐 부산항에 도착, 광복동 시장에서 딸년 인라인스케이트하고 어무이 서돈짜리 금가락지 서둘러 해가지고 와보이, 종적이 묘연한 것이여. 여편네 줄려고 야들야들한 속곳 둘둘 말아 끼고 왔는디, 입을 사람이 없는 거여. 세상 참 얄궂네. 인생 허망타. 어무이도 없지, 딸자식도 없지. 여편네도 없지∼ 소리:(진동음) “우웅 우웅 우웅 우웅-” (얼른 휴대전화를 확인하는 남자.“새로운 메시지가 없습니다.”라는 안내음. 실망하는 남자. 이때 문을 노크하는 소리. 남자가 문을 여니 의뢰인들이 의뢰품들을 들고 들어온다.) 의뢰인들:좋은 아침입니다. 의뢰인1:(전자레인지를 탁자에 놓고) 부품 교체를 해야 할 것 같은데요. 남자:(청진기로 검진하다 고개를 갸웃거린다.) 흠…흠… 소리:(전자레인지) “위이이잉-” 남자 : 모터가 낡았으니 교체하세요. 다음. 의뢰인2:(책들을 놓으며) 신나라출판사의 기획 시리즈 견본품인데요. 남자:(책장 넘기며) 책도 소리를 가집니다. 종이 지질에 따라서 소리는 천차만별입니다. 소리:(종이) “펄렁 펄렁… 팔랑 팔랑… 풀렁 풀렁…” 남자:이건 모조지, 이건 아트지, 이건 하드보드에 코팅까지. 아트지는 반짝 반짝! 모조지는 서글 서글! 3데시벨의 편차가 있네요.(표지를 보며) “세계의 미스터리”라…. 이 제목에는 모조지보단 아트지가 어울립니다. 미스터리는 반짝반짝해야죠. (여자가 문을 살짝 열고 들어와 몰래 엿본다.) 의뢰인3:(돌멩이 2개를 놓으며) 심산인테리어에서 의뢰한 겁니다. 남자:(돌을 살피며) 흥미 있는 소재이군요. 돌의 소리는 가장 심원한 소리입니다.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된 재질이니까요. 돌의 소리는 음악의 근본입니다. 돌로 만든 악기인 편경의 소리는 국악의 표준 음정이죠.(돌을 부딪쳐 본다.) 오만년의 역사를 간직한 소리입니다. 소리:(돌) “딱 딱 딱 딱-” 의뢰인들:정말 탁견이십니다. 남자:저 전자레인지는 전에도 감별해 드린 건데요. 저를 시험하시나요? 의뢰인1:예? 오해십니다. 남자:칠일 전에도 해드렸고, 한 달 전에도 했습니다. 의뢰인1:청진기가 착오를 일으킬 수도 있지 않습니까? 남자:기계든 인간이든 자기만의 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소리는 살아있는 생명체죠. 청진기는 거짓을 모릅니다. 여자:(앞으로 나서며) 감별사님의 판단을 믿지 못하시나요? 의뢰인1:음…. 출고담당 직원의 미스인가 봅니다. 확인해 보죠. 여자:(모두 자신을 쳐다보자) 어머나! 안녕하세요. 호호호- 문이 열려있지 뭐예요. 의뢰인1:소리 감별은 회사의 일급 기밀입니다. 여자:한심한 출고담당 재교육도 중요하죠. 의뢰인1:(전자레인지 들고 나가며) 성질도 급하시고 변덕도 심하시군요. 흠, 흠. 여자:오늘의 분석은 어땠나요? 의뢰인2:출판사가 관심을 가질 것 같습니다. (의뢰인2,3도 나간다. 남자가 문을 잠그더니, 얼른 여자를 데리고 구석으로 간다.) 남자:혹시 이 아파트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 못하셨나요? 여자:글쎄요? 남자:이사 온 뒤로 다른 주민들 보신 적 있나요? 여자:네… 봤죠. 남자:이상하지 않던가요? 여자:네. 남자:언제부터인가 이 아파트 주민들이 잠만 자고 있어요. 모든 활동이 중지된 겁니다.201호는 휴대전화를 안 받는 버릇이 있고,302호는 지가 무슨 애국시민이라고 날마다 애국가를 시청하더니 모두 조용해 진 겁니다. 여자:에이, 고급 아파트는 원래 조용하잖아요. 남자:(눈치를 보더니 말소리를 죽이며) 나는 저 의뢰인들을 믿지 않습니다. 여자:(놀라며) 네? 무슨 말씀이세요? 남자:뭔가 수상쩍은 음모가 있어요. 의뢰 물품이 변하지 않고 있어요. 여자:날마다 똑같아요? 남자:일주일 주기로 반복되고 있어요. 예전엔 한달 주기였죠. 점점 짧아지고 있어요. 나는 새로운 소리를 원합니다. 여자:좋아하는 음악은 자꾸 듣기도 하잖아요. 가령 호른 연주는 어때요? 남자:모차르트 호른협주곡 3번 2악장 로만자… 호른은 같은 곡을 연주하더라도 날마다 다릅니다.(청진기 곡선음관을 어루만지며) 호른을 통해서 들어야 세상은 아름다워집니다. 하지만 누가 날마다 같은 구름을 보고 싶겠소. 누가 날마다 같은 바람을 맞고 싶겠소. 출고담당 직원의 미스라고 둘러대지만 실수가 아닙니다. 치밀하게 반복되는 순환시스템이죠. 소리가 점점 사라지고 있어요. 이 세상이 죽어가는 것처럼. 저들이 소리를 뺐어가는 겁니다. 아…. 이러다가는 당신의 잠꼬대마저 뺐어갈지도 몰라요. 여자:어젯밤에 제가 잠꼬대했나요? 남자:(흉내 낸다.) “쓱쓱 만져 주면… 궁글궁글 쓸어 주면…” 여자:어머, 어머! 저를 너무 속속들이 아시네. 호호호- 내 정신 좀 봐. 가야겠어요. 남자:어젯밤에 당신의 잠꼬대 소리를 듣고 얼마나 기뻤는지 아세요? 제발 가지 마세요. 여자:네? 남자:잠꼬대 소린 정말 너무 오랜만에 들어 봤어요. 지금 이 아파트에서 당신만이 유일하게 살아있는 사람이에요. 지금 가버린다면 당신도 잃어버릴 것만 같아요. 여기 계세요. 여긴 안전하니까. 여자:(남자를 경계하며)감별사님은 소리를 정말 좋아하시나 봐요. 남자:사실은 소리가 무서워요. 여자:왜요? 남자:너무 진실하니까. (이때 어디선가 소리가 들려온다. 점점 고조되는 온갖 소리들. 서로 뒤섞여 아비규환의 아우성처럼 난무한다.) 소리:“찌르르르… 출렁출렁… 저벅저벅… 쿵쾅쿵쾅… 우웅우웅… 영호야∼영호야∼” 여자:이게 뭐야? 어디서 들리는 소리지? 남자:(귀를 막으며) 아! 아! 저리가. 듣기 싫어. 씨끄러. 듣기 싫어. 아아악- (남자 귀를 막으며 고통스러워한다. 나가려 하지만 열리지 않는 문. 야구방망이로 치고 머리로 들이받으며 발광하다가 쓰러진다. 여자는 놀라서 남자를 부둥켜안는다. 소리들이 그친다.) 여자:여보… 여보! (병원 가운을 입은 의뢰인들이 나타난다. 바닥에 쓰러져 있던 남자를 침대에 뉘고 벨트로 사지를 결박한다. 남자를 청진기로 진단하는 의뢰인1) 여자:아… 어떻게 된 거죠. 무서워요. 무슨 소리였죠? 그이는 괜찮은가요? 의뢰인2:안심하세요. 본 특병동의 소리치료 시스템입니다. 일종의 충격요법이죠. 의뢰인1:상태가 좋지 않아.2단계 프로그램도 실패야. 발작 증세가 멎지를 않네. 더 이상 늦출 수 없어. 내일 수술 일정 잡도록 해. 의뢰인3:근데 보호자께서 동의서에 아직 서명을…. 의뢰인1:그깟 동의서 하나를 여태 못 받아? (여자에게) 똑바로 들으세요. 