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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쓰레기의 행복한 여행/제라르 베르톨리니·클레르 드라랑드 글

    씹다 버린 껌 하나가 완전히 분해되는 데는 5년이 걸린다. 비닐봉지는 450년, 알루미늄 깡통은 500년이다. 이래도 함부로 쓰레기를 버릴 수 있을까. 소비가 미덕인 시대의 아이들에게 쓰레기와 환경 문제를 진지하게 이해시키기란 간단치 않은 일이다.‘쓰레기의 행복한 여행’(제라르 베르톨리니·클레르 드라랑드 글, 유하경 옮김, 사계절출판사 펴냄)은 정색을 하고 환경 이야기를 꺼내되 간단없이 상상력을 건드린다. 쓰레기를 자원으로 돌아볼 수 있게끔 책은 시야를 새로운 방향으로 열어준다. 그 기술이 야무지다. 쓰레기가 무엇인지 개념부터 일러준 다음 옛날의 쓰레기 활용법이 어땠는지를 되짚어 보인다. 쓰레기를 묻거나 태우지 않아 지독한 냄새가 진동했던 중세 유럽 도시 이야기가 우선 아이들의 호기심을 발동시킨다.1185년 더러워진 도시를 지켜보다 못한 프랑스의 왕 필립 오귀스트는 급기야 쓰레기를 아무데나 버리지 못하게 했고, 똥오줌도 쓰레기와 분리하도록 했다. 그래도 도시는 깨끗해지지 않았고 결국 유럽 전역엔 페스트와 콜레라 같은 무서운 전염병이 돌고 말았다. 그러면 쓰레기는 언제부터 재활용 됐을까.1000년도 더 넘는 먼 옛날에도 재활용 종이가 있었다. 동물가죽으로 만든 고급 종이인 양피지의 글자를 지우고 새 글자를 쓰기도 했다. 그런 양피지를 ‘팔랭프세스트’라 불렀으며, 그 뒤로 누더기로 종이를 만들어 쓰기도 했다는 정보를 줄줄이 엮어준다. 잘 사는 나라일수록 쓰레기를 더 많이 버리고, 세계 전자 제품 쓰레기의 80%가 아시아의 빈국에 버려진다는 귀띔에 어린 독자들은 끝내 진지해질 듯싶다. 초등3년 이상.8800원.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연경, 담배의 모든것/안대회 옮김

    ‘서울 사는 귀족집 자제들은 그저 담배를 피울 줄만 알지, 담배씨를 심고 잎을 거두며 뿌리를 북돋고 키우는 일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그 과정을 전혀 모른다. 그러고서야 옥같이 귀한 음식을 배불리 먹으면서도, 곡식을 경작하고 수확하는 어려움을 모르는 자와 다를 것이 하나도 없지 않은가.’ 이옥(李鈺·1760∼1815)은 ‘연경(烟經)’을 쓰는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이옥은 18세기 조선 사회에서 자유분방한 글쓰기를 주도하여 벼슬길에 나서지 못하는 불우한 생애를 보냈지만, 같은 이유로 우리 문학사에서 특별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인물.‘시경’도,‘서경’도 아닌 ‘연경’이라니…. 담배 이야기를 경전으로 떠받들어 놓은 이옥의 문학적 상상력이 제목에서부터 독자들을 미소짓게 한다. ‘연경, 담배의 모든 것’(안대회 옮김, 휴머니스트 펴냄)은 조선시대 담배에 관한 최고의 저작으로 꼽히는 이옥의 ‘연경’을 중심으로 담배에 관한 글을 한데 모은 18세기 조선의 흡연문화사라고 할 수 있다. ‘연경’은 영남대도서관에 필사본 형태로 소장되어 있다가 몇 해 전 학계에 보고되었으며, 이를 토대로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가 전면적 분석을 가해 자신이 관여하는 한국학 잡지 ‘문헌과 해석’에 원문을 영인해 소개했다. 그러자 KT&G가 재빨리 나서 ‘연경’의 전체 번역을 사보에 연재했다는 일화를 남겼다. 금연운동으로 담배의 입지가 축소되어 가는 마당에 ‘연경’이 펼친 담배 예찬론은 담배 제조 회사로서는 매우 반가웠을 것이다. 내친김에 안 교수는 조선 후기 담배와 관련되는 각종 문헌자료를 뒤지다 보니 아예 한 편의 조선후기 담배 문화사를 완성할 수 있었다. ‘연경’의 가치는 한 편의 재미있는 저작으로 그치지 않는다고 안 교수는 설명한다. 안 교수는 “이옥은 사소하고 무의미하다고 여겨지던 사물도 저술의 대상으로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했다.”면서 “‘연경’은 당시 우리 학술계 내부에서 중대한 변화가 일어났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지표로도 주목해야 할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1만 4000원.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하재봉의 영화읽기] 비커밍 제인

    [하재봉의 영화읽기] 비커밍 제인

    사랑에 빠진 남녀의 마음을 섬세하게 표현해 대중들의 열렬한 호응을 불러일으킨 여류작가 그 자신은, 과연 어떤 사랑을 했을까? 혹시 허구적 소설 속에 등장한 이야기나 인물들은 자신의 연애담에 상상력이라는 질료를 불어넣어 조금 변형한 것은 아닐까? 18세기 영문학사에 중요한 작가로 기록되는 여류작가 제인 오스틴은 평생 6편의 소설만을 남겼지만, 그 소설들은 현재의 독자들에게도 폭넓은 사랑을 받고 있고 또 6편 전부 영화나 TV영화 혹은 미니시리즈로 여러 차례 만들어져 대중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제인 오스틴의 감성은 시대를 뛰어 넘어 2백년이 훨씬 지난 지금의 관객들에게도 통하고 있는 것이다. <와호장룡> <브로크백 마운틴>을 만든 대만 출신의 이안 감독이 <센스 앤 센서빌리티>로 제인 오스틴의 섬세한 감성을 화면에 옮기는데 성공했고, <오만과 편견> <엠마> 등 제인 오스틴의 작품 6편들은 지금까지 수십 차례 영화로 만들어져 큰 성공을 거두었다. <비커밍 제인>은 알려지지 않은 제인 오스틴의 사랑 이야기를 영화로 만든 것이다. 물론 당시의 정확한 기록이 남겨져 있지 않기 때문에 상당 부분은 허구로 재구성한 것들이다. 제인 오스틴은 1775년 12월 16일 영국 햄프셔 스티븐톤 교구에서 목사의 딸로 태어났다. 그녀의 형제는 모두 8명. 그 중에서 제인은 일곱 번째였다. 그녀가 받은 공식적인 교육은 11살 생일 직전 애비 스쿨에서 1년 반 동안 읽기를 배운 것이 전부였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혼자 글쓰기를 좋아했는데, 기성교육을 받지 않은 그녀는 지금까지의 소설들과는 다른 전혀 새로운 스타일의 글을 시도했다. 그녀의 첫번째 소설은 《엘리노와 마리안느》로서 19살 때 쓴 작품이다. <비커밍 제인>은 제인이 첫번째 소설을 막 쓰고 난 직후부터 시작된다. 제인이 스무 살 때인 1795년 크리스마스 시즌, 그녀는 운명적인 남자를 만나는데 그는 제인의 오빠의 친구인 톰 리프로이다. 휴가차 햄프셔를 방문한 톰은 1월 중순 런던으로 돌아가 법률공부를 시작한다. 제인은 그 해 8월 런던에 가서 톰을 만나지만 1798년 8월 그들의 로맨스는 끝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제인 오스틴의 짧은 일생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기였을 이 무렵의 제인의 삶에 대해서는 알려져 있지 않다. 왜냐하면, 제인이 런던에서 톰을 만나고 돌아온 직후인 1796년 9월 18일부터 로맨스가 끝난 직후인 1798년 10월까지 2년 동안 쓴 제인의 편지를 제이의 언니가 모두 불태워버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인의 언니 카산드라가 실수로 혹은 고의로 태우지 않은 두 사람 사이의 첫번째 편지는 아직 남아 있다. 제인 오스틴의 전기작가 존 스펜스는 이 편지를 바탕으로 제인 오스틴의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끄집어내서 제인이 사랑한 톰 리프로이라는 인물의 캐릭터를 구체적으로 형상화했다. 제인이 톰과 사랑에 빠져 있던 그 시기, 제인 오스틴의 주요 걸작들이 탄생되었다. 그 2년 동안 제인은 《오만과 편견》《센스 앤 센서빌리티》《엠마》 등을 집필했고 사랑이 끝난 직후인 1979년 그녀의 마지막 작품 《노싱거 사원》을 완성했다. 하지만 제인은 1799년 이후 1817년, 42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깊은 사랑의 상처로 인해 더 이상 소설을 쓰지 않았다. 제인 오스틴의 연애 이야기를 그린 줄리아 제롤드 감독의 영화 <비커밍 제인>은, 존 스펜스의 전기 《비커밍 제인 오스틴》을 영화로 옮긴 것이다. 줄리아 제롤드 감독은 10년 넘게 TV 시리즈를 연출하면서 인정받은 후 2005년 영화계에 대뷔했다. <비커밍 제인>은, 기존의 자료를 바탕으로, 제인 오스틴의 소설 속에 나오는 여러 가지 상황이나 인물을 효과적으로 결합하여 상상적으로 재구성했다. 영화에서 중요하게 강조되는 것은, 사랑이냐 돈이냐 라는 선택의 문제다. 조금 더 고급스럽게 말한다면 정신적인 영혼의 사랑을 갈구할 것인가, 아니면 현실적인 물질적 풍족을 따를 것인가 하는 문제다. 제인(앤 해서웨이 분)이 사랑한 톰 리프로이(제임스 맥어보이 분)는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외삼촌의 후원 없이는 생활이 불가능하다. 더구나 그는 법대생인데 대법관인 외삼촌의 심기를 불편하게 해서는 출세할 수 없다. 즉, 외삼촌의 동의를 얻지 못하면 아무리 제인을 사랑해도 현실적으로 결혼이 불가능하다. 톰이 외삼촌의 반대로 제인과의 결혼을 망설이고 있는 사이, 제인 앞에는 부와 명예를 갖춘 귀족 집안의 위슬리(로렌스 폭스 분)가 청혼한다. 제인의 어머니(줄리아 월터스 분)는 사랑만 가지고 가난한 목사(제임스 크롬웰 분)와 결혼했기 때문에 지금도 감자를 캐고 있는 신세라면서 제인에게 위슬리의 청혼을 받아들일 것을 강력하게 권고한다. 결혼이 여성들의 신분상승을 위한 중요한 기회로 인식되는 것은 현대에서도 발견할 수 있지만, 빈부격차가 심했던 18세기 당시에는 훨씬 더 심했다. “어떻게 사랑 없는 결혼을 할 수 있지? 가족, 집, 모두 다 잃고 얻는 건 가난과 고역뿐이라도 난 이 행복을 놓칠 수 없어!” 사랑에 빠졌지만 현실적인 장벽 앞에서 절망하는 제인이나 톰은 물론 제인 주변의 위슬리나 위슬리의 후원자인 그래샴 부인(매기 스미스 분)과 제인의 언니인 카산드라 오스틴 등 <비커밍 제인>에 등장하는 많은 캐릭터들은 제인 오스틴의 소설 속 인물들에서 뼈대를 가져와 살을 붙인 것이다. 제인 오스틴의 소설에서 가장 돋보이는 것은 사랑에 빠진 남녀의 섬세한 심리묘사와, 깊은 관찰력으로 획득된 입체적인 캐릭터의 구축, 사람들 사이의 관계에 대한 성찰이다. 그것이 그녀가 창조한 인물들로 하여금 시대를 초월해서도 살아있는 생명력으로 가득차 있게 하는 것이다. 평생동안 독신으로 소설만 쓰며 살다간 제인 오스틴은 실연의 깊은 상처로 10년 넘게 절필하다가 1811년 《센스 앤 센서빌리티》가 출판되면서 활력을 되찾는다. 이미 오래 전에 탈고한 소설이었지만 출판은 되지 못하다가 《센스 앤 센서빌리티》의 좋은 반응으로 그녀의 다른 소설들 《오만과 편견》(1813년), 《맨스필드 파크》(1814년) 《엠마》(1815년)가 출판되었고 《설득》과 《노싱거 사원》은 1817년 7월 18일 에디슨 병으로 그녀가 사망한 후 유작으로 출판되었다. 제인 오스틴의 소설은 항상 결혼 직전의 남녀가 주인공이며, 매력적이지만 믿을 수 없는 남성 캐릭터가 등장한다. 그것은 그녀 자신의 사랑의 상처에서 오는 경험 때문이다. 톰 리프로이는 훗날 아일랜드의 수석변호사로 성공했으며 그는 자신의 첫 딸 이름을 제인이라고 지었다. 이런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제인 오스틴의 사랑 이야기가 섬세하게 만들어진 <비커밍 제인>은 시대가 흘러도 세상이 변해도 변하지 않는 남녀 관계의 복잡하고 미묘한 감정을 화두로, 진정한 사랑에 대해 말하려고 한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로 스타가 된 앤 해서웨이의 연기도 좋지만 조연들의 빼어난 연기도 영화의 격을 높이는데 일조하고 있다. 특히 제인의 어머니 줄리아 월터스나 그래샴 부인 역의 매기 스미스 등 당대를 풍미하는 노 여배우들의 출연은 <비커밍 제인>의 완성도를 높여주고 있다. 앤 헤서웨이는 지적 호기심이 강하면서도 세상에 대한 강렬한 반어적 통찰력을 갖고 있었던 제인 오스틴의 내면을 효과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글 하재봉 시인, 영화평론가, 동서대 교수 월간 <삶과꿈> 2007년 11월호 구독문의:02-319-3791
  • [정윤수의 오버헤드킥] 대표팀 군기잡기 언제까지

    며칠 전, 어느 문화단체의 워크숍을 다녀왔다. 지난 2002년 이후 우리 사회에서 축구대표팀에 관해 이야기하는 건 다반사였지만 특히 그날은 대한축구협회가 특별히 마련하고 허정무 감독도 적극적으로 동의한 ‘생활 수칙’이 뜨거운 화제가 됐다. ‘문화 단체’ 구성원들이기 때문인지 ‘구시대적인 발상’이라는 의견이 대세였다. 국제대회 중에 고참 선수들이 음주를 하거나 몇몇 선수가 술자리 폭행 시비로 논란을 야기한 건 문제이지만 이 때문에 규정을 정하고 대표팀 숙소의 각 방마다 붙여 놓는 건 의미도 없고 실효도 없다는 주장이었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최고 영예인 성인 대표팀에까지 이르렀는데 그 정도의 수칙 준수는 이미 몸에 배어 있을 것이며, 규정에 어긋나는 일이 발생하더라도 그때 가서 징계를 할 일이지 ‘성인’ 선수들에게 그와 같은 상징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은 어떤 점에서는 모욕적인 일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물론 반대 의견도 없지 않았다. 밤낮으로 축구 소식을 검색하는 즐거움을 가진 어떤 이는 “마치 유럽은 매우 자유롭게 선수들이 다 알아서 생활하는 것 같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면서 “유럽 각 구단은 선수와 계약할 때 ‘스키를 타지 않는다.’ ‘오토매틱 차량만 운전한다.’ 등의 조항을 반드시 넣는 등 규율과 기강을 매우 중요시 여긴다.”고 반박했다. 이런 저런 얘기 끝에 누군가 “술 좀 마시면 어때.”라고 한 마디를 툭 던졌다. 그러고 단호한 표정으로 덧붙이기를,“프로 선수가 계약을 할 때 사전에 아주 세세한 사항까지 약속하고 이에 도장을 찍는 것이라면 모를까, 왜 ‘군기 수칙’ 같은 것을 만들어서 선수 개인의 방에 액자로 만들어 걸어야만 하는지에 대해 도무지 찬성할 수 없다.”고 했다. 그 이의 말인즉슨 어떤 종류의 인간이든 기본적으로 ‘위반의 상상력’을 갖고 있으며 이 기묘한 감정이야말로 그 사람을 발전시키는 내면의 에너지라는 것이다. 익숙한 관습을 벗어나려는 욕망, 금기를 뛰어 넘으려는 상상이야말로 개인이나 인류에게 매우 아름다운 에너지가 되는 것인데,‘수칙 액자’ 같은 장치는 오히려 자생의 에너지를 가로막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액자를 걸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군기 확립’식 합숙 문화를 예고해 적절하지 않다는 것이다. 대개의 워크숍이 그렇듯 곧 이 논쟁은 다른 주제와 뒤섞이며 혼잡해지고 말았지만, 내게는 각별한 공부가 됐다. 화장실에 가서 나는 이 ‘수칙 액자’의 상징성과 무게를 생각했다. 축구 선수가 군인이나 성직자도 아닐진대 ‘애국심이나 투지’뿐만 아니라 내면의 개인적 에너지를 극대화한 아름다운 상상력도 매우 중요하다는 생각이 퍼뜩 든 것이다. 세면대 거울 위에 콘도 측에서 내건 액자가 보였다.‘수건 등 시설물을 가져 가시면 원상회복 및 배상을…’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 순간, 난 마음에도 없이 수건을 슬쩍하고 싶어졌다.축구평론가 prague@naver.com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국민만화가 이원복 교수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국민만화가 이원복 교수