내일도 서명하지 않으면 조치를 취할 겁니다.(의뢰인2에게) 자네 수련의가 왜 그 모양이야. 그럴 거면 딴 병원으로 가. 내가 이젠 환자한테 훈계까지 받아야 돼? 내가 저를 시험한다고? 미친놈이 입만 살아서. 한데… 어떻게 알았지? 의뢰인2:환자는 지각능력이 있는 게 확실합니다. 자신에게 의미있는 것에만 몰두하는 주의력 증가 기제가 너무 왕성해서 그렇습니다. 환자의 소리 분석은 정상입니다. 의뢰인1:믹서기 회사에선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했잖아. 의뢰인2:그건 생산부장의 말이고요. 오늘 아침에 마케팅팀장과 통화했는데 좋은 지적이라고 반기더군요.2차 분석도 의뢰하겠답니다. 일시적인 “해리성 황홀경”입니다. 의뢰인1:속단하지 말라고 했지? 자네의 진단은 정서적인 판단이 앞서고 있어. 의뢰인2:“뇌손상에 의한 퇴행성 기억장애”란 과장님의 진단은 측두엽의 손상만 지나치게 확대 해석한 거 아닙니까? (쓰레기통에서 부서진 호른 나팔을 꺼내서 안고 있던 여자가 나선다.) 여자:선생님, 우리 그이는 미치지 않았습니다. 의뢰인1:미치겠네 정말. 아까 발작하는 거 못 봤어요? 가족도 몰라보잖아요. 여자:예전에 연주하던 곡 이름을 정확히 기억해 냈단 말이에요. 의뢰인1:단편적인 기억 정도는 모든 환자들이 다 가지고 있어요.(부적뭉치를 던지며) 이게 뭡니까? 이런 식으로 맘대로 행동하면 퇴거조치시킬 겁니다. 여자:이 부적에 어떤 힘이 있다고 믿으세요? 미신에 불과하다면서요? 의뢰인1:그게 아니고…. 의사의 치료에 적극 협조해야 할 것 아닙니까. 협조요. 협조! 여자:협조했잖아요. 가구며 소지품들 가져다가 집안처럼 꾸며놓고… 순이더러 로데오 광장에서 아빠를 기다리라고 해서 그렇게 했잖아요. 근데 별 이상도 없는 이가 왜 딸을 몰라보나요? 왜 아내도 몰라보나요? 그저 지쳐서 그런 걸 거예요. 집에 가서 잘 요양하면… 고요한 호숫가를 찾아서 호른도 불면서 푹 쉬면 나아질 거예요. 의뢰인1:흥, 호른 분다고 치료가 되면 병원이 뭐하러 있어요! 도대체 의사를 뭘로 보는 거요? 기물을 파손하고 상해를 입힌 환자는 완치되기 전엔 퇴원할 수 없습니다. 내일까지 수술 동의서에 서명하세요.(의뢰인3에게) 진정제 5밀리그램…. 아니 7밀리그램 준비하고, 면회는 금지시켜. (의뢰인1,3 나간다. 흐느끼며 부적을 줍는 여자. 창문으로 복도에서 담배 피우는 의뢰인1이 보인다.) 여자:흑흑흑…. 날더러 어떡하라고요. 기다려라. 기다려라…. 벌써 세 달이 됐어요. 의뢰인2:왜 그토록 소리에 집착하는지 그 압제의 요인을 찾아야 하는데…. 기억 과잉이 문제입니다. 뇌의 측두엽에 너무 많은 소리의 기억들이 축적되어서, 컴퓨터가 다운되듯 혼선이 빚어지고 있는 상태입니다. 주치의께선 손상된 부위를 제거하지 않으면 발작이 계속된다고 보십니다. 삭제키를 눌러야 리소스 부족에서 해방되니까요. 여자:그러면 과거의 모든 기억이 사라진다면서요. 의뢰인2:대신 새 기억은 지킬 수 있습니다. 여자:그토록 찾던 딸이 눈앞에 나타나도 못 알아보는데, 앞으론 영원히 그렇게 되겠죠? 이 빨간 구두요… 15년 된 캥거루가죽 맞아요. 저이가 나이트밴드 아르바이트 뛰어서 첫 월급으로 사준 우리 결혼 선물이죠. 이거 신고 난생 처음 비행기 타고 제주도로 신혼여행 갔어요. 이 호른은 방직공장 월급 일년을 꼬박 모아서 제가 사준 거예요.(호른을 쓰다듬는 여자. 창가에서 귀 기울이는 의뢰인1) 서귀포 밤바다는 그날 따라 왜 그렇게 고요했는지, 저이가 부는 호른 소리가 수평선 끝까지 울려 퍼졌어요. 모차르트 호른 협주곡 3번 2악장 알레그로. 그게 저이가 아는 유일한 연주곡이죠. 순이를 낳게 되어서 사범대학을 그만뒀으니… 이 모든 걸 다 잊어버리겠죠? 의뢰인2:아마 그렇게 되겠죠. 여자:그렇게 되면, 우린 이 세상 안 산 거나 같네요. 시골 고등학교 밴드부 남학생이 부는 호른 소리에 바람나 쫓아다니다가…. 외아들 사범학교 나와 선상님이 평생소원이던 홀어머니 가슴에 못질하고, 남자 앞길 망쳤다고 원망들은 촌년이… 저승 가서 어머니까지 못 알아보는 산송장 만들어 놨다는 소린 죽어두 들을 순 없네유. 차라리 청진기 쓰고 세상의 소리에 미쳐서 사는 게 나아요. 저인 소리를 사랑했으니까. 저이 어머니도 소리를 벗삼아 사셨으니 하늘나라에선 서로 알아보겠지요. 의뢰인2:사모님…. 여자:선생님도 저이가 미쳤다고 보세요? 의뢰인2:의사가 해서는 안 되는 말이 하나 있지요. 알 수 없습니다…. (의뢰인3이 주사기 가지고 들어온다. 의뢰인2가 여자를 부축해 나간다. 의뢰인3이 주사할 준비를 하는데, 창문에서 지켜보던 의뢰인1이 들어와서 부서진 호른을 들어본다.) 의뢰인1:아까 몇 밀리그램이라 했지? (쳐다보는 의뢰인3) 3밀리그램만 투여해. 의뢰인3:3밀리요? 네…. (주사기 용량을 조절해서 남자의 팔에 주사 놓고 나가는 의뢰인3) 의뢰인1:길영호씨. 지금 혼자서 호숫가를 거닐고 있소? (입으로 모차르트 호른협주곡 3번을 불며 빠져든다.) 빠밤 빠바바밤 바밤바 빠바밤- 빠밤 빠바바밤 바밤바 빠바밤- (이층 401호로 힘없이 들어서는 여자. 부적 뭉치를 탁자에 놓다가 세어본다.) 여자:하나, 둘, 셋, 넷…. 분명 다섯장을 붙였는데. 한 장이 살아있어! (암전) (무대 밝아지면, 병실 분위기가 나는 아래층 301호. 환자복이 입혀진 남자가 침대 벨트에 묶여있고, 의뢰인2를 따라 여자와 딸이 들어선다.) 의뢰인2:휴, 제가 미친 거 같네요. 주치의가 회진오시기 전에 끝내셔야 합니다. 여자:고맙습니다. 순이야, 어서. 딸:아빠! 제가 왔어요. 어째 잠만 자는 거야. 흑흑흑…. 아빠 일어나세요. 눈떠- 아빠- 여자:여보! 순이가 돌아왔어요. 이제 일어나세요. 다 잘되었어요. 저도 직장 잡아 돈벌이해요. 지난 일은 잊고, 정신 좀 차리세요. (여자와 딸이 벨트를 풀고, 사력을 다해 남자를 일으켜 세운다. 아무리 흔들어도 눈을 뜨지 못하고 무너져 태아처럼 웅크리는 남자) 딸:흑흑흑…. 엄만 대체 무얼 한 거야! 아빠가 저리 되도록. 여자:엄만 안 해본 거 없다. 귀신 쫓는다는 복숭아도 들이고, 부적도 붙여보고, 약손으로 아픈 데 쓸어주시던 할머니 소리도 해보고…. 너는 뭘 하고 있었어. 이년아, 니 아빠 이리된 것 다 너 때문이다. 나가버릴 거면 그냥 나가지 메시지는 왜 남겨! 딸:난 그냥…. 아빠가 기다릴 것 같아서…. 여자:그걸 아는 년이 세 달이나 안 들어와! 니 메시지 못 들었다고, 또 올지도 모르니까 지켜봐야 한다고, 휴대전화에서 눈도 못 떼고 일주일을 뜬눈으로 지새우셨다. 그러다 결국 쓰러지신 겨. 산송장 되신 겨. 집으로 가요, 여보. (남자의 환자복 윗도리를 벗기고 몸을 쓸어주며 사복으로 갈아입히는 여자와 딸. 자연스럽게 할머니의 소리를 하게 된다.) 여자:“우리 아기 예쁜 배, 할미 손은 약손, 쓱쓱 만져 주면, 뭐든지 다 낫는다.” 할머니:“우리 아기 동그란 배, 할미 손은 약손. 궁글궁글 쓸어 주면, 뭐든지 다 낫는다.” (소리를 받아 부르는 할머니의 환영. 문으로 들어와 부엌에서 요리를 한다.) 할머니:어여 일어나거라. 영호야. 된장찌개에 밥 말아먹고 어여 핵교 가야지. 온나 온나. 어여…(미소 짓는 남자) 우리 외동이, 온나 온나. 딸:엄마! 아빠가 웃어. 여자:어디? 정말! 여보, 어디 좋은 곳 유람이라두 하는 게유? 할머니:아유, 찌린내. 요 녀석 바짝 섰네. 쯧쯧쯧. 이부자리는 한강이구. 늦게까지 숙제하더니 곤했던 게여. 그려 됐다. 옷 갈아입자. 아부지 모르시게 저리 치워놨다. 인나렴. (여자와 딸이 남자의 아랫도리도 사복으로 갈아입힌다. 할머니는 싱크대로 가서 도마를 꺼내 칼자루 끝동으로 마늘을 다진다.) 소리:(마늘 다지는) “쫑 쫑 쫑 쫑-” 여자:여보, 제가 잘못했어요. 제발 눈을 떠요. 딸:아빠. 눈 떠. 제가 잘못했어요. 흑흑흑. 아빠. 제발! 남자:불…. 불이여…. 딸:뭔 불이 나? 남자:집에 불났다. 어쪄 어무이. 할머니:간밤에 어매가 호롱불 꺼놨다. 걱정 말그라, 불 안 났으니. 밥 다됐다. 소리:(찌개 끓는) “보글 보글 보글 보글….” (마침내 힘없이 눈 뜨는 남자) 할머니:됐다. 눈 떴다! 딸:아빠! 여자:여보! 할머니:어매는 좀 쉴란다. (이젠 할머니가 기력이 다한 듯 눕는다. 중얼거리며 그 옆으로 다시 무너지는 남자) 남자:왜 이리 자꾸 졸리지. 어무이 괜찮으셔유? 주무시는가베. 순이야, 엄마는 일 나갔니? 밥은 먹었니? 그래 아빠 잠깐 눈 좀 붙였다 일어날 테니 뭔 일 있으면 깨우렴. 아주 잠깐이다…. 아빠가 일어나서 떡볶이 해줄게. 설탕도 넣고 달달하게…. (모로 쓰러진 남자 어느새 코를 곤다. 할머니가 부스스 일어나 아들과 손녀를 보더니 천천히 문으로 걸어 나가며 아들을 부른다.) 할머니:애비야…. 영호야! 영호야…. (놀라서 벌떡 일어나는 남자) 남자:어무이! 딸:아빠. 꿈에 할머니 봤어? 남자:순이야. 혹시 할머니가 뭐라 하셨니? 딸:언제요? 남자:돌아가시기 전에. 딸:(할머니 목소리로) “애비야…. 영호야! 영호야….” 남자:그래… 맞았어. 어무이가 날 부르는 소리였어.(딸을 안으며) 순이야. 할머니가 아빠를 불러주셨구나. 아빠는 할머니가 한마디도 안 하고 그냥 가신 줄 알았다. 여보, 어무이가 나를 불러 주셨대. 날 용서하신 거여. 여자:여보, 흑흑흑…. 딸:내가 아빠를 얼마나 깨웠는 줄 알어? 남자:기특한 것. 아빠가 잘못했다. 어무이, 지가 죽일 놈입니다. 여자:아니에요. 지가 죽일 년이에요. 남자:어무이 손은 약손이여. 암…. 그렇구 말구. 딸:할머니 손이 약손? 남자:니 여섯 살 때, 맹장염을 앓았단다. 할머니가 밤새 순이 배를 문질러 주셨대. 할머니 약손으로. 니가 잠이 들어서 새벽이 됐는데, 아빠가 나이트 일 마치고 와보니 이미 혼수상태인 거라. 그래 아빠가 들쳐 업고 병원에 가서 수술을 받은 거여. 딸:애게, 약손이면 맹장도 고쳐야지. 남자:아픈 걸 잊게 해주셨잖니. 그러니 약손이지. 이렇게 배를 쓸어주시면서…. (약손 소리를 함께 부르는 가족. 할머니가 밖에서 창문을 열고 함께 부른다.) 가족:“우리 아기 예쁜 배, 엄마 손은 약손, 쓱쓱 만져 주면 뭐든지 다 낫는다.” 할머니:“우리 아기 동그란 배” 가족:“엄마 손은 약손” 할머니:“궁글 궁글 쓸어 주면…” (노래하다가 침울하게 그치는 할머니) 할머니:인자 이 손 약발도 다 떨어졌는가부다. 이 손으로 아범 뺐어가려던 저승사자들 다 쫓아 버렸는데 이젠 안 되는가부다. 내 다시는 약손 안 할란다. 남자:어무이, 이참에 그 달랑무 소리도 그만 두세요. 동네 애들이 벌써 순이를 놀린대요. 할머니:내 그리하마…. 달랑무 소리두 안 할란다. (창문을 닫는 할머니. 의뢰인1이 방으로 들어선다. 긴장하는 의뢰인2) 의뢰인2:선생님, 환자가 깨어났습니다. 어제 2단계 프로그램의 효과인 것 같습니다. 옷은 환자가 갈아입고 싶다고 해서…. 의뢰인1:음…. 잘했구만. 길영호씨. 이제 환청이 들리지 않습니까? 남자:네, 사라졌습니다. 의뢰인님. 의뢰인1:허허허…. 잊으세요. 불필요한 소리들을. 불필요한 기억들을. (의뢰인3이 호른 케이스를 하나 들고 들어온다.) 의뢰인3:지금 도착했습니다. 의뢰인1:(케이스를 남자에게 주며) 퇴원하게 되면 이게 필요하실 겁니다. 여자:호른이잖아요? 의뢰인1:제가 30년간 가지고 있던 겁니다. 주인을 잘못 만나 먼지만 뒤집어쓰고 있었죠. 한적한 호숫가를 찾게 되거든 연락 한번 주세요.(나가며) 한번 들으러 가고 싶군요. 의뢰인2:선생님! 의뢰인1:자네가 “알 수 없습니다.” 하는 순간, 나도 알 수 없어 졌다네. 의사는 신이 아니지 않은가. 남자:선생님. 신은 이 수많은 세상의 소리를 어찌 다 들을까요. 의뢰인1:허허허- 다 듣다간 신도 입원해야지요. (마주보고 씩 웃는 그들. 의뢰인들 나간다.) 남자:어머니더러 달랑무 못 파시게 한 그것이 내내 걸리는 거여. 바깥출입도 안 하시구 말수도 적어지더니 그냥 가신 거여. 여자:제 잘못이에요. 동네 푼수들 말만 듣고…. 남자:어무이는 소리 힘으로 사신 겨. 그게 어무이 약손이여. (문이 열린 채다. 그 문으로 겨울바람이 불어온다. 어머니가 다시 들어와 서성이며 누군가를 기다린다. 뭔가 바람에 날려 쿵- 엎어지는 소리) 할머니:영호니? 영호야- 야가 삼일씩이나 어딜 간 거여. 저게 누구여. 영호지. 어여 어여 온나. 세상에! 야가 못 먹어서 눈이 십리는 들어갔네. 집 놔두구 어딜 갔다 이제 오는 겨. 들어가 밥 묵자. 엄매가 된장국 끓여놨다.(흰 고무신을 주며) 봐라. 흰 고무신 사놨다. 따습지? 어여 신어봐. (흰 고무신을 받아 침대 머리맡에 놓았다가, 가슴에 끌어안고 웅크리는 남자) 소리:(소년) 흰 고무신 때 타면 어쩐대유. 소리:(할머니) 영호야 자니? 엄매는 그깟 금가락지 없어도 된다. 영호만 있으면 된다. 소리:(소년) 어무이. 흰 고무신… 내 눈 내리면 신을란다. 소리:(눈 밟는) “뽀작 뽀작 뽀작 뽀작” 할머니:멋지다. 헌헌장부 났다. 남자:남학생들이 줄줄 따르것다잉. 