    ‘사이(間)의 예술’이라고 한다. 미국의 스콧 매클루드(48)는 만화계 천재이자 만화이론을 체계화한 학자로 유명하다.1993년 출간된 그의 저서 ‘만화의 이해’는 전세계 15개국의 언어로 번역돼 지금도 각국에서 스테디셀러로 읽히고 있다. ●‘먼나라 이웃나라´ 1300만부 이상 팔려 그는 2003년 한국을 방문, 만화산업의 미래를 진단한 바 있다. 이때 만화가 형편없는 상업주의의 소산이라고 치부하는 경향을 의식하면서 21세기 문화산업의 축이라고 여겨지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설파했다. “위대한 글과 그림이 결합하면 이야기를 서술하는 데 엄청난 힘을 발휘한다. 그게 가능한 것이 바로 만화다. 장면을 명확하게 묘사하는 역할을 그림이 맡아주면 글은 보다 넓은 영역을 탐색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만화의 강점이다.” 그러면서 칸과 칸 사이의 공간이야말로 마술과 미스터리가 일어나는 원천이라고 역설했다. 만화를 그저 오락물이나 심심풀이로 여기는 경우도 더러 있지만 매클루드의 말처럼 만화는 분명 무한한 상상력과 흥미진진함을 던져주기에 인류역사와 함께 꾸준히 발전해왔다는 것이다. 오늘날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여전히 즐기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어린이들에게는 ‘꿈과 희망’으로, 어른들은 옛시절의 ‘추억과 향수’를 생각나게 한다. 이쯤해서 문득 떠올려지는 인물이 있다. 다름 아닌 국민만화가로 유명한 이원복(62) 덕성여대 교수.‘먼나라 이웃나라’‘가로세로 세계사’‘부자국민 일등경제’‘신의 나라 인간나라’ 등 그가 펴내는 만화마다 대부분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랐다. 특히 ‘먼나라 이웃나라’는 1987년 초판 이래 현재까지 무려 1300만부 이상 팔리는 초대형 베스트셀러가 됐다. 또한 영어, 중국어, 일본어, 태국어 등으로 번역출간돼 해외에도 많은 팬들을 확보하고 있다. 따라서 이 교수는 천대받던 만화시장에서 어른들도 즐기는 교양만화의 장르를 개척해냈음은 물론, 글로벌시대의 문화통역자 역할을 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또한 한눈에 쏙쏙 들어오는 그림 속에 그만의 해박한 지식을 담아 많은 학생들의 세계사 공부에 도움을 주고 있다. 서울 강남의 집필실에서 이 교수를 만났다. 캐나다에 막 다녀온 직후였다. 이유를 묻자 “8년 전 하나 밖에 없는 아들과 아내를 캐나다에 보내고 서울에서 혼자 생활하고 있는 기러기 아빠”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신의 물방울´보고 편견 바로잡고자 집필 그는 요즘 와인에 푹 빠져 있다. 최근 ‘와인의 세계’(1권·김영사)라는 만화책을 펴낸 데 이어 ‘세계의 와인’(2권)을 집필 중이다. 지금까지 역사나 경제 등 무거운 주제를 다뤄왔던 그가 다소 생뚱맞게 ‘와인만화’를 펴낸 까닭은 무엇일까. 이에 대해 그는 일본만화 ‘신의 물방울’을 보고나서였다고 한다. 한마디로 ‘뻥이 심한’책이라는 것. 예를 들어 와인 한 모금 마시고 눈물을 주르륵 흘리는 것 등이다. 일본과 달리 우리나라는 이제 막 와인 붐이 생겨나는 마당에 왜곡된 이미지를 만들기 십상이라는 생각에서 와인만화를 그리게 됐다. “우리나라 최고 경영자 가운데 80%가량이 와인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합니다. 돈 주고 사먹는 와인인데 스트레스를 받을 필요가 없죠. 그저 입맛에 맞는 와인을 내 방식대로 즐기면 그만입니다.” 와인 이름을 외우는 광경을 종종 목격한다는 그는 어느 프랑스 와인업자의 말처럼 “한국인들은 와인을 입으로 마시는 것이 아니라 머리로 마신다.”고 했다. 특히 와인열풍과 함께 관련 책이 봇물처럼 나오지만 대부분 보고 나면 머리가 더 복잡해진다는 것. 때문에 이번에 펴낸 ‘와인만화’도 와인에 얽힌 역사·문화적 에피소드 위주로 쉽게 꾸몄다고 했다. 그가 와인에 관심을 가진 것은 8년 전 미국에 교환교수로 가 있을 때였다. 당시나 지금도 칠레와인을 즐겨 마신다고 한다. “저는 결코 와인전문가가 아니며 단지 애호가일 뿐입니다. 와인을 즐기다보니 흥에 겨워 책을 내게 됐지만 모자라는 부분을 보충하기 위해 여러차례 와이너리에 직접 가보기도 했지요. 오는 4월에 나올 두번째 책에는 와인에 대한 편견을 다룰 예정입니다.” 아울러 ‘세계의 와인’이 마무리되는 대로 ‘먼나라 이웃나라’의 스페인편(완간편)을 집필할 계획을 밝혔다.“이제 독자들은 멋있는 정보를 원한다.”면서 “와인만화는 너무나 즐겁고 행복한 외도”라고 했다. 화제를 바꿨다. 알다시피 그는 ‘현대문명진단’이란 주제로 13년간 만화칼럼을 연재하면서 ‘현대인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화두를 던지기도 했다. 그렇다면 앞으로 우리 문명은 어떻게 변화할까. 지체없이 그는 “첫째는 여성중심으로 변하는, 즉 여성문명이 점차 확대되는 특징을 이룬다.”고 했다. 일부일처의 결혼관이 붕괴되면서 혼자 사는 여성이 늘어나는 것도 한 예라고 설명했다. 두번째는 평균수명 연장에 따른 생활패턴의 변화라고 했다. 즉, 어떤 목적을 위해 서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과거 같으면 20세에 대학 들어가 군복무를 마치고 27세에 취직을 한다는 생각들이 많았지만 지금은 이런 패턴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또한 과거에는 성공이 목적이었으나 이제는 행복추구를 우선시하는 시대가 오고 있다는 등 나름대로 현대문명을 진단한다. ●만화는 영구적 발전… 교육소재는 무조건 대박 만화의 발전 가능성에 대해서는 “젊은이들은 만화책을 어른들은 신문으로 만화를 즐기고 있다. 만화의 독자는 무궁무진하고 영구적으로 발전한다.”고 강조했다. 만화의 정의를 묻는 질문에는 “인류판타지의 최초 스케치”라고 전제한 뒤,“만화는 돈이 안든다. 종이와 연필만 있으면 내 생각을 얼마든지 펼쳐보일 수 있다.”고 대답했다. 그러면서 “학습만화는 단군 이래 매년 호황을 이뤘다. 교육을 전제로 한 것은 뭐든지 잘 된다.”고 부연했다. 그는 만화가로는 보기 드물게 서울대 건축학과를 다녔다.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1960년대 중반 공과대학이 인기를 끌었을 때 건축학도가 그저 멋있게 보여 선택했다는 설명이다. 그가 만화가로 소질을 발휘한 것은 1962년 경기고 1학년 때였다. 소년한국일보에 아르바이트로 연재를 시작하면서 ‘야망의 그라운드’‘미니 바람 꽃구름’‘치티치티 뱅뱅’‘사랑의 학교’ 등을 그렸다. 이 교수의 어릴 적 꿈은 만화가가 아니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는 모습을 보면서 사람을 살려낼 수 있는 의사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어느날 ‘만화는 나를 표현하는 무한한 놀이터’라는 생각에 진로 수정을 하게 됐고 ‘세계문학전집’과 만화를 닥치는 대로 읽으며 소양을 쌓았다. 아울러 틈만 나면 외국만화를 보고 그렸다. 대학 때 독일 유학을 떠났고 유학비용을 조달하기 위해 새소년 잡지에 ‘시관이와 병호의 모험’을 연재하면서 본격적인 ‘프로 만화가’의 길을 걸었다. 이 만화는 해외여행이 자유롭지 않았던 시절에 많은 사람들에게 세계를 보는 눈을 뜨게 했다. 그의 유학시절은 나중에 만화이면서 인문서로 인정받은 ‘먼나라 이웃나라’의 밑거름이 되기도 했다. 그는 지금껏 한 번도 연재를 펑크내지 않았는데 이는 신용을 생명처럼 여기는 습관 덕분이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도대체 선생님의 만화가 인기를 끄는 비결이 뭔가요.”라고 질문했다.“자료와 현장이다. 한권 한권 낼 때마다 자료와의 전쟁을 치른다.”며 껄껄 웃는다. 인물전문기자 km@seoul.co.kr 사진 손형준기자 boltagoo@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1946년 충남 대전 출생. ▲65년 경기고등학교 졸업. ▲66년 서울대 공과대학 건축공학과 수료. ▲75년 독일 뮌스터 대학 디자인 학부 유학. ▲81년 동대학원 졸업,Diplom Designer 학위취득. ▲81∼86년 동교 철학부에서 서양미술사 전공(프리랜스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 ▲85년 독일 뮌스터시 초청 개인전. ▲88년 한국 도서 잡지 윤리위원회 금상 수상(시관이와 병호의 모험). ▲89년 한국 간행물 윤리위원회 금상 수상(학습만화세계사 계몽사). ▲93년 한국색동회제정 눈솔상 수상. ▲94년 한국 간행물 윤리위원회 간행물, 윤리상(저작부문:현대 문명진단). ▲98년 한국 애니메이션 학회 회장. ▲84∼현재 덕성여대 산업미술학과 교수. ●주요작품 먼나라 이웃나라(87년), 자본주의 공산주의(90년), 세계의 만화 만화의 세계(91년), 한국 한국인 한국경제(93년), 국제화 시대의 세계경제(94년), 현대 문명 진단(94년), 세계로 가는 우리 경영(95년), 사랑의 학교(95년), 펜 끝으로 여는 세상(96년), 만화로 떠나는 21세기 미래여행(97년), 신의 나라 인간의 나라(2003년), 와인의 세계(07년)
  • [책꽂이]

    ●미안해, 벤자민(구경미 지음, 문학동네 펴냄) 2005년 소설집 ‘노는 인간’을 통해 이 시대 백수들의 모습을 발랄하게 그려낸 작가의 첫 장편 소설. 등장 인물들이 시점을 달리해 이야기를 서술해 나가다가 결말 부분에 이르러서야 사건 전체의 인과관계가 밝혀지는 추리적 구성과 독특한 정신 세계를 지닌 캐릭터 덕분에 끝까지 긴장감이 유지된다.9500원.●짠한 당신(고산지 지음, 도서출판 그림과 책 펴냄) 첫 시집 ‘비비고 입 맞추어도 끝남이 없는 그리움’을 출간한 이후 27년 만에 낸 시인의 두번째 시집. 표제작을 비롯해 60편의 시가 실린 이 시집은 사업체가 부도가 나 일본으로 건너가 막노동하면서 느낀 소회, 자식과 아내에 대해 절절한 사랑을 오롯이 담아냈다.●시전쟁(전2권, 푸스 지음, 한정은 옮김, 푸르메 펴냄) 사업가인 작가의 실제 경험을 살려 쓴 작품.‘관시(關係)’로 모든 것이 통하는 중국의 기업 경매 이야기를 통해 은밀한 암투와 거래, 치열한 경쟁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경매회사 사장인 주인공이 정경유착의 줄타기를 하며 아슬아슬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통해 현재 중국의 기업가들이 인맥과 `관시´를 어떻게 이용하는지를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다. 각권 1만 1000원.●제로배럴(안드레이아스 에쉬바흐 지음, 노선정 옮김, 중앙북스 펴냄) 석유 시대의 종말을 다룬 SF소설. 석유 공급 중단으로 현대적인 삶이 위협받는 미래의 모습을 그렸다. 석유와 복잡하게 얽혀 있는 지리적, 정치적 상관관계에 작가의 상상력을 가미한 이야기가 시공간을 넘나들며 긴박하게 펼쳐진다.2만원.
  • [새영화] ‘스위니 토드’

    [새영화] ‘스위니 토드’

    톱니바퀴를 타고 흐르는 진득한 주홍빛 피. 국수가락처럼 갈아져 나오는 인육. 지글지글 끓어오르는 핏물과 함께 익어가는 파이. ‘스위니 토드:어느 잔혹한 이발사 이야기’(Sweeney Todd·17일 개봉)는 이미지만 봐도 팀 버튼 영화다.‘배트맨’‘가위손’‘찰리와 초콜릿 공장’ 등 기괴하고 비틀린 캐릭터와 이야기로 블랙유머에 대한 재능을 쌓아올린 감독이 또 한번 조니 뎁과 만나 뮤지컬 영화를 세공했다. 19세기 런던. 산업혁명의 기세가 드높던 이 잿빛 도시에서는 ‘있는 자’들이 ‘없는 자’들의 고혈을 쥐어짜며 부와 명예를 누린다. 아름다운 아내, 딸과 행복해 하던 이발사 스위니 토드(조니 뎁)는 아내를 뺏으려는 터핀 판사(앨런 릭맨)의 음모로 15년 세월을 감옥에서 저당잡힌다.15년 뒤 스위니 토드로 돌아온 그는 파이가게의 러빗 부인(헬레나 본햄 카터)과 핏빛 계약을 맺는다. 이발소를 찾아온 손님들은 이후 행적을 알 수 없고, 고기가 부족해 런던에서 최고로 맛없던 파이는 런던 최고의 파이가 된다. 아랫집 여자와 윗집 남자의 ‘독창적이고 비상한’ 거래를 알아채는 도시민들은 아무도 없다. 비정하고 무관심한 사람들은 걸신처럼 인육을 먹어대고 스위니 토드는 잃어버진 행복과 가족을 피로 앙갚음할 날만 고대하고 있다. ‘스위니 토드’는 지난해 국내에서도 라이선스 뮤지컬로 초연돼 수작으로 박수받았다. 브로드웨이 뮤지컬의 전설로 불리는 작곡가 스티븐 손드하임은 이 작품으로 1979년 초연 당시 8개의 토니상을 수상했다.19세기 런던에서 일어난 160여명의 살인사건을 실화로 한 극은 사회와 인간의 모순을 통렬하게 풍자한다. 당초 팀 버튼과 조니 뎁의 환상콤비가 이 뮤지컬을 영화로 만든다는 소식은 영화팬과 공연팬, 모두에게 기대를 품게 했다. 뮤지컬이 멀리서 날카롭게 찔렀다면 영화는 정면에서 대놓고 찌른다. 타고난 스타일리스트, 이야기꾼이라는 칭송을 받는 팀 버튼은 이번만큼은 이야기의 부담을 던 것 같다. 영화는 한마디로 ‘뮤지컬의 재구성’이다. 원작의 탄탄함 덕분에 영화의 스타일이 더 풍성하게 살아났다. 독창적 영상을 빚어내는 재주는 이번에도 빛났다. 감독은 색깔을 죄 덜어내고 바랜 듯한 흑백영화의 질감을 배경에 깔았다. 조니 뎁의 핏발선 눈과 얼어붙은 듯 차가운 피부는 사랑을 잃고 삶의 생기마저 말라버린 이발사의 운명을 은유했다. 거미줄처럼 복잡하게 갈라진 거울로 비쳐지는 스위니 토드와 러빗 부인의 이지러진 얼굴은 증오와 광기, 갈망의 간절함을 대변한다. 그러나 상상력과 재기가 기대만큼은 아닌 듯하다. 조니 뎁의 노래가, 무대를 울리는 라이브 뮤지컬의 파장을 따라가기엔 부족하다. 복수에 눈이 멀어 사랑을 알아보지 못한 지독한 아이러니. 꿈보다 증오가 목적이 돼버린 인간의 비애를 부각시킨 결말이 쇳소리처럼 몸서리치게 한다.18세 이상 관람가.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내 책을 말한다] 수메르, 최초의 사랑을 외치다