손이 얼은 것 좀 봐. 요리로 들어와. 어여. (어느새 인라인 스케이트 신고 헬멧 쓰고 서있는 딸. 아빠 엄마 있는 침대 이불 속으로 기어들어 간다. 문가에서 고개 끄덕이던 할머니, 달랑무 팔러 가신다.) 할머니:달랑무∼ 있어. 푸성귀나∼ 달랑무∼ 있어. 무대 서서히 어두워지며 암전. ■ 희곡 당선소감 게으른 며느리에게 시켜야 할 일은 두부 만드는 일이랍니다. 느긋하게 일해야 맛있는 두부가 만들어진다죠. 군대 지휘관도 게으른 사람이 좋답니다. 게으른 천재여야지 괜히 아랫사람 생고생 시키지 않는다는 건데…. 요건 사실 게으른 아랫사람들의 소망이죠. 부지런한 천재 즉 이순신 같은 양반 만났다간 그저 죽었구나 하고 뛰는 수밖에 별다른 도리는 없지요. 안 뛰면 바로 곤장 맞지요. 난중일기 쬐금 보니까, 임진왜란 발발 전에 이 어른 매일 하는 일이 순찰 나가서 하급지휘관 곤장 치는 게 주업무이시더군요. 그렇게 만반의 준비를 다 하셨으니 백전백승의 신화를 창조하셨던 게죠. 선친께서 제 원래 이름자에 늦을 만(晩)자 하나를 넣어주신 덕택에 이렇게 느즈막히 입문하게 되었나 봅니다. 작은 상 하나를 펴놓으시고 늘 만년필로 원고지에 글을 쓰셨던 아버님께서는 교단 은퇴 후에 스스로 책 몇 권을 출간하셨죠. 그러곤 집안잔치가 있으면 친구 분들께 그 책을 선물하던 낙으로 사셨습니다. 평생 글을 쓰시던 열정은 정말 프로작가 못지않으셨지요. 이제부턴 저도 작심하고 자세 가다듬어 열심히 쓰겠습니다. 작은 상 앞이 아니라 PC 앞이 되겠네요. 축하해주는 벗님들, 사랑하는 영두와 영소, 그리고 가족들. 더불어 삶의 위안과 기쁨을 원하는 이들을 위해서. 아울러 미흡한 글을 뽑아주신 심사위원들께 감사의 말씀 올립니다. ●약력 1959년 충북 제천 출생 중앙대 교육대학원 무용 석사과정 ■ 심사평 세상이 어수선한 탓인지 응모작들 중에서도 투신자살, 노숙자, 입시부정, 로또복권 등 세상살이의 고달픔을 담은 작품들이 유난히 많았다. 인터넷과 휴대전화의 문자메시지, 그리고 각종 드라마 매체에 많이 노출된 탓인지 대화체의 이야기 구사에는 능숙해졌으나 막상 연극이라는 무대예술의 특성을 이해하고 있는 작품은 드물었다. 최종적으로 심사자들의 손에 남은 희곡들은 박만호의 ‘청진기’, 김성제의 ‘바다로 가는 성북행’, 그리고 류세균의 ‘달 속의 그늘’이었다. 공사판의 살인사건을 그린 ‘달 속의 그늘’은 밑바닥 인생들의 성격설정이나 대사구사에 능숙했으나 극 구성이 너무 평이하고 결말 부분을 배영감의 감상적인 인생고백으로 가져간 점이 지적되었다. 지하철 승강장을 배경으로 해서 사회적으로, 성적으로 상처받고 억압된 두 모자의 아픈 일상을 포착해낸 ‘바다로 가는 성북행’은 살아있는 독특한 정서가 심사자들의 주목을 끌었다. 남편에게 맞고 사는 식당 파출부인 엄마와, 성전환 수술을 위해 일본으로 돈벌러 가는 여성적 아들의 아픔을 과장되지 않은 일상적 대사 속에 담아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극적 상황과 행동을 충분히 연극적으로 객관화시키지 못했고 극이 아직 작가의 주관적인 관점 안에 갇혀있다는 느낌이 있다. 현대생활을 지배하는 각종 소음과 어린 날에 듣던 정겨운 소리들을 대비시킨 ‘청진기’는 ‘소리’를 극적으로 전경화시킨다는 아이디어나, 신경증환자인 남편을 아내가 의료진과 공모해서 연극적으로 치유한다는 설정 등이 충분히 연극적이며 대사나 극 전개 기법도 상당히 감각적이었다. 그러나 ‘문명의 비인간성/어린 시절의 순수함’이라는 대비가 도식적이며, 극전개의 생략과 비약이 과도한 점에서 어느 기성작가를 연상시킨다는 점이 다소 걸렸다. 결국 각각 장단점을 갖춘 ‘청진기’와 ‘바다‘를 두고 고심을 거듭하다가 그 나름의 완성도와 무대적 상상력을 높이 사 ‘청진기’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김철리(연출가)·김방옥(평론가)
  • [2005 문화코드] ① 팩션(팩트+픽션)

    [2005 문화코드] ① 팩션(팩트+픽션)

    새해에는 어떤 문화적 현상 혹은 흐름이 주목받을까. 새로운 문화현상을 지금 여기서 어떻게 해석하고 바라볼 것인가를 이야기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도 가장 의미있는 답을 얻기 위해선 이른바 ‘코드’ 접근법에 기대지 않을 수 없다. 서울신문은 5회에 걸쳐 2005년 문화현상을 전망하고 해석한다.‘팩션’‘신(新)한류’‘미래담론’‘생명사상’‘녹색진보’등 다섯 갈래로 나눠 다양한 문화현상의 본질을 짚는다. ■ 출판 상상력의 시대다. 문화장르에 ‘상상’의 메타포가 빠진 적이 한순간이라도 있었을까마는 현실은 사뭇 다르다. 출판·방송·영화할 것없이 부쩍 전에 없던 창작기류가 흐른다. 이른바 2005년에도 현재형으로 진행될 것으로 예감되는 문화코드 ‘팩션(faction)’이다. ●‘다빈치 코드’로 촉발된 열풍 식지않을듯 지난해 하반기 출판가에서 비롯된 용어 ‘팩션’이란, 사실(fact)과 허구(fiction)를 결합한 문학형태다. 주로 역사를 바탕으로 상상력을 추리기법으로 가미하는 만큼 역사추리소설 혹은 지식소설로 불리기도 한다. 지난해 6월 국내 출간된 세계적 베스트셀러 ‘다빈치 코드’로 촉발된 팩션열풍은 좀체 식을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전례없는 출판시장의 불황에도 불구하고 댄 브라운의 ‘다빈치 코드’(베텔스만)는 출간 6개월여 만에 무려 100만부를 넘게 팔아치웠다. 댄 브라운의 저작으로 ‘다빈치 코드’의 전작에 해당하는 역사추리소설 ‘천사와 악마’도 잇따라 전략적으로 출간돼 쏠쏠한 재미를 봤다. 이후 서점가에는 팩션소설들이 줄을 잇고 있다. 르네상스시대 문헌의 수수께끼를 풀어가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죽음과 계시의 사건들을 다룬 ‘4의 규칙’(랜덤하우스중앙),17세기 이탈리아의 한 여관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의 진실을 캐는 과정에 당대 유럽의 역사가 화려하게 펼쳐지는 ‘임프리마투르’(문학동네)도 그 범주에 속한다. ‘다빈치 코드’의 성공으로 그 효과를 덤으로 누린 책도 적지 않았다.‘성배와 잃어버린 장미’(루비박스),‘다빈치 코드의 진실’(예문),‘다빈치 코드 깨기’(규장) 등이 그들이다. ●인문학적 지식 바탕으로 추리력 발휘 이 소설들의 공통점은 하나같이 한 사건을 실마리로 해서 이야기를 풀어간다는 점.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사건해결에 필요한 수많은 단서들이 제시되고 그들을 통해 역사이해 등 인문학적 지식이 바탕이 된 추리력을 발휘하게 된다. 사실 팩션이란 개념이 처음 도입된 분야는 문학이 아니라 저널리즘쪽이었다.1960∼70년대 텔레비전에 신문의 인기가 밀리자 독자들의 시선을 붙잡기 위해 기사문체를 딱딱하지 않고 재미있게 픽션화한 데서 유래했다는 것. 그렇다면 팩션의 불씨가 문화전반으로 옮겨붙은 배경은 어디에 있을까. 정답은, 당연히 문화소비자인 ‘대중’의 변화된 욕구다. 문학평론가 김동식씨는 “대중적 흥미에다 폭넓은 인문학적 교양을 쌓을 수 있는 ‘두마리 토끼’를 잡는 소설읽기는 현대인들에게 꾸준히 인기를 누릴 것”이라고 해석했다. 팩션열풍에서 새삼 ‘팩트’(사실)가 강조되는 이유부터 따져봐야 한다는 목소리도 의미심장하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은 “예전에는 정보의 실체가 보였으나, 인터넷 시대에는 그것들을 구체적으로 볼 수가 없다.”고 전제,“(대중은)정보의 실체로 연결될 수 있는 계기를 찾는 것”이라고 분석했다.‘단테클럽’을 읽은 독자들은 자연스럽게 단테의 ‘신곡’을 찾게 되고,‘다빈치 코드’ 독자들은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궁금해 한다는 것이다. ●‘팩션’ 1960~70년대 부드러운 신문기사서 유래 획일화된 일상에서 벗어나고픈 욕구와, 실체적 정보에 다가서려는 인터넷 시대의 반동적 욕망이 결합해 팩션을 낳고 있는 셈이다. 새해에도 출판가에서는 팩션식 소설의 인기는 계속될 것 같다. 인기작가 이인화가 7년 만에 선보여 화제인 신작 ‘하비비’(해냄)도 팩션형태.‘삼국지’의 영웅 조조가 남긴 비밀지도의 행방을 놓고 암투를 벌이는 이야기 얼개다.‘다빈치 코드’가 표절작품이라는 논란을 제기한 루이스 퍼듀의 ‘다빈치 레거시’(팬아스)도 최근 새로 서점가에 합류했다. 베텔스만도 상반기 중 댄 브라운의 또다른 인기추리소설 ‘디지털 포트리스’를 선보일 예정이다.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영화 역사적 사실에 허구를 가미한 ‘팩션 영화’를 국내외에서 한 편씩 꼽으라면 누구나 ‘황산벌’(2003)과 ‘포레스트 검프’(1994)를 떠올릴 듯 싶다.‘황산벌’은 김유신, 계백 장군을 사투리 때문에 싸우게 만들었고,‘포레스트 검프’는 IQ 75인 청년으로 하여금 미국 현대사의 중심축을 가로지르게 하는 상상력을 발휘했다. ‘실감나는 상상력’으로 관객들을 즐겁게 했던 이같은 팩션 영화는 최근 들어 국내외 할 것 없이 그 수가 늘고 있다. 한국영화의 올해 개봉·제작 리스트에도 여러 편이 올라있다. 하지만 추리 코드를 전제로 하는 문학 분야와 달리, 영화에서는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는 것이 그 특징이다. 2월 개봉예정인 ‘그때 그사람들’은 10·26을 기초로 캐릭터와 모든 정황을 허구로 구성한 블랙코미디. 크랭크업을 거의 앞둔 ‘혈의 누’는 구한 말 천주교박해를 배경으로 연쇄살인사건을 추적하는 추리 공포 사극이고, 올 여름 개봉예정인 ‘천군’은 남북한 병사가 과거로 휩쓸려가 이순신 장군을 만난다는 내용의 팩션 영화다. 하반기 개봉을 목표로 준비 중인 ‘대한독립만세’는 1929년 광주학생독립운동을 배경으로 양아치들의 활약을 그린 코믹 액션 영화다. CJ엔터테인먼트 한국영화팀 관계자는 “한국영화에서는 스릴러 장르가 발전하기 못했기 때문에 ‘다빈치 코드’류의 추리물을 발견하기는 어렵지만, 픽션을 가미한 실화 소재의 영화는 많이 제작되고 있다.”고 말했다. 할리우드도 예외는 아니다. 현재 상영중인 ‘내셔널 트레저’는 미국 건국 초기의 거물들이 속해있던 프리메이슨이라는 단체를 바탕으로, 이들이 지폐나 건축물에 보물지도를 숨겨놓았다는 상상력을 동원했다.‘다빈치 코드’도 내년 중에 미국 컬럼비아사에서 영화화될 예정이다. 영화평론가 전찬일씨는 “실제사건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는 엄밀히 말하면 모두 팩션”이라면서 “항상 새로운 소재를 고민하는 제작자들에게 팩션 영화는 창작보다 쉬우면서도 지금까지 덜 다뤄졌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라고 분석했다. 김소연기자 purple@seoul.co.kr ■ 드라마 안방극장에도 ‘팩션’바람이 거세다. 현재 방영되고 있거나 곧 전파를 탈 TV드라마들을 보면, 역사적 사건과 과거 성공한 인물 등 과거 사실을 바탕으로 작가의 상상력을 가미한 ‘팩션’작품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이달말 첫 전파를 타는 MBC 주말드라마 ‘제5공화국’은 10·26 사태로 박정희 전 대통령이 서거한 뒤 12·12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은 전두환 전 대통령 시절의 혼란의 정치사를 드라마화한 작품.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등 전직 대통령들과 5·18 광주민주화운동 등 정치사가 리얼하게 재연될 예정이다. 현재 인기리에 방영 중인 KBS2TV 대하드라마 ‘해신’은 해상왕 장보고의 생애와 당대 사건 등을 ‘팩션’에 입각해 재구성한 작품. 방영 초기부터 ‘원균 재조명’을 둘러싼 뜨거운 논란에 휩싸인 KBS1TV 대하드라마 ‘불멸의 이순신’도 이순신과 원균이라는 역사적 인물과 임진 왜란 등 역사적 사실을 현대적인 시각으로 재해석했다. 실존 인물인 삼성 고 이병철 회장과 현대 고 정주영 명예 회장을 모델로 한 MBC ‘영웅시대’도 과거 60∼70년대 격동기의 ‘재벌 이야기’와 ‘정경유착’ 등 격동의 정치·경제사를 기초로 모든 정황을 허구로 구성한 ‘팩션 드라마다. ‘팩션’요소를 이야기 전개의 중심축으로 삼은 드라마들은 올 한해에도 속속 기획되거나 제작될 예정이다. 지난 2000년 무기도입을 둘러싼 정치권 불법 로비 의혹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재미교포 로비스트 ‘린다 김’과 군 전력 증강 사업(일명 백두사업)을 소재로 한 TV드라마가 올 하반기 이후 제작에 들어갈 예정이다. 성공 벤처기업을 모델로 한 TV 드라마도 곧 선보인다. KBS 김현준 드라마 1팀장은 “최근 역사적 사건과 인물을 소재로 한 ‘팩션’작품이 속속 등장하는 것은 과거를 현대적 시각에서 재해석하려는 사회내 분위기와 제작진의 창작 욕구가 맞아 떨어져 생겨나는 것으로 볼 수 있다.”면서 “‘팩션’외에도 고전을 리메이크 하는 등 ‘과거 지향’적인 추세는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 [예언으로 읽는 우리역사]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6일부터 매주 목요일 연재