    사랑이 인간을 낳았다면 신화를 낳은 신화가 있다. 현존하는 인류 최초의 신화인 수메르 신화가 바로 그것이다. 인류의 문명이 시작된 이래로 신화가 끊임없이 회자된 이유는 신화가 지닌 철학적 사유의 힘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신화가 가진 세계관과 사상 속에 자연스럽게 용해되어 있는 이야기의 ‘재미’는 몇 번을 반복하여도 퇴색되지 않는다. 그리스 신화가 여전히 새로운 판본을 배출해 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것은 충분히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우주와 신, 인간의 기원에 대한 신화의 상상력은 기적적이라 할 만큼 경이롭다. 특히나 문명이 존재하지 않던 인류의 원시시대라고 알려진 선사시대의 상황을 돌이켜 보면 말이다. 바로 그 시기에 수메르에서 최초의 신화가 탄생하였고, 문명이 꽃피었다. 나는 이 ‘최초’를 찾아 꽤 오랫동안 희로애락을 거듭 반복했다. 예전에 길가메시를 만났고, 그리고 이번에 수메르의 여신과 조우했다.2000년을 묻혀 있던 여신은 오랜 시간의 흐름을 딛고 다시금 부활했다. 저승의 문턱을 넘어서고도 살아 났던 것처럼. 그녀의 이름은 ‘인안나’이다. 하늘과 땅의 여왕, 전쟁, 풍요, 다산(多産), 완전하고 다양한 여성성, 여성적인 삶의 원리, 여성들의 수호천사, 품위 있고 당당한 부인, 수많은 도시와 왕들의 수호신, 금성(金星) 등으로 상징화된 여신들의 본바탕에 자리잡고 있던 진정한 여신이다. 그녀와 죽음을 불사하고 사랑을 나눴던 이의 이름은 ‘두무지’였다. 수많은 목자의 선조로서 왕의 자리에 올랐던 남신. 그들은 죽음과 부활을 넘나들며 사랑을 기록하였다. 그러한 그들의 사랑은 ‘아키티’라는 신년 축제로 자리 잡아 국가적 행사로까지 이어졌다. 그것은 수메르가 지상에서 자취를 감춘 뒤에도 1500년의 세월 동안 신명을 바꿔 명맥을 이을 정도로 열렬한 사랑이었다. 잊혀졌던 목소리를 점토판의 행간을 더듬으며 ‘최초의 사랑’을 되살려 내는 것은 분명 고된 작업이었다. 하지만 신화가 시간의 흐름을 넘어 생생한 육체를 가지기 위해서는 끝없이 이야기 되어야만 한다. 연인들의 사랑이 그들의 입술사이를 오가는 밀어를 통해 완성되듯이 수메르에서 시작된 사랑이 이 책을 통해 현실에 재생되기를 빌었다. 수메르의 열정적 연인들을 둘러싼 세계관을 통해 신화의 지적 토대에 대한 인식과, 인간 기원의 틈을 엿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사랑에 대해서도. 인안나와 두무지의 밀월여행에 동참하기 위해서는 수메르에 대한 관심만 있으면 충분할 것이다. 삶과 죽음을 초월한 로맨스의 기원을 향한 걸음을 뗄 것인가 아닌가는 독자들의 선택 영역이다. 한 사람이라도 그들의 사랑을 읽어 주고 이야기 해주기를, 그리하여 잠들어 있던 그들의 사랑이 공백을 넘어 깨어나길 희망한다. <김산해·수메르 신화 저술가 http:////blog.naver.com/gshmyth>
  • [문화마당] 문화전통의 창조와 인문학 지원/ 심경호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몇 해 전만 해도 역사를 소재로 만든 프랑스나 일본의 저작물이나 영화들을 보고, 우리나라에서는 언제 이런 것들이 나올지 한숨을 쉬었다. 인접국의 애니메이션을 보면서는 민속에 뿌리를 두고 미래에 메시지를 전하는 방식에 감탄하였다. 하지만 이제 그럴 필요가 없다. 우리의 학술과 문화는 유례없이 풍부한 성과물을 산출하기 시작하였다. 연구자들이 새로운 형식의 저술을 시도하거나 예술적 변형에 여러 가지 방식으로 기여하기까지 한다. 특히 예술적 상상력을 현실과 접목시키고 우리 역사에서 소재를 찾아 소설이나 드라마, 연극, 영화를 창작하는 일은 이즈음 유행처럼 되었다. 사실 우리는 정치경제만 성장한 것이 아니라, 학술문화도 크게 발전했다. 학술문화의 발전은 새로운 전통을 창조하는 일로 이어져, 연구와 교육, 생활응용과 예술에서 괄목할 만한 결정체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 이런 일이 가능하게 된 데는 몇 가지 요인이 있다. 우선 창작과 저술의 내용이 풍부해지고 예술 향유와 지식 공유의 기반이 두꺼워진 사실을 들어야 할 것이다. 동시에 전문 연구의 성과를 대중에게 전달하는 ‘지(知)의 상인’들이 교양물을 확산시키고 있다는 점도 그 한 요인이다. 이들의 예리한 식견과 창의적 기획력은 우리 사회의 지식기반을 이루는 저력이다. 그런데 이 두 요인이 갖추어진 것은 근본적으로는 국가가 인문학을 지속적으로 후원해 주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공적 관심을 받으면서 인문학은 전문인의 저술, 작가의 창작, 예술가의 텍스트 변형, 일반인의 교양생활을 풍요롭게 하는 토대를 만들어냈다. 일례로, 고전 자료가 일정한 수준으로 가공되어 인쇄물의 형태나 인터넷자료로 널리 공유되지 않았더라면, 오늘날과 같은 형태의 저술, 창작, 변형, 교양은 애당초 불가능했으리라. 인문학 후원은 그동안 국가기관이나 출연기관 및 산하단체의 사업으로 구체화되어 왔다. 교육부의 BK사업과 국학진흥사업, 정보통신부의 각종 지식기반 구축사업, 문화관광부의 문화콘텐츠 개발사업과 금석문종합영상DB구축사업, 학술진흥재단의 연구 및 고전번역 지원사업, 국립국어연구원의 21세기 세종계획 사업, 한국학중앙연구원의 민족문화대백과사전 편찬사업과 고문서 등 국학자료 정리사업, 고전번역원의 문집총간 발간 및 원문서비스 사업, 국사편찬위원회의 한국사연구 지원사업과 문화사대계 간행사업, 한국번역원의 외국어번역 지원사업 등은 인문학의 토대 정립에 매우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 학술원과 문화관광부의 우수도서 지원은 출판의 방향을 지도하는 의미를 지닌다. 또한 서울시가 시행하는 인문학분야 지원사업은 신진연구자의 연구생활을 안정시키는 데 기여하고 있다. 물론 그 사업 모두가 비용투입에 합당한 결과물을 산출한 것은 아닐지 모른다. 분배에 대해서 공정성을 비판할 수도 있다. 더구나 흔히 우리는 과거의 부정이 곧 진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인문학 진흥과 관련한 우리 국가사회의 합의는 결코 기본 방향이 잘못된 것이 아니다.1970년대의 민족문화 진흥책이나 1990년대 이후 인문학 진흥책은, 정치이념이나 실행방식에 차이가 있을지 몰라도, 그 기조는 연속성을 지닌다. 영국의 어느 경제학자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예술이나 발명, 농업이나 전통을 자급해내지 못하는 나라는 사람이 살 수 없는 나라이다.” 맥락은 알 수 없지만, 그 말이 뜻하는 바는 분명하다. 인문학이 ‘이식의 학문’으로 끝날 때 우리의 정신세계는 참으로 허망하리라. 예술과 전통을 자급해내는 원동력의 하나가 인문학이라는 점, 그 사실을 지금 재확인하여야 할 것이다. 심경호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 ‘세계화’ 민족주의 논쟁에 어떤 고민 던지는가

    ‘세계화’ 민족주의 논쟁에 어떤 고민 던지는가

    최근 학계의 가장 첨예한 논쟁 가운데 하나는 민족주의 논쟁이다. 갈수록 치열해지는 논쟁 리스트 앞머리엔 늘 민족주의-탈민족주의 논쟁이 자리한다. 가속 페달을 밟는 지구화·세계화가 논쟁을 현재화·미래화하는 매개변수다. 세계화는 ‘친일´ 대 ‘반일´, ‘식민지근대화론´ 대 ‘자본주의맹아론´으로 대표되던 기존 민족주의 논쟁에 ‘배타적 민족주의´ 대 ‘국제적 탈민족주의´ 논쟁을 가세시켰다. 세계화는 ‘미완의 친일청산 완성론´ 대 ‘자학적 친일청산 비판론´이란 진보-보수간 논쟁구도에 ‘역사바로세우기´ 대 ‘생존 위한 선진화´란 논쟁을 껴입혔고, ‘저항적 민족주의 유효론´ 대 ‘배타적 민족주의 극복론´으로 진보진영 내부를 분화시켰다. 비판사회학회가 11,12일 ‘지구화시대-탈국가적 상상력’이란 주제로 숙명여대에서 여는 심포지엄은 세계화가 민족주의 논쟁에 어떤 고민을 던지는지 잘 보여준다. 심포지엄은 단일 국가 경계 내에서 인식·실천론을 발전시켜 온 사회과학이 지구화와 조우하는 과정에서 정치·경제·사회적 연구방법을 어떻게 전환해야 하는가 하는 절박한 문제의식과 맞닿아 있다. 세계화·지구화와 공명할 때 민족주의 논쟁은 더 이상 먹물들의 한가한 말다툼 차원을 넘어선다. 투자자-국가소송제 도입을 명문화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만 해도 ‘탈국가-탈민족적 협정’ 대 ‘국민국가 주권침해’라는 관점이 첨예하게 부딪치고 있다. 심포지엄의 민족주의 논쟁엔 대표적인 탈민족주의 역사학자 중 한 명인 임지현 한양대 사학과 교수와 분단이 개인 삶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해온 김귀옥 한성대 사회학과 교수가 나선다. 임 교수 발표문(‘아래로부터의 지구화와 탈민족적 상상력’)에서 국경으로 상징되는 현 시기 민족주의는 분쟁의 상징이다. 한·일간 독도-다케시마 분쟁, 한·중간의 동북공정 분쟁, 중·일간의 댜오위다오-센카쿠열도 분쟁, 러·일간 쿠릴열도 분쟁 등 국경을 전제로 한 국가 관계는 ‘지뢰밭’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임 교수는 “우리 고유의 영토라는 관념이 시민사회의 역사의식을 지배하는 한 민족주의라는 규율권력에서 벗어날 수 없다.”며 ‘배타적 민족주의를 구성해온 국사(國史) 해체’를 주장한다. 국사가 자국에만 유리한 기술 방식을 택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의 국정교과서와 일본의 ‘새역사교과서’는 적대적 공범 관계에 있다는 것이다. 그는 “한 나라의 일방적 국사 해체가 아니라 동시다발적 국사 해체를 통해 동아시아 차원의 상호비판과 자기성찰적 연대가 절실하다.”고 말한다. 반면 김 교수 발표문(‘신자유주의 시대의 민중적 민족주의’)은 민족주의가 여전히 낡은 것일 수 없다는 입장에 선다. 그는 “민족주의는 현실적으로 풀어야 할 가장 중요한 문제 가운데 하나”라면서 “지구의 문제를 나의 문제로 인식하는 데 수많은 제약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무조건 사해동포주의를 갖도록 하는 것은 한계가 있으므로 전술적 수준에서 민족주의는 활용할 만하다.”고 강조한다. 해외동포와 라이따이한, 외국인 노동자, 국제결혼 여성 등의 문제를 소수자 인권이 아닌 민족 문제와 결부해 풀 때 구체적 실천력을 가질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 “하나의 스타일에 갇히지 않는 작가 되고 싶어”

    “이제 겨우 소설집 두 권을 냈을 뿐인데….” 문학사상사가 주관하는 제32회 이상문학상을 수상한 소설가 권여선(44)씨는 8일 기자들과 만나 “문학적 성과가 일천한 무명작가가 너무 큰 상을 받게 돼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라고 소감을 밝혔다. 수상작은 계간 한국문학 여름호에 발표된 단편 ‘사랑을 믿다’. 실연의 상처를 지닌 두 남녀의 사랑에 대한 복잡한 감정을 드러냄과 숨김이라는 두 겹의 서사 구조 속에 담아낸 작품이다. “무슨 거창한 사랑의 메시지를 전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에요. 그저 실연에 대한 이야기라고 보면 됩니다.” 하지만 그의 소설은 이상문학상 심사평에서도 지적했듯 일정 부분 소설이 빠져들기 쉬운 상상력의 가벼움을 극복하고 있다.“요즘 소설들이 너무 ‘환상’이라는 손쉬운 탈출구에만 매달려 있는 것 같아요. 일상과 치열하게 맞대결하는, 현실에 튼실히 뿌리 박은 ‘현장소설’이 부족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문학수업을 한다 여기고 단편을 꾸준히 써 왔다.”는 작가는 앞으로 현대적 감각의 진지한 장편 로맨스 소설에도 도전하고 싶다고 했다. 스스로 “마흔넷, 헝가리 춤곡 같은 나이”라고 말하는 그가 늘 가슴에 새기는 화두는 변화.“하나의 스타일에 갇히지 않게 죽을 때까지 변화하는 작가가 되고 싶다.”는 그는 “이번 수상이 변화의 발걸음이 더 바빠지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1996년 장편 ‘푸르른 틈새’로 등단한 그는 소설집 ‘처녀치마’와 ‘분홍리본의 시절’을 냈고, 지난해에는 단편 ‘약콩이 끓는 동안’으로 오영수문학상을 받기도 했다. 글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 성공하려면 7가지 『ㄲ』을 갖춰야 한다