    [예언으로 읽는 우리역사]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6일부터 매주 목요일 연재

    서울신문이 새해부터 역사학자 백승종(47·푸른역사연구소장)씨의 역사 문화 에세이 ‘예언으로 읽는 우리 역사-백승종의 정감록(鄭鑑錄) 산책’을 연재합니다. 1월6일부터 매주 목요일에 실릴 이 연재물은 우리 사회 문화 전반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 민족의 예언서 ‘정감록’에 담긴 의미를 현대적인 감각으로 풀어가는 고급 에세이입니다. ‘정감록’은 동학을 비롯한 새로운 종교의 사상적 모태가 되었습니다. 조선 후기 변혁운동의 추동력도 바로 ‘정감록’에서 나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전국 곳곳에 이른바 ‘감록촌(鑑錄村)’이 생겨났을 정도로 ‘정감록’의 영향은 지대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민간신앙의 경지에까지 오른 ‘정감록’의 본질에 대해 우리는 아직 잘 모르는 부분이 너무 많습니다. 잘못 알려진 것들도 적지 않습니다. 필자에 따르면 ‘정감록’은 18세기 전반 함경도에서 출현했고, 세월이 지나면서 적지 않은 내용상의 변화를 겪었습니다. 한 사람의 창작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의 손을 거친 ‘민중의 저작’인 셈입니다. 그런 만큼 ‘정감록’의 비의(秘意)를 정확히 해독하기는 어렵습니다.‘…백승종의 정감록 산책’은 그 비밀의 코드를 여러 문헌 자료와 역사적 상상력을 통해 독자와 함께 풀어가는 흥미로운 지적 여정이 될 것입니다. 서강대 사학과 교수와 독일 베를린 자유대 한국학과 교수를 지낸 필자는 국내 미시사 연구의 개척자로,‘정감록’에 관한 논문을 6편이나 쓴 최고의 ‘정감록’ 학자입니다.‘대숲에 앉아 천명도를 그리네’ 등 대중적 역사서를 낸 베스트셀러 저자이기도 합니다. 새들은 태풍을 미리 감지하고 안전한 곳으로 부지런히 날갯짓을 한다고 합니다. 우리 선조들도 뭔가 큰 일이 닥쳐올 것 같으면 ‘정감록’을 서둘러 훑어 보았습니다. 거기에 절망을 희망으로 살아내는 예언의 지혜가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백승종의 정감록 산책’은 ‘정감록’이 결코 단순한 혹세무민의 비기(秘記)나 길흉화복을 점치는 참서(讖書)가 아님을 증명해 보일 것입니다. 필자의 자유분방한 붓끝을 좇다보면 어느새 역사를 바라보는 눈이 밝아지고 사유의 지평이 트인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성원 부탁드립니다. 서울신문
  • [안동환기자의 현장+] 대리기사 꿈 실은 ‘고양이 버스’

    [안동환기자의 현장+] 대리기사 꿈 실은 ‘고양이 버스’

    대중교통이 끊긴 시간, 대리운전 기사들은 어떻게 움직일까. 치열한 경쟁으로 대리운전 요금이 크게 떨어진 상황에서 자칫 택시비가 더 많이들 텐데…. 정답은 대리운전 기사의 발을 자처하는 셔틀 버스에 있다. 캄캄한 새벽에만 다니는, 보통사람들에게는 감추어진 그들만의 교통수단을 ‘고양이 버스’로 불러도 좋을 것이다. 물론 일본의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고양이 버스의 동화적 상상력과는 한참 거리가 멀다. 자정부터 서울과 의정부, 일산, 분당, 인천, 부평, 수원, 안산, 안양 등 수도권의 밤거리를 거미줄처럼 연결하는 버스안의 세계는 생존을 위한 또 다른 ‘전쟁터’다. 22대의 25인승 버스가 14개 노선에서 하루 평균 3300㎞를 달린다. 손님은 한국대리운전협회 회원 4000여명. 매일 1000여명이 이 버스를 타고 이동한다. 28일 오전 1시10분. 한 대의 셔틀 버스가 경기 의정부시 신곡동을 미끄러지듯 벗어난다. 지난 4월부터 운전대를 잡았다는 추창호(58)씨의 이른 하루가 비로소 시작된 것이다. 추씨는 낮에는 유치원 버스, 밤에는 고양이 버스를 모는 ‘투잡스족’. 그는 오늘도 의정부에서 강남구 청담동 프리마호텔 앞까지 1번 노선을 새벽 4시까지 두 차례 왕복해야 한다. 추씨에게 주어진 시간은 48분. 손님이 있는 목적지에 1분이라도 빨리 닿아야 공치지 않는 대리운전 기사들과 고양이 버스 기사의 시간 싸움에 버스 안은 팽팽한 긴장감이 흐른다. 오전 1시30분, 하계역에서 버스에 오른 우모(54)씨는 무척 고단해 보였다. 서울 을지로에서 의정부를 오가며 3건을 뛰었다고 한다.4만 5000원을 받았지만 택시비 6000원에 회사 공제금 20%를 제하면 얼마나 남을지…. 그는 파주에서 전자부품을 만드는 영세업체 사장이다. 깊어지는 불황에 지난해 11월에는 집까지 팔았지만 어려움은 풀리지 않았다. 직원 2명의 월급을 주기 위해 낮에는 공장에서, 밤이면 새벽 3시까지 대리운전 기사로 뛰고 있다.“내년에는 제발 경기가 풀려 웃어 봤으면 좋겠다.”는 우씨의 이마에는 주름살이 깊게 패어 있었다. 대리운전 기사들은 셔틀 버스 안에서도 쉬지 못한다. 쉴 새 없이 호출신호가 울리는 단말기에서 눈을 뗄 수 없다. 용케 손님의 호출을 받은 대리 기사들이 중간에 내릴 때는 남은 이들의 부러운 시선이 뒷모습에 박힌다. 태릉입구역을 지나면서 버스는 대리 기사들로 빈자리가 없었다. 영동대교를 건너자 화려한 네온사인이 번쩍이는 강남으로 접어든다. 모든 대리 기사의 마지막 ‘전투지’다. 버스 안에는 기대감과 묘한 흥분의 기류가 흐른다. 1시58분. 