    『꿈』은 목표다. 그리고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꼴』『꾀』『끼』『깡』『끈』『꽉』이 필요하다. 1)『꿈』; 비전(Vision); 꿈을 간직하고 살아가는 사람이 성공한다 꿈이 없으면 희망도 없고, 꿈을 잃어버리면 미래도 함께 잃고 만다. 꿈(야망·희망·의지)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은 삶이 즐겁고 생기(生氣)가 넘친다. 꿈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은 어려운 일을 당하더라도 쉽게 좌절하지 않는다. 꿈은 미래에 대한 뚜렷한 비전이다. 꿈을 가진 사람은 창의적 상상력(想像力;imagination)을 발휘하여 미지(未知)의 것을 현실화시킬 수 있다. 이는 불가능(不可能)을 가능(可能)으로 바꿀 수 있는 원동력이 되는 것이다. 2)『꾀』; 재치(才致)가 있어야 성공한다 남을 교묘하게 속이는 권모술수가 아니라, 해결하기 힘든 일을 당했을 때, 그 어려움을 헤치고 나가는 교묘한 생각이나 수단을 일컫는다. 꾀가 많은 사람은 지기(知機 ; 미리 낌새를 알아차림 ; 독실술)가 있다. 꾀를 부릴 줄 알아야 그때 그때의 어려운 형편을 좋은 방향으로 돌이킬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평소 풍부한 정보(情報)를 축적해야 하며, 두뇌 회전이 좋아야 한다. 3)『끼』; 기질(氣質)이 있는 사람이 성공한다 <끼>는 “기(氣)”가 변해서 된 말로. 특별한 기량(技倆;기술적인 재간이나 솜씨)을 의미한다. 옛날에는 주로 ‘바람끼’‘화냥끼’처럼 점잖이 안정하지 못하고 나돌아다니는 기질(氣質)을 끼라고 일컬었으나, 요즘은 주로 연예인 기질이나, 직업 세계에서 일가견(一家見)를 이룰 특별한 기질을 의미한다. 4)『깡』; 심력(心力)이 강한 사람이 성공한다 ‘깡’은 ‘깡다구’‘끈기’‘뚝심’‘성깔’ ‘강단’‘보짱’‘오기’를 뜻한다. 깡이 있는 사람은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에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악착스러운 강한 뚝심을 가진 사람이다. 또 깡은 성부 근성(根性 ; 어떤 일을 끝까지 해내려고 하는 끈질긴 성질)을 가진 사람으로, 강한 배짱(뱃심, 보짱)을 갖고 있다. 이는 육체적 조건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깡다구(성깔)에서 나온다. 어떤 악조건에서도 굽히지 않고 버티어 나갈 수 있는 강한 깡다구와 도전(挑戰) 정신이 있어야 자기가 하고자 하는 목표를 향해 나아갈 수 있다. 5) 『끈』; 후원자(後援者)가 있어야 성공한다; 동반자(同伴者) 위대한 사람치고 남의 도움을 받지 않았던 사람은 없다. 남의 도움을 받아야 성공할 수 있다. ‘끈’은 좋은 만남(善緣)에서 생긴다. 삼국지에 나오는 유비는 관우와 장비(결의형제)를 만나고, 지묘가 출중한 제갈량을 만났듯이,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못했던 삼중고(三重苦)의 성녀(聖女) 헬렌켈러가 살리번이라는 여사를 만났듯이, 그리고 발명왕 에디슨은 유능한 숙련공인 ‘존 오트’와 훌륭한 수학자, 유능한 변호사를 자기 곁에 두고 도움을 받았기에 위대해질 수 있었다. 이렇듯 좋은 만남이 있어야 인간은 더욱 위대해질 수 있다. 6) 『꼴』; ‘꼴’이 좋아야 한다 좋은 인상, 매력있는 맵시를 갖춰야 한다 남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 주도록 노력해야 한다. 더 나아가 자기 브랜드(brand)를 심어 주어야 한다. 아름다운 모습. 신뢰할 수 있는 진실한 모습, 부드럽고 따뜻한 인상, 매력있는 매너(manner)를 남들에게 심어주어야 한다. 여기에는 첫인상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첫인상은 두 번 줄 수 없다. 좋은 맵시. 매력적인 인상을 풍기는 사람에게 많은 사람들이 가까이 하고 따르게 되는 법이다. 7) 『꽉』; 기회를 꽉 잡아야 성공한다 좋은 기회가 왔을 때 놓치지 않고 꽉 잡을 수 있는 능력과 용기가 있어야 한다. 열심히 살아가다 보면 누구에게나 좋은 기회가 올 때가 있다. 이런 좋은 기회를 그냥 놓쳐버리는 사람에게는 성공을 이룰 수 없다. 기회를 꽉 잡지 못하면 자기에게 찾아든 행운도 지나쳐버리고 만다. 글 김진수 수필가. 의학박사 월간 <삶과꿈> 2007년 11월호 구독문의:02-319-3791
  • 대중문화, 라디오에 빠지다

    대중문화, 라디오에 빠지다

    라디오스타의 종말을 노래한 팝송 ‘Video Killed The Radio Star’는 적어도 요즘 한국 대중문화계엔 들어맞지 않는 것 같다. 올드미디어의 대표격으로 여겨지던 라디오가 화두로 떠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 뮤지컬의 주요 소재로 쓰일 뿐 아니라 TV프로그램에서 차용되기도 한다. 라디오가 대중문화에서 본격적으로 주목 받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06년 이준익 감독의 영화 ‘라디오스타’때부터. 한물 간 록가수 최곤(박중훈)이 강원도 영월에 내려와 라디오 DJ를 맡으면서 시작된 이 영화는 삶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페이소스로 잔잔한 감동을 안겼다. 이 영화를 원작으로 한 동명의 뮤지컬 역시 오는 26일 무대에 오른다. 여성 라디오 PD의 역할을 확대하고 노래 선곡도 달리하는 등 뮤지컬만의 특성을 살릴 예정.31일에는 한국 최초의 라디오 방송국인 경성방송국을 소재로 한 영화 ‘라듸오 데이즈’도 개봉한다. 한편,TV에서는 DJ들이 라디오 방송을 하는 형식을 본뜬 MBC 예능 프로그램 ‘황금어장’의 코너 ‘라디오 스타’가 인기를 끌고 있다. ●라디오적 감수성과 휴머니티 ‘접목’ 인터넷 등 속도를 중시하는 디지털 광풍이 휩쓸고 있는 21세기에 아날로그 감성을 중시하는 라디오가 대중문화의 소재로 각광받게 된 까닭은 무엇일까. 관계자들은 라디오적 감수성과 상상력을 가장 큰 이유로 꼽고 있다. ‘FM음악도시’,‘유희열의 올 댓 뮤직’ 등의 라디오 DJ로 유명한 가수 유희열은 “영상매체가 판을 치고 온라인에선 즉각적인 반응이 일어나는 요즘 라디오는 유일하게 듣기만 하는 매체”라면서 “단기간에 반응을 하는 것은 상상력을 빼앗아가기 마련인데, 감수성을 바탕으로 한 청취자들과의 교류는 라디오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말했다. 최근 TV 예능프로그램에서 ‘휴머니티’가 주요 코드로 떠오른 것도 또다른 이유다. 요즘은 ‘무한도전’이나 ‘1박2일’ 등 출연자들의 가공되지 않은 인간적인 모습을 내세운 프로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 김동운 SBS 라디오국장은 “IT문명의 혜택으로 생활방식은 빠르고 편해졌지만,‘군중 속의 고독’을 느끼는 이들은 더 많아졌다.”면서 “라디오라는 매체가 주는 인간적인 따뜻함과 정서적인 안정감이 대중문화의 주요 소재로 재각광받는 이유”라고 분석했다. ●솔직함 앞세운 ‘리얼리티쇼’ 인기 반영 가식보다 솔직함이 최고의 미덕으로 각광받고 있는 최근의 세태도 한몫 하고 있다. 비교적 자유롭고 편안한 분위기 때문에 일부 정치인이나 연예인들은 라디오를 통해 평소엔 하기 힘든 미묘한 얘기들을 털어 놓는 경우가 많다. 최근 라디오에서는 인터넷을 통해 프로그램을 생중계하는 ‘보이는 라디오’ 시스템을 도입하기도 한다. 정찬형 MBC 라디오본부장은 “라디오의 가장 큰 미덕으로 여겨지는 솔직함과 자유로움이 대중문화의 주요 코드가 되면서 TV에서도 이를 극대화해 활용하는 것 같다.”면서 “‘보이는 라디오’는 대중들의 엿보기 심리를 이용한 것으로 듣는 재미를 배가시키기 위한 것이지 장기적으로 가져가야 될 시스템이라고 보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한편, 라디오 DJ들의 애드립에 의존하는 형태는 최근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인기와도 연관됐다는 의견도 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최근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리얼리티 쇼´가 인기를 끌면서 즉흥적이고 마음껏 의견을 교환하는 라디오의 형태를 차용한 프로그램이 많아지고 있다.”면서 “그동안 금기시되던 부분을 솔직한 담론으로 얘기하는 것은 좋지만 사적인 가십성 발언이 늘어나는 것은 경계해야 할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파페라 테너 임형주 영재 발굴 나서

    파페라 테너 임형주 영재 발굴 나서

    “열 여섯 살에 데뷔해 비교적 어린 나이에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습니다. 경험으로 비춰볼 때 예술과 어학 교육은 빨리 시작할수록 효과가 크죠. 어린 시절 미리 끄집어내지 않으면 재능이 사라지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파페라 테너 임형주(22)가 비영리재단 ‘아트원(ArtOne)’을 설립하고 예체능 영재 발굴에 나선다. 아트원은 1단계로 오는 3월 아트원스쿨을 개원해 혁신적인 방식의 어린이 교육 프로그램을 선보인다. 음악·미술·무용·체육 부문 권위자를 교사로 초빙해 실기 중심의 교육을 펼친다. 음악 분야는 임형주가 설립한 코리안 포스트 챔버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직접 지도한다. 어학은 조기 교육이 중요하다는 판단에 따라 영어 랭귀지 코스를 마련한다. 영어와 일본어에 능통한 임형주는 “외국어를 익히는 데 드라마만한 게 없다.”며 “표현력과 상상력, 창의력, 무대 매너를 함께 발달시키기 위해 영어 연극을 무대에 올릴 방침”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이에 따라 아트원스쿨 내에 200석 규모의 공연장도 조성된다. 박상숙기자 alex@seoul.co.kr
  • [서울신문 신춘문예-평론당선작] ‘여수’에서 식물성의 세계로, 그 타자 찾기 - 한강론/주지영

    1. 잃어버린 타자를 찾아서 우리네 일상은 끝을 가늠할 수 없는 경계의 반복적인 명멸과 대면하는 자리에 인간을 위치시킨다. 정체를 알 수 없는 힘들에 의해 일상의 공간은 구획되고 짜여진다. 주어진 공간의 구획을 넘어서는 순간에도 경계 짓기는 끝없이 지속된다. 안주와 일탈의 길항은 일상의 작은 균열들 속에서 내파되고, 일탈의 가능성을 지속시키는 새로움을 향한 갈망조차 이미 기획된 미시적인 욕망의 파편들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번번이 실패한다. 그러기에 ‘가지 않은 길’을 향한 욕망은 달콤하면서도 씁쓸하다. 욕망을 충족시키고자 한다면 일상을 전복시킬 위험을 무릅써야 한다. 그 위험을 고스란히 떠맡은 것, 그것이 소설의 운명이 아닐까? ‘길이 시작되자 여행은 끝났다.’는 루카치의 명제는 소설의 발생론적 배경을 논하는 자리에서 도출된 것이지만, 그것은 현대의 소설이 처한 위상을 거론할 때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그 소설의 문법 속에는 고향으로 가는 길을 비추는 작가의 ‘별빛’이 있어야 하고, 또한 현실사회의 고해를 건너는 ‘모험’이 있어야 함은 물론이다. 모험을 통한 별빛 찾기, 이를 달리 잃어버린 타자 찾기라 명명할 수 있을 것이다. 근대적 인식이 현실을 지배하기 시작한 후, 인간은 이가 빠진 동그라미 같은 불구자로 전락해 버렸다. 이가 빠진 동그라미는 자신의 반쪽을 찾아 끊임없이 벌판을 방황한다. 그 벌판은 근대자본주의로 인해 황폐화된 불모지이다. 그곳은 산업사회일 수도 있고, 후기산업사회일 수도 있다. 동그라미는 그런 삭막한 곳에서 자신의 반쪽인 타자(the other)를 찾아 온전한 존재가 되고자 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그 반쪽을 찾지 못하는 한 동그라미는 영원한 불구자일 수밖에 없다. 잃어버린 타자를 찾아나서는 고독한 탐험가, 그가 작가이다. 잃어버린 타자는 인간이 황폐화시킨 자연일 수도, 남성에 의해 도구화되어 억압받는 여성일 수도, 도시에 의해 황폐화된 농촌일 수도, 자본가에 의해 착취당하는 노동자일 수도, 이성에 의해 감금된 비이성일 수도 있다. 소설은 잃어버린 타자를 되찾고 타자와의 합일을 이뤄내고자 하지만, 당연히 그러한 지향은 실패한다. 그러나 실패할 줄 알면서도 그 세계를 강렬하게 지향한다. 그래서 우리가 발 딛고 선 현실이 얼마나 황폐한가, 또 얼마나 폭력적인가를 깨달을 수 있게 한다.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해 우리는 어떠한 것에 가치를 두어야 하고, 어떠한 삶을 영위해야 하는가를 뼈저리게 깨우쳐 주는 것, 그것이 소설이 짊어져야 할 비극적 운명이다. 어떤 타자를, 어떻게 지향하는가, 바로 그 점에서 소설의 색채와 작가가 이뤄내고자 하는 세계는 다른 빛깔을 띠게 된다. 소설사적 흐름에서 위대한 작가로 평가받는 이들은 바로 이 잃어버린 타자를 찾기 위해 모험을 시도했고, 그 모험의 결과로 산출된 별빛들은 ‘지금, 여기’를 살아가는 우리 앞에 빛을 밝혀준다. 인간에게 불을 내어 준 프로메테우스가 그 대가로 자신의 심장을 독수리에게 내맡기듯 그들은 우리에게 ‘지금, 여기’를 밝혀 줄 소설을 쓰기 위해 벌판을 고독하게 방황한다. 그렇다면 최근 소설에서 프로메테우스처럼 소설의 비극적 운명을 천형으로 짊어지고 가는 작가는 얼마나 되는가. 오히려 우리는 이러한 소설의 운명을 포기하는 경우를 더 많이 보고 있지는 않은가. 후기 자본주의 사회의 매스미디어적 메시지들을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재생산함으로써 소설의 고독한 운명을 방기하고 현상적이고 피상적이며 찰나적인 것에 쉽게 자리를 내어주는 작품을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 현실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을 결여한 채 일상에 안주하여 후기 자본주의 사회의 쾌락들을 경탄해마지 않는 그런 소설들을 대하는 일은 무척이나 고통스럽다. 프로메테우스의 천형처럼 소설의 비극적 운명을 짊어지고 고독한 방랑의 길을 떠나는 작가가 더욱 고귀해 보이는 것은 그 때문이다. 한강은 ‘모험을 통한 타자 찾기’에 충실한 작가이다. 한강의 ‘모험’은 현실사회 모순의 해부보다는 그 현실사회에서 불구자로 전락한 인간의 보편적인 존재 조건에 초점을 맞춘다. 그의 작품은 죽음과 광기, 소통의 법칙을 뒤집는 침묵이나 몸짓, 욕망의 금기를 위반하는 근친상간, 동물성에 대비되는 식물성 같은 언표들을 공적인 영역 속에서 가시화한다. 뼛속부터 밝음의 영역에 속해있던 기획된 욕망들을 삭제하려는 충동질로 가득한 그의 소설에서 인위적인 모든 것들은 부정된다. 제도나 관습 일반에 ‘길들여지는’ 것을 거부하고, 획일화된 것들을 거부한다. 먹고 마시는, 삶을 지탱하는 가장 기본적인 욕망들조차 깡그리 부정하고 난 뒤에서야 비로소 인간존재의 진정한 의미들을 힘겹게 터득해 나간다. 폭력적인 일상에 휘둘릴수록 본래의 육체에 깃들이고 있었을 법한 영혼에 대한 갈급이 더욱 증폭되는 것이다. 그 공간에서 가라앉았던 감정의 앙금들을 분출하고, 토해낼 때 비로소 영혼의 정화는 일단락된다. 의식(儀式)과도 같은 파토스가 지나가고 난 빈 자리에 ‘타자’를 향한 존재의 갈망이 채워진다. 그렇다면 한강 작품에 나타나는 ‘모험’은 무엇이며, 그 모험을 통해 찾고자 하는 ‘타자’는 무엇인가. 초기 작품에서는 죽음의 기억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여수’로 상징되는 타자가 설정된다. 타자의 자리가 설정된 이후 그 타자와의 합일 방법을 탐구하는 쪽으로 나아가는데, 그것이 ‘가면벗기와 맨얼굴 찾기’에서부터 출발하여 ‘언외언과 관의 사유’를 거쳐 ‘식물성의 세계에 대한 강렬한 욕망’으로 이어진다. 그 과정이 첫 창작집 ‘여수의 사랑’(문학과지성사,1995)에서부터 ‘내 여자의 열매’(창작과비평사,2000)를 거쳐,‘채식주의자’(창비,2007)로 전개되는 바, 이에 대한 검토를 통해 한강 작품의 의의를 탐색하고, 나아가 ‘지금 여기’에 대해 고민하는 소설이 나아가야 할 올바른 지평이 무엇인지를 점검하고자 한다. 2. 관념으로서의 여수(旅愁), 행(行) 일곱 편의 단편이 실린 첫 창작집 ‘여수의 사랑’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대부분 일상 현실에 적응하지 못한 채 병적 징후에 시달리거나 심지어 자살 같은 극단적 행위를 통해 죽음을 택하기도 한다. 한강 소설에서 다루어지는 죽음은 인간의 육체에서 숨이 빠져나가는 생물학적 의미의 죽음에 한정되어 있지 않다. 죽음은 그 기억 속에 유폐된 인물들이 좌절하고 절망하도록 만드는 요인이면서, 한편으로는 그 인물들이 삶의 영역으로 나오도록 이끄는 통로이다. 그 통로의 끝에서 인물은 좌절과 절망 같은 심리의 장막 뒤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던 타자와 조우한다. 그런데 여기서 작중 인물의 병적 증후나 자살 등을 유발하는 가족의 죽음을 두고 죽음의 원인이 무엇인가를 물음으로써 현실에 내재한 모순이 무엇인가를 밝혀내는 일은 큰 의미를 갖지 않는다. 죽음의 기억은 인물의 내면에 일상에 적응할 수 없을 만큼의 정신적 상흔으로 남겨져 있다는 것이 중요할 뿐이다. 어린 시절 농약을 먹고 자살한 아버지와 동네 아이들에게 매맞아 죽은 동생 진규에 대한 기억으로 인해 괴로워하는 ‘질주’의 인규, 생모의 죽음에 대한 기억으로 일상에 적응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저녁빛’의 제헌, 어머니의 죽음과 아버지의 동반 자살에 대한 기억으로 인해 심각한 결벽증을 앓는 ‘여수의 사랑’의 정선 등을 보면 그렇다. 누군가의 죽음이 현실을 살아가는 인물들에게 부적응이라는 요인을 촉발하는 정신적 상흔으로서 작동한다면, 그것은 작가의 인식이 현실의 모순에 대한 인식이 아닌 인간 존재의 보편적인 조건을 문제 삼는 쪽에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말하자면 한강의 관심은 불행한 존재로서의 인간을 드러내는 측면에 놓인다. 따라서 작가는 가족의 죽음을 인물의 기억 속에 저장해 두고, 삶과 죽음, 사랑과 미움, 용서와 증오 등과 같은 보편적 주제와 연결시킴으로써 특정 시대, 특정한 상황을 뛰어넘어 인간의 보편적인 존재 조건을 탐색하려 한다. 어린 시절 가족의 죽음과 관련된 기억, 그러한 정신적 상흔으로 인한 병적 징후, 죽음과 같은 음울한 기운이 만연한 일상에의 부적응, 기억을 벗어나고자 하는 몸부림 등으로 구성된 서사가 ‘여수의 사랑’ 전편을 관통한다. 이러한 서사구조를 깔고 작가는 삶과 죽음의 문제를 전면에 내세운다. 어둡고 침울한 어조에도 불구하고 작품에 설정된 타자는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공간으로 한 폭의 아름다운 수묵화 안에 오롯이 담긴다. 가령,‘여수의 사랑’을 보자. 이 작품에서는 정선과 자흔이라는 두 명의 인물이 서사를 이끌어 나간다. 먼저, 정선의 경우. 여수에서 보낸 어린 시절, 어머니가 죽자 아버지는 술에 찌들어 살다가 결국 정선과 어린 동생과 함께 바다로 뛰어들어 동반자살을 꾀한다. 혼자 살아남은 정선은 서울에 살면서 직장에 다니고 있지만, 어린 시절의 끔찍한 기억으로 인해 일상에 적응하지 못한다. 정선은 서울을 죽음과 같은 음험한 기운이 만연하고, 온갖 병균이 득실한 곳으로 여긴다. 그곳에서 정선은 ‘결벽증’과 같은 병적 증세에 시달린다. 다음 자흔의 경우. 그녀는 두 살 때 서울역에 버려져 고아가 된 뒤 보육원 생활을 거쳐 입양이 된다. 돈에 대한 욕심도, 행동거지에 조심성도 없다.‘모든 것을 생각 없이’ 다루는 그녀는 아무 희망도 없이 도시를 옮겨 다닌다. 자흔은 일상의 ‘나’와 또 다른 ‘나’의 두 가지 모습으로 존재한다.‘핏기가 없는 데다가 입가와 뺨에 온통 하얗게 버짐이 피어 흡사 분가루를 뒤집어쓴 광대 인형’ 같은 것이 일상의 ‘나’이고, 늘 떠돌아다니면서 세상사에 무관한 채 ‘견고한 평화가 어른거리는 얼굴’,‘무구하고도 빛나는 웃음’,‘천진한 영혼’을 가진 것이 또 다른 ‘나’이다. 또 다른 ‘나’는 여수에 대한 사랑을 간직하고 있다. 고향도 모르는 자흔은 성인이 되어 문득 찾게 된 여수에서 ‘아름다움’을 느끼고 여수를 고향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일상의 ‘나’를 버리고 또 다른 ‘나’로 거듭 태어나고자 한다. 그녀에게 여수는 풍경이 아름다운 공간이 아니라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진정한 아름다움을 품은 공간으로 인식된다. 죽음과 같은 음험한 기운, 온갖 병균으로 득실한 ‘서울’에 대비되는 여수란 과연 어떤 곳인가. 길 여기저기에 소들이 쟁반만 한 똥을 갈겨놓은 진짜 시골이었어요.(중략) 그냥 ‘아름답구나’ 하고 생각하면서 다시 길을 내려오는데 갑자기 눈물이 쏟아지는 거예요. 마을 앞 버려진 부두에는 누더기 같은 천막이며 더러운 판자때기들이 뒹굴고, 검푸른 물결은 갯벌을 향해 천천히 다가왔다가 밀려가고……염소 울음 소리, 새소리, 바람, 두엄 냄새, 일하는 아낙네들……그 가운데 어느 하나도 낯익은 것이 없었는데도 마치 내가 얼굴도 모르는 어머니 품속에 돌아와 있는 것 같았어요.(‘여수의 사랑’,50∼51쪽) 따뜻한 산수화 한 폭을 보고 있는 듯한 여수의 풍경은 자흔에게 인간과 자연이 어우러진 곳으로 각인된다.‘푸른 실 하나하나를 촘촘히 엮어 놓은 것같이 잔잔한 만’에 염소 울음소리와 새소리가 있고, 바람이 불고, 두엄 냄새가 나며, 그런 자연적인 것들과 어우러져 백발 성성한 노인과 머릿수건을 쓴 아낙네, 상고머리 소년들이 일을 하는 곳,‘무덤’마저 ‘착하고 둥글둥글’하게 생긴 곳, 그곳이 바로 자흔의 기억 속에 자리한 ‘여수’이다. 고향도 모른 채 고아로 자란 그녀에게 여수는 ‘어머니 품속’처럼 아늑하고, 아름답고, 따뜻한 마음의 고향으로 살아 숨쉰다. 여수로 표상되는 이 세계야말로 자흔에게 인간다운 삶을 가능토록 하는 타자이다. 그녀가 여수를 갈망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녀는 도시의 삶을 견디기 위해 어항에 물고기를 키우기 시작한다. 그녀가 물고기 키우는 일에 정성을 들이는 까닭은 자신이 물고기가 되고 싶어서이다.“세상에 있는 모든 물은 바다로 흘러가고, 그 바다는 여수 앞바다하고 섞여 있”다고 생각하는 그녀에게서 물고기가 되고자 하는 일이란 어머니의 품속 같은 여수로 흘러들어 가는 일에 다름 아니다. 일상의 ‘나’를 거부하고 아름다운 어머니의 품속 같은 ‘여수’와 일체가 되고자 하는 또 다른 ‘나’를 지향하는 자흔을 통해, 정선은 어린 시절의 정신적 상흔으로부터 힘겹게 빠져나오기 시작한다. 정선에게 죽음의 기억이 서린 여수는 병적 증세를 심화시키는 요인이 된다. 자흔은 그런 정선에게 여수를 이야기하고, 그럴 때마다 정선의 결벽증은 심해진다. 그러다가 정선은 차츰 자흔을 통해 환기되는 여수의 아름다움에 빠져들게 되고, 결국 자흔이 그녀의 곁을 떠나자 정선 역시 여수행 기차를 탄다. 정선의 여수행은 자흔처럼 일상의 ‘나’로부터 벗어나 아름다운 여수를 사랑하는 ‘나’로 거듭 태어나기 위한 피할 수 없는 여행이다. ‘여수의 사랑’은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어머니의 품속’ 같은 타자를 찾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런데 그것이 ‘지금, 여기’라는 현실에 작가가 천착한 결과로 얻어진 것이 아니라,‘인간은 불행한 존재다.’라는 관념의 영역에서 설정된 것이어서 이 작품은 삶에 대한 리얼리티가 충분히 확보되어 있지 않다는 지적을 면할 수 없다.‘여수’라는 타자가 실현가능한 것으로서의 몸피를 얻기 위해서는 현실에 대한 작가의 천착이 심화되어야 하며, 더불어 그렇게 얻어진 타자와 합일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서도 탐구해 들어가야 한다. 3. 맨얼굴에 담긴 관(觀)의 사유 실현가능한 것으로서의 ‘타자’가 되기 위해 작가의 인식이 구체적인 현실로 들어가야 한다는 것, 그리고 타자와 합일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을 탐구하는 것, 그것이 ‘어둠의 사육제’와 ‘아기부처’에서 이뤄진다. 이들 작품에서 ‘여수’로 상징되는 타자에 대한 직접적인 지향은 두드러지지 않는다. 대신 타자와의 합일이 가능할 수 있는 방법을 탐구하는 데 주력한다. 그 방법은 ‘가면 벗기를 통한 맨얼굴 찾기’와, 용서라는 마음이 우러나오도록 하는 ‘관’의 사유로 구체화된다. ‘어둠의 사육제’를 보자. 먼저 주목할 것은 ‘서울’을 바라보는 작가의 인식이다. 작가는 ‘서울’이라는 도시를 여전히 ‘어둠’이자,‘인간들의 더러운 그림자’가 지배하는 ‘무덤’으로 인식한다. 죽음의 기억이 이러한 인식을 이끌어내었던 초기작과는 달리, 이 작품에서는 서울의 구체적 현실에 천착하여 그 속에 내재된 동물적 폭력성을 감지해내고 있다는 점에서 작가의 인식이 현실에 밀착해 있음을 보여준다. 얼마나 세상에 밟히고 뒤둥그러지면 저렇게 되는 것일까, 하고 나는 생각하고 있었다. 그 여자의 동물적인 분노와 보복을, 번들거리는 눈과 기차 화통 같은 목소리를, 그 이상 철면피할 수 없을 되바라진 억양을 묵묵히 관찰하며 나는 연민이나 환멸이라고만은 설명하기 힘든 야릇한 슬픔에 사로잡히고 있었다.(‘여수의 사랑’,230쪽) 중년 여자는 자신의 얼굴을 실수로 때린 여대생에게 ‘동물적인 분노와 보복’으로 폭력을 휘두르고, 전철에서 뻔뻔스럽게 자리 양보를 요구한다. 비단 중년 여자뿐만이 아닌 이 작품의 여러 인물들에게서 모두 감지되는 동물적 폭력성은 이후 전개되는 한강의 소설에서 현실 인식의 한 증좌가 된다. 나(영진)와 인숙 언니는 같은 고향 사람으로 둘 다 서울로 상경한다. 영진은 ‘세상에 대해 좋은 것만 생각’하고 ‘착하게’ 살아왔다. 그리고 인숙 언니는 ‘커다랗고 감정이 풍부했던 눈이며 부드럽기만 했던 입매’를 가진 사람이다. 그러나 이들은 서울로 올라와 변화한다. 여직공이던 인숙은 ‘거친’ 말씨를 내뱉고 ‘나쁜 쪽만 생각’하는 ‘독한 사람’으로 변한다. 무역회사 경리를 하면서 돈을 모아 대학 영문과에 진학할 생각을 하던 영진은 인숙이 전세금을 빼들고 도망가자,‘악하게 살아남아야 한다.’고 생각하며 ‘잘 벼린 오기 하나만을 단도처럼 가슴’에 품고 ‘인간에게 살의를 느끼는 사람’으로 변한다. 명환 역시 ‘본래 선한 사람’이었으나, 교통사고로 아내와 뱃속의 아이를 잃고 ‘모든 인간들에게 살의’를 품는다. 간암을 치료하기 위해 전세금을 갖고 도망간 인숙이나, 그 인숙으로 인해 ‘독기’를 품은 ‘나’나, 돈으로 용서를 구해온 가해자에게 복수를 꾀하는 명환이나, 모두 중년 여인처럼 동물적 분노와 보복심으로 폭력을 휘두른다. 어둠 속에 꼿꼿이 네 발을 세운 채로, 경련하는 암고양이의 모습을 소리없이 주시하고 있는 검은 수고양이의 모습은 흡사 악령 같았다.(‘여수의 사랑’,223쪽) 쥐약을 먹고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암고양이를 냉혹하게 주시하는 악령 같은 수고양이는 동물적 폭력성이 난무하는 현실을 환유하는 장치이다. 영진과 인숙, 명환 등은 바로 이 동물적 폭력성에 길들여진다. 이러한 동물적 폭력성으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은 무엇인가. 우선 가면을 벗음으로써 맨얼굴을 찾는 것이 그 첫 번째 방법이다. 동물적 복수심으로 남을 괴롭혀 온 명환이 결국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고통스러워하다가 ‘빈손’,‘완전한 빈 몸뚱이’가 되기 위해 자살하는 모습을 보고, 영진 역시 그런 복수심을 버리고 간암 치료를 받는 인숙 언니의 행동을 이해하고 용서한다. 바로 이 과정에서 가면 벗기와 맨얼굴 찾기가 이뤄진다. 지하철 창문에 비친 객실의 음산한 풍경 속에 내 얼굴은 어딘가 낯설어 보였다. 나는 그 가면 같은 얼굴을 뒤집어쓴 사람이 더 이상 눈물 따위를 흘릴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있었다.(‘여수의 사랑’,231쪽) 폭력적이고 비인간적인 일상에 길들여진 자들의 뻔뻔스러운 얼굴을 표상하는 ‘가면 같은 얼굴’은 인간 존재의 본질을 은폐한다. 그 얼굴은 인간의 것이라기보다는 폭력적인 동물성을 표상하는 수고양이의 것에 가깝다. 작가는 가면을 쓴 비정한 일상의 인간들에게서 발견한 물질만능주의, 출세지향주의, 가족이기주의와 같은 현실의 모순을 비판의 목록에 등재한다. 동물적 폭력과 복수심에 길들여진 일상의 가면을 벗고 또 다른 ‘나’의 맨얼굴을 획득할 때 비로소 용서와 화해를 품을 수 있고, 또한 타자와의 합일이 가능하다. 요컨대, 맨얼굴 찾기가 타자와의 합일을 가능케 하는 일차적 방법인 셈이다. 맨얼굴로 도심의 일상에 나서는 영진에게서 현실을 향한 적극적인 대응 의지가 엿보인다. ‘어둠의 사육제´가 동물적 폭력성이 길들여진 가면을 벗고 그것에 오염되지 않는 맨얼굴을 되찾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면,‘아기부처´는 그 맨얼굴이 어떤 마음을 지녀야 하는지를 ‘언외언(言外言)´과 ‘관(觀)´의 사유를 통해서 강조하고 있다. 바로 이것이 타자와의 합일을 가능케 하는 두 번째 방법이다. 주인공 선희는 프라임타임의 앵커인 남편과 소원한 관계를 유지한다. 남편은 어릴 적에 입은 화상 흉터를 감추려고 철저하게 긴 옷을 입는다. 선희가 감기에 들자 자신에게 감기를 옮길까봐 병원에 가보라고 강요하기도 한다. 그는 말실수 하나 용납하지 못하는 완벽주의자이고, 독단적인 인물로서 출세를 위해 자기관리를 철저히 한다. 