신기하게도 1분의 오차도 없이 버스는 종착지인 프리마호텔 건너편에 정확히 멈췄다.5분 뒤 버스는 다시 의정부로 달려가야 한다. 추씨는 오전 3시10분 신곡동 출발점에서 두 번째 운행을 시작할 것이다. 추씨는 새해 방학네거리에서 압구정동까지 편도 16㎞의 조금 짧은 노선으로 옮긴다. 밤을 하얗게 밝히고 한달에 100만원을 손에 쥘 뿐이지만 추씨는 “몸이 허락하는 한 계속하고 싶다.”고 의지를 보인다. 추씨는 유치원 버스에서도 한 달에 120만원의 수입을 올린다. 하지만 눈붙일 겨를 없이 이어지는 일이 환갑을 바라보는 그에게는 무리가 아닐 수 없다. 외환위기로 운영하던 공장을 접고 긴 실직의 터널을 지나야 했던 추씨는 ‘노동은 행복’이라는 작지 않은 가르침을 주었다. 이날 버스 안에서 만난 여성 대리운전 기사 정모(46)씨는 동대문 시장에서 미싱 일을 한다. 정씨는 아이들 교육비를 벌겠다고 밤마다 도로로 나선다. 아이들이 유일한 희망이기 때문이다. 노총각 박모(35)씨에게 새해에 이루고 싶은 일을 물었더니 잠시 주저하더니 꼭 결혼을 하고 싶단다. 취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새벽길, 가슴이 따뜻해진 때문인지 춥지도, 피곤하지도 않았다. 거대한 수도권의 밤거리를 내달리며 치열하게 살아가는 이들이 자랑스럽고 고맙기조차 했다. sunstory@seoul.co.kr
  • [교육 in]연세大 어린이생활지도연구원

    [교육 in]연세大 어린이생활지도연구원

    ‘이론과 실제가 상호작용하는 이상적인 교육 공간’ 연세대 어린이생활지도연구원 (www.yonsei.ac.kr/child)은 교육 이론을 현실에 합리적으로 적용하려 노력하는 대표적인 교육기관이다.30년 역사를 가진 이 연구원에서는 ‘가르치는 이’가 아닌 ‘배우는 이’의 개성과 관심에 초점을 맞춰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정착시켜 왔다.‘열린교육’의 취지를 이해하는 학부모들에게 두터운 신뢰를 얻고 있는 어린이생활지도연구원의 교육 현장을 찾았다. 성탄 전야의 설렘이 온누리에 가득하던 지난 24일 오전. 서대문구 신촌동 연세대 치과대학 뒤편에 자리잡은 어린이생활지도연구원 연구동에 들어서자 차가운 바람에 언 볼이 사르르 녹는다. 마치 가족들이 기다리는 집에 온 것처럼 포근한 ‘엄마 품의 온기’가 느껴지는 듯하다. 연구동 2층의 30평 남짓한 방에는 어린이 9명이 놀이삼매경에 빠져 있다. 내년이면 초등학교에 들어가는 만 5세 종일반이다. 아이들은 각자의 관심에 따라 선생님과 팽이나 과자를 만들고 있었다. 선생님과 수업을 한다기보다는 마치 엄마와 아이들이 일상적인 놀이를 즐기는 것처럼 보인다. ●한반에 전문분야 다른 교사 2명 배치 최강미 교사와 팽이를 만드는 아이들은 4명. 태연이는 길이 5∼6cm정도 되는 장난감 블록을 조립해 풍차 모양 팽이를 완성했다. 해린이도 지지않으려는 듯 열심히 팽이를 조립한다. 아이들이 모두 팽이를 완성하자 최 교사는 팽이돌리기 시합을 유도한다. 열심히 팽이를 만들던 경도는 이 놀이에 싫증이 났는지 딴청을 부린다. 최 교사는 방 귀퉁이에서 딴짓하는 경도에게 팽이돌리기 게임의 공정한 심판을 맡아달라고 요청한다. 경도는 새 임무를 흔쾌히 수락했다. 아이들은 세상에 단 하나 뿐인 자신의 팽이가 오래 돌길 기원하면서 팽이돌리기 시합을 펼쳤다. 바로 옆에서는 크리스마스 과자 빚기가 한창이다.5명의 아이들이 김선주 교사와 크리스마스 이야기를 나누며 과자를 빚는다. 양은이는 만들고 싶은 과자가 너무도 많다. 고사리만한 손으로 밀가루 반죽을 떼어다가 조몰락 거리며 별과 천사, 하트 모양을 만든다. 양은이는 직접 빚은 과자를 구워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마냥 신이 난다. ●원하는 놀이 스스로 선택할 수 있게 김 교사는 이 같은 요리활동으로 아이들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재료의 부피나 크기를 직접 가늠해볼 수 있고 요리에 얽힌 재미있는 이야기를 나누며 상상력을 키울 수 있을 뿐 아니라 음식을 만드는 과정에서 다양한 손의 근육을 사용해볼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만 5세 종일반 어린이들의 수업에서 보듯 어린이생활지도연구원에서는 한글, 영어, 수학과 같이 정해진 과목이름이 없다. 모든 수업은 놀이로 이루어진다. 교사가 이끌어가는 정해진 놀이가 아닌 어린이들의 관심과 흥미를 전적으로 존중한다. 수업 시간 마다 두 사람의 교사가 참여하고 교사는 각각 다른 두 가지 놀이로 아이들을 이끈다. 아이들은 자신이 원하는 놀이를 선택할 수 있고 자연스럽게 2∼3개 그룹으로 나누어져 수업이 진행된다. 지난해는 공룡 테마를 가지고 다양한 놀이를 했다. 처음에는 공룡에 관심이 많은 몇몇 어린이들이 공룡 이야기를 나누는 것으로 놀이가 시작됐다. 교사들은 아이들의 호기심을 풀어줄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했다. 공룡이 살았던 시대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공룡의 영어 이름을 익히기 위해 영어 알파벳도 자연스럽게 공부했다. 공룡의 모양을 직접 비교해 보고 찰흙으로 그 모양을 빚어 봤다. 크레파스로 그림도 그리고 각자 좋아하는 공룡으로 분해서 연극도 펼쳤다. 아이들의 궁금증은 더욱 발전해 몇몇은 직접 고고학자가 되어 연구원 야산에서 공룡 화석 발굴 작업을 해보기도 했다. ●한글 배우기, 음악^미술수업 동시에 이처럼 교육 수혜자의 관심과 흥미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놀이로 아이들 스스로 호기심을 충족시킬 수 있도록 돕는 교육 방식을 ‘연세 개방주의 교육과정’이라고 부른다. 어린이생활지도연구원은 1970년대말부터 개방주의 교육을 표방해 1988년부터는 자체적으로 개발한 프로그램에 이같은 이름을 붙였다. 이 프로그램의 가장 큰 특징은 수업에 참여하는 어린이들이 스스로 원하는 놀이를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놀이를 통해서 한글을 배우고 음악, 미술 수업도 받는다. 김선주 교사는 “교육은 일방적인 가르침이 아닌 교사와 학생 사이의 상호작용이 되어야 한다.”