선희는 처음엔 남편의 흉터를 보고 고됐을 그의 삶을 연상하지만, 결혼 후 이기적이고 권위적이고 철저히 자기중심적인 남편의 실체를 알고부터는 남편의 화상 흉터를 싫어하게 된다. 자신의 흉터를 보듬어 줄 사랑을 찾아 남편은 외도를 하고 선희는 남편으로부터 철저하게 버림받는다. 나는 한갓 짐승이었다. 땀에 젖어 산비탈에 엎드린, 누더기 같은 한겹 가죽만 남은 병약한 짐승이었다. 그 가죽 안에서 악취나는 거품처럼 부글거리고 있는 것은 오래 묵은 분노와 후회와 증오, 억울함과 자책감과 부끄러움이었다. 그것들이 내 살을 속에서부터 조금씩 조금씩 부식시켜 왔다(‘내 여자의 열매’,111쪽) 현실의 동물적인 폭력성에 선희는 철저히 희생당한다. 그 결과 남편과 세상을 향해 분노와 증오를 쌓아간다. 그렇지만 분노와 증오는 앞서 ‘어둠의 사육제’의 인물들처럼 스스로를 동물적 존재로 만들 뿐이다. 그런 동물적 삶으로 인해 선희는 황폐해져 간다. 그 삶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선희의 모습은 꿈 속 아기부처의 얼굴에 비춰진다. 아기부처가 짓는 표정들은, 음흉한 입꼬리와 날카로운 눈초리를 하거나, 차갑게 빈정대는 눈꼬리를 한 그녀의 내면과, 진흙이 끈적이며 달라붙기도 하고, 모래가 되어 부서지기도 하는 남편과의 현재 관계를 거울처럼 되비친다. 아기부처의 얼굴은 선희가 병약해가는 것이 “마음속에 맺힌 악취 나는 감정들” 때문임을 깨닫게 하는 경고의 스크린인 셈이다. 그렇다면 아기부처로부터, 동물성으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은 무엇인가? 먼저 그것은 ‘말’이 아니라 ‘침묵이나 몸짓’ 속에 현현하는 ‘언외언’에 있다.‘몸짓’으로서의 ‘언외언’은 ‘말’이 야기하는 폭력성으로부터 벗어나 있다. 남편, 어머니, 아기부처와 선희는 ‘말’이 아니라 ‘몸짓’으로 소통함으로써 화해한다. 어머니의 불화 그리기, 아기부처의 얼굴 빚기, 혹은 언어 장애 아동을 위한 삽화 그리기 등이 ‘언외언’의 도정에 가로놓인다. 아이, 까르르 웃는다. 처음으로 입을 열어 외친다. ‘가자!’ (중략) 아이의 손을 번쩍 들게 하고 엉덩이도 약간 띄워서 아이가 펄쩍 날아오르는 것처럼 해야겠다. 아빠의 몸까지 함께 날아오르려는 것처럼 해야겠다.(‘내 여자의 열매’,102쪽) 언어장애아동처럼 언어를 거부하는 것은 말의 논리와 체계, 즉 말을 배우면서 사회로 편입되는 사회화과정 자체를 거부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말하자면 동물적 폭력이 난무하는 일상 현실의 ‘말’을 거부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이가 아버지의 노력에 힘입어 자기 안의 성벽을 허물고 드디어 입을 연다. 선희는 그들이 느꼈을 법한 기쁜 감정을 몸짓에 담아 삽화로 그려내야 한다. 아이와 아버지의 “날아오르는” 듯한 몸짓에 ‘기쁘다’는 말로는 전할 수 없는 마음이 담긴다. 삽화를 그리며 깨닫게 된 ‘언외언’은 남편의 흉터를 어루만지는 몸짓에 담긴다. 남편이 다른 여자로부터 마음의 상처를 입고 머리를 짓찧을 때 선희가 남편의 머리를 감싸안고 상처를 어루만지는 ‘몸짓’ 역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마음이다. 그 마음은 ‘말’ 그 자체에는 은폐된 ‘무엇’이며,‘침묵’의 빈 공간에, 말없이 이루어지는 ‘몸짓’ 속에 실재한다. 결국 언표화 되지 않는 마음을 환기시키는 방법은 ‘언외언’에 있다. 그러나 단지 그뿐인가. 이 작품에서 ‘언외언’의 심층을 ‘관(觀)’의 사유가 가로지른다.‘말’의 폭력성 때문에 갇혀 있던 용서와 화해의 마음은 ‘관’의 사유에서 풀려난다. 이쪽과 저쪽의 경계를 나누는 구분 자체를 초월한 곳에, 그리고 속물적인 욕망을 넘어선 자리에 “관”의 사유가 존재한다. 일상을 지배하는 논리규범에는 담길 수 없는 진정한 마음이 “관”의 사유 속에서 우러나온다. (i) “그 스님이 그러더라. 관세음보살은 내 속에 있다고. 내 몸이 용서하는 마음으로 그득해지면 그게 바로 관세음보살이라더라.” (‘내 여자의 열매’,104쪽) (ii) 관음의 입술은 보일 듯 말 듯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귀가 퍽이나 예민한 이인가 보았다. 빗소리를 듣다가 깨달음을 얻었고, 늘 세상사람들의 소리를 관(觀)하고 있어 괴로이 부르는 음성을 듣는 즉시 곧 구제해 준다고 어머니는 말했다.(‘내 여자의 열매’,105쪽) 삶의 고통을 인내하고, 마음속에 관세음보살을 잉태하듯 용서와 사랑과 화해의 마음을 잉태하는 것, 그럼으로써 일종의 해탈의 경지로 나아가는 것, 그것이 ‘관’의 사유이다. 선희는 남편을 이해하려는 마음이 있어야 자신이 바라는 진정한 부부 관계가 이루어질 것이라고 깨닫는다. 자신이 그동안 봐왔던 남편의 모습은 실은 화상을 입은 그의 껍질에 지나지 않음을, 정작 남편의 마음은 화상으로 일그러진 피부 밑에 고통스럽게 감추어져 있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된다. 이런 마음을 가질 때,“목련은 나무에 핀 연꽃이라 목련(木蓮)이지. 그렇게 생각하며 올려다보자, 하오의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그 봉오리들은 마치 꽃잎 안에 흰 등불들을 감추고 있는 것 같았다.”(117쪽)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으며, 나아가 겨울 나무에서 봄의 생명력을 감지할 수 있는 경지로 나아갈 수 있다. 겨울부터 저 날카로운 솔잎들은 초록빛을 띠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보니 같은 푸른색이지만 분명히 달랐다. 방금 나온 어린 싹 같은 연푸른빛이 생생하게 차올라 있었다./ 겨울에는 견뎠고 봄에는 기쁘다.(‘내 여자의 열매’,125쪽) ‘아기부처’의 마지막 장면이다. 겨울 지나 봄으로 가는 문턱에서 자연을 보고 느낀 감상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리 단순하지 않다.‘같은’ 푸름에서 ‘다른’을 간취하고, 겨울부터 ‘지속’되는 것들 가운데 ‘방금 나온’ 생명의 시작을 발견한다. 봄에는 꽃이 피고, 가을에는 낙엽이 떨어진다는 획일적인 공식이 아닌, 한 나무 안에서도 서로 다른 색의 잎들이 공존하고 있음을 긍정하는 사유, 앙상한 겨울나무에서도 미세한 생명의 떨림과 그 소중함을 깨달을 수 있는 사유, 그것이 바로 ‘관’의 사유이다. 이 관의 사유를 마음속에 지닐 때, 동물적 폭력이 난무하는 현실의 삶을 극복하고,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고 용서하고 사랑할 수 있는, 보다 인간다운 삶을 지향할 수 있다.‘겨울에는 견뎠고 봄에는 기쁘다.’라는 잠언과 같은 감탄은 아무나 도달할 수 있는 경지가 아니다. 4. 식물성을 향한 욕망의 존재론 타자와의 합일을 이루는 방법으로서의 맨얼굴과 ‘관’의 사유는 작가가 죽음의 기억으로부터 벗어나 구체적 현실의 삶에 뿌리내리면서 발견한 중간 경유지이다. 이 방식들은 의식의 층위, 마음의 층위에서 이루어진다. 이 층위는 평면의 동심원에서, 외원을 이루는 동물적 폭력성이 강렬한 외파로 밀고 들어올 때 위태롭게 흔들리는 내원과도 같다. 그 어떤 외파도 견딜 수 있기 위해서는 의식과 마음이라는 동심원의 평면 저 아래 깊은 심연에 자리한 무의식의 영역으로 그것을 심화시켜야 한다. 요컨대 타자와의 합일을 향한 무의식의 강렬한 욕망이 있다면, 그래서 의식의 수면을 꿰뚫을 정도로 강렬하다면, 그럴 때 현실의 외파에 맞설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된다. 한강은 ‘내 여자의 열매’를 거쳐 ‘채식주의자’,‘몽고반점’,‘나무불꽃’ 연작에 이르는 도정에서 욕망의 영역으로 작가 인식을 심화시킨다. 식물성의 세계에 대한 욕망이 그것이다. 이 순간 타자와의 합일을 이루는 방법으로 무의식의 심연에 자리한 욕망의 영역이 설정되고, 그 결과 관념에 지나지 않았던 ‘여수’ 대신 ‘식물성’의 세계가 새로운 타자의 자리에 위치한다. 이 타자는 여수처럼 현실과는 동떨어진, 현실 저 너머의 또 다른 공간에 있는 어떤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욕망 속에 살아 꿈틀거리는 것이자, 현실 속에서 실현 가능한 타자이다. ‘내 여자의 열매’는 식물성의 세계로 들어가는 첫 관문이다. 그러나 이 작품의 식물적 상상력이 길어내는 삶의 진실은 그 힘이 아직 미약하다. 현실도피의 차원에서 기획된 것이기 때문이다. 획일화된 일상이 싫어서, 도심의 똑같은 아파트가 싫어서, 지긋지긋한 피를 갈고 싶어서, 어머니처럼 되기 싫어서, 어디에서도 행복을 느낄 수 없어서 결국 식물이 된다는 가정이 단순한 현실도피를 방증한다. 그리고 식물성의 세계에 대한 인물의 욕망 역시 미약한 수준에 머물러 있다. 식물성의 세계를 강렬히 욕망하는 인물에 의해 식물성의 세계가 온전히 개화하는 작품은 ‘몽고반점’이다. 이 작품은 비디오아티스트인 그와, 몽고반점을 가진 처제와의 사이에서 벌어진 근친상간을 예술적 시선과 현실 윤리의 시선 속에서 포착해낸다. 이 작품에서 눈여겨 보아야 할 것은 처제의 욕망과 그의 욕망이다. 우선 처제의 욕망을 보자. 그 욕망은 그의 눈에 포착된 몽고반점 속에서 엿볼 수 있다. 약간 멍이 든 듯도 한, 연한 초록빛의 분명한 몽고반점이었다. 그것이 태고의 것, 진화 전의 것, 혹은 광합성의 흔적 같은 것을 연상시킨다는 것을, 뜻밖에도 성적인 느낌과는 무관하며 오히려 식물적인 무엇으로 느껴진다는 것을 그는 깨달았다.(‘채식주의자’,101쪽) 처제의 몽고반점은 ‘순수성’ 혹은 ‘순수한 영혼’을 표상한다. 곧 ‘어린아이’처럼 처제는 일상의 폭력성에 물들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그의 붓칠에 의해 ‘순수한 영혼’이 육체에 새겨진 ‘몽고반점’으로 가시화된다. 꽃을 그려 넣는 행위는 폭력적인 일상에 의해 상처받은 인간의 몸에 ‘순수한 영혼’이라 할 수 있는 식물성을 부여하는 일이라 할 수 있다. 그 결과 처제는 “뱃속의 얼굴”에 대한 무서움을 이겨낸다. “뱃속에서부터 올라온 얼굴”은 그 자신에게 내재되어 있었던 진정한 욕망을 의미한다. 뱃속의 얼굴이 낯설고 무섭게 느껴진 까닭은 일상의 질서에 자신이 길들여져 있기 때문이다. 일상의 질서로부터 벗어날 때 그 얼굴은 자신의 본래 모습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런 처제는 자신의 “순수한 영혼”을 가시화한 꽃 그림에 힘입고, 그녀 자신에게 내재해 있던 진정한 욕망을 발견함으로써, 더 이상 무서워하지 않게 된다. 그 결과로 풍겨 나오는 처제의 “배냇내”는 타자와의 합일이 뿜어내는 식물성의 ‘향기’인 셈이다. 몽고반점, 즉 꽃잎 그림자로서의 순수한 영혼과, 몸 혹은 꽃으로서의 진정한 욕망이 유기적 통일성을 이루는 세계, 그것이 ‘색채의 세계’로서의 식물성의 세계이다.“색채의 세계”는 “격렬한 세계”이자,“마술적” 세계이고,“전혀 다른 세계”이다. 식물성에 대비되는 동물성의 세계는 일상에 만연해 있는 후기 자본주의 사회의 폭력성을 함축한다. 그것은 육식성, 적자생존, 약육강식 등으로 점철된 일상이자 문명의 세계를 표상한다. 반면에 식물성은 순수성과 공존의 세계이자, 가족의 윤리마저 붕괴되는 탈일상이자 탈문명의 세계로 압축된다. 인간의 몸과 꽃, 그리고 짐승이 뒤섞인 교합에서도 드러나듯, 식물성의 세계는 “추악하면서도 아름답고” 동시에 “삶의 시작이자 끝”이기도 하고,“모든 것이 담겨 있는” 동시에 “모든 것이 비워진 곳”이기도 한, 차별상을 가진 일체의 것이 존재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드러내는 공간인 것이다. 하기에 처제가 욕망하는 식물성의 세계는 처제와 형부의 불륜관계처럼 제도의 금기마저 초월한 곳에 있다. 현실 제도의 금기를 위반하는 욕망이 존재할 수 있는 방식은 오로지 ‘죽음’과 ‘광기’의 영역 안에서이다. 곧 식물성의 세계에 대한 욕망은 금기의 위반에서 맛본 죽음과도 같은 향유(jouissance)를 안은 채 죽음을 향해 돌진할 것인가, 아니면 ‘광기’로 내몰려 사회로부터 배제당할 것인가를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 놓여 있다. 그것이 어떤 선택이건 모두 일상에서의 ‘죽음’과도 같은 귀결로 치닫는다. 처제는 그런 위험을 무릅쓰고서라도 자신의 욕망을 끝까지 치열하게 표출한다. 그렇다면 그의 욕망은 어떠한가. 그의 욕망은 육체적 욕망과 예술적 욕망 사이의 긴장 속에서 유동한다. 비디오 아티스트인 ‘그’는 “후기 자본주의 사회에서 마모되고 찢긴 인간의 일상”을 담아내는 작업을 통해,“강직한 성직자”로 불릴 정도로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을 강도 높게 비판해 왔다. 그러다가 처제의 자해사건을 겪으면서 그가 작업했던 것들 역시 일상에서 자행되는 폭력에 지나지 않음을 깨닫는다. 처제의 ‘몽고반점’은 그가 찾았던 “더 고요한 것, 더 은밀한 것, 더 매혹적이며 깊은 것”으로서의 실재를 현현하고 있었다. 처제의 ‘몽고반점’은 비디오아티스트인 그에게 이미지가 갖는 재현의 한계를 깨닫게 한다. 그는 지금까지 작업해 온 일상의 폭력성을 담은 이미지들이, 어떠한 방식으로 재현했든 간에 상관없이, 실재의 고통과 감정을 사라지게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 한계는 삶의 여러 국면에서 용솟음치는 욕망과 대면할 때마다 현실과 욕망의 경계 선상에서 그가 느꼈을 법한 환멸과도 같다. 그는 근친상간이라는, 현실의 금기를 위반하며 욕망의 극단에 잠시 도취된 결과, 잡으려 했던 욕망의 실재가 허망하게 스크린 너머로 사라지는 것을 보아야 한다. 그의 욕망은 처제가 보여주었던 내면으로부터 우러나온 욕망의 시선이 될 수 없다. 오히려 그 욕망은 현실과 예술 사이에서 끊임없이 줄다리기를 하다 결국 자신의 육체적 쾌락 앞에 예술적 욕망을 무릎 꿇린 결과를 낳고 만다. 여기서 ‘그’의 욕망을 작가 한강의 글쓰기의 욕망과 연결시킬 수 있다. 처제와의 근친상간을 통한 식물성의 세계를 전면적으로 형상화하고자 하는 것이 작가의 애초의 글쓰기의 의도이다. 이 의도대로라면, 작중 인물은 ‘그’와 처제만으로 충분하다. 두 인물의 근친상간을 담은 캠코더의 화면처럼, 근친상간 그 자체만을 다루면서 식물성의 세계를 오롯이 드러내고자 하는 것, 그것이 작가의 본래 기획이고, 작가가 생각하는 예술이다. 그러나 그것은 밀실에서나 가능하다. 그것이 공적인 장으로 나올 때(발표될 때), 현실로부터 포르노그래피 혹은 외설로 집중 공격을 받을 수 있다. 이러한 비난을 피하고, 작가가 생각한 본래의 의도를 어느 정도 형상화하는 안전장치가 필요하다. 그것이 ‘아내’이다.‘아내’는 현실 사회의 제도적이고 관습적인 윤리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이 ‘아내’의 등장에 의해 ‘그’와 ‘처제’의 근친상간은 작품 속에서 불륜으로 비판된다. 작가는 ‘아내’를 작품 결말 부분에 등장시켜 이 작품이 포르노그래피 혹은 외설이라는 비판을 비껴나가게 하고, 그러면서 자신이 본래 지향하는 예술(식물성의 세계를 형상화한 것)의 측면을 드러내 보이는 것이다. 이러한 측면은 한편으로는 작가 한강의 영민한 균형 감각에 기인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식물성의 세계를 전면화한 예술을 공적 영역으로 드러내기에는 아직도 현실의 억압과 금기가 완강하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드러내는 작가의 비판 의식에 기인하는 것이기도 하다. 작가의 본래적 욕망과 안전장치가 균형을 이루면서, 식물성의 세계에 대한 욕망을 드러내는 것이 ‘채식주의자’,‘몽고반점’,‘나무불꽃’으로 이어지는 연작이다. 이들 소설에서 영혜라는 인물은 그녀의 남편, 형부, 언니의 시선 속에서 포착된다. 세 인물은 각각 독특한 인물형을 표상하며, 그 인물형이 일상 속에서 살아가는 방식을 드러낸다.‘채식주의자’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그녀의 남편(나)은 속물을,‘몽고반점’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형부(그)는 예술가를, 그리고 ‘나무불꽃’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언니(그녀)는 일상에 함몰되어 정체성을 잃고 방황하는 인간을 표상한다. 그들은 모두 길들여진 욕망에 사로잡힌 채 진정한 욕망을 추구하려는 영혜를 경계 밖으로 일탈한 인물로 취급하고 폭력을 휘두른다. 광인으로 내몰리는 가운데 영혜는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라도 자신의 욕망을 지켜내려 한다. 연작에서 교직된 인물들이 그려내는 삶의 진실은 무엇인가. 그들은 어떠한 삶이 진정한 삶이라고 인식하는가. 혹시 그것은 우리에게 진정한 욕망이란 ‘광기’와도 같은 것, 정상의 영역을 벗어난 것, 그래서 죽음과도 같다고 말하는 것은 아닌가.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한 채로 영혜는 죽음을 향해 한발 한발 다가간다. 그런 영혜에게 작가 한강의 깊고 고통스러운 숨결이 느껴지는데, 그것은 한강의 고민이 바로 진정한 욕망의 탐구 위에 있음을 방증한다. 5. 텍스트의 독법, 타자를 향하여 한강의 소설은 탄탄한 서사구성으로 인정받는다. 거기에 더해 텍스트 간의 긴장관계까지도 탄탄하게 조여 낸다. 그런 까닭에 한강의 소설 전체를 하나의 텍스트로서 파악하는 독법이 필요하다. 일종의 텍스트 간 소통의 재구성 방식이다. 그 하나로 고통스러워하는 주인공의 내면을 내밀하게 파헤치는 방식.‘여수의 사랑’에서 그 면모를 발견할 수 있다. 둘, 둘 이상의 고통스러워하는 인물들이 서로의 고통을 마주 보기.‘저녁빛’이나 ‘진달래능선’,‘어둠의 사육제’에서는 서로의 고통스러운 내면을 보듬어주는 중층적인 시선들이 교직된다.‘내 여자의 열매’에서는 식물 되기를 꿈꾸는 인물의 내면을 편지 형식으로 삽입하고 지켜보는 시선에 남편을 배치한다. 셋, 동일한 사건을 겪는 인물들의 다중초점화.‘채식주의자’,‘몽고반점’,‘나무불꽃’이 만드는 연작 형식. 영혜라는 인물을 중심에 두고 ‘채식주의자’는 그녀의 남편의 시선에,‘몽고반점’은 형부의 시선에,‘나무불꽃’은 언니의 시선에 초점을 맞추고, 영혜를 바라보는 중층적인 시선들을 세 작품에 나누어 배치한다. 그럼으로써 식물성의 세계를 지향하는 영혜의 욕망을 보여주고, 그녀의 욕망이 일상 속에서 어떻게 인식되는가를 부각시킨다. 더불어 텍스트마다 화자를 바꾸어 조명함으로써 각 인물의 내면을 포착하고 그 인물이 다른 인물들에게 어떻게 인식되는가를 보여주고자 한다. 그 결과 각 인물들은 세 텍스트 안에서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시선에 의해 입체적으로 살아 움직이면서 ‘지금, 이곳’의 리얼리티를 무수히 직조한다. ‘여수의 사랑’에서 자흔이 꿈꾸는 ‘여수’에서부터 출발하여 ‘채식주의자’ 연작에서 영혜가 꿈꾸는 ‘나무 인간의 세계’로 나아가는 한강의 소설들은 궁극적으로 인간 존재에게 결여된 빈 공간이자 잃어버린 ‘타자’를 찾아가는 지난한 행보를 보인다. 한강은 그러한 타자와의 합일을 지향함으로써 폭력적인 일상 속에서 위협당하는 나약한 인간 존재를 보듬고자 한다. 작가 한강이 어두움의 세계, 즉 은밀하고도 사적인 영역들에 은폐되어 있는 죽음, 성, 욕망 등을 공론화의 장으로 내어 놓고, 그럼으로써 인간 존재에 대한 철학적 사유의 깊이를 마련하려는 시도는 그래서 더욱 값진 의미를 갖는다.
  • 시·구청 시무식 풍경

    시·구청 시무식 풍경

    ‘열정, 민심, 개발, 그리고 성과….’ 2일 열린 서울시와 25개 자치구 시무식에서 드러난 2008년의 키워드이다. 이날 오전 세종문화회관에서 시무식을 가진 오세훈 서울시장은 “서울시와 자치구의 공동협력에 이제 중앙정부와도 원활한 협력관계를 구축하게 됐다.”면서 “유기적인 정책이 일선 행정현장에서 빛을 발하도록 하자.”고 말했다. 구청장협의회 회장 자격으로 참석한 양대웅 구로구청장은 “(대통령 당선인이 전 서울시장인 만큼)나라와 서울시, 자치구가 함께 발전하자는 의미로 건배사의 구호를 앞글자를 한자씩 추려 ‘나서자’로 하겠다.”고 화답했다. 자치구별로 열린 시무식에서 구청장들은 각자의 소신을 담아 힘찬 시작을 알렸다. ●남다른 시무식, 남다른 한 해 서초구는 이웃과 함께 하는 시무식으로 새해를 시작했다. 박성중 구청장은 이날 직원들이 모은 생필품 800여점을 지역 저소득 주민에게 전달하며 “형식적인 시무식에서 벗어나 이웃과 함께 하고, 지역내 기부문화를 조성하자는 의미”라고 전했다. 노원구는 노원문화예술회관에서 햄릿을 관람하는 이색 시무식을 열어 관심을 모았다. 직원들의 문화 마인드 향상을 강조한 이노근 구청장은 시무식에서 경쟁력 강화를 위해 긍정적·창조적인 마인드를 역설했다. ●일한만큼 보상 받는다 김영순 송파구청장은 “신명나게 일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겠다.”면서 “변화를 예측, 준비하고 열심히 일해 성과를 거둔 직원을 승진시킬 것”이라면서 ‘일하는 만큼 보상받는다.’는 점을 강조했다. 능력 위주의 성과 인사와 포상을 강화하겠다는 김효겸 관악구청장은 “직원교육비를 전년 대비 2억 5000만원 늘리고 우수제안포상금 1600만원, 성과포상금 3000만원도 마련했다.”면서 능력과 성과를 독려했다. 서대문구에서는 ‘열정’이 떠올랐다. 현동훈 구청장은 “구정의 모든 분야에 신념과 열정, 역량을 기울여야 한다.”면서 “내 분야에서 최고의 전문가가 되겠다는 사명감으로 조직에 필요한 인재가 되어 달라.”고 강조했다. ‘동장의 소사장론’을 강조한 신영섭 마포구청장도 “동장 각자가 소사장이 됐다는 자세로 다양한 행정 실험을 추진하는데 힘을 보태 달라.”고 말했다.“모든 일은 사람의 마음으로부터 시작된다. 사랑과 인화가 충만된 직장이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다.”는 홍사립 동대문구청장의 말도 같은 맥락이다. ●올해는 개발에 총력 김충용 종로구청장은 변화와 혁신을 강조하면서 “올해 국제적인 경쟁력을 갖춘 문화도시를 만드는 게 목표”라면서 “변화의 큰 획을 긋는 원년을 만들자.”고 강조했다. 김현풍 강북구청장도 “강북구는 변두리에서 지역개발, 행정우수 등을 통해 언론의 관심을 집중적으로 받았다.”며 실적을 소개한 뒤 “도약과 번영으로 활력이 넘칠 것”이라고 덧붙였다. ‘구심개발’을 핵심으로 꼽은 한인수 금천구청장은 “산업집적활성화 및 공장설립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통과될 수 있도록 모든 행정력을 모으겠다.”며 포부를 밝혔다. 최우선 과제는 지역경제 활성화라고 말한 최용호 강동구청장 권한대행은 “경제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도시는 죽은 도시”라면서 “도시기반시설 확충과 고품격 주거단지를 조성하겠다.”고 말했다. ‘도심 재생’을 통한 강한 중구를 강조한 정동일 구청장은 “초고층빌딩 건설 등 우리의 노력 하나하나가 모여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밝혔다. ●현장 목소리 듣고 변화를 이호조 성동구청장은 “실천 없는 계획은 그저 꿈에 불과하다. 올 한 해 우리의 해답은 현장에 있다.”면서 “올 한 해 발로 직접 뛰는 행정을 펼쳐달라.”고 주문했다. 김재현 강서구청장은 “2008년은 변두리로 남느냐, 아니면 강남 못지않은 신도시로 발전하느냐의 기로에 선 시기”라고 정의하면서 “선택과 집중으로 구민이 하나가 된다면 마곡 워터프런트, 뉴타운 등 못해낼 일이 없다.”고 자신감을 내보였다. 추재엽 양천구청장은 창의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상상력 행정’을 펼쳐 변화와 혁신을 이뤄야 한다고 말했다. 박장규 용산구청장은 “첨단명품도시 건설을 위한 용산 개발에 박차를 가하자.”고 운을 뗀 뒤 구민 중심의 친절하고 투명한 행정도 잊지 않았다. ●성과는 계속돼야 한다 지난해 전년도에 비해 2배 이상의 인센티브 사업 성과를 낸 문병권 중랑구청장은 ‘성과와 지속’을 패러다임으로 정하고,“사람·자연·도시가 조화되는 지속적인 발전을 이뤄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재동 은평구청장은 “꿈을 아끼면 성공하지 못한다는 일념으로 많은 성과를 냈지만 여기에 안주할 수는 없다. 국립보건원 부지, 불광·역촌역세권 개발 등 숙원사업이 남아 있다.”면서 완성도를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찬교 성북구청장은 “복지·문화·웰빙의 기틀을 다진 만큼 이제는 성북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겠다.”면서 “길음·정릉·장위뉴타운 등을 차질 없이 추진해 동북부 중심지역으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맹정주 강남구청장은 ‘세계 최고의 도시들과의 전쟁’을 선포하며 “특히 강남을 사교육 1번지에서 공교육 1번지로 변모시키자.”고 역설했다. 시청팀
  • [추락하는 만화산업] 만화가 상상력에 투자해야 활로 열린다

    [추락하는 만화산업] 만화가 상상력에 투자해야 활로 열린다

    지난해 하반기에 유일하게 300만명의 관객을 동원한 영화 ‘식객’을 비롯해 방송드라마 ‘궁’(2006년),‘풀하우스’ (2004년),‘다모’(2003년)까지 매년 등장하는 히트작들은 공통점이 있다. 바로 국내 만화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렇듯 영화와 방송 등 문화계 주류로 불리는 숱한 장르들이 만화에 큰 기대를 걸고 있지만 정작 추락하는 만화산업은 침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무자년(戊子年) 새해를 맞아 소외된 우리 만화 산업의 성장 가능성을 짚어봤다. 현재 우리 만화산업은 동력을 잃어버린 돛단배와 같은 처지이다. 물밀듯이 밀려오는 일본 만화(망가)에 이리 밀리고 저리 밀리는 신세다. 일본 만화는 97년 만화 전면 개방에 따라 국내 출판 만화산업을 70∼80% 이상 흡수해 버렸다. ●가격 경쟁력 앞선 日 만화가 ‘점령´ 일본 만화가 우리 시장에 깊숙이 침투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가격 경쟁력에 있다. 국내 만화가 일반적으로 10%의 인세를 붙이는 반면 대량으로 수입되는 일본 만화는 이미 시장에서 검증받은 유명 만화의 경우도 작품의 인세가 8%를 밑돈다. 또 일본 만화는 만화가에게 추가로 고료를 지급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가격 경쟁력 면에서 국내 만화는 점점 더 설 자리를 잃고 있다. 일본 만화와 대등하게 경쟁하면서 우리 만화산업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만화계에서는 영화 시장의 쿼터제처럼 일정 부분의 쿼터를 지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내놓지만 일단 전면 개방한 시장을 다시 묶기는 어렵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견해다. 그 대신 주먹구구식으로 시행되는 만화계 지원사업의 구조를 바꿔 ‘기초 체력’을 키울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만화평론가 박석환(35)씨는 “일단 만화가에 대한 직접적인 지원을 통해 창작 여건을 만들고 내수시장도 안정화시킨 다음 해외시장 진출사업을 연계한다면 승부를 겨룰 만하다.”며 “지금과 같이 만화 지원 사업이 단순히 외형적인 인프라 구축에만 집중된다면 승산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만화계 지원 예산 한 해 20억원 불과 문화관광부와 국회 문화관광위원회에 따르면 올해 문화계 예산안 중에 만화 부문의 지원 규모는 20억원에 그쳤다. 영화산업의 35분의1 수준이지만 전문가들은 이마저도 ‘합목적적’으로 적절히 쓰일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만화계를 지원하는 중추 기관인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의 올해 추진 사업만 살펴봐도 ‘문화산업홍보관 구축’‘문화콘텐츠 전문인력 양성’ 등 구호만 요란했지 만화계에 실질적인 도움을 줄지는 미지수다. 지난해까지 문화관광부가 추진한 ‘만화산업진흥 5개년 계획’도 그 성과를 구체적으로 체감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구미 학습만화시장 등 공략해야 향후 미래 성장동력으로 지적되는 수출 분야도 전략을 다변화할 필요가 있다. 특히 미국이나 유럽 등에서 틈새 전략의 하나로 학습만화 시장을 공략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서구 만화시장의 경우 우리의 학습만화는 독창적인 사업 아이템으로 안성맞춤이라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그동안 장르만화를 수출해 쏠쏠한 재미를 봤지만 이제 더 이상 신간이 나오지 않는 현실에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문제는 이 같은 큰 그림을 그릴 만한 자본과 두뇌가 부족하다는 점이다. 만화평론가인 박인하(38) 청강문화산업대 만화창작학과 교수는 “우리가 갖고 있는 학습만화의 경쟁력을 잘 살리면 수출을 크게 일으킬 수 있다.”며 “정부와 만화계가 적극적으로 나서 홍보와 기획, 자본의 3박자를 맞추도록 철저히 준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콘텐츠 다양성 고민할 때 온라인 만화시장에 대한 담론도 활성화돼야 한다. 다행히 온라인 만화의 성장세가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무료화 모델’의 경우 자칫 만화의 구매 가치를 떨어뜨려 일반 장르만화에까지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우려다. 그런 만큼 다양한 ‘유료화 모델’을 개발하고 단순함을 추구하는 온라인 만화의 질을 높이는 데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얘기다. 박 교수는 “속도감 있는 온라인 만화는 완성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이런 만화 위주로 업계가 끌려 간다면 일본 만화와의 격차는 오히려 더 벌어지고 자승자박이 될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만화산업의 질적인 성장을 위해서는 만화가 스스로의 분발도 요구된다. 한국 만화를 ‘제2의 망가’라며 비하하는 자조적인 말은 더이상 도움이 되지 못한다. 우리만화연대 신성식(41) 사무국장은 “우리나라 만화는 콘텐츠의 다양성이 부족하고 밀도 있는 서사 만화도 점차 사라지고 있다.”며 “우리가 수출하는 것은 망가가 아닌 독창적인 ‘우리식’ 만화인 만큼 어느 때보다 치열한 고민이 필요한 때”라고 말했다. 정현용기자 junghy77@seoul.co.kr
  • ‘물의 결가부좌’ 로 노작문학상 받은 이문재