면서 “연구원에서는 아이들의 호기심에 따라 무궁무진한 놀이가 만들어지고 진행된다.”고 말했다. 이효연기자 belle@seoul.co.kr ■ 어떻게 운영하나 연세대 어린이생활지도연구원은 유아반·유치반·종일반·영아반으로 나뉘어 운영된다. 만 3·4세를 대상으로 한 유아반은 오전·오후반으로 나누어서 운영되며 모두 6개반이다. 한 반은 22∼24명으로 교사 2명이 담당한다. 오전반은 9시30분부터 12시30분까지, 오후반은 1시30분부터 4시30분까지 수업이 이뤄진다. 유치반은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만 5세 어린이들이 대상이다. 오전·오후반으로 모두 4개반이다. 수업시간은 유아반과 같다. 한 반은 20명으로 교사 1명이 배치된다. 종일반은 맞벌이 부부의 자녀들이 참여할 수 있다. 만 2·3세반과 만 4·5세반이 1개씩 있다. 만 2·3세반은 한 반에 10∼12명으로 교사 2명이 배치된다. 만 4·5세반은 18∼20명이며 교사 2명이 맡는다. 만 2·3세 종일반에 참여하려면 소변과 대변을 가릴 수 있어야 한다. 오전 8시∼오후 7시까지 연구원에서 생활한다. 집에서 지내는 것과 똑같은 환경을 만들기 위해 과거 외국인 교수들이 사용했던 사택을 1998년부터 종일반 전용 건물로 활용하고 있다. 어린이들은 주방과 거실이 있는 70평짜리 단층 건물에서 밥을 지어먹고, 낮잠도 자며 집에서 생활하듯 하루를 보낸다. 영아반은 만 2세 영아와 부모가 함께 참여한다. 엄마·아빠가 놀이 활동에 참여하면서 자녀 양육 기술을 배우는 것이다. 엄마와 함께하는 프로그램은 주 2회 월·목반과 화·금반이 있다. 아빠와 함께하는 프로그램은 매주 토요일에 열린다. 한 반에 10∼12쌍이 참여한다. 한 학기는 16주로 90분 동안 수업이 진행된다. 수업을 담당하는 23명의 교사는 모두 연세대 아동가족학과 출신이다. 연세 개방주의 교육과정을 이해하고 이를 실제로 유아교육에 적용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아동가족학과 재학생 1∼2명이 보조 교사로 참여하기도 한다. 이 곳에서 일하기 희망하는 졸업생들은 1년 동안의 인턴 과정을 거쳐야 하며 그해 연구원 교사 수급 상황에 따라 채용 여부가 결정된다. 연구원에는 현재 330명의 어린이가 등록돼 있다. 유아반·유치반·종일반은 11월에, 영아반은 2월에 원아를 모집한다. 한 해 선발 인원은 70∼80명 정도다. 영·유아반에 등록하면 보통 2∼3년 동안 다니기 때문이다. 모집 기간은 정해져 있지만 대기자 명단에는 언제든지 등록할 수 있다. 원아는 통학거리와 대기기간을 합산해 선발한다. 별도의 통학버스가 없고 너무 멀리서 통학하는 것은 교육적으로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이다. 주로 마포·서대문구 거주자를 우선 선발한다. 대기기간이 오래될수록 유리하다.(02)2123-3481∼2. 이효연기자 belle@seoul.co.kr ■ 이재선 원감이 말하는 조기교육 방향 “바람직한 조기 교육이란 어린아이가 걸음을 떼자마자 한글을 깨우치고, 영어를 유창하게 하고, 암산을 빨리할 수 있도록 다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연세대 어린이생활지도연구원 이재선(42) 원감은 우리나라 조기 교육의 문제는 바로 ‘부모의 욕심’에 있다고 지적했다. 아이에게 좋은 교육을 시키고픈 부모 마음은 한결같지만 진정 아이를 위한다면 부모의 욕심을 버리고 아이를 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 원감은 “성인 개개인의 관심사가 모두 다르듯 만 2∼5세 유아들에게도 각자의 관심사가 다르다.”면서 “어린이들이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호기심을 스스로 풀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연구원은 어린이들에게 자연스럽게 생겨난 호기심을 해결하는 교육방법으로 ‘놀이’를 택했다. 이 원감은 “놀이는 지식을 배우는 한 방법이며 이러한 놀이가 어린이들에게 가장 효과적인 교육 형태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아이들이 희망하는 놀이를 직접 선택하게 하고 놀이를 통해 지식을 습득할 수 있게 하려면 무엇보다 교사와 어린이들 사이의 상호작용 과정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교사가 일방적으로 지식을 가르치는 행위보다는 학생들의 개성과 특징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연세 개방주의 교육과정에는 미리 준비된 수업을 최소화하고 수업시간마다 어린이들이 스스로 관심이 있는 문제를 탐구할 수 있도록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 원감은 “이 과정에서 더 재미있고 새로운 놀이를 고안하기 위한 교사들 사이에 자연스러운 팀티칭(team teaching)이 이루어진다.”면서 “활발한 팀티칭은 교사들의 전문적인 경험과 개인적인 재능을 서로 보완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원감은 그럼에도 “왜 한글과 영어를 가르치지 않느냐고 묻는 학부모들도 많다.”면서 “바람직한 어린이 교육을 위해서는 부모교육이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연구원에서는 해 마다 3∼4차례 학부모 교육을 실시한다. 연구원의 교육철학과 운영전반을 상세히 설명해주는 것은 물론 어린이들의 놀이 수업에 참관할 수 있는 기회도 제공한다. 이 원감은 “학부모들이 수업에 직접 참여해보고 놀이의 교육적 효과를 이해하면 바람직한 부모의 역할을 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수 있다.”면서 “앞으로 부모 교육의 기회를 더욱 자주 마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효연기자 belle@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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