    “그간 시는 독자들과 괴리감이 컸다고 생각합니다. 시가 다시 살아나려면 독자들과의 소통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앞으로 이 점에 염두에 둔 시작(詩作)활동을 하려고 합니다.” 제7회 노작문학상을 받은 이문재(47) 시인의 작품집 ‘물의 결가부좌’(동학사 펴냄)가 출간됐다. 표제작과 ‘손은 손을 찾는다’‘산세베리아’‘사막에 나무를 심었다’‘달밤’등 수상작 5편과 대표작 10편 등 모두 15편이 실렸다. 노작문학상은 시 ‘나는 왕이로소이다’를 쓴 노작(露雀) 홍사용(1900∼1947)의 문학 정신을 기리기 위해 제정됐다. ●‘변하지 않는 것도 있다´ 는 의미 전달 ‘물의 결가부좌’는 연꽃이 피는 시기 등 시간의 문제를 감수성이 뛰어난 문체로 다루어 현대인의 상처를 치유하려고 노력하려는 흔적이 곳곳에 배어 있다.“이 시가 전적으로 상상력을 동원해 쓴 것은 아니에요. 다산 정약용이 젊었을 때 친구들과 연꽃놀이를 하며 시를 지었데요. 연꽃이 필 때 연못에 배를 띄워 연꽃의 향기를 맡았다는 역사적 기록을 바탕으로 했습니다.” ‘옛 문인들은 이렇게 연꽃을 감상했구나.’하는 사실(史實)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시인은 시간의 문제를 유려한 문체로 풀어내고 있다.“어서 연못으로 나가 보아라/ 연못 한가운데 뗏목 하나 보이느냐/ 뗏목 한가운데 거기 한 남자가 엎드렸던 하얀 마른 자리 보이느냐/ 남자가 벗어놓고 간 눈썹이 보이느냐/ 연잎보다 커다란 귀가 보이느냐/ 연꽃의 지문, 연꽃의 입술 자국이 보이느냐/ 연꽃의 단 냄새가 바람 끝에 실리느냐” 모든 것이 변화하는데 변하지 않는 것도 있다는 의미를 다른 말투로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싶었다는 게 시인의 작품 메시지인 셈이다. ●생태주의적 관점서 접근 “개인적으로는 자연 생태학에 관심이 많아요. 생태학의 범위는 굉장이 광범위합니다. 이를 테면 느림의 미학, 즉 걷기 등과 같은 그런 것들이지요.” 지배-피지배, 남성우월주의 등으로 대변되는 20세기 시각 중심 문화로 훼손된 미각·시각·후각 등 근접 미각을 복원하는 데 힘쓰겠다는 얘기다. 느림의 미학을 중시하는 만큼 시인은 자연히 느슨한 산책을 허용하지 않는 도심의 한복판을 걸으며 현실의 풍경을 세세히 돌아본다는 게 문단의 평이다. 해서 속도와 능률이 지배하는 현대적 삶의 중심을 거부하는 모반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제목이 ‘물의 결가부좌’인 만큼 불교적 색채를 띠고 있지 않느냐는 시각에 대해 시인은 단호히 손사래를 친다.“불교적이 아니고, 근접 미각의 회복 등 생태주의적 관점에서 접근했다고 보면 됩니다.” 깊고, 고요한 마음으로 사물에 먼저 손을 내미는 시인의 새로운 다짐이 읽혀지는 대목이다. 시인의 시어는 맑고 간결함으로 상징된다. 이는 곧 ‘언어경제’라는 말로 통하기도 한다.“시인 김종삼을 좋아합니다. 그의 깐깐한 언어경제에서 비롯되는 인간에 대한 연민 같은 것을 배웠다고 할 수 있죠. 그러다보니 압축적인 시어가 내 작품 속에서도 녹여든 것으로 보이는 모양이지요.” 1982년 ‘시운동’ 4집에 ‘우리 살던 옛집 지붕’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한 그는 시집 ‘내 젖은 구두 벗어 해에게 보여줄 때’·‘산책시편’·‘마음의 오지’와 산문집 ‘내가 만난 시와 시인’ 등을 펴냈다. 노작문학상 외에도 김달진 문학상·시와시학 젊은시인상·소월시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 썰매를 타고/정유정 글·그림

    춥다. 손도 발도 꽁꽁 언 겨울이다. 아이가 홀로 썰매를 탄다. 친구도 없이 혼자 탄다. 꽈당 혼자 넘어지고, 히죽 혼자 웃는다. 앉아 타면 스르륵! 서서 타면 씽씽 쌩쌩! 아이는 혼자 썰매 타고, 혼자 찔끔 눈물 흘린다. ‘썰매를 타고’(정유정 글·그림, 사계절 펴냄)는 홀로 썰매 타는 볼 빠알간 아이 이야기다. 초록 털장화를 신고, 색동 빵모자를 썼다. 오리떼 노는 저수지를 피해 쾅쾅 발 굴러도 안 깨지는 얼음 논바닥에서, 아이는 혼자 썰매를 탄다. 경기도 안성 도심의 아파트에 사는 작가는 같은 도시 변두리 작업실로 출근하던 중이었다. 작업실 근처 저수지 가에서 홀로 썰매 타는 한 아이를 발견한다. 친구도 없이 혼자 미끄러지고 넘어지며 썰매를 지치는 아이를 보며, 작가는 생각했다.‘저 아이는 지금 누구와 썰매를 타는 걸까?’ 답을 얻고픈 작가는 아이가 했던 것처럼 혼자 썰매를 타봤다. 혼자 미끄러지고 넘어지고, 혼자 손 호호 불고, 혼자 아픈 엉덩이 쓰다듬은 후에야, 작가는 아이 곁에서 함께 썰매 타던 동무들이 눈에 들어왔다. 쪼르르 달려 나온 청설모를, 깡총 뛰어든 아기사슴을, 뒤뚱뒤뚱 걸어온 오리를, 우람한 체격의 반달곰을, 아이는 차례차례 썰매에 태운다. 상상력 하나로 외로움을 거뜬히 이겨낸 아이에게, 얼마 후 반가운 현실의 목소리가 들린다.“아빠가 한번 태워줄까?” ‘혼자인 시간’마저 웃는 얼굴로 이겨내는 아이의 생기발랄함이 따뜻한 그림을 껴입어 더욱 훈훈해졌다.7세 이하. 1만 500원. 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 [땅끝마을에서 한양까지 다시 걷는 옛길] (12) 경기 평택~화성 태안

    [땅끝마을에서 한양까지 다시 걷는 옛길] (12) 경기 평택~화성 태안

    땅끝마을 해남에서 출발한 옛길은 어느덧 경기 땅에 다다른다. 안성천을 건너면 시원하게 펼쳐진 평택의 ‘소사평야’가 한 눈에 들어온다. 고려시대까지는 이곳이 조수가 밀려드는 갯벌과 바다 갈대가 무성한 늪지대였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조선시대 후기와 일제 때 이뤄진 대규모 간척사업으로 경작지로 변모했다. 들판은 바둑판처럼 경지정리가 돼 있어 옛길은 지금 온데 간데 없이 사라졌다. ●한양으로 가는 관문 논길을 따라 한참 걸어 평야 끝자락 소사마을에 이르러서야 옛길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소사마을은 충청도에서 한양으로 갈 때 반드시 지나가야 하는 관문으로, 보행자를 위한 국영여관인 원(院)이 있었다. 지금도 이런 이유로 소사원 또는 원소사 마을로 불린다. 소사마을 북쪽 고갯마루에는 대동법시행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대동법은 각 지역의 특산품을 쌀로 일괄 납세토록 한 조세제도로 광해군(1608년)때 경기도에 시범실시된 뒤 전국으로 확대됐다. 초기에 지배층의 반발로 시행에 어려움을 겪었으나 충청도 관찰사로 부임한 잠곡 김육(1580∼1658)이 성공적으로 실시, 전국으로 확대됐다. 김육이 죽은 이듬해(1695) 충청지방 백성들이 그의 은혜를 잊지 못하고 한양으로 가는 길목인 소사원에 비를 세웠다. 대동법기념비에서 마을 길을 따라 200m 가량 이어진 옛길은 이내 촘촘히 들어선 아파트에 가로막힌다. 단지를 돌아 1번 국도와 연결되는 산업도로로 2㎞쯤 가면 ‘배다리방죽’이라고 불리는 저수지가 나온다. 이곳은 1973년 아산만 방조제가 건설되기 전만 해도 상류에서 내려오는 하천과 아산만에서 거슬러 올라가는 바닷물이 만나는 지점이었다. 방죽에서 옛길의 흔적을 좇아 언덕을 오르면 과수원이 나온다. 완만한 이 산능선은 ‘재빼기 고개’라고 부른다. 이 고개를 넘으면 통복천변 가내마을이 나온다. 하천옆에 있다고 해 ‘가내’라고 붙여졌다. 마을에는 해방 직후까지도 소문난 ‘주막’이 있었는데 한양과 지방을 오가는 여행객들이 들러 목을 축였다고 전한다. ●보전 양호한 칠원길 이몽룡도 이용 평택∼용인간 45번 국도와 통복천을 건너 경지정리된 논길을 따라가면 ‘충청대로’와 합류되는 칠원에 당도한다. 충청대로는 이곳에서 충남 보령까지 이어지며 조선시대 왕이 온천이 있는 온양 행궁으로 내려갈 때 이 길을 이용했다고 한다. 칠원에서 지금의 칠원1동으로 불리는 갈원까지 이어지는 옛길은 원형이 잘 보존돼 있다. 가마가 교행할 수 있는 폭 3m를 유지한 채 인적이 드문 구릉지와 논밭 사이를 지난다. 시멘트 포장만 없다면 영락없는 수백년 전 옛길이다. 이몽룡도 한양으로 갈 때 이 길을 이용했다.‘춘향전’에는 암행어사가 된 이몽룡이 남원으로 향하는 대목에서 ‘떡전거리에서 중화하고 중밋오뫼, 진위, 칠원, 소비새들, 천안삼거리를 지나….’라는 대목이 나온다. 이야기꾼들은 여기에 자신의 상상력까지 덧붙여 재미난 얘깃거리를 지어냈다. 평택에서 이몽룡과 춘향이와의 얽힌 얘기가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갈원에는 옛 주막이 있던 자리에 ‘옥관자정’ 또는 ‘옥수정’으로 불리는 우물이 남아 있다. 조선시대 인조가 이곳을 지나다 갈증이 심해 신하에게 물을 떠오라고 했는데, 우물에서 떠온 물 맛이 너무 좋아 ‘옥관자’란 벼슬을 내렸다고 전한다. 이어 평택~안성간 고속도로와 원곡~송탄간 302번 지방도를 가로질러 도일동 사거리에 이른다. 사거리 도로 중앙에는 500년 된 18m 높이의 엄나무 성황목이 버티고 있다. 이 곳에서 만난 한 노인은 “원래 두그루가 있었는데 한 그루만 남았다. 이 곳을 지나는 사람마다 성황목을 보고 소원을 빌었다.”고 전했다. 성황목 주변은 감주거리라고도 불렀다. 한양에서 지방으로 내려가던 행인들이 평택에서 가장 험한 고개(큰흰치고개)를 넘은 뒤 기진맥진한 상태에서 마신 술맛이 하도 좋아 붙여진 이름이다. 사거리에서 동쪽으로 조금 떨어진 도일동 마을에는 원균 장군의 묘가 있다. ●원균 태어나 살던 곳 도일동 평택을 대표하는 인물인 원균 장군은 한때 역적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지만 군사정권 당시 정치적 의도에서 비롯된 것으로 알려졌다. 원균 장군은 임진왜란 당시 경상우도 수군절도사로 옥포해전에 참전해 왜선 30척을 격침시키는 등 많은 공을 세웠다. 칠천량 해전에서 아들과 함께 전사했으며 이순신·권율 장군과 함께 선무 1등 공신 원릉군에 봉해졌다. 평택시는 도일동에서부터 진위천 못미쳐 마산리까지 5.5㎞ 구간을 옛길 현대화의 일환으로 복원했다. 이 구간은 지금까지 걸어온 옛길의 연장선이다.‘삼남대로(또는 호남대로)’를 복원한다는 명분이었지만 직선의 편리성만 강조한 탓에 옛길은 곡선의 미학을 잃어 버린 채 아스팔트 포장 속에 묻혀 버렸다. 317번 지방도로로 명명된 이 구간에는 작은 흰치고개라 불리는 염봉재, 백현원, 큰 흰치고개, 숲안말, 춘향이 길 등 역사와 지명에 얽힌 이야기들이 전해져 온다. 마산사거리를 지난 옛길은 이내 진위천을 만난다. 진위천은 조선시대에 장호천 또는 구천이라고 불렸다. 당시에는 목교(현 봉남교)가 설치돼 있었으며 관원이나 상인들은 이 다리를 건너 진위현에 당도했다. 관아는 봉남리 진위초교와 진위면사무소에 걸쳐 있었다. 진위면 봉남리는 평택지방의 중심지였다.1938년 진위군이 평택군으로 바뀌기 전만 해도 고을의 읍치(邑治)로서 권위를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경부선 철도가 비껴가고 평택역 지역이 개발되면서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옛길이 그런 대로 보전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복원으로 훼손된 도일동∼마산리 옛길 진위초교까지 이어진 옛길은 왼쪽으로 꺾이면서 314번 지방도와 잠시 겹치다 한국야쿠르트 연구소 앞에서 21번 국지도를 따라 오산으로 향한다. 오산에서부터 옛길은 1번 국도과 다시 한몸이 된다. 그동안 평택지역에서 만난 적은 단 한번도 없었지만 화성 태안까지는 거의 일치한다. 오산으로 들어온 옛길은 주택가와 구시가지를 지나 궐동지하차도 지점에서 경부선 철도와 교차한다. 중미고개에 이르자 도로 바로 오른편에는 유엔군 초전투비가 서 있고 왼편으로는 멀리 ‘독산성’이 보인다. 백제때 쌓은 독산성은 임진왜란 당시 권율 장군이 물이 부족한 상황을 왜군에게 숨기기 위해 산성에서 쌀로 말을 목욕시켰다고 해 세마대(洗馬臺)로 부르고 있다. 옛길은 잠시 ‘떡전거리’로 알려진 화성 태안읍 병점을 지나 경부선과 옛 1번 국도 사이의 논길을 오가며 수원에 들어선다. 평택 김병철기자 kbchul@seoul.co.kr ■향토사연구가 김해규씨 “옛길 무분별 현대화보다 당시 정취 살리며 복원을” “평택지역의 옛길은 보존 상태가 비교적 좋은 편이지만 대규모 택지개발사업 등으로 사라질 위기에 있습니다.” 평택의 향토사를 연구하고 있는 김해규(46·한광중) 교사는 “새로운 길이 뚫리고 사람과 물자가 유통되면 자연스럽게 옛길은 사라지기 마련이다.”면서 “그러나 평택의 옛길은 일제 강점기에 공사가 시작된 경부선철도와 1번 국도가 비껴가는 바람에 잘 보존됐다.”고 말했다. “안성천에서 넘어온 옛길 배다리방죽∼가내 구간은 거의 원형 그대로의 모습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하지만 이도 오래가지 못할 것입니다.” 김 교사는 “최근 10년 동안 동서 또는 남북간 도로가 건설되고 크고 작은 택지개발이 진행되면서 상당 부분 훼손됐다.”며 “보존 상태가 좋은 배다리방죽∼재빼기 구간도 내후년이면 소사벌 택지개발로 제모습을 잃게 될 것”이라고 걱정했다. “문화유산은 있는 그대로 보존하는 게 원칙입니다. 개발을 하면 원형이 훼손되고 역사·문화적 향취를 상실하기 때문입니다.” 김 교사는 민선 지자체 1·2기때 복원된 옛길 도일동∼마산리 구간에 대해 “옛길 현대화라는 명분은 좋았지만 직선의 편리성만 강조한 실패작”이라고 지적했다. 사전 지표조사를 통해 옛길의 정확한 노선은 물론 전통, 근대가 함께 공존하는 방법을 찾아야 하는데 이런 점이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옛길을 현대화하기보다는 문경새재 처럼 원형 그대로 복원하거나 아니면 자전거와 트래킹 도로 정도로 복원하고 길가에 주막거리를 조성하는 등 옛문화의 정취를 살릴 수 있는 방향으로 이뤄지지 못한 점이 아쉽다.”고 말했다. 김 교사는 “결국 지방자치단체의 역사·문화의식 부재가 훌륭한 문화콘텐츠를 잃게 한 결과를 빚어냈다.”며 “옛길 복원을 하려면 제대로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1989년 평택에서 교편을 잡기 시작한 김 교사는 평택지역의 향토사를 연구하면서 ‘평택향토문화동호회’를 창립하고 ‘평택호 물줄기 따라밟기’,‘평택의 마을과 지명이야기’,‘평택의 문화유산길라잡이’ 등 다수의 책을 냈다. 평택 김병철기자 kbchu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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